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기 핵심리더과정 국외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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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기 핵심리더과정 러시아 항일독립운동 지역 탐방 국외연수 결과보고서 □ 방문기간 : 2016. 6.20.(월) ~ 6.24.(금) / 4박5일 □ 방문국가 : 러시아(블라디보스톡, 우스리스크, 크라스키노 등) □ 과 제 명 :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지역 탐방 □ 방문인원 : 제15기 핵심리더과정 교육생(90명) 경기도 인재개발원 (제6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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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기 핵심리더과정

러시아 항일독립운동 지역 탐방

국외연수 결과보고서

□ 방문기간 : 2016. 6.20.(월) ~ 6.24.(금) / 4박5일

□ 방문국가 : 러시아(블라디보스톡, 우스리스크, 크라스키노 등)

□ 과 제 명 :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지역 탐방

□ 방문인원 : 제15기 핵심리더과정 교육생(90명)

경기도 인재개발원

(제6분임)

- 목 차 -

Ⅰ. 국외연수 개요

1. 연수 목적··························································· 3

2. 연수 개요 ·························································· 3

3. 주요 수행내용 ······················································ 4

4. 세부일정 ··························································· 5

Ⅱ. 항일 독립운동 역사 유적지 탐방

■ 탐방지역 이해························································ 6

■ 한인의 이주 → 고려인················································ 6

1. 신한촌 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헌화 ··································· 6

2.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 및 독수리 전망대 탐방 ························ 7

3. 블라디보스톡 역과 항구·············································· 8

4. 고려인 문화센터(한인이주 140년주년 기념관) ·························· 11

5. 안중근의사 기념비 헌화 ·············································· 12

6. 우수리스크 항일운동 유적지··········································· 13

(최재형 선생 집, 전로한족회중앙총회, 이상설 선생유허비)

7. 발해성터 방문·························································14

8. 지신허 마을··························································· 15

9. 안중근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 16

10. 크라스키노 전망대 ··················································· 16

11. 제2차 세계대전 유적지 및 명소시찰 ··································· 17

(잠수함박물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비, 꺼지지않는 불꽃)

12. 블라디보스톡 민속 박물관 견학 ······································· 18

13. 푸쉬킨 극장 러시아전통공연 ·········································· 21

Ⅲ. 맺음말 ······························································ 21

Ⅰ. 국외연수 개요

1. 연수 목적

국내․외를 걸쳐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러시아 극동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지

역의 역사탐방을 통해 우리 선열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국가관 및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함양을 위함

2. 연수 개요

○ 연수기간 : 2016. 6.20.(월) ∼ 6.24.(금) / 4박 5일

○ 방문국가 : 러시아(공화국 연방 / 85개 연방주체로 구성)

○ 방문지역 :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 크라스키노

•연해주 : 면적(16.6만㎢/한국의 약0.75배), 인구(194만 7천명),

주도(블라디보스톡), 주요도시(우스리스크, 나호트카, 아르쫌)

•블라디보스톡 : 면적(331㎢), 인구(62.6만명), 자매결연도시(부산, 인천)

※ 항구 자매결연 : 동해 - 블라디보스톡항

•우수리스크 : 면적(173㎢), 인구(16.2만명), 연해주 고등교육의 중심지

○ 연수인원 : 핵심리더 제15기 전원(90명) / 6분임(9명)

연번 소속 직위(직급) 성명 성별 비고(교번)

1 부천시 행정6급 김영욱 남 46

2 경기도 행정6급 김경숙 여 47

3 용인시 공업6급 진경미 여 48

4 시흥시 시설6급 양순필 남 49

5 의왕시 의기6급 우재영 여 50

6 연천군 사복6급 김창훈 남 51

7 경기도 시설6급 정현주 여 52

8 동두천 행정6급 최창근 남 53

9 양평군 행정6급 홍승필 남 54

3. 주요 수행 내용

○ 동토의 땅 블라디보스톡에 한 맺힌 한인의 역사와 첫 한인마을『신한촌』에서의

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헌화

○ 고려인 동포들의 삶 및 역사 청취를 위한 고려인 문화센터 방문

○ 우스리스크 항일운동 유적지 방문(고려인 문화센터, 이상설 선생 유허비 등)

