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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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약커뮤니티 가치실현, 남도진 WWW.NAMDOzine.com 2011년 책 읽는 큰 아씨들의 모임,글물 독서회 나침반이 첫번째로 가르킨 곳, 청산도 해남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들 옥(玉)을 꿈꾸는 돈키호테,장주원 아름답게 살아남다 꽃등을 만나면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남도기획] [남도인] [동호인]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제 1회 상동 뜨락 음악회 목포사랑청년회, 프리마켓 나눔 속에 깃든 목포 청년들의 따뜻한 외침! 커피하우스 커피와 퀼트가 만나 동화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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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커뮤니티 가치 실현, 남도 대표매거진 남도진 9월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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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남도진 9월호

9지약커뮤니티 가치실현, 남도진WWW.NAMDOzine.com

2011년

책 읽는 큰 아씨들의 모임,글물 독서회

나침반이 첫번째로 가르킨 곳, 청산도‘해남’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들

옥(玉)을 꿈꾸는 돈키호테,장주원아름답게 살아남다

꽃등을 만나면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남도기획]

[남도인]

[동호인]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제 1회 상동 뜨락 음악회

목포사랑청년회, 프리마켓나눔 속에 깃든 목포 청년들의 따뜻한 외침!

커피하우스 커피와 퀼트가 만나동화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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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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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우스커피와 퀼트가 만나 동화가 시작되다

무거워진 마음을 슬며시 내려놓고 커피 향에 가볍게

설렐 수 있는 곳. 알록달록한 별사탕 느낌의 퀼트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그곳.

꽃등을 만나면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도서관의 두터운 적막을 뚫고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그녀들.

옥(玉)을 꿈꾸는 돈키호테 - 장주원 아름답게 살아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대신 가장 보배로운 옥(玉)들을 찾아나선

돈키호테이다.

마음의 뜨락에 무지개가 떠오르다

추석을 며칠 앞둔 가을날. 목포 도심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책 읽는 큰 아씨들의 모임 ‘글물’ 독서회

종이에서 배어나오는 잉크 냄새를 따라 목포 공공도서관을 방문했다. 책들의 숲에서

조용히 가을을 환영하고 싶어서였다.

남도는 여행자를 위한 나침반이다나침반이 첫번째로 가르킨 곳 - 청산도

청산도에 가면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마음이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되찾아간다.

남도는 여행자를 위한 나침반이다해남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들

샛노란 모노레일이 끝에서 시작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실어나르고, 메마른 흙이

푸른 물결을 만나 희망을 잉태한다.

나눔 속에 깃든 목포 청년들의 따뜻한 외침!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공간에 젊은이들의 열정이 알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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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호

[제 1권 제 2호, 통권 2호]

발 행 : 이길찬

편 집 : 한주연

기 획 : 이길찬

에디터 : 박혜미

동영상 : 이길찬 등록번호 : 전남 아 000149

ISSN 등록번호 : ISSN 2234 -1234

발행처 : (주)크레펀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 1970번지 (재)전남문화산업 진흥원 내 F-103

FAX : 061) 283 - 1254

E-Mail : [email protected] www, NAMDOzine.com

‘남도진’에 실린 사진과 글을 허락없이 옮겨 쓸 수 없습니다.

"남도진" 로고는 그래픽 아티스트 정지범님의 작품으로 남도의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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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닮은 그녀들 붉은 문을 밀치고 실내로 들어서자 두 여인이 “어서 오세요, 커피하우스입니다!”를 외친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크리스마스에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 숨어 있다. 바쁜 일상에 얼어붙은 마음을 이내 녹여주는 따뜻함. 성큼 다가온 가을맞이로 분주한 은혜 씨와 진희 씨. 그녀들은 향기로운 커피와 정성스런 퀼트로 새로운 친구들을 부르고 있었다. 박은혜 대표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얼마 전 목포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었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에 머문 터라 대화 나눌 벗이 많지 않았다. 그녀는 고민 끝에 문화센터 퀼트 강좌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퀼트를 가르치던 고진희 씨를 만났다. 진희 씨의 남다른 퀼트 솜씨에 반한 은혜 씨는 구시가지에 있는 진희 씨네 퀼트 공방을 오가며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이후 은혜 씨는 카페를 오픈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진희 씨에게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서울 등지에서는 이미 대중화 된 퀼트를 커피와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면 다른 카페와는 차별화된 문화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편, 퀼트공예 10년 차인 진희 씨는 단순한 취미생활로 퀼트를 시작했다. 가벼운 시작치고는 그녀와 퀼트의 인연이 깊고 끈끈하다. 은혜 씨를 ‘고향 동생’이라고 귀엽게 소개하는 진희 씨는 퀼트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

에 주목한다. 특히 기혼 여성들이 출산 후 쉽게 찾아오는 고립감을 던져버리고타인과 함께 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퀼트’라며 두눈을 빛낸다. 여전히 한여름의 무더위가 식을 줄 모르는 9월. 은혜 씨와 진희 씨는 두근거리는 시작을 맞으며 ‘커피하우스’의 매력적인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시고 ‘퀼팅’하고 행복하라! 퀼트(Quilt)의 어원인 라틴어 Culcita는 ‘깃털이나 양모 등을 채워 넣은 주머니’란 뜻을 지닌다. 과거 퀼트가 가장 유행했던 곳은 미국이다. 1602년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건너오면서 퀼트도 함께 전해졌다. 청교도들은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불모지인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국에서 가져온 의복과 퀼트가 쉽게 낡았다. 그들은 새로운 천을 구

커피와 퀼트가 만나 동화가 시작되다!

커피하우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대신 인형의 집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작은 공간. 아파트 숲을 바라보는 곳에 ‘커피하우스’가 이제 막 펼친 동화책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은빛으로 빛나는 로스터기가 해리포터가 타고 간 호그와트행 마법기차처럼 사람들을 특별한 시간으로 안내한다. 여기저기 퀼트로 꾸며진 앙증맞은 액자와 컨트리 인형들. 아담한 높이로 짜여 진 탁자와 의자는 어른들을 천진난만한 아이들로 되돌리는 타임머신이다. 무거워진 마음을 슬며시 내려놓고 커피 향에 가볍게 설렐 수 있는 곳. 알록달록한 별사탕 느낌의 퀼트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그곳, 바로 ‘커피하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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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힘들었고, 옷의 사용 가능한 부분을 제외한 낡은 부 분 들을 모두 일 정 한 크 기 로

잘라 하나로 이어 붙였다. 커피하우스의 퀼트 선생님, 진희 씨는 퀼트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제목이 잘 생각나진 않지만 퀼트가 등장하는 영화였죠. 엄마가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을 위해 이불을 만드는데 그 이불이 퀼트에요.”진희 씨는 숨을 고르고 난 후 계속 말을 이었다. “퀼트란 엄마의 사랑 같은 거예요.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멀리 가는 아들에게 전하는 사랑이죠.”아직도 사람들에겐 퀼트라는 단어가 좀 낯설다. 들어보긴 했지만 정작 ‘퀼트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머뭇거리게 된다. 진희 씨의 말처럼 퀼트는 사랑과 인연이 깊다. 추위로부터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바느질에 매달리는 분주한 손길. 그것은 따뜻한 심장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 ‘퀼트=사랑’이라는 공식은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셈이다. 잠시 후 은혜 씨가 커피 주문을 받은 후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진희 씨와 눈빛교환을 하고나서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커피 전문점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커피 맛을 내기 위해 원두를 다양하게 섞죠. 저희 커피하우스에선 일반 블랜딩 커피뿐만 아니라, 핸드드립 커피도 판매해요. 커피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포용하기 위해서죠.”그녀는 야무진 목소리로 커피를 소개했다. ‘블랜딩 커피’란 한 종류의 원두를 다양한 온도로 볶아서 섞거나, 두 가지 이상의 원두를 함께 섞어 만든다. 반면, ‘핸드드립 커피’는 바리스타가 종이 필터에 물을 부어 직접 커피를 내린다. 따라서 바리스타의 정성과 손맛에 따라 커피의 풍미가 다양하다. 지혜 씨가 추천한 커피하우스의 핸드드립 커피는 케냐 AA와 브라질 산토스 NO.2가 대표적이다. 케냐 AA는 균형 잡힌 바다감과 풍부한 과일 향을 은미할 수 있으며, 브라질 산토스 NO.2는 맛이 부드럽고 신맛이 적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커피란다. 커피하우스에서는 현재 블랜딩,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동티모르 자연산 원두와 네팔산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가정에서 직접 커피를 즐기려는 매니아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그 중에서 도 동티모르 자연산 원두는 농장에서 재배된 커피콩이 아닌 순수하게 자연에서만 수확된 것이다. 수확량이 극히

소량이기 때문에 자연의 고유한 향을 은미할 수 있는 행운을 잡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커피하우스에 가면 누구나 그런 행운을 만날 수 있다. 행운이 일상 속에 오래도록 깃들면 이내 행복이 되지 않던가. 지혜 씨와 진희 씨는 커피하우스를 통해 그런 은은한 빛깔의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커피하우스’ 지혜 씨와 진희 씨는 커피하우스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성들이 함께 꿈꾸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맑은 날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흐린 날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함께 어울려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퀼트를 배워 나가길 희망한다. 커피 향이 흐르는 공간에 평화롭게 앉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생활소품을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는 기분. 커피하우스에선 함께이면서도 좀 더 특별한 나를 만날 수 있다. 커피하우스의 이 수줍은 개척자들은 요즘 조각난 마음들을 이어 붙여 행복한 드라마를 쓰기 위해 한창 분주하다. 커피는 이미 선보였지만, 퀼트 공방은 아직 준비 중이다. 오는 10월부터 매주 2~3회에 걸쳐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 가량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수강료는 작품 당 1만원이며 재료비는 별도이다. 유독 커피하우스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퀼트소품, 컨트리 인형뿐만 아니라 직접 디자인한 가구까지 판매하고 있다.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 ‘톨 페인팅’기술을 가르치고, 그녀들이 직접 톨 페인팅 한 소형가구를 고객의 맞춤 주문에 따라 판매한다. 만일 커피하우스에 들려 주위를 둘러보다 갖고 싶은 소품이 생긴다면 지혜 씨와 진희 씨에게 곧장 문의하길.

