월간이리 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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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4호 2년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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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월간이리 12년 12월호
Page 2: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순서 입니다.

표지 화가 이주용 전시 홍보

EGG IN WONDERLAND / 그림. 안경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사진. 글. @Ahopsi

같은 : [愛] / 사진. 황예함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 글. 곡주대비

세계의 직업 / 그림. 왼손이

Midnight in Seoul / 글. aoikasa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 / 글. 안언주

Public Gastronomy / 글. 사진. 미식의 별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독후소설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월간이리를 만드는 사람들

흔적 도감 / 글. 그림. 왼손이

부산 오뎅 이야기 / 글. 사진. odeng

INTO THE JAZZ / 글. 사진. 이상준

자기연민 / 사진. 박민수

인왕산 / 사진. feverboo 글. 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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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장에 다녀왔습니다.

사람 사는거 참 별거 없지 싶습니다.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마냥 즐겁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팍팍합니다. 일단, 투표를 잘

마치고 결과에 따라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월간이리는 12월 19일 대선 결과에 따라 <월간 새이리>, <월간 누리>,

<월간 유신> 등의 탁월한 개명절차도 고심하고 있습니다. 산넘어 절벽이

라면 하아... 정말.. 어쩌지..

이달에는 재미있는 필자들의 프로필 사진이 실렸습니다. 캐리커처나 부위

아니면 인물사진 등을 보시고 당사자를 찾아가 싸인요청 같은것 하셔도

됩니다. (만날 수 있다면..)

지금 창 밖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습니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발이 무척

시렵습니다.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보일러를 켭니다.

이번 연말은 웃음과 여유를 충전하여 지인들의 추위를 잊게 하는 뜨끈한

보일러가 되어 보는건 어떨까요?

친구에게는 초코파이를 투척하고 연인에게 눈덩이를 던지는 좋은 12월이

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내년에는 3년차, 중견 잡지로 돌아오겠습니다. 화이팅.

술은 작작.

월간이리의 공식 트위터는 @postyri 이고

온라인 페이지는 postyri.blogspot.com 입니다.

이곳에서는 컬러 PDF 파일과 바로보기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월간이리에 연재를 희망하시는 분은 언제든 편하게 공식 트위터로 멘션을

주시거나 월간이리 기고 안내문으로 검색하시면 잘 정리되어 있으니 편하

게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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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그림을 그렸냐고 물었을 때, 작가는 “예전에는 자기들이 술먹던 주점 그림도 있고, 주변 풍경도 많았는데, 요즘엔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여기서 머물고 있고 이것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림을 팔아야 한다면 포르쉐 한 대 값 정도는 받고 싶다고.. 이어서 작가는 멋쩍어하며 “저렴한 포르쉐도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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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미 www.lostinmir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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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황예함 @flog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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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갤러리 투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두 장면의 로망을 그려봤으리라.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인 앤디와 오랜 감방 친

구인 레드가 재회하는 마지막 씬 같은 장면은 아닐지라도 소박한 꿈 하나씩은 조금만 긁어 주면 술술 나오더라.

옆자리에서 일하는 무뚝뚝한 부산 여 동료가 불을 뿜으며 방언을 터트린 주제도 회사 때려치우면 카페를 어떻게

차리고 싶냐느니, 기가 막힌 아이템으로 식당을 어떻게 차리겠다느니 이런 로망 얘기였다. 그래도 결론은 따박

따박 월급 주는 회사만한 곳이 없으니 조용히 그냥 사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점심 갤러리 투어를 위해 통의동을 걷다보니 자연스레 머리속으로 이곳에 사는 내 모습을 한번 그려보게 돼서

하는 얘기다. 고즈넉한 거리에 한옥 대문을 나서 통의동과 광화문을 거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회사까지 20분

이면 걸어가는 상상을 했다.

그야말로 꿈의 출근길이다. 점심시간에는 이제 막 일어서려고 손 짚고 흔들어대는 아기 보러 집에 가는 거다. 역

시 로망의 출근길을 그대로 되돌아서. 집에 도착하면 열두시 십분. 밥 먹고 애기와 잠깐 놀아주고 하면 열두시

사십분. 다시 회사로 걸어가면 한시 정각. 점심값 아끼지, 혼자서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하는 아내도 나 밥 준답

시고 잘 챙겨먹어서 가정 건강 증진하지, 애기랑 놀아주지. 크~

이런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투어는 제쳐놓고 부동산 시장 조사 나온 사람마냥 구불구불한 통의동 주택가를

휘젓고 다니며 집 구경 거리구경을 했다. 한참 걷다보니 투어 스팟인 자하문로 16번 길 정부합동청사 부근까지

왔다. 오늘은 동네의 중소 갤러리를 중심으로 돌 생각이다.

회사 옆 미술관 글. 사진. 강세기

통의동 거리(갤러리 팩토리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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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팩토리

사실 일부 대형 갤러리의 시각에 내 취향도 굳어질까봐

중소형 갤러리도 많이 가려하고 있다. 하지만 진득하게

돌아다닐 시간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막상 중소 갤러리

에 가보면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할 때가 많기도 하다.

작지만 좋은 작가를 소개하는 개성 있는 알짜 갤러리

들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은 회사로 따지

면 조용히 일 잘하면서도 디자이너 브랜드의 질 좋은

정장도 가끔씩 입어주는 세련된 과장급 갤러리를 찾아

돌아다니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 과장이 있을까?).

회사 옆 미술관 글. 사진. 강세기

헌책방 가가린

먼저 갤러리 팩토리(www.factory483.org)에 간다. 사진, 회화, 행위예술 다방면의 개성 있는 작가를 소개해

주는 이곳을 이 동네에서 제일 먹어주는 갤러리로 꼽고 싶다. 단순 전시를 넘어 출판 사업도 열심이다. 난 책을

내는 갤러리가 좋다. 단순 전시에 비해 배의 노력과 비용이 드는 기록을 보다보면 그 주제에 대한 진지함과 자신

감을 보다 여실하게 느낄 수 있어서 그런가 보다.

재력과 정치력을 앞세운 소수 갤러리와 컬렉터에 미술 판 전체가 끌려가는 요즘, 미술인이 직접 그 이야기 거리

를 만든다는 노력이 멋져 보인다. 여러모로 미술계는 물론 서브 컬쳐 영역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줄 곳으

로 기대된다. 통의동 투어 즐겨찾기에 한 꼭지를 차지할 듯 싶다. 갤러리 팩토리가 발행하는 버수스 Versus도

매우 재미있다.

아쉽게도 전시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갤러리 팩토리 옆, 헌책방 가가린(gagarin)에 갔다. 디자인과 미

술 서적을 중심으로 문학, 수필 그리고 앤틱 장난감까지 구멍가게만한 점포에 갖가지 책을 들여놓는 곳으로, 이

곳은 인디잡지를 다수 구비하는 몇 안 되는 서점이다. 물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주인장이 자리를 비웠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

갤러리 시몬(www.gallerysimon.com)의 권소원 전도 재밌게 봤다. 단순한 선으로 드로잉한 사람 형상, 특히

영상물이 인상 깊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남는 이미지를 만났다. 그림이라고 하기에도 좀 머시기 할 정도로 단순

히 사람을 묘사해놓은 그의 작업은 지금까지 좋아했던 그림과 다른 매력을 전해 주었다. 이런 게 투어의 묘미가

아닐까. 매력적인 아티스트를 내 마음속 컬렉션에 영입하니 배부르고, 새로운 표현을 만났을 때 좁은 지평이 조

금이나마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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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시몬 - 권소원<Melo>

갤러리 시몬은 국내외적으로 경력 면에서 안정적인 중진작가를 선호하는 인상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그간의 전

시와 작가군을 보니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조금 지루했다. 갤러리 주인의 취향이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보다 다

양한 작가군을 보여준다면 더욱더 쫄깃한 갤러리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떤 컬렉션을 전개해 나갈지 지켜보

아야 겠다.

갈 때가 되었다. 오늘 투어의 종착점은 부동산 중개소. 집 값을 한번 알아봤는데 역시 효과는 확실하다. 상상

의 나라에서 이 땅위로 급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당분간 웨스트 싸이드(강서구 화곡동)에 감사하며 살기로 ..

p.s. #1. 브레인 팩토리(www.brainfactory.org), 사루비아 다방(www.sarubia.org) 등을 돌아다녔다

p.s. #2 전시 사진은 모두 해당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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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흡혈, 즉 피를 빠는 행위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셀 수 없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작품들에서 모티브가 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유럽 문학, 특히 동유럽권에서 17세기 후반부터 다루어 지기 시작하여 호러

장르의 인기 소재로 자리 잡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많은 독자들이 읽어봤을, 혹은 영화들로 접해봤을

“드라큐라 (Dracula)” 라는 인물은 1897년 브람 스토커의 작품, 드라큐라 (Dracula)를 시점으로 많은 영화들로

재탄생 되었고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 받았다. 영화 역사상 가장 초기 작품들 중 하나로, F.W. Murnau 감독의 “

노스페라투 (Nosferatu)”는 무성/흑백 영화지만 스토커의 원작에서 나타나는 정교한 공포의 전율과 미나와 백

작간의 미묘한 섹슈얼 텐션을 잘 재현 하고 있다.

