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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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音樂論壇 302013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201310, 51-76한양대학교 20 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 차 호 성 (대진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 . 들어가며 르네상스시대부터 나타났던 춤곡은 바로크시대에 들어 춤 리듬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곡들로 하나의 틀 안에 묶여 연주되면서 모음곡(Suite)이라는 장르가 되 었다. 그리고 바로크시대부터 모음곡은 특히 피아노모음곡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피아노음악의 발달과정에서도 피아노모음곡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꾸준 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피아노모음곡은 18세기를 지나면서 차츰 소나타와 같은 장르에 밀려 그 위 상을 잃게 되며, 19세기 낭만주의시대에 들어 표제적 요소를 가진 여러 개의 소 곡들로 묶인 성격소곡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며 연 곡 유형을 가진 성격소곡과 함께 전통적인 피아노모음곡은 다시 조명을 받게 되 었으며, 이때 작곡가들은 바로크시대의 모음곡 유형을 그대로 따랐다기보다 새 로운 어법과 사고를 통한 다양한 시도를 보여 준 것이다. 옛 양식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개인적인 수용의 예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모음곡 장르를 통해 옛 양식이나 장르에 대한 수용의 예를 보여준 경우는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쇤베르크(Arnold Sch ¨ onberg, 1874-1951) 그리고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의 작품에서 대표적으 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의 피아노모음곡에 대한 이해를 위해 우선적으로 20기까지의 모음곡 유형의 변화를 살펴보고, 피아노음악 역사에서 춤곡이나 춤 리 * 본 논문은 2013년도 대진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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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音樂論壇� 30집 ⓒ 2013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2013년 10월, 51-76쪽 한양대학교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1*

    차 호 성

    (대진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

    Ⅰ. 들어가며

    르네상스시대부터 나타났던 춤곡은 바로크시대에 들어 춤 리듬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곡들로 하나의 틀 안에 묶여 연주되면서 모음곡(Suite)이라는 장르가 되

    었다. 그리고 바로크시대부터 모음곡은 특히 피아노모음곡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피아노음악의 발달과정에서도 피아노모음곡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꾸준

    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피아노모음곡은 18세기를 지나면서 차츰 소나타와 같은 장르에 밀려 그 위

    상을 잃게 되며, 19세기 낭만주의시대에 들어 표제적 요소를 가진 여러 개의 소

    곡들로 묶인 성격소곡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며 연

    곡 유형을 가진 성격소곡과 함께 전통적인 피아노모음곡은 다시 조명을 받게 되

    었으며, 이때 작곡가들은 바로크시대의 모음곡 유형을 그대로 따랐다기보다 새

    로운 어법과 사고를 통한 다양한 시도를 보여 준 것이다. 옛 양식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개인적인 수용의 예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모음곡 장르를 통해 옛 양식이나 장르에 대한 수용의 예를 보여준

    경우는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 그리고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의 작품에서 대표적으

    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의 피아노모음곡에 대한 이해를 위해 우선적으로 20세

    기까지의 모음곡 유형의 변화를 살펴보고, 피아노음악 역사에서 춤곡이나 춤 리

    * 본 논문은 2013년도 대진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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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듬이 피아노음악에서 어떠한 요소로 작용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

    업일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20세기 초에 ‘모음곡’이란 범주 안에서 작곡되었던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에서 전통적인 피아노모음곡이 어떤 모습으로 수용되는 가, 그리고

    그러한 작품에 작곡가들이 새로운 음악적 사고와 표현을 위해 어떤 어법과 표현

    을 사용했는가를 조망할 것이다. 또한 현대음악 초기 발전과정에서 드뷔시, 쇤베

    르크, 힌데미트의 대표적인 피아노모음곡들이 가진 요소가 전통적인 피아노모

    음곡과 비교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특징들이 20세기음

    악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질 것이다. 본 연구에서 집

    중 조망하는 피아노모음곡은 음악사적 전환기에 속하는 인상주의 이후부터 현

    대음악의 새로운 경향이 분명하게 나타났던 1920년대까지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Ⅱ. 모음곡의 발생과 시대적 변천과정

    1. 18세기 이전까지의 변천

    모음곡(Suite)이란 본래 다양한 춤곡 리듬에 의한 소곡들을 묶어 만든 장르이며,

    초기에는 건반악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양한 악기들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이

    었다. 아직 형식적인 개념이 완성되기 이전에 등장했기 때문에 모음곡을 구성하

    는 각 곡들은 빠르기나 박자를 달리하는 춤 리듬을 기본으로 하는 것 외에는 특

    정한 형식이나 어법을 분명하게 가지지는 않았다. 이 같은 기악음악은 15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단순한 기악곡들이 묶인 초기의 모음곡은 16

    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에는 아직 모음곡이란 명칭

    을 사용되지 않고 있었으며, 기악 앙상블의 유형으로 연주되던 기악곡 모음은

    아뮤즈망(amusement), 디베르티쓰망(divertissment), 세레나데(serenade) 등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혼용되기도 하였다.2 모음곡 유형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시

    기는 17세기 중엽 프랑스에서인데, 이때 음악가들은 춤곡들을 하나의 큰 울타리

    안에 직접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이면서 모음곡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예를 보

    였다. 이때부터 모음곡이 춤곡에 의한 모음곡의 유형으로 등장한 것으로 볼 수

    2 Thomas Schipperges, “Suite,” in Handbuch der Musikalische Terminologie hrsg. von Hans Heinrich Eggebrecht und Albrecht Riethmüller, Wiesbaden: Steiner 1971–2006, 2.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프랑스에서는 모음곡을 위한 특별한 춤곡 구성을 가지지 않았으며, 필요에 따라 에르(Air), 부레(Bourree), 가보트, 우베르뛰르(Ouverture), 롱도, 리고동(Rigoudone), 파싸칼리에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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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으며, 모음곡에 사용된 춤곡들은 특별한 원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작곡가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구성되었다.

    프랑스에서 모음곡이 초기의 유형을 드러내기 시작할 즈음과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기악음악이 등장했다. 그것은 기악모음곡의 유

    형인 소나타 다 카메라(Sonata da camera)이며, 이 장르는 몇 종류의 춤곡을 포

    함해 연주되던 유형에서 발전하여 여러 개의 춤곡들을 같은 조성으로 묶어서 연

    주하던 형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3 17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비엔나 궁중을 중

    심으로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이 많이 작곡되고, 이후 급속하게 독일어권 전역

    으로 유행하면서 대략 1670년대 이후 독일에서 건반음악을 위한 모음곡은 대부

    분 알르망드(Allemand)-쿠랑트(Courant)-사라방드(Sarabande)-지그(Gigue)의

    틀을 가지기 시작했다.4 그리고 이 당시부터 모음곡을 구성하는 곡들은 대부분

    2부형식이나 론도형식을 가졌으며, 같은 조성을 지니거나 곡들의 성격을 통일시

    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후 18세기 전반 모음곡은 독자적인 기악

    음악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춤곡 리듬에 의한 소곡들을 시작하기 전에

    프렐류드와 같은 도입곡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5

    2.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모음곡

    모음곡이란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요한 마테존

    (Johann Mattheson, 1681-1764)이 1713년 펴낸 �새롭게 시작되는 오케스트라�

    (Das Neu-Eröffnete Orchester)라는 책이다. 그가 이 책에서 기악음악의 한 영역

    으로서 모음곡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모음곡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첫 사례로 알려진다.

    “모음곡이란 서곡(Ouverture)이나 심포니(Symphonie) 또는 인트라다

    (Intrada)와 같은 기악적인 개념으로서,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알르망드, 쿠랑트

    등의 소곡들을 묶어 만든 것이다.”6

    3 Schipperges, “Suite,” in Handbuch der Musikalische Terminologie, 5. 여러 개의 곡들을 묶은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나타 다 카메라와 기악곡을 일컫는 소나타 그리고 모음곡은 18세기 중반까지 개념상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4 Andreas Menk, “Suite,“ 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8 (Sachteil) (Kassel: Bärenreiter Verlag, 1998), 2069.

    5 단지 J. S. 바흐의 《프랑스조곡》의 경우는 그러한 서곡 없이 바로 알르망드가 모음곡의 첫 번째 곡으로 등장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로 꼽힌다.

