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32
138 평화로운 세상올바른 믿음의 교회 고난함께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권을 회복하려는 신앙인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DMZ평화기행 2012년 5/6월 후원회보

Upload: fellowship-with-the-sufferers

Post on 10-Mar-2016

240 views

Category:

Documents


14 download

DESCRIPTION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정기소식지입니다.

TRANSCRIPT

Page 1: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

평화로운 세상•올바른 믿음의 교회

고난함께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하나님의 형상인 인권을 회복하려는

신앙인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DMZ평화기행

2012년 5/6월 후원회보

Page 2: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

포토에세이

C O N T E N T S

3 사무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 진광수

4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DMZ평화기행 / 강옥자

감리교평화학교 / 정유은

10 시대의 고난 북아현동 철거현장 / 함영원

13 역사속으로 광주 5.18 민중항쟁 / 이관택

17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박정숙 선생님 / 이민숙

19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전 외국인 복지관 김준구 사무국장 / 홍순오

22 생활인의 기도 그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 여정훈

24 세상사는 이야기 아침밥을 먹는 새를 보며 / 김지은

26 정명성 칼럼 장마 / 정명성

27 고난 우체통

29 알림터

30 영수기

31 청소년 평화캠프 안내

어느덧 세상은 푸르름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어느덧이라는 말이 세상을 살다보면 흔히 생기는 병입니다.

삶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둘러보면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 박아름

Page 3: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3

진광수 목사 | 사무총장

우리는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녁 무렵 갈아타는 일이 귀찮아지면 광화문에서 한 번에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탑니다.

갈아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해도, 급할 게 없는 날이면 버스 창가에 비치는 도시

풍경에 마음을 내맡기곤 합니다. 버스는 감리교 본부를 지나 성공회 대성당을 거쳐 덕수

궁 대한문 앞에서 잠시 주춤합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도 주춤합니다. 엉성하게 엮은 비닐

하우스 속 초라한 분향소에 눈길이 머무는 까닭입니다. 지난 3년, 22명의 안타까운 생명

이 쓰러져간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주께서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22개의 우주가 무너진 셈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태연합

니다. 아마 저들 세상과 우리 세상은 다른 모양입니다. 분향소 옆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

려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추모 분향이 타오르는 그곳에서 글자는 현수막을 튀어나

와 화살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주춤하던 버스가 천천히 대한문을 나서면 덩달아 눈길을

슬그머니 거두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곧이어 생각은 빠르게 회전해 내일 있을 회의며

프로그램 준비로 분주합니다. 그리고 어쩌다 다시 ‘그곳’을 지날라치면 애써 시선 돌릴 데

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계절은 이미 봄날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대

한문 비닐하우스 속은 여전히 봄날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가득합니다.

지난 두 달 사무국은 감리교 평화학교, DMZ 평화기행을 잘 마치고, 얼마 전부터는 기

사련 활동가학교에 참여하는 한편 11번째 청소년 평화캠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 캠프는 청소년 인권을 중심으로 마련했습니다. 강사 역시 청소년 사역 전문가인 김

선옥 목사님(새날청소녀 쉼터 대표, 늘푸른자립학교 교장)으로 정했습니다. 최근 청소년

자살이 잇따르는 등 어느 때보다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는 요즘 평화캠프가 ‘힐링캠프’로

역할하기를 기대합니다. 지금 신청받고 있습니다. 함께할 교회나 청소년은 바로 연락바랍

니다. 5월에 예정했던 예술집단 산맥의 ‘소통콘서트’는 7월로 연기했습니다. 7월 5일 저녁

7시, 일산 참포도나무교회(담임 안준호 목사)입니다. 미리 일정을 잡아두세요.

금년은 6월항쟁 25주년입니다. 25년 전 그날, 이 땅의 사람들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

는 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하고도 절반이 변한 오늘, 우리는 아직도 오래된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프고 슬픈 2012년 6월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사무실에서

Page 4: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4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DMZ 평화기행을 다녀와서

5월 22일 화요일, 날씨가 무척 더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한걸음

물러가게 하는 참 좋은 날씨였다. 오전 10시, 감리교신학대학교 운동장에 한두 명씩 일행

이 모여 들었고, 우리 다윗교회 식구들 8명을 포함해 모두 33명이 고촌교회에서 준비해주

신 버스에 올랐다. ‘고난함께’에서 주관한 2012년 DMZ 평화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장소인 임진각은 알록달록 예쁘고 멋진 평화누리 공원으로 탈바꿈해 많은 관

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사님들이 나누어 주시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작은 호수 옆에

위치한 카페테라스로 들어가 권사님들과 한가로이 점심을 먹노라니 잠시 소풍을 나온듯

한 착각에 빠졌다. 일상을 떠난 여유가 또 다른 기쁨과 은혜가 되어 출발할 때 낯설고 불

편했던 내 마음에 진한 감동으로 채워졌다. 다시 버스는 통일대교를 통해 임진강을 건너

제3땅굴에 도착하였다.

강옥자 전도사 | 다윗교회

Page 5: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5

제 3땅굴은 1978년 서울까지 불과 52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 지점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1,635미터 폭 2미터 높이 2미터로 완전무장한 병력 3만 명이 1시간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먼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영상과 더불어 땅굴 관람 주의사항을 듣

고 노란 안전모를 쓴 채 땅굴로 들어섰다. 습하고 탁한 공기속을 걸어 300여미터를 내려

가니 지하 73미터 지점으로, 그곳에서부터 제3땅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참으

로 놀랍고 대단한 땅굴이라는 감탄(?)이 이어졌다. 이토록 깊은 곳에 이렇게 긴 땅굴을 파

기까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필요했을까! 잠시 애틋한 마음이 스쳐지나갔다.

땅굴은 안전모 없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방팔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안전을

위하여 제3차단벽인 약 265미터 지점에서 가로막혀 있었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나와 출

구에 도착하니 땅굴의 냉기로 잊었던 더위가 온몸에 달려들었다. 버스는 이제 도라전망대

로 향하였다.

버스조차 오르기 힘겨운지 아주 느린 속도로 오르막길을 몇 구비 지나 서부전선 최북단

도라전망대에 도착하였다. 개성과는 12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진 도라전망대는 날씨가 맑아

서 개성공단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먼저 망원경이 즐비

하게 늘어서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나도 500원을 넣고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산의 곳곳이

허옇게 드러난 민둥산들과 논에 물을 대고 있는 몇 안 되는 북한주민들의 모습이 바로 코

앞에 있는 듯하였다. 이렇게 가까운 고향이 이웃처럼 바로 눈앞에 있는데 갈수도 없고, 그

안타까운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 갈수도 없는 한 맺힌 우리 민족의 절망과 고통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고 6.25 세대는 다 지나가고 있는데, 안타까움

이 잔뜩 밀려왔다. 착찹한 심정으로 버스에 올라 다음 장소인 판문점으로 향하였다.

JSA경비대대 앞에 도착한 버스는 판문점으로 들어가기 전 검문을 위해 기다려야만 했다.

