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ku 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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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NTHLY SPORTS MAGAZINE DECEMBER 2009 Special Report 대학농구리그 출범 2010 스카우팅 리포트 Interview 야생마 이상훈 FC 서울 수문장 김호준 http://www.sportsku.com THE POWER OF KOREA UNIV. 2009 WORLD WEIGHTLIFTING CHAMPIONSHIPS Issue 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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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SPORTS KU VOL14

1

MONTHLY SPORTS MAGAZINE

DECEMBER 2009

Special Report대학농구리그 출범

2010 스카우팅 리포트

Interview야생마 이상훈

FC 서울 수문장 김호준

http://www.sportsku.com

THE POWER OF KOREA UNIV. 2009 WORLD WEIGHTLIFTING CHAMPIONSHIPS

Issue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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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대학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추운 날씨 속에 안산에서 열린 제64회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학교

축구부가 전국 '최강' 왕좌에 등극했다.

사진 김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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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

editor's column

빙상 수업의 수강생들. 두 시간 가량 스케이트를 탄 뒤 피곤할 법도 하지만, 누구라 할 것 없이 표정이 밝다.

달력이 마지막 장에 이르니 괜스레 마음이 바빠집니다. 올 한해는 잘

마무리하고 있는지, 내년을 위해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 시기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매년 같은 진부한

반성을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9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도 우리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인상적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김연아의

그랑프리 연속 우승과 장미란의 고양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우승 그리고

홍명보호의 U-20 월드컵 8강 진출 쾌거!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던 정기전

야구경기, 이 모든 기억들이 우리학교 출신의 스포츠 스타들이 올 한해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업적입니다.

흔히들 한 해가 지면 다사다난 했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올해 역시 그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얼어붙은 세계경제, 그리고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플루까지

하나씩 정리해보니까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2009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스포츠 언론

매체의 편집장으로서 우리나라 대학 스포츠의 열악한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와세다스포츠早稲田スポーツ와의 교류를 통해

일본사회에서 스포츠가 대학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스포츠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스포츠의 현실을

직시하고, 최초의 대학 스포츠 문화 월간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더욱더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겠다는 뜻입니다.

올해 SPORTS KU는 기존 스포츠 잡지 만큼 정확하고 신속한

소식과 대학생들만이 시도해볼 수 있는 참신하고 유익한 정보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SPORTS KU는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습니다. 올 한해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크게 변화된 모습으로 애독자분들 찾아 뵙겠습니다. 올 한해 저희

SPORTS KU에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학우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해에는 보다 재미있고 알찬 소식들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장 엄재용

SPORTS KU

DECEMBER 2009

창간

발행

주소

전화

FAX

기사제보 및 광고문의

010 3996 7640 / [email protected]

온라인

http://www.sportsku.com

이 책의 저작권은 SPORTS KU에게 있으며 무단 복제와

전재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사 및 사진 등

이 출판물의 모든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Editor In Chief 편집장

엄재용 기계공학부 06 │ [email protected]

Editorial Director 편집차장

김명선 철학과 08 │ [email protected]

Senior Editor 수석기자

고봉준 독어독문학과 08 │ [email protected]

Editor 취재기자

최유리 국어교육과 07 │[email protected]

정해정 체육교육과 07 │ [email protected]

이진석 환경생태공학부 04 │ [email protected]

김향지 노어노문학과 05 │ [email protected]

박영미 사회학과 05 │ [email protected]

김세호 영어영문학과 06 │ [email protected]

김두루 영어영문학과 07 │ [email protected]

이혜진 보건행정학과 08 │ [email protected]

Photographer 사진기자

권일운 언론학부 03 │ [email protected]

이정민 기계공학부 04 │ [email protected]

박인철 기계공학부 07 │ [email protected]

이희재 가정교육과 07 │ [email protected]

Designer 디자이너

조규진 프리랜서│[email protected]

표지 모델 장미란 │사진 권일운

2008년 4월 1일

SPORTS KU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고려대학교

아이스링크 3층 SPORTS KU사무실

010 3996 7640 / 010 2848 3982

02 924 7412

또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sports KU

청테이프

호농 송하균수학 05이 청테이프로

등번호를 수정한 웃지 못할 장면.

교내경기에서 조끼 수량 부족으로

가끔씩 등번호를 급조하기도 한다.사

진 이

정민

NOVEMBER 2009박희성을 커버스토리 주인공으로 정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역시 표지였습니다. 아직 성장중(?)인 외모라 그런지 사진 각도부터

조명까지 모든 것을 세세히 신경써야 했습니다. 최종 결정을 남긴 두

개의 표지. 하나는 어두운 배경에서 볼 트래핑을 하는 박희성이었고,

또 하나는 흰색 바탕 위에 서있는 박희성이었습니다. 표지는 고민

끝에 후자로 정해졌지만, 최종탈락한 표지도 왠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11월호 두 번째 표지와 올 한해

표지 뒷이야기를 2페이지 안에 담아봤습니다. 2009년 SPORTS

KU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함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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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

contents

2009 농구대잔치

12월 17일-28일, 잠실학생체육관

12

16

24

30

34

40

Good bye 2009

2009 고대 스포츠 TOP 10

2009 5개 운동부 총결산

SPORTS KU 표지이야기

Coverstory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장미란

작은 거인, 전병관

고대역도부, 힘의미전

Issue

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드래프트의 명과암

Photo sketch

아이스하키 - 2009 코리안리그

농구 – 대학농구리그 시범경기

Special report

대학농구리그 출범

대학농구순위

Scouting report

12.18(금) 3시20분 VS조선대

12.19(토) 4시50분 VS성균관대

12.21(월) 3시10분 VS건국대 12.22(화) 1시30분 VS동국대

12.25(금) 2시40분 VS명지대

GET READY TO SLAM!

Cont

ents

사진 권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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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박희성표 시건방춤

제64회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동국대와의 경기에서 박희성체교09이

골을 터트린 후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시건방춤으로 골 세레머니 하고 있다.

사진 김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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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sports KU

Chun Byung Kwan

classroom

NEWs

FOOTBALL전국대학선수권,

11년만에 정상 탈환

우리학교 축구부가 제

64회 전국대학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1월 17일 안산

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4학년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운 우리학교는

동국대를 5-2로 누르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우리학교는 32강에서 광운대를

맞아 승부차기 끝에 힘겹게 승리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단국대, 숭실대,

상지대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날의 승리로 우리학교는 1998년 이후

11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으며,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상을

비롯해 최우수 선수상, 득점상 등 개인상

부분을 석권하며 그 활약상을 인정받았다.

{지도상} 김상훈 감독, 서동원 코치

{최우수 선수상} 이경렬 체교06

{수비상} 이재권 체교06 {골키퍼상} 김기용 체교09

{페어플레이상} 박진수 체교06

{득점상} 이재민 체교06

FIGURE SKATING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7회 연속 우승

지난 10월에 있었던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1차 대회 우승에 이어 김연아 체교09가 5차

대회에서 또 한 번 우승했다.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Short-Program, 이하 쇼트 1위, 프리

스케이팅Free-Skating, 이하 프리 2위, 합계 1위로

그랑프리 7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김연아는 위라나라 선수 최초로 2006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후로 한 번도 그랑프리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김연아는 첫 날 쇼트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종전 세계기록보다 0.02점 높은 76.28점을

받아 다시 한 번 여자 싱글 부문 쇼트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경기 일정으로 인해

24시간도 쉬지 못한 채 프리에 임한 김연아는

누적된 피로와 부담감으로 인해 점프에서

약간의 실수를 하였으나 노련하게 경기를 잘

마무리하며 합계 187.98점으로 2위 레이첼

플랫18/미국에 13.07점 앞서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그랑프리 1차 대회의 우승에

이어 이번 우승으로 김연아는 12월 초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에

포인트 및 합계 순위 1위로 진출하였다.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로 김연아는 4년 연속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하게 되었다.

BASEBALL10학번 송추 마무리훈련 합류

10월 28일 10학번 체육특기생에

대한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야구부는

총 12명의 신입생을 선발했다. 야구부는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참가한 후, 일주일여간의 휴식을 뒤로 한 채

송추에서 훈련을 개시했다.

훈련을 시작한 11월 초, 고등학교

학생 신분인 신입생들은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 기말고사를 치렀다.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뒤늦게 오후 훈련에만 참여했지만

지금은 송추에서 열리는 고등학교와의 연습

경기에 주로 주전으로 뛰며 컨디션 조절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야구부는 주로 러닝 및 수비에

중점을 둔 마무리훈련에 매진했다.

06학번들이 떠난 자리를 10학번들이 메운

송추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북적대는

풍경을 보였다. 전학년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2010년에 먹을 김치 김장을 하는 등

송추에는 매일매일 훈련과 동시에 많은

행사가 열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한 야구부는 11월 29일 학부모 및

선배들과의 신입생 상견례 자리를 가졌다.

이 날 조성민체교92 등 많은 야구부 OB들이

자리를 찾아 모교와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줬다. 양승호 감독은 “좋은 신입생들을

받게 되어 기존 선수들도 자극을 받을

것”이라며 내년 야구부의 무한 경쟁체제를

선언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줬던 야구부의 더 발전할 모습을

기대해본다.

SPORTS CLIMBING김자인, 스포츠 클라이밍의 여제女帝 등극

‘스파이더 걸’ 김자인체교07이

국제산악연맹에서 주최하는 제 5차 월드컵

여자 난이도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슬로베니아의 마야 비드마를 제치고 극적인

우승을 거두었다. 지난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록마스터 대회 난이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이후 두 번째 우승이며

국제산악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동안

월드컵에서는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며

정상에 등극하지 못했다. 이번 우승으로

그 징크스를 단 번에 날려버렸다. 또 난이도

부문에서 아시아 여성 선수가 우승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통합세계랭킹 1위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BASKETBALL2차연맹전 4강서, 난적 경희대에 패해

우리학교가 지난달 12일 열린

대학농구 2차연맹전에서 경희대에 61-75로

패해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막판 체력부족으로 승부를 내준

아쉬운 한판이었다. 우리학교는 19-

21로 1쿼터를 마친 뒤, 2쿼터에 경희대를

9점으로 묶고 20득점을 올리며, 9점을

리드한 채 전반전을 마감했다. 하지만

경기가 뒤로 갈수록 주전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심해져 경희대에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우리학교는 하재필체교06/C이 20득점,

12리바운드, 3블록, 정창영체교07/ PG이 17점

8리바운드, 신정섭체교06/SG이 13득점

(3점슛 3개)으로 활약했지만, 경희대의

에이스 박찬희06학번/PG를 막지 못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편 2차연맹전의 최종 우승은

김만진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가 차지했고,

우리학교는 이번 대회에서 2승 3패를 거뒀다.

대학농구 시범리그 성공리에 막내려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대학농구 홈앤어웨이 시범리그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달 19일

우리학교와 경희대의 경기를 시작으로

펼쳐진 시범리그는 2주에 걸쳐 진행됐다.

한국대학농구연맹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언한 대로 모든 경기는 각 대학 캠퍼스에서

홈앤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번 시범리그는 내년 공식출범할

정식 홈앤어웨이 리그에 앞서 체육관

시설과 진행방식 등을 점검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실제로 우리학교의

경우 학사일정 관계로 화정체육관이 아닌

이공대 체육관에서 경기가 펼쳐졌고, 경기

도중 전광판의 오류가 발생하는 등 약간의

시행착오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우리학교는 경희대와의

시범리그 개막전에서 97-89로 승리를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고, 8일 뒤 열린 경희대

원정 경기에서도 85-72, 13점차 승리를

기록하며 내년 정식리그를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ICE HOCKEY우리학교, 실업팀 하이원 꺾으며 2위 차지

지난 12일 열린 종합아이스하키

선수권 결승에서 우리학교는 아시아

리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큰형님’

안양 한라의 한수위 실력에 밀리며 0-3

완패를 당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준결승 실업팀 하이원과의 경기에서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한호택체교06의

골 든골로 연장 접전 끝에 4-3으로 이기는

파란을 연출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다시

만난 안양 한라의 힘에 밀리며 준결승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우리학교의 주장 김혁체교06은

우수상을 차지했다.

코리안리그, 3승 1무 2패로

연세대에 이어 2위 차지

종합아이스하키선수권이 열린

바로 다음 주부터 시작된 코리안리그에서

우리학교는 하이원을 격파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한양대와의 1차전에서

승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2차전에서

경희대와 비기며 예상이 꼬이기 시작했다.

라이벌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했다. 1차리그를 좋지 않은 성적으로 마친

우리학교와 달리 연세대는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연승을 달리며 코리안리그 무패 행진을

55경기로 늘렸다. 우승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우리학교를 만난 연세대는 지난번 경기와

마찬가지로 우리학교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이번 시즌 우리학교를 상대로 총 4전 전승을

기록했다. 한호택체교06은 12포인트

(5골 7보조)를 기록하며 최다포인트상을

수상했다.

최태호 코치,

U-20 아이스하키

대표팀 코치로 발탁!

우리학교

아이스하키부

최태호 코치가

2010 세계주니어 U-20 선수권 Division

2에 출전하는 대표팀 코치로 발탁됐다.

우리나라는 12월 14일부터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헝가리, 영국, 멕시코, 스페인,

중국 등과 함께 Division 1 진출을 위한

결전을 펼친다.

국제아이스하키대회는 풀리그를

통해 Division 2의 상위 1개팀만이 Division

1의 하위 1개팀과 교체되는 승강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번 U-20 대한민국 대표팀은

한양대 조형준 감독의 지도 아래 총

20명으로 구성됐다. 현재 부상 중인 우리학교

한승배체교09를 제외한 우리학교(7명)와

연세대(6명)의 모든 09학번 선수들이 대표로

참가한다. 최태호 코치는 “경기 이틀 전

도착하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했지만, “이번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원하는 성적을 거두고

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대표팀은 출국 전까지 목동 실내

아이스링크에 모여 합동 훈련을 갖는다.

선수끼리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 호흡을

금세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에

발탁된 이민우체교09는 “대표팀에서 라이벌

연세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을만큼 열심히

훈련하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RUGBY럭비부 4명, 상무 최종 합격

지난 11월 24일, 국군체육부대상무가

2009년 4/4분기 국군대표 운동선수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전체 선발인원

169명 중 14명의 럭비 선수를 선발하였는데,

우리학교 신명섭, 김현우, 전치도, 이용민이하

체교06이 포함되었다. 현재 상무 럭비팀에는

홍준기, 연권우이하 체교03 등의 우리학교 출신

선배들이 포진해 있는 상태다. 상무에서

고대 출신 선수들이 다시 한 번 한 팀을 이뤄

대학럭비의 최강 고려대학교의 위상을 떨칠

것이라 기대된다. 한편, 이번에 최종 합격한

선수들은 2010년 1월 18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상무

선수로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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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good bye 2009

SPORTS TOP 102009 Korea University

sports KU

단 한 문장의 광고카피가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김연아마저

악플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우리학교 홍보팀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김연아의 모 대회 우승 후 각 신문 지면에 실렸는데,

‘고대가 다 큰 김연아를 데리고 와서 쇼를 한다’는 네티즌의

뭇매를 맞게 됐다. 결과야 어찌됐든 김연아의 우리학교 입학은 그

자체가 이슈였다. 지난 4월 캠퍼스를 찾은 김연아를 보기 위해 수십명의

취재진과 수백명의 학생들이 몰리는 해프닝도 벌어졌고, 김연아가

‘고파스’에 직접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글은 곧바로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입학 특혜설’부터 ‘교수 보장설’까지, 우리학교

역대 스포츠스타 중 가장 떠들썩하게 입학한 김연아. 이제

수많은 남학생들은 그녀의 등교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금메달

걸고 빨리 학교 오세요♥~~’

역시 장미란이었다. 우리학교 역도계의 대표적인 스타

장미란[체교05]이 고양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에서 무슨

체급 무슨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이니만큼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대회.

천하의 장미란도 부담이 됐을 법하지만, 장미란은 침착했다.

모국에서 세계를 들어올린 장미란. 지난해 올림픽 금메달 이어

올해 세계선수권까지 휩쓴 그녀가 다음 대회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역도팬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스포츠를 토대로 한 이런 흥미진진한 시트콤이 또 있을까. 임정명,

이충희 감독이 연출과 주연을 공동으로 맡고 이지승, 강병수

코치와 선수, 학부모가 조연한 시트콤 ‘한지붕 두감독’이

대한민국 스포츠계를 강타했다. 제1화 ‘임감독 징계받다’

편으로 시작된 시트콤은 ‘이감독의 석달 지휘봉’, ‘정기전

참패’ 편을 거쳐 ‘임감독 짤리나’ 편이 진행중이다.

시청자들은 ‘새감독은 누구’ 편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한때

우리학교 70년대 농구를 이끌었던 두 감독이 언쟁을 벌이는

모습과 학부모들이 총장실에서 탄원하는 장면까지 보너스

컷으로 전파를 타면서 시트콤은 반년 넘게 인기방영 중이다.

시트콤의 종영예정일은 12월말. 이번에는 연장방영 소식이 없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란다.

사이좋게 승리를 나눠가진 2009 정기전이었다. 우리학교는 야구와

축구에서 승전보를 올리며 2승1무2패를 기록했다. 야구는 극적인

8회 역전승을 거두며 정기전 효자종목임을 입증했고, 축구는

박주영이 활약한 2004년 이후 5년만의 승리를 맛봤다. 12년

동안 승리를 맛보지 못했던 아이스하키는 올해에도 분루를

삼켜야했고, 농구는 예상대로 패배했다. 럭비는 마지막

1분을 지키지 못한 채 눈물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편 이번

정기전은 신종플루와 폭우의 악재 속에서도 많은 학우들이

자리를 지키며 축제의 현장을 함께 했다. 2승1무2패로 무승부를

거둔 우리학교는 이로써 역대 정기전 14승 8무 18패를 기록했다.

대학농구계의 숙원사업이던 홈앤어웨이 리그가 출범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대학농구연맹 모창배 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 그리고 수도권 11개 대학

총장들은 지난달 ?일 대학농구 리그제 운영을 공식 발표했다.

진행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2차연맹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리그 출범이 발표됐고, 2차연맹전 후 바로 시범경기가 치러졌다.

우리학교는 경희대와의 2연전에서 모두 승리하며 내년부터 있을

홈앤어웨이 리그에 청신호를 밝혔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뤄진

시범리그 출범. 이번에는 부디 말보다 행동이 앞서기를 소망해 본다.

66.6%. 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의 우리학교 선수

지명률이다. 지명을 받은 선수들을 살펴보면 주장 이경렬과

오주현은 1순위로 각각 경남과 대구의 유니폼을 입었고,

우리학교 선수로는 유일하게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한

양준아는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수원[2순위]으로 짐을

싸게 됐다. 또한 이재권은 인천[4순위]으로 서영덕은

경남[5순위]으로, 박상현은 성남[번외]으로 지명돼 우리학교

선수들은 전국 방방곳곳으로 흩어지게 됐다. 지명의 기쁨을 누린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미지명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있는 법.

신우근과 한일구, 이현찬은 프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현주엽의 골밑돌파와 양희승의 3점슛을 볼 수 없게

됐다. 현주엽과 양희승이 지난 6월 정든 코트를 떠났기 때문이다. 강을준

감독을 만나 재기를 노리던 현주엽[체육94]은 결국 고질적 무릎 부상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현주엽은 농구대잔치 세대라 일컫던 90년대

대학농구의 슈퍼스타였다. 탄탄한 체구와 유연한 몸놀림으로

한국의 찰스 버클리로 불렸던 그였지만, 프로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게 됐다. 현주엽의 1년

선배인 양희승[체육93]은 현주엽보다 하루 앞서 은퇴를

발표했다. 부산 KT에서 한편, 양희승의 동기인 ‘거미수비의

달인’ 박규현[체육93]도 끝내 유니폼을 벗게 됐다. 2003년

우수수비상을 받으며 최고의 식스맨으로 활약했던 박규현은

현주엽과 함께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세 선수의 은퇴는 ‘90년대

고대농구’의 침체를 뜻하기에 아쉬움을 더한다. 세 선수의 프로

연수만 합쳐도 자그만치 35년. 이제 프로세계에 남은 ‘마지막승부

세대’는 김병철[체육92]과 신기성[체육94]이 유일하다.

5개부 선수로는 신정락과 함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은 축구선수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박희성. 박희성을 10월

이집트에서 열린 U-20 청소년월드컵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8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대선배인 홍명보 감독과

서정원 코치의 지도 아래 공격 선봉을 맡은 박희성. 대회

초반에는 결정적 찬스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귀중한 공격포인트를 성공시키며 ‘고대축구

10번’의 위상을 드높였다.

올 한 해, 우리학교 체육위원회는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농구부 사태였다. 농구부를 둘러싸고 고소장과 탄원서가 난무한

가운데, 김기형 위원장이 불명예 사퇴했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천희 위원장은 정기전을 끝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이천희 위원장을 대신해 비[非] 체육교육과 출신인

홍기창 생명과학대 교수가 체육위원장에 선임됐다. 비 체교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홍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학교 체육계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제약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두 번의 체육위원장 교체 속에서 김한겸

학생처장은 두 번이나 임시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우리학교 출신으로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야구부의 No.1 에이스 신정락이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시행한 전면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LG]

지명을 받은 것이다. 신정락의 1순위 지명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먼저 우리학교 출신 선수가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받은

적은 98년 손인호[체교 94, LG] 이후 무려 11년만의 일이었다.

또다른 의미는 이번 드래프트가 한국야구위원회가 사상 최초로

시도한 전면드래프트였다는 점에 있다. 지난해까지 1차[지역

우선 지명], 2차[순위 지명]로 진행하던 신인 드래프트가

올해부터 통합된 것인데, 신정락이 최초 1순위로 지명된 것이다.

우리학교는 신정락 외에도 임진우가 1라운드 5순위로 삼성의 깜짝

지명을 받았고, 홍재호는 예상보다 낮은 7라운드 51순위[KIA] 지명을

받았다. 한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오정환과 이준호는 각각

두산과 기아의 신고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고봉

준 기

Good Bye 2009

고대 스포츠 뉴스 Top10

올 한해 우리학교 체육계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몸살을 앓았다. 어렵게 모셔온 피겨여왕 김연아의

입학으로 산뜻하게 시작한 2009년. 하지만 농구부

감독 문제가 줄기차게 터지면서 체육위원장이

두 번이나 교체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서른아홉

골프스타 양용은은 돌연 입학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래도 고대 스포츠의 희망이 보였던 뉴스들도 여럿

있었다. ‘송추특급’ 신정락은 프로야구 신인 1순위로

지명되는 경사를 맞았고, ‘앙리’ 박희성은 U-20 이집트

월드컵에 출전해 8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SPORTS

KU는 ‘고대 스포츠 뉴스 Top10’이란 제목으로 2009년

우리학교 스포츠 소식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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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가 김연아를 낳았습니다.’

축구에 이어 농구도 U리그?

2010 축구 드래프트, 6명 선발

농구대잔치 세대의 쓸쓸한 은퇴

U-20 대회에서 1골 2도움, 박희성

체육위원장 두 번이나 교체

신정락, 프로야구 사상 첫 전면드래프트 1순위 지명

장미란, 모국에서 세계를 들다!

시트콤 ‘한지붕 두감독’

무승부로 끝난 2009 정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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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sports ku

SPORTS TEAM2009 Korea University

고려대학교5개부 성적

김명

선 이

혜진

기자

Good Bye 2009

2009년 우리 5개부의 성적은 어땠을까. 올해도 숨가쁘게 달려온 모든

운동부 선수에게 ‘수고했다’라는 따스한 말을 모두 들려주고 싶다. 내

동생과 같은 선수들이지만 한편으론 선배처럼, 친형처럼 따르고 싶은

친구들이다. 그만큼 의젓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고 있는 5개부 선수들의 일 년 생활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일년내내 예측불허였다. 감독 선임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있던 농구부였다. 대학농구 1차연맹전에는

아예 출전조차 하지 못했고, 신입생이었던 임준수는

전례없는 ‘전학’ 파동을 일으키며 농구부 내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언론사에 밝혀진 우리학교

농구부 갈등 보도의 시작이었다. 결국 임정명 감독에게

견책 징계가 부과되었고, 정기전을 준비하기 위해

이충희 감독 대행을 선임했다.

정기전을 준비하는 과정인 7월

종별선수권에서 대학농구의 ‘복병’ 명지대를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정기전에 대한 우려를 갖던 많은 고대

농구팬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기전에서 부딪친 연세대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정기전 역사상 최다점수패라는

기록을 남기며 쓸쓸히 코트를 떠나야만 했다. 하재필,

방경수, 신정섭, 김태주 등 06학번들은 분전했으나,

꾸준히 훈련과 함께 몸을 만들어 온 연세대 선수들은

양승호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4년 정도면 팀을

완성시켜 전국 대회 우승을 이뤄낼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었다. 약속은 부임 3년만에 대통령배 우승을

이루면서 지켜졌다. 올시즌 첫 대회로 군산에선

춘계리그 조별예선이 열렸다. 엄청난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서 힘든 경기를 펼쳤다. 아슬아슬하게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경성대에 득실차로 앞서 목동에서

열리는 춘계리그 결선에 진출한 것. 8강전에서 만난

단국대에게 패하며 ‘봄’의 제왕은 동의대의 몫으로

돌아갔다.

