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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권 통권 제60호 | 2011년 여름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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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권

통권 제60호 | 2011년 여름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Page 2: 통권 제60호 2011년 여름 생명과 인권 - NKHRkor.nkhumanrights.or.kr/myhope/n_r_reports/20180705140733.pdf36 자료 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66

차례

04 연설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 수여식에서의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설

09 특별기고 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란달 바란-청, 크리스토퍼 김, 잭 김

19 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김혜숙

34 자료 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의 발언

36 자료 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66 자료 국제앰네스티 2011년 연례보고서: 북한편

「생명과 인권」은 한국어판·영어판이 동시에 간행됩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 대한민국 서울에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이며,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고, 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과 민족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상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을 전개한다.

● 북한의 인권상황, 특히 정치범수용소 실태 자료수집 및 국내외 홍보

● 북한의 인권상황, 특히 정치범의 강제노동실태를 국제기구에 고발, 제소

● 재외 탈북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사업

● 청소년 교육에 중점을 둔 국내거주 탈북자 지원

● 상기사업을 위한 각국 인권단체와의 긴밀한 협조

발 행 처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발 행 일 2011년 6월 25일

디 자 인 조의환, 오숙이

주 소 120-020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미근동 186 계명빌딩 3층

전 화 02-723-1672, 2671

팩 스 02-723-1671

[email protected]

http://www.nkhuman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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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에 비정부,

비종교, 비영리 단체로

설립되었고, 가장 기본

적인 권리조차 박탈

당한 2천만 명 이상의

북한주민들의 고통

스러운 처지에 대해

국제적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은

2011년 3월 10일 오전,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의

외교통상부에서 ‘제1회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

수호자상’을 받았다.

5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 수여식에서의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설

본 상은 캐나다의 제13대 총리를 기려 “존 디펜베이커 상”으로 명명되었

습니다.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 前 총리께서는 1940년 야당의원

으로 선출되시어 문화적·인종적 출신배경이 다른 모든 캐나다인을 정계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캠페인에 나서셨습니다.

총리로서의 6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디펜베이커 총리께서 이끄셨던 정부

는 그가 “정부측의 자의적 권력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부르

셨고, 자신의 일생의 목표였던 캐나다 권리장전 제정을 이루어내셨습니다.

그 분께서 이끄셨던 정부는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완전한 투표권을 부여

하기도 했습니다.

디펜베이커 총리는 캐나다 역사상 최초로 여성과 우크라이나-캐나다인

을 각료로 임명하셨고, 처음으로 캐나다 원주민을 상원의원으로 지명하셨습

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많은 신생 영연방국가들의 독립을 지지함으로써

인권을 국제적으로 옹호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

책)에 반대함으로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연방 탈퇴에 기여하셨습니다.

1960년 7월 1일, 디펜베이커 총리는 의회에 캐나다 권리장전을 도입하면

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두려움 없이 말할 자유, 저의 방식으로 신을 섬길 자유, 옳다고 생

각하는 것을 지지할 자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할 자유, 또는 이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할 자유가 있는 캐나다인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유라

는 유산을 저 자신과 인류를 위해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국내외 모두에서의 노력을 통해 존 디펜베이커 총리께서는 인권을 지키

고 보호하며 증진함에 있어서 모범적 지도력을 보여주셨고, 이 새로운 상을

그 분의 이름을 따서 제정한 것은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두 수상자이신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파키스탄 인권운동가인 아스

마 자한기르(Asma Jahangir) 씨는 자유와 인권 증진을 위해 대단한 헌신을

해오셨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에 비정부, 비종교, 비영리 단체로 설립되었

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한 2천만 명 이상의 북한주민들의 고통스

러운 처지에 대해 국제적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

제1회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 시상식을 개최하기에 앞서, 지난

주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된 故 샤바즈 바티(Shahbaz Bhatti) 파키스탄

소수민족부 장관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故 바티 장관은 2008년 파키스탄 소수민족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불과 4

주전, 바로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의 “억압받고, 탄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또 종교적 소수자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장관직을 수락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러한 문제들을 용기 있게 언급했던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故 바티 장관을 추모하는 뜻에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묵념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착석해주십시오.

오늘 우리는 제1회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을 수여합니다.

캐나다는 오랫동안 전세계에 걸쳐 인권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어 왔고, 캐

나다 외교통상부가 수여하는 이 상은 인권과 자유를 수호함에 있어서 이례

적인 용기와 지도력을 보여준 개인과 그룹을 기리고자 하는 우리의 결의의

소산입니다.

연설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 수여식*

에서의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설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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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펜베이커

총리께서는 “내 몸에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 누구도

내가 자유를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 대법원 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현재 대법원 변호사협회로 하여금 파키스탄 내에서 법치

주의와 인권이 수호되도록 하는 활동에 전념하느라 오늘 이 자리에 직접 참

석하실 수 없었습니다.

자한기르 씨는 강간 피해 여성의 증언을 평가절하하는 법률뿐만 아니라

신성모독법과 강간 피해자들을 처벌하는 법률에 대한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일을 도와 오셨습니다. 그녀는 또한 아동노동과 사형제도를 적극적으로 반

대해 오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테지만, 펀자브(Punjab) 주지사였던 살만 타시르(Salmaan

Taseer) 씨가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지난

1월 비극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그 어떤 민주주의에서도 폭력을 통해서건 협박을 통해서건, 언론의 자유

와 평화적 대화를 위한 공간을 박탈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용납될 수 없습니

다. 적대감과 폭력을 유발하는 종교적 증오심에 대한 선동을 금지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존 디펜베이커 총리께서는 “내 몸에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

누구도 내가 자유를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티 장관과 타시르 주지사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에 대하여 용감하게 반대

하는 입장을 천명했고, 결국 목숨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용기 있는 인사들을 비겁하게 공격한 것에 대해 경악합니다.

우리는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서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종교적

소수자들을 지나치게 겨냥하고 있는 신성모독법을 폐지할 것을 계속 요구합

니다.

자한기르 씨와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우리의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마땅

히 받을 만하며, 인권의 증진과 보호에 크나큰 공헌을 해온 이들의 노고를 캐

나다 정부를 대표하여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도 영광스

러운 일입니다.

수상자들이 보여준 비전과 용기는 이들이 속한 사회와 전 세계에 영감을

주고 빛과 희망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7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수호자상 수여식에서의 로렌스 캐넌 캐나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설

이러한 공로들이 인정

되어 윤 목사께서는

작년 12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국민훈장 모란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의적 구금, 공개 처형, 고문, 노동수용소의 존

재, 집단적 처벌의 적용, 피난처를 찾다가 송환된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처

우, 정치범들에 대한 무기한 구속 실태에 대해서는 수많은 보고들이 있어 왔

습니다. 기본적인 자유마저 없다는 것은 개탄스럽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작년에 토론토에서 제10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

제회의를 개최했고, 당시 동 회의에서는 디팩 오브라이(Deepak Obhrai) 외

교(외교부) 정무차관이 캐나다 정부를 대표하여 연설했습니다.

오늘 이곳에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창립자이자 이사장이신 윤현(Benjamin

H. Yoon) 목사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거의 40년 전, 윤 목사께서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설립하셨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젊은 인권운동가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지역 내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시아인권센터를 발족하셨습니다.

이러한 공로들이 인정되어 윤 목사께서는 작년 12월 한국 정부로부터 받

은 국민훈장 모란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캐나다 국민들을 대표하여 캐나다 정부는 북한인권운동을 한결같이 지

지하고 있으며, 유엔과 인권이사회에서 동 사안에 대한 국제적 행동을 지지

하기 위한 모든 기회를 활용해오고 있습니다.

억압적 정권 하에서 지속적인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일반 북한주민

들의 처지는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캐나다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을 비롯한 여러 인권옹호자들과 연대하고 있

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수상자인 아스마 자한기르(Asma Jahangir) 씨는 인권운

동의 역사를 가진,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활발한 가문에서 태어나, 조국인 파

키스탄에서 특히 종교적 소수자들과 아동들의 인권뿐만 아니라 여성권 등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신상의 큰 위험까지 무릅쓰며 활약해 오셨습니다.

자한기르 씨는 파키스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무총장직을 역임한 바

있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비사법적 처형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셨습니다.

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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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이스의 역사

모든 조직들이 처음에는 변변치 않게 활동을 시작한다. 한보이스의 역사도 그

와 다르지 않다. 한보이스가 공식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가진 것

은 2007년 4월에 이르러서였지만, 단체의 기초는 2006년 말에 다져져 있었다.

당시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던 한보이스의 창립자

들 가운데 두 명인 실비아 서(Sylvia Seo)와 잭 김(Jack Kim)이 탈북난민들이

처한 위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탈북난

민들의 처지에 동정심을 느낀 두 사람은 또 다른 오스구드홀 법학전문대학원

(Osgood Hall Law School)의 동문인 사이먼 박(Simon Park)을 만나 자신들이

알게 된 것들을 나누었다.

2006년 가을 당시, 캐나다 내에는 탈북난민 및 인권문제에 매진하는 단

체가 전무하였다. 따라서 한보이스의 세 명의 창립자들은 다양한 전문직 배

경을 가진 이들을 이사진으로 끌어 모았고, 자신들만의 단체를 운영하기 시

작하기로 하였다. 필수적인 활동비전은 캐나다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풀뿌

리 인권옹호활동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전의 가능

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오스구드홀 법학전문대학원과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

9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번역:

명재연, 이영환, 하경은

우리는 모든 캐나다인이 진실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에 투영된 이 분

들의 노고에 감동하였고, 캐나다 국민 모두를 대표하여 오늘 이 상을 수여

합니다.

감사합니다.

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특별기고

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만들기

란달바란-청, 한보이스 전무이사

크리스토퍼 김, 한보이스 이사

잭 김, 한보이스 특별고문 및 前 전무이사

잭 김

한보이스 특별고문 및

前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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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한보이스는

(사)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토론토에서 제10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주최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이 회의는 큰

관심을 끌어 4일간의

프로그램에 1,500명

이상이 참석하였다.

들의 곤경을 해결하고 북한 내의 분명한 인권위기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도록 고무하고자 해왔다.

정치적 애드보커시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한보이스는 캐나다 정부의 대

북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캐나다인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

기 시작하였다. 한보이스는 캐나다 외교통상부 관료들뿐만 아니라 시민권

및 이민부 장관,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도 관련된 상의를 해왔다. 최근인

2010년 11월에는 한보이스의 로비활동그룹이 오타와로 가서 배리 데볼린

(Barry Devolin) 의원(보수당), 어윈 코틀러(Irwin Cotler) 의원(자유당)을 포

함한 몇몇 연방하원의원들과 연아 마틴(Yonah Martin), 낸시 루스(Nancy

Ruth), 살마 아탈라잔(Salma Ataullahjan) 등 세 명의 상원의원을 만났다.

한보이스가 M-369 결의안(탈북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결의안)을 하

원에 상정하기 위해 배리 데볼린 연방하원의원과 긴밀히 공조해오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최근 연방선거가 열리면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은

일시적으로 연기되었지만, 선거를 통해 새롭게 다수당으로 집권한 보수당

정부가 동 결의안을 재상정하고 있다.

한보이스는 캐나다 대중들 사이에 하나의 풀뿌리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활발히 뛰어왔다. 한보이스는 이 운동에 대한 핵심적 지지그룹을 구축하고,

우리의 관심사가 범국민적 의식 가운데 자리잡기 시작할 수 있도록 다큐멘

터리 필름 상영, 연속 강연회, 예술품 전시회, 콘서트를 포함하는 다양한 인

식증진 행사들을 열어왔다. 이러한 캠페인 활동의 일부로서 한보이스는 미

주한국일보, 미주중앙일보와 같은 한인언론들과 중국계캐나다신문인 싱타

오신문(The Sing Tao) 뿐 아니라 내셔널포스트(The National Post), 토론토

스타(The Toromto Star), CBC라디오(CBS Radio), 토론토선(The Toronto

Sun) 등 다양한 언론매체들에 소개되어 왔다.

2010년 8월, 한보이스는 (사)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토론토에서 제10

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주최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이 회의는 큰 관심을 끌어 4일간의 프로그램에 1,500

명 이상이 참석하였다. 행사는 캐나다에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인 던다스 광

장에서 개시되었다. 둘째 날 행사는 지방 및 전국 규모의 언론매체들을 위해

탈북난민들을 조명하는 기자회견과 뒤이은 영화시사회로 구성되었다. 본회

11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2007년 4월 행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민권 및 이민부 장관

예정자와 재무원

실장 등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지지해주었다.

서 각각 ‘시험적인’이벤트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테스트를 마침으로써 이사

들은 공식적 활동개시 계획을 진전시켰다.

2007년 4월 행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민권 및 이민부 장관 예정자와

재무원 실장 등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그 시점

에서 중대한 소식 하나가 알려졌는데, 한보이스의 이사들 대부분이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토론토로 날아든 것이었다. 토

론토의 한인 이민 정착에 관계되어 있던 한 인사가 난민지위를 받기 원하는

탈북자들이 토론토에 도착하기 시작하였음을 한보이스 이사들에게 알려왔다.

그 소식을 접한 이사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

을 하고자 재빨리 움직였다. 이 새로운 단체는 통역이건, 후원모임이건, 한 발

더 나아가는 애드보커시 활동이건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하였다. 한보이스

의 이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구세군, 캐나다한인여성회, 난민쉼터, 토론토 내

교회 등 탈북난민들의 정착과정을 도울 수 있을만한 단체들을 찾아 나섰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타 단체들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한보이스 이사들

은 위에서 언급한 단체들이 토론토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필요한 여

건을 훨씬 잘 갖추고 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에 견주어볼 때 한보이스의

강점은 법률·회계·사업·재무 등에 전문적 경력을 갖고 있고 영어를 구사

할 수 있는 자원봉사단에 있었다.

그처럼 한보이스의 이사들은 탈북난민들의 정착을 돕는 활동을 줄이고

더 많은 자원을 애드보커시 활동에 투입하기로 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설정된 목표는 간단명료하게 탈북난민들이 처한 상황과 북한 내 인권위기상

황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를 캐나다인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을 충분

히 높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한보이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보이스는 캐나다 대중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애드보커시 활동을 정치적 차원과 풀뿌리운동 차원 모

두에서 펼쳐왔다. 한보이스는 정책결정자들과 대중 모두로 하여금 탈북난민

1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크리스토퍼 김 한보이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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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명은 대중의

인식을 증진하고,

우리의 관심사안들을

정치인, 정책입안자,

관료들에게 알리며,

도처의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 등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있도록 돕는 것 등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보이스는 대중의

폭넓은 지지가 필요한 풀뿌리운동이다. 이러한 대중적 지지는 지역 정치인

들에 대한 정치적 상관성의 창출, 우리의 활동을 돕기 위한 후원금 형태의 지

지, 우리의 노력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기반으

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우리가 당면한 과제들이 많은 시기에 이러한 모든 것

들을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이 힘든 일이기에, 최근 한보이스의 이사진은 전

략적 재검토와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이것이 한보이스의 창립 이래

가장 중요한 변화에 해당된다.