잠시 후 아주 멋지고 잘 생긴 헌병대원이 올라와 주의사항이 적힌 서약서를 개인별로 작성

하게 하고, 주민등록증으로 일

행 모두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

였다. 그리고 JSA 안보견학관으

로 이동해서 슬라이드로 안전교

육을 받고, JSA경비대에서 준비

한 버스로 갈아탔다. 우리 신분

을 확인하던 헌병대원이 함께 동

승해 판문점으로 가는 길 주변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버스길

양쪽의 논에는 물이 가득 고여

Page 6: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6

풍성한 수확을 기약하고 있었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려오는 판문점의 고요함이

세상의 소란스러움과는 대조를 이루는 청정지역임을 증거하고 있었다. 왼쪽으로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이 우리 측 대성동 마을이고, 대성동보다 조금 더 앞쪽으로 인공기가 휘날리는

곳이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라는 헌병대원의 설명을 들으며, 마침내 판문점에 도착하였다.

어느덧 심장 소리는 커지기 시작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를 안내하는 헌병대원

의 지시는 엄하고 강하게 들려왔다. 꼭 자신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거듭되는 경고에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긴장하지 않으면 돌발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지역

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 판문각 앞에서 인민군 경비병 한명이 뚫어져라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기에 우리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판문점에는 우리 측 자유의 집과

북측의 판문각 사이에 다섯 개의 건물이 나란히 있었다. 우리는 그 다섯 개 건물 가운데

있는 파란색 T2 건물로 들어섰다. T2는 북한과 유엔군의 회담장소로 흔히 텔레비젼에서

볼 수 있는 공동사용 회담장이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들어온 입구 맞은편 북측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북한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뒷문으로 나갈 수 없도록 경비

병이 지키고 있다고 했다. 회담장 외부 마당에도 군사분계선이 있지만 회담장 안에도 분

계선이 있어서 회의석 중앙에 위치한 마이크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북은 우

리 손이 닿을 만큼 가깝게 있지만 서로 뛰어 넘을 수 없는 이념의 벽이 너무나 높게 쌓여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곳은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제4초소였다. 버스에서 하차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도 위험한 장소였다. 당시 미루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없었지만 그 자

리에 기념비를 남겨 그때 사건을 기억나게 하고 있었다. 제4초소 바로 옆 ‘돌아오지 않는

Page 7: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7

다리’는 인적이 없어 나무만 무성하게 자랐고, 낡고 폐쇄된 모습으로 분단의 세월을 고스

란히 안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저 다리를 건너 갈 수 있을까!! 우리의 소원만을 그곳에 남

겨두고 돌아와야 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이뤄진 판문점 견학이었지만 참으로 긴 세월을 지나온 기분이었다.

역사 속에 묻혀가는 사건들이 다시금 눈앞 현실처럼 다가와 분단의 현실을 망각하고 살아

가는 나에게 새롭게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또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책임을 깊이 깨닫

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JSA경비대 내에 있는 JSA교회에 들어가 나

의 무지함과 통일에 대한 무의식을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

도했다. ‘막힌 담을 허무시는 주님, 이 땅이 하나 되게 하소서!’

Page 8: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8

세 번째 감리교평화학교가 열렸다. 5월 10일에는 감

신대 웨슬리채플 1세미나실에서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

표의 강연을 들었고, 17일에는 감신대 소예배실에서 광

주민중항쟁 32주기 추모 기도회로 모였다. 또한 기도회

마치고는 1박 2일로 광주평화순례가 이어졌다.

금년 평화학교 전체 주제는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

요"이다. 그래, 인간이 어디 빵으로만 사는 존재였던가?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진짜 추

구해야 할 가치는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는 것이리라. 따라서 이번 평화학교에서는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닌 우리 '생각',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

지 묻는다.

홍세화 선생 강연 —네 생각은 어디서 왔니?

홍세화 선생은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강의를 시

작했다.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내가 고집하는 나의 의식이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출처는 어디인가, 외부로부터 주입되었을 뿐 내 것도 아니면서 내 것으로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물음이다. 매트릭스처럼 이 세상이 내게 주입한 생각들을 고집한다면, 나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한 번 머

리 속에 자리잡은 생각은 뒤이어 들어오는 생각에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뿐더러, 그 생

각이 나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 생각이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어디서 왔

는지 반드시 고찰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홍세화 씨는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의 존재와 상응하는 의식이 나의 안에

있는가?' 우리 현상에 빗대어 질문하자면, '왜 20:80의 사회는 민주주의에 의해 교정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80에 속하는 사람 대다수가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의식하지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감리교평화학교,

정유은 | 객원기자

Page 9: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9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존재와 의식이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학교나 대중매체를 통해 주입된 생각들이 우리 머릿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생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남의 생각을 내 것인 양 받아들여서 내 존재와 의식

이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 내 생

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그 생각들이 내 머리를 채울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했나?

하기는 했나?"

마지막으로 선생은 우리가 우울한 이유가 물신주의로 팽배한 사회에서 소유의 문제에

매몰되고, 지금 위치에서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 하지만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불안과 우울 속에 살아가지 말고, 오직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더욱 성숙한 자아로 살아가기를 요청하였다.

내가 내 의식의 출처를 알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을 '내가 산다'고 얘기할 수 있을

까? 이미 우리는 세상이 주입한 가치관으로 하루하루 자신을 재단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신학생도 우울하다~람쥐!"라는 절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홍세화 선생

의 도전에 진지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것들을 통해 주입된 생각이 자기 것인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생각의 주체'가 되라고, 그리하여 자기 형성의 자유를 누

리라는 도전 말이다.

광주민중항쟁 32주기 추모기도회—네가 누리는 자유는 어디서 왔니?

광주 이야기를 다룬 강풀의 만화 26년을 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2주년이란다. 시

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인데, 여기저기서 광주를 잊지 말라는 외침이 들려

온다. 내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기 위함이다. 우리도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32주기 추모기도회로 모였다. 기도회를 시작하면서 그 날의 장면이 담겨

있는 영상을 보는데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항쟁이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

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날의 사진/영상기록은 참으로 선명하다. 감신대 동아리 ‘암하렛츠’

와 안상호 학우의 노래가 이어진 후,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의 현장에 있었다는 이은

재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주셨다. 광주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이의 증언이 생생하게 다

가왔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고 선포하셨다. 그 날을, 그때

죽어간 사람들을, 그 피 흘림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날 기도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였다. 광주의 역사를 잊지 않고 함께 평화를 도

모하며, 맘몬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빵만으로는 살 수 없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리라.

평화학교의 이 외침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과 세상의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고 평화

의 싹이 틔어나기를 기대한다.

Page 10: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10

시대의 고난

아현역 1번출구와 2번출구의 사이로 죽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미 허물어진 건물들을

등진 낡고 허름한 비닐 천막 한 채가 있다. 이 천막은 북아현동에 유명한 맛 집이었던 곱

창집을 운영하시던 부부, 이선형(1-3지역 철거상가세입자 대책위원회장), 부인 박선희씨

의 집이 되었다. 꽃다지의 노래처럼 부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노숙투쟁을 해야만 하는

작금의 상황을 향해 질문을 한다. 평범하게 음식집을 운영하던 내가 왜? 이 비닐 안에서

8개월을 살았어야만 하는 것인지.

2011년 11월 11일 11시.

