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discourse on the wheel of dhamma · 2016-04-09 · 2. 율장(律藏) - 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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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MMACAKKAPPVATTANA S UTTA THE GREAT DISCOURSE ON THE WHEEL OF DHAMMA 마하시 사야도초 전 법 륜 경 (상) 우꼬레 영어 번역 / 김한상 우리말 번역 행복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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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HAMMACAKKAPPVATTANA SUTTATHE GREAT DISCOURSE ON THE WHEEL OF DHAMMA

    마하시 사야도의

    초 전 법 륜 경 (상)

    우꼬레 영어 번역 / 김한상 우리말 번역

    행복한 숲

  • - 3 -

    번역자의 말

    초전법륜경은 부처님의 최초 법문이면서 가장 직설적인 법문으로 불

    교의 초석이자 핵심인 사성제와 팔정도가 집약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경입니다. 교학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마하시 사야도의 초전법륜경 법

    문은 그러한 면에서 더욱 더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서는 사성제와 팔정도를 교리적으로 해설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

    고 위빠사나 수행과 접목시켜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고 해탈과 열

    반을 이룰 수 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

    에서 본서는 훌륭한 위빠사나 수행 교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마하시 사야도의 감로수(甘露水)와 같은 법문을 번역하면서 가

    슴 벅찬 희열과 감동을 느꼈으며 오래전 인도 사르나트의 초전법륜지

    에 갔을 때의 그 감명을 되살렸습니다. 참으로 법의 맛은 세간의 다른

    어떤 맛보다도 뛰어남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가 수행이 부족하고 배움이 일천하여 위대하신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을 혹시나 잘못 번역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번역할 때 일차적으로 영어본을 저본으로 하면서 본

    문에 인용된 경과 주석서를 일일이 찾아보면서 보완하였으며, 원래 영

    어본에는 없지만 각 경과 주석서의 번호와 페이지를 빨리성전협회

    (PTS) 기준으로 명시하였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술어에는 상세한 각

  • - 4 -

    주와 도표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번역상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

    라고 스스로 위안해봅니다.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사야도

    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역자의 과실임을 밝히면서 독자 여러분의 매서

    운 질책을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괴로움을 철저히 알고, 괴로움의 원

    인인 갈애를 제거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도인 팔정도를 닦아서,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을 실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하면서 초기불전연구원의 각묵 스님으로부터 적

    지 않은 도움과 조언을 받았음을 밝히면서 이 자리를 빌려 스님께 감

    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부족한 역자에게 번역을 흔쾌히 맡겨주신

    한국 위빠사나 선원의 묘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 6월

    김한상 합장

  • - 5 -

    일러두기

    (1) 본문의 삼장(Tipiṭka), 주석서(Aṭṭhakathā), 복주서(Ṭīka)는 모두 미얀마 6차 결집본이다. 하지만 경전번호는 모두 PTS본에 의거해서

    괄호로 표기하여 제시하였다.

    예) M123/iii.123은 중부 제 123번 경임과 동시에 중부 제 3권 123

    쪽에 나타남을 , M123은 중부 제 123경을, M.iii.123은 중부 제 3권

    의 123쪽을 나타낸다.

    (2) 각주는 빠알리어 술어의 어원과 기본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초점

    을 맞추었다. 또한 해당술어가 처음 나오는 곳에는 빠알리어를 병기하

    고 만약 통용화된 한문술어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병기하였다.

    (3) 각주는 어느 곳을 읽어도 이해하기 쉽도록 여러 곳에서 중복 설명

    하였고 필요한 경우 도표를 첨부하였다.

    (4) 본문의 모든 술어는 가급적 한글로 풀어서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

    다. 하지만 해당 술어의 이해를 돕고 한문 불교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 괄호에 한문을 병기하였다.

    약어

    A. Aṅguttara Nikāya(앙굿따라 니까야)AA. Aṅguttara Nikāya Aṭṭhakathā(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

  • - 6 -

    Asl. Aṭṭhasālini(아따살리니, 법집론 주석서) B. Buddhavamsa(불종성경)

    Dhs. Dhamma Saṅgaṇī(법집론)Dhp. Dhamma Pada(법구경)

    DhA. Dhamma Pada Aṭṭhakathā(법구경 주석서)D. Dīgha Nikāya(디가 니까야)

    DA. Digha Aṭṭhakathā(디가 니까야 주석서)J Jātaka(본생담)

    Nid. Niddesa(의석)

    M. Majjhima Nikāya(마찌마 니까야)

    MA. Majjhima Nikāya Aṭṭhakathā(마짜마 니까야 주석서)Miln. Milinda Pañhā(밀린다왕문경)

    Ps. Paṭisambhidā Magga(무해해도)PTS Pāli Text Society(빠알리 성전 협회)

    Pm. Paramatthamañjūsa = Visuddhimagga Mahāṭīkā (청정도론 주석서)

    Pug. Puggala-Paññati(인시설론)

    S. Saṁyutta Nikāya(상윳따 니까야)SA Saṁyutta Nikāya Aṭṭhakathā(상윳따 니까야 주석서)SAṬ Saṁyutta Nikāya Aṭṭhakathā(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n. Sutta Nipāta(경집)

    SnA. Sutta Nipāta Aṭṭhakathā(경집 주석서)U. Udāna(감흥어)

    Vbh. Vibhaṅga(분별론)Vin. Vinaya(율장)

    Vis. Visuddhi Magga(청정도론)

    VsTi Visuddhi Magga Tīkā(청정도론 복주서)

