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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2 2011. 째보선창 복원 주장한 장십오 선생 인터뷰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란 교수 인터뷰 경실련 장미 사무처장/ 김종익 사무국장 인터뷰 김오현 선생을 만나다 채정례 선생과의 특별한 인터뷰 카페 soul oasis 제7회 소포 검정쌀 축제 스케치 지역커뮤니티가치실현 남도 기획 예향남도 수다 공간 남도 인터뷰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 김미영 실장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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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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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122011.

째보선창 복원 주장한 장십오 선생 인터뷰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란 교수 인터뷰

경실련 장미 사무처장/ 김종익 사무국장 인터뷰

김오현 선생을 만나다

채정례 선생과의 특별한 인터뷰

카페 soul oasis

제7회 소포 검정쌀 축제 스케치

지역커뮤니티가치실현

남도 기획

예향남도

수다 공간

남도 인터뷰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김미영 실장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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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02

Co ntents그대 영혼의 안식처, [s;o]를 만나다

카페 soul oasis

‘째보 선창’을 향한 그의 열망과 빛을 잃은 오늘

째보선창 복원 주장한 장십오 선생 인터뷰

서산온금 독거노인들의 이주 및 재정착 문제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란 교수 인터뷰

‘도시 재정비’에 관한 목포시의 인식 변화 필요

경실련 장미 사무처장/ 김종익 사무국장 인터뷰

검게 윤나는 소포의 흑진주를 기념하며!

‘제 7회 소포 검정쌀 축제’ 스케치

‘씻김굿의 첫 번째 수호자’

김오현 선생을 만나다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어떻게 볼 것인가?

목포 11개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 현장을 가다

낯선 길들의 생애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도의 마지막 ‘단골’

‘채정례’ 선생과의 특별한 인터뷰

미디어가 흐르는 다락방에서 별빛 수다를 즐기다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 김미영 실장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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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04

2011년 12월호[제1권 제4호, 통권4호]

발행인

(CHAIRMAN & GROUP PUBLISHER)

이길찬 KILCHAN,LEE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길찬 KILCHAN,LEE

에디토리얼 디렉터

(EDITORIAL DIRECTOR)

박혜미 PARK HYE M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한주연 HAN JU YEON

ISSN : 2234-1234

등록번호 : 전남 아 00149

http: //WWW.NAMDOZINE.COM

E-MAIL : [email protected]

TEL : +82 70-8600-1254

FAX : +82 61-283-1254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 오룡3길-2(재)

전남문화산업진흥원 내 F-103

JCIA F-103, Namak-ri, Samhyang-eup,

Muan-gun, Jeollanam-do

Page 5: namdozine

NAMDOzine.com 05

Page 6: namdozine

2011. December06

대한 잊혀 진 가능성과 기억 그리고, 남은 숙제들..

'다순구미'에

2011년 12월 현재. 목포 서산 온금동 재개

발 계획이 주민들과 목포시민단체 사이에서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전

라남도 도시계획위원회는 25층 이상 고층 아

파트를 건설하겠다는 목포시의 ‘서산 온금 재

정비촉진 계획안’을 심의 중이다. 목포시는

앞으로 면적 388,463㎡에 달하는 서산, 온

금, 금화, 유달동 일대를 단계별로 2018년까

지 복합 명품주거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에 대해 11개 목포시민단체는 유달산 조망권

확보 문제와 9천여 세대를 수용하기 위한 용

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

300%대의 고층 아파트 건설을 지적하며, 목

포시의 사업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

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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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금동 모습

과거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벽돌

을 생산하던 조선내화의 굴뚝은 어느

덧 세월에 질식당한 채 검고 흉물스럽

게 가라앉았다. 그 주변으로는 낡은

가옥들과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들

이 옹기종기 모여 오늘을 견뎌내고 있

다. 온금동의 순 우리말인 ‘다순구미’.

볕 잘 드는 이 마을에 불고 있는 재개

발 바람. 생필품 가게에 모여 탁주를

주고받는 묵묵한 어르신들과 자물쇠

가 굳게 채워진, 공과금 고지서가 수

북이 쌓인 집들. 열린 문틈으로 이불

한 채를 덮고 앉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추운 낯빛이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그

곳. 누군가에겐 돌아올 집과 고향

이 되어준 작은 동네. 남도라는 곳

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기

에 다순구미 사람들의 바람 부는 날

들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2011년 ‘남도진’이 다순구미를 찾

기 이전, 그곳엔 어떤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었는지. 그래서 사람들에

게 어떤 희망 혹은 절망을 안겨주

었는지, 사라져간 가능성들은 또한

무엇인지. 아파트 재개발이라는 거

대한 산을 앞에 두고 문득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버린 지역의 이야기

들이 궁금해졌다. 또한 앞으로 다

순구미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풀어

가야 할 숙제는 무엇인지, 특히 재

개발이 진행되기에 앞서 반드시 선

행되어야 할 복지 차원의 노력은 무

엇이 있을지 지역의 관심 어린 목소

리를 담아보았다.

‘남도진’, 다순구미에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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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11개 시민단체가 지난 11월

10일 주관한 ‘서산 온금동 재정비 관

련 공청회’에서 장십오 선생을 처음

으로 뵈었다.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서 그의 한 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째보선창을 복원해 원도

심을 활성화하자고 시민단체들을 향

해 그렇게 외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유달산 조망권 운운하면

서 서산온금 재개발을 가로막는 것

입니까. 말씀 좀 해 보세요!”

‘째보선창’과 ‘복원’이라는 두 단어

의 조합을 듣는 순간, 장십오 선생

이 감추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졌

다. 그래서 첫 번째 공청회가 끝나자

마자 ‘서산 온금동의 숨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이야기. ‘째보선창’을 향한 그의 열망, 빛을 잃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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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9

1924년 올뫼나루를 매립하면서 만

들었던 선창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온금

동 벽돌공장인 ‘조선내화’ 아래쪽에 위치했

다. 바다였던 온금동을 매립하면서 곧바로

제방을 쌓지 않고 한글 자모 ‘ㄷ ’자형으로

꺾어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작은 포구를 만

들었다. 바닷가 안벽이 언청이처럼 안쪽으

로 들어갔다 해서 언청이를 가리키는 지역

어인 ‘째보’를 이용해 ‘째보선창’이라고 불

렀다. 째보선창은 1981년 광주와 목포에서

열린 제 10회 전국소년체전을 위해 추진됐

던 ‘유달산 일주도로 확장’ 사업으로, 결국

매립되어 현재 육지로 탈바꿈했다.

‘째보선창’에 대해

온금동 내 조선내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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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10

장십오 선생 : 목포 구도심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목포시가 아이디어를 공모했

어요. 그래서 제가 돌아가신 전태웅 시장님과

단독 면담을 두 번 했죠. ‘온금동은 유서 깊은

동네다’라고 말씀드렸죠. 온금동은 과거 ‘다순

구미’라고 불리면서 목포의 돈줄 역할을 했어

요. 째보선창’이라는 것이 조선내화 앞까지 조

성됐는데 외지 선박들이 빈번하게 입항해 어획

한 고기들을 선창에 펐거든요. 그러니까 항구

에서 돈이 엄청나게 나온 거죠. 당시에는 온금

동에 기생집도 있고, 술집도 거의 20여 곳이나

됐어요. 모두들 풍부한 생활을 했어요. 지금 현

재 여객선 터미널까지도 상가가 형성돼 북적북

적 했죠. 태풍이 불면 조그마한 배들은 일제히

‘째보선창’으로 입항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째보선창 주변 바다가 매립되면서 군사정권 하

에서 조선내화가 세워졌지요.

그 이후로 목포 원도심을 개발하겠다는 전 시

장님의 말씀에 ‘째보선창을 복원 합시다. 복원

을 하면 큰 관광지가 되겠습니다. 원래 제 역할

을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의 50%만 그 기

능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당시 마스터

플랜 작성할 때 시청 회의에 참석해서 이런 계

획들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시민단체에서는 아

무도 호응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혼자서

허공에 메아리치니까 나중엔 억울하더라고요.

당시 목포대, 동신대 지역 교수들은 좋은 아이

디어라고 동조 해줬어요. 그런데 조선내화는

사유지라서 째보선창을 현재 온금동 앞 도로

밖으로 만들자, 라고 목포시에서 그러더라고

요. 세 번째 회의에 참석하니까 째보선창을 복

원해서 한쪽은 체육시설(농구장, 축구장)을 만

들어주겠다고 절 달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계

획이 목포 시장 선거 이후 물거품이 됐어요. 제

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조해줬던 시민단체가

일제히 침묵한 거예요. 그래서 혼자서 째보선

창을 복원하자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다 병이 나서 그

만뒀어요. 그렇게 저 혼자 아우성 칠 적엔 시민

단체들은 목포시 편만 들다가 이제 와서 유달

산 조망권이니 뭐니 하면서 재개발을 가로막다

니요. 그러니 제가 답답하고 속상하지 않겠습

니까.

남도진: 어째서 목포 시민단체에 대한 원망이 그토록 깊으신 건지..

Page 11: namdozine

장십오 선생 : 옛날에 대반동, 서산동, 온금동

세 동네를 끼고 한글 ‘ㄷ’ 자 모양의 작은 포구

가 있었어요. 바로 ‘째보선창’이죠. 옛날엔 지

금 온금동 앞 일주도로가 육지가 아니었어요.

바다였죠. 당시 바다 매립을 반대하다가 서산

동 파출소에 삼일동안 감금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바다를 매립하지 않았다면 서산온금

동이 지금처럼 쇠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

각해요. 그래서 제가 서산동과 대반동을 잇는

구름다리를 만들자. 그리고 매립한 땅을 다시

바다로 복원해 째보 선창을 만들면 관광객들

과 선원 가족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아이디어

를 냈었죠. 그렇게 다시 째보선창을 복원하면

주변에 상가가 형성되고 횟집들이 들어서겠

죠. 그런데 지금은 먹고 살게 없으니까 사람들

이 모두 떠나는 거예요. 그래서 목포시가 매립

한 땅인 삽진농공단지 토지와 조선내화 부지

를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전 시장님께 제안을

드렸죠. 그 당시 목포 시장님께서는 긍정적으

로 검토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남도진 : 공청회 자리에서 ‘째보선창 복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째보선창’이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해지더라고요.

Page 12: namdozine

2011. December12

장십오 선생 : 처음에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저마다 호응을

해줬죠. 그런데 현 시장님이 선출되면서 서산온금지구에

대한 개발 방향이 아파트 건설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일순간 조용해졌어요. 무려 2년 동안 홀로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암수술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서산

온금지구 자치위원장을 일을 놓아버렸죠. 지금이라도 째

보선창이 복원만 된다면 목포 원도심 활성화는 자연스럽

게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5톤 미만의 선박 100여척이 정

박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도 째보선창에는 80여척의 선박이 정박하

곤 했었죠. 당시 주민들도 제가 제안한 ‘째보선창’ 복원 계

획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좋은 발상이라는 칭

찬도 들었고. 하지만 결국 조선내화 토지가 사유지라서 사

업 추진이 어렵다는 목포시의 대답만 돌아왔어요.

남도진 : 그런데 목포시민단체들은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는 얘기신가요?

2011년 12월 목포 선착장 모습

Page 13: namdozine

남도진 : 그럼 그날 공청회 자리에는 어떻게 참석하시게 된 거예요?

장십오 선생 :

그러게요. 그렇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역시 째보선창에 대한 미련

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해 알

아볼 곳은 다 알아봤죠. 온금

동은 째보선창 말고도 간직

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나 경

관들이 많아요. 온금동 뒷산

에 가보면 경상도 산악회 회

원들이 ‘째보선창’을 바라보

며 그 경관에 감탄한 나머

지, 바위 위에 자신들의 이름

을 새겨놨어요. 지난날 온금

동에 ‘산제당’도 존재했는데,

몇몇 사람들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철거가 돼 버렸어요.

남도진 : 저는 유달산 중턱에 온금동을 바라보던 목포제일여고를 나왔어요. 제가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선생님께서 주장하신 ‘째보선창’ 복원이 가시화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남도진 : ‘산제당’이라면 산신을 모셔놓고 기원을 올렸던 곳 맞죠? 어떤 분이 고의로 산제당을 철거한 건가요?

장십오 선생 :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사업

이 안 된다고 하루아침에 그

걸 철거해버렸어요. 째보선

창을 복원하면서 유서 깊은

산제당도 같이 복원하자고

주장했었죠. 게다가 마을 사

람들은 매년 산제당에 제사

를 지내왔거든요. 최고 연장

자가 주관하는 방식으로. 내

가 볼 때는 참 안타까워요. 온

금동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

아요. 남자 바위, 여자 바위

도 있고요. 남근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그 바위들을 보러

일본인들도 자주 발길을 하

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

들은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것들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

지 않으니 문제인거죠.

장십오 선생 :

온금동 마을 청년회에서 공청

회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 왔

어요. 그래서 몸이 아픈 와중

에도 그 자리에 참석한 거예

요. 지금도 외국에서 선박이

들어오면서 한밤에 온금동 불

빛을 보며 ‘대한민국 목포가

이렇게 잘 사는구나’ 하다가도

일출 이후에 온금동을 다시 바

라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빈

민촌이 많아’ 라고 외국인들이

푸념을 늘어놓는 답니다. 이런

상황이 말이 됩니까. 이 지역

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변화

가 필요해요.

Page 14: namdozine

장십오 선생 : 시민단체가 원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를 추가로 확보토록 목포시에 주민

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줬으면 합니다. 또

한, 관리비가 적게 들도록 임대주택의 평수를 줄여

독거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의견에 더욱 귀 기울여 줬으면 합니다.

남도진 : 어떻게 보면 서산온금지역 아파트 건설에 따른 공동체 해체는 이미 전제되어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십오 선생 : 사실 현재 목포시에서 추진 중인 서산

온금 재정비 사업이 째보선창을 복원하는 방식과 비

교해서 이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저 역시

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서산

온금동의 재개발은 필요한 상황이에요. 무척이나 절

실하죠. 2002년부터 거의 10년이 되도록 주민들은

선거 때마다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재개발 공약에 지

칠 대로 지친 상태에요. 이번에도 개발이 된다고 했

다가 또다시 좌절되면 주민들은 더 이상 누구의 말

도 믿지 않으려 할 겁니다.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는 필요합니다.

남도진 : 앞으로 서산온금동 지역과 시민단체 혹은 목포시에

바라는 것들이 있다면..

Page 15: namdo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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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십오 선생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목포

항도시장을 걸어 나오는 길에 천천히 주

변을 둘러보았다. 어릴 적 기억엔 접어드

는 골목마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훅- 코

를 찔렀고, 그 냄새가 진한 물감처럼 온몸

에 스며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엄

마를 따라 배를 타고 해남과 목포를 오가

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목포 항구 부근은

무척이나 북적였다. 한눈을 팔다 엄마 손

이라도 놓치는 날에는 인파에 휩쓸려 길

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1년 목포

항구는 ‘쇠퇴’라는 눅눅하고 침체된 길을

걷고 있다. 드문드문 늘어선 선구점들은

스산할 정도로 한가한 모습이며, 현대적

인 고층건물로 변모한 목포 여객선 터미

널은 한산하다 못해 공허할 지경이다. ‘다

순구미’를 나서 일주도로를 따라 걷다보

면 만나게 되는 목포의 정경은 생기를 잃

은 채 힘없이 손을 맞는다. 어째서 그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순구미와 목포 항구

를 활성화 시키는 일에 무관심과 불가능

만을 외쳐 온 것인지 실망과 의구심이 동

시에 생겨났다. 타성에 젖어 쇠퇴를 받아

들이는 잘못된 습관. 지역을 위해 고민하

는 시민의 말을 귀담아 듣는 다른 누군가

가 존재했다면, 어쩌면 서산온금지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민 속에서 내일을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째보선창 복원’ 관련 취재 후..

에디터: 박혜미

온금동 내 조선내화 모습

Page 16: namdozine

꽃들은 성급히 피고 나무는 느리게 죽어

가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던 시인이 있었

다. 시인은 과연 자신이 궁금해 하던 질문

의 답을 발견했을까. 꽃과 나무의 일생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냈을까?

'성급하다’와 ‘느리다’는 모두 일종의 핀잔

을 담고 있다. 넌 왜 그렇게 성급하니, 어째

서 그렇게 느리니, 등등의 가볍고도 무거

운 질책. 성급하게 피는 꽃과 느리게 죽어

가는 나무 사이엔, 과연, 평화의 날들이 찾

아와 줄까. 이런 질문을 품고 거리를 헤매

다 문득 ‘열매’라는 존재를 떠올렸다. 꽃의

후회와 나무의 권태 사이에서 새로운 희망

으로 맺히는 작은 우주, ‘열매’. 목포 원도

심. 이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그곳에

작은 열매로 맺힌, 평화롭고 풍요로운 카페

[s;o]가 성급한, 혹은 느린 발걸음들을 모두

반겨주고 있었다.

Page 17: namdozine

NAMDOzine.com 17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벽면을 타고 흐르는 고요에

잠긴 철로를 발견할 수 있다. 중년 신사의 주름진 미소처럼

편안한, 그러나 여전히 길을 가는 즐거움을 잊지 않은, 붉

은 벽돌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철로가 사람들을 반긴다.

그 기이한 벽과 만나는 순간 머릿속은 아득히 아련해진다.

기차가 보이질 않는 철로 위를 묵묵히 걷는 두 사람. 매일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길들. 카페 S;O(에스오)의

철로는 벽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

속적이다. 계속된다는 느낌을 준다. 커피 향 가득한 일상

속 여행.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투박하지만 정

겨운 손길. 한 장의 벽돌을 빼내면 루비를 닮은 고운 불꽃

이 일렁이고 있을 것 같은, 수줍은 온기를 간직한 실내. 카

페 S;O를 유유히 관통하는 철로 곁에서 김영미 씨와 임형

만 씨를 만났다.

가득한 철로 위를 걷는 ‘두 사람’Ⅰ

커피와 함께 묵묵히 길을 걸어온 김영씨와 임형만씨

커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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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18

A. 남도의 보물을 찾는 청춘: 카페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김영미 씨와 임형만 씨는 23년 동안 ‘커피’라

는 향기에 취해 외길을 걸어왔다. 20대 무렵

결혼과 함께 ‘쵸이스’라는 커피숍을 처음으로

오픈했다고. 김영미 씨는 그녀의 커피 인생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미 씨: “ ‘쵸이스’는 현재 40대 이상 된 목포

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카페 내부에 벽난

로가 있어 손님들의 관심을 끌었죠. 고풍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던 시대였어요. 그렇게 쵸이

스로 10년 정도 카페를 운영해오다가 97년 2

월에 이곳으로 옮겨왔죠. 이곳에서 ‘이키녹스’

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새롭게 선보였는데 당시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서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커피를 마시러 오는 극성팬들이 생겨날 정도였

어요. 그러다 점점 목포 원도심을 찾는 사람들

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카페 분위기를 쇄신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결과 ‘카페 s;O 가 탄생한 거죠.”

