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노비의 딸 조선 왕을 낳다"

“폐비전왕비, 인현왕후는내가후궁에들어오니까

나를 견제한답시고 자기랑 똑같은 서인 명문가 여자를 궁에 데려왔지.

괜찮은생각이었는데그러려면좀더똑똑한사람을골라야했을거야. 나는좀더잘고를거야.

하 다 못 해 일 을 도 모 하 더 라 도 김 귀 인 처 럼 멍 청 하 게 그 르 치 지 는 않 을 사 람 으 로 .

나역시여관이라서, 여염집여자처럼사사로운데얽매이지않아.”

이경민지음

최숙빈과장희빈

노비의딸、

조선왕을낳다

─이경민지음─

최숙빈과장희빈

프롤로그─

거대한궁궐안에서도가장깊은곳에위치해있는곳, 대조전. 그곳

은왕이거하는공간, 왕의거처 다. 뭇사람들의눈을타는곳이아닌

지라거대하거나화려하다기보다는잘짜여있고정갈한, 조선왕조전

체의살림집이었다. 동시에왕실의핵심이요, 온갖격변과사건사고,

양陽의예식들과음陰의정략들이소용돌이치는, 고요한태풍의눈이

기도했다.

왕의공간이라고는해도사실궁전전체가다왕의거처인지라실

제로대조전에거하면서이곳을관리하는이는왕이아닌왕비 다.

하늘아래단한사람만이왕이될수있듯, 그녀는땅위에단한명에

게만주어지는권력을가진조선최고의여인, 의례적으로나마나라

의모든안살림을관장하는내명부의수장이었다.

숙종 19년봄, 조선왕조의최정점에선여인은중전장씨 다. 훗날

장희빈이라는이름으로역사에남게될사람이다. 사가에서의이름은

옥정玉貞. 이제서른다섯의원숙한나이에, 슬하에는훗날조선의 20대

05

왕이되는세자윤해, 훗날의경종을두고있었다.

“봄날씨가포근하고나른하구나.”

“그렇습니다. 전년에그래환난으로마음썼던일이꿈같습니다. 세

자저하의병환도다나으시고……이제포근하고좋은일만있으려나

봅니다.”

지 상궁의말에옥정은고개를끄덕인다. 전년도인숙종 18년에는

유난히지진, 홍수, 호환등재해가많았다. 게다가새해가되자마자

여섯살난세자는감기를심하게앓았었다. 병세가제법심했는지왕

은세자의병이낫자마자즉시약방제조이하관원들에게상을내렸

다. 허나상궁의말은그의미만은아닐터 다.

장옥정은부유한역관의딸이다. 그러나어머니가사노비 으므로

모계를따지는조선조신분법상천민에속한다. 그녀의집안은조선

후기의전통적야당이라할남인정파에속해있었고, 여종이었던어

머니는남인명문가를모시는신분이었다. 옥정이사가에남아있었

다면기껏해야남인집안사족士族의후실로나들어가게됐을것이다.

헌데옥정은타고난미모와재기가남달랐던모양이다. 옥정의집

안에선그녀의어머니가노비시절모시던상전의연줄로옥정을입

궐시켜나인일을맡게한다. 기록에따르면입궐할때의나이가‘머

리를틀어올릴무렵’이었다하니성인식을치를무렵궁에들어갔다

는게된다.

원래나인으로입궐하는것은이르면 3~4세경, 늦어도 15세경에

06 노비의딸, 조선왕을낳다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나인일수록 입궐

연령도빠르다. 왕과왕비등을모시는전문직으로서필요한품성과

지식, 기술을일찍부터익혀야하기때문이다.

그런데옥정은한참늦은나이에나인으로들어와, 입궐한지얼마

지나지않아왕의사랑을받게된다. 미루어보건대옥정어미의옛주

인이던고관조사석趙師錫, 남인계열로숙종대에우의정과좌의정을지냈다의정치적

안배로인한것이었으리라. 당시조사석이속한(그리고옥정의집안이

속한)남인정파는전통적여당인서인세력과오랜권력쟁탈중이었

다. 옥정은그녀의남다른미모와재기를눈여겨본남인들쪽에서의

도적으로왕에게접근시킨여인이었으며, 그렇게주어진역할을훌륭

하게수행해젊은왕의사랑을얻는데성공한다.

그러나이후그녀의행보는결코순탄치않았다. 옥정이왕과사랑

을나누게됐을무렵, 왕실은왕의외가에의해주도되는중이었고, 그

가문은골수서인이었다. 옥정은그녀가남인계열임을위험하게여

긴왕의어머니명성왕후에의해궁에서쫓겨난다. 이후그녀의행적은

당대남인과서인의정쟁과함께하 다. 아니, 그보다그녀가정쟁그

자체가되었다고하는편이옳으리라. 옥정이궁에들어오면서남인

세력은부상했고, 서인들의반격역시늘그녀에대한총애나특혜를

비판하는방식으로이루어졌다. 결국왕은옥정을왕비로삼기위해

남인을등용하고, 그녀를위해집권서인을숙청했으며심지어송시

열, 김수항등이에반대하는서인세력의 수들을죽여버리기까지

한다.

07

옥정으로인해실로수많은피가흘 다. 그리고그피위에서그녀

는일약왕조를대표하는여인으로거듭난다. 신분서열상최하층인

노비소생의여자가, 타고난매력과지략으로이나라단한명에게허

용된국모자리까지올라선것이다.

“참으로고역스러운해 다. 이제봄이찾아왔으니좋은일만있겠

지. 주상도어느때보다정사政事에열심이시고, 세자도건강하게커서

곧서연書筵, 후계자수업을받을테니.”

현재정권을잡고있은남인들은, 13년전발생한대규모환란에서

살아남은사람들이었다. 당시남인의대다수는역모사건에휘말려사

형을 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옥정이나 옥정의 측근들 역시 자칫하면

살벌한정국속에서처참히죽어갔을것이다. 그러나그들은살아남

았고, 다시권세를얻기위해옥정을내세웠다. 실상남인들이오늘날

과같은정권을잡은것은오롯이옥정의힘이었다.

“그러고보니성상을뵌지오래되었다. 오늘같은날은성상과함

께봄바람을완상하고싶다마는, 오늘도성상께선주강晝講, 왕이신료들을

모아놓고행하는, 일종의시국세미나에나가셨겠지? 요즘도통대전에들지않으

시는구나.”

지 상궁의얼굴이갑자기사색이된다. 입술을떨며어쩔줄몰라

하는모습이심상치않아서옥정이연유를묻는다.

“죄송하옵니다. 소인이……세자저하의병환등으로정신이없어

미처고하지못하 사옵니다.”


“무슨말인가? 뭔가안좋은일이라도있었다는것인가?”

“엊그제주상전하께서중궁전나인을침소에들이셨사옵니다. 그리

고, 어젯밤에도.”

상궁이고개를조아린다. 옥정은잠시눈썹에힘을주었지만이내

선선히받아들인다.

“그랬구먼. 별일도아닌데뭘. 다음부터는그런일이좀더일찍보

고되도록하게. 그래서누구라던가? 승은承恩을입었다는나인이.”

“중궁전침방에속한최가복순나인입니다. 얼마전부터마마께서

지 에불러쓰고계시었습지요.”

옥정의눈이크게뜨인다.

“얌전한고양이가부뚜막에오른다더니, 그애란말인가? 뜻밖이로

구먼.”

옥정이웃음소리를낸다. 지 상궁은눈이휘둥그레진채그녀의

눈치를살필따름이다.