  • - 7 -

    차례⎟ 초전법륜경 上

    번역자의 말

    일러두기

    약어

    제1장

    1. 서문 15

    2. 이 경전을 말씀한 시기 17

    3. 세 가지 서문 19

    4. 보살과 세속적 즐거움 20

    5. 세속의 길 21

    6. 출세간의 길 21

    7. 보살의 출가 23

    8. 대 사문 알라라를 찾아가다 24

    9. 거룩한 현인 알라라에게 배우다 25

    10. 마음을 다독이는 말 25

    11. 현인 웃다까를 찾아가다 28

    12. 우루웰라 숲에서 아주 심한 고행을 하다 30

    13. 세 가지 비유 30

    14. 마음으로 생각을 짓누르는 아주 심한 고행 31

    15. 들숨날숨을 억누르는 선정 몰입 33

    16. 극심한 단식 34

    17. 마라의 설득 35

    18. 올바른 판단 37

  • - 8 -

    19. 아기 때 처음 선정에 들다 38

    20. 식사를 다시 시작하다 39

    21. 깨달음 41

    22. 심한 고행은 자기 학대다 44

    23. 첫 설법을 어떻게 펼까 깊이 생각하시다 45

    24. 7일 차이로 도와 과를 놓치다 46

    25. 하루 밤 차이로 크나큰 기회를 놓치다 47

    26. 첫 법문을 펴기 위해 길을 떠나다 48

    27. 나체 수행자 우빠까를 만나다 48

    28. 그릇된 생각에 가려 있으면 진리는 보이지 않는다 50

    29. 이시빠따나에 도착하다 51

    30. 부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다 57

    ***역주(譯註) 59

    제2장

    1. 감각적 만족은 저속하다 87

    2.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88

    3. 저속한 수행 89

    4. 성자가 행할 바가 아니다 90

    5.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90

  • - 9 -

    6. 재가자는 감각적 쾌락에 빠져도 되는가 91

    7. 네 가지 세속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 92

    8. 고행 93

    9. 고행의 방법 94

    10. 니간타 경전 95

    11. 육체적인 고통 96

    12. 이익 없는 노력 96

    13. 고행에 대한 잘못된 해석 98

    14. 느낌을 주시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 99

    15. 어떤 스승의 견해 100

    16. 중도(中道), 그 실천과 이익 102

    17. 두 극단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104

    18. 중도는 소화제와 같다 105

    19. 혜안[眼]과 지혜[智]는 어떻게 계발 되는가 106

    20. 혜안과 지혜를 얻는 방법 107

    21. 수행을 통해서 지혜가 깊어지다 108

    22. 주석서의 설명 109

    23. 경전의 정의에 따라 한 단계에서부터 시작 110

    24. 번뇌를 잠재우다 111

    25. 잘못된 믿음, 계금취견(戒禁取見) 112

    26. 일시적인 제거 114

    27. 최상의 지혜(ABHIÑÑĀ)가 생기다 115

    28. 통찰지혜 116

    29. 열반의 실현 117

    ***역주(譯註) 120

  • - 10 -

    제3장

    1. 자자(自恣) 141

    2. 팔정도(八正道)에 대한 상세한 해설 143

    3. 바른 말[正語]의 도 144

    4. 바른 행위[正業]의 도 145

    5. 바른 생계[正命]의 도 146

    6.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생계다 147

    7. 도덕률과 부합하는 것이 바른 생계[正命]다 148

    8. 바른 노력의 도, 정정진(正精進) 149

    9. 바른 알아차림[正念]의 도 152

    10. 부처님은 팔정도를 상세하게 말씀하셨는가 153

    11.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어떻게 생기는가 155

    12. 위빠사나 찰나집중에 대한 설명 156

    13. 바른 통찰지혜는 오직 알아차림으로 얻어진다 159

    14. 알아차림 없이는 통찰지혜도 없다 159

    15. 바른 집중[正定]의 도 160

    16. 선정이 없으면 위빠사나를 계발할 수 없다는 주장 161

    17. 바른 견해, 정견(正見)의 도 165

    18. 업이 자신의 것이라는 바른 견해 167

    19. 세 가지 도 170

    20. 선정 수행자는 어떻게 통찰 지혜를 계발 하는가 172

    21. 잡다한 의도를 알아차림 174

  • - 11 -

    22. 위빠사나 도를 시작하다 176

    23. 어떻게 위빠사나 집중의 도를 계발 하는가 176

    24. 어떻게 위빠사나 지혜의 도를 계발 하는가 177

    25. 바른 사유[正思惟]의 도 178

    ***역주(譯註) 182

    제4장

    1. 고성제(苦聖諦) - 괴로움의 진리 201

    2. 차이점에 대한 비판적 검토 202

    3. 빨리 경전에 보이는 고성제(苦聖諦)에 대한 정확한 정의 205

    4.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四聖諦) 206

    5. 태어남(再生)의 괴로움 208

    6. 변화로 인한 괴로움[壞苦] 210

    7. 행으로 인한 괴로움[行苦] 211

    8. 감추어진 괴로움 212

    9. 드러난 괴로움 212

    10. 간접적인 괴로움 212

    11. 직접적인 괴로움 213

    12. 모태에서의 괴로움 214

    13. 태어날 때의 괴로움 215

    14. 전 생애를 통해 겪는 괴로움 215

  • - 12 -

    15. 늙어 가는 괴로움 216

    16. 죽는 괴로움 217

    17. 슬픔의 괴로움 219

    18. 비탄의 괴로움 220

    19. 육체적인 괴로움 220

    20. 정신적인 괴로움 221

    17. 절망의 괴로움 222

    18.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 222

    19.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 223

    20.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224

    21. 몸과 마음의 괴로움[五取蘊苦] 225

    22. 보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26

    23. 듣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29

    24. 냄새 맡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30

    25. 먹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31

    26. 닿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32

    27. 생각하는 순간의 오취온(五取蘊) 235

    28. 오취온(五取蘊)의 괴로움 240

    29. 집착과 집착의 무더기 242

    ***역주(譯註) 247

    초전법륜경 下

    제5장 ~ 제8장

  • 제1장

  • - 15 -

    제1장

    미얀마력, 따우탈린(Tawthalin) 1324년(서력 1962년), 새로운 달, 첫

    날에 법문하다.

    서문

    오늘은 따우탈린¹의 새로운 달, 첫날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처님

    께서 설하신 최초의 법문인「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 대하여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최초의 법문인 초전법륜경은 부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오

    래되고 가장 직설적인 것입니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이 경전을

    모르는 신자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이 경전을 외우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초전법륜경 독송회’를 마련하여 그룹별

    로 이 경을 읽으며 또 경청합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미얀마 불자들은 이 경을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대합니다.

    현재 미얀마에는 빨리 경전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대역(對譯,

    Nissaya)과 다른 형태의 번역서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도과를 성취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진지하게 도전하는 수행자에게는,

    실제로 이들 경전에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 - 16 -

    않습니다. 또 수행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문헌도 거의 없습

    니다.

    우리는 이 경전을 공부할 때마다, 이것을 실 수행²에 적용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경전의 이름으로 양곤의 명상센터를

    공식 개관하였고 이곳에서 누차 이 경에 대한 법문을 하였습니다. 다

    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명상센터가 새로 개설되면 우리는 항상 이 경

    전으로 개관식 법문을 합니다.

    불교 경전은 세 가지 주요한 부분, 즉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경장(經藏) - 쑤따 삐따까(Sutta Piṭaka) 2. 율장(律藏) -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3. 논장(論藏) -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

    초전법륜경은 다음과 같은 오부(五部)로 구성된 경장(經藏)에 속해있

    습니다.

    1. 장부(長部) - 디가 니까야(Digha Nikāya)

    2. 중부(中部) - 마찌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3. 상응부(相應部) -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

    4. 증지부(增支部) -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

    5. 소부(小部) - 쿠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개 품(品)으로 나눕니다.

    ➀ 유게품(有偈品 Sagāthāvagga)➁ 인연품(因緣品 Nidānavagga)

  • - 17 -

    ➂ 건도품(健度品 Khānavagga)④ 육처품(六處品 Salāyatanavagga)

    ⑤ 대품(大品 Mahāvagga)

    대품(大品)은 다시 대상응(大相應), 각지상응(覺支相應) 염처상응(念處

    相應 )과 같은 열두 개의 소상응(小相應)으로 나누며 그중에 맨 마지

    막이 제상응(諦相應)입니다.

    초전법륜경은 제상응(諦相應), 제 2품(品) 첫째 경이며, 제6차 결집³

    을 진행할 때에도 그렇게 독송하였습니다. 제6차 결집에서는 초전법륜

    경이 상윳따 니까야 ,제3권(368-371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는,

    “한 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4.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라는 문구로 법문을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부처님 입멸, 3개월 후에 개최된 제1차 결집에서, 마하까

    사빠 장로가 질문하고 아난다 장로⁵가 독송한 것입니다. 마하까사빠 장로⁶는 아난다 장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벗 아난다여, 초전법륜경은 어디서 설한 것입니까? 누가 설했고 누

    구를 대상으로 설한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설해졌습니까?”

    아난다 장로는 대답했습니다.

    “스승이신 마하까사빠여,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세존

    께서는 바라나시 근처의 사슴동산(鹿野苑)⁷, 현인(仙人)의 거처인 이시빠따나⁸에 계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따라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나니.”

    이 경전을 말씀한 시기

  • - 18 -

    서문에는 정확히 어느 날짜에 경전을 설하셨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

    니다. 다른 모든 경과 마찬가지로 ‘한때’ 혹은 ‘어느 때’라고만 언급하

    고 있습니다. 이런 경전들이 설해진 년, 월, 일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年代)별로 본 상세한 정보는 경을 암기하고 독송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전이 설해

    진 정확한 날짜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전법륜경의 경우는 설해진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하신 법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경

    장(經藏)이나 율장(律藏)에서도, 부처님께서 대력(大曆) 103년, 카손

    (Kason) 대보름날 정각을 얻으셨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이 초전법륜경을 우안거(雨安居, Wāso)⁹가 끝난 다음인 대보름날 초저녁에 설하신 것이 됩니다. 지금은 미얀마력

    1324년(서력 1962년)으로,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10에 드신 지 정

    확히 2506년이 되는 해입니다.

    열반에 드시기 전에 45년 동안 가르침을 편 기간을 고려하면 모두

    2551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첫 법문을 하신 것은 2551년

    전 우기가 끝난 대보름날입니다. 서양학자들은 이것을 60년이나

    당겨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계산에 따르면 2491년 전에 첫 법문이 있었던 것으로 됩니다.

    법의 바퀴(法輪)를 굴린 것은 동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동양의

    계산법을 따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첫 법문은 2551년

    전에 설해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슴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사슴동산(鹿野苑)은 사슴들이 평화

    롭게 뛰놀던 숲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숲의 나무들이 벌채

  • - 19 -

    되어 경작지와 사람들 주거지로 이루어진 탁 트인 평원으로 되어 있습

    니다. 오래전 옛날에는 신통력을 가진 벽지불11들이 간다마다나 산으로

    부터 날아와 한적한 이곳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먼 과거의 정각자(正覺者)들도 초능력으로 하

    늘을 올라 이곳에 오셨고 똑 같은 장소에 내려와서 첫 법문을 하셨습

    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인(仙人)의 거처, 혹은 보금자리라는 이름이 붙

    여졌습니다.

