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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부산이 영화의 꿈을 지원합니다 기획 <설국열차>가 <말세열차>가 된 이유는…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씨네必 Interview 김휘 감독 Asia Movie File 아마도 홍콩 / 홍콩영화산업의 오늘 /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 FLY x Re: J 워크숍 영화 그리고… <일대종사>: 잎 아래 꽃을 숨기다 부산영상위원회 소식지 BUSAN FILM COMMISSION MAGAZINE 2014.4+5+6 월호 Vol. 09 (통권 제49호/계간) FILM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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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부산이 영화의 꿈을 지원합니다 기획 <설국열차>가 <말세열차>가 된 이유는… Space Story 복

천동 고분에 누워 씨네必 Interview

김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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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상위원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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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5+6월호

Vol. 09(통권 제49호

/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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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5+6 Vol.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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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허남식

편집인 오석근 운영위원장

편집주간 강성호 사무처장

편집책임 배주형 정책사업부장

편집팀 길선영, 권소현, 신혜영, 장지욱, 김정현

연락처 051-7200-351

기고/투고 [email protected]

사진 이요섭, 곽형린

디자인/제작 돋음 (051-756-4410)

제작진행 윤태수, 우상헌

디자인책임 김상영, 김아영

발행처 (사)부산영상위원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52(우동1393)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우612-824)

전화 051-7200-301 / 팩스 051-7200-300

www.bfc.or.k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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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영화부산 F I L M B U S A N

2014년 4월 25일 발행

2014년 4+5+6월호 | 계간

제9호(통권 제49호) | 비매품

표지 | 영화<타짜-신의 손> 촬영현장 제자(題字) | 명계남

사진제공 | 싸이더스픽쳐스

※이 책은 비매품으로 무료입니다.

※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림 등은 무단으로 옮겨 싣거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려면 부산영상위원회와 저작권자의 서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특집부산이 영화의 꿈을 지원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

기획<설국열차>가 <말세열차>가 된 이유는… /장영엽

씨네必 Interview김휘 감독 /김현주

부산촬영 Close Up<브레이크 모드> /윤민영

<타짜-신의 손> /장지욱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이종민 권소현의 공간 /권소현

Busan Actor반짝반짝 빛나는, 배우 차은재 /신혜영

이승원의 현장툰 /이승원

Asia Movie File아마도 홍콩 /길선영

홍콩영화산업의 오늘 /길선영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길선영

새하얀 날갯짓, FLY x Re: J 워크숍 /신혜영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길선영

영화 그리고…<일대종사>: 잎 아래 꽃을 숨기다 /이지훈

황경민의 객설독립이냐, 예속이냐? 공생이냐, 공멸이냐? /황경민

부산에 보내는 편지영화와 삶이 녹아있는 부산으로 /이성진

Column황시의 아이들 /이성철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하기호

정한석의 한국영화단상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 <몬스터> /정한석

Film Review<오직 그대만> /한동균 <설국열차> /문성훈

<안개 속의 풍경> /윤혜림

장지욱의 내멋대로 차트 /장지욱

Art Plus 영화의전당 / 국도예술관

BFC News부산영상위원회 뉴스

신혜영의 쉬어가기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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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허남식

편집인 오석근 운영위원장

편집주간 강성호 사무처장

편집책임 배주형 정책사업부장

편집팀 길선영, 권소현, 신혜영, 장지욱, 김정현

연락처 051-7200-351

기고/투고 [email protected]

사진 이요섭, 곽형린

디자인/제작 돋음 (051-756-4410)

제작진행 윤태수, 우상헌

디자인책임 김상영, 김아영

발행처 (사)부산영상위원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52(우동1393)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우612-824)

전화 051-7200-301 / 팩스 051-7200-300

www.bf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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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영화부산 F I L M B U S A N

2014년 4월 25일 발행

2014년 4+5+6월호 | 계간

제9호(통권 제49호) | 비매품

표지 | 영화<타짜-신의 손> 촬영현장 제자(題字) | 명계남

사진제공 | 싸이더스픽쳐스

※이 책은 비매품으로 무료입니다.

※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림 등은 무단으로 옮겨 싣거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려면 부산영상위원회와 저작권자의 서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특집부산이 영화의 꿈을 지원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

기획<설국열차>가 <말세열차>가 된 이유는… /장영엽

씨네必 Interview김휘 감독 /김현주

부산촬영 Close Up<브레이크 모드> /윤민영

<타짜-신의 손> /장지욱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이종민 권소현의 공간 /권소현

Busan Actor반짝반짝 빛나는, 배우 차은재 /신혜영

이승원의 현장툰 /이승원

Asia Movie File아마도 홍콩 /길선영

홍콩영화산업의 오늘 /길선영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길선영

새하얀 날갯짓, FLY x Re: J 워크숍 /신혜영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길선영

영화 그리고…<일대종사>: 잎 아래 꽃을 숨기다 /이지훈

황경민의 객설독립이냐, 예속이냐? 공생이냐, 공멸이냐? /황경민

부산에 보내는 편지영화와 삶이 녹아있는 부산으로 /이성진

Column황시의 아이들 /이성철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하기호

정한석의 한국영화단상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 <몬스터> /정한석

Film Review<오직 그대만> /한동균 <설국열차> /문성훈

<안개 속의 풍경> /윤혜림

장지욱의 내멋대로 차트 /장지욱

Art Plus 영화의전당 / 국도예술관

BFC News부산영상위원회 뉴스

신혜영의 쉬어가기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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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al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참담하다’는 말 외에 어떤 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는 세월

호 사고. 얼마나 많은 눈물과 분노가 모여야 그 희생자들

과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텐가. 다만

눈을 감고 도저히 발생하지 말아야 하는 사고를 만든 기성

의 모든 시스템과 사고에 깊이 반성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영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밖

에 없다. 영화란 항상 꿈과 희망을 주고 또 새로운 경험만

을 주는 존재인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역할 중에 가장 중

요한 것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드러내어 비춰주고, 아무

도 듣지 않는 말을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

해 듣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지금 같은 시기, 다시 한

번 더 영화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할 듯하다.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부산영상위원회는 <영

화부산>을 통해 올해 지원사업을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

다.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사업을 살펴보면, 지난해

까지 진행해온 사업 중 폐지되거나 내용을 일부 조정한 사

업도 있다. 물론, 새롭게 선보이는 사업도 있다. 이렇게 사

업을 조정하게 된 것은, 수혜자가 명확한 사업을 전개해

달라는 현장의 목소리와 아울러, 단기적인 지원사업도 중

요하지만 부산에서 산업적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에 부산

영상위원회가 좀 더 노력해 달라는 주문에 근거한다. 물

론 올해 사업만으로 그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이런 방향으로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집과 함께 <영화부산>의 빈곤한 기획력을 단단하게 채

워낸 외부 필진의 글 또한 여전히 풍성하고 의미 있다. 그

간 좋은 글로 <영화부산>을 든든히 받쳐온 기존 필진은 물

론, 새로 합류한 필진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 한다.

이 책이 제작되어 배포될 시점 즈음에는 세월호 실종자들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사실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

다. 세월호 희생자 모두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강성호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

사진 이요섭

복천동 고분에 누워

영화 본연의 역할을 되물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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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al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참담하다’는 말 외에 어떤 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는 세월

호 사고. 얼마나 많은 눈물과 분노가 모여야 그 희생자들

과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텐가. 다만

눈을 감고 도저히 발생하지 말아야 하는 사고를 만든 기성

의 모든 시스템과 사고에 깊이 반성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영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밖

에 없다. 영화란 항상 꿈과 희망을 주고 또 새로운 경험만

을 주는 존재인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역할 중에 가장 중

요한 것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드러내어 비춰주고, 아무

도 듣지 않는 말을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

해 듣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지금 같은 시기, 다시 한

번 더 영화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할 듯하다.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부산영상위원회는 <영

화부산>을 통해 올해 지원사업을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

다.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사업을 살펴보면, 지난해

까지 진행해온 사업 중 폐지되거나 내용을 일부 조정한 사

업도 있다. 물론, 새롭게 선보이는 사업도 있다. 이렇게 사

업을 조정하게 된 것은, 수혜자가 명확한 사업을 전개해

달라는 현장의 목소리와 아울러, 단기적인 지원사업도 중

요하지만 부산에서 산업적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에 부산

영상위원회가 좀 더 노력해 달라는 주문에 근거한다. 물

론 올해 사업만으로 그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이런 방향으로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집과 함께 <영화부산>의 빈곤한 기획력을 단단하게 채

워낸 외부 필진의 글 또한 여전히 풍성하고 의미 있다. 그

간 좋은 글로 <영화부산>을 든든히 받쳐온 기존 필진은 물

론, 새로 합류한 필진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 한다.

이 책이 제작되어 배포될 시점 즈음에는 세월호 실종자들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사실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

다. 세월호 희생자 모두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강성호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

사진 이요섭

복천동 고분에 누워

영화 본연의 역할을 되물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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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영화의 꿈을

부산영상위원회의 2014년도 제작지원사업이 일제히 공고되었다.

영화촬영을 지원하는 로케이션지원과 함께 제작지원사업은 편리한 영화촬영환경을

조성하고 부산에서 보다 많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펼쳐왔다.

부산영상위원회 설립 초반에는 부산에서의 로케이션촬영이 늘어날 수 있도록

촬영단계에서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이 많았다면 영화촬영도시로 자리 잡은 지금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계획하도록 하는 기획·개발과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영화 기획·개발 지원과 작년 부활한 시나리오 창작공간 지원,

헌팅차량을 지원하는 프리프로덕션 스카우팅 지원, 영화 기획·개발·제작지원

펀드 운영까지, 기획·개발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참으로 다채롭다.

촬영단계에서의 지원사업은 부산로케이션 시에 가장 필요로 하는 숙소 지원에

집중하여 영화와 드라마 제작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마련하였다.

지역영화제작을 위한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도 다큐멘터리를 포함시키고

신인감독 발굴에 힘쓸 수 있도록 지원규모와 범위를 확대했으며,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을 신설하여 지역의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사업은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인들을 지원하고 지역의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지원합니다* * *2014년 부산영상위원회 제작지원사업

글 배소현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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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영화의 꿈을

부산영상위원회의 2014년도 제작지원사업이 일제히 공고되었다.

영화촬영을 지원하는 로케이션지원과 함께 제작지원사업은 편리한 영화촬영환경을

조성하고 부산에서 보다 많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펼쳐왔다.

부산영상위원회 설립 초반에는 부산에서의 로케이션촬영이 늘어날 수 있도록

촬영단계에서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이 많았다면 영화촬영도시로 자리 잡은 지금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계획하도록 하는 기획·개발과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영화 기획·개발 지원과 작년 부활한 시나리오 창작공간 지원,

헌팅차량을 지원하는 프리프로덕션 스카우팅 지원, 영화 기획·개발·제작지원

펀드 운영까지, 기획·개발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참으로 다채롭다.

촬영단계에서의 지원사업은 부산로케이션 시에 가장 필요로 하는 숙소 지원에

집중하여 영화와 드라마 제작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마련하였다.

지역영화제작을 위한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도 다큐멘터리를 포함시키고

신인감독 발굴에 힘쓸 수 있도록 지원규모와 범위를 확대했으며,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을 신설하여 지역의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사업은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인들을 지원하고 지역의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지원합니다* * *2014년 부산영상위원회 제작지원사업

글 배소현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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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개발 중인 국내 장편극영화 프로젝트 작가 및 감독 단독 또는 팀.

프로듀서의 경우 작가 또는 감독과 함께 팀으로 신청 가능

▶ 시나리오 작업실 제공(부산영상위원회 지정 호텔, 최대 10일)

※ 2회 분할 사용 가능

※ 7, 8월 성수기 및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등 제외▶ 조식 제공(1실 2인까지 제공)▶ 로케이션 지원인력▶ 행정 및 회의공간 제공

▶ 부산영화투자조합1호

▶ 50억 원(시출자 30억, 민간투자 20억)

▶ 부산 올로케이션(한 지역에서 70% 이상 촬영하는 작품 통칭)

영화로 부산에 사업자등록을 둔 본사, 지사, SPC(특수목적법인)

▶ 투자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결정

▶ 한국영화제작가협회(T. 02-2267-9983, 9984)

▶ 장편극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한 기획(안) 및 트리트먼트(또는 시나리오)

※작품의 판권은 신청 제작사 또는 프로듀서/작가가 보유하고 있어야 함

※ 지원 신청편수는 제작사, 제작팀 프로젝트별 1편 이내로 함

(구성원이 각각 다른 프로젝트에 중복되지 않아야 함)

▶ 1단계: 10편(4편 각 2천만 원, 6편 각 1천만 원)

※부산지역 소재 영화사 및 영화인 기획·개발 작품 1편 포함▶ 2단계: 3편(각 1천만 원) ※1단계 지원작 중에 선정▶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BFC 프로젝트 피칭 참가작 최대 6편

선정(2단계 선정작 포함)

※피칭 참가를 위한 소정의 준비금 별도 지원(2단계 선정작 제외)▶ BFC 프로젝트 피칭을 통해 최종 2편 선정, 각 1천만 원 지원

▶ 영화제작 착수 시, 부산에서 1/3이상 촬영을 해야 함

※부산지역 1/3이상 촬영이 불가할 경우 투자 결정시에 지원금 전액상환

※1, 2단계 지원작 모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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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개발 중인 국내 장편극영화 프로젝트 작가 및 감독 단독 또는 팀.

프로듀서의 경우 작가 또는 감독과 함께 팀으로 신청 가능

▶ 시나리오 작업실 제공(부산영상위원회 지정 호텔, 최대 10일)

※ 2회 분할 사용 가능

※ 7, 8월 성수기 및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등 제외▶ 조식 제공(1실 2인까지 제공)▶ 로케이션 지원인력▶ 행정 및 회의공간 제공

▶ 부산영화투자조합1호

▶ 50억 원(시출자 30억, 민간투자 20억)

▶ 부산 올로케이션(한 지역에서 70% 이상 촬영하는 작품 통칭)

영화로 부산에 사업자등록을 둔 본사, 지사, SPC(특수목적법인)

▶ 투자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결정

▶ 한국영화제작가협회(T. 02-2267-9983, 9984)

▶ 장편극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한 기획(안) 및 트리트먼트(또는 시나리오)

※작품의 판권은 신청 제작사 또는 프로듀서/작가가 보유하고 있어야 함

※ 지원 신청편수는 제작사, 제작팀 프로젝트별 1편 이내로 함

(구성원이 각각 다른 프로젝트에 중복되지 않아야 함)

▶ 1단계: 10편(4편 각 2천만 원, 6편 각 1천만 원)

※부산지역 소재 영화사 및 영화인 기획·개발 작품 1편 포함▶ 2단계: 3편(각 1천만 원) ※1단계 지원작 중에 선정▶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BFC 프로젝트 피칭 참가작 최대 6편

선정(2단계 선정작 포함)

※피칭 참가를 위한 소정의 준비금 별도 지원(2단계 선정작 제외)▶ BFC 프로젝트 피칭을 통해 최종 2편 선정, 각 1천만 원 지원

▶ 영화제작 착수 시, 부산에서 1/3이상 촬영을 해야 함

※부산지역 1/3이상 촬영이 불가할 경우 투자 결정시에 지원금 전액상환

※1, 2단계 지원작 모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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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담 책임 강사의 멘토링

- 기간 및 일정: 주 1회, 2014년 5월~10월(총 6개월)

- 책임강사: 영화감독 김휘(<해운대> 등 시나리오, <이웃사람> 등 감독)

- 장소: 부산영상벤처센터(해운대 센텀시티 내 위치)

※ 위 내용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부산에서 15회차 이상 로케이션 촬영하는 국내·외 장편극영화 및

TV드라마 제작사

※1일 촬영 1회로 간주, 해외작품의 경우 별도 내부규정에 의거함

▶ 부산지역 로케이션 촬영 시 작품별 최대 3천만 원 이내에서

부산 숙박비용의 50% 지원

- 15회차 이상 25회차 미만: 최대 2천만 원 지원

- 25회차 이상: 최대 3천만 원 지원

※ 예산 소진 시 사업 조기 종료

A) 1.6급 준중형 10일

B) 그랜드 스타렉스 12인승 5일

C) 카니발 9인승 / 11인승(선택) 4일

D) 월 장기 준중형 1개월

E) 월 장기 승합(카니발, 스타렉스) 1개월

(제작팀 40만 원 부담)

※ 연장사용 시 할인된 금액 적용

▶ 부산에서 촬영 및 제작되는 순제작비 3억 원 이하의 장편극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 총 2~6편(1작품 당 최대 1억원 이하 차등 지원)

※ 지원편수의 경우, 심사를 통해 조정될 수 있음

▶ 2014년 12월 30일까지 촬영 및 정산을 완료해야 함▶ 지원결정금액의 최소 20% 이상의 현물을 포함한 추가자금

조달을 완료해야 함

- 순 제작비 3억 원 이하로 지원결정금액의 최소 20% 이상의

현물을 포함한 추가 자금 조달을 완료해야 함

- 현물자금조달 인정항목은 장비대여, 스튜디오, 후반업체,

인건비 등으로 한정

※ 상기 조건을 준수하지 못할 경우, 지원금 지원이 불가하며

향후 5년간 본 위원회의 각종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에서 제외

구분 강의명 강좌수 수강인원1차 기본교육강좌 12강 15명 이내

2차 실무강좌 8강 1차 수강생 중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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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담 책임 강사의 멘토링

- 기간 및 일정: 주 1회, 2014년 5월~10월(총 6개월)

- 책임강사: 영화감독 김휘(<해운대> 등 시나리오, <이웃사람> 등 감독)

- 장소: 부산영상벤처센터(해운대 센텀시티 내 위치)

※ 위 내용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부산에서 15회차 이상 로케이션 촬영하는 국내·외 장편극영화 및

TV드라마 제작사

※1일 촬영 1회로 간주, 해외작품의 경우 별도 내부규정에 의거함

▶ 부산지역 로케이션 촬영 시 작품별 최대 3천만 원 이내에서

부산 숙박비용의 50% 지원

- 15회차 이상 25회차 미만: 최대 2천만 원 지원

- 25회차 이상: 최대 3천만 원 지원

※ 예산 소진 시 사업 조기 종료

A) 1.6급 준중형 10일

B) 그랜드 스타렉스 12인승 5일

C) 카니발 9인승 / 11인승(선택) 4일

D) 월 장기 준중형 1개월

E) 월 장기 승합(카니발, 스타렉스) 1개월

(제작팀 40만 원 부담)

※ 연장사용 시 할인된 금액 적용

▶ 부산에서 촬영 및 제작되는 순제작비 3억 원 이하의 장편극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 총 2~6편(1작품 당 최대 1억원 이하 차등 지원)

※ 지원편수의 경우, 심사를 통해 조정될 수 있음

▶ 2014년 12월 30일까지 촬영 및 정산을 완료해야 함▶ 지원결정금액의 최소 20% 이상의 현물을 포함한 추가자금

조달을 완료해야 함

- 순 제작비 3억 원 이하로 지원결정금액의 최소 20% 이상의

현물을 포함한 추가 자금 조달을 완료해야 함

- 현물자금조달 인정항목은 장비대여, 스튜디오, 후반업체,

인건비 등으로 한정

※ 상기 조건을 준수하지 못할 경우, 지원금 지원이 불가하며

향후 5년간 본 위원회의 각종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에서 제외

구분 강의명 강좌수 수강인원1차 기본교육강좌 12강 15명 이내

2차 실무강좌 8강 1차 수강생 중 선발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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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녹음, 미술, 특수효과, 편집, 사운드믹싱,

분장, 그립, CG제작, 무술 등 제작전반

▶ 실습비▶ 촬영현장 제작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에 배치되어 실습 ▶ 구체적인 지원일정은 배치되는 제작팀 일정에 맞추어 진행

※ 1인당 최대 2개월까지 실습 가능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지역 배우들의 다양한 매체 출연 지원을

위해 배우DB를 구축하고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 및 드라마, 광고

제작사들에 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 홈페이지

(www.bfc.or.kr)에서 배우DB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며, 연락처는

배우DB 담당자([email protected])에게 문의 바랍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기획·개발 중인 국내·외 프로젝트의 부산

촬영유치를 위해 다년간 축적한 로케이션 정보와 독창적인 지역

문화 및 정서가 배어있는 부산의 곳곳을 소개하여 직·간접적으로

작품의 소재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영화 기획·개발 팸투어>를

실시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올해로 4년째에 접

어들면서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찌라시>(김강우, 정진영 주

연/2011년 지원작)는 지난 2월 개봉했고, <협녀: 칼의 기억>(전도

연, 이병헌 주연/2011년 지원작), <레드카펫>(윤계상, 고준희 주

연/2012년 지원작), <화장>(안성기, 김규리 주연/2013년 지원작)

은 2014년 개봉 예정이다. <좋은 친구들>(지성, 주지훈 주연/2012

년 지원작)과 <나의 독재자>(설경구, 박해일 주연/2012년 지원작)

도 캐스팅을 완료하고 촬영 중에 있다.

국내 장편극영화의 기획·개발을 발굴하여 부산지역 촬영유치로 연

계하는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은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소재

의 우수한 기획·개발을 부산이 선점하는데 의미가 있다. 다만, 지원

대상의 특성상 영화제작에 착수하는데 필요한 기간이 프로젝트별로

천차만별이고 눈에 띄는 성과를 바로 얻는 것이 불가능한지라 3년간

선정된 27편 중 7편이 제작에 착수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라 볼 수 있

다. 또한, 영화화된 7편중 4편이 부산영상위원회가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한 작품들에게 투자 매칭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필름마켓 기간에 마련한 'BFC 프로젝

트 피칭'행사 참가작이라는 것도 성과다.

올해는 부산지역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영화화 가능성에 힘을 실

어주고자,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해 왔던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

의 1단계 지원작 10편 중 부산지역 작품 1편을 포함하는 쿼터제를

도입했고, BFC 프로젝트 피칭 참가작을 최대 6편까지 선정하여 투

자유치 기회도 적극 확대한다.

한편, 올해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은 총 89편이 접수되었으며,

이 중 부산지역 소재 영화사 및 영화인 작품 1편을 포함하여 1단계

에서 10편(4편 각 2천만 원, 6편 각 1천만 원)을, 2단계에서 3편(각

1천만 원)을 선정·지원한다. 2단계 선정작과 함께 1단계 10편을 대

상으로 아시아필름마켓 BFC 프로젝트 피칭에 참가할 최대 6편을 선

정하는데 피칭 이후 선정되는 최종 2편에 각 1천만 원의 상금을 추

가 지원한다. 따라서 하나의 기획·개발이 최대 4천만 원까지 지원 받

을 수 있다.

글 권소현 부산영상위원회

2011년 지원작

총 7편(각 1천 5백만 원)<나는 보석입니다>(랄랄라시네마)<나의 이상한 이웃>((주)디엔에이프로덕션)<수라설희(現<협녀: 칼의 기억>)>((주)지네딘)<아주 긴 여행>((주)시크릿베이스)<안녕 내 사랑>(알라딘스튜디오)<찌라시>((주)영화사수박)<페스카마>(유한회사 씨네주)

총 3편(각 1천만 원)<수라설희><안녕 내 사랑><페스카마>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협녀: 칼의기억> 2014년 개봉예정박흥식 감독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주연

<찌라시 : 위험한 소문> 2014.02.20 개봉김광식 감독김강우, 정진영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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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녹음, 미술, 특수효과, 편집, 사운드믹싱,

분장, 그립, CG제작, 무술 등 제작전반

▶ 실습비▶ 촬영현장 제작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에 배치되어 실습 ▶ 구체적인 지원일정은 배치되는 제작팀 일정에 맞추어 진행

※ 1인당 최대 2개월까지 실습 가능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지역 배우들의 다양한 매체 출연 지원을

위해 배우DB를 구축하고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 및 드라마, 광고

제작사들에 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 홈페이지

(www.bfc.or.kr)에서 배우DB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며, 연락처는

배우DB 담당자([email protected])에게 문의 바랍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기획·개발 중인 국내·외 프로젝트의 부산

촬영유치를 위해 다년간 축적한 로케이션 정보와 독창적인 지역

문화 및 정서가 배어있는 부산의 곳곳을 소개하여 직·간접적으로

작품의 소재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영화 기획·개발 팸투어>를

실시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올해로 4년째에 접

어들면서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찌라시>(김강우, 정진영 주

연/2011년 지원작)는 지난 2월 개봉했고, <협녀: 칼의 기억>(전도

연, 이병헌 주연/2011년 지원작), <레드카펫>(윤계상, 고준희 주

연/2012년 지원작), <화장>(안성기, 김규리 주연/2013년 지원작)

은 2014년 개봉 예정이다. <좋은 친구들>(지성, 주지훈 주연/2012

년 지원작)과 <나의 독재자>(설경구, 박해일 주연/2012년 지원작)

도 캐스팅을 완료하고 촬영 중에 있다.

국내 장편극영화의 기획·개발을 발굴하여 부산지역 촬영유치로 연

계하는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은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소재

의 우수한 기획·개발을 부산이 선점하는데 의미가 있다. 다만, 지원

대상의 특성상 영화제작에 착수하는데 필요한 기간이 프로젝트별로

천차만별이고 눈에 띄는 성과를 바로 얻는 것이 불가능한지라 3년간

선정된 27편 중 7편이 제작에 착수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라 볼 수 있

다. 또한, 영화화된 7편중 4편이 부산영상위원회가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한 작품들에게 투자 매칭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필름마켓 기간에 마련한 'BFC 프로젝

트 피칭'행사 참가작이라는 것도 성과다.

올해는 부산지역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영화화 가능성에 힘을 실

어주고자,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해 왔던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

의 1단계 지원작 10편 중 부산지역 작품 1편을 포함하는 쿼터제를

도입했고, BFC 프로젝트 피칭 참가작을 최대 6편까지 선정하여 투

자유치 기회도 적극 확대한다.

한편, 올해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은 총 89편이 접수되었으며,

이 중 부산지역 소재 영화사 및 영화인 작품 1편을 포함하여 1단계

에서 10편(4편 각 2천만 원, 6편 각 1천만 원)을, 2단계에서 3편(각

1천만 원)을 선정·지원한다. 2단계 선정작과 함께 1단계 10편을 대

상으로 아시아필름마켓 BFC 프로젝트 피칭에 참가할 최대 6편을 선

정하는데 피칭 이후 선정되는 최종 2편에 각 1천만 원의 상금을 추

가 지원한다. 따라서 하나의 기획·개발이 최대 4천만 원까지 지원 받

을 수 있다.

글 권소현 부산영상위원회

2011년 지원작

총 7편(각 1천 5백만 원)<나는 보석입니다>(랄랄라시네마)<나의 이상한 이웃>((주)디엔에이프로덕션)<수라설희(現<협녀: 칼의 기억>)>((주)지네딘)<아주 긴 여행>((주)시크릿베이스)<안녕 내 사랑>(알라딘스튜디오)<찌라시>((주)영화사수박)<페스카마>(유한회사 씨네주)

총 3편(각 1천만 원)<수라설희><안녕 내 사랑><페스카마>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협녀: 칼의기억> 2014년 개봉예정박흥식 감독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주연

<찌라시 : 위험한 소문> 2014.02.20 개봉김광식 감독김강우, 정진영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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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레드카펫>은 부산영상위원회 2012년 <영화 기획·개발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도움이 됐나? A. 우선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진행해

주신 부산영상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지원사업이 <레드카펫>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단순히 지원금의 도움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진행과정(기획부터 촬영

까지 3년) 동안 지치고 힘들 때,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아이템의

가능성을 검증 받는 것도 많은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Q. 그해 아시아필름마켓 기간 동안 ‘BFC 프로젝트 피칭’에 참가하기도 했다. 어땠나?A. 처음 프로젝트 피칭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었습

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싶어 걱정이 앞섰는데, 피칭 노하우

교육까지 준비해 주셔서 막상 준비 과정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레드카펫>

을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행사여서 매우 긴장되는 자리였지만 감독, PD, 제

작사가 제작 전에 팀웍을 맞추어 진행하는 첫 번째 행사여서 매우 뜻 깊었습

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하여 구체적인 비즈니스 매칭 미팅이 진행되어 실

질적인 시장에서 느껴지는 <레드카펫>의 관심을 확인 할 수 있어 매우 실질

적이고 유용한 기회였습니다.

Q. 영화제작 착수 시, 부산지역 1/3이상 촬영이 지원조건이다. 이 쿼터에 대한 생각은?A. 이 쿼터 조건 때문이 아니라도 부산은 영화촬영하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이해 때문에 촬영진행에 매우 용이한 점을 가진 도시가 부산입니다. 이

런 도시에서 지원금을 받고 그 쿼터를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

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숙소 지원이 있어서 쿼터 이행

보다 더 큰 혜택을 받아 더욱 감사했습니다.

Q. 심사 당시 다소 결말이 예상되는 무난함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완성도 면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끌어내기에 부족함 없는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들었다. <레드카펫> 개봉을 앞둔 지금 완성도는 어떤가?A. 기획부터 촬영까지, 후반작업을 마치고 개봉준비를 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레드카펫>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봉을 앞둔 모

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관객 앞에 서는 것이 떨리고 두렵고 기대됩니다. 최

선을 다했고, 웃다 울다하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 사랑받을 수 있는 작

품이라 자신합니다.

Q. 부산영상위원회 외에도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몇 있다. 지원내용(지원금)이나 조건 등 보완이 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A.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지금도 충분히 영화인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본금이 부족한 개인 PD나 중소제작사들에

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의 보완할 점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모든 영화인을 대신하여 만약 가능하다면 더 많은 작품에게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을 증원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인터뷰 진행 배주형 부산영상위원회

<레드카펫> 엄주영 대표 인터뷰 2012년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 지원작

올해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신인감독과 기성감독,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장르 등 지원대상의 폭을 넓혀 다양한 지원을

목표로 실시한다. 이에 따라 올해 예산도 지난 해 보다 늘어난 2억 2

천만 원으로 책정해 사업을 진행한다.

2012년 <디렉터스 컷>(박준범 감독), <괴물들>(김백준 감독), <타

인의 멜로디>(양영철 감독), 2013년 <눈이라도 내렸으면>(장희철

감독), <영도>(손승웅 감독), <악사들>(김지곤 감독) 등 매년 부산

지역 영화인의 작품제작에 밑거름이 되었던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올해도 경쟁력 있는 ‘메이드인 부산’ 영화의 창작동력

이 되기를 바란다.

이 사업은 순제작비 3억 원 이하의 장편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

중 부산에서 촬영 및 제작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부산에 거주

하는 감독의 프로젝트 중 영화업 또는 제작업 등록이 된 부산 소재

영화사가 진행하는 작품이라면 신청할 수 있고, 신인감독 발굴을 위

해 3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한 기성감독(모집 공고일 기준)과 신인감

독으로 구분하여 모집했다.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10일까지 접수기간을 거쳐 총 11편의 작

품이 접수되었고, 지원작은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정되

며, 총 2편에서 6편 이내로 차등 지원을 통해 한 작품 당 최대 1억 원

<디렉터스 컷>(2014) <타인의 멜로디>(2014)

2012년 지원작

총 3편(각 1천만 원)<나의 독재자><러블리어글리(前<악의 꽃>)><좋은 친구들>

총 5편<나의 독재자><두 번째 숨결><러블리어글리><레드카펫><좋은 친구들>

총 2편 선정(각 1천만 원)<나의 독재자><레드카펫>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피칭참가작

2013년 지원작

총 10편-2천만 원<야식남녀>(비밀의 화원)<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주)주말의 명화)<프라이버시>((주)꽃다지▶나우필름(주))<화장>(명필름)

-1천만 원<들개>((주)웨이브온엔터)<미성년>(에이트볼픽쳐스)<솔롱고>((주)영화사 호필름)<파이프라인>(영화사 아침)<펠리스 폭행사건>(영화제작소 정감)<플라이 하이>(재미수필름)

총 3편(각 1천만 원)<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총 5편<미성년><야식남녀><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총 2편 선정(각 1천만 원)<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피칭참가작

총 10편-2천만 원<겨울이사>(3767필름)<두 번째 숨결>(비밀의 화원)<레드카펫>(영화사 담담)<좋은 친구들>((주)굿초이스컷픽쳐스)

-1천만 원<꿈의 공장>(영화사 재인)<나의 독재자>(반짝반짝영화사)<메리메라치(가제)>((주)영화사 동물의 왕국)<박장>(토닉 프로젝트)<심장에 남는 사람>(마포활동사진관)<악의 꽃>(하이엔드픽쳐스)

<레드카펫> 2014 개봉 예정박범수 감독윤계상, 고준희 주연

<좋은 친구들> 촬영 중이도윤 감독지성, 주지훈, 이광수 주연

<나의 독재자> 촬영 중이해준 감독설경구, 박해일 주연

<화장> 2014 개봉 예정임권택 감독안성기, 김규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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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레드카펫>은 부산영상위원회 2012년 <영화 기획·개발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도움이 됐나? A. 우선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진행해

주신 부산영상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지원사업이 <레드카펫>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단순히 지원금의 도움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진행과정(기획부터 촬영

까지 3년) 동안 지치고 힘들 때,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아이템의

가능성을 검증 받는 것도 많은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Q. 그해 아시아필름마켓 기간 동안 ‘BFC 프로젝트 피칭’에 참가하기도 했다. 어땠나?A. 처음 프로젝트 피칭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었습

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싶어 걱정이 앞섰는데, 피칭 노하우

교육까지 준비해 주셔서 막상 준비 과정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레드카펫>

을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행사여서 매우 긴장되는 자리였지만 감독, PD, 제

작사가 제작 전에 팀웍을 맞추어 진행하는 첫 번째 행사여서 매우 뜻 깊었습

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하여 구체적인 비즈니스 매칭 미팅이 진행되어 실

질적인 시장에서 느껴지는 <레드카펫>의 관심을 확인 할 수 있어 매우 실질

적이고 유용한 기회였습니다.

Q. 영화제작 착수 시, 부산지역 1/3이상 촬영이 지원조건이다. 이 쿼터에 대한 생각은?A. 이 쿼터 조건 때문이 아니라도 부산은 영화촬영하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이해 때문에 촬영진행에 매우 용이한 점을 가진 도시가 부산입니다. 이

런 도시에서 지원금을 받고 그 쿼터를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

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숙소 지원이 있어서 쿼터 이행

보다 더 큰 혜택을 받아 더욱 감사했습니다.

Q. 심사 당시 다소 결말이 예상되는 무난함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완성도 면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끌어내기에 부족함 없는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들었다. <레드카펫> 개봉을 앞둔 지금 완성도는 어떤가?A. 기획부터 촬영까지, 후반작업을 마치고 개봉준비를 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레드카펫>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봉을 앞둔 모

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관객 앞에 서는 것이 떨리고 두렵고 기대됩니다. 최

선을 다했고, 웃다 울다하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 사랑받을 수 있는 작

품이라 자신합니다.

Q. 부산영상위원회 외에도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몇 있다. 지원내용(지원금)이나 조건 등 보완이 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A.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이 지금도 충분히 영화인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본금이 부족한 개인 PD나 중소제작사들에

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의 보완할 점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모든 영화인을 대신하여 만약 가능하다면 더 많은 작품에게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을 증원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인터뷰 진행 배주형 부산영상위원회

<레드카펫> 엄주영 대표 인터뷰 2012년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 지원작

올해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신인감독과 기성감독,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장르 등 지원대상의 폭을 넓혀 다양한 지원을

목표로 실시한다. 이에 따라 올해 예산도 지난 해 보다 늘어난 2억 2

천만 원으로 책정해 사업을 진행한다.

2012년 <디렉터스 컷>(박준범 감독), <괴물들>(김백준 감독), <타

인의 멜로디>(양영철 감독), 2013년 <눈이라도 내렸으면>(장희철

감독), <영도>(손승웅 감독), <악사들>(김지곤 감독) 등 매년 부산

지역 영화인의 작품제작에 밑거름이 되었던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올해도 경쟁력 있는 ‘메이드인 부산’ 영화의 창작동력

이 되기를 바란다.

이 사업은 순제작비 3억 원 이하의 장편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

중 부산에서 촬영 및 제작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부산에 거주

하는 감독의 프로젝트 중 영화업 또는 제작업 등록이 된 부산 소재

영화사가 진행하는 작품이라면 신청할 수 있고, 신인감독 발굴을 위

해 3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한 기성감독(모집 공고일 기준)과 신인감

독으로 구분하여 모집했다.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10일까지 접수기간을 거쳐 총 11편의 작

품이 접수되었고, 지원작은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정되

며, 총 2편에서 6편 이내로 차등 지원을 통해 한 작품 당 최대 1억 원

<디렉터스 컷>(2014) <타인의 멜로디>(2014)

2012년 지원작

총 3편(각 1천만 원)<나의 독재자><러블리어글리(前<악의 꽃>)><좋은 친구들>

총 5편<나의 독재자><두 번째 숨결><러블리어글리><레드카펫><좋은 친구들>

총 2편 선정(각 1천만 원)<나의 독재자><레드카펫>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피칭참가작

2013년 지원작

총 10편-2천만 원<야식남녀>(비밀의 화원)<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주)주말의 명화)<프라이버시>((주)꽃다지▶나우필름(주))<화장>(명필름)

-1천만 원<들개>((주)웨이브온엔터)<미성년>(에이트볼픽쳐스)<솔롱고>((주)영화사 호필름)<파이프라인>(영화사 아침)<펠리스 폭행사건>(영화제작소 정감)<플라이 하이>(재미수필름)

총 3편(각 1천만 원)<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총 5편<미성년><야식남녀><죽고 못사는 나쁜 친구들><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총 2편 선정(각 1천만 원)<파이프라인><프라이버시>

지원작품단계 성과

1단계지원작

2단계지원작

피칭참가작

총 10편-2천만 원<겨울이사>(3767필름)<두 번째 숨결>(비밀의 화원)<레드카펫>(영화사 담담)<좋은 친구들>((주)굿초이스컷픽쳐스)

-1천만 원<꿈의 공장>(영화사 재인)<나의 독재자>(반짝반짝영화사)<메리메라치(가제)>((주)영화사 동물의 왕국)<박장>(토닉 프로젝트)<심장에 남는 사람>(마포활동사진관)<악의 꽃>(하이엔드픽쳐스)

<레드카펫> 2014 개봉 예정박범수 감독윤계상, 고준희 주연

<좋은 친구들> 촬영 중이도윤 감독지성, 주지훈, 이광수 주연

<나의 독재자> 촬영 중이해준 감독설경구, 박해일 주연

<화장> 2014 개봉 예정임권택 감독안성기, 김규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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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상위원회는 1999년 설립 이후 16년간의 로케이션지원 시스

템과 촬영지원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산지역 영화인력 양성 및 전문

성 강화를 위해 <로케이션지원 인턴제>와 <제작사 및 현장 연계 워

크숍>을 실시한다.

<로케이션지원 인턴제>의 경우, 일정 기간 교육과정을 거쳐 전문 인

턴으로 현장에 투입되고 로케이션 전반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채

용 인원은 2명으로, 부산에 거주하는 영화인 및 영화·영상 관련학과

재학생 또는 졸업자와 로케이션 업무의 특성상 운전면허 소지자(1종

보통 이상)를 우대한다. 선정된 인원에게는 부산영상위원회에서 로

케이션 담당자와 함께 실제 영화 로케이션지원 업무 참여를 통해 현

장 경험과 실무 능력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다.

<제작사 및 현장 연계 워크숍>사업은 10명 이내의 인원으로 구성, 부

산에서 촬영예정인 작품을 섭외하여 팀당 1명씩 최대 2개월 간 제작

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 영화촬영현장 스태프와 함께 촬영현장

에 투입되어 현장 능력을 쌓을 수 있는 사업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이 사업을 통해, 부산에 거주하는 예비 영화인력에게는 메이저영화의

현장시스템을 접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촬영팀에서는 현지 스태프 참

여를 통해 현장진행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윈-윈 효과를 기대하

고 있다. 이를 위해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에서 촬영 계획 중인 영화

팀과의 제작인력 매칭 및 현장인력 활용 협조를 통해 예비 영화인의

전문성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영화 <황제를 위하여> 지원 때는, 병실 장면이 필요해서 제작부에 한

병원을 소개해주었다. 처음 영화촬영을 진행해보는 병원 홍보담당자

였고, 혹여 환자나 병원관계자들에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다행히 촬영을 원활히 마쳤고, 허가를 내준 홍보담당자를 부산영상위

원회에서 주최하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상 인턴이었던 내가 일들을 다 해냈다기보다는 선임 팀장과

많은 분들이 함께 진행했다.

9개월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지원을 맡은 영화 <타짜-신의 손>과의 인연이

다. 제작부장과 로케이션 헌팅도 다니고, 확인 헌팅 때는 감독과 PD를

비롯한 헤드 스태프들을 만나는 영광도 가졌다. 인턴 계약이 종료되고

지금은 영화 <타짜-신의 손>의 제작부가 되었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하는 현장 연계 워크숍을 통해서 한 번 연을 맺었던 <타짜-신의 손>

에 지원을 한 것이다. 다행히 제작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어 현장

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 수많은 이름들

과 협조해준 기관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스크린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애쓰는지를 알

고 나니 모든 작은 노력까지도 값지게 느껴진다.

글 박준우

로케이션지원의 A to Z를 경험하다

2013년 로케이션지원 인턴 체험글

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 심사는 서류심사와 프레젠테이션으로 이

뤄지며, 작품의 독창성과 시나리오 완성도, 제작 가능성 및 투자유

치 계획, 주요 스태프의 경력 등을 고려하여 지원작을 선정한다. 또

한, 선정작은 부산영상위원회 카메라장비 지원과 부산영화촬영스

튜디오 사용료 감면의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영화의 도시로 날로 그 외연이 넓어지는 부산영화산업의 내실을

다진다는 의미에서도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의의가 크

다고 할 수 있으며, 올해도 부산지역 영화인들의 작품활동에 도움

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악사들> 김지곤 감독 인터뷰

Q. 이번 작품 <악사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우선 축하드린다. 소감과 함께 간략하게 이번 영화 <악사들>을 소개한다면? A. 작업실 컴퓨터로만 보던 작품을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지는 것은 늘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악

사들>은 밴드 '우담바라'를 중심으로 7~80년대 음악을 시작한 중년 남

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Q.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를 꾸준히 해 왔다. 특히나 부산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다큐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부산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특유의 이미지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A. 군 시절을 제외하고는 계속 부산에 살았습니다. 부산에는 늘 애정

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 만큼 소중한 공간과 장소가 많습니다. 그런 것

들이 장단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자주 드는 생각은 부산

이 점점 더 부산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신없고, 늘 무언가는 허물어지

고 지어지고… 그런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Q. <악사들>은 부산영상위원회 지원사업의 선정작이다. 얼마나 지원 받았고, 영화제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지 솔직한 말씀 부탁드린다.A. 작년에 3천만 원 지원 받았습니다. <악사들>을 2011년부터 진행

했는데 2013년이 중요한 촬영이 많은 해였어요. 그 때 제작비를 지

원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작비뿐만 아니라 촬영

때도 현장에 필요한 물품지원 등을 많이 받아 큰 도움이 됐습니다.

Q. 현재 부산지역 영화인을 위한 영화지원에 대해 전반적인 소감이나 입장은 어떠한가?A. 규모보다는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고요,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

을 위한 지원제도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Q. 다큐멘터리의 경우 극영화와는 달리 제작과정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을 텐데, 이와 관련해서 영화지원정책에 반영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A. 일단 다큐멘터리는 제작기간이 극영화보다 상대적으로 길고, 감

독과 스태프가 동시에 두세 가지 일을 맡아서 하기 때문에, 인건비

책정이나 작품의 완성시기 설정 등에 있어 참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부산의 다큐영화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또, 부산영화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A. 관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이 힘들다곤 하

지만 함께 간다면 좀 더 즐겁게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인터뷰 진행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2013년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 지원작

언제부터인가 영화관에서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떠나 막연하게나

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기계공학을 전공

한데다가 알고 지내는 영화관계자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일을 시작

할 수 있는지 정보조차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부산영상

위원회 로케이션지원 인턴 모집 공고를 봤다. 이십년 넘게 부산에 살

면서 부산영상위원회라는 기관도 처음 알았고 로케이션지원이라는

업무도 생소했다. 무엇보다 이곳에 지원했을 때 영화를 해본 적 없

는 공대생 출신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들었다. 더구나

지원 조건 중 운전면허소지가 필수였는데 4년째 장롱면허였던 터라

면접심사에서 먼저 고백하기도 했다. 다행히 부산영상위원회 제작지

원부에서 인턴의 기회를 주어 201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첫 출근을 했다.

부산으로 영화작품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로케이션을 발굴하고 사

진 자료들을 영화팀에 제공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일단 부산촬영

지원 신청이 접수되면 작품을 담당하여 제작팀과 함께 영화에 필요한

로케이션과 부산영상위원회가 제공 가능한 지원 사업 등에 관해 논의

한다. 이 과정에서 촬영을 위한 허가와 협조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 다

양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이후 로케이션 장소 대여와 이용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장소를 제공해주는 이들에 영화에 대

한 소개와 촬영계획을 전해주기도하고 촬영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

도록 현장에서 불편 최소화와 후처리, 지속적인 관리까지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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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상위원회는 1999년 설립 이후 16년간의 로케이션지원 시스

템과 촬영지원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산지역 영화인력 양성 및 전문

성 강화를 위해 <로케이션지원 인턴제>와 <제작사 및 현장 연계 워

크숍>을 실시한다.

<로케이션지원 인턴제>의 경우, 일정 기간 교육과정을 거쳐 전문 인

턴으로 현장에 투입되고 로케이션 전반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채

용 인원은 2명으로, 부산에 거주하는 영화인 및 영화·영상 관련학과

재학생 또는 졸업자와 로케이션 업무의 특성상 운전면허 소지자(1종

보통 이상)를 우대한다. 선정된 인원에게는 부산영상위원회에서 로

케이션 담당자와 함께 실제 영화 로케이션지원 업무 참여를 통해 현

장 경험과 실무 능력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다.

<제작사 및 현장 연계 워크숍>사업은 10명 이내의 인원으로 구성, 부

산에서 촬영예정인 작품을 섭외하여 팀당 1명씩 최대 2개월 간 제작

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 영화촬영현장 스태프와 함께 촬영현장

에 투입되어 현장 능력을 쌓을 수 있는 사업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이 사업을 통해, 부산에 거주하는 예비 영화인력에게는 메이저영화의

현장시스템을 접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촬영팀에서는 현지 스태프 참

여를 통해 현장진행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윈-윈 효과를 기대하

고 있다. 이를 위해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에서 촬영 계획 중인 영화

팀과의 제작인력 매칭 및 현장인력 활용 협조를 통해 예비 영화인의

전문성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영화 <황제를 위하여> 지원 때는, 병실 장면이 필요해서 제작부에 한

병원을 소개해주었다. 처음 영화촬영을 진행해보는 병원 홍보담당자

였고, 혹여 환자나 병원관계자들에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다행히 촬영을 원활히 마쳤고, 허가를 내준 홍보담당자를 부산영상위

원회에서 주최하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상 인턴이었던 내가 일들을 다 해냈다기보다는 선임 팀장과

많은 분들이 함께 진행했다.