한보이스의 성원들은 우리가 매우 중요한 기회로 예견하고 있는 북한인

권운동의 미래에 한보이스가 부응할 수 있고, 그 방안들을 조사하고 있다.

● 한인사회를 넘어서는 운동의 확대

● 탈북난민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

● 단순히 드러나는 증상이 아닌 원인에 대한 처방

● 캐나다 정부의 지지 확보

● 북한인권단체들 간의 화합과 협력

한인사회를 넘어서는 운동의 확대

현재 상태로는 한인사회가 한보이스의 핵심적 지지층이다. 한인사회는 우리

의 가장 중요한 기금후원 원천이 되어왔고, 대부분의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속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10만명에 가까울 정도로 캐나다 내에서 가장 큰 한

인사회가 토론토를 고향으로 부를 정도이지만, 전국적 차원의 운동으로 나

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그저 이 정도의 인구만으로 창출될 수는 없다. 오타와

의 연방의회 의원들로 하여금 정치적 상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평범

한 캐나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소를 확대하면서 이 문제를 전국적 이슈

로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주민들과 탈북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인권 위기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므로, 대규모의 사람들이 이

러한 문제들을 우리의 문제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공감의 부족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노출(접해볼 기회)의 부족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13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캐나다 전국일간지들과

국제 TV방송, 다양한

온라인 보도들을 포함

하여 전국적·국제적

언론매체들이

주목하였다.

의는 셋째 날에 열렸는데, 국내외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과 정책입안자, NGO

대표들이 발표하고 저마다의 탁견을 제시하는 등의 시간을 가졌다. 국제회

의는 비공개 라운드테이블 형식으로 열린 정책회의로 마무리되었는데, 여기

에는 주요 외빈들과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변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논

의하기 위해 모두 참석하였다. 특히, 동 회의는 한보이스와 북한인권시민연

합의 공동노력을 통해 일반에 완전히 무료로 개최되었고,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 회의는 한보이스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고, 여느 기준으

로 보더라도 성공적이었다. 캐나다 전국일간지들과 국제 TV방송, 다양한 온

라인 보도들을 포함하여 전국적·국제적 언론매체들이 주목하였다. 새롭게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일에 매진하였고, 특히 한인사회 내에 우

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기반 외에서도 많은 청중들이 참석하였다. 한보이스

는 국제적 수준으로 기반을 다졌고, 자원봉사자들은 그렇게 큰 행사를 치르

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새로운 토론과 통찰력 있는

제안들은 같은 달 오타와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의원연맹 총회와 같은 더욱

진전된 토론과 후속 회의들을 산출해냈다. 궁극적으로 한보이스는 지역적,

전국적, 국제적으로 새로운 신망을 얻었고, 북한인권·난민문제와 관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도 마련되었다.

이 운동의 미래

한보이스 관계자들 모두는 지금처럼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 더없이 흥

분될 때가 없었고, 지금처럼 북한인권의 위기상황에 대한 시급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새롭게 얻은 열정과 많은 이들로부터 신망을 얻음으로써 한보

이스는 우리의 주요 지지층 범위를 넓히고, 토론토의 경계를 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모색하는 등 더욱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

명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사명은 대중의 인식을 증진하고, 우리의 관심사안들을 정치인, 정

책입안자, 관료들에게 알리며, 도처의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높일 수

1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란달 바란-청

한보이스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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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이스와 공동주최한

국제회의의 성공에

이어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오랜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 처음 제정된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 수호자상을

수상하였다.

개선을 통해 탈북난민들의 역량을 강화함에 있어서 타 단체들과 협력하는

방안을 현재 검토 중이다. 두 갈래의 접근법으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들, 특히 북한 당국에 의해 한보이스가 모색하고 있는 경시되고 배급이나 관

심에 있어서도 가장 마지막 순위에 놓여 있어서 암울한 아사 현황과 질병, 억

압으로 점철된 지역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대북라디오방송을 통해 외부세

계의 상황과 북한 사회의 적나라한 실상을 알려줌으로써 북한주민들의 역량

을 강화하는 것이다.

캐나다 정부의 지지 확보

한보이스와 공동주최한 국제회의의 성공에 이어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오랜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 처음 제정된 존 디펜베이커 인권·자유 수호자상을

수상하였다. 한보이스는 서울의 협력단체인 시민연합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캐나다 외교통상부가 이 문제에 헌신해 온 비정부기구(NGO)를 선정함

으로써 북한의 인권 및 난민 문제를 암묵적으로 공인하였다는 점에서도 더

욱 고무되었다.

이러한 진전에서의 우리의 첫 시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배리 데볼린

의원에 의해 제출된 개인의원 발의 M-369였는데, 이는 2011년 늦은 봄 첫

회람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선거로 인해 의회가 3월 말 해산되면서 기회를 갖

지 못하였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개인의원 발의는 캐나

다로 하여금 2004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과 유사한 구속력 있

는 법안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탄력을 얻기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데볼린 의원의 의도는 이번 발의에 대한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는 것

이고, 이로써 정치인, 정책입안자, 관료들에게 탈북난민문제에 대한 대중적

지지여론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한보이스는 관련 입법이 이루어

지면 우리가 탈북난민들에 대한 후원과 리더십 교육, 북한사람들의 역량강

화 투자 등의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과 기금지원이 이

루어지고 외교적 무게감도 실리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이 사안에 대한 오타

와 내 협력자들을 찾고 그들을 지지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북한인권단체들 간의 화합과 협력

15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북한주민들과 탈북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인권

위기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므로,

대규모의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의

문제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공감의

부족에 관한 문제

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노출(접해볼 기회)의

부족에 관한 문제이다.

의 노출전략들에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국의 대학교

들과 고등학교들의 캠퍼스 지부들도 주도하여 우리의 정력적인 풀뿌리운동

을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우리는 대중들로 하여금 가

장 두드러지는 이슈들, 특히 중국 내에서의 탈북여성 난민들에 대한 착취와

“무국적” 아동들의 처지와 절망과 같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틀을 잡아줌

으로써 대중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한다.

탈북난민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토론토에서 만나온 탈북난민들은 이들의 성공적인 사

회적 통합, 자신감, 영어 이해능력의 습득에 따른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 사

이에 일반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는 종합대학교나

단과대학들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있는 다양한 사설 영어교육학교들

에서도 수없이 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받아들여온 나라이다.

이를 인식하여 한보이스는 남한의 단체들과 협력하여 장래성과 잠재성

이 있는 탈북난민들을 찾아 내고, 이들을 위한 교류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

한 협력제안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왔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한보이

스와 글로벌 애드보커시 리더십연구소(Global Advocacy Leadership

Institute) 사이의 협력관계를 활용한 애드보커시 훈련 이외에도 영어교육프

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기금을 활용해 보조하고자 한다.

단순히 드러나는 증상이 아닌 원인에 대한 처방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북한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주어지는 자유

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어야 했고, 그러했더라면 자국민들이 바로 그러

한 것들을 찾기 위해 조국을 탈출하도록 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감

스럽게도, 난민으로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수와 이들이 처한 상황은

북한이 자유민주사회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는 암울한 실정이

다. 탈북난민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난민발생 위기는 북한 영토 내에서의 인권 위기상황이 표면

화되는 증상임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북한 내에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보이스는 정보의 제공 또는 직접적 삶의 질

1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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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통적 목표에

대한 약속과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우는 협력적 의사

결정과 소통을 통해

우리는 이전의 같은

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 동안

참석해 본 가운데 “역대

최고”의 회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당시

회의는 지금까지도

한보이스의 활동들

가운데 최대의 성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기금 관련 정보의 공유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각종 기관들의 기금, 세금 체계 상의 차이로 인해

다른 여러 나라들에는 아직 활용하지 못한 다양한 기금들을 이용할 수 있

는 기회가 존재한다. 이러한 몇몇 기회들로는 해외에 기반을 둔 단체들에

게만 기금을 제공해주는 기관들이 존재하고, 후원 시에 받을 수 있는 세금

공제 정책이 나라들마다 상이하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이러한 기회들을 단

체들간에 서로 공유함으로써 어떤 단체들은 새로운 기금을 이용하거나, 모

금을 하거나, 우호적인 환경 하에서 활동하는 단체들과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타 단체들을 활용할 수 있다.

● 대 언론 공조

우리의 관심사들이 더욱 폭넓은 대중들에게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현존

주류 언론매체들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대중의 인식은 가장 잘 확산될 수

있다. 언론 연락처와 보도자료를 공유하고, 각종 행사 개최와 새로운 활동

의 개시, 조사보고서 작성 과정을 통해 공조함으로써 대중에의 노출 정도

는 더 많은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경쟁을 하도록 촉진할 수 있는 언론 다

변화 효과를 창출해냄으로써 지방매체 수준을 넘어 국제적 차원으로 확산

될 수 있다.

이러한 공조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들 가운데 하나로는 한보이

스가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협력하여 토론토에서 개최하고, 필자가 영예로운

공동의장을 맡을 수 있었던 제10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의 성공적

개최사례를 들 수 있다. 한보이스는 주로 영어로 소통하는 젊은 2세대 캐나

다인 전문직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관점과 지향하는 가치들이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두 단체는

성격상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공통적 목표에 대한 약속과 각자의 역량을 발

휘할 수 있도록 북돋우는 협력적 의사결정과 소통을 통해 우리는 이전의 같

은 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 동안 참석해 본 가운데 “역대 최

고”의 회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당시 회의는 지금까지도 한보이스의 활동

들 가운데 최대의 성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7한보이스 이야기: 6천 5백마일 멀리서 변화 만들기

예를 들어 미국 북한

인권법의 통과에 관여

하였던 미국 내 단체

들의 경험은 다른 나라

들에서의 국내 입법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남한

단체들의 탈북자 정착

지원 경험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의

난민지원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인권과 난민 위기에 관여하고 있는 단체들은 아주 다양하고 국적, 이

념, 역량에 있어서 이질적인 그룹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단체들 대부분

의 공통분모는 재원 부족, 값비싼 시행착오 경험, 성장과 혁신 기회의 모색에

있다. 저마다의 차이점들은 접어두고 시너지 효과와 효율성, 서로에게 배울

기회를 모색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개념들에 포함될 수 있다.

● 자원의 공유 (조사결과, 증언, 자원봉사자 등)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종종 가장 효과적 수단이 되는

조사결과와 증언과 같은 정보의 협조와 공유를 통해 관련단체들은 로비활

동과 대중 인식제고 노력에서 더욱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한편, 주로

이러한 보고서들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기관들은 증언자들의 프

로파일을 더 확보하고 자신들의 조사결과물을 널리 알리는 데 유익할 수

있다.

추가적인 기회들은 단체들 간의 인턴십 프로그램 교류나 전 세계에 걸친

다양한 단체들에서 필요한 자원봉사자 확보를 돕는 식으로 자원을 공유하

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인적자원들은 그것이 중국 내에서의

현지활동이건, 캐나다 내에서의 탈북난민들에 대한 영어교육과 사회통합

서비스이건 다양한 활동경험과 기술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

● 경험과 모범사례 나누기

모든 북한인권 단체들의 독특한 활동경험들을 고려해볼 때, 경험과 모범사

례들을 공유함으로써 자원이 낭비되고 목표가 좌절되며 마음을 상하게 되

는 경우들을 쉽게 피할 수 있다.

회의 개최와 데이터베이스 공유, 정기적인 그룹간 소통을 통해 정보를 공

유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경험에 지렛대 효과를 줄 수 있는데, 예를 들

어 미국 북한인권법의 통과에 관여하였던 미국 내 단체들의 경험은 다른

나라들에서의 국내 입법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남한 단체들의 탈북자 정

착지원 경험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의 난민지원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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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나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 1970년에

부모님이 먼저 관리소로 끌려가셨고,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5년을 더 있다가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18호 관리소로 보내졌다. 1975년 2월, 내가 13살 때

였고, 이후 28년을 관리소에서 살았다.

고모를 따라 간 18호 관리소 초소에서 16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5년 전 헤어졌던 어머니는 형체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야위

어 계셨다. 어렸던 나는 왜 이곳에 와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어머

니를 따라서 말없이 30리 길을 걸어 가족들이 지내고 있던 곳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 곳에 가서도 5년 전 헤어졌던 아버지는 만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 사이 동생들도 태어나 있었다.

그 날 저녁,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물,

풀, 옥수수가루 한 줌이 전부였다. 평양에서는 그래도 입쌀에 밀가루 섞은 밥

을 먹었기에, 배는 고팠지만 쓰고 애려서1)

도저히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아버지가 1974년 12월 7일에 관리소 내에 있는 보위부로 잡혀가신 후,

어머니는 농장 일을 하시며 가족을 부양하셨다. 보통 농장이나 산, 또는 탄광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만 한 달에 15일분의 식량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탄광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5일분의 식량을 받는다. 세대주는 10일분의

* 본문에 실린 모든 그림은

김혜숙 씨가 정치범수용소의

실태에 대하여 직접 그린

그림이다.

1)

애리다 : 과일이 덜 익어서 신

맛도 쓴맛도 아닌 중간 맛

김혜숙

2009년 탈북 및 입국

19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한보이스의 관계자들은

그러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일반

대중들과 캐나다의

지도자들, 그리고

우리의 동료인 다른

비정부단체들과 함께

서기를 기대한다.

행동 촉구

앞으로의 시간과 환경이 한보이스와 다른 모든 북한인권단체들이 걸어갈 노

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어디에서든 북한

주민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는 같지만, 그

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북한인권·난민문제의 복합

성으로 인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 상에는 이견(異見)이 있지만, 우리

는 공개적 토론,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인들에게 제안하는 정책적 방안들을

통해 그러한 이견들을 포용하여야 한다. 한보이스의 관계자들은 그러한 공

동의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일반 대중들과 캐나다의 지도자들, 그리고 우

리의 동료인 다른 비정부단체들과 함께 서기를 기대한다.

1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번역: 이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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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가서 일해야 했

다.

탄광에서 13년을 일한

탓에 지금도 폐가

나쁘다.

하지만 아가씨들이 몰래 임신하는 것은 안 되고 결혼증이 있어야 한다. 병원

에 가려면 결혼증을 가져가야 하니까.

남편은 탄광사고로 죽었다. 1개 초소에 7명씩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사

고로 모두 죽었다. 그래서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내가 나가서 일해야 했다.

탄광에서 13년을 일한 탓에 지금도 폐가 나쁘다.

18호 관리소, 인권의 사각지대

내가 관리소에서 나오던 2001년 당시, 관리소 총 인원은 약 2만 명 정도였다.

이주민들은 대략 1만 7천에서 8천 명이었고, 관리일꾼, 보위부, 안전부 가족

들은 약 3천명 정도였다. 수용소는 대동강 하나를 두고 한 쪽은 보위부, 다른

쪽은 관리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음 관리소로 보내졌을 때에는 경비초소 가까이(지도상의 왼쪽)에서

살았고, 어머니가 농장일 하면서 옮겨간 곳이 심산이다. 나는 1975년 2월부

터 1989년 9월까지 심산에서 살았다. 1989년, 봉창리 12호 관리소가 어디론

가 이전했고 18호 관리소 구역이 되었다. 18호 관리소 이주민들은 이곳으로

이주되었고, 예전 18호 관리소가 있었던 자리는 해제민 구역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2001년 2월 16일 해제될 때까지는, 더 정확히 말하면 2002년 8월 13

일에 관리소 지역을 완전히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

다.

