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 하느님과 어린양만을(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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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 하느님과 어린양만을(묵시록 4-5장) 송 봉 모 * 1. 들어가는 글 2. 본문(4,1-5,14)의 양식, 문맥, 구조와 그 기능 2.1 양식 2.2 문맥 2.3 구조와 그 기능 3. 본문 주석 3.1 입문적 환시(묵시록 4) 3.2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묵시록 5) 4. 나가는 글 국문 초록 요한 묵시록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말의 징조 , 최후의 심판 ,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다 . 가장 중요한 주제는 경배다 . 시련과 박해 중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서 누구를 경배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인지 아니면 그 짐승 으로 상징화 된 로마 황제 도미티안을 경배할 것인지를 묻고 있 는 것이다 . 요한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당연히 하느님과 그리스도만을 경배하게 만들고자 묵시록을 기록했던 것 이다 . 묵시록 전체가 하느님 경배와 그리스도 경배를 강조하고 있지만 , 특별히 묵시록 4-5장이 이 주제를 집중적 으로 강조하고 있다 . 묵시록 4-5장은 하늘 어좌를 둘러싸고서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 를 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4장에서는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고 , 5장에서는 같은 무리들이 어린양으로 상징화된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고 있다 . 본 논문은 4-5장을 주석적으로 분석함으로서 , 하느님을 향한 경배와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의 내용이 그 주 체에 따라서 서로 다름을 확인한다 .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경배되어지고 , 그리스도는 구원자 , 승리자 , 성령을 보 내시는 분 그리고 특별히 구원 역사의 마지막을 완성하실 분으로서 경배되어짐을 밝힌다 .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다루어지는 또 따른 주제는 그리스도론적 주제와 종말론적 주 제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세상 종말에 대한 전권을 부여 받아 구원 역사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 란 주제다 . 이 점이 논문 안에서 분석될 것이다 . 주제어 : 어린 양 ; 두루마리 ; 일곱 봉인 ; 네 생물 ; 24 원로 1.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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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 하느님과 어린양만을(묵시록 4-5장)

송 봉 모*

1. 들어가는 글

2. 본문(4,1-5,14)의 양식, 문맥, 구조와 그 기능

2.1 양식

2.2 문맥

2.3 구조와 그 기능

3. 본문 주석

3.1 입문적 환시(묵시록 4장)

3.2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묵시록 5장)

4. 나가는 글

국문 초록

요한 묵시록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말의 징조, 최후의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경배다. 시련과 박해 중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서 누구를 경배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인지 아니면‘그 짐승’으로 상징화 된 로마 황제 도미티안을 경배할 것인지를 묻고 있

는 것이다. 요한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당연히 하느님과 그리스도만을 경배하게 만들고자 묵시록을 기록했던 것

이다.

묵시록 전체가 하느님 경배와 그리스도 경배를 강조하고 있지만, 특별히 묵시록 4-5장이 이 주제를 집중적

으로 강조하고 있다. 묵시록 4-5장은 하늘 어좌를 둘러싸고서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

를 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4장에서는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고, 5장에서는 같은

무리들이 어린양으로 상징화된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고 있다.

본 논문은 4-5장을 주석적으로 분석함으로서, 하느님을 향한 경배와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의 내용이 그 주

체에 따라서 서로 다름을 확인한다.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경배되어지고, 그리스도는 구원자, 승리자, 성령을 보

내시는 분 그리고 특별히 구원 역사의 마지막을 완성하실 분으로서 경배되어짐을 밝힌다.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다루어지는 또 따른 주제는 그리스도론적 주제와 종말론적 주

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세상 종말에 대한 전권을 부여 받아 구원 역사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

란 주제다. 이 점이 논문 안에서 분석될 것이다.

주제어: 어린 양; 두루마리; 일곱 봉인; 네 생물; 24 원로

1. 들어가는 글

- 2 -

이 논문은 요한 묵시록 4-5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묵시록 4-5장은 묵시록의 저자 요한이1) 가장 강조하고

자 하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독자들이 요한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기위해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

야 할 본문이다.

요한이 강조하는 주제 하나는 경배의 대상이 하느님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 그

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세상 종말에 대한 전권을 부여 받아 구원 역사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묵시록 4-5장은 하늘 어좌를 둘러싸고서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는 내용으

로 구성되어 있다. 4장에서는 천상의 무리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고, 5장에서는 같은 무리들이 어린양

으로 상징화된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고 있다.2)

하느님을 향한 경배와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의 내용은 그 주체에 따라서 서로 다르다.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경배되어지고, 그리스도는 구원자, 승리자, 성령을 보내시는 분 그리고 특별히 구원 역사의 마지막을 완성하실

분으로서 경배되어진다.3) 그러니 요한이 묵시록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 두 개가 4-5장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논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먼저 서론으로서 텍스트가(묵시록 4-5장) 보이는 양식과 문맥을 분

석하고, 이어서 텍스트의 구조와 그 기능을 설명한다. 계속해서 본론으로서 텍스트에 나오는 주요 구절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시도한다. 그리고는 결론으로서 텍스트에 드러난 어린양의 대관식을 통해서 신자들의 경배는 오

로지 하느님과 어린양에게만 주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2. 본문(4,1-5,14)의 양식, 문맥, 구조와 그 기능

2.1 양식

묵시록 4장과 5장은 환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시작이 요한이 천상 어좌를 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4,1; 5,1).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4,1 강조 표시는 논자가 한 것임)4)

“나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

습니다.(5,1 강조 표시는 논자가 한 것임).

