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3) 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1
13 학술 2013년 3월 25일 월요일 1447호 “물리학계의 여성 과학자는 약 3만명입 니다. 물리학, 화학 등 과학 전체 분야로 보면 여성 과학자 수는 열 배가 넘죠. 과학 을 공부하며 여자라 외롭다고 느껴질 때 많은 이들이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자연과학대학(자연대)가 주최한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 특강이 19일 오후5시 ~6시30분 종합과학관B동 102호에서 열렸 다. 연사로 미국 시카고대(Chicago University) 김영기 교수(물리학과)가 나섰고, 학생 약 60명이 참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 미국 페르 미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 중이 며,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참여해 우 주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힉스 입자를 발 견하는데 기여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입자물 리학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입자 물리학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김 교수에 따 르면 입자물리학은 물리학 중 가장 작은 단위를 연구하지만, 물질의 기원을 연구하 기에 우주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어 김 교수는 입자 물리학 가속기를 이용한 입자 물리학 관련 연구에 대해 간 단하게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가속기를 통 해 소립자의 구조, 원자핵 등을 상세히 관 찰할 수 있다”며 “물질의 기원을 찾기 위 해서 이러한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 했다. 김 교수는 현재 과거에 비해 여성 과학 자의 연구 환경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여성과학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 고 ‘ICWIP(International Conference Women in Physics, 세계여성물리대회)’ 와 같은 교류의 장도 열리고 있기 때문이 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갖은 차별에도 꿋 꿋이 연구에 몰두한 선대 여성과학자의 노 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다양한 인종과 국적으 로 이뤄진 연구실의 구성원과 분위기 덕분 에 여성인 자신이 부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은 출신 국가, 피부 색, 종교 등이 각기 다 달라요. 그러다보니 양성 차별은 물론이고 인종차별, 문화차별 등 각종 차별이 거의 일어나지 않죠. 그래 서 동양 여성인 제가 연구소 부소장을 맡 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또한 본교가 여자 대학교인 만큼 여성의 리더십을 배우는데 적격이라고 언 급했다. “많은 역대 여성 장관이 이화여대 출신이더군요. 다른 남녀공학에 비해 이화 여대는 여학생이 직접 리더로 설 일이 많 기 때문에 여성 리더십을 키우기 좋죠. 이 러한 점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어요.”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한 교수가 여성 과학자로서 차별받 은 적은 없는지 묻자 김 교수는 “물리학계 에 여자가 드물어 오히려 다른 남자 물리 학자에게 쉽게 각인돼 도움이 된다”고 답 했다. 강연을 들은 원정아(자연·12)씨는 “교수 님이 연구를 즐기시고 새로운 것에 주저함 없이 뛰어드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며 “이 를 보며 학생으로서 어떤 자세로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수연 기자 [email protected] 남초 속에서 여성 과학자로 살아남기 “여성 과학자의 길, 혼자가 아니니 두려워 마세요”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3) 앙드레 마송, 물고기들의 전투, 1926. 모래를 사용한 마송의 대표 적인 오토매틱 드로잉이다. 붙어 있는 모레를 중심으로 인간과 물고 기의 형태를 띈 생명체들이 만들어져 가는 원초적 세계가 펼쳐진다. 앙드레 마송, 오토매틱 드로잉, 1925~1926.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내적 충동이나 무의식, 그림을 그리는 몸짓이 반영된 오토매틱 드로 잉이다. 자유롭게 뒤얽힌 선들 가운데 환영처럼 손과 발, 가슴 등 신 체의 일부 형태들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호안 미로, 세상의 탄생, 1925. 오토매틱한 기법으로 아무렇게나 흩뿌린 물감이 캔버스 전체에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동적인 원초적 공간 위를 꼬리달린 삼각형, 원형의 형태들이 부유하고 있다. 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글쓰기 19일 종합과학관B동 102호에서 열린 강연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에서 미국 시카고대(Chicago University) 김영기 교수가 입자물리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email protected] 하얀 백지 앞에서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 지 몰라 괴로워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 라. 또는 컴퓨터에서 새 문서를 열어놓고 십 분 이십 분 깜박거리는 커서만 계속 노려본 경 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백하건데 이 글도 애꿎은 커서와의 오랜 눈싸움 끝에 시작 되고 완성되었다. 