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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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학교 해외취업 프로그램 겸험자들의 수기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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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Page 2: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I've been Dreamed... 4패션산업학부 06학번 김현지

Am I Fired? 11국제관광경영학부 07학번 구미은

No Pain, No Gain 18지역정보학과 05학번 손효승

나의 인턴유랑기 25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

닥치고 도전 30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

신라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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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는 겁쟁이인가? 38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학교 = 회사 48전자공학과 04학번 김현준

기회의 나라 중국에 가다 55실내디자인학과 07학번 이미란

20대 소녀의 타오르는 열정 60중국어중국학과 07학번 양고은

그것이 알고 싶다 - 베트남 편 67무역학과 05학번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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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been Dreamed...

패션산업학부 06학번 김현지

미국 CLOSET INC. 근무

1년이라는 인턴십 기간을 마친지도 벌써 1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초등학교 시절

부터 또래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땐 한창 바비인형이 유행했었

는데, 바비인형으로 소꿉놀이하기 보다는 옷 갈아입히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문구

점에서 새로 나온 바비인형 옷 구경하면서 사기 바빴고, 입혀놓은 바비인형을 따라 그

대로 그리곤 했었다. 당시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그 나이 또래아이들이 뼈다귀 사람,

소위 말하는 졸라맨을 그렸던 거에 비해 내 그림은 목, 허리, 다리 온전히 붙어있는 사

람의 모습이다.

그땐 그렇게 마냥 좋아하기만 했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패션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장래희망을 누가 묻곤 하면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하게 되

었고, 미술 전공이었던 3살 터울의 언니 영향이었는지, 언니를 따라 그리며 자연스럽

게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전공 선택 시 두 번의 고민도 필요 없었다. 패션 디자인학과. 신라대학교를 선

택한 건 글로벌 대학을 목표로 해외취업과 교환학생 등 글로벌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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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산업학부 06학번 김현지 | 5

고, 타 대학들과 달리 취업률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진 않았던 탓일까. 버스 종

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먼 거리 탓일까. 학교 도착하면 수업 들어가기도 전에 허리 두

드리기에 바빴고 늘 피곤에 쫓겨 가며 수업만 듣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휴학을

하고 미국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고, 미국이라는 큰 나라를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봉사활동 트레이닝을 받

으러 동부 펜실베니아 주에서 캘리포니아 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자바

라는 패션시장을 알게 되었고, 나는 급 관심이 생겼다. 지내던 곳이 자바 시장과 거리

가 멀었고, 교육 중이었기 때문에 가볼 순 없었지만, 인터넷이나 주변 지인들을 통해

자바라는 곳을 조금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3학년에 복학을 하고 난 뒤에도 계속 자바 시장에 대한 생각

을 했고, 영어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글로벌비지니스센터에서 해외인

턴십을 모집하는데 그 중 미국이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

LA 다운타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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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었다.

당장에 달려가서 신청서를 냈고, 몇 달 뒤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인턴십 지

원할 당시 동기 친구들은 중국에 지원을 많이 했었다. 중국은 그리 길지 않은 인턴 기

간과 가까운 거리 때문에 부담감이 적었는데, 혼자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이라는

곳에 가려니 조금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갈 것 같다는 생각

이 너무 확고하게 들었고, 부딪혀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4학년 1학기 말부터 나보다 먼저 가있던 학생이 다니던 회사에 가기로 해

서 기다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회사 측에서는 자꾸 확답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었

다. 원래 출국하기로 되어 있었던 8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결국 중간 연결 업체였던 에

이전트와는 자의반 타의반 오퍼가 끊기게 되었다. 출국해야하는 날짜는 다가왔고 마

음이 조급해졌다. 교수님께서 소개 시켜주신 다른 에이전트가 연결 시켜준 회사로 급

하게 가게 되었다.

인턴십을 LA로 간다고 했을 때 내 전공을 아는 주위사람들 대부분 “패션하면 뉴

욕 아니야?”라고 묻곤 했었다. 물론 맞다. 자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거기 시

장바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바는 80년대 LA로 이민 온 한인들을 중심으

로 다운타운에 생겨난 대규모의 패션시장이다.

사실 자바 내의 여러 회사들은 LA지역 뿐 아니라 해외 여러 지역의 바이어들을 상

대하기도 한다.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된 FOREVER 21이 바로 이 자바시장에서 나

온 브랜드이며, 내가 인턴십을 한 회사의 바이어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을 날아와 그

큰 지역의 패션시장을 주름 잡은 한국인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인턴십을 하면서 나는 회사를 한 번 옮기게 되었는데, 이 급하게 가게 된 회사가

첫 번째 회사였다. 3년밖에 안된 회사였고, 인턴은 고사하고 헤드 디자이너도 없었고,

내가 있던 6개월 동안에 일하는 사람이 15명이 바뀌는 그런 회사였다. 처음엔 원래 그

런 거라 생각하고 참고, 참고, 꾹 참았다. 나중에는 혼내는데 내가 울지 않는다고 혼을

냈었다. 지난 일이라 여기까지만 쓰고, 그래도 이 회사 덕분에 두 번째 회사에서 인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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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날아와 고생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먼저 그만둔 디자이너 언니들이 여

기저기 소개를 시켜주었다. 몇 군데 인터뷰를 본 뒤, “Closet. INC”라는 곳에 들어가

게 되었고, 거기서 원래 나의 인턴십 트레이닝 일이었던 디자이너 어시스턴트(Designer

Assistant)를 하게 되었다. 회사는 FOREVER 21을 바이어로 두고, 우리가 디자인한 스

타일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 미팅을 하고, 바이어가 선택하는 스타일들을 주문 진행하

는 방식의 시스템이었다.

주된 업무는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로 나는 십대를 겨냥한 FOREVER 21 디자인과,

미시족들을 위한 LOVE 21, 이 두 라인의 디자인을 보조하게 되었다. 중국 지사의 현

지인 직원과 E-mail을 주고받는 일도 했다. 내가 갔을 당시, 인수인계를 해줄 Associate

Designer가 없어서 헤드 디자이너 언니들이 조금씩 가르쳐 주는 것 외에 웬만한 것은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용어라든지 전에 했던 예전 스타일이라든지, 원단 종류와 사소

한 것 하나까지 선배들의 말을 적기 바빴고, 혼자 인터넷 검색하면서 모르는 것을 메

모 해두고 외웠다. 자바에서는 속도가 생명이다. FOREVER 21이라는 큰 회사에서도

한인타운 근처의 Grove 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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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회사가 몇 백 군데가 있고, 빨리 빨리 변화하는 SPA 브랜드의 특성상 한 달,

하루, 한 시간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아무도 내가 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진 않는다. 몸은 하나고 해야 할 일은 많으니

회사에서 항상 뛰어다니기 바빴다. 급한 성격도 한 몫 했다. 속도가 생명인 자바이기

에 회사에서 뛰어다니는 나는 사모님, 사장님 보시기에 뿌듯했나보다. 그렇게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반적인 업무를 다 익히게 되었고, 일이 너무 너무 재미있어졌다. 이

런 게 성취감인가 보다 싶었다.

여느 디자이너들이 그렇겠지만, 자바에서는 샘플쇼핑이 생활이다. 주말은 물론이

고 평일에도 대형몰이나 백화점에 가서 뭐가 새로 나왔는지, 뭐가 잘 나갔는지 등을 살

펴봐야 한다. 선배들을 쫓아 쇼핑도 자주 다니고 하면서 뭐가 유행일지, 뭐가 잘 팔릴

지, 앞으로 뭐가 유행할지 등을 조금씩 배워갔다. Designer Assistant는 보통 디자인을 하

진 않는데, 헤드 디자이너 선배들과 사모님께서 맘에 드는 몇 개 디자인을 넣게 해주셨

다. 바이어와 협상이 오고 갔지만 생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내 디자인이 FOREVER 21이라는 큰 회사에 선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뿌

듯했다.

Closet에서의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회사에는 샘플을 만드는 샘플메이커들

이 있는데, 보통 멕시코나 과테말라에서 온 중남미 사람들이다. 물론 영어를 어느 정도

하거나 아주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미 여행하면서 배운, 그리고 짬짬이 배운 스페

인어로 그들과 얘기하기도 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얘기해도 알아듣고 재

밌어한다. 그러면서 틀린 것도 바르게 배우고 새 단어들도 배울 수 있었다. 여러 종류

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은 주급인 경우가 많고 우리 회사 또한 그랬다. 얼마 안 되는 인턴의 주급이었

지만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에 주급 받아갈 때마다 한 주 동안 쌓인 피곤이 풀리곤 했

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주말에도 잠만 자고 한인 타운에서만 놀았는데, 몇 달 지나고

나서는 피곤해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살인적인 추위가 몰아치는 12월의 한국에 있으

니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날씨가 생각난다. 샘플 쇼핑 때문에 자주 갔던 Santa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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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은 예쁜 부둣가와 세련된 쇼핑 거리가 있어서 젊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특히 밤에

거리의 음악사들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잔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여름 동안엔 Laguna Beach, Long Beach, Malibu 등으로 선탠을 하러다녔고 나중에

는 친구들과 Malibu에 있는 개인비치 같은 곳도 찾아내서 한가롭게 즐기기도 했다. 차

타고 조금만 나가면 여기저기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이직 중 쉴 때 잠깐 다녀온 낭만

적인 샌프란시스코, 덴마크 이민자들이 만든 동화 같은 솔뱅 마을, 세계에서 가장 무

서운 놀이기구들만 있다는 Six Fleg(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해서인지 난 하나도 안 무서

웠다. 이 점 가장 아쉬운데, 난 어딜 가야 하지?), 할로윈 파티 중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Hollywood Gay Holloween Parade…….

하나하나 나열할 순 없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이런저런 고생도 많이 했지만, LA

에서의 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것만 볼 수 없고, 좋은 일

만 겪을 수 없듯이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시

라구나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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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을 보냈고,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한층 더 자라고 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더욱더 행복하게 마친 인턴십이었다.

멀리 타국까지 가서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제3국가에 갈 때는 어느 정도 생활

의 불편함과 문화충격을 예상하고 가게 되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에 대해서는 생활에

대한 기대치가 큰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그 국가의 어느 도시에 무슨 일로 어떻게 가

느냐에 따라 생활은 달라진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떠날 시기는

이제 지난 것 같다. 인턴십 기간을 어떻게 만들지, 본인의 꿈을 성취했는지, 그렇지 않

은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내가 완전히 꿈을 다 이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력할

것이며, 이번 기회를 통해 내 꿈의 큰 그림의 한 조각을 맞춘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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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I Fired?

