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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석사학위 청구논문 김정한 소설의 이원적 공간 대립 양상 연구 A Study on the Binary Opposition of Spaces in Kim Jung-han's Novels 20052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정 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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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석사학위 청구논문

    김정한 소설의 이원적 공간 대립 양상 연구

    A Study on the Binary Opposition of Spaces

    in Kim Jung-han's Novels

    2005年 2月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정 수 연

  • 교육학석사학위 청구논문

    김정한 소설의 이원적 공간 대립 양상 연구

    A Study on the Binary Opposition of Spaces

    in Kim Jung-han's Novels

    2005年 2月

    지도교수 윤명구

    이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 이 논문을 정 수 연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함

    2005年 2月

    주 심___________________

    부 심___________________

    부 심___________________

  • 목 차

    국문 요약

    Ⅰ. 서론 ................................................................................... 1

    1. 문제 제기 ................................................................................... 1

    2. 연구 방법 및 범위 ..................................................................... 4

    1) 공간의 의미 ..................................................................... 5

    2) 김정한 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성 ..................................... 6

    3. 연구사 ................................................................................... 8

    Ⅱ. 계층 간 공간의 이원적 대립 ....................................................... 10

    1. 양 계층 간의 갈등 내포성 공간 :「사하촌」 ........................... 10

    2. 이원적 계층의 상징적 공간 대립 :「모래톱 이야기」.................. 15

    1) 섬과 육지의 이원적 대립 ...................................................... 15

    (1) ‘섬’의 상징성 .................................................................... 16

    (2) 소외 공간으로서의 ‘섬’ ...................................................... 18

    (3) 착취 대상으로서의 ‘섬’ ...................................................... 19

    2) 현실 극복 의지 .................................................................... 21

    Ⅲ. 대립적 공간에서의 진실 추구 ....................................................... 22

    1. 부재의 공간-자기 구제의 탈출과 귀환 : 「옥심이」.................... 23

    1) 이원적 공간- ‘근대’와 ‘전근대’의 상징 ............................ 23

    2) 자기 구제적 공간 탈출 ....................................................... 26

    3) 귀환의 성격과 의미 ....................................................... 27

    2. 변질된 공간과 부재의 공간 : 「묵은 자장가」............................. 29

    1) 두 공간의 왕복 구조 ....................................................... 30

    2) 현실 인식- ‘소외’의 자각 ....................................................... 33

    3) ‘경계 공간’에서의 발견 ....................................................... 36

    Ⅳ. 현실 공간의 대립상으로서의 이상향 추구 ................................... 37

    1. 이상적 공간 추구와 실패 : 「인간단지」 ................................... 37

    1) 부조리한 공간 변화 시도 ....................................................... 37

    2) 현실로부터의 격리 공간 ....................................................... 38

    3) 이상향 건설과 좌절 ....................................................... 39

  • 2. 이상적 인간공동체 건설의 실현 : 「수라도」................................ 42

    1) 모순 해결 공간 ...................................................................... 42

    2) 이상향과 현실의 대립 ........................................................ 47

    3) ‘미륵당’의 의미 ...................................................................... 49

    Ⅴ. 결론 ............................................................................................... 51

    참고 문헌 .................................................................................... 54

    ABSTRACT

  • 국문 요약

    요산 김정한은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면서 본격

    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요산은 ‘60년대 후반기 새로운 리얼리즘의 불

    씨’, ‘70년대 리얼리즘 소설을 다시 꽃 피우게 하는 선봉장’이라는 수식어가 붙

    을 정도로 인간적인 삶을 억압하는 현실에 글로써 저항한 소설가였다.

    그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다분하다. 우

    리 문학사 논의 중에서도 민족문학, 농민문학, 리얼리즘 문학으로서의 성격 규

    정을 함에 있어 김정한의 소설이 거론되었고, 그로 인해 요산 소설의 연구가

    구체적인 작품 분석보다는 문학적 성격 규정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김정한 소설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비록

    1990년대에 미시적 연구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주로 인물 중심의 분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만큼 본고에서는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공간 구조를 중심

    으로 살펴보았다.

    ‘계층 간 공간의 이원적 대립’에서는「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양분되는 계층간의 대립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각각의 계층을 대표하는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이 뚜렷하게 양분되어 대치

    하고 있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피지배층의 공간을 둘러싼 계층간의 대립이 바

    로 공간에 대한 가치 규정 차이에서 발생된 것임도 아울러 밝혀 보았다.

    다음으로 ‘대립적 공간에서의 진실추구’에서는 「옥심이」와 「묵은 자장

    가」를 분석하였다.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공간은 두 개의 대립적인 인물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동 인물의 외적 환경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공

    간이 두 개의 대립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인물은 그

    대립적인 공간을 왕복하면서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고 있다. 이 때의 공간들은

    어떤 ‘결핍성’을 보이고 있는데, 「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의 공간들이

    계층적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형성을 보이며 ‘완전성’을 갖는

    것과 대조된다. 이 ‘결핍성’은 작품 속 인물이 진실을 탐색하게 하기 위한 장치

    로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현실 공간의 대립상으로서의 이상향 추구’에서는 작중 공간이

    인물들을 억압하는 가운데 그 극복을 위해 이상향을 건설하는 과정이 중심축을

    이룬다. 「인간단지」에서는 나환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실과 그

    것에 대한 도전으로 건설하려는 ‘인간단지’의 대립이 드러난다. 「수라도」에서

    는 가야부인이 두 개의 이질적 문화를 융합시키는 과정으로 ‘미륵당’을 건설하

    여 성공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미륵당’은 진정한 인간공동체가 실현

  • 되는 공간으로서 김정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으로 볼 때, ‘이원적 공간 대립’이라는 장치는 김정한의 소설에서 현실의

    모순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중에게 가해진 부당한 권력의 횡포

    를 고발하는 것을 글쓰기 목적으로 삼았던 김정한의 작가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며, 요산의 문학을 민족문학으로서 논의함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특

    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 - 1 -

    Ⅰ. 서 론

    1. 문제 제기

    요산 김정한은 1936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등단한다. 프로문학이 급격한 쇠퇴기를 맞으며 현실적 저항 의지를

    점점 잃어 가고, 여타 작가들이 친일문학으로 빠져들거나 현실을 등진 채 자연

    을 읊조리기 시작하던 1930년대 중반에 요산은 친일 식민지주와 농민의 갈등

    을 투철하게 그려 냈던 것이다. 당대 현실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요산에게 있

    어 비단 「사하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김정한의 소설 창작은 「사하

    촌」보다 몇 년 앞선 「그물」(1932)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후 1985년 「슬픈

    해후」까지 총 41편의 소설 대부분이 당대 현실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부

    조리한 현실에 강하게 저항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50여 년이

    라는 기간 동안 김정한이 보여준 일관된 문학적 자세와 주제의식 때문에 그에

    게는 ‘60년대 후반기 새로운 리얼리즘의 불씨’, ‘70년대 리얼리즘 소설을 다시

    꽃 피우게 하는 선봉장’1)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한 작가가 평생의 작품 활동 과정에서 몇 단계로 작품 세계가

    변해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에 영합하여 해부의 칼날을 무디게

    한 것이든, 가치관의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든 문단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요산 김정한은 평생을 일관된 문학관으로 살아온 작가

    에 속한다. 그는 문단에 발을 내딛은 1930년대에서부터 다시 문단에 복귀하여

    생을 마칠 때까지 녹슬지 않은 펜촉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질타하는 작가 정신

    을 보여준다. 요산은 ‘작가는 자기 개인보다도 그가 속해 있는 집단을 위해 있

    는 사람’이며, ‘집단을 위한 사명감이 없거나 약하거나 하면 실망감을 느낀다’2)

    고 말해 왔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자기의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자기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적 부조리를 시정․제거하기 위해 반성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고, ‘그러한 반성을 대변하는 것이 작가의 의

    무’3)라고 생각했던 작가였다. 따라서, 요산은 “현실이 삶의 현장성을 잃어버리

    면 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론을 몸소 실천하며 인간적 삶을 위축시키

    고 억압하는 절대권력의 편에 기울거나 극악한 조건에 놓여 있어 부정적인 성

    1) 김중하,「인간 김정한론」,창작과 비평 제25권 제 1호, 1997, p219 참고.

    2) 이형기,「회견체로써 본 김정한론」,『요산 문학과 인간』,고희기념논문집, 오늘의 문학사,

    1978, p.146.

    3) 김정한,『자전에세이, 사람답게 살아가라』,1985, p.257.