평범한 날 이었다. 백주대낮, 여성이 홀로 있던 그 건물을, 경찰과 주민들 앞에서 버젓

이 용역깡패를 앞세워 포크레인으로 허물어 버린 잔인한 강제철거가 있었던 날.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을 무너뜨려 공사를 진행시킨다는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

가 만들어낸 소름 돋는 괴담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을 낳아 기르는 이 사회. 즉, 가진 자들

은 가진 그 것으로 말미암아 더 큰 것들을 얻고 없는 자들은 없는 그 것마저 빼앗겨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리는데 일조하는 것이 당연한 이 사회에서 일어난 실제상황이었다. 11월 9

일 이미 집행관과 용역들이 가게 안 집기들을 강제로 수거해 갔고 텅 빈 가게를 지키던 것

은 오직 두 부부의 몸뿐이었다.

철거 후, 수요일.

주민을 위하여 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강제철거를 진행했던 그 날 이후. 부인 박선희씨는

건물 안에서 철거를 당하며 무너지는 건물 벽에 깔리고 못이 박히는 고통을 겪었다. 이 후

진국스러운 강제철거로 인해 박선희씨는 실신했고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함영원 | 고난함께 일꾼

여기도 사람이 있다 - 북아현 뉴타운 개발 반대 노숙투쟁 현장 -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꽃다지 - 내가 왜?

Page 11: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11

이후 트위터와 몇몇 언론을 통해 이 부조리한 상황을 접

한 시민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곱창집이 있던 자리로 모이

기 시작했다. 저녁 7시가 되면 혁명기도원의 주관으로 교회

력에 따른 기도회를 하고, 8시부터는 혁명기도원과 진보신

당 서대문 당협이 번갈아가며 촛불 문화제를 연다. 찻길 옆

이라 장소도 비좁고, 문화제 때 노래라도 부르려하면 맞은

편(상대 편) 주민들이 시끄럽다며 마이크를 던지는 일도 이

따금 일어나기는 하지만 문화제는 멈추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기업과 정부의 개발방식에 열 받은 용산

참사진상규명회와 홈리스 행동, 서울사람연대 등이 연대하

여 특별한 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강제철거로 인해 삶의 터

전을 잃어버린 억울한 원주민들의 푸닥거리를 하는 매주 수

요일 저녁 시간에는 뉴타운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아직 북아현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시민의 연대를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이 원한 적 없던 뉴타운!

큰돈을 벌어다준다는 뉴타운 개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람의 전부이기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뉴타운개발

의 집착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낡

고 허름해서 가치가 떨어진 집을 대신하여 새 집을 지어준

다고 한다면 마다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더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 곳에서 터를 잡

고 장사하던 상가 세입자들과 그 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원주민들은 원하지 않는, 대기업건설사들의 배만 불리는

‘막’개발을 한다는 것에 있다. 주민들 그 누구도 행복하게 만

들 수 없는, 그래서 주민들 누구도 원한 적 없는 뉴타운 개

발을 ‘주민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뻔

한 거짓말을 앞세워 무리수 공사를 해나가는 대림건설(삼성

과 함께 제주 강정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여의도에 본사

를 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 대림건설이 맞다.)과 뉴타운

개발의 반대하며 투쟁하는 주민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서 ‘구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

는 서대문구청. 지난 8개월을 천막에서 투쟁한 대가로 13억

Page 12: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2

8천만원이라는 벌금을 선고받은 이선형 위원장과 그의 아내 박선희씨는 허울좋은 뉴타운

개발의 잔인한 두 얼굴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선형 위원장님은 북아현 뉴타운 1-3지

역의 공사를 지연시켜 건설사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조합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13억 8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청구받은 상태이다.)

뉴타운과 나 그리고 너.

지난 몇 달, 북아현 뉴타운 반대 수요 촛불문화제의 참여하면서 내 가슴을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개발이라는 달콤한 말로 시작해 결국엔 삶의 터전을 뒤흔드는 뉴타운개발은 언

제 어떠한 방법으로 다가와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지도 못

하는 뉴타운을 짓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이 개발은 나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

을 쫓아내기 전, 갈 곳이 있는지를 먼저 묻는 기본적인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

아가는 우리가 연대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북아현 관련 소식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분들은 트위터 @jrshlee와 @N_Ahyeon

그리고 @ssunyQ를 팔로잉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매년 우리를 화나게 하는 재개발문제와 강제철거의 직접적으로 맞써 싸우고 계

시는 두 부부를 지지하시고 싶으시다면 아래 계좌로 연대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북아현 뉴타운 철거 상가세입자 대책 위원회 후원 계좌 :

기업은행 044-061-689-01-015 박선희.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이었던 <서울시 뉴타운 개발 전면 수정 및 검토>가 지

켜지는 가를 감시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직접 시민의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

다. 아래 서울시장의 비서실과 시청의 민원조사과로 전화를 걸어 서울시의 생각과 시장의

생각을 묻는 것도 북아현 사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서울시장 비서실 : 02) 735-6060

서울시청 민원조사과 : 02) 3707-9507

이 외에도 매월 25일이면 서울시 각 구청에서 트위터 반상회를 한다고 하니 만국의 트위

터리안들은 단결하여 서대문구청을 향해 질문하고 강제철거 피해 상가세입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것도 당장 우리의 몸자리에서 할 수 있는 쉽지만 중요한 연대가 될 것이다.

•138호

Page 13: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13

역사속으로

지난 5월 17-18일. 5.18 광주민중항쟁 32주년을 맞이하여 1박 2일간 광주평화순례를 다

녀왔습니다. 이번 평화순례는 제 3회 감리교평화학교의 일환으로, 첫 번째 강연회(주제 :

신학생도 우울합니까불이 우울하다람쥐 / 강사 : 홍세화), 두 번째 5.18 32주기 추모기도회

(강사 : 이은재 목사)에 이어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연속 기획되었습니다. 추모기도회를 마

친 17일 밤에 광주로 출발하여, 18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짧은 일정. 왕복 10시간에 육

박하는 이동거리만으로도 강행군이 예상되었지만 32년 전 광주의 슬픔과 희망을 직접 만

나보고자 하는 열망은 우리의 발걸음을 한달음에 광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번 광주평화순

례에는 감신대 총학생회와 고난함께 ‘평화교회세우기 연구모임’을 중심으로 총 12명이 함

께 하였는데, 나이도 다르고, 경험도 다른 다양한 이들이 ‘역사 앞에’ 자기만의 자아를 내려

놓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과정, 또한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진실 앞에 겸허한

- 5.18 32주년 광주평화순례를 다녀와서-

이관택 전도사 | 좋은만남교회

Page 14: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14

태도로 과거와 현재를 다듬어 가는 과정을 통해 ‘말’ 그대로 진정한 ‘평화의 순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순례에 앞서 우리는 5.18 32주기 추모기도회를 참석하며, 32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한

역사적 사건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당

시 진압군으로 5.18을 경험하였던 이은재 목사님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당시의 광주라는

공간이 얼마나 끔찍했었는지 다시금 듣게 되며 몸서리를 치기도 하였지만, 그 곳에서 이루

어졌던 시민자치공간이 얼마나 평화적이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습니다. 광

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각 자가 상상했던 광주에 대해 고백하며, 우리가 광주에 가는 이유

