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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넷 행복한 CEO포럼

    패치워크문명 시대, 새로운 공자주의와 군자경영

    황태연 교수(동국대학교)

    I. 패치워크문명론

    ⑴패치워크문명의 정의

    □문명융합론과 문명갈등론(문먕의 지배․피지배론)에 대한 비판, 대안의 문명관 → ‘패치워

    크문명’(patchwork civilization)

    ○‘patch’(깁는 데 쓰는 헝겊조각 또는 깁거나 덧붙이는 행위), ‘patching’(헝겊조각을 대고

    깁서 덧붙인 것), ‘patchwork’(조각들을 모아 짜깁기한 완제품)

    ○국제적 교류와 소통이 과거에 비해 비할 데 없이 확대되고 다원화된 오늘날, 문명간 ‘패

    치워킹’ 작용은 더욱 심화됨

    ○따라서 오늘날은 더욱 강한 의미에서의 ‘패치워크문명시대’임

    □세계 5대 ‘패치워크문명’

    ○기독교문명권(유럽․미주․러시아), 회교문명권(중동․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힌두교

    문명권(인도․인도네시아 일부도서지역), 불교문명권(태국․스리랑카․미얀마․라오스․

    캄보디아․네팔․부탄 등), 유교문명권(한국․중국․일본․월남․몽고․싱가포르)

    ○인더스문명→힌두교문명․불교문명, 황하문명→중국문명→동아시아유교문명, 그리스․로

    마지중해문명→서구기독교문명, 그러나 왜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잉카아즈텍문

    명은 소멸했는가?

    ⑵동서문명의 역전과 재역전의 역사

    □서양에 대한 공자철학의 충격: 패치워크 사상문예운동으로서의 18세기 계몽주의의 탄생

    ○서기 10세기-18세기말까지 동아시아문명의 세계적 우위

    ○경제․생활수준․과학기술․학문․정치․사회․문화예술 등 전 분야에서 서양에 대한

    압도적 우위(17세기 후반 John Webb, 17-18세기 전환기 라이프니츠, 18세기 중후반 흄,

    아담 스미스] 등의 한결 같은 증언)

    ♠라이프니츠에 대한 상론: 황태연,『공자와 세계(1)』「공자의 지식철학(상)」(서울: 청

    계출판사, 2011), 53쪽; 《공자와 세계(2)》「공자의 지식철학(중)」, 474-486쪽.

    ♠흄에 대한 상론: 황태연,『공자와 세계(1)』「공자의 지식철학(상)」, 54쪽; 《공자와

    세계(2)》「공자의 지식철학(중)」, 821-825, 838-849쪽.

    ○아담 스미스,《국부론》에서: “중국은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도 훨씬 부유한 나라다

    (China is a much richer country than any part of Europe). 중국과 유럽의 생계수단의

    가격 차이는 아주 크다. 중국의 쌀은 유럽 어느 곳의 밀 가격보다 훨씬 더 싸다.”1)

    1) Adam Smith,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Wealth of Nations] (1776),I. xi. 34 (208). 스미스는 I. xi. n. 1(255)에서도 중국을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도 훨씬 더 부유한 나라”로 묘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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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한 상론: 황태연,『공자와 세계(1)』「공자의 지식철학(상)」(서울: 청계출판

    사, 2011), 404, 408쪽; 《공자와 세계(2)》「공자의 지식철학(중)」, 806-881쪽.

    □18세기 조선은 생활수준 세계 1위 국가: 영토나 인구 면에서 영국과 엇비슷했던 영․정조

    시대(1724-1800년)의 조선은 건륭제 시대 중국보다 잘삶.

    ○첫째 근거: 임금수준. 1780년-1809년까지 조선의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쌀 8.2kg)은 런

    던(1750-59년)의 숙련노동자 실질임금 수준(빵 8.13kg)보다 높음.2)

    ○둘째 근거: 경작면적 기준의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1800년 잉글랜드

    의 총요소생산성을 100으로 잡을 때, 당시 조선 전역은 134였고, 중국 양자강 하류지역

    (강소성․절강성)은 191.3) 중국 ‘전역’은 191보다 훨씬 낮았음. 18세기 ‘중국은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도 훨씬 부유한 나라’라는 스미스의 말을 상기하면, 전 중국의 평균 총요

    소생산성은 잉글랜드 수준을 웃돌았을 것임. 그러나 조선(134)이 잉글랜드(100)보다 훨

    씬 높았기 때문에 조선의 생활수준은 중국보다도 높았을 것임. 매디슨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1인당 GDP는 1820년에야 600달러로서, 조선과 같아졌기4) 때문. 중국의 1인당

    GDP는 1500년이래 320년 동안 600달러 대에 머묾.5) 추산하면, 조선의 생활수준은

    16-17세기에 중국보다 낮았지만 성종이래, 특히 영․정조 시대(1724-1800)에 중국을 추

    월했다가 정조 사망(1800년) 이후 급락하기 시작하여 20년 후에 중국과 같아짐. 결국,

    18세기 조선은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잘살았던 중국보다도 더 잘살았던 ‘세계 제1위 국

    가’였음.

    -18세기까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생활수준은 유럽의 생활수준보다 훨씬 더 윤

    택했음

    -동아시아는 이미 명나라 때(1368-1644)부터 귀족층은 신사화, 탈세습화되고, 전체 국민

    은 거의 평등화됨. 세계최고의 생활수준, 고도의 상업화․산업화․도시화 추세, 그리고

    사회경제적 역동화와 사회이동의 결과.

    ♠이에 관한 詳論: 황태연,『공자와 세계(1)』「공자의 지식철학(상)」, 387-455쪽.

    ○압도적 문명우위의 동아시아문명의 충격으로 일어난 ‘동아시아化’(Esat-Asianization)로

    서의 유럽의 改化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는 ‘유럽의 改化사상’

    □두 운동의 단계적 차이

    ○르네상스: 동아시아 물질문명과 지리상의 발견을 바탕으로 그리스철학의 부흥운동

    다. 이러한 중국관은 《국부론》의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II. v. 22 (367):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했던 나라들 중

    가장 부유한 나라”; I. viii. 24 (89): “오랫동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 즉 가장 비옥

    하고 가장 잘 문명화되고 가장 근면하고 가장 인구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2) Jun Seong Ho and James B. Lewis, “Wages, Rents, and Interest Rates in Southern Korea, 1700 to 1900”,

    232, in: Research in Economic H istory (Vol. 24, 2007).

    3) 참조: 차명수, “1800년경 잉글란드, 조선, 양자강하류지역의 총요소생산성 수준 비교”, 제52회 역사학대회 발표논

    문(2009년 5월), 11, 12.

    4) 달러는 1990년 국제Geary-Khamis달러다. 참조: Angus Maddison, The World Economy. H istorical Statistics

    (Paris: Development Center of the OECD, 2003), 180.

    5) Angus Maddison, “Historical Statistics for the World Economy: 1-2003 AD”. (http//www.ggdc.net-maddison.

    최종검색일: 2010. 10.1.). 매디슨은 1820년 중국․조선 1인당 GDP를 600달러로, 300여 년 동안 중국의 GDP를 600

    달러 대의 정체로 추산한 반면, 영국의 1인당 GDP는 1700년 1250달러, 1820년 1706달러로 추산한다, 또 그는

    1870년 중국의 1인당 GDP가 530달러로 추락했고, 1920-30년대에 550달러 대에서 등락을 반복한 반면, 조선은

    1870년 604달러, 1911년 777달러에 달했고, 일제강점 시기에도 계속 상승한 것으로 추산한다(1917년 1021달러,

    1938년 1459달러). 참조: Maddison, The World Economy. H istorical Statistics, 59,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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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몽주의: 동아문화와 공자철학의 수입과 패치워킹, 그리스철학의 퇴조. 유럽 수구파(페

    넬롱, 다니엘 디포, 몽테스키외 등)와 개화파(존 웹, 피에르 벨, 라이프니츠, 크리스천 볼

    프, 흄, 볼테르, 케네, 아담 스미스)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계몽주의 탄생

    -계몽주의적 유럽 혁신 → 세계경영의 정신적 토대 마련

    ○계몽주의의 본질은 한 마디로 ‘유럽화된 공맹철학’

    □19세기 유럽, 공자철학으로부터 이탈과 합리주의적 변질

    ○합리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화, 세계적 지배, 경험주의의 퇴조

    ○인간의 理性을 神의 弑害와 自然정복의 수단으로 삼은 서구 합리주의문명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는 ‘殺生과 죽음의 문명’

    ○합리적 지배와 테러독재, (순기능보다 역작용이 더 많은) 과학적 기술과 대량살상무기에

    기초한 전쟁과 정복으로 인간대학살과 자연파괴, 天道․地道․人道의 三道에 反한 오늘

    날의 서구문명의 성립, 20세기 지배

    ○제1․2차 세계대전, ‘과학적 인종주의’(니체와 히틀러)의 反인도적 天人共怒 만행, ‘과학

    적 사회주의’의 폭정과 몰락, 산업주의적 대량생산, 대량소비문명의 자연파괴와 전지구적

    환경위기 → 합리주의 철학의 퇴조와 무력화 → 합리적 허무주의․냉소주의․염세주

    의․회의주의(新니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

    ○미국과 유럽의 상대적 퇴조와 동아시아의 부상

    ○전세계적으로, ‘살생의 문명’으로부터 벗어날 ‘새로운 改化’의 요청

    □동아시아의 부활과 현주소

    ○17-18세기 중국의 오만한 洋夷論. 병자호란(1636-7) 이후 淸朝와 서구를 둘 다 오랑캐

    로 모는 조선의 ‘이중적 攘夷論’ → 문명패치워킹의 실패 → 동아시아 제국의 몰락과 수

    모.

    ○‘이중적 양이론’을 주창하며 조선을 ‘小華’(little true China)로 정립한 사대부의 ‘조선성

    리학이 근대화(17-18세기 신분해방과 계급해방)를 주창하는 민란세력의 ‘개벽사상’을 억

    누른 조선의 망국

    ○19․20세기 들어 동아시아문명을 능가한 서양기독교문명의 침공과 국치를 겪은 후, ‘서

    구화’(Westernization)로서 동아시아 改化

    ○21세기 들어 한․일․중 3국의 GDP, EU 27개국의 GDP를 능가, 이 격차는 계속 확대

    일로, 세계적 경제력의 동아로의 집중, 동아기업들의 세계진출과 세계경영 시대

    ※폴 베이로크에 의하면,6)

    1750년 당시 중국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2.8%를 차지, 단연 세계 1위의 지위를

    점함(영국 1.9%, 프랑스 4%).

