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포럼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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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1 발제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상지대 교수) 원주에서 방금 왔습니다. 제가 상지대학에서 일하는데 사학분쟁의 대표적인 곳입니다. 학교가 곧 문닫게 되어서 문 닫지 않게 하려는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상지대학교 문제는 곧 오늘 이야 기하려는 내용과도 닿아 있습니다. 저는 철학을 전공했고 오늘 이야기할 것은 철학적인 기초입 니다. 큰 주제로 봐서 하나는 형이상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이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이미 형이상학적인 접근은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자연은 순환해야 한다, 하나라도 정 지된 것은 없고 변화를 잘 알아야 한다. 생태적인 것은 공생하는 것이고 공생은 잘 조화하는 것 이며 조화를 파괴하는 것을 벗어나고 자연에 공감해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운동하는 하나의 시 스템이다, 엔트로피를 얼마나 줄이는가가 중요한데 태양을 이용하는 것과 생명을 이용하는 방법 등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녹색연합 강령에도 키워드가 다 나와 있습니다. 생태계, 다양성, 평 화, 생명 등 녹색에 관심있다 하면 순환성, 생태성, 자기조직성, 보전성을 다 공부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형이상학 기초가 아니라 역사적 기초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한국 상황에서 녹색, 생태, 환경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 예를 들어 생명이 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하기가 광장히 어렵습니다. 라이프라고 하면 좋지만 우리가 말하는 생 명은 라이프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고 우리 모두 생각합니다. 생명에 곧장 해당되는 개념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 입니다. 중국만 해도 좀 다릅니다. 이 역사적 기초 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전에 노자, 장자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2500년 전으로 돌아가서요. 대학 교양과목에서 도 그렇고 시민강좌를 하더라도, 저는 전공이 생물학, 과학쪽에 대한 철학인데 이 강좌를 하면 사람들이 안 오는데 노자, 장자를 하면 사람이 많이 옵니다. 왜 수업을 들어 오냐고 물으면 첫 번째 답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제일 많이 나오는 답변입 니다. 과연 노자, 장자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오해 가 굉장히 많습니다. 노자, 장자를 ‘무위’라는 개념으로 말하고 이것이 녹색철학의 중요한 기초 가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무위가 어디서부터 나온 개념인지를 봐야 합니다. 2500년 전 중국 선 진유학시대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늘 전쟁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했 던 이 시기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4회 문명과 녹색철학 ○ 일시 : 2015년 7월 14일 5시 ○ 사회 : 박영신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 발제 : 최종덕 (상지대 교수,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 토론 :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 토론 :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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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 2015년 7월 14일 곳 : 녹색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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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1

발제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상지대 교수)

원주에서 방금 왔습니다. 제가 상지대학에서 일하는데 사학분쟁의 대표적인 곳입니다. 학교가

곧 문닫게 되어서 문 닫지 않게 하려는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상지대학교 문제는 곧 오늘 이야

기하려는 내용과도 닿아 있습니다. 저는 철학을 전공했고 오늘 이야기할 것은 철학적인 기초입

니다. 큰 주제로 봐서 하나는 형이상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이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이미

형이상학적인 접근은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자연은 순환해야 한다, 하나라도 정

지된 것은 없고 변화를 잘 알아야 한다. 생태적인 것은 공생하는 것이고 공생은 잘 조화하는 것

이며 조화를 파괴하는 것을 벗어나고 자연에 공감해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운동하는 하나의 시

스템이다, 엔트로피를 얼마나 줄이는가가 중요한데 태양을 이용하는 것과 생명을 이용하는 방법

등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녹색연합 강령에도 키워드가 다 나와 있습니다. 생태계, 다양성, 평

화, 생명 등 녹색에 관심있다 하면 순환성, 생태성, 자기조직성, 보전성을 다 공부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형이상학 기초가 아니라 역사적 기초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한국 상황에서 녹색, 생태, 환경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 예를 들어 생명이

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하기가 광장히 어렵습니다. 라이프라고 하면 좋지만 우리가 말하는 생

명은 라이프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고 우리 모두 생각합니다. 생명에 곧장 해당되는

개념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 입니다. 중국만 해도 좀 다릅니다. 이 역사적 기초

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전에 노자, 장자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2500년 전으로 돌아가서요. 대학 교양과목에서

도 그렇고 시민강좌를 하더라도, 저는 전공이 생물학, 과학쪽에 대한 철학인데 이 강좌를 하면

사람들이 안 오는데 노자, 장자를 하면 사람이 많이 옵니다. 왜 수업을 들어 오냐고 물으면 첫

번째 답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제일 많이 나오는 답변입

니다. 과연 노자, 장자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오해

가 굉장히 많습니다. 노자, 장자를 ‘무위’라는 개념으로 말하고 이것이 녹색철학의 중요한 기초

가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무위가 어디서부터 나온 개념인지를 봐야 합니다. 2500년 전 중국 선

진유학시대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늘 전쟁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했

던 이 시기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4회 문명과 녹색철학

○ 일시 : 2015년 7월 14일 5시

○ 사회 : 박영신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 발제 : 최종덕 (상지대 교수,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 토론 :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 토론 :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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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야기하는 것이 제자백가들이었습니다. 공자도 나오고 맹자도 나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노자

와 장자입니다. 당시 월나라가 있는데, 옆에 오나라가 월나라를 치려고 합니다. 왕이 신하를 소

집해 전략회의를 하는데 어떤 신하가 발언이 많습니다. 지금 오나라는 4년째 가뭄이 들어 식량

이 부족해 치기에 적기라고 합니다. 그 신하 말을 듣고 전쟁을 해서 이기면 다행인데 지는 경우

에는 그 말 많은 신하 목이 날아갑니다. 그럴 때 신하가 무서워서 말을 못하고, 왕이 주도권을

쥐고 말을 많이 해서 왕의 주장대로 전쟁을 해서 지면 왕도 바뀌게 됩니다. 왕권이 강하지 않은

시대니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발언을 적게 합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B.C 5-6세기 경의 일인

데 나중에 황로학이라고 해서 B.C 2세기경에 도교가 생깁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도가 즉 철

학이고, 이후 종교의 형식을 따는 도교가 생깁니다. 이 시기에는 양생론이 중요하게 됩니다. 양

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거 먹더라도 이른 나이에 죽으면 양

생이 아니니까요. 양생의 첫 번째는 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게 도교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