  • - 2 -

    격을 띠고 있는 삶의 현장에 대응하는 자세로 일관4)해 왔던 것이다. 김정한의

    소설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간적인 삶을 억압하는 현실이었고, 그는

    소설가로서 불합리한 시대의 모순을 밝히는 데 전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김

    정한의 소설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리얼리즘이라는 미학 범주와 분리되어 이

    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김정한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30년대의 시대적 성격을 살펴보면, 세계적

    으로 경제 대공황의 위기를 겪은 후 자본의 논리가 더욱 교묘하고도 거세게 사

    회 전반을 엄습하던 시기였다.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

    던 예견은 빗나갔고, 국내에서는 더욱 강경해진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한 카프

    의 퇴조와 새로운 자본의 시대를 맞은 모더니즘의 풍미로 이름지을 수 있는 것

    이 바로 1930년대의 문단 현실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정한의 출현은 단연

    이채로운 사건이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의 문학은 넓은 의미의 카프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조선 사회도 비껴갈 수 없었던 자

    본의 공세를 주로 농촌이라는 배경 속에 민중(특히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 이전 시기인 1920년대 카프가 혁명

    적 낭만주의에 경사되었다면, 김정한은 오히려 더욱 카프다운 의식을 가지고

    1930년대 문단을 독자적으로 걸어간 문인이라고 볼 수 있다.5)

    김정한은 1941년 12월,「묵은 자장가」이후 잠정적인 침묵기에 들어간다.

    그것은 일제의 폭압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친일 문학인의 길을 걷지 않으려는

    요산의 의지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 이후 해방 공간기에 쓰여진 「옥중 회

    갑」과 「설날」은 1946년 3월 (부산)에서 발행한 『전선』창간

    호와 1947년 6월 발행 『문학비평』 창간호에 각각 발표되었다.

    그러나 문단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고, 두 번째의 침묵기를 깨고 다시 붓을

    든 1960년대 중반, 「모래톱 이야기」(1966)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오랜 절필의 고집을 꺾고 작품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한 이유는 문단 복귀

    작「모래톱 이야기」의 서문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십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중략) 낙동강 하류

    의 어떤 외진 모래톱― 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데 대해서까

    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래톱 이야기」p.42

    4) 김중하, 앞의 글.

    5) 최원식,「90년대에 다시 읽는 요산」,작가연구 제4호, 1997, p.15~16 참고.

  • - 3 -

    예술가는 사회가 결코 구상해낼 수 없는 참여를 유발시키려고 새로운 대화를

    일궈내며 새로운 방식의 의사소통을 이루어 내려는 동기를 지닌 자들이다. 왜

    냐하면 아무리 사회가 그 자체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다양한 분류체계를 구축

    한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사회는 본질상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가

    요청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런 사회의 변화를 앞질러 예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는 흔히 지적되는 바이지만, 인생의 굴레를 박차고 나아갈

    수 있는 예술가와 같은, 문제를 절감하고 제기할 줄 아는 자들 뿐이기 때문이

    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예술가가 그리는 형상화 작업이 가령 스

    스로의 주체적인 것이라면 모든 예술창작은 인간의 현실에 활력을 부여하고 깊

    이 잠들었거나, 철저하게 고정되어 버린 구조를 전복시키며 인간 집단을 변화

    로 내몰고, 또한 역사에 부단히 연루시키는 끊임없이 샘솟는 집단적인 자유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예술은 현존 질서의 옹호를 그의 목표로 삼을 수 없

    으며, 오히려 예술은 기초 질서의 재현에 대한 끊임없는 항변6)인 것이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김정한은 예술가로서, 작가로서 부당한 현실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정한이 볼 때, 1960년대는 ‘권력의 중심 이동’만 있었을

    뿐, 그가 처음 붓을 들었던 일제 치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을, 혹은

    약자를 힘으로 짓누르고 억압하던, 그야말로 부정과 부조리가 판을 치던 시대

    가 다시 부활한 현실에서 요산은 꺾었던 붓을 다시 들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군부독재를 상대로 현실고발을 과감하게 해냈던 작가가 흔치 않았던 시점에서

    김정한은 1960년대 후반기 새로운 리얼리즘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리고

    요산 김정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평단의 해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산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주로 거시적인 안목에서 이루어져 왔다.

    다시 말해 그의 문학은 민족문학이니 농민문학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미적 범

    주가 담고 있는 이념적 타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왔던 것이다. 그

    러한 과정에서 김정한 문학에 대한 도구적, 자기 순환적 분석도 행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7) 김정한 문학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김정한 문학이 민족문

    학이니 농민문학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성격 규명만 있었지, 정작 개별 작품

    에 대한 논의는 한정적이었다는 의미이다. 비록 요산 김정한에 대한 연구가

    1990년대 이후 석사논문으로 이행․확대되면서 그 연구의 범위가 세분화되고 구체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작중 인물 연구에 국한된 측면이 많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동안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김정한 소설의 형식

    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 김정한 소설의 주제는 비교적 명확한 것이

    6) Jean Divignarud, 김채현 역,『예술 사회학』, 문학과 지성사, 1983, p188.

    7) 김경원,「리얼리즘 문학의 공간성과 역사성」,작가연구 제4호, 1997, p.51 참고.

  • - 4 -

    특징이다. 그것은 작가의 소설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을 가시화

    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김정한 특유의 소설 기법, 즉 요산 소설의 형식적 특

    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형식적인 측면 중에서도 특히 주목하는 것은

    김정한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인데, 그 이유는 작품 속 주체인 인간이 그의 소

    설적 환경과 유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고, 또 그 인물이 속한 공간에 대한 인

    식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때, 작품에 나타난 공간의 구조와 의미

    를 탐색하는 것은 작중 인물의 행위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한편, 작가의식까

    지 확인하는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한 소설의 주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주제를 형상화시키는 방법 역시 대체로 유사성을 띠는데, 본고에서는

    그러한 김정한 소설에서의 특징을 김준현8)이 이미 제기했던 ‘이원적 대립 구

    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준현은 요산 소설의 구조 원리로 ‘이원적 대립

    구조’를 제시하면서 그 근거로서 김정한 소설에서 나타나는 ‘대립’이 작품의 구

    조적 차원으로 확대된다고 하였다. 김준현에 의하면 김정한 소설에서는 이러한

    대립 구도가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줄기를 이루기 때문에 단순한

    ‘대립 구도’의 측면을 넘어서 ‘대립 구조’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입장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수탈의 현장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적 대립 구도

    의 성격을 그간의 연구에서는 주로 작중인물 분석에서 찾아온 경향이 다분하므

    로 본 연구에서는 인물의 이원적 대립 구조와 궤도를 함께 하는 공간의 측면에

    서 김정한의 소설을 다루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김정한 소설 속 공간의 대립은 강자와 약자로 대별되는 각각의 인물군과 짝

    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사하촌」「모래톱 이야기」), 각각 대응되는 성격의

    공간 속에서 인물이 진실을 탐색하는 과정으로도 진행되며(「옥심이」「묵은

    자장가」), 인물을 억압하는 공간과 이상적 공간이 대립적으로 나타나기도 한

    다(「수라도」「인간단지」).

    그렇다면 이들 공간의 이원적 구조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김정한 소설에 특

    징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에 대한 분석과 함께 공간에 대한 인물의 인식 및 대응

    방식을 살펴보고, 이들이 각각 주제 형상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및 범위

    먼저 김정한 소설의 창작 시기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작품의 공간이 갖는

    8) 김준현,「이원적 대립 구조와 의미의 명징성」,작가연구 제 13호, 2002.6. 참고.

  • - 5 -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함을 밝혀둔다.

    김정한의 집필 기간이 193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시

    간이었고, 또한 중간에 절필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시기별로 나

    누어 살펴보지 않는 것은 그가 일관된 문학관을 통한 작품 세계를 구사하고 있

    다는 점, 비록 ‘가면’의 모습이 다르다고 해도 일제 식민지 치하와 1960~70년

    대의 군부독재의 상황이 민중의 입장에서 그들의 자유를 억압당한 면으로는 변

    화가 없다는 점,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요산이 문제삼으려했던 것이 특정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다운 삶을 박탈하려하는 일체의 권력에 대한 것인 바,

    특별한 시기의 구분 없이 논의를 진행시켜보고자 한다.

