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 행성

Intro-duction

Introduction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3

타타스를 구하라Save the Tatas1

— 범퍼 스티커

젖통, 슴가, 찌찌, 골짜기, 빨통, 절벽... 어릴 때 내 어머니는 그걸

닌니스ninnies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보면 “바보

fools”라고 나오는데, 동의어로 nitwits, nutcases, boobs2가 있다. 난 이

단어를 넘미스nummies라고 바꿔서 불렀는데, 그게 그나마 좀 덜 상스럽

다고 생각해서였다. 최근 이 말의 어원을 찾아보니 맛있다yummy 라는 뜻

으로 정의하고 있었지만, 그 기원은 아마도 멍청이numbskull일 것이다.

우리는 젖가슴을 좋아하지만, 진지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젖가슴에 붙

인 정감어린 별명도 어딘가 상스럽다. 젖가슴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젖가슴은 종잡을 수 없고 당혹스러운 존재다. 아기는 물론 다

큰 남자도 젖가슴을 보면 멍청해진다.

비키니를 입든 벌거벗든 옷에서 티가 나든 치수를 재든 확대수술을

하든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주고받든 유튜브에 등장하든 빨든 피어

싱을 하든 문신을 하든 술을 달든 각종 방식으로 집착의 대상이 되든,

1  타타스는 젖가슴의 비속어다.

2  다들 바보, 멍청이란 뜻의 속어

4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5

오늘날조차 인간이라는 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체부위인 젖가슴이지

만 놀랍게도 우리는 젖가슴의 기초적인 생물학조차 별로 아는 게 없다.

물론 몇 가지는 알고 있는데, 젖가슴은 사춘기 때 봉긋 솟아오르며 임신

때 커지고 엄청난 양의 젖을 만들어 내고 때로는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드물게는 젖가슴이 있는 남성도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전문가조차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심지어 젖가슴이 왜 있

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젖가슴에 대

해 알고 이해하는 게 시급한 시점이다. 현대생활은 우리 대다수를 더 오

래 더 쾌적하게 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젖가슴에는 이상하고 혼

란스러운 문제를 일으켰다. 예를 들어 젖가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란제리 회사에 따르면 컵 사이즈가 계속 커져 H와 KK까지 나온다고 한

다. 가슴이 나오는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가슴성형을 위해 식염수

팩이나 실리콘을 집어넣거나 줄기세포를 주입하기도 한다. 많은 여성

들이 더 이상 모유로 아기를 키우지 않지만, 모유수유를 할 때 젖 안에는

우리 조상들은 결코 맛보지 못했을, 인간이 섭취할 영양분이 아닌 산업

첨가물이 들어있다. 젖가슴은 다른 어떤 신체조직보다 종양이 생기기

쉽고, 유방암은 세계적으로 여성에서 가장 흔한 악성종양이다. 유방암

발생률은 1940년대 이래 거의 두 배가 됐고 지금도 증가추세다. 젖가슴

의 입장에서는 과거 어느 때도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과학자들이 젖가슴의 비밀을 밝혀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인

간의 건강과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복잡미묘한 위치에 대해 새로

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려면 처음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왜 젖가슴인가?

가브리엘 데스트리에와 빌라르 공작부인

작가 미상, 1594

6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7

왜 우리 인간인가? 인간은 침팬지와 게놈의 98%를 공유하지만, 나머

지 2%에 인간이 젖가슴을 갖게 한 요소가 들어있다. 안 됐지만 침팬지

는 젖가슴이 없다. 사실 인간은 사춘기 이후 가슴에 말랑말랑한 살덩어

리를 갖고 있는 유일한 영장류다. 다른 영장류 암컷은 수유기 때만 가

슴이 살짝 부풀고 그나마 젖을 떼면 다시 납작해진다. 젖가슴은 인간이

라는 종의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고 젖샘mammary glands은 분류학에서 우

리가 속한 강class3을 정의한다. 칼 린네는 이 사실을 이해했다. 린네가

인간을 포유류라고 부른 이유다.

젖가슴이 곧 인간이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난 내 젖가슴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 가슴은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부풀어 올랐다. 난 내 젖가슴이 마음

에 들었다. 내 젖가슴은 운동에 지장을 주거나 요통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거기 있다는 걸 알만큼은 컸고 뉴욕에서 자라면서 가끔

목욕 가운을 입었을 때 보기 좋을 만큼 모양도 균형이 잡혔다. 난 토르

피도 브라torpedo bra4의 시대인 1950년대 캘리포니아에 살며 잡지 ‘에스

콰이어’에 자신의 작은 가슴에 강박관념을 보인 에세이를 쓴 노라 에프

론Nora Ephron5과는 달랐다. 에프론은 “난 욕조에 앉아 내 가슴을 들여다

보곤 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은 다른 여자들 가슴만하게 커지기 시작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썼다.

3  인간은 포유강에 속한다.

4  원형으로 박음선을 넣어 가슴의 볼륨감을 강조한 디자인의 브래지어

5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의 작품이 있다.

1950년대 토르피도 브라 광고(위)

Perma-lift, 1951

8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9

딱한 노라. 그녀의 걱정은 플라이스토세6 후기 이후 진화의 역사에

서 비롯된다. 즉 젖가슴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우

리의 포유류 조상이 새끼에게 젖을 먹임으로써 새끼는 자연계에 있는

음식을 모으고 씹고 소화시키고 골라내는 수고를 하기 않아도 됐다. 파

충류 같은 다른 동물은 특화된, 고지방 먹이 근처에서 살아야 했다. 포

유류 새끼는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해주는 어미 옆에만 있으면 됐다. 포

유류는 기후가 바뀌거나 먹을 게 부족해진 시기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중생대7 땀샘에서 수유가 진화한 이래 포유류는 공룡보다

우위에 섰다. 세상은 다른 곳이 됐다.

유방은 자명하면서도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인간이라

는 종의 진화 방향에도 영향을 줬다. 젖이 충분했기 때문에 신생아는 더

작은 상태로 태어날 수 있었고 뇌는 출산 뒤 커질 수 있었다. 아기가 작

다는 건 엄마의 엉덩이가 더 작아질 수 있다는 걸 뜻하고 이는 우리 조

상이 이족보행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모유수유는 또한 몸짓언어와 친

밀감, 의사소통, 사회화를 발달시킬 수 있게 했다. 젖꼭지를 빨면서 아

기의 입은 말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됐고 입술도 발달했다. 젖가슴 덕분

에 인류는 지구를 좀 더 쉽게 정복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섬세한 키스

기술도 갖게 됐다. 이건 힘든 과제였지만 우리에게는 젖가슴이 있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와 환경의 압박은 젖가슴이라는 신체기관을

놀랍게 변모시켰다.

첫 아이를 임신한 아홉 달 동안 내 젖가슴은 근사해 보였다. 아들이

6  신생대 4기의 전반으로 약 258만 년 ~ 1만 년 전

7  지질시대의 한 시기로 약 2억 4,700만 년 ~ 6,500만 년 전

태어난 뒤 젖가슴은 처음으로 굉장히 쓸모있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정

교하게 조율된 진화적 장치라고 하기에는 종종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

다. 그 결과 나는 배신감과 탈진, 의구심,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난

제대로 젖을 물리지 못했고 그 결과 젖꼭지가 고생했다. 아들이 태어나

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처음 유방염에 걸렸다. 유관이 막히면서 유방

전체가 감염된 것이다. 그 뒤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유방염에 걸렸다.

난 모유수유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감상에 젖을 정도는 아니다.

젖가슴은 우리가 그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사실상 유일한 신체기관이

다. 물론 이 과정은 모든 사람을 위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난 확실히 모

유의 순수함과 유익함이라는 비전에 심취해있었다. 조제분유는 우유나

콩단백질로 만들지만, 우리가 육아책에서 흔히 보듯이 사람의 모유는

사람인 아기에게 완벽한 식품이다. 모유에는 병원균을 무찌르는 성분

을 비롯해 수백 가지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가운데 다수는 조제분유에

들어있지 않다. 게다가 모유는 늘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지

방과 단백질, 당분이 균형있게 들어있다. 아기에게 모유는 의약성분과

영양성분의 보고일 뿐 아니라 맛도 좋다. 모유는 완전식품으로 설계됐

고, 처음 애 엄마가 된 난 그 사실에 마음을 빼앗겼다.

둘째 아이는 무난하게 키웠는데, 아이도 엄마와 아기라는 밀접한 유

대 속에서 기분좋게 지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뉴스를 접하고 젖가슴을

대하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학자들이 해양포유류와 모유를 포

함한 육상포유류의 신체조직에서 산업용 화학물질을 발견했다는 뉴스

였다. 초보 엄마 시절의 행복은 이제 끝났다. 내가 알고 있던 숭고한 역

할과 함께 젖가슴은 우리 주변 환경이 쏟아내는 걸 받아들이는 저수지

10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11

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젖가슴을 통해 아이와 연결됐을 뿐 아

니라 내 주변 생태계와도 연결됐던 것이다. 물론 아이도 엄마 젖가슴을

통해 생태계와 연결됐다. 모유수유는 우리 사회의 산업 쓰레기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아주 효율적인 수단임이 밝혀졌다.

난 딸아이에게 물렸던 젖을 떼고 답을 찾기로 했다. 수유를 통해 내

아이들에게 어떤 독성 물질이 이미 흘러들어갔을까? 이것이 내 아이들

이나 나의 건강에 뭘 뜻하는 걸까? 모유수유가 별 문제는 없었던 걸까?

이 화학물질들은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우리는 다시 순수한 젖

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난 기자로서 이 의문에 대해 취재하고 조사해서, 이에 대해 글을 썼다.