시 말해 무위는 선진유가시대의 출발점인 구체적인 현실사회 속에서 내가 살아남은 양생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올라왔는데 이런 형이상학 이론이 생긴 것은 100년도

안 됩니다. 도가는 당나라에 오면서 유가에 밀리는데, 왜냐하면 도가는 정치권력과 잘 맞지 않

습니다. 정치권력과 잘 맞는 유가가 2000년을 지배해왔고 조선도 성리학이 지배하게 되었고 이

것이 인간의 권력을 표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도가는 조선시대에 발붙일 틈이 전혀

없었고 도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이단이 됩니다. 우리에겐 일본의 도교가 해석되어 들어오는데

일본에선 도가가 굉장히 신비주의로 바뀝니다. 도교 해석할 때 지나치게 무위를 은둔과 안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자연을 입혀 청정무위라는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조선 사회에서 유가의 기초가 몇 백 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19세기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고

결정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살

아남을 것인가, 역사책에 많이 나오듯이, 강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서양과학이론을 많이

도입합니다. 조선에서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논의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현실을 진단해

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교가 갖고 있는 권력주의 형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것이 나옵니다.

조선유가의 권력적인 특징 중 하나는 계급 격차, 빈부격차, 성의 차이입니다. 리가 놓치기 쉬운

게 서구 자본주의에서는 빈부의 차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계급이 빈부를 필연적으로 동반

합니다. 계급의 차이를 부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래서 동학이 출현하게

됩니다. 최재우 선생이 나오는 것이지요. 동학 사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사상인데 누구나

같다는 것, 가장 중요한 측면은 너와 내가 그냥 동급이야를 넘어 나는 너보다 지식이 많기 때문

에 무지한 너를 가르칠 수 있어, 잘 쫓아와야 돼 라는 방식을 깨부수는 것입니다. 조선 기존 틀

가운데 하나는 성인군자의 논리입니다. 성인과 소인의 차이는 소인이 배워야할 모델은 성인군자

입니다. 소인과 성인군자의 계급적 차이뿐만 아니라 대인은 소인을 가르칠 수 있고 소인은 대인

을 좇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평등사상의 기본 틀은 너나 나나 이 더하기 삼은 오라는 기술적 지

식은 좀 더 배운 사람이 나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윤리적 지식은 똑같다라는 겁니다. 누가 누구

를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사상입니다. 나는 대인이고 너는 소인인데, 소인도 이미 그 속에

윤리적 완성도를 갖고 태어나고 발현 안 될 뿐입니다. 발현을 도와줄 뿐입니다. 이것이 동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남녀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물리적으로 힘은 세지만 이 세상을 밝게 하는

깨달음의 지식은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사회적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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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3

건만 맞으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할 수 잇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읽는 책이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한다는 ‘맨스플레인’이라는 책인데요. 맨스플레인은 2010년에 타임즈가 선정한

키워드인데 맨 이스 익스플레인을 줄인 말입니다. 남자들이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거죠.

남자는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으니 내가 니를 가르쳐야 한다, 너를 깨워쳐 줘야 한다는 겁니

다. 이 중에서 우리가 아는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70년대에

출판했을 때 남성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타임지에선 레이첼카슨의 지나치게

히스테릭한 면이 이 결과로 나왔을 뿐이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합니다. 이런 것이 전통 유

가에도 있는데 이것을 깨려는 것이 동학입니다.

또, 동학은 많이 들어봤을 텐데 다른 한국철학에 대해서는 잘 듣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역사에

대종교가 있는데 나철, 서일 선생이 만든 종교입니다.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 사람이 다 주인이

다고 말한 종교입니다. 종(宗)자는 집우 자가 붙어 집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잘 봐주지만 집 밖

에 있는 사람들은 다 처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편은 잘해주고 아니면 단호하게. 그런데 여

기에 사람인변을 붙인 종(倧)은 사람이 다 주인이다라는 것입니다. 대종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

는 평등입니다. 오죽 계급 차별에 몇백 년동안 시달렸으면 평등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오늘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양명학인데 19세기 말에 양명학 계통이 등장합니다. 박은식, 신채호 선생

많이 들어보셨죠. 이회영 선생은 그 당시 경주 최씨보다 더 부자였는데 자기 재산을 온통 털어

오형제 식솔 육십오 명을 전부 데리고 만주로 가서 학교를 세웁니다. 독립투사로 많이 알고 있

는데, 싸우기 위해서는 내적 이념이 필요했습니다. 양명학이라는 것은 중국 B.C 11세기 경에 형

성되는데 불교와 비슷합니다. 불교는 너 자신 안에 붓다가 있다 하는데, 유교에서는 붓다는 나

고 중생들은 밖에 있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불교는 붓다는 이미 내 안에 있으니 즉

각 내가 깨달을 수 있다, 발현이 안될 뿐이다는 구조인데 양명학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평등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리적 권력을 접촉할 기회를 잡아서 잘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

은 무지렁이로 살 뿐이지 내면의 잠재성은 모두가 같다는 것입니다. 전부 평등합니다. 누가 누

구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양명학 특징입니다. 당연히 중국에서 잘 먹혀들지 않

습니다. 권력과 종교가 유지되려면 사람들이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계급이 분화되어야 하는데,

내가 정치를 하는데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어떻게든 잘 듣게 해야 하는데, 나는 너보다 아는

것이 많고 갖고 있는 것도 많다, 그것도 원래부터 그렇다, 그러니 나를 쫓아올 생각 말고 내가

베풀어주는 대로 먹기만 하면 돼 라는 것이 기존 유가 구조인데 양명학은 평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먹히지 않습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조선이 망하면서 양명

학이 부활하면서 내면의 평등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씨앗이

있게 됩니다. 이회영 선생에 이어 양명학의 대표적인 사람이 방정환입니다. 방정환은 애들 속에

어른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애를 가르치려고 한다고 애는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데 방정환

선생은 애들 속에 이미 어른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크지만 않았지 잠재적 성숙도는 같다고 합

니다. 애들을 통해 어른을 찾는 작업, 이것이 양명학입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분이 함석헌 선생

입니다. 양명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지행합일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지

식이 아니다. 실천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대종교, 동학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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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20세기 초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틀을 크게 네 개로 나눠보면, 이 네 개의 공통

