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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교회 우리 하나되어 2009년 10월호 제 17권 제10호 휄로쉽교회 창립 19주년 중보기도 학교 선교사 편지 - 정시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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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교회 창립 19주년 중보기도 학교 선교사 편지 - 정시나 선교사 2009년 10월호 제 17권 제10호 휄로쉽교회 4 표지사진설명 휄로쉽교회 창립 19주년 (VA 캠퍼스 예배 중에서) 사진 제공 문승재 03 창립 19주년 기념예배 - 휄로쉽교회 19주년 - 오장석 26 사도바울 (24) - 아볼로와 두란노 서원 - 오장석 14 성지순례 -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6) - 이연일 35 맥체인 성경읽기표 32 종족소개 -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찰 잉귀쉐티아 공화국 - 유종우 11 중보기도 학교 - 깊이 배운 주기도문 – 이연일 글 - 오장석 3 4 5 6 7 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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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NCFC-2009-October

휄로쉽교회

우리

하나되어

2009년 10월호 제 17권 제10호

휄로쉽교회 창립 19주년

중보기도 학교

선교사 편지 - 정시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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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09. 10

표지사진설명

휄로쉽교회 창립 19주년

(VA 캠퍼스 예배 중에서) 사진 제공 문승재

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 301.444.3100, FAX 301.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 703.444.5634, FAX 703.444.0567

(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양하영 *인쇄: KOREA Monitor

휄로쉽교회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www.fellowshipusa.com

우리하나되어

03 창립 19주년 기념예배 - 휄로쉽교회 19주년 - 오장석 11 중보기도 학교 - 깊이 배운 주기도문 – 이연일 14 성지순례 -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6) - 이연일 24 선교사 편지 - 소중한 이에게 잘 집중하라 – 정시나 선교사 26 사도바울 (24) - 아볼로와 두란노 서원 - 오장석 32 종족소개 -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찰 잉귀쉐티아 공화국 - 유종우 35 맥체인 성경읽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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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교회 19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9월 13일에는

메릴랜드 캠퍼스에서, 9월 20일에는 버지니아 캠퍼스

에서 각각 창립 기념 예배를 드렸다. 양쪽 캠퍼스 모두

영어 회중, 한어 회중이 함께 합동예배 형태로 드렸고,

또한 이 예배에서 한 해 동안 수고할 주일학교 교사들

을 임명하고 함께 기도로 격려해주는 시간도 가졌다.

김원기 목사는 교사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좋은 신앙의 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전하였다. 특별히 교역자로 헌

신하기로 작정하고 훈련을 받거나, 신학 과정에 있는

다음 세대들을 예로 들면서, 교사들의 수고로 인해 다

음 세대를 이끌어갈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키워나

가고 있음을 강조하며 교사들을 격려하였다.

19주년을 맞이하여 김원기 목사는 교인들에게 ‘거

룩한 사람’이 되자고 도전하였다. 중세 시대의 수도사

들처럼 수도복을 걸치고 절제된 생활과 기도에 전념해

야만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모여 거룩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거룩해지세요. 이것은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

라,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라고 김원기 목사는

전하며,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엄청

난 대가를 지불하셨던 점을 상기시켰다.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지

적이다.

19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

리가 쓸모없는 인간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하나님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점

이다. 내가 단번에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서가 아

니라, 내 안에 있는 잠재력,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

에 거하시기에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 개의 돌, ‘거

침돌’과 ‘모퉁이돌’로 표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

상 사람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거침돌’에 불과하여 귀

찮은 존재로 치워 놓고 살게 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

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에게 있어서 그 분은 건축자

의 ‘모퉁이돌’인 것이다. 그 분의 설계도에 의해서 나

의 인생이 만들어져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이다”라고 김원기 목사는 단

언하였다.

메릴랜드 캠퍼스에서는 예배 후에 중고등부 학생들

에게 세례를 베푸는 시간이 있었다. 이 날 모두 7명의

학생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양쪽 캠퍼스 모두 예배 후 점심식사로 교회에서 마

련한 햄버거와 핫도그가 제공되었고, 이어서 게임의

시간도 가졌다. 메릴랜드 캠퍼스에서는 각 교구별 대

항으로 속옷 갈아입고 뛰기, 다리를 함께 묶고 3인4각

릴레이로 달리는 경기 및 줄다리기 경기가 있었다. 특

별히 줄다리기 경기에서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던지 단

단한 밧줄 가운데가 터져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

기까지 하였다. 마지막으로 진행되었던 교구별 배구

대항 또한 막상막하의 대결이 이어졌다. 특별히 결승

전이었던, 영어 회중의 데스티니와 1교구의 대항에서

는 세트 스코어 2:1로 데스티니가 승리하였다. 마지막

세트에서도 21 대 19라는 간발의 점수 차를 보였다.

버지니아 캠퍼스에서도 다리를 묶고 달리는 릴레이

경기를 가졌으며 이어서 물이 담긴 풍선을 바구니로

받아내는 경기가 있었다. 바구니에 못이 박혀 있어서

풍선은 당연히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흠뻑 젖을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그런데 교우들은 그

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였다. 경

기에 임하는 사람,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 모두가 즐거

운 시간이었다.

20주년을 앞두고, 앞으로 한 해 동안의 주제가 ‘어

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고 소개되었다.

지난 20년간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확인

하고 헤아리며, 감사하고 또 그 은혜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갈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

의 선택이나 장신구가 아닌, 우리 삶의 기쁨이며 목적

이 되어야 한다.

창 립 기 념 예 배

휄로쉽교회 19주년 글 - 오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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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주 동안 중보기도 학교에 입학하였다. 등

록금도 없고, 4주 속성이라는 것이 매력이어서 평소

목요예배에는 참석 못하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다.

9월 3일 첫날,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을 시작으로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김원기 목사는 개요 설명에서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을 전

하였다.

적극적인 자세로의 3가지

1.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셨으니 부담을

안고 순종한다.

2. 좋은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해야 한다.

3.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

했기에 우리도 당연히 기도해야 한다.

소극적인 자세로의 3가지

1. 성경에 보면 기도 가운데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

므로 응답에 대한 욕심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2. 하기 싫고 힘든 것을 보니 이기기 위해 꼭 필요

한 것 같다.

3. 방해가 많은 것을 극복하기위해 기도해야한다,

이는 마귀가 싫어하는 것을 이기기 위함이다. 라고 배

웠다.