21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그곳 사람들은 그저

형체만 있지 뼈만

보이고, 9살 아이들도

한국의 5살 아이들에

비해 살도 없다.

불쌍한 일이다.

2)

이주민 : 수용소 수감자를

일컫는 북한 말.

3)

혁명화 : 처벌 형태의 일종.

식량을 배급 받았다. 당시 우리 집은 5형제, 할머니, 어머니, 이렇게 총 7명이

어서 6~7kg의 통강냉이를 받을 수 있었다. 강냉이를 집에서 직접 말리면

4~4.5kg 정도 나오는데 이것을 15일 동안 먹었다. 그마저도 하루에 한 끼, 두

끼 정도를 먹으면 잘 먹는 것이다. 강냉이를 15일 동안 먹자니 풀과 나물이

없으면 먹을 수조차 없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기력이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걸어 다닐 수조차 없다. 그곳 사람들은 그저 형체만 있지 뼈만 보이고, 9살

아이들도 한국의 5살 아이들에 비해 살도 없다. 불쌍한 일이다.

내가 중학교 5학년을 졸업할 때쯤 어머니가 산나물을 캐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1979년 5월 30일에 사망했다. 그 때 나는 8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오형제와 할머니가 손에 맡겨졌다. 어머니가 계실 때

는 그나마 배급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5월에 돌아가신 이후부터

는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졸업하고 1979년 9월부터는 탄광에 들어가서

일했다. 곧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집에 있을 때는 별 일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것들을 빼앗아갔다. 그나

마 동생들이 학교를 졸업해서 탄광 일을 시작한 후에는 배급량도 늘면서 형

편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던 중, 21살 된 둘째 남동생을 탄광사고로 잃었고

시체도 못 찾았다. 관리소 내 탄광은 위험했지만 개조비용을 들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광사고가 잦았던 것이다. 하지만 관리소에서는 이주민2)

이 죽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18호 관리소에서는 일을 잘한 경우에 한해서 결혼이 가능했다. 결혼식장

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관리소에 가서 허락을 받으면 결혼한 것이 되

는 식이었다. 나도 30살이 되어서 할 수 없이 관리소에 혼자 몸으로 혁명화3)

로 들어왔던 사람과 결혼했다. 든든한 남자가 집안에 들어오니까 다른 사람

들이 채가는 건 없었다. 동생들을 돌보면서 살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여

동생도 성인이 되어 시집을 보냈다. 가족 입을 하나 줄이면 형편이 나아진다.

그래서 여동생 둘 다 짝을 지어 내보냈다.

나는 두 명의 아기를 낳았다. 18호 관리소에는 산전·산후휴가가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내 동생들을 낳으셨던 때에는 90일을 줬는데, 1980년대부터는

관리소 내에 인구가 부족하니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했고, 두 번째 아이부터

는 150일 휴가를 줬다. 휴가와 함께 매달 280원씩 다섯 달 동안 돈도 받았다.

2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18호 관리소 지도 도서출판 시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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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 여자들은 주로

채탄장에서부터 화력

발전소로 석탄을 보내

는 일을 했는데,

진폐증에 걸려 죽거나

팔다리가 잘리는

사고도 많았다

머지는 남자들이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일하는 양이나 시간은 같았다. 하

지만 어디서라도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면 매 맞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관리소에서 크면서 나는 말을 잘 듣고 열심히 할 일 했기 때문에 추천을 받

아서 야간 전문학교도 다녔다. 들은 이야기로는 안전원이 여자를 불러다 강

간하고 비누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갱장4)

들도 여자들을 많이 강간

했다.

18호 관리소는 다 탄광이다. 관리소 여자들은 주로 채탄장에서부터 화력

발전소로 석탄을 보내는 일을 했는데, 진폐증5)

에 걸려 죽거나 팔다리가 잘

리는 사고도 많았다

탄광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주어졌기 때문에 집

안 살림을 꾸려나갈 시간은 따로 없었다. 1교대 마다 8시간씩 일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딱 그 정도로 8시간만 일하면 그나마 다른 생활을 챙겨볼 시간

이 있겠지만, 한 교대씩 더 맡아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했다.

16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사람이 맥이 풀리고 자리에 누우면 천근만근 무거

워진 몸이 정말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탄광에서 일하다가 여

러 번 다쳤는데 아주 작은 방 한 칸짜리 진료소가 있다. 거기서 진단서도 써

주는데 길어보아야 3일 진단서를 떼어 준다. 다리가 잘리거나 하면 30리나

떨어져 있는 더 큰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수송수단이 없어서 걸어가야 한

다. 탄광병원들에는 다리 잘린 사람들이 많다. 내가 그런 곳에서 28년이나 살

았다는 것이 지금으로선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고, 그저 ‘기적’이

라고 여겨질 뿐이다.

관리소에서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시체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무섭지도 않았다. 특히, 1990년대 말이 가장 심했

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훔쳐 먹을 것도 특별히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다른 이주민의 집으로 들어가 무엇이든 훔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정도였다.

4월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는데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풀뿌리를 먹

거나 강냉이를 갈아 죽을 쑤는데, 7-9kg강냉이를 집에서 말리면 2-4kg정도

는 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걸로 1개월 정도는 버틴다. 도토리나무 잎사귀도

부드러워서 먹기 좋다. 그걸 다 뜯어다가 삶으면 진한 물이 우러나는데 소금

물만 있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4)

갱장 : 탄관장을 일컫는 말.

5)

진폐증 : 폐에 먼지가 쌓여 생

기는 직업병의 일종으로서, 북

한에서는 ‘먼지폐증’이라고 부

르기도 한다.

23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관리소의 이주민들은

인권이라는 말은

모르고, 개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관리소의 이주민들은 인권이라는 말은 모르고, 개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관리소는 4m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은 보위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생활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외우

면서 생활총화도 했다. 관리소는 산골이고, 포장된 도로는 없었다. 악독한 보

위부 지도원이나 안전원들은 저 멀리서 이주민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이면

미리부터 가래를 입 안에 문 상태에서 자신들 앞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이주

민이 그 앞으로 뛰어가서 무릎 꿇고 앉으면, “아가리 벌리라” 라고 한 뒤에

입 안으로 가래침을 뱉는다. 나도 28년 동안 관리소에 살면서 세 번이나 그

런 일을 당했는데, 그 순간에는 도저히 가래침을 넘기기 어렵다. 하지만 삼키

지 않으면 일생 동안 맞을 매를 한 번에 다 맞는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팬다.

넘기면 목으로 며칠 동안 그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기 때문에, 당할 때마다 차

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관리소 내에서는 누구든 일거

수일투족을 서로 감시하게 한다.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도 수없이 많이 들었

지만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었다. 보위원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렇게 끈질기게 버텼다.

나도 하루 16~18시간동안 탄광소에서 일하다 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기

관지가 약해졌고, 폐종양에 걸리게 되었다. 작업반 15명 중 여자가 7명, 나

2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18호 관리소는 다 탄광이다. 관리소 여자들은

주로 채탄장에서부터 화력발전소로 석탄을

보내는 일을 했는데, 진폐증에 걸려 죽거나

팔다리가 잘리는 사고도 많았다.

도서출판 시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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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에서는 아이들이

배움보다 노동을 훨씬

더 많이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일해야 한다.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잡아가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잡아간다.

냉이를 빻아달라고 맡기면 돌려받는 양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우리가 직

접 돌멩이로 강냉이를 빻았다. 딸이 밥상을 차릴 때면, 늘 “이건 어머니 밥,

이건 내 밥” 하면서 그릇을 내놓았다. 하지만 딸이 너무 빨리 밥을 먹는 것이

이상하다 싶어서 하루는 내가 내 밥그릇과 딸의 밥그릇과 바꿔보았다. 그러

고 보았더니 딸의 밥의 양이 상당히 적었던 것이었다. 그 동안 내가 모르게

자기 밥 그릇 속에는 작은 그릇을 하나 더 얹어 그 위에 얼마 안 되는 밥만 살

짝 올려놓고 태연한 척했던 것이었다. 우리 아이 마음씨가 그렇게 고왔다. 목

이 메어서 음식이 차마 넘어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화

병이 오는 것도 같았다.

학교생활

관리소에서는 아이들이 배움보다 노동을 훨씬 더 많이 한다. 학생들이 공부

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일해야 한다.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잡아가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잡아간다. 아이들은 행정일꾼들이 사는 마을에 나무를 해주고

강냉이를 조금 받을 수 있었다. 조금의 자유 시간이라도 주면 관리소를 도주

할 궁리를 한다고 해서 자유 시간도 주지 않는다.

관리소 청사 옆에 학교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 인민학교, 중학교가 있었

다. 보안원 자녀, 이주민 자녀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시간을 구분해 따로

25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사실상

태어나자 마자 부터

‘수령님,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하는

말부터 배우는데,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봄과 가을의 상황이 겨울보다는 낫다. 왜냐하면 겨울에는 강냉이 가루와

물을 섞은 죽 밖에 먹지 못한 채로 탄광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량은

몇 달에 한 번씩 주는 소금, 된장이 전부였다. 된장은 약 5개월에 한 번씩 3kg

을 준다. 양이 너무 적다 보니 된장국을 끓여먹어 본 적은 없다. 이주민들은

소금을 거의 못 먹기 때문에 모두 기운이 없다. 항상 소금기가 모자랐기 때문

에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부족한 소금 대신 된장을 핥아 먹었다.

돼지도 길러야 했는데, 변소에서 인분을 끓여서 돼지를 먹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키운 돼지를 한 점도 먹어보지 못하고 모두 관리일꾼들에게

갖다 바쳐야 했다. 돼지 6마리, 개 12마리, 토끼 60마리를 모조리 바쳤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사실상 태어나자 마자 부터 ‘수령님,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하는 말부터 배우는데,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

다. 관리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저 강냉이 밥이라도 한 번 배불리 먹는 것

이 소원이다. 우리 아이들도 9~10살 정도였는데 내가 밥 하는 방법을 알려주

면 직접 밥을 해 먹곤 했다.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리 힘들

어도 곧장 눕지 않고 돌멩이로 1~2시간 동안 강냉이를 갈았다. 방앗간에 강

2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남편이 탄광에서 죽고 나서는,

딸이 일요일마다 남의 집 아이를 봐주고

강냉이 300그램을 받아오고는 했다.

그것을 갈아서 음식을 해먹었다.

하루씩 탄광기계 점검으로 쉬는 날이 있는데, 산나물을 뜯어야 먹고 살 수 있다. 도서출판 시대정신 제공

도서출판 시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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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로 끌려오다 보니 사람들은 넘쳐나고 살 곳은 없었다. 내 집에까지 다 왔

다. 그 사람들이 들어온 후로는 관리소 분위기가 살벌해져서 사는 것이 끔찍

했다. 총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총살을 집행할 때는 ‘공개공판’이라고 그 전날 써놓는다. 공개총살과 교

수형은 공장 옆에서 집행하는데, 14호 관리소 보위부 사람들까지 다 건너와

서 본다. 총살은 밖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미 반 쯤 죽여 놓은 산송장 같

은 사람을 질질 끌어다 세워 총살했다. 일 년에 몇 백 번쯤 총살이 있었던 것

같다. 옆의 14호 관리소 지역으로 넘어가서 강냉이 가루 같은 것을 훔쳐 먹

다가 붙잡히면 대부분 죽였고, 심화조 사건 때도 많이 죽였다. 미신 같은 것

을 믿은 죄로도 많이 죽였다. 내 친구 어머니는 53세였는데 미신을 믿었다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의무적으로 보도록 되

어 있다.

관리소에서의 해제

나와 내 가족들은 2001년 2월 16일, 18호 관리소에서 해제8)

를 받았다. 하지

만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는 아직 풀려나지 못했다. 이주민들이 해제되는

날은 주로, 2월 16일9)

, 4월 15일10)

, 노동당 창건 50돌11)

같은 아주 특별한 날

이다. 우리와 함께 해제 받았던 사람들이 총 일곱 가정이었다. 해제 받는 날

8)

해제 : 풀려나다.

9)

북한의 ‘민족최대의 명절’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인데,

2월 16일은 김정일의 생일이다.

10)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이다.

11)

10월 10일은 조선조동당 창건

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5년

10월 10일 북한에서 조선

노동당을 창당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법정 공휴일이다.

27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6)

해제민 : 형을 마친 상태이지만

관리소 지역 외에는 다른

살 곳이 없어서 그냥 남아있는

사람들.

7)

심화조 사건 : 김일성

사망 이후인 1997년 북한

고위급 관리 2만 명이

숙청된 사건.

따로 다니게 했다. 간부 자녀들을 위해서는 교원들도 배치되고 좋은 교육을

받아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고, 해제민6)

자녀들은 간부집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이주민의 아이들에게는 대학을 졸업한

교원들은 배치되지 않았고, 관리원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는 것은 별로 없다. 인민학교 1학년 때부터 대충 기초를 배우는데, 김일

성 수령 혁명사상을 제일 처음 배우고, 글자를 알게 한 다음에는 셈법과 그림

그리기를 배운다. 인민학교는 4학년까지 다니고, 중학교는 5학년까지였는데,

최근에는 중학교를 6학년까지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주민 학생들은 학

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탄광으로 보내진다.

학생들에게 교복을 주는 것은 인민학교 4년, 중학교 5년 전체 기간에 각

각 한 번씩 뿐이었다. 내가 관리소로 끌려가 그곳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열 세 살이었는데 아이들이 다 헤진 교복을 꿰매어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따

로 신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맨발로 등교하다가 겨울에 동상에

걸려 발을 잘라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맨발로 다니는 것이 모두

단련된 모양인지 아프지도 않은 듯했다. 나는 겨울에는 이불솜을 뜯어서 발

을 싸매고 새끼줄로 여며서 다녔다.

공개총살

이주민들은 보위원에게 도대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끌려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묻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을 물어보면, 어디서 반항하려는

것이냐며 바로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난 부모 따라 이유도 모

르고 잡혀왔고, 내 부모가 죽은 지 오래 됐는데도, 어째서 해제가 안 됩니

까?” 하고 물어본다면, “지금 관리소 규정을 반신반의 하는 거냐?”면서 “넌

무조건 총살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총살을 안 하면 이주민 관리를

하지 못한다”고 겁을 주곤 했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왜 18호에 들어갔는

지 모르셨다.

1997년 심화조 사건7)

때는 김정일 반대파들이 많이 죽임을 당하고 18호

관리소로 끌려왔는데, 그 때는 정말 굉장했다. 강원도당 책임비서 등 수많은

사람들이 비공개로 총살을 당하거나 탄광소로 보내졌다. 인간이 인간 취급

을 당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관

2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집 가까이 살던 남자가 가족 중

맏이였는데, 가족을 위해 밭에

서 강냉이를 훔치다가 잡혔다.