    6 Schipperges, “Suite,“ in Handbuch der Musikalische Terminologie, 5 재인용. Johann Mattheson, “Das Neu-Eröffnete Orchester“ (1713), 174. 마테존은 이미 17세기말부터 사용되던 춤곡 모음곡의 유형인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를 춤곡 모음곡의 기본 틀로 설명하기도 했으며, 훗날 구성 순서가 바뀐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54 차 호 성

    그러나 당시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나타 다 카메라와 모음곡의 분

    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프랑스와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의 Les Nations(1726)7와 같은 작품은 다양한 춤곡들을 묶어 소규모 실

    내악곡으로 만들면서 모음곡 유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쿠프랭 스스로는 이

    작품의 부제목에 《3중주를 위한 소나타와 모음곡》(Sonades et suites de

    simphonies en trio)이라고 표기하면서 모음곡과 소나타라는 용어를 동시에 사용

    하였다. 이러한 예를 미루어 보아도 당시까지는 여전히 두 개의 장르는 분명하

    게 구분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나타 다 카메라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던 18세기 중반 쟝 자끄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가 『백과사전』(Encyclopedie, ou Dictionnaire Raisonne des Sciences, des Artes et

    des Metiers, 1748-49)에 이 두 개의 장르를 서로 다른 장르로 설명하면서 모음곡

    은 독자적인 장르로 정리되었다.

    루소의 정의 이후 모음곡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되면서 바로크 후반까지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이 이 장르의 중심이 되었으며8, 이러한 연주 유형의 모

    음곡은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이나 게오르

    그 헨델(Georg F. Händel, 1685-1759),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일가의 주도 하에 음악적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8세

    기 중반으로 넘어가며 소나타가 독주악기를 위한 장르로 등장하면서 피아노모

    음곡은 점차 바로크 시대 이후의 발전하던 모습을 잃게 되었으며, 18세기 후반

    과 19세기 초반 그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초기 피아노모음곡을 구성하는 다양한 춤곡 대신에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나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나 폴

    로네이즈, 왈츠 또는 에코세이즈(Ecossaises)9 등의 현대적 춤곡들로 구성되었던

    점 그리고 각 곡들이 서로 다른 조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10 춤곡에 의한 전

    7 두 대의 바이올린, 첼로, 콘티누오로 연주되는 실내악 작품인 Les Nations는 4개의 곡들로 구성된 작품집으로 《3중주를 위한 소나타와 모음곡》(Sonades et suites de simphonies en trio)이라는 부제목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속한 4개의 곡은 다음과 같으며, 각 곡은 다시 세부적으로 알르망드, 사라방드, 지그 등 다양한 짧은 춤곡들로 구성되었다. 1. La Françoise, 2. L’Espagnole, 3. L’impériale, 4. La Piemontoise.

    8 본 글에서 바로크시대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은 다양한 건반악기들의 사용으로 아직까지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으로 설명하며, 18세기 후반 이후의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은 피아노모음곡의 개념을 사용하기로 한다.

    9 스코틀랜드 전통 무용으로 18세기말 이후 유럽에서 유행했던 2/4박자 춤곡이다. 특히 피아노곡으로 많이 작곡되었으며,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그리고 쇼팽의 작품이 있다.

    10 Christian Hohmann, “Suite,“ 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Sachteil) 8, 2076.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55

    통적인 모음곡을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작곡가들이나 작품은 19세기 중

    반까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모음곡의 형태를 갖춘 새로운 성격의 작품들 즉,

    성격소곡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을 중심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문학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음악적 사고를 ‘시적인 것’으로 표현하

    려 하면서, 큰 곡보다는 소품에서 낭만성의 진수를 과시하려 했기에, 그들이 선

    택한 양식은 하나의 짧은 곡 안에 문학적인 내용을 담으려한 것이다.11

    소나타형식이나 성격소품 등에 인해 그 위치를 잃었던 전통적인 피아노모음

    곡이 다시 관심 장르로 부각하게 된 것은 1850년대 후반 요하임 라프(Joahchim

    Raff, 1822-1882)와 프란츠 라흐너(Franz Lachner, 1803-1890)가 J. S. 바흐의 모

    음곡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직후로 알려진다. 특히 라프의 경우 바흐의 모음곡을

    모델로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8곡을 작곡했는데12, 이 곡들에서 작곡자는 바로

    크의 춤곡 유형들과 함께 랩소디나 엘레지, 로만차, 마주르카 등 당시 유행하던

    춤곡 유형을 포함하였다. 그리고 라흐너13는 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을

    통해 바로크 춤곡과 19세기 중반 유행하던 춤곡을 혼합하여 작곡하였다.14

    3.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의 피아노모음곡

    19세기 말부터 전환기를 맞이하며 피아노모음곡에서는 음악적 표현의 다양성을

    11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서울: 심설당, 2013), 40 참조.

    12 스위스 출신의 독일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프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으며, 멘델스존이나 슈만에게도 인정을 받을 만큼 주목을 받았던 작곡가로 알려진다. 그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역시 많으며, 그 가운데 피아노모음곡 8곡은 Op. 69, 71, 72, 91, 162, 163, 200, 204 등이다. James Deaville, “Raff, Joachim,“ in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0, 749.

    13 독일 출신의 작곡자이자 지휘자로 활동했던 라흐너는 ‘모음곡’ 장르에 여러 개의 작품을 남기고 있지만, 《모음곡 Op. 142》(Suite c-moll, 1868)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모두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이다. 그는 모음곡을 구성하는데 있어 바로크시대의 춤곡들을 수용했다기 보다는 프렐류드, 미뉴엣과 같은 전통적인 춤곡에 인터메초나 왈츠와 같은 19세기 당시 유행하는 춤곡을 다양하게 묶어 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14 라흐너의 이와 같은 창작은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초반 이후 본격적인 발레음악의 등장과 함께 연주회용 발레음악을 별도로 만들면서 나타난 모음곡은 바로크시대부터 내려오던 모음곡과는 다른 의미와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들어 발레모음곡을 필두로 수많은 작곡가들은 관현악모음곡 또는 심포니모음곡 등 규모가 큰 관현악 작품을 통해 음향이나 음색적인 면에서 다양한 표현을 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모음곡의 의미는 19세기 후반 연주회용 모음곡(Konzertsuiten)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나 동유럽을 중심으로 민족주의적인 성격의 춤곡이나 춤곡의 특징을 담은 관현악 작품으로서의 모음곡이 성행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 그러한 경향은 꾸준히 이어지고 했다.

  • 56 차 호 성

    위해 양식적인 특징이나 형식적인 면 그리고 편성에 이르기까지 작곡가들의 독

    창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어법과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19세

    기 후반에 다른 장르와 유사하게 피아노모음곡에서도 옛 양식을 바탕으로한 작

    품들이 등장하거나 또는 현대적인 어법이나 양식에 의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20

    세기 초반부터 예를 들어 이삭 알베니즈(Isaac Albeniz, 1860-1909)의 Suite

    antigua Op. 64, No. 2 (1887), 뱅상 댕디(Vincent d‘Indy, 1851-1931)의 Suite

    dans le style ancien Op. 24 (1886)와 같이 아예 작품제목에 ‘옛’양식을 의미하는

    단어를 포함시킨 경우도 있으며, 20세기 후반 작품인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1934-1998)의 Suite im alten Stil (1972)에서도 그와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옛 양식을 바탕으로 했음을 드러낸 경우 외에도 바로

    크나 로코코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주제를 차용해 창작한 작곡가들도 많았

    으며15, 바로크시대 작곡가들의 실내악적 모음곡을 피아노모음곡 작품으로 수용

    한 경우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16 또한 피아노모음곡이 아닌 다른 악기를 위한

    모음곡이나 실내악적인 편성의 모음곡을 통해 이 시기의 작곡가들은 옛 양식의

    모음곡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막스 레

    거(Max Reger, 1873-1916)의 경우 기존의 춤곡 리듬을 이용한 오르간을 위한 모

    음곡(예, Suite Op. 92)과 같이 기존에 없었던 유형도 나타났으며, 실내악적인 편

    성을 가진 많은 모음곡들이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등장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바로크식의 춤곡 리듬을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후대 작곡가들

    이 살던 당시의 유행하던 춤곡이나 또는 춤곡 풍의 리듬을 이용한 경우가 많다.

