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 김혜린 10 / 이명신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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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자 _ 공주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 1. 《아홉 번째의 신화》 (1985~1987년) 동인지 이전의 한국 순정만화의 한계 상황 2.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의 의미론 3. 나가는 글 :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가 한국 순정만화에 미친 영향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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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 김혜린 10  / 이명신 35

이화자 _ 공주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

1. 《아홉 번째의 신화》 (1985~1987년) 동인지 이전의 한국 순정만화의 한계 상황

2.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의 의미론

3. 나가는 글 :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가 한국 순정만화에 미친 영향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모색했던 동인지

03

Page 2: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 김혜린 10  / 이명신 35

34 한국만화영상진흥원

part 1 한국순정만화

1. 《아홉 번째의 신화》 (1985~1987년) 동인지 이전의 한국 순정만화의 한계 상황

한국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가부장제 중심의 남성 지배 문화적인 성향이 강했기에 과거 여성의 사회문화적 활동에 대한 인

식과 기록은 많지 않다. 게다가 근대 일제식민지시대에는 문화 말살정책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종속적인 식민정치에 의해 정

신·물질적 착취가 자행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서구보다 늦게 순정만화 장르가 1950년대 하반기에 시작해서 1960년대에 등장했다. 해방 이후 잡지만

화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졌고 여성만화가들이 등장했으나 지금처럼 확실한 장르 구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

다. 다만, 수많은 장르 만화 중‘어린 여자아이 취향의 만화’정도로 치부되었다.

1960년대 한국 여성만화를 대표하는 엄희자는 우리나라 초창기 ‘순정만화’의 그림체를 완성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엄희자

는 그때까지의 순정체의 과장된 그림보다 오히려 삽화체의 그림을 보여준다. 초기의 엄희자의 주인공들은 조원기의 주인공 뾰

족코와는 전혀 달랐고, 또 다른 여성 순정만화가들의 크고 예쁜 눈의 인형 같은 분위기가 아닌 평범한 삽화체의 소녀들이었다.

남자주인공 캐릭터 역시 과장되지 않은 삽화체의 평범한 스타일이었고 깔끔했다. 순정만화의 인기는 매우 높았지만, 만화책

에 대한 엄격한 심의, 출판사의 독과점, 만화와 작가에 대한 낮은 인식 등에 의해서 만화문화는 소년만화 중심으로 흘러갔다.1)

그리고 1960~1970년대는 일본 소녀만화의 모작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일본만화의 해적판 만화가 유입되었고, 만화

계는 해적판 만화를 교과서로 삼아서 작품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해적판 일본 소녀만화는 한국 순정만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순정만화는 로맨스 플롯이 더해지면서 장식적인 그림체에, 미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며, 소녀취향의 문화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 당시 여성만화가들의 활동으로 일본 쇼죠망가(しょうじょまんが, 소녀만화)의 영향을 받으면

서 한국적 순정만화의 그림체와 독특한 연출들이 나왔다. 이것이 하나의 장르 코드로 작용하여 오랫동안‘순정만화’의 이미지

맵을 형성하였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유미주의적이고 장식적인 순정만화의 특징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자율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만화 심의가 시작되면서 정치적인 요인으로 창작활동이 약화

되었으며, 약 7여 년 정도 창작 순정만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만화가와 출판사의 손익계산에 의하여 창작보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모작을 택했고 창작 풍토가 열악해졌던 것이다.2) 이는 소년만화에 비해 소녀만화에 대한 심의 기준이 더 까다로웠

기 때문도 있었다. 그 후로 순정만화를 그리는 남성작가들은 사라지고, 70년대 전반까지 대부분의 여성만화 작가들이 명랑만

화와 같은 만화를 그리거나 심의에 걸리지 않는 내용으로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 하반기에 과도한 검열과 출판

사 독점으로 작품의 질적 하락으로 순정만화의 인기와 정체성은 추락하게 된다.