를 확인했던 시간들도 참 기억에 남습니다. 차창 밖에서 끝없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캄캄

한 고속도로가 마치 암혹한 시대, 알 수 없는 역사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이따금씩 만나는 환한 가로등을 볼 때, ‘아! 저것이 역사의 빛이로구

나. 광주는 그 빛의 분수령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정을 넘기는 시간에 우리가 도

착한 곳은 광주 YWCA에서 운영하는

‘성빈여사’라는 곳이었습니다. 전남대

병원 바로 앞에 자리한 이곳은 한국전

쟁 이후,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설립되었고, 지금까

지도 꾸준하게 여러 사연을 가진 아이

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 지내고 있었

습니다. 참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살

림살이가 인상적이었는데, 하룻밤을 묵기에 과분할 정도로 너무나 편안한 숙소였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잠들기 전에 우리는 다시 5.18 교양자료를 훑어보며 토론을 진행하였습

니다. 짧은 광주와의 만남을 그냥 스쳐 보낼 수 없다는 우리의 의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일정은 ‘고 박용준 열사’ 기념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고 박용

준 열사는 5.18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하여 들불처럼 싸우다가 산화했던 인물로써 이 곳 성

빈여사 출신이셨습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우리는 매일 아침 진행된다는 직원기도회에도

참여하였는데, 성빈여사 정미혜원장님께서 뜻밖의 보물 같은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분은 전남대 80학번으로 신입생 때 아무것도 모르고 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엄청난 사건

들을 경험하게 되었다면서, 그 당시 광주가 국가와 언론을 통해 철저하게 은폐되었는데, 그

것이 얼마나 억울한 비극이었는지 모른다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

어도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고, 심지어 당시 서울 유학중이던 자신의 친오빠조차 그 사

Page 15: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15

실들을 몇 년 동안이나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

는 일은 당시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었는데, 서로 주먹밥과 김치를 만들어 나눠먹고, 그 혼

란한 상황에서도 수천 명이 광장에 모여 매일같이 대화와 토론을 진행하였으며, 단 한 건

의 절도나 강도가 없었을 만큼 당시의 광주는 굳건한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던 하나의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그 중 참 신비한 일이 매일같이 수천 명이 모인 광장에서 앰프 시설

하나 제대로 없던 시절인데, 한명 한명의 발언이 어떻게 그리도 생생하게, 쩌렁쩌렁하게 들

렸을까 반문하시면서 신앙인으로서 당시의 광주는 마치 천국과 같이 평화로웠고, 신비했다

고 고백하셨습니다.

본격적인 순례일정은 생각보다 너무 짧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

간은 채 반나절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로나마 전남대에서 광주시가지를

지나 망월동에 이르는 길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영상과 사진으로 보았던 당시의 흔적들

은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사라져버렸건만, 군데군데 붙어있는 현수막들이 우리의 눈

을 붙잡았습니다.

“오월의 바람이여, 세상을 깨워라!”

이 문구가 올 해 5.18의 주제였는데, 순간 차 안에서 느끼던 싱그러운 광주의 바람이,

나의 온몸을 휩싸 안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당시 오월의 바람이 지금의 우리를 이루고, 지

금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바람이 미래의 이 땅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바다 위의 범선이 제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결국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역사는 결국 바람

Page 16: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16

앞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총체적 절망으로 힘들어 하는 작금

의 시대, 과연 무엇이 깨어있는 삶인지를 다시금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망월동 민주화묘역에 도착하여 태어난 날은 각기 달라도, 이 땅을 떠난 날이 같은 그 수

많은 묘비들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슬픔에 눈물짓다 가도, 그 순간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수백 명의 청년들이 기념탑 앞에서 참배하는 광경을 보면서, 또 다른 희망을 품

게 되는 것. 5.18의 슬픔과 희망은 이리도 우리에게 또 다른 구원의 신비를 볼 수 있게 합니

다. 결국 죽음 가운데서 부활을, 고난 가운데서 생명을 볼 수 있는 눈이 구원의 신비이기 때

문입니다.

80년 광주는 우리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87년 6월 혁명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횃불

의 시작점이며, 도도한 듯 깨끗한 듯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 가장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수

가 정확히 집계되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선명한 역사의 전거는 지금도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결국 기억하는 일

이 즉, 깨어있는 일이 절망의 현실을 희망으로, 죽음을 구원으로 뒤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기입니다. 오월의 바람은 사람들에게 깨어있기를 요구합

니다. 시원한 성령의 바람은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

십니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는 결국 깨어있는 일, 기억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광주평

화순례를 다녀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 영혼까지 시원하게 해준 오월의 바람을 만

난 일입니다. 참으로 시원했으며,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Page 17: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17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통일의 신념으로 한 평생 살아오신

박정숙·김선분 선생님의 쾌유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두 분이 역사의 현장마다 빠짐없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

다. 치열했던 범민족대회에서 민가협 목요집회까지, 최루탄 자욱한 연대항쟁 현장에서 용

산참사 현장까지, 압수수색 당하는 범민련 사무실에서 수없이 이어지는 국가보안법 법정

까지, 미선이·효순이 추모집회에서 평택 미군기지 현장까지. 할머니들이 지키는 현장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작년 9월 박정숙 선생님께서 낙상으로 인한 하리통증으로 고생하시다가 10월경

X-ray 및 MRI촬영 등 정밀 검진 결과, 척추뼈 2개가 부러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 중 하

나는 이미 오래전 골절로, 한참 동안 통증을 이겨내며 현장을 다니셨던 셈입니다. 그 후

입원치료를 받던 중 또다시 낙상으로 고관절 수술까지 했습니다. 함께 생활하고 계신 김

선분 선생님이 간병을 맡으셨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유료 간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간병비와 병원비를 위해 각 단체 회원들이 회비를 걷기도 하고, 여러분이 개인

적으로 후원금을 내주셔서 많은 힘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요양병원에서 댁으로 모

이민숙 | 프리랜서

Page 18: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18

시기까지 박정숙 선생님은 물론 김선분 선생님도 마음을 졸이며 겨울을 보내셨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의 봄은 더디기만 합니다. 지난 4월 범민련 후원회에서 두 분 선생

님을 모시고, 서울구치소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이경원 전 사무처장을 면회했

습니다. 두 선생님과 이규재 의장은 닿지도 않을 손을 투명 아크릴 벽과 쇠창살에 마주 대

고는 두드리면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빨리 출소해 함께 통일을 맞이하자는 마지막 인사

를 하던 중 마이크가 중단되었습니다. 짧은 만남으로 더한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울구치소로 동지들을 면회하러 나선 길이 6개월만의 ‘외출’이었습니다. 아니, 올해 ‘첫’

나들이였습니다. 봄꽃이 휘날리는 구치소 뜨락에서, 그렇게 봄을 맞이했습니다.

