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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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희망 이야기 다시서기 2013 7 ( 월간/ 통권142 ) 사진· 대한성공회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140-801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 14-30 ☎ 02)777-5217 / FAX 02)777-5393 발행인 여재훈(루가)신부 / 편집인 우대경 / 발행일 2013. 7. 5. / 인쇄처 세진인쇄 월간 다시서기 통권 142호 다시서기센터 www.homelesskr.org 새희망고용지원센터 www.newhopekr.org (정기간행물등록 서울 라10956호) 두바퀴희망자전거 www.2bike.co.kr ☎ 02)777-8008 미소꿈터 ☎ 02)3272-7975 마중글 종강파티 성프란시스 인문대학의 색다른 종강 파티 여재훈(루가)신부 다시서기센터 소장 “엄마가 평생 살가운 것이 나의 탄생 을 지켜 주셨기 때문이라면, 내 죽음을 지켜줄 이들이 지금 내 곁의 이웃이라 생각해서 그들을 더 귀하게 대해야 할 거예요.” 성프란시스 대학 9기 1학기 마지막 강 의인 철학과목의 박남희 교수님에 열강 이 강의실을 빼곡히 메운 수강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었다. 올해 성프 란시스 인문학과정의 큰 주제는 ‘행복’,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겐 다소 낯설고 동떨어진 주제처럼 보이지만 교수님들 의 열정적 강의가 수강생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성찰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특별히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교수님은 ‘죽음’이라는 두려운 모티브에 서 관계의 회복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환하여 전달하고있었다. 마치 지난 4 개월간의 수업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다시 복습시키듯이 철학이 공허한 메시 지가 아니라 우리 삶속에 어떻게 녹아 들어가야 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였다. 함께 수업을 들 으며 지난 4개월간 고생한 9기 수강생 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올 2월 26명의 수강생으로 시작되었지 만 입학식 직후 3명이 잠적하고, 인문 학과정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물리적 환경 지원 기대, 주거 및 생활비 등)가 무너지면서 출석이 뜸해진 3~4명을 제 외하고 평균 15~17명 정도의 출석율로 1학기를 마감 할 수 있었다. 마침 오늘 은 종강하는 날이어서 더 많은 인원이 빼곡히 자리를 메웠다. 처음 입학면접 에서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던 김선생님은 이제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작은 체격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신 이선생님은 아직도 무 언가 두려운 눈빛이지만 동료들 사이에 서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 다. 또한 너무 외향적이어서 수업시간 내내 의미없는 질문과 커다란 목소리로 방해 아닌 방해를 했던 정선생님의 목 소리는 많이 잦아들었고, 사람들에게 항상 존재감을 과시하여 모든 일에 나 서던 신선생님은 다소 스스로를 다스리 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로 어색하던 첫 수업과는 달리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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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여러분의 희망을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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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 이야기

다시서기

2013년 7월(월간/통권142호)

사진·

대한성공회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140-801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 14-30 ☎ 02)777-5217 / FAX 02)777-5393

발행인 여재훈(루가)신부 / 편집인 우대경 / 발행일 2013. 7. 5. / 인쇄처 세진인쇄월간 다시서기 통권 142호다시서기센터 www.homelesskr.org 새희망고용지원센터 www.newhopekr.org

(정기간행물등록 서울 라10956호)두바퀴희망자전거 www.2bike.co.kr ☎ 02)777-8008 미소꿈터 ☎ 02)3272-7975

마중글 종강파티

성프란시스 인문대학의

색다른 종강 파티

여재훈(루가)신부다시서기센터 소장

“엄마가 평생 살가운 것이 나의 탄생

을 지켜 주셨기 때문이라면, 내 죽음을

지켜줄 이들이 지금 내 곁의 이웃이라

생각해서 그들을 더 귀하게 대해야 할

거예요.”

성프란시스 대학 9기 1학기 마지막 강

의인 철학과목의 박남희 교수님에 열강

이 강의실을 빼곡히 메운 수강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었다. 올해 성프

란시스 인문학과정의 큰 주제는 ‘행복’,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겐 다소 낯설고

동떨어진 주제처럼 보이지만 교수님들

의 열정적 강의가 수강생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성찰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특별히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교수님은 ‘죽음’이라는 두려운 모티브에

서 관계의 회복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환하여 전달하고있었다. 마치 지난 4

개월간의 수업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다시 복습시키듯이 철학이 공허한 메시

지가 아니라 우리 삶속에 어떻게 녹아

들어가야 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였다. 함께 수업을 들

으며 지난 4개월간 고생한 9기 수강생

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올 2월 26명의 수강생으로 시작되었지

만 입학식 직후 3명이 잠적하고, 인문

학과정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물리적

환경 지원 기대, 주거 및 생활비 등)가

무너지면서 출석이 뜸해진 3~4명을 제

외하고 평균 15~17명 정도의 출석율로

1학기를 마감 할 수 있었다. 마침 오늘

은 종강하는 날이어서 더 많은 인원이

빼곡히 자리를 메웠다. 처음 입학면접

에서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던 김선생님은 이제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작은 체격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신 이선생님은 아직도 무

언가 두려운 눈빛이지만 동료들 사이에

서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

다. 또한 너무 외향적이어서 수업시간

내내 의미없는 질문과 커다란 목소리로

방해 아닌 방해를 했던 정선생님의 목

소리는 많이 잦아들었고, 사람들에게

항상 존재감을 과시하여 모든 일에 나

서던 신선생님은 다소 스스로를 다스리

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로 어색하던 첫 수업과는 달리 안정

Page 2: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3̀

적이고 열정적인 강의 청취 모습이 사

뭇 감동스럽기 까지 했다. 흡사 잘 그

려진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해서 4개월

이라는 시간 동안에 서로 익숙해지고,

변화시키고, 서로를 끌어왔음을 그들의

모습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함께 생

활하며 일을 하는 인문학대학 외의 동

료들도 그들의 변화에 무척 놀라는 반

응을 확인 할수 있었다. “예, 아니오”

외 자기 이름 석자 대는 것 외에 잘 말

하지 않던 동료가 인문학을 공부하고

나서는 무슨 약은 먹은 듯이 명랑하고

밝아져 수다스러워졌다는 말을 들으면

서 이 인문학 과정이 가지는 힘이 무엇

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강의실 옆 좁은 휴게실에는 젊은 자원

활동가 7명이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진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

