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20
선선 선선선 : 선선 선선 : 선선 D 선선 선선 : 선선선선선선 선선선선선선 선선 선선선 ( 010-4860-7070 ) 선선 선선선 ( 010-3020-1765 ) 선선선 ( 010-4781-2323 ) 선선선선선선 SUNGKYUNKWAN UNIVERSITY <선선선 선선 선선선 선선>

Upload: others

Post on 19-Jan-2020

1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선정 브랜드 : 난타팀명 : 멜로 D 라마팀원 :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조장 김태현 ( 010-4860-7070 )조원 김의황 ( 010-3020-1765 )이승렬 ( 010-4781-2323 )成均館大學校SUNGKYUNKWAN UNIVERSITY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Page 2: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목차>1. 사례요약

2. 서론: 난타의 현재위치 및 시작

3. 난타의 역사와 도전

4. 최초 출시 때의 시장상황, 경쟁 그리고 난타의 마케팅 전략

5. 현재 1 등 자리로 오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터닝포인트

6. 1 등으로 떠오르게 한 성공 비결 요약

7. 난타를 위한 향후 마케팅 전략방향 제안

8. 총 요약 및 결론

9. 참고 문헌 및 자료 원천

10.붙임

10.1 개인별 후기

10.2 관련 조사 자료 및 분석 자료

Page 3: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1. 사례 요약

안녕하십니까 ‘난타’를 주제로 한 멜로 D 라마팀 인사 드리겠습니다.아시다시피 저희 팀은 난타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저희가 난타를 주제로 삼은 이유는 난타는 한국 전통의 사물놀이의 리듬을 차용해서 현대에 맞게 각색하여 일상 주방도구들을 통해 퓨전 시킨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어우러진 대표적 산물이며, 앞으로 한국 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먼저 난타의 시작과 현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난타는 초기 세계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래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해외 무대에서도 통하는 공연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난타의 초기 목표였다. 난타의 초연은 1997 년 10 월 호암아트홀에서 시작되었으며, 2000 년에 국내 최초 난타 전용관을 개관한 이후로 2009 년에는 난타 전용관 공연 10,000 회를 돌파했다. 2002년 국내외 총 관람객이 100 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기세를 몰아 2008 년 국내외 총 관람객이 400 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 결과 국내에서도 많은 수상을 받았다. 1998 년에는 제 4 회 한국 뮤지컬 대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2000 년에는 한국관광공사 주최 한국관광대상을 수상하였고, 2001년에는 산업자원부 주최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되었으며, 2008 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문화부문 수상을 하였다. 또한 난타는 국내에서 위상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1999 년 8월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전회 매진을 기록하였고, 2003 년 아시아 최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였고, 2004 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전용관 프리뷰를 개관하였다.이렇게 난타는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성공을 했는데 이렇게 성공한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첫째 목표를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난타는 초기부터 해외 시장 공략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니고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부터 시작하여 탄탄히 준비를 하여 성공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성공에 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세밀한 시장 분석과 더불어 전통만 고집한 것이 아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외국에서 희곡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을 뚫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 없는 비언어극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발달하지 않은 비언어극 시장 외국에서는 발달한 비언어극 시장, 그 곳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시장을 분석한 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물놀이 리듬을 택하였지만 무조건 한국적인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외국인들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도록 각색하고 재창조했습니다. 흔히 한국의 것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때 억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난타는 그렇지 않고 거부감 없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셋째 상황에 맞는 마케팅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단순히 시장에서 사용하는 천편일률적인 마케팅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닌 맞춤형 마케팅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난타가 처음 공연 할 때는 입소문이 중요하기에 그 당시의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PC 통신을 통한 마케팅을 이용하였고 에딘버러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방법을 궁리하던 중 에딘버러가 작은 도시인 지리적 특성을 이용 에딘버러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TV, 신문광고, 전단지 등의 방법을 이용했다면 난타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전통의 계승 및 현대화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전통을 지키며,

현대 문화를 수용하는 융합의 방안을 통해 전통을 알리고,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2. 서론: 난타의 현재위치 및 시작

난타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 난타가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난타의 연출자인 송승환씨는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를 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만족해 했지만 20 대가 되면서 본인이 능동적으로 판을 벌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작자의 길을 모색하며 배우의 일을 하면서 제작일 까지 했으며 ‘환 퍼포먼스’를 창립 하였는데, 환 퍼포먼스는 다른 극단과 다르게 단 한 명의 연출자나 배우도 소속이 안 되어 있고 작품이 기획되면 어울리는 스태프와 배우들을 수시로 모집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항상 빚을 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특히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7억 원을 들여서 만든 연극 ‘고래사냥’은 흥행도 그럭저럭 성공적이었지만

Page 4: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제작비를 간신히 회수했을 정도이고 뮤지컬을 오랫동안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 없기에 1억 5 천 만원의 돈을 들여 만든 세트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고래사냥을 통해 한계를 더욱 체감한 송승환 대표는 여러 고민을 하며 결론을 내렸다. 시장의 한계는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고 자본의 한계는 극단 자체를 제대로 된 기업형태인 주식회사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흔히 1 인당 소득 2 만 달러, 인구 1억 이상이 되지 않는 다면 공연 산업의 발전이 힘들다는 말이

있다. 송승환 대표는 고래사냥을 통해 이 사실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이 좁다고 인구가 늘고 소득이 올라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시장은 국내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 송승환 대표는 ‘환 퍼포먼스’를 주식회사 형태인 ‘PMC 프로덕션’으로 전환 하였다. 고래사냥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자본적 기반이 마련 된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가 당면 과제가 되었다. 이 무렵 송승환 대표는 아이디어를 고민 하던 중 후배 기자와 식사를 하는데 “요즘 외국에는 넌버벌 퍼포먼스가 대유행이던데, 한국에서도 그런 작품이 통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에 영감을 얻었다. 연극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하는데 배우들에게 해당 언어를 공부시키는 것, 객석에 모니터를 설치해 자막을 띄우는 것 보다 더 좋은 완벽한 방법은 바로 비언어극을 만드는 것이다.비언어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송승환 대표는 ‘내용물은 무엇을 담을 것인가?’ 를

고민하였다. 이미 외국은 자본이라는 면에서는 한국의 수십 배 이다. 자본의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 대신 아무리 외국의 뛰어난 프로듀서라도 자신 만큼 한국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여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면 큰 반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였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언어가 필요 없는 것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사물놀이 라는 답을 생각해내었고

