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소리 34호 최종

52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국채보상운동 길을 따라 /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북후정>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특별기획>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한 평생 - 김광제 <나눔과 책임> 헛바퀴 도는 아동인권 중심의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출사표 청소년 문화축제 어울림마당 / 지상철 ‘하늘열차’ 하늘을 달리다 ! <천둥문학> 환생 幻生 / 영화 같은 삶 <회원광장> 권태형 / 박영현 / 박 철

Upload: -

Post on 13-Apr-2017

759 views

Category:

Government & Nonprofit


2 download

TRANSCRIPT

Page 1: 천둥소리 34호 최종

lt국채보상운동gt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국채보상운동 길을 따라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lt북후정gt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lt특별기획gt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한 평생 - 김광제

lt나눔과 책임gt 헛바퀴 도는 아동인권 중심의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

lt청년에게 길을 묻다gt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출사표

청소년 문화축제 어울림마당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lt천둥문학gt 환생 幻生 영화 같은 삶

lt회원광장gt 권태형 박영현 박 철

입회안내≫

회비안내≫

국채보상기념사업회원을 모십니다

애국애족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에게는

각종 학술행사 및 연구회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각종 동호회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회비는

연 1만원 이상입니다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전화 053)745-6753으로 문의하시거나

홈페이지(wwgukchaecom)를 방문해서 회원가입을 해주시면 확인 후 바로 답변을 드립니다

회비를 미납하신 회원께서는 동봉한 지로용지나 은행계좌로 조속히 납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은행 031-05-003912-4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김 영 호

lt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hellip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hellip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gt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나눔과 책임의

국채보상운동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북후정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 Ⅰ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한평생 - 김광제

나눔과 책임헛바퀴 도는 아동인권 중심의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

청년에게 길을 묻다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출사표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문학환생 幻生영화같은 삶

회원광장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솥단지의 상징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국채보상운동기녑사업회 소식사업소식방문단체

정진석이경규엄창옥

이진현

윤석호

은재식

정홍래이배영이지애

박 호이흥렬

권태형박영현박 철

4

18

22

26

29

36

39

45

2015 여름 제34호

발 행 인

편집고문

편집위원

발 행 처

기획제작

표지사진신동학

박용규 서상호

엄창옥(위원장) 권오현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최성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 053-745-6753 팩스 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 mastergukchaecom

밝은사람들 053-652-5700

지난 5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고자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

식을 진행하였다 표지사진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과 발대식 사진이다

국채보상운동

오늘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던 한말 1907년 2월 21일에 국채보상운동의 우국적 횃불을 높이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하였던 운동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무기를 들고 외적의 침략에 맞섰던 사례는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의병투쟁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남녀노소

상하귀천 모든 국민이 참여한 구국운동은 국채보상운동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장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전 민족적 애국운동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고

자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시작된 곳은 바로 이곳 대구였지만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펴졌습

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 운동이 시작된 때로부터 10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 세계기록유

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 뜻 깊은 역사의 기록을 수집 발굴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고 이를 영원이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자주권 회복을 위해서 벌였던 범국민적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한 돈 1천 300만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자발적인 민중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의 두 선각자 서상돈 김광제 두 선생은 이곳 북후정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민족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서울을 거쳐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의 재정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살리자는 숭고한 애국운동에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일본 통감부가 차관이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국채는 해마다 늘어나서 상환불능의 상태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과다한 국채 부담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 점차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운동은 의병들의 무장 항일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난 항일 국권 회복운동이라는 사실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일본에 예속된 상황에서는 나라가 독립국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담배를 끊거나 하루 세끼의 식사를 두 끼니로 줄여서 절약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아끼는 귀중품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나라 빚을 갚자는 눈물겨운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무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애국심에 불탔지만 현실적으로는 싸울 무기도 없었고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는 서민들과 연약한

부녀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의병투쟁과 버금가는 구국항일운동인

것입니다

셋째로 국채보상운동은 최초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파탄을 타개하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 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펴졌고 정부의 고관과 고종황제도 동참하는 거국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도middot군middot면 단위로 운동을 찬동 지지하는 자발적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지도급 인사들과 정부 각료들의 금연 소식이 연일 신문에 실렸고 국채보상금 마련을 위해

금연하거나 술을 끊기도 하고 끼니를 줄여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의연금을 한 푼 두 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 군인 이름 없는 백성들이 성금을 내놓았고 부녀자들은 소중히 간직했던 비녀와

가락지를 뽑아 바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일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이 같은 운동은 현대사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항영(抗英)운동에 못지않게 높은 호응도와 위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나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단시일에 전국적인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천둥소리 5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 천둥소리 34호 최종

입회안내≫

회비안내≫

국채보상기념사업회원을 모십니다

애국애족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에게는

각종 학술행사 및 연구회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각종 동호회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회비는

연 1만원 이상입니다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전화 053)745-6753으로 문의하시거나

홈페이지(wwgukchaecom)를 방문해서 회원가입을 해주시면 확인 후 바로 답변을 드립니다

회비를 미납하신 회원께서는 동봉한 지로용지나 은행계좌로 조속히 납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은행 031-05-003912-4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김 영 호

lt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hellip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hellip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gt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나눔과 책임의

국채보상운동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북후정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 Ⅰ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한평생 - 김광제

나눔과 책임헛바퀴 도는 아동인권 중심의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

청년에게 길을 묻다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출사표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문학환생 幻生영화같은 삶

회원광장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솥단지의 상징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국채보상운동기녑사업회 소식사업소식방문단체

정진석이경규엄창옥

이진현

윤석호

은재식

정홍래이배영이지애

박 호이흥렬

권태형박영현박 철

4

18

22

26

29

36

39

45

2015 여름 제34호

발 행 인

편집고문

편집위원

발 행 처

기획제작

표지사진신동학

박용규 서상호

엄창옥(위원장) 권오현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최성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 053-745-6753 팩스 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 mastergukchaecom

밝은사람들 053-652-5700

지난 5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고자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

식을 진행하였다 표지사진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과 발대식 사진이다

국채보상운동

오늘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던 한말 1907년 2월 21일에 국채보상운동의 우국적 횃불을 높이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하였던 운동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무기를 들고 외적의 침략에 맞섰던 사례는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의병투쟁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남녀노소

상하귀천 모든 국민이 참여한 구국운동은 국채보상운동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장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전 민족적 애국운동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고

자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시작된 곳은 바로 이곳 대구였지만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펴졌습

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 운동이 시작된 때로부터 10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 세계기록유

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 뜻 깊은 역사의 기록을 수집 발굴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고 이를 영원이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자주권 회복을 위해서 벌였던 범국민적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한 돈 1천 300만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자발적인 민중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의 두 선각자 서상돈 김광제 두 선생은 이곳 북후정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민족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서울을 거쳐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의 재정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살리자는 숭고한 애국운동에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일본 통감부가 차관이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국채는 해마다 늘어나서 상환불능의 상태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과다한 국채 부담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 점차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운동은 의병들의 무장 항일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난 항일 국권 회복운동이라는 사실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일본에 예속된 상황에서는 나라가 독립국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담배를 끊거나 하루 세끼의 식사를 두 끼니로 줄여서 절약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아끼는 귀중품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나라 빚을 갚자는 눈물겨운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무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애국심에 불탔지만 현실적으로는 싸울 무기도 없었고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는 서민들과 연약한

부녀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의병투쟁과 버금가는 구국항일운동인

것입니다

셋째로 국채보상운동은 최초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파탄을 타개하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 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펴졌고 정부의 고관과 고종황제도 동참하는 거국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도middot군middot면 단위로 운동을 찬동 지지하는 자발적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지도급 인사들과 정부 각료들의 금연 소식이 연일 신문에 실렸고 국채보상금 마련을 위해

금연하거나 술을 끊기도 하고 끼니를 줄여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의연금을 한 푼 두 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 군인 이름 없는 백성들이 성금을 내놓았고 부녀자들은 소중히 간직했던 비녀와

가락지를 뽑아 바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일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이 같은 운동은 현대사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항영(抗英)운동에 못지않게 높은 호응도와 위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나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단시일에 전국적인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천둥소리 5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 천둥소리 34호 최종

lt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hellip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hellip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gt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나눔과 책임의

