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54

Upload: others

Post on 10-Aug-2020

0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Page 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 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

� �

[세미나�구성]13:00~14:30 [강의] 성경으로 풀어가는 세계관 _이승구 (합신대 조직신학 교수)

14:40~16:40 [포럼] 사회 : 안성희 (남포교회 목사, CTC 팀장)

발제 1. 교육, 세계관 아카데미로 세우다

_김정일 (삼일교회 목사, 세계관아카데미 담당)

발제 2. 기독교세계관적 교회란 무엇인가

_김신정 (주님의십자가교회 목사, <리포밍처치> 저자)

발제 3. 교회, 기독교세계관이 상실된 시대에서

_신동식 (빛과소금 교회 담임목사, <빠름에서 바름으로> 저자)

16:40~17:00 광고 및 폐회

Page 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목� � � 차

포럼�발제문

� �

강의 기독교세계관이란 무엇인가 5

이승구 (합신대 교수)

발제 1. 교육, 세계관 아카데미로 세우다 7

김정일 (삼일교회 목사, 세계관아카데미 담당)

발제 2. 기독교세계관적 교회란 무엇인가 17

김신정 (주님의십자가교회 목사, <리포밍처치> 저자)

발제 3. 교회, 기독교세계관이 상실된 시대에서 25

신동식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빠름에서 바름으로> 저자)

읽을자료 31

단체소개 53

� �

Page 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Page 5: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

[강의]�

기독교세계관이란�무엇인가?

Page 6: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6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

고 영국 St. Andrews 대학교 신학부에서 조직신학 전공의 석사 학위(M. Phil.)와 박사 학위

(Ph. D.)를 받았다. 합신 교수 외에도 언약 교회의 협동 목사로 말씀을 섬기면서, <기독교 세계

관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 보는 21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 <한국 교회가 나

아갈 길>, <우리 사회 속의 기독교> 등의 기독교세계관 시리즈 책과 <교회란 무엇인가>, <사도신

경>, <광장의 신학>, <인간 복제, 그 위험한 도전> 등 사회 문제에 대한 책과 <개혁신학 탐구>,

<전환기의 개혁신학> 등 개혁신학 책을 내었다.

Page 7: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7

[발제� 1]�

교육,� 세계관�아카데미로�세운다

김정일�목사(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email protected]

1.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연혁

송태근목사 삼일교회 부임: 2012년 7월 1일(강남교회세계관학교 2010년 3월부터 1기 시작)

입문과정 1기 시작: 2013년 3월 (봄,가을 연 2회 2015년 11월, 입문 6기 과정 중)

심화과정 1기 시작: 2015년 3월 (연 1회)

부모세계관과정 1기 시작: 2015년 3월 (연 1회)

2.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사명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여러 현안들에 대해 신앙과 삶이 통합된 성

경적 관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도록 돕는다.

3.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비전

• 입문과정을 통해 세계관의 개념을 이해하고, 성경을 삶의 체계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 심화과정을 통해 각 영역별, 전공별, 직업별 심도 깊은 성경적 조망을 가지도록 한다.

• 부모세계관과정을 통해 다음세대를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양성한다.

• 소그룹 네트워킹을 통해 각 영역별 전문가들을 배출하여 사역을 전개해 나간다.

• 기독교세계관운동을 한국교회에 확산시키는 허브교회가 되어 한국교회의 건강성과 체질개선

에 이바지한다.

4.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프로그램

프로그램 내 용 비 고

입문 과정

- 10주 강의

- 세계관과 기독교세계관 이해

- 각 영역별 기초 강의(2시간)/

조별토론(40분)

- 2013년 3월, 1기 시작

- 2016년 현재 6기까지 진행

심화 과정

- 8~10주 강의

- 각 영역별 심화 강의(2시간)/

조별토론(40분)

- 2015년 5월 1기 시작

- 2016년 3월 2기 예정(연1회)

부모세계관 과정- 12주 강의

- 크리스천씽킹센터(CTC) 협력

- 2015년 3월 1기 시작

- 2016년 3월 2기 예정

(연1회)

Page 8: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8

5. 커리큘럼 예

• 입문과정 5기

• 입문과정 6기

세계관 대학원생

연구모임

- 월 1회(매주 마지막 금요일)

전공영역 멘토링

-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협력사역

독서모임

심화과정- 심화과정 수료생 대상

/월 1회 모임 - 신국원교수 참여

부모과정- 부모세계관 수료생 대상

/월 1회 모임 - 유경상대표 참여

주차 일시 강 의 제 목 강 사

1 9/15이 론

세계관(1) :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신국원 교수 (총신대학교)

2 9/22 세계관(2) : 한국인의 세계관 안점식 교수 (ACTS)

3 10/6

실 천

일상: 일상생활의 신학, 영성, 신앙 방선기 목사 (직장사역연합)

4 10/13 경제: 신자유주의시대의 그리스도인 김형원 교수 (기독연구원느헤미야)

5 10/20 윤리: 복음의 공공성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책임 손봉호 교수 (나눔국민운동본부)

6 10/27 경제: 창조세계를 섬기는 그리스도인 김정욱 교수 (서울대학교)

7 11/3 문화: 문화시대의 창의적 그리스도인 윤영훈 소장 (빅퍼즐 문화연구소)

8 11/10 가정: 결혼과 가정의 회복을 위한 비전 한영주 교수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9 11/17 역사: 광복 70년,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 이만열 교수 (숙명여대)

10 11/24 수료식 수료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주차 일시 강 의 제 목 강 사

1 2/24

이 론

세계관(1) :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신국원 교수 (총신대학교)

2 3/3 세계관(2) : 한국인의 세계관 안점식 교수 (ACTS)

3 3/10 세계관(3) : 성경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김요한 목사 (새물결플러스 출판사)

4 3/17

영역별

환경 : 창조세계를 섬기는 그리스도인 김정욱 교수 (서울대학교)

5 3/24 경제 : 신자유주의시대의 그리스도인 김형원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6 3/31 문화 : 21세기 문화와 기독교 임성빈 교수 (장신대학교)

7 4/7 과학 : 과학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4/10~11 세계관 리트릿(Worldview Retreat)

8 4/14 직업과 소명 : 즐거운 내 직업 찾기 송인수 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9 4/21 정치 :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정치 백종국 교수 (경상대학교)

10 4/28 수료식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Page 9: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9

• 심화과정 1기

• 부모세계관1기

주차 일시 강 의 명 강 사

1 5/12 자발적 불편운동: 하나님나라백성의 라이프 스타일 신동식 목사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

2 5/19 크라우드펀딩, 세상을 바꾸는 공유와 나눔 최동철 이사 (크라우드펀딩 와디즈)

3 5/26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인지 메이커 최영환 대표 (비영리기구 M tree)

4 6/2 희년과 부채탕감, 그리고 하나님나라 남기업 소장 (토지+자유연구소)

5 6/9 호스피스, 죽음의 절망을 희망의 선물로 원주희 목사 (샘물호스피스선교회)

6 6/16 수료식: 교차로에서 나누는 세계관 이야기 신국원 교수 (총신대학교)

주차(일시) 강의 주제 내용

1강(3/5) 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키워야 할까? 생각의 원리

2강(3/12) 자녀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생각 심어주기 기독교세계관

3강(3/19)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관, 모더니즘 모더니즘

4강(3/26) 미디어에서 배우는 세계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5강(4/2) 새로운 영성 시대의 세계관, 뉴에이지 뉴에이지

6강(4/9) 한국인의 은밀한 세계관 한국인의 세계관

7강(4/16)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자녀교육-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기독교세계관교육

8강(4/23)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성품교육- “예수님의 성품 닮아가기”

성품

9강(4/30)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미디어교육- “미디어 시대, 예수님의 제자 되기”

미디어

10강(5/7)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꿈교육-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꾸기”

11강(5/14)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공부교육-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기”

공부

12강(5/21)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리더십교육-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살기”

리더십

Page 10: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0

6. 과제 목록 (입문과정 6기)

* 삼일기독교세계관 아카데미 훈련 구성

주차 일자 필독서(2권) 읽기 과제 영상 과제

1세계관1

9/15 ~ 9/21

니고데모 1~3장 □- 기독교세계관 개관- 기독교세계관과 이원론

□□

세바시 72 양희송세바시 251 박용후

2세계관2

9/22 ~ 10/5

니고데모 4~7장 □

- 종교다원 사회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유일성

- 세속화와 세속주의 개념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의 독특성

- 기독교의 영적 훈련에 타종교의 수행법들을 차용할 수 있는가?

세바시 227 양희송세바시 490 남충식

□□

3일상

10/6 ~ 10/12

니고데모 8~10장 □

- 한국교회 안에 있는 비기독교적 세계관의 흔적들

- 왜 세계관운동이 중요한가?- 세계관운동은 영적 전쟁이다- 한국의 미신

□□□□

세바시 17 임영신세바시 48 박 총

□□

4경제

10/13 ~ 10/19

일상다반사 1~3 □- 집없는 민달팽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해다- 대출부추기는 그 반성경의 길- 희년과 ‘부채탕감’ 그리고 근원적해법

□□□

세바시 5 제윤경세바시 68 유창복

□□

5윤리

10/20 ~ 10/26

일상다반사 4~6 □

- 고통 통해 고난의 예수님 만나고 타인위로 - 한국교회의 반성과 새로운 도전 □□

세바시 7 손봉호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

다큐영상

□□□

6환경

10/27 ~ 11/2

일상다반사 7~9 □-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

세바시 71 하승수세바시 357 조승연지식채널e 공항가는길

□□□

7문화

11/3 ~ 11/9

일상다반사 10~12 □- 문화예술 비평의 기본원리- 기독교세계관, 4차원으로 문화읽기

□□

세바시 66 박준용4인4색 20강

한국교회문화의 과제 임성빈

8가정결혼

11/10 ~ 11/16

일상다반사 13~14 □

- 건강한 부부대화를 위한 방안- 계약인가? 언약인가? - 남성과 여성의 성적차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

□□□□

세바시 118 김창옥C스토리 145 김지윤C스토리 39 김성묵

□□□

9역사

11/17 ~ 11/19

- 광복 70년 주년을 맞이한 한국그리스도인의 선언

-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C스토리 13 이만열세바시 554 오 준

□□

10수료식

11/19 ~ 11/24

탐구보고서 제출수료소감문 제출

□ □

강의(2H) + 강의 후 조별모임(40분) + 필독서(2권) + 읽기과제 + 영상과제 + 조별 공동프로젝트 +

리트릿

Page 1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1

7. 조별 공동프로젝트 주제(입문과정 6기)

1조/문화: 대중문화중 하나를 정해(영화, 드라마, 가요, CF)를 정해서 함께 본 후 기독교세계관적으

로 비평하기

2조/환경: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직접 실천해 보고 결

과 보고하고, 창의적 대안 제안하기(가정, 직장, 교회 팀모/목장모임)