‘사물놀이 형태를 이용한 비언어극을 만든다.’ 는 기본 생각이 난타의 기초가 되었다.그런데 사물놀이란 무언가를 두드리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두들길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소리가 가장 많이 나는 공간을 생각하니 부엌이 떠올랐고 부엌을 배경으로

하자 등장인물은 요리사로 정리가 되고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드라마로 엮고, 중간중간 온갖 주방 도구를 두들기면 대사 없이도 스토리를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좀 더 살이 붙은 난타의 기획안이 되었으며, 배우를 캐스팅 하고 스토리를 짜며 서서히 난타를 완성시켜 나갔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난타는 1997 년 10 월 호암 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마친 이후로 올해 공연 16주년이 되었으며 2012 년 1 월에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700 만명을 돌파하였으며 한국의 4 개 전용관에 이어 방콕에까지 전용관을 설치했으며 2010 년에는 최초 200억 이상의 연 매출을 기록 하는 비언어극의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또한 해외에서의 위상도 만만치 않은데 현재까지 전세계 285개 도시를 순회 공연 하였으며, 매 도시마다 앙코르 공연 요청을 받는 등 현지 언론과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난타는 최초로 이루어 낸 것이 많은데 국내 최초의 넌버벌 퍼포먼스이며, 국내 최초 해외 연극 페스티벌 에딘버러 프린지 전석 매진을 달성하였고 국내 최초 공연작품 캐릭터 개발, 국내 최초 상설 공연장 개관, 국내 공연 업계 최초 문화 벤처기업 지정 등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다.

Page 5: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그림 3. 난타 공연 장면>

3. 난타의 역사와 도전

난타의 역사를 도표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997 1997.10 서울 호암아트홀 초연

그림 1. 난타 전용관좌측서부터 홍대 전용관, 명동 전용관, 제주 전용관 아래 좌측서부터 방콕 전용관, 충정로 전용관

<그림 2. 난타 포스터>

Page 6: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1998 1998.03 제 4 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수상

1999 1999.08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전회 매진기록

2000

브로드웨이 아이사와와 국제화 전략 수립2000.01 일본 Tokyo Aoyama Theater2000.06 영국 London Sadler’s wells2000.07 오스트리아 Vienna metropol Theater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참가)국내 최초 상성공연장 난타 전용관 개관2000.12 한국관광공사 주최 한국관광대상 수상(한국관광공사 주최)

2001

2001.02 리처드프랭클 프로덕션 북미순회계약2001.08 일본 아사히 TV 에 소개2001.09 미주투어, 9.11테러로 23 일 잠정철수2001.11 세계일류상품 선정(산업자원부 주최)2001.11. 고르바초프 난타극장 방문

2002

2002.03 일본 프로모션 ‘다케시 쇼’ 출연2002.08 제 14 회 아시안게임 개막식공연2002.04 난타 강남 전용관 개관2002.03 국내 외 총 관람객 100 만명 돌파

2003

2003.09 아시아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뉴빅토리아 극장)2003.07 난타전용관 통합 개관(정동 A&C)2003.01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서울시 볼거리로 선정2003.01 최초 중국 수학여행단 난타 관람

2004

2004.02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전용관 프리뷰 개관(미네타레인 극장)2004.03 아시아 최초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미네타레인극장 장기공연 개막

2005

2005.01 오프 브로드웨이 전용관 공연 400 회 돌입2005.05 국내 외 총 관람객 200 만명 돌파

2006

2006.06 국내 최초 외국인 관람객 100 만명 돌파국내 외 총 관람객 300 만명 돌파2006.11 독일 15 회 공연2006.12 벨기에 Cultureel Centrum

2007

2007.04 러시아 The Amy Theater2007.10 난타 10 주년2007.11 아르헨티나 Burnos aires Teatro Avenida

2008

2008.04 난타 제주 상설 공연시작2008.07 사이판 Zaragoza EXPO convention center2008.10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문화부문 수상송승환 대표 서울 관광대상 서울 관광 최고 공로자 부문 수상국내 외 총 관람객 400 만 명 돌파난타 전용관 정동시네마 1 관으로 이전2008.11 사우디아라비아 3 회 공연

2009

2009.10 난타 12 주년난타명동전용극장 개관

Page 7: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2010 2010.10 난타전용극장 개관 10 주년

2011

2011.04 홍대난타극장 개관2011.10 정동난타극장 10,000 회 공연 달성

2012

2012.01 국내외 총 관람객 700 만 관객 돌파2012.10 난타공연 15 주년2012.11 국내외 총 관람객 800 만 관객 돌파

난타가 성공하기 까지 순조로운 진행과정은 없었다. 수많은 실패와 역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난타가 탄생한 것이다. 난타를 제작한 송승환 대표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비언어극인 연극을 어떻게 만들까?” 의 생각으로 난타 제작을 시작했다. 계속 아이디어를 모으고, 정리하고를 반복하여 구체화 된 것이 <난타>이다. 이렇게 기획된 난타는 처음엔 기본 틀만 나와 있는 상태여서 뼈와 살을 붙여 나아가야만 했다. 먼저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대본이 나와 있으면 각자 맡게 될 배역을 주고 연기를 해보라고 하면 되는데, 네 명의 배우가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구성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을 기준으로 배우를 뽑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후보자들을 한 명씩 불러 ‘후보자들 마음대로’ 한 번 두들겨보라고 요구해서 오디션을 진행했다.오디션에서 배우를 뽑아놓고, 다음으로 연습실에 산더미처럼 쌓인 주방 도구를 일일이 두들겨 보며 징과 꽹과리, 북과 장구 등 4 가지 악기와 가장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들을 골랐다. 배우들은 일단 마음에 드는 주방 도구를 골라 두들기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밤 새워서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도 들어 보면 귀만 아플 뿐이지 처음에는 도무지 사물놀이 비슷한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송승환 대표는 사물놀이의 달인, 김기덕 선생에게 도움을 청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와중에 연출자와 송승환 대표는 틈나는 대로 머리를 맞대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했으며, 배우들도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네 명의 배우를 각 나라에 대표하는 요리사로 분장시켜 요리 대회를 벌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아 아이디어는 외국 요리사가 사물놀이 장단을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탈락했고, 그 밖에도 수많은 줄거리가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난타>에서 보는 것처럼, 요리사들이 정해진 시간까지 결혼식 피로연에 쓸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엮어서 스토리를 전개한다는 기본적인 골격이 잡혔다.그 외 힘들었던 점을 살펴보면, 유리잔에 물을 각기 다르게 채워놓고 젓가락으로 두들겨서 도레미파 소리를 내기 위해 고생을 했으며, 도마에 칼질을 할 때 자진모리 장단이 좋은지 굿거리 장단이 좋은지를 놓고 며칠씩 고민을 했다.한번은 송승환 대표가 극중에 수타 국수 뽑는 장면을 넣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중국집에서도 밀가루 반죽을 도마에 대고 쾅쾅 두들겨서 가느다란 면발을 뽑아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반죽을 한 번씩 칠 때마다 큰 소리가 나니까 네 명이서 박자를 잘 맞추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음악이 될 것 같았고, 더욱이 한 번씩 칠 때마다 반죽이 조금씩 국수의 형태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특히 서양의 관객들에게는 마술과도 같은 묘기로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률이 100퍼센트가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에 연극 공연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도마질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 싶으면 좀 더 빠르고 격동적인 몸놀림을 보여줄 수 없겠냐고 다그쳤다. 만족할 만큼 속도가 붙으면 이번에는 그냥 두들기지 말고 양손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몰아붙였다. 이런 사례가 수없이 되풀이되다 보니 급기야 배우들 입에서 불만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본도 없는 연극을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는 등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 사실<난타>는 보기보다 배우들의 체력 소모가 엄청난 공연이다. 한 시간 반씩 공연을 하고 나면 모든 배우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땀에 젖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소품이 특수한 장치를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주방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연습이나 공연 도중에 부상을 입을