    1800년, 중국은 세계 1위 국가였다. 중국은 33.3%, 영국, 4.3%, 프랑스 4.2%.

    1850년대 말까지도 중국이 세계 1위 자리 견지. 그러다가,

    1860년, 영국이 중국을 추월. 영국 19.9%, 중국 19.7%.

    1880년, 영국 22.9%, 미국 14.7%, 중국 12.5%

    1900년, 미국 23.6%, 영국 18.5%, 중국 8.6%.

    그러나 2010년, 중국은 150년 만에 제조업 생산의 세계 1위 자리를 다시 탈환. 중국

    6) Paul A. Bairoch, “International Industrialization Levels from 1750 to 1980”, 296, in: Journal of European

    Economic History 11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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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미국 19.4%.

    참고: IHS Global Insight(미국 경제조사기관) 2011년 자료. 조선일보(2011. 3. 15.) A18

    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경제와 기술의 비약에도 ‘東道西器’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無道東器’ 상황 초

    래 → 합리주의적․과학주의적으로 서구화된 동아시아, ‘정신 없는 문명’으로 전락

    -일상생활․사회․정치․사생관 등의 유교관습에도 불구, 정신상태와 정신과학(철학․

    인문․사회과학 등)은 이와 반대로 서방에 대한 추종과 열등의식에 빠져 동아시아의

    현실에 맞지 않는 서양 정신과학의 수입상으로 전락

    -‘서구화’를 통해 서양과 동일한 ‘살생의 문명’에 빠져든 유교문명의 위기 → 합리주의적

    인간위기(침략․내전․학살․탄압․인간성의 위기), 대량소비․환경위기

    -‘살생의 문명’으로 벗어날 ‘새로운 改化’의 요청

    ⑶ ‘殺生의 문명’을 종식시킬 대안적 ‘活生철학’으로서의 ‘공자주의’의 요청

    □공맹철학은 전세계적으로 ‘죽음과 殺生의 문명’을 종식시키고 ‘活生’을 문명의 본질적 메커

    니즘으로 회복시킬 ‘새로운 改化철학’으로서의 사상적 힘을 보유

    ○공맹철학은 18세기 서양을 기독교적 몽매로부터 개명시키는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잠재력을 입증했음

    ○또한 전 세계 철학사조 안에서, 인간사랑과 자연사랑, 지배와 덕성, 治國과 平天下(세계

    평화주의․四海형제주의)를 同根源的으로 정초한 철학은 孔孟哲學밖에 없음

    ○공맹철학은 神과 자연을 죽이는 오만한 인간우월주의로서의 ‘휴머니즘’에 대해 天道에

    근본을 두고 地道를 본받아 인간사랑과 자연사랑을 본질로 삼는 仁철학을 대립시키고,

    서구의 인식론적 합리론에 해석적 경험론을, 서구의 지성주의에 덕성주의를, 서양 哲人

    治者의 ‘지성의 지배’에 ‘덕성의 지배’, ‘민심의 지배’를 대립시키고 서양 경험론과 연대.

    □‘새로운 改化․活生철학’으로서의 ‘공자주의(Confucianism)’: 합리주의적․과학주의적 기획

    과 독단의 ‘殺生철학’에서 동감적 공감의 철학(philosophy of empathetic sympathy), 즉

    同苦同樂的의 ‘活生철학’으로

    ○새로운 세계철학으로서의 ‘공자주의(Confucianism)’의 定義: 패치워킹에 의해 ‘해석적 경

    험론’, ‘덕성주의 철학’, ‘養民경제론’(농본주의․상본주의․사회복지국가론) 등으로 切磋琢

    磨된 공자철학

    -‘儒敎’․‘儒學’ 용어의 낙후성과 구태의연한 이미지, 性理學的 도색과 굴절, 성리학적 남

    존여비 인상 때문에(전통적 공자는 본래의 공자가 아니라 성리학적으로 왜곡된 공자

    임), ‘儒敎’․‘儒學’은 동서의 온갖 합리주의적 ‘殺生철학’을 분쇄하고 약하고 부드럽고

    작은 것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살리려는 ‘活生철학’으로서의 ‘새로운 改化哲學’

    을 표현하기에 부적절. 새 이름으로 ‘공자주의(Confucianism)’ 개념의 정립

    -공맹 養民경제론의 서양 전파: 근대적 자유시장론과 사회복지국가론의 탄생

    ①공맹의 無爲之治와 養民論(적극적 양민론=사회복지론, 소극적 양민론 =자유시장론)

    및 이에 근거한 사마천의 ‘自然之驗’의 자유시장론과 兩本(農本․商本)主義과 그 실

    천으로서의 중국의 2000년 자유시장 전통

    → 프랑스와 케네의 중농주의 경제학,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론

    ②공맹의 적극적 養民論(사회복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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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官房學(Kameralismus)․養護國家論(Polzeistaat) → 사회복지국가론

    ♠참조: [부록] “공맹과 사마천의 경제철학과 養民경제론부록”

    ○서구문명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한 차별적 접근 필요

    -합리주의와의 치열한 대결과, 경험론과의 굳은 연대를 통해 공자주의의 절차탁마

    -‘공자주의’로 동서문명을 再改化해야

    □삶을 살리는 ‘새로운 改化문명’ 요청: 교류협력과 상부상조를 본질로 삼는 ‘活生문명’

    ○세계가 합리적․지성적 ‘殺生문명’이 거부되고 동고동락의 공감적 ‘活生문명’으로 움직이

    고 있고, 또한 적극적으로 이 방향으로 촉진해야

    ♠상세한 것은 참고: 황태연, 『공자와 세계(1)』 -「공자의 지식철학(상)」 (서울: 청계

    출판사, 2011), 25-70쪽

    II. 문명관과 리더십의 역사적 전환

    ⑴ 문명융합론․문명갈등론(지배․피지배관)의 오류와 대안적 문명론: ‘패치워크

    문명론’

    □문명간․국가간 제국주의적 침략․정복의 소멸, 권역적․국제적 교류협력의 필요성 고조

    ○19세기 서구 식민주의․제국주의는 문명융합론(세계주의)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노골적

    으로 지배문명과 피지배문명간의 문명갈등론을 내세우기도 함. 이에 맞서 각국의 민족

    세력은 저항적 형태의 문명갈등론을 표방하기도 하고(가령, 反帝투쟁론, 신채호의 ‘我와

    彼我의 투쟁’), 문명적 열등감에 빠진 후진국 서구주의자들은 문명융합론에 호응하기도

    함.

    ○세계각국과 제민족의 해방과 독립, 각문명권의 민족적․문명적 자의식의 성장 및 정체

    성 강화와 함께 세계도처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두 문명모델은 다 전세계적으로 배격됨

    □지금은 정복이 아니라, 국제적 공감과 교류협력이 필수적인 시대

    ○문명간 패치워크킹, 국가간 대등한 ‘非제국주의적’ 교류협력이 정복과 갈등을 밀어냄

    ○힘에 의한 정복․갈등을 배제하고 仁과 禮를 바탕으로 大國의 仁者다운 樂天的 ‘事小’

    (大國의 인류애적 小國존중)와 小國의 智者다운 畏天的 ‘事大’(小國의 지혜로운 大國존

    중 - 맹자)를 평화적 국제질서로 요청하는 ‘공자주의’는, 대국에 대한 소국의 종속이라

    는 단순한 ‘힘의 질서’에 바탕을 둔 서구의 현실주의적 국제정치관보다 우월함

    -『논어』의 ‘거룩한 仁’(‘博施於民而濟衆’), 克己復禮爲仁(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은 인을 실천하는 것), 진정한 四海同胞主義 등 상기 要

    -주권평등의 법적 허울로 위장된 서구의 국제정치론의 관점에서 보면, 소국은 결코 존

    중받을 주체가 아니라, ‘힘의 질서’에 따라 종속될 대상일 뿐. realism에 반대하는 서구

    의 이상주의 국제정치론(가령 제도주의)도 이 ‘힘의 질서’론 앞에서는 무기력

    □지금은 ‘대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 ‘모든 기업’의 ‘세계경영’과

    ‘세계진출’ 시대

    ○博施濟衆의 자연적 성정과 ‘平天下’의 理想에 따라 현지에서 人情을 베푸는 기업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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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공함

    ○제국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기업들은 아무리 낙후한 지역에서도 모조리 노사갈등에 휘말

    리고 추방당함

    ○각기업의 세계경영의 성공을 위해 공자주의적 덕목으로 재무장해야

    ⑵ 리더십의 변화

    □민주주의의 보편적 확산, 민주주의를 위협해온 지성주의적 哲人治國論의 퇴조

    ○1970년대 남유럽 군사독재의 붕괴(스페인․포루투갈․그리스), 1980년대 아시아와 중남

    미의 민주화(필리핀․한국․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1990년대 공산

    권의 해체, 심지어 2010년대 회교권의 민주혁명 바람

    ○서양에는 公論․관습․사회계약사상에 기초한 영미 민주정치론을 비웃는, ‘머리 좋은

    놈’이 지배권을 쥐고 행사하는 천재적 哲人治者論의 전통이 강력한 흐름을 형성

    -플라톤의 천재적 哲人治者論 → 아리스토텔레스의 智者지배론 → 데카르트․루소의 ‘철

    인입법자’ → 라이프니츠․칸트의 철인왕(Philosophenkönig) → 마르크스․레닌의 ‘철인

    혁명가’ → 니체․히틀러의 ‘철인총통’(Philosophenführer) → 스탈린의 ‘철인서기장’ →

    모택동의 ‘철인주석’ → 김일성의 ‘철인수령’

    □그러나 서구와 소․동구권에서 ‘철인치자’를 몰아내고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민간․군부 독

    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관철하는 혁명적 풍운.