둘째 날 9월 10일, 주기도문을

배우는 것은 기도에 대한 것을

배우고 기본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을 위하여 배우고 기도하

시는 주님의 모습 속에서 뭔가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우

리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 거룩한 욕심, 성령님의 지시

에 따라

*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위

하여

*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

받기 위해

* 우리의 죄를 용서받아 깨끗

한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 승리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셋째 날 9월 17일, 주기도문을 왜 해야 하는가 중

보기도를 통해 승리한 예를 배우고 따르기 위해, 창세

기에 나온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였던 롯을 본

받아 출애굽기에 나온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홀과 아론

의 섬김을 본받아 누가복음에 보여주신 겟세마네 동산

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기도를 보고 따르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한다. 이 과정 속에 중보기도는 육체

적으로 피곤하고 하나님의 영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소

모적인 면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혼자 할 수 없는 사역

중 보 기 도 학 교

깊이 배운 주기도문 글 - 이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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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것을 전제적으로 알아야한

다고 가르쳤다.

마지막 날 9월 24일.

시편 2편의 말씀 가운데 현재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위해, 무

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영적인

안목을 갖고 기도하여야 함을 강

조했다. 단지 나, 우리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

을 위하여 열방, 민족, 방언을 위

하여 기도해야 한다. 겸하여 중요

한 사전 지식을 알려주었다.

중보 기도자의 에티켓

1. 마음 내킬 때만 하거나 들쑥

날쑥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지속적

으로 하라.

2. 깨끗한 통로를 가져야 한다.

죄를 멀리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3. 교만을 배제한 순전하고, 단

순하고 겸손한 삶을 살기 위해.

4. 신비한 것과 하나님이 나에

게 보여주시는 은밀한 것을 구분

하여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열매

가 증명하는 삶을 살기 위해.

5. 외로움과 핍박, 오해가 있지

만 기질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시니 그대로 인정한다. 그들은 공

중 권세 잡은 사타들과 대적하는

기도하는 분들임을 알아라.

수업시간마다 기도 가운데 마

른목을 축이라고 준비해주신 물과

무릎 꿇고 기도하라고 예비한 넓

은 방석을 준비해주신 담당자 분

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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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1.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

2.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3. 하나님의 얼굴과 임재를 구한다 4. 내 마음을 정리하여 묵상한다

II.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2.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3. 나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역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4. 미국과 두고 온 조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5. 선교지와 열방을 위하여 (모든 족속과 방언)

III.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1. 영혼의 필요를 위하여 2. 육신의 필요를 위하여

3. 주위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위하여 (중보기도)

IV.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막힌 담이 없는 자)

2.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3. 죄사함의 은총

V.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1. 거룩한 삶을 향한 각오 2. 영적 무장 (전신갑주)

3.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준비 4. 주님과의 동행

VI.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1. It's not about you. It's about God and His Kingdom! 2. 하나님께 영광

3.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으로 무장

A. 휄로쉽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 1. 모든 교인들이 확실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믿음의 삶)

2. 모든 교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거룩한 삶) 3. 모든 교인들이 사명의식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선교사적인 삶)

4. 모든 교인들이 말하는대로 살도록 (언행이 일치하는 삶) 5. 모든 교인들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행동하는 삶)

B. 2020 비전 기도 제목

1. 50/500/5,000 (50명의 사명자/500명의 평신도 지도자/5,000명의 교인) 2. 지금 훈련받고 있는 젊은 세대 지도자(20명)들이 다음 세대를 움직이는 리더들이 될 수 있도록

3. 계속해서 한어회중과 영어회중에서 더 많은 사역자들이 배출되도록

C. 올해 기도 제목 1. 더욱 부흥의 불길이 강해지도록

2. 편안함 속에 알찬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되도록 3. Amazing Grace!를 체험하도록

4. 예배와 오이코스를 위하여 5. 젊은이들을 위하여 6. 2세들을 위하여

7. 다국적 사역을 위하여

주기도문

기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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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페트라를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아침 일찍 짐을 꾸려 나왔다. 오늘은 요르단

의 남단부에 위치한 페트라로 이동하기 때문이

다. 창밖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그런데 현지 가

이드의 설명인즉,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구름

이란다. 지대가 높은 관계로 구름이 도시에 걸

쳐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구름 속을 헤치고 도

시 암만을 떠나 성서의 암몬 땅을 거쳐 모압을

지나 에돔 땅으로 향한다.

성 지 순 례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6)

글 - 이연일

암몬과 모압의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는 아르논 골짜기. 골짜기 아래로 아르논 강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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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는 이 사실을 헤로디아에게 전하였고, 이에 헤로디

아는 자기의 부정을 폭로했던 요한의 목을 요구하였

다. 헤롯 안디파스는 그와 결혼했던 나바테아 왕국

아레타스 4세의 딸을 버리고 그의 이복동생이었던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다시 결혼을 하였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유대인의 신앙관에 배치되는 왕

의 행동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던 것이다. 살로메는

엄마의 제안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하였고, 결국

헤롯 안티파스는 사람들 앞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죄 없는 요한을 죽이고 말았다.

성지순례 팀들이 일주일을 함께 지내다보니 이제

어려움은 저 멀리가고 부끄러움도 사라진 듯하다. 황

량한 산에 화장실이 있을 리 없는 것을 아는 지라 가

이드는 버스를 세운 뒤 오른편은 여자 화장실, 왼편

은 남자 화장실로 임시 정하고 사용하잔다. 가이드

암만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는 길은 끝

없이 펼쳐지는 광야이다. 높은 산지 중간 중간 마을

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어쩌다 보이는 돌무더기,

뭉쳐있는 풀포기들이 눈에 보일 뿐 그 무엇 하나 흥

미로울 것도, 관심을 끌만한 것도 없는 광야이다. 이

광야 길을 인도했던 모세의 고달픔도 또한 그를 따

르던 백성의 자세도 역시 훌륭한 과정이었다.

빵으로 기본 식사를 마친 뒤 버스는 구불구불 굽

이굽이 돌아 세례 요한의 목을 노리고 살로메의 춤

을 보며 놀았던, 헤롯 가문의 ‘마케루스’ 별장을 먼

발치에서 본다. ‘마케루스’는 헤롯 대왕이 여름 궁전

으로 재건한 곳인데, 31년경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훗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

는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에 빠져 그

의 요구는 무엇이든지 들어줄 것을 약속했다. 살로

(위 왼쪽) 암만의 대중교통 수단인 일반 버스. (위 오른쪽) 암몬 산지의 일반적인 모습

(아래) 암몬 산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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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을 빌리자면 ‘출애굽 화장실’인 셈이다. 또 큰 볼 일을 보신 분들은 일을 본 가장자리에 예의상 동그라미를 그

려 표시를 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볼 일을 보았으니 자연이 얼마나 더럽고

냄새날까 하지만 그것은 기우이다. 워낙 비가 없고 건조한 기후의 이 지역은 불과 몇 시간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

라진다고 한다. 가끔씩 보이는 현지인들의 집도 화장실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

기에 후에도 깨끗하나 관광객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여 흔적이 남는 것이 다를 뿐이란다.