Page 8: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위험도 아주 높다. 특히 보기만 해도 섬뜩한 식칼로 무아지경에서 도마질을 해야 하는 장면을 연습할 때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또 밤에만 연습을 해야 하는 특수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광화문의 충남방적 본사 강당을 연습실로 빌려 쓰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스태프들 사이에서 분란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의상 디자이너가 만들어온 의상을 놓고 배우들은 옷이 너무 끼어서 춤을 출 때 불편하다고 불평한다. 다시 만들어오면 이번에는 옷감이 너무 얇아서 조명이 뒤에서 비치면 속살이 다 드러나 보여서 안 된다고 한다. 또 다시 만들어오면 이번에는 땀이 잘 흡수되지 않아서 10 분만 입고 있으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다고 투덜거린다. 세트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난타> 공연 중에 무대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조명 때문에 송승환 대포는 무지하게 고생을 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역시 배우들이었다. 무대가 밝아지는 것은 좋은데 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칼을 놓칠까 봐 걱정스러우니 좀 더 부드러운 조명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조명 담당은 무슨 소리냐, 이 장면에서는 내리 꽂히듯 강렬한 조명이 무대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부드러운 조명을 쓰면 그런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고민 끝에 그럼 라이트의 위치를 앞으로 당겨서 조명이 배우들의 눈에 직접 비치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미리 설치해둔 세트에 걸리기 때문에 라이트가 그 위치까지 가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트를 조금 뒤로 밀자고 하면 이번에는 세트 디자이너가 나선다. 내가 아무 계산도 없이 되는 대로 세트를 거기다 설치를 한 게 아닌데, 그걸 뒤로 밀어버리면 무대 전체의 앵글이 어그러져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스태프들이 나서서 한 마디씩 떠들어대면 무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스태프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다 보면 제작비가 계속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엔 <난타>가 1997 년 10 월 10 일 처음으로 막을 올리기 전까지 제작과정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비가 있었지만 이 모든 갈등과 사람들 사이의 분란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체계적인 준비로 무사히 막을 올릴 수 있었다.

4. 최초 출시 때의 시장상황, 경쟁, 그리고 난타의 마케팅전략

난타는 1997 년 10 월 10 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렸다. 당시 공연계는 지나친 작가주의로 제한된 20 대 초반 여대생의 관객층형성, ‘동인제 시스템’으로 소비자의 급변하고 다양한 기호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성’을 상품화한 저질 코미디쇼는 범람하였으며, 소극장에서의 단기구조로 수익구조는 약했으며, 시장은 협소하였다. 또한 소비자들은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여가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직장 여성이 증가하였으며 브로드웨이 작품의 국내 공연을 통해 관객의 수준이 향상 되었으며 비언어극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물놀이를 이용한 비언어극인 난타는 성공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불안한 점도 컸다.관객이 연극을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인데 희곡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가 하는 점과

출연하는 배우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만족되어야 ‘본전은 뽑을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데 난타는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작품성이 이미 검증된 유명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 흥행에 손해가 되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다. 첫째, 대본이 없는 연극이라는 점이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조차 처음에는 대본도 없는 연극이 무슨 연극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니,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한 시간 반 동안 배우들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연극을 보러 올 염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사물놀이를 이용한 연극이라는 점도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데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반 관객들의 뇌리 속에는 사물놀이는 연주자들이 한복 입고 무대에 나와 악기 같지도 않은 악기를 두들기는 국악 한마당 같은 공연쯤으로 각인되어 있었다.이처럼 사물놀이를 이용한 비언어극이라는 새로움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요소가

더욱 많았지만 모두들 성공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는데 그것은 충분한 연습량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를 뽑아 연습에 돌입하고 7,8 개월 동안 모두 미친 듯이 난타에 매달렸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자신감은 연습량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다고 한 점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Page 9: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난타는 관객과 함께하는 요소가 많아 객석이 다 차있어야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고 일단 관객이 찾아온다면 입소문을 타고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초대권을 뿌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초대권을 누구에게 뿌릴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무작정 길거리로 나가 행인들 손에 무료표를 쥐어 주어도 연극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차비와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극장에 오지 않는다. 최초 출시 시 1997 년은 인터넷이 지금만큼 활성화 되지 않았지만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등 pc 통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고 각 통신사마다 분야별로 동호회가 구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연극 영화 동아리도 한두 개쯤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각 통신사의 연극 동호회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초대권을 뿌렸다. 기본적으로 연극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니 공짜 표가 생기면 그냥 썩히기 아까워서라도 극장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결과는 적중하였다. 개막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각 연극 동호회의 게시판은 난타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고 칭찬 일색이었다.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백광이 불여일홍’ 이라는 말을 하는데 ‘백번의 광고가 한번의 홍보를 따라잡지 못한다’ 는 뜻이다. 홍보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믿을 만하고 효과적인 것은 바로 소비자들의 입소문 효과이다. 또한 입소문 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한 홍보도 큰 몫을 하였다. 각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은 언제나 무언가 새롭고 참신한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대사 없는 연극’ 이라는 난타의 특징은 더없이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그리고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차별화를 시도했는데 보통 극장 출입구 앞에는 ‘휴대폰을 끄십시오’, ‘음식물 반입 금지’ 같은 경고 문구를 붙이게 마련이다. 난타 공연은 공연장 안이 워낙 시끄러우니까 휴대전화나 무선 호출기 벨 소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요리를 주제로 한 연극인 만큼 굳이 음식물 반입을 금지 할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반대로 ‘휴대폰, 삐삐 끄지 마세요’ ‘음식물 가지고 들어가셔도 됩니다.’ 라는 문구를 내 붙였다. 새로운 연극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극장 입구에서부터 참신하고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관객이 점점 모이자 2 주차로 접어들었을 때는 더 이상 초대권을 뿌릴 필요가 없어졌으며

