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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새로운 제도의 모색 내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나 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선 택할 것이다. 그 중에서 ‘손무덤’이라는 제목의 시는 내가 의과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그리고 무엇 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 작품이었다. 시집과 시의 내용을 모두 기억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전쟁 같은 노동에 지친 노동자의 삶을 매우 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손무덤은 노동의 고단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손이 짤려 나가는 현 실을 어떠한 통계 자료보다 더 생생하게 고발한 시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 같은 노동의 현실은 과거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시대와 민주노동조합 운 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80년대에 국한된 문제일까? 이런저런 비난의 화살이 민주노동조합운동에 쏟아지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로 전쟁 같은 노 동, 노동자의 손과 생명이 잘려나가는 소름끼치는 현실은 반성해야 할 과거의 문제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가끔 TV나 신문지상에서 화재 폭발 사고나 직업병 이야기가 나오지만, 어쩌다 생 기는 일이고 미국과 같은 선진 외국도 가끔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일상의 일로 덮어버려 도 되는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단연코 난 전쟁 같은 노동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그리고 더 은밀하게 더 구조적으로 그리 고 더 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4년 젊은 태국 이주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진 직업병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의 고통은 이것의 한 예에 불과하다. 비극적 사건을 하나하나 나열 할 필요도 없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숫자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소중한 생명이 이 땅 에서 소멸해갔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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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새로운 제도의 모색

임준

가천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

1. 전쟁 같은 노동은 과거의 일인가?

내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나

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선

택할 것이다. 그 중에서 ‘손무덤’이라는 제목의 시는 내가 의과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그리고 무엇

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 작품이었다. 시집과 시의 내용을 모두 기억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전쟁 같은 노동에 지친 노동자의 삶을 매우 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손무덤은 노동의 고단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손이 짤려 나가는 현

실을 어떠한 통계 자료보다 더 생생하게 고발한 시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 같은 노동의 현실은 과거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시대와 민주노동조합 운

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80년대에 국한된 문제일까? 이런저런 비난의 화살이 민주노동조합운동에

쏟아지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로 전쟁 같은 노

동, 노동자의 손과 생명이 잘려나가는 소름끼치는 현실은 반성해야 할 과거의 문제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가끔 TV나 신문지상에서 화재 폭발 사고나 직업병 이야기가 나오지만, 어쩌다 생

기는 일이고 미국과 같은 선진 외국도 가끔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일상의 일로 덮어버려

도 되는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단연코 난 전쟁 같은 노동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그리고 더 은밀하게 더 구조적으로 그리

고 더 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4년 젊은 태국 이주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진

직업병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의 고통은 이것의 한 예에 불과하다. 비극적 사건을 하나하나 나열

할 필요도 없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숫자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소중한 생명이 이 땅

에서 소멸해갔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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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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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수 사망만인율

그림 1.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 및 사망만인율

자료: 노동부, 산업재해분석. 각 년도

이것이 전쟁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떻게 일년에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고 죽을 수 있

단 말인가? 어떻게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직업병이 아닌 단지 사고만으로 일터에서 생명을 잃

을 수 있단 말인가? 선진 외국에 비해 수십배가 넘는 사망위험도라고, OECD국가에서 수위를 차

지할 정도로 산재가 만연한 산재왕국이라는 사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장 극단적인 위험

의 공간인 전쟁과 비교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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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사망자수

그림 2. 이라크 미군 전사자수(2003~2010.9)

자료: http:\\icasualties.org

도대체 이라크에서 아프카니스탄에서 얼마나 많은 아까운 생명이 허망하게 전쟁으로 사라졌는

가? 그에 비하여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노동과 그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이 그에 비

할 바가 못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직업과 관련된 수많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직업으로 인

한 사망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죽음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지 모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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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다면, 왜, 노동자는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다치고 아픈

노동자들은 최소한 제대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법과 제도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2. 왜 노동자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가?

1) 노동자 건강과 무관한 법과 제도

폭압적인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전쟁 같은 노동이 지속되고 수많은 노동자가 산재로 소중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고 있는 데에는 노동권 등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가 제약되어 있는 제반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난 여기서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에 따른 안전보건체계에 근본적인 결합이 있음을 중점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현행 산

업안전보건법과 제도는 노동자의 건강과 무관한 제도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관점이 아닌 사업주의 이해에 충실한 법과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명 ‘산업역군’이라는 이

름으로 대표되는 생산만능주의의 폭력적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폭력적

이면서 차별적인 관료 기제로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 기제는 노동을 중심부

노동과 주변부 노동으로 구별 짓고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차별적 포섭이 구조화되고 있는 생산의

지점을 충실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가)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산업안전보건

(1) 굴뚝 산업에 어울리는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원칙과 규제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 산업안전보건법이다. 그런데, 한

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70~80년대의 굴뚝 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위험물질 및 위험공정에 대한 세세한 규정과 그에 대

한 사업주의 예방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고, 여기에 건설업의 안전보건 문제를 추가하고 있는 정

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이러한 규정이 다른 업종에도 적용될 수 있

기 때문에 제조업만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리화학적 위험 인

자 및 공정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

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이렇듯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조업의 물리화학적 위험 인자 및 공정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매우 나열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제반 위험 요인을

열거해 놓은 규정은 그에 해당하는 인자 및 공정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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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에 해당하지 않는 위험 인자나 공정, 또는 환경

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제조업만 하더라도 신기술의 도입 등으로 새로운 공

정과 새로운 물질을 노동자가 다루어야 하는데, 현재의 법적 근거로 이러한 공정에 대한 사전 예

방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사

건에서도 나타나듯이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전 예방이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산업이 제조업 등 이차 산업에서 서비스업과 같은 삼차 산업으로 바뀌고 있는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업과 같은 이차 산업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

다. 이미 서비스업의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제조업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고 중증도가 높다는 점에서 여전히 제조업이 중요하

다는 주장이 틀린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이 아닌 다른 업종의 산재가 상당수 은폐되

어 있고, 그보다 훨씬 산재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업종도 아예 안전보건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