헤롯 대왕이 여름 별장으로 지었던 ‘마케루스’ 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이 곳에서 세례 요한이 죽음을 맞았다.

(왼쪽) 아르논 골짜기를 따라 지나가는 ‘왕의 대로’ (오른쪽) 아르논 골짜기에 살고 있는 베두인들. 그들이 가축을 이끌고 걸어다니는 길

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굽어지는 길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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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버스는 다음 목적지인 페트라

(붉은 암석이라는 뜻)를 향하여 구약에 기록된

‘왕의 대로’를 따라 높은 평지를 끝없이 달린다.

중간에 암몬과 모압의 경계를 이루는 아르논

골짜기를 지날 뿐 암몬과 모압은 그야말로 평

지의 연속이다. 아르논 골짜기는 말 그대로 깊

은 골짜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아르

논 골짜기로 아르논 강이 흘러가는데 최근에는 댐을 만들어 물 공급을 조절하고 있다. 구약 당시에는 아르논 강 주

변으로 모압 왕국과 아모리 왕국이 있었다. 아르논 골짜기가 암몬과 모압의 자연적인 경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모압 산지 지역을 지나면서 우리는 빵 가

게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점심 시간

즈음이라 빵을 굽고 있어서, 빵 굽는 과정

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차 안에서 빵을 먹으며 길을 재촉하였다.

제대로 된 점심은 에돔 지역에서 먹기로

하고.

(위 왼쪽) 아르논 골짜기에 마련된 휴게소. 베두인들에 의

해 운영되고 있었다.

(위 오른쪽) 베두인들이 판매하는 차를 마셔보았다.

(왼쪽) 최근에 만들어진 댐으로 아르논 강물의 양을 조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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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돔의 높은 산지를 하나 넘어야만 한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이곳에서는 눈이

되어 내려 쌓여 있다. 늦은 오후에야 페트라에 도착하였다. 바위 사이에 이루어진 동네 틈을 지나니 전직 현직

국왕인, 잘생긴 두 남자의 초상화가 벽을 장식한 건물이 나온다. 페트라 입장표를 관리하는 건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지고, 새롭게 기록된 불가사의

7개 가운데 하나인 페트라를 드디어, 드디어 눈으로 보고, 발로 직접 디뎌보는 것이다. 바위의 규모와 생김이 초

입부터 예사롭지 않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도 보이나 우리는 직접 발로 밟으며 가보기로 했다. 더 내려갈수록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큰 규모의 바위를 어떻게 저 높은 곳에 조각을 했을까? 그것도 너무 매끈하고

아름답게 말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도시, 페트라는 원래 에돔 왕국의 수도가 있던 곳으로 에돔 이후 나비테안이라 불리는 민

족에 의해 남겨진 유적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

약한 아랍계 유목민이다. 페트라는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 지점에 위치한 수많은 상인들이 들러

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던 캐러밴 도시이다.

(위) 에돔의 높은 산지에는 눈이 내렸다.

(옆) 눈 덮인 산지를 넘어 페트라 근처의 에돔 마

을. 암몬과 모압 산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아래) 전, 현직 국왕의 사진. 법이기에 사진을 거

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국왕을 존경해서 스스

로 국왕들의 사진을 걸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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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페트라로 들어가는 계곡의 입구

(왼쪽 아래) 좁고 높은 계곡을 통과해야만 페트라로 들어갈 수 있

다.

(오른쪽 위) 계곡을 빠져 나오면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건축물

이다. 그 규모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파여진 사실에 입이 벌어진다.

(오른쪽 옆) 강수량이 적은 곳에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암벽 중간

에 홈을 파 수로를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페트라는 연중 강우가 15cm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했을까? 길을 따라 수로를 만들고, 바위틈 사이에 벽을 쌓

아 수로로 물을 관리한 흔적이 눈에 뜨인다.

페트라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좁고 깊은 계곡을 통해

서만 들어갈 수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계곡을 지나면, 결코 좁지 않은 지역에 펼

쳐진 곳에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

않은 도시가 현재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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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하루에 세 나라를 … 그리고 시내산

요르단에서 육로를 통해 이집트로 들어가기 위해

서는 이스라엘을 지나야만 한다. 요르단에서 이스라

엘 국경을 지나는데 입국 땐 너무도 간단했던 것과

달리,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입국 과정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하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검문은 자신

들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기에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X‐ray 검색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방을 열어

보고 가방속의 모든 내용물을 하나씩 열거하며 점검

한다. 그렇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구

겨 넣은 채 다시 X‐ray 검사를 하고 또 열어보고, 이

렇게 30명을 하고 나니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지났다. 철저한 검색이 좀 불편할 뿐,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차원에서 꼭 나쁘지만은 않다.

전원 검색을 마친 뒤, 약 20여분 정도 버스를 타

고 이집트 국경까지 이동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손

수 가방을 끌고 걸어서 이스라엘 국경을 지나 세 번

째 나라인 이집트에 입국하였다. 넓지 않은 국경을

빠져 나오기까지 여러 번의 검색을 통과하여야 했다.

통과할 때마다 이런 저런 비용(출국세, 입국세 등)도

더불어 지불해야 했다.

쭉 뻗은 야자나무가 보이고, 나무 뒤로 보이는 산

은 그저 높게 흙더미 쌓아 놓은 듯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그려왔던 기존의 산과는 사뭇 다르다. 어딘가에

정상이 있어 뾰족하던 산꼭대기는 없고 올라가는 등

성을 넘으면 평지가 보이는 산이다. 산을 지나니 홍

해가 보인다. 맑디맑은 물은 너무 편하게 보인다. 그

물을 즐기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관리하는 사람 또

한 보이지 않는다.

누웨바 시에서 느지막하게 한정식으로 점심식사

를 한 뒤 오후 내내 또다시 바란 광야를 달리고 달려

시내산 근처에 있는 숙소, ‘캐더린 호텔’에 도착하였

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후 일찍 이곳에 당도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을 통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하루 일정이 모두 늦어진 것이다. 오후에 시내산을

올라가서 밤늦지 않게 내려올 예정이었는데, 이미 얼

(왼쪽) 요르단에서 바라본 홍해 (오른쪽) 이집트에서 바라본 홍해의 모습. 가운데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이다.

이집트 국경을 넘어 누웨바 시에 있는 한국 식당에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 외진 곳에도 한국 식당이 있다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

나 성지순례를 하는지 실감케 하는 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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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안 있으면 해가 질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여기까

지 와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았

던 시내산을 안 올라갈 수 없지 않은가? 건강상 늦은

밤에 산행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하고 손전등을 하나

씩 쥐고 시내산으로 이동하였다.