국제관광경영학부 07학번 구미은

호주 Outback Hotel 근무

나의 대학생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 필리핀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말루라는 친구가 제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어를 거

의 할 줄 몰랐고, 저도 영어에는 관심이 그다지 많지가 않아서 그 친구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외국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무척 설레고, 한국에 대

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영어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이

것저것 설명해주고 싶기는 했지만, 단어, 문법, 듣기, 말하기 모든 것들이 여의치 않았

습니다. 그 길로 부모님께 연락하여 전자사전을 하나 사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영어에 관심을 가진 첫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었던 탓에 그 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같이 식당에 내려

가 밥을 먹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질

문을 했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곧바로 사전을 찾아 단어를 보여주며 영어를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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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 나갔습니다. 얼마 후 그 친구는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영어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영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3

학년 2학기 때 필리핀 바콜로드에 있는 우리학교의 자매대학인 라샬대학교에 영어를

배우러 가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가기에는 실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3학년 1학기

때는 수업 전 8시부터 9시까지 화랑관에서 실시하는 영어수업에 참가하여 부족한 영

어 실력을 조금씩이나마 채웠습니다. 비록 다른 학우들처럼 100% 출석률을 자랑하지

는 못하였지만, 그때 외운 단어나 문법 등이 필리핀 튜터들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외취업에 도전하다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둔 모든 학생들이 취업의 문턱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나도 취업을 해야겠다 싶어 늦었지만 취업에 필요한 토익 점수를 만

들기 위해 토익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해외취업에 대한 막연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해외취업은 4학년 1학기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시 거주자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를 하고 다른 방

향으로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2학기 때 마침 신라대 학생만을 위

한 해외취업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벽보를 보고 학과 사무실에 가서 바로 지원서를 받

아 작성하였습니다.

지원 국가를 호주로 결심한지 1주나 지났을까, 우리 학교가 겨울방학을 할 때면

호주는 일자리가 별로 없어 취업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2주 뒤

에 곧바로 호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호주에서 4주 간 어학원을 다니는 동안, 영어

연수가 끝나면 길게는 4주 정도 대기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저는 다행히

3주 만에 일을 구해 퀸즐랜드(Queensland)라는 지역에 있는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레이저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섬으로

9~11월에 고래 관찰로 유명한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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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하며 더운 날씨에 힘든 적도 있었고, 비가 와서 옷이 다 젖으며 일한 적

도 있었지만, 외국에서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그곳에선 4

주 동안 어학원을 다닌 것보다 더 많은 영어를 써야 했습니다. 그곳에 한국 사람은 10

명도 되지 않았고, 영어에 능숙한 호주인과 유럽인이나 동남아인들뿐이었습니다. 일

을 할 때도 호주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었습니

다. 어학원 선생님들은 우리가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며 천천히 또박또

박 발음을 하며 쉬운 단어를 써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말투엔 나를 위한 배려심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공항에 보트가?

아침 업무 시작 전에는 보통 매니저와 브리핑을 하는데, 당일의 VIP 고객이나 유

의해야 할 사항들을 모두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듣지 못하

였지만 차츰차츰 들리기 시작하면서 한결 나아졌을 때 쯤, 동료들과 이제 정이 막 들기

시작할 때 쯤, 일에 적응이 될 때 쯤, “아! 돈이 조금 모이는구나”라고 느낄 때 쯤!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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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랜드 지역에 100년 만의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연일 모든 뉴스에는 홍수 얘기 밖에 없었고, 물이 지붕까지 차오르는 것은 기본이

고, 공항이 강으로 변해 보트가 지나다니고, 수백 명 사람들의 집이 모두 물에 잠겨 피

난소에 피난하거나, 다른 주로 옮겨 피신해 있고, 울월스나 콜스의 대형마트들은 사람

들이 피난 때 먹을 식량 확보를 위해 모든 먹거리를 사재기하는 바람에 텅텅 비었고,

그 일이 유튜브에 실시간 검색 1위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경제적 피해는 6조원이 넘

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

느 날 일을 끝마친 후 매니저가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퀸즐랜드 지역에 너무 큰 홍수가 나서 더 이상 리조트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구조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두둥!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다른 직원들과 만나면 첫 대화가 “Hello!”나 “How are you?”가 아닌 “I‘m

fired”였을 정도로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정리해고 되었습니다. 저도 1주일 뒤에 바

로 다음 일자리로 향해야 했습니다. 다음 일자리를 호텔이나 리조트로 결정하고 싶었

으나, 호주를 더 체험하고 느끼고 싶어 세컨 비자(Second Visa)부터 따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Queensland 지역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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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Resort

호주에서 세컨 비자를 받으려면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한 날이 88일 이상 되어야

했기 때문에 몇 주 전 리조트를 그만두고 호주를 여행하던 친한 언니와 함께 타즈매니

아(Tasmania) 사과 농장으로 향하였습니다. 세컨 비자를 돈을 주고 불법으로 사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노려 사기를 치는 사람

들도 있고, 불법으로 세컨 비자를 획득한 것을 호주 정부에서 알면 1달 이내에 호주에

서 강제 추방되는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획득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3개월 동안 농장에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주말에 쉬고, 비

가 올 때에도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컨 비자 일수를 획득하는데 총 5개월이 걸렸습

니다. 타즈매니아에서는 사과 피킹 프루닝(가지치기), Winery 포도 피킹, 배 피킹을 하

였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딛고 지금은 Northern Territory주에 있는 Ayers Rock 리조

트 단지 안에 있는 Outback Hotel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Fraser Island보

다 훨씬 규모가 크고 성급이 다른 호텔도 5개나 있는 아주 큰 리조트 단지입니다. 모든

조건들이 그전에 있었던 곳보다 괜찮고 Multi-Hire 라고 해서 원래 일하는 시간 이외에

(일을 마치거나, Day Off 때) 다른 일도 할 수가 있어 여러 가지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가 있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라

농장에서 세컨 비자를 획득한 후 다시 리조트나 호텔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이력서

를 넣고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 당시 Ayers Rock 리조트에 Outback이라

는 호텔 HR(인사담당) 매니저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이름과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서 갑자기 Elsbeth라는 매니저를 아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Elsbeth는 Fraser Island

에서 함께 일했던 높은 매니저였기에 당연히 안다고, Fraser Island에서 함께 근무했었

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HR 매니저가, 그 Elsbeth 매니저가 지금은 Outback Hotel 매니저라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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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매니저가 이력서를 보자마자 Fraser Island에서 함께 일했다

고, 저를 고용하도록 적극 추천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HR 매니저는 저와 인터뷰를 보

기도 전에 고용하기로 결정하고 형식적인 인터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큰 땅

덩어리에서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내가 혹시나 Fraser Island에 일을

할 때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게으르게 행동을 했으면 그 매니저는 저를 절대 뽑지 말

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이지만 어딜 가나 열심히 해야겠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가 호주임을 잊지 말아라

호주에 워킹을 오는 목적은 대부분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영어를 배우고, 돈을 버

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멜번이나 시드니에서 방금 넘어온 사람들에

Fraser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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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한국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받아서 그것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책을 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친구들도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어만

암기하는 것입니다.

호주에 온 목적을 잊지 마세요. 이곳은 돈을 버는 동시에 외국인 친구와 어울리며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울 수 최적의 장소입니다. 후배님들! 해외에 와서 외롭다고 한국인 친

구들만 잔뜩 사귀어 일 끝나고 놀지 마시고, 이 풍부한 여건들을 마음껏 활용하세요.

Ayers Rock Resort OT 호주 원주민 문화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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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ain, No Gain

지역정보학과 05학번 손효승

호주 Kingfisher Bay Resort 근무

2010년 2학기 신라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는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

다. 사실 4학년 2학기를 시작하면서 취업에 대한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토

익 점수도 더 올려야 했었고, 마지막 학기 성적을 잘 받아서 졸업 평점을 더 올리고 싶

었다. 그것 말고도 나는 나의 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했었다.

그렇게 2학기를 지내고 있는 동안 우리 과 교수님께서 해외취업 프로그램을 소개

해 주시고,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지원을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처음에는 해외취업 프

로그램에 대해 흥미는 있었지만 도전하기를 꺼렸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대학 생활

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고, 떨어지더라도 지원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라고 생각

을 바꾼 후 호주 호텔, 리조트에 취직을 하겠다고 지원했다. 또한 예전에 짧게 호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꼭 워킹 홀리데이를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

었다. 면접을 마친 후 나는 새로운 지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였는데 합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우리 대학은 의지가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해외취

업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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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학과 05학번 손효승 | 19

영어영문학을 복수전공 했었지만, 나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영어로 말하는 능력을 좀 더 키우고 싶었다. 토익 같은 영어 시험의 성적도 당

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그 못지않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격 후 생각보다 일정이 앞당겨져서 3주 만

에 학기 중에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이 11월 중순에 시드니로 떠났다.

거의 20시간을 넘게 걸려서 시드니에 도착했다. 그 날부터 나의 워킹 홀리데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다음날부터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언어 연수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 3회 정도 잡 에이전시에 가서 잡 인터뷰 트레이닝을 받았다. 나를 제외한 다

른 후배 두 명은 우리 학교에서 진행했었던 필리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

서 영어로 얘기하는 것에 크게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물론 나는 적응력이 뛰어난 편이

라 생활하는 것엔 불편함이 없었지만,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 많이 떨리기도 했고 힘들

기도 했다. 서툴렀지만 영어로 얘기를 시도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영어로 글을 써 봄으

로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도착한 후 3주 뒤 드디어 나의 잡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우리 학교 학생 3명 중 내

가 제일 먼저 하게 되어 더 긴장이 되었고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인터

뷰를 보게 된 곳은 Ayres Rock Resort였다. Ayres Rock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

았지만, BBC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곳 12위”에 뽑힌 호주의 중부 사

막지역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면접관이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화로 인터뷰 하였

다. 일대일로 마주보면서 말하기도 힘들었는데, 전화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최선을 다했었고, 그 다음날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호주로 온 지 4주 만에 리조트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12월 초에 Ayers Rock

으로 떠났다. 12월은 호주의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시드니는 많이 덥다고 생각

하지 않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41도라는 엄청난 더위가 나를 맞았다. 도착한

다음날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Ayers Rock 투어를 한 뒤 그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Ayres Rock 리조트는 등급별로 6개의 호텔, 캠핑장으로 이루어진 리조트이다. 그

중 내가 일을 하게 된 호텔은 5성급 ‘Sails in the Desert’라는 호텔이었다. 그리고 내

Page 20: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20

가 맡은 포지션은 Full time Public Area Cleaner였다. 내가 맡은 구역이 쇼핑센터였는데,

그 곳을 깨끗이 유지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은 많이 힘들지 않았고 어렵지도 않았

지만, 특히나 더운 지역인데(최고 온도가 49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혼자 밖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점과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처음 일을 하던 날 스웨덴 출신의 동료에게 트레이닝을 받는데, 못 알아들을 때마

다 다시 설명해달라고 많이 부탁을 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오히려 친절하게 잘 설

명해주었다. 다른 동료들도 모두 친절했고, 만약 못 알아들을 때에는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말고 꼭 다시 물어보라고 하였다. 청소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청소에 관한 단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일을 끝내고 나서 트레이닝 매뉴얼을 보면서 공

부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도 많이 적응되었고, 그 곳에서 사는 것(특히 엄청난 날씨)과 의

사소통도 조금씩 나아졌다.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영어가 잘 되지 않지만 성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며,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

리조트에서 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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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학과 05학번 손효승 | 21

하자는 처음의 다짐을 잊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호주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호주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점은 천천히 정해진 대로 완벽하게 하는 것을 좋아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모든 한국 사람들과 했던 말이었지만, 어딜 가든 한국 사람

들이 일을 가장 열심히 하고 성실하며 잘 한다는 점이었다. 참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3개월째에 나의 성실함을 알아주었는지, 우수사원을 추천하는 제

도가 있는데 거기에 나의 슈퍼바이저가 나를 추천해 주었다. 큰 상은 아니었지만 정

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 호텔에 빈자리가 생겼을 때 나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주

고, 나의 보스들은 나를 믿어주고 그들을 뽑아주기도 했었다. 또한 나의 성실함을 지켜

보았던 투어 직원들은 나에게 헬리콥터를 무료로 태워주기도 했다. 하루 8시간의 Full

time 업무이외에 Multi-Hire라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추가로 일을 더 할 수 있는 제도

가 있는데, 바쁜 시기에 Room Attendant를 했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호텔 객실 서비스

를 하는 일이었는데, 비록 많이 힘들었지만 PA Cleaner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

기 때문에 이 또한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또 앞으로 들어올 한국인 직원을 위해 PA Cleaner 트레이닝 매뉴얼을 한국어로 번

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파티를 하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

며 얘기도 하고 각 나라의 음식도 맛볼 수 있었으며, 나 또한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는 등 추억을 많이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그 곳에서 26주 동안의 인

턴십을 마치고 떠날 때엔 내가 알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게 되어 기쁘다고 얘기 했

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섭섭했었다.