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현재의 틀을 고수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71,542

1,001,445

435,532

1,337,109

산재보험 통계로 잡힌 직업성 손상자수 산재보험에 누락된 직업성 손상자수

산재보험 적용이 아닌 직업관련 운전으로 인한 손상자수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직업관련 손상자수(농업인 등)

46.9%

35.1%

15.3%

2.5%

그림 3. 건강보험 손상 환자 대상의 조사를 통해 추정한 직업성손상자 분포(2006)

자료: 산업보건연구원, 2007

(2) 큰 사업장, 정규직만 챙기는 안전보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수많은 위험물질을 나열하고 이것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를 규정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위험물질 및

공정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노동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노동자에게 정기적으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업주는 일부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중규

모 이상의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 정도는 되어야 법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큰 기업의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

은 전문가와 노동시민사회 진영에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러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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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시선을 일단 거두더라도 소규모 사업장은 아예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재의 상당수가 드러나지 않고 있

는데도 불구하고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 발생률이 높게 나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안전보건에서 사업주에게 물을 수 있는 노동자나 사업

장의 범위를 매우 좁게 규정하고 있어서 실제 안전보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업주인데도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

의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즉,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책임을 정규

직 노동자에만 국한함으로써 위험 작업이 용역,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에게 전가되는 데에 일조

하고 있는 것이다.

나)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를 보호하는 예방체계

이렇듯,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산업안전보건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산업

안전보건법이 사실상 사업주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고 있다. 경영자 단체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이

기업 활동을 위축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보다 더 사업주를 위한 안전보

건체계가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주에 경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큰

사업장의 경우는 다른 큰 위험이 존재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법에서 나열한 위험 요인 및 공정에

대한 예방조치만을 하면 그 뿐이다. 사업장의 규모에 비추어볼 때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큰 문

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만 하면 실제 다른 산재가 나더라도 별다른 제재 조치가 없고 설사 제재

조치를 당하더라도 솜방망이 벌금 정도만 내면 모든 게 해결된다.

다음으로 산재 위험이 높은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나열하고 있는 안전보

건조치를 수행할 여력이 대부분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열외 군에 해당한다. 실제로 산재만 나지

않으면 감독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산재예방설비 등을 가동하는 사

업장도 있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업주에게 그리 큰 걸

림돌이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중간 규모의 사업장인데, 이 경우가 조금 고달픈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민원을 가장 많이 내는 군이라 해도 무방할 것

이다. 나열한 안전보건조치를 수행하기엔 사업장 규모를 볼 때 빠듯하고 감독도 소규모 사업장처

럼 열외 군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

다. 그러나 이들 사업장 역시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위험인자나 공정에 대한 사전 예방조

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노동부나 산업안전공단 등에서 감독의 칼날을 겨누고 있는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형식적 관리에 치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조업, 그것도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이고,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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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다수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노동자, 농업 등에 종사하는 농업 노동자 등은 제외된다. 특히, 정

규직보다 더 비중이 커진 비정규직 노동자도 제외된다. 따라서 전체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전체

노동자의 10% 정도만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예방 조치들을 하면 되고, 그것도 법에

나열되어 있는 항목만 관리하면 되는 귀찮은 일거리 정도로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개

별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도 일부 사업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제도이고, 선

진외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기업친화형 법률 체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까지 난 산업안전보건법이 과거의 틀에 붙잡혀 있고 전체 노동자가 아닌 정규직 노동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용도

폐기되어야 할 허점투성이 법이라고 주장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중간 중간 언급을 하긴 하였

지만,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기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가) 노동자 구성의 변화

70-80년대 굴뚝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와 지금을 비교할 때 노동자의 구성 변화를 생

각하지 않고서는 비교 자체가 무의한 경우가 많다. 단순 변화만 보더라도 산업별 종사자의 규모

는 크게 변하였다. 제조업이 포함된 광공업을 보면, 80년대까지 그 구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

지만, 90년대 들어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반면, 1990년대부터 노동자의 산업별 구성을 보면, 서

비스업 종사자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0%

20.0%

40.0%

60.0%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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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농림어업 광공업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그림 4. 대분류로 본 산업별 취업자수 (1963~2008)

자료: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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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어업 광공업 전기,가스 및 수도사업 건설업 도소매.음식숙박업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 전기.운수.통신.금융

그림 5. 세분류로 본 산업별 취업자수 (1992~2008)

자료: 통계청

노동자 구성의 변화는 산업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 산업 내에서도 과거의 평생직장

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개념이 슬그머니 들어오더니 동일 노동을 해도 동일

대우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확산되면서

비정규직이 당연한 대세인 것처럼 확대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세계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

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확산과 일국적 재생산 기전을 무시하고 전개되는 전 지

구적 차원의 산업구성의 변화가 더 이상 설 땅을 잃을지 모른다는 낙관적 전망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비정규직의 확산과 산업구조의 변화는 오히

려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과거의 정규직 중심 체제가 복원되어야 하고 일국적 재생산체제를

강화해야 하며, 안전보건체계도 이러한 중심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전개될 수 있

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과거의 안전보건 틀을

보강하는 방식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논하기에 앞서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안전보건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우선적으로 달성

해야 할 과제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확대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화된 위기 또는 전 지구적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

운 노동 포섭의 경향적 흐름이고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흐름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본의 전 지구적 축적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일국

적 산업구성과 노동구성의 재편 뿐 아니라 국가 간 산업구성 및 노동구성의 재편이 강화되고 있

는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면서 과거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보인다.

