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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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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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

1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사

오죽했으면

아비의 수치, 드러낸 아들과 덮은 아들

야곱을 택하셨음은

2

제 Ⅰ 편

본 문 : 출애굽기 제 20 장 제 12 절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사

제5계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나, 제1, 2계명은 천대까지의 복을 약

속하고 있다. 레위기에서는 부모공경 다음에 안식일을 지키라고까지 하셨다.

본문인 제5계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부모를 공경

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

속해주셨습니다.

이 계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보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속 있는 첫 계명”(엡6:2)이라고 했습니다.

본편에서 다루고 있는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은, 십계명 중 제5계

입니다.

그럼에도 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을까요?

약속이 붙여진 유일한 계명이라는 뜻일까요?

그리들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계명에 붙여진 약속으로 치자면, 다른 계명들도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千代)까지 은혜를 베푸느

니라” (출20:6)고 하신 구절도 있습니다.

3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 계명”이란, 10계명 중 제1계명과 제2계명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제1과 제2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이르러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셨으니, 굳이

‘복의 약속’으로 치자면 제1, 제2계에 붙여진 축복이, 제5계에 붙여

진 약속보다 훨씬 더 그 양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당대(當代)와 천대(千代)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어찌하여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라고 했을까요?

혹 이 계명이 첫 계라도 된다는 것일까요?

아니지 싶겠지만, 그런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당시 바울 사도가 보았던 모세의 책은 ‘오경(五經)’ 중, 출애굽기가

아닌 레위기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책에는 계명의 말씀이 시작되자마자 맨 처음으로, ‘부모를 경외

하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부모를 경외한 다음에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을 지

키라”로 이어져있습니다.

4

순서가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같은 모세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계명은, 그 순

서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제5계가, 레위기에서는 첫 계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레위기에는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 다음에, 안식일을 포함한 하나님

섬김의 계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출애굽기에서는 제1, 제2계명으로 되어있는 하나님

에 대한 내용들이, 레위기에서는 그 순서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부모

공경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19:3)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는 출애굽기의 제2계도, 레위기에서는

‘부모공경’ 계명보다 나중에 설치되어있습니다.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

라” (레19:4)

사람들은 대체로 첫째 계명을 둘째보다 큰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하여, 비교적 가벼운 계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니올시다.

5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그(첫째)와 같으니” (마22:39a)

첫째와 둘째의 수위가 같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순서가 바뀌긴 했어도, 그 순서에 특별한 의미

가 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뒤바뀐 것이라 여겨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출애굽기의 제1계부터 제4계, 곧 하나님 섬

김에 관한 계명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22:38)이라 하여, 앞부분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레위기에 첫 계로 자리 잡고 있는 부모공경을, “첫 계명”(엡6:2)이라

고 했습니다.

이런 기록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과,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의 비

중이 같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둘째보다 더 비중 있고, 둘째는 첫째보다 더 약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뒤 순서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차례에 상관없이 모든 계명

이 같은 수위라는 것을, 여러 경우로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6

설교자가 특별히 ‘둘째는 첫째와 같고, 첫째는 둘째에 같음’을 거듭

확인해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비교적 약하게 여기고 있는 부모공경을, 절대로 가볍게 여

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앞의 계명과 뒤의 것에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강하고 어느 것이 약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이것도 하나

님의 계명이요, 저것도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포인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고르반’이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부모님께 유익한 것을 부모에게 드리려다가, 사정상 하나님께 드리

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고르반”이라 말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실제로 자

기 아비나 어미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막7:11~12)

‘고르반’ 행위는 지식이나 판단의 유전으로써, ‘엄중한 하나님의 말

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고르반’)을 행하는 자가 너무나 많다

고도 하습니다. (막7:13)

부모에게 드리려고 준비해두었던 것을, 드리기도 전에 하나님의 제

사가 먼저 다가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하나님의 제사가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반드시』 제 부모에게 드

리려 했던 그만큼의 유익을, 부모에게 드려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12절)

그럼에도 허다한 자식들은, 부모에게 가야할 것을 부모에게 드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렸다며, ‘고르반’으로 끝내려 합니다.

