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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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873/tkl.2019. 82. 8> 한국문학논총 제82(2019. 8) 391~421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1) 김 옥 선 ** 차 례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2. 80년대 노동계급에 대한 이상과 현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4. 근대적 삶을 반추하는 접경지대, 우묵배미 5. 결론: ‘일상 문화의 회복 국문초록 노동문학, 노동운동의 열정이 사그라진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노동 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인간 아님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노동의 비정규직화는 연대는 고사하고 나 홀로’, 더구나 싸워야 할 적을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로 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식을 바탕으로 노동문학에 재현된 노동자들의 기대와 희망,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싸우게 했던 힘을 다시 살펴보고자 방현석의 노동소설 을 재독하였다. * 이 논문은 2018학년도 경성대학교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경성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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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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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82집(2019 8) 391~42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 노동의 회복으로

1)김 옥 선

차 례

1 다시 lsquo노동문학rsquo에 거는 기대

2 80년대 노동계급에 대한 이상과

현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4 근대적 삶을 반추하는 접경지대

우묵배미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국문 록

노동문학 노동운동의 열정이 사그라진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노동

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노동의 비정규직화는 연대는

고사하고 lsquo나 홀로rsquo 더구나 싸워야 할 적을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로 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식을 바탕으로 노동문학에 재현된 노동자들의 기대와 희망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싸우게 했던 힘을 다시 살펴보고자 방현석의 노동소설

을 재독하였다

이 논문은 2018학년도 경성대학교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경성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39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노동소설에 나타난 현실 개혁 의지에는 오늘날 노동자가 연대할 수

없는 한계도 동시에 존재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적은 경제

적 안정으로 평등 의식은 노동자가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을 욕망하는 쪽

으로 나아가게 했다 따라서 lsquo소주rsquo와 lsquo트로트rsquo 같은 노동자의 취향은 비

참하고 괴로운 심정을 반영하고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면 언제든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던 근대

화의 폭력 앞에 선 가장 나약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그린 것이다 가난

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

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

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

난한 이웃들과 함께 해온 전통적인 생활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주제어 노동 노동문학 중산층 일상 문화 방현석 박영한 공동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lsquo노동문학rsquo에 거는 기

1980년대 노동자의 자기재현 열망은 폭발적이었다 6월 항쟁과 노동

자 대투쟁의 산물이라 할 성과물들이 문학뿐만 아니라 수기 일기 체험

기 현장보고서 학습ㆍ토론 일지 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노동자는 자

신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폭로했으며 인간적 삶을 위

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다 당대 비평가들 역시 투쟁의 주체로 부상한

노동자에게 막중한 역할을 부여했다 문학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

에 대한 정의와 방향에 대해 민족문학론 민족민중문학론 민중문학론

노동해방 문학 등 치열한 이론 논쟁이 이루어진 것이다

노동문학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국제적 정세 변화와 함께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또

한 상업대중문화의 급성장과 함께 개인ㆍ개성이 존중 생활세계가 중시

되면서 투쟁을 위한 연대ㆍ공동체는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실로 노동문

학이 한국문학사적 위상을 보장받았던 시기는 1987년 전후로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1)

1990년대 이후 노동문학의 노동자 계급에 부과된 관념성과 정치적 이

념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당대 비평가들은 lsquo운동rsquo이 여지

없이 무너진 데에 서둘러 진단하고 전망들을 제시했다 급진적 문학운동

론들이 사회주의 이론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는 이론부재2) 계급

적 이념이 선전ㆍ선동적 구호에 가까운 진술 형태가 인간다운 삶의 실

1) 80~90년대 노동문학을 옹호ㆍ지지했던 985172창비985173조차 2016년 만해문학상(이인휘

985172폐허를보다985173 실천문학) 선정 이유로 ldquo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

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집으로 기존 노동소설의 경직된 형식이나 교조

적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을 통해 절절한 감동을 안긴

다rdquo했을 정도로 80년대 청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학회 2017 138쪽

2)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20권 제

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23쪽

39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현은 물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장애요인이 되었다3)는 lsquo과격하

고 편향적인 정치성rsquo 그리고 lsquo문학성의 옹호rsquo 관점4)이다

한국문학사상 노동문학 만큼 그것이 비판이든 옹호든 오랫동안 지속

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도 없다 오늘날까지도 노동이 뜨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고 노동을 통

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는 훨

씬 교묘해지고 거의 모든 업종에서 고용을 확신할 수 없는 비정규직 하

청 용역 노동자는 여전히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lsquo인간 아

님rsquo의 조건은 유사하지만 과거보다 절망적인 것은 싸워야 할 적이 자본

가와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로 향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과거 노동자들은 인간적 삶의 조건을 위해 투쟁했듯 인간

해방을 향한 신념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 의식과 연대 의식은 오늘날

생존을 위해서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최근 노동문학을 비판ㆍ극복하고자 하

는 여러 연구와 맥을 함께 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 중 두드

러지는 것은 lsquo선진적인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의 재현체계가 구동된 동일

성의 정체성rsquo5)에 의해 지워진 lsquo작고 일상적인 것들rsquo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분노와 투쟁 승리를 포함하면서도 하나의 형식이나 방향

속에 담아낼 수 없는 lsquo삶 자체rsquo이기 때문이다6) lsquo삶 자체rsquo란 전위적인 노

3)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문학985173 제

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21쪽

4) 전승주는 이러한 진단이 문학의 정치성 이념성이 노동문학이 좌초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점 역시 문학이 현실에 대응해 이론과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문학의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판

단한다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5)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

구원 2016 314쪽

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0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5

동자라는 틀의 범위에서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7)까지 포함하여 노동자의 삶

은 그들을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노동문학의 계몽성 교조적 성격 그리고 지식인의 대리의식 동일성의

정체성 등 노동문학의 정치성 형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노동문학은 과연 청산의 대상이기만 한가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고 저항

한 열정에 보냈던 그 뜨거운 찬사는 왜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는가 어찌

하여 노동문학은 패배의 분위기마저 만연하게 되었는가 80년대 노동자

들은 싸울 적이 분명해 분노라도 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의 노동자들

은 오히려 lsquo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배제된 ldquo유

령rdquo8)의 형태rsquo이지 않은가 오늘날 전 지역 모든 세대에 걸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

서라도 과거 노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인간

다운 노동 역사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신념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 이 땅의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lsquo함께rsquo 싸우게 했

던 그 lsquo믿음rsquo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그 lsquo믿음rsquo이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

는 주체로서 개인의식 성장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lsquo믿음rsquo은 오늘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처

럼 보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분노와 열정 신념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들

은 자신을 노동문학에서 형상화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학이

7) 김예림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은 ldquo집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한

심정 순진한 꿈 자기 자신에 대한 번민과 부정 비참함의 솔직한 토로 요기 없

음의 부끄러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과 같은 주체를 계속 흔들리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내면rdquo이다 이것들은 ldquo늘 유보되고 존중받지 못rdquo했다는 것이

다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40호

상허학회 2014 374쪽

8) 천정환 앞의 논문 155쪽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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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39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노동소설에 나타난 현실 개혁 의지에는 오늘날 노동자가 연대할 수

없는 한계도 동시에 존재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적은 경제

적 안정으로 평등 의식은 노동자가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을 욕망하는 쪽

으로 나아가게 했다 따라서 lsquo소주rsquo와 lsquo트로트rsquo 같은 노동자의 취향은 비

참하고 괴로운 심정을 반영하고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면 언제든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던 근대

화의 폭력 앞에 선 가장 나약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그린 것이다 가난

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

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

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

난한 이웃들과 함께 해온 전통적인 생활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주제어 노동 노동문학 중산층 일상 문화 방현석 박영한 공동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lsquo노동문학rsquo에 거는 기