“주상께서도참, 엉큼한데가있으셔!”

옥정이말했다. 그리고또무언가를생각한다.

“신경쓸것없네. 궁에서왕왕있는일이아닌가. 순이그아이는

착하고겸손한성격이라서문제를일으키지않을거야. 그아이를언

젠가상궁으로뽑아쓰고싶었는데, 알아서승은을입고상궁이되어

주니오히려반갑군그래.”

“하오나마마, 그나인은…….”

“두번째로군. 두번째가생겼어.”

09

옥정이말한다.

“가장미천한출신으로성상의은혜를입은사람이말이야. 내가첫

번째 지. 이제두번째가생겼구먼. 순이도아마관노官奴, 공노비 출신

이었지? 이젠나더러전무후무한별종이라고손가락질할수없겠어.”

상궁은입을떡벌린채옥정을쳐다볼따름이다.

장옥정은조선역사상가장크게출세한여인이다. 조선조사상그

누구도, 궁녀출신으로살아서왕비가된사례가없다. 더구나옥정은

궁녀출신이면서여종의딸로신분법상천민이다. 천민으로서대조전

을차지하게되었으니남녀통틀어가장낮은곳에서가장높은곳으

로올라간유일무이한경우이다. 더구나그녀가낳은아들, 모계를따

르자면그또한천민이어야했을남자는이후조선의왕경종이된다.

이러한일이국초도아닌숙종조, 조선의신분질서와사회제도가완

전히정착된시대에일어났다는점이아이러니하다.

헌데바로그시절, 옥정을넘어서지는못할지라도최소한옥정과

타이기록이될만한신분상승이한번더실현됐다. 그것도그녀의

바로곁에서말이다.

훗날숙빈이되는나인최씨의본명은전해지지않는다. 야사에‘복

순이’라는이름이전해지기는하지만확실치않다. 그녀의출신등에

대해서는확실한기록이없다. 야사에따르면혈혈단신고아로인현

왕후의 시녀로서 입궐했다고도 하고, 심지어 궁녀도 아니고 궁녀의

뒷수발 하인에 속하는 무수리 신분이었다고까지 한다. 공식 기록을


살펴볼때실제로는고아나무수리출신이아니고, 정변으로인해궁

녀의결원이생겨급히충원된공노비출신의소녀 던듯하다.

옥정은중인명문가에서태어난딸이다. 중인가문이되온나라에

서손꼽히는거부 다고하니신분법상천민이라해도실제출신과

성장과정은재벌가의서녀庶女 정도의위치 다고하겠다. 그녀는그

로인한연줄과스스로의재능을이용해궁에들어왔고, 왕의사랑을

얻어유사이래전무후무한궁녀출신국모가되었다.

최씨또한천민출신일가능성이농후하다. 조선조에궁녀는공노

비출신에서만뽑는것이원칙이었기때문이다. 이름조차남지않은

그녀는, 어려서부터궁의허드렛일을맡게된 600여명나인들중하

나일뿐이었다. 고관대작의연줄이있지도, 누군가일부러왕과엮이

게끔조치한것같지도않다. 최씨는정말우연한기회에왕의사랑을

얻었고, 얼마안가옥정의라이벌이된다. 옥정은이후, 바로그녀최

씨로인하여최고의자리에서나락으로떨어지게된다.

“마마, 황공하오나.”

옥정의상궁이조심스레말을꺼낸다.

“좋게만보아넘기실일이아니옵니다. 최가복순나인의출신을생

각하셔야하옵니다. 더구나주상께서벌써이틀연속으로그아이를

불러들이셨다하니, 상황을살피시고주의하셔야하옵니다.”

“출신이라니, 무슨말인가?”

“최가복순이는…… 폐비의사람이아니었사옵니까. 마마께서중

11

전첩지를받으시기전부터, 중궁전에속해있었고말입니다.”

옥정의얼굴이굳는다.

“그런말말게. 그런식으로치자면나인들중에폐비의사람이아

닌이가몇이나된단말인가! 그애들이승은을입을때마다폐비의사

람이라고일일이삿대질을해야하겠는가.”

상궁이입을다문다. 옥정이봄볕을바라본다. 해가중천을넘어서

고, 화사하던볕에천천히그늘이들면서짙게농익어간다.

옥정은올해로서른다섯, 왕보다두살이많았다. 옥정이전에왕비

다가쫓겨나간민씨폐비는그녀보다여덟살이어렸다. 이번에승

은을입은순이는그보다도세살이더어린스물넷, 바야흐로여인으

로피어나는나이다. 서른세살이된왕이청춘을되찾는열정으로품

에안을법하다.

“순이가벌써스물넷, 그예은혜를받았구나. 그애는나와같은때

에궁에들어왔지. 그때나이가일곱살쯤되었었을터인데. 세월이많

이흘 구나. 시절이많이바뀌었어.”

옥정이먼곳을바라보았다. 그녀는왕비의옷을입었지만, 지금그

녀를모시는나인들과같은옷을입고같은일을하던시절이있었다.

열여덟, 온몸으로풋풋한향취를뿜어내던시절이다. 제젊음이얼마

나화려한지를스스로는미처알지못하던시절.

궁의일을모른채, 바깥에서배운지식과제운명에대한자신감으

로꼿꼿하게궁안으로걸어들어오던그녀의곁에, 일곱살나이로종

종걸음치던또한소녀가있었다. 당시에는서툴게걷던자그만여자


아이따위옥정은거들떠도보지않았으리라. 헌데17년후, 옥정은그

때의일곱살난여자아이가자기앞으로성큼성큼걸어오는환幻을

본다. 그여자아이는옥정앞에다가올수록쑥쑥키가자라서, 이제는

같은남자의사랑을입은채그녀의정면에선것이다.

13

차례─

프롤로그 05

1장│노란뱀을품은여인열한살애기나인순이 18

왕가의불륜사건과최씨의입궐 26

애기나인님, 우린다시보게될거야 33

잠깐이야기│지 과침방, 뭐하는곳일까? 46

2장│투쟁의시작늦은봄날의소녀, 민씨 50

3년만의귀환 59

궁궐에피는두송이꽃 71

잠깐이야기│궁녀들의승진과승은상궁 84

3장│옥정,왕의아들을낳다제운명에비수를꽂다 88

성상과그의핏줄 98

운명적대립 108

4장│운명을뒤엎을운명격정적인왕, 숙종 126

중궁전을지키기위해 131

왕과의만남 139

역逆의운명을가진여자들 147

5장│최씨,숙원에오르다권세를잃었는데도그이를섬기느냐 164

같은운명을가진, 다른마음을품은 174

오로지살아남겠다는마음으로 186

다시, 내전의하늘이바뀌다 195

잠깐이야기│후궁들의서열 202

6장│최후의승리자새로운왕자의탄생 206

치명적실수그리고몰락 219

처절한최후 234

같은하늘아래존재할수없었던 249

에필로그 261

저자의말 268

혜성과같은흰기운이서쪽부터중천에뻗치고,혜성이두달동안나타나다

날씨가침침하 다. 흰기운이서쪽으로부터중천에뻗쳐서그모양이혜성과같았고여러날동안사라지지않았다. …당시국상(國喪)은혜성이나타나기전에이미났으므로,이러한이변의출현조짐이어디에있는지알수없었다. 그후에장녀(張女, 장희빈)가일개비천한여인으로서임금의총애를받아필경에는왕비의지위를빼앗아큰파란을일으켰는데, 그녀가임금의총애를받기시작한것이바로이무렵이었으니이로써하늘이조짐을보여주는것이우연이아님을알겠다.- 《숙종실록》숙종6년11월1일

│ 1 장 │

노란뱀을품은여인

열한살애기나인순이

궁중은하나의독립된도시 다. 궁내 일만을관장하거나치안을

담당하는관청이있었고, 각기의식주를생산하는기관이있었으며,

관련된업무를마친직장인(?)들이퇴근하여지내는, 오늘날로말하자

면공무원아파트에해당할만한거처들이있었다. 다른점이있다면

이도시의주민들은거의모두가여인들이란점이다. 대략600명정도

의여인들이각부처와처소들에서도시를지탱했다.