    4. 20세기 초반의 새로운 경향 속에 나타난 피아노모음곡

    러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족주의 경향과 함께 프랑스에서의 인상주의 음악,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표현주의와 신고전주의 경향은 기존의 전통적인 형식과

    어법을 넘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게 된다. 비록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

    지만, 신고전주의적 음악은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을 가진

    다. 따라서 전통적인 음악적 경향과는 상당히 다른 어법을 보이던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음악과 달리 신고전주의적 음악은 바로크시대의 연주방식이나, 형식,

    15 예를 들어,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가 1884년에 작곡한 Suite in B

    b-major Op. 4는 피아노모음곡이 아닌 소규모 실내악 작품으로 '프렐류드', '로만체

    ', '가보트', '서주와 푸가' 등 4개의 악장들로 구성되었으며, 쿠프랭의 음악적 어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6 드뷔시의 Pour le piano (1894-1901)는 쿠프랭의 피아노모음곡을, 20세기 후반 볼프강 포르트너(Wolfgang Fortner, 1907-1987)는 J. S.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모델로 하여 같은 유형으로 작품을 남기고 있다.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57

    장르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수용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1910년대 이

    골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외

    에도 프랑스 6인조 작곡가들이나 독일의 힌데미트,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

    에프(Sergei Prokofieff, 1891-1953)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 등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7

    20세기 초반 피아노음악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창

    작 경향을 보여준 많은 작곡가들이 음색적 또는 작곡기법적인 차원에서의 새로

    운 시도를 보였다. 드뷔시나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경우는

    특히 피아노모음곡에서 자신들의 음악어법을 완성해 갔다고 평가되어진다. 드

    뷔시의 초기 피아노 음악은 쇼팽과 바그너 등 낭만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가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1894)과

    같은 초기 관현악 작품에서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준 것처럼,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 1890), 《피아노를 위하여》 등과 같은 피아노 작품

    에서도 새로운 음색을 강조하거나 섬세한 감수성의 표현, 분위기를 드러내는 화

    성, 가볍고 정교한 리듬, 단순한 음재료로 이루어진 순환하는 선율 등의 독자적

    인 어법을 구축하였다.18 또한 라벨은 종종 바로크나 로코코시대의 음악에서 찾

    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에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한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모음곡인 《거울》(Miroirs, 1905)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

    에서 라벨은 춤곡 리듬을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면서 18세기 하프시코드 연주풍

    을 담았다.19 옛 양식의 분위기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쿠프랭의 무덤에서》(Le tombeau de Couperin, 1917)20이며, 6개의 악장으로 구

    성된 이 작품은 17-18세기 프랑스 하프시코드 연주자들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라벨은 이 작품을 춤곡 양식을 담은 악장들로 구성하면서도 ‘모음

    곡’(Suite)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하지 않고 표제적인 제목을 택했다. 모음곡

    양식으로 된 이 작품은 프렐루드나 미뉴엣, 토카타와 같이 잘 알려진 바로크 모

    음곡 유형 외에 프랑스의 바로크적 춤곡인 ‘포를란’(Forlane)과 ‘리고동’

    (Rigaudon)이 첨가된 것이 특징적이다.

    20세기 초반 전통적인 모음곡 유형을 전혀 새롭게 수용한 경우의 대표적인

    17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8.

    18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128.

    19 5개의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네 번째 곡인 ‘어릿광대의 아침노래’(Alborado del gracioso)에서는 스페인 기타연주 스타일을 통해 도메니코 스카를랏티의 《하프시코드 연습곡》(1738)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0 《쿠프랭의 무덤》은 ‘전주곡’, ‘푸가’, ‘포를란’, ‘리고동’, ‘미뉴에트’ 그리고 ‘토카타’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 58 차 호 성

    예는 쇤베르크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가 12음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작품

    도 《피아노모음곡 Op. 25》(Suite für Klavier, 1921-23)이었는데, 전통적인 장르

    를 수용하고 그 안에 새로운 창작기법의 시도를 연결시키면서 자신의 음악적 사

    고를 전개했다.21 12음기법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에서 쇤베르크는

    5개의 소곡들에 18, 19세기 이전의 춤곡 리듬을 사용하고 있다. 즉, 외형적 틀은

    전통에서 출발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아주 새로운 언어를 보여준 것이다.

    쇤베르크의 《피아노모음곡》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힌데미트의 피아노

    모음곡 역시 장르사나 연주기법적인 면에서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면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의 초기 피아노 작품인 《모음곡 1922 Op. 26》(Suite

    1922)은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의 곡들은 1920년대 성행하던 대중

    적인 춤곡의 리듬을 담은 것이다. 그밖에 20세기 초반 피아노모음곡을 남긴 작

    곡가들로는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1882-1967)22와 벨라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 등을 들 수 있다. 바르톡은 두 개의 피아노모음곡을 작곡했

    는데, 4 Piano Pieces (1903)에서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

    1897)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를 연상시키는 낭만스타일을 보

    여 주었으며, 4개의 곡들로 구성된 Suite Op. 14 (1916)23에서는 고전주의적 요소

    와 민족적 요소를 융화한 모습을 보였다.

    피아노모음곡 외에도 모음곡을 다른 장르나 악기 편성을 통해 새롭게 수용

    한 작품들도 많은데, 대부분은 피아노모음곡처럼 춤곡의 리듬을 중심으로 작곡

    되었다. 그러한 시도는 쇤베르크의 실내악 편성의 모음곡(Suite für drei

    Klarinetten, Violine, Viola, Violoncello und Klavier Op. 29, 1925-26)의 경우처럼

    18세기말에 유행했던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 풍을 보여주는 예가 많다. 또한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는 《서정적 모음곡》(Lyrische Suite,

    1925-26)을 통해 현악4중주에 모음곡 양식을 접목하면서 두 개의 영역이 가진

    전형적인 형식적 틀이나 미학적인 면을 새롭게 해석하려 하였다. 스트라빈스키

    에게 있어 모음곡은 자신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재구성하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성악작품이나 또는 발레작품에서 연

    주용 곡으로 모음곡을 재구성했던 그의 창작 의도는 이후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나 쇼스타코비치 등의 작곡가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21 쇤베르크의 피아노작품들은 대부분 연주되어지기 보다는 작품에 대해 언급되거나 또는 연구의 대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22 코다이의 피아노모음곡 7 Piano Pieces Op. 11 (1910-1918)은 민속적 요소를 담고 있다.

    23 이 작품의 첫 곡인 ‘Allegretto’에서 작곡자는 민속적인 분위기를 간단한 선율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였다.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59

    20세기 초반 음악사에서 프랑스6인조에 속하는 작곡가들은 당시에 성행하

    던 드뷔시, 라벨에 의한 인상주의와 거리를 두는 한편 바그너의 음악적 경향을

    거부하는 반바그너리즘의 작풍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이 초

    기 창작시절에 각자 하나씩 작곡했던 소곡들은 당시의 경향을 따르는 대신 바로

    크시대의 춤곡 리듬에 의한 것들로서, 이러한 공통의 색을 가진 경향으로 프랑

    스6인조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24 춤곡 리듬을 이용하면서도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6인조의 곡들은 모두를 묶으면 모음곡으로도 보여지지만, 작곡자들이 다르

    고 곡의 성격 또한 상이해서 모음곡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단지 옛 모음곡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20세기 초반에 재수용했다는 점에서 신고전주의음악의 한

    예로 언급되기도 한다.

