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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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송방송 구술 일시 2012년 5월 9일 화요일 10:00~12:00 구술 장소 서울 도봉구 창동 한국음악사학회 사무실 제2장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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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구술 송방송

구술 일시 2012년 5월 9일 화요일 1000~1200

구술 장소 서울 도봉구 창동 한국음악사학회 사무실

宋芳松

제2장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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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서울대 국악과 실태

그리고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국악계 입문 배경과 유년 및 학창

시절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봤는데요 저희가 조금 더 궁금한 게 있어서 선생님께 여쭤

볼려고 합니다 선생님 그 당시에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이론 및 실기전공 커리큘럼

curriculum이 어떻게 됐었는지와 전체적으로 학교 얘기를 좀 자세하게 들려주실 수 있

으실까요

송 내가 입학하기 전에 바로 위에 우리 권오성權五聖 선배님이 1기생으로 입학을 한 초창기

라 사실 그 당시에 그 커리큘럼에 대해서 내가 전체적인건 잘 모르겠고 국악에 관한 그

수업은 참 적었어요 90가 양악과목인 걸로 알고 또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듯이 국악

과 입학생의 50명 중에서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

고 나머진 전부 2지망생으로 채워졌어 그러니까 양악과를 쳤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들

어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지 그 사람들이 대개 양악 전공이기 때문

에 양악 과목들을 주로 들었고 나 역시 내가 성악을 지망했던 사람으로서 국악이론 렛슨

lesson을 받아도 그 다음에 성악 렛슨을 부전공으로 받았어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그

때 국악과에 독립된 커리큘럼이 어땠다 분명하게 기억되진 않아요 지난 시간에 내가 얘

기했듯이 국악개론 시간에 만당 선생님이 lsquo산조rsquo散調라는 거를 칠판에 크게 쓰고 조청자趙

淸子보고 나와서 가야금산조 한 10분짜리 연주하라 그러고 나서는 당신께서 ldquo난 산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깐 자네들이 연구를 해서 산조에 대한 이론 같은 걸 좀 공부하라rdquo 그러

니 참 그때 지난 시간에 내가 그랬잖아 참 기가 막혀가지고 그때 음악대학에 박사학

위 가지신 분은 이혜구 교수님 밖에 없었어요 박사가 모르는 걸 우리 같은 새내기들이

어떻게 뭘 연구해서 하라는 것인가 하고 굉장히 내가 그때 실망했던 얘기 기억나죠

이 송방송 교수님께서 그때 장사훈 선생님께도 수학受學을 하셨는지요

송 그렇죠 이론이기 때문에 이론전공자는 또 부전공으로 거문고를 필수적으로 해야 됐어

요 그러니까 나는 거문고를 그때 장사훈 선생님한테 배우고

이 그 수업방식이나 이런 거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지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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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근데 어떤 과목이 있으면 요즘엔 그 과목과 관련된 교과서가 있잖아요 책도 없고 그때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혜구 선생님의 『한국음악연구』106韓國

音樂硏究라고 하는 논문집 하나 있었고 그 담에 장사훈 선생님의 『국악개요』107國樂槪要인

가 그게 60년인가 61년도에 나온 그게 하나 있었고 근데 그게 다 개요槪要뿐이지 심층

적인 거는 이혜구 선생님 논문집인데 무슨 말을 했는지 난 읽어두hellip 국악용어를 이해를

못하니깐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내가 이혜구 선생님

말씀대로 모르는 용어 나오면은 고걸 하나씩 카드card로 정리를 해가지고 이제 이론 공

부를 위한 기초 작업을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이 네 그런데 거문고를 장사훈 선생님하고 공부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실기를 하신 거

잖아요 근데 배우시면서 혹시 어려우셨던 점이라던가 기억나는 에피소드episode는hellip

송 그러니깐 가야금도 새로운 것이고 거문고도 새로운데 또 가야금은 요렇게 줄이 다 조

율調律이 된 거 요렇게 뜯기만 하면 되는데 거문고는 이거 뭐 골무 같은 것두 끼구 이걸

또 술대108루hellip 그러니까 술대 소리밖에 기억이 안나 그때 뭐 사실 이론 전공하는 사람

에게 왜 거문고를 시켰나 하면은 고악보古樂譜가 전부 거문고악보이기 때문에 이론 전공

하려면 고악보 해독解讀을 할 줄 알아야 됐어 그러니까 악기의 구조나 어느 줄에서 뭐가

나오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 이런걸 알아야 해독을 할 수 있으니깐 그래서 거문고를 가

르쳐 준 걸로 이해를 하고 그러니깐 잘 연주하고 못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론전

공자로서는 그 거문고의 구조 원리 그 원리 이런 거를 실제 연습을 통해 또는 각 곡을

통해가지고 배워줄려고 했던 걸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 그러면 가르치는 방식은 어떠셨나요

송 선생님이 앞에 서서 아니 앉아서 선생님이 이렇게 연주를 하면 따라서 하고

이 당시 녹음기나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암기暗記를 하셨어야 됐네요 그렇죠

송 헌데 악보는 정간보井間譜를 못 보니깐 5선보를 어설프게 해가지고 배웠고 그때 내가 지

난번에 얘기했던 기억 중에 하나는 사실 양악과목 강의가 굉장히 부실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휴강하기 일쑤였어요 그래 나는 주로 문리대文理大 가서 중앙도서관에서 공

부를 하고 선생님 내준 과제 그런 거 수행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 시간표에 따라서 지금

106 李惠求『韓國音樂硏究』(서울국민음악연구회1957)432쪽의이책은만당(晩堂)선생님의첫번째논문집임ldquo韓國의舊記譜法rdquo을비롯한22편의논문으로구성된이논문집은한국음악학의첫번째연구성과라는데의의가있음

107 張師勛『國樂槪要』(서울정연사1961)저자가HLKA와HLKY를통해방송한국악기7항목아악곡121항목민속악170항목고전무용62항목을해설한것그리고신문과잡지에발표한글을모아서엮은개설서

108 술대거문고를탈때사용하는막대로오른손으로잡는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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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리대 지금은 전부 다 그 무슨 한국문화예술회관인가 뭘로 바뀌었는데 거기서부

터 뒷길로 해가지고 청계천 넘어서 을지로 6가까지 올라면 한 30분 걸려요 그 애써 가

지고 오면은 또 휴강이고 그래가지고 양악과목은 내가 사실 시간이 아까운거예요 그래

서 국악과목은 참 충실하게 했어요 만당 선생님이 또 장사훈 선생님이 렛슨 같은 거는

정확하게 해줬는데 양악하는 선생님들의 그 과목은 난 작곡 부전공 지도해주는 이성재

109李誠載 선생님인데 나중에 이성재 선생님하고 싸운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하두 렛슨

을 안 해주니깐 그때 이성재 선생님이 학생과장인가 뭐를 맡았어요 당신이 그런 과장

직을 맡아서 바쁜 건 좋은데 보강도 안 해주고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화성법和聲法 대

위법對位法 교재는 일본책 가지고 했어요 한국책이 없어가지고 무슨 일본사람 모로이

사부로110諸井三郎인가 뭐 하여튼 그 책을 내가 원본을 일어 공부해가면서 내가 고걸 해

독을hellip 왜 한문이 많이 나오니까 토씨만 알면은 무슨 말 하는 지는 알겠고 그래서 ldquo나

선생님한테 렛슨 안 받겠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rdquo 내가 이거 독학을 하겠다고 하

싸운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에 지휘법은 김만복金萬福 선생님이었는데 그 양반 처음 시작

할 때 내 지난번에 목욕탕 때 밀어내는 그 얘기했지요 그렇하고는 뭐 학기말에 무슨 노

래를 지휘하는 그거 하여튼 그렇게 해가지고 학점을 다 따긴 땄어요 따서 별루 내가 학

창시절에 음대생들하고 가깝게 지내기보다는 문리대 학생들하고 한국학韓國學하는 학생

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뭐 별로 기억나는 거 없고

이 그때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들 중에서는 누가 계신지요

송 조재선趙在善 박사 뭐 이병원李秉元 박사

이 몇 분이 그때 50명이 정원이셨다고 했는데요 몇 분 혹시 기억나시는 선생님들 계시면

은 말씀해주세요

송 헌데 고 사람들이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나도 1지망생 조재선 이병원 그

다음에 나 그러고 뭐 김정자金靜子 이성천李成千middot백대웅白大雄 선생 이런 사람들도 내가

알기론 전부 다 2지망생으로 들어왔던 걸로 기억돼요

109 이성재(李誠載1924~2010)작곡가경기도이천(利川)출생호는석천(石泉)서울대음대교수1948년경성음악전문학교및1951년서울대음대를졸업한후1954년서울대음대교수로취임한그는1964년오스트리아국립음악원의작곡과에서수학함1955년창악회(創樂會)를결성한그의작품으로ldquo대금과가야금을위한음악rdquo(1968)ldquo대금또는플루트를위한십장생곡rdquo(1978)등이있음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26-28쪽참조

110 모로이사부로(諸井三郎1903~1977)일본의작곡가일본도쿄출생1928년도쿄대학미학과졸업후lt수루야gt악단을조직잡지『음악연구』(音樂研究)를창간했다1932년독일에유학베를린국립음악학교에서2년간작곡을배우고1937년신향방인(新響邦人)작품콩쿠르에ldquo피아노협주곡rdquo으로입선했다작곡가연맹위원ㆍ음악문화협회이사를역임독일낭만파계통의일본에있어서대표적인이지적(理智的)작곡가이다주요작품으로는교향곡4곡현악4중주곡3곡현악6중주곡가곡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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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그러시면 당시에 실기하셨던 분들은 선생님은 이론을 하셨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셨

는지 학교에 명인들이 찾아와서 가르치기도 하셨는지요

송 뭐 강사가 그때 가야금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黃秉冀 선생님이 실기강사로 나오셨고 그

때 한말숙韓末淑 선생님이 나온 걸로 기억이 되고 그다음에는 뭐 합주 같은 거는 성경린

111成慶麟 선생님이 나오시고 가곡은 이주환112李珠煥 선생님 나오시고 민속악계 그때 활

동하던 분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그러면 동기同期들이나 친구들하고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episode 같은 거는 딱히 없으신가요

송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하나 학창시절에 그때 을지로 6가에서 그때 학생회장이 권 선생이

었나 그랬을 거예요 권오성權五聖 선배가 그 당시에 학생회장하면서 가면 쓰고 노는 가

면무도회假面舞蹈會를 재미나게 해가지고 내가 한번 거기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학창시

절 기억나는 건 그거밖에 없고 그담에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은 양악과목은 양악과 학생

들 또는 친구들 노트 빌려가지고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되는 거는 그 서순정113徐純貞 양

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하는 단국대檀國大 교수더라고 지금은 리타이어114retire 했겠지

만은 그 여학생 노트를 빌려봤던 기억이hellip 참 예쁘게 생겼어 그때 (웃음) 학생시절에

혹시 마음에 두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웃음) 아니 노트 빌려가도 좀 예쁘게 생긴 동창

생들 것을 빌려보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 같애 지난 얘기지만은 (웃음)

이 선생님 그럼 그때 음악대학 시설이나 환경은 어땠었나요

송 국악과 시설이 약학대학을 그때 개조改造하여 만들어서 연습실이 3층인가 4층에 있었어

요 쪼끄만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 피아노 뭐hellip 근데 국악은 그때 방이 몇 개 아닌 걸로

그게 전부 성악 그런 거 연습하고 피아노 뭐 연습하기 위해서 난 부전공하느라고 그 피

아노 있는 방에서 주로 가서 살았고 거문고 하느라고 뭐 내가 열심히 했던 그 기억은 별

로 없어요

111 성경린(成慶麟1911~2008)국악인호는관재(寬齋)서울출생1931년이왕직아악양성소(李王職雅樂養成所)를수료하고이왕직아악수를거쳐1941년아악사로승진하였다국악원악사장국악원장국악고교교장역임『국악감상』middot『한국의무용』등의저서가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939-40쪽참조

112 이주환(李珠煥1909sim1972)가곡의명인초명은복길(福吉)호는소남(韶南)서울출생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장을거쳐국립국악원초대원장을역임하며국악사양성소를부설국악교육을실시하고월례시조강습회와시조연구회를창설하였다예술원회원과국립국악원고문을지냈고중요무형문화재제30호lt가곡gt예능보유자였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76-78쪽참조

113 서순정(徐純貞1943년생)바이올린연주가단국대음대교수1964년조선일보사주최의제14회신인음악회에출연한후외국유학을마치고1971년귀국독주회를열었고1974년예술극장에서독주회를개최함1983년독일문화원에서1994년예술의전당리사이트홀에서그리고1998년문화일보홀에서독주회개최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855쪽참조

114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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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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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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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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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6

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7

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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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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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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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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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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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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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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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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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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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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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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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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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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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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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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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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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4

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5

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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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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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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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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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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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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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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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4

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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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58

취약한 서울대 국악과 실태

그리고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국악계 입문 배경과 유년 및 학창

시절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봤는데요 저희가 조금 더 궁금한 게 있어서 선생님께 여쭤

볼려고 합니다 선생님 그 당시에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이론 및 실기전공 커리큘럼

curriculum이 어떻게 됐었는지와 전체적으로 학교 얘기를 좀 자세하게 들려주실 수 있

으실까요

송 내가 입학하기 전에 바로 위에 우리 권오성權五聖 선배님이 1기생으로 입학을 한 초창기

라 사실 그 당시에 그 커리큘럼에 대해서 내가 전체적인건 잘 모르겠고 국악에 관한 그

수업은 참 적었어요 90가 양악과목인 걸로 알고 또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듯이 국악

과 입학생의 50명 중에서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

고 나머진 전부 2지망생으로 채워졌어 그러니까 양악과를 쳤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들

어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지 그 사람들이 대개 양악 전공이기 때문

에 양악 과목들을 주로 들었고 나 역시 내가 성악을 지망했던 사람으로서 국악이론 렛슨

lesson을 받아도 그 다음에 성악 렛슨을 부전공으로 받았어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그

때 국악과에 독립된 커리큘럼이 어땠다 분명하게 기억되진 않아요 지난 시간에 내가 얘

기했듯이 국악개론 시간에 만당 선생님이 lsquo산조rsquo散調라는 거를 칠판에 크게 쓰고 조청자趙

淸子보고 나와서 가야금산조 한 10분짜리 연주하라 그러고 나서는 당신께서 ldquo난 산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깐 자네들이 연구를 해서 산조에 대한 이론 같은 걸 좀 공부하라rdquo 그러

니 참 그때 지난 시간에 내가 그랬잖아 참 기가 막혀가지고 그때 음악대학에 박사학

위 가지신 분은 이혜구 교수님 밖에 없었어요 박사가 모르는 걸 우리 같은 새내기들이

어떻게 뭘 연구해서 하라는 것인가 하고 굉장히 내가 그때 실망했던 얘기 기억나죠

이 송방송 교수님께서 그때 장사훈 선생님께도 수학受學을 하셨는지요

송 그렇죠 이론이기 때문에 이론전공자는 또 부전공으로 거문고를 필수적으로 해야 됐어

요 그러니까 나는 거문고를 그때 장사훈 선생님한테 배우고

이 그 수업방식이나 이런 거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지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59

송 근데 어떤 과목이 있으면 요즘엔 그 과목과 관련된 교과서가 있잖아요 책도 없고 그때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혜구 선생님의 『한국음악연구』106韓國

音樂硏究라고 하는 논문집 하나 있었고 그 담에 장사훈 선생님의 『국악개요』107國樂槪要인

가 그게 60년인가 61년도에 나온 그게 하나 있었고 근데 그게 다 개요槪要뿐이지 심층

적인 거는 이혜구 선생님 논문집인데 무슨 말을 했는지 난 읽어두hellip 국악용어를 이해를

못하니깐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내가 이혜구 선생님

말씀대로 모르는 용어 나오면은 고걸 하나씩 카드card로 정리를 해가지고 이제 이론 공

부를 위한 기초 작업을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이 네 그런데 거문고를 장사훈 선생님하고 공부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실기를 하신 거

잖아요 근데 배우시면서 혹시 어려우셨던 점이라던가 기억나는 에피소드episode는hellip

송 그러니깐 가야금도 새로운 것이고 거문고도 새로운데 또 가야금은 요렇게 줄이 다 조

율調律이 된 거 요렇게 뜯기만 하면 되는데 거문고는 이거 뭐 골무 같은 것두 끼구 이걸

또 술대108루hellip 그러니까 술대 소리밖에 기억이 안나 그때 뭐 사실 이론 전공하는 사람

에게 왜 거문고를 시켰나 하면은 고악보古樂譜가 전부 거문고악보이기 때문에 이론 전공

하려면 고악보 해독解讀을 할 줄 알아야 됐어 그러니까 악기의 구조나 어느 줄에서 뭐가

나오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 이런걸 알아야 해독을 할 수 있으니깐 그래서 거문고를 가

르쳐 준 걸로 이해를 하고 그러니깐 잘 연주하고 못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론전

공자로서는 그 거문고의 구조 원리 그 원리 이런 거를 실제 연습을 통해 또는 각 곡을

통해가지고 배워줄려고 했던 걸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 그러면 가르치는 방식은 어떠셨나요

송 선생님이 앞에 서서 아니 앉아서 선생님이 이렇게 연주를 하면 따라서 하고

이 당시 녹음기나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암기暗記를 하셨어야 됐네요 그렇죠

송 헌데 악보는 정간보井間譜를 못 보니깐 5선보를 어설프게 해가지고 배웠고 그때 내가 지

난번에 얘기했던 기억 중에 하나는 사실 양악과목 강의가 굉장히 부실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휴강하기 일쑤였어요 그래 나는 주로 문리대文理大 가서 중앙도서관에서 공

부를 하고 선생님 내준 과제 그런 거 수행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 시간표에 따라서 지금

106 李惠求『韓國音樂硏究』(서울국민음악연구회1957)432쪽의이책은만당(晩堂)선생님의첫번째논문집임ldquo韓國의舊記譜法rdquo을비롯한22편의논문으로구성된이논문집은한국음악학의첫번째연구성과라는데의의가있음

107 張師勛『國樂槪要』(서울정연사1961)저자가HLKA와HLKY를통해방송한국악기7항목아악곡121항목민속악170항목고전무용62항목을해설한것그리고신문과잡지에발표한글을모아서엮은개설서

