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 유순애(‘박정희 할머니의...

322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2년도 춘계학술대회 일시 2012년 6월 16일(토) 9001700 장소 한남대학교 성지관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Upload: others

Post on 03-Jun-2020

5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2년도 춘계학술대회

    ■ 일시 :2012년 6월 16일(토) 9:00~17:00

    ■ 장소 :한남대학교 성지관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 09:00-9:30 등록 및 친교

    Ⅰ부 사회:나종혜(한남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09:30-09:50 개회식 및 인사말

    인사말:임재택(본 학회 회장,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09:50-10:50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발표자:임재해(국립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10:50-12:10 주제발표 1

    돈으로 키우는 육아 VS 정성으로 키우는 육아

    -육아용품 사용, 이대로 좋은가? -

    발표자:이종국․이경옥(벌랏마을 선우아빠․엄마,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저자)

    박정희․유순애(‘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저자/배재대학교 생물의약학과 교수, 박정희 할머니의 4녀)

    12:10-13:30 점심시간

    Ⅱ부 사회:김덕건(광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13:30-14:50 주제발표 2

    안(사람)에서 하는 육아 VS 밖(자연)에서 하는 육아

    -아이들 건강, 문제는 없는가?-

    발표자:박명숙(환경정의 국장), 조혜경(EBS방송국 PD)

    14:50-15:10 휴 식

    15:10-16:30 주제발표 3

    입(과학)으로 하는 육아 VS 손(상식)으로 하는 육아

    -지금의 유아교육, 과연 이래도 괜찮은가? -

    발표자: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광호(EBS방송국 PD)

    16:30-17:00 종합토론

    전통육아, 어떻게 살려 낼 것인가?

    토론자:정대련(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2년도 춘계학술대회 일정표

  • 목 차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 11

    임 재 해 (국립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 주제발표

    1. 돈으로 키우는 육아 VS 정성으로 키우는 육아 ························································ 51

    이종국ㆍ이경옥(벌랏마을 선우아빠ㆍ엄마,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 저자)

    박정희ㆍ유순애(‘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저자/배재대학교 생물의약학과 교수, 박정희 할머니의 4녀)

    2. 안(사람)에서 하는 육아 VS 밖(자연)에서 하는 육아 ·············································· 75

    박 명 숙(환경정의 국장)

    조 혜 정(EBS방송국 PD)

    3. 입(과학)으로 하는 육아 VS 손(상식)으로 하는 육아 ············································· 101

    김 은 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 광 호(EBS방송국 PD)

    ■ 종합토론

    전통육아, 어떻게 살려 낼 것인가? ·············································································· 141

    토 론:정 대 련(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 포스터 발표

    1. 교사의 직무만족도와 효능감이 유아의 또래관계, 외적행동문제, 자아존중감에 미치

    는 영향 ····················································································································· 155

    박 경*(광주여자대학교 박사과정)

    오재연(광주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 동화를 활용한 인성교육활동이 유아의 기본생활습관과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 163

    이 규 림*(목원대학교 유아교육과 전임강사)

    3. 만 0~2세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어머니의 인식 조사 연구 ································· 169

    김윤숙(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신세니*(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 이현경(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수료)

    전연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연구원)

    조희숙(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4. 명상을 통한 홀리스틱 심상활동이 유아의 정서지능에 미치는 영향 ····················· 177

    장은영*(윌링스유치원 교사)

    김덕건(광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5. 명화감상 프로젝트 활동에서 나타난 만 5세 유아의 언어표현 변화 탐색 ············ 183

    정민화*(우주어린이집 원장)

    김경란(광주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6. ꡔ밥 실험ꡕ을 통해 살펴본 유아 언어태도의 의미탐색 ············································ 191

    임재택(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황해익(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이숙희(부산법원어린이집 원장)

    탁정화*(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7. 보육교사의 개인적교수효능감과 교사-영아 상호작용이

    영아의 초기 사회적 유능성에 미치는 영향 ···························································· 199

    김연화*(S.P. 실무연수아카데미 교육사)

    오재연(광주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신수경(남부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8. 숲반과 일반학급 유아의 체형변화 양상 분석 ························································ 207

    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변지혜*(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 연구원)

    9. 숲유치원에 대한 예비유아교사와 유아교사의 인식 및 요구도 ······························ 215

    주철안(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임재택, 황해익, 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미진(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BK21 연구원)

    송주은*(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유주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10. 숲유치원 초임교사들이 경험하는 어려움 탐색 ···················································· 225

    임재택(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이소영*(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연구원)

    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부교수)

    11. 예비유아교사와 유아교사가 인식하는 숲 이미지 연구 ········································· 229

    임재택, 황해익, 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주철안(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김미진*(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BK21 연구원)

    송주은, 유주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 12. 예비보육교사의 수학(受學)경험과 대상관계가 심리적 안녕감에 미치는 영향 ···· 237

    -P대학교 부설 보육교사교육원생을 중심으로-

    정계숙(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고희선*(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 연구원)

    박선해(부산대학교 부설 보육교사교육원 교수)

    13. 예비유아교사의 자기효능감과 학과만족도가 교육실습 불안에 미치는 영향 ······ 243

    윤갑정*(대구한의대학교 아동복지학과 전임강사)

    차정주(미국 Wisconsin-Madison대학교 박사과정)

    14. 외할머니의 손자녀 양육이야기:심리적 탐구를 중심으로 ··································· 249

    전연우*(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BK21 연구원)

    김윤숙(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조희숙(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15. 유아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주말프로그램에 대한 유아교사들의 인식 ··············· 257

    김안나*(중부대학교 유아교육과 전임강사)

    이종향(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수료)

    16. 유아예술교육에 대한 이론적 고찰:칸트 예술론을 중심으로 ····························· 263

    송진영*(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BK21 연구원)

    임부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17. 유아의 숲유치원 경험에 따른 부모의 양육스트레스, 양육효능감의 변화 ··········· 269

    강신영*(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BK21 계약교수)

    김은주(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18. 전통태교의 특성과 교육적 위상 ············································································ 277

    김병희*(강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19. ꡔ행복한 우리가족ꡕ에 나타난 현대의 양육과 분석 ··············································· 283

    신세니(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안지성*(동의과학대 사회복지과 강사)

  • 모시는 글

    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넘치는

    기분 좋은 계절입니다.

    항상 아이들을 모시고 살리는 일을 위해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번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라는 주제로

    포대기 하나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 상황을

    한국 전통육아를 통해 재조명해 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유아교육 내부의 목소리를 포함한

    전통의 지혜를 가지신 분들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여겨지던 생태유아교육의 지혜는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민족문화와 전통 안에

    그 뿌리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신명나는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6월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회장 임재택

  • ▪▪기조발제▪▪

    ◈ 임 재 해(국립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임 재 해(국립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1. 문제의식의 구체성과 일반화 가능성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이 물음은 어떤 분과학문이나 전공영역에서도 절

    실하게 묻고 답해야 할 성찰적 질문의 틀을 이루고 있다. 현실학문의 한계는 물론 현

    실문화의 문제를 제대로 성찰하고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려면, 어떤 분과학문에서도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전통음악, 왜 잊혀졌는가?” “한국 전통놀이, 왜

    잊혀졌는가?” “한국 전통건축, 왜 잊혀졌는가?”와 같이, 모든 영역에서 ‘한국 전통OO,

    왜 잊혀졌는가?’ 하고 따져물어야 할 현실인식이 긴요하다. 왜냐하면 전통육아뿐만 아

    니라, 전통출산, 전통농업, 전통교육, 전통혼례 등 우리 전통문화는 거의 잊혀졌거나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세기 사이에 서구문물이 휩쓸면서 전통은 마치 극복되어야 할 인습처럼 취

    급되거나 청산되어야 할 잔재인 것처럼 인식된 까닭에, 민중문화의 전통은 물론 지배

    집단의 양반문화나 지식인 문화조차 전통적인 것은 우리 생활세계에서 배제되고 홀대

    받게 되었다. 그래도 지식인 문화는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고 지배층문화는 문화유산

    으로 보존되고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 다만 외래문화와 서구사회의 지식, 첨단 기술문

    명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전통문화나 고전문예, 전승지식, 토착문명, 시골생

    활, 민중관습 등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전통이든 온전하게 이어

    질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이고 익히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도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어

