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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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부활한 현장연구 나눔마당. 10년의 현장연구를 돌아보는 자리 한 켠에 즐비하게 전시된 10년간의 연구보고서. 현장의 요구를 생생하게 담고자 기울인 모두의 노력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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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3 12 일터

4년 만에 부활한 현장연구 나눔마당.

10년의 현장연구를 돌아보는 자리 한 켠에 즐비하게 전시된 10년간의 연구보고서.

현장의 요구를 생생하게 담고자 기울인 모두의 노력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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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통권 119 2013.12

19 특집

2013 현장연구 나눔마당(1)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2) 앞으로의 10년, 현장성과 계급성(3) 올해의 현장 연구

2008,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개최된 현장연구 나눔마당은 10주년을 맞은 연구소가 그간의 현장연구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현장연구를 계속해나갈지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연구소가 많은 역량을 투여했던 노동시간센터(준)의 주간연속 2교대제 변화 전후 비교 연구를 비롯하여 2013년 한노보연이 진행했던 연구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발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현장연구 나눔마당 1부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발표 및 토론 내용과 2, 3부에서 공유한 다양한 연구 사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03 뉴스 ‘죽음의 공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外 l 연아

06 지금 지역에서는 삼성직업병 피해자 6년만의 첫 교섭, 파행으로 끝나피해자 교섭단 자격시비로 논의는 시작도 못해

08 연구소 리포트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l 청이

14 칼럼 집배원노동자의 중대재해,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l 김동근

17 사진으로 보는 세상 연대의 바늘 <강정의 코> l 최민

18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l Dr.아이유

32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영업과 실적의 현장에서 ‘사람’을 외치다! l 정하나

36 문화읽기죽지 않고 “산다”, 살기 위해 “산다”- KT 노동자들의 이야기, 다큐 <산다>를 보고 l 정하나

38 현장의 목소리

저희는 부당해고에 맞서 1년째 투쟁하고 있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콜센터 상담원 노동자들입니다 l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

지정보개발원분회 조합원 유은영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이러쿵저러쿵 안녕하세요, 한노보연 신입회원 이태진입니다 l 이태진

46 일터 다시보기 “2012년 노동안전보건 10대뉴스”를 돌아보며 l 재현

47 기자회견문/긴급논평

[기자회견문]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공개사과, 정당한 보상, 노동자 건강권 실현대책을 힘모아 쟁취합시다[긴급논평] 현대제철 당진공장 또다시 사망사고 발생!! 비통한 심정으로 현대제철을 규탄한다!!

48 후원 11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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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3

‘죽음의 공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 대국민사과 하루 만에 사망사고 또 발생

- 지난해 9월부터 12명 숨져

충남 당진 현대제철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숨

졌다. 이번에도 인재에 의한 참사였다. 최근 잇

따른 노동자 사망사고로 사측이 종합안전관리

대책을 내놓고 대국민사과를 한 지 하루 만이

다. 지난해 9월부터 13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

로 숨진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죽음의 공장’이

란 비판도 부족해 보인다.

올해 5월에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전로

보수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아르

곤가스 누출로 질식해 숨졌다. 작업 도중 차단

해야 할 가스를 전로관과 연결했기 때문에 일

어난 인재였다. 지난달에는 외주공사업체 배관

공이 추락사했다.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한

지난 11월 26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발전소 가

스누출 사고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밖으로 배

출돼야 할 독성가스가 역류하면서 누출돼 발전

소 배관 안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이를 흡

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

은 가스경보기도 휴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

다. 이 사고로 숨진 양씨를 비롯한 4명은 현대

그린파워로부터 배관설비공사를 발주 받은 대

우건설과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이다.

고용노동부는 12월 3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을 안전관리 위기 사업장으로 지정해 종합안전

진단을 하는 등 특별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

었다. 이어 현대제철은 12월 5일 잇단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종합안전관리 개선 대책을 발

표하면서 대국민사과를 한 바 있다. 제철소 내

에 ‘안전경영총괄대책위’를 신설하고 1,200억 원

을 안전 관련 투자 예산으로 확보해 집행하겠

다고 밝혔다.

사과는 했지만 사고는 또 발생했다. 12월 6

일 오후 현대제철 3고로에서 일을 하던 하청업

체 직원 이 모(37) 씨가 작업 현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 도착 후 숨졌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사고 당일 고로(용광로)에 바람을 주입하는 설

비인 풍구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인은

당진공장 상주 근무자로, 사고 전날에도 자정이

넘도록 잔업을 했으며 사고 당일에는 오전 8시

30분께 작업 현장으로 출근했다. 고인과 같은

작업을 했던 하청 노동자 김 모 씨는 <프레시

안>과 한 통화에서 이 씨는 쓰러지기 전 ‘나

너무 힘들다.’라고 하며 “나한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

다.

노동부, 울산에 첨단 산재전문병원

건립 추진

- 울산과학기술대와 협력체계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예비타당성 조사

고용노동부가 산재근로자의 치료와 재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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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통권 119 2013.12

위한 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500병상 규모의 ‘산

재 모(母)병원’ 건립을 추진한다고 21일 밝혔

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울산과학기술대(UNIST)

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등 많은 민간병원은 진

료수익이나 병상 회전율이 낮아 산재환자들을

피하고 있어서 산업재해자에 대한 의료지원은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

다가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10개 산재병원

은 재활이나 진폐 합병증 및 중증 장기요양환

자 중심으로 운영돼 산재근로자가 집중 필요로

하는 급성기 중증 외상진료 기능은 취약하다.

특히 현재의 의료체계에서는 수술치료와 같은

급성기 진료 후 전문재활치료가 제대로 연계되

지 않아 신속한 직업 및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산업구

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유해요인이나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거나, 직업성 암 등과 같은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치료나 예방기법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발ㆍ보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정부가 추진하는 산재 모 병원은 응급

외상·수지접합·화상센터와 같은 산재특화시

설, 전문 재활치료기법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

시설, 중증 난치성 질환 및 직업병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을 설치·운영한다. 기획재정부의 예

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 2015년부터 2019년

까지 5년에 걸쳐, 총 4천269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병원 건립이 진행된다. 건립비용은 산업

재해보상보험과 산업재해예방기금에서 조달한

다.

노동부는 산재 모 병원이 들어서면 신체 장

애율 감소로 장해급여 300억 원, 요양기간 단

축에 따른 요양급여 459억 원 등 연간 759억

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남대병원 유방암 발병 간호사들 집

단 산재신청

- 보건의료노조, 2002년부터 12명 유방암 걸

려 … “원인은 밤샘근무·유해물질 노출”

보건의료노조가 전남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

사 등에서 여성 유방암 환자가 반복적으로 발

생하는 것에 대해 11월 21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다. 병원사업장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을 이유로 집단 산

재신청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남대병원에서 일하는 12명의 여

성 노동자들이 유방암에 걸렸다. 이 중 9명은

전·현직 간호사들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

사들의 연령대별 유방암 유병률(인구 10만 명

당 발병자 수)은 전 연령에 거쳐 한국여성 평

균보다 훨씬 높았다. 그동안 불규칙한 3교대

근무와 지속적인 야간근무, 생식독성, 각종 발

암물질 노출 등 병원노동자들의 직업성 암과

관련된 건강권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돼왔으나

아직 단 한 건도 산재승인이 나지 않았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한국여성 연령

대별 유방암 유병률은 십만 명 당 20대 14명

(0.014%)·30대 179.4명(0.179%)·40대 7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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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0.706%)·50대 1천113.4명(1.113%)이었다.

그런데 전남대병원의 경우 30대 전체 간호사

503명 중 3명(0.596%)이 유방암에 걸려 한국여

성 평균보다 3.3배 높았다. 50대의 경우 70명

의 간호사 중 3명(4.285%)이 유방암 진단을 받

아 한국여성 평균의 3.8배에 달했다.

노조는 월 60시간을 초과하는 야간노동과 불

규칙한 3교대 근무 등 직업적 특성을 평균을

웃도는 유병률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발암물

질 노출도 문제다. 노조가 최근 노동환경건강

연구소와 함께 전남대병원에서 수집한 70여 종

의 물질 중 성분명이 같거나 유사한 36개 제품

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에서 IARC(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로 정하고 있는

포름알데히드와 산화에틸렌이 검출됐다.

노조는 병원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가 은폐되

거나,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

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조

사에서 암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각종 항

암제 취급 과정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발병 우

려가 더욱 클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전남대병원에서는 재직인원 5,011명 중

165명이 갑상선, 직장, 간, 식도암을 앓거나, 과

거에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국·공립병원 종

사자 중 암·유산·감염성 질환 환자의 수는 4

만 9135명 중 암 2,062명, 유산 1,330명, 감염

성 질환 2만 9776명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러

한 현실이 병원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인력난으

로 인한 장시간, 고강도 노동, 교대근무 및 야

간근무의 심각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조속한 실태 파악과 대책 마

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11월 21일 오전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3명의 유방암 발병 조합원에 대해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유지현 위원장은 “병원 노동자들은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사업장 특성상 야간노동

과 교대근무로 죽어 가면서 일하고 있다”며 “이

번 집단 산재신청은 견딜 만한 교대근무를 도

입하고 유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

의 장치를 마련하자는 뜻으로, 당국의 조속한

역학조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터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 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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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통권 119 2013.12

삼성직업병 피해자 6년만의 첫 교섭,

파행으로 끝나피해자 교섭단 자격시비로 논의는 시작도 못해

<뉴스셀> 백일자 기자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18일

오후 삼성전자와 첫 본교섭을 가졌다.

직업병 투쟁에 나선지 6년 만에 열린

교섭이지만, 삼성전자에서 피해자 교섭

단의 자격문제를 거론하며 교섭은 파

행으로 마무리됐다.

교섭에 앞서 "지금껏 돈으로 회유해

온 삼성이 이제라도 대화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울

리지 않도록 교섭에 임해줬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던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반

올림 측 교섭단 대표)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오후 3시부터 기흥사업장 나노파크 1층 대회의실에서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

올림)’ 측과 삼성전자의 1차 본교섭이 열렸다. 교섭단에는 반올림 측은 피해자 가족 7명과 반

올림 활동가 2명으로 구성된 교섭위원 9명 및 서기, 참관 각 1명이, 삼성전자 측은 인사팀 4

명, 법무지원팀 2명, 서기 1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을 교섭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

장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은 실체가 없으니 이해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오라”, “위임받지 않은 반올림 활동가들은 나가거나 참관만 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에 대해 교섭단의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는 위임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교섭의 주체

다. 6년 넘게 싸워오면서 개인 피해자 이름으로 싸워본 적이 없고, 항상 반올림 이름으로 싸

웠다.”며 반올림을 교섭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삼성 측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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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이날 교섭은 교섭단 자격시비만 일다 2차 교섭날짜도 잡히지 않은 채로 끝났다.