국채보상운동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북후정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 Ⅰ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한평생 - 김광제

나눔과 책임헛바퀴 도는 아동인권 중심의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

청년에게 길을 묻다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출사표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문학환생 幻生영화같은 삶

회원광장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솥단지의 상징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국채보상운동기녑사업회 소식사업소식방문단체

정진석이경규엄창옥

이진현

윤석호

은재식

정홍래이배영이지애

박 호이흥렬

권태형박영현박 철

4

18

22

26

29

36

39

45

2015 여름 제34호

발 행 인

편집고문

편집위원

발 행 처

기획제작

표지사진신동학

박용규 서상호

엄창옥(위원장) 권오현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최성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 053-745-6753 팩스 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 mastergukchaecom

밝은사람들 053-652-5700

지난 5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고자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

식을 진행하였다 표지사진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과 발대식 사진이다

국채보상운동

오늘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던 한말 1907년 2월 21일에 국채보상운동의 우국적 횃불을 높이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하였던 운동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무기를 들고 외적의 침략에 맞섰던 사례는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의병투쟁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남녀노소

상하귀천 모든 국민이 참여한 구국운동은 국채보상운동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장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전 민족적 애국운동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고

자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시작된 곳은 바로 이곳 대구였지만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펴졌습

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 운동이 시작된 때로부터 10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 세계기록유

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 뜻 깊은 역사의 기록을 수집 발굴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고 이를 영원이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자주권 회복을 위해서 벌였던 범국민적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한 돈 1천 300만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자발적인 민중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의 두 선각자 서상돈 김광제 두 선생은 이곳 북후정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민족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서울을 거쳐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의 재정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살리자는 숭고한 애국운동에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일본 통감부가 차관이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국채는 해마다 늘어나서 상환불능의 상태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과다한 국채 부담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 점차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운동은 의병들의 무장 항일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난 항일 국권 회복운동이라는 사실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일본에 예속된 상황에서는 나라가 독립국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담배를 끊거나 하루 세끼의 식사를 두 끼니로 줄여서 절약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아끼는 귀중품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나라 빚을 갚자는 눈물겨운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무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애국심에 불탔지만 현실적으로는 싸울 무기도 없었고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는 서민들과 연약한

부녀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의병투쟁과 버금가는 구국항일운동인

것입니다

셋째로 국채보상운동은 최초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파탄을 타개하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 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펴졌고 정부의 고관과 고종황제도 동참하는 거국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도middot군middot면 단위로 운동을 찬동 지지하는 자발적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지도급 인사들과 정부 각료들의 금연 소식이 연일 신문에 실렸고 국채보상금 마련을 위해

금연하거나 술을 끊기도 하고 끼니를 줄여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의연금을 한 푼 두 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 군인 이름 없는 백성들이 성금을 내놓았고 부녀자들은 소중히 간직했던 비녀와

가락지를 뽑아 바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일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이 같은 운동은 현대사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항영(抗英)운동에 못지않게 높은 호응도와 위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나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단시일에 전국적인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천둥소리 5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 천둥소리 34호 최종

국채보상운동

오늘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던 한말 1907년 2월 21일에 국채보상운동의 우국적 횃불을 높이

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하였던 운동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무기를 들고 외적의 침략에 맞섰던 사례는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의병투쟁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남녀노소

상하귀천 모든 국민이 참여한 구국운동은 국채보상운동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장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전 민족적 애국운동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고

자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시작된 곳은 바로 이곳 대구였지만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펴졌습

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 운동이 시작된 때로부터 10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 세계기록유

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 뜻 깊은 역사의 기록을 수집 발굴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고 이를 영원이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자주권 회복을 위해서 벌였던 범국민적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한 돈 1천 300만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자발적인 민중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의 두 선각자 서상돈 김광제 두 선생은 이곳 북후정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민족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서울을 거쳐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의 재정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살리자는 숭고한 애국운동에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일본 통감부가 차관이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국채는 해마다 늘어나서 상환불능의 상태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과다한 국채 부담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 점차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운동은 의병들의 무장 항일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난 항일 국권 회복운동이라는 사실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일본에 예속된 상황에서는 나라가 독립국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담배를 끊거나 하루 세끼의 식사를 두 끼니로 줄여서 절약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아끼는 귀중품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나라 빚을 갚자는 눈물겨운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무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애국심에 불탔지만 현실적으로는 싸울 무기도 없었고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는 서민들과 연약한

부녀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의병투쟁과 버금가는 구국항일운동인

것입니다

셋째로 국채보상운동은 최초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파탄을 타개하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 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펴졌고 정부의 고관과 고종황제도 동참하는 거국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도middot군middot면 단위로 운동을 찬동 지지하는 자발적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지도급 인사들과 정부 각료들의 금연 소식이 연일 신문에 실렸고 국채보상금 마련을 위해

금연하거나 술을 끊기도 하고 끼니를 줄여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의연금을 한 푼 두 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 군인 이름 없는 백성들이 성금을 내놓았고 부녀자들은 소중히 간직했던 비녀와

가락지를 뽑아 바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일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이 같은 운동은 현대사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항영(抗英)운동에 못지않게 높은 호응도와 위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나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단시일에 전국적인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천둥소리 5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5: 천둥소리 34호 최종

대구의 두 선각자 서상돈 김광제 두 선생은 이곳 북후정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민족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서울을 거쳐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의 재정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살리자는 숭고한 애국운동에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일본 통감부가 차관이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국채는 해마다 늘어나서 상환불능의 상태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과다한 국채 부담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 점차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운동은 의병들의 무장 항일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난 항일 국권 회복운동이라는 사실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일본에 예속된 상황에서는 나라가 독립국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담배를 끊거나 하루 세끼의 식사를 두 끼니로 줄여서 절약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아끼는 귀중품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나라 빚을 갚자는 눈물겨운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무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애국심에 불탔지만 현실적으로는 싸울 무기도 없었고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는 서민들과 연약한

부녀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의병투쟁과 버금가는 구국항일운동인

것입니다

셋째로 국채보상운동은 최초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파탄을 타개하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 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펴졌고 정부의 고관과 고종황제도 동참하는 거국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도middot군middot면 단위로 운동을 찬동 지지하는 자발적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지도급 인사들과 정부 각료들의 금연 소식이 연일 신문에 실렸고 국채보상금 마련을 위해

금연하거나 술을 끊기도 하고 끼니를 줄여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의연금을 한 푼 두 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 군인 이름 없는 백성들이 성금을 내놓았고 부녀자들은 소중히 간직했던 비녀와

가락지를 뽑아 바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일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이 같은 운동은 현대사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 항영(抗英)운동에 못지않게 높은 호응도와 위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나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단시일에 전국적인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천둥소리 5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6: 천둥소리 34호 최종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 후인 1997년에 불어 닥친 IMF 환란의 금모으기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전통이 이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본 통감부가 이 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어졌던 영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도 이 운동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국채를 갚자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일본이 묵과할 리 없었습니다 통감부는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고

lsquo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rsquo가 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하기 위해 영국인 사주(社主)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의 처벌과 추방을 획책하는 한편으로 신보의 제작 책임자 양기탁(梁起鐸)을 의연금

횡령의 혐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구속한 뒤에 그의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영국과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양기탁의 재판에는 일본인 재판장 한국인 변호사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증인 등 다섯 나라 사람이 관련된 국제재판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양기탁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국채보상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국내의

관련자료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 등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탄압했던 일본 통감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발화하여 시작된 이 운동을 거대한 민중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민족지의 힘이었습니다

운동의 취지를 널리 전파한 것도 신문이었고 의연금을 접수하는 중심기관도 신문사였습니다 역사상 첫

언론 캠페인이었고 그 이후에 언론이 벌이는 여러 민중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신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음악 문예 스포츠와 같은 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전개한 문자보급운동도 바로 한말 국채보상운동이 그 효시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발행된 민족지 황성신문은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은 lsquo국민의 핏방울(血点)rsquo이요 애국심이 결집된

lsquo고혈(膏血)rsquo(황성신문 1907 11 19)로 규정했습니다 이 운동은 일제의 탄압 통합된 기구의 부재와 전략

미숙 등으로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 국민을 결집시킨 이 운동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된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주는 교훈도 매우 큽니다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는 따지고 보면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를 탓하기에 앞서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7: 천둥소리 34호 최종