이진경은 이러한 경향을 ‘흐름의 경제’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념을 차용하든 차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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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던 간에 산업 구성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변화는 예견된 것이고 계속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

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더디게 진행되느냐, 급속하게 전개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러한 흐름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폭력적 방식으로 관철시켰던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보는 것이 타당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의 궁극적인 목적 또는 지향점이 노동자의 건강에 있다고 할 때 당연하게

그 주체와 대상은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 주체와 대상의 면모가 과거와 달라졌다면 산업안

전보건이 과거의 틀과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조업이 주

도하는 산업구조와 직장 내에 고용관계가 차별화되어 있지 않은 정규직 중심의 사업장에서 주로

나타났던 안전보건의 문제와 틀은 서비스 산업 등이 확대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한 내용과 형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나) 노동자 건강권 의식의 강화

그런데, 기존의 안전보건 틀이 과거의 유산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제조업 등 굴뚝산업에 종사한

정규직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는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았음은 산업안전보건법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

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안전보건 문제가 처한 후진적 현실이라고 말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일반적인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제도가 도입되면 굴뚝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선

진외국들은 산재 사망 등 산재 문제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산업구조의 변화 및 안

전보건에 대한 노동권의 강화 등과 맞물려 과거에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던 업종의 안전보건 문제

와 직업병 문제 등 새로운 산재 문제가 부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일반적

인 경로를 밟지 않고 있다. 과거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

나는 혼돈의 양상을 띠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운동의 성장 속에서 노동자의 울림

이 반영된 결과물로 등장했던 것이 아니라 민중을 학살하고 등장한 신군부가 자신의 권력을 정당

화하기 위하여 법적 제도적 장치를 형식적으로 갖추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하면서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제

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노동자의 대항 권력 및 대응력이 부재하고 사업주 주도의 일방

적인 노사관계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건강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사업주의 이해에 기반하여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동운동이 급격하게 성

장하면서 극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보편적이고 민주적 시민으로서 각성과 노동자 의식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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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기본적인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에서 한 발 나아가 노동권, 건강권 등 보편

적인 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988년 문송면 군 수은중독 사건과 원진

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 이후 산재의 심각성에 대한 노동자의 각성이 커지면서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사회적인 관심사로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보건의료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 등 사회각계 전문가 집단이 노동자 건강의 심각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

는 데에 일조하면서 노동자 건강 문제가 생산의 하위 개념으로 단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이자 생산과정에서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

다. 물론, 아직까지 산재 문제가 노동운동의 핵심 이슈로 전면화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

만, 건강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는 점차 모든 논의의 출발이고 그 전제가 되어가는 것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반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체계는 어떠한가? 노동자의 건강이 생산과정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는가? 그리고 점차 커져가는 노동자의 요구와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

다. 사업주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생산과정의 귀찮은 고려요인 중 하나로 위치해 있는 현

행 법 형식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이 아니라 사업주를 보호하는 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다) 노동자 건강권 개념의 변화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 권리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노동자 건강권의 개념 자체가 변화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노동자의 건강권 개념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소극적 개념이었다.

실제, 이러한 구호가 그 시대에 산재추방운동의 핵심적 요구로 제시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개념은 점차 어떠한 노동자도 산재 직업병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할 권리가 존재하고, 이를 보장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사업

주에 있으며, 이를 법적 제도적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할 책무가 국가에 있다는 적극적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권리 의식의 향상이 가져온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재해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질병 발생에 있어서 직업이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

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사업장을 벗어나서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는 점도 노동자의 건강 개념이 전통적인 산재나 직업병으로 제한되지 않고 전체 건강 개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하겠다.

이렇듯 건강권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안전보건 체계는 굴뚝

산업의 전통적 산재 직업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틀 내에서 노동자의 건강권 개념은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고 매우 제한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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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치고 아픈 노동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1) 산재보험이 아픈 노동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가 불안전하고 불건강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어 결국 건강을 잃을 수밖

에 없게 된 구조적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체계가 과거의 유

산에 갇혀 있어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러한

불건강한 환경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해나 직업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 대해서만큼은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들이 가족, 직장, 사회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가) 보장 수준이 높다?

2005년 10월 10일자 한겨레신문을 보면, 가스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재해노동자가

피부 이식 등에 들어가는 치료비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서 3년 동안 수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

를 부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결국 빚을 얻게 된 되어 집을 가압류되어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안타까운 사건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은 사건이 아

니라 대부분의 재해 노동자가 겪는 고통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산재보험에서 제공해 주는 치료비, 즉 요양급여의 범위는 건강보험에 준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건강보험과 다른 점은 건강보험의 경우 요양급여 범위 내에서도 치료비 중 본인부담이 있

지만 산재보험은 본인부담이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재보험의 요양급여

범위가 건강보험의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에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고가의 시술이나 검사 등

은 재해 노동자가 직접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고 그 비용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물론 특

진료 등과 같은 일부 항목은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에서는 보장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

적으로 치료비의 약 20% 정도는 본인부담이 존재하고, 이러한 치료비 부담이 산재노동자의 가계

에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치료비 부담 뿐 아니라 산재보험에서 소득보전 차원으로 제공해주는 휴업급여

조차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만 제공해 주고 있어서 재해를 당한 이후 실질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 결과 빈곤 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

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인 경우가 많은데, 배우자가 간병을 하지 않아서 또다시 가

계의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일부 대기업

처럼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산재에 따

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후퇴를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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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를 제외하면 선진 유럽 역시 산재보험의 휴업급여 비율이 그렇

게 높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평균임금 수준이 높고 국가와 자치단체 등에서 별도로 제공되는

장해급여 등 다양한 부가 급여가 많기 때문에 산재에 따른 실질소득의 감소가 크지 않고, 그로

인하여 경제적 곤란함을 겪거나 빈곤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경제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의 경우는 휴업급여의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각 국의 휴업급여 수준 비교

0%

20%

40%

60%

80%

100%

120%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이집트 폴랜드 말레이시아 이란 인도 한국

그림 5. 중위 수준 국가의 산재 휴업급여 비교

현행 산재보험은 치료가 완전히 종결된 후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애로 인한 소득 손실에

대하여 장해급여를 통하여 보상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장해등급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조차도 보상의 수준이 최저 생계

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아 재해노동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렇게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재해노동자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및 사회

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말

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나) 모든 노동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그런데,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를 일이다. 법률적

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도 적용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농업 등 업종별로 적

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또한, 소규모 음식점 등과 같이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

들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고,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1인 사업장 또는 자영

업자들도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에서 일하는 특수고

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사업주에 고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적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산재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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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

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하여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을 정하고

있고 산재 보험료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에서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

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

라도 재해노동자의 신청으로 적용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산재보

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한다거나 사전 예방보다 사후 약방문식의 행정 처분을 하고 있기 때

문에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정규직 노

동자가 주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산재 적용 대상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을 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노

동자가 재해나 직업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리기 때문에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기 매

한가지다.