    경의 서문에서는,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의 사슴동산에 계실 때 다섯

    비구들에게 첫 법문을 하셨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문에서

    알 수 있는 꾸밈없고 불충분한 정보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므로 다른 경에서 자료를

    하나 가져오겠습니다.

    세 가지 서문

    경전 서문에는, 부처님께서 이 경을 누구에게, 혹은 무엇을 설하신 것

    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주 먼 과거의 배경 이야기를 해주는 서문이 있습니다. 이는

    미래의 부처인 보살(菩薩)12이 부처가 되기까지, 연등불(燃燈佛, 디빵카

    라붓다13)에게 수기(受記)를 받는 것에서부터 세따케뚜라는 천인15의

    왕으로 도솔천에 재생14할 때까지, 붓다가 되기를 서원하고 그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먼 과거에 있었던 배경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 다룰 필요가 없다고 보

    며 또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 - 20 -

    둘째. 중간시기의 배경이야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서문이 있습니

    다. 도솔천의 생을 마치고 내려와 지혜의 왕좌에 앉아 정등각(正等覺)

    을 얻은 이야기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서문에 어느

    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방금 언급한 초전법륜경의 가르침과 같이 최근의 과거를 이야

    기하는 서문이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한 때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어두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제 앙굿따라 니까야, 삼집(三集)의 수쿠말라경(Sukhu māla

    Sutta, A.i.143)과 근본오십품(根本五拾品)의 빠사라시경(Pasarāsi

    Sutta), 성구경(聖求經 Ariyapariyesana Sutta), 살차가대경(薩遮迦大

    經 Mahāsaccaka Sutt,), 마찌마 니까야의 보리왕자경(菩提王子經

    BodhirāJkumara Sutta) 상가라경(傷歌邏經 Sangarava Sutta), 그리

    고 쿠다까 니까야, 경집(經集 Sutta nipāta)의 출가경(出家經 Pabbajjā

    Sutta), 정근경(精勤經 Padhāna Sutta) 및 다른 많은 경전상의 자료들

    을 가지고, 둘째 범주에 속하는 서문에서 가져온 관련 인용문을 살펴

    보겠습니다.

    보살과 세속적 즐거움

    보살은 도솔천에서 생을 마친 후, 카삘라와뚜(Kapilavatthu)16의 숫도

    다나 왕의 정실왕비인 마하마야 데위의 태내에 들어갔습니다. 보살은

    대력 68년의 카손 보름날, 금요일에 룸비니 숲, 사라나무의 즐거운 숲

    에서 태어났고 이름을 싯달타라고 하였습니다. 열여섯 살에는 데와다

    의 왕족인 수빠붓다의 딸 야소다라 데위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후 그

    는 4만 명의 궁녀들에 둘러싸여 장엄한 궁전에서 왕궁의 즐거움을 누

    렸습니다.

  • - 21 -

    싯달타는 화려함과 장엄 속에서 감각적 즐거움에 완전히 빠져있었습

    니다. 하루는 정원의 향연과 환락을 위해 시중들을 데리고 왕실의 즐

    거운 숲으로 나갔습니다.

    숲으로 가는 길에 그는 노쇠한 늙은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왕궁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두 번째는 아프고 병든 사람을 보고 크게 놀라 되돌

    아 왔습니다. 세 번째 나갔을 때는 죽은 사람을 보고 마음이 크게 동

    요되어 급하게 발걸음을 되돌렸습니다. 보살이 느꼈던 놀람과 동요는

    마찌마 니까야의 성구경(聖求經)에 나와 있습니다.

    세속의 길

    보살은 이렇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늙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늙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을 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면 늙어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내와 자식, 노예, 염소와 양, 닭과 돼지, 코

    끼리, 말, 가축, 금, 은, 유정물, 무정물, 쾌락과 호화로움, 이 모든 대

    상은 늙도록 되어 있다. 스스로 늙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그런 쾌락에

    둘러싸여 파묻혀 지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병들고 죽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병들고 죽어가

    도록 되어있는 감각적 대상을 갈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늙음, 질

    병, 죽음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타당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저

    속한 일이다.”(성구경, M26)

    “스스로 병들고 죽어 가도록 되어 있는데,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것

    을 찾아나서는 것은 성스러운 추구이다.”(성구경, M26)

    출세간의 길

  • - 22 -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살이 처음에는 세속적인 것에 빠져 있던

    것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에는, 나 스스로

    태어나도록 되어 있었는데도, 역시 또 태어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원

    하였다. 나 스스로 늙어가도록 되어 있었는데도, 역시 또 늙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을 원하였다.”

    이는 쾌활한 궁녀들 무리 속에서 야소다라와 함께 살았던 시절, 쾌락

    을 추구하던 삶에 대한 반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행복하지 않

    다는 것을 인식한 다음,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열반의 평화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약, 스스로 태어나고 늙어가도록 되어있는 것이 불행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태어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비할 수도 없고 능가할

    수도 없는, 열반의 평화를 찾는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

    다.”

    이렇게 해서 보살은 늙음과 질병, 죽음이 없는 열반을 추구하게 되었

    습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목표였으며, 우리는 그것을 좀 더 고찰하

    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나이 들고 노쇠한 어떤 사람이 자기처럼 나이 들고 쇠약한 다른

    남자나 여자를 찾거나, 아직 나이는 들지 않았어도 곧 늙어버릴 누군

    가를 짝으로 찾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전혀 사려

    깊은 일이 아닙니다.

    또 건강이 나빠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질병에

    걸린 다른 사람을 짝으로 구한다면 너무나 불합리한 일일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건강이 좋은 상태에 있더라도 곧 병고를 받게 될 그런 사

  • - 23 -

    람과 짝을 이룬다는 것은 사려 깊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

    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고 정착해서 즐기면서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배우자 중 한쪽은 곧 병으로 몸져눕게 되고 다른 짝

    이 돌봐주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배우자 중 한쪽은 죽고, 사

    랑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슬픔과 비탄만을 남겨주며, 행복한 결혼 생활

    은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결국 부부는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이

    라는 불행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어가도록 되어있는 사람이 감각적 쾌

    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아주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가장 성스러운

    것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 이

    명상센터의, 신도, 비구, 재가자 여러분도 가장 성스러운 것인,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보살의 출가

    보살이 즐거운 숲으로 네 번째 유람을 나갔을 때 한 출가 사문(沙門)

    과 마주쳤습니다. 세속의 삶을 버리고 공덕을 쌓는 것에 매진하고 있

    다는 사문의 말을 듣고, 보살은 세속의 삶을 버리고 출가 사문이 되

    어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을 찾아 나서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얻으면 그 지혜를 세상에 전해 주

    어 다른 중생들에게도 늙음, 질병, 죽음이라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생각과 뜻

    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24 -

    바로 그날, 거의 같은 시각에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소

    식을 들은 보살은 “장애(Rāhula)가 태어났구나. 족쇄가 태어났구나.”라

    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보살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이

    아이가 실제로 보살에게 족쇄가 되고 출가를 하고자 하는 계획에 장애

    가 되기를 바라며 새로 태어난 손자를 라훌라 왕자(장애왕자)17라고 이

    름 지었습니다.

    하지만 보살은 세속의 즐거움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보살은 그날

    밤 왕궁 무용수들이 제공하는 여흥에도 동요하지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았으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낙심한 무용수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잠에 들었습니다. 한 밤중에 잠을 깬 보살은 기

    대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꼈고 장

    엄한 궁전이 마치 송장들로 가득한 공동묘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한밤중에 마부인 찬나(Channa)18를 데리고 왕궁의 전

    속 말인, 칸다까라를 탄 채 위대한 출가를 감행하였습니다. 그들이 아

    노마 강에 이르렀을 때 보살은 모래강변에 선 채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왕의 장신구를 버리고 범천(梵天) 간띠카라19가 준

    주황색가사를 걸치고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때 보살은 겨우 스물아홉이었고 쾌락을 추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나이였습니다. 아직도 한창 젊음을 누릴 나이에 왕국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야소다라 비(妃)와 시종들이 주는 쾌락과 편안함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참으로 경외스러운 일입니다.