나라를 구하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자는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고마움 보다는 불만을 먼저 토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합니다

일본의 빚을 떠안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을

영위했던 가련한 이 땅의 민초들이 국가에 바친 혈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순박한 국민들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지 않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등재기준의 구체적인 항목에도 부합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의 기록문화 선정 기준인 lsquo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rsquo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운동은 국제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이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이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그 후의 동복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록문화의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세계사의 주요 주제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될 것을 확신하면서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기록유산 선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천둥소리 7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8: 천둥소리 34호 최종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절미 금연 금주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어난

거국적 시민운동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해외 동포들도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3 1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대한독립을 위한 시민운동의 선하를 이루었다

국채보상운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즉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국채보상 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길을

따라

이경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9: 천둥소리 34호 최종

이러한 범시민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lsquo나눔과 책임rsquo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광문사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지자들의 나라사랑 얼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관련 유적지를 되돌아봄

으로써 100년 전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길의 동선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rarr 우현서루 rarr 광문사 터 rarr 북후정 조형물(시민회관)rarr

진골목 rarr 서상돈 고택 순이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2011년 10월 5일

국민적 정성과 성금을 바탕으로 개관

하였으며 각 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은 칠곡군에서는 한

집도 빠짐없이 국채보상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권수호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안중근 의사가 관서지

부장을 자청하여 평양의 명륜당에 선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설파 하였으며 현장에서 의연을

통한 모금을 하였고 안 의사가 운영했던

삼흥학교∙ 돈의학교 학생 들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채 보상운동

기념관은 사단법인 국채보상 운동 기념

사업회가 2002년 5월 7일 조직되어

꾸준하게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자료를

발굴∙ 보존∙정리 작업을 하고 학술회의도

개최 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고 그 바탕

위에 건 립되었던 것이다 이후 애국애족적 구국정신의 계승 사업으로 lsquo서상돈상rsquo을 제정하였고 회보인

『천둥소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였으며 기념물 조형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국채보상운동의

현대적 재해석작업과 기념사업회의 전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천둥소리 9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0: 천둥소리 34호 최종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우현서루

우현서루가 있었던 곳은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이다

우현서루는 대구지방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왜냐하면

대구광학회가 1906년 8월 대한자강회의 연락기관인

서울의 광학사 지회의 성격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사무실이 우현서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1870-1936)가 국내외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1905년 우현서루라는

의숙을 설립하였다 그 의미는 ldquo현고(弦賈 춘추시대

정나라 상인)를 벗 삼아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rdquo 우현서루에는 만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서적을 비치하고 해마다 20~30명씩의

젊은이들을 뽑아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개화 ∙ 진보 ∙

자강 ∙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일제의 방해로 7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이후 강의원(講義院)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어 일제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금연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 운동을 실천하였고 대륜중 ∙ 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가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 광문사 터

광문사 터라는 표지석은 수창초등학교와 붙은

은해사 대구포교당 뒷마당에 있다 대구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사상이 보급되어

1906년 1월 대구광문사와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었다 대구광문사와 광문회는 김광제의

건의에 의해 대구의 거상 서상돈 등 십 수 명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광문사는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교과서는 물론 계몽잡지나

신문 교양서적 등을 발간 보급하는 인쇄소였다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1: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11

이 광문사 안에는 경상북도 각 군 유지 400~500여 명으로 문회를 두어

교육구국의 활동방향을 정하였다 광문회의 이러한 신교육운동에 대해

고종황제도 1천원의 특별하사금과 교육칙유를 대구광문사에 내렸다 1907년

1월 29일 광문사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키 위한 특별회의를 열고

회의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대동광문회의 회원이며 광문사의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발기하였다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것은 독실한 신앙생활 및 독립협회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내용

ldquo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 매 명하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 인종이 강단과 열심히 없어 일제히 담배 끊기 극난하다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충의를 숭상하던 바라 어찌 힘 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 원을 내노라rdquo

| 북후정조형물(시민회관)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하니

창립총회에서 오백원이 갹출되었다 대구민의소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다 서상돈 등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대구시장 에서부터 눈물겨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난한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술 ∙ 밥 ∙

떡장수 등 영세 상인들이 번 50~60전과 1~2원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보태었다 또한 백정 걸인 등이 의연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격하고 부녀들은 은가락지와 차고 다니는 장도까지도

풀어서 의연하였다 동시에 기생 앵무도 100원을 의연

하였다 비록 일경의 방해와 간섭을 받아 군민대회가

해산당하고 연설가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2: 천둥소리 34호 최종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ldquolt전략gt지금 국채 일천삼백만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lt후략gtrdquo

| 진골목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의 여성들이 진골목(남일동)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나라 사랑에는 어찌 남녀가 다르겠느냐 하며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애국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참여자는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환 처 배씨 등 7명이 참여하였다 그날로 국채 보상운동의 참여를 선언하고 은패물을

의연하면서 한글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격문

ldquo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閨門 침실 안)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먹고 대전을 구취(鳩聚 한데 모아

합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오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의연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 행심(幸心)rdquo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3: 천둥소리 34호 최종

|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순교자집안의 후손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앙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느

보부상의 점원으로 들어가 여러 시골

장터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 후

대구 천주교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8세경

부터 독립해서 보부상을 꾸려나갔으며

35살이었던 1885년에는 이미 자기 밑에

수많은 보부상을 거느린 거상이 되었다

그는 평소 자선과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여

1891년 계산동에 지은 새 집은 무수한 나그네 식객이 유숙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남산동

일대의 넓은 종묘원 부지인 남산화원을 대구교구에 헌납하여 오늘날 대구대교구청의 토대가 되었다

천둥소리 13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4: 천둥소리 34호 최종

1997년 2월 21일은 대구지역 소수의 유지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

이다 그날은 지역의 몇몇 유지들께서 조촐한 90주년 기념식을 가

진 날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지 90년이

지나는 동안 사실 그때까지 국채보상운동 그 자체는 역사 속에 묻

혀 있었고 역사학자들 외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 와서 기념사업회

가 구성되었고 이 운동을 전국운동으로 전개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실은 그 당시 대구시에 등록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지역

에 본 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00주년의 해 그러니까 2007년에 와서 비로소 전국적인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 국가 보훈처에서도

주목하였고 대구시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 대구지역 시민들은 국채보상운

동이 김광제 서상돈 선각자에 의해서 대구광문사에서 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내면 깊

은 곳에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복원운동이 2013년에

와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면서 세계

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보다 먼저 1999년 10월 한

국의 IMF 외환위기 직후 본 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 정신

이 외환위기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 극복 정신을 규정하고

lt대구라운드 세계대회gt를 개최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어지럽

히는 악성 투기자본은 1907년 일본이 lsquo부추김과 꼬심rsquo으로 한

국에 거금의 차관을 빌려주고는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경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엄창옥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5: 천둥소리 34호 최종

제적 기반을 잠식하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삼키려는 악성 일본 제국주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세

계대회는 유효했고 한국 시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답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 할 뿐 아니라 악한

채권자의 책임을 물은 100년 전의 우리 선각자의 정신을 21세기 한국 시민은 실천했던 것이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정신의 뿌리 있는 실체를 확인하면서 이처럼 고귀한 정신을 대

구지역 나아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세계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내놓기로

했다 2015년 5월 8일 등재추진 발대식을 달구벌대종 앞에서 지역시민과 함께 거행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힘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근

본정신이 온갖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경제에 lsquo구명줄rsquo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실천운동으로써의 나눔과 책임운동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날 선포된 결

의문을 뒷면에 게재한다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범시민참여운동]

연중(월요일 추석 설날제외)

2015 6 26(금)

2015 8 17(월)

2015 10월말부터 연중

2015 5 20(수)

2015 7 14(화) ~ 10 11(일)

2015 8 15 전후

2015 10월말

2015 8 ~ 2017 12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경남 창녕 성씨 고택

대구메트로아트센터

국회의원 회관 2층

제1소회의실

국립대구박물관

대구 근대골목 내

국채보상운동 사적지

고령군 내

남북한 전역 및

중국 동북3성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상설전시

국채보상운동 학술대회

대구사학회 학술 세미나

국채보상운동스토리텔링 역사뮤지컬 황금시대

국회 토론회

광복70주년기념 국채보상운동

자료 특별전시회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

(청소년 교육활동)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국채보상운동

남북공동조사사업

기 간 장 소 내 용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6: 천둥소리 34호 최종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7: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17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문화 사회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서 유네스코 국

