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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2017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주제: 함께 연대하여 약속의 땅을 걷는 교회(그리스도의 몸) Building a Community in the Promised Land (엡 2:19-22) 일시: 2017 년 4 월 24 일(월)-27 일(목) 총회 장소: Hilton Los Angeles Airport (5711 West Century Boulevard, Los Angeles, CA, 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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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성경공부 자료 - kaumcblog.files.wordpress.com · 창세기 2장 7절 /110 1.2. 이사야 41장 10절 /111 1.2. 마태복음 8장 3절 /112 2. 프락시스 한절 묵상 예/120

2017년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2017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주제: 함께 연대하여 약속의 땅을 걷는 교회(그리스도의 몸)Building a Community in the Promised Land

(엡 2:19-22)

일시: 2017 년 4 월 24 일(월)-27 일(목)총회 장소: Hilton Los Angeles Airport

(5711 West Century Boulevard, Los Angeles, CA, 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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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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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 “한 책의 사람”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declared himself to be a "homo unius libri", the "one book" being the Bible.

"in 1730 I began to be homo unius libri, to study (comparatively) no book but the Bible." (John Wesley, John Wesley, ed. Albert C. Outl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p.79)

"God himself has condescended to teach the way; for this very end he came from heaven. He hath written it down in a book. O give me that Book! At any price, give me the Book of God! I have it; here is knowledge enough for me. Let me be homo unius libri!“ (John Wesley, John Wesley, ed. Albert C. Outl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p.89)

“HOMO UNIUS LIBRI”호모 우니우스 리브리(한 책의 사람)

프락시스 기본 원칙:1.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이 정답입니다. 2. 더 분명한 답이 있으면 언제나 내 정답은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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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목사 Kee C. [email protected] 505-803-7716www.BibleKim.com알버커키 연합감리교회

(What do you think?)

모퉁잇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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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I. 고등비평 성서학 시대에 웬 성경공부?

1.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종말의 징조 /1

1.1. 신화 회복을 위한 시도 /2

1.2. 혼란에 빠진 신학생 /4

1.3. 본질에 관한 질문 /4

1.4. 하나님 없는 크리스천 /5

1.5. 현대 기독교를 떠나는 신학생들 /5

1.6. 신의 죽음 /7

2. 성서 비평의 역사 /8

2.1. 다시 갇혀버린 성경 /8

2.2. 성서비평 역사 /9

2.2.1. 문헌비평 시작 /9

2.2.2. 역사비평의 시작 /10

2.2.2.1. 제믈러: 역사비평의 아버지 /10

2.2.2.2. 가블러: 성서신학의 독립선언 /11

2.2.2.3. 바우어 /11

2.2.2.4. 바우르: 튀빙겐 학파 창시자 /12

2.2.3. 구속사학파 /13

2.2.4. 종교사학파 /14

2.2.5. 양식사학파: 루돌프 불투만 /17

2.2.6. 성서 비평 역사에 나타난

해결될 수 없는 근본 문제 /17

2.2.7. 성서신학과 기독교의 결별 /19

II. 에베소서 성경공부

1. 프락시스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2장

Praxis English Bible Chapter 1 &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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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21

Chapter 2 /22

2. 에베소서 전체 차트 /24

3. 에베소서 단락 나누기 예제 /25

4. 에베소서 2:19-22 성경공부 /31

5. 에베소서 1-2장 문장도해 (Sentence Diagraming) /32

Chapter 1 /32

Chapter 2 /36

III. 프락시스 귀납법 Inductive Praxis

A. 귀납적 프락시스 성경연구 방법론

1. 개요 /40

1.1. 사람 잡는 성경해석? /40

1.2. 왜 두려워하는가? /42

1.3. 방법이 왜 중요한가? /43

1.4. 프락시스 방법을 위한 기본 전제 /44

1.4.1. 교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 /44

1.4.2. 방법은 귀납법 /45

1.4.3. 도구는 문법분석과 문학분석 /48

2. 관찰 /51

2.1. 관찰의 정의와 목적 /51

2.2. 관찰의 조건 /52

2.2.1. 의지 /52

2.2.2. 정확성 /54

2.2.3. 인내 /55

2.2.4. 기록 /56

프락시스 귀납법 차트 예

구약: 시대별 개요 차트 /57

성경역사 차트 /58

사도행전 차트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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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기 차트 /60

