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와 함께한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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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와 함께한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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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와

함께한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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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표현에서 가장 먼저 한 수업은 자기소개서 쓰기였다. 사실은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수업에서 첫 수업부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었지만, 예전부터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대는 꼭 이렇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손이 아플 때 까지 써내려갔던 것 같다. 글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지금까지 나의 인생과, 나의 꿈이었던 것,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한 것, 그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였다.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나를 한 번 돌아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많다, 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첫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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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아본 인상깊었던 과제는 바로 캠퍼스 투어였다. 사실 이 과제는 뒤에서 이야기할 인물에 대한 글쓰기보다 나중에 받아본 과제이다. 이 과제의 내용은 무려 조원들끼리 모여 캠퍼스의 특정한 곳을 정해 그곳을 배경으로 무려 포즈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이 과제를 받고 정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인문관을 배경으로 찍기도 하고, 벛꽃을 배경으로 모두 다 함께 뛰어오르며 찍기도 했다. 조원 중 한명이 나무에 매달렸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과제가 사표의 전통처럼 후배들에게도 쭉 이어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 이 글의 배경은 학술정보원 앞에 있는 호상(虎像)으로 본교 시설들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설이다. 무려 안암 본 캠퍼스의 호상보다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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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과제이자 두 번쨰로 쓰게 된 글은 인물에 관한 글쓰기, 혹은 자기소개서였다. 나는 이 주제를 듣자마자 바로 인물에 대한 글쓰기로 가닥을 잡았다. 자기소개서는 이미 첫 수업에서 쓰기도 했고, 무엇보다 알리고 싶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나이대의 친구들보다 역사에 더 많은관심을 갖고 있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역사를 공부하던 중, 민족의 영웅이었으나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서 등장조차 금기시된, 몽양 여운형(사진)에 대하여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를 알리고 싶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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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백범 김구’에 대하여 묻는다면, 백범이 행한 독립 운동에 대한 업적들을 세 가지 이상 늘어놓을 수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며, 혹자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을 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몽양 여운형’에 관하여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그 사람은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으나, 현재는 교과서에서조차 그 이름이 짧게, 어떤 경우는 아예 등장조차 않는 몽양 여운형. 그는 어떻게 살다 간 사람일까.

몽양은 1886년 5월 25일. 경기도 양평군 신원리에서 출생했다. 정계에서 소외된 양반이었던 가문에서 태어난 몽양은 상반된 성격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두었는데, 할아버지는 양반으로써의 허례허식에서 탈피하여 동학 운동과 계몽 활동을 활발히 하던 저명인사였고, 이에 반해 몽양의 아버지는 양반이라는 자존심에 똘똘 뭉친 다혈질의 지주였다. 이렇듯 상반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자라나던 그는, 할아버지를 우상,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으며 성장해갔다. 이는 후에 몽양이 독립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몽양이 18세가 되었을 무렵 몽양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심과 함께 가세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이 때 민영환이 세운 흥화학교에 다니던 몽양은 어떻게든 가세를 되살리기 위해 흥화학교를 자퇴하고 우무국제기술관에 취직하기 위해 우무학당에 입학한다. 이 당시 시대상은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였는데,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슬금슬금 조선을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본이 가장 먼저 건드린 것이 조선 최고의 기술자들이 모인 우무국제기술관과 우무학당이었는데, 당시 몽양에게도 일본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평생이 보장될만한 돈과 직장을 제안 받는다. 가세가 기울어지던 상황에 권위의식과 품위의식으로 뭉친 몽양의 아버지는 몽양에게 당장에 그 제안을 수락할 것을 명령하지만, 그 당시 몽양은 도