    려운데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는 전통을 이어가려 할 까닭이 없다. 그 결과 전통 가운

    데 어떤 것은 아직도 일부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전통은 저절로 잊혀졌거나 또는 의

    도적으로 잊어버리게 되었다. 계획적으로 버려지거나 권력에 의해 말살된 전통도 있

    다. 말살하려고 했지만 워낙 강고해서 되살아난 전통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전통은

    의식적으로 무시되고 적극적으로 버림받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외세에 의한 타력적

  • 12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개방과 정부에 의한 급격한 산업화 정책이 진행된 나라에서는 으레 겪는 일이기도 하

    다. 한국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제3세계 국가에서는 외세의 식민정책에 의해 문화

    적 전통이 크게 훼손되어, 회복불능 상태로 망가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전통문화가 왜

    잊혀졌는가 하는 것은 육아 문제에 한정되거나 한국에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하는 질문은 전통문화 전반에 관한 문제적

    질문으로서 일반화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이 질문의 답은 “한국 전통문화, 왜 잊혀

    졌는가?”하는 질문의 대답 속에 귀속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논의의 진전에 따라 다

    른 영역이나 다른 나라의 전통 문제를 이해하는 데로 확산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요

    인에 따라 전통육아에 한정되거나 한국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일 수 있지만,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전통의 약화나 단절은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은 일부 원주민 사회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겪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의는 어디까지나 한국사회의 전통육아 문제에 한정된다. 한국사회만이

    겪는 식민지 경험과 육아문제에만 해당되는 여성들의 생활세계와 맞물려 있는 특수성

    을 지나칠 수 없다. 여성들의 전통을 넘어서는 문제나, 식민지 경영을 한 제국주의 국

    가의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을 때 논지가 더 구체화될 수 있다. 육아의 문제는 여성

    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생활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성

    급한 일반화보다 전통 육아의 문제에 한정된 원인부터 다루는 것이 질문에 대한 구체

    적인 해답에 이르는 길이다. 전통 일반에 관한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이자 거시적인 체

    제 문제이다. 그런 까닭에 답을 알아도 개인의 의지와 실천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사

    회 체제 자체를 변혁시키는 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아에 한정되는

    구체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논의를 체제문제까지 확대하여 일반화하는 쪽으로 나아

    가고자 한다.

    2. 여성들의 생활세계와 가치관의 변화

    육아는 출산주체인 어머니의 몫이다. 어머니가 되는 여성이 임신, 태교, 출산, 육아

    의 주체 구실을 한다. 따라서 여성의 생활세계 또는 어머니의 가치관에 따라 전통 육

    아가 계승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 어떤 어머니들은 여전히 전통육아법에 따라

    아기를 포대기로 업어 기르는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육아의 전통이 단절된 것은 여성

    또는 어머니에게서 그 원인을 먼저 찾을 필요가 있다. 요즘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는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13

    것도 여성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육아는 물론 출산의 주체도 여성들이자

    아내들로 바뀌었다. 시부모의 기대나 남편의 소망에 따라 아내들이 자녀를 낳던 시대

    는 지났다.

    아이 하나만 기르는 제자 부부에게 둘째 아이 출산을 권유했더니, 남편은 동의하는

    데 부인은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아무리 원해도 아내가 원하지 않으면 자녀 출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달리 자녀를 6남매 둔 제자가 있어서 여러 훌륭한 점

    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점은 아이를 많이 낳은 점이라고 격려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공을 자기 아내에게 돌렸다. 아내가 아기를 잉태하는 대로 낳기를 원해서 여러 자

    녀를 두었는데, 앞으로 더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자녀를 여럿 낳아 기르든,

    또는 전혀 낳지 않든 그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다. 가족 내에서 아내의 지위와 함께 결

    정권의 비중도 아주 높아졌다. 특히 자녀의 출산과 육아 문제는 남편의 의지만으로 실

    천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므로 육아의 전통 단절 원인도 아내에게서 찾아야

    한다.

    한 마디로, 남편의 시각에서 보면 아내가 달라졌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어머니가

    달라졌다.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이 달라졌다. 요즘 여성들은 전통육아법으로 자

    신을 길러준 어머니 세대와 다르다. 전근대 여성이 아니라 현대 여성으로서 삶을 추구

    한다. 요즘 어머니들은 할머니들처럼 전통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기르는 것을 부끄럽

    게 여긴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육받

    은 어머니들이다. 요즘 아내들은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처럼 전업주부 노릇을 하며

    한 남편의 아내로서 살아가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한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가정경영

    의 주체이자 일자리가 있는 직장인이며, 사회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존재감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전통사회와 다른 아내, 다른 어머니, 다른 여성을 추구하는 까닭

    에 임신과 출산은 물론 육아 방법까지 전통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크게 세 가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첫째는 부모 섬기는 법

    이며, 둘째는 자식 키우는 일이며, 셋째는 가사를 돌보는 일이다. 서양 여성들의 사고

    에 따르면 이러한 지식을 익히는 것은 고급 직업에 대한 기초로서 필수적인 교양교육

    을 의미”한다.1)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가사를 돌보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여성들

    이 혼인을 해도 가족으로서 아내나 며느리, 어머니의 역할보다 여성으로서 또는 한 인

    간으로서 자기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여성들의 생활세계가 크게 바뀌었다. 인

    1) E. 와그너, 신복룡 역주, ꡔ한국의 아동 생활ꡕ, 집문당, 1999, 34쪽.

  • 14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간으로서 존재감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으로서 용모와 능력을 갖추는 일에

    더 몰입한다. 그러기 위해 일단 전업주부 중심의 전통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사회적으

    로 일정한 역할을 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학력과 능력, 경력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용모도 준수해야 한다.

    전통육아는 물론 잉태와 출산조차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남성들에게 병역의무가 사회적 진출에 부담이 되는 것처럼, 여성들에게는 출산

    과 육아 활동이 큰 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잉태와 출산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육아는

    유아원이나 유치원 등 교육시설에 맡기기 일쑤이다. 그 이전 단계에는 특별히 보모에

    게 위탁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기를 기르는 여성들은 아기 어머니로서 역할을 더 중요

    하게 여기고 사회적 활동이나 직업을 가지지 않고 전적으로 어머니 노릇을 하지 않는

    다면, 비록 육아의 주체이긴 하되 육아를 전통적으로 할 수 있는 체제 속에 놓여 있지

    않다.

    전업주부로 어머니 노릇을 한다고 해도 요즘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에 만족하지 않

    으며 사회적으로도 자신을 아무개 어머니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늘 젊은 여성

    으로 또는 아예 미혼여성처럼 봐주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아주머니’ 소리만2) 들어도

    짜증을 낸다. 식당 아줌마들도 이모나 고모 또는 언니들로 호명되기를 바란다. ‘아줌

    마’ 소리에도 발끈하는 여성들이 아무개 ‘어머니’로 호명되기를 바랄 까닭이 없다. 비

    록 아이의 훌륭한 어머니가 되려고 하는 마음이 심중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겉

    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몸매가 빼어난 한 여성으로서 보이기를 애쓴다. 그러므로 요즘

    은 아가씨와 아주머니, 어머니의 구별이 용모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아주머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여전히 화장과 옷차림을 아가씨처럼 하

    기를 원한다. 요즘은 임신부들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임신부로서 배가 부른 모습

    을 노출시키기 꺼려하는 까닭이다. 어머니로서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해도 어머니인지

    이모인지 고모인지 알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어머니다운 옷차림을 하지 않을 뿐 아

    니라, 아기를 안거나 업기보다 유모차를 이용하여 가능한 아이를 몸에서 떼어놓는다. 이

    모나 고모들도 아이와 동행하는 경우 어머니로 오해받을까봐 의도적으로 애를 쓰기도

    한다. 여성들에게 어머니로서 인정받으려는 의식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

    적 육아 방법을 이어받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운 여성문화가 조성되었다고 하겠다.

    2) 아주머니들이 특히 ‘아줌마’란 호칭을 들으면 발끈한다. 나이 든 여성으로 취근되는 것처럼 여기

    기 때문이다 특히 독신 여성들은 아줌마라는 호칭을 최악의 호칭으로 생각한다.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15

    따라서 요즘 여성들은 전통육아의 가장 기본인 모유를 먹이지 않는다. 젖을 먹일

    때에도 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어머니는 아기가 울면 젖을 물

    렸다. 젖을 먹일 때가 되면 남의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젖을 먹였다. 이때는 여성

    이 아니라 어머니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어머니보다 여성이 더 우위이다.

