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자유로운 조리사’ 19세때 최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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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제381호 한 국 의 -언제부터 요리를 하셨는지요? “부모님이 미국 요식업계에서 총괄매 니저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 럽게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열넷 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지요.” -셰프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운동을 좋아해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했어요. 그런데 허리를 다쳐 운동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슬럼프에 빠져 배낭 여행을 떠났어요. 여행 도중 우연히 에머 럴 라가시 셰프가 미국 케이블TV 방송 인 푸드네트워크에서 요리토크쇼를 진 행하는 것을 보았어요. 갑자기 ‘저것 해 야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어요. 일 단은 요리를 계속해왔으니까 다른 어떤 일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 고요. 3년 안에 에머럴 라가시 같은 최고 의 셰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재미로 하던 요리와 셰프로서 하는 요리가 달랐을 텐데…. “우선 마음가짐을 달리했어요. 저에게 인생의 다른 출구가 없다는 압박감은 며 칠씩 밤샘을 하면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보통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 면접을 보고 가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곳 을 무작정 찾아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간 청했어요. 유명인과 연예인이 자주 찾는 뉴욕 맨해튼 42번가 시프리아니의 뒷문 으로 들어가서 총주방장에게 요리를 하 고 싶다고 했어요. 면접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 찾아갔지만 요리에 대한 저의 열정을 높이 사 일단은 일하게 해주 었어요.” -시프리아니는 직원이 수백 명이나 되 는 유명 레스토랑 아닙니까? “이탈리아 요식업계의 재벌이 운영하 는 곳입니다. 이탈리아인 여성 총주방장 ‘내가 한 번 트레이닝을 시켜보겠다’ 고 한 후 말할 수 없는 고된 일의 연속이 었어요. 새벽 4시에 일이 끝나도 아침 7 시에 다시 출근해서 일해야 했어요. 식당 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하는가 하면, 일주일에 밤낮을 두서너 번 바꾸니 초인 적으로 견뎌야 했어요.” ‘영혼이 자유로운 조리사’ 19세때 최연소 셰프 집에서 따라해 보는 김용휘 셰프의 비법 2 김용휘 셰프의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레시피 계란 흰자 192g, 계란 노른자 108g, 설탕(반으로 나누기) 230g, 우유 80g, 생크림 20g, 벌집 채꿀 65g, 버터 50g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만드는 방법 ① 우유, 생크림, 버터, 벌집 채꿀을 냄비에 넣고 중불에 끓인 다. ② 계란 흰자에 설탕 반을 3회에 걸쳐 넣고 부드러운 머랭을 만든다. ③ 계란 노른자에 설탕 반을 넣고 노른자가 진득해질 때까지 거품기로 젓는다. ④ 계란 노른자 혼합물 안에 따뜻하게 식은 우유 혼합물을 거품기로 섞는다. ⑤ 머랭을 3회에 걸쳐 나누어 노른자 혼합물에 넣어 휘젓는 다. ⑥ 반죽을 틀에 반쯤 넣어 160℃에 약 30분간 굽는다.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크레페 파우치 미국이민 1.5세로 부모님들 음식 DNA이어받아 맨해튼42번가 명물 ‘시프리아니’무작정 찾아가 초인적 노력 끝에 1년만에 야간작업 총책 맡아 ‘N0’를 불허하는 카리스마로 ‘주방의 악마’별명 살아남은 3명 세계 유명레스토랑에 스카우트돼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전 직원이 남미와 이탈리아 출신이었 고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했어요. 레스토 랑의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자주 하는 일에는 익숙해지겠지만 ‘스타 셰프’가 되는 데 필요한 스킬을 익힐 수가 없어 요. 동료보다 2~3시간 먼저 출근해 선배 들이 밀가루 반죽하는 걸 보고 그 다음날 에는 그대로 따라해보는 일을 1년 간 반 복했어요. 그렇게 했더니 1년 만에 열아 홉 살에 불과한 저에게 야간 작업 총괄을 맡기더군요.” -미슐랭2스타인 펄새로는 어떻게 옮 기게 되었나요? “잡페어에서 펄새의 총괄 셰프를 만났 어요. 그후 2주일 동안 하루에 서너 번씩 그에게 전화를 해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 어요. 거기서도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밤 9시부터 시작해 낮 까지 일하고, 그 다음날은 새벽 4시에 출 근하고…. 몸이 적응할 때쯤이면 또 주 야간이 바뀌었어요. 초호화 파티에 빵으 로 데코레이션을 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저에게 셰프의 꿈을 키워주었던 스타 셰 프 에머럴 라가시도 직접 만났어요. 1년 반 만에 부주방장으로 승격되었고, 인원 감축 때에도 살아남아 부숀 베이커리까 지 맡게 되었어요. 인원이 부족해 반죽 도 하고 오븐도 돌리고, 뒤에서는 도넛 도 튀기고 정리도 하는 등 6가지 일을 동 시에 해야 했어요. 너무나 바빠 스케줄 을 짤 때 시간 단위가 아닌 분 단위로 짜 야 했어요.” -배움에 대한 갈망이 뉴욕 포스트지 4 스타 레스토랑 오시아나로 옮기게 했나 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저를 주방에 세 워두고 가브리엘라 리바는 자기 요리만 하는 거예요. 총괄 셰프가 직접 요리하 는 것도 처음 봤지만, 1시간 동안 즐겁 게 춤을 추듯이 요리를 해요. 얼마나 멋 진 솜씨를 발휘하던지 옷에 요리한 흔적 이 하나도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 어요.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1 시간 만에 하는 첫 한마디가 ‘네 이름이 뭐냐’였어요. 그러고는 ‘잠깐 기다리라’ 하고 다시 요리를 하더군요. 1시간 후에 다시 ‘여기 왜 왔어?’라고 묻고는 또 요 리를 하며 기다리게 했어요. 아무 말 없 이 세 시간 동안 자신의 요리를 하며 저 를 관찰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야 이 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하고서도 ‘세프 를 뽑지 않는다’고 해요. 