108 술대거문고를탈때사용하는막대로오른손으로잡는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0

그 문리대 지금은 전부 다 그 무슨 한국문화예술회관인가 뭘로 바뀌었는데 거기서부

터 뒷길로 해가지고 청계천 넘어서 을지로 6가까지 올라면 한 30분 걸려요 그 애써 가

지고 오면은 또 휴강이고 그래가지고 양악과목은 내가 사실 시간이 아까운거예요 그래

서 국악과목은 참 충실하게 했어요 만당 선생님이 또 장사훈 선생님이 렛슨 같은 거는

정확하게 해줬는데 양악하는 선생님들의 그 과목은 난 작곡 부전공 지도해주는 이성재

109李誠載 선생님인데 나중에 이성재 선생님하고 싸운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하두 렛슨

을 안 해주니깐 그때 이성재 선생님이 학생과장인가 뭐를 맡았어요 당신이 그런 과장

직을 맡아서 바쁜 건 좋은데 보강도 안 해주고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화성법和聲法 대

위법對位法 교재는 일본책 가지고 했어요 한국책이 없어가지고 무슨 일본사람 모로이

사부로110諸井三郎인가 뭐 하여튼 그 책을 내가 원본을 일어 공부해가면서 내가 고걸 해

독을hellip 왜 한문이 많이 나오니까 토씨만 알면은 무슨 말 하는 지는 알겠고 그래서 ldquo나

선생님한테 렛슨 안 받겠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rdquo 내가 이거 독학을 하겠다고 하

싸운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에 지휘법은 김만복金萬福 선생님이었는데 그 양반 처음 시작

할 때 내 지난번에 목욕탕 때 밀어내는 그 얘기했지요 그렇하고는 뭐 학기말에 무슨 노

래를 지휘하는 그거 하여튼 그렇게 해가지고 학점을 다 따긴 땄어요 따서 별루 내가 학

창시절에 음대생들하고 가깝게 지내기보다는 문리대 학생들하고 한국학韓國學하는 학생

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뭐 별로 기억나는 거 없고

이 그때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들 중에서는 누가 계신지요

송 조재선趙在善 박사 뭐 이병원李秉元 박사

이 몇 분이 그때 50명이 정원이셨다고 했는데요 몇 분 혹시 기억나시는 선생님들 계시면

은 말씀해주세요

송 헌데 고 사람들이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나도 1지망생 조재선 이병원 그

다음에 나 그러고 뭐 김정자金靜子 이성천李成千middot백대웅白大雄 선생 이런 사람들도 내가

알기론 전부 다 2지망생으로 들어왔던 걸로 기억돼요

109 이성재(李誠載1924~2010)작곡가경기도이천(利川)출생호는석천(石泉)서울대음대교수1948년경성음악전문학교및1951년서울대음대를졸업한후1954년서울대음대교수로취임한그는1964년오스트리아국립음악원의작곡과에서수학함1955년창악회(創樂會)를결성한그의작품으로ldquo대금과가야금을위한음악rdquo(1968)ldquo대금또는플루트를위한십장생곡rdquo(1978)등이있음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26-28쪽참조

110 모로이사부로(諸井三郎1903~1977)일본의작곡가일본도쿄출생1928년도쿄대학미학과졸업후lt수루야gt악단을조직잡지『음악연구』(音樂研究)를창간했다1932년독일에유학베를린국립음악학교에서2년간작곡을배우고1937년신향방인(新響邦人)작품콩쿠르에ldquo피아노협주곡rdquo으로입선했다작곡가연맹위원ㆍ음악문화협회이사를역임독일낭만파계통의일본에있어서대표적인이지적(理智的)작곡가이다주요작품으로는교향곡4곡현악4중주곡3곡현악6중주곡가곡등이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1

이 네 그러시면 당시에 실기하셨던 분들은 선생님은 이론을 하셨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셨

는지 학교에 명인들이 찾아와서 가르치기도 하셨는지요

송 뭐 강사가 그때 가야금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黃秉冀 선생님이 실기강사로 나오셨고 그

때 한말숙韓末淑 선생님이 나온 걸로 기억이 되고 그다음에는 뭐 합주 같은 거는 성경린

111成慶麟 선생님이 나오시고 가곡은 이주환112李珠煥 선생님 나오시고 민속악계 그때 활

동하던 분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그러면 동기同期들이나 친구들하고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episode 같은 거는 딱히 없으신가요

송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하나 학창시절에 그때 을지로 6가에서 그때 학생회장이 권 선생이

었나 그랬을 거예요 권오성權五聖 선배가 그 당시에 학생회장하면서 가면 쓰고 노는 가

면무도회假面舞蹈會를 재미나게 해가지고 내가 한번 거기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학창시

절 기억나는 건 그거밖에 없고 그담에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은 양악과목은 양악과 학생

들 또는 친구들 노트 빌려가지고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되는 거는 그 서순정113徐純貞 양

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하는 단국대檀國大 교수더라고 지금은 리타이어114retire 했겠지

만은 그 여학생 노트를 빌려봤던 기억이hellip 참 예쁘게 생겼어 그때 (웃음) 학생시절에

혹시 마음에 두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웃음) 아니 노트 빌려가도 좀 예쁘게 생긴 동창

생들 것을 빌려보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 같애 지난 얘기지만은 (웃음)

이 선생님 그럼 그때 음악대학 시설이나 환경은 어땠었나요

송 국악과 시설이 약학대학을 그때 개조改造하여 만들어서 연습실이 3층인가 4층에 있었어

요 쪼끄만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 피아노 뭐hellip 근데 국악은 그때 방이 몇 개 아닌 걸로

그게 전부 성악 그런 거 연습하고 피아노 뭐 연습하기 위해서 난 부전공하느라고 그 피

아노 있는 방에서 주로 가서 살았고 거문고 하느라고 뭐 내가 열심히 했던 그 기억은 별

로 없어요

111 성경린(成慶麟1911~2008)국악인호는관재(寬齋)서울출생1931년이왕직아악양성소(李王職雅樂養成所)를수료하고이왕직아악수를거쳐1941년아악사로승진하였다국악원악사장국악원장국악고교교장역임『국악감상』middot『한국의무용』등의저서가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939-40쪽참조

112 이주환(李珠煥1909sim1972)가곡의명인초명은복길(福吉)호는소남(韶南)서울출생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장을거쳐국립국악원초대원장을역임하며국악사양성소를부설국악교육을실시하고월례시조강습회와시조연구회를창설하였다예술원회원과국립국악원고문을지냈고중요무형문화재제30호lt가곡gt예능보유자였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76-78쪽참조

113 서순정(徐純貞1943년생)바이올린연주가단국대음대교수1964년조선일보사주최의제14회신인음악회에출연한후외국유학을마치고1971년귀국독주회를열었고1974년예술극장에서독주회를개최함1983년독일문화원에서1994년예술의전당리사이트홀에서그리고1998년문화일보홀에서독주회개최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855쪽참조

114 은퇴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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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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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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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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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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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7

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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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9

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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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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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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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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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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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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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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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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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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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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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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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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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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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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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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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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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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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9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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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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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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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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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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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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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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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59

송 근데 어떤 과목이 있으면 요즘엔 그 과목과 관련된 교과서가 있잖아요 책도 없고 그때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혜구 선생님의 『한국음악연구』106韓國

音樂硏究라고 하는 논문집 하나 있었고 그 담에 장사훈 선생님의 『국악개요』107國樂槪要인

가 그게 60년인가 61년도에 나온 그게 하나 있었고 근데 그게 다 개요槪要뿐이지 심층

적인 거는 이혜구 선생님 논문집인데 무슨 말을 했는지 난 읽어두hellip 국악용어를 이해를

못하니깐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내가 이혜구 선생님

말씀대로 모르는 용어 나오면은 고걸 하나씩 카드card로 정리를 해가지고 이제 이론 공

부를 위한 기초 작업을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이 네 그런데 거문고를 장사훈 선생님하고 공부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실기를 하신 거

잖아요 근데 배우시면서 혹시 어려우셨던 점이라던가 기억나는 에피소드episode는hellip

송 그러니깐 가야금도 새로운 것이고 거문고도 새로운데 또 가야금은 요렇게 줄이 다 조

율調律이 된 거 요렇게 뜯기만 하면 되는데 거문고는 이거 뭐 골무 같은 것두 끼구 이걸

또 술대108루hellip 그러니까 술대 소리밖에 기억이 안나 그때 뭐 사실 이론 전공하는 사람

에게 왜 거문고를 시켰나 하면은 고악보古樂譜가 전부 거문고악보이기 때문에 이론 전공

하려면 고악보 해독解讀을 할 줄 알아야 됐어 그러니까 악기의 구조나 어느 줄에서 뭐가

나오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 이런걸 알아야 해독을 할 수 있으니깐 그래서 거문고를 가

르쳐 준 걸로 이해를 하고 그러니깐 잘 연주하고 못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론전

공자로서는 그 거문고의 구조 원리 그 원리 이런 거를 실제 연습을 통해 또는 각 곡을

통해가지고 배워줄려고 했던 걸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 그러면 가르치는 방식은 어떠셨나요

송 선생님이 앞에 서서 아니 앉아서 선생님이 이렇게 연주를 하면 따라서 하고

이 당시 녹음기나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암기暗記를 하셨어야 됐네요 그렇죠

송 헌데 악보는 정간보井間譜를 못 보니깐 5선보를 어설프게 해가지고 배웠고 그때 내가 지

난번에 얘기했던 기억 중에 하나는 사실 양악과목 강의가 굉장히 부실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휴강하기 일쑤였어요 그래 나는 주로 문리대文理大 가서 중앙도서관에서 공

부를 하고 선생님 내준 과제 그런 거 수행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 시간표에 따라서 지금

106 李惠求『韓國音樂硏究』(서울국민음악연구회1957)432쪽의이책은만당(晩堂)선생님의첫번째논문집임ldquo韓國의舊記譜法rdquo을비롯한22편의논문으로구성된이논문집은한국음악학의첫번째연구성과라는데의의가있음

107 張師勛『國樂槪要』(서울정연사1961)저자가HLKA와HLKY를통해방송한국악기7항목아악곡121항목민속악170항목고전무용62항목을해설한것그리고신문과잡지에발표한글을모아서엮은개설서

108 술대거문고를탈때사용하는막대로오른손으로잡는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0

그 문리대 지금은 전부 다 그 무슨 한국문화예술회관인가 뭘로 바뀌었는데 거기서부

터 뒷길로 해가지고 청계천 넘어서 을지로 6가까지 올라면 한 30분 걸려요 그 애써 가

지고 오면은 또 휴강이고 그래가지고 양악과목은 내가 사실 시간이 아까운거예요 그래

서 국악과목은 참 충실하게 했어요 만당 선생님이 또 장사훈 선생님이 렛슨 같은 거는

정확하게 해줬는데 양악하는 선생님들의 그 과목은 난 작곡 부전공 지도해주는 이성재

109李誠載 선생님인데 나중에 이성재 선생님하고 싸운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하두 렛슨

을 안 해주니깐 그때 이성재 선생님이 학생과장인가 뭐를 맡았어요 당신이 그런 과장

직을 맡아서 바쁜 건 좋은데 보강도 안 해주고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화성법和聲法 대

위법對位法 교재는 일본책 가지고 했어요 한국책이 없어가지고 무슨 일본사람 모로이

사부로110諸井三郎인가 뭐 하여튼 그 책을 내가 원본을 일어 공부해가면서 내가 고걸 해

독을hellip 왜 한문이 많이 나오니까 토씨만 알면은 무슨 말 하는 지는 알겠고 그래서 ldquo나

선생님한테 렛슨 안 받겠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rdquo 내가 이거 독학을 하겠다고 하

싸운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에 지휘법은 김만복金萬福 선생님이었는데 그 양반 처음 시작

할 때 내 지난번에 목욕탕 때 밀어내는 그 얘기했지요 그렇하고는 뭐 학기말에 무슨 노

래를 지휘하는 그거 하여튼 그렇게 해가지고 학점을 다 따긴 땄어요 따서 별루 내가 학

창시절에 음대생들하고 가깝게 지내기보다는 문리대 학생들하고 한국학韓國學하는 학생

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뭐 별로 기억나는 거 없고

이 그때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들 중에서는 누가 계신지요

송 조재선趙在善 박사 뭐 이병원李秉元 박사

이 몇 분이 그때 50명이 정원이셨다고 했는데요 몇 분 혹시 기억나시는 선생님들 계시면

은 말씀해주세요

송 헌데 고 사람들이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나도 1지망생 조재선 이병원 그

다음에 나 그러고 뭐 김정자金靜子 이성천李成千middot백대웅白大雄 선생 이런 사람들도 내가

알기론 전부 다 2지망생으로 들어왔던 걸로 기억돼요

109 이성재(李誠載1924~2010)작곡가경기도이천(利川)출생호는석천(石泉)서울대음대교수1948년경성음악전문학교및1951년서울대음대를졸업한후1954년서울대음대교수로취임한그는1964년오스트리아국립음악원의작곡과에서수학함1955년창악회(創樂會)를결성한그의작품으로ldquo대금과가야금을위한음악rdquo(1968)ldquo대금또는플루트를위한십장생곡rdquo(1978)등이있음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26-28쪽참조

110 모로이사부로(諸井三郎1903~1977)일본의작곡가일본도쿄출생1928년도쿄대학미학과졸업후lt수루야gt악단을조직잡지『음악연구』(音樂研究)를창간했다1932년독일에유학베를린국립음악학교에서2년간작곡을배우고1937년신향방인(新響邦人)작품콩쿠르에ldquo피아노협주곡rdquo으로입선했다작곡가연맹위원ㆍ음악문화협회이사를역임독일낭만파계통의일본에있어서대표적인이지적(理智的)작곡가이다주요작품으로는교향곡4곡현악4중주곡3곡현악6중주곡가곡등이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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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그러시면 당시에 실기하셨던 분들은 선생님은 이론을 하셨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셨

는지 학교에 명인들이 찾아와서 가르치기도 하셨는지요

송 뭐 강사가 그때 가야금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黃秉冀 선생님이 실기강사로 나오셨고 그

때 한말숙韓末淑 선생님이 나온 걸로 기억이 되고 그다음에는 뭐 합주 같은 거는 성경린

111成慶麟 선생님이 나오시고 가곡은 이주환112李珠煥 선생님 나오시고 민속악계 그때 활

동하던 분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그러면 동기同期들이나 친구들하고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episode 같은 거는 딱히 없으신가요

송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하나 학창시절에 그때 을지로 6가에서 그때 학생회장이 권 선생이

었나 그랬을 거예요 권오성權五聖 선배가 그 당시에 학생회장하면서 가면 쓰고 노는 가

면무도회假面舞蹈會를 재미나게 해가지고 내가 한번 거기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학창시

절 기억나는 건 그거밖에 없고 그담에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은 양악과목은 양악과 학생

들 또는 친구들 노트 빌려가지고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되는 거는 그 서순정113徐純貞 양

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하는 단국대檀國大 교수더라고 지금은 리타이어114retire 했겠지

만은 그 여학생 노트를 빌려봤던 기억이hellip 참 예쁘게 생겼어 그때 (웃음) 학생시절에

혹시 마음에 두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웃음) 아니 노트 빌려가도 좀 예쁘게 생긴 동창

생들 것을 빌려보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 같애 지난 얘기지만은 (웃음)

이 선생님 그럼 그때 음악대학 시설이나 환경은 어땠었나요

송 국악과 시설이 약학대학을 그때 개조改造하여 만들어서 연습실이 3층인가 4층에 있었어

요 쪼끄만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 피아노 뭐hellip 근데 국악은 그때 방이 몇 개 아닌 걸로

그게 전부 성악 그런 거 연습하고 피아노 뭐 연습하기 위해서 난 부전공하느라고 그 피

아노 있는 방에서 주로 가서 살았고 거문고 하느라고 뭐 내가 열심히 했던 그 기억은 별

로 없어요

111 성경린(成慶麟1911~2008)국악인호는관재(寬齋)서울출생1931년이왕직아악양성소(李王職雅樂養成所)를수료하고이왕직아악수를거쳐1941년아악사로승진하였다국악원악사장국악원장국악고교교장역임『국악감상』middot『한국의무용』등의저서가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939-40쪽참조

112 이주환(李珠煥1909sim1972)가곡의명인초명은복길(福吉)호는소남(韶南)서울출생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장을거쳐국립국악원초대원장을역임하며국악사양성소를부설국악교육을실시하고월례시조강습회와시조연구회를창설하였다예술원회원과국립국악원고문을지냈고중요무형문화재제30호lt가곡gt예능보유자였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76-78쪽참조

113 서순정(徐純貞1943년생)바이올린연주가단국대음대교수1964년조선일보사주최의제14회신인음악회에출연한후외국유학을마치고1971년귀국독주회를열었고1974년예술극장에서독주회를개최함1983년독일문화원에서1994년예술의전당리사이트홀에서그리고1998년문화일보홀에서독주회개최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855쪽참조

114 은퇴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2

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3

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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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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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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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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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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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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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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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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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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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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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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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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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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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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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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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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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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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1

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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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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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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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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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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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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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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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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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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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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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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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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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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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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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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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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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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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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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리대 지금은 전부 다 그 무슨 한국문화예술회관인가 뭘로 바뀌었는데 거기서부

터 뒷길로 해가지고 청계천 넘어서 을지로 6가까지 올라면 한 30분 걸려요 그 애써 가

지고 오면은 또 휴강이고 그래가지고 양악과목은 내가 사실 시간이 아까운거예요 그래

서 국악과목은 참 충실하게 했어요 만당 선생님이 또 장사훈 선생님이 렛슨 같은 거는

정확하게 해줬는데 양악하는 선생님들의 그 과목은 난 작곡 부전공 지도해주는 이성재

109李誠載 선생님인데 나중에 이성재 선생님하고 싸운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하두 렛슨

을 안 해주니깐 그때 이성재 선생님이 학생과장인가 뭐를 맡았어요 당신이 그런 과장

직을 맡아서 바쁜 건 좋은데 보강도 안 해주고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화성법和聲法 대

위법對位法 교재는 일본책 가지고 했어요 한국책이 없어가지고 무슨 일본사람 모로이

사부로110諸井三郎인가 뭐 하여튼 그 책을 내가 원본을 일어 공부해가면서 내가 고걸 해

독을hellip 왜 한문이 많이 나오니까 토씨만 알면은 무슨 말 하는 지는 알겠고 그래서 ldquo나

선생님한테 렛슨 안 받겠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rdquo 내가 이거 독학을 하겠다고 하