    어머니로서 젖을 먹이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 여성으로서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구체적 이유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첫째는 교육과 상업주의가 원인이다. 우유가 아기에게 더 좋다는 헛된 지식과 분유

    회사들의 광고에 현혹되어 우유를 먹이게 되었다. 우유를 먹여야 부유하게 보이고 세

    련된 어머니로 인정받았다. 둘째는 분유회사의 판촉과 상관없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구조적으로 모유를 수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여성들도 남성

    처럼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생활환경이 수유를 할 수 없게 바뀐 것이다. 셋째, 여성들

    스스로 모유를 먹이는 것은 전근대 여성들로 인식한 까닭에 수유 가능한 환경의 전업

    주부들조차 우유를 먹이게 되었다. 아기를 여럿 낳거나 젖을 먹이면 어머니 세대로 취

    급받았다. 현대여성으로서 신세대 어머니다우려면 아이를 적게 낳고 우유를 먹여야

    한다는 편견을 가졌다. 넷째 여성으로서 젖가슴을 아름답게 관리하려는 목적 때문에

    우유를 먹이기도 한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젖가슴이 쳐지고 탄력을 잃게 된다고 여

    기는 까닭이다. 여성으로서 미모를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일은 배제되기 일쑤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미모주의에 따라 유난히 성형수술이 만연하고 ‘얼짱문화’가 대

    세를 이루고 있다. 이 문제는 여성들만 탓할 수 없다. 상업주의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남성들의 시선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 여성주의가 실현되기 어렵다.

    대중매체가 절대적 위력을 발휘하면서 여성의 외모가 경제적 부와 사회적 인기를 창

    출하기 때문이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성을

    상품화하는 선정적인 내용들이 방송 프로그램과 상업광고에서 대중들의 수요를 자극

    하고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는 까닭이다.

    성형외과와 인터넷 리크루트 회사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예비취업자 98%가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 584

    명 중 94%가 채용 면접을 할 때 ‘외모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외모는 직장의 이미지와

    홍보 효과를 높여주고 수익을 창출하는 까닭에 외모야말로 여성들의 존재감을 높이는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할 뿐 아니라, 아예

    “미모는 권력”으로 인식되기까지3) 한다. 기업광고도 이에 편승하여 미모의 여성들을

  • 16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출연시켜 상업적 이익을 꾀한다. 그러므로 대중들은 모방심리에 따라 외모 지상주의

    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다는 것은 어머니세대로 퇴행을 자초하는 일로

    여겨진다. 따라서 한때 모유 수유율이 10.2%로 세계 최저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발표

    되어서4) 화제가 되었다. 유럽 어머니들은 80% 이상 모유를 먹인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50% 이상 모유를 먹인다. ‘분유회사들이 1960년대 이후 영양상태

    가 불충분한 여성들을 상대로 모유보다 분유가 영양가가 많고 문명적이라는 광고 전

    략을 펼쳤는데, 한국이 그러한 전략에 가장 크게 말려든 까닭에 분유 천국이 되었다

    .’5) 지금은 오히려 전문직 여성들이 모유의 장점을 알고 수유할 뿐 아니라 직장에서

    도 자녀를 위한 모유 수유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어머니들은 아기를 업어서 키웠고 외출할 때에도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

    서 업었다. 아기 어머니는 물론 온 가족들이 다 아기를 업어서 키웠다.6) 그러나 지금

    은 아기를 업어 기르는 어머니는 거의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 하루 종일 제대로

    안아볼 겨를도 없다. 아예 아기를 떼어 놓고 생활한다. 함께 있어도 아기를 요람에 눕

    히거나 걸음마용 붕붕카에 앉히고, 때로는 아기그네에 매달아 둔다. 그리고 이동할 때

    에는 으레 유모차를 태운다. 어머니가 아기와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일을 가능한 대로

    피한다. 시쳇말로 스킨쉽을 잘 하지 않는다.

    그네와 유모차, 붕붕카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해서가 아니라 편하기 때문이거나

    남들도 그렇게 기르니까 그렇게 한다. 업어 기르는 것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니까 유행

    을 이룬다. 더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성다운 맵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장

    애가 된다는 점이다. 아기를 포대기로 업으려면 한복차림이 편한데, 한복도 성장하면

    아기를 업을 수 없다. 한껏 뽐낸 몸매가 일시에 구겨지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한복이

    아니라 양장으로 옷을 차려입은 상태에서는 아기를 안을 수도 없고 업을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하다. 따라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불편할 뿐 아니라

    3) 정순원, ꡔ세너지:분리를 통한 미래 경쟁력ꡕ, 마젤란, 2008, 80쪽. 이 책에서 말하는 세너지

    (senergy)는 분리(separate)와 에너지(ensegy)의 합성어로서 결합보다 분리를 통해 경쟁력을 갖

    추는 것을 뜻한다.

    4) 「모유 수유율 10%의 미개함」, 한겨레, 2001년 8월 1일자 사설 참조.

    5) 위의 글, 같은 곳.

    6) 柳岸津, ꡔ韓國의 傳統育兒方式ꡕ,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235쪽. “아기업기는 어머니 외에도 할머

    니와 연상의 아이, 즉 누이들이 맡아 하기도 했다.”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17

    보기에도 창피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아기 업는 일을 비롯하여 전통은 모두 불편하고 창피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은 물론 일상생활과 육아까지 서구여성들의 살림살이를 따

    라 해야 그럴듯하게 보이고 시쳇말로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문화적 사대주의가 일

    상생활은 물론 전통육아법까지 잊혀지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전통육아에 등 동리고

    있는 사이에 정작 서구사회에서는 우리 전통육아법의 이치를 따르는 ‘애착육아법’을7)

    새로운 육아법으로 실천하고 있다. 아기를 안고 모유를 먹이고 아기를 업고 일을 하

    며, 잘 때도 잠자리에 함께 안고 자는 따뜻한 육아의 전통이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붐

    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육아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전통육아를 멀리 하게 된

    원인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이 긴요하다.

    3. 가족 공동의 육아 전통과 가족체계의 변화

    전통육아의 단절 원인을 여성들에게서만 찾는 것은 사회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이자, 모든 문제를 여성들에게만 떠넘기는 남성주의적 편견이라 할 수 있

    다. 따라서 현대 여성들의 모성 약화에 따른 여성성의 강화 탓에 전통육아가 소멸되어

    갔다고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전통육아 단절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씌우는 일이나 다

    르지 않다. 여성들 가운데도 모성 문제는 어머니에게 한정된다. 그리고 육아는 어머니

    개인의 모성 문제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육아는 가정과 사회에서 공동으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육아는 어머니 개인의 몫이 아니다. 가정에서 전통육아가 전승되지 않으

    면 어머니로서도 어쩔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아기의 어머니는 육아의 주체일 뿐 전통

    육아의 주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통육아의 전승은 육아의 주체 이전에 가족문화 또

    는 공동체문화로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통은 이미 있는 문화이자 통시적으로 전승

    되는 문화인 까닭에 전통육아를 전수하는 주체는 아기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기 엄마

    의 어머니이거나 시어머니이다. 다시 말하면 육아의 주체인 어머니에게 전통육아 방

    법을 전수하는 주체는 어머니의 어머니 또는 시어머니란 뜻이다. 따라서 친정어머니

    7) 마사 시어스, 윌리엄 시어스 외, 노혜숙 역, ꡔ애착육아ꡕ, 푸른육아, 2009.