9개월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지원을 맡은 영화 <타짜-신의 손>과의 인연이

다. 제작부장과 로케이션 헌팅도 다니고, 확인 헌팅 때는 감독과 PD를

비롯한 헤드 스태프들을 만나는 영광도 가졌다. 인턴 계약이 종료되고

지금은 영화 <타짜-신의 손>의 제작부가 되었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하는 현장 연계 워크숍을 통해서 한 번 연을 맺었던 <타짜-신의 손>

에 지원을 한 것이다. 다행히 제작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어 현장

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 수많은 이름들

과 협조해준 기관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스크린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애쓰는지를 알

고 나니 모든 작은 노력까지도 값지게 느껴진다.

글 박준우

로케이션지원의 A to Z를 경험하다

2013년 로케이션지원 인턴 체험글

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 심사는 서류심사와 프레젠테이션으로 이

뤄지며, 작품의 독창성과 시나리오 완성도, 제작 가능성 및 투자유

치 계획, 주요 스태프의 경력 등을 고려하여 지원작을 선정한다. 또

한, 선정작은 부산영상위원회 카메라장비 지원과 부산영화촬영스

튜디오 사용료 감면의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영화의 도시로 날로 그 외연이 넓어지는 부산영화산업의 내실을

다진다는 의미에서도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은 의의가 크

다고 할 수 있으며, 올해도 부산지역 영화인들의 작품활동에 도움

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악사들> 김지곤 감독 인터뷰

Q. 이번 작품 <악사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우선 축하드린다. 소감과 함께 간략하게 이번 영화 <악사들>을 소개한다면? A. 작업실 컴퓨터로만 보던 작품을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지는 것은 늘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악

사들>은 밴드 '우담바라'를 중심으로 7~80년대 음악을 시작한 중년 남

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Q.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를 꾸준히 해 왔다. 특히나 부산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다큐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부산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특유의 이미지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A. 군 시절을 제외하고는 계속 부산에 살았습니다. 부산에는 늘 애정

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 만큼 소중한 공간과 장소가 많습니다. 그런 것

들이 장단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자주 드는 생각은 부산

이 점점 더 부산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신없고, 늘 무언가는 허물어지

고 지어지고… 그런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Q. <악사들>은 부산영상위원회 지원사업의 선정작이다. 얼마나 지원 받았고, 영화제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지 솔직한 말씀 부탁드린다.A. 작년에 3천만 원 지원 받았습니다. <악사들>을 2011년부터 진행

했는데 2013년이 중요한 촬영이 많은 해였어요. 그 때 제작비를 지

원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작비뿐만 아니라 촬영

때도 현장에 필요한 물품지원 등을 많이 받아 큰 도움이 됐습니다.

Q. 현재 부산지역 영화인을 위한 영화지원에 대해 전반적인 소감이나 입장은 어떠한가?A. 규모보다는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고요,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

을 위한 지원제도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Q. 다큐멘터리의 경우 극영화와는 달리 제작과정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을 텐데, 이와 관련해서 영화지원정책에 반영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A. 일단 다큐멘터리는 제작기간이 극영화보다 상대적으로 길고, 감

독과 스태프가 동시에 두세 가지 일을 맡아서 하기 때문에, 인건비

책정이나 작품의 완성시기 설정 등에 있어 참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부산의 다큐영화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또, 부산영화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A. 관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이 힘들다곤 하

지만 함께 간다면 좀 더 즐겁게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인터뷰 진행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2013년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 지원작

언제부터인가 영화관에서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떠나 막연하게나

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기계공학을 전공

한데다가 알고 지내는 영화관계자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일을 시작

할 수 있는지 정보조차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부산영상

위원회 로케이션지원 인턴 모집 공고를 봤다. 이십년 넘게 부산에 살

면서 부산영상위원회라는 기관도 처음 알았고 로케이션지원이라는

업무도 생소했다. 무엇보다 이곳에 지원했을 때 영화를 해본 적 없

는 공대생 출신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들었다. 더구나

지원 조건 중 운전면허소지가 필수였는데 4년째 장롱면허였던 터라

면접심사에서 먼저 고백하기도 했다. 다행히 부산영상위원회 제작지

원부에서 인턴의 기회를 주어 201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첫 출근을 했다.

부산으로 영화작품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로케이션을 발굴하고 사

진 자료들을 영화팀에 제공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일단 부산촬영

지원 신청이 접수되면 작품을 담당하여 제작팀과 함께 영화에 필요한

로케이션과 부산영상위원회가 제공 가능한 지원 사업 등에 관해 논의

한다. 이 과정에서 촬영을 위한 허가와 협조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 다

양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이후 로케이션 장소 대여와 이용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장소를 제공해주는 이들에 영화에 대

한 소개와 촬영계획을 전해주기도하고 촬영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

도록 현장에서 불편 최소화와 후처리, 지속적인 관리까지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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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쇼박스·롯데·NEW의 해외 세일즈 관계자들이 말하는 지역별 해외 마케팅 전략

장영엽 <씨네21> 기자

완연한 봄이다. 하지만 지난 가을 한국을 떠난 빙하기의 ‘설국열차’는 여전히 전

세계를 순항 중이다. 프랑스부터 아시아 대륙(인도네시아, 홍콩, 일본, 태국 등)

을 거쳐 다시 유럽(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 이르기까지, 봉준

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지난 반년 동안 15개국의 관객을 만나며 숨 가쁘게 달려

왔고 올해 6월 27일에는 북미권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흔적을 쫓다 보

면, 어떤 승객(관객)이 탑승하느냐에 따라 이 열차(영화)의 겉모습도 조금씩 달라

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설국열차>의 출발지인 한국에서, 영화

포스터의 중심부에 위치한 인물은 커티스 역의 크리스 에반스도, 윌포드를 연기

한 에드 해리스도 아닌 열차의 설계자 남궁민수 역의 송강호였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제작에 참여한 이 글로벌 프로젝트의 중심에 한국의 톱 배우가 서 있다

는 사실을 환기하는 이 포스터는 “나는 닫힌 문을 열고 싶다”는 도발적인 홍보 문

구와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프랑스에서 <설국열차>의 ‘얼굴’인 포스터의 주인공

은 열차 그 자신이다. 폐허가 된 인간 사회를 뒤로 하고 설원을 재빠르게 가로지

르는,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기다란 열차라는 공간적 배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본 것이다(이 결과물 또한 프랑스의 스태프들이 직접 작업한 아트워크라고 한

다). 대만과 홍콩에선 열차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설국열차>의

개봉명은 이들 나라에서 각각 <말일열차末日列車>와 <말세열차末世列車>다. 두

나라는 영화 속 설국열차가 ‘인류 최후의 열차’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번역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 하나. 영화 번역 작가들은 흔히 번

역을 ‘두 줄 타기’에 비유한다고 한다. 오리지널 자막과 자

국의 언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야 하는 역자의 역할이 마치 두

개의 줄을 넘나들며 타야하는 광대의 숙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

다. 그런데 이 ‘두 줄 타기’가, 비단 번역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고민

일까. 오리지널 콘텐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해외 관

객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세일즈 전략을 세워야 하는 해외 배급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줄타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말이 다소 어

렵게 느껴진다면 다음의 질문을 상기해볼 일이다. 천만 관객을 돌파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이 국내 개봉 당시 원제인

<프로즌Frozen>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북미권 포스터처럼 ‘눈의 여

왕’ 엘사와 안나 자매보다 ‘눈사람’ 올라프에 주목했다면, 과연 지금

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건 <프로즌>이 중국에선 <빙설 대모

험 >이며, 일본에서는 <안나와 눈의 여왕アナと雪の女王>이

고, 대만에서 <눈과 얼음의 기이한 이야기 >란 고유의 제목을

가지게 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겨울왕국>의 다양한 해외

배급·마케팅 사례를 지켜보며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전략도 궁금해졌

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설국열차>와 <관상><자칼이 온

다>와 <신세계>는 해외 관객들에게 어떤 매력을 가진 영화로 비춰지고

있을까. CJ·쇼박스·롯데·NEW의 해외 배급팀 관계자들에게 자사 영

화의 해외 마케팅 전략을 물었고,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이 들

려준 일화를 이 지면에 전한다.

어떤 나라는 배우에, 어떤 나라는 공간에, 어떤 나라는 서사적 설정에 주목했다.

<설국열차>라는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데에도 꼬리칸과 엔진칸 만큼이나 다

른 ‘포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게 어떤 방식이든 극장

가를 찾는 각 나라 관객들의 눈높이와 취향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

을 거라는 점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한국영화와 대

중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일본의 경우,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가 세일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롯데 해외투자배급팀의 한민형 과장은 <자칼이 온다>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스타 캐스팅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JYJ

의 멤버인 김재중의 인기가 대단하더라. 포스터 시안을 정할 때에도, 우리 쪽에

서 다양한 안을 제시했는데 일본 관계자들은 배우 김재중이 가장 돋보이는 포스

터를 골랐다. 당시 JYJ가 전속 계약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활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다. 그들이 방송과 음반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김재중이

출연한 <자칼이 온다>가 개봉하니 팬들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스타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갈증이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가족 중심의 문화를 형성하

고 있는 일본이기에 가족물로서의 특성을 내세우는 것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 NEW의 해외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원 과장은 “<7번방의 선물>

의 경우 감방과 죄수들의 다양한 개성을 내세웠던 한국 버전 포스터와 달리 일본

에선 용구(류승룡)와 예승이(갈소원)의 부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 포스터를 사용했

다.”고 말했다. 코믹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보다 아빠와 딸의 다정한 모습에 일

본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2013)

<자칼이 온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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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쇼박스·롯데·NEW의 해외 세일즈 관계자들이 말하는 지역별 해외 마케팅 전략

장영엽 <씨네21> 기자

완연한 봄이다. 하지만 지난 가을 한국을 떠난 빙하기의 ‘설국열차’는 여전히 전

세계를 순항 중이다. 프랑스부터 아시아 대륙(인도네시아, 홍콩, 일본, 태국 등)

을 거쳐 다시 유럽(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 이르기까지, 봉준

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지난 반년 동안 15개국의 관객을 만나며 숨 가쁘게 달려

왔고 올해 6월 27일에는 북미권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흔적을 쫓다 보

면, 어떤 승객(관객)이 탑승하느냐에 따라 이 열차(영화)의 겉모습도 조금씩 달라

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설국열차>의 출발지인 한국에서, 영화

포스터의 중심부에 위치한 인물은 커티스 역의 크리스 에반스도, 윌포드를 연기

한 에드 해리스도 아닌 열차의 설계자 남궁민수 역의 송강호였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제작에 참여한 이 글로벌 프로젝트의 중심에 한국의 톱 배우가 서 있다

는 사실을 환기하는 이 포스터는 “나는 닫힌 문을 열고 싶다”는 도발적인 홍보 문

구와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프랑스에서 <설국열차>의 ‘얼굴’인 포스터의 주인공

은 열차 그 자신이다. 폐허가 된 인간 사회를 뒤로 하고 설원을 재빠르게 가로지

르는,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기다란 열차라는 공간적 배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본 것이다(이 결과물 또한 프랑스의 스태프들이 직접 작업한 아트워크라고 한

다). 대만과 홍콩에선 열차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설국열차>의

개봉명은 이들 나라에서 각각 <말일열차末日列車>와 <말세열차末世列車>다. 두

나라는 영화 속 설국열차가 ‘인류 최후의 열차’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번역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 하나. 영화 번역 작가들은 흔히 번

역을 ‘두 줄 타기’에 비유한다고 한다. 오리지널 자막과 자

국의 언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야 하는 역자의 역할이 마치 두

개의 줄을 넘나들며 타야하는 광대의 숙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

다. 그런데 이 ‘두 줄 타기’가, 비단 번역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고민

일까. 오리지널 콘텐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해외 관

객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세일즈 전략을 세워야 하는 해외 배급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줄타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말이 다소 어

렵게 느껴진다면 다음의 질문을 상기해볼 일이다. 천만 관객을 돌파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이 국내 개봉 당시 원제인

<프로즌Frozen>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북미권 포스터처럼 ‘눈의 여

왕’ 엘사와 안나 자매보다 ‘눈사람’ 올라프에 주목했다면, 과연 지금

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건 <프로즌>이 중국에선 <빙설 대모

험 >이며, 일본에서는 <안나와 눈의 여왕アナと雪の女王>이

고, 대만에서 <눈과 얼음의 기이한 이야기 >란 고유의 제목을

가지게 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겨울왕국>의 다양한 해외

배급·마케팅 사례를 지켜보며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전략도 궁금해졌

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설국열차>와 <관상><자칼이 온

다>와 <신세계>는 해외 관객들에게 어떤 매력을 가진 영화로 비춰지고

있을까. CJ·쇼박스·롯데·NEW의 해외 배급팀 관계자들에게 자사 영

화의 해외 마케팅 전략을 물었고,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이 들

려준 일화를 이 지면에 전한다.

어떤 나라는 배우에, 어떤 나라는 공간에, 어떤 나라는 서사적 설정에 주목했다.

<설국열차>라는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데에도 꼬리칸과 엔진칸 만큼이나 다

른 ‘포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게 어떤 방식이든 극장

가를 찾는 각 나라 관객들의 눈높이와 취향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

을 거라는 점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한국영화와 대

중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일본의 경우,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가 세일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롯데 해외투자배급팀의 한민형 과장은 <자칼이 온다>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스타 캐스팅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JYJ

의 멤버인 김재중의 인기가 대단하더라. 포스터 시안을 정할 때에도, 우리 쪽에

서 다양한 안을 제시했는데 일본 관계자들은 배우 김재중이 가장 돋보이는 포스

터를 골랐다. 당시 JYJ가 전속 계약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활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다. 그들이 방송과 음반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김재중이

출연한 <자칼이 온다>가 개봉하니 팬들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스타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갈증이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가족 중심의 문화를 형성하

고 있는 일본이기에 가족물로서의 특성을 내세우는 것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 NEW의 해외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원 과장은 “<7번방의 선물>

의 경우 감방과 죄수들의 다양한 개성을 내세웠던 한국 버전 포스터와 달리 일본

에선 용구(류승룡)와 예승이(갈소원)의 부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 포스터를 사용했

다.”고 말했다. 코믹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보다 아빠와 딸의 다정한 모습에 일

본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2013)

<자칼이 온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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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공포물과 코미디가 인기다. “컨셉이 독특한 공포물도 좋아하고, 한

국 관객들을 쉽게 끌어 모으기 힘든 슬랩스틱 코미디가 동남아 시장에선 잘 먹힌다.”는 게 CJ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CJ가 세일즈한 영화 중 호러와 코미디 장르를

결합시킨 2011년작 <오싹한 연애>, 그리고 웹툰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승부한 공포영화 <더 웹

툰: 예고살인>은 베트남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특히 <더 웹툰: 예고살인>의 흥행

수익은 베트남에서 <설국열차>를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역대 베트남에서 개봉한 한국영화의 수

익을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이다. NEW 역시 시각장애인을 앞세운 독특한 스릴러 <블라인드>

(2011)가 동남아에서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는 상황을 보며 “아직까지 동남아에선 드라마보다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김태원)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유럽과 북미 시장의 경우 감독의 네임 밸류와 장르, 이 두 가지가 키워드다. 롯데의 한민형 과장

은 “장르영화냐, 아니냐에 따라 그쪽 시장에선 판매율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대규모 예산과

최첨단 기술, 세계적인 스타들로 무장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

다는 한국영화 특유의 색채와 장르적인 개성을 어필하는 데에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

라 북미·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영화들은 제목과 포스터로 대변되는 겉모습을 전략적으로 바꾸

는 경우가 많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영어 제목은 <디텍티브 KDetective K>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도 변화를 겪고 있다. CJ의 김성은 팀장은 “감독의 네

임 밸류와 장르적 특성만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

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름있는 감독의 영화가 일부 마니아

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순 있으나, 그 점이 흥행수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의 성공이 고무적이라고 김성은 팀장은

말했다. 해외 시장에서 <더 라스트 데이The Last Day>로 제목을 바꾼 <해운대>

는 “처음 세일즈했던 가격의 네 배 정도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해운대>가 롤랜

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투모로우>를 떠올리게 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점

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는 게 중요했다. “한국은 할리우드영화와 장르적 특성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는 ‘한국영화’ 하면 ‘할리우드 흉

내를 낸 영화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안 먹힐 걸’이라는 인식이 해외 관객들에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해운대>다.”

김성은 팀장의 말처럼 이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배급 관계자들의 과제는 “해외

시장에서의 대규모 개봉과 유통 구조”에 대한 고민까지 이르렀다. 더 큰 목표가

생긴 만큼, 해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보다 매력적인 마케팅 전략도 필요

할 것이다. 4사의 2014년 대표 라인업인 <명량:회오리바다>(CJ)와 <군도:민란의

시대>(쇼박스), <해적: 바다로 간 산적>(롯데)과 <해무>(NEW)의 해외 마케팅 전략

이 사뭇 궁금해진다.

장영엽 <씨네21> 기자. 2008년부터 <씨네21>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배우들의 매력적인 마스크도 좋지만, 영화의 뉘앙스와 정서를 충만하게 담은 포스터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한국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그런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포스터 제공. 롯데·쇼박스·CJ·NEW(가나다순)

국가적 차원의 검열 문제가 있는 중국은 쉽지만은 않은 시장이다. 스릴러, 호러 장르의 영화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고 사극 장르의 영화·드라마가 워낙 많아 같은 장르의 영화로는 경쟁

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NEW의 김태원 과장은 “<헬로우 고스트> 개봉 당시

벽 위에 귀신이 떠 있는 장면은 확실히 안 된다고 하더라. 결국 블러 처리를 하는 것으로 넘어갔

다.”고 했다. CJ의 김성은 팀장 또한 “<설국열차>에서 창이 등장인물의 몸을 뚫고 나가는 장면

을 포함한 50초가량이 편집됐다.”며 폭력의 수위가 높은 영화이기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1분

안쪽으로 편집됐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쇼박스의 2013년 흥행작 <관상>은 얼굴을 읽는

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코스튬 사극이 너무 익숙한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 관

객들에겐 식상한 소재로 비춰질 위험도 있었다고 정수진 과장은 말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국적에 관계없이 관객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이야기’다. “<관상>은 영화 중반 이후부터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중국 관객들이 그런 부분을 이해하거나 따

라가기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런 애로사항은 있었지만,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관

객들은 무척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고. TV쪽으로 판매가 잘 됐다.”

<오싹한 연애>(2011)

<더 웹툰: 예고살인>(2013)

<헬로우 고스트>(2010)

<관상>(2013)

<해운대>(2009)

“장르물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살렸다.”는 게 쇼박스 정수진 과장의 설명이다. 서

극 감독의 블록버스터 <적인걸> 시리즈의 영어 제목이 <디텍티브 디Detective

Dee>라는 점도 공략 포인트로 작용했다. 인기 있는 아시아권 영화의 제목을 떠

올리게 해 보다 낯설지 않은 영화로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배우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의 얼굴만으로도 강렬한 느낌을 선사했던 <신세계>의 북미권 포스터 역시

더욱 장르적인 느낌으로 변화를 줬다. “아시아권 영화의 액션 누아르 장르를 선

호하는”(김태원) 관객의 취향을 고려해 배우보다는 작품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

는 컨셉의 포스터를 썼다. 한편 <설국열차>는 유럽 지역에 진출하며 봉준호 감독

의 이름을 앞세웠다. 영화의 프랑스 배급을 맡은 와일드 사이드의 마뉘엘 쉬슈 대

표는 봉준호 감독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이유에 대해 “그가 프랑스 시장

에서 사랑받는 감독이라는 사실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과 할리

우드, 유럽의 A급 배우들과의 만남’이라는 컨셉이 <설국열차>를 지켜보는 유럽·

북미권 관객들에겐 신선한 인상을 남겼나보다.

<신세계>(2013)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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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공포물과 코미디가 인기다. “컨셉이 독특한 공포물도 좋아하고, 한

국 관객들을 쉽게 끌어 모으기 힘든 슬랩스틱 코미디가 동남아 시장에선 잘 먹힌다.”는 게 CJ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CJ가 세일즈한 영화 중 호러와 코미디 장르를

결합시킨 2011년작 <오싹한 연애>, 그리고 웹툰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승부한 공포영화 <더 웹

툰: 예고살인>은 베트남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특히 <더 웹툰: 예고살인>의 흥행

수익은 베트남에서 <설국열차>를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역대 베트남에서 개봉한 한국영화의 수

익을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이다. NEW 역시 시각장애인을 앞세운 독특한 스릴러 <블라인드>

(2011)가 동남아에서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는 상황을 보며 “아직까지 동남아에선 드라마보다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김태원)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유럽과 북미 시장의 경우 감독의 네임 밸류와 장르, 이 두 가지가 키워드다. 롯데의 한민형 과장

은 “장르영화냐, 아니냐에 따라 그쪽 시장에선 판매율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대규모 예산과

최첨단 기술, 세계적인 스타들로 무장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

다는 한국영화 특유의 색채와 장르적인 개성을 어필하는 데에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

라 북미·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영화들은 제목과 포스터로 대변되는 겉모습을 전략적으로 바꾸

는 경우가 많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영어 제목은 <디텍티브 KDetective K>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도 변화를 겪고 있다. CJ의 김성은 팀장은 “감독의 네

임 밸류와 장르적 특성만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

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름있는 감독의 영화가 일부 마니아

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순 있으나, 그 점이 흥행수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의 성공이 고무적이라고 김성은 팀장은

말했다. 해외 시장에서 <더 라스트 데이The Last Day>로 제목을 바꾼 <해운대>

는 “처음 세일즈했던 가격의 네 배 정도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해운대>가 롤랜

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투모로우>를 떠올리게 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점

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는 게 중요했다. “한국은 할리우드영화와 장르적 특성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는 ‘한국영화’ 하면 ‘할리우드 흉

내를 낸 영화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안 먹힐 걸’이라는 인식이 해외 관객들에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해운대>다.”

김성은 팀장의 말처럼 이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배급 관계자들의 과제는 “해외

시장에서의 대규모 개봉과 유통 구조”에 대한 고민까지 이르렀다. 더 큰 목표가

생긴 만큼, 해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보다 매력적인 마케팅 전략도 필요

할 것이다. 4사의 2014년 대표 라인업인 <명량:회오리바다>(CJ)와 <군도:민란의

시대>(쇼박스), <해적: 바다로 간 산적>(롯데)과 <해무>(NEW)의 해외 마케팅 전략

이 사뭇 궁금해진다.

장영엽 <씨네21> 기자. 2008년부터 <씨네21>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배우들의 매력적인 마스크도 좋지만, 영화의 뉘앙스와 정서를 충만하게 담은 포스터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한국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그런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포스터 제공. 롯데·쇼박스·CJ·NEW(가나다순)

국가적 차원의 검열 문제가 있는 중국은 쉽지만은 않은 시장이다. 스릴러, 호러 장르의 영화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고 사극 장르의 영화·드라마가 워낙 많아 같은 장르의 영화로는 경쟁

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NEW의 김태원 과장은 “<헬로우 고스트> 개봉 당시

벽 위에 귀신이 떠 있는 장면은 확실히 안 된다고 하더라. 결국 블러 처리를 하는 것으로 넘어갔

다.”고 했다. CJ의 김성은 팀장 또한 “<설국열차>에서 창이 등장인물의 몸을 뚫고 나가는 장면

을 포함한 50초가량이 편집됐다.”며 폭력의 수위가 높은 영화이기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1분

안쪽으로 편집됐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쇼박스의 2013년 흥행작 <관상>은 얼굴을 읽는

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코스튬 사극이 너무 익숙한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 관

객들에겐 식상한 소재로 비춰질 위험도 있었다고 정수진 과장은 말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국적에 관계없이 관객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이야기’다. “<관상>은 영화 중반 이후부터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중국 관객들이 그런 부분을 이해하거나 따

라가기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런 애로사항은 있었지만,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관

객들은 무척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고. TV쪽으로 판매가 잘 됐다.”

<오싹한 연애>(2011)

<더 웹툰: 예고살인>(2013)

<헬로우 고스트>(2010)

<관상>(2013)

<해운대>(2009)

“장르물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살렸다.”는 게 쇼박스 정수진 과장의 설명이다. 서

극 감독의 블록버스터 <적인걸> 시리즈의 영어 제목이 <디텍티브 디Detective

Dee>라는 점도 공략 포인트로 작용했다. 인기 있는 아시아권 영화의 제목을 떠

올리게 해 보다 낯설지 않은 영화로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배우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의 얼굴만으로도 강렬한 느낌을 선사했던 <신세계>의 북미권 포스터 역시

더욱 장르적인 느낌으로 변화를 줬다. “아시아권 영화의 액션 누아르 장르를 선

호하는”(김태원) 관객의 취향을 고려해 배우보다는 작품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

는 컨셉의 포스터를 썼다. 한편 <설국열차>는 유럽 지역에 진출하며 봉준호 감독

의 이름을 앞세웠다. 영화의 프랑스 배급을 맡은 와일드 사이드의 마뉘엘 쉬슈 대

표는 봉준호 감독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이유에 대해 “그가 프랑스 시장

에서 사랑받는 감독이라는 사실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과 할리

우드, 유럽의 A급 배우들과의 만남’이라는 컨셉이 <설국열차>를 지켜보는 유럽·

북미권 관객들에겐 신선한 인상을 남겼나보다.

<신세계>(2013)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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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46) 영화감독. 얼핏 들어서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1,000만 영화 <해운대>(2009) 시나리오를 썼고,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2012)을 연출했다는 부연설명이 붙는다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색즉시공2>(2007) 각색과 프로듀서, <하모니>(2009) 각색,

<심야의 FM>(2010) 각본, <시체가 돌아왔다>(2012) 각색, <무서운 이야

기2>(2013) 연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2년 전인 2012년 부산에 터전을 잡았다. 부산에 사무

실을 얻고 영화사 히트박스를 운영하며 콘텐츠 기획 관련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영화제작을 위해 K프로덕션이란 새로운 간판도 추가로 달았다.

그리고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

을 진두지휘하며 부산의 영화인재를 키우겠다고 직접 나섰다. 부산에

서 제3의 영화인생을 설계하는 김 감독을 부산영상벤처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나리오 피칭부터 트리트먼트까지…

목표는 시나리오 작가 데뷔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 통해 시나리오 작가 양성에 발벗고나선 김휘 감독

김현주 <국제신문> 기자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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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46) 영화감독. 얼핏 들어서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1,000만 영화 <해운대>(2009) 시나리오를 썼고,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2012)을 연출했다는 부연설명이 붙는다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색즉시공2>(2007) 각색과 프로듀서, <하모니>(2009) 각색,

<심야의 FM>(2010) 각본, <시체가 돌아왔다>(2012) 각색, <무서운 이야

기2>(2013) 연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2년 전인 2012년 부산에 터전을 잡았다. 부산에 사무

실을 얻고 영화사 히트박스를 운영하며 콘텐츠 기획 관련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영화제작을 위해 K프로덕션이란 새로운 간판도 추가로 달았다.

그리고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

을 진두지휘하며 부산의 영화인재를 키우겠다고 직접 나섰다. 부산에

서 제3의 영화인생을 설계하는 김 감독을 부산영상벤처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나리오 피칭부터 트리트먼트까지…

목표는 시나리오 작가 데뷔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 통해 시나리오 작가 양성에 발벗고나선 김휘 감독

김현주 <국제신문> 기자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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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지 2년 정도 됐다. 서울에서 한창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부산으로 제작사를 옮겨 지역 영화계도 꽤 놀랐다. 부산에서 2년간 어떻게 지냈나.

A‘히트박스’를 부산으로 옮긴 것은 2012

년이지만 사실상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 특강도

다니고, 지역 영화인도 만나고, <무서

운 이야기2>도 찍고 바쁘게 지냈다. 올

해는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기획하는 시기다. 아이템을 개

발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거쳐 내

년이나 내후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

작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K프로덕션

도 설립했다.

Q 원래는 부산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꽤 다양한 일에 손을 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창기 시절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부산독립영화협회에도 관여했다. 또 부산에서 영화작업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이 궁금하다.A 처음 시작은 연극이었다. 연극에 매료돼 극단 부산무대에서 연극을 배

웠다. 그리고 서울 대학로에서 1년 반 쯤 극단 생활도 했다. 그러다 군대

를 가게 됐고 제대 후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경성대 연극영화과(93학번)에 입학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

작했다. 당시 경성대 교수와 학생들이 주축이 됐던 ‘영화제작소 동녘’에

몸담아 영화작업에 참여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일도 그래서 관여하게

됐고…. 처음에는 영화연출을 목표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동료들과 영

화작업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PD 일을 자주 맡았다. 그래서 이래저래

행정 일을 하다 자연스레 이곳저곳 알게 됐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장을 맡아 그곳에서 6년간 일을 했다. 당시에는 영화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이 힘을 모아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데 ‘으샤으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홍보팀장 일을 하면서 마케

팅 쪽에 눈을 뜨게 돼 도움이 됐다. 먹고살기 위해 라디오 방송 진행, 극

단 아르바이트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때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경험

이 지금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Q 연극에서 영화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있었나.A 서울 대학로 극단 시절 단원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

진흥공사 등에 자주 다니며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러던 중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이란 영화를 보게 됐는데 너무 좋았다. 당시 한

국영화계도 뉴웨이브 바람이 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영화가 단

순히 환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란 걸 깨닫게 되면서 영화에 빠졌다.

Q 젊은 시절 의욕적으로 부산에서 영화 일을 하다가 200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갔다. 물론 많은 지역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서울로 갔던 이유가 무엇이었나.A 부산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가 2005년 12월

15일이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서울로 가게 된 것은 부산에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손실이 컸기 때문이었다. 단편영화작업에

PD로 여러 번 참여했지만 직접 영화를 연출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야심차게 영화를 준비했다. 부산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시나리

오를 준비하고, 스태프를 모으고, 투자자를 찾아다니면서 영화제작 준

비를 했다.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촬영 전 약속했던 투자자가 계획을 철

회하는 바람에 영화가 엎어졌다. 금전적인 손실도 컸지만 상실감이 컸

다. 그때 준비했던 영화는 부산의 영화, 즉 ‘로컬 시네마’를 표방했다. 멀

티플렉스가 한창 생기던 시절이었는데 부산·울산·경남지역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 10개 상영관에서만 개봉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용도 철저하게 부산에 맞췄다. 미국은 ‘뉴욕영

화’가 있지 않은가. 예술성 짙은 뉴욕영화는 지역에서 호응과 지지를 얻

<무서운 이야기 2>(2013)

어 미국 전역으로 개봉을 확대하기도 한다. 그걸 모델로 했다. 부산의 로

컬 시네마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는데 실패해서 손실이 컸다. 그래서 서

울로 올라가게 됐다.

Q 서울영화계에 뛰어들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윤제균 감독과 다수 작업했던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A 윤제균 감독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

하게 지낸 친구가 10명쯤 있는데 윤 감독이 그중 한명이다. 서울에 올

라가서 처음 일한 곳이 두사부필름이었다. 친구 덕을 많이 봤다. <1번가

의 기적>(2007), <색즉시공2>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후 여러 작품의 시나

리오와 각색,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 준비

도 했다. 그렇게 7년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노하우와 경륜이 쌓인

것 같다. 어쩌면 ‘경력’을 쌓기 위해 전투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 부산에

서 영화를 찍을 때 경력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를 만나

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무슨 영화를 했느냐’였는데 그때는 “이러이러

한 영화를 했습니다.”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각

색, 프로듀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경력을 쌓는데 힘썼다.

Q 첫 연출작 <이웃사람>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A 처음 연출 데뷔를 준비했던 작품은 <7

광구>(2011)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치명

적인 바이러스가 퍼지고 그로 인해 사람

들이 공포를 체험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

고 싶었다. 원래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런데 투자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기

획 의도가 바뀌었다. 그래서 빠졌다. <이

웃사람>은 원작을 워낙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인연이 돼 결국 연출을 맡

았다. 데뷔는 했지만 아직 ‘내 영화’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

나리오로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영화감

독으로 아직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Q 서울 진출 7년만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만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A 순전히 ‘운발’이다(웃음). 친구를 잘 둔 덕도 있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

라갈 때만 해도 ‘나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

니었다. 서울에서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과 인연이 닿아 계속 같이 작

업을 했다. <심야의 FM>은 부산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경험을

떠올려서 쓴 작품이다. 방송국에 서 있는데 바로 앞에 아파트가 보이길

래 ‘자기가 일하는 방송국에서 집이 보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생중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이후 부산 출

신 영화제작자를 만났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래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일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콘텐

츠’로 성공하려면 ‘운’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

력이 더해지긴 하지만, 진짜 운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에서 한창 자리 잡을 시기인데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이유로 온 것은 아닐 테고…. A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간 것은 영화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겼다고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또 부산에서도 충분히 영화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지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문제는 ‘콘텐츠’다. 얼마

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부산에서의 실패 경험

을 되돌아보면 그때는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이웃사람>(2012)

부산에서도 충분히 영화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지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문제는 ‘콘텐츠’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2012년 영화 <이웃사람> 촬영 현장

2013년 영화 <무서운 이야기2> 촬영현장

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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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지 2년 정도 됐다. 서울에서 한창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부산으로 제작사를 옮겨 지역 영화계도 꽤 놀랐다. 부산에서 2년간 어떻게 지냈나.

A‘히트박스’를 부산으로 옮긴 것은 2012

년이지만 사실상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 특강도

다니고, 지역 영화인도 만나고, <무서

운 이야기2>도 찍고 바쁘게 지냈다. 올

해는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기획하는 시기다. 아이템을 개

발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거쳐 내

년이나 내후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

작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K프로덕션

도 설립했다.

Q 원래는 부산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꽤 다양한 일에 손을 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창기 시절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부산독립영화협회에도 관여했다. 또 부산에서 영화작업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이 궁금하다.A 처음 시작은 연극이었다. 연극에 매료돼 극단 부산무대에서 연극을 배

웠다. 그리고 서울 대학로에서 1년 반 쯤 극단 생활도 했다. 그러다 군대

를 가게 됐고 제대 후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경성대 연극영화과(93학번)에 입학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

작했다. 당시 경성대 교수와 학생들이 주축이 됐던 ‘영화제작소 동녘’에

몸담아 영화작업에 참여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일도 그래서 관여하게

됐고…. 처음에는 영화연출을 목표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동료들과 영

화작업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PD 일을 자주 맡았다. 그래서 이래저래

행정 일을 하다 자연스레 이곳저곳 알게 됐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장을 맡아 그곳에서 6년간 일을 했다. 당시에는 영화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이 힘을 모아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데 ‘으샤으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홍보팀장 일을 하면서 마케

팅 쪽에 눈을 뜨게 돼 도움이 됐다. 먹고살기 위해 라디오 방송 진행, 극

단 아르바이트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때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경험

이 지금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Q 연극에서 영화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있었나.A 서울 대학로 극단 시절 단원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

진흥공사 등에 자주 다니며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러던 중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이란 영화를 보게 됐는데 너무 좋았다. 당시 한

국영화계도 뉴웨이브 바람이 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영화가 단

순히 환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란 걸 깨닫게 되면서 영화에 빠졌다.

Q 젊은 시절 의욕적으로 부산에서 영화 일을 하다가 200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갔다. 물론 많은 지역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서울로 갔던 이유가 무엇이었나.A 부산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가 2005년 12월

15일이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서울로 가게 된 것은 부산에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손실이 컸기 때문이었다. 단편영화작업에

PD로 여러 번 참여했지만 직접 영화를 연출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야심차게 영화를 준비했다. 부산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시나리

오를 준비하고, 스태프를 모으고, 투자자를 찾아다니면서 영화제작 준

비를 했다.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촬영 전 약속했던 투자자가 계획을 철

회하는 바람에 영화가 엎어졌다. 금전적인 손실도 컸지만 상실감이 컸

다. 그때 준비했던 영화는 부산의 영화, 즉 ‘로컬 시네마’를 표방했다. 멀

티플렉스가 한창 생기던 시절이었는데 부산·울산·경남지역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 10개 상영관에서만 개봉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용도 철저하게 부산에 맞췄다. 미국은 ‘뉴욕영

화’가 있지 않은가. 예술성 짙은 뉴욕영화는 지역에서 호응과 지지를 얻

<무서운 이야기 2>(2013)

어 미국 전역으로 개봉을 확대하기도 한다. 그걸 모델로 했다. 부산의 로

컬 시네마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는데 실패해서 손실이 컸다. 그래서 서

울로 올라가게 됐다.

Q 서울영화계에 뛰어들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윤제균 감독과 다수 작업했던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A 윤제균 감독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

하게 지낸 친구가 10명쯤 있는데 윤 감독이 그중 한명이다. 서울에 올

라가서 처음 일한 곳이 두사부필름이었다. 친구 덕을 많이 봤다. <1번가

의 기적>(2007), <색즉시공2>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후 여러 작품의 시나

리오와 각색,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 준비

도 했다. 그렇게 7년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노하우와 경륜이 쌓인

것 같다. 어쩌면 ‘경력’을 쌓기 위해 전투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 부산에

서 영화를 찍을 때 경력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를 만나

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무슨 영화를 했느냐’였는데 그때는 “이러이러

한 영화를 했습니다.”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각

색, 프로듀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경력을 쌓는데 힘썼다.

Q 첫 연출작 <이웃사람>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A 처음 연출 데뷔를 준비했던 작품은 <7

광구>(2011)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치명

적인 바이러스가 퍼지고 그로 인해 사람

들이 공포를 체험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

고 싶었다. 원래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런데 투자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기

획 의도가 바뀌었다. 그래서 빠졌다. <이

웃사람>은 원작을 워낙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인연이 돼 결국 연출을 맡

았다. 데뷔는 했지만 아직 ‘내 영화’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

나리오로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영화감

독으로 아직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Q 서울 진출 7년만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만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A 순전히 ‘운발’이다(웃음). 친구를 잘 둔 덕도 있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

라갈 때만 해도 ‘나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

니었다. 서울에서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과 인연이 닿아 계속 같이 작

업을 했다. <심야의 FM>은 부산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경험을

떠올려서 쓴 작품이다. 방송국에 서 있는데 바로 앞에 아파트가 보이길

래 ‘자기가 일하는 방송국에서 집이 보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생중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이후 부산 출

신 영화제작자를 만났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래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일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콘텐

츠’로 성공하려면 ‘운’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

력이 더해지긴 하지만, 진짜 운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에서 한창 자리 잡을 시기인데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이유로 온 것은 아닐 테고…. A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간 것은 영화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겼다고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또 부산에서도 충분히 영화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지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문제는 ‘콘텐츠’다. 얼마

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부산에서의 실패 경험

을 되돌아보면 그때는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이웃사람>(2012)

부산에서도 충분히 영화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지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문제는 ‘콘텐츠’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2012년 영화 <이웃사람> 촬영 현장

2013년 영화 <무서운 이야기2>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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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탓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년간 서울에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즉 이야기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대규모 자본과 결합해 ‘영화’란

상품이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지켜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산에서 만들려고 했던 영화가 이야기만 재미있

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투자자를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고 또는 다른 영

화사에 팔수도 있었을 것이다.

Q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영화 작업도 빠듯할 것 같은데 시나리오 교육에 눈을 돌린 이유가 뭔가. A 앞서 말했듯이 부산에 내려와 가장 필요한 것이 ‘콘텐츠를 어떻게 만

들 것인가’였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학원을 운영해볼까 생각하고 있

던 차에 부산영상위원회와 뜻이 맞아 같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부

산에 있는 인재들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공동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

1~2년 정도 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전문적인 시나리오 과정을

운영해볼까 한다. 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콘텐츠 팜

(Content Farm)’과 같은 집단을 생각하고 있다.

Q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을 끌어나갈 계획인가. A 다음 달부터 6개월 과정으로, 소수정예로 운영한다. 1차에 15명 정도

선발해 기본교육 강좌를 진행하고 2차는 1차 수강생 중 인재를 선발해

서 실무 강좌를 받게 한다. 시나리오 피칭부터 캐릭터 잡는 방법, 극 전

개 과정, 트리트먼트까지 세세하게 가르칠 것이다. 목표는 이들 중 한 명

이라도 데뷔를 시키는 것이다. 당장 필드에 내놔도 일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낼 생각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는 과정을 계속해서 실제 영화

제작까지 연결되도록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온다면 실력 있는 각색자가 붙어 상업적 감각을 더하고, 그

러면 제작사가 붙을 것이고 자연스레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할 수 있다.

물론 교육을 통해 발굴된 시나리오의 1차 선택자는 내가 될 것 같다(웃

음). 1~2년 정도 제대로 운영하면 보다 수준 높고 전문적인 창작집단이

나 시나리오 작가 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Q ‘콘텐츠’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특히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영화도시’를 표방하며 많은 돈을 들여 각종 인프라를 만들어 놨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채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지역 영화계도 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A 맞다. 2005년 서울에 갔다가 7년 만에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서울로

올라갈 당시와 크게 사정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영화와 관련된 대형 인

프라들은 만들어졌지만 콘텐츠를 생산할 주체도, 생산자를 키울 시스템

도 전무하다. 멋진 대형마트를 차려놓았지만 정작 물건을 팔 사람도, 팔

물건도 없는 셈이다. 소비자가 살만한 물건을 만들고, 이것을 잘 진열해

서 팔아야 마트도 살 수 있지 않겠나. 부산에서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려

면 콘텐츠를 기획, 개발, 생산할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영화 자본은

지역적 경계가 없다. 부산에서도 서울 못지 않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

다. 배우나 스태프가 없으면 데려오면 된다. 하지만 콘텐츠는 얘기가 다

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여기에 관심을 갖는 제작자가 따

라붙고, 영화제작을 하게 되면 인력들은 자연스레 유입된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지역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Q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바라본 부산영화계는 어떤가.A 부산에도 유능하고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많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 보니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대중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물론 지역에서 고집 있게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영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산에서 영화산

업을 이야기하려면 상업영화로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 개발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너무 자기 영

화에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를 하다보면 ‘내

시나리오, 내 영화’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계에서

‘경력’도 꽤 중요하다. 다양한 역할로 영화작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하다

보면 나중에 경력이 쌓이고 자기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후배 영

화인들에게 이점을 가르쳐주고 싶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서울에서

도 부산에서도 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서울은 시나리오를 쓰면 이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조언해줄 사람이 많다는 것

이다. 부산에 프로듀서, 기획자가 부족하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결국 자기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다. 너무 ‘자

기 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틀을 깨면 더 좋은 영화나 이

야기가 나올 수 있다. 부산의 영상산업도 마찬가지다. ‘영화도시’란 담

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은 영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회이자 시작이 될 수 있다.

Q 시나리오 작가 발굴 외에 또 계획하는 것이 있나.A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궁극적으로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뛰어넘어 제

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

다. 이 부분도 도전해보고 싶다. 경성대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연

락하며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부산에 연고를 둔 배우나 연출자를 데려와 연극 무대에 세우면 어떨까

한다. 이른바 부산의 ‘로컬 스타’를 키워보자는 것이다. 부산 공연기획

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하면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어

깨너머로 배웠다. 부산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

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 궁극적으로 그것이 영화도시 부산에 필요

하지 않을까.

인터뷰 진행 김현주 2005년 <국제신문>에 입사해 편집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영화와 연극, 방송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도시’란 담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

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

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영

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

획·개발 워크숍’사업은 영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회이

자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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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탓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년간 서울에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즉 이야기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대규모 자본과 결합해 ‘영화’란

상품이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지켜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산에서 만들려고 했던 영화가 이야기만 재미있

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투자자를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고 또는 다른 영

화사에 팔수도 있었을 것이다.

Q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영화 작업도 빠듯할 것 같은데 시나리오 교육에 눈을 돌린 이유가 뭔가. A 앞서 말했듯이 부산에 내려와 가장 필요한 것이 ‘콘텐츠를 어떻게 만

들 것인가’였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학원을 운영해볼까 생각하고 있

던 차에 부산영상위원회와 뜻이 맞아 같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부

산에 있는 인재들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공동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

1~2년 정도 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전문적인 시나리오 과정을

운영해볼까 한다. 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콘텐츠 팜

(Content Farm)’과 같은 집단을 생각하고 있다.

Q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을 끌어나갈 계획인가. A 다음 달부터 6개월 과정으로, 소수정예로 운영한다. 1차에 15명 정도

선발해 기본교육 강좌를 진행하고 2차는 1차 수강생 중 인재를 선발해

서 실무 강좌를 받게 한다. 시나리오 피칭부터 캐릭터 잡는 방법, 극 전

개 과정, 트리트먼트까지 세세하게 가르칠 것이다. 목표는 이들 중 한 명

이라도 데뷔를 시키는 것이다. 당장 필드에 내놔도 일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낼 생각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는 과정을 계속해서 실제 영화

제작까지 연결되도록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온다면 실력 있는 각색자가 붙어 상업적 감각을 더하고, 그

러면 제작사가 붙을 것이고 자연스레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할 수 있다.

물론 교육을 통해 발굴된 시나리오의 1차 선택자는 내가 될 것 같다(웃

음). 1~2년 정도 제대로 운영하면 보다 수준 높고 전문적인 창작집단이

나 시나리오 작가 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Q ‘콘텐츠’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특히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영화도시’를 표방하며 많은 돈을 들여 각종 인프라를 만들어 놨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채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지역 영화계도 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A 맞다. 2005년 서울에 갔다가 7년 만에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서울로

올라갈 당시와 크게 사정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영화와 관련된 대형 인

프라들은 만들어졌지만 콘텐츠를 생산할 주체도, 생산자를 키울 시스템

도 전무하다. 멋진 대형마트를 차려놓았지만 정작 물건을 팔 사람도, 팔

물건도 없는 셈이다. 소비자가 살만한 물건을 만들고, 이것을 잘 진열해

서 팔아야 마트도 살 수 있지 않겠나. 부산에서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려

면 콘텐츠를 기획, 개발, 생산할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영화 자본은

지역적 경계가 없다. 부산에서도 서울 못지 않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

다. 배우나 스태프가 없으면 데려오면 된다. 하지만 콘텐츠는 얘기가 다

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여기에 관심을 갖는 제작자가 따

라붙고, 영화제작을 하게 되면 인력들은 자연스레 유입된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지역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Q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바라본 부산영화계는 어떤가.A 부산에도 유능하고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많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 보니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대중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물론 지역에서 고집 있게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영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산에서 영화산

업을 이야기하려면 상업영화로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 개발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너무 자기 영

화에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를 하다보면 ‘내

시나리오, 내 영화’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계에서

‘경력’도 꽤 중요하다. 다양한 역할로 영화작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하다

보면 나중에 경력이 쌓이고 자기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후배 영

화인들에게 이점을 가르쳐주고 싶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서울에서

도 부산에서도 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서울은 시나리오를 쓰면 이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조언해줄 사람이 많다는 것

이다. 부산에 프로듀서, 기획자가 부족하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결국 자기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다. 너무 ‘자

기 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틀을 깨면 더 좋은 영화나 이

야기가 나올 수 있다. 부산의 영상산업도 마찬가지다. ‘영화도시’란 담

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은 영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회이자 시작이 될 수 있다.