리포트를 준비하는 학생에 게나 전업 작가에게, 일기나 편지처럼 비교적 편한 글을 쓸 때나 논문이나 장편소설과 같은 무게의 글을 쓸 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시작하 기의 어려움. 그 어려움은 글을 잘 써야 한다 는 심적 부담감, 글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 정해진 분량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온 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고안한 대표적인 글 쓰기 기법인 ‘자동기술법’은 이 모든 압박에 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자동기술법은 프로이트의 연상기법으로부 터 유래된 것으로,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 의식이 부르는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는 기 법이다. 이 기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초현실주의 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은 “말이건 글이건 아니 면 그 어떤 수단에 의해서건 사고의 진정한 작 용을 표현하려는 심리적인 자동현상, 이성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고, 미학적이나 도덕적인 어떤 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고의 받아쓰 기”라고 자동기술법을 정의내리고 있다. 그 구 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장 마음이 편해 질 수 있는 안락한 장소에 앉아서 종이와 연필 을 앞에 놓고 의식에서 벗어나 수동적인 상태 가 되도록 마음을 비우라. 정신이 몽롱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그 상태에서 바로 생각나는 문 장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면 된다. 내 정신에 의 식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게 되면 자신의 무의식이 반영된 참신한 문장들을 얻을 수 있 게 된다. “1919년의 어느 날, 잠이 들려는 순간, 갑자 기 내 정신 속에 떠오른 조각난 문장들, (...) 눈 에 띄게 이미지가 풍부하고 구문도 완벽한 그 문장들은 내게 최상의 시적 요소들처럼 생각되 었다”는 브르통의 술회가 말해주듯, 이성의 통 제에서 벗어난 단어들과 이미지들의 자유로운 분출에서 시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자동기술법은 기존의 시에서 중시되었던 모든 것들, 즉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시인 이 기울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미를 향한 열망, 사회와 인간 삶의 도덕적 질서에 대 한 고민들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모 든 의식의 방향을 벗어나서 오로지 매 순간 우 리의 귀에 속삭이는 언어의 물결에 실려 가도 록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반수면 상태에서 만 들어지는 비의지적인 문장들에 의해 일깨워지 게 되는데, 브르통에 의하면 아무리 비논리적 이고 무위적이고 부조리한 것일지라도 이런 문 장들이 바로 “제 1의 시적 요소들”을 이룬다는 것이다. 앙드레 마송이나 호안 미로, 한스 아르프와 같은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자동기술법을 스 케치와 회화에 적용하는 ‘오토매틱 드로잉’을 시도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흰 종이를 앞 에 놓고 눈을 감거나 눈에 안대를 두른다. 자동 기술 글쓰기의 준비단계와 마찬가지로 가급적 수동적인 상태가 되도록 마음을 비운 후 준비가 되면 상하좌우 마음껏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그 림을 그린다. 다시 눈을 뜨고 (혹은 안대를 풀고) 그 결과를 관찰한 후 나온 형상에 따라 그림을 완성하거나 색을 입히면 된다. 이를 응용한 다른 방법으로 앙드레 마송은 캔버스의 아무 곳에나 아교를 바른 자리에 모래를 뿌린 후 다시 털어내 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모래와 캔버스의 형태 위에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의 정련되지 않은 생각이 갖는 해 방의 자원들을 창의성 계발에 활용하기 위해 서는 자동기술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 기 보다는, 의식적인 다른 글을 쓰기 위한 하나 의 출발점 내지 도화선의 역할로 삼는 것이 좋 을 것 같다. 스위스에서 창의적인 글쓰기 강의 를 하고 있는 올리보는 자동기술법을 활용한 글쓰기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금부 터 ‘나는’이라고 쓰기 시작해서 약 10분간 쓰 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이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써 라. 손에 잡고 있는 펜을 멈추면 안 된다. 그만 큼 빠르고 대범하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말고 쓰면 된다.” 당장이라도 즐겁게 시작해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초현실주의 자들의 자동기술법은 쉽게 글을 시작할 수 있 고 창작의 고통이나 의무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고 정관념에 사로잡힌 벽을 깨고 우리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역량을 솟아나게 해준다. 방식이 창 의적이어야 창의적인 내용도 나온다. 글을 쓰 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 더 좋은 상상력과 글감 을 얻을 수 있다. 조윤경 교수(불어불문학과)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 김영기 교수 특강

