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심포지움 세월호가 묻고,...

58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심포지움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주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일시: 2015년 5월 7일(목) 오후 3시-6시 장소: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101동) 영원홀(210호)

Upload: others

Post on 02-Jun-2020

2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심포지움

    세월호가 묻고,사회과학이 답하다.

    주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일시: 2015년 5월 7일(목) 오후 3시-6시장소: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101동) 영원홀(210호)

  • ◆ 프로그램

    15:00-15:20 등록 및 개회격려사 박찬욱 사회과학대학 학장개회사 구인회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15:20-16:20 1부 발표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이현정(서울대 인류학과)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

    박종희(서울대 정치외교학부)언론 및 온라인상에서의 재난 관련 담론형성, 이대로 좋은가?

    한규섭(서울대 언론정보학과)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16:20-16:40 휴식

    16:40-17:50 2부 종합토론좌 장: 이재열(서울대 사회학과)토론자: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이철희(서울대 경제학부)유조안(서울대 사회복지학과)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17:50-18:00 폐회식

  • - 1 -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이현정(서울대 인류학과)

    1. 사회적 고통으로서 세월호 참사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복잡하고 근원적인 문제들을 제기해 온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오늘날 한국의 사회과학적 연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질문마저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오늘날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인 ‘사회적 현상’(social phenomenon) 또는 ‘사회적 사실들’(social facts)은 과연 적절하게 파악되고 있는가. 나아가 사회과학자들이 그러한 현상과 사실에 대해 내리는 분석과 해석은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유효한가.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충격의 파장과 고통을 야기해 왔다. 그 고통은 다양할 뿐 아니라 전면적이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배 안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가까운 가족, 친지 및 친구들의 1년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형태를 변모하며 악화되는 고통이 있어 왔으며, TV 뉴스보도와 기사를 통해 혹은 분향소나 광화문에서의 경험을 통해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 존재하였다. 또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 기관들과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한 분노의 고통스러움과 바쁜 일상 속에서 설령 답답함을 느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죄책감, 부끄러움으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이 있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가 갖고 있는 사회적 성격의 핵심이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세계에서 지식과 제도가 조직되는 방식이 실증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은 단지 측정 가능한 속성으로 분리되고 고통을 다루는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다루어져왔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이후의 고통의 문제는 공무원들에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의 숫자로써, 의료전문가들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의 진단 결과나 입원 환자 수로써, 정치전문가들에게는 성명서 참여자의 명단과 지지율로써, 경제전문가들에게는 지역경제 하락률을 보여주는 그래프로써, 복지전문가에게는 복지자원의 할당 근거와 비율로써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구획과 분류를 통해 접근된 고통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건져 올린 시신을 ‘몇 번째’라는 번호로 취급하고, 죽은 자의 기일조차도 ‘건져 올린 그 날짜’로 의미화하기를 강요받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직접 경험된—맨눈으로 보고, 맨손으로 만지고, 두 귀로 듣고, 온 몸으로 부대낀—고통의 총체성에 대해 무관심(혹은 무지)한 것을 넘어 고통의 경험을 분절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악화시키는 작업일 수 있다. 즉, 세월호 참사는 현대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고통의 총체성, 실존성 및 경험적 구체성에 대해서 기존의 분과 학문적 경계 내지 학제 간 접근방식이 갖는 한계를 성찰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개입할 것을 사회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 -

    과학에게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고통의 경험’이라는 현상학적인 영역의 처

    음으로 돌아가고자 시도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하는데, 사회적 고통이란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들 권력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고통이 야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Kleinman et al. 1997). 사회적 고통의 관점은 마치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통증, 질병이 건강상태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인 것처럼, 고통의 문제 속에 의료, 복지, 법, 윤리, 종교와 같이 서로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들이 함께 얽혀있다는 데 주목한다. 나아가 개인/집단, 건강상태/사회문제, 표상/경험, 고통/개입 간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고통의 경험을 최대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적 고통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논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낸다. 첫째, 세월호 참사 이후 고통은 어떻게 사회적 경험으로 생성되어 왔는가? 이는 특히 미디어와 정부의 담론이 주도해 온 고통에 대한 문화적 표상과 소비 행위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세월호 참사는 다양한 집단들에게 어떠한 성격의 고통으로서 경험되어 왔는가? 이는 사회적 고통의 근본적 원인이 동일한 지점에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경험의 내용이나 성격은 집단이 처한 삶의 조건과 의미부여의 방식 속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셋째, 세월호 참사 이후 고통을 관리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그러한 시도들은 고통을 치유 또는 강화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해 왔는가. 이는 고통에 대한 정치적, 의료적, 종교적 개입 방식과 그 방식이 갖는 사회적 함의에 대한 질문이다.