싸운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에 지휘법은 김만복金萬福 선생님이었는데 그 양반 처음 시작

할 때 내 지난번에 목욕탕 때 밀어내는 그 얘기했지요 그렇하고는 뭐 학기말에 무슨 노

래를 지휘하는 그거 하여튼 그렇게 해가지고 학점을 다 따긴 땄어요 따서 별루 내가 학

창시절에 음대생들하고 가깝게 지내기보다는 문리대 학생들하고 한국학韓國學하는 학생

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뭐 별로 기억나는 거 없고

이 그때 같이 공부하셨던 친구분들 중에서는 누가 계신지요

송 조재선趙在善 박사 뭐 이병원李秉元 박사

이 몇 분이 그때 50명이 정원이셨다고 했는데요 몇 분 혹시 기억나시는 선생님들 계시면

은 말씀해주세요

송 헌데 고 사람들이 1지망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나도 1지망생 조재선 이병원 그

다음에 나 그러고 뭐 김정자金靜子 이성천李成千middot백대웅白大雄 선생 이런 사람들도 내가

알기론 전부 다 2지망생으로 들어왔던 걸로 기억돼요

109 이성재(李誠載1924~2010)작곡가경기도이천(利川)출생호는석천(石泉)서울대음대교수1948년경성음악전문학교및1951년서울대음대를졸업한후1954년서울대음대교수로취임한그는1964년오스트리아국립음악원의작곡과에서수학함1955년창악회(創樂會)를결성한그의작품으로ldquo대금과가야금을위한음악rdquo(1968)ldquo대금또는플루트를위한십장생곡rdquo(1978)등이있음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26-28쪽참조

110 모로이사부로(諸井三郎1903~1977)일본의작곡가일본도쿄출생1928년도쿄대학미학과졸업후lt수루야gt악단을조직잡지『음악연구』(音樂研究)를창간했다1932년독일에유학베를린국립음악학교에서2년간작곡을배우고1937년신향방인(新響邦人)작품콩쿠르에ldquo피아노협주곡rdquo으로입선했다작곡가연맹위원ㆍ음악문화협회이사를역임독일낭만파계통의일본에있어서대표적인이지적(理智的)작곡가이다주요작품으로는교향곡4곡현악4중주곡3곡현악6중주곡가곡등이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1

이 네 그러시면 당시에 실기하셨던 분들은 선생님은 이론을 하셨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셨

는지 학교에 명인들이 찾아와서 가르치기도 하셨는지요

송 뭐 강사가 그때 가야금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黃秉冀 선생님이 실기강사로 나오셨고 그

때 한말숙韓末淑 선생님이 나온 걸로 기억이 되고 그다음에는 뭐 합주 같은 거는 성경린

111成慶麟 선생님이 나오시고 가곡은 이주환112李珠煥 선생님 나오시고 민속악계 그때 활

동하던 분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그러면 동기同期들이나 친구들하고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episode 같은 거는 딱히 없으신가요

송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하나 학창시절에 그때 을지로 6가에서 그때 학생회장이 권 선생이

었나 그랬을 거예요 권오성權五聖 선배가 그 당시에 학생회장하면서 가면 쓰고 노는 가

면무도회假面舞蹈會를 재미나게 해가지고 내가 한번 거기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학창시

절 기억나는 건 그거밖에 없고 그담에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은 양악과목은 양악과 학생

들 또는 친구들 노트 빌려가지고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되는 거는 그 서순정113徐純貞 양

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하는 단국대檀國大 교수더라고 지금은 리타이어114retire 했겠지

만은 그 여학생 노트를 빌려봤던 기억이hellip 참 예쁘게 생겼어 그때 (웃음) 학생시절에

혹시 마음에 두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웃음) 아니 노트 빌려가도 좀 예쁘게 생긴 동창

생들 것을 빌려보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 같애 지난 얘기지만은 (웃음)

이 선생님 그럼 그때 음악대학 시설이나 환경은 어땠었나요

송 국악과 시설이 약학대학을 그때 개조改造하여 만들어서 연습실이 3층인가 4층에 있었어

요 쪼끄만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 피아노 뭐hellip 근데 국악은 그때 방이 몇 개 아닌 걸로

그게 전부 성악 그런 거 연습하고 피아노 뭐 연습하기 위해서 난 부전공하느라고 그 피

아노 있는 방에서 주로 가서 살았고 거문고 하느라고 뭐 내가 열심히 했던 그 기억은 별

로 없어요

111 성경린(成慶麟1911~2008)국악인호는관재(寬齋)서울출생1931년이왕직아악양성소(李王職雅樂養成所)를수료하고이왕직아악수를거쳐1941년아악사로승진하였다국악원악사장국악원장국악고교교장역임『국악감상』middot『한국의무용』등의저서가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939-40쪽참조

112 이주환(李珠煥1909sim1972)가곡의명인초명은복길(福吉)호는소남(韶南)서울출생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장을거쳐국립국악원초대원장을역임하며국악사양성소를부설국악교육을실시하고월례시조강습회와시조연구회를창설하였다예술원회원과국립국악원고문을지냈고중요무형문화재제30호lt가곡gt예능보유자였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76-78쪽참조

113 서순정(徐純貞1943년생)바이올린연주가단국대음대교수1964년조선일보사주최의제14회신인음악회에출연한후외국유학을마치고1971년귀국독주회를열었고1974년예술극장에서독주회를개최함1983년독일문화원에서1994년예술의전당리사이트홀에서그리고1998년문화일보홀에서독주회개최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855쪽참조

114 은퇴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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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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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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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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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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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7

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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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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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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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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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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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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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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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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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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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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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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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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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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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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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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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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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4

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5

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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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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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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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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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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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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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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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4

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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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5: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1

이 네 그러시면 당시에 실기하셨던 분들은 선생님은 이론을 하셨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셨

는지 학교에 명인들이 찾아와서 가르치기도 하셨는지요

송 뭐 강사가 그때 가야금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黃秉冀 선생님이 실기강사로 나오셨고 그

때 한말숙韓末淑 선생님이 나온 걸로 기억이 되고 그다음에는 뭐 합주 같은 거는 성경린

111成慶麟 선생님이 나오시고 가곡은 이주환112李珠煥 선생님 나오시고 민속악계 그때 활

동하던 분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그러면 동기同期들이나 친구들하고 혹시 재미난 에피소드episode 같은 거는 딱히 없으신가요

송 근데 내 기억으로는 하나 학창시절에 그때 을지로 6가에서 그때 학생회장이 권 선생이

었나 그랬을 거예요 권오성權五聖 선배가 그 당시에 학생회장하면서 가면 쓰고 노는 가

면무도회假面舞蹈會를 재미나게 해가지고 내가 한번 거기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학창시

절 기억나는 건 그거밖에 없고 그담에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은 양악과목은 양악과 학생

들 또는 친구들 노트 빌려가지고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되는 거는 그 서순정113徐純貞 양

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하는 단국대檀國大 교수더라고 지금은 리타이어114retire 했겠지

만은 그 여학생 노트를 빌려봤던 기억이hellip 참 예쁘게 생겼어 그때 (웃음) 학생시절에

혹시 마음에 두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웃음) 아니 노트 빌려가도 좀 예쁘게 생긴 동창

생들 것을 빌려보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 같애 지난 얘기지만은 (웃음)

이 선생님 그럼 그때 음악대학 시설이나 환경은 어땠었나요

송 국악과 시설이 약학대학을 그때 개조改造하여 만들어서 연습실이 3층인가 4층에 있었어

요 쪼끄만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 피아노 뭐hellip 근데 국악은 그때 방이 몇 개 아닌 걸로

그게 전부 성악 그런 거 연습하고 피아노 뭐 연습하기 위해서 난 부전공하느라고 그 피

아노 있는 방에서 주로 가서 살았고 거문고 하느라고 뭐 내가 열심히 했던 그 기억은 별

로 없어요

111 성경린(成慶麟1911~2008)국악인호는관재(寬齋)서울출생1931년이왕직아악양성소(李王職雅樂養成所)를수료하고이왕직아악수를거쳐1941년아악사로승진하였다국악원악사장국악원장국악고교교장역임『국악감상』middot『한국의무용』등의저서가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939-40쪽참조

112 이주환(李珠煥1909sim1972)가곡의명인초명은복길(福吉)호는소남(韶南)서울출생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장을거쳐국립국악원초대원장을역임하며국악사양성소를부설국악교육을실시하고월례시조강습회와시조연구회를창설하였다예술원회원과국립국악원고문을지냈고중요무형문화재제30호lt가곡gt예능보유자였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476-78쪽참조

113 서순정(徐純貞1943년생)바이올린연주가단국대음대교수1964년조선일보사주최의제14회신인음악회에출연한후외국유학을마치고1971년귀국독주회를열었고1974년예술극장에서독주회를개최함1983년독일문화원에서1994년예술의전당리사이트홀에서그리고1998년문화일보홀에서독주회개최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855쪽참조

114 은퇴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2

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3

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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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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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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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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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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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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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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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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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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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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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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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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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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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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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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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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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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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1

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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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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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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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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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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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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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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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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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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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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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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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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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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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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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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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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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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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6: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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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다른 국악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문人文 쪽

에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좀 독보적獨步的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생각이 드

는데요 비슷하게 그 방식으로 공부하셨던 분들은 계신가요 이론 하신 분들 중에요

송 근데 얼마 전에 그 우리 권오성 선생 구술채록한 걸 보니까 권 선생도 자기 동창생 중에

문리대文理大나 뭐 이런데 간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렸다는 그 기억을 거기 잠깐 회고를 했

던데 나 역시 음대생보다는 그런 문리대생들하고hellip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조동일趙東一

학형學兄 주관하는 우리문화연구회라는 그런 활동 통해가지고 보고 듣고 굉장히 안목眼

目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도 뭐 그때 음악 뭐 좀 발표를 할라 그러면은 선생님 쫓아 다니

면서 뭘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어설픈 발표였지만은

lsquo아 이런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내가 음악 이외에 이런 것이 또 있구나rsquo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굉장히 많았어 나는 나중에 후학들에게hellip 얼마 전에도 내가 중앙대中央大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하고 공부하고 나서 점심 먹으면서 공부 좀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맞는 사람

끼리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만들어서 학기 끝났다고 해서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일주

일에 한번 정도씩이라도 만나서 자기 연구주제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 하는 거를 서로 정보교환도 하면서 얘길 나누다가 나중에 점

심 먹고 헤어지고 자주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은 좀 그렇게 하도록 스타디 그

룹을 만들어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스타디 그룹을 통해가지고 굉장히 많이 배웠고 또 스

타디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분

위기도 굉장히 좋고 그래서 난 영대시절이나 한예종韓藝綜115이나 그 담에 음악사료 번역

뭐 한다는 그것도 다 그런 것이 모체母體가 되서 시작된 거다 말해줬지

115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KoreaNationalUniversityofArts알명K-Arts)의약칭1993년음악원의설립과함께출범한한국예술종합학교은연극원(94)middot영상원(95)middot무용원(96)middot미술원(97)middot전통예술원(98)이상여섯원으로구성된문화부소속의국립예술대학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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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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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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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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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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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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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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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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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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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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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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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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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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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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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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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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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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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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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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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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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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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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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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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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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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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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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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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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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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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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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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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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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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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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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7: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3

ROTC 3기생 출신의

소위로 군대생활

이 선생님 그러면 인상 깊은 학창시절 얘기를 뒤로 하구요 (함께 웃음) 그 선생님께서 군대

생활을 좀 독특하게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군대생활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송 내가 ROTC 본래는 2기생이 돼야 되는데 1년 휴학했기 때문에 ROTC 3기생이 됐어

요 그러니까 내가 65년도에 임관任官을 했으니까 해가지고 석사 시절이신 거죠 헌데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나는 군대생활하면서 석사를 했어요 그래서 학부 때 1년

까먹었던 거를 만회挽回한 셈이 됐어요 근데 내가 배치를 전방에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어요 그게 후방에 배치되면은 뭐 학생들 저 학생들이 아니라 병사들 훈련시켜

야 되고 뭐 굉장하게 바쁜데 아주 지오피116GOP 대대大隊라고 해서 수색중대搜索中隊 바

로 뒤에 11사단이라 그기 인제麟蹄에서 원통117元通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거기가 소양

강昭陽江 상류 그러니까 금강산金剛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북한강北漢江에 시원始原 쪽

인데 그쪽에 배치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을 내가 굉장히 벌었어 왜냐하면 소대장

하고 선임하사는 한 초소哨所씩 책임을 맡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게 막 나가 댕기고 뭐

훈련하고 그런 것이 없이 보초步哨 서고 하는 그런 임무가 주임무였어요 그래서 내 시간

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어요

이 그러면 그때 직위는 어떤 직위로 가신 거예요

송 소대장이죠 소대장 그래 그 당시에 소대장으로 있게 되면 육사陸士 출신들도 선생님

되기 위해서 뭐 교생실습 나가듯이 전방체험을 하기 위해서 초소哨所에 배치돼요 그러

면 그런 육사 소위 임관되기 바로 전에 오는 그런 생도生徒들 같이 먹고 자고 며칠 함께

보내는 그런 것도 하고 근데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사실 ROTC생으로써 육군본부 이

태원에 있는 육군본부에 내가 군사재판軍事裁判까지 받을 뻔 했어요 죄목罪目은 뭐냐 하

면 항명죄118抗命罪이라고 중대장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그거 왜냐하면 그 중대장하

116 일반전초(generaloutpost一般前哨)주력부대를방호하기위하여운용되는부대로통상GOP라고한다

117 강원도인제군원통리

118 항명죄(抗命罪)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하거나복종하지아니한죄(군형법44조)군인이나군무원등이상관의정당한명령에반항또는복종하지않음으로써성립하는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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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5

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6

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7

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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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9

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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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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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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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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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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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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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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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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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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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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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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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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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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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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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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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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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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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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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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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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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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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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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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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8: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4

고 나 그 중대장은 간부후보생幹部候補生 출신이었는데 나는 대학 출신의 ROTC 소위

이고 근데 내가 그 군대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뭔가 하면은 이 지오피GOP 대대大隊나 수색중대搜索中隊는 보급이 후방보다

조금 좋아요 일주일에 고기도 한 번씩 나오고 또 양말 같은 거 뭐 이런 방한복防寒服 이

런 것들도 아주 충실하게 잘 나오는데 늘 우리 소대小隊 꺼를 그 중대中隊의 보급계119補給

係 뭐 그 보급계라고 있었어 아 이 녀석이 소대장 허가 없이 양말도 띠어 가구 뭐 쌀도

고기도 띠어 가구 헌데 그게 관례慣例였드라 그러니까 내가(소대장) 허가를 안했으니까

띠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 소대 꺼도 막 띠는 거야 내 허가 없이 그래서 내가 중대장 보

는 앞에서 그 보급계를 쪼인트joint를 막 까고 ldquo누가 이걸 띠라 그랬어rdquo 하고 그래 중

대장이 보면은 lsquo참 저 녀석 송 소위는 나한테 직접 못하니까 저 보급계한테 저러는구나rsquo

하고 이 양반 이거 꽁하고 송 소위 저놈 한번 좀 혼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애

헌데 내가 있던 초소가 이 소양강 바로 건너서 근데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바지를 걷

고 (다리를 가리키며) 소양강 지류를 건널 수가 있어 근데 비가 오면은 물이 불어나서

건너다가 익사溺死할 수가 있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은 양구楊口 쪽 만대리萬垈

里라는 데를 돌아가지구 양구로 나와서 인제麟蹄를 거쳐서 원통元通으로 와야 돼 근데 물

이 불었는데 중대본부로 올라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지금 물이 불어가

지고 ldquo중대장이 오라면은 돌아서라도 와야지rdquo 그래서 본부에다가 연대聯隊 인사 거기

에다가 항명죄루 그러니까 그 서류가 육군본부로 간 거야 아이 그래서 연대의 인사담

당 대위 이름 기억두 안 나는데 하여튼 그 대위가 ldquo거 중대장하고 좀 잘 지내지 송 소위

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한 번 딴 중대로 옮겨줬는데 거기서도 또 말썽을 그

렇게 부리느냐구rdquo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3박 4일 휴가증을 끊어줬으니까 가

서 그냥 거기 참석하고 이 사정 다 얘기를 해라 그렇하구 그렇게 되면은 재판까진 가지

않을 거다 그럼 좀 쉬다가 와라 그렇게 해서 이제 와봤더니 아이 ROTC 동기들 중에

몇 명이 보여 ldquo야 너는 어떻게 해서 왔냐rdquo 그랬더니 ldquo야 나는 내 밑에 놈이 수송부輸

送部에 있는데 트렌스미션120transmission을 몇 개 팔아먹어서 내가 그 책임자로서 횡령橫

領 핸기 돼가지고 왔다rdquo 뭐 하여튼 누군 뭐 안전사고 때문에 사병士兵이 죽어서 왔다 하

여튼 내가 한 거는 별거가 아니었어

119 보급계(補給係)보급품을맡아서관리하는부서또는그런일을맡아보는사병

120 변속기(變速機)각종엔진에서발생하는동력을속도에따라필요한회전력으로바꾸어전달하는변속장치트랜스미션이라고도한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5

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6

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7

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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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9

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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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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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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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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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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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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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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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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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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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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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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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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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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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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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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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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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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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9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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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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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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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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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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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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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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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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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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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선생님 그 방금 전에 전에 어떤 부대에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요

송 내가 왜 중대를 옮겼나 하면은 그 중대장은 통역관通譯官 출신이야 근데 맨날 난로 옆에

서 타임지Time紙 보면서 ldquo송 소위 이리와rdquo 해가지고는 ldquo이 단어 뭔 줄 알어rdquo ldquo아 이거

는 그런 뜻이지요rdquo 그러면은 ldquo아 음악대학 나왔다는 친구가 이런 단어도 아네rdquo 그러면

서 날 막 시험을 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그니깐 자기가 진급을 할라면 상사上司한테 잘

보여야 되는데 전방에 배치를 하면은 그 전방 거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그래서 일

반인이 농사를 못 지어 밭이 있어도 그냥 잡풀 나고 그걸 개간開墾을 시키는 거야 그

지오피GOP 대대大隊에 있는 그 인력을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농사짓는 거지 헌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최전방에 오는 사병은 대부