늘 종강을 하고 나면 방학동안에 이루

어질 조별 글짓기 교실을 어떻게 운영

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작

년에 팀을 꾸려보았던 선배 자원활동가

가 올해 새로 팀을 꾸려야할 새내기 활

동가에게 팀운영과 가이드 방법 등을

전수 하고 있었다. 방학중에 이루어질

특강과 글짓기 교실은 결국 수강생이

스스로 자신의 성찰을 글로 표현할수

있도록 도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데, 특히 자원활동가들

의 역할은 그 비중이 매우 크다. 이들

은 물론 방학중 뿐 아니라 일상수업에

도 함께 강의를 듣고 함께 배우는 배움

의 친구역할을 감당한다. 때론 동생이

나 누나 혹은 친구처럼 배움에 작은 걸

림돌들을 함께 넘어가는 동료로서 정서

적 지지를 강하게 주는 소중한 도우미

들이다. 강의가 끝날 무렵 1학기에 문

학을 강의하신 안성찬교수님과 2학기

예술사를 강의하실 김동훈교수님이 강

의실로 속속 들어오신다. 양손에는 가

득 먹거리들을 싸들고 1학기 전체 종강

하는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찾아주신 것이다. 뒤이어 튀

긴 닭과 피자 등 배달식품들이 종강파

티를 장식해 주기위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드디어 강의가 끝나

고 책상을 강의실 한가운데로 몰아 제

법 거나한 상을 차리고 적절히 순한 알

콜과 함께 지난 학기를 잘 마친 것을

자축하는 장을 열었다. 다들 한마디씩

돌아가며 한학기의 소회를 밝히는데 역

시나 처음 학기 시작할 때 보다 자신들

의 주장과 내용이 상당히 조리있고 당

당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지난 한학기, 힘들게 혹은 즐겁게 여기

까지 이끌고 온 자신들이 대견한듯한

표정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낮에는 어

떤방식으로든 노동을 해야했고 피곤한

저녁시간에 일주일에 4일동안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 그 고초가 다들 남달랐

을 것이다. 다른 동료들은 쉬고 술한잔

하는 시간에 감기는 눈을 참아가며 강

의실에 앉아 때아닌 공부를 해야했던

그들의 고단함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종강파티가 끝나고 교수님들과 잠깐

모여 평가하는 자리에 이야기의 주제는

단연 선생님들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인문학선생님들의 출

석률과 수업태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

진다는 것과 졸업생들에대한 염려와 기

4

대 등이 항상 주 대화거리였다. 벌써 9

년째 이어오고 있는 인문학 교실을 뒤

돌아보니 한해 한해 그 정도는 다 달랐

지만 교수님들의 높아지는 교수법과 이

해도, 자원활동가들의 넘쳐나는 열정과

학무실장 및 실무진들의 배려가 꾸준히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결과적으로 기

수가 올라갈수록 좀더 원숙된 서비스

제공과 폭넓은 배려가 공부하시는 선생

님들에게 제공됨으로 선생님들이 공부

와 자기성찰에 더 매진하게 한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이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9기 수강생의 이후 여름방학 프로그램

과 2학기 학사일정은 아마도 지난 1학

기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고 더 재미있

는 일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난주, 인문학동문 중 중심 역할을

하시는 졸업생 두 분이 날짜를 달리하

여 개별적으로 찾아오셨다. 한분은 다

시 결합하실 배우자 분과 함께 오셔서

주소지를 춘천으로 옮기신다며 방문하

셨고, 다른 한분도 헤어져 있던 배우자

분과 재결합하여 아들을 혼례 시키고

고향으로 내려가신다며 인사차 찾아오

셨다.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게되는

미묘한 감정 중에 으뜸으로 이런 순간

을 꼽는다. 두 분이 이제 안정되어 각

자의 삶의 현장으로 멀리 떠나시게 되

는 것이 큰 기쁨이면서도 막상 멀리 떠

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공통적으로 인문학을 통해 삶을 바라보

는 시선이 바뀌었음과 그 안의 만남들

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통한 재도약의

시점을 가질수있었음을 항상 감사하고

계셨다. 그들을 배웅하면서 드는 한결

같은 마음은 언제 어느곳에 있던지 이

곳 서울역이 제2의 고향이 되어 힘들고

지칠 때 큰팔 벌려 안아줄 가족이 있음

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성프란시스대학 9기 한학기를 마치며

다시금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모자름

을 항상 해맑은 미소로 채워주시는 선

생님들과 교수님, 자원활동가, 실무활동

가, 졸업한 동문들 등, 그들이 함께 만

들어가는 성프란시스 대학은 그들로 인

해 더 열정적이고, 넉넉하며, 사랑스럽

게 변화되고 있다. 부디 돌아오는 방학

과 2학기에는 더 많은 감동으로 우릴

미소짓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월간다시서기

인문학 1학기 종강 파티 모습입니다.

Page 3: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5̀

FOCUS 미소꿈터는

1인시위 중!“결핵노숙환자

결핵치료 중단위기”미소꿈터

결핵노숙인의 결핵치료시설인 미소꿈

터가 운영중단 위기에 처했다. 2011년

11월부터 결핵노숙인의 결핵치료를 전

면에 내세우고 설립된 미소꿈터가 운영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운영중단

위기에 놓인 것이다.

본래 이 사업은 중앙정부에서 주도해

서 계획하고 운영해 왔고 올해부터 기

획재정부의 지침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

자체 매칭사업으로 전환됐는데 서울시

가 시비예산 3억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는 이유로 이 사업을 받을 수 없고, 시

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로부

터 2월에 지급된 3억원의 국비예산도

교부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미소꿈터

운영을 파행시켜 왔다. 중앙정부 중심

의 사업집행에 따라 서울시가 올해 무

상보육료로 부담해야할 예산이 크게 증

가했고, 중앙정부가 지자체 사정을 고

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

는 것에 대한 지자체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로 인

해 현장에서 꼭 이뤄져야 하는 사업이

중단되어 당사자들의 생명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문에 대한 현답이 아닌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미소꿈터는 운영중단사태

만은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

간 중앙정부(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와 서울시(생활보건과, 예산과), 대한결

핵협회(사업운영과, 총무과)를 발이 닳

도록 뛰어다니며 결핵노숙인을 살리는

결핵관리사업을 받아서 예산을 교부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지만 1년의 반

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두 기관간의

팽팽한 힘겨루기 싸움 속에 해결의 실

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미소꿈터 직원들은 결핵노숙인들의 복

약지도와 생활관리, 지역사회정착의 실

무적인 성과가 아무리 좋게 나오더라도

공공기관간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정작

현장의 시설운영이 중단된다는 것은 있

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

하고, 시설운영의 중단이 눈앞에 다가

온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거리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오로지 결

핵완치에만 매진해온 직원들이 공공기

관의 눈치와 혹 발생할지도 모를 불이

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리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핵노숙인을 두

6

번 죽일 수 없다는 절박함과 아이엠에

프(IMF) 이후 15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제 겨우 결핵노숙인의 살 길이 마련

되었는데 운영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이 시설운영이 중단되면 결핵노숙인들

이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약봉지를

들고 방황하다 병원과 거리를 오가며

죽어가야 한다는 참담함 때문이었다.

