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자료집(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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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에코페미니즘 상상하고 질문하다 일시 | 2017.12.02. 1시 장소 |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주관 | 여성환경연대 지원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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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자료집(2017)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에 코 페 미 니 즘

상 상 하 고 질 문 하 다

일시 | 2017.12.02. 1시

장소 |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주관 | 여성환경연대

지원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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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오프닝오프닝 공연 | 이매진

여성환경연대 소개 |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1부. 일과 노동 1:30 ~ 2:30

에코페미니즘은 노동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용윤신 알바노조 조합원

기본소득이라는 렌즈로 일과 노동 새로보기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2부. 몸의 정치 2:30 ~ 3:30

몸 아픔과 건강의 역설 : 자기 돌봄과 쉼에 대하여

김신효정 여성주의 연구자

다양한 몸 드러내기 : 보이지 않는 문제의 가시화

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3부. 동물권 3:40 ~ 4:40

상생하는 페미니즘 : 페미니즘에서 비거니즘으로

그리고 비건 페미니즘으로

유비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멤버

도시 비건 잔혹사

하진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멤버

4부. 플로어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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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일과 노동

1부. 일과 노동 1:30 ~ 2:30

에코페미니즘은 노동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용윤신 알바노조 조합원

기본소득이라는 렌즈로 일과 노동 새로보기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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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

에코페미니즘과 노동운동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용윤신

알바노조 조합원

들어가며

여성노동자A는 맥도날드에서 알바노동을 한다. 2017년 기준 최저임금인 6470원을 받는다.

맥도날드 내에서 맥카페에 있으면서 커피 및 디저트 판매와 고객응대, 그리고 매장 청소를

한다. 가장 저렴한 커피는 천 원짜리 원두커피이고 가장 비싼 커피도 4천원이 채 되지 않는

다. A가 일하는 아침7시부터 오후1시까지는 저렴한 커피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A

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첫째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는 대학생이고 둘째는 운동을

하는 고등학생, 그리고 셋째는 중학생이다. 세 자녀의 용돈과 학비 등을 합치면 한 달에 적

게 잡아도 200~250만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맥도날드 알바노동을 하기 전에는 친정부모와 함께 자영업을 했다. 그런데 자영업으로 벌어

들일 수 있는 수입의 규모가 딱 친정부모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A는 맥도

날드 일을 통해서 필요한 돈을 충당해야한다. 하지만 식당을 고령의 부모 둘이 운영하기 어

렵기 때문에 1시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친정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으로 가서 반찬을 만든다. 그리고 이곳의 일까지 마치고 나면 다시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덧붙이자면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의 피크타임에는 그 시간에만 고용하는

또 다른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가 있다.

여성노동자B는 미용학원 강사로 일을 하던 중 남편의 직장문제로 타지로 이사했다. 첫째 아

이를 갖고 타지에서 친구나 친정식구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고립감에 낮은 정도지만 우울감

을 갖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정도로 자란 뒤에 생활비 마련을 위해 유니클로

에 입사했다. 아이가 등원한 뒤인 10시에 출근하고 2시에 퇴근할 수 있는 유니클로의 시간

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B가 파는 옷들은 방글라데시, 중국 등지에서 10대, 20

대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제작된 옷으로 B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싼 값에 판매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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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노동자 40명 중 점장 및 부점장을 포함한 5명을 제외한 35명은 전부 풀타임계약직

혹은 파트타임계약직 노동자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매주 스케줄을 바꾸고 30분 단위

로 스케줄이 짜여있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알바노동자들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한

다. 매장에는 B와 같이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는 동시에 매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더 있다. 일을 시작할 당시에 6700원을 받으며 일했고 6개월 이상 일하고 진급하여 시급

100원이 올랐다. 허탈함을 느끼던 중 둘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일을 그만두게 되

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는 실제로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사례들이다. 이제까지 진행

되어온 노동운동으로는 위 사례에 나온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막막하다. 본 발제에서는

앞의 사례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을 빌려와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세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기존 노동운동의 남성중심성

을 넘어 여성의제를 부문이 아닌 중심의제로 하는 노동운동,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말하고 임금노동의 경계를 넘어 가사노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주부와 알바노동자들

을 조직할 수 있는 노동운동, 국제적인 분업과 여성의 착취를 말하고 국제연대를 지향하며 국

내의 소비자운동과 연결하는 노동운동.

여성의 문제, 부문에서 중심으로

노동운동이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남성적 이미지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노

동운동의 대표격인 민주노총 내의 여성조합원 비율30%에 불과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

노총 2기 직선제 선거 후보유세에서도 여성의제 혹은 여성주의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1-2기 직선제 위원장 후보를 통틀어서 단 한 명의 여성위원장 후보

도 없었던 것은 민주노총이 결코 여성친화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임금노동자

들의 절반에 육박하는 여성들의 이슈를 노동조합이 전면에 들고 나서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

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 문제 그리고 노동운동 전체의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몰성

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업들을 탈피하고, 사업장 내부의 성차별의 문제, 남녀임금격차, 성폭력

문제를 부문의제가 아닌 핵심의제로 다루어야 한다. 또한 민주적이고 평등한 문화건설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 여성간부들을 더 많이 배출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노동

운동을 해나가야 한다.

현재 노동운동의 남성중심적 경향 때문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노동운동 자체에 회의적인 태

도를 갖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사를 살펴보면 노동운동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

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주체가 되었던 노동운동은 물론이고, 여성노

동자들이 스스로 여성의 이슈를 가지고 노동운동을 꾸려나갔던 경우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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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순 몇 군데의 사업장 투쟁을 넘어 저임금으로 공장에서 착취당했던 여

성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 시대의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특히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노동운동이 이런 경향을 갖는다. 1920년대 경성

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과 1930년대 정미여공들의 파업이 바로 그런 사건이다. 경성고무공장

의 경우 1923년 7월 3일 임금인하 반대와 여공에게 무리한 행동을 한 감독의 파면을 요구하

며 파업했다. 경성 광희문 밖의 네 군데의 고무공장의 백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가세하여 파

업을 진행했다. 1930년대에 진행한 정미여공들의 파업의 경우 당시 요구사항으로는 임금, 감

독의 횡보, 여공구타문제, 민족차별 철폐, 여직공 임금차별 철폐, 경찰간섭 반대, 단체가맹 자

유, 8시간 노동제등의 요구조건이 있었다.1)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 전성기의 사례도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노동조합으로는 콘트롤데

이타 노조와 삼성제약 노조가 있다. 이들은 100% 여성노동자들과 여성간부들로 이루어진 사

업장들로,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을 개선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의 노동권을 의제화하고 이를

성취했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구타금지와 결혼퇴직제 출폐, 출산휴가보장, 남성노동자

들과 같은 비율의 상여금 획득, 성희롱 금지 등 현대의 여성노동자들보다도 더 높은 수

준의 사내 복지를 요구하여 획득한다.

경성고무공장이나 정미여공 콘트롤데이타, 삼성제약 노조 외에도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슈를

중심으로 하여 노동조합을 꾸리고 노동운동을 했던 경우는 많이 있다. 이렇게 왕성했던 여성

들의 노동운동은 80년대 전두환의 노동탄압정책과 중공업중심의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소멸되

어 간다. 경공업중심의 정책에서 중공업중심의 정책으로 넘어가면서 경공업 자본의 해외이전,

공장폐쇄의 영향이 결국 사업장을 중심으로 역동하던 여성노동자들의 운동을 약화시켰다. 87

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여성들이 점하는 위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여성

들이 대규모로 노동하는 사업장들이 줄어들었을 뿐더러 대공장의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노동

조합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조직되면서 마치 여성노동자들의 운동은 없었던 것처럼, 부수적

인 운동이었던 것처럼 평가되고 만다. 하지만 앞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으로 87년 노동자대투

쟁이 있었던 것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운동을 되돌아보며

노동운동내부에서 여성의 문제가 부차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고 여성의 이슈가 중심

이 되는 노동운동을 만들 수 있도록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노동자와 간부가 전원 여성인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민주적이고 여성의 문제

를 해결하는 노동조합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90년대에 민주노총을 깨고

나온 여성노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의 노동운동에 대해서 단순히 성비의 문제로 접근해서

1) 이런 일제강점기의 노동운동의 경우는 일제 말기의 혹독한 탄압과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상당부분 파괴되고 다시 회복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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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안 된다. 노동조합을 운영하는데 있어 조합원과 간부들의 여성주의적 시선을 견지하기 위

한 공부는 물론이고, 여성의 노동이 왜 저평가 되는지,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왜 높은지 분

석하고 이를 근거하여 노동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 한계를 넘는 운동을 위해 가사노동으

로 시선을 돌려보자.

노동운동의 영역을 가사노동·돌봄노동으로 확장

현재 노동운동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언뜻 보면 이 문장이 어

떤 성차별적인 내용도 담지 않는 듯 보이나, 남녀의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조직률을 살펴

보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2) 앞서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의 유무가 사업장 내

에서 노동자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만큼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고

민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대다수 남성노동자들이 종사하는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

으로 투쟁을 전개해왔다. 2016년 기준 노동조합 조직률이 2%로 되지 않는 여성 비정규

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이다.3)

따라서 임금노동 중심성을 탈피하여 부불노동인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을

진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되는 문제는 단순히 임금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겪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중심의 정상가족이데올로기, 무료가사노동 무료육

아와 같이 임금노동시장의 밖에 있는 수많은 변수들이 임금노동의 시장에서 여성들의 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평가 등에 영향을 미친다. 즉 집안에서의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시

장에서 여성노동의 저평가로 이어진다.