점이 있는데 하나는 평등성, 두 번째는 실천입니다. 특히 함석헌, 신채호, 나철, 이돈화, 최제우,

최시형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강조한 것이 실천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생명입니다. 특

히 양명학에서는 모든 생명의 힘이 씨앗에 들어있다고 보았는데 씨앗은 미성품이 아니라 완성품

입니다. 씨앗은 아무 때나 터지는 않습니다. 생명의 요소에는 험난한 세상을 계승할 굉장한 힘

이 있는데, 씨앗에는 바로 외부 환경에 저항하는 힘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뭄이 10년씩 있을 때

도 있고, 물이 너무 많아서 썩을 때도 있고 불이 나서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모든 씨

앗이 발아했다면 지구는 망했을 것입니다. 신문에서 가끔 보죠. 2천년전 볍씨가 나왔다는 등. 발

아 조건은 모순적으로 자기 자신을 틔우지 않으려는 힘도 함께 합니다. 상황에 따라 틔우고 안

틔우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생명의 씨앗에 아무것도 없거나 모자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이 한 말입니다. 생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미 어린

애 속에 어른이 있고 소인 속에 대인의 모델이 들어 있고 다 똑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생명에서는 우선 중요한 게 일본식 해석이 아니라는 겁니다. 함석헌 선생은 80년대까지

노자 강의를 YMCA에서 20년 가까이 해왔는데 이 함석헌 선생 노자 강좌는 아주 탁월합니다.

우리가 아는 노자 장자는 대부분 일본책에서 나오는 건데요. 노자 장자가 실천적이고 삶의 문제

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이 김용옥 선생인데 김용옥 선생 이전에 함석헌 선생이

이미 그런 이야기를 이미 70년대부터 해왔습니다.

녹색철학에는 두 가지 뿌리가 있는데 한 쪽은 심층적이고 영성적인 것이 있고 다른 것은 사회

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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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5

다. 다만 개인적 취향은 사회적 생태주의입니다. 하지만 형이상학도 중요합니다. 녹색철학이 형

이상학적 기반만 갖고 있으면 폼은 나는데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올라오는, 삶의 실천성이 굉

장히 부족하게 됩니다. 이 양면성을 잘 가져야 하는데. 생명은 평등과 실천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 흐름이 우리 100년 사에 쭉 흘러왔고. 이러한 생명철학의 기초가 우리한테 전해오지 않고,

일제 역사 때문에 다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일제를 통한 해석이 우리한테 넘어오고

이에 대한 반성이 없었습니다. 우리 잘못이라기보다는 일제 때 권력자들이 아직도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해소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흐름이 군부독재와 연관이 되어 이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환경철학, 혹은 생태철학 혹은 녹색철학

의 역사가 한 축에 있다면, 요즘 너무 신비주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 외에 이런

역사적인 측면을 잘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대종교, 양명학이나 신남철

이런 분들이 생명사상을 많이 이야기하고 이 생명사상의 뿌리가 유영모 선생에서 함석헌 선생으

로 이어져오다가 끊어집니다. 그 이후에 우리가 잘 아는 김지하, 장일순 그런 분들로 이어지는

데.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많은 부분 신남철, 대종교에서 많이 거의 백퍼센트 따온 것입니다.

여기 침팬지의 사진이 있습니다. 제인 구달이 연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침팬지가 애완동물 수

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폭력성이 강합니다. 침패지는 이렇게 응시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봐도 나를 응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이 응시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잡아 먹겠다

라는 표현입니다. 얘네가 풀만 먹으면 응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부 먹을 거리이니까요. 사자가

영양을 쫓기 위해서는 응시를 합니다. 침팬지는 가부장적인 틀을 갖고 대장이 권력을 쥐고 자기

가 늙어 젊은 수컷에게 질 때까지 생식에 대한 모든 권력을 독점합니다. 여기에선 일체의 관용

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20~25개월까지 새끼들이 대장에게 엉기는 것 정도만 봐 줍니다. 그런데

침팬지와 비슷한 보노보가 있습니다. 눈동자가 좀 어리어리하죠. 침팬지의 70% 정도 크기인데

암컷이 지배를 합니다. 일인 지배가 아니라 2~3년, 3~4년 동안 수평 지배, 다중 지배를 합니다.

양육을 이모들이 공동으로 같이 합니다. 육식도 하는데 가끔 사냥을 해오면 어미들에게 다 나누

어줍니다. 그러면 어미들이 새끼들을 각자 먹입니다. 침팬지는 대장, 수컷, 암컷, 새끼 순으로 먹

습니다. 암컷이 새끼가 좀 자라면 잘 챙기지도 않습니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가장 큰 차이는 보

노보는 모계 중심이고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침팬지는 번식을 위해서만 섹스를 하는데, 보노보

는 하루에 25회 이상 섹스를 합니다. 동성섹스도 있습니다. 지속적인 접촉을 하고 권력이 분산

되어 굉장히 평화로운 집단입니다. 보노보가 침팬지에 비해 개체 수가 20분의 1에 안되는 멸종

직전에 있습니다. 권력 이야기를 마저 하고 끝내려는데요, 사자가 수컷끼리 대장 자리를 위해

싸울 때 동물의 왕국에선 격렬하게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싸우지 않고 서로 으르렁

거리기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90%는 이런 식으로 해결되고 나머지 10%만 실제 싸움으로 이

어집니다. 난 크니까 너가 물러날래? 아냐 내 울음소리 들어볼래? 무섭지? 이러면서 해결합니

다. 이것이 권위의 출발이고 수컷의 허풍입니다. 깃털을 세우고 개구리도 엄청 배를 부풀립니다.

공작새도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날개를 펴고 매력을 어필합니다. 얼마나 광택나고 무늬가 정

교한지에 따라 선택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야생에 있을 때는 굉장히 위

험한 일이다. 포식자들이 널려 있는데, 공작새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게 삵인데 도망가기 위해

서는 날개를 접고 도약을 위해 뛰어야하는 동작을 하는데 그 사이 잡아먹히게 됩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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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데 왜 이렇게 화려하게 날개를 피는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진화심리학에선 남성이

갖고 있는 허풍과 권위와 많이 연관을 짓습니다.