3조/협동조합: 청년주거 해결방법의 하나인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에 대해 조사하고 교회에서 청년주

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안 제시하기

4조/공정무역: 공정무역에 대해서 소개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 제시해 보기 (친환경제품,

공정무역제품, 사회적기업제품 등)

5조/사회적기업: 기독교정신으로 운영되는 사회적기업 중 한 곳을 선정하여 소개하기

6조/먹거리: 먹거리(장보기 포함)와 밥상에 대해 기독교세계관적으로 조망하고 일상 속에서 적용할

대안 제시해 보기

7조/교육: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NGO중 하나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사회운동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재 한국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기독교세계관적으로 조망해 보기

8조/주식, 부동산(투자와 투기): 주식이나 부동산문제 대해 기독교세계관적으로 조망하고 기독교적

대안 제시해 보기

9조/통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 교회가 지금 준비하고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조사하고 방안 제시해 보기

10조/입양: 입양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조망하고 준비에서부터 입양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기

11조/결혼: 현재의 결혼문화(준비, 혼수, 결혼식 등)에 대해 기독교세계관적으로 비판하고, 모범적인

결혼준비 샘플 제시해 보기

12조/직장: 직장 속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갈등을 조사하고 직장내 구조악에 어떻게 맞닥드릴 수

있을지 대안 제시하기

13조/생명윤리: 인공수정(시험관아기, 난자공여, 대리모출산)에 대해 기독교윤리학적으로 조망해 보

고 대안 제시하기

14조/여가와 레저(놀이): 현재 한국사회의 여가와 레저, 놀이 문화 대해 조사하여 기독교세계관적으

로 조망하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쉼이 있는 기독교적 여가 문화를 제시하기

15조/사회: 최근의 한국의 사회적 이슈를 하나 선정해 기독교세계관적인 분석과 대안제시해 보기

16조/부채탕감운동: 청년희년운동본부의 청년부채탕감운동에 대해 소개하고 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 제시하기

Page 1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2

8. 수료 소감

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는 저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작은 실천에서 직업

적 소명까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의 한 걸음을 내딛으며 성경적 드라마의 첫 페이지를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입문2기 구본창)

매주 다양한 분야에서 파송자라고 느껴진 신앙의 선배들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영역,

관심 가지지 않았던 영역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이미 경험한 부야에

서 얼마나 편협한 시각들이 주류가 되어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입

문3기 우상순)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관 운동을 하고 계신 현장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매

주 강의 후 가졌던 조별 토론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변화를 나누고, 결단을 나눌 수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아카데미 신청을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입문4기 지영화)

교회지인의 소개로 반신반의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강의가 그저 그러겠지 생각했습

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강의를 들을 때 마다 얼굴이 화끈해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어

리석고 좁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입문5기 전덕

산)

개인적으로 살면서 들었던 강의나 설교 중 가장 좋았다고 손꼽을 수 있을 정도의 경악과 감동을 준

강의들이었습니다.(입문5기 황보여름)

일련의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많음에 적잖이 놀랐고 용

기를 얻었습니다. 매주 강의를 들을 때마다 집에 와서 가족에게 설파할 정도로 큰 감명을 받고 마음

을 다잡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심화1기 양목화)

매 강의마다 부족한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 아이들 앞에 죄인 되고 나의 능력없음을 주님만이 참 능

력되심을 고백한 시간이었습니다.(부모1기 조영실)

Page 1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3

Page 1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4

Page 15: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5

Page 16: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6

9. 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사역 후 변화들

1) 성도 개인들의 변화 : 작은 변화들, 자발적 불편운동 참여, 선교적 제자로 세워져 나가는 중,

2) NGO를 통한 사회참여 활성화

3) 소그룹(목장, 팀) 모임 나눔 활성화

4) 기존 사역에 접목: 여름,겨울 선교시 적정기술 사역, 세계관강의 사역

10. 향후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의 방향

1) 입문과정, 심화과정 수료 후 세계관 독서모임을 통한 지속적인 연장교육

2) 관심영역별 소그룹 네트워킹을 통해 실천 할 수 있도록 도움

3) 어린이, 청소년 세계관 교육으로 다음세대 세우기

4) 이웃교회들에게 세계관아카데미 오픈

5) 강의안 묶어서 책자로 발행

11. 세계관아카데미 지역교회 접목 Tip

1)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에 부합해야 하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

2) 강의 중심의 아카데미는 처음부터 길게 계획하기 보다는 4~5주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 이도 여의치 않으면 한 차례의 특강 형식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

다.

3) 강사비가 부담되는 작은 교회의 경우

① 동역회의 “찾아가는 세계관 10선”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2016년부터 기독교세계관 지역활성화를 위한 찾아가는 세계관 강좌 마련

②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http://www.cbioethics.org)의 방문강연회를 신청할 수 있다.

③ 시중의 오픈된 세계관영상 강의들을 활용할 수 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홈페이지

참고)

4) 세계관 주요 도서를 교재로 삼아서 함께 공부 해 나가는 독서모임도 좋은 형태의 교육이다.

5) 기독교세계관 성경공부교재를 선택해 훈련시킬 수 있다.

(IVP 기독교세계관성경공부 교재 발간 예정)

김정일

한국외국어대학교(B.E.)와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을

졸업(MACS)하고 현재 삼일교회에서 30대 부부들의 공동체인 청장년2진과 기독교세계관아카데

미를 담당하며 기독교세계관적인 목회와 교회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있다.

Page 17: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7

[발제� 2]�

기독교�세계관적인�교회�

김신정�목사(주님의�십자가�교회)

Page 18: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8

Page 19: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19

Page 20: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0

Page 2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1

Page 2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2

Page 2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3

Page 2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4

김신정

김신정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리스도인으로살기운동 총무간사, (사)한국기독

교교육진흥원 연구위원, 주님의 십자가 교회 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적 교회

에 대해 쓴 『리포밍처치』가 있다.

Page 25: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5

[발제� 2]�

기독교세계관으로�바라본�공적신앙

-그리스도인의�사회참여에�대한�실천적�제안-

신동식�목사(빛과소금교회목사/�

기윤실정직윤리운동본부장/문화와설교연구원장)

한국 교회에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소개 된 지 약 35년이 되어갑니다.1) 그동안 많은 굴곡

을 경험하였지만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 할 수 가 없습니다. 여전히 생소한 부분이 기독

교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한국 교회를

성장시킨 목회자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치열한 교회 성장

의 전쟁터에서 유용한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 때는 반짝였지만 그

만 시들어진 것은 효용가치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사회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입니다. 개교회 중심으로 무장되어 있는

목회자들과 달리 기독교 세계관은 교회 밖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장 주일

학교 교사가 모자라는 판에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 성도는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동안 정교 분

리 원칙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이원론적 신앙을 강조하였던 목사들이 적극적인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세계관 운동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초창기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관을 삶의 고백이 아니라 제자

훈련의 한 파트로 생각할 뿐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어야 하는데 제자 훈련의

한 분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했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다

양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 세계관이 상실된 세상에서』에서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금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무너짐

의 현실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비참할 지경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뢰도가 10%대가

되었습니다.2) 그 이유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말과 행함의 불일치라는 평가입니다. 이

것은 아직도 이원론적 신앙생활이 교회를 휘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교회 생활의 문제도

있지만 삶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균형 잡히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공적 영역에서의

신앙에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세계관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이해를 통하여

세상(삶의 방식)을 이해하고(바라보고) 해석한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관점이다”3)

1) 한국 교회에 소개된 기독교 세계관 역사에 대하여 본인의 졸저인 신동식,『기독교 세계관이 상실된 세상에서』[경기,우리시대, 2014] 1부 1강 2장에서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http://m.media.daum.net/m/media/culture/newsview/20151028143710095. 2015년 11월 5일 참고

3) 신동식, p112

Page 26: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6

기독교 세계관은 단지 교회 생활 잘 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

인 되심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하였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분명한 고백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드러나기보다 오히려 퇴보한 것입니다. 여기

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변혁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할 정도도 되지 못

한 현실입니다. 사람도 되지 못하였는데 사람대접 하라고 하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냉정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또 다시 시작하여야 합니다. 오히

려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기독교 세계관적 삶에 대하여 강조하고 살아야 할 때입니다.

이미 앞서 기독교 세계관이 교회에서 찬 밥 신세를 당한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중심인

사회참여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사회참여라는 말보다는 공적 신앙이라는 말을 사용합

니다. 둘 다 같은 의미이지만 아마도 사회참여라는 말이 급진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실제로 노동운

동, 정치운동에 좀 더 가깝게 들리기 때문에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적 신앙이라는 말을 사

용합니다. 굳이 오해 받을 만한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인 공적신앙을 사용하

고자4) 합니다.

우선 공적 신앙의 신학적 근거를 정확하게 하고자 합니다. 공적신앙이 성경의 터 위에 서 있음을 인

식함으로서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공적 신앙에 대한 신학적 근거에 대하여 『빠름에서 바름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라고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8은 첫 사

람 아담에게 주신 창조명령입니다. 이 명령의 핵심은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스리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이 주신 노

동과 문화의 사명이 왜곡되었지만 그 명령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받은 가장 큰 계명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새 계명”

(요일 1:7-11)이라고 하였고, 바울은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선언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자

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지역과 사회와 국가를 위한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공적 신앙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가르침은 교회사 가운데 면면히 흘

러온 기록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삶에 현장에 실천하는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현장에는 공적 신앙의

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교부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그리고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

빈, 정로교의 실천적 설립자 존 낙스와 언약도의 영광인 사무엘 러더포드, 스코트랜드 자유교회의 창

립자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찰머스, 조지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 윌리엄 윌퍼포스의 노예무역제도 폐

지 운동,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 미국 교회의 선지자 프란시스 쉐퍼, 조만식 장로의 국채보상 운동,

장기려 장로의 청십자 운동, 손봉호 장로의 기독교윤리 실천운동 등 이들의 삶에서 공적 신앙의 위대

한 전통은 한시도 끊어지지 않은 채 흘러왔습니다.

4) 신동식, 『빠름에서 바름으로』,[경기, 우리시대 2015],p173

Page 27: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7

교회사는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성경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

이 말하는 공정신앙입니다. 더구나 이 전통은 종교개혁의 위대한 전통임을 교회사는 말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공적 신앙의 자리에 서는 것은 성경과 교회사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며, 공적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독교 세계관

으로 바르게 서면 공적인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공적 신앙은 철저하게 실천적인 삶입

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하여 우선 준비되어야 할 기본적 자세가 있습니다.

