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 vop.co.kr · 2012-08-24 · 차 례 004 발간사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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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팩트북 1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문 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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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 vop.co.kr · 2012-08-24 · 차 례 004 발간사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이정무  편집국장 1부 -

민중의소리 팩트북 1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문 형 구

Page 2: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 vop.co.kr · 2012-08-24 · 차 례 004 발간사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이정무  편집국장 1부 -

Voice of the People’s eBook초판 발행 2012년 8월 20일

지은이 문형구

펴낸이 이정무

편집 이동권

사진 김철수, 양지웅, 이승빈

경영지원 김대영

마케팅 최재덕

펴낸곳 민중의소리

등록번호 제101-81-90731호

등록일자 2003년 1월 1일

주소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91-1번지 서원빌딩 11층

전화 02-723-4266

팩스 02-723-5869

홈페이지 www.vop.co.kr

ⓒ민중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중의소리 팩트북 1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민중의소리 팩트북 1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문형구

Page 3: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 vop.co.kr · 2012-08-24 · 차 례 004 발간사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이정무  편집국장 1부 -

발간사

언론의 역할과 관련한 이론 중에 ‘프레임’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언론이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정하면 독자들이 이를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그러

나 대개의 사건에서 언론의 ‘틀’은 똑같지 않습니다. 흔히 보수매체, 진보매체라

고 부르는 것처럼 언론의 시각은 다양하고 따라서 독자들은 이를 서로 비교해

보면서 자신의 시각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언론들이 완벽하게

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거

나,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현상이 발생할 때 그렇습니다. 문

제는 오히려 이럴 때 일어납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의 상

황이 그렇지요. 보수매체는 ‘거 봐, 너희들도 마찬가지’라며 검찰에서 흘러나오

는 첩보들을 마구잡이로 기사화했고, 진보매체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진보의 미래에 먹칠을 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언론의 프레임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진보매체는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검찰을 비난하면서 그가 생전에 이루려고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극찬했고, 보수매체는 은근슬쩍 책임을 정권에 미루면서 자신들도 총

론에서는 노 대통령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변명했지요. 그러나 <민중의소리>

는 노 대통령의 서거 직전에도 검찰발 첩보를 받아쓰지 않았고, 서거 이후에도

노 대통령의 생전 업적에 대해 무비판적 찬사로 일관하지 않았습니다.

<민중의소리>가 ‘팩트북(Factbook)’을 내는 것은 이런 언론 현실과 맞닿아 있

습니다. 특히 모든 언론이 하나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외려 ‘언론 피해

자’가 발생할 수 있음을 저희는 경계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진실은 이제 거

의 밝혀졌습니다. 2차 조사를 담당했던 김인성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

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아마 지금까지 나온 말 중에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표현일 것입니다. 저희는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꾸준하게 사실

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진보정당 내부의 주도권 다툼에 대해서는 양측 모

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도해왔습니다. 물론 완전히 하나의 방향으로 쏠

려 버린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 저희의 보도 방향은 매우 이색적이었습니다. 모

두가 ‘예’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혼자 ‘아니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로움의 증거가 될 리도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라

고 말할지 아니면 ‘아니오’라고 말할지를 판단하기 위해 사실을 찾고 의견을 듣

습니다. <민중의소리>가 내는 팩트북은 매일의 보도에서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대규모 사건에서 사실이 무엇인지를 추구하기 위해 만드는 별도의 보도물입니

다. 그 첫 번째가 2012년 상반기에 벌어진 통합진보당 사태가 된 것은 팩트북의

취지에 잘 맞습니다. 이번 팩트북에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꾸준하게 보도해왔던

문형구 기자가 큰 몫을 하였습니다.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국장)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Page 4: 2012년 통합진보당엔 무슨 일이 - vop.co.kr · 2012-08-24 · 차 례 004 발간사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이정무  편집국장 1부 -

차 례

004 발간사 첫 팩트북을 내놓으면서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국장

1부 - 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010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의 시작: 공안정국에서 당겨진 방아쇠

4월 초~5월 2일

017 진상조사위원회는 무엇을 ‘폭로’하고 무엇을 ‘은폐’했나

5·2 ‘조준호 보고서’에 대한 검증과 은폐된 사실들

024 ‘과도기 권력’과 당원 대중의 충돌 - 5·12중앙위 사태와 박영재 당원의 분신

5월 2~14일

030 이른바 ‘혁신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 신당권파의 ‘자민통’노선 흔들기

5·14 전자중앙위가 만든 신당권파의 성격

038 무능함 드러낸 혁신계… 파행적 당 운영과 진보당원 수난사

5월 14일~7월 25일

045 당권 장악 실패하자 또다시 “분당”, 그러나 ‘사분오열’하는 혁신계

7월 26일~8월 현재

2부 - 문답으로 풀어보는 통합진보당 사태

054 1. 당원들의 부정행위는 있었는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것은 누구인가?

056 2. 이른바 ‘유령당원’과 ‘뭉텅이 투표용지’는 사실인가?

059 3. 혁신계의 ‘공동책임’ 주장은 정당한가?

060 4. 동일IP투표, 이동투표소는 부정선거인가?

062 5. 진성당원제는 청산되어야 할 ‘구태’인가?

063 6. 주한미군 철수는 재검토되어야 하는가? 진보정당도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가?

부록

068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일지

075 박영재 당원의 유서 전문

078 에필로그 故 박영재 당원은 마지막 물음에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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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1부

통합진보당 사태그 진실에 관한 기록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의 시작: 공안정국에서 당겨진 방아쇠

4월 초~5월 2일

진상조사위원회는 무엇을 ‘폭로’하고 무엇을 ‘은폐’했나

5·2 ‘조준호 보고서’에 대한 검증과 은폐된 사실들

‘과도기 권력’과 당원 대중의 충돌 - 5·12중앙위 사태와 박영재 당원의 분신 5월 2~14일

이른바 ‘혁신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 신당권파의 ‘자민통’노선 흔들기 5·14 전자중앙위가 만든 신당권파의 성격

무능함 드러낸 혁신계… 파행적 당 운영과 진보당원 수난사

5월 14일~7월 25일

당권 장악 실패하자 또다시 “분당”, 그러나 ‘사분오열’하는 혁신계7월 26일~8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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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의 시작:공안정국에서 당겨진 방아쇠

4월 초~5월 2일

겉모습이 복잡해 보이는 사건도 그 시작은 단순할 때가 많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출발점은 비례대표 자리를 둘러싼 윤금순 전 의원과 참여

당계 오옥만 후보 사이의 다툼이었다. 통합진보당 경선 당시, 참여당계의 집중

적인 지원을 받은 오옥만 후보는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현장투표

에서 윤금순 전 의원에게 역전을 당한 바 있다. 그런데 오옥만 후보 측이, 윤 전

의원 측의 선거부정을 감지하게 됐고 이것이 바로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이유였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문제를 제기한 오옥만 후보 측에도 조직적인 선거

부정이 있었으며, 이 두 사건이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진 선거부정의 전부였다.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중심으로 진상조사위가 만들어진 것은 4·11

총선 다음날이었다. 진상조사위가 다뤄야 할 사건은 두 가지였다. 곧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1번 윤금순과 9번 오옥만 후보, 그리고 8번 이영희 후보와 10번

노항래 후보 사이의 순위 논란이었다. 그러나 8번과 10번은 이미 총선 이전에

양측의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데다 둘 모두 당선권을 벗어나있었다. 결국 진상조

사위가 풀어야 할 핵심적인 사안은 윤금순과 오옥만 후보 사이의 문제였다.

문제는 당시 진상조사위 내에서 부정선거 정황을 감지한 1번 윤금순 전 의원

을 사퇴시킨다고 해도, 9번인 오옥만 후보가 비례 의원이 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당선인은 6번까지였고, 1번 후보의 사퇴 시엔 순서

상 7번 후보가 승계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5월 2일 조준호 진상조사위는 통합진보당의 내부

경선을 “총체적 부실, 부정”으로 규정했고, 그 와중에 참여당계를 비롯한 혁신

계는 1, 2, 3번 후보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렇게만 된다면 7번에 이어 8번

이영희, 9번 오옥만 후보가 비례 의원이 되면서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구 민주노

동당 비주류와 참여당계 간의 이익의 균형이 달성된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의 행태는 대표단이 위임한 권한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

다. 진상조사위는 선거관리위원회나 당기율위원회처럼 독립기관이 아니었다. 이

것은 당내 경선에서 일부 후보자들 사이에 발생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대표

단이 위임한 기구였다. 그러나 이 진상조사위원회는 매우 이례적으로 대표단의

보고 요청을 묵살하고 독자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진상조사 결과를 ‘폭로’하듯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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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이었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당내 지분에 대해 지속적인 불만을 나타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된 시점은, 통합진보당이 당 지도부 선출을 한 달 앞

둔 시점이었다. 또한 진상조사위는 전원 ‘혁신계’ 곧, 당권파와 당권 경쟁을 벌

여야 하는 비당권파로 구성됐다. 당초 진상조사위가 이렇게 구성된 이유는 부

정 논란이 벌어진 당사자들 간의 원만한 합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적 구

성에 있어서 ‘진상조사위’는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했다.

당권파 쪽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지 않은 배경엔 당내 경선에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일종의 확신도 자리하고 있었다. 선거 부정 논란은 처음부터 혁신계

후보들 상호간에 제기됐고, 당권파 쪽은 이들 후보들 간에 합리적 조정이 가능

한 문제로 봤던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당초 선거 부정에 대

한 의혹은 진상조사위에 참여한 후보들 간에 발생한 것이었고, 진상조사보고서

엔 당권파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부정의 근거도 없었다. 그럼 진상조사위는 과연

무엇을 폭로한 것일까.

진상조사위의 ‘정치적 행보’가 불러온 예상 가능했던 결과들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여론은 선거 부정의 실제 내용과 관련 없이 ‘당권

파 죽이기’에 집중됐는데, 그 배경엔 올 초부터 극심하게 진행된 보수언론의 색

깔공세가 있었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기 이전에, 이미 보수언론은 당권파

를 ‘종북파’ ‘주사파’로 동일시하며 매카시즘을 선동하고 있었다. 이 무렵 조중

진상조사위의 역할이 원래의 궤도를 벗어난 원인은 무엇인가?

문제의 보고서를 ‘폭로’한 진상조사위원회는 외부 영입 인사로 볼 수 있는 조

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사위원장을 맡았고, 선지연, 고영삼, 엄교수, 박무,

이주호 씨가 조사위원이었다. 이들 조사위원 5인은 모두 문제가 발생한 해당 후

보들, 즉 윤금순, 오옥만과 이영희, 노항래 그리고 나순자 측에서 참가시켰고, 간

사를 맡은 홍진혁 사무부총장도 오옥만 후보와 가까운 인사였다. 말하자면 진

상조사위원 대부분이 경선 부정 의혹의 관련자들이었다. 진상조사위의 객관성

문제는 조준호 위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전부

터 차기 ‘관리형 당 대표’로 혁신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특히 조

준호 위원장을 ‘당 대표’로 밀고 있었던 것은 민주노총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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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다. 선거와 관련된 부정 의혹은 혁신계 후보들 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당사자’

를 특정하지 않고 근거가 불분명한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자 이 선거부정은

마치 당권파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행위로 낙인찍히게 됐다.

혁신계의 정치적 도박과 당에 대한 ‘무고’

물론 이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내용들은 이후 드러나듯 대부분 허위였다. 반

면 조준호 진상조사위는 실제 부정선거가 벌어진 두 곳, 즉 오옥만, 윤금순 후

보 측에 대해서는 중앙당으로 이관된 문서조차도 검토하지 않았다. 즉 참여당

계를 비롯한 혁신계가 저지른 부정선거의 정황 전체를 은폐하는 동시에, ‘총체

적 부실, 부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비례후보 상위권의 “공동 책임”을 요구한

것이다.