안전원이 남자를 며칠 동안

길가에 세워두다가 총살했다.

도서출판 시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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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부에 20일

붙잡혀 있는 동안

자식을 잡아먹은

여자 둘을 봤다.

밥한 끼 500원을 매일 내야 했다. 돈이 없어서 공원에 누워있고는 했다. 그렇

게 3개월을 치료받으니까 그 동안 모아뒀던 돈이 다 없어졌다. 그 때 어떤 아

주머니가 중국은 먹고 살기 좋다고 하면서 나보고 중국에 가지 않겠냐고 물

어보았다. 그래서 가다가 죽건, 이렇게 앉아서 죽건 마찬가지니 일단 떠나보

자고 결심했다.

무산에 도착하니 국경경비대원들이 두만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줬다.

강을 건너자, 조선족이 경비대에게 얼마인지 모르는 돈을 건네주는 것도 보

았다. 그렇게 조선족에게 넘겨져서 연길에서 화룡에 있는 한 식당으로 보내

졌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 넘어왔던 24살, 27살의 젊은 여자들이 있었는데,

곧 모두 어디론가 팔려갔고, 나는 43살로 나이가 많고 관리소에서 고생을 많

이 해서 몸이 상한 탓인지 가격흥정이 안 되어 팔려가지 않았다. 2007년 11

월, 식당에서 일하다가 북한에 건너가서 돼지를 사오라고 해서 넘어갔다가

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중국 땅이 아닌 북한 내에서 체포되어 호송되었기 때

문에 보위부로 보내지지 않았고, 안전부에서 20일 동안 취조 받고 청진시 비

법 월경자 도집결소로 보내졌고, 그 곳에 3개월 정도 갇혀 있었다.

인육사건

안전부에 20일 붙잡혀 있는 동안 자식을 잡아먹은 여자 둘을 봤다. 한 여자

는 서른아홉이었고, 아홉 살 난 딸이 있었다고 했다. 거기서 나와 하룻밤 자

고 그 여자는 살인자니까 교화소로 보내려는지 죽이려는지 어디로 끌고 갔

다. 나도 내 새끼 잡아먹을 생각은 차마 못했다고 말했더니, 이 여자는 그렇

게 말했다. “아파서 산에 올라가 나물도 못 캘 정도가 되어 굶었다. 딸이 병에

걸리고 열이 나서 아파서 울었는데 도저히 나도 더는 못 참겠더라. 나도 너무

굶었더니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고기를 실컷 먹어보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

다. 돼지고기보다 사람 고기가 맛있다고들 하니, 어차피 이렇게 앉아서 모두

굶어 죽을 바에는 애를 잡아서 먹고 나도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하

는 말이 아이가 얼마나 어렸으면 가마에 쏙 들어갔는데 엉덩이가 제일 빨리

익었다고 했다. 그걸 잘라서 소금을 찍어 먹고 있다가 들어온 인민반장에게

들켜 붙잡혔다고 했다.

다른 여자는 내가 아는 여자였다. 여자의 남편은 탄광사고로 죽고, 아이

29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그렇게 3개월을 치료

받으니까 그 동안 모아

뒀던 돈이 다 없어졌다.

그 때 어떤 아주머니가

중국은 먹고 살기

좋다고 하면서 나보고

중국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가다가 죽건, 이렇게

앉아서 죽건 마찬가지니

일단 떠나보자고

결심했다.

에는 이주민들을 모아 놓고 해제 받는 사람들을 앞에 앉힌 다음, 간부들도 앉

고 “너네 일을 잘하면 이주민들도 해제시켜준다” 라고 선전한다. 부럽게 바

라보던 수많은 다른 이주민들은 해제민들이 군중들 사이로 빠져나갈 때, 꽃

잎을 뿌리며 축하해준다. 해제된 후에는 18호 관리소에 있었다거나 듣고 본

것을 일체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온다. 관리소에서는 해제민

구역이라는 또 다른 지역에서 살도록 집을 지정해주지만, 원하면 다른 지역

으로 갈 수도 있고, 장사도 할 수 있다.

내가 해제된 후, 안전부에 우리 친척들에 대해 물어봐서 이들을 찾아 나

섰다. 그러던 중 큰 아버지를 찾고 나서야 내가 왜 28년 동안 관리소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큰아버지 말로는 아주 오래 전 할아버지

가 월남했던 것 때문이라는데, 장남인 그조차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친할머니를 우리 아버지가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죄 없는 우리 가족

들까지 모두 관리소로 잡혀간 것이었다. 만약 할머니가 큰아버지와 살았다

면 큰아버지 가족들이 관리소로 끌려갔을 일이지만, 큰아버지는 농촌 여자

를 만나 따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한국 와

서 국정원에서 두 달 조사받을 때 할아버지 이름을 댔지만, 아직까지는 마땅

한 소식이 없다.

해제를 받고 난 이후, 내가 살 마땅한 곳은 없었고, 장사라도 해 볼 밑천

도 없었다. 그러다가 2002년에 평성에서 동무를 만나 순천에 있는 한 집을

소개받았다. 집주인은 할머니였는데, 60만원에 집을 팔고 싶어 했다. 돈을 모

두 모을 때까지는 그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기로 하고 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맡겨놓고 청진으로 장사를 갔다 왔는데 이미

집이 홍수로 떠내려간 뒤였다. 12살 딸과 9살 아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 그 뒤로는 내 옆으로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두 다

마치 죽은 내 아이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북한을 넘나들며

2003년도 아이들이 모두 죽고, 나는 병에 걸려서 청진에서 장사하면서 치료

받았다. 장사하다가 청진에 와서 치료 받아야 했는데 비싸서 개인 집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하룻밤 누워있는 데에만 500원, 약값 800원, 치료비 500원,

2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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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경, 나는 두만

강을 넘었다.

살기 위해서는 중국인

에게 팔려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중국 도문의 어느

한족에게 2,500원에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는 53세 의사였다.

한족에게 2,500원에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는 53세 의사였다. 남편이 의사였

기 때문에 도문 변방대원들이 집에 와서 자주 치료를 받곤 했고, 그래서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잡아가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씩 공안들이 지

역을 바꿔 단속하는데, 그때마다 공안들은 며칠 산으로 도망가 있으라고 알

려줬고, 나는 숨어있다 나오곤 했다.

현재 54살인 한족 남편은 아직까지 연락이 온다. 나에게 다시 중국으로

오라고 하지만, 북송 될 수 위험이 있기에 갈 생각이 없다. “한국 국적을 얻어

서 12년 이상 살면 중국에서 북송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후에나

중국에 갈 수 있을까?

제3국을 통한 한국 행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중국에 남아 있던 한족 가족 모

두를 데려간 여성을 보았다.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가면 집도 주고,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본 것이

다. 그래서 나도 한국으로 떠나자는 결심을 했다.

중국에는 탈북자에게 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고 돈을 받는 브로커

들이 있다. 한국 행을 원하는 16명이 모여서 나도 장춘, 산동, 곤명을 통해 국

경을 넘어가는 길을 안내 받았다. 라오스에서는 2시간 반을 산길을 따라 걷

기도 하면서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거쳐야 했다.

한 번은 라오스에서 우리 일행이 배 3척을 나눠 타고 새벽에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라오스 경찰 8명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었다. 달리던 배를 쏘겠다니까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곤

란한 상황이었다. 라오스 경찰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 옆에서 감촉

이 났다. 악어였다. 내 옆에는 한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는데, 더우니까 손을

물에 담갔다가 악어에게 물려 가고 말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를 내려놓고 잽싸게 되돌아

갔다.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가 갈 길을 찾아야 했지만, 언어적 장벽에 부딪

쳤다. 그래도 내 수중에는 한족 남편이 차비로 준 만원이 있었고, 이 돈으로

우리는 태국 경찰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덕분에 방콕 이민국 수용소에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31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많이 오는데,

다른 마을에도 이렇게

인육을 먹는 사례들이

많다고 들었다.

김정은이 배급을

안주니까 아이를

밤길에 내놓지 말라는

얘기도 나온다. 도로에

나가면 널려 있는

시체들도 많고,

시체처리반도 흔히

볼 수 있다.

를 데리고 살았는데 16살이었다고 한다. 여자가 강냉이 2kg을 간신히 마련

해놓고 잠시 밖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아들이 강냉이를 모두 먹어 치우자 너

무 화가 나 아이를 그만 죽여버렸고, 돼지고기로 속여 강냉이로 바꾸어 먹었

다는 기막힌 사연이었다.

내가 안전부 분주소 화장실에 구금되어 있을 때, 아이의 시체를 직접 목

격했다. 안전원들은 사건들이 계속 터져서 분주소를 드나들고 있었고, 그러

던 어느 날 나에게 비닐 주머니를 던져주면서 “야! 이 간나야! 풀어!” 라고

했다. 비닐을 푸는 순간, 머리카락이 보였다. 어머니가 얼마나 악착같이 살을

베었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게 얼굴 살도 다 베어낸 상태였다. 시체의 눈알은

툭 튀어나와 대롱 대롱거렸다. 손목과 발목이 알아볼 수 있는 16살 아이 시

체의 거의 전부였는데 그걸 꺼내놓고 안전원은 사진을 찍었다. 아이의 어머

니는 “내가 오죽하면 제 새끼를 잡아먹겠는가? 내가 곁에 있어도 애가 그 모

양이었는데, 내가 죽고 없으면 애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나 있었겠나? 그럴

바에 내가 애를 실컷 먹고, 나도 죽어버리는 게 낫지!” 라고 말했다. 그곳에

서 사람들은 그저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살인자니

까 총살했을 것이다.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많이 오는데, 다른 마을에도 이렇게 인육을 먹

는 사례들이 많다고 들었다. 김정은이 배급을 안주니까 아이를 밤길에 내놓

지 말라는 얘기도 나온다. 도로에 나가면 널려 있는 시체들도 많고, 시체처리

반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으로의 재탈출

나는 안전부에 있다가 노동단련대로 옮겨졌다. 10일 정도 단련대에 있다가

도망쳤는데,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살았으니 길은 잘 알고 있었다. 대동강

을 따라서 도망치다가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틀간 그 집에서 머물

렀다. 지인은 자기 딸도 도망쳐야 할 사정이 있으니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인의 딸과 나는 무산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나는 두만강을 넘었다. 경비대 교대 시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 건넜다. 무산에서 중국 측과 이미 연락을 한 상태였고, 살기 위

해서는 중국인에게 팔려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중국 도문의 어느

3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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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아주머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병원에 가도 간호사들

이나 의사들이 얼마나 상냥한지 모른다. 북한사회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의

차이를 여기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 ‘남조선은 병든 자본주의 사회’라고 배

웠고, 나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왔었지만, 인민들끼리 서로 돕는 것을 보며

‘자본주의가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3318호 관리소에서 28년 간의 삶

하지만 이제 북한

주민도 남한에 대해

많이 안다. “겨울연가”,

“가요무대”, “동반자”와

같은 프로그램의

알판(씨디-롬 디스크)을

계속 듣고 있고, “겨울

연가”를 보고 붙잡혀간

아이들도 많다. 무산

지역에서는 “망해가는

21세기 빨리 망하라!”

라는 슬로건도 나왔다.

태국의 이민국 수용소는 보통 한 방에 540명씩 같이 생활한다고 들었지

만 내가 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있었을 때는 자릿세라는 것을 내야

하는 것도 없었고, 자리가 없어서 서서 자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민국

수용소에서는 한국으로 보낼 사람들을 20명씩 뽑았는데, 내 차례 때는 40명

씩 뽑아서 나는 20일 만에 한국으로 입국했다.

남한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봄

한국 와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많은 단체들에서 북한

으로 삐라를 많이 보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삐라에 중국 돈을 붙여서

보내주기도 한다. 나는 이 방법이 북한주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도 삐라를 보고, 이를 볼 때면 속으로라도 ‘이런 게 있구나!’ 알

게 되고 머리가 트이게 된다.

북한에 있을 때는 “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한

민국”이라는 단어는 아예 몰랐다. 북한에서는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했지

“한국”이라 하면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남조선에 가면 다 목을 잘라 죽

인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강요와 설교를 당하면서 살아왔

다.

하지만 이제 북한주민도 남한에 대해 많이 안다. “겨울연가”, “가요무

대”, “동반자”와 같은 프로그램의 알판(씨디-롬 디스크)을 계속 듣고 있고,

“겨울연가”를 보고 붙잡혀간 아이들도 많다. 무산 지역에서는 “망해가는 21

세기 빨리 망하라!”라는 슬로건도 나왔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한국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고, 북한을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못한다.

나는 한국에서 세 번째 봄을 맞는다. 봄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 적십자

에서도 나를 많이 도와주고 외로울까 봐 컴퓨터도 들여줬다. 한국 사람들의

인사성을 보면서 내 자신도 많이 고쳐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28년간

관리소 생활을 하며 웃어 볼 날도 없었는데, 악의에 차 살았기 때문에 별로

웃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

나 살갑다. 버스 기사가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라고 상냥하게 인사

한다.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 가방을 치면, 북한 같으면 때렸겠지만 여기서는

3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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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오로지 정치적인 동기에 입각

하여 특정국의 이름을 불러 창피주기(naming and shaming) 위한 목적으로

그러한 국가들을 배제하는 이 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서구 국가들에서는 대규모 인권침해

를 감시할 특별보고관제도가 전무한 반면, 모든 국가별 특별보고관은 예외

없이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만 임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정치화된 국가별 특별보고관제도가 존

재하는 한, 이러한 정치수단화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인권이사

회가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욱 정치화된 공간이 될 것이고, 이것은 계속된 정

치적·이념적 대결을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주권존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분야에서의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동

시에 우리는 불순한 정치적 동기에 입각하여 대결과 불신을 꾀하고 있는 특

별보고관을 계속해서 단호히 배격하고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특별보고관제도는 영원히 그리고 완

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장님.

번역: 이영환, 김지은

35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의 발언

* 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는

2011년 2월 28~3월 25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합 유럽

본부에서 개최되었다.

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는

2011년 2월 28일~3월 25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합 유럽

본부에서 개최되었다.

다음은 3월 14일 열린

마루즈키 다루스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의 상호대화

(interactive dialogue) 시간에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가

특별보고관과 각국 대표, 국제

NGO들의 지적사항과 비판을

일방벅으로 거부한다고 발언한

것을 녹취한 것이다. 북한이

자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개선촉구를 어떠한

궤변으로 부인하고

비협조적으로 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편집자 주)

감사합니다. 의장님.