지난 6월22일 미소꿈터의 급박한 현

상황을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호소하고 24일부터 복지부와 서울시에

서 출근시간대와 점심시간대를 이용하

여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렇게 행동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중앙정부

와 서울시는 머리를 맞대고 발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서울시

는 국비라도 우선 교부하겠다는 뜻을

정했고 다음주면 대한결핵협회 서울지

부를 통해 국비를 교부할 것으로 보인

다. 국비를 교부하겠다는 것은 서울시

가 결핵관리시설 사업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서 이 사업을 받아 앞으로도 계속

이끌고 가겠다는 의미이며 아직 마련하

지 못한 올해의 시비확보와 내년도 예

산배정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결핵노숙인의 대부분이 서울시에 거주

하고 있고 취약계층의 결핵퇴치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온 서울시가 결핵관리시

설의 사태해결을 위해 전향적인 판단을

한 것은 늦긴 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

운 일이다. 이로써 지난 6개월간 답답

하게 끌고 왔던 양 기관간의 힘겨루기

가 1주일만에 급반전을 이루며 한 고비

를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당장 국비 3억원이 내려오더라

도 이는 상반기 예산에 불과해 상반기

에 대한결핵협회와 위탁법인인 대한성

공회에 빌린 돈을 갚고 나면 하반기 운

영예산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국

비 3억원을 교부하겠다는 뜻은 밝혔지

만, 중앙정부와의 무상보육료 배분문제,

서울시 자체예산의 수급문제 등 해결해

야할 사안들이 산 너머 산이라 결핵관

리시설의 시비예산을 올해 언제쯤 확보

해 교부해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당

장 7월 예산부터 또 부족한 상황이 발

생하고 매월 식자재 공급중단 우려와

원활한 시설운영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

는 상황은 상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미소꿈터 직원들과 입소자들의 불안감

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상반기 동안 삐거덕거리며 진행되어온

미소꿈터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입소자

들 뿐만아니라 퇴소자들도 이제는 눈치

챈 듯 하며 겉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해하면서도 이번 사

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

다. 장기화되고 있는 미소꿈터 사태가

자칫 입소자들의 복약치료에 악영향을

끼치기라도 한다면 이것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할 것인가?

결핵노숙인 3600여명 감염예방효과 거둬

미소꿈터는 1년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에도 불구하고 해결불가능할 것처럼 보

였던 결핵노숙인의 결핵완치와 지역사

회정착에 큰 성과를 만들어왔다. 이는

15년의 노숙인 역사에서 뿐만아니라 한

국전쟁이후 취약계층의 결핵환자퇴치에

Page 4: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7̀

연도 입소

퇴소응급

보호완치

퇴소

중도

퇴소

2011 11 0 1 18

2012 45 31 5 64

2013 25 21 2 22

합계 81 52 8 104

서도 전무후무할 정도의 의미있는 성과

를 만들어내었다고 자부한다.

2011년 1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미소

꿈터 운영성과를 보면,

결핵노숙인 81명이 입소하여 53명이

결핵완치 하였고 22명이 복약치료 중이

며 104명의 결핵응급환자를 보호하고

병원에서 입원치료 받게 하였다. 이는

결핵노숙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기

에 치료받게 함으로서 결핵으로 인한

거리노숙인의 사망률을 급격히 낮추었

고 거리노숙인의 결핵감염원을 차단하

여 타인에 대한 결핵감염을 예방하고

병원 퇴원후 결핵약 복약이 어려운 결

핵노숙환자들을 결핵완치하게 하여 거

리노숙인의 결핵완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한 명의 결

핵환자가 20명에게 결핵균을 전파하는

기준에서 보더라도 미소꿈터가 얼마나

많은 결핵노숙인 예방효과를 가져왔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다.(183명*20명

=3,660명)

미소꿈터의 지난 운영성과에 대한 평

가는 국회나 주무기관, 협력기관 및 유

관단체, 특히 결핵노숙인 당사자들에게

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미소꿈터에

입소해 있거나 퇴소해 지역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결핵완치 퇴소자들은 이

구동성으로 이 시설이 꼭 필요하며 자

신들의 결핵완치 뿐만아니라 희망을 가

지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터

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중앙부처에서도 결핵관리시설의 성과와

효과성을 인정하여 내년에 제2, 제3의

결핵관리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미소꿈터 입장에서도 무엇보다 반가운

데, 왜냐하면 미소꿈터 종사자들은 지

난 1년반 동안 결핵노숙인들에게 결핵

관리시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줘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고통받

고 있는 결핵노숙인들도 가까운 해당

지역의 결핵관리시설에서 치료혜택을

받아 더 이상 결핵질환으로 인한 죽음

을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자고 매진

해왔고 이제 그 결실을 지역에서도 조

금이나마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

문이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진전의

시점에 미소꿈터 운영에 대한 중앙정부

와 지자체간의 운영주체논쟁, 예산확보

문제 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 너

무나 안타깝고 이러한 갈등이 추후 제

2, 제3의 결핵관리시설이 지역에 만들

어질 때 재현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

다. 지금이라도 전국에 흩어져있는 결

핵노숙인들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고

미소꿈터와 같은 결핵관리시설이 각 지

역에 빠른 시일내에 만들어져 원활하게

운영되는데 양 기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전국

의 노숙인들이 서울시로 몰려드는 수도

권 집중화를 해소하는 측면에서도 결핵

노숙인 시설이 전국 각지에 만들어져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서울시의 입

장에서도 결코 남의 집 일이 아닌 것이

8

다. 하니 이제라도 결핵노숙인 결핵완

치라는 대의의 입장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여 대한민국이 결핵없

는 세상이 되는데 서로 협력했으면 하

는 바람이다.