혁신계는 자신들의 선거부정을 감추는 동시에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이 총체

적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표적조사까지 시행했다. 그러나 이들

은 자신들의 선거 부정 이외의 어떤 부정선거 정황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는 혁신계에겐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오히려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된 시점이 중요했다. 조

중동의 색깔 공세로 시작된 여론의 흐름으로 볼 때, 이런 발표가 나올 경우 당

권파가 ‘가해자(부정선거를 저지른 쪽)’로 몰릴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

준호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는, 이른바 ‘종북

파’로 낙인찍히면서 대대적인 여론전의 희생양이 된다.

동의 기사와 사설들의 제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통진당 이석기 후보 ‘北 조직원’ 진상 밝혀야’ (3월 30일 동아)

‘주사파는 어떻게 야당을 장악하려 하나’ (4월 7일 조선)

‘진보당 종북 논란 … 주사파 민혁당 출신이 당권파에’ (4월 20일 중앙).

더 길게 보면, 보수세력이 구 민주노동당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기초단체장(구청장) 3석 및 광역, 지

방의원 142명을 당선시키며 수권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후 <조

선일보>는 “민노당 숙주(宿主)된 민주당” “국공합작” 등 민주노동당을 불온한

세력으로 낙인찍고 야권연대를 파기하기 위한 흠집내기를 강화했다. 1년여 간

의 파상적인 공세가 이어진 후, 정치인 ‘이정희’와 ‘당권파’가 최종적인 표적으로

정해진 것은 지난해 10·26 재보선을 거치며 야권연대의 힘이 입증되고 나서다.

그리고 야권연대의 주축이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경선 문자파동으로

낙마하자, 보수세력의 과녁은 당권파로 분류되는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에게 이

동했는데, 이는 야권연대를 파기시키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통합진보당을 이른바 “총체적 부정”으로 낙인찍은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

가 발표된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였다. 이미 ‘종북파’ ‘경기동부’ ‘당권파’는 불온

세력이며, 자신들의 세력 확대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력이라는

여론이 조성된 시점에서 이 같은 ‘폭로’가 가져올 효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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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지난 10년간 언론에 의해 소외받아 온 진보정당이, 2012년 한국 언론을 도배

하게 만든 점화장치(trigger mechanism)는 이렇듯 종북주의에 대한 편승이었

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한 언론의 집단적 따돌림과 진보진영과 야권연대

전체의 동요와 위축은, 혁신계에 의한 정치적 도박과 ‘무고’가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무엇을 ‘폭로’하고무엇을 ‘은폐’했나

5·2 ‘조준호 보고서’에 대한 검증과 은폐된 사실들

통합진보당을 수렁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총체적 부실, 부정’과 관련된 진실

은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두 달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이 보고서와 혁신비대위가 내세웠던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는 프레임엔,

이상하게도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가 없었다. 다만 ‘구당권파’ 혹은 ‘종북파’에

대한 색깔공세에 편승해, ‘선 사퇴 후 진상규명’이라는 논리만 난무했다.

그렇지만 혁신계가 주도했던 1,2차 진상조사위의 편파적 조사 그리고 이들에

의한 ‘피해자와 가해자 뒤바꾸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서, 실제 부정선거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덜미를 잡혔고, 이 부정선거를 ‘진상조

사위’가 은폐했던 정황들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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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진상조사위가 은폐한 ‘의혹들’…조직적, 대규모 부정선거 정황

◆ 은폐된 부정1: 경북영주 대리투표= 드러난 사실들에 근거할 때, 부정선거

가 명확히 입증된 당사자는 인천연합이 내세운 윤금순 전 의원과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출신의 오옥만 후보다. 원래 ‘조준호 진상조사위’가 꾸려진 이유가 이

들 두 후보 간 부정선거 논란이었다는 점에서, 진실규명의 과제가 사태의 원인

으로 정확히 되돌아간 셈이다.

먼저 조준호 진상조사위가 완전히 은폐한 첫 번째 부정선거 사례는 윤금순

의원 측의 대리투표다.

윤 의원 측은 경북 영주투표소에서 선거인명부 전체를 조작했고, 이는 대리

투표의 강력한 정황이다. 본지가 입수한 선거인명부와 당내 공식 회의 자료들

에 의하면, 윤 의원 측 선거사무원 1인 이상이 최소 수십 명 혹은 해당 투표구

171명 전원의 대리투표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선거인명부 상으로는 171명의 투

표자 전원이 ㄱ, ㄴ, ㄷ 순으로 투표를 한 것으로 돼 있고, 이는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통합진보당 중앙선관위는 영주 투표소 전체에 대해 ‘대리투표 정황’을

파악하고 이를 진상조사위원회에 이관했으나, 이후 구성된 ‘조준호 진상조사위

원회’는 이관된 서류조차 검토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했다. 진상조사위는 영주

투표소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고 언론에 발표했으나, 실제 현장조사는 실

시되지 않았다. 당시 현장조사를 담당한 진상조사위원은, 윤 의원 측이 추천한

신지연 조사위원과 참여당계 오옥만 후보가 추천한 고영삼 조사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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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 은폐된 부정2: 제주M건설 온라인투표 조작= 두 번째 은폐사례는 바로 국

민참여당 최고위원 출신인 오옥만 후보 측의 M건설 부정선거다. M건설 사건은,

2차 진상조사위의 요청으로 온라인투표 부정을 조사했던 한양대 김인성 교수

팀에 의해 밝혀졌다.

제주시의 상가건물에 위치한 M건설은 책상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사

무실이었는데, 이 사무실에서 오옥만 후보에게 270표의 몰표가 쏟아졌다. M건

설은 현장투표소로 사전 신고되지 않았는데, 공식 투표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

는 ‘온라인투표확인 기능’이 6천여회 실행했고 그 직후에만 152명의 투표가 이

뤄지기도 했다. 김인성 교수팀에 의하면 로그기록에 남겨진 M건설에서의 투표

행태는 정상적인 투표에서 나타날 수 없는 기계적인 패턴과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를 보였다. 이는 전문적인 ‘오퍼레이터’(기계류 조작자)들이 개입한 정황으

로 볼 수 있다. 이 M건설의 이사는 오옥만 후보의 측근이며, ‘조준호 진상조사

위’에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영삼 씨였다.

1차 진상조사위는 M건설 부정선거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또한 2차 진상조

사위는 이 부정선거를 포착한 김인성 교수팀의 ‘보고서’를 표결을 통해 아예 폐

기해버렸다. 2차 진상조사위 역시 M건설 부정선거와 관련된 신당권파들이 주

도했다는 점에서 ‘은폐’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김인성 교수팀의 보고서가

폐기되면서 2차 진상조사위는 사실상 좌초됐다. 2차 진상조사위를 이끌었던 김

동한 위원장(성공회대 교수)은 “법학자의 양심에 기초해서 이번 조사는 객관성

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못했다.”며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진상조사위가 폭로한 ‘의혹들’… ‘6장 붙은 표’까지 모두 해소

혁신계 후보들이었던 윤금순, 오옥만 후보 측의 사례는 모두 조직적이고 의도

적인 부정선거의 정황을 갖고 있고, 또한 확실한 물적 증거와 증거능력을 갖춘

기술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1,2차 진상조사위는 두 부정선거 사례에

대해 처음부터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외부 전문가팀에 의해 드러난 사실

조차 폐기해버리는 행태를 보였다. 자신들의 부정선거 정황을 은폐하면서, 이른

바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른 당선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

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이유다.

이에 비해 1,2차 진상조사위가 ‘폭로’ 형식으로 발표했던 많은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조준호 진상조사위가 폭로한 ‘총체적 부실과 부정’의 핵심 근거는 두 가

지였다. 그러나 첫 번째 근거로 제시된 ‘동일IP’ 중복투표가 부정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은 검찰도 인정한 사실이다. 또한 처음 언론에 폭로된 것과 달리 이석기

의원이 받은 동일 IP의 비율은 혁신계 후보들 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밝혀졌

다.

두 번째는 현장투표에서의 ‘조직적 부정’이 있었는가이다. 이에 대해서도 진

상조사위가 제시한 근거자료들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이들 진상조사위와

신당권파가 폭로한 내용들은, 가령 정자와 흘림체로 다르게 쓴 글씨를 ‘대리투

표’로 지목하거나 실제 2인 개표가 이뤄진 지역을 ‘1인 단독개표’사례로 꼽는 등

모두 부실조사에 기반한 것이었다. 5·2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하기까지,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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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조사위는 해당 선관위원들이나 투표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조사도 진행

하지 않았다. 혁신계 인사들로 구성된 이 진상조사위는 실제로는 ‘진상조사위’

가 아니라 혁신계의 주장을 발표하는 ‘대리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1차 진상조사 이후 2차 진상조사 시점까지, 그 사실여부가 해명되지 않았던

의혹은 바로 ‘6장 붙은 표’의 사례였다. 그러나 이 ‘붙은 표’관련 의혹도 2차 진

상조사위의 현장 실험에 의해 간단히 ‘허위’임이 확인됐다. 1차 진상조사위 이

후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투표용지가 다시 붙는 것이 진상조사위원들

의 눈앞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혁신계의 ‘조직적 부정’ 감추려 거짓 폭로전

1,2차 진상조사위와 혁신비대위는, 부정선거를 저지른 혁신계 후보들의 잘못

을 은폐하면서, 오히려 그 경쟁자들인 당권파 후보들을 사퇴시키기 위해 ‘총체

적 부실과 부정’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진상조사에서도 자신들

이 저지른 부정선거 이외의 어떤 다른 부정도 찾아내지 못했다.

김인성 교수는 온라인 선거 부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마치고 통합진보당 사태

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진상조

사위원은 “원래, 자기가 행한 방법을 남들도 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의심하게 된

다. 그게 범죄자의 심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에 대한 1차 진상조사위는, 다름 아닌 부정선거의 관련

자들로 구성이 됐다. 뒤이은 2차 진상조사위는, 법학자인 진상조사위원장이 ‘객

관성’과 ‘공정성’ 상실에 항의하며 사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통합진보당 사태

의 진실규명과 책임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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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과도기 권력’과 당원 대중의 충돌5·12중앙위 사태와 박영재 당원의 분신

5월 2~14일

5월 2일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의 발표에 이어 5월 12일 벌어진 중앙위원회

파행은 통합진보당을 더욱더 수렁으로 끌고 갔다. 이 중앙위원회가 문제의 ‘조

준호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후속 처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중앙위

파행의 근본 원인 또한 ‘은폐’와 ‘허위’로 가득찬 진상조사보고서에 있었던 셈이

다. 또한 중앙위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는, 중앙위원 1/3 가량이 반대 의

사를 표시했음에도 ‘만장일치’를 선언하며 당헌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이것

은 회의를 참관하던 당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는 원인이 됐다. 이 중앙위 파행

과 곧 이어진 불법적인 전자 중앙위의 개최는 이에 격분한 박영재 당원(수원비

정규직센터 소장)의 분신과 사망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5월 12일의 중앙위원회는, 문제의 ‘진상조사보고서’의 직접적인 결과였

고, 선출되지 않은 과도기 권력인 중앙위와 당원 대중의 충돌이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왜 ‘만장일치’를 선언했나?