<뉴욕타임스매거진>에 실을 글을 준비하면서 난 내 젖을 독일에 보내 난

연제flame-retardants8가 들어있는지 분석했다. 난연제는 실험동물의 지방

에 축적돼 건강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수치는 예상보

다 높았는데 심지어 유럽 여성에 비해 10배에서 100배 더 높았다. 전자

제품과 가재도구, 식품에 노출된 결과다. 난 내 젖에 제트연료 성분인 과

염소산염perchlorate 같은 다른 화학물질도 있는지 알아봤는데 이런 물질은

물론 아기가 저녁 메뉴로 기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는 들어있

는 걸로 나왔고 미국인 평균 수치였다. 이런 사실은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오염돼 있는가를 심각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쎄, 그래도 당신 젖가슴이 저절로 불이 붙지는 않겠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최선의 시도로 남편은 재치있는 농

8  플라스틱이 쉽게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첨가하는 화학물질

담을 던졌지만 난 불안했다. 내 젖가슴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칵테일이

내 머리 속 저널리스트와 충돌했다. 난 젖이라는 진화의 영약이 어쩌다

가 이런 초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아울러 현대생활

이 어떻게 우리 젖가슴을 다른 식으로 바꾸었고 우리 건강을 변화시켰

는지 궁금해졌다.

해답은 늘 쉽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겠지만, 젖가슴은 종종 명쾌한 사고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모든 사람의 눈에 젖가슴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우리를 포

유류라고 이름짓는 대신 린네는 우리가 공유한 귀 뼈의 구조나 네 구획9

으로 이뤄진 심장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린네

가 우리의 독특한 젖가슴을 선정한 데는 과학적 동기뿐 아니라 정치적 동

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린네는 일곱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가 혐오

했던 관습 가운데 하나가 유모를 쓰는 것으로, 유럽의 중산층이나 상류

층은 아기를 농가로 보내 아낙들의 젖을 먹게 했다. 그 결과 많은 아기들

이 영양실조나 질병으로 죽었다. 린네가 그의 책 『자연체계Systema Naturae』

10판에 포유류Mammalia라는 용어를 소개하기 수년 전인 1752년, 린네

는 ‘돈만 밝히는 유모들’에 대한 논문을 썼다. 과학사가인 론다 쉬빈저

Londa Schiebinger는 린네가 아기 건강을 걱정할 때 당시 계몽주의 시대에 양

성간의 평등이 진전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고 해석한다. 린네에

게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자연이 의도한대로 행동할 수 있는 가정이었

9  2심방 2심실

12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13

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를 포유동물로 불러야 했다.

한편으로는 린네가 단지 젖가슴을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린네

가 우리 몸에서 젖가슴을 선택해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 한 유일한 과

학자는 아니다.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젖가슴은 늘 최고의 대상이었고,

이들은 젖가슴의 기원에 대해 실제에 기반하든 아니든 간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쳤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젖가슴을 관찰하며 인간이

얼마나 행운아인가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최근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

이 젖가슴을 이성을 끌기 위해 디자인된, 공작의 꽁지 같은 놀라운 장식

물로 간주했다. 유머 작가 데이브 배리Dave Barry 가 “젖가슴의 주된 생물

학적 기능은 남성의 혼을 빼놓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는 학자들이 지

난 반세기 동안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젖가슴

의 진화에 대해 모든 세대의 학자들은 남자들이 젖가슴을 좋아했고 젖

가슴을 지닌 행운의 여성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세기 마지막 사분기 동안 여성들이 인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자

리를 잡으면서, 여성의 가슴에 이처럼 신비로운 기관이 형성된 과정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이 불청객들은 젖가슴의 진화를 이끈 건

어머니인 여성이었다고 제안했다. 아마도 우리의 여자 조상들은 지구

역사에서 가장 포동포동한 작은 영장류인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돌보

기 위해 가슴에 여분의 지방 덩어리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젖가슴 진화를 둘러싼 논쟁은 중요한데, 우리가 젖가슴을 어떻게 바

라봐야할지,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어떤 기대를 해도 좋을지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된 담론은 모두 시각적인 측면을 다루기

때문에, 실제로 젖가슴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과소평가한다. 젖가슴은 어

떻게 작동하는가? 젖가슴은 몸의 다른 부분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

젖가슴은 주위 생태계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난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잡지에

실을 기사를 쓰면서 환경보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놨

다. 나는 우리 몸이 고요한 사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 몸은 나무

와 더 비슷하다. 물질은 우리 세포막을 투과할 수 있다. 우리 주변 세계의

좋은 물질과 나쁜 물질이 다 세포막을 통과해 이동한다. 20세기 의학은

병원균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고 가르쳤지만, 건강은 이 모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실체라는 걸 깨달았다. 건강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장소

와 우리가 마시는 물에 들어있는 성분, 우리가 만지고 숨 쉬고 먹는 분자

에 좌우되기도 한다. 우리가 환경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일 뿐 아니라 그

변화의 영향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그리고 젖가슴은 유난히 상처받기 쉽고 눈에 띄는 쌍으로 된 대상이

다. 젖가슴의 놀라운 감수성은 득이 되기도 하지만 실이 되기도 한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무렵부터 젖가슴은 주변 세상에 대단

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몸의 안팎과 대화한다. 젖가슴에는 지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지방을 좋아하는 화학물질인 독소도 들어있다. 이런 물질

가운데 일부는 수십 년 동안 우리 몸의 조직에 들어있다. 또 젖가슴 세

포 표면에는 굶주린 끈끈이주걱처럼 빽빽하게 박혀있는 수용체가 지나

가는 자연계 최초의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자를 잡아채려고 기다리고

있다. 이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등생물체가 스스로 에스트로

겐을 만들기 전, 세포는 다른 곳에서 에스트로겐을 얻어야 했다. 21세

14 젖가슴 생태학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15

기를 사는 우리의 젖가슴도 여전히 에스트로겐을 찾고 있는데, 기대 이

상으로 많이 만나게 된다. 식물은 에스트로겐 효과를 내는 화합물을 만

들고 있고, 화학회사나 제약회사도 만들고 있는데 의도하지 않은 경우

도 종종 있다.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이들 화학물질은 우리 세포와 때로

는 미묘한 방식으로 때로는 뚜렷하게 상호작용한다. 폭신한 스펀지처

럼 젖가슴은 오염물질을 빨아들인다.

젖가슴이 왜 안 좋은 분자와 그렇게 쉽게 친해지는지 이해하려면,

세포가 어떻게 작동하고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알아야 한

다. 환경저널리즘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 년을 보낸 뒤 콜로라도대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나는 세포학과 유전학, 내분비학을 공부했

다. 궁금증은 끊이지 않아 진화생물학과 세포생물학, 암생물학처럼 이

미 확립된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최근 떠오르는 분야인 후성유전학과

환경내분비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도 찾아갔다.

내가 알게 된 내용들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심오할 뿐 아니

라 때로는 재미있고 도발적이기도 했다. 바비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

가슴-허리-엉덩이 비율이 바비인형처럼 생길수록 일반적으로 에스트로

겐 수치가 약간 더 높다. 그럴듯한 얘기 같지 않나? 하지만 이런 여성들

은 짝을 속이는 경향이 있고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 이런 관점

에 분개한 몇몇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사실 몸의 곡선이 덜한 여

성들이 건강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남성호르

몬 수치가 약간 더 높은 이런 여성들이 마스토돈10을 사냥했고 경쟁자

10  코끼리처럼 생긴 멸종한 동물

의 머리통을 내리쳤을 것이다. 얼마나 섹시한가. (남

성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근육이 우람한 남성이 여성에

게 인기가 더 많지만 면역계는 약한 것 같다. 아름다움에

는 대가가 따른다.)

한때는 진화의 경이로움이었던 모유가 지금은 우

리의 잠재력을 억누르며 사실상 피해를 주고 있을지

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유에 들어있는 독성물

질은 지능지수 저하와 면역력 손상, 행동 문제, 암에

관련돼 있다. 현대 세계는 모유만 오염시키는 게 아

니다. 우리 아이들도 영향을 받고, 여자아이들은 사

춘기가 빨라졌다. 젖가슴은 종종 성적 발달이 일어나

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신호다. 소녀들의 젖가슴

이 더 일찍 솟아오를수록 훗날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

이 높아진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사실 오

늘날 환경은 유방의 모든 발달 단계, 즉 유아에서 청

소년, 임신, 수유, 폐경에 걸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여성들이 유모를 쓰고 수녀원에

들어가고 피임을 하고 가슴성형수술을 하면서 젖가슴은 자연적인 삶에

서 점차 멀어졌다. 내 할머니는 1970년대 초 유방절제술을 받은 뒤 ‘보

형물’을 착용했는데, 할머니의 가짜 가슴은 핵무기탄두처럼 생겼고 묵

직했다. 역설적이게도, 다름 아닌 바비인형을 만든 루스 핸들러가 가슴

보형물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훗날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그녀 자

신이 유방암 환자였다. 오늘날 가짜 가슴과 브래지어로 커 보이게 한 가

바비인형

16 젖가슴 생태학

슴은 훨씬 자연스럽다. 거의 모든 여자들이 하나씩 갖고 싶어 한다. 미

국에서만 원더브라 판매액이 연간 7000만 달러(약 700억 원)가 넘는다.

현대적 삶의 양식은 수많은 측면에서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젖가슴에 대해서만은 늘 좋은 게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방암 발병률이

늘어나는 건 부분적으로 진단기술이 발달하고 수명이 길어진 게 원인이

긴 하지만 이런 요인들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 가장 부유한 산

업화된 나라들에서 유방암 발병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가족력은 유방

암의 10퍼센트 정도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여성 환자(남성도 늘고 있다)

대다수는 가족 가운데 처음 유방암에 걸린 경우다. 뭔가 심각한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것은 현대인의 삶의 양식, 즉 우리가 앉는 가구

에서부터 피임 방식, 복용하는 약, 먹는 음식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력에 더해 나는 많은 여성들처럼 다른 유방암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 즉 첫 아이를 늦게 낳았고 임신 횟수가 적고 따라서 수십 년 동안

에스트로겐이 중단되지 않고 자유롭게 몸 안을 돌아다녔다. 난 10대 후

반부터 피임약을 썼다. 대다수 미국인처럼 나 역시 비타민D 수치가 약

간 낮은데, 이 역시 현대 생활양식이 초래한 또 하나의 위험 요소다. 다

들 내가 딱 평균이고 내 젖가슴도 그렇다고 얘기한다. 이 책을 준비하

고 쓰면서, 난 종종 내 몸을 현대 여성들을 대표하는 실험대상으로 이

용했는데, 발암물질로 알려졌거나 의심되는 물질이 있는지 테스트했

고 다양한 진단 스캐너와 스크린, 탐침에 가슴을 맡겼다. 내 딸 애너벨

Annabel도 몇몇 실험에 기꺼이 참여했다.