1980년대 노동자의 자기재현 열망은 폭발적이었다 6월 항쟁과 노동

자 대투쟁의 산물이라 할 성과물들이 문학뿐만 아니라 수기 일기 체험

기 현장보고서 학습ㆍ토론 일지 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노동자는 자

신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폭로했으며 인간적 삶을 위

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다 당대 비평가들 역시 투쟁의 주체로 부상한

노동자에게 막중한 역할을 부여했다 문학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

에 대한 정의와 방향에 대해 민족문학론 민족민중문학론 민중문학론

노동해방 문학 등 치열한 이론 논쟁이 이루어진 것이다

노동문학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국제적 정세 변화와 함께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또

한 상업대중문화의 급성장과 함께 개인ㆍ개성이 존중 생활세계가 중시

되면서 투쟁을 위한 연대ㆍ공동체는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실로 노동문

학이 한국문학사적 위상을 보장받았던 시기는 1987년 전후로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1)

1990년대 이후 노동문학의 노동자 계급에 부과된 관념성과 정치적 이

념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당대 비평가들은 lsquo운동rsquo이 여지

없이 무너진 데에 서둘러 진단하고 전망들을 제시했다 급진적 문학운동

론들이 사회주의 이론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는 이론부재2) 계급

적 이념이 선전ㆍ선동적 구호에 가까운 진술 형태가 인간다운 삶의 실

1) 80~90년대 노동문학을 옹호ㆍ지지했던 985172창비985173조차 2016년 만해문학상(이인휘

985172폐허를보다985173 실천문학) 선정 이유로 ldquo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

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집으로 기존 노동소설의 경직된 형식이나 교조

적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을 통해 절절한 감동을 안긴

다rdquo했을 정도로 80년대 청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학회 2017 138쪽

2)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20권 제

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23쪽

39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현은 물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장애요인이 되었다3)는 lsquo과격하

고 편향적인 정치성rsquo 그리고 lsquo문학성의 옹호rsquo 관점4)이다

한국문학사상 노동문학 만큼 그것이 비판이든 옹호든 오랫동안 지속

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도 없다 오늘날까지도 노동이 뜨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고 노동을 통

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는 훨

씬 교묘해지고 거의 모든 업종에서 고용을 확신할 수 없는 비정규직 하

청 용역 노동자는 여전히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lsquo인간 아

님rsquo의 조건은 유사하지만 과거보다 절망적인 것은 싸워야 할 적이 자본

가와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로 향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과거 노동자들은 인간적 삶의 조건을 위해 투쟁했듯 인간

해방을 향한 신념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 의식과 연대 의식은 오늘날

생존을 위해서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최근 노동문학을 비판ㆍ극복하고자 하

는 여러 연구와 맥을 함께 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 중 두드

러지는 것은 lsquo선진적인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의 재현체계가 구동된 동일

성의 정체성rsquo5)에 의해 지워진 lsquo작고 일상적인 것들rsquo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분노와 투쟁 승리를 포함하면서도 하나의 형식이나 방향

속에 담아낼 수 없는 lsquo삶 자체rsquo이기 때문이다6) lsquo삶 자체rsquo란 전위적인 노

3)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문학985173 제

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21쪽

4) 전승주는 이러한 진단이 문학의 정치성 이념성이 노동문학이 좌초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점 역시 문학이 현실에 대응해 이론과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문학의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판

단한다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5)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

구원 2016 314쪽

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0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5

동자라는 틀의 범위에서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7)까지 포함하여 노동자의 삶

은 그들을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노동문학의 계몽성 교조적 성격 그리고 지식인의 대리의식 동일성의

정체성 등 노동문학의 정치성 형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노동문학은 과연 청산의 대상이기만 한가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고 저항

한 열정에 보냈던 그 뜨거운 찬사는 왜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는가 어찌

하여 노동문학은 패배의 분위기마저 만연하게 되었는가 80년대 노동자

들은 싸울 적이 분명해 분노라도 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의 노동자들

은 오히려 lsquo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배제된 ldquo유

령rdquo8)의 형태rsquo이지 않은가 오늘날 전 지역 모든 세대에 걸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

서라도 과거 노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인간

다운 노동 역사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신념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 이 땅의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lsquo함께rsquo 싸우게 했

던 그 lsquo믿음rsquo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그 lsquo믿음rsquo이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

는 주체로서 개인의식 성장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lsquo믿음rsquo은 오늘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처

럼 보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분노와 열정 신념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들

은 자신을 노동문학에서 형상화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학이

7) 김예림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은 ldquo집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한

심정 순진한 꿈 자기 자신에 대한 번민과 부정 비참함의 솔직한 토로 요기 없

음의 부끄러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과 같은 주체를 계속 흔들리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내면rdquo이다 이것들은 ldquo늘 유보되고 존중받지 못rdquo했다는 것이

다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40호

상허학회 2014 374쪽

8) 천정환 앞의 논문 155쪽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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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lsquo노동문학rsquo에 거는 기

1980년대 노동자의 자기재현 열망은 폭발적이었다 6월 항쟁과 노동

자 대투쟁의 산물이라 할 성과물들이 문학뿐만 아니라 수기 일기 체험

기 현장보고서 학습ㆍ토론 일지 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노동자는 자

신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폭로했으며 인간적 삶을 위

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다 당대 비평가들 역시 투쟁의 주체로 부상한

노동자에게 막중한 역할을 부여했다 문학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

에 대한 정의와 방향에 대해 민족문학론 민족민중문학론 민중문학론

노동해방 문학 등 치열한 이론 논쟁이 이루어진 것이다

노동문학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국제적 정세 변화와 함께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또

한 상업대중문화의 급성장과 함께 개인ㆍ개성이 존중 생활세계가 중시

되면서 투쟁을 위한 연대ㆍ공동체는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실로 노동문

학이 한국문학사적 위상을 보장받았던 시기는 1987년 전후로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1)

1990년대 이후 노동문학의 노동자 계급에 부과된 관념성과 정치적 이

념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당대 비평가들은 lsquo운동rsquo이 여지

없이 무너진 데에 서둘러 진단하고 전망들을 제시했다 급진적 문학운동

론들이 사회주의 이론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는 이론부재2) 계급

적 이념이 선전ㆍ선동적 구호에 가까운 진술 형태가 인간다운 삶의 실

1) 80~90년대 노동문학을 옹호ㆍ지지했던 985172창비985173조차 2016년 만해문학상(이인휘

985172폐허를보다985173 실천문학) 선정 이유로 ldquo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

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집으로 기존 노동소설의 경직된 형식이나 교조

적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을 통해 절절한 감동을 안긴

다rdquo했을 정도로 80년대 청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학회 2017 138쪽

2)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20권 제

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23쪽

39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현은 물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장애요인이 되었다3)는 lsquo과격하

고 편향적인 정치성rsquo 그리고 lsquo문학성의 옹호rsquo 관점4)이다

한국문학사상 노동문학 만큼 그것이 비판이든 옹호든 오랫동안 지속

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도 없다 오늘날까지도 노동이 뜨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고 노동을 통

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는 훨

씬 교묘해지고 거의 모든 업종에서 고용을 확신할 수 없는 비정규직 하

청 용역 노동자는 여전히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lsquo인간 아

님rsquo의 조건은 유사하지만 과거보다 절망적인 것은 싸워야 할 적이 자본

가와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로 향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과거 노동자들은 인간적 삶의 조건을 위해 투쟁했듯 인간