B. 남도의 보물을 찾는 청춘: 실내 인테리어가 예뻐요. 눈길 가는 소품들도 많아요, 어떤 사연

이 숨겨져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남편 형만 씨는 빙그레 미소 짓기만 했다. 아

내를 바라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영미 씨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영미 씨: “카페 S;O를 준비하면서 정말 여러

곳을 찾아다녔어요. 서울, 분당, 정좌동, 홍대,

대학로 등 카페 촌으로 유명한 곳은 모두 찾아

가 직접 구경하고 실내 인테리어에 적용할 아

이디어를 얻었죠. 물론 그런 노력들이 이 공간

을 탄생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도움을 줬던 부분은 ‘나 스스로가

이 공간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끼느냐, 그렇

지 않느냐’는 느낌이었죠. 제 스스로가 이 공간

으로부터 위안을 받아야지만 손님들도 그런 느

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드는

생각은 이곳에서 리본 공예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거예요. 조금한 공방을 운영해 리본공예

를 하고 그걸 판매도 하고 싶어요.”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형만 씨가 이윽고 말을

꺼낸다.

형만 씨: “아내는 손재주가 좋아요. 친정 쪽 사

람들이 모두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

났죠.”

묵묵히 아내, 나와 영미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만 씨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아내에 대

한 칭찬. 아내의 재능을 사랑하는 형만 씨의 마

음이 슬며시 느껴졌다. 눈길 가는 인테리어 소

품이 많다는 소리에 남편 형만 씨가 바리톤 음

색으로 나지막이 답해 주었다.

형만 씨 : “저쪽에 있는 대형 항아리는 우리 부

부가 변산반도로 여행 가서 구해온 쌀 항아리

예요. 유서 깊은 물건이죠. 요즘은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물건이랍니다. 전 옛 정취를 느끼

게 하는 물건이 좋아요. 어딘가 사람 냄새가 배

어 있는 것처럼 따뜻하거든요.”

형만 씨를 내내 바라보고 있는 영미 씨. 철로

위를 감싸는 커피 향처럼 두 부부는 서로가 서

로를 향해 고요히 어깨를 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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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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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20

곁을 맴도는 추억 속

커피의 입자들Ⅱ 하루 종일 카페를 놀이터 삼아 놀아본 경

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카페 마감

시간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온

그를 따라나선 커피의 입자들.

그 투명한 입자들이 내는 진한 인기척. 영

미 씨와 형만 씨에게선 20년이 넘는 시간동

안 함께 해온 커피향이 묻어난다. 프렌차이

즈 카페에서 뿜어내는 강렬한 커피 향은 아

닐지라도, 오랜 시간 커피와 함께 묵묵히 길

을 걸어온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평화

로운 향기가 느껴졌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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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도의 보물을 찾는 청춘: 처음으로 했어야 할 질문인데 깜박했어요. 카페를 하게 된 배경

이랄까.. 현재 카페 이름을 카페 S;O로 지으신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영미 씨: “남편하고 데이트 하던 시절, 목포 시

내에 자주 들리던 ‘모데라토’라는 카페가 있었

어요. 그 시절엔 드물게 예쁜 공간이었죠. 그

공간을 보면서 ‘우리도 이런 카페를 열면 좋겠

다!’라는 느낌을 가졌고 그래서 결혼 후 1년 동

안 준비를 했어요. 그런 다음 곧바로 ‘쵸이스’

를 시작하게 된 거죠.현재 카페 이름인 s;o는

soul oasis, 즉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안

식처란 의미에요. 전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걸 즐겨요. 쉽게 예민해지는 성격이라 아

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나 그런 시간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B.남도의 보물을 찾는 청춘: 카페를 운영하다고 커피를 모두 즐기는 건 아니잖아요. 커피와

함께 하는 느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

신가요?

영미 씨: 평소 카페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강렬하지만 다른 것엔 관심이 없어요. 원래 제

가 너무 해보고 싶었던 거였기 때문인지도 모

르겠어요. 예쁜 공간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기

도 하구요. 그냥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카페는 큰돈을 벌지 못해요. 하지만 하고 싶다

는 생각이 강하니깐 그런 건 문제가 되질 않더

라구요. 커피는 내면을 채우는 충만한 느낌을

선물해줘요.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

시고 있노라면 어떤 결핍이 점점 줄어드는 느

낌이 들어요. 그래서 전 커피를 좋아해요~.

얼마 전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어요.

바리스타에 관한 내용이었죠. 그걸 보면서 우

리 부부는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카페를 운영

해온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추억의 보존도 좋지만 최근 트렌드를 아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그동안 너무 소홀했구

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부 인테

리어 공사를 시작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죠. 새

롭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어요.

C. 카페를 운영해 오신 기간이 오래된 만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있으실 것 같은

데요? 또 사람도 변하는 것처럼 예전 커피와

지금 커피도 변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영미 씨: “먼저, 추억이라면..예전부터 저희 카

페에 찾아오시던 손님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하

시는 분들이 있어요. 인테리어가 바뀌어서 주

인도 바뀐 줄 알았더니 그대로네요~ 그러면서

굉장히 좋아들 하세요. 옛날이야기도 하시구

요. ‘그대로’라는 단어를 듣고 옛 사람들을 만

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물론 사람처

럼 커피도 많이 변했죠. 하지만 ‘쵸이스’를 운

영할 당시 팔팔 끓여낸 물에 타주던 커피가 지

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당시

엔 원두커피가 없어 인스턴트커피를 판매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마실 물도 지금처럼 셀프가

아니라, 보리차를 진하게 우려내 손님들께 직

접 내어갔었죠. 그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종

종 있으세요. 구수한 보리차와 그때 마시던 커

피 맛이 너무 그립다구요. 아마도 모두 추억 때

문일 거예요.(웃음) 저 역시 그 때를 회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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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22

뜨거운 물과 커피가 만나는 순간이 떠올라요.

뜨거운 물이 커피 속에 스며들면서 만들어내는

모양이 정말 예쁘거든요~. 물도 오랫동안 끓일

수록 그 맛이 더 좋아져요.

그래서 전 아직도 이틀에 한 번은 그 시절의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셔요. 인스턴트커

피, 식물성 커피 프리머를 넣고, 오랫동안 팔

팔 끓인 물을 부어 일부러 일회용 종이컵에 커

피를 타요. 그 맛이 정말 혀끝을 감칠맛이 나게

자극하거든요. 원두로 분쇄해 내린 커피보다

는, 아직도 옛 방식으로 만드는 인스턴트커피

가 제 입맛엔 더 맞아요. 물론 저희 남편은 담

백한 원두커피를 더 즐기지만요.

영미 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이야기하

자 형만 씨의 얼굴이 싱글벙글 이다. 소녀처럼

귀여운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흐뭇한 눈빛.

서로를 아끼는 그들 부부를 마주보는 느낌은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커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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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23

에 물이 부어질 때 만들어지

는 그 모양이 정말 앙증맞고

예쁘다’는 그녀의 말에 언젠

가 영미 씨가 좋아하는 커피

를 직접 맛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녀가 말하는 ‘예쁜

추억 담긴 맛있는 커피’를 언

젠가 꼭 만나게 되기를!

Caf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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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24

A. 남도의 보물을 찾는 청춘: 이제야 묻네요. 이 카페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마치 벽돌로 된 철로 같은 느낌의 ‘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영미 씨: 경기도 쪽에서 구해 온 벽돌들을 짜

맞춰 벽을 장식했어요. 어딘가에 이미 한두 번

쯤 사용됐던 벽돌들이에요. 그래서 조금씩 금

이 가 있기도 하고, 불에 데여 일부는 검게 그

을리기도 했죠. 투박하지만 멋스럽고 예쁘죠?

한겨울에 벽돌을 2층 카페로 옮기느라 남편과

제가 고생 좀 했어요~.(웃음)

형만 씨: 원래는 지금보다 굴곡이 더 많은 벽

면 인테리어를 생각했어요. 왜 굴곡이 많을수

록 예쁘잖아요~.사람도 어렵고 힘든 일을 겪

는 만큼 더 성숙하고 깊어져 아름다워지는 것

처럼요.

B. 앞으로 S;O를 찾아오실 그분 혹은 그녀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영미 씨: 저희 남편은 마라토너에요. 카페 문

을 닫고 나면 한밤중에 해양대, 대반동 등을

달리죠. 그 이외엔 외출을 잘 하지 않는 편이

에요. 주변에서는 저희 부부가 추억 만들기에

소홀한 것 같다 말하지만 전 괜찮아요. 남편이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

고 받아들였거든요. 전 외출이나 여행 대신 남

편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아늑한 시간을 더 즐

기고 소중하게 생각해요. 남들에게 보여 지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편안하게 느끼는 게 정말

좋은 거 아닌가요? 저희 S;O에 찾아오시는 분

들께서도 스스로가 편안하게 마음껏 즐기셨으

면 좋겠어요. 커피와 음악과 자신만의 시간들

을 말이죠.

형만 씨: 원두커피는 바로바로 소비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공기 중에서 쉽게 산화돼 고유

형만 씨가 추천해주는 ‘cafe s;o’ 만의 대표

커피는 비엔나커피! 씁쓸하고 고소한 커피 원

액(에스프레소)에 물을 아주 소량 붓고 달콤한

크림을 올려 맛보는, 커피의 이중적인 풍미를

만끽할 수 있는 메뉴. 형만 씨가 직접 내려 준

비엔나커피를 맛보았다. 달콤한 크림은 고스

란히 입술에 묻고, 쓰만큼 농염하고 강렬한 에

스프레소는 혀끝을 감쌌다. 달콤함과 아리게

씁쓸한, 깊은 커피의 ‘빛’. 형만 씨와 영미 씨

가 20년 동안 지켜온 비엔나커피는 이젠 ‘맛’

보다 그들만의 ‘빛’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달

콤한 감수성을 간직한 영미 씨와 빛에 가까운

열정을 간직한 형만 씨. 그리고 S;O를 찾을 모

험심 가득한 그대들.. ‘영혼의 안식처’에서 우

리 각자가 찾게 될 보물은 과연 무엇일지, 문

득 궁금해진다.

빛 사이 두 사람,

그리고 그대들Ⅲ달콤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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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25

한 맛을 잃게 됩니다. 웃음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젊었을 적엔 참 많이 웃었거든요. 그런데 나이

가 들수록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군요. 마

치 산화되는 원두커피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생

각해보면 웃음도 원두커피도 모두 고유한 맛이

산화되기 전에 누군가와 나눠야 하는 것 같아요.

즐겁게 소비한 후에야 신선한 커피와 싱싱한 미

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자연스레 생겨

나는 게 아닐지. 목포 원도심을 느리게 걷고 싶

은 날 저희 카페에 들려주세요. 박하사탕은 손님

들께 드리는 저희 선물이에요. 원하는 만큼 가져

가셔도 좋습니다! (환한 웃음)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마치고 카

페 S;O를 나서는 나를 향해 형만 씨가 박하사탕

을 한 움큼 집어 다정히 내밀었다. 입안과 마음

까지 화-해지는 박하사탕을 오물거리며 한 손에

는 비엔나커피가 담긴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S;O를 나서 목포

원도심을 걷는 내내 달콤한 커피의 빛이 두 어깨

를 따뜻이 감쌌다.

나는 빛 속을 걸을 때마다

그늘진 그곳에

서 있는 그대들을 떠올린다.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에

에디터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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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26

‘목포시 계획안, 독거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 결여’

‘원주민의 이주*재정착을 위한 사회복지 전담반 확보해야’

고령 원주민 이주대책과 재정착에 관한 복지 문제

두번째 이야기. 지난 11월에 첫 번째로 열린 공청회에서

서산온금지역 원주민들의 이주대책과 재정

착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차분히 밝힌,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란 교수’. 유달산

조망권에 대한 입장 차이로 시민단체와 주

민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도 연출된 그

자리에서 김영란 교수는 ‘목포시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노령 원주민에 대한

복지 계획 없이 재개발을 진행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녀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목포대를 방문했다. 하늘이 유난히 맑

았던 가을 어느 날. 책들이 가득 찬 그녀의

공간에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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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27

남도진 : 현재 서산온금지역에 거주하시는 독고노인 분들이 751세대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 역시 그분들에 대한 목포시의 관심이 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현재 공백 상태로 남아있는 복지 차원의 노력은 무엇이 반드시 필요하며,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말씀해 주세요.

김영란 교수 : 현재 (목포시 계획안에는) 복지

차원의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에요. 주거환경

이 바뀌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 불편함,

낯익지 않은 것에 대한 부적응 등 노령 원주민

들이 겪을 부정적인 변화들은 분명히 나타날

거예요. 이주 대책에서 단지 현금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목포시는 알아야합니다.

심지어 애완동물을 잠깐 동안 여행에 데려가도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주인이 전전긍긍하는 게

최근 ‘삶의 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에요. 하

물며 사람에 대한, 더군다나 변화에 쉽게 적응

할 수 없는 연령대의 어르신들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갔다가 다시 자신들이 본래 살던

지역에 재정착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오는 스

트레스나 부적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심해봐야 할 문

제입니다.

남도진 : 현재 서산온금지역을 대표하는 몇몇 분들이 아파트가 건설되는 동안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거처를 알아보기 위해 주변 아파트들을 둘러보시는 것 같습니다.

김영란 교수 : 남악, 대성동 등 다른 지역의 임

대 아파트에 입주해 한 달 동안 지출하는 관리

비용을, 월 평균 30~40만 원으로 가정한다면,

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

라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현

재 서산온금동 지역에서 국기법으로 생계 보조

를 받는 주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하지만 생계보조금은 지급 대상마다 다르기 때

문에 일률적으로 그 비용을 가지고 임대 아파

트 생활이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라고 단언

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요. 공청회 자리에서 목

포시 도시개발과 관계자 분이 언급했던 것처럼

‘독거 어르신들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니까

그 비용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라는 논리는

글쎄요.. 얼마쯤 그럭저럭 버틸 수도 있을지 모

르죠. 그것도 국기법에서 지급되는 주거수당을

추가로 지급받을 경우에 말이죠. 하지만 현재

주거수당이 집수리 등으로 쓰여 유명무실한 상

황이라고 알고 있어요.

정부에서 독거어르신들께 지급하는 생계보장

비가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사회

적인 문제로 대두된 상황이잖아요. 목포시에서

정부 지원의 생계비, 주거수당 등을 언급하며

서산온금지구의 독거노인 분들에 대한 구체적

인 이주 대책과 재정착 문제를 소홀히 여기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란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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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28

남도진 : 제 역시 아파트 관리비며, 각종 공과금으로 매달 20여만원을 지출하고 있어요.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층에게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죠.

교수님 말씀대로 독거 어르신들이 앞으로 부

담해야할 임시 주거지 관리 비용 부분도 반드

시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영란 교수 : 그렇죠. 또한 그와 함께 중요하

게 다뤄져야 할 부분은 원주민들의 재정착 문

제에요. 목포시의 계획안을 살펴보면, 앞으로

원주민에게 제공될 임대주택 규모는 400여 세

대에 불과해요. 이 역시도 추첨을 통해서 공급

될 예정이구요. 실상 현재 서산온금동에 거주

하신 분들, 특히 독거 어르신들은 다시 자신들

의 터전에 재정착하기 어렵다는 얘기죠. 목포

시내 전체 지역에서도 이미 임대주택에 입주하

기 위해 준비 중인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전

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서산온금동지

역을 개발하면서 이주 대책까지만 생각하는 건

곤란해요. 독거 어르신들이 다시 재정착 할 수

있는 선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어르신들에겐 오래전부터 살던 자신들의 보

금자리를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잃게 되

는 거잖아요. 생의 마지막을 정리할 즈음에 다

른 곳으로 옮겨 가라는 것은, 가족이나 마찬가

지인 이웃과 흩어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에요.

그분들을 더욱 어렵게 힘들게 만들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어르신들의 말로를 더 고달프게 만

드는 거죠. 비록 다른 주민들에 비해 독거 어르

신들의 숫자가 적다고는 하나 인간의 삶이 수

적인 규모만으로 재단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사람이 삶의 터전을 바꿀 때 나타나는 스트

레스. 또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

기를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작지만 매우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부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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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 이주나 재정착으로 연령대가 높은 서산온금 주민들이 겪을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저 역시 생각지 못했네요.

김영란 교수: 복지 차원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

요해요. 하지만 다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주

목하지 않죠. 저 역시 서산온금지역의 재개발

을 반대하지 않아요. 다만, 개인적으로 공청회

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서산온금지역 재정

비’라는 문구에서 ‘재정비’라는 단어였어요. 재

개발이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우리사회가 겪어

왔던 부정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재정비’라는

말로 잘 바꾸어 냈더군요. 그러나 재정비와 고

층아파트 건설은 맞지 않은 개념이죠. 현재 주

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상하수도 문제, 공동

화장실 문제 등 편리시설 등을 정비하겠다고

했을 때는 ‘재정비’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

만 상업적 시장에서 사용되는 개발논리를 재정

비에 대입해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남도진 : 그러고 보니 ‘재정비’가 아닌 ‘재개발’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군요. 주민들의 주거지를 전면 철거하는 방식이 재정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김영란 교수 : 현재 인천시는 쪽방촌 원주민

100% 재정착을 목표로 구도심 재정비 계획을

수립했다고 해요. 현재 목포시민단체가 주장

하는 재정비가 결코 허황된 생각들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산온금

지구는 개발이 되어야 맞는데 사실 그 개발이

라는 것은 정비의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어떤

것은 보존되고 어떤 것은 정비되어야하는 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눠야 한

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현재 서산온금지구의 재개발 문제가 ‘평

등’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보고 있어요. ‘지역

불균형’이라고 하면 흔히 영남, 전남, 수도권

간의 불균형을 말하죠. 그처럼 목포시도 ‘마을

불균형’, 즉 신도시와 구도심간의 불균형을 겪

고 있는 것이죠.

서산온금지역이 과거에는 목포의 핵심지역이

었는데 어째서 오늘날 낙후되었는가를 거시적

인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당 지

역 등 신도심 발전과의 연관성, 즉 관광 활성화

에 따른 수익을 예산을 집행 받지 못한 원도심

과 배분했어야 맞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목포 내에서 지역 불균형

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 이와 함께 만

일 목포시가 신도심에서 관광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면 그러한 ‘실정’에 대한 분명한 책임 소

재 등의 문제에 대해 반성과 수정이 따라야 한

다는 것이죠. 서산온금지역 어르신들이 그동안

생활에 불편을 겪어왔다면 그것은 수익 분배가

공평하지 않았던 지역 불균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남도진 : 예산 집행과정, 지역 불균형.. 그렇군요. 그동안 지역의 균형 발전에 초점을 맞춰 예산을 집행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도진 : 좀 전에 ‘인천시’의 경우를 드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더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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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30

김영란 교수 : 인천시가 150억을 투입하고, 재

정비 사업으로 50억원을 정부지원으로, 정부

의 희망마을사업 추진에 따른 15억의 예산, 자

기예산 50억원 등을 투입해 쪽방촌인 괭이부

리마을을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마

을이 인천의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어 전면 철거 방식에서 벗어난 리모델

링 및 공동작업장을 설치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랍니다. 물론 현재 재정비를 논

하고 있는 인천 지역은 목포시의 서산온금지역

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에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번 지금까지 목포시가 불균형

적으로 관리해온 지역발전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볼 수 있죠. 원도심 주

민들 역시 목포시의 시민들입니다. 그동안 그

들을 방치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 지역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곳을 투기의 장

소로 또다시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런

부분들이 목포 지역과 관련해 제가 고민하는

부분들이에요.