공포장르에서 재현되는 ‘피’와 여인네들 1화: 드라큐라 글: 곡주대비

드라큐라는 너무 많은 영화들에서 재현되었기

때문에 그 만으로도 장르 라고 지칭하기에 별 무

리가 없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드라큐라/흡혈귀

장르에서 “피” 와 “여성”은 가장 중추적인 요소

들로서 드라큐라 라는 애매모호한 존재, (예를

들어 죽은 자도 아니고 산 자도 아닌, 혹은, 신

을 부정하지만 십자가에 종속되는), 혹은 미완

성 적인 존재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흡혈귀에게 있어 (반)생명의 원천이

되는 피는 대부분 여성 희생자들에게서 공급 되

며, 이러한 여성들에 의한 흡혈이 영화에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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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될 때 이러한 행위는 마치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은

유 되어 보여질 때가 많다. 다시 말해 흡혈은 단순히 피

를 빨고 주는 행위가 아닌, 생명의 연장이고 잉태를 전

제로 한 관계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흔히 보아왔던 드라큐라 영화를 떠올려보라;

많은 영화에서 드라큐라들은 여성의 침대 (다른 장소

가 아닌)로 찾아 들며, 잠옷차림의 그녀들은 하얀 목덜

미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어주는데, 흡혈이 시작됨과 동

시에 얼마나 많은 여성 희생자들이 고통이라기 보단 쾌

락에 가까운 탄성/신음을 내는가.

이렇게 흡혈의 행위가 성적인 암시로서 사용된 경향은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서부터 주로 근대 문학이나 영

화들에서 보여지는데 그 배경이야 각각의 문화 별로 그

설명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드라큐라 영화가 가장

성행했던 미국의 영화 초반기, 즉 1920년대에서 30년

대를 들추어 보고자 한다.

이 때는 미국 사회가 세계전쟁이 끝나고 물밀 듯 밀려

오는 유럽 이민자들과 그들로 인해 줄어들 일자리, 식

량들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가 되었을 시기였다. 특히

미국 남성들이 자국 여성들을 유럽 이민자들에게 빼앗

길 지도 모른다는 사회 저변의 무드를 영화들이 반영해

내었고, 이 시기에 많은 공포영화들이 유러피안 괴물들

(특히 남성성이 극대화, 과장화 되어있는) 을 소재로 다

루기 시작한다. (예: 프랑켄슈타인, 드라큐라, 지킬 박

사와 하이드, 모두 이시기에 개봉되어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드라큐라 영화물에서 드라큐라 백작은 언제나

그의 “외국인” 신분으로 극명히 드러나며 (언제나 낯

선 나라에서 정착을 해보려는 시도로 영화들은 시작

된다),

드라큐라의 공포

수줍..

그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여성 (

주로 자신이 이주한 새 지역의 여성들)을 유혹하는데

실패가 없다. 따라서 드라큐라가 이러한 “자국여성”의

육체와 피를 탐하여 결국 자신의 종으로 만들고 종족을

보존하려 하는 것은 그 당시 미국 사회 에서 이루어 졌

던 대량의 유럽이민족들과 그들과의 수많은 인종결혼

의 사회상을 간과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혹자는 원작을 따랐을 뿐인 영화작품들이고 그 당

시 사회상 과는 무관 하다고 반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상 영화가 작품화 되기 위해서 고려되어지는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 한 작품이 선정되는 과정과 관심사를 고려

하여 보면 유독 20, 30년대의 미국사회에서 드라큐라

물과 다른 유럽 괴물 공포물이 범람하였던 것은 그 때

사회/문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Dracula, 1931, Bela Lug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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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을 더 증명 하듯, 스튜디오들은 뱀파이어

류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꼭 유럽배우들을 고집했으며,

그 전통은 지금 까지도 (트와일라잇!, 패터슨!)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불변의 원칙과

함께, 여성 희생자도 “자국여성 (즉 미국여성)” 이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Bram Stoker’s 165th Birthday NOV, 8 2012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30년대 헐리우드 판 드라큐라를 찾아보기는 힘들겠지만 1983년, 데이빗 보위가 주연한

<악마의 키스> 라는 작품은 꼭 구해서 보길 바란다. 최고의 뱀파이어 영화임은 틀림 없는 사실 이고, 유럽 괴물

vs. 미국 여성 의 구도가 여성들의 사랑 (?)으로 인해 묘하게 무너지는, 주류 뱀파이어 영화들과 병치해 두고 볼

만한 영화이므로.

다음화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를 통해 피와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어 있는지, 기존의 흡혈 장르와 어

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악마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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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야기 그 두번째. 鍾路.

종로는 왜 종로일까. 종로의 한자명은 鍾路, 종이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매해의 시작을 알리는 그 종, 지금 우리는 보신각이라 부르는 그 종루가 있어 붙은 거리명인 것이다.종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상업거리이다. 이 거리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서울의 주요 대로 중의 하나로 (조선시대 서울의 가장 중요한 대로는 경복궁 앞 육조거리(현재의 세종로), 종로, 그리고 남대문로였다.)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이 위치한 상점거리였다. 우리가 사극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상점가, 소위 운종가(雲從街,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몰려드는 거리)라 불리던 거리가 바로 종로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만큼, 이 곳에서는 상품의 판매와 재화의 교환 뿐 아니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펼쳐졌다. 지금은 자동차들에게 다 그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원래 종로는 600년간의 서울 사람들의 삶이 집약되어 있었던, 진정한 mixed-use space였다.종로에 변화가 생긴 건 19세기 말 근대화라는 세계적 현상이 한양에도 영향을 주면서부터이다. 고종은 종로와 남대문로에 전차선로를 개설하였고, 전차를 운행하던 한성전기회사를 종로 네거리에 세웠다. 종로 네거리에는 최초의 전기 가로등 3개가 설치되기도 했으며, 기존의 단층 한옥 상점을 대신하여 중국풍의 벽돌 건물과 2층 한옥이 세워지기도 했다. 이뿐인가. 한국 최초의 공원인 파고다공원도 종로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점차 청나라 상인들과 일본 상인들에게 상권을 빼앗기기 시작하더니 나라마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리며, 종로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상점가의 자리를 지난달에 다뤘던 명동 (혼마치(本町))에 내주게 된다. 남대문로며 남촌의 많은 도로들은 다 포장이 되었는데, 종로를 위시한 북촌의 길들은 1920년대 말에도 여전히 포장되지 않아 흙먼지 날리고, 가로등도, 가로수도 없는 상태였으니, 한 때는 전차가 제일 먼저 다니고, 근대화의 상징인 전기회사가 자리를 잡았던 종로가 어느새 모든 변화에서 뒤떨어지는 곳이 된 것이다.

Midnight in Seoul (부제: 우리 동네 이야기) 글. aoikasa

Prologue

두 번째 소개할 동네는 종로. 서울의 가장 큰 대로 중의 하나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거리인 종로는 20세기 전반에는 첫 번째로 소개했던 명동일대, 즉 혼마치(本町, 지금의 충무로)와 대응하는 북촌의 중심 상업가로였다.일본인들의 동네였던 남촌의 중심가인 혼마치가 일본을 통한 근대상품과 문화가 전해지는 장소였다면, 종로는 혼마치와 경쟁하면서, 또 일부 닮아가면서 조선인들의 동네였던 북촌의 중심 상점가로서의 위상을 지켜가고자 하였다. 즉 그들(일본)에 의해 ‘모던 경성’을 경험하고 느끼게 된 곳이 혼마치라면 종로는 우리 스스로 ‘모던 경성’을 만들어가고자 적어도 노력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식민지적 현실 속에서 비록 그들의 ‘혼마치’에 비해 덜 발전되고 덜 화려하였을지는 모르나, 조선인 청년들의 꿈과 고뇌가 모두 모여 있었던 곳. 그래서 애닲고 더 그리운 곳이 바로 종로였다. 비록 이제는 전차도 사라지고, 피맛길도 사라지고, 대규모 개발 속에 종로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도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종로가 품은 오랜 기억의 켜들은 20세기를 살아온 서울 사람들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1903년의 종로. 왼편의 큰 양식건물이 전차를 운행하던 회사, 한성전기회사 이다.

(사진 출처: 이돈우, 이순우, 꼬레아 에 꼬레아니, 하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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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의 종로. 대로변 길게 늘어선 행랑들과 거리 위에 새겨진 전차

길이 흥미롭다. (사진출처: 이돈우, 이순우, 꼬레아 에 꼬레아니, 하늘재)

종로의 근대화

종로라는 거리가 근대화 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종로의 모습들이 어떻게 쌓여온 것인지가 한 켜 한 켜 드러난다.