글, 사진 : 박혜미

※ 참고사항커피하우스 위치: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 1599커피ㆍ퀼트공예 문의: 061.282.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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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안에 웃음꽃이 만발하다. 그 웃음꽃은 문을 비집고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엄숙한 도서관의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조금 의아해지리라. 과연 어디서 이런 대범한 웃음들이 생겨날 난 것일까? 도서관의 두터운 적막을 뚫고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그녀들. 바로 동화 읽는 엄마들의 모임인 ‘꽃등’이다.

‘꽃등’은 ‘맨 처음’이란 뜻을 지닌 순 우리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에겐 꽃이 만발한 언덕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은 꽃등 회원들을 만나는 순간 꽃등의 ‘꽃’이 ‘웃음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착한’ 책 들을 찾아나선 당찬 그녀들 목포공공도서관 4층 독서문화교실 안에 들어서자 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꽃등 회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회원 수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녀들의 행복지수만큼은 빈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차지하고도 남았다. 꽃등 회원들은 아이들의 정서 개발과 연령별 수준에 맞는 양서를 골라내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이들의 감성과 지성을 모두 건강하게 살찌울 ‘착한’ 책들을 열심히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골라낸 책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보다 쉽고 재미있게, 교훈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한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즐겁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엄마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바로 ‘꽃등’을 이끄는 힘이

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서회 내내 그들은 함박웃음을 머금는다.

회원들은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은 모임을 만들고자 독서회 명칭을 ‘꽃등’으로 정했다. 꽃등은 올해로 탄생 두 번째 해를 맞았다. 지난 2009년 7월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지금껏 동화 구연과 그림책 읽기를 지속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목포시 지원으로 10주간 독서지도사 교육을 이수한 엄마들이 모여 어린이 독서지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공부 모임을 진행할 장소가 여의치 않았던 그들은 목포 공공도서관에 독서문화교실 사용을 요청했다. 그렇게 도서관 안에서 모임을 갖던 중 이

름 없는 이 모임을 공식적인 모임으로 탈바꿈시켜 결속력을 높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독서지도교사를 취득한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꽃등’이라는 이름의 독서회가 시작되었다. 현재 꽃등 회원은 아홉 명 가량이다. 한때 바자회를 통해 회원 모집에 나섰지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꽃등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꽃등 독서회 회원들은 모임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매주 한 번씩 만났다. 허나, 동화 구현과 그림책 읽기를 병행하고, 가정에서는 이제 막 자라나는 자녀들의 엄마 노릇까지 동시에 해내다 보니

시간상의 제약이 예상보다 컸다. 그래서 결국 주 1회 모임을 매월 넷째 주 월요일 오전 10~12시로 변경했다. 하지만 횟수에 관계없이 그녀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우리 아이들을 위한 착한 책들을 찾아나서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독서회를 이끌어가는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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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밝은 에너지가 독서회 내내 곳곳에서 흘러 넘쳤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꽃등 독서회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모임을 진행한다. 먼저 한 달에 한 번 갖는 독서회를 위해 회원들끼리 발표자 순서를 정한다. 발표자로 선정된 회원은 토론의 주제가 되는 동화책의 줄거리, 주제 등에 걸친 내용을 요약하고, 효과적인 독후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른 회원들과 공유한다. 발표자는 ‘엄마’가 되고, 발표자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은 ‘아이들’ 역할을 맡아 가상의 책 읽기와 묻고 답하기, 독후활동을 벌인다. 실전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어조를 연습하기 위해 동화 구연을 기본으로 한다. 가상의 엄마는 가상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후 갖가지 질문을 던진다.

꽃등 회원, 김종미 씨는 ‘백만 번 사는 고양이’(글쓴이: 사노 요코)라는 책을 다른 회원들에게

설명했다. 그녀는 주제 및 목표를 ‘고양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교훈과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의 첫 질문은 동화 구연조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표지그림을 가리키며 “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라고 물 었다. 그러자 아이들 역할을 맡은 다른 회원들이 “고양

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답변이 끝나자 김종미 씨가 또 물었다. “제목이 백만 번 산 고양이인데 정말 이 고양이는 백만 번을 살았을까요?” 만일 그녀가 준비해온 질문이 아이들에게 다소 어렵거나 흥미롭지 않다면 여겨지면 다른 회원

들은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견해차를 좁혀간다. 토론의 분위기는 여고 동창생들이 모인 것처럼 편안하다. 발표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가 되었을 때 가장 좋아했나요?”, “고양이에게 진정한 삶의 기쁨은 무엇이었나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등등. 발표자의 질문이 끝나면 이어 독후활동이 진행된다. ‘나

에게 가장 소중한 것 적어보기’.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쓰기’ 등과 같이 아이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제안한다.

김종미 씨에 이어 박미경 씨가 준비해 온 ‘내가 소개하는 책’은 ‘무지개 물고기’였다. 그녀는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유아 때부터 접했던 책이지만 나눔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녀 또한 다른 회원들을 상대로 가상 시나리오를 전개해 나갔다. “왜 무지개 물고기라고 불렀나요?”, “다른 물고기들은 어째서 무지개 물고기와 놀지 않았나요?”, “무지개 물고기는 자신의 비늘을 나눠주고 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등과 같이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거리들을 던진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해주고 난 다음의 독후활동으로, 친구에게 칭찬할 때마다 은빛비늘 스티커를 나눠주는 ‘물고기 꾸미기’를 제안했다. 이렇듯 동화책과 관련된 발표를 모두 마친 후에는 회원들이 서로의 감상을 주고받는다. 각자 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당시의 반응을 나누며 그림책의 이미지, 글씨크기, 줄거리, 표지 등 다양한 방향에서 동화책의 장단점을 언급한다. 아이들 수준에 적합한 책을 찾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로 되돌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녀들의 그림책 사용법은 바로 ‘사랑’ 꽃등 회원들은 한 달에 한번 정기모임을 갖는 동시에, 목포 공공도서관 어린이자료실 내에서 ‘이야기 숲’이라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6-7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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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색종이, 조형놀이와 같은 다양한 놀이를 통해 취약 아동의 정서발달을 돕고 있다. 꽃등의 도서관 봉사활동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꽃등 회원 3명이 최초로 어린이자료실에서 그림책 읽어주기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실천되고 있다. 독서문화교실에서 진행된 꽃등의 정기모임에 참석한 지 이삼 주가 지나, 다시 그녀들의 봉사활동 현장을 엿보고자 도서관을 찾은 오후. 꽃등의 회원 한 명이 테이블 중앙에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놀이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이야기 숲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도와 종이를 자르거나 붙이고, 색칠을 도왔다. 이야기 숲에 참여한 아동들은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린이 자료실 밖에서 대기 중인 엄마들을 대신해 꽃등 회원 각자가 일일 엄마 역할을 담당했다.“종 이공주 옷이 모두 타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자로 나선 꽃등 회원이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선 종이공주의 타버린 옷을 만들기 위해 ‘종이 옷 만들기’ 놀이를 시작했다. 엄마 없이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입학 전 아동들을 도와 종이 옷을 만드는 꽃등 회원들은 저마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회원들은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풀이나 가위를 빌려주고 받으며 나눔의 습관을 기르도록 유도했다. 그러면서 각자가 맡고 있는 아이들의 행동양상을 세심한 눈길로 살펴보았다.

이야기 숲 1부의 종이 옷 만들기 놀이에 이어 2부에서는 아이들의 ‘이 닦기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내용이 준비되었다. 이번 회 차에는 말 안 듣는 영수에게 요정이 나타나 작은 상자를 선물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사회자는 네모 낳게 접힌 상자를 들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흥겹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착한 일을 하면 이 상자 안에 있는 차가 커져요!” 바람직한 이 닦기 습관을 놀이와 접목해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지나간 듯 이야기 숲 봉사활동이 끝나자 꽃등 회원들은 아이들을 모두 엄마 손에 돌려보내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 개개인의 태도나 정서, 정서 발달수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다음 번에 연출할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서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 숲 시간을 피드백하는 꽃등 회원들에게서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현재 꽃등 회원들은 목포 공공도서관 안에서뿐만 아니라, 오는 10월부터 12월까지 ‘찾아가는 소외계층 독서프로그램’을 통해 외부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목포 관내의 특수학교 밑 장애인 기관을 찾아가 그림책 읽어주기와 독후활동을 지도하고, 책을 스캔 해 움직이는 그림책으로 만든 ‘빛그림’을 상영할 예정이다. 이번 봉사활동은 꽃등 독서회 회원 중에서 동화구연 자격증 3급 이상 자격을 갖춘 회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또한, 대상 학생들의 특수성을 감안해 두 명의 강사가 한 조를 이뤄 진행된다. 특수학교 봉사활동은 총 6회, 장애인기관 봉사활동은 총 3회에 걸쳐 실시된다. 꽃등 신효숙 회장은 “꽃등을 시작한 지 벌써 두 해를 맞았지만, 아직도 시작하는 출발선에 있다”며 주변의 관심을 당부했다. 목포 공공도서관의 한구석을 빛내던 꽃등이 이제 막 도서관 밖으로의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들이 앞으로 써내려 갈 ‘꽃등’의 새로운 이야기가 도서관 밖에서도 더욱 따뜻한 온기를 내뿜길 기대해 본다.