묵시록 4-5장에 기록된 환시들은 묵시록 전체에 등장하는 여러 환시들과 마찬가지로 환시의 기본적인 요소

들을 갖고 있다. 곧 상징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그리고 사건을 설명해주는 천사의 등장(angelus interpres) 등

이다.5)

* , .1) 12 .

. .

(1,1.4.9; 22,8), . 2)

(“ ,” 5,13).

3) , ( : , 1997), 77. 4) < > ( ) .

- 3 -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상징과 이미지로는 스물네 명의 원로들(4,4),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들

(4,6-8), 봉인된 두루마리(5,1), 살해되었듯이 서 있는 어린양(5,6) 등이 있다. 이러한 상징들과 이미지들은

본문 안에서 분석될 것이다.6)

본문은 묵시록에 나오는 다른 환시 본문들과 마찬가지로 angelus interpres를 갖고 있지만, 천사 대신에

원로 한 사람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5,5).

2.2 문맥

묵시록 4-5장은 그전의 본문들(1-3장)과 확연히 구분되면서 동시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4장 1절을 보면서

묵시록 4-5장 본문의 그전의 본문들과 구분되는지를 본다.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

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4,1)

4장 전까지는 무대가 땅이었는데, 4장부터는 하늘이다. 그전에는 지상에서 순례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일

곱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7) 4장 1절 이후부터는 일곱 교회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요한은 하늘에 펼쳐지는 환시, ‘이 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4,1)에 대한 환시를 본 후에 그것들을 기록해

야 한다. 이 점이 또한 앞서 있었던 본문들과 구분된다. 1장을 보면 주님께서 그에게 다음 두 가지를 기록하도

록 명령 했었다.

“네가 본 것 곧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1,19 논자 직역)8)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앞서 2-3장에서 다루어 졌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일곱 교회에 보내

는 편지(2,1-3,22)에 대한 것이다. 한편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록은 지금 다루고 있는 4장부터 22

장 16절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이런 점에서 묵시록 4장은 앞의 본문들과 확연하게 구분되어진다.

한편 묵시록 4-5장 본문은 그전의 본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4,1)는 1장 10절에 언급되었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

어 요한에게 들려준 그 음성이다(“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

리를 들었습니다,” 1,10). 그러니 계시하시는 분은 같은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3장까지의 환시 내용과

5) F.D. Mazzaferri, The Genre of the Book of Revelation from a Source-Critical Perspective (Berlin: de Gruyter, 1989), 225-26.

6) (4,1-9), (4,3), (4,3), (4,6), (5,6) .

7) 1 4 11 20 , 2-3 .8) . . 200

, . “ .”( 1,19) “ .”(200 1,19)

, " " (1,11-20) , "" (2,1-3,22) . " "

(4,1-22,16) , ‘ ’ kai kai‘ ’ .

- 4 -

4-5장의 환시 내용이 다룰 뿐, 환시들을 보여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시다.

3장에서 4장으로 전이는 내용 차원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묵시록 2-3장에 기술된 내용들 곧 그리스

도께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은 하나 같이 승리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약속을 담고 있었다.9) 특히 마지막

편지, 라오디게이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승리하는 자들이 주님의 어좌에 앉게 될 것이란 약속을 담았다

(3,21).10) 그런데 4-5장부터 다루게 될 내용은 죽음을 이기시고 당당하게 승리하신 어린양(5,6), 하늘나라 어

좌 앞에서 대관식을 치루는 어린양이시다(5,5-14).

2.3 구조와 그 기능

본문은 크게 두 개의 구조로 나눠진다. 처음 4장은 ‘입문적 환시’(introductory vision)다. 이렇게 부르는 것

은 그것이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 곧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일련의 모든 환시들(6장에서부터 시작하여 22

장에 이르기까지 서술된 모든 환시들)의11) 서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하늘 법

정),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알려주는 등(어좌 위에 앉아 있는 분, 네 명의 생물들, 스물

네 명 원로들),12) 앞으로 펼쳐질 환시들의 배경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5장은 4장이 모든 환시들의 서론적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6장 1절부터 8장 1절까지 서술된 일곱 봉

인의 환시들에 대한 서론적 역할만을 한다. 그래서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이라 칭한다.

3. 본문 주석

3.1 입문적 환시(묵시록 4장)

입문적 환시는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과 그분을 둘러싼 천상 무리들(스물네 명의 원로들과 네 생물들)을 중심

으로 서술되고 있다.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인류 역사 안에서 갖는 그분의 영원한 주권이 천상 무리들의

끊임없는 경배를 통해서 강조된다.