분이 농촌 출신들이야 그리구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 중에 직원이 아니라 (웃음) 소대

원 중에는 머슴도 있었어 그 당시에도 머슴이 있었어 rsquo60년대 전반기에는 그 농사 지

으면 잘 지어 헌데 그 누구를 위한 농사냐 그런 거는 농사를 지어 가지구 수확을 해서

는 그 연대장 사단장 뭐 이런 사람들에게 팔아가지고는 그 요즘 말로 하면은 뇌물이야

헌데 나는 소대원들 보고는 농사지어서 콩 익을 때 되면은 콩서리해서 소대원들 먹이는

거야 그러니까 소출所出이 조그맣게 예를 들어서 몇 가마니가 나와야 되는데 이거 소출

이 쪼금밖에 안되거든 그렇지 강냉이 익을 때에는 강냉이 그런 거를 소대원들hellip 그러

니까 이 촌에서 농사짓던 놈들이라 맨날 배고픈 거야 그 밥이 적어 그러니깐 봄 되면은

이놈들이 또 산나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그런 걸 막 캐어다 된장에다 막 비벼서 주면은

또 그렇게hellip 그러니까 이제 그 중대장하고 내가 충실하게 못하고 나는 모든 거를 잘못

된 거는 그냥 즉빵121으로 막 얘기하고 그러거든 헌데 이 통역관 출신이래서 그런지 소

대장을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중대장이면 소대장 콘트롤control하면 되지 점호122點

呼하는데 들어가 가지고 소대장이 지적해야 될 거를 중대장이 말이지 다 지적하고 말이

지 그러니 소대장은 뒷짐 지고 중대장 뒤를 따라만 다니는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마시

라고 아니 소대장 체면은 소대장이 그런 건 다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직언直言을 내가

많이 했어 그러니까 중대장한테는 다 듣기 싫은 잔소리인거야 중대장한테는 그래가지

고 옮겨준 것이 그 간부후보생 그래서 그 군법회의 갔다와 가지고 또 다른 중대로 옮긴

거야 근데 세 번째 중대장은 굉장히 노련한 대위였어 ldquo나 송 소위만 믿어rdquo 이 중대 살

121 즉시

122 점호(點呼)한사람씩이름을불러인원이맞는가를알아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66

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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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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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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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0

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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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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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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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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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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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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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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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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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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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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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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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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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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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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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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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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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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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9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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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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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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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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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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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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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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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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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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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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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0: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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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선임소위先任少尉로서 그때 4기생 ROTC생 들어오고 간부후보생 출신이 또 내 밑

에 소위고 그랬었어 그때 원통元通에서 홍천123洪川으로 부대 이동을 한 거야 그러니까

지오피GOP 대대에 있던 13연대의 우리 사단이 11사단 전부가 홍천으로 오고 그때 그

어느 사단이 원통으로 들어갔어 그래서 내가 저 군대생활 끝내기 한 4 5개월은 홍천에

서 근무를 했어 마지막으로 거기서 제대를 하신 거죠 홍천에 있을 때는 나한테 모두

맡기니까 난 신나서 했지 나한테 일단 맡기고 잔소리 안 하면은 청소하는데 나와서도

일등하지 뭐 운동회 같은 거 해두 소대원들 내가 뭘 뜯어먹나 뭐 하나 있는 대로 탁탁

해가지고 해주니깐 되게 좋아하지 중대원들은 그러구 내가 명령하면 탁탁탁탁 따르고

그러니까 다른 중대보다 잘할 수밖에 그래서 제대 앞 둔 말기는 참 재밌게 군대생활하

다가 제대했어

캐나다 토론토Toronto대학교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과의 인연

이 그럼 제대除隊를 하시면서 같이 석사를 졸업을 하신 거죠 그렇지 석사를 1968년 2월

에 졸업 하셨는데요 유학을 가시게 된 거는 68년이신데 몇 월에 가시게 되신 거예요

송 그때 이제 학기 시작이 미국이나 캐나다는 9월 초에 시작을 해 그래서 그때 내가 유학

갈 시험치는 거는 67년 가을에 논문 접수하러 갔다가 문교부 광고 봐가지고 그해 12월

말경 국사시험하고 영어시험을 쳤고 1968년 1월 달에 그때 발표를 해서 근데 또 토

플TOEFL시험을 봐야 된다 그래서 유에스아이에스USIS 미국공보관에 가서 뉴 저지New

Jersey에 그걸 서류를 보내더라고 거기서 그래가지고 그해 봄에 지금 서강대학 신촌에

있는 서강대西江大 가서 시험을 봤어요 토플 시험 신청할 때 그 결과를 어디로 보내는데

쓰는 데가 있어 그게 토론토대학교로 보내라고

이 선생님께서 유학 결심을 하시고 시험도 다 치시고 하시면서 유학 가시기 직전에 한국을

123 강원도홍천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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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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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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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0

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1

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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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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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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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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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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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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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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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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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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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1

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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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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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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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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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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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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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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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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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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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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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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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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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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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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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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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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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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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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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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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실 때 lsquo어 내가 그래도 이런 거를 공부를 해 와야 되겠다rsquo라던가 막연하게 모르셨겠

지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요

송 헌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지만은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가 국악과에 커리큘럼

curriculum이나 모든 학제學制 같은 것이 확고하게 된 게 아니라 초창기라 굉장히

허술했어 그래 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뭐 자료 모으고 하면서 이 이론 분야

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은 사실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자득自得해가지고 lsquo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뭐하는 거구나rsquo

깨닫긴 했지만은 그러니깐 내가 이론을 시작했으면은 그때 뮤지콜로지musicology

보다는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라고 하는 저널journal을 초창기에 만당

선생님이 그걸 구독을 하셔서 내가 그걸 빌려다가 봤거든 아 이런 학문을 할라면은

이 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그때 다섯 군데 어플라이apply를 했어요

가피어스Garfias 교수니 뭐hellip 마암124Malm 교수니 뭐 왜냐면 그 당시에 그분들이 굉장히

젊었을 때야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랬나 그래 유씨엘에이125UCLA의 맨털후드

Mantle Hood 교수니 그리고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번

얘기했듯이 다들 ldquo와봐라 장학금을 당장 줄 수는 없다 니가 1년 동안 하는 걸 보고

장학금 주는 걸 결정을 하겠다rdquo 그러니 나는 그 당시에 아버님 돌아가셨지 누님 매부

집에 있으면서 내가 외국대학 등록금을 대고 갈 형편이 안 되가지고 근데 콜린스키

교수님은 그때 뉴욕의 어느 호스피틀126hospital에 계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콜린스키

교수님이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와가지고 이 양반이 학교에 뉴욕이면 컬럼비아 유니버

시티Columbia University 뭐 이런 유명한 대학들이 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잡job

을 못 구하셨어 학교 쪽에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 음악학자들이 유럽에서

오는 그 음악학 한 사람들 있잖아 굉장히 배척排斥을 한 거 같애 그래 가지고 이 분이

어디서 근무를 했나 하면은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뮤직 쎄라피127music

therapy라고 하는 거 요즘엔 쎄라피therapy가 또 굉장히 유행이더라고 우리나라에

그때 음악치료학이라는 거를 그 선생님 통해서 그러니까 병원에서 음악을 가지고

124 마암(WilliamPMalm)미국종족음악학자(ethnomusicologist)일본음악연구로유명한마암교수는미시간대학교에재직때이강숙(李康淑)박사의스승임그의대표적인저서로Traditional Japanese Music and Musical Instruments(1959)가있음

125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캠퍼스(UniversityofCaliforniaatLosAngeles)의약자

126 종합병원

127 음악치료(音樂治療musictherapy)근대의술(醫術)의하나로응용하는예술치료의한분야음악치료는환자에게음악을매개로심리치료에활용하는분야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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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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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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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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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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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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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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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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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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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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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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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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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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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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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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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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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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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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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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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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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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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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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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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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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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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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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4

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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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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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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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2: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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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치료 하는 그걸로 사시다가 토론토대학교에서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 학과목을 강의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당시에 그분이 70세가 넘었었을 때야

그러니까 초빙교수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에 모셔간 것이었어 그래가지고 그 편지를

뉴욕New York으로 보냈는데 토론토에 들려가지고 오니깐 다른 선생님의 답장보다 한 한

달이 늦었어 늦게 그분이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고 그래서 토론토대학교로 그 토플시험

결과를 보내라고 했지

이 네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쪽에 관심을 두시고 유학길에 오르셨네요

송 난 lsquo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를 공부하러 그 선생님 밑에 가서 해야 되겠다rsquo 하

고 토론토대학교에 막상 갔는데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

이 그곳에 없었어 음 모두 뮤지콜로지musicology 그러니까 서양음악학을 해야 됐어

서양음악사를 한다든지 그러니깐 내가 생각했던 그거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래서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 내가 그 당시에 우리 서양음악사는 우리 만당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그때 교재가 뭐냐 하면 밀러H Miller라고 하는 사람이 쓴 그 쪼끄만 서양

음악사 『히스토리 오브 뮤직』128History of Music인가 하는 근데 그기 음악 전공하는 학생의

교재가 아니라 저 인문계열에 전공이 아니고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 서울대

128 HUGHMMILLERHistory of Music

콜린스키 교수님 부부 및 아내와 함께(1970년 교수님댁 정원에서)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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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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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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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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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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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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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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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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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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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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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9

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0

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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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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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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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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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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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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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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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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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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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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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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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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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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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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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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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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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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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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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3: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69

음악대학에서는 그것도 번역도 안 되고 해서 원서로 배웠어 그러니 원서를 읽을라면

은 영어 공부를 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도 영어 공부를 하는 케이스case로 삼

았고 또 만당 선생님한테 서양 그 책들 그런 걸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 거야 그러니

까 나는 리딩 날리지reading knowledge는 말은 잘 못해도 단어vocabulary나hellip 그러니까

토플TOEFL시험 봤을 때 히어링hearing 그거는 내가 연필 굴렸다고 그랬잖아 나머지

는 잘 한 걸로 생각이 돼 그때 그 당시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이 사실 외국어 이거 굉장

히 약했어 헌데 그런 거를 요구하는 대학에 갈라면은 누구나 그걸 해야 돼 문교부시험

으로 국사國史 봐야지 영어 봐야지 헌데 국사는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음악사를

제대로 이해를 할라면은 그래서 그 이병도李丙燾 선생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열심히 읽

었다고 그러니깐 한 번에 영어하고 그때 문교부시험 국사하고 통과가 된 거지

유학생활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

이 그렇다면 선생님 캐나다 공항空港에 딱 도착을 하셨을 때 매형에게 돈을 꾸어서 (웃음)

기분이랑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송 사실 그 당시엔 참 김포金浦공항도 외국 떠나는 게 노스웨스트 항공Northwest Airline을

타고 갔어 그때 그때는 떠나는 사람마다 줄줄이 집안 한 사람이면 집안에서 한 열댓

명이 따라 나왔고 그러니깐 참 우리집 식구들도 (웃음) 많이 나왔지 우리 집사람도 약

혼 단계는 아니었지만 나 떠나는 거 보러 나왔고 헌데 난 그때 기억이 장구통을 이 가

죽 그거는 따로 거기다 넣고 장구통에 안이 비었잖아 거기에 김이니 뭐니 이런 거 넣고

메고 갔던 기억이 나 그러구 가야금 하나 들고 그래 토론토Toronto에 탁 도착을 하니

깐 뭐 누가 하나 나오는 사람도 없었고 헌데 그때 토론토대학교 내가 어떻게 저거 뭐했

나 화학과化學科에 서울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 선배가 토론토에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0

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1

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2

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3

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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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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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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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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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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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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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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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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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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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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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4

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5

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6

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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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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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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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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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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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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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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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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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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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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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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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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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4: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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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은 요즘 말로하면 유스 호스텔129Youth hostel이라고 YMCA에서 운영하는 거

기가 굉장히 싸대 그리구 시설도 괜찮고 그래서 거기서 한 3일 보냈지 나는 돈은 없

었지만 토론토대학에서 보낸 그 장학증서 있잖아 그 오면은 준대는 그거 그거 가지고

아파트apart 얻은 거야 화학과 출신의 그 선배가 그걸 탁 보더니 ldquo아이 송 형 굉장히

좋은거helliprdquo 베티 엘렌 펠로우십Beatty Allen Fellowship인가 3천 불 짜리 그 당시에 굉

장히 컸었어 그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러면은 이거 가지고 저 아파트에 방 하나 하

숙下宿하는 걸 얻으라고 해서 그 형이 그 선배님이 날 도와줘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학

교 갔는데 가니깐 말도 제대로 못하지 플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이라고 플

레이스먼트 이그젬placement exam 그기 뭐냐 하면 이 신입생이 과연 박사과정에서 공

부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테스트test를 하더라고 그래 서양음악사도 보고 몇 가지 시험

을 봤어 헌데 이거 뭐 그때 내 그 기억이 바그너Wagner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30Tristan

und Isolde에 대한 뭐를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제목은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이걸 하나도 못쓴 거야 그래 시창 청음 있지 뭐 이렇게 이걸 막 피아노를 치

고 이거 누구 곡이냐고 그러구 (웃음) 아이구 그래 서양음악 서양음악이 나는 국악이

론 전공 한 사람으로서 피아노도 뭐고 서양음악도hellip 또 성악했던 사람으로서 피아노 그

걸 알 수가 있나 (웃음) 그러니까 시험결과 떡 나왔는데 당신은 박사과정의 이 과목을

듣기 위해선 프리레퀴지트 코스131prerequisite course 요걸 들어야 되고 요거 전에 요걸

들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엔 그 프리레퀴지트 코스prerequisite course를 선수과목先授

科目이라고 번역했다 이 강좌를 들을라면은 여기서 배운거를 알고 이걸 들어야 이걸 띠

고 나서 들어야hellip 그렇게 하다보니깐 언더그레듀에이트132undergraduate 3학년 수업도

듣는 게 나오고 그럼 학부 3학년 수업을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등록은 박사과정

에 했는데 실제 들어야 되는 거는 어느 과목은 히스토리history 같은 거는 3학년 꺼부터

들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이거 미치겠는 거야 한 학기를 떡 하고 나니깐 그래도 우리 집

사람 될 사람한테 내가 편지를 썼어 내가 3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 3년이 걸릴지 5년

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도대체 가늠을 못하겠다 그러구 박사과정을 할라면은 라틴어

Latin language 시험도 봐야 된다 그러고 또 내가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이탤리안 마드

129 lsquo젊은이의집rsquo이라는뜻으로일반호텔처럼영리를주된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일종의공익성을추구하는숙박시설이다

130 트리스탄과이졸데(TristanundIsolde)오페라독일작곡가리하르트바그너(Wagner)의악극(樂劇)모두3막으로이루어진작품이다중세의전설을토대로작곡하여1865년6월뮌헨궁정극장에서초연되었다

131 다른과목을듣기위해미리듣는강의즉선수과목(先授科目)

132 학부(學部)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1

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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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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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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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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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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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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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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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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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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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1

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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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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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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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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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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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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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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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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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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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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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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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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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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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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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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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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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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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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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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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133madrigal을 내가 만약 그걸 주제로 해서 한다면 중세 이태리어를 또 시험 봐야 된

대 우리나라로 치면은 한글에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고 뭐 점찍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은 반치음 그래 고어古語 라는hellip 고문자古文字라는 거 있잖아 자

네들 세대에 그 고어라는 거 고문古文이란 거 배웠는지 모르겠어 우리 땐 배웠어 그

러고 일제시대만 해도 아래 하 한글이라는 거 있잖아 이 점찍는 거가 쓰였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1800년대나 1900년대 한글로 써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를 국문

학 전공하는 사람이 만약 전공한다면은 현대어만 해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거하고 똑같

은 이치理致야 보니까

이 공부할게 많으셔가지구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셨겠어요

송 그러니까 내가 기氣가 맥혀가지구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해가지고 박사를 토

론토Toronto대학교에서 끝낸다는 거는 3년이 아니라 내가 10년 걸려두 안될 것 같은

감感이 들었어 그래 그런 걸 길게 편지를 썼지 ldquo그러니깐 다른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그냥 나 기다리지 마라rdquo 그리구 여기 와봐야 나 지금 첫해는 재수 좋아가지고 내 실력을

모르고 서울대학교의 그 성적표라 그르나 그거 다 제출해서 그건 좋거든 C도 없구 그냥

B A 전부 서양음악사도 A고 말이야 그러니깐 그 좋은 장학금을 준거야 내가 굉장한

학생인 줄 알았지 (웃음) 실제로 딱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형편없는 친구거든 그래서

나 내년에 장학금 못 탈거 같고 여기 장학금 이제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몸소 일

하면서 요즘말로 말하면 아르바이트arbeit 하면서 내 일할hellip 그러니 오면 고생이다 그런

데 오겠대는 거야 야 이거 오겠다고 하니 내가 이거 비행기표를 보내줘야 되는데 비행

기표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되잖어 나는 또 그 선배 말대로 아파트는 그 캐내디안Canadian

의 거기 방 하나 딱 얻어가지고 말이야 내 주제에hellip 그러니까 난 물정物情을 모르니까 그

선배가 주선周旋해주는 3천 불이면 이런데 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웃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돈을 절약을 해야 될 형편이라 그래서 민간 집에 들어간 것이 헝거리 의

거134義擧 때 캐나다로 온 그 할아버지집에 들어간 거야 왜냐 거긴 싸니깐 그리구 우리

나라에선 월세月貰라 그러잖아 헌데 거기는 주세週貰야 주세 주 단위로 내 그리구 봉

급도 가서 일하잖아 그러면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주급으로 줘 헌데 굉장히 싸더라고

반값이야 그러니까 글루 옮길 수밖에 자 온다 그러니 오는 건 좋은데 이 비행기 값이

133 마드리갈(madrigal)이탈리아의시(詩)의일종또는그것에붙여진악곡14세기와16세기에이탈리아에서성행한세속(世俗)성악곡

134 1956년10월23일부터13일간에걸쳐헝가리의부다페스트에서발생한민족자립과자유화를위한대규모반소(反蘇)운동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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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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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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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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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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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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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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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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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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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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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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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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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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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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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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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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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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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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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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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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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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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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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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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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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6: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2

