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자유롭고 더 평온해 보인다한다. 조선 후기 남부 지방의 홍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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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의 우포늪 목포 제방. 옅은 안개 그곳은 시곗바늘이 멈춘 듯했다. 바람 마저 없어 낮은 산을 휘감던 안개의 줄기가 멈춰 섰고,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과 길게 자란 풀도 미동하지 않았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런거림과 잠에서 일찍 깨어난 새들의 낮은 울음소 리만이 시간의 더딘 흐름을 알게 했다. 늪을 뒤덮은 안개는 날이 밝아가며 옅어졌다 짙어졌다를 반복하며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은 대한 풍경들을 선사하고, 그때마다 찰칵거리는 무수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처럼 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리저리 갈랐다. 새벽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정신을 말갛게 하고, 원시의 경이 신비로울 따름이다. 사위는 환하게 밝아졌지만 태양은 어디에 숨었는지 없고, 안개는 하얗게 짙어져 풍경은 더욱 몽환적이 되어갔다. 작은 나룻배를 장대로 저으며 늪을 지나는 사공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장면처럼 인상적이었다. 우포(1.28), 목포(0.53), 사지포(0.36), 쪽지벌(0.14) 4개의 늪으로 이뤄진 여의도와 맞먹 크기의 우포는 원시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화왕산에서 흘러내린 토평천은 지반이 이곳에 흘러들어왔다가 낙동강으로 빠져나간다.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면 물은 토평천을 역류한다. 그리고 우포에 들어차 있다가 가물 때면 주변으로 공급된다. 홍수와 가뭄을 조절해주 고마운 존재이다. 우포에서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물이 고여 있지 않고 아주 느리게 움직 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침해와 간섭을 받지 않은 그곳은 다양한 생명체를 품에 안고 있다. 가시연꽃을 비롯해 노랑어리연꽃, 마름, 매자기 등의 식물과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각종 새들과 물고기, 포유류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살아 있는 늪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의 새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자유롭고, 평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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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의 우포늪 목포 제방. 옅은 안개 낀 그곳은 시곗바늘이 멈춘 듯했다. 바람마저 없어 낮은 산을 휘감던 안개의 줄기가 멈춰 섰고,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과 길게 자란 풀도미동하지 않았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런거림과 잠에서 일찍 깨어난 새들의 낮은 울음소리만이 시간의 더딘 흐름을 알게 했다.

    늪을 뒤덮은 안개는 날이 밝아가며 옅어졌다 짙어졌다를 반복하며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은 거대한 풍경들을 선사하고, 그때마다 ‘찰칵’거리는 무수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처럼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리저리 갈랐다. 새벽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정신을 말갛게 하고, 원시의 풍경이 신비로울 따름이다.

    사위는 환하게 밝아졌지만 태양은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고, 안개는 하얗게 짙어져 풍경은 더욱몽환적이 되어갔다. 작은 나룻배를 장대로 저으며 늪을 지나는 사공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장면처럼 인상적이었다.

    우포(1.28㎢), 목포(0.53㎢), 사지포(0.36㎢), 쪽지벌(0.14㎢) 등 4개의 늪으로 이뤄진 여의도와 맞먹는 크기의 우포는 원시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화왕산에서 흘러내린 토평천은 지반이 낮은 이곳에 흘러들어왔다가 낙동강으로 빠져나간다.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면 물은 토평천을 따라 역류한다. 그리고 우포에 들어차 있다가 가물 때면 주변으로 공급된다. 홍수와 가뭄을 조절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우포에서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물이 고여 있지 않고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침해와 간섭을 받지 않은 그곳은 다양한 생명체를 품에 안고 있다. 가시연꽃을 비롯해노랑어리연꽃, 마름, 매자기 등의 식물과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각종 새들과 물고기,포유류 등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살아 있는 늪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의 새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자유롭고, 더 평온해 보인다.