○ 한/중/러 시베리아 최남단 크라스키노 지역(지신허 마을 등) 방문

○ 러시아 개요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칠 것만 같은 동토의 나라, 얼마전까지만 해

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강국의 하나였지만 공산주의국가라는 이유로 인해 실제

적인 지리상의 거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꼈던 나라, 사회주의

붕괴이후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임에 틀림없지

만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지극히 러시아적인 과거 권력의 흔적들과 더불어 봇물처

럼 들이닥친 서구사회의 모습이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광경들을 만날 수 있다.

4. 세부 일정

일자 지역 시간 일정

1일차6/20

인천블라디보스톡

07:30 인천공항 3층 A카운티 18번 집결 후 탑승 수속10:10 인천출발 / 블라디보스톡 향발(KE981/약2시간 40분소요)13:50 블라디보스톡 도착16:00 신한촌 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헌화17:00 블라디보스톡 시내시찰(금각만, 독수리전망대 등)

2일차 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크

09:00 블라디보스톡 역11:02 우수리스크로 이동13:30 우수리스크 독립운동 유적지 시찰18:00 라즈돌노예(고려인 강제이주 역)19:30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

3일차 블라디보스톡핫산

07:00 조식08:00 핫산으로 이동13:00 지신허 마을14:00 안중근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방문16:00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

4일차 블라디보스톡루스키섬

08:00 조식09:00 루스키섬으로 이동12:00 APEC 전시장 현장견학(농업박람회)13:00 블라디보스톡 이동14:00 블라디보스톡 2차 세계대전 유적지 탐방17:00 한러 문화교류 푸쉬킨 극장 러시아 전통공연

5일차 블라디보스톡인천

08:00 조식09:00 블라디보스톡 시내시찰11:00 향토박물관 견학14:50 블라디보스톡공항 출발16:30 인천공항도착

Ⅱ. 항일 독립운동 역사유적지 탐방

■ 탐방지역 이해

○ 연해 지방은 프리모르스키(Primorskiy) 지방을 한국어로 의역한 것으로, 통상적으로

연해주로 알려져 있다. 면적은 16만 4,700㎢로 한국의 약 1.67배에 이르며, 러시아

전체의 0.92%에 달하는 크기이다.

○ 연해지방은 대부분 산악지형으로 80%가 산림지대이다. 그리고 남북으로는 시호테-

알린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 주도(州都)는 블라디보스토크이고, 인구는 61만 7천명이다. 주요 도시는 우수리스크,

나홋카, 아르촘 등이 있다.

○ 연해 지방은 과거 발해의 영토였다. 1863년부터 시작된 한인들의 연해 지방이주는

오늘날 독립국가연합(CIS)1) 지역에 고려인이 자리를 잡고 살게 된 모태이다. 그리

고 이 지방은 9,288.2㎞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 1880년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로 지정되고 조선소가 건설되었고, 1880년대에는 러시

아 서부 지역에서의 이민이 급증했다.

○ 1897년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구간 철도 772㎞가 완성되면서 블라디보스

토크는 태평양 진출의 관문으로 부상했다. 1938년 연해 지방은 하바롭스크 지방에

서 분리되어 독립 연방주체를 형성했다.

□ 고려인(카레이스키)

○ 고려인 또는 한국계 러시아인은 옛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의 독립 국가연합 전체

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까레이스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원래 고려인은 중국, 일본 등 나라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이라고 했지만 자

신들을 고려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

1988년 6월 전소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 부터였다.