해방을 향한 신념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 의식과 연대 의식은 오늘날

생존을 위해서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최근 노동문학을 비판ㆍ극복하고자 하

는 여러 연구와 맥을 함께 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 중 두드

러지는 것은 lsquo선진적인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의 재현체계가 구동된 동일

성의 정체성rsquo5)에 의해 지워진 lsquo작고 일상적인 것들rsquo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분노와 투쟁 승리를 포함하면서도 하나의 형식이나 방향

속에 담아낼 수 없는 lsquo삶 자체rsquo이기 때문이다6) lsquo삶 자체rsquo란 전위적인 노

3)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문학985173 제

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21쪽

4) 전승주는 이러한 진단이 문학의 정치성 이념성이 노동문학이 좌초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점 역시 문학이 현실에 대응해 이론과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문학의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판

단한다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5)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

구원 2016 314쪽

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0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5

동자라는 틀의 범위에서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7)까지 포함하여 노동자의 삶

은 그들을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노동문학의 계몽성 교조적 성격 그리고 지식인의 대리의식 동일성의

정체성 등 노동문학의 정치성 형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노동문학은 과연 청산의 대상이기만 한가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고 저항

한 열정에 보냈던 그 뜨거운 찬사는 왜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는가 어찌

하여 노동문학은 패배의 분위기마저 만연하게 되었는가 80년대 노동자

들은 싸울 적이 분명해 분노라도 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의 노동자들

은 오히려 lsquo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배제된 ldquo유

령rdquo8)의 형태rsquo이지 않은가 오늘날 전 지역 모든 세대에 걸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

서라도 과거 노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인간

다운 노동 역사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신념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 이 땅의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lsquo함께rsquo 싸우게 했

던 그 lsquo믿음rsquo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그 lsquo믿음rsquo이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

는 주체로서 개인의식 성장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lsquo믿음rsquo은 오늘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처

럼 보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분노와 열정 신념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들

은 자신을 노동문학에서 형상화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학이

7) 김예림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은 ldquo집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한

심정 순진한 꿈 자기 자신에 대한 번민과 부정 비참함의 솔직한 토로 요기 없

음의 부끄러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과 같은 주체를 계속 흔들리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내면rdquo이다 이것들은 ldquo늘 유보되고 존중받지 못rdquo했다는 것이

다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40호

상허학회 2014 374쪽

8) 천정환 앞의 논문 155쪽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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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4: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39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현은 물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장애요인이 되었다3)는 lsquo과격하

고 편향적인 정치성rsquo 그리고 lsquo문학성의 옹호rsquo 관점4)이다

한국문학사상 노동문학 만큼 그것이 비판이든 옹호든 오랫동안 지속

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도 없다 오늘날까지도 노동이 뜨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고 노동을 통

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는 훨

씬 교묘해지고 거의 모든 업종에서 고용을 확신할 수 없는 비정규직 하

청 용역 노동자는 여전히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 lsquo인간 아

님rsquo의 조건은 유사하지만 과거보다 절망적인 것은 싸워야 할 적이 자본

가와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로 향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과거 노동자들은 인간적 삶의 조건을 위해 투쟁했듯 인간

해방을 향한 신념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 의식과 연대 의식은 오늘날

생존을 위해서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최근 노동문학을 비판ㆍ극복하고자 하

는 여러 연구와 맥을 함께 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 중 두드

러지는 것은 lsquo선진적인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의 재현체계가 구동된 동일

성의 정체성rsquo5)에 의해 지워진 lsquo작고 일상적인 것들rsquo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분노와 투쟁 승리를 포함하면서도 하나의 형식이나 방향

속에 담아낼 수 없는 lsquo삶 자체rsquo이기 때문이다6) lsquo삶 자체rsquo란 전위적인 노

3)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문학985173 제

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21쪽

4) 전승주는 이러한 진단이 문학의 정치성 이념성이 노동문학이 좌초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점 역시 문학이 현실에 대응해 이론과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문학의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판

단한다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5)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

구원 2016 314쪽

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0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5

동자라는 틀의 범위에서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7)까지 포함하여 노동자의 삶

은 그들을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노동문학의 계몽성 교조적 성격 그리고 지식인의 대리의식 동일성의

정체성 등 노동문학의 정치성 형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노동문학은 과연 청산의 대상이기만 한가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고 저항

한 열정에 보냈던 그 뜨거운 찬사는 왜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는가 어찌

하여 노동문학은 패배의 분위기마저 만연하게 되었는가 80년대 노동자

들은 싸울 적이 분명해 분노라도 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의 노동자들

은 오히려 lsquo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배제된 ldquo유

령rdquo8)의 형태rsquo이지 않은가 오늘날 전 지역 모든 세대에 걸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

서라도 과거 노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인간

다운 노동 역사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신념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 이 땅의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lsquo함께rsquo 싸우게 했

던 그 lsquo믿음rsquo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그 lsquo믿음rsquo이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

는 주체로서 개인의식 성장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lsquo믿음rsquo은 오늘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처

럼 보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분노와 열정 신념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들

은 자신을 노동문학에서 형상화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학이

7) 김예림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은 ldquo집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한

심정 순진한 꿈 자기 자신에 대한 번민과 부정 비참함의 솔직한 토로 요기 없

음의 부끄러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과 같은 주체를 계속 흔들리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내면rdquo이다 이것들은 ldquo늘 유보되고 존중받지 못rdquo했다는 것이

다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40호

상허학회 2014 374쪽

8) 천정환 앞의 논문 155쪽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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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5: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5

동자라는 틀의 범위에서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7)까지 포함하여 노동자의 삶

은 그들을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다

노동문학의 계몽성 교조적 성격 그리고 지식인의 대리의식 동일성의

정체성 등 노동문학의 정치성 형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노동문학은 과연 청산의 대상이기만 한가 자본의 착취에 분노하고 저항

한 열정에 보냈던 그 뜨거운 찬사는 왜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는가 어찌

하여 노동문학은 패배의 분위기마저 만연하게 되었는가 80년대 노동자

들은 싸울 적이 분명해 분노라도 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의 노동자들

은 오히려 lsquo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배제된 ldquo유

령rdquo8)의 형태rsquo이지 않은가 오늘날 전 지역 모든 세대에 걸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

서라도 과거 노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인간

다운 노동 역사를 이끄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신념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 이 땅의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lsquo함께rsquo 싸우게 했

던 그 lsquo믿음rsquo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그 lsquo믿음rsquo이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

는 주체로서 개인의식 성장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lsquo믿음rsquo은 오늘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처

럼 보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분노와 열정 신념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들

은 자신을 노동문학에서 형상화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학이

7) 김예림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쓸려 나간 것들rsquo은 ldquo집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한

심정 순진한 꿈 자기 자신에 대한 번민과 부정 비참함의 솔직한 토로 요기 없

음의 부끄러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열망과 같은 주체를 계속 흔들리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내면rdquo이다 이것들은 ldquo늘 유보되고 존중받지 못rdquo했다는 것이

다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40호

상허학회 2014 374쪽

8) 천정환 앞의 논문 155쪽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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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단행본 및 논문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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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6: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39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청산 좌절된 것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80년 노동계 에 한 이상과 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은 한국 사회를 이

전과는 전혀 다른 개인의 일상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경제 구조 재편 인구 대이동 농촌공동체 붕괴 인간소외ㆍ빈

부격차 심화 등 이 모든 변화가 약 한 세대에 모두 일어났다 문학은 이

러한 변화의 충격을 반영하며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며 인간적 삶을 열망하는 노력은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의 작품으로 그 성과를 드러냈고 노동자가 스스

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문학

의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백낙청은 노동문학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자기표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거나 정직한 고발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넘어 노동자들