임금노동을 넘어 임금노동의 영역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노동운동은 곧 노동조합운동이라고 생각될 만큼 많은 부분 제도화 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활

동은 법에서 보장하는 단체협상을 중심으로 한다. 미국의 경우 1929년 대공황을 타개하

기 위해 뉴딜정책을 진행하던 큰 정부 당시 노동운동이 상당부분 제도화되었다. 이 시기

노동계와 정부, 그리고 자본가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가족임금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노

동운동은 사실상의 노동조합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4) 결과적으로 현재 노동운동의 많

은 부분은 사업장 중심으로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 2014년 상반기 비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 비율 53.7%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통계(GSIS)

3) 남성 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2016년 19.1%, 여성 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2016년 12.9%, 반면 남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2016년 3.8% 그리고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2016년 2.0%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통계(GSIS)

4) 노동조합의 목적은 엄격한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도모하는 데 있다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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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용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사업장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될까. 특히 비정규직 종사자의 비율이 전체 임금노동하는 여성의

비율의 40%에 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더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성비정규직의

비율, 그리고 노동조합조직률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을 하며 가정의 영역에서는 부모의 부양과 자녀의 양육 및 가사노동을 모두 짊어진다. 단순

히 자본주의에 한정시켜 문제를 바라보려는 시각을 넘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

지고 여성의 노동을 바라봐야 한다. 기존에 노동운동으로 취급되지 않던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기존의 노동운동을 넓혀가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노동의 이론에 새로운 출구를 마련함과 동

시에 운동에 역동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정주부들을 노동조합으로 적극적으로 가입시키는 운동이 가능할 것인지 회의적일 수

있다. 다행히 역사상의 사례가 있다. 188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까지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독일여성노동은 특히 주부노동자들을 조직했던 실제의 사례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 1920

년에는 총 20만 명에 육박하는 독일여성노동조합의 조합원들 중 가정주부가 공장노동자, 가내

노동자와 함께 주요 성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는 1880년대부터 여성노동자들이 존재해왔고 노동조합에 대한 가입도 이루어졌지만

폭발적으로 가입하지는 않았었다. 여성들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의 핵심이었던 여성회의가 여성불만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면서부터이다. 1892년

에는 5천명 미만에서 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20만명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사

회주의법의 통과로 인해 노동조합을 합법적인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정치적 선전

선동을 위한 선동위원회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운동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소식지 <평등>을 발행하고 교육과 집

회를 진행했다. 그중에서 특히 가정주부들을 조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892년에 설

립된 교육협회이다.

또한 기관지 <평등>은 운동의 지도부와 일반 조합원들 사이의 괴리를 약화하기 위해 어머니와

양육에 관한 보충설명을 실기도 했다. 파업하는 남성들에 대해서 가정주부들이 자체적으로 시

위를 조직하여 진행하기도 했고, 제빵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경우에도 소비자 운동의 형태로

보이콧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번성했던 독일의 여성노동운동은 이후에 사회민주당

내부의 수정주의적 경향과 싸우는 과정에서 <평등>, 교육협회 등의 주요한 기반들을 하나 둘

씩 잃으며 사라져간다.

독일여성노동운동의 한계는 이 운동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지도한 체트킨의 사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체트킨은 초반에는 철저하게 맑스주의적인 관점에서 가사노동이

점차 사라지고 종국에는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후에는 모성적 일에 대한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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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을 주장한다. 하지만 가사노동에 대한 이론적 평가를 내린 적은 없으며 임금노동에

여성이 참여할 권리에 대해서만 강조하여 맑스주의적 노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

서 가사노동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 분석의 부재와 가정주부들을 여성 임금노동자들의 부

수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평가절하하는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

구하고 독일여성노동운동은 실제로 전업주부를 조직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

다면 집안에서 이뤄지는 주부들의 노동을 어떻게 사회적인 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남는다. 이는 국제분업과 소비자운동의 연결, 그리고 주부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연

결함으로써 힌트를 얻고자 한다.

국제적 노동분업을 배경으로 국제연대 실천

현대인에게 국제분업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앞서 언급했던 한국의 1970년대는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 여성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투여하여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이뤘던 시기이다.

당시 여공들은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렸으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대우조차 보장받

지 못했다. 과거 한국 마찬가지로 경공업 공장은 중국,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으로 이

전하여 또 다시 현지의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한국, 일본, 미국 등의 나라에서 다시 알바노동자들을 착취하여 값싸게 유통한다. 가정주

부들이 이러한 상품들을 구매하면서 노동자들의 재생산비용을 낮추는데 이용한다.5)

커피, 의류, 칵테일새우,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이와 유사한 구조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

의 과정을 거친다. 이제까지의 운동구조 속에서는 생산과정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은 소비자운

동에만 집중된 형태로 보이콧이 진행되어왔다. 물론 보이콧에도 다양한 맥락이 있다. 생산과정

이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하여, 특히 노동자들의 사내 복지가 좋지 않은 기업에 대하여 진행되

는 보이콧이 있다. 최근 커피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커피농장의 노동착취가 알

려지면서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관련하여 관심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관심

도가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결정적인 부분은 소비자들의 건강문제

와 직결되는 상품의 문제에 있어서 이루어졌다. 광우병쇠고기 사태, 가습기 살충제, 치약,

릴리안 생리대 사태, 맥도날드 장출혈성대장균 검출 등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

의 경우 사회적 파장은 앞선 언급했던 생산과정에서의 비윤리성보다 훨씬 크게 이슈화가

되었고, 그 효과가 오래갔다.

5) 이러한 경향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표현되는 나라들에서 고령화의 심화와 더불어 청년층의 노동력 감소가 일어나면 여성노동을 착취하는 경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미 청년층의 노동력 감소가 일어나면서 값싼 주부들의 노동력을 기업으로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맥도날드는 그런 기업들의 선두에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보다 고령화의 단계는 낮지만 유사하게 갈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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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업의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소비자들의 권리 보장은 사실 연결되어 있

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쟁 속에서 싼 값에 무리하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강도 높게 착취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 농약과 살충제 등을 과도하게 사용함으

로서 자연을 착취한다. 우리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한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그 비용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부담하고 있다. 그것은 생산이나 유통을 하는 노동자가 될 수

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다.

공정무역이 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유통구조의 혁신을 통해 중간마진을 줄이고 생산부터

소비까지의 과정을 더 획기적으로 줄인다면 적당한 가격에 안전하고 윤리적인 상품을 소비자

에게 공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가격을 구성하는데 실패하거나 다이소나 이

케아, 유니클로, 맥도날드처럼 싼 값에 저품질의 상품을 만날 수 있는 장들과의 경쟁에서 패배

한다. 상품의 소비자이기도 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택 속에서

무조건 윤리나 건강을 따지기는 어렵다. 지금의 임금으로도 먹고 살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

다.

즉, 돈이 없는 소비자들은 저렴한 물건을 찾게 된다. 소비자운동은 사실 노동자운동과 깊은 연

결고리를 갖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제외하고 소비자운동만을 말했을 때 충격적인 수준의 보도

가 있지 않고서는 이 운동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혹은 쏟아지는 상품들 속에

서 값싸고 건강에 무해한 구매를 해내는 것이 가정주부의 몫이 되기도 한다. 이런 구조 속에

서 결국 윤리적인 소비라는 새로운 노동이 여성의 일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해외에서 상품을 생산해오더라도 유통의 영역에서 또 다시 노동착취가 일어난다. 앞서

언급한 다이소나 이케아, 유니클로, 맥도날드는 최저임금으로 알바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대표적

인 기업들이다. 국내에서는 청년알바노동자들과 주부알바노동자들의 노동을 집중적으로 착취하

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6)

그렇다면 이런 생산하는 노동자와 유통하는 알바노동자, 그리고 소비를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

하는 가정주부의 관계를 연결하여 운동을 기획해볼 수 있지 않을까. 패스트패션의 대표격인

유니클로는 중국과 방글라데시 등지의 값싼 여성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유니

클로 매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주고 고용한 파트타임 노동자들과 계약직노동자들을 통해 값싸게

옷들을 유통한다. 유니클로 본사의 정책에 따라 거의 모든 매장 노동자들의 80%이상이 비정

규직이다.

이러한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유니클로의 저렴한 옷들이 나

6)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실제로 청년 노동력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의 저임금 일자리를 메우던 주요한 축인 청년노동자들이 줄어들자 일본의 기업들은 주부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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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9

올 수 있다. 우리는 유니클로의 현지 노동자들과의 교류, 그리고 국내의 알바노동자들의 조직

화를 통해서 이들은 노동자들의 위치와 소비자의 위치 모두를 이용해서 상품의 유통과 판매의

영역에서 협동하여 보이콧을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운동을 통한 조직보다 훨씬

위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나오며

이상으로 짧게나마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제시했

다. 제시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보면 이미 아는 얘기였다고 생각 될 수 있으나 노동운동의 영

역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 속에서 던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분명 이제까

지의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들이 있고 기존의 구조와 통념들 속에서 위에서 제시한 새로

운 아이디어를 당장에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의 도입부에서 제시

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지금 길거리를 나가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인 것

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가는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에 밀착되는 노동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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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10

기본소득으로 일과 노동 다시보기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일 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 대학의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었던 내용은

정치경제학이나, 경제사, 경제인류학 등으로 그런 내용을 배우려거든 사실 인류학과나 사회학

과에 갔어야 한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나름대로 전공을 좋아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경

제학에서 가정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 인간에 대한 전제부터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GDP라

는 한계가 명확한 지표를 가지고 국가들을 줄세워 비교하며, 경제성장 신화를 재생산하는 이

유가 뭘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끝없이 파이가 커져야 분배할 수 있다는 논리만이 지배적인 상

황에서 말하는 사회정의는 현재와 미래의 어떤 희생을 담보로 하는지 분명히 짚고 싶었습니

다. 또한 GDP에 포함되며 긍정되는 노동(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나 토건사업 등 환경파괴를

일삼는 행위)과 포함되지 못한 노동(가사노동, 돌봄노동 등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 간의 위계

차이에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경제학을 배웠던 고등학교 때부터 품고 있던 질문들의 답은 강의실에서 찾을 수 없었습

니다. 사회과학 중에서도 경제학과가 유난히 남성중심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점도 힘들었

습니다. 기존의 ‘경제’란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협소하게 의미했고, 기존의 ‘성장’이란 사실

경제성장의 줄임말이었으며, ‘노동’이란 ‘임금노동’ 혹은‘ 생산적 노동’, ‘남성의 노동’만을 의

미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나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 말들은 모두 반쪽짜

리, 아니 반도 안 되는 말들이라 느껴졌습니다.