일단 산행을 떠나면 불빛이 하나도 없는 관계로

길을 잃으면 좌우를 분간할 수 없다. 따라서 현지의

길을 잘 파악하고,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길을 잘 구

분할 수 있는 현지 베두인을 반드시 가이드로 고용해

야만 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고, 법이란다. 몇 명은

낙타를 타고 산을 올랐으며 나머지는 직접 걷기로 하

였다. 시내산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가 않다. 완만한 경사이지만 시내산 자체가 돌산인지

라 자갈에 미끄러질 수 있어 여전히 주의를 요하는

면이 있었다.

시내산을 오르면서 바로 만나는 건물이 하나 있다.

‘성 캐더린 수도원(Monastery of St. Catherine)’이

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로마 시대에 독실한 기독교인

으로서 출중한 지성과 용모를 갖추고 있던 ‘캐더린’

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개종하지 않고 믿

음을 지켜 끝내 순교한 일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이

다.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가 신을 벗었다고 하는 시내산 기슭에 위치

한 이 수도원은 4세기에 수도사들에 의해서 처음 건

립되었다. 이곳에는 도서관이 있는데 귀중한 성경 사

본과 희귀본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

이 희랍어로 쓰여 있으나 시리아어, 콥트어, 이디어

피아러, 아랍어 등으로 쓰여진 사본들도 3500여점

정도 소장하고 있다.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은 300년대 후반

에 희랍어로 쓰여진 것으로 신약성경 전체의 사본으

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859년 독일 신학자 ‘티센

도르프’는 이 귀중한 사본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당시 동방 정교회의 보호자였던 제정 러시아 황제에

게 기증하며 수도원 측으로부터 사본을 기증 받았다

고 했다. 그 후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제정적으로

쪼들린 소련은 1933년 이 사본을 10만 파운드 받고

영국에 팔았으며, 현재 이 귀중한 사본은 세계적인

보물로 대영 박물관에 깊숙이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수도원 측에서는 ‘티센도르프’가 사본을 가지고 갈

때 “연구가 끝나는 대로 반환하겠다”는 각서를 써놓

고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독

일어와 라틴어로 써놓은 각서는 지금도 수도원 도서

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한편, 1975년 9월 이 수

도원에서 퇴락한 방을 고치기 위해 벽을 헐었을 때

벽과 벽사이의 공간에서 50상자 분의 수많은 성경 사

본이 쏟아져 나왔다. 수도원 측에서는 이 사실을 극

비에 부쳤으나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극소수의 세계적인 학자들만이 30분이라는

제약된 시간 안에 구경만 했을 뿐이다.

‘성 캐더린 수도원’을 지나면서 길은 조금씩 가파

르기 시작했고, 서서히 어두워졌다. 비록 어두워질수

록 앞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위로 보이는 하늘은 별

들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시내산 정상으로 가는 매우 가

파른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휴게소가 있다. 낙타를

타게 되면 이곳 휴게소까지 낙타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마지막 가파른 계단은

미끄러워 더 이상 올라가기가 어렵다. (시내산의 정

상은 2,285m이다.) 그래서 일행들은 휴게소에서 찬

양과 기도를 나누며, 아쉽지만 정상으로의 도전은 접

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덕에 일찍 하산하여 저녁 9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성 캐더린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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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다. 장정만 세어도 육십 만이라 하였는데 거기에 여자

와 아이들을 포함한 만큼의 군중을 몰고 그 광야 길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몇 시간의 여

행에도 늘 화장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선교사인

나에겐 광야를 지나며 품어 본 최급선의 이슈가 ‘저들

은 어떻게 여기서 화장실을…’ 나무와 풀이 많은 우리

지역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대강 숨을 장소들을 찾을

수 있지만 평평한 광야에선 어떻게… 그러다 우리도

출애굽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을 만났

다. 작은 승용차 반 정도 되는 바위를 뒤로 하고 양쪽

돌맹이 위에 발을 올려놓고 한 자매가 옆에서 야속하

게도 계속 바람에 휘날리는 스카프를 어떻게든 조절해

주는 가운데 작은 볼 일을 마치고 난 후, ‘아주 불가능

한 일은 아

니네’ 라는

백문이 ‘불

여일험(驗)’

같은 체험도

해 보았다.

광야 (백문이 불여일견)

글 - 김영선 선교사

모세오경을 읽을 때마다, 특히 출애굽 하던 광야에

서 조석으로 믿음과 불신 사이를 오가는 이스라엘 백

성을 대할 때마다 ‘어쩜 이렇게 변덕스런 민족이 있을

까? 여호와의 기적과 신실하신 행적을 그렇게 체험하

고도 이럴 수가 있을까?’ 하던 질문 반, 판단 반이 이번

여행을 통해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백문이 불여일

견이라는 말처럼, 성경을 통해 광야라는 말을 수 백,

수 천 번 들었어도 한 번 그 곳을 직접 보고 지나가

니… 아마 나라면 그들의 변덕에 몇 곱을 더해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누리끼리하다 못해 버얼건 마른 땅에 먼지만 일고

가끔 나타나는 로뎀나무… 아! 이것 때문에 또 박살이

나버린 나의 열왕기상과 엘리야의 로망스. 이세벨에

쫓겨 광야를 달리다 지친 몸을 쉬러 앉았다는 그 로뎀

나무는 잎사귀는 하나도 없는 것이, 또 나무도 아닌 것

이 그저 잔가지만 무성한 풀포기 정도밖에는 안 되는

바란 광야

바란 광야

로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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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팔십을 넘긴 모세 할아버지의 발길을 계속 상기

하며 숨이 턱턱 막히는 길을 올라가는데 희미한 달빛

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 같은 흙과 돌뿐… 나무 한

그루, 손바닥만한 풀밭조차 없는 그 길을 오르며 모세

의 생각은 온통 주님을 가까이에서 만난다는 기대감뿐

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산이 울창한 숲과 푸른 풀로 덮이고, 맑은 시냇

물이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산이었다면 아마도

모세는 천천히, 이런 저런 다른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며 쉬엄쉬엄 산을 올라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시

내산은 전혀 그런 산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임재가 정

상에 거하지 아니하셨다면 아무도 오를 이유가 없는

정말 척박하고 삭

막한 곳이었다. 그

때서야 인자가 오

신 땅이 왜 좀 더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 아니었는가

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풍성하고 기름진

세상보다는 오히

려 척박하고 삭막

한 세상이 어쩌면

우리로 하여금 주

님의 임재를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

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속한 아름다움

에 너무 취해 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

고, 주님의 임재하심에 비교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모

래 같은 흙이요, 돌짝밖에는 안 되는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니 여호와를 바라고 임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만 온통 내 속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 모래흙 같은 세상아… 돌짝 같은 세상아…

내 너를 더 철저히 버리며 살리라하는 외침을 마음 깊

숙이 해보며 정상 가까이 있는 산장에 도착하니, 그래

도 그룹 중에는 우리 부부가 아직 영계에 속하는지라

걸어 올라간 분들 가운데 먼저 도착한 이들 중에 끼었

다. 뜨거운 커피로 몸을 풀고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모두들 힘차게 찬양을 하며 날쌘 발걸음으로 산을 내

려왔다.