의 lsquo집단적 자기해방rsquo의 노력이 lsquo민중ㆍ민족적 요구까지 포괄rsquo하는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9) 박현채는 노동문학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이해 실현은 물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분단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해방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터득해야함을10)

이재현 역시 오늘날 인간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으로서 노동을 강조한 바 있다11)

실천의 중요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역사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

9)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비평사

198510 22쪽

10) 박현채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 985172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985173 돌베개 1985 37쪽

11)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사 1983

12 196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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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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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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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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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7: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7

다 신승엽은 노동문학의 정의를 노동자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현

실이나 노동문제를 묘사하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극복을 지향하는 문

학으로 김도연ㆍ백진기 역시 lsquo일상성rsquo을 민중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

념으로 보고 일상정서를 반영하는 표현방식이 그대로 생활문화이며 이

를 민중문학의 큰 저력으로 꼽았다12)

노동자의 생활 현장 일상을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

적 주체라는 기대는 그간에 노동자를 억압해 왔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 해방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 극복 의지

는 노동자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 극복의 주체는

lsquo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rsquo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ldquo제가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동생 공부도 시킨다는데 대해

큰 긍지를 느끼고 있읍니다 이런 긍지 때문에 일이 고되어도 피곤하지

도 않아요rdquo(hellip) 신양이 요즘 받는 임금은 월17만원 정도 이 돈으로 동

생의 학비를 대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아

끼고 줄여서 매월 5만원씩의 재형저축을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장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ldquo우리 사회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댓가가 꼭 보상되는 사

회라고 확신합니다rdquo13)

모범근로자가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는 이유

는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 모범근로자 한 사람만의 것이겠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가 통치자의 희망

이기도 하다14) 권위적인 신문의 언설은 노동자의 현실을 망각하고 위

12)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여」 백진기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1989 푸른숲 389쪽

13) 「꿈가진 근로자는 피곤하지 않아요mdash 모범근로자로 선정된 18세소녀가장 신경

순양」 lt동아일보gt 1987년 3월10일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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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39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로부터 만들어진 노동자 상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당대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심성은 근로자로서 근면ㆍ성실함 아무리 일이 고

되어도 자신이 lsquo산업 전사rsquo lsquo산업 역군rsquo이라는 긍지로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허락된 미래는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정

도이다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의 귀결점은 lsquo가족의 안정rsquo에

있지 그 이상은 아니다15)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lsquo가족rsquo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간해

방 평등의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장ㆍ공무원ㆍ고위 정치인ㆍ부

자들도 lsquo우리rsquo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도 역시 한 가정에서는 다

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

등 의식을 통해 불평등한 차이를 상쇄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이는 1997년

현대중공업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다 노동자

들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조 활동에 점

점 무관심해 졌는데 지도부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lsquo실리적rsquo이고 lsquo이기

적rsquo으로 lsquo변했기rsquo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조참여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더 벌기 위해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lsquo가족중심적rsquo이

고 lsquo이기적인 안락함rsquo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물론 노동

14) 근대적 지배와 통치는 자연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체 리듬을 시간표 시

스템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의

정체성은 전통적인 것 농촌 공동체적인 것 도시적인 것 등이 혼재된 것이었다

통치 전략뿐만 아니라 강성 노동운동 역시 노동자의 여러 시간과 삶의 결을 분

절하여 lsquo현재rsquo 중심의 시간관을 정립했다 이는 긴 시간 존재하는 근대적 노동

이전의 노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과거에서 벗어나 lsquo새로 태어

나는 것rsquo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근대적 노동자 상이다

15) 정화진의 「쇳물처럼」 역시 노동자계급의 가족을 투쟁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중

산층 핵가족 모델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ldquo노동자 계급에게 사회구성원

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정상성의 규범으로 수렴시키는 이

데올로기적 장치rdquo이다 이혜령 앞의 논문 310쪽

16) 구해근의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의 등장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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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9: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9

자들이 가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조활동에 무관심한 것을

lsquo이기적rsquo인 처사라 치부할 수 없다 그러나 lsquo가족중심주의rsquo와 lsquo이기적 안

락함rsquo이 가치의 중심이 될 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더 큰 위기는 노동

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

추게 만든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널리 통용된 용어 중 하나는 lsquo중산층rsquo이

다 당시 국민의 70sim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인

식했다고 하니 중산층은 노동자의 삶이 개선된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들

의 자기 위안적인 용어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산층의 기준은 직업

교육수준 가구 소득 주택 소유이다 lsquo경제적 생활 개선rsquo이 사람들의 모

든 욕망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 확대 집집마다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렌지)과

갈색 가전(TV 오디오 비디오)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lsquo먹고 살기 위해rsquo 전쟁을 벌였던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는 곧 상품을 소비 소유할 수 있는 경

제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는 lsquo부동산 불패 신화rsquo lsquo아파트 투기 열풍rsquo을 고위

관직자 고소득자의 축재(蓄財)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노동자 회사원

주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lsquo상식rsquo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든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으

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오직 자신의 신체만을 이용해 부지런

한 성품으로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노동자의 억척스러움은 자산의

축적 즉 lsquo강남 아파트rsquo lsquo노른자 땅 빌딩rsquo lsquo수백 평 대지rsquo로 환원되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최신 유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노

동운동은 그 열정과 강인함 공동선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라는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은 lsquo기로에 선 노동계급rsquo으로 lsquo사라져가는 골

리앗노동자rsquo이다 구해근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295-297쪽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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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0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손쉽게 얻는 창구가 되어 주

었다 안방 드라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현실을 어내고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치장한 거실을 배경으로 한 lsquo평범한rsquo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광고는 lsquo개성rsquo lsquo자기만족rsquo 현재의 lsquo쾌

락rsquo을 중시하며 소비의 주체를 호명하고 상품은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이 가까스로 소유한 것들을

쉽게 구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세상이 소비를 조

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

점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한정하고 그 이상의 바람직한 세계를

위해 전복할 수 있는 상상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17)

교육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통을 단절시킨 일등공신이다 교

육은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해 lsquo신분 상승rsquo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알다시피 서구 추수적인 한국의 근대 교육은 철학 문

학 역사 과학 등 학문적 영역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적 감각에 이

르기까지 lsquo내 것rsquo일 수 없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근대적 교육은 과거

의 경험을 전해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lsquo내 부모rsquo lsquo내 이웃rsquo은 고루하고

시대감각이 뒤처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뒤이은 세대에게 모범 혹은

규범이 되지 못한 앞선 세대의 관념 사상 생활 가치는 하루빨리 타파하

고 벗어나야 하는 인습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개인의식과 민주주의 교육

은 계급 간 세대 간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루었

지만 역설적으로 lsquo가진 자rsquo와 lsquo노동자rsquo lsquo구세대rsquo와 lsquo젊은 세대rsquo라는 이분법

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에게 과도한 주체성을 부과하는 동안 노동자의 일

상은 가족 경제적 차원에 수렴되고 있었다 lsquo나는 노동자rsquo라는 떳떳함과

이 사회를 민주사회로 이끄는 ldquo민주노조 쟁취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24쪽)

그리하여 ldquo인간답게rdquo 살고자 하는 희망과 ldquo역사의 주인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252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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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1: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1

143쪽)이라는 자긍심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3 노동소설 다시 읽기

노동문학에서 재현된 노동자의 이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는 노동자의 일상 문화 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을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해명한 박해광은 lsquo순수한 노동자 문

화rsquo 즉 전적으로 노동계급 집단에 속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

화에 불과한 것인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문화산업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으로 공유해 왔던 내부의 민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노