문제라 내가 사실 지난번에 500불 빌려가지고 400불은 보냈는데 아이 계산을 해보니

까 안 되겠어 그래서 내가 장인 어른이 그때 국민학교 요즘에 초등학교라는데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었어 충주忠州 쪽에 그래 그 장인 어른한테 편지를 썼어 ldquo당신

딸이 유학생인 무일푼의 나를 보고 온다 그러는데 내가 지금 비행기삯을 보내줄 형편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가 시집올 때 뭘 해가지고 온다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

까 비행기표만 하나 좀 해주십시오rdquo (웃음) 해가지고 우리 장인 어른이 비행기표를 하나

해줘가지고 온 거야 와가지고 만난 것이 어디서 만났나 하면은 그 헝거리 할아버지집에

서 쫓겨났을 때야 거기서 살다가 쫓겨 난 이유가 뭐나 하면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김치

를 담근다고 내가 일본 식료품상점grocery store에 가가지고 통배추 있잖아 그거하고

중국 상점Chinese store 가가지고 새우젓 넣는다는 걸 알아가지고 근데 새우젓이 없어

헌데 슈림 소스shrimp source라고 우리나라에서 곤쟁이젓135이라고 그래 회색빛 나는 거

있잖아 아주 쾌쾌한 냄새 나는 거 그걸 사다가 비벼가지고 빨리 익으라고 바람 나오

는 구멍 있잖아 거기다가 올려놓고 학교에 가는 건 좋았는데 국물도 먹는다고 김치 국

물 (웃음) 그기 요렇게 좀 공간을 만들어 놨어야 되는데 그 유리병에 까뜩 채운거야 그

렇하고 뚜껑을 탁 닫아 가지구 빨리 익으라구 라지에이터 추운 때니까 바람 나오는데다

턱 놨는데 아 학교 갔다 왔지 겨울인데 문을 쫙 열어놓고 나 올 때만 기다렸는 거야

그 아저씨가 할아버진데 지금은 할아버지라지 그 당시에는 사실 아저씨지 뭐 그 사람

은 그 토론토대학교 옆이니까 하숙생 하숙 쳐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거긴데 아 내가

들어왔더니 너 때문에 머니money가 공중에 날아가고 말이지 그냥 그 퀴퀴한 냄새가hellip

(웃음) 터진거예요 아니 거 부글부글 끓어가지고 그 사이로 막 국물이 새가지고 연통을

그 바람통을 타고 온 집안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거야 (웃음) 난 그것도 몰르고hellip (웃

음) 그러니깐 너 나가래 그렇지 않아도 그 아저씨는 저녁만 되면 그 부엌 네 사람이 같

이 쓰는데 내가 개스gas를 제일 많이 쓰는 거야 왜 많이 쓰느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 마켓supermarket을 안가고 켕싱톤 마켓136Kensington Market이라고 그 남대문시장

같은 데가 있어 이렇게 막 촌村에서 차에다 농산물을 싣고 와 가지고는 펼쳐놓고 당근

같은 것도 요렇게 씻어서 뭐 비닐로 요렇게 담은 게 아니라 막 흙 묻은 거 있잖아 근데

되게 싸 거기 가면은 소꼬리 파는 데가 있어 근데 소꼬리가 굉장히 싸더라고 내가 가보

135 새우젓(곤쟁이젓)생새우에소금을뿌려담근젓갈

136 켕싱톤마켓(KensingtonMarket)토론토다운타운(downtown)에있는시장(市場)캐나다이민자들각국의다양한음식문화를체험할수있는관광명소의하나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3

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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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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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6

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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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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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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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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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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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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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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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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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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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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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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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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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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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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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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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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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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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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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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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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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 당시에 1불도 안했어 75센튼가 하여튼 그랬어 근데 큰 거는 한 85센트 그

러니까 그 꼬리를 캐내디안Canadian들은 안 먹어 이 티본 스테익T-bone staek이나 이

런 고급 쇠고기나 먹지 아이 그러니 나는 그냥 그기 눈에 띠는 그거 1불도 안 되는 거

사다가 쳐 달라 그러면은 거긴 또 그 서양 놈들 칼 되게 커 lsquo턱턱턱턱rsquo 이렇게 짤라 가지

고 한 열 토막 내주잖아 그러면 그거 갖다가 나는 푹 끓이는 거야 (웃음) 끓일 때 이거

센 불로 끓이면 안 되잖아 그러니깐 작은 불로 오래hellip 그 아저씨는 맨날 와서 체크check

를 하는데 너는 맨날 개스를 많이 쓴다고 말이야 해서 이거는 코리안 숩Korean soup인

데 카우 테일cow tail 이거를 익힐라면은 오래 끓여야 된다고 헌데 그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거 그냥 제때 걸린 거야 김치 때문에 그러니까 짐 싸가지고 그 다음

에는 토론토대학교가 시내 한가운데 있어 토론토시에 토론토대학교 남쪽에 거기는 중

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 차이나 타운China town 비슷하게 글루 갔어 그래서 집주인이

중국 사람인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3층에 방을 얻어 가지구 그런데 이게 같은 동양계라

그래두 인정人情이 있으니깐 자기네hellip 한데 문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야

이 중국 사람들 집에서 막 음식 같은걸 해먹고 통풍通風을 제대로 안하니깐 그냥 피장

파장 당신네도 냄새나는 거 나도 냄새나는 거 그러니까 잔소리 없어서 좋았어 그리구

가끔 뭐 음식을 하면 쪼끔 먹으라구 요렇게 갖다 주고 아이 그래서 거기서 좀 불편해도

그냥 아휴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좋았지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맞이한 거야

이 그게 유학 가시고 나서 얼마만이셨어요

송 그게 한 몇 개월 한 학기는 그 아파트에서 그 방 얻었던 때였고 한 1개월은 그 헝가리

그 사람 집에 있다가 쫓겨 나가지고 그러니깐 69년도 여름방학 때쯤인가 그때 온 걸로

기억이 나 그래서 2학기가 끝나자 헌데 여름방학이 길어 거기는 겨울방학이 짧고 겨

울방학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끼고 뉴 이어New Year 한 열흘 두 주 그렇하구 바로

1월 초부터 또 2학기가 시작돼 그런데 이 여름방학은 2학기가 5월말이나 6월초에 끝

나잖아 그럼 9월초까지 한 3개월 그래 나도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니까 나

도 일을 해야지 그래서 토론토대학교에 있는 학생들 잡job 구하는데 가봤다 가봤더니

널서리nursery 화이트 로즈 널서리137White Rose Nursery라고 이거 널서리가 뭔가 말

이야 그러구 거길 가보니까 백장미화원白薔薇花園이야 널서리가 화원이더라고 화원이

라는 뜻이 있어 그래서 화원에서 일을 하는데 그 화원이 서울로 말하면 외곽지 있잖아

137 백장미화원(WhiteRoseNursery)1969년여름저자의유학시절토론토(Toronto)시북쪽의외곽지에위치한화원(花園)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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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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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6

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7

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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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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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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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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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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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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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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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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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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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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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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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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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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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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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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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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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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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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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8: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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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일산一山이나 고양高陽 쯤 돼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내려 가지구 거기서 또 지방

버스를 타고 뭐 한 시간 반 한 두 시간 걸려 그렇지만 거기서 잡job으로 그래두 나를

여름방학 동안 써 준대니까 거기서 일을 할 수 밖에 그래서 갔는데 야 일하는 기hellip 그

때 토론토대학생과 캐내디안Canadian 학생들두 아르바이트arbeit를 하러 같이 토론토

외곽지의 일을 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도장圖章나무라는 거 있어 잎이 쪼끄만 거 동

그란 거 그 도장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더라고 헌데 그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오면은 트레일러trailer 그 큰 트레일러 있잖아 그걸 가득 싣고 그 화이트

로즈 널서리White Rose Nursery까지 거기hellip 그러니깐 캐나다에서는 직접 수입을 못하고

미국사람이 수입을 하면 그걸 어 헌데 그런 나무가 북미北美에는 굉장히 귀한 모양이야

그 나무는 올 때 보면은 뿌리 있는 데는 요렇게 흙이 좀 있고 그 우에 요렇게 나무 있고

잎이 요렇게 있고 그게 그냥 가득 실은 그기 하루 종일 그걸 부리는 작업을 해야 돼

헌데 캐내디안 학생 요놈이 약으니깐 자기는 트레일러에 탁 올라 가서 우에서 도장나무

를 던져 주면은 나는 밑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이렇게 놓는 그 일을 한 거야 그기 3일짼

가 4일짼데 하루 종일 그 일을 했는데 이게 요령이 없으니깐 일이라는 게 그 요령을 나

중에 알았지 우에서 그걸 탁 던지면은 그 반동反動으로 탁 이렇게 힘을 여기서 (가슴부

분에 양손을 모으며) 스톱stop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 그냥 이런 일을 해봤나 탁

받아 가지구 여기다 놓고 이러니깐 이거 그냥 힘이 엄청 들어간 거야 나중에 탁 받아가

지고 이렇게 놓는 건 나중에 오후에나 그걸 알아 차린 거야 아주 첫날은 야 이게 그냥

죽겠더라고 그 일을 집에 가서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눈을 떴을 때 이 손을 못 피겠는

거야 맨날 그냥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던 꽁생원이 그런 일을 하루 종일 했으니 아 그

래가지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가지고 손가락을 필라면은 이걸로 이렇게

해가지구 이렇게 이렇게 비벼가지고 (주먹 진 왼손을 각진 오른쪽 팔꿈치에 갖다 대어

피면서) 손을 폈어 그래서 막 주물르고 이래 가지고 점심을 싸가지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난 거지 일어나서 점심을 밥을 해가지고 싸가지고 가면서 고민을 한 거야 야 이

거 내가 일을 계속 해야 되나 이런 거 이거 더 하다가는 사람 병신 될 것 같은 생각이 나

는 것이야 고민했지만 며칠 일하고 중간에 고만둘 순 없잖아 lsquo내가 주말까지는 일을 해

서 일한 한 주 그건138 받아야지rsquo 하고 일주일 끝냈어 끝내고 가만 생각하니깐 근데 맨

날 또 그렇게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날은 내가 재수 없어서 걸린 거야 헌데 수퍼

138 주급(週給)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5

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6

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7

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8

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9

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0

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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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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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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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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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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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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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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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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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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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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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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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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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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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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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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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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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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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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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19: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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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저139supervisor라고 내 고 섹션140section 바로 위에 있는 상사上司가 불란서141에서 그

이민 온 친군데 나보다 몸집이 작어 헌데 요 녀석이 일거리도 막 지시하고 그러는데

캐내디안Canadian 학생은 쉬운 거 시키고 나에게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만 시키는 거

야 윌 바로142wheel borrow라고 요기 앞에 바퀴가 있고 뒤에 이렇게 바퀴는 앞에만 있고

이렇게 들구 흙 싣고 가는 이렇게 이렇게 옮기는 게 있어 윌바로라고 그기 우리나라에

선 뭐라고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헌데 그기 처음에 하면은 중심을 못 잡아가지고 흙 가

득 실으면은 막 하다 중간에 자빠지구 그래 그런 어려운거만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

만하다는 거지 저 자식(녀석)을 내가 한번 혼 좀 내줘야 될 텐데 나도 굉장히 속으로 불

만이지 그럼 뭐 쉬운 거는 캐내디안Canadian이 하고 그 여학생들 요런 거 시키는 거고

그래 내가 한번은 점심을 먹고 수퍼바이저를 좀 오라고 창고 뒤로 썩 델꼬 갔어 데려가

서 내가 태권도 기본기합을 한번 짝 하고 폼을 탁 잡았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아주 얼

은 거야 ldquo야 너 왜 나에게 맨날 힘든 것만 시키고 캐내디안 학생한테는 쉬운 거 시키고

임마 돌아가면서 시켜야지 너 나중에 이거 하면은 이거 코리안 카라데143Korean karate

라고 하는 거라고 너 카라데144 아느냐고 이거 한번 치면 죽는다고rdquo 허 내가 겁을 줬

더니 (웃음)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 담부터는hellip 헌데 그 녀석은 취미가 뭐냐 하면은 이탤

리안 피아트145Fiat라고 하는 차를 난 그 놈을 통해서 알았어 그 녀석은 스포츠 카sports

car 매년 돈벌어가지고는 새 차 바꾸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야 근데 그 녀석이 차가지고

출퇴근을 하는데 너 어디 사냐 그랬더니 그 지하철 노스 욕North York역 근방에 산대

아 그러냐고 그기 토론토Toronto의 전철subway노선은 십자十字로 됐어 이 전철이 헌

데 노스 욕 뉴욕New York하는 그 욕York있지 노스 욕역 그 근방이래 아 ldquo너 그러면

은 내가 기름 값 대줄테니까 나 그 노스 욕 서브웨이North York subway 거기까지만 일

끝나면 데려다주고 아침엔 거기서 만나가지고 같이 출근 안 할래rdquo 그랬더니 아 기름값

대주면 그럼 자기 그렇게 해주겠대 이왕 가는 길이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 친해졌어

그러면은 한 시간이면은 도착을 해 난 전철 타구 그 종점에 가서 그 녀석 기다리면은 그

139 감독관관리자

140 부서(部署)

141 프랑스

142 바퀴가하나달린운반용장비

143 태권도

144 우리나라태권도비슷한일본의무술

145 피아트(FiatSpA)이탈리아최대의자동차회사에서제조된자동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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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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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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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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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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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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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2

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3

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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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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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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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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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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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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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1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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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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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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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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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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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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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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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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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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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0: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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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이제 출근하면서 나 데려다가 고기서 한 15분 내지 20분 차로 가니까 굉장히

가까운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여름방학 동안 3개월 일을 했어 일을 해가지고 그래

두 포기하지 않고 내 지난번에 얘기했지만은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아버님 같으면은 어

떻게 이걸 했을까 내가 만약 중간에 포기를 했대면은 ldquo야 이 자식아 너 임마 남자가 그

런 거 하나 고비 못 넘기고 그래 중도에 포기를 했어rdquo 그러구 쿠사리146 받을 게 분명하

니까 난 이거를 끝까지 해야 된다

한인교회에서의 결혼식과

캐나다 이민권 획득 일화

송 그렇하고 3개월을 끝내고 우리 집사람이 와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결혼을 할라면은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그래야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사실 한인교회를

그때 나갔어 유나이티드 쳐치United Church라고 한국 사람들 모이는 그 교회 나가가

지고 거기 합창단원에 들어 가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도 사귀고 교인들도hellip 근데

거기 가는 이유가 믿음이 내가 대단해서 가는 거 보다는 거기 한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를 유학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한번 먹자 그러고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웃

음) 그게 주중週中에는 맨날 혼자서 소꼬리국 그거 하고 김치하고 그냥 하고 먹다가 진수

성찬珍羞盛饌으로 얻어먹는 재미로 나가면서 근데 그 목사님이 주례主禮를 서고 또 집사

님들이 뭐 케익cake도 굽고 뭐 뭣도 하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가지고 참hellip 근데 그 이상

철 목사라고 그분이 좀 반한파反韓派야 반한파라 그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이지

굉장히 비판적인 근데 그 사모님이 김재준147金在俊 목사님의 딸인가 그래 그래가지고 하

여튼 그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이제 그 사진 보면 알지만은 우리 집사람도 좀 트

146 야단

147 김재준(金在俊1901-1987)신학자middot목사함북경흥(慶興)출생호는장공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역임교회개혁의비전을제시한선각자미국웨스턴신학교를졸업한그는한국기독교장로회와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설립한신전통주의노선의장로교목사로서박정희대통령의국사독재에반대하는민주화운동에앞장섬저서로『요한계시록주석』(1968)middot『황야에서외치는소리』(1983)등이있음이상철목사님은김재준목사님의사위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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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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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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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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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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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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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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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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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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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6

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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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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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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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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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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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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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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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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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1: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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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않아서 그런지 자기만 한복韓服 뭐 당의唐衣 뭐 이거하고 족두리 이거를 해가지고 오

구 내가 입을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왔다 신랑 입을 거는 그래 거 어떻게 그냥 내가

입고 온 신사복에다가 난 보 타이bow tie 매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웃기는 결혼식을

한 거야 (웃음)

이 나중에 한번 사진자료도 보여 주세요

송 한번 보여 줄께 그렇하고 결혼식 끝나고는 신혼여행을 어디를 갔냐 나야가라 폴Niagara

Fall로 갔어요 나야가라 폭포로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가면 나야가라 폭포가 나오거

든 그래 거기 갔더니 그런 족두리 한 거 그대로 갔다 이거 구경거리야 그런 옷 입고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사진 한방 찍을라면 서양사람들 서로 와서 같이 사진 찍을라 그러

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기는 인기였어 근데 나야 뭐 보타이하고 갔으니깐 근데 그 운

전을 하고 간 친구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어 근데 그 친구는 서독광부西獨鑛夫로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로 이민 왔어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여자는 간호원으로

서독에 많이 파견 됐고 그 다음에 남자들은 광부로 많이 갔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한

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약 끝나면은 캐나다로 많이 왔어 그 이유가 있나요 캐나다로

이상철 목사님의 주례로 맺은 결혼사진(19691025)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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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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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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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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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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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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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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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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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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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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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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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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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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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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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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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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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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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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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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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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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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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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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2: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78

간 이유가 아니 그러니까 캐나다는 굉장히 그 사람들을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캐내

디안으로 받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민이 굉장히hellip 가만 있어봐 그 인터뷰interview하

던 얘기도 해야 되겠다 캐나다 그래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그게 와가지고 캐

나다로 갈라면은 비자visa를 받아야 되잖아 캐나다대사관이 그때 서울에 없었어 그때

한국에 영국대사관이 덕수궁德壽宮 뒤에 그 영국대사관이 지금도 있는데 영국대사관에

서 캐나다 비자visa 접수도 같이 그걸 했어 그래 거기에 비자 신청을 했지 캐나다대사

관이 일본에는 있었어 그러니까 여름에 그런 비자 신청 그런 거를 모아가지고 몇 개월마

다 캐나다 영사領事가 일본서 와 와가지고 인터뷰 같은 거를 해 그 인터뷰한 장소가 바

로 부산 해운대海雲臺 극동極東호텔이라는 데서 했어 근데 1968년 당시에 그 해운대에

는 극동호텔이란 것이 제일 좋은 호텔이었고 지금은 제일 초라하게 돼서 재개발된다 그

러더라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 가가지고 한데 그때 육십 몇 년도에 부산釜山 그러니까