때는숙종 6년초, 열한살의애기나인순이는다른애기나인들과

함께막조반朝飯, 아침식사을마치고, 도청都廳나인에게인솔되어오전교

육장소로이동했다. 일과후부서별로이루어지는교육일정과달리

여관으로서의임무와마음가짐에대해읽고복창하는정도의과정이

었다. 대비전과 대왕대비전의 모든 애기나인들과, 비번인 나인들이

처소에서한참떨어진중궁전쪽당에모 다. 짧은절차를위해애기


나인처소에서교육장까지먼길을오가는일도시간안에해내자면

적잖은고역이다. 순이는애기나인 4년차로, 뜻모르는이야기들을외

국어로된노래따라부르듯해야했던시절을지나이제제법간단한

언문토막은알아볼수있게된참이었다.

그런데이날은평소와달랐다. 애기나인들은당에좌정한채한참

을대기해야했다. 궁녀로서의원칙을가르치고새벽일과에서실수

를보인나인을지목해벌주어야할지 至密나인의모습이보이지않

았다. 그들을인솔해온도청나인은초조하게자리를서성대며몇몇

무수리들과 속삭댈 따름이다. 무수리들은 나인의 말에 고개를 저을

뿐이고, 나인은답답한지입술을깨물었다.

“순아, 이리좀와보렴.”

도청나인이순이를불러낸다. 애기나인이견습시절을마치고정식

여관 官이되기까지는원칙상 15년이걸린다. 10년차이상의애기나

인들은이미각부서에소속되어업무를보았고 6년차이상은따로교

육을받았기때문에, 순이도여기모인애기나인들중에서는연수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봤자 정식나인들의 유유한 듯 성큼성큼한

걸음걸이를종종걸음으로따를수있으려면한참아직이었지만.

“너대왕대비전에, 지 나인들있는데알지?”

순이의눈이똥그래졌다. 각부의나인들에게는정해진부서와

역이 있다. 더구나 애기나인들은 원칙적으로 정규나인의 인솔 없이

혼자궁중을돌아다닐수없게돼있었다. 물론온전히지켜지기는어

려운규칙이었지만말이다. 지 나인이라면궁녀들조직에서도사령

19

탑에해당하는조직이요인원들이었기에침방애기나인이함부로얼

쩡대기어려웠다.

“미안한데네가좀다녀와야겠다. 가서홍상궁께서어디계신지확

인하고가능하면모셔오렴. 내가가자니여기애들이있고, 행여길이

엇갈릴수도있으니말이다. 무수리들은못믿겠고, 다른애기들은길

을잃을것같다. 할수있겠지?”

순이는망설 지만, 궁에들어와 4년동안윗사람이시킨일에는확

실하게말로표현할수있는어려움이없는이상끝까지따라야한다

는것을배운참이다. 굳은몸은마음으로채찍질하면움직이게마련

이고, 서럽거나두려운감정은이를악물면결국에는가라앉았다.

순이는걸음을서둘 다. 또래에비해서도체구가작고발육이더

딘편이었지만남들보다금세알아듣고빨리움직일수있다고자신

했다. 어쩌다경내에지나다니는나인들이다들자기만쳐다보는것

같아불안했지만, 순이는마주칠때마다멈춰서길가로몸을수그리

면서도다시움직이는걸음을늦추지않았다. 숨이턱에찰때마다진

짜나인들처럼, 유유하면서도성큼성큼한특유의걸음을걸을수있

으면얼마나좋을까, 하는생각뿐이었다.

궁안은이날따라늦봄날씨가무색할정도로가라앉아있었다. 순

이는걸음을서두르느라지 나인들거처에이르러서야그사실을실

감했다. 나인들은여기저기서속닥속닥정보를교환하고곁눈질을하

느라순이에게신경쓰지않았고, 지 나인거처에들어서서조차홍

상궁이있다는쪽을가리킬뿐그안으로순이가몸소들어설때까지


누구하나막아서거나도와주지않았다.

“아직따로말 내려온건없단말이지? 대비전에서도, 조대감한

테서도?”

홍상궁이누군가에게다짐받는중이었다. 홍상궁은애기나인순

이를지도하는원로선임이었다. 매일머리를빗겨주고옷입는법도

를알려주는목소리를먼발치에서나마못알아들을리없었다. 대답

하는 목소리는 순이가 모르는 사람의 것이었는데, 음색이 또렷하고

은근한힘이있는게한번듣고는잘잊혀지지않는음성이다.

“오늘일은윗전과종친들일이니저같은것에까지내려올일이아

니지않습니까.”

“ 쎄그랬으면좋겠다만……, 복창군, 복평군때의일이있지않느

냐. 윤상궁일도들었겠지? 언제이쪽으로불똥이튈지모르는일이

다. 옥정이너는특히조심해야하는입장이고.”

순이는더기다릴수없어최대한수그린자세로그들에게다가갔

다. 홍상궁은뭔가수심에잠겼는지얼른순이를보지못했고, 먼저

순이에게경계심어린눈매를보인것은함께있던나인쪽이었다. 홍

상궁에게교육장이야기를전하는순이의어깨가저절로움츠러들었

다. 다행히홍상궁은순이를알아봐주었다.

“그렇구나. 내가경황중에애기나인들일과를챙기지못했다. 옥정

아, 네가가서좀맡아주겠니?”

“애기나인들교육을말 입니까? 저는그쪽으론아는바가없습니

다만.”

21

“그냥가서《내훈》몇구절만읽어주고, 애기들이따라읽게하면된

다. 너도오늘같은날공연히이사람저사람눈에띄어서좋을게없

고.”

옥정이라불린나인이마지못해명에따랐다. 순이는그여자의얼

굴을엿보면서이유없이가슴이뛰었다. 동그란눈에코가오똑하고,

양쪽으로살짝치켜오른입가가고양이같아서장난스러운듯냉소

하는듯늘보조개를만들었다. 그리크지않은체구 지만옷깃과치

마섶언저리로뿌듯한태가곡선을이루었다. 순이는‘육감적이다’

내지‘교태롭다’같은단어를몰라그느낌을확실히표현할수없었

지만, 궁에들어와본나인들중에가장예뻐보인다는점은분명했다.

“저, 마마님이것.”

자리를뜨려는홍상궁에게옥정이종이에곱게싼것을내민다.

“생과방生果房 아이들이가져다준과자입니다. 늘챙겨주시는데제

가경황이없어죄송스러웠습니다.”

“장나인, 그것집어넣게.”

홍상궁의목소리가딱딱했다.

“다시금말하지만우리여관들은무엇보다사심私心을멀리해야해.