20세기 이전 종로는 단층 행랑들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었다. 도로 폭은 넓은 곳은 30m이상, 좁은 곳이라 할지라도 17m이상이 되는 넓은 도로였다. 행랑들 앞으로는 일종의 노점상의 역할을 하는 가가(假家)들이 늘어서 있고, 행상들 역시 도로에 즐비하였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도로를 종횡무진 활보하였으며, 이 넓디넓은 도로는 이들에게 시장이자 광장이자 놀이터였다.

1899년 이러한 거리에, 종로에서 남대문로까지 고종의 야심작인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신기하고도 기괴한 물체의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하고, 또 두려워했다. 이어서 19세기 말에는 일본에서 인력거가 들어오고, 미국에서는 자전거가 수입되었다. 1902년에는 처음으로 포드 자동차가 등장하였으며 1928년부터 부영버스가 서울 시내를 달리기도 하였다. 전차와 자동차 등을 타고 경험하는 도시의 풍경은 분명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감 있는 ‘모던’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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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가로위 다양한 교통수단들의 등장

전차 뿐 아니라 길가의 집들도 변해갔다. 처음에는 2층 한옥 상가들이 생기더니 3층 벽돌 건물들, 그리고 무려 4,5층의 콘크리트 쁼딩들(당시로선 고층쁼딩이라 불리던)도 등장한다. 그 뿐인가 간판들도 달리고 유리창도 생겼다. 더 이상 길 위에 물건을 늘어놓거나 주인장에게 가서 요청해야 물건을 꺼내오지도 않는다. 쇼윈도 안에 진열된 물건이 거리의 손님들을 이끈다. 근대적 쇼핑!이 탄생한 것이다

흙먼지 날리던 도로에도 변화가 생겼다. 비록 일본인 동네의 거리들보다 10년 이상 늦었지만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고 포장되었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는 가로수와 가로등이 늘어서고 도로의 중앙에는 전차, 그 옆으로는 자동차와 버스들이 달리는 교통 규칙도 생겨났다. 인력거와 자동차, 그리고 보행자들까지 복잡하게 엮인 도로는 더 이상 과거의 광장이 아니다. 사람들의 공간은 이전에 비해 1/6으로 줄어들고, 신호등이라는 체제에 의해 움직여야 하며, 멈출 때와 갈 때를 구분하게 되었다.. 넓은 거리를 점유하며 걷기보다 건물 옆에 바짝 붙어 걸어야 한다. 하긴 이 것은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근대 도시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변화였다. ‘상점가의 쇼윈도 구경’을 위해서는 더 유리하고 더 필요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종로의 도로 변화와 가로 시설물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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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종로 (화신백화점 일루미네이션 / 거리의 쇼윈도 / 까페내부) (사진출처: 영화 ‘집없는 천사’ 스틸컷)

이렇게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생기고, 가로변 건축물들이 점점 고층화되고, 도로 위 시스템과 시설들이 생겨나면서 종로는 근대화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1930년대 모던 경성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비록 1968년에 전차가 사라지고, 거리의 건축물들도 수십 층의 건물로 변해갔지만 이 때 만들어진 큰 틀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다. 대규모 재개발로 종로의 땅에 남은 많은 흔적들이 지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Midnight in Jongno

‘밤’의 종로는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종로의 ‘밤’은 혼마치의 ‘밤’보다 덜 화려하고 덜 번화하였지만, 그 곳에서 방황하던 식민지하 청춘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기에…. 모던 경성의 ‘밤’은 봄의 야앵(夜桜), 여름의 야시(夜市) 그리고 거리 구석 구석의 까페와 선술집으로 가득 채워졌다. 봄의 야앵은 지금 우리가 4월이면 여의도에 밤에 벚꽃 놀이 가듯이, 창경원의 벚꽃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야앵 기간에는 일부 구간 자동차의 통행제한도 하고, 전차의 야간운행도 늘렸다고 한다. 아마 그 때도 야앵을 빌미로 많은 연인들은 밤의 데이트를 즐기지 않았을까. 한 때는 한 나라의 궁궐이었던 곳이 창경궁이 공원이 되고 벚꽃 놀이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여름의 야시는 매해 6월에서 10월까지 종로 일대에서 밤에 섰던 시장이다. 야시에는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보다 구경 나온 사람이 더 많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다. 이들은 더운 여름 밤 답답하고 더운 집안을 벗어나 도시의 구경꺼리, 놀이로서의 야시를 즐기러 나온 것이었다. 물건을 팔려고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장사꾼들과 그들과 흥정하는 사람들, 소매치기와 부랑배들, 그들을 쫒는 순사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그 시끄러운 소리로 종로의 밤은 가득 채워졌고, 이는 어느새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야시와 야앵이 봄과 여름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밤의 향락이었다면 까페와 선술집이 주는 밤의 향락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조선인 백화점왕 박흥식이 당시 최고로 멋지게 지은 화신 백화점(심지어 화신백화점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있었다!)의 일루미네이션은 종로 거리를 매일 지나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으며 까페에서 나오는 재즈선율은 거리의 사람들을 유혹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이상과 구보 같은 식민지의 청춘들은 새벽녘까지 선술집에서, 그리고 까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어린 여급과 대화를 나누고 차가운 비루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는 아마도 그들에게 암울한 조국과 자신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해 주었으며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해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오사카 식 까페문화는 식민지 경성의 밤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1900~1930년대에 이르는 종로의 가로경관 변화 (사진출처: modernseoul.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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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독부(總督府)에 건축기사로도 오래 단닌 고등공업(高等工業)출신의 김해경씨(金金海卿氏)가 경영하는 것으로 종로(鍾路路)서 서대문(西大門) 가느라면 10여 집 가서 우편(右便便) 페-부멘트 엽헤 나일강반(江畔)의 유객선(遊客船)가치 운치 잇게 빗겨 선 집이다.

더구나 전면 벽은 전부 유리로 깔엇는 것이 이색이다. 이러케 종로대가(鍾路路大家)를 엽헤끼고 안젓느니 만치 이 집 독특히 인삼차나 마시면서 밧갓홀 내이다 보느라면 유리창 너머 페이부멘트 우로 여성들의 구두빨이 지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듯 사람을 황홀케 한다. 육색(肉色) 스톡킹으로 싼 가늘고 긴- 각선미의 신녀성(新女女性)의 다리 다리 다리-이 집에는 화가, 신문기자 그리고 동경(東京) 대판(大阪)으로 유학하고 도라와서 할 일 업서 양다(洋茶茶)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有閑靑年年)들이 만히 다닌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茶店) 중에 가장 이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

* 다음 동네는) 명동과 종로에 이어, 다음 달에는 세종로를 다루려고 합니다. 근대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2 곳에 이어, 가장 정치적이고도 행정적인 가로인 세종로의 어제와 오늘, 그 곳에 쌓인 시간의 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aoikasa27

아무튼 그 시대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긴 하다. (마치 Midnight in Paris에서처럼) 종로 1가의 제비다방에 가서 인삼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어느새 다방 주인 ‘이상’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날 거 같기도 하고, 청진옥에 가 설렁탕을 먹고 있노라면 옆테이블에 ‘구보 박태원’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설렁탕 그릇을 바라보고 있을 듯도 하다.

운이 좋으면 뽄아미 다방에서는 구본웅의 전시회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멕시코는 어떠한가. 이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있다가 옆 테이블에서 아름다운 여배우를 만날 수 있을지도. 게다가 까페와 다방들은 당시 최고의 유행으로 지어졌다. 세제션 양식, 모던 양식, 게다가 바깥구경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유리창까지… 멕시코와 같은 다방의 파사드는 마치 지금 홍대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거 같아 보인다.

1930년대 삼천리라는 대중잡지에는 ‘끽다점평판기’라는 기사가 연재로 실려 각 다방과 까페들의 특이사항들에 대해 전하고 있어 흥미롭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도 잡지에 난 맛집, 멋집을 열심히 찾아다녔나보다. 그 중 가장 가 보고 싶은 것 ‘제비다방’. 2층의 커다란 유리창이며 그 유리창으로 보이는 살색 스타킹 신은 여성들의 다리를 구경하는 도시의 유희가 있던 곳. 제비. 사진 한 장 전해져 오지 않아 아쉽지만 삼천리 잡지에 1934년에 실린 이 기사로 그 분위기라도 한 번 상상해본다.

까페 엔젤 (좌) 멕시코 다방 (중) 낙원회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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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추운 날씨가 어깨를 한껏 움츠리게 합니다. 길거리에서 시선을 둘 새도 없이 추위로 바쁜 발걸음을 재촉

하기 바쁘니,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작은 가게들은 매출이 반짝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겨울의 추위가 익숙해질

쯤, 우리의 시선이 상점에 머물 만큼 여유가 생기면 거리는 서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한 대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올 겨울은 경기침체로 가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분들이 많

다고 하는데, 가정도 좋고 매장에서도 좋고 친구들과도 좋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낼 수 있는 데커레이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

1. 크리스마스 센터피스

식구들이 많이 모여 앉는 식탁이나, 거실 테이블 위. 친구 분들과 모이시는 분들은 파티가 이루어질 테이블 위

의 센터피스를 추천합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테이블 같은 경우엔, 센터피스의 높이가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데 방해가 되

지 않도록 낮게 세팅되길 권해드립니다. 그 외, 거실 콘솔박스 위에나 빈 벽을 채워줄만한 소품으로는 높이가 있

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센터피스는 보통 겨울동안 충분히 보실 수 있도록 드라이가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 주시는 게 좋습니다.