다시 경제학에 일말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졸업을 두 학기 남기고 기본소득 운동을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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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11

나서부터였습니다. 5년 이맘 때 어느 오후, ‘여성과 일' 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한창 딴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고

요. 수업이 끝날 때쯤에 이르러서는 맥락을 알 수 없던 딴 생각이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에 가입해야겠다는 데에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운동단체

한 곳에 적을 두고 싶었기도 하고, 얼마 전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

기만의 방>, 비주류 경제학세미나에서 알게 된 여성주의 경제학과 생태경제학, 김은실 선생님

의 특강에서 주워담은 ’캐럴 페이트만‘이라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자가 기본소득을 “경제적 시민

권”이라 주장한 글 등이 어떤 시그널처럼 저의 안테나에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 분노와 답답함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하

여 말하는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 정작 여성은 입장할 수 없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

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우리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답답하

고 화가 나는 날들입니다. 경제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저의 의문이 여성주의 경제학과 생태

경제학에서 주요한 질문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두근거렸습니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얘기하는 대안 경제 또한 같은 맥락에 닿아있어 반가웠습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여러 (남

성) 연구자들이 있지만, “여성이 소득-결혼-고용-시민권 사이의 강제된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가져야 비로소 온전한 근대적 시민 개인, 온전한 인간 주체가 될 수 있

다”고 주장하는 캐럴 페이트만의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운동을 나의 운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캠퍼스 밖의 훌륭한 선생님들과 동료들에게 받은 영향도 컸습니다. 홍대입구 역의 ‘작은

용산' 두리반과 같은 도심의 철거농성장, 목숨 건 투쟁을 이어가는 해고 노동자들, 강정과 밀

양의 주민들과 거리의 신부님들, 성소수자 활동가들, 장애인권 운동가들, 풀뿌리 운동가들, 청

년활동가들. 자신이 속한 공동체서부터 다시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이들을 만

났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는, 유쾌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만났고, 열악한 물적 조건 속에

서도 타인에게서 얻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 모

두 ‘이중의 가난’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빈곤과 힘들게 싸우면서 동시에 세계

의 빈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와 저의 활동가 동료들이 처한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파트타임 알바와 활동을 병행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도 어느 순간

다 그만두고 취업 준비에 몰두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가족들에게 죄책감 갖지 않고 하

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이 직관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제가 만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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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12

던 이중의 가난과 맞서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기본소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여성들, 청(소)년들, 농민들, 예술가들, 노인들, 그리고 나와 동료들에게 기본소득이 있다면 어

떨까. 극심한 부의 양극화와 사회 곳곳의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는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선물이 생긴다면 어떨까. 돈이 있든 적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처럼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안전망이 있다면 어떨까. 내일이 오

늘보다 나을 것이란 어떠한 보장이 없어, 삶을 포기해버리거나 다른 이들의 삶을 테러해버리

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상상하고 싶어졌을 때 기본소득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일상적

인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기에 점점 더 힘든 곳이 되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가 요구하는 표준에서 벗어난 개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는 다양한 차이를 가진 개인들이 사회 안에서 평등하게 존중 받으며, 빈곤으로부터든 편견

과 혐오로부터든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중의 하

나가 기본소득 운동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건강한 개인으로 자립할 수 있고, 나아

가 호혜적인 상호의존이 가능하도록 기본소득이 마중물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 x 녹색정치

그러던 중에 녹색당이라는, 제가 참여하는 정당에서,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낙관하면서 나아가도 되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낙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

다. 경제성장의 환경 비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좁디좁은 물질적 의미에서의 권리와 의무를

확장해왔으며, 정치공동체와 시민사회를 국가주의적 관념으로만 여겨온 산업주의 산물로서의

복지국가의 한계를 넘어설 대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역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추동

할 거라는 저의 기대대로만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고정하고 기본소득을 개념적

정의에 입각해 바라보면 그 자체로는 긍정적인 잠재력과 부정적인 가능성 모두를 내포하고 있

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녹색당이 지닌 미래상과 기본소득을 함께 상상해보는 것이 돌파구가

되어줬습니다. 녹색정책 패키지의 일부로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 생태(사회)주

의자들의 연구를 참고해보면, 크게는 토지세와 에너지세 도입(제임스 로버트슨), 노동시간의

획기적인 감축(앙드레 고르), 비화폐적 교환시스템의 도입 등 비공식 경제 영역 확장(클라우스

오페) 등의 제안과 상호보완적으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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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13

녹색당에서 제안한 기본소득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비전으로서 기본소득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기본소득은

삶의 전환을 위한 입구이자, 녹색당이 제안하는 탈핵, 탈토건, 농업, 먹거리, 에너지 전환, 동

물권, 소수자 인권 등의 의제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건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

본소득은 사회로부터 오는 환대와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합니

다. 생존을 넘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나의 생활 뿐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각자가 자유로운 시간을

버는 일이고 곧 사회적 논의의 시간을 모으는 일입니다. 소진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소생시키

는 노동을 선택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탈성장이나 탈노동과 같은 가치를 각자의 삶 속에서 구

체적으로 욕망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일단 많이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권도 존중되지 않는 나라에서 단지 언어에 불과한 “권리”의 리스트를 추가하는 게 아닌지

종종 회의감이 들고, ‘시민’에 대한 상상력이 확장되지 않는 세계에서 시민배당을 말하며 더욱

배타적인 세계를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도 스스로 불편할 때가 많습니

다. 그렇기에 분명히 해야합니다. 시민배당에서의 ‘시민’은, 인간과 비인간, 현재와 미래의 존

재 사이의 평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녹색시민성으로서의 시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요.

‘모두에게 조건없이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을 이야기하려면 할수록, 소수자들이 차별받았던 역

사와 현재의 삶에 주목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합니다. 현재의 인간뿐 아니라,

현재의 비인간과 미래 존재들의 생명과 삶에 대한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여 혹은 노

동을 넘어, 쓸모를 넘어, 국민국가 중심의 시민권을 넘어 인간과 지구의 한계를 지각함 속에

서, 지속가능성과 공존을 고민해야합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상식을 뒤집기

“현재의 경제학에 인류의 현실적인 경험을 위한 자리는 없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허구

의 인물,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인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

다.”

“북유럽 복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 체제는 여성들이 아

주 낮은 비용으로 특정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중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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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14

일과 노동에 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도 안 하는 사람한테 무슨 근거로 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크게 두 가지로 답해왔습니다.

첫 번째로, 지금은 일을 하고 싶어도 직업으로서의 ‘일자리’가 적다는 것입니다. 자동화, 기계

화의 추세로 숫자로 셀 수 있는 과거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듭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최소한의 생계보장이 안 돼서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일자리를 구한 사람이라면 과로가

기본이고, 쉬지도 못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도 못 보내, 병에 걸려 건강을 잃고서야 어쩔 수

없이 그만둡니다. 또한 정규직 취업이 최종 목표인 우리 사회에는 소박하더라도 함께 살고 싶

은 사람들, 이전 세대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

은 일을 선택해 적당히 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늘어야 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요?

두 번째로는, 생각을 전환해보면 우리 모두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

에 필요하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무임금 가사

노동이나 돌봄노동, 예술가의 작업 활동,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 일입니다. 시간과 에너지가 엄

청나게 들어갑니다. 기존에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재생산 노동 등 비임금 노동을 적극적

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고민해야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답변 역시 이제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드시 어떤 노동의 대가로서

기본소득을 받아야 할까요? 생존에 필요한 소득을 반드시 어떤 노동의 대가로, 쓸모를 증명해

내야 획득할 수 있어야 할까요? 그냥, 여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몫을 요구한다고 하면 이상

한 일일까요?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생산과 분배, 시장 등에 관한 익숙한

전제들을 되짚어보자고 제안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임금노동이 더는 보편화될 수 없는 시대

에, 시민권과 사회적 포용, 사람됨의 토대를 새로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산이 우선적이

고, 분배는 단지 그에 뒤따른다고 생각하는 것을 ‘생산주의적 상식’이라 부릅니다. “우선 전체

파이가 커져야, 나눌 것도 있다“라는 바로 그 얘기입니다. 퍼거슨은 ‘생산’에 기여하는 임금노

동자들은 생계부양자로서, 무임승차나 다름없이 의존하는 피부양자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사실은 남성중심적이며 여성혐오적인 토대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젋은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는 ‘된장녀’, ‘김치녀’, ‘빨대녀’ 등의 표현이

유사한 여성혐오적 토대를 공유합니다. 노동하지 않는, 타인의 소득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기

생하는 존재로서 부정적으로 상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실과도 맞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 여성 빈곤 등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 직장 상사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앞장서 가

려버리는 문제적 워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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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15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빤빤한 햇빛이 스르르 누그러진다. 남치맛빛 같은 하늘빛이 유연히 떠오른 검은 구름에

가리운다. 남풍이 곱게 살살 불어 들어온다. 그 바람에는 화분(花粉)과 향기가 싸여 들어

온다. 눈앞에 번개가 번쩍번쩍하고 어깨 위로 우레 소리가 우루루루한다. 조금 있으면

여름 소나기가 쏟아질 터이다.“

- 나혜석, 「경희」 중에서

1900년대 초반, ‘청년’이라는 말이 ‘young man’의 번역어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이끄

는 주역으로 호명됩니다. 그러나 1930년대로 가면서 여성은 ‘청년’ 범주에서 밀려나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신여성’, 더 나아가 ‘모던걸’로 불리게 됩니다. 근대적인 소비에 물든 존재, 사

실상 욕에 가까운 말이었다고 합니다. “김치녀”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정작 ‘모

던걸’로 불려온 당사자는 당시 어떻게 느꼈는지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

히 알고 있는 나혜석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라 부르면서도, 작가로

서의 활동보다 다른 남성들과의 스캔들만이 주된 화제거리로 다뤄져 안타깝습니다. 저도

잘 몰랐긴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나혜석의 소설 「경희」를 읽게 되었습니

다. 이 소설에 당시 흔치 않았던 유학한 ‘여학생’으로서 삶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털어놓습니다. 주인공 ‘경희’의 고민이 100년 후인 오늘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민

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희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자, 당시로서는 드물게 깨어있던 오라버니가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함으로써 일본 유학을 가게 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들러 이런저런 집안일을 돕는

데, 소설은 오랜만에 방문한 경희의 일상과 삶에 대한 고민을 그리고 있습니다. 경희는 생명력

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이리저리 손노동을 하며 재미를 느끼고, 공부를 하며 더 넓

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펼쳐가려는 동시에 ‘조선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 시대의 한계에

직면해 좌절감을 느끼며 “아이구, 어찌하면 좋은가.” 한탄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경희가 방

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잔 다르크에 비춰서도, 천하의 달필가나

이론가 누구에 비춰서도 머리도 좋지 않고, 겁도 많고. 정말 다르게 살고자 하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나는 정말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다, 다르게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결의를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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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16

자신은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고,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

성”이고,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이라고요. 이 새삼스러운 선언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찌르르하면서 눈물도 찔끔 났습니다. 캐롤 페이트만이 말한 여성이 개인이 된다

는 것, 기본소득을 도구 삼아 결국에 이루고자하는 것은 바로 경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

서 행복한 세상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겁나지만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도

무지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평범한 ‘경희’들이 함께 용기내보는 것. 저 역시 딱 그 정도인 듯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오랜 상식과 다가오는 변화 모두를 비판적으로 뜯어보고, 고

민을 심화시켜주는 렌즈와 같습니다.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단단한 관점, 우리 스

스로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연장으로서 힘이 됩니다.

희가 마음이 맞고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경희에게

기본소득이 있는 세상을 상상하며,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경희」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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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몸의 정치

2부. 몸의 정치 2:30 ~ 3:30

몸 아픔과 건강의 역설

: 자기 돌봄과 쉼에 대하여

김신효정 여성주의 연구자

다양한 몸 드러내기

: 보이지 않는 문제의 가시화

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Page 20: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자료집(2017)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18

몸 아픔과 건강의 역설

: 자기 돌봄과 쉼에 대하여

김신효정 (여성주의 연구자)

몸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감정과 육체와 영혼을 치유하게 된다.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나는 왜 아플까?