이렇게 Ayres Rock을 떠난 후 나의 진짜 워킹 홀리데이가 시작되었다. 이젠 학교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 나 스스로 모든 것을 꾸려가야 했다. 나는 어떻게 보

면 운이 좋게 학교의 지원으로 처음부터 좋은 시작을 했었다. 그래서 혼자서 무엇을 알

아보고 무작정 떠나고 결정하는 것이 처음엔 두렵고 떨렸다. 나는 세컨 비자를 따서 1

년을 더 있고 싶었기 때문에 3개월 이상 1,2차 산업에 관계된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 그

래야 세컨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농업에 종사 했었는데 처음은 오렌지, 만다린 따기였다. Victoria주의 Mildura

Page 22: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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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지역이었는데,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인도, 홍콩, 일본 친구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 농업을 했었던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 바로는 나무 작물이 덜 힘들고 쉽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첫 날 오렌지 나무를 본 순간 너무 겁이 났었다. 왜냐하면 내가 할당

받은 구역의 나무들이 너무 높았고 꼭대기 끝까지 열매를 모조리 따야 했기 때문에 사

다리와 나무를 타며 위험을 감수해 가며 따야 했다. 슈퍼바이저가 검사를 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

보다 어린 동생들도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일을 하고 있었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

아서 포기하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힘들고 너무 피곤했지만 포기하지 않

았다. 그런데 나의 고용주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는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결정했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로 이동해야 했던 것 때문에 다시 일자

리를 급하게 구해야 했었는데, 다행히 그 전에 알고 지냈던 동생들이 일하는 Renmark

라는 지역의 농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도 마찬가지로 오렌지와 만다린을 따던 곳이었는데, 그 전보다 훨씬 근무 환

경이나 생활여건이 좋았다. 그러나 10일 정도 되었는데 오렌지 수확이 이제 거의 다 끝

나갔고 계속 비가 와서 또 다시 큰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함께 있던 동생들과 함

께 개인적으로 호주인과 컨택을 하여 아주 멀리 떨어진 Coffs Harbour라는 지역의 블루

베리 농장으로 옮겼었다. 더 나은 곳이기도 했고 잘 될 것이라는 부푼 꿈을 품고 그 곳

을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번 해에 비가 많이 와서 농

장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수확 시즌이 한 달이나 미뤄졌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3개월 중에 28일 밖에 채우지 못했

고, 그 당시엔 남은 비자가 2개월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다른 일을 급

하게 구해야 했었다. 그렇게 그 동생들과 다시 헤어지고 나 혼자 또 다른 곳으로 옮겼

다. 그 당시에 알던 언니가 나의 급한 사정을 듣고 그 언니가 일하고 있던 Adelaide City

근처의 와인 공장에서 잠깐 동안 일을 하면서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또 다른 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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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학과 05학번 손효승 | 23

다시 옮겼던 곳은 시골 중의 시골인 Parilla라는 지역이었는데, 그 곳에서 내가 했던

일은 수확한 양파를 포장하는 일이었다. 보통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했었고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지만, 어렵게 일을 구했던 터라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기뻤었

다. 그 곳에 빈자리가 생겨서 내가 도움을 받았던 지인에게 연락하여 같이 일을 하기

도 했었다.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함께 기댈 수 있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버티

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그 곳에서 2개월 정도를 일하여 마침내 3

개월을 다 채울 수 있었다. 수 없이 옮겨 다녀야 했었지만 그 덕분에 나름 여행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에 한국에서 급하게 호주로 가는 바람에 사전 어학 연수과정이 없이 갔던 점과 호주로

처음 갔을 때에도 3주 정도 밖에 영어 수업을 듣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었다. 지금은 그

런 점들이 개선되어 후배들이 더 나은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첫 번째 비자 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이룬 셈이었다. 농장 일을 했

Ayers Roc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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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의 5개월 정도는 정말 힘들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았던 한

국인의 끈질긴 정신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는 항상 두려움이 앞서고 고민도 많이 하기에 호주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물론 누구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하기 전엔 두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은 예전의 나에 비해 나 홀로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들은 항상 나에게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던 말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긍정적

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위로와 조언

도 많이 받았다.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도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고,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많이 감사한다. 20대의 젊은 날의 경험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더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꿋꿋이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첫 번째 비자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또 다른 경험을 위해 두 번째 비자

를 신청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 1년을 호주에서 보낸 경험을 살려 목표를 분

명하게 정하고 두 번째 비자를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다. 지금의 나의 계획은 비자

를 받으면 다시 호주로 가서 TESOL 자격증을 따고, 회화 실력을 더 늘리는 등 어학 공

부를 위주로 하고 싶다. 또 다른 경험을 할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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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 | 25

나의 인턴유랑기

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

일본 개호노인보건시설 로즈 근무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입니다. 우선 이 수기를 쓰기에 앞

서 후배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되는가하는 생각을 많

이 했습니다. 이 글로 인해 조금이나마 여러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기

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고3때 우연히 자원봉

사 캠프에 참가하게 되고 처음으로 진정한 자원봉사를 경험한 후 사회복지에 대해 배

워보고 싶어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듣고, 학과 생활을 즐기고, 학

과의 특성상 자원봉사에 중점을 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대비

해 노동부에서 시행하는 직장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 사회복지 기관에서 몇 개월 간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여러 특강들을 들었습니다. 그 특강을 들

으며 나태해진 나를 다시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더 많은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을 못해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후배 분들께서

Page 26: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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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여러 활동을 많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해외인턴에 지원했던 동기 중 하나는 다른 학우들보다 남다른 경력을 갖고 싶

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취업난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대학 졸업장과 자원

봉사, 각종 자격증만으로는 차별화를 두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

인복지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있는 일본에서 1년 동안 내가 일을 배워 온다면 필

드에서 일할 때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인 부분으로는 타

국에서의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뿌듯함과 희열을

통해 한층 더 어른스러워지고 강해져 있을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인턴을 가기 전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졸업 후의 진로로 상당한 스트레스

를 받던 때였습니다. 그 때 그저 가볍게만 알고 흘려들었던 해외인턴 사업이 생각났습

니다.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학과 공지를 보고, 되든 안 되든 해보기로 마음먹고 지원

을 했습니다. 그 뒤로 면접과 기관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인턴 파견 직전까지 학교

에서 어학강좌를 들으며 쉴 틈 없이 준비를 해 왔습니다. 이미 우리 시설에서는 5년 동

안 20명이 넘는 선배님들을 채용했었다는 부분이 내가 도전해 볼만하다는 믿음을 주

는 계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로즈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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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 | 27

제가 근무했던 기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보자면 일본 나라현에 있는 개호노

인보건시설입니다. 기관이름이 로즈인데 기관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아름다운 장미 같

은 노년생활을 보내셨으면 해서 지으셨다고 합니다. 어르신께서 입소를 하시게 되면

평균 3개월간 생활하시게 됩니다. 기관에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조금 큰 규모이

며,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케어복지사, 치위생사, 물리치료사,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여러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주간보호센터와 시설이 함께 있는 기관입니다.

인턴으로 케어복지사로 입사를 하게 되면 어르신들의 생활 전반적인 일을 케어하

게 됩니다. 사회복지사와는 조금 다른 업무이며, 단순 식사보조부터 목욕, 레크레이

션 진행 및 보조 등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르신들을

위하는 마음과 사랑이 뒷받침이 되어야 덜 힘들게 해낼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배우

고 있는 학생이라면 일반 학생들 보다 덜 부담감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

각됩니다. 인턴생활 중에서의 모든 생활이 다 좋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분명 힘

든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저도 외국인이다 보니 무엇보다 언어문제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계속 일

시설 내부

Page 28: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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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를 배워왔었지만 회화를 막힘없이 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기에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고,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전에 부딪치면서 언어를 배워나갔

습니다.

신체적으로도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 보니, 좀 더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건강이 자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에 앞서 건강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 건강관리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또한 노인들을 케어하기 앞서 마음가짐과 케

어하는 스킬과 노인들의 상태를 재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관찰력도 키울 수 있었습니

다. 레크레이션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자료를 찾는 등 노인복지 쪽으로 공

부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치매노인들이 입소해서 생활하는 곳에 근

무했었기 때문에 정말 치매의 여러 케이스를 직접 관찰하고 케어를 하였습니다. 그 때

의 경험들이 나중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발력과 결단

력이 있지 않으면 일 하는 데에 있어 내가 얼마나 힘들어지는 건지도 몸소 느낄 수 있

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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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07학번 노세진 | 29

무엇보다 나 자신도 내가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노인분야에 관심이

많이 없던 제가 요새는 어르신들이 어찌나 이쁘고 귀엽게 보이는지 제 자신도 이런 저

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한

국에서 일본의 만화나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덜 부담감을

가지고 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서 문화가 은근히 다르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부딪히면서 배우면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

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우리의 입

장에서 보면 자칫 소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대화를 충분히 해서 오해가 생기

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됩니다.

꼭 일본이 아니라 해외인턴을 가게 된다면 일에도 충실해야겠지만 그 주위를 여행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등 그 곳에서의 생활을 맘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의 문화

를 경험하는 것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에 두

려움만 가지지 말고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성취감

과 더불어 한층 더 어른스러워 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직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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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도전

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

신흥정밀 루마니아법인 근무

나의 대학생활

안녕하세요. 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입니다. 이 글을 보는 후배님들을 위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지내온 대학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을 먼저

꺼내볼까 합니다.

1. 다양한 활동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피와 살이 된다.

저는 매년 매학기를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보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

며 글로벌화랑 프로그램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신라 리더십 학생으로서 학교를 위한 캠

페인, 글로벌 리더와의 대화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

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일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수단은 비단 자격증과 점수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정한 역량을 키

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답을 구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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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필요하다면 학과 전공 외 수업도 들어보자.