잊혀진 영웅, 몽양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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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운동-국체보상운동 등-을 펼쳐나가며 심지어는 우무학당 졸업 한 달을 남겨둔 상태에서도 일제 반대 시위를 하던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몽양은 “나를 일제의 개로 만들려는 것이냐”며 분노했다. 그 후 몽양은 기독교에 투신하고 본격적으로 조국을 위한 운동에 뛰어든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는 운동에 몽양은 막막한 벽을 느낀다. 당초 몽양의 목적은 “조선 내부”에서 “기독교”를 통한 구원이었으나, 계속되는 좌절에 몽양은 이러한 방법은 불가능함을 느끼고는, 그의 동생을 미국으로, 몽양 본인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역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이 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저 유명한 ‘민족 자결주의’의 원칙을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그저 독립운동 좀 하는 평범한 유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몽양이 [독립운동가]로써 이름을 떨치는 계기가 된다.

그가 가장 먼저 했던 활동은 바로 신한청년단의 창설이었다.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던 그 신한청년당 말이다. 이 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쌓은 몽양은 조선쪽에도 역시 사람을 파견하고 독립에 대한 의식을 조선인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했고, 이로써 빚어진 것이 바로 3.1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이 끝난 후, 독립운동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몽양은 이 임시정부에서 의정원의원과 외무부 차장을 겸임하며 독립 운동에 힘쓰게 된다. 몽양이 다른 운동가와 차별되는 점이라면, 바로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면 세력을 따지지 않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 없는 몽양덕분에 임시정부는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게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 일화에 따르면 지원을 받기 위해 마차와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빵을 도끼로 부수어 먹으면서 고비사막을 횡단하여 러시아에 도착했다고 한다. - , 이 역시 조선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몽양은 사회적 저명인사로써 여러 가지 연설 활동을 다니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동남아 순회 연설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런던에 들러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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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관람하던 중, 일제의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이 때의 후유증으로 몽양은 평생을 고생했다.

3년의 수감생활이 끝나고, 몽양은 조선중앙일보-현재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의 사장에 취임한다. 몽양의 취임 후 조선중앙일보는 조선, 중앙, 동아로 일컬어지는 3대 신문사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기형적인 수입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망하기 직전의 중앙을 몽양이 끌어올린 것이다-, 3대 신문사 중에서도 가장 독립 운동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으며,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이순신 장군 묘소 정리 사업(일제강점기에!)이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삭제사건으로 폐간 당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끊임없는 원동력을 가진 몽양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독립 운동을 했으며, 일제 패망 직전, 그 누구도-백범 김 구조차조!-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독립 운동을 하지 못할 당시 이 땅의 유일한(!) 독립 운동 단체인 조선 건국 위원회를 이끌기도 한다.이 당시 몽양은 김구나 이승만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민심과 인지도를 갖

추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이 패망할 당시, 가장 먼저 협상에 거론되었고 또 결국 일본과 협상한 측이 여운형이며, 미국 입성 당시에도 미국이 가장 의식한 당의 총수가 여운형이었다. -김구선생이 위대한 분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몽양은 그보다 더욱 위대하면 위대했지, 떨어지는 분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 이후의 일은 논란이 많은 현대사의 일이므로 이곳에 서술하지 않겠으니, 관심이 있다면 몽양선생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는 것을 권장한다. 해방 후에도 남북의 통일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몽양은 결국 극우파 청년에 의하여 가슴팍에 총알을 맞고 암살당하게 되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조국...’그리고 ‘민족...’이라고 전해진다.

그의 사후,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대통령을 제외하면 독립운동가 중 유일하다-, 전 국민이 슬퍼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사체는 그의 유언인 “남북이 통일되면 그때 묻어다오”에 따라 아직까지 방부처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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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구국의 영웅이었던 몽양 여운형. 그러나 그의 사후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산주의와의 전쟁에 돌입하며 고려공산당에게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 여운형은 좌파(정확히는 중도 좌파)로 분류되며, 이승만 정권은 좌파의 영웅인 그를 지워버릴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하여 중도 좌파 몽양 여운형은 점점 사라지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주의자 영웅, 중도 우파 백범 김 구 선생이 우리의 국부가 된 것이다. 최근 들어 몽양선생이 다시 교과서에 실리는 등, 그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가끔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사라져 버린 우리 민족의 영웅들에 대하여 공부해보는건 어떨까.