시내산 (세상 vs. 임재)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우리 부부의 입

에서 동시에 나온 말은, “어쩜 이렇게 척박하고 삭막할

수가…” 아마도 지난 십 수 년 동안 주위에 코코넛 나

무 정글과 바다를 가까이 둔 푸른 환경 속에서 지내왔

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땅에서 보이

는 것은 돌과 바위, 마른 흙뿐이니, 왜 이런 땅을 택하

셔서 그 아름다운 하늘 집을 두고 떠나시는 인자의 세

상 집으로 삼으셨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 하였는데 시

내산에서 그 답을 얻게 되었다. 예정보다 이스

라엘에서 이집트

로 넘어오는 국경

에서 지체되어 거

의 오후 5시가 넘

어서야 시내산 정

상을 향해 발걸음

을 옮겼다. 쉬운

길은 아니라는 목

사님과 가이드의

엄포(?)에 산장에

남는 분들이 계셨

고, 몇 분은 낙타

를 타고 오르신다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모세의 길을 걸

어보자는 오기로

시작을 했다. 처음 한 30분 정도는 ‘아 이런 길을 뭐 그렇게 힘들

다고 으름짱을 놓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오르막길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한 시간 후 도착한

첫 쉼터에서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겠다는 분들이 몇

계셨다. 본인도 운동할 때 가끔 아픈 오른쪽 무릎이 조

금씩 쑤셔오기 시작하니, 아직도 최소한 두 시간은 더

올라가서 정상까지는 팔백여 계단 (마침 눈이 와서 이

계단은 오르지 못했다) 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

기에 그냥 나도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힘든 마음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십 수 년 간 선교지 생활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그런 힘든 상황 속에

서 꼭 얻어지는 귀하고 특별한 은혜가 있음을 여러 번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해는 지고 컴컴한 산길을 그

나마 비추어지는 달빛으로 가늠하며 한 발 한 발 내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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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라바 쉬인!

평안하신지요?

바울님 편지 중에 “생각 없이 이 세상에 너무 잘 적

응하지 말고 대신 소중한 이에게 잘 집중하라. 성숙치

못한 것으로 너를 끌어내려는 세상과 같지 않게 그 소

중한 이는 너를 잘 성숙하도록 최선으로 이끄실 것이

다” 라는 말이 새삼 깊이 새겨집니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할 때마다 지침이 되는 말이 없

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넓고 쉬운 길을 선택하며 요

령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9월 말로 두 번째 학기를 마치게 됩니다. 2학

기에 들어서자 어렵고도 새로운 고급 단어들이 쏟아지

는데 그 양이 너무나 많아서 벅찼던 시간이었지요. 중

학교 때 단어 외우며 영어 공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발음과 읽는 것은 둘째고 무조건 뜻만 외워 진도를 나

가는 느낌. 그래도 시간이 가는 만큼 축적되는 실력이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습니다. 제가 다니는 얀곤 외국어 대학의 미얀마어과는 미

얀마에서 외국인이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입니다.

학생이 되는 것이 어려운 만큼 공립학교에서 외국인이

가르치는 행위는 사실 금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

게는 좋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7월에는 한국어과, 8월

에는 영어과에서 ‘유학과 문화 충격’이라는 주제로 강

의하며 질의 문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월

에는 미얀마어과 축제 때 한국 명절에 대해 미얀마어

로 간단히 발표하기도 했지요. 특히 한국어과 학생들

의 뛰어난 한국어 실력에 저도 도전이 되었어요. 하지

만 정작 하고픈 말은 마음에 남겨 둔 채… 저의 학문과

전문 직업이 더 유용하게 사용되어지는 길이 열리길

기대할 뿐입니다. 주말에는 병원에서, 그리고 주 중에는 한인들을 위

해서도 임상심리 상담을 하곤 합니다. 특히 한인 커뮤

니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를 말하지만 좁은 커뮤

니티인 만큼 선뜻 나서는 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

도 상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던 분들이 만족

한 마음으로 정해진 과정의 치료를 마치게 될 때마다

그 분의 손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4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곳의 몬순 우기철에는 생각

만큼 우기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비는 예고 없

이 퍼붓기에 늘 우산을 챙겨 다녀야 합니다. 비 올 때

소중한 이에게 잘 집중하라

선교사 편지

글 – 정시나 선교사

얀곤 외국어 대학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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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는 일은 정말 ‘일’입니다. 에어콘 없는 택시는

앞 유리가 뿌옇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옆의 창문

을 열어놓아야 하니 비에 흠뻑 젖은 낡은 스폰지 의자

에 앉아 가는 것이 그리 상쾌한 일이 아니에요. 집 안

의 옷과 가방, 책에는 습기 때문에 연신 하얀 곰팡이가

끼어 틈틈이 닦아주곤 하지요. 작년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피해가 큰 얀곤 남쪽 지

방에는 쥐가 너무 많아 쥐잡기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얀곤에서는 야채, 특히 배추에서 약 냄새가 너무 심했

는데 쥐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한동안

은 한인들이 김치 담그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으니까요. 7월 말부터 이곳에도 전기 사정이 좋아져 거의 24

시간 전기가 들어온다는 기쁜 소식 알립니다. 그런데

많은 전기를 공급하다보니 전력이 달려, 한동안은 엘

리베이터가 하루에 잠깐만 움직이는 바람에 꼭 필요한

등하교 때, 매일 9층을 오르내리는 곤욕을 치루었지요. 미얀마에는 곧 선거가 있을 예정입니다. 날짜가 정

식 발표되지 않아 내년 1월이니, 3월이니 하며 각자의

짐작으로 선거를 기다립니다. 이 일로 조심스럽게 상

황을 지켜보며 사업이 어떻게 준비되어져야 하는지 기

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선거 후에 여러 가지 상황이 호

전될 것을 믿고 지금까지의 어려움도 잘 견디는 사업

가들이 많습니다. 인도양, 태평양을 넘어 그 곳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 지진, 산불, 강의 범람 등 어려운 소식들이 많아

조심스레 안부를 묻습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우리

들이라 위로가 됩니다. 두루 건강하시어 기쁜 만남 있

길 기다립니다.