    ○이 세계적 민주화 추세에 밀려 북한의 ‘仁德정치’, 중국의 ‘공자브랜드’ 등장

    -「모순론․실천론」을 ‘쓰시고’ 「모택동사상」을 ‘창시하신’ ‘철인主席’ → 禮와 和의

    ‘군자주석’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창시하신 ‘철인수령’ → ‘仁德’정치의 ‘군자수령’

    ○최근은 이슬람세계의 민주화 추세로 인해 생존전략 차원에서 중국․북한․월남 등 아시

    아 공산당 지배국가들의 이 ‘孔子化’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임

    -이는 ‘지성주의적 哲人치국론’을 버리고 ‘덕성주의적 君子治國론’으로 나아가는 것

    ⑶ Governance(국가관리와 기업경영)의 변화 요구

    □종래는 창의적 기획, 명석한 지성적 수직지도, 과감한 도전과 경략 등을 제일로 치는 천재

    적․제국주의적 ‘철인경영’의 시대

    ○‘창조적 파괴’ 정신으로 무장한 슘페터 형의 경영이념, ‘哲人경영’은 시원적 자본축적기

    에 적합

    ○그러나 자본축적이 일정정도 이루어진 대기업 주도 자본주의에서도 이런 철인경영을 고

    수하면, 조직의 상하관계는 즉각 좌우관계로 변해 財富와 기업이 해체되고 나라가 극심

    한 좌우갈등에 빠져듦

    -정의를 仁道(사람사랑과 자연사랑의 道義)에 앞세우는 극심한 좌우갈등과, 이로 인한

    리더십 붕괴와 자중지란은 국가와 기업의 쇠망의 제1원인임

    □‘덕성주의 리더십(virtue-principled leadership)’의 중요성

    ○‘상하화합관계가 좌우갈등관계로 둔갑하는 것’을 막고 지도부의 실질적 리더십과 통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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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성(governability)을 보존하고 국가와 기업의 내실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지도부가 ‘창

    의적 기획’과 ‘명석한 수직지도’ 위주의 ‘지성주의 리더십(intellectualistic leadership)’을

    직원과 현장간부 차원으로 下放하는 한편, ‘仁政’을 펴 지도부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덕

    성주의 리더십’을 구축해야

    -국가는 養民과 敎民의 仁政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차원에서 복지․행복지원 제도를

    국가존립의 제일 목적으로 삼아 계속 강화해 나가야

    ※한국의 仁政(복지)의 미비의 한 예: 대학에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는 나라는 OECD

    국가에서 한국․영미․일본뿐이고, 더구나 대학원에서 학생들이 학비를 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또한 한국의 장학제도는 英美에 비해 형편없음(특히 대학원).

    ○‘작은 정의(小義)’에 기초한 20세기 ‘계급투쟁적’ 복지국가(‘계급복지국가’)가 아니라, ‘큰

    정의(大義)’에 기초한 21세기 ‘국민화합적’ 복지국가(‘국민복지국가’) 지향

    -단순히 물질적 복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행복’도 북돋우는 새로운 복지

    국가(‘복지국가’→‘행복국가’, welfare state → wellbeing state)

    -미래의 국가공동체는 양육강식․빈익빈부익부의 ‘살벌한 계급사회, 골병든 富强國家’가

    아니라 “따뜻한 연대사회, 행복한 복지국가”이어야

    ○국가와 기업의 리더는 殺身成仁의 희생정신과 ‘博施濟衆’ 이념으로 도덕재무장을 하고

    全직원들을 보살펴야

    -솔선수범적․살신성인적 無限德治의 ‘덕성주의적 리더십’: 공무원과 직원은 신중히 가

    려 뽑고, 평생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면 뽑지 말고, 한번 뽑은 사람은 해고 없이 평생

    책임지고, 퇴직 이후 죽을 때까지도, 나아가 대대손손 同苦同樂한다는 참된 ‘사람사랑’

    의 정신으로 사람을 관리, 보호하는 무한사랑과 무한책임의 ‘한식구경영’으로 지도부의

    존엄한 리더십 확보

    ※“仁은 정의의 근본이자 順和의 본체니, 仁愛할 수 있는 자는 존엄하다(仁者 義之本

    也 順之體也 得之者尊)”. 『禮記』「禮運」

    ※“요순의 도도 仁政을 쓰지 않았다면 천하를 平治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런 고로

    仁者만이 마땅히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不仁하면서 高位에 있으면 이것

    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악을 퍼트리는 짓이다.(堯舜之道 不以仁政 不能平治天下. ...

    是以惟仁者宜在高位. 不仁而在高位 是播其惡於衆也.)” 『孟子』「離婁上」(7-1).

    -최고지도부(국가지보자와 대기업CEO)는 ‘창의적 기획’ 기능과 명석한 ‘수직지도’의 ‘지

    성주의 리더십’을 현장 간부와 일반직원에게 위임하고 기업지도부가 직원양성과 보호

    에 매진. 이러는 가운데 정부와 기업지도부의 존엄성과 시민․공직자․직원들의 충성

    심은 저절로 확보되고, ‘작은 정의’를 따지는 좌우관계는 ‘仁(사람사랑)’ 속으로 포섭되

    고, ‘정의’를 仁에 앞세우는 不仁한 左右갈등은 갈수록 퇴조함.

    ※지도부의 無限仁政의 덕성주의적 리더십과 아랫사람들의 충성간의 교감으로 上下화

    합: ‘仁者無敵’, 쟁의 없는 ‘한식구 경영’이 가능

    ※오늘날은 창의적 기획을 잘 세우고 개인 몫의 ‘작은 정의’를 세세하게 잘 따지는 ‘머

    리 좋은’ 知者가 아니라, 전체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시정하는 ‘큰 정의’를 추구하며

    통크게 잘 베푸는 ‘맘씨 좋은’ 仁者에게 기업지도부를 맡겨야. 正義만 알고 仁道를

    모르는 ‘不仁者’는 敵을 양산, 지도자 지위를 잃고 기업을 망칠 것임

    □지성주의적 ‘哲人경영’에서 덕성주의적 ‘君子경영(=德治경영)’으로, ‘철인CEO’에서 ‘군자

    CEO’로 경영형태의 전환, ‘小人기업’에서 ‘大人기업’으로의 기업이념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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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이래 서양의 합리주의 철학은 哲人治國論에 입각하여 천재적 哲人에 의한 ‘지성

    의 지배(智治)’를 주장하여 모든 상하관계를 도처에서 낯선 指導와 이에 대한 不服의 좌

    우갈등관계로 변질시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를 초래했음. 반면, 공자는 殺身成仁을

    마다하지 않는 군자에 의한 ‘덕성의 지배(德治)’를 주장. ‘智治’는 상하관계의 연대성과

    공익성을 파괴하고 반발과 저항을 초래하나, ‘德治’는 연대성과 공익성을 증진시키고 자

    발적 순종을 유도함.

    ○오늘날 ‘훌륭한 CEO’란 창의적 기획과 명석한 지성적 수직지도 기능을 현장간부와 직

    원에게 下放하고 ‘사람사랑’을 실천하여 조직내외의 공감과 소통의 통로를 타개하고 仁

    和를 다지고 衆論을 통합함으로써 기업과 자본을 지키고 늘리는 ‘덕스런 군자CEO’임

    ○‘군자CEO’는 기업을 ‘이익사회’로부터 운명공동체로서의 인정이 넘치는 ‘가족사회’로 고

    양시켜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大道와 大德을 닦아야

    ○‘군자CEO’란 어려운 시기에는 솔선수범하여 ‘貧而樂道’할(가난하지만 道義를 즐길) 줄

    알고, 호시절에도 ‘富而好禮’할 수 있는(부유하면서도 예법을 좋아하는) CEO. 즉, 어려

    운 시기에도 仁慈한 덕치의 道義를 견지․구현하고, 부유한 때에도 무례․무법하지 않

    고 ‘克己復禮’하여 기업 전체를 仁和로 다지는 CEO.

    ※『論語』「顔淵」편에서 공자: “극기복례는 ‘仁의 실천’이니, 하루 극기복례하면 천하

    가 仁으로 돌아온다. 인의 실천이 자기로부터 말미암지, 남으로부터 말미암겠느냐? 그

    러므로 예가 아니면 보지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

    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

    哉? ...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그러나 ‘小人CEO’는 반대로 가난한 때 무도하고, 부유한 때는 예법을 어기기 쉬움

    -공자는 “가난하면서도 원망이 없는 것은 어려우나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는 것은 쉽

    다(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고 생각.『論語』「憲問」(14-10) 따라서 “부유하면서도 교

    만함이 없고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는 것”은 “괜찮은 행실”일지라도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貧而樂道 富而好禮)만 못한 것이다”. (司馬

    遷,『史記列傳(I)』「中尼弟子列傳」;『論語』「學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님

    □반면, 현장간부와 직원은 哲人化해야

    ○현장간부와 직원은 세상을 깜짝 놀랠 ‘창의적 기획’, ‘과감한 실행’, 지도부에 대한 ‘지혜

    로운 敬畏’를 할 줄 아는 명석한 ‘哲人간부’와 ‘哲人직원’으로 육성해야

    ○현장간부와 직원은 이제 지시대로 움직이지는 ‘로봇’이어서는 아니 되고, ‘지혜롭게 생각

    하고 역동적으로 행동하는 哲人’이어야

    □시대의 요구: ‘위대한 기업(Great Business)’

    ○시대는 이윤에만 밝은 ‘小人기업’이 아니라 道義에도 밝은 ‘大人기업’을, 몸집만 큰 ‘대기

    업(Big Business)’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을 요청

    -‘小人기업’은 이익에 매몰되는 반면, ‘대인기업’은 商道․人道 등 도의도 중시함

    -특히 대기업집단은 국가처럼 도의를 앞세워야만 영구적일 수 있다. 국가가 기업보다

    오래가는 것은 국가가 바로 仁愛, 화목, 자유, 평등, 정의, 질서, 인도, 약자보호 등 도

    의의 수호를 존재이유로 삼기 때문. 기업은 경제조직이므로 결코 국가와 같은 道義조

    직일 수 없지만,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집단’은 국가처럼 영구적 존속을 추구하려면

    가급적 국가를 본받아야 한다. 오늘날 국가는 세일즈외교 등 어느 정도 대기업집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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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럼 행동해야 하는 반면, 웬만한 국가의 예산과 활동범위를 능가하는 매출고를 가진 대

    기업집단은 어느 정도 국가처럼 행동해야. 그룹집단에 속한 대기업은 ‘이익’과 ‘道義’를

    동시에 중시하는 ‘대인기업’으로 거듭나야

    ※공자: “대인군자는 도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論語》〈里仁〉(4-16) [喩: 밝을 유]

    ○국가가 국영․공영기업의 오너이자 세일즈외교의 주체이기도 한에서 일종의 ‘기업’으로

    기능해야 하는 반면, 全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세계경영을 수행하는 대기업집단은

    일종의 - 비공식적 - 국가로 활동하고 있음. 따라서 국민경제를 걸머진 대기업CEO는

    ‘公人’으로 자임하고 그렇게 처신해야

    -지금까지 중소기업과 일반 대기업을 위해 ‘철인경영’의 道를 가르치는 ‘小人경영학’은

    있었지만, 재정 규모 면에서 웬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거대한 ‘대기업집단’을 위해 위와

    같은 ‘군자경영’의 道를 가르치는 ‘大人경영학’은 없었음.