    대 사문 알라라를 찾아가다

    당시 보살은 출세간에 이르는 실질적인 통찰지혜를 얻지 못한 상태였

    기 때문에, 비범한 인물로 알려진 사문 알라라를 찾아갔습니다. 알라

  • - 25 -

    라는 팔선정(八禪定, lokiya-jhãna)20 가운데, 일곱 번째인 무소유처(無

    所有處)를 완전히 통달하여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부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선정력을 얻은 이런 스승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을 실제로 가르치는 믿을 만한 스승의 역할을 했습니

    다. 알라라는 그 당시 부처님처럼 유명하였습니다. 상좌부경전에는 알

    라라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북방불교 학파의 불전(佛傳)인「방광대장

    엄경(方廣大莊嚴經 Lalitavistra)」21에는, 알라라가 웨살리주에 살았고

    삼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룩한 현인 알라라에게 배우다

    보살이 어떻게 거룩한 현인(賢人) 알라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무엇이 출세간이고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추구

    하게 되었고, 비교할 수 없고 위없는 평화를 찾기 위해 알라라 깔라마

    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벗 깔라마

    여. 저는 당신의 교법과 가르침 밑에서 출세간의 행[淸淨梵行]22 을 닦

    기 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알라라가 대답했습니다. ‘존경

    스러운 벗 고따마가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환영합니다. 이 법

    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스승이 알아서 증득한 것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격려의 말을 하고 나서 알라라는 보살에게 교법의 실질적인 가르

    침을 주었습니다.

    마음을 다독이는 말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곧 스스로 자신처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알

    라라의 말은 무척 신심을 북돋아 주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실용주의적

  • - 26 -

    인 교법은, 오직 스스로, 짧은 시간 안에 깨달을 수 있을 때에, 믿음과

    확신이 서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더 고무적인 것입니다. 보살은 알라라의 말에 만족하고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한 믿음만으로 알라라가 법을 배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알라라는 확실히 스스로가 법을 깨달았고, 법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

    정말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알라라는 권위적인 어떤 경전도 인용하

    지 않았습니다. 알라라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깨달은 것만 말했습니다.

    수행을 가르치는 스승은 반드시 알라라처럼 과감하게 자기의 확신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몸소 법을 실천해보지도 않고, 자기 방식만

    의 체험이나 깨달음도 없으면서, 오직 경전만을 통하여 수행법을 배운

    것으로 수행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주장하거나 수행에 대한 법문을

    하고 책을 쓰는 것은 가장 모순되고 부적절한 일입니다. 이는 마치 아

    직 임상 실험을 거치지도 않고 스스로 경험해 보지도 않은, 그렇기 때

    문에 자신에게는 함부로 투여할 수 없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과 같습니

    다. 그러한 가르침과 간행물들은 확실히 의지할 수 없고 또 영감을 얻

    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알라라는 과감히 스스로 깨달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보살은

    그런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알라라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있다. 알아라에게

    만 노력, 알아차림(sati)23, 집중,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역시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가 있다.“

    그러고 나서, 알라라가 스스로 배우고 알았다고 하는 그 법을 깨닫기

    위해 매진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보살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이르

    는 법을 배웠습니다.

  • - 27 -

    보살은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서, 스스로 알았고 그 속에서 머물며 살

    아간다고 주장하는 무소유처와 자신이 지금 도달한 것이 같은 단계인

    지를 물었습니다. 알라라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아는 법은 여기까지입니다. 내가 깨닫고 그 속에 머물며 살아

    간다고 선언한 이 법은 벗 고따마가 도달한 것과 같은 단계입니다.”

    그리고 알라라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습니다.

    “벗 고따마는 대단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무소유처는 쉽게 얻을 수

    없는데, 벗 고따마는 그것을 짧은 시간 안에 증득하였습니다. 이는 참

    으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존자와 같은 이런 뛰어난 도반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내가 법을 깨달은 것처럼 그대도 그것을 깨달았습니

    다. 이처럼 내가 깨달은 법을 그대도 압니다. 그대가 깨달은 법을 나

    도 압니다. 벗 고따마는, 법에서는 나와 동격입니다. 벗이여, 오십시오.

    둘이 같이 머물면서 이 무리를 이끌어 갑시다.”

    이렇게 스승 알라라는 보살을 자신과 완전히 동격의 제자로 인정하고

    자신이 거느린 모든 제자의 거의 반수인 백 오십 명을 지도하는 임무

    를 부여하면서 보살을 존중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보살은 수행처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을 때 이러

    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법은, 혐오를 말하지도 않고, 갈애를 없애거나 멈추게 하지도

    않으며, 최고의 지혜와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고요함으로 인도하

    지도 않고, 번뇌를 해결하는 열반으로 인도하지도 않는다. 단지 무소

    유처에 도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일단 거기에 가면 육만 겁(劫)24이라

    는 긴 수명이 따른다. 거기서 목숨이 다하면 업의 존재(業有)로 다시

    태어나서 또다시 괴로움을 겪는다. 이것은 내가 찾고 있는 죽지 않는

    방법이 아니다.”

  • - 28 -

    이렇게 무소유처에만 이르는 그 수행법에 관심이 없어진 보살은 그것

    을 버리고 알라라의 수행처를 떠났습니다.

    현인 우다까를 찾아가다

    알라라의 처소를 떠난 보살은 당분간 혼자의 힘으로, 불사(不死)의 길

    인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극도의 고요함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때 보살은 라마뿌따(라마의 아들 혹은 현인 라마의 제자)라고도 하

    는 우다까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보살은 우다까가 있는 곳으로 가서

    현인 라마의 법과 가르침 밑에서 출세간의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보살이 우다까 밑에 있으면서 겪은 여러 가지 체험, 우다까가 법을

    어떻게 자신에게 설명해주었고, 보살이 그 교법을 어떻게 받아들여 실

    행에 옮겼으며, 우다까가 얻은 법을 어떻게 깨달았고 그것을 다시 우

    다까에게 설명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합니

    다.

    하지만 우리는 우다까 또는 라마뿌따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라마

    (Rãma)의 아들(putta), 또는 라마의 제자였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현인

    라마는 선정(禪定)의 여덟 단계를 모두 밟고 가장 높은 선정의 단계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보살이 우다까에

    게 갔을 때에는 이미 스승인 라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마가 성취

    한 것을 우다까에게 물으면서 과거 시제인 ‘선언했다(pavedesi)’는 용

    어를 사용하였습니다.“라마가 스스로 깨닫고, 또 경지에 들었다고 선

    언한 라마의 교법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보살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라마에게만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에게도 역시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가 있다.”

  • - 29 -

    이 장에서는 우다까가 보살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대는 이 교법을 알고 라마도 이 교법을 알았습니다. 그대는 라마

    와 동격이고 라마는 그대와 동격입니다. 존자여, 오시오. 둘이 같이 머

    물면서 이 무리를 이끌어갑시다.”

    그리고 보살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라마의 제자 우다까는 성스러운 길을 가는 내 도반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나를 자기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경전의 인용을 보면, 보살은 현인 라마를 만나지 않고, 라마의 교

    법을 배운 제자인, 우다까를 만났던 것이 분명합니다. 보살은 우다까

    가 설명한 방법에 따라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할 수 있었습니다. 교법을

    배워 현인 라마처럼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하고 경지에 머물게 되자 보

    살은 우다까로부터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상좌부 문헌에는 우다까가 어디에 머물렀고 그 추종자들이 얼마나 되

    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북방불교에서 전하는 붓다의 일

    대기인 방광대장엄경(放光大莊嚴經)에 의하면, 우다까의 수행처는 라자

    가하(王舍城 RaJgaha)25지역에 있었으며 칠백 명에 달하는 무리를 거

    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살과 만날 당시 우다까는 아직 비상비비상

    처선(非想非非想處禪)을 얻지 못했음을 유념해야합니다.

    우다까는 현인 라마가 얻은 단계를 보살에게 설명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보살이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해서 자기 스승과 동격이 된 것으

    로 판명되자 보살에게 전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복주서(復註, Ṭīkā)에 의하면, 우다까는 후에, 보살이 행한 선례에 따라 용맹 정진하여 최종적으로 최상의 선정단계인 비상비비상처를 얻었

    다고 합니다.