○ 최초 이주는 1863년(철종 14)으로, 함경북도 경흥지방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얼어

붙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하바롭스크주변)에 정착

○ 나라가 혼란하고 기근이 계속되자 조선 백성들은 먹고살 것을 찾아 하나둘씩 한반

도를 벗어나 만주와 연해주 일대로 이주했다, 1863년, 양치해, 지신허 등 하산지역

남쪽을 중심으로 최초의 한인촌이 생겨났다.

○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이 연해주를 중심으로 신한

촌에 결집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1929년 하산지역 북부의 포세에트구 한인마을

은 한인극장과 문화회관은 물론 한인 자치기관을 두고 있었으며, 행정기관에서는

한글을 사용하는 등 한인정착 되는 듯 보이며, 1930년대 중반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와 우수리스크 등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17만여명이 생존의 터를 찾고 나라를

되찾으려고자 이주가 계속되었다.

○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은 극동지역내 일본 간첩행위를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강제이

주 시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신한촌도 사라지게 됨.

※ 한인의 연해주 이주

- 1860~1884년까지.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러시아의 우호적 태도

- 1884~1893년 일제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

- 1893~1910년. 독립운동을 위해 애국지사들의 망명이주

- 1910년 이후 일제에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대거 연해주로 이주

(특히, 1910년 이후 많은 한인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

1.『신한촌』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 위 치 : 블라디보스톡 하바로스브카야 거리

○ 기념내용 : 신한촌의 연혁과 역사적 의의를 새김

○ 건 립 자 : 사단법인)해외한민족연구소

○ 설치배경

-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최초의 한인 집단거주 지역으로 해외 한인 사회의 대표적

인 민족운동단체인 권업회 본부를 비롯해 한민학교 권업신문사들이 만들어 졌으며,

1919년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수립으로 이어짐

- '99.8.15.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기

념탑을 설립함

○『신한촌』에서의 독립운동

- 러시아 지역에서는 구한말부터 1920년대 전반기까지 활발히 독립 운동이 전개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한촌은 한인독립운동의 기지였다.

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을 대표하는 1910년대의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

정부, 한인신보사, 한민학교 등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동휘등 수많은 한인 애국지사

들이 신한촌에 거주하며 활동하였고

-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3.1운동이 이곳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한민학교

등 신한촌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계획들이 수립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일세당, 노인동맹단 등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 신한촌 등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끊

임없이 투쟁, 결국 조국해방에 큰 원동력이 됨.

※의병군들이 조직한 단체 : 13도 의군성명회, 권업회 등

- 권업회는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

- 고려인 동포 지도자들은 무장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교육과 언론을 통하여 민족혼을

고양하기 위한 사업으로 문화 활동, 학교설립, 신문발행을 전개

- 연해주 고려인 동포학교는 11개가 있었고 사범학교도 설립

(블라디보스톡 지역에만도 고려인 동포학교가 3개나 있었다)

○ 기념비 주변의 보도블럭이나 경계 담장이 정리가 안돼 왠지 휑하다, 신한촌 기념비

는 세 개의 큰 기둥이 솟아있고 주변에 8개의 작은 비석이 둘러싸고있다. 남한, 북

한, 고려인과 뿔뿔이 흩어진 해외동포를 의미한다고 한다.

○ 연수 사진

2.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 및 독수리 전망대 탐방

○ 1937년 10월 수차례에 걸처 고려인들을 집합시켜 열차를 통해 강제 이주가 이루어

졌던 곳이다.

○ 과거에는 “혁명의 광장”, “한인 강제이주 현장”으로 이용되었지만 현재는 젊은

이들에 만남의 장소로 시민들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 블라디보스톡 시가지의 중앙대로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 소비에트 용사들을 위한

기념 동상이 있으며, 새해 축제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톡 축제 개최의 단골 장소이다

○ 주말에 시장이 열려 늘 사람이 몰리고 왼쪽에 화이트하우스 “벨르이돔”이라 불리

는 연해주 주정부 청사가 있다.

○ 또한, 독수리 전망대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높은 해발 214m 높이에 설치되어있

어, 과거 요새로 사용되던 군사적 요충지라고 한다. 한눈에 블라디보스톡시내와 항

구 전체의 조망이 가능하다.