서울 시내 전역의 예매처마다 표를 더 달라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호암아트홀 직원들은 공짜 표를 부탁하는 주변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에 바쁜 지경에 이르렀다. 초연이 미처 막을 내리기도 전에 동숭아트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예정되어 있던 작품이 펑크를

냈으니 호암아트홀 공연이 끝나면 자기네 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해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으며 앵콜 공연이 끝나니 각 지방의 제작자들이 서로 먼저 난타를 가져가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이렇게 난타의 초기 기본전략은 성공했다. 공연 시장을 세분화 했을 때 순수연극(번역극, 창작극),

뮤지컬(국내 제작, 해외 제작), 엔터테인먼트, 비언어극, 음악, 국악, 오페라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국내에서는 없던 비언어극에 진출하여 국내에서 성공을 거두고 국내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래의 목적대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또한 난타는 사람들에게 남녀노소 온 관객과 무대가 교감하면서 같이 호흡하고 즐기는 기상천외한

공연으로 인식되길 원했는데 난타 공연 내 관객의 참여와 스토리가 해냈다. 관객도 3 차에 나누어 타켓팅을 했는데 1 차 관객은 공연 마니아층으로서 20, 30 대 여대생 및 직장인, 온라인 문화 동아리 활동하는 사람들을 타켓팅을 했는데 무료 초대권과 입소문으로 실효를 거두었고 2 차 관객은 외국인 관광객과 국내 거주 외국인을 타켓팅 하였는데 그 이유는 국내에도 큰 해외 시장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관광이든 비즈니스든 어떤 이유로든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의 수가 해마다 5,600 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라고 난타를 보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외국 땅을 찾은 사람들은 무언가 추억에 남을 만한 것을 하나라도 더 보고 가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는데 밤이 되면 호텔에서 자다가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국인들이 밤 시간에 구경할 만 한 것은 대표적으로 워커힐 쇼와 남산 한국의 집인데 둘 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볼 거리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이러한 외국인 관광객을 타켓으로 삼는다면 성공할 것이라 판단 했으며 국내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난타를 알리고 협조를 부탁하였고 여행사들은 관광객을 유치해도 저녁을 먹고 나면 딱히 데리고 나갈 데가 마땅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하나라도 일정을 더 만들 수 있어 반가워 하였고 국내의 무역 회사들도 외국 바이어들을 접대하는 목적으로 난타를 이용하였다.

Page 10: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또한 이러한 노력은 일본 현지에서도 난타 티켓을 살 수 있게 만들었는데 한국의 티켓링크나 피켓파크에 해당하는 일본의 티켓피아에서 난타를 팔기 시작했다.

5. 현재 1 등 자리로 오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터닝포인트는 언제였나?

난타가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터닝포인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해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공연물이 참가하는 연극 축제 인 에딘버러 페스티벌이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은 제 2 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 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미 50 년이 훨씬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 축제는 원래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화제작을 초청하여 공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초청 작품의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보니 언젠가부터 초청작 이외의 작품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초청 작품이 공연되는 메인 페스티벌과 그 밖의 작품들이 공연되는 프린지 페스티벌로 구분되어 있다. 요즘은 오히려 프린지 페스티벌이 더 유명해져서 에딘버러 페스티벌 하면 대개 이 프린지 페스티벌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전 세계 연극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연극 축제일뿐만 아니라 새로 탄생한 신작들을 사고파는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타 팀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난타를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메인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작품은 물론 개런티를 받고 가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작품의 경우는 항공료에서 체재비, 심지어는 작품이 공연되는 극장 매표소의 아르바이트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예산을 대충 뽑아보니, 한 달 동안 에딘버러에서 극장을 빌려 난타를 공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3억 원에 달했다. 그래서 송승환 대표는 지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서 겨우 돈을 모았다. 간신히 경비를 마련해놓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브로드웨이 아시아(삼성영상사업단에