우린그냥계집들이아니라이나라를보이지않는곳에서떠받치는

공복公僕들이야. 여염집여인들마냥예쁜옷이나입에단음식을탐하

기시작하면모든게끝장인것이야. 을묘년에복창군, 복평군께비단

옷선물이나받은여관들이어찌되었는지알겠지? 오늘허대감의자

제분과복선군에대한처벌건이조정에올라왔네. 내가각별히자네


를찾은건행여그분들한테서작은선물이나마받은일이있을세라

염려가되어서 어. 그런사실이없다하니나는가겠네. 제발몸을단

속하고, 여염집여인처럼행세하는일이없도록하세. 특히나대왕대

비전에자네출신이어떻게비칠지깊이생각하시고.”

홍상궁이몸을돌려걸어갔다. 순이는얼른허리를수그렸으나옥

정은망연자실손에든종이뭉치조차제대로챙기지못했다.

“얘, 이것가져가서다른애기들이랑나눠먹으렴.”

교육장으로나오는길에옥정은홍상궁에게주려던과자를종이

채순이한테건네었다.

“여염집여자처럼굴지말라니. 정5품품계씩이나받고도 20년전

하룻밤추억만여염집부인처럼주워섬기는게누군데.”

낮은목소리의혼잣말이었지만종종걸음으로따르는순이의귀에

는고스란히들렸다. 더구나순이에겐어머니와다름없는사람에대

한험담이었으니말이다.

“애기야, 너는말이야, 여기서어떤윗자리로올라가든아랫사람의

마음을순수하게받아들이렴. 공연히사세事勢 따지면서모략으로계

산하지말고.”

옥정이말했다. 순이는사세니모략이니하는말들이너무까마득

하게여겨져건성으로대답했다. 그러자옥정이우뚝걸음을멈춘다.

“너, 윗자리니아랫사람이니하는게애기나인하고는상관없는이

야기라고생각하는구나?”

23

순이가소스라쳤다. 옥정은순이가고개수그린채잠시머뭇대는

것만으로그녀의깊은속생각까지다들여다보는것같았다.

“애기나인으로 15년, 그런 다음에 정식나인으로 15년 지내서 상

궁……. 너희는그게이곳인생의다이고끝이라고생각하겠지. 근데

그렇다면왜힘들게《내훈》의부부장이니혼례장이니를읽고외우고

할것같니? 원히여염의배우자를맞이할수없을텐데……. 애기,

너궁에들어온지얼마나되었어?”

“4년이됩니다.”

“나랑똑같구나. 나는들어오자마자앵무새피를팔뚝에묻히고*

관례를올렸어. 머리를올릴때에야궁에들어온것이지. 원래대로라

면소주방이나세답방에도못들어가는분수야. 그런데도 4년만에정

식나인에, 그것도지 에속했어. 이곳의인생이란게꼭순서대로돌

아가는건아니야. 홍상궁마마는궁에들어온지 40년이다되었대.

하지만난40년후에마마님처럼살고있지는않을거야.”

순이는입을반쯤벌린채멍하니섰을따름이다. 옥정의이야기를

못알아들은것은아니다. 하지만이렇게비상식적인말에어떻게반

응해야할지알수없었다. 자신이귀머거리라서방금말을못들은것

으로할수있다면얼마나좋을까!

다시금순이의속을들여다본듯옥정이미소짓는다. 그리고다시


*조선왕실에서는궁녀들을선발할때독특한방식으로처녀성을감별하는풍속이있었다. 의녀

가앵무새의피를후보자의팔뚝에묻혀보아이것이잘묻으면처녀이고, 잘묻지않고흘러내

리면처녀가아니라고판정했다.

걸음을옮긴다.

그녀는순이가이해할수없으리만치아름답고당당한여인이었다.

또한위로는귀인들로부터아래로는심지어무수리나각심이나인들의가

사를돌봐주는하녀까지, 궁안에있는여자라면누구나갖고있는무언가가

그녀에게는없었다. 순이는거의동물적인본능으로, 그불가해한아

름다움으로부터어떤위험을냄새맡았다. 교육장으로가는내내순

이는걸음이서투른척그녀와의거리를최대한벌리고자노력했다.

순이는계속해서그녀와멀리있기를, 그녀가자신의존재를얼른잊

어주기를바랐다.

옥정은이로부터 9년후희빈에봉해지며사실상조선의국모가된

다. 그녀의아들은 4년간왕위를차지하고, 장희빈이란이름은이후

수백년간궁중악녀의대명사가될것이었다.

한편, 순이는 19년후숙빈에봉해지고, 그녀에게서태어난아들은

52년간왕위에있게된다.

25

왕가의불륜사건과순이의입궐

순이훗날의숙빈최씨는몰랐지만, 이날궁중에서는역모고변이있었

다. 훗날‘경신환국’이라는이름으로역사에기록되는정변이다. 이

사건을계기로당시집권여당이었던남인은실권하여당지도부가

사실상와해되고, 한동안야당으로 려나있었던서인산당이여당

으로복귀하게된다. 이는 14세로즉위한숙종이 6년만에그간의친

위세력을숙청하고진정한친정체제를취하게된것이며, 궁녀옥정

의뒤를봐주던남인이세력을잃고, 훗날옥정의경쟁자가되는인현

왕후민씨의배경인서인이집권함을의미했다.

순이는물론옥정역시이때는아직어렸고힘이없었다. 그래서이

와같은변화에아무런 향을미칠수없었으며, 동시에이런변화의

향이두사람에게직접닿지도않았다. 아직까지는그랬다. 다만이

사건으로인한여파는좀더훗날, 일종의나비효과로두사람의운명


을바꿔놓을터 다.

당시스무살의숙종을둘러싼정치구도는다음과같았다.

첫째로는집권남인이있었다. 약 50년간조선의‘여당’은서인, 그

중에서도산당山黨이라불리는송시열의당파 다. 예학에엄격하고,

좀거칠게말하자면‘유교원리주의자’에가깝다할정당이다. 오랜

집권과여러가지상황으로인해그들의권위가지나치게커졌다고

판단한숙종은외척세력과연합해서인을숙청한다숙종원년, 갑인예송. 그

로인해새로이집권하게된왕년의야당이남인들이다. 허적, 윤휴,

유혁연등이주축이었다.

둘째로는서인집단내에서도강경파에속하는서인산당이있었

다. 앞서말한대로예학의원칙에충실하고, 그렇다보니국왕까지도

사대부적예법에따라야한다는당파이다. 송시열이주축이며, 병자

호란이후왕실의권위가많이떨어진상황에서대다수지식인들의

호응을얻고있었던듯하다. 숙종이즉위하자마자한일은바로이들

을견제하고그권위를실추시킨것이었다.

셋째는외척세력이다. 주로왕의친모인명성왕후와관계된인물

들이다. 명성왕후의부친인김우명과, 김우명의조카인김석주가주

축이되었다. 이들은대개서인온건파한당에속한인물들로, 같은서

인이지만송시열의산당과당시까지관계가좋지않았다. 바꿔말하

면서인산당과관계가좋지는않았지만본래동류에속했다고도할

수있다.

27

마지막으로종친세력을꼽을수있다. 복창군이정, 복선군이남,

복평군이연의세종친이숙종즉위이후부각됐다. 이들은왕의 5촌

당숙들로말하자면숙종의친위세력이었다. 그중에서도복선군이남

은상당한능력을인정받아, 아직젊어후사가없는숙종이사망할경

우차기왕에가장가능성있는인물로거론됐다.

숙종초기는남인과외척, 종친세력이연합해전통적여당인서인

산당을압박하는형국이었다. 그러면서서서히외척과종친마저대립

하기시작했다. 외척세력은온건파라도원래서인계열이기때문에,

종친세력과왕이남인에 착하는것을경계했던것이다.