    Ⅲ. 20세기 대표적 피아노모음곡의 유형 비교 고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로크시대의 전형적인 피아노모음곡이 20세기 음악

    에서 수용된 방식은 작곡가별로 독창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모음곡의 유형을 가진 피아노모음

    곡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 가운데 특히 드뷔시와 쇤베르크 그리고 힌데미

    트의 피아노모음곡은 작곡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나

    장르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의 피아노 작품에는‘모음곡’(Suite)라는

    용어를 제목에 포함된 작품들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각각 상이한 음악적 특징

    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피아노모음곡이 각각 세부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졌으며, 또한 20세기 음악에 어떤 모습으로 옛 양식을 재수용했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1. 드뷔시의 피아노모음곡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경향은 1894년 발표된 관현악작품 《목신의 오후 전주

    곡》이나 몇 곡의 성악 작품을 통해 화성이나 리듬, 형식 등에서 전통적인 어법

    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며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1890년 후반까지 작곡한 피

    아노 작품은 후기낭만주의 풍이거나 살롱음악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피아

    24 프랑스 6인조가 작곡했던 춤곡 리듬에 의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죠르주 오릭(Georges Auric, 1899–1983)의 Prélude (1919), 루이 뒤레(Louis Durey, 1888–1979)의 Romance sans paroles Op. 21 (1919), 아루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1955)의 Sarabande H. 26 (1920), 다리우스 미요의 Mazurka (1914), 프랑시스 뿔랑(Francis Poulenc, 1899–1963)의 Valse en ut FP. 17 (1919) 그리고 제르망 타유페르(Germaine Tailleferre, 1892–1983)의 Pastorale (1919)이며, 이 곡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성격들 가운데 바로크나 고전의 형식이나 어법을 찾을 수 있다.

  • 60 차 호 성

    노 작품에서는 1900년 이후부터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예는 《피아노를 위하여》, 《판화》(Estempes, 1903)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찾

    을 수 있다. 그리고 후기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적 경향으로의 음악 양식의 과도

    기에 속할 수 있는 피아노작품으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있다. 이 세 개

    의 작품들은 드뷔시의 초기 피아노 작품에 속하며, 이 가운데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가장 먼저 작곡되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또

    한 드뷔시가 ‘모음곡’이란 용어를 작품의 제목에 사용한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

    다. 따라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구성하는 각각의 소곡들에는 작곡자의

    음악적 어법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두 개의 모음곡 형태의 작품들에

    서도 드뷔시의 음악적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들

    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기쁨의 섬’(L'Isle Joyeuse, 1904)이나 《영상》(Images,

    1904/1907)과 같은 피아노 작품에서 음색과 형식이라는 원천적인 요소를 바탕

    에 둔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특히 형식은 그에게 있어 서로 다른 음악적

    요소들을 하나의 틀 안에 조화시키면서 ‘침묵적인 일체감’(stille Übereinkunft)25

    을 만들 수 있는 요소로 작용되었다.

    드뷔시가 작곡했던 초기의 모음곡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완성된 작품은

    《피아노를 위하여》로서, 1894년부터 1901년까지 약 7년여의 기간에 걸쳐 작곡

    되었다.26 모두 3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춤곡을 담고 있는데, 드뷔시가 모음곡

    에서 춤곡을 수용한 작품은 이 작품과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전부이다.

    《피아노를 위하여》에서 드뷔시는 18세기 프랑스 클라브생악파의 영향과 함께

    당시 관현악작품 등을 통해 구현하던 인상주의적 색채를 다양한 화성적 분위기

    를 통해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곡인 ‘사라방드’에서는 아래의 악보에

    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연속적인 7화음이나 4도 음정을 곡 전체에서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화성적 진행은 두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준 사라방드

    의 특징을 살려 두 번째 마디 둘 째 박에서 해결한다. 드뷔시는 이러한 풍부한

    화음에 의한 색채감을 느리고 우아한 18세기 춤곡 풍으로 표현한 것이다.

    25 Michael Rische, “Debussy,“ in Lexikon der Klaviers (Regensburg: Laaber Verlag, 2006), 199.

    26 ‘프렐류드’, ‘토카타’, ‘사라방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1894년 ‘사라방드’가 먼저 작곡하고, 1901년 나머지 두 곡이 완성되었다.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61

    (악보예 1, 드뷔시, 《피아노를 위하여》, ‘사라방드’ 마디 1-4)

    《피아노를 위하여》 이후 드뷔시는 거의 매년 자연의 풍경이나 분위기를 묘사

    하는 《판화》와 같은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발표하였으며, 그러한 느낌을 음

    색이나 화성 또는 리듬을 통해 자신의 피아노 어법으로 정착해 갔다.27

    드뷔시가 1905년에 최종본을 완성했던 피아노모음곡 《베르가마스크 모음

    곡》28은 ‘프렐류드’, ‘미뉴에트’, 프레데릭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 풍의 ‘월광’(Clair de Lune) 그리고 ‘파스피에’(Passepied)로 구성되었

    다. 전체적으로 18세기 클라브생 전통의 영향이 두드러진 이 모음곡에서 작곡자

    는 ‘미뉴에트’나 ‘파스피에’와 같이 춤곡 리듬을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편,

    ‘월광’과 같이 녹턴 풍의 곡을 넣으면서 옛 양식과는 약간 다른 양식과 구성의

    모음곡을 만들었다. 정통적인 프랑스 모음곡에서는 모든 곡들이 같은 조성을 가

    졌던 반면에 이 모음곡에서 작곡자는 각 곡들의 조성의 통일을 시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 곡들에서 조성 자체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각 곡의

    특징은 간단히 살펴보자면, F-장조의 조성을 가진 첫 곡 ‘프렐류드’는 풍부한 색

    채와 싱커페이션이나 액센트 또는 장식적인 요소 등을 이용하면서 변화 많은 리

    듬을 통한 묘사와 반복적인 악구를 사용하고 있다. 낭만적인 분위기가 풍부하게

    느껴지는 이 곡에서 자주 등장하는 온음계에 의한 음색 추구(예, 마디 44 이하)

    는 바그너의 반음계적 음악에 반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렐류드’가 보

    여주는 전체적인 어법은 바로크의 엄격한 양식과 낭만적인 어법과 현대적인 선

    율진행 등이 조화되는 모습을 통해 작곡자의 독창적인 어법으로 해석할 수 있

    27 특히 드뷔시가 1903년에 발표했던 《판화》에서는 이러한 경향들 가운데 리듬의 다양한 사용을 보여 주었는데, 첫 곡인 ‘탑’(Pagodes)에서는 자바의 민속음악인 가멜란을, 두 번째 곡인 ‘그라나다의 저녁 파티’(La Soiree dans Grenade)에서는 스페인 민속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단일 리듬을 적용하였다. David Burge, �20세기 피아노음악� 박숙련 역 (서울: 음악춘추사, 1997), 6.

    28 드뷔시는 이 작품을 1890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905년 마지막 버전을 완성한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제목명은 드뷔시가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을 여행한 후 친구인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의 시에서 언급된 “마스크와 베르가마스크”(Masques et Bergamasque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 62 차 호 성

    다. 두 번째 곡인 ‘미뉴에트’(a-단조)는 18세기 프랑스 클라브생악파의 영향을 찾

    을 수 있는 곡으로 작곡자는 전통적인 미뉴에트의 풍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

    인다. 기본적인 베이스 리듬은 단순한 3박자의 흐름을 유지하는 동안 오른손에

    의해 진행되는 섬세한 분위기의 변화를 통해 미뉴엣 풍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드뷔시는 피아니시모(pp)나 크레센도, 액센트 등의 다이내믹을 효율적

    으로 사용했으며, 도리아선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a-단조 성격의 주제는 리듬

    을 바꿔가며 몇 번에 걸쳐 등장하며 세레나데 풍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었다. 이

    러한 분위기는 본질적인 미뉴에트 풍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드뷔시의 시도라고

    여겨진다.