브로드웨이의 작품을 공급해준 대행사)측에서 우리에게 바로 에딘버러로 갈 것이 아니라 일단 뉴욕으로 와서 리허설을 한 번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그 사람들이 보낸 쇼 닥터와 함께 작품을 수정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자기네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이겠다는 것이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난타가 서양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니 같은 서양 사람들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작품을 점검해본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에딘버러 갈 돈도 간신히 마련했는데 뉴욕에서 2 주 동안 머물며 리허설을 하려면 만만찮은 돈이 추가로 들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미리 예약해둔 에딘버러의 싸구려 호텔을 취소하고 대신 허름한 아파트 한 채를 빌렸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한 달 동안 자취 생활을 하며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배우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미안하지만 이번 공연에는 개런티가 없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한 달 동안 에딘버러에서 무보수로 공연을 해야 한다. 그 대신 이번 공연이 성공하면 앞으로 마음껏 세계무대를 누비게 될 테니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겠다.”대표 입장에서 차마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배우들도 다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고, 불평 한마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2 주 동안 뉴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연습 외에도 이 기간 동안 2 가지 중요한 소득을 올렸는데, 하나는 작품의 영문 제목을 쿠킨으로 바꾼 것이다. 난타도 문제없지만 서양에서는 그 제목으로 전혀 의미 전달이 안 되니 뭔가 다른 제목을 찾아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소득은 이 기간 동안 영국의 유명한 연극 평론 기자를 뉴욕으로 초청하여 우리 리허설 장면을 직접 관람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브로드웨이 아시아 측의 아이디어였는데, 축제가 시작되기 직전에 우리와 관련된 기사를 주요 언론에 내보내 난타의 출품사실을 미리 알렸다는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에딘버러로 들어갔다. 가기 전에는 에딘버러라는 도시가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니 어느 정도 규모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서울의 종로구하고 비교해도 별로 크지 않을 만큼 아담하고 조그만 도시였고, 이제 이 조그만 도시에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연극 작품들과 함께 자웅을 겨룬다고 생각하니, 개막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긴장감이 더해졌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여한 단체의 수가 1,290 개였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내내 도시 전체에서 연극 작품이 공연된다. 임시 극장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축제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연극인들은 길거리고 공원이고 가리지 않고 판을 벌인다. 굳이 극장을 찾아가지 않고 길거리에만 앉아 있어도 하루 종일 얼마든지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Page 11: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일단 극장을 제대로 잡는 일이 우선과제였다. 수많은 임시 극장이 마련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연극을 전문적으로 경연하던 곳이 아니면 관객에게 좋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8 시경에 하기 때문에 밤 10 시 공연이 가장 좋은 시간대로 꼽힌다. 다행히 브로드웨이 아시아가 미리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해준 덕분에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어셈블리 홀’이라는 일급 극장, 그것도 황금 시간대인 밤 10 시에 공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극장, 좋은 시간은 확보했지만 객석이 텅 비어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전에 현지의 홍보 대행 회사와 접촉하여 여러 가지 홍보 수단을 강구해보았지만,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에는 워낙 예산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아예 에딘버러 전체를 난타 포스터로 도배를 하기로 결정했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항상 배낭에 포스터와 전단지를 넣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밥 먹으러 가면 식당에 놓고 나오기도 했다. 그 결과 축제가 시작될 무렵이 되자 금년에는 프린지에 참석하는 작품이 난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난타 포스터가 빨간색 바탕에 요리사 복장을 한 동양인 4 명이 식칼 두 자루씩을 들고 있는 장면이라 서양 사람들에게는 무척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만했다. 그렇게 난타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행운까지 따라준 덕분에 난타는 1999 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최고의 작품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포스터를 통해 난타의 존재를 알렸다면, 본격적으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각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출품작을 소개하는 프레스 프리뷰 시간이 마련된다. 물론 출품작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여기에 초대되지 못하고, 대표성이나 상징성을 갖는 몇몇 작품들만 이 행사에 초대된다. 다행히 난타는 이 페스티벌 50년 역사상 최초로 한국에서 온 작품이라는 희소성을 인정받아 이 프리뷰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스태프들이 말없이 무대 위에 도마 네 개를 비롯해 양배추와 오이, 당근 같은 채소를 수북이 쌓아 놓았다. 기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난데없이 등장한 채소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객석 뒤에서 우리 배우들이 괴성과 함께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들겨대며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바로 굿거리 장단에 맞춰 미친 듯이 도마질을 해대니, 졸고 있던 기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벌떡 일어나고 사진 기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5 분에 걸쳐 정신 없이 도마를 두들기는 동안 몇 번이나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공연이 끝나자 사진 기자들은 배우들의 동작이 너무 다이나믹해서 미처 제대로 사진을 못 찍었다며 다시 한 번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다음날 거의 모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는 기사에 사진도 한 장쯤 들어가야 되는데, 거의 모든 언론사가 난타 사진을 개제한 것이다. 이쯤 되니 난타는 프레스 프리뷰에서부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다. 사상 처음으로 난타가 외국 무대에서 100퍼센트 외국인 관객을 앞에 놓고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 관객들 가운데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극장주와 프로모터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첫 공연은 300 석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진행되었다. 공연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정말이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공연이 개막되고 1 주일 지나고, 극장 앞에는 각 공연의 입장권 판매 현황을 알리는 상황판이 붙어 있었다. 어느 작품은 몇 시 공연인데 현재 몇 자리가 남았다 하는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상황판이다. 다른 작품들은 좌석 숫자가 적혀 있는데, 난타 옆에는 큼지막한 빨간 글씨로 Sold Out 이라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난타는 연일 매진 기록을 이어 갔다. 한 주가 지나 배우와 스태프들이 서양 관객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하자 그에 걸 맞는 애드리브를 하나 둘 끼워 넣는 순발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객석의 반응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에딘버러에서의 꿈만 같은 한 달이 흘렀다. 막판이 되자 극장주가 아직 난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몇 번만 더 공연해줄 수 없겠냐고 해서 당시 출품작 가운데 유일하게 4 회에 걸쳐 연장 공연을 했다. 난타에 관심을 보이는 프로모터들이 줄줄이 나서기 시작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난타가 에딘버러 현지에서 100 만 달러의 계약고를 달성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에딘버러에서의 대성공을 계기로 한때 꿈으로만 여겨졌던 난타의 해외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었다.결론적으로 미국 디즈니, 일본측과 계약을 맺고, 곧이어 브로드웨이 입성까지 이어졌다. ‘난타 ’ 대성공의 첫발은 바로 1999 년 에딘버러였다.에빈버러에서의 마케팅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현재 상황에 맞는 마케팅을 하는 것 이었다. 많은

작품이 출전하고 그 중에서는 좀 더 유명한 작품도 있고, 저 큰 자본이 개입 된 작품도 있었다. 이에 비해 난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한국에서 온 알 수 없는 작품이었으며 예산도 부족하였다.

Page 12: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따라서 할 수 있는 방안은 그곳 현지에서 시장을 분석한 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에딘버러란 곳은 작은 곳이며 예산도 부족하기에 포스터라는 방법을 선택하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기에 강인한 인상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프레스 프리뷰에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렇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극복하고자 억지로 자본을 끌어당기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닌 현재 상황에 적절한 전략을 취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요약 할 수 있겠다.