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넌 안 돼!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산재 신청을 하면 적용을 모두 받을 수는 있는 것일까? 사고성재해와

직업성질환으로 치료를 받게 된 노동자가 산재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보호자가 산재

보험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게 되는데, 실제 급여 혜택을 받으려

면 사전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즉, 재해가 업무 때문에 발생하였는지, 업무를 수행하는 중

에 발생하였는지를 따져서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산재로 인정을 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사전승인

절차가 있다는 사실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을 재해노동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산

재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인하여 재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

고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량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고성재해 및 직업병이 발생하여 치료와 요양이 필요하게 되면 재해노동자는 본인

과 회사의 날인, 병원의사의 소견서 등이 포함된 요양신청서 3부를 작성하고, 재해경위서 및 목격

자 진술서 등 증빙서류를 함께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

야만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근로복지공단 지사는 요양신청서가 접수되면 회사

의 담당자를 불러 작업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자문의사에게 작업관련성에

대한 자문을 받은 후 최종적인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승인 과정이 사고성재

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는 1-2주 안에 승인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직업병의 경우는 작업

관련성에 대한 다툼이 커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승인과정만 한정 없이 길어지게 된다. 그

렇게 될 경우 요양이 인정이 되기 전까지 치료비에서 실제 본인부담 비율이 50%에 달하는 건강

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된다. 만약 산재 신청이 불승인될 경우는 행정심판절차를 밟든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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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면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리게 되어

재해노동자 본인과 가계에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된다.

업무상 재해 및 질병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제한적이고 엄격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실제로 작업관련성이 확실한데도 산재보험에서 인정되는 업무상 질병의 범위가 좁고 기준

이 엄격하여 실제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할 재해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요양급여를 제공받거나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

다. 더욱이 건강보험의 급여수준이 매우 낮고 산재발생 후 재취업 및 온전한 사회복귀가 불가능

한 상황에서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의 인정기준마저 낮다는 것은 재해노동자에게 심각한 사회경제

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행 산재보험은 재해노동자에게 업무관련성의 입증을 요구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사전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며, 그 기준마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침해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산재 이후 긴급하

고 적절한 치료 및 재활서비스를 받아야 할 재해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

이용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주의 측면에서 보면 산재은폐를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

적으로 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

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보험 재정

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 건강보험은 꼭 의료비만 보장해야 하는가?

그런데,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건강보험 문제를 놔두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

련을 맺고 있다. 앞 장에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를 제외하더라도 현행 산재보

험 체계에서는 명확하게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려운 질병도 사실은 노동자의 업무 또는 직업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사무직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나 신경과 외래를 찾아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노동자 본인 뿐 아니라 어떠한

의사도 불면증을 산재 중 업무상 질병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불면증이 발

생하는 이유를 찾다보면 직업과의 관련성을 벗어나서 생각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과도한 업무량

과 잦은 야근, 그리고 구조조정 압박에 의한 고용 불안감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불

면증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직업관련성을 의심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어 사업주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노동자 개인 부담 비율이 훨씬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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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사업주에서 노동자로 부담이 전가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치료비의 전가 문제는

소득 문제를 고려할 때 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 진료비 할인제도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건강보험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보험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적용 대상의 보

편성 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환자의

부담이 어찌 치료비뿐이겠는가! 아파서 병원에 상당기간 입원하거나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당연하게 직장에 다니기 어려워지고 별도의 보장을 하지 않는 직장에 근무할 경우는 임

금을 받지 못해 소득의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는 산재보험과 같이 의

료보험에서 소득보장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처럼 건강보험에서 소득보장

을 하지 않는 나라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진료

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소득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질환에 대하여 소득보전이 필요한 대상군과 그

렇지 않은 대상군 간에 의료이용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현재 임금노동자이고 기업에서 별도의

소득 손실에 대한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치료비 부담 뿐 아니라 소득손실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예 직장에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노령인구와 같이 임금노동자가 아닌 대상군은 적극적인 재활 요양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일반 병

원에서 장기간 요양하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더욱이 직업관련성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충분한 치료

와 재활을 받지 못하고 직장으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산재보험으로 처리는 되었지만, 직장으로 돌아

오지 못한 채 영구적인 장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보장

성 수준이 낮은 문제는 노동자의 건강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직업성 질환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보더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나) 노동자 건강과 보편적 건강보장제도

그런데,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는 동일하

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을 못하여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소득 손실에 대하여

보전을 받아야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그렇지

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여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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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복잡한 행정 절차에 기인한 사회적 비용 문제 뿐 아

니라 건강할 권리의 평평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미 복지가 앞서 있는 북유

럽 국가들은 불건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산재보험에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원인을 한 두

개의 원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고 있

고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격하게

업무의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

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시대착오적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산재보험제도가 당장 없어져야 할 제도라

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건강보험과 관련성에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현재 건강보험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평등하게 담보할 만큼 보편적 건강보장제도로 발전

하지 못하고 있고, 이의 핵심적 문제가 바로 보장성 수준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일 것이다. 산재보

험의 보장성 수준이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매우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산재보험제도를 당장에 없애는 것보다 낮은 보장성 수준

을 높이고 인정기준의 엄격함과 사전승인제도의 문제를 개선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 장기적으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통합되어야 한다!