동운동의 경험이 노동자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흥

미로운 사실은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탈춤 풍

물 율동과 같은 문화패 활동에 노동자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적 취향도 민중가요로 총칭되는 운동가요(노동

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 트로트이다18)

ldquo내 말은 으째서 나는 보리술 한잔도 안 주고 떠들어대뻔지라고만 난

리냔 것이요잉 누구는 맥주 드시는데 쐬주 먹는 나가 기분이 나겄소rdquo

그제서야 사람들은 개발과장과 노조위원장 주임들이 앉은 자리에는

맥주가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니기미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 먹

냐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상석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19)

ldquo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helliphelliprdquo

18)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2008

19) 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04쪽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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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2: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0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역시 낮고 건조했지만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들었다(hellip)

lsquo울려고 내가 왔던가rsquo는 해포 조선소의 주제가였다 아무리 소문난 음

치라도 이 노래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는 노래였다 더럽고 아니꼬울 땐 뒤돌아

서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렀고 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땐 혼잣소리로

흥얼거렸다 때로는 반항이고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절망인 그런

노래였다 조선소 사람들은 누구나 그 노랫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20)

방현석의 소설의 노동자들은 연극과 학습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을 각

성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lt노동해방가gt lt임을 위한

행진곡gt lt꽃다지gt lt파업가gt를 부르며 공동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

들의 ldquo웃음과 한숨 눈물과 분노rdquo를 담은 연극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기

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ldquo쌓인 가슴의 응어리rdquo가 저절로 대사가 되어 나온

다 그들의 분노와 열정을 담은 연극과 노래 시는 공연자 관객 구분하

지 않고 lsquo눈물rsquo lsquo한풀이rsquo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 비해 일상적 소재인

lsquo트로트rsquo와 lsquo소주rsquo는 그들의 삶이 가장 최악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기호

이다

lsquo윗사람들rsquo은 노동자들이나 마시는 lsquo소주rsquo 대신 lsquo맥주rsquo를 마시며 그들과

구분 짓는다 lsquo윗사람들rsquo이 맥주를 통해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들의 차별받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소

주에 투사하고 있다 소주와 트로트는 ldquo힘들고 서럽고 외롭고 개같을

때rdquo ldquo제 신세가 처량스러울 때rdquo ldquo외롭고 절망적인rdquo 열등하고 비루한

것 부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형편이 좋아지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

면 언제든 나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트로트

를 부르면서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그것들

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21)

20) 방현석 「지옥선의 사람들」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146쪽

21)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생활을 분석한 신원철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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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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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3

따라서 노조 참여도가 떨어지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것은 노동자가 lsquo실

리적rsquo이고 lsquo이기적rsquo으로 lsquo변해서rsquo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ㆍ노동문학의

정치적 혁명성에 비해 노동자 일상의 문화적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 데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 이념

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의식을 확장했지만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참담함 부정 마침내 lsquo탈출rsquo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러는 사이 공동의 이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타파하고자 한 lsquo윗사람rsquo

의 문화를 욕망하는 취향의 획일화 과정을 거쳐 무기력하고 비루한 일

상만 남았다 노동문학의 좌절을 초래한 것은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할

그 믿음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이 계몽성 교조적 서사의 전형으로 몰락을 초래했

다는 비판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원은 노동문학의 전형

즉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주체 각성 촉구―투쟁이라는 전형에

나타난 급진적 지식인의 과도한 대리의식을 비판했다 노동계급을 혁명

을 위한 집합적인 주체로 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결과 노동자가 체

험한 삶의 구체성을 과도하게 전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22) 그럼에

도 노동lsquo문학rsquo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과 마음을 표현ㆍ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알다시피 문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이

생산직 노동자들은 고유한 여가와 소비양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졸 화이트칼라

계층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업 사보에는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예능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기사

가 실린 반면 생산직 노동자가 집 한 칸을 마련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

22) 분노 투쟁하는 혁명적 영웅 서사로 구성된 내용은 남성노동자의 현실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낭만화 이상화가 사회 변혁에 복무하는 문학의 정당

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김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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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4: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0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때문에 자아의 세계 인식 논리적인 사건 전개 서술자 스토리와 내

러티브 구분 등 지배적인 문학 개념은 근대적 국민 교육을 통해 문해 능

력을 획득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라 lsquo글쓰기rsquo의 위상을 갖는다23)

글쓰기가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

은 글쓰기의 역능 즉 lsquo민중(서발턴)의 자기 재현성rsquo에 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근면ㆍ자조ㆍ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hellip) 78

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

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24)

민영이 미정 철순과 함께 잔업 특근을 거부했다가 사직서를 쓰게 되

는 이 장면에서 민영은 그간 자신이 일해 온 세광물산은 과연 무엇이었

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최고참인 그녀들이 일을 해 온 7 8년 동안

공장 건물 도자기 가마가 늘어나고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녀들의 얇은 월급봉투와 자신의 위치이

다 오랜 기간 결근 조퇴 한 번 없이 lsquo근면rsquo하게 일해 온 일터에서 느끼

는 이 lsquo낯섦rsquo은 민영으로 하여금 자신은 사장과 다르다는 것 경쟁적으로

작업량을 완수해도 그녀들은 lsquo가족rsquo이지도 lsquo내 일rsquo도 아니라는 것이다

lsquo나rsquo의 위치가 lsquo사장rsquo이 아니라 노동자 대열임을 자각할 때 이 땅의 많은

민영이lsquo들rsquo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쓰

고자 했다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23)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사 연구985173 50권 민족문학사학회 2012 263쪽

24) 방현석 「새벽출정」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58-59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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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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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5: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5

드러낸 것은 자본가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의 상이 결코 자신들의 현실

일 수 없음에 대한 반(反)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일대 혁명이고 사건이

었다 이에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문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민중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형상화한 노동문학은

그간 문학의 지식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권위를 거부 해체한 것이

다25)

lsquo나의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rsquo은 권위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적

극적인 의지이겠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불신 해체하는 것이 개인의

활력 생동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은 lsquo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rsquo라는 냉소적 태도와 결합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의 결

과는 더 큰 권위 즉 lsquo국가rsquo의 해결력만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녀 교육 의료 노후 보장 등에 국가적 복지 서비스가 당연시되었을 뿐

만 아니라 우리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부터 잡다한 생활 상식

까지 경찰력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이라 할 경험과 지혜는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에 의

해 버려지고 이웃을 돕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국가의 해결력에 의존한

25) 많은 연구자들은 소수 문화적 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성된 lsquo문학rsquo에서 배제된 노

동자의 lsquo글쓰기rsquo를 통해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으로서 지배적이고 권

위적인 문학사 혹은 사회 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lsquo문학사rsquo의 보편성 선조적 세계인식 포섭과 배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lsquo다른 문학rsquo은 lsquo(권위적인) 문학사rsquo를 대타적으로 참고해 구성될 수밖에 없

기에 기존 문학사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lsquo아래로부터의 문학

사rsquo lsquo다른 문학rsquo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의 특성을 부풀리고

현실로부터 유리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ㆍ김윤식의 985172한국문학

사985173 역시 세계문학의 대타적 성격에서 탄생했다 김현은 서구식 진보 보편성에

종속되지 않는 세계 주변이라는 lsquo후진성rsquo으로부터 벗어난 lsquo한국문학rsquo을 기획하며

보편과 나란한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기규정은 세계의 이분

법적 분할을 정초하는 것이었고 김치수는 이러한 문화의 우열을 말하는 논법이

lsquo종족 중심주의적rsquo인 발상이라 지적했다 985172한국문학사985173 논쟁과 문학사 방법 논의

는 허선애 논문을 참고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

론총985173 제78권 한국문학언어학회 2018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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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6: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0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다 노동운동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어 온 다양한 관계들