순이가옥정을만나던날로부터 5년전, 즉순이가입궁하기전해

에는이로인해명성왕후가주축이되어복창군과복평군을고발한

일이있었다. 죄목은복창군과복평군이궁을자주드나들면서궁내

나인들과정을통했다는내용이었다. 모든궁녀들은왕의여인이었으

므로, 이는종친이왕의여인을취한일종의불륜사건이었다. 왕이증

거불충분으로사건을기각할낌새를보이자명성왕후는 (외척세력을

대표해)정청에서왕과신료들앞에서통곡까지해가며두종친을입건

하게끔 어붙 다. 종친들은얼마안가사면됐지만, 그들의체면은

제법구겨졌고, 전후사정을보건대종친들에대한왕의신뢰역시예

전같지않게되었으리라. 그리고 5년후마침내복창군, 복선군, 복평

군 3형제가남인인허견과결탁해역모를꾀했다는고변이이어지고,

종친과남인들이대거숙청당하는경신환국이일어나게된다.


순이가애기나인이된건종친들이궁녀들과정을통했다는, 왕가

의불륜사건이있은다음해다. 불륜사건으로인해종친들과함께여

러명의나인들이입건됐고처벌을받았다. 종친들은얼마후사면되

지만이로인해추방된궁녀들이다시복귀되거나하지는않았을것

이다. 결국많은나인들이제명됐고, 이로인한결원을충원하는과정

에서순이가입궐한것이아닐까하는추측도가능해진다.

말이나온김에순이의입궐에대해이야기해보자.

전라도정읍에는그녀를기리는‘숙빈최씨광장’과기념비가있다.

정읍에그녀의기념비가있는것은그곳대각교에서고아소녀이던

순이가인현왕후의가족들과만났고, 그로인해입궐하게됐다는전

설때문이다. 전설의출처는 1936년간행된《정읍군지》이다. 그내용

은대략다음과같다.

숙종때민유중이 광군수로발령을받고부임하러가는도중정

읍대각교에서휴식하게되었다. 곁에는 8세된훗날의인현왕후와그

녀의모친도함께 다. 민유중은그다리에서한고아소녀를만났는

데(그다리밑에서걸식중이었나보다)그아이는최씨성에, 부모를모

두잃은천애고아 다. 민유중은아이를불쌍히여겨부임지에데려

갔고, 몇년후서울로돌아간후, 1681년인현왕후가궁에들어갈때

시녀로데려가게했다.

이외에담양용흥사에전해지는전설에서도순이는고아 다가민

씨집안에거두어져인현왕후가입궁할때궁녀로들어갔다고한다.

다시말해순이는인현왕후민씨와처음부터 착된관계 으며그녀

29

로인해(궁녀로든, 단순시녀나무수리로든)입궐하게됐다는것이다. 실

제로양갓집처녀가입궁하면서따로시녀를데리고들어와침방이나

세수간나인으로일하게하면서오래도록곁에두는일이있었다. 이

를본방나인이라부르고, 왕비의경우 3명, 세자빈의경우 2명까지허

용됐던듯하다.

그러나 조가직접쓴비문을비롯해모든공식기록에서순이의

입궐시점은숙종 2년, 즉그녀가 7세때 다고못박혀있다. 인현왕

후민씨가입궐한것은숙종 7년의일이다. 다시말해순이는민씨보

다먼저입궐했다. 그렇다고민씨집안에서순이를먼저들여보냈다

고한다면난센스다. 숙종 2년에는당시숙종의아내인인경왕후가멀

쩡히살아있었으므로민씨가훗날입궐하게되리라고누구도생각하

지못하던시점이다. 따라서순이의입궐과민씨의입궐사이에는전

혀연관성이없고, 그렇다면먼저입궐한순이와민씨사이에도, 최소

한민씨의입궐이전까지는아무런관계가없었다고보아야한다. 위

에소개한전설은, 당시의정사기록이틀리고수백년이후에떠돌게

된전설이옳다는다른증거가없는한받아들이기힘들다. 이는마치

‘오성과한음’설화처럼, 그들이성인이된후의관계를어린시절에

까지확장시킨설화가아닐까싶다.*

또한순이가본래무수리 다는흔히알려진이야기역시적어도

공식기록으로는근거를찾을수없다. 무수리는궁내나인들의치다

꺼리를하는여인네를말하는것으로, 대개궁바깥에서기거하는유


부녀들이다(궁내업무에바쁜나인들을위한가사도우미라고보면되겠

다). 물론일이고되었기에일잘하는여자라면결혼여부와관계없이

채용됐다고도하고, 무수리와별도로궁내에기거하며나인들을모시

는비자婢子가있었다고도하나순이가이들중하나 다는확실한근

거는없다.

더구나 (입궁당시나이인)일곱살된여자아이라면궁녀가되는것

보다, 허드렛일전문가인무수리가되는게오히려더어려웠을것이

다. 순이는훗날인현왕후에대한의리가인정되어승은을입는다. 그

런데일개무수리나비자가이전중전에대한의리를찾고, 그의리가

높이평가된다는것은아무래도부자연스럽다. 왕이무수리를취하여

승은을베푼다는것역시자연스럽게벌어질법한일은아니다. 앞뒤

정황을보건대순이는승은을입을당시중궁전소속의나인이었다고

봐야하겠다. 인현왕후의성격상무수리를일부러곁에부르고나인

으로뽑았다는일도있을법하지않다. 결론적으로순이는처음부터

나인이되기위해입궐했으며, 침방의관례에따라 7세때부터견습나

인을거쳐, 대략1687년경에관례를올리고정식나인이됐을것이다.

물론드라마를위해서는순이가인현왕후와처음부터사적으로연

31

*오성이항복과한음이덕형은실제다섯살차이로, 이들이어린시절단짝으로지냈다는신빙

성있는기록은없다. 그러나조정에서활동할때고독한천재스타일의이덕형과대인배성격

의이항복은개인적으로도정치적으로도긴 하게지냈으며, 그들의콤비플레이가‘오성과한

음’이라는흥미로운민담으로만들어지게되었다. 훗날순이는인현왕후와의관계를통해출세

하게되었고, 이에착안해순이와인현왕후의관계를어린시절로까지연결시킨이야기가만들

어졌을법하다.

관된무수리 다고설정하는편이매력적일수있다. 여러가지사연

과극적전개를만들수있기때문이다.

순이가인현왕후와입궐전부터아는사이라는것도, 원래무수리

다는것도역사적으로볼때는불합리하고비약이많은추정이다.

그러나드라마에서는그런비약이야말로극적인전개를위한매력적

인빈틈이다. ‘어릴적부터아는사이인데어째서따로궁에들어가게

됐을까?’, ‘무수리임에도인현왕후와의리를맺고, 심지어왕의눈에

까지든(실제로있을법하지않은일의)이유는무엇일까?’와같은빈틈

을상상력으로채우는데서드라마틱한이야기가생성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작가나민담의화자라면당연히그쪽을선택할것이다.

그러나이이야기에서는그러한드라마를선택하지않는다. 왜냐하

면순이를그와같이있을수없는이야기속의비범한인물로다루는

것보다, 있을수있는이야기속의현실적인한여자로보는편이그녀

에게가까이다가가는데더도움이되리라생각하기때문이다. 장옥

정을처음만난경신환국의그날, 순이는불가능한일을만들어내는

장래의 웅이아니라궁내의평범한새끼나인, 궁내의긴장과불가

해한상황들에그저본능적으로솜털을곤두세우는열한살여자아이

에불과했다.