    2. 고통에 대한 문화적 표상과 소비

    타인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이 쉽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타인의 고통은 미디어를 통해서 비로소 경험적 사실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미디어는 특정한 정치적·도덕적 목적을 지닌 사회제도이기 때문에, 미디어가 생성한 이미지로서의 고통은 이미 그 시작부터 특수하게 해석된 고통이며, 대중은 그러한 이미지 상품에 대한 소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참사 초기에 보여준 언론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잔 손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잔인한 고통에 대한 이미지의 생산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이용하여 판매부수를 증가시키고자 하는 미디어의 욕망이 동시에 만들어낸 합작품이다(Sontag 2003).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미디어 표상은 진영 정치화된 양극단—고통에 대한 공감 또는 혐오를 조장하고자 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에 대한 현란한 표상 속에서 실제로 세월호 참사가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들이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어

  •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 3 -

    떠한 구체적인 삶의 변화와 더불어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들을 배제시켜왔다.

    예컨대, 안산에 돌아온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 사회적 조건 속에 놓여 있으며, 어떻게 가까운 친지와 주변 관계의 성격이 변했고, 직장이나 학교생활이 달라졌으며, 질병과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고, 그 결과 2차·3차적 트라우마와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 단식과 집회에 참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적인 모습과 배보상금 수혜자로서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왔다. 또한 참사를 통해 삶과 가족과 공동체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먼저 성찰하고 배우게 된 주체로서 이들을 조명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언제나 사회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불쌍한 희생자 내지 사회적 부적응자의 이미지를 강요해왔다. 결국 단순하고 과격한 ‘이미지’로서의 고통, 유가족들의 진영 정치로의 포섭, 그리고 참사에 대한 배금주의적인 해석이 반복되는 속에서, 대중들은 점차 고통에 공감하는 일에 ‘지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렸다.

    마찬가지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의미화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미디어의 표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이들은 미디어 담론이 곧 자신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 자체로서 인식하였으며, 자신들의 발언과 행동이 어떻게 표상될 것인가를 의식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는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방식으로 현실을 가공하고 주체를 생성하는 권력 그 자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3. 사회적 고통의 서로 다른 경험들

    세월호 참사가 야기한 사회적 고통의 경험은 단지 단원고에 재학 중이던 자녀를 잃은 부모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의 결과물로서 사회적 고통은 안산과 인천과 진도와 제주도에서, 학생들과 어른들, 생존자와 희생자, 부모와 형제자매와 일반 시민, 그리고 한국인과 외국인이 겪었던 경험이다. 그러나 각 집단이 처한 다른 삶의 조건과 의미부여의 방식 속에서 이들의 경험은 참사 발생 이후 시기와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때때로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사는 곳이 안산이에요”라는 어떤 어머니의 말처럼, 안산은 대다수의 주민들에게 평생의 생활공간으로 인식되기보다는 빨리 돈을 벌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거치는 잠정적인 거주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안산은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 말기에 기획·조성된 후 지난 30년 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해마다 5만 명이 외부에서 유입되고 3만 명이 유출되는 인구증가 방식을 통해, 원래 20만 명으로 계획되었던 도시가 현재는 70만 명이 넘는 특정시급 도시로 자리 잡았다. 급속한 인구증가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전국 최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중소 산업단지가 안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으로 인해, 안산은 주민들에게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일단 오면 먹고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며, 실제로 전국에서 외국인노동자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 -