또 몸이 아프다. 알 수 없는 통증이 몸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낸다. 아랫배도 무거운 것이 이

아픔이 몸살인지 아니면 생리전증후군인지 아니면 어제 먹은 그 패스트푸드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면 이 몸 아픔이 며칠 동안 풀지 못한 가족과의 말다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항상 아프다. 만성 위염과 알레르기성 비염, 선근증은 언제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

워준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저 3개의 만성질병 중 하나가 온 몸을 장악한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쉴 것인가? 더 일할 것인가?

20대 초반 여성단체 활동가로 활동했었다. 당시 처음 발효된 법과 정책에 따라 시범사업을 운

영에 참여하느라 매일 밤새 일하였다. 새로운 법이 생기고 정책이 만들어지니 세상이 변할 것

같다는 설렘으로 힘들지만 즐겁고 신명나게 일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부가 요구하는 성과들

을 만들어 내야했고 더 많이 일해야 했다. 어느 순간 지치고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몸

도 마음도 고장이 났다. 내가 원했던 여성운동이, 페미니즘이 과연 이런 것이었는가. 무리하게

일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과로 이끌어 내었지만 정작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때로는

처참히 실패하기도 했다.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이 우리 사회의 생산주의 가치와 만나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정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일까?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일상을

긴 노동시간에 투여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돌봄을 소홀히 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

까? 나는 이때 처음으로 변화를 위한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때는 몸 아픔을 잊기 위해 더 많이 일하기도 했다. 다행히 서른이 지나고 이제는 나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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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19

아픔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나는 내 몸 아픔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만성질병은 내 몸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에 따라 증상이 좀 덜하거나 더한 파도 같은 물결 속에서 잔잔한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몸의 신호를 알아채고 만성질병을 달래면서 함께 동거하기 까지

쉽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병원에도 가보고 온갖 항생제와 영양제를 먹었다. 의사들은 다 원인

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음식을 조심해야 하며 과로하지 말라고 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며 작심삼일 운동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떠한 처방도 나의 몸 아픔을 낫게

하지 못했고 끝없는 자기 비난과 반성에 사로잡혔다. 내가 운동을 안 해서 계속 아픈 것인가?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제 때 안 먹어서 계속 아픈 것인가? 내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럴수록 몸은 더 아프고 우울했

다.

거부당한 몸과 건강 신화

과연 건강한 몸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사회, 다양한 환경

오염와 유해화학물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어떠한 모습일까? 대개

건강과 질병은 일차적으로 기계공학적 은유7)를 통해 설명되어 왔다. 즉, 건강하지 못함은 인

체 시스템 한 부분의 기계적 작동이 실패한 것이며 의학의 역할은 그 손상을 수리하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정신과 신체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탐구하지 않으며, 개인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적 맥락에서 분리된다(레슬리 도열, 2010:39). 현대 의료는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서구의 정신-몸 이원론에 따라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으로 보아왔다. 질병을

가진 사람은 치료의 내재적 힘과 지혜를 소유한 주체가 아니라 질병을 제거해야할 대상으로서

의학적 처치가 이루어지고 관리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자본주의 소비사회, 남성중심

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언제나 주체이기 보다 대상이었다(이윤숙, 2016).

이렇듯 ‘몸’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성불평등한 문화와 사회 구조를 ‘몸’으로 체화해왔다. 성/

성별분업의 체계에 따른 생물학적, 문화적 경험주체로서 여성의 삶은 보살핌, 재생산 노동, 생

명출산, 일상적 생계유지를 위한 생산 활동을 담당해왔다(브라이도티 외, 1995). 그러나 가부

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여성의 노동, 경험, 삶은 가치 절하되어왔고 때로는 무시당해왔다.

여성의 ‘몸’ 경험은 때론 의미나 언어를 가지지 못해왔다. 월경, 출산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이

가지는 다양한 고통은 사적화되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우울증’ ‘홧병’ ‘아픈 몸’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화도 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우울증’ 20-30대의 많은 여성들이 우

7) 인체를 분리되어 있으나 서로 의존하는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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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0

울증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우울증, 홧병 환자의 대부분이 여성인가? 국민건강영양조

사(2012)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을 앓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약 1.8배 많다고 한다.

왜 여성은 삶을 살아가면서 우울이나 화를 품게 되는가? 왜 여성은 수 년 동안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는가? 반지하 집에서 혼자 살며, 최저임금에 불안정한 알바로 겨우 생계를 해결하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불안감이나 우울증이 없을 수 있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감정

노동과 돌봄 노동, 성추행을 비롯한 여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같은 가족주의, 희생과 순종을 강요하는 성별문화, 성별

분업으로 인한 여성 돌봄노동,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로 인한 자원 접근성과 통제권 부재, 남

성에게 관대한 성문화의 사회 속에서 과연 우울증과 홧병은 과연 여성 개인의 문제인가? 한편

여성의 우울은 생애주기와도 관련이 있다. 여성의 월경증후군, 산후우울증, 갱년기증후군 등은

호르몬의 영향에 따른 우울로 꼭 질병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내 몸이 증거다

최근 생리대 사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중과 정부의 대응은 현재 여성의 몸에 대한 이 사회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3,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특정 생리대 제품을 사용하고 자신의 생

리주기가 변하거나 생리통을 경험했다고 ‘몸으로’ 말했고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여

성들이 ‘몸으로’ 경험한 생리대의 유해성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해하지 않다’고 발표했

다. 여성의 몸적 경험은 어떠한 이유로 과학적이지 않은가? 왜 객관적이지 않은가? 과연 ‘과학

적 객관성’은 누구의 관점과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왜 여성의 몸 경험

은 침묵을 강요당하는가?

한편으로는 여성이 경험하는 질병이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문제가 있다. 생리

대 사태 이후 여성들이 구술하는 많은 증상들이 질병인지 아닌지를 밝힐 수가 없는 것이 여성

의 월경에 관한 기준이 되는 증명된 의학적 지식과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월경 주기의 이상

과 증상과 빈도에 대한 정상의 기준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질병

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이 떠들고 말해야한다. 발화하는 것, 여성 스스로 몸에 나타나는 고통과 통증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여성

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던 몸의 증상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 사회에서 발화하

지 않았다면 아직도 우리는 생리대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 유해화학물질 노출 작업장에서의 여성 건강 및 생식건강 문제, 거

식증과 섭식장애, 폭력 피해여성들의 트라우마 등 많은 여성의 고통과 몸 아픔은 여성들 스스

로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이야기함으로써, 동시에 변화를 위한 운동을 펼쳐냄으로써 남성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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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21

의 의학과 의료체계 속에서 질병으로 명명되고 개인적인 건강이 아닌 사회적 건강으로 다루어

져 올 수 있었다.

시장을 넘어서, 나의 몸 되찾기

소비자본주의의 시대에 우리의 몸과 건강에 대한 자기 돌봄은 모두 외주화 되어 왔다. 24시간

도 부족한 시대에서 우리의 몸에 대한 관리와 쉼을 위한 돌봄까지도 병원과 다양한 산업에 위

탁한 채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이 소비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특히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과도한 의료화8)에 놓여있고 의료기술 발달은 오히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흐름을

가져왔다(김명희, 김현주, 2017). 한편 돈이 없고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의료화 된 시장에

조차 접근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로 인해 여성주의자들은 여성 건강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실천을 전개해왔다. 한국에서는 여성주의의료협동조합9), 여성환경운동, 여성대안건강운동을 통

해 여성건강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하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성불평등한 사회에서 여전

히 여성 건강 문제는 사회적인 다양한 조건들을 변화시키고 정책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

나 한편으로 몸 아픔을 인식하고 자본화된 시장으로부터 건강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의 치유와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잠시 조용히 기다려라. 당장 당신이 해야 할 것이 없

을 수도 있다. 당신의 몸을 치유해준다는 ‘절대적인 방법’에 쉽게 현혹되지 말라. 마찬가지로

삶의 문제에 있어서도 당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받았던 상처에 관계없이 당신과 당

신의 몸을 존중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크리스티안 노스럽, 2000:570).

내 몸을 자각하는 것, 몸의 언어와 신호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 또한 내 몸의

언어에 무지했고 무시했었다. 내 몸과 싸우고 내 고통을 초월하고자 했다. 그럴수록 몸은 더

아팠다. 이제는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잠깐 삶의 속도를 늦추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

을 만든다. 무리되는 일정과 모임은 양해를 구하고, 해야 하는 일도 내일로 미룬다. 다행히 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낫기도 한다. 다행히 돌봐야할 아이가 없는 파트타임 지식노동을

하는 나의 노동과 삶의 조건이 잠시 동안의 ‘쉼’을 허락해준다. 아마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병

원조차 갈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돌볼 최소한의 조건도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쉼’은 불가

능할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기 돌봄과 쉼이 가능한 사회, 이를 위해선 에

코 페미니즘의 가치와 전략이 중요한 의미를 전해준다.

8) 높은 제왕절개 출산율, 10대 소녀들의 자궁경부암 백신, 출산장려를 위한 난임 시술 등9)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으로 시작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살림의원, 살림치과, 운동센터 다짐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

은 약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실현됨을 믿는다(살림사협 정관 전문 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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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2

여성건강과 에코페미니즘

과도하게 일하고 패스트푸드를 먹고 화학물질 범벅의 삶에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역설이다.

건강할 수 없는 사회에서 근대적 남성 중심의 건강 지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환상이다.

아플 수밖에 없는 몸. 만성 질병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며 나의 고통의 원인을 ‘나’라는 개인에

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재현되고 있는 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의 문화와 구조를 변

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전략은 ‘에코 페미니즘’의 좌표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우울과 절망을 연대의 힘으로. 몸의 고통과 슬픔을 환대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

까?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서 더 나아가 비인간 생명체, 자연과의 관계로 논의를 확장하며

가부장제, 자본주의, 생산주의, 소비주의, 발전주의 등 불평등을 유지시켜온 패러다임과 지배

체제에 대해 비판해왔다. 특히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에 대한 지배를 자연에 대한 가부장

제의 지배와 연결시켜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생태 위기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렇다

면 에코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세계에서 어떻게 나의 건강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것일까?