- 에디터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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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소설을 탐독한 나머지 돈키호테에게 광기가 생겼다고 여긴 사람들은 그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불태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주변의 세찬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코 기사(騎士)를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중세 기사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로시난테라는 앙상한 말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둘시네아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옥장, 장주원 선생.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대신 가장 보배로운 옥(玉)들을 찾아나선 돈키호테이다. 한때 그의 열정은 무모한 광기이자, 비현실적인 환상이라는 모진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계속된 비난도 그를 좌절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옥석에 감춰진 수많은 둘시네아를 찾아내 현실 속으로 이끌어냈다. 기약 없는 탄생만을 고대하며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이름 없는 빛들은 옥장의 손끝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감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수많은 이들의 심장 속에 고이 깃들었다. 옥에 대한 강한 집념을 지닌 채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길만을 걸어온 돈키호테. 장주원 옥장은 지금 이순간에도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남아 옥과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빛과 이끌림, 그리고 절정옥은 다이아몬드와는 다르다. 다이아몬드는 빛을 밖으로 뿜어내며 천연덕스럽게 세상에 제 존재를 알리지만 옥은 그렇지 않다. 옥은 빛을 안으로 머금은 채 은은히 빛난다. 한마디로 빛을 온전히 제 안으로 받아들여 유순하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하지만 한 인간이 옥석에 감춰진 빛을 발견하고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장주원 옥장이 옥에 관심을 둔 이십 대 무렵만 해도 배울 곳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동굴 같은 공방에 들어앉아 밤낮 연구하고 옥을 연마했다. 새로운 기술을 터득할 때는 아예 문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작업대에서 5-10분, 하루에 겨우 한 두 시간 눈을 붙였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오해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치지 않았고,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졸음을 물리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한끼만 먹는 굶주린 나날들도 기꺼이 보냈다. 옥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지독했다. 그리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맹렬했다. 과연 그는 언제부터 이렇듯 옥에 매달리기 시작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자 장 옥장은 옛 기억을 천천히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친 곁에서 금은세공 기술을 배웠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는 서울로 상경해 종로4가에 있는 ‘광창왕’이라는 금은세공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부친으로부터 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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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세공기술을 토대로 참신한 기술들을 더 배우고 익혔다. 스물일곱 살로 접어든 1964년에는 종로2가에 위치한 보석 전문공예사 ‘보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일터는 보석가공보다 옥공예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 환경은 내가 보석세공보다 옥공예에 관심을 둘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실마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옥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옥공예 기술이 한창 무르익은 시절에 비로소 시작된다. 자주 영감을 얻기 위해 대만의 고궁박물관을 방문했고, 어느 날 운명처럼 박물관 내에 전시된 옥 사슬목걸이를 발견했다. 옥 사슬목걸이가 옥공예 종주국인 중국에서만 만들어 장주원-0732060.jpg 낼 수 있다는 현지 관리인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 그것이 바로 옥의 심층을 향해가는 첫 번째 도전정신을 각성시켰고, 그로부터 8년 후 중국의 옥 사슬목걸이를 능가한 이중체인 옥 사슬목걸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후 끊임없는 실패로 점철되었던 ‘원형 관통주전자’를 30년 만에 마침내 완성해냈다. 나의 신조는 내가 가진 능력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발휘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겨우 1할이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9할을 모두 가진 듯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하는 자세. 원형 관통주전자를 완성하기까지 걸린 30년이란 시간은 ‘장주원’이라는 그릇이 준비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겪은 실패와 좌절만큼 기도와 염원이 자라나 나의 지경이 넓어졌고, 결국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내게 ‘절정’이란 어느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오늘이라는 매 순간에 완성된다. 균열이 선물한 가능성과 행복에 대해 장주원 선생과의 인터뷰를 시작하기 며칠 전. 그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돌을 연주하는 사람(이해선 저)’을 미리 읽어보았다. 비록 소설이 픽션의 범주에 속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100호인 장주원 옥장의 삶을 일부 투영해 놓은 만큼 장인의 내면세계를 조금 더 면밀히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문외한이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라고 여기며 소설을 탐독했다. 그런데 소설은 하필이면 옥의 ‘균열’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균열은 곧 흔들림과 실패를 낳는다는 낡은 고정관념이 소설읽기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주원 선생 댁을 찾은 후 ‘균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균열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뷰는 그가 갓바위 작업실 이외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기기묘묘한 수석들이 빼곡히 늘어선 산정동 자택에서 진행됐다. 그의 이야기는 ‘균열’에서부터 시작돼,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물방울 기법’을 통한 행복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릇된 것을 옳게 만드는 일에서 큰 희열을 맛본다. 모든 광석들은 균열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균열만을 ‘어긋남’으로 본다.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해 균열은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 보통 인간의 눈이 확인할 수 있는 균열은 사물의 16배 정도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큰 균열’에 속한다. 광석을 확대하면 할수록 균열은 일부로만 그치는 않는다. 전체 영역으로 확장되고, 마지막에는 결국 광석 그 자체가 된다. 다시 말해 ‘결’에 해당하는 수많은 미세 균열들이 광석 속에 숨어있는 셈

이다. 특히 옥은 한두 방향의 균열이 아닌 종잡을 수 없는 패턴을 갖는다. 일명 ‘스펀지’와 같은 균열을 지닌다. 규칙성 없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균열의 복잡한 구조는 옥 덩어리를 육안으로 면밀히 선별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균열과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둔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옥의 특성이 마음에 든다. 반듯한 나무는 누구나 다듬을 수 있지만, 비틀어진 나무를 가지고 공예품을 만들면 더 특별한 예술작품이 탄생하지 않던 가. 흠을 장점으로 활용하면 흠이 없었던 작품보다 더 훌륭한 예술품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한계를 두지 않고 인간의 열정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옥이다. 그런 면에서 옥의 균열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고, 권태라는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내 열정을 굳건히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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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기법,내 인생을 소재로 한, 소설 ‘돌을 연주하는 사람’에서는 ‘물방울 기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물방울 기법은 문명의 이기를 담은 현대식 공구 대신 도차(陶車)와 같은 재래식 공구를 이용한 옥 연마과정을 일컫는다. 즉, 물방울 기법은 옥을 다듬기 위한 지난한 세월과 인내를 상징한다. 나는 이제껏 먹는 일, 자는 일을 뒷전으로 하고 옥의 세계에 깊게 몰입해왔다. 젊었을 적 일이라 헛웃음이 나오지만 옥에 대한 몰입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내가 정신이상자라는 오해를 불러왔다. 그래서 몇 달씩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적도 있었다. 옥공예는 결코 한 두 시간, 하루 이틀 만에 뚝딱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다른 분야보다도 인내와 끈기가 더 필요하다. 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을 ‘물방울 기법’이라는 말을 빌어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내게 옥공예는 행복과 즐거움을 선물해주는 일에 더 가깝다. 의식주를 해결한 정신세계의 즐거움을 옛 사람들은 ‘응마주색난석(鷹馬酒色蘭石)’이라고 불렀다. 매를 사냥하고, 말을 타고, 술과 사랑을 즐기며, 난초를 가꾸고, 마지막에는 돌을 매만지는 것. 여기서 엿볼 수 있듯 돌을 매만지는 일은 깊은 정신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즐거움이다. 내가 오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옥을 깎아오면서 그 일의 느린 속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드물다. 물론 작업 도중에 균열을 발견하거나 의도한 대로 옥을 연마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면,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울적해지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연마의 과정은 나로 하여금 권태에 빠질 겨를을 주지 않았다. 실패에 직면할 때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나는 좋은 원석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긴다. 좋은 원석이 발견된 곳, 중국이나 러시아 행 비행기에 올라서도 좀처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 작품으로 탄생시킬,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러 가는 길. 그 과정이 아무리 험난해도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 실패 역시 옥으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만나는 과정의 일부이기에 잠시 찾아온 스트레스를 금방 해소시키고, “다음, 다음!”을 외친다.