    를 비롯하여 가장 자원이 부족한 이주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국내의 출신 지역별 인구 구성을 보면, 전라남도 출신이 가장 많고, 80년대 후반부터 폐광으로 유입된 강원도 출신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만일 우리 아이 중 한 명이라도 부모가 강남에 살거나 국회의원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냐”는 몇몇 부모들의 안타까운 발언은 안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지역적 특성 및 한국 사회에서 안산 주민이 차지하는 계급적 위치성에 대한 냉정한 자기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면의 진실을 드러낸다. 비록 안산이 먹고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공감대가 주민들 사이에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안산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주변의 신도시나 군포로 이사 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주민들에게 안산에 산다는 것은 여전히 이곳을 떠날 만큼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디어의 표상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고통이 마치 단일하고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산 지역만 하더라도 실제로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의 성격은 결코 일관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들 간의 분열과 갈등은 점점 구체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단적으로, 같은 마을의 주민이자 동일한 단원고 학부모 모임의 참여자였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사이에는 과거의 친밀감으로 도저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살얼음 같이 차갑고도 불안한 긴장과 적대가 흐른다. 희생자의 형제자매들과 생존 학생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불편함과 불신이 존재하며, 간혹 이들 간에 터지는 감정적 폭발은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에 더 깊은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한편으로, 생존 학생들은 죽기 직전까지 갔다 온 상황 전체가 악몽처럼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빤히 배에 갇힌 친구들을 보면서도 혼자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늘 시달린다. 또한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어른들이 구명조끼를 뺏거나 보트를 타는 과정에서 선수를 빼앗는 등,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까닭에 학교나 지역에서 만나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들 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처해있다. 처음에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왔던 생존 학생들의 부모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유가족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자녀의 트라우마 치료와 정상적인 생활 복귀에 시간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한편,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것이 가장 커다란 고통의 근원일 수밖에 없다. 자녀와 아무리 가까운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이들 부모들은 생존 학생들을 더 이상 편안하게 보기가 어렵다. 그저 살아있는 아이들이 부럽고, 어떻게든 우리 아이도 함께 데려왔으면 하는 마음에 밉기도 하고, 또 죽은 아이를 연상시켜서 대면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진다. 특히 유가족들은 사회적 관심과 트라우마 치료의 주된 대상이 단원고 내의 생존학생들에게 집중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싸우는 동안, 홀로 집안에 방치되고 있는 다른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이들 부모들을 더욱 심리적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실제로 형제자매들 중에는 죽은 형이나 누나를 따라서 자기도 죽겠다고 시도를 하거나 갑자기 이유 없이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등, 마음에 쌓인 분노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유

  •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 5 -

    가족들은 생존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과 치료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간의 갈등은 현장에서 이들과의 오랜 공감과 이해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세월호 참사가 안산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심각하게 남긴 상처이자 고통일 수도 있다. 또 이러한 고통은 어떤 전문가가 와서 치유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참사로 인한 안산 공동체의 갈라짐은 단지 이들 집단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 있으며, 또한 유가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으며 또 다른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던 생존한 단원고 교사들과 그들의 부모들도 존재한다. 또한 안산 지역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중심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것에 대해 억울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일반 시민들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안산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이 모든 고통의 지점들이 동시에 입체적으로 고민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럴 수 있는 어떠한 주체도 사회경제적 조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4. 고통에 대한 정치적 및 전문가적 개입의 문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과 안산 외 지역, 어른과 아이, 산 자와 죽은 자, 학교와 마을이 분열되는 과정 속에는 참사의 경험 자체가 가져다 준 어쩔 수 없는 실존적 측면도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가와 전문가들의 개입이 만들어낸 문제들도 도사리고 있다. 안산에서 나타난 양상은 어떻게 참사 이후의 개입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점차 고통을 치유 받는 경험을 하기보다 도리어 고통이 심각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인류학적 자료들은 한 사회에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적인 재앙이 발생했을 때, 그 사회의 정치적 및 종교적 지도자들이 나름의 방식을 통해 ‘처벌’과 ‘설명’과 ‘위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 기대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예컨대, 부족 사회에서 추장은 엄격한 재판 과정을 통해 공동체 성원 다수의 죽음을 야기하는 데 책임이 있는 자를 반드시 식별하여 처벌을 명할 것이 기대되며, 주술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재앙의 원인을 찾아내어 설명을 제공하고 공동체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부족 사회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에서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정치적 내지 종교적 지도자들은 피해자들과 공동체 전체에게 납득할만한 ‘처벌’과 ‘설명’과 ‘위로’를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적 지도자의 태도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입장으로 인하여 점차 출석하던 종교기관의 성직자들과 신도로부터 배제와 비난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라는 특성으로 인해, 안산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대형교회가 많다. 그리고 처음 낯선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사회적·심리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어왔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형교회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안산의 피해자들을 점차 종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6 -

    교적 공간으로부터 자신들이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재난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적 치료의 중요성을 국가적인 의제로서 본격적으로 다