반올림은 논평에서 “6년 만에 열린 귀중한 본교섭이 시작부터 교섭 주체에 대한 자격 시비

로 점철된 것에 큰 유감을 표한다.”며 “삼성전자는 반올림을 교섭주체로 인정하고 성실교섭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반올림은 지난 8개월 동안 다섯 번에 걸친 실무협의 내내 삼성과 대화를 해온 주체

였다. 더욱이 반올림 활동가를 포함한 교섭단 구성은 실무협의에서 양측이 합의한 사항임에

도 이 모든 과정을 원점으로 돌리는 삼성의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반올림 이종란 활동가는 “우리는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본교섭이 투명하고 내실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삼성 측은 지난 9일과 오늘 열린 반올림의 기자회

견에 대해 ‘협상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연이어 개최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공

문을 통해 거듭 불쾌감을 표한데 이어, 급기야 이미 합의한 반올림 측 교섭단 자격까지 문제

삼아 교섭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삼성이 과연 이번 교섭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인

식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 유가족들이 교섭에 앞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정문 앞 기자회견에서

밝힌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에는 공개사과와 노동자의 건강권 실현대책, 보

상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공개사과’의 내용은 피해노동자와 가족, 국민 앞에 “화학물질 및 방사선에 대한 철저한 관

리, 적절한 보호장비 지급, 안전보건 관련 정보제공과 교육 등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음 점”과 “산재 신청을 하지 않도록 회유하거나 산재인정이 이뤄지지 않도록 업무환경 정보

를 은폐한 점” 등에 대한 사과 요구이다.

반올림은 또한 ‘노동자의 건강권 실현 대책’으로 “화학물질과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공개, 화

학물질안전보건위원회의 설치와 정기적인 감사,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참

여를 인정할 수 있도록 노조설립과 활동 방해금지 등”을, ‘보상’과 관련해서는 “삼성전자 DS부

문(반도체, LCD 등)에서 산재를 신청한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보상하고, 현행 퇴직자 암 지

원제도를 개선해 대상과 지원조건을 넓히고, 보상수준을 확대할 것 등”을 요구안으로 상정했

다.

한편, 반올림이 공개한 '삼성전자 직업병 제보 및 산재신청 현황'에 따르면 2013년 12월 6

일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에 근무하다가 희귀병에 걸린 피해자는 총 138명, 사망자는

56명에 달한다. 이 중 36명이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유방암으로 숨진 고 김도은 씨와 재생

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인 김지숙 씨 단 두 명만 산재인정을 받았다. 고 황유미 씨 등 세 명은

1심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으나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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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통권 119 2013.12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전북 버스운전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보고

한노보연 청이

들어가며오랜 기간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던 전북 버스업계에서 2010년부터 민주노총으로의 조직전환

이 이루어지고, 이후 4년째 버스노동자들이 노조인정,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

고 있다. 4년째 이어지는 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부분적으로 노동조건이 개선된 면도 있

지만, 격일근무라는 교대근무 자체에서 비롯되는 장시간 노동, 휴식시간 부족은 여전히 버스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임금 또한 여전히 월 170~180만 원에 불과해 생활임금

에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 대한 토로는 많았지만, 지금까지 회사와 행정당국은

버스노동자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지 않아 왔고, 구체적 실태를 조사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바도 없었다. 이번 연구는 버스노동자들의 호소가 집단적 경험임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

기 위해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기초 조사로서 시행되었다.

조사 결과조사는 설문 ․ 심층면접 ․ 현장조사로 진행되었다. 설문에는 총 101명의 버스노동자가 참여

했고 전원 남성이었다. 평균 나이는 49세로 50대 이상이 51.0%로 과반을 차지했고, 40대가

41.7%였다. 운전 경력은 평균 13년 7개월이었으며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경력은 평균

10년 7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노동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된 결과는 노동시간이었다. 설문 참여자들에게 ‘어제 근무한 시간

표’를 작성하여 회사에 도착한 시간과 회사를 떠난 시간을 표시하게 하고, 이에 기초하여 회

사에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 버스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7시간 48분을 회사에 머물

고 있었다. 18~19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46.3%, 17~18시간 근무하는 경우는 34.7%였다. 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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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 회차 1 2 3 4 5 6 7 8 9 10

운행 버스 대수 191 191 191 191 191 191 189 138 129 109

휴식 및 대기

시간(분)37 32 34 32 29 26 32 23 24 32

< 2012. 10. 23~10. 30 운행일지 분석-회차별 대기 시간 >

‘순수 운전시간’은 평균 15시간 28분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15~17시간 운전하는 경우가

34.1%로 가장 많았고, 17시간 초과하여 운전하는 경우도 26.1%에 달했다.

2012년 10월 23일~30일, 8일간의 운행 일지 및 시간표 210건을 얻어 설문 조사 결과와 비

교해봤다. 운행 일지 분석에 따른 총 근무 시간은 16시간 50분이었으며, 총 운전시간은 11시

간 26분이었다. 총 운전시간에서 설문과 차이가 발생했는데, 이는 차고지에서 종점으로 이동

하는 시간, 가스 충전 시간 등이 대기 및 휴식시간으로 계산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 표는 회차별 대기 시간을 나누어 평균을 구한 것이다. 첫 번째 운행에서는 대기시간이

비교적 길지만 퇴근 시간과 맞물리는 회차에는 대기시간이 확연히 줄어듦을 확인할 수 있다.

대기 시간이 불안정하여서 버스노동자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마음 편하게 해결

할 수 없다. 또한. 버스노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담배 한 대 태우고 화장실 다녀오고 버스

한번 청소하고 나면 30분이 지나간다. 운행 중간에 남는 대기시간이 절대 길지 않으며 이를

휴식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자투리 대기시간을 휴식시간이 아닌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임금설문 참여 버스 노동자들의 지난해 총 급여액은 평균 2082만 원이었고, 본인 수입을 포함

한 가구 월 소득은 평균 222만 원으로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450여만 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노동조합을 통해 확보한 43여 건의 2013년 7월 임금명세서 중 24~26일 근무한 (실제 운전

일수로는 12~13일) 18건을 분석해보면, 기본급은 평균 1,158,000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연장 수당 362,000원, 야간 수당 144,000원, 주휴수당 198,000원 등을 합친 급여 총액

의 평균이 2,070,000원으로 간신히 2백만 원을 넘겼으며, 여기서 다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공제액을 제외하고 실제 노동자가 받은 월 급여는 평균 1,713,000원에 불과했다. 평균 급여도

적을뿐더러 급여 총액 중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55.9%에 불과하여 수당 비중이 턱없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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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통권 119 2013.12

▲ 전주 회룡 종점에 시골길 한편 덩그러니 놓여있는 간이화장실. 관리

및 청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격일 근무에 따른 일과비번 조일 때 하는 일을 물었을 때(복수 응답 가능) 응답자의 41.3%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는 지난 한 달간 평균 5.4일 아르바이트를 한 것

으로 나타났다. 40~50%의 노동자가 버스 운전자로 12~13일간 공식적으로 일하는 외에도 추

가로 5일 이상의 근무를 하는 셈이다. 아르바이트하는 응답자의 경우 하루 평균 89,700원의

임금을 받고, 평균 8.5시간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추가로 얻게 되는 임금은 평균 517,000원이었다. 가구 월

소득 평균이 222만 원이었으므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는 수입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며,

나아가 현재 전북 버스노동자들의 임금은 절반가량의 노동자들에게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사

실상 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저임금이라 할 수 있다. 저임금은 격일근무제도 아래에서 버스노

동자들이 비번 조일 때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하는 일차적인 원인이다.

운행 환경하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49.4% 운전자가 교통 신호를 10회 이상 위반하고 있으며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경우가 10회 이상이라고 응답한 경우도 46%였다. 이렇게 신호 및 규정 속도

를 위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이 각각 짧은 배차 간격(46.5%)과

휴식시간 부족(44.7%)을 꼽았다.

“빨리 출발해서 빨리 가야 밥을 더 먹을 수 있어. 5분이라도. 그러니까 신호위반

하고 출발하고. 사람들, 손님들 타면 딱 봐갖고 없으면 막 가는 거예요.”

또한, 기종점에 휴식 공간, 화장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다수이고 조합원들은 이에 따른

불편을 많이 호소했다.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어서 차 안에서 쉬어야 하고, 식당이 없는 곳으

로 운행할 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식사를 한다. 특히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은 종점이 많아 대다수 노동자는 노

상방뇨로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이 있다 해도 수년째 청소가 이

루어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화장

실에 가면 똥파리가 인사한다는 버스

노동자의 자조처럼, 많은 노동자는 기

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

Page 11: 2013 12 일터

l일터l ․ 11

10.8 55.9 13.7 18.6 1.0

0% 10% 20% 30% 40% 50% 60% 70% 80% 90% 100%

1

최대로 힘듦(20) 매우 힘듦(15-19) 힘듦(13-14) 중간(10-12) 약함(6-9)

< 주관적 노동강도 (보그점수) >

변수 구분 빈도(명) 백분율(%) 무응답

업무 후 육체적으로

지치는 경우

전혀 없다 1 1.0 2

간혹 있다 21 20.6

종종 있다 24 23.5

항상 있다 56 54.9

업무 후 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

전혀 없다 1 1.1 15

간혹 있다 10 11.2

종종 있다 25 28.1

항상 있다 53 59.6

< 업무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 >

처지에서 인간적 모욕을 심하게 느꼈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려고 버스를 세운 채 화장실을 찾

아다니다 울었다는 버스노동자의 이야기에 가슴이 멨다.

노동 강도주관적인 노동강도를 6점(아주 편함)~20점(최대로 힘듦) 사이의 점수로 묻는 항목(평소 귀

하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다음 중 가장 가까운 숫자에 표시하십시오)에서 평균 점수가 15.2

로 운전자들이 평소 업무를 매우 힘들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 강도를 알아볼 수 있는 다른 지표로 업무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가 얼마

나 자주 있느냐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54.9%가 업무 후 항상 육체적으로 지친다고 응답하였

으며, 종종 육체적으로 지친다는 응답도 23.5%에 달하였다. 응답자의 59.6%가 업무 후 항상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응답했고, 업무 후 종종 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도 28.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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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통권 119 2013.12

저피로군21%

중등도피로

군24%

고피로군55%

< 피로도 분포 >

피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한 9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진 7점 척도 설문조사

(Fatigue Severity scale)를 하였다. 응답자의

평균이 4.51로 고도의 피로군에 속하였다. 외

국 문헌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의 피로도는

2.3±0.7이며, 국내에서 건강한 중년 남성 생

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평균

피로도는 3.42점이었다.