조준호 진상조사위의 발표 열흘 뒤, 통합진보당 최초의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이 무렵 통합진보당에 대한 외부 압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초 진상조사위의

중심에 있었던 세력이 ‘합의’했던 대로, 언론은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었다. 언론의 일치된 움직임엔 진상조사위 주변 인물들의 개입도

한 몫 했다. 이들은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전에 영향력 있는 언론사 지휘부를

접촉해 당내 경선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 있었다’ ‘이석기·김재연 후보를 사퇴

시키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는 진상조사 보고서가 당

대표단에도 보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내에서는 ‘도의적 책임’ ‘공동 책임’이라는 명분하에 구 당권파를 과녁으로

하는 권력투쟁이 시작됐지만, 당 밖에선 언론들이 ‘종북파 적출’이라는 압도적

인 여론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위를 전후한 시점에선 사태의 진실

과는 상관없이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에 대한 사퇴 압박 그리고 당권파 책임론

만이 난무했다.

그동안 단독 공청회를 개최하고 반박자료를 만들며 여론에 맞섰던 이정희 의

원이 공동대표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12일 중앙위는 시작됐다. 성원보고에서부

터 충돌이 발생했다. 중앙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참여당계 중앙위원 50여명이 대

거 교체되면서 위법성 논란을 빚은 것이다. 참여당계 중앙위원들은 본인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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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스로를 추천하거나, 전북지역의 참여당계 당원이 제주 지역 중앙위원으로 선임

되는 등 기존 민주노동당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들이 잇따라 드러났다.

이 당시 통합진보당의 대의원대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고, 때문에 중앙위는

당의 해산이나 강령·당헌 개정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지닌 사실상의 최

고의결기구였다. 중앙위원의 임의적 교체는 그래서 가볍지 않은 문제였다. 또한

이날의 중앙위는 비상대책위 설치와 구 당권파 당선자들에 대한 사퇴요구 등

중대한 결정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의장단은 “중앙위의 구성은 55대 35대 15로

한다는 규정 외에 어떠한 합의사항도 없었다.”며 많은 중앙위원들의 성원확인

요청조차 거부했다.

“중앙위원 교체에 대해 일부 지역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법적 하자가 있

는 것은 아니다.”라는 유시민 대표의 해명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어

떤 선출과정이나 협의도 없었던 이 ‘중앙위원회’의 성원들은, 통합진보당의 임시

권력이 가진 대표성 결여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의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그룹

이 각각 55%, 30%, 15%로 구성한 과도적 의결기구였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기

존의 당헌당규에 기반해 선출 절차를 거쳤지만, 통합 당시의 합의문엔 선출절

차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이에 근거해 참여당계 쪽은 중앙위원 ‘교체’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말한 셈이다.

중앙위가 당원들의 손으로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또 하나의 결정

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중앙위는 당원에 대한 대표성이 없는 과도적 의결

기구였기 때문에, 통합주체들은 중앙위를 ‘합의제’로 운영키로 했었다. 다시 말

해 중앙위 당시 이른바 혁신계 중앙위원이 60%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

부터 다수결 처리의 길은 막혀있었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을 경우엔, 임의기관

이 당원들의 의사와 다른 결정을 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이것은 중앙위

의결의 ‘효력’을 다투는 문제가 된다. 이정희 대표가 중앙위 의장직을 사임하기

전 ‘만장일치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표결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이

런 맥락이었다. 그래서 회의 진행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는 중앙위원 상당수

의 반대 의사표명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를 선언함으로써, 표결에 따른 ‘합의

제’ 위반 논란을 교묘히 피해가려 한 것이다.

결국 이 중앙위는 합의제를 벗어남으로써 ‘효력’ 문제를 발생시켰고, 동시에

‘반대’ 의사표명이 나왔음에도 이를 ‘만장일치’라고 처리하려 했기 때문에 정당

성을 상실했다. 당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당원 결정권에 대한 명백한 침

해일 뿐 아니라 ‘임시 지도부’에 의한 쿠데타에 다름 아니었다. 그 결과는 당원

들의 의장석 점거였다.

전자 중앙위 강행… 신당권파 ‘우리는 종북파와는 다르다’

당원들의 저지에 가로막힌 공동대표단은 ‘전자 중앙위’(인터넷 회의)라는 초

유의 방식을 등장시켰다. 13일 저녁 속개된 전자 중앙위는 한 번도 실시되거나

혹은 예상된 바 없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결국 여러 당규를 위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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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정상적인 중앙위라면 재적 중앙위원 과반수가 참석했을 때 회의가 속개되어

야 하지만, 이날 전자 중앙위는 과반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의 속개를 선포

했고 이후 중앙위원들은 산발적으로 시스템에 접속해 투표만 하고는 빠져나간

것이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안건 처리에만 치중하다보니, 이미 상정된 안건에 대

한 의결이 끝나야 다른 안건을 상정하도록 되어 있는 당규를 위반해 ‘일괄처리’

를 하고 말았다.

당내 역학관계의 측면에서, 이 중앙위 표결은 혁신계의 당권장악, 즉 ‘신당권

파’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가 됐다. 중앙위원회 구성에서 보듯이 3주체 통합 당

시 민주노동당과 참여당계,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그룹은 각각 55%, 30%, 15%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비주류에 머물렀던 인천연합이 참

여당계 및 진보신당 탈당그룹과 손을 잡으면서 이들은 60%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은 혁신비대위를 주도하며 이후 ‘신당권파’로 불리게 된다.

전자 중앙위 강행이 낳은 정치적 효과의 하나는, 이른바 ‘종북파 적출’이라

는 외부 압박 속에서 나타난 ‘신당권파’의 차별화, 곧 ‘우리는 종북파와는 다르

다’라는 공표행위였다. 이로써 신당권파는 스스로를 종북 프레임에서 빠져나오

게 했지만, 구 당권파는 여론지형에서 더욱 고립되는 결과로 나아갔다.

박영재 당원(43)이 분신한 건, 전자 중앙위가 종료되고 한나절 후였다. 민주노

총 조합원이기도 했던 박 씨는 2007년 수원 비정규직노동센터를 만들었고 수개

월간 한미FTA 관련 1인 시위를 진행했던 실천적인 활동가였다. 민주노동당 시절

엔 수원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 당내에선 제법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그는 전자 중앙위가 진행 중이던 14일 새벽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에게 남

기는 편지를 작성했다. 박 씨는 평소 활동할 때 보였던 꼼꼼한 성격처럼 당헌당

규를 근거로 이 전자중앙위의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고, 진상보고서 폐기와 ‘당

원의 권리와 명예 회복을 위한 당원총투표 실시’ ‘의장단의 독재 중단’ 등을 요

구했다.

박 씨의 분신 이후 언론들은 그가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당시 조준호 공동

대표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진들을 내보냈다. 실제 박 씨는 분신 이틀 전이었던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를 참관하러 갔었다. 그리고 이날 중앙위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중앙위원 상당수의 ‘반대’ 의사표명에도 ‘만장일치’를

선언하자, 그는 의장석으로 뛰어올라가 의사진행을 저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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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이른바 ‘혁신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신당권파의 ‘자민통’ 노선 흔들기

5·14 전자중앙위가 만든 신당권파의 성격

전자 중앙위원회를 통해 만들어진 혁신비대위는 참여당계와 통합연대(진보

신당 탈당파), 그리고 자민통 진영 내에서 최근 실리주의 경향을 보여온 인천연

합 상층부의 결합이었다.

5월 중순 혁신비대위가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강기갑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의 신당권파 인사들과 비대위 바깥의 구당권파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혁신비대위를 구성한 인물 대부분이 이석기, 김재연

두 당선자의 제명에 강경한 입장이었고, 이 ‘혁신비대위’에는 ‘진상조사보고서’

의 정치적 기획에 직접 가담한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비대위로부터 신당권파

에 대한 ‘대리자’가 아닌 ‘조정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앞서 이정희 전 대표의 검증 공청회를 통해 ‘진상조사보고서’의 허위사실들

이 다수 드러나면서, 당내 세력 간엔 한 때 ‘진상규명 후 당원총투표’로 입장이

좁혀지기도 했었다. 여기엔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일부,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해온 부산·울산·경남 지역 대표자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조

준호 진상조사위’를 구성했던 참여당계와 민주노총 관료 그룹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이러한 합의점은 사라졌다.

자유주의, 사회개량주의, 국민파 노동운동론의 결합

혁신비대위 측은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이 ‘종북주의’ 때문이 아니

라면서도, ‘당 행사에 애국가 도입’과 ‘주한미군 철수 재검토’ 등, 보수세력과 언

론의 체질개선 주문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5월 23일 출범한 이른바 ‘새로나기특별위원회’가 그 중심에 섰다. 신당권파를

대표해 약 두 달간 언론플레이를 펼친 이 특위엔 당내에선 박원석 의원을 비롯

해 천호선, 황순식, 정연욱, 조성주 등 전원 신당권파 인사들이, 당 밖에선 김승

호, 김은희, 김혜정, 박숙경, 이상호 등 과거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이었던 영입인

사들이 참여했다.

새로나기특위를 맡은 박원석 위원장이 언론에 내놓은 첫 발언은 애국가 제창

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애국가 제창에 대해 “필요하다면 해야 된다는 생각”이

라며 “하나의 문화로, 관행으로 정착돼왔던 문제인데 실은 국민들이 거기에 대

해서 불편해하고 또 그로 인해서 통합진보당의 국가관 같은 것이 집단적으로

의심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 문제를 바꾸는 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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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다.

앞서 5월 10일의 전국운영위에서 유시민 대표가 국민의례 도입을 제안한 것

의 연장선에서, 박 위원장의 발언은 당의 ‘체질변화’ 방향을 함축하고 있었다.

혁신비대위 내에서 ‘민중의례’는 지켜지고 확산되어야 할 진보정당의 정체성이

아니라, 단순한 운동권 문화나 관행으로서 다뤄졌다. 애국가 제창이 함의하는

국가주의를 진보정당이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는 가운데, 이는 ‘공

당’ ‘국민의 눈높이’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SBS가 보도한 박원석 특위장의 ‘주한미군 철수 강령’ 재검토 문제도 단순한

논란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강령과 관련해 SBS와의 인

터뷰에서 “그것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견까지도

받아들여서 토론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고, 이는 ‘단독보도’로 비중 있게 처리

됐다. 이 보도가 논란이 되자 박 위원장은 해명자료를 통해 SBS가 “인터뷰 내

용 일부만을 발췌하여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한미군철수

문제는 자주국방의 환경과 조건을 만들면서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입

장”이라는 그의 해명 역시 ‘한반도에 군사적 위험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주한

미군 철수 요구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SBS의 보도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당권파가 추진하는 당의 ‘체질변화’는, 연합권력인 신당권파 내부 계파들의

(근본적이지는 않지만)미묘한 노선 차이가 혼합되면서, 다소 기묘한 모습을 나

타냈다.

통합진보당은 전통적 진보노선이 다수를 이뤘던 민주노동당과 자유주의 개

혁 노선의 국민참여당, 북유럽 사민주의가 다수인 진보신당 탈당그룹의 결합이

었다. 이에 더해 민주노총의 상층관료 출신 그룹이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의

한 축을 담당했고, 중앙위 구성 이후에도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들 노동 상층관료 출신 인사들은 총연맹 및 산별연맹 임원급을 인적 풀로 하

며, 과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의 인적, 이념적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들

은 비록 당내에서의 지분은 작지만, 민주노총을 배경으로 당에 상당한 영향력

을 행사해왔다.