본질적으로 젖가슴은 환경의 내력을 담고 있는 신체부위다. 이 책은

젖가슴이 환경의 영향으로 다듬어진 존재에서 어떻게 환경에 의해 손상

이 되는 존재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생물학과 인류

학, 의학저널리즘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젖가슴의 자연사에 있어서 두

가지 주목할 이정표가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출판됐고11 그

테마를 여기서도 다룰 것이다. 두 이정표 가운데 하나는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산업화학물질이 생물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이야기했다)

이고 다른 하나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있었던, 단지 귀의 지방제거수술

을 원했던 여성을 대상으로 했던 첫 번째 실리콘보형물삽입수술이다.

우리는 왜 젖가슴에 대해 좀 더 잘 알아야 할까? 왜 신경을 써야 할까?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는 젖가슴을 좋

아하고 우리 몸에 지니고 있다. 둘째, 우리는 젖가슴을 보호하고 별 탈 없

이 지니고 싶어 하는데, 그러려면 젖가슴이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잘못

될 수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젖가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

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젖가슴은 건강상태의 변화를 미리 알려준다.

불임이 늘어나고 화학물질에 오염된 젖이 나오고 사춘기가 빨라지고 폐

경기가 늦어진다면, 인류가 종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오늘날 젖가슴

은 인간 퇴행 과정의 맨 앞자리에 있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현대의 생

활양식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젖가슴을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

릴 수 있을까? 우리가 지구를 관리하면서 범한 실수에 대한 대가를 고스

란히 치르고 있는 젖가슴은, 이제 우리가 손을 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젖가슴이 있다는 게 인간인 조건이라면, 젖가슴을 위험에서 구하는

건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11  이 책의 원서는 2012년 출간됐다.

Introduction • 젖가슴 행성 17

3  For Whom the Bells Toll.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패러디한 제목으로, 종을 뜻하는 단수형(bell)대신 양쪽 젖가슴을 뜻하는 복수형(bells)

을 썼는데 역서에서는 젖가슴으로 옮겼다.

1

For Whom the

Bells Toll

3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21

[Breasts] are a body part that we didn’t start out with … whole new organs,

two of them, tricky to hide or eradicate, attached for all the world to see …

twin messengers announcing our lack of control, announcing that Nature

has plans for us about which we were not consulted.

— FRANCINE PROSE, Master Breasts

제인 맨스필드Jayne Mansfield12와 메이 웨스트Mae West 같은 스타들

이 알고 있었던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자신들의 커다란 젖가슴의 위

력이다. 1959년 출간한 회고록 『내 삶은 선과는 거리가 멀다Goodness

Had Nothing to Do with It』에서 웨스트는 열세 살 때부터 규칙적으로 가슴에

코코아버터를 문질러 바른 뒤 찬 물을 뿌렸다고 썼다. “이렇게 하면 젖

가슴이 매끄럽고 단단해져 근육질이 되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양으로

봉긋 솟아오른 상태를 유지했다.” 웨스트에게는 터무니없는 유방 확대

비법을 알려준 친구가 있었나보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젖가슴이 커지

게 하는 크림과 약물, 펌프, 가슴운동법이 올라와 있고, 심지어 포토샵

에서 ‘리퀴파이 툴liquefy tool’로 젖가슴을 부풀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유

튜브 비디오도 있다.

12  1933~1967. 미국의 배우로 마릴린 먼로를 이어 금발의 섹시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2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23

적어도 미국 문화에서, 커다란 젖가슴은 주목을 끈다. 내 젖가슴은

전통적인 평균 미국 사이즈인 B컵이다.13 내가 아는 여성들이 말하기를

커다란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건 목 둘레에 네온사인을 두르고 돌아다

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모두가 쳐다본다. 그리

고 눈길이 계속 머문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남자들도 있다. 몇몇 인

류학자들이 젖가슴을 ‘신호signal’라고 부른 것도 이해할만하다. 이들은

젖가슴의 소유자가 여성으로서 얼마나 적합하고 성숙하고 건강하고 엄

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젖가슴이 있을까?

모든 포유류가 젖샘mammary glands이 있지만,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방식으로 ‘젖가슴’을 갖고 있는 포유류는 없다. 즉 사춘기부터 솟아올

라 생식 상태와는 무관하게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보기 좋은 사발

모양의 젖가슴 말이다. 사람의 젖가슴은 단순한 젖샘 그 이상이다. 인

간의 젖가슴은 지방과 기질stroma이라는 연결조직으로 이뤄진 살덩어리

다. 아기에게 수유하는 기능만 생각하면, 달걀 절반을 채울 정도의 젖

샘이면 충분하다. 굳이 커다란 젖가슴은 없어도 된다. 이족보행과 언

어, 털 없는 피부와 함께 기질이 채워진 부드러운 젖가슴은 인류를 정

의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족보행이나 털 없는 피부와는 달리, 젖가슴

은 한쪽 성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다(적어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리고

다윈이 지적했듯이, 이런 종류의 특성은 종종 잠재적인 짝을 향한 성적

신호로서 진화했다.

13  미국과 유럽 모두 산업계 출처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 평균 사이즈가 C컵으로 커졌다고 한

다. 내 가슴 역시 커졌다. 두 경우 모두 체중 증가가 주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Jayne Mansfield and Sophia Loren at Romanoff’s in Beverly Hills by Joe Shere, 1958

La Femme entre les deux âges

1575

24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25

그런데 정확히 어떤 신호인가? 그리고 이게 인간이 멋진 젖가슴을

지니게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할까?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생각하

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느라 경력의 상

당 부분을 헌신했다.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답을 찾으려는 시도

가 재미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남자들이 젖가슴을 좋아한다는 걸 입증

할 연구를 설계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게 사실상 모두

진화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걸 보이는 게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자지간으로 젖가슴 연구가인 앨런 딕스Alen Dixson과

바너비 딕슨Barnaby Dixson의 창조적인 실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

라고 나는 기대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 사는 두 사람은 젖가슴의 크기

와 모양, 젖꽃판(유륜) 색깔에 대한 남성의 선호도를 분석한 논문과 사

모아와 파푸아뉴기니, 카메룬, 중국 같은 지역에서 여성의 신체적, 성

적 매력도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저명한 영장류학자로 샌

디에고 동물원의 과학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아버지 앨런은 아들과의

공동 프로젝트에 영장류의 성생활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탰고, 문화인

류학으로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 바너비는 컴퓨터그래픽에 능

숙하고 현장연구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비바람이 치던 어느 가을 날 웰링턴에서 바너비를 처음 만났다. 피셔

맨즈스웨터fisherman’s sweater14의 깃 주위로 적갈색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스물여섯 살 청년은 무척 진지했다. 바너비는 다소 산만한 태도로 양미

간을 찡그리며 걸었는데, 종종 주차영수증 같은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14  방수 가공한 굵은 털실로 짠 방한용 스웨터

26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27

했다. 성적 신호 전문가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여자들 젖가슴을 쳐다보는데 정부 돈을 쓴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

가 하는 일을 오해하는 거죠.” 키가 멀쑥한 바너비가 딱딱한 영국식 악

센트로 말했다. 바너비도 지적했듯이, 이미 서구 문명을 많이 접한 사

모아 같은 곳에서는 남자들에게 선호하는 젖가슴 유형을 이야기해보라

고 요청하는 게 미묘한 문제일 수 있다. 바너비는 몇몇 남자들이 그를

변태로 생각해 심하게 화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마신 남

자들은 피한다. 그리고 학계에서 유방암 연구처럼 지원할 과제가 있을

때는 연구비를 따기가 어렵다. “제가 의사였으면 더 좋았겠죠.” 바너비

가 말했다. “하지만 전 정말 비위가 약해서요.”

바너비의 최근 디지털 실험은 EyeLink 1000 시선추적장비와 전용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했다. 6만 달러(약 6000만 원)에 이르는 이 장비

는 빅토리아대학 심리학과의 ‘지각/주의 실험실’이라는 라벨이 붙은 작

고 별 특징 없는 방에 모셔져 있다. 이 장비는 안과의 시력검사실에 있

는 그런 장비처럼 보인다. 턱과 이마를 지지대에 대고 작은 렌즈를 통

해 바라봐야 한다. 다만 이때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된 알파벳이 보이

는 대신 컴퓨터 스크린에서 순간 나타나는 벌거벗은 여자들의 이미지

가 눈에 들어온다. 눈 검사가 다 이렇다면, 남자들은 분명히 제때에 스

크린을 바라볼 것이다.

내가 실험실을 방문한 날, 론이라는 생태학과 대학원생이 피험자로

왔다. 청바지와 헐렁한 티셔츠 차림을 한 론은 바너비가 장비를 보정하

는 동안 참을성 있게 시선추적기를 들여다봤다. 그러고 나서 바너비가

테스트를 설명했다. 론은 이미지 여섯 개를 볼 것인데, 다 한 사람의 예

쁜 모델이지만 디지털 기법을 써서 다르게 보이도록 모핑됐다. 론은 각

이미지를 5초 동안 본 뒤 1점(가장 덜 매력적)에서 6점(가장 매력적) 범위

에서 키보드를 이용해 점수를 매겨야 한다. 이미지마다 젖가슴 크기에

변화를 줬고 허리와 엉덩이 비율도 달리했다. 젖가슴과 소위 WHR15

(몸매의 굴곡)이라는 두 측정지표는 인류학과 사회생물학, 신경심리학

의 하위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매력도 연구’에서 공통어라고 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남녀가 상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진화했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뭔가를 알 수 있다는 게 이론

이 주장하는 바다.