근골격계 질문에서는 허리 증상 호소자가

가장 많아 72.1%, 질환 의심자도 18.3%에 달

하였다. 버스 운전은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전신 진동에 노출되어 여러 근골격계 중 특히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는 직종이다. 설문 결과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면 평가근무일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44분, 비번인 날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36분이었다. 비

번인 날 평균 50분 정도 수면을 더 취해 근무일의 피로를 해결하는 수면 양상을 보였다.

주간 졸림증을 평가하기 위해 Epworth sleepiness scale(ESS)를 사용하였다. 응답자의

39.4%가 중등도 주간 졸림증, 23.2%가 심한 주간 졸림증을 나타냈다. 불면증을 평가하기 위

해 불면증 지수(Insomnia Severity Index, ISI)를 사용하였는데 심한 불면증이 의심되는 응답

자도 7.8%였으며, 중등도 불면증을 보인 경우도 30.4%에 달했다.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주간 졸림증 정도는 확실히 심해졌다.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경우 정상

이 48%이고 심한 주간 졸림증 증상자는 13%였던 것과 달리, 아르바이트하는 경우에는 정상

이 27%에 불과하고 심한 주간 졸림증 증상자가 33%나 되었다. 아르바이트 여부에 따른 이런

차이는 불면증에서도 나타났는데,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불면증 평균 점수가 14.0점, 아르바이

트하지 않는 경우 10.5점으로 나타나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불면증 점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종합하면, 버스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저임금으로 인해 비번 조일 때 아

르바이트를 나가 피로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휴식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과속

신호위반을 하며, 여기에 피로가 덜 풀려 졸린 상태에서 운행하는 것이 겹쳐 안전을 위협받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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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13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높은 피로도, 낮은 수면의 질 등 버스노동자 건강문제의 핵심 고리는 바로 ‘장시간 노동’에

있다. 특히 운수노동의 특성상 수면 문제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시

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운수노동에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격일근무라는 근

무제도 자체를 변경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80%

이상 시행되고 있는 1일 2교대제로의 변경이다.

교대근무 형태를 전환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임금 현실화다. 현재 다수의 버스노동자들이

생활임금 벌충을 위해 비공식노동(아르바이트)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임금 현실

화가 수반되지 않은 근무형태 개선은 또 다른 임금 벌충의 현장으로 그들을 내몰게 될 것이

고, 결국 그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

다.

한편, 전주 버스운송사업자들이 격일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버스 회사 5개 모두 수년째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등 운송사업의 경영난 심화와 일정 정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열악한 경영 상태는 근무제도 변경과 임금 현실화에 드는 재정을 버스회사 자체에서 해결하

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결국은 노사 간 협상에만 맡겨놓아서는 실질적인 개선이 어려울 가능

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버스운송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할 때 행정당국이 공영제 도입과

함께 노동조건 개선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종점지의 식당, 화장실, 휴식시설 문제 개선도 매우 시급하다. 식사와 대․소변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1차적인 생리적 욕구다. 버스노동자 노동환경에서 이 부분은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층면접 및 현장조사 중 조합원들

이 가장 많이 꺼낸 이야기가 ‘버스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런 측면

에서 식당·화장실 문제와 봉건적인 노사관계, 버스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없는 버스행정 등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장시간 노동․저임금 또한 버스노동자를 노예 다루듯 대하는 회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회사와 행정당국은 ‘비용의 논리’를 얘기하지만, 버스노동자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공동체의 일

원으로 대했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버스노동자들이 처한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회사·시민·행정

당국 모두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자각해야 할 것이며, 특히 전주시내버

스 공동 관리위원회와 전주시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즉각 문제 시정에 나서야할 것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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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통권 119 2013.12

집배원노동자의 중대재해,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한노보연 김동근

최근 연이어 집배원 사망 재해가 발생했다. 11월 18일 공주유구우체국의 故 오○○씨

(상시집배원, 31세)는 배달 업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용인송전우체국 故 김○○씨

(집배원, 46세)는 배달 업무 중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뒤 11월 24일 사망했

다. 故 오○○씨의 사망 재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과로사인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

에 인력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겨울의 초입

에 잇따라 발생한 집배원 사망 재해는 명백히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배

원의 노동조건은 한국사회 전반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심각하게 나쁜 상황이

며, 이는 집배원의 건강 및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배원노동자를 괴롭히는 장시간·불규칙노동

“폭주기에 많은 집배원들이 7시 전에 출근해요. 일이 많아서 일찍 출근하는 것인데, 원래 출근

시간 보다 일찍 나와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본인책임이라고 우정사업본부는 나 몰라라 해요. 근데

일찍 나오지 않으면 밤까지 일해야 하니까 아침에라도 나오는 거죠.”

최근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간한 「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

보방안」에 따르면 집배원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6시간인데, 이는 정규직 평균 노

동시간인 42.7시간(2013.3. 경활부가조사)보다 20시간 이상 긴 것으로 집배원의 초장시간노동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집배원은 매일 매일의 물량에 따라, 소통시기에 따라 노동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

Page 15: 2013 12 일터

l일터l ․ 15

▲ 눈 내리는 날 집배원 노동자, 사진=참세상

나는 불규칙노동을 하고 있다. 집배원이 일하는 시기를 비수기, 폭주기, 특별기로 나눌 수 있

는데, 평상시인 비수기 노동시간은 주당 58시간이지만 배달물량이 폭증하는 폭주기에는 70시

간, 설·추석 명절이나 김장철 등 배달물량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특별기에는 86시간까지 주당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아픔과 죽음의 문턱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집배원들연구보고서에서 밝혀진 집배원의 건강·안전 실태는 매우 충격적이다. 뇌심혈관계질환 위

험정도, 근골격계질환 실태, 탈진증후군 위험 정도, 사고 및 질병 실태 등 조사한 거의 모든

항목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배원노동자의 90% 정도는 1년 중 5개월간 뇌심혈관계질환의 높은 위험을 안고 배달업

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절반은 1년 내내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

다. 법률적 한계선인 ‘주 60시간 이상’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의 집배원이 폭주기

및 특별기에 주 6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으며, 비수기에도 절반가량의 집배원은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다.

근골격계질환은 집배원노동자들이 특히 심각하게 앓고 있는 건강문제다. 조사대상의 43%

가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으며, 한 개 이상의 부위에서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은 75%인 것으로 나타나 집배원의 대부분이 근골격계질환 문제를 겪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났다. 집배원노동자들은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위에서 가장 높은

근골격계증상 호소율을 나타내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의 가장 큰 원인인 장시

간·고강도노동에 대한 해결방안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심층면접 결과

많은 집배원이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

다.

척추질환 및 관절염 등의 근골격계질

환, 위장질환, 고혈압, 고지혈증, 하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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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통권 119 2013.12

맥류 등 각종 질환 역시 집배원을 괴롭히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보다 3.7배 많은 노동재해,

50%에 달하는 높은 사고 경험률 역시 심각한 문제다.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없어야 한다집배원노동자의 재해가 늘어나는 겨울철, 그리고 설·추석 등 특별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망 재해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정본부는

‘인력 증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하겠다’는 견해를 밝혀왔고, 우정노조는 ‘투쟁을 통해 집배원의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껏 우정본부와 우정노조의 말들은 허공으로 흩

어져왔다.

집배원 현장조직인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는 당장 다가오는 겨울부터

▲즉각적인 인력충원, ▲일일 택배물량 개수 제한, ▲일몰 후 배달 금지, ▲영하 10도/폭설 등

기상악화 시 배달 중단 등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시행을 우정본부에 요구했다.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유가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우정사업본

부의 입장과 개선책 마련, △노동시간·노동강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 등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해결 방안은 명확하다. 이제는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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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한노보연 최민

사진 _ Facebook 페이지 [이어붙이는 농성장] 뜬구름 님

사람들이 연대의 바늘을 들었답니다. 강정의 돌, 나무, 강정천의 다리를 알록달록 감싸기 위한 천을 짜고 깁고 떠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 코는 석 자이지만, 강정에 연대하는 그물코가 되자는 <강정의 코> 행동입니다.

한노보연에서도 <강정의 코> 행동에 함께 했습니다. 코바늘 뜨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하나 코를 짓고, 실을 연결하고 머리를 맞대 편물을 완성했습니다. 이 연대의 그물코가 강정 뿐 아니라, 춥고 외로운 방방곡곡 투쟁 현장을 덮어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일터

* 사진을 허락해주신 뜬구름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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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통권 119 2013.12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Dr. 아이유

A씨는 과거 40년 전부터 20년 이상 외국선박에서 선원으로 근무하고 폐암을 진단받은 후

산재요양 신청을 하였다. 다행히도 A씨는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한 뒤 재발이 없어 건강하

게 지내고 있었다.

A씨는 20년 이상 기관사로 근무하며 선박 내 기관실에서 매일 생활하였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기관실에 있는 각종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폐쇄된 기관실

에 있는 각종 배관의 보온재를 뜯고 다시 감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온재에 함유된 석면에 계

속 노출되었다. 기관사 일을 그만둔 후 폐암이 진단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공

급하는 장치를 만들고 설치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에는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된 적은 없

었다.

A씨도 자신의 폐암이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되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선원법에 따라 해양항만청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해양항만청은 폐암이 발생

한 지 3년 뒤에 신청하였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조차도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A씨에게 과거

수행하였던 일(기관사)로 인해 발생한 폐암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은 맞으나, 선원으로 근무

하였기 때문에 선원법이 적용되어야 하고, 해당 선박은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이 아니므로 근로

복지공단에 신청하는 산재 보상은 인정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였다.

“해양항만청에서도 인정을 못 해주겠다 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산재가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합니까?”

나는 석면피해구제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통지서를 가지고

한국환경공단에 신청하면 석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보상 금액은 산재보상에

비해 적다”고 이야기하였다. A씨는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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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19

근로자가 산재를 당했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로는 민법의 손해배상청구권과 근로기준

법의 재해보상청구권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

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을 비롯하여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선원법,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 주택법, 문화재보호법 등에 따른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가 있다.