학과전공 점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점수가 자율전공 점수로 채워져 있습니다. 경

제학, 역사, 철학, 마케팅 등등 다양한 학문 전공 수업을 들었고, 실제로 기초지식만 알

고 있어도 도움이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공만 몰입하지 말고 다양한 학문적 지식

습득이 필요합니다. 하나에서 최고가 힘들다면 다양한 방면을 두루 아는 지식인이 되

면 됩니다.

3. 자기를 관리하는 자가 승자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자기 관리입니다. 막상 시작하더라도 자기 관리가 어려워 일

을 그만두는 일이 많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유지하는 건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라 자

기 관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자기 관리의 승자

가 되세요.

해외취업 지원 동기

저는 장보고 해외역량강화형에 지원을 하면서부터 해외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처

음 준비를 시작하면서 정말 막막했습니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뉴스, 잡지 그리고 책

을 전부 뒤졌지만 이렇다 할 길을 보여주는 답은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을 만

나봤지만 스펙이 중요하단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험을 토대로 해

외 취업을 목표로 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할까 합니다.

1.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라.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본 경험은 다들 있을 겁니다.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저는 해외 취업을 위해 어떤 자격증을 따본 적도, 토익점수를 올려 본적

도 없습니다. 2학년 때 그냥 졸업을 위해 만들어 둔 토익점수 600점이 전부였습니다. 저

는 해외 취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 외국인과 소통을 하고, 설명을 하고, 통역을 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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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학년 때부터는 거의 영어카페에 살다시피 했고, 교환 학

생을 위한 가이드를 맡아 늘 설명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 선택에 대

한 후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루마니아에서 현지인들과 회의를 하고 문제 해결

에 이 경험들이 자격증보다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후배님들은 남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걱정을 하실 겁니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 것을 불쑥 따라하는 것보다

천천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세요. 그러나 꼭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필요한 요소라면 여러분은 가져야 합니다. 저의 경우와

여러분의 경우가 다를 수 있음을 알아두세요.

2. 망설임 보단 행동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결정을 할 경우에는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그리

고 과연 잘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결정이 힘든 경우, 고민하

공장의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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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 | 33

고 망설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100가지 생각보다는 한 가지 행동을 해야

만 결정에 대한 결과가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100가지 생각을 하되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고, 틀린 부분을 수정해 나갔으면 합니다. 시간은 여러분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100가지 생각을 하는 중에 그 결정을 여러분보다 먼저 내린 사람이 답을 구할 수 있습

니다. 다만, 행동에 앞서 자신이 고민한 부분에 대한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할 겁니다. 그

냥 지금의 실력과 능력으로 문을 두드린다면 잔인한 답변이 돌아올 수도, 친절한 답변

이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루마니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저는 그 답변이 친

절한 답변이었나 봅니다.

3.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고만 해라.

주관이 강하다는 건 고집이 강하단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내 주장과 적당히 혼합해서

더 좋은 결정을 이행하는 사람이 주관이 강한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다른 하나의

객체이고, 여러분도 하나의 독립된 객체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

하기에 타인의 의견을 구하고 정보를 얻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런 정리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겠죠. 많은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100% 신뢰

를 하시면 안 됩니다. 어느 경우나 상황도 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같을 수 없습니다. 다

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강한 주관을 가지고 정보를 취합하고 사용하세요. 주관 없

는 결정에는 후회와 잔인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누가 “무엇을 해봐!”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정보를 비교하세요.

4. 해외에 나가 무엇을 얻을지를 생각하자.

해외에 나오면 막연하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지금 해외 취업에 대한 기대

를 버리길 부탁드립니다. 해외는 한국보다 더욱 힘들고 잔혹합니다. 주말도 없으며, 매

일 매일 어려운 일들이 끝없이 발생합니다. 한국은 주 5일이 지켜지지만, 현지는 주 5

일이 꿈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해외 취업은 늘 도시와 떨어진 생활을 강요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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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다. 기업이 왜 해외로 공장을 확장할까를 생각해보면 이런 생활을 강요받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노동력, 저렴한 부지,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죠. 결국 물건

을 더 싸게 만들고 팔기 위해서 도시와 떨어진 저렴한 부지와 노동력을 원하며, 그리

고 이 모든 노동력을 관리하기 위해 주재원으로 한국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꿈

꾸던 양복차림의 일은 찾기 힘들며, 생산자와 같이 땀 흘리고 거기다 생산 부족은 주

재원 몫으로 돌아와 밤 10시 넘어 생산을 해야만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는 이곳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가야 할

까? 저의 경우 너무나도 재미나기 때문입니다. 일을 배우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여러분은 직면하고 해결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너무나도 재미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친해지고, 같이 일을 고민을 하고, 때로는 의견 충돌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들이라 여러분을 한층 더 성숙시

켜 줍니다. 돈보다 중요한 여러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상황이 널려 있습니

생산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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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 | 35

다. 무엇을 할지 얼마나 받을지 보다는 무엇을 얻을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준비하

고 결정하세요. 여러분의 주관으로!

회사소개 및 나의 업무

1. 회사 소개

저는 우리 대학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소개로 ‘신흥정밀’이라는 회사로 입사

하게 되었습니다. 뉴스 기사에서 ‘신흥정밀’을 치시면 먼저 볼 수 있는 기사가 바로

삼성 상생관계 업체입니다. 신흥정밀은 1968년부터 프레스, 사출을 주축으로 한국 제

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각지에 14개 법인을 두고 삼성, 도요

타, 롯데 전자, 현대, 소니 등이 주 고객으로 자동차, 가전제품, 공업 용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연간 매출은 1조 5천억이 넘으며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금액

을 다시 투자하여 다른 방식의 제조업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향후 폴란드 신흥

우리 부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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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이 생길 예정입니다. 앞으로 동·서유럽과 북미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2. 루마니아 신흥 법인

루마니아 신흥 법인의 주요 아이템은 모니터, 스피커, 홈시어터 등으로 삼성이 필

요한 생산 물량을 전부 맡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캐나다 대기업으로 이름 알려진 셀레

스티카와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인 UAMT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소화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이후 2번째로 유럽에 진출한 신흥정밀의 해외법인으로 2009년

말에 만들어지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3. 나의 업무

제가 신흥 루마니아에서 하는 업무는 세일즈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거

다’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주 업무는 영업, 영업부서와 다른

부서의 통역, 삼성관계 조율, 해외 바이어 유치, 물류 관리, 재고 관리, 생산 관리 등 보

동료와 함께

Page 37: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무역학과 04학번 김한겸 | 37

시다시피 하루에 하나의 업무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다른 부서사항까지 소화하는

일이 많습니다. 앞서 말해드린 사항 중에 다른 전공 수업을 들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

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따라 부서가 정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다른 업무를 소화

하기 위한 기본적 지식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마치며

아직 루마니아에 머문 기간이 오래되지 않아 많은 정보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

다. 다만, 적으나마 다른 후배님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주저리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해외 취업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참고적인 글로 남았으면 합니다.

Page 38: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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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는 겁쟁이인가?

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싱가포르 Rokko Systems 근무

대학생활

안녕하세요. 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겪지 못

하면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접경험이라는 것이 있죠. 여러분과

비슷한 또래의 제가 어떻게 생활을 했으며, 어떠한 느낌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보냈는

지, 저의 이야기를 통해 후배님들이 간접경험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젠가 그 꿈을 닮아간다.

저는 고등학교를 공고에서 컴퓨터를 전공하여 대학 역시 자연스럽게 컴퓨터 관련

학과로 진학을 하였습니다. 다른 평범한 대학생처럼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군 전역 후 미래에 대한 준비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컴퓨터에 관심이 많지 않았기

에 전공을 살려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

도 일단 전과나 편입을 위해선 좋은 성적이 필요했기 때문에 복학 후 열심히 생활하였

Page 39: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 39

습니다. 그로 인해 좋은 성적과 리더십 수업의 교수님 추천으로 ‘리더상’을 받게 되

고, 신라 리더십 회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해야 할 것을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뭘까?”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뭘까?”

“내가 해야 할 것이 뭘까?”

이런 추상적인 미래에 대한 질문을 몇 년간 고민해 온 저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잘 해보자”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제가 지금까지 해온 전공인 컴퓨터를 저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CCNA, SCJP, MCTS, Juniper-EX, ER, JUNOS 등 여러 가지 국제

자격증과 정보처리기사를 취득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꿈을 그리는 시간이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꿈을 닮아가기 위해 노

력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시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내린 결정이 옳은

길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보가 곧 힘이다.

혹시 학교 홈페이지 하루에 한 번 들어가 보십니까? 아니면 대학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인터넷이나 책을 뒤져 보신 적 있습니까? 우리 학교에만 해도 수많

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화랑, 리더십 특강, IT 특강, 어학연수 프로

그램, 해외탐방, 배려운동 등 영어 관련, 리더십 관련, 최신 트렌드 기술 관련, 자격증

관련……. 모든 것을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께

서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 지식을 쌓으시고 학생들에게 전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과 생활과 학점에만 충실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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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고마운 충고로 인해 정보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생산성본부의

자격증, 공모전, 모의 토익, 대기업 적성검사, 인성검사, 장학금, 신나미인배 등 많은

정보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전공과 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대한민국 IT봉사단에 지원하여 몽골에서 IT교사 및 학생들에게 한 달간 C언

어를 가르치고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님으로부터 우수 IT교육상과 함께 감사패를 받

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관심이 있

고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정보가 힘이 되고 경험

이 됩니다.

My Style

똑같은 교수님께 똑같은 과정을 배우는 학생들이지만 각자 프로그램 코딩하는 스

타일이 조금씩 틀리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기만의 스타일로 코딩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분야에서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요? 당연히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겠죠. 자기만의 사람 대하는 스타일,

자기만의 옷 입는 스타일, 자기만의 공부하는 스타일 등등.

이런 자기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

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것을 겪어보고 많은 책을 보

고…….

제가 솔직히 많은 책을 보지는 않지만 보려고 노력하고, 컴퓨터를 하는 시간 외에(

전공이 컴퓨터이기 때문에) 사람들 만나서 운동하고,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그리고 저희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학교는 직장이 원하는 인재를 키우는 곳이 아

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도 이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사

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대학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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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 41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대학생은 동아리 활동도 해보고, 술도 마

시고, 봉사활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는 등 대학생이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부에서도 한 가지 공부가 아닌 여러 가지 공부

를 해봄으로서 틀에 잡혀 있지 않은 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한 학생으로서 공부를 통한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경험 역시 충분히 자기만의 스펙이 될 수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

니다.

해외취업 지원 동기

제가 장보고 장학생이 되어 겨울방학에 필리핀 어학연수를 간 것이 저에겐 외국생

활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받은 느낌은 “난 참 작은 세상의 눈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보던 사람, 항상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 아닌 새

로운 문화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조금 더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안

목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렸던 해외봉사 활동도 다녀 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해외취업에 눈을 뜨게 되

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IT분야에서는 한국과 외국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의 근무

환경이 많이 다릅니다. 2011 최고의 직업 1위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거 아십니까?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야근은 기본, 주말도 없이 일하는 등 어려움

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해외

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한 가지 바로 영어입니다.