제회의를 통해 선정된 유산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최적의 기술을 통하여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지원

하고 둘째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셋째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부응해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기록물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물을 통하여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middot내용이면서 아울러 미래의 인류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기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및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입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

제주권 회복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진정성 독창성 역사성 측면에서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

의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국채보상운동기

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보유한 나라로서 문

화적 수준과 자긍심 제고시킬 수 있고 또한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

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

위 글은 추진위원회 발대식 홍보물에서 옮겨싣는다lt편집자gt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8: 천둥소리 34호 최종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북후정

필자는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대한 글을 2014년 대구경북연구(제13권제1호)에 투고하였으

며 동 내용을 9월 22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대구광문사는 1906년 1월 김광제 선생이 설립하고 동서양 서적을 번역 경상북도 각 가문의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발간하고 매월 3회씩 잡지를 간행하기 위해 인허를 받았다 대구광문사는

대구부 서문밖 달서교에 임시로 설치하였으나 5월 즈음에 경상북도관찰부 앞의 공공건물로 옮기고 활자

기계 등을 설치하여 영남신보 등을 간행할 준비를 하였다 6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지방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사청의 설립 문제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태휴 관찰사는 이임되었으며 후임 관

찰사가 부임하지 않아 관례에 따라 대구부사인 박중양이 관찰사서리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중양은 관찰사서리로 집무하던 당시 이사청 설치 성벽철거 등을 진행하였는데 관찰부 앞 공공건물에

사무실을 두었던 광문사를 쫓아내어 다시 달서교 부근의 옛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구광문사의 이야기이다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해서

이진현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19: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1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으

며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징 장소 다시 말해 대구광문사 터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

의 위치(대성사 경내)에 표지석이 설치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박영규 선생님이 lsquo서문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壽昌社)(지금의 대구수창학교 부근인 듯)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rsquo고 처음 추정하였으며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후임 발령 없이 떠

나자 경북관찰사 서리직을 맡게 된 대구군수 박중양은 대구광문사가 사용하던 관찰청 내 공공건물을 회

수하는 한편 일체의 지원을 중단했다고도 적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난 곳을

수창사로 비정하여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수창학교(지금의 수창초등학교)는 1907년 9월 대구향교의 동무 서무를 합쳐 신식학교로 처음 운영된

것이다 당시 대구향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교동에 있었으며 수창학교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3년 5월의 일이다 또한 수창동은 대구부 서상면지역으로 1911년 후동과 달성동 일부가 합쳐져 팔운

정(八雲町)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수창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수창초등학교의 이

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1907년 2월에는 수창이라는 명칭과 이 지역은 관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표지석이 남아있는 대성사는 1917년 9월 창립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철거된 대웅전은

1941년 건조된 것으로 대구광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규장각에 남아있는 1907년 2월과 3월에 경상북도관찰사서리 백남준(白南埈)에

의해 작성된 네 편의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동향을 살펴

보는데 매우 중요한 보고서로 국채담보취지서 금연상채회 임원명단 민의소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07년 2월 26일 보고서는 이사청의 개청에 따른 선화당 징청각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보

고서이며 1907년 3월 8일에 작성된 두 편의 보고서는 당시 경상북도관찰부의 관청 운영현황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보고서이다

백남준은 1863년생으로 1884년 동래항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무관학교주사에 임명되어 공직

을 시작하였으며 번역관보를 거쳐 현풍군수에 임명되었다 출신학교와 번역관보를 지낸 경력으로 보아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906년 10월 30일 경상북도관찰도참서관으로 임명된다 당

시 경상북도관찰사는 한진창이 임명되었으나 이사청의 개청과 선화당 반환문제로 부임하지 않고 있었

으며 대구군수 박중양이 관례에 따라 관찰사서리로 있었다 박중양은 이 시기에 일본인 거류민단과 제휴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0: 천둥소리 34호 최종

하여 성벽의 철거를 강행하고 관찰부의 건물을 일본에 불하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11월

한진창이 잠시 부임하였다가 12월 풍질을 이유로 요양을 할 때 백남준은 박중양을 대신해 관찰사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 2월 24일 보고서에 수록된 민의소 규칙 제9조에는 수창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담겨있

는데 lsquo사무소는 서문 밖(外) 전동(前洞) 수창사로 정한다rsquo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창사의 위치는 전동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동은 달서문을 지나 달서교에 이르는 길의 북쪽 부분을 말하는데 동의 경계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대구수창초등학교가 위치한 수창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후동(後洞)과 달성동의

일부가 합쳐진 것으로 그 자리를 수창사로 볼 수 없다

1907년 3월 8일 경상북도관찰부의 각 관청 20여 곳의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는 대한제국기의 지방행정

체계의 변화와 일제의 침략과정에 따른 지방관아의 변모사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취고수청(吹鼓手廳)이다 취고수청은 조선후기 취고수의 악사양성소인데 자인현감 오횡묵의

기록에 의하면 1888년 경상감영에는 20명의 취고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고수청은(보고서의 lsquo前rsquo이라

는 표현에서 이미 용도가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문사에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07년 2월 24일 보고서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1: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21

1906년 1월 대구광문사가 설립된 당시에는 달서교 인근에 권설(權設)되었다고 한다 권설은 임시로 거

처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건물과 인쇄기기 등을 갖추게 된 것은 5월 경상북도관찰부의 취

고수청으로 옮겨오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6월에는 박중양이 관찰사서리가 되었으나 7월에 대구광문

사는 만국공법요략을 간행하였고 9월에는 한진창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선화당 반환문제

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11월 한진창이 부임하고 12월에는 백남준이 관찰사서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취고수청에 있던 대구광문사가 쫓겨났으면 그 기록은 당시 대구광문사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던

대한매일신보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에는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광문사에서 국채보상

운동이 발의된 날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097년 2월로 그 장소는 경상감영의 취고수청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1907년 2월 이전 경상감영 관아를 빌려 쓰던 대구광문사는 관찰사서리 박중양

에 의해 수창사로 쫓겨났다는 기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수창사는 전동에 위치하고 있었음으로 지금의

위치의 표지석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907년 3월에 작성된 보고서에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취고수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으로 설령 지금의 표지

석이 수창사의 위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그 날의 대구광문사의 위

치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 8일 보고서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2: 천둥소리 34호 최종

지행합일

(知行合一)의 한 평생

김광제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제[金光濟 1866 7 1 ~ 1920 7 24] 선생은 부친 상하(商夏)와 모친 풍천(豊川) 임씨(任氏) 슬하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홍제(弘濟 또는 洪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선생이 태어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는 과거 남포현 소

속이었는데 남포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우제공(愚濟公) 김한(金漢)이 낙

향해 은거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곳의 김씨는 우제공의 후손이 대부분이었고 선생 또한 그의 16대

손이자 김알지의 66대 손이 된다

유년시절이나 사승(師承) 및 교유관계 등은 자세하지 않지만 고향에서 자라며 사숙(私塾) 가숙(家塾)

등을 통해 한학을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문과 낙방 후 23세 되던 1888년 무과에 급제했고 같은

해 용양위 부사용을 시작으로 선략장군 행 부사과와 통정대부 행 훈련원 첨정 등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1890년대에는 관직에 임명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고집에는 1889년 2월을 즈음해 낙향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Ⅰ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3: 천둥소리 34호 최종

한 소회를 담은 글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선생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1896년 윤이

병(尹履炳)이세진(李世鎭)과 함께 홍주의병의 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도중 발각되어 장 100도에

고군산도로의 2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의 공초문에서도 선생은 lsquo전사과(前司果) 피고 김홍제(金

弘濟)rsquo이라 지칭되었다

이후로도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00년 9월 7일 부로 동래경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월

상권분쟁을 둘러싼 갈등 중에 비리혐의로 면직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후 동년 5월에는 삼남시찰사로

임명되어 지역의 불법을 형탐했으나 강직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의 곤경

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생은 관직생활을 통해서는 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한계가 있

음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05년 11월에 체결된 lsquo을사늑약(당시 정식명칭한일협상조약)rsquo에 항거해 조