    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재난과 분명히 구별되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디어를 통해 강조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걱정과 우려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곧바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이후 안산온마음센터로 이름 변경)’라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의료적 개입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참사 이후 진행과정이 국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점점 상승시키는 상황 속에서, 보건복지부에 의해 설치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참사 피해자 및 가족들에 대한 치료와 개입을 반년이 넘도록 거의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추구해오던 의료적 패러다임과 피해자들의 경험적 패러다임이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조금도 자신들의 패러다임에 대해서 유보할 생각이 없었다. 즉, 이들은 피해자 가족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본질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보다는 개인의 질병 경험으로 환원시키고자 하였으며, 그 결과 의료전문가들의 접근은 도리어 유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 및 고통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동하였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안산 교육청 간의 화합할 수 없는 부서 간 갈등으로 인해,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에 대한 관리는 교육청에서 요청한 전문가 집단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단원고 바깥의 피해자들—희생자 학생들의 형제자매 및 유가족들—은 보건복지부에서 요청한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되는 이분법적 구조가 양산되었다. 이처럼 분열된 전문가적 개입은 앞서 유가족들과 생존자 가족들 간의 갈등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총체적인 진단 및 개입을 구축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5. 나가며

    본 글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간 사회과학이 추구해 온 실증주의적 접근 방식이 갖는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고통의 경험을 ‘사회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하였다. 고통의 지점들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고 분류하는 작업은 고통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특화된 영역을 설정해줄 뿐 아니라 개입의 지점을 명료하게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이 그 고통이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의 복잡한 영향에 의해 발생되어진 경우에는 오히려 고통의 실질적인 내용과 성격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본문에서 다룬 바와 같이, 세월호 참사에서의 고통의 문제는 미디어를 통해서 특정한 이미지로서의 고통이 현실로서 주조되는 순간부터, 다양한 사회 집단들에게 다른 형태의 고통과 그로 인한 지속적 갈등으로서 경험되고, 이후 개입의 과정 속에서 국가와 전문가에 의해 고통이 도리어 강화될 수 있는 여지를 생성하기까지, 늘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권력이 특정한 방식의 현실과 주체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들은 한편으로 현대 사회가 가

  •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 7 -

    지고 있는 권력의 훈육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적 재앙 속에서도 공동체 성원들의 공감의 능력을 훼손시키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어렵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이 새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논의할 필요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Kleinman, Arthur, Veena Das, and Margaret Lock, eds. (1997), Social Suffering,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Sontag, Susan (2003),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 - 9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박종희(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 재난의 정치화란 무엇인가?

    재난의 정치화란 사회적으로 큰 피해와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 정치적으로 첨예한 당파적 주제(a salient partisan issue)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슈의 정치적 중요성(saliency)과 당파정치적 양상(partisan politics)이 재난의 정치화를 특징짓는 두 가지 요소이다.

    재난의 정치화는 크게 재난발생의 원인을 둘러싼 재난발생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disaster occurrence)와 재난대응 과정에서의 쟁점을 둘러싼 정치화, 즉 재난관리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disaster management)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재난발생의 원인에 있는가, 아니면 재난대응과정에 있는가에 따라 양자가 구분된다. 예를 들어 9.11 사건의 경우, 재난발생의 측면이 재난대응보다 더 정치화되었다. 과연 미국 행정부가 여객기를 이용한 테러가능성에 대한 첩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첩보에 기반하여 공항보안검색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가 9.11 위원회의 사후조사의 중심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에서도 재난발생에 대한 부분과 재난대응과정에 대한 부분을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는 재난발생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의 측면과 재난대응 과정에서의 정부조치에 대한 진상규명의 측면을 각각 지니고 있다.

    재난 발생시 그 재난의 원인과 대응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정치화의 형태를 띠기 쉬운 이유는 대략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재난복구와 관리의 과정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포괄하여 진행된다. 둘째,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동반하는 재난의 특성상, 재난관리는 극도의 사회적 관심 아래에서 진행된다. 셋째, 재난대응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책임”(주어진 상황과 자원을 고려할 때,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재난에 대응하였는가)의 문제는 선거와 여론에서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책임의 문제를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은 비대칭적이다. 정보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가진 집권세력 혹은 관료들은 재난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적 결과를 전적으로 상황적 불가피함으로 돌리는 책임회피 전략(blame avoiding or buck passing)을 사용할 것이다. 반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반대/비판세력은 모든 부정적 결과를 대응실패나 실책으로 귀속시키는 책임전가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결국 재난의 정치화는 재난 자체의 사회적 파장, 발생과 대응과정의 정치적 성격, 재난발생과 대응과정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 그리고 민주정치의 핵심적 특징인 책임성(accountability)이 결합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10 -

    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재난의 정치화가 나타나기 쉬운 조건 역시 이로부터 쉽게 도출해 볼 수 있다.