‘하나님께 드렸으니 이제 끝이다’라고 말하는 자식들이 꽤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오죽이나 많았으면, 계명을 앞세워 명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장수의 약속까

지 담보로 주셨겠습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고르반’만 하고, 자기 부모를 챙겨드리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공공

연했으면, 부모공경을 계명으로 정하여 명령하셨겠습니까?

8

약속까지 얹어주시며 지키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 하듯, 우리의 부모에게도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여기에 있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복이 되고, 부모에게 드리는

것은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부모공경을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이요, 바라심입니다.

또한 우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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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죽했으면

부모공경으로 받는 ‘장수의 복’은 생명적인 수명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은 이 복을 받아 누린 한 가문을 소개함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알려준다.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이 말씀을 ‘장수의 복’ 정도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장수의 의미도 있기는 합니다.

허나 그보다는 “네게 준 땅에서”라는 수식어와 연결해볼 때, 그 의미

는 매우 다양해집니다.

오늘날 “네게 준 땅”이란 의미는 ‘네게 준 직장’, ‘네게 준 기업’, ‘네게

준 지위’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공경’이란 계명을 지키면, 현재 받고 있는 행복을 오래

도록 향유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사업이 망하지 않으며, 현 지위에서 밀

려나지 않고 오래오래 대를 이어 유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을 잘 지킴으로,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린 성

경속의 한 사람을 소개함으로,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0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란 자는, 그의 선조로부터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 실행하며 살았습니다.

요나답의 자손들 역시, 모든 훈계를 지키며 부모에게 순종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대대로 높은 지위와 부요에서 끊어지지 않으리

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절)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대단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답에게 주셨던 지위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습니

다.

부귀영화가 보장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너희 행복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

씀으로 우리는, “네 생명이 길리라”(본문)는 의미가 생명적 장수를 뜻

하기 보다는, 축복된 현장을 길게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뜻으로 받

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옳을 것입니다.

‘축복의 기간이 길리라’ 『축복의 기간이 길리라』는 의미가, 장수

의 의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립니다.

11

레갑의 아들들과 그의 자손들이, 주어진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

었던 것으로 보아,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어김없이 지키시는 분이

라는 것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제5계명을 다른 계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

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 결과 약속해주신바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여, 망하는 자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제5계를 제일 중요한 첫 계명의

자리에 바꿔놓으면서까지, 우리가 지키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모든 이들이 약속의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담보하신 그 축복, 곧 지금의 땅과 앞으

로 주실 땅, 지금의 직장과 앞으로의 일터를 계속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개업한 사업이나 개업할 사업, 그리고 지금의 행복한 지위가,

창대와 더불어 그 연수가 길게 될 것입니다.

이를 무엇으로도 부인할 수 없으며 부정할 수도 없음을, 우리는 성

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20:12)

12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요나답 후손에 대한 복을 예레미야에게 전하시면서 이 말

씀과 나란히, 그 수위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수준으로 말씀하셨습니

다.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만 섬기고 순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부요한 기업)에 거하리라 하여

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렘35:15)

“너희는 이제 악한 길에서 돌이켜 너희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섬

기지 말라. 나에게 순종하라. 나만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 선조에게

준 땅과 부요한 기업에서 그대로 거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이 말씀을 부지런히 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 관한 계명의 크기와,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의 크

기를, 가히 대등하게 여기시고 대등하게 다루셨습니다.

13

‘둘째는 첫째에 다름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다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고로 우리는 부모에 대하여도 하나님께 하듯, 섬기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하는 것만 옳은 복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하는 순종과 경외도, 하나님을 섬김으로 받는 복과 똑같다

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부요에서 계속 더 부요해지며, 그

부요가 자자손손 이어지게 된다고 하시니, 부모님께 순종하십시다.

그리고 약속된 복을 누리십시다.

영상 보기 >>>

14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는 부모공경 계명이 10계명 중 다섯 번째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으로, 가볍게 여긴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부모님을 제대로 공경치 않은 적이 많았습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기신 하나님께서, 이 계명에다 약속을 담보하셨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는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마저 가로채어 하나님께 드

린 적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잘하면, 하늘의 복으로 잘 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자기 부모를 하나님 때문에 경홀히 여긴 자식들에게 하신 말

씀으로 깨닫는 바가 큽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결코 가벼운 계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

다.