“공적 신앙의 시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요구

합니다. 신앙 고백 없이는 결단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둘째, 공적 신앙은 참된 경건의

실천입니다. 참된 경건이란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셋째, 공적인 삶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은 자

신을 지켜 세속화를 막아야 합니다......넷째, 공적인 영역에서 기독인들은 ‘정직’, ‘책임의식’, ‘배려심’

부분에 힘써야 합니다......다섯째, 자발적 불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세상과 동일하게 부와 허영을 좇고 있기 때문입니다.”5)

이러한 기본적 자세가 세워졌다면 이제 실천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공적 신앙 혹은 사회참여는

너무 거창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큰 자리로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크리스천인 우리가 어떻게 현실에 참여할 것인가?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사회 참여가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하여야 하는가? 이 문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

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영역에서의 삶이 오직 노동과 정치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왜곡된 생각입니다.

공적 신앙이 말하는 사회 참여는 매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공적인 영역은 사회복지의 문제에

서부터 현실적인 정치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 가

지 단계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1단계 접근은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구제와 복지의 의미가 우선될 수 있습니다.

아마 대 부분의 교회들이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를 구제라고 말합니다. 지역에 존재하는

교회와 성도가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함께 하며 작은 부분에서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작

은 일이 없다면 다음 단계로의 참여는 자기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합니다. 물론 교회는 사회복지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분명해야 합

니다. 그러나 교회는 직분자를 통하여 지역을 돌보는 돌보미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역에 교

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소년 소녀 가장, 독거 노인, 장애인과 차상

위 계층에 대한 풀뿌리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경건을 이루는 것입니다.[약

1:26]

2단계 접근으로는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NGO운동과 계몽적 성격이 강한 문화운동을 하는 것입

니다. 지역 사회의 틀을 공론화 하여 구조적 변화를 이끌고 사회의 담론을 이끌어 내는 기능으로서의

시민운동과 NGO운동이 2단계입니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접근이 무엇보다도

5) 신동식, 2015 p175-178

Page 28: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8

필요합니다. 시민운동과 NGO운동의 역할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것은 지역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으며, 정치적인 견제 역할과 소외 계층에 대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사

회가 민주화가 이루어 질 수록 이 운동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운동과 NGO운

동이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입법적 역할이 적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

다. 하지만 이 역할이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다 참여하자는 의미가 아닙니

다. 처음에는 후원을 하는 것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원봉사로 참여 할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적극적으로 기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독 시민 단체

와 NGO를 말한다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 환경운동, 기독교 세계관 동역회, 굿 네이버스, 기

아대책기구,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등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단체가 있습

니다. 여기에 함께하는 것이 2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3단계 접근은 현실 정치 참여입니다. 현실 정치 참여는 풀뿌리 참여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앙정부의

참여에 이르러 정권을 획득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

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개인의 정치 참여는 모두가 한결같이 동의합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의원에서부터 국회와 정권을 획득하는 일에 투명성

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참여는 법적인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교분리의 잘 못된 이해 아래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막았던 지난 시절의 어리석음은 이제 배제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 정

치 참여에 대하여 문을 열고 준비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 일을 위하여 기독교 세계관이 분명한 인재

를 키우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교회에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

기에 무엇보다도 정치적 인재를 키우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한국 교회가 아브라함 카이퍼나 윌퍼

포스와 같은 견고한 신앙을 가진 정치인들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독교 세계관이 정말 필요하

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공적 신앙에 있어서 사회 참여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

는 기본적 일 위에 이러한 단계를 잘 갖춘다면 참으로 필요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가는 말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공적 신앙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과 구별되어 살

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우

리의 현실을 온전하게 표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간다는 의

미가 무엇인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으로

서 이 땅에서 산다는 의미의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다음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그동안 줄기차게 강조하

였던 비관적 선지자의 삶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절망하지 않게 하여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

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좀 더 강력하게 현실적 선지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비관적인 현실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자칫 비관주의가 될 수 있는 연약함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

지만 분명한 것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영광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낙관적 자세를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 선지자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하게 보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계획 가운데 보내진 존재임을 잊지 말

Page 29: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29

아야 합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우리를 향하여 이 시대를 무관심으로 사는 것과 빈약한 가치인 개인적인 풍요와 평

안만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현실주의자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현실참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

다. 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주님 오시는 날 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도 하

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그 일을 맡기시고 있습니다. 여전히 창조의 명령과 구속의 명령이 유효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이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는 공적 신앙을 위하여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흩어지며, 교회로 살아야 합니다.6)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6) 신동식, 2015, p211-213

신동식�

총신대학교 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화와 설교연구원 대표와 개혁파선교협의회(RMA) 대표와

기윤실정직윤리운동본부장으로 사역하고 있으며 고양시 원당에 있는 빛과 소금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청년 내가 가야 할 길 』(토라), 『30일 여정 』(예영커뮤니케이션), 『그리스도인

의 정치색깔』, 『기독교세기관이 상실된 세상에서』, 『교회회복-빠름에서 바름으로』(우리시대), 『쉬

운성경공부 시리즈 창세기』외 다수(프리셉트)가 있다.

Page 30: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0

Page 3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1

[읽을자료]

기독교�세계관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교수)

Ⅰ.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세계관이란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과연 이 세상 전체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그 속의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성경에 비추어 혹시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과감히 고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해야 하는

일이고 또 항상 해 오는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적 작업의 토대입니다. 이 일을

잘 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성경 앞에서 우리가 매우 솔직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

러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나의 삶과 사고방식을 솔직히 드러내어 봅시다.

1.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정리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을 명백한 죄로부터 돌아서게 합니다.

혹시 나의 삶과 사고방식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

십시오. 이런 것들이 매우 자명한 죄악들이라고 언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죄악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문제들 때문에 우리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죄 지은 우리

자리에 서시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그 결과로 우리들이 용서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말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명백한 죄악을 성경이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의지해서 살겠다고 하는 것의 근거가 되며, 또한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죄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을 바르게 하는

일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구원을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

다.

2.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정리는 나의 삶과 사고방식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고치게끔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자명한 죄를 회개하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우리의 삶과 생각 가운데서 하나님과 실제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있습니

까?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적 문제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읽어 봅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먹고 마시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일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여 우

리의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것이 될 때에, 우리가 진정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성경이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종교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그런 것들을 그만 두고,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도리를 배우고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자신은 분명히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 있다고 하

면서도 실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혹시 우리나 내가 하고 있는 것이

Page 3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2

있는지를 발견해서 버려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던 것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속죄를 이루어 성취하

신 후인 신약 시대에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히 10:18 참조).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매월 초인 월삭에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사를 드린 후에는 우리들의 제사는 없어지는 것입니

다. 그렇지 않고 나름대로 예배를 창안하고 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2214 (검색일 2015.11.11.)

크리스천투데이 2014.05.19. “[신문 속 갈렙 바이블 아카데미] 기독교 세계관”

II. 창조

친구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갔다고 합시다. 모두가 탄성을 지르고 안개호(maid of

mist)를 타고서 폭포수로 형성된 물방울 속을 헤매고 나오지만, 예수님을 믿는 분들과 믿지 않는 분

들의 확연히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분들은 모두 이런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도록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믿지 않는 분들은 그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차이가 이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질문: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시작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를 믿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세계관을 가졌다고 하거나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생각하고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원주(Savior)로 믿으면서 동시에 주님(Lord)으로 모시고 삽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방식 중의 하나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대해 성경

을 최종적 판단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알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의

준거가 됩니다.

1. 성경으로 알게 되는 창조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세상이 창조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분명

히 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히 11:3 상)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우리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구체적인 것도 성경에서 말하는 것만을 알 뿐이고, 그 이상은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예

를 들어서, 우리는 이 세상이 언제 창조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구체적인 정보

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성경이 말하는 한도 내에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

된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에 대해서는 오직 성경이 말하는 사실들

만을 기본적인 것으로 말하고 믿어야 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사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던 상태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세상을 하나님께

서 창조 행위로 존재하게(come into existence) 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이 말하는 “혼돈하며 공

Page 3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3

허한 것”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이미 창조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의 선언은 선

언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무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하신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잘

생각하면서 우리의 선배들은 창세기 1:1에서 창조된 것을 ‘원물질’(original material)이라고 부르기

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라고 언급된 성령님께서 그 원물질을 ‘감싸며 에너지를 부여하고’ 계셨습니다(우리

말 성경 창세기 1:2에 ‘운행하시니라’고 번역된 말의 본래적인 뜻을 신명기 32:11과 관련하여 잘 생

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 창조의 순서는 아래 질문 1과 관련해서 잘 찾아보고 그 연관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매우 질서 있는 창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창조의 의미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사실만은 아닙니다. 물론 창조의 사실이 매우 중요

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사실을 창세기 1장과 2장이 가르쳐 주

는 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진정한 의미도 믿어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고 실제로 그에 의존해 살아야 창조를 진정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

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세기가 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리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창조 때와 동일하신 전능성으로 온 세

상을 다스리시며 오늘 우리의 삶도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철저히 믿는 우리 주께

서 그것을 드러내도록 행동하라는 사단의 유혹을 강하게 거절하신 것을 참조해 보십시오(눅 9: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우리를 위해 사적으로 사용하려는, 잘못된 영적 이기주의를 버려

야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어떤 정황 가운데라도 하나님의 전능성을 철저히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

는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둘째로, 창조를 진정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귀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피조계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것과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피조계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거

부하거나 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초대 교회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고 주장하고 나올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예언적으로 경고하면서,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

는 영과 귀들의 가르침을 좇는 것”이며(딤전 4:1),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

는 자들”이라고 합니다(딤전 4:2). 하나님의 피조계의 일부를 낮추어 말하면서 스스로 영적인 것이라

고 말하는 것은 실상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떠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믿음의 바른

도리에서 떠나게 하려는 미혹하게 하는 영의 활동은 과거와 오늘날도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케 하려

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창조를 진정으로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창조하신 피조계를 보존하며 환경을 지

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진정한 성도는 우리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피조계를 잘 다스려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으므로 피조계를 잘 보호하며 그 능력이 잘 발

휘되도록 힘쓰는 가운데서 환경 보호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계를 돌아보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계를 잘 돌보지 않는 것이므로 실상 창조를 무시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2433 (검색일 2015.11.11.)