미소꿈터 직원들은 중앙정부와 지자

체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인해 부득불

거리로 나서서 1인시위를 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보단 본연의 업

무인 결핵노숙인의 결핵완치와 지역사

회정착에 올인하고 싶다. 외부적인 굵

직한 문제는 양자간에 조기해결해 미소

꿈터 직원들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빠른

시일내에 미소꿈터의 문제를 해결해주

기를 당부드린다. 하지만 만약 상반기

와 같은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고

하반기에도 지속된다면 미소꿈터 직원

들은 자신이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

라도 계속해서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

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미

소꿈터의 존립근거는 결핵노숙인 완치

에 있기 때문이다. 월간다시서기

우리를 더 이상 거리로 내몰지 말라!!

결핵노숙인 복약완치에 매진하게 하라!!

미소꿈터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라!!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청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땀의 결과가 있으시기를

미소꿈터 입소자 생일잔치 모습입니다. 미소꿈터 입소자 운동 모습입니다

Page 5: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9̀

마음세우기 앞으로 온 마음의 편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감사하고 고맙다는 표

현을 못하고 할 줄도 모르는 바보처럼

살아왔다.

할머니, 아버지, 누나 그리고 동생들.....

어린 시절 우리집은 항상 어두웠다.

술취한 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의 다

툼... 이웃아저씨가 와서 싸움을 말리곤

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

억이다. 일을 해서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만 마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TV에 나오는 학대받

는 아이처럼 우리는 늘 눈치를 보며 살

아야했다. 오늘 하루 조용히 지나가는

가 싶으면 그날은 행복했다.

하지만 이 행복도 1년에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시간동안만 허락되었다.

그런 부모님의 삶이 왜 그리 싫은지....

내겐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시기

였다.

어린시절 우연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

다. 신앙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저 거기 가면 잠시나마 숨

을 쉴 수 있으니까 .....

다른 아이들처럼 배부르게 먹고 싶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었지만 학교 다녀오

면 바로 들로 나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했다. 뙤약볕 아래서 논에 못자리

를 만들고 낫으로 풀을 베고 소에게 먹

이를 주고 똥을 치우고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하다 돌아오면 씻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잠들곤 하였다. 유일한 쉬는 시

간은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는 시간 뿐

이었다. 피곤해서 눈이 절로 감기고 졸

음이 쏟아지긴 하였지만 말이다.

아버지도 교회에 나가면서 술을 끊게

되었다. 중간중간 술을 드시고 주정을

부리긴 하였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행

복하다고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사회생

활....

내성적인 내게 직장생활은 그저 낮설게

느껴질 뿐이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먹고 자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다른 직원들과 친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 늘 혼자 지냈다. 그렇게 1년이

란 짧은 직장생활을 마쳤다.

아버지는 목사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다

툼 후에 다른 교회로 이적하셨고 우리

10

는 함께 이사를 가야했다.

그즈음 아버지는 내게 장가가라 했지

만 나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몇 번

의 만남과 교제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

패했고 화가 난 아버지는 나가라고 호

통을 치셨다. 그 길로 돈 한푼 없이 집

을 나와 걷고 또 걸어서 서울에 도착했

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해

야겠다는 생각에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계속 걸어다녀서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였으니......

그러다 배를 타고 외딴 섬에서 몇 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잠도 못잔 날이 수없이 많았고 배멀미

에 폭풍속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온갖 험한 일을 했다.

그 와중에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너무 힘이 드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

고 또 빌었다.

죽을 고비가 여러번 찾아왔지만 죽지도

못하고 돈도 몇 푼 받지 못하는 나날

들..... 도망쳐 산속에 숨어 있다 잡혀서

매를 맞기도 했다.

비참한 현실이 싫어서 술을 마시고 또

억지로 토해내고 또 술을 들이부었다.

차비가 없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기도

했다. 잘 곳이 없어 비닐하우스에 들어

가 자기도 하고 공사장에 들어가 쪽잠

을 자면서 걸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과 기름 같았다.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십번 반복했

다. 몇 개월은 잘 있다가 또다시 싸우

고 나와 술을 마셨다. 빈속에 쓴 술을

들이부으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울, 부산, 대전, 천안, 목포, 포항, 제

주..... 가진 것이 없어 걷고 또 걸었다.

지친 육신에 물한모금 마실 곳이 없어

개울물로 배를 채우고 길거리에 버려진

물병의 물로 허기를 달랬다.

배고픔에 지쳐 교회를 찾아갔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리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 길을 잃기도 했

다. 그때 시야가 흐려지고 환청이 들리

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개가 울부짖으

며 덤벼들고 머리위에서는 까마귀가 날

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져서 죽었으면

하면서도 살려도 발버둥을 쳤다.

이렇게 살아온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

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 병들고 그렇게

소망하던 죽음이 가까이 온 듯 했다.

길을 잃고 헤매던 내게 다시서기센터

를 소개시켜 준 구청직원에게 감사한

다. 다시서기에서 진료를 받고 채움터

에서 굶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다가 서

울역광장에서 브엘셀바 교회를 알게되

었고 봉사하면서 지내는 나날들이 행복

했다. 교회에서는 낮에 봉사하고 밤에

일을 하라 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에 잠이 오지 않았고 다시 길거리로 나

오게 되었다.

이때 다시서기센터의 <마음세우기> 프

로그램을 보고 용기를 내어 상담 신청

을 했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마음 속에서 한줄

기 빛이라도 찾고 싶고 오랜 방황을 끝

내고 이제는 안정을 찾고 싶었다. 상담

을 받으면서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고

취업의 기회가 찾아왔다.

Page 6: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1

그러나 직장에서 나는 동료들에게 그저

<노 숙 인>일 뿐이었다.

그런 시선들이 싫어서 방황하다가 이제

다시 빛의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나홀로 가야하는 이 길이 힘들지만 이

제는 갈 수 있다.

여러 선생님들의 응원과 강덕상선생님

의 격려 속에서 나는 살아간다.

빛이란 내게 희망이고 꿈이다.

희망이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

름답고 사랑스럽다.

내게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한다.

살고 싶고 누구보다 잘 살아 보려고 하

는데 도무지 잘 되는 것이 없는 것 같

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같이 지낼 수

없는 내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주나?

가족과 함께 웃고 함께 기뻐하며 지내

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

냐 하는가?

지금 당장,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내겐

힘이 든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당당

하게 지내고 싶은데 내 나이에 들어가

일한 만한 곳이 많지 않다.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지금 이순간이

낯설고 어딘지 모르는 낯선 장소에 갇

혀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분

명 여기에 존재하는데 또 다른 장소에

가 있는 것 같은 이 기분을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아프다. 갈비뼈

가 나를 찌르는 것 같고 심장이

돌덩이 같이 단단하게 멈춰 버리는 것

같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어느 순간의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

살고 싶으나 또 죽고 싶은 생각이 나를

유혹한다.