    윌리엄 시어스, 마사 시어스 저, 김세영 역, ꡔ애착의 기술ꡕ, 푸른육아, 2011 등에서 애착육아법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 18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나 시어머니로부터 전통육아의 방법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하면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전통육아를 실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통육아 단절의 원인을 어머니 개인의 문제나

    여성에게서 찾으려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육아 전통을 비롯한 모든 문화적 전통은 통시적 전승력을 지녀야 한다. 전통의 전

    승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동체의 문화이다. 모든 전통은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고 전

    승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육아의 전통도 공동체 속에서 전승되게 마련이다. 육아와 관

    련된 가장 구체적 공동체가 아이를 구성원으로 한 가족이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이나

    체계가 달라지면 육아를 비롯한 가족공동체의 전통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족의 변화가 육아의 전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전통육아의 단절 원인

    도 가족체계를 점검하는 데서 찾는 작업이 긴요하다. 가족은 일반적으로 부부가족과

    친자가족으로 구성된다. 전통사회에서 가족은 부모와 친자가 단일세대로 구성되는 것

    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더불어 구성되었다. 친자가 성인이 되어 혼인을 해서 다시 부

    부가족을 이루어도 한 가정에서 더불어 살았다. 이른바 다세대 가족을 구성했다. 구체

    적으로 조부모 가족, 부모가족, 친자가족에다가 때로는 형제부부 가족들도 함께 거주

    했다. 자연히 조부모와 부모는 물론, 삼촌과 고모, 사촌들과 더불어 가정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부모에 의해서 부모와 삼촌, 고모들에게 가족문화의 전통이 이어

    지는 가족구조를 이루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친정과 시집에서 두 어른들로부터 전통을 전수받는다. 이를테

    면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는 전통이나, 누룩을 띄워 막걸리를 빚는 전통은 누구에게

    서 배우는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서 함께 배운다. 때로는 조손교육 체계에8)

    따라 친정조모와 시조모로부터 배울 수도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특히 조부모 교육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조모가 손자녀들의 배변 습관에서 옷입기, 밥 먹기, 말버릇, 놀

    이, 동요 등을 가르치는 교사 노릇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일찍이 전통육아 연구에 관

    심을 기울인 유안진은 아이들이 조모의 무릎 위에 안기거나 그 둘레에 모여 앉아서

    이러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무릎학교’라고 일컬었다.9) 한마디로 아이들의 육아와 교

    육이 조부모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10) 것이다.

    8) 김미영, 「조손(祖孫) 관계의 전통과 격대(隔代) 교육」, ꡔ실천민속학연구ꡕ 16, 실천민속학회, 2010,

    55∼82쪽 참조. 전통사회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을 부모보다 조부모가 주로 담당했다

    는 사실을 다각적으로 다루었다.

    9) 유안진, ꡔ한국 전통사회의 유아교육ꡕ,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285∼286쪽 및 323∼324쪽을 참조

    하기 바란다.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19

    그런데 지금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조부모가 증발되었다. 대부분의 가정이 조부모

    를 모시고 살지 않는다. 조부모는커녕 부모조차 모시지 않기 일쑤이다. 자녀가 자라면

    혼인과 동시에 세간을 나가서 딴살림을 차리고 부부가족으로 사는 까닭이다. 가정문

    화의 전통은 조부모에서 부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전통적인 조손관계의 무릎학교는

    커녕 부모에 의한 전통교육도 이루어지기 어려운 가족체계가 조성되었다. 전통을 가르

    쳐 줄 주체가 가정에서 배제되거나, 비록 가족으로서 더불어 살고 있어도 소외되어 있

    기 때문이다. 부모든 손자녀든 조부모로부터 전통을 배우려는 의식 자체가 사라졌다.

    전통사회에서 조부모의 지식은 몰라도 되는 전통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요긴한 지식

    이었다. 따라서 조부모는 집안의 가부장이자 최고 어른이며 모든 지식의 원천이었다.

    조부모가 없는 집 아이들은 ‘본 바 없는 아이’이자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였다. 조부모

    의 무릎교육이 가정교육의 핵심이었고, 가정교육이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은 물론 지식

    교육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선조들 가운데에는 조부 또는 외

    조부로부터 교육을 받아 성취한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은 가정교육이 교육의 핵심인 시대가 아니다. 조부모의 증발과 함께 무

    릎학교도 사라졌을 뿐 아니라, 입시교육에 매몰되어 가정교육은 거의 쓸모없게 되었

    다. 입시교육 자체가 곧 학교교육을 위한 것이므로 교육의 중심이 가정에서 학교로 이

    동되었다. 입시 경쟁력이 더 치열해지자, 이제는 학교교육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입시교육의 중심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는 과외교육으로 옮겨간 것이다. 과외를 어

    떻게 시키는가, 어느 학원에 보내는가 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이처럼, 가정교육이 사라지고 학교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입시교육

    중심의 현실이자 전통교육 해체의 큰 원인이다.

    전통육아도 조모 또는 시조모로부터 배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서 배운다. 아

    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와 노래도 조모나 어머니로부터 익혔다. 그런데 집안에는 조

    모도 사라졌지만 어머니도 증발되었다. 어릴 때 어머니 품에서 자란다고 하더라도 새

    로운 양식의 지식 공부를 주로 배우느라 전통을 익힐 겨를이 없다. 어머니가 되어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조부모로부터 배운 전통보다 유아교육 체계에 따른 현

    대 지식이 더 긴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용 동화를 읽어주고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가 하면, 조기 영어교육을

    시도하다가 아예 아이를 유아원에 맡겨버린다. 유아원에서도 전통육아보다 ‘구몬학습’,

    10) 유안진, 위의 책, 372∼373쪽.

  • 20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몬테소리’, ‘뱅크 스트리트’, ‘헤드스타트’, ‘디스타(DISTAR)’ 프로그램 등 서구에서

    들어온 유아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가르치게 마련이다. 조부모들은 물론 신세대 부모

    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교육 내용과 방식들이 유아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아이

    들 부모는 오히려 조부모가 있으면 아이들 교육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다. 조부모들의

    전통 지식은 곧 전근대 지식으로서 요즘 아이들을 기르는 데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비록 어머니가 전통의 가치를 알고 전통육아를 이어받으려고 부부가족 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전통의 전승주체인 부모 또는 조부모가 가족공동체에서 사라진 상태에서

    육아의 주체인 어머니가 전통육아를 실천하려 해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육

    아를 비롯하여 가정생활의 중요한 전통을 전승해 줄 주체인 조부모 또는 부모 가족이

    배제되어 있거나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려주고 가르쳐주며 실천하도록 돌봐주는

    주체 구실을 담당할 조부무나 부모 가족이 있어도 전통은 온전하게 전승되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 놓여 있다. 집안의 모든 일에서 그들이 소외되어 있는 까닭이다. 신세

    대 중심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생활양식 전반이 크게 달라지면서 가족 속에서 조부모

    는 비주류로 밀러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육아 지식은 다른 지식과 달라서 혼인 이후에나 필요한 것이자, 어린이나

    청소년으로서 익히는 지식이 아니라 부모로서 익히는 성인지식이다. 아이들 때와 달

    라 성인이 되면 으레 부모가족과 헤어져 산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와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해서 취업 단계에는 거의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혼인 단계에 이르면

    아예 가족생활 자체가 부모세대와 분리된다. 그러므로 전통육아법을 알고 있는 조부

    모나 부모가 구존해 있어도 전수가 불가능한 가족체계 속에 있는 까닭에 전통육아는

    잊혀지게 마련이다. 가정문화의 다른 전통의 전수도 이와 같은 가족체계 속에서는 불

    가능할 수밖에 없다.

    전통사회에서는 어머니 못지않게 시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시어머니가 연로하고 아

    이들이 조금씩 자라면 육아의 주체가 아랫세대로 내려간다. 시누이 또는 큰 아이들이

    아기를 업어서 키운다. 아기가 더 자라면 형제자매들이 함께 데리고 놀았다. 어릴 때

    부터 동생을 업어주고 데리고 놀면서 육아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한다. 그런가 하면,

    여러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까닭에 형이나 언니는 아이의 보기가 되었다. 누나가 오

    빠라고 하면 남동생 아기도 따라서 형을 오빠라 일컫는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아우

    가 고스란히 따라하므로 형은 아우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21

    조부모나 부모는 형과 언니의 양육과 가정교육을 담당할 뿐 아니라, 아기 보는 법

    이나 아우를 데리고 노는 법까지 가르친다. 형이나 누나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잘못된

    언행을 하면, 동생이 본을 본다고 나무란다. 언니와 오빠는 아우의 육아 담당자이면서,

    아우의 모범이 되는 언니와 오빠 노릇을 하기 위해 스스로 바르게 성장하게 된다. 어

    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언행을 조심한다. 아이들이 본받기 때문

    이다. 온 가족들이 육아와 가정교육의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전통사회에서는 육

    아의 책임이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귀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부모의 역할이 상대적

    으로 더 컸다.