Q 시나리오 작가 발굴 외에 또 계획하는 것이 있나.A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궁극적으로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뛰어넘어 제

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

다. 이 부분도 도전해보고 싶다. 경성대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연

락하며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부산에 연고를 둔 배우나 연출자를 데려와 연극 무대에 세우면 어떨까

한다. 이른바 부산의 ‘로컬 스타’를 키워보자는 것이다. 부산 공연기획

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하면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어

깨너머로 배웠다. 부산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

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 궁극적으로 그것이 영화도시 부산에 필요

하지 않을까.

인터뷰 진행 김현주 2005년 <국제신문>에 입사해 편집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영화와 연극, 방송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도시’란 담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

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

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영

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

획·개발 워크숍’사업은 영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회이

자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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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립영화학교인 동경예술대학교와 한국의 많은 스타감독

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매년 진행하는 한·일합작프로젝트

의 일환인 <브레이크 모드>는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프로듀서(다니가미 교코)의 기획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감독은

동 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폴 영

이 맡았고, 한국 측 프로듀서는 영화 <잉투기>(2013)의 프로듀서

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강지현 PD가 참여했다. 그 외의 스

태프 역시 동경예술대학교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 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 몇

편인가 한·일합작영화 참여 경험이 있는 데다가 그 작품들을 부산

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 필자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소개로 <브레이

크 모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일 자동차 대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신차 프로젝트를 위해 일본

인 회사원이 부산으로 오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감독 특유의 코믹함

으로 그려낸 이번 프로젝트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상업적으로도 발

전되어 있는 부산의 전경이 작품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일치한다는

점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필수 전제로 시작한 작품

이었다. 게다가 옛것과 새것이 함께 존재하는 부산의 모습 자체가

감독과 일본 제작팀에게는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부산에서 올로케! 일본 특유의 코미디영화로 탄생하다!

동경예술대학교 X 한국영화아카데미 합작 프로젝트윤민영 라인프로듀서

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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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립영화학교인 동경예술대학교와 한국의 많은 스타감독

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매년 진행하는 한·일합작프로젝트

의 일환인 <브레이크 모드>는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프로듀서(다니가미 교코)의 기획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감독은

동 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폴 영

이 맡았고, 한국 측 프로듀서는 영화 <잉투기>(2013)의 프로듀서

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강지현 PD가 참여했다. 그 외의 스

태프 역시 동경예술대학교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 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 몇

편인가 한·일합작영화 참여 경험이 있는 데다가 그 작품들을 부산

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 필자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소개로 <브레이

크 모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일 자동차 대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신차 프로젝트를 위해 일본

인 회사원이 부산으로 오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감독 특유의 코믹함

으로 그려낸 이번 프로젝트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상업적으로도 발

전되어 있는 부산의 전경이 작품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일치한다는

점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필수 전제로 시작한 작품

이었다. 게다가 옛것과 새것이 함께 존재하는 부산의 모습 자체가

감독과 일본 제작팀에게는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부산에서 올로케! 일본 특유의 코미디영화로 탄생하다!

동경예술대학교 X 한국영화아카데미 합작 프로젝트윤민영 라인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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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은 없었고, 매일 필요한 보조출연자나 현장에서 필요한 부대

물품 등도 주먹구구로 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서 부산촬영을 진행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곳이 부산영상위원회

였다. 영상위원회 사무실을 선뜻 촬영장소로 내어준 것은 물론

이고, 부산에서의 배우 캐스팅에도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

다. 또, 부산영상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제작비품도 빌릴 수 있

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자료를 바탕으로 로케이션스

카우팅을 할 때도 '프리프로덕션 스카우팅 지원'을 받아 사전제

작비를 감축할 수 있었고, 까다로운 로케이션촬영 시에도 부산영

상위원회 협력체의 협조로 선뜻 촬영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부

산영상위원회 사무실에서 감독 및 일본 측 프로듀서와 함께 방문

상담을 통해 즉시 단역으로 출연 가능한 보조출연자를 소개받거

나, 사무실 촬영을 선뜻 허락받을 때마다 마치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바로 눈앞에 금 한 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과의 미팅 후부터

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샐러리맨들

의 블랙코미디 장르이면서 동시에 액션이 많았던 작품 성격상 배

우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매트가 꼭 필요했는데, 서울에서는

가져올 상황이 못 되고 부산에서는 마땅히 구할 곳이 없어 고민

하고 있던 찰나, 마침 보조출연 중이던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에서 사용하는 매트를 빌리기도 했다. 또, 제작비 여건상 마

땅히 촬영할 가게를 찾지 못해 곤란에 처했을 때 ‘한 번 물어나 보

자’며 우연히 들어간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딸이 영화 관련 일을

한다’며 선뜻 포장마차 촬영을 허가해 주시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메인이 되는 자동차 판매대리점은 정말 마음고생을 많

이 했다. 필자는 제작진에 조금 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촬영장소

가 정해진 후 이야기만 전해 들었는데, 자동차 판매대리점에서

촬영허가를 받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문의했던 대리점이란 대리

점에서는 모두 다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프로젝트가 그대로 중

지될 뻔 했던 것이다. 그때도 역시 우연히 들어간 한 대리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 담당자 역시 부산에서 영

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 어려운 사정을 선뜻 이해해

주고, 촬영을 허가해 준 것이다. 물론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야 했으나, 담당자의 적

극적인 도움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실제 유명 기업의 매장이었고, 촬영을 위해

문을 닫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해당 매장에서의 촬영은 새벽 4시부터 진행했는데,

직접 그 시간에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열어 주고 촬영 중 불가피하게 생긴 제작팀의

요구사항도 묵묵히 다 들어 준 그 매장에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현장은 매축지마을과 부산공동어시장이었다. 매축지마을은

허름한 집들이 빽빽이 이어진 동네로, 집과 집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

는 좁은 골목에서 추격 신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제작진 입장에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소리까지 질러가며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 주민들이 항의라도

하면 그대로 촬영이 중지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촬영에 임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물론 스태프 전원에게는 최대한 소음을 줄이도록 신신당부를 해 두었지

만 배우들의 연기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오히려 주민들이 먼저 나

서 전원을 빌려 주고, 선뜻 부감촬영을 위해 옥상까지 내 준 것이다. 덕분에 필자의

우려가 ‘오버액션’쯤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매축지마을은 예전부터 근래까지 학생

들이 사진이나 영화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

끼면서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 보였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이번 작품을 위한 최적의 로케이션이었다고 생각한다. <브레이

크 모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장소로 여러 곳을 물색하던 차에, 부산영상위원

회와 협력하고 있는 촬영지라며 흔쾌히 촬영허가가 떨어진 곳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액션 신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제재나 제한이 적은 곳이어야 했는데 공

동어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물론 작품의 이미지와 잘 맞는 촬영지였음은 두말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영화학교가 의기투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위해 모인 것은 물론, 대표적인 영화도시인 부산에서 촬영한다

는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었으나, 일반 상업영화와는 조금 다른

작품이었기에 실제 제작환경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제

작비가 부족한 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였다. 프리프로덕션은 부

산의 게스트하우스를 거점으로 진행했으며 감독과 일본 측 프로

듀서는 자비를 들여 부산로케이션스카우팅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수

락한 것은 일본 스태프의 열정과 진정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필자가 일본에서 유학생 신

분으로 작품을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

로 없는 상황에서 주변 분들의 도움과 협조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 결과 영화제에서 상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그때 그들의 도움

이 없었다면 그런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소중한 추억을,

경험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브레이크 모드> 프로젝

트의 일본 스태프였고, 쉽지 않은 현장이 될 것이라 예상하면서

도 다시 한 번 순수한 열정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가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누구보다도 설레는 마음으로 크랭크

인을 기다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역시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우선, 가장 큰 벽은 역시 제작비였다. 정해진 제작비 안에서 모든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으나, 일본에서 부산까지 온

스태프를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홀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숙식마저 자비로 해결하겠다며 현장에 집중해 달라고 했

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기에 이전 부산에서 촬영하면서 인연

을 맺은 분들과 업체에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

들 역시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운이 좋았던

건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개를 통한 소개로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로케이션촬영현장이었

다. 실제 가게를 빌려 촬영하는 부분까지 마냥 도움을 요청할 수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마지막 장면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촬영이었기 때문에 제작

진과 배우들은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의기투합하여 촬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촬

영은 어느덧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자정을 지나 어슴푸레 해가 뜰 시간까지

이어져버렸다. 아무도 없던 공동어시장에 하나둘, 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분들이 눈

에 띄기 시작했다. 어선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인데, 하필이면 우리가 배 앞에서 촬

영을 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작업을 미루면

서까지 기다려 준 분들 덕분에 제작진은 더욱 더 박차를 가해 촬영에 임했고, 다행

히 현장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일만은 피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브레이크 모드>

의 부산촬영이 모두 끝났다.

6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광안리 등 부산의 유명 명소에서의 촬영은 작품의 이

미지나 의도와 절묘한 매치를 이루었다. 부산시민들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촬영팀

을 위해 기꺼이 협조해 주었고, 격려와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번 작품을 하면

서 왜 많은 영화인이 부산을 찾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부산은 영화를 사랑

하는 진짜 영화도시다. 앞으로도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꾸준히 사랑받

는 도시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길 소원해 본다. 마지막으로 늦게 합류한 필

자를 대신해 혼자 부산에서 좋은 촬영지를 물색하느라 고생한 강지현 PD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 이해하고 감싸준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 부산

영상위원회 이경섭 팀장과 이승의 팀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윤민영 20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학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유학생 시절부터 몇 편의 영화현장을 거쳐 졸업 후에는 ‘도호영화’에 입사, <비잔><마리와 강아지의 이야기><제로 포커스> 등 일본영화 스태프로 참여했고, 다수의 한·일합작에도 참여했지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광고, 드라마, PV 등 분야에 상관없이 일하다가 역시 영화가 그리워 앞으로는 영화를 메인으로 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으나, 오랜 일본 생활로 한국에는 인맥이 적은 편이라 한국영화보다는 한·일합작프로젝트를 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다.

제작비 여건상 마땅히 촬영할 가게를 찾지 못해 곤란에 처했을 때 ‘한 번 물어나 보자’며 우연히 들어간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딸이 영화 관련 일을 한다’며 선뜻 포장마차 촬영을 허가해 주시기도 했다.

한·일 자동차 대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신차 프로젝트를 위해 일본인 회사원이 부산으로 오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감독 특유의 코믹함으로 그려낸 이번 프로젝트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상업적으로도 발전되어 있는 부산의 전경이 작품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일치한다는 점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필수 전제로 시작한 작품이었다.3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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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은 없었고, 매일 필요한 보조출연자나 현장에서 필요한 부대

물품 등도 주먹구구로 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서 부산촬영을 진행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곳이 부산영상위원회

였다. 영상위원회 사무실을 선뜻 촬영장소로 내어준 것은 물론

이고, 부산에서의 배우 캐스팅에도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

다. 또, 부산영상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제작비품도 빌릴 수 있

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자료를 바탕으로 로케이션스

카우팅을 할 때도 '프리프로덕션 스카우팅 지원'을 받아 사전제

작비를 감축할 수 있었고, 까다로운 로케이션촬영 시에도 부산영

상위원회 협력체의 협조로 선뜻 촬영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부

산영상위원회 사무실에서 감독 및 일본 측 프로듀서와 함께 방문

상담을 통해 즉시 단역으로 출연 가능한 보조출연자를 소개받거

나, 사무실 촬영을 선뜻 허락받을 때마다 마치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바로 눈앞에 금 한 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과의 미팅 후부터

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샐러리맨들

의 블랙코미디 장르이면서 동시에 액션이 많았던 작품 성격상 배

우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매트가 꼭 필요했는데, 서울에서는

가져올 상황이 못 되고 부산에서는 마땅히 구할 곳이 없어 고민

하고 있던 찰나, 마침 보조출연 중이던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에서 사용하는 매트를 빌리기도 했다. 또, 제작비 여건상 마

땅히 촬영할 가게를 찾지 못해 곤란에 처했을 때 ‘한 번 물어나 보

자’며 우연히 들어간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딸이 영화 관련 일을

한다’며 선뜻 포장마차 촬영을 허가해 주시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메인이 되는 자동차 판매대리점은 정말 마음고생을 많

이 했다. 필자는 제작진에 조금 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촬영장소

가 정해진 후 이야기만 전해 들었는데, 자동차 판매대리점에서

촬영허가를 받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문의했던 대리점이란 대리

점에서는 모두 다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프로젝트가 그대로 중

지될 뻔 했던 것이다. 그때도 역시 우연히 들어간 한 대리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 담당자 역시 부산에서 영

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 어려운 사정을 선뜻 이해해

주고, 촬영을 허가해 준 것이다. 물론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야 했으나, 담당자의 적

극적인 도움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실제 유명 기업의 매장이었고, 촬영을 위해

문을 닫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해당 매장에서의 촬영은 새벽 4시부터 진행했는데,

직접 그 시간에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열어 주고 촬영 중 불가피하게 생긴 제작팀의

요구사항도 묵묵히 다 들어 준 그 매장에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현장은 매축지마을과 부산공동어시장이었다. 매축지마을은

허름한 집들이 빽빽이 이어진 동네로, 집과 집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

는 좁은 골목에서 추격 신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제작진 입장에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소리까지 질러가며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 주민들이 항의라도

하면 그대로 촬영이 중지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촬영에 임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물론 스태프 전원에게는 최대한 소음을 줄이도록 신신당부를 해 두었지

만 배우들의 연기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오히려 주민들이 먼저 나

서 전원을 빌려 주고, 선뜻 부감촬영을 위해 옥상까지 내 준 것이다. 덕분에 필자의

우려가 ‘오버액션’쯤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매축지마을은 예전부터 근래까지 학생

들이 사진이나 영화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

끼면서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 보였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이번 작품을 위한 최적의 로케이션이었다고 생각한다. <브레이

크 모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장소로 여러 곳을 물색하던 차에, 부산영상위원

회와 협력하고 있는 촬영지라며 흔쾌히 촬영허가가 떨어진 곳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액션 신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제재나 제한이 적은 곳이어야 했는데 공

동어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물론 작품의 이미지와 잘 맞는 촬영지였음은 두말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영화학교가 의기투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위해 모인 것은 물론, 대표적인 영화도시인 부산에서 촬영한다

는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었으나, 일반 상업영화와는 조금 다른

작품이었기에 실제 제작환경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제

작비가 부족한 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였다. 프리프로덕션은 부

산의 게스트하우스를 거점으로 진행했으며 감독과 일본 측 프로

듀서는 자비를 들여 부산로케이션스카우팅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수

락한 것은 일본 스태프의 열정과 진정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필자가 일본에서 유학생 신

분으로 작품을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

로 없는 상황에서 주변 분들의 도움과 협조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 결과 영화제에서 상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그때 그들의 도움

이 없었다면 그런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소중한 추억을,

경험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브레이크 모드> 프로젝

트의 일본 스태프였고, 쉽지 않은 현장이 될 것이라 예상하면서

도 다시 한 번 순수한 열정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가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누구보다도 설레는 마음으로 크랭크

인을 기다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역시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우선, 가장 큰 벽은 역시 제작비였다. 정해진 제작비 안에서 모든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으나, 일본에서 부산까지 온

스태프를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홀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숙식마저 자비로 해결하겠다며 현장에 집중해 달라고 했

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기에 이전 부산에서 촬영하면서 인연

을 맺은 분들과 업체에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

들 역시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운이 좋았던

건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개를 통한 소개로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로케이션촬영현장이었

다. 실제 가게를 빌려 촬영하는 부분까지 마냥 도움을 요청할 수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마지막 장면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촬영이었기 때문에 제작

진과 배우들은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의기투합하여 촬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촬

영은 어느덧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자정을 지나 어슴푸레 해가 뜰 시간까지

이어져버렸다. 아무도 없던 공동어시장에 하나둘, 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분들이 눈

에 띄기 시작했다. 어선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인데, 하필이면 우리가 배 앞에서 촬

영을 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작업을 미루면

서까지 기다려 준 분들 덕분에 제작진은 더욱 더 박차를 가해 촬영에 임했고, 다행

히 현장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일만은 피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브레이크 모드>

의 부산촬영이 모두 끝났다.

6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광안리 등 부산의 유명 명소에서의 촬영은 작품의 이

미지나 의도와 절묘한 매치를 이루었다. 부산시민들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촬영팀

을 위해 기꺼이 협조해 주었고, 격려와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번 작품을 하면

서 왜 많은 영화인이 부산을 찾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부산은 영화를 사랑

하는 진짜 영화도시다. 앞으로도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꾸준히 사랑받

는 도시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길 소원해 본다. 마지막으로 늦게 합류한 필

자를 대신해 혼자 부산에서 좋은 촬영지를 물색하느라 고생한 강지현 PD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 이해하고 감싸준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 부산

영상위원회 이경섭 팀장과 이승의 팀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윤민영 20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학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유학생 시절부터 몇 편의 영화현장을 거쳐 졸업 후에는 ‘도호영화’에 입사, <비잔><마리와 강아지의 이야기><제로 포커스> 등 일본영화 스태프로 참여했고, 다수의 한·일합작에도 참여했지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광고, 드라마, PV 등 분야에 상관없이 일하다가 역시 영화가 그리워 앞으로는 영화를 메인으로 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으나, 오랜 일본 생활로 한국에는 인맥이 적은 편이라 한국영화보다는 한·일합작프로젝트를 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다.

제작비 여건상 마땅히 촬영할 가게를 찾지 못해 곤란에 처했을 때 ‘한 번 물어나 보자’며 우연히 들어간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딸이 영화 관련 일을 한다’며 선뜻 포장마차 촬영을 허가해 주시기도 했다.

한·일 자동차 대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신차 프로젝트를 위해 일본인 회사원이 부산으로 오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감독 특유의 코믹함으로 그려낸 이번 프로젝트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상업적으로도 발전되어 있는 부산의 전경이 작품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일치한다는 점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부산촬영을 필수 전제로 시작한 작품이었다.3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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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도박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던 ‘대길’이

타짜 세계에 뛰어든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그곳에는 배신과 음모가 끝없이 도사리고…

돌고 도는 악연의 연속 속에서 지켜야 할 사랑과

이겨야 할 승부를 대길은 이겨낼 수 있을까…?

<타짜-신의 손> 촬영팀이 총 16회차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타짜>가 개봉한 게 2006년이니, 전작의 영광이 영화팬들의 뇌리에서 조금은 아득해질 법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4년 현재 한창 촬영 중인 후속작 <타짜-신의 손>은 전편에서 반

세대 정도가 흐른 뒤의 이야기다. 고니와 평경장 대신, 대길과 장동식이라는 새 인물이 등장

하고, 이대 나온 여자, 정마담 대신 우사장이 등장한다. 출연진에 변화는 있지만 <타짜-신의

손>은 여전히 전작의 연속 선상에 놓여있다. 전작과 이어지면서도 달라야 하는… 시리즈물

이라면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전작의 성공을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3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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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도박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던 ‘대길’이

타짜 세계에 뛰어든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그곳에는 배신과 음모가 끝없이 도사리고…

돌고 도는 악연의 연속 속에서 지켜야 할 사랑과

이겨야 할 승부를 대길은 이겨낼 수 있을까…?

<타짜-신의 손> 촬영팀이 총 16회차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타짜>가 개봉한 게 2006년이니, 전작의 영광이 영화팬들의 뇌리에서 조금은 아득해질 법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4년 현재 한창 촬영 중인 후속작 <타짜-신의 손>은 전편에서 반

세대 정도가 흐른 뒤의 이야기다. 고니와 평경장 대신, 대길과 장동식이라는 새 인물이 등장

하고, 이대 나온 여자, 정마담 대신 우사장이 등장한다. 출연진에 변화는 있지만 <타짜-신의

손>은 여전히 전작의 연속 선상에 놓여있다. 전작과 이어지면서도 달라야 하는… 시리즈물

이라면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전작의 성공을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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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로케이션 및 촬영지원에 대

한 현장 사람들의 평가나 인식은 어떠한가?

부산 내려간다면 다들 좋겠다고 한다. 우선 일을

의뢰하면 서울보다는 되는 경우가 많고, 별다른 변

동이 없어서 신뢰감이 높다. 또 부산시민들의 열

정과 배려도 크다. 얼마 전 동백섬 촬영 때는 옆에

서 낚시하던 분들이 촬영한다고 알아서 자리를 비

켜주시더라. 그러면서 재작년에 <도둑들>(2012)이

여기서 찍고 갔다고, 촬영 잘하라고 격려해 주시더

라. 놀라웠다(웃음).

훼방 놓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 않나?

그건 어디나 있는 일이라 익숙하다. 이번에 다대포

시장 촬영 때, 취객 두 분이 잠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한 분은 촬영하는 걸 못마땅해 하시고, 다른

한 분은 왜 쓸데없이 시비냐고 꾸짖다가 싸움이 났

다. 곧 진화됐는데 그 때, 주변 상인분들이 여기 영

화 나오면 우리도 잘 되게 하는 거라며, 나서서 말

려주셨다. 인상적이었다.

부산영상위원회 또는 영화지원기관의 입장에서 개

선사항이나 문제점, 제안 등 현장의 의견을 꼭 듣

고 싶다. 다 좋다고만 하지 말고 꼭 얘기해 준다면?

부산에 오면 정말 큰 불편이 없다. 굳이 말하라고

하니… 요즘은 커피 많이 마시니까 간이 커피 트럭

같은 걸 무료 제공한다든지… 아니면 교통 통행료

면제 카드? 광안대교나 여러 통행료 내는 구간을

프리패스로 다닌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

다. 돈은 얼마 안 되는데 영수증 모아서 처리하는

게 곤욕이다(웃음). 사실 현장에서는 지원만큼이나

세심한 배려? 그런 것에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부산 내려오니까 영화 찍는다고 통행료도 안 받더

라… 뭐 이런? 너무 비현실적인가? 갑자기 생각하

려고 하니 잘 모르겠다(웃음).

인터뷰 진행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현장 경력을 소개해 주신다면?

2001년 임권택 감독님 <취화선>으로 현장 입문해

서 이제 14년 차다. 강형철 감독님과는 대학교 동기

로 알게 되어 <과속스캔들><써니>에 이어 이번에

<타짜-신의 손>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프로듀서로서 영화 제작에서 하고 있는 일은?

프로듀서마다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나리

오 기획부터 현장 관리, 포스트프로덕션까지 오래

붙어서 참여하는 편이다. 강형철 감독과 일할 때

는 감독 전화번호를 아는 관계자가 몇 명 없어서

작품 관련 의뢰나 민원도 받는다. 매니저 겸직이

다(웃음).

<타짜-신의 손> 전작이 성공한 만큼 기대가 크다.

부담은 없는가? 그리고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되

었나?

촬영 들어가고 나서는 생각 안 하기로 했다. 우리

스타일에 집중하자고 얘기했다. 촬영은 현재 전체

분량의 50% 이상 진행됐고, 부산 촬영분은 80% 정

도 마무리된 상태다.

영화에서 부산촬영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부산이

라는 배경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편인가?

중요하다. 영화 클라이맥스가 시작되기 전에 사건

발단의 주요 장면이 부산에서 많이 촬영된다. 우선

고광렬이 사는 곳도 부산이고, 주인공 대길과 고광

렬이 일을 도모하기까지의 주요 과정이 부산 배경

이라고 보면 된다.

15회차 이상 부산촬영을 하면서 부산영상위원회

숙소지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이 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현장 입장을 말하자면, 현

금으로 주는 인센티브제도보다 숙소지원과 같은

방식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촬영 스태프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타짜-신의 손>

이안나 프로듀서

<타짜-신의 손> 제작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빈 공터 한

곳을 찾는 중인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쓰레기 매

립장이라는 설정으로 야외세트를 만들 계획인데 마땅한 장소

를 못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있다, 없다, 된다, 안 된다가 몇 번 오

갔을까… 담당자인 제작지원부 김종현 팀장이 묘책을 꺼내 들

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앞 주차장 부지를 사용하는 것.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곳

이기도 하여 내외부로 협조를 구한 후, 촬영은 수월하게 진행

되는 것처럼 보였다.

촬영 당일,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앞 주차장 부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제작부 및 촬영 스태프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꽤

큰 단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또 하나의 단, 그 위로 또 하나

의 단이 쌓이더니 오후 무렵에는 그 위로 각종 쓰레기(소품)

가 쌓여 작은 산을 이루었다. 도대체 무슨 촬영을 하려고 저

러는 걸까… 그런데 촬영시간이 다가올수록 스태프의 움직임

은 더욱 분주해졌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꽃샘추위가 애써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를 흩날리고 있던 것이다. 바람에 날아

가는 쓰레기를 주우러 제작부는 뛰고 또 뛰고… 결국, 스태프

용 차량까지 동원해 세트 주변에 바람막을 치는 웃지 못할 광

경이 등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촬영이기에 배

우도 없이 촬영하는 걸까. 쓰레기 매립장만 담을 생각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찍거나, CG(컴퓨터 그래픽)를 써도 될 일 같

은데… 그런데 갑자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쑤욱 무언가가 올

라왔다. 아하! 배우가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진 설정인가보

다. 그런데 누구? 헉! 일어나는데 보니 얼굴까지 포대 자루

로 덮여있다. 누구냐 넌?

촬영 막간 휴식시간이 되어서야 비료 포대를 벗은 배우의

얼굴을 보니, 바로 배우 곽도원씨였다. 이날 장면은 장동식

(곽도원)이 죽을 고비 끝에 쓰레기 매립장에 처박혔다가 다

시 살아나는 장면이었던 것. 곽도원씨는 전작 <타짜>에는

없는 캐릭터이지만 <타짜-신의 손>에서 새로운 중심 악역,

장동식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대세 배우라는 타이틀에 맞

게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아우라를 물씬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받고 있다.

영화 <타짜-신의 손>은 부산 16회 촬영 등의 요건을 충족시

켜 부산영상위원회 숙소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촬영팀은

부산촬영기간 스태프 숙박비의 50%를 지원받는다. 촬영

이 한창이던 3월은 꽃샘추위가 기승이었다. 겨울 한파까지

는 아니더라도 장시간 밖에서 촬영하느라 고생하는 현장 스

태프들에게 날씨는 고역이었을 터. 패딩 하나씩에 의지하고

몇 시간씩 촬영장을 지켜야하는 이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부디 멋진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사진 장지욱, 곽형린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로 우뚝 솟은 건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방파제 하나 건너서 보이는 동백섬 공영주차장에서 <타

짜-신의 손>팀의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촬영은 낚시터

장면. 방파제에 낚싯대 몇 개를 드리우자 주차장은 이내 낚시

터가 되었다.

마천루를 바라보며 대길(최승현)과 광렬(유해진)이 대화를 나

누는 장면. 광렬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대길을 테스트하기 위

해 작은 판을 벌이고 난 뒤의 상황. 광렬의 사전 작업으로 카센

터 판을 휩쓴 뒤 대길과 나누는 대화. 판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도사리는 도박판에서의 야합. 그렇게 대길은 도박의

생리를 알아가는 중인 건가…?

액션이나 폭파장면이 없어 큰 통제 없이 잘 진행되겠거니 했

던 촬영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집중력 있었다. 교통

정리나 보행자 협조와 같은 촬영통제가 큰 걸림돌은 아니었

으나, 야외촬영에다 배우들의 대사가 많은 장면이다 보니, 작

은 말소리, 소음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작부는 몇몇 구경 나오신 분들의 질문 하나, 간

혹 지나는 차량 한 대까지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슛이

들어간 뒤에는… 주민 말소리에 NG 한 번, 주변 공사장 소음

에 NG 한 번, 게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가 울어대기까

지… 그렇게 또 NG.

작은 장면 하나를 찍는 데도 이렇듯 품이 들고 인내가 필요한

곳이 바로 촬영현장임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현장 인터뷰

낚시터 장면. 방파제에 낚싯대 몇 개를 드리우자 주차장은 이내 낚시터가 되었다.

장동식(곽도원)이 죽을 고비 끝에 쓰레기 매립장에 처박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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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로케이션 및 촬영지원에 대

한 현장 사람들의 평가나 인식은 어떠한가?

부산 내려간다면 다들 좋겠다고 한다. 우선 일을

의뢰하면 서울보다는 되는 경우가 많고, 별다른 변

동이 없어서 신뢰감이 높다. 또 부산시민들의 열

정과 배려도 크다. 얼마 전 동백섬 촬영 때는 옆에

서 낚시하던 분들이 촬영한다고 알아서 자리를 비

켜주시더라. 그러면서 재작년에 <도둑들>(2012)이

여기서 찍고 갔다고, 촬영 잘하라고 격려해 주시더

라. 놀라웠다(웃음).

훼방 놓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 않나?

그건 어디나 있는 일이라 익숙하다. 이번에 다대포

시장 촬영 때, 취객 두 분이 잠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한 분은 촬영하는 걸 못마땅해 하시고, 다른

한 분은 왜 쓸데없이 시비냐고 꾸짖다가 싸움이 났

다. 곧 진화됐는데 그 때, 주변 상인분들이 여기 영

화 나오면 우리도 잘 되게 하는 거라며, 나서서 말

려주셨다. 인상적이었다.

부산영상위원회 또는 영화지원기관의 입장에서 개

선사항이나 문제점, 제안 등 현장의 의견을 꼭 듣

고 싶다. 다 좋다고만 하지 말고 꼭 얘기해 준다면?

부산에 오면 정말 큰 불편이 없다. 굳이 말하라고

하니… 요즘은 커피 많이 마시니까 간이 커피 트럭

같은 걸 무료 제공한다든지… 아니면 교통 통행료

면제 카드? 광안대교나 여러 통행료 내는 구간을

프리패스로 다닌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

다. 돈은 얼마 안 되는데 영수증 모아서 처리하는

게 곤욕이다(웃음). 사실 현장에서는 지원만큼이나

세심한 배려? 그런 것에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부산 내려오니까 영화 찍는다고 통행료도 안 받더

라… 뭐 이런? 너무 비현실적인가? 갑자기 생각하

려고 하니 잘 모르겠다(웃음).

인터뷰 진행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현장 경력을 소개해 주신다면?

2001년 임권택 감독님 <취화선>으로 현장 입문해

서 이제 14년 차다. 강형철 감독님과는 대학교 동기

로 알게 되어 <과속스캔들><써니>에 이어 이번에

<타짜-신의 손>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프로듀서로서 영화 제작에서 하고 있는 일은?

프로듀서마다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나리

오 기획부터 현장 관리, 포스트프로덕션까지 오래

붙어서 참여하는 편이다. 강형철 감독과 일할 때

는 감독 전화번호를 아는 관계자가 몇 명 없어서

작품 관련 의뢰나 민원도 받는다. 매니저 겸직이

다(웃음).

<타짜-신의 손> 전작이 성공한 만큼 기대가 크다.

부담은 없는가? 그리고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되

었나?

촬영 들어가고 나서는 생각 안 하기로 했다. 우리

스타일에 집중하자고 얘기했다. 촬영은 현재 전체

분량의 50% 이상 진행됐고, 부산 촬영분은 80% 정

도 마무리된 상태다.

영화에서 부산촬영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부산이

라는 배경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편인가?

중요하다. 영화 클라이맥스가 시작되기 전에 사건

발단의 주요 장면이 부산에서 많이 촬영된다. 우선

고광렬이 사는 곳도 부산이고, 주인공 대길과 고광

렬이 일을 도모하기까지의 주요 과정이 부산 배경

이라고 보면 된다.

15회차 이상 부산촬영을 하면서 부산영상위원회

숙소지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이 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현장 입장을 말하자면, 현

금으로 주는 인센티브제도보다 숙소지원과 같은

방식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촬영 스태프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타짜-신의 손>

이안나 프로듀서

<타짜-신의 손> 제작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빈 공터 한

곳을 찾는 중인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쓰레기 매

립장이라는 설정으로 야외세트를 만들 계획인데 마땅한 장소

를 못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있다, 없다, 된다, 안 된다가 몇 번 오

갔을까… 담당자인 제작지원부 김종현 팀장이 묘책을 꺼내 들

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앞 주차장 부지를 사용하는 것.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곳

이기도 하여 내외부로 협조를 구한 후, 촬영은 수월하게 진행

되는 것처럼 보였다.

촬영 당일,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앞 주차장 부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제작부 및 촬영 스태프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꽤

큰 단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또 하나의 단, 그 위로 또 하나

의 단이 쌓이더니 오후 무렵에는 그 위로 각종 쓰레기(소품)

가 쌓여 작은 산을 이루었다. 도대체 무슨 촬영을 하려고 저

러는 걸까… 그런데 촬영시간이 다가올수록 스태프의 움직임

은 더욱 분주해졌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꽃샘추위가 애써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를 흩날리고 있던 것이다. 바람에 날아

가는 쓰레기를 주우러 제작부는 뛰고 또 뛰고… 결국, 스태프

용 차량까지 동원해 세트 주변에 바람막을 치는 웃지 못할 광

경이 등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촬영이기에 배

우도 없이 촬영하는 걸까. 쓰레기 매립장만 담을 생각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찍거나, CG(컴퓨터 그래픽)를 써도 될 일 같

은데… 그런데 갑자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쑤욱 무언가가 올

라왔다. 아하! 배우가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진 설정인가보

다. 그런데 누구? 헉! 일어나는데 보니 얼굴까지 포대 자루

로 덮여있다. 누구냐 넌?

촬영 막간 휴식시간이 되어서야 비료 포대를 벗은 배우의

얼굴을 보니, 바로 배우 곽도원씨였다. 이날 장면은 장동식

(곽도원)이 죽을 고비 끝에 쓰레기 매립장에 처박혔다가 다

시 살아나는 장면이었던 것. 곽도원씨는 전작 <타짜>에는

없는 캐릭터이지만 <타짜-신의 손>에서 새로운 중심 악역,

장동식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대세 배우라는 타이틀에 맞

게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아우라를 물씬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받고 있다.

영화 <타짜-신의 손>은 부산 16회 촬영 등의 요건을 충족시

켜 부산영상위원회 숙소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촬영팀은

부산촬영기간 스태프 숙박비의 50%를 지원받는다. 촬영

이 한창이던 3월은 꽃샘추위가 기승이었다. 겨울 한파까지

는 아니더라도 장시간 밖에서 촬영하느라 고생하는 현장 스

태프들에게 날씨는 고역이었을 터. 패딩 하나씩에 의지하고

몇 시간씩 촬영장을 지켜야하는 이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부디 멋진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사진 장지욱, 곽형린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로 우뚝 솟은 건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방파제 하나 건너서 보이는 동백섬 공영주차장에서 <타

짜-신의 손>팀의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촬영은 낚시터

장면. 방파제에 낚싯대 몇 개를 드리우자 주차장은 이내 낚시

터가 되었다.

마천루를 바라보며 대길(최승현)과 광렬(유해진)이 대화를 나

누는 장면. 광렬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대길을 테스트하기 위

해 작은 판을 벌이고 난 뒤의 상황. 광렬의 사전 작업으로 카센

터 판을 휩쓴 뒤 대길과 나누는 대화. 판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도사리는 도박판에서의 야합. 그렇게 대길은 도박의

생리를 알아가는 중인 건가…?

액션이나 폭파장면이 없어 큰 통제 없이 잘 진행되겠거니 했

던 촬영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집중력 있었다. 교통

정리나 보행자 협조와 같은 촬영통제가 큰 걸림돌은 아니었

으나, 야외촬영에다 배우들의 대사가 많은 장면이다 보니, 작

은 말소리, 소음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작부는 몇몇 구경 나오신 분들의 질문 하나, 간

혹 지나는 차량 한 대까지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슛이

들어간 뒤에는… 주민 말소리에 NG 한 번, 주변 공사장 소음

에 NG 한 번, 게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가 울어대기까

지… 그렇게 또 NG.

작은 장면 하나를 찍는 데도 이렇듯 품이 들고 인내가 필요한

곳이 바로 촬영현장임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현장 인터뷰

낚시터 장면. 방파제에 낚싯대 몇 개를 드리우자 주차장은 이내 낚시터가 되었다.

장동식(곽도원)이 죽을 고비 끝에 쓰레기 매립장에 처박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

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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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소장

복천동

고분에

누워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3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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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소장

복천동

고분에

누워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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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춘삼월 도래하여 땅 기운이 하늘로 솟고 심사가 숫처녀의 첫 나

들이처럼 난분분해지면 늘 그곳이 그리웠다. 아이처럼 퍼질러 앉아

스르르 땅이 되고프니 원초에로의 회귀던가? 그때마다, 겨우내 찌든 마음을

얼마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하니 언덕이다. 금정산을 오른쪽으로 왼편 장산과의 사

이에 동래, 연산동, 서면까지 고루 품었으니 사람의 삶과 자연의 동태를 살피

기 좋던 곳이다. 설령 갑남을녀가 어울려 달맞이라도 하려던 동산이었으면

또 어떠리. 태고로부터였고 해마다 봄은 왔다. 그 어느 해 봄, 미지(未知)의 사

람들이 그곳에 시대의 넋을 묻었다는 사실은 아득하고 멀었다.

둥글고 완만한 언덕의 형상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 걸으나 마치 엄마의 몸과

같다. 여인의 몸매라 통칭하지 않아야 함은 그 위를 걸어보면 알게 된다. 훨

씬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곡선의 느낌은 여인의 선처럼 관능적

이라기보다는 무어라 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부터 오는 특유의 부드러움이

기 때문이다.

초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날이면 더욱 그러하니, 나는 모든 태생(胎生)의 기

운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나의 유년이 그랬을 거며,

잔디의 싹을 겨울로부터 깨어나게 한 해풍의 손길이 그러했을 거다. 그렇다

면, 그런 아련한 감각들이 살아나는 이곳에 천칠백여 년 유구가 묻혀 있었다

는 사실 또한 이상할 게 없다. 무릇 살기 좋은 장소란 그런 아련함이 솔솔 생

겨나는 곳이었다는 말이다.

긴 잠이었다. 짐작할 수 없었던 것들이 동면을 깨고 지표를 뚫어 현세의 우리

앞에 발현했던 것이니, 1969년의 일이다. 그리고 1994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

쳐 과거로 더듬어 올라가는 발굴 작업이 계속되었다. 만여 점의 유물을 출토

하고 터를 복원하여 사적으로 지정하고 출토된 유물을 보관 전시해야 함은

현세 사람들의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에 가면, 홀의 중앙에 철갑옷을 입고 마상(馬上)에 앉은

가야(伽倻) 장군의 위엄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주제가 철기 문화이며 그 주역

이 가야 사람이었음을 웅변한다. 그들의 유구가 지금 이 고을의 자랑이 되고

있으며, 무덤을 파낸 후세의 불경조차 용서되고 승화되려는 것이다. 옛사람

과 후손들이 합작하였으니 진정 애향(愛鄕)이 아닌가?

박물관을 나와서 고분을 바라보면, 유려한 초록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온

세상이 잔디밭이다. 선의 끝은 하늘에 맞닿아 있어, 마치 시간을 잊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오라는 손짓 마냥 몽환적이다. 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

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

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현세의 사람들은 유구의 잔해를 파낸 자리에 누운 관목의 띠로 죄스러움을

상징해 놓았다. 마치 한글 모음 ‘ㅁ’ 자와 같은 형상을 한 이 상징은 지금의 번

잡한 도시가 여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우리는 그 상징을

통하여 잠시 현세를 잊고 먼 태고로 돌아갈 수 있다.

좋은 여행은 예측되지 않으며 실로 무심결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로

의 시간 여행 또한 마찬가지. 야외 전시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표의

3~4m 아래에 위치한 돌무덤 아래에 그릇과 잔과 항아리 무리가 현세 사람

들을 맞는다. 그 순간 유물과 터는 나와 일각의 차이도 없이 같은 태양 아래에

서게 되며, 과거와 현재는 같은 자격으로 그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흙을

빚었던 이도 탐색하는 나도 인간이라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관람자는 너나 할 것 없이 태초의 순수로 돌아간다. 원

래 우리가 가졌던 그 마음이다.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찾을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말이 없는 유물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가끔 시간을

내어 옛것을 더듬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시간의 징표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다시 밖으로 나와 트인 앞을 바라본다. 이곳이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에 이

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한 지점이었음을 알아차리기에 어렵지 않다. 고분

이 동래성(東來城)의 권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굳이 후세에 확립된 풍수

지리를 빌어 양택(陽宅) 음택(陰宅) 논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내가 느낀 터

의 느낌 그대로가 아닐까? 역사로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좋은 자리였으며

지금까지도 묘지로 대접받고 있으니 양(陽) 음(陰) 불문하고 유구한 터였다.

이 장소를 만들어 내고 보존해 온 것이 동래 사람들의 열정이라면, 그것 역시

고대인들의 기질로부터 온 것이리라. 여전히 동래 사람들이 특유의 보수적

기질을 가졌음과 향토 자부(自負)에 유별나다면, 그것 또한 이 토양 위에 살

면서 오래도록 몸에 밴 거부할 수 없는 고유의 형질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이곳의 의미는 모태의 자궁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러한 ‘동

래’가 다른 곳보다 느린 걸음을 걸었으면 한다. 이곳이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

들로 둘러싸인 모습을 상상하기 싫은 까닭이다. 예로부터 동래 사람들의 애

향심은 남달랐으므로 걱정할 것은 없겠으나, 부디 ‘복천동 고분’ 주변이 올

바른 의식과 참된 의지로 충만한 곳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대인들의 유구를 살펴본 후, 나의 애향심이 더더욱 공고해진

것이리라.

이종민 현업 건축가, 등단 수필가.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였다. 개인 블로그 <深溪의 공작소>(blog.daum.net/j7139)에서의 담론과 일간신문, 예술비평지 기고를 통하여 건축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도시정책에 대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건축사 신문>논설고문으로 있으며, 문학동인<디다>에서 활동 중이다.

있는 형태라 조그마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첫사랑을 담은 멜로부터 건물에서 이어지는 누아르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철길 산책도 가능하다고 하니 해운대의 또 다른 모습이 보고 싶다면 주변 경관을 즐기며 잠시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장 소 |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3건널목 너머| 누 구 | 해운대에서 바다만 보고 가기 아쉬운 사람들| 주 변 |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철길, 해운대 바닷가, 수영요트경기장| 포인트 | 우2, 해운대 등 다른 건널목도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

글 권소현 부산영상위원회

수영교를 지나 해운대 우동에 접어들면 햇빛이 비추는 눈부신 수영강과 하늘 높이 그려진 스카이라인이 시선 가득 펼쳐진다. 바다를 곁에 두고 더없이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운대역 구 역사에 닿으면 대형 복합쇼핑몰 맞은편으로 선이라도 그은 듯 공간을 구분하는 우3건널목이 있다.

이제는 폐선 된 동해남부선 해운대역과 송정역 사이에 자리한 건널목 너머에는 추억을 기억하는 낮은 건물들과 그곳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공간은 주변과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에 관광객들과 사진 찍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중에서도 길 안 쪽 해운대 구 역사 방면으로 위치한 □자 형의 연립맨션은 그 구조와 분위기로 특히 유명하다. 1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맨션의 중앙에는 공용마당이 있고, 입구가 한 쪽 면에 부분적으로 뚫려

권소현의 공간 해운대구 우동 우3건널목 너머

둥글고 완만한 언덕의 형상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 걸으나 마치 엄마의 몸과 같다.

박물관을 나와서 고분을 바라보면, 유려한 초록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야외 전시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돌무덤 아래에 그릇과 잔과 항아리 무리가 현세 사람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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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춘삼월 도래하여 땅 기운이 하늘로 솟고 심사가 숫처녀의 첫 나

들이처럼 난분분해지면 늘 그곳이 그리웠다. 아이처럼 퍼질러 앉아

스르르 땅이 되고프니 원초에로의 회귀던가? 그때마다, 겨우내 찌든 마음을

얼마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하니 언덕이다. 금정산을 오른쪽으로 왼편 장산과의 사

이에 동래, 연산동, 서면까지 고루 품었으니 사람의 삶과 자연의 동태를 살피

기 좋던 곳이다. 설령 갑남을녀가 어울려 달맞이라도 하려던 동산이었으면

또 어떠리. 태고로부터였고 해마다 봄은 왔다. 그 어느 해 봄, 미지(未知)의 사

람들이 그곳에 시대의 넋을 묻었다는 사실은 아득하고 멀었다.

둥글고 완만한 언덕의 형상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 걸으나 마치 엄마의 몸과

같다. 여인의 몸매라 통칭하지 않아야 함은 그 위를 걸어보면 알게 된다. 훨

씬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곡선의 느낌은 여인의 선처럼 관능적

이라기보다는 무어라 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부터 오는 특유의 부드러움이

기 때문이다.

초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날이면 더욱 그러하니, 나는 모든 태생(胎生)의 기

운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나의 유년이 그랬을 거며,

잔디의 싹을 겨울로부터 깨어나게 한 해풍의 손길이 그러했을 거다. 그렇다

면, 그런 아련한 감각들이 살아나는 이곳에 천칠백여 년 유구가 묻혀 있었다

는 사실 또한 이상할 게 없다. 무릇 살기 좋은 장소란 그런 아련함이 솔솔 생

겨나는 곳이었다는 말이다.

긴 잠이었다. 짐작할 수 없었던 것들이 동면을 깨고 지표를 뚫어 현세의 우리

앞에 발현했던 것이니, 1969년의 일이다. 그리고 1994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

쳐 과거로 더듬어 올라가는 발굴 작업이 계속되었다. 만여 점의 유물을 출토

하고 터를 복원하여 사적으로 지정하고 출토된 유물을 보관 전시해야 함은

현세 사람들의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에 가면, 홀의 중앙에 철갑옷을 입고 마상(馬上)에 앉은

가야(伽倻) 장군의 위엄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주제가 철기 문화이며 그 주역

이 가야 사람이었음을 웅변한다. 그들의 유구가 지금 이 고을의 자랑이 되고

있으며, 무덤을 파낸 후세의 불경조차 용서되고 승화되려는 것이다. 옛사람

과 후손들이 합작하였으니 진정 애향(愛鄕)이 아닌가?

박물관을 나와서 고분을 바라보면, 유려한 초록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온

세상이 잔디밭이다. 선의 끝은 하늘에 맞닿아 있어, 마치 시간을 잊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오라는 손짓 마냥 몽환적이다. 나른하고 느릿한 선형이 구불구

불 하늘로 오르기도 땅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공간이 그러하듯, 마음만 먹으

면 시간 또한 경계를 늦추리라.