내가 못나 보이고 잘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서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초라하게 서 있는 내 그림자....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정말 못났다.

술을 마시고 마셔 기억이 사라질 때까

지 가보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기고 죽으려고 약도 먹어보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나는 현재 이렇게 살아있다.

살아있다......

이제는 어떻게든 순리대로 살려고 한

다. 이제는 내 운명을 하늘에 맡겨보려

고 한다.

두서없이 쓴 이 글은 내 마음 속을 짓

누르는 답답함의 외침이고 내 마음속의

이야기이다.

내성적이고 세상사람들에게 이용만 당

하고 살아서인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내게 신경을 써주며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지친 내 영혼에 햇살을 비춰주고 따뜻

한 말 한마디 건네주시는 선생님들 감

사합니다. 월간다시서기

마음세우기에 참여하시는 거리선생님(노숙인)께서 담당자에게 보낸 주신 편지입니다.

12

번호가 적인

조그마한 종이 쪼가리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 아닌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기도 합니다

사업지원팀 유태성

번호가 적힌 조그마한 종이 쪼가리가

있다. 뭐 그냥 색도화지에 숫자와 날짜

가 적혀있는 아주 작은 종이 쪼가리다.

그런데 그 볼품없고 폐휴지로 쓰기에도

너무 작은 종이 쪼가리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도 적지 않은 힘을 말

이다.

우리는 그것을 ‘식권’이라 부른다.

집도 없이 가족도 없이 - 거리에서 생

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있어 밥 한 끼를

먹는 것은 하루 일과 중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처럼 먹기 싫으면 한 끼

정도 거르거나 다른 간식거리를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업이다.

그리고 그 업의 전제조건은 인간으로서

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 다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여러 기

관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오늘도 하루일과를 짜고 그에 맞추어

움직인다.

우리 다시서기센터에서도 매일 저녁

노숙인 170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

고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

만 우리 센터도 매일같이 170명을 훌쩍

뛰어넘는 분들이 무료급식을 이용하기

위해 모이신다. 하지만 제공할 수 있는

식사량은 정해져 있기에, 적지 않은 분

들이 식사를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 식사 때마다 질서는 무너지기

일쑤며, 심지어 서로 간에 욕설이 오가

기도 한다. 그래서 식권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식권을 갖고 있어야만 식사가

가능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로 그 ‘식권’이다.

나는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작은 종

이쪼가리 하나를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그냥 중얼거리듯 말이다. 혹은 잠자리

에 누워 가족과 그날의 일과를 나누듯

말이다. 그것은 생체기를 내려하는 것

도 아니요, 체념하자는 것도 아니다. 자

연스레 일상에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좀

더 나누어보고, 좀 더 생각해보자는 것

이다. 좋은 생각으로…

어느 날이었다. “170번까지 입장해주세

요.”란 내 외침과 함께 161번부터 170번

까지의 식권 소지자들은 - 무표정으로

혹은 웃으며 - 당당히 식권을 나에게

보여주고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먹는 저녁식사였기에 더더

욱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신다. 나는 깊

Page 7: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3

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이제 마지

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았다.

그것은 “이제 금일 급식은 종료되었습

니다. 식권이 없는 분들은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멘트를

날리는 것이다. 누구에게? 아직 식당밖

에 서있는 10여명의 노숙인선생님들에

게이다. 그런데 그 중 한분이 나에게

다가온다. 무언가 억지웃음을 띠려고

노력하니 더욱 처량한 모습이 된 그는

이렇게 말해온다. “밥 좀 남았으면 들어

가게 해줘요. 반찬 없어도 되요. 국하고

김치만 있어도 됩니다. 배고파서 그래

요.” 나는 도저히 한 번에 거절할 수 없

어서 잠시 계시라 얘기한 후 식당으로

내려가 본다. 식당 상황을 확인하고 올

라온 나는 말한다. “드릴 음식이 없습니

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식권이 있어야

식사 가능합니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힘없이 돌아가는 그를 보며 내 어깨는

축 처져버렸다. 이상한 감정들이 소용

돌이 치고 있었지만, 그것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도 없었다. 피로했다. 사실 요

며칠 업무가 밀려, 정신이 없기도 했다.

좀 더 과거의 일이다. 식당 밖에서는

많은 노숙인들이 식권을 받기위해 줄을

서 계셨다. 나는 식권배부시간이 되어

식권을 그들에게 나눠드리기 시작했다.

헌데 줄 중간 즈음에서 노숙인들 간에

소란이 일어났다. 잠시 식권배부를 멈

추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한 분이

새치기를 하다 먼저 서 계셨던 분과 다

툼이 일어났던 것이다. 얼굴을 잘 알

고 있는 분이었다. 그는 사실 평상시에

도 새치기를 자주 하였던 분이다. 나이

가 많은 분이셨는데 오랜 시간 줄을 서

계시는 것이 힘들었는지 새치기라는 편

한(?) 방법을 사용하던 분이었다. 나는

그에게 줄을 맞춰서라 말씀드렸다. 하

지만 그는 “여기는 내 자리가 맞다”며

항의 하였다. 순간 나는 버럭 화를 내

며, 자꾸 그러시면 앞으로 식권이고 뭐

고 없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아

니 그 어르신은 순간 움츠러들며 뒤로

빠지셨다. 그리고 나도 어딘가로 빠지

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날은 매우 덥

고 습한 여름날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음주자 한 분과 오후 내내 실랑이를 벌

였던 일도 있던 날이었다.

‘식권’은 무료급식소에만 있는 것은 아

니다. 우리가 서있는 모든 장소에서 그

것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리고 위 이야

기의 나는 나만은 아닐 것이다. 위의

나는 어쩌면 우리 모두일 수도 있지 않

을까 한다. 뭐 모두가 다 아는 뻔한 이

야기겠지만…

오늘도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해 센터

앞에서 고성을 지르시는 어르신 한분과

적지 않은 실랑이를 벌였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마음도 먹먹하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어 올 여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얼

마 전 건강챙긴다고 준비도 없이 평행

봉을 하다 팔목을 다쳐 시큰하고, 왜인

지 모르겠지만 허리도 아프다. 창밖을

본다. 거리로 나가면 작열하는 태양아

래 사람들이 오가고 있겠지. 월간다시서기

14

한걸음씩

한걸음으로 시작하여 열걸음 백걸음

현장구호팀 허세미

나와 다른 생활습관, 생각을 가진 누

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거리에서 노숙인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희노애락이라는 감

정을 모두 건네준다. 그리고 그들이 살

아왔던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고 어려

움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

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즐거움

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인생에 작은 영향이라

도 끼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

다. 나는 지금부터 다시서기 입사 한

지 5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생각

한 것들에 대해 두서 없이 이야기 하려

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정신과적으로 어려움에

있는 분들을 만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여성분들을 주로 만나 면담을 하고 있

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정신과 적

으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더

욱더 그들의 감정과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rapport 형성이 되지 않

은 상황에서는 나 역시 소위 말하는 말

조심과 행동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담과 개입과정은 긴장의 연속이다.