편백이나 백향목, 오리나무, 목화 등의 나무 소재나 꽃으로는 블랙뷰티, 보르도, 도미니카와 같은 건조되어도 색

깔이 선명한 짙은 컬러의 장미 종류, 빈티지 수국, 프로티어나 브로니아 종류의 드라이 가능한 수입소재도 권해

드립니다. 여기에 작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오너먼트 몇 개만 달아주시면 특별히 조화를 두고 보시지 않

아도 더 자연스러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집에 쓰시던 크리스마스 전구가 있으시다면 센터피스 주변으로 감아주셔도 더욱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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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스마스 리스

리스는 14세기 경 도시를 중심으로 신부들이 마른 벼와 같은 소재에 레이스나 실크 리본을 곁들인 화환을 들고

결혼 하던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화환, 화관, 원형이라는 뜻의 리스는 또 다른 의미로 welcome의 어원을 담고 있는데 이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

는 환영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와 영원한 사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식상하신 분들이

나 더 섬세한 데커레이션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사랑스러운 디자인입니다.

환영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입구에 자연스럽고 화려하게 포인트로 하나 달아주셔도 좋고 집이나 매장 안에 빈

벽을 채워 주시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Page 29: 월간이리 12년 12월호

3.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의 가장 기본적인 데커레이션의 중심이라고 보실 수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사이즈도 모양도

색상도 제각각인 크리스마스트리. 새로 구매하셔야 하는 분들에게는 튼튼하고 ‘가장 진짜 나무 같은 나무’를 사

시길 권해드립니다. 크리스마스트리에도 유행이 있는데, 유행을 따르다보면 결국 비싼 금액에 구매하셨어도 딱

그 해에만 보기 좋으시기 때문입니다. 몇 년을 보시기에도 무리 없을 튼튼하고 예쁜 나무를 구매하시면 오너먼

트나 전구만 바꿔 주어도 매년 다른 느낌으로 연출하실 수 있습니다.

또 트리 밑 부분을 바스켓이나 예쁜 화분, 패브릭으로만 가려주셔도 훨씬 자연스럽게 연출 할 수 있습니다.

글. 플로리스트 안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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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Gastronomy

홍대 인근의 저렴하고 맛있는 업소를 소개합니다.

11회 - 칵테일계의 파인다이닝, 디스틸(d.still)글, 사진 / 미식의별 (트위터 = @maindish1)

미국의 술 칵테일

칵테일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술에 이것저것을 섞어서 마시곤 했다. 사실 중세

까지만 하더라도 와인에 물이라든가 꿀, 우유 등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술을 그 자체로 온전히 즐

기는 것이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칵테일 이전의 혼합주와 칵테일이 생겨난 이후의 혼

합주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칵테일은 일단 베이스가 되는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 진 등의 술들이 온전

히 자리 잡은 후에 만들어졌고, 뿐만 아니라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 발명되면서 다른 술들과 차

별화된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칵테일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18세기 중엽으로 알려져 있는데, 칵테일이 본격적으로 꽃피운 것은 19세

기 미국에서였다. 미국에서 칵테일이 융성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19세기 말 독일의 칼르린데가 발명한 인공 냉

동기(1870년)와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 시행(1919~1933)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공 냉동기로 인해

얼음을 사용하여 술을 차갑게 먹는 방법이 연구되어 다양한 칵테일이 만들어지던 와중에, 금주법이 시행된 탓에

(술을 몰래 마시기 위해) 술을 술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위한 테크닉이 연구 발전되었고, 금주법이 폐지된 이후

에는 이러한 칵테일들이 대중들에게 더욱 널리 퍼져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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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공(Public)의 미식(Gastronomy)을 추구합니다.

칵테일계의 파인 다이닝, 디스틸(d.still)

지금까지 한국에서 칵테일은 맛보다는 (작업용) 분위

기, 그리고 칵테일을 만들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칵

테일쇼를 즐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맛보다는 다른 요소만이 부각되

었던 이러한 칵테일 문화를 새롭게 바꿔나가는 곳이 최

근 여럿 보이고 있는데, 홍대 부근에서는 디스틸을 이

러한 변화의 첨병으로 꼽을 수 있겠다.

디스틸은 홍대에서 영업한지 이제 2년이 좀 넘었는

데, 최근 (한국에서는) 어쩌면 조금 쇼킹할 수도 있

는 영업방침 변경이 있었다. 메뉴판에서 칵테일의 이

름을 삭제하고 가격을 보드카/진/럼 베이스 칵테일은

10,000원~14,000원, 위스키/꼬냑 베이스 칵테일은

15,000원~20,000원으로 설정하여 손님의 요구와 취

향에 따라 칵테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사장님 참 대단하시다.

이런 결심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러한 영업방침은 칵테일을 잘 모르거나 가게에 처

음 방문한 손님들에게는 당황스럽고 곤란한 요소일 수

있으나, 최고의 칵테일을 보다 많은 분에게 선보이고

자 하는 디스틸의 영업 취지에는 보다 합당한 방식이

라 할 수 있다. 가격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맛에만 신경을 쓰면 되고, 바텐더는 손

님들과 더욱 밀착된 서비스를 통해 칵테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러나 사실 디스틸이 이런 영업방침을 가지게 된 데

는 모히토 잘 만드는 가게로 유명세를 탄 것에 큰 원인

이 있다. 많은 손님들이 칵테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나마 아는 메뉴인데 잘 만든다니 모히토만 줄곧 시

켜대는 통에 하루종일 모히토만 만드는 날이 허다했고,

그러다 보니 최고의 레시피로 완성해놓은 다른 많은 칵

테일들을 선보일 수가 없었던 것. 구슬이 서 말인데 꿰

지를 못하는 그 안타까움을 누가 알리.

이러한 디스틸의 칵테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두 잔에서 석 잔 정도는 마실 생각을 하고 가시는 게 좋

다. 최고의 칵테일을 연이어 마실 때의 느낌은 마치 파

인다이닝에서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로 정찬을 즐겼

을 때의 고양감과 비견할 수 있으니.(싸지는 않지만 먹

어보면 비싼 건 더더욱 아니다 보니 컬럼의 취지에 약

간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소개를 한다.)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다양한 술들

샤르트루즈 마티니.

칵테일계의 원피스.

주소 : 마포구 서교동 410-3

전화 : 02-337-7560

위치 : 극동방송국 삼거리서 상수역 방향 세븐일레븐 옆 골목

(속칭 클럽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왼쪽 골목으로 20m

(밤과 음악사이 옆 골목)

싱글몰트 위스키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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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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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달의 선정 도서

『오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최정수 역, 문학동네, 2005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파울로 코엘료의 답변.

그런데 읽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에는 단순한 사고가 도움이 된다.

- 자존심의 문제

1.

그는 스물여섯 번이나 그녀에게 차였다. 물론 스물

여섯 번의 모든 고백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백의

형태를 띤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스물여섯 번의 고백

이 -그것이 은근한 것이었든, 직접적인 것이었든 간

에- 그녀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를 처음으로 만난 건, 아르바이트를 하던

작은 술집에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서

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보곤 살짝 미소를 지었는데, 잠시 후

친구를 따라 들어오는 한 여자를 보곤, 십 몇 년을 알

고 지낸 친구조차도 처음으로 보는 괴이하고도 야릇

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가 어렸을 적에 엄마, 아

빠 손을 붙잡고 간 동물원에서 목이 말도 안 되게 긴

동물, 기린을 처음으로 직접 보았을 때 딱 한 번만 지

었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친구는 그의 괴상한 표정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 많네. 어, 그냥. 아니. 그게 아니고……. 너 표

정이 왜 그래? 아니……. 후, 후배랑 술 마시러 왔어.”

“응. 이쪽으로 앉아. 안녕하세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메뉴판을 가지

러 카운터로 걸어갔다. 자꾸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걸

끌어내리며 그는, 자신이 사랑에 빠져 한참동안 헤어

나지 못할 것을 예감했다.

예감이란 건, 때론 맞기도 하지만, 때론 맞지 않기도

한다. 한 마디로 줏대가 없는 녀석, 혹은 개꿈이랑 비

슷한 수준의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예

감은 줏대가 없지도 않았고, 개꿈이랑 비교당할 수준

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일기예보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아무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는 한참동안 잠

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가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다

녔다.

풍성한 검은 생머리, 얇고 기다란 목, 가녀린 어깨

와 얇디얇은 팔과 늘씬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커리어

우먼 스타일의 블라우스와 고급스러운 여성정장, 그

리고 검은 스타킹, 또각또각 귀여운 소릴 내는 검은

색 구두…….

제대로 보지도 못한 그녀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어쩌면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

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며 지워보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간신히 잠이 들긴 했지만 꿈속까지도

그녀가 쫓아왔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그

녀는 그의 손을 잡고 푸른 들판으로 그를 이끌었다.

