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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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과 성적 시민권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

Page 2: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I. 들어가는 말 : 연구의 배경

II. " 낙태“를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III. 한국 사회의 재생산과 사회적 고통으로서의 낙태

재생산권의 부재와 재생산정치 재생산과 사회적 관계의 생산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고통

IV. 여성과 국가 : 낙태와 성적 시민권

재생산 통제와 원하지 않는 임신낙태와 여성의 성적 시민권

V.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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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 배경

한국 사회에서 낙태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법 개정을 위한 장에서만 논의가 되는 경향

이러한 논의의 장에서 각각의 논자들이 낙태란 이런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각각의 논자들이 그리고 있는 낙태의 현실과 상이 매우 상이하지 않는가라는 의문

다시 말해 과연 한국사회에서 낙태란 무엇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며 , 막연하게 낙태가 너무 쉽고 만연해 있어서 문제라는 어림짐작이나 개인의 경험에 대해 답해주기에는 한계가 명백하며 그나마도 부실한 통계 수치를 넘어서 여성들의 경험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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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개인적인 경험을 존중하고 개인이 내릴 수 있는 각기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적인 차원을 강조할 필요성

다시 말하면 여성의 낙태 결정은 구조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마다 매우 다양한 조건 속에서 상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사실

그러나 이들의 낙태 경험을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는 억압이나 강제에 의한 것은 아닌 경우라고 할지라도 , 한 사회의 법적 , 정치적 , 경제적 , 문화적 맥락 속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어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주관적 객관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볼 필요 역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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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낙태의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본 발표에서는 의료인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차용하여 사회적 고통이라고 부르려고 함 .

사회적 고통 (social suffering)“ 정치적 , 경제적 ,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비 롯된다고 할 수 있으며 , 이들 권력이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방식 을 통해서 야기된다” (Kleinman, Das and Lock 1997, ix).

사회적 고통이란 한 사회의 공론의 기조나 지배적인 가치가 변화하면서 개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표현할 수단을 찾기 어려워질 때 더 심화되는 경향 한국의 “낙태정국”도 여기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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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낙태란 개인들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며 , 찬양할 일도 아니지만 비난할 것도 아닌 ,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로 위치시키는 것이 필요

사회적 고통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낙태를 보자는 주장이 어떤 낙태는 사회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고 어떤 낙태는 사회적인 요인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라는 의미는 아님

결국 어떠한 낙태든 낙태가 이루어지는 사정은 개인적이며 각기 다르기지만 개인이 낙태를 결정하고 경험하는 맥락은 언제나 사회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의미

그렇지 않다면 낙태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현실 세계에서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들에게 분노나 억울함을 안겨줄 뿐이며 , 사회적 고통의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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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한국 사회의 재생산과 사회적 고통으로서의 낙태

재생산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 한 사회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수의 새로운 구성원을 , 마찬가지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관계 속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길러내는 것을 의미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누구의 재생산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고 누구의 재생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재생산정치 (the politics of reproduction) 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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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재생산정치는 재생산 권리 (reproductive rights), 즉 개인의 혼인상태 , 연령 , 계급등과 관계없이 성관계 , 피임 , 임신 , 출산 , 임신 종결을 비롯한 재생산활동에 대한 자유권적 권리이자 출산 이후 건전한 양육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까지를 포괄하는 사회권적 권리인 재생산권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한국 사회에서 낙태를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고통의 요인이 되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혼인상태 , 연령 , 계급등과 관계없이 성관계 , 피임 , 임신 , 출산 , 임신 종결을 비롯한 재생산활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우며 출산 이후 건전한 양육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까지를 포괄하는 사회권적 권리로서의 재생산권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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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말로 처녀가 애를 낳던 할머니가 애를 낳던 누가 애를 낳던 그 아이는 너무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 하냐는 말이죠 . 바로 쟤 결혼 했어 안했어 ? 이런 색안경 쓰고 말만 하잖아요 . 그리고 애 낳으면 누가 키워줘 ? 나도 임신했을 때 ‘네가 낳기만 해라’ 이럴 사람은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고 우리 사회 분위기에 누가 낳으려고 하겠어요 . 최근에도 뭐 여자 재수생이 영아 버리는 일 있었잖아요 .