이상으로 위의 글들이 바로 내가 학우들에게 몽양 여운형이라는 인물을 알리기 위해 썼던 글이다. 지금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잘못된 글이다. 글에는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방향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몽양의 업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타나있지조차 않다. 그래도 글을 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보이는 것이, 이 강의의 효과가 아닐까.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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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쓰게 된 글은 주제가 있는 글쓰기. 영화 굿&바이를 시청한 후 쓰는 글쓰기였다. 사실 나는 이전에도 행복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자문하던 것이 있었기에, 상당히 자신만만하게 이 영화를 봤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학우들 역시 나와 같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흔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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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굿 앤 바이에서 드러나는 생각들 중, 남들이 삶과 죽음의 고찰이라는 주제에 정신이 팔려 학우들이 쉽게 지나치는 주제는 없을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영화의 주인공, 다이고가 그의 아내에게 납관사 같은 저질 직업은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었다. 얼씨구나, 주제는 이렇게 정해졌다. 첫 글은 직업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 사실 인간 자체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글은 내가 쓴 글 중 교수님의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은 글이다. 첫 번째로 받은 피드백은 글의 주제를 좁히라는 것이었다. 말씀인즉, 추상적인 글을 쓰면 주제가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주제를 영화와 더 쉽게 연관되는 '직업의 차별'로 정했다. 두 번째로 받은 피드백은 영화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주제를 뽑긴 해야겠지만, 너무 영화에 젖어 있어서는 주제있는 글쓰기가 아닌, 영화감상문이 되어버린다는 말씀이셨다. 아뿔싸, 다시 읽어보니 내 글은 영화감상문이었다. 결국 나는 내 글에서 영화를 언급하는 문단을 단 하나로 한정시키고, 나머지 문단은 전부 삭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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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피드백은 자존심과 자존감의 구별이었다. 글의 제목은 자존감, 자존심이 왔다갔다 하고 글의 내용은 일관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자존감과 자존심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 혼란은 더욱 컸다. 나는 돌아옴과 동시에 국어사전에서 자존감과 자존심을 각각 검색하여 머리에 꽂아 넣었다.

자존감 : 자아존중감의 약자로 자기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각과 자신의 능력을 신용하는 것. 이것이 사전에 정의된 자존감이다. 최근 현대 사회에서는 이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항들로 스스로 학대하고 부끄러워한다.단적인 예로 직업을 들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현대에는 직업의 귀천이 사라졌으며, 직업 간

의 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 행동으로도 직업 간에 차별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다. 도축업자, 장의사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많은 천대를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백정, 시체장수라며 비하한다.서론에서 제시한 영화 굿 앤 바이의 주인공 다이고의 행동은 그런 의미에서 놀라웠다. 장의

사보다도 천대받는 직업인 납관사를 가지고서도 당당하다. 오히려 다이고는 현실과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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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 외부인들이 다이고를 천대시하며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며 그것을 이겨낸 경우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아내가 제발 그런 일은 그만둬, 라고 말할 때 당당히 “싫어.” 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러한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사실 삶과 죽음 같은 문제들은 우리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이나 할 법한 고차원적인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의사, 납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서도 오히려 그러한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철학자보다도 고찰하고, 심지어 답까지 내릴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차원적 직업’과 ‘하등한 직업’의 차이가 사실상 없음을 보여준다. 납관사라는 천시 받는 직업 역시 자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이야기이다.