크리스천투데이 2014.05.27. “[신문 속 갈렙 바이블 아카데미] 기독교 세계관(2)”

Page 3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4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이 인간의 죄에 의해서 파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인간을 피조계의 대표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로

피조계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은, 인류 ‘최초

의 불순종’으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이는 평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이루려는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최초의 불순종의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예들은 모두 처음 아담

이 창조받은 상태와 같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 마음이 부패한 상태에서 태어납니

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실상 아담을 대표로 하여 인류 전체에 대해 언약 관계를 설정하신 것이므로,

최초의 죄에 대한 형벌로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에게만이 아니라 인간들 전체에게

선언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해 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말

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 5:12)라는 말씀을 보면, 인류의 대표로 세워진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 아담의 죄와 인간들의 죽음 사이의 연관성을 매우 분명히 하

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에 대한 정죄를 같이 받

아, 같이 죄인된 존재입니다. 또한 죽기 전에 이 세상을 살명서 그 부패한 인간성에 따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며, 때로는 하나님께 반항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며 사는 죄악을 더 저

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 처한 우리들의 타락의 정도는 과연 어떤 것입니까? 성경에서 인간의 타락

을 가장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은 “너희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이라고 말하는 에베소서 2:1입니

다. 이는 “타락한 사람들은 그 영혼이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는 말이 됩니다. 즉, 영적인 죽음을 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체됨과는 달리 그 영혼이 사람 안에서 활동하나 하나

님께 대해 반항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하다는 뜻의 말이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죄로 인하여 그 영혼이

죽어서 스스로는 스스로를 영적으로 살릴 수 없게 된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인데, 이를 옛 선배들은 ‘전적인 영적 무능력’(Total inability)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의 정도를, 이렇게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여겨

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2587 (검색일 2015.11.11.)

크리스천투데이 2014.06.03. “[신문 속 갈렙 바이블 아카데미] 기독교 세계관(3) 타락”

Ⅲ 구속과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구원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리시며

계속적으로 약속을 주시고 결국 역사의 한가운데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역사적 과

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구속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Page 35: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5

1. 구속의 준비 역사로서의,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사역과 약속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구속에 대한 시사를 주시고(창 3:15), 그

약속에 따라 구속사를 이루어 가는 일을 진행시키신 것입니다. 그 일은 한편으로는 그 타락한 인간들

을 계속해서 보존해 가진 것(일반적 보존과 자연 언약)과, 또 한편으로는 그 인간들에게 구원에 대한

약속과 계시를 주셔서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하시고, 이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을 믿으며 살아가게끔 하신 일입니다.

구약이 진전되어 감에 따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약속들도 점점 구체화되어갑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하신다고 시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창 3:15),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상황에

서도 노아의 가족들을 살려 두시고 생물들을 보존하시며 홍수 후에 보존의 언약인 자연 언약을 맺어

주심으로,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기초를 마련하셨습니다(창세기 8:20~9:17 참

조). 그래도 타락해 가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또한 이전에 주신 약속에 근거해서 아브람을 불

러내어 그에게 땅과 씨(자손)과 복의 약속을 주시고(창 12:1~3), 아브람의 자손으로 인간들을 구원

하시는 계획을 진전시켜 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들도 다 부패하여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께서는 동정녀의 씨로 메시

야가 어린 아기로 날 것임을 예언하시고(사 7:14~16; 9:6~7; 11:1~5 등), 그렇게 오실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더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구약의 계시는, 이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더

구체화시켜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

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고대해 왔습니다. 바로 여기에, 구약에서 가르치셨고 유대인들에게 있는, 메시

야 대망 사상의 출현이 있는 것입니다.

2. 구속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약속이 성취되어, 우리를 가운데 약속하신 메시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님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인의 기대와는 달리 초연한 인물(supernatural man)로, 또한 이 땅

가운데 유대인 중심의 왕국을 수립하시는 정치적 메시야(political Messiah)가 아니고, 한 인격에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신인(神人, the God-man)으로 오셔서, 1차적으로는 이 땅에(물리적인 눈으

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또한 죄인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그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백성들

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자리에 서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들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에 근거해서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서,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골 1:13). 십자가의 구속에 근거해서 성령으로 다시 나는

일이 있게 하시고, 그렇게 구속함과 중생을 적용받은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

역으로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온 하나님 나라 안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요 3:5 참조)

3.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에 여기서도 하나님 나

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의 진정한 뜻입니다. 또한 그것이 구속함

을 받았다는 말의 뜻입니다. 십자가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은 항상 주님에게 의지하면서 주께서 원

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며 그것을 위

해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배워 나가는 일에

열심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해 나가시는지를 알아야 그에 부합하게 우리의 삶

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궁극적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경륜을 잘 배워 가

Page 36: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6

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 나가시는지 그

경륜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성경을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경륜(세상 통치)의 방향과 목적을 알았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나의 일

생을 드려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나의 삶과 일생을 하나님의 경륜과 연관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와 성찰의 과정에서 혹시 나의 추구하는 방향이나 애쓰는 일 가운데서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버려 버리고, 정리해야 할 것이 있으면 정리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잘 드러내기 위한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2901 (검색일 2015.11.11.)

크리스천투데이 2014.06.17. “[신문 속 갈렙 바이블 아카데미] 기독교 세계관(4)”

Page 37: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7

[읽을자료]

한국의�전통적�세계관들과�기독교�세계관

이승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교수)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들을 고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들이 기독교

세계관과 어떤 관계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을 깊이 분석하는 일은 동양 사상, 특히 한국 사상 전문가들에

게 맡기기로 하고, 이 짧은 글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이 그리스

도인인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전통적 세계관

의 영향을 극복함으로써, 온전하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잘 드러내도록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1. 샤머니즘(Shamanism)과 샤머니즘의 영향

가장 긴 시간 동안 깊이 뿌리 내린 전통적 요소는 역시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 조

상들이 우랄 산맥을 넘어 오기 전부터 깊이 뿌리 내린 무교(巫敎)는 다른 지역의 샤머니즘과 비슷하

다. 무당(shaman)이 종교적 의식을 행함으로써 화(禍)나 액(厄)을 물리치고 복(福)이 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무교는 본래 현세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종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죽은 후의 상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교적 사유 방식에 의하면 종교적 의식은 구별된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지므로, 매우 조심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의식을 행하는 시간

및 장소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시간 및 장소를 구별하고, 일상과는 다른 몸과 마음의 자세를 요구

한다는 점, 의식을 위해 정성과 상당한 재화를 드려야 소기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는 일종

의 형성주의적 사유방식이 무교에 의해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하게 성경적 개념에 유의하지 않으면 기존의 불교나 유교와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적 기독교가

되기 쉽다. 우리의 기복(祈福)적 정향성은 이미 이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

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여 생각을 바꾸고 세계관을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강한 기복종교의 특성을 나타내기 쉽다. 사실 하나님께 철저히 헌

신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그것을 문제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은가?

심각한 문제이다.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

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말로만 외치는 헌신과 자기 변혁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철저한 자기 변혁이다. 복 받

기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주께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세계관이다.

그렇게 온전히 변화하여 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좁은 의미의 예배 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더거룩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예배 시간에는 정성을 다하나, 일상생활은 조금 느슨해도 된

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들의 성속(聖俗) 이원론은 샤머니즘의 영향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영육 이원론이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수도원 운동의 영향으로 말

미암은 것이라면, 한국의 성속 이원론은 샤머니즘과 그 영향 하에 있는 불교와 유교의 형식주의가 결

합하여 나타난 것이다. 일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상관없이 목욕재계하고 마음과 몸을 단정히 하여

의식(굿)에 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일상의 삶과 예배하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삶의 태도

Page 38: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8

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 있다는 의식으로 나타나게 된 듯하다.

그러므로 기복주의적 성향과 성속의 구별은 무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해야

진정한기독교의 모습을 이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게 된다.

2. 불교적 세계관과 그 영향

한국에 최초로 들어온 소위 고등 종교(the Great Religions)는 불교(佛敎)라고 할 수 있다. 불교

는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와 존재 자체의 고난인 소위 본고(本苦)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윤회(輪回)에서 벗어난 존재, 즉 깨달은 자[覺者]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고 윤회에

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解脫) 또는 열반(涅槃, nirvana)에 이른다고 한다. 불교는 각자가 근본적으

로 깨달은 자인 부처(Buddha)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불교의 최고 원리인 중도(中道)

를 깨달아 모든 존재의 여실한 모습을 보게 되면, 생사와 열반이 다르지 않고 번뇌가 곧 깨달음이므

로(生死卽涅槃煩惱卽菩提) 생사와 열반은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차별은

없다고 하기도 한다. 즉, 불교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一體唯心造)고 본다. 그런 입장에서

해탈한 사람들이 태어난다는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고, 사실 그

것이 실재하는 아닌지를 따지는 것조차도 초극(超克)한 상태가 열반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현실에서 시작하여 고난으로 가득찬 현실을 벗어나 해탈하기를 바라는 종교이다.

기독교인들도 주의하지 않으면 (1) 이 세상의 삶은 적극적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오

직 죽은 뒤의 세계만이 바른 세계인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2) 이 세상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덕을 쌓아야 죽은 후에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불교를 비롯한 인간들이 만든 모든 종교의 보편적인

주장으로 기독교인들도 동화되기 쉽다. 이와 관련하여 (3) 불교, 특히 선불교(禪佛敎)에는 다양한 수

행법이 있으며, 서구에도 유사한 경향이 있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관상

기도가 제시하는 관상 방법과 선(禪)하는 방법을 비교해 보라. (4) 의식을 행하며 정성껏 기도하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결국 무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불교적 기복주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5) 전생(全生)과 후생(後生)을 말하는 불교적 윤회관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들의 언어생활에도 침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가 이 땅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3. 유교와 그 영향력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학(儒學)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유학이 이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마음(심령)과 몸(사공)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도리에 일치하여 조화 있게 활동되

는 것”이다(田愚, 『유학(儒學)』, 1912). 즉, 유학은 만물의 질서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참 사람됨을

실현하는 것으로, 노력하면 이런 것을 잘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가장 고상한 형태의 유학은 만물의 이치에 대한 파악과 참된 인간됨을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이

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가장 고상한 형태의 유학도 인간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過信)하는

것이 된다. 그런가 하면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잘못된 형태의유학”은 (1)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허례허식(虛禮虛飾)에 치우치고, (2) 조상 제사에 무교적 개념을 접목

하여 조상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본래 유교적 제사의 정신에서 벗어나며, (3) 극

단적인 경우에는 반상(班常, 양반과 상민)의 구별, 좀 나은 경우에는 군자(君子)와 군자가 아닌 범용

(凡庸)한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을 드러내기 쉽다. 아들·딸의 지나친 구별이나 근자에는 나이에 따른

구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기독교인들도 오랫동안 이러한 세계관 안에 있었으므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젖어들기 쉽다.

Page 39: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39

그리하여 (1) 우리의 삶이나 교회 행사에서도 허례허식이 나타날수 있다. 헌금에 이런 마음이 작용

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에서 기도하심으로 우리가 좋은 영

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유교적 축복의 기독교적 변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3) 사람들을 구별하

고, 나이든 사람은 성경의 원리도 무시해도 되는 듯한 사고방식은 가장 흔하게 부딪히는 문제이다.

이외에도 주변에는 여러 사상의 혼합된 형태들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서 세상의 방식들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은 항

상 깊이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기독교를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성

경을 잘 연구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물론, 이렇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세

계관들을 주의 깊게 분별하고 극복해나가려고 애써야 한다.