미얀마어과 행사 나무 그늘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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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를 떠

나 에베소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잠시 바울은 복음

을 전한 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

놓고 가이샤라를 거쳐 예루살렘과 시리아 안디옥으

로 돌아갔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 아볼로라는

사람이 에베소로 왔다. 비록 아볼로라는 이름이 신

약성경에서 여러 번 (사도행전에서 3번, 디도서에

서 1번, 고린도전서에서 7번) 언급되지만, 그에 관

한 자세한 기록은 별로 없다. 디도서 3장 13절에

아볼로는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세나’라

는 사람과 더불어 ‘율법교사’로 소개되고 있다. 누

가는 사도행전에서 아볼로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조금 더 제공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

통한 자라” (행 18:24)

아볼로와 두란노 서원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다. 이전 에베소를 떠날 때, 회당에서 변론하자 여러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기를 청하지 않았던가? 모르긴 몰라도 에베소 유대인들은 바울을 기쁘게 맞이하였을 것

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바울이 복음을 설명할수록 여러 사람들은 마음이 도리어 굳어

지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결국 3개월 만에 바울은 회당에서 나와 유대인들에게서 몸을 돌려 이방인에게 향하

였다. 이후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매일 가르쳤다. 그 결과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해졌다.

글 - 오장석

사도 바울

(24)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표현한 그림

야외 원형 극장

항구

저자 거리

셀수스 도서관

에베소 도시를 보여주는 모형

원형극장에서 바라본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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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는 유대인이지만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리고 언변이 좋은 ‘웅변가’이며 성경 지식이 풍부

한 자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웅변가’라는 말은

곧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도 생각되어질 수 있

다. 왜냐하면 당시 교육은 자신감 있게 보이는 수사

기법인 웅변과 함께 묶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

교육을 받았고, 성경 지식이 풍부하며 알렉산드리

아 출신의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아볼로를 필로와

연결 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필로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사회에서 총명한 지도자로 여겨지는 인물이

다. 따라서 그의 밑에서 배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행 18:25)

아볼로는 예수에 관한 많은 것에 대해 정확하게

배운 듯하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라는

누가의 지적으로 유추 해보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강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

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행 18:26)

아볼로도 회당에서 예수에 관하여 담대하게 전

하였다. 문헌에 따르자면, 당시 에베소에는 많은 수

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시의 규모나 유대인들의 수의 비해 커다란 규모

의 회당 건물이, 기록적으로나 실제적인 건물의 흔

적으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

로, 에베소에는 작은 규모의 회당들이 있었지 않았

을까 추정되고 있다.

아볼로가 예수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지만 성령

에 관하여는 전혀 모르는 것을 알아챈 브리스길라

와 아굴라는 아볼라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에 대

하여 더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에베소의 야외 원형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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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지속적으로 회당에 나

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들에게도 회

당은 복음을 전하기 좋은 장소였던 것이 아닐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한 ‘하나님의 도’가 무엇

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있었던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속히 다

시 오시리라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이지 않았을

까? 그런데 아볼로는 겸손했던 사람이었던 듯싶다.

고등 교육을 받았던 학자 아볼로가 천막을 만드는

브리스길라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에 대해 들었

을 때, 거부감을 가지고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을

법한데 오히려 교만하지 않고 열심히 청종했던 것

으로 보인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에 사로잡혀 예

수가 누구인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

던 것이 아닐까?

기록적으로 에베소 교회의 기원에 대한 정보 또

한 별로 없다. 누가에 따르면, 바울이 에베소에 교

회를 세우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첫 번째

에베소 방문의 기간이 짧았고, 유대인이든 이방인

이든 개종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아마도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가 에베소에 남아 있으면서 가정교회

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점은 아볼로가 에베

소를 떠나는 설명에 조금 나타난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

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

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

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행 18:27-28)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로 가려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도와주었다. 여기서 말하

는 ‘형제’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복음을 배

운 자들이 아닐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

볼로를 추천하는 편지를 써 주었다. 고린도로 건너

간 아볼로는 해박한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증언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유대

인들의 주장을 눌렀다. 훗날 고린도에 ‘아볼로 파’

가 생겼던 것으로 보아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

지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다.

한편,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시리아 안디옥으

로 돌아온 바울은 얼마간 안디옥에 머물러 있다가

다시 3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

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

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

를 굳건하게 하니라” (행 18:22-23)

2차 전도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육로를 통해 갈

리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의,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를 방문하며 제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

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

19:1)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에 있을 무렵,

바울은 ‘윗지방’을 거쳐 에베소로 돌아왔다. 여기서

말하는 ‘윗지방’은 어디일까? 아마도 이것은 2차

전도여행 때 갔었던 북서쪽의 드로아를 거치는 북

부 갈라디아의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시디아 안

디옥에서 에베소로 가는 ‘남쪽 노정’이 있는데, 리

쿠스(Lycus) 계곡을 따라 골로새서, 라오디게아를

거쳐 에베소로 들어가는 길이다. 누가가 말하는 ‘윗

지방’은 ‘남쪽 노정’보다 조금 위쪽에 위치한, 동부

메안데르(Meander) 계곡을 따라 서진하여 에베소

로 직진하는 노정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20만 명 내지 25만

명으로 추산되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규모의 도시였다. 1세기 지리학자 스트라보에

따르면, 에베소는 소아시아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규모의 무역과 금융 시설을 갖춘 상업적인 중심지

였다. 항구 근처에 상점가가 있고, 도시 내 언덕에

저자거리가 위치하고 있었다.

에베소에는 2만 명 내지 2만 5천 명 정도의 관

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야외 원형극장이 있다.

Page 29: NCFC-2009-October

29

BC 280 년경에 처음 세워지고, BC 150 년경 헬레

니즘 시대에 재건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클라

우디우스 (34-41AD) 황제 시절 로마식으로 재건

된 것이다. 3단 구조의 이 원형극장의 각 단은 22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외 원형극장의 실내 정면은 각종 부조와 원주,

창으로 장식되어 있고 최상위 단인 3층 윗부분에는

다양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원형극장 중앙에 앉아

있는 관객은 정면으로 항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각종 문화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정치 및 종

교적인 모임도 가졌고 훗날에는 검투사들의 결전도

이뤄지게 되었다.

누가에게 바울의 여정 중 에베소는 남다른 의미

가 있었던 듯싶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여정에

중점을 두었다. 특별히 바울이 말년에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사도행

전은 끝을 맺는다. 누가가 전하는 바울의 여정 중

에베소가 중간 부분에 해당되며, 로마로 가겠다는

바울의 선언도 누가에 의하면 이곳 에베소에서 이

루어졌다.

에베소에 돌아온 바울은 아마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다시 만났을 것이다. 어쩌면 숙박과 일거

리 또한 고린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했

을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아볼로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듣지 않았을까?