    김정한은 소설 이외에도 초기 1927년부터 1930년까지, 그리고 해방공간 동

    안 시와 시조 등을 썼고,「隣家誌」(『春秋』1943년 9월호)라는 단막극(희곡)

    도 1편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수필, 수상, 칼럼과 8편의 꽁트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김정한 문학작품 중 소설 작품만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

    겠다. 그리고 김정한의 소설 41편 중에서도 작품 속 공간의 이원적 대립 양상

    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몇 편의 소설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사하촌」「모래톱 이야기」을 통해서는 김정한 소설에서 계층간의 대립 양

    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의 특징을 살펴보고,「옥심이」「묵은 자장가」

    를 통해서 각각의 대립적 공간에 던져진 인물이 그 공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새

    로운 진실을 추구하는 모습을 살펴보며,「수라도」「인간단지」를 통해서 부조

    리한 현실 공간에 대립되는 측면으로 설정된 이상적 공간의 의미에 대해 살펴

    보겠다. 이들 6편을 주요 대상으로 삼되, 그 외의 작품은 비교의 대상 등으로

    거론하겠다.

    1) 공간의 의미

    소설가는 그가 속한 공간에서 작품이라는 허구적 세계의 공간을 창조한다.

    로트만(Jurij Lotman)이 말하듯 예술작품이란 그 “외부에 놓여 있는 세계를 반

    영하는 공간영역”9)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의 공간이란 “인물의 내적 세계

    를 반영하는 상징”이고 “행위의 기점으로서 그 구조나 이동 자체가 서사 진행

    의 원동력이자 의미 생산의 출발점”10)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공간, 즉 배경은 주제, 인물, 구성 등과도 같이 중요한 요소이다.

    배경은 인물들이 행동하거나 생각할 때 인물을 에워싸는 장소인데, 이와 같은

    9) 황도경,「이상의 소설공간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2, p.14에서

    재인용

    10) 황도경, 앞의 글, p.15.

  • - 6 -

    단순한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소설의 배경은 외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된

    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외적인 공간은 소설의 리얼리티 의식을 가속화

    시키는 본질적인 요소로서 현재 시점의 사실적인 일상생활의 경험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소설의 뼈대로서 인물 유형과 작가의 방향 감각이나 시

    점을 조절한다.11)

    공간은 인물과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지닌다. 인간은 공간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경은 인물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주거나 조정하

    기도 하며 인물 설정은 배경이 존재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배경이 무엇보

    다 중요하게 의식되는 리얼리즘 소설은 시간보다 공간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

    되므로 인물이나 구성보다 배경의 비중이 특히 강조”12)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소설의 공간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공간은

    작가가 작품 속에 표현하는 정신적 환경까지 포함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

    은 곧 주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다루는 공간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프랭크

    (Joseph Frank)에 의해서 주목받기 시작한 텍스트 독서의 비평적 방법으로서

    의 공간성(spatiality)이다. 프랭크가 말하는 공간성이란 묘사적인 쓰기가 아니

    라 언어 본래의 시간적 의미를 부정하고, 사물의 연속으로서보다는 시간의 한

    순간에서 하나의 전체적인 것으로서 작품 이해를 시키기 위한 작가의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13)

    둘째는 인물과 그 인물의 행위를 포함하는 공간, 흔히 장면, 장소, 배경, 환

    경, 분위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공간(space)이다. 본고에서 다루려는 공간

    은 이러한 작품 내 배경으로서의 공간, 인물의 행위를 포함하는 의미로서의 공

    간이다.

    2) 김정한 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성

    김정한의 소설을 리얼리즘으로 보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리

    얼리즘에 대한 개념규정을 ‘당대 현실의 객관적인 묘사’라고 하였을 때, 리얼리

    즘 소설에 나타난 공간은 인물이 처한 공간에 얼마나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고,

    또 그 공간이 지닌 악의성에 의해 얼마나 철저하게 그 인간성이 파괴되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14) 김정한의 소설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데,

    11) 전혜자,「한국 현대 소설의 배경 연구」,숙명여대 대학원 박사 논문, 1985, p.1 참고.

    12) 전혜자, 앞의 글, p2.

    13) 한국현대소설학회,『현대소설론』,평민사, 1994, p.186.

  • - 7 -

    그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김정한 소설의 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그 공간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낙동

    강 유역’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강조하는데 그치거나 김정한의 소설을 농민소

    설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 농촌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농후하다.

    물론 김정한은 낙동강 유역의 ‘따라지’로 불리는 ‘순적 백성(「뒷기미나루」

    에서 작가 스스로가 붙인 명칭)’의 삶에 관심을 갖고서 농촌이라는 공간, 산업

    화가 진행된 이래로 줄곧 소외된 민중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그 공간을 소설의

    주무대로 삼았다. 이것은 요산이 약자의 입장에 서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려는, 이른바 ‘집단을 위한 사명감’으로 글쓰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산 김정한 소설이 ‘땅’, 혹은 ‘토지’로 명명하는 이러한 공간을 설정한

    데 대한 해석은 대체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곧 한국의 현실을 좀

    더 실감나게 집약적으로, 전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되

    었다는 것인데,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작품적 특징이, 김정한 소설을 평가함에 있어 토

    지 문제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형상화한 측면이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유발하

    는 대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땅’이 지니는 공간성의 의미에 주목할 때, 김

    정한 문학의 진정한 민중성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고, 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

    는 요산 문학의 가치가 명확해질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땅’은 근대

    화 과정이 처음 착수되는 영역인 동시에 자본의 야만적인 침탈로 인한 첨예한

    계급투쟁의 전선이 형성되는 곳이었다. 김정한의 문학이, 자본에 의해 밀려난

    변두리 인간의 애환을, 그리고 독재 정치와 낙후한 경제 현실에서 고통받는 민

    중의 입장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구체적인 의미의 ‘땅’을 둘러싼 인간들의

    투쟁을 형상화했기 때문15)인 것이다.

    ‘땅’에 이러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땅의 박탈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일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 혹은 주체적 정신을 짓밟히는 일이 되는 것이고, 때

    문에 요산 소설에 등장하는 피해자 유형의 인물들은 그 현실에 맞서 저항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처럼 ‘땅’이 갖는 상징성 내지는 특정 지역이라는 한정

    된 공간의 특성을 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품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역학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

    것은 주로 공간들의 이원적 대립 구도 속에서 찾아질 것이다. 그것을 밝혀내는

    14) 한국현대소설학회, 앞의 글, p.191 참조.

    15) 김경원, 앞의 글, pp.52~53

  • - 8 -

    것이 김정한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하는 기법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를 돕고 김

    정한 소설의 서술 전략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3. 연구사

    1930년대에 발표했던 김정한의 초기 작품과 김정한 본인에 대해서 백철은

    ‘경향파에 속하는 유력한 신인’이라고 평가한다.16) 백철은 「사하촌」과 「옥심

    이」「추산당과 곁사람들」을 거론하면서 지주를 겸한 특권 계급인 승려와 그

    에 반하는 농민의 대립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하고, 김정한이

    1930년대의 경향파에 속하는 작가라는 입장을 표명한다. 그러나 백철은「추산

    당과 곁사람들」에서는 계급적 대립이 차츰 해소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추산당과 곁사람들」에 대한 다른 견해로는 김남천의 평이 있다. 김

    남천은 요산에 대해 “자연주의 시대의 폭로주의와는 류가 다르게 일체의 가면

    박탈을 목표로 조그만 자비성도 몸에 붙이지 않으려는 작가였다. 승려와 불도

    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임종에 모여든 양자를 위시한 일가문의 껍질을 벗기

    고, 다시 그의 화장을 맡어보는 인부들의 추악한 물욕까지를 조금도 용서함 없

    이 밝아서 보여 준다”17)고 지적한다. 특히 추산당이 운명할 때의 묘사와 인부

    들이 시체를 다루는 장면을 논함에 있어, 그 극명한 필치는 일종의 사진묘사주

    의로서 이것은 진정한 리얼리즘과는 관계가 없다는 지적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김정한의 작품을 리얼리즘의 경향으로 분석한 가운데 다소 특이

    한 입장을 소개하자면, 작품 발표 당시「사하촌」에 대한 김우철의 월평을 들

    수 있다.18) 그는 우선 서술 방법의 측면에서 기계적인 줄거리를 무시하고 영화

    의 몽타주 수법을 연상케 하는 역학적인 템포를 지적한 뒤, 달밤의 정경 묘사

    를 들어 시적이고 낭만적인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김정한을 이효

    석과 김유정과 더불어 낭만적 정신의 재능있는 신인이라고 지적한 사실은 평자

    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김정한은 1941년 12월,「묵은 자장가」이후 한동안 침묵하다가 해방 공간기

    에 「옥중 회갑」과 「설날」을 발표한다. 그러나 문단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

    하였고, 두 번째의 긴 침묵기를 거쳐 1960년대 중반, 「모래톱 이야기」

    (1966)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6) 백철,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 1986, pp.485~486.