춘계리그와 달리 상대적으로 손쉬운

대진표을 맞이한 대통령배에선 우승을 위해 전력을

풀가동했다. 신정락과 임진우 등 06학번 투수를

필두로 한 마운드진은 앞으로 우리학교 마운드를

이끌 든든한 08학번들의 뒤를 받쳤다. 윤명준(체교

08), 문승원(사체 08), 임치영(사체 08)들이 바로 그

주인공. 타선과 수비에선 06학번들의 팀의 중심을

비록 정기전 13년 무승의 기록은 이어가게 됐지만,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신형윤,

이민우 등을 비롯해 많은 기대와 우려를 가졌던 09학번들도 각자의 라인에 자연스럽게

조화되며 두터운 선수층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정기전으로 2009년 첫 개막전을 가진 우리학교는 연세대를 맞아 1피리어드

선취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3피리어드에만 3골을 허용하며 2-4로 아쉽게 패했다.

정기전 경기와 같은 양상은 이후 대회에서도 이어졌다. 올 시즌 연세대와 4번의

맞대결에서 4전 전패를 기록한 우리학교는 연세대와의 모든 경기에서 역전패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됐다. 비록 연세대에 비해 부족한 선수층이었지만, 패기로 맞서

엇비슷한 경기 양상을 펼친 우리학교에겐 심판이란 커다란 장벽이 있었다. 정기전

패배를 뒤로 한 채 맞은 유한철배 아이스하키 대회에서 정기전 이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인 전술 교체를 이뤄서 출전했다.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서

고군분투했지만 4-5로 역전패했다. 최종전적은 한양대와 경희대를 격파한 것까지 포함

2승1패를 기록, 연세대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이스하키 대회 중 가장 큰 대회인 전국종합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에서

우리학교는 파란을 일으키는 ‘사건’을 터뜨렸다. 4강전에서 바로 실업 큰 형님

‘하이원’을 연장 접전 끝에 한호택(체교 06)의 골든골로 4-3 꺾은 것. 이 골로 전신

체력적으로 강하게 몰아쳤다. 정기전 다음날까지

계약이 되어 있던 이충희 감독 대행이 떠나고 잠시

견책을 받았던 임정명 감독이 지휘봉을 되찾았다.

이후 농구부는 훈련을 정상화시키고

2차연맹전을 준비했다. 2차연맹전에서의 부진은

어느정도 예상은 됐으나 생각보단(?) 좋은 결과를

얻어왔다. 죽음의 조라고 불리는 A조에 우리학교는

연세대, 중앙대, 건국대와 한 조를 이뤘다. 4년만에

대학농구 ‘최강’이라 불리는 중앙대를 꺾으며 많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중앙대 센터 ‘에이스’

오세근이 빠졌지만, 그 누구도 쉽게 우리학교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들게 본선에 진출한

우리학교는 6강에서 한양대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인 경희대에게 전반까지 앞섰으나 아쉽게

역전패하며 연세대가 3년 만의 대학농구 우승트로피를

찾아 가는 모습을 쓸쓸히 지켜봐야 했다.

내년부터 문화관광부는 농구 토너먼트

잡아주고, 2010년 야구부 주장으로 선출된 김남석(체교

07)과 박세혁, 김민, 김영훈(이하 체교 08) 등이 뒤를

받쳤다. 13년 만에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한 우리학교의

분위기는 절정이었다.

정기전을 앞두고 열린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 지명에 신정락(체교 06,

LG)이 호명되고, 1R 5순위에 임진우(체교 06, 삼성) 등

1라운드에서 두 명의 우리학교 출신 선수가 호명되는

경사를 누렸다. 이외에도 주장 홍재호(체교 06, KIA)도

드래프트에 선발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정기전 승리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00년

정기전 야구 경기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명경기였다.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승부 속에서 9회초 홍재호,

김남석, 김상호로 이어지는 클린업트리오는 단숨에

2점을 뽑아 5-4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선발 윤명준이

다소 흔들렸지만, 에이스 신정락은 침착했고, 이어던진

임치영-문승원-임진우 등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대회를 모두 폐지하고, 축구의 U리그와 같은

대학농구리그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시범리그를 위해 대표팀을 위해 최부영 감독이 자리를

비운 경희대에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두 경기를

가졌다. 하재필과 유성호(체교 07) 등 기존 멤버와

박재현, 이정제 등 10학번 예비 호랑이들의 활약을

앞세워 2승을 챙겼다.

앞으로 다가올 농구대잔치도 예측불허다.

신입생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존멤버들의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대다운 경기 모습을 시즌 막판에는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관계자들의 관심이 대회에

집중되고 있다. 관례상 임정명 감독이 농구대잔치까지

팀을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체육위원회는 언론

보도를 통해 “임정명 감독과 내년시즌엔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앞으로 농구부가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봐야할 것이다. 내년 시즌 쇄신을 통해

대학농구를 호령할 우리학교 농구부를 기대해본다.

100% 완수했다.

야구부는 올시즌 7할에 가까운 승률을

보이며 전국체전 서울대표로 선발되었다. 대전에서

열린 제 90회 전국체전에 참가해 원광대에게 접근

끝에 패하며 첫 경기 탈락이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들고

돌아왔지만, 대학무대 마운드에 돌아온 강석훈(체교

07)의 호투는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이렇듯

그들의 2009년은 화려했다. 특히, 야구부는 10학번

선수 스카우트에 굉장한 성과를 나타냈다. 김경도,

문상철 등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의 주축 대표선수들

중 4명을 비롯, 박주환, 김건효 등 알짜배기 선수들을

포함해 12명 선발을 마쳤다. 이들은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송추에 합류해 마무리훈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0년에도 우리학교를 빛내줄 호랑이

군단의 힘찬 포효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 확신한다.

야구부는 늘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고 있다.

강원랜드부터 이어진 하이원의 5년 연속 우승을 저지했다. 결승전에서 실업팀 안양

한라에겐 0-3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대학의 열정과 패기를 충분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안양 한라에서 슈퍼 루키 소리를 듣고 있는 조민호(체교 05)는 “후배들의

패기넘치는 모습에 놀랐다”는 후문.

올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코리안리그는 4개 대학팀 풀리그로 진행됐다.

2차례의 풀리그로 진행된 코리안리그에서 우리학교는 연세대의 무패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지만, 연세대는 6전 전승을 거두며 코리안리그 5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연세대의 선수층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고 마침표를 찍을 줄 아는 선수들이었다. 경기

중간 심판의 갈팡질팡하는 판정은 선수들의 몸을 축 쳐지게 만들었다.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히어로 주축 라인들을 구성하고 있는 한호택, 김형준, 신상우

등 공격진과 김혁, 임지민의 수비진, 골리 이원 등의 06학번 졸업 공백을 메우는 일이

2010년 시즌을 위해 빅터 감독에게 놓인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부주장 김우영과 시즌

후반부터 주전을 차지한 골리 강태우 등 07학번의 성장세가 돋보이는 가운데 빅터

감독의 지도력이 배가된다면 2010년 시즌에도 연세대와 견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경기를 할수록 나아지는 모습이었다. 올시즌

연세대와의 3경기 모두 경기 막판 트라이를 허용하며

1무2패의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3월 인천에서 열린

춘계리그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맞았다.

우리학교, 연세대, 단국대 등 3개팀으로 구성된

A리그에서 2전 2패를 기록하며 3위를 기록했다.

서로의 힘대힘으로 붙어 밀어내는 스크럼에서 약점을

보이며 연세대에게 밀리는 모습 속에서 정기전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6월에 강진에서 열린 대통령배에서

단국대와 치열한 혈전을 펼쳤다. 단국대 전에서

비록 승리를 거뒀지만 부상자가 많았던 우리학교는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큰 어려움을 가졌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했지만, 춘계리그보다 밝은 모습을

보이며 경기 막판까지 팽팽한 시합을 펼쳤다. 경기 막판

트라이를 허용하며 아쉽게 역전패를 당한 우리학교는

전반기, 참가하는 대회마다 족족 탈락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축구부는 후반기로 갈수록 점차 나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초반 참가했던 하나은행 FA컵에서는

중앙대에 덜미를 잡히며 일치감치 탈락했고,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는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맛봤다.

올해부터 정식으로 출범한 U리그에서는 그나마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개막전에서 연세대를 꺾는

등 전반기 3승 2무 2패의 ‘무난한’ 성적을 기록한 것.

그러나 그 기세도 잠시, 6연패라는 대 기록에 도전했던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는 동국대에 패하며 32강에서

탈락하고야 말았다. U리그에서는 작년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각종 토너먼트

대회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전반기에 거둔 성적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약’이 되었다.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일치감치 탈락한 이후 팀 재정비에 돌입한 축구부는

U리그 후반기 첫 경기인 한양대전에서 1-0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4연승을 내달렸다.

정기전 승리를 위한 송추 합숙에 돌입했다.

송추에서 특별히 뉴질랜드에서 초빙된

코치를 통해 스크럼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특유의

김성남 코치의 시스템 럭비도 단계적으로 완성시켜

나갔다. 송추 훈련 중 우리나라 최고의 팀이라 볼 수

있는 상무에게 압승을 거두며 정기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갔다.

올시즌 마지막 경기로 펼쳐진 정기전에서는

전반 내내 지난 학기동안의 우려를 씻은 듯이 털어냈다.

힘이면 힘, 스피드면 스피드. 연세대를 제압해 나갔다.

하지만, 통한의 마지막 트라이를 허용하며 결과는

무승부로 끝났다. 송추에서 누구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땀흘린 그들의 노력을 알기에, 그리고 춘계

때보다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럭비부이기에. 이 아픔을

딛고 내년 2010년 시즌엔 필승, 전승, 압승할 럭비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부상에서 회복한 박정훈(체교 07)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덩달아 공격진도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나 5년만에 일궈낸 정기전 승리는 올 한해

축구부가 가져온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반에

내린 소나기로 수중전이 펼쳐진 잠실벌에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연세대를 2-1로 누른 것. 축구부는

정기전 승리의 기세를 몰아 남은 U리그 경기에서도

선전하며 수도권리그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8강 플레이오프에서 경희대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7위로 리그를 마감한

작년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성적이었다.

올 시즌 모든 경기를 마무리하는 대회인

전국대학축구선수권은 그야말로 4학년들의 활약이

빛났던 대회였다. 특히나 2010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대회라 언론매체와

14개 구단 스카우터의 관심은 대단했다. 우리학교는

32강에서 광운대를 힘겹게 꺾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단국대, 숭실대, 상지대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지난여름, 우리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동국대를 만나 5-2 대승을

거두고 11년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한 편

결승전 당일 오전 열렸던 드래프트에서는 이경렬(체교

06)과 오주현(체교 06)이 1순위로 각각 경남과

대구에 지명됐다. 정기전때 골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양준아(사체 08)은 수원의 부름을 받았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선수 대부분은 비록 높은 순위는 아니었지만

프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다. 비록 시작은

불안했지만, 축구부는 U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데 이어 마지막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올 시즌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제 4학년

선수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고, 곧 입학할 10학번

새내기들이 그 자리를 점차 채워나갈 것이다. 전

포지션에 걸쳐 유망한 선수들이 고루 선발되었기에,

그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하다. 작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준 올해의 축구부. 새로운 얼굴이 가세한

2010년에는 또 어떤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

럭비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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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

‘포스트 장미란’ 이희솔의 등장

외롭게 여자 무제한급을 지키고 있던

장미란에게 그녀의 뒤를 이을 신예가

등장했다. 2009년 세계주니어역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스무살의

신예 이희솔한국체대은 장미란과 함께 여자

무제한급에 출전했다. 전혀 주눅든

모습 없이 인상 1차시기에서 110kg을

성공시킨 이희솔은 2차시기와 3차시기에선

아쉽게 실패했다. 이어 열린 용상에서도

1차시기에는 가볍게 140kg을 성공시켰으나

인상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시기에서

150kg을 드는데 실패해 종합순위 6위에

올랐다. 비록 6위에 그쳤지만 앞으로

장미란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불안한 출발

장미란은 국내 팬들의 열렬한 응원과

약점으로 꼽히는 인상 종목에 대한 부담감이

겹친듯, 1차시기 인상 131kg에서 실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장미란은 1차시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2차시기와

3차시기에서 각각 131kg, 136kg을

성공한다. 장미란의 라이벌 인 무솽솽중국을

국내예선에서 이기고 올라온 멍쑤핑중국은

2차시기에서 131kg을 성공시켰으나

3차시기 135kg에서 실패했다. 인상에서

장미란은 순조롭게 우승을 차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장미란의 앞을 가로막는

러시아의 한 소녀가 있었다.

러시아의 18세 소녀 ‘카시아나 타티아나’

러시아의 18세 소녀 카시아나 타티아나는

어린 나이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3차시기에서 장미란의 기록보다 2kg 더

무거운 138kg을 성공시키며 인상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타티아나는 종전의

주니어 세계신기록보다 6kg 더 올린 기록을

세웠다. 장미란의 체중이 115kg이라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타티아나의 체중은

90kg에 불과하다. 타티아나의 어린

나이와 발전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세계선수권뿐만 아니라 앞으로 장미란의

무서운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티아나의 파란은 여기까지였다.

금메달 확정, 그리고 그녀의 무한도전

용상에서 장미란을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미란은 2위 타티아나에 비해

22kg 더 들어올린 187kg을 성공시키며

여자 무제한급의 본좌임을 입증했다.

장미란은 용상 1차시기 175kg을 실패한

후, 2차시기에서 1kg을 낮춘 174kg을

성공시키며 용상과 종합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이어진 3차시기에서는

자신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수립한 세계

신기록 186kg에서 1kg 올린 187kg을

시도했다.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들어 올린 역기는 하늘위로

번쩍 들리며 자신이 종전에

보유한 세계신기록을 1kg

갱신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후에도 자신이 보유한

세계신기록을 또다시

넘기 위한 도전에

성공한 그녀의

무한도전정신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Miss 고대' 장미란체교05이 28일 열린 2009 고양시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

무제한급75kg이상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4연패를 차지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세계선수권이 열리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포함, 5년동안 여자

무제한급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장미란이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장면을 돌아보며 그때의 감동을 다시한번 느껴보자. 고양 = 김세호 기자 │ 사진 권일운

세계를 번쩍 들다!‘Miss 고대’ 장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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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Mi 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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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도 선수권 4연패, 그 감동의 순간속으로

결국 ‘로즈’란은 여자 무제한급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장미란의 이번 4연패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인상의 약점과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이라는 부담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을 극복하고 세계 신기록을 번쩍

들어올리며 토요일 저녁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준 그녀, 장미란의 그때

그 순간을 포토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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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숨고르고 어이차! 용상 세계신기록에 도전하는 장미란의 모습.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인지 경기 초반의 긴장감을 많이 털어버린 모습이다.

6 세계를 번쩍! 장미란은 국내대회라는 부담감을 극복하고 3천명이 운집한

KINTEX에서 용상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7 기도하는 그녀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후 기도하는 장미란. 다음

올림픽에서도 그녀의 기도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8 세계선수권 4번째 금메달 장미란은 올림픽 금메달 포함 5년동안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9-10 세계에서 가장 힘 쎈 그녀들

금메달을 차지한 장미란은 이번 대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신예 타티아나 카시리나(러시아), 멍쑤핑(중국)과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

1 장미란이 경기 시작전 여자 무제한급에 참가한

선수들과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2 인상 1차시기 전, 긴장한 모습의 장미란은 인상 1차

시기에서 실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인다.

3 장미란 특유의 기합소리. 이번 대회에서는 장미란

선수의 힘찬 기합소리에 많은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그녀의 금메달을 기원했다.

2009 Goyang Weightlifting Championships

김세호 기자 │ 사진 권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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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 Byung 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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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celona 1992

역도는 힘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거든요.

기술적인 면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여준 것입니다. 어차피 같은

인간이잖아요” 같은 인간이니 못 이길

게 없다는 정신, 역도 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말인 것 같다.

장미란과의 만남

지금은 세계 최고의 역사力士로 이름을

날리는 장미란 이지만 그녀의 뒤에는 전병관

감독이 있었다. “미란이는 기본적으로

체력, 성실함이 좋았다. 기술을 알려주면

흡수하는 속도도 보통선수 이상이다. 그래서

잘 가르치면 정상에 오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장미란이 언제까지 정상을

유지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작년 베이징에서 올림픽 금메달

땄던 중국선수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는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한 순간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까지 우승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고 역도에

정열을 쏟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선수권 4연패, 올림픽을

포함하면 사실상 5연패(역도 세계선수권은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는 열리지 않는다)의

위업을 달성한 장미란 덕분에 예전보다는

역도의 인기가 올라갔다. 장미란이 출전하는

여자 무제한급 경기가 열린 KINTEX는

관중들로 넘쳤고, 들어오지 못한 경기장

밖에 설치된 TV로 경기를 지켜 본 관중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역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장미란 개인에 대한

성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그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가 꾸준히 나와준다면 바뀔 수

있을거다. 베이징에서 이배영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역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며 역도인으로서 더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역도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병관

홍보이사는 “어떤 운동이건 규칙을 아는

것이 먼저다. 규칙을 숙지했다면 선수들이

신청하는 무게에 따른 전략들을 분석하는

게 정말 재밌는 일이다. 역도는 알고 보면

세밀한 운동이라서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 선수의 최고 기록과

현재 신청하는 무게를 따져보면 전략이

보인다. 그리고 현장에서 수시로 바뀌는

신청무게를 통한 코칭스태프의 머리싸움도

관전포인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경기장에서 보는 것이다”며 역도의

관전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킹콩을 들다

영화 ‘킹콩을 들다’ 속 역도부 감독으로

열연한 영화배우 이범수의 역할을

기억하는가. 어느 정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속의 감독은 실제로 전병관을

지도한 감독이었다. 그는 “영화에는 굉장히

부드러운 캐릭터로 나왔지만 사실은 엄격한

분이다. 그 분 덕분에 나도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는 역도선수출신이

아니다. 원래 역도선수는 자신만의 버릇이

있어서 고집스럽게 가르치는 면이 있는데

오히려 선수출신이 아니어서 교과서적인

자세를 익힐 수 있었다. 역도 배우면서 초반

3개월은 자세연습이랑 체력훈련만 했다.

엄청 스파르타였는데 그 경험이 올림픽까지

이어져서 큰 도움이 됐다.”

역도부와 전병관

매년 11월이 되면 힘의 미전이라는 행사를

개최하는 역도부, 역도부의 OB모임인

역우회에는 전병관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힘의 미전에는 역우회 회원들이 출전하는

전통이 있다. 그의 모습을 힘의 미전에서

볼 수 있을까? 힘의 미전에 출전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들고

여유가 생기면 한번 출전해 볼 생각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언젠가 미래의 힘의 미전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녹슬지 않은 몸을 볼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급하게 마치고 그가 향한 곳은

중계석이었다. 상비군 감독, 역도협회

홍보이사, 세계선수권 해설자까지…

은퇴 후에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호랑이

역사 전병관.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의 목소리로 우리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듣고 싶다.

로즈란을 꽃피운 작은 거인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고대 입학

85년 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 87년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며

주목받았던 전병관은 한국체육대학교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치고 우리학교에

입학한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체육대학교로 가야된다고 생각했다. 한체대

교수님하고 얘기를 다 하고 교수님 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아버지께서

사인을 안 해주셨다. 아버지는 당신께서 못

다하신 학업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으셔서

체육대학은 반대하셨다. 아버지께서

반대하신 다음날에 고려대에서 제의가 와

바로 입학이 결정됐다. 애초부터 대학은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실업팀 대신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결국 88학번으로 우리학교에

입학한 전병관은 입학 첫 해에 일을 냈다.

88서울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의 대학생활

안방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에서

새끼호랑이 전병관은 52kg급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올림픽 은메달로

인해 학교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학교에서 혹시 특혜는 없었냐는 질문에

“교수님, 친구들이 수업 때나 학교에서

지나갈 때 많이들 알아봤다. 뭐 다른 건

없었고 장학금은 몇 번 받았다. 학생한테

수업료 면제시켜주는게 제일 큰 선물

아닐까요. 허허”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태릉선수촌에서

학교로 등교하는 생활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선수촌에서 학교로

한 번에 오는 버스가 803번이었다. 학교에

매일 가다보니까 그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님들은 전부 알 정도였다. 탈 때마다

운동하느라 고생한다고 버스비도 내지

말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대표팀

감독님이 오전에 수업 듣는 것을 허락하셔서

오전에는 학교, 오후에는 훈련을 하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정기전은

제대로 참석하지를 못했어요” 이렇게

바빴지만 친구도 많이 사귀고 또 그 친구들

덕분에 미팅도 해봤다고 한다. 미팅 뿐이

아니였다.

모교가 그에게 선물한 것은 평생의

반려자 부인이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우연히 만났다.

어느 날 체육위원회에 올라갔는데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8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힘을 쓰는 운동을 하지만

로맨틱한 면이 있는 학생이었다.

세계를 들어올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91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였다.

56kg급에 출전한 그는 인상 130kg,

용상 165kg을 기록해 합계 295kg으로

금메달을 땄다. 이듬해인 92년에 열린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60kg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며 같은 해에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게 했다.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된 상황을 묻자

오히려 더 큰 긴장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좀 떨리긴 했지만 인상이 끝나고

나서부터 금메달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라이벌이었던 중국선수는 인상에서 저를

앞서고 저는 용상에서 기록이 앞섰다. 원래

전략은 중국선수보다 인상에서 2kg정도

덜 들고 용상에서 4kg더 들어서 메달을

따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인상에서도 내가

앞섰다. 그때 분위기도 좋았고 컨디션도 더

좋아서 금메달을 확신했다” 결국 용상에서

155kg을 성공해 합계 287.5kg으로

한국역도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확신은 했지만

많이 떨렸다. 용상 1차시기도 여유가 있어서

낮춰서 시도한 것이었다.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은 말 그대로 꿈을 이룬 느낌이었다. 내

자신을 이긴 느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벌써 17년이나 지난 순간의 이야기였지만

바르셀로나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전병관은 마라톤의 황영조체교92와 더불어

우리학교의 저력을 세계에 뽐냈다.

동양인이라고 밀릴 것은 없다

“우리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과의 힘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축구를

즐겨본다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을

말이다. 하물며 힘이 중요한 역도에서는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같은 키, 같은 몸무게라면 전혀

못 이길 게 없습니다. 이건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물론 걔네는 고기 먹고 우리는

김치 먹는데 타고 난 차이는 있겠죠. 하지만

2009 고양세계역도선수권대회는 장미란체교05의 용상 세계신기록과 눈물로 온 국민에

감동을 주었고 대회 마지막 날에는 안용권의 금메달로 잔치 분위기 속에 막을 내렸다.

김연아체교09와 더불어 비인기 종목을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종목으로 바꿔놓은 장미란의

뒤에는 바르셀로나의 작은 거인 전병관체교88이 있었다. 현재 국가대표 역도 상비군 감독과

대한역도협회 홍보이사직을 맡고 있는 전병관 감독을 세계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일산 KINTEX에서 만나보았다.

고양 = 이진석 기자 │ 사진 권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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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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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美典

힘의 美典 Mr. 고대 선발대회

11월 20일 저녁, ‘제 46회 힘의 미전, Mr. 고대 선발대회’가 성황리에 펼쳐졌다. 올해로

46회를 맞는 힘의 미전은 역도부와 일반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2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그동안 힘든 훈련을 통해 다져진 몸을 맘껏 뽐냈다. 이날 힘의 미전에는 많은 역우회

선배들이 자리에 함께하며 재학생들과 졸업생 선배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자리였다. 힘의 미전이 펼쳐졌던 인촌기념관의 다양한 풍경을 살펴보자.

김세호 기자 │ 사진 권일운

Before & After

이날 힘의 미전에서 2위와 인기상을

차지한 서범석경제05, 이용우환경보건07 학우.

그들의 몸은 처음부터 좋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평균보다

마른 몸으로 허약한 체질이라고 불렸던

학우들이다. 새내기때부터 역도부에

입문한 두 학우는 마른 몸으로 인해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3일씩 훈련장에 나와

꾸준히 운동해왔고, 힘의 미전 한달전부터는

닭가슴살이나 소금기가 적은 음식만

먹으며 준비해왔다고 한다. 고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힘의 미전에서 많은 관중들로

하여금 탄성이 나오게 하는 멋진 근육을

보여주었다.