내 방 머리맡에는 항상 옥 원석들이 그득하다. 방안에 들여놓지 못할 만큼 큰 원석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방안 곳곳에 놓아둔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옥 원석을 향해 아침인사를 건넨다. 잠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1개월, 6개월, 1년. 원석이 감추고 있는 어떤 형상이 작품구상으로 연결될 때까지 진득하게, 천천히, 아직 이름 없는 돌들을 두 눈으로 매만진다. 그래서 원석들 중에는 작품 구상기간만 6-7년이 걸린 것도 존재한다. 나는 이처럼 옥 원석들과 하루 종일 벗하며 원석 각각이 가진 최대공약수를 찾는데 몰두

한다. 그래서 결국 최대의 가치와 가능성을 찾아낸다. 이런 작업들은 내게 오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옥공예, 문화영토를 넓히는 많은 길 중에 하나!국토와 영토의 의미는 다르다. 국토는 제한된 국경이 있지만, 영토는 국경이라는 한계가 없다. 그래서 영토는 세계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문화는 한 나라의 지식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자 척도이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옥공예는 국가의 원동력이 되는 문화 줄기의 하나이다. 비단 옥공예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의 맥을 지키는 일은 곧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영토를 넓히는 시작이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르렀다. 1977년 서울에서 고향 목포로 내려와 정착한 것은 기왕이면 내 고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목포는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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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편이다. 심지어 일부이기는 하지만 배척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스페인의 빌바오에 지어진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해가는 공업도시를 문화예술이 움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목포는 스페인의 빌바오와 비슷한 항구도시이다. 왜 우리는 안 되는가? 우리도 할 수 있다. 오히려 더 잘 해낼 수 있다. 목포는 ‘예향’이라는 그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듯 문화예술적 근간이 유구하다. 빌바오에 하나 뒤질 것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11번째 자원빈국이지만 문화예술 자원은 오히려 무궁무진하다. 즉, 문화영토를 넓힐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해외에서 불고 있는 K팝의 열풍은 긍정적이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예술이 아니기에 그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K팝의 선양이 세계를 향한 가능성을 제시해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렬한 우리 고유의 색깔이 필요하다. 따라서 카피문화에서 탈피해야 함은 물론이다. 심장박동 수를 형상화한 휘모리장단과 같이 우리만의 원초적인 것 위에 새로운 시각을 덧입혀야 한다.

현재 내게는 20-30년 된 후학들이 있다. 하지만 문하생 수는 전반적으로 적은 편이다. 옥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지나봐야 개인의 옥 만지는 재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옥에 관심이 있어 문하생으로 들어온 사람도 겨우 1-2년을 못 버티고 그만둔다. 정부차원의 지원이 부족해 생활고를 겪기 때문이다. 한 때 내가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옥공예 문하생들은 많게는 40-50명에 달했다. 반면, 지금은 겨우 4명의 후학만을 양성하고 있을 뿐이다. 전통 문화예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래서 내가 요즘 고심하고 있는 것도 옥공예의 맥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좁고 기나긴 그 길을 면면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

황혼을 물들일 옥빛들과의 끈질긴 사투‘오백의 얼굴’과 ‘코리아 판타지’는 내 일생일대의 마지막 두 작품이다. 오백의 얼굴은 20년 전부터 매달려오고 있다. 서동파의 오백나한도에

착안해 만든 ‘오백의 얼굴’은 500개 분야의 최고가는 전문가들을 형상화할 작품이다. 한편, 내게 가장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코리아 판타지’는 단군왕조 관련 역사서적 16권을 탐독한 후 구상해낸 작품이다. 거기다 고대 왕들의 자취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우리 옛 영토의 일부였던 중국 대륙을 샅샅이 밟아가며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30분이나 혹은 1시간 만에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자랑스런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앞으로 나라의 기둥이 될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욕심이 ‘코리아 판타지’를 구상하도록 이끈 힘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해 최근 ‘코리아 판타지’를 두고 번뇌하고 있다. ‘코리아 판타지’의 경우, 단군왕조부터 시작해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한편의 파노라마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마치 옥 그림으로 된 역사책을 한눈에 읽어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균형감각 있는 역사적 시각이 요구된다. 이런 생각들이 최근 내게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젊은 시절 내 인생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옥공예가 이젠 나라와 후대를 모두 생각하게 만드는 역사적인 사명감을 갖게 한다. ‘코리아 판타지’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와 닿았던 점은 국내 학계에서 상고시대에 대한 역사를 고찰하는 데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국내의 의견대립뿐만 아니라, 동북공정으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이 코리아 판타지의 작업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두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기간 역시 내겐 행복한 시간이다. 좀 더 지켜봐 달라. 결론은 아직도 안개 속에 묻혀 있으니.

글: 에디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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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 음악회의 첫번째 멜로디는 ‘감사함’ 이번 음악회를 주관한 목포 상리사회복지회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복지관이다. 버스터미널 뒤편 주공 3단지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독고노인이나 정부지원 수급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주공 3단지는 장애를 가

진 1종 수급자를 비롯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1704세대가 모여사는 곳이지만, 그동안 외부의 관심은 미진한 상태였다. 특히나 정서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감상의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목포 상리복지관 남윤초 관장은 “지난 2010년 1월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상동 지역 어르신들이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 하지만 이번 ‘뜨락 음악회’를 준비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을 만큼 상리 지역 어르신들이 다른 이들을 향해 마음 문을 활짝 여셨다”고 말했다. 이어 “ 음악회를 준비하는 동안 행사 관계자들에게 ‘수고한다’고 양말을 선물하시는 어르신도 계셨다”면서 함박 웃음을 지었다.

관심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 또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것. 관심과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정말 감사하도록 만들고 싶었다는 남윤초 관장. 남 관장은 뜨락 음악회가 횟수를 거듭할수

추석을 며칠 앞둔 가을날. 목포 도심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아담한 뜰을 방불케하는 웰빙공원 노천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음악회 내내 흥겨웠다. 경계 짓지 않은 무대를 저희 놀이터로 삼은 아이들이 귀여운 막춤을 추었고, 계단이나 관중석에 앉은 어르신들은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극단 ‘갯돌’의 신명나는 노래가락과 춤사위가 펼쳐진 가운데 자원봉사 동아리 회원들이 준비한 색소폰 연주도 이어졌다. 외롭고 적막한 일상에 가려져 있던 마음의 뜨락에 오랜만에 고운 무지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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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축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기쁨은 이웃과 나눌수록 더 ‘무럭무럭’ 자란다 상리복지관은 지난해부터 복지관 내부에서 자그마한 공연을 가져왔다. 이번 음악회 역시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룰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외된 이웃에게 온정을 전하기 위한 음악회라는 점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야외에서 치뤄지게 됐다. ‘이웃과의 나눔’이라는 음악회의 취지에 마음이 움직인 봉사단체와 기관단체,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눠줄 수 있도록 공개된 자리를 만들어 보자며 남윤초 관장을 설득했다고. 그래서 결국 상리 주민들뿐만 아니라 상동 지역 전체, 목포시민이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제 1회 뜨락 음악회가 탄생했다. 뜨락 음악회에서는 일반인들과 장애우들이 하나가 돼 펼친 사물놀이. 봉사자 동아리의 색소폰 연주.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오카리나 연주와 끼 많은 유치원생들의 ‘어린이 재롱잔치’. 복지관에서 문화댄스와 실버댄스를 배운 어르신들의 ‘어르신스포츠댄스’ , 봉사단체가 준비한 ‘지역가수’들의 흥겨운 무대로 이어졌다. 매번 새로운 공연이 펼쳐질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와르르-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목포 극단 갯돌이 마당극 등을 연출해 구성지고 유쾌한 시간을 선물했다. 이외에도 목포 카톨릭간호학과 학생들은 무료 진료로 어른신들의 건강을 꼼꼼히 살폈다.

행복이 꽃피는 ‘상동 뜨락 음악회’ 뜨락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오른쪽에서는 초등학교 3, 4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온몸을 튕기며 막춤을 추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슬쩍 카메라 앵글을 그곳으로 옮겨봤다.

아이는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쭈볏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좀전보다 더 신나게 춤을 추어댔다. 그러자 또래로 보이는 다른 아이들이 남자애 곁으로 몰려들어 함께 우스꽝스런 막

춤을 추면서 흥에 겨워 했다.저녁 6시부터 리허설이 시작돼 공연은 벌써 저녁 아홉시를 향해가는 시각이었지만, 어르신들은 누구하나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않았다. 뱃꼽을 드러낸 유치원생들의 난타공연에 환호했고, 지역가수들이 열창하는 트로트를 따라 불렀다. 자원봉사자의 분위기 있는 색스폰 연주에는 일제히 두손을 하늘로 높이 뻗어 물결을 만들었다. 극단 갯돌이 공연한 마당극을 볼 때에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웃음보따리를 활짝 펼쳐놓았다. 음악회 사회자가 어르신들의 손바닥을 염려할 정도로 어르신들은 열심히 손벽을 맞대며 공연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했고, 그와 동시에 음악회를 맘껏 즐겼다.

음악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마실 음료를 나눠주던 자원봉사자들도, 그리고 기관 관계자들도 모두들 흥에 겨워 덩실춤을 추었다. 게다가 웰빙공원 근처 노양병원에 입원 중인 노인분들이며, 전동차 휠체어를 요리조리 몰고서 음악회를 즐기로 나온 사람들까지. 단출한 노천극장에는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묵묵히 모여들어 자유롭게 음악회를 만끽했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상동 뜨락 음악회’는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함께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했다. ‘뜨락’ 이라는 단어는 집을 벗어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뜰을 의미한다. 언제 어디서나 또 누구에게나 존재해야 할 쉼표 같은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상동 뜨락 음악회’가 더 많은 이웃을 포근히 감싸길, 행복한 뜰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에디터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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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가을 문턱에 서니 머릿속에 ‘책’이라는 보통명사가 떠올랐다.

가을만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유일한 의미를 지닌 고유명사로 바뀌는 ‘책’. 추운 계절을 나는 데 필요한 온기가 마 치 책 속에 내밀하게 숨어 있는 듯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특별한 관심을 보낸다. 종이에서 베어나오는 잉크 냄새를 따라 목포 공공도서관을 방문했다. 책들의 숲에서 조용히 가을을 환영하고 싶어서였다. 그곳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처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잔뜩 허리를 굽히고서 첫번째 책을 들여다보았다.