당장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단일한 건강보장제도로 통합되어야 한다. 건

강할 권리가 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라고 한다면, 불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줄

이고 최대한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인의 종류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도대체 사회 구성원의 국적이 무엇이

든, 질병 및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차이를 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더 깊숙이 들어가면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

느냐의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모두 부담을 하는데, 건강

보험과 통합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를 모두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해서 사업주가 자신 또는 주주 몫으로 돌아가는 이윤 중 일

부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가시키게 된다면 사업주 부담과

노동자 부담의 비율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회임금

에 대한 보편적 시각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부담 비율을 줄이고 사업주 부담 비

율을 늘리는 작업, 즉 사회임금 부분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

보험과 산재보험의 제도적 통합을 부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당장에 통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는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대접

을 받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왜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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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바꾸기 위하여 각각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3) 변화를 담지하지 못하는 체계

현재의 산재보험은 노동자 건강이 지향하는 바를 담보해내기 어려운 낡은 틀을 갖고 있다는 점

과 자본의 축적체제가 변화는 과정에서 고용관계의 변화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담보할 만한

틀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산재보험은 불건강 상태에 처한 노

동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불건강 상태 이전으로의 복귀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권을 실현하겠다는

철학과 목표에 기반해서 성립,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재해에서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산재로 인한 개별 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과정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 자본주의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에서 성립,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 및 사회시민운동의 발전과 시민 의식의 향상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권리 의식이

커져가게 되었고, 노동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 더 나아가 모든 시민의 건강권이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어 나가게 되면서 기존의 산재보험의 틀이 변화된 권리 의식을 담아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선진외국에서 동일한 속도와 체계는 아니지만, 엄격한 원인주의에 기초

한 과거의 틀을 벗고 노동자의 불건강 상태라는 결과에 착목하여 노동자와 보편적 시민의 건강권

을 어떻게 평등하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제도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전히 산재보험제도의 독립성이 강한 조합주의 전통의 국가들도 자영업자 등 기존에

포괄하지 못한 일하는 사람을 산재보험의 틀에 포함시켜 나가고 있고, 북유럽 등 국가주의적 전

통이 형성된 나라들은 통합적인 건강보장제도가 정착되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재보험은 의연하게 사업주의 관점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

한 사업주배상책임보험적 성격의 산재보험을 유지해오고 있다. 웃지 못 할 일은 산재보험을 담당

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일부 간부들조차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고

사업주의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철학과 목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은 엄격한 인정기준과 사전승인제도를 완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사실 산재보상보

험법의 서두에서 노동자의 건강 회복 및 직장과 사회로 재복귀를 지향한다는 산재보험의 목표는

현재의 인정기준과 제도적 틀과 맞지 않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권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단지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치료수준을 높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첫 치료 순간부터 노동자가 직장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

과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물론 치료만이라도 잘해야 하지 않느냐 라는 현실론

도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단계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첫 단계부터 재활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산재보험에서 추진한 재활은 통합적인 관점으로 이해되고 추진된 것이 아니라 직업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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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서도 직업훈련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산재노동자가 최대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체계적인 제도로 성립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재활사업이 직업훈련원,

점포임대 지원사업과 같은 창업지원을 위주로 일부 산재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제한되

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일부 작업재활의 개념 등 재활의 범위가 넓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치료부터 복귀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재활 개념을 갖지 못하는 등 건강 및 재활 개념에 대한 협소한 시각에 기초한

재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재활 5개년 계획을 보면, 재활을 포괄적이고 연속적

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가 많다. 특히 직업재활의 경우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성격을 부분적으

로 확대하는데 그치고 있다. 정부 계획은 여전히 종합적인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기보다 산재노

동자 개인에 대한 지원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이러한 협소한 직업재활 정책으로는 대다수의 재

해노동자가 제도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

또한 재해노동자는 재해발생 부위 및 상해종류, 연령, 중증도, 재해의 종류 등에 따라 직업재활

에 대한 요구도가 다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직업재활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재해노동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직업재활프로그램이 제공되

었을 때만이 최종 결과인 고용 및 사회복귀와의 연계가 가능하다. 더욱이 사회적 복귀의 핵심이

직업을 통한 복귀라 할 때, 재활정책은 적극적인 고용과의 연계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재

해노동자의 대부분이 가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직업의 복귀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원직장 또는 직장의 복귀를 바라는 대다수 재해노동자의 요

구와 달리 재해노동자 중 일부만이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고, 중등도 이상의 장애를 가진 재해노

동자 중 일부만이 직업재활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독일만 보더라도 재활의 개념을 치료와 별도로 사용하지 않고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재활

비용에 포함시키면서 노동자가 산재에서 직장 및 사회로 복귀하는 전 과정을 재활의 개념을 통일

하고 재활을 전체 예산 중 20% 이상을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강

화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볼 때 우리는 과거의 틀에 갇혀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4. 노동자가 건강해질 대안은 없는가?

1) 과거의 안전보건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

산재를 예방할 수 없는 법과 제도라면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일부 업종과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만 대상으로 한 안전보건 체계로는 전체 산업에서 발생하는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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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보건의료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렵다. 전체 노동자를 포괄하면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는 안전보건의 문제를 유

기적으로 다룰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난 안전보건 문제의 특성과 사업장 규모 등을

고려하여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고, 노동부 산하의 안전보건기관만이 아니

라 보건소, 도시보건지소 등과 같은 보건기관이 참여하여 노동자 건강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같이

해결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또한, 지금처럼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를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노동자만으로 한정짓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사업주가 관할하고 있는 사업장 또는

현장 전체로 넓혀서 안전보건에서 사각지대로 없애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항상 대상자로 취급받고 있던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 문제에 있어

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 사업장의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체계 구축

먼저, 중규모 이상의 건설업 및 제조업 사업장은 우선적으로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형태의 비

정규노동자를 포함하여 사업장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모든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의 위험도

가 주기적으로 평가되고,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계획이 수립, 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

되어야 한다. 또한, 사업장 내에서 일차산업보건서비스가 잘 제공될 수 있도록 시설 및 인력을 갖

출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산업의학과가 설치․운영되고 있는 종합병원 등과

같은 산업보건전문기관에 서비스의 전달 및 의뢰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전보건서비스의 전

달체계가 구축되도록 체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작업

환경측정, 건강검진 등에 대하여 사업주가 직접적인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서비스 제공 기관

을 선정하여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보장되

는 가운데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고 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들어간 비용을 지불하