English

제가 싱가포르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살기 좋은 나라, 외국 기업의 근무환경,

돈 이런 것이 아닌 바로 영어입니다. 저는 여기 오기 전 KCC Security 보안업체의 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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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엔지니어로 최종 합격하고 몇몇 업체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

지만 부모님과 누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는 앞서 열거한 이

유도 없지 않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영어 때문입니다. 저는 3년 후 한국으로 돌아온

다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경험과 단련된 영어실력을 가지고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에 저보다 몇 개월 전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34살 형님이 한 분 계십니

다. 이 분은 카이스트 연구소에 계시다가 저희 회사로 옮기셨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 형님께 왜 그 좋은 직장을 두고 여기 오셨냐고 물어봤습니다. 역시 답은

영어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Joey(제 영어이름입니다)는 축복 받은 거

야. 다른 학생들은 돈 내고 영어 공부하러 오는데, Joey는 돈 받으면서 영어공부하고

있잖아”

누구나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기업에서도 영어가 하

나의 기준이 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더 발전하기 위해 제 전공과 함께 영

어를 택했고, 그래서 해외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업 후 ……

가족, 친구도 없는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

지만, 늘 색다른 일들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새로운 만남을 가지

고, 새로운 음식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저는 여기서 중국, 일

본, 말레이시아, 인도, 덴마크, 미국, 캐나다, 미얀마, 필리핀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

나고 얘기도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들과 나눈 얘기들은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이해

가 안 되면 다시 한 번 물어보고, 표현 역시 생각만큼 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하

게 대해 준답니다.

한국이 그립기는 하지만 또 다른 재미와 배움이 제가 선택한 길이 옳다고 믿게 만

들어 줍니다. 외국 생활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자기 생활에 안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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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 43

도전정신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외취업을 생각하신다면 두려워하실 것도 없

고 겁먹을 것도 없이 도전해 보세요. 정말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겁쟁이는 되지 않

으셨으면 합니다.

회사소개 및 나의 업무

Rokko Group의 Rokko Systems는 2004년 처음 설립된 Singapore 로컬 반도체 후공

정 장비 업체입니다. 주 제품으로서는 Sawing 장비와 PnP 장비이고, Texas Instruments,

UTAC, FUJC, FATC 등이 주 고객으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하

고 있습니다.

Rokko Systems는 R&D, Software, Design, Assembly & Test 이렇게 나뉘어져 있습니

다. 제가 근무하는 Software 파트의 프로그래머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

고, Sequence, HMI & Secs/Gem, Vision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Design 파트 역시

한국인 과장님을 필두로 인도, 싱가포르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고, Assembly & Test

Rokko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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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는 중국, 미얀마, 필리핀 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업 파트 역시 말레

이시안, 싱가폴리안 등 각 나라의 현지인들이 영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희 회사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 여러 문화가 공존하

며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나의 업무

저는 Software Engineer로 HMI & Secs/Gem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Human Ma-

chine Interface란 간단히 말해서 인간과 기계를 이어주기 위한 인터페이스입니다. Secs/

Gem이란 간단히 말해서 통신으로 기계의 데이터를 각 회사의 서버에 주고받기 위한

부분입니다. C/C++ 등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하여 이 부분을 개발 및 유지/보수하는 역

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공 관련성 및 향후 계획

저는 졸업 작품을 안드로이드로 App을 만들어 BEXCO에 전시를 하였습니다. 지금

Software부서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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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정보공학부 04학번 신진규 | 45

반도체 장비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다른 Program Language

를 사용하고 다른 툴을 사용하고 다른 통신 방법을 사용하여 센서, 모터 등을 컨트롤

하고 제가 다루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제가 배

운 전공과 과정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Language에 대한 이해, 소켓 프로그래

밍, 데이터 통신, 데이터베이스 등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두길 잘했다라고 생각을 하

였습니다.

저는 일단 3년을 계약했습니다. 3년 후 제가 Rokko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싱가포

르의 다른 회사로 옮길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정하진

않았습니다. 저의 계획은 제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책

만 읽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할 생각입니다. 먼저 체력을 키

우고 건강을 유지하기 테니스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계획은 영어공부

를 하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IELTS를 공

부하여 내년에 응시할 생각입니다. 먼 미래를 보기에는 제가 눈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

문에 지금 보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 미래가 더 선명히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In Singapore

제가 생활하고 있는 싱가포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살기 좋은 나라 1위, 법이 아주 강한 나라, 깨끗한 나라

이렇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

지만, 생활해보니 덥긴 하지만 냉방 시설이 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돌아다녀

도 위험한 일이 없었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교통시설이나 편의시설 역

시 잘 되어 있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집은 HDB라고 해서 정부에서 관리하는 아

파트인데, 우리나라의 아파트 보단 못하지만 주위 운동시설 및 문화시설이 아주 잘 되

어 있습니다. 공원이나 저수지 역시 잘 되어 있어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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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편입니다. 그리고 법이 매우 강하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마약을 가지고 들어오면

사형, 자전거가 진입금지 도로에 들어가면 페널티가 1500$(약 130만원) 등 처벌이 매우

강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서 생활하는 나라입니다. 저희 회사소개에서 보

시던 것과 같이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나라입니다. 주된 언어는 영어

와 중국어입니다. 인구의 70% 정도가 중국계라서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를 많이 사용

합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국민 보호기간이

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자나 주택 등 외국인에 대한 법이 좀 더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 관심 있으시고 취업이나 어학연수를 위해 오시려면, 많은 조사를 하시

고 오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행군을 아십니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인지 다 아실

HDB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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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행군을 시작하면 목적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려고 팔짝 팔짝 뛰어

봐도 도착지는 보이지 않죠. 왜냐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병

사들은 행군을 완주하기 위해 앞사람의 머리, 발뒤꿈치를 보며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갑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계속 걸어갑니다. 중간에 앉아서 잠시 쉬기도 하고 허기

를 달래기 위해 물, 초코바 등을 먹기도 하고, 대대장님이 지나가면 다들 큰소리로 파

이팅을 외치기도 합니다. 정말 힘들고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점이 보이고 도

착을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희가 지금 저렇게 걷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도

착지는 보이지 않지만 걸어가고 있습니다. 힘들면 쉬기도 하고, 다시 용기내서 파이팅

하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긴 하지만 한 발짝씩 걸어 나가다 보면 도착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고 지금도 꾸준히 걸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외취업뿐만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후배님들은 너무 막막하거나 불안하게 생각하

지 마시고, 한 가지 한 가지씩 준비해 나가시면 뜻하는 바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 파이

팅 합시다!!!

City hall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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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 회사

전자공학과 04학번 김현준

브라질 동우글로벌 근무

인사글

안녕하십니까? 신라대 후배 여러분. 전자공학과 04학번에 재학 중인 김현준입니

다. 현재는 브라질 상파울로주의 Pinda 라는 도시에 있는 동우글로벌에서 일하고 있습

니다. 지금 여기 시간으로 새벽 4시 반이네요. 그렇다면 지금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4

시 반이겠군요. 여기와 한국과의 시간차이가 딱 12시간이 나니 말입니다. 먼저 저의 해

외 취업 수기가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그렇지 않은 후배님들께 어떤 영향을 드

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2011년 5월 중순에 해외 취업을 하였

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무엇을 조언을 해준다거나 이런 저런 경험담을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의 판단 착오로 후배님들께 올바르지 못한

정보를 드릴까도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라대 후배님들께서 앞으로의 진

로를 정하시는데 조금이라도 정보를 드릴 수 있다는 마음에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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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과 04학번 김현준 | 49

대학생활

2004년에 입학하여 2011년까지(군대, 어학연수 포함) 대학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학

우와 같이 학점, 자격증 취득 그리고 토익 점수에 대하여 많은 걱정도 하였고, 또한 그

것이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학점이나 토익 같은 일

종의 스펙들이 우수하게 준비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것들에 대한 고

민만 많았고, 실천력과 목표점이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제가

해외취업을 하는 데에 이러한 스펙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때 저는 취업에 대한 걱정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이나 희망하는 연봉에 대한 뚜렷한 목표나 방향성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뚜렷한 계획 역시 없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부족한 학점이나 학교에서 요구되는 졸업 조건을 어떻게 채워 나

갈지가 걱정이었고, 그것을 대처하기만 바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브라질까지 와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학과 교수님의 추천을 통해서였

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해외 인턴 연

수의 목적이 강하였으나, 연수기간 중 기회가 생겨 브라질 지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인턴생활

처음에 신라대 전자공학과에서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중국으로 인턴을 가게 된 학

우는 저를 포함한 총 6명이었습니다. 2011년 5월 중순경, 중국 위해시에 위치하고 있는

대호전자에 3개월 동안 인턴 과정을 밟으면서 전자 회사의 근무 경험을 쌓고, 더 나아

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교수님의 권유를 흔쾌히 승낙하였고, 2011년 5월에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

기에 몸을 싣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턴 교육을 받으러 간 지역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거리로 따질 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위해(威海)라는 도시였습니다. 비행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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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소요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중국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내리는 많은 한국인 관광

객과 기업인, 그리고 한글로 적혀진 안내문 등을 보면서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왕래하

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턴 기간 동안 회사에서는 근처의 아파트에 숙

소를 준비해 주었으며, 정해진 회사의 교육 절차에 따라 이론 교육 및 현장 실습이 진

행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대호전자는 모기업의 프린터를 주로 생산하는 기업이었으며,

SMD(Surface Mount Device) 생산부서 업무가 저의 주 교육 항목이었습니다. 평일 일과

는 오전 6시 30분에 기상하여 7시까지 숙소입구로 오는 회사 승합차로 타고 회사 식당

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오후 5시까지 회사의 교육 일정

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업무 관련 교육이 끝난 뒤, 한 시간 동안 현지인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나 주말 같은 경우 위해 시내에

나갔는데 수준 높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이 많았고, 한글로 된 안내문 등이 배

치되어 있어 생활하기는 무척 편리하였습니다. 그런 교육 과정 속에 2개월이 지날 무

렵 회사 사장님의 권유로 브라질 지사로 인사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취업생활

브라질로 가기로 결정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일주일동안 비자 준비를 하면서 휴

식을 취하고 브라질로 출발했습니다. 브라질은 처음 중국으로 갔던 6명 가운데 저와

같은 학과 1년차 선배(4학년)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브라질에 가기 전부터 브

라질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삼바, 축구, 남미 여자, 축제 등 아마 후배님들도

이런 비슷한 환상들을 갖고 있진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브라질에 대한 올바른 정

보 하나 없는 상태에서 무수한 기대감만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던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는 한국에서 브라질로 바로 갈 수 있는 비행기는 없고, 미국 LA나 프랑스

파리 중 한 곳을 거쳐야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미국 LA공항에서 2시간 동안 대기한 후

브라질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브라질까지 23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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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과 04학번 김현준 | 51

이 브라질보다 12시간 빠르니까 정확하게 지구 반대편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상

파울로 공항에 내리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는 것

과 들판에 흰 소떼들과 사람 허리 정도 높이의 개미집들이네요. 도착 당시의 계절은 겨

울이었지만, 몸소 느끼기에는 한국의 여름 날씨와 비슷했습니다. 지금이 브라질은 여

름철인데 대낮에 밖에 나가질 못할 정도로 햇살이 뜨겁습니다.