한상정(2009)은 1950년대 하반기에서 1970년대 중반기까지의 순정만화의 내용적·형식적 특성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

누고 있다. 첫 번째, 작은 소녀가 서술자이고 가족적 문제에 집중하며, 그림체는 단순하며 한국적으로도 보이고, 연출도 단순

한 양식이다. 두 번째, 이야기 구조는 첫 번째 보다는 좀 더 큰 소녀들이 현실의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친구들이나 주변의

언니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거나, 또는 헤어진 친가족(특히 어머니나 아버지)을 되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전통 스타일로는‘공

주’들이 많이 등장하고, 현대물로는 피아노나 스키, 승마, 외국 등 부유한 배경이 등장한다. 시각적으로 소녀들의 얼굴과 신체,

패션의 묘사가 화려해지며, 눈과 키가 커지면서 만화 배경에 특유의 장식들을 지니고 포즈를 잡고 있는 칸들이 자주 등장한다.3)

여기까지가 한국 순정만화 1,2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라는 개념조차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시대였기

에‘순정(純情)’이라는 개념이 논의되면서 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순정만화는 오랜 시간 동안

그 개념과 범주의 모호성으로 불확실한 마이너 문화로서 인지되고 있었다.

1) 정보영(2005), 한국 여성만화의 발전과제 고찰, 공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54. 재정리

2) 노수인(1999), 한국 순정만화와 일본 소녀만화와의 관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49

3) 한상정(2009), 그녀들의 세계: 순정이기엔 상당히 다채로운, 《만화, 한국만화 100년 기념》도록,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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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만화포럼 칸 2015

03 :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 _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2.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의 의미론

1980년대 중반 만화 동호회 ‘나인’4)의 아홉 명의 여성만화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

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앞서 단락에서 언급된 한국 순정만화 1,2세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들

이 역력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한국적 스타일의 순정만화 그림체 찾기, 소재 및 주제의 다양성을 통해서 보다 더 많은 독자층

확보, 만화 창작 풍토의 활성화 등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연구자는 《아홉 번째의 신화》동인지의 의미론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 당시대적 새로운 만화 영토를 찾으려는 운

동 전개의 가치로서 순정만화 잡지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두 번째로 소재와 이야기의 변화 및 확대, 세 번째로 순정만화

장르에서 리얼리즘 캐릭터의 시도, 네 번째로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등의 한국의 대표적 여성만화가의 발견과 개성 있는 신

인여성만화가 발굴, 다섯 번째로 팬덤층의 인식 변화와 확대(확보)를 들 수 있다. (<표 1> 참조)

1) 순정만화 잡지시대의 견인차 역할

《아홉 번째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순정만화의 그림체와 작품성 등에 대하여 비판이 많았다.

“제가 볼 때 소녀만화의 문제점은 대별해서 2~3가지라고 봐요. 첫째, 스토리 구성이나 연출이 좀 빈약하고, 둘째, 그 빈약

함으로 인해 스토리가 늘어지고 스피드감이 없어요. 셋째는, 너무 인간적인 냄새, 삶의 냄새가 결여되어 있어요. 왜 꼭 예쁘

기만 해야 되고 화려해야 되고, 공허하고 구구절절한 미사여구가 그렇게 많아야 하죠?(웃음) 정말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건

그런 건 아니잖아요? 공감할 수 있는 컷, 배열, 군더더기가 없는 완벽한 연출, 전체적 일관성, 간결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대

사 이것이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바라는 것은 좀 더 인간의 냄새, 삶의 냄새가 느껴지는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줬으면 하는 겁니다.” ~ 김수정 인터뷰 중, 《아홉 번째의 신화》1호, p.20

그러나 황미나는 순정만화작가들도 만화 출판사의 횡포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같은 외부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작

품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지면이 있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1984년 순정만화동호회 PAC가 결

성되어 커뮤니티 활동이 시작되었고, 1985년 아홉 명의 현업 여성만화가들이 ‘나인’이라는 동인을 만들어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를 만들게 되었다.5)