겨울 내내 답답하다고 자주 말씀하셨던 박정숙 선생님은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외출을

할 수 없습니다. 낙상의 위험이 있어서 방에서 화장실 가는 짧은 거리도 다른 이에게 의지

를 해야만 합니다. 몇몇 지인과 함께 봄나들이 간 자리에서 박 선생님은 휠체어에서 봄을

즐기시고, 박 선생님을 간병하느라 피곤하신 김 선생님은 그늘 아래에서 오수에 빠지셨습

니다. 자매처럼, 부부처럼 함께 한 시간이 60년이 넘어가는 세월동안, 두 분 선생님은 서

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인 셈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통일에 헌신하신 두 분 선생님이 빨

리 기력을 회복하셔서 예전처럼 현장에서 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박정숙 선생님(96세)은 워낙 고령인 까닭에 기억력 장애를 비롯한 정상적 일상생활이 불가능합

니다. 여러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김선분 선생님(88세)도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하지만 노환

으로 인해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습니다. 뜻있는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국민은행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816901-04-180960

Page 19: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19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학시절의 김준구목사는 그저 조용

하고 성격 좋은 동기였다. 그에게서 사회

복지나 외국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 같

은 것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그런 그가

대전외국인복지관에서 일을 하며 페이스

북에 올리는 글들을 보며 한편 대단하다

는 생각도 들고,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그를 만나러 대전으

로 내려간 날도 그는 이주여성들과 함께

였다. 세계조리사대회가 개최중인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이주여성들과 함께 시식

코너를 운영하며 식당홍보를 하고 있는

김준구목사를 만났다. 이전보다 살이 타

서 그런지 말라 보이는 김준구 목사를 만

나 처음 건낸 말은 '잘 지냈냐'는 말이었

고, 그의 대답은 '식당일 때문에 요새 잠

도 제대로 못잔다'는 말이었다. 목사가

어쩌다가 식당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게 된 걸까. 김목사가 잠 못 이루게 하는 "이맛

이야"라는 식당이야기가 궁금했다.

최근 대전 외국인 복지관은 최근 아시아 식당 & 다문화 카페 '이맛이야(I'm Asia)'를 오

픈했다. 식당에 대한 아이디어는 복지관의 김봉구관장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김씨성에 '

구'로 끝나기에 형제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물론 이주외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기존에도 있어왔고,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관심이 간 것은 왜

이 식당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전 외국인 복지관은 처음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 대전외국인복지관 김준구 사무국장 -

홍순오 간사

Page 20: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0

돕는 일을 하다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이주여성, 더 나

아가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런데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직업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직접 일자리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1년여의 준

비기간을 거쳐 지난 4월 19일에 식당을 오픈했다.

그러나 복지관이 가지고 있는 계획은 고작 식당 한 곳이 아니었다. 전국에 이와 같은

식당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성공적인 하나의 롤모델을 보여주

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함께 하자고 이끌어들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들, 꿈들

을 이야기하는 김목사의 눈빛은 반짝이고, 목소리는 고조되어 있었다. 이 꿈이 그의 마음

을 사로잡고 있었고, 식당을 통해 나타난 가능성이 그를 흥분되게 하고 있었다. 요즘 무슨

생각하며 사냐는 물음에도 김목사의 대답은 '식당'이다. 시작은 김봉구관장님 혼자 했지

만, 복지관 식구들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함께 같은 꿈을 꾸는 동지의 모습이 아

름답게 느껴졌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해외로 나가겠다고 한다.

뭐하러? 한국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들어오게 될 것이

다. 그러니 기다리기보다는 그곳에 가서 한국에 들어올 사람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기는 쉬우나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같은

한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외국인들

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이토록

헌신하기 시작한 것일까?

Page 21: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21

김준구목사가 대전 외국인복지관에 들어오게 된건 아내인 김애진전도사 때문이었다.

먼저 이쪽에 관심을 가졌고 현장에 뛰어든 아내 덕에 김목사는 자연스레 외국인 노동자들

을 만나게 되었고 마음이 움직여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네 사람. 모두 목사, 전도사들이지만 식당일부터 시작해

서 복지관의 모든 허드렛일까지도 발벗고 나서곤 한다. 실제로 대전에 내려갔던 날, 김봉

구관장님은 자신의 인맥으로 찾아온 손님들에게 커피를 직접 나르고 계셨다. 비록 사람은

적고, 최근 식당 개업으로 잠 잘 시간도 모자랄만큼 분주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더 없이 행

복해보인다. 생활도 넉넉지 않고, 매일 피곤에 찌들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질투가 날만큼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그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내 귓가를 맴도는 말이

있었다. "와 보라!"

"와 보라! 여기 소외받는 외국인들이 있다."

"와 보라! 그들은 당신의 작은 도움으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와 보라! 그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Page 22: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2

“길”은 기독교인의 신앙 체험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

들을 순례자라 불렀다.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제자

들을 가르쳤으며, 죽음에서 부활한 그가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

났다고 믿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예수 자신이 “길” 이었다고 선언하

기도 했다.

나는 길로 나서기 전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서, 선교

단체 집회에서 손을 높이 들고 눈을 꼭 감고선 예수를 만나려 했다. 그런 자세로 있다

보면 찾아오는 추상적인 느낌들이 예수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전

통적인 예배는 무의미한 종교의식이고, 찬양예배라는 방식을 사용해야만 진정한 신앙

체험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찬양을 좋아했고, 테잎을

사 모았고, 기타를 배웠고, 찬양 인도자가 되었다. 함께 노래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황홀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간혹 쓰러지기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바로 그 곳이 진정

한 임재의 현장이라고 믿었다.

균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회중들의 요구를 듣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여러 사

람들이 나의 선곡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서 요구한 것은 “더 신나는 노래, 더 자극적인

노래”같은 것들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강한 흥분을 뽑아내는 찬양 선곡 노하

우’ 같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CCM 방송의 히트곡들은 그런 결과를 산출하는 데에

최적화된 곡들이므로 오래 불러 익숙한 곡들과 그것들을 적절히 섞어 사용한다면 은

혜로운 찬양예배 선곡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요구는 나를 갈등으로 이

끌었다. 그런 예배에는 성찰의 자리가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그 성찰이란 것은 인도

자의 주관에 의해 제시되는 옳음을 잣대로 하는 것이었다. 회중과 인도자가 옳음에

대한 감각을 공유한다면 균열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구조적 문제에 눈

여정훈 | 여사도, 혁명기도원장, 주일학교 교사

“그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에...”

생활인의 기도

Page 23: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23

뜨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나는 더 이상 회중과 같은 옳음의 기준을 가질 수 없었다.

그 때에 나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 시골 교회에서 부르던 찬

송가들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곧, 더 전통적인 방식의 예배에 이끌리기 시

작했다. 거기에서는 인도자의 주관보다 신앙의 선배들이 읊조리던 기도문들이 더 중

요한 것이었고, 흥분하는 것보다는 잠잠히 자신과 세상을 성찰하는 것이 더 가치 있

는 일이었다.

신앙의 선배들은 그 예배를 “성무일과(the Daily Office) 라고 불렀다. 매일 시간

을 정해서 시편과 복음서를 순서대로 읽고, 옛 신앙의 선배들이 제시한 비전을 따라

걷는 예배의 길, 그 길은 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탄탄한 길이었고, 이 세상의

법과는 다른 하나님나라의 법을 통해 세상을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비판적 도구였

다. 나와 몇 친구들은 그 기도를 통해 예수를 새로 만났다. 그리고 교회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그 것을 다시 예수가 있던 자리인 ‘길 위’로 가져갔다.