마가복음 차트 /61

프락시스 귀납법 방법론 차트 /62

IV. 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A. 이론 /63

1. "잃어버린 영성을 찾아서" /63

2. "수도원 전통" /64

3. "수도하는 크리스천?" /65

4. "영성독서의 체계화" /66

5. "수도사들의 사닥다리" /67

6. 영성독서와 큐티의 차이 /72

7. 말씀묵상은 경건한 상상이다(막 3:7-13) /73

8. 열두제자 임명(막3:13-19)에 관한 말씀묵상 /74

9. 탕자의 비유(눅15:11-32)에 관한 말씀묵상 /75

10. 시편 23편에 관한 말씀묵상 /76

11. 영성독서 명칭과 실재 /81

12. 말씀을 품어라 /82

13. 생활 속에 열매 /83

14. 목숨건 말씀 /84

15. 유대인들의 말씀읽기 /85

16. 프락시스 말씀읽기 /86

17. 프락시스 말씀읽기와 영성음악 /87

18. 프락시스 말씀읽기와 장면묵상 /88

19. Meditation 과 Contemplation의 차이 /89

20. 이사야 43장 1절 장면묵상 /90

21.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 이단인가? /91

22. 유진 피터슨의 "Lectio Divina" /93

23. 3D와 말씀묵상 /98

24. 성경읽기 매뉴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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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프락시스"란 용어 /100

26. "껍데기가 알맹이가 되다" /101

27. 새벽예배에서 말씀묵상 /102

28. 새벽예배에서 개인묵상 /104

29. 예배순서에서 말씀묵상 /105

30.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 /106

31. 프락시스 말씀기도 /107

32. 프락시스 장면묵상 /108

B. 프락시스 묵상 자료 /110

1. 프락시스 묵상음악 예 /110

1.1. 창세기 2장 7절 /110

1.2. 이사야 41장 10절 /111

1.2. 마태복음 8장 3절 /112

2. 프락시스 한절 묵상 예/120

2.1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06 /113

2.2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10 /115

2.3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14 /117

3. 마가복음 말씀묵상 영어교재

Mark for the monastic Christian life in English /119

4.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목차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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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고등비평 성서학 시대에 웬 성경공부?