<표 1>의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의 구성 내용을 보면 ‘여성만화잡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이었으며, 다양한 만화문

화를 포용하고 책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서 실험적인 방법도 모색하였다. 동인지였던 《아홉 번째의 신화》는 한국 여성만화잡

지 시스템이 시작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작가들의 단편만화 외에도 1~3호에 거쳐서 유명 작가의 인터뷰 기사, 신

인만화 공모 및 수상작, 만화평론 및 기획기사, 문화적 이슈, 만화작법 강좌 등을 게재함으로써 동인지 이상의 전문 만화잡지

시스템의 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아홉 번째의 신화》는 이전의 순정만화 주요 독자 대상이었던 소녀 대상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와 문학적 접근으로 20대 이상 여성의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였다.

4) “저희 ‘나인’은 만화에 대한 사랑과 의욕을 가지고 보다 나은 만화 세계를 꿈꾸면서 모인 만화 동호회입니다.” ~ 1권 김수정 작가 인터뷰 중 ‘나인’ 편집자가 언급한 말, p.20.

5) 백정숙(1996), 성인여성의 꿈을 찾아 나선 황미나,《한국만화의 모험가들》, 열화당,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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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국만화영상진흥원

part 1 한국순정만화

이러한 당시대적 새로운 만화 영토를 찾으려는 운동 전개의 가치는 한국 순정만화 전문잡지 탄생과 순정만화 황금기의 신

호탄으로 연결된다. 동호회 ‘나인’은 회원 자비로 동인지 1,2호를 인쇄하여 무료 배포하였고, 이후 입소문으로 순정만화 마니

아들에게 점차 알려지게 되자, 3호는 발행 부수의 증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 해결을 위해서 출판사에서 제작비를 부담하고 위

탁 판매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1987년 11월 《아홉 번째의 신화》동인지 3호가 마지막으로 출간된 이후, 한국 최초의 풀 순정만

화 잡지 《르네상스》가 1988년 11월 창간되었다.6) 《르네상스》창간호에 작품이 실린 작가들 다수가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활

동했던 작가였고,7) 이 동인지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어져 창간되는 월간 순정만화잡지에서 활동했다. 《아홉 번째의

6) 1970년, 1980년대 잡지에 순정만화가 연재되기는 했지만, 순정만화 중심의 만화잡지는 아니었다.

<표 1> 《아홉 번째의 신화》 1,2,3호 동인지 구성 내용

1호

1985년 9월 발행 / 258p

표지 일러스트: 황미나

■ 프롤로그 : 일러스트 김혜린

■ 목차 일러스트 : 이정애

■ 단편만화

<愛> / 신일숙 3

<행복> / 황선나 40

<F~랩소디> / 김진 60

<빌리> / 이정애 68

<그대를 위한 방문자:어느 소설가의 체험에서>

/ 김혜린 121

<엘레노아> / 서정희 172

<환절기> / 유승희 189

<의미 없는 탈출> / 이명신 204

<당신에게 드리는 메시지> / 황미나 224

■ 창간 특집 인터뷰

이현세 씨 115

김수정 씨 119

■ 특별기획

자유기고 만화평론 - 한국만화의 현주소와

그 전망 / 김미자 200

■ 로맨틱·일러스트

<나인은 사랑하고 있다> / 이명신 39

■ ART 살롱 256

■ 나인 소개

~ 신인원고 모집

~ 나인회원 모집

~ 만화평론 모집

~ 편집후기 258

2호

1986년 12월 발행 / 304p

표지 일러스트: 김혜린

■ 목차 일러스트 : 황미나

■ 로맨틱·일러스트

유승희 그림 2

이정애 그림 156

■ 단편만화

<P선생의 똥싼바지> / 이정애 3

<하얀 모자> / 서정희 25

<장미의 계단> / 유승희 48

<영웅> / 황선나 85

<카인의 계곡> / 황미나 98

<A.P.T> / 이명신 157

<히스꽃 필 때에는> / 김혜린 186

■ 카툰 ART / 고상한 78

■ 자유기고란 “습관” / 박흥용(만화가) -

‘껍질깨기’로 내 ‘화풍’만은 있다! 82

■ 특별기획취재 -“한국적 만화를 생각해 본다”