나는 피난은 중학교 댕기다가 서울 왔다가 한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간 셈이지 왜냐하

면 인터뷰하기 위해서 인터뷰 날짜를 줬는데 극동호텔 몇 호실에 거기 머물른다고 근

데 갔는데 이게 학생비자student visa니까 토론토대학교에서 온 서류가 있으니까 뭐 거

기서 그냥 찍어주더라고 학생비자 아주 쉽게 받았어 그래 이제 캐나다에 갔잖아 갔더

니 주위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여기는 학생비자를 받으면은 미국하고 비슷하니까 이거

를 이민비자immigrant visa로 바꾸래 그럼 일도 할 수 있고 와이프 될 사람 피앙세fianceacute

(약혼녀)도 데려올 수 있고 그래 가지구 이민비자로 바꾼 거야 그래서 토론토의 그 이민

국移民局에 가서 ldquo나 지금 스테투스status가 신분이 토론토대학교에 박사과정하는 학생

이다 내 피앙세가 여기 올라 그러는데 이거 그렇게 할라면은 이민비자로 바꾸라고 그

러더라 그래서 나 여기 왔다rdquo 그랬더니 꽝 찍어주는 거야 수월하네요 그렇지 굉장

히 쉬웠어 그러니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런 사람들 이민하는 거를 환영 대환영하는

거였지 그래서 인터뷰해가지고 학생비자 받아 캐나다 가게 됐어 아참 옛날 얘기다

(다함께 웃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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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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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1

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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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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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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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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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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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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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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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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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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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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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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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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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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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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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79

미국 웨슬레얀Wesleyan

대학교로의 전학

이 학교 얘기로 조금 돌아가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셨나요 이제 그 대학에 가셨을 때 선생님하고 수업을 받으신 거세요 수업하신

내용 얘기 좀 해주세요

송 근데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내 귀가 늦게 틔여 가지고 아 언어 문제가 참 그거였어 그

러니깐 그 선생은 나를 아는 거야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고 수업 끝나면은 또

다시 자기 연구실로 불러가지고 요점 같은 거 다시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나를 격려하

는 거야 근데 그분이 폴리쉬Polish 그러니까 폴란드의 유태인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이

었어 그러니까 히틀러 정권 때 유태인들을 막 학살하고 그러니깐 미국으로 도망 간 거

야 미국에 피난 온 거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학교에 근무 못하고 병원에 근무하

면서 계속 연구한 논문 쓰고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1세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자기도 미국에 와서 받은 그 서러움도 있구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굉장히 동정을 하면서 잘해줄라고 애쓰셨던 분이야 그래서 난 참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선생님 나의 어느 영문서148에 lsquo내 은사님을 위해서 이 책을 바친다rsquo

는 그 문구文句를 썼는데 그 선생님이 가만 생각하니까 이 녀석 토론토대학교에서 서양

음악학Western musicology 가지고는 굉장히 힘들 것 같고 나도 고민스럽고 학부 강의

들어야지 석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박사과정 강의 들어야지 그냥 정신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한국어도 외국어 또 한문漢文 이런 것도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지 그러니까 이런 그 백화문149白話文이 아니고 ldquo이런 걸 좀 외국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학교가 없습니까rdquo 했더니 미국 몇 개 대학에 한번 알아보래 그래서 알아보니

깐 웨슬레얀 유니벌시티Wesleyan University에 월드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

으로 박사과정이 있어 그래서 그쪽에 어플라이apply를 해가지고 트렌스퍼transfer(전

148 SongBang-songTheSanjoTraditionof KoreanK munrsquogoMusic(SeoulJuneEumSa1986)의표지뒷장에lsquoTothememoryofMieczyslawKolinski(1901-1981)rsquo라는문구를넣어서은사님의영전(靈前)에그영문서를올림

149 백화문(白話文)당대(唐代)부터사용되던구어(口語)인백화(白話)는송대(宋代)middot원대(元代)middot명대(明代)를거치면서계속사용되면서정리된구어체(口語體)임이구어체를글로표기한것이백화문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0

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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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2

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3

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4

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5

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6

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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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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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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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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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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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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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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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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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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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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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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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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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4: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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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웨슬레얀대학교로 트렌스퍼를 하게 됐지 그래서 73년도에 트

렌스퍼 해가지고 가게 돼

이 그럼 콜린스키 교수님하고 수업하실 때 가장 lsquo이건 참 좋았다rsquo라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송 그분의 이론도 참 독특하고 굉장히 나에게 그걸 가르쳐 줄라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은 그 음조직150音組織(tonal system) 이론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에 체계를 가지고 분

석하고 하는 그기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정말 수업 이것저것 그거 발등 불끄느라

고 정말 그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은 그 이론에 내가 집착을 하고 막 그럴 형편은 아니

었어 그래 내가 듣는 모든 과목들이 전부 서양음악학 그리고 서양음악사 관련되는 거

였어 그러니까 웨스턴 뮤직칼러지Western musicology 그러면은 서양음악사학Western

historico-musicology 이렇게 이해하면 돼 유럽 쪽에서는 거기에 뭐 음악심리학이니 뭐

음악치료학이니 무슨 무슨 음악 이런 거 소위 그 시스티마틱 뮤지콜로지151systematic

musicology 있잖아 그쪽이 강하지만은 미국 쪽에 오면은 완전히 히스토리history야 그

150 음조직(音組織)tonalsystem음악의이론적기초가운데주로음고측면에관한체계로서음률middot음계middot선법middot조의모든것을포함하는개념

151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systematicmusicology)음악사학(音樂史學)또는역사음악학(歷史音樂學historicalmusicology)과함께음악학(音樂學musicology)의한축을이루는체계음악학은음악사학외의음악심리학(音樂心理學)middot음악교육학(音樂敎育學)middot음향학(音響學)middot음악미학(音樂美學)등의학문분야를포괄하는분야의총칭임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 및 학위기(1975 5 26)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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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2

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3

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4

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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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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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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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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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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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1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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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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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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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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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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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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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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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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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5: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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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서양음악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기보법記譜法 그러면 기보법 강좌에는 서양기보

법 가지고 강의를 하는 거야 그럼 뭐 화이트 노테이션white notation이니 블랙 노테이션

black notation이니 그 다음에 늄152neume이니 그 발달과정 그런 거를 강의를 받는데 나

는 그런 거를 들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기보법이 있는데hellip 우리나라 기보법을서양사람

이 이렇게 정리했듯이 연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런 걸 나는 서양기보법을 배우기 위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 거를 내가 연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

게 되는 거지 근데 올리버Oliver 예를 들어 또 올리버 스트렁크Oliver Strunk라고 하는

음악학자가 서양음악 원전原典 primary source을 소시스 인 뮤직히 스토리153Sources in Music

History라고 하는 책을 그거 공부 할 때는 우리나라의 원서를 공부할라면 이런 책을 하나

엮어야 되겠구나 그래 가지구 자네도 나하고 한예종 와가지고 공부한 『소스 리딩 인 코

리안 뮤직』154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 있잖아 그런 걸 만들 아이디어idea를 그러니까 서

양음악학의 한 과목을 들으면서 내가 깨우쳤던 거지 그래가지고 웨슬레얀대학교 내려

갔을 때 그때 쯔게 교수라고 겐이치 쯔게155柘植元一교수라고 그 양반이 동경예대 교수

로 나중에 부임했다가 리타이어156retire 하셨지 그분하고 푸엔첸157陳富烟(Fu-yen Chen)

이라고 대만에서 온 푸엔 첸하고 셋이서 나하고 우리 『소스 리딩스 인 이스트 아시안 뮤

직』 Source Readings in East Asian Music이라고 하는 타이틀title로 해가지고 연구하자 그렇게 해

가지고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은 것이 그 재펜 파운데이션158Japan Foundation에서 연

구비를 받은 거야 그게 그 쯔게 선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어 그래서 그분이 제일 선배

야 우리 박사과정하던 중에는 그분이 Japan Foundation에다가 신청을 해가지고 그 당

시에 5천 불을 받았나 그래 고걸 삼등분했지 해가지고 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음악 관련되는 원전原典을 내 나름대로 요런 거는 악기 관련되는 요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 내가 그 기본 틀거리 짠 거 있잖아 그러니깐 쳅터 일레븐chapter

152 네우마(neume)서양중세때사용된기보법(記譜法)의하나중세캐돌릭의그레고리성가(Gregorianchant)에서사용된네우마는우리나라의연음표(連音標)와비슷하게생긴기보법임

153 OlivberStrunkedSources in Music History(NewYorkWWNorton1958)154 SongBang-song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Seoul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1980)155 겐이치쯔게(柘植元一GenrsquoichiTsuge)일본의음악학자페르샤(현이란)음악을전공한쯔게박사는웨슬레얀(Wesleyan)대학

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하고귀국하여동경예대(東京藝大)교수로재직하다가정년퇴직함

156 은퇴

157 푸엔첸(陳富烟Fu-yenChen)대만출신의음악학자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박사학위(PhD)를취득함

158 일본국제교류재단(日本國際交流財團JapanFoundation)일본문화관련의고쿠사이교류긴킨(國際交流基金KokusaiKōryūKinkin)의영역1972년일본문화의국제적보급을위해서설립된법인일본의문화와예술일본어교육의지원을담당하는이법인은2001년외무성(外務省)산하의독립기관으로이관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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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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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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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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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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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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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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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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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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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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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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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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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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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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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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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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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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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6: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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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en까지 있는데 쳅터 텐chapter ten까지는 공동 제목 예를 들어서 레전드 앤legend

andhellip 뭐 음악 전설傳說에 관련된 거는 너는 중국 꺼 나는 한국 꺼 당신은 일본 꺼 그

래서 한 쳅터159chapter 만들고 그 다음에 뮤지컬 인스트루멘트160musical instrument인

데 대표적으로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 중국에선 뭐 쟁箏을 하던지 비파琵琶를 하던지

근데 일본은 뭐 고토琴를 하던지 뭘 하던지 이런 식으로 틀거리를 내가 짠 거야 그리고

그 프로젝트project를 만들 때에도 내가 제안을 해가지고 그러니깐 쯔게나 이 푸엔 첸은

간단하게 생각했던 거야 한데 나는 기본적인 것을 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가 있었

는데 이 두 친구는 중간에 모두 포길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원고가 아까운거야 그래

서 귀국해가지고 그때 유네스코161UNESCO 한국위원회 명동明洞 유네스코회관에 가서 이

런 원고가 있는데 좀 영문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준 거야 그기

미국 문화인류학자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님과의 만남

이 선생님 그럼 73년에 미국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로 가시면서는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어요

송 내려갈 때 레코멘데이션 레터162recommendation letter를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주면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 교수를 찾아 가라 자기 친구다 ldquo미국선생인데

그 선생한테 가서 얘기할 때 세일즈맨십163salesmanship을 발휘해라rdquo 그러더라고 그래

서 ldquo선생님 salesmanship이라는게 뭐예요rdquo 그랬더니 세일즈맨이 자기 물건을 팔기 위

해서는 그 물건에 대해서 설명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되는데 거짓말

보태지 말고 또 너무 과장하지 말고 미스터 송Mr Song은 동양 출신이라 이렇게 겸손

159 단원

160 악기

161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NationalCommissionforUNESCO)유네스코와한국의교육middot과학middot문화관련단체간의협력을위해대통령령제801호(1953)에의거하여1954에설립됨

162 추천서

163 장사꾼의수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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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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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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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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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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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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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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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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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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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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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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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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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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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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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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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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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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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3

하게 말하는 ldquo아이 뭐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rdquo 이렇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는 거

야 Mr Song이 열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열다섯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다섯 개는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열

을 가졌으면 열을 가졌다는 거를 상대방한테 정확하게 알리라는 거야 ldquo그기 세일즈맨

십이다rdquo 그러더라고 ldquo아이 그렇습니까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rdquo

그래서 추천서를 가지고 커네티컷Conncticut주의 그 미들타운Middletown으로 찾아가

서 맥켈레스터 교수님을 만났어 만나서 인터뷰interview를 하면서 난 토론토대학교에

서 이렇게 박사과정의 뮤지콜로지musicology를 하다가 이쪽에서 랭귀지 리콰이어먼트

164language requirement도 나에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한국어Korean도 외국어로 해주고

올드 차이니스Old Chinese 곧 한문漢文도 인정해준다 그래가지고 내가 여기 왔다 그러

면서 ldquo당신 제자 중에 책을 낸 사람이 있느냐rdquo 없대 난 71년도에 『언 애노테이티드 비

블리오그라피 오브 코리안 뮤직』165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을 출간했습니다그

것도 연구방법론 강의 때 레포트 냈던 거야 토론토대학교 시절에 그기 투 쎄메스터two

semester 그러니까 두 학기 동안 lsquo리서치 매서드 앤 비블리오그라피rsquoresearch method and

bibliography라고 하는 그 강좌가 두 학기짜리야 그 강좌의 학기말 레포트 냈던 거를

조금 보충해가지고 낸 것이 그기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브라운 유니벌시티

Brown University에서 나온거야 브라운 유니벌시티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이야 거기서 타이프스크립type script이지만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활자로

인쇄한게 아니라 타이프 친 원고를 복사해서 낸 거지만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책이야

그 책을 보여드리셨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 중에 그

찰스 시거 프라이즈166Charles Seeger Prize에 난 당선은 안됐지만은 안된 이유가 내 그

때 토론토대학교에 휴학하고 있었다 아들(한국명 상원尙源 캐나다명 벤쟈민Benjamin

애칭 벤지Benji)을 그때 우리 집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내가 일을 해야 됐기 때문에 내

가 휴학생이어서 그걸 못 받고 내 친구한테 뺐겼지 밥 프로바인Robert Provine이라고

하는 하버드 유니버시티Harvard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찰스 시

거 프라이즈 거기에 올랐던 제자가 있느냐 내가 그때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164 언어시험과목부담

165 SongBang-song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ProvidenceRIBrownUniversityAsianMusicPublications1971)

166 미국대학박사과정생중에서좋은논문을선정하여주는상우리나라의만당학술상과비슷한성격의상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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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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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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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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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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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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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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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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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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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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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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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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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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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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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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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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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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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28: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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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파167에 대해서 논문 쓴 게 있어 1972년 토론토대학교에서 열린 SEM(Society for

Ethnomusicology) 연차대회 때 비파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그기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

은 거야 그러니까 학위를 받기 전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으로서 그 학술지에다 발표를 했

으니까 ldquo그런 학생이 있느냐rdquo 그랬더니 없대 나는 거기에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내

167 SongBang-songldquoTheKoreanPiprsquoaandItsNotationrdquoEthnomusicology(AnnArborSocietyforEthnomusicology1973)VolXVIINo3pp460-93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SeoulJimoondingPublishingCo2000)pp187-217에수록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 및 1972년 SEM 프로그램 표지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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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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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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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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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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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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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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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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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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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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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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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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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5

자랑을 인제hellip 뭐 세일즈맨십salesmanship을 발휘하라고 그랬으니까 거짓말 보태지 말

고 나 있는 대로 다 얘기를 했지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은 지금 토

론토Toronto에 있는데 나 먹을 거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 우리 집사람이 버는 거는 자

식하고 살아야 되고 그러니까 나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학교에서 나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강의를 월드 뮤직 프로그램world music program에 ldquo인트로덕션 투 코리

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 강좌를 개설해주면 내가 강의를 맡겠다 해가지고

방 하나 얻고 강의 개설해주는 걸로 해서 그 대신 투이션 피168tuition fees 이런 거는 전

부 다 등록금 같은 거는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나는 하도 토론토대학교에서 주

눅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그 선생님 말씀 콜린스키 교수님이 ldquo세일즈맨 쉽을 발휘하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거를 상대방에게 100 전달하라rdquo고 그러더

라고 그래서 막 내 자랑을hellip 맥켈레스터McAllester 교수가 그랬을 거야 속으로 lsquo아이

저 녀석 오리엔탈Oriental이 하나 와가지고 말이야 뭐 장학금도 그러고 뭐 강좌도 개설

해 달라 그러고 말이야 방도 하나 달라 그러고 말이야 아주helliprsquo 당돌하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교수님 나는 여기 와서 학점도 웬만하면 내 토론토대학교에서 다 땄기 때문에

여기서 어디 그니깐 청강聽講하면서 나 여기 인도印度 뮤지션musician도 있으니까 므리당

감169mridamgam 이 북 있잖아 그거 배우고 그담에 고토箏 일본 도리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이라고 거기 계셨어 쯔게 선생의 와이프wife인데 야마다 겐교170

山田檢校 (Yamada Kenkyo)에 6대손 그건가 그래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고토

도 좀 배우고 싶고 맥켈레스터 선생님에게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 cultural antropology 강

의도 좀 듣고 그 담에 막 스로빈Mark Slobin 교수의 그 강의도 좀 듣고 그러면 내가 하

고 나 요런 것 좀 골라서 공부하겠습니다 그 대신 랭귀지 리콰이어먼트language re-

quirement에 시험치는 거나 이거 다 하겠다 한국어는 뭐 누가 테스트test할 사람 없으

니까 한문은 시험을 보겠다 그래 토론토대학교의 성적증명 이런 거 다 하고 그 조건을

억셉트171accept했어 그리구 내가 마지막으로 ldquo선생님 선생님 밑에 이런 제자가 있다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rdquo (다함께 웃음) 아주 좀 자만自慢하는 것처럼 얘

기를 했어 그리구 ldquo선생님 저 여기서 제가 박사학위논문 이런 거 다 제가 알아서 쓸 테

168 수업료

169 남인도(南印度)의북

170 야마다겐교(山田檢校Yamada Kenkyo)일본전통고토음악의한유파(流派)야마다겐교는이쿠다겐교(生田檢校Ikuda Kenkyo)와함께양대산맥(兩大山脈)임

171 받아들이다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6

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88

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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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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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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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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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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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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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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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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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0: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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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선생님은 잉글리쉬 폴리쉬English polish만 좀 해주시면 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 필드 리서치172field research도 나가야될 텐데 그런 때에는 선생님이 레코멘데이

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도 좀 써주십시오 그러면은 난 그런 거 사실 필요하지

다른 거는 내가 요구할 그거 아닙니다rdquo 그래 내가 1974년 여름방학 때 한국 올 적에도

그 선생님이 데이비드 맥켈레스터David McAllester라고 컬츄럴 엔트로폴로지cultural

anthropology 문화인류학이지 그 분야에 아주 이분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써주는 이것을 가지고 뉴욕New York 가서 나는 소사이어트 포 아메리칸 컬