  • - 30 -

    그러나 보살은 수행처에 잠시 동안만 지도자로 머물었습니다. 곧 이

    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법은 혐오를 말하지도 않고, 갈애를 없애게 하지도 않으며, 통

    찰지혜와 최고의 지혜, 그리고 열반을 얻기 위한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도 않는다. 단지 비상비비상처에만 도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일단 거

    기에 도달하면 팔만사천겁의 긴 수명을 누린 후 다시 욕계의 존재로

    돌아와서 더 많은 괴로움을 당한다. 이는 내가 갈구하는 죽지 않는 교

    법이 아니다.”

    그리고는 비상비비상처에만 이르는 그 교법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져

    서 그것을 버리고 우다까의 수행처를 떠났습니다.

    우루웰라 숲에서 아주 심한 고행을 하다

    우다까의 수행처를 떠난 후 보살은 비할 수 없는 평온을 향한 길, 불

    사(不死)의 열반을 추구하면서 마가다를 편력하였습니다. 유행(遊行)하

    는 동안 쎄니가마라는 큰 마을 근처의 우루웰라 숲에 이르렀습니다.

    숲속에서 보살은 깨끗한 네란자라 강을 보았습니다. 상쾌한 곳, 고요

    한 깊은 숲, 탁발을 나가기에 적합한 근처의 마을이 있는 깨끗한 시내

    를 감지하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용맹정진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러고는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때만 해도 보살은 아직 바른 정진(正精進)의 정확한 수행법을 닦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행은 당시 인도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고

    또 널리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행과 관련하여 보살은 세 가

    지 비유를 떠올렸습니다.

    세 가지 비유

  • - 31 -

    무화과나무에서 갓 베어 푸른빛이 감도는 젖은 나뭇가지를, 역시 젖

    은 수액(樹液)이 흐르는 촉촉한 나뭇가지로 비비면 불이 일지 않습니

    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아내와 가정과 같은 감각적 즐거움의 대상과

    어울리고, 내면에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애욕의 즐거움과 탐욕을 여전

    히 즐기고 있다면, 아무리 용맹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지혜,

    통찰,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에게 떠

    올랐던 첫 번째 비유였습니다.

    설령 무화과 나뭇가지가 물에 젖지는 않았지만 갓 베어져 나와서 여

    전히 수액이 흐르는 푸른색이라면 아무리 비벼주어도 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아내, 가정과 같은 감각적 대상을 저버렸다

    할지라도 내면에는 여전히 애욕의 즐거움과 탐욕스런 생각을 즐기고

    있다면, 지혜, 통찰, 또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석서에 따르면 이 비유는 바라문 담미까 사문들의 수행방법에서 참

    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라문들은 젊어서부터 성스러운 사문의 삶

    을 살다가 마흔여덟 살이 되면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 다시 결혼생

    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정수행을 하는 동안에도 탐욕스

    런 생각으로 물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비유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물에 젖지 않고 수액이 말라버린 나뭇가지에 관한 것

    입니다. 이 마른 나뭇가지는 서로 비벼대면 불이 붙습니다. 이처럼, 감

    각적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탐욕스런 생각과 갈애를 뿌리 뽑으면, 극

    단적인 고행을 하거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지혜와 통찰, 완전한 깨

    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짓누르는 아주 심한 고행

  • - 32 -

    세 번째 비유에 따라 보살은 두 가지 방법을 놓고 다음과 같은 고행

    의 길을 고려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갖다 붙여서 저절로 일

    어나는 생각을 마음으로 억누르고 제압하고 짓누르면 어떨까?”

    여기서 인용한 빨리어 경전은 마찌마 니까야의 사자후품(師子吼品)에

    있는 고상식지경(考想息止經 Vitakka Sandhana Sutta)26 원문과 일치

    합니다. 그러나 이 경에서 언급한, 마음으로 생각을 누르는 방법은 부

    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신 후에 정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행법은, 저절로 일어나는 번뇌를 나타날 때마다 알아

    차려서 소멸시키는, 염처경27 기타 유사한 경전의 위빠사나 수행법에

    포함이 됩니다. 여기에 묘사된, 마음으로 생각을 억누르는 방법은, 중

    도의 지혜를 얻기 전에 보살이 닦았던 수련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이 방법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四念處]28수행법과는 구별해서 보

    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살의 고행은 도덕적인 마음으로 악을 억누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 방법이 옳다면 여기에서 보살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이 방법으로 심한 고통만 겪었을 뿐, 깨달음

    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택하게 된 다른 고행 역시 보살로 하

    여금 잘못된 길을 걷게 했을 뿐입니다.

    당시 보살이 행했던 고행은 오늘날 어느 불교학파의 추종자들이 행하

    는 마음 소멸 수행법과 어느 정도 유사해 보입니다. 일본에 전법여행

    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명상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큰

    절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의 명상법은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정신적 활동)이 비워져서, 도의 끝, 즉

    무(無)의 상태인 공(空)에 이릅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 33 -

    젊은 대승불교 승려 여섯 명 정도가 가부좌를 한 채 열을 지어 앉습

    니다. 스승인 방장스님이 막대기를 들고 수행자들의 주변을 돌고 있습

    니다. 잠시 후 스님은 수행자들의 등에 일격을 가합니다. 얻어맞는 동

    안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서 공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습

    니다.

    참으로 이상한 교법입니다. 실제로 이는 마음으로 생각을 억눌러서

    생각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이를 꽉 깨물고 마음으로 생각을 억누르려

    는 보살이 채용한 기법과 아마도 같을 것입니다. 그 노력은 매우 고통

    스러운 것으로 드러났고 두 겨드랑이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음에도

    보살은 위없는 지혜를 얻지 못했습니다.

    들숨날숨(出入息)을 억누르는 선정 몰입

    그때 보살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숨을 제어하고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집중하면 어떨까?”

    그러한 생각으로 입과 코의 들숨날숨을 억제하였습니다. 입과 코를

    통하는 숨을 통제하자 귀에서는, 공기가 밖으로 솟구쳐 나와 개구리가

    내는 요란한 울음소리 같은 굉음이 들렸습니다. 몸에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보살은 집요하였습니다. 보살은 입과 코만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 마치 힘센 사람이 망치로 머리를 조각내는 것과 같고, 머리

    둘레를 질긴 가죽 끈으로 조이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을 일으키며 맹렬

    한 바람이 정수리로 파고 들어왔습니다. 날카로운 백정의 칼에 베인

    듯 맹렬한 바람이 배안으로 밀고 들어와 엄청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숯 구덩이 위에서 구워지는 듯 배속에 맹렬한 불이 일

  • - 34 -

    어났습니다. 보살은 통증과 고통에 압도되어 기진맥진한 채 쓰려져 누

    웠습니다.

    쓰러져 있는 보살을 본 천인들이 “사문 고따마는 죽었다.” 고 말했습

    니다. 다른 천인들은 “사문 고따마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어가고 있

    다.” 또 다른 천인들은 “사문 고따마는 죽은 것도 아니요 죽어가는 것

    도 아니다. 다만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을 뿐, 아라한의 경지에 머물러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스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지혜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극심한 단식

    그래서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음식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더욱 더 모질게 정진하면 어떨까?”

    보살의 이런 생각을 알고 천인들이 말했습니다.

    “고따마 님, 음식을 완전히 끊지는 마십시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

    리는 하늘의 영양분을 존자의 피부 털구멍을 통해 주입할 것입니다.

    그러면 존자께서는 그것으로 연명할 것입니다.”