직업을 일례로 들었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는 직업뿐만이 아닌,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가령, 옷 하나를 입을 때도 다른 사람과 최대한 비슷한 옷, 유행에 맞춘 옷을 입지 자신만의 옷맵시는 찾으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유행을 주도하는 자들은 자신만의 옷맵시를 찾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이것이다. 사실 이 글도 굉장히 부족한 글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을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했지만, 교수님의 마지막 피드백은 아무래도 내가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듯 하다.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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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글을 쓰고 나니, 결국은 기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하여 쓰기! 사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 하는 것 역시 독서고, 한달에 최소한 다섯 권 정도는 읽는 편이다. 수많은 종류의 책 중에서도 특히나 철학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기말 보고서의 작성일 직전에 논어와 중용을완독한 터라, 서양철학, 그 중에서도 옆에 사진에 나와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을 읽은 후보고서를 작성하기로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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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은 이미 정해놓았기에, 처음 시작한 것은 현재 좌측에 올린 기말 보고서의 표지를 드는 일이었다. 역시 표지가 좋은 글이 읽기도 끌린다.... 라는 생각에서였다. 생각보다 깔끔 하게 만들어진 느낌이라 만들고 굉장히 만족 스러워 했었다. 사실 읽을 책을 미리 선정해놓긴 했어도, 그 과정에서 사실 수많은 애로사항이 존재했었다. 읽고자 하는 작가가 정해져 있는데, 그 작가가 펴낸 책을이 굉장히 많다는 애로사항이었다. 글에서도 적혀 있는 사항인데, 사실 내가 읽고 싶던 책은 굉장히 많았었다. 그 중에서도 「선악의 저편」을 처음 뽑았었는데, 예상외로 굉장히 두꺼운 것이 문제였다. 교수님께서는 다 읽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성격상 다 읽지도 않은 책으로 기말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말 보고서로 제출할 책은 「젊은이에게 주는 글」로 최종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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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니체가 젊은이에게 말한다.

도서 선정의 이유는 평소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걸출한 철학자의 책을 꼭 한 번쯤은 읽어 보고 글을 써 보자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 과제로 인해 마음이 동하였다. 처음에는 니체의 책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인 ��선악의 저편� 을 사용하여 글을 써내려가려 했지만, 책장에서 ��젊은이에게 주는 글� 이라는 제목을 본 후 마음이 바뀌었다. 니체가 살던 시대에서,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의 젊은이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바라는 마음에서. 니체, 그는 누구인가? 근대 철학은 그 이후로 갈린다는 평을 받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헌학자, 계보학자이다. 흔히 그를 통틀어 “망치를 든 철학자”, 혹은 “폭발하는 인간”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그는 과격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진리로 평가받던 여러 사상을 재평가하게 만들었으며, 가치론, 존재론, 미학, 윤리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시 그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특히 진하게 남아있다. 필자는 지금 철학에 이러한 강렬한 선을 그은 니체가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들을 느껴보려 한다. 반시대적 고찰은 무엇일까. 니체는 당시의 젊은이들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남들이 말하는 것을 비판적 사고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향 때문이다. 이것을 “교양적 속물”이라고 칭한 니체는 흔히 말하는 교양 때문에, 교양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젊은이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꺼려하며, 자기 자신의 의사를 애써 무시한다고 말했다. 니체는 이것을 “군중 속의 청년”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는, 투쟁을 싫어하는 성향

니체가 젊은이에게, 젊은이가 니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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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니체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투쟁하여 권리와 자유를 얻어 낼 생각은 없이, 선대가 일궈낸 문화와 권리, 자유 위에서 딱 그 정도만을 누리며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니체는 이러한 사항들에 대하여 첫째로는 개인 의사가 없는 사람은 현시대의 자유민이라고 할 수 없으며, 두 번째로는 문화는 일궈내는 것, 권리와 자유는 얻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젊은이들의 ‘대세’에 편승하는 태세와는 다른, 반시대적 고찰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이 되어라.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인 인간이란, 흔히 말하는 연민이 가득한 인간이 아닌, 인간이 처음 존재할 당시의 본성을 간직한 존재로 거듭나라는 뜻이다. 처음 존재할 당시의 인간이 되라는 것이 문화 등등의 의식 상태가 최초의 인관과 같이 퇴화하라는 것은 분명히 아니며, 인간이 최초로 존재할 당시의 천진함을 간직하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인간적 본성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철학, 문화인데, 젊은이들이 철학이나 문화 등을 멀리하고, 인생을 사는 동안 나타나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에 의존하여 마치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사과를 갈망했듯이, 젊은이들은 오로지 과학적 진리만을 갈망하며, 철학적 진리와 같은 인간적인 진리들은 거부한다고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도자에 대하여, 개인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지도자는 소인배라고 한다. 오로지 이익 관계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철학적 사고 없이 판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가 지도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나라 자체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의 문제점은, 그 나라의 젊은이들 역시 지도자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기를, 짜라투스트라라는 자가 이러한 나라의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낄 줄 모르며, 모든 것은 이익 관계로써 생각하며, 손에 쥔 물질적 자산들을 놓고 싶지 않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고 한다.힘에의 의지는 항상 있어 왔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과학의 시대