에베소에 당도한 바울은 어떤 제자 일행을 만나

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게 복음을 들었거나 배운 자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는 전혀 모

르고, 오직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점들이 있었던 에베소의 저자거리 터

에베소의 포장된 도로. (왼쪽은 원형극장에서 항구로 향하는 길)

Page 30: NCFC-2009-October

30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

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

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행 19:2-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배웠다면 당연히 예

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 자세히 들었어야만 했

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

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 19:4-7)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설명하

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안수하자 성령 세

례를 받게 되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

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

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

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행

19:8-9)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다. 이전 에베소를 떠날 때, 회당에서 변론하

자 여러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기를 청하지 않았던

가? 모르긴 몰라도 에베소 유대인들은 바울을 기쁘

게 맞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바울이 복음을 설명할수록 여러 사람

들은 마음이 도리어 굳어지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결국 3개월 만에 바울은 회당에서 나와 유대인들에

게서 몸을 돌려 이방인에게 향하였다. 이후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매일 가르쳤다. 그 결과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해졌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

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10)

에베소의 공중화장실

에베소의 주택. (오른쪽) 집 내부는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기도 하 다.

Page 31: NCFC-2009-October

31

‘두란노 서원’은 어떤 곳일까? 에베소에는 ‘셀수

스 도서관’이 있다. 한 때, 이 셀수스 도서관이 바로

성경상의 두란노 서원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하지만 셀수스 도서관은 서기 135년 아퀼라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

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었다. 이 도

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

어 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셀수스 도서관이 세워

지기 이전에 에베소를 방문했기에, 셀수스 도서관

은 두란노 서원이 될 수 없다.

‘두란노 서원’에서 ‘서원’이라는 말은 ‘스콜레

(Scole)’라 불리는 강연장으로, 오늘날 영어의 학교

가 이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두란노’는 장소의 명

칭이기보다는 사람의 이름인데, 문제는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다. 보편적으로는 강연장 주인의

이름이었거나, 강연장에서 제일 유명하였던

강사의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점가 남문 근처에서 강의실과 비슷한 구

조의 건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두란노 서

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몇몇 고대 사본에

따르면,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5시부터 10

시까지 (지금으로 말하면 오전 11시에서 오

후 4시에 해당된다)’ 강론했다고 한다. 당시

의 문헌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더운 시간인

오후에 문을 닫고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시간에 학생들도

집으로 돌아가 쉬는 시간이었기에, 바울이 두

란노 서원에서 자유스럽게 강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무더운 휴식 시간에 사람들이

두란노 서원에 와 강론을 들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복음을 위한 바울의 열정이 대단했던 것이고, 바울

의 강연 또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사료된다. 바울도 (아마도 브리스길라와 아골라와

더불어) 천막 짓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는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틈이 나

는 대로 복음을 전한 셈이다.

에베소의 셀수스 도서관. (오른쪽) 조각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두란노 서원으로 추정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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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7개의 자치 공화

국으로 이루어진 카스피창에는 170여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복음에서 제일 소외

된 민족, 잉귀쉬를 소개합니다.

[잉귀쉐티아 공화국]

면적: 36,000 km

인구: 466,300 명 (2002년)

수도: 마가스

언어: 러시아어, 민족어

민족 구성: 잉귀쉬 (83%), 체첸 (11.2%), 러시아

(4%), 그 외 소수 민족 (1.8%)

종교: 이슬람

기독교 현황: 알려진 그리스도인, 선교사 없음

잉귀쉬 민족은 체첸 민족과 함께 나흐족의 일파

로 카스피 지역의 토착 민족입니다. 18세기 러시아

가 영토 확장을 위해 일으킨 카프카즈 전쟁 당시, 동

부에 거주하는 나흐족은 격렬히 저항하는 반면, 서

부의 나흐족은 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

습니다. 전쟁 후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다르게

인식하여, 서부의 나흐족을 ‘잉귀쉬’, 동부의 나흐족

은 ‘체첸’ 이라 구별하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잉귀

시 민족은 체첸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

다.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스탈린은 잉귀시‐체첸 민족

이 독일군에게 협력했다고 의심하며, 1944년 2월 잉

귀시‐체첸민족의 전부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을 동물

을 실어나르는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 키르키즈스탄

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

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이들의 아버지, 오빠, 아들

이 조국 ‘러시아’를 위해 싸울 때에 조국 ‘러시아’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간 것입니다. 러시아를 향한

이들의 상처와 아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957년 귀환이 허용된 이후, 잉귀쉬 민족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러시아로 인해 러

시아 정교회를 믿는 북오세티아의 땅이 되어 있었습

니다. 잉귀쉬 민족이 땅의 소유권을 요구하자 북오세

티아와 잉귀쉬 사이에 민족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1944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시 먼저 와 있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찰 잉귀쉐티아 공화국

종족소개

실제로 큰 기쁨과 소망을 주신 일이 최근에 단기팀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단기팀이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도 예

수님을 믿는다고 한 벙어리 청년(18세, 알뚜르)을 만난 것이다. 그는 성경도 지니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찢어버렸다

며 새 성경을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었고, 다시 성경을 전해 주었을 때 너무나도 기뻐했답니다. 그는 믿는 자가 한 명

도 없다고 알려진 어둠의 땅 가운데 주께서 숨겨두신 참빛을 가진 한 영혼이었던 것이다.

글, 정리 - 유종우

잉귀쉬 인구의 99%는 무슬림이다.

Page 33: NCFC-2009-October

33

던 고려인들이 나중에 온 이들을 섬기며 잠잘 곳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잉귀쉬 민족이

자신들의 땅으로 복귀할 때 고려인들을 초청했습니

다. 그들은 고려인을 땅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친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잉귀쉬 민족은 한

국 사람들을 친구로 여기며 한국 사람들을 좋아합니

다.

1992년 분쟁이 일어나자,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러시아‐북오세티아 연합군이 진군하여 잉귀쉬 민족

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북오세티아 군대

와 러시아 군대에 의해 이 지역에서 인종 청소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전쟁에 러시아

가 개입한 목적은 이 지역

에서 북오세티아 공화국

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

과 체첸이 개입하도록 유

도하여 체첸을 침공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분쟁

으로 6만 명의 잉귀쉬 민

족이 북오세티아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이 지역에

는 친 러시아의 북오세티

아가 거주하기 시작하였

고, 두 민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으

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잉귀쉬인들은 특별히

그들의 절제와 용기, 그리

고 관대함으로 유명합니

다. 9세기 이슬람으로 개

종한 이후, 그들은 먼저

공격을 받지 않으면 공격

을 하지 않는 민족으로 알

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

족 유대에 기초한 부족 간의 갈등이 일어날 경우는,

치의 복수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또한 알려져 있습니

다.

잉귀쉬는 인구의 99% 이상이 무슬림이며, 4세기

경부터 이 지역에 기독교가 전해졌고, 7세기에 이슬

람이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큰 세력을 발휘하

지 못한 이슬람은 17세기말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이

슬람 지도자인 이맘과 귀족을 중심으로 대항하면서

이슬람이 급속히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로 인한 강제 개종의 상처로 인해 이들은 이슬람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크리스천이라

고 하면 자기 민족을 학살하고, 카프카즈를 정복하고,

러시아 정교회로의 개종을 강요하면서 핍박했던 지

배 계층인 러시아인들을 떠올리기 때문에 자신들은

무슬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아픔과

눈물은 많은 시간 동안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했습니다.