들판의 끝엔 오두막이 한 채 서있었다. 둘은 그곳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침대에 들어가 이불

을 덮고 그 짓을 했다.

다음날. 그는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

났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불을 걷고 바지를 들추자

촉촉하게 젖은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급하게 팬티를 빤 뒤, 책상

위에 대충 얹어놓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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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 어제 그 여자 누구냐? 그 기린 닮은 애.”

“기린? 누구? 아, 어제 내가 데려갔던 애? 학교 후

밴데? 왜? 맘에 드냐?”

언제나 칙칙하게만 느껴지던 친구의 목소리가 그날

따라 하늘에 계신 우리 친구님의 목소리처럼 카랑카

랑 맑게 들렸다.

“걔 남자친구 있냐?”

“아니. 아마 없을 걸?”

그는 기린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지었던 표정을 다

시 한 번 지었다. 이어서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은

그가 의도치 않은 것들이었다.

자리 마련해라. 나 걔 맘에 든다. 돌아버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머릿속이 온통

그 여자애다. 사실 생긴 것도 잘 모르지만, 근데 잘 알

고 있다……

우리는 가끔 생각도 않던 말을 지껄일 때가 있다. 이

를테면, 술을 마셔서 정신을 놓았을 때라거나 -이 경

우엔 보통, 평소에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

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있

다- 당황했을 때,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등

등이다. 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하지만 우리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

이라는 놈과 마주하게 된다. 무의식. 이 무서운 자식.

……아무튼.

그녀와 대화를 처음으로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그로

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어느 평일 저녁이었다. 기

대한 것처럼 친구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그 순간은 기

적처럼, 필연처럼,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물론 그

의 착각이었지만…….

그는 여느 평일 저녁과 마찬가지로 그 작은 술집에

처박혀 서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담배를 피우

러 밖에 나왔을 때, 눈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보았다.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팔을 뻗었다. 그의 손은 불

행인지 다행인지, 그녀의 가슴과 만났다. 그러자 그녀

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토익 백 점

맞고도 잘 봤다며 신나하는 놈이 외국인과 마주했을

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어버버. 그 사이, 그녀가 입을 뗐다.

“뭐예요?”

어버버. 어버버. 그는 몇 번이나 이 괴상망측한 소리

를 내다 간신히 온전한 단어 몇 개를 뱉을 수 있었다.

“친구. 아. 친구. 당신 선배. 내 친구.”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뭔가 알겠다는 듯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그리곤 시원스레 말을 붙였다.

“아! 저번에 그 아르바이트하시던 분이죠?”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녀를 처음으로

보았던 날, 고개 한 번 들지 않은 그였다. 그런 자신을

기억하다니……. 이건 그녀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담배를

끄고, 앞치마를 벗었다. 그리곤

“지금 시간 있어요?”

이런 진부한 멘트를 날렸다.

진부하다, 진부해. 정말이지 뻔한 멘트다. 근데 진부

하고 진부하지 않은 것의 기준은 뭘까?

궁금할 땐 사전이 최고다. 사전을 보면 이렇게 나

와 있다.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

하다.’ 그렇다면 새롭다는 건 무엇일까?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다.’ 좋다. 그렇다면 맘에 드는 여자에

게 처음으로 말을 걸 때, 어떤 멘트를 날려야 진부하

지 않을 수 있을까? 진부하지 않은 멘트가 있을 수는

있나? 가령, ‘엿이나 먹어라’ 정도라면 진부하지 않

은 멘트가 될 수 있겠다. 대신 뺨을 맞겠지만……. 아

무튼.

그날, 그는 아르바이트를 때려치우고, 그녀와 술을

마셨다. 취했다. 정신줄을 놨다. 최초의 고백이 이날

이루어졌다.

“네가 좋아. 사귀자. 언제까지 이 마음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 너무 좋아. 미칠 지경

이야.”

그의 고백에 그녀는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예의

바른 거절이었다.

차 끊길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

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자면 끝

이지. 자자. 그래 하면 된다, 자면 된다.

술집을 나와 걸었다. 모텔들이 보였다. 그는 취했으

니 모텔에서 쉬자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집에 빨

리 가서 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내가 힘들어서 그래. 못 걷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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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럼 혼자 가서 쉬세요. 전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잘래요.”

더는 붙잡지 못했다. 그녀와 사귀기 위해 변태성욕

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다음날, 친구는 그와 한 약속을 지켰다. 그를 위

해 그녀와 함께 하는 술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집근처 술집으로 나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그

는 한참을 고민했다.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에

쪽팔렸던 것이다. 여전히 그녀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긴 했지만, 창피해서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전달한 뒤, 거절당하지 않았나. 또 본다

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존심 따위를 세

울 때가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것

만으로 족했다. 그래서 머릴 자르고, 멋있게 입고서 그

녀를 만나러 나갔다. 바람이 좋다면 고백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별빛 아래에서 그녀와 키스를 할 수도 있

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서…….

약속장소로 가는 길,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북적이는

사람들소리가 뭉쳐 밤의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그 멜

로디는 부드럽게 그를 감쌌다. 마치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친구와 그녀는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술자리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친구가 농담

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그가 이런저런 자신의 정

보들을 늘어놓고, 그녀는 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웃다가, 이따금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와 그녀는 전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는 그것이 영 신

경 쓰였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친구가

자리를 비우자, 그가 말했다.

“어젠 미안했어.”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술자리가 파하고, 집 방향이 다른 친구가 먼저 가고,

그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근데 하필이면 가

는 길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그는 용기

를 내서 한 번 더 고백 해보기로 했다.

“나랑 사귈래? 내가 멋있진 않지만. 어쩌면 너 주위

에 있는 놈들 중에 더 멋있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만. 그래. 난 남들보다 가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알바나 하며 간신히 살아가는 놈이지만. 그래도…….

나랑 사귈래?”

그녀는 웃으며, 자기는 지금 남자를 만날 만한 입장

이 못 된다며, 나중에 자기 상황이 좀 나아진다면 그

러겠노라며, 받아주는 척하며 거절했다.

그렇게 별빛 아래 키스는 물 건너갔다.

이후로도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줄기차게 고백

을 해댔다. 때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고, 눈을 오랫동

안 쳐다보기도 했으며, 술 마시고 전화를 수십 통 하

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결과는 거절-예의를 갖춘 상

태에서의-이었다. 그렇게 일 년여에 걸쳐 스물다섯 번

의 고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믿었고, 사

랑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개코딱지만도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낭만주의자는 늘 자신이 믿는 것에 빠져든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허구일지라도,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

들이 사랑 앞에서 낭만주의자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나, 횟수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 밑바닥엔 낭

만적 요소가 깔려있다. 거절당한다 해도 포기하지 못

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 이제 별의 별

소릴 다한다. 낭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무튼.

그가 그녀에게 스물여섯 번째 고백을 하던 날, 둘은

영화를 보았다. 해외 유명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라

기에 좀 어려울 것 같았던 영화는 의외로 이해하기 쉬

운 연애영화였고 적당히 유쾌했으며, 적당히 그의 감

정을 끌어올렸다.

극장에서 나와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그녀

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대학 추가합격을 기다리는 삼

수생마냥 초조했던 그의 마음이 그날따라 묘하게 편

안해졌다. 이젠 뭐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사실 사귀어봐야 달라질 것도 별로 없어보였다. 둘

은 자주 만났고, 이따금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잠만

안 잤지, 사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

Page 38: 월간이리 12년 12월호

후의 만찬, 아니 최후의 고백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도 거절당한다면 이만 접자. 할 만큼 했다. 그

래도 이 정도 관계는 유지될 거다……

그는 장난치듯 그날 본 영화 속 대사를 뱉었다.

“난 정말 처음이야. 이런 마음 생기게 한 건 네가 처

음이야. 마지막으로 말할게. 나랑 사귀자.”

이에 그녀도 깔깔 웃으며 영화 속 대사로 응수했다.

“오빠랑 사귀면 오빤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글쎄……. 내가 너한테 뭘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

다. 근데 네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지는 분명히 알아.

넌 날 행복하게 만들어. 그냥 같이 있으면 행복해.”

“그래? 그럼 오빠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지 보게,

한 번 해볼까? 사귀어볼까?”

여기서 갑자기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금니

를 꽉 깨물었다.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복싱선수가 허

접한 신인에게 1라운드에 KO패를 당한 것처럼 분

했다.

그럼 여태껏 내가 지한테 해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장난해?

스물다섯 번 거절을 당하면서도 늘 지나가는 똥개처

럼 취급해온 자존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내가 한 번 해보고 버릴만

한 존재밖에 안 된다는 거지? 이런 식이면 안 해. 내

가 안 사겨.

길게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만 가자.”

그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고, 자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사귀자고 할 걸 그랬나? 이제 와서 좀 후회되

네. 이제 와서 왜 자존심을 세운 걸까? 그래도 그런 식

으로 사귀는 건 싫었어. 그게 뭐야? 한 번 사귀어주겠

다니? 됐어. 잘했어.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자존심의

문제. 자존심의 문제……

2.