6. 1 등으로 떠오르게 한 성공 비결 요약

<난타>의 성공에는 무엇보다 ‘국제화’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난타>의 국제화의 시작은 기획자로부터 출발한다. <난타>는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효시로 국내 공연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성공한 공연으로 평가된다. 이런 <난타>의 국제화 및 국내 흥행의 성공 요인으로 경영자 요인을 들 수 있다. <난타>의 기획자 송승환 대표는 PMC 설립 이후에 본격적으로 세계를 향한 국내 창작물의 기획을 시도한다. 국내 창작물이 해외에서 성공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가 극의 언어적 한계인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찰나 전 세계적으로 비언어극이 유행하고 있는 것을 파악 한다. 비언어극이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승환 대표는 바로 시장 조사에 착수하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STOMP>와 <Tap Dogs>, <Blue Man Group>을 관람한다. 여기서 국내 창작물이 비언어극의 형식으로 해외에 진출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후 국내의 공연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을 겨냥해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거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해외 공연들과 경쟁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서양의 작품들과 비교해 차별화 되는 한국적인 컨셉의 넌버벌 퍼포먼스를 만들기로 한다. 해외진출과 국내 시장의 흥행을 목표로 <난타>의 제작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언어극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비언어극 작품들은 리듬과 비트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인한 단조로움 때문에 쉽게 그 매력을 잃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난타는 그것을 극복하였다. 난타는 한국의 전통에 국제적 대중성의 결합으로 남녀노소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공연,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이려는노력을 통한 관객과 쌍방향 소통하며 함께 호흡하는 공연, 이 작품의 본질인 비언어적 퍼포먼스에 두드림의 언어를 결합하여 재미를 극대화 하였다. 난타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한국적인 소재의 세계화에 있다. <난타>가 세계의 작품들과 경쟁하기

위해 창작물의 희소성과 특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송승환 대표는 한국적인 정서와 소재로 작품을 개발을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대로 해외 관객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한국적인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작품의 주된 소재를 사물놀이 장단을 비롯해 한국 전통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이렇게 한국적인 요소들과 서양의 비언어극에는 없는 스토리를 넣고, 배우 캐릭터와 주방 공간을 설정하여 차별성을 갖게 된다. <난타>는 한국의 전통의 소재에 스토리를 가미하여 차별화 전략으로 국제화하며 기존의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하던 컨셉만 있는 쇼 형식의 넌버벌 퍼포먼스들과는 다른 작품의 형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한국적인 요소만 넣은 것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로 차별화를 하며 외국 사람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편성도 집어 넣었다. 난타에 결합된 각 요소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리듬은 한국적인 요소인 사물놀이를 기반으로 했고 중간에 록음악을 추가시킴으로써 보편적인 요소로핵심제품을 만들어 냈다. 소재에서도 한국의 전통혼례와 서양혼례를 결합시킴으로써, 외국 관람객들에게 결혼이라는 테마를 인식시키면서 문화적 차별성을 느끼게 하였다. 전혀 색다른 요소와 보편적인 요소의 결합이 해외에서 현지 작품들과의 차별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차별성이 현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작품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난타>는 서구적 기준에서 보편화된 연기와 연출을 기반으로 하여 관객과 소통한다. 달리 말하면 이미 동서양인들 모두에게 익숙한 보편화된 서구적 표현 방식을 전제로 하여 또한 난타의 코믹 연기 스타일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양식을 차용하여 보편적인 이해의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결합을 통해 난타는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난타가 국제화에 성공한 이유는 먼저 국내시장에서 흥행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타>

는 공연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기존의 흥행했던 작품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검증 받은

Page 13: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좋은 희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타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공연물의 소재가 한국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대중들은 ‘국악 한마당’처럼 인식하여 예매율은 저조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해결책으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PC 통신의 동호회를 대상으로 초대권을 배포하였고, 연극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구전 마케팅과 언론사의 기사 홍보로 <난타>가 흥행하기 시작하였다. 공연 시작 2 주 후에는 전석 매진이 되었고, 초연이 끝나기도 전에 동승홀에서 앵콜 공연을 하기로 계약하였다. 지방에서도 순조롭게 순항하며 초연부터 흥행하기 시작한 것이다.<난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언어의 장벽을 넘은 넌버벌 공연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기

공연이 가능한 전용관이 있었다는 것도 꼽을 수 있다. 2000 년 7 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장기 전용관을 개관하여 공연으로서 경제의 규모화를 시도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었다. 공연물이 전용관을 개관한 것은 극히 드문 일로 국내 관객이 타겟층이 되기도 하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에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을 타겟으로 설정하는 마케팅을 펼치는 치밀한 전략이 있었다.

또한 마케팅 전략을 적절히 이용했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국내 공연 때는 입소문이 빨리 나야 한다는 점과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 당시 유행하던 PC 통신, 그 중에서도 연극과 관련된 곳에 나눠준 초대권, 기존 공연 관람과 차별화 된 요소(‘휴대폰, 삐삐 끄지 마세요’ ‘음식물 가지고 들어가셔도 됩니다.’) 에딘버러 출품 때는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고민 하던 중 생각해낸 ‘포스터 도배’ 그리고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한 프레스 프리뷰 시간에 보여준 짤막한 공연 등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와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는가?’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현재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를 고민하여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마케팅 방안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난타>는 스타 배우와 배우 수, 무대장치를 간소화함으로써 획기적으로 제작 원가를 줄였으며,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해외배급사를 활용하여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공연산업 최초로 전용관을 만들어 해외 관광객들을 지속적으로 유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었으며, 해외 페스티벌 참가를 통한 해외 진출 확대와 언론매체를 활용한 적극적인 홍보 등이 난타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 결과 <난타>는 한국 공연산업의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수립하게 되는데, 국내 최초의 비언어극

기획, 제작, 국내 최초로 해외 연극 페스티벌 전석 매진, 국내 최초의 공연작품 캐릭터 개발, 국내 최초의 상설 공연장 개관, 국내 공연 중 최단기간 내에 단일작품 1,000 회 공연 돌파, 국내 공연업계 최초의 문화 벤처기업 지정, 국내 공연 중 최고 개런티로 북미 투어 확정, 국내 공연 중 외국인 최다 관람률 달성, 국내 최초로 문화 벤처기업 코스닥 상장 예정, 국내 최초의 오프브로드웨이 장기공연 등이 <난타>가 수립한 기록들이다. 이와 같이 <난타>는 여러 방면의 선도자로서 그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이러한 화제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난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정리해보면, 우선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목표로 기획되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소리와 빛을 활용한 비언어극으로 제작되었고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요리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적절한 마케팅 방안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을 <난타>는 에딘버러와 브로드웨이의 성공적인 진출, 세계 투어 쇼를 돌며 현지 취향에 부분적으로 현지 적용화를 시도한 것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7. 난타를 위한 향후 마케팅 전략방향 제안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국제화에 있어 전문 인력의 역할이 창작 공연물에 성공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연의 특성상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인력들이 배치되어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 했을 때 성공적인 국제화를 이룰 수 있다. 국제화라라고 하여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연의 국제화를 성공하려면 공연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그 예술성 안에서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예술 경영적 의식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한다.공연의 국제화 성공에는 인적 네트워크 관리와 형성이 중요한데 <난타>, <점프>, <