    갓난아기 때는 어머니 품에서 잠을 자다가 서너 살이 되면11) 할머니와 함께 자며

    생활한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가 대여섯 살이 되면, 계집아이는 할머니와 생활하지

    만 사내아이는 할아버지 방으로 간다. 할아버지 수발을 들고 함께 자며 예절을 배운

    다. 따라서 사내아이는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방을 차례로 거친 뒤에 비로소 자기

    생활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녀와 함께 자며 생활할 겨를이 거의 없다. 어머니도 갓

    난아기 때 외에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아기를 업어 기르는 육아도 가족

    이 공동으로 할 뿐 아니라 가정교육이 가능할 정도로 자라면 부모는 점차 배제되고

    조부모가 육아의 주체가 된다.

    상층사회에서는 특히 부모가 육아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서

    일정하게 제한했다. 반촌에서는 아버지가 아기를 안을 수 없었다. 조부모가 계시는 집

    에서는 어머니도 젖을 먹을 때나 안을 뿐 평소에는 안고 어를 겨를도 없고 시어른들

    이 그럴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양반가문의 종가에서는 더욱 심했다.

    어미가 아이들에게 너무 관심과 사랑을 쏟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해서, 마음속으로만

    관심과 사랑을 가질 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어른들 보는 데는 자녀를 얼르

    지도 않고 심지어 젖을 먹을 때 외에는 잘 안지도 않는다. 아기를 안고 얼르는 것은 할머

    니 몫이다. 아버지는 자녀를 안아보는 일이 없다. 어른들 몰래 아이를 안고 있다가도 어

    른들의 기척이 나면 얼른 내려놓는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아버지와 가까운 정을 느끼기

    어렵다.

    검제 종손12) 어른의 경우 모친의 등에 업혀봤거나 안겨본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주로

    11) 아우가 일찍 들어서면 서너 살이 되지 않아도 어머니와 떨어져서 할머니와 생활하게 된다.

    12) ‘검제 종손’은 학봉 김성일 선생 종손을 안동지역에서 흔히 일컫는 말이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

    리에 학봉종택이 있는데, 학봉 종택이 있는 금계리를 지역주민들은 흔히 ‘검제’라고 하여 ‘검제

    종가’ 또는 ‘검제 종손’이라 일컫는다. 이 진술을 한 검제 종손은 학봉 14대손인 김시인(金時寅,

    82세)씨이다.

  • 22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형제나 아제(삼촌),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13)

    현리마을 인천 채씨 문중의 경우에는 더 철저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조차 아기

    를 안지 않는 것이 규범이었다. “어디 상놈들 하듯이 지(자기) 자식을 끌어 안노!”하

    고 나무라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조차 보듬어 안지 않고 젖만 물

    렸다고 한다.14) 부모와 아이가 피부접촉을 긴밀하게 하지 못하게 했다. 아기를 껴안고

    볼을 비비는 따위의 행위를 아주 상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아기를 기르는 역

    할은 부모보다 조부모의 역할이 훨씬 컸다.

    반촌의 종가 전통을 일반화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조부모 가족이

    없는 지차 집안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민촌에서는 조부모에 의해 이

    처럼 부모의 역할이 제약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부모 앞에서 아이들을 안고 어르거

    나 심하게 나무라는 일은 삼갔다. 아이를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것도 삼가야 하지만,

    어른들 앞에서 아이를 매질하는 것은 물론 심하게 꾸짖는 일은 거의 금기나 다름없었

    다. 따라서 아이의 부모라 하여 감정대로 아이들을 다루지 못했다. 조부모가 늘 지켜

    보면서 과도하게 귀여워하거나 나무라지 않도록 중재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조

    부모는 아이들을 다루는 데 과불급이 없도록 하는 훌륭한 조정자이자 중재자이다.

    조부모가 없거나 부모를 일찍 여윈 어머니도 이웃의 육아방법을 보고 익히게 마련

    이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전통문화 일반이 그렇듯이 마을공동체 속에서 전통육

    아가 공동으로 전승되는 까닭이다.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전통마을에서는 가족 단

    위의 육아 전통이 마을 단위의 육아 전통과 만나게 마련이다. 이웃노인들을 자기 부모

    처럼 공경하듯이 이웃집 노인들도 마을 아이들을 보면 자기 손자녀처럼 돌봐주고 가

    르쳐 준다. 공동체는 서로 돌보는 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에 가족 결손이 전통 전승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조부모 가족은 물론 부모 가족조차도 함께 살지 않을뿐더러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는 까닭에 전통육아를 비롯한 가정문화의 전통이 제대로 지속되기 어

    렵다. 이러한 원인은 육아주체인 어머니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도 아니지만, 가족들에

    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다. 가족 공동 육아의 전통이 불가능한 가족체계를 이루

    13) 임재해, 「안동 양반의 일생과 삶」, ꡔ안동양반의 생활문화ꡕ,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2000, 70∼

    71쪽.

    14) 임재해, 「머리말:두 문화의 전통이 꿋꿋한 현리 마을」, ꡔ반속과 민속이 함께 가는 현리마을ꡕ,

    한국학술정보, 2003 참조.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23

    게 된 것은 가족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식민지 경험이라고 하는 아픈 근대사가 자리잡고 있다.

    4. 일제강점기의 식민정책과 전통부재의 학교교육

    전통은 역사적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오래된 문화라 하더라도 통시적으로 지속되

    며 지금 여기의 문화로 살아 있을 때 전통으로서 효용성을 발휘한다. 지금 갓 만들어

    진 현대문화라 하더라도 미래에까지 일정한 기간 지속될 수 있어야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는다. 일찍이 전통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쉴즈(Edward Shils)는 3세대 동안 지

    속성을 지녀야 전통으로서 조건을 갖춘다고 했다.15) 굳이 3세대를 기준으로 삼지 않

    더라도 전통은 일정한 기간 통시적 전승력을 지닐 때 획득되는 자질이다.

    통시적 지속은 필수적으로 변화를 동반한다. 지속되는 것은 변화되게 마련이고 변

    화되는 까닭에 지속된다. 따라서 지속과 변화는 대립적 관계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배타적 개념이 아니라 서로 포함하고 포함되는 변증법적 개념이다. 전통이 공동체문

    화로서 자력적으로 전승될 때에는 변증법적 건강성을 발휘하지만, 외부에 의한 강제

    된 억압으로 타력적 영향력이 가해지게 되면 전승력이 약화되다가 마침내 단절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한 치명적 위기를 조성한 것이 외세의 식민지배이다. 한국사회

    의 전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개항기 이후부터 전래된 선교사의 기독교와 일제

    강점기의 식민정책이다.

    한일 수호조약인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 시기를 흔히 개화기라고 하는데, 나는

    굳이 ‘개항기’라고 일컫는다. 왜냐하면 개화기라고 하는 것은 그 이전의 한국사회를

    미개한 사회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개화기라는 말이 미개한 상태나 야만스러운 전통

    문화를 청산하고 새 문화를 받아들여 개명한 상태를 이루자는 제국주의 침략정책의

    산물이라면,16) 개항기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로서 쇄국정책을 그만 두고 세계

    각국에 항구를 개방했다는 뜻을 지닌다. 이 조약에 따라 항구를 개방하면서 일본과 미

    국 등 서구 세계와 교섭하는 가운데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신문명을 받아들이는

    15) Edward Shils, Tra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pp. 15∼16.

    16) 呂增東, 「19세기 때 나타난 ‘開化’라는 말에 대한 연구」, ꡔ語文學ꡕ 40, 한국어문학회, 1980, 12∼

    13쪽. “한국땅에서 ‘개화’라는 말을 제일 처음으로 퍼뜨린 사람은 일본공사 大鳥圭介였고, 때는

    1894년 갑오년 6월 22일이었으며, 그것은 大鳥가 군대를 거느리고 고종을 협박하던 가운데 사용

    했던 말이었다.”