남도진 : 기존 관행을 고칠 수 있는 기회라.. 혼란스러운 만큼 이 시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김영란 교수 : 그렇죠. 또한 서산온금지역에 머

물고 있는 취약계층이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

어지면서 보호받아야 할 집단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경계해야 합니다. 이건 또 다른 측

면의 불행인데요. 물론 빈곤지역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지역의 불행이라고도 할 수 있

지만, 개개인이 빈곤과 씨름하고 있음에도 그

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 문제를 밖으로 표

출하려는 집단의 힘이 떨어지는 상황 역시 우

리가 경계하고 우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연대의 근거를 찾지 못하고 집단적

으로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구하지 못할 경우,

빈부 차를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의 능력이 무기

력해지는 출발점이 된다는 거죠. 저는 서산온

금동 지역의 공동체가 해체될 경우 앞서 말한

부분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

우 만일 그 지역에 원주민들이 재정착하게 된

다면, 적어도 목포시와 시민들은 우리가 관심

을 가져야 하는 대상을 분명하게, 또한 앞으로

도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도시 재정비 과정을 취약 계층에 대한 확인과

관심을 쏟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 사업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표면으로 올려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똑같은 시민임

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구도심 주민들을

위해 목포시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득 서산온금지구를 놓고 볼 때 ‘어

쩌면 용산보다 더 할 수 도 있어’ 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어르신들의 힘

이라는 게 크레인에 올라가서 목이 터져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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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31

칠 수 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르신들의 목소리

를 대변해줄 언론의 역할 역시 무척 중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남도진 : 지역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 정말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저희 남도진이 창간된 지 얼마 안됐지만, 그 점을 항상 기억하며 노력하겠습니다. 서산온금동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은 것은 근례의 일이에요. 저 역시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볼 생각입니다.

김영란 교수 : 그러게요. 각자가 할 수 있는 역

할들에 충실해야 되겠죠.(웃음)

남도진 : 현재 재개발이 곧 공동체 해체라는 점

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재정비를 재개발로 대체

하려는 주민들에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김영란 교수 :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에 대해 너

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 해체되면

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심각하게 인식하면서도

지역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

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해버리는 거죠. 공

동체란 단순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해체

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들도 만만치 않죠.

김영란 교수 : 도시 주거는 시민의 권리에요.

내가 그 지역의 시민으로 살아갈 때 ‘그가 누구

이냐’는 사실과 무관하게, 특히 요즘 많이 대두

되는 게 외국인 노동잔데요. ‘국적이 없으면 자

신의 주거를 박탈당해도 좋은가. 여성, 아동,

장애인 등은 자신이 살고 있는 주거지에서 충

분히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등이 최근 복지에

서 쟁점화 되고 있는 화두에요.

현재 전라남도에서는 여성친화 도시 프로젝

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온금동과 여성친

화 도시 조성 프로젝트는 갈등적 요소가 있어

요. 여성 친화도시는 상당히 고급스런 수준의

문화와 교양이 담겨 있는 이야기인데, 온금동

은 생존권 사수와 박탈에 대한 삶의 저변에 관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두 가지 방식

의 발전방향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이 도시

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남도진 : 여성 친화도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도시를 말하는 건가요, 혹 여성성이 대표하는 포용력과 다양성의 수용을 강조하는 도시 조성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영란 교수: 발론은 그거예요. 도시 계획과 건

물 건설이 지금까지 남성 중심이었다는 것이

죠. 여성의 의견이 배제되고, 여성의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는 삶의 경로를 밟아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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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32

여성이 고려되지 않은 도시 건설이 많다고 보

는 거예요 여성성이 구현되지 않는 도시, 즉 배

려와 보살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도시라는

겁니다. 여성, 장애인, 노인 등 모두가 살기 좋

은 도시. ‘살기 좋다’라는 문장 안에는 이미 충

분한 보살핌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라

는 개념이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굳

이 여성친화도시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고 되지 않을까 고민해봅니다.

‘인간’. 생명이 부재한 도로, 자동차, 건물 등

이 생명 있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도시를 만

들자라는 이야기죠. 이 같은 논의들은 서산온

금동처럼 생존권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현재 여성

친화도시의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인권

의 발전’입니다. 물질차원의 고급화가 아닌 인

권 차원의 고급화, 즉 인권의 발전과 진보를 추

구하는 이러한 생각들을 서산온금지역의 재정

비 기저로 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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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 여성친화도시라.. 물론 서산온금지역과는 다소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친화도시라는 개념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산온금지역의 이야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적용될 수 있는 부분으로도 들리네요.

김영란 교수 : 그렇죠. 우리가 새롭게 인식해

야 할 부분은 해당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에 대

한 효 사상에 바탕을 둔 관심은 지나치게 일차

원적인 접근이라는 점입니다. 그분들 역시 목

포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에요. 목포시에

살면서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권리가

있다는 거죠. 따라서 목포시는 재정비든 재개

발이든 그것에 앞서 목포 시민을 위한 총체적

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목

포시가 음악분수 조성 대신 구도심에 대한 상

하수도 개설 사업을 일찍부터 추진했다면, 과

연 주민들이 저토록 억울하고 힘들게 살아왔다

고 항변하는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그 개발이

라는 것이 정말로 저급한 개발임에도 지역 주

민들이 저토록 원하고 바라는 상황을 결국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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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34

들었어야 했나요? 더 배웠

다는 우리들이 과연 이래서

되는 것인지 회의가 밀려옵

니다.

남도진 : 주민 대표를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선거 공약을 남발한 숱한 양치기 소년들 때문에 주민들이 다들 지친 상태랍니다. 공동체를 해체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 개발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어요. 목포시에서 제 몫을 하지 않는 부분들, 그동안 안일하게 대처해온 부분들.. 저 역시 지금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김영란 교수 : 목포시가 서

산온금지역의 문제를 개발

과 복지 측면에서 같은 비

중을 두고 있다면, 복지를

전담할 공무원을 지역에 파

견해야 합니다. 서산 온금

지역을 전담할 사회복지사

를 내보내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곳

에서 재개발이 진행됐을 때

‘누가 1순위, 2순위, 3순위

로 타격을 입을 것인가’를

고민해야합니다. 사회 복

지사나 혹은 사회 복지팀이

지역에 들어가 상황을 살

펴보고 전체 계획을 세워야 하죠. 이주에 대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일례로 오늘

이사를 가야한다면 독거어르신들이 어떻게 이사를 할 거예요? 혼자 사시는 분들을 누가 나서

서 이사 시킬 건가요? 주민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달라는 거예요. “할머님 어느 날짜가 좋으세

요?” 최소한 그런 단순한 것들부터 신경 써야죠. 사회복지사가 리스트를 작성해 이사하는 날을

정하고, 또 그날이 되면 담당사회복지사가 같이 가서 이것저것 살펴야 합니다. 또 임시 거주지

에 이사를 끝마친 후, 몇 달간 담당 복지사가 방문하면서 불편한 것은 없는 지 주민 분들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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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해주는 거예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의 요지는 독거 어르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목포시에서 파

견한 사람을 지정해달라는 거예요. 목포시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 어렵다면 노인복지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에 용역을 주는 방식도 고려해야죠. 서산온금 재개발 과정에서는 취약계층의 이

주부터 정착까지 프로그램화 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발을 거론하기 이전에 ‘사람’

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남도진 : 그러고 보니 독거어르신들의 이주 문제와 관련된 계획들은 사업 계획안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 같네요.

김영란 교수 : 기본적으로 ‘사람’에 바탕을 둔 계획 수립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온금동에 거주하

고 있다가 대성동으로 옮겨 간다면, 주거급여 부분이나 생계비 지원 등 수급자 전환 절차가 어떻

게 이뤄지는 지 목포시에서 안내해야죠. 작지만 실질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목포시

에서 광양시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절차가 무난하게 이뤄질 거라 예상하지만, 서

산동 사회복지사로부터 대성동 사회복지사로 담당자가 바뀌는 일이에요. 이주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곤란함을 해소할 세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재개발 계획에서부터 누가 그러

한 사항을 책임질지 미리 인적 구조를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죠. 시의 책무 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는 관점은 독거노인들을 보호의 대상뿐만 ‘목포 시민’으로 보

는 관점입니다.

시민단체들이 모두 양보해서 현재 목포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도시 재개발 방식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취약계층을 어떻게 살아남게 할 것인가’에 대한 보완책은 반드시 개발 계획상에 포함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도진 : 교수님 덕분에 독거 어르신들을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일차원적인 관점에서, 같은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목포 시민’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저 역시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아무쪼록 서산온금지역에 대한 개발이 복지차원의 노력을 함께 기울이는 ‘인간에 대한 배려’를 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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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윤나는 소포의 흑진주를 기념하며!

-‘제 7회 소포 검정쌀 축제’ 스케치-

검정쌀을 집어 입안 한가득 털어 넣었다. 검정쌀에 관한 글을 쓰려니 아는 게 없

어 막막했다. ‘검정쌀에 대해 대체 무얼 알아야 하나, 그냥 쌀은 쌀이지’라고 생각

하시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에디터라는 직업상. 하지만 결국 알아낸 것은 겨우 쥐

꼬리만큼. 여하튼 검정쌀 축제 현장에서 설문조사에 응하고 홍보용 증정품으로 받

아온 쌀을 책상 앞에 앉아 오물거렸다. 글을 써야 한다는 한(?)에 사무쳐 생쌀을 오

도독 오도독 씹어가며 ‘쌀 따위에 이토록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인생이라니.’ 한참

동안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그러다 어느 순간 ‘오! 쌀 따위라는 말은 취소해야 마땅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쌀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진도 소포리의 검정쌀 맛은 순식간에

나의 ‘구시렁’을 ‘감탄사’로 바꿔놓았다. 생쌀인데도 전혀 비릿하지 않고 아궁이에

정성껏 눌린 누룽지마냥 구수했다. 요런 앙큼한 매력을 왜 이제야 발견하게 된 걸

까? 나는 연신 중얼거리며 이 신기한 ‘검은 매력덩어리’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Black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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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아저씨의 가발이 시베리아까지 날아갈

것만 같은 바람 쌩쌩- 부는 날. 코스모스들을

따라 진도 지산면 소포리로 향했다. 히치하이

킹 하는 용감무쌍한 아주머니를 싣고서 코스모

스 길을 신나게 달리다보니 풍악 울리는 마을

이 나타났다.

소포마을은 검정쌀 재배 원조마을로 유명하

다. 검정쌀 축제는 해마다 연 중 행사로 열린

다. 검정쌀 축제에서는 소포마을이 지금껏 보

존해오고 있는 진도북놀이, 진도만가, 강강술

래, 남도들노래 등이 시연된다. 이외에도 검정

쌀떡 만들기, 코스모스 꽃길 사진촬영, 경운기

타고 떠나는 검정쌀 친환경 재배지논 현장체험

프로그램 등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올해로 7회를 맞은 검정쌀 축제 현장에는 드

문드문 마을을 찾은 외부인들의 발길이 보였지

만 대체로 한산했다. 사실 커다란 현수막이 무

색할 정도로 지나치게 한가로웠다. 마을 입구

에 위치한 소포리전통민속체험관 상설무대에

서는 한창 강강술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진도

강강술래를 여러 번 구경한 덕분에 이젠 ‘저 대

목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고, 저건 무엇을 상

징하는 건지’ 알게 됐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

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무대 왼편으론 임시 천막 아래 연세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이 바투 앉아 추위를 견디며 공

연을 구경하고 계셨다. 대단한 열정이 아닌가.

물론 소포리 이장님이나 마을 회장님의 간곡한

청도 있었을 테지만, 그 연세에 추위가 몰려드

는 공연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놀

라울 뿐. 젊은 사람들은 모자나 머플러를 뒤집

어쓰고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바람 피할 곳만

찾아 헤매는데 어르신들은 흥얼거리시며 강강

술래를 구경하신다. 뒤로 넘어질 만큼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 잔득 흐린 잿빛 하늘 아래서도

어르신들의 ‘흥’은 돋아났다, 새록새록. 검정쌀

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포리 어르신들의 열

정이 거센 바람을 뚫고 선명하게 떠올랐던 시

간. 하지만 추운 날씨에 장사는 없는 모양인지,

일부 어르신들은 쐬주(?)를 앞에 두고 두런두

런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언 몸을 녹이는데 알

코올만한 효자도 없질 않던가.

이날 축제에는 남도 소리 명창들이 어르신들

께 흥겨운 무대를 선보였다. 평소 축제 행사장

에 가면 카메라 촬영 포인트를 선점하려는 살

벌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이날만큼은 찍고

싶은 만큼 무대 앞을 어슬렁거리며 내 멋대로

사진을 찍어댔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쓴 이상한 여자애. 어르신들이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신다. ‘비켜라,아가야~’ 그런 표정보다

는 ‘넌 어디서 온 게냐?’ ‘바람 부는 데 고생한

다, 아가’.. 그런 표정들이시다.

청춘의 콧날을 납작하게 누른, 소포 어르신들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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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마을 광장 상설무대 오른편으로 검정쌀

로 만든 제품을 진열한 천막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검정쌀 요리경연 대회가 치러 치

고 있는 ‘ㄱ’자(字) 모양의 대형 천막이 바람에

휘청 거렸다. 허나 그곳에는 바람도 아랑곳하

지 않는 용감한 ‘그들’이 ‘먹음직스러운 하루’

를 만들기 위해 분주했다. 소포 검정쌀 요리경

연 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 1인 1조를 이루거

나 2인 1조를 이뤄 대회에 참가한 모습이었다.

바람이 천막을 괴롭히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휴

대용 가스레인지와 냄비, 식재료들을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진도 군내에서 참가한

아주머니 몇 분과 초당대학교 조리학과 학생

들, 광주 지역에서 활동 중인 요리 동호회 회원

등 참가 규모는 작지만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이번 대회는 특별히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과

요리사들의 표정을 바로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됐다. ‘친절한’ 검정쌀 축제

주최 측은 관람객들을 배려해 바리케이트를 치

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 카메라를 요리사들의

정수리께 까지 들이밀 수 있었다. 반면, 우리의

풋풋한 대학생 요리사들과 카메라 세례가 낯선

지역 아주머니들은 사진 촬영에 조금 신경 쓰

이는 눈치였다. 그들 앞을 배부른 판다곰 마냥

느리게 어슬렁거리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요리과정을 실컷 구경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요리는 5조 이혜영 씨

의 ‘흑미 오색 부꾸미’. 부꾸미는 곡물가루를

익반죽해 팥 등을 삶아 만든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납작하게 빚어 기름에 지진 떡을 말

잠자는 식신을 깨워놓은 검정쌀 요리경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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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평소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

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터라, 역시나 재

빠르게 호기심 지수가 상승했다. 한편,

초당대학교 조리학과에서 나온 대학생

들이 검정쌀을 이용한 다양한 퓨전 요

리를 선보였다.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

서 서로 웃고 떠들던 천진난만한 모습들

은 오간데 없고 모두들 웃음기 없이 진

지했다. 검정쌀을 이용한 메뉴도 다양

했다. 찰흑미 숭어탕수, 흑미새알진토

탕, 흑미만두, 흑미안심구이, 흑미 닭가

슴살 소세지, 흑미 양갱, 찰떡 흑미버거

등 향토적인 요리에 검정쌀을 접목시킨

메뉴도 있었고,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하

는 소세지, 햄버거 등에 착안한 참가자

들도 있었다.

한편, 민속체험관 공연장에서 남도창

과 마당극을 구경하시던 어르신들이 삼

삼오오 요리경연대회장으로 모여드셨

다. 그리곤 바쁜 요리사들에게 “어디서

왔수? 이건 뭘 만드는 거유?” 끊임없이

질문 공세를 펼치는 거다. 이번 요리 대

회 참가자 중에는 진도 인지리에 살고

있는 외국인 이주여성 설한라 씨도 참가

했다. 그녀는 ‘검정쌀 떡말이 김밥’을 선

보였다. 노인 분들은 그녈 보며 “외국이

도 참가한 큰 대회네~”라고 말했다. 그

런데 왠지 그 말이 개인적으로 거슬렸

다. 그녀는 비록 한국말이 어눌했지만

이미 인지리에 정착해 살아온 지 오래

고, 또한 외국인이 아닌 어엿한 ‘한국인’

이 아닌가 말이다. 순진무구한 시골 어

른들의 쉽게 뱉어진 말이었지만 그녀가

그 말을 듣는다면 왠지 서운할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 설한라

씨는 외국인이 아니라, 이제 우리 이웃

이에요~!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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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40

진도 소포마을에서는 현재 상시 민속체험 프

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외부인이 진도 북춤과

상모 공연, 소리체험, 강강술래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민속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민속체험을 이끄는 분들은 소포

리 동네 어르신들. 한낮에는 들녘에서 일을 하

시다 오후나 저녁 무렵에 소포 내에 위치한 민

속 전수관에서 공연을 펼치신다고. 소포 정보

센터 담당자 서명회 씨는 “소포리에는 하루에

70-80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

설이 잘 마련돼 있어요. 일주일 전쯤 예약을 할

경우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숙박할 곳을 지정합

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등 수도권

에서 반나절을 달려 진도에 도착한 이들을 위

한 배려에요. 사실 이윤을 남기는 일이라기보

다 소포 마을을 알리고자 하는 데 더 의의가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10인 이상 관광객

이 찾아오실 경우 공연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라고 덧붙였다.

소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남도소리 체험은 진

도 아리랑, 흥타령, 육자박이/ 사물장단(장구,

북), 상모돌리기 등이다. 특히 진도 북춤과 상

모 공연은 인간문화재(39호) ‘김내식’ 명인, ‘홍

복동’ 명인의 시범 공연으로, 명인들의 공연은

관광객 20명 이상 참여시에만 진행된다.

현재 소포에서 만끽할 수 있는 ‘진도로 떠나

는 남도소리체험’은 성인 개인/단체: 4만원, 어

린이 개인/단체: 3만원 수준이다. 소포 체험 여

행일정은 1박 2일 코스로 짜여 져 첫째 날에

는 남도민속 문화 체험, 둘째 날에는 소포 주변

‘신비의 바닷길’, ‘운림산방’ 등을 둘러본다. 이

외에도 여행 첫째 날, 검정쌀로 만든 소포리만

의 저녁식사가 제공된다.

자세한 사항은 전남 진도 소포검정쌀마을

(http://sopoli.invil.org/)를 참고하길!

보통의 나날들이 지겨운 당신, 소포리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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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쌀은 자신만의 색깔이 강하다. 흰 쌀밥을

거무튀튀하게 물들인다. 그런 이유로 나는 평

소 검정쌀을 조금 못마땅하게 여겼다. 다소곳

하지 않고 제 멋대로 다른 것들이 가진 고유한

색을 침범하기 때문에. 그런데 소포리에서 길

러낸 검정쌀로 밥을 지어 맛보며 그 생각에 수

정을 가하게 됐다. 검정쌀이 하는 일은 ‘침범’

이 아닌 ‘어울림’과 ‘풍요’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소포리 주민들이

검정쌀과 흰 쌀로 지어낸 밥을 내오면서 타지

인들을 환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검정쌀은 흰

쌀밥에 이웃이 함께 하는 삶의 향기와 정을 부

어주는 것이 아닐는지. 소포의 검정쌀에서 왠

지 남도 민요가, 잊혀 진 이웃 간의 정의 맛이

배어 있을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모

순을 갖고 있다. 누군가와 교류하기를 원하면

서도 동시에 홀로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

만 검정쌀은 ‘홀로’ 되는 것을 못 견딘다. 언제

나 흰 쌀밥과 함께 어우러져야 제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소포에서 키워낸 검정쌀. 쌀 대신 밀

가루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소박

하지만 구수한 맛과 향으로 우리의 식탁을 풍

성하게 만들고 있는 검정쌀에 주목하시라~.