가 찾아오며 위에서도 말했듯이 젊은이들은 오로지 이익관계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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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렇게 얻은 이익들은 자신들의 힘으로써 작용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연민과 동정이 사라진 젊은이들은, 그러한 힘들을 타인을 찍어 누르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에 사용하며, 이러한 힘에의 의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2부 젊은이가 니체에게 말한다.

현 시대의 젊은이로서 니체의 말들을 읽어 본 필자는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니체가 살다 간 시대와 현대를 살아가는 필자의 시대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격차가 존재함에도 상당 부분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시대적 고찰은 분명히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니체가 지적한 젊은이들과 현대의 젊은이들은 사실상 딱히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발 더 나아가 남들과 달라지려 하는 또 다른 젊은이를 마녀사냥 식으로 매장해버리기도 한다. 또한 투쟁적 측면에서 봐도 이 사실은 명확하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자신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젊은이들은 투쟁을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에 큰 문제가 따른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는 과학을 제외하면 존재할 수 없는 문명이기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니체와 같이 과학을 단순히 금단의 과실로 칭하여 철학만을 중요시하기보다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어느 한 쪽이 치우치지 않고 과학을 하되 그 속에서 철학적-윤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과 철학의 융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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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에 대하여, 이는 현대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이 사고방식이 이익 관계에 맞추어져 있으며, 철학 같은 것은 어렵다고 하여 쳐다보지도 않고, 연민이나 동정 등을 이익을 취할 수 없으니 쓸모없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지도자들 역시 후진국에 발전의 도움을 주는 등의 지원을 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현대는 과도기적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힘에의 의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과거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힘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회의주의, 염세주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상대보다 힘이 강하다면, 그 힘으로써 어떻게든 상대를 찍어 눌러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비단 젊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또한 힘을 갈구하지면 힘에 대한 의심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젊은이이기에, 힘에 의지하는 사회를 개역할 인간들은 역시 젊은이들이며,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이 젊은이들이 철학적 사고를 갖게 된다면 이러한 사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마치며 현대의 젊은이가 읽어본 과거의 젊은이에게 주는 니체의 글. 니체와는 상당한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니체의 글에 적힌 “현대”의 젊은이들과 “현대”의 젊은이인 필자와 필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어서 놀라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젊은이들이 젊은이들 스스로가 계속하여 변화로의 의지를 품지 않는 이상은 이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또한 개선에의 의지를 품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취급하여 매장하는 상황이 존재하며, 평범한 젊은이들은 힘에의 의지에 치여 이러한 일들을 떠올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여전히 차차 사고를 바꿔나가고 있고, 반시대적인 사고바탕을 토대로 언젠가는 힘에의 의지를 버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때에는 니체가 말한 이상적인 젊은이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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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에 대하여, 이는 현대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이 사고방식이 이익 관계에 맞추어져 있으며, 철학 같은 것은 어렵다고 하여 쳐다보지도 않고, 연민이나 동정 등을 이익을 취할 수 없으니 쓸모없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지도자들 역시 후진국에 발전의 도움을 주는 등의 지원을 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현대는 