  • 24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한편, 외세의 침략과 문화 침투가 자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한국문화는 무엇

    이든 구시대의 것으로 간주되어 극복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일본을 비롯한 서구문화가 신문명으로 긍정되는 반면, 한국문화는 상대적으로 봉건

    적인 것이자 전근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구시대 문물로 평가 절하되기 시작했다. 왕

    조체제와 다른 새 제도와 체제가 자리잡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종래의 전통과 다른

    서구인들의 생활과 신문물들을 본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첫

    째는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지배층들이 서구문물을 누렸기 때문에 서구문물이 신분상

    승의 욕구로 작용했으며, 둘째는 강대국이자 선진국이 누리는 문화였기 때문에 서구

    문물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셋째는 위로부터 서구문물을 수입하여 확산한 까닭

    에 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일방적 이식을 하게 된 것이다.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조상 제례와 같은 전통을 우상숭배로 치부하고 민속신앙의

    전통을 마귀 곧 사탄을 믿는 주술행위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전통이 일상적 생활세계

    의 관행이자 전승지식 구실을 담당했던 사회에서, 이처럼 전통을 부정하는 가치관의

    전복은 심각한 문화충격이다. 그러나 선교활동에 의한 것이므로 개인적으로 선택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전통을 이어갈 문화적 자유가 크게 침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속신앙의 전통은 물론, 우리말조차 쓰지 못하게 막고 타고난 성

    씨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반문명적 횡포가 자행되었다. 아마 식민지배

    사상 ‘창씨개명’처럼 극단적 문화침탈을 자행한 국가는 일본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

    들은 동화정책이라는 명분으로 한민족 정신은 물론 혈연적 계보까지 말살하려 한 까

    닭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대부분의 민족 전통이 타력적으로 단절되기 시작했으며,

    식민지배 기간이 한 세대 이상 지속되면서 정책적으로 억압받지 않던 전통조차 급격

    하게 소멸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전통이라는 말조차 널리 쓰지 않았다. ‘전통’이라는 말 대신에 ‘재래’라

    는 말이 그러한 구실을 했다. 전통은 통시적 전승력을 지닌 말로서 미래의 전망까지

    연결되는 뜻을 지녔다. 따라서 전통은 지키고 가꾸어 가야할 문화적 현상으로 인식된

    다. 그러나 재래는 이미 있었던 것으로서 ‘과거의 것’ 또는 ‘있어온 것’으로, 지금 여기

    서 극복해야 할 것처럼 인식되는 말이다. 전통이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통

    시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면, 재래는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낡은 것이자 오래

    된 것으로서, 현재와 과거가 대립되는 신구(新舊) 개념 가운데 ‘구’로 밀려나는 개념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25

    이다.

    따라서 전통이 문화적 친근성과 가치 지향적 의미를 지닌 반면에, 거의 같은 뜻의

    말이지만 재래는 마치 역사적으로 오래되어서 현실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신구의 대립을 이루면서 낡은 것을 뜻하는 것이자 언젠가 새로운 것에 밀려

    날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전통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만한 것이자 새롭게 만들어

    갈 수도 있는 창조적 역동성과 변혁성까지17) 갈무리하고 있는 데 비해, 재래종이나

    재래의 풍속은 마치 미개하여 뒤떨어진 것으로서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것이자,

    기껏 제자리에 머무는 답습, 또는 시대에 역행하는 퇴보를 뜻하게 된다. 따라서 요즘

    은 재래종과 재래시장18) 외에는 재래가 아닌 전통으로 표현한다. 특히 문화현상의 경

    우에는 재래란 말보다 전통이란 말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든 식민지배의 경험은 자문화의 전통에 큰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일본의 식민지배는 특

    히 가혹하여 문화적 단절이 심각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학교교육은 식민정책과 더불어 문화적 전통

    단절에 큰 몫을 담당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교육이 주입식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 전통은 개화의 대상이자 전근대적 문화일 뿐 아니라 한갓 인습이거

    나 주술 또는 미신으로 간주되었다. 학교의 교육내용과 교육환경, 교사진도 모두 일본

    의 식민주의를 추구하는 왜색 중심이었다. 조회 때는 신사를 향해 참배하도록 하고,

    칼을 찬 훈도가 교사의 주축이 되어 일본식 건물의 교실과 교과서로 개화교육을 하는

    데 주력했다. 중학생부터는 왜색교복을 입혀서 군국주의 교육을 했다. 학교야말로 식

    민지 교육의 현장이었다.

    해방후에는 미군정에 따라 미국식 교육제도와 내용들을 대폭 수용했으며, 기독교

    재단의 사립교육기관들이 국민교육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입시교육에 매몰

    되어 전통교육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육아방법은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교육에서도

    다루지 않으니 전통육아가 다음 세대들에게 제대로 전수될 길이 없다. 교육학에서도

    유아교육은 최근에 문제되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의 역사는 다른 분과학문에 비

    하여 아주 짧다. 그러나 전통육아의 역사는 길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지

    17) 임재해, 「한국사회의 변동과 문화적 전통의 변혁성」, ꡔ문학과 사회ꡕ 17, 문학과지성사, 1992. ꡔ한

    국민속과 오늘의 문화ꡕ, 지식산업사, 1994, 21∼51쪽에 재수록되었는데, 전통의 변혁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18) 그래도 재래시장은 전통시장, 전통장터라는 말로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재래종은 전통종이라는

    말로 일컫지 않는다. 생물의 재래 품종은 전통종이라는 말로 환원되지 않는 셈이다.

  • 26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나치지 않다.

    서양교육 체제에 따라 발행된 ‘교육학개론’에는 태교와 같은 전통교육이 아예 없다.

    전통육아도 다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육학과의 교과과정에도 태교는 물로 육

    아 또는 유아교육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육아나 전통교육에 관한 교과

    과정도 없다. 전통육아와 유아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 비로소 성과를 내

    기 시작했다.19) 그러나 유아교육학과 교과과정에도 전통육아 관련 교과과정이 없다.

    그러므로 교육학과 또는 유악교육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전통육아를

    배울 길이 없다. 오히려 교육학 전공은커녕 학교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할머니들

    이 전통육아에 더 밝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이 있기 전부터 가정교육으로 전통육아와 태교

    가 가르쳐졌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적으로 전승되고 실천되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서구식 학교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러한 전통교육은 알게 모르게 부정

    되고, 삶의 현장 속에서 전통육아가 전승되고 있어도 학생들은 물론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아이를 업고 생활하는 전통육아는 고등교

    육을 받은 이들일수록 더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전통육아는 잊혀진 것이 아니라 의

    도적으로 외면하도록 만드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전통육아를 익

    히려면 학교에 다니지 못한 70대 이상 고령의 할머니들을 찾아가서 면담 방법으로 조

    사를 해야 할 형편이다.

    전통문화와 전통육아 및 전통교육이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보편성을 띤 사회학

    문이나 객관적 검증을 다루는 자연학문과 달리,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며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인간으로 성장시켜 주는 까닭이다. 특히 전통육아는 우리 아이들을 우리 아

    이들답게 기르는 우리들 고유의 육아법이다. 따라서 전통육아가 중요한 것은 세계화

    시대로 갈수록 한국 아이들을 한국 아이들답게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이

    없는 인간은 세계화시대에 존재감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백인들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처럼 살아가도록 강요하며 그들의 삶터를 앗아가려고 하자,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려고 백인들에게 저항하며 한 원주민의 말을 들어보자.

    19) 柳岸津, ꡔ韓國의 傳統育兒方式ꡕ,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柳岸津, ꡔ韓國 傳統社會의 幼兒敎育ꡕ,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등이 그러한 연구의 보기이다.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27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이다. 사람답게 키우는 일, 그것

    말고 바르게 키우는 일이 또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인디언에게 있어서 사람답게 키

    우는 일이란 인디언답게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되는 일이지

    당신들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20)

    인디언들도 자기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인디언답게 키우는 일을 가장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라 여겼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 문

    제와 걸려 있는 절실한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의 땅을 거래라는 수단으로 차지

    하려는 백인 추장 곧 미 대통령에게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치며 맞섰던 것이다. 미국식

    교육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의 아이들은 더 이상 인디언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상 인디언으로서는 죽음의 길을 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 인식은 인디언들이나 제3세계 민족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와 같은 선진국 지식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프랑스 사학자 ‘구스타브 르 봉

    (Gustave Le Bon)’은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한 국민의 생존 요건이며, 전통에서 탈

    피할 줄 아는 것은 발전의 요건”이라고 했다.21) 따라서 전통에 매몰되어도 안 되지만

    전통을 배격해도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을 한국인답게 기르는 전통육아 방법

    은 민족 정체성 교육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서구식 학교교육이 이식된 이래, 한국 전통교육이 제대

    로 문제되거나 교육현장에 뿌리내린 적이 없다. 태동고전연구원과 같은 사설기관에서

    한문교육을 서당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음악교육은 으레 서양음악을 가르

    치고 미술교육 또한 으레 서양미술을 가르치는 것처럼, 국어와 국사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을 거쳐 수입된 서구식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국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교육학자들도 으레 미국유학파들이 주류를 형성

    하고 있다. 유학에서 익힌 미국 교육학의 수입과 보급을 능사로 알고 있는 까닭에 한

    국 전통교육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외국유학에서 현지 국가의 교육이론을 배울수록, 귀국해서 우리도 그들과 같은 한

    국의 교육이론을 한국의 전통교육 속에서 수립해야겠다는 각성을 하는 것이 진정한

    유학의 성과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학과정에서 그들은 그들의 교육이론이 있는데 왜

    우리는 한국 교육이론이 없는가 하는 사실을 성찰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

    20) 구름처럼붉은(레드 클라우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시애틀 추장 외, 류시화 옮김, ꡔ나

    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ꡕ, 정신세계사, 1993, 101쪽.