에코페미니즘은 라이프 스타일, 문화로서 개인적 삶의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과연 생산

적 노동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며 소비와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생산과 재생산 노동의 균형을

되찾고자 한다. 나 하나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건강, 돌봄의 문제를

공적으로 정치화하고 보살핌의 사회화, 정치화, 정책화를 요구한다. 일보다 삶이 우선되는 사

회를 위한 초국적 기업과 자본에 대항하는 지역적/초국적 연대를 통해 젠더와 생태 정의에 기

반한 시민권을 이야기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작은 실험과 실천의 공간을 확장하면서 조금

씩 변화의 틈을 넓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하지만 어떻게 덜 아프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양한 삶의 방식을 허용

하는 공간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환경연대가 활동가들의

재택근무, 유연근무를 통해 근무시간을 줄이고 노동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실험이다. 대사증후군 안내자 양성과정을 통해 동네에서 여성 자조모임을 만

들고 함께 식생활, 운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사례이다. 비싼 비용을 지불

하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더 많은 노동을 하기 위해 더 잘 견디는 몸을 만드는 방식이 아

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모임-청소노동자, 장애여성 요가

모임, 여성주의축구모임, 여성주의단식모임 등-에 접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뎌야만 하는 몸,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적인 몸이다. 다들 잘

견뎌내는데 과로하지 못하고, 체력이 되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들은 게으르고 부적응한 몸으

로 낙인찍힌다. 낙인을 피하기 위해 참고 견디다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몸이 되기 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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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23

내 몸의 이야기를 알아채야 한다. 아파도 괜찮고 미쳐도 괜찮다. 그 아픔과 통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삶의 연대기를 이해하는 것,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거기에서부터 치유는 시

작될 수 있다.

<참고문헌>

레슬리 도열(2010),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젠더와 건강의 정치경제학』, 한울아카데미

수전 웬델(2013),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그린비

크리스티안 노스럽(2000),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김명희, 김현주(2017), ‘여성건강, 몸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2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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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4

다양한 몸 드러내기

보이지 않는 문제의 가시화

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거울 앞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요즘은 좀처럼 거울을 살펴볼 일이 없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집 안에 화장대조차 없고, 아침

저녁으로 양치질하며 나갈 채비, 잠들 채비를 하면서 세면대 앞 거울을 힐끔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울 앞 시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저 ‘거울을 잘 보지 않는 습관’을

오랜 시간 들인 것일 뿐. 여전히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낯설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얼굴을 뒤덮은 수많은 점과 기미, 악관절 질환으로 좌우대칭이 틀어져버린 얼굴, 볼 때

마다 커지고 있는 것 같은 내 몸집, 배 둘레... 거울 앞 내 모습을 천천히 바라볼 때면 저런

식의 생각으로 시간을 채우기 일쑤다. 그리고 자연스레 약간의 우울함과 짜증을 느낀다. 아마

도 내가 거울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될 테다.

지난 겨울, 피부과에서 점을 뺐다. 작년 한 해 여성환경연대에서 ‘외모?왜뭐!’ 프로젝트를 기획

하며 줄기차게 ‘외모가 왜?뭐!’를 외쳤건만... 비현실적인 몸과 외모를 욕망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분위기에 문제제기하고, 그런 욕구 혹은 요구가 얼마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지 2030세대와 함께 찾아보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청소년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기획하며 한

정된 몸 이미지와 미적 기준이 사실은 나의 욕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고, 스스로 선

택의 폭을 넓히며 타인의 선택도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던 터다. 그렇게 1년을 활동하

고, 연말 휴가 때 불쑥 피부과에 들러 점을 빼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감정에 빠져

들었다. 늘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 쓰였던 점을 제거했다는 데서 오는 후련함, 그리고 뭔지

모를 자책감? ‘언행일치’를 이루지 못했단 생각에 괜스레, 되도록 단체 활동과 나를 연결 짓는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민망함 역시 뒤따랐다.

하지만 지난 일 년 간, 내게 여러 가지 감정을 주었던 ‘피부과에서 빼버린 점’ 은 다시 선명하

게 자리 잡았다. 이전보다 더 크고 진하게. 그리고 올해도 난 ‘외모?왜뭐!’ 프로젝트를 맡고 있

고, ‘다양한 몸’을 드러낸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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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25

100개의 몸에는 100개의 삶이 있다

다양한 몸을 드러내는 것이 어떻게 화두가 될 수 있을까.

그만큼 획일화된 몸의 기준이 만연하다. A4 용지로 가려지는 허리 사이즈에 찬사를 보내고,

‘애플 힙’ 이나 ‘꿀벅지’ 같은 말이 광고나 연예인의 대화로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겨진

다. 이렇듯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여성의 몸 이미지는 부위별로 세분화되어 결코 다다를 수 없

는 외모 기준을 제시하고 강화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정 신체 이미지에 ‘여성성’ ‘남성성’

같은 성별 역할, 고정관념이 엮여 사회가 ‘몸’에 대해 깔고 있는 전제는 ‘여자(남자)는 ... 해야

/여야 해!’ 같은 행동 규범으로까지 확장된다.

“여자애가 손, 발이 왜 이렇게 커?”

“여자답지 않게 왜 이렇게 칠칠맞니?”

“살 빼면 예쁘겠다.”

“옷 좀 여성스럽게 입어봐.”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

작년 ‘외모?왜뭐! 10대 소녀 몸긍정 캠프’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지 말라/ 해야 한

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캠프 참가 청소년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10대와 마주하는 부모, 교사 같은 양육자가 이미 ‘손, 발이 큰 것’은 ‘남성성’의 영역

에 들어가고, ‘소극적이고 수용적 태도’는 ‘여성성’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에 저런 말을

던질 수 있던 게 아닐까. ‘여성성’을 상징하는 신체 이미지와 행동 규범 반대편에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 이미지와 행동 규범이 존재하고 이는 여성의 삶을 또 다른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몸의 스펙트럼을 인지하기보단 한쪽 끝으로 치우

친, 혹은 애초에 불가능해보이는 ‘예쁜 몸과 여자다운 행동 규범’을 먼저 내면화하기 십상이

다.

사회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획일화된 미적 기준, 한정된 몸 이미지와 행동 양식은 몸

에 대한 불만족과 불편한 감정을 야기하지만, 그것이 마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호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때때로 이에 어떠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할 만큼 ‘여자답다’ ‘아름

답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행동 규범을 스스로 체화해버렸단 생각마저 들 정도

다. 날씬하고 자기관리 잘하는 건강한 몸,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몸, 아이를 출산해

야 할 몸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다뤄지는 방식은 극히 한정적이다. 그 외의 모습

은 잘 드러나지 않기에, 그러한 몸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의 박탈감이나 우울함 역시 개

인적으로 해소해야할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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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6

하지만 이것이 온전히 개인의 문제일까. 무엇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문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100개의 몸에는 100개의 삶이 있다’.

다양한 몸이 있다는 것. 사람마다 건강한 상태,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즐거운 기분이 드

는 상태가 각자 다르다는 것.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삶과 인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는 것, 각자의 다양한 삶과 인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심리학자 러네이 엥겔른에 따르면 소녀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상적인 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5세 여자아이 중 34%가 ‘가끔은’ 의도적으로 음식을 적게 먹는다고 한다. 이 중

28%는 자신의 몸이 TV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러네이 엥겔른,

2017: 19).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몸보다는 미디어에 나오는 이상적인 몸을 먼저 받아들이

고, 신체 개조의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분명 다양한 몸이 우리 각자에 존재하지만, ‘이상

적인 몸’ ‘아름다운 몸’ ‘건강한 몸’ 같은 선망하게끔 만드는 몸에 대한 이미지는 동일한 모양

새를 띤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의 저자 나오미 울프는 자신의 책이 출간된 이후 전 세계 수

많은 여성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젊은 여성이나 늙은 여성이나 모두 나이 드는 것에 대

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호리호리한 여성이나 몸무게가 나가는 여성이나 모두 날씬한 이상형

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려다 고생한 이야기, 흑인이나 황인이나 백인 모두 처음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부터 이상형은 금발에 키가 크고 날씬하며 하얗고 얼굴에 구멍이나 비대칭,

흠이 없는 사람, 완전히 ‘완벽한’ 사람, 이는 패션모델처럼 생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나오미

울프, 2016: 14)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정된 몸에 대한 이미지는 때때로 개인이 느낄 감정과 상태까지도 왜곡하게 만든다.

늙음-뚱뚱-불행

젊음-날씬-행복

우리는 ‘몸’ 뿐만 아니라 나이 든 상태, 행복과 불행 같은 감정까지도 포괄한 몸 이미지를 너

무나도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식에서는 마를수록 행복한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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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27

미’와 근력, 활기찬 에너지 등 끊임없이 무언가가 덧붙여진다. 여성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 지와는 상관없이 여성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화에서 여성의 다양한 몸과 삶

을 상상하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동일한 기준으로 대상화하고 몸으로 취급받는, 여성 대

다수가 공통의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는 쉽게 ‘아름다움’이나

‘몸’에 관한 심리적 상태나 건강 이야기로 환원된다.

돈, 시간, 에너지

한정된 몸 이미지만 상상하고 욕망하게끔 하는 사회가 가진 문제, 보이지 않는 문제는 무엇일

까. 길을 걷다 쉽게 볼 수 있는 성형광고는 얼굴과 몸을 개조하면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폐지 운동을 했던 성형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

‘렛미인’ 같은 프로그램 역시 아름답게 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

다. 몸을 쉽게 개조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을 부추기는 문화. 돈과 시간, 에너지를 들여 관리

하고 노력하고 투자하면 무언가를 좀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문화. 지금의 성장

중심,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정된 몸 이미지가 양산하는 미적 기준은 돈과 직결된다.

미용 산업, 성형 산업 같은 직접적인 연관 분야뿐만이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도 암암리에 외모 평가가 반영되기도 하고, 몇몇 금융권 직장 내에서 여성은 타이트한 A라

인 스커트와 구두를 착용한 채 일해야 하는 규정이 알려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영

화 상영관 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정된 립스틱을 발라야 하거나, 타이트한 유니폼을 착용해

야 하는 등 미용과 성형 산업 외 영역에서도 한정된 몸 이미지는 우리의 돈, 시간, 에너지를

소모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이런 ‘꾸미기 노동’은 노동 문제로 쉽게 공론화되지 않는 편이

다.10)

청소년도 이 문제에서 비켜갈 순 없다. 에스(s)라인 교복. ‘배꼽티’로 불릴 만큼 몸에 달라붙고

짧은, 여중고생 교복 광고에서도 옷맵시를 강조하며 허리선은 잘록하게, 길이는 짧게 디자인한

교복을 채택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서울의 한 인문계 여고 교복 상의(키 160cm, 88사이즈,

가슴둘레 78cm, 허리둘레 68cm)와 시중에 파는 7~8세 여아 티셔츠(키 120cm, 130사이즈,

가슴둘레 74cm, 허리둘레 74cm)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언론보도까지 접할 정도다. 청소년

스스로 다이어트를 선택하는 것과 시중에 판매하는 교복 사이즈에 몸을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

압박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르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르게 사용할 기

10)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조’가 2017년 3월 8일 ‘동일임금 동일노동 동일민낯’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꾸미기 노동’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여성 외모에 대한 편견·차별이 아르바이트 노동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설문조사 결과, ‘스타킹, 머리망, 검정 구두’ 등 일터에서 규정한 용모 관련 물품을 구매하는 데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매달 평균 2만4600원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똑같은 일을 해도 여성들에게만 높은 구두, 타이트한 치마, 화장 등을 요구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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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28

회를 잃어버리는 것 역시 문제라고 본다.