중요한 게 자연에는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방인데 애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모든 것을 모방합니다. 우리가 학습이

라고 하는 것은 모방의 연장이지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교조적이면 생명적일 수 없습

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고 할 때, 교조적 훈계는 역사적으로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

입니다. 교조적 훈계를 벗어나서, 이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 이들이 동학, 양명학 등

앞에 예를 들었던 것들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필연입니다. 지금은 다시 교조가 고개를 들고 녹

색운동에서도 교조화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내가 잘 가르칠테니 따라오기만 하라는

식. 이런 방식은 녹색운동과 맞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보여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명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보노보적인 특징과

침팬지적인 특징이 같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훈계, 강요, 압박이 아니라 내가 함으로 해서 상

대방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기본적인 특성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

4월에 한국에 왔던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인간의 행동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

류했습니다. 배려. 배려는 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공평한 것, 충성심, 권위, 고귀

함. 대체적으로 배려와 공평심으로 가면 대체적으로 진보적이고 국가주의와 권위 쪽으로 가면

대체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는데,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은 충성심과 권위는 기본적으로, 아까 이야기했던 침팬지적인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입니

다. 배려와 공평성은 상대적으로 보노보에 기반을 갖고 있는 건데. 충성심과 권위는 나쁜 거니

까 배려와 공평성으로 가야지라고만 이야기하면 이것도 교조적으로 되어 버립니다. 지금 현실에

선 국가주의, 권위의 권력주의라는 것을 비판은 하지만 부정은 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

다.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주의와 권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쪽

비중을 좀 줄이고 다른 부분을 늘리는 방안이 무엇인가 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공

평하다, 내가 너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를 쫓아올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평등성

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단초가 녹색운동으로 기폭이 될 수 있다

고 생각합니다. 녹색운동이 단순히 자연의 녹색이 아니라 사람의 녹색을 만드는 것과 필연적으

로 연관이 되어 있고. 이러한 생각이 녹색연합 내부 일꾼들에게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

합니다.

지정토론┃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처음 발제문을 받았을 때 오랜만에 공부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얘기 속에서는 저희 고민

과 많이 맞닿아 있다 생각했습니다. 저희 민우회가 살고 있는 공간이 나루라는 공간인데요. 환

경정의, 녹색교통이 같이 있고 여성환경연대와도 자주 만나기 때문에 녹색철학이 낯설지 않습니

다. 여성주의와 녹색철학이 만나는 자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제가 여성주의를 말씀드릴 기

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우회 알고 계신 분들이 얼마나 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희는 대중

여성 생활 운동을 합니다. 여러 가지 철학이 우리 마음 속에 기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

희는 안방에서, 부엌에서, 지역에서, 옆집에서, 택시를 타면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내 생활 속

모든 영역이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생활 속 불편이나 문제를 느끼는 것을 의제로 만드는 단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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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7

니다. 그 변화를 만드는데 참여를 하는 것이 목적이고 혼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열

사람이 참여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라 하면 드세고 여성학 공부하는 사

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시는데 여성은 단일한 범주가 아니라 어느 영역이든 어느 위치에서든 여성

이라서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운동에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해체하는 것, 이것은 사적이다, 개인적이다, 사소하다라는 부분을 해체

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이 말을 만들

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일은 사소하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7살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 정수기가 있는데 불투명컵, 투명

컵을 네 개씩 놓아 두고 사용하게 하는데 딸이 어느 날 컵이 없다고 해서 봤더니 불투명 컵이

있더라구요. 왜 컵이 있는데 없냐고 묻자 아이가 자기는 키가 작아 불투명 컵은 물이 차는게 안

보이니까 불투명 컵은 컵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많을 걸 배웠는데 그 컵은

제도이기도 하고 우리를 둘러싼 것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겐 있는 것인데 누군가에겐 없는 것

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죠. 저도 그런 상황이 7살 때 있었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것, 저는 생

각해보지 못한 것. 그 사람이 되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평등 감수성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위치가 되어 보는 것. 이것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시작합니다.

저희는 의제를 확장하기 위해 저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다 들어가는데요. 여성노동, 여성건

강, 성폭력, 복지, 미디어 등을 다룹니다. 영역별로 설명하자면 여성노동은 경제위기, 신자유주의

등의 상황에서 남성중심의 노동운동에선 잡히지 않는 여성노동문제를 의제로 다룹니다. 결혼퇴

직제도 같은 게 있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임신, 출산, 양육에서 불이익이 많고 남녀

임금격차도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0만원을 받는 세계 유래 없는 차별이 있습니다.

당당한 성, 즐거운 성과 같이 여성을 성에서 약자화, 대상화, 타자화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성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활동을 합니다. 또 저희가 지금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성적수치심이 들면 성폭력이다라고 보

통 설명하는데, 수치감이라는 것은 자기 파괴적인 의미입니다. 가해자가 수치심을 가져야 하는

데 피해자가 이걸 갖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으로 이 단어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문제에선 첫 사람이 되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지하철

에서 성폭력, 성희롱, 여성비하 이런 것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문제 있다고 말하는 첫 사

람이 되자, 그것은 잘못되었다, 불편하다, 하지 마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둘, 셋이 되

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건강과 관련해선 외모도 스펙이 되는 사회인데, 여성의 몸을 하

얀 피부, 마른 몸매 같은 걸로 이야기하는, 성형산업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획일화된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개념녀라는 표현을 미디어에서 재생산

하는 것 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저희는 해체하고자 하고 일상에서 여

성운동 발굴하려 합니다. 이러한 운동을 옆에 있는 여성과 남성과 이야기하면서 경계를 허무는

운동으로 하려고 합니다. 웃어라 명절아 같은 캠페인도 했고, 결혼을 하면 남자는 배우자의 동

생들에게 처제라 하고 여성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라 부르는데 이런 불균형을 깨는 활동을

합니다. 이게 전반적인 민우회의 활동이구요 저희는 경계를 넘어 더불어 살고자 하는데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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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생협을 통해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에 맞서는 대안경제시스템을 만드는 실험적 시도

로 지역조직 만들며 생활대안운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성민우회 생협 선언문을 다시 보니 생명존중의 삶을 실천하고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하여 협동

소비를 실천하고 여성인 나를 존중하고 자립을 추구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며 자매애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시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든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원들을 만나면 저희

는 늘 기꺼이 불편해지기라는 조직문화를 먼저 이야기하는데요. 첫 번째가 자기 컵을 갖고 다니

기고 자기가 개별적으로 씻는 것, 이런 일을 누군가 도맡아 하지 않기, 생협을 이용하고, 장바구

니, 면월경대, 젓가락집을 이용하자, 이런 걸 소모임에서 만들어보며 이야기 나누면서 생태를 보

호하기 위해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 일들을 발굴하고 확인합니다. 민우회의 올해 캐치프레이즈가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것인데 철도가 멈춰도 물류가 멈춰도 생태, 노동, 여성 모두 묶여 있으니

까. 연결되어 있으므로 불편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 이런 의제로 연대활동을 하고 있습

니다. 우리는 여성운동은 자기 안의 힘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신입회원

분이 쓰신 말을 읽어드리고 싶은데요.