    -‘大人기업’은 단순히 몸집만 큰 대기업이 아니라 세계적 네트워크 가진 대기업의 존재

    기반인 이 지구적 문제에 도의적으로 민감하고 전 세계의 이웃과 기쁨을 ‘나누고’ 늘

    고객 및 협력사와의 ‘상생’을 중심에 놓는 군자경영=德治경영=윤리경영을 실천하는 ‘위

    대한 기업’임

    ⑷정의 개념의 패러다임 전환

    □국가와 기업의 리더십에서 불타는 의제는 늘 技藝的 역할과 富貴를 분배하는 道로서의

    ‘正義’였다.

    ○그러나 각 정파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는 정의를 실현한 적이 없었고, 기업은 한시도

    노사분규에서 헤어난 적이 없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각 진영이 선택하는 정의의 개념이 상이하고 자의적일 뿐만 아니라, 분쟁하는

    쌍방이 같은 정의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그 판단기준이 상이하고, 역할과 부귀를 분배하는

    정의들은 모두 다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정당화하고 자의적 관점에 따라 소위 ‘정의

    의 투쟁’을 부추기는 ‘작은 정의들’(小義)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정의’ 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仁愛의 분배’로서의 ‘큰 정의’(大義)를

    몰각.

    □‘小義(작은 정의)’로서의 통상적 正義의 개념

    ○서양 철학은 ‘정의’를 ‘역할과 富貴의 분배의 적절성’에 국한시켰음.

    ○네 가지 正義의 개념

    ①분업적 효율성으로서의 정의(효율성에 입각한 기예적 역할의 분배)

    각자의 역할을 적합하게(천성과 능력에 따라 효율적으로) 분담하고 상호간섭 없이(제

    일에 충실하게) 제몫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 이 정의론의 초점은 분업적 역할

    수행의 ‘효율성’에 있음. ‘君君․臣臣․父父․夫夫․婦婦․子子’論으로 극명된 공자의

    ‘藝之分(技藝의 분업)’으로서의 정의개념과, 머리․가슴․배의 신체적 모델에 따라 유

    기체적으로 국가의 인간집단을 治者․군인수호자집단․商工人대중으로 분할한 플라톤

    의 『국가론』의 분업적 정의론은 역할의 바른 분담과 관련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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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적 역할의 분배’로서의 정의에 대한 공자의 언급: “정의는 기예의 분배이다(義

    者 藝之分)”.『禮記』「禮運」. 한편,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

    다’라고 답했다”(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論語』「顔

    淵」(12-11). 또 가족 안에서의 바른 역할분담: “집안사람들에는 엄군이 있을 따름

    이니 부모를 이른다.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

    답고, 지아비는 지아비답고, 지어미는 지어미다우면 家道가 바르고 집을 바르게 하

    면 천하가 안정된다”(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也.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 而

    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易經』「風火家人 彖傳」

    ※분업으로 통용되는 정의(‘通義’). 孟子: “百工(온갖 공인들)의 일은 진실로 농사지으

    면서 할 수 없다. 그러면 혼자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농사지으면서 할 수 있겠는

    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혹자는 勞心하고 혹

    자는 勞力하는 것이고, 勞心者는 남을 다스리고, 勞力者는 남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

    이다. 남에 의해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이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 의해 먹여

    지는 것이 천하의 통용되는 정의다”(曰 百工之事固不可耕且爲也. 然則治天下獨可耕

    且爲與?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孟子』「滕文公上」(5-4)

    ②응보성(desert)으로서의 정의(공과와 도덕적 덕성에 상응한 富貴의 분배)

    이는 ▲공과에 상응한 분배와, ▲덕성(virtue)에 상응한 분배로 나뉨. 전자는 ‘획일적

    평등’과 대립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례적(proportional) 분배로서의 정의이고, 후자

    는 윤리도덕적 분배로서의 정의임. 공자의 ‘以直報怨․以德報德’론과 아리스토텔레스

    의 분배적 정의론은 - ‘역할의 분배’가 아니라 - ‘富․貴(벼슬․영예)의 분배’와 관련

    된 것. 전체주의자․집단주의자․공산주의자 및,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등과

    같은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는 정의론을 이 ‘응보성으로서의 정의’에 함몰시킴

    ※“仁은 천하의 志表이고, 정의는 천하의 制裁고, 응보는 천하의 利다. 덕을 덕으로

    보답하는 것은 백성에게 勸하는 바가 있고, 怨을 怨으로 갚는 것[벌주는 것]은 백

    성에게 징계하는 바가 있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 것은 자기를 보신하는 仁이고, 덕

    을 원수로 갚는 자들은 사형에 처할 백성이다(子言之 仁者 天下之表也. 義者 天下

    之制也. 報者 天下之利也. 子曰 以德報德 則民有所勸, 以怨報怨 則民有所懲. 子曰

    以德報怨 則寬身之仁也. 以怨報德 則刑戮之民也)”.『禮記』「表記」

    ※“혹자가 원수를 덕으로 갚으면 어떠하냐고 물으니, 공자는 그러면 덕은 무엇으로

    갚을 것이요? 라고 반문하고, 원수는 법대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

    해주었다.(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論語』

    「憲問」(14-34)

    ③)절차적 공정성(fairness)으로서의 정의(기회의 균등분배)

    이 정의개념은 정의의 효율성․응보성․도덕성에 대해 일정한 공정절차(기회균등)

    로 획득한 ‘권리’를 앞세우고, 이 권리에 따라 역할과 부귀를 분배하고 정당화함. 칸

    트와 롤스(John Rawls)를 위시한 자유주의자들과 시장주의자․개인주의자들은 정

    의론을 이 ‘공정성’ 개념에 함몰시킴

    ④상호성으로서의 정의(재산안전의 상호주의적 보장)

    이 정의 개념은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가 전개한 것으로서, ‘재산’의 정당한 權

    源 및 안전을 상호적으로 보장하는 관행(convention)을 가리킨다. 아담 스미스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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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공정한 획득․교환절차로 얻어진 제 몫에 대한 권리를 서

    로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는 ‘공정한 상호주의(faire mutualism)’임. 이 점에서 ‘상호성

    으로서의 정의’는 ‘공정성으로서의 정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음

    ○이 네 가지 정의 개념의 한계

    -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 논리에 따른 분배와 보장으로서의 이 정의들은 모두

    다 개개인의 정당한 몫을 챙기고 지키는 이른바 ‘작은 정의’(小義). 말하자면 ‘밥그릇싸

    움’.

    -이 ‘小義’에만 사로잡히면, 사회전체의 불균형․불평등이라는 ‘큰 不義’가 바로 이 ‘小義

    (작은 정의)’에 의해 야기되고 정당화되어, 이 ‘불의의 시정’ 의제를 시야에서 놓치게

    됨. 그리하여 인간적 연대감정에 입각한 ‘仁愛(연대)의 적절한 분배(仁之節)’로서의 ‘大

    義’(큰 정의)를 몰각하기 때문.

    ○西洋정의론에는 역할과 富貴(재산․영예)를 나누는 小義는 있지만, 仁愛를 나누는

    ‘大義’는 없다.

    □공자의 大義

    ○공자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칸트․롤스․아담 스미스 등 서양철학자들과 달리

    ‘藝之分’과 ‘以德報德’의 ‘小義’를 넘어 ‘仁之節(仁의 분절)’로서의 ‘大義’를 논함.

    -공자는 정의를 ‘기예적 역할의 분배’와 ‘仁의 分節’로 구별: “정의는 기예의 분배이고,

    仁의 분절이다. ... 그리고 仁은 정의의 근본이다(義者 藝之分 仁之節也. ... 仁者 義之本

    也)”라고 말한다.『禮記』「禮運」.

    ※‘부귀의 분배’는 궁극적으로 ‘기예의 분배’에 종속됨. 따라서 공자의 ‘기예의 분배’는

    ‘부귀의 분배’도 포함함. 아래서도 ‘藝之分’은 이 확장된 의미로 이해해야

    -仁에 大小가 있듯이 正義에도 大․小가 있다: “仁에 서너 등급이 있다면, 正義에는 長

    義․短義와 小義․大義가 있다(子言之 仁有數 義有長短小大)”.(禮記』「表記」).

    ○技藝的 역할과 富貴를 각 개인에게 분배하고 보장하는 微視的 正義(효율성, 응보성, 공

    정성, 상호성)인 ‘기예의 분배’는 ‘小義’인 반면, 國家와 전체 공동체 차원에서 불균형과

    불평등의 고통을 측은히 여겨 仁을 만인에게 보편적 평등원칙에 따라 그리고 원근․처

    지의 구별에 따라 알맞게 분절하는 巨視的 正義인 ‘仁之節’은 ‘大義’임.

    □서양의 ‘정의주의(小義主義)’의 본질과 그 파탄

    ○‘정의주의’(justicism)란?: 仁’(사람사랑․박애․범애 + 자연사랑)’, 즉 ‘인애(benevolence)’

    의 적절한 분배로서의 ‘大義’를 몰각하고 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으로서의 ‘작

    은 정의’에만 집착하는 협소한 정의관.

    -정의주의 관점에서는 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에 입각하여 역할과 富貴를 나

    누는 미시적 의미의 ‘작은 정의’를 국가의 유일한 또는 가장 중요한 존립이유로 봄. 가

    령: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다.”(유시민) 그러나 제

    대로 된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藝之分의 小義國家)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에 인애를 나누는 국가’(仁之節의 大義國家)이어야 할 것이다.

    -‘技藝의 분배’로서의 ‘작은 정의’는 개인들간 또는 집단들․계급들간의 ‘밥그릇싸움’과

    관련된 문제인 반면, ‘仁의 분절’로서의 ‘큰 정의’(大義)는 먼저 ‘공동체의 연대적 존립

    과 영속’을 지향한다.

    ○‘작은 정의주의(소의주의)’의 문제점

  • - 12 -

    -가령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공맹의 공감도덕론을 수용했으나, 仁․義의

    순서를 義․仁순서로 뒤바꿈.

    -아담 스미스는 인애(benevolence)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치장’으로 간주한 반면, 정의를 사회존립의 필수조건으로 규정.