    (악보예 2,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미뉴에트’, 마디 1-3)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 곡은 ‘월광’이라는 표제적인 소제목을 유일

    하게 가지고 있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춤곡 리듬을 이용하지 않고 19세기 성격

    소곡의 경향을 담으면서 작품 전체가 전통적인 모음곡의 유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Db-장조의 조성을 가진 이 곡에서 드뷔시는 달빛을 인상적으로 묘

    사하기 위해 poco mosso로 연주되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활용하면서 화음의 유

    동적인 진행과 전음계적인 선율 진행을 통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3

    도 음정에 의한 선율 진행을 보이는 이 곡은 음색적으로는 마치 쇼팽의 녹턴이

    나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의 음악적 분위기를, 또 다른 한편으

    로 R. 슈만의 가곡 ‘달밤’(Mondnacht)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면서 대상에 대한 영

    혼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도 평가된다.29 ‘월광’에서

    보여준 어법은 드뷔시가 이 모음곡을 작곡하기 직전에 발표했던 《영상》이나

    《판화》에서처럼 자연에 대한 묘사 어법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마지막 곡은 프랑스의 옛 춤곡으로 론도 풍으로 연

    주되던 3박자의 파스피에 리듬을 이용한 곡이다. 드뷔시의 ‘파스피에’(f#-단조,

    29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138-140.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63

    4/4박자)는 악보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가볍고 부드러운 4박자의 곡으로 작곡하

    면서 전통적인 춤곡의 박자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 주었다. 왼손에

    의한 규칙적인 리듬을 론도 풍으로 진행시키며, 선율 진행에서 파바느적인 성격

    을 보이는 한편 양식적이거나 연주기법적인 면에서 프랑스 클라브생악파의 영

    향을 찾을 수 있다.

    (악보예 3,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파스피에’, 마디 1-7)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가진 전체적 특징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18세기

    프랑스 클라브생악파의 영향과 함께 낭만주의적 어법의 재해석, 인상주의적 표

    현 그리고 박자와 리듬을 통한 다양한 시도, 아르페지오나 글리산도를 이용한

    면, 다양한 7화음의 사용과 선법적인 수용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춤 리듬에 의한 옛 양식의 피아노모음곡 음악에 드뷔시는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이 피아노모음곡은 이후

    그의 작품들의 대체적인 경향을 포괄적으로 예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이후 드뷔시의 피아노음악은 인상주의 어법을 더

    욱 발전시켰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양식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2권의 《프렐류드》와 《연습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프렐류드 1권과 2권》에서는 인상주의적 경향과 함께 말년의 드뷔시가 관심

    을 갖은 ‘고전주의’적 경향이 함께 나타난다.30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드뷔시의 피아노음악 가운데 《베르가마스크 모

    30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138-140쪽 참조.

  • 64 차 호 성

    음곡》은 그의 창작과정에서 하나의 전환기적 작품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모

    음곡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어법은 인상주의적 경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에서 옛 양식과 현대적 어법의 조화를 시도하였으며,

    이후에는 고전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20세기 초반에 전통에 대한 의미를 재확

    인하는 기반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2. 쇤베르크의 피아노모음곡

    쇤베르크의 창작에서 피아노 작품은 불과 5개로서 작품의 수에 있어서는 큰 비

    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각각의 작품은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피아노

    작품에는 소나타나 협주곡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작품은 없으며, 2개부터 5개

    까지 소곡들이 묶여져 있는 모음곡 유형을 가진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그 가운

    데 쇤베르크가 직접 ‘모음곡’이란 용어를 취한 작품은 1923년에 완성했던 《피

    아노모음곡 Op. 25》(Suite für Klavier)이다. 그리고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시기

    에 작곡된 《5개의 피아노작품 Op. 23》(Fünf Klavierstücke)은 쇤베르크가 모음

    곡이란 장르명을 제목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작곡자 개인의 창작

    뿐만 아니라 20세기음악의 초기단계를 연구하기 위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

    고 있다. 왜냐하면 두 작품은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처음으로 적용한 작품으로

    서 비슷한 창작시기와 유사한 구성을 가지면서도 작품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으

    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 가운데 먼저 작곡이 시작된 것은 《5개의

    피아노작품 Op. 23》으로서, 이 작품의 작곡 당시까지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을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5개의 피아노작품 Op. 23》 《피아노모음곡 Op. 25》

    악장 작곡시기 악장 작곡시기

    1. Sehr langsam 1920 1. Präludium 1921

    2. Sehr rasch 1920 2. Gavotte, Musette 1923

    3. Langsam 1923 3. Intermezzo 1921(도입부)

    4. Schwungvoll1920(도입부),

    1923(나머지)4. Menuett-Trio 1923

    5. Walzer 1923 5. Gigue 1923

    쇤베르크가 12음기법에 대한 확신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1921년이었으며, 당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65

    시 그는 《피아노모음곡, Op. 25》의 ‘프렐류드’를 완성한 직후로 알려진다.31 하

    지만 쇤베르크가 작곡을 먼저 시작했던 작품은 《5개의 피아노작품》이었고, 이

    작품의 ‘왈츠’를 제외한 나머지 4곡에서 무조적 양식을 주로 사용했으며, 부분적

    으로 12음기법적인 시도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곡인 ‘왈츠’를 12음

    기법만으로 완성했다. 《5개의 피아노작품》을 시작하는 제1번의 3마디 길이의

    주제는 장․단3도와 단2도(또는 장7도) 음정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곡이

    진행되는 동안 리듬이나 음가가 축소되거나 변형되면서 성부 간에는 대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후기낭만주의적 경향을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마디 31-34에서는 12음기법적으로 나열된 음들과 그것의 역행 모

    습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비록 여기서와 같이 음렬의 갑작스런 등장이 있지만,

    이 첫 번째 곡은 처음에 주어진 하나의 동기를 발전시키면서 감정 표현의 다양

    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아직은 본격적인 12음기법을 적용한 것은 아닌 곡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3곡은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완전히 드러낸 해인 1923년 작

    곡되었으며, 제1곡보다 더욱 분명한 음렬의 사용을 보인다.32 12음 음렬을 이용

    한 것은 마지막 곡인 ‘왈츠’이지만, 이 제3곡에서 작곡자는 음렬의 기본형만 가

    지고 곡을 진행시켰지, 역행이나 반행 등 음렬의 다른 기법은 사용하지 않고 있

    다. 대신 그가 이전의 무조음악 작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다양한 악상의 자세

    한 지시 등을 통해 연주기법에 대한 요구가 많이 제시되었다. 마지막 곡인 ‘왈츠’

    에서 쇤베르크는 전통적인 춤곡 리듬을 이용하면서 무조음악에서 보여준 섬세

    한 악상이나 연주법 지시 등을 첨단의 기법인 12음기법과 접목해 보려는 시도를

    처음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작품은 《피아노모음곡, Op. 2

    5》이며, 이 작품은 음렬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나 구성

    면에서 오히려 전통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이유로는 위의 표1에

    서도 볼 수 있듯이, 모음곡을 구성하는 곡들 대부분이 옛 양식의 춤곡을 기본으

    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목 상에도 ‘모음곡’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

    다. 모든 곡이 전통적인 모음곡의 구성곡들과 같으며, 연주에서도 바로크시대의

    실제 춤을 추는 곡들처럼 반복적인 연주를 지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5개의 곡

    31 1921년 쇤베르크는 그의 제자 루퍼(Josef Rufer)에게 “오늘 나는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100년간 독일음악의 우위를 보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대화는 1921년 7월 21일에 시작하여 29일 완성한 자신의 《피아노 모음곡, Op. 25》중 ‘프렐류드’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180.

    32 3/4박자의 이곡은 마디 1-2에서 단선율로 5개의 음들(Bb-D-E-B-C

    #)이 제시된 후 전

    위, 역행, 역행전위, 반복 등 다양하게 변형되며 진행된다.

  • 66 차 호 성

    들이 일부 반복하면서 모두 8개의 소곡들처럼 만들어진다.33 쇤베르크가 악보

    상에 지시한대로의 연주 순서를 보면, Präludium, Gavotte, Musette, Gavotte,

    Intermezzo, Menuett, Trio, Menuett 그리고 마지막 Gigue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5개의 곡들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기본 음렬을 공유하고 있

    다. 12음기법에서 기본 음렬을 이용해 총 48개의 변형된 음렬을 만들 수 있으나,

    쇤베르크는 E음으로 시작해서 Bb음으로 끝나는 기본음렬(E-F-G-Db-Gb-Eb-

    Ab-D-B-C-A-Bb)을 변형한 8개의 음렬만을 사용하였다.