요컨대 혁신비대위 및 신당권파가 추진하는 노선은 보수세력의 매카시즘에

대한 일정한 영합 속에서 신당권파 내부의 자유주의와 사회개량주의 그리고

국민파 노동운동이 더해진 결과인데, 이런 결합은 진보정당사에서 그 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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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신당권파가 넘어야 했던 산 ‘진성당원제’

이 같은 이념, 노선상의 재구성에 있어서, 신당권파가 넘어야 했던 산은 무엇

보다 ‘진성당원제’였다. 구 민주노동당은 당의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당원’에 두

고 있었고, 이에 따라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 선출 그리고 당의 중요한 의사결

정을 당원총투표에 따르도록 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이에 기반해 당 대회 위에

당원총투표를 두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당원 다수는 노동조합과 농민회, 청년학생단체 등 현장 활동가

들로 구성돼 있고, 이에 따라 당원들의 성향 역시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에서

가장 왼쪽에 놓여있었다. 신당권파가 통합진보당을 이른바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이동시키는 것은 당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혁신비대위는 진성당원제에 대한 수술을 시도했다. 강기갑 혁신비대

위원장은 “진보를 대중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당 지도부 및 공직후보 선

출에 여론조사를 도입할 것을 기정사실화 한 바 있다. 당원의 눈높이와 국민의

눈높이를 조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혁신비대위는 비례대표 의원을 당 지도

부가 100% 전략공천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진성당원제

의 약화 뿐 아니라, 점진적 해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초기엔 진보정당

의 당원이자 현장 활동가들이 아니라, 당 바깥의 여론주도층에 호소하는 정치

인들이 당을 분점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나라의 진

보정당들에서 관찰되듯이, 늘어나는 의회 정치인들에게 권력이 옮겨가면서 당

원들의 결정권이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혁신비대위는 진성당원제를 이른바 ‘당내 패권주의’ ‘폐쇄적 조직문화와 권위

적 소통문화’ 등과 나란히, 성찰과 대안 마련의 대상으로 올려놨다. 혁신비대위

를 이루는 신당권파 소속의 정치인들이 공히, 기간당원들의 지지세는 약하고

국민적 인지도는 높다는 점에서도 진성당원제 해체 작업은 이들 신당권파 인

사들의 주된 목표였다. 이 같은 이해관계는 민주노총 상층관료 출신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현장 활동가들이나 중간간부들과 같은 현장

에서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 활동가와 현장조합원들이 다수인 진성당원들의 지

지를 얻을 수 없었고 이 점이 이들 관료 그룹의 오랜 불만이었다.

위기 상황이 만들어낸 불안정한 연합권력

그러나 혁신비대위와 신당권파는 상황적 요인의 산물이었던 만큼, 상당한 약

점을 갖고 있었다. 전자 중앙위를 통해 만들어진 이 권력은, 당 바깥으로부터의

색깔공세의 결과물이면서 ‘폭발적’이긴 하되 ‘일시적’인, 당의 위기에 기댄 연합

권력이었다.

당 바깥의 탈이념화 압박은 두 축으로 진행돼 왔다. 먼저 이정희 전 의원으

로 대표되는 ‘구 당권파’에 대한 보수세력의 ‘적출’ 시도가 첫 번째다. 두 번째

는 자유주의 개혁 진영의 소위 ‘진보의 재구성’ 움직임이다. 미국식 정치프리즘

에 따라 ‘진보’라고 통칭되고 있는 유력 신문들과 인터넷 언론들 그리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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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지식인 명망가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수세력의 ‘경기동부=당권파=종북

주사파’ 프레임에 그대로 편승했다. 이것은 무엇보다 보수세력과 이들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당권파’ 적출이라는 당면한 목적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칭 ‘진보언론’들은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겨냥한 명백한 오보들

을 쏟아내면서도 정정보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당권파에 대한 이들의 맹목적

적대의 시선은 이른바 ‘합리적 진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된 것

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의 지적처럼 이들은 “인물들의 과거 전력,

조직사건, 사상, 행적 등을 낱낱이 들추며 결과적으로 색깔론에 가담”했다.

그러나 혁신비대위는 당원에 기반한 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정한 권력

이었다. 이는 신당권파가 과대대표하고 있는, 실제 당원들의 구성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3자 통합 당시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은 7만, 참여당은 8천 700명, 진

보신당 탈당그룹은 2천명이었다. 그러나 중앙위원회 구성은 ‘통합’과 ‘완전 합의

제’의 정신에 의해 55%, 30%, 15%로 이뤄졌고, 때문에 참여당과 진보신당계는

각각 3배수와 6배수를 과대대표하게 된 것 뿐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신당권파

의 한 축인 참여당계가 ‘당원총투표’를 거부하고 무조건 사퇴 입장을 고수한 것

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또한 과도적 중앙위의 일시적 산물인 혁신비대위가 ‘속

전속결’ 양상을 보였던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혁신비대위와 신당권파의 등장은 14일 ‘전자 중앙위’의 결과이며, 또한 ‘진상

조사보고서’가 만들어 낸 위기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중앙위

및 전자 중앙위가, 당원 대표성과 절차적 정당성에서 갖는 취약 요인에 더해, 통

합진보당 사태의 진원지인 ‘진상조사보고서’의 심각한 결함들이 점차 드러나면

서 혁신비대위의 당내 주도력과 명분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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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무능함 드러낸 혁신계…파행적 당 운영과 진보당원 수난사

5월 14일~7월 25일

초유의 전자 중앙위원회로 혁신계가 당 지도부를 장악한 이후, 통합진보당의

당 운영은 ‘파행’ 그 자체였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창당에서 이어진 진보정당사 12년 만에 검찰에 당

원명부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준호 진상조사

위는 당원들이 비밀투표로 진행한 30만여 건의 암호화된 투표값을 경선 관리

업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풀어놨고, 이 암호화가 풀린 전체 당원들의 투표값

까지 검찰 손에 넘겨지게 됐다. 당시 엑스인터넷에 투표값 복호화(암호화된 투

표값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되돌리는 것)를 요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조사위원

홍진혁은 “복호화는 대표단의 승인 하에 진행된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당시 휴

가 중이었다.”며, 불법적인 투표값 복원이 심상정, 유시민 공동대표의 승인 하에

실시됐다고 전했다.

당내에서는 당권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혁신계 후보들이 당

원명부를 빼돌리고, 당권파를 지지한 당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기들끼

리 돌려보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와중에 혁신계의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였던

송재영은 당원명부에서 추출한 모 지역위원회의 당원 신상정보와 공기업 소속

진보당원들의 명단을 추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에 뿌리기도 했다.

◆ 검찰에 빼앗긴 당원명부: 혁신비대위가 첫 회의를 연 지 5일 만에 검찰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당사와 당원정보 서버가 있는

관리업체를 침탈해 검찰은 진보정당사 최초로 당원명부를 빼앗는 성과를 거뒀

다. 평상시라면 정당의 당원명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

하는 헌법에 명백히 위배되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당법에 따르더라도 당

원명부는 재판에 필요할 경우에 한해 판사가 오직 ‘열람’만 가능하도록 돼 있

다.

그러나 검찰은 진보정당 최악의 내분 사태와 통합진보당에 일방적으로 불리

한 언론지형 속에서 큰 무리 없이 당원명부를 탈취해갔다.

언론이 온통 두 당권파 의원에 대한 흠집내기 보도를 쏟아내면서 당원명부

침탈의 책임 문제는 당 안팎에서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총체적 부실, 부정’의 정당으로 낙인찍어 검찰의 초헌법적인 당원명부 압수수

색에 길을 연 것은 분명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였다.

◆ 당원들의 비밀투표, ‘봉인’이 열리다: 검찰은 또한 당원 전체의 정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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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파악할 수 있는 당원들의 투표값 데이터도 입수할 수 있었다. 원래 당원들의

투표 결과는 투표 시행 시점에 암호화되어, 검찰이 관련 데이터를 가져가더라

도 이를 해독할 수 없게 돼 있다. 또한 검찰이라 해도 이 암호화된 데이터의 해

독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므로, 가능하지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와 혁신계 인사들은 지난 4월 당내 비례경선

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당내 온라인 경선시스템을 위탁관리한 ‘엑스인터넷’에

수차례 투표값 ‘복호화’(암호화된 값을 되돌리는 것)를 요구했다. 엑스인터넷 측

은 ‘비밀투표에 위배되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진상조사위는 여러 차

례 압박을 가해 결국 암호화된 데이터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엑셀파일 형태로

정리해 놨다. 몇 주 후 통합진보당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검찰은 뜻하지 않

게 진보당원들의 투표값 데이터를 얻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진상조사위의 투표값 복원과 유출은 비밀투표 원칙에 위배됨은 물

론, 정보보호법에 근거하더라도 정보 유출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당원)들에게

사전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불법이다.

이 때 유출된 투표값은 당권자 전체 3만 8천여 명의 것으로, 당원 1인당 8번

의 투표가 이뤄졌으므로 총 30만여 건에 이른다. 또 8번 가운데 7번의 투표는

비례 명부에 대한 찬반으로 어느 당원이 어느 후보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표했

는지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즉 검찰을 비롯해, 이들 외부 유출된 투표값이 통

합진보당 당원들의 성향분석에 손쉽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진상조사를 실시하더라도 개인들의 투표값을 전부 열어볼 필요 없이 암호화

된 데이터와 각 후보자들 간의 득표를 비교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들이 존재한

다. 또한 이들 진상조사위원들이 노동조합들의 온라인투표소와 관련해 ‘비밀투

표 훼손’의 가능성을 ‘부실’의 근거로 제기해 온 점에 비춰보면, 당원 전체의 투

표값을 열어 본 진상조사위의 행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 당원명부 빼돌린 혁신계 후보들, ‘당권파 당원’ 블랙리스트까지 작성: 당원

명부를 검찰에 탈취당한 것과 별도로, 당내에서는 전례 없는 당원명부 유출사

태가 벌어졌다. 과거, 당원명부는 사무총장이나 선관위원장이라 하더라도 사전

에 ‘접속권한’을 획득해 열람할 수 있도록 엄중하게 관리돼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당원명부 유출사태는 혁신계 집행부의 무능함과 비도덕성을 고스란히 드

러낸 사건이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당에선 전체 1만 2천명의 당원명부가 혁신계 후보들에 의

해 엑셀파일 채로 유출됐고, 이 가운데 일부 당원들의 신상정보는 혁신계 후보

의 손에 의해 조중동에까지 넘겨졌다.

혁신계가 내세운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인 송재영은 당직선거를 앞두고 ‘61명

의 당원이 중화요리집에 집단거주하고 있다’며 ‘당권파에 유령당원이 있다’는 의

혹을 언론에 제기했다. 이 같은 송 후보의 주장은 공중파 방송을 타며, 통합진

보당의 위상을 다시금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송재영이 제기

한 주소지는 중화요리집이 아니라 ‘성남시 재개발세입자협의회’ 사무실이었으

며, 혁신비대위조차 이들 당원들은 유령당원이 아니라 진성당원임을 곧 인정하

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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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문제는 송재영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들에

당원명단을 배포한 것인데, 송재영 후보 측이 만든 명단은 엑셀로 된 당원명부

원본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송재영 후보는 중앙당의 관련 업무를 담

당하는 소수의 인원만 열람할 수 있는 전체 경기도당의 1만 2천명 당원명부를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조중동에 넘긴 것이다. 또한 송재영은

경기도 특정 지역에 위치한 공기업 통합진보당원 명단 수십 명을 별도로 정리

해 조중동에 건넸는데, 여기엔 이들 당원들의 신상정보와 함께 소속부서까지

기록돼 있었다. 이 별도의 엑셀파일은, 보수언론들이 공기업의 집단 가입 노동

자들의 동일한 회사주소를 악용해, ‘유령당원’ 현황을 부풀리는데 사용됐다. 공

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신상정보는, ‘인사상의 불이익’ 등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음을 감안해보면 이는 진보정당에서 벌어져선 안 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송 후보는 경기도당 당원명부 전체를 통합진보당 이외의 노조에

공식메일로 발송한 사실이 확인됐는데, 이는 당권선거를 위해 당원명부가 외부

단체에까지 무차별 살포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북도당에선 도당 전체 당원명부와 함께 당권파 지지성향의 당원들을 별도

로 정리한 ‘블랙리스트’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북의 신당권파 인사들은 6월초

‘경북당원선언운동’에 참가한 당원 230여명의 명단에 소속과 출신정보 등을 추

가해 제작한 ‘당권파 지지명단’이라는 엑셀파일을 회람했다. 과거 공안기관이나

대기업들이 진보진영이나 노동계 인사들을 상대로 만든 블랙리스트가, 이번엔

진보정당 내부에서 당권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셈이다. 이들 신당권파 인사들

은 또한 후보자가 취득할 수 없는 당원명부를 입수해 자파 후보들에게 배포했

는데, 이것은 경북도당 소속 전체 2천여 명 분량이었다.