    ※스미스의 ‘공정한 상호주의’로 얻어지고 지켜지는 ‘제 몫’이란 - 천부적 또는 후천적

    재능으로 획득한 몫이든,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독식한 몫이든, 거래나 계약에 의해

    얻어진 몫이든, 제비뽑기에 의해 얻어진 몫이든, 길에서 습득한, 또는 정복․침략을

    통해 얻어진 몫이든 - 서로에게 재산상의 피해를 주지 않는 공정한 상호주의에 따

    라 그 안전이 보장되는 정당한 권리임

    ※따라서 스미스의 이 정의론은 자식양육을 위한 부모의 친애적 자기희생, 자살방조죄,

    애국적 병역의무, 생명보험, 가난구제를 위해 고소득자에게 부과되는 (스미스도 스스

    로 인정한) 누진세제 등을 설명할 수 없음. 가령 ‘自殺’ 자체는 남의 몫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살을 방관하는’ 행위는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을 보장하는

    스미스의 상호주의적 정의개념을 위배하지 않음. 따라서 아담 스미스의 정의론에 따

    를 때, 공동체의 존속에 필수불가결한 자살방조죄 법규는 不要不急의 ‘치장’에 불과

    한 것. 또 양육의무와, 병역의무 및 생명보험은 부모와 죽는 당사자에게 그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 일방적 仁愛행위. 사회의 존립기반인 이 필수불가결한 仁愛 행위들은

    스미스의 상호주의적 정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음.

    ※최소한의 사회존립을 가능케 하는 양육의무, 병역의무, 자살방조죄, 누진세와 소득재

    분배, 생명보험 등은 정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仁道’에서 나온 것으로,

    사회존립을 위해서 정의보다 더 근원적이고 더 필수불가결한 것.

    ♠아담 스미스가 공자의 도덕철학을 수용했으나 仁․義의 우선순위를 전도시킨 것에

    대한 비판적 상론은 참고: 황태연,『공자와 세계(2)』「공자의 지식철학(중)」,

    890-907쪽

    -칸트는 공정한 절차로 얻어진 ‘권리’를 도덕적 善 또는 덕성에 앞세움. 이 ‘공정성으로

    서의 정의’는 그 권리의 내용이 무엇이든(자질과 역할이 마땅하든 마땅하지 않든, 권리

    주체가 선하든 악하든, 그 권리가 필연의 결실이든 우연한 로또의 결과든) 획득 절차

    가 공정하면 ‘정당한’ 권리임.

    ○종합적 평가: ‘인애의 적절한 분배’(仁之節)로서의 ‘大義’를 배제하는 스미스와 칸트의

    ‘상호성’과‘공정성’으로서의 정의 개념에 기초한 ‘작은 정의’론(=정의주의)은 시장주의적

    승자독식(winner-take-all), 일등제일주의(일등보너스)적 능력주의(meritocracy), 사행성

    게임의 우연적 요행주의, 선천적․후천적 우연 등에 의해 야기되는 불평등한 분배를 정

    당화하고 심화시킴. 시장경쟁에서 얻은 승자독식의 수익이든, 흥미위주의 인기경쟁을 본

    질로 한 ‘흥행게임’에서 얻은 스타들의 인기몰이 수익이든, 로또나 제비뽑기 같은 순수

    한 사행성게임에서 얻은 수익이든 절차가 공정하면 정당한 권리로 보기 때문.

    -승자독식을 초래하고 정당화하는 시장의 ‘능력주의’는 응보적 보상성과 정면 배치됨.

    시장승자와 석패자의 능력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나 이에 대한 보상은 ‘승자의 獨

    食’과 ‘2등 이하의 敗者들의 몰락’이라는 天地差異로 벌어짐. 따라서 ‘시장능력주의’는

    기실 ‘일등제일주의’로서 무수한 ‘2등 이하 패자들’의 ‘능력’을 전면 부정․파괴하는 ‘反

    능력주의’임

    -小義(‘작은 정의’)의 한계에 대한 흄의 지적: 정의는 악한 부자와 선한 빈자간의 권리

    다툼에서 악한 부자의 권리획득 절차가 공정하다면 부자의 손을 들어 준다.

  • - 13 -

    -따라서 안전보장의 상호성과 절차적 공정성으로서의 정의 개념에 입각할 때, 로또 1등

    당첨금에 붙이는 높은 불로소득세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3200만불 연봉에

    붙이는 고율의 누진세도, 그리고 어떤 형태의 누진세나 부유세도 다 不義다.

    -따라서 스미스와 칸트의 이 정의론은 흥행에서 생긴 능력주의 승자독식의 고소득과 선

    천적․후천적 우연․로또․도박에서 생긴 불로소득, 심지어 전쟁․정복․先占․습득 등

    으로 얻은 꺼림칙한 소득까지도 모조리 정당화하는 ‘우익정의론’의 모태임

    □좌익 정의주의 문제

    ○스미스와 칸트의 ‘작은 정의’ 논리는 불평등을 야기․심화․정당화하고 공동체적 연대

    (仁)를 해침

    ○불평등에 처한 사람들은 이 정의론에 대한 반발로 이 공동체적 仁의 결손을 ‘작은 정의

    론’(정의주의)의 또 다른 정의 개념, 즉 ‘응보성으로서의 정의’ 개념으로 공격

    -아리스토텔레스의 ‘응보적 정의’ 개념을 끌어와 저 ‘상호성과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를

    비판 → 노동자계급의 생산적 역할 對 부르주아의 비생산적 기능(억압․착취․수탈 기

    능)을 대비시킴 → 이 세상 모든 것은 노동자의 땀으로 만들어진 반면, 부자의 否는

    불로소득 또는 사기․절취물 → 좌익정의론의 탄생

    -19-20세기에 걸친 격렬한 좌우대결 속에서 노동의 생산적 응보성에 입각한 좌익정의

    론은 시장주의적 우익정의론의 헤게모니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감

    ○左右정의론의 역사적 대결 속에서 계급투쟁, 혁명내전과 혁명독재, 인명손실, 세계적 냉

    전, 민족분단

    -그러나 좌익정의론도 ‘小義’의 ‘정의주의’이기는 마찬가지. 이 좌익정의주의적 小義論에

    바친 인류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조금도 시정되지 않고 되레 순수한 능력주

    의적․도덕주의적 불평등을 새롭게 정당화해주고 계급갈등만 조장하고 심화시킴

    ㉮공산권: 공산국가의 도덕적 성분차별과 능력주의․일등제일주의(정치적․관료적․

    테크노크라트적) 능력차별에 입각한 신분적․계급적 불평등사회 및 ‘사회주의왕조’

    의 탄생.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전대미문의 - 40등급 이상의 성분분석에 입각한 -

    ‘골품제국가’, 계급분업적․신분적 불평등을 공고화한 ‘사회주의적 계급국가’ 수립

    ㉯서방세계: 공산주의자들과 달리 서구 좌익들은 ‘사회복지국가’를 건설했으나, 이것도

    불평등한 계급국가를 공고화하기는 마찬가지. 서구좌익정당들의 복지국가는, 노동하

    지 않는 비생산적 부자의 권리를 ‘불의’로, 노동하는 생산적 빈자의 재분배요구를

    ‘정의’로 규정하고 부자의 부를 뺏어 빈자에게 나눠주는 小義的 소득재분배론에 입

    각한 ‘계급적 복지국가(Class Welfare State)’. 계급복지(Class Welfare)는 본질적으

    로 국민화합과 배치되는 전반적 계급투쟁(Class Warfare)으로 귀착됨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보호받는 빈자계급과 국가로부터 적대당하고 버림받은

    부자계급이라는 두 계급으로 구성된 새로운 계급사회의 탄생 → 유례 없는

    ‘Class Society의 공식화’(그러나 근대국가는 ‘법 앞의 평등’ 원리에 따라 원래 계

    급의 公式認知를 거부하는 것이 원칙임)

    →左右․貧富 양측에서 복지국가의 Legitimacy Crisis(여전히 빈부차별의 상존에

    대한 빈자 쪽의 불만, 부자는 버림받았다는 부자 쪽의 불만), 의회와 정부의 권위

    추락, 院外‘떼거리정치’ → 사회적 모럴해저드, 자본유출․고용축소 → 복지예산증

    가에도 稅收감소 → 천문학적 재정적자 등 Ungovernability 상황

    →계급복지국가의 위기

  • - 14 -

    □서양의 좌우 ‘정의주의’의 전반적 파탄

    ○이것은 분업적 효율성, 공과의 응보성, 시장적 공정성, 재산안전의 상호보장성이라는 ‘小

    義’로 야기되고 증폭되고 정당화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끼니를 걱정하던’ 노동자계

    급의 단순한 경제철학적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수많은 유의미한 사회적 행위들을 배제하

    고 생산적 ‘노동’을 ‘응보성’ 판단의 기준으로 특화한 또 다른 응보적 ‘小義’ 개념으로 해

    결하려는 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임을 드러내줌.

    ○생산적 ‘노동’을 응보성의 판단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은 정치․(목숨을 바치는) 국방활동

    과 용기, 그리고 교육․지식․학문․종교․문화․예술․봉사 활동이나 ‘투자자본’ 또는

    ‘창의성’, 심지어 오락․엔터테인먼트 등 온갖 경제적 또는 경제외적 요소들이 財富의

    산출․보존․관리․수호․확대에 ‘노동’만큼이나 많이 기여하는데도 이것들을 다 배제.

    이 때문에 ‘노동’을 응보성 기준으로 유일시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자의적

    이고 때 지난 것. 이 ‘자의성’은 경제 범위가 ‘의식주문제’를 넘어 확대될수록, 그리고 창

    의적 지식산업․문화산업․예술․패션․흥행산업 등이 경제적 중심역할을 차지할수록,

    그리하여 노동가치설이 퇴조할수록 더욱 극화될 것임.

    □최근 좌우 정의론의 미국에서의 재탕

    ○John Rawls의 정의주의적․칸트주의적 정의론: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

    -신자유주의자들․개인주의자들은 좌익의 응보적 정의에 대항하여 ‘공정성으로서의 정

    의’만을 극도로 특화시킴. 그렇다면 불로소득에 대한 50%에 가까운 누진세는 부당함

    -신자유주의자들(가령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과 롤스에 의하면, 시장승자의 일등제일주

    의적․천문학적 승패차별에 따른 高이윤 독식(敗者 시절의 손해를 보상하려는 과도한

    일등보너스), 각종 천문학적 흥행소득, 스타들의 인기몰이 소득, 로또당첨금, 우연으로

    얻은 소득 등에 대한 누진세 부과와 소득재분배는 다 不義. 위기의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우익정의론의 계급투쟁적 보복공격, 복지국가 해체작업

    -다만, 롤스는 신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소득재분배를 통한 약자 지원을 인정함. 그러나

    그도 ‘불로소득’ 개념을 인정치 않고, 단지 사회로 들어가기 직전의 가상적 출발시점에

    서 누구도 자기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지위에 있을지 모르는 것을 가정하는 ‘무지

    의 베일(veil of ignorance)’ 아래 각자가 사회로 들어가면 약자로 전락할 동일한 확률

    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약자를 위한 소득재분배에 대한 동의의 불가피성을 설명.