정에 올린 장문의 탄핵상소에는 이와 같은 선생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ldquo 저 외세에 의지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도리를 해치는 무리를 먼저 즉시 죽일 것이니 특별

히 성총을 힘쓰시어 맹렬히 살피시고 재야의 어진 이를 널리 구하여 일을 맡기고 부리옵소서

교육으로는 넓히기를 힘쓰시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모진 관리를 엄히 다스리시면 나라는 부

유해지고 백성들은 강해질 것이며 은혜가 흡족

해지고 가르침이 행해지면 몇 년 되지 않아 저들

의 업신여김도 보복할 수 있고 저들의 욕보임

도 씻을 수 있고 저들의 위협도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rdquo

부패한 내정과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한 탄핵상소

는 선생을 또다시 고군산도의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록 2개월 만에 사면되었고 해배 직후 법부참사

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선생은 관료생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를 사임한 직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 및 사회활동에 참여한 선생의 행적이 이를

대변한다

천둥소리 23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4: 천둥소리 34호 최종

그 첫발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시찰사 재임시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던 서상돈과의 교유가 영향

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06년 1월 선생은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대구광문

사는 동서양 교양서적 및 실학자들의 저술 등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건설 등의 근대교육 보급

에도 헌신한 출판사였다 특히 광문사 내에 조직된 문회(文會)라는 계몽운동 단체는 사회문제교과과정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대구광문회는 국채보상운동의 모태이기도 했다 1907년 1월 29일 회명을 대동광문회[회장 박

해령(朴海齡) 부회장 김광제(金光濟)]로 개칭하기 위해 특별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 1300만원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안과 함께 의연금 800원을 기탁한 것

이다 참석한 회원 200여 명은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광문사 사장인 동양자 선생도 발기연설과

함께 자신의 담뱃대담뱃갑을 버리고 3개월 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도 함께 내놓았다 다른 회원

의 의연금도 이어졌는데 이로써 당일 모금된 금액만도 2000여 원에 달했다[당시 쌀 한말은 1원 80전]

ldquo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

라rdquo

2월 초순 선생은 서상돈과의 공동명의로 lt국채보상취지문gt을 반포했다 이는 《제국신문》(2월 16일)

《대한매일신보》(2월 21일)에 보도되는 등 취지서는 국내의 언론사 계몽단체뿐만 아니라 국외 일본 유학

생단체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 발송되어 이후 국채보상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2월 21일 대동광문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를 설립해 창립총회에서 500원을 모금하는 한편 같

은 날 북후정(北後亭)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3월 1일에는 대한자강

회 임시평의회에 국채보상에 관한 의안을 제출하여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으며 모금운동이 본 궤

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채보상연합회의소 부의장 국채보상금지원금총합소 검사원 등을 역임하며 운동의

조직화에 기여했다

국권피탈의 암운이 드리운 시기 선생은 국채보상을 통해 경제적 종속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들불처럼

번진 운동을 무력과 간계로 진압한 일제에 의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해 문무쌍전(文武雙全)에 입각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국내로 복귀해 제 2의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5: 천둥소리 34호 최종

3 1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을 역임

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20년 7월 24일 마산에서 급서하기까지 55년간의 그의 삶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으나 끊임없는 자기

변용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을 계몽했던 그에게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헌신

과 열정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실천은 당대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짧지만

강렬히 불타올랐던 국채보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 유적지

1 김광제 독립지사 묘역(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122-1)

2 독립지사 김광제 기념사업회(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로 35 3층)

천둥소리 25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6: 천둥소리 34호 최종

나눔과 책임

입양아동 인권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다 불이익과 편견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으로 빚어진 결과가 많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나는 두 아이의 입양부모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한 후 다시 lsquo친양자입양rsquo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다

정리되었지만 딸의 기본증명서에 성이 바뀐 것과 아들의 기본증명서에 lsquo출생rsquo 대신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lsquo법 제52조에 의한 작성rsquo은 lsquo기아발견rsquo을 의미한다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lsquo기아발견rsquo이라고 적나라하게 명시된 것을 그나마 투쟁 끝에

바꾼 결과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기록을 삭제하거나 친양자입양증명서로

옮기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숙제로 남아 있다

기본증명서는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기본서류다 주민센터에서 아이들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나

은행에서 아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직원을 보면서 그리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입양인의 인권을 몸소 체험하며 반드시 해결할 것을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향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닐 때마다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입양할 당시에는 입양기관이 대다수의 입양가정에게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집에서 낳은

것처럼 허위출생신고를 하여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해주었다 국가가 입양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 같은 허위출생신고는 입양부모들 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 허위출생신고가 원천봉쇄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당시 허위출생신고 대신 합법적인 양자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신고를 했고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행 후 아들의

기본증명서를 보는 순간 놀랐고 친양자입양청구재판을 통해 법적으로는 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안가정운동본부 이사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7: 천둥소리 34호 최종

OECD 국가 중 유일한 해외입양국 겉도는 국내입양정책

한국은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2013년 5월에 헤이그국제아동

입양협약에 가입해 2016년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인권과 관련한 핵심조약으로 아동이

원래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불가능할 경우에

국내입양이나 가정위탁 등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고 이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국제입양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입양은 친권이 입양부모에게 주어져 영구적인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고 가정위탁은 기존 친권을 유지하며 친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협약이나 국내법률 모두 아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lsquo가정rsquo에서 자라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집단적 생활시설인 아동복지시설 중심에다가 국가 방임형 해외입양 중심의

정책을 펼쳐 가장 나쁜 경로로 아동정책이 그동안 흘러왔다

국제조약까지 비준한 정부가 21세기 중반부터 입양에 대해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8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우선추진제에 의해 해외입양이 보류된 것이 주 원인이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 최소 1천명 이상 입양되고 있고 이중 반 이상은 해외입양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해외입양의 주요 국가로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동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우선 필요하다

국내입양 부모의 연령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대에 입양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나이 차이를 60세 미만으로 하고 있어 입양부모와 아동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천둥소리 27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8: 천둥소리 34호 최종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입양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통계자료나 입양부모들의 자조모임 등을

통해 느끼는 공통점은 소위 중산층 이상 부자들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거나 이하의 가정에서 입양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는 가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입양아동 14세까지 월 15만원의 양육비와 17세까지 의료급여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생색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양육비 지원 정책을 시작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특히 한 가족 내에 누구는 건강보험이고

누구는 의료급여를 받는 차별을 조장하는 의료급여 혜택은 그야말로 생색내는 정책으로 실효성이 매우

낮다 그에 반해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고 아동시설에서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시설아동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입학금과 등록금도 지원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할 뿐 아니라 관리운영에 초점을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즉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lsquo돈 때문에rsquo 입양했느냐고 반문한다 가끔씩 입양아동의 인권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입양한 부모는 없다 오히려 국가입양정책의 부실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방임의 결과를 이타심이 강한 국민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불법입양을

양산하고 (가)호적도 없이 (해외)입양될 때까지 인구통계에도 잡지 않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에 시설운영비를 지원하는 이상한 짓을 해 왔다

많은 입양부모들은 처음 한 아이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되고 나서

입양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입양되지 못해 시설에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개입양 1세대 입양아동이 대학에 진학했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와 인권을 고려하면 입양아동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너무나 절실하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고려되고 정부는 입양아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그동안 lsquo무책임rsquo

lsquo방임rsquo으로 자행한 것을 반성하고 lsquo인권rsquo과 lsquo평등rsquo lsquo정의rsquo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29: 천둥소리 34호 최종

청년에게 길을 묻다

정홍래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졸업 유예생 학자금 대출자 주거 빈곤자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지독한 현실이다 청년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고 내 주위의 친구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lsquo청년rsquo이라는 단어가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한 정치적 구호나 기업가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될 때 나는

청년으로서 분노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대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회

체계들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미래세대의 자원인 청년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줄어든 청년인구가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정책은 일시적

해결에 국한되어 있고 기본적인 범위와 담론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세대

간 불평등을 유발하고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어

사회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러 한 의 미 에 서 지 역 에 서 처 음 출 범 하 는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와 청년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둥소리 29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0: 천둥소리 34호 최종

더 나아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청년조직을 발굴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있는