아직까지는그랬다. 그녀뿐아니라, 남인의몰락에간접적으로연

루된스물두살의나인장옥정또한마찬가지 다.


애기나인님, 우린다시보게될거야

순이는애기나인시절옥정을세번보았다. 첫번째는훗날경신환

국이라불리게되는정변의날로, 역모고변으로인해궁내가어수선

할때자의대비전지 나인거처에서 다. 옥정은그날숙직으로인

해녹초가된참이었는데도눈가가거뭇거뭇해진얼굴조차기이하리

만치예뻤고, 순이는새하얀볼가와동그란콧잔등으로온통빛을뿜

어내는듯하던그녀의모습이어지간히잊혀지지않았다.

그로부터반년쯤지나서순이는옥정을다시만나게되었다. 그날

도반년전과마찬가지로일이생겨홍상궁을부르러가서 다.

반년전에시작되었던궁내의공포분위기는제법오래갔다. 홍상

궁이옥정에게주의를주고반나절이되지않아궁내경비가삼엄해

졌고나인들의사적인궁내이동이금지됐다. 붉은옷을입은무사들

33

이길목들을지켰고, 나인들여럿이조사를위해불려가곤했다. 순이

가궁에들어온이후처음있는일이었고, 비상사태 다. 하지만순이

는그로인해여기저기심부름을다니느라궁내지리를더잘알게됐

고, 내명부여관의체계와돌아가는방식에감이잡혔다. 나인들이어

떻게일하며무엇을조심해야하는지, 어떤일이큰일이고어떤일이

보기엔무서워보여도이곳의일상사에지나지않는지조금씩알수

있었다.

그런순이를홍상궁은특히귀여워해주었다. 첫째로순이가어린

데도말수가적고조심스러우며, 둘째로그럼에도남의말귀를금방

알아듣고, 셋째로알아들은이야기를남에게전할때불필요한언동

없이간명하게한다는이유에서 다.

“순이항아야, 너는나중에어떤일을하고싶으냐?”

홍상궁이언젠가물었다. 궁내의계엄상황이어느정도진정되고,

여름이한창이던무렵이었다. 궐내나무들처럼순이의귀밑머리에도

천천히새파란것이자라기시작했다.

“너도지 나인이되고싶으냐?”

“그쪽은너무무섭습니다, 마마.”

홍상궁이입을가리고웃었다. 나인들은감정표현을극도로절제

해야했기에, 이러한모습은일반인들이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것과동

일한반응이다.

“그래, 무서운곳이지. 그곳은.”

웃음이잦아들면서홍상궁의표정이쓸쓸해졌다.


“헌데그렇다해도그쪽이야말로나인의본령이야. 나인으로서왕

실에제대로봉사할수있는길이지. 허나내너를그쪽으로보내지는

못할것같다. 거기기준이워낙엄격한데다, 바깥에서도사방에서청

탁이들어가거든. 우리딸이어차피궐안에들어갈것이라면, 기왕이

면일찌감치지 나인에속하게해달라고, 그래서지존至尊되시는분

들과끈이나마만들수있게해달라고말이야. 심지어침방나인들친

인척들조차그래. 고약한것들이지! 우리여관들이대체무엇을위해

평생봉사하는지그의미를모르고.”

순이는말이없었다.

“왜, 서운하냐? 지 나인이될수없어서.”

“아뇨, 너무감사합니다. 천만다행이에요.”

정말죽을데에서풀려난듯한숨을몰아쉬는표정에, 홍상궁이또

웃었다.

“너는침방에계속있으렴, 순이항아야.”

홍상궁이말했다.

“우리는나라일을하는여인들이야. 지아비의울타리안에거하는

여염여인들과는다르지. 그러니네가누구보다잘할수있는기술이

있어야해. 절대로, 절대로윗사람의괴임사랑에의지하여살려해선

안돼. 사람의마음이란건간사해서전날무릎위에올릴듯어여뻐하

다가도내일이되면더러운것이나묻은양내치게되거든. 믿을것이

라고는네기술뿐이야. 어여쁜얼굴은변하고아끼는마음은금세버

릴수있어도, 내게실질적으로필요한사람은누구도쉽게내치지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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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말이다. 네게바늘을놀리고옷을짓는능력이있다면언젠가

궁을나간다하더라도큰염려가없을것이야.”

홍상궁에따르면수라간을담당하는소주방나인이나잔치음식을

담당하는생과방나인등은왕의건강상태등너무많은변수로인하

여고생을하고심지어억울한경우를당한다는것이었다. 그렇지않

다해도하루하루만들고물리기를반복하는식食의 역보다, 오래도

록아름다움을남기는의衣의 역이더많은것을남길수있다고했

다. 침방나인본인은구중궁궐안에서서서히시들어가더라도, 그녀

가만든옷은나라의중심에서화려하게빛날것이며, 경우에따라서

는그녀가죽은후까지도궁에서만가능한아름다움으로서찬탄을받

을것이다.

“사람은누구든, 후대에남기는것이있어야해.”

이렇게넋두리처럼덧붙이는홍상궁의얼굴이한층처연해졌다.

“오늘은경황중에꿈을꾸었습니다. 마마.”

옥정이말했다. 잠깐다른생각을하던순이가자신도모르게살짝

고개를들었다.

홍상궁을찾아자의대비전쪽으로간참이었다. 마침자의대비께

서는출타중이라했고, 그짬을이용해홍상궁이대비전나인들에게

차한잔씩을돌리며망중한忙中閑을선사하는중이었다. 순이를본홍

상궁은금방일어설테니잠시기다리라면서달달한과자한쪽을손

수건네주었다.


그자리에옥정이있었다. 옥정은반년사이더예뻐졌고, 동석한

다른나인들과는격이다른무언가가느껴졌다. 심지어홍상궁조차

도그녀에게건네는말투와몸가짐이한층조심스러웠다. 그것이그

사이옥정이입은승은으로인해서 다는것을순이는나중에야알

았다.

“꿈에뱀이나오더군요.”

“어머, 무서웠겠어요.”

곁의나인하나가아첨하듯말을거든다. 홍상궁은말이없다.

“응, 처음엔그랬어. 하지만꼭무서워할것도아니라고생각했어.

꿈속에서말이야.”

옥정이말했다.

“노란뱀이, 노랗다기보다는황토색흙빛에가까웠는데……. 모가

지를들고발목을건드려오더라고요. 저는이제죽는구나, 생각했어

요. 근데그뱀이새빨간혀를날름대는데, 어쩐지내가저걸두려워

하면저이빨에물려죽겠지만, 저걸귀여워해준다면, 어쩌면저것과

친해질수도있겠다는생각이듭디다. 그래서조심조심손을내 었

어요. 치마폭속으로들어올세라그러기도했고요. 그랬더니뱀이제

손끝을핥았어요. 저는눈을감았죠. 무릎에힘이풀려쓰러질것같

았는데, 이상하게마음이놓이고편안해졌어요. 마치처음옷에얼룩

이묻으면가슴이아프다가도아예더러워진순간차라리마음이편

해지듯이.”

“그래서어떻게되었나요?”

37

“어떻게되긴. 그러자마자잠을깨었지. 깨지않았으면뱀이그대로

치마속에들어왔을지몰라. 천만다행이었지.”

“어머나, 세상에.”

홍상궁이자리에서일어선다.

“먼저일어나겠네. 일이있어서. 순이야, 가자.”

“살펴가세요, 마마님.”