우리 대표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DPRK)과 그의 보고서를 무조건 그리고 단호히 거부하는 계

속된 입장임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동 특별보고관제도

는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의 음모 아래 공화국에 대해 강제로 채택되고 강

요된 결의문의 결과로서 태어났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의

문들은 모두 인권을 구실로 삼은 정치적 대결의 산물이자, 우리 국가와 체

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책략의 산물로서, 진정한 인권과는 멀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그 동안 우리 공화국에

적대적인 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고, 그의 보고서는 날조와 중상모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한 마디도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특별보고관제도가 인권의 정치수단화, 선택성, 이중적 기준 적용의 근본원인

이 되고 있듯이, 특정국가에 대한 보고관제도를 존속시키는 것은 유엔인권

이사회(Human Rights Council)의 설립정신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권의 증진

과 보호를 위한 국제공동체의 노력에도 반(反)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는 모든 국가들을 동등하고

3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자료

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북한대표부

서세평 대사의 발언*

유엔인권이사회

제16차

의제항목 4

유엔인권이사회의 주목이 필요한 인권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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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존중

제1절

인간의 고결성에 대한 존중

a. 임의적이고 불법적인 살인

북한 정부가 임의적이고 불법적인 살인을 자행하였다는 보고는 수없이 많

다. 탈북자와 난민들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정치범, 정권 반대세력,

송환된 탈북자 및 범죄행위로 기소된 자들을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

형하기도 하였다. 북한 법률은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정변에 참가하거나 음

모에 가담하는 행위, 반국가적 테러행위,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국가기밀을

넘겨준 반역행위, 인민의 민족해방운동을 억압하는 행위, 전력선 또는 통신

선을 절단하는 행위와 불법약물거래 등의 가장 “심각”하거나 “중대”한 “반

국가” 또는 “반민족”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하

한국 또는 남한)에 있는 비정부기구(NGO)와 싱크탱크에 의하면, 2007년도

에 채택된 북한 형법 부칙은 절도 또는 군사시설이나 국유재산 파손, 사기,

납치, 밀수 및 밀거래 등 비교적 심각성이 덜한 범죄에 대해서까지 사형을 규

정하고 있다.

북한의 국경경비대는 탈북을 시도하는 주민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

았다고 하며, 교도관들 역시 정치범 수용소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이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이러한 관행이 지속되었는지

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작년에 북한 정부는 직접 월경을 시도하거나 타인

의 월경을 지원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처형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해

외 종교단체 및 인권단체들은 중국 국경을 통하여 외국인과 접촉한 일부 북

한 주민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남한 관리 및 비정부기구의 작년도 보고에 의하면 공개처형이 지속되었

으나, 이에 관한 공식 통계자료는 없는 상황이다.

1월에 한 비정부기구는 북한 당국이 탈북을 시도한 주민 세 명을 처형하

고, 그 가족을 정치범 수용소나 농촌 지역으로 이송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제

* 미국 국무부는 2011년 4월 8일

‘2010년 국가별 인권현황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본문은 미국 국무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인권현황

보고서 중 북한보고서이며,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을 미국대사관

공보과 아메리칸센터와

협의하여 전재합니다.

본 자료에 대한 문의는

AmericanCenterKorea@state.

gov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료 제공에 협조해주신

미대사관 공보과에

감사드립니다.

37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은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

원장(국가최고위직)의 절대통치 하에 있는 독재국가이다. 북한의 인구는 약

2,3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김정일의 부친 고 김일성 주석이 “영구주석(eternal

president)”으로 남아있다. 2009년 3월에 실시된 국가선거는 자유선거 또는

공정선거로 규정될 수 없다. 보위기관은 민간당국에 대한 보고 책임이 없다.

북한주민에게는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북한정

부는 다방면에서 주민생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사법외적 처형, 실종, 임

의 구금, 정치범 체포, 수감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혹한 수용소 상황 및

고문에 관한 보고가 계속되고 있다. 임신한 여성 수감자에 대하여 강제 낙태

를 실시되거나 수용소에서 태어난 영아를 출산 즉시 살해한 사례도 지속적

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법부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공정한 재판을 수

행하지 못한다. 북한 주민에게는 표현, 언론,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

지 않으며, 정부가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 한다. 정부는 종교 및 거주이전의

자유와 노동권을 제한하고 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일부 탈북자와 그 가

족에 대한 가혹한 처벌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중국으로 밀입국

한 탈북자와 노동자들 사이에서 성인여성 및 소녀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사례가 광범위하게 보고되고 있다.

3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자료

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 북한편

민주주의·인권·노동국

2010년 국가별 인권현황 보고서

201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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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이 임신 사실 발견 직후 실종되었다고 한다.

2월에 한 비정부기구는 함경북도 청진의 여성 한 명이 통화 재평가 이후

시장 활동의 어려움에 관해 토로한 이후 실종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여성

상인은 2월 3일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위기관에 소환 당한 이후 실종되었다

고 한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 정부기관에 의한 피랍 의혹이 제기된 12명

의 일본인에 대하여 추가정보를 확보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

다. 북한은 2008년도에 일본 정부와 이 사안에 대한 논의를 실시한 이후 조

사 재개에 합의하였는데, 조사의 진척상황 또는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또 다른 일본인 피랍 사건 의혹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

고 있다.

한국 정부 및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70년대 및 1980년대에 일본인 이외

에 기타 국가의 국민들도 북한 정부에 의해 해외에서 피랍되었다고 한다. 그

러나 북한 정부는 외국인 피랍 사건 개입설을 전면 부인해왔다. 한국 정부는

한국전 종전 이후 약 496명의 자국 민간인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북되거나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560여 명의 국군포

로와 작전 중 행방불명자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 북한 접경 지역에서 지난 2000년

에 실종된 김동식 목사는 실종 후 1년 이내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c. 고문 및 기타 잔인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 또는 처벌

북한 형법은 고문이나 비인간적 대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문이나 비

인간적 대우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수의 소식통을 통해 계속

확인되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혹독한 구타나 전기 충격, 비바람에 대한 장

기간의 노출, 공공장소에서 알몸으로 있도록 하는 등 수치심 유발, 똑바로 서

거나 누울 수 없을 만큼 좁은 “형실”에 최대 수주일간 감금, 장시간 무릎을

꿇거나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도록 하기, 묶인 팔목에 의지하여 몸 매달기,

탈진할 때까지 강제로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기, 최근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산모들에게 자신이 출산한 신생아가 살해되는 장면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기

39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1절 f항 참조). 보고에 따르면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50일 전투” 보안단속의

일환으로 이와 같은 조치가 집행되었다고 한다(제2절 d항 참조).

3월의 남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해외와의 접촉을 위하여 무

단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한 남성을 총살하였다. 그는 북한의 미곡 가격

과 생활 여건에 관해 설명했다고 한다.

2009년도 통화 재평가 이후 3월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 북한 남성이

김일성의 초상이 담긴 지폐를 정부에 반환하지 않고 소각하여 반역죄로 총

살을 당했다고 한다.

언론 보도 및 비정부기구에 따르면,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 등 일부

관리들이 2009년 11월의 화폐개혁정책 도입을 이유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제2절 e항 참조). 이러한 보고는 확인된 바 없다.

2008년 및 2009년에 발생한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정부가 보위기

관 요원들을 처벌하거나 기타 문책 조치를 실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7월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손정남 씨의 동생은 2008년 12월에 손정남

씨가 처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손정남 씨는 해외 단체와 지속적인 접촉을

한 혐의로 2006년에 사형을 언도 받았다.

b. 실종

비정부기구, 싱크탱크 및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여러 실종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탈북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국가보위기

관 요원들이 정치범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정부는 외부

와의 연락을 차단시킨 상태에서 용의자를 무기한 구류 및 수감할 수 있는 무

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 형법은 용의자의 구금에 검찰의 승인

이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사실상 이 법을 무시하고 있다.

6월에 외신은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실종 사실을 보도

한 바 있다. 북한 언론매체는 이제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보도하였

으나, 외신은 이제강의 사망이 내부 권력다툼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

다는 관측을 보도하였다.

2월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용소 내에서 교도관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

3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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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에는 이름 없는 묘지, 막사, 작업장 및 기타 수감 시설이 있다고 진술하였

다. 2009년 7월 워싱턴포스트는 인공위성 사진에 다수의 수용소가 포착되고

있으며, 기존의 14개 수용소가 5개로 통합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 비정

부기구는 북한 전역에 6개의 대형 수용소가 존재한다고 보고하였다. 관리소

는 국가보위부가 관리하고, 교화소는 인민보안성이 관리한다. 한 비정부기구

의 보고에 따르면, 평안남도 개천(14호) 및 북창(18호), 함경남도 요덕(15호),

함경북도 화성(16호), 청진 (25호) 및 회령(22호)의 6개 관리소 시설이 북한

의 현존하는 6개 정치범 수용소라고 보고했다.

각종 보고에 의하면, 비정치범들은 보통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되

는 교화소로 이송된다. 한편, 체제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

은 정치범 수용소에 무기한 감금된다고 한다.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 다수

가 그곳에서 살아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북한 정부는 정치범 수용소

의 존재 자체를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각종 보고에 따르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고, 형무

소와 수용소 전반에 걸쳐 조직적이고 가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된다. 피구금

자와 수감자들은 폭력과 고문 행위를 지속적으로 보고하였다. 탈북자들의

정치범 수용소 내 공개처형 목격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탈북자들

에 따르면 일부 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이 음식을 거의 혹은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위생 상태는 엉망이

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탈출한 탈북자들은 수감 기간 동안 목욕과 세탁은

고사하고 옷조차 갈아입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한 비정부기구의 보고

에 의하면, 어떤 교화소의 경우 수용인원이 너무 많아 수감자들이 타 수감자

위에 눕거나 일어선 채로 잠을 청해야 한다고 한다. 상기 비정부기구는 한 강

제노동수용소의 간수들이 수감자 가족이 수감자에게 보낸 음식을 훔친 사례

를 보고하기도 하였다. 1월에는 한 비정부기구가 교화소의 비위생적 상태,

수감자 과다 및 전염병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에 관해 보고한 바 있다.

남한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교화소에 최대 1만 명의 정치범, 경제사범 및

일반 범죄자들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작년에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당국이 일부 수감자를 선정하여

여타 수감자를 감시하고 고문을 가하도록 했다는 탈북자들의 진술을 보고하

41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등 다양한 고문과 학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탈북자들은 고문, 질병, 기아,

비바람에 대한 노출 또는 이러한 원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인하여 많은 수

감자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해왔다.

작년에 발행된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보고서에는 평안

남도 개천의 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2년간 감금생활을 했던 탈북자

신동혁 씨의 고문 경험담이 담겨 있다. 신동혁 씨는 과거의 증언에서 수용소

내에 구타와 고문이 일상적으로 자행된다고 밝힌 바 있다. 피터슨국제경제

연구소(PIIE)에서 2010년에 발행한 「전환의 목격자: 탈북자를 통한 북한 통

찰(Witness to Transformation: Refugee Insights into North Korea)」 (이하

「전환의 목격자」)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서 구금된 경험이 있는 응답 탈북자

의 90 퍼센트가 강제적 금식을, 60 퍼센트가 구타나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27 퍼센트가 처형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2010 북한인권백서』에 의하면, 북한 관리들은 특

히 중국에서 송환된 여성들을 수감하는 수용소 내에서 출산을 금지하고 강

제 낙태를 명령하기도 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었다고 한다. 상기 백서

에 의하면, 경우에 따라 출산을 하더라도 교도관이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사

망할 때까지 방치한다. 또한 교도관이 여성 수감자를 성적으로 유린하기도

한다고 상기 백서는 전했다.

탈북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주로 강제노동수용소 구금 형식으로 실시되

는 노동교화는 일반적인 형벌로서, 이는 가혹한 환경 하에서 벌목, 채굴, 혹

은 농작물 재배 등과 같은 어려운 육체노동에 동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

화라는 명목 하에 수감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연설문을 암기해야 한다.

형무소 및 수용소의 상황

비정부기구, 탈북자 및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는 여러 유형의 형무소와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강제노동수용소와 정치범만을 수감하

는 별도의 수용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전환의 목격자」에 따르면, 북한

에는 크게 4개 유형의 형무소 및 수용시설이 있는데 관리소, 교화소, 집결소

와 노동단련대가 바로 그것이다. 22호 관리소의 경우, 가로는 25마일, 세로는

31 마일로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추산된다. 탈북자들은 관리소

4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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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대안 적용, 청소년 범죄자의 구금 현황 및 환경 문제 처리, 수감자의 복

역 기간이 해당 범죄 혐의에 대한 최대 형량을 초과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

한 재판 전 구금, 보석 및 문서보존 절차 개선 등의 사안을 검토하기 위하여

옴부즈맨이 수감자와 피구금자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

는 없었다.

d. 임의적 체포 또는 구금

북한 법률은 임의적 체포와 구금을 금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북한 정부는

이러한 금지 조항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환의 목격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국민의 구금, 체포, 기소

및 석방에 있어서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 비정부기구의 1월 보고에 의하면, 통화 재평가 이후 구권 화폐를 폐기

하거나 소각한 혐의로 40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도 보위부는 구권 화폐의

파손을 반역 행위로 간주하는데, 이는 화폐에 김일성의 초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공안 및 보위 기관의 역할

북한의 내부 보안 조직으로는 사회안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있다. 보

위기관에는 기관원들의 권력 남용을 조사하기 위한 적절한 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북한 사회 전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보원 망이 공식적 사회안전체제를 강

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물리적·전자적 형태의 주민 감시가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국내보안, 사회통제 및 기본적 공안업무를 담당하는 사회안전부는 북한

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 중 하나로, 144,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사회안전원을

관리하고 있다. 사회안전부의 담당 업무로는 법치질서 유지, 일반 형사사건

조사, 구금제도관리, 교통통제, 주민의 정치적 태도 감시, 신원조사, 인구조사

및 주민등록, 주민 이동 통제, 정부 기밀문서 관리, 정부 및 당 관리 보호, 정

부 청사 및 일부 정부·당 건설활동 지역 순찰 등이 있다. 국경경비대는 사회

안전부 소속의 준 군사 조직으로, 국경감시와 국내보안을 주된 업무로 한다.

43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탈북을 시도한 이들이 총살이나 교수형에 처

해졌다고 보고하였다.

남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인민무력부 산하의 강제노동수용소(함경북

도 소재) 수감자의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관리소의 총 수감 인원 은 15만 명 내지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

다. 워싱턴포스트와 동아일보는 수감자 수를 154,000명으로 추산하였다. 여

성 및 청소년 수감 인원에 대한 정보는 입수할 수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공

동 수감 여부 또는 여성의 경우 상황이 상이한지 여부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었다. 한 비정부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징벌집행시설로 이송된 정치범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고문을 당한다고 한다.

14세 미만의 자가 저지른 범죄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해당 형사

사건은 기각된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62조에 의하여 14세 이상 17세 미만의

자에 의한 범죄에는 사회적 교양처분이 적용된다. 한 비정부기구는 20인의

탈북 청소년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 중 5인이 1988년부터 2003년 사이

의 구금 기간 중에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음을 밝혔다고 보고하였다. 2004년

및 2005년의 형법 개정을 통하여 청소년에 대한 처벌이 완화되었는지 여부

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 비정부기구는 노동단련대 수감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며, 해당 시설 수

감자의 대다수는 중국으로부터 송환된 이들이라고 보고하였다.

수감자 및 피구금자가 면회인을 적절히 접견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는 입수할 수 없었다. 탈북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과거 수년 간 기독교인

들의 신앙이 적발될 경우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수감자 및 피구금자

가 검열을 거치지 않고 사법당국에 진정을 할 수 있는지 여부나 비인간적 환

경에 관한 신뢰성 있는 주장에 대해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또한 조사 결과의 공개 여부에 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북

한 정부가 수감 및 구금 환경을 조사하거나 감시하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도

없었다.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유엔 고문특별

보고관의 독립적 평가는 허용되지 않았다.