오죽하면 버리겠어요 . 그 여자의 혼인 상태라던가 뭐라도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 임신해서 낳은 아이는 정말 누구라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으면 누가 그렇게 하겠냐고요 . 그런데 우리 사회는 뭐 이렇게 그 아이의 부모가 누군지 부모가 어떻게 임신했는지 ,

혼인여부 , 성적취향 , 학력 등등 애가 태어나자마자 이제 차이를 느끼잖아요 . 아이가 축복받지 못하고 차별과 편견 속에서 자랄 거라고 생각이 된다면 누가 낳으려고 하겠어요 . 이렇게 뭐 갖다 버리는 방법을 오죽하면 썼겠어요 . 그 여자들이… “ ( 사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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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 선택은 대부분 낙태거든요 ? 그리고 만일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했어 . 낙태거든 ? 정말로 내가 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결혼한 상황 말고 별로 없잖아요 . 결혼을 했거나 아님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인정된 어떠한 가족의 시스템이 아니면 인정을 할 수 없잖아요 . 그니까 저는 저출산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가족주의를 흔드는 거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아요 . 위험한 인간들이 생기는 거에 대한 두려움 ? 그래서 피임 했냐 , 안 했냐 , 이런 질문은 뒷부분만 얘기 하는 느낌이에요 . 그 사람들을 , 관계를 인정을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얘기부터 해야 하는 거죠 . 낙태도 결국은 가족주의 자체 ,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제가 결혼해서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웃음 )” ( 사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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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혼이지만 미혼의 경우에는 혼인 문제가 걸려있고 , 생계의 문제가 걸려있을 텐데 미혼의 낙태를 사회적으로 매도하기만 하지 실질적인 부분들이 하나도 확보가 되어 있지 않잖아요 . 인프라도 없고 미혼모에 대한 의식의 변화도 없이 낳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 그거는 한 개인한테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 . 뭐 본인이 원해서 임신했다면 그건 상관없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에는 안 되지 .” ( 사례 9)

“ 낙태한 결과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아요 . 왜냐하면 어쩔 수 없었어요 . 음…그냥 미안하죠 . 그러니까 그 생명한테 ? 그런 건 있지만 원망은 없어요 . 근데 병원에 몰래 찾아가서 하고 나와서 말도 못해야 되는 이놈의 사회는 참 싫어요 . 너무 싫어서 작년에 낙태고발하고 막 그랬을 때 지랄들을 한다는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 너무 진짜 이거 정말 지랄 맞구나 .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 , 여자들 완전 몰아붙이는구나 .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 사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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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2: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시골이니까 아궁이에 밥해먹고 불 때가지고 숯불로 물 끓여서 분유타서 먹였을 때 곤로를 쓰면 아버님 어머님이 아까워하시는 느낌이 들어서 그때는 눈치가 보였나 봐요 . 그런 거 때문에 둘째 아이를 낳을 생각을 못했죠 . 분유를 먹이면서까지 아이를 키우는데 또 둘째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한테 신세를 지는 그 느낌 때문에요 . 가난하다는 것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됐는데 낳을 수가 없더라고요 . 그래서 병원을 갔는데 낙태하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되더라고요 .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남편이랑 갔어요 .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 부모한테 도요 . 아휴… 지금 같으면 당연히 안하죠 . 그때는 너무 어렸고 가난했고 , 또 그게 죄라는 게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하게 되더라고요 . 그래서 죄를 지니까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 부모한테도 형제한테도 그런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 그래서 한 번도 얘기를 안 했어요 .” ( 사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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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3: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걱정됐던 거는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이었고 . 내가 아기를 낳는다면 내가 부양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런 거 생각해봤을 때 정말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음… 그리고 더군다나 뭐랄까… 혼전에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는다는 게 얼마나 큰 낙인일거라는 거는 정말 공포스러울 정도로 느껴졌기 때문에 아예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일단은 경제적인 능력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 만약에 내가 아기를 뭐 똑같이 키울 생각이 없고 내 인생에서 그런 계획이 전혀 없었고 라고 하더라도 내가 부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조금 더 나이를 먹었고 조건이 내가 자립해 있었고 좀 여유가 있으면 조금 더 생각 했을 것 같아요 .” ( 사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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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여성과 국가 : 낙태와 성적 시민권

낙태하는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논리는 계획된 임신과 출산이 언제나 가능하며 따라서 원하지 않는 임신이란 여성의 책임일 뿐 , 모든 임신은 출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에 근거

또한 성관계는 혼인 관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며 , 모든 성관계는 매번 합의에 근거한다는 전제

그러나 재생산권 개념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은 여성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회나 남성들이 통제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한다는 의미이지 , 재생산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다는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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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이란 개인들에게 단순히 임신하고 출산하는 행위 이상을 의미

따라서 재생산은 관계를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고 ,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행위가 되기도 하며 , 사회에 공헌을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함

이 과정에서 모든 출산이 자신이 의도한 결과를 낳지 않는 만큼 , 원한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임신과 출산 , 양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거꾸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함 .