현세의 사람들은 유구의 잔해를 파낸 자리에 누운 관목의 띠로 죄스러움을

상징해 놓았다. 마치 한글 모음 ‘ㅁ’ 자와 같은 형상을 한 이 상징은 지금의 번

잡한 도시가 여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우리는 그 상징을

통하여 잠시 현세를 잊고 먼 태고로 돌아갈 수 있다.

좋은 여행은 예측되지 않으며 실로 무심결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로

의 시간 여행 또한 마찬가지. 야외 전시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표의

3~4m 아래에 위치한 돌무덤 아래에 그릇과 잔과 항아리 무리가 현세 사람

들을 맞는다. 그 순간 유물과 터는 나와 일각의 차이도 없이 같은 태양 아래에

서게 되며, 과거와 현재는 같은 자격으로 그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흙을

빚었던 이도 탐색하는 나도 인간이라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관람자는 너나 할 것 없이 태초의 순수로 돌아간다. 원

래 우리가 가졌던 그 마음이다.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찾을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말이 없는 유물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가끔 시간을

내어 옛것을 더듬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시간의 징표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다시 밖으로 나와 트인 앞을 바라본다. 이곳이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에 이

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한 지점이었음을 알아차리기에 어렵지 않다. 고분

이 동래성(東來城)의 권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굳이 후세에 확립된 풍수

지리를 빌어 양택(陽宅) 음택(陰宅) 논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내가 느낀 터

의 느낌 그대로가 아닐까? 역사로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좋은 자리였으며

지금까지도 묘지로 대접받고 있으니 양(陽) 음(陰) 불문하고 유구한 터였다.

이 장소를 만들어 내고 보존해 온 것이 동래 사람들의 열정이라면, 그것 역시

고대인들의 기질로부터 온 것이리라. 여전히 동래 사람들이 특유의 보수적

기질을 가졌음과 향토 자부(自負)에 유별나다면, 그것 또한 이 토양 위에 살

면서 오래도록 몸에 밴 거부할 수 없는 고유의 형질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이곳의 의미는 모태의 자궁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러한 ‘동

래’가 다른 곳보다 느린 걸음을 걸었으면 한다. 이곳이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

들로 둘러싸인 모습을 상상하기 싫은 까닭이다. 예로부터 동래 사람들의 애

향심은 남달랐으므로 걱정할 것은 없겠으나, 부디 ‘복천동 고분’ 주변이 올

바른 의식과 참된 의지로 충만한 곳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대인들의 유구를 살펴본 후, 나의 애향심이 더더욱 공고해진

것이리라.

이종민 현업 건축가, 등단 수필가.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였다. 개인 블로그 <深溪의 공작소>(blog.daum.net/j7139)에서의 담론과 일간신문, 예술비평지 기고를 통하여 건축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도시정책에 대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건축사 신문>논설고문으로 있으며, 문학동인<디다>에서 활동 중이다.

있는 형태라 조그마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첫사랑을 담은 멜로부터 건물에서 이어지는 누아르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철길 산책도 가능하다고 하니 해운대의 또 다른 모습이 보고 싶다면 주변 경관을 즐기며 잠시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장 소 |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3건널목 너머| 누 구 | 해운대에서 바다만 보고 가기 아쉬운 사람들| 주 변 |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철길, 해운대 바닷가, 수영요트경기장| 포인트 | 우2, 해운대 등 다른 건널목도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

글 권소현 부산영상위원회

수영교를 지나 해운대 우동에 접어들면 햇빛이 비추는 눈부신 수영강과 하늘 높이 그려진 스카이라인이 시선 가득 펼쳐진다. 바다를 곁에 두고 더없이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운대역 구 역사에 닿으면 대형 복합쇼핑몰 맞은편으로 선이라도 그은 듯 공간을 구분하는 우3건널목이 있다.

이제는 폐선 된 동해남부선 해운대역과 송정역 사이에 자리한 건널목 너머에는 추억을 기억하는 낮은 건물들과 그곳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공간은 주변과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에 관광객들과 사진 찍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중에서도 길 안 쪽 해운대 구 역사 방면으로 위치한 □자 형의 연립맨션은 그 구조와 분위기로 특히 유명하다. 1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맨션의 중앙에는 공용마당이 있고, 입구가 한 쪽 면에 부분적으로 뚫려

권소현의 공간 해운대구 우동 우3건널목 너머

둥글고 완만한 언덕의 형상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 걸으나 마치 엄마의 몸과 같다.

박물관을 나와서 고분을 바라보면, 유려한 초록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야외 전시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돌무덤 아래에 그릇과 잔과 항아리 무리가 현세 사람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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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변호인>(2013), <베를린>(2013), <남자사용설명서>(2013),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러브픽션>(2012), <기타가 웃는다>(2011), <부당거래>(2010)

<세로본능>(2010), <라마사박다니>(2010), <거북이 달린다>(2009), <달콤한 거짓말>(2008), <마이 뉴 파트너>(2008), <밀양>(2007)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차은재차랑, 풍경소리가 났다.

3월이 무색할 정도로 매서운 바람에 황급히 카

페 문을 닫았다. 온몸을 감싸던 바람소리는 차

랑, 하는 풍경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몸 여기저

기 묻어있던 바람을 털어내고 카페 안 온기에 익

숙해질 때 즈음, 스피커를 타고 나지막이 흐르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은 오후, 인터

뷰를 위해 송정의 한 카페를 찾았다. 금요일이

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카

페 곳곳을 둘러보며 이야기 나누기 편한 장소,

사진 촬영에 좋을 각도를 살폈다. 1년 만의 여배

우 인터뷰였다. 여배우라는 단어만으로도 인터

뷰의 설렘은 배가 된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

아 질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차랑, 풍

경소리가 났다.

2013년 12월 18일,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2013)이 개봉했다. 영화

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 화제를 일으키며 개봉 25일 만에 300

만 관객을 동원하고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부산이 영화의

배경이고 실제 작품에도 부산 출신 배우들이 출연하여 사실성을 더했

다. 배우 차은재도 그중 한명이다. 자연스레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영화 <변호인>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각자 다른 꿈을 가지고 하나의 점을 향해 달려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조명을 비추고, 누군가는 카메라

를 돌리며 함께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거죠. <변호인>은 특히 그

점을 향한 마음이 모두 하나 같아서 찍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어요. 만

든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라 더욱 관객 여러분들의 마음

에 가 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죠.”

보석 같은 배우들과의 작업 “그때가 많이 그리워요. 그분들과 함께 한 매 순간이 배움이었고 저에게

는 기적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웠어요. 훌륭한 배우는 촬영장

에서 치열하지만 즐기며 일을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가슴이 무척 뜨

겁다는 것도! 촬영장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술 마실 때도 매우 뜨거워요(웃음).”

행복한 기억

“촬영 때도 늘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전국으로 무대 인사를 다닌 기억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어떤 관계자분은 정말 유례없는 무대 인사였다

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갈수록 부담이 생기기도 해서 무대 인사를 공연 준비하듯 고민하고 연

습했어요(웃음). 흐뭇해하시는 관객 분들을 보니 뿌듯했고, 우리 팀끼리

도 많이 웃고 즐거웠어요.”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배우 차은재의 시작은 중학교 연극부 때였다. 무언가에 이끌

리 듯 무대에 섰고 연기를 했다. 나무 무대의 삐걱거림, 밟고 섰을 때 발

끝에서 느껴지는 결의 느낌, 그리고 따뜻한 조명.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

스러워 배우 이외의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성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입학한 그녀는 1학년 때부터 극단생활을 시작한다. 공연 보조

로 참여했던 기회가 인연이 되어 입단하게 되었는데, 너무나 소중한 시

간이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배우로서 탄탄한 토대를 다

지게 된 것이다. 1학년 때부터 극단 생활을 시작한 탓에 학과 생활을 좀

더 활발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녀에게 첫 촬

영장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첫 촬영장, 첫 카메라의 시선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2007)이 첫 작품이에요. 좁은 카센터 안에 커

다란 카메라와 수십 명의 스태프를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맹장 수술

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수술실 안에는 이름 모를

기구들이 가득했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고 바라

보고 있었던 기억이었어요. 첫 촬영장은 마냥 신기해서 떨 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갈수록 더 떨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전엔 모범

생처럼 준비하고, 연기할 때는 날라리처럼 잘 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웃음). 중학교 연극부 때부터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 작품

이 끝나면 배우는 늘 다시 시작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막막하고, 그

래서 또 다시 설레고 이 길을 가고 싶고, 또 가야만 하는 것 같아요. 기

회가 된다면 처음 영화라는 세상에 초대해 주신 이창동 감독님과 꼭 다

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는 저의 모습을 꺼내주고 발

견해 주실 감독님과 좋은 배우들과 되도록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보고 싶어요.”

부산, 사투리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잖아요. 다르다는 것은 무기가 되는 것 같아요.

다른 배우는 배우기 힘들어하는 부산 사투리를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듣고 써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점이 저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생각

해요.”

배우 차은재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역할에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

고 싶다고 말했다. 좀 천천히 가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회자될 수 있

는 그런 배우.

“조그만 나무 무대에 서서 조명에 빨려들 것 같았던 14살의 소녀가 가슴

속에 있어요. 그 소녀가 저를 살게 하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데, 아직은 부

족한 저라서 그 아이의 꿈을 못 이뤄주는 것 같아 미안하고 슬퍼요. 하지

만 그 아이 덕분에 늘 꿈꾸고 매일이 새로워서 행복해요.”

늘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연기 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그녀에게 부산 배우의 따뜻한 감성이 더해진 멋진 연기를

기대해 본다.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사진 곽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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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변호인>(2013), <베를린>(2013), <남자사용설명서>(2013),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러브픽션>(2012), <기타가 웃는다>(2011), <부당거래>(2010)

<세로본능>(2010), <라마사박다니>(2010), <거북이 달린다>(2009), <달콤한 거짓말>(2008), <마이 뉴 파트너>(2008), <밀양>(2007)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차은재차랑, 풍경소리가 났다.

3월이 무색할 정도로 매서운 바람에 황급히 카

페 문을 닫았다. 온몸을 감싸던 바람소리는 차

랑, 하는 풍경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몸 여기저

기 묻어있던 바람을 털어내고 카페 안 온기에 익

숙해질 때 즈음, 스피커를 타고 나지막이 흐르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은 오후, 인터

뷰를 위해 송정의 한 카페를 찾았다. 금요일이

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카

페 곳곳을 둘러보며 이야기 나누기 편한 장소,

사진 촬영에 좋을 각도를 살폈다. 1년 만의 여배

우 인터뷰였다. 여배우라는 단어만으로도 인터

뷰의 설렘은 배가 된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

아 질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차랑, 풍

경소리가 났다.

2013년 12월 18일,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2013)이 개봉했다. 영화

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 화제를 일으키며 개봉 25일 만에 300

만 관객을 동원하고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부산이 영화의

배경이고 실제 작품에도 부산 출신 배우들이 출연하여 사실성을 더했

다. 배우 차은재도 그중 한명이다. 자연스레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영화 <변호인>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각자 다른 꿈을 가지고 하나의 점을 향해 달려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조명을 비추고, 누군가는 카메라

를 돌리며 함께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거죠. <변호인>은 특히 그

점을 향한 마음이 모두 하나 같아서 찍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어요. 만

든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라 더욱 관객 여러분들의 마음

에 가 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죠.”

보석 같은 배우들과의 작업 “그때가 많이 그리워요. 그분들과 함께 한 매 순간이 배움이었고 저에게

는 기적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웠어요. 훌륭한 배우는 촬영장

에서 치열하지만 즐기며 일을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가슴이 무척 뜨

겁다는 것도! 촬영장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술 마실 때도 매우 뜨거워요(웃음).”

행복한 기억

“촬영 때도 늘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전국으로 무대 인사를 다닌 기억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어떤 관계자분은 정말 유례없는 무대 인사였다

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갈수록 부담이 생기기도 해서 무대 인사를 공연 준비하듯 고민하고 연

습했어요(웃음). 흐뭇해하시는 관객 분들을 보니 뿌듯했고, 우리 팀끼리

도 많이 웃고 즐거웠어요.”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배우 차은재의 시작은 중학교 연극부 때였다. 무언가에 이끌

리 듯 무대에 섰고 연기를 했다. 나무 무대의 삐걱거림, 밟고 섰을 때 발

끝에서 느껴지는 결의 느낌, 그리고 따뜻한 조명.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

스러워 배우 이외의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성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입학한 그녀는 1학년 때부터 극단생활을 시작한다. 공연 보조

로 참여했던 기회가 인연이 되어 입단하게 되었는데, 너무나 소중한 시

간이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배우로서 탄탄한 토대를 다

지게 된 것이다. 1학년 때부터 극단 생활을 시작한 탓에 학과 생활을 좀

더 활발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녀에게 첫 촬

영장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첫 촬영장, 첫 카메라의 시선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2007)이 첫 작품이에요. 좁은 카센터 안에 커

다란 카메라와 수십 명의 스태프를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맹장 수술

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수술실 안에는 이름 모를

기구들이 가득했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고 바라

보고 있었던 기억이었어요. 첫 촬영장은 마냥 신기해서 떨 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갈수록 더 떨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전엔 모범

생처럼 준비하고, 연기할 때는 날라리처럼 잘 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웃음). 중학교 연극부 때부터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 작품

이 끝나면 배우는 늘 다시 시작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막막하고, 그

래서 또 다시 설레고 이 길을 가고 싶고, 또 가야만 하는 것 같아요. 기

회가 된다면 처음 영화라는 세상에 초대해 주신 이창동 감독님과 꼭 다

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는 저의 모습을 꺼내주고 발

견해 주실 감독님과 좋은 배우들과 되도록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보고 싶어요.”

부산, 사투리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잖아요. 다르다는 것은 무기가 되는 것 같아요.

다른 배우는 배우기 힘들어하는 부산 사투리를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듣고 써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점이 저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생각

해요.”

배우 차은재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역할에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

고 싶다고 말했다. 좀 천천히 가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회자될 수 있

는 그런 배우.

“조그만 나무 무대에 서서 조명에 빨려들 것 같았던 14살의 소녀가 가슴

속에 있어요. 그 소녀가 저를 살게 하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데, 아직은 부

족한 저라서 그 아이의 꿈을 못 이뤄주는 것 같아 미안하고 슬퍼요. 하지

만 그 아이 덕분에 늘 꿈꾸고 매일이 새로워서 행복해요.”

늘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연기 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그녀에게 부산 배우의 따뜻한 감성이 더해진 멋진 연기를

기대해 본다.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사진 곽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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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위원회에서 일하다 보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어디에서 찍었다더라, 하는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때로는 제법 괜찮은 영화

속에서 매일같이 무심히 지나치던 회사 근처 건물을 발견하곤 새삼 생경해 하기

도 하고, 또 가끔은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가 오랫동안 잊고있던 영화에 등장한

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몇 년 만에 그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영화는

장소를 다시 보게 한다. 아니 어쩌면, 장소들이 영화를 다시 보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영화와 장소’라는 연결고리를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홍콩이다. 얼마 넓지도 않은 땅에서 80~90년대

그토록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왔으니, 발 닿는 곳마다 어느 배우가 머물렀던

곳, 어느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홍콩

의 중국식 이름은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을 가진 향항(香港), 그 이름 때문인지

묵직한 습기를 머금은 홍콩의 안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냄새’가 느껴진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인 이유를 묻는다면, 전성기 홍콩영화가 뒷골목의 어

둠과 자욱한 담배 연기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침사추이로 가는 길, 스타페리홍콩 방문객들이 추천받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레이저쇼 ‘심포니 오브 라이

츠(Symphony of Lights)’와 ‘스타의 거리’로 유명한 침사추이다. 완차이나

코즈웨이베이, 센트럴 등 홍콩 섬에 위치한 번화가에서 침사추이에 닿기 위

해서는 ‘스타페리(Star Ferry)’라는 유람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일단 스타페

리에 올라탔다면 침사추이의 영화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리샤오룽(이소룡) 사후 한국배우 당룡이 대역으로 출연한 <사망유희死亡遊

戱>(1978)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

던 빌리(리샤오룽(이소룡) 분)가

돌아와 앤(콜린 캠프 분)과 재회

하는 장면이 이 스타페리 위에서

촬영된 것으로 유명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청룽(성룡),

장만위(장만옥)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 2>에 등장한다. 많은 영

화에서 경찰이기를 고집해 왔던

청룽은 모순적이게도 그 고집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상처

를 입히는 일이 많았는데,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온갖 역경을 겪어내

는 장만위(극 중 아미)가 바로 그 ‘경찰의 연인’의 대명사라 할 수 있겠다. 아

미는 늘 진가구(청룽 분)에게 경찰을 관둘 것을 권한다. 그런 그녀의 바람이

잠시나마 이뤄지는가 싶은 순간이 바로 <폴리스 스토리 2>의 스타페리 장면

이다. 아미를 폭행한 마약 밀매범 일당과 싸움을 벌인 책임으로 사표를 낸 진

가구는 이 스타페리에 올라 아미에게 ‘해외여행이나 가자’고 말한다. 그 여행

은 후에 당연히 물거품이 되고 말기에, 분홍색 카디건을 걸친 풋풋한 장만위

의 맑은 웃음은 내내 안쓰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컨벤션&전시센터 선착장에서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까지 가는, 기

껏해야 5~6분이나 될까 말까한 시간 동안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후에 청룽은 <뉴 폴리스 스토리新警察故事>(2004)에서 자신의 여

자친구 가이(양차이니(양채니) 분)를 통해 모든 ‘경찰의 연인들’에게 헌사와

‘경찰의 연인’인 죄로 온갖 고생을 하는 <폴리스 스토리 2警察故事續集>(1988)의 아미(장만위 분)

아마도 홍콩

-홍콩영화 속 로케이션-

A s i a M o v i e F i l e

도 같은 장면을 선사한다. 가이의(아마도 청룽 때문에) 상처 입은 얼굴이 화

면을 가득 채웠을 때, 그녀는 단지 가이가 아니라 ‘경찰 청룽’을 위해 희생한

그의 지난 연인들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그 장면을 보며 <폴리스

스토리 1·2·3>의 아미를 떠올렸던 것은 아마 그 이유였을 거다.

첫 만남을 기억하는, 맥도날드앞서 언급했듯, 홍콩여행 가이드 책자에 등장하는 침사추이의 명물은 심포니

오브 라이츠나 스타의 거리다. 그러나 오롯이 ‘구경꾼’의 입장이 아닌 영화애

호가의 입장으로 침사추이를 방문한다면, 정작 찾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바

로 <타락천사>의 고독남 황지명(리밍(여명) 분)이 자신을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뜨린 파트너 가흔(리자신(이가흔) 분)을 피해 베이비(모웬웨이(막문위) 분)

를 처음 만나는 장소,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시그니처 광각렌즈로 표현

된 맥도날드다. 노란 조명과 베

이비의 파격적인 노랑머리, 맥도

날드 특유의 원색을 바탕으로 한

인테리어 덕에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는 베이비의 몸짓과 동

선을 따라 움직이다 그녀가 황지

명 곁에 앉는 순간, 이번에는 황

지명의 시선이 되어 주위를 훑는 카메라워크가 일품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만큼, 맥도날드의 매장 인테리어도 자

주 바뀐다. 지난해 찾았던 이 맥도날드 역시 많이 변한 내부 모습 때문에 <타

락천사>의 퇴폐적인 쓸쓸함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영화 속 베이비처

럼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하려던 마음을 바꿔 밀크셰이크를 한 잔 마시고 말

았다. 아쉽지만 영화 속에서도 이 맥도날드가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대표하

지 않았다는 사실, 비틀거리는 홍콩 청춘들이 잠시 머무른 장소였을 뿐이라

는 사실만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홍콩누아르 속 로맨스의 전형, <천장지구>의 성 마가렛 성당홍콩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묘사가 “성냥개비를 입에

문 <영웅본색英雄本色>(1985)의 저우룬파(주윤발)”인 만큼, 홍콩영화를 대표

하는 이미지가 상당히 남성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다분히 마초적이었던 90년대 홍콩누아르 속에서 류더화(유덕화), 저우룬파,

티룽(적룡) 등 ‘아이콘’으로 불려 마땅했던 이들은 툭하면 쌍권총을 뽑아들

고, 웃통을 벗어젖히며,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다음 결투 상대를 찾아 나서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여성관객에게 어필한 쪽은 외려 신비한 우울감을 간

직한 장궈룽(장국영)이었지만, 남성관객은 대체적으로 그들만의 ‘로망’을 가

장 훌륭한 비주얼로 표현해 낸 ‘형님 파’ 배우 쪽을 찬양했던 것으로 기억한

다. 이렇듯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격렬한 액션에 남성적 로맨스까지

더해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천장지구>다. 홍콩 남자배우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듯, 홍콩영화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류더화가 청춘스타

로 급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작품도 바로 이 영화다. 20세기 최고의 청순 미

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우첸롄(오천련)과 류더화의 로맨스는 지금 다시 봐도

마음을 저리게 할 만큼 신파적인

데, 복수를 앞둔 아화(류더화 분)

가 마지막으로 죠죠(우첸롄 분)

를 만나 웨딩의상을 멋지게 차려

입고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나 복수를 위해 떠

나버린 아화를 찾아 죠죠가 웨딩

드레스 차림으로 밤거리를 달리

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도 수

없이 패러디된 명장면이기도 하

다. 바로 그 세기에 남을(?) 결혼

식 장면을 촬영한 곳이 홍콩 섬

의 코즈웨이베이에 위치한 성 마

가렛 성당이다. 24년 전 촬영한

영화 속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 성당은 실제로도 웨딩촬

영이나 소박한 결혼식을 많이 진행하는 곳이라고. 어둑한 밤에 찾으면 더욱

더 <천장지구>가 재현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 위치한 두 개

의 새하얀 동상과 빛나는 두 개의 십자가를 마주하면, 어딘지 숙연한 느낌마

저 든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아화와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죠죠가

흰 예복을 입고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인 경

험을 할 수 있으니, <천장지구>를 기억하는 옛 팬들이라면 홍콩 방문 중 반

드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천장지구>에서는 마지막 결투 끝에 죽음을 맞

이하는 아화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지만, 이후 류더화와 우

첸롄이 다시 한 번 커플로 분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강호江湖>(2004)다.

<강호>에서 류더화는 삼합회의 우두머리로, 우첸롄은 영악하고 지략에 뛰어

난 그의 아내로 등장한다. <강호>를 떠올리면서 가끔, <천장지구>가 비극으

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이 결혼해 그 시절의 삶을 이어갔더라면 아마 <강호>

속 두 사람처럼 늙어갔겠거니, 생각해 본다.

워낙 넓지 않은 공간임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이들이 간직한 홍콩에 대한 추

억은 약간씩 닿아있을 수밖에 없을 테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는 홍콩필름마

트 참가를 위해 매년 3월 말경 홍콩 출장을 떠나는데, 마침 ‘홍콩영화의 연

인’ 장궈룽의 기일과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기인 탓에 곳곳에서 장궈룽의

생전 노래가 흘러나오고,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서는 장궈룽 사진이 담긴

엽서나 캐릭터상품 따위가 흔하게 팔린다. 덕분에 이미 그가 좋아했던 장소

로 잘 알려진 페닌슐라 호텔이나 빅토리아파크의 카페 데코가 아니더라도,

걸음 닿는 곳마다 ‘장궈룽도 한 번쯤은 이 거리를 지났겠지’ 생각하며 상실감

을 달랠 수 있다. 오래된 홍콩영화 속 장소들이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장궈

룽을 떠올리는 특별한 추억도 여전히 홍콩의 평범한 공기 속에 부유하고 있

으니까. 홍콩이 가장 ‘영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쓴 글머리의 표

현은 바로 그런 의미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천장지구天若有情>(1990) 속 성 마가렛 성당

영화 밖의 실제 성 마가렛 성당

<타락천사墮落天使>(1995) 속 맥도날드

HONG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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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위원회에서 일하다 보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어디에서 찍었다더라, 하는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때로는 제법 괜찮은 영화

속에서 매일같이 무심히 지나치던 회사 근처 건물을 발견하곤 새삼 생경해 하기

도 하고, 또 가끔은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가 오랫동안 잊고있던 영화에 등장한

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몇 년 만에 그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영화는

장소를 다시 보게 한다. 아니 어쩌면, 장소들이 영화를 다시 보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영화와 장소’라는 연결고리를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홍콩이다. 얼마 넓지도 않은 땅에서 80~90년대

그토록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왔으니, 발 닿는 곳마다 어느 배우가 머물렀던

곳, 어느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홍콩

의 중국식 이름은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을 가진 향항(香港), 그 이름 때문인지

묵직한 습기를 머금은 홍콩의 안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냄새’가 느껴진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인 이유를 묻는다면, 전성기 홍콩영화가 뒷골목의 어

둠과 자욱한 담배 연기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침사추이로 가는 길, 스타페리홍콩 방문객들이 추천받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레이저쇼 ‘심포니 오브 라이

츠(Symphony of Lights)’와 ‘스타의 거리’로 유명한 침사추이다. 완차이나

코즈웨이베이, 센트럴 등 홍콩 섬에 위치한 번화가에서 침사추이에 닿기 위

해서는 ‘스타페리(Star Ferry)’라는 유람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일단 스타페

리에 올라탔다면 침사추이의 영화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리샤오룽(이소룡) 사후 한국배우 당룡이 대역으로 출연한 <사망유희死亡遊

戱>(1978)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

던 빌리(리샤오룽(이소룡) 분)가

돌아와 앤(콜린 캠프 분)과 재회

하는 장면이 이 스타페리 위에서

촬영된 것으로 유명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청룽(성룡),

장만위(장만옥)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 2>에 등장한다. 많은 영

화에서 경찰이기를 고집해 왔던

청룽은 모순적이게도 그 고집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상처

를 입히는 일이 많았는데,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온갖 역경을 겪어내

는 장만위(극 중 아미)가 바로 그 ‘경찰의 연인’의 대명사라 할 수 있겠다. 아

미는 늘 진가구(청룽 분)에게 경찰을 관둘 것을 권한다. 그런 그녀의 바람이

잠시나마 이뤄지는가 싶은 순간이 바로 <폴리스 스토리 2>의 스타페리 장면

이다. 아미를 폭행한 마약 밀매범 일당과 싸움을 벌인 책임으로 사표를 낸 진

가구는 이 스타페리에 올라 아미에게 ‘해외여행이나 가자’고 말한다. 그 여행

은 후에 당연히 물거품이 되고 말기에, 분홍색 카디건을 걸친 풋풋한 장만위

의 맑은 웃음은 내내 안쓰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컨벤션&전시센터 선착장에서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까지 가는, 기

껏해야 5~6분이나 될까 말까한 시간 동안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후에 청룽은 <뉴 폴리스 스토리新警察故事>(2004)에서 자신의 여

자친구 가이(양차이니(양채니) 분)를 통해 모든 ‘경찰의 연인들’에게 헌사와

‘경찰의 연인’인 죄로 온갖 고생을 하는 <폴리스 스토리 2警察故事續集>(1988)의 아미(장만위 분)

아마도 홍콩

-홍콩영화 속 로케이션-

A s i a M o v i e F i l e

도 같은 장면을 선사한다. 가이의(아마도 청룽 때문에) 상처 입은 얼굴이 화

면을 가득 채웠을 때, 그녀는 단지 가이가 아니라 ‘경찰 청룽’을 위해 희생한

그의 지난 연인들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그 장면을 보며 <폴리스

스토리 1·2·3>의 아미를 떠올렸던 것은 아마 그 이유였을 거다.

첫 만남을 기억하는, 맥도날드앞서 언급했듯, 홍콩여행 가이드 책자에 등장하는 침사추이의 명물은 심포니

오브 라이츠나 스타의 거리다. 그러나 오롯이 ‘구경꾼’의 입장이 아닌 영화애

호가의 입장으로 침사추이를 방문한다면, 정작 찾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바

로 <타락천사>의 고독남 황지명(리밍(여명) 분)이 자신을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뜨린 파트너 가흔(리자신(이가흔) 분)을 피해 베이비(모웬웨이(막문위) 분)

를 처음 만나는 장소,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시그니처 광각렌즈로 표현

된 맥도날드다. 노란 조명과 베

이비의 파격적인 노랑머리, 맥도

날드 특유의 원색을 바탕으로 한

인테리어 덕에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는 베이비의 몸짓과 동

선을 따라 움직이다 그녀가 황지

명 곁에 앉는 순간, 이번에는 황

지명의 시선이 되어 주위를 훑는 카메라워크가 일품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만큼, 맥도날드의 매장 인테리어도 자

주 바뀐다. 지난해 찾았던 이 맥도날드 역시 많이 변한 내부 모습 때문에 <타

락천사>의 퇴폐적인 쓸쓸함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영화 속 베이비처

럼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하려던 마음을 바꿔 밀크셰이크를 한 잔 마시고 말

았다. 아쉽지만 영화 속에서도 이 맥도날드가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대표하

지 않았다는 사실, 비틀거리는 홍콩 청춘들이 잠시 머무른 장소였을 뿐이라

는 사실만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홍콩누아르 속 로맨스의 전형, <천장지구>의 성 마가렛 성당홍콩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묘사가 “성냥개비를 입에

문 <영웅본색英雄本色>(1985)의 저우룬파(주윤발)”인 만큼, 홍콩영화를 대표

하는 이미지가 상당히 남성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다분히 마초적이었던 90년대 홍콩누아르 속에서 류더화(유덕화), 저우룬파,

티룽(적룡) 등 ‘아이콘’으로 불려 마땅했던 이들은 툭하면 쌍권총을 뽑아들

고, 웃통을 벗어젖히며,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다음 결투 상대를 찾아 나서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여성관객에게 어필한 쪽은 외려 신비한 우울감을 간

직한 장궈룽(장국영)이었지만, 남성관객은 대체적으로 그들만의 ‘로망’을 가

장 훌륭한 비주얼로 표현해 낸 ‘형님 파’ 배우 쪽을 찬양했던 것으로 기억한

다. 이렇듯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격렬한 액션에 남성적 로맨스까지

더해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천장지구>다. 홍콩 남자배우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듯, 홍콩영화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류더화가 청춘스타

로 급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작품도 바로 이 영화다. 20세기 최고의 청순 미

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우첸롄(오천련)과 류더화의 로맨스는 지금 다시 봐도

마음을 저리게 할 만큼 신파적인

데, 복수를 앞둔 아화(류더화 분)

가 마지막으로 죠죠(우첸롄 분)

를 만나 웨딩의상을 멋지게 차려

입고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나 복수를 위해 떠

나버린 아화를 찾아 죠죠가 웨딩

드레스 차림으로 밤거리를 달리

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도 수

없이 패러디된 명장면이기도 하

다. 바로 그 세기에 남을(?) 결혼

식 장면을 촬영한 곳이 홍콩 섬

의 코즈웨이베이에 위치한 성 마

가렛 성당이다. 24년 전 촬영한

영화 속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 성당은 실제로도 웨딩촬

영이나 소박한 결혼식을 많이 진행하는 곳이라고. 어둑한 밤에 찾으면 더욱

더 <천장지구>가 재현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 위치한 두 개

의 새하얀 동상과 빛나는 두 개의 십자가를 마주하면, 어딘지 숙연한 느낌마

저 든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아화와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죠죠가

흰 예복을 입고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인 경

험을 할 수 있으니, <천장지구>를 기억하는 옛 팬들이라면 홍콩 방문 중 반

드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천장지구>에서는 마지막 결투 끝에 죽음을 맞

이하는 아화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지만, 이후 류더화와 우

첸롄이 다시 한 번 커플로 분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강호江湖>(2004)다.

<강호>에서 류더화는 삼합회의 우두머리로, 우첸롄은 영악하고 지략에 뛰어

난 그의 아내로 등장한다. <강호>를 떠올리면서 가끔, <천장지구>가 비극으

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이 결혼해 그 시절의 삶을 이어갔더라면 아마 <강호>

속 두 사람처럼 늙어갔겠거니, 생각해 본다.

워낙 넓지 않은 공간임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이들이 간직한 홍콩에 대한 추

억은 약간씩 닿아있을 수밖에 없을 테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는 홍콩필름마

트 참가를 위해 매년 3월 말경 홍콩 출장을 떠나는데, 마침 ‘홍콩영화의 연

인’ 장궈룽의 기일과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기인 탓에 곳곳에서 장궈룽의

생전 노래가 흘러나오고,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서는 장궈룽 사진이 담긴

엽서나 캐릭터상품 따위가 흔하게 팔린다. 덕분에 이미 그가 좋아했던 장소

로 잘 알려진 페닌슐라 호텔이나 빅토리아파크의 카페 데코가 아니더라도,

걸음 닿는 곳마다 ‘장궈룽도 한 번쯤은 이 거리를 지났겠지’ 생각하며 상실감

을 달랠 수 있다. 오래된 홍콩영화 속 장소들이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장궈

룽을 떠올리는 특별한 추억도 여전히 홍콩의 평범한 공기 속에 부유하고 있

으니까. 홍콩이 가장 ‘영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쓴 글머리의 표

현은 바로 그런 의미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천장지구天若有情>(1990) 속 성 마가렛 성당

영화 밖의 실제 성 마가렛 성당

<타락천사墮落天使>(1995) 속 맥도날드

HONG KONG

44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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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의 필름마켓, 홍콩필름마트영화가 작가 혼자만의 예술이 아닌 산업영

역으로 존재하는 이상, 영화 내적 예술성

을 시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

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영화제와

필름마켓의 관계는 더욱 그런데, 홍콩국

제영화제와 홍콩필름마트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쇠락기

로 접어들면서 왕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그 명성을 날렸던 홍콩국제영화

제도 점차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홍

콩국제영화제를 위기에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홍콩필름마트였다. 초창

기의 홍콩필름마트는 영화제 기간보다 약 한 달 정도 늦은 4~6월경에 개최되

었기 때문에 영화제 부흥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던 2006년, 힘

을 잃은 홍콩국제영화제의 본격적인 부활을 위해 조직위가 전략적으로 다양

한 행사를 연동시키면서 홍콩필름마트 역시 개최시기를 옮기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조직위의 계획대로,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의

유통과 순환을 아우르는 필름마트의 참가자 트래픽은 자연스럽게 영화제로

연결될 수 있었고, 홍콩국제영화제도 다시 활기를 띨 수 있었다.

홍콩필름마트의 또 하나의 성공전략은 바로 ‘3월’이라는 개최시기다. 세계 3

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유러피언필름

마켓과 칸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필름마켓 마셰뒤필름은

각각 2월과 5월에 개최된다. 영화제와 필름마켓의 ‘비수기’로 불리는 3월에

는 홍콩필름마트를 제외하면 주요 필름마켓이 없는 탓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를 제외하고서라도 많은 유럽국가 역시 베를린과 칸 사이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홍콩을 찾기도 한다. ‘영화제’ 차원에서 홍콩은 더 이상 아시아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행사로 손꼽히지 않는다. 아시아 넘버원으로 손꼽히는 부

홍콩영화산업의 오늘A s i a M o v i e F i l e

HONG KONG

전 세계 서른 개 이상의 국가에서 800여 개 영화·영상 관련 업체가 참가한 홍콩필름마트(Hong Kong FILMART)가 지난 3월 24일(월)부터 27

일(목)까지 4일간 홍콩컨벤션&전시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등록한 방문자만 6,500명에 달한다니,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의 필름마켓임을 부정

할 수 없다. 홍콩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중국·대만·홍콩 등 중화권의 참가율이 가장 높았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레이시아, 인도, 일본, 태

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 비(非) 아시아권 국가들의 참가 열기도 대단했다. 특히 홍콩필름마트는 홍콩국제

영화제 및 아시아 각국 프로젝트가 참가하는 제작·투자 설명회 성격의 프로젝트마켓, 홍콩-아시아필름파이낸싱포럼(Hong Kong-Asia Film

Financing Forum, 이하 HAF)과 함께 개최되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가시적·비가시적 실적을 기대할 수 있

는 이벤트다. 아시아필름커미션네트워크(Asian Film Commissions Network, 이하 AFCNet)의 의장 및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영상위

원회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영화촬영 로케이션 및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홍보하기 위해 홍콩필름마트에 참가했는데, 다양한 업계 종사자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홍콩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홍콩필름마트

산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막대한 예산과 규모로써 선발주자와의 간극을

줄여보고자 전력질주하고 있는 베이징국제영화제 등 후발주자들도 촘촘

히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켓’ 차원에서 가장 뚜

렷한 비즈니스 성과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권 행사는 여전히 홍콩필름마

트다. 특히나 중국이 신흥 영화시장으로 비상하고 있는 흐름으로 보아,

제작·배급·마케팅·투자 등 영화 전 분야에 걸쳐 수많은 중화권 업체가

대거 참여하는 홍콩필름마트의 중요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홍콩필름마트에서는 세계적인 배급사 포르티시모필름이 그 어

느 때보다 성공적인 세일즈 실적을 올리며 업계 최강자 자리를 공고히 했

다. 우선, 올해 홍콩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프룻 챈의 <미드나

잇 애프터 , VAN>(2014)의 해외배

급을 매그넘필름(말레이시아), 팝콘(영국)과 계약한 데 이어 중국, 대만,

호주 등과도 협상 중이며, <백일염화白日焰火>(2014)는 에드코필름(홍

콩), 알파빌시네마(멕시코), 오로라필름(폴란드), 알람비크필름(포르투갈)

등과 대대적인 배급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프로젝트를 미리 만나보는, HAF부산국제영화제에 아시아프

로젝트마켓(Asian Project

Market, 이하 APM)이 있다

면 홍콩에는 HAF가 있다. 올

해로 12회째를 맞은 HAF는

제작 초기 단계의 아시아프로젝트를 초청해 잠재적인 투자자나 공동제작

자와의 미팅을 주선한다는 취지의 프로젝트마켓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리리 리자(인도네시아), 닝하오(중국), 펜엑 라타나루앙(태국), 리

캉솅(이강생, 대만), 로이스톤 탄(싱가포르), 호유항(말레이시아) 등 내로

라하는 아시아 감독의 프로젝

트가 HAF를 통해 제작 가능

성을 열었다. 10년 이상 꾸준

히 개최된 덕분에 가시적인 성

과도 쏠쏠한 편인데, 2009년

참가자인 대만감독 창롱지(장

영치)의 <빛의 손길>은 2012

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시작으로 대만 금마장시상식

신인상과 FIPRESCI상을 수

상하고 2013년 홍콩국제영화

제 및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

청받기도 했다. 2011년 참가

자 청몽홍(종맹굉)의 <실혼>

은 2013년 타이베이국제영화

제에서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올해 HAF에 참가했던 스물다섯 편의 프로젝트 중에서는 창롱지의 두 번

째 장편 극영화프로젝트인 <프라이빗 아이즈Private Eyes>와 태국독립

영화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보유하고 있는 콩데이 자투란라스미의 다

큐-픽션 <그렇다면야So Be It>, 필리핀 국민감독 브릴랸테 멘도자의 다큐

<게이 메시아Gay Messiah>가 눈에 띄었다. 특히 <그렇다면야>와 <게이

메시아>는 각각 태국과 필리핀 깊숙이 자리한 불교와 가톨릭 분위기를 바

라보는 현대사회의 의식을 비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지극히 ‘아시아적인

영화’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중국에 진출하는 홍콩영화인의 아메리칸 드림?올해 홍콩필름마트에서 이야기를 나눈 홍콩 출신의 제작자나 감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중국 본토와 합작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2000

년대 초반부터 중국영화산업은 대만과 홍콩의 영화인들을 기용해 활동에

가속도를 내 왔는데, 승부수를 걸 만한 자본은 준비되어 있었으나 시장 지

향적 성장을 계속해온 탓에 콘텐츠 제작에 특화된 전문가를 아쉬워했던 중

국에게 이미 70~80년대부터 전문적인 제작노하우를 쌓아온 홍콩영화인

들은 시기적절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중국 본토로 건너간 홍콩영화인들

은 무엇보다 홍콩영화의 활동 범위를 대륙에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

는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하나의 국가 속에서 각기 다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홍콩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이는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 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소

재나 기획이 본토에서는 제작 불가한 경우도 있고,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

지 못하면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 개봉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니, 오롯이

홍콩영화를 가지고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대체로 쉽지 않은 일이었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본토시장을 목

표로 하는 젊은 홍콩의 영화인들은 일정 부분 ‘홍콩적인 영화’를 포기하더

라도 괜찮다는, 상당히 상업적인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 특히 ‘홍콩에 남

아 홍콩영화를 만드는 쉬안화(허안화) 감독을 존경한다’면서도 ‘홍콩영화

인으로서 할리우드와의 접근성과 자본력이 뛰어난 본토시장에 진출하는

것 역시 홍콩영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

부 정체성을 타협해야 하는 것은 프로영화인으로서 충분히 감수할 수 있

는 조건’이라고 말하던 20대 후반의 젊은 제작자 바오징징(포경경)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럼에도 기대할만한 점은 있다. 여전히 가능성 있

는 전문 인력을 물색 중인 중국 본토의 수요 덕분에 홍콩의 젊은 감독들에

게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한동안 반짝이는 신인감독이 거

의 눈에 띄지 않았던 홍콩영화계에, 곧 쉬안화의 뒤를 이을 만한 젊은 바

람이 불길 기대해 본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빛의 손길Touch of the Light>(2012)

<실혼失魂>(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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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의 필름마켓, 홍콩필름마트영화가 작가 혼자만의 예술이 아닌 산업영

역으로 존재하는 이상, 영화 내적 예술성

을 시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

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영화제와

필름마켓의 관계는 더욱 그런데, 홍콩국

제영화제와 홍콩필름마트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쇠락기

로 접어들면서 왕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그 명성을 날렸던 홍콩국제영화

제도 점차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홍

콩국제영화제를 위기에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홍콩필름마트였다. 초창

기의 홍콩필름마트는 영화제 기간보다 약 한 달 정도 늦은 4~6월경에 개최되

었기 때문에 영화제 부흥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던 2006년, 힘

을 잃은 홍콩국제영화제의 본격적인 부활을 위해 조직위가 전략적으로 다양

한 행사를 연동시키면서 홍콩필름마트 역시 개최시기를 옮기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조직위의 계획대로,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의

유통과 순환을 아우르는 필름마트의 참가자 트래픽은 자연스럽게 영화제로

연결될 수 있었고, 홍콩국제영화제도 다시 활기를 띨 수 있었다.