제5계를 지킨 다음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도 헤아리게 되었나이다.

오, 주여!

저희의 불효를 용서해주시옵소서.

15

부모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듯 대할 각오를 가졌사오니, 저희에게 힘

을 주시옵소서.

첫째도 하나님의 계명이요, 둘째도 하나님의 계명인 줄 알아서, 우

리의 행동을 다잡겠사오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6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부모 공경은 5계명인데, 왜 약속 있는 1계명이라고 하셨을까?

갈렙 목사님은 모호한 내용들을 명확히 이해시켜주십니다.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하나님과 피조 된 인간이 동등할 수 없으

므로, 1~4계명이 5계명보다 우위요,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특별함은, 하나님이 인간을 "부자관계"처럼 동등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을 하나님 공경이라고 인정, 복을 약속해주십니다.

부모는 존재의 근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만 잘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부모에게

는 인색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는, 일종의 기복 행위라 할 수 있습

니다.

17

장 2

18

제 Ⅱ 편

본 문 : 출애굽기 제 20 장 제 12 절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아비의 수치, 드러낸 아들과 덮은 아들

‘아비의 하체’를 보고 광고한 아들은 저주하고 덮어준 아들에게는 축복한다.

노아의 이 결정을 하나님도 받아들이셨으니, 당신의 뜻과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어떻게 해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경”일까?

전편 레갑의 자손들에 이어서, 본편에서는 다른 두 모델을 예로 설

명 드리겠습니다.

먼저 노아를 소개하겠습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9:21)

포도주에 취한 노아는, 자식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아비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습니다. (출20:26), (겔22:10a)

자식으로서는 그런 아비를 업신여길 것이 아니었습니다. (겔22:7a)

헌데 노아의 아들 함은 아비의 벗은 하체를 보고, 곧장 밖으로 나가

그의 형제들에게 광고했습니다. (창9:22)

아비의 수치를 선전했던 함에 비하여, 다른 아들 셈과 야벳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19

셈과 야벳은 아비의 옷을 챙겨서, 아비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행여 아비의 하체를 보게 될까봐 뒷걸음쳐 들어갔습니다.

아비의 하체를 옷으로 덮어드리면서도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

을 돌이켰다고 했습니다. (창9:23)

함과 비교되는 행위였습니다.

아비의 수치를 챙겨서까지 본 함은, 그 사실을 나가서 선전했지만, 셈

과 야벳은 완전 그 반대였습니다.

그야말로 아비를 업신여긴 아들과 공경한 아들과의 극명한 대조를,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옷을 모조리 벗음으로

드러난 남성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어디 그것에만 국한되겠습니까?

이는 아비의 모든 수치를 총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연세가 더해갈수록 기억이 흐려집니다.

좀 심하면 치매기까지 생깁니다.

혹 이께서는 어린아이 같아지기도 합니다.

부모가 이러실 경우, 그 부모의 수치를 굳이 챙겨보려 하거나, 혹시

그러지 않나 확인하려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20

부모가 어쩌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동네방네 나가 선전하는 자식들

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그랬습니다.

그가 아비의 수치를 발설했을 때, 자기의 형제들 말고 다른 사람들

도 있었다면, 더욱 신나서 떠벌렸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을 것

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함의 자손을 저주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9:25)

아비의 수치를 드러낸 함의 아들은, 아비를 공경한 아들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는 저주의 말입니다.

반면 노아는 셈과 야벳의 아들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축

복을 해줍니다.

“셈 같은 자에게 복을 담보해주신 하나님 여호와, 그분께 박수를 치

며 찬송하리로다. 함의 자손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될 것이라”(26절)

고 했습니다.

21

그리고 야벳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함의 자

손 가나안은 야벳과 그의 후손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

다. (27절)

축복받을 자에게는 축복하고, 저주 받을 자에게는 저주했던 것입니

다.

노아는 그 후에도 무려 350여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함에게 했던 저주를 취소하거나 축복으로 바

꾸어 주지를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지독한 아비였습니다.