/ 취재 및 정리 황선나, 이정애 148

■ 나인 안내 220

■ ART 살롱 221

~ 음악 “열정과 한숨의 Korean Rock”

/ 황선나

- 문학 “램프 아래의 나그네들” / 김혜린

- 영화 “명화의 향기” / 서정희

- 미술 “그들이 남기고 간 빛의 여인들” /

이명신

■ 신인원고 총평 229

■ 제1회 신인원고모집 당선작

- 대상 <창세기> / 김미림 234

- 우수상 <마음의 십자가> / 이은희 268

■ 나인 앙케이트 298

■ 입회하면서 한마디 / 고상한 303

3호

1987년 11월 발행 / 346p / 정가 2500원

표지 일러스트: 김미상

■ 단편만화 & 카툰

<우리들의 성모님> / 김혜린 10

<마지막 데이트> / 이명신 35

<수상한 아이> / 김미상 70

<해빙> / 황선나 101

<새> / 유승희 140

<사과 한 개> / 황미나 172

<시퀀스 카툰> / 고상한 206

<꿈> / 서정희 227

<얼룩> / 이정애 260

■ 만화사 탐색 기획

“현역 만화가들의 말하는 추억 속의 만화들”

/ 이현세, 허영만, 김철호, 장태산 90

■ 초대작가 이색코너

- 소설가 이제하의 “시와 카툰:성형시집”96

■ 나인 설문조사 결과발표

- 요즘 만화 ~ “독자에게 물어보라!”

/ 설문조사 결과발표 152

- 입회문 / 김미상 171

- 만화평론 ~ “전환의 국면과 여성만화”

/ 최열 199

- 자유기고 ~ “일기산책” / 이희재 203

■ 권말부록

- 제2회 신인원고 모집 결과발표 277

- 제2회 신인원고모집 당선작

- 우수상(대상은 해당작 없음)

- <지난여름의 연가> / 서정아 283

- <나인 대하 기획 시리즈 / 만화작법 연구

(1)> 315

- 나인 안내 314

~ 편집후기 344

Page 5: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 김혜린 10  / 이명신 35

37만화포럼 칸 2015

03 :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 _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신화》동인지에서 활동했던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김진 등이 여성 팬들의 커다란 지지를 받으며 한국 순정만화의 제3세대

대표적인 작가들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로망스》, 《댕기》 등 순정만화잡지가 연이어 창간되어 순정만화잡지 시스템이 활성화

되고, 상당 분량의 장편 순정만화들을 탄생시켰다. 이때부터 약 10년간을 한국 순정만화의 황금기라고 일컫는다.

2) 소재와 이야기의 변화 및 확대

《아홉 번째의 신화》 이전의 순정만화의 다양하지 못한 소재와 패턴화 된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

성’의 문화를 논의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점은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토대, 역사적 관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초기의 순정만화는 여성문화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남성에 의하여 창작이 되었고, 그 문화 속

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그 후에는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아닌 소수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둥지를 틀게 되

었던 관계로, 그 주제와 내용 등이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문화 속에서 독자적으로 장르화 되지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홉 번째의 신화》는 만화 동호회 ‘나인’이 만든 무료 배포 동인지였기 때문에 이 동인지에 참여하는 현업 작가들과

신인작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소재와 이야기를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다.8)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마이너 문화였기

에 가능한 성적 애정 표현과 남녀의 성적 정체성과 사회, 문화적 주제의식에 대한 정치적 입장 표명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

기에 당시 일반화 되어 있는 만화보다는 작가주의적인 실험성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할 수 있었다.