    http://www.yonhapnews.co.kr/

  • 자리를 우포 북쪽의 소목으로 옮겼다. 목포 제방에서보다 더 짙은 안개 속에서 더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안개 속에서 늪의 가장자리에 뿌리를 박은 기괴한 모습의 왕버들과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갈대숲이 자리한 늪은 꿈속 같다. 늪에 빠져 움직임을 멈춘 작은 나룻배에 오르면수천만 년 전 전설의 시간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안개는 더 이상 맥을 못 추고, 드디어 스멀스멀 비치는 햇살에 늪이 조금씩 속살을 드러냈다. 하얀 깃털이 눈부신 왜가리가 기다란 다리를 늪에 살짝 담그며 성큼성큼 거닐고, 물닭과 흰뺨검둥오리들은 수면에 떠다니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햇살을 받은 수면은 유리알처럼 빛나고, 주변의 풀과 나무들은 싱그러웠다. 아침의 늪은 평온하고 원시적이었다.

    한낮이 되자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람사르 총회를 앞두고 이곳에는 연일 수천 명이 찾아오고 있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우포늪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자전거에 올라 이곳저곳을둘러보기도 한다. 띄엄띄엄 놓인 의자에 앉거나 곳곳의 관찰대에 들러 늪을 바라보기도 한다. 아무곳에나 머물러 바라만 봐도 좋은 풍경이다.

    대대 제방에서 내려다본 우포는 광활했다. 낮은 산들이 에워싼 늪은 초록빛 수초들과 푸른색 하늘을 담은 수면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늪에 점점이 뜬 새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거

    나 물놀이를 즐기며 늪의 고요한 풍경에 생기를 주었다. 길 양쪽으로 갈대가 늘어선 대대 제방을따라 사지포까지 다녀와도 좋을 듯싶다. 우포는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산 뒤로 태양이 모습을 감추자 붉은 하늘로 덮인 늪은 초록빛과 붉은빛에 휘감겼다. 한때의 기러기들이 잠자리를 찾아 휘돌고, 청둥오리들도 쪽지벌을 향해 날아가며 하늘을 수놓는다. 불규칙하면서도 질서 있는 새들의 군무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칠흑같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어둠이 성큼 내려앉은 우포늪 위로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정갈한 별과 새색시 눈웃음 같은 달이 떠올랐다. 새들이 물방울을 튕기며 뒤척이는 소리와 풀벌레 울음이 적막한 우포늪에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이사이 우포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우포늪을 바라보면 잡념도 번뇌도 사라지고, 마음도 깨끗해진다”며 “우포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던 우포늪 지킴이 주영학(60) 씨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 억새 춤을 보기 위해 화왕산으로 향했다. 옥천 매표소를 지나 시멘트로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서는가을의 정취를 찾아온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경사가 완만하기때문인지 억새에 대한 기호 때문인지 몰라도 등산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듯했다.

    정상 부근에 초가집이 몇 채 들어서 있는 드라마 ‘허준’ 촬영지를 지나자 진초록의 풍경이 사라지고, 멀리 정상을 포근하게 감싼 화왕산성 너머로 은빛 물결이 출렁였다. 포장된 길이 끝나고 포근한 흙길을 밟으며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흙길과 바싹 마른 나무와 풀에서는구수한 가을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화왕산성 동문을 들어서자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경사진 너른 분지에 하얀 억새가 솜이불처럼덮였다. 보는 위치에 따라 억새는 은빛에서 황토색으로 각기 다른 빛으로 시야를 부시게 했다. 황홀한 억새의 춤은 자신의 색깔이 아니라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산성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이내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의 미로가 이어졌다. 정상까지 좁고 구불거리는 등산로에는은빛 억새와 파란 하늘만이 존재했다.

    은빛 물결에 도취해 정상의 바위에 서자 찬란한 억새의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그 눈부신 물결에 몸을 던지면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받아줄 것도 같았다. 바위에 올라선 등산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위 뒤쪽으로는 화왕산의 완만한 줄기와 소박한 창녕이 펼쳐졌다.