노동절 집회 대열 뒤 어딘가에서, 등록금 집회가 있는 길 위에서, 상가에서 쫓겨난

세입자가 주저앉아 있는 길 위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몇 달째 앉아 있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곳에서 읽은 시편은 더 이상 찬양으로 가득

한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이 아니었다. 시편은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약자들의 아우성

으로 가득했다. 길 위의 울음소리와 시편의 탄원은 공명했고, 그 것은 우리를 위한 살

아있는 말씀이 되었다. 복음서의 예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길 위에 나앉은 이들

을 만났고, 어루만졌고, 다시 일으켰고, 싸울 힘을 주었다. 그 예수는 추상적인 느낌

으로 다가오는 형체 없는 유령이 아니었다. 그는 천구백년도 더 된 복음서의 기록을

넘어 우리에게로 걸어 온, 살아 있는 갈릴리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 거리의 예배를 “혁명기도원”이라 부른다. 예수가 기도(祈禱)하며

고대했던 하나님나라를 함께 바라고, 그가 행동으로 기도(企圖)했던 혁명에 동참한다

는 의미이다. 나는 이 모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예수는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친구들을 만나신 것처럼, 지금도 길 위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이 만남을 통해 그는 지

금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갖는 의미를 가르치고 계신다. 그는 현장에서 함께 고통

받는 이이고, 불의한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이 그와 함께 부활한다. 예수

와 친밀한 만남을 갖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지금 거리로 나가 거기서 함께 농성 중이

신 그 분에게 말을 걸어 보는 것이 어떨까!

Page 24: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4

포토에세이

지난 12월 설레는 마음으로 이사한 새 집은 북한산 자락 끝에 있어 큰 창으로

산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와서 집에 호랑이가 나올 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숲으로 난 창문에 반했고, 전세 대출에 빚쟁이가 되긴

했지만, 이런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지를 매일 아침 실감하고

있습니다.

집 주인이 이사 가면서 창틀에 큰 화분 두개를 놓고 갔는데, 하나는 두 팔을 모

으면 그려지는 크기의 화분이고, 하나는 무엇인가를 심었던 흔적이 있는 스티로폼

박스입니다. 살림을 하면서 나오는 과일껍데기나 음식물들을 어릴 적에는 퇴비장

에 버리거나 개밥으로 주었는데, 여기서는 퇴비장을 만들 수도 없고 개도 없으니

누구랑 나눠야하나 걱정하던 찰나에, 창틀에 놓여진 둥근 화분이 눈에 들어왔습니

다. 어느 날 상한 귤 하나를 올려놨는데, 아침에 새 소리에 일어나보니 새 두 마리

가 귤을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남은 귤을 쪼아 먹고 셋째날 거의 다

먹어서 귤의 형체가 사라졌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문을 열고 새가 왔는지 가보고, 또 한참동안 열심히 먹고 있는

새를 보면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또 줄 것이 없나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오

래된 반찬이 있기에 그것을 털어서 통속에 넣어 창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새가 그 작은 통 속에 폭 들어가서 열심히 먹고 있는 재미있는 장면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그저 우스꽝스런 광경일 테지만, 어릴 적 콩

밭에 출몰하여 서리하던 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집 주변에 있는 새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새 걱정 할 때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침밥을 먹는 새를 보며

김지은 | 기장총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교육원 간사

세상사는 이야기

Page 25: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25

어떤 부족은 사냥해 온 동물 한 마리를 놓고 나누어 먹기 위해서 몇 시간동안

축제를 한다는데, 사람들은 가진 것을 얼마나 잘 나누고 순환하며 살고 있는지 모

르겠습니다. 내가 욕심내서 남은 것이 버려지고, 누군가의 몫이었던 것이 그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불공평한 사회에서 하루 세 끼 잘 먹으며 가진 자로 살아가는

미안함이 느껴집니다. 아직은 깊이가 얕아 남은 것밖에 새에게 주지 못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과 뭇 생명들에게 나의 것

을 더 나누고, 그들의 몫을 찾아줄 수 있도록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열심히 아침

밥을 먹는 새를 보며 들었습니다.

Page 26: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6

포토에세이

•138호26

정명성 칼럼

쏟아지는 장대비에

밤새워

구름이란 구름은

모두 씻겨 내려와

샛강에 실려

안개로 흘러가고 난 새벽

얼마나 초롱한가,

잠시

저 별들은.

후두둑 빗줄기

다시 젖으며

무겁고 처진 걸음으로

아침 들판을 지나

오후 고개를 넘는 하루

비 걷으며 오는 저녁

먹구름 사이로 노을 비치는 잠시

얼마나 눈부신가,

일제히 날아오른 잠자리 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저 군무(群舞)는.

‘잠시(暫時)’란 신비로움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잠시는 영원이 응축되는 지점이요, 새로움이 전개되는 마디입니다. 행복은 장구한 세월을 점유하는 데 있지 않고, 잠시의 순간들을 누리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의 놀라움을 포착하기 위해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는 여기, 내가 머무는 곳에서 발생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다림과 긴 여정 속으로 방문해 들어오는 시간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장 마

Page 27: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27

고난우체통

정경학

아이들에 대한 진심이 가득 담긴 강선생님의 편지와 사회의 구석구석을 향한 고난함

께 여러분들의 애정과 정성이 넘치는 회보를 잘 받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성장과정

에 나쁜 것에 대한 체험도 해보아야 상대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신념을 더 강하게 가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하고 나쁜 것의 개념과 본질, 후과에 대하여 원리적으로 이

해하고 비판적으로 대할 수 있는 상응하는 지식과 능력, 의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

다. 사리분별의 잣대가 없는 아이들에게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면을 쓰고 달려들다보

니 갖가지 흑심은 어릴 때부터 교육되고 있습니다. 순결한 청정지역의 삼무곡 아이들

에게 있어서도 완전한 피난처는 안 될 것입니다. 사회 안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는 정치

와 경제제도, 사회문화생활영역의 모든 갈래가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일상을 옥

죄입니다. 그 누구도, 그 사슬의 어느 고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만약 자유롭다면

더는 인간 사회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때문에 그 사슬의 어느 한 고리만을 잘라내거나

바꾼다고 하여도 삶에 영향 주는 모든 관계가 순결해질 수는 없습니다. 정치권력의 봉

우리에 생명의 목줄을 걸고 톱아 오르는 사람들이 온갖 추태와 위선을 다 부리면서 세

상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탐욕과 오만, 질투와 경쟁의 야만 같은 성공담이 자랑스러운

인생사가 되고 변태와 쾌락의 동물적 예술이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 장려되는 정신적

오염의 책임자는 오히려 제도적으로 보호됩니다.