    17) 김남천, 「추수기의 작단」10월 창작평,『문장』, 1940년 11월호, p.145.

    18) 동아일보 1936. 2.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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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창작과 비평』창간호에 백낙청이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

    를 발표한 이후 60년대 말부터 7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새로운 문학논의의

    중심에 요산 김정한의 작품이 서게 된다. 1930년대의 리얼리즘 논의와 더불어

    8․15 이후 잠시 활발했던 민족문학 논의가 새로이 본격화 된 것은 1972~3년경의 일이다. 이러한 배경이 된 것은 민중적 내지 민중지향적 문학의 성과가

    일정하게 축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김정한의 작품이 바로 이러한 일정

    한 ‘축적’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19) 그것은 4․19의 성과로도 볼 수 있는데, 민주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의 분출, 그리고 광범위한 민중적 의식 성장과 그로

    인해 고조된 문학인들의 현실적 관심이 일정한 성숙에 도달한 결과로서 참여문

    학론, 시민문학론, 농민문학론, 민중문학론, 리얼리즘 문학 등 다양한 측면으로

    논의된 문학적 현실참여의 문제가 민족문학론을 중심으로 정리되던 시기였다.

    “그 이후 농민문학론이라든가 민중문학론, 리얼리즘론이라든가 민족문학

    론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발전의 배후에는 김정한 선생 같은 분들의 작품적

    실천이 튼튼하게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20)

    이와 같은 논의는 김정한의 작품들을 1960년대 진보적인 민족문학 진영의

    리얼리즘으로 평가하는 일면을 보여준다.

    이상의 김정한 연구에 대한 목록은 1978년 에서 편찬한 『요산문학과 인간』과 1980년 박덕은의 논문에 비교적 자

    세히 제시되어 있다. 특히 박덕은은 기왕의 연구를 세 유형으로 나누고 있는

    데, 민족문학의 측면과 리얼리즘의 측면, 농민문학의 측면이 그것이다.21) 이러

    한 세 가지 측면의 논의는 염무웅이 김정한 소설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 제시한

    세 가지 측면과도 일치한다.22)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위와 같은 논의가 지속되는 한편, 김

    정한 소설에 대한 연구는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화된다. 조갑상23)은 「설날」

    「액년」과 같은 해방공간의 소설들을 발굴 소개하는 한편, 김정한 소설에 나

    19) 백낙청,「한국의 민중문학과 민족문학에 관하여」,『민족문학의 새단계』,창작과 비평사,

    1990, p.91 참고.

    20) 염무웅, 김윤태, 「1960년대와 한국문학(대담)」,『작가연구』,1997 여름, p.239.

    21) 박덕은,「김정한의 소설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1980, pp.3~6.

    22) 염무웅과 임중빈 대담, 는 첫 창작집 『낙일홍』(1956) 이후 두 번째

    창작집으로 나온 『인간단지』(1971)의 해설이다. 이 해설은 「모래톱이야기」이후 김정한의

    개별 작품에 대한 월평 차원을 넘어선 최초의 종합적 평가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23) 조갑상,「김정한 소설 연구」, 동아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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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나는 ‘토지’와 ‘해방’의 의미를 집중 조명하였다.

    그밖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주로 김정한 소설의 인물 연구에 치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박종무24)는 반사회형, 사회유지형, 사회개혁형으로 인물 유형을 나

    누어 작중 인물의 현실 대응 방식을 중심으로 연구하였고, 권민식25)은 토지에

    애착을 가지는 농민의 인물 유형과 주어진 역사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식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상, 김정한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물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간의 논의

    에 대해 간략히 정리를 해 보면, 먼저 김정한 소설에 대해 대체적으로 일치하

    는 점은 그의 문학을 리얼리즘의 범주에서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

    은 민족문학의 측면과 리얼리즘의 측면, 그리고 농민문학의 측면, 이렇게 세

    가지로 유형화시켜 진행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Ⅱ. 계층 간 대립 양상으로서의 공간

    김정한의 소설이 갖는 특징은 인물 유형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되어 중간

    유형의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

    과 모순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김정한 소설의 이러한 이

    원적 대립 구조는 인물 유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 구조는 공간

    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유형이 ‘계층 간 대립 양상으로서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김정한 소설의 갈등 원인이 사회 계층적인 차

    원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계층 간의 대립 관계를

    통해서 상대적 강자인 가해자와 상대적 약자인 피해자로 인물이 양분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이 속한 개별적 공간 역시 계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

    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대립적 공간이 「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에

    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주제를 형상화시키는지 살펴보겠다.

    1. 양 계층 간의 갈등 내포성 공간 : 「사하촌」

    「사하촌」은 1936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정한의 정식 데뷔

    작품이다.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농민들의 궁핍과 사찰지주의 횡

    24) 박종무,「김정한 소설의 작중인물 연구」,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1987.

    25) 권민식,「김정한 소설 인물 유형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1.

  • - 11 -

    포, 그리고 농민들의 저항의식을 그리고 있는 대표작이다. 뿐만 아니라「사하

    촌」은 이후 김정한 소설 세계의 근간을 형성하며 중심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사하촌」의 특징을 살펴보면,26)

    첫째, 소작농과 지주 내지 마름과의 대립 구조가 사회의 대립 구조로 확대되

    면서 이후 모든 소설의 구체적 갈등 관계로 상정된다. 그것이 해방 후라 하더

    라도 도시 변두리의 영세농이거나 도시빈민으로 바뀌고 있을 뿐 그들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민중’이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두 번째, 소작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토지의 문제라는 점에서 비단 농민소설

    이 아닌 도시를 공간으로 한 소설 속에서도 토지가 야기하는 문제는 현실인식

    의 가장 중요한 양상이 된다.

    세 번째, 창작 방법론적으로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일관된 세계관과

    작가관을 견지한다는 것이며27) 저항성 또한 일관된 인물의 지향점이 되고 있

    다.

    이 세 가지는 이후 김정한 소설에도 일관된 중심 주제이면서 요산 소설 세계

    의 근간이 된다.

    「사하촌」에서 ‘보광사’와 ‘보광리’는 지주화된 공간으로서 가해자의 공간으

    로 나타난다. 반면, 소작농들의 공간인 ‘성동리’는 수탈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

    의 공간이다. 그리고 두 개의 대립적인 공간이 이 소설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여름에서부터 수확기인 가을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가뭄의 고통으로 시달리는 공간은 유독 성동리 뿐이다.

    “논은 어떻게 돼 가니?”

    “어떻게라니요, 인젠 다 틀렸어요. 풀래야 풀 물도 없고, 병아리 오줌만

    한 봇물도 중들이 죄다 가로막아 넣고, 제에기…….”「사하촌」28)p.13.

    성동리 주민을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가뭄이 아니라는 사실은

    소설 곳곳에 드러난다. 성동리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은 위에서 보다

    26) 조갑상, 앞의 글, p.27.

    27) 30년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정한이 30년대 소설의 한 주류인 ‘자의식소설’(최상윤, 세종

    대 박사논문 1989)과 무관한 일반적인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활동을 한 것은 중앙문단과의 거

    리(문학적 조류) 이외에 그의 기질에 따른 문학 의식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못 사는

    자식으로 비유될 수 있는 중생을 버리고는 문학이 설 자리가 없다고 봐”(이형기, 회견체로 써

    본 김정한론 『요산문학과 인간』p.145) “물론 개인적인 슬픔, 고통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이에 앞서서 작가는 역사적인 사명과 민족적 사명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문학사상』1973년 10월, p.214)

    28) 『한국 소설문학대계 31』에 수록된 원문을 인용하였음.

  • - 12 -

    시피 그것은 보광사라는 지주 계급의 횡포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성동리 주민들

    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고통, 특히 가뭄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타개 의

    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듯 실낱같은 희망을 보이게 된다.

    수도 저수지의 물을 터놓은 것이다. 성동리 농민들이 밤낮없이 떼를 지

    어 몰려가서 애원에, 탄원에 두 손발이 닳도록 빌기도 하고, 불평도 하고,

    나중에는 밤중에 수원지 울안에까지 들어가서 물을 달리 돌려 내려고 했기

    때문에, T시 수도 출장소에서도 작년처럼 또 폭동이나 일어날까 두려워서,

    저수지 소제도 할 겸 제이 저수지의 물을 터놓게 된 것이다.