정말 당황스러 웠어요. 그는 셰프가 아니라 요리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거지 요. 최연소 셰프에, 최연소 부총주방장 을 지낸 저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가브리엘라 리바 셰프에 대해 더 이 야기해주시죠?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요리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셰프예요. 지금까지 저의 멘토로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 어요. 프랑스, 이탈리아, 중남미, 일본, 오세아니아 등의 다양한 식재료를 사 용했어요. 한 가지 메뉴를 만들 때 보통 2~3주 걸리는데, 가브리엘라 리바 셰프 는 그 사이에 수십 종의 메뉴를 탄생시켜 요. 특히 명상을 하듯 가만히 서 있다가 메 뉴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내공이 보통 이 아니지요. 머릿속에서 다양한 식재료 를 섞어 이미지로 메뉴를 만들기 때문에 재료 낭비도 거의 없어요. 프로 중의 프 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셰 프, 셰프’ 라고 부르면 그만 좀 하라고 짜 증을 내요. 자신은 셰프가 아니라 ‘갭’이 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해요. 단독직 입적으로 ‘왜 셰프를 싫어하는냐’고 물 었더니, 그는 ‘나는 예술가이며 사상이 자유로운 사람이다(I am a artist, and a freeman)’고 답해요. 그러면서 자신을 셰프라는 타이틀로 묶어두지 말라는 거 예요.” -한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2011년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대사관에서 일했어요. 제가 그동 안 배운 경험을 적용해볼 때 한국의 조리 사들은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산다는 느낌 입니다. 한국의 조리사들이 힘들다고 불 평하는데, 사실 영국이나 미국의 조리사 들이 힘들고 한국의 조리사들은 가장 편 한 쪽에 속합니다. 셰프 복장 하나만 보 아도 그들은 옷에 구김이 가 있으면 그날 요리를 안 합니다. 유니폼이 요리의 시 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짧은 양발을 신거나 반바지를 입고 있거나 심지어는 단추가 풀려 있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요리 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어요. 이 처럼 셰프 문화가 달라서 적응하기가 힘 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조리사를 뽑을 때 어떤 점을 물어보 나요? “4가지만 물어봅니다. 첫째, 요리를 좋 아하십니까? 둘째, 어떤 요리를 좋아하 십니까? 셋째, 요리 아니면 죽을 것 같습 니까? 넷째, 내일 당장 출근할 수 있습니 까? 이렇게 4가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요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으라는 뜻에서입 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요리가 아니 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통해 할 수가 있으니까요.” -면접을 통과하면 끝까지 몇 명이나 남습니까? “3개월 간 로테이션 하며 60명이 바뀌 었어요. 덕분에 제 별명이 ‘악마’입니다. 사생활에서는 존경하지만 주방에 들어 가면 전혀 웃지 않고 철저하게 명령체계 에 따라 일하게 합니다. ‘잠시만, 셰프!’ 하거나 ‘노! 셰프’라고 하면 안 됩니다. 레시피는 한 번만 불러주기 때문에 집중 하지 않으면 못 따라옵니다. 처음에는 동료들끼리 레시피를 나누어 외워서 하 다가 집중하면 다 알아듣게 됩니다. 뿐 만 아니라 주방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 대신에 반말을 하게 합니다. 이 런 혹독한 훈련 탓인지 끝까지 살아남은 조리사는 여성 3명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들은 일본, 캐나다 등으로 스카우트 되어 갔어요.” -동료나 후배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주방에서는 악마 노릇을 하지만 그곳 을 벗어나면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그 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까 제가 없 는 곳에서는 실컷 욕하라고 합니다. 한 번은 가족들이 놀러와 화장실에서 직원 들이 저에 대해 욕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고 해요. 그러나 나중에 셰프가 되면 제 가 왜 그렇게 엄격하게 했는지 이해할 것 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원망하지 않습 니다.” 노정용 기자 김용휘 셰프의 크레페 파우치 레시피 계란 115g, 설탕 14g, 소금 2g, 강력+박력 38g+38g, 생크림 60g, 우유 210g, 바닐라빈 1/2개 크레페 파우치 만드는 방법 ① 모든 재료들을 하나로 섞어 거품기로 부드러워질 때까지 젓는다. ② 반죽을 채에 걸러 냉장고에 약 30분간 보관한다. ③ 차가워진 반죽을 예열된 프라이팬에 얇게 굽는다. 김용휘 전 헤럴드올가니카 수석 페이스트리 셰프는 미국이민 1.5세로 진짜 조리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시간 단위가 아닌 분 단위로 스 케줄을 짜고 출근 시간에 1초만 늦어도 그만두게 하는 카리스마와 철학은 온 전히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때문에 셰프로서의 마음가짐과 요리를 대하는 태 도, 주방에서의 활동은 한국의 여타 셰프와는 다르다. 그의 몸에는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요리DNA가 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 는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웠고, 미슐랭3스타 셰프 아래에서 일하며 최연소 셰프로서의 기록을 써나갔다. 하지만 그는 셰프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 은 영혼이 자유로운 요리사를 꿈꾸고 있다. <편집자 주> 헤럴드올가니카 김용휘 수석 페이스트리 셰프 사진=윤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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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영혼이 자유로운 조리사’ 19세때 최연소 셰프pdf.g-enews.com/381/38122.pdf김용휘 셰프의 크레페 파우치 레시피 계란 115g, 설탕 14g, 소금 2g, 강력+박력