    정상에서 반대쪽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은빛 억새 춤에 취해 사랑의 밀어라도 속삭이는 모양이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공간에는 사각형의 못이 자리하고 있다. ‘창녕 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 잉태된 곳으로 태어났을 때 그의 겨드랑이 밑에는 ‘조(曺)’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화왕산성 동문 앞쪽에는 창녕 조씨의 이름 유래를 설명해놓은 ‘창녕조씨덕성비’가 세워져 있다.

    동문을 나서며 억새 바다를 뒤돌아보자 억새들이 수많은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쓸쓸하면서도찬란한 가을이 온전히 전해졌다.

    창녕읍과 우포늪의 북쪽을 연결하는 1080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가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기와집을 만나게 된다. 지붕들이 앞뒤와 좌우로 첩첩이 이어진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기와집이 즐비한 마을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 상당히 부유해 보이는 이곳은 ‘성씨 고가’라 불린다. ‘고가(古家)’라고 하지만 성씨 가문이 창녕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1850년이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이 소실돼 최근에 복원됐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아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집 자체보다는 다른 데 이유가 있다. 성씨 가문은현재 창녕의 특산품인 양파를 전파했다. 1909년 성낙안이 처음으로 양파 종자를 들여왔고, 아들인성재경은 한국전쟁 이후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배법을 전파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사비를 털어 ‘지양강습소’라는 학교를 세워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될 때까지인재를 양성했고,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1963년에는 농민 계몽과 농업 기술 보급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적선지가(積善之家)였던 것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였던 성혜림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를 따라 월북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사실도

    흥미롭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기와를 올린 돌담 안쪽으로 정갈한 한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씨 고가에서는 전통 한옥과 근대 한옥의 특징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복원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전통 한옥 내부에 화장실이 있고, 어떤 건물의 경우 대청마루와 안마당 사이에 유리 창문이 있기도 하다.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리며 둘러보면 더욱 흥미로운 장소이다.

    ◀창녕박물관창녕박물관교동과 송현동, 영산, 계성에 걸쳐 산재하는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교동고분군과 함께 있는 창녕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장마면 유리에서 발견된 고인돌을 비롯해 청동기 시대에 사냥과 농경에 사용한 돌화살촉, 돌도끼가 전시되어 있고, 고분 축조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디오라마가 마련돼 있다. 가야고분의 형태 중 하나인 횡구식석실분의 내부를 모형화해 출토 유물을 전시한공간을 지나 제2전시실에 들어서면 출토 유물들이 무기류와 마구류, 생활도구류, 토기류, 장신구등으로 분류, 전시되어 있다.

    한편 박물관 바깥에는 출토 유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계성지구의 2-1호분을 이전해 복원해 놓았다. 유리돔 형태의 복원관에서는 무덤의 구조와 내부 모습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창녕읍에서 화왕산군립공원 자하곡 매표소 방향으로 진행하다 밀양으로 향하는 24번 도로에 접어들면 부드럽고 완만한 모습이 제주도의 오름을 닮은 무덤군을 만나게 된다. 이곳 교동고분군은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창녕이 옛날 6가야 중 하나인 비화가야(非火伽耶)의 중심으로 발전했던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고분들은 비화가야 왕들의 묘로 도로 양쪽으로 서쪽에 70여 기, 동쪽에 80여 기가 있고, 다시 남쪽의 송현동에 16기가 있다. 그러나 서쪽 언덕의 평탄면에 자리한 10여 기와 동쪽 언덕 경사면을 따라 들어선 10여 기만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고분들은 부드럽고 미려한 곡선이다. 대부분이 키를 훌쩍 넘지만 대형 고분 옆에 조그맣게 들어선 무덤들도 있다. 일부 무덤들은 봉토 언저리에 호석을