    21) 柳岸津, ꡔ韓國 傳統社會의 幼兒敎育ꡕ, iii쪽.

  • 28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다. 전통육아 연구를 개척한 유안진은 미국 유학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전통

    육아 연구의 계기를 마련하고 귀국 후 전통육아 답사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어째서

    우리 자신의 되어온 과정에 이처럼 무관심해 왔을까?” 하는 성찰적 자문이 가능했던

    것은, 루쓰 베테딕트(Ruth Benedict)와 같은 외국학자들이 한국문화에 열렬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육아에 대한 관심도 유학 중에 싹이

    텄다고 한다.22)

    교육학 이론을 제대로 배운 일은커녕 학교교육과 거리가 먼 인디언들조차 자기 아

    이들을 인디언답게 기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데, 우리 교육학자들은 서구 교육학

    이론을 수입하는 일에 골몰해서 전통육아는커녕 전통교육 자체를 돌아보지 않았다.

    세계 교육학에서 한국 교육학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부끄러움이자 교육학계의

    막대한 손실이다. 전통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답게

    성장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학 이론이 자력적으로 개척되어 인류교

    육에 바람직하게 이바지할 수 있는 길도 전통교육 연구에서 찾아야 한다.

    5.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전통문화의 해체

    전통육아의 단절 원인은 서양교육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육 분야에 한정된 문

    제가 아니다. 거시적 구조의 사회체제에서부터 미시적인 생활세계의 일상까지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적인 사회체제와 생활양식을 다투어 받아들이는 산업화 사회가 더 큰

    원인이다. 산업화는 크게 세 가지 변화를 겪었다. 하나는 시골의 마을공동체가 해체되

    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거대한 도시사회의 형성이고, 둘은 1차 산업인 농업사

    회에서 2차 산업인 공업사회를 거쳐 3차 산업인 서비스사회로 변모한 것이며, 셋은 인

    간다운 삶과 인격적인 성숙에서 비롯되는 공동선의 의미가치보다 기술문명의 편의성

    과 물적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적 교환가치의 추구를 들 수 있다.

    전통은 마을공동체와 농업사회, 그리고 공동선의 의미가치와 만나는 문화현상이다.

    따라서 도시 사회와 서비스 사회, 시장 사회에서는 전통보다 신문명과 신상품, 신기술

    의 수입과 발명에 골몰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현대 산업사회 자체가 전통가 멀어지는

    구조로 가고 있다. 더 문제는 그러한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어 사회변동이 급격

    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통 초가집이 사라진 것은 물론, 현대 상품인 필름카메라

    22) 柳岸津, ꡔ韓國의 傳統育兒方式ꡕ,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iii∼iv쪽.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29

    가 자취를 감추었고 현대기술인 삐삐조차 사라진 것이 여러 해 되었다. 첨단기술의 휴

    대폰도 벌써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전통육아가

    잊혀지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림살이에 편의를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는 나날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

    답게 만드는 교육은 쉽게 달라지지 않아야 하며 달라져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생활세

    계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도구는 새로운 기술체계에 따라 낡은 것은 버려도 상관없

    지만, 사람은 편리하게 쓰다가 버리는 도구로 수단화되어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그런

    데 지금은 노인들이 사회에서 버려지고 나이 먹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

    다. 오래된 슬기인간이 새로 태어난 기술인간에 의해 추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술문명은 첨단과학일수록 생활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까닭에 그 부작용이

    나 역기능을 예측할 수 없다. 일기예보가 시시각각으로 제공되는 까닭에 스스로 날씨

    를 읽고 예측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노래방 기기가 보급됨에 따라 노래 사설을 기억하

    지 못해 혼자서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도시아이들은 좌변기가 없으면 똥도

    못 눈다.”23) 자력으로 똥도 못 누는 인간이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일을

    기계에 의존하다가 기계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이다. 이처럼 기

    계문명은 인간의 기능을 퇴화시켜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 기계문명 탓에 인간으로

    서 기본적인 생존능력을 상실해 가는 사회를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

    을까.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기계문명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교육에 의해 인간다운 인간이 길러진다. 한국사회에서는 한국인다워야 인간

    답다. 그러자면 한국사회에서는 한국 전통교육이 필수적이다. 전통교육이란 기술교육

    이 아니라 문화교육이며, 첨단교육이 아니라 생활교육이다. 첨단 과학기술은 실험실에

    서 단시일에 검증된 것이어서 인간의 실제 생활세계에서 어떻게 작동될 지 알 수 없

    다. 그러나 문화적 생활교육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사회적으로 교정

    되고 공유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과학교육보다 전통교육이 오히려 문화적 신뢰성과

    사회적 안정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전통육아의 방법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애착교육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육아와 관련하여 한층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은 교육 분야 외에 의학 분야에서

    비롯되었다. 의학 분야에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이 병원이다. 시골에서는 병원이

    23) 권정생, ꡔ빌뱅이 언덕ꡕ, 창비, 2012.

  • 30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없어 중병을 앓게 되면 대도시로 가야 한다. 의사가 최고의 직업이고 의과대학이 경쟁

    률이 높은 것도 병원이 가지고 있는 산업사회의 특권이다. 산업사회일수록 임신과 출

    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병원이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마치 임신이 여성의 질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임신 초기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아야 하는 도시 풍속이 최근 한 세대 사이에 자리 잡았다. 달리 말하면 임신부는 곧

    환자가 되는 것이고 출산하는 산모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환자가 되는 것이다. 죽음

    도 병원에서 맞이할 뿐 아니라 장례까지 병원에서 치르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병원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병원업이다. 의사들과 의료체계가 건강한 임신부를

    환자로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의사들은 임신한 여성이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지 않으

    면 산모와 태아가 모두 위험하다고 끊임없이 산모를 위협한다. 산모가 자연분만의 진

    통을 겪어야 모성애가 생기고, 아기는 자궁을 통과해서 세상에 나와야 생명력과 면역

    력이 증대되는 데도 자연분만보다 인공분만이 의료수가가 높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인

    공분만을 권유한다. 감기에는 약이 없는 데에도 감기바이러스와 무관한 항생제를 투

    약하는 것과 같은 반의료적 행위가 인간생명의 시작 단계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 동안

    작동하는 것이다. 과학주의와 상업주의 사이에서 태어난 병원이 아이의 부모들을 전

    통육아를 배신하고 병원으로 오도록 유인하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병

    원기업과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든다.

    산업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의료기술이자 병원경영 논리이다. 임신과 출산이 반전통적인 의술에 전적으로 의존하

    도록 만든 사회에서 육아만 전통적이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인공분만이라는 병원의 의

    학적 출산이 상업주의의 영향을 받듯이, 육아를 비롯한 모든 생활세계의 문제에 대한

    검증도 상업주의에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실험실에서도 과학적 객관성

    보다 상업적 이윤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커피회사의 연구비를 받게 되면 커

    피의 나쁜 점을 밝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유회사의 연구비를 받

    게 되면 우유 수유의 장점만 드러내는 연구를 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이러한 연구결과

    를 근거로 우유회사는 튼튼한 아이를 기르는 필수영양 식품처럼 분유광고까지 한다.

    자연히 모유 수유의 장점이 묻힐 수밖에 없다.