인간다움의 참모습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의 사회는 기대조차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고난함께의 소박한 이야기들이 수십 년간 쌓여지고 내일에로 이어지는 것처럼

친어머니 된 심정으로 세상을 대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진정이 현실로 펼쳐질 때가 반

드시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인류는 행성과 함께 없어질 테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를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자연과 사회공동의 재부를 진심으로 아

끼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안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남을 도와야 진실로 좋

은 사람이라는 것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람들, 도움 받지 못한 자보다 도움을 주지 못

한 사람의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배고플 때뿐 아니라 내가 배

Page 28: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28

▶▷출소 장기수선생님 생활지원통일광장 권낙기, 김영승, 임방규 (02)716-2143

낙성대 만남의 집 김영식, 문상봉, 박희성 (02)888-4350

김선분 1925. 02. 14, 77년 출소, 12년 복역, 강북구 번3동 주공A 306동 1502호

박순애 1927. 05. 15,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982 청송마을 동문 굿모닝힐 APT 807동 1302호

박수분 1931. 04. 01, 65년 출소, 11년 복역, 051)752-1904

박정덕 1930. 01. 25, 151-050 서울특별시 관악구 보라매동 713-109호 2층

박정숙 1917. 08. 16, 62년 출소, 12년 복역, 강북구 번3동 주공A 306동 1502호

박종린 1933. 03. 14, 403-845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2동 389-14 그랜드빌라 1차 2동 102호

변숙현 1924. 12. 16,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310, 031)748-4822

안희숙 1929. 01. 13, 89년 9월 출소, 28년 복역

유영쇠 1928. 10. 30, 전북 익산시 신용동 75-2 원불교관리자선원, 063)855-7672

안학섭 1930. 04. 14, 95년 8월 출소, 43년복역, 611-827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2동 791-7

▶▷양심수 후원 버마 민주화 운동(NLD) 한국지부/조모아

김성환 재야 용산4가동 상가공사 철대위, 4년, 원주교도소 891

장민호 재야 일심회, 국가보안법 위반 7년, 대전교도소 4009

이병진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8년, 전주교도소 2513

김재호 재야 용산참사, 공주교도소 176

김창수 재야 용산참사, 4년, 순천교도소 1110

한상렬 목사 방북, 국가보안법 위반, 3년, 서울구치소 169

정경학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 대구교도소 45

이규재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 서울구치소 63

이경원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 서울구치소 7

김덕용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서울구치소 52

임순택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서울구치소 33

이재성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서울구치소 37

이상관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서울구치소 107

* 양심수 선생님들과 고난 일꾼들이 편지 결연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를 때에도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 참으로 그러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삶을 보내는 행복이 가장 순결하고 소중한 행복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소통하는 달

콤한 삶의 맛을 모른다면 아마 참 인간이 되기에는 틀렸다고 보아야겠지요. 끝없는 인

내와 헌신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인간으로 준비하는데 저 역시 시간을

바칠 것입니다.

대구에서 경학 올림.

Page 29: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29292929292929

알림터

<일산 한강교회 테마예배 주관>4월 15일, 29일, 두차례에 걸쳐 일산 한강교회에서 고

난함께의 사업들을 알리고, 현장의 소리를 전하는 시

간을 가졌습니다.

<감리교 평화학교>제3회 감리교 평화학교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라는 주제로 5월 10일과 17일, 2회에 걸쳐 진행되었습

니다. 10일에는 감신대 1세

미나실에서 홍세화 선생

초청 강연회, 17일에는 감

신대 웨슬리 채플 소예배

실에서 5.18 32주년 추모

예배로 모였습니다.

<광주 평화순례>5월 17-18일, 감리교 평화학교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12명의 목회자, 신학생이 함께

참석하여 광주항쟁의 역

사에 대해 배우고 현장을

방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DMZ평화기행>DMZ평화기행이 5월 22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평화기행에는 교회는 물론 강화에 있는 산마을고등

학교 교사 및 학생과 학부모, 교계기자를 포함하여

모두 33명이 참석했습니

다. 평화기행은 임진각 평

화누리공원을 출발해 도

라전망대와 제3땅꿀, 판

문점을 다녀왔습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기도회>5월 24일 오후5시,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채플 소

예배실에서 성찬식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기도회

는 9월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운영위원회>2012년 상반기 운영위원회가 6월 25일 전농교회에서

열립니다. 상반기 보고와 하반기 사업을 의논하는 자

리입니다.2012012012012년2년2년 5555•••6월호6월호6월호6월호6월호6월호2012년 5•6월호 29

<처치파티(Church Party)>7월 5일(목) 저녁 7시 30분,

일산 참포도나무교회에서

예술집단 ‘산맥’과 함께 하는

'소통‘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

됩니다.

<현장기도회>⑴ 4월 23일 / 기사련 주관

쌍용자동차 49제 추모기도

회에 동참했습니다.

⑵ 5월 8일 / 5월 2일부터

열흘간 계속된 재능교육

1600일 길거리 투쟁 승리

를 위한 릴레이 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고

난함께’ 일꾼들이 특별찬송

으로 참여했습니다.

⑶ 6월 7일 / 시청 앞 재능

교육 농성장에서 재능교육

과 국민일보 노조를 위한

연합기도회로 모였습니다.

<기사련 활동가 학교>기사련 활동가학교 / 5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6차례에 걸쳐 교육이 이뤄집니다. 대상은

기사련 활동가 및 예비 사회선교사이며, 장소는 감리

교신학대학교입니다.

<동정>⑴ 저희 단체 초대 대표를 맡아주셨던 김진춘 목사님

께서 은퇴하셨습니다.

⑵ 이광섭 목사님이 담임하는 전농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하고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⑶ 전병식 목사님이 모친상을 당하셨습니다.

⑷ 미국에서 목회중인 우경아 목사님이 Kirkland: First

교회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Rev. Kyeong-Ah Woo 201 S 4th St, PO Box 347

Kirkland, IL 60146

Page 30: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138호30

포토에세이포토포토

•138호30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일에 정성껏 쓰겠습니다”

평화운동은 갈등과 다툼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화해와평화를 심는 일입니다.

평화기행, 평화캠프평화교회 세우기반전평화활동

통일운동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일꾼이되는 일입니다.

출소장기수 생활지원 및 효도나들이통일운동연대 및 지원

북한 고아원 및 재일민족학교 돕기

인권회복운동은 고난받는 이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발견하는 일입니다.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영치금 및 양심수 자녀 장학금 보내기

교도소 방문 및 석방지원에큐메니칼 활동과 지원

개인후원 1구좌 5,000원

단체후원 1구좌 10,000원

소식지광고협찬 100,000원

보내실 곳/고난함께

우체국 013920-01-004461

평평화

인권

▷▶ 4월 영수기개인후원금권영진 김선아 김세나 박세훈 박지연 서신천 송윤혁 안복규 오현일 윤건호 이신선 이영호 이원증 이원호 이은영 이진용 이효성 정완영 최승화 한진희 정사무엘(5,000)강광수 강득환 강민정 강 현 강희석 국윤경 김동관 김동욱 김민영 김신아 김언영 김영곤 김영미 김영현 김용대 김용진 김재천 김준규 김진해 김창환 김치국 노덕호 도태화 박난수박 단 박 민 박성중 박승일 박종현 박현진 방현섭 변영권 서정훈 손인선 심자득 양금성 오영민 유명선 윤종구 이민효 이상숙 이선진 이승현 이원국 이준협 이진영 이해남 이 헌이 혁 이희준 임성호 장연승 장은숙 전성득 정명성 정 영 정유은 정은희 정재영 정해선 정현식 조선혜 조영준 조화순 지동흠 최소영 최시종 하성웅 한성훈 홍영의 홍은숙 황기수 (10,000)안성전 이관택 정애성(15,000)김성복 김영광 김영란 김용강 박준영 백승철 손호문 신혜빈/신아인 유경동 윤문자 전남병 최진수 하애정 한광수 한 석 한인철 홍미자 홍완선/김양이 무명 (20,000)김낙호/이윤우/김홍인 신성호 이정재 한명준 (30,000) 박수인(50,000) 홍순오(55,000)진광수(200,000) 신화철(210,000)