긴장의 연속이며 힘든 과정이지만 개입

한 대상자들이 잘 지내고 있는 모습과

나와 면담 후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긴장을 한 만

큼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 퇴근

하는 길 구서울역사를 지나면서 나의

생각은 단순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 순

조롭게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는

‘아 오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내

일도 오늘만큼만 평화롭게 일이 끝났으

면 좋겠다’ 뭔가 억지스럽고 찝찝하게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구나. 내일은 제발 평화

로워라’

지난 겨울, 젊고 패기 있을 때 조금

더 험한 현장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부

대끼며 일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다시

서기에 입사 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

운 사회복지와 실습 및 봉사활동을 통

해 습득한 사회복지를 바탕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얼

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

다는 것을 알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면서 힘이 들었다. 특히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내가 생각하고 제공해 드리고 싶은 서

비스를 마음껏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Page 8: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5

되면서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되어 드리

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으며 나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 못한다. 10명의

대상자와 면담을 하고 개입을 하여도

단 1명이라도 나의 개입과 면담이 그

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

다’라며 스스로를 다스리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줄이고 현실과 타협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하

니 일 하는 것이 조금 수월해 졌다. 면

담과 개입 과정에서 부담감이 줄어들었

다고 할까... 그러나 그 순간 동시에 생

긴 딜레마가 생겼다. 내가 일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위와 같

은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일

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아

직도 나는 내가 생각한 현실과 이상 사

이에서 위와 같은 합리화 아닌 합리화

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정

답인지는 잘 모른다.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정신보건사회

복지사가 되기 위해 나만의 스팩을 쌓

아왔다. 어쩌면 대학시절부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위해 살아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정신보건수련을 받고 본

격적인 사회인이 된 순간 나의 목표는

스스로를 만족 시킬 수 있고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career를 차근차근 쌓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보건팀이 꾸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리정돈이 되지 않

는 업무, 분위기 그리고 인프라의 부족

으로 내 열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

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점점 나 스스

로에게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사라

졌고 그 안에서 나는 또 갈등을 하였

다. 제일 아쉬웠던 점이 거리에서 만나

는 대상자 분들이 갈 수 있는 쉼터와

병원에 대한 인프라가 세밀하게 구축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프라가

있다고 해도 각 시설 및 병원 내의 규

칙을 엄격하게 규정하여 입소할 수 있

는 문이 좁았다. 시설 입소를 위해 각

시설 입소 담당자에게 따져가며 이건

왜 안되느냐 저건 왜 안되는냐 라고 물

어보기도 힘이 들었다. 중간에서 붕 떠

버리는, 갈 곳이 없어 다시 거리에서

노숙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분노가 생

겼고 화가 났다. 어쩌면 나 스스로의

부족을 탓하기도 했고... 이러한 갈등을

하던 중 부모님 그리고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고민들을 털어 놓았

고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해답을 얻었

다. 단순히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한계

에 힘들어 하기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

한 발전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인 plan을 세워 일을 하

는 것이 나에게도 의미 있다는 판단 하

에 조금 더 용기를 가지면서 일을 하기

로 했다.

이제 발걸음 단계이다. 정신보건팀 활

동도 나의 사회인으로써의 생활도...

나의 사회인으로써의 발걸음 단계를 정

신보건팀 활동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

스럽고 나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막 시작한

발걸음이 지금은 어설프고 자칫하다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이

지만 언젠가는 힘차게 걸어 나갈 수 있

는 날을 기대한다. 월간다시서기

16

현장의 모습

노숙현장의 최전선의 모습들

현장지원팀 안상협

내가 근무하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최전선입니다.

거리상담을 나가도 더워서 술을 마시

는지, 술을 마셔서 더 더우신지 윗옷을

헐벗으시고 술을 드시는 무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래

서 인지 짜증지수가 많이들 올라가시나

봅니다.

2013년 다시 시작된 여름... 가만히 있

어도 머릿속이 멍해지고 속에서는 답답

함과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계절이 왔

습니다. 기대도 기약도 할 수 없는 서

울역 노숙인분들께는 어쩌면 동절기 보

다 더 어려운 시기 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씨드(seed)머니를 구하지

못하는 근로능력이 있는 노숙인 분들께

는 일용근로를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

이 주어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알콜, 고

령, 정신질환이 있어 근로가 불가능한

노숙인 분들에게는 더 큰 시련이 예상

됩니다. 이에 더불어 우리 노숙인시설

종사자들이 해야 할 일들은 더 많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우리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현장지원팀이 준비하고

있는 혹서기 노숙인 대책에는 어떤 것

들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우선, 뭐니 뭐니해도 현장지원팀의 주

사업은 거리상담이겠지요. 노숙인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함께 호흡하고 손을

잡고 지원을 해드릴 수 있는 거리상담

은 노숙인 보호대책에서 없어서는 안

될 활동입니다. 저도 나가보는데요. 다

녀올 때 마다 가슴한쪽에 막막함, 다른

한쪽에 뿌듯함을 안고 오게 됩니다. 이

번 혹서기 집중 기간(7월 ~ 8월)에는 주

간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

시간 단위로 서울역뿐 아니라 남대문일

대까지 상담인력과 지원인력이 함께 거

리상담을 나가게 됩니다. 동절기는 동

사예방이 최우선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면 혹서기는 탈진과 뇌출혈 등 혹서기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이 우선 목적이

며, 냉차와 포도당 등을 함께 나눠드리

며 거리상담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그

리고 이와 연결된 목욕서비스도 함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운

영하던 우리옷방 운영시간을 연장하여

야간시간까지 개방할 예정입니다. 밤

11시까지 목욕 및 의류지원서비스를 지

원할 예정이라 야간아웃리치를 통해 오

신분들에 대한 목욕 및 의류지원이 가

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Page 9: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7

그리고 또 하나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

는 것은 동절기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던 응급대피소의 오픈소식입니다.