처음에 배치된 부서는 SMD 생산부서이고, 지금도 SMD 생산부서에서 생산 관리

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해외 지사에 취업을 하게 되면 현지에 맞게 편하게 일

할 수 있겠다는 착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일주일 만에 사라져버렸지

요. 일이 바쁘면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평일 역시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에 힘

이 들었습니다.

브라질 남자들은 축구를 얼마나 잘 하는지 궁금하시죠? 전 엄청 궁금했었는

데……. 가끔 축구를 하는데 브라질 축구의 특징은 개인기 위주이며 패스를 아주 안하

며, 골 욕심도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같이 축구를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치

캄포스에서

Page 52: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52

페이 문화라서 음식점에 들어가면 인원

수만큼 개인 계산서를 나눠줍니다. 음식

을 추가할 때 마다 추가시킨 사람 계산서

에 음식가격이 추가가 됩니다. 또 특이

한 점은 소고기가 주음식이라서 대부분

의 사람들이 비만체형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몸매가 드러나는

쫄티나 배꼽티를 즐겨 입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개인주의 사상이

강하여 남의 시선이나 타인의 일에 간

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

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

본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인하여 현지에

는 일본인 2세나 3세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다시 회사 이야기로 넘어가면, 평일 7시에 업무를 시작하여 업무 마치는 시간은 정

해져 있지 않습니다. SMD 관련 회사는 24시간 공정이 돌기 때문에 야간근무를 할 때

가 많고, 주간 근무일 때는 늦게 까지 남아서 업무 보는 일이 많습니다. 글쎄요. 현지에

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 주재원도 있고, 힘들어서 퇴사한 주재원도 있고 그렇습니

다. 아직 저도 잘은 모르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두 남 탓하거나,

주위 탓을 합니다. 자기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을 하지요. 이게 제가 브라질

사람에게 제일 실망한 것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한국이라 하여 틀린 게 있을까요? 저

역시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핑계꺼리를 찾기 바빴고, 거짓으로 진실을 감추려 하였습니

다. 회사를 나간 사람들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가

버스안에서

브라질은 한국과 달리 버스 안에 요금을 받는 직원이 있습니다. 흰색 옷을 입고 서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Page 53: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전자공학과 04학번 김현준 | 53

월급은 적고, 일은 너무 많고, 상사가 어쩌고 등 자신의 불만만 늘어놓고, 자신이 일 잘

못한다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듭니다.

해외 취업을 하게 되면 종사하는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보다 월수입은 대부

분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일은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자

기 관리가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 한 달 동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매일 술을 마

셨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스트레스는 당연히 따라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직

장 스트레스를 어떻게 떨쳐 내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외에 나와

서 일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그 사람의 해외 직장 생활의 원동

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수영으로 몸을 풀고, 같이 온 학교 선배와 운

동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다. 일은 잘 하면 좋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외 지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업무가 막 쏟아지

듯이 하달되는데 업무를 나열하는 일을 먼저하고, 그것을 언제까지 누가 책임지고 할

것인가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 합니다. 특히 브라질 사람은 지켜보고 있어야

일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해 줘야 합니다. 이 글을 브

라질 사람이 본다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여기에서 일하면서 솔직하게 느

낀 것들입니다.

마치며

저의 글이 잘 정리되지 않아 읽으시는 분들께 혼돈을 드리진 않았는지 걱정입니

다. 글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서 일하든 해외에서 일하든 자기가 선택한 일

이고, 또한 자기가 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취업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

업이 된 것이라 아직 많이 부족하고, 정신없이 관리직 일을 배우고 있는 단계입니다.

신라대 후배 여러분들은 취업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밤잠 설쳐가며 쓰고 있는 Report가 나중에 여러분들의 업무

Page 54: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54

Report가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봉급이 틀려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강의와 토론

이 나중에 업무 회의가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직급이 틀려 집니다. 지금 하고 있

는 취미 생활이 나중에 업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됩니다. 후배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학교생활하면서 좋든, 나쁘든 들여온 버릇들이 회사 생활에까지 크게 영향

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현재에 충실하시기 바랍니

다. 그럼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루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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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디자인학과 07학번 이미란 | 55

기회의 나라 중국에 가다

실내디자인학과 07학번 이미란

중국 빌드인테리어디자인 근무

안녕하세요. 중국에서 인턴을 마치고 온 실내디자인학과 4학년 이미란입니다. 처

음 중국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3학년이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

께서 타 지역에서 살면서 통학과 기숙사 생활을 해오던 저를 부르셔서 “어차피 너는

취직을 하면 타 지역에서 하게 될 텐데, 조금 더 크게 보고 해외취업을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스스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목표가 짧은 4년 대학생활 동안 학생으

로서 할 수 있는 경험은 최대한 많이 해보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매년 학과의 집행부

활동과 여러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해왔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중국취업은 또 다른

큰 도전이자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고, 게다가 해외 취업은 인턴을 할 동안 학

교에서 지원도 해준다니 기회라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 보니, 소위 저는 중국어의 ‘중’자도 모르는 학생이었

고, 인턴을 하게 되면 중국어로 모든 업무를 해야 할 텐데 가능할까? 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 인턴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중국어 수업이 개설되었다

Page 56: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56

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중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려던 그 당시, 저와 함께 중

국인턴을 신청한 친구들은 수시로 뜨는 공모전 준비와 졸업작품전 준비 때문에 수업

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성조와 간단한 중국어만을 습득한 채 졸업작품전이 끝나자마

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좌충우돌 중국 생활기

처음 한 달 반 정도 중국 청도에 위치한 이공대학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였습니다.

물론 중국에 가기 전 두 달 동안 중국어 수업을 듣긴 했지만, 성조와 간단한 대화만 익

히고 왔던 터라 현지 수업에서도 초급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어 수업을 들을 땐 확실하게 듣고 배워도 써먹을 곳이 없으니 잊어

버리기 일쑤였지만, 중국현지에서 배우게 되면 실생활에서 모두 사용되니 배운 문장

이공대학 연수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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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디자인학과 07학번 이미란 | 57

이나 단어는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중국인의 경우 영

어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중국어가 아니면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니 중국어공부가 시급

하단 것이 몸소 느껴졌습니다.

현지 학교 수업은 오전 시간에 중국어 수업을 듣고 오후 시간에는 중국 문화를 배

우거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학교에서 밖을 나

서기 꺼려했지만, 점점 버스도 타고 시내구경도 나가고, 한국과는 다른 중국 문화를 접

하며 중국생활에 적응을 해나갔습니다.

어학연수 기간이 끝날 무렵 현지 회사와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면접

을 통해 모두들 인턴회사가 확정이 되었고, 저는 중국 칭다오에 있는 빌드인테리어디

자인이라는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한국인 소장님께서 운

영하시는 회사이고, 주로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을 위주로 공사를 하는 회사였습니다.

부장님과 주임님을 제외한 직원들은 모두 중국인이었고, 직접 현지 중국인부들

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부딪치며 배우는 중국어에 자신감은 조금

씩 늘어났습니다. 저의 부서는 설계부였지만 현장 실측, 설계, 자재 선정, 현장 감리 등

소장님께서 잡아주시는 디자인 방향성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보고 배울 수 있었고, 더

불어 현장에서는 중국어도 배울 수 있으니 하루하루 출근길이 너무 기대되었습니다.

8시까지 출근을 하고 보통 출근을 하고나선 그날그날 스케줄을 정리하여 부장님

께 보고하고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편이였습니다. 오전에는 자재주문과 현장작업의 상

황 체크 등을 한 다음 현장을 나가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들어와서 설계 작업을 하거

나 내일 작업에 대한 정리 작업을 하였습니다. 기숙사 생활이라서 퇴근 후에 작업을 하

는 경우도 빈번히 있었지만, 모두들 많이 도와주시고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참 재

미있었습니다.

인턴을 하는 동안 저에게는 큰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은 규모의 의류매장이지만

제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고 설계를 하며 시공감리를 볼 수 있는 저의 실무 첫 작품

기회였습니다. 운이 좋게 저에게 그 프로젝트가 떨어졌고 처음이라 서툴고 미흡했지

만, 열정만은 그 누구 보다 컸습니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통한 디자인 수정작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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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에 걸친 실시설계작업, 현장에 들어가는 자재 선정과 주문, 공기를 맞추기 위해 수

없이 많은 공정표 수정과 인부들과의 스케줄 계획까지 모든 것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오픈일 3일 전에 공사를 완공시키고 무사히 오픈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픈식

당일 소장님과 함께 매장에 갔을 땐 제가 놓치고 지나친 실수들이 너무 많아서 혼도 많

이 나고 저 자신으로써도 너무 아쉬웠지만,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저의 손길을 거친 매

장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저 자신 또한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이 드는 좋은 경험 이였습니다.

이 공사를 하면서 ‘내가 만약 한국에서 인턴을 했더라면 이러한 기회가 나에게

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졸업도 하지 않았고, 고작 한 달 일한 인턴생

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처음 중국을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

인 공부한다는 애가 중국엔 왜?” 물론 디자인을 배우려면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이 된

일본이나 독일에 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매장 인테리어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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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디자인학과 07학번 이미란 | 59

직 많이 발전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부

족한 나에게도 기회가 많다고 말입니다.

고민하고 계시는 후배님들 도전하세요!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인턴쉽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교

수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임금

문제나 여학생들의 경우 숙소 문제가 조

금 아쉬웠습니다.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가는 만큼 학교 쪽에서도 이런 부분을 미리 철저히 조사를 해주시고 준비를 해주신다

면 뒤이어 해외취업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안심이 되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생

각을 합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여러 교수님들과 메일로 자세한 사항 알려주신 선

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매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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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소녀의 타오르는 열정

중국어중국학과 07학번 양고은

중국 UNI-WORLD SERVICES. LTD 심천지사 근무

국내의 취업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있는 상황에서 4학년 2학기만을 남

겨둔 당시, 저는 조급함과 함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전공

을 살리며 일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국 근무경험을 쌓는

것이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중국을 다시 가기

로 결정했습니다. 어학연수, 교환학생으로 중국에서 2년 넘게 생활해 본 나였지만, 해

외취업이라는 다른 목적으로 이곳을 찾게 되니 감흥이 새로웠습니다. 그 동안 많은 선

배, 동기들이 중국으로 해외취업을 갔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지원을 받아 신라대학교가 진행하는 무역비즈니스 해

외취업 연수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연수 4개월 및 필리핀 국외연수

2개월로 구성되어 영어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무역 실무 지식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두어 국제무역 전문가로 거듭 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국내연수 4개월 동안 예전에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무역실무와 무역영어, 그리고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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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중국학과 07학번 양고은 | 61

제 마케팅이라는 과목이 처음에는 다소 생

소했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보고 듣고 익

히다 보니 나중에는 꿈에서도 무역 수업 내

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정도였습니

다. 회사에서 모든 서류 업무가 영어로 이

루어지기 때문에 영어 또한 유창하게 구사

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2달 동안 필

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받으며 비즈니스 영

어 구사능력을 길렀습니다. 특히, 필리핀

어학연수의 장점은 1대1로 수업을 받기 때

문에 영어 문장 구사 시 부끄러움 없이 대화

할 수 있었습니다.