스물여섯 번째 거절 아닌 거절을 하게 된 그녀는 집

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아, 바보 같애. 오빠는 진짜 바보 같다니까. 남자가

왜 그러나 몰라. 고백을 할 거면 허풍을 섞더라도 좀

확실하게 하든지. 고백할 때마다 자기 푸념은 왜 그렇

게 하는 거야? 누가 자기 그런 상황인 거 모르나? 우

리 나이 때에 성공해서 잘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게다가 자기가 별로인 사람이라

고 말하면서 고백하는데 누가 받아주겠어? 세상에 어

느 누가 별로인 사람이랑 사귀고 싶겠냐고……. 정우

성이라도 그렇게 말하면서 고백하면 아무도 안 받아

주겠다. 오빠가 말하는 그런 남자랑 사귄다고 생각하

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당연히 거절하지.

그건 그렇다 쳐. 그래서 한 번 튕기면, 왜 그렇게 쉽

게 포기해버리는 건데?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당근이

라도 썰어야 되는 거 아냐? 버섯이라도 썰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에둘러서 거절하는 거 보면 모르

나? 한 번만 더 물어봐도 알겠다고 할 텐데…….

아, 정말로 왜 그리 눈치가 없을까? 그래도 눈치 없

이 그러는 거 보면 귀엽긴 해. 눈치 빠른 남자는 밥맛

이야. 남자가 오빠처럼 눈치도 없고 그래야 귀여운 맛

이 있지.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잖아. 내가 얼마

나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말로 안 되면 몸으로라도 좀 밀어붙이든지. 손

만 좀 스쳐도 화들짝 놀라면서 움츠리는 건 뭐야? 우

리가 무슨 애야? 우리가 중학생이면 이해하겠어. 이

십대 후반이잖아. 그럼 자연스레 스킨쉽도 하고 하는

거 아니야? 자연스레 안아주고 키스도 해주고 그러면

넘어가줄 텐데. 그걸 못해가지고. 오빠가 그런다고 내

가 오빠를 변태취급을 하겠어, 뭘 하겠어? 그리고 정

말 싫다면 밀쳐낼 거 아냐. 그럼 그 때 그만하면 되는

거잖아. 처음 볼 땐 모텔 가자고 잘도 하더니, 이게 뭐

야. 그렇다고 내가 먼저 안길 수도 없잖아. 여자가 어

떻게 그래? 술 취하면 실수란 실수는 죄다 하면서, 왜

이것만 못하는 건데? 진짜 답답해. 그래도 순진하긴

해. 요즘 남자치고 진짜 순진하다니까. 착해 빠져가지

고……. 그래가지고 어디 이 세상 살아가겠어? 나라도

옆에 있어야 살지.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고백의 언어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시각적 언어. 즉, 문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Page 39: 월간이리 12년 12월호

꽤 고전적인 방법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연애편지가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누가 연애편지를 쓰는가. 연

애편지를 통해 고백을 했다가는 구닥다리라는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방법으로 이메일,

혹은 문자메시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도 좋지 않은

방법이다. 친구에게 가서 말해보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문자로 고백할까 하는데

어때?”

이러면 병신이란 소릴 들을 것이다.

둘째, 음성적 언어. 직접 만나서 말로 하거나, 전화를

통해 말로 하는 방법이다. 아무래도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하는 편이 낫다고 2010년 통계를 보면 나와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성

공률도 다른 방법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셋째, 육체적 언어. 남자들의 세계에선 이런 농담이

있다. 좋아해? 그럼 꺼내서 흔들어. 웃지 마시라. 혹은

인상을 찌푸리지 마시라. 이건 농담이 아니다. 1985

년 9월 미국의 과학자 리차드 홉킨스가 발표한 논문

을 보면, 여자들이 남자와 성관계를 갖게 된 이후, 열

명 중 여덟 명이 상대 남자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고

나와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맞아떨어진다

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호감을 높이는 데에 성

관계가 사용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있다.

……아무튼.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떴다. 생각하고 싶지 않

아도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오빠를 좋아했으면 이렇게 되

진 않았겠지.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첫눈에 반해서 그

렇게 되냐고. 솔직히 첫눈에 반하고 그런 게 어디 있

어? 보다 보면 좋은 면들이 보이고, 그러다 좋아하게

되고 하는 거지. 호감은 있으니까 계속 보게 되는 거

고. 마음에 좀 안 차더라도 보다 보면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는 거지만……. 아니.

오빠가 별로면 내가 계속 보겠어? 내가 왜 계속 만나

겠어? 이런 걸 왜 모르지? 이런 건 말로도 못하는 거

잖아. 그냥 속 시원히 다 말해버릴까?

아냐. 못해. 마음먹는다고 나올 거였으면 진즉에 다

말했겠지, 벌써. 이젠 진짜 오빠가 좋은데. 오빠랑 사

귀고 싶은데. 바보 같애. 오빠도 바보지만, 나도 바보

같애. 내가 오빠한테 사귀자고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

왜 말을 못하고 이러고만 있는 건데?

안경이 흘러내릴 때면 손가락으로 콧대를 훑으면

서 안경을 올리지. 그때면 꼭 인상을 써. 그게 예뻐.

오늘도 몇 번이나 그랬는데. 그래서 몇 번이나 예뻐

보였는데.

보고 싶다. 전화할까? 근데 오늘 오빠 기분이 안 좋

아보였어. 집에 안 데려다준 건 오늘이 처음이야. 왜

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았을까?

그녀는 여기까지 생각하곤 침대에서 일어나 라면을

끓였다. 스트레스 받을 땐 역시 먹는 게 최고라면서.

사람들은 흔히 여자를 여우와 곰에 비유하곤 한다.

자기 속을 보여주지 않고, 실속을 차리는 여자를 여우

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마늘이랑 쑥이나 먹는

여자를 곰으로 비유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마냥 여

우같기만 하고, 마냥 곰 같기만 한 여자는 없다. 세상

어떤 일이 딱 이렇고 딱 저렇던가. 이러기도 하고 저

러기도 하지 않던가. 감정도 그렇다. 좋기도 하고 싫

기도 하고. 마냥 좋기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근데, 사

랑은 어떻지? 좋으면 좋은 거고, 싫음 싫은 거 아닌가?

에이 몰라. 아무튼.

3.

이 둘은 대체 뭐가 이리 어려운가? 2장까지 쓰고 읽

어보니 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쇼하고 있네.”

쇼하고 있다 진짜. 그래서 이 둘은 어떻게 될 것인

가? 잘 모르겠다. 더 쓰고 싶지도 않다. 사실은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짝사랑 전문가로써 여기까진 쓰

겠다만, 연애가 성사되는 부분은 쓰기가 힘들다. 해본

적도 없는 걸 어떻게 써? 안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는 걸까? 왜 나

만 이래? 나 벌써 스물일곱인데. 왜 나만 여자친구 없

냐고. 그래. 내가 못생기긴 했지.

Page 40: 월간이리 12년 12월호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둘에게 미련이 남는다.

내가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고 해서 연애소설 쓰지 못

하란 법도 없다. 그래. 기왕 여기까지 쓴 거,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 보이겠다. 현실에서 못하는 거 소설로라

도 풀어보겠다. 내 욕구불만 해소용. 자위행위. 아니

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아무튼.

포기했다. 그는 포기했다. 포기하자 그의 머릿속에서

그녀는 더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그렇다.

사실, 포기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포기 못했다. 그

는 포기란 말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

다. 그래서 스물일곱 번째 고백을 준비했다. 이번이 마

지막이라고, 이번에도 거절당한다면 그녀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이번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자신이 고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

닌 것 같았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죽

는 것만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다. 이

런 생각을 하자, 그에게서 올 연락이 기다려졌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너 회사 끝나는 시간 맞춰서 회사 앞으로 갈

게.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

얼마 전, 그녀는 취직을 했고, 둘은 그녀의 회사 근처

에서 몇 번인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네. 그래요.”

다음날, 그녀는 자신이 가진 옷들 중 가장 섹시한 옷

들만 골라 입었다. 화장은 최대한 진하게 했다.

회사에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복사기를 보면

그의 든든한 덩치가 생각났고, 모니터를 보면 그의 동

그란 안경이, 창밖의 나무를 보면 그의 두툼한 손가락

이 떠올랐다. 시간은 나무늘보가 나무에 오르는 것보

다 천천히 흘러갔다.

마침내 퇴근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는 지쳤다.

그는 그녀의 퇴근시간 두 시간 전부터 회사 앞을 얼

쩡거렸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이리저

리 걸어 다니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

기도 했다.

퇴근시간이 되어 회사 밖으로 쏟아지는 일개미들 속

에서 걸어오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술자리는 조용했다. 둘은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소주가 한 병, 두 병, 세 병, 네 병, 다섯 병, 여

섯 병. 각자 세 병씩 마시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 했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사시미 칼을 꺼내어 손목에 갖다 댔다.