낯선 사람에게도 선뜻 권하는 따뜻한 밥 한

공기. 그들을 위로하는 구성진 남도 가락. 지친

보통의 나날들과 무거워진 삶의 시간을 버티기

어렵다면,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소포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소포 검정쌀에 관한 가벼운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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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42

세 번째 이야기.‘도시 재정비’에

관한 목포시의 인식 전환 필요

이달 2일, 지난 11월에 이어 서산온금 주민들을 대

상으로 한 두 번째 공청회가 열렸다. 노령의 주민들

이 참석한 가운데, 목포시 도시개발과 담당자 및 목

포 시의회의원, 목포대 교수 등이 다양하게 이 자리

에 참석했다. 공청회라기보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 설명회에 가까운 자리였다. 이날 일부 주민

들은 목포시의 도시재개발 의지에 반신반의하는 모

습이었다.

10년 가까이 소문만 무성했기에 좀처럼 믿기 힘들

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시민단체 관계자는 거의 모습

을 보이지 않았다. 헌데 그곳에 좌중을 술렁이게 만

든 젊은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경실련의 장미

사무국장. 목포시의 기존 개발방식을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서 그녀는 홀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길게 말을 잇지 못했다.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거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그

녀가 공청회 자리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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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경실련(목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목포 내 다른 지역의 공동화

장미 사무국장, 김종익 사무처장 인터뷰

슬럼화 현상 부축일 것

용적률 320%

남도진: 주민 공청회 날 제겐 장미 사무국장님의 등장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목포 시민단체는 거의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혼자서 발언하셨잖아요.

장미 사무국장: 그랬나요? (웃음) 그날 주민 분들이 제

발언에 무척 흥분하신 것 같더라구요.

남도진: 물론 비난하는 분도 계셨지만, 장미 사무국장님처럼 어르신들을 위해 누군가는 독거 노인문제를 거론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주민들도 계셨어요.

장미 사무국장 : 70%가 넘는 세입자와 연령대가 높은 주

민 분들은 현재 서산온금 재개발에서 논외 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목포시가 제시한 개발계획 원안대로 공사를

진행한다면, 원주민 이주 대책은 백지 상태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따라서 경실련은 목포 도시개발계획에

대한 원안 폐기와 새로운 대안 찾기를 목포시에 촉구하

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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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44

최근까지도 목포시는 전국 평균수준인 원주

민 재정착률 20%를 거론하면서, 이 수준을 적

용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죠. 또한 주민

자치를 책임질 조합이 결성되면 자연스레 조합

과 건설업체가 재정착에 대한 부분을 원만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민들의 역량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 문제는

목포시와 시민단체가 동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도진: 저 역시 그 점에 공감합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거론되지 않는 문제들이 주민들의 역량에 맡겨질 때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지 미지수죠..

장미 사무국장 : 서산온금지구는 공공성을 지

닙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목

포시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포시는 공

공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요. 또한 유달산 경

관을 해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사업자 유치

를 위해 이를 무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용적률이 320%로 설정돼 있어요. 과연 9000

여명이나 되는 인구가 어디서 이동해 오겠습니

까? 이는 현재의 서산온금동과 마찬가지로 다

른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을 부추길 것입니다.

남도진: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군요. 새로운 인구를 서산온금동으로 유입시키는 과정에서 목포 다른

도심이 공동화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입니다.

장미 사무국장 : 현재 목포시가 서산온금 주민

들을 위한 임시 거주지로 제안하고 있는, 대성

지구의 임대주택은 이미 부족한 상태에요. 또

한, 추가 건설시기가 서산온금 지역 주민들의

이주시기와도 맞지 않구요. 현재 상동 지역을

한 번 보세요. 상동 아파트에 저소득층을 한꺼

번에 몰아넣는 일방적인 이주 정책으로 이미

그곳은 슬럼화가 진행된 지 오래입니다. 대성

지구에 공동체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겠다는 발

상은 문제가 많아요. 이미 목포 내 임대주택은

포화상태에요. 그렇다면 서산온금 주민들은 과

연 어디로 가야하나요?

남도진: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 다소 불투명한 것 같습니다.

장미 사무국장 : 사실 공청회는 주민들만을 대

상으로 하지 않아요. 사회 내 각계각층의 의견

을 수렴하는 과정이에요. 지난 2일에 열린 공

청회는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

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목포시에서 진

행한 설문조사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

질 않냐 생각해 봅니다. 설문조사에서 노인 분

들의 참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투명하지 않아

요. 세입자에 대한 조사 역시 마찬가지에요. 다

시 말해 주민 여론을 반영했다는 그 타당성에

신뢰를 갖기 어렵습니다.

남도진: 현재 서산온금지구 재정비와 관련해 목포시가 제안한 계획안이 전라남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단계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경실련’에서는 준비 중인 대응 방안이 있습니까?

장미 사무국장 : 현재 경실련에서도 전남 도시

계획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에요.

320%라는 과도한 용적률에 높은 밀도, 목포시

계획안에 빠져 있는 원주민 이주 대책 등에 관

한 문제점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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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최근 일부에서는 서산초등학교 이전과 관련해 학교 운동장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목포시의 계획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목포시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미 사무국장 : 학교가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시민들의 이용을 잠재 조건으로 삼는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차장 같은 시설 등은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을 위협하는 위해요소에요. 어불성설

이라고 봅니다.

남도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 부근에 지하 주차장을 만든다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산온금지구 재개발에 관한 경실련의 대외적인 입장은 어떻게 되나요?

김종익 사무처장 : 현재 경실련은 용적률

300%이하를 주장합니다. 사실상 서산온금지

역은 주거 정비가 필요한 곳이에요. 그 점은 인

정합니다. 하지만 아파트 밀도가 높아지면 바

다에 인접한 거주지로서의 매력이 그만큼 떨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포대교 건설로 북항

에 유입될 인구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어요. 인

정합니다. 고하도에 주거공간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

다. 그러나 목포시가 추정한 1만 여명에 이르

는 인구가 과연 어디서부터 유입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에요.

남도진: 목포시 계획안이 현재 전라남도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이달 말 도시계획 위원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익 사무처장 : 현재 목포시에서 계획안에

반영한 320% 용적률을 도시계획위원회가 그

대로 묵인하고 그 수준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도시계획위원회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

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서

산온금지구의 재개발 사업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아파트 밀도 부분에 대한 검토는 목포

시와 도시계회위원회 사이의 조율이 반드시 필

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목포시 계획안이 행정

절차를 모두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조합 결성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현재 2,3구역 주민들이

잠잠한 이유는 표면화된 이해관계가 아직 발생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합이 결성되고, 조

합원과 비조합원으로 나뉘게 되면, 목포에서는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던, 대도시에서나 일어날

법한 주민간의 갈등 양상이 빚어질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보상금 지급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직까지 목포시의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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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46

은 미완입니다. 특히 현재 재개발을 추진 중인

목포시장님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임기 만료와 시장 선출이라

는 변수는 서산온금동에 대한 개발 계획을 전

혀 다른 양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으니까요.

남도진 : 목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로서 그동안 서산온금동 문제에 관심이 저조했다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목포 11개 시민단체에 대한 주민들의 원망에 가까운 서운함이 팽배해 있는 것 같은데요..

장미 사무국장 : 목포시 계획안은 지난 9월에

나왔어요.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구체적인 계

획안 없이는 관련 내용을 알기 어렵죠. 도시 계

획안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가 시민

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헌데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도

시계획 과정에서 주민참여란 매우 저조하며 형

식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남도진 : 그렇군요.. 김종익 사무처장님께 마지막으로 질문 드릴게요. 두 번의 공청회 자리에서 과거 ‘째보선창 복원’을 주장했던 장십오 선생이 시민단체에 대한 서운함을 강하게 내비치셨는데요.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지..

김종익 사무처장 : 째보선창 복원과 관련해 장

십오 선생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

난에 대해서 말이죠? 당시 째보선창을 복원하

더라도 선창으로서의 포구 기능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2004

년 목포 미항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째보선창 복원사업 이야기가 최초로 나왔었죠.

당시 째보선창을 문화단지로 조성하자는 의견

과 조선내화를 어촌체험장과 박물관으로 조성

해 관광에 접목시키자는 의견, 중밀도를 적용

해 주거단지를 조성하자는 세 가지 의견이 나

왔어요. 그리고 결국 최종안으로 ‘중밀도 주거

단지 조성’이 채택됐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에서 당시 주민자치위원장이셨던 장십오 선생

의 면담을 진행했었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서 검토됐을 뿐 정책 집행자도 아닌 시민단체

나 지역 교수가 어떻게 확답을 드릴 수 있었겠

습니까.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서산온금동에

대한 개발은, 그럴 수만 있다면 째보선창을 중

심으로 한 문화단지 조성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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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던 지난 11월의 어느

날 서산온금동을 찾았다. 골목을 배회하다 그

물을 깁는 어르신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를 나눴다. 그물을 손질하시던 할머님들은 저

녁곁두리로 남겨둔 빵과 음료수를 선뜻 내미시

며 낯선 이를 반기셨다. 내가 카메라를 요리조

리 치켜들고 어르신들을 찍는 동안, 할머님은

소녀처럼 긴장하시기도 하고 일부러 고개를 숙

여 얼굴을 감추기도 하셨다.

“한 달에 그물 깁는 일은 며칠이나 하세요?”

한 어르신에게 여쭙자 “한 달에 15일 정도는

그물 일을 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아침부

터 해 질 때까지 그물을 꿰매시는 거예요?” 라

고 내가 또 묻자,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나 7

시까지 일해.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비가 오

나 상관없이 이렇게 길바닥에서 그물을 깁제.”

라고 대꾸하셨다.

오늘은 12월 16일. 길 위에 도톰하게 쌓일 정

도로 첫눈이 많이 내렸다. 오늘 같은 날씨라면,

할머님들을 위해 고깃배들이 한동안 항구를 찾

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깃배가

바다 위에서 발이 묶이지 않고서야 한 푼이 아

쉬운 다순구미 양반들이 기어코 그물 일을 하

겠다고 나설 테니 말이다. 일흔을 넘기신 어르

신들이 ‘다순구미’라는 길 위에서 꽁꽁 언 손발

로 그들의 삶을 깁는 광경. 이제는 불편함이 습

관처럼 굳어져 불편한 줄도 모르겠다는 한 어

르신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아가씨는 뭐 하러 사진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

는 겨?”

취재 도중 어르신 한 분이 물으셨다.

2011년 가을, 그물 깁는 ‘다순구미’를 만나다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관련 취재 스케치

“온금동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이곳 분

들 만나 뵈러 왔다가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고

있어요. 일하시는 것도 구경하고 싶고 해서..”

트우린 잘 몰라. 아직 확실한 건 아니제?”

쉴 새 없이 그물을 기우며 내게 묻는 어르신께

조심스레 “마을 대표님들이 회의도 하고 공청

회도 열고 있어요.”라고 답을 드렸다.

“우린 몰러...그렇구먼. ”

주홍색 그물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 깊숙

이까지 길게 펼쳐진 가운데, 오후의 서슬 퍼런

바닷바람을 맞는 어르신들은 더 많은 그물을

깁기 위해 말을 아끼셨다.

현재 목포 시민단체, 목포시, 주민공동체 모

두 서산온금동 지역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는 데 동의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

는 무엇일까. 바로 서로의 의견들을 조화롭게

반영해 균형을 이루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나 설명도 불필요하다. 가장 핵심

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소수이냐, 다수이냐를 논하기 전

에, 그들 모두 목포시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

는 안 될 것이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그리고 받아야 할 관심과 배려. 목포시의

원도심 개발계획이 ‘다순구미 사람들’을 원 밖

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춰

지길 간절히 바란다.

에디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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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걸음

恨삶과 죽음을 동시에 길러낸

의 뿌리를 향해 한 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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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텔레비전이 없던 어린 시절

고향 ‘진도’가 선물해주는 굿판을 놀이터 삼아 자라났다.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간 씻김굿에 대한 열정

이제 그는 장고 치는 고인으로

진도씻김굿보존회를 이끌며 선 굵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넋이로세 넋이로세 넋인 줄 몰랐더니 이제 보니 넋이로세 신이로세 신이로세 신인 줄 몰랐더

니 이제 보니 신이로세”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마지막 생애. 자신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영혼과 누군가를 떠나보낸 남은 자들을 위한 씻김의 과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72호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길러낸 우리나라 고유

의 무속의례이다. 죽음이 갖는 둔중함과 삶이 갖는 비애 섞인 희망을 절묘한 이중주로 풀어낸 진

도 씻김굿.

세상이 안겨준 혼탁한 먼지를 뚫고 보이지 않는 경계선 위에서 삶과 죽음을 말갛게 씻기고 자

유롭게 품어온 수호자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한 걸음.. 애환 섞인 생애를 끊임없이 새롭게 틔워

낸, 恨의 뿌리를 향해 천천히, 또 한 걸음.

‘씻김굿의 첫 번째 수호자’ 김오현 선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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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 씻김굿에 대해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합

니다. 진도 씻김굿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김오현 선생 : ‘씻김’이란, 말 그대로 영혼을 깨

끗이 씻겨 저 세상으로 보내드린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엔 진도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으면 씻김굿을 했습니다. 원래 우리

나라는 예부터 집에서 장례를 치렀잖아요. 최

근 기독교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

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토속신앙, 무속신앙

을 간직했던 어르신들도 기독교로 개종한 탓에

이젠 전승지인 진도에서도 씻김굿을 구경하기

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국가에서 씻김굿을 보존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연 중 행사를 치를 수 있도

록 지원하고 있어요. 또한 원형 그대로를 보존

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 이외에도, 저희 진도

씻김굿보존회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씻김굿 보

유자나 전승 조교, 이수생 들이 다 함께 모여

정기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장례문화로서 ‘씻김

굿’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에요. 현재

씻김굿은 공연예술의 한 장르로 탈바꿈하고 있

는 상황이에요. 어떤 식으로든 대중에게 씻김

굿을 소개하는 측면에서는 공연예술로서의 변

신이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전승지에서조차 씻

김굿을 통한 장례풍습이 희미해지고 있는 상

황은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인 되신 박병

천 선생님께서는 씻김굿이 갖고 있는 음악성에

주목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결국 씻김굿을 무

대예술로 승화시키셨죠. 박 선생님은 씻김굿

이 가지고 있는 음악성, 가무악 등이 총 출동할

수 있는 다양성과 총체성에 주목하셨습니다.

1979년에는 씻김굿에 쓰이는 음악으로 세계

음악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기 했

었죠. 씻김굿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요소가

뛰어나다는 점을 일치감치 깨달으신 거죠. 씻

김굿은 총 7시간 이상 연출됩니다. 하지만 지

금은 씻김굿의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다른 공연

요소와 접목시켜 관객이 한 두 시간 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했죠. 무대에 걸 맞는 공연예술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씻김굿은 중요무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된 우

리네 문화유산이에요. 산자에겐 명과 복을, 망

자에겐 좋은 곳으로 가라는 천도의 의미를 담

고 있습니다. 예술성이 뛰어나고, 그 안에 음

악, 무, 악기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종

합예술입니다.

남도진 : 그렇다면 무대 공연예술로서가 아니

라, 씻김굿을 장례문화의 일부로 계승하고 있

는 분들은 몇 분이나 계신가요?

김오현 선생 : 채정례라는 단골이 계십니다.

80세가 한참 넘으신 분인데, 현재 진도에 생존

한 마지막 ‘당골’이십니다. 국가에서 지정해준

72호 씻김굿 보존회는 10대째 세습무로 이어

져 내려온 고 박병천 선생의 가계도를 중심으

로 세습되어온 씻김굿을 말합니다. 박병천 선

생 중심의 세습 계보 말고도, 당시 진도에는 수

많은 단골판들이 존재했습니다. 씻김굿을 해온

수많은 단골들이 존재했다는 얘기죠. 채정례

씨는 노단골로서 지금껏 무업을 지속해오고 계

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습무로서 씻김굿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이가 박병천 선생의 따님

인 박미옥 씨로서 현재 72호의 전수조교로 있

습니다. 또한 강신무이면서 진도 씻김굿을 좋

아해 보존회에 가입한 후 활동하고 있는 송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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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씨가 있습니다. 그 분은 강신무와 세습무를 아우르고 있습

니다. 저와 다른 기타 회원들은 사실상 박병천 선생님의 씻김

굿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죠. 따라서 제 경우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굿판을 보고 장고와 타악을 배웠습니다. 현재 채정

례 선생님은 노단골로 계시면서 진도 지역에서 굿판이 벌어

지면 그곳에서 실제로 씻김굿을 이끄시는 편입니다. 연로하

신 연세라 예전보다는 활동이 적으신 걸로 압니다. 반면, 채

정례 선생님과 달리 저희 씻김굿보존회 회원들은 진도에서

공연상의 굿판이 벌어지면 대부분 그 자리에 참여하는 편입

니다.

남도진 :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씻김굿의 맥을 이어오고

계시는 분들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알 것 같네요. 그럼 최근

씻김굿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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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현 선생 : 최근 72호 씻김굿을 배우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씻김굿’은 과

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점

이 특징입니다. 오늘날처럼 의약과 문명이 발

달하기 전에는 단골들이 산파 역할과 자손 점

지 등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관했었죠. 과거 진

도에는 단골들이 많았어요.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죠. 큰 단골, 작은 단골들이 있

었습니다. 그 중에서 국가에서 지정한 72호 진

도 씻김굿은 박병천 선생님의 가계를 조사해

반영한 결과이지요. 하지만 씻김굿의 원뿌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산사람에게는 명과 복을, 망

자를 위해 천도를 빌어주는 씻김굿이 지닌 의

의는 진도에서 기나긴 세월을 이겨낸 무계라면

누구나 동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씻김

굿’ 안에는 다른 굿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음악적

요소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오늘날 공연예

술로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 것입니다.

남도진: 그렇군요. 씻김굿의 음악적 요소에 관

해선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저 무속신앙

을 반영한 하나의 형식으로만 이해했을 뿐입니

다.

김오현 선생 : 이제는 ‘씻김굿’을 종교차원으로

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도에

서는 장례식을 축제식이라고 부르며 죽은 자와

산자가 마지막 생을 함께 하는 축제로 여깁니

다. 상을 당한 집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곳은

진도 밖에 없을 겁니다.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빌어주는 씻김굿 속에 음악과 가무

가 담겨 있기에 비애 속에 ‘흥’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죠. 씻김굿이 내재하고 있었던 공

연 요소가 결국 최근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

는 무대 예술로 선을 보이게 된 것이죠.