여성의 외모, 몸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과 돈, 에너지를 사용해 관리하고 바꾸어낼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회이지만, 사실 그 기준은 끝이 없다. 불가능한 몸에 대한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

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혐오하거나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 부

어야 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불행해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사람, 뱃살이나 살의 처짐 등 몸

의 현상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 다양한 몸과 삶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드러나 한정된 몸 이미지만 상상하고 욕망하게끔 하는 사회가 가진 문제가

가시화되길 바란다.

참고자료

나오미 울프(2016),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김영사

러네이 엥겔른(2017),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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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동물권

3부. 동물권 3:40 ~ 4:40

상생하는 페미니즘 : 페미니즘에서 비거니즘

으로 그리고 비건 페미니즘으로

유비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멤버

도시 비건 잔혹사

하진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멤버

Page 32: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 자료집(2017)

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30

상생하는 페미니즘

: 페미니즘에서 비거니즘으로,

비거니즘에서 비건페미니즘으로

유비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멤버

비거니즘 | 비인간종에 대한 모든 착취와 폭력에 반대하여 실천하는 것

종차별 | 인간 외의 종에 가해지는 차별

비건페미니즘 | 교차성 페미니즘의 일종으로, 성차별과 종차별 사이의 동일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나아가 페미니즘의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임신, 출산의 자유’이 비인간종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임신, 출산의 자유’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는 그 비인간 동물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착취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암컷으로 분류되는 개체들은 동종 재생산 능력 그 자체와, 그 능력과 연관된 섹슈얼리티 그

자체를 착취당합니다. 암컷인 비인간 동물들은 아기를 낳기 위한 자궁, 젖을 뽑기 위한 유방으

로 취급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여성인 인간들이 언제나

똑같이 당하는 취급이니까요. 암컷인 비인간 동물들과 여성인 인간 동물들은 모두 자신들의

몸과 관련된 섹슈얼리티로 인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위치에 놓여있

습니다. 우리는 비인간 동물들에게도 자신의 삶과 생명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더 나아가서 그

들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배란시

키거나 임신시키거나 출산시키거나 젖을 착취하거나 아기와 떨어뜨려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인

간 동물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고, 이런 행위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착취이며 폭력일 수밖

에 없습니다.

인간이 소의 젖을 빼앗아 먹는 것은 암컷인 소의 섹슈얼리티의 전체에 대한 폭력이며 착취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인 인간들이 재생산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해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폭력과 착취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인간 동물들도 재생산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폭력과 착취에 시달려서는 안 됩니다.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덜 나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죽여서 사체를 소비하는 것, 죽이지 않고 섹슈얼리티를 착취하는 것, 둘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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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31

데 무엇이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이른바 락토가 채식의 한

형태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락토 식생활은 특히 암컷인 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절하하고, 여성의 섹슈얼리

티는 그 몸의 주체와 무관하게 착취되거나 이용될 수 있는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모

든 여성들이 성적인 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며, 이는 인간 동물이나 비인간 동물에게나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비인간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식생활과 비인간 여성 동물들의 섹슈얼리티

를 착취하는 식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둘 다 반성되어야 하고 근절되어야 할

폭력이라고 느낍니다.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해서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여성 동물들에게도 이는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듣지만 듣지 못했고, 보지만 보지 못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마'속 대사다. 사람들 속에서 아주 평범하게 사랑과 우정

을 나누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이 단지 '복제인간'이며 '진짜 인간'들

을 위해 장기기증을 하고, 저할 할 수도 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할 운명이라는 진실을 마주하

던 장면에서 저 대사가 나온다.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저항하는 방법을 모르

도록 자랐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들이 저항하면 장기기증이 필요한 ‘인간’들의 생명이 위태로

워지기 때문이다.

클론들은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은’ 자신들이 ‘진짜 인간’들에게 맹목적으로 희생당해야 한다

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반면, ‘진짜’ 인간들은 일종의 클론권 운동을 통해 클론이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인지할 기회를 충분히 가졌지만, ‘자신,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클론이 인간임을 부정하고 그들의 희생을 거부하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보

호를 위해서, 클론도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듣지만 듣지 못한 채, 보지만 보지 못한 채’ 살아

가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클론이 단지 ’자연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목

적을 위해 생산‘되었다는 이유로 비인간종으로 분류되며, 인간으로부터 부여받는 생명권의 테

두리 밖에 위치하는 부당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를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기적인

인간에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소설 속에서 자행되는 ‘잔인함’은 우리 세계의 투영이다. ‘나를 보내지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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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32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다르지 않다. 단지 ‘인간과 다른 종‘으로 규정되었다는 사실 만

으로, 비인간종은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 권리인 생명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

을 고려할 때 현실 세계의 비인간종-인간과 다른 모습을 지닌- 은 인간과 얼마나 다른

가? 그들도 인간과 같이 생존에 대한 본능을, 두려움을, 우정을, 사랑을 지니고 있지 않

은가? 인간과 다른 것은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외모 등, 가장 일차적인 것뿐이다.

마치 흑인과 백인, 황인을 피부색과 언어, 행동으로 구분하고 위계를 나누던 인류의 모습

이, 현재의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위계와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또, 여성과 남성을 성

기로 이분하여 섹스와 젠더를 상정하고, 사이에 위계를 두던 남녀차별의 형태와 닮지 않

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비인간종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

은 얼마나 다른가?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거대한 고민에서 온 결론

이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던 것이다. 비인간종

이 다친 걸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했기 때문

이다. 이는 내가 그들에게 ‘공감’하기 때문이고, 이 공감은 ‘동질성’으로부터 오며, 이 동

질성이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면, 그들에게 ‘도축용’, ‘실험용’ 등의 이름을 붙이는 우리의 세상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이걸 알면서도 나는, 듣지만 듣지 못하고, 보지만 보지 못한 인간 중 하나다

걷지 못하는 소, 날개가 꺾인 닭. TV에서는 간간히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보여줬다. 특

히 광우병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식용 소 농장의 실태가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도 알고 있었고, 내 식탁에 오른 ‘고기’가 사실은 ‘죽

은 육체’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감에서 오는 슬픔 혹은 미안함은 한 순간 뿐이었다.

육식 식습관과, 육식 문화가 주는 편리함, 맛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를 포기한다는 옵

션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채식주의자는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기 때

문이다. 나도 그저, 육식 문화를 거부하는 방법조차 모른 채 비육식인을 타자화하는 수많

은 인간 중 하나였고, 비건 식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을 사기도 하고, 원숭이의 노동력을 갈아

넣은 팜유를 먹고, 꼭 비인간종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제3세계 사람들의 노동착취가

이루어진 브랜드의 옷을 산다. 나는 모순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나의 잔인성을 발견하고도 묵인하고 싶지가 않다. 묵인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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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지도, 그들을 억압하고 싶지도 않다. 내게 가장 간절한 것이

‘내가 살아갈 권리, 나를 ‘나’로 꾸리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그들도 삶의 권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결국 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비건의 삶을 지향하게 됐다. 페미니즘이 내게 선사한 내 삶

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남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제 삶의 유일한 목표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에요. 개념을 알게 되면 바로

했을 것 같아요. 비건이라는 개념을 더 일찍.

-수영

비건이 된 이유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따로 있는데, 비건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비건이 된 시점에 이미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유림

하지만 내가 비건인 것이 내 페미니즘 실천의 당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내가 종차별과 성차별을 동일선상에 두더라도, 종차별 가해자인 내가 성차별 피해자라는 사실

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종차별주의자는 성차별주의자에게 ‘성차별 하지 말라’고 말할 권

리가 있다. 종차별 가해자이기 때문에, 그 모순 때문에 피해 사실이 지워져서는 안된다.

즉, 비거니즘은 내 페미니즘 실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된다. 페미니스트로서의 비거니즘 실천은, 페미니즘이 결국 여성이 아닌 누

군가에 대한 착취를 재생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 실천을 통해 여성의 권리

를 찾는 과정이 또 다른 착취의 기반을 두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페

미니즘이란 상생 그 자체이다.

그렇게 페미니스트로서 채식을 실천하게 된 내가, ‘비건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

페스코 생활을 아마 4개월 정도 했다. 육고기 대신 물고기를, 계란을, 우유를 먹는 내 자

신에 대한 모순과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맛있는 케이크를 사먹는 게 내 삶의 활력소

였기 때문에 감히 ‘위대한’ 비건 식생활까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페스코 2개월차

가 됐을 때 캐나다에서 한 달 간 학교를 다닐 기회가 생겼다. 학교에서 비건가정에 홈스

테이를 배정해줘서, 적어도 집에서는 완벽히 비건 생활을 했다. 맘이 일주일에 두 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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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나 머핀등 간식을 구워 식탁에 쌓아놨고, 가끔은 케이크도 만들어줬다. 냉장고에는

비건 버터와 크림치즈가 쌓여있었다. 그래서 굳이 비건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끝나면 다운타운의 조그마한 케이크 가게로 뛰어가곤 했다. 죽어도 케

이크를 먹어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단지 왜 굳이 우유와 계란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랬던 내가 우유와 계란까지 끊게 된 것은 친구의 한마디 덕이었다. “나는 우유와 계란이 비

인간종의 여성성 착취라서 안먹어.” 라는 말. 또다시 ‘동일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고통의 양과 생존권에 대해서만 고민했다면,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자궁과 젖을 가진 동물로

서, 그들과 나의 여성성이 사회와 타인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와 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낙태죄 폐지 운동에 함께 하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

던 내가, 비인간종의 ‘임신할 권리, 낙태할 권리, 아이와 함께할 권리’에 얼마나 무심했는가를

깨달았다. 나의 자궁만 나의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자궁도 그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왜 ‘젖소’는 그저 소일 수 없을까? 왜 ‘젖을 주는 소’가 됐을까? 다른 포유류와 같이 그들도

임신을 해야만 젖이 나오는 신체임에도 왜 그들은 마치 ‘그저 젖을 짜면 우유가 나오는’ 것처

럼 그려져 왔을까? 왜 동화책과 교과서는 우리에게 그들이 ‘임신과 착유를 동시에 당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비거니즘과 정치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은 계속 변해왔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식습관만은

one-way인 것은 이상하다. 하지만 젖소가 ‘젖소’라는 이름을 가진 것, 젖소의 젖이 새끼가

아닌 우리에게로 오는 것, 심지어 그 젖을 반강제로 모든 초등학생에게 먹게 하는 것이 정부

의 정책인 것. 비인간 포유류의 사체가 ‘고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 그래서 우리에게 ‘음

식’으로 둔갑하는 것, 음식으로 둔갑시키는 사업에 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쏟는 것.

