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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4호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9 교양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 : REVIEW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의 대가는 단순히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대가는 거짓에 갇혀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드라마 <체르노빌> 1 화, 발레리 레가소프의 대사 드라마 <체르노빌>은 총 5편에 걸쳐 지난 1986 년 4월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의 국경도시 프리피야티에서 일 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 고(이하 체르노빌 사고)를 다룬 다. 이 드라마는 사고의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당시 현실에 맞추 어 만들어졌다. 소방서에 신고된 전화나 프리피야티 주민들에게 전달된 대피 방송은 실제 녹음된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체 르노빌>은 실제 사고를 다루고 있 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이전 까지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대명 사로 통했던 만큼 많은 사람이 그 결말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을 주제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체르노빌>이 이야기 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긴장감은 다른 드라 마보다 더 팽팽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 로 하고 있다. 당장 우리에게 소련 서기장으로 익 숙한 고르바초프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또 한 당시 체르노빌 사고 조사위원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소프(1936~1988)를 모델로 각색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한 소련 과학자들을 상징하는 과 학자 울라나 호뮤크를 제외한 다른 주요 등장인물 또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영상화 과정에서 약간의 극적 인 요소가 가미됐지만, 거짓의 대 가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체르노빌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사망한 인원은 2 만 5천명에 달한다. 드라마 안에 서도 방사능 사고라는 것을 통보 받지 못하고 불을 끄러 갔다 급성 피폭 증상을 보이는 소방관의 이 야기가 나온다. 정부의 진실 은폐 로 인해 잘못된 기계가 배송돼 사 고 처리가 늦어지기도 한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드라마 <체르노빌>이 나오기까지 33년 의 시간이 걸렸지만, 거짓에 갇혀 진실을 알지 못 하게 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오 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 수많은 거짓들이 범람하고 있다.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 요한 시점이다. 이정혁 기자 [email protected] 오래된 을지로 인쇄소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 면 허름한 건물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라는 와인바 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밖의 골목 풍경과는 동떨어진 공간이 나타난다. 벽 한 면에는 빔프로젝 터로 영화가 나오고 있고, 잔잔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인쇄소 골목과 조명, 간판가 게가 즐비한 을지로를 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듯 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을지로에 독특 한 감성을 더한 개성있는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 기 시작하면서 을지로는 ‘힙지로’로 다시 태어났다. 힙지로는 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과 을지로의 합성어로 요즘 을지로가 20~30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며 생긴 별명 이다. 십분의 일도 힙지로가 떠오르면서 많은 인기 를 끌고 있는 가게 중 한 곳이다. 이런 가게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간판이 없다는 것이다. 십분의 일도 2층에 있는 매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간판이라고는 들어가는 문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전부다. 골목 사이를 누비며 어렵게 찾은 가게로 들어갈 때, 손님들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과 같 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을지로만의 독특함이 젊은 세대를 힙지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가게의 경영방식도 독특하다. 각자 직업을 가 진 10명의 청년들이 공동대표가 되어 협동조합 형 식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월급의 10분의 1을 회비 로 내고, 이후 생기는 이윤은 N분의 1로 나눈다. 본 인이 다니는 직장의 급여에 따라 많이 내기도 하고 적게 내기도 하지만 이들의 지분율은 동등하다. 초 기에 수익이 없을 때는 이 회비로 월세나 인테리어 비용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와인바의 이름도 십분 의 일이 된 것이다. 이제는 가게가 안정됐지만 다 른 창업을 위해 여전히 급여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낸다고 한다. 이현우 대표는 “십분의 일이 손님들에게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제는 유명해져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도심 속에서 친구네 집에 놀러온 것 같은 편안함과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것이 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비싸 고 접근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십분의 일 에서는 저렴하면서도 분위기 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말, 을지로에서 보물찾기 한 번 해보 는 것은 어떨까. 사진_ 신유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소설이 자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한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마울브론 기숙신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후, 시계 부품 공장과 서점을 전전한 경험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한스는 재능이 넘치고 열 심히 공부하는 인물이다. 늦게까 지 공부하는 그를 아버지는 자랑 스러워하고, 선생님들은 대견해 한다. 구둣방 플라이크 씨는 그를 지나치게 공부만 한다고 걱정하 나 한스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시험에 2등으로 합 격해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권위적이고 엄격한 신 학교 생활에 점점 쇠약해지고 퇴학을 당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대로 기계공이 돼 사회에 진출한다. 