78학번의 힘의 미전

힘의 미전에서는 지난해부터 입학한지 31년 지난 선배들의 컨테스트가 펼쳐지고 있다. 이날

특별 무대의 사회는 1982년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 안지영체육76

선배가 진행했다. 이날 78학번 선배들은 학교에 입학한지 31년이 지난 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몸을 보여주었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내년 힘의 미전에 참가할 선수인

79학번 선배들이 무대에 올라 내년의 각오를 밝히고, 멋진 무대를 보여준 78학번 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저 근육이 환갑이 지난 몸이라고?

이날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은 무대는 69학번 이익재축산 선배의

무대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복근과

구릿빛 피부 보여주며 힘의 미전에 참가한 재학생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그에게서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몸관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행정학과 05학번 최욱진

경제학과 05학번 서범석

사회체육학과 07학번 박정욱

우승

2등

3등

대회 입상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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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League Draft

나타냈을 뿐이었다.

난생 처음 드래프트 장을 찾은 기자단, 예상 외의 작은 규모의

드래프트 장에 약간 실망?했다. 400여 명 선수들의 미래를 결정짓기엔,

8명 정도만이 앉을 수 있는 원탁 테이블 10개와 기자석 두 줄은 초라해

보였다. 입구 쪽에 꽉 들어찬 선수들과 부모들, 그리고 각 학교의

지도자들은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 숨죽이며 단상과 스크린을

주시했다.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는

선수들, 휴대전화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스크린을 바라보는 중년의 신사들.

그들이 그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는 모두 달랐지만 긴장감과 경직된

분위기는 묘하게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자석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선수 지명이

시작되었다. 전년도의 리그 순위 역순으로 지명권이 주어지는 야구와

달리 축구 드래프트의 지명순서는 전년도 팀 성적과 상관 없이 광주를

제외한 14개 구단이 동일한 조건에서 추첨으로 정한다. 그래서 야구는

어느 정도 지명선수예측이 가능하고 소위 말하는 ‘작전’을 짜 원하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지만, 축구의 경우는 지명순서 자체가 당일 날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규모 있고 내실 있는 선수 선발을

하기는 어렵다. 올해 1순위 1지명권은 제주유나이티드가 갖게 되었다.

당초 우리학교 양준아를 1순위 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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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리

그 드

래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졸업반 학생들의 마음 역시 차가운 공기만큼 차갑고

쓸쓸해진다. 4년간 학교생활이 결실을 맺는 요즘, 우리학교 축구부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조금 이른 8월, 신인 선수 지명을 실시한 야구, 다음 해 2월에 신인

드래프트를 진행하는 농구부에 비해 축구부 선수들은 비교적 일반 학생과 비슷한

시기에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 짓는다. 11월 17일,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있었던 2010 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SPORTS KU가 찾아가 보았다.

11월 17일은 제64회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 결승과 신인선수

드래프트가 함께 있는 날이었다. 드래프트 장소는 서울시

서대문구였고 결승전 장소는 경기도 안산시였다. 드래프트 시작이

오전 아홉시 반이었고, 결승전 킥오프는 오후 두 시여서 4학년

학생들이 두 장소를 오고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 대회였고, 또 결승까지 진출한 만큼 마지막 경기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지사. ‘취업’ 결과에 따라 우리 학교 축구부

전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06학번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고, 이는 곧 경기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선수들을 위해 올한해 마지막 대회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던 김상훈체교86 감독은 경기 당일 모든 선수의 휴대 전화를

회수하고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차단했다. 당연히

드래프트 장에 올 수 있는 06학번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08학번,

2학년으로 드래프트를 신청한 양준아사체08만이 호텔에 모습을

홍정호조선대를 1순위에 호명되었다. 이번 U-20대표팀에서 수비수로

활약한 홍정호를 더 유능한 재원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제주 구단은

당일 1순위에서 상위 지명권을 갖는 구단에서 홍 선수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드래프트 전 언론에서는 양준아를 제주에서

지명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당일 본인들이

제 1지명권을 갖게 되자 팀에 더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이는 홍 선수를

1순위에 지명한 것이다. 드래프트가 끝난 후 양준아 선수와의

SPORTS KU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원래 제주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바뀐 것이다. 수원에서 나를 지명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암묵적인 약속이 인정되는 프로축구

드래프트에서 이렇듯 암묵적인 합의가 깨어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 날 양준아는 수원에 2순위로 지명되었다.)

구단의 지명 하나 하나에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된 건

사실이지만 특히나 1, 2순위와 같이 높은 순위에서의 지명에는 더 큰

관심이 쏠렸다. 아마추어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기자들은 선수들이

호명 될 때 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기사 초안을

작성하느라 분주했다. 또 예상외의 지명을 받은 선수들은 같이 온

지인들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미 선택을 받은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느껴졌지만, 순위가 낮아질수록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틈에서 우리 학교 선수들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자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지명순서 추첨과 선수 호명이 기계적으로 수차례 반복되자

어느새 정식지명 순위인 6순위까지의 지명이 완료되었다. 간간히

지명을 포기한 구단도 보였다. 뻥 뚫려 있는 빈 칸의 수만큼,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의 마음도 뻥 뚫려 있었을 것이리라. 1-6순위까지

총 65명만이 지명을 받았다. 예순 다섯 명 중에는 우리학교 선수

다섯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진 번외 지명에서는 우리학교

박상현체교06을 포함한 56명의 선수들이 구단의 부름을 받았다.

총 442명의 지원자 중 145명이 지명되어 역대최다를 기록했다.

이 중 프로구단 유스Youth클럽에서 우선지명을 받은 24명을 제외하면

121명 만이 꿈에 그리던 K-리그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우리학교는

아홉 명의 선수들(재학생,졸업예정자 포함)이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여섯 명은 지명을 받았지만 나머지 세 명은 아예 지명을 받지 못했다.

(드래프트를 신청했다가 철회한 2명은 J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구단과 교섭 중이다.) 지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곧 실업을 의미한다.

일반 학생은 휴학을 해 졸업을 늦추고, 다른 회사에 또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또 다른 기회는 없었다. 2월까지

추가 지명기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한

그들이 얼마나 더 구제될 수 있을까. 두 시간여의 짧은 시간에 2010

K-리그 신인선수선발 드래프트는 끝이 났다.

드래프트가 끝난 후, 안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국대와의 결승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지만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 경기에

임하는 06학번 선수들의 투지가 남달랐다. 이재민과

서영덕이상 체교 06을 비롯해 박희성과 이용의 득점으로

5대 2, 대승을 거두었다. 올해

첫 우승을 차지해 기쁠 법도 한 선수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으레 우승이라면 웃음과 환호가 가득해야

하지만, 그 날의 우승은 매서운 추위처럼 서늘하고

착찹하기만 했다. 예상보다 낮은 순위에 지명된

서영덕 선수는 그나마 다행이다. 지명되지 않은

세 선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고 얼굴에는 웃음대신

눈물과 침묵만이 흘렀다. 지명된 선수들도 지명되지

않은 동기들 앞에서 마음껏 기뻐하기보다는 그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6순위 지명까지 지켜보다

안산으로 떠난 김 감독은 “드래프트 날짜를 대회

일정을 고려해 정했으면 한다. 우승으로 기뻐해야

할 지금이 드래프트 때문에 전혀 기쁘지 않다. 좋은

순위에 지명된 선수들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점이 많은 제도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고대정신을 품고 최선을 다한 마지막 대회,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지만 축구부 06학번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하루였다.

Issue

조광래 감독

이현웅 선수

유니폼 교환식

정해정 기자 │ 사진 이희재 이혜진

#1 축구계 거물이 한 곳에 모인 드래프트 장소

드래프트는 선수들에게도 중요하지만

구단에도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다. 금년의

전력상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우수한

재원을 뽑아 팀의 전략을 보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구단직원, 코치 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직접 ‘행차’하신다. 차범근

수원 감독, 최순호 강원 감독, 신태용 성남 감독,

조광래 경남 감독 등 축구계의 거물이 한 곳에

모였다. 평소 티비에서만 보던 유명인사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드래프트의 긴장감을 잠시

잊기도 했다는 후문.

#2 선수들이 제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김상훈 감독에게 현재 실시되고

있는 드래프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문제가 많은 제도지. 우리 애들이 자신들이

하는 만큼 대우를 못 받는 거잖아. 특색있는

경기 스타일도 마음껏 내보지 못해. 왜냐면

드래프트에 선발 되기 위해선 일단 골부터

많이 넣어야 하거든.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경기를 하기에는 팀 성적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기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어”라며

현행 드래프트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 긴장되는 4학년의 잠 못 이루는 밤

4년 대학 농사의 결실을 이루는 드래프트, 당연히 본인들은 긴장될

것이다.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운동을 해야 하니깐, 그저

살기 위해 밥을 먹었다는 한 선수의 말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져 왔다.

Page 15: SPORTS KU VOL14

26 27

작년 드래프트 날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당시 드래프트 현장에 직접

갔었는가

현장에는 가지 않았었다. 너무 떨리고 긴장이 돼 전날 밤에

혼자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가서 그곳에서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웬만큼 지명이 진행되었을 시간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끝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PC방에 가서 확인을 했는데, 결국

경남 FC에 번외로 지명되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손꼽히는 유망주였는데

1학년 때 청소년대표팀에 소집되어 훈련을 하다가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었다. 회복을 한 뒤에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며 꾸준히 출전을 해 왔는데, 드래프트

전 마지막 대회였던 전국대학선수권 대회가 결정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본래 아무리 날고 기던 선수라도 드래프트

Lee Yong Rae2009 K-League Draft

sports ku

이용

래 이

야기

직전에 잘 하지 못하면 스카우터들의 눈 밖에 나기 마련이다. 당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플레이는 성에 차지 않았고, 이

모습이 스카우터들에게는 1학년 때의 부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용래는 이제 끝났다, 못 쓴다’는 말이 돌았다고

하더라. 소문이 이상하게 나는 바람에 본래 지명 받기로 되어 있던

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예상치 못하게 번외로 밀리게 된 것이다.

드래프트의 충격으로 한동안은

핸드폰도 없앤 채로 지냈다고 들었다

드래프트가 끝난 뒤 한동안은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제 와서 축구를 안 할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럴 때일수록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은 뒤 독하게 훈련에만 매진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것 같다. 만일 내가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편하게 프로 입단을 했다면 오히려 자만하고 나태해졌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는 06학번 선수들에게는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었는가

안 그래도 06학번 후배들과 함께 저녁 식사도 했는데, 다들

드래프트에 대해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당일이 되어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국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고려대 선수로 뛰었을

정도면 일단 실력만큼은 인정 받고 들어가는 것이니 너무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만일 일이 잘 안 풀렸을 경우에도 물론 힘은 들겠지만

좌절하지 말고 다른 프로팀에서 좋은 순위로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이다.

최근 국내 무대를 거치지 않고 J리그로 직행하려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드래프트가 끝나고

나서 나의 상황이 너무 창피해 차라리 일본으로 갈까 고민을 하긴

했는데, 결국 그냥 한국에서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물론

J리그가 한국보다는 돈도 더 많이 주고 환경이 좋기는 하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길은 아니라고 본다. 제법 이름이 있던 어린 선수들도

일본에 가면 거의 실패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언어적인 문제도 있으니 적응을 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후배들이

드래프트에서 좋은 순위로 지명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J리그를

택하는데,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쪽에 더 어울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J리그에서 입단

테스트에 떨어지고 나면 한국에서는 실업 리그 외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일단 일본행을 결정한 후배들은 무조건 성공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로팀에서의 첫 시즌을 보내며 느낀

대학선수 생활과 프로선수 생활의 차이가 있다면

프로에 와서 선배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니 몸 관리를 하는

부분에서 확연히 차이가 드러났다. 대학 때는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운동만 하니까 그런 생각은 못하는데, 프로에선 같은 팀이라고

해도 상대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고, 일단

살아남아야 그간 고생한 것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대학 때는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만나

놀기도 했지만 프로에 온 뒤로는 거의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비결이 무엇인가

현재의 감독님과 스타일이 잘 맞았던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경남 FC의 조광래 감독님 또한 현역 선수 시절 나와 같은

자리의 미드필더였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로

감독님의 현역 시절 경기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소위 옛날 축구는

‘무식하다’고 말하는 데에 비해 조광래 감독님은 선수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기술적인 플레이를 구사하셨다. 나 또한 기술적인 측면이

강점인 선수인데, 그러한 선수들을 선호하는 감독님의 스타일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난 여름에는 경남과 재계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팀 서너 군데에서도 제의는 있었다. 사실 금전적인

조건만 따지자면 경남보다 나은 곳들이었지만, 현재 있는 팀에서

감독님이 워낙 잘 대해주시고, 또 돈만 보고 다른 팀에 갔다가 출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결국 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를 뛰는 것이다.

이번에 프로 진출을 하려는 후배들도 팀의 네임밸류나 당장 몇 순위로

지명을 받느냐에 지나치게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이 자기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팀에 안착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해정 기자 │ 사진 이희재 이혜진

모의고사 때마다 전국 상위 0.3% 안에 들던 친구가 정작 수능시험날 컨디션 난조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대학을,

그것도 추가합격으로 겨우 ‘문 닫고’ 들어갔다면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비슷한 사례로 올해 초 우리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FC에 입단한

이용래체교05의 경우가 있다. 좋은 순위로 큰 구단의 지명을 받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08년 정규리그 8위의 지방팀에 번외로

지명되었던 그는 올 시즌 K리그에서 총 26경기에 출전하며 6골 4득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이용래를 만나

드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신을 잘 써줄 수 있는

팀에 가서 자기 진가를

드러내는 게 중요

경남 FC 이용래 인터뷰

issue

김향지 기자 │ 사진 이혜진

Page 16: SPORTS KU 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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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만에 현대의 계약 조건 위반을 이유로 들어 돌연 계약 파기를

선언하고 대학 은사였던 이차만 감독이 있는 대우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학교는 김종부를 축구부에서 제명하는데 이어

선수등록을 말소시켰다.

하지만 천재적인 스트라이커였던 김종부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당시 국가대표팀 김정남법학61 감독은 86년

멕시코월드컵 출전을 위해 김종부의 구제를 요청하였고, 한시적으로

선수로 복귀한 그는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월드컵 첫 승점 1점을 따내게 된다.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인

87년, 대한축구협회는 현행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해 가면서까지

김종부가 대우에 입단하는 것을 허락했다. 현대는 협회가 공정성을

잃었다며 팀 해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사태를 책임지기 위해

당시 축구협회장이 사퇴하고 김종부는 포항제철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김종부는 2년 가까이 쉬면서 기량이 떨어져 있었고, 2년 뒤

다시 대우로 가게 되었지만 무릎인대 부상으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그 후, 협회는 김종부를 데려가기 위해 대우와 현대가

벌였던 과열된 스카웃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88년, 드래프트제를

도입하게 된다.

최초의 드래프트 거부 사건 - 홍명보체교87

이렇게 드래프트제를 시행하게 되었지만, 91년에 드래프트 거부

사건이 발생한다. 홍명보와 황선홍현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드래프트를

거부하여 홍명보는 상무에, 황선홍은 독일 2부리그 MSV

Wuppertal에 입단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드래프트 거부 파동이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여 활약한 홍명보와

황선홍을 구단들은 서로 붙잡으려고 했다. 홍명보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포항으로 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상무를

선택했다. 대학 무대에서도 최우수 선수로 뽑혔던 홍명보는 상무를

제대한 뒤 92년 포항에 입단하여 포항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고,

리그 최초로 신인선수의 MVP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로도

93년 아이다스컵 우승, 95년 K리그 준우승, 96년 FA컵 준우승,

97년 아시아클럽챔피언십아시아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 등 포항을 각종

대회의 1, 2위에 올려놓는데 공헌하여 선수 개인으로도 여러 번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6년 동안 고른 활약을 펼쳤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94미국 월드컵에 중앙수비수로 출전하여 스페인전,

Korea Univ.

드래

프트

파동

의 중

심 고

려대

드래프트 제도

드래프트제란 각 구단이 프로 입단을 지망하는 선수들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 추첨을 통해 차례로 지명하는 제도이다. 200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축구연맹은 K리그 신인선발제도를 자유선발에서

드래프트제로 다시 바꿨다. 2001년에 폐지한 드래프트제를 부활시킨

명분은 구단의 악화된 재정 및 경영수지 개선과 향후 시민구단 창단

유도, 유소년 축구클럽제도의 정착 등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래프트는 여러 면에서 비판 받고 있는 제도다.

먼저, 1순위로 입단하더라도 5천만 원으로 제한된 연봉이 주어지는

탓에 유망주들은 해외 클럽을 선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K리그의

질적 하락, 즉 수준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 또, 선수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유선발과는 달리 자신이

뛰고 싶은 팀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래프트제로 복귀하면서

연맹은 유·소년 클럽을 보유한 구단에는 드래프트를 통하지 않고

직접 육성한 선수를 선발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큰

노력 없이 유망주를 뽑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구단들이 유·소년

클럽 정착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하기는 힘들다. 육성선수 중 4명을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4명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갈 수도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결국 축구연맹은 K리그가 직면한 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다면적인 고민을 하기보다, 드래프트제 복귀라는 손쉬운 처방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홍명보체교87 청소년대표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 이사였던 2005년 당시, 드래프트제

부활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본인도 드래프트를

거부했던 최초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드래프트제의 발단 - 김종부체교83

그렇다면 이러한 드래프트 제도는 언제 처음으로 생겼을까.

그 중심에는 김종부의 스카웃 파동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83년,

우리학교에 입학하여 그 해 열린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대형 스트라이커로

급부상했다. 이어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일조하여, 그가 졸업을 앞둔 86년에 많은 팀의 영입대상 1순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전도유망했던 그의 앞길에 스카웃 파동으로 인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당시 우리학교는 현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김종부는 86년 3월에 현대와 입단계약을 맺었으나,

독일전에서 각각 중거리슛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이름값을 해냈다.

지금도 팀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8강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정기전 출전은 징계를 낳고 - 이임생체교89

이임생이 입학한 때는 고대 축구의 전성기라고 일컬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학교 축구부에는 홍명보, 서정원경영88, 노정윤경영89 등

국가대표 선수가 즐비했다. 이임생은 93년, 미국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훈련하던 도중 우리학교 감독으로부터 학교 시합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말을 들은 이임생은 대표팀에 허락을

받지도 않고 하루 이탈하여 정기전에 참가했다. 시합은 우리학교가

1-0으로 이겼지만, 이 일로 인해 이임생은 제명 처분을 받게 되어

졸업 후 예정되어 있었던 일본 진출도 수포로 돌아갔다. 이임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드래프트를 참가하면 징계를 풀어준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이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드래프트를 정착시키려고 한 연맹의 욕심이 낳은

사건이었다.

드래프트 거부와 일본 진출 - 노정윤경영89, 김대의체교93

노정윤도 93년 드래프트제를 거부하고 일본 히로시마 산프레체로

입단했다. 그는 J리그에 발을 내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 2년차인

94년 개막전에서부터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꿰차고 10골 10AS의

맹활약으로 팀을 상반기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94 미국월드컵,

98 프랑스월드컵 등 국가대표팀에서도 공격을 지원하는 자원으로

맹활약했다. 패스와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노정윤의 플레이는 같은

팀의 황선홍이 J리그 득점왕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99년,

황선홍이 24골을 기록하며 유일한 한국인 득점왕이 되었을 때,

노정윤이 기록한 10개의 도움 중 7개가 황선홍에게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정윤은 2001년, 팀의 부진을 이유로 방출당하여

은퇴를 생각하던 중 홍명보, 황선홍 등의 조언으로 국내 복귀를

결정한다. 울산 현대에 입단하기로 계약한 노정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드래프트제였다. 국외에서 프로리그를 경험한 선수라 하더라도,

K리그에 처음으로 도전할 경우 반드시 드래프트제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그가 국내 복귀를 결정했던 2001년은 드래프트제가 폐지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울산 현대를 제외한 구단들은, ‘1993년에

드래프트제를 거부하고 J리그에 진출한 노정윤은 실질적인 신인으로

취급해야 한다’며,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울산 현대와 계약한 것을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노정윤의 복귀를 환영하던

축구연맹도 다른 구단의 반발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드래프트제의 희생양이 되어, 제도가 바뀐 뒤 2003년에 뒤늦게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할 수 있었다. 이듬해 노정윤은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5년에는 울산 현대로 팀을 옮겨 9년 만의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자신의 희생을 요구했던 드래프트제가 2006년 다시

부활하는 것을 보면서 노정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정윤처럼 대학 졸업 후 J리그에 진출했던 김대의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97년, 우리학교를 졸업한 김대의가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축구연맹은

‘드래프트를 거부한 선수는 3년 동안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려 했다. 김대의 또한 국내로 복귀한 후

내셔널리그인 미포조선에서 뛰며 드래프트가 시행되기를 기다렸다.

드래프트 취소의 아픔 - 서동원체교92

현재 우리학교 축구부 서동원 코치는 입학 후 이기형, 이임생, 곽경근,

노정윤 등과 함께 축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정기전에서

1학년 때 어시스트, 2학년 때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했다. 프로 입단은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서동원은 그 해부터 도입된 메디컬 테스트에서

신장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결국 최초로 드래프트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여 처음 지명했었던 포항

스틸러스의 동의를 얻어 울산 현대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98 프랑스월드컵 예비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킹스컵에 출전하여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게 되고, 재활 치료를 위해

건너간 독일에서 그의 실력을 인정한 구단에 입단하여 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2001년 최순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포항으로 복귀했지만,

출전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탓에 결국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선수 한 명으로 인해 제도가 바뀌다. 대어 중의 대어- 박주영체교04

포항 스틸러스는 대구 청구고에 입학한 박주영을 축구 유망주로

선정해 2001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1년 동안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보냈다. 이로써 포항은 프로 입단 시, 박주영과의 우선

협상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주영은 우리학교를 1년 다닌 후

2005년 FC 서울 입단을 확정짓는다. 포항이 반발하자 서울은 당시

현행 제도였던 자유선발을 들어 묵살했다. 학교와 구단 간에 수억원의

돈이 오갔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지역 출신의 선수를 영입할 자금력이 없었던 대구 FC도

그렇지만, 브라질 유학비용을 전액 부담했던 포항은 더욱 억울했다.

박주영은 포항에 유학비용 전액인 약 5천만 원을 보상했다. 이처럼

자금력이 뛰어난 구단이 유망주를 포섭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맹은 다시 드래프트 제도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2004년 박주영이 정기전에서 1골 1어시스트로 활약하면서

2-0으로 연세대를 이긴 이후로 우리학교는 4년 동안 (2무 2패)

이기지 못했다. 스포츠에 ‘만약에’는 의미가 없지만, 그가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범근체육72에서부터 박주영체교04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의 역사는 고대 축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선수들에게 고려대에 입학하는 것은 태극

마크를 단 것 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만큼, 드래프트 파동의 중심에도 우리학교 선수들이

있었다.

이임생 노정윤 박주영홍명보

issue

최유리 기자

Draf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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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

Ice Hockey

지난 11월 27일 목동에서 열린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에서 우리학교는 연세대의

벽을 또 다시 넘지 못하고 2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연세대전은

양교 합계 19개의 페널티가 나오는 격렬한 경기였다. 두 팀의 선수들이 경기 도중

자주 몸싸움을 벌이고 벤치에서 심판 판정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항의가 나오는

점은 공정하지 못한 심판이 두 팀의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중 부정적면도 있었지만 대학 아이스하키계 최고의 맞수답게 선수들은

관중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경기를 선보였다. 4학년들의 마지막

고별무대이자 올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 6차전 연세대와의

경기를 포토리뷰를 통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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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들의 마지막 경기. 1라인에 주로 분포된 4학년 선수들의

경기 중 모습. 이날 4학년들은 마지막 경기여서 그런지 이기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며, 다른 경기보다 많은 경기시간을 소화하며

그들의 마지막 무대를 불태웠다.

봐! 내가 넣었다구! 김형준체교06은 골을 성공시킨 후, 평소의

활발한 성격답게 역동적인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잦은 몸싸움과

심판판정으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 날 경기에선 유달리 몸싸움이 잦았다. 3피리어드에 연세대

선수들의 비매너적인 행동으로 인해 격분한 주장 김혁체교06이

연세대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큰 싸움이 벌어졌다.

마지막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모습은 결연했다. 정기전 포함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3전3패를 a기록한 우리 학교는 올 시즌 연세대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선수들이 각오를 다지고 있다.

2피리어드가 떠난 후 한 선수가 남기고 간 헬멧과 글러브, 그리고 스틱. 선수들이 모두

라커룸으로 가고 남겨진 장비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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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뱃노래, 죄송합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며 올 시즌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4전 전패를 당한 우리학교 선수들은 눈물을 보이며 멀리 목동까지 구경 온

재학생들과 함께 뱃노래를 하고 있다.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다. 많이 아쉽고 응원해러

와준 학우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졸업 전 마지막 경기이자

연세대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꼭 이기고 싶었고, 4학년

동기들끼리도 이기자고 다짐했는데 져서 너무 죄송하다.