『사람들은 각자의 동기를 가지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왠지 든든

하게 느껴졌다. 엉망인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생각인

사람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최근 그 느꼈던 어떤 믿음보다 단단하게 느껴졌다. 모든 대안들이

이 집단 안에서만 공유된다면 결국 목표했던 사회 변화와는 멀어지겠지 싶은 걱정도 들었지만,

민우회 안의 소모임들과, 작은 기획단들로 이루어진 활동이 부담 없도록 구성된 것이 나름의 고

심과 역사를 보여주는 듯해 안심했다. 민우회 책자 말미에 쓰여진 이 말은 두고두고 기억이 났

는데,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는 없도록 할 수는 있다.' 절망과 분

노에 잠식당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다면, 공동체의 합의를 더욱 성숙한 것으로 만

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혹은 세상은 좋아지기는 어려워

도 점점 더 나빠지기는 쉬운 듯하다. 필사적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없다면, 매

번 옳은 방향이 뭔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발전이 있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그 노력하는

사람의 일부가 되길 바라면서, 작은 첫 발을 내딛어 본다.

지정토론┃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좀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

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세 가지인데 욕망이라는 부분을 생태감수성에 입각해 확장시

킬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을 쥐고 있는 권위와 권력을 어떻게 일반 시민, 민중들의

자발적인 품으로 내려놓을 것인가, 환경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운동의 중심성을 없애고 일상의

영역에서 확장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제 이야기는 일부분이고 누군가가

이미 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학적인 표현도 많은데 그건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쓰는 표현일수도 있습니다.

최종덕 선생님이 말씀하신 공동체와 실천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한 것에 동의합니다.

알도 레오폴드가 모래군의 열두달을 쓰면서 마지막에 토지윤리에 관해 썼는데 거의 백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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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9

쓴 글입니다. 그 글을 조금만 인용해보면 “바람직한 토지 이용을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

지 말라. 낱낱의 물음을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 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하라. 생명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

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러지 않다면 그르다”라는 부분입니다. 백년이 지났지만 그 모

습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개별적인 혹은 경제적인 선에 입각해 세상이 돌아갑니다. 두 번째는

자연생태계의 차이나는 반복에 대해 조금 말할까 합니다. 봄날 즈음 섬진강엔 황어나 은어가 산

란을 위해 거슬러 올라오고 그때 벛꽃이 흐드러지고 제첩이 납니다. 섬진강은 늘 같지만 새로운

강물이 흘러갑니다. 올해 올라왔던 은어가 내년에 오는 그 은어와 같지 않지만 하지만 은어가

올라온다는 현상은 반복됩니다. 똑같은 풍경이지만 실제 움직이는 개체는 다 다르며, 작년과 다

르고 서로 다 다릅니다. 녹색운동을 하면서 생태감수성을 갖고서 그런 걸 끊임없이 찾아낼 필요

가 있다는 겁니다. 4대강 사업을 해서 규격화된 강을 보면서 기존의 어떤 차이나는 반복들이 없

어졌는지 우리가 생태감수성을 갖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부분들을 획일

화시키는 것이지요. 녹색운동 역시 산양, 두꺼비 같은 개체의 이야기를 한다 생각하지만, 두꺼비

를 통해서 두꺼비의 차이나는 반복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에 대

해 문제제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산다고 말하는데 그건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

과 권력의 입장, 신자유의적 입장에서 욕망을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욕망도 있습니다. 인

간 이외 모르는 인생에 대한 긍정과 인정, 그들의 흐름을 바라보는 욕망도 있습니다. 인간의 입

장에선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거기에 맞서는 인간의 생명공동체를 향한 욕망도 있습

니다. 이 두 가지 욕망으로 실제 일상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있습니다.

자연을 통한 미적경험을 말하고 싶은데 실제 세상, 현실에서는 슬픈 일, 아픔이 많습니다.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프리카 오카방고 습지 건기에 말라붙은 거대한 삼각주에 장어 같은 것들이

숨이 깔딱깔딱하며 죽어가는데 그러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자 죽어가던 것들이, 아프리카 전

체가 살아나고 다음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경이로움, 생명의 흐름

을 우리는 봐야 하는데 그걸 볼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자연을 통한 미적경험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 그런 걸 계속 말하는 것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으론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인데 실제 녹색시민성을 이야기할 때 이게 가능한가, 특히 전반

적인 시민들이 공동으로 어느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는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일상의

변화에 혹은 생명 감수성을 가진 욕망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속에 공동육아 만

들어보자, 유기농아이스크림가게 만들어보자 하는 그런 꿈틀거림 같은 조그만 흐름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명들의 흐름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 환경운동가들

의 운명, 방향이 아닐까 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끊임없이 뭔가 생성되

고 발전하고 갈등생기고 사라지는 공동체적인 흐름 속에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녹색연합

이 20년 넘었지만 그대로 30년 40년 가는 게 아니라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질문하고 이 질문이

확장되기도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뒤집어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그러다 새롭게 일어나

기도 하는, 그래야 녹색연합의 존재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의 마지막 말은 우리는 다

른 욕망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생명에 대해 인정하는 것, 생명공동체에

변화를 만들려는 움직임, 그것이 혁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합니

다. 환경운동 현장에서 우리는 매일 지는데 한번 이겨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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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변화를 일상의 영역으로 내리면, 그래도 이야기되지 못

했던 산양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설악산 바람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대한 여러 사람의 느낌을

공유하는 그 과정이 실패가 아니고 성공을 했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유토론┃

김은아

이은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녹색철학, 환경철학이라고 말하셨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

다. 그래야만 이 철학에서 할 수 있는 시민성 개념을 끌어낼 수 있다 봅니다. 녹색철학이라 한

다면 기존의 철학의 여러 요소 중 어떤 요소를 갖고 있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

다.