을 lsquo국가rsquo로 대체했다 그동안 lsquo나rsquo를 둘러싼 관계는 사라지고 결국 세상

에 믿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족 가족의 친 감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친 감은 곧잘 희

생 폭력 단절 소외를 묵인 조장한다 lsquo국가rsquo와 lsquo가족rsquo만이 폭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할 공통감각을 회복

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활

동이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이라 하면 광장과 깃발 구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구호와 함성 검게 탄 피부에 탄탄한 근육의 (남성)노동자 문화는 그 문

화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이익집단의 강경한 요구

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소중한 노력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lsquo인간 아님rsquo의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

고 슬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해고와 협박

구타와 테러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동료 자식들이 ldquo가장 많이 생산하

는 자들이 가장 풍요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위한 집rdquo(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111쪽)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정의로운 것임에 공감하고 분연히 일

어섰던 것이다 그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노동자 일상의 미시적 행

위와 오랜 경험들에 있다26) 노동운동은 그런 경험들을 주체 각성 전의

무지하거나 야만적인 행태로 여겼고 주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

26) 톰슨은 노동자문화의 특징을 이전의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적 문화와의 연속성

에서 찾았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금욕적 노동윤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들의 노동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일치했기에 공장 시간표와 같이 규율

화된 체제에서 보자면 때로 비윤리적이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산업 자본주의 질

서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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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7: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7

을 재현했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를 경험하고 그들의 필

요와 요구에 따라 원칙과 질서를 만들어 왔다

4 근 삶을 반추하는 경지 우묵배미

문학 소설의 운명은 문제적 개인이 사회와의 분열을 극복함으로써 성

장 성숙하는 것이다 이에 문학은 개인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주체를 반드시 생성해야 한다 노동

문학 노동자의 자기 재현 서사의 주체는 노동자로서 자기 각성이 필연

적이다 이전에는 ldquo용기도 자존심도 없는 천대받는 노동자rdquo(985172내일을 여

는 집985173 214쪽)였지만 부당한 착취 구조를 lsquo학습rsquo하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성과 인간됨을 위해 투쟁할 용기를 획득한다 그러나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적 세계는 도시적인 가치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시 노동자의 성장은 경제적 근대화와 상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27)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문학은 주체가 lsquo타락한 세계rsquo 편

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운동의 주체들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삶 일상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 985172왕룽일가985173(1988)와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은 농촌과

도시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의 삶 그대로를 기록하는 노동문학의 창작 방

법에 부합한다 그러나 박영한의 소설을 노동문학의 전형이라 볼 수 없

다 이는 박영한의 초기작 985172머나먼 쏭바강985173(1977)과 985172인간의 새벽985173(1980)에 보여주었던 열광적인 관심에 비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

27) 노동문학의 주체는 문학의 형식을 통해 lsquo자기완성rsquo 인격적 lsquo완결성rsquo을 추구할수

록 지배적 통치 이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407쪽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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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0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한 이유이기도 하다28)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주제의식이 변화한 데 당

혹해 하면서도 애써 소설 저층에 흐르는 민중 문학적 의의를 찾았다

소설의 비평적 분석은 대체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농촌

사회 농민의 세태 변화를 작가가 lsquo직접 체험rsquo하여 lsquo풍자와 해학rsquo의 대중

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되었는데29) 산업 사회가 배태

한 세태 변화는 단연 물질중심주의 윤리 의식 상실이다 작은 이익에 인

간다움을 저버리는 ldquo농민들조차 돈에 대한 유교적 체면의식을 완전히

벗어던져 버렸다rdquo는 것 ldquo농민들이 노동자로 변신하여 본래적 정체성과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rdquo는 것 그로 인한 ldquo왜곡된 애정행각rdquo 공

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ldquo서로 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포용력도 잃어가고

있다rdquo30)는 것이다

물론 박영한의 소설은 점차 도시화되어가는 농촌에서 충돌하는 가치

관과 긍정만도 부정만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당대 풍

속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변화한 세태라

고 할 때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lsquo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rsquo 수동적인 존재들에 불과하게 된다 때문에 우

28) 반면에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KBS 미니시리즈 lt왕룽

일가gt 198928sim427)와 영화(lt우묵배미의 사랑gt 장선우 감독 1990ㆍ2018년

재개봉)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lt왕룽일가gt는 오락부문 lt전국노래자

랑gt과 함께 드라마 부문 lsquo올해의 방송프로그램rsquo으로 선정되었다

29) 당시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기사도 이같은 견해와 일치한다 농촌과 도시문화

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접점지대를 무대로 산업화 과정을 겪는 농촌의 갈

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은 도시 빈민 계층의 소외나 빈

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겪은 분배의 갈등으로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노

동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해 산업화에 따른 소외문제는 퇴색한 느낌까지

주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도 안겨주는 이유는 한국인

정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농촌생활가치가 파괴되면서 오는 충격 때문인 듯

하다고 분석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lt왕룽일가gt 갈등 속의 해학과 공감

불러」 lt경향신문gt 1989 4 3

30)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학회

199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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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19: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09

묵배미는 도시에서 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lsquo밑바닥 인생rsquo 이기적

이고 약삭빠른 자기밖에 모르고 lsquo왜곡된 애정행각rsquo을 벌이는 도덕과 윤

리의식을 상실한 lsquo처참한rsquo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산업

화의 최후 보루로서 농촌이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결국 이곳마저

도 무너졌다는 lsquo불순한rsquo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걘 치말 이렇게 올리구선 보지를 내놓고 오줌을 눈대요 쬐끄만 계집

애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helliphellip고개를 돌린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

는데 아내 눈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깜짝깜짝 여닫히고 있었다(hellip)

그건 미애뿐이 아니라 제 아버지 경우도 비슷했다 나리 아부지 저

놈 불알 차암 잘생겼지 저놈 자지가 얼마만한 줄 알아 팔뚝만 해

여helliphellip 어느 날은 내 아내가 곁에 서 있는 데도 개의치 않던 필용씨였

다(hellip) 그러므로 미애의 그런 대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우리 부부 쪽

이 오히려 외설에 갇혀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며 어찌 생각하면 미애의

가장 때묻지 않은 부분이 그런 대목이 아니었을까31)

우묵배미에 들어와 비육우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 부부가 주인집 필용

씨 부녀의 외설스런 언사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것이 농촌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장면이다 작물의 수확만큼이

나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농사가 다름 아닌 가축의 교미이고 보면 농사

꾼 아버지는 물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서일을 하는 딸 미애에게

도 인간의 성기는 생식기이지 여기에 외설적이고 음란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성기를 신체의 일부로 지칭하는 부녀와 달리 주인공 부부의 수치

심은 도시적인 성윤리 근대적 사회윤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실상 lsquo때rsquo는

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순결한 정직함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목격된다 요

셉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맞이해 옹색한 살림이지만 암퇘지를 잡는 날 과

수원지기 홍씨가 도축하는 장면이다 신주단지같이 모시는 칼로 돼지를

3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93-94쪽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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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1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내리그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리는 작업에 몰두하

는 홍씨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홍씨의 엄숙함은 짐승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아 꺼내 놓기만 하면 앞다투어 널름 집

어먹는 사람들의 비겁함과 대조를 이룬다 또 왕룽영감 필용씨가 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얼마나 숭고한가 그는 땅에서 난 것이면 돌멩이 하나

도 예사로 보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며 달래 고사리 약초뿌리 등 뿐

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 지닌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이다