3. 블라디보스톡 역과 항구

○ 블라디보스톡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으로 1912년에 건립되었으며, 러시아의

우랄산맥 동부의 첼랴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총 9,288㎞를 1905년에 연결한

대륙 횡단 철도로 총 76개의 역이 있으며, 30분 쉬는역이 3개, 25분 쉬는역 3개, 20

분 쉬는역 14개 나머지 역은 15분에서 최소 2분이라고 한다.

○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을 통하여 이동 하였고, 특히 1909

년 안중근이 이곳에서 하얼빈으로 떠났고, 1937년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던

곳이다.

○ 블라디보스톡 항구는 한인들이 “금각만”이라고 부르며 국내 및 러시아 각지에서

이동하여 오던 곳이다.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한국, 만주, 일본 등지

를 몰래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 아울러, 블라디보스톡역 정면의 시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시각은 도착역인 모스코바

의 시각을 나타낸다고 함.

4. 고려인 문화센터(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 위 치 : 우수리스크 시 아무르스카야 63

○ 개 관 : 2009.10.31.(공사 2004.9.~2009.10.)

○ 시설구성 : 이주역사관, 정보화센터, 다목적 공연장 등

○ 사 업 비 : 약 52억여원(건물구입 60만불, 공사비 25억, 내부시설 20억 등)

○ 설치배경

- 동․서 냉전이 종식될 즈음 1990년 한․러 수교이후 2003. 12. 고려인 명예회복을 위한

러시아 정부령에 따라 러시아 정부 차원의 한인 이주 140주년기념으로 준비하면서

- 2004. 6월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준)발족으로 후원의 밤

개최 등 후원금을 모금하였으며

- 우리나라에서도 2005. 12. 기념관 건립예산 24억원 지원함

- 공사는 당초 시공사의 부도로 2차 시공사가 2007. 4월부터 공사를 시작 2009. 3. 마

감,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행사 준비위원장 김 니꼴라이 삐뜨로비치(우수리스크

민족문화 자치회장)이 마무리 공사 후 개관.

5. 안중근의사 기념비 헌화

○안중근 의사(1879~1910).

황해도 해주 출신.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대한민국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구현

하기 위해 대한침략의 원흉 일본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사실함으로써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 위 치 : 우수리스크 시 고려인문화센터 내

○ 재 설 치 : 2015. 7월(당초 2002년 블라디보스톡 의과대학내 설치)

○ 설치배경

- 1910.3.26. 안중근 의사의 순국 후 92년이 지난 2002년 서울보건신학연구원이 安의사

長征시작을 기려 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과 MOU를 체결하여 기념비를 건립했다.

하지만 별 다른 설명 없이 기념비만 덩그러니 세워졌고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새로

취임한 주립의과대학 총장이 기념비의 의미를 잘 모르고 철거를 결정했다고 한다.

- 기념비 철거 사실을 알게 된 독립기념관과 국가보훈처는 러시아와 협의에 나서 철거

된 채 방치되고 있던 비석을 블라디보스토크 시청에 보관하다 현재의 장소로 옮기며

기념비에 표지석도 만들었으나, 현재도 임시로 고려인 문화센터 담장 한켠에 세워져

있다.

- 안중근 의사는 1909. 3월초 동지 12명과 단지회를 결성, 1909.10.26. 하얼빈역에서 이

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키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잡혀 광동법원으로 이송

되었다.

-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관할 지역으로 효과적이며 강력한 항일 독립운동기관인 권업

회 회장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를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려고 하였

으나, 1910.2.14일 일본 법정에서 10일 동안 6차 공판후 3. 26. 순국하시었다.