국외연수 2개월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

지만, 매일 단어를 외워 어휘량을 조금씩 늘렸고, 필리핀 친구들을 사귀며 다양한 주제

를 활용하여 회화능력도 길렀습니다. 외국인 친구와의 대화가 두려웠던 나에게도 자

신감이 생겨났고 영어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애착

과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필리핀에서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에 이력서를 수차례 넣었지만, 취업의 문을 뚫

는 일이란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힘든 대장정이었습니다. 취업하기 전에 이력서와 자

기소개서를 정신없이 준비하는 것보다는 평소에 쓰는 연습을 많이 하고 미리 조금씩

작성해 두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자신이 가고자 하

는 나라의 언어로 미리 1부를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근무하게 된 곳은 중국 광동성 동관시에 위치한 국내 의류회사였습니

다. 맡은 업무는 해외공장 내 연락업무, 디자인 보조 및 무역전반 서류작업 보조업무였

습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의상용어와 200여 가지가 넘는 색상용어들을

중국어로 암기하여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옷이 우리 손에 오기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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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Packing List를 작성해봄으로써 어떻게 하면 1박스 안에 많은 옷을 포장할 수 있을

까를 고민하며 일을 하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을 포장할 수 있었

습니다. 샘플원단의 천을 색깔별로 구분하여 개어 넣었습니다. 재봉사가 옷을 완성하

면 쪽가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옷의 실밥을 꼼꼼히 정리하였고, 최종 점검 후 다림질된

옷에 상품의 가격표를 붙이고 정해진 방법으로 옷을 개어 포장용기에 넣고 박스로 포

장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일에 흥미를 느껴서 심취해 있을 때, 갑자기 나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중국 도착 후 일주일 만에 이렇게 몸이 아프게 될 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치아의 잇

몸염증으로 끙끙 앓았지만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고, 나로 인해 회사에

폐를 끼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통제를 복용해가며 참았습니다. 너

무 참았던 까닭인지 열이 불덩이처럼 올라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회사 직원

과 함께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3일 동안 링거를 맞아야 하며, 첫날에 링거를 투입한 후에도 계속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링거 투입 후에도 나의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한국으로 와서 2주

동안 치료를 꾸준히 받았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와 간호

사들 모두 나의 상태에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요? 다시 새로운 힘찬 출발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이력

서와 자기소개서를 재수정하여 곳곳에 지원한 결과 Uni-World Service라는 곳에서 일

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타지에서 아픈 서러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출국하기 전부터 시간의 여

유를 두고 아픈 곳이 없는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 근무지가 된 중국 심천 Uni-World Service는 1993년 홍콩법인 설립 이래 18

년 동안 홍콩 및 중국에서 법인 설립 및 운영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으며, 홍콩과 중국

지역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이사, 국제 무역, 홍콩 부동산투자, IT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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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중국학과 07학번 양고은 | 63

까지 사업범위를 확장하였으며, 현재는 홍콩 본사를 중심으로 7개의 지사(서울, 중국

심천, 광주, 북경, 상해, 청도 등)에서 100여명의 전문 인력들이 회사 설립에서 운영, 사

후 관리까지 총체적 서비스를 수행하는 기업입니다.

매일 직원들의 출퇴근 현황을 편리하게 알아보기 위해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반드

시 찍어야 회사에 출입이 가능합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며,

단 매주 월요일은 아침 조회가 있는 날이라 8시 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합니다. 아

침 조회는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 추첨을 통해 그 주에 당첨이 된 직원이 아

침 조회를 열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시청, 노래 배우기, 게임, 심리 테스트, 댄스 등

여러 가지 중에 산뜻한 주제를 하나 정해서 중국어로 준비를 하며, 8시 30분부터 9시까

지 30분 동안 진행합니다.

아침시간이 개개인에게는 황금 같은 귀중한 시간이니만큼 알차게 준비를 해야 합

니다. 이 시간을 통해 첫 주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 평소에는 업무

때문에 직원들 간의 소통이 부족하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소통할 수 있어서 좋

았습니다. 또한 회사에서는 MT를 통해 직원들과 친해질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어색

회사 여직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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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중국 직원들과의 교감과 친밀감을 이

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유니월드 서비스 신사업팀이라는

신규부서에서 마케팅과 기획 일을 맡고 있

습니다. 여러 상품들을 중국인들의 소비문

화에 맞게 국제마케팅을 하다 보니 제품의

특성과 필요성을 고객의 입맛에 맞게 안내

하면 구매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

습니다.

매주 사장님께서 이메일로 내주시는

숙제를 보고서로 만들어서 제출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평소 사업계획서와는

거리가 먼 나였고, 비전공에다 그 분야에는

전혀 지식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사업계획서 양식에 맞는 작성법을 습득하기까지 시

간이 너무 오래 걸려 힘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때론 내가

제출한 보고서가 사장님의 의도와 빗나가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끔

씩 동료 인턴사원과 경쟁이 붙다보니 업무의 의욕과 효율성이 키워지고 그 과정에서

점차 나도 모르게 맡은 업무에 대한 욕심과 흥미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장님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신규사업팀을 꾸려온 세 달간의 시간이 사실 쉽지만

은 않았습니다. 사장님께서 매번 신규아이템을 여러 개 제시하셨고, 팀원들은 그것을

실현할 방안들을 찾아 정리하였으며, 모르는 것은 스스로 찾아서 이해하고 터득해야

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첫 시작은 좋았으나, 마무리가 잘 되지 않

아 물거품이 된 아이템도 많았습니다.

한국 여러 회사의 신규 아이템을 중국에 유치하려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수많은

E-mail 교신과 함께 사장님께서 한국을 왕래하시며 미팅도 하였건만, 많은 아이템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쳐 사업이 진행된 후에도 불미스

회사 외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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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중국학과 07학번 양고은 | 65

럽게 상대측에서 변심을 하여 물거품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에 무리하게 여러 아

이템을 2~3개씩 진행하다보니 무리가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하

나씩 차근차근 사업 진행이 마무리가 된 후에 그 다음 아이템을 유치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욕심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

밖의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에 소속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회사에 처음 입사 당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고 처리해야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

았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찾아서 일을 해야 했고, 모르는 것도 알아서 찾아보고 스스

로 터득해야 했습니다. 전공과는 무관한 익숙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하나에서부터 열

까지 서툴렀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라는 안정된 틀 안에서 항상 교수님들이 주시는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꽃인 줄 알고 착각 속에서 편하게 지내왔던 4년간의 대학생활

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회사는 화려한 이력서, 자기소개서 따윈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수치적으로 확인

가능한 이익을 내줄 수 있는 직원을 원합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우리 기업들은 장기

건물 29층에 위치한 사무실 내부

Page 66: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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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성실한 직원을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해외에서 오래 버

티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들은 힘든 업무의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

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자 직원들을 뽑으면 몇 달 못 버티고 그만둘 것

이라는 편견이 있으며, 여학생에 대한 믿음이 사실상 많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해외 취업에 대한 화려한 환상 속에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기업이라

고 하여 한국인들에게는 혜택이 많이 돌아가고 더 좋은 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는 중국인들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였지만, 현재는 조선족을 포

함한 한족들까지도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합니다. 회사는 인건비 부분을 절감할 수

있는 한족을 뽑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을 구체적

인 방향 설정을 잘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될 것 입니다. 해외근무를 하면 힘들기 때

문에 당연히 월급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헛된 상상도 버려야 합니다. 여자들도 어떠한

상황에 부딪힐지라도 독하게 버틸 수 있는 끈기와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신라대 후배님들! 공자님 말씀에 “知之者 不如 好之者,好之者 不如 樂之者”라

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지식만 잔뜩 있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따르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진정으로 즐기는 자를 따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4년의 대학생활을 뒤돌아 회상해 보면, 저에게도 하루에 열두 번씩 그 꿈들이 사라

지고 생겨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계 유명한 갑부가 되는 꿈, 세상을 정복하는 꿈

등 지금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많은 꿈들이 스쳐지나 갔지만, 한 어린소녀의 소망이

기도 했습니다. 동화 속 꿈과 같은 상상이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스스로 직접 발로 뛰고

배우며 터득해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꿈으로 머무를 겁니다.

울퉁불퉁한 길이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저하지 마세요. 인생에 너무 쭉 뻗은

길만 있다면, 재미가 없어 멈추고 싶지 않을까요?

Page 67: 신라인의 해외취업 도전기

무역학과 05학번 김현 | 67

그것이 알고 싶다 - 베트남 편

무역학과 05학번 김현

베트남 택슨스포츠웨어 근무

해외 취업 도전기

해외 취업 수기 작성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

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나는 정신없이 지

금까지 살고 있다. 4학년을 올라오면서 “마지막 남은 나의 기회를 1년에 모두 쏟아 붓

자”라는 신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 것 같다. 대학 생활동안 영어를 꾸준

히 준비해 본 적은 없었다. 글로벌 화랑 프로그램 수업, 토익 수업을 간간히 듣는 정도

였다.

그것 외에 나는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한 것 같다. 전공 무역마스터 스터디 그룹을

맡아 운영을 하고, 외국교환 학생들과 다문화 동아리에 참여를 하며 외국인들과 가깝

게 지냈다. 해외탐방을 지원하여 일본으로 무역사업에 대해 조사를 떠나 보기도 하였

다. 그 외에 각종 활동들을 하며 여러 경험을 쌓아 왔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을 쌓아

올라 가다가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이 바로 해외 취업이다.

먼저 해외 취업을 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누구나 대학생활 동안 해외 어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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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생각한다. 나 또한 장기간의 목표를 두고 어학연수를 준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

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바로 최대한의 절약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 내가 가졌던 실질적인 의문 세 가지!! 그것이 바로 나를 이 곳 베트남으

로 이끈 동기이다. 첫 번째 의문은 내가 과연 지금 남들이 말하는 소위 스펙을 준비한

다고 해서 얼마나 큰 이득을 볼 것인가이다. 두 번째 의문은 내가 투자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의 정도는 얼마나 되는가이다. 세 번째 내가 가진 역량은 무엇인가였다. 이 세 가

지 의문은 결국 나를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하였다. 내가 가진 건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교육을 마치며...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교육을 시작하면서 정말 한숨의 연속이었다. 매일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어 수업을 하는 동안, 영어 수업은 나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공 수업은 조금 수월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전공 수업은 한국어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초기의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한 학기를 끝마치며 국내 교육을

종료 할 쯤에는 나름 외국인들과 유대관계도 돈독해 지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붙어 있었다. 또한 전공과목에는 자신 있었던 나였지만 국내 교육을 통해 실무적인 많

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큰 도움이 되었다. 국내 교육은 힘들지만 나름 나

를 성장시켜 준 초석이 되었다고 감히 말을 한다.