    「사하촌」p14~15.

    하지만, “고까짓 저수지의 물로써 넓은 들을 구한다는 건 되지도 않는 말”이

    다. 주동인물에 속하는 들깨의 논 역시 ‘보 꼬리’에 달렸기 때문에 “봇머리까지

    가서 물을 조금 달아 가지고 오면, 도중에서 이리저리 다 떼이고 자기 논까지

    는 잘 오지도 않”는 실정이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적은 양의 물 공급으로 말미

    암아 성동리는 한층 시끄러운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들깨는 보릿대 모자를 부채삼아 내흔들면서, 쥐꼬리만한 물을 달고 내려

    가다가, 철한이란 놈하고 봉구란 놈이 아주 논 가운데서, 곰처럼 별로 말

    도 없이 이리 밀치락 저리 밀치락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나, 말려

    볼 생각도 않고 제 논으로만 갔다. 그의 논으로 뚫린 물꼬는 으레 또 꽉

    봉해져 있었다.

    “어느 놈이 이렇게 지독허게…….”

    막힌 물꼬를 냉큼 터놓고서, 막 논두덕 위에 올라서자니까, 자기 논 아

    래로 슬그머니 피해 가는 오촌 아저씨가 보인다. 아저씨도 환장이 되었구

    나 싶었다. 「사하촌」p.16~17.

    생존을 위해서는 친척일지라도 안면몰수하는 현실 상황. 이것은 극한으로 내

    몰린 상황으로 말미암은 그들 나름의 생존 방법일 것이다. 이처럼 김정한은 인

    간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됨으로써 어떻게 철저하게 그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농민들의 문제를 좀더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

    다.

    반면, 가해자의 공간인 보광사나 보광리에서는 이 가뭄 속에서도 밭에 물 대

    일 걱정이 없다. 애가 타는 것은 약자의 공간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 - 13 -

    성동리 주민들에게도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물’이지만, “모처럼 터놓은 저수지

    의 봇목에 논을 가지고서도, 유아독존 식으로 날뛰는 절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서 우리는 일제 당시 지주화된 절의 횡포와 비도덕성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적

    으로 우위에 있는 보광리에서 물을 독점하는 한, 성동리의 논과 밭에는 한 방

    울의 물도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소작농과 지주의 대립 구조,

    소작농과 사회의 대립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소작농들의 분노가 폭발하

    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하촌」은 작품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묘사 장면으로 시작

    한다.

    타작마당 돌가루 바닥 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

    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가지고 바동

    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떼가 물어 뗄 때마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

    게 발버둥질을 한다. 또 어디선지 죽다 남은 듯한 쥐 한 마리가 튀어 나오

    더니 종종걸음으로 마당 복판을 질러서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사하촌」p.11.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돌가루 바닥 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과 개미떼에

    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렁이’ 등은 가뭄 속에서 생명력을 상실한 자연 환경적

    배경으로서 생존이 위협당하는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역

    할을 한다. 그러면서 다음 장면에 제시되는 공간, 이 작품의 주요 공간 중 하

    나라고 볼 수 있는 치삼 노인의 집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더욱 심화시킨다.

    군데군데 좀구멍이 나서 썩어 가는 기둥이 비뚤어지고, 중풍 든 사람의

    입처럼 문조차 돌아가서―북쪽으로 사정없이 넘어가는 오막살이 앞에는, 다

    행히 키는 낮아도 해묵은 감나무가 한 주 서 있다.「사하촌」p.11.

    치삼노인은 원래 소작농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광사 “중의 꾐에 속아서 그만

    불전에, 아니 보광사에 시주”한 탓으로 소작농이 된 것이다. 자손 대대로 복을

    받기 위해 시주한 행동이 오히려 자기 땅을 빼앗긴 결과를 낳았고, 아이러니하

    게도 이제는 소작농으로서 자기 땅을 소작해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치삼노인이 억울하게 소작농으로 전락한 이런 내력은 같은 입장에 처

    해 있는 다른 성동리 주민들도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억울하게 소작

    농이 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의 억울함은 단지 그들이 소작

    농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땅을 빼앗김으로 해서 극한 상황으로 몰리게 되

  • - 14 -

    는 현실의 모순이 바로 억울함의 실체인 것이다. 성동리 주민은 빚을 내어서까

    지 기우불공에 참례하지만 홀대를 면치 못하고, 돈이 없어 아이들은 퇴학 처분

    을 받아야 하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 도리어 원수같이 느껴지는 가혹한 삶 속

    에 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이 연속되는 성동리라는 공간과 반대로 보광사로 대표되

    는 지주들의 공간은 비교적 풍족함을 보인다. 물론 보광사와 보광리 사람들이

    풍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성동리 주민들의 몫을 빼앗는 지주 계급이기 때

    문이다.

    그런데 김정한 소설에서는 이 양쪽 공간에 대한 비중이 균형 있게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공간에 치우친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공간의 무게를 약

    자의 공간에 둠으로써 억압과 수탈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억압과 수탈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비록 한

    쪽의 공간에 치우진 설정이라고 해도 「사하촌」은 성동리라는 피착취 계급의

    공간과 보광사․보광리라는 착취 계급의 공간을 나누어 설정하고 이들을 대립시킴으로써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대립이 가시화되는 것은 논에 물을 대는

    사건인 것이고, 그 와중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성동리 주민들의 저항 행동

    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사하촌」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성은 이러한 계급 간 대립을 상징하

    는 공간의 이원성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성동리라는 소작인의 마을에 대한 이

    원적인 가치 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하나의 특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성동

    리는 ‘갈등 내포성 공간’으로 이 소설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된

    다.

    소유권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주인’29)이라고 할 수 있는 성동리

    소작인들에게 그들의 논과 밭은 생존권, 즉 삶의 터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반면 지주에게 있어서 그 땅은 탐욕의 대상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개의 이질적인 가치가 하나의 공간에 공존

    하면서 갈등을 촉발시킨다. 따라서, 성동리라는 공간은 소설의 주요한 갈등을

    내포하는 ‘갈등 내포성 공간’으로서 궁핍한 농촌 현실의 고발과 그 문제 의식

    을 드러내려는「사하촌」의 주제를 형상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29) 소작인을 ‘진정한 주인’이라고 한 이유는 땅의 가치를 삶의 터전과 생산력이라고 볼

    때, 그 땅에 살면서 생명을 키워내고, 그로 인해 그 땅을 생명의 공간으로 창조하는

    농민이야말로 진정한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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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원적 계층의 상징적 공간 대립 : 「모래톱 이야기」

    「모래톱 이야기」는 조마이섬을 둘러싼 대립을 그리고 있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조마이섬은 토지조사사업으로 동양척식회사와 일인의 수중으로 넘어간

    뒤,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의 손

    아귀로 들어간다. 실제로 조마이섬의 주인은 조마이섬을 힘들여 개척하며 살고

    있는 조마이섬 주민이어야 할텐데, 그 소유권은 전혀 엉뚱한 사람들에게로 넘

    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부당한 소유권을 유력자에게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일

    제 식민지 정부, 그리고 해방 후의 한국 정부이다. 이들은 모두 유력자들을 비

    호하는 세력이고, 경찰이나 관청 역시 조마이섬 사람들의 민생보다는 권력자들

    의 모순된 ‘소유권’을 보호해주기 바쁘다. 조마이섬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수

    단으로 이용당하는 ‘문둥이들’도 조마이섬 사람들과 대립하는 존재가 된다.

    「모래톱 이야기」의 발표 시기이자, 문단 복귀 시점인 1966년이 이미 산업

    화 사회의 사회발전 모델이 제시되어 그 실현 단계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면, 그가 문학적 문제로 제기하는 ‘땅’의 문제는 단순한 의미의 사유 재산인 것

    이 아니라 정치구조와 사회변동의 핵심에 닿아 있는 실제성이 된다. 다시 말하

    면, 현실적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땅’의 의미로 거론된다는 것이다.

    다만, 초기 작품인 「사하촌」이 이민족 지배 체제 하에서의 수탈, 즉 민족

    적 차원에서의 토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이와는

    달리 계층 차원의 실제성과 권력으로부터의 소외라는 이중적 의미 구조 속에

    ‘토지 문제’가 놓이는 것이다.