    첫째, 재난 자체의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 재난의 정치화가 등장하기 쉽다. 9.11 사건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이 대량의 인명과 재산이 손실되는 사건은 정치화의 소재가 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둘째, 재난 발생과 대응과정이 정치적 성격이 농후할 경우, 재난의 정치화가 등장하기 쉽다. 특정 정치세력의 드라이브로 인해 채택된 정책이 재난발생의 원인으로 간주되거나 혹은 대응과정에 대한 책임이 특정 정치세력에게 전적으로 쏠려 있는 경우, 재난의 정치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셋째, 책임성(accountability)과 재난의 정치화는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 즉 책임성을 핵심원리로 삼는 정치제도에서 재난의 정치화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와 같은 다수주의 정치제도(majoritarian political systems)에서는 정책선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제적 결과나 사회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 직접 묻는 것이 일상적이다. 다수주의 정치제도는 정부의 책임소재가 명확하여 선거가 정책에 대한 선호도로 정당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의 행적을 평가하여 벌을 주거나(sanction) 아니면 상을 주는, “나쁜 놈 쫓아내기(kicking the rascals out)”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카트리나 사태의 경우, 대통령은 공화당이었으나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블랑코(Kathleen Blanco)과 뉴올리언즈 시장이었던 내긴(Ray Nagin)은 민주당원이었다. 이러한 중첩된 당파성이 카트리나 사태 당시 재난대응에 대한 정치화를 중화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1)

    넷째,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할수록 재난의 정치화가 발생하기 쉽다. 정부가 재난발생과 재난관리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반대세력과 야당은 정보가 부족한 정보 비대칭성이 증가할수록 비판세력은 사후적 편향(hindsight bias)에 빠지기 쉽고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루머와 음모론으로 기각하기 쉽다. 이러한 정보비대칭성이 증가할수록 정부발표와 정부차원의 조사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게 된다. 그 결과 매번의 재난발생시마다 독립적 조사위원회에 대한 요구가 제기될 것이고 정부는 기존 제도의 활용으로 맞서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난발생 후에 선거와 같은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 재난에 대한 논의가 정치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득표에 도움이 되는 모든 이슈를 정치화시키는 소용돌이와 같은 사건이다. 재난발생 직후 혹은 재난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수그러들지 않은 시점에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재난의 선거쟁점화를 통해 이익과 피해를 보는 정치세력이 선명

    1) Neil Malhotra, “Partisan Polarization and Blame Attribution in a Federal System: The Case of Hurricane Katrina”Publius: The Journal of Federalism 38(4): 651-670.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11 -

    하게 존재하는 경우, 재난의 정치화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2. 왜 세월호 참사는 정치화되었는가?

    이와 같은 측면에서 살펴보면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는 놀랍지 않다. 첫째, 세월호 참사의 규모와 그 사회적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었다는 단순한 통계로는 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끼친 파장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침몰과정에서 드러난 선원들의 반인도적 무책임성, 해경의 무능력과 직무유기, 청해진 해운의 해상안전에 대한 체계적인 무시와 반인륜적 이윤추구 행태, 관리감독기관의 부실과 부패, 행정당국의 보고지연과 혼선, 그리고 구조과정을 책임지고 지휘해야 할 행정책임자의 부재는 국민들을 절망적인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침몰 순간까지도 선내방송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가만히 있었던” 학생들과 인솔교사들, 그리고 일반승객들의 영상은 온 국민들을 안타까움과 죄책감, 그리고 무력감의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둘째, 재난 발생의 책임은 청해진 해운과 관리감독기관(그 역시 행정부의 일부이지만)에게 돌릴 수 있지만 재난 대응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 행정부의 책임 아래 놓인다는 점이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를 촉발한 두 번째 요인이었다. 한국은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중심의 혼합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어 다수주의 정치체제의 성격이 강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새누리당은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통합정부(unified government)였으며 재난대응에 대한 당파적 책임추궁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셋째, 사고발생과 구조과정에 대한 정보가 매우 비대칭적으로 배분되었다. 청와대와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그리고 해경은 관련정보의 공개를 꺼리고 있고 정보접근에서 배제된 야당과 유가족들은 이러한 태도가 초기 대응과정에서 중대한 정부의 실수 혹은 오판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여 이를 쟁점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이빙벨을 둘러싼 논쟁이나 언딘과 민간잠수사와의 갈등문제, 에어포켓의 가능성이나 구조방법에 대한 논쟁, 대통령 최초보고시점과 사고인지시점 등이 루머와 음모론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음모론과 루머는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를 부추킨 중요한 사회심리적 기반이었다. 정보의 비대칭적 배분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행정부 감시와 견제기능을 담당한 국회를 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의회는 당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 있을 때 소위 6인의 대표(the Gang of Six)라는 초당적인 채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양당의 협조를 구한다.