4절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4절)

하느님이 어좌 둘레에 앉아 있는 스물네 명의 원로들의 모습은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회의를 상상케 한다.

유대 사상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문제들을 결정하기 위해서 하늘의 군대들(천사들)과 함께 논의한다

9) 2 7 , 11 , 17 , 26 ; 3 5 , 12 , 22 .10) “ , ,

.”(3,21)11) : (5,1-8,1),

(8,2-11,19), (15,1-16,21). . .

12) . 5 . ( R. H. Charles) 5 14 . 5

.

- 5 -

(참조 1열왕22,19-22).13)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누구인가? 우선 '원로'들에 이해는 고대 시대 관습과 성경 자료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사회에서는 공무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통상 나이 들은 사람들이 특별한 위치에

서 아니면 원로단을 형성해서 그 일에 대한 처리를 시도하였다. 원로들에게 이러한 특권을 준 것은 그들이 지니

고 있는 경험적 지혜 때문이다.14)

성경에서 원로의 원천은 탈출 24,1-2에 있다.15)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70명의 원로들을 데리고 당신 앞에

오도록 명한다. 그런데 묵시록 4장에서 하느님 어좌 옆에 좌정하고 있던 원로들은 70명이 아니라 24명이다.

학자들은 24명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Herman Gunkel 같은 이는 스물네 명의 원로들

은 바빌론 종교에서 발견되는 24개의 별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바빌론 사람들은 24개의 별을 만민의 심판관으

로 언급하였던 바, 천상 어좌 옆에 있는 스물네 명의 원로는 이 24개의 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한편 R. H. Charles 같은 학자들은 이것이 24개의 사제적 질서를 대표하는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16) 이

들 천사들은 하느님이 재판하실 때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도와드리는 원로 천사들이란 것이다(다니 10,9; 시편

89,8; 이사 24,23).

오늘날 Gunkel의 견해를 따르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Charles의 견해를 따르는 이들은 제법 있다.

Charles의 견해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해석이 필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스물네 명 원로들에 수식 문장들을 분석

할 필요가 있다. 4장 4절에는 세 개의 수식어가 나온다. ① 하느님의 어좌 둘레에 그들이 앉아 있다. ② 하얀

옷을 입고 있다. ③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다.

첫 수식어는, 스물네 명의 원로들이 하느님 어좌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원로들이 앉

아 있다는 점에 유념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천사들이 어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적은 없다. 천사들은

통상 하느님을 보좌하기 위하여 어좌 옆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스물네 명 원로들을 천사들과 연결하는 것은

틀리다.17)

둘째 수식어는 그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하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승리하여 생명

세계에 참여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묵시록 3장에서 보듯이 하얀 옷은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력, 즉 부활 생명에

참여함을 가리킨다(3,4.5.18). 부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과의 일치된 통교를 상징한다

(7,9.13-14).18) 여기서도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천사들은 죽음을 체험하지 않기에 부활 체험이 없으며, 그

결과 부활 생명에 참여할 수는 없다.

세 번째 수식은 그들이 금으로 된 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금은 주로 전례에서 사용되는 전형적 금속품이

다. 그러니 금으로 된 관을 쓴 원로들은 전례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문맥을 통해서도

이 점은 지지를 받는다. 4장 10-11절을 보면, 그들이 어좌 앞에 자기들의 금관을 벗어 놓으며 하느님을 경배

하고 있다.19)

천사들도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전례 안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스물네 명의 원로들을

13) “ . , . ‘ , ?’

. , ‘.’ . . . . (1 22,19-22 )

14) A. Feuillet, Johannine Studies (Staten Island: Alba, 1965), 189.15) ‘ ’ 3,16 . 24,1-2

. 16) R.H. Charles, Critical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1 (New York: Scribner's, 1920), 131-32.17) A. Feuillet, , 185.18) J. Roloff, The Revelation of John (Minneapolis: Fortress, 1993), 90.19) “ , .

. “ , . .”(4,10-11)

- 6 -

천사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 원로들은 금으로 된 관, 곧 면류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묵시록에서 면류관이 천사

들에게 주어진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이다.

이상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그들이 천사가 아님

을 보여주는 근거가 있다. 7장 14절을 보면, 요한이 스물네 명의 원로들 중 한 원로에게 ‘나의 주님’(ku,rie,

mou)이라 부른다.20) ‘나의 주님’은 공경의 표현인 바, 천사가 주님으로 불린 적은 없다.21)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수물네 명의 원로들은 천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 이들은 누구인가?

H. B. Swete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이스라엘 12부족과 12사도를 상징하는 것으

로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전체성 차원에서 이루어진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곧 옛 이

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이 포함되는 전체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22)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갖는 약점이 있다. 19장에서 스물네 명의 원로들이(19,4) 승리한 교회를 상징하는 어

린양의 배우자(19,5-9)와 구분되기 때문이다.