사례를 살려보자면, 《아홉 번째의 신화》 1호에 게재되었던 신일숙의 <애(愛)>는 서구적인 순정만화 스타일에 신라시대 김유

신과 천관녀의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각색한 단편만화이다. 스타일과 이야기 구성 방식은 기존 일본 소녀만화의 영향

의 흔적이 있지만, 소재 차원에서 한국의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같은 호의 서정희의 <엘레노아>는 이

전 순정만화의 그림체와 만화 문법을 지향하고 있지만, 소재는 근친상간으로 누이와 결혼해야 하는 남동생의 이야기이다. 이

명신의 <의미 없는 탈출>은 고아원에서 탈출하여 유흥업소를 전전긍긍하는 두 소녀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찰나의 순간에 삶의

희망을 깨닫고 죽음 직전에서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썩은 냄새만 날지라도 나는… 나야… 그런 나일수록 더욱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어야해… 도망치거나 버려서는 안

돼는 거야…” ~ 이명신의 <의미 없는 탈출> 클라이맥스 대사 중

《아홉 번째의 신화》 2호에서는 유승희 <장미의 계단>에서 화가의 초현실주의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한 실험적인 작품이며, 황

선나의 <영웅>은 록 가수를 소재로 음악의 희열, 무대 뒤 허무함 등을 표현하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언만

화 형식으로 제작하였다. 같은 호에 게재된 이명신의 <A.P.T>는 공포 스릴러 장르의 시도로 짜임새 있는 연출이 매우 놀랍다.

《아홉 번째의 신화》 3호에서는 김미상의 <수상한 아이>는 곤충이 된 사람을 소재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7) 《르네상스》창간호에 작품이 실린 《아홉 번째의 신화》 활동 작가들은 고상한, 김진, 김혜린, 신일숙, 황미나, 황선나 여섯 사람이다. 김소원(2014), 순정만화에서의 리얼리즘 경향성에

대해: 《아홉 번째의 신화》와 김혜린, 그리고 황미나 작품을 중심으로, 2014년 경남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학술행사 자료집, p.20.

8) 1, 2호 표지에는 ‘이 책은 만화인을 위한 비매품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었고, 동인지 맨 뒷장 편집 후기 하단에 ‘이 책은 순수창작집이며 비매품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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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의 카툰은 2호와 3호에서 연재되었는데, 다양한 실험 카툰 형식을 선보였다.

《아홉 번째의 신화》 1~3호를 거쳐서 작가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소재와 이야기를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되니 소재와 주제, 이야기가 다양해지고 확대되었다. 소재와 이야기가 확대되니 독자층 또한 소녀에서 여성으로 확대되었고,

독자 대상이 확대되니 재미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훨씬 다양해질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점차 소녀를 넘어 여성만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되었고, 대중에게 진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여성만화가가 작품성을 가지고 독자층과 긴밀한 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3) 순정만화 장르에서 리얼리즘 캐릭터의 시도

김소원(2014)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즘과 과장된 그림체의 사랑

이야기인 순정만화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순정만화와 리얼리즘을 연결시키기는 어렵다고 언급하면서도, 《아홉 번째의 신

<그림 1> 신일숙, <애> <그림 1> 황선나, <행복><그림 1> 이정애, <빌리>

<그림 2> 유승희, <장미의 계단> <그림 2> 김미상, <수상한 아이> <그림 2> 이명신, <A.P.T>

38 한국만화영상진흥원

part 1 한국순정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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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만화포럼 칸 2015

03 :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 _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화》의 일부 작가의 작품 경향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고 논의하였다.9)

《아홉 번째의 신화》 에서 활동했던 작가 중 한국 순정만화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는 작가인 황미나는 이전의 여성작가가 도

전하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황미나는 사랑이야기에 과다하게 의존하던 순정만화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주인공의 애정관계보다 서사성을 강조하

거나 배경에만 머물렀던 역사에 천작하고, 인간의 본성 구현에 매달렸으며, 현실의 모순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였다.10)

또한 김혜린은 대하 서사 장르의 작품들을 주로 창작하여 여성작가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고,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보

여주었던 사회적 문제의식들을 토대로 대하 서사만화를 그려, 삶과 사랑, 혁명 등을 주제로 현실적인 문제의식에 대한 깊이 있

는 해석을 만화로 선보였다.