남도진 : 선생님께서는 ‘씻김굿’과 관련해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오현 선생 : 네. 최근에는 고흥 쪽에서 주부

들로 구성된 수강생들에게 씻김굿을 가르치고

있어요. 또한 목포 대불대학교 연희학과에서

대학생들에게 진도 씻김굿을 전수하고 있습니

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 강의

를 진행하고 있어요. 박병천 선생님이 생존해

계실 때 연희학과를 개설하셨는데, 저는 선생

님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서울 한예종 역시 씻

김 음악을 강의에 접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

다. 중앙대나 대전 목원대에서도 씻김굿 음악

을 전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 각

대학에서 씻김굿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습니

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여전히 단골을 하

대하던 관습이 남아 있는 편이죠. 그러나 다행

스러운 것은 현재 국가차원의 지원과 우대로

그러한 기존 관념들이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도진 : 그렇군요. 아직도 단골이나 씻김굿에

대한 지역적인 편견이 남아있군요. 그러나 최

근 들어 차츰 지역 사람들 역시 씻김굿을 전통

으로 문화예술로 여기게 되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건 선생님께서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입니

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씻김굿’의 매력,

지난 세월동안 이 일을 해 오신 이유라면, 뭐가

있을까요?

김오현 선생: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는 순간 죽는다는 전제조건을 갖습니다. 그러

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게 됩니다. 씻김굿

안에서 기나긴 인생에 비해 찰나와도 같은 시

간을 보내며 다양하게 인간의 감정을 만끽하는

일. 또한 그 안에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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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울음 속에서 어떻게 경쾌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씻김굿이 음악을 간직하고 있기에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죠. 어린 아이 시절부터 저는 씻김

굿을 보고 자랐습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어린 시절. 지역 곳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굿판이었습니다. 굿판이

놀이터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제게 씻김굿은 편안한 옷을 입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가능하게 했습

니다. 씻김굿은 인생의 평지와 언덕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그

점에 매료돼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살아왔죠. 인간의

희노애락을 동시에 경험하고 만끽할 수 있다는 오묘함에 마음

을 빼앗겼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 생의 마지막까지 씻김굿이

보다 아름답게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그 맥을 묵묵히 이어

갈 생각입니다.

남도진 : 인생의 희로애락을 동시에 담아낸다.. 철학적이면서

도 매력적인 표현이네요.. 문득 생각이 나는 군요, 최근 ‘물고

기’라는 독립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았더라구요. 씻김굿을 소

재로 한 영화라는데 혹시 이에 대해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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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과 겨울 사이, 시간의 ‘씻김’을 경험하다..

김오현 선생 : 아, 네~. 그런 영화가 제작됐다

는 건 저 역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저희 씻김굿보존

회 회원들이 봉화 마을을 방문했어요. 회원들

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씻김굿’을 올려드렸죠.

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자, 종교 차

원을 떠나 예술성이 포함된 씻김을 해드렸습니

다. 그 때 영화사에서 씻김이 갖고 있는 음악적

요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영화에 참고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진도의 씻김굿, 다시래기, 망

가 등을 소재로 삼아 영화를 제작하려는 이들

이 진도를 많이 찾아옵니다. 그만큼 진도만의

장례문화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최근

진도의 축제식 장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되

기 직전이기도 하구요.

남도진: 그렇군요. 아참, 지난 번 씻김굿보존회

의 마지막 정기공연을 보게 됐습니다. 당시 아

쉽게도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진 못했지만, 매

우 인상적이었어요. 굿을 보러온 사람들의 표

정이 일상다반사를 지켜보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정

말 신기했습니다.

김오현 선생 : 진도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

터 굿판을 보고 자라납니다. 진도에서는 마을

에서 초상이 나고, 씻김굿이라는 굿판이 마련

되면 산자와 죽은 자의 송별식이 거행됩니다.

이 자리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일상

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논두렁이나 밭두렁,

혹은 마당에 둘러앉습니다. 그런 다음 한쪽에

서는 곡소리를 내고, 한쪽에서는 씻김굿 가락

을 왁자지껄하게 즐깁니다. 그 와중에 이웃사

촌은 논에 물고 트는 일로 속상했던 일들을 한

바탕 풀어놓습니다. 그렇게 술잔을 주거니 받

거니 하면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는 것이죠.

진도에서 벌어지는 씻김굿은 이처럼 삶의 다양

한 모습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절묘한 순간들

을 선물해줍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 인생의 다채로운 숨결들을 씻김

굿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

에 듭니다.

차가워진 저녁바람에 시린 코끝을 하고 콘크

리트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앞자리를 선

점한 아주머니들의 배려로 조금한 카메라를 들

고서 방송 m사와 k사에서 나온 대형 카메라들

과 신경전을 벌였다. 그 사이 작은 천막에선 씻

김굿 공연이 시작됐다. 이날 진행된 씻김굿공

연은 진도씻김굿보존회가 2011년, 무대에 올

리는 마지막 정기 공연이었다. 새하얀 소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그녀

들과 장고, 아쟁, 꽹과리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

씻김굿 공연을 보기 위해 진도로 향하면서 이

상한 부담감이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영혼, 굿,

무속신앙 등에 관한 어린 아이와도 같은 고정

관념이 두려움을 낳았다. 그런데 씻김굿을 보

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축

제’에 참여한 느낌을 자아냈다. 특히 진도 사

람들의 태도나 표정은 나를 내심 놀라게 만들

었다. 물론 그날은 공연을 위해 준비된 씻김굿

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이 쉽게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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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56

을 나타낼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진

도 사람들의 표정은, 그 어깨의 들썩임은, 후렴

구를 조그맣게 흥얼거리는 목소리는 일상의 리

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에 아주 가

까웠다.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씻

김굿보존회 회원들 곁에 바투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굿을 감상하는 모습이라니. ‘진도는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한 어울림을 간직한 지

역’이라는 깨달음이 이어졌다.

난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굿판과 씻김굿의 다

양한 의식, 그리고 절절한 느낌을 낳는 춤사위

와 장단. 한과 미련, 소망을 담아낸 고색창연하

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숨결이 간직한 가사들..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는 바람을

맞으며 산자와 죽은 자를 모두 말갛게 씻기는

‘씻김굿’의 의미에 주목하게 되었다. 몸과 마

음, 더 나아가 영혼을 씻기는 일. 삶에 대한 미

련과 회환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고 밝은 영

혼이 되어 언젠가는 저마다 가게 될 그곳으로

옮겨가길 원하는 마음.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

들에게는 영혼한 이별이 만들어낸 지독한 부재

가 상처가 되지 않게, 받아들임과 내일에 대한

소망을 담아 씻기고 씻기우는 과정.. 가을과 겨

울이라는 낯익은, 그러나 매순간 일회적일 수

밖에 없는 계절 속에 짙고 강렬하게 스미는 진

도의 씻김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날 공연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진도 씻김굿

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막연한 호기

심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은 결국

진도에서 씻김굿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오현

선생에게로 나를 인도했다. 몇 차례의 연락과

‘전화만 하지 말고 얼굴을 내밀라’는 김오현 선

생의 호통. 남도진 박혜미의 당돌한 말대꾸. 선

생과의 사소하달 수 없는 말다툼. 늘 예기치 못

한 일들이 생겨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들이

쌓여갔다. 그럴수록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꼭 찾아뵙겠다!’ 라는 집념 가득한 오기. 한 달

가까이 뵙기를 청하다 지난 토요일 마침내 김

오현 선생을 찾아뵈었다.

진도는 목포에서 40분 남짓이었지만 선생을

만나 뵙기는 웬일인지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하늘은 불안스런 회색이었으며,

거기다 온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겨울 날씨까

지..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려 위험천만

해진 도로 위를 황야의 무법자처럼 달려 진도

에 도착했다. 선생이 계시는 진도향토문화예술

회관에 도착해 마침내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어그러짐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김오현 선생. 선생과 이야기를 나

누면서 진도에 생존해 계신 노단골, 채정례 선

생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마치 씻김굿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길, 그 길

을 걸어갈 이유가 생긴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김오현 선생과의 대화가 끝나 자 마자, 채정례

선생님을 뵙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요란스런 머

드팩으로 피부 관리 중인 자동차를 몰고 씻김

굿을 향해 또 한 번 당찬 한 걸음을 내딛었다.

에디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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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어떻

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오거리 문화센터에

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가 11개 목포 시민단체를 대표해 발제자

로 나섰다. 정태관 대표는 25층(95m) 이상 초

고층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유달산(225m) 8부

능선까지 가려지는 등 조망권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목포시의 도시재개발 계획에 조정이

필요가 있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한편, 조망권에 다소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

나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개발에 대한

기존 계획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포시의 주장도

이에 팽팽하게 맞섰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서산온금동 지

역에 변화를 추구해야한다는 데 일제히 동의했

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를 보였다. 목포시는 초고층 아파

트를 건설해 서산온금지역에 인구를 적극적으

로 유입, 원도심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편, 목포 시민단체는 목포의 인구 증

가율을 살펴 볼 때 25층 아파트 건설은 현실과

매우 괴리되어 있으며, 주민들을 위한 재개발

계획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일격했다. 이와

함께 목포시가 제시한 주민 이주 대책 및 재

정착에 관해 계획도 사실상 공동체의 해

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어떻게 볼 것인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 현장을 가다

목포 11개 시민단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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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58

사회자 (경실련 김종익 사무처장): 주제 발

표를 15분씩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정 토론자

들이 돌아가면서 찬반 토론하겠습니다. 크게

주제는 네 가지로 잡았는데요. 첫 번째 도시개

발효과 이대로 도움이 되겠는가, 두 번째 경관,

세 번째는 원주민 문제 어떻게 풀 것이냐, 네

번째 의견수렴 절차가 적정했는가를 가지고 각

각 15분씩 난상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목포시 도시개발과 윤인영 과장: 목포시에서

는 1차적으로 2005년부터 2006,7년 2월 28일

까지 서산동 일대의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

와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실시했습니다. 당시에

는 7만㎡ 면적에 대해 5층 이하로 제한 돼 있

었습니다. 개발 방식은 전면 개발방식이 아

니었고, 유달 북교동 주거 환경 개선방법을

적용했습니다. 공원, 도로 등에는 주거

환경개선법을 적용하고, 나

머지는 주민 자력으로 한다는 내용이었죠. 하

지만 사업성이 없어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습

니다. 그러다 2006~7년부터 이러한 낙후지역

에 대한 도시재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생겼습

니다. 이후 저희 시는 주민설명회, 행정절차인

주민공락, 시의원 의견청취, 목포시도시위원

회 자문, 전라남도 도시 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2009년 12월 27일 날 서산온금 재정비촉진 지

구를 ‘도시재정비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발하

겠다는 고시를 전라남도에 상정했습니다.

목포시 도시개발 윤인영 과장: 개발방식은

잘 아시겠지만 목포시가 계획합니다. 그리고

사업은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해 사업자를

선정합니다. 2009년 12월 24일 목포시는 재정

비 계획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층수와 토지

이용 방식이 구체적으로 나왔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현재 주민 위주로 개발을 해서도 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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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업자 위주도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개발전문가인 마스터 플래너를 선

정하게 돼 있습니다. 총괄계획과를 만들어, 실

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목포대 교수님을

도시계획전문가로 선정했습니다. 주민설명회

3회, 의회설명회 1회, 주민회의 전문가 설문조

사를 거쳐, 설문조사 역시 공정성 확보하기 위

해 목포대학교 산업협력단에 지적부동산연구

소에 의뢰한 결과 주민 90.9% 전문가 88.7%

가 찬성했습니다.

목포시 도시개발 윤인영 과장: 우리 시가 간

과해서는 안 될 부분도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

재 유달산에서 바다를 보는 경관, 바다에서 유

달산을 바라보는 경관에 전혀 훼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죠. 하지만 원도심의 활성화는 이

런 부분에 대해서 감내하면서도 거주 촉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

고 싶습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저희 문화연대에

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것 마냥 비쳐진 것에 대

해 먼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

니다. 자료에 나와 있듯이 서산온금동 지역은

대규모 재개발보다는 현재 주민들이 정착율을

높이고 마을 공동체 형성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 오늘 발표 내용이 그렇

습니다. 목포시 통계자료의 서산 온금지구 인

구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에는 1521세대였

습니다. 현재 인구가 3096명이 거주하고 있습

니다. 한 가구당 약 2명이 사는 걸로 나옵니다.

주거형태 또한 총 995호 세대로 허가주택이

49%이며, 무허가 주택은 50%입니다. 세대수

가 1521세대 중에서 자가세대가 180세대, 세

입자가 1340세대로 세입자가 현재 87%를 차

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1521세대 중에 60세

이상 인구가 751명으로 약 50%(48.3%)가 독

고노인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재개발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다음으로 유달산

조망권 문제입니다. 목포의 천해 자원을 보존

하고 관광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목포 시의회의

조례에 의해서 5층 (15m 이상)으로 건물을 못

짓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목포시는 이를 폐

지할 계획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째보선창 쪽이 25층으로 바다 쪽으로 지어집

니다. 수협자리, 공판장 앞쪽으로 23층, 중앙

여중 목여고 쪽으로 23층 규모로 아파트가 지

어질 예정입니다. 일부러 사진을 컬러로 준비

했습니다. 이렇게 됐을 경우, 유달산이 228m

입니다. 95m이하면 유달산의 8부 능선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됩니다.

목포시 도시개발과 유인영 과장: 제가 이 부

분에 대해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어

디서 입수했는지 지금 이 자료를 보니까 2011

년 의회에 보고한 자료로 해석되네요. 당시에

는 저희들 계획이 높게는 40층 낮게는 28층까

지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의회에서 이것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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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60

민 정서와 부합하지 않고 경관에 문제가 있다,

라는 의견을 내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않았구요. 그때보다 층수를 현저히 낮춰 25층

으로 설정했습니다. 바다 쪽으로는 25층을 하

고요. 유달산 쪽으로는 층수가 낮은 9층에서

16층까지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조망권을 보완

했습니다.

사회자: 거기까지만 말씀해주시죠.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자, 보세요. 요게

2010년 11월 달에 목포시 의회에 보고했던 원

본입니다. 요게 2011년 9월에 보고했던 내용

입니다. 저두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40층, 25

층 얘기 나왔어요. 근데 이 보고내용에 시뮬레

이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도서건설

위원장도 계시지만 시뮬레이션에 관해 보고되

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목포시의회 의원님

께서 나중에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원

본입니다. 목포시는 서산온금지구에 약 3000

세대 정도를 지을 계획입니다. 분양아파트가

2651세대, 85%가 분양입니다. 임대아파트가

446세대, 어떤 경우는 411세대로 나옵니다.

14.4%를 (임대아파트로)지을 계획으로 보고

돼 있습니다. 목포시는 원도심 일대의 인지적

특성을 고려해 25평 이하의 소규모 주택을 배

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목포시의 이러

한 소규모 구상은 현실적으로 주민들을 재정착

시키는데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주거 이전비, 이

사비의 한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인

인 경우 4개월에 530여 만 원의 이전비를 줍

니다. 이사비 같은 경우에는 10평 이하기에

때문에 30여만 원 정도의 이사비를 보상해

준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럴 경우 총

530만원 밖에 안 되는 돈으로

751세대나 되는 독고노인

분들이 어딜 가서 사셔야

될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

표: 다음으로 이주 대책

방안에 대해서 말씀드리

겠습니다. 목포시는 1단

계로서 2012년을 이주시

기로 정하고, 입주 시기를

2016년으로 계획하고 있

습니다. 목포시 계획에 따

르면 추가적인 임대주택

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

니다. 이것은 의회 용역

보고에 나와 있는 자료입

니다. 목포시는 용해지구

2477세대(분양주택 1,193 임대주택 1284세

대)를 지을 계획입니다. 대성지구 1,191세대

(분양주택 621, 임대주택 1,284)를 건설 중인

임대주택을 서산온금지구 주민들을 수용할 순

환형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의뢰한 결과 목

포용해2지구의 경우 2011년 11월 790호 (국

민임대)를 착공할 예정이며, 나머지 2블록은

2013년 이후 미정입니다. 목포대성지구 540

세대의 경우는 2012년 이후 착공 미정으로서

분양시기가 미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게다가 서산온금

지구 건설을 주도할 LH 공사의 임대 방법은 지

역 주민만을 특별하게 청약이나 입대할 수 있

도록 배려하지 않습니다. 추첨을 통해 임대청

약을 해 주민들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

는 환경입니다. 또한 현재 목포시내 공공임대

아파트의 경우도 대기 시민들이 많아 서산온금

지역 주민들의 입주는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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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조합형의 문제와

설문조사 문제입니다. 목포시는 2009년 3월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세입자

주민들이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이 사업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기업 52.6%

가 나왔습니다. 무응답 31.2% 나왔습니다. 그

러나 목포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민간

회사를 통해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대안적 재정비 사

업의 추진 방안으로, 박원순 시장이 취임돼 서

울지역 사례와 같이 주민들이 자기 책임 하에

집을 직접 개량하는 ‘공공지원 주민참여’방식

의 재개발사업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

냐, 저는 그렇게 제안을 합니다. 무엇보다 서산

온금지역은 목포시 주민이 느낄 수 있는 것처

럼 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저두 여러 번

다녀봐서 압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재개발

입니까? 결국 아파트 업체들의 이익만을 추구

하는 주택건설이 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이래

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정영수 목포시의원: 저는 이 지역에서 선거만

20년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에 대해서는 좀

압니다. 재정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산동 온금동 재정비는 가

장 중요한 부분이 주민 주거환경입니다. 고지

대이기 때문에 노인분들이 집을 오르내리는데

너무 힘듭니다. 재정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4000여명이 육박하는 유달초등학교가 현

재 280여명입니다. 서산초등학교는 300여명

에서 62명입니다. 학생 수가 없는 것은 지역이

힘들다는 반증입니다. 학생 수가 없어지고, 주

민들이 없는 가운데 아파트 짓지 않으면 무엇

으로 대안을 찾자는 말입니까? 물론 목포시민

이, 대한민국 국민이 유달산을 바라봐야 하지

만 그러나 현지 주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부산을 보십시오. 항구도시지만 아파

트 80층, 산중턱까지 한계 지어 살지 않습니까.

공청회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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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목포대 문화인류학과 홍석준 교수: 외국의

사례를 보면 경제문제를 포함해 개발 계획 재

정비 정책을 펼 때 문화인류학자가 반드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문화인류학자가 그만

큼 많다는 거죠. 서산온금지구의 개발을 하자

말자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를 책

임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나 하드웨어뿐

만 아니라 기획 등 전반의 과정을 시가 모두 책

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 다행스럽게

이 자리에 참석해 발표를 들으니 아, 목포시가

그런 계획을 갖고 있구나. 그렇다면 반드시 학

계에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도시 계획은 하드웨어를 책임지는 겁

니다. 경제개발과 더불어 문화에 대한 향유권

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해봐

야 합니다. 우리는 잘 살게 됐잖아요. 옛날에

비해. 하지만 이미 개발에 대한 시행착오를 거

쳤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떤 지역을 개발함에

있어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 지를 다뤄야 합니

다.

목포대 문화인류학과 홍석준 교수: 저 역시

목포대학교 교수이기 때문에 어느 과 교수님이

라는 점을 잘 압니다. 자문위원이라고 애기했

던 교수님들은 죄송하지만, 하드웨어를 책임

지는 학문을 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도시 계획,

도시 사회학 등은 통계의 마법에 걸려 통계에

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어떻

게 통계로 잡히는 것입니까? 정서와 인권 문제

온금동 마을로 연탄 나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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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63

를 아울러 고민해야 합니다. 삶의 전체를 향상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다시 고민해봐

야 합니다.