A. Feuillet 같은 학자는, 이들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을 가리킨다고 본다.23) 예수님

의 가르침을 보면 하늘 궁정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구약의 위인들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듯한 암시를

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 8,11)

하지만 논자는 Ugo Vanni와 함께 해서 스물네 명의 원로들을 달리 해석한다.24) 이들 원로들은 19장 4절

‘아멘, 할렐루야’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들 원로들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주어지고 나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구체적 인물들이라면 새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들 존재는 신자들로 채워져야 할 ‘빈 존재’들로 볼 수 있다.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듣고 구원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나름대로 중요 역할을 할 때. 이 ‘빈 존재’를 채우

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8절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

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

습니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

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6-8절)

이 구절들은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리고 날개가 여섯 개 달린 네 생물들을 보도하고 있다. 첫째 생물은 사자를

닮았고, 둘째 생물은 황소를 닮았으며, 셋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을 하였고, 넷째 생물은 독수리를 닮았다.

네 생물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에제키엘 1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언자 에제키엘이 하늘 어좌를 보았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본다.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

20) ‘ ’ .21) , , 7922) H.B.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London: Macmillan, 1907; repr., Grand Rapids: Kregel, 1968), 68.23) A. Feuillet, , 182-214.24) Ugo Vanni, L'Apocalisse (Bologna: Edizioni Dehoniane, 1988),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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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과 같았다.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저마다 넷이었다. ... 그들의 얼굴 형상은 사람의 얼굴

인데, 넷이 저마다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었으며 독수리의 얼굴도 있었

다. .. 바퀴 테두리는 모두 높다랗고 보기에 무서운 데다, 그 네 테두리 사방에 눈이 가득하였다.”

(에제 1,5-10,18).

묵시록 본문을 에제키엘 본문과 비교하면, 요한은 에제키엘의 내용을 그대로 따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

대로 변형시키고 있다. 에제키엘에서 네 생물은 각기 네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 묵시록의 네 생물은 한 개의

얼굴만 갖는다. 에제키엘에서는 많은 눈들이 네 생물이 아니라 바퀴 둘레에 박혀 있는데, 묵시록에서는 네 생물

의 날개 둘레에 안팎으로 박혀있다. 또 에제키엘에서는 네 생물이 네 개의 날개를 갖고 있는데, 묵시록에서는 여

섯 개의 날개를 갖고 있다. 이 여섯 개의 날개는 이사야 6장을 참조했을 것이다(이사 6,1-3).25)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요한이 바빌론 점성학을 사용해서 여러 이미지들을 꾸며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네 개의 생물은 우주의 기본 요소를 구성하는 네 별자리를 가리킨다고 본다. 소는 땅을 상징하는 황소 별자리,

사자는 불을 상징하는 사자 별자리, 인간은 물을 상징하는 전갈 별자리, 독수리는 공기를 상징하는 별자리란 것

이다.26)

한편 초대 교부들에 따르면, 네 생물은 네 복음사가들을 상징한다고. 교부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교

부 이레네오에 따르면 마태오는 사람, 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소, 요한은 독수리로 비유된다.27)

오늘날 J. Roloff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이 네 생물이 천사적 존재를 가리킨다고 본다.28) 하느님 어좌

앞에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세상을 지켜보도록 명령된 천사적 존재란 점이다.

이러한 견해가 타당성이 있는가에 대한 견해는 네 생물에 대한 본문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다. 본

문은 먼저 네 생물에 대해서 묘사하고(4,6ㄴ-8ㄱ), 이어서 그들의 활동을 서술하고 있다(4,8ㄴ).

먼저 네 생물에 대한 묘사. 이들은 어좌 가운데와 어좌 둘레에 있고, 앞뒤가 눈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사자

황소 사람 그리고 독수리와 비교되고 있고, 여섯 날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이 어좌 한 가운데 그리고 어좌 둘레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하느님과의 친밀성을 드러낸다. 여

섯 개의 날개 안팎으로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들이 충만된 통찰력을 갖고 있고 쉼 없이 세상을 쳐다보고 있

음을 가리킨다(즈카 4,10).29)

다람쥐, 사슴, 토끼, 돼지, 개, 비둘기, 참새 같은 동물이 아니고 사자, 황소, 사람, 그리고 독수리인 것은, 이

들 존재가 지닌 탁월성을 알린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용맹스런 짐승이다. 소는 충성스럽고 희생적인

짐승이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는 지혜로운 존재이다. 독수리는 새들의 왕으로서 위엄을 지닌 존재이다. 이들

네 생물은 피조세계 안에서 하나같이 용맹스럽고 진취적이며 힘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낸다.

4,8은 이들의 활동을 서술한다. 이들은 하느님을 밤낮으로 찬미하고(4,8)30) 하느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

25) “ , . , , .

. ‘ , , , ! .’”( 6,1-3)

26) J. Leveque, "Les quatre vivants del' Apocalypse," Christus 26(1979), 333-39.27) “ .

. . .

. .”(Adv. Haer. 3.11.8)

28) J. Roloff, , 71; R.H. Charles, , 119; G.E. Lad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1972), 77.

29) “ .”( 4,10)30) “ , , , !”(4,8)

- 8 -

린다(5,8, 19,4).