22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제381호한 국 의 맛

-언제부터 요리를 하셨는지요?“부모님이 미국 요식업계에서 총괄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열넷 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지요.”

-셰프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운동을 좋아해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했어요. 그런데 허리를 다쳐 운동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슬럼프에 빠져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여행 도중 우연히 에머럴 라가시 셰프가 미국 케이블TV 방송인 푸드네트워크에서 요리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을 보았어요. 갑자기 ‘저것 해야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어요. 일단은 요리를 계속해왔으니까 다른 어떤 일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3년 안에 에머럴 라가시 같은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재미로 하던 요리와 셰프로서 하는 요리가 달랐을 텐데….“우선 마음가짐을 달리했어요. 저에게 인생의 다른 출구가 없다는 압박감은 며칠씩 밤샘을 하면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보통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 면접을 보고 가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곳을 무작정 찾아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어요. 유명인과 연예인이 자주 찾는 뉴욕 맨해튼 42번가 시프리아니의 뒷문으로 들어가서 총주방장에게 요리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면접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 찾아갔지만 요리에 대한 저의 열정을 높이 사 일단은 일하게 해주었어요.”

-시프리아니는 직원이 수백 명이나 되는 유명 레스토랑 아닙니까?“이탈리아 요식업계의 재벌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탈리아인 여성 총주방장이 ‘내가 한 번 트레이닝을 시켜보겠다’고 한 후 말할 수 없는 고된 일의 연속이었어요. 새벽 4시에 일이 끝나도 아침 7시에 다시 출근해서 일해야 했어요. 식당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하는가 하면, 일주일에 밤낮을 두서너 번 바꾸니 초인적으로 견뎌야 했어요.”