샤워시설에 대한 정비와 냉방시설을 갖

추고 거리노숙인 분들이 편안히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7월부터 가동될 예

정입니다. 24시간 개방을 할 예정이며,

TV시청도 할 예정입니다. 또한 각종 편

의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와 욕

구에 맞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것입니

다. 쉼터 또는 시설입소를 거부하시는

노숙인들이 편히 와서 쉬고 상담할 공

간이 생긴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빈곤을 규정짓는 여러 가지 잣대 중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는데

우리 노숙인 분들은 소득적으로, 문화

생활적으로 절대적 빈곤이며, 같은 노

숙인들 사이에서도 상대적 빈곤과 박탈

감을 느끼시고 소외되십니다. 누구나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도처에 존재하는

복지손길이 필요합니다. 상담과 보호의

기능을 강화하고 24시간 언제든 오셔서

서비스와 손길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

지시기를 바랍니다

현장상담 사례

내가 누구인가요.....?

2013년 임시주거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영어로 말씀하시는 한국분

께서 이곳 희망지원센터를 방문하셨습

니다. 어눌한 말투로 노숙인지원체계에

대해 00구청에서 소개를 받고 방문하셨

습니다. 일상대화는 가능하지만 가끔씩

나오는 엄~ 음~ 이라는 줄임음이 인상

적인 분이셨습니다. 이분에 사연은1960

년 1월에 할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을 가셨습니다. 당시 본인나이 9살... 미

국생활을 하시던 중 2009년 한국으로

추방당하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오셨

는지는 말씀하시기를 꺼려하셔서 나중

에 듣기로 하고 한국에 오셔서 어떻게

생활하셨는지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한국으로 와서 거처할 곳도 친인척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운이 좋아 좋은 목

사님을 만나 부산으로 내려갔고, 그곳

에서 사회보장전산번호를 부여받아 의

료서비스등 기본생활을 하던 중 서울로

올라오신 상황이었습니다.

00구청에서 주소지만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을 해주겠다는 구청사회복지담당자

의 말을 믿고 주거지원을 요청하러 오

셨던 것이었습니다. 쉼터나 시설은 주

민번호 등이 없고 본인이 거부를 하셔

서 초기노숙에 빠지기 전에 긴급임시주

거를 진행했습니다. 00구청 주변 쪽방

을 얻고 계약서를 받아 저와 동행하여

00구청으로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00구청의

복지담당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고 하였고,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부산에서 사회

보장전산번호를 부여 받았다고 하였으

나 우리구에서는 그런거 없고 노숙인

쉼터에서 해주니 노숙인 쉼터 가서 하

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해

달라는 것이 아니며, 자격요건에 대해

알고 싶고 필요한 서류가 어떤 것이 있

는지를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으나 화

18

를 내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담당직원의 이름을 물어보고 더

따졌습니다. 따지고 또 따졌습니다. 국

민기초생활보장제도 지침 중 사회취약

계층지원에 대한 부분에 나와있는 사회

보장전산번호부여를 왜 노숙인 쉼터에

서 진행해야하는지를 따져 물었으나 돌

아오는 답변은 우리는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

다. 사회복지사인 저에게도 이렇게 막

대하는 사람들인데 이분은 얼마나 힘드

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개

숙인 우리 선생님을 다독여 구청문을

나와 밥을 먹었습니다. 저에게 고맙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도 내편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대신 싸워

주고 하니까 너무 좋아요...”라고 합니

다. 9살에 이민을 가서 지문도 찍지 않

은 상태... 미국대사관에서도 출국기록에

서도 찾을 수 없는 이분에 주민등록번

호.... 이분이 그분이라는 인후보증을 해

줄 수 있는 가족, 친지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서비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장전산번호부여를 통해 의료서

비스를 받게 해드리는 것이 1차 목표이

고 2차 목표는 호적창설을 하여 기초생

활수급을 받으시는 것까지 도와드리려

합니다. 이보다 앞서 도와드려야 할 것

은.... 상담할 곳을 마련해드리고, 날 위

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심

어드리고 싶습니다.

상담... 밖으로 밀치는 상담이 아닌 안

으로 끌어들이는 상담을 하도록 하겠습

니다. 월간다시서기

서울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지원팀 모습들입니다.본격적인 무더위 속에서 지치시지 않도록 주간, 야간으로 찾아 뵙고 있습니다.

현장구호팀은 현장에서 정신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중점으로 병원 치료 연계와 시설 연계 및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삼담소내에서 거리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같이 한걸음씩 나아갈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Page 10: 2013년 7월호 다시서기소식지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9

포근한 마음[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개인]고형곤10,000 김금자40,000 김원규50,000 김지은10,000 김진욱 5,000