A씨의 폐암은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산재법으로 보상받기는 어

려웠고 선원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해양항만청에서는 폐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산재신청 자체가 안 된다고 하였다. 산재법에서는 재해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이후에 소멸하기 때문에 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재해 사실을 인지한 것은

산재신청 바로 전이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선원법의 적용은 그렇지 않

았다. A씨에게는 우선 석면피해구제법으로 조금이나마 피해보상을 받으시고 선원법으로 보상

받으시려면 직업성 암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낼 수 있는 대학병원의 교수를 소개해 드릴테니

나머지 과정은 노무사나 변호사를 찾아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폐암 환자다. 폐암을 진단받을 당시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고 항암치료까지 받으면

서 현재까지는 별 일 없을지 모르나, 언제든지 재발할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전이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폐암이 악화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선원법에 따른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하거나, 선박회사를 상

대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재해보상청구권을 제기하는 것이다. 만약 승소한다 해도 이 분이 그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A씨의 폐암은 명백한 업무상 질병이다. 그러나 산재법에 따른 보상도, 선원법에 따른 보

상도 되지 않았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피해보상을 신청하여도 환경

적 석면피해가 아니라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폐암이라는 이유로 석면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A씨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A씨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소송하길 바란다. 앞으로도 폐암과 악성중피종이 발생한

많은 선원이 선원법에 따른 산재보상을 계속 신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성 암임에도 불구

하고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받지 않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

애야 하지 않을까? A씨와 같은 노동자가 여기저기 산재보상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런 일도 없애야 할 것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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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통권 119 2013.12

연구 주제 건수

근골 30

스트레스, 정신건강 10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 9

교대제, 노동시간 6

노동강도 4

기타 3

기타; 지역실태, 1인승무대안, 산재요양복귀실태

2008,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개최된 현

장연구 나눔마당은 10주년을 맞은 연구소가

그간의 현장연구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현장연구를 계속해나갈지 짚어

보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연구소가 많은 역

량을 투여했던 노동시간센터(준)의 주간연속

2교대제 변화 전후 비교 연구를 비롯하여

2013년 한노보연이 진행했던 연구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발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현장연구 나눔마당 1부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발표

및 토론 내용과 2, 3부에서 공유한 다양한 연구 사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특집1]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한노보연 공유정옥

1. 2003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구개요

Page 21: 2013 12 일터

l일터l ․ 21

업종 건수 설명

금속 35 자동차 및 부품, 조선, 철강, 화학소재

궤도 7 철도, 지하철(도철, 부산)

공공운수 6 공공전반,발전,우편,학교급식,버스

사무서비스 5 오픈에스이,사회보험,증권,농협,손해보험

병원 3 강원대, 고려대

기타 3 비정규실태,요양실태,경기중부지역

제약 1

특고 1 학습지

화섬 1 풀무원

○ 주제별로는 근골격계 질환이 압도적

○ 다양한 업종의 직무 스트레스 조사

○ 교대제와 노동시간 연구

○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에 대한 조사

2. 평가의 틀1) 연구의 목표10년을 관통하는 우리의 연구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연구는 노동자의 건강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권을 매개로 한 노동자 운동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떤 배경에서 시작한 사업이건 이를 통해 현장과 연구소 양쪽 주체의 운동적 성

장을 목표로 했으며, 현장 노동자들을 조사와 연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연구 과정과

결과에 참여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2) 연구의 기풍이런 목표 설정을 통해 연구소는 독특한 기풍을 만들어왔다.

○ 주체의 중요성 ; 연구 사업을 매개로 만나는 현장과 연구소의 담당자들은 실무를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운동적인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각자의 운동적 역량을 강화하고자

Page 22: 2013 12 일터

22 ․ 통권 119 2013.12

했다.

○ 내용과 표현 ; 연구의 내용과 보고서, 선전물 등에는 각 연구의 소재나 주제에 국

한하지 않고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담아내려 했다.

○ 지속성과 일상성 ; 일회성 조사연구가 아니라 연구를 매개로 한 지속적이고 일상적

인 현장 활동을 만드는 데 비중을 두었다.

3. 평가1) 한노보연의 연구는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가부족하나 진행 중이다. 혹은 진행 중이나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최근 들어 연구의 배

경과 취지, 그리고 이후 성과와 과제에 대한 공유가 연구소 안팎으로 점차 얇아질 뿐 아

니라 그 고민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연구소의 운동적 전문성은 충분한가연구소 초기에는 근골격계 투쟁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과 전문주의의 경계를 긋고

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자동으로 전문주의의 실천적 극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

니다. 전문주의를 지양한다는 선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전문주의 위험을 감지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결코 지양 자체가 완결성을 가질 수는 없다.

한편 연구소가 목표로 한 ‘전문성’은 과연 충분했는가. 연구를 통한 운동을 펼치는데

크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정세에 대한 진단이나 현장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 혹은 그런 진단과 판단에 대한 조직적 공유 수준은 아직 충분치 않다.

3) 일상성과 연속성은 얼마나 견지했는가연구소가 일상적 현장 투쟁과 조직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식을 넘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현했느냐는 문제다. 근골격계 투쟁의 경우 유해요인조사 및 근골투쟁과 현장

개선의 로드맵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장을 개선한 사업장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연구소의 로드맵에 핵심으로 담긴 내용(구조조정에 맞선 노동강도저하투쟁; 1%

실천단 조직, 현장의 요구 조직, 투쟁을 통한 개선, 이 과정을 통한 일상 현장활동의 재

강화와 조직화)은 상당히 이상적인 것이며 지속해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또한, 현장 일상활동의 강화가 저절로 작업장에서의 통제권에 대한 지향으로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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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장활동과 노동운동 주체를 전체적으로 진단하면서 계속 새로운 일상 활동의 시도를

의식적으로 펼치고 태세를 갖추지 않는다면 일상성에 대한 강조는 빈말에 불과하다.

4) 사업 주체에 따른 차이는 무엇이 문제인가연구 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현장 주체가 개인이냐 조직이냐, 조합 내에서 결정단위냐

실무단위냐, 지역이나 조직적으로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연구 사업의 목표 수

립과 달성에 차이가 크다. 연구소 내부 주체의 역할과 위상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하

지만 개인의 실력과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5) 운동적 목표에 문제는 없는가연구 내용과 결과를 현장 안에서 일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나치게 국한되어 중

요한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소통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가? 연구소는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는 ‘깃발’을 만드는 것보다 그 깃발을 쥐고 흔들 ‘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연구소는 연구 내용을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 정책 제도 개선으로 나아

가도록 하는 활동에 집중하지 못 했다. 앞으로 우리가 연구를 통해 함께 만드는 이데올

로기를 대중화하는데 힘을 좀 더 쏟아야 한다.

현장 운동이 가능한 주체들을 만나느라 주로 조직 노동자들을 만나온 것은 아닐까? 조

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면 이런 현장 연구는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막연한 방향으로서

가 아니라 과연 연구소가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

이며 어떻게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보고 꾸준히 시도해 보아야 한다.

6) 지금까지의 목표 설정은 이후 10년을 내다볼 때도 여전히 유효한가이에 답하기 위한 정세 토론이 부족하다. 기성 활동가들의 경우 그런 고민과 토론이

어느 정도 연속됐지만, 신규 활동가들의 경우 그보다 긴장이 적은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

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때,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냐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조

직적인 토론과 시행착오의 공동 경험을 얼마나 견지하느냐가 아닐까 한다.

이런 토론 속에, 1년 뒤의 현장성과 10년 뒤의 현장성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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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향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의 내용,

방식, 주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 토론을 안에서만 나누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내어놓고 평가받기 위해 글쓰기와 모여서 떠들기에 한층 힘을 쏟아야 한다.

4. 제언1) 전망을 세우는 주제10년 뒤를 의식적으로 내다보면서 문제 인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10년 전의 현장성이

지금의 현장성과 다르듯이, 10년 뒤의 현장성도 지금과 매우 달라질 것이다. 제조업 공동

화, 고령화 사회와 같은 말들은 이미 현실에 바짝 다가와 있다. 지금 이기기 위해 무엇

을 할 것인가 질문하는 것만큼이나, 나중에 이기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

어야 한다. 우리 운동에 필요한 연구는 과연 무엇인지, 세상과 운동이 요구하는 연구 과

제는 무엇인지 찾는 데 힘을 쏟자.

2) 사회화를 넘어선 사회화연구소는 현장 연구의 결과를 해당 현장에 알리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지만, 사업

장 경계 바깥으로의 사회화는 상당히 빈약했다.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알리는

연구 활동은 사회화 기획을 포함해야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해 온 사회화란 주로 현장투쟁 조직을 통한 사회화였다. 앞으로는 노동의 이데

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무슨 연구를 해야 이놈의 자본주의를 이겨 먹을 수 있

는지”를 찾는 것.

3) 새로운 운동주체 재생산새로운 연구 주체와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의식적인 기획을 통해 새로운 운동주체들을

찾고 조직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장 연구의 역동성은 어느 시대, 어느 업종, 어느

환경이건, 그 속에서 운동하는 주체들에 의해 구현되므로.

※ 2013 현장연구 나눔마당 1부 발제문 중 발췌하였습니다. 전문은 한노보연 홈페이지

www.kilsh.or.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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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앞으로의 10년, 현장성과 계급성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김인아 (한노보연 회원, 연세대 보건대학원) : 연구소의 십 년 활동은 크게 세 가지

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근골투쟁이다. 처음으로 노동보건 문제를 운동의 도구로 사용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 게 우리다. 둘째는 교대제와 노동시간 문제 제기다. 자본이

어떻게 가치를 만드느냐,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노동자의 몸과 건강을 기반으로

문제 제기했다. 셋째로 2007년 이후 직업성 암 투쟁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현장의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장, 운동,

활동가는 그때와 다르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현장성, 계급성을 가져야 하나?

처음 시작할 때는 연구소가 현장을 읽고 현장의 조직과 소통하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계급성 측면에서 우리는 그동

안 중요한 이슈를 던져왔다. 이제는 그다음을 준비할 때다. 직업성 암, 정신질환과 같은

이슈를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올림하면서 만나게 된 여성노동자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현장을 만들기 위한 주제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의 전문성은 현장

을 잘 읽어내는 능력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는 걸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히 보고, 앞으로의 현장성과

계급성을 고민하자.