옥정이웃었다. 볼에패는보조개가아찔하 다. 순이는그모습에

자신이노란뱀한테물린것같은기분이들었다.

“천하에고얀것같으니.”

자의대비처소를나서면서, 홍상궁이야무지게털어놓았다. 순이

가깜짝놀라홍상궁의낯빛을살핀다.

“승은한번에저토록방자를떨다니. 저러다주상의괴임이쏠리기

라도하면, 도대체궁내법도를어떻게만들터인가.”

“승은……말 입니까? 마마.”

순이가저도모르게입을열었다. 그랬구나, 옥정나인이말로만듣

던왕의승은을입은것이구나……. 순이는그제야옥정의입가로눈

부시게빛나던광채의정체를알것같았다.

승은을입었다함은왕이옥정을불러, 부부관계를맺었다는뜻이

다. 궁녀들은왕한사람을모시기위해이곳에서살고죽는사람들이

었다. 그들은왕을행복하게하기위해존재했다. 승은을입었다는것

은그여자가왕에게, 여자로서줄수있는가장큰것을주었다는의

미이다. 순이는부부관계라는것이무엇인지아직잘몰랐지만그점


만은알수있었다. 요컨대옥정은이곳의지존至尊을직접뵙고교감

을나누었으며, 가장깊고내 한무엇인가를함께했다.

궁중의법도로보더라도, 나인이승은을입으면승은상궁이된다.

승은을입지않은나인이상궁이되기까지는견습기간을합하여 30

년이소요됐다. 말하자면왕을행복하게만드는일이궁녀의임무인

바, 법도상으로도옥정은한번에 30년어치의일을해낸것이다. 이

제옥정은곧홍상궁과동등한위치로올라가게될터 다.

“노란뱀한테물려? 제손으로그것을희롱하 다고? 몹쓸것, 역도

들의간계로주상께다가간주제에! 내그렇게일 건만. 제위치를알

고조심하라하 는데. 이래서지 나인은법도대로네살때부터엄

격하게가르쳐야해. 늦은나이로분에넘치는자리까지올라오더니

사리분별가리지못하고!”

홍상궁은순이가안중에없는듯했다. 순이는홍상궁이이렇게까

지화내는모습을처음보았다.

“안되겠다. 순이야, 나는일단대비전으로좀가야겠다. 늦기전에

대비명성왕후께말 을올려두어야겠어. 잘못하면궁에또사단이일겠

으니……. 순이항아는먼저돌아가렴. 아니면함께대비전으로가보

겠느냐?”

순이가흠칫어깨를떨며고개를수그렸다.

“제주제에어찌감히.”

겁먹은순이를내려다보는홍상궁의표정이 쓸한듯흐뭇한듯

복잡해졌다. 홍 상궁은 알겠노라고 발걸음을 돌렸다가는 멈추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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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인사를올리는순이를향해덧붙인다.

“순이야, 명심해라. 여기는호랑이가사는곳이야.”


“호랑이가잠이들었을때는그꼬리를목에두를수도있지만, 그

랬다간언젠가잡아먹히게마련이란다. 늘조심해야돼. 분수에맞지

않는행운이문을두드릴땐, 차라리뒷문으로도망치는편이나아.”

순이는홍상궁의말을알아들을수없었다.

순이는문득, 홍상궁이말하는호랑이가혹시옥정이아닐까생각

했다. 노란뱀이나오는꿈이야기를할때그녀의눈매에어리던기이

한광채가떠올랐다. 순이는커다란뱀이제허벅지로똬리틀며기어

오르는광경을상상했다. 죽음그자체와도유사한두려움에오줌을

지릴것만같았다.

옥정의집안은유서깊은역관譯官 가문이었다. 그말예末裔라할그

녀의숙부장현은실록에‘나라의거부’라기록됐을정도니말하자면

당대의재벌집안이라할만하다. 다만옥정의경우부친이예조판서

조사석의여종을소실로들여낳은딸이었기때문에큰행세는할수

없는입장이었다(신분법상모계가천민이면자녀역시천민이된다).

옥정의어머니가일하던집의주인인예조판서조사석은당시대왕

대비숙종의증조부인인조의계비장렬왕후인자의대비의조카 으며남인계열

이었다. 옥정의숙부인장현역시복선군, 복창군등종친들과친했으

니남인쪽이다.


옥정은아버지가일찍1669년죽은후홀어머니와함께살다가입궐하

게됐다고한다. 어머니는과거조사석의하녀 으니, 조사석이장현

과상의하여옥정을궁에넣었을가능성이크다. 옥정은그녀에게적

대적인실록의기록에도‘자못아름다웠다’고공식기록될정도이니

조사석과장현이보기에젊은왕의마음을사로잡을가능성이크다고

생각됐으리라. 그리하여옥정은숙종의증조모뻘인자의대비의처소

에나인으로들어가게됐다. 전후사정을고려할때숙종과옥정을맺

어주기위한어느정도의배려와유도가있었을법하다.

옥정의후견인이었던장현은, 순이가옥정을처음만나던숙종 6년

의그날시작된정변으로인하여, 복선군의역모사건에연루되어처

벌을받는다. 옥정이그날정변의의미를어떻게받아들 을지알수

없지만, 이후그일이그녀에게미친 향은대단히컸다. 첫째로, 후

견인이유배됨으로인하여그녀의궁내입지가약해질수밖에없었

다. 나인들을직접관리하는상궁들역시옥정에대한태도가이전과

같지않았으리라.

둘째로, 숙종의친모인대비명성왕후의문제 다. 명성왕후는 5년

전직접나서복창군과복평군사건의중요증인이된인물이다. 복선

군의역모사건역시그녀의사촌인병조판서김석주가주도한일이

다. 다시말해경신환국을계기로명성왕후와그녀의친족들은종친

세력과남인을타도대상이자불구대천의정적政敵으로만들어버렸다.

그리고옥정은그녀의정적집단에속해있었다.

그런상황에서옥정이승은을입었다. 마침숙종의정비正妃인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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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가죽은터다.*왕비자리가비었는데왕이, 뼛속까지남인일수

밖에없는여자와관계를맺었다! 남인과원수가되어버린대비의입

장에서묵과할수없는일이었다. 말하자면승은을입은데다마침왕

비자리도비어있다는엄청난기회가, 옥정에게는오히려재앙이돼

버린것이다.

새끼나인으로서순이가옥정을마지막으로본것은그해겨울, 자

의대비의처소근방의다과자리에서그녀를두번째로보고채한

달이안돼서 다. 순이가좀더나이든, 그래서궁내사정에더밝

은나인이었다면관련된일처리의신속함, 그리고비정함에놀랐으

리라.

왜냐하면그날, 옥정은궁을쫓겨나는참이었던것이다.

“마마님, 눈이옵니다.”

순이가아이답게재잘대었다. 홍상궁은입가를살짝꼬아보일따

름이다. 미소라기보다는냉소에가까웠다.

“순이항아야, 저문이무슨문인지아느냐?”

“요금문曜門이라알고있습니다.”

“그래. 말도또박또박해지고, 요즘공부를열심히하더구나. 헌데

저문이언제쓰이는지아느냐?”


*인경왕후는 10세때세자빈에간택되었으며, 이후숙종이즉위하자 16세의나이로왕비에책봉

되었다. 그러나왕비가된지 4년만인 20세에천연두에걸려승하한다. 옥정이왕의눈에든것

은왕비가사망한직후의시점이다.

순이의말문이막혔다. 그것은대답할말을찾지못해서이기도하

고, 마침그들쪽으로걸어오는사람들이있었기때문이기도했다.