    ※그러나 이 ‘veil of ignorance’ 논리는 부자가 될 가상적 행운에 대한 기대가 약자가

    될 가상적 위험에 대한 염려를 능가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 설득력 없음.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론에 공동체주의자들의 헛된 저항: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응보적

    정의(“Justice as Desert”)

    -이것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Michael Sandel,『정의란 무엇인가?』의 ‘정의’ 개념

    -그러나 이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정의론도 과거의 좌익정의론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

    일등제일주의(과도한 일등보너스), 능력주의적 승자독식 등을 슬그머니 정당화하고 이

    에 따른 불평등을 야기, 심화, 공고화함

    -샌델도 장니하듯이 선천적 이유든, 후천적 이유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력자의 가

    난은 도덕적 관점에서 ‘자업자득’으로, 부자의 富는 우월한 능력의 정의로운 결실로 정

    당화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의 철갑을 두름

  • - 15 -

    ※그러나 샌델의 말에 따르더라도 능력도 어떤 능력이든(타고난 능력이든, 노력을 통

    한 능력이든) 이 능력을 받을 만큼 윤리적으로 ‘마땅한’, ‘그럴 만한’ 원천적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없음

    ※혈통신분제가 폐지된 오늘날의 민주국가에서 누구도 천성적 능력을 원래 ‘도덕적으

    로 받을 만하다’고 말할 수 없고, 능력이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노력을 가능케 하는 가정형편과 천성적 EQ를 ‘나면서부터 도덕적으로 받을 만한’ 혈

    통적 덕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

    ○결국, 롤스와 샌델의 정의주의는 둘 다 현행 복지제도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

    -역으로, 두 정의론은 미국의 시장사회․흥행사회가 초래한 천문학적․세계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심화시키는 역할을 떠맡고 있음(“상류층의 富는 그들의 뛰어나 능력과 피

    땀어린 노력의 산물이고, 서민의 貧困은 그들의 무능력과 게으름의 탓으로서 소위 ‘自

    業自得’이다”)

    □비판의 종합: 仁의 바른 분배로서의 ‘큰 정의’(大義)를 몰각하는 정의주의적 정의론(‘小義

    主義’)으로는 불평등문제를 완화하기는커녕, 악화시키고 사회적 좌우갈등을 부추겨 필수불

    가결한 사회적․정치적 리더십마저 해체시킴.

    □따라서 공자는 仁을 義에 앞세움

    ①仁과 義의 목적론적 선후관계: 仁은 큰 正義의 본체이고, 따라서 仁은 ‘본질적으로’ 正義

    에 우선한다.

    -공맹의 仁․義․禮․智 4덕의 배열순서. 仁이 먼저 있어야 사람들이 서로를 좋아하고

    동질감과 연대의식 속에서 모여 사는 사회가 가능하고, 사회가 가능해야 ‘작은 정의’를

    따질 의의가 있음.

    -“정의에는 기예적 역할의 분배가 있고, 仁의 분절이 있다. ... 그리고 仁은 (‘仁의 분

    절’로서의) 정의의 근본이다(義者 藝之分 仁之節也. ... 仁者 義之本也)”.『禮記』「禮

    運」.

    -小義에 대한 仁의 先次性과 그 적절한 분배에 주목하는 것이 ‘大義’.

    -禮와 智는 仁․義 구현을 위한 수단적 덕목. 또 義는 仁의 구체적 구현방도. 결국, 궁

    극의 道와 德은 仁道요, 仁德임.

    ※“道란 결국 두 가지이니, 仁과 不仁일 따름이다(孔子曰 道二 仁與不仁而已矣)”.『孟

    子』「滕文公上」(5-3).

    -공자의 ‘大義’(‘큰 정의’) 개념: 공자에 의하면, “仁에는 여러 등급이 있고, 정의에는 長

    義와 短義, 小義와 大義가 있다. 심중이 측은한 것은 뭇사람을 사랑하는 仁이고, 법에

    따라서 억지로 仁을 행하는 것은 仁을 밖에서 취해 쓰는 것이다.”(子言之 仁有數 義有

    長短小大”(子言之 仁有數 義有長短小大. 中心憯怛(참달) 愛人之仁也, 率法而强之 資仁

    者也)『禮記』「表記」.

    ※‘短仁’은 짧은 기간이나 一代에 한정된 근시안적 仁, ‘小仁’은 가족사랑(친애)과 利

    仁․强仁 등의 협애한 인. ‘長仁’은 먼 훗날 다음 세대까지 고려하는 ‘멀리 보는 仁’.

    ‘大仁’은 천하의 인간사랑과 자연사랑으로까지 뻗어 가는 ‘광대무변의 仁’.

    ※‘短義’는 장기적 시간이나 다음 세대를 고려치 않고 단기간에 한정된 근시안적 정의

    인 반면, ‘長義’는 가령 환경적 정의와 같이 먼 훗날의 후세의 생존과 번영도 고려하

    는 ‘멀리 보는 정의’.

  • - 16 -

    ※‘小義’는 상술했듯이 ‘藝之分’(君君․臣臣 ...), ‘以德報德’, ‘기회균등성’, ‘易地思之’ 등

    의 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을 따지는 ‘작은 정의인 반면, ‘大義’는 인간사회

    와 자연의 연대적 존립을 구현하는 정의.

    ※따라서 長仁․長義․大仁․大義는 의미론적으로 긴밀하고 궁극적으로 귀일한다.

    -종합하면, ㈎‘大仁’은 ‘심중이 측은하여 뭇사람을 사랑하는 仁’인 반면, ㈏‘小仁’은 ‘법에

    따라서 억지로 仁을 행하므로 仁을 밖에서 취해 쓰는 것’임. 이 ‘小仁’의 경우에도 마음

    의 참달함에서 우러나오는 ‘仁’이 있을 것이나, 가족․친족․친구 차원의 좁은 범위에

    한정됨. 또한 ㈎‘仁之節’로서의 정의는 ‘大義’로 분류될 수 있는 반면, ㈏‘藝之分’(기예적

    역할의 바른 분배)으로서의 분업적 정의와, 덕성적 정의로서의 ‘富貴의 바른 분배’는 ‘小

    義’로 분류됨.

    -‘仁之節’로서의 ‘大義’와, ‘義之本’으로서의 ‘仁’이라는 개념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仁과 義

    는 ‘근본’과 ‘방도’의 관계, 목적과 수단의 목적론적 선후관계에 있음.

    ②천성에서 우러나는 仁(安仁)은 지혜로운 正義를 포섭한다

    -공자는 正義를 仁德 속에 포괄함. 仁者는 천성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仁愛하고 난국에

    는 ‘살신성인’할 수 있음. 따라서 참된 仁은 천성에서 우러나오는 仁, 즉 ‘安仁’이다

    ※“子曰 仁有三 ... 仁者 安仁, 知者 利仁, 畏罪者 强仁”(인에는 세 가지가 있다. ... 仁者

    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자는 强仁한다.) 『禮記』「表記」.

    ‘安仁’, 즉 ‘眞仁’은 국가와 천하의 ‘博愛’․‘汎愛’와 ‘자연사랑’으로 나아가는 ‘大仁’이

    고, ‘인의 분배’ 측면에서 ‘大義’에 속한 반면, ‘利仁’과 ‘强仁’은 본질적 측면에서 親愛

    의 ‘仁’과 함께 ‘小仁’에 속함. ‘利仁’과 ‘强仁’은 또한 분배적 측면에서 ‘小義’에 속함.

    ※상술했듯이 “심중이 측은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仁이고, 법에 따라서 억지로 仁을

    행하는 것은 仁을 밖에서 취해 쓰는 것이다”. 여기서 ‘심중이 측은하여 사람을 사랑

    하는 仁’은 安仁이고, ‘법에 따라서 억지로 仁을 행하여 仁을 밖에서 취해 쓰는 것’은

    지혜로운 利仁이거나,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는 ‘强仁’임. 그러나 “심중에서 편안해서

    인을 베푸는 사람은 천하에 아주 드물 따름이다(子曰 中心安仁者天下一人而已矣)”.

    『禮記』「表記」.

    -安仁者는 仁을 베풀면서 제 이익을 따지지 않는 반면, 知者는 仁을 베풀면서도 베푼

    仁에 대한 대가로서 제 몫을 따지고 챙기는 利仁者다. (교환적․상업적 상호이익, 즉

    아담 스미스의 상호주의가 전형적) 그러므로 知者의 이 ‘利仁’은 ‘살신성인’과는 거리가

    먼 ‘小義’의 차원에 위치.

    -小義를 넘어 大義를 공감하고 베풀 수 있는 ‘참된 仁’으로서 이 ‘安仁’을 지닌 者가 지

    도자가 되어야만 나라를 보전하고 조직을 지킬 수 있다. 安仁者는 크게 바르고 오래

    마음이 따뜻한 지도자. 반면, 知者는 利仁者로서, 작게 정의롭더라도 측은지심이 적고

    오래 가지 않아 전체의 불평등에 어둡다(또한 强仁者는 법대로, 또는 억지로만 仁을

    베푼다) 따라서 義로운 知者는 ‘작은 정의’에만 밝아 仁心이 박하여 ‘작게 바르고 크게

    냉혹한 不仁한 지도자’다. 그러므로 작게 정의로운 知者는 不仁하여 나라와 조직을 잃

    기 쉽다.

    ※知者는 ‘작은 정의’를 잘 따져 힘에 근거한 패권조직을 수립할 수 있다. 작게 의로운

    자는 强하기 때문이다. “義란 기예적 역할의 분업인데 ... 기예적 역할에서 그 분업을

    협주케 하고 仁에서 그 분절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자는 강하다”(義者 藝之分 仁之節

    協於藝 講於仁 得之者强).『禮記』「第九 禮運」. 그러나 義로운 知者는 仁에 짜고

    박하여 불평등을 조장하고 심화시키다가 멸망한다. 따라서 知者는 작은 조직을 세우

  • - 17 -

    고 이끌 수 있으나, 큰 조직을 세우고 이끌 수 없다.

    ※“不仁하면서 작은 제후국을 얻은 자는 있으나 不仁하면서 천하를 얻은 자는 아직

    없었다”(孟子曰 不仁而得國者 有之矣 不仁而得天下 未之有也). 『孟子』「盡心下」

    (14-13).맹자의 이 테제는 중소기업도 전국경영, 세계경영을 해야 하는 오늘날 결정

    적으로 중요한 말. 불인하면서 향토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기업은 있으나, 불인하면

    서도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번영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知者는 물을 즐기고, 仁者는 산을 즐긴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論語』「雍也」

    (6-23).