츄럴 앤트로폴로지Society for American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주는 돈을 가지고 한

국 온 거야 1500불 그때 받아가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 우리 아들 데리고 같이 들

어왔었지 그때 그래 참 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는 재미나게 지냈어 근데 또 뒷이

야기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한국음악강좌를 개설을 하니까 UCLA 출신 녀석이 차이

니스 2세가 강의 듣겠다고 온 거야 그리고 또 한 학생이 둘이 내 강좌를 신청을 했어

그래서 왔어 그래서 ldquo야 좀 미안하지만은 나 여기 박사학위논문 쓰려고 내려왔지 난

이거 방 하나 얻고 나 이거 투이션 피스tuition fees 감면 받기 위해서 개설해 논거지 나

사실 이거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고 내 마누라와 자식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

고 말이야 너희들 나 좀 이해하고 다른 강좌 들으면 안 되겠니rdquo (웃음) ldquo아 언더스탠

드understand 당신의 처지 이해를 하니까helliprdquo 그래서 다른 과목으로 유도誘導를 하고 근

데 개설을 해놓고 신청한 사람 없으니까 어디 이 대학교 홍보弘報하고 이러는데 ldquo인트로

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rdquo도 우리 학교 개설했다 강사는 송방

송이 한다 홍보용으로 다 쓸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 참 그 녀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데 사실 그때 나는 빨리 박사학위논문 쓰는 거 그걸 끝내야 체통體統이 서는 거 아니야

마누라는 그냥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일 하면서 먹고 산다고 고생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참 거기 웨슬레얀대학교에 내려가서 나는 그냥 내가 필요한 듣고 싶은 강의 몇 개

만 탁 듣고는 말이야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학위논문 쓰고 그랬지

이 그럼 교수님 얘기 조금만 더 할께요 맥켈레스터 교수님하고는 직접적으로 수업하신 거

는 그러면 아예 없으신 건지요

송 교수님하고 그러니까 렛슨 받는 거 근데 맥켈레스터 교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학위논

172 현지조사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87

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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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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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0

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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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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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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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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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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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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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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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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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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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1: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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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 쳅터chapter 써서 드리잖아 그럼 또 그 양반이 한국음악 난 그때 신쾌동173申快

童의 거문고산조를 가지고 썼거든 거기에 대해서 아나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좀 이렇

게 단어 선택 같은 거 요런거 요렇게 바꾸고 뭐 문장 같은 거는 요건 요렇게 좀 해라하고

고쳐주고 자기가 이렇게 보면은 아이 요 녀석이 그래도 자기는 한국음악에 대해서 잘 모

르지만은 그 제법 알맹이 있는 걸 쓰거든 그러니까 그 선생은 내가 허풍虛風 친 게 아니

구나 하는 거를 알은 거지

173 신쾌동(申快童1910~1978)거문고산조의대가원명신복동(申卜童)호는금헌(琴軒)전라북도익산출생16세되던해에거문고산조의창시자인백낙준(白樂俊)문하에입문하여산조를처음으로배웠다거문고산조를융성하게만든공이크며1967년중요무형문화재제16호거문고산조예능보유자(1967716sim19771129)로지정받았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1064-65쪽참조

멕켈레스터 교수 부부 및 아내와 아들 사진

1975년 5월 박사학위 취득기념 사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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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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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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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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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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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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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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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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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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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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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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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2: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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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인류학적 팁tip이라던가 이런 거는 해주셨어요

송 헌데 그 선생님은 저 북미 인디언 중에 무슨 나바오Navajo든가 나바오 인디안174Navajo

Indian 연구를 했나 그래 인디안 음악에 전문가야 그 양반이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

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 그러니까 에쓰노뮤지콜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좋은

논문을 뽑아서 『리딩스 인 에쓰노뮤지콜로지』 Readings in Ethnomusicology라는 책도 내고 참

그분이 내가 그분 덕분에 웨슬레얀대학교 2년 있으면서 참 편하게 학위도 끝낼 수 있었

고 그 문화인류학 그쪽에서 돈 두hellip 근데 참 미국사회가 좋은 게 뭐냐 하면은 교수가 이

렇게 레코멘데이션 레터recommendation letter 추천서 써주잖아 이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해 우리나라에선 형식적으로 쓰는 건데 그 사회에는 그걸 가지고 가면 믿어 그래

난 내가 놀랜 것이 콜린스키Kolinski 교수님이 써준 recommendation letter를 가지고 맥

켈레스터 교수한테 가니까 아 이 벌써 반은 접구 들어가는 셈이야 그 또 맥켈레스터 교

수가 써준 그 추천서를 가지고 뉴욕New York에 그기 그 미국문화인류학회 사무실은 뉴

욕에 있더라고 뉴욕 갔더니 그걸 탁 보더니 뭐 금방 몇 마디 ldquo너 가서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냐 가면은 뭐할 거냐rdquo 그럼 ldquo난 거기 가서 예를 들어 거문고산조 명인 신쾌동申

快童선생이나 뭐 이런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내 은사님 만나고 내가 학위논문이 끝나

면은 이거 심사해야 될 분 중에 꼭 우리 한국 교수님도 하나 들어가야 된다rdquo 그런 설명

을 해줬더니 뭐 거기서 하기야 자기 주머니돈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학회에 그 어디

서 받은 이런 기금基金 같은 거에서 주겠지 그래서 참hellip 의외로 웨슬레얀대학교 2년 동

안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받았던 설움 그런 거를 거기선 참 편안하게 지냈어

174 미국원주민부족중가장크며대부분이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NavajoIndianReservation)에살고있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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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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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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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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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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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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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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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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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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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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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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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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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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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얀Wesleyan대학교에서의

타 음악문화 경험

송 그래 나는 일본 고토箏 (Koto)도 배웠다 내가 그래서 이 고토곡 ldquo미다레rdquo亂札 (Midare)

니 ldquo로쿠단노시라베rdquo六段の調べ (Rokudan no Shirabe)니 뭐 그런 곡 알어 탈 줄 알어 그

럼 그 렛슨lesson 해 주면은 꼭 학기말에는 발표회를 해야 돼 그래가지구 내가 고토 한

학기 배워서 무대에 설 때 고도곡은 lsquo혼데rsquo本手 (honte) lsquo카에데rsquo替手 (kaete) 그래서 본곡

그 담에 반주곡 비슷해 나는 lsquo혼데rsquo를 연주를 하면은 도리 나미노鳥居名美野 (Tori Namino)

선생님은 lsquo카에데rsquo 연주를 이중주二重奏 비슷하게 해 그래 내가 하다 잊어 먹잖아 (웃음)

그럼 선생님이 내 lsquo혼데rsquo 그거를 타줘 그럼 또 생각이 나 (웃음) 웃기는 얘기지만은 그

렇게 연주했다

이 그게 아마 그 전에 가야금하고 거문고를 배우신 영향 많이 좌우하셨을 것 같은데요

송 그래서 참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침에 새벽에 렛슨을 하니깐 도리 나미노 선생님께서

는 수업을 맨 처음에 렛슨시간을 잡어 근데 이 고토Koto는 또 가야금 하고 달라서 어떻

하나 하면은 연주가 끝나잖아 렛슨이 끝나잖아 그러면 안족雁足을 다 빼가지고 안족 박

스box에다 넣어 놓고 새로 시작하잖아 그럼 또 그걸 다 또 새로 줄에 끼워서 조율調律을

새로 하고 그기 15분 20분 걸려 근데 또 고토를 배울 때는 꿇어 앉아야 돼 요렇게 헌

데 꿇어앉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벌 받을 때나 꿇어앉지 헌데 일본사람들은 그기 평상

시 그렇게 앉아 버릇해서 발이 안 저린 모양이야 그럼 그냥 나는 10분만 지나면 그냥 다

리가 저려서 그럼 편안하게 이렇게 하고 하라고 그럼 그 선생님은 그 대신 또 이 뭐라 그

러나 새로 조율하면서 당신의 그 속 고민苦悶 이런 얘기를 막 털어놓는 거야 쯔게 선생

하고 같이 살면서 그런 생활 문제 같은 거 말이야 하 하 하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 꿍지렁거린다 그러잖아 (웃음) 그러니까 대화對話의 상대가 나였어 그러니

까 렛슨 받으러 가면은 그것도 좀 들어줘야 돼 내 그래서 그 생각이 나고 그 인도 므리당

감mridangam이라는 건 남인도 북이야 북인도는 그 타블라175tabla라고 하지 이렇게 두

개에 북가지고 동동 (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하고 치는데 이 므리당감은 장

175 북인도(北印度)의대표적인타악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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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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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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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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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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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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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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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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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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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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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4: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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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처럼 요고 몸통이 우리 장고는 요렇게 몸통이 쏙 들어갔잖아 요거는 이리케 이리케

(손으로 모양을 설명하며) 됐어 근데 요건 다 조율이 돼있어 고 까만 점 있잖아 네 그

기 lsquo사rsquo lsquo사middot리middot카middot마middot파middot다middot니middot사rsquosamiddotrimiddotkamiddotmamiddotphamiddotdhamiddotnhimiddotsa하는 그 lsquo사rsquosa 있잖아

그 lsquo사rsquosa음에 맞춰 이 므리당감도 그래서 그 사람들은 렛슨을 할 때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구음口音을 가르쳐줘 lsquo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lsquo덩기덕 쿵더러러러 덩rsquo

그러듯이 그러니까 그거를 외워야 돼 해가지고 외우면 그기에 따라서 손가락 요렇게 lsquo

다 키타키타타카 나카퉁가키타타카rsquo 하면서 그 북가락을 연주를 하는 거 하면서 이거

인도사람들도 우리나라 구음하고 똑같이 하는 거구나 말만 다른 거뿐이지 그래 라가

176raga 선율 같은 것도 뭐 우리 lsquo다로징 다로징rsquo 하면서 가야금의 멜로디를 구음으로 하

는 거 있잖아 거 마찬가지로 lsquo라가rsquoRaga도 lsquo사리가 사리가rsquo 그러니까 lsquo도레미 도레미rsquo 하

고 이 계명階名으로 노래부르듯이 lsquo사리가마파타니사rsquo 하는 거 있잖아 그 인도 라가 선율

을 그걸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돼 아 그랬더니 그런 거 이렇게 배우면서 lsquo아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rsquo 근데 우리거하고 비슷한 게 많어 그래서 나는 그 거문고산

조하고 lsquo라가rsquo하고 비교해서 논문177을 썼지 알랍178alap은 꼭 다스름과 똑같애 프리 리

듬free rhythm으로 해 그 알랍이 끝나고 그러면은 장구가 아 장구가 아니라 그 타블라

나 그 반주를 맞춰서 하듯이 우리 산조의 본 바탕 전 다스름 탈 때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바로 진양조로 들어가지만은 옛날 산조명인들은 다스름을 타고 들어갔어 함동정

월179咸洞庭月 선생님 같은 분만해도 다스름 타고 들어가고 그랬지

176 인도의고전음악을구성하는선율여러가지음악요소로이루어져있으며그종류또한많다

177 SongBang-songldquoSanjoversusRagaAPreliminaryStudyrdquo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Music(TorontoUniversityofTo-rontoPress1982)pp101-116KOREAN MUSIC Historical and Other Aspects(2000)pp295-316에수록

178 알랍(alap)북인도음악의전주곡(前奏曲)라가(raga)의본곡연주전에무반주와자유리듬(freerhythm)의즉흥적으로연주되는알랍은우리나라의다스름과비슷함

179 함동정월(咸洞庭月1917~1994)가야금산조의명인본명은금덕(金德)전남강진(康津)출생어릴때집안이기울어져학교를다닐수없게되자11세때광주권번(光州卷番)에들어가예기(藝妓)수업을받았다최옥산류가야금산조의가락에자신의독특한가락을얹어함동정월류가야금산조를만들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2042쪽참조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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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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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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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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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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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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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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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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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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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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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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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소재

맥길McGill대학교의 조교수 생활

이 선생님 그러시면 75년도에 미국에서 웨슬레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그 뒤에 거취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송 근데 고 전에 아까 내가 74년도에 그 맥켈레스터 교수 추천서 가지고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왔다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선생님을

찾아뵀어 만당晩堂 선생님하고 운초云初 선생님 찾아뵙고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ldquo내년

이면 제가 박사학위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rdquo

했더니 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ldquo외국 가서 공부를 했으면은 외국서 활동할 생

각을 하지 왜 자꾸 돌아올 생각을 하느냐rdquo 하는 말씀을 해가지고 굉장히 내가 서운하게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68년도 그 당시에 유학 갈 때 우리 만당 선생님이 그때 내

가 유학 떠나기 전 『한국음악서설』180이라고 하는 논문집을 내가 교정을 봐드리면서 그럴

때 선생님이 ldquo자네 외국 나가서 빠다 맛 초콜렛 맛 들여가지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하

면 안 된다 공부 끝나면 꼭 돌아와야 된다rdquo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박사학

위 끝나면은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어 아이 근데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참 맘이 상했지

그래서 내가 74년도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lsquo아 이거 안 되겠구나rsquo 내가 당분간은 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나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 그래서 내가 그때 한 수

십 군데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에다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프로그램program 있는 대학에 ldquo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맥켈레

스터McAllester 교수 전에 콜린스키Kolinski 교수하고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과목을 공

부했고 난 이런 거를 강의할 수 있고 당신 학교에 나를 채택만 해준대면은 내가 실망 안

시키고 이러이런 강좌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rdquo 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굉장

히 많은데로 보냈는데 네 곳인가 다섯 곳에서 답장이 왔어 인터뷰interview하자고 그

중에 하나가 저 오하이오Ohio주에 있는 오블린 칼리지Oblin College인가 거기

180 李惠求『韓國音樂序說』(서울서울대출판부1967)이논문집은저자의『韓國音樂硏究』(1957)이후1966년까지발표한논문21편(安岳3號墳壁畵의奏樂圖등)으로구성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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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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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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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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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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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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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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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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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6: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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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어느 대학인가hellip 그리고 맥길McGill대학교였어 그래서 인터뷰를 하려고

맥길대학에 가보니까 나하고 토론토Toronto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브루스 미놀간

대방동 자택에서 만당 선생님 내외와 함께(1974년 7월)

불광동 자택에서 운초 선생님과 함께(1974년 7월)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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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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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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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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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7: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3

Bruce Minorgan이라는 선배가 데파트먼트 체어맨181department chairman으로 있는 거

야 얼마나 반가운지 아 선배님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위 끝냈냐 그랬더니 박사학위를

안 끝나고 중도에 포기를 하고 자기는 뮤직 애드미니스트레이션182music administration

즉 음악행정을 해가지고 지금 맥길대학교에 데파트먼트 체어맨으로 있다는 거야 아 얼

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거기 어플라이apply를 했는데 나 이외에 한 이삼십 명이 미국대

학교에 박사 끝낸 친구들이 어플라이apply를 했대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뭘 얘길

하냐 하면은 ldquo야 닥터 송Dr Song 이민비자 말고 캐내디안 시티즌십Canadian citizenship

그거 신청 안하겠느냐rdquo고 시민권市民權 얻으면 너한테 굉장히 유리有利하대 왜냐하면 그

럼 캐내디안Canadian으로써 어플라이apply한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강력히 밀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ldquo아 그래 그럼 나 시민권 얻지 뭐rdquo 그래가지고 이민국移

民局 가가지고 캐내디안 시티즌십을 받았어 시티즌쉽을 받을라면은 lt오 캐나다gt라고

하는 국가national anthem를 노래부를 줄 알아야 돼 아마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가지고

시민권 받을라면 lsquo동해물과 백두산rsquo은 부를 줄 알아야 될 걸 아마 (다함께 웃음) 그래가

지고 나는 그 선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高地의 정보를 입수해서 내가 선발된 거야

그래 난 굉장히 행운아幸運兒였지 그 선배가 지난번 얘기했듯이 토론토대학교 있을 때

노트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그 강냉이하고 닭다리 하나 구어서 우리 집사람을 초대

했다는 얘기 해준 그 선배야 그는 캐나다 서부의 뱅쿠버Vancouver시 브리티쉬 콜럼비

아British Columbia 대학교 출신이고 학부는 그래서 맥길대학교에서 내가 잡job을 얻어

가지고 조교수로 취임하게 된 거지

이 2년 1975년부터 77년까지 어떤 수업을 그럼 주로 하셨어요

송 그때 인트로덕션 투 코리안 뮤직Introduction to Korean Music 그 다음에 에쓰노뮤지콜

로지ethnomusicology 관련되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그거 그 다음에 두 과목인가 세

과목 내가 맡았던 기억이 나 헌데 그때 참 한 시간 강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 시간 네

시간을 전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쳐가지고 원고를 만들어서 어떨 땐 막 읽기도 하고

언어도 언어지만은 그 내용 같은걸 내가 한국어 구사하듯이 그냥 막 하면서 해줄 수가 없

었거든 이 몬트리올Montreal은 퀘벡Quebec주에 있는데 프랑스 계통이 많어 이 온타리

오Ontario주는 영국 계통이 많고 헌데 굉장히 멋쟁이들이야 애들이 학생들도 아주 뭐

181 departmentchairman(학과장)학과장이나학장등의행정직을일반교수들이맡는우리나라의대학교와달리캐나다의대학교는음악행정(musicadministration)전공자에게학과장및학장과같은행정직을맡김

182 음악행정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4

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8: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4

스카프scarf를 목에 탁 메고 모자도 또 요렇게 멋쟁이 모자에다가 요 꿩털 같은 거 탁 꽂

힌 거 요런 거하고 강의실 강의 들을 때에도 탁 다리를 꼬고는 턱받이를 요렇하고는 무

슨 얘기하나 하고 말이야 노트 필기도 잘 안 해요 (웃음) 헌데 그 몬트리올 바로 아래로

한 30마일쯤 내려가면 그기 미국 벌몽Vermont주라고 그 주 있어 거기 미국학생들이 많

이 맥길McGill대학교로 왔어 왜냐하면 맥길대학교가 캐나다에서 굉장히 좋은 대학이거

든 그러니까 어떤 대학 미국의 어설픈 대학보다는 이 캐나다 쪽에 근데 그 녀석들은

청바지 있지 일할 때 입는 멜빵 달린 거 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입는 게 그렇게 수