책 읽는 큰 아씨들의 모임, ‘글물’ 독서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나 엄마가 아닌, 여자 '김영덕 박애순 배수경 오숙자 조미숙 최수경'입니다" 매주 금요일 목포 공공도서관 독서문화교실에서 '나'란 이름을 되찾는 그녀들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어느 책 좋아하는 이가 처음 만들었다는 성인 독서회 '글물'. 2003년 4월에 시작돼 올해로 여덟 번째 가을을 맞았다. 아직은 단풍이 설익은 계절이지만 그녀들의 미소는 벌써 잘 익은 단풍 빛깔이었다.

끌과 망치 대신 책을 통해 벽을 허물다 글물 독서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목포 공공도서관에 모여든다. 매주 선정된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금요일마다 열리는 독서회를 위해 평일에도 열심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열 명 남짓한 회원들이 도서관에 구비된 책을 돌려봐야 하기 때문에 평일에도 숨 돌릴 틈이 없다. 덕분에 글물 회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언니나 동생으로 여긴다. ‘글물’ 독서회는 올해부터 한 해 동안 읽을 독서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원들이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선정한 후, 논의를 통해 읽을거리가 한 분야에 집중되지 않도록 골고루 선택한다.

덕분에 일종의 독서 계획표나 마찬가지인 글물의 독서목록에는 마음을 살찌우는 책들이 가득하다. 7월 둘째 주에는 ‘생각 버리기 연습(코이케 류노스케)’, 9월 셋째 주에는 ‘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장세현)’, 12월 첫째 주엔 ‘위대한 유산(디킨즈)’등 그녀들은 좀처럼 편식할 줄을 모른다. 글물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다뤄보는 게 희망사항인 당찬 그녀들은 회원 각자의 관심분야를 잘 배합해 ‘맛있는’모임을 갖는다. 하지만 독서회 시간을 은미하다보면 이 맛있는 모임이 내심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맵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여덟 해 동안 높고 낮은 언덕을 넘어 거친 바람을 뚫고 온 글물은 켜켜이 쌓인 그 세월만큼이나 깊이를 더했다.

회원들 사이에 벌어지는 불꽃 튀는 논쟁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다. 그녀들은 한권의 책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한다. 해부란 말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진지한 태도로 토론에 참여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지나치게 무거워 시커먼 앙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깊이에의 강요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토론방식은 순수하게 ‘읽고 싶다’에서 출발해 ‘알고 싶다’,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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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함께 키워나가고 싶다’로 진행된다. 그 누구도 논쟁에 겁먹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반박은 즉각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쉽게 묵살하지 않는다. 회원들은 날마다 조금씩 스스로를 가둔 인식의 벽을 허물고 세상과 만나길 바란다. 일주일 동안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뒤로 슬며시 밀려난 ‘영덕, 애순, 수경, 숙자, 미숙’에게 새로운 나를 선물하고, ‘너’란 이름의 또 다른 나를 만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꽃보다 책보다 ‘사람’이 아름다워 글물 회원들은 대부분 주부들이다. 어떤 이는 고3 수험생을 자녀로 둔 엄마. 또 어떤 이는 이미 아들을 군대로 떠나보낸 엄마.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홀로 된 엄마도 있다. 글물 독서회가 생긴 초창기부터 지금껏 이 모임에 참여해 온 회원들은 열 명 가운데 서너 명. 때때로 조용한 날들 위에 소란한 날들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부터 글물 독서회는 열 명의 자매들로 구성된 책 읽는 모임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더 이상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됐다.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야외에 나가 독서와 토론을 즐긴다. 때론 가볍게 스케치하듯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개봉한 영화가 있다면 여고 동창생들 마냥 약속시간을 정해 우르르, 영화관으로 몰려간다. 그들의 모임은 더 이상 몇 권의 책에 묶여 있지 않다.

나눌 수 있는 그 무엇을 ‘책’에서 찾기 시작했지만, 이젠 함께 누릴 수 있는 더 많은 즐거움을 찾는데 주목한다. 또한 함께 한다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속 깊은 언니처럼 철부지 동생처럼 각자가 일상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글물의 회장직을 맞고 있는 김영덕 씨는 “8년 동안 독서회를 지속한 결과 개인적으로 이젠 책보다 사람에 대한 의미가 더 커졌다”고 말한다. 이런 그녀의 말에 다른 회원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영덕 씨는 “글물은 일부러 몸집을 크게 키우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깊이 있는 책 읽기와 사람 만나기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글물은 이제껏 외부에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터라 사람들의 들고남이 활발하진 않았다. 단지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일부 주부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몇몇 사람들이 다녀가기도 했다고. 하지만 회원 대부분이 주부이다보니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독서회 모임을 준비하는데 쉽게 부담을 느끼고 이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생겨났다. 사실 그녀들은 책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말에 모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독서회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의

미를 해치진 않는다. 책을 통해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는 것. 그 일을 위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짬을 내어 독서회를 준비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 글물 회원들은 이미 책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내실을 다진 상태다. 매주 한권의 책을 선택해 발제자를 정하고, 발제자가 된 회원은 자유분량으로 책소개, 저자소개, 내용소개를 작성한다. 여기에 책을 읽고 발제자가 품었던 이야깃거리 역시 생각해 둔다. 궁금했던 점이나 함께 고민해 볼만한 질문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회원들도 매주 선정된 책을 미리 읽어야 한다. 독서회는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가까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다. 다들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발제자는 중재자 겸 사회자 역할을 맡는다.

토론은 그녀들이 주부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있다. 100분 토론을 연상시킬 만큼 그 열의가 대단하다. 그래도 역시나 책보다 ‘사람’이 먼저라며 밝게 웃는 글물 회원들은 자신의 일상을 뛰어넘을 용기 있는 벗을 기다린다. 책을 좋아해 그들과 함께 할 새로운 벗. 야무지지만 완고하지 않고 직설적이지만 따뜻한 글물의 큰 아씨들은 책에 대한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진 벗들을 그리워한다.

맵고 유쾌한 그녀들의 한 마디 글물이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상투적이고 난해한 이 질문에 글물 회원들은 반짝반짝 두 눈을 빛내며 정성스레 답해 주었다. -회장 영덕 씨: 글물은 길입니다. 지난 8년이란 시간이 쉽진 않았지만, 뒤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길이 보입니다. 길이란 막상 걷기 시작하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죠.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이 가르쳐준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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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을 통해 삶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죠. 전 ‘글물’이 올바른 인생 항로를 제시해 줄 거란 기대감으로 항상 설레입니다.

-애순 씨: 독서회 토론을 통해 시사적인 문제를 다시 인식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어떤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어 좋아요. 그래서 ‘글물’은 제게 곧 균형을 유지하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죠.

- 숙자 씨 : 글물은 ‘찻물’이에요. 깊고 은은하고 맑은 모임이죠. 전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 최소한 책만큼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읽어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점점 더 젊게 사는 비결. 바로 글물 속에 있더라구요. 덕분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긴장감 있는 일상을 살고 있어요. 공부에 바쁜 아이들을 대신해 세상 일에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 배수경 씨: 글물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줘요. 저흰 글을 읽고 분기별로 형식에 제한없이 독서 감상문을 쓰거든요. 초창기 회원으로 지난 8년을 지내오면서 글 쓰기란 생각처럼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글물을 통해 글쓰기에 한발 내딛은 거죠. 3개월에 한번씩 글을 쓰다보니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부푼 꿈에도 젖어봅니다. 그런 상상은 정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져요!

- 최수경 씨: 혼자서 책을 읽다보면 편식할 수도 있지만 글물을 통해 회원들과 어울리다보면 편식은 꿈도 못 꿔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 읽는 것이 자연스레 습관이 되죠. 게다가 ‘글물’에서는 누구누구의 엄

마가 아닌,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만날 수 있어요. 서로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갖가지 의견을 나누면서 제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거죠.

- 미숙 씨: 제게 글물이란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좋든 싫든 어렵든 해야만 하죠. 글물의 좋은 벗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하나의 체험,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프리즘에 빛춰보는

햇살처럼 다양한 빛깔을 띄는 무지개가 바로 ‘글물’이에요.

참고사항 ‘글물’ 독서회 회원가입 문의: 061. 270. 3845 (담당자, 공병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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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는 여행자를 위한 나침반이다- 첫번째 이야기

단출한 옷차림에 어깨에는 작은 베낭을 짊어지고 바다와 섬을 찾아 나섰다. 나침반을 따라 때론 종종걸음으로 때론 느린 황소걸음으로 미지의 문을 두드렸다. 청산 가는 나비를 따라 나선 바다여행은 낮게 웅크린 돌담길로 이어졌고, 그 길은 다시 판소리의 한곡조를 흥얼거리며 땅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땅이 끝나는 곳에서 싱싱한 시작을 맞은 아침. 그 아침은 공룡의 거대한 발자취에 흥미롭게 고였다가 인간적인 한 영웅을 좇아 바쁜 오후 걸음을 제촉했다.

나침반이 첫번째로 가리킨 곳, 청산도 은빛 물비늘이 푸른 바다 위에 눈가루처럼 흩뿌려진 아름다운 섬. 지팡이 짚은 할머니를 향해 주저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이내 머쓱하지만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곳. 청산도에 가면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마음이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되찾아간다.