시선추적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선추적기는 론이 결정을 내

리는 동안 모델 몸의 어느 부위를 보는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바너비가

사전에 알려준 바에 따르면, 장비는 론의 눈동자가 움직인 경로를 100

분의 1도 이내의 정밀도로 측정하고 그의 시선이 몸의 각 부위에서 얼

마나 머무르는지 기록할 것이다. “시선추적장비가 대단한 건 피험자의

행동 반응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매력도를 판단하는 동안 글자 그

대로 눈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죠.” 바너비가 말했다.

론은 스크린을 쳐다보면서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이 끝

나는데 수분 밖에 안 걸렸다. 테스트가 끝났을 때 보니 그의 얼굴이 좀

뻘겠다.

론은 테스트 결과가 궁금한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너비는 그래

픽 데이터와 계산결과를 불러들였다. 일련의 녹색 고리가 모델을 덮었

15  Waist-to-Hip Ratio(허리와 엉덩이 비율)의 약자

28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29

다. 이것들은 론의 눈이 머문 때를 나타냈다. 고리는 모델 얼굴에 몇 개

있었고 엉덩이에도 몇 개 보였지만 젖가슴에 왕창 몰려 있었다. 데이터

를 보며 바너비가 설명했다. “론의 시선은 젖가슴으로 시작해서 얼굴

에 머문 뒤 다시 젖가슴으로 갔고 다음으로 음부, 몸통, 얼굴, 젖가슴,

얼굴, 젖가슴 이렇게 옮겨갔습니다. 이럴 때마다 시선은 젖가슴에서 좀

더 머무르네요.” 론은 시선을 고정할 때마다 다른 신체 부위보다 젖가

슴을 더 오래 응시했다. 론은 날씬하면서도 젖가슴이 큰 이미지를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바꿔 말하면 론은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행동했고, 남자들은 그럴 것

이라고 오래전 제인 맨스필드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맨스필드를 알았

다면 빅토리아대학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지 않았을 텐데.

바너비의 시선추적기 결과는 명백해 보이지만, 과학자에게는 데이

터가 중요하다. 바너비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인간 본성Human Nature>에

싣기 위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너비는 이 결과가, 젖가슴이 잠

재적인 배우자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신호로 진화했

다는, 상대적으로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을 지지한다고 믿고 있

다. 이것이 남자들의 시선이 이미지를 본 뒤 약 200밀리초(0.2초) 안에

젖가슴으로 쏠리는 이유라는 것이다. 정말 밀리초 단위다. “인류의 조

상들은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젊음과 번식가능성을 중요한 특성

이었다는 게 전체적으로 이론이 말하는 바입니다.” 바너비가 말했다.

“따라서 인류는 배우자의 가치인 젊음과 건강, 번식가능성을 나타내는

특징을 선택했다는 게 말이 되죠.” 바너비는 남자들이 젖가슴에서 그

런 용도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이처럼 정보를 담고 있고 새로

운, 부드럽게 출렁대는 사발 모양의 살덩어리—모든 새로운 특징이 그

런 것처럼 우연히 생겨난—를 좋아하게 되자 이런 젖가슴을 지닌 짝을

선택하게 됐다. 이런 여성들은 짝짓기를 가장 많이 하거나 최고의 남자

들과 짝을 맺었고, 그 결과 이런 특성은 후대로 전해졌다. 바너비의 관

점을 따르는 세계에서, 이 밖에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난 론이 몇 초 동안 흘끗 본 것만으로 건강과 젊음에 대한 정보를 무

의식적으로 감지한 건지 궁금해졌다.

“젖가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나요?” 론에게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으로 대학원에서

코뿔소를 연구하고 있다. “사실 그래요, 하지만 심하진 않죠. 제가 만

난 몇몇 친구들처럼 지겹도록 젖가슴 얘기만할 정도로 집착하지는 않

습니다. 아무튼 맞아요. 저는 가슴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시선추적기 연구가 보여주는 이 세상의 실체를 보고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자들은 여자 엉덩이와 젖가슴을 5초 동안 쳐다보고

그 여자를 짝으로 삼을지 말지 결정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오랜 세

월 인류의 진화에서 일어났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

는 방식인가? 그리고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정말 애초에 우

리가 젖가슴을 갖게 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여러분이 여자를 만날 때, 여자의 젖가슴뿐 아니라 다른 뭔가도 살

펴보길 바랍니다.” 바너비와 론에게 말했다.

얼굴이 뻘게지며 론이 웃었다. “그럼요! 그럼요!”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너비가 끼어들었다. “여자 젖가슴만 뚫어지

게 쳐다보지 마세요.”

30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31

“그런 사람이 있다고요?” 론이 대답했다.

바너비는 대화를 제자리로 돌려놔야겠다고 느꼈다. “이건 인위적인

실험입니다. 이건 말하자면 1차 통과 과정인 셈이죠. 눈에 띄는 특성이

죠. 그러고 나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성격이나 종교적 배경, 사

회경제 상태 같은 다른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죠.”

“유머감각도요?” 내가 물었다.

론이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그렇고말고요.”

그 뒤 우리는 웰링턴의 개울가에 위치한 바너비의 작은 집에서 점심

을 먹었다. 이 집은 바너비가 여자 친구 모니카와 함께 세를 얻었는데,

캐나다에서 온 모니카는 조류 행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모니카

는 튀긴 쿠마라kumara (뉴질랜드산 덩이줄기 식물)로 만든, 맛이 기가 막힌

스프를 만들었다. 주방 위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곰에게 먹이를 주

지 마세요.”

바너비의 연구를 접하고 나만 여자로서 마음이 좀 불편해지고 자의

식을 느끼게 된 건 아니었다.

“바니16가 세미나에서 허리와 엉덩이 비율을 얘기하는 걸 듣고, 모

든 여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줄자를 집어 들었죠.” 모니카가 말했다

(바너비의 연구와 다른 많은 연구에 따르면, 남자들은 마릴린 먼로 스타일인

WHR 0.7을 선호한다. 즉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의 70%인 경우다. 몇몇 과

학자들은 이 매직 넘버가 건강과 호르몬이 최적일 때의 값이라고 가정하고 있

16  바너비의 애칭

지만, WHR의 의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의가 분분하다).

바너비는 당황한 듯 보였다. “그래요, 불행히도 그랬죠.”

“저도 재어 본 걸요.” 모니카가 말했다.

“어떻게 나왔는데요?” 내가 물었다.

“전 0.75이더군요.”

바너비 자신 역시 그의 연구결과를 따르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그

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비교문화인류학 연구를 통해 수염이 남

성성과 권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아내 아만다와 몸무게가 36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잉글리쉬불독 헉슬리와 함께 사는 바너비의 아버지 앨

런 교수 역시 촘촘한 흰 코밑수염을 자랑하고 있다).

바너비의 집 벽에는 아버지 앨런 딕슨이 직접 그린 드로잉 몇 점이 걸

려 있는데, 개코원숭이와 고릴라 그림이 보인다. 앨런은 자신의 교재에

일러스트 대부분을 그리고, 바너비는 컴퓨터 그래픽을 제공한다. 앨런

의 최신 저서는 제목이 『성선택과 인간 짝짓기 시스템의 기원』이다. 이

들 부자는 공저자로 논문 여덟 편을 냈을 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사랑과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도 공유하고 있다.

“바너비는 아버지의 축소판 같아요.” 모니카가 웃으며 말했다. 영국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바너비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스코틀랜드와 서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자랐다. 가봉에서 앨런은 영장류 센터를 운영하

며 정자 사이의 경쟁을 연구했는데, 이들 가족은 퍼시라는 이름의 애완

용 원숭이인 포토potto17를 키웠다. 여러 동물들과 가까이에서 살면서 이

17  로리스과에 속하는 곡비원류 영장류 포토(potto)라는 명칭은 꼬리없는 원숭이라는 뜻인 아프

리카 단어 파타(pata)에서 유래했다.

32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33

들이 보이는 성적 행동이나 그 밖의 행동들을 당연한 것으로 보게 됐다.

바너비의 형도 과학자인데, 날지 못하는 다양한 귀뚜라미 전문가다.

앨런과 바너비 모두 영장류에서 짝짓기 행동과 성선택을 연구하면

우리 자신의 생식기관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

를 들어 사람의 고환 크기는 다른 현존 영장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앨런은 이 사실로부터 초기 인류 조상이 여러 상대와 짝짓기를 했을 거

라고 썼다(이 주제에 관해서 학자들은 서로 의견이 엇갈려 격렬하게 논쟁하

고 있다. 진화 연구 분야는 유혈이 낭자한 스포츠다).

딕슨 부자에게 여성의 부풀어 오른 젖가슴은 침팬지의 커다란 고환

이나 오랑우탄의 턱수염처럼 경쟁과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구애 장치’

다. 커다란 고환은 더 많은 정자를 생산하므로 그 유전자가 바람기 많

은 암컷의 난자를 뚫고 들어갈 확률을 높여준다. 고환이 가장 큰 수컷이

더 많은 새끼를 볼 것이고, 그 새끼들 역시 고환이 클 것이다. 딕슨 부자

는 턱수염과 커다란 젖가슴의 경우는 유전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유혹

‘장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짝을 유혹한 수컷들은 우수한 새끼를 볼

것이고, 궁극적으로 후손이 많아져 이런 특징이 지속될 것이다. 이게

찰스 다윈이 제안한 성선택의 핵심이다.

“젖가슴이 사내들에게 무얼 의미하는가에 대해 쓴 글들이 많습니

다.” 바너비가 말했다. “가장 단순하게는 남자에게 젖가슴은 성적으로

완숙한 여성이라는 뜻이죠. 그 밖에 많은 가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 탄자니아의 수렵채취를 하는 하드자족Hadza

연구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드자족 남성들은 젊은 여성의 젖가슴

형태를 유난히 선호한다는 것이죠.” 바너비는 여자가 나이를 먹고 임신

을 여러 차례 하면(그 결과 새로운 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젖가슴 형

태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전 이 과정을 매끄럽게 기술할 수 있는 방법

을 찾고자 했습니다.” 바너비가 얼버무렸다. “아무튼 나이와 중력 앞에

서는 버틸 수 없습니다. 젖가슴은 탱탱함을 잃고 어느 정도 처지게 되

죠. 이걸 보고 남자들은 여성의 젊음의 정도와 임신가능성, 낳을 수 있

는 자손의 숫자를 가늠하죠.” 다시 말해서, 사내들이 생물적으로 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쫓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냉혹한 세계다.