재생산은 인간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지 않음 이 자체가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지는 거소로서 여성의 몸과 여성 자체를 존중해야 할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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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위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임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 완벽한 피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 원하지 않는 임신을 여성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물을 수도 없으며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의 의사는 존중될 필요

이는 불임이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며 여기에서 불임 치료를 받을지 아니면 아이 없는 상태에서 차별 없이 살아가길 원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여성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하고 , 사회는 여기에 대해 적절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음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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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7: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출산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행위인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피임 역시 단순히 피임기구를 사용하거나 약제를 복용하는 것 이상의 차원이 있다는 사실 역시 무시되어서는 곤란

피임의 실천을 둘러싸고 복잡한 맥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임신이라 할지라도 모두 출산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집하는 논리는 여성들의 지위를 취약하게 만들게 됨

실제로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순간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되며 이는 낙태의 순간 남자가 잘 해주는 것만으로는 보상될 수 없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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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그 전까지는 제가 기독교인 이었거든요 ? 그 전까지는 아예 결혼 전이나 그런 때에 성관계를 할 거라는 걸 별로 가능한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던 상태여서 . 그 때가 저한테 되게 폭풍 같은 시기였는데… 그래서 한 스물 두 살까지 교회를 되게 열심히 다니면서 그런 성적인 거나 피임이라든가 저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만난 친구였어요 . 그때는 그런 거에 대해서 다 떨쳐버린 상태니까 혼전순결 이라든가 근데 그런 걸 뒷받침 해줄만한 지식이 없었던 거죠 . 그때는 확실히 임신주기 같은 거 , 생리 주기에서 언제가 배란일이고 이런 거에 대해서도 확실히 몰랐고 임신이 이렇게 쉽게 되는 거라는 거를 몰라서 놀랐죠 . “( 사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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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인 거 알고 망설일 이유도 없었고 그냥 알게 됐으니까 빨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아가지고 결정은 일주일 안 걸렸던 것 같아요 . 어쨌든 되게 억울하기는 했죠 . 내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게 짜증나고 굉장히 억울한 거죠 . 하지만 그냥 체념하고 빨리빨리 해치우고 싶었어요 . 근데 저는 어쨌든 걔랑 헤어질 마음이 있었으니까 상관이 없었는데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상대에 대해 불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 사실 그게 공동으로 느낄 수 있는 아픔이나 슬픔이 남다르잖아요 . 그런 게 약간 억울하고 서러우니까 다른 방식으로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생길 것 같아요 . 좀 관계가 소원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 저는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 입장이었고 걔는 약간 매달리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좀 달랐던 것 같아요 … 저는 그 당시에 보살핌도 별로 받고 싶지 않았고 빨리 끝내고 싶던 마음이 더 커서 낙태 기억이 크게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 ( 사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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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여성들이 낙태를 고려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결혼 제도 내에서 계획된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모든 성 행위를 문제적인 것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점

사춘기의 성이건 , 결혼 제도 밖의 성이든 , 아니면 기혼 여성의 성이든 , 여성의 성은 거의 언제나 문제가 되며 , 예기치 않은 임신은 낙태와 관련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 그 임신의 원인이 된 성 행위 사실을 공중에 드러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성들은 임신에 대해 두려움을 느낌

낙태는 종종 성관계 자체나 성 행위 상대와의 관계 자체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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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1: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실제로는 언제나 뜻하지 않는 , 원하지 않는 임신이 있을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 그 임신의 원인이 된 관계를 항상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이러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 모든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여성들을 모두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들 뿐이며 , 그런 점에서 여성들의 시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본 발표의 주장

한국 여성의 성적 시민권 (sexual citizenship) 에 대한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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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적 시민권 (sexual citizenship) 은 주로 성적 소주자의 권리라는 맥락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토리 , 2010), 실제로 성적 시민권이라는 개념은 더 넓은 함의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성적 시민권 논의는 재생산의 권리나 피임 권리와 관련된 것으로 사용되어 옴