    두르기도 했다. 무덤들의 서로 다른 특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덤의 부장품은 1918~19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일부

  • 무덤의 부장품은 1918~19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당시 10여 기 정도를 발굴했는데 출토 유물은 마차 20대, 화차 2량에 싣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왕들이 깊은 잠에 빠진 무덤들을 지나 동쪽 경사면의 끝에 이르자 동서에 자리한 고분들이 한눈에펼쳐진다. 마치 고령의 대가야고분의 축소판처럼 그 모양새가 쏙 빼닮았다. 올록볼록 줄지어선 고분들 너머로 가을빛으로 물든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비화는 ‘빛이 좋은 들’이란 뜻을 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을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교동고분군에서는 환한 빛에 감싸인 넓은 들판을 볼 수 있다.

    Information

    ◇ 둘러볼둘러볼 곳곳

    창녕창녕 신라신라 진흥왕진흥왕 척경비척경비(拓境碑拓境碑, 국보국보 제제33호호) 비화가야(지금의 창녕)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며 민심을 살핀 후 세운 비이다. 목마산성기슭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에 모신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둘러놓았다.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일컫고 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 어려우나 빛벌가야를 점령해 영토를 확장한 사실, 왕의 통치

    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을 것으로 보이며, 당시 왕을 수행했던 신하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어 지방 행정 조직, 신분제 및 사회 조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진흥왕 22년(561)이다. 만옥정 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창녕창녕 석빙고석빙고(보물보물 제제 310호호)조선 후기인 영조 18년(1742)에 조성된 얼음 창고로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형태가 같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해 두기 위해돌을 쌓아 만든 창고로,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진다. 입구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 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 올린 4개의 무지개 모양띠를 중간 중간에 두었다. 각 띠 사이는 긴 돌을 가로

    로 걸쳐놓아 천장을 마무리하였다.

    창녕창녕 술정리술정리 동삼층석탑동삼층석탑(국보국보 제제34호호)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이 불국사의 석가탑에 버금간다. 2층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 의 석가탑에 버금간다. 2층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에도 몸돌의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간 모습이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때 3층 몸돌에서 뚜껑 달린 청동잔형 사리 용기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산토끼산토끼 노래비노래비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라는 노랫말로 유명한 한국 동요의 대명사 ‘산토끼’는 이방면 이방초등학교에서 태어났다. 이 동요는 1928년당시 이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일래 선생이 작사·작곡한 것으로 현재 교정에는 산토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흰색 토끼를 형상화한 2m 남짓의 노래비 앞면에는 노랫말이, 뒷면에는 작사 의미와 건립 배경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창녕창녕 술정리술정리 하씨하씨 초가초가(중요민속자료중요민속자료 제제10호호)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로 구성된 옛집으로, 안채는현재 소유자 하병수 씨의 17대 조상이 마을에 들어와 세종 7년(1425)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안채는 중부 이남에서 일반적인 형태인 앞면 4칸, 옆면 1칸의 홑집으로 작은방, 대청, 큰방, 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일조량과 강우량을 고려해 처마와 억새를 엮어 얹은 초가지붕이 가장 특징적인건물로 남부 지방의 일반 가옥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산만년교영산만년교(靈山萬年橋靈山萬年橋, 보물보물 제제564호호) 실개천을 건널 수 있도록 반원형으로 조성한 길이 13.5m,폭 3m의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린다.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 돌로 사용하고, 그 위에 잘 다듬은 화강암 석재를 쌓아 홍예(紅霓)를 이룬다. 다시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얇게 흙을 깔았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으로, 잦은 홍수에도 전혀 피해가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한다. 조선 후기 남부 지방의 홍예 다리 구축기술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부곡온천부곡온천 땅의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73년에 발견됐다. 최고 78℃의온천수가 매일 6천t씩 용출되는 유황온천으로 규소, 염소 등 20여 종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어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위장병, 부인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녕에서 숙박업소가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따스한 온천욕 체험과 숙박을 함께 할 수 있다.