이런 미묘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큰 젖가슴은 작은 젖가슴보다

더 처지기 마련이므로 남자들은 나이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줄 수 있

는 큰 젖가슴을 선호할 것이라고 바너비는 말했다. 다른 연구들도 바너

비의 가설을 지지하는데, 실생활 실험을 한 경우도 있다. 수년 전 프랑

스 브르타뉴에서 실험으로, ‘평균 매력도’를 지닌 가슴이 약간 작은 20

세의 여배우를 바에 앉아있게 한 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접근하는지

연구자가 몰래 기록했다. 다음으로 브래지어에 라텍스 패딩을 넣어 B

컵으로 만든 뒤 옆의 바로 갔다. 다음 단계는 예상했겠지만 C컵이다.

이 아가씨는 매번 같은 옷을 입었다. 청바지와 몸에 달라붙는 운동복

상의 차림이었다. 여배우는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쳐다

보고 주변 남자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험은 3

주 동안 12회에 걸쳐 반복됐다.

여배우가 A컵이었을 때 춤추러 가자는 신청을 13번 받았다. B컵이

었을 때는 19번을 받았다. C컵으로 커지자 44번이나 들어왔다.

비슷한 실험으로 한여름 낮에 역시 브르타뉴의 도로변에서 젊은 여

34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35

장이나 봄철 대학캠퍼스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자들 젖가슴 크

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략 같은 나이대

의 여자들임에도 젖가슴 부피가 3배에서 5배나 차이가 난다. 몸의 다른

부분에서 그 정도로 편차가 큰 곳이 있을까? 젖가슴이 그렇게도 중요한

의사소통수단이라면 좀 더 비슷비슷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남자들의 취향 역시 아주 다양하다

는 점이다. 바너비도 인정하듯이 남자들의 선호도는 그가 바라는 것처

럼 보편적이지가 않다. 바너비는 모든 남자들이 비슷한 크기, 즉 큰 젖

가슴을 선호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그가 <성

행동연감Archives of Sexual Behavior>에 게재한 시선추적기로 얻은 초기 데

이터를 보면, 비슷한 숫자의 남자가 큰 가슴보다 보통 크기를 선호했고

몇몇은 작은 가슴에 가장 큰 반응을 보였는데, 이들은 뉴질랜드 백인

남성이고 모두는 이성애자다. 다른 연구를 보면, 아잔데족Azande20과 간

다족Ganda21 남자들은 길쭉하고 축 늘어진 유방을 선호하는 반면 마누스

족Manus22과 마사이족Maasai23은 좀 더 둥근 형태를 좋아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구 남성들은 경기불황일 때 좀 더 풍만한 여성을 선호하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이 편안함과 더 많은 칼로리를 얻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너비 자신이 수행한 한 연구에서 남자들은 사진 속

유방의 크기나 매력도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그저 모든 젖가슴을 뚫어

지게 쳐다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20  아프리카 수단에서 중앙아프리카, 콩고 걸쳐 사는 원주민

21  동아프리카 우간다에 사는 민족

22  파푸아뉴기니아에 사는 민족

23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 국경지역에 사는 민족

성이 차를 얻어 타려는 시도를 했다. A컵일 때 남자 15명이 차를 세웠

다. B컵일 때는 20명, C컵이 되자 24명이 멈췄다. 운전자가 여성일 때

는 컵 사이즈에 관계없이 비슷한 숫자가 멈췄다. 가슴이 큰 여종업원이

팁을 더 많이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18

조지아그위닛대학의 진화신경과학자인 스티븐 플래텍Steven Platek은

남자 대학생들에게 젖가슴 사진을 보여주며 MRI 장비 안에 있는 뇌를

스캔했다. 플래텍은 젖가슴 사진이 참가자 뇌의 ‘보상 센터’를 자극한

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사진 대다수

는 남자들의 혼을 빼놔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정신과 인지 과정

을 어지럽힐 정도”라고 플래텍은 말했다. 어반 딕셔너리19를 보면 이런

상태를 ‘booblivious’라고 부른다.

오케이, 남자들은 젖가슴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린다. 이런 건 우리 서

구문화에서는 익숙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술집에서 관찰한 남자의 행

동 연구를 토대로 진화를 전면적으로 언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 먼저 난

여전히 적령기 가설nubility hypothesis 또는 처진 젖가슴 가설sag hypothesis이

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정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내 개인 경험을 말

하자면, 난 임신 뒤에 젖가슴이 더 커지고 탱탱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가슴이 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는 인류학자들이 ‘정점번식

가치peak reproductive value’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한참 지났다. 남자들이

정말로 여자 나이를 추측하기 위해 젖가슴을 봐야 할까? 민망하게 곁눈

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좀 더 명백한 표지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샤워

18  미국 식당에서는 음식 값의 15% 내외로 팁을 주는 관행이 있다.

19  웹을 기반으로 한 오픈 소셜 영어사전으로 각종 유행어와 신조어도 많이 소개돼 있다.

36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37

에서 최근 이름을 올린 사람일 뿐이다(영국의 동물학자인 모리스는 영화

<불을 찾아서>에 나오는 배우들의 동작과 소리를 지도해주기도 했다). 『털 없

는 원숭이』에서 모리스는 독자들에게 인간이 왜 인간처럼 행동하는지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선사시대의 삶을 20세기 중반 교외의 한적한 생

활처럼 묘사하면서, 모리스는 홍적세24에 영장류로는 특이하게 ‘사냥

하는 남자’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는가를 썼는데, 이들은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화덕 주위의 여자들이

젖가슴을 보여주는 걸 낙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런 보상 없이는 남

자들이 집안에 머무르며 사냥한 걸 주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가족이

먹을 음식 대부분을 수렵채취 여성들이 충당했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는다.

이 연구결과는 나중에 나왔지만 모리스는 여전히 자신의 젖가슴 기원 가설

을 고치지 않았다).

이 시나리오가 유효하려면 힘센 사냥꾼 여성들이 여전히 섹시해야

하므로, 여자들은 두 다리로 서서 걷지 않는 다른 모든 영장류와는 달

리 전면 중심에 커다란 성적 기관이 필요했다. 다른 영장류들은 임신할

준비가 됐을 때 궁둥이나 음순을 부풀려 신호를 보낸다. 모리스는 “직

립으로 남자가 여자의 앞모습을 봐야 한다면 둥그런 궁둥이나 뻘건 음

순이라는 이전의 노출을 모방할 수 있는 구조를 어디서 찾겠는가? 해답

은 명백히 여성의 젖가슴뿐이다. 여성의 튀어나온 반구형 젖가슴은 확

실히 살집이 있는 양 볼기짝을 대신한 것이고 입을 둘러싼 경계가 뚜렷

한 빨간 입술은 빨간 음순의 복제품이다.”

24  지질시대의 한 구분으로, 신생대 제4기의 전기로 약 200만 년 전부터 1만 1000년 전까지의 

시기다.

만일 젖가슴이 여성의 적합도를 나타내는 유력한 표지라면 젖꽃판

(유륜)도 그래야 한다고 바너비는 상정했다.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젊

은 여성들은 젖꽃판이 옅은데, 따라서 바너비는 남성들이 밝은 색 젖

꽃판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연구결과 많은 남성들이 임

신후 젖꽃판의 짙은 색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오자 깜짝 놀랐다. 비슷하

게 젖꽃판 크기에 대한 선호도 데이터 분포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남

성들 대다수가 젖가슴을 좋아하는 게 사실이지만, 젖가슴을 그저 그렇

게 생각하는 지역도 많다. 모든 문화가 젖가슴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일본남자들은 목덜미의 선에서 숨 막히는 섹시함을 발견한다. 서아프

리카와 남미 일부 지역 남자들도 목덜미에 매료돼 있다. 내 아들이 어

렸을 때, 집을 돌아다니며 영화 <쉬렉>의 사운드트랙인 서 믹스 어 랏

Sir Mix-a-Lot을 불러 난 얼굴이 화끈했다. “난 커다란 엉덩이를 좋아해.

난 거짓말을 못하지.”

바너비는 이런 일관성이 없는 결과를 알고 있었고 따라서 학문적으

로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이들 데이터로 어떤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기에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

다. “남자들이 젖가슴에 끌린다는 걸 보여주는 시주의visual attention 데이

터와 증거의 양은 배우자 선택과 젖가슴 형태 사이에 진화적인 측면에

서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실 바너비는 1967년 데즈먼드 모리스의 유명하고도 영향력 있는

책 『털 없는 원숭이』를 출판한 이래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남성의 시

선과 젖가슴의 진화의 연관성에 대한 생각을 해온 과학자들의 긴 명단

38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39

난 다시는 립스틱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털 없는 원숭이』는 당혹스러운 남성지배 선언서처럼 읽히는

데, 묘하게도 여성해방운동이 가열되던 바로 그 시기에 출판됐다. 포

유류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정치적 의도(계몽주의 시대에 여성들이 모성을

지닌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를 밀어 넣은 것처럼 보이는 린네와 마찬가지

로 아마 모리스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린네와 모리스는 단지 젖가슴

에 집착했던 남자들이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많은 인류학자들이 젖가슴을 좋아한다. 교재의 삽화와 박물

관의 전시물을 보면, 화석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가장 최근 진화의 ‘잃

어버린 고리’를 젖가슴을 지닌 존재로 늘 묘사하는 것 같다. 아르디Ardi25

루시Lucy26 어디를 봐도 젖가슴이다. 심지어 가슴이 예쁜 빅풋Bigfoot27

여인도 있다. 우린 남자들이 모리스를 좋아한다는 걸 안다. 그런 남자

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내 남편처럼 여자의 몸매를 보는 남자들도 있

다. 어떤 경우이든, 성적 매력을 다루는 과학에서 문화적 편견에서 비

롯된 신랄한 논쟁과 노골적인 모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몇몇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 앞에서 젖가슴의 존재 이유가 남성이

라고 말했다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28 골반 모형으로 머

리를 얻어맞을 것이다.