월드비트비나리> 등은 전문적인 인력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해외 공연 관계자와의 유대관계를 위해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해외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공연에 있어 모든 일, 즉 무대 위에 공연을 상품으로 보고 그 외적인 모든 일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인력들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Page 14: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아니다. 특히 국제화 초기 단계에 있을수록 전문 인력들의 노력여하에 다라 국제화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한국의 경우, 과거에 비해 공연산업에 대한 글로벌화가 많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성공적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글로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국내의 공연이 해외 현지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품성은 있지만 해외시장에 대한 적절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진출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현지 특성을 적절히 파악할 수 있도록 현지 파트너와의 제휴를 통한 진출이 적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해외의 시장조사와 더불어 네트워크 관리 및 형성 역시 해외진출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세계의 모든 공연 전문가들이 모이는 아트페스티벌은 외국의 메이저 배급사와 긍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국 배급사와의 연계는 단순한 유통과정의 편이를 넘어 국내 공연이 해외에서 구축하게 될 이미지는 물론 홍보 및 티켓 구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전문성 또한 공연 국제화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현지에서의 입국, 리허설 공연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시장조사, 예산 관리, 교통, 마케팅 등과 관련한 모든 사전 기획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연의 제작부터 유통, 홍보, 판매까지 총체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또 다른 방법은 현재 K-Pop 등과 같은 한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류의 강점으로는 한국 내

대중문화의 기반과 경쟁력을 들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국내 문화상품에 대한 수요의 상당부분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중문화 전반에 있어서 자본과 인력이 확충되고 있으며 기술력을 비롯한 제반 경쟁력이 더불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한국 대중문화가 내세우고 있는 것이 ‘서구 음악의 모방에 불과한 댄스 위주의 대중음악’ 또는 ‘화려하기만 하고 내용이 없는 막장 드라마’ 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서구 대중문화를 동양의 정서와 결합시킨 문화로써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한국의 대중문화의 특성은 한류의 중요한 강점 중의 하나의 것이다.한류의 약점 중 하나는 한류가 특정장르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댄스음악 중심의 대중음악과

트렌디 드라마 중심의 드라마가 한류의 대표주자가 되어 있으나 이들만을 국한해서는 한류의 확대에는 한계가 잇다. 물론 현재 한국 영화가 폭넓은 계층으로부터 사랑 받고 K-POP 이 장르를 막론하고, 사랑 받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현재 한국의 넌버벌 퍼포먼스 인바운드 시장에 있어 중국인 관객비율이 60%인 것은 보면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최근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시장을 중국으로 보고 국제화 전략을 진행하기도 한다. <점프>가 중국 보리 극장과 손을 잡고 중국투어를 마치고 연이어 <난타>도 그 뒤를 이어 중국 전국 투어를 하였다. 한류의 기회로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그 밖에 동아시아권 지역 남미지역 등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외국인들에게 언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손쉽게 한국의 정서로 어필할 수 있는 것이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선구자 <난타>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 한류의 기회를 활용하여 국제화의 과제들을 해결한다면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는 세계적으로 충분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SNS 를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발달과 더불어 SNS 이용자 수도 점점 늘어났다. 현재 스마트폰 이용자 수는 3000 만명 정도가 되며 SNS 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북 이용자 수가 1100 만 명인데 이중 90%는 스마트폰으로 접속한다고 한다. 즉 이동하면서 쉽게 SNS 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항상 하고 접하기 쉬운 SNS 를 통한 전략이 중요하다. 현재 난타도 중요성을 알고 페이스북에 난타 페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활용도가 매우 미미하다. (여기서 페이지란 개인끼리의 친구 개념이 아닌 말 그대로 페이지로써 ‘페이지 좋아요’를 누르면 업데이트 소식이 뜨며 개인보다는 단체나 기업이 홍보와 마케팅 방안으로 많이 이용 한다.) 난타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316 명 이에 비해 이벤트 페이지인 ‘레데’의 경우 좋아요 수가 509,524 명이다. (2013 년 8 월 23 일 기준) 레데 에서는 페이지를 ‘좋아요’를 누르고 상품을 추첨하는 글에 댓글을 달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데 난타는 이런 프로모션이 매우 부족하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사람을 추첨해서 난타 공연 관람권을 주는 방법, 커플을 위한 커플 할인권 등과 같은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통한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Page 15: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그림 4. ‘난타’의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

그림 5. ‘레데’의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

Page 16: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또한 그 동안 난타의 주 타켓층은 주로 직장인, 공연 마니아층 들이었다. 이제는 타켓층을 더욱 늘려서 공략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 청소년, 노인계층 등을 더욱 타켓팅 해야 할 것 이다. 어린이나 청소년 계층은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미 실행하는 학교나 단체도 있다. 난타를 이용한 프로그램은 교육적이면서도 재미가 있기 때문에 정서함양에도 뛰어나다. 지적 장애가 있거나 상처를 받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난타를 지도한다면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다문화 청소년 비중은 7 년 뒤 2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단일민족의식이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피부색과 얼굴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생겨 날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이 조장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난타를 통한 화합은 사회적 갈등 조장을 방지하고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인계층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난타를 통하여 노인 계층의 피로를 풀고 건강관리와 여가선용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난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하여 난타 공연 관람을 유도 할 수 있으며 사회적 참여로 인한

그림 6. ‘레데’의 자전거 이벤트와 좋아요 수

Page 17: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난타의 긍정적 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전문인력이 더욱 필요하기에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일자리 창출 부분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한국 넌버벌 퍼포먼스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관객과 쌍방향 소통을 하는 공연 속 장치들을

통하여 좀 더 친근한 한국의 전통과 매력을 외국인들에게 어필하여 세계 공연 시장을 타겟으로 한 꾸준한 노력으로 국제화 전략을 펼쳐나간다면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성공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각 나라별로 대표 할 수 있는 식재료, 음식을 소재로 사용하여 더욱 친근감 있게 현지화를 하며 공연 외적으로는 공연날짜와 나라별로 국경일 또는 특별한 날에 맞는 이벤트, 할인행사, 판촉 등을 통한 전략이 있을 수 있겠다.