《아홉 번째의 신화》 1~3호를 거쳐서 황미나, 김혜린은 점차적으로 순정만화 장르에서 리얼리즘 캐릭터를 구축하려는 변화

의 과정을 보여준다.

황미나는 《아홉 번째의 신화》 1호에서 선보였던 <당신에게 드리는 메시지>는 작가의 이전 작품대로의 서구적인 캐릭터와

배경을 그렸지만, 2호부터는 한국적 캐릭터와 배경을 주제로 하였다. 더욱이 소재와 내용도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문제의식

을 도출하는 사실적인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2호의 <카인의 계곡>은 1호와는 다르게 한국적 캐릭터에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추며, 불우한 유년으로 인해 겪는 트라우마를 가진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순정만화의 리얼리즘 표현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3호에 게재되었던 <사과 한 개>는 순정만화와 리얼리즘 연결의 가능성과 완성도를 증명하였다. <사과 한 개>는 단

편만화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이야기 전개의 페이지 한계가 있지만, 반영하고자 했던 현실 문제에 대한 주제의식들을 진솔하게

잘 표현했다.

김혜린은 《아홉 번째의 신화》 1호 <그대를 위한 방문자>에서 주인공 화자의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에 관한 스토리를 전개했

는데, 소설가인 주인공이 내면세계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회의감과 고통 등을 표현하여 실험적인 만화를 선보였다.

9) 김소원(2014), 순정만화에서의 리얼리즘 경향성에 대해 : 《아홉 번째의 신화》와 김혜린, 그리고 황미나 작품을 중심으로, 2014년 경남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학술행사 자료집, p.16.

10) 노수인(1999), 앞의 논문, p.34

<그림 3> 황미나, <카인의 계곡> <그림 3> 황미나, <사과 한 개><그림 3> 황미나, <사과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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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한국만화영상진흥원

part 1 한국순정만화

“(중략) 인간은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지요. 존재의 존재. 자아. 즉, 영혼의 핵심. 그 핵심과의 연애가

진정한 자기성찰이자 삶의 의지입니다. 당신은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양심과 이상과 태어남을… 아니면

벌써 그들을 죽여 버렸습니까? 언젠가 당신이 몹시 지치고 외로울 때 그 애인은 당신의 방문을 노크해 줄까요? 그럴 만큼

당신은 살고 있습니까? 고뇌하며 아파하며 사랑하며 열심히… 당신의 시대, 인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 김혜린,

<그대를 위한 방문자> 중 p.171.

2호에 게재된 <히스 꽃 필 때에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이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로 그들을 없애기 위해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변호인의 내용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3호에 소개된 <우리들의 성모님>이 1~3호 중

가장 리얼리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묘사도 섬세하고, 학생운동으로 쫓기고

있는 주인공과 마주하는 한국의 민초들의 삶도 심도 있게 그려진다. 게다가 한국 토속 신앙과 정서(자애로운 보살님, 우리들

의 성모)에 대한 언급은 작가의 역사관과 민족의식 또한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김혜린은 이후 다수의 작품에서도 인간심리 깊

은 곳까지를 탐색하며 ‘시대와 진실’에 대한 새로운 관념과 해석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김소원은 김혜린의 <우리들의 성모님> 단편만화가 197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추측한다. 1980년대

데뷔한 일련의 여성만화가들이 70~80년대 다양한 리얼리즘 작품들이 나왔던 영화와 문학에서 그 영향을 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논의한다.11)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 지면에서 황미나와 김혜린은 순정만화에 리얼리즘을 연결시켜 모든 연배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외에 진정성 있는 깊은 인간 내면의 세계와 갈등, 아픔, 슬픔과 기쁨을 고민하며 표현해 나갈려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것은 결국 ‘한국적 순정만화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고민과도 연결된다.