    (악보예 4, 쇤베르크, 《피아노모음곡 Op. 25》, 제1곡 ‘프렐류드’ 시작부분의 음렬)

    원형 음렬 4개와 증4도(감5도)를 이용한 음렬 4개 등 8개의 음렬을 가지고 이

    작품에서 쇤베르크는 음렬의 사용방법을 악장에 따라 차이를 두고 실험한 것으

    로 여겨진다.34 그러니까 하나의 기본음렬을 토대로 5곡을 구성하면서 각 악장

    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의 통일성까지 구현했는데, 이는 마치 전통적인

    모음곡이 하나의 조성으로 모든 곡들이 작곡된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여

    기에 확장된 변주기법과 바로크 춤곡의 양식과 연주유형을 접목했는데, 바로크

    양식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 모음곡이 ‘신고전주의적’경향을 가졌을 것이란 측

    면으로도 고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쇤베르크가 옛 양식과

    새로운 어법이나 작곡기법을 이용해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완성했다는

    면에서 신고전주의적이란 의미를 부여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기본 음렬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는 곡은 네 번째 곡인 ‘미뉴에트’와 ‘트리오’로서, ‘미뉴에

    트’의 시작에서 음렬은 양 손에 나뉘어 나타나고, 이어서 Ab으로 시작하는 전위

    형이 등장하며 성부와 리듬의 변형을 통해 전개된다. ‘미뉴에트’ 다음에 연주되

    는 ‘트리오’에서는 기본 음렬이 수평적으로 제시되는 동안 상성부에서 대선율이

    나타나며, 이는 다음 마디부터 엄격한 카논 풍을 보인다. 음렬의 사용이 분명하

    게 드러나면서 다른 곡들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인 음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33 《피아노모음곡, Op. 25》는 연주 상으로는 8곡처럼 만들어졌다. 두 번째 곡인 ‘가보트’ 다음에 ‘뮤제트’가 놓여 졌는데, 연주 상으로 작곡자는 ‘가보트’와 ‘뮤제트’를 아타카로 연결시키고, ‘뮤제트’가 끝나면 ‘가보트’로 돌아가도록 지시하면서 연주 상에서는 하나의 곡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뉴엣’과 ‘트리오’가 연주된 후 다시 ‘미뉴엣’을 연주한 다음 마지막 곡인 ‘지그’를 연주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34 이석원, “쇤베르크,” �20세기작곡가연구 I�(서울: 음악세계, 2000), 286.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67

    (악보예 5, 쇤베르크, 《피아노모음곡, Op. 25》, ‘미뉴에트-트리오’, 마디 34-38)

    《피아노모음곡, Op. 25》에서 찾을 수 있는 음렬적인 특징 외에 또 다른 면을

    살펴보면, 쇤베르크가 각 곡에서 바로크 춤곡의 표준적 형식을 그대로 사용했으

    며, 전체적으로는 전통적인 모음곡 양식을 충분히 고려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

    선 첫 곡으로 옛 모음곡의 첫 곡에서 사용된 ‘프렐류드’를 배치한 점이나, 곡의

    진행에 있어 균형있고 분명한 프레이즈와 토카타 풍의 흐름 그리고 다성적인 전

    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가보트’와 ‘뮤제트’를 트리오 풍으로 연결시킨

    점이나, 세 번째 곡으로 놓인 ‘인터메초’에서 바흐 풍의 어법이나 스타카토로 연

    주되는 베이스 위에 서정적인 선율 전개 등에서 작곡자의 전통에 대한 의지를

    추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곡인 ‘지그’에서의 리듬이나 도약하는 선율

    의 모습은 18세기 초반 전고전주의적 양식을 연상시킨다. ‘미뉴에트’에서는 3부

    분으로 구성된 형식이나 ‘트리오’에서의 2성부 카논 풍을 이용해 고전주의 어법

    을 보이고 있으며, ‘인터메초’에서는 낭만주의음악에서의 표현과 자유로움을 느

    끼게 하고 있다.

    《5개의 피아노작품》에서 후기낭만주의적 어법을 찾을 수 있었다면, 《피

    아노모음곡, Op. 25》에서는 현대적인 기법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인 요소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

    자면, 《피아노모음곡, Op. 25》는 형식이나 짜임새가 투명하고, 바로크 춤곡을

    연상시키는 리듬을 주로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각 곡들이 주제와 동기

    의 개념을 펼쳐가는 방식이 닮았으며, 대칭이나 주제를 발전시키거나 반복되는

  • 68 차 호 성

    패턴으로 진행시키거나 또는 동형진행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

    은 ‘쇤베르크의 음악에는 상반된 두 개념, 즉 전통과 혁신이 항상 공존한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로 평가된다.35 특히 바로크시대의 양식적 특징은 위에

    서 언급한 춤곡을 연상시키는 리듬과 함께 바로크시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

    음곡이나 파르티타와 같이 철저한 대위법이나 종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피아

    노모음곡, Op. 25》에서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실행하면서,

    이 기법이 작곡자의 음악적 사고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목적이 아니며,

    작품의 형식이나 구성을 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대의 다양한 양식과 어법을 고

    려할 수 있다는 사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6 현대와 전통

    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시도는 이 작품이 작곡되던 1920년대에 작곡가들이 가지

    고 있던 18세기 형식과 어법에 대해 관심을 쇤베르크 나름대로 바로크시대 춤곡

    의 유형을 수용하면서 보여준 것이다.

    3. 힌데미트의 피아노모음곡

    힌데미트는 자신이 작곡했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전통적인 피아노음악의 입

    장에서 다루었던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가진 다양한 표현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창작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남긴 피아노 독주용 작품은 그리 많은 편

    은 아니지만, 실내악을 비롯한 다른 장르의 많은 작품들에 피아노를 포함하였다.

    피아노 독주용 작품에서 피아노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시도했던 대표적인 작품

    으로 《모음곡 1922, Op. 26》(Suite 1922)을 들 수 있다. 힌데미트는 초기 창작

    시기의 피아노 작품에서 이미 다른 작곡가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

    다.37 1919년경까지 보여준 작품들 가운데 특히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서 그는 다

    양한 창작경험을 쌓았는데, 당시 유럽에 유입되어 유행하던 미국의 재즈나 현대

    식 춤음악에 대한 관심을 직접 작품 속에 수용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38 그는 무

    조음악이나 새로운 춤곡에 의한 다양한 표현을 규모가 작은 형식의 작품이나 피

    35 이석원, “쇤베르크,“ �20세기작곡가연구 I�, 287.

    36 David Burge, �20세기 피아노음악�, 박숙련 역, 94.

    37 힌데미트의 피아노음악 창작은 크게 두 개의 시기로 구분되는데, 1919년부터 1928년까지와 1936년부터 1945년까지가 그것이다.

    38 힌데미트가 1919년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춤곡들, Op. 19》(Tanzstücke für Klavier)는 5개의 곡들로 구성되었으며, 네 번째 곡(Pantomime)을 제외하고는 소제목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베이스에서의 리듬을 토대로 빠르게 연주되면서 유럽 전통의 춤곡 양식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재즈나 현대식 춤음악의 요소를 보이고 있다. 세 번째 곡에서 힌데미트는 미국의 재즈에서 사용되던 ‘Twostep'을 지시하고 있는데, 이미 이때부터 재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1922년 작곡하게 되는 《모음곡 1922》에서 구체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69

    아노 소품을 통해 보여 주었으며, 이 가운데 초기 작품시기의 피아노곡 《In

    einer Nacht... Träume und Erlebnisse, Op. 15》(1917/1919)는 그러한 경우를 단

    편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모두 14개의 소품들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힌데미트는 다양하게 사용된 표제적인 면모와 함께 폭스트로트(Foxtrott)39와 같

    이 당시 유행하던 춤곡의 리듬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유행 춤곡에 대한 관심은

    뒤에 그의 여러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마지막

    14번째 소곡(Finale: Doppelfuge mit Engführungen)은 2중 푸가와 스트레토라는

    소제를 가지는 곡으로서, 이 곡에서 힌데미트는 바로크시대의 대위법을 이용했

    다. 이러한 바로크시대의 대위법이나 푸가와 같은 구체적인 기법이나 어법 또한

    힌데미트가 남긴 중․후기 작품(예, Ludus tonalis, 1942)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