북한 정부는 인권 조사관들의 형무소 또는 수용소 시찰을 허용하지 않았

다. 비인간적인 과다인원 수감 상황의 완화를 위하여 비폭력 범죄자 수감에

4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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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서는 북한에서 수감된 경험이 있는 102인의 응답자 중 단 13 퍼센트만

이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재판 절차

정치적 사건의 경우 사회안전부는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의자를 국가안

전보위부에 회부하여 처벌을 받도록 조치한다. 공식적인 형사소송절차 및 관

행에 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며, 사법제도에 대한 외부인 참관은 교

통법규 위반 및 기타 경범죄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 국한하여 허용되고 있다.

북한 헌법은 세부적인 사법절차상의 보호장치를 명시하고 있다. 즉 법률

에서 규정하는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 모든 재판은 공개적으로 진행되

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에 의하면 피소자에게는 변호권이 주

어지는데, 재판이 열릴 경우 정부는 국선변호인을 배정한다고 한다. 일부 보

고서는 정치범과 비정치범의 구분에 주목하고 있으며, 정부가 비정치범에

국한하여 재판과 국선변호인을 허용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변호인이 존재한다는 징후는 없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및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에 의하면, 수용소 수감자의 대부분은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혐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수감되었다고

한다.

정치범 및 피구금자

정치범 및 피구금자 총계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나,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의 2003년도 보고서인 「감춰진 수용소(The Hidden Gulag)」에 따르면 약 15

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이 관리소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

인다. 워싱턴포스트와 동아일보는 강제노동수용소에 154,000명의 정치범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북한 정부는 체제 비판자를 정치범으로

간주한다. 지난해에 보고된 정치적 범죄로는 구권 화폐의 소각이나 정부의

통화 재평가에 관한 비판 등이 있다. 과거의 보고에 따르면 김일성 또는 김정

일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깔고 앉거나 김일성의 낮은 학력을 언급하는 행위

혹은 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 정치적 범죄로 간주되었다

고 한다.

45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비정부기구들은 1월에 북한 정부가 탈북을 방지할 목적으로 사회안전원

의 정찰활동 및 역할을 강화하기 위하여 “50일 전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제2절 d항 참조).

체포 절차 및 구금 중의 처우

2004년과 2005년의 형법 및 형사절차법 개정을 통하여 기소 및 재판 중의

구금 기간 단축, 영장에 의한 체포, 자백강요에 의한 증거 수집 금지 규정이

삽입되었다. 이러한 개정 내용이 실제적으로 반영되는지 여부 또는 북한 정

부가 비인간적 상황을 배제하기 위하여 자원을 확대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보위기관원들은 재판을 거치지 않고 정치적 범죄의 혐의가 있는 주민들

을 체포하여 수용소로 이송하고 있다고 한다. 남한의 한 비정부기구에 의하

면, 인민보안성은 2008년부터 검찰의 승인 없이 형사사건을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공안요원이 용의자를 체포하면 사

전판정 부서가 범죄사실과 증거를 검토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였다. 재

판소는 검찰이 조사를 완료한 이후에만 사건에 대한 공식 결정을 내렸다. 보

고에 따르면, 이러한 변경 조치가 단행된 것은 검찰의 부패 때문이라고 한다.

한 비정부기구는 조사관들이 조사를 목적으로 최대 2개월간 혐의자를 구금

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정부는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시킨 상태에서 용의자를 무기한 구류 및 수

감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피구금자의 가족 또는 기타

관련인들은 사실상 피구금자에게 적용된 혐의 및 형량에 관한 정보를 입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법부에 의한 구속적부심 제도는 법적 혹은 현실적

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e. 공정한 공개재판권의 박탈

북한 헌법에 의하면 재판소는 독립적이며 엄격히 법률에 의거하여 사법절차

를 수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립된 사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에 따라 중앙재판소는 최고인민회의에 귀속되며, 형법의 규정상

판사는 “부당한 판결”을 하였을 경우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전환의 목격

4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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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사회안전부는 남한 정보에 대한 통신 및 접근을 제한하고 탈북

방지를 위해 국경 감시를 강화하는 포고령을 발포하였다. 남한 언론은 이동

전화 통신을 방해하기 위한 전파교란기가 설치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외부 매체 접근자를 최대 10년간 수감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

생한다고 한다. 또한 언론은 중국 거류자와 통화를 할 경우 50만원 내지 1백

만원(278달러 내지 556달러) 상당의 벌금 부과 등 처벌이 강화되었으며, 남

한측과 통신을 하는 경우 정치범으로 처벌될 수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비정

부기구들의 보도에 의하면 정부 요원에 의한 중국산 이동전화 감시가 강화

되었고, 해외 거주 친척과의 통화를 위해 이동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체

포되는 사례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9월에 워싱턴포스트는 회령시가 해당 지역 내의 전화 통화 감시를 위하

여 14명의 인력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보통 통화 개시 후 2분 내지 3분 이내

에 통화 내용을 감청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 정부는 주민을 충성도에

따른 계층, 즉 성분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용, 고등교육, 거주지,

의료시설, 특정 상점에 대한 접근권 부여 여부 및 결혼 조건이 결정된다.

연좌제 처벌이 실시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사람이 피의자로

지목된 경우,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전체가 수감된다. 최고 3대에 걸쳐 연좌

제 처벌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한다.

AFP 통신은 탈북자 가족의 연좌제 처벌 등 한층 강화된 처벌에 관해 보

도하였다. 한 비정부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발표된 사회안전부 포고

령에 의하여 비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된 자와 그 가족은 정치범 수

용소로 이송된다고 한다.

제2절

시민적 자유의 존중

a. 언론 및 출판의 자유

헌법은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사실상 이러한

권리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정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

47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민사 사법절차 및 구제방법

북한 헌법 제69조는 “공민은 신소와 청원을 할 수 있다. 국가는 신소와 청원

을 법이 정한 데 따라 공정하게 심의 처리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

소와 청원에 관한 법에 따라 국민은 권익의 침해를 중지시키기 위한 신소를

제기하고 권익 침해로 인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러

한 권리는 존중되지 않는다고 한다.

작년에는 식량 부족 및 국민적 불만과 불안에 관한 보고 이후, 2009년 11

월에 단행된 통화 재평가가 역풍을 맞게 되었다. 북한은 2009년 11월의 통화

재평가를 통해 가구당 10만원(약 30달러)까지만 신권으로 교환해 준다는 지

침을 하달하였다. (주: 2009년 11월에 시행된 정부의 통화 재평가 이후 환율

이 변동하였다. 본 보고서 상의 근사치는 2010년 12월 현재 환율을 기초로

한다) 기타 재산환수는 허용되지 않았다.

f. 사생활, 가정, 주거 및 통신에 관한 자의적 침해

북한 헌법은 인신과 주거의 불가침 및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북한 정부는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북한 정부는 주

민들을 엄격히 통제한다. 북한 정부는 방대한 규모의 다각적 정보원 망을 활

용하여 체제 비판세력과 잠재적 문제세력을 파악하고 있다. 주민공동체 전

체가 보안 검열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반국가” 자료를 소지하거나 외국 방송

을 청취한 주민은 5년 이하의 노동교화 등의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

북한 정부는 서신과 전화 통화를 감시한다. 민간 전화회선은 국제전화의

송수신이 불가능한 시스템 상에서 작동되며, 국제 전화회선은 제한적 경우

에 한하여 사용할 수 있다.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국내 통신망이 구분되어 있

으며, 전화의 사용이 여전히 특권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전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더욱 다양한 주민이 국내 이동전화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사용자 수가 약 300,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

다. 이 시스템은 외국인용 시스템과 분리되어, 국제전화가 불가능하다. 중국과

인접한 국경지역에는 국제전화가 가능한 비인가 중국산 이동전화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휴대전화를 불법으로 사용하다 적발된 자는 체포

되어 벌금을 물거나 간첩혐의를 받거나 더욱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4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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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엘리트 계층에 국한하여 허용된다. 인터넷 서비스는 중국 내 서비스 공

급자가 공급하는 국제 전화선과 독일 서버에 연결된 국내 접속망을 통하여

제공된다. 북한에는 영재학교, 선별된 연구소, 대학, 공장 및 소수의 개인 등

과거에 비해 다소 많은 사용자들이 접할 수 있는 “인트라넷”이 존재하는 것

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콤퓨터센터가 게이트키퍼의 역할을 담당하며, 인트라

넷을 통한 접근이 허용되는 정보만을 다운로드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이

내부용 네트워크를 통하여 일부 이메일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2009년도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북한 주민은 소속 조직의 여타 구

성원들과 이메일 주소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함에 이메일

주소를 새겨 넣고 다니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2009년에 국경

없는 기자회는 북한의 엄격한 인터넷 제재를 이유로 북한을 “인터넷의 적”

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학문의 자유 및 문화행사

북한 정부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며, 예술작품도 통제하고 있다. 연극, 영화,

오페라, 아동 공연 및 서적의 주된 기능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작업에 기여

하는 것이다.

북한 언론에 따르면, 김정일은 관료들에게 전국의 학교에서 학과 교육보

다 사상 교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함을 빈번히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사

상적 교화는 대중매체, 학교, 노동자 및 주민 단체 등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상적 교화의 일환으로 단체행진, 군중대회, 무대공연 등이 지

속적으로 실시되는데, 수십만 명의 군중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1월에 한 비정부기구는 통화 재평가 이후 지방 관리들이 정부정책에 대

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지도 사업 강연을 했다고 보고하였다. 공안은 비

인가 경제활동에 대한 단속 강화를 위하여 “50일 전투”에 착수하였다.

북한 정부는 주민에 대한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하여 여전히 안간힘

을 쓰고 있다. 외국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거나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불

법 행위이다. 그러나 다수의 비정부기구들은 중국과 남한의 DVD, VCD, CD

및 비디오테이프가 지속적으로 북한에 밀반입되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 정

부는 남한의 대중문화, 특히 TV 드라마의 밀반입을 금지하는데 총력을 기울

49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을 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거나 체포 당하는 이들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헌법에는 청원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러한 권리를 존

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국가 행정에 관한 익명의 청원이나 민원이 제기되

는 경우,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가 작성자의 신원파악에 들어가며 작

성자는 조사 및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2001년 요덕 정치

범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2명의 언론인이 사망했다고 보고하였다.

보고에 따르면, 상기 언론인들은 김정일의 지도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수용

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사망과 관련된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북한 정부는 사실상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독립 언론은 존재

하지 않는다. 정부는 외국인, 그 중에서도 특히 언론인의 방북을 철저하게 관

리하고 있다.

외국 지도자의 방북 기간에는 외국 언론인들이 공식 사절단과 동행하여

보도를 하는 것이 허용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언론인은 엄격한 감시의 대상

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정부 관리나 거리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언론인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 방문자는 휴대전화 및 위성전화를 방문

기간 내내 공항에 보관해야 한다.

엄격한 국내 언론 검열이 지속되고 있으며, 정부의 공식 노선에서 벗어난

보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북한 정부는 정치 엘리트를 제외한 모든 주민을 대

상으로 외국 방송의 청취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라디오 및 TV 수신기는 별도로 개조하지 않는 이상 국내 방송만을 수

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해외에서 구입한 라디오의 경우 국내 방송만을 수신

할 수 있도록 개조한 후에만 사용이 허용된다. 엘리트와 호텔 등의 외국인용

시설은 위성을 통한 국제 TV 방송 수신을 인가 받을 수 있다. 북한 정부는 해

외에서 송신되는 모든 라디오 방송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여전히 시행하

고 있다. 우편서비스는 제한적이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전화번호부

는 기밀 정보로 간주된다고 한다.

인터넷의 자유

국민의 인터넷 사용은 고위 관리 및 특별히 선별된 소수의 대학생 등 기타

4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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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고 보도하였다(제1절 e항 참조).

결사의 자유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실질적으로 이 조항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북한 정부가 설립한 단체들을 제외하고 외부에 알려진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인 협회는 주로 협회 구성원에 대한 정부의 감

시와 통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c. 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에 관한 세부 내용은 2010 국제종교자유보고서(www.state.

gov/g/drl/irf/rpt/)에서 확인할 수 있다.

d. 이동의 자유, 국내 유민, 난민 보호 및 무국적자

북한 법률은 “거주 및 여행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사실상

이러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내 여행을 면밀히 통제하였다. 북한 정부는 국내 유민, 탈북자, 송환 탈북

자, 망명 신청자, 무국적자 및 기타의 자를 보호 및 지원하기 위하여 유엔 난

민고등판무관사무소 또는 기타 인도주의 단체에 협조한 바 없다.

북한 정부는 국내 이동의 자유를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 극소수의 엘리트

및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는 주민들만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으며, 효율적

교통망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도시의 주요 출입 도로에 군경 검문소가 설치

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의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야간 및 일요일의 자가용

이용은 제한된다.

정부는 식량 배급, 주택, 보건 및 일반 주거 환경이 타 지역보다 월등히

우수한 평양에 대한 거주 또는 진입 허가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북한을 방

문한 외국관리들은 지방에서 평양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상에서 검문소들

을 목격했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해외여행도 제한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정부 관리, 신뢰할

수 있는 사업가, 예술가, 체육인 및 학자에 한하여 해외여행을 위한 출국 비

자를 발급한다.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에게는 친척 방

51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이고 있다. 언론 보도 및 비정부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외국 영화 시청을 금

지하기 위하여 공안은 정기적으로 아파트 단지의 전기를 불시에 차단한 후

각 아파트에 난입하여 DVD 플레이어에 어떤 DVD가 끼워져 있는지 조사한

다고 한다.

북한 정부가 외국 DVD를 단속한 사례는 수 없이 많다. 2월에 남한 언론

은 통화 재평가 이후 남한 비디오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가택수색이 빈번

히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지난해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2009년도에 35세의 한 남성이 성룡이

출연한 외국영화 “쌍룡회”를 시청하다 적발된 후 6개월간 강제노동수용소

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한 비정부기구는 6월에 함경북도 지방 관리들이 불법 한국 영화를 단속

했다고 보고하였다. 관리들은 경고 없이 주택에 진입하여, VCR 및 DVD 플레

이어에 한국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자장치를

검토하고, 텔레비전 및 라디오에 고정 채널이 있는지를 확인하였으며, 해당

가정에 MP3 플레이어 등 기타 전자제품이 있는지를 검사하였다. 또한 녹음

기와 컴퓨터를 압수하였고, 남한 DVD 소지를 이유로 아홉 가족을 체포하였

다고 한다.