“(중략) 한국의 만화계가 뿌리를 두고 있는 현실, 즉 한국적인 일종 독특한 현실은 한국이라고 하는 공간에 뿌리를 둔 작가라면 누구든

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 《아홉 번째의 신화》 2호, 특별기획 취재 <‘한국적 만화’를 생각해 본다> 중, p.148.

<그림 4> 김혜린, <그대를 위한 방문자> <그림 4> 김혜린, <우리들의 성모님> <그림 4> 김혜린, <히스 꽃 필 때에는>

11) 김소원(2014), 앞의 학술행사 자료집,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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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만화포럼 칸 2015

03 : 《아홉 번째의 신화》의 의의 _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모색했던 동인지

4)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김진 등의 한국의 대표적 여성만화가의 발견과 개성 있는 신인 여성만화가 발굴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활동했던 다수의 작가들이 한국 순정만화의 황금기에 연이어 창간되는 월간 순정만화잡지에서 활

동했다. 그 중에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한국의 대표적 여성만화가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황미나, 김

혜린, 신일숙, 김진이다. 이들은 한국 여성만화가로서 독립된 창작 순정만화를 완성하였다. 독립 창작만화를 만들려면 세 가

지 조건이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작가만의 철학(세계관, 이야기)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이야기에 맞는 스타일(그

림체,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것들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빠지면

독립 창작만화를 만들 수 없다. 이전까지는 마이너 문화로서 인지되고 있었던 순정만화 장르에서 ‘나인’이 《아홉 번째의 신화》

를 만들었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한 한국적 순정만화의 독립된 틀을 세워보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활동했던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김진은 앞장에서 언급했던 앞선 세대의 일본 소녀만화의 영향에

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이고 작가들 자신만의 세계로 한국적 순정만화의 장르를 개척했던 작가들이다. 이들은 여성주의 관점

에서 여성의 창작활동, 여성문화 등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도 했다.

또한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활동했던 이정애도 개성 넘치는 그림체와 색다른 이야기로 1990년대 많은 인기를 받았던 작

가이고, 작가 활동을 하지 않는데도 아직까지도 웹 상에서 1990년대 만화들이 뷰어 만화로 작품이 소비되고 있다.

《아홉 번째의 신화》에서 신인작가 공모전을 시도했던 점도 일반 동인지와는 다른 모색이었으며, 공모전 당선 작가들인 김미

림, 이은희, 서정아에게 지면을 만들어주어 활동을 지원했다는 점도 순정만화의 신인작가 발굴에의 의지를 알 수 있다.

5) 팬덤 층의 인식 변화와 확대(확보)

《아홉 번째의 신화》는 현업 여성만화가들의 독립적인 활동과 잡지 시스템의 연계를 활성화시켜 대중과의 소통을 찾고, 개성

있는 신인작가의 발굴로 실험성이 강한 작품과 새로운 시선을 도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등장하는 1990년대 순정만화

를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와 그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개별적인 작가 역량들

이 커졌고,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구사했으며, 독특한 만화연출들을 선보였다. 기성세대의 순정만화를 ‘여성만화’ 확대로

서 새롭게 사고하게 되었으며, 기존 순정만화의 틀 밖에서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만화들, 실험적인 만화들이 나오면서 한국 순

정만화 장르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아홉 번째의 신화》 1~3호의 영향으로 《르네상스》가 창간된 이후, 《하이센스》, 《윙크》 등 순정만화 전문 잡지가 연이어 출

판되면서 대본소에서 빌려 보던 만화를 독자들이 서점에서 직접 구매해서 집에서 보게 되었다. 이러한 유통, 판매의 방식이 바

뀌면서 순정만화를 보는 문화 소비자의 인식과 사회 전반적인 시선도 달라졌으며, 대중성을 확대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된다. 다른 장르의 만화에 비해 여전히 독자층의 범주가 넓지 못하지만, 특정 작가들의 마니아들과 순정만화 장르의 독특한 분

위기와 감성을 공유한 팬덤 층의 연대의식이 순정만화를 둘러싼 많은 환경들을 바꾸어 갔다.