마명철10,000 마상호10,000 문창경45,000 박세순10,000 박헌용10,000

박형영10,000 박형준10,000 신선혜10,000 윤 오10,000 이안열10,000

이재춘40,000 이주범20,000 이형운50,000 임은주200,000

장근식10,000 조완희10,000 최광필 5,000 최장수5,000 한영희30,0000

황호석50,000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단체] 에스케이커뮤니119,700

[다시서기지원센터/개인]고태양10,000 공민은10,000 김 경10,000 김경태10,000 김기석 5,000

김기수10,000 김대영10,000 김덕선10,000 김동은10,000 김명식10,000

김미연 5,000 김민수10,000 김석배40,000 김성모10,000 김성일10,000

김성자10,000 김성지 5,000 김세환10,000 김수민 10,000 김승모10,000

김영자30,000 김영진40,000 김용기10,000 김윤희30,000 김재경20,000

김재승10,000 김정배40,000 김정용10,000 김종대10,000 김진욱10,000

김태윤10,000 김한준10,000 김홍윤10,000 남주연10,000 남화정10,000

노경준10,000 류동연10,000 류은정 5,000 모소영10,000 문민수20,000

문양금10,000 민병학10,000 박경장10,000 박남희20,000 박문현10,000

박병도10,000 박병희10,000 박성광20,000 박재익20,000 박정훈10,000

박태만 5,000 방동환10,000 방창호10,000 배국록10,000 배길원20,000

백금자10,000 변종목10,000 서양식10,000 서연희 5,000 서종희10,000

석재순10,000 설민지10,000 손승룡100,000 신란숙20,000신석균20,000

심경애20,000 심미정 5,000 심혜성10,000 안상협10,000 안용남30,000

안재금20,000 안정호10,000 안진희10,000 양경철10,000 양근모10,000

양윤실 5,000 엄장옥10,000 엄진영10,000 여현주10,000 오미진 5,000

오선정 5,000 오영균10,000 오차환10,000 왕정숙10,000 우대경10,000

우민지20,000 유명구40,000 유재명30,000 유재진10,000 유재철10,000

유창윤20,000 유태성10,000 윤건주 5,000 이경섭40,000 이귀숙30,000

이명직10,000 이미혜10,000 이봉희10,000 이상노10,000 이상은10,000

이상재10,000 이수연10,000 이애신10,000 이오영10,000 이완재10,000

이재형10,000 이종만20,000 이진영20,000 이철종10,000 이태성10,000

이태용10,000 이해연20,000 이현승10,000 임기호 5,000 장동일10,000

장성권10,000 장세홍10,000 장수경 5,000 장은석10,000 장자영10,000

장재경20,000 장철희10,000 장혜원10,000 전순성10,000 전정일10,000

정광일 5,000 정연순10,000 정연주10,000 정유진20,000 조기례 5,000

조동욱10,000 조복호10,000 조영근40,000 조원길10,000 조윤주10,000

조재영10,000 조지혜 5,000 조형준 5,000 차제선 5,000 채무병10,000

채순금10,000 최미경 5,000 최보람10,000 최승미200,000 최지현10,000

최현숙10,000 최 희10,000 허 정 5,000 현정안10,000 홍승길10,000

홍승표10,000 홍은하 5,000 홍주영 5,000 홍주찬 5,000 홍진기 5,000

황성민10,000 황지선10,000 황태희10,000

[다시서기지원센터/단체]국민은행명동500,000 노정균정신과의원200,000 삼성에버랜드1,559,000

서울대성당800,000 신동아건설800,000 하나은행사랑봉사단300,000 휴

면코드10,000 (주)알알씨10,000

[다시서기지원센터/인문학]김군배10,000 김미경10,000 김홍윤10,000 노승현10,000 박경철10,000

박순복10,000 성현숙10,000 안성찬30,000 이정환10,000 정선태10,000

정성훈 5,000 최선호10,000 최은진10,000

따뜻한 손길

[물품으로 후원 해주신 분들]석영대 옷, 서봉금 옷, 이서연 신발 옷, 제인앤케이 낵타이

옷 옷걸이, 서노협 옷 실발, 이영미 모자, 씨제이프두빌 빵

[거리 아웃리치 및 차 봉사]개인: 박경연

단체: 외국인자원봉사팀(PLUR)

[거리 문화 콘서트]박기태, 정영걸, 김종범, 주성원, 김재경,

[센터 자원봉사/개인]강민지 김강래 김강현 김도은 김두란 김명실 김서우 김선영 김성아 김은아 김제경 김지영 김탁영 김현수 김혜린 도윤경 동희수 류지현 문희수 박상우 박원영 박재우 박하영 박호서 블레안 성기훈 송민지송은솔 양수진 양주원 양지수 왕수현 유은지 윤정수 이명근 이성민 이소연 이예리 이정아 이후광 임희원 장민국 장세훈 장희정 정 빈 정윤경 조부희 조소혜 조수연 조준영 조청옥 진유찬 최민상 최민지 최지헤 최희구 한송이 허지혜 황유정 황 현

[센터 자원봉사/단체]교보 스크관리팀/심사팀, 국민은행명동, 국민은행투자금융, 군의군향

우회, 로뎀교회, 미국대사관, 삼성카드, 서울지방보훈청, 성은교회,

숙명여대법대리더쉽봉사단, 숙명여대통역봉사단, 신용보증기금, 신한

은행KBS, 장훈고등학교, 제일영광교회청년부, 주한미군교회, 토봉팀,

하나금융리스크팀/자워관리/홍보팀, 하나은행외화업무부, 희망터,

OCI, PLUR, SK브로드밴드, SK증권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자원봉사]김의태 오하나 남경순 이정희 김성은 이소영 안송수

[금요영화 봉사/이미용 봉사]조예은, 최인화

[진료 봉사]*개인: 공상원(한양대학교 ) 김정선(약사), 김주리, 박준상(경희대병

원), 유창수(약사), 이범주(은평병원), 정운진(은평병원), 정

희진(상계백병원 ), 주소연(숙대약대), 이경애(소망한의원 ), 어

수동(어수동피부과 )

*기관 및 단체: 숙명여대 약학과, 서울 여자간호대 화이트뮤즈, 경희대병원 재활의학과,

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을지병원 재활의학과

*민간의료기관: 누네안과병원, 백상치과의원, 조성만치과의원, 삼일교회의료선교부, 스마

일 영상의학과, 씨티안과, 어비뇨기과, 지앤아이내과의원, ,초이스이비인

후과, 행복한 내과, 헵시바치과의원

*심리상담봉사: 강덕상(백석대학원),김낙법(후생명상센터),이용기(젠테라피내츄럴힐링센터)

※단체봉사로 참여한 봉사자명은 생략했습니다. 필요한 단체의 경우 신청해 주시면 개인봉사자명 또한 함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서는 우리들의 이야기✦

다시서기에서는 노숙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바닥까지

내려온 선생님들과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들을 해가고 있습니다. 하루

한끼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먹거리와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잠자리

와 사회적 활동을 준비할 수 있는 일거리 훈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둔 가정으

로 서둘러 갈 때, 거리 선생님들은 어디에서 식

사를 할 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밥 한

끼는 내일을 꿈 꿀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어디를 가든 노숙인이라는 손가락질이 따라오

는 현실에서 취업은 자존감의 상실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서로

이해하고 용기를 주며 만들어지는 일자리 공동

체는 실질적인 재기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운 좋게 일을 나가신 분이나, 일을 얻지 못해 하루

온종일 방황 했던 분이나, 가벼운 지갑을 아끼고 지친 몸

을 누이기 위해 센터로 방문 하십니다. 선생님들에게 따

뜻한 잠자리를 제공해 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일

다시 일을 꿈꿀 수 있도록.......

노숙인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세요

▷ 노숙인과 함께하는 가장 쉬운̇ ̇ ̇ ̇ 방법 ◁

1. 노숙인들에게 수건, 비누, 칫솔, 라면, 쌀, 옷 등 필요한 물품을 후원해 주세요.

2.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으로 직접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 다시서기 자원봉사 센터 http://club.cyworld.com/hivolunteer

3. CMS와 자동이체 후원으로 나눔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6-801-216446 대한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 이젠 네이버 해피빈과 싸이월드

사이좋은세상에서도 다시서기를 만나보세요.

☞ 다시서기센터와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 속 기부

문의 : 자원봉사, 후원담당

“우대경”사회복지사 『 T. 02)777-5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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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작은 손길̇ ̇ ̇ ̇에서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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