    그러자 보살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단식한다고 선포하면 천인들은 털구멍을 통해 하늘의 영

    양분을 주입할 것이고 그것으로 나는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보살은 하늘의 영양분을 주입받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천인들의 제안

    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점차적으로 적게 먹기로 결심하고 겨우 한 줌밖에 안

    되는 콩죽을 먹을 정도로 식사량을 줄여나갔습니다. 매일 다섯이나 여

  • - 35 -

    섯 숟가락 정도의 콩죽으로 연명하면서 몸이 아주 초췌해졌습니다. 손

    발은 여위고, 피부와 힘줄,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척추가 울퉁불

    퉁한 혹과 돌기형태로 튀어나왔습니다. 넓게 흩어진 뼈들은 돌출되어

    극심한 고행을 하고 있는 보살의 그림에서와 같이 보기 흉하고, 송장

    같은 몰골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빛은 구덩이 안으로 오그라들어 우물 속 깊이 잠긴 물에서 나오는

    반사광처럼 보였습니다. 머리 가죽은 땡볕에 말라비틀어진 푸른색의

    연한 조롱박처럼 오그라들었습니다. 극도로 초췌했기 때문에 뱃가죽을

    만지려고 하면 등뼈가 만져졌고 등뼈를 더듬으면 뱃가죽이 만져졌습니

    다. 보살은 너무나 극단적으로 절식하였기 때문에 대소변을 보기도 힘

    이 들어 앞으로 넘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극도로 초췌한 보살의 몸을 보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사문 고

    따마는 검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문 고따마의 얼굴은 갈색이

    다.” 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문 고따마는 시끈가오리와 같은

    푸른 갈색이다.”라고 했습니다. 깨끗하고 밝고 빛나던 피부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마라의 설득

    보살이 자신을 조복하기 위해 극도의 고행을 하며 분투하고 있을 때

    마라(Māra)29가 와서 보살을 동정하는 척하며 설득력 있게 말을 했습

    니다.

    “벗 고따마여, 그대는 아주 마르고 보기 흉한 몰골을 하고 있다. 그

    대는 이제 죽음의 문턱에 서있다. 그대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천에 하

    나이다. 살아남아라.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 그대가 산다면 선업

    을 지어 공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 36 -

    여기서 마라가 언급한 공덕행은, 해탈의 길로 이르는 보시(布施), 지

    계(持戒), 수행(修行)을 통해 얻어지는 공덕이나 위빠사나 통찰지혜를

    계발하여 도를 성취하여 얻는 공덕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마라는 오직 성관계를 하지 않는 선정수행과 성스러운 불의 숭배를

    통해 얻어지는 공덕만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수행을 하면

    내생에 고귀하게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보살은 생의 축복에

    현혹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공덕은 티끌만큼도 필요하지 않다. 너는 그런 공

    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해라.”

    어떤 공덕도 필요하지 않다는 보살의 발언에 대해서는 한 가지 오해

    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살처럼 윤회30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공덕행을 버리고 그것을 추구하거나 행하지 않는다.”는 오해입니다.

    한때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설명해 달라고 했

    습니다. 나는 그에게, 마라가 의미하는 공덕은, 보시, 지계, 수행을 통

    한 통찰지혜의 계발이나 도를 성취해서 얻어지는 공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마라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보살도 역시 공덕 수행에 대한

    정확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행을 고귀한 수행으로 여

    기고 여기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마라에게 “나는 어떠한

    공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은 열반에 이르는 공덕 수행

    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행복한 내생을 보장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그

    런 행위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주석서에서도 우리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주석서에서는, 보

    살이 ‘나는 네가 말하는 공덕은 티끌만큼도 필요하지 않다.’라고 기술

    한 것은 마라가 의미하는, 내생을 보장하는 공덕 행위만을 의미하는

  • - 37 -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열반에 이르는 공덕 수행

    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때 보살은 고행을 하는 것이 높은 지혜를 얻는 방법이라는 잘못된

    생각 속에서 여전히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

    다.

    “이 바람은 강물을 말려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피나게 노력하

    고 있을 때 바람은 왜 내 피를 말려버리지 않는가? 피가 다 말라버리

    면 담즙과 점액도 마를 것이다. 또 몸뚱이가 황폐해지면 내 마음은 더

    욱 맑아질 것이다. 알아차림, 집중, 지혜가 확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마라도 단식 수행을 하면 해탈과 높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

    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우려에서 마라는 보살을

    구슬려서 단식의 도를 중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식수행이 깨달음의 길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해탈에 대한 설법의 첫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 보살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정성을 쏟으면서 시중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당시엔 극단적인 자기학대가 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길이라는 믿음이 보편적이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올바른 판단

    아무런 성과 없이 극단적인 자기학대로 6년을 보낸 보살은 다음과

    같이 추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많은 사문과 바라문들이 자기학대를 하면서 고통스럽고, 고

    문당하는 듯한,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고 하지만 그 어떤 괴로

    움도 나와 같거나 그것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 - 38 -

    “미래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나보다 심한 고행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극

    심한 고행으로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높은 경지를 얻지 못했

    다.

    그러니까 나는 번뇌(kilesa)31를 제거할 수 있는 성자의 혜안(慧眼)32

    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이 고통과 고행의 길 말고도 깨달음을 얻을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보살은 어린 아기였을 때 부왕 숫도다나가 가까이에서 밭갈이

    의식의 행사에 바삐 몰두하고 있을 동안 잠부나무 그늘 밑에 혼자 앉

    아 초선(初禪)에 들었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보살은 이 첫 번째 선정

    방법이 진리에 이르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기 때 처음 선정에 들다

    보살은 카손(Kason), 즉 4월 보름날에 태어났습니다. 왕실 밭갈이 의

    식 행사는 나욘(Nayon), 즉 우안거(5월이나 6월)가 지나고 한두 달 후

    쯤에 열렸다고 생각됩니다.

    어린 아기는 잠부나무 그늘 밑의 장엄한 침구로 꾸며진 침상에 뉘어

    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기왕자를 공손히 지켜보는 왕실시종들이 있

    는 임시 아기방주위로 휘장이 드리워지고 장막이 만들어졌습니다. 왕

    실 밭갈이 의식 행사가 화려하고 장엄하게 진행되고 왕이 몸소 축제에

    참여하자 왕실시종들은 가까운 밭에서 행해지고 있는 화려한 광경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아기왕자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장막 안에 아기를 안전하게 눕

    혀 놓고 축제를 즐기러 갔습니다. 아기 보살은 주위를 둘러보고 시종

    이 아무도 없자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습니다.

  • - 39 -

    수 많은 생을 통해 습관이 된 수행에 힘입어 본능적으로 들숨과 날숨

    [出入息]에 마음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살은 곧바로 일으킨 생

    각(尋 vitaka), 지속적인 고찰(伺 vicāra), 희열(喜 pīty), 기쁨(樂

    sukha), 집중(定 samādhi)의 다섯 가지를 특성으로 하는 초선(初禪)에

    들었습니다.

    시종들은 얼마동안 없었습니다. 축제에 정신이 팔려 늦어서야 돌아왔

    습니다. 시종들이 돌아 왔을 때, 나무 그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동되었지만 왕자가 누워 있는 잠부나무 아래의 그늘은 원래 있던 같은

    장소에 그대로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아기 보살은 침대위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숫도다나왕이

    보고를 받았을 때 잠부나무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광경과 아기

    가 앉아있는 자세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경외심으로

    왕은 자기 아들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보살은 유년시절에 얻었던 들숨과 날숨의 선정에 몰입했던 경험을 떠

    올리고는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그 기억을 면밀히 되짚어 보니 들숨날숨의 수행은 참으로 깨달음을 얻

    는 바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선정 경험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선정의 기쁨(얻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그 기쁨(얻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

    식사를 다시 시작하다

  • - 40 -

    그리고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몸이 이렇게 여위어 가지고는 선정을 얻을 수 없다. 예전처럼 단단한

    음식을 좀 먹으면 어떨까? 그렇게 몸에 영양이 보충되어 튼튼해지면

    선정을 위해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보살이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자 다섯 수행자들은 오해를 했습니

    다. 그들은 예전에 보살이 태어났을 때 정각자인 부처님이 될 것이라

    고 점쳤던 왕실점성가이자 고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덟 명의 왕실점성가가 왕궁에 있었습니다. 아기왕자의

    미래에 대한 점을 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들 중 세 명은 각각 두 손

    가락을 치켜들고, 이 아이는 전륜성왕33 이 되거나 아니면 정등각자(正

    等覺者)가 될 것이라는 두 가지의 선언을 했습니다. 남은 다섯 명은

    각각 한 손가락만을 치켜들고, 이 아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붓다가 될

    것이라는 한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마찌마 니까야의 근본오십품(根本五拾品), 주석서(제 2권.p92)에 의하

    면 이들 다섯 왕실점성가는 가정생활에 얽매이기 전에 세상을 버리고

    숲에 들어가 선정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종성경(佛種姓經)에

    대한 주석서와 다른 몇몇 경전에서는, 일곱 명의 점성가들이 각각 두

    가지의 해석을 나타내는 두 손가락을 치켜 올렸지만, 후에 꼰단냐 존

    자가 될 제일 젊은 바라문인 꼰단냐만이 한손가락을 들어, 이 아이가

    미래에 반드시 붓다가 될 것이라는 확고한 예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젊은 바라문은 네 명의 다른 바라문의 아들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나와 합심하여 ‘다섯 수행자 모임’을 결성하고 보살의 위대한 출가를

    기다렸습니다. 보살이 우루웰라 숲에서 극단적인 고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이 위없는 지혜를 얻으면 그것을 우리와 함께 나눌

  • - 41 -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처음 듣는 사람이 되리라.’ 고 하는 희망을

    품고 그곳으로 와 보살의 시자(侍者)가 되었습니다.