영국 웨일스의 작가인 엘레인 모건Elaine Morgan은 모리스 및 그와 같

은 부류의 학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여성의 유래The Descent of Woman』라

는 제목의 재미있는 책을 썼다. 모건은 이 책에서 젖가슴을 포함한 인류

조상의 모든 뛰어난 해부학적 적응을 남성이 이끌었다는 주장을 철저하

게 반박하고 있다. “난 그런 이야기가 전부 터무니없다는 걸 발견했다”

고 모건은 쓰고 있다. “여성 젖가슴의 모양에 대해 숙고하던 데즈먼드

모리스는 여성의 짝이 강한 사냥꾼이 됐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를 순간적으로 떠올렸고 기발한 논리로 이 말도 안 되는 진술

을 옹호했다. 여기에 들어있는 타잔 같은 요소가 이들을 사로잡았다.”

럿거스대학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매이시아-리즈Frances Mascia-Lees는 유

25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서 화석이 발견된 440만 년 전 원시인류

26  역시 에디오피아에서 발굴된 화석으로 350만 년 원시인류 여성이다.

27  북미 로키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털이 수북하고 두 다리로 걷는 전설의 원인(猿人)

28  ‘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의 학명으로 초기 인류 화석 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아르디

© J.H. Matternes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40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41

커다란 뇌, 말, 사회적 행동, 이족보행, 도구사용 등의 진화를 이끌었

다. 이 이론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매이시스-리즈는 생각에 빠졌다.

마침내 이에 대한 달콤한 복수로 매이시스-리즈와 몇몇 연구자들은 반

대되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는데, 수유와 인간 아기의 독특한 요구를 통

해 여성이 이들 발달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학계의 신사들에게 잠깐 설

명하자면, 젖가슴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동굴의 남성들이 원해서가 아

니라 여성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한 것이다.

매이시스-리즈는 젖가슴이 성선택이 아니라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

다고 주장한다. 다윈이 처연하게 표현한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여성과

아기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데 젖가슴이 역할을 했다는 건 완벽

하게 합리적인 추정으로 보인다. 남자들의 관심은, 설사 그런 게 보편

적으로 존재하더라도, 부수적인 요소다. 매이시스-리즈는 여성이 몸에

지방을 저장하는데 젖가슴이 수% 정도일지언정 기여했다고 추정한다.

인류 초기 진화의 척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기후 변화가 큰 평지 같

은)에서, 이런 여분의 지방 축적은 임신과 수유를 유지하는데 차이를 만

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몸을 따뜻하게 해줄 두터

운 털이 없는 인간은 몸에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임신한 여성은 특별한 긴사슬지방산이 필요한 큰 뇌를 지닌 통통한 아

기를 위해 지방을 제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은 체지방이 어

느 수준 이상이 되지 못하면 배란조차 할 수 없게 설계돼 있다. 평균적으

로 생식력이 있는 나이대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지방이 두 배나 된다.

하지만 왜 젖가슴인가? 예를 들어 팔꿈치에 지방을 저장하면 안 되

나? 이 문제에 대해 매이시스-리즈는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 지방

방과 매력에 대한 지난 50년 동안의 연구는 엄청난 시간낭비였다고 말했

다. “옛날 사람들이야 여전히 같은 얘기를 하겠죠.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짝을 찾고 아이를 갖는 일에 있어

서 젖가슴 크기는 문제가 안 돼요. 많은 광고업자들이나 성형의사들이야

사람들이 크기를 중시하기를 바라겠지만요.” 매이시아-리즈의 말이다.

매이시아-리즈는 성적 신호로서의 젖가슴이라는 기원 이론에 구멍

이 많다고 지적했다. 만일 여성이 크고 탱탱한 젖가슴으로 자신이 아이

를 낳을 수 있고 섹스를 기다리고 있다고 남성에게 알리는 것이라면, 임

신을 하고 수유를 할 때 왜 젖가슴이 가장 커지고 탱탱해지는 걸까? 젖

가슴의 크기와 모양이 이렇게 편차가 큰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가

슴이 작은 많은 여성들이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고 돌보는 일에 도사인

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싫지만, 난 매이시아-리즈가 작은 가슴

을 가져 통념에 거스르는 세계관을 품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

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봤는데, 매이시아-리즈는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슴 사이즈가 36DD29였던 것이다. 매이시스-리즈가 대

학원에 들어간 1981년, 학과에는 남자가 15명이고 여자는 한 명 뿐이었

다. 젖가슴에 대한 미국 남자들의 집착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가슴이

큰 여자라는 건 남자들에게 성적 대상이 된다는 뜻이죠.” 매이시스-리

즈의 말이다. “지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제겐 무척 힘든 일이

었어요.” 당시는 힘센 사냥꾼 이론이 만연하던 때였다. 힘센 사냥꾼은

29  36DD는 한국사이즈로는 80E에 해당한다.

42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43

리 조직의 미스터리한 기원에 대해 생각하면, 궁둥이에서 정치적 주도

권까지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던 젖가슴은 이해하기 쉬운 은유가 된다.

사막 동물학자는 젖가슴에서 낙타 혹을 본다. 즉 젖과 지방을 저장함으

로써 혹독한 기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적응이라는 해석이다. 페미

니스트들에게 젖가슴 이야기는 자기결정성의 우화다.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흥미로운 다른 이야기도 많다. 14세기 초 프

랑스 필립 단려왕의 외과주치의였던 앙리 드 몽드빌Henri de Mondeville은

“여성의 젖통이 가슴에 달려있는 반면 다른 동물들은 다른 곳에 있는 경

우가 많은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가슴은 고상하고 눈에 잘 띄

면서도 순결한 신체부위이고 따라서 젖가슴은 점잖게 보인다. 둘째로

심장의 온기를 받은 젖가슴이 그 온기를 다시 심장으로 되돌려줘 심장

을 튼튼하게 한다. 셋째 이유는 젖가슴이 큰 경우에만 해당하는데, 가

슴chest 부위를 덮음으로써 위를 따뜻하고 튼튼하게 해준다.”

1840년 한 의사는 젖가슴의 지방이 젖을 따뜻하게 하고 “하층 계급

의 여성들이 술 취한 남편의 구타를 견딜 수 있게 한다”고 추측했다. 이

사람은 아마도 고딕소설30을 너무 많이 읽은 것 같다.

좀 더 최근에 한 이스라엘 연구자는 지방덩어리인 젖가슴이 여성이

서 있을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

으면 역시 지방덩어리인 엉덩이가 몸이 뒤쪽으로 젖혀지게 할 것이다.

내 시누이는 자신의 경우 이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웨일즈의 평론가 엘레인 모건은 기민한 해부학적 관찰을 통해 자신

30  중세를 배경으로 공포와 미스터리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을 다룬 소설

과 콜레스테롤은 에스트로겐을 만든다. 젖샘은 에스트로겐에 민감한

세포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에스트로겐이 더 많

은데 상대적으로 지방이 더 많기 때문이지 딴 이유는 없다. 결과적으

로 우리는 아기를 낳기 위해 사춘기와 그 이후에 더 지방이 많아질 필

요가 있다. 우리 몸의 지방은 에스트로겐을 만들고, 에스트로겐은 젖가

슴을 부풀게 한다. 젖가슴 조직이 에스트로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매이시스-리즈의 설명에 따르면, 젖가슴은 ‘지방 축적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론이 모리스류의 이론만큼 검증가능하거나

섹시하지는 않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점이 중요하다. “난 내 추측

이 더 확고한 기반이 있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매이시스-리

즈의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화적 역사를 거슬러 투사해온 문화적

추측과 같은 건 아니죠.”

아마도 난 모든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볼만한 가슴을 갖고 있지 않

기 때문에 그 기원에 대한 다른 설명을 더 적극적으로 찾는 것 같다. 그

리고 그런 이론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엄지손가락과 달리 젖가슴은 화

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하다. 인간의 진화에서 정확히

언제 풍만한 젖가슴이 나타났는지 알 길이 없다. 직립보행 전일까 후일

까? 두꺼운 털이 사라지기 전일까? 매이시스-리즈와 딕슨의 이론을 포

함해 젖가슴을 설명하는 모든 이론 가운데 대다수가 SWAG, 즉 과학적

지식에 입각한 추측scientific wild-ass guesses일 뿐이다.

젖가슴은 개인과 집단의 판타지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에, 과학자들

조차 그 매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이해가 된다. 이 섬세한 살덩어

44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45

먹는데 보다 적합한 턱과 이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우리는 날고기를 찢

을 커다란 아래턱뼈가 필요 없다. 다른 이유는 우리가 커다란 뇌를 지니

고 있어, 태어날 무렵에는 같은 몸집의 영장류보다 머리가 5배나 더 크

기 때문이다. 벤틀리에 따르면 아기가 직립으로 유난히 좁아진 골반을

통해 나오려면 얼굴이 편편해져야 한다. 편편한 얼굴과 납작한 가슴은

짝이 맞지 않는다. 거울에 대고 키스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아기 얼

굴이 납작한 가슴에 입을 갖다 대면, 코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똑똑한 독자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코는

귀 근처 같은 다른 곳에 자리 잡게 진화하지 않았을까? 왜 모든 포유동물의 코

는 눈과 입 사이에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의 주형이 원시적인 물고기의

하부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

이다. 대신 우리 유전자가 젖가슴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는 게 더 쉬웠을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둥근 젖가슴 덕분에 우리는 똑똑해질 수 있었다.