우리는 손쉽게 외설적이니 타락이니 잔인함이니 변질이니 하며 우묵

배미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재단한다 그래서 우묵배미를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창으로 이 비참한 lsquo지옥rsquo에서 우리를 구해 줄 주체

영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lsquo더 나은 삶을 향한rsquo 진보 발전의

기대는 지배계급의 통치술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비루한 일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농촌의 성과 생명에 대한 건강함과 숭고함과 같이 농민의 삶 일상적 차

원에서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영한 소설의 미덕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ldquo생짜배기의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

로 바라보려는 노력rdquo32)함으로써 우묵배미 사람들의 일상의 미적 가치를

재현한 데 있다 이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관념의 허상을 넘어 일상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lsquo근대화rsquo만큼 관념과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도 없다 흔히 근대화라 하

면 전통 사회의 lsquo인간성 상실rsquo lsquo풍속의 변질rsquo lsquo윤리적 타락rsquo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리지만 실상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서울 며느리를 들이는 소원을 성취한 필용씨가 바바리에 선글라스를 척

걸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바라볼 때의 충격 혼수로 가져온 소파며 냉

32) 박영한 「2부를 끝내면서」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1989) 민음사 1990 270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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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1: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1

장고 세탁기 컬러TV는 전기세를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즉 근대

화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절약하면서 살아온 필용씨의 상식으로는 도

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앞에 강제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

묵배미 사람들에게는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 윤리적 타락

이전에 lsquo눈치 빠른 디스코 리듬rsquo lsquo맵시 있는 홈드레스rsquo lsquo수세식 화장실rsquo

lsquo신식 양옥 베란다rsquo lsquo아마릴리스 화분rsquo이 기왕의 삶을 lsquo비웃고rsquo 마치 제가

주인인 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나

약함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앞

에 선 나약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각서를 쓴 그날 저녁에도 이웃들이 여주댁 안마당을 다 나간 뒤까지

마노씨는 어둠 속에 어정대며 남아 있었다 마노씨는 소줏내 섞인 한숨

을 불어내며 나직나직 말했다

「차라리 나한테 주정을 허게 없는게 죄지 다아 없이 사니까 술 먹으

믄 짜증이 나는 게야 대섭이 이제부터락두 매앰 단단히 잡숫게」

그 어둠 속에서 마노씨가 투박진 손을 들어 연신 얼굴에서 뜯어 뿌린

건 내 보기에 단순히 콧물 종도가 아니었으리라 콧잔등이며 눈두덩이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홍씨 입에서 이윽

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이고 내가 죽우뿌야지 이리 살아 머할 것꼬 아이씨 면목 없심더

다시는 술을 입에 대몬 내가 내가 개아들놈이지러 하이고오 내 신세

야 사변때 중공군한테 붙잽힜을 때 고마 칵 뒤지뿔거로 이늠에 이 찔

긴 목심이 원쑤이더」33)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홍씨의 주사가 급기야 사람을 다치게 하

는 정도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 술을 마시

면 마을에서 떠나겠다는 lsquo금주 각서rsquo를 쓰게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각서에 입회인 손도장을 아무도 찍지 않으려 한 것이다

33)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1988) 민음사 1991 151쪽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2: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12 한국문학논총 제82집

후환이랄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최연장자인 마

노씨의 설득으로 홍씨의 주사 사건은 일단락된다 박영한의 해학적 문체

가 돋보이는 대부분의 장면들이34) 그러하듯 갈등과 충돌을 그리면서도

그 해결 방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마 해결되는 것이다 농민의 체험

을 뒷받침할 관념의 체계 극적 리얼리티나 사회구조의 종합적인 총체성

을 기대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이러한 해결법에 비평가들은 소설의 해학과 풍자라는 민중적 전통과

의 친연성은 보여주지만 리얼리티 전망 총체성 부재라는 소설의 한계

를 지적했다 권성우가 박영한의 소설이 ldquo재미는 있어도 감동적인 작품

이 될 수 없다rdquo35)라고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험의 직접성이 적

절한 관념 체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체험이 혼자 고립적으

로 활동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영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

디까지나 민중ㆍ노동문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때문에 박영한의 소설

은 민중ㆍ노동소설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영한의 소설은 극

적 제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거나 전망을 제시하는 것 구조악과

행태악 모두를 종합적이며 변증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총체성을 요구

받았다36) 하지만 이 해결방법이야말로 우묵배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

람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세상의 모

34) 필용씨에게 찾아온 늦바람 상대 여인이 재산의 일부를 훔쳐 달아나고 그녀를

찾아내지만 그녀의 궁핍한 살림을 보고는 그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왕룽일가」) 제 형을 배반한 여자(미애)에게 복수하겠다고 미애를 성추행한

동생을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야 된다고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사람은 다

름 아닌 미애 자신이다(「오란의 딸」)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아마도 갈

등을 해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는 연작일 것이다 나리아빠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임금 인상을 놓고 홍씨가 여주댁과 폭력이 오가는 활극을 벌였음에도 다

시 여주댁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리아빠는 백중령 일당에게 고추대금 사기를

당하는데 정작 이들은 나리아빠의 이삿짐을 날라 주기까지한다(「후투티의 여름」)

3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36)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3호 작가세계

19899 257-261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3

든 작고 힘없는 것들에게 무한정 열려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묵배미의 인물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고향에서

실패하고 우묵배미로 들어온 주인공부터 마노씨 홍씨 여주댁 대문간

안에 세든 주리네와 재단사 배서방과 쌍과부집 홍화댁 은실네까지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내 이웃 간의 관계는 서

로 찬밥도 나눠 먹다가도 제 잇속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서로를 경멸하

고 폭행도 마다하지 않는 활극을 벌인다 그러나 평소 홍씨의 술주정에

핀잔을 주던 마노씨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홍씨를 두둔하는 것은 마노씨

나 홍씨가 모두 lsquo없이 사는 사람rsquo이라는 것 lsquo서로의 형편을 헤아려야rsquo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37) 알다시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일 고추를 수집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이나 아이를 키우

는 일 장례와 결혼 같은 큰 행사는 끊임없이 이웃의 협력을 요구한다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 이웃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농ㆍ반도

우묵배미의 생리가 이들을 화해하고 끌어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묵배미의 결속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 사회 운동을 위

한 동료애와 다르다 우묵배미 사람들의 결속은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

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일상

의 관습적 규범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lsquo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rsquo는 lsquo운동rsquo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 변두리에까지 어

낸 사회악 구조악을 인식하고 lsquo전망rsquo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초

에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현재 삶 그 자체이다 시류에 따라

그것을 소외시키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외부에서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

들의 삶 일상 영역은 아닌 것이다

37)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114쪽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4: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14 한국문학논총 제82집

5 결론 lsquo일상 문화rsquo의 회복

일찍이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 내린 영국에서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한 호가트의 문화연구는 한국의 1980년대 lsquo진

정한rsquo 노동ㆍ노동자 문화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상업 대

중문화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중앙집중

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중문

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했다38) 이러

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었던 호가트의 연구

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후 대

다수 노동자들이 순응적으로 변모하고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오직

국가와 가족밖에 남지 않은 오늘날 상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노동자의 현실 개혁 의지에 체제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요소가

함께 내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노동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

는가를 살폈는데 동료와 연대하여 인간해방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의 목표가 곧 경제적 안정으로 쉽게 환원되었다 문제적 개인이 자신의

계급을 각성함과 동시에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주체로 전환

되었고 lsquo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rsquo라는 권위 해체와 평등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생활수준에 따르도록 촉구했기에 노동자의 현실은

부정되고 탈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lsquo더 나은 삶rsquo이 과연 무