이런 노아를 보신 하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그가 자식들에게 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 심중의 방향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5계에 붙여주신 당신의 약속에 진실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셈과 야벳의 후손들은, 제5계에 따른 축복을 받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의 후손들은 지금도 저주 아래 살고 있습니다.

22

자기 아비를 공경치 아니하여 받은 저주대로,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

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한 후손과 그렇지 않은 자의 삶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든

지 주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자식이라면, 이를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한 케이스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편의 ‘부모순종’에 이어서, 본편에서는 ‘부모공경’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창세기 27장입니다.

나이가 많아진 이삭은, 눈이 어두워져 잘 보지를 못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맏아들 에서를 부릅니다.

“내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에서 너에게 부탁하나 하겠다. 내

가 죽기 전에 평소 즐기던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해 달라. 그것을

먹고 기운을 차린 다음,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창27:1~4)

이삭은 두 아들 중 첫째를 자기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한 이 말을,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23

리브가는 자기편이 되어있는 둘째 아들 야곱에게, 들은 그대로 전해

줍니다.

부모에게 순종한 아들 에서는, 아비의 말씀대로 별미를 위하여 사냥

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사냥하기는커녕, 집에서 기르고 있던 염소 중 좋은

새끼 하나를 가져다가, 이삭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여 야곱 손에 들려

줍니다.

그것을 이삭에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창27:5~10)

이삭이 에서에게 부탁한 바를, 야곱으로 대신하게 했던 것입니다.

에서의 축복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미 리브가의 제안에 야곱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받아들여 어미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야곱은 에서인척 아버지에게 다가가 “내 아버지여” 부릅니다. (18절)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이었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네가 누구냐”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들에 나가 사

냥한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왔으니, 일어나 잡수시고 제게 마음껏 축

복하소서.” (19절)

24

야곱은 철저하게 아비를 속였던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에서인 줄 알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

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8절)

어떤 부모라도 자식에게 직접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바라며 기도할 뿐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29절)

이삭은 자기가 축복하고 있는 아들이 자기편인 에서인 줄만 알아서,

마음껏 축복했습니다.

이 엄청난 축복은 에서에게 돌아가야 할, 에서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리브가는 동조하여 이삭을 철저히 속이고, 에서에게

갈 복을 가로채버렸던 것입니다.

영상 보기 >>>

25

야곱을 택하셨음은

아비를 공경한 아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었다면 이는 에서의 몫이다.

허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으니, 그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야곱의 어미 리브가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이삭에게 시집오기 전부터 대단한 강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성

경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부모와 오라비들이 좀 더 함께 있다가 시집으로 가도 되지 않느냐며

울며 붙잡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친정식구들에게 울음을 그치라

며 그대로 길을 나섰던 것을 보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리브가가 친정 떠나기를 서둘렀던 것은, 아브라함 집안에 무언가를

기대하여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리브가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여인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삭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온유한 자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시키는 대로, 제물이 되라 하면 제물이 되려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6

자기를 해하려고 치켜든 칼 앞에서도, 도망가거나 말리지 않았던 이

삭이었습니다.

이삭 부부는 실로 극과 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앞을 못 볼 정도로 늙으니, 리브가가 얼마나 마음대로 휘둘렀

겠습니까?

비록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늙었을지라도, 아무리 온유한 자였을지라

도, 그에게 왜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지혜와 판단력은 젊을 때 그대로였습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가 자기를 속이는 것도, 또한 자기 집안의 것을

가로채려는 일련의 일들도, 알만큼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잘 아는 이삭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앙갚음이 마음속

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제대로 표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하여 눌려 살았어도, 가슴에 원한은

쌓여있었을 것입니다.

아들에게 했던 마지막 축복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의 심중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7

“네 어미와 한 편이 되어있는 아들들이, 내 사랑하는 아들 에서에게

굴복하기를 원하노라” (창27:29)

단서까지 붙여가며, 에서(실제로는 야곱)를 마음껏 축복했던 이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의 이런 소원이 무슨 소용입니까?