    1) 섬과 육지의 이원적 대립

    「모래톱 이야기」의 공간은 ‘조마이섬’과 이 섬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려는

    유력자가 있는 곳, 즉 권력의 근원지인 ‘육지’로 나뉘어 진다. 이 소설에서는

    ‘조마이섬’의 내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복숭아꽃도, 살구꽃도, 아기진달래도 피지 않는 조마이섬은,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갖은 풍상과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에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땅인

    데, 일제 때는 억울하게도 일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다가 해방 후부터는

    어떤 국회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는가 하면, 그 뒤는 또 그 조마이섬 앞

    강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다든가 하는―말

    하자면 선조 때부터 거기에 발을 붙이고 살아 오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소

    유자가 도깨비처럼 뒤바뀌고 있다는(후략) 「모래톱 이야기」30)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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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이섬은 낙동강 하구, 구체적으로는 삼랑진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의 삼각

    주 또는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의 맨 끝자락, 가장 척박한 삶의 현장인 곳이다.

    지번(地番)도 제대로 없이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모래톱, 그래서

    권력자들의 야욕이 더 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곳이다. 낙동강의 끊임없이 흐르

    는 물줄기를 유구한 역사로 치환했을 때, 그 강의 흐름에 떠밀리고 떠밀려 드

    디어 정착하게 되는, 그리하여 이 척박한 삶의 공간을 이루는 모래들은 ‘갈발

    새 영감’과 ‘송아지 빨갱이’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정

    착하게 되는 강 하류의 작은 섬은 소위 ‘떠돌이 하류 인생’이 계속해서 떠밀리

    다 모여들게 된 막장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낙동강 하류의 작은

    섬, 조마이섬의 구성 성분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따라지’들이며, 이제 그들

    에겐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는 절박한 생존 터전으로서 자리하는 것이 바로

    조마이섬이다. 그러나 잘 흩어지는 ‘모래’의 속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섬은 또 다시 강한 물살이 밀려왔을 때는 언제 떠내려갈 지도 모르는 불안함을

    내포한다. 마치 유력자의 횡포에 의해 생존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그들

    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반대로 육지는 조마이섬을 가로채려는 유력자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피해자

    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지배층의 공간이며,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의 공간인 것

    이다. 그러나 「사하촌」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공간은 소설의 구성에 있어서

    큰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뚜렷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게 함으로써 권

    력이 지니는 속성, 즉 ‘어둠’의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

    기도 한다. 베일 속에 가려진 악의 세력은 오히려 몇 배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1) ‘섬’의 상징성

    지구를 이분법의 측면으로 나눈다면, 대륙과 바다로 양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륙은 일종의 섬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거대한 면적을 가지게

    되면 ‘섬’보다 높은 지위인 ‘대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작은 크

    기의 섬들은 대륙의 상대 개념으로써 낮은 지위를 지니는 ‘섬’으로 남게 되는

    것일 뿐이다.

    섬[島] island. : 대양(大洋), 내해(內海), 호소(湖沼), 대하(大河) 등의 수

    역(水域)에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 세계적으로는 호주 이상의 큰 육지를 대

    륙이라고 부르고 그린란드 이하의 육지를 섬이라고 부르고 있다.31)

    30)『한국 소설문학대계 31』에 수록된 원문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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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질상으로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크기라는 기준으로 등급

    을 나누고 순위를 매겨 나간 결과가 바로 섬과 육지의 분리인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것, 상대적으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일수록 주류

    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외딴 섬’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육지의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고, 그로 인해서 ‘섬’이란 공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다. 즉, 낮은 지위의 공간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섬’과

    ‘육지’라는 명명법 속에 이미 ‘차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이루는 구성 성분은 동일하지

    만, 그것을 인종과 민족으로 나누고, 계층이나 계급으로 나누어서 등급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쉼없이 투쟁을 한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 위

    를 강자가 군림하고, 약자들을 철저히 소외시켜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섬

    과 약자는 ‘소외된 것’이라는 공통 분모로 연결되어 있으며, 섬은 소외된 자,

    즉 약자의 공간으로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격절성이 강한 섬에서는 문화지역에서 그만큼 멀어지

    는 것이 되므로 일반적으로 개발 또한 늦어져 문화적 진보에서 뒤떨어지는 경

    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섬은 소외의 상징이었다. 육지의

    중심부에서 패배한 자들이 유배지로 떠밀린 곳이 바로 대부분의 섬이기 때문이

    다. 이와 같은 사실은 작품 속 갈밭새 영감의 “증조부 되는 분이 옛날 서울에

    서 무슨 벼슬깨나 하다가 그놈의 당파싸움에 휘말려서 억울하게 그곳 조마이섬

    으로 귀양인지 피신인지를 해”왔다는 점으로도 밝혀진다. 사정이 이러한 즉,

    섬의 주민 갈밭새 영감의 현재 지위는 그의 증조부가 섬으로 쫓겨온 것 때문에

    결정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섬이라는 공간은 인간 역사의 끝없는 힘의 대결

    과정에서 패배한 약자들의 공간인 셈이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육지와 섬, 그

    리고 그로 인한 지역 간의 지위 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벌어지게 되

    고,32) 계속해서 그 자손들에게 대물림된다. 육지와 분절된 공간의 성격이 계층

    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적 지위에 사람들이

    귀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가난한 주민들은 ‘섬’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것

    은 생명을 늘상 위협하는 ‘바다’라는 공간이 섬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전혀 없는 섬의 속박성은 경

    제적․사회적 여건 때문에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섬주민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31)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17, 1983, p.173.

    32) 섬은 문화전파에서 비교적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거듭될수록 육지와

    문화적 격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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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외 공간으로서의 ‘섬’

    「내가 본 국도」 속의 한 구절―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소속 육지에서

    똑딱선을 가지고 섬 백성을 모시러 오는 알뜰한 정당이 있어, 이들은 다

    만, 그 배로 실려 가서 실상 자기네 실생활과는 무연한 정치를 위하여 지

    정해 주는 기호 밑에 도장을 찍어 주고 그 배에 실려 돌아온다는 것입니

    다.

    현대 문명의 혜택이라곤 아직 받아 보지 못한 그들의 생활 속에도 현대

    문명인이 행사하는 선거란 상식이 깃들게 되고, 어느 정당이나 정치의 영

    향도 알뜰히 받아 보지 못한 그네들에게도 투표하는 임무만은 지워져야 하

    고 조국의 사랑이라곤 받아 본 일이 없이 헐벗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아들

    들이 먼저 조국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훈련을 받고 총을 메고 군인이

    되어 갔다는 것…….’

    우리 아버지도 응당 이러한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래서 언제

    어디서 쓰러졌는지도 모르고, 따라서 국군 묘지에도 묻히지 못하고, 우리

    에겐 연금도 없고……. 「모래톱 이야기」p.90.

    이것은 ‘조마이섬’에 살고 있는 중학생인 건우의 일기 내용이다. 건우는 이

    소설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갈밭새 영감의 손자가 된다. 갈밭새 영감이

    현실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싸우는 지향적 모습을 보여준다면, 건우는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고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건우의 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조마이섬’이라는 공간은 “현대 문명

    의 혜택이라곤 아직 받아 보지 못한” 소외된 지역이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투

    표하는 임무만은 지워져야 하고 조국의 사랑이라곤 받아 본 일이 없이 헐벗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아들들이 먼저 조국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훈련을 받

    고 총을 메고 군인이 되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강요당하는 곳이다. 이른

    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소외된 민중의 공간인 것이다.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은 「산거족」33)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산거족」

    의 주민들 역시 이와 비슷한 실정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따라지 목숨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시청에서는 거기에도 통․반을 만들었다. 통․반은 만들어졌지만, 쓰레기차, 거름차가 안 올라오는 것과 마찬가

    33) 홍기삼(조선일보 1971. 1. 27.)은 「산거족」이 유린당한 인권과 그것을 합법화 하

    고 있는 살인적 법률과 그것을 제멋대로 이용하는 고위층과 그들에게 핍박받는 다수

    의 서민대중적 성실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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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로 시 수도는 올라오질 않았다. 아침 저녁이면 물을 찾아 헤매는 여인들

    이 동이를 이고, 온통 산길을 메우듯 날뛰었다. 「산거족」34)p.392

    행정적인 관리는 받고 있기 때문에 꼬박꼬박 세금은 내고 있지만 마삿등 사

    람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지배나 통치를 위한 ‘통․반’인 것이다. 역시 책임을 강요당하되 권리는 없는 셈이다. 심지어는 생활의 기본이 되는 물마저

    도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것이 판자촌에 사는 도시 빈민들의 실상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서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다소 척박한 공

    간인 ‘산’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산거족」의 ‘산’은 「모래톱이야기」의

    ‘섬’에 대응되는 공간이다. 둘 다 힘없는 자들의 공간으로서 폭력적인 수탈의

    횡포 속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산’이나 ‘섬’이라는 공간이 세간

    의 집중을 받을 수 없는 외진 위치에 있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공간적 특성

    때문에 가뜩이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가진 자들의 횡포 속에서 착취

    당하게 되는 것이다.