홍콩필름마트의 또 하나의 성공전략은 바로 ‘3월’이라는 개최시기다. 세계 3

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유러피언필름

마켓과 칸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필름마켓 마셰뒤필름은

각각 2월과 5월에 개최된다. 영화제와 필름마켓의 ‘비수기’로 불리는 3월에

는 홍콩필름마트를 제외하면 주요 필름마켓이 없는 탓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를 제외하고서라도 많은 유럽국가 역시 베를린과 칸 사이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홍콩을 찾기도 한다. ‘영화제’ 차원에서 홍콩은 더 이상 아시아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행사로 손꼽히지 않는다. 아시아 넘버원으로 손꼽히는 부

홍콩영화산업의 오늘A s i a M o v i e F i l e

HONG KONG

전 세계 서른 개 이상의 국가에서 800여 개 영화·영상 관련 업체가 참가한 홍콩필름마트(Hong Kong FILMART)가 지난 3월 24일(월)부터 27

일(목)까지 4일간 홍콩컨벤션&전시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등록한 방문자만 6,500명에 달한다니,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의 필름마켓임을 부정

할 수 없다. 홍콩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중국·대만·홍콩 등 중화권의 참가율이 가장 높았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레이시아, 인도, 일본, 태

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 비(非) 아시아권 국가들의 참가 열기도 대단했다. 특히 홍콩필름마트는 홍콩국제

영화제 및 아시아 각국 프로젝트가 참가하는 제작·투자 설명회 성격의 프로젝트마켓, 홍콩-아시아필름파이낸싱포럼(Hong Kong-Asia Film

Financing Forum, 이하 HAF)과 함께 개최되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가시적·비가시적 실적을 기대할 수 있

는 이벤트다. 아시아필름커미션네트워크(Asian Film Commissions Network, 이하 AFCNet)의 의장 및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영상위

원회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영화촬영 로케이션 및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홍보하기 위해 홍콩필름마트에 참가했는데, 다양한 업계 종사자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홍콩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홍콩필름마트

산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막대한 예산과 규모로써 선발주자와의 간극을

줄여보고자 전력질주하고 있는 베이징국제영화제 등 후발주자들도 촘촘

히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켓’ 차원에서 가장 뚜

렷한 비즈니스 성과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권 행사는 여전히 홍콩필름마

트다. 특히나 중국이 신흥 영화시장으로 비상하고 있는 흐름으로 보아,

제작·배급·마케팅·투자 등 영화 전 분야에 걸쳐 수많은 중화권 업체가

대거 참여하는 홍콩필름마트의 중요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홍콩필름마트에서는 세계적인 배급사 포르티시모필름이 그 어

느 때보다 성공적인 세일즈 실적을 올리며 업계 최강자 자리를 공고히 했

다. 우선, 올해 홍콩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프룻 챈의 <미드나

잇 애프터 , VAN>(2014)의 해외배

급을 매그넘필름(말레이시아), 팝콘(영국)과 계약한 데 이어 중국, 대만,

호주 등과도 협상 중이며, <백일염화白日焰火>(2014)는 에드코필름(홍

콩), 알파빌시네마(멕시코), 오로라필름(폴란드), 알람비크필름(포르투갈)

등과 대대적인 배급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프로젝트를 미리 만나보는, HAF부산국제영화제에 아시아프

로젝트마켓(Asian Project

Market, 이하 APM)이 있다

면 홍콩에는 HAF가 있다. 올

해로 12회째를 맞은 HAF는

제작 초기 단계의 아시아프로젝트를 초청해 잠재적인 투자자나 공동제작

자와의 미팅을 주선한다는 취지의 프로젝트마켓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리리 리자(인도네시아), 닝하오(중국), 펜엑 라타나루앙(태국), 리

캉솅(이강생, 대만), 로이스톤 탄(싱가포르), 호유항(말레이시아) 등 내로

라하는 아시아 감독의 프로젝

트가 HAF를 통해 제작 가능

성을 열었다. 10년 이상 꾸준

히 개최된 덕분에 가시적인 성

과도 쏠쏠한 편인데, 2009년

참가자인 대만감독 창롱지(장

영치)의 <빛의 손길>은 2012

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시작으로 대만 금마장시상식

신인상과 FIPRESCI상을 수

상하고 2013년 홍콩국제영화

제 및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

청받기도 했다. 2011년 참가

자 청몽홍(종맹굉)의 <실혼>

은 2013년 타이베이국제영화

제에서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올해 HAF에 참가했던 스물다섯 편의 프로젝트 중에서는 창롱지의 두 번

째 장편 극영화프로젝트인 <프라이빗 아이즈Private Eyes>와 태국독립

영화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보유하고 있는 콩데이 자투란라스미의 다

큐-픽션 <그렇다면야So Be It>, 필리핀 국민감독 브릴랸테 멘도자의 다큐

<게이 메시아Gay Messiah>가 눈에 띄었다. 특히 <그렇다면야>와 <게이

메시아>는 각각 태국과 필리핀 깊숙이 자리한 불교와 가톨릭 분위기를 바

라보는 현대사회의 의식을 비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지극히 ‘아시아적인

영화’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중국에 진출하는 홍콩영화인의 아메리칸 드림?올해 홍콩필름마트에서 이야기를 나눈 홍콩 출신의 제작자나 감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중국 본토와 합작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2000

년대 초반부터 중국영화산업은 대만과 홍콩의 영화인들을 기용해 활동에

가속도를 내 왔는데, 승부수를 걸 만한 자본은 준비되어 있었으나 시장 지

향적 성장을 계속해온 탓에 콘텐츠 제작에 특화된 전문가를 아쉬워했던 중

국에게 이미 70~80년대부터 전문적인 제작노하우를 쌓아온 홍콩영화인

들은 시기적절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중국 본토로 건너간 홍콩영화인들

은 무엇보다 홍콩영화의 활동 범위를 대륙에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

는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하나의 국가 속에서 각기 다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홍콩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이는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 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소

재나 기획이 본토에서는 제작 불가한 경우도 있고,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

지 못하면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 개봉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니, 오롯이

홍콩영화를 가지고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대체로 쉽지 않은 일이었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본토시장을 목

표로 하는 젊은 홍콩의 영화인들은 일정 부분 ‘홍콩적인 영화’를 포기하더

라도 괜찮다는, 상당히 상업적인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 특히 ‘홍콩에 남

아 홍콩영화를 만드는 쉬안화(허안화) 감독을 존경한다’면서도 ‘홍콩영화

인으로서 할리우드와의 접근성과 자본력이 뛰어난 본토시장에 진출하는

것 역시 홍콩영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

부 정체성을 타협해야 하는 것은 프로영화인으로서 충분히 감수할 수 있

는 조건’이라고 말하던 20대 후반의 젊은 제작자 바오징징(포경경)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럼에도 기대할만한 점은 있다. 여전히 가능성 있

는 전문 인력을 물색 중인 중국 본토의 수요 덕분에 홍콩의 젊은 감독들에

게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한동안 반짝이는 신인감독이 거

의 눈에 띄지 않았던 홍콩영화계에, 곧 쉬안화의 뒤를 이을 만한 젊은 바

람이 불길 기대해 본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빛의 손길Touch of the Light>(2012)

<실혼失魂>(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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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0: FILM BUSAN - AccessICTcyland.accessict.co.kr/artyboard/pds/board/TP1F_VJNA/...가 가 된 이유는…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여전히 젊은’ 로이스톤 탄동명의 단편을 확장한 <15>(2002)로 인상적인 장편 데뷔를 한 게 어느덧

12년 전이니, 어쩌면 이제 로이스톤 탄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젊은

감독’이 아니라 ‘중견감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데뷔

를 치른 탓에 그의 나이는 아직 서른여덟, 이제 막 첫 장편을 완성했다 해

도 무리 없는 ‘여전히 젊은’ 나이다. 큰 키에 진한 인상, 배우로 오해할 만

큼 독특하고 화려한 차림새, 빠른 어투의 싱글리시(싱가포르와 잉글리시

의 합성어로, 싱가포르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중국식 영어 억양), 관객과

의 대화 중 벌떡 일어나 춤까지 춰대는 자유로움… 로이스톤 탄을 떠올리

면 그의 젊음과 유쾌함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의 영화가 지닌 무게감과

진지함을 종종 잊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혼자인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

로 공유하는 외로움을 그려낸

<4:30>이나, 화려한 뮤지컬

구성 속에 출연진이 영어 사

용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

을 삽입해 재기발랄한 어투로

싱가포르 사회의 무조건적인

서구화를 비판한 <811>(2007)

등 그의 대표작을 보면, 그는

분명 자신이 사는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들-예컨대 세대갈등이나 소통의

단절, 또는 위험한 사회현상에 대한 싱가포르 젊은이들의 왜곡된 낭만

등-을 거침없는 상상력과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영화화하는 뛰어난 연출

가다. 2013년 옴니버스영화 <남쪽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the South>

로 관객을 찾았던 그는 올해 신작 <69>의 작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준비된 신예’ 앤소니 첸갓 서른을 넘긴 앤소니 첸은 1984년생으로 젊은 싱가포르 감독 중에서도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 첫 장편 <일로 일로>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단

숨에 아시아영화 전체의 스타필름메이커로 부상했지만, 사실 앤소니 첸

이 이렇듯 ‘사고’를 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단편영화

<할머니Ah Ma>(2007)가 칸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을 수상하고, <안개

Haze>(2008)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단편부문 황금곰상 후보에 올랐던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 미디어개발청(MDA)의 장학생으로 영

국의 내셔널필름TV스쿨에서 수학하고 석사학위를 받는 등 ‘될성부른 떡

잎’이었던 것.감독으로서

커리어의 새 시대를 열어준

첫 장편 <일로 일로>는 다분

히 ‘싱가포르적인’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싱가포르가

경제침체를 겪던 90년대 말

이지만, 현재도 싱가포르는

부부가 평생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물가와 생활

비 기준이 높은 편인데, 때문에 저렴한 인건비에 아이와 가사를 대신 돌봐

줄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일로 일로> 역시 직장에 있

는 부모나 필리핀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단둘이 남겨진 아이와 가

사도우미가 서로 위로하며 상처를 쓰다듬는 과정을 담고 있다(<일로 일로>

의 중국어 제목이 <엄마아빠는 집에 없다 >인 이유도 바로 거

기에 있다). 첫 장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일로 일로> 속에는 싱

가포르의 도시문제, 이민, 외로움, 가족 등 다양한 소재가 놀랍도록 절제

된 스토리텔링으로 한데 엮여있다. 이제 막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 젊은 싱가포르 감독의 차기작을 벌써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

‘개인을 통해 사회를 보는’ 부준펑부준펑 역시 2010년 발표한 <모래성>이 유일한 장편인 신인감독이다. 장

편 데뷔 전 작업한 단편 중에서도 <집으로>는 특별히 눈에 띄는 수작인데,

모든 젊은 남성이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싱가포르에서 국

가적 의무와 개인이 추구하

는 자유를 사이에 둔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부준

펑의 대표작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점은 <집으로>와

<모래성> 두 영화 모두 개인

의 경험을 통해 그 문제가 야

기된 사회의 측면을 발견하

고 문화적 해석을 제시하는,

이른바 자기민속지학적 관

점에서 싱가포르 사회에 접

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도 매우 잔잔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예컨대 <모래성>에

서 입대를 앞두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내고 있는 주인공은 싱가포르의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그런 그가 아버지로 대표되는 어버이 세대의 삶을

쫓아가면서 싱가포르 근대사의 가장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순간을 마주하

게 되는 것이다. 부준펑의 해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관

객의 전투자세를 해제시킨다.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교직 시킨 자리에 주

인공 소년을 세워 놓은 이 영화는, 신념을 위해 개인의 삶을 기꺼이 희생

한 이들을,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잊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개인과 국가를 짜임새 있게 엮고

있는 이 인상적인 장편 <모래성>은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최초

의 싱가포르영화이기도 하다. 부준펑은 이 성공적인 첫 장편 이후 싱가포

르에서 작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가 싶더니, 2013년 로테르담에 두 번

<4:30>(2005)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A s i a M o v i e F i l e

1965년 말레이연방으

로부터의 강제 독립 후,

온전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가 채 50년도 되

지 않는 싱가포르는 아

직 모든 것이 젊은 축에

속한다. 영화도 마찬가

지다. 각각 50대 초반

과 중반에 접어든 에릭 쿠와 잭 네오를 제외하면 싱가포르영화의 괄

목할만한 감독들은 30대에 여럿 포진해 있어, 굳이 ‘젊은 영화인’이

라 칭하기 다소 민망할 정도다. 낮은 평균연령 덕분인지 이들 젊은

영화인의 작품은 대체로 패기롭고, 때로는 문제적이다. 한동안 신세

대 싱가포르영화를 이끌어온 로이스톤 탄이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젊

은 영화가 눈에 띄지 않았던 2000년대 후반을 지나, 최근 싱가포르

영화계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상승세가 목격되고 있다. 가장 직접적

인 예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에 이어 대만 금마장시상

식에서도 4개 부문을 휩쓴 <일로 일로>의 앤소니 첸이겠지만, 이외

에도 장편데뷔작 <모래성>을 통해 주목받은 부준펑이나 오랜만에 신

작 <69>의 소식을 알린 젊은 싱가포르영화인의 선두주자 격인 로이

스톤 탄 역시 주목해야 할 젊은 영화인이다. 14년 만에 싱가포르 박

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화 약 50억 원가량의 수익을 올린 노

장 잭 네오의 ‘내무반코미디’ <보이즈투멘Ah Boys to Men>(2012-

2013)시리즈와 싱가포르영화의 자존심을 세워 준 <일로 일로>에 힘

입어 영화인들의 창작욕이 점차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을

맞아, 최근 약진하고 있거나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싱가포

르 감독들을 소개한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앤소니 첸

SINGAPORE

<일로 일로Ilo Ilo>(2013)

<모래성Sand Castle>(2010)

<집으로Keluar Baris>(2008)

*싱가포르 강제추방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탄핀핀(진빈빈) 감독의 2013년 작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To Singapore, with Love>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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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1: FILM BUSAN - AccessICTcyland.accessict.co.kr/artyboard/pds/board/TP1F_VJNA/...가 가 된 이유는…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여전히 젊은’ 로이스톤 탄동명의 단편을 확장한 <15>(2002)로 인상적인 장편 데뷔를 한 게 어느덧

12년 전이니, 어쩌면 이제 로이스톤 탄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젊은

감독’이 아니라 ‘중견감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데뷔

를 치른 탓에 그의 나이는 아직 서른여덟, 이제 막 첫 장편을 완성했다 해

도 무리 없는 ‘여전히 젊은’ 나이다. 큰 키에 진한 인상, 배우로 오해할 만

큼 독특하고 화려한 차림새, 빠른 어투의 싱글리시(싱가포르와 잉글리시

의 합성어로, 싱가포르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중국식 영어 억양), 관객과

의 대화 중 벌떡 일어나 춤까지 춰대는 자유로움… 로이스톤 탄을 떠올리

면 그의 젊음과 유쾌함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의 영화가 지닌 무게감과

진지함을 종종 잊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혼자인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

로 공유하는 외로움을 그려낸

<4:30>이나, 화려한 뮤지컬

구성 속에 출연진이 영어 사

용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

을 삽입해 재기발랄한 어투로

싱가포르 사회의 무조건적인

서구화를 비판한 <811>(2007)

등 그의 대표작을 보면, 그는

분명 자신이 사는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들-예컨대 세대갈등이나 소통의

단절, 또는 위험한 사회현상에 대한 싱가포르 젊은이들의 왜곡된 낭만

등-을 거침없는 상상력과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영화화하는 뛰어난 연출

가다. 2013년 옴니버스영화 <남쪽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the South>

로 관객을 찾았던 그는 올해 신작 <69>의 작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준비된 신예’ 앤소니 첸갓 서른을 넘긴 앤소니 첸은 1984년생으로 젊은 싱가포르 감독 중에서도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 첫 장편 <일로 일로>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단

숨에 아시아영화 전체의 스타필름메이커로 부상했지만, 사실 앤소니 첸

이 이렇듯 ‘사고’를 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단편영화

<할머니Ah Ma>(2007)가 칸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을 수상하고, <안개

Haze>(2008)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단편부문 황금곰상 후보에 올랐던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 미디어개발청(MDA)의 장학생으로 영

국의 내셔널필름TV스쿨에서 수학하고 석사학위를 받는 등 ‘될성부른 떡

잎’이었던 것.감독으로서

커리어의 새 시대를 열어준

첫 장편 <일로 일로>는 다분

히 ‘싱가포르적인’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싱가포르가

경제침체를 겪던 90년대 말

이지만, 현재도 싱가포르는

부부가 평생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물가와 생활

비 기준이 높은 편인데, 때문에 저렴한 인건비에 아이와 가사를 대신 돌봐

줄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일로 일로> 역시 직장에 있

는 부모나 필리핀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단둘이 남겨진 아이와 가

사도우미가 서로 위로하며 상처를 쓰다듬는 과정을 담고 있다(<일로 일로>

의 중국어 제목이 <엄마아빠는 집에 없다 >인 이유도 바로 거

기에 있다). 첫 장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일로 일로> 속에는 싱

가포르의 도시문제, 이민, 외로움, 가족 등 다양한 소재가 놀랍도록 절제

된 스토리텔링으로 한데 엮여있다. 이제 막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 젊은 싱가포르 감독의 차기작을 벌써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

‘개인을 통해 사회를 보는’ 부준펑부준펑 역시 2010년 발표한 <모래성>이 유일한 장편인 신인감독이다. 장

편 데뷔 전 작업한 단편 중에서도 <집으로>는 특별히 눈에 띄는 수작인데,

모든 젊은 남성이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싱가포르에서 국

가적 의무와 개인이 추구하

는 자유를 사이에 둔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부준

펑의 대표작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점은 <집으로>와

<모래성> 두 영화 모두 개인

의 경험을 통해 그 문제가 야

기된 사회의 측면을 발견하

고 문화적 해석을 제시하는,

이른바 자기민속지학적 관

점에서 싱가포르 사회에 접

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도 매우 잔잔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예컨대 <모래성>에

서 입대를 앞두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내고 있는 주인공은 싱가포르의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그런 그가 아버지로 대표되는 어버이 세대의 삶을

쫓아가면서 싱가포르 근대사의 가장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순간을 마주하

게 되는 것이다. 부준펑의 해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관

객의 전투자세를 해제시킨다.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교직 시킨 자리에 주

인공 소년을 세워 놓은 이 영화는, 신념을 위해 개인의 삶을 기꺼이 희생

한 이들을,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잊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개인과 국가를 짜임새 있게 엮고

있는 이 인상적인 장편 <모래성>은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최초

의 싱가포르영화이기도 하다. 부준펑은 이 성공적인 첫 장편 이후 싱가포

르에서 작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가 싶더니, 2013년 로테르담에 두 번

<4:30>(2005)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A s i a M o v i e F i l e

1965년 말레이연방으

로부터의 강제 독립 후,

온전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가 채 50년도 되

지 않는 싱가포르는 아

직 모든 것이 젊은 축에

속한다. 영화도 마찬가

지다. 각각 50대 초반

과 중반에 접어든 에릭 쿠와 잭 네오를 제외하면 싱가포르영화의 괄

목할만한 감독들은 30대에 여럿 포진해 있어, 굳이 ‘젊은 영화인’이

라 칭하기 다소 민망할 정도다. 낮은 평균연령 덕분인지 이들 젊은

영화인의 작품은 대체로 패기롭고, 때로는 문제적이다. 한동안 신세

대 싱가포르영화를 이끌어온 로이스톤 탄이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젊

은 영화가 눈에 띄지 않았던 2000년대 후반을 지나, 최근 싱가포르

영화계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상승세가 목격되고 있다. 가장 직접적

인 예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에 이어 대만 금마장시상

식에서도 4개 부문을 휩쓴 <일로 일로>의 앤소니 첸이겠지만, 이외

에도 장편데뷔작 <모래성>을 통해 주목받은 부준펑이나 오랜만에 신

작 <69>의 소식을 알린 젊은 싱가포르영화인의 선두주자 격인 로이

스톤 탄 역시 주목해야 할 젊은 영화인이다. 14년 만에 싱가포르 박

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화 약 50억 원가량의 수익을 올린 노

장 잭 네오의 ‘내무반코미디’ <보이즈투멘Ah Boys to Men>(2012-

2013)시리즈와 싱가포르영화의 자존심을 세워 준 <일로 일로>에 힘

입어 영화인들의 창작욕이 점차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을

맞아, 최근 약진하고 있거나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싱가포

르 감독들을 소개한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앤소니 첸

SINGAPORE

<일로 일로Ilo Ilo>(2013)

<모래성Sand Castle>(2010)

<집으로Keluar Baris>(2008)

*싱가포르 강제추방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탄핀핀(진빈빈) 감독의 2013년 작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To Singapore, with Love>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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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2: FILM BUSAN - AccessICTcyland.accessict.co.kr/artyboard/pds/board/TP1F_VJNA/...가 가 된 이유는… Space Story 복천동 고분에 누워

째 장편 프로젝트 <수제자Apprentice>를 가지고 참가했다. 싱가포르영화

계의 대선배인 에릭 쿠가 제작할 이 프로젝트는 올해 2월 독일 및 프랑스

와의 공동제작을 확정 지었고, 오는 9월에는 싱가포르와 호주 로케이션으

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외에 베를린탤런트캠퍼스, 아시아영화아카데미(부산), 금마장영화아

카데미(대만) 출신으로 지난해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등 이웃 동남아

시아 출신의 중국계 감독들과 함께 옴니버스 <남쪽에서 온 편지>에 참

여한 여성감독 순 코가 현재 장편데뷔작 <백만 마리 원숭이들A Million

Monkeys>을 준비 중이다.

슬픔을 보듬어 주는 영화언제부턴가 출장이든 여행이든 어느 나라를 다녀오는 길이면 늘 그곳이

간직하고 있을법한 슬픔을 궁금해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듯한 슬픔의

이유를 생각해 내면, 돌아오는 비행은 그래서 그 슬픔을 되씹는 시간이 되

고 마는, 건강하지 못한 습관. 초여름 더위가 막 시작되던 지난해 6월, 아

시아 최대의 영상장비전시행사인 브로드캐스트아시아(Broadcast Asia)

참가를 위해 싱가포르에 다녀오던 길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시아 최부

국(最富國)의 위용을 뽐내듯 번쩍이는 모습으로 서 있던 마리나베이샌즈

나, 가게 점원부터 택시 운전사까지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활달한 싱가포르 사람들에게서는 언뜻 그런 슬픔의 부스러기를 찾기 어

려웠지만, 돌아오는 밤 비행기 안, 졸린 눈을 비비며 몇 번이고 다시 본 싱

가포르영화 속에서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급작스런 독립, 정치적으로 철

저히 강제된 절제와 희생을 통해 이룩한 경제성장, 온전히 싱가포르만의

것이 부재한 ‘뿌리 없음’의 고통, 그 뒤에 나직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구성

원들의 외로움 같은 것들 말이다. 몇 년 전, 로이스톤 탄의 “영화가 서로의

슬픔을 보듬어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던 말을 기억한다. 그래, 이

들의 영화가 싱가포르의 슬픔을 어루만져준다면 좋을 것 같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제5회 중국영화감독조합상 시상식이 4월 9일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중국영화전문채널 <CCTV6> 생중계). 지난해 <일구사이一九四二>(2012)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펑샤오강(풍소강)을 비롯, 왕샤오슈아이(왕소수)와 티안주앙주앙(전장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올해 행사의 특이한 점은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선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합원 전체의 투표로 1차 후보를 정한 후 심사위원단이 최종 수상자 및 수상작을 결정하는 시스템이지만, 펑샤오강의 인터뷰에 의하면 “최근 중국영화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성과 인문학적 성취에 있어서는 그 수준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았다고. 또 그는 “이 시상식은 우리끼리 즐기는 잔치가 아니라, 중국의 영화인들의 강한 창작욕을 자극하고 높은 목표를 향해 증진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는 행사다. (여기서 주어지는 상들은) 영화인들에게 자긍심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정에는 가장 강력한 수상후보였으나 중국정부의 검열 때문에 자국 내 상영허가를 받지 못해 최종 심사에서 배제된 자장커(가장가)의 <천주정天注定>(2013)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

적이다. 박스오피스 수입 및 시장 확대에만 집착하여 할리우드합작이나 저급한 상업영화 제작에는 열을 올리는 반면, 중국사회의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고발하며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영화의 명예를 드높인 <천주정> 같은 작품에는 데면데면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영화인들이 가시적인 보이콧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332명의 신·구세대 중국감독으로 구성된 중국영화감독조합의 이 같은 메시지가 정부에 어떤 식으로 어필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7세대 감독군 등장 이후 작품과 상품 사이

에서 갈팡질팡하며 길을 잃은 듯했던 중국영화계에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홍콩·대만 출신 최우수감독상은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 (2013)를 연출한 챈커신(진가신) 감독에

게, 평생공로상은 텅웬지(등문기) 감독에게, 여우주연상은 <시절인연北京遇上西雅圖>(2013)의 탕웨이(탕유)에게 돌아갔다. 애초 심사위원단에 속해 있던 배우 겸 감독 쉬정(서쟁)은 본인이 <무인구無人區>(2013)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접한 후 심사위원 대신 남우주연상 후보를 택했고, 결국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최우수감독상·작품상 선정 거부 중국영화감독조합시상식이 가리키는 것

중국영화의 미학적 권태 vs 중국정부의 검열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새하얀 날갯짓,

FLY x Re: J 워크숍A s i a M o v i e F i l e

JAPAN

1999년 개봉하여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으로 뒤늦은 개봉에도 불구하

고)1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Love let-

ter>(1995)는 개봉 당시,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서정

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국내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으며 “お元気ですか(오

겡키데스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하고 사라진 그

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거짓말처럼 답장이 날아오면서 옛 추억을 따

라가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에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가 새

하얀 설경을 배경으로 바람소리와 숨소리가 뒤섞인 채, 죽은 연인에게 잘 지

내냐고 인사하는 장면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2014년 2월,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FLY2013)*에 참가한 25

명의 교육생이 FLY x Re: J 워크숍을 위해 일본 삿포로를 찾았다. 작년 2월

처음으로 개최한 FLY x Re: J 워크숍(전 Re: J 워크숍)은 삿포로영상기구가

주최하는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FLY)의 연계사업으로 아시

아의 차세대 영화인재를 대상으로 삿포로를 비롯한 일본 홋카이도의 곳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경관과 잠재력 있는 촬영지를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

나리오를 기획·개발하는 워크숍이다. 올해는 삿포로를 중심으로 히가시카

와, 요이치, 유바리 등 홋카이도 내 지자체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세안 10개국과 대만, 요르단, 일본, 한국 총 14개국에서 모인 25명의 교육

생 가운데는 태어나서 처음 눈(雪)을 보고, 만지고, 느껴본 이들이 대부분이

었다. 더욱이 홋카이도의 설경이라니…,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눈 더미에 뿌

리를 박고 하늘 위로 뻗어 나간 겨울나무의 고독은, 날 선 바람을 그대로 견

디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가진 듯하다. 이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리고 영화가 있다.

25명의 교육생은 5개 그룹으로 나눠져 7박 8일의 일정으로 워크숍에 참가하

였다. 그 기간 동안 매 순간이 새로움이었다. 경사가 거의 90도인 오쿠라야

마(大倉山) 스키점프대에 서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공포의 한계를 경험하였

고 설원을 질주하는 썰매 개의 자유와 활기를 느꼈다. 수염이 덥수룩한 백발

의 도자기 장인을 만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도자기를 굽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다. 이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일정을 마친 교육생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국, 태국, 일본에

이르는 긴 여정은 끝이 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새하얀 날갯짓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사진 삿포로영상기구(Screen Authority Sapporo) 제공

* 대한민국 외교부의 한-ASEAN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영상위원회, 타일랜드필름커미션,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하여 2013년 11월 태국 후아힌(Huahin)에서 2주간 진행된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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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 장편 프로젝트 <수제자Apprentice>를 가지고 참가했다. 싱가포르영화

계의 대선배인 에릭 쿠가 제작할 이 프로젝트는 올해 2월 독일 및 프랑스

와의 공동제작을 확정 지었고, 오는 9월에는 싱가포르와 호주 로케이션으

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외에 베를린탤런트캠퍼스, 아시아영화아카데미(부산), 금마장영화아

카데미(대만) 출신으로 지난해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등 이웃 동남아

시아 출신의 중국계 감독들과 함께 옴니버스 <남쪽에서 온 편지>에 참

여한 여성감독 순 코가 현재 장편데뷔작 <백만 마리 원숭이들A Million

Monkeys>을 준비 중이다.

슬픔을 보듬어 주는 영화언제부턴가 출장이든 여행이든 어느 나라를 다녀오는 길이면 늘 그곳이

간직하고 있을법한 슬픔을 궁금해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듯한 슬픔의

이유를 생각해 내면, 돌아오는 비행은 그래서 그 슬픔을 되씹는 시간이 되

고 마는, 건강하지 못한 습관. 초여름 더위가 막 시작되던 지난해 6월, 아

시아 최대의 영상장비전시행사인 브로드캐스트아시아(Broadcast Asia)

참가를 위해 싱가포르에 다녀오던 길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시아 최부

국(最富國)의 위용을 뽐내듯 번쩍이는 모습으로 서 있던 마리나베이샌즈

나, 가게 점원부터 택시 운전사까지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활달한 싱가포르 사람들에게서는 언뜻 그런 슬픔의 부스러기를 찾기 어

려웠지만, 돌아오는 밤 비행기 안, 졸린 눈을 비비며 몇 번이고 다시 본 싱

가포르영화 속에서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급작스런 독립, 정치적으로 철

저히 강제된 절제와 희생을 통해 이룩한 경제성장, 온전히 싱가포르만의

것이 부재한 ‘뿌리 없음’의 고통, 그 뒤에 나직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구성

원들의 외로움 같은 것들 말이다. 몇 년 전, 로이스톤 탄의 “영화가 서로의

슬픔을 보듬어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던 말을 기억한다. 그래, 이

들의 영화가 싱가포르의 슬픔을 어루만져준다면 좋을 것 같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제5회 중국영화감독조합상 시상식이 4월 9일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중국영화전문채널 <CCTV6> 생중계). 지난해 <일구사이一九四二>(2012)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펑샤오강(풍소강)을 비롯, 왕샤오슈아이(왕소수)와 티안주앙주앙(전장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올해 행사의 특이한 점은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선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합원 전체의 투표로 1차 후보를 정한 후 심사위원단이 최종 수상자 및 수상작을 결정하는 시스템이지만, 펑샤오강의 인터뷰에 의하면 “최근 중국영화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성과 인문학적 성취에 있어서는 그 수준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았다고. 또 그는 “이 시상식은 우리끼리 즐기는 잔치가 아니라, 중국의 영화인들의 강한 창작욕을 자극하고 높은 목표를 향해 증진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는 행사다. (여기서 주어지는 상들은) 영화인들에게 자긍심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정에는 가장 강력한 수상후보였으나 중국정부의 검열 때문에 자국 내 상영허가를 받지 못해 최종 심사에서 배제된 자장커(가장가)의 <천주정天注定>(2013)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

적이다. 박스오피스 수입 및 시장 확대에만 집착하여 할리우드합작이나 저급한 상업영화 제작에는 열을 올리는 반면, 중국사회의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고발하며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영화의 명예를 드높인 <천주정> 같은 작품에는 데면데면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영화인들이 가시적인 보이콧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332명의 신·구세대 중국감독으로 구성된 중국영화감독조합의 이 같은 메시지가 정부에 어떤 식으로 어필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7세대 감독군 등장 이후 작품과 상품 사이

에서 갈팡질팡하며 길을 잃은 듯했던 중국영화계에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홍콩·대만 출신 최우수감독상은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 (2013)를 연출한 챈커신(진가신) 감독에

게, 평생공로상은 텅웬지(등문기) 감독에게, 여우주연상은 <시절인연北京遇上西雅圖>(2013)의 탕웨이(탕유)에게 돌아갔다. 애초 심사위원단에 속해 있던 배우 겸 감독 쉬정(서쟁)은 본인이 <무인구無人區>(2013)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접한 후 심사위원 대신 남우주연상 후보를 택했고, 결국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글 길선영 부산영상위원회

최우수감독상·작품상 선정 거부 중국영화감독조합시상식이 가리키는 것

중국영화의 미학적 권태 vs 중국정부의 검열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새하얀 날갯짓,

FLY x Re: J 워크숍A s i a M o v i e F i l e

JAPAN

1999년 개봉하여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으로 뒤늦은 개봉에도 불구하

고)1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Love let-

ter>(1995)는 개봉 당시,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서정

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국내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으며 “お元気ですか(오

겡키데스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하고 사라진 그

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거짓말처럼 답장이 날아오면서 옛 추억을 따

라가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에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가 새

하얀 설경을 배경으로 바람소리와 숨소리가 뒤섞인 채, 죽은 연인에게 잘 지

내냐고 인사하는 장면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2014년 2월,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FLY2013)*에 참가한 25

명의 교육생이 FLY x Re: J 워크숍을 위해 일본 삿포로를 찾았다. 작년 2월

처음으로 개최한 FLY x Re: J 워크숍(전 Re: J 워크숍)은 삿포로영상기구가

주최하는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FLY)의 연계사업으로 아시

아의 차세대 영화인재를 대상으로 삿포로를 비롯한 일본 홋카이도의 곳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경관과 잠재력 있는 촬영지를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

나리오를 기획·개발하는 워크숍이다. 올해는 삿포로를 중심으로 히가시카

와, 요이치, 유바리 등 홋카이도 내 지자체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세안 10개국과 대만, 요르단, 일본, 한국 총 14개국에서 모인 25명의 교육

생 가운데는 태어나서 처음 눈(雪)을 보고, 만지고, 느껴본 이들이 대부분이

었다. 더욱이 홋카이도의 설경이라니…,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눈 더미에 뿌

리를 박고 하늘 위로 뻗어 나간 겨울나무의 고독은, 날 선 바람을 그대로 견

디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가진 듯하다. 이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리고 영화가 있다.

25명의 교육생은 5개 그룹으로 나눠져 7박 8일의 일정으로 워크숍에 참가하

였다. 그 기간 동안 매 순간이 새로움이었다. 경사가 거의 90도인 오쿠라야

마(大倉山) 스키점프대에 서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공포의 한계를 경험하였

고 설원을 질주하는 썰매 개의 자유와 활기를 느꼈다. 수염이 덥수룩한 백발

의 도자기 장인을 만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도자기를 굽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다. 이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일정을 마친 교육생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국, 태국, 일본에

이르는 긴 여정은 끝이 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새하얀 날갯짓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사진 삿포로영상기구(Screen Authority Sapporo) 제공

* 대한민국 외교부의 한-ASEAN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영상위원회, 타일랜드필름커미션,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하여 2013년 11월 태국 후아힌(Huahin)에서 2주간 진행된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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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무술’을 ‘무예’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술’과 ‘예술’을 하나로 봤다는 말이다. 무술에서 기술의 시퀀스를 ‘초식(招式)’이라고 하는데, 초식

이름이 예술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식 이름은 매우 시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뜻도 있고, 숨은 뜻도 있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일대종사>도 초식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화를 대표하는 초식은 엽저장화(葉底藏花). 한 초식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일대종사>: 잎 아래 꽃을 숨기다

이지훈 인문학연구소 필로아트랩 대표

초식의 시학엽저장화는 잎사귀 아래 꽃을 숨긴다는 뜻. 팔괘장 초식이다. 왕자웨이 감독

은 여기서 문학적 재치를 발휘한다. 포인트는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잎과 꽃

이란 것. 엽문( )의 성씨는 ‘잎’이며, 궁이( )의 본명인 궁약매( )

는 ‘어린 매화꽃’이다. 그래서 엽저장화는 엽문이 마음 깊은 곳에 궁이를 간

직한다는 뜻이 되는 거다. 영춘권을 대표하는 엽문과 팔괘장을 대표하는 궁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친선교류전’을 벌이기 전에 엽문의 지지자는 말한

다. “(팔괘장은) 잎사귀 아래 꽃을 숨기니 방어하기 어렵지.”

겉으로 드러난 뜻은 엽저장화가 시선을 교란하는 암수( , 페이킹 기술)란

뜻이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교류전이 진짜 ‘친선’으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손발을 섞는

모습이 탱고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급기야 궁이가 엽문의 머

리 위로 텀블링을 한다. 카메라는 아래위로 마주보는 두 사람 얼굴을 천천히

잡는다. 영화에서 베스트 컷이다. 꽃(=궁이)이 잎(=엽문) 아래가 아니라, 잎

위에 있다는 것. 꽃이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비유로 보이기도 한다.

궁이 역을 맡은 배우 장쯔이(장자이)가 무술시합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

은 전에도 있었다. 영화 <와호장룡 >(2000)에서 저우룬파(주윤발)와

겨루는 장면이다. 무당파 검객인 저우룬파는 도대체 칼싸움인지 사랑싸움인

지 알 수 없는 동작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무당검이 추구하는 세계를 알 때야

납득할 수 있다. 무당파 ‘비급( )’ 한 권을 들쳐보자. ‘무당내가대수검법

보( )’. 책은 무당검의 ‘삼강오륜’에 해당하는 검강( )

을 적어놓았다. 검식( ), 검정( ), 검리( ), 검세( ), 검덕( ),

검의( ), 검지( ), 검법( ), 검용( ), 이렇게 아홉 개의 범주이다.

이 가운데 ‘검정’이 있다. 대관절 칼의 정( )이란 어떤 걸까.

“상대가 이렇게 오면, 나도 이렇게 화답한다. 느끼는 바가 있으면 움직인다.

상대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이것을 칼의 정이라 한다(

).”

한마디로 ‘밀당’이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단칼에 승부를 내는 것과는 달

리 중국 무협영화가 칼싸움을 오래 끄는 이유이다. 다 좋다. 그래도 칼을 잡

고 ‘밀당’이라니. 살상무기를 들고 정을 얘기한다는 것은 ‘허튼 소리’가 아니

냐고? 맞다. 하지만 중국인은 이런 허튼 소리를 사랑했다. 나도 그렇다. 그

나마 이런 서정이 있어야 사람이 짐승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고 믿는다.

엽저장화 초식

<일대종사一代宗師>(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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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무술’을 ‘무예’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술’과 ‘예술’을 하나로 봤다는 말이다. 무술에서 기술의 시퀀스를 ‘초식(招式)’이라고 하는데, 초식

이름이 예술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식 이름은 매우 시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뜻도 있고, 숨은 뜻도 있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일대종사>도 초식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화를 대표하는 초식은 엽저장화(葉底藏花). 한 초식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일대종사>: 잎 아래 꽃을 숨기다

이지훈 인문학연구소 필로아트랩 대표

초식의 시학엽저장화는 잎사귀 아래 꽃을 숨긴다는 뜻. 팔괘장 초식이다. 왕자웨이 감독

은 여기서 문학적 재치를 발휘한다. 포인트는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잎과 꽃

이란 것. 엽문( )의 성씨는 ‘잎’이며, 궁이( )의 본명인 궁약매( )

는 ‘어린 매화꽃’이다. 그래서 엽저장화는 엽문이 마음 깊은 곳에 궁이를 간

직한다는 뜻이 되는 거다. 영춘권을 대표하는 엽문과 팔괘장을 대표하는 궁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친선교류전’을 벌이기 전에 엽문의 지지자는 말한

다. “(팔괘장은) 잎사귀 아래 꽃을 숨기니 방어하기 어렵지.”

겉으로 드러난 뜻은 엽저장화가 시선을 교란하는 암수( , 페이킹 기술)란

뜻이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교류전이 진짜 ‘친선’으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손발을 섞는

모습이 탱고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급기야 궁이가 엽문의 머

리 위로 텀블링을 한다. 카메라는 아래위로 마주보는 두 사람 얼굴을 천천히

잡는다. 영화에서 베스트 컷이다. 꽃(=궁이)이 잎(=엽문) 아래가 아니라, 잎

위에 있다는 것. 꽃이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비유로 보이기도 한다.

궁이 역을 맡은 배우 장쯔이(장자이)가 무술시합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

은 전에도 있었다. 영화 <와호장룡 >(2000)에서 저우룬파(주윤발)와

겨루는 장면이다. 무당파 검객인 저우룬파는 도대체 칼싸움인지 사랑싸움인

지 알 수 없는 동작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무당검이 추구하는 세계를 알 때야

납득할 수 있다. 무당파 ‘비급( )’ 한 권을 들쳐보자. ‘무당내가대수검법

보( )’. 책은 무당검의 ‘삼강오륜’에 해당하는 검강( )

을 적어놓았다. 검식( ), 검정( ), 검리( ), 검세( ), 검덕( ),

검의( ), 검지( ), 검법( ), 검용( ), 이렇게 아홉 개의 범주이다.

이 가운데 ‘검정’이 있다. 대관절 칼의 정( )이란 어떤 걸까.

“상대가 이렇게 오면, 나도 이렇게 화답한다. 느끼는 바가 있으면 움직인다.

상대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이것을 칼의 정이라 한다(

).”

한마디로 ‘밀당’이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단칼에 승부를 내는 것과는 달

리 중국 무협영화가 칼싸움을 오래 끄는 이유이다. 다 좋다. 그래도 칼을 잡

고 ‘밀당’이라니. 살상무기를 들고 정을 얘기한다는 것은 ‘허튼 소리’가 아니

냐고? 맞다. 하지만 중국인은 이런 허튼 소리를 사랑했다. 나도 그렇다. 그

나마 이런 서정이 있어야 사람이 짐승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고 믿는다.

엽저장화 초식

<일대종사一代宗師>(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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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제목도 <The Grand Masters>로 복수형이다. 팔괘장을 하는 기루 아가

씨, 형의권을 하는 경리, 팔극권을 하는 이발사. 무심코 지나친 사람 속에도

고수가 있다는 거다.

궁이의 아버지 궁바오센(궁보삼, )은 말했다. “어떤 사람은 표면에 드

러나 살고, 어떤 사람은 이면에 숨어 살아가지.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표면은 잎이고, 이면은 꽃이다. ‘시대의 흐름( )’이 표면과 이면을

결정한다는 거다. 시대의 흐름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꼭 나쁘다고 할 순 없

어도, 꼭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 시대의 이면도 한 번 돌아보고, 존경을

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돌아봄. 왕 감독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 민국시대

사람과 문화를 돌아본다. 여기서 또 하나의 초식 ‘노원괘인( )’을 만

난다.

노원괘인은 원숭이가 (나무 위에) 도장을 걸어 올린다는 뜻. 형의권 초식이

다. 궁보삼은 딸에게 팔괘장을, 마산(마삼, )에게 형의권을 가르쳤다. 노

원괘인은 원숭이처럼 한달음에 상대의 등 뒤로 돌아들어가 손끝으로 상대의

얼굴을 공격하는 기술. 궁바오센은 마산을 불러놓고 말한다. 노원괘인의 핵

심은 ‘괘인’이 아니라 ‘머리를 돌려 바라봄( )’에 있다고. 상대를 공격하

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회향(回向)의 미학

당시 마산은 일제에 투항했다. 이에 스승은 노원괘인의 ‘돌아봄’에 빗대어

‘전향’하라고 충고한 거다. 그러나 마산은 시대가 변하는데 무엇을 돌아봐야

하냐고 묻는다. 앞만 보고 가겠다는 거다(사실 이건 형의권의 정신이기도 하

다). 격전이 벌어진다. 마산이 무릎으로 공격해오자 스승은 팔괘장 초식인 백

원헌과( )로 반격한다. 백원헌과는 흰 원숭이가 두 손으로 과일을 바

친다는 뜻. 두 손을 꽃받침처럼 만들어 상대의 턱밑을 쳐올리는 기술이다.

노원괘인의 핵심이 돌아봄에 있다는 것. 궁이가 “눈앞의 길만 보고 뒷산을 잊

으면 안 된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산은 결국 궁

이의 백원헌과 초식으로 쓰러진다. 무슨 뜻일까. 기술적으로는 눈앞의 표적

에만 집중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비유적으로는 눈앞의 시대 흐

름만 따르지 말고, 뒷면의 ‘중생’도 살펴보란 말이다. 새 시대를 따르던 마산

은 공교롭게도 신문물의 상징인 기차 때문에 패배한다. 또 다른 시대 흐름의

희생물이 된 거다.

유럽에서 총기가 들어오자 무술의 절대적 권위는 무너졌다. 머리 좋은 양루

찬(양로선, , 1799~1872)은 웰빙 개념으로 태극권을 개조하고, 왕실

귀족을 고객으로 삼았다. 하지만 왕실마저 무너진 민국시대 무인은 새로운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신흥 정치세력에 기대는 무인도 적지 않았다. 군

벌(궁바오센의 모델인 궁바오톈은 동북군벌 교관이었다), 국민당, 공산당, 심

지어 일제에도 기댔다. 그래서 무인은 정치 변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문화혁명 시기엔 봉건잔재라는 이유로 처벌받기도 했다.

현재는 정부가 우슈(무술의 중국발음)를 올림픽종목에 넣으려 하고, 소림사를

국가브랜드로 개발한다. 무술이 ‘돈’이 되는 시대를 맞은 거다. 그러나 여기에

빠진 것은 무엇인지. 왕자웨이 감독은 그걸 묻고 있다. 민국시대 무인이 지녔

으나, 지금은 없는 것. 돈이 아닌 사람의 존엄을 위해 살아간 사람들. 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 시대의 흐름 뒷면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 사람들. 잎에 가린 꽃들. 이제 한 번 되돌아보자는 거다.

이지훈 프랑스에서 철학·미학을 공부하고, 부산에서 인문학연구소 ‘필로아트랩’을 꾸리고 있다. 지은 책은 <예술과 연금술><존재의 미학> 등이 있고, 올해는 현대철학이랑 건축철학 책을 펴낼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무술을 좋아했는데, 체중감량에는 별 도움을 못 받았다. 요즘은 걷기운동 삼아 팔괘장을 연습한다.

엽문과 궁이의 ‘검정’엽문과 궁이는 ‘검정’을 나눈다. 싸우다 정이 들었다고 할까. 궁이는 자기도

모르게 영춘권 자세를 본뜨고, 엽문은 거기에 호응해 팔괘장 자세를 본뜬다.

서로가 서로에게 화답한 것이다. 이렇게 우아한 시합을 마치고 그녀는 말한

다. “사람 밖에 사람 있고, 산 넘어 산이 있으니, 눈앞의 길만 보고 뒷산을 잊

으면 안 되겠지요.” 뒷산이 있다는 것. 겉으로 드러난 뜻은 ‘겸손해라’는 것이

지만 왠지 출셋길을 달리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자 엽문은 말한다. “잎 아래 꽃을 숨길 수 있는지 언젠가 다시 만나 증명

해봅시다.” “찾아오세요. 기다리겠어요.” 그녀가 대답한다. 이때가 1936년

6월. 그러나 계속되는 내전과 일본의 침략은 두 사람의 만남을 지연시킨다.

그해 겨울, 엽문은 시를 적어 보낸다. “잎 아래 꽃을 한 번 숨기고 나니, 꿈속

에 눈밭을 헤맨 것이 몇 번이던가( ).” 눈밭은 궁이

가 사는, 추운 동북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눈밭을 헤매는 답설( )에는 숨

은 뜻이 있다. 눈밭에서 매화꽃을 찾는다는 것. 답설은 답설심매( )를

줄인 말이다. 꿈에서도 궁이를 그린다는 말이다. 그녀도 시를 적어 보낸다.

“한 번 약속을 정했으니 산이 많다고 못 오겠습니까( ).”

영화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팔괘장에서 엽저장화는 홍안출군

( ) 초식으로 이어진다. 홍안출군은 기러기 한 마리가 무리를 떠난

다는 뜻. 가족을 떠나고 사회를 떠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작으로 보면, 엽

저장화에서 한 손(=잎) 아래 숨겨둔 손(=꽃)을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

로 드러내 선회하는 동작이다. 이때 선회하는 손의 궤적이 기러기와 같다

는 거다. 그런데 기러기가 무리를 떠나 혼자 날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궁

이가 겪을 시련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기러기 무리’인 안항( )은 형제를 상징한다. 궁이 아버지를 해친

원수는 바로 아버지의 수제자. 궁이에게 형제와 같은 사람이다. 1940년 겨

울, 아버지를 잃는 순간 그녀는 형제도 잃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벗과 친지

들은 하나같이 복수를 말린다. 이제 무리를 떠나 혼자 날아갈 수밖에. 그녀

는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혼약을 파기하고, 세 가지를 맹세한다. “결혼

하지 않겠다. 후손을 남기지 않겠다. 무술을 전하지 않겠다.” 이것은 남자

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내린 결단이다. ‘출가외인’이란 법도가 엄하던

시절. 시집을 가서 복수를 하면, 다른 집안이 궁씨 집안의 복수를 해주는

격이 된다. 궁씨 집안의 명예를 되찾으려면 시집을 안가고 궁씨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또 자식에게 무술을 전하면, 그건 다른 집안 무술이 된다

(그래서 중국 무인 집안은 여자에게 무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녀는 새로운 가족에 속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여자라면 ‘의무적’으로 시집을 가야한다고 믿던 시절, 가족과 사회 제도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홍안출군이다. 마침내 그녀는 궁씨 집안의 명

예를 회복하고, 끝까지 맹세를 지킨다. 그녀는 또 하나의 일대종사였다.

‘일대종사’들소설가 진융(김용)은 초식 이름을 멋지게 지어낸 걸로 유명하다. 고전이나 시

에서 따온 구절을 쓰기도 하고, 전통문화의 풍부한 교양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왕자웨이 감독은 실제로 있는 초식 이름에서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끌어내고, 서사적으로 펼쳐냈다. 왕 감독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큰 박수를 보

낼 만하다. 엽저장화에서 홍안출군으로 이어지는 서사시. 어쩌면 영화 <일대

종사>의 주인공은 엽문이 아니라 궁이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영화 <일대종

사>에는 수많은 일대종사가 잎 아래 꽃처럼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엽저장화는 민국시대(1911년 신해혁명부터 1949년 신중국 건립 전

까지의 기간)를 살아간 수많은 일대종사의 삶을 표현하는 비유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영화 <일대종사>는 엽문이란 잎을 통해 그동안 숨겨진 꽃을 담아

냈다는 뜻이다. 그늘에서 살다간 이들에게 바치는 헌정이라고 할까. 그래서

홍안출군 초식

노원괘인 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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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제목도 <The Grand Masters>로 복수형이다. 팔괘장을 하는 기루 아가

씨, 형의권을 하는 경리, 팔극권을 하는 이발사. 무심코 지나친 사람 속에도

고수가 있다는 거다.

궁이의 아버지 궁바오센(궁보삼, )은 말했다. “어떤 사람은 표면에 드

러나 살고, 어떤 사람은 이면에 숨어 살아가지.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표면은 잎이고, 이면은 꽃이다. ‘시대의 흐름( )’이 표면과 이면을

결정한다는 거다. 시대의 흐름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꼭 나쁘다고 할 순 없

어도, 꼭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 시대의 이면도 한 번 돌아보고, 존경을

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돌아봄. 왕 감독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 민국시대

사람과 문화를 돌아본다. 여기서 또 하나의 초식 ‘노원괘인( )’을 만

난다.