도시건설위원회 최일 의원: 우리 서산온금

지구 개발계획이 지난 2002년부터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오늘 토론회를 엿보니 그동안 개발

계획을 추진 해 오면서 각 시민단체나 전문가

들의 의견들을 많이 반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2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열악

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

이 그동안에 계속 개발계획을 추진해오면서 주

민들의 찬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들이 미진했던 것 같습니

다. 또한 해당 지역에 문화재로 보존할 대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재정비 계획 수립 과정에서

문화재 보호 등에 대한 검토도 미진했던 것 같

습니다. 또한, 주민 설문조사에서 선호한 토지

주택공사에 재개발을 맡긴다면 좋겠지만 목포

시 재정형편이 여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

튼 더 논의가 되겠습니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선에서 재정비가 이뤄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자: 방금 시의회가 역할이 좀 부족했다는

걸 고백을 해주셨죠? 다음으로 대불대학교 정

명희 지역개발연구소장님 발표해 주십시오!

정명희 대불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장: 방금

홍석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시계획

은 하드웨어적인 문제입니다. 2010년에 보고

된 서산온금지구 개발 내용에는 문제점이 있습

니다. 목포시 계획안에는 테라스형 주거와 중

고층 주거동이 복합적으로 도입되는 쾌적한 주

거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있었구요. 이대

로만 된다면 서산온금동 지역은 전국적으로 유

명세를 떨칠 만한 명품주거 단지가 되겠죠. 여

기서 제가 중요하게 언급할 부분은 도시 재정

비 촉진 사업을 위한 특례 부분입니다. 건축 규

제의 완화 등에 관한 특례, 주택의 규모 및 건

설비율의 특례,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에 관한

특례 등 재정비촉진사업을 위한 특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사업주체들의 경제성에 입각한

특례들이죠. 현재 서산온금지구는 도시개발사

업 특례들에 의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있

는 상태입니다. 목포시가 서산온금동 재개발

에 있어 도시재개발 특례에 입각한 계획을 수

립하셨더라구요. 특례가 적용되는 고층아파트

건설로 원주민들은 삶의 근거를 잃고 세입자들

은 최소한의 터전마저 확보할 수 없는 상황입

니다. 저는 그래서 전면 재개발이 아닌 주민들

의 생활 편의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친환경

적 차원의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정명희 대불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장: 조사

현황 분석을 살펴보면, 9년째 서산온금 지구는

세입자가 굉장히 많고 노령화 지수가 127%에

이릅니다. 목포시의 계획대로 이 지역이 개발

됐을 때 현실적으로 아파트에 입주해 재정착

할 수 있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의문입니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을 보면 뉴타운 사업시

행에 따른 주민 입주율을 22%에 그칩

니다. 서산온금지구의 자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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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64

대가 모두 고층아파트에 입주한다고 해도 전국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12.5%에 그칩니다. 이

외에도 인구가 지나치게 과다하게 책정됐습니

다. 인구가 3,096명에서 9,291명으로 3배 가

량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 했는데요. 목포시 인

구증가율은 그동안 도청 관공서 등의 이전으로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922명이 증가했

어요. 굉장히 미미하죠. 이 역시도 주민등록상

의 인구이동으로 실질적인 외부유입이 아니라

는 점에서 한계를 지닙니다.

정명희 대불대 지역개발연구소장: 목포시 계

획상에 서산초등학교를 경사지형 쪽으로 이전

도 문제가 있는데요. 좀 전에 홍석준 교수님께

서 말씀하신대로 학교란 그 지역의 문화나 여

가 등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중요한 근

린지역 시설인데요. 현재 서산초등학교

는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위치상 좋은 편입니다. 이런 곳을 마다하고 경

사지형 쪽으로 초등학교를 이전한다는 것은 어

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며, 경사로 볼

때 이런 지역에 운동장을 조성한다는 것도 위

험합니다. 또한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중복

지정하신다고 했는데요. 주민을 위한 주차장이

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정명희 대불대 지역개발 연구소장: 현재 유

달산 등은 바다조망권 및 경관보호를 위해 대

부분 ‘최고고도지구(현지반고에서 15m이하,

5층)’로 지정돼 있어요. 최고고도지구, 자연경

관지구를 폐지해 재개발을 이대로 시행할 경우

집가 상승, 투기, 전반적인 경관과 조망권 훼

손, 난개발이 매우 우려됩니다. 이에 대한 대책

이 필요합니다. 최근 ‘역세권 개발을 위한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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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법’이 재정되고 있습니다. ktx의 종착역이잖아요. 우

리 목포역이. 이러한 특별법이 재정되면 국비로 환경조

성, 문화, 상업 등 여러 가지 시설 등이 조성될 예정입니

다. 향후에 이런 개발계획을 염두에 두고 서산온금지구

의 재개발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다시 발언권을 목포시 도시개발과 윤인영 과장

에게 돌린다.)

목포시 도시개발 윤인영 과장: 조합구성 부분인데요.

조합이 구성되면 사업주체와 잘 협의하면 됩니다. 그래

서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은 사

업비를 줄이는 것이죠, 그 사업비를 줄이는 것은 용종율

을 상향 조정하는 방법이 있구요. 또한 국비를 많이 확보

하는 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도로나 상하수도,

공원 조성 등의 정비 위해서는 320억원이 들어갑니다.

이런 부분을 우리 시도 협조를 하고 중앙정보와 협력해

유치한다면 정착율도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온금동 마을 내 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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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66

온금동 장십오씨: 지금 사회를 보고 있으신

김종익 경실련 사무처장님 저 아시겠죠? 목포

시청에서 토론할 때 목포시 온금동에 째보선창

을 복원하자, 그러면 온금서산동이 다시 살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차례 건의를 하고 외쳤

습니다. 그때마다 목포대학교 교수님이나 경실

련 김종익 사무처장님이나 좋은 얘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백지화 됐

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화연대 정태관 씨가 하

시는 말씀이 굉장히 서운합니다. 그때 째보선

창을 복원하는데 힘을 실어주셨어야죠. 이제

도시재개발이다 뭐다해서 주민들은 부풀대로

부풀어 있는데 주민들을 위하는 척 오히려 분

열시켜서 되겠습니까? 하다못해 임대주택

10평짜리를 8평으로 만들어서라도 죽기

전에 편안하게 살아 봐야 합니다.

목포문화연대 정태관 대표: 제가 좀 말씀드릴

게요. 시민단체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고 있

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시민단체는 시

민의 편입니다. 제가 문화연대에서 제 1차 서

산온금지구 재검토를 해보라고 목포시에 성명

을 냈습니다. 원주민들이 재정착하는데 문제

가 있다, 또 하나는 440세대의 노인 분들 720

여명이 어디로 갈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경관에 있어서 25층이 너무 과도하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주민 여론 조사 50% 이상

이 테라스 하우스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아

파트는 10% 밖에 안 됩니다. 시민단체가 아니

라 주민 여론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시에서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25층 고층아파트를 짓는 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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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68

그녀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8남매와 제자들을 위해 여든이 넘

은 나이에도 직접 김치를 담근다. 그녀의 취미는 잉어 낚시와 난

초 가꾸기. 낚시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평소 시도 때도 없이 얼렁

뚱땅 김밥 한 줄을 말아 강과 바다를 찾아 나선다. 이젠 제법 수준

급이 된 고기 낚는 솜씨 덕분에 ‘잉어 할머니’라는 귀여운 별명까

지 얻게 됐다는 채정례 선생. 사람들은 그녀를 ‘단골’이라고 부른

다. 진도에 생존한 마지막 ‘단골’. 삶과 죽음

속에 실타래처럼 엉킨 한의 매듭을 풀어주

고,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함께 흐느끼

는 ‘채정례’라는 길. 설익은 이십대의 마지막

을 보내며 숱한 ‘마지막’을 배웅해 온 그녀를

만났다. 미지를 향한 한걸음, 슬픔 대신 언젠

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수많은 한 걸음

들을 모아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된 채정례 선생을 찾아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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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들의

진도의 마지막

‘채정례’ 선생과의 특별한 인터뷰

‘단골’

생애를

고스란히간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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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70

단골’이란 호남지역의 세습무를 이른다. 신 내림으로 무당이

될 수 있는 강신무(降神巫)와 달리 세습무(世習巫)인 ‘단골’은

신 내림 없이 세습에 의해 사제권을 부여받는다. 단골은 보통

무속상의 구획인 단골판을 갖는다. 단골판은 단골이 관할하는

특정 지역으로, 한 명의 단골이 관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다. 주로 자연촌락 단위 또는 문중 단위로 나뉜다. 단골은 단

골판 안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굿을 의뢰받아 해주고, 봄가을

에 보리와 벼 등을 얻는다. 이미 단골이 정해진 단골판에서는

다른 단골이 굿을 할 수 없으며, 만일 단골이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이 아닌 곳에서 몰래 굿을 하다 들킬 경우, 무구(巫具)를

빼앗기고 심한 매질을 당하기도 한다. 단골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때는 단골판을 다른 단골에게 팔고 떠나며, 이사 가서

는 새롭게 단골판을 사야 굿을 할 수 있다.

단골판을 포함한 단골의 권한은 부계를 중심으로 시어머니

와 며느리를 통해 세습된다. 즉, 여자는 무의 권한을 가진 집

안의 남자와 혼인해 부부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강신무의 경우 단골판과 같은 무의 관할구역이 없기

때문에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지만, 단골은 무에 대해 권한을

가진 계승자와의 혼인을 전제로 한다. 남편과 시아버지 등 집

안의 남자들은 여성들의 굿에 ‘잡이’로서 음악 반주를 담당한

다. 실제 사제 역할은 여성이 한다. 성무과정과 학습과정은 시

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통해서만 엿볼 수 있다. 단골무계

의 여자는 어려서부터 무가(巫歌)를 배우고, 시집을 가면 시어

머니를 따라 굿판에 나가 제상 차리는 법, 춤추는 법, 굿의 절

차 등을 익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 굿이 익숙

해지면 며느리는 혼자서 굿을

도맡는다. 즉, 사제기능은 시

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자연스럽게 세습된다. 오늘날

문명의 발달과 기독교 전파로

지난날 영적인 치유를 담당했

던 단골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고 있는 상황이다.

단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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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이어진 ‘채정례’라는 길을 엿보다』

남도진 : 선생님께서 진도에 생존해 계시는 마지막 ‘단골’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뵙게 됐어요. 선생님이 살아오신 세월에 대해 어떤 이야기라도 좋으니 듣고 싶습니다.

채정례 선생: (핸드폰을 가리키며) 아침에 요놈

이 울 길래 내 제자 전화다 했는데, 아니였어..

남도진 : 선생님, 제 이름은 박.혜.미라고 합니

다!!

채정례 선생 :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그거 본

께 생각나는디, 우리 외손지가 공부를 저라코

열심히 한다 했더니, 책을 거꾸로 놔두고 공부

한다고 그 폼을 잡았더랬어. 얼매나 웃었던지

남도진 : 하하하, 귀엽네요, 외손자 분..

채정례 선생 : 그란디 뭣을 물어보고, 뭔 사진

을 찍을라고..

“언니가 그러더라고. 굿 하믄 아그들은 배부

르게 먹일 수 있어야!”

남도진 : 진도 씻김굿에 대해서 여쭤 보려고요.

채정례 선생: 진도 씻김굿 다 버려버렸어. 나는

으짜다가(어쩌다가) 47년을 (씻김굿을) 해왔는

데, 뜬금없이 한 거라. 그 당시는 농사지으면

일본 사람들이 다 뺏어 가 불고, 순(순전히) 풀

잎 뜯어다가 곡석 째깐 있음은(곡식 조금 있으

면) 그거랑 섞어서 요새 개도 안 먹고 살 것을

사람이 먹고 살았어요. 우리 친정이 굿을 대대

로 해왔제. 시댁은 농사 밖에는 몰랐어. 저 영

감도 나 때문에 같이 한 거라. 친정어머님이 굿

을 하다가 돌아가신께 내 바로 위의 언니가 그

뒤를 이어서 했제. 나는 일 밖에는 몰랐어. 그

러다가 언니가 나더러 가난하고 성가신께(가난

해 근심 걱정이 많으니까)..옛날에는 굿하러 다

니는데도 자기 판(단골판)이 있었어요. 우리 언

니가 나한테 그러는 것이여. ‘굿을 한판 사줄

것잉께~ (굿하면) 아그들 배부르게 밥은 먹일

수 있어야!’하고 굿판을 사줬어요. 옛날에는 굿

하러 갈라치면 전부 산길로 다녔지. 이렇게 도

로가 좋아질 줄 알았으믄 우리 딸들 중 하나라

도 (씻김굿을) 가르쳤을 텐디...

채정례 선생 : 옛날에는 (굿하러 가면 주인들

이) 곡석(곡식)을 많이 줬어요. 그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고 산길로 다니면 그라코(그렇게) 고

상(고생)이 되더라고. ‘이 어려운 것을 내 자식

들한테 뭣 하러 가르쳐야’하고 딸이 다섯인데

도 하나도 안 가르쳤어. 인자는 성깔 있는 딸

넷은 다 잘 살아요. 우리 큰 딸이 애들 서울 놔

두고 잔 부대끼제(조금 힘들지만..). 나는 담배

벌이로만 (씻김굿을) 31년간 했소.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시아버지 봉양하면서.. 자식들이 8

남매인디 글 모르는 봉사는 안 만들어야제 하

고 이를 악물었제.

채정례 선생 : 마흔 다섯에 낳은 아들이 세상에

없이 나한테 잘해~ 우리 아들 택배 일 하거든?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와. 한 가지 흉이 있

다면 장개(장가) 안 간 거. 장개 가라고 하면

‘어따 지가(색시될 여자가) 시집오제 내가 장개

가는 가~!’하고 농만 해. 그놈만 장개 가면 눈

딱 감겠는디.. “장단 귀 밝은 아이들 가르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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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아주 좋아!”

남도진 : 그럼 씻김굿은....(^ ;̂;)

채정례 선생 : 예술대학 학생들을 갈켰어(가르

쳤어). 갈쳤는디 재밌더라고. 대학생들이라 말

귀도 얼른 알아먹고 예술대학이라 장단 ‘귀’도

있고. 그리고 지들이 씻김굿을 무대에 차린다

고 해서, 갔었제. 씻김굿에도 차례 순서가 있는

디 애들이라 잘 모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며칠

을 오가며 애들을 가르쳤어. 그래서 감사패를

받았제.

남도진 : 학생들은 언제부터 가르치셨어요??

채정례 선생 : 작년에.. 외국 아그들(아이들) 네

명이 배운다고 해서 가르쳤어. 배워서 ‘너희 나

라 가서 할라냐?’ 하니께 ‘네, 할렵니다’하고 곧

잘 배우드라고. 또 ‘그러믄 너 진도 아리랑 해

봐라’하니께 또 더듬더듬 영락없이 하더라고.

외국 아그들을 가깝게 따둑따둑 해 주믄그라고

좋아해(정답게 대해주면 그렇게 좋아라 해). 그

란디 우째 인도 아그들은 이빨은 흐간데 얼굴

은 그라코 검은 고??(인도 애들은 이는 하얀데

얼굴은 그렇게 검은 지). 나 밸 짓 다해~(별 짓

다해~)!

남도진 : 그러셨군요~~(웃음). 외국 학생들이 그렇게 남도문화를 좋아하고 즐긴다니 저도 흐뭇해지네요.

채정례 선생 : 요전에는 남도 국악원에 박사들

이 와서 (나한테) 씻김굿 강의해달라면 해서 강

의하고, 음반 낸다고 해서 녹음하고 혔어(했

어). 낮에는 죽도록 일(농사) 하고 밤에는 일(씻

김굿)을 나가. 일 나가도 대충하는 성질이 아니

여. 진도 씻김굿을 책으로 만들려는 이종창 씨

라고 서울서 온 양반이 하루는 집에 왔어. 책을

쓸까 하는데 책이 안 된다고 나한테 그러대. 열

이틀을 써서 책 1,000권이 나왔어. 우리 집으

로 내가 주인공이라, 책 네 권을 보냈대. ‘뿌리

깊은 나무’ 회사 거그서(거기서) 만든 책인디.

재차 책을 내자고 집으로 찾아 왔길래 ‘맛만 보

면 되지 많이 찍어내면 가치가 없다’고 거절했

어.

남도진 : ‘씻김굿’ 배우는 제자들은 어때요, 열심히 해요?

채정례 선생 : 가르쳐 놓으믄(놓으면) 아름아름

할 만하면 내빼요.(뭔가 조금 알만하다 싶으면

도망쳐요.) 내빼 갖고(도망쳐서) 제대로 하도

못하면서 중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나한테 뱄

다고(배웠다고). 그 소리가 (나는) 제~~~~~

일 싫거든! 인자(지금은) 하나 가르치려면 보증

세우고 가르쳐.

남도진 : 현재 제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시나요?

채정례 선생 : 내가 굿 한 대목씩 녹음을 해서

‘언제까지 외워 와라’ 라고 시켜. 그런디(그런

데) 대학생들은 바로 앞에 두고 내가 말하고 가

르치니까 훨씬 수월하더라고. 말귀를 잘 알아

들어. 그래서 더 재밌고. “영화도 찍고 책도 내

고 오는 사람 죄다 밥 먹여 재웠지..”

남도진 : 사람들이 이제 선생님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죠?

채정례 선생 : 그래서 인자 책이 나온 게 사방

에서 기자들이 취재하고, 인자 놈들이(남들이)

다 알아져갔고, 인자, 서울에서 대학생들도 많

이 댕겨(다녀). (학생 수가) 다섯까지도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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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넘는 학상들이(학생들이) 밤에 일하는 데

(씻김굿하는 데) 따라가믄 맥에야 제, 재어야

제(먹이고 재워야지..). 한양대, 연세대, 서울

대학개, 고려대학개 다들 다녀갔어. 영화를 두

판 찍었는데, 박귀복 감독이 찍은 ‘영매’가 유

명해. 사실 내가 허락을 안 하니까 나 몰래 촬

영을 많이 했제. 그랬다가 나중엔 귀복이 밥 먹

이고, 재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찍었어.

남도진 : 몇 년 전에 ‘영매’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러셨구나..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작품이었군요.

채정례 선생 : 나는 죽어 저승에 가서 ‘너는 이

승에서 뭐하고 왔냐’고 물으믄 ‘재산을 크게 벌

어 양로원에 기부했소, 이렇게 살고 왔소’라고

해야 할 텐디 해 놓은 게 없으니 뭐라고 할지

모르것어. 내 자식들 대학 하나 못 가르친 것이

철천지한이라.. ‘함’ 씨네 집안에 시집 왔으니

뭐라도 해야제 하고. ‘서산을 마련해서 뫼를 쓰

게 해 놓고 가야 제’ 라는 마음으로 땅 뙈기를

샀어. 놈들한테(남들한테) 주라고 안 하고 내가

벌어먹고 사니까, 이젠 나도 부자여~~ 이전에

내가 못살던 것이 한이 맺혀서 서울 사는 아그

들한테도(애들한테도) 쌀 못 사 먹게 해. 다 그

때그때 찍어서 보내주지(내가 직접 쌀을 찧어

서 보내주지).

남도진 :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그렇게 자녀분들 다 챙기실려면.. 그나저나 지금도 씻김굿 하러 다니세요?

채정례 선생 : 늙고 힘든 께 특별한 촬영이믄

나갈까, 보통 때는 잘 안 나가. 지금도 주인이

‘굿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와야 한다’고

통사정하는 집에만 가제. (제자들이) 잘 한다

고 해도 아직까지 아실아실하니(아슬아슬해)..