단체후원금겨자씨교회(이승주) 송전교회(이상민) 시내교회(신민종) 주향교회(엄윤섭) (20,000)광서교회(김병훈) (30,000)마달교회(박진수) 홍천소망교회(전재범) (50,000)강경대흥교회(이진희) 공덕교회(고현철) 기쁜교회(손웅석) 문수산성교회(황인근)반월중앙교회(박종배) 색동교회(송병구) 청파교회(김기석) 포천교회(엄상현) (100,000)

이사회비송병구(색동교회) (50,000)정학진(일동교회) (70,000)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박정훈(고촌교회) 신경하 원종휘(만석교회) 이광섭(전농교회) 이광호(도봉교회) 최범선(산곡교회) (100,000)유요열(새홍성교회) (200,000)

소식지후원금선두중앙교회(이민효) 의정부교회(최복규) 잠실벧엘교회(차진희) 혜성교회(조성환)화곡동교회(권종철) (100,000)달월교회(김현종) (200,000)대신교회(홍원영) (300,000)

특별 후원이해석 (300,000)

평화학교 후원교육국 (900,000)

절기나눔보은월송교회(김진해) (95,000)다윗교회(임성호) (100,000)한강교회(김순영) (1,000,000)

미국 고동모임 특별후원정은해 목사 ($100), 이마리아/이강세목사 ($150) 이은주/김성은 목사 ($100) 이영태/이아현 목사 ($100) 류계환 목사 ($200) 이창순 목사 ($200) 김옥연 감리사 ($100) 신규석 목사 ($100) 김진양/우경아 목사 ($300) 함정례 목사 ($100) 김정호 목사 ($300) 김준희 선생 ($100) 이종민 목사 ($100)김우창 전도사 ($100) 박효원 목사 ($100) 정희수 감독 ($300) 최종수 목사 ($200)Dick Wisdom 감리사 ($100)

▷▶ 5월 영수기개인후원금권영진 김선아 김세나 박두완 박세훈 박지연 송윤혁 심자득 안복규 오현일 윤건호 이신선 이영호 이원증 이원호 이진용 이효성 정사무엘 정완영 한진희 (5,000)강광수 강민정 강 현 강희석 김동관 김민영 김성복 김신아 김언영 김영곤 김영광 김영란 김영미 김영현 김용대 김용진 김재천 김준규 김진해 김창환 김치국 노덕호 도태화 박난수 박 단 박 민 박성중 박승일 박종현 박태근 박현진 방현섭 변영권 서정훈 손인선 양금성 오영민 유명선 이규성 이민효 이상숙 이승현이원국 이준협 이진영 이해남 이 헌 이 혁이희준 임성호 장연승 장은숙 전성득 정단비 정명성 정 영 정유은 정은희 정재영 정해선정현식 조선혜 조영준 조화순 지동흠 최소영최덕희,장동수 최시종 하성웅 한광수 한 석 한성훈 홍영의 홍은숙 홍지향 황기수 (10,000)정애성 최승화 (15,000)김양이/홍완선 김용강 백승철 손호문 유경동윤문자 전남병 하애정 한인철 홍미자 무 명 (20,000)김낙호/이윤우/김홍인 김신애 신성호 윤여군 이정재 한명준 (30,000)박수인 (50,000) 홍순오 (65,000)신화철 (70,000) 홍성헌 (80,000)이찬규 (100,000) 진광수 (200,000)

단체후원금겨자씨교회(이승주) 송전교회(이상민) 시내교회(신민종) (20,000)광서교회(김병훈) (30,000)홍천소망교회(전재범) (50,000)기쁜교회(손웅석) 반월중앙교회(박종배) 색동교회(송병구) 청파교회(김기석) 포천교회(엄상현) (100,000)유암교회(김일형) (120,000)여선교회전국연합회 (1,200,000)

이사회비송병구(색동교회) (50,000)정학진(일동교회) (70,000)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박정훈(고촌교회) 신경하 원종휘(만석교회) 이광섭(전농교회) 이광호(도봉교회) 정연수(효성중앙교회) 최범선(산곡교회) (100,000)전병식(배화여대) (200,000)김광년(봉천교회) (500,000)

소식지협찬군량제일교회(이중석) 서정은혜교회(황두휘) (100,000)

특별후원 이해석 (300,000)

DMZ평화기행 후원신경하 (500,000)

2월영수기에 1만원 개인후원자 명단이 누락되어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강광수 강득환 강민정 강철민 강 현 강희석 김동관 김동욱 김민영 김신아 김언영 김영곤 김영란 김영현 김용대 김용진 김재천 김준규 김진해 김창환 김치국 노덕호 도태화 박난수 박 민 박성중 박승일 박종현 박현진 방현섭 변영권 서정훈 손인선 양금성 오영민 유명선 윤경희 윤여군 윤종구 이규성 이길극 이민효 이상숙 이선진이승현 이원국 이준협 이진영 이해남 이 헌 이 혁 이희준 임성호 장연승 장은숙 전남병 전성득 정단비 정명성 정 영 정재영 정해선 정현식 조선혜 조영준 조화순 지동흠 최덕희/장동수 최소영 최시종 하성웅 한광수 한 석 한성훈 홍영의 홍은숙 홍지향 황기수 (10,000)

Page 31: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2012년 5•6월호 312012년 5•6월호 31

Page 32: 고난함께 소식지 138호

편집_ 김신애, 홍순오, 박수인, 이관택, 정유은 / 발행일_ 2012년 6월 20일 / 발행처_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주소_ (120-650) 충정로우체국 사서함 52호 / 전화_ (02) 393-4662 / 364-6076(fax) / E-mail_ [email protected]/ 홈페이지_ http://gonan.or.kr

이사장 신경하 감독(전감독회장)

고 문 박이섭 목사(원로), 김진춘 목사(원로), 윤문자 목사(원로)

이 사 권혁률 권사(CBS) 김광년 목사(봉천교회) 김광식 집사(기독교서회 미디어사업부) 김광후 목사(마전교회) 문선경 권사(창천교회)

박신진 목사(삼척제일교회) 박정훈 목사(고촌교회) 백용현 목사(대동교회) 송병구 목사(색동교회) 우경아 목사(커클랜드 제일교회)

유요열 목사(새홍성교회) 유은진 권사(독일 복흠교회) 원종휘 목사(만석교회) 이광섭 목사(전농교회) 이광호 목사(도봉교회)

이상경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이헌 목사(생명나무교회) 임정덕 목사(동산교회) 조이제 목사(샘솟는 교회) 전병식 목사(배화여

대) 정연수 목사(효성중앙교회) 정학진 목사(일동교회) 최범선 목사(산곡교회) 최병천 장로(밀알기획) 허태수 목사(성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