네 생물은 두 가지 영역과 관계해서 동적 움직임을 갖는다. 하나는 초절적 영역과 관계하고, 다른 하나는 인

간 영역과 관계한다. 그들이 하늘 어좌 중앙과 그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여섯 날개를 갖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초절적 영역과 관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이 날개 앞뒤로 가득 찬 눈을 갖고 있고 세상 피조물들과

닮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인간 영역과 관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네 생물들은 하느님 영역과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하향적 움직임(6,1.3.5.7, 17,7)과 상승적 움

직임(5,8.11.14 이하)을 갖는다.31)

6장에 보면 종말 전에 있을 여러 가지 재앙들이 세상에 펼쳐지는데, 이때 네 생물들이 각기 한자리 역할을

한다. 이 생물들은 어린양이 두루마리의 봉인을 하나씩 뗄 때 마다 순서대로(첫 번째 생물부터 순서대로) 큰 소

리로 ‘오너라’ 하면서 재난을 집행할 자를 부른다. 희말, 붉은말, 검은말, 푸른 말을 타고 있는 이를 부른다

(6,1-8). 이 네 생물의 ‘오너라’ 외침은 구원역사와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하향적 움직임이다. 한편 그들이 천상

어좌를 둘러싸고 예배를 드리는 데(4,8; 5,8.14), 이는 상승적 움직임이다.

논자는 네 생물의 정체를 스물네 명의 원로들과 같은 맥락에서 규정한다. 네 생물은 스물네 명의 원로들처럼

19장 4절 ‘아멘과 알렐루야’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들이 구체적 인물들이 아니기에 새 예루살렘에

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 존재도 스물네 명의 원로들처럼 ‘빈 존재들’이다. 이 빈 존재는 주님

의 말씀을 듣고 충실하게 구원 역사의 발전 과정 안에서 나름대로 중요 역할을 하는 이들로 채워진다.32)

3.2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묵시록 5장)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은 세상 종말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는 두루마리와 그것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죽었다가 부활하신 어린양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환시가 전개된다.

1절

그리고 나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

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1절)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은 ‘나는 보았습니다.(kai. ei=don)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요한이 무엇인가 새로운

환시를 또 보았다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이 4장에서 본 입문적 환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시를

보았다는 말이 아니다. 요한은 입문적 환시를 통해서 하늘 어좌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게 되는데, 지금

5장1절에서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이미 보았던 것들 중 특별히 어느 한 부분을 주목해서 본다는 의미다. 마치

영화에서 전체 화면에서 어떤 한 사물에 앵글을 맞추는 식으로 말이다. 이 점은 입문적 환시(4,1-11)와 일곱

봉인의 환시 서론(5,1-14)에 나오는 어좌 위에 앉으신 분(하느님)이 두 군데 다 나온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4,2; 5,1).

두루마리가 하느님의 오른손에 들려있다. 오른손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권능과 힘을 상징한다.33) ‘어좌

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란 표현은 두루마리가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통상 두루마리는 한 면에만 기록하고, 여백이 필요할 경우에만 다른 면에도 기록을 하였다. 그런데 하느님께

속한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그 두루마리에 쓰인 내용이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34)

31) Ugo Vanni, , 174.32) Ugo Vanni, , 172-74.33) 15,6.12; 18,35; 20,6; 41,10; 48,13.

- 9 -

두루마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다. 첫 번째 견해는, 그것이 구약과 신약의 계약들과

연결된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35) 이러한 견해는 로마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유언서를 작성한 다음

그것의 법적 타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유언장에 일곱 개의 봉인을 찍는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대 이 견

해는 묵시록의 내용과 비교해서 지지받기 어렵다. 두루마리를 펼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심판의 재앙이지 그리

스도교의 유산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견해는 두루마리를 어린양의 생명의 책으로 보는 견해다. 묵시록은 여러 번에 걸쳐서 어린양이 생명

의 책을 갖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3,5; 13,8; 17,8; 20,12.15; 21,27). 그런데 이 견해도 받아들이기 어렵

다. 두루마리의 내용이 심판의 재앙을 갖고 있는 반면, 생명의 책은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이

다.

세 번째 견해는, 두루마리가 유대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신탁을 담고 있고, 그 신탁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

성되어진다는 견해다.36) 이 견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대 백성을 향한 구약의 모든 신탁들은 심판은 물론

구원의 신탁들도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자가 지지하는 네 번째 견해는, 두루마리 안에 구원 역사의 종료를 위한 하느님의 심판 계획이 적혀 있다

는 것이다. 요한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받아 삼켰던 두루마리에서 그 아이디어를 빌린 것으로 본다. 에제키엘이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 사명을 수행하기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아먹는데(3,1-3), 그 두루마리에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흘리게 될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앞뒤로 적혀 있었다(에제 2,10).

두루마리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 그것도 일곱 개의 왁스 봉인을 찍어서37) 완전하게 봉인되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영원히 그것이 개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상징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내용, 곧 세상 종

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기에, 아무나 그 두루마리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징하

는 것이다(이사 29,11, 욥 14,17, 마태 27,66).38) 오직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하느님께서 지정하신 시

간에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인을 떼서 두루마리를 읽는다는 것은, 감

추어져 있던 두루마리의 ‘내용을 알린다’는 의미보다는 그때부터 하느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현되어 간다.’