그러나 결국 방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걷 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 소설은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했지만, 책에 서 묘사하는 한스의 인생과 주변 환경은 독자로 하 여금 저절로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만든다. 자식이 대학에 간 뒤 공무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 주 인공의 고향 마을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 안정 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생각 하는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노는 대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기는 아버지 와 선생님들은 여러 매체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일 부 한국 학부모와 고등학교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 든다. 한스의 인생은 즐겨야할 동아 리 활동조차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 는 것을 하고, 시험을 유일한 길로 여기다 떨어지면 스스로를 죄인처 럼 여기고, 거대한 제도에 순종하며 곪아가는 한국의 청년을 묘사하는 것 같다. 주인공의 마을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이란 뜻이다. 검은 숲은 소 년에게 무엇을 권하고, 어떻게 대 했는가? 어둠은 소년의 시야를 가 렸고, 소년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 해진 길을 걷도록 인도했다. 누구도 그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숲 자체가 그를 압박했고, 정해진 길이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소년은 길 위에서 교육제도라는 수 레바퀴에 깔려 죽고 말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독일의 작가가 113년 전에 제기한 이 문제를 우리는 그대로 겪고 있다. 정치권은 교육개혁을 두고 특목고 폐지와 수시 와 정시 문제로 계속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두 쟁점 의 방향을 떠나 이것이 학생을 위한 개혁인지, 자 유를 주는 진정한 해결방안을 위한 것인지 한번 고 려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검은 숲에서 스스로 방황하지 않게 하는 진정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길을 깔아 가로등을 설치하는 대신 어둠자체를 드러낼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길이 아무리 밝아져도 수레바퀴는 녹슬지 않고 계속 구를 테니까. 이길훈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전 세계 15개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수상한 김 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 이 영화는 1994년대의 서울 대치동의 열네 살 평범한 소녀 ‘은희’를 주인 공으로 내세운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은희’는 모범생 오빠에게 가 정폭력을 당하고, 부모님의 싸움에 충격을 받고, 선생님께 ‘날라리’로 찍혀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고, 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 는 아픈 일상을 덤덤하게 살아가 고 있다. 그런 은희에게 집이란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보다 더 불편한 곳이다. 그러던 중 한 문 학원에 새로 오신 선생님 ‘영 지’를 만나게 된다. 영지는 참으 로 독특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 다. 영지 선생님은 친구와 싸운 은희를 위로해 주며 우울감을 극 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둘 을 위해 뜬금없이 ‘잘린 손가락’ 이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또한 오빠에게 맞는다는 것을 담담하 게 말했던 은희에게 저녁에 조용 히 찾아와 맞지 말라는, 그에 맞서 싸우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이후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은희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가족들에게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따뜻하고 자유로우며 진중한,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처음 만난 동경의 대 상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 아쉽게도 선생님 은 영화의 끝까지 은희와 함께하지 못한다. 간발의 차로 은희의 언니가 살아남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 으로 선생님은 은희의 곁을 떠나고 만다. 선생님이 사고 직전에 은희에게 보낸 편지는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 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 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 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 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 고 아름답다” 이에 은희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 고 답한다. 영화는 선생님이 사고를 당한 성수대교에 은희 와 은희의 언니가 찾아가는 장 면으로 막을 내린다. 부모님 몰래 늦은 밤 집을 나선 은희의 도전은 그동안 수동적이었던 은희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에서 김보라 감독이 영지의 말을 통해 하 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10대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 10대 시절을 지나온 무수 한 은희에게 보내는 위로. 또 하나는 어른이 된 내 가 은희였던 나를 위로하는 것. 위로가 필요한 수 많은 은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은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은폐된 진실에 경종을 울리다, 드라마 <체르노빌> 모두가 아는 나만의 아지트, 을지로 와인바 ‘십분의 일’ 녹슬지 않는 수레바퀴 벌새: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최성욱 역, 아름다운날, 2013 ▲ <체르노빌>, 요한렌크, 미국 HBO, 2019 SI:REVIEW는 기존에 다뤘던 책과 영화 장르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쉽게 마 주할 수 있는 길고양이들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리뷰를 싣고자 한 다. 야심차게 준비한 SI:REVIEW, 앞으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 와인바 ‘십분의 일’의 가게 모습 ▲ <벌새>, 김보라, (주)엔나인필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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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REVIEWpdfpress.uos.ac.kr/734/73409.pdf로 내고, 이후 생기는 이윤은 n분의 1로 나눈다. 본 인이 다니는 직장의 급여에