“나랑 사귀자. 나랑 안 사귀면 나 여기서 손목 그

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왜 이래? 오늘 이렇게 섹시하게 하

고 나왔는데, 나랑 자고 싶지도 않나? 왜 이런 짓을 하

는 거야? 자자고 안 하고? 그래서 알겠다는 대답대신,

“오빠. 오늘 저 안 섹시해요?”

라고 물었다.

그는 생각했다. 얘 왜 이래? 섹시는 무슨 섹시야? 나

죽을 거라니까, 여기서 섹시하냐고는 왜 물어보는 거

지? 그러고 보니, 오늘 좀 섹시하네. 화장도 짙고. 뭐

야? 저 옷은 뭐지? 속옷이 다 비치잖아? 미친 거 아

냐? 저런 걸 입고 출근한 거야? 뭐, 좋긴 좋네. 그래

서, 그는

“응. 섹시하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쩐지 맥 빠진다. 그만 하고 가자.”

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옆에 찰싹 붙어서 걸었다. 어디로 가는

지 묻지 않았다.

둘은 별빛 아래 빛나고 있는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Page 41: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참가

신청

http

://cafe.dau

m.n

et/bad

abie

바다비 일요 시극장

Page 42: 월간이리 12년 12월호

김종소리: 펼치겠습니다.

황은정: 저는 오른손잡이입니다.

미식의별

@maindish1

Page 43: 월간이리 12년 12월호

김종소리: 펼치겠습니다.

황은정: 저는 오른손잡이입니다.

철민

부산에 살며, 그림을 그리지만,

스스로 직업이 만화가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남들이 보면 반백수 처럼 보이지만

입에 겨우 풀칠 할 정도로

간간히 돈은 버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진찍는 학생입니다.열심히 찍겠습니다.

삼십사년간의 역마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황하는 영화학도

영화로 면죄부를 쓰길 원하는 종신형 보헤미안. 곡주대비

안녕하세요 그림그리고 그림책 만드는 안경미입니다.

머리 없이 살고 싶다.

@exxx2x

Page 44: 월간이리 12년 12월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를 연재중인 이강희.

아홉시라고 불리운다. 항상 집에서 눈감는 인생은 지루

하다고 생각한다. 내일 못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앞 뒤 표지 그리는 화가 이주용입니다.

Hisu Liu. 왼손이. 일러스트레이터박민수

이상준, 연주자, 학교밴드선생님

“미래는 꿈꾸는자의 것이다.”엘리뇨 루즈벨트

www.jonleemusique.com

Page 45: 월간이리 12년 12월호

미술을 좋아하는 직장인입니다

이리카페도 매우 좋아합니다 ^^!

kangjoseph.tistory.com”

먹는 오뎅이기 보다 글쓰는 오뎅이고 싶다.

오늘도 제 글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립니다.

플로리스트. 안언주

굴곡진 삶, 차디찬 겨울 바다, 잠들었던 순간

여섯개의 꿈.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황예함.

@flogeH http://hyhlem.blog.me/

이상준, 연주자, 학교밴드선생님

“미래는 꿈꾸는자의 것이다.”엘리뇨 루즈벨트

www.jonleemusique.com

Page 46: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왼손이

Page 47: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지금 현재 부산오뎅은 주방에는 내가 원톱으로 일을 하고 홀은 알바군과 알바양이 나눠서 일을 하고 있다. 알

바군은 다음에 기회가 되는대로 다루기로 하고 이번호는 알바양에 대해서 다뤄보기로 한다.

알바양이 부산오뎅에 처음 일을 하게 된건 2009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이

미지가 있겠지만 그 당시 그녀의 이미지는 수수, 평범 딱 두 글자로 설명이 되었다. 공부를 잘하게 생긴것도

아니고 못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이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스타일리쉬하지도 빈티지하지도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것도 아니고 청순한 것 같지도 선머슴 같지도, 첫눈에 괜찮다 영입해야겠다는 느낌이 든

것도 아니고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든 것도 아니고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관상학적으로 접근이 안 되는 무채

색의 이미지였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숏 커트, 동안이라는 느낌?(지금이야 나나 걔나 별차이 없지만...)여튼

이 친구는 그때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무채색 그녀여서 그랬을까? 나를 그대로 닮아간다. 식성도 나랑 별 차

이 없고 뒤에서 손님 욕하면 따라서 하고 내가 알바양 앞에서 담배를 피면 내 앞에서 같이 피고 심지어 똑같

은 담배를 피웠다. 내가 아끼는 리미티드 에디션 생 맥주 잔을 깨면 이 친구는 3~4잔을 깨고, 배꼽시계도 비

부산오뎅 이야기

(안녕, 알바양.)

Page 48: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슷하고 자는 시간도 비슷하고 일어나는 시간도 비슷하고 내가 그녀의 일당을 현금으로 줄 때 잔돈을 팁(?)이

라며 주면, 그 다음에는 그녀가 나에게 팁으로 주고 술을 좋아해서 낮술을 좋아하고 낮술을 마셔서 무단결근

을 하고 낮술을 마시고 일하다가 잠들고 나의 해고통보를 실수라며 정당화시키며 담에 안 그러면 된다는 자

기만의 논리로 나를 뭐에 홀린 것처럼 만들고, 일이 있어서 늦는다는 통보, 일이 있어 일찍 퇴근한다는 통보,

배가 고프니 낮에 혼자 가게에 가서 밥을 먹겠다는 통보, 요즘 고기를 안 먹어서 몸에서 고기를 원한다는 신

호를 느꼈다며 저녁밥상에 고기를 대령하라는 통보, 고기가 질렸으니 생선을 구우라는 통보, 변비가 온것 같

다며 야채반찬을 해놓으라는 통보, 그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지긋지긋한 적도 많았지만 어느새 그냥 미운

정 고운 정 든 10년~20년 된듯한 부부 같은 그녀가 이제1월이면 사회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나와의 아름다

운 이별을 맞이 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작년2월 구정 때 나한테 새배 하고 새뱃 돈을

받아갔는데 이번에는 새뱃 돈 안 줘도 되겠다

는 생각에 므흣한 웃음이 난다.

아름다운 시점에 떠나니 새삼 그녀가 아름답

게 느껴진다. 그녀의 미래에 응원을 보낸다.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퇴근해...

Page 49: 월간이리 12년 12월호

소규모 음악활동이 가진 장단점들

이번 달에는 소규모음악활동이 가진 장단점을 다뤄본다. 소규모음악활동의 간단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

이 있다. 클래식에서는 “실내악”이라고 하는 Chamber Music이 있고 락 이나 팝 장르에서는 3~5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있다. 재즈의 경우 트리오(3명) 퀄텟(4명), 그리고 퀸텟(5명)등이 있다. 이런 작은 규모의 음악활동의 특

징은 특별한 지휘자 나 디렉터가 없다.

장점 4가지

1.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 동기의식이 남다르다.

커뮤니티합창단이나 밴드는 지휘자나 디렉터의 힘이 대단하다. 음악의 80-90%를 그들이 좌지우지한다. 우리가

잘아는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이 야구는 감독이 다한다고 했듯 규모가 큰 합창단 또는 밴드는 지휘자가 음

악을 한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음악활동은 다르다. 지휘자와 디렉터가 따로 없다. 모든 연주자가 밴드의 주인

이고 모든 것을 스스로 그러니까 자가적으로 결정한다. 연주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선별하고 레퍼토리를

만들어 나간다. 연주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동기의식과 직접적

인 연관이 있다. 소규모음악활동은 남다른 큰 동기의식에서 출발한다.

into the jazz

글. 이상준

Page 50: 월간이리 12년 12월호

2. 협동적이다.

모두가 리더인 단체가 소위 성공하

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

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배가 산

으로 간다.” 소규모음악활동에서 가

장 필요한 것은 특정인물의 강력한

카리스마도 대단한 추진력도 아닌

협동정신이다. 음악을 선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다른 연주자가

싫어 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싸워 이겨서 아니면 끝까지 우겨서

(?) 나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할까?

싸우기 시작하는 순간이 종말을 맞

는 시간이다. 큰 권한을 가지고 의

견을 조율하는 지휘자도 없다. 조정

하는 사람이 없다. 연주하는 동안

좋은 연주를 위해 서로의 연주에 더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모두가 주

인의식을 가지고 같은 배에서 활동

하다 보면 협동정신은 자연스레 생

긴다. 아니,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3. 자기주도적이고 능동적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능동적이어야 할

때가 있고 수동적이어야 할 때가 있

다. 우열을 가리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일이지만 능동적인 자세는 수

동적인 태도보다는 분명 더 큰 매

력이 있다. 떡도 능동적이어야 먹

을 수 있다. 수동적인 자세로만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는 너무 힘들

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소규모밴드

활동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

에 연주자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

고 움직여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연주할건지 또 공연이 있으면 어떻

게 준비하고 홍보할지 모든지 스스

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소규

모음악활동은 필연적으로 나의 삶

을 능동적이고 자기주도형으로 만

들어준다.

4. 내가 언제나 주인공이다.