Upload: others

Post on 27-Jul-2020

1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3) 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글쓰기pdfi.ewha.ac.kr/1447/144713.pdf ·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3) 앙드레

13학술2013년 3월 25일 월요일 1447호

“물리학계의 여성 과학자는 약 3만명입

니다. 물리학, 화학 등 과학 전체 분야로

보면 여성 과학자 수는 열 배가 넘죠. 과학

을 공부하며 여자라 외롭다고 느껴질 때

많은 이들이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자연과학대학(자연대)가 주최한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 특강이 19일 오후5시

~6시30분 종합과학관B동 102호에서 열렸

다. 연사로 미국 시카고대(Chicago University)

김영기 교수(물리학과)가 나섰고, 학생 약

60명이 참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 미국 페르

미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 중이

며,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참여해 우

주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힉스 입자를 발

견하는데 기여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입자물

리학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입자

물리학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김 교수에 따

르면 입자물리학은 물리학 중 가장 작은

단위를 연구하지만, 물질의 기원을 연구하

기에 우주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어 김 교수는 입자 물리학 가속기를

이용한 입자 물리학 관련 연구에 대해 간

단하게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가속기를 통

해 소립자의 구조, 원자핵 등을 상세히 관

찰할 수 있다”며 “물질의 기원을 찾기 위

해서 이러한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

했다.

김 교수는 현재 과거에 비해 여성 과학

자의 연구 환경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여성과학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

고 ‘ICWIP(International Conference

Women in Physics, 세계여성물리대회)’

와 같은 교류의 장도 열리고 있기 때문이

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갖은 차별에도 꿋

꿋이 연구에 몰두한 선대 여성과학자의 노

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다양한 인종과 국적으

로 이뤄진 연구실의 구성원과 분위기 덕분

에 여성인 자신이 부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은 출신 국가, 피부

색, 종교 등이 각기 다 달라요. 그러다보니

양성 차별은 물론이고 인종차별, 문화차별

등 각종 차별이 거의 일어나지 않죠. 그래

서 동양 여성인 제가 연구소 부소장을 맡

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또한 본교가 여자 대학교인 만큼

여성의 리더십을 배우는데 적격이라고 언

급했다. “많은 역대 여성 장관이 이화여대

출신이더군요. 다른 남녀공학에 비해 이화

여대는 여학생이 직접 리더로 설 일이 많

기 때문에 여성 리더십을 키우기 좋죠. 이

러한 점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어요.”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한 교수가 여성 과학자로서 차별받

은 적은 없는지 묻자 김 교수는 “물리학계

에 여자가 드물어 오히려 다른 남자 물리

학자에게 쉽게 각인돼 도움이 된다”고 답

했다.

강연을 들은 원정아(자연·12)씨는 “교수

님이 연구를 즐기시고 새로운 것에 주저함

없이 뛰어드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며 “이

를 보며 학생으로서 어떤 자세로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백수연 기자

[email protected]

남초�속에서�여성�과학자로�살아남기“여성 과학자의 길, 혼자가 아니니 두려워 마세요”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3)

앙드레 마송, 물고기들의 전투, 1926. 모래를 사용한 마송의 대표

적인 오토매틱 드로잉이다. 붙어 있는 모레를 중심으로 인간과 물고

기의 형태를 띈 생명체들이 만들어져 가는 원초적 세계가 펼쳐진다.

앙드레 마송, 오토매틱 드로잉, 1925~1926.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내적 충동이나 무의식, 그림을 그리는 몸짓이 반영된 오토매틱 드로

잉이다. 자유롭게 뒤얽힌 선들 가운데 환영처럼 손과 발, 가슴 등 신

체의 일부 형태들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호안 미로, 세상의 탄생, 1925. 오토매틱한 기법으로 아무렇게나

흩뿌린 물감이 캔버스 전체에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동적인

원초적 공간 위를 꼬리달린 삼각형, 원형의 형태들이 부유하고 있다.