    용한다. 뿐만 아니라 강렬한 표현을 위한 피아노 연주기법에서도 작곡자의 의도

    를 분명하게 표시하였는데, 예를 들어 다이내믹 차원에서 무리한 듯한 음향을

    요구하면서 피아노 특유의 음향이나 음색에서 벗어나 타악기적인 연주법을 연

    상시키는 음향 효과를40 요구한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에서 얻은 피아노를 통한 주법이나 음색적 다양성은

    힌데미트가 1922년 발표한 《모음곡 1922》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특

    히 힌데미트는 그러한 특징을 하나의 틀 안에 모으면서 전통적인 ‘모음곡’장르

    를 선택하였고, 그 안에 춤 리듬에 의한 곡들을 담아내면서 바로크의 춤곡 양식

    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행진곡’(Marsch), ‘지미’(Shimmy), ‘야상

    곡’(Nachtstück), ‘보스톤’(Boston), ‘랙타임’(Ragtime) 등 5곡으로 구성된 《피아

    노모음곡 1922》에서 힌데미트는 지미, 보스턴, 랙타임 등 당시 1920년대 당시

    미국에 대한 동경에 따라 유럽에 유행하던 춤곡들을 사용했으며41, 나머지 두

    곡인 ‘행진곡’과 ‘야상곡’들도 춤곡은 아니지만 규칙적인 리듬을 토대로 곡이 진

    행시킨다. 이렇게 5개의 곡들은 표면적으로 서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며, 힌

    데미트가 당대의 유행하는 춤곡들의 리듬을 바탕으로 다양한 춤곡 양식의 곡들

    을 묶어 하나의 피아노모음곡으로 발표한 것이다. 《모음곡 1922》의 첫 곡인

    ‘행진곡’의 경우 2박자의 행진곡풍으로 연주되는데, 단순한 행진곡 리듬만을 느

    끼도록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브라스밴드가 연주할 때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

    39 13번 째 곡으로 베이스에서의 규칙적인 리듬과 함께 옥타브 중심의 선율 진행으로 강렬한 다이내믹과 음색을 보여 준다.

    40 네 번째 곡인 ‘Pantomime’에서는 강렬한 음향효과를 위해 ffff와 같은 다이내믹을 곳곳에서 요구하고 있다.

    41 2박자 계통의 지미는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이며, 보스톤은 3박자의 느린 왈츠에서 유래한 가볍고 빠른 춤곡이며, 랙타임은 미국 뉴올리언즈 재즈에서 유래한 음악으로서 백인들이 피아노재즈로 적극 받아들인 음악이다.

  • 70 차 호 성

    해 작은북을 연상케 하는 짧은 패시지(4개의 32분 음표들에 의한 장식적 음형들)

    나 심벌이나 큰북의 연주를 연상케 하는 액센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타악

    기의 연주효과까지 보이고 있다.42 ‘야상곡’의 경우 박자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감정을 억제하듯이 연주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박자의 흐

    름은 3/2 또는 6/4박자의 패턴을 보이지만,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를 베이스의

    절제된 듯한 2가지의 규칙적 움직임으로 전체를 균형잡고 있다. 그 첫 번째 예는

    곡의 시작 부분에서 나타나는 화성적인 베이스의 진행이며, 두 번째는 마디 36

    이하에서 분산되어 규칙적으로 진행하는 베이스 라인이다.

    (악보예 6, 힌데미트, 《모음곡 1922》, ‘야상곡’, 베이스라인 두 가지 움직임)

    a. 화음 형태의 베이스 진행, 마디 1-4

    b. 규칙적인 선율 진행형 베이스, 마디 36-38

    힌데미트의 《모음곡 1922》 가운데 가장 새로운 시도는 마지막 곡인 ‘랙타임’

    에서 찾을 수 있다. 싱커페이션과 베이스라인에서의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분명

    한 리듬이 특징인 랙타임을 접한 유럽의 작곡가들이 재즈를 본격적으로 클래식

    에 접목하게 되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힌데미트의 이 모음곡일 것이다.43

    42 전형적인 모음곡이 대부분 프렐류드를 첫 곡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힌데미트의 모음곡 첫 곡은 행진곡이지만, 곡의 시작 부분에 ‘서주’(Vorspiel)란 지시를 통해 프렐류드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43 재즈 춤곡인 랙타임을 가장 먼저 수용했던 작곡가는 드뷔시로서 1908년 완성한 피아노 작품 《어린이 정경》(Childrens corner)의 마지막 곡에서 랙타임의 기본적인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71

    힌데미트의 ‘랙타임’은 강렬한 베이스의 움직임이나 싱커페이션에 의한 선율도

    원래의 랙타임의 모습을 따르지 않고, 강한 리듬과 음색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기본적인 성격만을 부각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깥 두

    성부에 나타나는 대위법적 작법이나, 무조성임에도 불구하고 화음전개에 있어

    모든 가능성을 통한 상대적 긴장감 유도 등은 바로크적이거나 후기낭만주의적

    어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힌데미트가 재즈의 춤곡인 랙타임을 이 《모음곡 1922》에 넣으면서 힌데미

    트는 기존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을 드러내는 것으로, 재즈를 유

    럽의 전통적인 음악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해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신은 재즈

    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롭고 힘차고, 서구문명이 갖지 못한 원초적인 요인’44을

    자신의 음악에 수용하였다. 재즈적인 요소보다 더 두드러진 요소는 이 곡에서

    연주자들을 향한 힌데미트의 연주법에 대한 요구이다.45 재즈로서의 랙타임이

    가지는 특징적인 요소인 규칙적인 비트에 의한 베이스 진행이 빠진 대신 그가

    지시한 피아노 연주법에 따라 얻어지는 강한 터치의 음악은 재즈 랙타임에서의

    느낌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옥타브를 위주로 진

    행되는 두터운 화음과 ffff 까지 요구되는 강렬한 다이내믹 그리고 기계적이고 긴

    박한 움직임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이 곡이

    피아노를 위한 춤곡으로서의 분위기를 넘어 리듬이 강조된 타악기 음악처럼 여

    겨질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춤곡이나 춤 리듬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모음곡

    양식의 틀 안에 힌데미트는 선율이나 또는 화성의 풍부한 음색을 표현하는 전형

    적인 피아노 연주방식 대신 음향과 음색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20세기음악의 특

    징적인 요소를 제시한 것이다.

    《피아노모음곡 1922》를 전체적으로 보면, 구성이나 리듬에 있어서는 바로

    크적이거나 또는 현대적 춤곡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의 음악적 분위

    기는 불협화적이며 현대적인 느낌을 주로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46 이 작품이

    리듬을 수용했다. 이후 스트라빈스키가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실내악 작품으로 《랙타임》(1919)이란 곡을 작곡하면서, 베이스의 리듬은 본질적인 랙타임의 모습을 유지했지만 싱커페이션이 강조된 선율선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독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44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202.

    45 랙타임 악보 위에 힌데미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제까지 당신이 피아노 수업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잊어라. 당신이 D#음을 네 번째 또는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누를 지에 대해 고민하지 마라. 이 곡은 아주 거칠게 연주하되 리듬은 기계적인 느낌으로 유지하라. 여기서 피아노는 마치 하나의 타악기처럼 생각하라.”

    46 힌데미트가 신고전주의적이거나 신바로크적인 어법을 구사했던 작품은 이후에 작곡한 Kammermusik, Op. 35, No. 1 (1924)의 두 번째 곡에서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 72 차 호 성

    보여주는 예와 같이, 힌데미트는 피아노소나타 등의 작품들에서 피아노가 독주

    나 협주용 악기로서의 전통적인 인식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했다는 점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그것은 19세기 이후 넘쳐나

    던 식상한 피아노음악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일 것이다. 힌데미트의 피아노

    음악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인 이러한 시도는 이후 바르톡이나 또는 스트라

    빈스키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20세기음악에서의 새로운 어법을 추구하

    는 많은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에 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난다.