당권 장악에 몰두한 비대위-초유의 재투표 사태까지

혁신계 지도부의 파행적 당 운영은, 당직선거 사흘째 발생한 투표 중단 사태

에서 절정에 달했다. 혁신비대위는 무리하게 서버관리업체를 변경해놓고 투표

진행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지 않음으로써 당원들의 투표값 전체를 잃어버리게

됐고, 통합진보당은 당원 직접 선거에서 그 유례가 없는 재투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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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이 같은 투표중단사태는 강기갑 혁신비대위가 당권 장악에 진력을 다 하면서

벌어진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강기갑 비대위는 차기 지도부 선출까지 당 운영과

엄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임시지도부였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인 강기갑 위원장

을 비롯해 5명의 비대위원 가운데 4명이 당직선거에 출마하는 등, 비대위를 중

심으로 한 신당권파 인사들은 당권 경쟁에 몰두해 당 사무를 등한시했고 이는

투표중단사태를 겪으며 당내 비난여론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들 신당권파는 압도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도, 대의기구인 중앙위원,

대의원 선거에서조차 다수를 점하지 못하게 된다. 혁신비대위의 파행적 당 운영

에 더해, 윤금순, 오옥만 후보 측의 조직적 부정선거가 덜미를 잡힌 것이 그 주

된 원인이었다.

당권 장악 실패하자 또다시 “분당”, 그러나 ‘사분오열’하는 혁신계

7월 26일~8월 현재

두 당권파 의원 제명을 위한 의원총회가 예정된 26일까지만 해도, 혁신계의

행보는 제법 순조로운 듯이 보였다.

그러나 전체 의원들의 의견 발표 후에 이뤄진 표결에서 김제남 의원이 기권표

를 던짐으로써, 혁신계는 곧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사실 김제남 의원의 기권

표는, 그가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은 명분이 없다는 중재안을 냈을 때부터 어

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그러나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혁신계 의원

들은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던 당 바깥의 압도적인 언론 지형에 취해 있

었고, 김제남 의원이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하고도 소신을 지킬 가능성

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의원총회 결과는 신당권파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명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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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원을 제명하지 못함으로써 의원단에서 다수가 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라는 대의기구에서 소수가 된 데 이어 의원

단에서도 소수파가 되면서, 신당권파가 계획하고 있던 당에 대한 장악 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었다.

곧 이날의 의원총회는, 혁신계가 ‘5·2 진상조사보고서’라는 희대의 정치 기획

이후 펼쳐진 압도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도 결국 당권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소수파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자리였다.

의총 직후 국민참여당계 당원들은 하루 수백 명씩 통합진보당을 빠져나갔

다. 당원들의 집단 탈당이라는 원심력이 작용하면서, 유시민 전 대표를 비롯한

참여당계 지도부도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참여당계 당원들의 입장을 따르지 않

을 수 없었다. 이후에 더 분명해진 사실은, 참여당계뿐만 아니라 신당권파 인사

들이 ‘분당’이라는 외길로 들어선 데는 이 같은 참여당계 당원들의 선도 탈당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점이다. 신당권파 중에서도 통합연대와 인천연합이 탈당

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유시민이라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에 의존해

온 참여당계와 달리, 통합연대와 인천연합은 상대적으로 계급적 대중들에게 그

지향과 기반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이들은 참여당계와 달리 통합진보당을 떠

나서는 별다른 전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명 의원총회가 무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참여당계는 단독으로라도 통

합진보당에서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통합연대와 인천연합에도 입장 정리

를 요구했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두 차례의 집단 탈당 경험이 있는 통합연대

의 경우, 내부에서도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심상

정, 노회찬 의원의 경우 공식적인 발언들과 달리 내부 회의에서는 집단탈당에

오히려 소극적이었다. 심 의원의 경우 통합진보당으로 합류할 당시부터 통합진

보당의 대권 후보에 마음이 있었고, 이 때문에 통합연대 내부 회의 자리에선 심

의원에게 ‘올해 대선은 포기하라’는 요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자민통의 한 분파였던 인천연합의 경우는 상황이 더 어려웠다. 이미 ‘조

결과적으로 보면 통합진보당 13명의 의원단 가운데 1명의 중립파 의원이 던

진, 단 하나의 기권표가 이후 혁신계를 급속도로 무너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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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준호 진상조사보고서’ 이후의 사태 전개에서 인천연합 상층부는 심각한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었고, 인천연합의 원로 그룹들은 이들 상층부 인사들이 자민

통의 원칙에서 벗어났다며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천연

합 지역 조직들의 붕괴였다. 원로그룹들의 탈퇴와 비슷한 시점에 인천연합의 가

장 큰 지역조직이었던 경남 쪽은 이미 붕괴상태에 놓였고, 곧이어 두 번째 큰 지

역조직인 전북도당 역시 등을 돌리면서 인천연합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인천연합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은 바로 방용승 전북도당 위원

장의 혁신모임 탈퇴였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인천연합과 궤를 같이 해 온 방

용승 전북도당 위원장은 “구당권파의 패권의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분당

은 민중들에게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며 “탈당과 분당은 적절치 않다.”는 입

장을 밝히며 인천연합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사실 신당권파를 구성해 온 3개 세력은, 당장의 당권경쟁을 위해 뭉쳐졌을

뿐 구당권파와 그들과의 거리만큼이나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이질성을 갖고 있

었다. 더욱이 진보신당 탈당그룹 일부와 인천연합이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 참여

당계와의 합류에 반대한 데서 보듯이, 두 세력(통합연대, 인천연합)의 지지기반

은 그 자체로 참여당계와의 잠재적 갈등요인이었다.

이 3개 세력 가운데 탈당 국면을 주도했던 쪽은 참여당계였다. 그렇지만 참여

당계의 경우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정서에 무감각했기 때문에, 인천

연합이나 통합연대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울 만한 실수를 거듭했다. 진보진영과

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강동원 의원은 탈당 논의가 공식화되던 시점에서, “민주

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 크게 생각하자.”고 신당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시

민 전 대표 역시 “진보세력이 민주당의 왼쪽 블록이 되려면, 민주노총이 민주당

과 전면 결합해야 한다.”는 말로 진보진영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냈다.

어지러운 강기갑 대표의 행보…혁신계 내부의 ‘파열음’

이렇게 신당권파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당권파를 대표하

는 강기갑 당 대표의 행보도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의원에 대한 제명이 실패한 이후, 열흘 넘게 당무를 거부했던 강기갑 대표

는 8월 6일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신당창당 구상을 공식화했다. 이 기자회견 자

리에선 다소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혁신계와 강기갑 대표의 입장은 사실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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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명료했다. 곧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추진하고, 당 해산이 불가능할 경우 집단 탈

당을 통해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이다.

당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며 분당을 추진하는 것은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

지 않지만, 사실 이것은 신당 추진세력의 확대에 유리한 입지를 얻기 위한 신당

권파의 노림수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패착’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분당을 위한 명분이 극히 취약했다. 신당권파와 진상조사위원회들

은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표적조사를 실시하고도 두 의원의 선거부정을

잡아내지 못하자, 두 의원이 ‘비례 총사퇴’ 당론을 따르지 않은 것을 제명의 사

유로 들었었다. 그리고 다시 이들 두 의원의 제명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면서,

두 의원에 대한 제명 실패가 분당 추진의 이유가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분당의 명분으로서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차

적으로도 당원들의 손으로 뽑힌 당 대표가 나서서 탈당, 분당을 부추기는 모양

새가 되어 곧 거센 내부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 제명 의총이 부결된 이후의 상황전개는 2008년 분당사태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2008년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마찬가지

로 비례 국회의원에 대한 자리다툼으로 시작된 것이듯, 이른바 ‘혁신’을 추구한

쪽은 당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은 이후에도 당권 장악에 실패하면서, 결국 분

당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2008년과 달리 2012년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즉, 이미 2008년에 만

들어진 분당을 위한 명분들, 즉 ‘패권주의, 종북주의 청산’과 같은 명분들이 단

지 분당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음이, 이미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명망가

정치인들의 수년간의 활동을 통해 드러난 상태였다. 더욱이 2008년 심상정 의

원을 비롯한 통합연대 인사들이 ‘운동권정당’ ‘친북당’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민주노총당이라는 이미지를 혁파하겠다.”며 당을 나간 바 있기에, 2012년 다시

신당권파 인사들이 “노동중심성”이라는 완전히 반대의 노선을 내걸고 민주노

총을 끌어안으려한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결국 떠들썩한 외양과 달리 2012년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참여당계와 통합연

대 일부의 탈당으로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대중적 기반이 없는 진보정당

은 자생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른바 이 ‘신당 창당’ 세력은 대선 이후 한

국 정치의 양당구도 안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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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2부

문답으로 풀어보는통합진보당 사태

1. 당원들의 부정행위는 있었는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것은 누구인가?

2. 이른바 ‘유령당원’과 ‘뭉텅이 투표용지’는 사실인가?

3. 혁신계의 ‘공동책임’ 주장은 정당한가?

4. 동일IP투표, 이동투표소는 부정선거인가?

5. 진성당원제는 청산되어야 할 ‘구태’인가?

6. 주한미군 철수는 재검토되어야 하는가? 진보정당도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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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문답으로 풀어보는 통합진보당 사태

1. 당원들의 부정행위는 있었는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것은 누구인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격발시킨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는 통합진보당의 당내

경선을 “총체적 부실과 부정”으로 규정했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분명

비례대표 경선에는 부실과 부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부실의 책임은 당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 만이 아니라 어느 보수정당에서도 당 사업과 관련

한 부실의 책임을 당원들에게 묻는 경우는 없으며, 이것은 온전하게 당을 책임

진 지도부와 공동대표단에게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정에 대한 책임은 누구

에게 있는가? 이는 명백하게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우선적으로 져야 할 몫

이다.

혁신계가 주도한 진상조사위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에

선 두 명의 후보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인천연합이 지

지한 윤금순 후보와 참여당계가 지지한 오옥만 후보다. 먼저 윤금순 후보는 경

북 영주투표소에서 선거인명부 전체를 조작했는데, 이곳에선 윤금순 의원 측

선거사무원 1인 이상이 최소 수십 명 혹은 해당 투표구 171명 전원의 대리투표

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주투표소의 선거인명부는 총 4명의 선거사무원 서명이 있다. 그런데 이들

선거사무원들은 선거인명부 순서에 따라 1/4씩 나누어 서명을 했다. 다시 말

해 선거사무원 A씨가 관리를 한 날엔 강, 강, 고, 구, 권, 권, 김,…, 김, 김, 김 씨

등 수십 명이 투표를 했고, 선거사무원 B씨가 관리를 한 날은 오, 오, 우, 유, 이,

이, …, 이 등 수십 명이 나와서 투표를 한 셈이다. 투표인들이 날짜에 맞춰 ㄱ,

ㄴ, ㄷ 순으로 투표장으로 나왔을 리는 없기 때문에, 이것은 곧 윤 의원 측 선거

사무원 1인 이상이 공모해 선거인명부를 전부 조작했거나, 나아가 투표 자체를

100% 대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영주투표소에선 171명이 투표했고, 170표가

윤금순 후보를 지지했다.