자동기술법과 창의적인 글쓰기

19일 종합과학관B동 102호에서 열린 강연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에서 미국 시카고대(Chicago University) 김영기 교수가 입자물리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email protected]

하얀 백지 앞에서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

지 몰라 괴로워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

라. 또는 컴퓨터에서 새 문서를 열어놓고 십

분 이십 분 깜박거리는 커서만 계속 노려본 경

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백하건데 이

글도 애꿎은 커서와의 오랜 눈싸움 끝에 시작

되고 완성되었다. 리포트를 준비하는 학생에

게나 전업 작가에게, 일기나 편지처럼 비교적

편한 글을 쓸 때나 논문이나 장편소설과 같은

무게의 글을 쓸 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시작하

기의 어려움. 그 어려움은 글을 잘 써야 한다

는 심적 부담감, 글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

정해진 분량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온

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고안한 대표적인 글

쓰기 기법인 ‘자동기술법’은 이 모든 압박에

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자동기술법은 프로이트의 연상기법으로부

터 유래된 것으로,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

의식이 부르는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는 기

법이다. 이 기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초현실주의

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은 “말이건 글이건 아니

면 그 어떤 수단에 의해서건 사고의 진정한 작

용을 표현하려는 심리적인 자동현상, 이성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고, 미학적이나 도덕적인

어떤 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고의 받아쓰

기”라고 자동기술법을 정의내리고 있다. 그 구

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장 마음이 편해

질 수 있는 안락한 장소에 앉아서 종이와 연필

을 앞에 놓고 의식에서 벗어나 수동적인 상태

가 되도록 마음을 비우라. 정신이 몽롱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그 상태에서 바로 생각나는 문

장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면 된다. 내 정신에 의

식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게 되면 자신의

무의식이 반영된 참신한 문장들을 얻을 수 있

게 된다.

“1919년의 어느 날, 잠이 들려는 순간, 갑자

기 내 정신 속에 떠오른 조각난 문장들, (...) 눈

에 띄게 이미지가 풍부하고 구문도 완벽한 그

문장들은 내게 최상의 시적 요소들처럼 생각되

었다”는 브르통의 술회가 말해주듯, 이성의 통

제에서 벗어난 단어들과 이미지들의 자유로운

분출에서 시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자동기술법은 기존의 시에서 중시되었던

모든 것들, 즉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시인

이 기울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미를

향한 열망, 사회와 인간 삶의 도덕적 질서에 대

한 고민들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모

든 의식의 방향을 벗어나서 오로지 매 순간 우

리의 귀에 속삭이는 언어의 물결에 실려 가도

록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반수면 상태에서 만

들어지는 비의지적인 문장들에 의해 일깨워지

게 되는데, 브르통에 의하면 아무리 비논리적

이고 무위적이고 부조리한 것일지라도 이런 문

장들이 바로 “제 1의 시적 요소들”을 이룬다는

것이다.

앙드레 마송이나 호안 미로, 한스 아르프와

같은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자동기술법을 스

케치와 회화에 적용하는 ‘오토매틱 드로잉’을

시도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흰 종이를 앞

에 놓고 눈을 감거나 눈에 안대를 두른다. 자동

기술 글쓰기의 준비단계와 마찬가지로 가급적

수동적인 상태가 되도록 마음을 비운 후 준비가

되면 상하좌우 마음껏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그

림을 그린다. 다시 눈을 뜨고 (혹은 안대를 풀고)

그 결과를 관찰한 후 나온 형상에 따라 그림을

완성하거나 색을 입히면 된다. 이를 응용한 다른

방법으로 앙드레 마송은 캔버스의 아무 곳에나

아교를 바른 자리에 모래를 뿌린 후 다시 털어내

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모래와 캔버스의 형태

위에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의 정련되지 않은 생각이 갖는 해

방의 자원들을 창의성 계발에 활용하기 위해

서는 자동기술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

기 보다는, 의식적인 다른 글을 쓰기 위한 하나

의 출발점 내지 도화선의 역할로 삼는 것이 좋

을 것 같다. 스위스에서 창의적인 글쓰기 강의

를 하고 있는 올리보는 자동기술법을 활용한

글쓰기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금부

터 ‘나는’이라고 쓰기 시작해서 약 10분간 쓰

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이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써

라. 손에 잡고 있는 펜을 멈추면 안 된다. 그만

큼 빠르고 대범하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말고 쓰면 된다.” 당장이라도 즐겁게

시작해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초현실주의

자들의 자동기술법은 쉽게 글을 시작할 수 있

고 창작의 고통이나 의무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고

정관념에 사로잡힌 벽을 깨고 우리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역량을 솟아나게 해준다. 방식이 창

의적이어야 창의적인 내용도 나온다. 글을 쓰

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 더 좋은 상상력과 글감

을 얻을 수 있다. 조윤경 교수(불어불문학과)

미국�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부소장�김영기�교수�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