    다섯 수행자들은 보살이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그의 행동을

    오해하고 실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한줌의 콩죽을 먹고 살면서도 높은 지혜를 얻지 못했는데 다시 단단

    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얻기를 기대하겠는가?”

    그들은 보살이 정진하는 것을 포기하고 부와 영화를 누리는 예전의 호

    사스러운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혐

    오감을 느끼며 보살 곁을 떠나서 베나레스의 사슴동산(鹿野苑)에 가서

    지냈습니다.

    깨달음

    다섯 수행자들이 떠나자 보살은 완전히 혼자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해탈을 위해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마찌마 니까야의 근본오십품(根本

    五拾品, 제 2권. p192)에서는 보살이, 어떻게 보리수 아래 지혜의 왕

    좌에 앉아서, 2주 내내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정진하면서, 일체지(一

    切智 sabbannuta-ñāṇa)와 깨달음을 얻었는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출가하여 극단적 고행을 하면서 6년을 보

    냈습니다. 이제 여전히 젊고 건강한 35살의 나이가 되어 15일 이내에

    제대로 된 식사를 다시 하니 예전처럼 몸이 차올라서 삽십이상[三十二

    相]34을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식사를 통해 체력과 에너지를 보강한 보살은 출입식

    념(出入息念 anāpānasati)35을 하면서 일으킨 생각(위따카), 지속적인

  • - 42 -

    고찰(위짜라), 희열(삐띠), 행복(쑤카), 마음이 대상에 집중된 상태(心一

    境性 cittassa-ekaggatā)를 특성으로 하는 초선(初禪)의 지복에 머물

    렀습니다.

    그리고는 희열, 행복, 집중을 수반하는 이선(二禪)에 들었습니다. 삼

    선(三禪)에서 보살은 행복과 마음이 대상 한곳으로 집중된 상태인 심

    일경성(心一境性 )을 즐겼으며 사선(四禪)36에서는 평온(捨 upekkhā)과

    청정한 알아차림을 즐겼습니다.

    미얀마력 1324년(서력 1962년)으로 환산하면 대력 103년, 즉 2551

    년 전인, 카손(4월) 이른 보름날에, 보살은 세나니가마 마을 근처의 보

    리수 아래에 앉아 탁발 나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을

    장자의 딸인 수자타가 보리수 정령(精靈)에게 공양할 준비를 하고 있

    었습니다. 수자타는 하녀를 먼저 보내 성수(聖樹)가 뻗어있는 자리 아

    래를 정돈하도록 하였습니다. 보살이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하녀는 나무의 신이 몸소 그들의 공양을 받으러 나타났다고 생각했습

    니다. 하녀는 매우 흥분한 채 달려가서 여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

    니다.

    수자타는 아침 일찍 요리한 우유쌀죽을 십만 금의 가치가 있는 황금

    발우에 담고 다른 황금발우로 그것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발우를 들고

    보살이 앉아있는 반얀 나무 아래로 나아가서 보살의 손에 발우를 올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디 존자님의 소원이 제가 가진 소원처럼 이루어지소서.”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떠났습니다.

    수자타는 처녀시절 반얀나무에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 - 43 -

    “만일 제가 동일한 신분과 계급을 가진 남편을 얻고, 처음 낳은 아기

    가 사내아이면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수자타의 기도는 성취되었고 그날의 우유쌀죽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

    해 나무정령에게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녀는 보살

    이 자신이 올린 우유쌀죽을 들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는

    가장 큰 공덕이 되는 고귀한 행동을 하였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하였습

    니다.

    보살은 네란자라 강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했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

    서 보살은 수자타가 준 우유쌀죽을 49개로 둥글게 뭉쳐서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보살은 강에 황금발우를 던지면서 “만약 내가 오늘 부

    처가 된다면 이 그릇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라.”라고 말했습니다. 발우

    는 세차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상당한 거리를 올라가, 용왕

    인 깔라의 거처에 도달하면서 강 속으로 가라앉아 과거불(過去佛)인

    세분 붓다의 발우가 모셔져 있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살은 강가 근처의 숲 사이 빈터에서 하루 종일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도중에 풀 베는 사람 소띠야를 만나 여덟 움

    큼의 풀을 받아서 보리수 쪽으로 갔습니다. 인도에서는 흔히 성자들이

    풀 묶음을 깔아서 앉거나 잠잘 곳을 준비하였습니다. 보살은 동쪽 나

    무 아래 풀을 깔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위없는 절대 지혜를 얻기 전까지는 결코 이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

    라는 엄숙한 결의로 풀 깔개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동쪽을 향해 앉았

    습니다.

  • - 44 -

    이때 마라가 보살의 결의를 방해하고 깨달은 자[覺者]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보리수 아래의 자리를 다투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은

    보시 등과 같은 십바라밀을 행하며 무수한 세월동안 쌓아온 공덕을 불

    러 일으켜, 해가 뜨기 전 마라의 방해공작을 물리쳤습니다.

    이렇게 마라가 사라지자 보살은 밤의 첫째 시간에 선정을 통해 전생

    을 아는 지혜[宿命智]를 얻었고 밤의 중간 시간에 천안(天眼)을 얻었

    으며, 밤의 마지막 시간에는 12연기(paṭicca-samuppāda)37를 숙고하고, 이어서 오취온(五取蘊)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아는 통찰지혜를 계발

    했습니다. 이 통찰지혜에 이어서 사성제(四聖諦)의 지혜를 얻고, 마지

    막에는 일체를 아는 지혜인 정등각(正等覺)을 얻었습니다.

    정등각자가 되신 부처님은 네 번째 과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지

    복을 누리고 새롭게 찾아낸 법을 오래도록 반조하면서 보리수 아래 지

    혜의 왕좌위에서 7일을, 그리고 다른 여섯 곳에서 각각 7일을 머물며

    총 49일을 보내셨습니다.

    심한 고행은 자기 학대다

    15주에는 염소지기(Ajjpãla)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머물면서 부처

    님은 고행을 멈추게 된 사실에 관하여 이렇게 회고하셨습니다.

    “나는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는 고행에서 벗어났다. 내가 그

    쓸모없는 고행에서 벗어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해탈을 하여 정

    각을 이룬 것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의 허점을 노리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감시해왔던 마라가 곧바로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 - 45 -

    “고행 말고는 존재를 정화시킬 방법이 없는데 고따마는 청정의 길에

    서 벗어났구나. 고따마는 오염되어 있으면서도 청정해졌다고 잘못 믿

    고 있구나.”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불사(不死)를 이루기 위한 극단적인 고행들은 마치 뭍과 모래 둑에

    올라온 배의 키나 노처럼 모두 쓸모없고 무익한 것이다. 그 무익함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형태의 자기학대를 버렸다.”

    주석서에는 식사를 불충분하게 하고 옷을 부실하게 입는 것과 같은

    그런 극단적 수행이 자기학대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초전법륜경

    을 다룰 때 경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자기학대인 그런

    극단적인 고행을 여기서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첫 법문을 어떻게 펼까 깊이 생각하시다

    일곱 군데의 다른 장소에서 각각 칠일을 보내시고 나서 50일째 부처

    님께서는 다시 염소지기의 반얀나무로 돌아왔습니다. 나무에 앉아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셨습니다.