두 번째, 오옥만 후보 측은 제주시의 상가건물에 위치한 M건설 사무실에서

270표의 몰표를 만들어냈다. 직원 1명이 있는 M건설에선, 공식투표소가 아님에

도 불법적으로 ‘온라인투표확인 기능’을 6천여회 실행했고 그 직후 152명의 투

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김인성 한양대 교수팀에 의하면 로그기록에 남겨진 M건

설에서의 투표행태는 정상적인 투표에서 나타날 수 없는 기계적인 패턴과 비정

상적으로 빠른 속도를 보였다. 이는 전문적인 ‘오퍼레이터’(기계류 조작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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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개입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이 M건설의 이사는 오옥만 후보의 측근이며, ‘조

준호 진상조사위’에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영삼 씨였다.

윤금순, 오옥만 두 후보의 명백한 선거부정은 신당권파가 주도한 진상조사위

원회에선 아예 다뤄지지 않거나, 외부 전문가팀에 의해 드러난 사실조차 폐기해

버렸다. 신당권파는 자신들의 부정선거 정황을 은폐하면서, 이른바 ‘총체적 부

실과 부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른 당선자들과 당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한 것이다.

반면 1,2차 진상조사위가 ‘폭로’ 형식으로 발표했던 많은 의혹들은 모두 사실

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즉, 신당권파는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감추면서 당원

들을 총체적 부실의 책임자인 양, 다른 후보들은 부정의 책임자인 양 무고한 것

이다. 이 같은 신당권파의 무고와 언론플레이로 인해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은

“진성 당원”이 아닌 “진상 당원”이라고, “독버섯”이라고 여론에 의해 짓밟히는

수모를 당했다.

2. 이른바 ‘유령당원’과 ‘뭉텅이 투표용지’는 사실인가?

조준호 진상조사위와 혁신계의 의혹 제기 가운데 통합진보당에 대한 인식을

가장 악화시킨 것은 ‘유령당원’과 ‘분리되지 않은 투표용지’, 곧 뭉텅이 투표 의

혹이었다.

유령당원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었다. 그는 5·2

진상보고서 발표 일주일 뒤 <오마이뉴스>와 ‘단독인터뷰’에서 “주민번호 뒷자

리가 같은 당원이 무더기 발견됐다” “주민번호 끝자리가 2000000으로 된 사례

도 있었다”며 유령 당원 및 주민번호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출생지와

같은 기초 정보를 담고 있는 일련번호가 가족간에 같은 경우는 흔하며, 실제 이

정희 전 대표 측에서 동일한 기초단체 소속의 528명의 주민번호를 샘플링 해

본 결과 한 쌍 이상 같게 나오는 사람이 441명이었다. ‘2000000’번과 같은 일련

번호 역시 해외 체류자 등 임시번호로서 조작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그 열흘 뒤엔 박 무 진상조사위원이 또 한차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주민

등록번호 앞자리 6자리와 뒷자리 7자리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가 수십건 발

견됐다”며 15건의 사례를 ‘폭로’했다. 그러나 이 역시 선거인명부가 아니라 당비

인출 계좌 등을 기록한 당원정보시스템에 근거한 것으로, 당 중앙선관위가 확

인한 결과 실제로 동일주민번호로 중복투표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비례

경선 당시 통합진보당의 당권자수는 7만5천명에 이르러, 이 가운데는 부부 당

원이 같은 통장을 사용하거나 개인정보 노출을 꺼려 당원정보시스템에 주민번

호를 노출하지 않는 경우가 일부 존재한다. 이런 사실은 ‘15건’에 해당하는 당원

들이 실제 투표자와 일치하는지만 조사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박 무 진상조사위원은 투표를 하지 않은 당원 10명까지 포함시

키는 등 이른바 ‘주민등록번호 중복 사례’를 부풀렸고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를

“수십건”이라고 과장하기까지 했다.

‘유령당원’ 의혹은 혁신계의 송재영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가 “중국집 집단거

주” 주장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불거졌다. 당직선거를 몇일 앞두고 송재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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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보도자료를 내고 “61명이 중화요리 집에 집단거주하고 있다”며 상대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했고, 이런 폭로내용은 ‘유령당원 61명이 중국집에 동거’한

다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방송사 뉴스를 탔다.

그러나 송재영 후보측이 제기한 경기 성남시의 2xxx-x 번지는 ‘성남시 재개발

세입자협의회’ 사무실이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엔 노동조합이나 농민회 또는 철

거민·세입자대책위의 집단 가입이 많았기 때문에, 동일 주소지의 경우 당연히

집단가입 당원으로 봐야 한다. 물론 실제 당직 선거에 참여할 경우 본인 소유의

휴대폰, 주민등록번호로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주소지 문제가 선거 부정

이나 소위 ‘유령당원’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송 씨는 당직선거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해당 지역위원회

의 공기업 당원 명부까지 별도로 정리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에 뿌렸고, 이

공기업 당원 명부는 보수언론들이 공기업의 집단 가입 노동자들의 동일한 회사

주소를 악용해, 유령당원 현황을 부풀리는데 사용됐다.

허위 폭로전의 또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뭉텅이 표’다. ‘조준호 진상조

사위’는 현장투표소 한 곳에서 ‘6장 붙어있는 표’가 나왔다고 섣불리 발표함으

로써, 통합진보당을 ‘뭉텅이 투표’ ‘체육관 선거’를 하는 정당으로 추락시키고 말

았다.

그러나 이 ‘붙은 표’ 의혹은 2차 진상조사위의 현장 실험에 의해 간단히 ‘허

위’임이 확인됐다. 1차 진상조사위 이후 한달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투표용

지가 다시 붙는 것이 진상조사위원들의 눈 앞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3. 혁신계의 ‘공동책임’ 주장은 정당한가?

신당권파가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을 사퇴시키기 위해 제시한 명분은 ‘공동

책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 책임’이라는 주장엔 애초에 근본적 결함이 있

었다. 만약 선거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다른 후보자들에게 부정을 함께 책

임지자고 한다면, 한 가지 상식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자신들이 저지른 행

위를 솔직하게 밝히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윤금순 의원이나, 오옥만 후보 그리

고 이 후보자들과 관계가 있는 신당권파들은 자신들의 부정에 대해 끝까지 침

묵했고 또 숨기려 했다.

당초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낸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는 프레

임에, 이상하게도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가 없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신당권파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는 동시에, ‘공동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이

석기, 김재연 당선자를 사퇴시키기 위해 ‘표적조사’를 실시했다. 예를 들어 조준

호 진상조사위는 투표한 전체 당원 가운데 이석기 후보를 찍은 당원들만을 분

류해 이 가운데 동일IP를 추적했지만,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

다. 물론 이 동일IP 문제는 이후 혁신비대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부정

선거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1, 2차 진상조사위와 혁신비대위는, 부정선거를 저지른 신당권파 후보들의 잘

못을 은폐하면서, 오히려 그 경쟁자들인 당권파 후보들을 사퇴시키기 위해 ‘총

체적 부실과 부정’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진상조사에서도 자신

들이 저지른 부정선거 이외의 어떤 다른 부정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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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김인성 교수는 온라인 선거 부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마치고 통합진보당 사태

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진상조

사위원은 “원래, 자기가 행한 방법을 남들도 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의심하게 된

다. 그게 범죄자의 심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에 대한 1차 진상조사위는, 다름 아닌 부정선거의 관련

자들로 구성이 됐다. 뒤이은 2차 진상조사위는, 법학자인 진상조사위원장이 ‘객

관성’과 ‘공정성’ 상실에 항의하며 사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통합진보당 사태

의 진실규명과 책임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4. 동일IP투표, 이동투표소는 부정선거인가?

조준호 진상조사위는 ‘표적조사’를 실시해 이석기 후보에 대한 동일IP가 60%

에 이른다고 언론에 발표를 했는데, 이후 밝혀진바 이석기 후보의 동일IP 비율

은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즉 대부분의 후보들이 50% 안팎의 IP 중복투표 비율

을 보였고, 가장 높은 동일IP를 보인 것은 나순자 후보(65.3%)였다. 또한 실제 대

리투표의 가능성을 의심해볼 만한 10건 이상 동일IP 투표의 경우 나순자 41.8%

김기태 34.8% 문경식 32.6% 윤갑인재 32.2% 이영희 32.1% 이석기 27.3% 순이었

다.

그러나 동일IP가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것은,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어서 이후 진상조사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은 간단했

다. 예컨대 투표자가 사무직이라면, 이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동일IP를 통해 이

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 공간에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들은 동일 IP이며, 한 건

물 안에 있는 컴퓨터들이 전부 동일IP인 경우도 있다. 제조업 노동자들이 작업

시간에 짬을 내 온라인투표를 하러 가는 현장사무실에도 컴퓨터가 한 대 혹은

두 대다. 이것도 당연히 동일 아이피다.

동일 IP에서 이뤄진 투표가 많은 것, 그리고 이를 모두 합산한 비율이 높은

것이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다. 곧 현장 노동자들이나 혹은 농민회, 학생 및 청

년단체, 그리고 낮 시간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지지가 높다는

얘기다. 당연히 동일IP 투표는 부정이 아니지만, 진상조사위가 이것을 부정선거

의 정황으로 몰아가면서 통합진보당은 이미 “이승만 독재 시절의 부정선거”를

행한 집단으로 내몰리게 됐다.

사실 온라인 투표에서의 선거부정은 단 한 건 존재했다. 즉, 신당권파와 진상

조사위원회들이 은폐한 바 있는, 참여당 출신의 오옥만 후보 캠프에서 벌어진

대리투표다.

참여당계가 언론에 대고 새누리당의 ‘차떼기’에 비유한 이른바 ‘박스떼기’의

경우에도 부정선거로 볼 수는 없다. 이 ‘박스떼기’란 다름 아닌 현장의 노동조

합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이동투표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조업 조립라인

엔 통합진보당의 당원이 많다.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 속도에 메여 일하는 이 노

동자 당원들에겐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때

를 한번 놓치게 되면 3시간 이상 소변을 참아야 하기도 하고, 50줄의 노동자가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일도 일어난다. 이런 현장노동자들이 진보정당 한번 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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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겠다고 고안해 낸 게 바로 ‘이동투표소’다. 사람이 움직이기 어려우니 컨베이어

벨트 사이사이를 투표함이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수거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선되어야 할 관행이다. 그러나 이 ‘이동 투표소’를 무슨 파렴치한 범죄라도 되

는 양 ‘박스떼기’라면서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차떼기’ 비리에 비유하는 것은 어

림없는 일이다.

5. 진성당원제는 청산되어야 할 ‘구태’인가?

민주노동당은 당의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당원’에 두고 있었다. 또한 당 지

도부와 공직 후보 선출 그리고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당원총투표에 따르도록

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이에 기반해 당 대회 위에 당원총투표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진성당원제는 당의 일부 명망가들이 주류 언론과 국민적인 인기를

등에 없고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당 고위층이 관료화되는 경

향을 저지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만약 진성당원제를 포기하고 혁신계의 주장

대로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들을 국민 여론조사로 뽑게 된다면, 진보정당의 정

치인들 역시 자연스럽게 여론주도층인 중간층을 수렴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

에 없다.

이미 혁신계는 진성당원제를 약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기갑

대표는 “진보를 대중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당 지도부 및 공직후보 선출

에 여론조사를 도입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바 있다.