[출처]

이승구 (2015).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들과 기독교 세계관” ⌜월드뷰」. 2014-4. 16-19

Page 40: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0

[읽을자료]

기독교�세계관에�대한�요구들과�기독교�세계관의�요구�

:� 오늘� 우리는�기독교�세계관을�치워버릴�것인가,� 수정할�것인가,�

아니면�더욱�발전시키고�실천할�것인가?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교수)

오늘날 이 땅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다양한 요구가 주어지고 있다. 먼저 이런 요구가 주

어지는 배경을 생각해 보자면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제시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나타나서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왜곡을 낳고, 따라서 보다 폭넓고 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게 하지 못하여 결국은 기독교적 실천을 낳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기독교 세계관이 제시되는 방식을 고쳐야 할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논의에서 종국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 가운데서 실제로 기독교 세계

관이 바르게 외현화 되고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과 실천적 활동이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독교 세계관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실천하자고 주장한 이들의 목

표는,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독

교적으로 생각하고 기독교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었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

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생각하고, 그런 기독교적 생각에 따라

활동하고, 기독교적으로 살아가는 일”. 그런데 그러한 기독교 세계관이 어떤 형식으로 주어져야 한다

는 그 어떤 틀에 목을 맬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 세계관의 내면화

와 외현화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그에 근거한 실천을 낳는 것이라면 기독교 세계관이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어도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된다.

I.� 기독교�세계관에�대하여�주어지는�다양한�요구들

그러나 만일에 이 요구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좀더 깊이 생각하고

그 요구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1. 기독교 세계관을 없애야(=치워버려야) 한다는 논의라면: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진술과 제시가 문제가 있고, 일정한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

한 데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의 진술 방식을 고치자는 것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은 좀 주의를 요(要)한다. 대개 이런 논의는 “세계

관”(Weltanschauung)이라는 말이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가 처음 사용한 그런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므로,7) 그런 생각 배후에 있는 암묵리에 계몽주의적 사고 방식이 같이 들어 있으므로 이

7) 이에 대한 좋은 설명으로는 Cf. Arthur F. Holmes, Contours of a World View (Grand Rapids: Eerdmans, 1983), 이승구 옮김, 『기독교 세계관』 (서울: 엠마오, 1985), 56.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는 생활 세계(Lebenswelt)에서 발생하는 이런 전이론적인 수준의 것을 ‘세계상’(世界像, Weltbilt)이라고 했고, 후에 보다 공식적으로 발전한 것이 “세계관”(Weltanschauung)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는 이렇게 구분하지 않고, 딜타이의 ‘세계상’을 ‘암묵 리의 세계관’(implicit world-view)으로, 딜타

Page 4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1

를 버려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딜타이가 “세계관”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부터, 그리고 딜타이의 이 용어를 채용해서 “기독교 세계

관”이라는 말을 기독교 철학자들이 사용하기 전부터 이와 비슷한 전이론적(前理論的) 사유 체계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고려는 늘 있어 왔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을 말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외현화와 내면화는 그런 일에 대하여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명칭

이 붙여지기 전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왔다. 그렇기에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기독교 세계관”

이라는 용어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그런 내용을 잘 정

리하며 그에 근거한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 세게관이다!)은 매우 중요

한 일이고, 그런 것은 포기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그런 관

점에서 살아가는 일은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가 있는 한 항상 있어 왔고, 또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용어로서의 기독교 세계관을 버리자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내용으로서의 기독교 세계관을

없애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진다.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버려 버리라는 것은 그

말의 함의가 설득되고 인정되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인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서 온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에 근거하여 실천하는 일”을 버려버리자는 말은 기독교를 버리자는

말 같이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런 주장은 전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 땅에 진정 기독교

가 있으려면, 또 있다면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온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근거한 생각과 말

을 하며 실천을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2. 기독교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라면:

용어와 표현이 아니라 내용으로서의 기독교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인 경우는 다음과 같

이 두 가지 다른 상황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성경에 비추어 판단했을 때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제시되던 바가 비성경적인 부분이 있

는 것으로 드러난 경우라면, 물론 그런 것은 반드시 보다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사실 이는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주장자들이 강조한 것이고, 그런 노력을 늘 해왔던 것이다.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이 그에 근거하고 있는 개혁 신학의 큰 모토가 “개혁된 신학은 항상 개혁되어

야 한다”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이 늘 자신을 개혁하려고 해 온 것이 사실이

고,8) 개혁 신학 내부에서는 항상 그런 작업을 해 왔고, 한국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기존

의 신학이나 세계관을 고쳐가려고 노력해 온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9)

그 대표적인 예로 영육 이원론과 성속 이원론을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해서 고쳐 가도록 지적하며

노력해 온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기독교인의 생각 가운데 희랍적 사유나 그로부터 나온

신플라톤주의나 우리의 전통적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의 몸은 물질적 기원을 지닌 것이므로 악한 것

이며 인간을 죄악에 빠뜨리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되지만,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영은 선하고 귀한 것

이므로 우리는 몸을 괴롭게 해서라도 영을 정화하며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영육 이원론이 있었다. 그

이의 ‘세계관’을 ‘외현화된 세계관’(explicit world-view)으로 표현해 볼 것이다. 딜타이는 세 가지 근본적 세게관을 구별하여 말한다: (1) 자연주의 (2) 감정과 이상이 주도적인 곳에서 나타나는 객관적 관념론, (3) 개인의 자유나 의무 감각이 앞서는 곳에서 나타나는 자유의 관념론. 이는 홈즈가 잘 지적하는 바와 같이 “18세기 심리학이 강조했던 인간의 세 가지 기능(즉, 인간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의지)에 각각 부합하는 것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대표적 반응을 표현한다”(Holmes, 56).

8) 월터스의 “reformational"이라는 용어 사용에 이런 함의가 있음을 잘 기억하라. Cf. Albert M. Wolters, Creation Regained: Biblical Basics for a Reformational Worldview (Grand Rapids: Eerdmans, 1985), 양성만 옮김,『창조, 타락, 구속』(서울: 기독교학문연구회,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2), 22-23.

9) 그 대표적인 예에 대한 제시로 졸고, “21세기 한국 사회 속에서의 장로교회의 의미”, 장로교 신학회 제1차 논문 발표회 발제 논문 (2002. 11. 25.), 특히 6-8을 보라.

Page 4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2

러나 기독교 세계관의 주장자들은 성경과 전통적 개혁 신학에 따라 판단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몸과

영의 전인을 창조하신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전부 아름답고 귀하게 판단하셨으므로 인간의 몸과 영

이 창조의 빛에서는 다 귀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강조하였다.10) 인간의 타락

도 인간의 몸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몸과 영 모두에 영향을 미쳐서 인간의 영과 몸, 그 어디

도 타락과 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또한 구속도 인간의 영

만을 구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육의 전인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인성 전체가 수난

을 받으셨음을 전통적으로 강조해 왔으며, 이 점에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은 영혼-기독교(soul

Christianity)로부터 전인-기독교(whole-man Christianity)에로의 전환을 강조해 왔다.11) 마찬가

지로 기존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삶의 어떤 한 영역만이 하나님과 관련된 영역이고 다른 영역은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할 때에 성경과 개혁 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상

의 그 어떤 곳도 그리스도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부분은 없고,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

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 왔었다.12)

예를 들어서, 이전에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의 일 가운데 어떤 특정한 일만이 거룩한 일이라고 생

각하고 말하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성직(聖職)이라는 말과 성직자(聖職者)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별적인 용어였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 철저한 사고를

주장하는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그 어떤 일이든지 주께서 그 사람에게 불러 사명을 맡기셨으면 그 모

든 일이 다 거룩함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게 말하면 목사나 선교사나 어떤

특별한 일에로 부름 받은 사람들만이 거룩한 직임자들, 즉 성직자(聖職者)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인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어떤 일을 한다는 바른 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활동하는 한 모

두 거룩한 일을 하는 이들이지, 결코 평신도라고 폄하하는 용어로 지칭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

한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 사회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게 사고하고 말하는 일이 아직까지도

얼마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가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세계관이 사라지면 교회와 세상

의 나쁜 의미에서의 세속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일은 거룩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이런 잘못된 세속화를 역전시켜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모

든 것이 거룩한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용어의 하나가 “소명”이라는 용어이다. 과거 천주교회에서는 주로 신부나 수녀, 수도

사나 선교사 등 소위 거룩한 일에로 부름 받는 것만을 소명(vocatio)이라고,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런 것들이 세속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더 높은 소명”(the higher calling)이라고 하였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다양한 일에로 그들의 은사를 따라서 부름 받는다

는 성경적인 소명설이 분명히 제시되었다. 그것이 보다 성경적이고, 기독교 세계관적인 관점에서 소

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지 않을 때에만 어떤 특

별한 일에 대해서만 소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타락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잘

못된 의식과 용어의 사용에 유의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의식과 용어의 사용까지도 성경적인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주장해 온 것이다.13)

10) 이 점과 이하의 논의에 대해서 특히 Wolters의 책과 Holmes의 책, 그리고 Brian J. Walsh and J. Richard Middleton, The Transforming Vision: Shaping a Christian World View (Downers Grove, Ill.: IVP, 1984), 황영철 옮김, 『그리스도인의 비전』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87) 등의 책을 참조하라.

11) Cf. 졸저,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 (서울: 여수룬, 1998), 29f.12) Cf. Abraham Kuyper, Souvereiniteit in Eigen Kring, 3rd edition (Kampen, 1930), 32, cited in

Henry Van Til, The Calvinistic Concept of Culture (Philadelphia: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59), 117.

13) 이런 기독교 세계관적 소명 이해에 대한 근자의 진술로 Cornelius Plantinga, Jr., Engaging God's

Page 4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3

이와 같이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계 내에도 있는 비성경적이고 비

기독교적인 모든 요소들을 변화시키는 추구를 계속해 왔고, 계속 그런 노력을 해 가는 것이다. 그러

므로 심지어 우리의 세계를 보는 관점과 그 결과인 기독교 세계관에도 비성경적인 요소가 있으면 그

것을 고쳐 가는 일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개혁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에 비추어서 항상 개혁되는 것

이다!

그러나 (2) 이 주장의 함의가 다른 데 있어서, 우리가 기독교라고 생각해 왔던 바를 전반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신학에서는 오늘날 이런 주장이 “수정주

의”(revisionism)라는 이름으로 제시되거나 비판되고 있다.14) 그런데 그 수정의 내용이 상당히 심각

한 것이어서 때로는 삼위일체 개념을 버려 버리는 식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하거나, 때로는 부활 개념

을 포기하거나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재림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그렇게 수정된 형식의 신학적 진술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15)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 세계관도 그런 식으로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면,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에 대한 근본적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만일에 기독교 세계관

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기독교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이 이 세상에 존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수정으로 인해서 기독교라는 형태는 이 세상에 남아 있게 되지만 진정한

기독교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하는 것이

이 땅에 없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전혀 그런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차라리 기독교가

없어지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수정주의자들이 있다. 이에 편승해서 기독교 세계관이 없

어지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과연 하나님께

서 그것을 원하실까?