일부에서 최근 들어 유전적 시민권 , 생물학적 시민권 등 갖가지 시민권 개념이 등장하면서 시민권 개념이 지나치게 넓게 정의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 실제로 낙태나 피임 , 여성의 재생산권이나 성적 소수자 문제의 경우 국민국가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개념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성과 재생산이라는 것은 언제나 국민국가의 가장 직접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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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3: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일단 본 발표가 , 특히 이 지점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 과연 여성에게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허용되어 있느냐 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 과연 한국사회가 성행위를 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인정하고 있느냐의 측면

여성들에게 성행위 사실이 드러나는 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위협하는 일이 되고 , 자신의 성행위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낙태를 하는 경우 국가에 의해

처벌 받을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면 과연

성행위를 하는 존재로서 여성은 국가에 의해 정당한

시민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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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4: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당연히 지금도 누구한테도 말 못하는 건 그거잖아요 .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는 서로 어떻게 암묵적으로 알 수도 있지만 임신하면 왠지 ‘어 나 원래 섹스하고 다녔어 .’ 라는 건데 이게 왠지 이중적이잖아요 그때는 그걸 극복하기가 힘들고… “

( 사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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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5: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그 때는 내가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 . 이제 내가 낙태를 한 여자로 뭔가 확인 도장을 찍는다는 느낌 있잖아요 . 전 이제 일반적인 여자가 아닌 길에 확실히 들어서는 사건 같은 느낌 ? 그런 게 되게 분명했던 거 기억나요 . 그런 게 분명히 있었는데 괴롭고 두려웠는데 한편으로는 뭐랄까 내가 가지게 될 어떤 자유 같은 거 ? 그런 생각도 솔직히 좀 들었던 것 같아요 . 더 좀 막살 수 있는 자유 같은 거 ? (웃음 ) 이해가요 ? 그러니까 정숙한 여자로 내가 내면화했던 좋은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 너무 쉬운 여자면 안 되고 남자한테는 어떻게 해야 되고 자기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 그때가 한참 그런 문제로 내적으로 막 싸우고 있을 때였거든요 . 그런 게 너무 싫고 그런 데서 벗어나고 싶고… 그래서 낙태를 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지만 이걸 계기로 나 자신을 옭아매는 그런 걸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 ( 사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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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6: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그러니까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그 생각을 평생 하고 살아야겠다 . 뭔가 똑같이 열심히 .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할 때도 느낌이 완전 달라지는 게 엄청 생각하게 되요 내가 .. 음 .. 내가 줄 수 있는 영향 .. 사회에 아니면 하다못해 내 친구한테 정도라도 좋은 영향을 주면 이런 일이 달라질 거고 그런 방법을 엄청 많이 고민했거든요 . 하다못해 무슨 환경운동까지 했었는데 너무 추상적인 거지만 그것은 . 그런데 비이성적인 추상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게 힘들었어요 . 숙제라는 생각 나한테 책임 있어 진다는 생각이 .” ( 사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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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7: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V. 나가는 말

낙태 경험은 결코 단일한 것도 아니며 , 낙태하는 순간에 끝나는 것도 아님 : 기존의 사회적인 맥락에서 규정될 뿐만 아니라 , 낙태 이후에도 사회가 낙태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고 낙태한 여성들을 어떻게 지원하는 지에 따라서도 변화 가능

낙태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 원하지 않지만 생길 수도 있는 일로 보면서 여성들의 경험이 정책 속에서 의료 현장 속에서 존중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 그것에 따라서 이 땅에서 이루어져 왔던 많은 낙태의 의미도 변화할 수 있을 것

또한 여성들에게도 이미 경험한 낙태를 평생의 멍에나 죄의식의 근원이 아닌 개인적으로나 시민으로서도 성장하는 계기로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며 , 이후 사회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낙태 , 출산을 줄여가는 노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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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8: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

“ 만약에 내가 정말 절실해서 병원을 찾았을 때 이걸 법으로 딱 안 돼 . 이런 것 보다 그 사람 마음을 돌릴 수 있게끔 하는 상담이든 일단 그 사람 편에 서서 들어주고 만약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결정하는 사람들 사정을 들어주는 게 필요하잖아요 . 도울 수 있으면 돕는다던가 . 병원을 딱 찾아갔을 때 조금이라도 이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게 있다면 낙태를 좀 덜하지 않을까 ? 이런 생각도 했어요 .”( 사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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