또한 혁신계는 비례대표 의원을 당 지도부가 100% 전략공천하는 방안도 추

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진성당원제의 약화 뿐 아니라, 점진

적 해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초기엔 진보정당의 당원이자 현장 활동

가들이 아니라, 당 바깥의 여론주도층에 호소하는 정치인들이 당을 분점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나라의 진보정당들에서 관찰되듯

이, 늘어나는 원내 정치인들에게 권력이 옮겨가면서 당원들의 결정권은 유명무

실해 질 것이다.

물론 진성당원제가 진보정치의 금과옥조인 것은 아니다. 실제 민주노동당에

서도 진보정당에 대한 계급적 지지단체들을 포함한 ‘민중참여경선’ 등이 시도

된 바 있으며, 이런 방식의 일정한 개방은 당의 계급성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

다. 그러나 현재의 진성당원제 해체 움직임은 계급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고, ‘국

민의 눈높이’ 즉 중간층의 여론을 따르자는 게 그 취지이다.

혁신비대위는 진보정당의 진성당원제를 이른바 ‘당내 패권주의’ ‘폐쇄적 조직

문화와 권위적 소통문화’ 등과 나란히, 성찰과 대안 마련의 대상으로 올려놨다.

혁신비대위를 내세웠던 신당권파 소속의 정치인들이 공히, 기간당원들의 지지

세는 약하고 국민적 인지도는 높다는 점에서도 진성당원제 해체 작업은 포기되

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이해관계는 민주노총 상층관료 출신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은 민주노총의 현장 활동가들이나 중간간부들과 같은 현장에서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 활동가와 현장조합원들이 다수인 진성당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고

이 점이 이들 관료 그룹의 오랜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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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한미군 철수는 재검토되어야 하는가? 진보정당도 애국가를 불러야 하

는가?

혁신계가 추구하는 당 전략노선과 관련해 첫 번째 중요한 대목은 주한미군

철수 강령의 재검토였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는 방송 인터뷰에서 “당 강

령이 마치 당장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받

고 있다)”면서 “(주한미군 철수 강령의)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도 받아

들여서 토론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동북아 안보 관점에

서 한·미동맹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주한미군 철수는, 정파와 사상을 뛰어넘어 한국의 진보진영이 견지해 온 공

통된 강령이며, 민주노동당에 이어 통합진보당 강령 역시 “주한미군을 철수시

키고 종속적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여 동북아 다자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한

다.”고 되어 있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켜 유일 패권을 유지하

면서, 끊임없는 국지전을 발생시켜 자국의 군수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

의 주둔 역시 한반도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합치하기 때

문이며, 미국은 주한미군을 항구적으로 주둔시키기 위해 남북 간의 지속적인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한반도를 끊임없

는 전쟁 불안에 시달리게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주한미군이 노동자민중이 추구하는 자주민주통일 노선의 장애물이 된

다는 것은 명백하다. 비밀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은 4·19 와 5·16, 그리고

광주민중항쟁 등 한국사회의 중요한 고비마다 계엄군 투입과 군사쿠데타에 의

한 군부정권 수립을 미국이 배후에서 지휘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한미군은

한국 사회의 민중운동 세력에게 엄연히 위협적인 ‘무장력’이기 때문에, 주한미

군이 존재하는 한 자주민주통일의 전진과 사회변혁도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

은 명백하다.

혁신계가 제기한 또 하나의 논란은 애국가 제창이었다. 앞서 유시민 전 대표

가 진보정당도 애국가를 비롯한 국민의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이어,

새로나기특위를 맡은 박원석 위원장이 언론에 내놓은 첫 발언이 애국가를 불러

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외의 노동당이나 사민당과 같은 진보정당들 중에서도 ‘국가’를 부르는 정당

들이 예외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사실 애국가 논란은 진보진영에 대한 색깔공세

의 일환이었다.

현재의 애국가를 친일파가 만들었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노동자민중의

애국가는 어디까지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중

항쟁을 주도했던 고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발표된 노래

로,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지향과 저항의 정신을 담아 한국의 모든 민중투쟁과

노동쟁의 현장에서 불려왔다. 그러나 혁신비대위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민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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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례를 진보정당의 정체성이 아니라, 단순한 운동권의 관행으로 치부해버렸다.

또 한편으로 보수세력은 애국가를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결부시키기 때문에,

애국가 제창은 미군정과 친일파들이 세운 남한의 단독정부를 인정할 것인지 그

리고 그 뒤를 이은 군사정권들을 합법 정부로 인정할 것인지와도 관련이 있다.

즉 애국가 논란에는 사회변혁을 추구해 온 한국의 진보세력을 체제에 복종하

는 세력으로 길들이기 위한 이념공세가 놓여있는 것이다.

부록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일지

故 박영재 당원의 유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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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일지

2011년 11월~3월

10·26 재보선으로 야권연대의 위력 확인. 조중동 등 보수언론, 이정희 대표와 민주노동

당에 대한 색깔 공세 본격화.

2012년 3월 14~18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실시. 참여계 오옥만 후보가 인천연합측 윤금순 후보의

선거부정 인지.

3월 19일

공동대표단 회의에서 유시민 공동대표가 윤금순 후보의 경북영주 부정선거 의혹 제기.

윤금순 후보의 몰표가 나온 경북영주 및 성곡·칠곡·고령투표소 무효처리.

3~4월말

‘통진당 이석기 후보 ‘北 조직원’ 진상 밝혀야’(동아) ‘주사파는 어떻게 야당을 장악하려

하나’(조선), ‘진보당 종북 논란 … 주사파 민혁당 출신이 당권파에’(중앙) 등 보수언론의

극심한 색깔론.

4월 11일

제19대 총선결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의원에 1번 윤금순, 2번 이석기, 3번 김재연, 4번

정진후, 5번 김제남, 6번 박원석 당선.

4월 12일

오옥만-윤금순, 이영희-노항래 후보 간 부정선거 논란 해결을 위해 진상조사위를 구성키

로 합의.

4월 18일

‘조준호 진상조사위’ 구성. 참여계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 당 홈페이지 등에 부정선거

의혹 제기.

4월 19~28일 중 하루

조준호 대표와 윤금순 당선자 비공개 면담.

4월 29일

이정희 대표, 휴양 중 급히 상경. 조준호 대표의 ‘총체적 부실, 부정’ 입장에 대해 이정희

대표는 구체적 근거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발표를 이틀간 연기해달라고 요청.

4월말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 주변인사들, 언론사들에 “이석기·김재연 사퇴시킬 수 있도록 도

와 달라” 협조요청.

5월 2일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 구체적 근거자료 없이 기자회견문 만으로 “총체적 부실, 부정”이

라고 언론에 발표. 오옥만과 윤금순측 선거부정은 은폐.

5월 3일

이정희 대표, 진상조사위의 발표에 대한 근거자료 열람을 요청했으나, 조준호 진상조사위

는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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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5월 4일

윤금순 당선자측 “저는 부정과 무관하지만 당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사퇴한다”며 이석

기, 김재연 당선자에 공동 사퇴 요구.

5월 8일

이정희 대표, 진상조사위와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 개최, ‘조준호 진상조사보고서’

허위 사실 다수 드러나.

5월 10일

유시민 공동대표 “우리 당도 애국가 불러야” 발언. 조준호 공동대표 오마이뉴스 단독인

터뷰에서 ‘유령당원’ 의혹 제기. 이정희 공동대표, 조준호의 ‘유령당원’ 의혹에 반박 기자

회견 개최.

5월 12일

혁신계, 중앙위 개최 강행. 이정희 대표는 공동대표직에서 사임. 심상정 의장, 다수의 반

대표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 선언하자 참관 온 당원들 단상 점거 및 폭행사태 발생.

5월 13~14일

초유의 전자 중앙위 개최해, 비례 총사퇴 의결 및 강기갑 혁신비대위장 선임.

5월 14일

박영재 당원, 혁신계의 불법 전자중앙위 개최에 항의하며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분신.

5월 18일

민주노총 중집회의, ‘이석기 김재연 의원 사퇴 안 하면 지지철회 할 것’

5월 20일

오병윤 당선자를 위원장으로 당원비대위 발족, 활동 시작.

5월 21~22일

검찰의 압수수색. 당원 명부와 함께 조준호 진상조사위가 복호화한 투표값 등 탈취.

5월 23일

통합진보당 새로나기특위 구성

5월 25일

혁신계 윤금순 당선자, ‘사퇴 불가’ 입장인 조윤숙 후보가 아닌 서기호 후보에게 의원직

넘겨주기 위해 사퇴 보류.

5월 30일

19대 국회 임기 시작.

6월 1일

이정희 대표, 2차 진상조사위에 출석해 윤금순 후보측 선거부정과 1차 진상조사위가 왜

이를 덮었는지에 대한 진상조사 요청.

6월 5일

심상정 의원 “통합진보당에 보이지 않는 조직, 지하정부 같은 존재 있어”

6월 6일

서울시당 당기위, 이석기·김재연 의원과 조윤숙·황선 당원 제명

6월 7일

유시민 “민노당에 지하 지도부 있는 게 아닌지 의문” 강기갑 “보이지 않는 손이 통합진보

당을 움직여” 발언.

6월 10일

통합진보당 첫 당직선거공고 및 선거운동 시작.

6월 13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 새누리당 제안 환영”

6월 14일

검찰, 이석기 의원이 대표이사로 있던 CN커뮤니케이션 등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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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6월 14~20일

경북도당 혁신계 인사들, ‘당권파 지지명단’이라는 당원 블랙리스트 작성·회람 및 경북도

당 전체 당원 명부 유출.

6월 18일

새로나기특위, 보고서 발표. “북한 인권, 핵 개발, 3대 세습에 명확한 입장 표명해야” “당

장의 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에 대한 오해의 지점, 재검토 필요”

6월 21일

혁신계 송재영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 ‘유령당원’ 의혹 제기하며, 조중동에 모 지역위 당원

명부 및 공기업 당원명부 건네. 송재영 후보, 경기도당 전체 당원명부도 유출.

6월 22일

분신한 박영재 당원 사망.

6월 24일

박영재 당원 장례식.

6월 25일

통합진보당 당직선거 시작.

6월 26일

통합진보당 2차 진상조사위원회, 김인성 한양대 교수팀의 기술검증보고서 표결로 폐기.

김동한 2차 진상조사위원장 “법학자의 양심에 기초해 봤을 때 객관성, 공정성 보장 안

됐다”며 위원장직 사퇴.

6월 27일

통합진보당 당직선거 온라인투표 중단 및 투표값 분실 사태.

6월 28일

<민중의소리>, 윤금순 의원 경북영주 선거부정 증거 단독보도.

6월 29일

통합진보당 중앙당기위, 이석기·김재연 의원과 조윤숙·황선 당원 제명.

7월 2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를 8월 2일 이전에 처리키로 합의.

7월 4일

<민중의소리>, 김인성 보고서 전문공개. 오옥만 후보측의 제주 ‘M건설’ 선거부정 알려져.

7월 9~14일

통합진보당 당직선거 재투표에서, 신당권파는 강기갑 대표만 당선시키고 중앙위원 및 대

의원 선거에서 패배.

7월 25일

통합진보당 제1차 중앙위원회 열렸으나, 회순 채택 표결 요청에도 의장단이 거부. 회순 처

리도 못하고 중앙위 폐회.

7월 26일

신당권파, 의원총회 강행했으나 김제남 의원의 무효표에 의해 찬성6(재적의원 13)으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에 실패. 심상정 원내대표 사퇴.

7월 27일

강동원·박원석 의원, 기자회견 열어 기권표 던진 김제남 의원 비난.