8. 총 요약 및 결론

지금까지 난타의 시작과 성공과정과 향후 마케팅 방안 등을 살펴 보았다. 난타의 성공요인을 요약하자면 세계 시장을 타겟으로 삼고 출발하여 힘든 역경을 거치며 성공 하였고 목표 설정과 상황에 맞는 마케팅, 전통과 현대의 조화, 끊임 없는 연구 등이 성공 요인의 주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난타의 사례를 통하여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한국 전통 문화의 세계화 방향과 미시적으로 봤을 때 개인 커리어 차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먼저 전통 문화의 세계화 방안 부분이다. 난타는 한국 전통의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이것은 사물놀이를 각색하고 외국인에게 맞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무조건적으로 전통 문화를 알리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문화를 받아들이게 강요하는 행위 등은 오히려 거부감을 낳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통을 잃지 않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통해야만 발전 할 수 있다. 난타가 사물놀이를 통해 잘 보여 주었으며 최근 ‘설국열차’를 촬영한 봉준호 감독은 촬영장에서 고사를 지내는데 외국배우들이 부담스러워 할까 돼지머리를 아이패드에 들어있는 돼지 사진으로 대체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난타는 애초에 세계시장을 노렸기 때문에 모든 포커스가 해외에 맞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도 해외에 진출하려면 철저한 해외 시장조사와 포커스를 해외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개인 커리어 차원에서는 분명한 목표 설정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난타는

목표를 확고히 했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주위 환경은 저절로 극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난타는 상황과 여건에 맞는 마케팅을 하였다.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해보면 남들 하는 대로 천편일률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난타가 상황과 여건에 맞지 않는 대부분이 하는 마케팅을 택했다면 에딘버러에서의 성공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도 꿈이건, 취직이건, 결혼이건 본인의 여건과 상황,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참고 문헌 및 자료 원천

이수안, 「문화의 세계화와 ‘한류’ 문화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 비언어(non-verbal) 공연을 중심으로」, 한독사회과학논총, Vol.17 No3, 한독사회과학회, 2007

홍승진,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국제화 사례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유미애, 「한국 넌버벌 퍼포먼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연구」, 인하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송승환,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 CEO 송승환」, 북키앙, 2003

난타 공식홈페이지(한국어), http://nanta.i-pmc.co.kr/nanta/kr/intro.aspx

“페이스북 이용자 90% 스마트폰으로 접속”,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 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30816.22007204403, 김미희박성진, 「문화콘텐츠 산업의 국제화 사례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Page 18: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임재우, 「난타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 및 지도방안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조은진, 「정서 행동장애 아동을 위한 난타 프로그램 개발 및 지도 방안」, 숙명여자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1

“[톡톡튀는 生生브랜드]2. 말이 필요없는 ‘난타’.”, 경향신문, http://news.naver.com/main/ 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193409, 고영득

“효돈초 , 여름방학 이용해 난타실력 쌓고 있어요”, 시사제주, http://www.sisajeju.com/ news/articleView.html?idxno=193243, 시사제주

“난타배우며 행복한 노후 ‘활짝’.”, 충청일보, http://www.ccdailynews.com/ sub_read.html? uid=354925&section=sc6, 박병훈

“다문화 청소년 비중 7 년뒤면 20%차지, 사회통합 노력 절실”, 국제신문, http://www.kook je.co.kr/ news2011/asp/newsbody.asp?code=0700&key=20130821.22022194235, 민건태

한국무역협회 뉴욕지부 「미국 기업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마케팅 활용사례와 시사점」, 한국무역협회 학술논문, 2011

10. 붙임

10.1. 개인별 후기

‘난타‘라는 넌버벌 퍼포먼스를 접하면서 한국의 위용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K-POP,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분야가 편향된 것은 사실입니다. 난타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리고 2000 년 대 초반부터 꾸준히 세계 속으로 전파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난타를 알아야 할 것은 그 주제가 바로 한국인의 정서와 가락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 문화는 ’우리 것‘ 보다 외래문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외래문화를 자주 접하게 하다 보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꺼리게 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 보면 아이들에게 사대주의라는 개념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난타는 우리의 전통 가락과 정서를 재미있게 풀어낸 넌버벌 퍼포먼스입니다. 아직 난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난타를 고작 두들이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타는 재미와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시켜줍니다. 아직까지 난타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다수 삶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은 가격부담이 있는 난타 전용관까지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 보다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가거나 저렴하게 여가를 보낼 것입니다. 난타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대중적인 가격 설정이 필요합니다. 비싸다는 인식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대학로의 소극장처럼 접근성이 용이하게 전용관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난타는 우리의 것입니다. 한국인의 머리에서, 한국인의 몸으로, 한국인의 행동으로 난타를 만들었습니다. 난타,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입니다. – 조원 김의황

미래를 위해 열정으로 도전하는 그리고 마케팅이라는 경영 활동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대학생인 저에게 이번 제 2 회 전국 대학생 Korea 1 등 브랜드 사례개발 공모전은 금쪽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 브랜드, 인물들이 수많은 위기와 도전과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쳐 나갔는지를 다루는 주제를 통해 초반에 공모전 준비 기간 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처음 사례 선정을 위해 팀원들과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팀으로 하는 공모전이고, 저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가 공모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3 명 이서 공통적으로 흥미로워 하고, 관심 있는 주제로 선정하자고 정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례들을 생각하다가 문화 사업에 관심이 많은 저희 팀은

Page 19: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대중적이면서도 해외 시작을 성공적으로 개척에 성공한 사례는 무언인지 고민하다가 <난타>를 생각해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비언어극이며 해외시장을 개척한 난타는 초기 제작에 있어서 수많은 역경과 위기,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과 방법, 난타를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해준 터닝포인트와 그 과정,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난타 마케팅과 경영 방법을 이번 사례개발 공모전을 통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난타>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 것처럼, 이번 공모전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아 부으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조원 이승렬

처음 하는 공모전,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자신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과 같이하며 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고 팀워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난타를 통해서는 역경과 고난 없이 이루어진 성공은 없다는 것을 배웠으며 현대사회에서 부각 되는 융합, 통섭과 같은 개념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어떤 부분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모전을 통해서는 팀원들과의 팀워크를 향상시켰으며, 제 자신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에 대해 느꼈습니다. 대학 졸업자는 늘어만 가고, 취직은 힘든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마케팅 관련 직종을 하려고 합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경영학과를 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마케팅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케팅에 관심을 가진 것이 취직이라는 이유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마케팅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고 열정과 노력이 없다면 안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난타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 입니다. 우리 모두 난타처럼 세계에 진출하여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그런 인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공모전에 참가한 모든 팀원들 수고하셨습니다. – 조장 김태현

10.2. 관련 조사 자료 및 분석 자료

난타 해외 공연 현황 (난타 홈페이지 참조)

Page 20: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Page 21: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Page 22: 세계의 문을 두드린 난타 · Web view2000.11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중소기업청) 2000.11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최초 일본 수학여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