제734호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9교양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REVIEW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의 대가는 단순히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대가는 거짓에 갇혀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드라마 <체르노빌> 1

화, 발레리 레가소프의 대사

드라마 <체르노빌>은 총 5편에 걸쳐 지난 1986

년 4월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의 국경도시 프리피야티에서 일

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

고(이하 체르노빌 사고)를 다룬

다. 이 드라마는 사고의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당시 현실에 맞추

어 만들어졌다. 소방서에 신고된

전화나 프리피야티 주민들에게

전달된 대피 방송은 실제 녹음된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체

르노빌>은 실제 사고를 다루고 있

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이전

까지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대명

사로 통했던 만큼 많은 사람이 그 결말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을

주제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체르노빌>이 이야기

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긴장감은 다른 드라

마보다 더 팽팽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

로 하고 있다. 당장 우리에게 소련 서기장으로 익

숙한 고르바초프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또

한 당시 체르노빌 사고 조사위원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소프(1936~1988)를 모델로 각색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한 소련 과학자들을 상징하는 과

학자 울라나 호뮤크를 제외한 다른 주요 등장인물

또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영상화 과정에서 약간의 극적

인 요소가 가미됐지만, 거짓의 대

가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체르노빌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사망한 인원은 2

만 5천명에 달한다. 드라마 안에

서도 방사능 사고라는 것을 통보

받지 못하고 불을 끄러 갔다 급성

피폭 증상을 보이는 소방관의 이

야기가 나온다. 정부의 진실 은폐

로 인해 잘못된 기계가 배송돼 사

고 처리가 늦어지기도 한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드라마

<체르노빌>이 나오기까지 33년

의 시간이 걸렸지만, 거짓에 갇혀 진실을 알지 못

하게 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오

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 수많은 거짓들이 범람하고

있다.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

요한 시점이다.

이정혁 기자 [email protected]

오래된 을지로 인쇄소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

면 허름한 건물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라는 와인바

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밖의 골목 풍경과는

동떨어진 공간이 나타난다. 벽 한 면에는 빔프로젝

터로 영화가 나오고 있고, 잔잔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인쇄소 골목과 조명, 간판가

게가 즐비한 을지로를 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듯

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을지로에 독특

한 감성을 더한 개성있는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

기 시작하면서 을지로는 ‘힙지로’로 다시 태어났다.

힙지로는 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과 을지로의 합성어로 요즘 을지로가 20~30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며 생긴 별명

이다. 십분의 일도 힙지로가 떠오르면서 많은 인기

를 끌고 있는 가게 중 한 곳이다. 이런 가게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간판이 없다는 것이다. 십분의 일도

2층에 있는 매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간판이라고는

들어가는 문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전부다.

골목 사이를 누비며 어렵게 찾은 가게로 들어갈 때,

손님들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과 같

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을지로만의 독특함이

젊은 세대를 힙지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가게의 경영방식도 독특하다. 각자 직업을 가

진 10명의 청년들이 공동대표가 되어 협동조합 형

식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월급의 10분의 1을 회비

로 내고, 이후 생기는 이윤은 N분의 1로 나눈다. 본

인이 다니는 직장의 급여에 따라 많이 내기도 하고

적게 내기도 하지만 이들의 지분율은 동등하다. 초

기에 수익이 없을 때는 이 회비로 월세나 인테리어

비용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와인바의 이름도 십분

의 일이 된 것이다. 이제는 가게가 안정됐지만 다

른 창업을 위해 여전히 급여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낸다고 한다.

이현우 대표는 “십분의 일이 손님들에게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제는 유명해져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도심 속에서 친구네 집에 놀러온 것 같은 편안함과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것이

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비싸

고 접근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십분의 일

에서는 저렴하면서도 분위기 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말, 을지로에서 보물찾기 한 번 해보

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_ 신유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소설이

자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한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마울브론

기숙신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후,

시계 부품 공장과 서점을 전전한

경험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한스는 재능이 넘치고 열

심히 공부하는 인물이다. 늦게까

지 공부하는 그를 아버지는 자랑

스러워하고, 선생님들은 대견해

한다. 구둣방 플라이크 씨는 그를

지나치게 공부만 한다고 걱정하

나 한스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시험에 2등으로 합

격해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권위적이고 엄격한 신

학교 생활에 점점 쇠약해지고 퇴학을 당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대로 기계공이 돼 사회에 진출한다.