는 방식으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또한, 안전보건사업 중 전반적인 노동자의 건강증진사업에 필

요한 사업비용은 건강증진기금 등 공적기금을 통해 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행정적으

로는 노동부의 기획 능력을 강화하고 한국산업안전공단의 평가 및 지원 기능을 강화하여 사후 약

방문식의 안전보건에 대한 감독에서 벗어나 사전 예방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방향으로 관리 감독

및 지원서비스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산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규모사업장은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지

역노동건강센터와 같은 기관을 설립하여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지역노동건강센

터는 주로 동 단위에서 설립되어 산재다발 소규모 사업장 대상의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역주민 대상의 일차의료서비스도 제공하는 지역사회 밀착형 기관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일부

도시 지역에서 설립되고 있는 도시형보건지소의 특수한 형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때 안

전보건사업은 일반건강관리, 특수건강관리, 사업장 위험도 평가 등 전통적인 안전보건 사업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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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하여 소규모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한 WISE(Work Improvement in Small Enterprises) 프로그

램을 적용해볼 수 있다. 또한, 지역노동건강센터와 산업의학전문의가 배치되어 있는 종합병원의

산업보건전문기관 간에 의뢰 및 전달체계를 확립하여 양질의 안전보건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제공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의 비용을 사업주가 직접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제3자 조직에서 지불하고, 지불 단위를 행위별로 하지 않고 인두제 방식으

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업장은 정부가 예산을 통해 직접 지원하

는 방안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도매업과 같이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면서 전통적인 재해보다는 신체부담 작업으로 인하

여 근골격계질환 등과 같은 직업성질환의 비중이 높은 사업장은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안전보건

에 대한 기술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보건소에서 건강증진사업과 만성질환관리사업 등 직

장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보건소에서 사업을 담당하

기 때문에 별도의 시설비용은 필요하지 않지만, 보건소 내에서 직장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 및 사업에 소요될 예산의 확보가 필요하다. 또한, 보건소의 인적 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등 지역의 관련 조직과 협력 모형을 구축하여 사업을 전개

해나가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

넷째, 규모가 큰 사무직종의 사업장은 보건소에서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그동안 사무직은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무직의 특성상 안전

보건 문제가 별도로 존재하기 보다는 일반적인 건강 문제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강

관리 차원에서 함께 다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사무직종의 건강관리는 그동안 건강보험공단에서

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건소가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공동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규모 서비스업에 대한 안전보건 관리는 도시보건지소에서 수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 내의 서비스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공식,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는 그 규모

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어떤 곳에서도 이들 노동자에 대한 건강관리를 하지 못했다. 이

들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와 일반적인 건강 문제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기존의 체계로 이들

대상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효과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철

저하게 지역 중심적 접근 전략을 가져나갈 필요가 있다. 보건소의 관리 책임 하에 동마다 지역건

강센터를 건립하여 규모가 작은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일차보건의료와 결합된 일반적인 건강관

리사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아직 도시 지역의 극히 일부만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보건지소가

전체 지역으로 확대되어 명실상부한 지역건강센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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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산업보건대상 사업장

산재다발소규모 사업장

노동부

보건소지역노동건강센터

안전보건관리자사업장노동건강센터

-광업, 제조업, 건설업, 전기 가스수도업, 운수 창고 통신업 등

-중규모 이상 사업장

유형 I

신체부담작업대상 사업장

직장건강관리대상 사업장

지역사회소규모 사업장

-광업, 제조업, 건설업, 전기 가스수도업, 운수 창고 통신업 등

-소규모 사업장

유형 II

- 도매소매업, 숙박음식업기타서비스업

-중규모 이상 사업장

유형 III

-금융보험업, 부동산임대업, 사업서비스업, 행정교육보건복지업 등

-중규모 이상 사업장

유형 IV

-서비스 업종

-소규모 사업장

유형 V

보건소 보건소보건소

지역건강센터

한국산업안전공단

보건복지부

시도보건과

그림 6. 유형별 산업안전보건 관리운영체계 모형

나)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건강관리를!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

해 직업성 손상의 위험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이 꺼려하는 위험 작업을 비정규직 노

동자나 더 나아가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는 현실은 현장의 공공연한 비밀에 속할 정도로 일반적

인 일이다. 동일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도 원청 사업주에 속해 있지 않은 사내하청 노동자는 사

업주의 안전보건 조치에 있어서 열외 군이다. 실제 원청 사업주에 의해 사업장이 운영되고 있고

위험이 발생하는 작업이 원청사업주의 관리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근로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보건이 방치되고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곤 한

다. 그리고 원청사업주는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렇듯 용역,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의 비중이 큰 상황에서 사업주의 책임을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로 한정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노동자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당장의 현실 가능성을 볼 때 쉽

지 않은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동일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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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보건 문제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 현실은 우선적으로 개

선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 책임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인권적 가치를 보장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적어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만

큼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동일하게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 건강권의 중심에 노동자를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원칙은 문제의 시작이자 결론인

노동자가 건강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를 위한 안전보건법령이라고 보기 어렵고 사업주의

책임을 줄여주기 위한 법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른 원인도 있지만, 일차적으로

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가 주체가 아닌 대상자에 불과하였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나의 건

강 문제를 나의 관점에서 쳐다보고 나에 의해 안전보건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시각에서 사업주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건강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지 모른다.

노동자가 건강권 문제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

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노동자와 노동자의 대표에게 작업중지권

을 완전하게 부여하는 일이다. 위험한 상황에 놓일 때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한과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붕괴 위험이 있는 공사장에서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과 매한가지다.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권리, 실제

닥친 위험에서 벗어날 권리는 아무리 안전보건법이 사업주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는 법적 장치

라고 해도 최소한 지켜져야 할 문제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는 영원히 노동자

건강 문제에 있어서 후진적인 면모를 벗어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2) 노동자의 완전한 복귀를 보장하는 노동자 건강보장제도의 모색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완전한 복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

해서 산재보험은 산재 인정을 원인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결과주의적 방식으로 전환하고, 모든 사

람을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며,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또한, 보장성을 늘리고 직장 및 사

회복귀가 가능하도록 재활이 강화되어야 한다.