3피리어드 큰 싸움이 있었다. 연세대 선수들이 경기 시작부터

거친 모습을 보여줬는데 경기 후반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경기

외적으로 불필요한 몸싸움을 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되는가. 일본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테스트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일본팀이든 실업팀이든 가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작년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골리 강태우체교07. 부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성실한 태도로 운동해왔던

대기만성형의 그는 올 시즌 주전 골리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 학교의 골대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 하고 있다.

박성제 넌 내가 무찌른다! 이 날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줬던 김형준은

공격 중 연세대 골리 박성제(체교 07)를 몸으로 눌러버렸다.

김혁 체교06

“미치도록 이기고 싶었다.”

mini Interview

김세

호 기

자 │

사진

권일

photo sketch

2009 코리안리그고려대 3 : 4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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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3

Basketball

김세

호 기

자 │

사진

권일

고봉

준 기

자 │

사진

권일

1

2

3

3

3

4

4 5

새내기 첫 출전! 홈앤어웨이 시범리그 경희대전

역사적인 대학농구 홈앤어웨이 리그제가 시범경기로 닻을 올렸다. 시범리그

개막전은 우리학교 이공대 체육관에서 진행됐는데, 결과는 97-89 우리학교의 승리.

2차연맹전에서 패한 경희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라 갚졌지만, 이날 경기는 단순히 승패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승패를 떠나 대학농구 발전의 역사적인 첫걸음이라

더욱 의미있었던 경기를 선수 중심으로 만나보도록 하자. 10학번 새내기들의 깜짝

활약도 엿볼 수 있다.

HOME & AWAY시범리그 고려대 97 : 89 경희대

1

2

3

4

경기에 앞서 눈에 띄는 카메라가 한 대 있었다.

S방송국에서 투입한 카메라였는데, 중계 카메라가

아니라 경기 초반 영상만을 담은 채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사진 속 카메라가 찍은 영상은 같은 날

‘1시간 빠른 뉴스’에 10초간 전파를 탔다.

오랜만에 선발출장한 노승준체교 08, F. 전반에는 2득점에

그쳤지만, 후반 9득점을 올리며 베스트 5의 체면을

지켰다.

3가드 시스템. 코트에 3명의 가드가 뛰는 작전을

말하지만, 이날 만큼은 달랐다. 약 20명의 인원 중

투입가능한 재학생 가드는 단 3명. 신정섭체교06과

정창영체교07, 고재호체교09였다. 그 외 김태주체교06,

정대한, 홍세용, 정범수체교 07 등의 가드들은 부상

등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벤치만을 지켰다. 10학번이

없었다면, 힘든 경기가 될 수 있었던 한판이었다.

경기 전 양팀 벤치는 협회 관계자에게 공통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내년 입학할 신입생들도 경기에 뛸

수 있는냐’는 질문이었다. 최성오 사무국장의 싸인은

OK! 우리학교는 박재현과 이정제, 염승민, 이관기가

나와 톡톡 튀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박재현과

이정제는 각각 11득점(3점슛 3개), 14득점을 올리며

신입생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관기를 제외한

3명의 신입생들은 실책을 5개나 저지르는 미숙한

점도 보였다.5

고대 유니폼을 입고 뛴 첫경기다. 소감은.

박 : 25분 정도 뛴 것 같은데,

역시 첫경기라 그런지 굉장히 들떴다.

신입생 중 활약이 돋보였다.

이 : 어리니까 열심히 뛴 것밖에 없다.

그래도 형들이 플레이하면서 많이 도와줬다.

경희대 신입생 김종규와의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이 : 종규랑 같이 경기 뛴 것은

여지껏 통틀어 오늘이 처음이었다. 골밑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겁 없는 새내기! 박재현, 이정제

mini Interview

기분좋은 하주장. 주장센터인 하재필체교06,C은

경기가 끝나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미소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재필이 올린 득점은 양팀

최다인 26점. 공교롭게도 전반 13점, 후반 13점을

기록하며 자신이 팀의 중추임을 입증했다. 그가

있기에 다가올 농구대잔치는 걱정이 없다.

photo sketch

Page 19: SPORTS KU VOL14

34 35

special report

Home & Away League

sports Ku

special report

고봉준 기자 │ 사진 이정민

드디어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달 4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대학농구연맹 그리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11개 대학 총장 등 정부 및 농구계 관계자들이 대학농구의 홈앤어웨이

리그 출범을 공식발표한 것이다. 대학농구계의 염원이라 불리는 홈앤어웨이 리그. 그 출범의

의미와 진행 과정 그리고 개선 방안 등을 알아본다.

왜 홈앤어웨이 리그인가

이번에 출범한 홈앤어웨이 리그는 대학농구의 염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농구계는 왜 다른 것도 아닌 ‘홈앤어웨이’에

집착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대학선수들이 ‘공부하며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점이다. 홈앤어웨이 리그의 전제 조건은

대학연맹이 주최하는 2개의 연맹전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지방에서

열리는 연맹전의 폐지는 선수들에게 지방원정의 부담감을 줄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곧 시간적 여유로 환원되고 선수들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비용과 시설 문제 등으로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한 채

몇 년이 흐르고 말았다. 그사이 대한축구협회가 U리그를 지난

해부터 출범시키며 대학농구 관계자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홈앤어웨이 리그가 다시 농구계 이슈가 된 것은 올 초

모창배 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이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모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홈앤어웨이 리그 출범을 자신의 제1과제로 내세웠다.

조금은 급작스런 발표

하지만 리그 출범은 예상외로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 2차연맹전이

한창이던 지난달 4일 정부가 나서 대학농구리그 개막을 알린

것이다. 모창배 회장은 월간 농구잡지 점프볼과의 취임 인터뷰에서

“홈앤어웨이 리그 정착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기에, 4일 있은

공식간담회는 ‘좀 성급했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급작스런 발표’의 성과는 컸다. 먼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전면에

나서자 매스컴은 앞다투어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발표된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체훈련을 금지하고,

2016년부터 농구 특기자 선발시 최저학력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은

그간의 대학스포츠 정서를 바꿔놓는 것이었다.

발표 2주만에 개최된 시범리그

정부의 발표 뒤 홈앤어웨이 리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주 뒤인

19일 우리학교와 경희대의 시범리그 개막전이 펼쳐진 것이다.

2차연맹전이 끝나고 숨돌릴 틈도 없었던 두 팀은 연습경기를 하듯

개막전을 치렀지만, 의미만큼은 특별했다. 경기가 열렸던 이공대

체육관에는 정부 관계자와 농구인들 뿐만 아니라 소식을 들은 일부

학생들도 자리했다.

개막전을 성공리에 마친 홈앤어웨이 리그는 이후 각 학교

캠퍼스에서 하루 한 경기씩 치러지며 2주간의 일정을 무사히

끝마쳤다.

물론 실험적 성격이 짙었던 시범리그였던 만큼, 리그 도중

나타난 문제점도 있었다. 우리학교에서 열렸던 개막전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일러주었다. 개막전 일정을 성급하게 잡은

까닭에 경기는 화정체육관이 아닌 이공대 체육관에서 열렸다.

입시 시험관계로 화정체육관에서 개최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역사적인 홈앤어웨이 개막전을 치르기엔 이공대 체육관은 너무나

초라했다. 개막전을 좀 더 나은 체육관에서 여는 협회의 운영의 묘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정식리그는 어떻게 진행되나

시범리그는 대학농구리그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내년부터 시작될

리그는 어떻게 진행될까.

대학농구연맹은 리그를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3월에 첫 번째 리그를 열고 가을에 두 번째 리그를 여는

방식이다. 진행방식은 홈앤어웨이라는 이름처럼 각 학교 체육관에서

홈팀과 원정팀의 구도로 짜여지고, 하루에 한 경기를 원칙으로 한다.

또한 선수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단체훈련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남는 대회, 사라지는 대회

현재 대학팀이 나갈 수 있는 대회는 MBC배와 1·2차연맹전,

농구대잔치 그리고 종별선수권과 전국체전이다. 이중에서

대학농구연맹이 주최하던 두 개의 연맹전1·2차 연맹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방송사가 후원하는 MBC배는 유지할

예정이다. ‘대학농구의 꽃’ 농구대잔치도 그대로 남는다. 변수는

종별선수권인데, 종별선수권 참가는 관행적으로 팀들의

선택사항이었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종별선수권에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개선 방안은 아직 산더미

리그는 내년에 출범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개선 방안은 산더미다.

먼저 체육관 시설이 급선 과제다. 우리학교의 경우 화정체육관을

홈으로 사용한다면 제외되지만, 몇몇 학교의 경우 낙후된 체육관을

사용하는 곳이 더러 있다. 연세대의 경우만 하더라도 실내체육관이

낡아 선수들의 부상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관람 공간도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연세대 실내체육관은 기껏해야 2백명 정도의 관중만을

수용할 수 있다. 우리학교도 사정상 이공대 체육관에서 경기가

펼쳐진다면, 관람 시설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실제로 경희대와의

시범리그 개막전에서 일부 관중들은 체육관 입구에 서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코트 안 실무적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

협회와 연맹의 홍보 노력도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대학농구를

홍보하는 루트는 전무하다. 일반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교가

어느 대회에 나가는지조차 모르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들을

농구코트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홍보밖에 없다. TV중계나 신문

광고 혹은 인터넷 광고는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좋은 도구들이다.

농구보다 리그제를 먼저 도입한 대학축구 U리그의 경우, 홍보

부족으로 경기장이 텅텅 비는 날이 부지기수이다. 리그 출범을 4달여

앞둔 상황에서 대학축구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상민-우지원-현주엽-그리고?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모두 90년대 대학농구가

낳은 슈퍼스타들이다. 하지만 이들 이후 대학농구에서 나온 스타는

제로에 가깝다. 이들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농구리그는

이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장場이다. TV로만 보던 선수들이

학교 도서관 옆 농구코트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다. 대학농구 홈앤어웨이 리그가 중흥을 위한

발판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또 하나는 ‘대학농구 부활’에 있다. 90년대 마지막승부 세대라

불리던 선수들이 떠나간 지금, 대학농구는 침체기에 빠져있다. 다른

스포츠가 그러하듯, 프로에 밀려난 대학농구는 언론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홈앤어웨이 리그는 대학농구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리는 경기를 많은

재학생들이나 OB들이 관람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홈앤어웨이 리그가 노리는 효과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됐나

대학교 캠퍼스에서 이뤄지는 홈앤어웨이 리그의 필요성은 최근 몇

년간 대두되어 왔다. 실제로 리그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했다.

대학농구계의 염원 홈앤어웨이 리그 출범

Page 20: SPORTS KU 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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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정책과장

박위진 인터뷰

special report

농구 대잔치

sports ku

갑작스럽게 문화체육관광부가 전면에

나서 대학농구리그 출범을 발표했다.

원래 계획에 있었나.

당연히 이전부터 계획하던 일이었다.

대학농구리그의 모토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공부하는 운동부’이다.

학교체육의 실상을 다뤘던 시사 프로그램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가 아니다. 공부하는 운동부를 만드는 것이 핵심 목표다.

구체적인 방법이 몇 가지 제시되었다.

우선 오후 3시 이전에는 단체훈련을 금지하는 것이다. 3시 이전에는 운동부 학생들이 수업을

모두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훈련을 하도록 해야한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학교 캠퍼스에서 리그가 진행되니까 전보다 부담이 줄 것이다.

한국판 NCAA미국대학농구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다만 조건이 있다. 총 세가지인데, 2개는 앞에 나온 3시 이전 훈련 금지와 모든 선수가

수업을 듣는다는 조건이다. 나머지 하나는 최저학력제 도입이다. 우리나라 운동부 학생들은

일생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농구를 하려면 공부도 해야한다’는

개념을 확립할 계획이다. 최저학력제는 지난 간담회에서 11개 대학 총장, 부총장이

공식적으로 싸인한 부분이다.

대학에서 최저학력제를 도입하려면

하위교육기관인 중고등학교에서도 움직임이 있어야 할텐데.

지금 학교체육법이 발의 중인데, 운동부 학생의 고교 성적이 최저 95% 안에는 들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성적이 96%대에 드는

체육특기자들이 전체 46%라는 점이다. 이점을 잘 보완한다면, 대학 최저학력제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 가운데에는 정부가

11개 대학에 각각 1억원씩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지원 과정과 그 쓰임새를 알고 싶다.

1억원은 이미 지원이 끝난 상태다. 1억원이 쓰일 곳은 역시나 학교 체육관이다. 고려대만

하더라도 화정체육관 같은 수준급 시설이 있지만, 변변한 관중석이나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있지 않은 학교도 있다. 지원금은 체육관 시설을 개보수 하는 데에 쓰일 것이다.

앞으로 대학농구리그에 관한 계획은.

오늘부터 시범리그가 시작됐고,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정규리그가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한 라운드는 2-3달에 걸쳐서 열릴 예정이다. 대학농구연맹이 주관하던 1·2차 연맹전은

폐지된다. 방송사KBS에서도 대학농구리그와 관련한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앞으로

대학농구리그에 일반 대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코끼리의 추억

1983년 추억의 ‘점보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첫 대회가 시작됐다.

80년대 우리나라의 농구는 삼성과 현대라는 재계 라이벌의 자존심

대결이 펼쳐졌다.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선수들이나 코치진은

물론, 팬들이나 두 기업 사원들까지 경기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삼성전자의 故 김현준과 현대전자 이충희경영77의 라이벌 슈터 대결은

경기 결과 외에도 팬들의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현재 프로농구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들은 대개 점보시리즈 시대에 활약하던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다.

중앙대를 넘어 기아로

실업 재계전자 라이벌 양강 구도는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커다란

강자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는다. 현재까지도 대학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중앙대의 ‘고공농구’다. 한기범, 김유택으로 대표되는 센터진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았던 덩크슛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농구계의 최고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허재의 등장으로 중앙대는

삼성과 현대의 충분한 대항마가 될 수 있었다. 이시절 허재는

단국대와의 한 경기에서 혼자 75점을 넣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시즌 한국야구 최정상에 오른 기아가 유명하던 곳은

야구가 아니라 농구였다. 중앙대의 전성기를 이끌던 한기범, 김유택,

허재, 강동희 등이 고스란히 기아로 팀을 옮기며 농구대잔치에서

기아의 전성시대를 이끌어갔다. 중앙대의 ‘고공농구’에 매료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기아로 팀을 옮기게 되었고, 기존 현대-삼성

재계 라이벌 경기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고연전과 오빠부대

중앙대와 실업팀의 위세에 눌려 있던 두 사학 명문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83년 농구대잔치의 성공 여파로 인해

이른바 ‘농구대잔치’ 세대들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 시점은 바로

90년대 초중반이다. 현재 한국프로농구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상민-서장훈-우지원으로 대표되는 연세대와

이충희-임정명경영77 이후 침체기를 맞았던 고려대는 전희철신방92-

김병철체육92-양희승체육93-현주엽경영94-신기성체육94 등 학교의

전폭적인 스카웃을 통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수많은 팬들은

이들의 불꽃 튀는 플레이에 열광했고, 방송가에선 예능 및 드라마

소재로 농구를 이용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농구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고려대와 연세대로 대표되는 대학농구의 패기에 실업팀이

심심치 않게 덜미가 잡히며 농구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져 갔다.

프로가 뭐길래

프로농구가 시작되고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며 팬들의 눈은 한층

즐거워졌다. 쉽게 보기 힘들었던 덩크슛을 다반사로 성공시키고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줬다. 외국인 선수들의 파워넘치는 플레이에

농구팬들의 관심은 대학에서 프로로 옮겨갔다. 그 결과 프로농구가

한국 프로스포츠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90년대의

대학농구 라이벌전만큼 화제거리나 팬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농구대잔치 세대

90년대 농구대잔치를 통해 화려한 선수 시절을 시작해

한국프로농구의 발판을 만들어낸 선수들이 서서히 한국

프로농구계에서 하나둘 은퇴하고 있다. 전희철의 은퇴부터 시작해

올시즌 현주엽의 은퇴까지. 그리고 서장훈, 이상민이 아직까지도

올스타 팬투표에 선정되고 있는 이 시점, 한국농구에 절실한 ‘스타’가

필요하다. 새로 도입될 U리그와 기존의 농구대잔치는 새로운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키움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스타플레이어를 꿈꾸는 대학농구 선수들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쉬지않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26년이 지난 지금…

농구대잔치가 26년을 맞는 지금, 경기 평균 관중은 얼마나 될까.

학부모 및 관계자들을 포함해 200여명이 찾는다. 예전 과거의

향수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상황에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만의 잔치로 변해버린 것이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시즌 대학농구의 활성화를 위해 홈앤어웨이 리그 방식으로

치르는 U리그 도입을 발표했다. 대학농구에 모교를

응원하는 팬이 생기고 스타가 탄생한다면

우리나라 대학농구도 미국의 NCAA 모습처럼

발전하거나 90년대 화려했던 대학농구의

르네상스가 찾아오기를 소망해본다.

한국

농구

의 산

농구

대잔

여러분들의 어렸을 적 아련한 기억 속에 빨간색 팀과 파란색 팀이 치열하게 펼쳤던 농구 경기를 기억하는가. 잠실 학생체육관과 장충체육관의

수많은 ‘오빠부대’ 속에서 열렸던 서장훈과 그의 고교 1년 후배 현주엽의 대결. 꽃미남 우지원과 피터팬 김병철이 시원한 3점슛을 꽂아대던

그 시절. 추억 속의 그 대회인 농구대잔치가 아직도 열리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가. 1997년 프로농구의 등장 이래 우리들의 아득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농구대잔치를 돌아보려 한다.

Basketball

김명

선 기

Page 21: SPORTS KU VOL14

38 39

1강 3중강 3중 3중약 1약

현재 대학농구 1부리그 팀의 수는 11개.

그 중 52연승에 빛나는 중앙대가 9할에

육박하는 승률(.896)을 기록하며 독주

체제를 형성했고, 경희대, 연세대, 고려대가

6할대 승률로 그 뒤를 쫓고 있었다. 동국대,

명지대, 건국대는 4할, 단국대, 한양대,

성균관대는 3할을 전후해있다. 1부리그로

승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대는 11개 팀

중 최하위(승률 0.106)를 기록 중이다.

대학농구 正中央, 중앙대

2005년 이후 중앙대의 성적은 경이적이다. 5년간 열린 30개

대회에서 무려 11차례 우승했다. 11번 우승은 같은 기간 최다 우승

횟수다. 지난해에 세운 52연승 기록은 덤이었다.

중앙대가 가장 빛났던 시기는 2007년이다. 당시 중앙대는

참가한 다섯 개 대회를 모두 전승으로 우승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시즌 성적은 31승 무패, 한마디로 백전백승이었다. 오세근-윤호영

더블 포스트는 공수 모두 역대 최고를 논할 만한 수준이었다.

강병현, 박성진 등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진 중앙대는 KBL에 있어야

할 팀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격이었다.

사실 중앙대는 프로농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내외곽을

막론하고 좋은 선수를 보유했다. 김주성-송영진-함지훈-윤호영-

오세근으로 이어지는 골밑에, 임재현-황진원-박지현-강병현으로

이어지는 가드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화려함을 자랑한다. 중앙대는

이런 좋은 선수들을 중복 없이 영입하는 뛰어난 리쿠르팅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능한 선수를 중복 없이 스카우트한 중앙대가

대학 최강이 된 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2% 부족한 사학의 명문들

전통 명가인 우리학교와 연세대는 최근 중앙대의 강세에 한 발짝씩

뒤쳐진 형국이다. 우리학교는 주태수, 김영환, 차재영이 주축을

이뤘던 2005년,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special report

University Basketball Ranking

sports ku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올 시즌 부진으로 6할

마지노선도 위험한 상황이다. 매년 반복되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코칭스태프의 불안한 입지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연세대는 ‘코치 K’ 김남기 감독(현 대구 오리온스 감독)과

전정규-양희종-김태술-이광재의 ‘F4’를 앞세워 2006년까지

중앙대와 더불어 대학농구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F4의 졸업과 코칭스태프의 잦은 교체로 2007년 이후로는 기복이

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김만진 감독의 지도력과 안정된

선수층을 바탕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가고 있다.

평준화의 꿈? 5할이 가른다!

지난 5년간의 대학농구를 거시적으로 보면, 리그 평준화는 ‘7-4-7

공약’의 실현 가능성만큼 먼 나라 이야기다. 소위 Big4로 분류되는

중앙대,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는 모두 6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나머지 7개 팀 중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팀은

단 한팀도 없다. Big4 이외의 팀 중 5년간 가장 승률이 좋은 팀은

동국대인데, 성적은 51승 56패(승률 .477)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대학농구계의 평준화는

느리기는 하나 조금씩 진행 중이다. 2007년 이후 재능 있는

고교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삼국대’(건국대, 단국대, 동국대)와

성균관대는 지난해와 올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Big4 이외의 팀이 MBC배, 연맹전,

농구대잔치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결승전 명단에 7개팀의 이름이 없었지만,

2007년에는 단국대(1차연맹전)와 동국대(농구대잔치)가,

2008년에는 명지대(2차연맹전), 건국대(농구대잔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올해에도 동국대가 MBC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한 바 있다. Big4의 아성에 도전하는 팀이 늘어난다는

점은 내년 대학농구리그의 흥행을 위해서는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다가온 대학농구리그 원년, 누가 먼저 웃을까

내년 원년 리그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중앙대와 연세대가

될 전망이다. 중앙대는 졸업예정인 4학년 유종현, 안재욱과 얼리

엔트리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박유민을 제외하면 특별한 전력

공백이 없다. 오세근이라는 대학 최고의 센터가 있고, 07학번부터

09학번까지의 신입생 선발이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중앙대는

내년에도 최고 전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오세근이 지난

3년간 잦은 국제대회 차출로 혹사중이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연세대는 올해 김만진 농구가 자리를 잡았고

김민욱(08학번, C), 박경상(09학번, PG)과 같은 대형 새내기들이

등장하며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졸업예정인 팀의 쌍두마차

박형철, 이정현(이상 06학번, G/F)의 공백이 우려되기는 하나,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김 감독의 시스템이 확립되었기에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고교 최고의 득점기계였던

전준범(10학번, F)이 내년 가세한다는 점도 큰 힘이다.

우리학교는 팀 내부 문제로 올 시즌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종별선수권 우승과 2차연맹전 4강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팀 내부만 안정을 찾는다면 우리학교 역시 내년 리그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다만 확정되지 않은 코칭스태프

인선 문제와 하재필, 방경수(이상 체교 06, C), 신정섭, 김태주(이상

체교 06, G) 등 팀에 꼭 필요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졸업으로

빠진다는 것이 변수다.

왕좌에 이 세 팀이 없다면 아마 그 자리의 주인은 경희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야전사령관 박찬희의 졸업으로 인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10학번 랭킹1위 김종규의 입학은 최부영

감독 얼굴에 살인미소를 짓게 하고 있다. 우리학교와의 시범리그

개막전에서 김종규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다. 대학농구 최고의 지도력을 자랑하는 최부영

감독이 버팀목으로 서있다는 점도 경희대의 우승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리그 흥행, 중위권 활약이 좌우

11개 대학팀 중 단 4개 팀만이 우승을 놓고 싸움을 벌인다면,

대학농구리그의 흥행요소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승률

반타작을 거두지 못한 나머지 대학들의 활약여부가 중요한 상황.

세대교체에 성공한 동국대,

성균관대, 건국대, 단국대는 내년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삼국대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며 선두권

행렬에 끼어든다면, 보는 재미는

더욱 쏠쏠할 것이다. ‘무너진 명가’

한양대의 부활 여부도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한양대는 최근

2년간 9승 24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매 대회마다

하위권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들 중위권 팀들이 힘을 낸다면,

대학농구리그는 여느 때보다

평준화된 전력차로 치열한 싸움이

전망된다.

대학농구 최강자를 가린다!

기록으로 보는 기록우리학교와 연세대 간 전적은 7승7패로 호각세다.

정기전에서는 우리학교가 4승1패로 연세대를 앞서나,

정기전 이외 경기에서는 연세대에 3승6패로 열세다.

우리학교는 막강 중앙대를 상대로

3승10패(승률 .231)로 절대 열세였다. 같은 기간

우리학교는 ‘중앙대전 10연패’라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같은 기간

중앙대를 상대로 우리학교보다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한

팀은 연세대(4승10패, 승률 .286)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학교, 경희대, 연세대를 제외한 7개 대학은 5년간

중앙대를 상대로 이긴 적이 없다.

Big4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팀은 최근 5년간

MBC배, 연맹전,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Big4 이외 대학팀이 이 세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은 2001년 MBC배였다. 당시 우승팀은

성균관대였고, 주축 선수는 정훈, 진경석, 이한권,

옥범준 등이었다.

Big4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팀 중 우리학교

상대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은 동국대(5승4패)다.