이기만 (한노보연 회원, 두원정공지회) : 한노보연을 2002년 8월에 처음 만났다. 근

골격계 투쟁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환자 만들고 요양 보내는 것까지만 할 거면 차라리

투쟁하지 마라.’고 했다. 노동강도 저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태도에 동의

가 됐고, 21명의 요양자를 찾아내 투쟁을 시작했다. 이 환자들을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며, 6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교육했다. 교육 내용은 다 신자유주의였다. 교육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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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왜 자기가 아팠는지 알고, 이 투쟁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115개 현장 개선안을 만들면서 노동강도를 낮추는 투쟁을 했다. 이때부터 라인별

로 1명씩 실천단을 구성해서 지금까지 주 2시간씩 활동하고 있다. 실천단 활동했던 사람

들이 두원 핵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3년에 걸쳐 전면적으로 현장을 개선했다. 그때도 한노보연이 분명한 관점을 갖고 현장

을 설득했던 게 중요했다.

2002년 집행부 처음 시작할 때, 자본이 ‘두원정공은 이제 대안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였고, 노동강도 저하에서 대안을 찾았다. 거기서

출발해서 주간연속 2교대까지 왔다. 그 방향에서 두원정공이 사는 방식, 노동자들이 사는

방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일을 한노보연이 같이 해 왔다.

김재광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지난 10년 간 연구를 했던 이유는 한결같다. 우

리의 연구는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수단이다. 연구가 현실을 폭로하고, 현실

을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계급적 관점의 대안과 해결을 얘기하지 않으면 한노보연

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사업장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힘을 많이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것일 뿐 연구 사업의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사업장이 요구하는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태도는 10년 전 두원정공에

가서 우리가 보였던, ‘투쟁과 연구는 이렇게 돼야 한다.’고 설득하는 태도여야 한다. 동시

에, 우리 스스로 ‘이기기 위한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우리

가 연구를 제안하고 설득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연구소 성원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사와 경험을 전달,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보고서와 같은 자료를 남겨야 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을 남기고, 그 과

정에서 조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자리가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이 되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송홍석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근골 투쟁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이바지했듯,

건강권 운동으로 우리가 노동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조직노동자

들을 주로 바라보고 연구를 해 오지 않았나 하는 평가를 들으며, 연구소가 조직된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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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직 운동과 어떤 연구나 활동 계획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로 조

직된 비정규 운동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한편, 현장의 일상 안전보건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안하고, 이를 실제 함께 해

보고 그걸 평가하는 등 실질적인 일상 사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두원정공에서

요양자들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교육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처럼 초기에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이런 부분이 많이 약화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특집3]

올해의 현장 연구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2부>에서는 연구소 내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 연구진이 수행한 <노동시간 연

구> 결과를 「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 「주간연속2교대 변화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발표했다. <3부: 올해의 현장> 시간에는 3

개 사업장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부 발제의 대상 사업장은 각기 다르나 모

두 근골격계 질환을 주요 골자로 한 연구였다. 근골격계 질환 투쟁이 10년이 된 지금,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일상에 큰 변화 가져와

노동시간 연구는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팀이 직업환경의학회의 지원을

받아 착수한 연구 사업이다.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공장인 ‘두원정공’이 2010년 주간연

속2교대제로 전환되며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도 달라졌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몸과

생활로 느낀 변화를 자세히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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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에서는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

제 전환 이전과 이후, 노동 강도, 직무스트레스, 음주와 흡연 등 건강 행동, 근골격계 증

상 여부, 수면 건강에 대해 응답한 설문 결과를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2009년과

2012년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도 비교하여 고혈압이나 비만도, 당뇨 등 뇌심혈관계 지표

상의 변화도 살펴보았다. 한편, 이 연구에서 주간 근무자와 교대제 근무자로 따로 나누어

비교·분석하였다. 주간연속2교대로의 전환은 계속 주간 근무를 한 노동자에게는 노동시

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주었으며, 주야 맞교대를 했었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동시간

감소 뿐 아니라 야간 노동하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더 많은 건강상의 이점을 가져오는 것

을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발제를 맡은 이혜은 연구원(한노보연 회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교대제 전환

이후 노동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건강 행동 중 금주와 운동 여부가 개선되었으며,

특히 수면의 경우 교대군에서 야간근무 시 수면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

나 한편, “직무 스트레스 요인 중 직무 불안정 수치는 상당히 높아졌고 이는 교대군에서

증가 폭이 특히 심하다”고 지적했다.

근골격계 증상과 뇌심혈관계 지표는 이전보다 악화되었지만,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나이

가 많아진 것을 고려하였을 때 그 증가 폭이 매우 적은 것으로 이 또한 매우 의미있는

결과였다.

이어 김보성 연구원(한노보연 회원·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이 「주간연속2교대 변화

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3無원칙’을 고수하며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두원정공의 사례는 작업장의 노동시간 길이와 배치의 전변을 통

해 한국 자동차 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및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

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물량 확보가

관건인 자동차 산업에서 그간 철저히

‘일 중심’으로만 작업시간을 짜 왔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은 육체

적·정신적 한계에 다다랐으며, 그들의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이 파괴됐다. 하지

만 두원정공의 사례를 통해, 처음 도

입 당시에는 임금과 고용에 대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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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의 단축이 가정에서의 관계 회복, 여가시간의 적

극적 활용 등 결과적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이는

두원정공이라는 개별사업장이 교대제의 전환을 꾀하면서도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

간 연장 없는, 임금삭감 없는’ 3無원칙을 고수한 특별한 사업장이기에 가능한 결과일 수

있다는 연구의 한계점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2부 전체토론 시간에 한노보연 공유정옥 회원은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였다가 노동

자들의 요구로 다시 8시간으로 연장한 미국 캘로그社의 사례를 들어 현재 자동차 대공장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노동시간 단축 흐름이 가져올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지적했다. 노동자의 계급연대 의식은 약화되고 왜곡된 가족주의와 소비주의로 경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재광 회원은, 이와 같은 조합원들의 일상생활

양상의 변화에 따라 조합원들의 활동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

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 어떤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조직 노동운동과 함께한 올해의 현장연구

3부의 첫 번째 발제는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실태와 경험」이라는 주제로 2003년

부터 두원정공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이다.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부터 재활과 복귀의 과

정을 거치며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산재요양 및 재활의 실효성을 되묻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발제를 맡은 최민 회원(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든든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산재요양 후의 ’낙인효과‘, 즉

꾀병환자로 찍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것이 요양기간 중 그리고 현장 복귀

후에도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과를 전했다. 또한 “처음에는 되도록

길게 쉬기를 원하나, 막상 요양기간에 치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몸이 완전히 회복되

지 않았는데도 ’차라리 빨리 복귀하는 게 낫다‘는 식의 모순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

다”고 말했다. 이에 한노보연 김정수 소장은 “책임지고 제대로 치료를 맡아주는 의료인.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하고 부실한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모범사례가

될 만한 의료인을 모으고 기관을 설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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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은 “요즘 잘 정착되고 있는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같은 좋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

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는 「전북버스 운전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수행한 강문식 연구원

(한노보연 회원,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이 맡았다. 이 연구는 복수노조 체제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노동조건,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

의 5개 시내버스 지회 소속 노동자 101명을 대상으로 했다. 실태조사 결과, 전북버스 운

전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8시간 근무, 빠듯한 운행일정과 부족한 휴식시간이라는 조건

속에 초고강도 운전노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

나 조합원 대부분이 고도의 피로군에 속했다. 그 뿐만 아니라 버스 노동자를 무시하는

관리자 및 승객들의 의식과 저임금, 상시적 임금체납 문제와 같은 상황이 겹쳐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강 연구원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

선하기 위한 행정적 개입이 필요하고 그러할 때에 모든 승객을 위한 안전성과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3부 마지막으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함께 진행한 「경희대 청소용역 노동자 근골

격계 부담작업 유해요인 조사」를 발표했다. 공공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 “⓵생활임금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⓶고용 및 노동조건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⓷노동안전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⓸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대학의 책임 ⓹노동인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⓺원청-노

동조합 간의 노사협의회 구성”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의 한 방편으로 연구사업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고령의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진 경희대 분회는 26의 진찰결과 정밀검

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사람은 2명,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수도

9명이나 나왔다. 조합원들로 하여금 개선되어야 할 작업조건이나 업무가 힘든 정도, 근골

증상 여부 및 심각성 정도 등에 대해 물었다. 발제자 김형렬 연구원은 경희대 분회 조합

원들이 연구팀에 의지하지 않고, 아주

적극적인 연구의 주체가 되었음을 강

조하였다. 근골격계 부담작업 평가부

터 작업환경 개선이나 예방 및 관리

대안 짜기까지 조합원들이 연구진으로

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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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에서 기본적으로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사업장과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상의 문제를 포함, 전체 노동권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원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희대 백영란 분회

장은 현장연구 나눔마당에서 소개된 모든 연구가 흥미로웠지만,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연

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고령노동자뿐만 아니라 젊은 여

성노동자의 건강에도 큰 문제를 초래한다며, 자신 딸의 이야기를 예로 들다가 눈시울을

적셔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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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영업과 실적의 현장에서‘사람’을 외치다!

한노보연 정하나

외국계 제약사에 근무하는 김희철 씨와 원래는 월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병원에 환

자가 몰려 의사가 바쁜 월요일이 제약사 영업사원에게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간이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인터뷰 당일 아침, 시간을 변경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영업 업무의

특성상 일정표가 매우 유동적이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하루 거래처 방문횟수 (콜수)를 무리

하게 책정, 늘 쫓기듯 하루를 보내는 제약영업 노동자에게 ‘9시부터 18시 근무시간’ 중에 업

무 이외의 약속을 잡아 그걸 우선으로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편 약속을 잡기 전

“12월은 영업직 특성상 연말 접대와 송년회 일정이 많은 달이라 시간 내는 게 빠듯할 것이

다”라는 언지를 들은 바 있어, 인터뷰 요청을 한 것 자체가 죄송하기도 했다.