청년허브와 같은 모델을 지역에 도입해서 청년들이 청년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lsquo호혜rsquo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lsquo자립rsquo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젊은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청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젊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젊은 나라이다

졸업 유예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나

lsquo열정 페이rsquo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업무와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말 한번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던 내 후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쓸 때의 심정을

하소연하던 내 동생

좁디 좁은 쪽방에 몸을 뉘여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내 동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아본다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1: 천둥소리 34호 최종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 소개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는 청년들과의 다양한 소통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와 청년정책수립에 참여하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에서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위원회입니다

역할로는 대구시의 청년 정책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자문하는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며 당면한 청년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소통채널로서의 역할을 통해 청년 소통 행정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는 지역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29명(남 16명 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원회와 다른 특징은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구의 대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대구시는 행정지원을 담당하며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기획소통 일자리 창출 문화복지 분과 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며 대구시 관련 부서 및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획소통분과에서는 청년인재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활성화 사업 위원회 운영기획을

담당하며 일자리창출 분과에서는 일자리 및 청년 실업대책 관련 정책 청년창업지원제도

운영 자금지원대책 사업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복지 분과에서는 청년 문화축제 및

거리조성 청년재능 기부사업을 담당합니다

올해 청년위원회에서는 조례제정을 통한 청년센터 건립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청년들의

실태조사를 통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며 지역청년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천둥소리 31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2: 천둥소리 34호 최종

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2015년 4월 11일(토) 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이 모여 청소년문화축제인 어울림

마당(228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시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자 작은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잘 몰랐기에 배우

면서 부스 운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형문화재이든 무형문화재이든 문화재의 손실과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대구 속에 있는 문화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노

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어울림마당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국채보상운동과는 크게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남녀노소 불문 청년들도 동참

하면서 학생들도 동참하였다는 사실과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힘을

모은 일을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기회로 시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운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여서 잘 오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가 지

난 뒤 많은 청소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국채보상운동 북으

로 스티커 작업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습자료 제공과 돼지저금통 사은품까지 가져

가는 어울림마당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청소

년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국채보상

운동기념관에도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문화축제 어울림마당

국채보상운동을

소개하다

이배영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①]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3: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33

라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한 학생도 처음에는 힘들고 책에서만 보던 어려운 역사를 청소년

들에게 깨우치고 알리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어울림마당을 하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청소

년들이 많은 역사들 중 하나를 알게 되고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과 나라의 발전도 좋지만 역사의 발

자취를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고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교육상담학과라는 타이틀과 크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인식과 청소년들은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봐야하는 청소년이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

하고 자기가 성장하고 사는 지역의 문화 정도는 얕지만 어느 정도는 알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대구 시민들이 알고 전 국민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알아 나아가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

재를 기원합니다

ldquo역사 책 속에서 보는 단순한 일이라고 그냥 책 속에서 지나쳐 보았던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국

채보상공원은 들어봤지만 그 곳에 국채보상운동의 기념관이 있었는지 몰랐

고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다rdquo

-남자 고등학생-

ldquo학생들이게 말로는 역사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막상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학교 밖에는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청소년

문화축제에 자녀를 데리고 와 보니 담당자분들이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쉽

게 일깨워 주시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신

서하고 좋았다rdquo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아버님-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4: 천둥소리 34호 최종

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인 지상철이 개통이 되었다 3호선은 지하철인 1 2호선과는 달리 3호선은 지상철

로 되었는데 지상철 이름도 지상위로 달려서 하늘열차라고 시민의 공모전으로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4월 23일(목) 오전 10시 20분에 개통식을 대구 어린이회관 광장에서 개최했으며 4월 23일(목) 오후 2시

00분에 본격적으로 고객을 태우고 하늘열차가 개통을 했다 많은 정책 관계자들과 함께 날씨가 꽤 더움

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열차의 태어남을 축하해주러 왔다

하늘열차가 본격적으로 2시에 시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승도 편하게 칠곡에서 범물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빠르게 특히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65세 이상이시면 무료로 지상철을 탈 수 있고

대신동이나 서문시장을 버스로 힘들게 가시지 않으셔도 바로 앞으로 가니 지상철이 생기고 많은 사람

들이 시간적인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남녀노소 데이트 가족 소풍 등 놀기에는

적합한 수성못을 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지상철을 통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면서 환경적인

오염의 걱정도 훨씬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칠곡에 사는 학생들 중 경산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먼 거리

때문에 늘 통학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경제적으로 교통비도 버스-

지하철은 환승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용을 내야하는

부담이 있으며 3번 정도를 버스rarr지하철rarr버스로 갈아 타야하는 힘든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상철 개통으로 인해 신남역에서 환승을

통해 지상철-지하철2호선 환승rarr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편리

한 이동성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게 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 lsquo하늘열차rsquo

하늘을 달리다

[천둥소리 청년기자단 현장르포 ②]

이지애 기자대구한의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lt폴리 지상철gt 출처_대구시

lt노선도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5: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35

또한 주거 밀집 동네에서 지나갈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깨끗했던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매

너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폴리 지상철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하늘열차에게도 속앓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첫 째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하철은 기관사가 운행을 하지만 하늘열차는 사람 없이 기

계가 무선으로 조정을 해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만약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요원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건 있었다 그리고 한 구간 한 구간마다 휘어지는 부분도 있고 내려다보면 강이 있다 보니

야경이라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간의 무서움도 있다고 한다

둘 째 스크린도어가 낮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낮기 때문에 어른들께서는 잘 기대서 서 계시는 경우와 손을 얹

어 내밀고 있어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 째 지상철과 타는 곳의 사이 간격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지상철이 타려고 다리의 보폭을 넓혀 타는데 어른은

무리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거리감이 좀 있으며 특히 급하게 탄다고 뛰어 타다가 문이 닫히면 발이 빠질 위험

도 있으며 시범운행한 날에는 아이의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넷 째 지상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일부러 끝과 끝을 달리게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

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칸수가 지하철보다 작기도 하고 평소는 7분씩 운행을 하다가 출퇴근 시간

대에는 5분씩 운행을 하지만 사람이 금방차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조금 빡빡한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할아버지middot할머니께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으시고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무료 탑승을 즐기시기 때

문에 출근길에는 가급적이면 이용을 적게 하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지하철보다 칸수가 작기 때문에 앉아가는 의자의 수가 부족하다 회사 일에 치여 피곤한 지친 몸을 이끌

고 또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앉을 자리가 많질 않아서 쉬지 못하

고 서서 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급정거 시 서서 졸다가 사고를 유발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어째든 우리 실생활에서 하늘기차인 지상철은 대구의 아주 큰 자랑거리다

환경도 보존하고 경제적middot시간적 효율성을 볼 수 있고

주말에 편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야 하늘기차입니다

하늘기차 많이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세요

lt모노레일gt 출처_대구도시철도공사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6: 천둥소리 34호 최종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숲 속 오솔길 따라 골바람은

먼 산마루에 바람꽃을 피우고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

덩그러니 매달린 마지막 입새 하나

저물어 가는 계절을 흔들어 깨우며

호젓하게 켜 있는 적멸 경고등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홀로 아직 그 한목숨 내려놓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으며

퇴색한 만장輓章으로 펄럭이는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아름다운 옛 추억 속 기적같이

바람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한송이 작은 꽃으로 환생할까

생애 단 한 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환생幻生

천둥문학

박 호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7: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37

약력

bull 계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bull 한국문인협회 회원

bull 한국문학예술가협회 서울 경기 지회 회장

bull 공저 시집 「아름다운 동행」 「만남이 있는 여울목」 등

천둥문학

이흥렬

영화 같은 삶

올 가을이 되면 내가 회갑을 맞는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내어 내가 살아온 인생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4월초에 저녁때가 되어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예전에 ldquo앉은뱅이 꽃rdquo 영화를 제작 감독하신 김영한 감독님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도 궁금했다

몇 마디 안부도 나누기 전에 영화 투자자가 생겼으니 영화제작 계약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가 뜬금없는 소리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고 그분은 좀 전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월요일 날 가계약 하러 가겠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8년 전에도 영화제작 계약을 해 놓고 투자자가 부도를 내고 일본으로 도주해버렸다는 소식만 전하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또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 집착을 할까 나만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나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분명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약속했던 것처럼 월요일 날 투자자 되시는 사장님과 계약금 일부를 가지고 와서 가계약을