한 비정부기구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의 단속 보안원들이 30명의 다른

이들과 남한 영화를 돌려 본 혐의로 예술학원 학생 세 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미성년자일 뿐 아니라 출신 성분이 좋아서 가혹한 처벌을 내

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b.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실질적으로 이 조항을

준수하지 않고 있으며 사전 승인을 받지 않은 모든 공공 집회를 지속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전반적으로 어려운 생활여건, 통화 재평가에 대한 사회적

분노 및 정치적 불안의 가중이 정부에 대한 가시적 저항으로 이어지지는 않

5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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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은 중국측 국경에서 사망하고 두 명은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 법률은 망명은 물론, 정치적 망명을 목적으로 외국 외교공관에 진

입하려는 시도를 포함한 망명기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제 3국에

망명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목적으로 국경을 넘는 자는 5년 이상의 “노동 교

화”에 처해진다. 보다 “심각한” 사안의 경우 송환된 탈북자 또는 망명자는

무기징역과 강제노역, 재산몰수, 혹은 사형 등에 처해진다. 비자발적으로 본

국에 송환된 다수의 탈북 시도자들은 혹독한 조건 하에 구금된다. 일부 소식

통에 따르면, 외국인과 많은 접촉을 한 주민이 가장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라

고 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북한 정부는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국경

을 넘는 주민(단지 몇 개월의 강제노역형 혹은 경고 조치 대상)과 반복적 혹

은 정치적 목적으로 국경을 넘는 주민(때때로 사형을 포함한 중형 부과 대

상)을 구분하였다. 북한의 법률은 불법 월경 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노동

교화”를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지난해에도 모든 탈북자를 형무소 또는 교화소에 수감한다

는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환의 목격자」에 따르면, 2004년에 조사된 탈북 성공자의 약 4분의 1

이 최종적으로 탈북에 성공하기 이전에 한 차례 이상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

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혔다고 한다.

6월 13일에 남한의 한 비정부기구는 13인의 탈북자가 중국 단동에서 체

포되어 그 중 열 명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보고하였다. 피 송환자는 2인

의 남성과 8인의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5세와 6세의 아동 세 명은 석방되

었다.

5월 31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북한 당국이 탈북자 및 부재자 색출을 위

하여 모든 가정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호적대장에 등재된 가족 구

성원이 해당 가정에 부재 중인 때에는 철저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부재자에

관한 질문에 적절하고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하여 구속되어 처벌을 받은 이

가 1,000여 명에 달한다. 또한, 북한 정부는 부재자 수를 조사하기 위하여 17

세 이상의 모든 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공민증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7월 26일, 남한의 한 비정부기구는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 3인이 처형

53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문이나 소규모 교역을 위한 단기출국서류가 발급된다.

북한 법률이 강제이주를 금지하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

다. 하지만 북한 정부는 일부 주민들에 대하여 국내 강제 이주를 단행하고 있

다고 한다. 과거 북한 정부는 국내 재정착 사업을 강제 시행하여 수만 명의

평양 주민을 지방으로 이주시켰다. 그 배경에 사회공학적 목적이 다소 작용

한 것이라는 보고도 있지만,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단으로 이러한 이주 정책

을 이용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정부는 특별 대우를 받는 일부 상이용

사를 제외한 지체·정신 장애인과 정치적으로 사상이 의심되는 주민들에 대

하여 국내 강제이주를 실시함으로써 이들을 평양에서 추방하였다.

북한 정부는 합법적 이민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2008년부터 국경 지

역의 보안을 강화함으로써 허가증 없이 중국으로 밀입국하는 주민의 수가

대폭 감소되었다. 비정부기구들의 보고에 따르면, 국경 지역 주민을 대상으

로 하는 엄격한 순찰 및 감시는 물론 뇌물을 받는 대가로 월경자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국경경비대원에 대한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수년간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밀입국하였

다. 수천에서 수십만 명의 북한 주민이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비정부

기구들은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각종 보고에 따르면 중국 동북부 지역의 북

한 주민 수는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북한 주민은 중국 동북부에 반영구

적으로 정착했고, 일부는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나머지는 제3국 망명과 영

구정착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수천 명의 탈북자들이 제3국에 정착하였다.

사회안전부의 2월 1일자 포고령에는 탈북자에 대한 특별 조항이 포함되

어 있는데, 이들을 사형으로 처벌 가능한 “민족반역죄”로 다스린다고 규정

하고 있다. 이 포고령은 중국산 휴대전화 및 남한 비디오 소지자에 대한 조사

와 처벌을 강화하고 탈북을 방지하는 등,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적대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50일 전투”에 관한 비정부기구들의 보고와 일치하고

있다. 국경 지역의 보안이 강화되었으며, 남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가택수

색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남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북한 정부는 보안원들에게 국경을 넘어 탈북

을 시도하는 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남한 언론은 12월 14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은 북한 주민들이 북한 국경경비대의 사격으로

5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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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와 동일하였다. 정부는 공공연하게 투표 과정을 감시했으며, 그 결과 투

표율과 찬성율이 100%에 육박하였다.

북한 정부는 몇몇 “소수 정당”을 설립하였다. 평당원 조직을 갖추지 못한

이들 정당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명목상의 의석을 배정받은 당직자들로만 구

성되어 있다. 북한 정부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간의 경쟁을 “타락한 자본주

의”의 “인위적 산물”이라고 일관되게 비판해 왔다.

2003년 선거 이후, 최고인민회의 의원 중 여성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5%이지만, 노

동당 지도부 요직에 있는 여성은 거의 없다. 지난해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

희 경공업부장이 당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였고, 장군 칭호를 부여 받았다.

북한은 단일민족국가이다. 공식적으로 북한에는 소수민족이 존재하지

않고, 정부 내의 소수대표제 현황에 관한 정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제4절

공직자의 부패 및 정부의 투명성

북한 법률에 관료의 부패에 대한 형사처벌이 규정되어 있는지 여부, 정부가

해당 법률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있는지 여부, 그리고 법망을 피한 관료들

의 부패 행위가 얼마나 빈번히 자행되고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

다. 다만 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전해진다. 보위기

관 내의 부패 역시 만연해 있다.

구호식량이 군부와 정부 관료 집단으로 전용되고 있고 뇌물수수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는 정부 및 보위기관 내의 부패를 시사한다. 북한 정

부는 구호식량 전용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면서도 내부 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암시한 바 있다.

6월의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통화 재평가 이후 정치적 연줄이 있는

이들은 저축자산의 압수를 피할 수 있었던 반면, 시장 상인들의 신권 교환 금

액에는 상당한 제한이 부과되었다. 함흥 출신의 한 여성은 자신의 친척이 지

역은행 책임자로부터 공식 교환 한도의 30배에 달하는 3백만원(1,667달러)

55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들의 탈북을 지원한 두 명의 중개인은 무기징역형

을 언도 받았다고 한다.

난민 보호

북한 법률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및 1967년 유엔 의정

서에 따른 망명자 혹은 난민 지위의 부여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북한

정부는 난민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다. 북한 정부

는 난민 혹은 망명자 지위를 부여한 바 없다. 또한 난민이나 망명자를 위한

북한 정부의 정책이나 규정은 알려진 바 없으며, 북한은 국제 난민 포럼에 참

가하지 않는다.

제3절

정치적 권리의 존중: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의 권리

북한 주민들에게는 평화적으로 정부를 교체할 권리가 없다. 김정일이 장악

하고 있는 조선노동당과 인민군이 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정권 내 정치구도

에 관한 신뢰할만한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입법기구인 최고인민회의는 매

년 수 일간의 회기를 통해 당지도부가 제출한 결의안과 법안을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거수기 역할만을 수행한다.

9월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당·군 고위직으로

격상되면서 김정일의 후계자이자 북한의 실질적인 제2의 권력자로서의 구

도를 확정 지었다.

북한 정부는 김정일과 김일성을 거의 신격화하여 숭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들은 지도부에 대한 충성과 국가 이데올로기 및 권력에

대한 순응을 목적으로 하는 강도 높은 정치·사상적 교화를 받고 있다.

선거 및 정치 참여

2009년 3월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 선거는

공정한 방식에 의한 자유선거가 아니었고, 선거 결과도 사실상 지난번 선거

5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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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부는 북한이 다수의 유엔 인권 협정을 비준하였음을 강조하지만,

정작 유엔 대표들에 대한 협조는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마

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신임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북한을 방문하여 조사 권

한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 정부는 계속해서 특별보고관

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인권조약 시행과 관련하여 북한정부

에 협조를 제공하겠다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제안마저 거부하였다.

제6절

차별, 사회적 학대 및 인신매매

북한 헌법은 모든 국민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상 북한 정부는 국민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한

다. 또한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도 여전히 만연해 있다.

여성

북한 정부는 강간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해당 법률의 세부

내역과 그 실효성은 확인된 바 없다. 수용소에 수감된 여성들을 상대로 교도

관에 의한 강간과 강제 낙태가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가정 내외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심각한 상황이다. 탈북 여성들의 보고

에 의하면, 북한에서 “성폭력”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만 “성희롱”은 정의조

차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1946년도에 제정된 “남녀평등법”에도 불구

하고, 가부장적 전통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일반적으로 용인되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진술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

여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고 한다.

북한에서 허용되는 출산권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다. 북

한이 2002년도에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에 제출한 최초 보고서에 의하면,

“각 가정 별로 법률, 규정, 도덕 및 관습에 따라 각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가족

계획을 실시한다…여성은 자신의 희망,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여 자녀의 터

57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상당의 신권 교환을 허가 받았다고 밝혔다.

12월에 남한의 한 비정부기구는 국가보위부가 밀수자들에게 탈북자를

신고할 경우 밀수행위를 계속할 수 있도록 불처벌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예시적인 것일 뿐 일체의 사례를 나열한 것이 아니며, 부

패의 정도는 파악되지 않았다.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정부는 2008년도에 부정부패에 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하였는데, 이는 특히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민족화해협의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민족경제협력연합회는 중국산 제품을 “북한제”로 표

시하여 남한에 면세품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했다

고 한다. 작년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새로이 파악된 내용은 없었다.

정부 관료들에 대한 재산공개법 적용 여부와 부패 척결 담당 정부기관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정부 관련 정보에 대한 일반대중의 접

근을 허용하는 법률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5절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의 인권 침해 의혹 조사에 대한 북한

정부의 태도

북한에는 국내 인권상황을 감독하거나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는 독

립적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설립한 북한 인권위원회는 북한 내

인권침해사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왔다.

북한 정부는 국제 인권 전문가 및 비정부기구들의 방북 요청을 묵살해왔

다. 지난해 비정부기구와 다수의 국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

을 일관되게 증언하였다. 북한 정부는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지적한 국제

사회의 성명을 정치적 목적에 의한 내정간섭이라며 비난해왔다. 북한 정부

는 북한 내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일부 국가들이 자국의 인권

침해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태도야말로 인권 존중

원칙을 위협하는 위선적인 행태라고 맞서고 있다.

5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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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형법 제153조는 15세 미만의 여성과 성교한 자는 “중형”에 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3월에 한 남한 언론매체는 부적절한 학교 성교육이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

는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폭력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2

월에 한 남한 비정부기구는 통화 재평가 이후 함경북도 시장에 (꽃제비로 알

려진) 노숙 아동 수가 증가했다고 보고하였다. 한 비정부기구는 8월에 신성천

역의 노숙 아동들이 강도 행위를 시도하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고하였다. 보

고에 따르면, 이후 북한 당국은 해당 아동들을 구타, 체포 및 살해했다고 한다.

비정부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상당 수의 노숙 아동이 존재하는데 이들 다

수가 고아로서 공립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아동이라고 한다. 북한은 1980년

국제아동유괴의 민사적 측면에 관한 헤이그 협약(Hague Convention on the

Civil Aspects of International Child Abduction)의 당사국이 아니다.

반 유대주의

유태계 인구의 존재는 알려진 바 없으며, 반 유대주의 행위는 보고된 바 없다.

인신매매

인신매매에 관한 정보는 국무부에서 발간한 연례 인신매매보고서(www.

state.gov/g/tip)를 참조한다.

장애인

2003년도에 장애인에게 평등한 공공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

되었으나 시행령은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이다. 북한의 전통적인 사회규

범에 따라 신체적 장애를 지닌 이들에 대한 차별이 용인되고 있다. 우대를 받

는 상이용사를 제외한 지체·정신 장애인들은 평양에서 국내의 기타 지역으

로 추방되거나, 수용소 내에 격리되거나, 강제 불임시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장애 관련 국제 비정부기구인 세계밀알연합회에서 2006년에 발간한 보고서

에 따르면, 북한 전체 인구의 약 3.4%가 장애인으로 분류되는데 이들 중

64%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장애자보호연맹이라는 국내 기구가 이러한 수치를 확인한 바 있다.

59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울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만, 일반적으로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자녀

의 터울을 결정한다”고 한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2008년도의 모성사

망률이 출생인구 10만 명 당 2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2000년도

에 북한은 유엔아동기금의 복합요인조사에서 의사, 간호사 또는 숙련된 산

파를 통해 분만되는 신생아가 96.7 퍼센트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 헌법은 “여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고 규

정하고 있다. 비례적으로 여성의 동등한 노동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노동당 또는 정부의 고위직에 오른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언론과 싱크탱크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상근직을 부여 받을 확률은

낮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 외부 영역에서 일할 기회는 더 많다고 한다.

아동

북한 시민권은 부모를 통해 획득하되, 일부의 경우 북한 영토 내에서의 출생

을 통해 획득하기도 한다. 국가에서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11년간의 의무

교육을 무상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아동은 출신성분 및 가족구성원의 범죄로 인한 “연좌제 처

벌” 원칙에 따라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처벌과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전

해진다. 또한 비정부기구 보고에 따르면 아동들이 비공식적 비용이나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과 학계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아동은 5학년부터 매주 수 시

간의 의무군사훈련을 이수해야 하며, 전 아동이 학교에서 사상교육을 받는

다고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장애아동에 대해 사실상의 차별이 존재하고 장

애아동들에게 효과적으로 보건·교육·사회보장 혜택을 보장하기 위한 정

부의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을 들어 수 차례에 걸쳐 우려를 표명해왔다.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혜택이 남아와 여아에게 동등하게 제공되고 있는

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의료제도의 수혜 여부는 대체로 정권에 대한

충성도에 의해 좌우된다. 사회 및 가정에서의 아동 학대에 관한 정보는 입수

할 수 없었다.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자들 사이에서 여아 인신매매가 발생하

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58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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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에는 조선직업총동맹이라는 유일의 노동단체가 존재한다. 조선직업총동

맹 산하의 노조들은 고전적인 스탈린주의 모델에 따라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생산 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자를 동원하고 보건·교육·

문화·복지 시설을 제공할 책임을 진다.

노조에게는 파업권이 없다. 북한 법률에 의하면, 불법 집회 참가자의 경

우 5년간의 노동 교화에 처해질 수 있다.

b.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북한의 노동자들에게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북한 정

부는 업무 배정부터 임금 결정에 이르기까지 고용과 관련한 일체의 사안을

통제한다. 합작투자사업 및 외국인소유회사는 정부의 점검을 거친 노동자

명단에서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공장 및 농장 노동자들은 관리위원회에 편

입되며, 동 위원회는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한 법

률은 외국인 기업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수 있으며 외국인 기업은 노조

활동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 법률은 노조활동에 간

섭하는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조활동 참여를 시

도하는 노동자들을 고용주의 보복행위로부터 보호하지도 않는다.