‘영혼이 자유로운 조리사’ 19세때 최연소 셰프 집에서 따라해 보는 김용휘 셰프의 비법 2題

■ 김용휘 셰프의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레시피계란 흰자 192g, 계란 노른자 108g, 설탕(반으로 나누기) 230g, 우유 80g, 생크림 20g, 벌집 채꿀 65g, 버터 50g

■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만드는 방법① 우유, 생크림, 버터, 벌집 채꿀을 냄비에 넣고 중불에 끓인다.② 계란 흰자에 설탕 반을 3회에 걸쳐 넣고 부드러운 머랭을 만든다.③ 계란 노른자에 설탕 반을 넣고 노른자가 진득해질 때까지 거품기로 젓는다. ④ 계란 노른자 혼합물 안에 따뜻하게 식은 우유 혼합물을 거품기로 섞는다.⑤ 머랭을 3회에 걸쳐 나누어 노른자 혼합물에 넣어 휘젓는다.⑥ 반죽을 틀에 반쯤 넣어 160℃에 약 30분간 굽는다.

♠ 벌집 채꿀 버터 케이크

♠ 크레페 파우치

미국이민 1.5세로 부모님들 음식 DNA이어받아

맨해튼42번가 명물 ‘시프리아니’무작정 찾아가

초인적 노력 끝에 1년만에 야간작업 총책 맡아

‘N0’를 불허하는 카리스마로 ‘주방의 악마’별명

살아남은 3명 세계 유명레스토랑에 스카우트돼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전 직원이 남미와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했어요. 레스토랑의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자주 하는 일에는 익숙해지겠지만 ‘스타 셰프’가 되는 데 필요한 스킬을 익힐 수가 없어요. 동료보다 2~3시간 먼저 출근해 선배들이 밀가루 반죽하는 걸 보고 그 다음날에는 그대로 따라해보는 일을 1년 간 반복했어요. 그렇게 했더니 1년 만에 열아홉 살에 불과한 저에게 야간 작업 총괄을 맡기더군요.”

-미슐랭2스타인 펄새로는 어떻게 옮기게 되었나요?“잡페어에서 펄새의 총괄 셰프를 만났어요. 그후 2주일 동안 하루에 서너 번씩 그에게 전화를 해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거기서도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밤 9시부터 시작해 낮까지 일하고, 그 다음날은 새벽 4시에 출근하고…. 몸이 적응할 때쯤이면 또 주야간이 바뀌었어요. 초호화 파티에 빵으로 데코레이션을 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저에게 셰프의 꿈을 키워주었던 스타 셰프 에머럴 라가시도 직접 만났어요. 1년 반 만에 부주방장으로 승격되었고, 인원 감축 때에도 살아남아 부숀 베이커리까지 맡게 되었어요. 인원이 부족해 반죽도 하고 오븐도 돌리고, 뒤에서는 도넛도 튀기고 정리도 하는 등 6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했어요. 너무나 바빠 스케줄을 짤 때 시간 단위가 아닌 분 단위로 짜야 했어요.”

-배움에 대한 갈망이 뉴욕 포스트지 4스타 레스토랑 오시아나로 옮기게 했나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저를 주방에 세워두고 가브리엘라 리바는 자기 요리만 하는 거예요. 총괄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것도 처음 봤지만, 1시간 동안 즐겁게 춤을 추듯이 요리를 해요. 얼마나 멋진 솜씨를 발휘하던지 옷에 요리한 흔적이 하나도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어요.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1시간 만에 하는 첫 한마디가 ‘네 이름이 뭐냐’였어요. 그러고는 ‘잠깐 기다리라’

하고 다시 요리를 하더군요. 1시간 후에 다시 ‘여기 왜 왔어?’라고 묻고는 또 요리를 하며 기다리게 했어요. 아무 말 없이 세 시간 동안 자신의 요리를 하며 저를 관찰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야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하고서도 ‘세프를 뽑지 않는다’고 해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그는 셰프가 아니라 요리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거지요. 최연소 셰프에, 최연소 부총주방장을 지낸 저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가브리엘라 리바 셰프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요리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셰프예요. 지금까지 저의 멘토로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요. 프랑스, 이탈리아, 중남미, 일본, 오세아니아 등의 다양한 식재료를 사