1.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종말의 징조

500 UK Churches Closed While 423 Mosques Were Built on 'Sad Ruins of English Christianity': ReportBY STOYAN ZAIMOV , CHRISTIAN POST REPORTERApr 3, 2017An international think tank warned in a report that multiculturalism is feeding radical Islam in the U.K., pointing out that in the past couple of decades close to 500 Christian churches have closed in London alone while 423 mosques were built.(PHOTO: REUTERS) London Central Mosque in this undated file photo."British multiculturalists are feeding Islamic fundamentalism. Above all, Londonistan, with its new 423 mosques, is built on the sad ruins of English Christianity," the Gatestone Institute argued in a report released Sunday.It pointed out that since 2001, as many as 500 churches in London of all denominations have been turned into private homes. At the same time, the number of Muslims has grown by almost a million.(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500-uk- churches-closed- while-423- mosques-were- built-on- sad-ruins- of-english-christianity- report-179320/)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들이 모슬렘들이 사는 중동으로 스마트폰을 수출할 때는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넣는다고 하더군요. 사실 모슬렘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의무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해뜨기 전에, 정오에, 오후에, 해질 때, 그리고 해진 후에. 이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신실했으면 스마트폰에까지 프로그램을 장착시킬까요. 기도시간만 되면 어디에 있든지 메카를 향해서 절을 하고 있는 모슬렘들이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향후 20년 동안 이슬람 종교를 신봉하는 모슬렘들이 35퍼센트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2010년 통계로 16억이던 모슬렘들이 2030년이 되면 22억이 된다고 합니다(참고, Pew Research Center's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30년에 예상 총인구 83억 가운데 26.4퍼센트가 모슬렘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인구 4명 중에 한명이 모슬렘이란 사실이지요. 기도뿐 아니라 자신들의 경전인 코란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열정을 가진 모슬렘들이 맺게 되는 풍성한 열매라고 볼 수 있지요. 반면에 현대 기독교는 어떠한 형국인가요. 유럽을 가보면 웅장한 교회들이 우뚝 세워져 있기는 한데 교인들이 없어서 점점 박물관처럼 변해가고 있지요. 관광객들만 들끓는 교회당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에도 한때 위용을 자랑하던 도심의 교회들이 이제는 교인들이 없어서 건물 관리조차 힘든 지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케임브리지 시내에 있는 한 교회는 건물 관리비를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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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해서 교회 건물을 각종 단체들에 임대를 해주고 있습니다.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도심의 한 교회는 수천 명이 앉았었던 본당이 있지만 현재는 교인들이 몇 십 명밖에 안 되어 그들을 앞으로 앉히기 위해 대부분 의자들을 줄로 막고 앞쪽에 다섯 개 정도만 열어놓고 있습니다. 뉴햄프셔 주에서 목회할 때에 교회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서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로 한 교회 건물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지요. 건물은 교회인데 안에는 술을 파는 술집이었습니다. 중개인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감리교회 건물이었다더군요.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지나다니던 길가에 특이하게 눈에 띠는 교회건물이 있었습니다. 보통 교회와는 달리 문마다 붉은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 놓은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가 팔려 불교 사찰이 된 건물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그 결과로 교회는 문을 닫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목회자들이 모이는 집회를 참석하면 초청 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미국의 주류 교단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에 미국 연합감리교회 교인들 수가 최고에 이르렀을 때 10,789,624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2008년 발표에 의하면 교인 수가 약 300만 명이 줄어든 7,724,420명이라고 합니다. 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 감리교회는 매년 75,000 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해마다 1000명 모이는 교회가 75개씩 문을 닫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어떤 학자들은 교회가 현대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모슬렘들은 현대 문화에 적응을 너무 잘해서 그렇게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는 건가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말씀묵상 전통을 회복해야 합니다.