는 의미다.

2-4절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

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

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

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2-4절)

천사가 요한에게 던진 질문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는 어린양을 등장시키

는 도입 역할을 한다.39)

34) 2 10 . “ , . .”( 2,10) , ( :

, 1975), 178; , , 85. 35) R.H. Charles, , 137-38; G.E. Ladd, , 80.36) G.E. Ladd, , 81.37) G.E. Ladd, , 79.38) J. Roloff, , 77.39) “ ?”

, . “ ? ?” “ ? .” . “

- 10 -

누가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곧 누가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낼 수 있으며 하느

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사건들을 진행시킬 수 있는가이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그가 통곡하며 울었음을 알려준다. 봉인을 뗄 사람이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을 알자, 그가 슬피 울었다는 것이다(e;klaion polu). 여기서 ‘울다’ 동사는 계속적 행위를 드러내는 반과거 시

제다. 거기다 ‘많이’(polu,)란 부사가 붙어서, 요한이 오랜 시간 통곡했을 드러낸다.

요한이 하느님의 존귀한 어좌 앞에서 체면 불구하고 통곡하며 운 것은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제껏 심한 교회

의 핍박 속에서도, 파트모스 섬의 혹독한 귀양살이에서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가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자가

없다는 사실 앞에 서 울고 또 운 것은, 봉인이 떼어지지 않는 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다. 마지막 심판과 완성의 시대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은 신앙 삶의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도 하느님의 마지

막 계획에 희망을 품고서 참아 견디어 왔는데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절망하는 것이다.

5절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5절)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신원을 잘 드러낸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란 표현은 예수님이 종말

에 오기로 된 메시아임을 가리키는 표현인바, 그 근거는 창세기 49,9-10에서 온다,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

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창세 49,9-10)

‘다윗의 뿌리’란 표현은 이사야 11장 10절에 나오는 ‘이새의 뿌리’란 표현에 그 근원을 둔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로서 곧 다윗 가문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와 다윗의 뿌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메시아적 희망을 갖고 오는 분임을 드러낸다.

그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치고 군사적 승리를 갖고 올 새로운 다윗을 가리킨다.

6절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

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6절)

계속해서 6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자와 어린 양은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

이다. 사자는 용맹하지만 어린양은 힘이 없다. 사자는 승리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어린양은 희생자의 이미

지를 갖는다. 양극처럼 보이는 두 동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은 사자 같은 어린 양이시

고, 동시에 어린 양 같은 사자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사자 같은 승리자이신데 그 승리의 방법은 어린양의

방법이란 것이다.

어린양(avrni,on)은 묵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중요한 칭호이다. 신약성경에서 30번 나오는데

. ‘ . . . .’( 6,8-9)

- 11 -

하나를 뺀(요한 21,15), 나머지 29개는 다 묵시록에 나온다.

요한묵시록의 그리스도론은 어린양을 통해서 표현되어지기에, 요한은 어린양이 있는 자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린양은 네 생물과 스물네 명의 원로들 가운데에 있다. 이는 네 생물과 스물네 명의 원로들이 만들어 내

는 하향적, 상승적 움직임의 중심 한 가운데 어린양이 서 있다는 것이다.40)

구체적으로 어린양은 어떤 의미의 양일까? 이 점을 보기 위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양의 네 가지 이미지를

본다.

① 매일 아침과 저녁에 희생 제물로 바쳐지던 어린양(탈출 29,38-42, 민수 28,3-8)

② 예언자의 상황을 나타내는 양(“죽을 자리에 끌려가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예레 11,19)

③ 야훼의 종으로서의 양(“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이사 53,7)

④ 과월절/해방절 어린양(탈출 12,1-27, 레위 23,5-6, 신명 16,1-7)

묵시록의 어린양은 ‘살해된 것처럼’ 보인다. 이 묘사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묵시록의 어린양을 과월절 양으

로 보거나41)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53,7)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어놓는 (53,10) 야훼의 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42)

하지만 묵시록의 어린양은 과월절 어린양이나 이사야 53장의 어린양과는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다른 특징은, 묵시록의 어린양은 승리하신 어린양이란 점이다. 과월절 어린양이나 이사야 53장의 어린양은 희생

을 통하여 구원을 갖다 준 양이기는 묵시록의 어린양처럼 승리하신 양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묵시록의 어린양은 살육 당했지만 ‘서 있는’ 양이다. ‘살육 당했다’는 것은 수난을 상징하고, ‘서 있다’는 부

활을 통하여 승리했음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다.43) ‘서 있다’란 동사(e`sthko.j)가 묵시록 안에서 부활을

가리킨다는 점은 11장의 두 증인을 통해서 알 수 있다(“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11,11).

우리말 성경에서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은 avrni,on e`sthko.j w`j

evsfagme,non의 번역이다. 이를 직역하면 ‘살육당한 듯이 서 있는 어린양’이 된다. 여기서 w`j("듯이")는 두

용어를 동등하게 연결시키는 단어다.