작정하고 달려드는 리브가와, 그녀와 짝짜꿍이 되어있는 야곱에 의

해서, 복 받을 상대가 뒤집어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형이 동생 밑에 들어가는 형편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성격과 기질을 잘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이삭과 결혼할 때부터, 그 집 형편이 어떻게 돌아갈지를 아셨습니

다.

그래서 리브가가 쌍태를 임신했을 때에,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창25:23a)고 하셨습니다.

이삭 부부가 하는 것을 보면, 쌍둥이 형제들이 나눠지게 되어 있었

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b)고 하셨습니다.

28

리브가의 편인 자식이, 이삭의 편인 자식의 복을 가로챌 것을 미리

짐작하시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

는 판단에서, “어린 자” 야곱의 편에 섰던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축복이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가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생각에서 그리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 부부의 장래를 보고 말씀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포했던 말씀이었는지,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

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고 해서, 야곱이 옳았기 때문에 그를 택하셨

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옳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 아

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29

아비를 공경한 아들이 그 아비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다면, 그런 아

들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에서입니다.

『부모를 공경한 에서가 약속의 복을 가져야 마땅』하다는 말입니

다.

아비를 업신여기고 공경하지 않았던 아들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철저히 짓밟은 아들이었습니다.

이를 무엇으로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된 복은 야곱이 아닌, 에서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

리의 생각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칭찬받을 만한 야곱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야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습니

다.

은혜로, 『은혜로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형편없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정말 희망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 대상자로,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30

구원은 행위에 의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어주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 (롬9:11)

야곱은 우리와 같은 자입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은 자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옳았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우리의 조상이 선한 이들이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라도 있습니까?

우리의 장래 집으로, 천국이 확정된 상태입니까?

아니지요.

모두가 아닙니다.

이런 사정들은 우리와 야곱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닌 야곱을, 우리와 같은 『우리

와 같은 야곱을 택하신 것』이라고, 신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31

야곱을 불쌍히 여기사 택하기는 하셨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행

위가 얼마나 못마땅하셨겠습니까?

오죽하셨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마자 첫 교훈을 주셨겠습니까?

야곱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 이스라엘에게도, 또한 우리에게도 주신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모세 오경 중 레위기에는, 크고 첫째 되는 하나님의 계명보다 ‘부모

공경’을 더 앞에 두어, 첫 계명으로 자리하게 하셨습니다. (레19:3)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안식일 계명에 앞서, 부모부터 잘 섬길 것을

명하셨다는 말입니다.

야곱과 그 후손들의 기질이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앞서 부모부터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겠습니까?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

나님 여호와니라” (레19:3)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라고 하여 부모에게 불공경하는 어이없는 행위

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32

아무리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야곱이나 그 자손들의 잘

못된 기질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의(義) 앞에서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부모공경’ 계명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함처럼 하지 마십시다.

야곱처럼도 하지 마십시다.

이제 이후 레갑의 자손들처럼 부모에게 순종하십시다.

셈, 야벳, 에서처럼 부모를 공경하십시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손이 되었으니, 믿지 않는 자처럼

하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켜 더욱 철저히 부모를 공경하십시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자녀의 모습을 보

여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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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으로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습니다.

설령 담보로 약속하신 그 복이 주어지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의 기뻐

하심을 위하여 부모에게 공경할 것을 다짐하며 결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셈과 야벳의 기질보다, 함의 기질이 더 있음을 고

백하나이다.

에서보다 야곱의 기질이 더 있음을 주께서도 아십니다.

오, 주여!

의롭지 못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께서 우리로 구원받게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부모와 이웃에게 의로운 자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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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성경 사례를 통하여 부모공경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야곱은 아비를 속인 불효자였습니다.

형 에서가 아비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별미를 마련하기 위해 사냥

을 나간 사이, 야곱은 모친과 짜고 아비를 속여, 에서의 복을 가로

챈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야곱을 택하셨으며, 이삭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야곱을 축복하게 됩니다.

야곱은 죄인들의 모형이기에 은혜를 받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비와 형을 속인 대가로 야곱은, 라반과 그의 자식들에게 가슴

에 못 박히도록 속았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을 아시기에, 부모공경을 강조하셨던 것입

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복을 제대로 받게 하고자, 성

경이 말하는 바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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