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

로 전환해야 한다 호가트는 노동자의 정신인 관용 진보주의 개인성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전통적인 노동자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38) 이규탁 「lt교양의 효용gt과 한국의 대중문화」 985172오늘의문예비평985173 오늘의문예비

평 20173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5: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5

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정신들에서 노동자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힘

을 찾는다 개인성은 획일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회

의주의와 반항적인 태도는 막강한 외부의 영향력을 무시 혹은 lsquo참고 견

디며rsquo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유쾌함 과거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9)

박영한의 소설은 한국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

적인 미덕의 상실 타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앞에 선 가장 나약

하고 절망적인 인간상을 재현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너그러움은 나약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덕성이다 노동운동 노동문학의 주체가 인간해방 평

등을 향한 연대 집단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일상적 관습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데 있다 억압받고 핍박받는 것은

lsquo나rsquo만 곤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lsquo이웃rsquo과 lsquo동료rsquo가 lsquo함께rsquo 처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묵배미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역

시 고추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인물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

둘러 우묵배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주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지겨운 삶을 lsquo참고 견디고rsquo 있다 가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참고 견뎌내도록 만든다 호가트의 논의에 의하면 노동자의

lsquo참고 견디는 능력rsquo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떻

게든 벗어나야할 비참의 수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요구

되는 공동체의 물꼬를 전환할 중대한 가치이다

lsquo공동체rsquo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적 폭력을 방어하고 개인을

39)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6: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16 한국문학논총 제82집

보호하는 보루로서 혹은 개인의 일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시점에서 조

차 삶의 근거 가치로서 작용한다 이에 리프킨의 lsquo제3부문rsquo은 새롭게 만

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 대학 교회 수도원 청년 단체 등의 공공 영역이 미국사

회를 고도로 발전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난날의 일상 경험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이유는 천재지변 혹은

사회 변화로 생겨난 새로운 위협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을 회복하여 현재 노동하는 사람의 가치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함이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7: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7

참고문헌

lt기본 자료gt

방현석 985172내일을 여는 집985173 창작과비평사 1991

박영한 985172왕룽일가985173 민음사 1988

______ 985172우묵배미의 사랑985173 민음사 1989

lt단행본 및 논문gt

구해근 신광영 옮김 985172한국노동계급의 형성985173 창비 2015

권성우 「체념과 관념사이」 985172문학과사회985173 제1권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885 796-805쪽

김 원 「문학 누구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가」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문학사

2011 209-220쪽

김사인ㆍ강형철 엮음 985172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985173 푸른숲 1989

김예림 「어떤 영혼들-산업노동자의 심리 혹은 그 너머」 985172상허학보985173 제

40호 상허학회 2014 339-380쪽

김옥선 「빈곤 통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서 로컬공동체 연구」 985172배달말985173 제63호 배달말학회 2018 397-430쪽

김한식 「도시 성장 소설의 배경과 성격」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 43호 동국대

학교한국문학연구소 2012 397-425쪽

리처드 호가트 이규탁 옮김 985172교양의 효용985173 오월의봄 2016

박해광 「한국 노동자문화의 성격」 985172민주주의와 인권985173 제8호 전남대학

교 518연구소 2008 89-124쪽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985172창작과비평985173 제15권 제3호 창작과

비평사 198510 7-39쪽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8: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18 한국문학논총 제82집

신원철 「1960-70년대 기계산업 노동자의 여가 및 소비생활 그리고 노

동자 정체성」 985172경제와사회985173 제68호 비판사회학회 200512 44-

70쪽

알프 뤼트케 외 이동기 외 옮김 985172일상사란 무엇인가985173 청년사 2002

우찬제 「lt틈gt의 구조원리와 사랑의 현상학」 985172작가세계985173 제1권 제3호

19899 240-263쪽

이선영 「80년대 시의 반성-이념성과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985172실천

문학985173 제16호 실천문학사 198912 108-127쪽

이재현 「문학의 노동화와 노동의 문학화」 985172실천문학985173 제4호 실천문학

사 198312 195-232쪽

이혜령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의 초상mdash1980년대 노동문학론 소고」 985172동방학지985173 제175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295-320쪽

장성규 「1980년대 노동자 문집과 서발턴의 자기 재현 전략」 985172민족문학

사연구985173 제50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 연구소 2012

257-279쪽

전승주 「1980년대 문학(운동)론에 대한 반성적 고찰」 985172민족문학사연구985173 제53권 민족문학사학회ㆍ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388-409쪽

조정래 「박영한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985172국제어문985173 제19호 국제어문

학회 1998 53-78쪽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985172실천문학985173 실천

문학사 2000 253-272쪽

천정환 「세기를 건넌 한국 노동소설」 985172반교어문연구985173 제46집 반교어문

학회 2017 127-170쪽

최원식 외 「좌담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민족문화」 985172창작과비평985173제20권 제2호 창작과비평사 19926 6-60쪽

허선애 「탈-근대적 문학사의 가능성과 제안들」 985172어문론총985173 제78권 한

국문학언어학회 2018 405-444쪽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29: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19

ltAbstractgt

Beyond Labor literature to ldquoDaily laborrdquo

40)Kim Ok-Sun

The 1980s was an era of labor literature The literature exposed the

undue suppression on laborers and desire humane lives The laborers

also wrote their own storie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s and

achieve better lives Critics at the time assigned crucial roles and

values to labor literature such as human liberation realization of

democracy and overcoming the division However the heat for labor

literature vanished in an instant along with the changes in

international situations during the early 1990s In this research I

assume that the value of labor which was pursued by labor literature

is still valid and examine how it has been changed As such I intent

to restore the power that assembled the laborers in the past and

encouraged them to fight for the common goal The purpose is to

establish a fence to protect the laborers in the modern society from

the despair and anxiety

The laborers appeared in labor literature desired to improve their

lives rethink about class consciousness and achieve equal

relationships However this desire is limited that modern laborers

cannot band together The purpose of a better life was economic

stabilization The equality awareness of laborers made the laborers to

desire for a standard of living of the ruling class Therefore the

Kyungsung University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30: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420 한국문학논총 제82집

preference of laborers such as ldquoSojurdquo and ldquoTrotrdquo reflected the

desperate and painful feelings of laborers Consequently the laborers

wanted to escape from the reality if their economic conditions are

improved

After the labor movement the reality of laborers in Korea is

miserable The economism made every effort and passion to be

quantified as profits The westernized education turned the values of

the past generation into something old and obsolete People started to

not believe anything after every type of authorities was dissolved

Instead they rely on the authorities of a strong nation and believe

that only family is safe Today only the nation and family are left

and it is crucial to restore the common sensation which can connect

the fragmented individuals

Labor is an activity that every person experiences ever since the

birth of human beings Before the labor movement people were

routinely engaged in labor They experienced the society through

labor and created the principles and orders based on their needs and

demands Younghan Parkrsquos novel reproduced the aesthetics of

farmersrsquo daily lives The weakness and despair they experienced

before the advent of a new era made them help each other The

solidarity demonstrated in Younghan Parkrsquos novel was poor peoplersquos

daily lives and conventional norms Therefore the solidarity of

laborers is possible only by the ldquopower of enduringrdquo ldquotogetherrdquo

instead of escaping from the poor and miserable reality

Key Words Labor labor literature middle class laborersrsquo culture

Hyeonseok Bang Younghan Park community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31: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421

논문 수 2019년 6월 30일

심사완료 2019년 8월 14일

게재확정 2019년 8월 19일

Page 32: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2019-09-03 · 노동문학을 넘어 일상적 노동의 회복으로 393 1. 다시 ‘노동문학’에 거는 기대 19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