사회의 이러한 양상을 볼 때, 이 세상을 육식이 독점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은 육식이 ‘역사적,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

회에서 육식이 기본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 그저 ‘자연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상당히 인위적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육식은 단지 개개인의 식습관이 아닌,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를 공고히 하는 정책들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자주 들었던 오해 중 하나는, “육식 사회에서 비육식이라는 하위문화를 선택했

으니, 그로 인해 받는 불이익은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길을 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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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35

건 너니 불평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육식이 ‘자연 발생’한 개인의 식습관이 아니듯, 비육식과 비거니즘도 단순히 개인의 선

택 문제로 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이고 ‘인위적’인 육식 문화는 비인간종의 생명

권과 삶을 짓밟고, 그 구조가 공장식 축산을 낳고, 공장식 축산은 또다시 비인간종을 착취하

며, 환경과 기아 문제 등을 낳는다. 그러한 육식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육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개인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닌 주어진 정치적 상황에서 정치적인 스탠스를 취한 것이

다.

결국 비거니즘의 실천은 개인적 실천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실천이다. 따라서, 국내의 채식

인구가 150만명을 넘어선 이 때, 우리는 더욱 더 크게 말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기형

적인 기존의 식문화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 그리고 나의 이 모든 비건 실천과 비거니즘

인프라 요구의 과정은 나의 먹을 권리, 나의 소비할 권리가 아닌 비인간종의 권리를 위

한 수단일 뿐이다.

내가 비건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정체화 할 수 있었던 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마치 우리가 보기에는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몰라서 스스로를 정체화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앞 세대 비건 페미니스트 분들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뱃지라도 달아드리고 싶네요.

- 수영

‘상생’의 사전적 정의는 ‘함께 북돋우며 잘 사는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다. “니가

바라는 세상은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상생.”이라고 답한다. 입에 올려 발음할 때 공기가

온화하게 새어나가는 느낌도 좋고, 입모양이 웃는 것처럼 돼서 좋고,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

그 자체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단어라서 좋다. 이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래서 제목

에 꼭 ‘상생’을 넣고 싶었다. 상생하는 세상을 만드는, 상생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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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36

<도시 비건 잔혹사>

: “우리는 실패하는 비건이다”

하진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1. 실패담

앞서 유비가 비건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n개의 페미니스트가 존재할 때 n개

의 페미니즘이 존재하듯, 비거니즘에 대한 정의도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건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비거니즘의 개념은 ‘비인간종에 대한 반착취와 반폭력을 추

구하는 가치관’이다. 사전이 정의하는 비거니즘이 생활‘습관’이라면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멤버들은 ‘가치관’이라는 단어가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인간 동물에 대한 완전한 반착취와 반폭력은 불가능하다. 나는 비인간종 서식지였던

곳에 세워진 아파트에 산다. 그들이 다니던 길을 없애고 만든 콘크리트 길 위에서 그들의 안

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버스 및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가끔은 동물실험을 한 담배를 피우고

연지벌레 등을 갈아넣은 화장품을 사용한다. 문명의 끝에 가까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비인간

동물에 대한 완전한 반착취와 반폭력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의 “문명” 사회가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와 폭력, 식민화와 수탈을 기반으로 생겨났고, 발달했고,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실천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바와 이루는 바 간의

간극, 그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난 비건이야’ 하고 선언하면 끝이라고들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비건으로 살

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더 이상 비인간 동물에게 그 어떤 폭력을 가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먹지 않기 시작했는데, 안 먹는다고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닌 것이 아

니었다. 가죽, 울, 앙고라, 모피 등 의복을 생산할 때 비인간 동물들이 당하는 고통이 엄청나

다. 꿀, 진주도 착취를 통해 생산된다. 알아갈수록 나는 더 엄격한 실천이 하고 싶은데, 그럴

때 내 사회적 조건들이 그대로 억압이 되어 나타났다. 비건 실천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경험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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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 37

성인 남자 “가장”이 나 채식할 거니까 밥상에 고기 올리지 마, 하는 것과 피부양자 여성이 가

정 내에서 비건 실천을 하는 것은 경험의 결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에도 그렇

다. 나의 요구가 결국은 엄마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

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는 여성한테 돌봄 노동이 강요되고 요리나 청소를 여성의 미덕, 혹

은 더 나아가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비건 실천을 시작하면서 요리를 해야만

하게 되었다. 사먹는 것에는 금전적, 물리적 한계가 있다. 비건 식당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값이

싼 것도 아니고. 재능도, 흥미도 없는 요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흔들렸다.

“가끔은 비건 생활이 사치처럼 느껴져. 아니다. ‘사치’라는건 부적절한 표현인 것 같고

사치라기 보다는... 내가 순간 순간 많이 흔들렸어. 육식의 편리함에.

(아 그러니까 비건 탓이 아니라 육식 탓이다) 아, 맞아 그거야. 비건의 삶이 힘든 게 아니라

논비건의 삶이 너무 쉬워.”

어차피 완전한 비인간종 반착취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는 비건을 지향하는 것,

현실에서 가능한 만큼 실천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항상 고민하는

건, 내 상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지. 너무 쉽게 포기하

거나 타협하지 않는지, 이다.

비건 실천에 반복하여 실패하게 되는 또 다른 경우는 타인과 식사를 해야 될 때였다. 타인에

게 내가 지향하는 바를 밝히는 것이 어려웠다. 최근에 동물보호동아리 대학 연대체에 가입했

다.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사람 많이 만났다. 처음에 내가 비건이라고 말했을 때

의 반응이 매우 천편일률적이었다. 비건이 뭔데요? 그 다음은 그런 삶이 가능해요? 그 다음은

영양 섭취는 어떻게 해요? 순서까지 너무 똑같은 질문들. 구구절절 최대한 친절하게 답하면

되게 유난이라는 듯 반응했다. 그 반응이 예상이 되니 점점 말하기가 싫어졌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나를 꽤 만난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얘는 채식주

의자예요. 계란도 안 먹는대!’ 이런 식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거니즘의 목적 자체를,

이것이 우리의 윤리적인 선택이고 가치관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하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있다.

같은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멤버 유림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 직접 인용을 하겠다.

“요즘에 케어에서 동물보호 전문가 교육 자격증 이수중이시잖아요. 밥 어떻게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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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에코페미니즘 포럼에코페미니즘 : 상상하고 질문하다38

1박2일 연수를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했었는데 식당에 따로 채식 메뉴를 부탁을

드렸어요. 그런데 첫 날 저녁에 나왔던 국물이 동물 육수였어요. 비건이 어디까지 안

먹는지 전달이 안됐나 봐요. 김치도 젓갈 들어간 게 나오고, 해양 동물 우린 국물이

나오고...”

공적인 영역에서 내가 비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나의 가치관을 밝히고 이를

지향함으로써 얻게 되는 불이익이 두려웠다.

비건 실천은 정치적인 행위이다. 나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밝혔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반감을

살 때, 그런데 그 사람들을 의무적으로 계속 봐야하고 그 사람이 내 생계에 영향을 줄 수 있

는 사람일 때. 유치원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처음 일을 가서 그 반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

과 먹는 간식, 급식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는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음

식을 가려먹는 것이 좋지 않다, 고 답하셨다.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가정 내

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나절 이상 일을 하면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비건임을

밝혀도 배려 받지 못하는 일이 대다수였다. 논비건 음식을 그냥 주거나, 아 그럼 선생님은 못

드시죠? 하고 아예 밥을 주지 않거나. 내가 식사를 준비해 갔어야 했다.

전공 때문에 돈을 벌 때 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한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이나 개인의

견해를 드러내는 일을 터부시 하는 사회에서, 유아와 학부모에게 내가 윤리적 이유로 동물의

착취를 반대한다, 고 말하는 일은 굉장히 부담되는 일이다. 또한 아직까지 많은 가정과 교육기

관에서 ‘편식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나의 식습관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 많은 유

아가 ‘선생님은 왜 편식을 해요?’라고 물었다. 이것이 내 윤리적 선택과 가치관에 대해 말해주

었을 때는 ‘그럼 고기 먹는 우리 엄마 아빠는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묻고 그 말을 마치 나의

생각처럼 학부모에게 전달한 아이도 있었다. 앞으로도 전공 관련된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반복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멤버 수영님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가 비건 시작했을 때, 친한 친구가 저를 무서워했어요. 비건이 광신도라고 생각했거든

요. 그래서 내가 비건 실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크게 싸웠어요. 또 함께 있을 때 계란,

우유가 들어간 빵을 그냥 먹었는데, 죄책감이 너무 크더라구요. ‘성매수 한 것 같다’고 말

을 했는데, 나중에 그 비유가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어요. 그게 잘못된 비유라면서.

비건 친구였다면 저의 죄책감을 이해했을 거예요. (...) 그 친구는 비건들이 자신을 괴물

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자신이 육식인이니까,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친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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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미안해.’라고 말해요”

비페넷 멤버 내에서도 비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화 과정과 실패담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

사회적 위치와 상황이 다른 만큼 실천과 경험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 몇몇 실패담을

소개한다.

(1) 물리적 한계

- 공간 / 경제적 상황

“제가 집을 나온 후에 한동안 주방이 없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 없는 곳에서 살았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상황도 어려워서 비건을 시도하기가 어려웠어요. 밖에서 파는 음식을 먹어야하는데

비건 음식은 값이 높고 거의 안 팔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해먹어야 비건 생활이 가능한데

거주하던 공간 자체가 그게 마땅치 않았어요. 핑계일 수도 있지만 힘들더라구요. 그 때는

페스코 생활을 했어요“

-경림

- 건강

“처음 시작했을 때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잘 모르니까 그렇다고 타협을 하면 지는

느낌이 들고,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그래서 쫄쫄 굶었어요 먹을 게 없으면. 그리고 그때

되게 무기력증이 심했던 때라서 아프면 비건 하기가 난이도가 확 높아지는 것 같아요“

- 유림

많은 사람들이 비건 생활에 관심이 있고 시도해보고 싶다, 실천해보고 싶다, 고 말한다. 그러

나 그 분들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이, 그 중에서도 그 상황 속의 물리적 환경이 비건 실천을

망설이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십분 이해한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많은 비건들도 그런 과

정을 거쳐왔으니까. 아직도 매번 한계에 부딪히니까.