눈발을맞으며걸어오는사람들한가운데에옥정이있었다.

“어째여전히나인복장을한게요?”

홍상궁이그들쪽을향해말했다. 성마른목소리 다.

옥정이그녀를올려다보았다. 홍상궁이움찔, 목덜미에힘을준다.

옥정의눈빛은결코공손하지않았지만, 그렇다고호전적이거나적대

적이지도않았다. 딱히홍상궁을정면으로향하는것같지도않다. 뭐

랄까홍상궁너머의, 더큰무엇인가를똑바로응시하는듯하다.

“아직사가의옷이마련되지않았습니다. 해서일단이복장으로숭

선군댁으로가기로하 습니다. 대비자의대비께서도그리하라하셨습

니다.”

옥정대신주위의나인들이거들어주었다.

“그래, 대비께서따로사가에돌보기로하셨다지.”

홍상궁이혼잣말처럼중얼대었다.

그들이 홍 상궁과 순이의 곁을 지나 문으로 항하 다. 홍 상궁이

‘저문이언제쓰이는지아느냐’물었던바로그문이었다. 순이는그

문이궁녀들에게어떤의미인지직감할수있었다.

그것은죽음의문이었다. 저문을지나바깥으로나서면, 다시는돌

아오지못한다.

“그간감사하 습니다. 홍상궁마마님.”

옥정이걸음을멈추고홍상궁에게말을걸었다. 목소리가쉬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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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홍상궁은대꾸하지않았지만, 그녀의척추가일순꼿꼿이서는

것을순이는곁에서느꼈다.

“은혜잊지않겠습니다. 또뵈올날고대하겠습니다.”

“또본다니, 그렇게될것같지는않은데요.”


“사람일알수없는것아니겠습니까. 그간여러모로돌보아주셨으

니, 저로선꼭한번다시뵙기를바라겠습니다.”

옥정의목소리는가라앉은채동요가없다.

“애기나인님, 또보는구나. 이름이무어라했지?”

순이는깜짝놀라, 저도모르게“복순이인데요……”중얼대듯말끝

을흐린다.

“그렇구나. 순이항아님, 항아님은계속이곳에있게될텐데, 여기

일이란게한치앞날을알수없단다. 어제의충신이오늘의역적이

되고, 둘도없는친구가내일은내등에비수를꽂기도해. 아무쪼록

좋은나인이되세요. 우린또보게될거야.”

‘꺾을수없을거야.’

순이의지성이아니라본능이, 스스로에게재빨리속삭 다.

‘아무도저사람을기죽게만들지못할거야. 저사람은저렇게예

쁜얼굴로, 절대굽히지않을거야. 누구한테라도, 죽을때까지.’

옥정의뒷모습이요금문쪽으로멀어졌다. 사가에서나온듯한사

람들이문앞에서수직무사들과함께그녀를기다리고있었다. 그가

운데깡마르고눈매가매서운남자도하나끼어있었다. 순이는알리


없었지만장희재라는이름의, 옥정의친오라비 다.

숙종 6년1680년 겨울, 장옥정은나인자리에서쫓겨나궁을나가게

됐다. 그녀를쫓아낸것은대왕대비명성왕후 다. 축출이유는옥정

이역도의집안과연이닿아있을뿐아니라, 천성이사특하고천박하

기때문이라했다. 승은을입은지얼마되지않아아직상궁의첩지가

내리기전의일이었다.

순이는그광경을보았으나자기눈으로보고서도어쩐지믿어지지

않았다. 옥정은분명히요금문으로궁을나가지만, 언제고다시돌아

올것만같다. 왜냐하면옥정이그러기를원하기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원하는일이라면무엇이고이루고야말것같았다. 그것이설

사죽음의길을거슬러돌아오는일이라하더라도말이다. 순이의곁

에서는홍상궁이오래된그루터기인양할말을잃은채, 눈속에식

어가는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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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지 과침방, 뭐하는곳일까?

궁녀는내인內人, 혹은나인으로불리며궁의안살림을맡아하는여

관들이다. 다시말해조선정치의상징체라할왕을수발하며그를도

움으로써국가의정치를돕는일종의여성공무원이라하겠다. 시기

에따라다르지만대략약 600여명의나인들이각부서에나뉘어배

치됐다고한다.

궁녀들은왕과왕비, 그리고왕의어머니나할머니에속하는대비

의생활공간곳곳에배치된다. 오늘날의대기업에서본사직원과지

사직원이나뉘듯왕소속의궁녀, 왕비소속의궁녀등이따로있으

며, 똑같이왕을모시더라도어떤부분의생활을담당하느냐에따라

부서가갈리게된다. 주요부서는다음과같다.

(1) 지 至密: 왕등의침전과생활수발을관리한다. ‘지 ’이란궁

의가장비 스러운 역이란뜻으로, 최고의보안이요구되는 역

이라하겠다. 왕등의신변보호와잠자리관리, 그리고타부서에서올

라온옷, 음식등을최종관리하고감독하는것도이부서의업무이다.

대략기업총수의비서실이연상되는업무 역이며, 가장격이높은


부서로인식됐다.

(2) 침방針房: 왕등의의복을담당한다. 왕과왕비, 대비등의각종

생활복과의례복, 나아가하사품으로쓰이는의복까지를제조하는곳

이다.

(3) 수방繡房: 의복혹은각종장식물에쓰이는수를놓는부서이다.

침방과수방은지 다음으로왕등의일상에 착되었고, 그래서지

다음으로격이높다고인식됐다.

(4) 세수간洗水間: 왕등의세숫물과목욕물, 그리고화장실관련일

까지를담당하는부서이다.

그밖에왕등의간식을담당하는생과방, 왕등의식사를담당하는

소주방燒廚房, 의복의세탁과다듬이질, 다리미질, 염색등을담당하는

세답방洗踏房 등이있다. 각부서의격은왕과 착될수록높아지는것

이어서지 이가장높고, 침방과수방이그다음이며, 세수간등이하

의부서는상대적으로낮았다. 그래서지 부서에만일결원이생기

면침방이나수방에서충원했다고한다.

장옥정은자의대비전의지 부서에속하는나인이었고, 순이는명

성왕후대비전에속하다가이후중궁전의침방부서에속하게된다.

이야기속에서홍상궁이나옥정등이순이에게‘순이항아’라부르

는것은엄 히말해격식에어긋난다. ‘항아’는정식나인을높여부

르는호칭이다. 그러나까마득히어린애기나인에게, 그를귀여워하

는선배나인이나상궁이라면사적인자리에서꼭격식그대로대하

지는않았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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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상전무후무한일이일어났다!천민출신으로조선왕의어머니가된숙빈최씨와희빈장씨,

역사를뒤흔든두여자의치열한음모와대립!

때는 1680년경신환국, 거대한역모사건으로남인들의피가흐르는궁

궐에서관노비출신의애기나인최씨는세도가여종의딸로서궁녀가된

장옥정과마주친다. 그로부터 9년후장씨는희빈에봉해지며사실상조

선의국모가된다. 그녀의아들은 4년간왕위를차지하고장희빈이란이

름은이후수백년동안궁중악녀의대명사가될것이었다.

한편, 애기나인최씨는 19년후숙빈에봉해지고, 그녀에게서태어난아

들은무려52년간왕위에있게된다. 사가에서태어났다면신분법상모계

를따라천민이되었을두여자의아들, 그들은바로경종과 조이다.

값 13,000원

도서 "노비의 딸 조선 왕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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