그래도 난 사람 목숨 가지고 줄다리기는 안 해.

일하러 가서는 위아래 흰 옷만 입어. 제자들도

마찬가지여. 제자들을 전부 데려가서 조르란히

(조르르) 앉혀놓고, 뒤에서 후렴구를 시켜. 내

가 땀을 질질 흘리니까, 한 제자가 나를 보듬고

‘우리 선생님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소리치면

서 내 소리를 싸주더라고.(함께 소리를 해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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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채정계 선생 오른쪽/ 채둔골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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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 그런 맛에 제자들을 키우는 겨. “언니 대신 나섰다가 그 길이 내 길이 되었

제”

남도진 : 그러시구나.. 제자들과 사이가 돈독하시네요. 그럼 씻김굿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채정례 선생 : 내가 혼자 오기로 (씻김굿을) 배웠어. 언니가 망길에 살았는디 하루

는 굿을 하러 나 갈려고 장단 쳐주는 남자를 맞춰놨어(구해놨어). 그런데 그날따

라 언니한테 두 곳에서 일이 들어와분겨(의뢰가 들어왔어). 망길에서 하나, 송정

에서 하나. 그래서 내가 그랬제. ‘언니 망길 다녀오쇼. 내가 송정 갈라우’하고 바

깥양반이랑 무턱대고 송정에 갔어. 송정에 가보니 그 집 주인 안색이 틀리고 말을

안 하더라구. 초짜라고 나를 우습게 본 것 이제. 그래서 내가 종이를 내놓으라고

해서 지전을 척 하니(보란듯이) 만들었제. 우째 가슴속에서는 방망이질을 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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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곁에서 언니가 하는 굿을 한번이라도 봤

으면 하는데 한 번도 안 보고.. 그런데 다행히

언니가 망길에서 일을 끝내고 왔더라고. 언닐

보고 그냥 울어불었제. 그리고 그날 가만히 언

니 뒤에 앉아서 ‘안당’은 어떻게 하고... 뭐는

어떻게 하는 지 가만가만 익혔어. 씻김굿 다

하면 ‘중천’이라고 하는데 언니한테 쉬라고 하

고, 내가 중천을 했어. 언니 세 번 따라다닌 후

부터는 나 혼자 굿을 벌였제. 가는 곳마다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어.

남도진 : 우연한 기회에 언니를 따라 굿을 하신 게 평생 업으로 삼는 계기가 되셨군요..

채정례 선생 : 그라제. 내가 신안 상태도 출신

이야. 당시에는 신안이라고 안 하고 무안군 서

리면 상태라고 했제. 상태 뜬 지가 벌써 80년

이 되았어. 아홉 살 되던 겨울에 나왔으니께.

근디 내가 신안 사람이라고 진도 씻김굿 인간

문화재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리더라고. 아는

동숭(동생)이 왜 그렇게 늦게 시작했느냐고 어

느 날은 묻더라고. 속도 모르고.

남도진 : 시집 오셔서 몇 살 때부터 씻김굿으

로 벌이를 하셨는지..

채정례 선생 : 시집강께(시집가니까) 아침 밥

하면 저녁 밥 할 게 없어. 째깐한(조금한) 오막

살이에 시댁 식구들이 모여살고 있었어. 일본

놈들이 큰애기 훈련받으러 나오라고 두 번 다

녀오니께, 엄매 아배가 ‘거그다(함 씨 네 집에)

여의면 좋겠다’고 해서 시집보내 부렀어. 얼굴

도 모르는 바깥어른한테 시집을 갔는데 당시

만 해도 노란 털이 부해가지고 날 보고 섰더라

고. 부잣집 막내딸로 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집에 시집와서 어떻게 해? 친정에서 보

고 배운 거 풀어먹고 살아야제. 그래서 일을

(씻김굿) 나가기 시작했제. “아들딸 영혼결

혼식 시킨 부모들하고 3일 동안 같이 울었어”

남도진 : 딸들한테는 씻김굿을 안 가르치신다

고 하셨죠? 자녀분들은 어머님이 씻김굿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채정례 선생 : 딸들은 다들 장손 집 며느리들

이라 배울 형편도 안 돼. 내가 (씻김굿으로 유

명해져서) 이곳저곳 다니는 것도 몰랐어. 우리

큰 아들도 잘 몰랐는데, 전국대회가 한 번 있

었어. 그때 사돈, 큰 아들, 며느리들이 모두 와

서 구경했제. 그날 우리 큰 아들이 ‘어머님, 내

가 하늘에 오른 것 같네’라고 하면서 좋아하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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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 그러셨군요~ 자식들한테도 인정받으시고.. 이제껏 영혼들을 씻겨주시면서 보람되거나 기억에 남는 일들은 뭐가 있으세요?

채정례 선생 : 시집 못가고 죽은 처녀총

각 영혼결혼식을 전주에서 시켜줬어.

총 8쌍을 해줬어. 좋은 일 해줘서 고맙

다고 부모들로부터 전화가 왔드라고.

같이 울면서 씻김굿을 3일 동안이나 했

었제. 최근에는 해남 화원에서 전화가

와서 일을 하러 간 게 생각나. 제자를 보

냈더니만 굿 해달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

서 ‘선생님이 꼭 오셔야 한다’고 하더라

고. 이상한 예감에 왠지 우리 이모네 집

같아서 씻김하러 나섰제. 아니나 다를

까 방안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니 기골

이 장대한 여섯 아들 가운데 우리 이모

얼굴이 있더라고. 우리 이모는 진즉에

돌아가시고 올해로 81살이 된 이모 며

느리가 망자가 된 것이제. 내 예감이 무섭도록 정확했당께..

남도진 : 와.. 그러셨구나.. 선생님 예감이 무섭도록 정확하시네요. 그나저나 다리가 불편해 보이시는데 요즘은 무슨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세요?

채정례 선생 : 서울서 살던 진도 사람이 근래에 여그로(진도로) 내려와서 한옥 집

을 지었어. 그래서 나더러 성주굿을 좀 해 달라 해서 하룻밤 다녀왔제. 그곳에서

실수로 다리를 찧어서 삼 개월째 집에서만 지낸당께. 본래 나는 난 가꾸고 낚시질

하러 댕기는 거 좋아해. 한번은 서울인가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난초들이 몽땅 시

들어 죽어부렸더라고. 어찌나 짠-하던지(마음이 아프던지). 낚시질은 잠이 안와

서 다니기 시작했어. 몸이 아파서 잠이 안 오니께 사방팔방 다시면서 잉어랑 장어

같은 거 낚으러 다녔어. 김밥 한 줄 싸가지고. 그래서 어느 날 부턴가 내 별명이

‘잉어 할매’가 되부렀어. 나는 잠이 안 오믄 TV를 날이 새도록 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서 씻김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여..

“굿은 소리가 아니여. 굿은 굿이제”

남도진 : 평생 동안 해 오신 일이 일인지라 텔레비전에서 누가 변고를 당했다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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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관심이 가시는군요. 그동안 씻김을 하면서 속상했던 일들은 없었나요?

채정례 선생 : 술 먹고 놀면서 굿답지 않은 굿

을 하는 사람들 보면 속이 상해. 예전일이지만,

굿을 해달라고 나를 불러놓고 굿 장단을 엉망

진창으로 연주해 나를 굿판에서 쫓아내려는 사

람들도 있었어. 씻김은 장단과 신호가 맞아야

하는 디 이것들이 나를 물 먹이려고 장단을 제

멋대로 치는 거여. 그래서 된통 호통을 쳐댔지.

뭐 하는 짓들이냐고.

가끔씩 제자들 중에 무대 위에 소리를 하러

나서는 것들이 있어. 굿은 굿이제 가락이나 뽑

아대는 것이 아니여. 소리 할라 치는 제자들한

테는 이렇게 따져물어. ‘너 지금 뭣하냐? 지금

니가 굿하러 왔냐, 소리하러 왔냐.’

남도진 : (굿에 대한 선생님의 신념과 고집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만 끄덕끄덕)...

채정례 선생 : 얼굴이 알려져서 방송국에서 나

를 쫄래쫄래 따라 댕기면서 사진을 찍어댔어.

굿판을 벌이러 나서면 방송국 사람들도 따라

왔제. 그란디 남의 장례식에 와서 공짜로 먹고

마시고, 사진만 찍어대는 거여. 시골 사람들이

라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내와서 대접하는데,

부조금도 없이 사진만 찍어대는 건 경우가 아

니제. 그래서 나는 나 따라올라믄 상주한테 부

조금 하라고 시켜. 그게 예의여.

남도진 : 그러게요. 시골사람들이라 아무리 상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내와 손님 대접할 텐데..

채정례 선생 : 그라제. 씻김은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 보통 일곱 시간 넘게 계속해. 젊

었을 적 몸이 좋을 땐 사나흘도 안 쉬고 일을

하러 나갔제. 씻김을 하면 지금도 흥이 나고 힘

이 나. 일곱 시간 목을 써대도 힘들지 않어.

남도진 : 그렇게 오래 목을 써도 힘들지 않으세요?

채정례 선생 : 응. 오히려 흥이 나. 힘도 나고.

난 오늘 저그가(남도진 이길찬 대표와 에디터

박혜미) 올줄도 모르고 내 제자한테 연락 온 줄

만 알고 핸드폰을 받았더니 아니었어. 자물마

를 새가 없었어. 엊그저께 짐장(김장)을 했는디

그것도 퍼줄려고 기다리고 있제. 이놈도 주고,

저놈도 주고..

남도진 : 그러셨구나.. 제자들을 여럿 두고 있으신가 봐요?!

채정례 선생 : 서울에는 최수정이라고 있고, 천

안에도 하나 있고, 진도에 안정자라고 있고, 또

‘모세미’라고 있거든. 모세미는 남편이 아파서

목포 병원에 입원해서 금요일에 퇴원시키고 오

늘 집에 온다고 했는디.. 병원에서 간호하다가

짐장 할려믄 심들제(김장 하려면 힘들지). 내가

너희 짐장(김장)까지 해놓으마 했는디, 올 때가

됐는지, 으째 안 즉 안와야..(어째 아직 안 오

네)

남도진 : 그러시구나. 힘드신데 이 집 저 집에 김치나눠 주실려면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그나저나 선생님, 아직도 씻김을 하면 힘이 나세요?

채정례 선생 : 그라제. 힘이 펄펄 나. 다리를 다

쳐서 안 해서 그라제 하기만 하믄 다 죽어가다

가도 힘이 펄펄 난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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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78

『사람을 위해 씻김을 해온 ‘그 길’사람과의 만남에 시린 나날들..』

전화상으로 통화할 때만 해도 채정례 선생님

의 목소리는 연로하지만 여전히 고운 태가 가시

지 않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네 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직도 퇴색

되지 않은 그 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씻김

굿을 홀로 관장해온 뚝심으로 대화를 이끄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그동안 책을 출간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

하기 위해, 문화적 사료를 얻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아름다

운 추억으로 기억돼야 할 사람들과의 인연이 선

생님께 작지 않은 생채기를 남긴 듯 해 몹시 안

타까웠다. 잠시의 인연도 소중히 여기는 그녀

이기에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고민 역시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씻김굿과 관련된 일이 끝나면

그것으로 사람 사이의 인연도 그만인 일부 사람

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서운한 경우가 많으셨던

모양이다.

‘씻김굿’의 문화적 가치를 논하면서도 이를

일평생 지키고 간직해 온 채정례 선생에 대한

도의적인 배려가 미흡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잠

시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은 벌써 여든을 훌쩍

넘기셨다. 그녀에게 씻김굿은 단순한 굿이 아니

다. 지난 세월이자 굶주린 자식들을 먹이고 입

힐 수 있게 해준 ‘은인’인 동시에 그녀가 숨 쉬

는 내내 함께 할 오랜 벗이다. 앞으로 선생을 찾

아뵐 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정하게 씻긴 후 단

정한 걸음으로 선생 댁을 찾길 빌어본다. 물론

나 역시도 그들 속에 포함될 것이다.

에디터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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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79

『씻김굿의 내용 및 과정』

안당: 큰 방이나 대청마루에 상을 차려놓고

굿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누구네 집안인지, 굿

하는 목적 등을 자세히 알리는 과정. 가족 외의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징, 꽹과리, 장고

소리에 조상님이 놀라고 당황하지 않도록 먼저

아뢰어 굿을 흠향하도록 당부하는 굿.

혼맞이: 씻기는 망자가 객사한 경우 안당 다

음에 혼맞이를 진행한다. 혼맞이는 당이 끝난

후 초저녁 무렵 논이나 다른 마을. 또는 큰 길

로 통하는 마을입구에서 한다. 단골은 한 속에

넋(종이로 사람의 모습을 오려 만든 것. 망자를

대신한다고 믿음)을 들고 또 한 손에 닭을 잡고

는 큰 소리로 망자의 이름을 부른다.

초가망석: 혼맞이를 하지 않을 경우 안당이

끝나면 대부분 휴식시간. 이 때 굿상이 차려

진다. 초가망석은 본격적인 굿의 시작을 알리

는 신호탄이다. 초가망석은 신과 망자를 청하

는 굿이다. 이 때 단골은 진양 육자배기 목으로

“늙어 죽어 만년주야 다시 젊지 못하리라”와

같은 무가를 시작하고 고인들은 “신이로구나,

장성고나라도고나 에~에~에이야”등의 후렴을

받는다.

손님굿: 천연두나 홍역 신을 대접하는 굿. 단

골이 한손에 손대, 또 한 손에 지전 두 개를 쥐

고 가만히 선채로 무가를 노래한 뒤, 춤을 춘

다. 진도의 손님굿은 다른 지역과 달리 마마신

을 불러 대접하는 동시에 망자가 이승에서 가

장 친했던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들여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석굿: 집안의 재복과 영화를 빌고 조상에

게 축원하여 액을 막는 굿. 다른 지역에서는 죽

음을 다루는 굿에서는 제석굿을 하지 않는다.

제석은 삶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유일하게 진도에서는 도신은 물론 씻김굿에

서도 제석굿이 가장 중요한 구경거리이고 굿의

중심이 된다.

고풀이: 고는 한필의 흰 천을 차일 기둥에 묶고

열 개의 매듭을 진 것을 말한다. 단골은 그 끝

을 쥐고 무가를 부르면서 하나하나 풀어간다.

야무지게 맺은 열 개의 매듭인 ‘고’는 망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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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80

참고문헌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글.황루시*사진. 임원순/ 화산문화/ 2001.12.20.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상징한다. 한이 맺혀

있으면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갈 수 없기에 원한

을 해원으로 풀어 영혼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

든다.

이슬털기(씻김): 영혼을 씻겨 저승에 갈 자

격이 있는 존재로 만드는 씻김의 순서. 먼저 시

신을 의미하는 ‘영돈’을 만든다. 단골은 살아있

는 사람에게 하듯 옷을 입혀 돗자리나 가마니

위에 펼쳐 놓는다.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모습처

럼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영돈’. 단골은 솥뚜

껑을 신칼로 탁탁 치면서 혼을 부른다. 망인이

왔다고 여겨지면 본격적으로 씻김에 들어간다.

씻김은 세워놓은 영돈을 쑥물, 향물, 맑은 물의

순서로 씻겨내는 굿. 단골은 빗자루에 물을 묻

혀 머리로부터 아래로 깨끗이 씻겨나간다. 그

야말로 이승의 한을 씻기는 것. 이슬처럼 젖어

있는 원한을 씻겨 마르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슬털기’라고도 한다. 씻김이 끝나

면 단골은 마른 수건으로 다시 깨끗이 닦아준

다. 마지막에 액을 막기 위해 쌀이나 콩 한줌을

뿌린다.

넋올리기: 굿을 하는 집 가족의 머리 위에 넋

을 올린 뒤 이 굿을 받고 과연 망자의 한이 풀

어졌는가 알아보는 굿. 종이로 만든 넋이 신칼

(놋쇠로 만든 작은 칼 두 개에 종이를 단 무구)

에 붙어 올라오면 망자가 잘 흠향하고 만족했

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넋올리기는 사실상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음을 분리시키는 의례

다. 머리에서 넋을 떼어간다는 것은 죽은 이와

의 이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래서 이

러한 넋올리기는 곽머리 씻김(시신을 앞에 두

고 하는 굿)의 경우 모든 가족에게 행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례차례 죽은 이와 이별하도록

하는 것. 만약 집주인이 망자의 말을 듣고 싶

다면 손대(다섯 뼘 정도 되는 대나무와 한지 한

장으로 만든 무구)를 잡는다. 단골이 축원하는

가운데 망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손대를 잡고

있으면 망자의 혼이 내려 이승에 맺혔던 원한

을 모두 이야기 한다.

희설: 저승의 육갑을 풀어주는 굿인데 단골이

혼자서 징을 치면서 부른다. 단골에 따라서는

여기에 회심곡을 부르기도 한다.

길닦음: 마지막으로 망자가 극락으로 가는 길

을 닦아주는 굿. 무명베 33척을 큰 방의 문에

서부터 대문 쪽으로 펴놓고 여자가족이나 조무

가 양 가장자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이를

길베, 질베라고 하는 데 저승으로 가는 길을 상

징한다. 가족과 친척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 인

정을 쓴다면서 질베 위에 돈을 놓는다. 단골은

질베 위에 행기(넋을 넣은 주발)를 올려놓고 길

을 닦듯이 문지르면서 질베의 이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반복하여 오간다. 또한 염불을 부르

면서 망자가 극락으로 가는 길을 축원하고 마

지막에는 이승과 하직을 고한다. 이로써 망자

는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완전히 옮겨간다.

종천맥이: 중천이라고도 한다. 굿에 따라온

잡귀들을 물리치는 굿. 단골은 대문 밖에 나가

징을 두드리면서 무가를 부른다. 이 때 굿에 소

용되었던 모든 물건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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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흐르는

다락방에서

즐기다별빛 수다를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 김미영 실장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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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신문..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캐나다의 미디어 활동

가 마셜 매클루언. 그는 미디어란 단순히 세

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담는 틀이

아닌, 메시지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주장

했다. ‘2012년’ 여기, 우리 만나는 곳에 스

스로 메시지가 되어 사람들을 ‘미디어’의 다

락방으로 인도하는 이가 있다. 구름에 가리

운 목포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빛나는 별빛

을 길어내 미디어를 통한 소통과 공감을 불

러내고 있는 그녀.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의 정미영 실

장. 그녀가 미디어지기로 목포에서 살아낸

여덟 해의 시간들. 밤하늘을 평화롭게 올려

다보며 제 스스로 환한 별빛을 맞아들이는

다락방처럼 작지만 풍요로운, 지역의 미디

어 공동체를 꿈꾸는 그녀. 한 결 같이 MBC

시청자미디어센터라는 다락방을 지키며 ‘사

람’이라는 별빛과 더불어 온 그녀를 만났다.

목포여상고 미디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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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자기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인터뷰 녹화 자료는 저만 보는 거라 긴

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카메라는 ‘매의 눈’으로 녹화 중~~)

정미영 실장: 저는 목포 MBC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운영 및 교육 실장을

담당하고 있어요. 센터에서 하는 일은

시민들이 미디어를 보다 친숙하게 느

낄 수 있도록 알리는 일이에요. 미디어

를 바라보는 목포시민들의 눈높이를

향상시키는 게 미디어센터가 담당하는

역할입니다. 특히 센터는 미디어교육

과 영상 제작교육을 주로 진행하고 있

어요. TV 바로보기, 라디오 바로듣기

와 같이 비평적 미디어 교육, 즉 ‘읽기

교육’을 통해 영상을 제작하기에 앞서

시민들이 미디어에 대해 인식할 수 있

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쓰기

교육’에 해당하는 영상 제작 교육을 실

시해 지역의 미디어 활동가를 양성해

내고 있죠.