“(중략) 가령 자신이 혼을 다한 작품이 비록 전체에게 같은 공감을 줄 순 없다 해도, 그것을 보고 진정으로 느끼고 호흡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고 만화의 본질적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홉 번째의 신화》 1호,

‘나인의 생각’, 김수정 인터뷰 중, p.20.

창작에 있어 독립적인 작가 활동과 견고한 시스템의 운용, 순정만화 팬덤 층의 인식 변화와 확대는 한국 순정만화의 새로운

자생력으로서 키워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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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한국만화영상진흥원

part 1 한국순정만화

3. 나가는 글 : 《아홉 번째의 신화》 동인지가 한국 순정만화에 미친 영향

《아홉 번째의 신화》 1~3호를 발행했던 아홉 명의 여성만화가들은 만화인으로서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이 한 데 모여 자신

들의 문제를 자성하고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길을 모색함으로써, 순정만화 지망생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는 노력을 증명

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현업 작가로서 일하면서 주변의 현실적인 여건에 밀려서 점차 잃어갈 수 있는

창작 욕구를 《아홉 번째의 신화》를 통해 발표함으로써 자신들의 창작 욕구를 고무시키고 한국 만화계의 현실적 문제에 조금이

나마 기여해보려는 애틋한 열의도 빛났다. 결국 아홉 명의 여성작가들의 진정성 있고 진솔한 고민들에 대한 해결 방법들이 한

국 순정만화의 발전에 한 걸음 진보를 보여준 행보가 되어, 한국 순정만화 제3세대 작가들을 탄생시켰으며 한국 순정만화 황

금기인 순정만화잡지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아홉 번째의 신화》 이후 순정만화는 앞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만화들이 등장하고, 이 만화들은 이후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여성만화가들에게 많은 자양분이 되었다. ‘로맨스’가 아닌 ‘비로맨스’의 순정만화 탄생, 서사의 다양성으로 탄탄한 서사구

조로 순정만화 장르의 문학성을 높였으며,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관습성 탈피와 재생산, 새로운 시스템 구축, 독자들과의 강한

연대감과 팬덤 층 확보 등은 한국 순정만화 3세대를 알리는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실험적이며 개성이 넘치는 작가주의

여성만화가를 다수 배출한 계기는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아홉 번째의 신화》 를 발간했던 ‘나인’ 동인의 사회문화적 통념의 한계에서도 장르와 코드라는 테두리를 뛰

어넘는 수많은 작업들의 성과가 있음에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전혀 다른 장르 특성을 보이는 ‘순정만화’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여성만화’, ‘감성만화’ 등의 다양한 용어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자세한 검증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작가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다르겠지만 ‘만화’라는 공통된 범주에서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만

들려 노력했었던 흔적들이《아홉 번째의 신화》 1~3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한국 순정만화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서

만화인 스스로들의 노력이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회는 스스로 노력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 《아홉 번째의 신화》 1호

참고문헌

《아홉 번째의 신화》동인지 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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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1999), 한국 순정만화와 일본 소녀만화와의 관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김소원(2014), 순정만화에서의 리얼리즘 경향성에 대해: 《아홉 번째의 신화》와 김혜린, 그리고 황미나 작품을 중심으로, 2014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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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연재”~‘봄툰’ 앱 소개> , 조선일보 2015년 4월 11~12일 토일 섹션 기사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5&M=04&D=11&ID=201504110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