    넷째, 참사 직후에 진행된 두 번의 선거(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는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를 가속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라는 정치적 소용돌이는 “책임”과 “심판”에 대한 여론을 한껏 고조시켰고 여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선거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12 -

    쟁점화를 통해 막대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가족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위치선정하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의 무능력과 책임을 선거쟁점화하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6월 4일의 선거와 15개 소선거구의 지역구대표를 뽑는 7월 30일의 재보궐선거 자체는 세월호의 정치적 심판이라는 야당의 의제와 민생을 챙기고 지역의 살림꾼을 뽑자는 여당의 의제가 대결하는 장이 되었고 결과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신승(6-4 지방선거)과 압승(7-30 재보궐선거)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선거로 인해 격하게 고양되었던 심판과 책임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공론장에서 사그라드는 열광과 패닉의 사이클을 보여주었다. 특별법이나 조사위원회가 꾸려지기도 전에 선거가 진행되면서 여당은 심판론과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특별법제정과 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협상을 야당과 유가족을 상대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야협상이 지체와 중단을 거듭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대응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바로 리더십의 부재라는 점이며 이는 곧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내의 상당수 부서와 관료가 비판과 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로 모든 권력이 집중된 한국정치의 특성상 현직 대통령을 직접적인 조사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렵고 민감한 주제이다. 그러나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조사와 검토는 단순히 현직 대통령을 추궁하기 위해 과거를 캐는 조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재난발생시에 정부내의 개별 부처는 예산상의 제약이나 법률상의 제한, 권한의 충돌, 예측불가능성과 재난대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으로 인해 소극적인 대응을 하려는 유인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유인을 약화시키고 신속하게 조직전체의 힘을 모아내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리더는 예산제약에 대한 우려 해소, 법률에 대한 과감한 해석, 권한충돌에 대한 신속한 조정, 위험비용과 편익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판단 등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미국 카트리나 사태와 한국의 세월호 참사는 재난대처의 각 수준(현장, 정부, 그리고 대통령)에서 효과적인 리더가 부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표 1은 대형재난대처에서 특히 중요한 지도자의 12가지 자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2)

    2) Naim Kapucu and Montgomery Van Wart, “Making Matters Worse: An Anatomy of Leadership Failures in Managing Catastrophic Events” Administration & Society 2008.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13 -

    A Brief Description of 12 Competencies Especially Critical in Managing Catastrophes Decisiveness is the ability to act relatively quickly depending on circumstances without excessively damaging decision quality. Its major subelements are willingness to make unilateral decisions, ability to act quickly in a crisis, and ability to remain calm in a crisis. Flexibility is the ability to bend without breaking and to adjust to change or be capable of modification. Its major subelements are adaptability and alertness to alternatives. Informing is providing critical information to subordinates, superiors, peers, or people outside the organization. Its subelements include facilitating coordination of work, shaping the mood about work and strategies that function best, and serving a public relations function. Problem solving is identifying, analyzing, and handling work-related problems with subelements being recognizing, investigating, and resolving problems. Managing innovation and creativity is establishing an environment that allows and encourages flexible solutions and change, and fosters timely implementation of innovation. The subelements are creating, acquiring and transferring knowledge and modifying organizational behavior to reflect new or unique circumstances. Planning and organizing personnel is coordinating people and operations and ensuring that the competencies necessary to do the work are available. Subelements include scheduling and matching talents to work and problems. Motivating is enhancing the inner drives and positive intentions of subordinates to perform well. Subelements include providing incentives, as well as providing inspiration that encourages work for the organization goals regardless of personal benefit. Team building is creating and supporting teams that are both in-place functional groups as well as teams/groups that cross divisional, organizational, and even sectoral lines. Subelements include creating and supporting teams as well as enhancing identification with the work, fostering intramember cooperation, and achieving esprit
d'corps. Scanning the environment is gathering and critically evaluating data related to external trends, opportunities, and threats on an on-going and relatively informal basis. The main subelements are broad and informal monitoring and consulting outside the organization, identifying external trends and opportunities, and investigating the most significant trends (opportunities or threats) in greater detail. Strategic planning is making disciplined efforts to produce fundamental decisions and actions that shape and guide an organization. It includes defining the mission and purposes of the organization, defining specific objectives, clarifying and selecting among alternatives, and selecting detailed goals and concrete measures. Networking and partnering is developing useful contacts outside the leaders' direct chain-of-command and is therefore primarily voluntary but substantive. Subelements include sharing information across organizational lines, providing mutual support and "favors" among agencies or with outside groups, and sharing responsibility and benefits (partnering) with other outside entities. Decision making is making major organizational choices by understanding the fundamental values and factors involved, and by structuring an appropriate decision framework. Subelements include understanding the factors in the decision environment related to complexity, information availability, type of decision, and need to involve others, as well as understanding the competing values involved such as efficiency, effectiveness, legality, etc.