    다른 육아 관련 상품들도 마찬가지이다. 포대기를 파는 업체보다 유모차를 파는 업

    체들이 더 기업적이고 더 과학적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보행기나 유모차의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31

    장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과장되면서, 아기를 업어서 기르면 마치 안짱다리

    아이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유모차의 효과가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처럼

    기사화하는 데 언론도 한몫을 담당한다.

    어렸을 때 업혀서 자란 사람은 다리가 벌어져 O다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먹고살기 힘

    들었던 보릿고개 시절 성장기를 거친 사람들에게 많았으나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

    출할 때 업는 경우가 거의 없고 유모차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24)

    업혀서 자란 아이는 보릿고개 시절의 가난한 아이이자 시골아이처럼 취급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아예 과학육아법으로 볼 때 불구가 되는 것처럼 다루었다. 아이가 안짱

    다리로 자란다는데 어느 어머니가 업어서 기르겠는가. 할머니가 멋모르고 아기를 업

    으려면 오히려 짜증을 낼 형편이다. 이처럼 상업주의와 만난 과학육아는 신뢰할 수 없

    다. 오히려 그 반대로서, 아이를 빨리 걷게 할 욕심으로 보행기에 무리하게 앉혀두면

    안짱다리가 될 수 있다. 유아 때 보행기나 유모차를 많이 타게 되면 걷는 능력도 약화

    될 뿐 아니라, 스스로 걸어다니기를 싫어하게 되며 고관절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데도 보행기와 유모차가 과학육아의 길이라는 착각 때문에 전통육아는 더욱 밀려나게

    되었다.

    거짓과학으로 상품을 광고하는 데서 나아가 전통은 비합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

    고 여기 일쑤이다. 아이를 업어 기르면 다리가 O자 형으로 굽어지는 것은 물론 아이

    의 독립심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입견이자 전통

    을 불신하는 데서 비롯된 억측일 따름이다. 업어 기르지 않아도 아기들의 다리는 으레

    O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오히려 어머니품에 안기거나 등에 업혀 자란

    아이들의 독립심이 더 강하다.25) 실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까닭에 서구의 육아

    법을 맹목적으로 쫓아가게 된 것이다. 육아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이 일반화되어 전통문화는 전반적으로 자취를 감추어가게 되었다.

    24) 이호갑, ‘그녀의 히든카드 다리’, 동아일보, 2007년 1월 17일자.(http://news.donga.com/3//

    20070117/ 8396674/1).

    25) EBS,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 2012년 5월 3일 밤 9시50분 방송에서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었다.

  • 32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도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전통육아는 점점 잊혀지게 되었는데, 우리가 잊고 사는 사이에

    촌스럽고 투박하다고 여겼던 포대기가 세계의 엄마들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부활을 하

    고 있다.26) 따라서 우리가 홀대해 왔던 전통육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애착육아’는 부모와 아기의 밀착관계로 형성된 애정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외부세계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자발적인 동기 유발과 자신감을 강화

    시켜 준다는 것이다. ꡔ애착의 기술ꡕ에서 밝힌 육아 7계명은 모유 수유와 안아주기, 함

    께 자기, 울음에 적극 응답하기, 육아와 생활의 균형잡기 등으로27) 한국 전통육아와

    만난다.

    기술문명이 일상생활을 이끌어가고 시장경제가 사회체제를 바꾸어 놓은 까닭에, 사

    람들은 다투어 첨단기술을 좇아가고 경제적 이윤을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여기게 되

    었다. 따라서 교육과 건강 문제도 과학기술로 해결하고 돈으로 사려고 한다. 운동보다

    의술과 건강식품으로 건강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족집게 과외와 같은 사교육으로

    입시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돈으로 욕망을 사려고 할 뿐 아니라, 돈을 벌어들이는

    것 또한 최대의 욕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통육아와 같은 교육 문제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기술문명의 비약과 나란

    히 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기술이 어떻게 달라지든 인간의 의식주 생활과 같은 기

    본적인 생존활동들은 일정한 전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기술문명이 인간의 생명현

    상 자체를 바꾸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

    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기술문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크게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의 일상은 여전히 아날로그 상태로 가야 한다.

    디지털 옷차림이 아무리 화려해도 현실적으로 입을 수 없고, 가상공간의 주소와 집

    에서는 가정생활을 할 수 없다. 여전히 주거생활은 홈페이지가 아닌 집에서 아날로그

    상태로 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공간의 음식이 아무리 맛있게 보여도 그 자체로 음식

    구실을 하지 못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음식을 입 안에 넣어서 씹고 목구멍으로 넘겨

    야 비로소 음식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결코 디지털 방식으로는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다.

    26) EBS, 위의 방송 내용 참조.

    27) 윌리엄 시어스, 마사 시어스 저, 김세영 역, ꡔ애착의 기술ꡕ, 푸른육아, 2011.

  • 기조발제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33

    설날 아침에도 우리 아이들은 떡국을 차린 상이 아니라 컴퓨터에 앞에 앉아 있었을 것

    이다. MP3의 디지털 음악으로 한 해를 맞고 신데렐라의 마차와 같은 환상적인 연하장을

    e메일로 주고받는다. (일부 줄임) 이렇게 새해는 아날로그 세상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으

    로 온다. (일부 줄임) 그러나 어떤가. 인터넷 공간에는 동서남북이 없지만 여전히 오늘

    도 해는 동쪽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뜬다. 무엇보다도 디지털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설날의 떡국 맛이다.28)

    급격히 변화하는 디지털시대에 살면서도 변화에 따를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처럼,

    아이 기르는 일을 새로운 기술에 따라 속성으로 할 수 없다. ‘조장(助長)의 고사’와29)

    같이 자칫하면 생명력을 시들게 하고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지금 아이들이

    소아비만과 소아당뇨를 비롯하여 전에 없던 성인병을 앓고 있다. 중학생 절반은 안경

    을 끼고 생활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조차 성적의 강박관념 탓에 자살하는 사례가 늘

    어가고 있다. 전통사회에는 없던 현상이며 시골학교에서는 보기드믄 현상이 도시학교

    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도시사회는 전통과 결별한 새로운 사회이자 서구화된 사회이다. 어느 나라든 도시

    에는 빌딩과 시장과 자동차가 넘치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는 효율성과 상업

    성, 편의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표준화되어 있기 일쑤이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도시에

    서 전통을 찾는 것은 산에 가서 고기를 찾는 일과 같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치 도시

    화와 산업화가 살 길인 것처럼 모두 그쪽으로 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전통육아를 담당

    할 조부모가 증발되고, 육아 주체인 부모가 있어도 육아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다. 두

    세 달 출산휴가를 마치면 아이들을 양육기관에 맡기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까닭이

    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로소 육아휴직이 제도화되었지만, 여건상 공무원 외에는 선

    택하기 어려워 유명무실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전통육아의 전수자이자 감독자인 조부모의 구실도 달라졌다. 재벌 조부에

    의한 사교육 혜택을 누리는 경우 외에는 조부모가 손자녀들과 함께 사는 경우도 없으

    려니와, 함께 살아도 손자녀 교육에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부모는 며느리 눈

    치 보며, 뒷방에서 없는 듯이 지내기 일쑤이다. 조부모에 의한 격대교육의 전통은 진

    작 사라지고 부모들의 극성교육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조부모의 넉넉한 경제력

    이 극성 사교육의 자금줄 노릇을 한다. 말로는 인간교육, 인성교육을 주장하면서 실제

    28) 이어령, ꡔ디지로그ꡕ, 생각의 나무, 2006, 17쪽.

    29) 알묘조장(揠苗助長)은 벼가 빨리 자라도록 바라는 욕심 때문에 벼를 뽑아 올려서 모두 죽게 만

    들었다는 고사이다.

  • 34 새로운 한류, 한국 전통육아의 지혜를 찾아서

    로는 입시교육, 경쟁교육에 몰입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조기교육 욕망과 입시교육 등살에 죽어가고

    있다. 요즘 부모들이 가족의 미래를 온통 자녀들의 성취에 지나치게 거는 까닭에 치맛

    바람을 넘어선 극성으로 자녀들을 쥐어짜는 까닭에 사교육 폐단과 자녀들의 일탈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학교폭력과 학생자살이 그러한 구체적 보기이다. 그러

    므로 공익광고조차 아이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학부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

    은 부모입니까? 학부모 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

    다.”30)

    이 광고 내용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누구나 학부모

    가 아닌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학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