결국, 수요일 서울 대형병원 바로 코앞에 위치한 김희철 씨의 회사에서 만났다. 30대 초

반,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는 제약사 영업직 4년 차 대리였다. 대학 졸업 후, ‘무슨 일을 해

도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 것은 기본이 되니 젊을 때 배우는 자세로 도전해 보라’는 주변

의 조언도 있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영업직으로만 구직활동을 했다

고 한다. 국내 제약사 영업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2년 차 때 소속 부서가 외

국계 회사로 인수합병 되면서 현재 회사로 옮겨왔다.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이제는 ‘극복했다’기 보다는…. 아마 인이 박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영업직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감정노동이 심하니까요. 성격이 원래 내성

적이다 보니 특히 초반에 적응하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지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였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세일즈

쪽으로 취업하려고 했었던 건데, 막상 부딪혀 보니까 현실은 많이 달랐던 거 같아요. 이 일

을 하면서 성격을 바꾼다거나 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거였지요. 오히려 성격을 망치

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세일즈라는 것이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직원 성격이 내향성이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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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이냐에 좌우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 맞는 고객을 만났느냐가 관건인데, 여러 다양

한 성향의 사람과의 만남에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순발력 있게 잘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내근직이랑 다르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고객마다 약속을 잡고 각각의 니즈(needs)를 파악해서 충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스케쥴 관리를 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고요.

저는 고객들에게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걸로 어필하는 걸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

다. 그럴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능력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

각하는 저의 전략은 ‘약속을 잘 지키자’입니다.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경쟁력이 없으니까, 그럼 신뢰라도 잃지 말자라는 주의에요. 제가 일할 때 하나의 약속

이기도 하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도 생각됩니다. 고객이 어떤 물건을 어느

시일까지 가져다 달라고 하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뢰를 쌓아

나가는 거지요.

갑과 을, 비즈니스로 만나는 관계의 한계

고객과의 친분을 잘 맺어 실적으로 연결시키는 직원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은 아무래도

빠르게 거래처를 확장하는 것 같긴 합니다. 완전히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만, 고객들도 어차

피 사람이니 그래도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게 있거든요. 약품 단가를 중요시하는 분들은 사

실 최저가격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이하로 거래를 하려면 저희가 회사에 따로

보고를 하고 결제를 받아야 하거든요. 그런 건 아무래도 회사는 싫어하지요. 그리고 장기적

으로 봤을 때 단가만 중요시하는 고객은 ‘내 고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사에서

다른 가격을 제시했을 때 바로 옮겨가실 분이니까요. 반면 인간관계를 중요시 하는 고객 같

은 경우 잘만 관리하면 아무래도 오래갑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라 하더라도 고객과의 만남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하고요. 어쨌든 저희는 어디까지나 을이거든요, (의사)선생님들은 갑이고. 예컨대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 표현이나 양심의 자유가 저희에겐 없습니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 객관

적으로 좋은 약품이 나와 제안을 해도 의사선생님들은 병원이나 자신의 경제 사정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약이라며 폄하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감정노동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고객의 말에 무조건 동의를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너무 편해지면 선생님들이 무리한 부탁을 하실 경우가 종종 있는데, “회사 정책상

불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난감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선배들 늘 하는

말씀이 “고객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다른 경쟁사에 비교해서는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 하지

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기준 없는 애매한 부

분을 잘 캐치(catch)해서 ‘저 사람과는 여기까지, 이 사람은 저기까지 해야겠다’, 잘 파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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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통권 119 2013.12

고객 관리하는 게 능력이겠지요.

외국계 다국적 제약사에서 노동조합의 존재 의미

저는 사실은 ‘이 회사에서 어디까지 올라가야겠다,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라는 식의 계획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경쟁하는 시스템….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가뜩이나 요즘

에 수명은 연장되는데 비해 정년은 고정되어 있고, 그럼 위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

람은 정말 몇 명의 소수로 한정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대학

다녔을 때 회사라는 데가 특히 영업이라는 데가 이렇게 첨예하게 경쟁해야 하는 곳인 줄 알

았다면 안 왔을 거 같아요.

국내 제약사 다니던 초반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는 노조가 없어서 더 그랬던 거

같습니다. 회사에 휘둘린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노조도 없으니 보호받는다는 느낌도 못 받았

거든요. 이쪽 회사로 옮기고 지금 노조 위원장님 만나서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처

음 알게 되었는데, 예전 회사에 있을 때와 극명하게 비교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원들이

그렇잖아요. 위에서 지시를 내리면 속으로 불평불만은 해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들 하

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조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법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

도록 보장되어 있고, 그렇게 했을 때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거였어요. 노조가 든든하

게 있으니까 방법도 알려주고, 또 기회도 만들고. 노조의 필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는

데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저 뿐만 아니라 같이 옮겨 온 직원들 모두 공통으로 느끼고 있습

니다.

한편 그런 생각도 하지요. 예전(국내 제약사 있었을 때)에 너무 바보 같았구나 라고요. 입

사 지원하던 시절, 사실 다른 회사도 합격했는데 굳이 그 국내 제약사를 택했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습니다. 찾아본 자료에서는 이렇게 나와 있었거든요. ‘노사분규 없는 기업’이라고...

노조가 없으니 당연할 수밖에요. 실제로 일할 당시, 리베이트 같은 부분에서 직원들이 얼마

나 힘들게 메꾸고 고생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깨끗한 기업의 이미지를 계

속 표방하고자 직원들을 기만하고 보호해 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회사에 많이 실망했었습

니다.

지금 저희 회사 역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좋게 보지는 않는 것 같기는 합니다. 노동

강도나 근로조건은 국내사보다 좀 나은 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외국계 다국적 제약사

의 경우 구조조정도 자주하고, 본사가 외국에 있는 만큼 언제 갑자기 한국에서 철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직원들을 마치 다 쓴 소모품처럼 취급할 것입니다. 노조의 존재가 더 절실

하지요. 저는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없지만, 대신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법 같은 것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제가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잘 알려주고 싶습니다. 모르면 당하잖아

요. 그나마 덜 노예처럼 살기 위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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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값이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갑의 횡포’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는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정도가 유독 심한 것

같더라고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말입니다. 저처럼 제약산업에서 일하는 사람 외에도 세일

즈하는 사람들은 다들 느끼시리라 봅니다. 근데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특성인 것

같기도 해요. ‘정’이 많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더 그런 거 같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의사 분들을 고객으로 만나는데, 가끔 그런 분들이 계세요. 약품

가격이나 프로모션 등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해서 정중히 거절했는데 거기에다 대고 “야 내

가 없으면 너희 어떻게 먹고사는데 이렇게 나오는 거야?” 하시는 거죠. 담당 직원을 자기 발

밑에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입사지원을 했고, 그래서 채용을 했으면 회사는 거기에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데, 회사는 외면하거나 징계

하는 데에만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너 아니어도 다른 사람 많아”라는 계산이

있는 거겠지요.

저는 사람값이 더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

을 소모품 취급하고 막 갖다 쓸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인데, 이러면 안 되지 않겠습

니까?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

서비스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사람을 만나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영업은 이 시

대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었던

감정이나 식사하고 차 마시기, 인사하기, 유대를 돈독히 하며 친구 맺기 같은 것이 돈을 버

는 ‘수단’으로 공식 활용되고 있다. 인간성이 도구화 되어 영업의 기술로 매뉴얼화 되고, 이

도구를 어떻게 잘 쓰느냐 여부로 첨예한 경쟁세계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계산되는 세계에도 여전히 사람

이 있다. 김희철 씨와 같은 영업직 노동자들이 바로 비정한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온기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 첨예한 대립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두 가지 다른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희철 씨와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영업생활 중 가장 감동하였을 때에 대한 것이었다.

“의사선생님들이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시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시거나,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건네주실 때요.” 너무나 소박해 오히려 신선했던 그의 대답. 뭔가 거창하고 극적인 일

화를 기대하던 나도 ‘상품화된 인간성’에 푹 젖어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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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산다”, 살기 위해 “산다”- KT 노동자들의 이야기, 다큐《산다》를 보고

한노보연 정하나

지난 6일, 밀양에서 KT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싸우시던 유한숙 할아버지가 음독 자결

하셨다. ‘거대기업 KT vs 시골 할매, 할배’의 이 싸움에서 벌써 두 번째 죽음이다.

밀양에서 KT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KT 안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

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KT 및 협력사 직원 중 2006년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245명

이 사망했다(돌연사, 암, 자살로 인한 사망 포함). 2013년에는 22명이 사망했고 그중 8명이

자살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산다》는 이처럼 안팎으로 죽음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죽음

의 기업 KT’,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산다》의 주인공들은 모두 ‘CP퇴출 프로그램’*에서 나쁜 평가를 받아 연고 없는 먼 지역

으로 전보발령을 받은 ‘KT새노조’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회사에 찍혀 가족과 동료에게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귀양살이하듯 지내고 있었다.

IMF 시기를 지나 2002년 한전이 KT로 개명하며 완전히 민영화되던 시기, 그들은 한해 수

백·수천 명씩 직원들을 벼 베듯 잘라내는 회사와 이런 회사의 결정에 거수기 역할만 하는

어용노조를 향해 강력하게 문제

를 제기하며 민주노조 운동을 펼

쳤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사는 게

힘들었지만, 신념과 확신 아래 뜻

을 함께하는 동료, 동지들이 옆에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그들에게

‘F등급’을 매긴 지금은 전국팔도

각지로 흩어져 가족들과도 일주

일에 한 번 겨우 보는 처지가 되

어 버렸다. 발령받아 새로 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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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는 직장 내 왕따를 당한다. 전출 전부터 “폭력적이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몇 달 만에 지점에서 친하게 왕래하는 동료가 생기는 것도 잠시, 상

사들이 친해진 그이를 불러들여 ‘저런 사람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협박한다.

이렇듯, CP 프로그램에 의해 이들은 완벽하게 고립된다. 지방 지점으로 온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회식에 한번 불러주지 않는 동료직원들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노인들만 오는 장

터 국밥집에서 혼자 점심을 때우는 손일곤 씨. 변변한 가구도 없는 휑한 사택에서 그는 침대

머리맡에 “자존감을 높이자”라고 적어 놓았다. 그가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 나가기엔 너무 외

롭고 지쳐 보여 가슴이 저릿해 왔다. 노화도라는 외딴 섬에 뚝 떨어져 5년 동안 가족과 떨어

져 살게 된 서기봉 씨는 회사 때문에 힘들어도 아내에게마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어쩌다 술기운에 “너무 힘들다”고 넋두리할 때가 있지만, 아침엔 다시 여느 때처럼 입을

다문다.