남도진: 그렇군요. 실장님께선 원

래 고향이 목포신가요? 어떻게 목포

MBC미디어센터에 입문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정미영 실장: 고향은 목포가 아니라 여

수에요. 대학과 대학원을 목포에서 수

료하는 과정에서 목포에 정착하게 되

었고, 점점 목포의 미디어지기로 살아

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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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고향이 여수시군요.. 아직 미디어센터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하는 막연한 느낌이 드는데요.

정미영 실장: (웃음) 다들 MBC시청자미디어센터 하면 방송국 관할 기관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디어센터는 시민단체와 동등하게 인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물론 방송국에서 미디어센터 설립에 참여했기 때문에 시민단체보다는 안정

적인 운영구조를 갖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이 점만 빼면 일반 시민단체들과 추

구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시민단체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변해 지역과 사회에 무언가를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것. 시청자미디어센터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단지 ‘미디어’라는 분야를 통해 미디어 운동을 전개하고 있

을 뿐이죠. 지역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다른 시민단체들과 마찬가지에요. 앞서 말했다시피 미디어센터에서는 미디어 활

동가를 양성하고, 이들을 통해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키고 있죠.

벌써 미디어센터를 운영해온지 8년이 흘렀어요. 시간이 꽤 지나다보니 이젠 시

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보다 집중하고 있어요. 특

히 지난 2011년에는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열린 교육’을 시도했죠. 시민단

체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을 그들과 함께 시민들을 직접 찾

아나서는 미디어교육으로 변화를 꾀했어요. 지난해 영산호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디어와의 교집합이 성립된다고 여겨 목포 환경운동연합과 ‘환경, 미디어’를 주

제로 한 ‘그린 한마당’ 주최했어요.

남도진: ‘그린 한마당’을 목포 시민단체와 함께 힘을 모아 주최하신 거군요.

정미영 실장: 네. 미디어센터가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의미 있는 행사를 개최했

다는 사실. 또한 시민단체와 뜻을 모으는 과정에서 마찰 없이 다양한 의견을 하

나로 수렴했다는 점 등은 긍정적인 결과에요.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목포 시민들

에게 직접 미디어와 더불어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였고요. 환경이라는 익숙한 문제를 통해 미디어와 시민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기회가 돼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캠코더와 같은 촬영도구 뿐만 아니라 설문조사, 스피치와 같은 활동 역

시 모두 미디어라는 것을 시민들이 인식했다는 것. 그런 면에서 ‘그린 한마당’은

충분히 의미 있는 행사였어요.

남도진: 지난해 그린 한마당으로 유쾌한 외출을 즐기셨군요. 그렇다면 미디어센

터 내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진행하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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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실장: 장ㆍ단기교육으로 나눠 방송문화진흥회의 지

원을 받아 교육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어요. 소외계층을 대상

으로 한 미디어 교육은 미디어센터의 주요 사업이에요. 노인

복지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 이주여성을 대

상으로 한 미디어교육, 극빈 가정 청소년에 대한 미디어교육,

장애인 인권영상 제작교육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진행하

고 있죠. 이외에도 초등생에 대한 어린이 미디어교육과 취학

전 7세 유아에 대한 유아미디어교육을 장ㆍ단기적으로 실시

하고 있구요. 또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 미디어교육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영상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

죠. 그중에서 시민영상아카데미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연 4회

영상제작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영상 기획, 촬영, 편집)을 중

심으로 진행됩니다.

남도진: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프로

그램들이 마련돼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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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미디어센터에 관한 사전 지식을

얻기 위해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퍼블

릭엑세스’라는 용어에 호기심이 생겼어

요.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정미영 실장: 퍼블릭엑세스 프로그램은

2002년부터 시작돼, 법안으로 통과되면

서 ‘미디어에 대한 공공의 접근’이라는 명

칭으로 불리게 됐어요. 주요 매체인 방송

에 시민들이 접근해 지역의 의제나 본인

들의 이야기를 직접 영상물로 제작, 편성

할 수 있는 활동을 말해요. 시민이 영상

물을 제작하면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

영위원회’는 그 내용을 심의해요. 해당 위

원회의 심의위원들은 지역의 공공 혹은

시민단체, 미디어센터 관계자 등으로 구

성되죠. 그들은 공적인 입장에서 시민들

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상을 제작했는

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요. 아직까지 시

민들이 제출한 작품 중에 심의단계에서

거절된 경우는 없어요. 그만큼 시민들이

미디어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

이죠.

남도진: 퍼블릭엑세스가 그런 의미를 담

고 있었군요. 최근 시민들이 직접 영상을

제작하는 움직임이 미디어의 새로운 흐

름인 것 같아요. 시민 영상제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구요.

정미영 실장: 퍼블릭엑세스 영상제는

2008년부터 활발하게 열리고 있어요. 한

해 동안 전국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

은 영상제가 열리고 있죠. 인권 영화제에

서 퍼블릭엑세스 영상을 상영하는 것도

가능해요. 지난해 개최된 광주인권영화

재가 그런 경우죠. 퍼블릭엑세스 프로그

램은 내외국인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장르예요. 주제 설정도 인권,

휴먼스토리,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 제약

이 없죠. 딱 하나! 시민들이 나의 이야기

를 담아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에요. 일

방향이던 기존 방송의 형태를 쌍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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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퍼블릭엑세스 프로그

램’이죠. 방송에서 일방적으로 시청자에게 특

정 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도 직

접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시각화해 다른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죠. 목포

미디어센터에서 시민들에 의해 제작된 영상은

‘시청자가 간다’라는 mbc 정규프로그램에 활

용돼 현재 공중파에 내보내지고 있어요.

남도진: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매력적이군요. 앞서 미디어

센터의 미디어교육이 주로 취약계층에 대한 것

이라고 말씀하셨죠?

정미영 실장: 엄밀히 말하면 소외계층이죠. 취

약계층은 조금 다른 의미를 내포한 개념이거든

요.

남도진: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이란 말은 비슷하

다고 여겨지는 데 어떻게 다르죠?

정미영 실장: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은 같이

쓸 수는 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취약계층

은 사회경제적인 논리에 빗대 말하는 경우에

요. 한편, 소외계층은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관심이 필요한 대상을 말하는 것이죠. 지역에

서는 보통 시민들이 인식의 과정에서 소외계층

과 취약계층을 달리 여기기 때문에 말하는 것

에 주의해야 해요. 다른 일례로 ‘장애인’과 ‘장

애우’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장애우’는 장애인

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다, 라는 의미로 생겨난

말이에요. 하지만 최근에는 ‘장애우’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요. 장애인도

사람인데 무조건 다 친구가 될 수는 없다는 것

이죠.

장애인들을 친구로 일반화해 배려하는 것 자

체가 그 저변에 편견을 깔고 있기 때문에 ‘비장

애인’과 ‘장애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지

배적이에요. 미디어센터의 경우 장애인을 대상

으로 한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인권영

화제운영위원이기도 하다 보니,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읽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특히 미디

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되기 때문에 그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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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을 항상 눈여겨봐야 하죠. 물론 반드시 그 흐름에 발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 안에

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제대로 인식하고 가야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만 미디어교육을 받을 시민 곧 시청자들에게 미디어의 현주소에 대한 구체적인 내

용을 알려 줄 수 있으니까요.

남도진: ‘시대의 흐름을 읽되 경솔히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들리는 군요..

남도진: 지난 번 미디어센터를 찾았을 때 얼핏 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혹

은 미디어교육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신다고 하

던데요..

정미영 실장: 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어요. 미디어센터를 찾으시는 시

민들을 통해 저 역시 배우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디어교육을 진행할 때마다 스

스로에게 되뇌입니다.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만들자.’라고 말이죠. 그래서 센터에서 교육받는 분들이나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을

‘~님, ~씨’라고 부르지 않고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어요. 제가 비

록 그분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그분들 역시 제게 보이지 않는 가르침을 선물하

기 때문이죠.

남도진: 센터를 찾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실장님께 의미가 클 것 같은데요?

정미영 실장: 센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제 삶과 제 가정에 영향을 미친다

고 생각해요. 전 ‘정미영의 삶’과 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동일시해요. 그렇다

고 ‘이게 나만의 일이다, 나만의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진 않아요. 다만, 제 삶의 일

부 혹은 그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무엇이라고 여기죠. 그래서 센터에서

만나는 분들과도 의미 있는 사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남도진: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끈끈한 정이 이 공간에 감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

네요.

정미영 실장: (웃음) 그런가요?

남도진: 2004년부터 미디어센터를 운영해 오셨다고 들었는데..

정미영 실장: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디어센터는 2004년부터 토대를 마련했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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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먼저 시민영상아카데미를 준비했어요. 전

2004년부터 목포미디어센터의 개소 준비를 도왔

지만 당시에는 이곳 소속이 아니었어요.

남도진: 그렇군요. 과거 해남 등지에서 잠시 머무

셨다고 들었는데, 그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정미영 실장: 그럴까요? 목포대를 졸업하고 동대

학원에 진학했어요. 대학시절 전공은 역사학과였

는데 영상인류학에 흥미가 있어 복수전공할 계획

이었죠. 이후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문화인류

학 안에 포함된 영상인류학을 전공하게 됐죠. 목

포대에 도서문화연구소가 있어요. 그곳을 통해

남도 지역의 역사를 고찰하고, 사료들을 모아 편

찬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어요. 교수님들을 따

라다니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했죠.

평소 사람 만나는 걸 더 없이 좋아한 터라 당시에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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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사람들과 인연 맺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정미영 실장: 네. 그런 편이에요. 사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에 대학 4학년 무렵 해남에서 잠시 근무할 기회가 있었어요.

‘해남관광문화진흥센터’라는 곳에서 6개월의 인턴과정을 거

쳐 정직원이 됐죠. 근무처가 관광문화센터이다보니 해남을

관광 메카로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연구하고, 책을

편찬하는 일, 지역에 대한 영상을 찍거나 축제를 취재하는

등 미디어 관련 업무를 자연스레 총괄하게 됐죠. 지역민, 향

토 예술인 등의 구술사, 영상, 사진을 찍는다든가 축제 판을

삶의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지역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들을 일상다반사처럼 경험했죠.

그 때였어요. ‘나 역시 저 사람들처럼 내 인생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라고 결심한 게. 당시에는 아침 8

시에 해남센터에 출근해 새벽 12시 혹은 1시에 집으로 돌아

왔어요. ‘센터가 바로 내 공간이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다’

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맴돌던 나날이었죠.

남도진: 지독하게 일에 전념하셨네요..

정미영 씨:

한 번 마음에 품은 일은 치열하게 해

내고야 마는 게 저란 사람인 것 같아

요.(웃음) 이후 목포대 호남학연구소의

연구진으로 들어가 민중생활사 연구단

을 이끌었어요. 당시 서울대, 전북대,

목포대, 영남대 등이 모여 각 지역의 민

중생활사를 연구하고 통합보고서를 만

드는 과정이 있었어요. 해당 연구에 5

년간 참여했죠. 그 당시에도 공교롭게

미디어 관련 부문의 촬영을 담당했어

요. 한편, 광주에서는 미디어행동연대

라는 시민단체에 들어가 미디어 운동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미디어교육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미

디어를 활성화하려면 영상제작을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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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DOzine.com 91

미디어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지금도 미디어행동연대 활동을 미디어센

터 운영과 병행하고 있어요~.

남도진: 마치 작은 고리들이 맞물린 것처럼 느

껴지는 ‘그녀가 걸어온 길’이군요. 실장님께서

미디어센터에 근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있는

여정들이네요.

정미영 실장: (환한 미소) 그렇죠!

남도진: 실장님께선 미디어센터를 8년 동안이

나 일궈 오셨잖아요. 그렇게 강한 에너지는 어

디로부터 흘러나온 건가요?

정미영 실장: 어딘가에서 비롯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보통 주변에서 ‘현재’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넋두리를 많이들 하잖아요. 저 역시

때때로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소소한 것에 애

정을 갖고 다시 전념하려고 노력해요. 말하자

면 이런 거죠.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났다면 그

사실에 감사하는 거죠. 일찍 일어나면 그만큼

하루를 빨리 시작할 수 있고 부지런히 많은 일

들을 해낼 수 있잖아요.

전 매일 아침 센터 문을 열고 오늘 하루 동안

할 일들을 차근차근 점검해요. 무슨 일을 할지

순서를 매겨 목차를 만들어요. 그런 다음 일번

부터 차례로 업무를 처리하고, 그 후엔 해당 목

록을 지워가죠. 일을 제 때에 규칙적으로 해결

해냈다는 만족감이 지금껏 제가 미디어센터와

방송문화진흥회 유아미디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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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December92

함께 할 수 있었던 숨은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남도진: 좋은 습관이군요. 듣고 보니 작은 노력이지만 큰 결과를 낳는 습관인 것

같아요.

남도진: 미디어센터와 함께 걸어갈 앞으로의 각오, 어떤 재밌는 계획들을 준비하

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정미영 실장: 저는 삶에 대해 낙관합니다. 중학교 때 인생의 플랜을 시기별로 정

해놓았어요. 삼십이 됐을 때, 마흔 그리고 쉰이 됐을 때 나는 무얼 하겠다는 목표

를 세워놓았죠. 그렇게 커다란 지도를 밑그림 삼아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그래서

걱정이나 불안보다는 전체를 조망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죠. 또한 시기별로 정

해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어요.

삼십대에 놓인 지금으로선 마흔이 되면 미디어센터 외에 미디어센터를 기반으

로 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게 제 목표에요. 또 제가 오십이 됐을 때 목포 지역의 미

디어교육을 담당할 10여개 정도의 공동체를 만들 계획이구요. 굳이 미디어센터

가 아니더라도 공부방을 통해 미디어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제 목표죠. 반드시 방송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미디어교육이 머물러야 한다

고는 생각지 않아요.

남도진: 작은 미디어 공동체들이라.. 기대되는 데요?!

정미영 실장: (웃음) 전 앞으로 미디어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주체들이 목포지역

에서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양분을 공급해주고 싶어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함께 지역 미디어의 역할과 그것이 갖는 공적 기능을 확대해나

갈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계획이에요.

남도진: 이렇듯 미디어에 열중하는 이유, 그러니까 자신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미디어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미영 실장: 미디어는 제게 ‘매개체’로서의 의미가 강해요. 목포가 제 고향이 아

니잖아요. 목포지역에서 대학을 나온 후 미디어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아주 많아

요. ‘미디어’라는 인연의 끈으로 그동안 만난 사람들. 그들로부터 얻은 긍정적인

에너지들이 참 많죠. 그게 바로 제가 느끼는 미디어의 매력 같아요. 저와 타인을

끊임없이 연결해주는 디딤돌 같은 존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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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 타인에게로 향하는 디딤돌

이라..(웃음) 현재 목포에서의 미디

어, 미디어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

식은 어떤지 궁금해요.

정미영 실장: 아직 모든 면에서 목포

지역의 미디어는 시작단계에 불과

해요.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 같

죠. 방황하는 사춘기처럼 자신의 행

로를 정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상

황이에요. 저 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많은 이들이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미

디어센터가 할 일은 사춘기 시절을

겪고 있는 ‘목포 미디어의 성장통’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

전시켜나가느냐 하는 부분이에요.

지난해 ‘그린한마당’을 시민단체와

함께 주최하게 된 건 목포의 밑바닥

에서 목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

역 미디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사실 미디어

에 대한 인식 개선은 결코 만만치 않

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시민들이 흥

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

이 선행돼야 하죠. 시민들에게 가까

이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

해 ‘미디어’라는 존재를 밖으로 표출

시키는 게 건강한 사춘기를 보내고

성숙한 청년기를 맞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남도진: 사춘기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군요. 목포시에 움튼 미디어

교육, 그리고 지역 미디어의 역사가 어르신 목포 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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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유구하게 흘러가길 바랄게요.

남도진: 8년이라는 시간을 미디어센터와 함께 해 오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라면 뭐가 있을까요?

정미영 실장: 에피소드는 아니구요.. 그냥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생활화 하자는

다짐을 날마다 해 왔어요. 전 여성이고, 미디어센터 실장이며, 시어머니께는 며

느리, 부모님께는 딸이잖아요. 또 목포시의 시민이기도 하구요. ‘나’를 가운데 놓

고 여러 가지 역할들을 나열해봤어요. 입장 바꿔 생각하기. 미디어교육을 받는

다양한 위치의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죠.

일례로 이주여성들은 타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건 맞지만 이젠 그저 ‘목포

시민’으로 불리길 원해요. 이주여성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어딘지

에 따라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나기도 하죠. 또한, 장애인 안에서도 ‘지적 장애인

이냐, 정신 지체 장애인이냐’ 등의 사실에 따라 권력다툼이 생겨나요. 이처럼 소

외계층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요. 특히 지체 장애인들은 사고나 질병 등의 후천

적인 요인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피해의식

은 더 강하죠. 그런 현실을 바라볼 때 훈련이란 게 정말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미디어교육과 훈련..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기 위해선

각자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죠.

남도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한 묘목이 8년이라는 시

간을 거치면서 잎이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있는 것 같

은 느낌이 드네요.

정미영 실장: 정신적인 성장은 어찌 보면 당연해요. 전

센터가 학교와 비슷하다고 느끼거든요. 일방적이지 않은

소통의 학습장이라고 생각해요.

남도진: 앞으로 미디어센터에서 함께 목포 미디어의 역

사를 일궈 보고픈, 야심찬 청춘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요. 그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정미영 실장: 이곳은 봉사정신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하는

2011. December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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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에요. 미디어활동가, 상근하시는 선생님

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다들 생활상에 여유

가 많질 않아요. 활동비 정도에 만족하며 일

을 해내고 있는 상황이죠. 전 그동안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

다는 게 어디야. 활동비 정도면 괜찮은 거다’

라구요. 하루하루 미디어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설렘과 벅참으로 이 일을 지속

해왔어요. 이곳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싶은 청

춘들이 있다면 먼저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긍

정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

죠.

남도진: 듣고 보니 정 실장님은 정말 한가할

틈이 없으시겠어요.

정미영 실장: 하하, 그렇죠? 대학 때도 하는

일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별명이 ‘발발이’였

죠. 항상 동분서주하며 무언가를 쉼 없이 하

는 탓에 생겨난 별명이에요. 미디어활동가 분

들과 지난 8년 동안 미디어센터를 함께 꾸려

오면서 개개인이 가진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런 비밀스러

운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

기도 했었죠. 하지만 나를 보여주지 않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내게 다가올 수 있겠어요?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에요. 세상이 알지 못하

는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또한 최근에 미디어가 겪고 있는 변화들처럼

시청자들이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터전

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 대한 고민거리와 생각

거리를 공유하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을 연결

하는 끈, 그것이 바로 ‘미디어’라고 생각합니

다.

에디터: 박혜미

다락방에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빛은더욱 짙게 빛난다.

쉽게 만져지지 않는 미디어라는 메시지.

그 메시지 속에 알알이 박힌 그녀의 열정이누군가에게 차분히 읽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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