3. 기독교 세계관의 표현 방식, 제시 방식을 바꾸자는 논의라면:

이는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다르게 시도되는

기독교 세계관 제시가 과연 어떤 형태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

교적 관점에서 온 세상을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실천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그 내용이 담아지기만

한다면 그 어떤 형태의 기독교 세계관 제시라도 있을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처음부터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이 세상에 제시된 것이다.16)

World: A Reformed Vision of Faith, Learning, and Living (Grand Rapids: Eerdmans, 2002), ch. 5: Vocation in the Kingdom of God: 105-36을 보라.

14) 20세기말에 나타난 신학의 근본적 변화를 요청하는 소리로서 21세기에도 그 요구가 계속될만한 것은 (1) 기독교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버리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요구, (2) 신학과 성경이 늘 보유해 가부장적 전제를 버리고 여성주의적 입장을 기독교와 연관시키면서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하거나, “이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기독교”를 버리고 이제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신학을 하려고 해야 한다는 주장, (3) 전통적 현대주의의 자유주의 신학에 좀더 충실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4) 해방신학적 입장에서 다양한 신학적 관심에로 확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입장, (5) 리요타르(Jean-Franḉois Lyotard), 데리다(Jacques Derrida), 라캉(Jacques Lacan) 등의 포스트모던주의에 근거하여 비실재론적 유신론과 비실재론적 종교를 발전시켜 주장하거나 해체 신학을 주장하는 입장, 그리고 이런 포스트모던주의를 수용하여 객관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해석학적 다원주의의 요청들일 것이다. 이에 대한 개괄적 소개와 문헌 정보 및 논의로 졸고, “21세기 개혁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한국개혁신학 8(2000) 82-105, 특히 82-84를 보라.

15) 이런 주장들에 대한 논의와 비판으로 졸고, “세계 신학계에 대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제언- 사도적, 성경적, 종말 신학에의 요청”,『성경과 신학』 제 30 권 (2001년 가을): 124-50="A Call for the Apostolic, Biblical, and Eschatological Theologies," Bible and Theology XXX, A Special Volume (2001): 184-215를 보라.

Page 4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4

예를 들어서, 기독교 세계관의 제시 방식을 좀더 기사(narrative)적인 방식으로 하자는 것

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우리는 상당히 긍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바르고 좋은 기독교 세계관 제시는 성경의 기사적(記事的) 성격에 충실한 것이어야 한다.

(2) 바르고 좋은 기독교 세계관 제시는 성경적 기사(narrative)에 참여한 자로서 우리들의 기독

교적인 이야기로 표현되고 드러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 우리의 참으로

기독교적 존재 방식과 실천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시작된 그 기사(narrative)와 이야기 안에 참

여하여 그 이야기를 계속해 살지 않는 이들은 진정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거나 실천하는 이들이 아

니다.

(3) 바르고 좋은 기독교 세계관 제시는 성경적 기사(narrrative)에 가장 충실한 명제를 진술하려

고 노력하는 데서 나타난다. 가장 좋은 신학과 바른 기독교 세계관 제시는 성경의 기독교 이야기에

가장 충실한 일련의 명제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성경 기사(narrative)에 더 충실한 신학적 명제, 그

런 기독교 세계관적인 명제가 보다 더 기독교적인 신학이고, 보다 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4)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고 좋은 기사적 접근은 바르고 좋은 명제적 접근과 함께 하며 잘 조화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그릇된 기사적 접근은 참되고 바른 명제적 접근과 반드시

대립하며, 그릇된 기사적 접근은 그릇된 명제적 접근과 조화될 수도 있고(그른 것끼리의 조화), 그

둘이 대립적일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말을 우리는 좀더 기사적인 방식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기독

교적 존재로 기독교적인 공동체 안에 속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온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면서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실천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의 실천과 삶

으로 써 내려가는 우리의 이야기는 과연 기독교적인가? 여기서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이 참으로 기독

교 세계관인지의 여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지난 70-80년대 이후로 이 땅에서 논의된 기독교 세계관이 어떻게, 또 어떤 방향으

로 더 진전되어야 하는지, 그 진전과 발전의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에 대

한 여러 요구들로부터 돌이켜서 이제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에로 우리의 관심을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우리의 관심을 맞출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일에 힘써야 하는가?

II.� 기독교�세계관의�요구:� 기독교�세계관이�진전되어야�할� 방향

II-1. 기독교 세계관 자체의 발전과 성숙의 문제

1. 기독교 세계관의 철저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기독교 세계관이 아주 철저하게, 모든 면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

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먼저 외적인 철저화(radicalization)를 의미할 수 있다. 다른 기독교 사상에

서도 그렇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도 철저하지 않은 모습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기

독교 세계관 제시가 여러 면에서 철저하게 제시되는 일이 급선무이다. 지금까지 기독교 세계관이 여

16) 예를 들어서 기독교 세계관을 잘 제시하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홈즈는 이 점을 늘 강조하였다: 기독교 세계관, 60f.: “...기독교 신학은 다양하게 형성되었으므로 기독교 세계관 역시 그런 다양성을 지닌다....... 나는 이런 다양성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Page 45: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5

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제시되어 오기는 했지만 가장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가장 일관성 있는 세계관

으로 철저한 일관성을 지닌 세계관(radical Christian world-view)으로 제시되는 일이 필요하다.

말뿐인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다. 성경적이지 않은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다. 일관성 없는 기독교 세계관도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다. 진정한 기독교, 정상에 이른 기독교

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하던 20세기초의 칼빈주의자들과 함께17) 우리는 정상에 이른 기독교 세계관

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생각과 사상에 대한 정리가 그 누구에 의해서든지 이 세상에서 완벽한 형태로 나타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시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다 불완전한 것이고, 수정 가능성

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적어도 그 기준과 방향만은 분명히 제시되어져 있다.18) 성경의

가르침이 기준(standards)이요,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다스리심)를 드러내는 일이 그 방향

(direct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 기준과 방향에 따라서 가장 성경에 철저한 세계관과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제시하는 일을 위해 함께 노력해 갈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렇게 제시되는 세계관을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그에 근거한 여러 측면에서의 외현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내적 철저화: 내면화]. 지금까지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해 던져진 질문의

대부분은 제시된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고 적다는 데서 있다. 그리스

도인들이 철저하게 모든 영역에서 주께 순종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크게 성공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진리를 생명 같이 여기며 추구하는 일

이 없는 데 무슨 기독교 세계관이 있을 것인가?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이가 없

는 데 어떻게 기독교 세계관적 실천이 나타나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개개의 그리스

도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히 내면화할 때에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개개인의 성화와 맥을 같

이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성화 수준만큼 한국 사회에서의 기

독교 세계관 운동이 성장하는 것이다.

2. 기독교 세계관의 신국적, 교회적 토대 강화

여기서 따라 나오는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는 기독교 세계관의 하나님 나라적 토대와 신국적 성격

이 보다 분명해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19) 신국적 토대와 신국적 성경이 분명하지 않은 기독교 세계

관은 결국 그것이 과연 기독교 세계관인지를 물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성경에 충실하면 할수록, 철저

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면 할수록 기독교 세계관은 가장 신국적인 세계관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신국적 기초를 상실한 기독교 세계관은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교회적 토대를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드러내는 기관이 바로 교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야말로 기독교 세계관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가 신국적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사회의 비판을 받는 일이 많은 것은 기독교와 기독교 세

계관의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일차적인 작업은 다른 모든 일을 접고서 일차적으로 우리

가 속해 있는 교회를 신약 성경이 말하는 교회답게 하는 일이 된다.20)

17) Cf. B. B.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ed. Samuel G. Craig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56), 289, 290, 491f., 497-99.

18) Cf. Holmes, 기독교 세계관, 61: “결국 각각의 체계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단지 성경 계시만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19) 이 점에 대한 논의로 졸저,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SFC 출판부, 2003), 제4장을 보라.20) 이것이 80년대에 기독교 학문연구소에서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인도하던 분들인 김헌수 목사와 양성만 교

수가 주로 교회를 섬기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이유라고 여겨진다.

Page 46: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6

교회 밖에서 교회를 돕는 기관들은 그런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교회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섬겨

가도록 해야한다. 기독교 학문 연구소나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 교회 개혁 연대, 여러 선교 기관 등

의 교회를 돕는 성격이 분명해지면 분명할수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시는 일들을 더욱 더 분명

히 되며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한 일들을 여러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II-2.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실천들

1. 기독교 학문적 활동

기독교 세계관의 이런 철저화와 내면화를 통해 신국적 교회적 토대가 분명해지는 것과 함께 우리

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기독교 세계관적 실천이 나오게 된다. 일차적으로 각 학문 분과 내에서 그리스

도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철저한 기독교 학문적 활동을 하는 일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21)

과연 기독교 학문이 가능한가를 묻는 이들에게 신학에서의 예를 제시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러 번 언급한 일이 있거니와 신학은 모두 기독교 학문일 것이라

는 일반인들의 생각에 반하여, 성경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신학적 사유와 활동이 있을 수 있

고,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져 간다고 판단되는 신학적 사유와 활동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

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어떤 것이 과연 기독교적 신학이냐고 할 때에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여 말한

다면, (1) 그 학문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때, (2) 그 생각과 내용이 성

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일 때, (3) 그 내용 제시에 내적인 모순(비일관성)이 없을 때 우리는 그런

신학을 기독교적인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은 동기와 목적의 문제이고, (2)는 내용의 문

제이며, (3)은 논리성과 형식의 문제이다.

이 원칙을 다른 모든 학문에도 적용하면 우리는 기독교 학문의 성격을 보다 쉽게 일반화할 수 있

을 것이다. “그 학문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먼

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사적(私的)이며 내면적인 것이므로 이를 계량화하기는 어

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 학문의 내용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힌트는 제시될 것이라는 말을 하

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그 학문의 내용과 전제와 방법론이 (1) 일차적으로는 성경의 가르침을

간접적으로라도 잘 반영하고 있는가, 또는 성경의 가르침과 대립하는 것은 없는가 하는 것과 (2) 이

렇게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된 이 세상의 실재[일반 계시]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적어

21) 이에 해당하는 것이 북미의 Institute for Advanced Christian Studies 주관 아래 칼 헨리(Carl F. H. Henry)가 편집하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 시리즈(Studies in a Christian World View)이다. 그 서론은 아더 홈즈가, 심리학에 대해서는 메리 슈튜어트 반 류벤이, 철학에 대해서는 얀델이 써내었다. 또 다른 시리즈로는 Harper San Francisco에서 1989년과 1990년에 내었고, 한국 IVP에서 1995년도에 번역 출간한 경영, 심리학, 역사, 문학, 사회학, 음악, 생물학 각 분과에 대한 Through the Eyes of Faith 시리즈를 보라. 그리고 단행본으로는 Chalcedon Group에서 밴틸의 입장에서 각 학문 분과를 다룬 Foundations of Christian Scholarship: Essays in the Van Til Perspective, ed. Gary North (Vallecito, California: Ross House Books, 1979)과 그리스도인인 교수들이 각 학문 분과에 대해 논의한 The Reality of Christian Learning: Strategies for Faith-Discipline Integration, edited by Harold Heie and David L. Wolff (Grand Rapids: Eerdmans, 1987)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역사적으로 고찰한 것은 역시 George M. Marsden, The Outrageous Idea of

Christian Scholarship (1997), 조호연 역 기독교 학문 연구@현대 학문 세계 (서울: IVP, 2000)이다.