난 머리와 목에 대해 더 읽기 시작했고, 두개기부굴곡basicranial flexion이

라는 인간의 독특한 특징을 알게 됐다. 즉 우리 목과 머리가 만나는 지

점은 굽어져 있는데,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인간

아기는 머리를 똑바로 세울 수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머

리를 똑바로 할 수 없는 유일한 포유류다. 우리는 유난히 머리가 크고

후두강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목도 길쭉해서 말을 할 수 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면 품에 안아야 하는데(손으로 움켜잡을 털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받쳐주지 않으면 섬세한 후두관, 즉 목이 부러진다. 그래서 젖

꼭지가 아기에게 닿을 수 있게 내려올 수 있어야 하는 게 더 도움이 되

는 것이다. 이건 이론일 뿐이지만, 난 마음에 든다. 덜렁거리는 젖가슴

의 이론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그녀는 우리 조상이 두꺼운 털을 버

렸을 때 아기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음에 주목한다. 다른 영장류 새끼

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털에 매달린다. 어미는 새끼가 젖을 먹을 때도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구멍을 쑤셔 개미를 꺼내먹는다. 인간에게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기를 꼭 안아야 하고 그러려면 팔을 굽혀 공

간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이 자세에서도 젖꼭지는 아기 쪽으로 좀 더

내려와야 한다. 축 늘어진 젖가슴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일단

아기가 손을 자유롭게 놀릴 수 있게 되면 아기는 손짓을 할 수 있다. 표

현의 중요한 형태가 진화했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

이런 전반적인 과정에서 유연하고 고정되지 않은 젖꼭지가 큰 역할

을 했다. 모건이 언급했듯이, 모양이 탁월한 여성의 젖가슴 덕분에 “사

람의 젖꼭지는 원숭이와는 달리 더 이상 늑골에 가까이 있지 않아도 된

다. 젖꼭지 주변의 피부는 좀 더 느슨하게 조직돼 있어 유동적이라 과

립조직과 지방이 들어갈 여유가 있다. 그 결과인 우리 종에 고유한 유

방의 곡선을 보고 성인 남성이 성적 흥분을 느낄지라도, 이런 변화를 촉

발하고 먼저 수혜를 입은 건 아기들이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젖꼭지가 없었다면 수유를 하기가 꽤 곤란했을

거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수긍한다. 영국 더럼대학의 인류학자 질리언 벤

틀리Gillian Bentley는 어느 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가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젖가슴이 둥글게 생긴 데에는 우리의 두개골 모양이 한 몫 했

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을 다른 영장류, 아니 다른 포유동물과 구분짓게

하는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주둥이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우리는 요리한 고기 같은 다양한 음식을

46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47

적’에 대한 믿음은 젖가슴의 건강과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단지

페미니스트만이 성선택 가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셀렌 역시 그런 입

장인데, 젖가슴을 성적 대상으로 지나치게 부각시키면 아기의 건강을

외면할 뿐 아니라 젊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여성들이 모유수유를 하도록 설득하

기가 쉽지 않다. “만일 우리가 계속 젖가슴을 성적 기관으로만 부각시

킨다면, 우리는 모유수유가 당연히 해야 할 정상적인 일이고 권장돼야

한다는 생각을 과소평가할 것입니다.” 셀렌의 말이다. “인간의 젖가슴

이 약간 다른 구조인 건 필수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아 영양 전문가인 셀렌은 그 자신도 편견을 지닐 수 있음을 인정했

다. 하지만 딕슨 부자와 다른 모리스의 후계자들의 편견은 훨씬 심하다

고 셀렌을 주장했다. 사실 이런 편견은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

다. “인간은 뭐든지 성적인 것으로 만들죠. 우린 어떤 특징에도 성적인

요소를 부여할 수 있어요.”

“전족처럼요?” 내가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셀렌이 말을 이었다. “어떤 문화가 여성의 신체를 숨

기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그런 특성에 끌리게 됩니다. 젖가슴의 경우

실제로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에서 진화한 것임에도 남자들은 여기에

문화적으로 다양한 상징을 부여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과학적으로 바라봐야 해요.”

웰링턴에 있을 때 내 마음은 이런 학문적인 논쟁에 말려들었다.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아침 나는 바너비와 앨런 딕슨과 커피를 했다. 앨런

덕분에 우리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영장류도 젖을 먹일 때는 가슴이 볼록해지지만, 영구적인 지

방 패드가 없기 때문에 그다지 커지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다. 젖가슴

에 대한 여성 중심적 이론이 매력적인 건 이 기관이 실제로 작용하는

걸 이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자를 위한 젖통 이론은 그

렇지 못하다.

이런 사실이 댄 셀렌Dan Sellen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는 토론토대학

에서 영양학과 생태학을 전공한 인류학자다. “젖가슴을 연구하는 인류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젖가슴의 역할에 대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

지요.” 셀렌의 말이다. “짝 선택에 대한 민속 연구가 많고 확실히 젖가

슴이 남자들을 유혹하지만, 이 사실이 곧 젖가슴의 일차 기능이 짝을

유혹하는 거라는 뜻은 아니죠.” 셀렌은 여기에 “모든 포유동물은 젖샘

을 갖고 있는데, 인간에서만 이 기관이 성선택됐다는 건 정말 부자연스

러운 일 같습니다. 다른 모든 포유동물에는 없는 새로운 기능을 인간의

젖가슴에만 추가한 것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왜 젖가슴을 갖게 됐는가는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할 수

도 있다. 우리는 젖가슴이 있고 젖가슴을 좋아하고 젖가슴은 쓸모가

많다. “젖가슴은 예쁘고 독특하고 매력적이다”라고 나탈리 앤지어

Natalie Angier는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에서 쓰고 있다. “하지만 젖가

슴은 제멋대로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훨씬 덜하다.”

하지만 앤지어의 의견과는 달리 젖가슴은 실제로 중대한 의미를 갖

는다. 지금까지 봐온 것처럼, 젖가슴의 기원 이야기에는 정치적, 성적,

사회적 그림자가 드리워져있기 때문이다. 젖가슴의 기원, 그리고 ‘목

48 젖가슴 생태학 Chapter 1 • 누구를 위하여 젖가슴은 울리나 49

은 핑크색 버튼다운 셔츠와 멜빵, 황갈색 블레이저 차림이었다. 그의

목에 두른 끈에는 소뼈로 만든 마오리족 낚시바늘이 걸려있었다. 앨런

은 어떻게 보면 고상한 영국인 같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별난 영국인처

럼 보였다. 그의 빽빽한 코밑수염과 약간 제멋대로인 흰 머리카락을 보

면서 나는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해온 영장류가 떠올랐다.

난 앨런에게 성선택이 아니라 자연선택이 젖가슴의 진화를 이끌었

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 생각엔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났을

것 같은데요.” 앨런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지방이 채워진 건 자연선택

이죠. 그게 필요했으니까요. 이제 어디에 채우냐가 문제입니다. 겨울

잠쥐라면 꼬리에 지방이 몰리겠죠. 개코원숭이라면 궁둥이일 테고요.”

이제 커피가 효과를 발휘해서 교수다운 면모가 완연히 드러났다. “사

람이라면 지방은 가슴으로 갔을 테고, 결국 성적으로 선택됐을 겁니다.

젊은 여성일수록 건강하다는 인상을 줬을 테니까요. 남자들은 이런 특

징을 지닌 여성들을 선호했을 겁니다. 우린 동적인 과정에 대해 얘기

하는 겁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공작의 꼬리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

니에요. 우리는 본질적인 건강과 웰빙을 나타내는 뭔가에 대해 얘기하

는 겁니다. 난 여기에는 단순히 수유와 임신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생

각합니다. 젖가슴은 번식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표시와 관련있다고 생

각해요.”

“그래요.” 에스프레소를 집어 들고 이마를 다시 찡그리며 바너비가

혼잣말을 하듯 덧붙였다. “성선택과 자연선택은 서로 연결돼 있을 겁니

다. 이게 적절한 관점이네요.”

아, 우리는 만족스러운 중용에 도달한 것 같다. 난 이제 집에 가도 되

겠지. 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난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기

에 대해 더 생각할수록 성선택과 자연선택이 함께 작용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현대사에서 젖가슴이 범주적으로 잘못 역할을 배정

받았다는 확신이 점점 커졌다.

태평양 상공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오래 전

남자와 여자들은 곧 부서질 것 같은 통나무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구에서 우리의 모든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은 사랑 또는 욕정에 빠졌고 아이를 낳았다.

남자들이 젖가슴을 선택한 대신 젖가슴이 남자들을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태초의 남자는 저마다 특색 있는 태초의 여자를 사랑했

다. 어떤 여자는 젖가슴이 없었고 어떤 여자는 작았고 어떤 여자는 젖

가슴에 털이 났을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남자는 여자를 고를 때 그다지

까다롭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나서 앞서 언급한 이유들—지방 축

적, 두개골 모양, 언어 발달, 긴 목—로 해서 젖가슴이 커진 여성들과

그들의 아기가 점차 다른 여성과 아기보다 우위에 섰을 것이다. 이것이

결국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방식 아닐까.

결론적으로, 말하고 노래 부르고 커다란 뇌를 지닌 사람은 젖가슴을

지닌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젖가슴에 감탄

하고 좋아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대학에서 시선추적

장치에 젖가슴 사진을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젖가슴은 영원히 군림할 것이다.

동그란 시작

2

Circular beginnings

Chapter 2 • 동그란 시작 53

… 그렇게 단순한 시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놀라운 끊임없는 형태들이 진화해왔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이제 우리는 젖가슴이 정말로 아기 수유를 목적으로 디자인됐다고

이해하고 편안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 잠깐 수유의 진화론이 어

떻게 나왔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축 늘어져 덜렁거린다는 게 인간 젖가슴의 놀라운 특성이지만, 젖가

슴의 기본적인 선腺 구조는 다른 모든 포유동물과 공유하는 특성이다.