소라고둥처럼 평화롭고 느리게 나선형의 소라고둥을 닮아 걷는 내내 모나지 않은 곡선으로 이어진다는 청산도.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청산도행 여객선을 타고 버스와 사람이 함께 바다를 건넌다. 청산도는 완도에서 19.2km 떨어진 다도해 최남단의 섬이다. 여객선을 타고 19.2km를 40분 가량 달리는 동안 사람들은 청량한 바다와 이름모를 섬들에 넋을 잃고 만다. 배의 엔진음에 두 귀가 무뎌질 때쯤 청산도를 지키고 있는 흰 등대와 붉은 등대가 나란히 환영인사를 건넨다. 영화‘식객’에 출연했다는, 한 때 유명했지만 이젠 반짝 인기를 떠나보내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등대들이다. 그렇게 철 지난 영화에 출연했던 흰색과 붉은 색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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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지나면 푸른 빛이 감도는 청산도를 만날 수 있다. 청산도는 신선이 노니는 풍경이라는 뜻의‘선산선원’으로도 불린다. 여의도의 5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하며 현재 마을 19곳이 섬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도청항에는 여객선이 드나드는 시간에 맞춰 버스와 택시들

이 마중을 나온다. 도보를 하기 힘든 빡빡한 일정이라면 택시나 버스 중 하나를 고르자. 그래야만 아쉽더라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청산도의 큰 밑그림이 나온다. 청산도는 은행과 보건소,대형마트 등 섬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여느 도시처럼 요란하거나 떠들썩하진 않다. 아마도 이곳에서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슬로시티’운동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슬로시티 운동은 느리게 먹기, 느리게 살기가 중심이 된다. 철저히 자연생태를 보호하면서 먹을거리를 만드는 슬로푸트 농법을 실시하고, 지역 특산품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실천한다. 현재 청산도는‘슬로푸드 체험관’을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에 준공될 예정인 슬로푸드 체험관은 청산도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한 건강밥상이 주된 테마다. 완도군은 관광객들에게 슬로푸드 체험기회를 제공해‘슬로시티’청산도를 보다 널리 알리고자 한다. 쪽빛 바다 위 주홍빛으로 떠오른 사연들 한편, 청산도는 쪽빛 바다와 달리 지붕이 주홍빛인 가옥이 많다. 주홍색 페인트는 부식을 막기 위해 선채 밑바닥에 칠하는 특수 페인트다. 바람에 실려온 짭쪼름한 바닷물로부터 가옥을 보호하려는 섬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해송이 펼쳐진 길을 따라 도청항을 출발해 버스로 달리다보면‘읍리’가 나온다. 이 마을에는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한 네 그루의 나무가 굵직하게 자라나고 있다. 마을에 찾아든 상서로운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풍수지리적으로 구멍 난 곳을 메우기 위해 나무들을 심었단다. 이곳 읍리를 지나면‘구장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청산도에서 일찍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들과 달리 외지에서 이주해 온 일곱 가구가 살고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구장리를 지나는 동안에는 다랭이논과 구들장논이 보인다. 다랭이논은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으로 지역주민들이 애

환이 서려 있다. 혼기가 꽉 찬 큰 애기가 시집가기 전 쌀 서말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할 정도로 과거 청산도는 돌이 많았다. 따라서 논과 논의 경계도 조그맣고 낮은 돌무더기로 구분짓는 경우가 흔했다. 구불구불한 곡선미를 가진 논인‘삿갓배미’가 흔히 눈에 띄는 이유다. 구들장논 역시 돌과 인연이 깊다. 청산도에 돌이 많아 물이 땅에 스며들어도 농사를 짓기 어려웠던 예전 주민들은 계단식 논 위에 먼저 넓게 큰 돌을 깔고 나머지 틈새를 잔돌과 흙으로 꼼꼼히 메웠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위에 흙을 부어 논을 개간했는데 이것이 바로‘구들장논’이다. 청산도만의 특색을 지닌 구들장논을 지나면 신흥해수욕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심이 완만해 여름철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기에 좋은 곳으로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2km 가까이 펼쳐져 있다. 조개와 바지락 등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는 금빛 모래사장이다. 신흥해수욕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누구나 바지락을 직접 채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청산도를 둘러보다 보면 효열각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효열각과 함께 야트막한 언덕에 봉분들이 봉긋하게 솟아나 있는데, 이것은 조상이나 부모를 공경하는 청산도 사람들의 효사상을 짐작케 하는 숨은 증거들이다. 논이나 밭에서 일 하던 사람들이 사랑했던 누군가를 향해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청산도에서는 일상의 한 조각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고 친근하다. 효열각과 야트막한 봉분 뿐만 아니라, 청산도에서는‘초분(풀무덤)’을 만나 볼 수도 있다.‘초분’은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이엉 등으로 덮어 두었다가 2~3년이 지나면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장례 풍습이다. 대부분 서남해의 섬 지방에서 치뤄지는 풍습이다. 상주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사이 집안에 상이 날 때 주로 행해졌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섬지방은 물론 육지에서도 이같은 장례풍습을 엿볼 수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위생법이 제정되면서 점차 화장이 권장되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췄다. 더욱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초분’은 법적으로 전면 금지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청산도, 비금도 등 서남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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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는 희미하나마 그 면맥이 유지되고 있다.

그 길들을 만나면 심장은‘빠담빠담’ 프랑스어로 빠담빠담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다. 흔히‘두근두근’으로 알고 있지만 ‘쿠쿵, 쿠쿵’에 가깝다. 청산도에는 유독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길들이 많다. 반듯한 직선에 자리를 내주지 않은 곡선의 길들이 요리조리 섬을 가로지른다. 도청항으로부터 시작되는 미항길.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동구정’이란 우물이름을 딴 동구정길. 먼 바다의 파도가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아 이름 지어진 화랑포에서 새땅끝으로 향하는 화랑포길. 영화‘서편제’의 세 사람이 진도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며 지나갔던 서편제길. 이 밖에도 청산도 사람들이 ‘연애바탕길’이라고 부르는, 해안절벽을 따라 난 고즈넉한 숲길인 사랑길. 청산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맑은 날씨에는 거문도나 제주도까지 볼 수 있는 범바위길 등. 청산도는 흥미롭거나 고즈넉한, 사랑스럽고 정다운 길들을 그 안에 한아름 품고 있다. 이번 남도여행에서는 그 중 서편제길을 찾아나섰다. 서편제길로 향하는 도중에 사슬래피나무들이 늘어선 사잇길을 만났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제주도 들판이나 숲속, 해안가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열매즙이 파란 잉크색이다. 사슬래피나무의 꽃은 고약한 화장실 냄새로 유명한데, 사실 이 냄새는 살균과 진정작용이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버스를 타고 사슬래피나무가 우거진 길을 벗어나자 해뜨는 마을인‘진사리’가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이른 아침 진사리 쪽에서 떠오른 태양은 오후가 되면 점점 길손이 오가는 도청항을 향해 뉘엇뉘엇 저문다. 진사리는 청산도에서 가장 고운 갯돌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맨들맨들한 갯돌이 서로 얼굴을 부비는 진사리를 지나면 단풍길이 펼쳐진다. 아직 이른 가을볕에 애기단풍들의 낯빛은 덤덤한 초록빛이지만,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몽환적인 붉은 별들의 향연에 쉽게 취하게 된다고. 이 단풍길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오래 전 여객선 대신 작은 동력선이 청산도를 오가던 시절. 청산도 아낙네들은 뭍으로

나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생활력이 강해 바다와 논밭을 오가며 온몸이 바스라져라 일했지만, 가을바람에 마음이 설레기는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열일 제쳐두고 육지로 단풍놀이를 떠났다. 그런데 청산도가 섬인 탓에 2박 3일이면 끝날 여정이 8박 9일이나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내들을 뭍으로 떠나보낸 청산도 사내들은 아내 없는 나날을 견딜 수 없어 아예 자신들이 사는 섬에 단풍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겨난 길이 바로‘단풍길’이다. 어찌됐건 덕분에 뭍으로 향하던 아내들의 발길을 돌리고, 머나먼 육지 사람들까지도 청산도로 불러들이게 됐으니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단풍길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달리다보니 마침내 직접 걸어볼 기회가 생겼다. 작은 포구인‘지리마을’의 언덕을 넘자 서편제길이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1993년에 개봉한 영화‘서편제’를 찍었던 곳. 이젠 그 이름도 어엿한‘서편제길’로 불리는 곳이다. 소리꾼 유봉이 이붓딸 송화와 진도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굽이굽이 한이 서린 그 길을 이젠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 서편제길은 당리에서 출발해‘봄의왈츠(한효주 주연)’세트장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초가집 몇 채가 존재했지만 지금은‘서편제’촬영 당시에 사용했던 초가집 두 채만 남아 있다. 그 길과 평행하는 돌담 너머에는 봄이면 유채꽃이,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풍성하게 얼굴을 내민다. 태양의 열기 속에 온전히 여름이 물러가지 않은 9월. 벌써 조바심 많은 코스모스들이 앞다퉈 사람들을 반긴다. 서편제 길 너머, 그리고 넓게 펼쳐진 코스모스 들판 너머로 여객선을 타고 들어온 도청항과 물비늘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청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박 2일 일정으로 이어진‘공룡과 함께 떠나는 남도여행’은 남해안3개도시관광협의회와 전라남도가 주최하고, 국립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과 여행동아리 NTOUR가 주관하는 남해안 관광 활성화사업이다. 전문가와 함께 하는 여행의 장점을 알리고, 남도 지역민 뿐만 아니라, 수도권 관광객들에게 전라도의 관광 역사 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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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이 맞닿아 희망을 노래하는‘땅끝관광지’ 땅끝 모노레일 매표소로 향하는 길목에는 작은 장터가 선다. 고구마나 멸치, 무화과 등 해남에서 나는 제철 과일이나 야채를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방문객들을 반긴다. 그곳을 지나면 작은 매표소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모노레일 트렉 옆에 늘어서 차례를 기다린다. 땅끝 모노레일은 오전 08시부터 일몰 때까지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땅끝 전망대까지는 6분 정도가 소요된다. 땅끝 모노레일카는 분리된 두 개의 차체가 노란색 블록처럼 앙증맞게 연결돼 있다. 20여 명을 탑승시킬 수 있고, 사위가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땅끝전망대로 향하면서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다. 레일길이는 395m로 느릿하게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양파 껍질을 벗기듯 다도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로 인해 푸른 바다와 나란히 걷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땅끝 모노레일을 타고 섬과 바다를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땅끝전망대에 도착한다. 땅끝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한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는 인파들이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땅끝전망대는 노령산맥의 줄기가 만들어낸 마지막 봉우리인 해발 156.2m의 갈두리 사자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새천년을 밝히며 타오르는 횃불을 형상화해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1987년 4월에 최초로 건립되었다가 2001년에 철거된 이후, 2002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개관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오르면 비스듬한 원형 모양의 내부와 만나게 된다. 천천히 내부를 한바퀴 도는 동안 섬들은 내내 방문객들을 놓치지 않는다. 마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뛰는 것처럼 사