그러나 결국 방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걷

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

소설은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했지만, 책에

서 묘사하는 한스의 인생과 주변 환경은 독자로 하

여금 저절로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만든다. 자식이

대학에 간 뒤 공무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 주

인공의 고향 마을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 안정

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생각

하는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노는 대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기는 아버지

와 선생님들은 여러 매체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일

부 한국 학부모와 고등학교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

든다. 한스의 인생은 즐겨야할 동아

리 활동조차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

는 것을 하고, 시험을 유일한 길로

여기다 떨어지면 스스로를 죄인처

럼 여기고, 거대한 제도에 순종하며

곪아가는 한국의 청년을 묘사하는

것 같다.

주인공의 마을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이란 뜻이다. 검은 숲은 소

년에게 무엇을 권하고, 어떻게 대

했는가? 어둠은 소년의 시야를 가

렸고, 소년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

해진 길을 걷도록 인도했다. 누구도

그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숲 자체가 그를

압박했고, 정해진 길이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소년은 길 위에서 교육제도라는 수

레바퀴에 깔려 죽고 말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독일의 작가가 113년

전에 제기한 이 문제를 우리는 그대로 겪고 있다.

정치권은 교육개혁을 두고 특목고 폐지와 수시

와 정시 문제로 계속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두 쟁점

의 방향을 떠나 이것이 학생을 위한 개혁인지, 자

유를 주는 진정한 해결방안을 위한 것인지 한번 고

려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검은 숲에서 스스로

방황하지 않게 하는 진정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길을

깔아 가로등을 설치하는 대신 어둠자체를 드러낼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길이 아무리 밝아져도

수레바퀴는 녹슬지 않고 계속 구를 테니까.

이길훈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전 세계 15개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수상한 김

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 이 영화는 1994년대의

서울 대치동의 열네 살 평범한 소녀 ‘은희’를 주인

공으로 내세운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은희’는 모범생 오빠에게 가

정폭력을 당하고, 부모님의 싸움에 충격을 받고,

선생님께 ‘날라리’로 찍혀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고,

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

는 아픈 일상을 덤덤하게 살아가

고 있다. 그런 은희에게 집이란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보다

더 불편한 곳이다. 그러던 중 한

문 학원에 새로 오신 선생님 ‘영

지’를 만나게 된다. 영지는 참으

로 독특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

다. 영지 선생님은 친구와 싸운

은희를 위로해 주며 우울감을 극

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둘

을 위해 뜬금없이 ‘잘린 손가락’

이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또한

오빠에게 맞는다는 것을 담담하

게 말했던 은희에게 저녁에 조용

히 찾아와 맞지 말라는, 그에 맞서 싸우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이후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은희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가족들에게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따뜻하고 자유로우며 진중한,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처음 만난 동경의 대

상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 아쉽게도 선생님

은 영화의 끝까지 은희와 함께하지 못한다. 간발의

차로 은희의 언니가 살아남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

으로 선생님은 은희의 곁을 떠나고 만다. 선생님이

사고 직전에 은희에게 보낸 편지는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

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

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

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

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

고 아름답다” 이에 은희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

고 답한다. 영화는 선생님이

사고를 당한 성수대교에 은희

와 은희의 언니가 찾아가는 장

면으로 막을 내린다. 부모님

몰래 늦은 밤 집을 나선 은희의

도전은 그동안 수동적이었던

은희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에서 김보라 감독이 영지의 말을 통해 하

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10대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 10대 시절을 지나온 무수

한 은희에게 보내는 위로. 또 하나는 어른이 된 내

가 은희였던 나를 위로하는 것. 위로가 필요한 수

많은 은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은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은폐된 진실에 경종을 울리다,

드라마 <체르노빌>

모두가 아는 나만의 아지트,

을지로 와인바 ‘십분의 일’

녹슬지 않는 수레바퀴

벌새: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최성욱 역, 아름다운날, 2013

▲ <체르노빌>, 요한렌크, 미국 HBO,

2019

SI:REVIEW는 기존에 다뤘던 책과 영화 장르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쉽게 마

주할 수 있는 길고양이들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리뷰를 싣고자 한

다. 야심차게 준비한 SI:REVIEW, 앞으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 와인바 ‘십분의 일’의 가게 모습

▲ <벌새>, 김보라, (주)엔나인필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