    ※利仁을 추구하는 知者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개개인을 안중에 두고 개인에

    게 변화무쌍한 ‘작은 정의’를 세세하게 잘 따지는 반면, 安仁하는 참된 仁者는 ‘靜中

    動’의 仁心으로 크고 작은 것을 차별하지 않고 전체를 안중에 두고 평등하게 세상의

    만물을 감싸주고 키워주는 大義를 추구.

    ※육중한 山은 호랑이에서 토끼까지, 거목에서 이끼까지, 산삼에서 잡초까지, 심지어

    바위에서 지자가 좋아하는 강물까지 포용, 사랑, 양육

    ※山이 여울물과 강물을 품고 있듯이 산을 좋아하는 仁者는 물을 좋아하는 知者의 小

    義를 다 포괄함

    ※仁과 大義는 사회의 존립기반이고, 개인적 小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주는 본체. 산

    이 물을 품어 안고 육중하게 우뚝 서 있듯이 仁과 大義는 ‘小義’를 包越한다.

    -따라서 仁者로서의 지도자는 仁政․德治로 리더십을 좀먹는 좌우익간의 ‘작은 정의’

    다툼을 효율성․응보성․공정성 상호성을 초월한 仁의 大義 아래 포섭하고 불평등을

    완화하여 갈등을 해소

    □공자의 大義論

    ○‘大義’는 仁(박애)의 인간적 보편성의 의미에서의 평등성에 근본을 두고 仁愛의 분배이

    지만, 仁의 대상이 되는 인간들에게 ▲先急後餘(급히 필요한 곳에 먼저, 아직 여유가 있

    는 곳에는 그 다음에 베풂)의 원칙과 ▲先近後遠(가까운 곳에 먼저, 먼 곳에는 그 다음

    에 베풂)의 원칙에 따른 ‘仁之節’(仁의 分節)이다. 즉, ‘大義’는 仁을 적절한 순서적․단

    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仁之節’로서의 ‘大義’는 인간사회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시정하여 전체의 조화와 人和를

    이루기 위해 적절하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따라서 大義는 ‘기예의 분배(藝之分)’와

    ‘부귀의 분배’로서의 ‘小義’의 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의 관점을 초월한다. ‘仁

    之節’은 인간 전체를 염두에 두고 분절의 알맞은 등급을 조율하므로 각자의 몫에 초점

    을 맞추는 ‘소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仁의 ‘평등하되, 차등적인’ 분배의 필연성은 憯怛之心․惻隱之心의 공감적 본성에서 나

    온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같이 공감하는 憯怛之心 또는 同苦之心과 타

    인의 기쁨을 같이 공감하는 同樂之心을 지니지만, 절박한 사람과 (심적․사회적․지리

    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여유 있는 사람과 먼 사람에게보다 더 同感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憯怛之心’은 사람마다 양적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면 얼마간은 ‘보편

    적으로’ 지닌 性情이다.

    -따라서 仁은 ‘차별 없이, 그러나 차등적으로’ 분절될 수밖에 없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남녀노소, 인종․민족․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베풀어진다는 ‘평등

    의 원칙’이다. 적절한 ‘차등적 분절’이란, ▲긴급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여유가 있

  • - 18 -

    는 사람에게는 그 다음에 베풀어주는 방식과,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먼 사람에게는

    그 다음에 베풀어주는 방식 등 두 가지 방식으로 仁을 분배한다는 ‘先急後餘’와 ‘先近

    後遠’의 원칙이다.

    ○‘先急後餘’ 원칙은 당연히 ‘先近後遠’ 원칙에 우선한다. 불난 집에 내 자식과 남의 자식

    이 갇힌 경우에 ‘남의 자식’이 더 위험한 상태에 있으면 이 ‘남의 자식’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둘 다 똑같은 위험에 처해 있으면 내 아이부터 구한다.)

    -따라서 ‘大義’에서는 仁의 시혜의 보편성과 차등성 간의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적절한

    결합과 이를 통한 만인의 人和와 행복의 달성이 중요

    ■‘先急後餘’ 원칙에 따른 분배의 정의

    ㈎‘大義’의 분배에서는 공동체의 연대적 유지를 위한 사회적 ‘균형’이 결정적으로 중요.

    따라서 小義의 요소들(효율성․응보성․공정성․상호성)을 초월하여 급히 필요한 사

    람들에게 먼저 베풀고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에 베푸는 원칙이 필수적이다. 맹

    자는 말한다. “知者는 알지 못함이 없지만 當務를 급선무로 삼는다. ... 요순의 知라

    도 만물에 두루 미치지 못한 것은 급선무에 애쓴 때문이다.(孟子曰 知者無不知也 當

    務之爲急. ... 堯舜之知而不徧物 急先務也)” 『孟子』「盡心上」(13-46).

    ㈏따라서 공자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足食’을 위해 백성을 부자로 만드는 절대적 富

    民정책과 함께 즉 나라의 富를 ‘均齊’하는 상대적 富民정책도 중시했다. “적음을 걱

    정하지 말고 不均함을 걱정하고,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불안함을 걱정해야 한다. 균

    제되면 대개 가난할 리가 없고, 화합하면 사람이 적을 리가 없고, 편안하면 나라가

    기우는 일이 없다.(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7) ”

    나라에 재물이 균형 있게 분산되면 천하의 백성들이 이 나라를 믿고 몰려드는 ‘백성

    의 믿음’이 생기는 반면, 재물이 편중되어 있으면 백성이 안팎으로 뿔뿔이 흩어져 나

    라가 붕괴된다. 《대학》: “재물이 한쪽에 모이면 백성은 분산되고, 재물이 분산되면

    백성은 모인다(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라고 하고 있다.8)

    ■先近後遠에 따른 仁의 분절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데를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가는 것과 같고

    또 비유하자면 높은 데를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오르는 것과 같다(君子之

    道 辟如行遠 必自邇 辟如登高 必自卑).”『禮記』「中庸 第三十一」(15章).

    ㈏따라서 仁愛는 먼저 가족․친족의 가까운 데서 시작하여 먼 곳으로 넓혀 국민과 인

    류의 박시제중과 자연사랑으로 나아가는 선후 순서를 따름 → 맹자는 墨子의 ‘兼愛

    (가령 제 아버지와 남의 아비를 겸하여 동일하게 사랑하는 것)’ 비판.

    ㈐“仁者는 사랑하지 않음이 없지만 親賢(어버이 친애와 현자를 중히 여김)을 급선무

    로 삼는다. ... 요순의 仁이 뭇사람들을 두루 사랑하지 못한 것은 親賢을 급선무로

    여겼기 때문이다.(孟子曰 ... 仁者無不愛也 急親賢之爲務. ... 堯舜之仁不徧愛人 急親

    賢也.)” 『孟子』「盡心上」(13-46). 仁의 단계적 차등분배로서의 大義는 先後, 안팎

    을 차별하여 가까운 데의 ‘급선무’부터 하고 그 다음 먼 데로 넓혀 나가는 분절의

    방도다.

    ㈑따라서 집안에서의 親愛(친족사랑)와 밖에서의 汎愛는 선후구별과 정도차이가 있음

    ㈒“仁은 사람다운 것이다”. “친족사랑”은 본시 ‘小仁’에 속하더라도 모든 ‘仁’의 “대본

    이다”(仁者人也 親親爲大). “친족사랑이 멀수록 점차 줄어드는 것은 예법이 생기는

    7)《論語》〈季氏〉(16-1).

    8)《禮記》〈大學 第四十二〉(傳10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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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다”(親親之殺 禮所生也). 『禮記』「中庸 第三十一」(20章) 친족 안에서의 이

    ‘小仁’의 분절 방식을 대본으로 삼아 ‘大仁’의 ‘分節’도 가장 급한 것에서 시작하여

    다음 급한 것으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먼 곳으로 범위를 넓혀 나가야.

    ㈓친애를 넓혀 친족 밖으로 널리 확장하는 ‘博施濟衆’의 ‘汎愛(=博愛)’의 경우에도 제

    동네, 제 고향, 제 나라, 인류 등의 순서로 사랑에 선후와 차등이 있음(아담 스미스

    의 수용). ‘집안에서의 친애’는 ‘집밖에서 널리 뭇사람을 사랑하는 범애’와 안팎관계

    로 구분되고 이것과 상호작용함: “안으로 들어가면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면 ... 많

    은 사람을 범애하고 仁者와 친히 사귄다”(入則孝 出則 ... 汎愛衆而親仁).『論語』

    「學而」(1-6). 친애에 대한 박애의 영향: “옛 선왕은 가르침이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이 교화를 앞세우고 박애하니 백성이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가

    없었다”(先王見敎之可以化民也. 是故先之以博愛而民莫遺其親).『孝經』‘三才 第七章’

    ㈔공자의 先近後遠 원칙을, 맹자는 은혜를 가까이서 멀리 넓혀나가는 ‘推恩’으로 개념

    화: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공경하고 이 공경을 남의 노인에게 미치고, 나의 어린이

    를 어린이로 사랑하여 이 사랑을 남의 어린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

    일 수 있다. 『시경』에 ‘자기 아내에게 도의로 대하여 형제에 이르고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고 한 것은 이 마음을 가져다 저들에게 보태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러므로 推恩한다면 이로써 四海도 족히 보전할 수 있다. 그러나 推恩하지 않는다면

    처자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言擧斯心加諸彼而已. 故推恩足以保四海 不推

    恩無以保妻)”. 『孟子』「梁惠王上」(1-7).

    ○고금의 서양 정의론은 타인의 苦樂에 대한 공감으로서의 人性的 참달지심․측은지심에

    따라 仁을 분절하는 이 ‘大義’를 모르고, 단지 효율성․덕성․공정성에 따라 역할과 부귀

    를 분배하는 ‘小義’만을 논단하여 국민화합을 파괴

    □‘至道論’과 ‘大道論’: 大仁과 大義의 결합

    ○‘大義’는 ‘大仁’(범애)에 상응한 정의. ‘大仁’과 ‘大義’는 좌우 손의 관계처럼 불가분적 관

    계. “義者 仁之節, 仁者 義之本”의 ‘仁’과 ‘正義’는 ‘기예의 분업’과 貴富의 응보 또는 이

    응보성과 분리될 수 없는 ‘利仁’과 ‘强仁’에 초연한 ‘大仁’과 ‘大義’를 말함. 서양의 정의

    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 ‘大仁’과 ‘大義’ 개념에서 보면 仁과 義는 불가분적 관계.