국외 교육을 마치며……

먼저 나는 이 말부터 하고 싶다. 이렇게 수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가장 솔직한

마음으로 가장 솔직하게 글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같이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

는 신라대학교 학생들과 관계자분들에게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외 교육을 갈 당시 애초의 마음은 “정말 두 달 동안 미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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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5학번 김현 | 69

이 공부해서 꼭 영어를 마스터 하자”였다. 도착과 동시에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여

러 조교 선생들에게 자습실 운영 시간을 문의하며 정말 공부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것은 단 이틀 동안…. 그 후로는 정말 원 없이 영어를 쓴 것 같다. 그것도

외곽에서 말이다. 놀기만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정말 평생 가슴에 남을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나는 지금 토익 성적도 내세울 수 없는 입장이지만, 필리핀뿐만 아니

라 영어권 어느 지역을 가도 혼자서 충분히 돌아다니고 이야기하고 대화할 수 있을 것

이라 생각한다. 무식함에서 나오는 객기라고 생각 하는가? 필리핀 2개월 교육과 생활

이 나에게 심어 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자 현실적인 결과물이다.

글로벌비즈니스지원센터에서 목표로 했던 영어 수준 향상이라는 목표는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센터에 계시는 관계자 분들 또한 정말 성심껏 지원해 주

셨다는 걸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아마 토익 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회화 수준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한국 내에 80% 이상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지금 여

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고민하기 전에 경험부터 하고, 다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믿는

다. 고민만 하며 준비도 못할 바에 먼저 몸으로 부딪쳐 보고 경험해 보면서 영어에 대

한 감을 익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난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기업의 선택과 면접 경험

㈜택슨 스포츠웨어 입사와 그 후 내가 겪은 경험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하겠다. 이 회

사는 연 매출 80억 정도의 작은 규모의 기업이다. 베트남에 의류 공장을 지사로 두고

있고, 본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해 있다. 처음 나에게는 많은 기업의 선택권이 주어

졌다. 150억 이상의 매출을 가진 회사, 복지가 좋은 회사, 유명한 브랜드명을 가진 회사

등등 여러 군데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택슨 스포츠웨어였다.

그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첫째, 나를 필요로 할 것 같은 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요

구하는 스펙 조건은 영어 가능자, 베트남어 가능자, 성적 우수자, 해외 생활에 적격한

자 등이었다. 하지만 내가 포함될 수 있었던 부분은 없었다. 그나마 꼽아 보자면 영어

가능자와 성적 우수자 정도였다. 하지만 난 망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해외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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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을 목표를 하였을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바라는 업무에 사람을 뽑고 있었다. 총무관리 및 영업, 이 두 가지

를 보는 순간 “아! 내가 필요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왜?”라

고 많이 물어 보았다. 해 본 적도 없는 일에 무슨 자신감을 가지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난 당당히 말했다. “사람이 처음부터 걸으면서 태어납니까?” 필리핀 어학연수 복귀

와 동시에 이틀 만에 면접 일정이 잡혔다. 혼자서 상경하는 길에 많은 생각이 맴돌았

다. 나의 첫 도전이 과연 나의 믿음에 부응 해 줄 것인지 말이다.

사장님과 면접을 보면서 맨 먼저 “회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너무나 당당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걸 준비하였기 때문이

다. 회사 연혁부터 매출액, 강남구 유망 중소기업 선정 배경, 주로 생산하고 관리하는

브랜드 정보 등 나는 모든 것을 말했다. 사장님께서는 내심 뿌듯한 표정이셨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

나의 머릿속엔 총알 같이 “Let me introduce myself …” 이런 말들이 스쳐 지나갔

다. 이 얼마나 상투적인 영어인가? 순간 나는 항상 머릿속엔 간직했던 나의 영어 자기

소개 문구를 하나도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봤자 별로 기대

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머릿속에 생각

이 나는 대로 즉석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은…, “영어를 좀 더 하셔

야겠네요.” 나는 그저 웃었다.

다음 질문은 “전공이 무역인데 무역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였다. 나는 서슴

없이 “저는 전공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전의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질문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 중계무역과 중개무역의 차이점을 말해 보

시오. 둘째, FOB, CIF, DDP에 대해서 설명 해보시오“였다.

나는 아는 대로 모든 걸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 어디서 듣고 말하느냐는 것이

었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이게 아니었나….’ 하지만 사장님의 말씀은 나를 다시

평온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알고 있네요. 그게 우리가 하는 업무입니다.“ 나는 기

뻤지만, 곧바로 낙담스러운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영어를 자유롭고 능통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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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5학번 김현 | 71

하는데, 그게 힘들면 업무가 힘듭니다. 그러니 조금은 생각해 보겠지만 힘들 것 같습

니다“라고 말이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면접은 이렇게 떨어지는 구나라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사장님께 ”저에게 5분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제가 어떤

사람인 지 5분 안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부족한 면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말

로써 하는 것과 감정을 말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단지 제가 말을

하는 것을 보셨을 뿐입니다. 베트남에 가게 되면 베트남어도 해야 되는데, 지금 사장님

께서는 그 현장의 사람들과 감정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 하신 게 아닙니까? 인

턴 3개월 동안 돈을 안 받아도 좋습니다. 제가 그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첫 도전과 믿음에 실망감을

안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잃을 게 없었다. 첫 도전에 대한 성공은 내가 정하는 것

이지 돈과 위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회사를 나왔다. 차를 몰

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전화가 한 통 왔다. “출장 날짜 맞춰서 같이 나가주실 수 있겠

습니까?”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베트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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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베트남 업무 경험

베트남 업무 시작 전, 본사에서 9일 정도 근무를 하였다. 강남으로 출근하는 나의

모습에 내심 뿌듯함이 더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모

습…. 정말 꿈만 같았다. 첫 출근과 동시에 책상을 배정 받고,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

누었다. 그렇지만 그 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업무에 열중하였다. 나는 혼자 쓸

쓸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

다.

나는 그냥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사장님께 가서 아무 업무라도 주시면 조금씩 해

보겠다고 했는데, 사장님께서는 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주방으로 향했

다. 장갑을 끼고 책상 정리와 쓰레기통 정리, 그리고 각 직원들 밑에 있는 휴지통 정리

까지 모든 걸 치웠다. 모두들 불편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내

가 불편할 바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커피 심부름을 하고 사무실 정리와 샘플실 정리 등을 하였다. 그

러다 옆 자리 주임님께 아무 것이나 시켜 주시면 도와 드리겠다고 하니 엑셀 작업을 주

셨다. 나는 최선을 다해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을 하여 보고를 드렸다. 프린터기 소리가

들리면 뛰어 가서 프린터 물을 전달해 드리고, 택배가 오면 직접 인수하여 각 팀에 전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4~5일 만에 점점 나에게 업무가 주어졌다. 간단했지만 나로서

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 기뻤다.

그 후 나는 9일 동안 남들이 1~2 달 만에 겪을 일을 다 겪은 것 같다. 9일이 지나고

회사 직원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베트남으로 출국을 하였다. 베트남 출국 후 모든

게 낯설었다. 아무도 영어를 쓰지도 않는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가 남발한다. 공

장 첫 업무는 자재 수량 세는 것이었다. 밤 9시까지 수량만 센 것 같다. 야간에는 공장

구경을 혼자 다녔다. 1주일 뒤에는 재단 팀으로 옮겨졌다. 거기서 눈동냥만 또 계속 하

였다. 설명 해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많이 답답했다. 말도 안 통하니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3주쯤 되던 때에 나는 직원들 대부분과 의사소통을 하였다. 베트남어로 말

이다. 손짓 발짓을 하면서 말하기도 했지만, 3주 동안 틈틈이 베트남어 사전을 보며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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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5학번 김현 | 73

학으로 공부를 했고, 영어로 내가 말하는 형식대로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숫자부터

시작해서 업무상 필요한 단어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한 달이 지난 뒤로는 외주 업

무 담당이라는 직책을 맡아 외근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 혼자

가서 베트남인들과 소통하며 자재들을 체크하고 챙겨 회사로 가져왔다. 그리고 두 달

되던 때 통보가 왔다. 인턴 기간 끝내고 정직원으로 바로 채용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읽어 본 사람들은 연봉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비밀에 붙이겠다. 다만

정말 만족하는 정도라고만 말하고 싶다. 그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취업 수기를 작

성 중이다. 지금 나의 업무는 자금관리 총 책임과, 외주관리 책임, 자재관리, 무역실무,

Evaluation 담당을 맡고 있다. 하는 일이 엄청 많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목표

가 이것이었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고, 짧은 시

간 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을 한다. 업무 시간 동안 MR(Merchandiser)들과

항상 소통하며 오더들을 관리한다. 당연히 모든 말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바이어들이

직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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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면 영어권 국가의 기업 사람들과 미팅을 하는 업무도 전적으로 담당 중이다. 그

외 작업장과 공장 외부 일에서는 베트남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농담은 못하지만, 일반

적인 대화와 작업 지시까지는 원활하게 가능하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가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 올린 경험 덕분인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 배우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해외에서 불편함 없이 업무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것이 해외 취업의 가

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 개인의 발전을 위한 노력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

다. 이 글을 쓰면서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해외 취업의

길이다. 우선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스펙을 쌓으려는 생각은 버리기 바란다. 스

펙은 별로 소용이 없다.

신라 대학생의 자부심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내가 아는 신라대 학생들은 5명이다. 그 중 나를 포함해 3명

은 정기적으로 만나며, 베트남 내에서 꿈을 쌓아 가고 있다. 한 번씩 모여 이야기를 나

눌 때면, 현재 베트남에서 한 명의 산업역군으로 일을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학교에서 베트남 진출을 많이 확대할 것이라는 말을 듣

고, 신라대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되기도 한다. 특히 호치민

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종류의 산업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산업의 확대가 많이 이루

어질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베트남에 관심

이 있는 학생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꼭 한번 경험 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해외 취업을 바라는 학생들에게……

해외 취업이라는 것이 결코 꿈만 같을 것이라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하얀 와이셔츠에 깔끔한 멋쟁이 직원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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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과 05학번 김현 | 75

은 잠시 주머니에 Keep 하길 권유한다. 먼저 해외라는 곳에서 취업을 하게 되면, 철저

한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누리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아야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이 가능한 사람은 훗날 어느 누구 보다도 앞서 있을 것이라는 것

을 말하고 싶다.

취업을 단순한 경험을 쌓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해외에서 실패를 할 것이

다. 당연히 경험은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약간의 경험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취업과 동시에 이젠 당신은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딛게

된 것이며, 당신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해외 또한 한국 못지

않게 치열한 곳이다. 그 말은 하나라도 더 아는 사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 적응력, 인내심 등 모든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도전하기 전에 마음을 굳게 먹길 바란다. 처음에 조금 무거운 부분을 언급하여 고

민스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외에 대한 희망은 이러한 것보다 훨씬 크고 밝다. 해외

현지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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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자신의 성장 가능성,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인생의 초석을 단단

히 쌓을 수 있는 기반, 해외 취업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수익 등 무수한 장점이 존재한

다. 한 번 해외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면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요즘 기업들은 스펙을 중요시 한다. 하지만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

는 기업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앉아서 말만 하고 아무런 발전이 없는 사

람보다 오히려 모르니까 한발 더 뛰고 노력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과연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후자라면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해외로 취업하기를 적

극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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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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