6. 우수리스크 항일운동 유적지

□ 최재형 선생 집

○ 함경북도 경원의 노비출신으로 1860년대에 경제적인 이유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

1880년대 러시아에 귀화한 뒤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선장 부부의 보살핌으

로 풍부한 학식과 넓은 사고를 가진 지식인으로 성장, 군수업으로 년 수입이 10~12

만불의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 선생은 이렇게 모든 재산을 항일운동에 사용하여, 1908년부터 산발적으로 두만강을

건너 함북 일대의 일본수비대와 소규모 전투를 벌였고, 1910년 국민회를 설립하고

이범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 1911년 권업회 설립,

1917년에는 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 한족 중앙총회의 의원으로 활동, 1919년 4월 상

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1919년 11월 신한촌에 본부

를 둔 독립단을 조직 무장 투쟁을 준비했다.

○ 또한, 이토 히로부미 사살장소를 하얼빈으로 정하고 안중근 의사가 거사 후 일본군

에 체포되자 일본이 아닌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조치하였으나 1910년 일

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자, 선생은 자신이 안중근 의사를 지켜주지 못했다

고 자책감을 느껴 안중근 의사의 부인과 아이들을 보호하였다. 이 사건으로 연해주

의 한국인들은 더욱 러시아의 감시를 받게 되었고, 1920년 4월 5일 4월 참변이 일

어나는 날 선생은 체포되어 우수리스크로 이송 도중 탈주를 시도하다가 총격을 받

고 순국하였다.

○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으며, 아직도 후손들은 연해주에 거주

하고 있다.

□ 전로한족회중앙총회 본부(대한국민회의)

○위치 : 우수리스크시 치체리나 31번지

○특성

- 1917년 5월 “노령한인혁명단체연합총회” 결성장소

- 이 총회에서는 노령 한일들의 중심적 대의기구인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결성되었으

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입장을 밝힘

- 회의는 귀하 한 사람들이 주도한 것으로 비 귀하인은 투표권이 없음

- 비 귀하인은 1917.12. 하바로프스크에서 별도로 총회를 개최하고 조직을 구성, 귀하

인의 대부분은 제헌의회 선거에서 사회혁명당지지

-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3.1운동 직전 1919.2.25. 대한민국의회로 개칭되었고, 현재는

11년제 학교로 사용

□ 이상설 선생 유허비

○ 위치 : 우수리스크 교외, 레르몬토바 거리외곽 라즈돌리노예 강변

○ 특성

- 이상설은 1870년 12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 1906년 이동녕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간도 룽징춘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설립,

동포자녀의 교육과 항일민족정신 고취에 전력하였다.

- 이상설은 1907 년 고종 황제의 밀지(密紙)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

종과 함께 참석, 일본의 침략행 위를 세계에 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때 이준

은 자결을 단행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조선에 서는 일본의 압력으로 이상설 이준 이위종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 이상설

에게는 사형, 이준 과 이위종에게는 종신형 선고.

- 1917. 3. 우수리스크에서 병으로 48세 나이로 순국하였으며,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

재단이 2001년 10월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수이푼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상

설 유허비를 세웠다.

- 순국 시 유언에 따라 시신과 유품은 수이푼강(현 라즈돌리노예강)변에서 불태웠다.

유언내용 :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룩하

지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고국에 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원고

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마라.”

※ 우수리스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수이푼강이다.

8. 지신허마을

○ 러시아와 북한을 갈라놓는 두만강 국경에서 50km 정도 떨어진 핫산군 비노그라드

노예 마을. 1864년(일부 전문가들은 1863년으로 주장) 두만강 국경을 건넜던 조선의

한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마을이다.

○ 지금은 국경 지역에 속해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엔 통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초소가 덩그러니 한 채 서 있고

○ '지신허 마을 옛터'란 제목의 비문에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세대가 두만강을 건

너와 정착한 극동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비석은 지난

2004년 한인 러시아 이주 140주년을 맞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연을 한 가수 서태

지가 헌정하였다고 한다.