    Ⅳ. 결 론

    바로크시대에 이미 장르로서 기반을 확립했던 피아노모음곡은 18세기 후반 소

    나타의 등장으로 힘을 잃었으나, 19세기 중반 바로크 양식이나 전통에 관심을

    가지며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19세기 음악의 섬세하고 다양한 특징 때문에 춤

    곡으로만 구성되는 피아노모음곡은 바로크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여러 작곡가들이 바로크시대 음악 어법이나 기법적인 특징

    을 자신들의 작품에 수용하면서 피아노모음곡은 19세기말 전환기 이후 새로운

    의미를 가진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며 피아노모음곡

    은 작곡가마다의 다양성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각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모음곡’

    이란 용어를 제목에 포함한 작품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피아노모음곡 속

    에 전통적인 춤 리듬이나 양식을 전제조건으로 새로운 어법이나 시도를 보여 주

    고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드뷔시, 쇤베르크, 힌데미트와 같은 작곡가들은 피아

    노모음곡의 양식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연주기법이나 표현의 다양성을 하나의

    작품을 통해 제시했던 것이다. 이들이 남긴 피아노모음곡은 전통적인 모음곡의

    틀은 유지하되 내용적인 차원에서 상당히 다른 시도와 특징을 가진 것으로 나타

    났다. 드뷔시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전통적인 모음곡 구성을 바탕으로

    19세기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표제적이거나 또는 자신이 보여 주었던 인상

    주의적 성격을 담은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쇤베르크는 《피아노모음곡,

    Op. 25》에서 전통적인 모음곡 구성에 새로운 작곡기법인 12음기법을 시도하면

    서, 춤곡 리듬의 짧은 곡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어법의 창작의도를 분명하게 보

    여 주었다. 그리고 힌데미트는 모음곡이 본질적으로 춤곡을 묶어 만들어진 장르

    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유행하던 현대적 춤곡의 리듬을 수용하여 《모

    음곡 1922》를 만들고, 그 안에서 피아노의 현대적 연주기법과 음색적 시도를

    담아내었다. 이 3개의 피아노모음곡들이 모두 옛 양식이거나 또는 현대에서 유

    행하던 춤곡들로 구성되면서 바로크시대부터 전해오는 모음곡의 유형을 원칙적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73

    으로 따르고 있다는 점은 20세기 전반기 신고전주의 경향과의 연관성을 논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어진 드뷔시나 쇤베르크 그리고 힌데미트의

    작품들은 바로크음악의 어법이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곡

    가들의 다양한 표현을 ‘리듬’을 바탕으로 나타내려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

    한다면 이것들을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가지는 작품으로 구분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이다. 단, 17~8세기의 대표적인 장르인 피아노모음곡을 현대음악에서 재

    조명하며 20세기음악의 다양성에 또 하나의 의미와 역할을 제공했다는 차원에

    서 신고전주의 경향과의 관련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피아노모음곡의 패턴은 전통적인 모음곡의 형태를 가지는 경우가 있

    으나, 모음곡의 전형이 춤곡 리듬을 바탕으로 한 장르이기 때문에 곡의 길이가

    길지 않아서 대규모 작품은 없다. 하지만 현대 작곡가들은 모음곡이 가진 양식

    적 특징을 기초로 전통적인 모음곡의 패턴을 따르던가, 아니면 새로운 기법을

    짧은 곡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예가 많다. 그런 목적을 위

    해 작곡가들은 모음곡에 현대적인 춤곡의 리듬을 이용하던가, 또는 모음곡의 패

    턴은 유지한 채 인상적이거나 표제적인 내용을 짧고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

    단의 한 장르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20세기의 작

    곡가들은 개성있고 독자적인 음악어법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전통 속에서 의

    미있는 요소들을 찾고 그것들을 새롭게 수용하면서 객관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현대음악의 표본을 보인 것이다.

    한글검색어: 피아노모음곡, 드뷔시, 쇤베르크, 힌데미트, 20세기 초, 《베르가마

    스크 모음곡》, 《피아노모음곡, Op. 25》, 《모음곡 1922》

    영문검색어: Piano Suite, Debussy, Schönberg, Hindemith, Early 20th.

    Century, Suite Bergamasque, Suite for piano Op. 25, Suite 1922

  • 74 차 호 성

    참고문헌

    신인선. �드뷔시 바다�. 서울: 음악세계, 2010.

    이석원. “쇤베르크.” �20세기작곡가연구 I�. 서울: 음악세계, 2000.

    차호성/오희숙/김미옥. �피아노문헌 2�. 서울: 심설당, 2013.

    Unknown. Harenberg Kulturfuhrer Klaviermusik. Mannheim: Meyers

    Lexikonverlag, 2008.

    Burge, David. �20세기 피아노음악�. 박숙련 역. 서울: 음악춘추사, 1997.

    Deaville, James. “Raff, Joachim.” in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0. London: 2000.

    Hindemith, Paul. “Klaviermusik I.” Sämtliche Werke 9. Mainz: Schott' Sö

    hne, 1990.

    Stuckenschmidt. “Hans Heinz.” Schönberg. München: Atlantis Musikbuch-

    Verlag, 1989.

    Hohmann, Christian. “Suite.” 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Sachteil). Kassel: Baerenreiter Verlag, 1998.

    Wolters, Klaus. Handbuch der Klavierliteratur zu zwei Haenden. Mainz:

    Atlantis Musikbuch, 2001.

    Menk, Andreas. “Suite.”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8

    (Sachteil). Kassel: Bärenreiter Verlag, 1998.

    Rische, Michael. “Debussy.” in Lexikon der Klaviers. Regensburg: Laaber

    Verlag, 2006.

    Schipperges, Thomas. “Suite.” in Handbuch der Musikalische Terminologie.

    hrsg. von Hans Heinrich Eggebrecht und Albrecht Riethmüller.

    Wiesbaden: Steiner, 1971–2006.

  •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75

    국문초록:

    20세기 초 피아노모음곡의 수용

    차 호 성

    20세기에 들어서며 작곡가들은 피아노모음곡 속에 전통적인 춤 리듬이나 양식

    을 전제조건으로 새로운 어법이나 시도를 다양하게 보여 주었다. 드뷔시는 《베

    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전통적인 모음곡 구성을 바탕으로 19세기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표제적이거나 또는 자신이 보여주었던 인상주의적 성격을 담은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쇤베르크는 《피아노모음곡, Op. 25》에서 전통적인 모음

    곡 구성에 새로운 작곡기법인 12음기법을 시도하면서, 춤곡 리듬의 짧은 곡 안

    에서 자신의 새로운 어법의 창작의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힌데미트는 모음

    곡이 본질적으로 춤곡을 묶어 만들어진 장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유

    행하던 현대적 춤곡의 리듬을 수용하여 《모음곡 1922》를 만들고, 그 안에서

    피아노의 현대적 연주기법과 음색적 시도를 담아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

    어진 드뷔시나 쇤베르크 그리고 힌데미트의 작품들은 바로크음악의 어법이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들의 다양한 표현을 ‘리듬’을 바

    탕으로 나타내려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것들을 신고전주의적 경

    향을 가지는 작품으로 구분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이다.

  • 76 차 호 성

    Abstract:

    Acceptance of Piano Suites in the Early 20th Century

    Ho Sung Cha

    In the 20th century, composers showed diverse techniques or attempts based

    on the premises containing traditional dance rhythms or modes in piano

    suites. Debussy completed Suite Bergamasque as a work of art containing

    programmatic characteristics as one of the 19th century music elements or

    his own impressionist properties based on the traditional composition of

    suites. Schönberg attempted the 12tone technique in Klaviersuite, Op. 25

    anew in the traditional suite composition to clearly show his own intent for

    creation in the short dance rhythm. Hindemith accepted the contemporary

    dance musical rhythms which were popular in the early 20th century based

    on the concept that a suite is a genre consisting of dance music pieces to

    create Suite 1922 and tried to contain experimental tones and contemporary

    piano-playing techniques. However, if we interpret that the works of art of

    Debussy, Schönberg or Hindemith are not meant to maintain the Baroque

    techniques or traditions but contain various expressions of composers based

    on 'rhythm', it will not be appropriate to classify them as those containing

    the trends in neoclassicism.

    〔논문투고일: 2013. 08. 30〕

    〔논문심사일: 2013. 09. 25〕

    〔게재확정일: 2013.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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