동국대는 Big4 이외 대학 중 우리학교와의 전적에서

앞서는 유일한 팀이다. 한양대(4승6패) 역시 유난히

우리학교에 강한 편이었다. 한양대 이상영 코치는

“선수 시절에는 가끔씩 고려대를 잡을 때가 있었다”며

우리학교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가 있다.

2010년 출범을 앞둔 홈앤어웨이 대학농구리그. 역사적인 리그 원년을 맞이해 SPORTS KU가 지난 5년간의 대학농구 판도를 정리해 보았다.

대한농구협회 홈페이지(www.koreabasketball.or.kr)에서 열람 가능한 2005년 MBC배부터 2009년 2차연맹전까지의 기록을 통해 그동안

대학농구 최강팀과 우리학교의 위치를 가져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기록을 산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05년 MBC배 대회부터

2009년 2차연맹전까지 1부리그

대학팀들 간의 경기만을 계산한다. (2009

홈앤어웨이 시범리그 결과도 제외한다.)

둘째, 2부리그 대학팀들과의

경기는 제외한다. 1부리그 대학팀들은

종별선수권대회와 전국체전에서 2부리그

팀들과 경기를 갖기도 한다.

이 경기들은 모두 제외했다.

셋째, 국군체육부대상무와의

경기는 포함한다. 상무는 2005년 이후

전국체전과 농구대잔치에서 1부리그 팀을

상대로 29승8패(승률 .784)라는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넷째, 정기고연전 농구 경기 역시

포함한다. 2005년 이후 고연전 성적은

고려대가 4승 1패로 연세대를 앞서 있다.

총 593경기! 그들이 펼친 지난 5년간의 결과는?

고려대 승 패 승률

2005 24 7 0.772006 10 8 0.562007 14 10 0.582008 14 11 0.562009 4 15 0.44

TOTAL 66 41 0.62

연세대 승 패 승률

2005 20 10 0.672006 18 10 0.642007 11 6 0.652008 7 10 0.412009 18 3 0.86

TOTAL 74 39 0.65

중앙대 승 패 승률

2005 24 6 0.82006 23 2 0.922007 31 0 12008 18 2 0.92009 7 2 0.78

TOTAL 103 12 0.9

경희대 승 패 승률

2005 17 11 0.612006 20 7 0.742007 13 9 0.592008 16 5 0.762009 12 4 0.75

TOTAL 78 36 0.68

민선우 기자

2005년 이후 1부대학 성적

As of 2009.11.27

순위 팀 승 패 승률

1 중앙대 103 12 0.9

2 경희대 78 36 0.68

3 연세대 74 39 0.66

4 고려대 66 41 0.62

5 동국대 51 56 0.48

6 명지대 48 55 0.47

7 건국대 46 65 0.41

8 한양대 33 69 0.32

9 단국대 30 74 0.29

10 성균관대 24 62 0.28

11 조선대 9 76 0.11

Page 22: SPORTS KU 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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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kie’, 힘차게 지축을 박치고 포효할 신입생들의 입학이

확정됐다. 10월 28일, 우리학교는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선발된

총 56명의 합격자를 발표했다. 각 부 감독의 평가는 전체적으로

“성공적이다”라는 평이다. 이들은 앞으로 4년동안 우리학교

운동부를 이끌어갈 얼굴들이다. 가슴 속에 ‘고대’라는 자부심을 품은

채 그라운드를 누빌 ‘미래의 스타플레이어’를 소개한다. SPORTS

KU는 각 부 코칭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신입생들의 프로필과 주목할

점을 여러분께 제공한다.

scouting reportsports ku

classroom

김명선 기자

노승렬

국내 KPGA 참가 요건은 만 19세 이상이다. 이미 주니어리그를 평정한 그는 국내보단 나이

제한이 없는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14세 때 이미 한국아마추어 골프선수권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최연소 국가대표 자리를 반납한 채 아시아투어에 데뷔한 첫해

신인상을 받으며 ‘무서운 10대’의 힘을 보여줬다. 올해는 10개 대회에 출전해 절반인 5번 톱

10에 오르는 등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노승렬의 장점은 300야드에 가까운 장타를

날리며 세계적인 선수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미 PGA 진출이 목표”라는 노승렬은

“3년 안에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2010 신입생 SCOUTING REPORT

이정민

올 6월 KLPGA 정회원에 입회한 이정민은, 9월 KLPGA 드림투어(2부) 11차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국가대표를 지낸 이정민은 일송배, 호삼배, 송암배와 미국

AJGA 주관 대회 우승 등을 차지한 실력을 이미 검증 받은 유망주로 손꼽힌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게 되는 이정민은 지난해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한 선수. 173㎝, 63㎏의 체격조건을

갖춘 이정민은 드라이버 샷 비거리가 270야드나 되는데다 정교한 아이언 샷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대주다. 꾸준한 성적으로 내년 시즌 정규투어에서 뛸 수

있는 상위시드권을 확보했다.

이은별

2010 벤쿠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다. 지난해 최정원, 김윤재, 유동균이하 체교09 등

3명의 쇼트트랙 선수를 입학시킨 데 이어 또 한명의 쇼트트랙 스타가 입학한 것이다. 이은별은

‘Ace’ 조해리와 더불어 효자 종목 쇼트트랙의 ‘금맥’을 이어갈 기대주다. 작은 체구지만 힘이

좋아 추월 시 인코스주법을 주로 활용하는 편이다. 올시즌 열린 4차례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1,500m 종목에서 꾸준히 메달을 수상하며 내년 2월 벤쿠버에서 열릴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여자 단체 계주에 출전할 최정원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천으로 입국할

그녀들의 환한 미소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올해 드래프트의 승자는 고려대다.” 프로 모 팀의 스카우터가 드래프트 직후 내뱉은 말이다.

그만큼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우리학교 입학을 선택했다. 아시아청소년대표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 출신이 4명, 그 중 3, 4번 타자였던 문상철과 김경도도 포함되어 있다.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도 5명이나 된다. 우수한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온 만큼 기존 야구부 선수들도 무한 경쟁

시대를 맡게 되었다. 치열한 주전 경쟁 속에 내년 야구부 시즌은 이래저래 많은 기대가 된다.

①이름 ② 출신교 ③ 포지션 ④ 신체조건 (키/몸무게) ⑤ 특이사항

golf

baseballsh

ort t

rack

이희웅대구고

투수(우/우)180/80

- 고교 최고의 포크볼을 소유하고 있으며 체인지업이 좋음.

- 박주환과 함께 즉시전력감임.

강하늘강릉고

투수(좌/좌)183/80

- 강릉고 에이스로 활약했음.- 체격이 좋아 장래가 기대됨.

최현철서울고

1루수(우/좌)186/84

- 청소년대표 출신. 체격조건이 좋아 타구에 힘을 실을 줄 앎. 수비나 주루에 연습 필요.

- 정교함을 조금 가다듬는다면 팀의 거포로 성장 기대.

김건효장충고

유격수(우/좌)178/72

- 유격수로서 안정된 수비력을 갖췄다.

- 주루플레이에 능한 준족, 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 지명을 받음.

- 고교 No.1급의 유격수였음.

김재연장충고

투수(좌/좌)178/80

- 중학 시절 전국 최고의 투수였음.

- 변화구의 낙차가 크고 공끝의 변화가 심함.

- 1년간의 성공적인 재활을 거친다면 팀의 좌완 마운드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임.

조우형경기고

포수(우/우)180/80

- 경기고 주장 출신으로 파이팅이 좋다.

- 팀의 4번타자였고 수비는 그 어떤 포수보다 뛰어나다.

이정윤경남고

2루수(우/좌)179/74

- 현 경남고 감독 이종운의 아들

- 고등학교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고교 최강 경남고의 3번타자였음.

- 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지명을 받음.

황석호상원고 3루수(우/우)175/74

- 상원고 시절 팀의 주장으로 팀을 전국 대회 최강으로 이끄는 데에 일조함.

- 고교 마지막 대회인 체전에서 금메달 획득.

- 안정된 내야 수비를 펼치며 고교 시절 4번 타자를 맡았음.

박주환신일고

투수(좌/좌)180/78

- 좌완이 부족한 우리학교 마운드에 큰 보탬이 될 즉시전력감.

- 고3 시절 8승(2패) 방어율 1.80을 기록하며 전체 다승 3위를 기록.

- 최고 구속 138km대의 직구 이외에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 제구력이 뛰어남.

조윤성경기고

중견수(우/우)186/83

- 아시아청소년대표 출신. 2010 드래프트에서 두산에 지명.

- 신체조건이 좋고, 타격의 정교함을 갖추고 있음.

- 1번타자 출신으로 빠른발이 장점. 넓은 외야 수비 범위를 자랑함.

문상철배명고

3루수(우/우)183/74

- 청소년대표 출신. 드래프트에서 두산에 지명. - 청대에서 주전 3루수 및 클린업트리오의 3번타자를 담당.

- 고교 주장 출신으로 파이팅이 좋다. 포구엔 자신있어하나 송구 연습이 필요.

- 밀어치는 능력 및 정확한 타격을 갖춤. 송추 야구장을 넘길 힘을 가지고 있음.

김경도덕수고

외야수(우/좌)179/82

- 아시아청소년대회 결승전 일본전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 청대의 4번타자.

- 고교 최고의 타자였으며, 공을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다.

- 발이 빠르고 어깨도 강한 편. 3루수 및 우익수를 볼 수 있어 다양한 활용 가능.

- 2010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지명.

개인종목

야구

2010 KOREA UNIV SPORTS TEAM

글│사진 김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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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room

2009년 럭비부는 춘계리그와 대통령기럭비선수권대회에서

연세대에 잇달아 패하며 정기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었다.

2009년 럭비부의 화려한 부활을 각오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할

것이 럭비밖에 없다’는 송추에서 합숙을 해왔지만 결국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작년부터 이어진 연세대전 5연패는

끊었지만 아직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 재학생들과 함께 고대럭비의

부활을 이끌 13명의 새 식구를 소개한다.

①이름 (체교 or 사체) ② 출신교 ③ 포지션 ④ 신체조건 (키/몸무게) ⑤ 특이사항

김현우(체교)사대부고

C.T.B178/92체격이 좋고 돌파력이 뛰어난 선수이다. ru

gby ①

럭비

이시현(체교)백신고

LOCK184/102근력이 강하고 태클이 좋다

안진훈(체교)양정고

F.L182/90돌파력이 좋아 공격시에 기대가 되는 선수.

안상현(체교)서울북공고

PROP175/105포지션에 비해 큰 체구는 아니지만 스크럼을 잘 짜며 공격시에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조성재(사체)사대부고

F.L175/90부지런하고 수비가 좋아 포워드 라인의 살림꾼 역할이 기대된다.

문종대(체교)성남서고

F.L178/85판단력이 좋고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종호(사체)양정고

F.L181/80F.L포지션의 선수치고는 빠른 발을 가졌고, 작전 수행능력이 뛰어나다

김기성(체교)서울북공고

F.B186/80킥이 좋고 공간활용능력이 뛰어나 백스 라인의 유망주이다.

이성재(체교)배재고

NO.8188/90신입생 중 최장신이며 큰 키를 이용한 라인아웃에 강하다

이명준(체교)부천북고

S.H174/68빠른 상황판단과 빠른 발을 이용한 전개플레이가 기대되는 선수이다. 기술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어서 앞으로 경험을 잘 쌓는다면 큰 발전이 기대된다.

황규범(체교)양정고

S.O180/75경기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날카로운 패싱능력을 보여준다. 야구에서의 배터리와 같이 이명준과 호흡을 잘 맞춘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임요한(체교)양정고

PROP182/115힘이 좋아 공격시에 대쉬할 때 파괴력이 있다. 체형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정효진(사체)서울북공고

F.L180/97별명이 ‘태클머신’일 정도로 강한 태클을 보여준다.

럭비부의 부활을 이끌 13명의 새 식구

scoutng report

2010 KOREA UNIV SPORTS TEAM

10학번 축구부 신입생으로는 모두 13명이 선발되었다.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에 걸쳐 전 포지션이 선발되었고, 청소년 대표 출신도 5명이나 된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선수는 언남고 출신 최성근. 최성근은 이번 이집트 U-20 월드컵에 출전한

청소년 대표 가운데 유일한 고등학생으로, 입학 전부터 큰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성근은 수비수부터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 4학년의 졸업으로 생긴 포지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적재적소에 활용

될 것으로 보인다.

football축구

Sports Ku

김경중금호고

FW178/67

-아시아 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선수권 대회 참가, 1골 기록

-문화체육관광부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수훈상 수상.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돌파와 지치지 않는 체력. 재능있는 공격 자원.

이재관장훈고

MF172/65

-고등부 전국축구리그 서울지역 득점 1위, 12경기 12골 기록

-아시아 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선수권 대회 참가, 2골 기록

-스피드와 볼 센스, 동료를 활용하는 패스플레이가 우수.결정적인 순간 침착한 플레이를 하며 골 결정력도 좋다.

김우현청구고

MF181/68

-위협적이고 빠른 돌파로 상대수비진영을 무너트림. 전북현대의 최태욱과 흡사한 플레이를 하는 윙어.

정희수언남고

DF175/68

-발이 빠르고 골 결정력이 좋다.

노동건통진고

GK191/83

-U-20 대표팀

-아시아 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선수권 대회 참가

-정확한 골킥, 탁월한 경기조율 능력.

임동천백암고

DF/FW184/73

-U-17 월드컵 참가, 8강 진출

-U-16 아시아 청소년 축구 4강 진출

-공격과 수비를 오가는 멀티 플레이어. 우수한 체격조건을 갖춰 파워가 좋고 공중 볼에서 강세를 보인다.

정석화 금호고

MF170/58

-U-18-드리블과 돌파 실력이 좋다.

송주호과천고

MF187/77

-42회 대통령 금배 전국고교 축구대회 최우수선수상

-U-18 대표

-순간적 움직임과 수비 조율능력이 우수. 키가 크고 탄력이 좋아 제공권이 좋고, 수준급 킥력까지 갖췄다.

최성근언남고

MF182/62

-2009 제 45회 추계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전 최우수선수상

-이집트 U-20 월드컵 청소년 대표 중 유일한 고교생

-강한 승부근성과 체력. 뛰어난 발재간, 경기 조율능력이 우수.

김훈성경신고

MF/FW

-고등부 전국축구리그 북부리그 득점 4위

-순간 측면 돌파능력과 침투력, 크로스가 좋다. 빠른 발과 화려한 드리블 실력을 갖춘 측면 공격수

선승우보인정보고

FW180/72

-U-18-드리블을 즐겨하는 기교축구파. 박주영과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

김건영신한고

FW175/67

-U-15 대표

-승부욕이 높아 열정적으로 플레이한다.

-경기 흐름을 잘 읽고, 패스가 정확하다.

정기훈과천고

MF178/67

-U-17 대표

-강한 승부근성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

공격진에 가세한 김경중과 장신 골키퍼 노동건도 주목할 만하다.

빠른 발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장점으로 하는 김경중은 공격진에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통진고 출신 골키퍼 노동건은 각급

대표팀을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유망주다. 홍명보가

이끄는 U-20 대표팀에 여러 차례 선발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쉽게도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이번에 선발된 신입생들 중 특이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를 축구선수로 둔 ‘축구스타 2세’ 선수가 둘이나

있다는 것이다. 김훈성과 송주호가 그 주인공. 경신고 출신의 측면 공격수 김훈성의 아버지는 7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던 김진국. 또한, 과천고에서 선발된 중앙수비수 송주호는 성남 일화 코치인 송명원의 아들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이들 선수들이 입학 후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혜진 기자

이진석 기자│사진 엄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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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2010년 아이스하키 신입생 스카웃에서 풍부한 포워드 자원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디펜스 자원을 한명만

영입하는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비해 연세대는 청소년 대표 출신의 고교 랭킹 탑 디펜스 4명을 영입했을

뿐만 아니라 보성고 골리 한재익을 영입하며 더욱 단단한 뒷문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우리학교는 현재 가장

시급한 골리 영입에 실패했다. 이원체교06이 졸업함에 따라 골리 강태우체교07 홀로 골대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학교 빅터 리 감독은 이번 스카우트에 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디펜스와 골리 자원을 영입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은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다”고 평했다. 또한 “신입생들이 입학 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성실하게 운동한다면 많은 경기 출장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센터 보강이 아쉬운 2010 스카우트였다. 졸업반 하재필과 방경수가 빠지는 우리학교로서는 센터 보강이

시급했다. 2,3학년 중 2m가 넘는 선수는 유성호(201cm) 한 명뿐. 결국 이번 스카우트에는 2m 장신 센터가

얼마냐 보강되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결과는 이정제(205cm) 단 한 명. 김종규, 김병오, 김민필, 안진모 등

많은 장신 센터들이 나온 올해 스카우트에서 2m대 센터를 한 명밖에 뽑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리학교의 고질적 병폐였던 ‘포지션 중복 영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우리학교는

포지션별로 가드 3명, 포워드 3명, 센터 1명을 선발하며 포지션 중복을 최소화했다. 최근 몇 년간 중복

영입은 농구부 사태의 불씨가 되기도 했는데, 코칭스태프가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 선임 문제로 최근 고교 대어급들을 다른 대학에 빼앗기고 있는 우리학교 농구부. 내년에는 더 훌륭한

신입생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①이름 (체교 or 사체) ② 출신교 ③ 포지션 ④ 신체조건 (키/몸무게) ⑤ 특이사항

①이름 (체교 or 사체) ② 출신교 ③ 포지션 ④ 신체조건 (키/몸무게) ⑤ 특이사항

아이스하키

박진규(체교)중동고

LW170cm / 67kg

- Jr.대표, 같은 신입생 공격수 안진휘와 달리 체격이 작음

- 작은 체구에 비해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다.

- 바디체킹을 겁내지 않으며 몸싸움을 즐겨 하는 공격적인 선수.

이창용(체교)보성고

RW178cm / 78kg

- 올해 고교대회 결선에서 많은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

- 스케이팅이 뛰어나며, 높은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다.

한대희(체교)광성고

LW175cm / 67kg

- 감독이 한호택(체교 06)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 아직 몸싸움이 약하긴 하지만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안진휘(체교)경복고

RW179cm / 71kg

- Jr.대표, 고교랭킹 1위 공격수로 평가 받는다.- 큰 키를 바탕으로 한 신체조건도 뛰어나다.- 스피드와 테크닉이 다른 선수들보다 좋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으며 하키 센스가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 우리학교의 신형윤(체교 09)과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공격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예상.

이현승(체교)보성고

CF175cm / 70kg

- Jr.대표, 박진규와 초등학교 유소년 클럽 때부터 같이 운동했다. 같이 운동해서인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 같이 운동을 해온 박진규가 힘을 바탕으로 하는 몸싸움을 즐기는 플레이를 펼친다면 이현승은 빠른 스피드를 위주로 하는 플레이를 선호.

이창엽(체교)중동고

RD179cm / 85kg

- 이번 신입생 중에 유일한 수비수로 큰 체격을 가지고 있고 힘이 좋다

-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뛰어난 디펜스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 파워풀한 플레이에 비해 아직 밸런스가 부족한 게 흠이다. - 대학에서 기본기만 충실히 잡아준다면 김혁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변민식(체교)중동고

RW174cm / 68kg

- 중학교 때 운동을 잠시 쉰 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기본기가 부족한 편이다.

- 스피드가 뛰어나며 성실한 운동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scoutng report

2010 KOREA UNIV SPORTS TEAM

basketball

박제현(체교)경복고

G185cm / 81kg 전준범(연세대), 김순재(동국대)와 함께 경복고 Big3 출신의 대형가드.우리학교 스카우팅 1순위로 언급됐던 박재현은 신장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특급가드다. 3년 동안 박재현을 지도해 온 경복고 김대환(체육 98) 코치는 “팀에 해결사 전준범도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을 박재현에게 맡긴 경우가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학수준의 고교팀을 이끌던 리딩가드였기에 대학무대에서도 실전투입이 가능한 선수다.

염승민무룡고

G183cm / 77kg무룡고를 고교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전도유망한 포인트가드얼마전 U-16 아시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거둔 김승환 감독의 제자이기도 한 염승민은 별명이 ‘연습벌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돌파는 연습이 가져다준 특기. 올 8월 우리학교 총장배 고교농구대회에서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장래성 밝은 포인트가드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서후겸동아고

F188cm / 80kg부산에서 올라온 멀티플레이어부산동아고에서 함께 올라온 이정제보다는 덜 알려져 있는 포워드 서후겸. 이상국 감독은 “(서)후겸이가 정제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슈팅이 뛰어난 재목감”이라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후겸이가 고등학교 내내 전국대회에서 활약했다”고 덧붙였다.

이정제(체교)동아고

C205cm / 95kg10학번 유일의 센터. 그의 키는 무려 205cm.경희대와의 대학농구 홈앤어웨이 시범경기가 있던 11월 19일. 센터 방경수(체교 06)가 빠진 자리를 채운 이는 다름 아닌 신입생 이정제였다. 많은 이들은 이정제를

‘가다듬을 부분이 많은 센터’로 여겼지만, 경희대 신입생 특급센터 김종규와의 매치업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으며 깔끔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정제가 토종 센터들의 약점인 호리호리한 몸을 늘린다면, 하재필과 방경수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내년부터 주전 한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인다. 부산동아고 이상국 감독은

“(이)정제가 농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장래성이 유망한 센터”라며 제자를 치켜세웠다.

이관기광신정산고

F194cm / 85kg194cm의 보기드문 장신슈터이관기의 고등학교 3년 선배인 유성호 (체교 07, F)는 이관기를 ‘보기드문 장신슈터’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이관기는 194cm, 85kg의 좋은 신체 조건으로 슈팅을 쏘는 소위 막기 힘든 선수다. 포지션은 2번과 3번을 소화할 수 있다.

하주성휘문고

G188cm / 82kg맥끊긴 휘문고 라인을 잇는 3점슈터8월 24일. 우리학교 화정체육관에서 낙생고와 휘문고의 결선 경기가 펼쳐졌다. 준결승 진출을 향한 마지막 경기. 승부는 낙생고의 승리로 끝났지만, 휘문고의 하주성은 이날 3점슛을 4개나 쏘아올리며 14득점 활약을 펼쳤다. 팀은 패배했지만, 하주성의 진가를 나타낸 경기였다.

농구

Sports Ku

iceh

ocky

고교농구 대어大漁들, 그들은 어디로?

고교 최대어라 불렸던 김종규는 경희대 유니폼을 입었다. 낙생고 출신의

김종규는 우리학교와의 홈앤어웨이 시범경기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이

대학 최고 신입생임을 입증했다. 이외에도 신장 218cm(208cm가 아니다)에

빛나는 김병오는 센터 사관학교 중앙대로 진학했고, 삼일상고 3인방인

김민구, 진정호, 김영현은 모두 경희대 최부영 감독과 손을 잡았다. 연세대는

고교 최고 포워드 전준범(경복고, 194cm)과 김창모(부산중앙고, 193cm)를

영입하며 포워드 라인에 날개를 달았다. 한편, 올해 우리학교를 자퇴한

09학번 임준수는 예상대로 성균관대 10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김세호 기자│사진 엄재용

고봉

준 기

자│

사진

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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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야생마, 이상훈

FC서울의 수문장, 김호준

Inside KU

교내경기 축구 결승

교내경기 농구 4강

PEOPLE

체육인 박민호

MEMORIES

럭비, 98 방콕아시안게임의 신화

Job

통역

Health&Life

테이핑

Equipment

야구글러브

캐치볼을 하고싶다

Relay Interview

김형준, 황인조

Cont

ents

사진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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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Lee Sang Hoon

sports Ku

고양 = 이진석 기자 │ 사진 권일운

이상훈, 그리고 임수혁

작년 겨울, 본지는 임수혁경영88 선배 돕기 행사를 펼쳤다. 고려대 체육

인사들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임수혁의 절친한 후배인 이상훈이

소속된 밴드 WHAT의 공연이 있었다.

이상훈과 임수혁의 인연은 강남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이상훈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강남중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야구장 규격의 반 정도인 운동장에서 60여

명이 벌떼처럼 모여서 운동했다. 매일 훈련이 끝나면 간단한 미팅을

하는데, 마칠 때 “필승!”하고 경례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훈은

실수로 목장갑을 낀 채 경례를 했다.

“그거 완전 30대 감인데(웃음). 그런데 수혁이 형이 남모르게

조용히 불러서 ‘상훈아, 장갑은 빼고 해야지’ 하더라고. 아직 입학도

안 해서 강남중 유니폼도 없었을 땐데, 내가 뭘 알았겠어. 그 뒤로는

항상 장갑을 빼고 경례를 붙였지.” 워낙 사람이 호인이라, 본인뿐만

아니라 선배, 동료, 후배 할 것 없이 다 좋아했던 임수혁 선수로

기억한다. “가끔 기합 주고 때려도 좋아했다. 굉장히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그런 인격의 소유자였다.”