    박진전쟁기념관박진전쟁기념관 기념관이 있는 남지읍 월하리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방어한 낙동강 전선으로 북한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권총과 기관총을 비롯해 정찰 장비, 침투장비, 화폐, 증명 문건, 의약품, 일용품, 탱크 등이 전시되어 있다.관람관람 시간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월 1일, 설날 및 추석 연휴, 매주 월요일, 휴일 다음날 휴관) 관람료관람료어른 600원/어린이 300원 문의문의 055-530-2258

    화왕산화왕산 산행산행 화왕산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고 평탄해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창녕읍과 가까운 자하곡매표소나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옥천리의 옥천매표소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다. 대부분 3~5시간이면산행을 끝마칠 수 있으며, 창녕읍에서 출발해 화왕산과 영취산 고나리재, 종암산을 지나 부곡온천에 이르는 10~12시간 코스도 있다.▶1코스코스 자하곡 매표소- 화왕산성-억새 평원-용지-산성 동문-관룡산-관룡사(용선대)-옥천(3~4시간)▶2코스코스 옥천 매표소-원통골-노단이-병풍바위-화왕

    산-배바위-자하곡 매표소(4~5시간)▶3코스코스 옥천 매표소-관룡사(용선대)-병풍바위-화왕산-자하곡 매표소 또는 고암산림욕장(3~4시간)

    우포늪우포늪 생태관생태관 우포늪 입구에 들어선 건물로 조류, 어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등 각종 습지 동물과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전시하고 있다. 생태환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포늪의 이해, 우포늪의 사계, 살아 있는 우포늪, 우포늪의 가족들, 생태환경의 이해 등의전시실로 구성되어 있고, 각 전시실에서는 입체 모형과 영상 등을 통해 습지 생태를 설명하고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생태관 안내를 요청하면 자세한 설명을들으며 관람할 수 있으며, 단체의 경우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관람관람 시간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관람료 어른 2천 원/어린이 1천 원 문의문의 055-530-2690, www.upo.or.kr

    ◇ 축제축제

  • 관광관광 안내안내관광안내센터 080-530-9090 우포늪 환경위생과 055-530-2531~4화왕산 도시산림과 055-530-2478~81 창녕박물관 055-530-2246~7

    화왕산화왕산 갈대제갈대제매년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억새 융단이 깔린 화왕산 정상에서 열리는축제로 산신제, 의병 추모제, 통일기원 횃불행진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화왕산 갈대제 날짜를 기점으로 화왕산 억새는 화려한 모습을드러내기 시작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화왕산화왕산 억새억새 태우기태우기정월대보름 화왕산 정상에서 상원제 및 달집놀이, 억새 태우기, 연날리기 등을 통해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액을 물리치고 화목을 기원하기 위해 개최하고 있는행사이다. 화왕산은 예부터 ‘불의뫼’라고 해서 이곳에서 불이 나야

    풍년이 깃들고 평안하다는 전설에따라 1995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3년을 주기로 열리며, 다음 억새 태우기는 2009년에 참가할 수 있다. 부곡온천축제부곡온천축제관광객 유치를 위해 1994년부터 시작된 축제로 매년 9월에 개최하고있다. 온정제, 산신제, 온천수 취수,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 전국 궁도대회, 온천수에 삶은 계란 먹기 대회, 전국 각설이타령 경연대회 등의 행사가 마련된다. 3·1 민속문화제민속문화제경남 최초로 3·1독립운동이 시작된영산 지방의 항일 애국 선열들의호국충절과 민족혼을 후손에게 고취시키기 위해 1961년부터 매년 3월 1일 전후로 영산면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행사이다. 전통 민속놀이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와 제26호 영산 줄다리기 등의 민속 행사를 볼 수 있으며,시조경창 대회, 짚공 차기 등의 부대행사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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