가) 산재보험 패러다임의 변화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면 산재 인정방식이 원인주의적 접근방식에서 결과주의적 접

근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원인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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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개인적 질병요인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원인주의에 기초하여 산재보험의

수급 자격을 규정할 경우 구조적으로 재해 인정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원인주의 접근방식의 장점은 재해노동자를 특별하게 보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 초기 산재

보험의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산업재해의 구성도 그 원인이 명확한 단순 사고성재해

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 등과 같이 그 원인이 복합적인 재해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형 산재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와 같은 선진국형 산재에

서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몇몇 선진국들은 원인주의적 접근방식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해의 원인이 산재든, 산재

가 아니든 관계없이 동일하게 보호를 해주는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

다. 더욱이 다른 사회보장프로그램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불필요해진 것도 한 요

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절대적 비중은 높지만 점차적으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줄어들고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서 선진국형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장

기적으로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의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타 사회보험의 보장성 수

준이 산재보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당장 결과주의 접근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만 향후 건강보험 및 타 사회보장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서 결과주의적 접근

방식의 전환이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나)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산재보험이 노동자 건강을 위한 안전판 기능을 담당하려면 적용 대상의 협소함과 비어 있는 부

분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다. 실질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는 비정규노동자, 이주

노동자, 소규모사업장 노동자가 포함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사업주의

자진 신고로 가입을 받고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체 등록이 되어 있는 모든 사업

장이 자동적으로 가입될 수 있도록 하고, 세금과 유사한 방식으로 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안에 대

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료 부담이 어려운 사업주에 대하여 세금 등 공공 재

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안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역시 사업주의 실효적 지배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

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라도 산재보상보험법의 개정을 통해 근로계약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업주 부담으로 해야 한다.

또한, 현재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도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농작업 재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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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되어 있는 농민 등도 제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향후 이들 대상에 대한 적용 확대 방안을 마

련하고 점차적으로 대상자를 전체 국민으로 확대하기 위한 계획이 요구된다.

다) 사전승인절차의 폐지와 건강보험, 산재보험의 구분 절차 신설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신청하는 절차가 아니라 의사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사가 재해

노동자를 만나는 최초의 시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

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직업관련성에 대

한 평가가 요구되는 재해노동자를 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만나게 될 경우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산재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를 산업재해분류기준표에 따라 의사가 판단

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체계로 급여 인정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산

재보험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분류되면 선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만약 담당 의사에

의한 분류가 어려운 경우 산업의학전문의에 평가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분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반환자

의료기관

건강보험 산재보험

산재환자

분류기준

산재심평원건보심평원

청구, 지급

서비스제공서비스제공

의뢰, 본인부담 의뢰

현금 급여

심사의뢰, 결과 보고

심사의뢰, 결과 보고

그림 7. 제도 개선에 따른 산재보험 및 건강보험의 급여 제공 체계

이러한 제도가 되려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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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지정되는 당연지정제도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

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

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울대병원 등 대형 3차병원의 일부가 산재요

양기관 지정에서 제외됨으로서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이 떨어졌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도입될 경우 산재노동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

운 요양기관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서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산재노동자에게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의 질 저하 문제는 그 원인이 병원급 이상의

요양기관에서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원급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입원서비

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행규칙 등을 통해 의원급 요양기관은 외래서비스만 인정하고

입원서비스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면 질 저하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이

재활요양원 등의 설치를 포함하여 재활사업을 강화한다면 재해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이 향상될 수 있다.

라) 노동자의 실질 손실을 보상해주는 제도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인 사회연대성을 실현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보장, 사회보장형 산재보

험을 달성하려면 급여의 보장성이 선결 조건이 되어야 한다. 소규모사업장 및 비정규노동자에게

불리한 휴업급여 및 장해급여 수준과 취약한 요양급여 수준을 높였을 때만이 불형평성을 줄일 수

있고 위험분산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실질적인 의미에서 재활급여를 신설하여 포괄적인 재

활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급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요양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재로 인정

되면 산재보험에서 진료비를 모두 부담한다고 하지만, 실제 진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산재노동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필수불가결한 의료가 아닌 부분은 급여를 제공해주기 어

렵다는 것이 비급여가 존재하는 논리이지만, 재해노동자가 진료의 내용을 선택할 권한이 없는 상

황에서 재해노동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 등

과 같이 명백하게 치료와 상관없는 일부 항목만 비급여 항목으로 정해놓고 나머지는 모두 요양급

여 범위로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의료재활의 요양급여

항목이 주로 통증의 제거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러한 제도 변화가 있게 되면 재활과 관련된 모든

항목이 급여 범위에 포함되고 보장성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 변화로 인하여 재해노동자가 병원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경향이 더 커지지

않겠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이러한 장기 재원 문제가 심각한데, 보장성이 더 커지면

도덕적 해이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재해노동자가 ‘왜 병원에 오

래 머물려고 하는가?’에 대한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그 현상만을 부각시키고 결국 그 이유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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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데에서 나온 치명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재해노동자의 입원

기간이 길어지는 데에는 해당 노동자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재해 이후 원직장 또는 사회로 재

복귀가 가능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강제요양종결 방

식으로 장기재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는 갈등만 증폭시키고 실제 문제 해결은 요원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 및 직업 재활서비스가 충분하게 제공되고 이후 고용과의 연계 체계가 작동

하며 재해 이전의 상태와 유사한 상황으로 복귀가 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다음으로 소득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휴업급여의 경우 현행 평균임금의 70%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임금 수준이 낮은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 위협을 받지

않도록 소득보장이 강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휴업급여의 하한선을 대폭 인상하고 일정 급여

이하의 경우는 평균임금을 모두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휴업급여를 탄력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생

각해볼 수 있다.