이상훈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주전 투수로 나서서 던지는

입장은 아니었다. 마운드에 설 때면 당연히 주전 포수였던 임수혁이

공을 받았다. 다른 투수들이 하는 만큼, 자신도 임수혁과 배터리를

맞추었다. 유난히 언론에서는 강남중-서울고-고려대 배터리로

둘의 인연을 강조하곤 했지만, 이상훈은 자신과 배터리를 이루었던

임수혁이라기보다는, 한 야구팀의 좋은 선배로 기억한다.

당시, 강남중은 자매결연 학교였던 서울고에 선수의

8, 90%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훈 때부터 결연 학교가 경동고로

‘한국 야구의 레전드’라고 하면 생각나는

여러 선수들이 있다. 많은 야구팬들은

레전드로 남은 여러 선수들 중에서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강속구를 내리꽂던

이상훈(경영 89)을 여전히 기억한다. 4년 전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은퇴한 뒤,

현재 4인조 밴드 WHAT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훈을 그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바뀌었다. 강남중에서 그를 포함한 3명만이 서울고로 갔다. 후에

2명은 야구를 그만두었다. 임수혁에게는 강남중 후배가 이상훈이

유일했기에 선후배 간의 정도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임수혁 선수의

부모님들이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다.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임수혁의 아버지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고려대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수혁이 형 아버지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훈은 자신이 고 2때까지는 평범한

투수였다고 했다. 던지는 폼은 예쁜데 체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왼손 투수 중에는 한양대의 구대성한화 이글스, 단국대의

김홍집인천고 코치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김홍집은 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이상훈과 맞대결을 펼쳤다. 그는 연장 11회

말 까지 단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대타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불운의 패전투수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 감독들이 고등학교 시합에 와서 선수를 스카웃하곤

했다. 서울고에서 휘문고와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故 최남수 감독이

임수혁의 아버지와 함께 왔다고 한다. “그 날 게임이 끝난 후에

최남수 감독님이 집으로 전화가 와서, 엄마에게 효도하라고

말씀하시고는 별다른 말없이 끊었다.” 이상훈은 그걸로 고려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지금도 임수혁 아버님이 감독님께 한 마디씩 더 해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4번의 이탈을 뒤로 하고 감독님께 보답하다

80년대 후반에는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드물었다. 선수

대부분이 대학을 거쳤다. 이상훈은 자신이 고려대에 입학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고려대에 간다고 생각하니까 심장이

벌렁벌렁했지. 빨간 유니폼이 참 좋았어. 그 팀의 색깔이랄까.

서울고에 고대, 연대가 와서 가끔 연습경기 하는데 고려대는 버스가

서면 그 안에서 절도 있게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입학하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 느끼면서도, 잘 던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이상훈이 팀을 무려 14번이나 이탈한 사실은

유명하다. 엄마 혼자서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막노동도 하러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동기들한테 참 미안한 이상훈 선수다. “내가 없어지면

동기들이 계속 맞으니까. 나중에는 동기들이 다 이해 해주더라.

지금은 그것도 추억거리가 되었다.” 엄마와 코치님이 몇 번이나

찾으러 다녔다. 스스로가 지쳐서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많이 이탈하면서도 참가하지 않은 대회는 없었다.

중,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 3학년 때까지는 평범한 투수였다.

그런데 겨울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었고 실력도 늘게 되었다.

팀의 고참이 된다는 것도 그를 팀에 붙어있게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강심장도 떨리게 만들었던 정기전

이상훈은 강심장 이미지다. 강심장도 정기전 마운드에서는 떨렸을 지

궁금했다. “나 강심장 아닌데(웃음).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다. 시험 볼 때 긴장하면서도 막상 시험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문제 풀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끝나면 성취감도 있고

욕도 하고(웃음). 시험 결과 받고 배울 것은 배우고… 그렇지 않나.

다를 게 없었다.”

이상훈 선수는 4년 동안 정기전 마운드에 섰던 운이 좋은

선수다. 1학년 때는 1이닝을 던졌다. 2학년 때는 선발로 나서서

7회까지 던졌고 팀은 이겼다. 3학년 때 역시 선발로 나서서 4이닝

정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4학년이었던 92년 정기

고연전 때, 3-1로 완투승을 거뒀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상훈의 선수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답이라고 했다.

완투승을 거뒀다는 것 말고도 이상훈 선수에게 이 경기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교 측에서 틈만 나면 팀을

이탈하는 이상훈을 달갑게 여겼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최남수 감독과 임수혁 선수 아버님이 학교를 설득했다. 이상훈은

집이 서울이었지만, 지방에서 온 학생들처럼 학교 숙소에서 잤다.

집에 가도 마땅히 잘 데가 없었던 이상훈을 감독님이 배려해 주신

것이었다. “마지막 타자를 잡고 나서 감독님이 마운드까지 뛰어

나왔다. 1-0으로 지고 있다가 7회부터 역전해서 극적으로 이긴

경기였다.” 당시 우리학교에는 마해영체교89, 강상수체교90, 심재학체교91,

김종국체교92 등이 뛰고 있었다. 상대 투수는 연세대의 임선동이었다.

이상훈은 故 최남수 감독을 가리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했다. 아마 자신이 감독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했듯이, 감독님도 자신을 자식처럼 잘 해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여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우리학교를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선동열경영81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미국에서는

김선우경영96 두산 베어스 투수와 친하게 지냈다.

삼손 리

삼손이라는 별명은

주로 일본에 있을

때 널리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야생마

하면 이상훈이지만,

일본에 있을 때 ‘삼손

리’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종범KIA

타이거스과 같은 팀에서 활약했다. 본인이 등판할 때면 LEE라는 이름이

함께 나오게 되어, 구단 측에서 삼손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이었다.

“구단 측이 90년에 한일 슈퍼게임을 치르러 왔을 때, 내 머리가

이상훈인터뷰

Interview

최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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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던지는 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야생마는 영어로 쓰기가

좀 그렇지 않나. 라이온도 있었다(웃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삼손이라는 별명이 있었지 않느냐’, 그래서 삼손 리가 된 건데,

항간에서는 이름 놔두고 왜 다른 걸 쓰냐고 하기도 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에서는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있었는데

통역도 있고 같은 동양권이라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셋 중 누구 하나 못할 때는 자기 일처럼 괴로웠다. 99년, 주니치가

11년 만에 우승했을 때 코리안 삼총사가 크게 일조했다. “아직도

나고야에서는 외국인 선수라고 하면, 우즈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한국인 3명이 있었을 때를 잊지 못할 거다. 그 뒤로도 한국인 선수를

많이 데려왔다.”며 그때를 떠올리는 이상훈 선수다.

WHAT의 멤버, 뮤지션 이상훈

이상훈은 미국에 가서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사용하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그것을 정리하고 팬페이지로 바꿨다. 그는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한 후로 야구팬들에게 보러 오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야구로 알게 된 사람들은 야구장에서 만나야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구했던 시절의 추억을 음악을 하면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야구 할 때도 계속 기타를 쳤듯이, 음악을

interviewsports ku

하기 위해서 야구를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야구팬들은 밋밋해져 간다. 그래서 미리, 이제 정리하자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음악을 좋아하는 야구팬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본인을 기억하는 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상훈이다.

그는 공연하던 무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야구와 자신을 사랑해 준

팬들을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싶어 했다.

작년에 그는 멤버들과 함께 행사에 와서 무료로 공연했다.

다른 멤버들은 우리학교나 임수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상훈이

따로 멤버들을 설득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평상시의 공연과 전혀 의미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임수혁의 인연만으로 선뜻 해 준 데 대해 큰 고마움을 갖고

있다. 오히려 돈이 오갔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올해도 시간만

맞으면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벌써 임수혁이 일어나지 않은 지 10년이다. 물론 여러

곳에서 후원도 많이 해주었지만 후배들이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지금 고려대 학생들과 수혁이 형이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기특하지.

자랑스러우면서 선배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성금 액수보다도 여러

사람이 모여서 했다는, 그 마음이 중요한 거야.”

내 피는 빨간색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난 김호준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골키퍼였냐는 물음에 다들

처음에는 필드플레이어로 출발을 한다고 대답한 그는 “골키퍼로서의

포지션이 좋으면서도 간혹 경기가 안 풀릴 때는 내가 공격수가 되어

득점에 가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강원도의 축구 명문인 강릉농업공업고등학교이하 강릉농고

출신인 그가 청소년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 것은

역시 ‘강릉더비’ 농일전. 강원도 고교축구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강릉농고와 강릉제일고등학교이하 제일고 간에 열리는 친선경기인

농일전혹은 일농전은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고연전의 고등학교

버전인 셈이다. 강릉농고 입학 후 김호준은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며 1학년과 2학년 때의 농일전에 모두 출전했었다. 두 해 연속

무승부를 거두고, 3학년이 되던 해에는 농일전 대신 청구고와

교류경기를 했다고.

농일전과 고연전의 차이를 묻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농일전에 나설 때가 더 긴장이 많이 됐었다고 회상했다. “고연전은

양교의 축제, 혹은 체육대회의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부담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는 어리기도 했고, 나이

드신 동문 어른들이 많이 찾아오시니까 더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비기는 경기를 많이 하게 됐죠. 비기면 적어도 혼나지는

않으니까.” 골키퍼의 입장에서는 서로 눈치 봐 가면서 살살 하는

경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오산. 오히려

FC서울 골키퍼

김호준

인터뷰에 대한 기획을 처음 제시했을 때,

많은 동료 기자들의 떨떠름한 반응에

부딪혔다. 김호준? 그게 누군데? 자타공인

구제불능 ‘축덕’인 기자가 뽑은 인터뷰

대상이라지만, 잘 나가는 프로팀의 어엿한

주전 골키퍼인 이 선수가 그렇게 무명 취급을

받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학교 출신의 유명 프로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시대순으로 줄줄 읊어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래서 고려대를

졸업한 프로 골키퍼가 누가 있냐’는 질문에는

아마 말문이 막히리라. 자신감이 생겼다. 이

선수는 알려질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면적

7.14㎢의 드넓은 그라운드 위 가장 외로운

자리, 더구나 그 자리에서도 과거의 스타들에

가려져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다 최근 2년

사이에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FC 서울의 김호준체교03 골키퍼를 구리의

GS챔피언스파크 훈련장에서 만나보았다.

김향지 기자 │ 사진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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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실수로 한 골이라도 내주게 되면 혼자 그 죄?를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단다.

재미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강릉농고는 고려대와 같이

빨간색, 제일고는 연세대와 같이 파란색으로 상징된다. 처음부터

‘붉은 피’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까, 대학 진학을 결정하며

김호준은 망설임 없이 우리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본래

안양LG현FC서울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기에 본인은 프로 직행을

원했었지만, 대학은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력한 뜻이 있었기에

고려대로 오게 된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고려대

쪽이 더 끌렸어요. 그래서 나중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기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죠. 고등학교 때도 빨간 유니폼을 입었는데, 대학도

빨간색, 그리고 지금 FC 서울에서도 빨간색이니까요.”

강원도 청년의

파란만장 서울 입성기

또래의 골키퍼들 가운데 과거

가장 주가가 높았던 김영광26,

울산 현대에게 밀려 주전은

되지 못했어도 2003년의

청소년대표팀 그리고 2004년

아테네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올림픽대표팀 명단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유망주로

평가되던 김호준이었으나,

예상치 못했던 데에서 시련이

닥쳐왔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무릎에 부상이

찾아온 것. 재활에 전념하느라

1학년 초반에는 경기에 전혀

나서질 못했다. 가까스로 복귀에 성공하는가 싶었으나 이듬해에는

올림픽대표팀 경기에서 또다시 부상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어깨였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큰 부상은 입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2005년, 다사다난했던 2년간의 대학 생활을 뒤로 하고

시작하게 된 프로 생활 또한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2003년에 대학

진학을 하면서부터 2학년을 마친 뒤 입단을 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FC 서울에 새 둥지를 트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입단이

주전 자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2005년 4월 24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이날 전반에만

상대에게 세 골을 내주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이 경기를 꼽는 김호준은 이후 단 두 차례의 출전에만 만족한 채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interview

Kim Ho Jun

sports ku

2006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경쟁 상대가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나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은

김병지라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하며 동시에 화려)한 대선배를

영입해 왔다. 그래도 학생 때는 ‘꽤 한다’는 축에 드는 선수였는데,

프로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미처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나버리게 된 현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김호준은 달랐다. “본래 성격 자체가

털털하고 낙천적이에요. 어느 선수라도 게임을 못 뛰면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되고 동요하게 되어 있죠.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계속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언젠가는 기회가 반드시 올 거라는 걸 믿는

거에요. 그래야 마침내 그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수 있거든요.”

2006~2007년 두 시즌간의 출장 기록 0경기 0실점. 보통

한 팀에서 주전경쟁에 밀려 오랜 시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된

선수는 자신의 출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많은 연봉을 준다 한들,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의

본분은 경기를 뛰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못하게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선수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골문 앞에 서지 못했던 김호준은, 과연 이적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구단 직원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인터뷰석상에서 혹

민감한 주제인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NO였다. “자기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는 물론

게임에 나가야만 하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저에 대해 충분히 알릴

수 있을 만큼 경기를 하지도 못한 상황이었잖아요. 제가 보여준 게

없는데 어딜 가겠어요. 다른 팀에 간다고 잘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게임을 못 뛸 때 그걸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선수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이 팀에서 도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의 도전은 지난 시즌에 들어와서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LA 갤럭시와 FC 서울 간의 친선경기에서 김호준은 같은 해

2월에 허리수술을 받았던 김병지를 대신해 정확히 844일 만에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양팀이 서로 한 골씩 주고받은

끝에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그는 상대팀의 첫 번째 키커였던 베컴의

슛을 제외한 나머지 네 선수의 슛을 모두 막아내며 이날 경기의

MVP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당시 그는 경기가 친선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무승부면 무승부인 대로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우승팀을 가려야 한다며 승부차기에 들어간다고 해서 당황했다고

한다. 당연히 미리 이에 대비한 훈련을 따로 했을 리도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승부가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기에 크게 부담을 갖지도

않았고, 이것이 한국의 축구팬들, 그리고 베컴까지도 놀라게 했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늘 웃는 얼굴의 승부차기 스페셜리스트

실로 오랜만에 잡은 출전 기회에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이었지만,

“병지 형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임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던 이 경기 이후 김호준은 ‘승부차기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고등학교 때 대회를 막론하고 승부차기만 갔다

하면 지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입학하고 나서 11년만에 처음으로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거에요. 그땐 그저 제가 운이 좋았을

뿐이었지만, 프로선수가 된 지금은 스스로도 페널티킥 방어 능력을

장점으로 생각하고 그 부분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다른 모든 플레이가 정지된 상태에서 오직 키커와

골키퍼만이 일대일로 맞서는 순간. 이론적으로는 키커가 80%의

승률을 가져가는, ‘들어가는 게 당연하고 안 들어가는 게 더 이상한’

페널티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커들이 실축을 저지르거나

골키퍼들이 선방을 해내는 경우들이 속출한다. 소위 기 싸움의

문제가 개입되는 것이 바로 이때이다.

많은 팬들로부터 항상 웃고 있는 듯한 인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호준은 상대에게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의 노하우로 꼽는다.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그의 ‘웃는 상’은 때로는 역으로 상대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유난히 웃음이 많은 성격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데, 평소 경기에 나설 땐 의도적으로 좀 더 표정을 여유롭게

지어 보이려고 해요. 내가 긴장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이면 상대는

오히려 더 부담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암시 효과도

있어요. 마음을 편히 갖기 위한 주문을 거는 거죠.”

“사진도 제대로 안 찍히는”, 그대의 이름은 골키퍼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직전에 김호준이 같은 자리에 있던

구단 홍보팀 직원에게 불평하듯 건넨 질문이 기억에 남아 소개한다.

왜 항상 자신은 제대로 나온 경기 사진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골키퍼잖아요. 위치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항상 골대

뒤에서 찍거나, 아니면 반대편이나 사이드에서 줌을 당겨 찍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죠.” 구단 직원의 명쾌한 답변에 그는 납득을

하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본래 골키퍼란 태생적으로 대단히 외로운 포지션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경기에 따라서는 90분 내내 동료들의 플레이를

최후방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 때도 있고, 할 일이 많은

경기에서도 골키퍼의 플레이란 철저히 홀로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특히 골대 바로 뒤편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서포터들(자기

팀이든 상대 팀이든)의 쏟아지는 야유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때에는 유난히 더 그 고독이 커질 것이라는 짐작도 해볼 수가 있다.

“경기 중에 욕하고 야유하는 소리, 안 들릴 것 같지만 골키퍼들한테는

다 들려요. 유형도 가지가지죠. 대놓고 육두문자를 쓰는 사람들도

있고, 아들 야단치듯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 진영에서 상대팀 서포터들을 등지고 있을 때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너무 지나친 소리들을 들을

때면 솔직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죠.” 그래도 그들 또한 모두 축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 준 ‘팬’들이기에, 내 팀 네 팀 가리지

않고 김호준은 경기 전후로 서포터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우리

팀 서포터들에게 인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지만, 사실 상대팀

서포터들도 결국은 똑같은 축구팬이잖아요. 그리고 상대 쪽에도

인사를 하는 날에는 그나마 욕을 좀 덜 먹게 되더라고요. 아, 그래도

김호준은 예의가 좀 바른 놈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주시나 봐요.”

하루 종일 기온이 영하에 머물렀던 지난 11월 21일, 김호준의

소속팀인 FC 서울은 2009년 K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맞아 1대 1의 접전을 펼치다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결국

2대 3으로 패하고 말았다. 비록 경기의 MVP는 상대팀 골키퍼였던

염동균26 선수에게 돌아갔고 K리그 우승은 이미 남의 집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이날도 ‘승부차기 스페셜리스트’ 김호준의 능력은

십분 발휘돼 두 차례의 선방이 해냈다. 나무랄 데 없는 방어력을

선보이고도 패배의 씁쓸함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그렇게 치열했던

한 시즌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던 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김호준의 뒷모습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나의 이름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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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회 교내경기 축구 결승

FC Dream 4 : 1 아마추어 축구부 Sr.

Football

교내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의 최강자를 가리는 교내경기 축구

결승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두 팀, FC Dream과

아마추어 축구부가 만났다. 경기는 FC Dream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지만, 승패에 상관없이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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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 양 팀 선수들이 한데 모여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밤이었지만, 추위를 잊은 듯한 우렁찬 기합

소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경기 시작 4분 만에 첫 골이 터졌다. 첫 골의

주인공은 FC Dream의 김병주체교04선수. 멋진

오버헤드킥으로 첫 골을 기록한 그는 두골을 더

몰아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결승전다운 명승부가 펼쳐졌다. 첫 골이 들어간

지 10분 만에 아마추어 축구부의 만회골이 나온

것. 코너 부근에서 올린 골이 순식간에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회골을 성공시키고

기뻐하는 아마추어 축구부 선수들의 모습.

FC Dream의 두 번째 골이 터지며 2-1로 전반이

마무리되었다.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친 탓에,

아마추어 축구부의 분위기가 심각하다.

‘지나갈 테면 지나가 봐.’ 공을 사이에 두고 양 팀

선수가 맞서고 있다.

양 팀의 응원단은 경기 내내 파이팅을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매니저와 팀원 친구들 모두,

누구라 할 것 없이 어깨를 걸고 한마음으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텅 빈 관중석의 모습이

조금은 아쉽다.

헤딩 경합 중에 아마추어 축구부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 비록 상대팀이지만 동료가 부상을 당한

것처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크로스를 올리는 FC Dream의 백넘버 77번 선수.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FC Dream

선수들의 백넘버는 유난히 숫자가 컸다. 보통

축구팀의 주전 멤버를 상징하는 숫자는 1번부터

11번 사이이기 마련인데, 이들의 등번호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경기 종료 후 양 팀의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 날 승리로 교내경기 우승을 차지한 FC

Dream의 선수들이 졸업을 앞둔 ‘큰 형님’을

헹가래치고 있다. 이들은 이 후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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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 사진 박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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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체교04

“함께한 후배들, 고생 많았다”

mini Interview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소감이

어떠한가. 다른 경기도 아니고

결승에서 세 골을 넣어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팀이 승리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결승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결승까지

올라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다른 팀으로 주축 선수들이

빠지기도 했고, 선수들의 부상으로

타격이 컸다. 선수들이 끝까지 열심히 해줘서

결승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승을

예감했는가. 사실 어떤 경기든 이기고 지는

것은 쉽게 예상 할 수 없다. 승패에 관계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고생한 팀원들에게 한마디.

평소에 선배로서 해 준 것이 많이 없어 미안하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고생한 후배들에게 너무

고맙다. 부상으로 1년 쉬게 된 현우성 선수에게

오늘의 우승을 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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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학기 저녁 체육생활관을 뜨겁게 달구는 교내경기 농구. 한 학기

내내 우승을 위해 달려온 두 팀이 만났다. 교내경기 강팀들답게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이 펼쳐졌다. 11월 27일 뜨거웠던 4강경기

현장을 SPORTS KU가 생생하게 담아왔다.

제 49회 교내경기 농구 4강

호농A 44 : 33 서우회A

Basketball

고봉준 박연현 기자 │ 사진 이정민

오늘 경기 소감은 10년 동안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결승에 오르게 되어 매우

기쁘다. 특히 올해가 동아리 29주년이라 더욱 기쁜 것 같다.

승리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번 호농의 멤버 중 많은 선수가 졸업반이다.

이번 교내 경기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선수가 많은데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였던 게 경기의 승인이었던 것 같다.

ZOO/SFA의 승자와 결승을 치르는데, 결승전의 각오는 체교과/사체과 동아리라

체력과 운동능력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 능력에 치중하지 않고 조직력과 호흡을 바탕으로 연습을 하여 결승전에

임하겠다. 4년동안 아마추어 고연전에 나가고 싶었지만 번번히 티켓을 놓쳤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인데 교내대회 우승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

자유튜 이날 승부는 자유튜가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승리팀인 호농은

자유튜에서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며 서우회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유투 하나가 승리를

좌우한다는 진리는 아마추어 경기에서도 통했다.

이러지는 말자 이러지는 말자~~. 경기 막판

호농으로 승부의 추가 기울던 때. 불같은 싸움이

일어났다. 호농 선수와 서우회 선수가 대형충돌을

일으켰는데, 그 상황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서우회 관계자가 흥분하며 언성을 높인 것이다.

그런데 서우회 관계자가 언성을 높이자 이를

본 교내경기 임용석 교내경기 실장도 덩달아

흥분한 것이다. 결국 둘의 싸움으로 경기는

잠시 중단됐고, 경기가 끝나고서도 두사람의

볼썽사나운 다툼은 계속됐다.

드라이브인 나이스 드라이브인! 경기는 호농의

승리였지만, 서우회에서도 아쉬운 MVP후보들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이 12번. 그의 멋진

드라이브인이 카메라 렌즈에 포착됐다.

급조된 등번호 얼핏 보면 그의 등번호는 5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굵은 청테이프로 뒤에 숫자

1을 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교내경기는

등록 문제 때문에 가끔씩 등번호를 급조해야하는

때가 있다. 아마추어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부분.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적은 관중 선수 인원>관중 인원? 경기장에는

선수보다도 적은 관중이 들어차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날 경기가 결승을 앞둔

경기라 20여명의 관중들이 들어찬 것이지 보통

경기에는 더 적은 관중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교내경기는 고연전 진출 결정전이나

(준)결승 정도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다.

내년에는 좀더 응원열기 높은 체육생활관

코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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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 점프볼로 교내경기 준결승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경기의 승자는

30일에 열렸던 ZOO-SFA 의 승자와 대망의 우승을 놓고 싸움을 벌이게 된다.

양팀 벤치 어디 앉을 곳 하나 없지만, 양팀 벤치 분위기만큼은 뜨거웠다.

결승으로 향하는 길목. 승부는 양팀 벤치 싸움이 좌우했다.

씨름판 여기는 씨름판이 아닙니다. 이날 가장 큰 볼거리는 양팀의 센터 싸움이었다. 얼핏봐도

0.1톤에 육박할 것 같은 서우회의 32번과 호농의 13번 센터는 치열한 몸싸움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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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곤 산공06

“악바리 정신으로 따낸 결승행 티켓!”

mini Interview

sports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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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과도 거리감 없이 친하게 지내 합숙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그의 인연은 럭비부 선수들과도

이어진다. 아마추어 럭비부를 만든 분이

배재고 감독출신의 선수였다. 그래서 연습

때 배재고를 찾아가 선수들과 경기를 가질

기회가 많았다. 현재 우리학교 럭비부 내에도

배재고 출신의 선수들이 여러 명 있는데,

특히 주장이었던 최민석체교08을 비롯해

김민우사체07, 장형준체교09 등과도 그들이

우리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돈독하게

지낸 사이라고 한다.