최종덕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나오는데 기자가 정치인에게 당신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그

철학은 넓은 의미의 철학입니다. 데카르트의 철학, 칸트의 철학이 아니라, 환경을 어떻게 좋게

하냐라는 물음에 어떤 이념적 토대를 갖는다면 그게 환경철학이라 생각합니다. 환경철학에 대한

정의를 딱 내리는 것은 저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니까요. 기존 철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배경을 다루는 것이 철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은정 그래도 조금 더 주목해서 볼 수 있는 범주나 패턴이 있지 않을까요?

최종덕 범주를 이야기하자면 자연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 우주에 대

한 이해를 어떻게 하는지 네 가지에 대해 말합니다. 자연보전을 잘 하자, 인간의 파괴적 공격성

에서 벗어나자, 사회구조를 민주화하자, 우주의 네트워크 연결망을 보자. 이 네가지를 설명하는

것이 환경철학의 범주입니다.

박영신 환경철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녹색시민, 녹색철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녹색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녹색과 환경이라는 말의 차이를 생각하는 것인데요, 최종덕

선생님은 그 차이를 염두하지는 않는건가요?

최종덕 녹색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녹색 자체는 굉장히 모호한 말이라 그 안에

생태, 환경, 자연, 생명을 다 포괄할 수 있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김민아 (회원) 생활밀착형으로 작은 실천을 전파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런 활동을 해오고 있습

니다. 그래서 철학적인 부분, 이론적인 것들에 대한 공부는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

여성환경연대에서 에코페미니즘에 관한 활동도 시작했는데, 여성과 생태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토론을 들어보

니 ‘욕망’에 관한 부분이 떠오른데 우리는 뭘 욕망해야 하는건가 생각하게 됩니다.

박영신 생명, 녹색을 이야기할 때 남성과 여성은 구분되지 않는데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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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11

여성을 따로 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김민아 페미니즘이 여성을 따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표현이 다를 뿐이지 생명, 녹색과 결국 결

국 같다고 생각합니다.

박영신 욕망이라는 말이 토론에서 나왔ㄴ는데 우리 말 속에서 욕망은 나쁜 표현으로 쓰입니다.

윤처장은 긍정적인 말로 ‘다른 욕망’이라고 쓰는데 그렇다면 기존에 쓰이는 욕망과 다른 욕망을

위해 다른 표현을 써야 것 아닙니까?

정미경 지난 해에 욕망해도 괜찮아 라는 책이 나왔는데 탐욕이 아닌 다양한 욕망, 공익적인 부

분도 있을 텐데 그걸 감추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욕망해선 안되는 것으로 가두는 것에 대한 문

제의식으로 욕망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라 생각합니다.

박영신 그럼, 욕망이라는 말은 개념이 미분화된 겁니까? 욕망이 여러 가지 있다고 말하고 다른

욕망이 있다고도 말하는데요, 그럼 욕망이라는 말 이외에 욕망이 주는 애매함과 오해가 있기 때

문에 우리가 다른 말을 만들거나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를테면 바람 같은 단어로요. 욕

망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탐욕 같은 의미가 있는데요. 그래서 그걸 그대로 쓰는 게 거북하니까

‘다른 욕망’이라고 쓰는데요.

정명희 저는 그 말을 사용하는 철학자들의 의도가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하려는

이동, 그 말이 갖는 이중성을 생가하게 하려는 의도 같은 거요. 바람 이러면 너무 좋은 말인데,

욕망을 부정적으로 쓰든 긍정적으로 쓰든 그 욕망할 때의 마음 상태, 간절함 같은 마음 상태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 욕망하는 마음 상태에 대한 강조를 위해서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쓰

고 좀 불편하게 해서 이중성에 대한 생각을 해 볼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의 바람은 다른 용어는 없을까 하는 쪽입니다.

황인철 욕망이 긍정이라는 말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내 안의, 또는 사회의 수많은

바람, 욕망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실제는 여러 가지 바람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사회

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중요한 거죠. 이명박은 강에 뭘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고 우리는 강을

지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데 그게 부딪힐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가치 판단해야 하는지

가 더 크고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욕망을 긍정하다는 말은 욕망을 억압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싶습니다.

조철민 양명학 계통으로 신채호, 이회영 선생을 설명하는 게 신선했습니다. 보통 무정부주의자로

이야기하는데요 생각해보면 무정부주의는 수입된 이론이고 양명학은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이론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상의 자원들이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 쓰다보면 참고문헌으로 외국 이론을 갖다 쓰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게

심사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자꾸만 자원을 멀리서 찾으려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며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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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민성을 풀어나갈 때 이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욕망에 관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는 언어가 중요하다는 이야길 계속 해 왔는데요. 저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그냥 쓰

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68혁명의 구호에 모든 권력에 상상력을도 있고 에로스의 해방이 있었습

니다. 원초적인 갈구나 에너지 같은 게 욕망인데 욕망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입

니다. 굉장히 큰 갈구와 하고 싶은 에너지가 있는 단어인 것이죠. 자유라는 말이 시장자유주의

자에 의해 훼손되어 안 쓸려고 하는데 사실 자유는 우리가 점유하고 바로잡아야 할 가치인데

그걸 안쓰고 우회하면 욕망도 비슷한 거라 생각합니다

박영신 욕망이 주는 짐. 개념 상의, 갈구 이러면 선과 악을 구분짓기 어렵지만, 욕망 이러면 뭔

가 짐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조철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더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욕망을 이야기하면 좋은 게 녹색시민성이

멀리 있지만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자주 만나는데 대부분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법을 배우는 적이 없습니다

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하지만 출발은 자기와 자신의 욕망에서부터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발현

하는 문제에 민주, 관계, 공화의 원리가 필요한 것이지요. 욕망이라는 용어가 권력적으로 작동하

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성적욕망입니다. 그 이야길 꺼내는 순간 사람들이 헛기침하는데 실레

는 여전히 룸살롱이 성업하는 나라입니다. 욕망 그 자체가 억압되어선 안되지만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는 배움과 훈련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욕구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니

드, 베이직 니드는 인간으로 살아야 할 기본이지만 타인에 대한 욕구를 침해하면서 욕망을 말해

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확장하면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로 끌고 갈 수 있는 주제라 생각됩니다.