공연은 음악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

분 중 하나이다. 열심히 준비한 공

연의 주인공이 막상 내가 아닌 다

른 사람이면 기분이 어떨까. 규모가

큰 합창단이나 밴드가 공연이 끝나

면 박수와 악수의 80%이상은 지휘

자의 몫이다. 이것을 불평할 생각은

없다. 많은 박수를 받을 만큼 지휘

자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다. 보다

더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본인이 직

접 지휘자가 되던지 아니면 작은 규

모로 음악을 하면 된다. 내가 열심

히 움직이고 노력한 만큼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고 악수를 청한다. 사

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만이 음악을

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

의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분명 음악

을 하는 큰 힘이고 자극제이다. 인

류역사상 대중의 관심과 찬사가 없

는 음악은 존재한 적이 없다. 스스

로 주인이 되어 준비한 음악을 통

해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

림자가 있듯 장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작은 음악활동은 장

점보다 단점 또는 여러가지 어려움

이 더 많이 있다. 지난 글에서 다뤘

던 장점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어

려움과 실패를 경험해야한다. 이번

칼럼에서 그 어려움들에 대해 서도

이야기해보자.

단점 3가지

1. 주인공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하는 한 후배가 몇달전 Cham-

ber Music공연을 한적이 있다. 소

위 “실내악”이라고 하는 Chamber

Music은 클래식에서 대표적인 소

규모앙상블이다. 그 공연은 지휘자

또는 디렉터가 없는 상태에서 후배

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홀로 준비

해서 올린 공연이었는데 옆에서 지

켜보는 내가 매우 안쓰러웠다. 공연

을 위한 연습은 물 공연장소를 빌리

는 문제, 프로그램구성, 홍보, 뮤지

션들 섭외 그리고 무엇보다 금전적

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몇달동안

고생하는 그의 모습은 작은앙상블

또는 소규모음악활동을 하는 사람

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무대위에서 많은 사랑과 큰 박수를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

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늘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만 음악을 하는 입장

에서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다. 무대위 주인공

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

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은 인원이 많아 일들이 나눠지고 또

관객들이 많이 동원될수 있기에 스

폰서나 후원이 따라와 편한 부분이

있지만 작은 실내악이나 락밴드 그

리고 재즈밴드는 그렇지 않다. 소규

모음악활동으로 무대위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기위해선 아침부터 발

로 뛰고 매일 시간을 쪼개쓰는 일

에 익숙해야 한다. 매우 부지런해

야한다.

2. 상호협력은 정말 아무나 하

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소규모음악활동

은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수 있

는 장점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은 “

양날의 검”이다. 실내악, 락밴드, 그

리고 재즈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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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개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큰 조직에서 수동적인 태도

로 있는 것 보단 작은 조직에서 보다 자율적이고 능동

적인 활동을 더 지양하는 사람들이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이고 개성이 강한 것은 좋은 것이

다. 음악하는 사람이 요즘같이 세상에 이러한 성향이

없으면 무슨 음악을 하겠는가. 다만 정도가 너무 지나

치면 일은 어그러진다.

락밴드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2~3년이상 꾸준히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서로 선곡을 하는 그러니까

시작하는 단계서부터 피터지게 싸우고 찢어지는 경우

가 다반사다. 왜 싸울까? 이유는 매우 유치하고 단순

하다. 양보없이 자기가 원하는 곡을 더 많이 하고 싶

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실내악을 보자. 어떤 특정 연주자의 연주스

타일이 맘에 들지 않아 서로 다투는 경우가 있다. 개성

이 너무 강한 사람은 다른 성질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

을때가 종종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귀를 가지고 있고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 곡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

법이 다 다르다. 이 다른점을 수용하고 만들어가는 것

이 실내악이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할때가 많은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의 현실이기도 하다.

재즈의 경우 베이스나 드럼연주자가 맘에 안들어 새

로운 연주자로 갈아치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맘

에 들지 않으면 맘에 맞는 사람을 찾아 새로 시작하

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필요할때마다 새

로운 연주자를 찾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일이 같

은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도 결국 똑같은 이유로 또 다시 헤어지는

일처럼 말이다.

이렇게 공동의 문제 해결을 논하기 전 상호협력이 시

작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 협력하고 공

동으로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듯 하다.

3. 적당한 동기의식으론 어림도 없다.

많은 연주자들이 각기 다른 동기를 가지고 소규모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적당한 동기만으로는 이 험

난한 여정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음악은 둘째치고 무대에 올라가기전에 필요한 모든 문

제들을 내가 스스로 발로 뛰면서 해결해야한다. 또, 개

성이 매우 강한 연주자들이 모인 집단을 통제하고 관

리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별것도 아닌 일로 모든 것

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조그만한 자존심문

제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런 어

려운 문제를 뚫고 나가기 위해 이런 저런 지략과 지혜

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자 하는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이것을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꼭 해야한다는 엄청난 열정과 동기의

식이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자세로는 어림도 없

다. 음악을 정말 좋아해야한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해

도 그녀를 미친듯이 사랑하면 내가 가진 조건이 아무

리 초라해도 상대는 나에게 감동하고 마음을 주기 시

작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조직생활에 지쳐 자신이 다니던 꽤 괜

찮은 회사를 뛰쳐나와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누구나 시작은 의욕적이나 모두가 개인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이 밖에서 본것처럼 쉽게

돈을 벌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으로 큰돈

을 벌기위해서 수 많은 난관과 장애물이 있듯 음악역

시 마찬가지이다. 소규모음악활동이 가진 장점들은 위

에서 이미 설명했듯 무척 매력적이다. 하지만 쉽게 얻

을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무척 공평

하다.

** 곧 대통령 선거가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11월

중 순… 아직 야권단일후보가 성사되지 않는 상황이

다.) 나는 보수 그리고 진보등 이런 이념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사회정의”를 복원시키고 세상을 “

일반상식”의 틀 안으로 다시 넣을 수 있는 후보가 선

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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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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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위에 있다는 것은 항상 자명하지만, 언제부터 땅이 부숴지는 콘크리트 였었나.

디딘 곳을 의심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모른척 하며 지냈다.

계절도 떠나고 사랑도 야위고 잎도 진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아 서있을까.

산으로 가자. 이 질병같은 직선들을 넘어 산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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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집과 동네, 평지를 다니는 현대인에게 무작정 산행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계절을

즐기지 못하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준비한 산 하나, 인왕산을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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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멀면 출발을 안하는 분들을 위해 인왕산은 서울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산을 오를 체력이 없는 분들을 위

해 중턱까진 버스로 하산까지 2시간에 끝냅니다. 저 또한 위 조건이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왕산에 가기 위해서 먼저 김밥과 버스노선을 확보합니다!

목적지는 “클럽에스프레소” 나 “ 윤동주 시인의 동산” 이 좋습니다 (중턱에서 올라가야지요)

마포 이전 홍대 근처에서 출발하시는 분들은 조금 돌아가도 7016 버스를 추천합니다.

버스가 한강 고가도로를 도는 재미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동산에 올라 잠시 숨을 고릅니다. 버스를 타고왔기 때문에 힘이 들 수 있습니다.

단풍 놀이에 걸맞게 색이 울긋 불긋 합니다. 현실은 좀더 매연으로 뿌옇지만, 포토샵느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클럽에스프레소 뒤로 올라가 위 사진의 가운데에 보이는 인왕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작은 입구가 있습니다.

산으로 난 계단인데 크지 않아서 놓치기 쉽상입니다. 가운데의 인왕산로를 따라 걸을 수도 있지만

시인의 동산에서 산쪽으로 걷다가 울타리를 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울타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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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동산 왼쪽 풍경. 가방에 먹을것이 있어도 아직 꺼내면 안됩니다.

시인의 동산 오른쪽 풍경. 아직은 빌딩이 눈높이 정도 입니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 도로 옆에 작은 화장실이 하나 있

는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눈높이에 가지런 하던 빌딩이 이정도로 깔리기 시작하

면 거의 다 올라온 셈입니다. 멀리 서울의 끝이 보입니

다. 정상에 올라가면 더욱 볼만합니다. 오르는 길은 대

부분이 계단이어서 숨이 좀 가쁜감도 있지만 쉬어가기

에도 좋은 편입니다. 시인의 동산에서 첫번째 목표인

기차바위 까지 바삐 걸으면 30분. 기차바위가 거의 다

와간다 싶으면 슬슬 김밥을 준비할 때입니다.

기차바위의 풍경, 겨울 산행시 주의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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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면 포토존이라고 할 만한 높은 돌도 있고, 남쪽으로 관악산까지 한눈에 보입니다.

용산 마포 일대가 보이는 방향입니다.

북한산과 청와대 가 오른쪽으로 놓여있습니다. 이제 내려갈 차례입니다.

좀전에 서있던 정상의 모습입니다. 사직단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려오는 길이나 오르는 길이 험하지는 않으나 돌산이니 신발은 절대! 운동화나 등산화를 권합니다.

이길을 따라 내려가면 산의 끝에 세갈래 길이 나오고 독립문, 옥인동, 사직단 중 골라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커피나 식사를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은 사직단 방면으로 내려가시면 좋습니다.

글: @exxx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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