과도기적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힘에의 의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과거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힘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회의주의, 염세주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상대보다 힘이 강하다면, 그 힘으로써 어떻게든 상대를 찍어 눌러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비단 젊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또한 힘을 갈구하지면 힘에 대한 의심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젊은이이기에, 힘에 의지하는 사회를 개역할 인간들은 역시 젊은이들이며,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이 젊은이들이 철학적 사고를 갖게 된다면 이러한 사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마치며 현대의 젊은이가 읽어본 과거의 젊은이에게 주는 니체의 글. 니체와는 상당한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니체의 글에 적힌 “현대”의 젊은이들과 “현대”의 젊은이인 필자와 필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어서 놀라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젊은이들이 젊은이들 스스로가 계속하여 변화로의 의지를 품지 않는 이상은 이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또한 개선에의 의지를 품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취급하여 매장하는 상황이 존재하며, 평범한 젊은이들은 힘에의 의지에 치여 이러한 일들을 떠올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여전히 차차 사고를 바꿔나가고 있고, 반시대적인 사고바탕을 토대로 언젠가는 힘에의 의지를 버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때에는 니체가 말한 이상적인 젊은이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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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하자면, 이 글의 제목은 나의 야심작(...)이었다. 니체가 젊은이에게, 라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며, 젊은이가 니체에게, 라는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인 내가 니체의 책을 읽고 이 글로써 니체에게 화답하는 글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글 안을 들어가 보면, 굵은 글씨로 써진 것들이 각 부의 소제목 역할을 하게끔 해 놓았는데, 이 글들은 젊은이에게 주는 글」에 나오는 각 소제목이며, 1부와 2부의 소제목들은 서로 대응된다. 그런데 참,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항을 내 것에만 너무 정신이 팔려 잊어버리고 말았다. 제목을 잘못 정해버린 거다! 결국 기말고사 당시에 [니체가 젊은이에게 주는 글, 젊은이가 니체에게 주는 글]로 제목을 바꾸어서 다시 한번 제출했다. 이 글은 내가 3개월동안 사표를 들으면서 쓴 글 중 가장 만족스러운 글이다. 우선 읽고싶었지만 미뤄두었던 니체의 책을 탐독하는 것에 동기를 부여해주었고, 글 자체도 제일 잘 나온 것 같다. 가장 만족스러운 글이 특히나 가장 중요한 기말 보고서에서 등장하여 더더욱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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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를 쓰러트리면 [사실 그 녀석은 보스가 아니었다!]라면서 진짜 보스가 나오듯이 E-BOOK 과제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말하자면 기말고사와 기말보고서가 최종보스였다면, E-BOOK은 진(眞)최종보스! 이 眞최종보스인 E-BOOK 과제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던 중, 마지막 과제는 마치 내 미니홈피에 올리듯 편안한 방식으로 내가 지까지 썼던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후기들을 남기기로 했다. 즉 이 장은 E-BOOK 과제에 대한 후기를 E-BOOK 과제 그 자체에 남기는 것이다! 처음 기획은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을 모조리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굿&바이를 예로 들자면 내가 지금까지 수정한게 네 번이니 글은 다섯 개. 그 다섯 개의 글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달아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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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글을 수정할때마다 덮어쓰는 타입이라 백업이 없어서(...) 그냥 이 최종파일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 모든 글을 파워포인트로 옮겼다면 아마 100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을까...... 표지의 캐릭터는 나의 마스코트 캐릭터다. 고교생일 때 후배가 나라면서 만들어 준 것인데, 나랑은 1그램도 닮지 않았지만 귀여워서 사용하는 중이다. 사실 처음 표지는 학교 마크만 떡하니 있었지만 최종과제기도 하고 왠지 심심해서 그냥(...) 넣어봤다. 사고와 표현은 내가 이번 새내기의 1학기 수업 중 '기업과 경제'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든 수업이다. 이 강의가 사라지지 않고 후배들에게도 쭉 전달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