Page 47: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7

도 그 전제와 방법론, 그리고 내용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과 대립하는 학문적 작업은 기독교 학문적

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인 전제를 지닌 학문적 활동

을, 그래서 철저히 유물 변증법적인 사유에 가득한 학문적 내용을 기독교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

며, 철저히 프로이드적 인간 이해에 기초한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기독교 학문이라고 할 수 없고, 철

저히 인간 중심적인(humanist) 태도를 가지 학문도 기독교적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3)에 대해

서는 그 적용 기준이 다른 방식의 학문에 대해 적용하는 것과 어느 정도는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자신이 전제에서 말한 바와는 다른 사유를 진행시킬 때 우리는 그런 학문적 작업을

학문적 일관성이 없다고 하고, 그것이 지나칠 때는 그것은 비학문적인 것이라고 판단한다. 기독교 학

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서 말하는 내적 일관성의 요구는 학문적 활동에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점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주장을 할 때 충분한 전거를 가지고 말하는가?, 자연 과학이나 응용 과학의 경우

에는 충분히 실험적 검증을 거쳐서 주장하는 것인가 하는 것들도 이 문제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과연 기독교 경제학과 같은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어

느 정도 답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22) 그 학문을 하는 기본적 동기와 방향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가 하는 동기적 수준에서 상당히 많은 학문 활동은 비기독교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렇게 진행되고 제시된 학문적 노력이 내적 일관성을 지니는가 하는 것도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

다고 여겨진다. 기독교 학문으로 제시된 것이 내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도 엄밀한 의

미의 기독교 학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내적 일관성을 지니도록 요구받고, 노력의

결과로서 그렇게 되었을 때 그것은 기독교 학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당히 많은 우

리의 학문적 노력은 기독교 학문이 되어 가는 과정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동

기를 가진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전제나 방법이 명확히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그것도 비기독교적인 것

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이 때 일단 쉬운 작업은 기존의 여러 방법론과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1)

일관성 기준을 적용하여 그 내적 일관성을 묻는 작업을 하는 소위 내적 비판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

한 (2)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사회의 실재를 파악한 것에 부합하는 설명을 하여 나가고 있는지를 묻

는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때 꼭 자신의 사회의 실재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기독교적인지를 제시

하면서 논의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세상의 실재에 대해 주어진 이론이 얼마나 충실한지를 묻는 논

의를 하여 나가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한 그 논의를 하여 나가는 우리로서는 그 사회적 실재

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여러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의 기독교

학문적 활동은 가능하고 비교적 쉽게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부분은 철저히 기독교적 관점

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하고 방법론을 말하고 하는 보다 적극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

런 영역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학문을 하든지 가장 어렵기 때문이며, 이런 일의 시도에 대해 기존

학계의 강한 반발이 있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전제와 방법을 지닌 이들도 부단히 노력해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인들도 나름으로 이런 노력을 하여 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항

상 기존 학계의 환영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카이퍼가 잘 지적한 것과 같이 이 세상에는

늘 두 종류의 학문이 있고, 그 둘 사이에는 반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3)

자연 과학이나 공학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학문적 작업을

22) 이 주제에 대한 우리 나라에서의 전문가들의 성찰과 논의로 김승욱, “경제학 분야에서 기독교 학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앙과 학문 제 6권 2호 (2001년 겨울호): 73-106; 이우성, “기독교 경제학에 대한 역사적 소고”, 신앙과 학문 제 6권 2호: 107-58과 그곳에서 언급되고 논의된 다른 논문들을 보라.

23) Cf. Kuyper,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1898; Grand Rapids: Baker, 1980), 155-76.

Page 48: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8

하는 기본 동기와 목적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학문적 논의와 주장에 내

적 일관성이 있는가를 물음으로써 일단 기독교적 공학과 기독교적 자연 과학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

을 말할 수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의 이론들이 명백히 성경의 가르침이나 성경의 관점에서 제대

로 해석된 실재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들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기독교적 공학, 기독교 자

연 과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과학과 공학에서는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다음 단계의 질문, 즉, 기독교적 전제를 지닌 포괄적 이론 체계의 형성과 제시의 문제가 그리 크

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뛰어난 공학자들과 자연 과학자들이 그런 포괄적 이론을

제시하는일이 있음을 볼 때에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고, 그 책임을 부인할 이유

는 없는 것이다.

2. 기독교적 활동: 기독교 기업 활동, 경제 활동

기독교 세계관적 실천의 첫 번째 예로 기독교 학문적 활동을 든 것은 학문하는 것을 더 중요시해

서가 아니라, 비교적 명확한 기독교적 활동의 한 예를 대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 활

동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활동을 하는

것이 요구된다. 기독교인인 학자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학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이라면, 다른 분야에 있는 이들이 그 분야에서의 활동을 하면서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한다면

그것도 역시 이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명확히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의 활동하는 것이 요구된다.

여기 어떤 그리스도인인 기업가가 있다고 해 보자. 그가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도 그가 그 기업을 운영하는 일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기독교

적 관점에서 그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관점

에서 기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체 내에서 예배하는 일

을 주도하거나 허용하는 것이나, 주일이면 반드시 쉰다는 것으로나, 수익금의 일정 금액을 선교 사업

이나 기독교적인 사업을 위해 내어놓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업을 운영하는 태도, 자

세, 방향과 철학, 그리고 그 구체적인 운영 방법이 기독교적 원리와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그가 기업을 운영하는 궁극적 목적이 실질적으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간 단계가 자신들의 기업이 섬기는 고객들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데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

려고 하며, 그 제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보급하려고 하고, 직원들 간의 관계가 가장 정상적

인 인간 관계로 이루어 질 수 있게끔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 기업으로서의 내

외적 이미지가 분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기독교 기업임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고객들을 참으로 위하고 그러면서 수익을 창출하여

고객과 직원들과 이 사회와 피조계를 위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어야 한다. 심지어 비기독교 기업들도

적어도 홍보로는 그런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사업

체를 운영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활동을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기업체나 일반 기업체에 고용되어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도 그저 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그들을 따라 가면서 있어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동기도 기독교 세계관에 일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이, 그 판단의 우선 순위가 (1) 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2) 자신과

Page 49: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49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3) 이웃을 섬기며, (4) 자아 실현을 할 수 있고, (5) 피조계를 잘 섬기면

서, (6) 여유 등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24)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동기나 목적도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같은 일

을 하는 여러 사람들도 그렇게 서로 섬기기 위해 일을 하여가는 것이 되어야만 그것이 진정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직업에 관여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홈즈가 잘 지적한 바와 같이, “노동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삶의 질을 풍요한 것으로 하며, 건설적인 사회 관계를 개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25)

우리의 소비 생활에서도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소비 양태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기

독교회 내에서는 검소하게 사는 일, 소박하게 사는 일이 강조되어져서, 절약이 미덕으로 강조되어 왔

다. 이것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인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항상 무시간적으로 진리(眞理)일 수만은 없음

을 강조하고 나아가는 일이 있다. 그러나 소비 사회인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와 구제를 연관시키는 방

향으로 나아가면 산업 발전을 위한 적당한 소비와 검소한 삶과 구제의 실천을 다 도모할 수 있을 것

이다. 암묵리에 우리 자신을 위한 소비,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소비는 결국 우리의 이기심을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빈익빈 부익부를 더 조장하고,

그런 차이를 더 의식하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소비 사회 속에

서는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서 구제를 위한 소비를 주도해 가야 한다. 부의 재분배와 사랑과 구제를 실

천할 수 있는 건전한 인격의 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기독교적 정치 참여와 기독교 시민 운동의 전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직업을 수행해 가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도 이 사회

의 일원으로서의 구실을 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할 때에도 우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의 사회적 의미와 적용이 여기서 발생한다. 특히 현대 사회는 정치적

인 것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는 말이 일반화된 시대이므로, 우리

는 정치적인 것의 중요성을 잘 의식하면서 “그러나 정치적인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과 함

께26) 이렇게 중요한 것으로 떠오른 정치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참여를 해야 한다.27)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활동, 즉 기독교 세계관적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영역

이 바로 정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 통치와 독재 통치 아래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의식화되고 비정치화 되어진 결과로 정치에 무관심한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많이 있고, 혹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문화적 양상

24) 이점에 대한 논의로 졸고,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 제8장 참조.25) Holmes, 기독교 세계관, 312.

26) Cf. H. M. Kuitert, Everything Is Politics But Politics Is Not Everything: A Theological Perspective on Faith and Politics (Grand Rapids: Eerdmans, 1986)

27) 그런 대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서 기독교적 정치 참여의 문제를 잘 정리해 준 대표적인 책으로 Paul Marshall, Just Politics: A Christian Framework for Getting Behind the Issues (Ontario, Canada: ICS, 1997), 진웅희 옮김, 정의로운 정치: 기독교 정치 현실과 현실 정치 (서울: IVP, 1997)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크 엘룰, 하나님의 정치 사람의 정치, 김희건 역 (서울: 두란노서원, 1987); 제임스 스킬렌, 성서적 정치 채은하 역 (서울: 도서출판 무실, 1992); 하웃즈바르트.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선택 박준제 역 (서울: 학생신앙운동(SFC) 출판부, 1995); 그리고 통합연구학회편, 통합연구 제6권 2호(기독교와 정치) 통권 19호 (1993년 10월) (대구: 기독교대학설립 동역회, 1993)에 실린 논문들과 한국개혁신학 13: 한국 정치문화와 기독교 (2003 봄), 특히 성기문, “구약성경은 한국 정치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가?”: 28-57도 보라.