국정감사에서 KT 이석채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다 실패한 은수미 의원이 “KT의 조기

퇴직 프로그램(ERP)은 단순히 인력감축 시스템이 아니라 ‘인력 학대해고’ 시스템”이라고 표현

했다. 직무에서나 사회적 관계에서나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여 고립시키는데, 이것이

‘학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013년 4월 25일, 대법원은 KT의 ERP 인사시스템이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노동 관련 판결이 아무리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나도 실효가 없는 경우

가 많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해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입법, 행

정, 사법의 영역까지도 넘나드는 ‘기업사회(김동춘, 2006)’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도록 투쟁하는 《산다》의 주인공들의 ‘삶’이 눈물겹게 귀하다. KT새노조 위원장

이해관 씨가 자신의 과거 활동을 돌아보며 말했다. “비록 잘 싸웠다거나 이겼다 할 수는 없으

나 물러섬 없이 맞서 싸워왔다.” 낭떠러지로 휘몰아 가는 자본의 태풍에 맞서 오롯이 홀로 버

티고 버텨내는 그 삶이 소중하다. 치열한 싸움을 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길 마음 깊이 응원한다. 일터

* CP 프로그램(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 : 회사에서 창출하는 가치가 받아가는 급여보다 큰 사

람을 A급 직원(AP·A-Player), 두 개가 동등한 사람을 BP, 창출하는 가치보다 급여가 더 큰 사람을

CP로 분류해 관리하는 방식. KT는 CP 프로그램을 회사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내쫓는 도구로, 또 구

조조정을 야금야금 진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2013.08.09. [프레시안] “매년 수십 명 죽는

KT, 이대로 가면 더 많이 죽는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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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부당해고에 맞서 1년째 투쟁하고 있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콜센터 상담원 노동자들입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조합원 유은영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부당해고’

작년 12월 28일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콜센터에서 일했던 14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42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보건복지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회사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의 매뉴얼

을 상시적으로 상담하고 안내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저임금에 과다한 업무로 힘은 들었지만 복지

와 관련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살았다.

정규직 전환 대신 부당해고? 당선 9일 만에 공약파기 박근혜 정권

우리는 해고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차례 요구 끝에 고객 상담부장을 포함한 경영진

에게 “해고의 기준과 근무평점을 공개하고, 업무량이 가장 많은 연말에 대량 해고한 이유가 무엇

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에 돌아온 답변은 “계약해지와 인사권은 경영진의 고유권한이다. 근

무평점도 공개할 수 없다”였다. 박근혜 정권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

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9일 만에 부당해고를 당했다.

‘근로자’로 살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노동자‘의 현실

해고된 42명의 노동자들 중 투쟁의 뜻을 함께 모은 8명은 1인 시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에게 조직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1월 7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에 가입했다. 이

후 정기적인 집회를 시작으로 언론 인터뷰, 국회 방문, 팩스 발송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 했다.더

나아가 출근하는 진영 보건복지부 전 장관의 차량을 막아서고,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차량 앞에

드러누워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리고 현재 투쟁하고 있는 타 사업장의 투쟁에도 연대했다. 해

고자가 되기 전 ‘근로자’로 살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노동자’의 현실이 너무나도 척박하다는 사실

을 알게 되고 가슴이 먹먹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 상시적으로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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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에 맞선

투쟁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 점차 투쟁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이 있

었다. 실업급여가 끝난 다음달인 6월 어

느 날 투쟁하던 8명 중 5명이 투쟁을 포

기했다. 그리고 7월 4일 민주노총 서울본

부는 서울고용노동청의 중재안을 우리에

게 제시했다. 이 중재안은 남은 3명과 투

쟁을 정리했던 5명 모두에게 해당됐다.

내용은 계약기간 1년 보장에 신규채용을 한다는 안이었다. 민주노조보장, 부당해고 사과, 근속보

장, 경력기간 인정, 고용안정 등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는 ‘쓰레기 안’이었다. 투쟁을 이어가

고 있는 3인은 도저히 이 안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투쟁을 정리했던 5명은 생각이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이견을 좁히고자했다. 그런데 5명과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그들을 7월 30일 민

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에서 ‘투쟁지속여부에 관한 조합원 투표’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

다. 당시 연락을 끊었던 5명은 회사와 개별 접촉을 통해 중재안을 받았고 이력서를 제출한 뒤였

다. 이후 회사와 면접을 보고 민주노조 탈퇴를 약속하고 이틀 뒤 8월 1일부로 회사에 복귀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7월 30일 이때 조합의 투표결과는 당연히 3대5로 투쟁

을 접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우리는 계속 투쟁하고 싶었으나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는

투표결과에 따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분회 투쟁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부당해고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것도 서러운데

이와 같은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8월 1일 아침 1인 시위를 했을 때 비로소 알았다. 회사에

복귀한 전 조합원 5명을 위해 경영진에게 인사차 방문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실무자

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가 중부경찰서에 서울일반노조

의 이름으로 접수한 집회신고를 철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는 회

사 앞에 걸려있던 정당의 현수막도 모두 철거해갔다. 그리고 얼마 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앞

으론 분회 명칭 및 유사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관련된 모든 물품도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

였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연대해주시던 동지들도 떠나갔

다. 우리는 투쟁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조합원 모두가 투쟁의 의지가 같을 수 없다. 그

래서 지금도 우리는 회사에 복귀한 전 조합원 5명보다 기만적인 중재안과 투표결과를 이유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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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원의 투쟁 의지를 접으라고 종용하고 강제하고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가 더 야

속하다. ‘민주노조를 표방한 또 다른 권력이 이렇게 노동자를 죽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렇게 힘든 시간이 이어졌고 목에서 피가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다시 힘을 내도록 손을 잡아 일으켜 준 동지들

그러나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의 뜻을 끝까지 지지해주시는 동지들이 있었다. 이분들의

힘과 마음으로 초동모임을 거쳐 우리는 지난 9월 13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상급단체와 함께 투쟁할 때도 이루지 못했던 작은 기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덧 공대위와 함께 복직 투쟁도 1년 차를 맞이한다.

우리 3명은 여전히 해고자다. 사회,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조건에 처해있다. 지금도 민주노총 서

울본부 서울일반노조는 상급단체의 결정을 듣지 않는다는 징계를 내리려고 하면서 갈등을 거듭

겪고 있다. 힘든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강제

로 빼앗긴 나의 일자리를 내 손으로 되찾아오겠다는 요구나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좀 더 나

아가 우리의 투쟁이 정부와 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도록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당

해고 문제가 이 땅에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투쟁하고 있다. 그 길에 우리의 투쟁이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힘들지만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1년을 소수의 조합원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지난 5월 실업급여 마저 끊기면서 재정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8월부터는 상급 단체의 지원도 모두 끊기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공대위를 조직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지키며 투쟁을 이

어나가고 있습니다. 해고자 조합원 3인이 매일 아침 출근투쟁, 중식 피켓시위, 연대투쟁, 매주

1회 집중집회, 그리고 생계투쟁까지 쉴 틈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분회와

공대위는 현장투쟁과 복직투쟁에 좀 더 전력을 쏟기 위해 ‘재정’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

었습니다. 그래서 투쟁기금을 마련하고자 재정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지들의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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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통권 119 2013.12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email protected]

“철도노조 파업은 정당하다! 철도 민영화 중단하라!”

2013년12월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법률, 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철도공사의 ‘불법적인 수서발 KTX법인 출자 의결’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었

다. 철도노조는 12월 9일 전면파업을 예고한 상황으로, 같은 시각 민주노총의 파

업지지 선언과 화물연대의 대체운송 거부 선언 등이 이어졌다. 2009년 11월

말~12월 초 상황이 재연되는 느낌이었다.

법률, 사회단체는 수서발 KTX의 민영화의 불법성에 대하여 1) 철도공사 이사

회의 수서발 KTX 운영회사 출자결의 시 업무상 배임죄 해당 여부, 2)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통한 철도운영의 위법성, 3) 정부가 주장하는 수서발 KTX 운

영회사 주식의 민간매각 제한이 현행법상 가능한지 여부, 4) 수서발 KTX 법인

설립과 한미FTA 문제점, 5) 철도노조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대하여 법률검토 의견

서를 제시하며 문제를 지적하였다. 재미난 것은 철도공사가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철도공사가 직접 법무법인에 의뢰한 의견서에서도 “공

공부문 이외에 주식양도를 금지하는 것은 상법이 허용하는 주식양도 제한 방법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여 무효로 판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서발 KTX 운영사 지분을 당초 30%에서 41%로 늘리기로 했고 정관 변경은 주

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도록 해 코레일이 원하지 않으면 정관 변경은 불가능

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산하 공기업인 철도공사는 지난 4월 작성한

문서에서 제2공사 등 설립 시 중복투자에 따른 국가재정 낭비와 경영개선 지연,

안전성 저하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으나 몇 달 만에 이를 강행하는 것

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결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민영화의 속도가 달라질 뿐

수서발 KTX 법인설립을 할 경우 민영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0년6월 철도공사.경영현황을 살펴보면, 고속여객, 일반여객, 광역전철, 물

류, 특별동차 분야 중 유일하게 고속여객이 2,495억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일반

여객(무궁화, 새마을)과 화물(물류) 부분은 그 공적 기능 수행 때문에 적자를 감

수하면서도 운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일한 흑자를 기록하는 고속여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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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에 대해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별도 설립이 철도공사에 가져다주는 타격이

매우 크다는 점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민영화가 아니라면서 유

일한 흑자 분야를 떼어내 경영악화를 스스로 초래하는 것일까? 도대체 누구에게

그 많은 이익을 돌려주면서 공적 기능을 상실케 하려는 걸까? 현 정부가 민영화

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다는 걸까?

12월9일 철도노조는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노조법에서 필수유지업무를 준수

해야 한다는 제한에 따라 2만 여명의 조합원 중 7,100여 명의 필수유지업무 대상

자를 제외한 13,275명 이 파업 참가 대상자이며 이 중 10,150명(76.5%)가 파업에

참가하였다. 뉴스에서는 필수유지인원에 대한 설명 없이 단지 철도공사의 발표에

따라 37%만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고 거짓 보도를 하고 있다. 12월10일. 이사회

에서 의결을 하였다. 하지만 앞서 법률, 시민단체 법률검토 의견서의 각 사항에

따라 결국 철도공사의 불법적 행위가 밝혀질 것이다.