윤상훈 제 이야긴 아니라 유명한 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안에 있는 것들이 당연히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속에 있는 이성 영역 같은 단단한 무엇이 계속 눌러 감성적이

고 신체적인 것을 이야기를 못 하게 했다면, 그게 나와야 합니다. 생활에서, 몸을 통해서, 오감

을 통해서 나와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욕망

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에서 우리의 다양한 욕망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생

명, 생태적인 관점에선 욕망이라는 직관적, 감각적, 신체적 단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민아 제가 모인 기획단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개념을 정리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요,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부장적 환경에서 여성으로서 내 몸을 긍정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여성운동이나 환경운동을 하면서 부딪혔던 사회갈등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찾아보 보

자라는 취지입니다. 제가 무엇을 욕망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진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어떤 욕

망을 건들어야 생태감수성이 풍부한 특정 계층이 아닌 넓은 사람들에게 녹색가치대로 살아갈 것

을 요구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윤기돈 녹색철학을 우리 사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요 특정 종교를 도입하지 않고

이야기 한다면요, 더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예를 들어 원효를 종교인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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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13

라 뛰어난 사상가로도 볼 수 있겠따 싶습니다. 원효의 화쟁사상이 현재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역사에선 뛰어난 사상가가 많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그런 연구

가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또 한편으론 사상가는 없지만, 한반도의 사람이 갖고

있는 역사와 삶에서 나타난 녹색철학의 맹아가 있었겠다 싶습니다. 어떤 사상가가 사상으로 만

들어내진 않았지만 삶 속에서 내려온 것들,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모습들, 그것들을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지도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민의 삶, 민중, 민초의 삶이 중요하다면 그들의

삶속의 것들을 끄집어 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궁금한 건, 제가 딸아

이와 이야기할 때 너의 욕망이 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가 바라는 게 뭐냐, 원하는게 뭐냐고

말합니다. 왜 어떤 시기에 언어를 뭔가를 그럴듯하게 만드는가, 그러면서 뭔가를 채우려고 하는

가의 부분입니다. 실상 철학이 한 개인이 존재하는 바탕이 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언어를 불러들임으로서 격차가 생기는 부분이 분명 있

다고 봅니다. 자발성, 외적 요인이 아니라 내적요인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욕망을 충분히 이해하

지만 그 단어가 주는 격차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고민입니다. ㅇ

박영신 지식인이 말을 어렵게 하고 직역도 하지만 우리는 어린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낱말로

못 가르치나 생각합니다. 7-80년대에 운동권에서 자본주의 이행 이런 말을 쓰는데 이 말이 독

일에서 왔는데 독일어에서는 그냥 ‘넘어감’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행이라고 외색으

로 표현하면서 말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역사 속에 위대한 사상가 뿐만 아니라 우리 만의 뭔가

가 있을 텐데 그것이 다 남지 않았습니다. 한문으로 써놓은 것 말고도 우리 말로 이야기되었던

뭔가가 있을텐데 말이죠. 우리의 실제 삶에서 뭔가를 살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것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수연 최종덕 선생님께서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양명학에선 스스로 갖추어진

무엇이 내부에 있다는 전제가 있는데요, 그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녹색운동의 방향도 바뀐다 싶

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혁신적인 운동이라는 것은 현재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인데 만

약에 이미 존재 내부에 잘 갖추어진 뭔가가 있고, 그게 계기를 통해 발현될 수 있다면 녹색운동

은 계기를 많이 만드는 활동을 해야 한다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론 생태운동이 구체적이고

주변적인 마술정치와 자본권력에 눈 감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그렇다면 진짜 생태운동이나 녹

색운동은 현재의 시스템, 의료, 교육, 주거 등의 것에 대해 더욱 반기를 드는 래디컬한 운동, 거

대담론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명희 최종덕 선생님께서 씨앗을 많이 말씀하셨는데요. 씨앗이 올라와 싹을 틔울 때 이파리가

하나씩 하나씩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파리가 웅크려져 있다가 쫙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아이들에 관한 좋은 책들에선 다들 아이를 모든 것을 갖춘 씨앗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서 바람도 잘 통하게 하고 물도 줄 때 좋아야 하는데, 빛이 좋다고 무조건 빛에 내놔도 안되고

물을 함부로 줘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걸 사회로 확장시켜 보면 외부 조건들을 제대로 만들어

야 하는 게 운동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할 때 어떨 땐 내가 너무 근본생

태론 같아, 영성 이런 것에 생각이 꽂혀, 할 때도 있지만 실제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는 레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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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비판한 그 토지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미치지 않는 굉장히 천박한 논리로 토지를 바라보며

생긴 문제들입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자연이냐, 사람이냐 하는 수준도 아닌 인간의 문제, 돈

의 문제로만 봐도 뻔한 답이 나오는 수준의 문제에 부딪혀야 하니까 우리가 아무리 영적, 근본

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다가도 우리가 부딪히는 수준이 천박하다보니 자꾸 그 모순에 빠집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떤 태도로 중심을 잡아야 할까 싶습니다.

배보람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이 대체 뭔가, 그 운동을 녹색연합이 풀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욕망도 좋고 그런 표현도 좋은데, 이런 이야기가 그냥 다 좋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간에 유정길 선생님이 공동체를 이야기했는데, 어떤 분이 그걸 고민하는 시민이라면 잘

성장한 시민인데, 윤상훈 처장이 말하는 욕망도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박정운 최근 독일과 네델란드에 사례지 답사를 다녀왔는데요, 저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결

정을 했을까?를 담고 있었습니다. 깊이 고민은 못 했지만 네델란드 사례를 보면 델타 간척지에

서 하구둑 개방이 된 것에 대해 설명 들었습니다. 하구둑 만들고 간척지 만들었지만 결국 해수

유통 하고 하구둑을 텄는데요 논의과정에서 이들의 습성은 모든 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을 하고 논

의를 하고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의사결정단위의 사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경

리를 보는 사람까지 다 의견을 내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수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정하

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결정,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 결론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사