그런데 어떻게 살육당한 것과 일어 선 것이 동등하게 연결되는가? 이는 한 주체가 두 가지 극단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긴장은 요한복음 20장에 의해서 쉽게 해소된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e`sthko.j),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

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요한 20,19-20 강

40) 1 51 . “ . .”( 1,51)

41) , ( 12). .

.42) 53 A. Wilenhaus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Regensbrg: Pustet, 1959), 56; H. Kraft,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Tubingen: Mohr, 1974), 109.43) ‘ ’ .

. 1,18 . “ , , . .”

1,5-6 . “, ” .

5,9 . “.”

- 12 -

조 표시는 논자가 한 것임)

여기서 “오시어 가운데 서시며”에서 ‘서다’란 동사는 “살육당한 듯이 서 있는 어린양’에서의 ‘서 있다’와 같

은 동사다. 예수님이 보여준 손과 옆구리는 그의 수난 받음, 그의 살육 당함을 가리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

신의 몸 안에 수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도 두 가지 극단의 모습을 갖고 있다.44)

묵시록의 어린양이 과월절의 어린양이나 이사야 53장의 어린양과 구분되어지는 또 다른 특징은 뿔과 눈이

다. 묵시록의 어린양은 과월절 어린양이나 이사야 53장의 어린양과 달리 일곱 개의 뿔들과 일곱 개의 눈들을 갖

고 있다. 이것들은 묵시록의 어린양을 절대 힘을 지닌 승리자로서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는 자로서 상징하고 있

다.

어린양이 소지한 뿔은 무려 일곱 개다. 뿔이란 힘을 상징하는 바, 무려 일곱 개의 뿔이란 그 어떤 힘도 대적

할 수 없는 완전한 힘, 절대적 힘을 가리킨다. 어린양이 일곱 개의 뿔을 가졌다는 것은 죽임을 이기시고 승리하

신 메시아의 위용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 구절과 평행되는 성경 구절은 루카 1장 69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ke,raj swthri,aj) 일으키셨습니다.”(루카

1,69 논자 직역)

루카복음도 묵시록 저자처럼 승리하신 메시아를 뿔로서 묘사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원천은 시편 18장 3절에

서 볼 수 있다. “[야훼는] 나의 방패, 승리를 안겨 주는 뿔”(시편 18,3).

어린양은 또 일곱 개의 눈들을 갖고 있다. 요한은 같은 구절(6절) 후반부에서 이 일곱 개의 눈들이 무엇인지

를 즉시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들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다.45)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은 신자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이는 묵시록의 어린양이 성령을 신자들에게 파견하여 그들

안에서 활동하게 만드시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현재까지 논의한 것을 정리해보면, 묵시록의 어린양은 ① 그 서 있음을 통해서, 부활하신 존재임을 드러내

고, ② 일곱 뿔들을 통해서, 절대적 힘을 지닌 승리자이심을 드러내고, ③ 일곱 영들을 통해서, 성령을 파견하시

어 신자들 안에서 활동 하게 만드시는 존재임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묵시록의 어린양을 단순하게 과월절의 어린양이나 이사야 53장의 어린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럼 묵시록의 어린양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어린양’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가? 요한복음에서 세례

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

용된 ‘어린양’은 avmno.j다. 한편 묵시록의 어린양은 avrni,on이다. 또 요한복음의 어린양은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 불리는데, 묵시록의 어린양에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불린 경우가 없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란 단어

가 ‘어린양’이란 단어 앞에 없다.

묵시록의 어린양은 요한이 당대 초대교회 안에 퍼져 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전승과 당대 유대

묵시문학에 퍼져있던 메시아관을 이용해서 발전시킨 그리스도론적 이미지다.

먼저 묵시록의 어린양은, 초대교회에 퍼져 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 가지 신앙고백들을 갖고서, 요한

이 만들어낸 그리스도론적 이미지다.46) 예수님은 초대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과월절 양으

로 이해되고 있었고(1고린 5,7, 사도 8,32, 1베드 1,19), 또 성령을 신자들에게 보내신 분으로 이해되고 있었

는데, 요한은 이러한 신앙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서, 어린양을 ‘살육당한 듯이 서 있는’ 존재 그리고 ‘일곱 뿔들과

44) Ugo Vanni, , 183.45) 4,10 . “ .” ‘

’ .46) J. Roloff, ,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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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영들’을 가진 존재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은 또 당대 유대 묵시문학에서 사용되고 있던 메시아의 여러 이미지들을 자신의 어린양 묘사에 사용하

였다. 당대 유대 묵시문학에 나오는 어린양은 메시아적 양이요 승리하신 양이다. <요셉의 계약> 19장 8절 이하

를 보면, 유다 계통의 메시아는 사자로서 묘사되고, 아론 계통의 메시아는 양으로서 묘사된다. 그런데 요한은 사

자와 양 두 가지를 다 취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승리하신 메시아로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사자로서 소

개하고(5,5) 이어서 어린양으로서(5,6) 소개한다.47)

7절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7절)

어린양이 하느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신다. 이 어린양은 13장에서 보면 생명의 책도 소지하고 있다

(13,8).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두루마리를 움켜쥔 어린양은 세상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

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둘째, 생명의 책을 들고 계신 어린양은 당신 백성들에게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다.