철도공사는 예견된 대로 파업 돌입과 동시에 194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

소, 고발하였고, 파업참가 조합원 4,356명에 대해 직위해제를 하였으며 12월12일

로 7,608명을 직위해제 하였다. 2006년, 2009년 파업 당시 직위해제 처분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자들이 파업에 참가할 것이 명백하다면 파업기간 동안 업무를 수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고 할 것이어서, 근로자가 장래에 있어서

계속 직무를 담당하게 될 경우 예상되는 업무상의 장애 등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라는 직위해제의 필요성도 없다고 보아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직위

해제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파업 참가자들이 동요하도록 그 가족이 불안

하도록 공포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비열한 작태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정부와 철도공사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어떻게 마무리 될

지 장담할 수 없는 파업이다. 무한궤도를 달려가는 철도파업을 멈출 수 있는 것

은 정부와 철도공사의 태도 변화뿐이다.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한다. 철도노조 파

업은 법률적으로 정당하다. 이 글은 12월12일에 작성했다. 이 글이 실릴 즈음 철

도노조가 승리의 깃발을 치켜들길 희망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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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노보연 신입회원 이태진입니다

한노보연 회원 이태진

예전 건설노조에 있을 때 조합원이 공황장애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질병(당

시엔 너무나 생소했지요) 때문에, 근로복지공단 안산지사 점거농성투쟁도 했

지만 결국 산재 불승인이 된 적이 있습니다. 공단과 대우건설이 증거자료 조

작을 너무 많이 한 상황에서,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며, 6개월

넘게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병증이 심해졌던 동료였는데, 당시 억울함과

고민이 많을 때 지금 소장인 김정수 동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게

인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결국 연구소 회원이 되었네요.

진작부터 푸우씨가 회원들에게 온라인으로 가입인사를 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제가 영 어색하고 게으른 탓에 아직 가입인사를 못 해서, 아마

도 이렇게 일터 지면에 글을 쓰라고 한 것 같네요. ^^;;;

저는 지금 금속노조 대전충

북지부 미조직비정규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주에 내

려온 지 이제 2년이 조금 지났

네요. 사실 청주라는 곳으로

내려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

는데, 이제 완전 적응이 되었네

요.^^ 2년 동안 미조직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공단조직화 사업과 더불

어 투쟁사업장 지원활동을 하

면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지

역에 매우 빨리 적응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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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내 투쟁사업장이 참 많습니다. 8년간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콜텍지회 동지들, “밤에는 잠 좀 자자”라는

요구를 걸고 투쟁하고 현재는 자본이 만든 복수노조에 맞서 투쟁하는 유성지

회 동지들, 그리고 콘티넨탈지회, 쉬전장지회, 엔텍지회 등이 복수노조로 인

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 동지들의 투쟁이 승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최근 들어 고민이 생겼습니다. 장기간 투쟁하는

동지들이 사업장 내에서 매일매일 사측 관리자와 마찰을 빚고, 한때는 형님,

동생으로 지내던 조합원이 자신을 배신하고 자본이 만든 어용노조로 넘어간

것에 대한 배신감 등이 투쟁하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안 좋게 한다는 것입니

다. 이 때문인 우울증 등이 바로 요새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우울증과 심리불안에 대한 조직적 대처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결국

투쟁하는 조합원 각 개인이 이 고통을 개별적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더구

나 정신질환이라는 외부적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질병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

기도 합니다. 우선적으로 치료를 위한 조직적 방안이 구상되어야 하고, 개인

의 지병이 아니라 자본의 노조파괴, 노조탄압으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질병이기에 이에 대한 산재인정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를 위

한 방안 마련도 고민입니다. 투쟁하는 우리 동지들이 고립되지 않고, 외롭지

않기 위한 연구소 회원들의 세심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잔인한 겨울을 만들지

않도록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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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통권 119 2013.12

“2012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를 돌아보며

한노보연 재현

어느덧 올해도 12월이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내 방 책꽂이엔 무려

10권의 <일터>가 꽂혀있다. 올해 3월부터 연구소 상임활동을 시작하면

서, 인연을 맺은 일터. 2003년 창간 준비호부터 시작된 일터 읽기는 현

재 2004년 발간호들 사이에 가 있다. 물론,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잠

깐 멈춰 있지만... 연구소 활동을 하며 맺게 된 일터와의 또 다른 인연

은 <일터>를 기획하고 만드는 선전위원회 활동이다. 담당하는 꼭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매달 꼭지 기획을 내고, 원고를 구성하고, 청탁을

하고, 교정교열을 하고, 마감을 지키도록 해야 하는 등,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운 독자관리 업무도 하고 있다. 바

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독자에게 전화하여 구독료 납부를 요청하는 일

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사실 일이 바쁠 땐 <일터> 이 녀석이

가장 밉기도 하다. 사실 <일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말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요즘은 연말인 만큼 연구소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구소의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들어서 심혈을 기울이며 준비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여러 송년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내년 1

월 <일터> 특집으로 다룰 예정인 2013년 사회를 뜨겁게 달군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종합하고 있다. 송년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투표로 주목할 만한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것인데, 작년 송년회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10대뉴

스를 선정해, 2013년 1월 <일터> 특집을 구성했다.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종합하려고 올해 발간된 10권의 <일터>를 다시보고, 연구소 홈페이지에 스크랩한 기사,

각종 언론사, 노동안전보건단체 홈페이지 등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자료를 정리하며 작년과 조금도 다

르지 않은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작년 뉴스에 사업장 이름만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짧은 경험이지만 이렇게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1. 이윤에 눈이 먼 사업

주의 허술한 안전보건관리, 2. 원청 사업주가 산재사고 책임회피를 위해 위험작업을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떠맡

기는 형태, 3. 근로복지와 노동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 4. 여전히

못되고 어리석은 짓만 골라하며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고집불통의 삼성자본, 5. 사람 잡는 서울도시철도공

사의 1인 승무제로 계속되는 지하철 기관사 노동자의 사망.

한편 이런 암울한 현실이지만 직무스트레스와 정신질환으로 자살한 기관사의 산업재해 인정, 반도체사업장

노동자의 산재인정,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 확대와 20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재개정, 삼성서

비스센터 노조 결성을 비롯하여 다시 도마에 오른 삼성 자본의 반노동자적 행위, 46년만의 현대·기아차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등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노동안전보건뉴스도 많았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연구소 상임 활동가로, <일터>를 만드는 선전위원으로서 조금이나마 더

기여를 하고 싶다. 그래서 내년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정리할 때는 희망차고 밝은 소식만으로 채워졌으면 좋겠

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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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공개사과,

정당한 보상, 노동자 건강권 실현대책을 힘모아 쟁취합시다.

오는 12월 18일부터 반올림은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와 본격적인 교섭을 시작합니다.

2007년 황유미 님의 억울한 죽음과 산재 인정을 위한 투쟁 6년 만의 일입니다. 직업병 피해자 가족

들이 지난 6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을 위해 싸워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6년은 질병과 죽음의 고통 뿐 아니라 삼성의 탄압과 회유까지 견뎌야했던 6년이기도 합니다.

2007년 반올림 발족 당시 삼성전자는 백혈병 피해자가 단 여섯 명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6년이 지

난 지금,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의 백혈병, 암, 희귀질환 피해자 수는 138명이며, 사망자는 56명이

나 됩니다. 더 늦기 전에 삼성전자는 제2, 제3의 황유미를 만들지 않기 위한 재발방지대책과 보상 대

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싸워온 선량한 이

들의 인권을 훼손해온 일들에 대해 공개 사과해야 합니다. 그것이 직업병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는 길입니다.

지금 삼성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직업병 문제 뿐 만이 아닙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해

온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당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노동조합 탄압에 항거하며 자신의 몸을 던진 최종범 열사와 유가족이 이 추운 겨울 노상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에버랜드 노동자들도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온갖 탄압을 받

고 있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우리의 싸움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우리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기업의 책임,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한 똑같은 싸움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한국 사회의 여

론이 삼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도 삼성의 노동인권 실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은 이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열사와 유가족 앞에 사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정당한

교섭 요구에 책임 있게 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피

해 당사자 뿐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자기 일처럼 여기며 연대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섭에

임할 때도 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연대의 정신을 이어, 더 폭넓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입

니다. 당당하게 실천할 것입니다.

공개사과와 보상, 노동건강권 실현대책, 쉽지 않은 의제들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처럼 많은 이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준다면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함께 힘 모아 쟁취합시다!

2013. 12. 9.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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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통권 119 2013.12

◁ 11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셨습니다 ▷강권동 강정주 강충원 고지윤 권기한 김경민 김기헌 김동춘 김병철 김부욱 김선수 김설민 김성균 김송아 김수현 김정신 김정원 김중희 김진철 김태오 김형섭 김혜선 남원철 문제혁 방복현 배정란 변영철 변은영 복진수 삼식이 선종현 손근호 손석기 신용태 신유록 안성민 안태은 양화진 염경석 예병진 우지영 유상철 윤성용 은상준 이명준 이선웅 이승복 이승운 이승주 이영애 이영호 이은주 이이령 이자호 이희영 임승용 임재우 장혜영 전형준 정규전 정병권 정성욱 정은주 정종혁 정현섭 조윤미 조종완 진선우 최무덕 최영철 최원영 최주호 추승현 한경훈 한규권 한윤종 한 진

함승호 홍정연 홍코알라 한노보연후원“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향한 걸음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급논평] 현대제철 당진공장 또다시 사망사고 발생!!비통한 심정으로 현대제철을 규탄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다시 또 산재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과 12년을 제외하더라도 올해만

사망사건이 벌써 4번째다. 5월 10일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10월

추락사 1명, 11월 26일 당진 공장내 현대그린파워 질식사 1명에 이어 벌써 3번째 사망사건이다.

오늘(2일) 15시 53분경 현대제철 당진공장내 철근공장(철근제강부)의 구조물 안전진단을 벌이던 현

대종합설계 소속 노동자 노**(38세)씨가 지붕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함께 작업 중이던 2명은 지금 이

시각 1명은 구조가 완료됐고 1명은 구조 대기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씨는 안전진단 중이던 공장 지붕 상판에 구멍이 뚫리면서 6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보

인다. 오늘은 지난 26일 발생한 가스질식사고와 관련 고용노동부의 특별점검 첫날이었다.

이러한 소식에 우리는 정말이지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당혹스럽고 황망해 할 말이 없을 지

경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이미 죽음의 공장으로 변해버렸다.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은 안

중에도 없는 경영진의 철저한 비윤리성이 공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매번 종합대책을 운운하던 공장은 물론 철저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던 현대제철은 양심이 있다면 대

국민 사과와 함께 누군가는 반드시 법률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공장가동을 중단해서라도 철저

한 재방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고용노동부 또한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적당히 말로 때물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문제는 이제 지역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당국과 현대제철은 또다시 어물

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노동자와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또한 그동안 철저히 싸우지 못해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앞선다. 이제

부터라도 철저히 싸우겠다. 현대제철과 고용노동부에 반드시 그 책임을 묻는 투쟁을 벌이겠다.

2013. 12. 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남지역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