우리 젖가슴은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일 뿐이다. 다른 포유동물의 경우

우리 눈에 좀 별나게 보인다. 매너티는 가슴지느러미발(앞다리) 겨드랑

이에 젖꼭지가 있다. 소형 영장류인 아이아이원숭이의 젖꼭지는 어미

의 사타구니 뒤쪽에 있다. 겔라다개코원숭이의 두 젖꼭지는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새끼가 둘을 동시에 빨 수 있다. 알을 낳는 희귀한

포유류인 바늘두더지와 오리너구리는 젖꼭지가 없지만 대신 특별한 분

비선을 통해 땀을 흘리듯 젖을 내 육아낭속 새끼들에게 먹인다. 새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부러운 일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고

슴도치처럼 생긴 포유동물은 젖꼭지가 24개나 되고 버지니아주머니쥐

54 젖가슴 생태학 Chapter 2 • 동그란 시작 55

는 특이하게도 젖꼭지가 홀수인 13개다. 수유를 하는 유일한 수컷 동물

로 여겨지는 다약과일박쥐의 경우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이 물질

이 영양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포유류 식구들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젖의 분비에 관여하는 6000여 개의 유전자는 가장 보존

도가 높은 것들로, 이는 털이나 발가락, 체리가르시아 아이스크림을 소

화하는 능력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처럼 최근에 진화한 것이 아니라

는 뜻이다. 우리 몸이 원시적인 젖 분비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는 건 이

시스템이 그만큼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젖 분비 능력이 우리의 가

장 가치있는 유전적 자산이라면, 지방구fat globule는 그중에서도 가장 귀

한 부분이다. 젖 분비의 핵심은 지방운송시스템이라는 것이고, 약간의

예외를 빼면 이 사실은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각각의 포

유동물은 고유한 지방과 탄수화물, 지방과 단백질 비율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젖은 작은 유대류인 쿼카에 비해 단백질이 6분의 1밖

에 안 되고, 물개 젖에 비해 지방이 15분의 1밖에 안 된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포유류의 젖샘은 긴 세월 이어온 네 가지 기본

기능을 갖고 있다. 먼저 가장 뚜렷한 기능으로 새끼에게 특화된 맞춤형

음식을 제공한다. 둘째로 새끼에게 면역 측면에서 도움을 준다. 셋째는

약간 미묘한데, 젖샘은 천연피임약 역할을 하는 호르몬을 만들어 어미

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출산하게 한다. 끝으로 젖샘은 어린 새끼들에게

‘배움의 창’을 제공한다. 즉 새끼들은 먹이를 구하느라 절박하게 돌아

다니는 대신 기술습득에 집중할 수 있다(배우자를 유혹하는 건 원래 기능

목록에는 결코 포함될 수 없다).

제대로 작동하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어

쩌면 수억 년 동안—젖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기능했다. 사실 포

유동물의 젖 분비 능력은 인류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건 세상

을 바꾼 혁신이다.

젖을 분비한 최초의 종은 트라이아스기Triassic31 말기인 약 2억 2000

만 년 전에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동물이 알을 깨고 나온 뒤 바로 먹이

를 찾아야 했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다. 백

악기가 시작되던 1억 3500만 년 전에도 공룡과 거대한 바다 괴물이 여

전히 지배자였고 날쌔게 주변을 돌아다니는 소수의 포유류는 설치류처

럼 생긴 작은 동물이었다. 하지만 대략 6000만 년 전, 신생대 초기 지

구의 온도와 습도에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마도 유성이

지구에 충돌했을 것이다. 어쩌면 화산이 폭발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기후변화가 심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모든 생명체의 거의

40%가 아주 짧은 기간에 사라졌다. 공룡도 끝장났다. 상어와 대형 해

양 파충류도 대다수가 사라졌다.

새로운 세계의 동물은 귀엽고 털이 많고 사회적 유대가 강했다. 또

후각이 예민했고 서로 몸을 부비는 시간이 많았다. 포유류가 신생대를

접수한 것이다.

젖을 먹이는 종의 극적인 출현은 다윈주의자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는데, 이들은 이런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

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눈의 발생과 함께 젖 분비를 지적하기를 좋

31  중생대 초기로 2억 5100만 년 전에서 2억 1200만 년 전까지 기간이다.

56 젖가슴 생태학 Chapter 2 • 동그란 시작 57

아한다. 이런 사건이, 즉각적으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우연한 돌연변

이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눈과 생

기다만 젖꼭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윈 자신은 과감하게도 몇몇

어류와 다른 해양 동물이 알을 보관하는 알주머니에 있는 땀샘이 느리

게 진화해 젖샘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분비된 땀은 알에게 약간의

영양을 더해줬다. 이 시스템은 사라졌고 모습을 바꿔 다시 나타났다.

훗날 다윈이 정답에 꽤 가깝게 다가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적어도

젖 분비의 진화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올라브 오프테달Olav Oftedal 박사

는 그렇게 말한다. 오프테달은 우연찮게 이런 전공을 하게 됐다. 노르웨

이 외교관의 아들인 그는 유럽과 미국의 숲에서 뱀을 잡고 뛰어놀면서 자

랐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들어 사회 참여로 관심을 돌려, 세상을 변화

시키고 유아의 영양을 개선시키기 위해 개발도상국 원조계획에서 일하

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책 집행 속도가 너무 더뎌 크게 실망한 오프테달

은 학교로 돌아갔고, 이번엔 동물계의 어미와 새끼의 영양을 연구했다.

“유전학이 나오기도 전에 다윈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놀라

웠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에지워터 체사피크 만 근처에 있는 스미스

소니언환경연구센터의 사무실에서 만난 오프테달은 목소리가 우렁찼

다. 오프테달은 지난 30년 동안 물개와 곰, 박쥐, 원숭이 등의 독특한

수유 습성을 연구해왔다. 남극권에 사는 웨델 바다표범 새끼는 태어나

서 6주 안에 몸무게를 네 배로 불려야 한다. 바다표범 젖은 지방함량이

50% 내외로, 알려진 동물 젖 가운데 가장 지방함량이 가장 높다. 강풍

이 불면 바다표범의 젖은 버터로 바뀔 것이다. 젖을 먹이는 바다표범은

독특한 수유 압력을 감내한다. 어떤 종은 어미가 수일 동안 젖을 물린

뒤 몸을 보충하기 위해 수일 또는 수주 동안 집을 떠난다. 새끼는 어미

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프테달은 이 경이로운 바다표범의 젖을 맛본 적이 있는데 ‘생선 비

린내가 난다’고 말했다. 맛볼 젖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오프테달은 어

미 머리 위로 고무 바구니를 던져 가린 뒤 손에 든 기구로 젖꼭지에서

젖을 뽑았다. 전 과정이 영하 30도에서 진행됐다.

오프테달은 수유를 어미와 새끼가 영양분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전

형적인 예라고 본다. 웨델 바다표범의 경우 어미는 급속도로 자라야 하

는 새끼의 필요 때문에 거의 아사상태가 된다. 이런 엄청난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유는 그 효용이 아주 크지 않는 한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어미의 몸 구조와 새끼의 치아와 뇌를 포함한 몸 구조 모두

에 상당한 혁신이 필요했다. 가볍게 시작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하드웨어인 젖샘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살펴보자. 이상하게 들리

겠지만 치아가 청사진을 제시했다. 훨씬 일찍 발달한 치아는 간단한 생

바다표범

58 젖가슴 생태학 Chapter 2 • 동그란 시작 59

물오리가미 기법을 개척했는데, 조직 두 층이 접히고 기관을 구성하는 단

백질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치과의사들이 이 순서에 대해 안다면

좋아할 텐데, 만일 치아가 없었다면 결코 젖가슴도 생기기 않았을 것이

다. 하지만 어금니에서 젖을 만드는 기계가 나오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대사 활성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조절되는데, 호르몬은 뇌에서 젖샘을 포함한 몸 전체의 표

적 세포로 흐른다. 포유동물이 진화할 때, 변화한 몸을 조절하는데 필

요한 복잡한 호르몬의 상호작용도 같이 진화했다. 젖샘은 세포 표면

에 수용체를 진화시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프로락틴, 락토겐

lactogen32, 그 밖의 여러 호르몬의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그 호르몬들을

모으게 했다. 이들 호르몬은 젖샘에게 언제 성숙하고 언제 퇴화할 것인

지 알려준다. 이들 호르몬은 지금이 임신상태인지, 언제 젖샘이 성장

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지, 언제 젖 생산을 중시시킬 지, 젖의 조성을 미

세하게 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태아의 성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준다.

“우린 젖샘이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오프테달

의 말이다. “상어류와 도마뱀류에는 태반과 같은 구조가 무수히 많지

만 젖샘 같은 건 전혀 없죠. 영양이 풍부한 액체를 다량 분출하는 샘이

피부에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합니다.”

화석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지 못했던 다윈은 젖 분비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알지 못했다. 젖 분비의 역사는 정말 아

주 오래 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젖 분비는 심지어 그 이름이 특징

32  젖을 나게 하는 황체자극호르몬

을 정의하는 포유동물의 등장보다도 오래됐다. 오프테달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포유동물이 등장하기 한참 전 포유류를 닮은 파충류인 단궁류

synapsids가 있었다. 단궁류는 약 3억 1000만 년 전 다른 파충류와 초기

공룡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단궁류는 비늘 같은 피부 대신 가죽 같고

샘이 있는 피부를 지녔는데 여기에는 모낭도 있었다. 단궁류는 특화된

이빨과 독특한 턱을 발달시켰는데, 훗날 포유류의 입천장과 코, 귀뼈로

진화하게 된다. 초기 단궁류는 커다란 육상 도마뱀처럼 보인다. 수천만

년 동안 번성했지만, 단궁류의 후손인 수궁류는 2억 5000만 년 전 일

어난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으로 전체 종의 70%가 사라졌을 때

거의 궤멸했다. 다행히 소수가 살아남아 작고 포유류처럼 생긴 키노돈

트cynodonts로 진화했지만, 트라이아스기 말기에서 쥐라기에 공룡이 등

장하면서 위축됐다. 여기 어디쯤에서 제대로 된 젖 분비가 시작됐다.

원형포유류proto-mammals는 캥거루처럼 주머니가 있어 알을 지녔고

나중엔 부화한 새끼를 넣고 다녔다. 알은 다공성에 양피지 같은 표면의

가죽질 껍질로 이뤄져 있었다고 오프테달은 말한다. 다공질인 알의 구

성은 수분을 쉽게 잃게 하고 위험한 미생물에 취약했다. 이에 어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어미 주머니 피부의 샘에서 체액이 분비되면

서 병균을 무찔렀다. 최초의 체액은 일종의 천연 라이솔Lysol33이다. 그

뒤 영양분이 체액에 더해진 것을 도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행복

한 새끼들은 안정적으로 영양이 풍부한 패스트 푸드인, 라이솔을 뿌린

햄버거를 먹게 됐다. 젖샘이 처음에는 새끼의 면역을 돕기 위해 진화했

33  미국의 대표적인 살균제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