    (3) 착취 대상으로서의 ‘섬’

    조마이섬의 주인은 응당 그 섬을 일구고 가꾼 섬 주민들이 되어야 한다. 그

    렇지만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와 같은 토지 소유 이전 문제를 작가

    는 ‘가정 방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기한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의원, 다음은 하천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 이런 식으로 소유자(조마이섬의 소유자-인용자)가

    둔갑되어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

    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모래톱 이야기」p.97.

    이렇게「모래톱 이야기」는 일제의 경제적 수탈로 빼앗긴 농지가 해방 뒤 원

    래의 경작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국유지로 분류되었다가 다시 정치권력을 업고

    힘 있는 개인에게로 이전되는 부당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확고한

    사회학적 상상력에 의하여 역사적 변동과 제도적 모순에 의한 개인적 삶의 불

    행을 토지문제를 통해 제기하겠다는 의도이다.35)

    34) 『한국 소설문학대계 31』에 수록된 원문을 인용하였음.

    35) 송명희,「‘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의 거리」, 우리문학 9,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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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가 해방 뒤에도 실경작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위와 같은 소유이전 과정을

    밟는 이유는 ‘농지개혁’의 부당성 때문이다. 해방 당시 남한의 전 경지 면적의

    63.4%가 소작지로서 소수의 지주 수중에 있었으며 다수의 직접적 생산자인 농

    민의 소유지, 즉 자작지는 6.6%에 지나지 않았다. 1948년 농지개혁 기초위원

    회의 설치로부터 1950년 농지개혁법이 공포되었지만 실제로 해결되었어야 할

    1945년 말 소작지 총면적의 약 38%만이 분배되었을 뿐이었으며, 그것도 귀속

    농지 분배분을 제외하면 그 대상은 21.6%에 불과했다.36) 이처럼 해방 후, 토

    지의 재분배는 정치권력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부의 편중을 야기했다. 그것은

    결국 토지 문제가 정치적 부패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이라고 하겠다.

    현실이 이렇게 되고 보니, 섬의 실제 주인이어야 할 섬 주민 갈밭새 영감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 된다.

    “나라땅, 남의 땅을 함부로 먹다니! 그건 땅을 먹는 게 아니라 바로 ‘시

    한폭탄’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제 생전이 아니면 자손대에 가서라도 터지

    고 말거든! 그리고 제아무리 떵떵거려 대도 어른들은 다 가는 거다. 죽고

    마는 거야. 어디 땅을 떼 짊어지고 갈 수야 있나. 결국 다음 이 나라 주인

    인 너희들의 거란 말야. 알겠어?” 「모래톱 이야기」p.91.

    갈밭새 영감의 입을 빌어 제기한 작가의 토지 문제에 대한 인식은 김정한의

    다른 소설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토지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국한시키는 것

    이 아니라 민중의 문제, 나아가서는 조국의 문제로 확대시키려는 작가의 의도

    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래톱 이야기」의 공간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조마이섬’이 갖고 있는

    양면성에 있다. 그것은 조마이섬이 섬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생활의 터

    전이지만, 육지의 유력자 입장에서 볼 때에는 탐욕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가치

    를 지녔기 때문이다. ‘조마이섬’은 주머니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머니는

    물건이나 돈을 담아두는 기능을 갖는데,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나 ‘딴 주머니

    를 차다’와 같은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재산’ 내지는 ‘소유’의 의미를 갖는다

    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마이섬’은 그 이름에서부터 ‘소유’의 문제를 화두로

    삼게 만드는 것이다.

    섬 주민이 힘들게 개척한 땅, 생존을 위한 터전이 그 주머니 모양의 섬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라고 할 때, 육지의 유력자는 권력에 의탁하여 너무도

    손쉽게 그것을 가로채려는 부도덕성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의 차이는

    36) 황한식,「한국농지연구」,『한국현대사』, 열음사, 1981, pp.485~493.

  • - 21 -

    양쪽 집단이 내리는 ‘섬’에 대한 가치 규정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즉, 섬의 주민에게 ‘조마이섬’은 생존을 위한 공간이지만, 육지의 유력자에게

    그것은 착취의 대상이자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마이섬’ 역시 「사하촌」의 ‘성동리’처럼 갈등 내포성 공간으로 작용한다.

    사물의 본질을 가치 규정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모래톱 이야기」의 ‘조마

    이섬’은 ‘생존’과 ‘자본’이라는 두 가지의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양자의

    모순으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과 투쟁은 ‘조마이섬’이

    라는 공간의 본질37)을 왜곡하는 자들에 대한 저항이고, 땅이란 공간의 본래 기

    능을 되찾아주는 행동이라고 하겠다.

    2) 현실 극복 의지

    「모래톱 이야기」는 섬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는 주민들의 입장과 처지를

    비교적 자세하게 다룬 반면, 섬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정보는 그리

    자세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갈밭새 영감이나 ‘송아지 빨갱이’와 같은 인물의 입

    을 통해서만 유력자의 존재와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작품의 가해자인 유

    력자의 모습은 상당히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섬을 빼앗으려는 유력자의 행위

    역시 ‘엉터리 둑’이라든가 ‘유력자의 앞잡이’ 등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데, 섬

    을 위태롭게 하는 위기 역시 ‘살인적인 홍수’라는 자연 재해를 통해서 상징적

    으로 드러내고 있다.

    살인적인 홍수에 섬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지자 조마이섬으로 향하는

    ‘구포 다릿목’에는 “비상경계의 붉은 깃발이 찢어질 듯 폭풍우에 펄럭이고,

    다릿목을 건너지른 인줄 곁에는 한국인 순경과 미군이 버티고 있었다.

    「모래톱 이야기」p.108.

    조마이섬과 연결된 ‘구포 다릿목’에 내려진 비상경계, 이 때 ‘비상경계의 붉

    은 깃발’은 자연 재해를 알리기 위한 위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육지에서 생

    성된 탐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섬(민중)’의 운명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

    고 볼 수 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갈밭새 영감은 섬을 구하기 위한 저항을

    하다가 결국 유력자의 하수인을 살해한다. 갈밭새 영감은 일종의 선험자적 인

    37) ‘조마이섬’에 해당하는 공간의 본질이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데메테르

    (Demeter)가 ‘곡식의 어머니’로서 생산력을 상징하듯이, 어떤 힘 있는 자들의 축재

    를 위한 수단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자 삶

    의 터전으로 존재하여 건강성을 간직한 공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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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지만, 「사하촌」에서 보여주었던 민중적 연대를 시도하는 역량까지는 보

    여주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갈밭새 영감의 자기희생으로 조마이섬은 일단 수

    호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산이라도 뒤엎었는지 황토로 물든 물굽이가 강이 차게 밀려 내렸

    다. 웬만한 모래톱이고 갈밭이고 남겨 두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뭉개고

    삼킬 따름이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듯 우르르 하는 강울림 소리는 더욱

    무엇을 노리는 것같이 으르렁댔다. 「모래톱 이야기」p.105.

    김정한의 소설에는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피해자를 더욱 더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역할을 하는데, 「모래톱 이야기」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섬을 송두리째 삼키려는 유력자의 탐욕스러운 횡포는 이 소설에서 홍수로 인한

    사나운 ‘강울림 소리’로 형상화된다. 그 물살은 폭력적이며, 제압하기 힘든 형

    상으로 몰아친다. 또한 ‘군대’가 정지한 모래톱이 앞으로 겪게될 운명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섬의 위기는 일단 모면했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이루어

    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섬’이라는 공간에 대한 양쪽의 대립은 여전히 남아 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갈등 내포성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

    속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은 채 진행형으로 남겨둠으로써 독

    자들의 시선을 현실의 문제로 돌리게 만들고 있다.

    Ⅲ. 대립적 공간에서의 진실 추구

    앞에서 우리는 계층적 성격으로서의 공간, 즉 계층간 공간 대립이 뚜렷한 작

    품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대립의 목적이 계층 간의 대립을 구체

    화시켜 현실의 모순된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키려는데 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이러한 공간 대립적 특성은 김정한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공간 대립의 성격이 조금은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옥심이」와 「묵은 자장가」를 설정하였는데,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성은 두 개의 대립적인 인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

    라, 작품의 주동 인물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공간을 인물이 왕복하면서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

    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 - 23 -

    그리고 또 하나, 이 공간들은 ‘완전성’을 상실한 공간으로서, 결여․부재․변질 등의 의미를 갖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완전하지 못한 공간을 경험

    한 소설 속 인물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나가는데, 바로 이러한 소설의 줄거

    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작품 속의 공간 특징을 살펴보겠다.