람들을 둘러싸고 환영의 메세지를 담은 원을 그린다. 실제 원을 그리는 것은 사람이지만, 섬들이 중앙에 사람을 세워두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스런 갈망을 알아챈 섬들이 멀리서 그와 함께 그것을 축원해주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가깝게는 백일도, 보길도, 노화도 등 다도해 섬들을 바라볼 수 있으며, 일기가 화창한 날에는 추자도를 비롯해 제주도와도 조우할 수 있다. 땅끝전망대를 찾은 시각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인지 그 날은 유독 투명한 유리창과 섬 사이에 어슴푸레한 물안개가 끼어 신비한 정취마저 느껴졌다. 누군가의 끝을 시작으로 옮겨 희망을 피워내는 땅끝전망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태양이 지고 다시 떠오르는 일이 거리를 두지 않고 한곳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그것은 끝과 시작이 오늘이라는 시간에 맞닿아 있으며, 그 안에 희망이 또한 간직돼 있음을 말해준다.

땅끝전망대 아래쪽에는 조용히 벤치에 앉아 바다와 섬들을 관망할 수 있는 땅끝탑이 서 있다. 북적북적한 관광객 틈에 끼어 벌써 지쳐버렸다면 이곳이 가장 어울릴 듯. 이곳에서는 멀리 부두항과 오가는 배들, 김양식장과 전복 양식장이 보다 가깝게 보인다. 파란 바닷물 속에 잠겨 조금씩 생장하고 있는 김들은 검은 잉크처럼 심해를 향해 차츰 번져간다. 그 길고 꾸준한 번짐이 어느순간 성숙에 이르면 그 바다의 양식은 우리들 밥상에 올라 풍성한 식탁을 만든다.

‘우항리 공룡박물관’, 공룡의 거대한 발자취를 따라 우항리 퇴적층을 형상화한 입구를 지나면, 아

해남, 그곳에는 내일로 향하는 기회가 움터 있다.샛노란 모노레일이‘끝’에서‘시작’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실어나르고, 메마른 흙이 푸른 물결을 만나 희망을 잉태한다. 복잡다단한 오늘은 공룡의 발자취에 슬며시 내려앉아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고,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들여다보며 두려움을 뛰어넘은 진정한 용기를 배운다. 어제의 빛을 통해 실타래처럼 엉킨 오늘을 차분히 바라보고, 내일을 긍정할 수 있는 곳. 해남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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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최초이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생대 포식공룡인 알로사우루스의 진품화석이 전시돼 있는 우항리 공룡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대형 용각류 공룡뼈 화석 등 중생대를 누볐던 공룡들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박물관 외벽을 뚫고 나온 공룡 모형이 매우 인상적인 우항리공룡박물관 앞뜰에는 공룡테마파크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거대한 공룡 발자국 모양의 디노가든은 18m 크기의 분수대와 아이들의 상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로 공간인 ‘미스터리서클’로 조성돼 있다. 또한, 공룡발자국을 상징하는 ‘꿈꾸는 언덕’은 바닥에서 떠오르는 공룡을 밟아야만 점수가 올라가는, 어린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놀이터이다. 공룡테마파크는 곳곳에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휴식공간을 마련해 공룡체험학습 뿐만 아니라, 소풍장소로도 적합하다.

우항리공룡박물관에는 실물크기의 다양한 공룡뼈 화석들이 전시돼 있다. 해남군은 지난 2007년 천연기념물 제 394호로 지정된 우항리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을 건립했다.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매우 정교한 대형 공룡발자국 화석이 산출된 곳으로, 익룡 발자국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발자국 화석, 아시아

최초 절지동물 생흔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그중 대형발자국 화석은 평균 85센티미터 크기에 25센티미터 깊이를 가진 별모양의 내부구조를 갖는다. 우항리 화석지는 1992년 최초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여러차례 국제 학술 심포지엄의 주제로 떠올라 그 진가를 입증받았다. 한편, 공룡박물관 내부를 살펴보면 1층에 자리한 우항리실에는 백악기 시대 우항리지역의 지층형성 과정과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변화를 디오라마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하 1층의 공룡과학실과 알로사우루스 진품이 전시된 공룡실, 중생대 재현실, 해양파충류실, 익룡실, 거대공룡실 등이 마련돼 공룡에 대한 발견과 시기별로 나타난 공룡의 종류, 그 특징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공룡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공룡정보를 검색하는 어린이 놀이공간인 공룡도서실에는 약 3천권의 도서와 컴퓨터가 배치돼 있다. 우항리 공룡박물관에서 만난 사람 땅끝관광안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여인, 마랄린. 그녀는 지난 2001년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2007년부터 시작해 2008년 본격적으로 문화관광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결혼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집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남군청에 마련된 문화관광해설사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외국인들을 상대로 관광해설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해남관광지역을 방문한 몇몇 외국인들에게 각각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그녀. 이후 2008년부터는 우항리 공룡화석지의 유네스코 지정 여부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곳을 방문한 유럽 등지의 외국인 교수들을 상대로 문화관광 통역에 나섰다고. 그녀는 현재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우항리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도 해남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어눌하긴만 한 한국어이지만, 두 눈을 빛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말솜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유창한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열정을 담아 전달하려는 마랄린의 노력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아들은 벌써 11살이 되었고, 딸은 이제 고작 7살이라는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틈틈이 해남의 문화관광해설사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지역을 알리고 문화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마랄린. 그녀는 도시로 떠나간 젊은이들을 대신해 그들의 고향을 알리고 지키는 숨은 일꾼이다.

인간적인 고뇌를 뛰어넘은 용기가 서린 곳, ‘우수영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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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우수영관광지. 우수영관광지는 159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룩한 명량대첩을 기념하고 옛 성지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곳으로, 1986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당시 최후의 교두보였던 울돌목을 성지화하였다.

‘울돌목’은 바다가 울음소리를 낸다하여 명량으로 불리웠으며,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 녹진 사이를 잇는 가장 협소한 해협이다. 넓이가 300m 가량되며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20m, 유속이 11.5오트(약 24km)에 달한다. 굴곡이 심한 암초사이로 소용돌이 물결이 일어난다. 물결이 암초에 부딪히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는 옛 말이 있을 정도로 유속이 빠르고 강한 곳이다.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직전 이순신 장군은 옥사에서 풀려나 권휼 휘하에 있다가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재임명된다. 장군은 장흥 회령포에서 범선 13척을 몰고 이곳 우수영에 이른다. 평소 울돌목 지형에 해박했던 장군은 고작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수장시킨다.

우수영관광지에 도착해 우수영성문을 들어서면 충무공 유물전시관이 보인다. 그곳에는 천자총통, 지차총통 뿐만 아니라 남달리 효심이 지극했던 이순신 장군이 집안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써내려간 서간첩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명량대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거북선 내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이외에도 당시의 활약상을 담은 슬라이드도 상영한다. 우수영관광지 곳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관군들의 전투모습을 조각한 상들이 배치되어 있어 생생한 감동을 준다. 그 조각상 옆에는 고뇌하는 이순신 상이 명량해협의 굽이치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다. 갑옷이 아닌 도포차림으로 손에는 서편을 쥐고 서 있다. 작고 아담한 그 상의 뒷모습은 나약한 한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단지 어선 13척으로

전투에 나서야했던 이순신 장군. 그 역시 한 인간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나약함을 뛰어넘은 용기로 마침내 불가능해보이는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다. 고뇌하는 이순신 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보다 크기가 몇 곱절이 되는 장군 이순신 상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결코 한계를 짓지 않았고, 포기할 줄 몰랐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발휘한 용기의 부피와 무게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우수영관광지 거북배 타기 체험 울돌목을 오가는 거북배는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운행되고 있다. 거북배에 오르면 1차로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명량대첩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역사적 사실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다. 거북배는 우수영 여객터미널을 출발해 가깝게는 피섬, 벽파진, 멀게는 옥매산 등이 보이는 울돌목 해협을 지난다. 1시간 남짓 거북배를 타고 해협을 왕복하면서 ‘우수영’에 서린 이순신 장군의 호국충

정과 명량대첩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남도여행에서는 문화관광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해협 곳곳에 숨어있는 명소에 대한 비화를 접할 수 있었다. 울돌목 거북배 체험은 ‘체험’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상투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알찬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거북배는 고뇌하는 이순신 상과 위풍당당한 장군상, 진도대교와 굽이치는 울돌목을 지난다. 이순신 장군의 전첩비가 대마도를 바라보며 일본을 견재하고 있다는 벽파진. 일재치하 당시 옥산지였던 옥매산의 정경. 선조들의 비극적인 삶이 역경을 딛고 승리를 거두었던 물결을 타고 거북배는 사람들을 과거로 실어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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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공간에 젊은이들의 열정이 알알이 맺혔다. 소형 어선들이 유유히 오가는 목포 갓바위 선착장. 사람들이 쉼을 찾아 거니는 평화광장 한 켠에 목포사랑청년회의 두 번째 ‘프리마켓’이 열렸다. 중년 아저씨들의 오래 전 추억을 끌어당기는 낡은 LP레코드 판에서부터 미니화분에 담긴 다육식물들. 장바구니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지킴이 천 가방까지. 가을 볕에 그을린 청춘들이 바다 곁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을 맞고 있었다.