노원괘인은 원숭이가 (나무 위에) 도장을 걸어 올린다는 뜻. 형의권 초식이

다. 궁보삼은 딸에게 팔괘장을, 마산(마삼, )에게 형의권을 가르쳤다. 노

원괘인은 원숭이처럼 한달음에 상대의 등 뒤로 돌아들어가 손끝으로 상대의

얼굴을 공격하는 기술. 궁바오센은 마산을 불러놓고 말한다. 노원괘인의 핵

심은 ‘괘인’이 아니라 ‘머리를 돌려 바라봄( )’에 있다고. 상대를 공격하

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회향(回向)의 미학

당시 마산은 일제에 투항했다. 이에 스승은 노원괘인의 ‘돌아봄’에 빗대어

‘전향’하라고 충고한 거다. 그러나 마산은 시대가 변하는데 무엇을 돌아봐야

하냐고 묻는다. 앞만 보고 가겠다는 거다(사실 이건 형의권의 정신이기도 하

다). 격전이 벌어진다. 마산이 무릎으로 공격해오자 스승은 팔괘장 초식인 백

원헌과( )로 반격한다. 백원헌과는 흰 원숭이가 두 손으로 과일을 바

친다는 뜻. 두 손을 꽃받침처럼 만들어 상대의 턱밑을 쳐올리는 기술이다.

노원괘인의 핵심이 돌아봄에 있다는 것. 궁이가 “눈앞의 길만 보고 뒷산을 잊

으면 안 된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산은 결국 궁

이의 백원헌과 초식으로 쓰러진다. 무슨 뜻일까. 기술적으로는 눈앞의 표적

에만 집중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비유적으로는 눈앞의 시대 흐

름만 따르지 말고, 뒷면의 ‘중생’도 살펴보란 말이다. 새 시대를 따르던 마산

은 공교롭게도 신문물의 상징인 기차 때문에 패배한다. 또 다른 시대 흐름의

희생물이 된 거다.

유럽에서 총기가 들어오자 무술의 절대적 권위는 무너졌다. 머리 좋은 양루

찬(양로선, , 1799~1872)은 웰빙 개념으로 태극권을 개조하고, 왕실

귀족을 고객으로 삼았다. 하지만 왕실마저 무너진 민국시대 무인은 새로운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신흥 정치세력에 기대는 무인도 적지 않았다. 군

벌(궁바오센의 모델인 궁바오톈은 동북군벌 교관이었다), 국민당, 공산당, 심

지어 일제에도 기댔다. 그래서 무인은 정치 변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문화혁명 시기엔 봉건잔재라는 이유로 처벌받기도 했다.

현재는 정부가 우슈(무술의 중국발음)를 올림픽종목에 넣으려 하고, 소림사를

국가브랜드로 개발한다. 무술이 ‘돈’이 되는 시대를 맞은 거다. 그러나 여기에

빠진 것은 무엇인지. 왕자웨이 감독은 그걸 묻고 있다. 민국시대 무인이 지녔

으나, 지금은 없는 것. 돈이 아닌 사람의 존엄을 위해 살아간 사람들. 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 시대의 흐름 뒷면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 사람들. 잎에 가린 꽃들. 이제 한 번 되돌아보자는 거다.

이지훈 프랑스에서 철학·미학을 공부하고, 부산에서 인문학연구소 ‘필로아트랩’을 꾸리고 있다. 지은 책은 <예술과 연금술><존재의 미학> 등이 있고, 올해는 현대철학이랑 건축철학 책을 펴낼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무술을 좋아했는데, 체중감량에는 별 도움을 못 받았다. 요즘은 걷기운동 삼아 팔괘장을 연습한다.

엽문과 궁이의 ‘검정’엽문과 궁이는 ‘검정’을 나눈다. 싸우다 정이 들었다고 할까. 궁이는 자기도

모르게 영춘권 자세를 본뜨고, 엽문은 거기에 호응해 팔괘장 자세를 본뜬다.

서로가 서로에게 화답한 것이다. 이렇게 우아한 시합을 마치고 그녀는 말한

다. “사람 밖에 사람 있고, 산 넘어 산이 있으니, 눈앞의 길만 보고 뒷산을 잊

으면 안 되겠지요.” 뒷산이 있다는 것. 겉으로 드러난 뜻은 ‘겸손해라’는 것이

지만 왠지 출셋길을 달리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자 엽문은 말한다. “잎 아래 꽃을 숨길 수 있는지 언젠가 다시 만나 증명

해봅시다.” “찾아오세요. 기다리겠어요.” 그녀가 대답한다. 이때가 1936년

6월. 그러나 계속되는 내전과 일본의 침략은 두 사람의 만남을 지연시킨다.

그해 겨울, 엽문은 시를 적어 보낸다. “잎 아래 꽃을 한 번 숨기고 나니, 꿈속

에 눈밭을 헤맨 것이 몇 번이던가( ).” 눈밭은 궁이

가 사는, 추운 동북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눈밭을 헤매는 답설( )에는 숨

은 뜻이 있다. 눈밭에서 매화꽃을 찾는다는 것. 답설은 답설심매( )를

줄인 말이다. 꿈에서도 궁이를 그린다는 말이다. 그녀도 시를 적어 보낸다.

“한 번 약속을 정했으니 산이 많다고 못 오겠습니까( ).”

영화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팔괘장에서 엽저장화는 홍안출군

( ) 초식으로 이어진다. 홍안출군은 기러기 한 마리가 무리를 떠난

다는 뜻. 가족을 떠나고 사회를 떠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작으로 보면, 엽

저장화에서 한 손(=잎) 아래 숨겨둔 손(=꽃)을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

로 드러내 선회하는 동작이다. 이때 선회하는 손의 궤적이 기러기와 같다

는 거다. 그런데 기러기가 무리를 떠나 혼자 날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궁

이가 겪을 시련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기러기 무리’인 안항( )은 형제를 상징한다. 궁이 아버지를 해친

원수는 바로 아버지의 수제자. 궁이에게 형제와 같은 사람이다. 1940년 겨

울, 아버지를 잃는 순간 그녀는 형제도 잃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벗과 친지

들은 하나같이 복수를 말린다. 이제 무리를 떠나 혼자 날아갈 수밖에. 그녀

는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혼약을 파기하고, 세 가지를 맹세한다. “결혼

하지 않겠다. 후손을 남기지 않겠다. 무술을 전하지 않겠다.” 이것은 남자

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내린 결단이다. ‘출가외인’이란 법도가 엄하던

시절. 시집을 가서 복수를 하면, 다른 집안이 궁씨 집안의 복수를 해주는

격이 된다. 궁씨 집안의 명예를 되찾으려면 시집을 안가고 궁씨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또 자식에게 무술을 전하면, 그건 다른 집안 무술이 된다

(그래서 중국 무인 집안은 여자에게 무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녀는 새로운 가족에 속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여자라면 ‘의무적’으로 시집을 가야한다고 믿던 시절, 가족과 사회 제도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홍안출군이다. 마침내 그녀는 궁씨 집안의 명

예를 회복하고, 끝까지 맹세를 지킨다. 그녀는 또 하나의 일대종사였다.

‘일대종사’들소설가 진융(김용)은 초식 이름을 멋지게 지어낸 걸로 유명하다. 고전이나 시

에서 따온 구절을 쓰기도 하고, 전통문화의 풍부한 교양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왕자웨이 감독은 실제로 있는 초식 이름에서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끌어내고, 서사적으로 펼쳐냈다. 왕 감독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큰 박수를 보

낼 만하다. 엽저장화에서 홍안출군으로 이어지는 서사시. 어쩌면 영화 <일대

종사>의 주인공은 엽문이 아니라 궁이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영화 <일대종

사>에는 수많은 일대종사가 잎 아래 꽃처럼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엽저장화는 민국시대(1911년 신해혁명부터 1949년 신중국 건립 전

까지의 기간)를 살아간 수많은 일대종사의 삶을 표현하는 비유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영화 <일대종사>는 엽문이란 잎을 통해 그동안 숨겨진 꽃을 담아

냈다는 뜻이다. 그늘에서 살다간 이들에게 바치는 헌정이라고 할까. 그래서

홍안출군 초식

노원괘인 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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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내게 물었다."아버지, 제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이제서야 내가 답한다. "걱정마라 아들아, 너는 살아갈 수 없단다. 너의 아들은 살아갈 수 없단다. 마음대로 살거라. 앞으로 네가 저지를 어떤 실수도, 어떤 실패도, 어떤 죄악도 아무것이 아닌 날이 올 테니 네 마음대로 살거라."

너는 내게 물었다."그럼 희망이란 없는 건가요?""희망이 무엇이냐? 희망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이냐? 희망이란 과연 어떤 환상인 것이냐? 너는 오직 절망만을 받아들여라. 절망과 벗하고, 절망을 살아라. 그것만이 네가 속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너는 내게 물었다."그렇다면 미래란 무엇인가요?""아들아, 미래란 '없다'는 말이다. 미래란 없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지워져 버렸단다. 이 아비가, 이 아비의 세대가 너의 미래를 갉아먹었단다. 미래는 이제 환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단다. 신화로서만 완성되는 것이란다. 오로지 지금 여기를 탕진하며 사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단다."

너는 내게 물었다."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기는 하시나요?""사랑이라니, 아들아, 사랑은 없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거짓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만이며, 배신이다. 사랑은 너를 두 번 죽이는 짓이란다."

그리고 너는 내게 물었다."아, 아버지, 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너는 없다. 너는 없는 존재다. 너는 내가 갉아먹은 미래다. 너는 유령의 아들, 좀비의 자식이다. 너는 내가 낳아 내가 먹은 허깨비다."

너는 내게 물었다."그렇다면 무엇이 있는 건가요?""없다. 너도, 나도, 세계도 더 이상은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이제 죽음마저 사라질 공멸, 절멸만이 있을 뿐이다. 유황불로 타오를 저 허공만이 남을 뿐이다.

"아, 저를 낳아 저를 죽이신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어떻게'라는 말마저 사라질 테니 아들아,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다 먹어치울 테니."

독립을 선언하지 말자, 예속을 선언하자!공생공존을 선언하지 말자, 우리 솔직하게 공멸을 선언하자! 인간이라고 선언하지 말자, 괴물이라고 선언하자! 괴물을 키운 우리가, 괴물을 방치한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이 괴물이란 말인가?오지 않은 미래를, 제 자식을 갉아먹은 우리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희망은 없다. 절망을 노래하자! 우리 자신을, 우리의 자식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 마지막 광기의 카니발을 완성하자!더 이상은 바람도 구름도, 햇살도 달빛도, 꽃도 나비도, 새도 짐승도, 너도 나도, 세계도 지구도 없을 테니, 절멸을 선언하자!

더 이상은 고등어에 놀라는 호들갑을 떨지 마라! 스스로를 갉아먹는 마지막 인류여, 마지막 괴물들아!

탈핵독립선언문 ◈ ◈ ◈ ◈ ◈ ◈ ◈ ◈ ◈ ◈ ◈ ◈ ◈ ◈ ◈ ◈ ◈ ◈ ◈ ◈

재작년에 나는 이런 입간판을 쓴 적이 있다. “담배연기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방사능 위협에는 침묵하는 것, 제 몸 속의 암은 그렇게 염려하면서 사회적 종양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 이것은 미시건강염려증의 무한한 확장이고, 거시건강불감증의 무한한 축소에 다름 아니다. 이 ‘쌍생아’를 우리는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들(자본)의 전략인 것이다.” (헤세이티 입간판) ‘핵’은 부산시민, 아니 대한민국 전체, 아니 인류 전체의 문제다.

황경민 <카페 헤세이티> 대표 종업원이다. <불법무단사설야매 시인학교> 교장이다. <글쓰기+통기타>교실 강사다. 세계 최초로 입간판장르를 개척한 선구자고, 세계 유일의 입간판장이다. 참고로 부산대학교 앞에 자리한 <카페 헤세이티>는, 삐딱하고 아슬아슬하게 여기저기 시비를 걸어 대서, 인문학 카페인지 도사견들의 투견장인지 헷갈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혹 카페 헤세이티를 찾는 분들은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기를 바란다.

이성진 영화프로듀서

부산에서 영화를 시작하다언제나 부산 가는 길은 초등학생의 소풍 전날 밤처럼 맘을 설레게 한다. 14년 전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부산에서 첫 영화를 시작했다. 첫 영화

의 제목은 <달마야 놀자>(2001)!

군대를 갓 제대하고 영화편집을 전공하고 있던 나는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복학했고, 앞으로 영화의 어떤 파트에서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

하다가 무작정 취업을 신청한 후 현장으로 보내달라고 선배들을 졸랐다. 그래서 선배들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과 동기와 함께 <달마야 놀자>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제작팀 막내로서의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막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아직 적응을 못한 나에게 사람도 다

니지 않던 밤늦은 시각의 충무로 골목골목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고, 밤공기는 더욱 더 차갑고 낯설기만 했다. 30분도 채 안되었던 제작사 면접.

결과는 탈락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상이 너무 ‘건달’같아서 무서워서 뽑기가 힘들었단다.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화난 마음에 받아온 시나리오를 오기로 읽었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기에 사람을 인상하나로 판단하는지 알고 싶어

시나리오를 읽기로 한 참이었다. 한참을 소파에서 읽다가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읽고 또 읽을수록 너무나 이 영화가 하고 싶

었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 한 통, 다시 부산에 와서 일을 할 수 있겠냐는 PD님의 전화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부산에 가는 길이 내게 긴장감을 주고 기분 좋은 설렘을 주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내 첫 영화의

현장이 부산이라는 도시였다. 한여름의 부산촬영은 내 겉옷에 매일매일 땀으로 만들어진 소금 띠가 가슴까지 내려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반복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이상한 마력’에 빠져든 것이 횟수로 어느덧 14년째가 되었고, 그동안 참여한 작품 수는 열

네 편이 되었다.

한 작품을 끝내고 개봉이 가까워 올 즈음 거리의 벽이나 버스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볼 때, 시사회 맨 뒷자리에서 관객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나

의 영화를 보고 감정을 공유할 때, 같이 호흡하는 사람들의 심장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의 열정이 더 강렬해짐을 느낀다.

짠내나는 열정이 살아있는 부산나에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기분 좋은 징크스가 있다. 내가 합류한 영화 중 엎어진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일이 생겨 중

간에 다른 영화로 옮기더라도 그 영화는 기어코 촬영에 들어갔고, 옮겨간 영화가 엎어지려고 할 때도 내가 합류하면 어김없이 촬영이 시작되었

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주변의 좋은 영화선배들이 많은 인복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새롭게 프로듀서로 시작하는 영화가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고, 현재 그 기운을 받아 관

객들을 매료시킬 시나리오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올해의 바람은 하루빨리 짠내나는 열정이 살아있는 부산에서 촬영하며 부산이라는 도

시가 얼마나 영화와 닮아있고 또 삶이 녹아있는 도시인지 맘껏 느껴보는 것이다.

나는 이따금씩 차를 끌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달린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해운대 바닷가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고

작이더라도, 영화의 온도가 식을 때마다 복잡한 마음의 환기를 시킬 수 있는 나만의 편안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나에게 부산은 영화의 시

작을 알렸던 곳이고, 영화에서 받은 복잡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영화를 지속하게 하는 힘을 주는 원동력의 도시이기도 하다. 올해도 이미 설레

는 맘으로 부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이성진 공주영상정보대 영상편집과를 졸업하고 강제규필름의 <베사메무쵸>로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달마야 놀자><하얀 방><예의없는 것들> 제작팀을 거쳐 <님은 먼 곳에><나는 왕이로소이다> 등에 라인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는 2013년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기획·개발비를 지원받은 <파이프라인>과 신인 감독의 <도둑시즌>을 제작 준비 중이다.

영화와 삶이 녹아있는 부산으로

황경민 카페 헤세이티 대표

<에너지정의행동>의 정수희 씨한테서 <탈핵독립선언문>을 써줄 수 없냐고 연락이 왔다. 탈핵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닌 내게 왜 이러냐고 고사했지만 막무가내다. 마냥 사양할 수가 없었다. 고리 바로 옆이 부산이 아닌가? 후쿠시마의 핵 재앙을 보면서도 부산은 지금 너무 평온하다. 아니, 이건 평온을 넘어 태연하다.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연장 운영되고 있는데도, 부품 시험 성적서를 위조한 일당들이 연일 속출하는데도 부산은 태연작약이다. 이 대범한(?) 부산시민들에게 긴히 한 말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독 립 이 냐 예 속 이 냐 공 생 이 냐 공 멸 이 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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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내게 물었다."아버지, 제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이제서야 내가 답한다. "걱정마라 아들아, 너는 살아갈 수 없단다. 너의 아들은 살아갈 수 없단다. 마음대로 살거라. 앞으로 네가 저지를 어떤 실수도, 어떤 실패도, 어떤 죄악도 아무것이 아닌 날이 올 테니 네 마음대로 살거라."

너는 내게 물었다."그럼 희망이란 없는 건가요?""희망이 무엇이냐? 희망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이냐? 희망이란 과연 어떤 환상인 것이냐? 너는 오직 절망만을 받아들여라. 절망과 벗하고, 절망을 살아라. 그것만이 네가 속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너는 내게 물었다."그렇다면 미래란 무엇인가요?""아들아, 미래란 '없다'는 말이다. 미래란 없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지워져 버렸단다. 이 아비가, 이 아비의 세대가 너의 미래를 갉아먹었단다. 미래는 이제 환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단다. 신화로서만 완성되는 것이란다. 오로지 지금 여기를 탕진하며 사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단다."

너는 내게 물었다."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기는 하시나요?""사랑이라니, 아들아, 사랑은 없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거짓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만이며, 배신이다. 사랑은 너를 두 번 죽이는 짓이란다."

그리고 너는 내게 물었다."아, 아버지, 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너는 없다. 너는 없는 존재다. 너는 내가 갉아먹은 미래다. 너는 유령의 아들, 좀비의 자식이다. 너는 내가 낳아 내가 먹은 허깨비다."

너는 내게 물었다."그렇다면 무엇이 있는 건가요?""없다. 너도, 나도, 세계도 더 이상은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이제 죽음마저 사라질 공멸, 절멸만이 있을 뿐이다. 유황불로 타오를 저 허공만이 남을 뿐이다.

"아, 저를 낳아 저를 죽이신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어떻게'라는 말마저 사라질 테니 아들아,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다 먹어치울 테니."

독립을 선언하지 말자, 예속을 선언하자!공생공존을 선언하지 말자, 우리 솔직하게 공멸을 선언하자! 인간이라고 선언하지 말자, 괴물이라고 선언하자! 괴물을 키운 우리가, 괴물을 방치한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이 괴물이란 말인가?오지 않은 미래를, 제 자식을 갉아먹은 우리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희망은 없다. 절망을 노래하자! 우리 자신을, 우리의 자식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 마지막 광기의 카니발을 완성하자!더 이상은 바람도 구름도, 햇살도 달빛도, 꽃도 나비도, 새도 짐승도, 너도 나도, 세계도 지구도 없을 테니, 절멸을 선언하자!

더 이상은 고등어에 놀라는 호들갑을 떨지 마라! 스스로를 갉아먹는 마지막 인류여, 마지막 괴물들아!

탈핵독립선언문 ◈ ◈ ◈ ◈ ◈ ◈ ◈ ◈ ◈ ◈ ◈ ◈ ◈ ◈ ◈ ◈ ◈ ◈ ◈ ◈

재작년에 나는 이런 입간판을 쓴 적이 있다. “담배연기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방사능 위협에는 침묵하는 것, 제 몸 속의 암은 그렇게 염려하면서 사회적 종양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 이것은 미시건강염려증의 무한한 확장이고, 거시건강불감증의 무한한 축소에 다름 아니다. 이 ‘쌍생아’를 우리는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들(자본)의 전략인 것이다.” (헤세이티 입간판) ‘핵’은 부산시민, 아니 대한민국 전체, 아니 인류 전체의 문제다.

황경민 <카페 헤세이티> 대표 종업원이다. <불법무단사설야매 시인학교> 교장이다. <글쓰기+통기타>교실 강사다. 세계 최초로 입간판장르를 개척한 선구자고, 세계 유일의 입간판장이다. 참고로 부산대학교 앞에 자리한 <카페 헤세이티>는, 삐딱하고 아슬아슬하게 여기저기 시비를 걸어 대서, 인문학 카페인지 도사견들의 투견장인지 헷갈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혹 카페 헤세이티를 찾는 분들은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기를 바란다.

이성진 영화프로듀서

부산에서 영화를 시작하다언제나 부산 가는 길은 초등학생의 소풍 전날 밤처럼 맘을 설레게 한다. 14년 전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부산에서 첫 영화를 시작했다. 첫 영화

의 제목은 <달마야 놀자>(2001)!

군대를 갓 제대하고 영화편집을 전공하고 있던 나는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복학했고, 앞으로 영화의 어떤 파트에서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

하다가 무작정 취업을 신청한 후 현장으로 보내달라고 선배들을 졸랐다. 그래서 선배들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과 동기와 함께 <달마야 놀자>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제작팀 막내로서의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막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아직 적응을 못한 나에게 사람도 다

니지 않던 밤늦은 시각의 충무로 골목골목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고, 밤공기는 더욱 더 차갑고 낯설기만 했다. 30분도 채 안되었던 제작사 면접.

결과는 탈락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상이 너무 ‘건달’같아서 무서워서 뽑기가 힘들었단다.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화난 마음에 받아온 시나리오를 오기로 읽었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기에 사람을 인상하나로 판단하는지 알고 싶어

시나리오를 읽기로 한 참이었다. 한참을 소파에서 읽다가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읽고 또 읽을수록 너무나 이 영화가 하고 싶

었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 한 통, 다시 부산에 와서 일을 할 수 있겠냐는 PD님의 전화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부산에 가는 길이 내게 긴장감을 주고 기분 좋은 설렘을 주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내 첫 영화의

현장이 부산이라는 도시였다. 한여름의 부산촬영은 내 겉옷에 매일매일 땀으로 만들어진 소금 띠가 가슴까지 내려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반복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이상한 마력’에 빠져든 것이 횟수로 어느덧 14년째가 되었고, 그동안 참여한 작품 수는 열

네 편이 되었다.

한 작품을 끝내고 개봉이 가까워 올 즈음 거리의 벽이나 버스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볼 때, 시사회 맨 뒷자리에서 관객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나

의 영화를 보고 감정을 공유할 때, 같이 호흡하는 사람들의 심장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의 열정이 더 강렬해짐을 느낀다.

짠내나는 열정이 살아있는 부산나에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기분 좋은 징크스가 있다. 내가 합류한 영화 중 엎어진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일이 생겨 중

간에 다른 영화로 옮기더라도 그 영화는 기어코 촬영에 들어갔고, 옮겨간 영화가 엎어지려고 할 때도 내가 합류하면 어김없이 촬영이 시작되었

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주변의 좋은 영화선배들이 많은 인복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새롭게 프로듀서로 시작하는 영화가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기획·개발 지원’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고, 현재 그 기운을 받아 관

객들을 매료시킬 시나리오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올해의 바람은 하루빨리 짠내나는 열정이 살아있는 부산에서 촬영하며 부산이라는 도

시가 얼마나 영화와 닮아있고 또 삶이 녹아있는 도시인지 맘껏 느껴보는 것이다.

나는 이따금씩 차를 끌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달린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해운대 바닷가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고

작이더라도, 영화의 온도가 식을 때마다 복잡한 마음의 환기를 시킬 수 있는 나만의 편안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나에게 부산은 영화의 시

작을 알렸던 곳이고, 영화에서 받은 복잡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영화를 지속하게 하는 힘을 주는 원동력의 도시이기도 하다. 올해도 이미 설레

는 맘으로 부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이성진 공주영상정보대 영상편집과를 졸업하고 강제규필름의 <베사메무쵸>로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달마야 놀자><하얀 방><예의없는 것들> 제작팀을 거쳐 <님은 먼 곳에><나는 왕이로소이다> 등에 라인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는 2013년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기획·개발비를 지원받은 <파이프라인>과 신인 감독의 <도둑시즌>을 제작 준비 중이다.

영화와 삶이 녹아있는 부산으로

황경민 카페 헤세이티 대표

<에너지정의행동>의 정수희 씨한테서 <탈핵독립선언문>을 써줄 수 없냐고 연락이 왔다. 탈핵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닌 내게 왜 이러냐고 고사했지만 막무가내다. 마냥 사양할 수가 없었다. 고리 바로 옆이 부산이 아닌가? 후쿠시마의 핵 재앙을 보면서도 부산은 지금 너무 평온하다. 아니, 이건 평온을 넘어 태연하다.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연장 운영되고 있는데도, 부품 시험 성적서를 위조한 일당들이 연일 속출하는데도 부산은 태연작약이다. 이 대범한(?) 부산시민들에게 긴히 한 말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독 립 이 냐 예 속 이 냐 공 생 이 냐 공 멸 이 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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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의 아이들

갈려면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무한)까지 비행

기로 1시간 30분, 다시 여기서 택시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먼 곳이다.

1930년대 모든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상하이에서 이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호그는 취재를 위해 전선으로 다시 가려 하였으나, 리(라다 미첼 분)가

남긴 도덕경의 한 구절을 보고 눌러앉게 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영화 속의 라다 미첼은 이 당시 공산당원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하던 뉴질랜드 출신의 간호사 캐서린 홀(Kath-

leen Hall)로 짐작된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의 대사를 보면 안성기, 류더

화(유덕화) 주연의 영화 <묵공A Battle of Wits>(2006)이 연상될 수도 있

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호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뉴질랜드 공산당원이었던 레위 앨리

(Rewi Alley)였다. 그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에드가 스

노우 등과 함께 1937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겅호(工合)운동(중국산업 발

전 부흥을 위한 국제기구임) 활동가이기도 했다. 레위가 겅호운동을 하

고 있던 곳은 산시(섬서성)였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경계심과 두려움

을 보이던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비틀어 ‘돼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호그의 진심과 열정을 받아들이면서 이들 사이에는 우정

이상의 훈기가 피어나게 되고, 아이들도 파란 눈의 이방인을 따르게 된

다. 실제로도 그는 네 명의 소년들을 입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

한 ‘호우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제스(장개석) 휘하 국민당 장교의

협박, 일제의 마을 침공 임박 등으로 호그는 약 60여 명의 아이들을 간

쑤성(감숙성) 샨다로 이주시킬 결심을 한다(1944년). 북부 지방은 이곳

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참고로 간쑤성은 2013년 5월 대지진의

여파로 약 280여 명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고, 판다 서식지이며 둔황 등

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영화에서 황시마을의 재력

가인 왕 사장으로 나오는 량쯔충(양자경)이 호그에게 <실크로드>라는 영

문판 책자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욱 희망찬 내일로의 여정이라

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황시에서 샨다까지의 거

리는 1천 킬로미터가 넘

고, 눈보라가 치는 겨울

산을 수없이 넘어야 한

다. 1944년 11월에 33명

의 아이를 먼저 이주시

키고, 1945년 1월 나머

지 27명의 소년을 이주

시키게 된다. 아이들을 끌고, 밀고, 지고, 메고… 간난신고 끝에 샨다에

이르게 된다(3월에 도착함). 나중 이 일을 회상하는 생존자들은 이를 두

고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견주어 ‘작은 대장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호그는 아이들과 농구를 하다가 다친 발의 부상이 심해져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의 여정과 이력을 감안한다면 너무나도 도둑같

이 찾아온 죽음이었고 꿈결같은 생의 마감이었다(1945년 7월).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이 영화를 두고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1993)라고 하

는 사람들도 많다. <황시>에 나타난 이야기처럼 중국의 고난에 동참했

던 서방인들의 활동을 그린 영화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캐나다

출신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닥터 베튠Bethune>(1977)이 그것이다. 그

는 마오쩌둥 군대와 대장정을 함께하고 그 도중에 그가 가진 인술을 펼

친 사람이었다. 참고로 언론 쪽에서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

노우 역시 중국인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서양인이다. 에

드가 스노우의 묘비는 지금 북경대학 구내 미명호(未名湖) 옆 야트막한

동산에 마련되어 있고, 노먼 베튠의 경우 길림성 장춘시에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약학대학이 있을 정도이다. 베튠의 중국 이름은 바이추언(白

求恩)이다. 한편 앞서도 언급했듯이 호그 역시 생전에는 ‘피그Pig’라는

별명으로 아이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지만, 사후 허커(何克)라는 중국 이

름을 갖게 된다. 영화 끝부분에 한 생존가가 회상하는 한마디 말이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중국인을 돕고 투쟁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중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티베트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는?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두 얼굴을 가진 야누

스 또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2008)가 될 수 있다.

굳이 배링턴 무어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중국영화의 약진이 두드러

지고 있다. 자장커(지아장커) 등 6세대 영화인들의 활약은 차치하더라

도 중국정부가 주축이 되어 펼치고 있는 문화를 통한 중국 알리기의 일

환으로 전개되는 최근의 양상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2012년 기준 전 세계 113개 국가에 420개의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중국

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저우룬파(주윤발) 주연의 <공자-춘추

전국시대Confucius>(2010) 역시 이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제어하기 위해 소위 ‘소프트 파워’ 전략을 통해 중국의 이미지를 재구

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철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과학대학 학장 역임. 부산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노동과 산업 그리고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문화와 노동과 영화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최근 경남 창원의 상남동에서 주한미국공보원(USIS) 영화제작소가 15년간 문화영화와 리버티뉴스를 수백 편 제작하였고, 한국영화의 초대 인력들이 이곳에서 대거 양성되었다는 점을 발굴해내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자계급과 문화실천><안토니오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공저) 등의 책이 있다.

샨다로 향하는 아이들

<황시>는 난징대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실화이다. 1937

년 일제에 의한 난징대학살이 벌어지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

원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잠입해 들어간 AP 통신의 프리랜서 기자였던

영국인 저널리스트 조지 호그(George Hogg, 1915~1945)의 역정을 감

명 깊게 그려내고 있다(그는 중국 취재 이전까지는 <맨체스터 가디언>지

의 기자였다). 그가 중국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운데, 1937년 영

국에서 퀸 메리호를 몰래 타고 먼저 뉴욕으로 가서 그의 이모인 뮤리엘

레스터(Muriel Lester)를 만나 함께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다. 그의 이모

는 당시 영국의 저명한 평화주의자이기도 했고 간디와는 친구였다. 중

국에 도착한 때는 1938년 1월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제

의 만행을 직접 겪으며 이곳에 머물면서 그 참상을 세계에 알려야겠다

고 결심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장군이었던 니롱젠( )

과 깊은 교류를 맺기도 하고, 급기야는 일본에 대항한 팔로군에 참여하

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담은 그의 책이 <I See a New China>이다.

난징대학살 속 푸른 눈동자이 영화를 연출한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6번째 날The 6th Day>(2000), 피어스 브로스넌 주

연의 <007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1997)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도 화려하다. 카리스마와 연기력

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량쯔충(양

자경)과 저우룬파(주윤발), 그리고

<튜더스The Tudors> 시리즈로 이

름을 알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백악관 최후의 날Olympus Has

Fallen>(2013), <프로즌 그라운드

The Frozen Ground>(2013) 등에

서 열연한 라다 미첼 등이 그들이

다. 이 영화에서 호그 역을 맡은

배우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이

다. 호그는 일제의 난징대학살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원

으로 위장해 난징에 잠입한다. 그러나 자신이 찍은 학살 장면의 사진이

일제에 발각되는 바람에 참수를 당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천(주윤발 분)

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 일을 겪은 후 여러 곡절 끝에

호그는 중국 후베이성(호북성)의 황시(黃石)마을에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게 된다(사족이지만 지금도 황시까지

<황시The Children of Huang Shi>(2008)

사회학자이성철의 씨네라마Cinema+

Pano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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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의 아이들

갈려면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무한)까지 비행

기로 1시간 30분, 다시 여기서 택시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먼 곳이다.

1930년대 모든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상하이에서 이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호그는 취재를 위해 전선으로 다시 가려 하였으나, 리(라다 미첼 분)가

남긴 도덕경의 한 구절을 보고 눌러앉게 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영화 속의 라다 미첼은 이 당시 공산당원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하던 뉴질랜드 출신의 간호사 캐서린 홀(Kath-

leen Hall)로 짐작된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의 대사를 보면 안성기, 류더

화(유덕화) 주연의 영화 <묵공A Battle of Wits>(2006)이 연상될 수도 있

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호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뉴질랜드 공산당원이었던 레위 앨리

(Rewi Alley)였다. 그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에드가 스

노우 등과 함께 1937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겅호(工合)운동(중국산업 발

전 부흥을 위한 국제기구임) 활동가이기도 했다. 레위가 겅호운동을 하

고 있던 곳은 산시(섬서성)였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경계심과 두려움

을 보이던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비틀어 ‘돼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호그의 진심과 열정을 받아들이면서 이들 사이에는 우정

이상의 훈기가 피어나게 되고, 아이들도 파란 눈의 이방인을 따르게 된

다. 실제로도 그는 네 명의 소년들을 입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

한 ‘호우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제스(장개석) 휘하 국민당 장교의

협박, 일제의 마을 침공 임박 등으로 호그는 약 60여 명의 아이들을 간

쑤성(감숙성) 샨다로 이주시킬 결심을 한다(1944년). 북부 지방은 이곳

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참고로 간쑤성은 2013년 5월 대지진의

여파로 약 280여 명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고, 판다 서식지이며 둔황 등

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영화에서 황시마을의 재력

가인 왕 사장으로 나오는 량쯔충(양자경)이 호그에게 <실크로드>라는 영

문판 책자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욱 희망찬 내일로의 여정이라

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황시에서 샨다까지의 거

리는 1천 킬로미터가 넘

고, 눈보라가 치는 겨울

산을 수없이 넘어야 한

다. 1944년 11월에 33명

의 아이를 먼저 이주시

키고, 1945년 1월 나머

지 27명의 소년을 이주

시키게 된다. 아이들을 끌고, 밀고, 지고, 메고… 간난신고 끝에 샨다에

이르게 된다(3월에 도착함). 나중 이 일을 회상하는 생존자들은 이를 두

고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견주어 ‘작은 대장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호그는 아이들과 농구를 하다가 다친 발의 부상이 심해져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의 여정과 이력을 감안한다면 너무나도 도둑같

이 찾아온 죽음이었고 꿈결같은 생의 마감이었다(1945년 7월).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이 영화를 두고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1993)라고 하

는 사람들도 많다. <황시>에 나타난 이야기처럼 중국의 고난에 동참했

던 서방인들의 활동을 그린 영화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캐나다

출신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닥터 베튠Bethune>(1977)이 그것이다. 그

는 마오쩌둥 군대와 대장정을 함께하고 그 도중에 그가 가진 인술을 펼

친 사람이었다. 참고로 언론 쪽에서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

노우 역시 중국인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서양인이다. 에

드가 스노우의 묘비는 지금 북경대학 구내 미명호(未名湖) 옆 야트막한

동산에 마련되어 있고, 노먼 베튠의 경우 길림성 장춘시에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약학대학이 있을 정도이다. 베튠의 중국 이름은 바이추언(白

求恩)이다. 한편 앞서도 언급했듯이 호그 역시 생전에는 ‘피그Pig’라는

별명으로 아이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지만, 사후 허커(何克)라는 중국 이

름을 갖게 된다. 영화 끝부분에 한 생존가가 회상하는 한마디 말이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중국인을 돕고 투쟁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중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티베트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는?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두 얼굴을 가진 야누

스 또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2008)가 될 수 있다.

굳이 배링턴 무어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중국영화의 약진이 두드러

지고 있다. 자장커(지아장커) 등 6세대 영화인들의 활약은 차치하더라

도 중국정부가 주축이 되어 펼치고 있는 문화를 통한 중국 알리기의 일

환으로 전개되는 최근의 양상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2012년 기준 전 세계 113개 국가에 420개의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중국

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저우룬파(주윤발) 주연의 <공자-춘추

전국시대Confucius>(2010) 역시 이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제어하기 위해 소위 ‘소프트 파워’ 전략을 통해 중국의 이미지를 재구

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철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과학대학 학장 역임. 부산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노동과 산업 그리고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문화와 노동과 영화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최근 경남 창원의 상남동에서 주한미국공보원(USIS) 영화제작소가 15년간 문화영화와 리버티뉴스를 수백 편 제작하였고, 한국영화의 초대 인력들이 이곳에서 대거 양성되었다는 점을 발굴해내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자계급과 문화실천><안토니오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공저) 등의 책이 있다.

샨다로 향하는 아이들

<황시>는 난징대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실화이다. 1937

년 일제에 의한 난징대학살이 벌어지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

원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잠입해 들어간 AP 통신의 프리랜서 기자였던

영국인 저널리스트 조지 호그(George Hogg, 1915~1945)의 역정을 감

명 깊게 그려내고 있다(그는 중국 취재 이전까지는 <맨체스터 가디언>지

의 기자였다). 그가 중국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운데, 1937년 영

국에서 퀸 메리호를 몰래 타고 먼저 뉴욕으로 가서 그의 이모인 뮤리엘

레스터(Muriel Lester)를 만나 함께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다. 그의 이모

는 당시 영국의 저명한 평화주의자이기도 했고 간디와는 친구였다. 중

국에 도착한 때는 1938년 1월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제

의 만행을 직접 겪으며 이곳에 머물면서 그 참상을 세계에 알려야겠다

고 결심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장군이었던 니롱젠( )

과 깊은 교류를 맺기도 하고, 급기야는 일본에 대항한 팔로군에 참여하

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담은 그의 책이 <I See a New China>이다.

난징대학살 속 푸른 눈동자이 영화를 연출한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6번째 날The 6th Day>(2000), 피어스 브로스넌 주

연의 <007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1997)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도 화려하다. 카리스마와 연기력

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량쯔충(양

자경)과 저우룬파(주윤발), 그리고

<튜더스The Tudors> 시리즈로 이

름을 알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백악관 최후의 날Olympus Has

Fallen>(2013), <프로즌 그라운드

The Frozen Ground>(2013) 등에

서 열연한 라다 미첼 등이 그들이

다. 이 영화에서 호그 역을 맡은

배우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이

다. 호그는 일제의 난징대학살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원

으로 위장해 난징에 잠입한다. 그러나 자신이 찍은 학살 장면의 사진이

일제에 발각되는 바람에 참수를 당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천(주윤발 분)

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 일을 겪은 후 여러 곡절 끝에

호그는 중국 후베이성(호북성)의 황시(黃石)마을에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게 된다(사족이지만 지금도 황시까지

<황시The Children of Huang Shi>(2008)

사회학자이성철의 씨네라마Cinema+

Panorama

58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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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있었던 일이다. (막 옹알이 단계를 지났다고 나 혼자 생각한) 둘째

조카에게 선언했다. “자, 여기 만 원짜리 한 장과 오만 원짜리 한 장이 있다.

퀴즈를 내도록 하겠다. 알아맞히면 (오만 원을 내밀며) 이걸 주고 (당연히 못

맞출 테니 만 원짜리를 호기롭게 흔들며) 못 맞추면 이걸 세뱃돈으로 주겠다.

문제 나간다! 삼촌의 직업은?” 그러자 녀석은 “영화감독!”이라고 한 번에 맞

춰 버렸다. “아냐, 틀렸어. 삼촌은 백수, 백수의 왕이다!” 텅 빈 지갑을 생각하

면 애써 내 직업 같지도 않은 직업을 스스로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곤, 만 원

을 줄 수도 있었으나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져 오만 원짜리를 쥐어 주었다. 실

수였다. 내겐 여전히 옹알이 단계인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다 커 버린 것이

다. 난 저돌적인 이 둘째 조카를 마음에 들어 했다. 백화점에서 외국 여자에

게 다가가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씨불였던 것이나, 맘에 안 드는 어른이 있으

면 그냥 박치기부터 해대는 이 녀석, 제 형보다 외향적이라 바깥에서도 맞고

들어온 적이 전혀 없다는 이놈, 앞뒤 재지 않고 뛰어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에 받혀 보닛 위로 떨어졌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는(형수는 혹시나 머리를 다치지 않았나 CT 촬영에 MRI까지 찍었으나 멀쩡

했다고 한다. 박치기로 다져진 머리통인가 보다) 녀석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어젯밤, 이 둘째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했다는 형의 연락을 받았

다. 세상에. 벌써. 이 녀석이 여덟 살이나 됐다니! 둘째 조카가 여덟 살이 되

었다는 것은 곧 내가 데뷔작을 찍은 지 무려 6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뜻한다.

무한반복의 시나리오 작업, 42.195km사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 특히, 감독들은 남들의 3, 4년을 1년 주기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리오 기획을 거쳐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새 1년에서 1년 반, 캐스팅 과정과 투자 과정을 거쳐 영화를 찍고 개봉하기까

지 (다른 감독님들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3, 4년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과거 어느 대선배 감독이 “나는 올림픽 감독, X감독은 월드컵 감독이야.” 라

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할 땐 진짜 그런가 하고 멍 때리고 있었는데 마흔이 넘

고 두세 차례의 엎어짐을 당하고 나자(당했다는 말은 좀 말이 안 된다. 당해

도 싼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 이게 정말 그런 거구나, 그렇게 시간이 가

는 거구나…. 올림픽, 월드컵 감독들은 ‘정말’ 제대로 일이 풀린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을 찍기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 살부터 8년을 준비‘만’ 했다. 기획회

의,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회의, 그걸 토대로 또 쓰고 기획회의, 그리고 또 쓰

기의 무한반복! 그러다가 4년 동안 쓰던 시나리오가 회사가 합병되는 바람

에 “없던 걸로 하지.”란 간단한 말로 엎어져 버렸다. 42.195Km를 실컷 달려

겨우 도착하려는데 눈앞에 보이던 결승점 자체가 없어져 버린 기분. 그래도

뭐 글을 쓰는 동안 많이 배웠으니까 자위하며 적금 들었다 치자, 하기엔 너무

나 지쳐 버렸고 화가 났다. 그래서 어쩌다 회사에서 던져 준 시나리오를 일주

일 만에 각색한 게 <라듸오 데이즈>(2007)였고 영화를 찍었다. 나름 충무로

에서 각광을 받고 있던 터라(?) 모두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었으

나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그 엄지손가락은 중지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나는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시장에선 더는 섹시하지 않은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받아들여야

만 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첨부터 다시. 인생은 무한반복! 이대로 너덜

너덜해져서 혼자 시나리오를 쓰다가는 폐인 되기에 십상이란 생각에 명석한

두뇌와 융통성 있는 사회성과 장차 프로듀서로서 합리적인 영화 시스템을 만

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동료를 붙잡고, 대학원에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가

젊은 청춘들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동료 피

디와 나는 그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동료는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작품의 프로듀서가 되었고, 나는 계속, 닥치는 대로, 데뷔 전에 익숙했던 그

속도보다 더한층 RPM을 올려 글을 써댔다.

둘째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알리던 어제 형의 전화는 사실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형이 내뱉는 문장 사이에는 “너, 밥은 먹고 다니냐?”란 뉘앙

스가 풍겼다. 나야 실감을 못 하고 살지만, 형이 바라보는 나야말로 데뷔작을

찍은 이후 6년 동안 술 냄새만 풍기고 다니는 백수였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냥 짧게만 대답했다. “어,

잘 먹고 잘 지내. 어젠 고기도 먹었고, 지금은 저녁 먹고 너무 배불러서 누워

서 텔레비전 보고 있어.” (결코 짧지 않은 변명이려나)

단골 술집의 ‘칸트’, 제작자 L “산다는 건 말이다. 결국, 견디는 거야.” 다소 꼰대스러운 제작자 L대표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영화에만 목숨 걸지 말아. 사는 게 별거 있나. 그

냥 술 마시다가 기회가 생기면 서로 안 쪽 팔린 영화를 ‘가끔’ ‘열심히’ 찍으

면 되는 거지.” 술병과 술잔 사이에 사는 제작자 L은 내 단골 술집의 ‘칸트’라

불리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그 술집에 가면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안

주로 맥주를 마시고 계신다. “대표님은 여기 가구예요?” 놀리기도 했지만 사

실 그분의 말은 스티븐 킹의 명언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생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같은 뜻 맞나?) 수많은 술자리에

서 서로가 주절대긴 했다만 산다는 건 견디는 것, 이라는 말은 또렷하게 머

릿속에 담고 산다.

그새 함께 일하던 동료 피디는 어느 대작 영화의 프로듀싱을 마쳤다. 이야기

를 듣노라니 실로 어마무시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영화를 찍는 동안 만

나는 수많은 기적과 우연들은 마치 그 친구가 전 인생을 통틀어 만날 기적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인생엔 기적 총량의 법칙 따윈 없다. 앞으로도

수많은 기적을 만날 것이고(그걸 타인들은 그저 ‘우연’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

다) 그때마다 우린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 것이다. 어느 날, 그 단골 술집에서

제작자 L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투자자 K가 나타났다. “어 형,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K형은 그냥 여기 있을 줄 알았다고만 했다. 사실 투자자

K형은 (나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제작자 L의 영화에 투자한 터라 뭔가 상의를

하러 온 듯했다. 나는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술잔

만 비웠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문득, K형은 저번에 보내주던 시나리오

는 왜 더 이상 보내주지 않느냐 물었다. “씨바 그냥 다 까였어, 형.” 했는데 K

형은 내 손을 잡더니 술집 바깥으로 불러내 담배를 달라고 했다. “그새 M작

가와 각색도 더 했고 그랬는데…, 그냥 요즘엔 또 딴 거 써요. 이거 쓰다가 저

거 쓰다가 그래. 이걸 쓰고 있노라면 저거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보이는 거

같더라고. 저걸 쓰고 있으면 이게 왜 투자가 안 되는지 알겠고. 하하하.” 슬

픔, 화, 우울, 분노, 이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은 ‘해학’으로 풀어야 한다고, 그

래야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맘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살아왔던 터라

심드렁하게, 농담하듯 내뱉었다. 어쨌거나 K형은 그동안 각색했을 그 시나

리오를 다시 보자고 했다. “읽고 나면 아마 하고 싶어 못 견딜 걸. 하하하.” 나

는 너스레를 떨고 다음 날 숙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

냈다. 일주일 후, 짧은 문자를 받았다. “재밌더라. 그냥 캐주얼하게 만나서 얘

기하자.” 캐주얼하게? 그래, 캐주얼하게 만나서 이번엔 안 되겠다, 다음에 같

이 하자는 뻔한 얘기를 듣고 술 한 잔 얻어먹고 헤어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진짜 캐주얼하게 머리카락도 정리 안 한 채 동료 피디와 K형을 다시 만났다.

K형은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냥 안 한다고 빨리 말해요 형.

그리고 그냥 술이나 한 잔 사줘,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찰나 돌직구

가 날아왔다. “같이 도모해 보자.”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며칠 후, 또 한 번의 각색고를 냈다. K형은 “좋다 정말. 이거, 같이 가자.” 했

다. 캐스팅도 안 된 시나리오인데요? 동료 피디와 나는 멀뚱멀뚱 실감이 나

지 않았다. “그러니까 캐스팅도 같이 해 보자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분명

히 임자가 있을 거야!” 이런 우연이. 이런 기적이! 순간 둘째 조카가 떠올랐다.