    “과연 누구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을까? 누가 이

    법을 빠르게 이해할 것인가?” 그러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배움이 있고 능숙하고 지성을 갖춘 알라라 깔라마가 있다. 그 사람

    은 오랫동안 지혜의 눈에 번뇌의 먼지가 덜 낀 사람이었다. 알라라 깔

    라마에게 먼저 가르침을 주면 어떨까? 그 사람이라면 이 법을 빠르게

    이해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맨 먼저 찾고자

    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신념, 열정, 부지런함, 알아차림,

    지성을 겸비한 신자들로 새로운 수행센터를 개관하는 것은 매우 중요

  • - 46 -

    합니다. 오직 이러한 덕성을 구족한 그러한 신자들만이 빠르게 통찰지

    혜를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귀감이 됩니다. 신념, 열정, 부지

    런함, 알아차림, 지성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나이가 많아 몸과 마음이

    나약해진 신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기가 매우 어

    렵습니다.

    우리가 맨 처음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남다

    른 능력을 지닌 세 사람38 (사실 나의 친척이었습니다)과 함께 시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들은 수행 3일 만에 생멸의 지

    혜(udayabbaya-ñāṇa)에 이르렀고 희열과 행복의 단계에서 수반하는 빛과 영상을 보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러한 빠른 성과는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방법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보급될 수 있는 원천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빠르게 법을 이해할 사람에게 첫 법문을 펴고자 하

    신 것이었고 알라라 깔라마를 떠올리자 한 천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미 7일전에 죽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에게 혜안이 생기면서, 과연 알라라가 7일전에 죽었고

    그 선정의 힘으로 무색계의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에 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7일 차이로 도과를 놓치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깔라마 일족의 알라라를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알라라는 충분히 성숙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도를 닦아 아라한과를 즉시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때 이른 죽음으로 그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 - 47 -

    무소유처천은 물질(色)39 이 없이 오직 마음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

    령 부처님께서 그곳에 가서 그에게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도움이 되

    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소유처천의 수명은 매우 길어 육만 겁이나 됩

    니다. 거기서 수명이 다하고 나면 다시 인간계에 태어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치고 범부40로의 윤회를 반복하면서 때로는 4악처

    (apāya)41로 떨어져 엄청난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서 알라라를 잃은 것을 크나큰 손실이라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근기는 되지만 우리가 펼치고 있는, 알아

    차림을 확립하는 사념처 수행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채, 혹은 그런

    가르침을 듣기는 했지만 수행을 하려는 노력 없이 죽는 사람들이 오늘

    날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여기 모인 선한

    사람들은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어려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

    다.

    하루 밤 차이로 크나큰 기회를 놓치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대 현인 라마의 아들(제자)인 우다까에게 첫 법

    문을 펼 생각을 하셨습니다. 천인이 다시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다까 라마뿌따는 어제 저녁 죽었습니다.”

    부처님에게 혜안이 생기면서, 우다까 현인이 실제로 어제 밤 초경에

    죽었고 선정의 힘으로 비상비비상처천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이 세계도 역시 무색계(無色界)로서 그 수명은 팔만 사천겁이나 됩

    니다. 이 세계는 서른한 가지 중생계(三界)42중에서 가장 거룩하고 높

    은 곳이지만 거기서는 법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미 높은 경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 법을 듣는

    것만으로도 라마뿌따는 즉각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

  • - 48 -

    하게도 라마뿌따는 하루 밤 먼저 죽었기 때문에 이것을 놓치고 다시

    그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

    는 마음으로 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대 현인 라마의 아들(제자)인 우다까를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그러고 나서 부처님은 다시 누구에게 첫 법문을 펴실 것인지를 생각

    하셨습니다. 천안(天眼)으로 보니, 다섯 수행자들이 베나레스의 사슴동

    산인 녹야원에 있었습니다.

    첫 법문을 펴기 위해 길을 떠나다

    부처님께서는 베나레스로 향했습니다. 과거의 정등각자들도 같은 여

    행을 했는데 신통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따마 부처님께

    서는 길에서 나체 수행자 우빠까를 만나 감화시키기 위해 걸어서 가셨

    습니다.

    불종성경(佛種姓經)과 본생경(本生經)의 주석서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우안거의 보름날에 여행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베나레스의 사슴동산은

    보리수로부터 18 유순(由旬)43, 즉 142마일이 떨어져 있는 곳이고 이

    곳을 부처님은 걸어서 가셨다고 하는데 그 거리는 신통력 없이는 하루

    만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우안거의 여섯 번째 상현(上

    弦)일을 출발날짜로 한다면 적당할 것입니다.

    나체 수행자 우빠까를 만나다

    가야로 향하는 길에 부처님께서는, 보리수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나

    형외도(裸形外道)의 큰 지도자인 나따뿌따의 제자로서 나체 수행자인

    우빠까를 만나셨습니다. 부처님을 본 우빠까는 말했습니다.

  • - 49 -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차분합니다, 그대의 피부색깔은 청정하

    고 빛이 납니다44 그대는 어느 분에게로 출가하였습니까? 당신의 스승

    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일체승자요 일체지자이니

    일체 법에 물들지 않는다.

    일체를 버렸고 갈애를 소멸하여 해탈했으며

    일체를 알았으니 무엇을 더 의지하랴?”

    부처님께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승이 없고,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

    사람과 신들의 세상에서,

    나와 대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씀을 들은 우빠까는 과연 부처님이 아라한과를 얻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나에겐 스승이 없고,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동등한 존재는 없다.

    나는 세상의 아라한(應供)이며, 위없는 스승(無上師)이며 유일한 붓다

    며 깨달은 자니, (모든 번뇌를) 끄고 (열반의) 적멸을 이루었다.”

    그러자 우빠까는 부처님께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가는가를 물었습

    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법 바퀴(法輪)를 굴리러 까씨 성으로 가노라. 눈먼 이 세상에서

    나는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우빠까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 - 50 -

    “그대가 자처하는 바에 따르면 그대는 무한한 정복자라 할 수 있겠습

    니까?”

    부처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같이 번뇌(漏 āsava)의 멸진을 이룬 자들, 그들이야말로 진정

    한 정복자(jina)다. 나는 모든 생각, 견해, 일체 삿된 관념(잘못된 법)을

    정복하였다. 우빠까여, 그래서 나는 정복자, 승리자다.”

    우빠까는 제자들로부터 승리자란 의미의 지나로 불리는 나따뿌따가

    이끄는 나형외도(裸形外道)에 속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처럼

    진정으로 번뇌를 치유하고 제거한 사람만이 지나라고 불릴 자격이 있

    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릇된 생각에 가려 있으면 진리는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자신이 참된 무한 정복자라고 선언 하시자 나체 수행자

    우빠까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지요.”

    머리를 갸우뚱하고는 부처님께 길을 양보하고 자기 여행을 계속했습

    니다.

    우빠까가 부처님과 만난 이 사건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

    다. 이 때 우빠까는 실제로 정등각자와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자신이 진짜 부처라고 솔직하게 말씀

    하셨는데도 여전히 회의적이었던 것은, 우빠까가 나형외도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51 -

    오늘날에도 잘못된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올바른 수행법에 대해 들어

    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올바른 방법을 가르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고 험담을 합니다. 그릇된 생각이나 견

    해에서 나오는 이런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우빠까가 부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반응

    했지만 얼마 후 부처님께 다시 돌아온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믿음을

    지니고 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을 떠나고 나서 우빠까는 사냥꾼의 딸

    짜빠와 결혼하고 아들이 태어나자 가정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부처님께

    출가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여 아나함과[불환자, ānāgami]45 를 얻은

    후 죽어서 범천계인 정거천(淨居天)의 무번천(無煩天)에 태어나 거기서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우빠까와 만나 이런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

    을 예견하신 부처님께서는 베나레스까지 그 먼 길을 걸어가 우빠까의

    모든 질문에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이시빠따나에 도착하다

    저 멀리서 자기들 쪽으로 걸어오는 부처님을 본 다섯 수행자들은 이

    렇게 말하면서 서로 간에 약속을 했습니다.

    “벗들이여, 제멋대로 정진을 포기하고 호화로운 생활로 되돌아간 사

    문 고따마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우리들은 그에게 경배하지도 말고,

    가서 인사를 하고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말자. 하지만 고따마는

    고귀한 가문 태생이므로 원한다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 주

    자.”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자 그들은 그의 빛나는 휘광으로 인해 자신들

    이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한 명은 가서 부처님에게 인사를

  • - 52 -

    드리며 발우를 받고 다른 한명은 가사를 받았으며 또 다른 한명이 발

    받침대를 준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