Page 50: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0

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1) 우리 정치 문화의 문제점으로 나타나며 늘 지적되는

지방색 문제가 한국 그리스도인의 정치 의식과 활동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비교적 최근

까지도 경험하고 있다. 또한 (2) 미국과의 관계성에 대해서 우리 나라의 일반 국민들이 세대간의

갈등으로 보이는 것을 그리스도인들도 상당히 유사하게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3.1절 때의

상호 대조적인 기독교 집회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것이 나타났고, 미국의 대아라크 전쟁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에서도 그런 서로 대립되는 양상이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이 일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늘 불완전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끼리도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둘 사이의 흥미로운 토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예들, 즉 지방에 따른 대립과 세대에 따른 대립은 이 세상의 대립 양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이기에 문제이다. 그것이 과연 기독교적인 관점에 따른 판단을 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드러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영역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참여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

다.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세대와 출신 지방, 학력 등등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닌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판단하는 일이 정치 영역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 실천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 직접 정치적인 것을 통하지 않은 일반 시민 운동적 운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열심히 참여하며 활동해야 한다. 환경 문제나 인권 문제 등에 대

해서는 비기독교인과 연합하여 어떤 상대적으로 옳은 것을 주장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독특하게 기

독교적인 주장을 하는 시민 운동도 필요하다. 단지 그 동기와 방법이 가장 선하며 그러면서도 효과적

인 방법을 찾아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해야만 한다. 우리의 실천을 바라보는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기독교적 세계관의 일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활동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단체

나 활동이 기독교적 관점을 일관성 있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헌

신적으로 시간을 내어 가면서 참여하는가 하는 것이다.

4. 기독교 학교 운동과 기독교 교육 운동

위에 언급한 모든 일이 진정 성공하려면 우리 가운데서 다음 세대에 철저한 기독교 세계관에 근

거하여 활동하는 이들을 기독교적으로 교육하는 기독교 교육 운동이 있어야 한다. 교육 문제 전반에

대해서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28)

그런 일의 한 방도로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운동, 기독교 대안 교육 기관을 세우는 일들, 진정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학교는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학문 공동체이기에 이는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 실천의 매우 주요한 한 방도가 될 수 있다.29)

그러나 우리 사회 속에서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다 기독교 학교에 경주되어서는 안되고, 일반 학

교와 그 제도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변화시켜 가는 노력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28)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의 교육 이해에 대한 좋은 논의로 Norman E. Harper, Making Disciples,『현대기독교교육』(서울: 엠마오, 1984); George R. Knight, Philosophy & Education: An Introduction in Christian Perspective (Berrien Springs, Michigan: Andrews University Press, 1980), 특히, 179-228을 보라.

29) 이런 노력들로 박은조 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1999), 특히 제3장 “기독교 학교의 정신”과 기독교학교 연구회 공저, 우리가 꿈꾸는 기독교 학교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1999)을 보라.

Page 51: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1

한다. 어쩌면 그것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방도를 취하든지 진정한

기독교 교사와 기독교인인 교수를 키우는 일에 우리의 우선적인 노력이 부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독교학대학원(Gruduate School of Christian Studies)이나 기독교 교육 대학

원 등의 설립이 필요할 수도 있다.

5. 현대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논의

이 모든 것의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 속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공적인 영역에

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일이 증가하여야만 한다. 이런 공적 영역에서의 토론에서의 기독교

적 관점의 제시는 일차적으로 기독교회 내에서의 철저한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의견의 형성 과정

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런 기독교적 입장을 모든 이들 앞에 가장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일이 이루

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든지, 그리스도인의 많은 숫자를 과시하거나 그것을

이용해서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이기주의를 주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 앞에서 감동 받고 기독교 세계관의 진정한 힘을 느끼게 될 수 있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힘에만 의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공적인 영역에서도 분명히 전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생명 존중과 관련된 일, 생명 복제, 배아 복제와 관련된 일,30) 그리고 환경 문제와 통일 문제 등

에서 기독교적 분명한 시각의 제시가 있어야 하고, 그런 관점을 지닌 자들다운 활동이 있어야 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환경 지킴이, 생명 지킴이는 창조와 구속의 빛에서 온 세상과 생명을 바라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6. 기독교 세계관적 문화 활동

이 모든 것은 결국 이 사회 속에서 기독교 문화적 활동을 하며, 이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키는 활

동에로 나아가는 일을 낳아야만 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결국 기독교 세계관적 문화 활동의 문제에 기

여해야만 한다. 기독교 문화적 활동을 낳지 않는 기독교 세계관은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

에 과연 부합한 것인지를 자문해야 한다. 좁은 의미의 문화 사역이라는 말은 기독교 문화 운동의 참

뜻을 해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폭 넓은 문화 활동의 길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III.� 마치는�말

나는 이 글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그에 근거하여 살아 나가는 일”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의미의 기독교 세계관은 없어지거나 치워져서도 안 되고, 수

정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나는 가장 성경이 철저한 방식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사는 일이 더 철저하고 폭 넓게 나타나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 창조의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인과 온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죄악과 타락을 성경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

이다: 타락과 죄는 인간 존재 전체와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죄의 오염과 부패로 물들게 하고

30) Cf. 졸저, 인간 복제: 그 위험한 도전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3).

Page 52: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2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전인과 온 세상이 다 죄의 부패케 함과 오염 아래 있으며, 따라서 하

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며

고쳐 보려고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으나 그 전체 구조 아래서는 옳지 않은 시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구속의 하나님을 바르게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받아들이는지의 문제가 나타난다. 인간과 온 세상의 타락상이 이러하기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성(human nature)을 당신님에게로 취하셔서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셔서 대리 속죄[代贖,

vicarious atonement]를 이룩하시고, 그 대속하신 인간들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이 선하다고 보시

는 일이 힘쓰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여기 하나님 나라의 출현과 그 나라 백성의 존재가 있

게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실천을 하여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학문을 하든지 기업을 하든지, 기업의 일

원으로 활동하든지,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있든지, 정치 문제에 대해서든지, 경제 문제에 대해서든지.

문화적 활동에서든지 그리스도인들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수행해 가야만 하는 것

이다. 여기에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적 실천이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의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지금

당장 힘써야 하는 몇 가지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이 발제를 마치고자 한다.

1. 우리 자신의 의식이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하나님 나라적인 의식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 의식

이 없이는 이 세상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식을 가진 이는 온 세상을 하나님 나

라적 관점에서 보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이로 나타난다.

2. 그런 개개인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하나님 나라의 개인과 공동체(교회)는 이 세상에 눈앞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그들의 삶과 존

재와 활동으로 드러내어야만 한다.

4. 동시에 하나님 나라 복음[天國福音]을 전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증

시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며, 그렇게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온 이들의 온 세상을 보는 관점이

진정한 기독교적 관점이 되고, 그에 근거해서 사는 일을 하게끔 애써야 한다. (전도된 이가 1, 2, 3,

4, 5, 6의 수준에 이르러야 함을 뜻한다).

5. 그렇게 기독교화된 이들이 학문을 하는 일, 기업하는 일, 사는 일의 하나님의 통치하심, 즉 성

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것의 실재를 드러내어야 한다. (이는 1이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나

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과 5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 하나님 나라적 의식에 근거한 문화적 활동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이것도 1, 5와 분리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가장 현저하게 외현화된 경우라고 보아야 한다).

[출처]

이승구 (2003),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요구들과 기독교 세계관의 요구”. 『신앙과 학문』. 8(2).

59-81

Page 53: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3

[주관단체�소개]

“기독교세계관은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입니다.”

전화� :� 02-754-8004,� � 02-3272-4967�

E-mail� :�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 www.worldview.or.kr� � � � *� Fax� :� 0303-0272-4967

주소� :� 서울시�용산구�이촌로� 2가길� 5� 한강르네상스빌� A동� 102호�

연�구

▪ 기독교학문연구회 KCSI_Korea� Christian� Studies� Institute

기독교적�학문연구를�위한� 학회로�각� 학문분야별�신학과�학제간의�연구를�진행하며

연� 2회의� 학술대회를�개최하고,� 한국연구재단�등재학술지� <신앙과�학문>을� 연간� 4회� 발행

(1996년�창간)하는�등� 신앙과�학문의�통합을�추구합니다.�

기금을�조성하여�기독학자들의�연구�활동을�지원하며,� 각� 전공별� 기독교�학회들의�학술활동�및�

각�기독교대학들의�기독교학문�활동을�지원‧협력합니다.�장기적으로�기독교학문연구를�진흥할�수�있는� “한국기독교학술진흥재단(가칭)”을� 설립하고자�합니다.�

▪ 세계관연구소 Christian� Worldview� Institute

한국사회와�기독교가�당면한�문제들을�기독교세계관에�입각하여�체계적으로�연구,� 대안을

제시하며�보급합니다.

운�동

▪ 세계관�운동 DEW_Disciples� with� Evangelical� Worldview

기독교세계관을�개인의�삶에� 실천할�수� 있도록�돕고,� 나아가� 사회문화를�변혁시키고자

각종�매체와�세미나를�통해�대안을�제시합니다.

Page 54: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년 하반기 세미나] 교회,세계관으로바로세우기 2015.11.16.(월) 오후 1시~5시 100주년기념교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세계관�세미나�교회, 세계관으로 바로 세우기� � |� � 54

교�육

▪ 세계관�아카데미 ACADEMY�

동역회�소속� 강사들이�학생,� 언론인,� 목회자,� 교수�등� 대상에�적합한�기독교세계관�기초� 및

적용에�대한� 교육을�제공하고�있습니다.

▪ 교과과정위원회기독교세계관에�기초한�교재개발�및�교과과정을�연구� 제작하는�기관으로�기독교세계관을

배우고자�하는� 기독교인들과�교회,� 각� 공동체를�대상으로�기초자료�및�커리큘럼을�제공합니다.�

재정독립기관

▪ 도서출판� CUP CUP_Christian� University� Press

바른�성경적�가치관�위에�실천적�삶을� 살아가는�그리스도의�제자들을�세우기�위해

지성과�감성과�영성이�전인적으로�조화된�균형� 잡힌�도서를�출판합니다.�

www.cupbooks.com

▪ 밴쿠버세계관대학원 VIEW_Vancout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캐나다�밴쿠버에�위치한� Trinity� Western� University에� 소속된�기독교세계관�대학원으로

현재�기독교세계관�문학석사(MACS)� 과정·디플로마(Diploma)� 과정을� 운영하고�있습니다.�

www.view.edu

▪ 크리스천싱킹센터 CTC_Christian� Thinking� Center

기독교세계관�교육센터�역할을�감당하기�위하여�학교,� 교회에

기독교세계관�교육� 프로그램을�제공하고�교재를�출간하고�있습니다.

cafe.naver.com/ctc21

▪ 월간�월드뷰 주식회사�세상바로보기

성경적�삶의� 적용을�위해�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등� 제반� 영역에서�성경적�관점으로

조망하는� <월드뷰>는� 세상바로보기�운동의�일환으로�매월�발간됩니다.

m.worldview.or.kr

▪ 기독미디어아카데미 CMCA_Cristian� Media� Contents� Academy

기독교세계관으로�무장한�기독� 언론인을�길러내기�위한� 전문�교육기관으로�기독교세계관의

기초와�이를� 적용한�영상·미디어를�제작하는�교육을�실시하고�있습니다.�

cmca.worldview.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