    대형재난 대응에 중요한 지도자의 12가지 자질 (Kapucu and Van Wart 2008)

    3. 여론에 비친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 과정은 어떠한 특징을 보였는가?

    충격-열정-냉정의 급격한 감정적 사이클을 그리며 진행된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화 과정은 결국 세월호 1주기를 넘어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겨 놓았다. 유가족은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14 -

    정치적 소수자가 되어 일부언론과 극우단체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당하고 있으며 잇따른 선거패배로 패닉에 빠진 야당은 사태해결의 주도권을 다시 잡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세월호의 정치화를 광우병의 정치화와 동일시하며 정치화를 사전 차단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과 동시에 “탐욕의 결정체”이자 “세금도둑”이라는 정치적 공격3)과 이석태 위원장의 사퇴, 유가족들의 정부시행령 거부로 좌초의 위기에 놓여 있다.

    세월호보도에서 드러난 신문매체의 슬랜트(slant) 지수 (저자에 의한 분석결과)

    청와대와 행정부, 그리고 국회는 세월호의 정치화라는 파도를 타는 과정에서 “국가대개조”, “적폐청산”, “관피아 척결”과 같은 현란한 정치적 수사를 남겼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사회적 재난을 예방해야 한다는 세월호 참사의 가장 중요하고도 단순한 교훈을 실천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채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Where is government?”라는 질문을 전 국민이 던졌다면 세월호 참사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Where is the lesson we learned?”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박명림은 신문기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3) “세월호 특별조사위는 탐욕의 결정체 - 새누리당 전략가 김재원 의원이 털어놓은 ‘협상의 사선(死線)’” 신동아 2015년 3월 666호, 134-141쪽.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15 -

    진도는 근본이 무너진 나라의 참혹한 표상이다. 공직사회의 책임윤리는 파탄나고, 대통령의 어떤 영(令)도 서지 않으며, 사회는 온통 권력과 돈의 힘만 난무해온 모습의 압축판이 세월호 침몰과 사후대처가 폭로하는 한국호의 민낯이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4)

    세월호 참사가 한국호의 민낯을 보여 주었다면 그 이후에 진행된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 과정은 한국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세월호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다. 그림 1과 그림 2는 세월호 보도에서 사용된 당파적 어휘(partisan words)를 기준으로 언론매체의 당파적 경도(slant)를 측정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부터 2015년 4월 11일까지의 총 16만건의 언론보도를 자료로 사용하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 의해서만 각각 사용된 두 어절 혹은 세 어절 (2-그램 혹은 3-그램)의 세월호 관련 어휘를 추출한 뒤, 그 어휘의 사용빈도를 중요성으로 간주하고 이 당파적 어휘가 매체보도에서 등장한 빈도를 추적하여 그 평균값을 나타낸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특성상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보다 훨씬 많은 당파적 어휘를 사용하였다. 슬랜트 지수가 높을수록 새정치연합의 당파적 어휘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한 매체이며 낮을수록 새정치연합의 어휘를 적게 사용한 매체이다.