우승 트로피는 나에게 오라

다음학기 졸업을 앞둔 그에게 (식상하지만)

꿈을 물었다. ‘대한 체육회’에서 스포츠

외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장래희망이다.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대학생 신분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

또는 목표는 없었냐는 질문에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체육교육과 내 동아리 중 축구,

야구, 농구, 배구부 소속인 그는 이미 여러

대회에서 우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토토컵 2008 전국 대학생 동아리

축구대회 우승FC드림, 교내 야구리그인

‘야호리그’ 2007·2008년 우승DEMON, 국민대

총장배 2008 배구대회 우승KU-VolT 등 화려한

경력이 줄을 선다.

또 하나의 꿈은 정기전 직전에

열리는 ‘아마추어 고연전’의 모든 경기에

출전해 보는 것이었다. 축구와 럭비 경기에는

교내 경기 우승으로 출전권을 획득해

아마추어 고연전 선수로써 당당히 잠실

주경기장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야구와 농구, 아이스하키에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졸업 예정자로서

그 꿈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골프, 스키

등도 즐기는 그야말로 만능 스포츠맨이다.

people

Park Min Hopeople

박영미 기자 │ 사진 이정민

송추에 햇빛 쨍쨍 내리쬐던 날

뜨거웠던 지난 여름, 그가 방학을 보낸 곳은

집도, 학원도, 아르바이트 장소도 아닌 송추

합숙소였다. 뉴질랜드에서 온 럭비 코치

Gelard와 Lalo의 통역을 담당하여 럭비부

선수들과 함께 먹고자며 지냈다. 코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려면 집에서 송추까지

오가는 것보다 몸은 불편하더라도 선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학교의 아마추어

럭비부 소속인 그에게 있어 외국 코치의

훈련방식을 배우고 선수들과 같이 뛰는 건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체육교육을

전공하며 이런저런 스포츠를 섭렵하고 있는

그지만,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빡빡한

훈련을 한 건 이번 여름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인연 因緣

그가 럭비부의 훈련에 통역으로 합류하게

된 건 김성남 코치와의 인연 덕분이다.

지난 해 아마추어 럭비부의 주장일 당시,

김성남 코치가 가끔씩 그들의 훈련을

돌봐주셨고 그것을 계기로 럭비부와 관련된

여러 행사들이 있을 때 그에게 연락을 주셨다.

훈련 중 외국 코치의 통역은 물론 영어회화

실력도 중요하지만 럭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에게

이번 통역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훈련만이 아니라 코치들의 한국 생활도

도맡았다. 이태원에서 함께 호주의 럭비의

경기를 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도 항상 함께했다. 코치들과의 생활이

어땠냐고 묻자, “섬들로 구성된 ‘사모아’라는

나라에서 온 코치들이 우리나라와 자신들의

문화가 매우 닮아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내는 데 크게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고 무척

즐겁게 지내다 갔어요” 라고 했다. 아마추어

럭비부 훈련 때마다 매번 같은 방식의

훈련을 해왔는데 새로운 전략도 가르쳐 주고

교내 경기’라는 희망

지난 해 본지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한 그가

주로 쓴 기사는 ‘교내경기’ 관련 내용이었다.

1학년 때부터 교내경기 운영실에서 일해온

그는 교내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잡지에

경기 일정을 싣고 참가 팀의 전력을 분석하는

등 학우들에게 교내경기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사를 쓸 때, 교내의 수많은 팀

중 어느 팀이 주목할 만한 팀인지, 연습 진행

상황은 어떤지, 팀 구성에서 독특한 점은 없는

지 등 팀 내 사정을 소개하고자 했다. 교내

경기에 참여하는 팀도, 기사를 읽는 학우들도

교내경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한 것이다”고 말한

그는, 앞으로도 교내경기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서 지금보다 규모도 커지고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탁구, 볼링, 육상 등의

다양한 종목도 교내경기를 치르곤 했는데

지금은 1학기 때 야구, 농구, 2학기 때

축구, 농구, 3 on 3 농구가 진행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아마추어 스포츠의 열기가

뜨거운 만큼 학우들의 열기 역시 계절에

상관없이, 시험 일정에 상관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해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더욱 커질 수

있는 교내경기의 규모가 예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운영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까운 예로, 녹지 캠퍼스에 있는 화정

체육관은 국내에서도 손꼽을 만한 수준의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화정 체육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현재 교내경기 농구 결승전이 화정

체육관에서 열릴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는

그는, 학교 측과 지속적으로 상의하며

교내경기에서 새로운 시도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럭비 리그를 기대해 주세요

그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다.

이룰 것은 다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바쁘게 살고 있는

그다. 바로 아마추어 럭비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부산대

등에 아마추어 럭비부가 운영되고 있고,

그 외에 외국인으로 구성된 ‘Survivors

RFC’가 모여 대회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상태이다. 특히 서울, 부산, 구미 등에 꾸려진

외국인 럭비팀의 참여로 대회 준비과정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지금까지 각 팀끼리

연습 경기나 합동 훈련 등 크고 작은 교류가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마추어 럭비 뿐 만

아니라 현재 비인기 종목으로써 몇 개 되지

않는 실업팀이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럭비 리그에도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럭비를 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고

럭비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매 순간마다

느끼게 되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럭비를 많이

알리고 싶어요. 준비하고 있는 럭비 대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한럭비)협회를

두들겨 봐야죠.”

인터뷰 내내 밝고 씩씩하게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던

박민호는, 04학번으로써 학교는 다닐 만큼

다녔지만 그래도 졸업은 아쉽다고 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부터 이런저런 대회에도

많이 나가고 학교 생활도 더욱 열심히

했다는데 그 기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고.

본지 기자들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모든 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실이다. 비록 ‘아마추어

고연전 전 경기 출전’이라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우리학교의 스포츠를

위해 힘쓰고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새로운 도전도 기대해 본다.

우리학교에서 일어나는 운동관련 행사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 연락해보라. 5개

운동부의 행사뿐만이 아니라, 정기전, 교내행사,

아마추어 동아리 등 그가 나타나지 않는 곳은 없다.

이쯤되니 그의 활동범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한

경험도 있는 박민호체교04를 만나봤다.

Nothing is impossible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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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한 실력으로 치러진 7인제 경기

7인제는 전·후반 7분과 휴식 시간 1분을 합쳐 15분으로 이루어진다. 파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피드가 뛰어나야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 럭비팀은 7인제 경기에서는 일본과

대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실력이 엇비슷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는 상황이다.

우리학교 김성남(체교 94) 코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7인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가

‘한국 특유의 감각적인 경기 운영’에 있다고 했다. “스피드와 센스를 요하는 쇼트트랙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의 체형 조건에 맞는 그런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반면 스피드 스케이팅은 유럽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15인제는 파워와 스피드,

다양한 기술을 요하는 종목으로 스크럼의 비중이 매우 크다.

7인제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바로 트라이로 연결된다. 15인제와 같은 규격의

운동장에서 7명이 공격과 수비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민첩성을 갖춘 플레이가 매우 중요하다.

체격이 크면서 빠르면 더욱 좋다.

극복하기 힘든 인프라의 벽

원래 대등했던 7인제와는 달리 15인제 경기에서는 80점 차로 지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데

11년 전, 방콕에서는 극적으로 우승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상무를 포함하여 실업팀이 5개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가장 수준이 높은 탑리그에 14개 팀이 있고 1부 리그에 30여개 팀,

2부리그에 60여개 팀을 비롯하여 4부 리그까지 있다. 게다가 사회인 럭비팀은 셀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럭비 인프라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일본의 클럽에는 파워 있고 스피드가 좋은 외국 용병들이 많이 뛰고 있다.

용병들의 국적은 대체로 뉴질랜드, 호주, 남아프리카, 피지, 통가 등이다. 5년을 활동한

용병에게는 국가대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98년 이전에는 그런 용병들이

거의 없었다. 아시아선수권이나 아시안게임 등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규정 상

용병이 뛰지 못한다. 그런데 월드컵과 같은 세계 대회에서는 그 같은 규정이 없다. 따라서

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용병이 뛸 수 없었기 때문에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셈이다.

아시안게임 이후로 일본 럭비협회는 정책적으로 선수와 지도자 수급의 대형화를 지향했다.

뉴질랜드, 호주와 같은 오세아니아 지역의 선수와 지도자를 많이 초청하여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협회의 지원금도 늘어났다. 자연히 럭비 기술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일본은 월드컵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조별리그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캐나다,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하는 등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지역예선을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병뿐만 아니라 일본의 자국

선수들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선수나 지도자를 영입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인 대심통상에서 외국인 선수를 2명 데리고 왔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자금 사정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럭비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프로

선수들이 뛸 수 있는 클럽이 없다. 이 때문에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국 국적의 선수는

상무 소속이 아닌 일반 군인으로 입대하면 제대 후에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럭비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7인제와 15인제 경기는 구성원들이

다른 데다 훈련 방식도 다르다. 경기 스타일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7인제 대표팀이 15인제 경기도 뛰는 실정이다.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다. 체력이

몇 배나 더 소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김 코치는 방콕 대회에서는 7인제 경기를 뛰지 못했다. 한 해 전에 홍콩에서 열렸던

제1회 7인제 럭비월드컵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98 아시안게임에서 7인제도

뛰고 싶었지만, 더욱 전력이 강해야했던 15인제에만 참가했다. 그는 7인제 경기를 뛰지

memoriessports ku

Memories

못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15인제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값진 경험이 되었다.

같은 고려대 출신 선수였던 최민석(체교 91)은 한국전력에서 뛰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사원으로 있다고 한다. 김 코치는 당시에 찍었던 광고를 기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광고는 우리나라 럭비의 수준을 너무 낮춰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미래 지향적인

내용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불모지에서 해냈다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광고였다.”

부상이 심했던 김 코치는 방콕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일본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보다 월드컵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 1진 선수들은

월드컵을 위한 훈련에 매진하였고, 1.5진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고 보면 된다. 한

등급 낮다고 하지만, 부상 등을 이유로 기량이 덜 올라있었던 선수들이었으므로 역시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도 두 종목 모두 금메달을 따낸 것은 우리나라 대표팀이었다.

98 아시안게임에 이어,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두 종목 다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그

해는 럭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해였다. 역시 외국인 용병은 뛸 수 없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는 7인제 경기에서 다 이기다가 막판에 5점짜리 트라이를 허용하여 분패했다.

한국 럭비의 시스템화, 그리고 고려대 럭비의 변화

올해 3월, 김 코치는 국가대표 7인제 팀의 코치로 들어갔다. 11년 만에 코치로 합류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는 김 코치는 대표팀에 우리학교 출신이 가장 많다고 했다. 이번

동아시아 대회에서는 11명의 선수들 중 5명이 고려대 출신이었다. 김 코치가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한국 럭비의 시스템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쓰는 공격,

수비 시스템을 적용하고자 했다. 처음에 선수들은 과거에 사용하던 방식을 선호하여 새로운

방식에 반발했다. 이에,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디오 분석을 선보였다. 분석을 한 후

선수들에게 설명을 하자, 모두 인정을 하고 새로운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아직 100%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성과가 있었다. 올해, 홍콩 세븐스

대회에서 한국은 개최국 홍콩과 함께 9~16위가 오르는 플레이트 8강 토너먼트에 오른

것이다. 비록 프랑스에게 패해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시아에서 홍콩에 이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조별리그 성적 17~24위가 나서는 보울 토너먼트로 내려앉았다.

대표팀 선수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잘 받아들여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7인제에

이어 15인제도 스크럼, 라인아웃 대형, 수비 시스템 등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다른 학교나

실업팀의 선수들은 잘 적응하지 못해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주기적으로 해외 연수나

훈련을 가는 우리학교와는 달리, 5년 혹은 10년 주기로 외국에 가서 배우기 때문이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여 기량을 올리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는 한국 럭비가 바뀌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김 코치는

3년 째 코칭 캠프 강의를 맡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지도자들에게 럭비 기술에 대해 강연하고

시범을 보이는 자리다. 특히,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배워 온 내용을 전수하는 일을 한다.

우리학교 럭비팀에도 올해 고연전을 대비하여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기 위해 뉴질랜드 출신의

코치를 잠시 영입했다. 작년부터 연세대에게 극소한 차이로 져 왔던 선수들이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훈련을 하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형성되었고, 올해 정기전에서도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어야 했는데,

한 번의 실수가 결국 동점을 허용하게 되어 많이 아쉬웠던 경기였다. 올해의 무승부를 거울삼아,

얇은 선수층을 보완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정기전만이

아닌,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고대 럭비가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학교 럭비는 한국

럭비의 희망이다.

최유

리 기

98 방콕아시안게임 &02 부산아시안게임 우승

우리는 드림팀이 아닙니다.

모두들 기적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노력이라 말합니다.

모두들 우연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땀이라 말합니다.

마지막 한 걸음까지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천 년은 밝습니다.

10여 년 전, 럭비 대표팀을 주인공으로 한 공익광고의 문구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나라 럭비 남자 대표팀은 7인제, 15인제 경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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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줘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를 찾듯 선수는

통역사를 찾는다. 그럴 때 엄마가 아이를 나몰라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역사 또한 선수의 모든 것을 챙겨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코칭스태프들에게는 이것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다.

통역사는 통역사일 뿐 시중을 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선수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돕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시즌 중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식사 후 오후 훈련을 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간다. 가끔씩 오전 훈련이 없는 날에는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외박이 주어지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선수들은

쉬지만 통역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가 어딜 다녀오려면

옆에 있어 줘야 되기 때문에 또 따라서 가야만 한다. 코칭스태프가

이 선수에게 이러저러한 음식을 먹여 주라고 하면 시내에 데리고 나가서

그 음식을 먹게 해 준다. 시즌 중에는 쉴 새가 거의 없다.

스포츠 통역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중간자의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통역사는 언어의

인풋을 받아 바로 그에 대응되는 아웃풋을 내놓는 번역기계가 아니다.

감독과 선수의 말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인 부분도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용병 선수의 입장만을 대변해서도 안 되고, 한국인인 감독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

외국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양자 간의

문화적인 차이를 서로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처음 이곳에 오면 한국 특유의 훈련 방식

등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가령 경기에서 졌을 경우 코칭스태프는

팀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훈련량을 평소보다 늘릴 수가 있다. 이때

한국인 선수들은 이미 이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지시를 따르지만, 외국인 선수는 자기 나라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발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왜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역사가 그것을 코칭스태프에게

곧이곧대로 ‘자기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대요’ 하고 전달할 수는

jobsports ku

job

말만 전하는 기계? NO!

선수의 엄마인 동시에 선수단의 중재자 GS 칼텍스 여자배구단 통역사 최경아

처음 배구단 통역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본래 브라질 교포 출신인데, 한국에서 대학 진학을 하게 된 이후로

아르바이트로 여러 분야의 통·번역 일을 많이 해 왔다. 칼텍스

배구단과는 학교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연을 맺게 되어 2007년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3년째 일을 하고 있다.

평소부터도 배구에 관심이 많이 있었는지

본래 스포츠 자체는 굉장히 좋아해 왔다. 브라질에서 살았기

때문에 축구도 좋아하고 배구도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용어들까지 다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블로킹이라든가 서브와 같은 기본적인 어휘 정도는 알았지만

그 이상은 포르투갈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로도 잘 몰랐었다.

그런 부분들은 코칭스태프들이 때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어

현장에서 일을 하며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훈련이나 경기 시간 외에 또 어느 영역들에서

통역이 이루어지는가

일을 하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와

24시간을 함께 한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 담당했던 선수는 훈련이

끝난 뒤 샤워를 할 때조차도 옆에 있어 주기를 원했는데, 샤워실에서

다른 동료 선수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내용을 알아듣기 위해서였다.

한 집에 살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훈련장을 오고 가고

밤에 잠들 때까지 선수와 붙어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사소한

뒤치다꺼리까지 전부 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생기는데,

예를 들어 처음 온 선수 같은 경우는 포크가 필요할 때 그 말을

한국어로 할 줄 모르니까 통역사에게 포크를 부탁하는 식이다.

그런 것들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선수의

빨래까지 내가 널고 있더라.

특히 이번에 새로 영입한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이브Lisvel Elisa Eve Mejia,

레프트 선수 같은 경우에는 91년생으로 나이가 많이 어리기 때문에 소소한

도움들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만일 이 선수가 홈경기가 있는 날에

어웨이 유니폼을 가져왔다면 결국 그걸 해결해 주는 것은 통역사고,

식당에 갔는데 선수가 못 먹는 음식이 나왔다면 그걸 해결해 주는 것

또한 통역사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이 선수의 매니저, 혹은 엄마가

없는 노릇이다. 선수에게 가서는 이것이 한국의 방식이니 따르도록

하자고 달래고, 코칭스태프에게 가서는 선수가 잘 따라오고 있다고

눈치껏 전하는 외교력이 요구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인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껏 운동을 해 온 환경이 있으니 몸이 아파도

말을 못하고 참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또

다른 분위기에서 성장을 해 왔기 때문에 몸에 이상이 있을 경우 바로

‘오늘은 몸이 안 좋으니 쉬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며, 코칭스태프도

그것을 용인해 준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선수들은 ‘저 선수는

왜 쉬냐’며 불만을 가질 수 있는데, 이때에도 적절한 선에서 선수들을

납득시키고 타이르는 역할은 통역사가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속담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지만 통역사는 거의

반대로 일을 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안 좋은 말들은 통역사가 듣고 담아두는 일이 더 많다. 그러면서도

시즌 중에는 힘들어도 짜증을 낼 새도 없이 항상 기분 좋게 모두를

대해야 하고, 또 계속 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줄도

잘 모르고 지나가는데 시즌이 끝나거나 중간에 잠시 휴가를 받아 나오면

한 일주일은 몸이 아프다.

반대로 스포츠 통역사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다면

일단은 보수가 좋다. (웃음) 일반 통역은 보통 일회성 혹은 단기성으로

끝나는데 이건 선수와 함께 늘 붙어 있어야 하고 자기 시간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보수를 많이 주는 편이라 좋다. 또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코칭스태프들로부터 점점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하기도 하다. 게다가 이곳은 내 직장이면서 또 이제는 나의

‘팀’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생겨 팀이 잘 하고 있을 때면 그 자체로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럽다. 선수들이 대표팀에 뽑혀 가는 걸 볼 때도 그렇고.

일반적인 통역에 비해 스포츠 통역이 갖는

특수성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전반적으로는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분야를 막론하고 통역사는

본래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이다. 정말 실력이 있는 통역사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만일 눈에 띈다면 그것은 그 통역사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늘 자기 몫 이상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반 통역이나 스포츠 통역이나

차이가 없다.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상황이 많이 생기는데 그런 이야기를

친구나 가족에게 하면 아무도 이해를 못한다. 말만 전달하면 되는 일이

뭐가 힘드냐는 식이다. 처음에는 이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결국 다 자기 위치에서는 자기가 제일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일반 통역과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스포츠 통역이 확실히

‘재미’가 더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해가

칼텍스 배구단이 V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해라 더 신나게 일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선수 통역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항상 선수단과 함께 지내는 데다 필요할 때는 훈련

하는 것을 도울 때도 있는데, 이를 통해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팀 내에서의 대우와 보수는 어떻게 되는지

일회성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직원으로 등록이 되기 때문에 보수는

꽤 좋은 편이다. 팀 내에서의 대우도 구단의 다른 직원들과 동등하며,

보통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식으로 일을 한다. 길게는 약 10개월

정도 일이 지속되는데, 자신이 통역을 맡고 있는 선수가 실력이

뛰어난 선수일 경우에는 그 기간이 더 짧아질 수 있다. 선수가 자국의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국제대회에 다녀오게 되면 선수가 팀을 비우는

기간이 빠지면서 8개월 정도 일을 한다. 시즌 중에만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통역이

적성에 맞고 또 구단에서도 나를 써 주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팀과 함께 일을 하고, 비시즌일 때는 또 다른 일을

단기적으로 하는 식으로 지내는 것이 잘 맞는다.

스포츠 통역사 지망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특별히 외국어 실력이 남달라야 한다거나 스포츠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통역 대상이 되는 언어를 잘

구사하고 해당 스포츠 종목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중간자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통역사들을 봐도 처음에는 토스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차피 용어와 같은 것들은 일을

하면서 배워나가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중간 입장에서 얼마나 양쪽

모두가 서로 기분 좋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잘 돕는가 하는 것이다.

통역사는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양쪽의 비위를 모두 다 정말 잘 맞춰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는 선수가 성격이 까다롭다 하더라도, 이를 잘

해내지 못했을 경우 결국 잘리는 것은 선수가 아닌 통역사이다. 그렇기에

만일 스포츠 통역사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해심과 인내심, 그리고 외교적인 화법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김향

지 기

자 │

사진

제공

최경

전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불고 있는 글로벌화의 바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프로스포츠 무대이다. 멕시코 출신의 선수가 한국의 야구팀에서

활약을 하고, 한국의 선수가 러시아의 축구팀에서 뛰기도 하는 등, 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는 오래 전부터 인적 자원의 교류가 대단히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고 있다.

이에 따라 함께 중요한 직업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스포츠 통역사이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항상 선수단과 함께 하며 용병 혹은 외국인 코칭 스태프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그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스포츠 통역사의 세계에 대해

현재 GS 칼텍스 여자배구단의 최경아 24,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통역사에게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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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 lifesports ku

Health & life

글│사진 이희재

쉽고 간단하게 통증을 줄이는

테이핑 요법키네시오 테이프, 구입은 어디서?

키네시오 테이프는 대부분의 일반 약국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일본에서 수입되는

제품은 6개 들이 1박스가 7만 6천 원 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1개당 만 원

선이다.

어느 새 두꺼운 점퍼를 입어야할 만큼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 날씨에서 운동을 하다보면

따뜻할 때보다 부상을 입는 일이 잦다. 혹은,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목이 뻐근하거나

허리가 아프기도 하다. 이럴 때 간단한 처치만으로 통증을 완화 시킬 수 있는 것이 키네시오

테이프를 이용한 테이핑 요법이다. 이 요법은 본래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통증완화와 근육

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주로 이용됐다. 1982년 일본의 카세 겐조 박사가 근육 및 관절염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한 키네시오 테이프는 인체 근육과 유사한 신축성을 가지도록 제작되었다.

근육이 긴장하거나 손상되면 혈관이나 림프액, 조직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근육과 유사한 신축성을 가진 테이프를 통증 부위에 붙이면 피부와

근육 사이의 공간을 늘려주어 혈액 및 림프액, 조직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 통증을

완화시키고 피부적인 자극을 통해 통증의 완화를 돕는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렸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체교09 선수는 과거 몇 차례의 대회에서 통증 완화를 위해 테이핑을

한 채 경기에 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통증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근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테이핑 요법이 개발되어

운동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관절 안정성을

높여주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 사용법만 알면 테이핑 요법을 실생활에 활용하여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학교 운동부 선수들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김현목 트레이너와 아이스하키부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실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테이핑 요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목을 좌우로

돌리기 힘들 때

어깨에 통증이 있을 때

➊-➋ ➌ ➍

➋➊ ➌

족저근막염

통증이 있는 쪽 목 뒤쪽부터

어깨선을 따라 테이프를 붙인다.

귀 뒤쪽부터 쇄골까지

테이프를 붙인다.

날개 뼈부터 어깨까지 테이프를 붙인다.

어깨를 충분이 감쌀 수 있을 정도 길이의 테이프를 준비하여 짧은 쪽을 기준으로

반을 가른다. 이 때, 끝까지 자르지 않고 5cm 정도의 여유분을 둔다.

여유분이 있는 쪽을 아래쪽으로 하여 양쪽으로 어깨를 감싸듯이 테이프를 붙인다.

유의 사항

1 통증이 있는 근육의 시작부위와 끝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서 근육의 크기 및 형태에 따라 붙인다.

2 먼저 붙이고자 하는 부위의 피부를 깨끗이한 다음

근육을 최대한 늘인 상태에서 근육의 길이에 맞게

테이프를 자른다.

3 테이프에 붙어 있는 종이를 미리 벗겨 둘 경우 서로

들러붙을 수 있으므로 테이프를 피부에 붙여가면서

종이를 벗겨낸다.

4 근육을 최대한 늘인 상태에서 붙이되 테이프는

절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붙여야 한다. 근육의

보통상태, 즉 원래의 근육으로 되돌아 왔을 때

테이프에 주름이 생기면 올바르게 붙인 것이다.

5 테이핑 후에 불편함이 느껴지면 떼어내고 다시

붙인다. 체질적으로 피부가 약한 사람은 하루 정도

붙여보고 피부가 발갛게 되면 사용을 금한다.

6 테이프를 붙인 채 목욕해도 떨어지지 않으며,

목욕 후에는 드라이기 및 수건으로 테이핑 부위를

말려줘야 한다.

7 테이프는 보통 2-3일 정도 붙이며, 그 이후에도

통증이 남아 있으면 하루 정도 지난 후 다시 테이프를

붙인다.