앞으로 뭐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OO야, 우리 같이 즐겁게 삶을 견디자. 삼

촌도 잘 견딜게.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 괴로워하지 말고 허허 웃으

며 살아가자.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오지도

않은 미래 걱정하지 말고 지나간 건 지나간 일로 치부해 버리기로 하자. 그저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우연의 기적을 믿고 즐기자고. 내 둘째 조카처럼 넘

어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크하게 일어서며.

견디기 힘든 날엔 단골 막걸릿집의 칸트 제작자 L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

열에 아홉은 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앉아 함께 병맥주를 마신다. 영화 이

야기, 여자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견딜 만 해진다. 가끔은 노래

도 부른다. 다른 이들은 쟤네들은 세상을 견딘다면

서 뭐가 저리 좋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

만 그건 우리가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다. 이왕

지사 삶이 견디는 것이라면 즐겁게 해학적으로

견디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하기호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연출전공 2기 졸업. 당시에는 ‘납득이’ 스타일이었으나 10년 후 같은 학교 전문사 시나리오 전공 11기로 졸업할 당시엔 식스팩, 아니 원팩의 소유자가 됐음. 이야기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만나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음. 이야기를 만나러 다니는 사람, 라면 감식가. 겨울엔 집에서 동면. 가끔 히키코모리가 될까봐 찾아와 주는 술친구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고 있음.

명사 저장, 보관: (특히) 창고 보관

발음대로 옮기자면 스토리지, 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스토리지.’에서의 스토리지, 혹은 스토리를 저장, 보관하고 있는 장소로서의 스토리지(창고) 정도로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을 듯 하다. 스스로를 ‘이야기를 만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 므로, 칼럼의 제목을 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 라 명명하기로 한다.

하기호감독의 스토리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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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있었던 일이다. (막 옹알이 단계를 지났다고 나 혼자 생각한) 둘째

조카에게 선언했다. “자, 여기 만 원짜리 한 장과 오만 원짜리 한 장이 있다.

퀴즈를 내도록 하겠다. 알아맞히면 (오만 원을 내밀며) 이걸 주고 (당연히 못

맞출 테니 만 원짜리를 호기롭게 흔들며) 못 맞추면 이걸 세뱃돈으로 주겠다.

문제 나간다! 삼촌의 직업은?” 그러자 녀석은 “영화감독!”이라고 한 번에 맞

춰 버렸다. “아냐, 틀렸어. 삼촌은 백수, 백수의 왕이다!” 텅 빈 지갑을 생각하

면 애써 내 직업 같지도 않은 직업을 스스로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곤, 만 원

을 줄 수도 있었으나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져 오만 원짜리를 쥐어 주었다. 실

수였다. 내겐 여전히 옹알이 단계인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다 커 버린 것이

다. 난 저돌적인 이 둘째 조카를 마음에 들어 했다. 백화점에서 외국 여자에

게 다가가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씨불였던 것이나, 맘에 안 드는 어른이 있으

면 그냥 박치기부터 해대는 이 녀석, 제 형보다 외향적이라 바깥에서도 맞고

들어온 적이 전혀 없다는 이놈, 앞뒤 재지 않고 뛰어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에 받혀 보닛 위로 떨어졌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는(형수는 혹시나 머리를 다치지 않았나 CT 촬영에 MRI까지 찍었으나 멀쩡

했다고 한다. 박치기로 다져진 머리통인가 보다) 녀석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어젯밤, 이 둘째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했다는 형의 연락을 받았

다. 세상에. 벌써. 이 녀석이 여덟 살이나 됐다니! 둘째 조카가 여덟 살이 되

었다는 것은 곧 내가 데뷔작을 찍은 지 무려 6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뜻한다.

무한반복의 시나리오 작업, 42.195km사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 특히, 감독들은 남들의 3, 4년을 1년 주기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리오 기획을 거쳐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새 1년에서 1년 반, 캐스팅 과정과 투자 과정을 거쳐 영화를 찍고 개봉하기까

지 (다른 감독님들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3, 4년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과거 어느 대선배 감독이 “나는 올림픽 감독, X감독은 월드컵 감독이야.” 라

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할 땐 진짜 그런가 하고 멍 때리고 있었는데 마흔이 넘

고 두세 차례의 엎어짐을 당하고 나자(당했다는 말은 좀 말이 안 된다. 당해

도 싼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 이게 정말 그런 거구나, 그렇게 시간이 가

는 거구나…. 올림픽, 월드컵 감독들은 ‘정말’ 제대로 일이 풀린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을 찍기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 살부터 8년을 준비‘만’ 했다. 기획회

의,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회의, 그걸 토대로 또 쓰고 기획회의, 그리고 또 쓰

기의 무한반복! 그러다가 4년 동안 쓰던 시나리오가 회사가 합병되는 바람

에 “없던 걸로 하지.”란 간단한 말로 엎어져 버렸다. 42.195Km를 실컷 달려

겨우 도착하려는데 눈앞에 보이던 결승점 자체가 없어져 버린 기분. 그래도

뭐 글을 쓰는 동안 많이 배웠으니까 자위하며 적금 들었다 치자, 하기엔 너무

나 지쳐 버렸고 화가 났다. 그래서 어쩌다 회사에서 던져 준 시나리오를 일주

일 만에 각색한 게 <라듸오 데이즈>(2007)였고 영화를 찍었다. 나름 충무로

에서 각광을 받고 있던 터라(?) 모두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었으

나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그 엄지손가락은 중지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나는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시장에선 더는 섹시하지 않은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받아들여야

만 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첨부터 다시. 인생은 무한반복! 이대로 너덜

너덜해져서 혼자 시나리오를 쓰다가는 폐인 되기에 십상이란 생각에 명석한

두뇌와 융통성 있는 사회성과 장차 프로듀서로서 합리적인 영화 시스템을 만

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동료를 붙잡고, 대학원에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가

젊은 청춘들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동료 피

디와 나는 그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동료는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작품의 프로듀서가 되었고, 나는 계속, 닥치는 대로, 데뷔 전에 익숙했던 그

속도보다 더한층 RPM을 올려 글을 써댔다.

둘째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알리던 어제 형의 전화는 사실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형이 내뱉는 문장 사이에는 “너, 밥은 먹고 다니냐?”란 뉘앙

스가 풍겼다. 나야 실감을 못 하고 살지만, 형이 바라보는 나야말로 데뷔작을

찍은 이후 6년 동안 술 냄새만 풍기고 다니는 백수였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냥 짧게만 대답했다. “어,

잘 먹고 잘 지내. 어젠 고기도 먹었고, 지금은 저녁 먹고 너무 배불러서 누워

서 텔레비전 보고 있어.” (결코 짧지 않은 변명이려나)

단골 술집의 ‘칸트’, 제작자 L “산다는 건 말이다. 결국, 견디는 거야.” 다소 꼰대스러운 제작자 L대표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영화에만 목숨 걸지 말아. 사는 게 별거 있나. 그

냥 술 마시다가 기회가 생기면 서로 안 쪽 팔린 영화를 ‘가끔’ ‘열심히’ 찍으

면 되는 거지.” 술병과 술잔 사이에 사는 제작자 L은 내 단골 술집의 ‘칸트’라

불리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그 술집에 가면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안

주로 맥주를 마시고 계신다. “대표님은 여기 가구예요?” 놀리기도 했지만 사

실 그분의 말은 스티븐 킹의 명언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생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같은 뜻 맞나?) 수많은 술자리에

서 서로가 주절대긴 했다만 산다는 건 견디는 것, 이라는 말은 또렷하게 머

릿속에 담고 산다.

그새 함께 일하던 동료 피디는 어느 대작 영화의 프로듀싱을 마쳤다. 이야기

를 듣노라니 실로 어마무시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영화를 찍는 동안 만

나는 수많은 기적과 우연들은 마치 그 친구가 전 인생을 통틀어 만날 기적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인생엔 기적 총량의 법칙 따윈 없다. 앞으로도

수많은 기적을 만날 것이고(그걸 타인들은 그저 ‘우연’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

다) 그때마다 우린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 것이다. 어느 날, 그 단골 술집에서

제작자 L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투자자 K가 나타났다. “어 형,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K형은 그냥 여기 있을 줄 알았다고만 했다. 사실 투자자

K형은 (나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제작자 L의 영화에 투자한 터라 뭔가 상의를

하러 온 듯했다. 나는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술잔

만 비웠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문득, K형은 저번에 보내주던 시나리오

는 왜 더 이상 보내주지 않느냐 물었다. “씨바 그냥 다 까였어, 형.” 했는데 K

형은 내 손을 잡더니 술집 바깥으로 불러내 담배를 달라고 했다. “그새 M작

가와 각색도 더 했고 그랬는데…, 그냥 요즘엔 또 딴 거 써요. 이거 쓰다가 저

거 쓰다가 그래. 이걸 쓰고 있노라면 저거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보이는 거

같더라고. 저걸 쓰고 있으면 이게 왜 투자가 안 되는지 알겠고. 하하하.” 슬

픔, 화, 우울, 분노, 이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은 ‘해학’으로 풀어야 한다고, 그

래야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맘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살아왔던 터라

심드렁하게, 농담하듯 내뱉었다. 어쨌거나 K형은 그동안 각색했을 그 시나

리오를 다시 보자고 했다. “읽고 나면 아마 하고 싶어 못 견딜 걸. 하하하.” 나

는 너스레를 떨고 다음 날 숙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

냈다. 일주일 후, 짧은 문자를 받았다. “재밌더라. 그냥 캐주얼하게 만나서 얘

기하자.” 캐주얼하게? 그래, 캐주얼하게 만나서 이번엔 안 되겠다, 다음에 같

이 하자는 뻔한 얘기를 듣고 술 한 잔 얻어먹고 헤어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진짜 캐주얼하게 머리카락도 정리 안 한 채 동료 피디와 K형을 다시 만났다.

K형은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냥 안 한다고 빨리 말해요 형.

그리고 그냥 술이나 한 잔 사줘,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찰나 돌직구

가 날아왔다. “같이 도모해 보자.”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며칠 후, 또 한 번의 각색고를 냈다. K형은 “좋다 정말. 이거, 같이 가자.” 했

다. 캐스팅도 안 된 시나리오인데요? 동료 피디와 나는 멀뚱멀뚱 실감이 나

지 않았다. “그러니까 캐스팅도 같이 해 보자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분명

히 임자가 있을 거야!” 이런 우연이. 이런 기적이! 순간 둘째 조카가 떠올랐다.

앞으로 뭐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OO야, 우리 같이 즐겁게 삶을 견디자. 삼

촌도 잘 견딜게.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 괴로워하지 말고 허허 웃으

며 살아가자.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오지도

않은 미래 걱정하지 말고 지나간 건 지나간 일로 치부해 버리기로 하자. 그저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우연의 기적을 믿고 즐기자고. 내 둘째 조카처럼 넘

어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크하게 일어서며.

견디기 힘든 날엔 단골 막걸릿집의 칸트 제작자 L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

열에 아홉은 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앉아 함께 병맥주를 마신다. 영화 이

야기, 여자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견딜 만 해진다. 가끔은 노래

도 부른다. 다른 이들은 쟤네들은 세상을 견딘다면

서 뭐가 저리 좋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

만 그건 우리가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다. 이왕

지사 삶이 견디는 것이라면 즐겁게 해학적으로

견디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하기호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연출전공 2기 졸업. 당시에는 ‘납득이’ 스타일이었으나 10년 후 같은 학교 전문사 시나리오 전공 11기로 졸업할 당시엔 식스팩, 아니 원팩의 소유자가 됐음. 이야기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만나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음. 이야기를 만나러 다니는 사람, 라면 감식가. 겨울엔 집에서 동면. 가끔 히키코모리가 될까봐 찾아와 주는 술친구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고 있음.

명사 저장, 보관: (특히) 창고 보관

발음대로 옮기자면 스토리지, 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스토리지.’에서의 스토리지, 혹은 스토리를 저장, 보관하고 있는 장소로서의 스토리지(창고) 정도로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을 듯 하다. 스스로를 ‘이야기를 만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 므로, 칼럼의 제목을 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 라 명명하기로 한다.

하기호감독의 스토리지5

60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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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의 시사는 3월 6

일 목요일이었고 그날은 마감일

이었으며 나는 2시 시사를 보고

늦어도 7시경까지는 <몬스터>에

관한 기사 마감을 해야만 했다.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에서 일하

는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업무의

패턴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향

하는 길에 적잖이 신경이 곤두

섰는데, 이유는 단지 조급하게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점 때문

이 아니라 신통치 않을 거라 빤

히 예상되는 작품 때문에 조급하

게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몬스터>는 내게 별다른 관람

의 만족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초반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고

얼마간의 불쾌감까지 선사했다. 분위기는 과도하고 내용은 산만했다.

그런데 그 과도함과 산만함이 지나쳐서 적정한 선을 넘기 시작할 때부

터 비로소 이 영화는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불쾌의

경험이 관심과 호기심의 경험이 된 것이다. 그 경험에 대해 지금 짧게 말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이 <몬스터>라는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전적인 지지

발언인 것처럼 보일까 싶어 다소 망설였던 것이 사실인데, 그런 오해를

불러온다 해도 지금은 영화의 만듦새나 호불호를 떠나 이런 영화의 출

현에 관해 한 번쯤 말해야 할 자리라고 느낀다.

2014년 초반기에 한국 대중영화 몇 편을 만났지만, 대개는 평범했고 더

러는 실망스러웠다. 아이디어는 확실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아이디어

로 머물고 마는 수준의 작품이 많았다. 창의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영화

를 많이 보지 못했다. 아니 창의적 욕망은 있어 보이지만 제도에 주눅들

어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도 선을 넘는 것을 다들 두

려워하고 있었다. 적정선에 걸쳐 서서 웃음과 눈물의 배합 규칙을 철저

히 지켜야 한다는 상업적 클리셰가 그 영화들을 싱겁게 하고 있었다. 하

나부터 열까지 적정하게 조율되어야만 대중영화의 성공적 완제품이 될

수 있다는 압박과 합의의 분위기가 지금 한국 대중영화계에 팽배하다.

그런 점에서라면 <몬스터>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몬스터>는 이른바 내

용과 형식 면에서 거의 대중적이지 않다. 요즘과 같은 분위기에서 본

다면 좀 의아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제대로 작정하고 친 사고인지 완

전한 조율 아래 기획되었다고 여겼으나 실은 벌어져 버린 실수인지 혹

은 그 의도된 사고와 벌어진 실수가 함께 만든 일인지 나는 아직 가늠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 모난 실패작

이 근래의 잘 조율된 성공작들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몬스터>

의 정황을 계기 삼아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걸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넘어서면서 대중을 홀리는 대중영화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기다

리는 것들이다. 물론 선을 넘었을 뿐,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실패작

들도 있다. 그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몬스터>가 그런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건 매력적인 대중영화가 되기 위해

서는 선 안에 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선을 넘어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선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그 어느 매력도 가능하지 않다.

대중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정한 선 안에 잘 머물러야 한다는 건 그

영화로 집단을 움직여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의 명제이지 그 영화로

근사한 창작의 재미를 느끼려는 창작자들이나 그 창작의 결과를 즐기고

자 하는 관람자들의 명제가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영화는 내용과 형식상 거의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성을 자극

해 온 매력적인 대중영화다. 그들은 늘 선을 넘어서 왔고 자주 매력적

이었다. 그때 우린 그들의 영화를 두고 창의적이라며 즐거워하지 않았

던가. 그런 점에서 <몬스터>가 타란티노와 봉준호를 언급해야 할 만큼

의 영화적 사건인가 하는 당신의 반문은 당연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

는 적어도 ‘영화 <몬스터>’를 중시한다기보다 ‘영화 <몬스터>의 출현’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한된 선 밖으로 쑤욱 삐져나와 있는 <몬스터>의 몇 가지 것들만 말해

보는 게 좋겠다. 시골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동생과 단둘이 살았지만,

태수(이민기)라는 살인마에게 동생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복순

(김고은), 선천적인 살인마로 태어나 살인을 일삼아왔고 형 익상의 꼬임

에 빠져 다시 한 번 살인 행각을 저지르던 중 복순의 동생까지 죽이게 된

태수, 이렇게 두 인물의 대립 관계가 <몬스터>의 중심이다.

주인공의 관계를 설명했지만 실상 이 영화는 그 어떤 서사라도 ‘그냥 그

렇다 치고’ 하면서 전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어야 할 개연성과 핍진성, 서사적으로 중요한 그 덕목들을 영화

는 거의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필

요에 따라 불쑥 등장했다가 또 불쑥 사라진다. 그런데 그 조역들이 중요

하다. 심지어 주인공이 서사를 끌고 가는 대신에 조역들이 사건을 발생

시키고 서사를 책임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 서사에는 더더욱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결핍되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에 영화의 서사는 분주하게나마 어쨌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감독은 이 어지러운 관계에 관하여 “사회의 먹이사슬”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몬스터>에서 사건의 발단이 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최상

의 심급에 있는 자는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그 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의 먹이사슬이라는 치열

한 문제가 역설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몬

스터>의 영화적 가치란 짐짓 심각할 것 같은 그런 사회적 근심의 테마

에 있지 않다. 그것으로만 따진다면 <몬스터>의 가치보다 존중받아야

할 대중영화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변호인>은 그 최근

의 예가 아니던가.

다른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그러한 테마를 알아채기까지 얽혀 있을 대

로 얽혀 있는 인물들의 실타래와 그것을 꼬아 놓고 있는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어떤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이 실은 <몬스터>의 희귀

한 가치다.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일들의 연속을 통해 최종적으로 의미

에 닿는 게 <몬스터>의 가치인 셈이다. <몬스터>는 사회의 먹이사슬

을 최종 지시하되 윤리적이기는커녕 피와 웃음보를 함께 갖고 놀면

서 거기까지 간다.

이건 좀 난처한, 지나치게 허술하고 지독한 장난의 차원이다. 하지만

그 장난을 다 거치고 서사의 끝에 이르렀을 때, 여전히 먹이사슬의 최

상위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우린 섬뜩, 보다는 허

탈해지는 것이다. 엉뚱하고 허술한 서사와 나사 빠진 인물들의 뻔뻔

한 향연으로 우회하고 또 우회하더니만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최종

테마에 닿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영화는 말하자면 B무비의 성향을 지녔다고 감독에게 말해주

었을 때 <몬스터> 감독의 대답은 “내 영화는 B무비가 아니다. 그저 한

뼘 정도 비껴가는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바로 B무

비의 특징이다. 그 한 뼘을 멋지게 비껴난 것이 바로 B무비를 사랑해

온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성취이기도 하다.

<몬스터>에서 거기 속하는 것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엄마 경자(김부

선)와 아들 익상(김뢰하)의 캐스팅이다. 영화 속에서는 김부선이 엄

마, 김뢰하가 아들이다. 실제로 김부선은 1961년생, 김뢰하는 1965

년생으로 알려졌다. 외관상으로도 두 배우는 차라리 부부에 가깝다.

그들 관계에 관한 어떤 정보도 영화 안에는 없다. 다만 이 이상한 관

계 설정이 이 영화의 대표적으로 실없는 장난이다. 그런데 이 도를

지나친, 언어적 지칭과 배우의 외양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장난이

영화 내내 불온한 감정과 상상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러한 실없음

과 불온함의 연쇄들로 <몬스터>는 한 편의 매력적인 대중영화가 되

기까지 한다.

거듭 밝혀왔지만, <몬스터>가 걸작이라는 뜻이 아니다. 돌연 한국 대

중영화에서 B무비의 활성화를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나는

김부선과 김뢰하를 엄마와 아들로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다. 그런 발칙함을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중이다. 한국 대중영

화에 탈선(脫線)의 대중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대중영화란, 실은 잘 통제된 영화들

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모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정한석 영화전문지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영화평론 활동도 겸하고 있다. 이 지면에서는 한국영화에 관한 개인적인 단상을 쓰고 있다.

<몬스터>(2014)

<몬스터>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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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의 시사는 3월 6

일 목요일이었고 그날은 마감일

이었으며 나는 2시 시사를 보고

늦어도 7시경까지는 <몬스터>에

관한 기사 마감을 해야만 했다.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에서 일하

는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업무의

패턴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향

하는 길에 적잖이 신경이 곤두

섰는데, 이유는 단지 조급하게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점 때문

이 아니라 신통치 않을 거라 빤

히 예상되는 작품 때문에 조급하

게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몬스터>는 내게 별다른 관람

의 만족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초반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고

얼마간의 불쾌감까지 선사했다. 분위기는 과도하고 내용은 산만했다.

그런데 그 과도함과 산만함이 지나쳐서 적정한 선을 넘기 시작할 때부

터 비로소 이 영화는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불쾌의

경험이 관심과 호기심의 경험이 된 것이다. 그 경험에 대해 지금 짧게 말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이 <몬스터>라는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전적인 지지

발언인 것처럼 보일까 싶어 다소 망설였던 것이 사실인데, 그런 오해를

불러온다 해도 지금은 영화의 만듦새나 호불호를 떠나 이런 영화의 출

현에 관해 한 번쯤 말해야 할 자리라고 느낀다.

2014년 초반기에 한국 대중영화 몇 편을 만났지만, 대개는 평범했고 더

러는 실망스러웠다. 아이디어는 확실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아이디어

로 머물고 마는 수준의 작품이 많았다. 창의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영화

를 많이 보지 못했다. 아니 창의적 욕망은 있어 보이지만 제도에 주눅들

어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도 선을 넘는 것을 다들 두

려워하고 있었다. 적정선에 걸쳐 서서 웃음과 눈물의 배합 규칙을 철저

히 지켜야 한다는 상업적 클리셰가 그 영화들을 싱겁게 하고 있었다. 하

나부터 열까지 적정하게 조율되어야만 대중영화의 성공적 완제품이 될

수 있다는 압박과 합의의 분위기가 지금 한국 대중영화계에 팽배하다.

그런 점에서라면 <몬스터>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몬스터>는 이른바 내

용과 형식 면에서 거의 대중적이지 않다. 요즘과 같은 분위기에서 본

다면 좀 의아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제대로 작정하고 친 사고인지 완

전한 조율 아래 기획되었다고 여겼으나 실은 벌어져 버린 실수인지 혹

은 그 의도된 사고와 벌어진 실수가 함께 만든 일인지 나는 아직 가늠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 모난 실패작

이 근래의 잘 조율된 성공작들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몬스터>

의 정황을 계기 삼아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걸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넘어서면서 대중을 홀리는 대중영화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기다

리는 것들이다. 물론 선을 넘었을 뿐,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실패작

들도 있다. 그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몬스터>가 그런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건 매력적인 대중영화가 되기 위해

서는 선 안에 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선을 넘어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선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그 어느 매력도 가능하지 않다.

대중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정한 선 안에 잘 머물러야 한다는 건 그

영화로 집단을 움직여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의 명제이지 그 영화로

근사한 창작의 재미를 느끼려는 창작자들이나 그 창작의 결과를 즐기고

자 하는 관람자들의 명제가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영화는 내용과 형식상 거의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성을 자극

해 온 매력적인 대중영화다. 그들은 늘 선을 넘어서 왔고 자주 매력적

이었다. 그때 우린 그들의 영화를 두고 창의적이라며 즐거워하지 않았

던가. 그런 점에서 <몬스터>가 타란티노와 봉준호를 언급해야 할 만큼

의 영화적 사건인가 하는 당신의 반문은 당연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

는 적어도 ‘영화 <몬스터>’를 중시한다기보다 ‘영화 <몬스터>의 출현’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한된 선 밖으로 쑤욱 삐져나와 있는 <몬스터>의 몇 가지 것들만 말해

보는 게 좋겠다. 시골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동생과 단둘이 살았지만,

태수(이민기)라는 살인마에게 동생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복순

(김고은), 선천적인 살인마로 태어나 살인을 일삼아왔고 형 익상의 꼬임

에 빠져 다시 한 번 살인 행각을 저지르던 중 복순의 동생까지 죽이게 된

태수, 이렇게 두 인물의 대립 관계가 <몬스터>의 중심이다.

주인공의 관계를 설명했지만 실상 이 영화는 그 어떤 서사라도 ‘그냥 그

렇다 치고’ 하면서 전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어야 할 개연성과 핍진성, 서사적으로 중요한 그 덕목들을 영화

는 거의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필

요에 따라 불쑥 등장했다가 또 불쑥 사라진다. 그런데 그 조역들이 중요

하다. 심지어 주인공이 서사를 끌고 가는 대신에 조역들이 사건을 발생

시키고 서사를 책임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 서사에는 더더욱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결핍되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에 영화의 서사는 분주하게나마 어쨌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감독은 이 어지러운 관계에 관하여 “사회의 먹이사슬”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몬스터>에서 사건의 발단이 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최상

의 심급에 있는 자는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그 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의 먹이사슬이라는 치열

한 문제가 역설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몬

스터>의 영화적 가치란 짐짓 심각할 것 같은 그런 사회적 근심의 테마

에 있지 않다. 그것으로만 따진다면 <몬스터>의 가치보다 존중받아야

할 대중영화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변호인>은 그 최근

의 예가 아니던가.

다른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그러한 테마를 알아채기까지 얽혀 있을 대

로 얽혀 있는 인물들의 실타래와 그것을 꼬아 놓고 있는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어떤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이 실은 <몬스터>의 희귀

한 가치다.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일들의 연속을 통해 최종적으로 의미

에 닿는 게 <몬스터>의 가치인 셈이다. <몬스터>는 사회의 먹이사슬

을 최종 지시하되 윤리적이기는커녕 피와 웃음보를 함께 갖고 놀면

서 거기까지 간다.

이건 좀 난처한, 지나치게 허술하고 지독한 장난의 차원이다. 하지만

그 장난을 다 거치고 서사의 끝에 이르렀을 때, 여전히 먹이사슬의 최

상위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우린 섬뜩, 보다는 허

탈해지는 것이다. 엉뚱하고 허술한 서사와 나사 빠진 인물들의 뻔뻔

한 향연으로 우회하고 또 우회하더니만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최종

테마에 닿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영화는 말하자면 B무비의 성향을 지녔다고 감독에게 말해주

었을 때 <몬스터> 감독의 대답은 “내 영화는 B무비가 아니다. 그저 한

뼘 정도 비껴가는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바로 B무

비의 특징이다. 그 한 뼘을 멋지게 비껴난 것이 바로 B무비를 사랑해

온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성취이기도 하다.

<몬스터>에서 거기 속하는 것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엄마 경자(김부

선)와 아들 익상(김뢰하)의 캐스팅이다. 영화 속에서는 김부선이 엄

마, 김뢰하가 아들이다. 실제로 김부선은 1961년생, 김뢰하는 1965

년생으로 알려졌다. 외관상으로도 두 배우는 차라리 부부에 가깝다.

그들 관계에 관한 어떤 정보도 영화 안에는 없다. 다만 이 이상한 관

계 설정이 이 영화의 대표적으로 실없는 장난이다. 그런데 이 도를

지나친, 언어적 지칭과 배우의 외양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장난이

영화 내내 불온한 감정과 상상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러한 실없음

과 불온함의 연쇄들로 <몬스터>는 한 편의 매력적인 대중영화가 되

기까지 한다.

거듭 밝혀왔지만, <몬스터>가 걸작이라는 뜻이 아니다. 돌연 한국 대

중영화에서 B무비의 활성화를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나는

김부선과 김뢰하를 엄마와 아들로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다. 그런 발칙함을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중이다. 한국 대중영

화에 탈선(脫線)의 대중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대중영화란, 실은 잘 통제된 영화들

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모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정한석 영화전문지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영화평론 활동도 겸하고 있다. 이 지면에서는 한국영화에 관한 개인적인 단상을 쓰고 있다.

<몬스터>(2014)

<몬스터>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킬킬거리는 장난의 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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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를 보고 느낀 가벼운 소감부터 심오한 분석이나 비평까지, 영화에 대한 다양한 글을 싣는다. 기성 평론가나 영화 전공자들이 쓴 학술적인 글도 싣고 일반 관객들의 가벼운 리뷰도 소개해, 영화를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지면이 되길 기대한다. 평론가나 명망가들에게 청탁한 글도 싣겠지만 가급적 <영화부산> 독자와 부산에 살거나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 관객들이 보내 주신 글을 실으려고 한다. 최신 개봉 영화도 좋고, 오래 전에 본 영화에 대해 나름의 시선으로 쓴 글도 좋다. 형식과 분량에 제한 없이 보내주시면 편집자가 선별해서 싣고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한다. 기고가 폭주하길 기대한다. 글 보낼 곳: [email protected]

‘장철민이란 남자의 사랑 이야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

막작이기도 했던 <오직 그대만>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 이상의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장철민(소지섭 분)이란 남자

가 하정화(한효주 분)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봄 혹은 가을에 어울리는 진한 멜로드라마

의 전형이랄까. 언제나 연인의 손을 잡고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흔한 영화다.

그런데 이 흔한 영화가 위치해 있는 필모그래피가 범상치 않다.

<오직 그대만>은 <소풍>(1999)과 <간과 감자>(1997) 등의 단편

으로 주목을 받았던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 출신의 감독 송

일곤의 근작이다. 사실 단편 영화에서 번

득이는 재치와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하던

감독이 장편 영화로 데뷔한 후에 흔한 영

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

니다. 오히려 감독들이 산업의 논리 속에

서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라 할 수 있다. 하

지만 송일곤의 행보는 그렇지 않았다. 데

뷔 초는 물론이고 편집 없이 단 한 테이

크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쁠랑 세

깡스(plan sequence) 기법의 <마법사들>

(2005)과 100여 년 전 쿠바로 이주한 한

인들을 추적한 <시간의 춤>(2009), 그리

고 수령 7200년의 나무 ‘조몬스기’를 담은

<시간의 숲>(2012) 등의 근작들에서도 그

는 자신의 영화 미학을 놓지 않고 있다. 그

렇기 때문에 <오직 그대만>이라는 이 흔한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사이에서 갑자기 유별난 영화로 변

모한다.

한때 잘나갔던 복서 장철민은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막일을 하

며 산다. 월급이 아닌 일당의 생활. 무채색 같던 그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하정화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교

통사고로 시력과 부모를 잃은 전화 상담원 정화는 퇴근 후 TV

드라마를 보기 위해 회사 주차장을 찾고, 그곳에서 일하는 철민

이 그녀를 위해 TV 속 화면을 묘사해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

사랑한다는 말에 수식어는 필요 없다

<오직 그대만> 한동균 영화잡지 [anno.] 편집장

다. 정화와의 생활을 위해 철민이 다시 복싱을 시작하면서부터

둘의 생활과 사랑은 안정에 접어들지만, 수술을 통해서 정화의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철민이 알게 되면서부터 그들

의 행복에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정화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철민은 조급해하기 시

작하고 결국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 도박과 연계된 경기

에 나선다. 정화의 수술과 철민의 싸움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둘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듯하지만, 철민이 밀항선에서 내린 후

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사고 후유증

으로 장애인이 된 철민은 정화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

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정화와 철민이 살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그들이 서로를 찾을 가능성이 사라진 듯 보일 때 둘은 운명적

으로 재회한다.

<오직그대만>이다른 사랑 영화들과 차별화를 꾀하는 방식은

‘독특함’에 있지 않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두 주인공이 만

나서 사랑을 하고 시련을 겪은 뒤 다시 서로를 찾게 되는 이야

기가 영화사 속에서 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리고 때로는 많은 영화의 매력을 갉아먹어

버리는 이 ‘흔함’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

을 파악한 후에 송일곤이 선택한 해결책은

‘흔함’을 ‘독특함’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

라 오히려 이 ‘흔함’을 극도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직 그대만>

은 송일곤의 필모그래피 속에서만 유별난

영화가 아니라, 흔한 멜로드라마들 사이

에서도 유별난 영화가 된다. 가장 보편적

인 이야기의 보편적인 감성을 집어 극대

화함으로써 다른 멜로드라마들과의 차별

성을 확보하기.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보

이는 지점은 바로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

어내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다른 멜로드라마들이 진부해지

지 않기 위해 피할 법한 장치들을 과감히

취하기도 하고, 취할 법한 장치들을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때

로는 정화가 자신의 집을 놔두고 굳이 회사 주차장의 작은 방에

들어와 드라마를 보는 이유나 전 체육관의 관장이 직접 찾아와

재기를 권하던 철민이 갑자기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고

민 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쿨’하게 지나치는가 하면, 때로는 정

화가 봉사 활동을 하는 복지 시설에 철민을 위치시키는 등 자칫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장치들을 끌어안는다. 이 영화에서 중

요한 것은 철민과 정화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도, 이 이야

기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직 그대만>(2011)

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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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를 보고 느낀 가벼운 소감부터 심오한 분석이나 비평까지, 영화에 대한 다양한 글을 싣는다. 기성 평론가나 영화 전공자들이 쓴 학술적인 글도 싣고 일반 관객들의 가벼운 리뷰도 소개해, 영화를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지면이 되길 기대한다. 평론가나 명망가들에게 청탁한 글도 싣겠지만 가급적 <영화부산> 독자와 부산에 살거나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 관객들이 보내 주신 글을 실으려고 한다. 최신 개봉 영화도 좋고, 오래 전에 본 영화에 대해 나름의 시선으로 쓴 글도 좋다. 형식과 분량에 제한 없이 보내주시면 편집자가 선별해서 싣고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한다. 기고가 폭주하길 기대한다. 글 보낼 곳: [email protected]

‘장철민이란 남자의 사랑 이야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

막작이기도 했던 <오직 그대만>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 이상의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장철민(소지섭 분)이란 남자

가 하정화(한효주 분)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봄 혹은 가을에 어울리는 진한 멜로드라마

의 전형이랄까. 언제나 연인의 손을 잡고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흔한 영화다.

그런데 이 흔한 영화가 위치해 있는 필모그래피가 범상치 않다.

<오직 그대만>은 <소풍>(1999)과 <간과 감자>(1997) 등의 단편

으로 주목을 받았던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 출신의 감독 송

일곤의 근작이다. 사실 단편 영화에서 번

득이는 재치와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하던

감독이 장편 영화로 데뷔한 후에 흔한 영

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

니다. 오히려 감독들이 산업의 논리 속에

서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라 할 수 있다. 하

지만 송일곤의 행보는 그렇지 않았다. 데

뷔 초는 물론이고 편집 없이 단 한 테이

크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쁠랑 세

깡스(plan sequence) 기법의 <마법사들>

(2005)과 100여 년 전 쿠바로 이주한 한

인들을 추적한 <시간의 춤>(2009), 그리

고 수령 7200년의 나무 ‘조몬스기’를 담은

<시간의 숲>(2012) 등의 근작들에서도 그

는 자신의 영화 미학을 놓지 않고 있다. 그

렇기 때문에 <오직 그대만>이라는 이 흔한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사이에서 갑자기 유별난 영화로 변

모한다.

한때 잘나갔던 복서 장철민은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막일을 하

며 산다. 월급이 아닌 일당의 생활. 무채색 같던 그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하정화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교

통사고로 시력과 부모를 잃은 전화 상담원 정화는 퇴근 후 TV

드라마를 보기 위해 회사 주차장을 찾고, 그곳에서 일하는 철민

이 그녀를 위해 TV 속 화면을 묘사해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

사랑한다는 말에 수식어는 필요 없다

<오직 그대만> 한동균 영화잡지 [anno.] 편집장

다. 정화와의 생활을 위해 철민이 다시 복싱을 시작하면서부터

둘의 생활과 사랑은 안정에 접어들지만, 수술을 통해서 정화의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철민이 알게 되면서부터 그들

의 행복에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정화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철민은 조급해하기 시

작하고 결국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 도박과 연계된 경기

에 나선다. 정화의 수술과 철민의 싸움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둘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듯하지만, 철민이 밀항선에서 내린 후

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사고 후유증

으로 장애인이 된 철민은 정화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

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정화와 철민이 살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그들이 서로를 찾을 가능성이 사라진 듯 보일 때 둘은 운명적

으로 재회한다.

<오직그대만>이다른 사랑 영화들과 차별화를 꾀하는 방식은

‘독특함’에 있지 않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두 주인공이 만

나서 사랑을 하고 시련을 겪은 뒤 다시 서로를 찾게 되는 이야

기가 영화사 속에서 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리고 때로는 많은 영화의 매력을 갉아먹어

버리는 이 ‘흔함’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

을 파악한 후에 송일곤이 선택한 해결책은

‘흔함’을 ‘독특함’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

라 오히려 이 ‘흔함’을 극도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직 그대만>

은 송일곤의 필모그래피 속에서만 유별난

영화가 아니라, 흔한 멜로드라마들 사이

에서도 유별난 영화가 된다. 가장 보편적

인 이야기의 보편적인 감성을 집어 극대

화함으로써 다른 멜로드라마들과의 차별

성을 확보하기.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보

이는 지점은 바로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

어내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다른 멜로드라마들이 진부해지

지 않기 위해 피할 법한 장치들을 과감히

취하기도 하고, 취할 법한 장치들을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때

로는 정화가 자신의 집을 놔두고 굳이 회사 주차장의 작은 방에

들어와 드라마를 보는 이유나 전 체육관의 관장이 직접 찾아와

재기를 권하던 철민이 갑자기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고

민 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쿨’하게 지나치는가 하면, 때로는 정

화가 봉사 활동을 하는 복지 시설에 철민을 위치시키는 등 자칫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장치들을 끌어안는다. 이 영화에서 중

요한 것은 철민과 정화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도, 이 이야

기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직 그대만>(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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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장식들을 철저히 거

부한 채 그들의 사랑과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을 오롯이 담아내

는 데 집중한다. 철민의 직업인 격투기에 비유하자면 한 대 맞

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드를 올리기보다는 한 대 맞더라도 두 대

이상을 때리는 전술이랄까. 이 영화는 오명을 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밀고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우직하게 앞만 보며 달려나가던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에, 보지 못하던 여자가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말을 할 수 없던 남자가 보이스 오버(voice over)

의 형태를 빌어서라도 “정화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영화를 보던 우리는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사

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사랑한다

는 그 한마디를 위한 것을 말이다. 이 절절한 사랑 속에서 처음

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 순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러닝

타임이 바쳐진 것이다. 다시 한 번 격투기에 비유하자면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위해 상대방의 주먹을 묵묵히 받아내는 복서와

같달까. 이제는 중견 감독에 접어든 송일곤은 단 한 순간의 울

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타르코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전형적인 스토리텔링과 신파들이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

다면, 더 이상 ‘전형적이다’와 ‘신파 같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띄지 않을 거 같다. 사실 진부한 영화가 나쁜 영화인 것

도 아니다. 뭔가가 많이 이야기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많은 사람

에게 보편적인 정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 진부하고 ‘흔한’ 영화가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실은 일련의 영화들이 ‘흔함’을 가리기 위해 시도했던

어설픈 눈가림들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

며 당당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이런 영화들을 앞으로도 계

속 만나고 싶다.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할 때 화려한 수식

어들은 방해만 될 뿐이다.

한동균 영화잡지 [anno.] 편집장.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린다>(2013) 외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였고, 지금은 다섯 번째 영화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오로지 기약 없는 전진만을 허락받은 열차. 애초부터 종착점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열차는 17년째 꽁꽁 얼어붙은 죽음의 땅을

정처 없이 부유 중이다. 지구가 죽음의 땅으로 전락한 원인은 기

상 이변으로, 결국 인류 스스로 자신이 쌓아올린 문명에 종언을

고한 형국이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문명이 초래한 대재앙

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하고자 문명의 첨단이 이룩한 지구대횡단

철도에 운명을 맡긴다. 지구를 호령하던 거대 문명은 파국을 맞

이하였지만, 죽음의 땅에서 도피한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은 우

승열패와 적자생존의 이념이 지배하는 문명의 축소판을 열차 내

에 구현하기에 이른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열차의 지배자 윌

포드를 위시한 위 칸의 기득계층과 이들의 지배하에 놓인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 위 칸의 지배는 언제나 폭정의 외양을 띠어 왔

고,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은 여러 해 전에 발발하였으나 실패하

였던 대규모 반란의 재현을 꿈꾸며 암중모색 중이다.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와 메이슨(틸다 스윈턴 분)의 입을 빌려

역설된 열차의 생존법칙은 균형이다. 열차 바깥의 세계가 죽음

의 땅으로 변모한 후 인류문명을 그대로 빗대어 건설된 설국열

차는 제한적인 자원만을 누릴 수 있는 폐쇄된 생태계로서, 인간

의 신체 혹은 인류 일반으로 은유 되기도 한다. 각자 정해진 ̀위

치에서 본인의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열차의 거주민들.

질주가 아닌, 부유(浮游):

<설국열차> 문성훈 자유기고가

의 내러티브에서 기능하는 신체절단의 상징적 의미-꼬리 칸 거

주민의 저항의식-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꼬리 칸 승

객들의 신체적 결여는 윌포드가 역설한 사회유기체론적 균형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열차의 엔진을 점거하기 위한 꼬리

칸 승객들의 반란은 수많은 희생을 남기게 되고, 종국엔 커티스

와 남궁민수(송강호 분)만이 열차의 머리 칸, 즉 엔진실에 도달

하게 된다. 커티스가 윌포드의 객실 문 앞에 멈춰 섰을 때 관객

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법하다. 결국, 그들이 엔진을 차

지하려 한 것은 무얼 얻기 위함이었을까?

엔진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열차의 지배자가 된다는 뜻이고, 커

티스가 윌포드를 제거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 자신이 또 다른

윌포드-압제자의 자리에 올라선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지나쳐

온 열차 칸의 승객들은 너무도 달라 융합할 수 없는 성격의 층위

를 지니고 있고, 머리 칸의 엔진을 차지한 열차의 지배자가 존재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의 압제하에 놓인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냉철하

게 파악한 이가 바로 보안담당자인 남궁민수이다. 그는 처음부

터 열차 내의 혁명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애당초 그는 열차

내에서 벌어지는 계층 간의 알력다툼에 희망을 두지 않고 열차

의 바깥을 차분히 응시하려 한다. 열차 내 지배구조의 악순환을

깨달은 커티스마저 종국엔 ‘열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는 남궁민

수의 결심에 동의한다.

영화 <설국열차>를 사회 일반에 적용해보자면 봉준호의 디스토

피아가 내포하고 있는 비관적 색채가 한층 짙게 느껴진다. 근대

이후 지배계층의 압제에 저항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현재까지

도 재스민 혁명 등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러한 과정들이 인류 역사의 전반적인 진보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피지배계층의 염원

본래 열차의 정식 승객이 아니었으나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탑

승한 꼬리 칸의 거주민들은 열차 생태계의 균형을 해치는 무임

승차자로 눈총받으며 지배계층의 갖은 탄압에 시달린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꼬리 칸의 몇몇 인물들이 이미 겪었거나

겪게 될 신체절단이다. 상부의 명령으로 아들을 빼앗긴 앤드루(

이완 브램너 분)는 이에 반항하다 팔을 절단당하는 가혹한 형벌

을 받게 된다. 차창 바깥으로 내밀어진 앤드루의 팔은 열차 바깥

의 혹독한 추위로 인해 금세 꽁꽁 얼어붙게 되고, 가차 없이 내

리친 쇠망치는 그의 얼어붙은 팔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이 장면

에서 드러나는 열차 내부와 바깥의 대비. 지배계층과 대립하던

꼬리 칸의 거주민들에게 이 형벌은 열차 바깥의 혹독한 기후를

상기시킴과 아울러 이러한 기후를 자신들의 체제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윌포드 세력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지

닌다. 이렇듯 상위 계층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한 꼬리 칸

의 거주민은 신체절단이라는 기호로 상징된다.

거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전설 가운데에도 신체절단의 키워

드가 등장한다. 살아남기 위해 열차의 꼬리 칸에 무임승차한 군

중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기아를 이기지 못하여 서로 잡아먹기에

이른다. 이를 보다 못한 한 노인이 자신의 팔을 스스로 베어 사

람들에게 내어주며 끔찍한 살육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이 노

인이 훗날 꼬리 칸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길리엄 (존 하트 분)이

다(영화 후반부, 길리엄과 윌포드의 결탁관계가 드러나긴 하지

만 처음부터 그가 윌포드와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꼬리 칸에서 일어난 아비규환과도 같은 혼란은 무임승

차자를 마뜩잖게 여기던 윌포드 세력에게 있어 반길만한 현상이

었겠지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어 내어놓은 꼬리 칸 승객

들의 희생은 그들을 결집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결과적으

로 꼬리 칸 무임승차자의 와해를 원하던 지배계층의 바람을 불

식시킨 저항의 의미

를 지닌다.

영화 후반부, 열차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을 회유하는 윌포

드의 설득을 뿌리친

커티스는 꼬리 칸에

서 차출되어 엔진의

부품 역할로 강제노

동하는 아이를 구출

하다 역시 한쪽 팔을

잃게 된다. 이 또한

앞서 살펴본 바 영화<설국열차>(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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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장식들을 철저히 거

부한 채 그들의 사랑과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을 오롯이 담아내

는 데 집중한다. 철민의 직업인 격투기에 비유하자면 한 대 맞

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드를 올리기보다는 한 대 맞더라도 두 대

이상을 때리는 전술이랄까. 이 영화는 오명을 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밀고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우직하게 앞만 보며 달려나가던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에, 보지 못하던 여자가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말을 할 수 없던 남자가 보이스 오버(voice over)

의 형태를 빌어서라도 “정화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영화를 보던 우리는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사

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사랑한다

는 그 한마디를 위한 것을 말이다. 이 절절한 사랑 속에서 처음

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 순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러닝

타임이 바쳐진 것이다. 다시 한 번 격투기에 비유하자면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위해 상대방의 주먹을 묵묵히 받아내는 복서와

같달까. 이제는 중견 감독에 접어든 송일곤은 단 한 순간의 울

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타르코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전형적인 스토리텔링과 신파들이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

다면, 더 이상 ‘전형적이다’와 ‘신파 같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띄지 않을 거 같다. 사실 진부한 영화가 나쁜 영화인 것

도 아니다. 뭔가가 많이 이야기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많은 사람

에게 보편적인 정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 진부하고 ‘흔한’ 영화가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실은 일련의 영화들이 ‘흔함’을 가리기 위해 시도했던

어설픈 눈가림들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

며 당당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이런 영화들을 앞으로도 계

속 만나고 싶다.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할 때 화려한 수식

어들은 방해만 될 뿐이다.