    1. 부재(不在)의 공간- 자기 구제의 탈출과 귀환 : 「옥심이」

    1) 이원적 공간- ‘근대’와 ‘전근대’의 상징

    「옥심이」는 1936년 6월 18일부터 7월 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단편

    소설이다. 김정한의 초기 소설은 주로 사하촌을 배경으로 하는데, 「옥심이」

    는 그러한 초기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에는 ‘백암사’라는 사찰의 절논을

    부치는 소작인의 궁핍한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조갑상은 「옥심이」의 원제가 「패덕녀」였다는 사실38)

    을 거론하며 옥심이와 안십장과의 관계 설정은 이 작품의 의도가 가난에 따르

    는 성의 문제, 즉 윤리의식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절에 이

    르는 도로를 닦는 데 부역을 나온 소작인들이 “카키빛 양복의 감독과 십장들의

    매에 쫓겨 물만난 개미떼처럼” 이리저리 허덕이는 모습은 식민지 치하에서 착

    취당하는 농민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사하촌」과 유사하지만, 옥심이

    의 남편 천수가 문둥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은 가난과 더불어 윤

    리의 문제를 대두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권민식은 공사판에서 만난 안십장을 따라 집을 나가버린 옥심이를 가

    리켜 “여자로서는 한갓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어머니로서는 의젓한 창대”와

    같다고 하면서 일제 치하 빈곤한 소작인의 아내가 타락해가는 윤리적 문제와

    모성애의 제시 측면으로 작품을 파악하였다.39) 그 외에도 「옥심이」를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태도는 여럿 발견된다. 강진호는 ‘가난’의 측면 보다는

    ‘욕망’의 측면으로 이해하는데, 정상적인 삶을 가로막는 왜곡된 현실 못지 않게

    김정한이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윤리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보고, 「옥심이」가

    본능적 욕망과 모성애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결국 모성애를 선택하는 것으로 파

    악하였다. 강진호는 여기서 김정한이 의도한 윤리는 유가적이라기 보다는 오히

    려 휴머니즘적인 것이라고 규정하여 휴머니즘이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접근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40)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인물간의

    38) 김정한,『낙동강의 파숫군』, 한길사, 1987, p.76.

    39) 권민식,「김정한 소설 인물 유형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1, p52.

    40) 강진호,『한국 근대 문학 작가 연구』,도서출판 깊은 샘, 1996,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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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또는 인물의 행동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

    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옥심이」를 둘러싼 공간이 옥심이의 심리적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옥심이」의 마을은 “돈 많고 산수 좋기로 유명한” 두미산 백암사의 토지를

    부치는 소작촌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백암사의 지주적 형태는 배경으로 물

    러앉고 백암사는 “자동차의 왕래가 자유롭도록” 신작로 공사를 벌임으로써 일

    종의 자본가적 모습으로 부각된다. 식민지 근대의 한 상징인 신작로 공사판이

    직접적 배경으로, 다시 말하면 전경화(前景化)되고 있다.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대신에 자본의 침투가 농민층에 가하는 복잡한 작용에 대한 관찰로 작가의 초

    점이 이동했다는 점에서 카프적 구도의 전형에 충실한 「사하촌」으로부터 일

    정한 이탈이 엿보인다.41)

    비록 옥심이가 백암사의 소작인이고, 그로 인해 백암사의 소작인에 대한 노

    동력 착취 등의 문제, 백암사 중들의 윤리적 타락 문제 등이 작품 속에 언급되

    고는 있지만, 착취의 전형이 그전 작품들에 비해 구체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는 점, 옥심이가 갈등하는 이유가 계층 구조에 있지 않다는 점 등을 통해서 이

    작품의 주제가 다른 곳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옥심이」에 나타나는 주요 공간은 옥심이의 집, 그리고 신작로 공사장이

    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공간은 서로 대응적 양상을 띤다. 옥심이의 계층을 나

    타내는 그녀의 ‘집’은 일제 치하 가난한 소작농가로서 백암사라는 지주에게 노

    동력을 착취당하는 소작인의 궁핍을 보여준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이것

    은 옥심이라는 인물의 개성적인 특징과도 연관되는데, 바로 남편이 없는 ‘부재

    의 공간’적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즉, 소중한 것이 ‘결여된 공간’으로 옥심이

    의 집을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 천수는 개인적인 의지로 가출한 것이 아

    니라 질병(문둥병)으로 인해 유배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옥심이의 집이라는 공

    간은 남편 천수가 기거하는 움막까지 연장된다. 이 움막은 옥심이의 집과 ‘내

    (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 남편의 움막이 존재함

    으로 해서 옥심이의 행동은 제약을 받게 된다. 달리 해석하면, 병든 남편과 시

    집 식구들이 족쇄처럼 옥심이를 억압하는 것이다. ‘병든 남편’은 옥심의 입장에

    서 보면 ‘성(性)의 박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허서방(비록 시아버지인 허서방이

    옥심이에게 위안의 대상이라고는 해도)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은 옥심이의 정

    절을 감시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역학 관계가 존

    재하는 ‘옥심이의 집’은 그야말로 옥심이의 ‘성(性)’을 억압하는 공간인 것이다.

    당대의 상황으로 볼 때,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간의 자유적 본능, 즉 성의

    41) 최원식, 「90년대에 다시 읽는 요산」,작가연구 제4호, 1997,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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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이 억압받는 현실이 존재하는 옥심의 집은 ‘전근대’, 즉 ‘봉건’의 상징이라

    고 볼 수 있다. 작품 속 ‘만두 할멈’의 말처럼 옥심이와 천수의 입장이 바뀌었

    다면 천수는 주저하지 않고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신작로’는 근대화의 물결이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최원식42)

    은 「옥심이」의 ‘신작로 공사장’에 주목하고, “이 공사판에 나오는 잠깐 동안

    이나마 여성들은 완고한 가부장제가 관철되는 농촌 가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부역하는 남자들의 애쓰는 육체로부터 성적인 자기 암

    시를 연상하고 킥킥대는 다른 여자들이나, 특히 “수절이니 의리니, 그것 다 소

    용없”다고 자신의 일생을 부정하면서 음담을 잘하는 늙은 과부 만두할멈에 이

    르기까지, 「사하촌」에 가리워졌던 여성만의 독자적 공간”이 바로 신작로인

    셈이다.

    “흥 팔자란 게 다 뭐유? 고치면 그것도 팔자라우. 나 같은 바보가 못 고

    쳤지……참 지낸 일 생각하면……”

    하고 만두할멈은 잠깐 한숨을 쉬고 나더니,

    “수절이니, 의리니, 그것 다 소용없소. 쉬운 말로 누가 열여덟부터 오늘

    까지 과부로 늙은 날 위해 열녀비 세워 줍디까? 그까짓 것 또 세워준들 뭘

    하우. 비석에서 밥 아니나올 바에야. 어쨌든 세상따라 사는 것이 제일이요.

    백암사 주지 보시오. 계집이 몇이나 돼도 산중에선 그래도 산 부처님이니

    뭐니 해서 떠받들고 주지 노릇만 땅땅 잘해 먹지 않수.”

    「옥심이」43)p.27.

    이것은 유교 중심의 봉건 사회에서 제일로 여기던 부녀자들의 정조, 즉 열

    (烈)에 대한 부정이다. 만두할멈의 대화에서 과거에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던

    ‘열녀비’는 ‘밥’보다 못한 것으로 추락한다. 당시의 현실 중심적 사고 방식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둥이 남편을 둔 소작인 여성 옥심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다. 즉, 신작로라고 하는 자본의 길을 따라 새 삶을 향해 출분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1930년대에는 유부녀의 매춘이나 간음을 그린 작품들이 증가하는데,

    옥심이처럼 자기 구제의 결단 아래 출분까지 감행하는 여성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옥심이」는 매우 선진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

    역시 어린 자식마저 버리고 동향의 안십장과 출분한 그녀를 비난하지 않는다.

    42) 최원식, 앞의 글, p.13 참조.

    43) 『신한국문학전집 17』에서 원문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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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농촌의 입장에서 볼 때 신작로는 파괴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자

    본의 침탈을 위한 통로로서 농촌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