○ 사료에 따르면 1864년 여름이 되면서 지신허 마을의 한인은 30가구 140명으로 늘어

났고 조선 북부에 큰 홍수가 발생한 1869년 가을에는 1천800명이 한꺼번에 이 마을

로 이주하기도 했다한다.. 같은 해 인근 시지미와 얀치헤마을 등을 포함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은 6천 500명이 넘었다.

○ 이때부터 조선 정부의 이주민에 대한 통제 정책이 한층 강화됐으며 이주초기 미개

척지 개발과 주둔군 식량 조달 목적에서 이주 한인에 우호적이었던 러시아 정부의

태도도 변했다. 조선 정부는 국경 곳곳에 초소를 세워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주민

을 사살했으며 러시아 정부도 한인의 국경 지역정착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기근과 가난, 조선 관리들의 학정 등을 피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한인

들의 이주 행렬은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한인 거주 마을도 국경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등지로 확산했다.

9. 안중근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 단지동맹은 안중근과 항일의 뜻을 같이 하는 12명이 1909년 3월초 동의단지회를 결

성하고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이라쓰며, 독립

운동에의 헌신을 다짐한 일을 말한다.

○ 원래 단지동맹비는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러시아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 마을 강변에 세웠다. 하지만 부근 강물이 범람하면서 기념비가 자주 물

에 잠겨 훼손이 심각해지자

○ 2006년 원래 위치에서 1km 떨어진 유니베라 회사 공장 앞 공터로 옮겼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이 국경지역으로 편입됨에 따라 다시 기념비를 다른 곳으로 옮

겨 세우는 작업이 추진됐고, 이 작업이 추진된 지 5년만에 기념비 제막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새로 조성된 기념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함께 1909.3.5. 12명이 모이다,

2011.8.4. 12명을 기억하다. 라는 이 기념비는 102년이 지나서 높이 4m, 폭 1m의 큰

비석과 높이와 폭이 각각 1m인 작은 비석으로 제작됐고, 두 비석 사이에는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기존 기념비를 배치했다

○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은 2010년 6월 26일 안중근 의사와 11명

의 동지를 기념해 서울 남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개관했는데 이 기념관은 12명의

항일동지를 기념해 12개의 기둥 모형으로 세워졌다

10. 크라스키노 발해성터 및 전망대

○ 크라스키노의 높은 지대에(산) 설치되어 있는 러-일 전쟁 영웅을 기리는 기념비 이

며, 중국, 북한, 러시아 접경지역이 가까이 있다.

○ 크라스키노성토는 러시아 연해주 핫산 구역에 있는 발해시대 염주 성지로 평원지대

에 축조된 토석혼축성이다. 1960년 에붸 샤프쿠노프가 발굴한 이래 지금까지 발굴

이 계속되고 있는데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여름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 크라스키노성은 동경 예하의 염주가 있던 곳이고, 일본으로 향하던 배가 출항하던

항구도시였다.

11. 제2차 세계대전 유적지 및 명소 시찰

○ 잠수함 박물관

블라디 보스톡 제2차 세계 대전 추모공원에 당시 전장을 누비던 C-56잠수함이 전시

되어 있으며, 적합 10대를 침몰 시켰다한다.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옮겨 보전, 현

재는 잠수함 내부를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어 잠수함 내부 모습은 물론 역사와 승

무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볼수 있다.

○ 제2차대전 참전용사 기념비, 꺼지지않는 불꽃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전사자 및 유공자 명단을 벽에 새겨놓고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

는 기념비와 영원의 불꽃이라고 하며 별 모양 안에 휏불이 커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

는 것은 세계 2차 대전 참전 후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을 위한 불꽃 이라고 하며, 가

스로 유지되고 있어 비가 내려도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루스키 섬

루스키 섬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몇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으로 동해연안에 위치

해 있다. 루스키 섬은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관할에 놓여 있다. 가끔 이곳은 상트페테

르부르크의 크론슈타트에 비교되어, 가끔 극동의 크론슈타트라고도 불린다. 이 섬은

소련 시절에는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이곳은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다. 간혹

겨울에 안개가 너무 심해서, 섬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12. 관광공사 블라디보스톡 지사 방문

○ 러시아 극동지역 관할구역 내 관광객 유치 사업과 현지 관광업계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 활동등을 총괄하는 한국관광공사 블라디보스톡 지사 방문

○ 우리나라의 러시아 관광객이 연간 약 210만명이며 이중 70%정도가 블라디보스톡에

서 방문한다고 한다. 주요 관광내용은 교육(파주․양평 영어마을),테마파크(에버랜드),

의료관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함.