    -상술했듯이 ‘大義’는 仁(사람사랑)을 鄕民․국민․세계․자연 차원에서 분배하는 반면,

    ‘小義’는 역할과 富貴를 개개인에게 분배함: -大仁과 大義는 根本과 節道의 관계: “仁

    은 오른쪽이고, 道는 왼쪽인데, 仁은 사람답고, 道는 의롭다”(仁者右也 道者左也 仁者

    人也 道者義也). 『예기』「表記」.

    -‘오른손’의 일인 大仁은 사회의 존립기반이고 大義의 근본으로서 본체적 덕목인 반면,

    仁을 仁心의 본성에 따라 분절하는 ‘왼손’의 일인 大義는 방도적 덕목. ‘大仁’은 ‘體’이

    고, ‘大義’는 ‘用’.

    -仁․義가 따로따로 분리되거나 仁厚․義薄 또는 義厚․仁薄한 경우처럼 한쪽으로 치

    우칠 때는 양자가 둘 다 불완전함: “인에 두터운 자는 의가 얇아 친하나 존엄하지 않

    고, 의에 두터운 자는 인이 얇아 존엄하나 친하지 않다”(厚於仁者 薄於義, 親而不尊.

    厚於義者 薄於仁 尊而不親). 『禮記』「表記 第三十二」

    ○至道: 大仁과 大義를 결합한 至高의 道.

    -大義의 ‘體’로서의 大仁과, 仁의 분절적 ‘用’으로서의 大義를 하나의 ‘體․用관계’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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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해야 仁을 제대로 베푸는 大仁과 大義를 하나의 ‘體․用관계’로 결합한 道가 ‘至道’

    다.

    -仁․義의 결합 여부에 따라 至道․義道․考道 구분: “道에는 至道가 있고 義道가 있고

    考道가 있다. 至道로는 王道를 행할 수 있고, 義道로는 覇道를 행할 수 있고, 考道로

    는 실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道有至 [有]義 有考. 至道以王, 義道以覇, 考道以爲

    無失.) 『禮記』「表記 第三十二」

    -‘至道’는 ‘大仁’과 ‘大義’를 겸행하여 至極에 달한 도로서 王道를 행하여 평천하할 수 있

    음. ‘至道’를 행하는 자는 크게 安仁하여 크게 義롭다. 그러므로 친하면서도 존엄하다

    (親而尊). “仁은 정의의 근본이고 순화의 본체니, 仁을 할 수 있는 자는 존엄하다”(仁

    者 義之本 順之體 得之者尊)는 명제는 이미 이 ‘至道’의 경지를 전제. 仁을 ‘義之本’으

    로 삼고 ‘順之體’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仁․義를 겸행하는 것이기 때문.

    ※‘義道’는 ‘大仁’에 박하여 ‘大義’를 몰각하고 친족내의 ‘小仁’과, 역할분배의 효율성․

    부귀분배 및 ‘利仁’․‘强仁’의 응보성에 상응하는 ‘小義’만을 갖춘 ‘小道’로서 한낱 覇

    道를 행하여 겨우 나라를 일시 부지할 수 있음. 義道를 행하는 자는 존엄하기만 하

    고 친하지 않기(尊而不親) 때문이다.

    ※‘考道’는 본성에서 우러나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 이때는 ‘小仁’을, 저때는 ‘小義’를 취

    하는 小道. ‘考道’를 행하는 자는 친하지도, 존엄하지도 않은(不親不尊) 小人이다

    -결론적으로 大仁과 大義를 겸행하는 至道를 행하는 자는 仁․義에 두루 두터워 ‘親而尊’

    함(친하고 동시에 존엄함). 仁은 ‘小仁’에 갇히면 친하기만 하고 존엄하지 않음. 이 仁은

    그 자체에 편협해서 大仁(범애)과 大義(仁之節)에 박약하기 때문. 따라서 小仁을 극복해

    야만 ‘大仁’, ‘大義’로 나아갈 수 있음. 大仁을 제대로 베풀자면 선후원칙에 따라 仁의 분

    배를 알맞게 끊고 맺는 ‘仁之節’의 大義와 결합될 수밖에 없음.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大道的 접근

    ○‘至道’는 ‘大道’다. 至道는 仁의 바탕에서 大仁과 大義를 통합한 ‘大道’인 반면, ‘義道’는

    大仁에 박약하여 大義를 몰각하고 小義만을 추구하는 小道임

    -‘大義’는 상술했듯이 전체의 조화와 人和를 이루기 위해 仁을 알맞게 나눠줌으로써 늘

    전체와 전체적 조화를 염두에 두고 분절의 알맞은 등급을 조율하는 ‘仁之節’의 방도임.

    그러므로 ‘大義’는 전체가 안중에 없는 ‘偏愛’와 다르고, 조화와 인화를 몰각하고 부분

    적 효율성과 개인적 응보성만을 염두에 두는 ‘小義’와 다르다

    -불평등 문제에 義道로 접근하는 롤스의 자유주의적 小義論과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小

    義論은 빈익빈 부익부의 覇權的 불평등․불균형을 공고히 하고 사회적 위화감과 계급

    갈등을 첨예화시키지만, 불평등 문제에 至道로 접근하는 공맹의 大義論은 불평등과 계

    급갈등을 완화하고 人和와 국민화합에 기여함

    ○仁의 관점에서 부자와 약자간의 불평등을 바라본다면, 同苦同樂의 공감능력을 가진 모

    든 인간은 누구나 부자의 삶의 기쁨과 행복을 같이 기뻐하고 부러워하는 同樂之心보다

    먼저 그리고 더 강렬하게 약자의 곤경과 고충을 같이 아파하는 憯怛之心 또는 惻隱之

    心을 느끼기 마련

    -가령 자식을 친애하는 부모는 여러 자식 중 못난 자식을 더 안쓰러워 하는 법

    -마찬가지로 국민과 정부는 동포애와 인류애의 관점에서, 잘난 사람들과 同樂하는 공

    감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며 同苦하는 공감을 더 느낌

    -공감적 측은지심의 이런 인류보편적 仁心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불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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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으키거나 심화시키는 ‘지나친’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의 존망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음

    -지나치게 富裕한 것과 뛰어난 재능과 자질은 보통사람들에게 사회적 위화감과 불타

    는 시기심(평등화 욕심)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통사람들에게 엄청난 스트레

    스․두려움․불신의 원인이 된다라는 점을 유념해야. 게다가 이 부유하고 뛰어난 자

    들이 교만하고 무례․무법하기까지 하다면, 더 말해야 뭐하랴? 보통사람들이 이 부유

    하고 뛰어난 자들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유일한 조건은 그들의 부와 뛰어남

    이 보통사람들에게 이익과 도움이 될 경우뿐. 즉, 부유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오직 제

    어버이만을 친애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제 자식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재화를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하나 반드시 자기에게만 숨겨 놓지도 않고”, 자신이 힘쓰는

    것을 싫어하지만 일단 힘쓴다면 “반드시 자기를 위해서만” 힘쓰지 “않는” 경우뿐임.

    이 경우에만 그들의 부와 뛰어남은 보통사람의 자랑․보호․응원의 대상이 됨.

    ○결론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지나친 불평등 추세는 至道의 관점에서 반드시 완화되어

    야 하는 것이고, 이에는 異論여지가 없음

    □大仁(범애)에 기초한 大道로서의 至道는 ‘大仁의 분절’로서의 大義를 좇음

    ○역할과 富貴의 분배에 관한 ‘효율성․공정성․응보성․상호성’의 ‘小義’를 초월하여 약자

    의 아픔과 불행을 공감적으로 안쓰러워하며 이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목표

    ○仁의 관점에서 약자에 대한 지원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면, 남은 문제는 이 약자

    에게 얼마만큼 仁을 베풀어야 하는가?

    -‘仁之節’의 大義는 효율성․응보성․공정성에 대한 정의주의적 논증(demonstration)에

    좌우되지 않음

    -仁을 모르고 義만 아는 정의주의적 小義論者들은 ‘大仁’(인간에)․‘大義’의 무의식적 압

    박에 종종 자신의 小義的 정의론에 모순되게도 인간의 이성을 인간 평등의 논거로 드

    는 ‘합리론적 휴머니즘’을 슬쩍 끌어와 자기들의 정의론적 결함을 메우려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 非계약론적 연대책임, 덕행의 우선순위 등의 문제에서(가령 샌델)

    ○이 ‘仁之節’로서의 ‘大仁’의 ‘大義的’ 분배는 상술했듯이 仁心의 본성에서 나오는 원리들,

    부유층을 포함한 여타 국민들의 보편적 공감과 지원의지의 강약에 비례하여, 先急後

    餘․先近後遠의 推恩순서(중산층의 복지보다 빈민․서민복지 우선, 그러나 자기 친족․

    고장의 빈민․서민 → 자기나라의 빈민․서민 → 세계빈민 빈민․순서)에 따라 정해짐

    -서양의 小義的 정의론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불로소득세․누진세는 논리적

    으로 부정되거나(신자유주의자들), 궤변적으로(가령 ‘무지의 베일’의 가상에 의해) 지원

    이 가능한 것으로 논증되더라도 그 지원이 가져오는 공리적 효과나 재정역량 논란으

    로 최소화됨. 정의주의적 정의론(小義論) 안에서 이 약자지원을 부정하는 논리나 최소

    지원 논리(가령 ‘사회안전망’)를 분쇄하는 것은 이 정의론의 창 끝을 거꾸로 돌리는

    ‘좌익정의론’밖에 없음.

    -우익정의론은 약자가 무능하고 패덕하고 또 공리적 지원효과가 별로 없다고 봄.

    -반면, 계급투쟁적 좌익정의론은 플라톤처럼 ‘지나치게 부유한 자는 악하고, 선한 자는

    부유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마르크스처럼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정의된 ‘비생산적’ 자본가와 ‘생산적’ 노동자를 대립시키고, 자본가를 탈취하여 가난한

    노동자에게 분배하려고 함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좌익정의론은 다른 응보논리로 우익정의론의 패권적 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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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호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에 불을 지르고, 그리하여 우익정의론과 좌익정의론간에는

    치열하고 지루한 계급전쟁이 불가피.

    -우익정의론은 분업적이고 공정한 정의론으로 계급투쟁을 진압하여 보수적 계급사회를

    영구화하려고 하는 반면, 좌익정의론은 분업적인 응보적인 정의론으로 계급투쟁을 영

    구화하여 새로운 계급사회를 수립하려고 함. 하지만 두 정의론은 시장과 관료체제의

    일등제일주의적 meritocracy를 공통분모로 삼는데다가, 생득능력(IQ․EQ)의 차이, 후

    천적 성장환경과 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