나진-선봉 지역에는 경제특구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 내 타 지역과 동일

한 노동법이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적용되며 이곳에서 근무할 노동자들은

정부에서 직접 선발하였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비무장지대에 인접해 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설립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공단 지역의 노무관리를 위하여 남북한 간에 협의된 노

동문제를 다루는 특별규정이 현재 시행되고 있다. 상기 규정에는 결사의 자

유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조항은 없다.

남한의 통일부에 따르면, 12월 현재 총 122개의 남한 기업이 개성공단에

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12월 현재 약 46,000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공

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공단 근로자 후보명

단을 제공하면 한국 기업이 근로자들을 최종선발하고 있다고 통일부는 전했

다. 남북한간 협약에 따라,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은 각종 사회보장공제

액의 공제 이후 월 60.77 달러의 최저기본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개성공

61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한 외국 비정부기구는 조선장애자보호연맹으로부터 북한 내 활동 허가를 받

았다고 보고하였다. 상기 비정부기구는 정형외과병원, 청각장애아동학교, 탄

광병원 및 장애노인요양원에서 지원 및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

았다. 북한 정부가 장애인들의 투표권 또는 시정 참여권을 제한하는지 여부

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조선장애자보호연맹은 전국의 장애인 관련 업무를 조율하기 위하여

1999년에 설립되었다. 2008년에 조선장애자보호연맹은 세계청각장애인협

회(WFD)와 협력체계를 구축하였다. 세계청각장애인협회에 의하면, 북한은

청각장애아동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라는 김일성의 1959년도 지시에 따라 설

립된 9개의 청각장애인 학교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UNICEF는 고도의 영양실조는 아동의 신체적 성장과 사회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하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 인

구의 33%에 해당하는 780만 명이 영양부족 상태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FAO

는 북한 아동의 37%가 성장지연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기반한 사회적 학대, 차별 및 폭력 행위

동성애에 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에 관해서는 입수된 정보가 없었다.

기타 사회적 폭력 또는 차별

HIV/AIDS 감염자에 대한 차별에 관해 입수된 정보가 없었다.

제7절

노동자의 권리

a. 결사의 권리

북한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러한 규정은 준

수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설립한 노동단체를 제외한 기타 노동단체는 알

려진 바 없다. 조선노동당은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북

60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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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보고가 있었다. 북한은 150일 전투를 통해 식량부족 해결과 사회기간시

설 재건을 위해 근로에 더욱 매진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촉구한다. 이러한 노

동력 동원 운동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

설한다는 북한의 원대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이

다. 북한은 150일 전투 직후, 생산량 추가 증대를 위한 2차 노동력 동원 운동

인 “100일 전투”에 착수하였다.

6월의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국영 청진건설사업소와 관련이 있는

모든 가정은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기하여 청진의 유일한 포장도로

를 재포장하고자 매달 17자루의 자갈을 지역 당 위원회에 바쳐야 하는 의무

가 부과되었다.

벽돌 제조, 시멘트 제조, 채탄, 채금, 철 생산 및 섬유산업에서 강제노동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국무부에서 발간한 연례 인신매매보고서

(www.state.gov/g/tip) 를 참조한다.

d. 아동 노동 금지 및 최저 근로 연령

북한은 법률에 따라 16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동들은 주요 도로 제설 작업 등의 특별 과제 완수를 지

원하거나 생산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단기간 동안 공장이나 농장에 배치되

는 경우가 있다. 또한 북한의 아동들은 문화 활동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

다.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 아동들은 혹독한 강제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

다. 보고에 따르면, 수천 명의 아동이 부모와 함께 강제노동수용소에 감금되

어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또한 국무부에서 발간한 연례 인신매매보고서 (www.state.gov/g/tip) 를

참조한다.

e. 최저 근로 조건

국영산업 부문의 최저임금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입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례 보고에 의하면, 평균 일급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적절한 생활 수

준을 유지하기에 불충분하다. 2002년 경제 개혁 이후 주민들이 가족의 생계

를 꾸리기 위해 현금을 벌고자 애쓰면서 보수제도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게

63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업지구 노동법에 따라, 임금은 미 달러화로 결정된다)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시간외수당을 합산할 경우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각종 공제 전 월평균임금은

약 88달러라고 한다. 그러나 투명성의 결여로 인해 노동자의 정확한 실수령

임금 액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특별법 규정에 따라 임금은 노동자

본인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지만 사실상 북한 정부 관리 계좌에 입

금되고 있으며, 북한 정부는 각종 사회보험 비용 등을 원천징수한 잔액(총액

의 약 70%라고 함)을 생필품으로 교환 가능한 “물품배급표”와 공식 환율로

환전한 북한 원화로 혼합하여 지급하고 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는 고

용주 선택권이 없다.

c. 강제노동 또는 의무노동의 금지

북한 법률은 강제노동 또는 의무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매

주의 유일한 휴무일인 일요일을 포함하여 건설 사업이나 기타 노동 과업에

주민을 동원하고 있다. 형법은 아동의 강제노동을 금하고 있으나, 아동의 강

제노동이 발생하고 있다는 일부 보고가 있었다(제7절 d항 참조). 또한 북한

정부는 빈번히 대중집회나 공연에 대규모로 주민을 동원하고 있다. 전통적

으로 “노동 교화”와 “노동을 통한 재교육”은 정치범을 처벌하는데 흔히 활

용되는 도구이다. 정치범의 경우 계속해서 벌목, 채굴, 작물 재배 및 제조와

같은 강제노동 및 의무노동이 일상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비정부기구인 휴

먼라이츠워치는 한 탈북자가 탄광에서 하루 16시간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 형법에 따라 노동가능 연령대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지며,

“노동 규율과 근로 시간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농장 및 공장에서 노동자

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수많은 보고가 있

었다. 한 비정부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단기경제계획 실시 기간 중에 공장 및

농장들은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연장하고, 수선 및 수리용 물품 구입을 위해

곡물과 현금을 기부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형법에 따라 경제계획목표에

미달한 자는 2년의 “노동 교화”에 처해질 수 있다.

2009년 4월부터 9월까지, 북한 정부가 근로시간 증대 및 생산목표 제고

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노동력 동원 “150일 전투”를 개시했다는 다

62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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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정 하에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 하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계약 노동자들은 아프리카, 중유럽 및 동유럽(특히 러시아), 중

앙 아시아,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의 경우 고용 기업은 북한 정부에 임금을 지급하며 노동자들이 실제로 얼마

의 임금을 수령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해외 근무 기간 동안 노동

자들은 북한 정부 관리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숙소와 근무지를 제외하고

는 이동의 자유를 향유할 수 없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수천 명의 북한 노동자들의 경우, 북한 당국이

일부 노동자들의 임금을 귀국 전까지 보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임

금을 약속 받고 이곳에 온 노동자들이 당국으로부터 기만을 당할 위험에 처

해있다.

65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되었다. 과거에는 국가가 무상으로 공급하거나 상당 수준의 보조금 지원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오던 집세와 교통비 등을 이제는 노동자들이 직

접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방북 외국인들에 따르면, 많은 공장 노동

자들이 지도원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자신이 출근한 것처럼 가장한 후에 정

기적으로 근무지를 이탈하여 다양한 장사와 사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또한 전력난으로 인해 가동을 중단한 국영 공장들이 즐비하다

고 전했다.

직업 배정에 있어서 출신성분과 혈연관계는 직업적 역량만큼이나 중요

한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과 합작회사를 설립한 외국기업들은 당국의 심사

를 거친 후보자 명부에서 모든 직원을 선발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북한 헌법은 1일 8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은 이보다 많다고 한다. 이러한 추가 근무시간 중 일부

는 김일성 부자의 저서를 학습하는 데 의무적으로 할당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헌법은 유급 휴가, 공휴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요양소와 휴양소의

이용 등 “휴식에 대한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실제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북한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은 북한 노동자들에게 연 15일의 유급 휴

가와 더불어 유급 국경일이 허용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일부 노동자는 공휴

일에도 대중집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행사 연습을 위해 근무시간에

예행연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들은 적어도 국경일의 일부를 소

속 작업반원들과 함께 “축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틀간의 연휴

가 주어지는 경우에만 가족과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많은 작업 현장의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산업재해율이 높은 상황이다. 헌

법은 국가가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근로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은 인명 피해나 기타 “중대한 손실”이 야기되는 경우에 한하여, 근

로자 안전 및 근무 조건과 관련된 “노동 안전 명령”의 불이행 행위를 처벌하

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유해한 근로 환경에서 해방될 수 있는 명시적

권리가 없다.

북한 기업의 직원으로 해외에서 근무하거나 북한 정부와 외국 기업간의

642011 여름 생명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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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3월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비난했다. 천안함 침몰로 해군장병 46

명이 사망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Luis Moreno-

Ocampo) 검사가 12월 이 두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전쟁범죄 가능성에 대한

예비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식량난, 영양실조와 보건

국제앰네스티는 7월 북한 당국이 계속되는 식량난에 늑장대처하고 충분히

대응하지 못해, 주민의 보건 상태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당국에 국제적인 인도주의 지원을 요청하고, 효과적인

배급을 방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공여국 정부에는 정치적 고려가 아닌 필

요에 기반해 유엔을 통한 원조를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유니세프(UNICEF)

는 북한에서 매년 5세 미만 영유아 4만여 명이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리고,

이 중 2만 5,000명은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엔 지원아래 북한당

국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5세 미만 영유아 3분의 1 이상이 발육장애를 겪

고 있다고 조사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영유아 45퍼센트가 발육장애를 겪었

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북한 내 여성과 아동 최소 350만 명에게

‘긴급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며 식량난으로 인해 이 상황이 더욱 악

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금 상황

북한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최소 6곳 있으며, 정치범 수천 명이 구금되어 있

었다. 수감자들은 기소나 재판과정 없이 자의적 구금을 당하거나 무기한 구

금 상태에 있었다. 수감자들은 초법적 처형, 고문, 기타 부당대우 및 강제노

동 등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지속적으로 당했다. 고문은 수용소에

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수감자들은 휴식시간이 거의 없

이 힘든, 때로는 위험한 강제노동으로, 혹은 적절하게 식량이나 의료서비스

67국제앰네스티 2011년 연례보고서: 북한편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11년 5월 12일 프레스센터

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1 연례보고서”(번역: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발표하였다.

본문은

국제앰네스티에서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인권현황

보고서 중 북한보고서이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협의하여 전재합니다.

자료 제공에 협조해주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감사드립니다.

결사·표현·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당했고, 자의적 구금과 고문, 각종

부당한 대우로 인한 사망과 처형이 이루어지는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지

속되었다. 당국은 모든 반대의견을 묵살했고, 언론을 엄격히 통제했다. 수용

소 수감자는 강제 노동을 해야 했고 참담한 상황에 처했다. 미숙한 경제정책

및 운용, 불리한 기상 조건, 국제원조 감소가 결부되어 수백만 명이 식량부족

을 겪었다. 수백만 명이 필수의약품을 구할 수 없었다. 수천 명이 식량과 경

제적 기회를 찾아 중국으로 가는 국경을 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중국 당국

에 체포되어 구금, 신문, 고문을 당해야 하는 북한으로 강제송환 됐다.

배경

북한은 지도자 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은

작년 9월 대장칭호를 부여 받아, 후계자임을 시사했다. 북한이 11월 북방한

계선(NLL) 인근 연평도를 폭격한 이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었다. 북한의

폭격으로 해병대원 두 명과 민간인 두 명이 사망했다. 한국 전쟁(1950-1953

년) 이후 군사분계선을 넘는 교전으로 민간인이 사망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662011 여름 생명과 인권

자료

국제앰네스티 2011년 연례보고서*- 북한편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원수: 김정일

행정부 수반: 최영림(6월 김영일에서 교체)

사형제도: 존치

인구: 2,400만

평균수명: 67.7세

5세 미만 영유아사망률(남아/여아) 63/63(1000명 당)

Page 35: 통권 제60호 2011년 여름 생명과 인권 - NKHRkor.nkhumanrights.or.kr/myhope/n_r_reports/20180705140733.pdf36 자료 미국 국무부 2010년 인권보고서: 북한편 66

주민 수천 명이 중국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

다. 북한에 송환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했고 구금시설로 이송됐

다. 남한 NGO와 접촉하거나 남한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

들은 더욱 가혹하게 처벌 받았다.

사형제도

북한은 계속해서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일부는 공개적으로 진행되며, 일부

는 비밀리에 진행된다. 최소 60명이 공개 처형당했다고 알려졌다.

● 군수공장 노동자 정모씨는 1월 말 함흥시 동부 해안도시에서 공개 처형 당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불법 중국 핸드폰을 통해 몇 년 전 남한으로

탈북한 친구에게 쌀값과 기타 생활상에 관한 정보 등 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였다.

국제감시

3월, 북한은 2009년 북한의 국가별 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제출된 보고서에 답했다. 그러나, 북한은 UPR의 권고

를 단순히 주목할 뿐이라면서, 정례검토에서 나온 어떤 권고안도 받아들이

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거부한 첫 국가가 되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앞서

국가별 보편적정례인권검토에 협력하겠다는 약속과 배치됐다. 6월 인도네시

아 출신 마루주키 다루스만(Marzuki Darusman)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이 새로 임명되었다.

번역: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69국제앰네스티 2011년 연례보고서: 북한편

를 제공받지 못해 사망했다. 많은 수감자들은 작은 위반행위로도 처형당했

고, 다른 사람들은 처형 장면을 지켜보도록 강요 받았다.

● 한국전쟁(1950-1953년) 당시 국군포로였던 정상운(84세)은 2월 중국 당국

에 의해 북으로 강제 송환된 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보인다. 정

상운은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탈북한 수천 명 중 한 명으로 보인다. 중

국에 도착한 직후 정상운은 지린성 당국에 의해 체포, 구금되었다가 2월

북으로 강제 송환됐다. 강제송환 당시 정상운은 노쇠해 부축을 해야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정상운은 북한에서 아무런 재판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함경남도에 있는 요덕 정치범 수용소(관리소)에 수감되었다.

● 미국 선교사이자 인권 활동가인 로버트 박(28세)은 43일간 평양에 있는 구

금시설에서 억류되었다가 2월 풀려났다. 로버트 박은 북한의 정치범이 겪

는 참상을 알리기 위해 2009년 12월 25일 입북한 후 체포되었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8월 북한을 방문한 후 또 다른 미국인 아이잘

론 곰즈(Aijalon Gomes, 31세)가 석방되었다. 아이잘론 곰즈는 로버트 박의

친구로 1월 북한에 불법 입국해 노동교화형 8년을 선고 받았으며, 미화 약

6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표현·결사·이동의 자유

북한 헌법에서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북한 당국은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심각한 제약을 가했다. 정부 및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을 할 경

우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는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북한 정부는 모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배급했으며, 주

민들은 타 국가 방송을 듣기 위해 수신기를 고칠 수가 없었다. 외국 방송을

듣다가 발각되면 구금되어 장기형량을 선고 받았다. 북한 주민들은 국내 및

외국 여행을 제한 받고 있었다.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도망친 북한

682011 여름 생명과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