강기갑 대표, “진보정치가 갈 길을 잃었다”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7월 29일

유시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와 진보적 정권교체 전략, 효력 상실”

참여계 주요인사들 대전에서 회합, “구 당권파와 함께 할 수 없다”

8월 6일

강기갑 대표, 2주간의 당무 거부 끝내고 “당 해산 안 될 시, 집단탈당” 입장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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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5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8월 7일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노회찬 등 참여계와 진보신당 탈당파, 인천연합 상층이 ‘진보적

정권교체와 대중적 진보정당을 위한 혁신모임’ 만들고 집단탈당 추진.

8월 9일

참여계 고창권 부산시당 위원장 “당 지도부의 해산과 분당 운운은 해당행위”라며 분당

추진에 반발.

구당권파 ‘분열·분당 저지 당 사수 중앙위원회 성사를 위한 비상회의’ 구성, 중앙위 소집

추진.

8월 10일

혁신계 방용승 전북도당 위원장 “분당은 민중들에게 더 큰 죄”라며 혁신계와 결별 선언.

8월 16일

유시민 “통합진보당은 국민에 해로운 당, 이 당에 더 머물지 않을 것”

故 박영재 당원의 유서 전문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님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오십시오!

야권연대를 파기하고 2012년 대선을 이겨 영구집권을 꾀하는 새누리당과 조선일보, 중

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도움에 힘입어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하려는 불법적인

행위를 멈추고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오십시오.

이석기 국회의원 당선자가 그렇게 부담스럽습니까?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살았던 자주

적, 민주적,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동지로 인해 격조 높은 명망가에게 조중동 빨갱이 색

깔 공세의 흙탕물이 튈까 두렵습니까?

저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려고 하면 다음 사항을 철저하게 지켜주십시오! 모든 당

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반드시 약속해주십시오!

첫째, 진상보고서 폐기, 당원의 권리와 명예 회복을 위한 당원총투표 실시하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3주체가 통합할 때 민주노동당은 3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선거권, 피선거권이 부여되었으나, 이것을 6개월 중 1번 만 당비를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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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7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하면 당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강력하게 요청하여 민주노

동당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양보해줬더니 그 결과는 어떠했었는가? 당내 선거경선을 이기기 위한 1개월짜리

당원들이 4만 명이나 입당하면서 혼란과 불신이 증폭했고 당원들은 믿음과 의리가 없어

지고 미움만이 쌓이지 않았었는가?

예를 들면, 경기도 하남에서는 국민참여당 출신의 구경서 후보가 1,000명을 집단 입당

시켜 민주노동당 김근래 후보를 당내 경선에서 이기고 민주통합당 문학진 후보와 경선에

패한 후 통합진보당을 탈당, 야권연대를 파기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았는가? 오옥만

후보도 2,000명 집단 입당 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오옥만 후보는 비례대표 경선부문 후

보이다.

급조된 당원들이 특정한 후보를 당내 경선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

고 본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당원총투표 실시하고 이후에는 3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해

야 선거권, 피선거권이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통합진보당 제1차 중앙위원회를 폐기하라!

절차상에 하자가 있으면 언제나 무효다!

통합주체인 당원이 납득이 가지 않는 중앙위원회를 폐기하라! 중앙위원회 하루 전에 국

민참여당 출신 50여명의 중앙위원이 교체 변경된 사유와 경위, 명단과 당권확인을 해야

한다고 하는 중앙위원들의 의혹이 있었으나 이를 확인하지 않고 성원보고의 회순을 통

과 했다.

제15조 (지위와 구성)

② 중앙위원은 각 통합주체가 합의하는 기준에 따라 구성한다.

제6조 (성원보고)

① 의장이 개회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성원을 보고하여 재석자 수가 의사정족수에

달했음을 밝혀야 한다.

셋째, 통합진보당 회의 의장단의 독재를 멈춰라!

2012년 5월 12일 중앙위원회 의장단은 성원의 의혹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않고 “회의가

끝나고 확인해주겠다”고 하는 비상식적인 회의 진행의 독단을 행사했다. 이것만으로도

불법중앙위원회가 명백하다. 진행과정에서도 반대토론자가 분명하게 있었는데도 불구하

고 날치기 강행처리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 이러한 독재는 통합진보당에서 영

원히 사라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기 바란다! 민주주의는 백성이 주

인 되는 세상을 말한다. 곧 노동자, 농민 제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

도 참고 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요구를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에게 전한다.

2012년 5월 14일 03시 09분

건설노동자 박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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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9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에필로그

영등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책을 한 장도 읽지 못했는데 벌써 도착했네요.

택시를 탔어요.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네요.

나는 또 시 한 수를 남겨야 되는데 머리 속만 어지럽습니다.

누구에게 전화 통화하는 것도 생략합니다.

저의 인생에서 마지막 눈물은 내 조국 대추리 철조망 아래에서가 좋아서요.

시간은 없습니다. 나는 가야 합니다.

참된 벗들 노동자 형제를 사랑합니다.

안녕히- 노동자 박영재

박영재 당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메시지입니다.

그가 생애를 함께 한 노동자민중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그를 몰랐던 이들에

게도 아프게 전해집니다. 부질없는 기도와 바램들은 뒤로 하고, 그가 가야 했던

길로 박영재 당원은 떠났습니다.

故 박영재 당원은 마지막 물음에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느냐는 말은 언제나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박영

재 당원의 선택이, 결국은 목숨과 맞바꾸고야 만 통합진보당과 노동자민중에 대

한 사랑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탄압이 아닌 내부로부터 시작

된 고난이었기에 더더욱 진보진영을 수렁으로 끌고 갔습니다.

당내 선거에서 발생한 ‘사태’를 무엇으로 규정할 지 또 누구의 탓이었는지 생

각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먼저 처리하는 게 맞을지, 아니

면 왜곡된 진상보고서로 인해 땅에 떨어진 당원들의 명예를 먼저 회복하는 게

먼저인지 판단도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의 차이만으로는, 진상보고서 발표 이후 진보당 내에서 벌

어진, 한 때의 ‘동지’들 간에 벌어진 칼날 같은 적대와 비난들을,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분열의 실타래를 푸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이른바 혁신계는 ‘정치’를 하려고 했고, 이른바 ‘구당권

파’는 진실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정치의 힘은 늘 그렇듯이 이슈와 전략에서 나

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는 진실의 힘을 이기지 못

합니다. 정치적 이슈는 길어야 3개월이면 시들해지고 말지만, 진실은 수년 혹은

수십 년 뒤에 이르러서도 자신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만들어낸 절대적으로 불리한 언론지형에서도 <민중의소

리>는 무엇보다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진실에 기반하지 않은 정의란 것

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에 기초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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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1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발점이었던 ‘진상조사보고서’와 이에

근거한 ‘공동 책임’이라는 주장엔, 애

초에 두 가지의 중대한 결함이 있었습

니다.

진상조사보고서를 만든 이들은 ‘총

체적 부실과 부정’이라고 했습니다. 되

돌아보면 분명 비례대표 경선엔 부실

과 부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실의

책임은 당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

부정을 저지른 자들이 침묵하는 사이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은 가혹하게도 짓밟혔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라 생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

용한 방식입니다. 만일 스스로 부정의 당사자임을 밝히고, 진보정당답게 당내

경선에 존재했던 ‘부실과 부정’에 대해 수습하는 과정을 밟았다면 사태는 지금

과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

이고 헌신적인 노동자민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일부 정치인들은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는 대신, 이미 색

깔공세에 비틀거리고 있는 ‘동지’들을 ‘당권파’라고 폭로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이 함부로 손가락질 했던 자리에 박영재 당원도 있었습니다.

박영재 당원은 통합진보당 사태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말

았습니다. 박영재 당원이 찾으려했던 것도 진실이며, 이것에 기초한 정의였습니

다. 그는 누가 뭐래도 민주노동당의 모범당원이었고 진보정당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 온 당원이었습니다. 선거 때면 박영재 당원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이 새겨진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였고, ‘심상정’ 후보를, ‘유시민’ 후보를 지지

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부정을 저

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현장의 노동조합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이동투표소를 차떼기에 비유해

‘박스떼기’라고들 하였습니다. 제조업 조립라인엔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이 많습

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 속도에 메여 일하는 이 노동자 당원들에겐 화장실

다. 그것은 온전하게 당을 책임진 지도부와 공동대표단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리고 부정에 대한 책임은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우선적으로 져야 할 몫입

니다.

만약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다른 후보자들에게 부정을 함께 책임지자고

한다면, 한 가지 전제가 꼭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윤금순 후보도, 오옥만 후보도 그리고 이 후보자들

을 내세웠던 이른바 ‘혁신계’ 인사들은, 자신들의 부정을 끝까지 침묵했고 또 숨

기려 했습니다.

혁신계 인사들이 부정선거의 당사자들과 자기 정파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총체적’ 인 부정이라는 프레임은,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

고 말았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에게 어떤 유명 인사는 ‘진성’이 아니라 ‘진

상’ 당원들이라고, 또 다른 이는 ‘독버섯’이라고, 참으로 쉽게들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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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3통합진보당 사태, 그 진실에 관한 기록

에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때를 한번 놓치게 되면 3시간 이상 소변을

참아야 하기도 하고, 50줄의 노동자가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이런 현장노동자들이 진보정당 한번 해보겠다고 고안해 낸 게 ‘이동투표소’였습

니다. 사람이 움직이기 어려우니 컨베이어 벨트 사이사이를 투표함이 돌아다니

며 투표용지를 수거한 것입니다. 이른바 ‘총체적 부실’로 지목된 대표적인 사례

입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관행’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단죄 받아

야 할 일이 된 것인지, 이것이 정말 새누리당의 ‘차떼기’에 견줄만한 파렴치한 범

죄인지, 또한 이것이 당원들의 잘못인지, 여전히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수

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윤금순, 오옥만 후보가 내세운 진상조사위원들, 이들 후보들이 속한 신당권

파 인사들은 두 차례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도 당원들의 부정을 증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 말고는 어떤 부정도 없었기 때문입니

다. 그렇지만 ‘총체적 부정’을 외쳤던 당내 어떤 정치인도 이 ‘무고’에 대한 사과

발언 한마디 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적어도 절반의 당원들은 이 같은 ‘무고’에 동의하지 못했습니

다. 이들은 한국의 진보진영을 견결히 지켜온 민주노동당을 만들었고, 또한 통

합진보당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새벽잠을 줄여온 헌신적인 사람들입

니다. 많은 당원들은 묻고 있습니다. 진보를 말하기 이전에, 혁신을 말하기 이전

에, 이것은 ‘정의’입니까? 자신들의 잘못을 꼭꼭 숨겨둔 채 당원들을 함부로 매

도하는 것이 정치입니까?

그들이 폭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준호, 심상정, 유시민. 그 누구도 이석

기, 김재연 의원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명망 있

는 진보 정치인들은 혹여 한 때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되

는 데 침묵하거나 동조한 것은 아닌지요. 진정 ‘사퇴 권고’라는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제명의 사유이자 ‘분당’의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당원들은

수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박영재 당원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진상규명 없이 두 ‘동지’를 내치는 것

은 ‘야권연대 파기’를 위한 보수세력들의 꾀임에 빠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색깔

공세의 흙탕물’이 튈까봐 물러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박영재 당원이 유시민,

심상정 전 대표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내용입니다.

박영재 당원은 ‘전자중앙위’가 열리고 있던 5월 14일에 유시민과 심상정, 두

공동대표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였습니다. 두 공동대표는 박영재 당원이 생

의 마지막에 불렀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모든 당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반드시 약속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였

습니다. 그의 생을 바쳐온 통합진보당의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한자락 믿음만

은 미처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영재 당원은 아직 마지막 편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진보는 지

금 분열의 갈림길에 놓여 있고,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부도

덕한 집단으로 내몰린 채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영재 당원 앞에 용

서와 화해를 청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a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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