비건 레스토랑이나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은 그 수가 매우 적고, 그나마 있는 식당들도 수도

권이나 대도시에 몰려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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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훨씬 어렵다.

또 대부분의 비건 식당들은 그 음식의 가격이 싸지 않다. 비건 푸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몸

에 좋은’, ‘친환경’, ‘유기농’ 음식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고기보다 야채가 더

비싸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더 많이 생산하고 정부 지원을 더 많

이 받는 축산업계가 더 싼 음식을 생산하게 된다. 개인 차원의 실천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나도 비건이 되기 전에는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햄버거, 라면 등을 사먹었지만 이제

는 그럴 수가 없다. 조금 더 비싼 비건 푸드를 사 먹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굶는다. 이건 또 건강의 문제로 이어진다. 굶는 것이 내 몸을 위한 선

택은 아니다. 특히 몸이 아플 때는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쌀 수 있는 환경에 산다는 것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

게 매번 사먹기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 많은 비건들이 요리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먹는다. 위에도 말했지만 비건이 되기 이전에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때는 요리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접근성

좋은 취미라고도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요리를 시작하니 달랐다. 나는 식구들과 함께 살고 주

방이 있는 집에서 사는데도 요리가 힘들다. 개인적인 능력부족의 문제도 있지만, 우선 나를 제

외한 식구들은 모두 비건이 아니다. 비건 요리 재료를 사야하는데 요리 재료들은 1명이 한 번

의 끼니를 먹을 만큼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파는 만큼 사면 거의 항상 버리게 된다. 환

경도 파괴되고, 돈도 낭비하는 셈이다. 혼자 사는 사람, 주방이 없는 공간에 사는 사람에게는

비건 요리가 거의 불가능한 얘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 특수한 상황 (직업, 진로)

“방학 때는 이 지역 공기업에서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제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 이유를 밝혔는데도 고깃집에 여러 번 데려가려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한번은 고깃집에 억지로 끌려가기도 했고요. 결국 먹진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 자체로 너무

너무 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웠어요. 아저씨들 비위 맞춰주면서 성희롱도 참아가는 말단 알바의

위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도 들었어요. 윗사람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도 있었어요.

머지않은 교생 실습 때는 과연 무슨 소리를 들을까 싶어요. 졸업하고 현직에 나가서는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아이들 앞에서 골고루 먹지 않는다며 핀잔을 듣게 되진 않을지,

우유 급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것들을 계속 겪다보면 우울하고 힘든 걸 넘어서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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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주변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고 기댈

곳이 없어요. 제가 가입 된 지역 페미니스트 단체의 사람들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동물사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해서 먹어요.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잘 알지만,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았던 나날들이 때때로 그리워져요.“

- 지연

비건은 굉장히 정치적인 개념이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나는 것이 터부시 되는 우리 사

회에서,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가 비건이라고 밝히는 일이, 그리고 그

실천을 이어가는 일이 매우 어렵다. 위에서 말했듯 나도 이를 경험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계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 더욱 부담과 압력이 심하다. 교사나 기타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 연대의 부재

“과 사람들이 나의 비건 실천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엄청 시비를 걸었어. 자기들은

잡식인이면서. 학교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하는데 남들은 그냥 내가 마음에

안드니까, 내가 페미니스트라는게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게 거슬리니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어.

맨날 너 비건인데 이런 거 먹냐? 나 비건인데 채소 안 먹잖아 너가 채식주의잔데 왜

채소를 안먹냐 그런 걸로 오히려 되게 많이 검열 당했어. 내가 하겠다고 한 걸 못

지켜서 좌절한 것보다 남들에게 택 안 잡히려고 보다 엄격한 실천을 하게 됐지.

그러다보니 비건 실패 경험담은 거의 다 논비건인지 모르고 먹은 것 정도.

나는 남들에게 검열당하는 비건이었어. 그래서 나의 비건 실천은 존재투쟁이었고. 과뿐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시골 내려갔을 때도 그렇고. 나는 비건 실천을 하다가 실패할 권리도

없었어.

내가 비건들의 이미지를 해치면 안 된다는 강박도 있었어. 옛날에는 한 끼는 프루테리언

식 먹기도 하고, 팜오일도 먹지 않으려고도 노력하고, 모르고 먹은 음식이 논비건이면

스트레스 엄청 받고. 프루테리언식도 식물은 안 불쌍해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 한

거였어“

- 고래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도 소외감을 느껴요. 제가 sns에 고기 사진이 올라오는 게 불편하다고

했는데, 그런 것 까지 본인들이 검열해야 되냐며 뒤에서 얘기를 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동물사체로 만든 음식들 이름과 맛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한다는 걸 분명 알고 있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제가 들릴 만큼 크게 떠들어요.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기들이 자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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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무 야속했어요. 같이 놀게 되면 제 앞에서 음식을 가리는 걸 불편하게 여길

거라는 생각이 들고.. 저만 유난스럽고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하고 말을

최대한 섞지 않고 있어요.”

- 지연

“저를 데리고 비건 식당 다니시던 분이 외국에 가시면서 저는 홀로 남겨졌어요. 아무

커뮤니티도 난 없는데. 그분도 커뮤니티는 안 하는 분이라서,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고.

그때도 비건 찾아먹으려고 되게 노력은 했는데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거나 그러면 먹을

게 뭐 있냐, 식의 취급 받을 때마다 상처를 많이 받았죠. 이걸 말할 데도 딱히 없고

커뮤니티가 없으니까. 속한 데가 없으니까”

- 모로

나는 비건들 간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한계들 때문에라도, 꼭.

나는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식당에 비건

옵션이 있고, 음식 외에도 어떤 제품들이 비건이고 하는 정보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혼자 사

기 부담스러운 양이나 가격의 비건 상품을 멤버들과 함께 구매하여 나누어 쓸 수도 있다. 비

건으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생활의 질이 달라졌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혼자 비건 실천을 할 때에는 사회에 요구할 수 없다고 느낀

것들을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의 멤버로서는 요구해야 된다고 느꼈고, 요구할 수 있었다.

멤버 자격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사적인 영역에서 생활할 때에도 조금 더 당당하게 내 지향

을 밝히고 이를 존중할 것을 요구할 용기가 생겼다.

한동안 네트워크 활동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게 되었을 때

인데, 내가 비건임을 밝히기가 싫어서, 시간과 돈이 없어서, 배가 고프고 힘들어서 식사를 할

때 자꾸만 타협을 하게 되었다. 논비건 음식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자괴감이 많이 들었

다. 더 이상 스스로를 비건이라고 칭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

워크 활동도 회피하게 되었다. 몇 달 후 네트워크 멤버 몇몇이 나를 찾아왔다. 활동이 뜸한

이유를 물어보았고, 고민 끝에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그 때 이 발제의 아이디어가 처음 생겨났다. 멤버들은 자책할 필요 없다고, 실패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우리는 모두 실패하는 비건이라고 말했다. 자신들도 그런 고민을 안고 있

으며, 나의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이런 나에

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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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비건이기에, 실패하는 비건이기에 나에게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임을. 스스로 비

인간 동물을 전혀 착취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

정 하에) 연대의 필요성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연대가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

각했지만, 결국 연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불완전한 나, 우리였다.

발췌를 위해 멤버들의 도시 비건 잔혹사 인터뷰를 다시 읽으며 나는 오히려 이것이 단순한

‘실패담’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한다.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고, 더 이상

약자를 착취하지 말라고.

2. 에코페미니즘과의 연결고리(비건 실천의 확대)

‘더 코브’라는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보았다. 타이지라는 일본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불법으로

돌고래를 포획하고 도살하는 것을 비판하는 영화였다. 영화는 돌고래 고기의 판매와 씨월드

등 놀이공원에서의 돌고래 쇼, 그 과정의 잔인함에 방점을 찍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두 케이

스를 제외하고서라도 인간의 문명과 산업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돌고래 종 전체를 질식시키고

있다. 돌고래의 살점에는 1KG당 평균적으로 수은이 2000ppm이 함유되어있다고 한다. 공장

에서 나온 수은이 바다에 풀리면 이것이 플랑크톤에 쌓인다. 그 플랑크톤을 먹은 새우는 다시

다른 해양 동물에게 먹힌다. 그 동물을 돌고래가 먹는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머무는 동물일수

록 체내에 축적된 수은의 양이 많다. 그렇다고 돌고래만이 피해자는 아니다. 플랑크톤과 새우

와 다른 해양 동물 모두가 인간과 인간 문명이 가하는 일방적 폭력의 피해자이다. 뭍에 사는

비인간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식물은? 식물이 사는 땅은? 대기와 물은?

우리는 어디까지 고려해야하는가. 여기서 비건 페미니즘이 에코 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건 제가 무슨 운동을 하던지 간에 저를 부르는 이름 중 맨 뒤에 올 말은

페미니스트라는 거예요. 한동안 그게 되게 의문이었거든요. 비거니즘이면 비거니즘이고

페미니즘이면 페미니즘이지 비건 페미니즘은 뭔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또 뭐고, 퀴어

페미니즘은 뭔가. 근데 이제 뭔지 알았어요. 페미니즘을 풍성하게 하는 거예요. 페미니즘

비건이면 비거니즘을 풍성하게 하는 거죠”

- 수영

에코 페미니즘과 비건 페미니즘은 모두 페미니즘을 풍성하게 하는 두 개의 관점이다. 그리고

두 관점은 인간의 자연 착취가 남성의 여성 착취와 같은 논거를 갖는다고 보는 점,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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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삶에 대한 자결권을 주장한다는 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그들의 다양성을 대한 존중한

다는 점, 삶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는다는 점 등 많은 부분 같은 시각을 공유한다. 이

번 포럼을 준비하며 에코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비건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에코 페미니

즘은 비건 실천과 운동 확대로 다가왔다.

나는 비건이 ‘채식주의자’와 동의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풀을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모

든 동물이 더 이상 도구화 되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인간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기를 바

란다. 반육식, 반착취 주의자라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이렇듯 동물권을 고민하며 비

건이 되었고 더 이상 가해자로 살기 싫어서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비건으로 스스로를

정체화 할수록 다른 실천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꿀, 진주, 가죽, 양모, 코코넛과 팜 등등. 실

천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다 단순히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육식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서는 단일 종경작 농업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이 그것

에 힘입어 유지되기 때문이다. GMO도 그렇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 생산하려는 생산주

의가 사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고려해야하는가. 동물들이 행복하게, 최소한 인간으로 인해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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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플로어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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