8절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

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

도입니다.(8절)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을 스물 네 원로들이 들고 있다는 점은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하나는 성도

들이 지상에서 바치는 기도가 흘려짐 없이 고귀하게 담겨져서 주님께 봉헌되어진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도

들이 지상에서 드리는 기도가 천상 어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48)

4. 나가는 글

지금까지 본문 주석을 통해서 보았듯이 어좌를 둘러싸고 있던 하늘 어좌의 예배 무리들은 하느님 앞에 엎드려

경배 드리고 있다. 스물네 명의 원로들은 자신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내던지면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

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

고 창조되었습니다.”(4,11)라 찬미하였다. 네 명의 생물들도 하느님을 밤낮으로 찬미하면서 “거룩하시다, 거룩

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4,8)이라 경배 드렸

다.

요한묵시록에서 요한이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는, 경배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한 자신이 두 차례나 천사로부터 “너는 하느님만을 경배하여야 한다.”는 주의를 들었음을 밝힌다

(19,10; 22,9).49)

47) . 1 90,38, .

. 48) , ( : , 2002), 78; , , 108.49) “ . . “ .

. . .”(19,10)

- 14 -

그런데 하느님만을 향한 배타적인 경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그대로 주어진다. 요한은 살해되었다가 부활

한 어린양 그리스도가 하늘의 예배 무리들로부터 어떻게 경배 받는지를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보여준다.

하나는 직접적인 묘사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들과 스물

네 원로들이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5,8), 수백만 수억만 천사들이 네 생물들과 스물네 원로들과 함께 어린양께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5,12) 하면서 경배를

드린다.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5,13) 하면서 경배를 드린다.

하느님을 향한 경배가 그대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주어져야 함을 보이는 두 번째 묘사는 5장에 서

술된 대관식을 통해서이다. 5장 5절부터 14절을 보면 세상 통치자의 왕관 수여식과 비슷한 구조로 이야기가 전

개되고 있다. 세상 통치자의 왕관 수여식은 통상 다음 단계로 수행된다.

① 새로운 통치자가 고양되어지고

② 새 통치자에게 칭호가 주어지면서 통치권이 부여되고

③ 새 통치자가 신하들 앞에 소개되고 신하들은 그에게 경의를 드린다.

묵시 5,5-14의 어린양에 대한 소개는 이 구조에 맞아 떨어진다.

① 5,5에서 원로들이 어린양을 고양시킨다.

② 5,6-7에서 두루마리가 수여되면서 세상 종말의 통치권을 부여받는다. 두루마리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

스도의 고양과 어좌에 오르심을 드러낸다.

③ 5,8-14에서 어린양이 천상 존재들에게 소개되면서 그들의 경배를 받는다. 경배는 세 개의 영광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첫째 하늘의 원로들과 네 명의 생물들이 드리는 영광송(5,9-10), 둘째 하늘의 천사들

이 드리는 영광송(5,12), 셋째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영광송. 이러

한 삼중의 영광송은 왕의 수여식에 따라 오는 경의의 환호성을 상기시킨다.

요한 묵시록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말의 징조, 최후의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다. 가장 중요

한 주제는 경배다. 시련과 박해 중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서 누구를 경배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인지 아니면 11장부터 등장하는‘그 짐승’으로 상징화 된 로마 황제 도미티안을 경

배할 것인지.50) 요한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당연히 하느님과 그리스도만을 경배하게 만들고자 묵시록을 기록했

던 것이다.

Abstracts

The most important theme that The Revelation of John deals with is not the phenomenon of

the end-time, the last judgment, the second coming of Jesus Christ. The most important

theme is worship. The author of the Book(the Revelation of John) asks the believers in his

community whom they decide to worship. He asks them if they worship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or the Roman emperor Domitian symbolized by 'the beast' in chapter 11. John,

the author of the book, wanted the believers in his community to choose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without hesitation. For this purpose he wrote the book.

Although the entire book gives stress on the worship of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50) ( ) , " , "(Dominus et deus no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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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s 4-5 especially emphasize the theme of the worship. Revelation 4-5 consists of the

worship given by the heavenly beings who are found around the heavenly throne. In chapter

4 the heavenly beings give homage to God, and in chapter 5 the same beings give homage

to Jesus Christ who are symbolized in the figure of the Lamb.

This article analyzes the differences of the worship for God and for Christ. God is

worshipped as the Creator, while Christ as the victor, savior, the giver of the Spirit, and

especially the one who completes the salvation history.

In relation to the worship of Christ, the theme of the Christology and Eschatology will be

dealt with in this article. It will be analyzed that Jesus Christ, received by God the full

authority over the end of the world, will close the salvation history.

Key Word: Lamb; the scroll; seven seals; four living creature; twenty-four el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