    그림 1과 2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세월호에 대한 매체보도는 기존 매체의 보수-진보의 스펙트럼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4. 재난의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1) 독립적이고 초당파적인 조사위원회 그리고 개인에 대한 책임이 아닌 시스템의 책임을 찾기 위한 진상조사

    미국은 9.11 사태 이후, 독립적이고 초당파적인 진상조사위원회(공화당 추천 5인, 민주당 추천 5인)를 출범시켜 사태발생과 대응을 둘러싼 의문과 쟁점을 조사하도록 했다. 9.11 위원회는 총 2백5십만 쪽의 자료를 검토하고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1200명의 사실상 거의 모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였으며 19일 동안의 청문회와 160명의 증인들을 채택하여 조사하였다. 9.11 위원회의 총예산은 천오백만불(한화 약 165억)이었으며 약 80명의 스탭으로 운영되었다.5)

    9.11 위원회는 조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특정 개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9.11 사건에 대한 가능한 가장 완전한 설명과 그로부터

    4)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박명림 교수 세월호 참사 현장 기고” 2014년 4월 23일. 한겨레신문.5) http://govinfo.library.unt.edu/911/about/faq.htm#q4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16 -

    얻은 교훈을 찾기 위함이다.”6) 위원회는 이를 미래를 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looking backward in order to look forward)이라고 표현하였다.

    방송매체 슬랜트 지수 (저자에 의한 분석결과)

    (2) 정치화를 부추기고 앞정서는 언론보도가 아닌 탈정치화를 지향하며 사회적인 의제를 선정하는 언론보도

    제도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실천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을 때, 언론의 중요한 역할은

    급격한 정치화의 후유증을 치료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와 한국 정치에 던진 교훈을 되새김질하는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언론이 정치화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성을 갖고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꿋꿋하게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치화의 파도를 더욱 거세게 만들어 파고의 낙차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오히려 후자에 가까운 역할을 한 매체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카트리나 사태 이후 미국 언론은 연방긴급구조기구(FEMA)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퇴거명령에도 집에 남아 있었던 흑인들의 모습, 그리고 약탈과 혼란으로 무정부상태에 빠진 도시의 모습을 보도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사태의 표면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채 인종과 가난이라는 사태의 구조적 측면를 외면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백인 중심의 미디어 담당자들이 미국 남부 흑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보도과정에서 인종적 편견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7) 카트리나 사태가 미국 언론에게 인종적 편견과 관련된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에게 재난의 정치화에 직면한 언론의 올바른 보도태도는 무엇인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6) 9.11 Commission Report, “Preface”, p. xvi. 7) Madison Gray, “The Press, Race and Katrina” Time, Aug. 30, 2006.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17 -

    (3) 다수주의 제도의 비례주의적 운영

    효과적인 리더십의 행사와 위기대응의 신속성이라는 다수주의 정치제도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약점으로 지적되는 소수자에 대한 외면과 정치적 타협에 대한 도외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회 내의 제도, 규범, 규칙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국회운영과 국정운영 과정에서 야당과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국 의회의 6인 위원회와 같이 야당대표와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여 소모적인 정치적 공방의 가능성을 줄여야 하며 위기 시에 정당 간 협상을 담당하는 협상대표부에게 지도부가 전권을 위임해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협상 후에 협상과정과 결과를 정치화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유인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강력한 상위규범(super-norm)을 제정하여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회선진화법의 사례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다수주의라는 헌법적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그 운영에서 비례주의라는 하위의 제도, 규범, 문화를 보완하는 한국식 제도적 혼합(institutional hybrid )을 추구해야 한다.

  • - 18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19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0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21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2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23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4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25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6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27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28 -

  • 재난의 정치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치담론에 대한 소고

    - 29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30 -

  • - 31 -

    언론의 재난 관련 담론 형성, 이대로 좋은가?

    한규섭(서울대 언론정보학과)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32 -

  • 언론의 재난 관련 담론 형성, 이대로 좋은가?

    - 33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34 -

  • 언론의 재난 관련 담론 형성, 이대로 좋은가?

    - 35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36 -

  • 언론의 재난 관련 담론 형성, 이대로 좋은가?

    - 37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38 -

  • 언론의 재난 관련 담론 형성, 이대로 좋은가?

    - 39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0 -

  • - 41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2 -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 43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4 -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 45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6 -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 47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48 -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 49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50 -

  • 세월호는 사회적 재난이다: 후쿠시마, 카트리나, 원전폐쇄, 북해대홍수, 그리고 세월호

    - 51 -

  •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 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