한동균 영화잡지 [anno.] 편집장.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린다>(2013) 외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였고, 지금은 다섯 번째 영화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오로지 기약 없는 전진만을 허락받은 열차. 애초부터 종착점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열차는 17년째 꽁꽁 얼어붙은 죽음의 땅을

정처 없이 부유 중이다. 지구가 죽음의 땅으로 전락한 원인은 기

상 이변으로, 결국 인류 스스로 자신이 쌓아올린 문명에 종언을

고한 형국이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문명이 초래한 대재앙

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하고자 문명의 첨단이 이룩한 지구대횡단

철도에 운명을 맡긴다. 지구를 호령하던 거대 문명은 파국을 맞

이하였지만, 죽음의 땅에서 도피한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은 우

승열패와 적자생존의 이념이 지배하는 문명의 축소판을 열차 내

에 구현하기에 이른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열차의 지배자 윌

포드를 위시한 위 칸의 기득계층과 이들의 지배하에 놓인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 위 칸의 지배는 언제나 폭정의 외양을 띠어 왔

고,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은 여러 해 전에 발발하였으나 실패하

였던 대규모 반란의 재현을 꿈꾸며 암중모색 중이다.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와 메이슨(틸다 스윈턴 분)의 입을 빌려

역설된 열차의 생존법칙은 균형이다. 열차 바깥의 세계가 죽음

의 땅으로 변모한 후 인류문명을 그대로 빗대어 건설된 설국열

차는 제한적인 자원만을 누릴 수 있는 폐쇄된 생태계로서, 인간

의 신체 혹은 인류 일반으로 은유 되기도 한다. 각자 정해진 ̀위

치에서 본인의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열차의 거주민들.

질주가 아닌, 부유(浮游):

<설국열차> 문성훈 자유기고가

의 내러티브에서 기능하는 신체절단의 상징적 의미-꼬리 칸 거

주민의 저항의식-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꼬리 칸 승

객들의 신체적 결여는 윌포드가 역설한 사회유기체론적 균형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열차의 엔진을 점거하기 위한 꼬리

칸 승객들의 반란은 수많은 희생을 남기게 되고, 종국엔 커티스

와 남궁민수(송강호 분)만이 열차의 머리 칸, 즉 엔진실에 도달

하게 된다. 커티스가 윌포드의 객실 문 앞에 멈춰 섰을 때 관객

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법하다. 결국, 그들이 엔진을 차

지하려 한 것은 무얼 얻기 위함이었을까?

엔진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열차의 지배자가 된다는 뜻이고, 커

티스가 윌포드를 제거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 자신이 또 다른

윌포드-압제자의 자리에 올라선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지나쳐

온 열차 칸의 승객들은 너무도 달라 융합할 수 없는 성격의 층위

를 지니고 있고, 머리 칸의 엔진을 차지한 열차의 지배자가 존재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의 압제하에 놓인 꼬리 칸의 피지배계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냉철하

게 파악한 이가 바로 보안담당자인 남궁민수이다. 그는 처음부

터 열차 내의 혁명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애당초 그는 열차

내에서 벌어지는 계층 간의 알력다툼에 희망을 두지 않고 열차

의 바깥을 차분히 응시하려 한다. 열차 내 지배구조의 악순환을

깨달은 커티스마저 종국엔 ‘열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는 남궁민

수의 결심에 동의한다.

영화 <설국열차>를 사회 일반에 적용해보자면 봉준호의 디스토

피아가 내포하고 있는 비관적 색채가 한층 짙게 느껴진다. 근대

이후 지배계층의 압제에 저항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현재까지

도 재스민 혁명 등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러한 과정들이 인류 역사의 전반적인 진보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피지배계층의 염원

본래 열차의 정식 승객이 아니었으나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탑

승한 꼬리 칸의 거주민들은 열차 생태계의 균형을 해치는 무임

승차자로 눈총받으며 지배계층의 갖은 탄압에 시달린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꼬리 칸의 몇몇 인물들이 이미 겪었거나

겪게 될 신체절단이다. 상부의 명령으로 아들을 빼앗긴 앤드루(

이완 브램너 분)는 이에 반항하다 팔을 절단당하는 가혹한 형벌

을 받게 된다. 차창 바깥으로 내밀어진 앤드루의 팔은 열차 바깥

의 혹독한 추위로 인해 금세 꽁꽁 얼어붙게 되고, 가차 없이 내

리친 쇠망치는 그의 얼어붙은 팔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이 장면

에서 드러나는 열차 내부와 바깥의 대비. 지배계층과 대립하던

꼬리 칸의 거주민들에게 이 형벌은 열차 바깥의 혹독한 기후를

상기시킴과 아울러 이러한 기후를 자신들의 체제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윌포드 세력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지

닌다. 이렇듯 상위 계층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한 꼬리 칸

의 거주민은 신체절단이라는 기호로 상징된다.

거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전설 가운데에도 신체절단의 키워

드가 등장한다. 살아남기 위해 열차의 꼬리 칸에 무임승차한 군

중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기아를 이기지 못하여 서로 잡아먹기에

이른다. 이를 보다 못한 한 노인이 자신의 팔을 스스로 베어 사

람들에게 내어주며 끔찍한 살육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이 노

인이 훗날 꼬리 칸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길리엄 (존 하트 분)이

다(영화 후반부, 길리엄과 윌포드의 결탁관계가 드러나긴 하지

만 처음부터 그가 윌포드와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꼬리 칸에서 일어난 아비규환과도 같은 혼란은 무임승

차자를 마뜩잖게 여기던 윌포드 세력에게 있어 반길만한 현상이

었겠지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어 내어놓은 꼬리 칸 승객

들의 희생은 그들을 결집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결과적으

로 꼬리 칸 무임승차자의 와해를 원하던 지배계층의 바람을 불

식시킨 저항의 의미

를 지닌다.

영화 후반부, 열차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을 회유하는 윌포

드의 설득을 뿌리친

커티스는 꼬리 칸에

서 차출되어 엔진의

부품 역할로 강제노

동하는 아이를 구출

하다 역시 한쪽 팔을

잃게 된다. 이 또한

앞서 살펴본 바 영화<설국열차>(2013)

66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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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담은 이러한 저항운동이 절대자의 조종과 감시에 의해 수행

된 계획의 일부였음이 드러나고, 계층의 피라미드 구조가 엄연

히 존재하는 한 열차 내의 진정한 혁명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두고 보자면 노예의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열차의 승객들을 모두 죽이고, 두 명의

어린아이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한다는 영화의 결말이 마냥

찜찜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사

는 세상은 설국열차처럼 일거에 멈춰 세울 수 없는 무형의 거

대 열차이기 때문이다.

문성훈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나, 전공과 하등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는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보러 다니며 무위도식, 앞으로 살아갈 바를 암중모색 중이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에 참여했다.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도 영화를 공부

하고 싶다면서 예술영화 한 편 보지 않았던 데에 대한 반성이

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한국

에 처음으로 방문해 인터뷰한 장면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변호사, 파일럿 등 꿈이 유난히 많

던 내게 그 많은 꿈을 준 매체가 바로 영화라는 사실을 그때 깨

달은 것이다.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꿈을 꿨으면 좋

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해맑은 얼굴로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동기들의 반응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네들의 입에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오손 웰즈’ 등 발음도 어려운 이름

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동기들에 비해서 나는 햇병아리였다.

<명화극장><토요명화> 등을 보며 영화 꿈을 키웠던 소극적인

나와는 달리 그들은 비디오로 찾아보는 마니아였던 것이다.

사투리 억양을 서서히 고치면서 남학생들의 눈길이 쑥스러워

모자를 쓰고 다녔던, 대학 신입생이었던 1996년 그해, 테오 앵

겔로폴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은 극장에서 만난 생애 첫

예술영화였다.

영화는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으러 떠난 남매의 여정을 그렸다.

매일 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탈까 말까 고민하던 남매는 기차

에 오른 순간 껴안으며 ‘드디어 해냈다’고 기뻐한다. 갓 열 살

이나 됐을까. 이들 남매에게 기차를 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

다. 그러니 그들의 여정이 아무 일 없이 끝나기를 바란 것은 무

리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냉정하다. 결코 정의롭거나 드라마틱하지 않

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 준다. 어린 누나가 트럭 기사에

게 몹쓸 짓을 당하는 순간이 그렇다. 동생이 잠든 사이 술 취한

트럭 기사는 누나를 트럭 화물칸으로 끌고 간다. 화면은 화물칸

을 멀리서 보여주고 있다. 누나가 끌려 들어간 직후 트럭 옆으

로 승용차가 한 대 정차한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본 걸까?

저 운전사가 구해줄까?’ 기대했지만 운전기사는 그저 자기 볼

일을 보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운 것이었다. ‘영화처럼’ 시간에 딱

맞춰 누군가 등장해서 구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 없는 것 그건 바로 ‘정의’와 ‘드라마’라

고.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본다고. 세상에 없

는 것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의

도 드라마도 찾아볼 수 없다. 덤덤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누군가 묻는다. 현실도 갑갑해 죽겠는데 굳이 그런 영화를 봐서

더 고통스러울 건 뭐냐고. 현실이 괴로워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쇼핑도 하

고 여행도 가고 영

화도 보고 하는데

뭐하러 애써 지긋

지긋한 현실을 그

려낸 그런 영화를

보고 더 답답해하

고 괴로워하느냐

고. 예전의 나라면

반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라면, 보

고 싶지 않다. 지

금의 나는 한바탕

게임을 하듯이 볼

거리가 많은 액션, 혹은 보상심리 가득한 달달한 로맨스 영화

나 볼 것이다. 절대로 ‘개입하고, 분노하고 가슴 먹먹해지는’ 영

화는 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영화를 보면서까지 뇌를

굴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을

때 망설였다.

성장한다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안개 속의 풍경>윤혜림 KNN 기자

<안개 속의 풍경L̀andscape in the Mist>(1988)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봐 버렸다.

기억 속 강렬한 몇 장면을 되뇌며 영화감상을 쓰는 것은 불가

능했다. 영화리뷰라는 막중한 숙제를 받았을 때 적어도 다시

한 번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른 영

화를 보고 감상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영화를 오랜 세

월이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내심 궁금했던 것

도 사실이다.

결론은 달랐고, 나는 놀랐다. 18년의 세월이 사람을 바꿔버렸나

보다. 답답한데 그렇게 분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 하

고 끄덕인다. 화가 나 먹먹한 가슴을 치며 눈물이 나던 스무 살

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나는 왜 화가 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슬프지 않았을까. 영화는 변함이 없는데 영화를 보는 내

가 변했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화났던 일들이 지금은 익숙하게

이해하고 지나치는 상태가 됐기 때문이리라.

지금 내 모습, 스무 살 때 바라던 내 모습은 아니다.

내 나이가 되면 인생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고 자신감에 넘치

고 누군가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더 막막하다. 사춘기 때도, 대학 원서를 낼 때도,

취업을 할 때도 고민하지 않았던 고민을 지금에야 하고 있다.

38살. 지금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

스무 살의 내게는 시간과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도 가

능성도 희박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

고 싶지 않아 발악한다). 그런데 고민의 강도는 더하고, 답은 보

이지 않는다.

스무 살 때 닥친 안개 속의 풍경은 앞이 막혀 갑갑하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설렘이 있었

다. 확고한 꿈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했기에 두려워도 신이 났

다. 안개가 있어도 나아갈 수 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안개는

걷혔지만 두렵다.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곳이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더욱 답답하다. 그럼 이제는 어디

로 가야 하나. 꿈도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걸음을 옮길 수조

차 없다. 안개가 없어도 나아갈 수 없다.

세상을 겪어가는 여정. 어린 남매는 매번 무임승차를 했지만

표를 사야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야 알게 된다.

하지만 표를 살 돈은 없다. 누나는 동생을 위해 선택한다. 무언

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 어린 누나

는 여행을 통해 깨달아버렸다. 그렇게 얻어낸 기차표의 목적지

는 예상을 뒤엎는다. 힘든 여정에 지쳐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

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를 찾는 여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무

모한 동심은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어린 남매는 아버지가 있

다는 독일 국경에 닿았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영원히 돌아오

지 못할 강.

영화는 아이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전해준다. 추

악한 어른의 모습도 겪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알게 되면

서 아이들은 급작스럽게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좌절하고 아

프고 외롭고.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대사가 쓰라리다. 내 생애 접한 첫 예술영화는 지금까지도 내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것인가.

테오 앵겔로폴로스 감독은 한 장면을 커트하지 않고 오래 찍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롱테이크는 관객에게 적극적인 개입과

해석을 요구하는 지능적인 영화기법이다. 영화 <안개 속의 풍경>

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입맛에 맞게 잘라내고 없애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롱테이크 촬영은 인생과 닮았다. 싫은 기억을,

상처를 잘라내고 원하는 것만 갖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닮았

다. 길고 긴 한 장면에서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녹여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다.

이 영화는 내게 답을 요구한다.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난… 미쳤을까?

윤혜림 2001년 KNN 입사. 세상에 내몰린 히키코모리. 주제에 얼토당토않게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다 기자가 됐음. 둘 다 잘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지만, 결국 둘 다 소질이 없다고 느끼고 있음. 입사 이래 거의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화와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음. 요즘은 너무나 원하는 걸 못 하는 게 슬픈 건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슬픈 건지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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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담은 이러한 저항운동이 절대자의 조종과 감시에 의해 수행

된 계획의 일부였음이 드러나고, 계층의 피라미드 구조가 엄연

히 존재하는 한 열차 내의 진정한 혁명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두고 보자면 노예의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열차의 승객들을 모두 죽이고, 두 명의

어린아이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한다는 영화의 결말이 마냥

찜찜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사

는 세상은 설국열차처럼 일거에 멈춰 세울 수 없는 무형의 거

대 열차이기 때문이다.

문성훈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나, 전공과 하등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는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보러 다니며 무위도식, 앞으로 살아갈 바를 암중모색 중이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에 참여했다.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도 영화를 공부

하고 싶다면서 예술영화 한 편 보지 않았던 데에 대한 반성이

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한국

에 처음으로 방문해 인터뷰한 장면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변호사, 파일럿 등 꿈이 유난히 많

던 내게 그 많은 꿈을 준 매체가 바로 영화라는 사실을 그때 깨

달은 것이다.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꿈을 꿨으면 좋

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해맑은 얼굴로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동기들의 반응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네들의 입에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오손 웰즈’ 등 발음도 어려운 이름

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동기들에 비해서 나는 햇병아리였다.

<명화극장><토요명화> 등을 보며 영화 꿈을 키웠던 소극적인

나와는 달리 그들은 비디오로 찾아보는 마니아였던 것이다.

사투리 억양을 서서히 고치면서 남학생들의 눈길이 쑥스러워

모자를 쓰고 다녔던, 대학 신입생이었던 1996년 그해, 테오 앵

겔로폴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은 극장에서 만난 생애 첫

예술영화였다.

영화는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으러 떠난 남매의 여정을 그렸다.

매일 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탈까 말까 고민하던 남매는 기차

에 오른 순간 껴안으며 ‘드디어 해냈다’고 기뻐한다. 갓 열 살

이나 됐을까. 이들 남매에게 기차를 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

다. 그러니 그들의 여정이 아무 일 없이 끝나기를 바란 것은 무

리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냉정하다. 결코 정의롭거나 드라마틱하지 않

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 준다. 어린 누나가 트럭 기사에

게 몹쓸 짓을 당하는 순간이 그렇다. 동생이 잠든 사이 술 취한

트럭 기사는 누나를 트럭 화물칸으로 끌고 간다. 화면은 화물칸

을 멀리서 보여주고 있다. 누나가 끌려 들어간 직후 트럭 옆으

로 승용차가 한 대 정차한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본 걸까?

저 운전사가 구해줄까?’ 기대했지만 운전기사는 그저 자기 볼

일을 보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운 것이었다. ‘영화처럼’ 시간에 딱

맞춰 누군가 등장해서 구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 없는 것 그건 바로 ‘정의’와 ‘드라마’라

고.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본다고. 세상에 없

는 것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의

도 드라마도 찾아볼 수 없다. 덤덤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누군가 묻는다. 현실도 갑갑해 죽겠는데 굳이 그런 영화를 봐서

더 고통스러울 건 뭐냐고. 현실이 괴로워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쇼핑도 하

고 여행도 가고 영

화도 보고 하는데

뭐하러 애써 지긋

지긋한 현실을 그

려낸 그런 영화를

보고 더 답답해하

고 괴로워하느냐

고. 예전의 나라면

반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라면, 보

고 싶지 않다. 지

금의 나는 한바탕

게임을 하듯이 볼

거리가 많은 액션, 혹은 보상심리 가득한 달달한 로맨스 영화

나 볼 것이다. 절대로 ‘개입하고, 분노하고 가슴 먹먹해지는’ 영

화는 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영화를 보면서까지 뇌를

굴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을

때 망설였다.

성장한다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안개 속의 풍경>윤혜림 KNN 기자

<안개 속의 풍경L̀andscape in the Mist>(1988)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봐 버렸다.

기억 속 강렬한 몇 장면을 되뇌며 영화감상을 쓰는 것은 불가

능했다. 영화리뷰라는 막중한 숙제를 받았을 때 적어도 다시

한 번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른 영

화를 보고 감상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영화를 오랜 세

월이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내심 궁금했던 것

도 사실이다.

결론은 달랐고, 나는 놀랐다. 18년의 세월이 사람을 바꿔버렸나

보다. 답답한데 그렇게 분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 하

고 끄덕인다. 화가 나 먹먹한 가슴을 치며 눈물이 나던 스무 살

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나는 왜 화가 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슬프지 않았을까. 영화는 변함이 없는데 영화를 보는 내

가 변했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화났던 일들이 지금은 익숙하게

이해하고 지나치는 상태가 됐기 때문이리라.

지금 내 모습, 스무 살 때 바라던 내 모습은 아니다.

내 나이가 되면 인생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고 자신감에 넘치

고 누군가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더 막막하다. 사춘기 때도, 대학 원서를 낼 때도,

취업을 할 때도 고민하지 않았던 고민을 지금에야 하고 있다.

38살. 지금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

스무 살의 내게는 시간과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도 가

능성도 희박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

고 싶지 않아 발악한다). 그런데 고민의 강도는 더하고, 답은 보

이지 않는다.

스무 살 때 닥친 안개 속의 풍경은 앞이 막혀 갑갑하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설렘이 있었

다. 확고한 꿈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했기에 두려워도 신이 났

다. 안개가 있어도 나아갈 수 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안개는

걷혔지만 두렵다.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곳이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더욱 답답하다. 그럼 이제는 어디

로 가야 하나. 꿈도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걸음을 옮길 수조

차 없다. 안개가 없어도 나아갈 수 없다.

세상을 겪어가는 여정. 어린 남매는 매번 무임승차를 했지만

표를 사야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야 알게 된다.

하지만 표를 살 돈은 없다. 누나는 동생을 위해 선택한다. 무언

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 어린 누나

는 여행을 통해 깨달아버렸다. 그렇게 얻어낸 기차표의 목적지

는 예상을 뒤엎는다. 힘든 여정에 지쳐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

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를 찾는 여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무

모한 동심은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어린 남매는 아버지가 있

다는 독일 국경에 닿았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영원히 돌아오

지 못할 강.

영화는 아이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전해준다. 추

악한 어른의 모습도 겪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알게 되면

서 아이들은 급작스럽게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좌절하고 아

프고 외롭고.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대사가 쓰라리다. 내 생애 접한 첫 예술영화는 지금까지도 내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것인가.

테오 앵겔로폴로스 감독은 한 장면을 커트하지 않고 오래 찍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롱테이크는 관객에게 적극적인 개입과

해석을 요구하는 지능적인 영화기법이다. 영화 <안개 속의 풍경>

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입맛에 맞게 잘라내고 없애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롱테이크 촬영은 인생과 닮았다. 싫은 기억을,

상처를 잘라내고 원하는 것만 갖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닮았

다. 길고 긴 한 장면에서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녹여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다.

이 영화는 내게 답을 요구한다.

“성장하는 것은 미쳐가는 거야.”

난… 미쳤을까?

윤혜림 2001년 KNN 입사. 세상에 내몰린 히키코모리. 주제에 얼토당토않게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다 기자가 됐음. 둘 다 잘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지만, 결국 둘 다 소질이 없다고 느끼고 있음. 입사 이래 거의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화와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음. 요즘은 너무나 원하는 걸 못 하는 게 슬픈 건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슬픈 건지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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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자기네 별로 돌아간 도민준의 빈자리는 이제 누구의 몫이 될까?

슈퍼 히어로가 머물고 간 자리가 폐허라면, 애심을 구원하고 떠난 그 남자의 빈자리에는

그를 향한 여운이 머문다. 내친김에 꼽아 본 영화 속 매력남들.

멋진 남! 좋은 남! 달콤한 남!

영화 속

남남남

멋진

좋은

달콤한

아화의 청재킷, 선글라스, 오토바이, 삐

딱한 말투와 표정. 화룡점정은 이 쾌남

아의 순정! 웨딩드레스를 입은 죠죠를

태우고 달리는 오토바이 질주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천장지구天若有情>(1990)

이 영화를 보신 분들, 팝송 꽤나 들었던 분들이라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는 그 소절, 그 장면! ‘웬

다이아~♬’ 케빈 코스트너 이후, 여인의 몸과 마음마저 지

켜내는 보디가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보디가드The Bodyguard>(1992) 1

세대와 취향에 따라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 The Vampire Chronicles>(1994)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뱀파이어 장르와 하이틴 로맨스의

결합,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결합은 여심뿐만

아니라 남심을 흔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그나저나 외계인에

뺏기고, 뱀파이어에 뺏기고, 좀비에 뺏기고… 남자들이여… :p ).

<트와일라잇Twilight>(2008)

5

<시티 라이트City Lights>(1931)이 한 편에 다 있다! 남자, 여자,

헌신, 배려, 웃음, 눈물 그리고

재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랑을 전염시키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영화 속 떠돌이는

멋진 남, 좋은 남, 달콤한 남

이며 이 작품을 연출한

찰리 채플린은 ‘대단한 남’이다. 3꽃동산과 ‘겨울 왕국’을 선물한 에드워드 시저핸즈!

역대 최강 이벤트 남 등극!

<가위손Edward Scissorhands>(1990)

6 <웜 바디스Warm Bodies>(2012)죽음으로 맺어지는 사랑은 봤어도, 죽고

나서 시작하는 사랑이라니… 하이틴 서사에 좀비 장르를 가미하면서 R의 순정은 강

력하게 여심을 두드린다. 가을 전어는 집 나

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고, 봄날에 핀 사

랑은 멈춘 좀비의 심장도 다시 뛰게 한다. 9108리더의 굳건함을, 정치인의 정직을, 그리고 남자의

품격을 두루 느끼게 해 주는 그 남자, 앤드류 쉐퍼드.

<위험한 정사><원초적 본능><폭로> 등에서 위험한

사랑의 대명사로 이름 날리더니 이 영화로 마이클

더글라스는 완벽한 대통령으로 거듭난다.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1995)

4<귀여운 여인Pretty Woman>(1990) 줄리아 로버츠의 제멋대로 캐릭터를 기꺼이 품어주는 그의

그윽한 미소에 첫 번째 KO. 럭셔리 세단에 수트, 이벤트를

겸비한 완벽남 설정에 두 번째 KO. 줄리아 로버츠도

매력적이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나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의 기준을 제대로 제시한 리차드 기어 차지다.

<너는 내 운명>(2005)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황정민의

순애보는 그야말로 다 차려놓은

밥상이다.

백마 탄 왕자가 현실에 어딨어?! 이런 분들을

위해 나타난 실속형 DIY 매력남, 홍반장!

옛말에 손재주 좋고 부지런한 남자에게 시집

가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했다. 세일즈,

마케팅, 목공, 일반 상식, 스포츠까지…

그 놈의 오지랖만 옆에서 잘 조절한다면

이만한 남자도 없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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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 장지욱 부산영상위원회

자기네 별로 돌아간 도민준의 빈자리는 이제 누구의 몫이 될까?

슈퍼 히어로가 머물고 간 자리가 폐허라면, 애심을 구원하고 떠난 그 남자의 빈자리에는

그를 향한 여운이 머문다. 내친김에 꼽아 본 영화 속 매력남들.

멋진 남! 좋은 남! 달콤한 남!

영화 속

남남남

멋진

좋은

달콤한

아화의 청재킷, 선글라스, 오토바이, 삐

딱한 말투와 표정. 화룡점정은 이 쾌남

아의 순정! 웨딩드레스를 입은 죠죠를

태우고 달리는 오토바이 질주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천장지구天若有情>(1990)

이 영화를 보신 분들, 팝송 꽤나 들었던 분들이라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는 그 소절, 그 장면! ‘웬

다이아~♬’ 케빈 코스트너 이후, 여인의 몸과 마음마저 지

켜내는 보디가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보디가드The Bodyguard>(1992) 1

세대와 취향에 따라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 The Vampire Chronicles>(1994)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뱀파이어 장르와 하이틴 로맨스의

결합,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결합은 여심뿐만

아니라 남심을 흔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그나저나 외계인에

뺏기고, 뱀파이어에 뺏기고, 좀비에 뺏기고… 남자들이여… :p ).

<트와일라잇Twilight>(2008)

5

<시티 라이트City Lights>(1931)이 한 편에 다 있다! 남자, 여자,

헌신, 배려, 웃음, 눈물 그리고

재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랑을 전염시키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영화 속 떠돌이는

멋진 남, 좋은 남, 달콤한 남

이며 이 작품을 연출한

찰리 채플린은 ‘대단한 남’이다. 3꽃동산과 ‘겨울 왕국’을 선물한 에드워드 시저핸즈!

역대 최강 이벤트 남 등극!

<가위손Edward Scissorhands>(1990)

6 <웜 바디스Warm Bodies>(2012)죽음으로 맺어지는 사랑은 봤어도, 죽고

나서 시작하는 사랑이라니… 하이틴 서사에 좀비 장르를 가미하면서 R의 순정은 강

력하게 여심을 두드린다. 가을 전어는 집 나

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고, 봄날에 핀 사

랑은 멈춘 좀비의 심장도 다시 뛰게 한다. 9108리더의 굳건함을, 정치인의 정직을, 그리고 남자의

품격을 두루 느끼게 해 주는 그 남자, 앤드류 쉐퍼드.

<위험한 정사><원초적 본능><폭로> 등에서 위험한

사랑의 대명사로 이름 날리더니 이 영화로 마이클

더글라스는 완벽한 대통령으로 거듭난다.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1995)

4<귀여운 여인Pretty Woman>(1990) 줄리아 로버츠의 제멋대로 캐릭터를 기꺼이 품어주는 그의

그윽한 미소에 첫 번째 KO. 럭셔리 세단에 수트, 이벤트를

겸비한 완벽남 설정에 두 번째 KO. 줄리아 로버츠도

매력적이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나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의 기준을 제대로 제시한 리차드 기어 차지다.

<너는 내 운명>(2005)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황정민의

순애보는 그야말로 다 차려놓은

밥상이다.

백마 탄 왕자가 현실에 어딨어?! 이런 분들을

위해 나타난 실속형 DIY 매력남, 홍반장!

옛말에 손재주 좋고 부지런한 남자에게 시집

가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했다. 세일즈,

마케팅, 목공, 일반 상식, 스포츠까지…

그 놈의 오지랖만 옆에서 잘 조절한다면

이만한 남자도 없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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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영화의전당 야외상영회

<장사익 소리판-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상영일정(총 13회) ※ 프린트 상태 및 배급사 사정에 따라 작품 또는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음

상영일 한국어 제목 감독 출연 min 등급 자료종류 제작년도 제작국가

1 4월 30일 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아키노스 오드리 토투, 프랑수아 다미앙 108 12세 DCP 2011 프랑스

2 5월 14일 눈의 여왕(한국어더빙) 블라드 바르베 (목소리)박보영, 이수근 76 전체 DCP 2012 러시아

3 6월 11일 그대를 사랑합니다 추창민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118 15세 DCP 2010 한국

4 6월 25일 베른의 기적 손케 보르트만 루이스 클람로스, 피터 로메이어 118 전체 HD TAPE 2003 독일

5 7월 2일 언터쳐블:1%의 우정 올리비에르 나카체 프랑수아 클루제, 오마 사이 112 12세 DCP 2011 프랑스

6 7월 9일 7번방의 선물 이환경 류승룡, 박신혜 127 15세 DCP 2012 한국

7 7월 16일 맘마미아 필리다 로이드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108 12세 35mm 2008 미국

8 8월 13일 블랙 산제이릴라 반살리 라니 무케르지, 아미타브 밧찬 124 전체 Blu-ray 2005 인도

9 8월 20일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형제 세실 드 프랑스, 토마 도레 87 12세 DCP 2011 벨기에

10 8월 27일 쉘부르의 우산 자크드미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91 15세 35mm 1964 프랑스

11 9월 3일 프렌치 캉캉 장 르누아르 장 가뱅, 프랑수아즈 아르눌 102 15세 35mm 1954 프랑스

12 9월 10일 세 얼간이 라즈쿠마르 히라니 아미르 칸, 마드하반 141 12세 Blu-ray 2009 인도

13 9월 17일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앨런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94 15세 35mm 2011 미국

일시 5월 10일(토) 오후 7시 30분 장소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요금 R 80,000원 | S 70,000원 | A 60,000원 | 학생석 30,000원문의 051-780-6000

세상이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위로가 더욱 절실해진다. 때마침 독특한 창법과 감성으로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는 장사익의 소리판이 따뜻한 봄날 5월에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특별공연으로 펼쳐진다. 영화 같은 그 자신의 삶과 같이 애절하고 구성진 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며, 특히 어버이날을 맞아 온 가족들이 함께 영화의전당에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시절, 한동안 암울한 삶에서 헤매던 장사익은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스스로의 기쁨을 갖게 되었다. 수많은 인연들, 부모형제, 아내, 자식들, 친구들, 심지어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들 모두가 노래하는 오늘날의 기쁨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모든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만난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노래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찔레꽃><꽃구경><여행> 등 그동안 불러왔던 노래들과 7집에 수록된 <모란이 피기까지는><기차는 간다> 등의 노래와 주옥같은 옛 가요들을 장사익 특유의 구성진 가락으로 소리판을 펼칠 것이다.

45세의 나이에 데뷔한 늦깎이 뮤지션 장사익은 국악과 재즈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한 서린 절창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면서 청중들의 가슴을 후려치는 진정한 소리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

인 소리’를 내는 가수로 알려진 그를 두고 음악평론가 강헌은 ‘세기말의 위안’이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여겨져 힘겹게 느껴지지만 “스스로의 오늘을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인연을 생각하면 바로 그 자리가 ‘꽃자리’임을 모두 함께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장사익은 미국,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등 해외 공연도 여러 차례 가져 한국의 소리를 세계인의 가슴속에 심고 있으며, 수준 높은 한국의 예술을 세계 속에 퍼뜨리고 있다.

5월 10일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특별공연은 장사익 외에 정재열, 최선배, 고석용 등 15명의 연주자가 함께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의전당 홈페이지(www.dureraum.org) 참고.

국도예술관 <올빼미 상영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11시 50분부터 첫차 다닐 때 까지밤새도록 영화를 보는 국도예술관만의 특별한 상영회

4월 26일(토) 밤 11시 50분 | 5월 24일(토) 밤 11시 50분6월 21일(토) 밤 11시 50분

[참가비]일반 12,000원카페회원 (국도예술관 네이버카페에 가입된 회원) 10,000원정회원 (오프라인에서 가입 가능한 유료회원) 8,000원(동반 1인 적용)

국도 상영예정작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디태치먼트><필로미나의 기적><런치박스><한공주><아버지의 이메일><신부의 아이들><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웨이스트 랜드>

*주말 / 공휴일 상영료 인상 안내일반 월~금: 6,000원 토/일/공휴일: 7,000원정회원/경노/장애인 5,000원(주중·주말 동일)청소년 월~금: 5,000원 토/일/공휴일: 6,000원

부산평화영화제는 평화의 소중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사단법인 부산어린이어깨동무가 주최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테마영화제다. 올해로 5회를 맞는 부산평화영화제는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국도예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현실의 벽 앞에서 삶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화를 통해 마음의 치유를 제공하기 위해 올해의 소주제는 ‘힐링’으로 선정했다.

2014년 제5회를 맞이하는 부산평화영화제는 처음으로 공모전을 도입 그동안 기성영화들을 선정해 상영해오던 방식에서 공모제를 병행하게 된다. 이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으로 공모 출품 대상은 장르와 시간에 제한 없이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작품으로서 평화의 키워드(인권, 환경, 차별, 갈등, 비폭력, 반전, 나눔, 공동체 등)를 담고 있으면 된다. 부산평화영화제의 모든 작품은 무료로 진행된다.

제5회 부산평화영화제6월 27일(금)~29일(일) 3일간 국도예술관에서 개최

마티네 콘서트 <서희태의 영화가 들리는 콘서트 9> 일시 2014년 5월 13일(화) 오전 11시 장소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출연 진행 서희태, 영화감독 윤종찬, 테너 전병호, 김경요금 20,000원

<조윤범의 시네마 클래식 시리즈 7 -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일시 2014년 6월 10일(화) 오전 11시 장소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출연 진행 조윤범, 연주 콰르텟 엑스 요금 20,000원

2014 영화의전당 야외상영회가 4월부터 시작된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무료로 진행되어 지난 2년간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야외상영회는 올해부터 ‘문화가 있는 날’ 수요일 오후 8시 상영으로 시간을 변경하였다. 4월 30일 영화 <시작은 키스>를 시작으로 9월 17일까지 모두 13편의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아카이브 소장작, 대중성 있는 작품과 예술영화, 고전영화와 근작영화들을 균형 있게 편성하였다. 4월과 5월은 월 1회, 6월은 월 2회, 7월은 월 3회 각각 상영하며, 8월 13일부터는 매주 상영할 예정이다.

일시 2014년 4월 30일~9월 17일 기간 중 지정 (수) 오후 8시 장소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상영 횟수 <시작은 키스> 등 13편, 총 13회 요금 무료

영화의전당 프로그램 소개

국도예술관 4~6월 상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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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영화의전당 야외상영회

<장사익 소리판-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상영일정(총 13회) ※ 프린트 상태 및 배급사 사정에 따라 작품 또는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음

상영일 한국어 제목 감독 출연 min 등급 자료종류 제작년도 제작국가

1 4월 30일 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아키노스 오드리 토투, 프랑수아 다미앙 108 12세 DCP 2011 프랑스

2 5월 14일 눈의 여왕(한국어더빙) 블라드 바르베 (목소리)박보영, 이수근 76 전체 DCP 2012 러시아

3 6월 11일 그대를 사랑합니다 추창민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118 15세 DCP 2010 한국

4 6월 25일 베른의 기적 손케 보르트만 루이스 클람로스, 피터 로메이어 118 전체 HD TAPE 2003 독일

5 7월 2일 언터쳐블:1%의 우정 올리비에르 나카체 프랑수아 클루제, 오마 사이 112 12세 DCP 2011 프랑스

6 7월 9일 7번방의 선물 이환경 류승룡, 박신혜 127 15세 DCP 2012 한국

7 7월 16일 맘마미아 필리다 로이드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108 12세 35mm 2008 미국

8 8월 13일 블랙 산제이릴라 반살리 라니 무케르지, 아미타브 밧찬 124 전체 Blu-ray 2005 인도

9 8월 20일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형제 세실 드 프랑스, 토마 도레 87 12세 DCP 2011 벨기에

10 8월 27일 쉘부르의 우산 자크드미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91 15세 35mm 1964 프랑스

11 9월 3일 프렌치 캉캉 장 르누아르 장 가뱅, 프랑수아즈 아르눌 102 15세 35mm 1954 프랑스

12 9월 10일 세 얼간이 라즈쿠마르 히라니 아미르 칸, 마드하반 141 12세 Blu-ray 2009 인도

13 9월 17일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앨런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94 15세 35mm 2011 미국

일시 5월 10일(토) 오후 7시 30분 장소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요금 R 80,000원 | S 70,000원 | A 60,000원 | 학생석 30,000원문의 051-780-6000

세상이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위로가 더욱 절실해진다. 때마침 독특한 창법과 감성으로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는 장사익의 소리판이 따뜻한 봄날 5월에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특별공연으로 펼쳐진다. 영화 같은 그 자신의 삶과 같이 애절하고 구성진 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며, 특히 어버이날을 맞아 온 가족들이 함께 영화의전당에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시절, 한동안 암울한 삶에서 헤매던 장사익은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스스로의 기쁨을 갖게 되었다. 수많은 인연들, 부모형제, 아내, 자식들, 친구들, 심지어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들 모두가 노래하는 오늘날의 기쁨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모든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만난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노래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찔레꽃><꽃구경><여행> 등 그동안 불러왔던 노래들과 7집에 수록된 <모란이 피기까지는><기차는 간다> 등의 노래와 주옥같은 옛 가요들을 장사익 특유의 구성진 가락으로 소리판을 펼칠 것이다.

45세의 나이에 데뷔한 늦깎이 뮤지션 장사익은 국악과 재즈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한 서린 절창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면서 청중들의 가슴을 후려치는 진정한 소리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

인 소리’를 내는 가수로 알려진 그를 두고 음악평론가 강헌은 ‘세기말의 위안’이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여겨져 힘겹게 느껴지지만 “스스로의 오늘을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인연을 생각하면 바로 그 자리가 ‘꽃자리’임을 모두 함께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장사익은 미국,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등 해외 공연도 여러 차례 가져 한국의 소리를 세계인의 가슴속에 심고 있으며, 수준 높은 한국의 예술을 세계 속에 퍼뜨리고 있다.

5월 10일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특별공연은 장사익 외에 정재열, 최선배, 고석용 등 15명의 연주자가 함께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의전당 홈페이지(www.dureraum.org) 참고.

국도예술관 <올빼미 상영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11시 50분부터 첫차 다닐 때 까지밤새도록 영화를 보는 국도예술관만의 특별한 상영회

4월 26일(토) 밤 11시 50분 | 5월 24일(토) 밤 11시 50분6월 21일(토) 밤 11시 50분

[참가비]일반 12,000원카페회원 (국도예술관 네이버카페에 가입된 회원) 10,000원정회원 (오프라인에서 가입 가능한 유료회원) 8,000원(동반 1인 적용)

국도 상영예정작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디태치먼트><필로미나의 기적><런치박스><한공주><아버지의 이메일><신부의 아이들><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웨이스트 랜드>

*주말 / 공휴일 상영료 인상 안내일반 월~금: 6,000원 토/일/공휴일: 7,000원정회원/경노/장애인 5,000원(주중·주말 동일)청소년 월~금: 5,000원 토/일/공휴일: 6,000원

부산평화영화제는 평화의 소중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사단법인 부산어린이어깨동무가 주최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테마영화제다. 올해로 5회를 맞는 부산평화영화제는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국도예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현실의 벽 앞에서 삶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화를 통해 마음의 치유를 제공하기 위해 올해의 소주제는 ‘힐링’으로 선정했다.

2014년 제5회를 맞이하는 부산평화영화제는 처음으로 공모전을 도입 그동안 기성영화들을 선정해 상영해오던 방식에서 공모제를 병행하게 된다. 이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으로 공모 출품 대상은 장르와 시간에 제한 없이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작품으로서 평화의 키워드(인권, 환경, 차별, 갈등, 비폭력, 반전, 나눔, 공동체 등)를 담고 있으면 된다. 부산평화영화제의 모든 작품은 무료로 진행된다.

제5회 부산평화영화제6월 27일(금)~29일(일) 3일간 국도예술관에서 개최

마티네 콘서트 <서희태의 영화가 들리는 콘서트 9> 일시 2014년 5월 13일(화) 오전 11시 장소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출연 진행 서희태, 영화감독 윤종찬, 테너 전병호, 김경요금 20,000원

<조윤범의 시네마 클래식 시리즈 7 -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일시 2014년 6월 10일(화) 오전 11시 장소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출연 진행 조윤범, 연주 콰르텟 엑스 요금 20,000원

2014 영화의전당 야외상영회가 4월부터 시작된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무료로 진행되어 지난 2년간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야외상영회는 올해부터 ‘문화가 있는 날’ 수요일 오후 8시 상영으로 시간을 변경하였다. 4월 30일 영화 <시작은 키스>를 시작으로 9월 17일까지 모두 13편의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아카이브 소장작, 대중성 있는 작품과 예술영화, 고전영화와 근작영화들을 균형 있게 편성하였다. 4월과 5월은 월 1회, 6월은 월 2회, 7월은 월 3회 각각 상영하며, 8월 13일부터는 매주 상영할 예정이다.

일시 2014년 4월 30일~9월 17일 기간 중 지정 (수) 오후 8시 장소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상영 횟수 <시작은 키스> 등 13편, 총 13회 요금 무료

영화의전당 프로그램 소개

국도예술관 4~6월 상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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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벌

어지고 있다. 영화제작팀

들이 스튜디오를 잡기 위

해 일정을 조율해가며 대

거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A스튜디오(837㎡)는

<나의 독재자>(이해준 감독/설경구, 박해일 주연)가 B스튜디오

(1,650㎡)는 <기술자들>(김홍선 감독/김우빈, 이현우 주연)이 사

용 중이다. 사실상 세트 공사 기간을 제외하고는 비는 날이 없을 정

도로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다. 이러한 영화계 현장의 높은 수요는

저렴한 대여료를 비롯해 부산영상위원회가 시행하는 ‘영화 기획·

개발 지원’, ‘영화(드라마) 제작진 숙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의

지원조건에 부산촬영이 포함되어 있고, 부산 올로케이션(한 지역

에서 70%이상 촬영하는 작품을 통칭) 할 경우 대여료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산영화투자조합1호 등 부산영상위

원회 주력 사업의 확대로 스튜디오 대여 수요는 계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4년 개봉 예정작인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하정우, 강동원 주연), <국제시장>(윤제균 감독/황정

민, 김윤진 주연), <해무>(봉준호 제작/심성보 감독/김윤석, 박유천

주연) 등도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제가 쓸게요, 느낌 아니까!

BFC News - 01

부산영상위원회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서 열린 세계필름커미션연합(Association of Film Commissioners

International, 이하 AFCI) 주최의 AFCI 로케이션쇼에 AFCNet 대

표로 참가했다. 전 세계 필름커미션 및 영화촬영지원기구가 한 자

리에 모여 로케이션 및 인센티브 등 촬영혜택을 전시·홍보하는 이

행사에는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지 소재의 총 129개 필름커미션

이 부스를 내며 지역의 영화촬영지를 적극 홍보했다.

AFCI 로케이션쇼 참가

BFC News - 03

아시아 최초의 버추얼스튜디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Digital Bay)’가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부산콘텐츠마켓에 참가

하여 온셋사전시각화(On-set Pre-visualization) 시스템을 프로모

션 한다. 이 시스템은 배경합성을 비롯하여 카메라 및 배우의 동선

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수정하고 모션컨트롤카메라, 모션캡

쳐 등의 특수촬영까지 가능한 최첨단 제작기술로 홍보를 통해 인식

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부산콘텐츠마켓 참가

BFC News - 04

부산영상위원회 홍콩필름마트에 가다

부산영상위원회는 3월 24

일부터 27일까지 아시아

최대의 영화·영상 마켓인

홍콩필름마트에 단독 부스

를 내어 참가했다. 32개국

770여 개 기관이 참가하고

6,500여 명의 영화 관계자

가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부산영상위원회는 사무국

을 맡고 있는 아시아영상위

원회네트워크(Asian Film

Commissions Network,

이하 AFCNet)를 대표하

여 홍보하고 회원기관을

유치하는 동시에 영화·영상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등 아시아영

화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힘썼다. 기간 중에는 2014

년도 AFCNet 제1차 이사회를 개최하여 연간 주요 사업 운영 계

획 및 예산(안)을 논의하고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2013) 결과 보고와 2014년 사업 진행상황을 공유하는 시간

을 갖기도 했다.

BFC News - 02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내부홍콩필름마트 내 AFCNet 부스

2014년도 AFCNet 제1차 이사회

AFCI 로케이션쇼 내 AFCNet 부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내부

낯선 공간에 떨어지면

그 시간마저도 낯설어진다.

익숙한 척,

무리에 섞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낯섦.

사진,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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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벌

어지고 있다. 영화제작팀

들이 스튜디오를 잡기 위

해 일정을 조율해가며 대

거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A스튜디오(837㎡)는

<나의 독재자>(이해준 감독/설경구, 박해일 주연)가 B스튜디오

(1,650㎡)는 <기술자들>(김홍선 감독/김우빈, 이현우 주연)이 사

용 중이다. 사실상 세트 공사 기간을 제외하고는 비는 날이 없을 정

도로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다. 이러한 영화계 현장의 높은 수요는

저렴한 대여료를 비롯해 부산영상위원회가 시행하는 ‘영화 기획·

개발 지원’, ‘영화(드라마) 제작진 숙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의

지원조건에 부산촬영이 포함되어 있고, 부산 올로케이션(한 지역

에서 70%이상 촬영하는 작품을 통칭) 할 경우 대여료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산영화투자조합1호 등 부산영상위

원회 주력 사업의 확대로 스튜디오 대여 수요는 계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4년 개봉 예정작인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하정우, 강동원 주연), <국제시장>(윤제균 감독/황정

민, 김윤진 주연), <해무>(봉준호 제작/심성보 감독/김윤석, 박유천

주연) 등도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제가 쓸게요, 느낌 아니까!

BFC News - 01

부산영상위원회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서 열린 세계필름커미션연합(Association of Film Commissioners

International, 이하 AFCI) 주최의 AFCI 로케이션쇼에 AFCNet 대

표로 참가했다. 전 세계 필름커미션 및 영화촬영지원기구가 한 자

리에 모여 로케이션 및 인센티브 등 촬영혜택을 전시·홍보하는 이

행사에는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지 소재의 총 129개 필름커미션

이 부스를 내며 지역의 영화촬영지를 적극 홍보했다.

AFCI 로케이션쇼 참가

BFC News - 03

아시아 최초의 버추얼스튜디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Digital Bay)’가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부산콘텐츠마켓에 참가

하여 온셋사전시각화(On-set Pre-visualization) 시스템을 프로모

션 한다. 이 시스템은 배경합성을 비롯하여 카메라 및 배우의 동선

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수정하고 모션컨트롤카메라, 모션캡

쳐 등의 특수촬영까지 가능한 최첨단 제작기술로 홍보를 통해 인식

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부산콘텐츠마켓 참가

BFC News - 04

부산영상위원회 홍콩필름마트에 가다

부산영상위원회는 3월 24

일부터 27일까지 아시아

최대의 영화·영상 마켓인

홍콩필름마트에 단독 부스

를 내어 참가했다. 32개국

770여 개 기관이 참가하고

6,500여 명의 영화 관계자

가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부산영상위원회는 사무국

을 맡고 있는 아시아영상위

원회네트워크(Asian Film

Commissions Network,

이하 AFCNet)를 대표하

여 홍보하고 회원기관을

유치하는 동시에 영화·영상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등 아시아영

화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힘썼다. 기간 중에는 2014

년도 AFCNet 제1차 이사회를 개최하여 연간 주요 사업 운영 계

획 및 예산(안)을 논의하고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2013) 결과 보고와 2014년 사업 진행상황을 공유하는 시간

을 갖기도 했다.

BFC News - 02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내부홍콩필름마트 내 AFCNet 부스

2014년도 AFCNet 제1차 이사회

AFCI 로케이션쇼 내 AFCNet 부스

부산3D프로덕션센터-디지털베이 내부

낯선 공간에 떨어지면

그 시간마저도 낯설어진다.

익숙한 척,

무리에 섞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낯섦.

사진, 글 신혜영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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