하고 일주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과 변호사님 투자자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나의 대변인은 장서태 원장과 우리교회 목사님이 되어주시면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게 숙제를 주고 갔다

60평생을 살아 온 스토리를 써 주면 그것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증언과 아련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써내려가는 동안 문 밖 출입은 못했지만 형제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즐거

움과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 되살아나 집사람 몰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아무도 나의 장래를 걱정하고 심각하게 의논해주는 가족이 없고 그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어항 속에 물고기처럼 살아온 나 철이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 몸부림쳤던 순간들 실낱같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애절함의 몸짓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디며 뜬 구름 잡듯이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을 했던 날들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어느덧

노을빛 같은 추억으로 물들어 저미었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삶으로 다가왔다

life

like

a m

ovie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8: 천둥소리 34호 최종

어저께 그 원고를 전해주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참 잘 견뎌왔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는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단 말인

가 한 번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두 번씩이

나 제작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런 영광을 안았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연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 나의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 담고 싶은 욕심은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의 아픔이고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의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그 영화를 통해 장애자녀를 둔 가족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가 되고 회복되어 그 장애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가능성과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분명 흥행도 될 것이고 좋은 영화로 남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는 말초적인 감성은 너무 풍부한데 반해 인성적이고 가슴 열리는 감수성은 너무 매 말라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을 해도 인성이나 인품은 선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설혹 그

어떤 이가 몹쓸 짓을 해도 한 번쯤은 용서까지는 못하여도 이해하고 처벌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우리

는 돌부터 먼저 들고 시작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장애인 자신도 나는 장애인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역동적이고 역발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들을 극복해 왔다

그런 힘이 영화를 만들게 한 힘이 아닐까

나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창대하시기에 영화를 통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장애인

예술마을공동체가 이번 기회로 더 빨리 지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약력 bullrsquo14 (사)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 bull현 대구문협 회원 21세기생활인문인협회회원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39: 천둥소리 34호 최종

회원광장

지난 4월 지구촌의 물 올림픽인 2015 제7차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계물포럼은 물 관련 세계 최대의 행사로서 3년 주기로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대구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물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이다 삶터의 첫 조건이 물인지라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노라면 평소 물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lsquo불편한

진실rsquo을 외면하고 있거나 불편함이 없어 감각이 무디어진 탓일 수도 있다 물과 공기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 수돗물을 관장하는 본부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배수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 배수지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이곳 배수지로

흘려보내면 이곳에서 다시 더 낮은 곳에 있는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곳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힘으로 별도의 가압시설 없이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비용도 최소화된다는 이치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가정이든 사회의

세계물포럼에 즈음한 단상

권태형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천둥소리 39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0: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40

공동체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얼마나 많은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듯하다

그 배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목이 며칠 사이에 어떤 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는 앙상했던

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머지않아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생존본능에 따라 부족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봄을 맞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잘 알고 있다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고 생명수인 것을 자신을 살리고 성장케

하는 모든 영양분은 물을 통해서 뿌리로 흡수된다 물은 나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 거의 모든 생명체는 물에 명운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물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냇가에서 여름철에는 미역 감고 고기 잡으며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댐이 고향 마을 주변에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크게

바뀌어 갔다 고향 마을은 겨우 수몰을 면했지만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뿔뿔이 흩어져

타향으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가 쓰는 물의 양을 지금보다 줄일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재화이든지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연중 고르지 않고 부족한 강우량을 가진 많은 지역에서 만일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나

댐을 고안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저수량의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는 근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점점 악화하는 수질 문제 역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자신을 제쳐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번에 개최된 세계물포럼은 인류가 직면한 물 관련 문제를 lsquo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rsquo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뤘다 주제별 과정 정치적 과정 지역별 과정 과학기술

과정 시민포럼 특별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번 세계물포럼은 이 순간 우리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 포럼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물 문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1: 천둥소리 34호 최종

회원광장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먹일 닭죽을

직접 끓이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지수초등학교의 솥단지를 보니까 영감이 떠올랐다 이 학교는 학교의

재벌 창립자들을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정구 효성의

조홍제가 모두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지수에서 가까운 남강의 가운데 복판에는 lsquo솥바위rsquo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암(鼎巖)이라고도

한다 솥단지 모양의 이 바위 밑 물속으로는 다리 세 개가 뻗쳐있다 구한말에 여기를 지나가던 어떤

도사가 이 솥바위를 보고 반경 3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온다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이 모두 이 근처에서 나왔다 솥단지는 밥을

상징한다 밥은 생명이다 밥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밥이 하늘이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솥단지의 象徵(상징)

박영현본회회원

천둥소리 41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2: 천둥소리 34호 최종

그래서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세 발 달린 솥단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뒤집어보면 왕은 백성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 델피(Delphi)신전의 박물관에도 다리

세 개 달린 솥단지가 성스러운 유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金山寺)는 신라시대 진표율사(眞表律師) 이래로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이다

약 10m 크기의 장엄한 미륵불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미륵불의 발밑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받쳐져 있다 엄청난 크기의 무쇠 솥단지 위에 미륵불이 서 있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산사 순례객들이 재수있다고 해서 반지하에 있는 이 무쇠 솥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보는

것이 관례였다 금산사는 김제 만경 곡창지대의 중심지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곳이다 미륵전의 커다란 쇠솥은 이 곡식을 가지고 밥을 해준다는 의미의

종교적인 솥단지 아니었을까 미륵불(메시아)이 밥을 해주는 셈이다 솥단지의 밥은 혼자 먹으라는 밥이

아니다 모두 나눠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띄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상급식으로 혼란스럽다 지혜를 모아야겠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선친은 명당

신봉자다 자기 선친의 유골을 메고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명당은 찾지 못하고 고향의 령으로

돌아와 마을 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안장하게 되는데 주지스님의 예언이 lsquo대한민국에 국부가 나올

것이다rsquo 라고 했다 예언대로 한국의 제 1 부자가 됐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3: 천둥소리 34호 최종

회원광장

1 들어가면서

70년 분단의 세월은 이미 남북한 간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마저 심각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였다

독일의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실시한 동독 주민에 대한 200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주민의 63가

서독주민에게 차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감을 없애는 통합이 어렵고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통일을 위해 필요한 대외적 전략을 검토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질감의 축소방안에

대하여 검토해본다 이질감은 통일의 장애요인을 넘어 의지와 직결 된다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문화 다민족 시대라는 세계적 분위기이지만 말과 조상이 같은 단일 민족이면서도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전쟁불사론 마저 남의 일처럼 쉽게 말 하고 있다 남북한 간 진정한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으려면 다음 몇 가지가 시행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수 민간 접촉으로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장려해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역사연구와 보전은 중국이나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남북한 서로가 시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의 신뢰에 대한 장애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극복방안을 수립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이산가족의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망향의 한을 품고 고향을 그리다가 먼저 간 원혼은 그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한 서린

염원은 심각한 적대감으로 변하여 통일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분단 70년 남북한 이질감

축소 방안에 대한 소견

박 철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천둥소리 43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4: 천둥소리 34호 최종

넷째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인식을 부각 시켜서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이 될 수 있도록 통일교육내용이

개편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험담 소개

직선거리 20 차타고 내린 시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마주앉은 탁자에는 처음

보았지만 삼촌은 아버지와 닮아 있었고 고모 역시 낯설지 않았다 만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녀는 가슴에 젊은 지도자()의 뺏지를 달고 있었고 첫 마디의 말이 ldquo오늘 이렇게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장군님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rdquo고 반복해서 말 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갱이는 머리에 뿔난 것으로 상상했었고 북한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풍댐

정도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현재의 북한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체재유지의 수단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있지만 장마당에는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며 자유대한을 그리는

북한주민이 부지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듣고 있다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여 두

박스 약 300개를 선물로 준비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담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게 정말 최고의 선물

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준비해간 선물이 잘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한다 두 시간씩 다섯 번 만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별상봉 이란다 상봉이면

상봉이고 작별이면 작별이지 작별상봉은 뭔지 모르겠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게 60년 이상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천우신조로 이산가족을 만나본 마치 로또복권 당첨 즈음

되는 행운의 가족이 경험한 결과이다 한 번 만나본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나 기대치는