적 배경이 그런 과정을 만들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과 그 나라의 배경과 기

반이 다르다보니, 동행했던 사람은 한국은 정치적이고 가치 중심적인 판단으로 그 결정을 주로

한다면 네델란드는 합리적인 과정으로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종반 얼마전에 하나뿐인 지구에서 박그림 선생님이 나온 설악산 케이블카 봤습니다. 4대강 개

발사업이나 가리왕산, 케이블카 등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늘 뒷북치는 운동이라고 이야기 합

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는데 그 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결정적으로 우리만의 외침

이다, 자조적인, 우리 만의 공허한 외침 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유현상 : 욕망과 비슷한 말 중에 쾌락이 있습니다. 조 선생님 말씀처럼 쾌락 역시 가치중립적인

말인데, 우리말 즐거움이라 하면 괜찮은데 쾌락이라 하면 이상합니다. 욕망은 일상어로 안 쓰는

말입니다. 거의 안 쓰는 말이죠. 하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있어? 이렇게 말하지요. 저

는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욕망이라는 말을 훨씬 많이 쓰게 되는데,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자어도

개념어라서 쓰게 되는데요. 욕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것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철민 : 욕망아줌마, 욕망아이돌이라는 표현.. 대중적인 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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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녹색철학 15

박영신 : 그 말이 어디에서 왔느냐의 것이지요. 오천년 동안 우리 민중의 말 속에서 나온 것이

냐, 아니면 서양의 이론 속에서, 중화주의들의 말 속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인가, 이런 걸 고민해

보는 것이지요.

윤기돈 유종반 선생님께서 우리만의 공허한 외침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저는 그렇

지 않다 생각하는데요. 권력이 있든 없든 다수이든 소수이든 상관없이 내가 갖고 있는 이야기가

옳은가, 진리인가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권력관계에서 선배니까 존경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똑

같은 사람이라도 존경할 만하니 존경하듯이요. 소수의 공허한 외침이 그게 광야의 선각자의 외

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인식의 전환일텐데, 이걸 철학이 어떻게 뒷받침 해줄 것인가 생각

합니다. 분명히 어떤 현상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하나씩 풀어가

면 순차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데, 어느 층이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거나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일방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 속에서 세력과 세력에선 평등해지지만 그 사이와 사이엔 공백이 생

기고 그 공백 때문에 피해받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런 과정은 우리가 좀더 물고 늘어지면서

풀어가야 할 게 아닌 가 생각합니다.

박영신 결말 내지 말고 계속 고민해 봅시다

이승훈 욕망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저는 들으면서 욕망이라는 말을 쓴 맥락을 보면 이성이나

의지에 대한 비판하는 입장에서 감정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오는 측면,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것이라 봅니다. 발표를 보며 제가 다음 포럼에서 이야기 할 것도 순전히 서양학자들을 인

용하면서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면서 왜 나는 한국사람인데 한국사상, 동양사상이 더 낯설까 입

니다. 왜 칸트나 헤겔이 노자와 장자보다 더 가까울까? 일종의 비애일 수도 있고 내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하게 되는데요. 그렇다고 칸트와 헤겔을 독일 사람보다 더 아는가? 그렇지 않습니

다. 제가 요즘 프리머티즘을 요즘 공부하는데 미국학자들보다 잘 이해하는가, 천상 그들의 뒤

만 쫓아가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나에게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있나 싶습니다. 전통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지금 사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행동, 내 판단 내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생명사상을 우리 전통에서 끄집어내려는 것도 중요하

고 의미있다 생각하는데 그것이 현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흔적이 있나, 남아있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을 바라보고 녹색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나,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

다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잘 안 잡힌다는 생각을 했습니

다.

최종덕 환경단체에서 하는 일을 보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뒷북치는 일이 대부분입니

다. 진작에, 빨리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늦었네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자조적

이라는 표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공허하고, 대안이 뭐냐 하는 물음에 확실히 답하기 어렵고.

저는 오히려 환경운동이 바로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생각 합니다 우선 첫 번째, 당장 대안 내

놔봐 하는 신화에 빠지면 안된다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고민하는 마술정치의 일환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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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뒷북치는 것과 자조적이다는 것을 살짝 돌려 말하면 그게 바로 저항입니다. 저항과 부정이

하는 일인데, 그걸 하다보면 대안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지 대안 당장 내놔봐 하는 것은 인

공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면서도 확실한 답변은 아닙니다. 이명박이 녹조현상 생

기는 게 한강이 깨끗해지는 증거다라는 말을 했을 때 우리는 어이가 없지만 실제로 그 말을 믿

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40퍼센트가 있습니다. 그런 노하우가 있으니 그런 뻔뻔함이 과감하게

나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좀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지식이 아니라 깨어난다는 것인

데 우리는 믿음을 갖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아까 정명희 선생이 이야기한 영성생태주의에 관한

것도 믿음에 관한 것인데 그런 믿음체계로서는 대중들과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종교인이라면 신

을 믿어야 하지만, 신은 어떤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다. 신은 모든 지식을 갖고 있지, 믿음을 갖

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식은 제한되어 있고, 믿음만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녹색시민

의 기본 틀은 그런 믿음의 틀에서 벗어나고 깨어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굉징히 큽니다. 저도 애들에게,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녹색운동하면서도 계속 인정받고 싶은데, 물론 표면적인 인정

욕구는 아니지만, 현실은 어떤 누구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녹색시민의 굉장히

중요한 점은 인정받고 싶은 걸 외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끝까지 외로울 것입니다. 어떤 누구

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을 겁니다. 그런 외로움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많은 문제가 풀릴

거라 생각합니다.

유종반 제가 말씀드린 것은, 대안이 뭐냐 이런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계속 파괴되고 개발되는데, 그렇게 그냥 열심히만 하면 그냥 우리는 할

만큼 했어 하면 자위적인 운동으로 되어가는 상황이 되지 않냐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냐는 거죠.

유현상 다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예방효과는 있겠지요.

최진협 녹색철학이 여성운동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 듣고 싶다 했는데 저 역시 바라보고 싶

은 건 녹색에서 여성주의가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를 보고 싶었습니다. 시민을 규정하는 것이

여러 가치가 있는데 사실 시민운동에 여성주의가 스며있지 않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런 의미

에서 오늘 이런 만남 자리가 의미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