평화광장에 희망의 진을 친 젊은이들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각. 목포 평화광장에는 전의를 띤 햇발이 기세 좋게 쏟아져 내렸다. 갓바위를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저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기에 바빴다. 한편, 광장 한복판에서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대형 천막을 치고, 현수막을 내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승합차에 싣고 온 물품들을 천막 아래 진열하는 세심한 손길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낮의 폭양을 뚫고 평화광장에 희망의 진을 친 젊은이들. 그들은 바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프리마켓’을 기획한 목포사랑청년회 회원들이다. 지난 9월 24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평화광장에서는 ‘프리마켓’이 열렸다. 앞선 6월에 이어 목포사랑청년회가 두 번째로 기획한 중고물품 장터였다. 단체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목포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인 ‘목포사랑청년회’는 나눔을 통해 지역사랑을 실천한다는 기치 아래 2009년 4월에 처음으로 출범했다.

현재 목포사랑청년회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서남 어린집’을 방문해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셋째 주 토요일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의 공부방 친구들과 ‘따뜻한 밥상’을 진행한다. ‘따뜻한 밥상’은 점심메뉴를 미리 정해 청년회 회원들이 장을 보고 어린 친구들과 더불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봉사 프로그램이다. 회원들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를 보거나 야외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이외에도 이들은 연말연시에 한부모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몰래 산타 대작전’과 ‘연탄 나눔’을 실천해 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목포사랑청년회는 그 동안 활동비용을 전체 회원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해 왔다. 그러다 지난 6월 처음으로 ‘프리마켓’을 통해 봉사활동 비용도 마련하고, 목포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행사를 마련해 보고자 뜻을 모았다.

그들의 시작이 아름다운 이유 목포사랑청년회의 ‘프리마켓’ 프로젝트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 시작은 단순하고 소박한 하나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했다. ‘내가 사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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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물건을,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저렴하게 팔면 어떨까?’ 에서부터 시작됐다. 목포사랑청년회 박정조 회장은 “처음 프리마켓을 기획할 때는 홍대의 프리마켓과 마찬가지로 행사 참가자들이 물건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변의 참여나 관심이 저조해 현재까지는 청년회 회원들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프리마켓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목포사랑청년회의 ‘프리마켓’은 엄밀히 말해 아직은 ‘플리마켓(flea market)’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마켓’은 거리와 공연 등 일상의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는 자생예술시장이자 축제를 일컫는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나와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시민들은 작가들의 고유한 창작세계를 즐긴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생활 창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창작품과 창작행위가 펼쳐지는 예술시장인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프리마켓으로는 홍대 앞 놀이터에서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대 프리마켓은 지난 2002년 6월부터 시작해 벌써 9주년을 맞았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식적인 문화예술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프리마켓과 달리 플리마켓(flea market)은 주로 중고물품을 사고 팔거나 교환하는 장터를 말한다. 따라서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목포사랑청년회의 ‘프리마켓’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서소희 씨는 “이제 시작인 만큼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다. 처음에는 좌판에 회원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펼쳐놓고 조용히 판매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졌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일이 커져 이렇게 대형 현수막까지 내걸고 프리마켓을 진행하게 됐다”라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러면서 “수익을 내기 위한 프리마켓이 아닌, 목포 시민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동참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은 문화로서 ‘프리마켓’이 성장해나가길 바란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낮 태양에 붉게 탄 그녀의 얼굴 위로 진지한 표정이 어렸다. 그녀에게 목포지역에서 프리마켓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먼저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 6월에 이어 이번에

도 청년회 회원들과 회원들의 지인들로부터 조금씩 물건을 모았다. 아직까지 목포시민들은 물건을 기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물건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마켓을 진행하면서 또 어떤 점이 힘들었느냐는 집요한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골몰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꺼냈다. “회원들 각자가 가져와 직접 판매하는 물건들은 이미 사용했지만 파손된 부분 없이 멀쩡하거나, 아예 필요가 없어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값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에 쉽게 물건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편견을 갖는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녀의 말대로 프리마켓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매우 저렴했다. 심지어 오백 원에서 삼천 원, 오천 원 등 만 원을 넘는 물건들은 아예 찾아 볼 수조차 없었다. 서소희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목포사랑청년회의 ‘프리마켓’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상투적인 격려를 건네지 않아도 될 만큼 목포사랑청년회 회원들은 저마다 ‘프리마켓’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기쁘게 음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건을 팔거나 손님을 부르는 데 익숙하진 않았지만 이웃을 돕기 위한 나눔의 장을 만들어 보려는, 소소하지만 빛나는 꿈들을 부지런히 꾸고 있었다. 지나친 욕심 없이 천천히 사람들에게 프리마켓을 알리고, 권하며, ‘프리마켓’에 함께 동참하도록 이끌겠다는 꾸밈없는 목표의식. 그것이 바로 목포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쉽지 않은 시작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당신의 소중한 ‘재능’을 손꼽아 기다리며두 번째 프리마켓을 진행하면서 목포사랑청년회 회원들은 ‘재능기부’란 말을 자주 언급했다. 재능기부를 통해 프리마켓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아직까지 생소하기만 한 ‘재능기부’는 개인이 갖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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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개인의 이익에만 사용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기부형태를 말한다. 재능기부는 돈이나 식량, 생필품 등의 단순 기부가 아닌, 기부할 물건이나 도움이 개개인의 ‘재능’과 관련된다. 쉽게 말해 법조인의 무료상담, 젊은 기타리스트의 무료 기타강의, 옆집 아주머니가 취미로 가르쳐주는 뜨개질 방법 등은 ‘재능기부’의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최초의 ‘재능기부’는 1993년 미국변호사협회가 규정한 연간 50시간 이상의 사회공헌 활동인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를 시작으로 확산되었다. 프로 보노(Pro Bono)란 음악공연이나 티셔츠 디자인 등과 같은 예술분야뿐만 아니라, 지식이나 기술을 활용해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현재 재능기부 분야는 총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먼저 의료보건 및 건강 분야의 재능을 기부하는 ‘슈바이처 프로젝트’, 문화예술 분야의 기부와 관련된 ‘오드리햅번 프로젝트’, 저소득층 및 사회복지 분야의 재능을 기부하는 ‘마더 테레사 프로젝트’, 멘토링과 상담, 교육을 결합한 ‘키다리 아저씨 프로젝트’, 체육과 기능, 기술과 관련된 ‘헤라클래스 프로젝트’ 등으로 구분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명인사들의 무료강의와 작가의 인세 기부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재능기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평소 동물 애호가로 유명한 인기 가수 이효리 씨가 유기동물을 위한 노래를 발표하고 그 수익금을 기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온라인 상에서는 네이버 블로그 재능기부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작가, 가수,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인사들이 본인의 재능을 기부하고 이에 동참하는 네이버 블로거가 ‘해피 빈’ 콩 기부라는 캠페인에 참여한다. 하지만 ‘재능기부’라고 해서 반드시 그 주체가 유명인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재주를 기꺼이 남을 위해 나누고자 하는 이들이 바로 재능기부의 주인공이다.

목포사랑청년회는 앞으로 목포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재능기부’를 통해 프리마켓에 내놓을 물건들의 일부를 손수 제작하고, 목포지역에서의 재능기부 문화를 새롭게 정착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눔을 실천하려는 맘씨 고운 청년들에게 서서히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일까? 회원들만의 참여에 그쳤던 첫 번째 프리마켓과는 달리, 두 번째 프리마켓에서는 리본공예를 하는 목포 시민들이 한 팀을 이뤄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에 나섰다. 프리마켓을 시작하기에 앞서 청년회 회원들이 전단지를 제작하는 등 홍보에 나선 것이 도움이 됐다. 목포지역에서 프리마켓이 활성화 되고, 재능기부의 인식 저변이 확대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목포사랑청년회의 지속적인 알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이들은 이웃과의 나눔을 함께 실천해보려는 목포 시민들이다. 이런 논의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목포사랑청년회의 ‘프리마켓’에 보내는 지나친 기대감과 확대해석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모든 행사는 항상 성대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다수의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이 역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사랑 나눔은 그것을 나눌수록 더욱 커지고 강렬해진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목포사랑청

년회의 ‘프리마켓’에 대한 목포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은 꼭 필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편견을 내려놓은 시민들의 참여가 어제보다 더 따뜻한 오늘의 목포를 탄생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현재 목포사랑청년회는 오는 10월에 세 번째로 진행할 ‘프리마켓’을 준비 중에 있다. 나눔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고픈 용기 있는 목포 시민들의 참여로 두 번째보다 더욱 풍성한 자리가 되길 빌어본다.

-에디터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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