또한 중증장애, 저소득 산재노동자의 소득보장이 현실화되도록 보상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재해

노동자의 기능 손실 정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현행 장해등급판정 체계를 개편하고 장해급여비

를 현실화해야 한다. 직장복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장애인의 복지혜택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

서 산재노동자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장해급여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과 산재이전 직

장의 보수가 낮은 재해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후에 급격한 소득 상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

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현물급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요양급여의 지급방식, 또는 진료비 지불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행위별수가제도는 공급자에게 과잉진료를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질병별로 지불단위를 포괄하여 진료비를 지불하는 포괄수가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다만, 산재의 경우 재활 및 고용과 연계가 필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재활이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이 지불제도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재활급여를 신설할 경우 상당수의 급여가 현물

급여 방식으로 제공될 것으로 판단되는데, 재활급여의 제공 방식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마) 치료부터 직장 및 사회복귀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재활체계의 구축

현재 산재보험의 핵심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요양의 장기화 문제는 다른 요인도 작용하겠지

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재활 및 사후관리체계의 부재에 기인한다. 근본적으로 직장복귀가 이루

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직업재활 및 고용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 수

준이 OECD 국가 수준으로 확대 강화되어야만 요양의 장기화 문제 및 산재장애인의 빈곤화 문제

및 건강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먼저, 산재노동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에 옮겨

야 한다. 예를 들어 경증 장애, 중증 장애, 재가 장애 등 중증도의 차이에 따라 직업재활프로그램

이 다르게 제공되고, 산재노동자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는 업무적합성 평가가 신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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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업무적합성평가를 통해 원직장 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원직장 복귀를 목표로 한 재활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원직장 복귀가 불가능한 경우는 직업훈련원을 통하여 재취업

을 보장하고 보호사업장을 육성하여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재가 장애인과 같이 취업이 원천적으

로 불가능한 경우는 의료보호 지정과 같은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지원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를 위한 시설, 인력 등 기본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산재의료관리원에

재활센터 기능을 신설 또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활센터는 의료재활서비스, 조

기 직업재활서비스, 사회심리재활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급성기병원에서 내, 외과적

치료를 거친 후 신속한 기능 회복과 직업복귀를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재

활센터를 통한 집중적인 재활서비스 후에도 직업복귀가 불가능한 경우는 별도의 직업훈련기능을

위한 직업훈련원 또는 중증케어시설을 통한 사회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달체계가 구

축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원직장 복귀가 가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직업복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원직장 복귀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원직장 복귀를 의무화하고

재해노동자의 의사에 기초한 업무적합성평가를 수행하여 최종적인 복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원직장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취업까지 근로복지공단이 재활프로그램의 제공 등

직업복귀 과정을 관리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사업주로 하여금 부담하게 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

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업무적합성평가 및 사업주의 이의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해 근로복

지공단 내에 업무적합성평가위원회 또는 원직장복귀위원회를 설립하고 원직장 복귀 여부의 판단

이 자의적이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위원회에 재해노동자의 참

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재노동자에 대해 산재발생 시점부터 직업복귀에 이르는 전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

리될 수 있도록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기능과 역량 강화를 통하든 아니면 근

로복지공단이 아닌 새로운 기관을 통하여 서비스가 제공되든 모든 산재노동자가 원직장 복귀, 재

취업, 전직, 자영업 등으로 직업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취업후의 사후관리

까지 1:1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바) 근로복지공단을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재편

산재보험이 ‘선보장후평가’ 체계로 바뀌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조직체계에 대한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근로복지공단은 보험자로서의 기본 기능인 징수업무와 자격관리

업무, 그리고 재활을 포함한 사후관리 및 복지서비스를 중심으로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특히 산

재인가업무를 중단하고 별도의 입증절차나 승인과정 없이 사업주 및 의료기관의 신고에 따라 자

동적으로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체계 개편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서비스의 강화다.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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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서비스에서부터 재활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

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질병 및 사례관리(Disease & Case Management)제도

를 도입하여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심리 및 직

업 상담 인력의 획기적 확대가 요구된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기관에 대한 서비스 평가업무

등을 주요한 사업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적절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지 못한 요양기관이 산재

노동자에게 부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요양기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보장후평가’ 체계 하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심사기능이 폐지되기 때문에 독립적 심사기

구인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을 구성하여 그 기능을 이전해야 한다.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은 청구된

진료비의 심사 기능과 함께 급여 제공의 타당성 평가를 수행하고, 진료의 적정성 평가 업무를 수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급여제공의 타당성 평가란 별도의 평가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 및 산업의학전문의 등의 작업관련성 평가가 명시적인 평가기준에 의거하였는가를 판단하

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운영에 노동자 및 공익

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고 중요 의사 결정에 노동자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이다.

사) 재원조달에서 사회연대 원리의 강화

아직 상당수의 국가가 차등보험요율을 채택하고 있지만 점차 그 격차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

서 전향적으로 단일보험요율을 도입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영세 소규모 사

업장이 산재보험요율이 더 높아 부담의 역진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필

요하다. 현재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현행 개별 실적요율제도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

가 있다.

아직 정책 의제로 형성되지 못하였지만, 재정에서 정부의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

가 있다. 건강보험의 지역가입자의 경우 정부가 50%를 부담한다는 데에 착목하여 사업주의 부담

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영세사업장은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할 필요가 있다.

5. 새로운 대안을 위해!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가 노동력을 사업주에게 판매하였고,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사용권이 사

업주에게 있다고 해서 사업주가 일터에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권한은 없다. 오

히려 자본주의적 노동관계에서도 사업주는 노동력의 사용에 있어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임금

및 고용조건을 적절하게 지급해야 할 뿐 아니라 노동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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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확보하고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일터에서 불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어

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 일터에서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이 파괴되는 것은 자본주

의 질서에도 합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백 년간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여 쟁취한 노동자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부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터 밖에서 모든 노동자의 건강이 평평하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대전환이 필요하다. 노

동자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프고 다친 결과가 중요하다. 어떻게 다쳤든 간에 노동자가 일

을 못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결과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산재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보상을 받

고 건강보험이기 때문에 덜 보상을 받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린 후 중장기적으로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위한 첫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글을 읽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