13. 푸쉬킨 극장 러시아전통 공연

Ⅲ. 맺음말

○ 블라디보스톡 항일 독립운동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고조선에서 고구려를 거쳐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와 긴밀했던 연해주 조선후기 배고픔과 수탈 등으

로 이주의 역사가 시작되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전후부터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망명, 항일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 하는 촌락들도 생겨났

으며, 그중 신한촌이 항일의 구심점이 되었다.

○ 신한촌에서는 일제의 압박과 소비에트의 핍박에서도 나라를 잃은 민족의 삶을 개척

하고자 민족계몽과 항일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였으며, 1920년 4월 신한촌 참변,

1937년 강제이주에 따른 시련이 있었으나 강인한 정신으로 집을 짓고 학교를 세우

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 남북으로 나뉜 조국에 대한 갈등, 현 러시아 체제에서도 여전히 고려인이라 불리며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고국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교육을 통해 조국의 말을 지키

려는 정신에 만감이 교차했다.

○ 아울러, 연해주에는 많은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 또 허다한 무명 항일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이 타국 타향을 떠돌며 대부분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한다. 우리 나라 경제

규모에 걸 맞는 동포에 대한 지원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이지만 많은 고려인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역사적인 도시

임을 기억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인 관심으로 교류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고려인에 대한 관심으로 조국으로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교류가 필요하다.

○ 이제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내 소수 민족 고려인이지만 근본적으로 한민

족임을 기억하며 서로 도울 수 있거나 도움을 받는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 러시아와 가교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 문화적

협력관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 이번,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지역 탐방은 그동안 독립운동 활동했던 열사들 중 잘 알

려지지 않은 최재형 선생, 이상설 선생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국가의 자유와 독립

을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이념으로 인해 조명되지 않았던 것은 독립운동가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존재에 대

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미가 있다. 더불어 잘 몰랐던 고려인들의 슬

픔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여행에서 지금까지는 막연히 느꼈던 호국선열들의 노

고를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뜨거운 전율을 가슴에 담고 내가,

우리가 공직자로써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이었다.

○ 이번 여행에서 러시아 항일독립운동 지역탐방을 통해 통일과 선조들의 열정을 새로

운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시베리아 열차에서 북한 벌목인들과의 만남은

통일이 그리 멀지않았고 미리 준비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 우수리스크 항일운동 유적지, 지신허 마을 한인촌, 지금은 이름 모를 풀로 덮혀 그

터만 남아있지만 그들의 열망과 숨결이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잊지 않고 그들을

기억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 멀게만 느껴졌던 이름 러시아, 4박5일의 시간이 나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

이었다. 선조들의 생활상, 항일투쟁 극한 상황, 한민족의 흔적을 잃지 않으려고 애

쓰는 분들, 어딘가 모르게 숙연하면서 몸의 일부가 아려옴을 느꼈다. 이는 우리 동

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어서 있다.

○ 그동안 러시아 한인은 막연히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할린 동포만 생각했었는데 이

번 러시아 항일독립운동지역 탐방을 통하여 그 이전부터 시작된 우리 동포의 슬프

고 비참했던 역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최재형이란 역사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을 통하여 균형잡힌 역사교육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하여 생각

해 보게 되었다.

○ 지금은 러시아 영토지만, 연해주는 발해의 영토였고 고려인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

는 역사적 도시다. 이번 러시아 항일독립운동 지역탐방을 통하여 지속적 교류와 관

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