이러한 아픔이 많은 잉귀쉬 민족에게 다른 민족들

은 말합니다.

“잉귀쉬 민족은 너무나도 폐쇄된 민족이에요. 이

나라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어

요.”

하지만 이 민족을 만나본 사람들의 고백들은 다릅

니다.

“너무나도 사랑이 많은 민족입니다. 처음에는 큰

벽이 있어 우릴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 같지만, 한 발

짝 다가가면 온 마음을 다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줍

니다. 이들의 값진 마음을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갚

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복음으로만

이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체첸이 1994년 체첸 1차 전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에 비해, 잉귀쉬가 알려진 것은 2003년 한 사역자

뒷동산에서 내려다 본 잉귀쉬의 어느 마을 풍경

Page 34: NCFC-2009-October

34

분이 잉귀쉬를 처음으로 밟은 이후입니다. 이렇듯 잉

귀쉬가 믿는 자들에게 알려진 역사는 너무나도 짧습

니다. 이 민족 가운데는 알려진 그리스도인도, 사역

자도 없습니다. 체첸 전쟁 발발 이후, 외부인의 잉귀

쉬로의 통행도 함께 차단되어 복음을 전하기가 참 어

렵게 되었고, 체첸 전쟁의 피해를 함께 입어 왔으나

복구를 위한 모든 지원에서 제외 되면서 카스피창에

서 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었

습니다.

게다가 지난 수 년간 정치 세력 간의 갈등, 대정부

테러, 대경찰요원 살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

근에는 일반적인 살인 사건마저 너무 빈번해져 불안

심리가 잉귀쉬 전체를 덮고 있고, 가진 자들은 이곳

을 벗어나기 위해 이민을 준비하기까지 합니다. 이러

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마음은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은 더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절

망할 때가 아니라 소망으로 새벽을 기다려야 할 때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의 씨앗을 뿌릴 중보

자들과 이 땅을 섬길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이 지역으로의 문이 열리고 있어 복음을

들고 발 빠르게 움직여갈 일꾼, 아버지의 사랑을 삶

으로 보여 주어 이 민족 가운데 아름다운 성령의 열

매들을 일구어낼 일꾼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실제로 큰 기쁨과 소망을 주신 일이 최근에 단기

팀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단기팀이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 벙어리 청년(18세, 알

뚜르)을 만난 것이다. 그는 성경도 지니

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찢어버렸다며 새

성경을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었고, 다시

성경을 전해 주었을 때 너무나도 기뻐

했답니다. 그는 믿는 자가 한 명도 없다

고 알려진 어둠의 땅 가운데 주께서 숨

겨두신 참빛을 가진 한 영혼이었던 것

이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겔22:30)

하나님께서는 잉귀쉬와 카스피창의

170여 민족을 위해 성 무너진 데를 막

아서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졌고, 버

림당한 것 같았던 이 땅을 이제는 회복

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으로 고통 받고 핍박받았던

이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 받고

사랑받을 때입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1. 오랜 시간 러시아에 대한 증오와 미움으로 가

득한 이들의 아픔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게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최근 들어서

관공서와 민간인을 향한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

로 인해 잉귀쉬 전역에 두려움의 영이 가득합니다.

이슬람과 테러가 주는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영 되신 성령님의 임

재가 충만하도록 기도해주세요.

2. 복음에 소외된 민족 잉귀쉬가 세계 교회에 알

려져서 많은 중보기도자들이 세워지며. 특별히 마지

막 시대에 한국 교회와 미주 한인 교회들이 이 민족

을 책임지며 나아갈 수 있게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잉귀시에서 선교사님들의 사역의 문이 열리고, 거주

와 비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3. 카스피창에 설립하고 있는 24시 기도의 집을

통하여 카스피 땅 가운데 기도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길 소원합니다. 최적의 장소를 찾아 임대하게 해주시

고 24시간 기도의 불을 지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 자료 제공: 인터콥 (http://intercp.net)

잉귀쉬의 한 마을에서 방문했던 가정.

Page 35: NCFC-2009-October

10월 가 정 개 인

1 왕상3 엡1 겔34 시83,84

2 4,5 2 35 85

3 6 3 36 86

4 7 4 37 87,88

5 8 5 38 89

6 9 6 39 90

7 10 빌1 40 91

8 11 2 41 92,93

9 12 3 42 94

10 13 4 43 95,96

11 14 골1 44 97,98

12 15 2 45 99-101

13 16 3 46 102

14 17 4 47 103

15 18 살전1 48 104

16 19 2 단1 105

17 20 3 2 106

18 21 4 3 107

19 22 5 4 108,109

20 왕하1 살후1 5 110,111

21 2 2 6 112,113

22 3 3 7 114,115

23 4 딤전1 8 116

24 5 2 9 117,118

25 6 3 10 119:1-24

26 7 4 11 -119:48

27 8 5 12 -119:72

28 9 6 호1 -119:96

29 10 딤후1 2 -119:120

30 11,12 2 3,4 -119:144

31 13 3 5,6 -119:176

11월 가 정 개 인

1 왕하14 딤후4 호7 시120-122

2 15 딛1 8 123-125

3 16 2 9 126-128

4 17 3 10 129-131

5 18 몬1 11 132-134

6 19 히1 12 135,136

7 20 2 13 137,138

8 21 3 14 139

9 22 4 욜1 140,141

10 23 5 2 142,143

11 24 6 3 144

12 25 7 암1 145

13 대상1,2 8 2 146,147

14 3,4 9 3 148

15 5,6 10 4 149,150

16 7,8 11 5 눅1:1-38

17 9,10 12 6 -1:80

18 11,12 13 7 2

19 13,14 약1 8 3

20 15 2 9 4

21 16 3 옵1 5

22 17 4 욘1 6

23 18 5 2 7

24 19,20 벧전1 3 8

25 21 2 4 9

26 22 3 미1 10

27 23 4 2 11

28 24,25 5 3 12

29 26,27 벧후1 4 13

30 28 2 5 14

Page 36: NCFC-2009-October

◆ 10월 10일 (토)

장로, 권사, 안수집사 부부 수련회 (MD/VA)

◆ 10월 18일 (일)

공동의회 (MD/VA/EC)

◆ 10월 25일 (일)

오이코스 축제 (MD)

◆ 10월 31일 (토)

가을축제 (MD/VA)

‘거룩한 사람’은 경기에도 최선을 다하여 임하는 사람이다.

(창립주년 기념 체육대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