허리에 통증이 있을 때

허리 아래쪽 시작점부터 날개 뼈까지의 길이에 맞게

테이프를 준비하여 짧은 쪽을 기준으로 반을 가른다.

이 때, 끝까지 자르지 않고 10cm에서 15cm 정도의

여유를 둔다.

여유분이 있는 쪽을 아래쪽으로 하여 척추를 중심으로

양 쪽의 테이프가 평행하도록 붙인다.

양 쪽에 테이프를 한 번 더 붙여 확실히 고정시킨다.

통증이 있는 허리 부위에 감싸듯이 테이프를 붙인다.

Page 35: SPORTS KU 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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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ui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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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uipment

글러브알고 고르자야구를 시작하기 전, 각자 능력에 맞추어 포지션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그에 걸맞는

글러브를 구매해야한다. SPORTS KU는 10학번 야구부 신입생들이 사용하는 글러브를

모아 각 포지션별 용도에 맞게 몇 가지 팁을 소개해주고자 이 페이지를 마련했다.

투수용

투수는 어떤 글러브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투구폼에 무리가

가지 않게 가볍고 크기가 작은 글러브를 주로 사용한다.

개인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글러브 색 선택은

자유롭지만, 프로야구에서는 규정 상 투수의 경우 공과 비슷한

하얀색이 많이 들어간 경우나 3가지 이상의 색이 섞여 있는

경우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포수용

포수는 시합 중 공을 가장 많이 포구해야하는 포지션이다.

손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두툼한 가죽을 사용한 글러브를

사용한다. 포수는 오른손잡이만 한다는 편견은 버리시길.

사회인야구에선 왼손잡이 포수를 위한 글러브도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마르코도

왼손잡이 포수였듯이.

내야수용

내야수용 글러브는 주로 작고 부드러운 편이다. 땅볼 타구가

많은만큼 공을 쉽게 빼서 송구할 수 있도록 작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땅볼 처리 시 1루 베이스 방향으로 송구하는

경우가 많기에 2루수, 유격수, 3루수는 주로 오른손잡이가

보는 편이다. 글러브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 어느정도

구멍이 뚫린 경우가 있는데, 구멍이 지나치게 클 경우 공이 낄

수 있으니 수비 시 유의할 것!

외야수용

외야수용 글러브는 내야수용 글러브에 비해 큰 편이다. 외야

플레이를 잡을 때 한 끗 차이로 건져내는 경우를 위해 약간

길게 디자인한다. 글러브에 매듭을 이용해 모양새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웹Web이라 부른다. 유명 선수가 선호하는

웹의 디자인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디자인은 각자 선택하면 된다.

글│사진 김명선

sports ku

글러브의 가격은 천차만별?!

글러브의 가격은 싸게는 2만원, 비싸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어떤 차이가 있기에

글러브의 가격이 천차만별일까. 선수들이

사용하는 글러브는 대개 천연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치로의 외야용 글러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소 한 마리 가죽을 다

사용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가죽이 단단해

처음엔 글러브를 길들이기는 어렵지만,

부드러운 촉감은 좋은 착용감과 사용감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색상이나 색의 종류가

많아지는 경우, 글씨를 새기는 자수 등을

주문하면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선수들이 선호하는 글러브

선수들마다 개인의 취향이 제 각각이다.

글러브마다 등급이 존재하는데, 같은

브랜드라도 독특한 기호로 이를 표시한다고.

(같은 브랜드라도 글러브에 새겨진 로고가

다르다) 선수들은 주로 최상위 등급인 Gold

등급을 선호한다. 글러브는 제작사로부터

직접 스폰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주문 제작하거나 선배의

글러브를 물려받기도 한다고.

글러브 길들이기

글러브를 구매했다면, 또 하나의 벽을 넘어야한다. 바로 글러브 길들이기!

어렸을 적 무거운 피아노나 침대를 이용해 글러브를 눌러 접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이는 큰 맘 먹고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한 글러브를

망가트리는 행동이었다. 내 손에 맞지 않는 글러브 탓에 사소한 차이에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큰 에러를 범할 수가 있는 법. 내 손에 꼭 맞는 글러브 만들기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어렵지 않다. 이대로만 따라해보자.

우선 글러브를 부드럽게 해주자. 유분이 함유된 크림을 골고루 펴 발라준다. 일반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바세린을 추천한다.

원하는 볼집을 만들기 위해 공 1~2개를 글러브에 넣은 뒤 헝겊 등을 이용해

꽁꽁 묶어준다. 글러브를 보면 칸이 있는데, 보통 1칸반~2칸정도 접어준다.

선수들은 3칸까지 접기도 한다. 볼집이 클수록 포구는 쉽지만, 볼을 다시 꺼내기는

어려워진다. 자신의 수비스타일에 맞게 접어주도록 하자.

시간이 날 때마다 경식구를 이용해 볼집을 만들어준다. 인고와 반복의 과정이다.

글러브를 손에 끼운 채 공을 힘차게 툭툭 쳐주자.

캐치볼을 자주 하자. 볼끝이 좋은 동료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오랜 캐치볼을 통해

자신의 손에 꼭 맞는 글러브를 만들 수 있다.

캐치볼이나 경기 이후 흙이나 먼지는 깨끗하게 닦아주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

유분을 자주 공급해주는 것이 좋다. 경기 후 젖은 땀이나 물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여 잘 말리도록 한다.

잘 말린 후, 글러브 속에 공을 넣은 후 다음 사용 때까지 잘 묶어서 보관한다.

선수들은 주로 자신의 새 글러브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2~3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사실, 자주 쓰는만큼 효과적인 글러브 길들이기 방법은 없다. 글러브를 자주

사용하고 잘 보관하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손에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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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SPORTS KU VOL14

68안암골에서

사라진

야구공

안암골에서

사라진

야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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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than wordssports ku

Problem

학기 초부터 꾸준히 고파스에서는 캐치볼에

대한 화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캐치볼을

하는 공에 맞았다”, “캐치볼이 무서워 길을

돌아간 적이 있다”는 등 속속 피해 사례가

올라오면서 야구를 하는 사람들은 죄인이

되어 갔다.

고파스에서 여러 대체안들이

올라왔지만, 캐치볼을 즐겨 하는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먼저,

‘단단한 경식구정식 시합구를 대신 연식구비교적

말랑말랑한 공를 쓰면 되지 않냐’는 대안엔

캐치볼을 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공을 던지는 기분도 다를뿐더러

재미도 반감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온 대안인 ‘녹지에서 하면 되지

않냐’에도 수긍하기 어려워 보인다. 캐치볼은

말그대로 ‘간단히 몸을 푸는 동작’이다. 축구

경기처럼 90분을 뛰는 것도 아니고 10분정도

서로 공을 주고 받는 간편한 운동이라 주로

짧은 공강시간에 즐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짧은 운동을 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녹지

운동장까지 가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Problem

2학기에 펼쳐지던 야호 리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주로 저녁 시간에 열리는

축구나 농구 교내 경기와 달리 수업이

한창인 오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경기가

펼쳐진다. 녹지 예약이 비는 시간이 주로

그뿐이거나 예약이 겹칠 경우 야구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나기 때문이다. 야구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안전성’과 ‘야구장의 부재’ 문제때문이다.

그동안 우리학교 내의 야구경기는

마운드가 없는 녹지 운동장에서 주로

펼쳐졌고, 베이스간의 거리도 어림짐작으로

펼쳐져 왔다. 야구 교내 경기의 진행은

갈수록 눈치 보이는 일이자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짧은 펜스 길이는 외부 및 일반

학우들의 안전에 큰 위험을 주고, 마운드조차

없는 녹지에서의 야구 경기는 야구를

‘흉내’내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야구 대회를 진행하려면 제대로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Solution

‘안전’과 ‘접근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최상의 대안은 캠퍼스

내에서 안전하게 캐치볼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의 마련이다. 미디어관 등 신축 건물

공사가 시작됨에 따라 캠퍼스의 공간은 날로

협소해지고 있다. 강의실 확보와 쾌적한 수업

환경을 위한 신축 건물 증설에 마냥 반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녹지 운동장을

둘러보다보면 한가로이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켜온 그물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물망을 이용해 양 쪽에 보호대를

세운 채 캠퍼스 내에서 자유롭게 캐치볼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양 끝에 고리를 만들어

그물로 덮어 일종의 실내 캐치볼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물망엔 바퀴도 달려 있기 때문에

이동 및 설치도 자유롭다. 설치 및 정리도

학생 스스로에게 책임을 맡겨 일종의 캠퍼스

내 하나의 ‘자치’활동을 만드는 것이다.

Solution

안암에 새로운 운동장이나 야구장을 짓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대체 야구장으로

‘송추’야구장을 사용해볼 것을 제안해본다.

송추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 안암에서

약 1시간 내외. 송추엔 야구장, 축구장,

럭비장, 합숙소 등 운동부 선수들의 또 다른

‘캠퍼스’다.

야구부가 야구장을 매일 사용하지

않기에 사회인야구팀이 임대해 쓰는 경우가

많다. 주말이나 평일 비는 시간 일부를

예약하여 몇 일동안 송추를 찾아 하루에

여러 경기씩 대회를 펼친다면 학생들은 정식

규모의 잔디가 깔린 야구장에서 경기를

해보는 ‘꿈’을 이뤄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송추에서 훈련하는 야구부 선수들이 심판을

봐주거나 지도를 가끔씩 해준다면 특기생

선수들과 일반 학우들간의 한바탕 ‘어울림’의

장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야구를 하는 학생들에게 푸른 잔디가 깔린

정식 야구장에서의 경기는 꿈만 같다. 어쩌면

훈련에만 열중하여 지쳐 있는 선수들에게도

일반 학생들과의 교류는 일종의 ‘휴식’이자

또 다른 ‘친목의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강의실에서 듣는 대형 강의를 생각해보면

근래의 건물 신축은 당연히 학업 인프라

개선을 위한 우선순위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한정된 캠퍼스 안에서 무작정 경기장 인프라

탓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생활을 단순히 학업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곰곰이 머리를 맞대어

생각하다보면 지금 제시한 대안보다 뛰어난

대안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만큼 계속 대안을 찾아보면 마침내

원하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캐치볼을

사랑하는 자!

이리로 모이자!

고파스엔 여러 취미를 함께 하는 클럽이 있다.

캐치볼 클럽은 늘 인기 클럽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시로 캐치볼 일정이 올라오고 있으며, 서로간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캐치볼을 하고 싶은

학우들이여! 고파스로 로그인하라!

고파스 www.koreapas.net>>

메뉴 상단 인기클럽 >>캐치볼

앞장의 글러브 특집을 보았는가. 글러브 구매에 대한 충동이 느껴지지 않는가. 당신의 마음 속에서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끓어오르듯, 2009년 야구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캐치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진입 장벽이 너무 높지 않은가. 야구의 열기에 비해 교내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제2회 WBC 준우승으로부터 시작된 2009년 야구의 열기는 나지완(KIA)의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홈런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학교 야구부도 13년만에 대통령배 우승 타이틀을 되찾아왔고,

정기전에서 역사 속에 길이 회자될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다. 10월에 열린 체전에서는 서울대표로 발탁되는

등 대한민국과 우리학교 두 ‘KOREA’의 2009년 야구는 대단했다. 예능 프로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천하무적 야구단’의 성공에 힘입어 야구를 그저 ‘보는’ 것에서 떠나 직접 ‘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교내에서 캐치볼을 하는 모습이나 교내 경기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108개의

붉은 실밥으로 이루어진 하얀 야구공은 안암골에서 점차 자취를 감춰 가고 있는 것이다.

more than words

김명

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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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정기전 직전 다친

부상 이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깨 수술은 잘 됐다.

학교에서 재활하며 지내고 있다.

정기전을 뛰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이번 정기전은 너무 뛰고 싶었다. 1, 2학년

때는 내 포지션에 잘하는 선배가 있어 뛰지

못했다. 마지막 정기전은 꼭 뛰고 싶었다.

정기전 이틀 전에 수술대에 올랐다

춘계리그 때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어깨부상을 당했다. 병원에서 큰 부상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나도 참고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기 이후에도 어깨를

다쳤지만, 곧 있을 정기전 때문에 몸을

조심하면서 경기에 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송추에서 악몽같은 현실이 벌어졌다

정기전을 앞두고 송추에서 합숙하던

중이었다. 어깨가 계속 아파 경기 때마다

몸을 사리면서 뛰었다. 하지만 상무와의

연습경기에서 우려했던 현실이 벌어졌다.

상무 형들과의 경기에서 크게 충돌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팠다. 병원에

가보니 그동안 말했던 부위가 아닌 어깨

신경이 다쳤다고 했다. 정기전을 이틀

앞두고 어쩔 수없이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때의 심정은

아픈 어깨를 잡고 정기전만을 위해 뛰었기에

절망적이었다. 수술을 마친 후의 아픔보다

정기전을 뛰지 못한다는 현실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동기들과 후배들이 잘해서

이기길 응원했는데 마지막을 버티지 못하고

비겼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아픔이 앞으로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알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실하게 운동하는 걸로 유명하다

친구들이 그렇게 말할 뿐이다(웃음). 사실

운동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 운동할 때가

가장 즐거웠기 때문에 4년 동안 주말에 집에

내려갈 때를 제외하고 학교에서 운동을 하며

지냈다. 반대로 생각하면 4년 동안 운동만

해서 대학생활의 추억이 없는 것이 아쉽다.

예전보다 체중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아무래도 수술을 한 후에 운동을 많이

realy interviewsports Ku

김세

호, 박

영미

기자

│ 사

진 권

일운

못하고 재활만 해서 그런지 살이 많이 쪘다.

그리고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체중이 많이 늘었다.

그렇다면 가장 자신의 몸에 이상적인

몸무게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지금 몸무게를 말하긴 부끄럽다(웃음).

신입생 때는 몸무게가 85kg이었다.

95kg정도의 몸무게가 내 생각엔 럭비하기

가장 적합한 체중인 것 같다.

곧 졸업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진로는 정확히 나도 모르겠다. 나를

원하는 실업팀에 가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학교 선배들처럼 일본에 진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좋은 기회가 올 때 놓치지 않기 위해 다쳤던

부위에 대한 재활을 충실히 하고 있겠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는 대학교때 너무나 많이 다쳤다.

후배들은 몸관리 충실히 해서 다치지 않고

훌륭한 감독님, 코치님 밑에서 고려대

럭비부를 빛냈으면 좋겠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

초등학교 때 어머니와 아시던 분이

아이스하키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처음에는 아이스하키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어릴 땐 축구를 더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를 타러 링크장에

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생일 선물로 아이스하키를 하게 해달라’고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후

4학년 때 아이스하키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본격적으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별명이 있는가

이런 걸 말해도 되나. 미친 X(멍멍!). 시합

때는 평소와 달리 너무 악바리같아 내 시합

모습을 본 친구들이 그렇게 부른다.

평소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는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다. 가끔 클럽도 가고. 지금은 시합

스케줄이 있어서 클러빙은 당분간 쉬고

있다(^^). 여행도 좋아하는데 외갓집이

제주도라 여러 번 다녀왔다.

자신의 성격은 어떤가

내 입으로 말하려니까 너무 쑥쓰럽지만,

활발한 것 같다. 그리고 쿨한 성격이라고

할까? 특히 놀 때는 더 그렇다. 4학년이지만

팀 내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웃음).

그렇다면 단점은

아까 별명 말할 때도 잠깐 나왔듯이 시합

중에 욱하는 성격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몸싸움을 할 때도 많은 것 같다.

작년에 시합 중 큰 부상을 입은 걸로 기억한다

3학년 때 시합 중 무릎을 크게 다쳐서

지금까지도 재활을 하고 있다. 작년 마지막

비정기 고연전 당시, 부상 중이라 내

몸을 생각하면 시합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경기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2

피리어드까지 시합을 뛰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벤치로 물러났다. 무리하게 시합에

나가 더 심한 부상을 겪게 된 것 같다. 3개월

정도 깁스를 했고 보조기도 착용했다. 그

이후에도 시합은 나가지 않고 연습을 통해

가볍게 훈련해야만 했다.

아이스하키 선수가 아니였다면

운동을 워낙 좋아했는데 어릴 때는 축구를

가장 좋아했고 잘했다. 그 때는 축구가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축구선수가 됐을 것 같다.

축구에 비하면 아이스하키는 비인기종목인데

그래서 지금 무척 후회한다(웃음). 장난이고.

아이스하키는 상무팀도 뽑지 않아서 앞으로

진로 결정에도 어려움이 많다. 실업팀에

가는 것이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최종 목표이고, 마지막 희망은 2018년에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는 것이다.

애들끼리 모여서 그런 얘기도 많이 한다.

고려대의 선수로서 모든 시합이 끝났다.

앞으로의 일정은 뭐가 있나

비정기 고연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1학년 때 실수로 ‘사고와 표현Ⅱ’를

신청해주지 않아 겨울 계절학기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웃음).

황인조 선수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다. 몸도 좋고

덩치도 큰데 의외로 수줍음도 많이 탄다. 같이

있을 때는 물론 재미있고 말도 많지만. 다른

학우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은 착한 친구다.

황인조 김형준럭비부체교06

아이스하키부체교06

realy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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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하면 어떤 스포츠가 생각나는가? 요즘엔 피겨, 보드가 떠오르고 있지만 아무래도

겨울스포츠하면 여전히 대표적인 종목은 스키다. 가파른 언덕, 길게 펼쳐진 슬로프 위를

질주하는 속도감의 스키는 여전히 겨울 스포츠의 중심이다. 최근엔 스키인도 많이 늘어 예전에

비해 싸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운동도 혼자서 즐기기 심심한 법, 함께 설원을

누빌 친구들이 기다리는 스키부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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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 사진 이희재

빙상 수업의 수강생들. 두 시간 가량 스케이트를 탄 뒤

피곤할 법도 하지만, 누구라 할 것 없이 표정이 밝다.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 하나만 신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 ‘빙상’이라

불리는 이 스포츠는 본래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으로 그

종목이 세분화된다. 우리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빙상 수업은 아쉽게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추운 겨울은 보다 더

겨울답게 보낼 수 있어 수강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수업이다.

금요일 늦은 오후, 아이스링크장. 두 시간동안 진행되는 빙상 수업을 듣기 위해

수강생들이 삼삼오오 링크장으로 모여든다. 모두가 신발을 벗고 스케이트를 갈아

신는 동안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며 수강생들의 안부를 묻고, 수강생들은 밝은

목소리로 화답한다. 이처럼 빙상 수업은 그 어느 수업보다도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수업을 맡고 있는 최성욱체교94 선생님이 ‘스케이팅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빙상 수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생님은 “이 수업의 목표는 선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케이팅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그 속에서 자신의 신체를 알아가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업시간을 즐기기를 기대했다.

기자가 아이스링크장을 찾아간 날은 마침 수강생들이 두 달 동안의 기본 연습을

마치고 개별 연습에 들어간 날이었다. 수업 초반, 대부분의 수강생은 빙판 위에

설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이팅 실력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걷기, 질주하기, 회전,

정지동작 등의 기본기를 두 달 동안 배우며 실력이 향상된 학생들은 이제 겁내지

않고 빙판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스케이트를 타는 데 어느 정도 숙달된 학생들은

제자리턴과 뒤로 가기 등의 심화 학습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트랙을

돌고,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면 코너로 가서 선생님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 수업의 반장을 자청하는 한 수강생은 “처음에는 스케이트를 탈 줄 몰랐는데

정말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스케이트를 잘 탈 수 있다. 처음에 링크장에

들어오면 추운데, 춥다고 웅크리는 것 보다 트랙을 몇 바퀴 돌면 땀도 나고 운동도

돼서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여가생활을 하는 기분으로 링크장에 오른다”며

이제까지 들었던 교양 체육 중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과목이라고 전했다.

스케이팅은 체력을 기르고 신체 밸런스를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스케이팅을 통해 종아리 근육과 발목 근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데, 특히 잘

넘어지는 사람들이 배우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빙판에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운동이 된다고 하니 빙판 위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두려움 따위는 떨쳐 버리고 ‘자유롭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빙상 수업을 꼭

들어보길 적극 권장한다.

웃음이 피어나는 얼음판

신나게 달려보자! 교양체육 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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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선배들의 지원도 크다. 사회에 진출한 많은

선배들이 사회생활에 관한 조언도 해주는 등의

끈끈한 정이 있다.

스키부는 돈이 많아야 한다?

요즘엔 스키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다.

김 주장은 “물론 스키용품을 개인이 구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스키용품 가격이 많이 낮아져 정말 스키를

즐기고 싶다면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오히려 스키부와 함께 단체로

즐기기 때문에 혼자 즐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수도 있다”라며 스키부원의 조건으로 돈보다는

스키에 대한 열정을 강조했다. 우리학교 스키부에

가입하게 되면 스키스쿨과 학교 간 교류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스키를 좋아한다면

스키부원간의 유대관계, 선배들의 지원 등을 통해

스키를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스키부의 큰

장점이다. 김 주장은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체계적으로 스키를 배울 수 있고 다 함께 즐길 수

있다”라며 학우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29년의 긴 역사

스키부는 1980년에 창립되어 현재 29대까지

내려오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체육특기생과 일반

학생이 함께 하는 동아리라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스키부에 가입하게 되면 대학 스키연맹에 자동으로

선수등록이 된다. 연맹 선수로 등록된 부원에게는

휘닉스파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는

동시에 한국대학스키연맹스키대회 출전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학스키연맹인

만큼 전국의 대학 동호인 선수들이 모여서 펼치는

경기이다. 기록경쟁보다는 서로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키부의 1년

스키부의 한 해는 3월에 열리는 신입생 환영회로

시작된다. 스키부의 김기범전기전자전파 05주장은

“스키부가 운동을 하는 동아리인 만큼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있다. 신입생 환영회에는

많은 선배님들이 참석한다. 신입생 환영회를 통해

소속감도 높이고 단결력도 높을 수 있다”라는

말로 신입생 환영회를 소개했다. 봄이 되는

4월과 여름 방학엔 MT를 통해 친밀감을 높인다.

다른 동아리와의 차별화 되는 일정은 10월에

있는 연세대와의 교류체육대회와 겨울방학에

있는 스키 합숙이다. 정기전이 끝난 다음 열리는

연세대스키부와의 교류체육대회는 상호간의

친선도모에 의의가 둔다. 겨울 방학 중에는 약

5주간의 합숙을 실시한다. 연맹 대회에 대비해서

선배들에게 스키 강습을 받으며 함께 훈련하는

기간인데, 합숙 중에는 식사 준비까지도 물론

부원들의 몫이다. 방학 중 주말을 제외한 5주 동안을

함께 운동하며 생활하다 보면 가족 못지않게 돈독한

사이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스키부가 아닌 다른

학우들에게도 익숙한 스키스쿨은 스키부에서

개최하는 대규모의 행사이다. 스키부의 학우들이

일반 학우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스키를 가르쳐주고

스키부의 인지도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이다. 김 주장은 “아무래도 돈을 받고 하는

행사이다 보니까 부담도 많이 가지게 된다. 그래도

스키스쿨을 통해 스키부원들의 스키실력도 더

늘고 행사가 잘 끝나면 보람도 많이 느낀다”라고

스키스쿨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에는 스키부의 모든 선후배가 참석하는 친목의

밤 행사가 개최된다. 위계질서가 있는 스키부이지만

하얀 설원을

질주하는 짜릿함!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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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자유이용시간:월~일 14:00~18:00

*방학중 자유이용시간:월~일:13:00~18:00

*평일에는 강습생과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으며 ,

공휴일에는 강습을 할 수 없습니다.

개인레슨 [스피드 피겨]

구분 시간 횟수 레슨비 입장료 보관, 연마료 제한 인원수

주5회

2:00~6:00

20 400,000 80,000 60,000

1명~ 최대5명

1회 (60분 수업)

주3회 12 280,000 60,000 36,000

주2회 8 200,000 40,000 24,000

주1회 4 120,000 20,000 12,000

주말반 8 250,000 40,000 24,000 특강 때 강습 없음

대관(일반) 6:00~7:00 130,000

대관(선수) 7:00~8:00 180,000

*강습시간은 1시간씩

*접수기간 : 매달 말일, 매달 14일

[정규반]

구분 시간 인원수 금액 횟수

월수금 4:10~5:008~15 95,000원 12회

화목토 5:00~5:50

방학특강반

여름/겨울방학 기간중에만 운영되는

가장 호응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10회씩 단기코스로 3기 까지 운영합니다.

내부시설

무료 주차장,스포츠용품정

선수대기실 5 ,매점 1, 스케이트 및 연마실 1,아이스링크장 1

선수숙소 9(2인실),1(5인실),1(8인실),아이스 하키용품점 1, 내빈 대기실 1

1층

2층

3층

[입장요금]구분 입장료 대여료

대인 6,000원 3,000원

청소년 5,000원 3,000원

소인 5,000원 3,000원

본교생 3,000원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