없다

차라리 늙어서 먼저 가신 큰 고모님은 잊을 수도 있으련만

3 통일을 바라며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은 작금에는 다민족이니 다문화

느니 속에서 송두리체 뿌리가 날아간 듯하고 이 땅에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제 원리로만 통일을 보는 시각은 변해야

한다 이러면 득이고 저러면 손해라는 논리는 적어도 동족 이라는 이름 앞에는 너무 적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5: 천둥소리 34호 최종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나눔을 실천하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

본회 신동학 상임대표가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38호

회원이 되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도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 운동에 참여 lsquo노블레스 오블리주rsquo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으로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천둥소리 45

2015 상반기 민립의숙 성황리에 마쳐

2015년 3월 4일 개강한 민립의숙이 국채보상

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매주 수요일 3

시부터 4시까지 성황리에 상반기 강의를 마쳤다

첫 강의 228 학생의거와 대구정신(최용호 경북

대 교수)을 시작으로 대구의 31운동(김동환 31

구국운동 총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그는 누구인가(장호병 대구문협회장) 국

채보상운동을 말한다(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유림의 독립운동(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대

구의 나무 이야기(이정웅 前 대구시 녹지국장) 대구 패션 이야기(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이순

신 장군과 대구(하오명 이상화기념사업회 부회장) 역사 속의 대구약령시(신전휘 前 (사)약령시보존위원

회 위원장) 팔공산의 가치(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세계최초금속활자 証道歌字(남권

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동요lt오빠생각gt의 작곡가 박태준(홍세영 영남작곡가협회 회장) 거조암

과 보조국사(지눌태관 스님 거조암 주지) 625와 대구 - 문학

이야기(김종욱 대구이야기 저자) 625와 대구 - 미술이야기(

권원순 미술평론가) 625와 대구 - 교육이야기(심후섭 아동문

학가) 625와 대구 - 음악이야기(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

표)까지 17회에 걸쳐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으며 150여

명이 수강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6: 천둥소리 34호 최종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로 지정받아

4월 10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lsquo청소년 이용 권장시설rsquo로 지정받았다 청소년

이용 권장시설은 청소년 지도사를 배치한 문화시설 과학관 체육시설 평생교육시설 사회복지관과 같은

기관 중 청소년의 수련활동과 여가선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여 지정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방문 활성화 유도 사업 참여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은 대구 시내 7개 관광안내소에서 판매하는 대구관광스탬프트레일을 소지한

관광객이 지정된 5개 권역 53개 관광지를 방문하여 대구 및 대구 근교의 관광자원을 탐방하고 방문확인

스탬프를 책자에 날인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내국인 30개소 외국인 10개소를 방문한 책자를 접수하면

대구관광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안내데스크에서 확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에도 lsquo우리가족 박물관 탐방rsquo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실시한다

전국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 관람한 인증사진과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가족에게 상장과 함께 푸짐한 상품을 준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포함한 21개의

박물관middot미술관이 참여하며 자세한 내용은 탐방 홈페이지(wwwemuseumgokrtour)에 접속하여

확인 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출범

지난 6월 8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보고회 및 시민참여

발대식이 KK중앙주유소 대강당 및 달구벌대종 앞 광장에서 열렸다

1 2부로 나눠 치러진 이날 1부 행사에는 각계 기관장 및 단체장 전문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회를 갖고 위촉장을 수여하였으며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제2부 시민참여

발대식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문희갑 김영호 공동추진위원장의 개회사 및 취지사가 있었고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7: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47

권영진 시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의 격려사에 이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결의문 선포가 있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와 공유하는 정신으로 발전시키고자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의 첫 출발은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에 이어 지난 6월 20일 국회회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해 국회와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김영호 본회 명예이사장 정진석 교수

등 학계전문가들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ldquo대구middot경북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정신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rdquo고 강조했으며 권영진 대구시장도

ldquo 위 대 한 유 산 인 국 채 보 상 운 동 의 기 록 물 을 유 네 스 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며 선현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길rdquo 이라고

말했다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8: 천둥소리 34호 최종

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방문단체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경북지부 615 대경본부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달구벌고등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어르신복지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위니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선생 창의역사교실 반디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산격중 동아리 책벌레 책으로

만나는 세상 심인고등학교 아트스토리 연합연구회 참인재교육 죽전중학교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함지고등학교 효성중학교

2월 방문단체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경북 인성교육원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관실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문승자님 外 아트스토리 인권운동연대 중구 보건소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 빛 패트롤맘 대구 현대사진영상학회 DEXCO

1월 방문단체

(사)커뮤니티와 경제 (재)아름다운가게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시설관리공단 대구학교도서관 사서협의회

마이앙코르은퇴자협동조합 아트스토리 충청 효 교육원 효성 실버홈

3월 방문단체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구광역시지부 중구지회 50사단 게이트볼 협회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공무원 연수원 대경뿌리학교 대구 세명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대구경북인성교육원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전 해설이있는 문화답사 동덕초등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박헌제님 外 중구시니어클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커뮤니티와 경제 효성 실버홈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49: 천둥소리 34호 최종

천둥소리 49

4월 방문단체

(사)달성문화선양회 (사)대구생명의 숲 50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여자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경일중학교 공군 제11전투비행단 공무원 연수원 군산시 능률협회 금포초등학교

남산고등학교 다사중학교 달성중학교 대구광역시 관광과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양학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서중학교 대진고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동변중학교 동본리중학교 마산YMCA

매호중학교 불로중학교 사단법인 다다 상주고등학교 서기관 성광중학교 성보재활원 라온동아리

신천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안일초등학교 오마이뉴스 울산지역 방송대 풍경소리 월암초등학교

인권운동연대 입석초등학교 중구 기동대 예비군 중구시니어클럽 중구청 관광과 진명노인복지센터

천내초등학교 청구중학교 평리중학교 학남중학교 행복한 부자학회

6월 방문단체

(사)온사랑복지회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11작전사령부(K-2) 50사단 가창중학교

공무원연수원 논공중학교 대경뿌리학교 대구광여기 도시브랜드담당관실 대구광역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정책기획관실 대구대천초등학교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동촌중학교 새벗도서관 아름다운가게 영남중학교 돌이켜봄반

영남중학교 역사랑걷기반 울산교육청 인권운동연대 청구중학교 커뮤니티와 경제 협성고등학교

5월 방문단체

(사)대구생명의 숲 (사)커뮤니티와 경제 (사)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50사단 501여단

강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2학년 4반

경북대학교사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4반 경상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화여자고등학교

골목투어 공무원교육원 관천중학교 내서초등학교 대구관광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역시 체육진흥과 대구남동초등학교 대구북부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태암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구해서초등학교 도시계획과

도원중학교 범물지역아동센터 범일중학교 부경대학교 사학과 북동중학교 상서고등학교

서재초등학교 아름다운가게 아이체험 안심중학교 안치국님 外 영남공업고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와룡고등학교 왕선중학교 월서중학교 율원중학교 의령여자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커뮤니티와

경 제 팔 달 중 학 교 평 화 통 일 대 구 시 민 연 대 푸 른 나 무 심 리 상 담 센 터 학 남 중 학 교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50: 천둥소리 34호 최종

5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편집후기

계절의 변화를 못 느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올 봄 ldquo국채보상운동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rdqu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천둥소리 편집자라는

위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국채보상운동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화두만이 머릿속을 메웠을 뿐이었다

늦은 원고를 서둘러 추슬렀지만 평소처럼 천둥소리를 기다린 애독자들에게 미안함만 커질 뿐이다

이번호 빈자리를 잘 메꿔주신 편집위원들께 감사드린다

편 집 자

편집위원 최 경 집

lsquo국채보상운동rsquo세계화 추진 감회가 새롭다 역사교과서 한켠에서 잠자던 국채보상운동에 진정한 가치

를 부여해 오늘날 lsqu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rsquo라는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만들기까지는 기념사업회의

선양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인과 공유할 그날이 기대된다

생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에 애착이 컸던 고 박영규middot전호영middot유상종 이사님 생각이 난다

편집위원 우 웅 택

메르스 충격 국회법 파동 중국 연수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오는 lsquo천둥소리rsquo의 울림처럼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과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편집위원 남 정 원

천둥소리 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age 51: 천둥소리 34호 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