용했어요. 한 가지 메뉴를 만들 때 보통 2~3주 걸리는데, 가브리엘라 리바 셰프는 그 사이에 수십 종의 메뉴를 탄생시켜요. 특히 명상을 하듯 가만히 서 있다가 메

뉴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내공이 보통이 아니지요. 머릿속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섞어 이미지로 메뉴를 만들기 때문에 재료 낭비도 거의 없어요.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셰프, 셰프’ 라고 부르면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을 내요. 자신은 셰프가 아니라 ‘갭’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해요. 단독직입적으로 ‘왜 셰프를 싫어하는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는 예술가이며 사상이 자유로운 사람이다(I am a artist, and a freeman)’고 답해요. 그러면서 자신을 셰프라는 타이틀로 묶어두지 말라는 거예요.”

-한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2011년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대사관에서 일했어요. 제가 그동안 배운 경험을 적용해볼 때 한국의 조리사들은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산다는 느낌입니다. 한국의 조리사들이 힘들다고 불평하는데, 사실 영국이나 미국의 조리사들이 힘들고 한국의 조리사들은 가장 편한 쪽에 속합니다. 셰프 복장 하나만 보아도 그들은 옷에 구김이 가 있으면 그날 요리를 안 합니다. 유니폼이 요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짧은 양발을 신거나 반바지를 입고 있거나 심지어는 단추가 풀려 있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요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어요. 이처럼 셰프 문화가 달라서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조리사를 뽑을 때 어떤 점을 물어보나요?“4가지만 물어봅니다. 첫째,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둘째, 어떤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셋째, 요리 아니면 죽을 것 같습니까? 넷째, 내일 당장 출근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4가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요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으라는 뜻에서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요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통해 할 수가 있으니까요.”

-면접을 통과하면 끝까지 몇 명이나 남습니까?“3개월 간 로테이션 하며 60명이 바뀌었어요. 덕분에 제 별명이 ‘악마’입니다. 사생활에서는 존경하지만 주방에 들어가면 전혀 웃지 않고 철저하게 명령체계에 따라 일하게 합니다. ‘잠시만, 셰프!’ 하거나 ‘노! 셰프’라고 하면 안 됩니다. 레시피는 한 번만 불러주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못 따라옵니다. 처음에는 동료들끼리 레시피를 나누어 외워서 하다가 집중하면 다 알아듣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방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 대신에 반말을 하게 합니다. 이런 혹독한 훈련 탓인지 끝까지 살아남은 조리사는 여성 3명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들은 일본, 캐나다 등으로 스카우트 되어 갔어요.”

-동료나 후배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을 것 같은데….“주방에서는 악마 노릇을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까 제가 없는 곳에서는 실컷 욕하라고 합니다. 한번은 가족들이 놀러와 화장실에서 직원들이 저에 대해 욕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고 해요. 그러나 나중에 셰프가 되면 제가 왜 그렇게 엄격하게 했는지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노정용 기자

■ 김용휘 셰프의 크레페 파우치 레시피계란 115g, 설탕 14g, 소금 2g, 강력+박력 38g+38g, 생크림 60g, 우유 210g, 바닐라빈 1/2개

■ 크레페 파우치 만드는 방법① 모든 재료들을 하나로 섞어 거품기로 부드러워질 때까지 젓는다.② 반죽을 채에 걸러 냉장고에 약 30분간 보관한다.③ 차가워진 반죽을 예열된 프라이팬에 얇게 굽는다.

김용휘 전 헤럴드올가니카 수석 페이스트리 셰프는 미국이민 1.5세로 진짜 조리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시간 단위가 아닌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출근 시간에 1초만 늦어도 그만두게 하는 카리스마와 철학은 온전히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때문에 셰프로서의 마음가짐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 주방에서의 활동은 한국의 여타 셰프와는 다르다. 그의 몸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요리DNA가 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웠고, 미슐랭3스타 셰프 아래에서 일하며 최연소 셰프로서의 기록을 써나갔다. 하지만 그는 셰프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은 영혼이 자유로운 요리사를 꿈꾸고 있다. <편집자 주>

헤럴드올가니카 김용휘 수석 페이스트리 셰프

사진=윤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