수해 근데 몬트리올 학생들은 아주 멋쟁이들이고 향수 뿌리고 다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나도 신사복을 좀 입어야 될 형편이 됐어 근데 신사복을 사 입을라면 돈이 그때

내가 연봉으로 만이 천불 받았어 그거는 세금 띠기 전에 그로스 인컴183gross income이

라 그래 근데 거기서 세금을 제하잖아 세금이 한 30 떼더라고 근데 30 중에서 한

15는 프로빈셜 텍스184provincial tex 지방 세금이고 15는 페더럴 가번먼트185federal

government 텍스고 그러니까 내가 한 달에 받는 넷트 인컴net income은 천 불이 아니라

700불 밖에 못 받는 거야 근데 기성복을 하나 사 입을라면 그 당시 350불 내지 400불

을 줘야 돼 내 봉급의 반을 써야 돼 그러니 나는 그때 귀국할 걸 염두念頭에 두었기 때

문에 이런 가구(家具)들을 안 샀어 근데 퍼니쉬드 아파트먼트186furnished apartment라

고 그냥 거지같은 가구지만은 가구 있는데 소파도 있고 근데 쪼끔 돈을 더 줘야 돼 그

런 집을 얻었어요 퍼니쉬드 아파트먼트furnished apartment 그것도 월세가 한 200불

이나 한 300불 정도 우리 먹고 살라면 한 200불 그러니까 새 옷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과 간 데가 어디냐 요즘 말하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

고품 파는데 있지 셀베이션 아미187Salvation Army니 뭐 이런 데가 중고 파는데야 거기

가서 신사복을 두 벌을 샀어 되게 싸지 2불 50전인가 뭐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寄附한

거를 받아다가 세탁해 가지고 파는 거니까 요즘 우리나라에 뭐 아름다운 가게 그래서

그 나도 신사복을 입고 강의를 해야 될 정도로 압력을 받은 거야 그냥 이렇게 노 타이no

tie로 그냥 뭐 여름 같으면 이렇게 그냥 할 형편이 아니라 그래서 2년 동안은 굉장히 그

183 소득총액

184 지방정부세금

185 페더럴가번먼트텍스(federalgovernmenttex)연방정부세금

186 가구가비치된아파트

187 구세군(救世軍)이운영하는중고품가게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5

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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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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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39: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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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도 신경 써야 되고hellip 그다음에 또 그때 캐나다 퀘벡Quebec주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

하면 퀘벡당이 정권을 잡았어 그래가지고는 이제 모든 대학이 불어佛語로도 강의를 하

고 학생들이 불어佛語로 레포트를 내도 거부하면 안 된다 맥길McGill대학교가 영국 계열

이 세운 학교야 그러니깐 이 불어를 굉장히 업 그레이드upgrade 시킬라 그러구 막 주정

부에서 그러던 시절이야 (웃음) 아휴 학생이 불어로 레포트를 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평

가를 하나 말이지 하고 굉장히 걱정이 있었어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과의 만남

송 그래서 76년도에 그때 몬트리올Montreal에서 올림픽Olympic경기가 열렸어 근데 난 올

림픽이 중요한 게 아니라 lsquo빨리 한국 한번 돌아가서 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좀 봐야 되겠다rsquo 하고 76년에 여름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온 거지 와가지구 만

당晩堂 선생님 뵈었더니 ldquo자네 그 맥길McGill대 그렇게 좋은 대학을 왜 버리고 들어올라

고 그러나rdquo 막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ldquo선생님 저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려고 나

간 게 아니라 저 서양의 음악학musicology에 대해서 좀 공부도 하고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 관련 공부도 했으니까 제가 돌아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학생들을 좀 길르

고 저 정말 사실 굉장히 고생하면서 내가 이걸 했는데 빨리 우리나라에도 박사과정을

만들어서 유학 나같이 이렇게 고생하는 이런 학생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rdquo 그러니까

좀 끌어달라고 헌데 그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니까 난 굉장히 마음이 상한거지 그래

서 한번 그때 내가 황병기黃秉冀 선생을 한번 찾아갔어188 ldquo저 요 다음주면은 다시 캐나다

로 돌아갑니다 선생님께서 저 좀 기억해줘서 끌어주면은 참 고맙겠다rdquo고 그때 한양대

학교가 72년도 74년도에는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서고 그래서 사실 만당 선생님께서

188 [회고록]일해자서전-2ldquo이화여대김옥길총장님과의만남그리고그뒷이야기rdquo『韓國音樂史學報』(서울한국음악사학회2012)제49집(一海宋芳松博士古稀紀念特輯號)597-615쪽참조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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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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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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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40: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6

서울대학교는 아니더래도 그런 대학에 나를 좀 끌어주라고 하면 황병기 선생한테나 한

양대학교 같으면 김용진189金溶鎭 작곡하는 김용진 국악과 1기생인데 ldquo거 송 박사 좀 끌

어오지rdquo 이렇게 해서 선생님이 내 길을 열어 줄 수 있는데 그런 거는 일체 안 하시고

그래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ldquo자네 정말 돌아 올건가rdquo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이 ldquo제가 이거 괜히 헛소리하겠습니까rdquo ldquo그러면은 김옥길190金玉吉 총장을 한번 만나러

가자rdquo 그래서 김옥길 총장을 그해 1976 여름방학 그때 김옥길 총장을 만나서 황병기

선생은 76년도 2학기 우리나라는 2학기지만 거기는 1학기야 2학기부터 좀 나와 줬으

면 좋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 총장님께 ldquo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약서 2년을 75년 9월 1일부터 77년 8월 30일까지 2년 계약으로 지금 맥길대

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계약 도중에 1년만 끝내고 갑자기 오겠다

고 그러면은 그 학교도 곤란할 거 아니냐 사람을 구해야지rdquo 그래서 ldquo제가 거기 가서 학

교 당국에 노티스notice를 줘야 됩니다 lsquo저 내년에 계약 끝나고 한국 돌아갈 겁니다 그

러니까 사람을 구하십시오rsquo 그런 거를 미리 1년 동안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을 구

하도록 해놓고 들어와야 됩니다rdquo 그랬더니 그 김옥길 총장이 하 하 하 너털웃음을 웃

으시면서 굉장히 키가 작으셔 내 지금 그때 기억으로는 우에는 하얀 모시 적삼에 밑에

는 까만 치마를 입고 합죽선合竹扇을 탁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다리를 탁 하고선 총장

의자에 이렇게 앉아가지고 너털웃음을 lsquo하 하 하 하rsquo 웃으시면서 ldquo아니 서울대학교 출신

에 이런 사람도 있네 송 박사 같은 사람은 10년을 기다려서라도 꼭 데려오라rdquo 아 그래

서 내년에 77년도 2학기부터 이화여대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어 총장실을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총장님 하시는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은데 궁금한거야 ldquo황

선생님 아까 총장님이 lsquo서울대학교 출신 중에 이런 사람도 이런 친구도 있네rsquo 그러면

서 10년을 기다리면서 데려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뼈있는 말씀 같던데 저한테 좀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rdquo ldquo에 뭐 그런 일이 있었어rdquo 그러면서 ldquo아이 무슨 비밀 사항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그럼 송 박사만 알고 있어rdquo 그러면서 그 작곡과

에 있던 P아무개 교수라고 하는 분이 5월 달엔가 학기 도중에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

189  김용진(金溶鎭1939년생)작곡가지휘자호는민송경북경주(慶州)출생서울대국악과작곡전공졸업한양대음대교수역임현한국음악협회이사장1962년lt현악4중주1번gt발표를시작으로다수의작품을발표하였다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상권380-81쪽참조

190 김옥길(金玉吉1921~1990)교육자여성운동가평안남도맹산(孟山)출생이화여자대학총장및교육부장관역임재임중학교발전을위하여크게공헌하였을뿐만아니라대한여학사협회회장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이사백인협의회회장가정법률상담소이사등여러여성단체에서주요직책을맡아한국여성계전반의발전을위해큰구실을하였다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7

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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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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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대 학기도 마치지도 않고 갔대 그렇다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저렇게 이기주

의利己主義 그러니까 절대로 다시 서울대학교 출신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대는 거

야 근데 송 박사가 아주 명답名答을 얘기했대는 거지 1년을 기달려야 되고 그쪽에 사정

도 때문에 내가 당장 못 옵니다 내년에hellip 그래서 아주 총장님이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거야

죽헌 김기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국립국악원장 부임 일화

송 그래 그 다음에 죽헌191竹軒 선생님 국립국악원에 김기수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ldquo선생님 절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은사님 두 분이 저를 그렇게

끌어주지를 않네요rdquo 그리구 이화여대 얘기는 안했어 ldquo그냥 저 기억만 해주면 고맙겠습

니다rdquo 그렇하구 갔다 갔는데 편지가 캐나다로 왔는데 김기수 선생님이 ldquo나 내년에 국

립국악원을 리타이어192retire을 하고 국악고등학교 교장선생으로 가게 돼 있는데 자네

가 국립국악원 원장직을 맡아줄 의사가 있으면 내가 한번 문화공보부의 김성진193金聖鎭

장관한테 추천을 하겠노라rdquo고 이런 제의가 온 거야 편지에 그래 굉장히 고민을 했어

난 내년에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편지를 그때 제럭스Xerox가 캐나다대학

에도 첨 나왔을 때야 근데 상태가 좋진 않아 꺼면 점도 이렇게 막 생기는 그런 아주 초

창기에 그 편지를 제럭스를 두 카피copy 내가지고 ldquo이런 제의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rdquo 하고 황병기 선생님과 김옥길 총장한테 보낸 거야 근데 두 분한테서

전부 답장이 왔는데 ldquo이화여대로 안 와도 좋다 약속을 어겨도 좋다rdquo 송 박사가 국악원

191 김기수(金琪洙1917~1986)작곡가대금연주가호는죽헌(竹軒)서울출생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제1호)및처용무(제39호)의예능보유자1936년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대금과를졸업1953년국악원장악과장(掌樂課長)을지냈다1973년국악원장이되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상권289-90쪽참조

192 퇴임

193 김성진(金聖鎭1931~2009)황해도해주(海州)출생한국일보기자(1956)워싱톤특파원(1964)정치부장(1968)대통령비서실공보수석(1971)청와대대변인을거쳐제4공화국문공부장관과연합통신초대사장을역임함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98

장으로 가면은 자기네는 이의異意를 제기 안하겠다 왜냐하면 국립국악원은 국가기관으

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게 써야 되겠다 황병기 교수님도 물론이고

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네요rdquo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誤解를 한대 근데 그분이 거기서 나하고 만

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전화 연락이 온 거야 그분이 어디 계셨나하면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커

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42: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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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화여대 국악과도 중요하지만은 국립국악원도 굉장

히 중요하니깐 송 박사한테 결정을 맡기겠다 그렇게 의외로hellip 나 그래서 요즘 그 뭐 통

큰 쌔일 하는 lsquo통큰rsquo 얘기 나오잖아 야 여자 총장이지만 대단히 통큰 여자다 그분이 나

중에 어느 정권 땐가 문교부장관까지 하셨어 그 김동길194金東吉 교수라고 있지 그분 누

님 돼 그래서 내가 참 이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 그 회고할 기회 있으면 좀 더 자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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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면 그 맥길대학교 조교수직을 마치시고 77년에 귀국하시면서는hellip

송 귀국할 때 귀국하기 전에 또 한 가지 그 이강숙195李康淑 전 총장님 말씀을 좀 해야 되겠

는데 이강숙 총장님을 처음 뵌 거는 76년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바이센테니

얼196bicentennial 그러니까 2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할 때 거기서 만났어 필라델피아

에서 근데 그 선생님 그 총장님이 일본음악 전문가 윌리엄 마암William Malm 교수 제

자야 앤 아버Ann Arber의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 있는 앤 아버에 미시간 유니버시티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거든 한데 난 그분이 여잔 줄 알았어 내

194 김동길(金東吉1928년생)교육자언론인시민사회운동가정치인평남맹산군출생연세대학교를졸업한후미국보스턴대학에서링컨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연세대학교명예교수

195 이강숙(李康淑1936년생)음악학자경북청도(淸道)출생서울대음대피아노과를졸업하고미국휴스턴대학교에서음악석사를마친후앤아버(AnnArbor)의미시간주립대학에서1975년마암(WilliamPMalm)교수의지도로박사학위(ldquoTheDevelop-mentandTrialofKoreanBasedMusicalActivitiesfortheClassroomrdquo)를취득미국버지니아주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조교수를거쳐1978년서울대음대교수를지냈고그후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되어2002년까지재직했고금관문화훈장을수상함저서로『열린음악의세계』middot『한국음악학』등이있고정년퇴임후『피아니스트의탄생』(2005)을출간함현재한예종석좌교수상론은송방송『한국현대음악인사전』(서울보고사2011)하권1176-77쪽참조

196 미국독립200년주년기념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기념 SEM학술대회(필라델피아) 논문발표 및 이강숙박사와 함께 찍은 관광 기념 사진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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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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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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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를 기다려봅시다rsquo 하는 답장을 내가 받은 적이 있다 그래 이 형이 이번에 차롄 거 분명

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100

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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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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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Page 43: 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제2장bull유학시절 및 1960~70년대 국악계 회고

99

가 『에쓰노뮤지콜로지』 Ethnomusicology에 구독신청을 할 그 당시에 그 마암Malm 교수 조교

를 했는지 이강숙 이름으로 토론토Toronto대학교으로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서 아 이

분이 난 여잔줄 알았는데 호텔hotel에서 만나보니까 남자야 (웃음) 그래서 ldquo어 남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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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 ldquo우리 한국 돌아가면은 음악학musicology을 일으키자구rdquo 하면서 그분이 내가 76

년도에 그때 죽헌 선생님한테 그거를 연락을 받고 국립국악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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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웰즈 유니버시티197Commonwealth University 거기에 조교수로 계셨어 지금 한국신문

에 나왔는데 국악과에도 한 사람 채용하는 공고公告가 나왔고 작곡과에도 했는데 자긴

작곡과에 어플라이apply할 테니깐 나도 하라는 거야 ldquo아이 나는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가기로 했다구rdquo 그래 이 양반이 몬트리올Montreal까지 왔어 나를 설득하려고 국립국

악원으로 가지 말고 서울대로 오라고 그래 이번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내 76년도 왔

을 때 이성천李成千 교수가 그때 서류를 냈는데 학장이 전봉초198全鳳楚 학장이었나 그래

내가 편지에 그랬거든 76년도에 ldquo이 형 요 다음에 이 형 차랩니다 그러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그랬어 헌데 74년도 나왔을 때 그 당시에 이성천 교수의 와이프wife

가 약학대 나왔던가 헌데 미국엘 가 있었어 그 10년 강사 그만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라

고 해가지고 미국으로 갈까 어떨까 그러더라고 76년도에 ldquo아 이 형 내가 한만영韓萬

榮 교수한테 알아보니까 이번에는 이 형을 채용하기로 결정된 모양이던데 lsquo송 형은 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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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임명장을 받고 나오십시오rdquo 근데 이 양반이 시카고Chicago에서 몬트리올로 전

화를 한 거야 ldquo나 여기 지금 시카고야rdquo 그래 ldquo임명장 받았습니까rdquo 그랬더니 ldquo아니야

전봉초 학장님이 채용서류를 대학본부로 올리는 거 보고 나왔어rdquo 그러더라고 한데 그

때가 마침 이강숙 박사님이 귀국 인사하러 그때 윤 총장이 윤천주199尹天柱 총장인가 하

197 미국동부버지니아주(Virginia)의커먼웰스(Commonwealth)대학교

198 전봉초(全鳳楚1919-2002)첼로연주가서울대음대교수평안북도맹산(孟山)출생1943년동경제국음악학교(東京帝國音樂學校)졸업만주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의단원으로활동하다가해방을맞은그는1946년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첼로주자로활동했고1949년박민종(朴敏鍾)middot이계성(李桂成)middot김희조(金熙祚)와함께박민종4중주단을창단함1966년바로크합주단의창단공연때지휘했고서울대음대시절여러차례첼로독주회를열었다1975년음대학장시절서울대4중주단을만들었고1979년회갑기념연주회를열었다1985년제13대음악협회이사장을역임했고1999년호암아트홀에서8순기념가족음악회를열었다상론은송방송『한겨레음악대사전』(서울보고사2012)하권1594-95쪽참조

199 윤천주(尹天柱1921~2001)정치학자부산출생1945년동경제국대학법학부정치과를중퇴하고1947년서울대정치학과및1957년미국하버드대학에서수학한후고려대교수(1948-1963)시절국가재건최고회의기획위원middot민주공화당사무총장을거쳐문교부장관(1964-1965)middot제7대국회의원middot부산대총장(1973-1975)을거쳐서울대총장(1975-1979)역임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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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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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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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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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구술총서 7bull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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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애 기억이 근데 이 양반(이강숙 박사)이 보니까 나를 추천推薦한거

야 ldquo맥길McGill대학교에 있는데 지금 국립국악원장으로 오겠다고 얘기가 지금 있는데

이런 사람 데려와야 됩니다rdquo 해 가지고 전화 연락을 이제 해주는 거야 윤 총장님께서

ldquo그러면 내가 이거 문교부 안 올릴테니까 송 박사를 여기 신청하도록 해라rdquo 해서 좋은

소식이라고 캐나다로 연락이 온거야 ldquo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내가 한만영韓萬榮 교수한

테 이번에는 이성천李成千 교수를 꼭 채용하시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 그랬으니까 난

이렇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한번 한 얘기는 난 책임을 저야rdquo 그래서 이성천 교

수 그때 안됐어 나 때문에 한데 이거는 비사200秘史야 난 이성천 교수가 2003년도 그

때 막 돌아가기 전에 얘길 할까 그러다가 또 이강숙 박사하고 이강숙 박사 때문에 자기

안 되가지고hellip 그래서 그 다음에 나중에 요건 서울대학교 그 얘기 나올 때 하겠지만은

자기는 조교수 발령을 내도 자긴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부교수로 그때 성신여대201 있을

때 ldquo아이 나는 조교수 발령받으면 난 안 갈 겁니다rdquo 근데 자긴 가야되겠대 그래가지고

조교수 발령받고 갔어 서울대로 이성천 교수는 그런 뒷얘기가 있었어 (다함께 웃음)

200 비사(秘史)세상에드러나지않은역사적사실또는그런역사

201 성신여자대학교(誠信女子大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