(# 아래 내용은 김기천 목사의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책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책 목차는 맨 뒤에 있습니다.) 『하버드에서 찾는 하나님』1)이란 책을 보면 목차 다음에 다음과 같은 엘리엇(T. S. Eliot)2)의 시가 소개된다. “이 사랑에 이끌려서, 이 부르심의 음성을 따라서, 우리는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탐구의 마지막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게 되어 처음 그 장소임을 깨닫는 것이 될 것이다.” 1979년도에 시작된 나의 신학적 탐구는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신학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1.1. 신화 회복을 위한 시도 계몽주의와 더불어 자연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사고가 중세 교회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또한 코페르니쿠스 이후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인간의 자율이성과 과학을 옭아매고 있었던 기독교는 역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성서의 권위가 무너지고 기독교의 세계관이 증발되는 당시 상황에 칸트나 헤겔은 나름대로 도덕적인 면이나 인류 정신 역사의 발달 면에서 기독교를 변증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 Kelly Monroe Kullberg, Finding God at Harvard,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7). 2) 1909년도 하버드 졸업생으로 시인이며 극작가이며 문학평론가이다. 1948년도에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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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이후 지금까지 이성과 계시가 충돌하며 과학과 성서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독교는 나름대로의 대응을 보여 왔다. 특히 기독교 신학의 주류는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사고를 접목시켜서 자연 역사나 종교 역사 발달에 근거한 합리적 성서이해를 제시해 왔다. 이로 인해 초월적인 예수의 모습은 점차 증발되어 버렸고, 유대 묵시사상에 열광하다가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시인하며 죽어간 한 미친 인간, 소위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만 논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기독교는 스스로 살아 남아보려고 안간힘을 써왔지만 350여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는 오리무중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초월적인 신과 연관된 이야기” 즉 “신화”(神話)가 있다. 그 신화는 종교에 있어서 생명과 같은 기반이다. 신화 안에 있는 실체를 잃어버리면 어느 종교든지 그 신화는 근거가 없는 거짓 이야기 즉 허구가 되어버린다. 신화 세계에 있는 시간과 공간은, 과학의 세계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종교적 개념이다.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종교 신화는 거짓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에게는 그것은 역사의 실체이며 삶의 기반이다. 그래서 종교의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그 신화의 실체를 경험하며, 어떤 이들은 그 신화에 목숨 걸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평생을 바쳐 수도를 한다. 이렇게 신화 속에서 실체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그 신화에 기초한 종교는 생명을 유지한다. 한 종교의 신화를 믿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자연히 그 종교는 사라지게 되고 신화는 허탄한 이야기로 남는다. 성서에 기록된 초대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종교였다. 그런데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이런 예수의 초월성은 과학적 역사비평 이론과 타협하면서 해체되고 증발되어 왔다. 중세기까지만 해도 성서 속에 하늘에 대한 표현을 이해하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해가 떠오르고 구름이 떠다니는 물리적인 하늘조차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장소였다. 그래서 그 물리적인 하늘을 성서의 초월적인 하늘과 동일시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우주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물리적인 하늘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동일시 해왔던 초월적인 하늘은 증발되고 있다. 중세기만 해도 성서 속에 지옥을 이해하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죄지은 사람이 죽으면 땅속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당시 사람들은 땅속에서 화산 불이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땅 밑에는 지옥불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질학을 통하여 지구 내부에 광물질들이 방사능 작용을 통해서 엄청난 열을 발산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성서 속의 지옥도 증발하고 있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만 해도 성서 속의 인간은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서 창조한 피조물이었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면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따듯한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신화 속의 인간은 사라져 버리고 무생물의 자연 발생적인 기원을 통해 설명되는 인간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더불어서 신의 창조로 시작해서 최후의 심판이라는, 성서 안에 있는 구원의 역사관 또한 45억년 지구 역사를 논하는 자연 역사관의 등장과 더불어 충돌을 빗게 되고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있다. 신의 관한 이야기 즉 신화(神話)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해체되고 증발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성서의 내용을 증발시키는 시대정신(Zeitgeist)3)에 부응해서 신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뛰쳐나온 포이엘바하(Feuerbach)는 신을 논하는 신학을 인간 심리를 다루는 인간학으로 끌어내렸다. 본래 유태인이지만 아버지로터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까지 받았던 칼 마

3) Zeitgeist(자이트가이스트)란 독일어로 ‘시대’란 의미의 Zeit와 ‘정신’이란 의미의 geist가 결합된 것으로 한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적, 지식적, 도덕적, 종교적, 또는 정치적 분위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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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크스(Karl Marx)는 이런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아 “종교는 아편”이란 주장을 하며 공산주의 이론을 세워나갔다. 또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어릴 때는 “소년 목사”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경건했던 니체(Nietzsche) 또한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아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신병자로 인생을 끝냈다. 신화를 잃어버린 기독교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사회 윤리만을 가르치는 종교로 전락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떠나 그나마 동양에 남아 있는 다른 신화들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는 교인 없는 박물관이 되어버리고 미국의 어떤 교회는 팔려 술집으로 변한 곳도 있다.

1.2. 혼란에 빠진 신학생 나는 성서적 세계관에 기초한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1979년도에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처음 접하는 신학에 대한 나의 태도는 교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사실 신학을 분석하고 평가할 실력이 없는 신학교 초년생인 나로서는 그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당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첫마디는,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신앙을 부수어버리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공회 감독이었던 로빈슨(John A.T. Ronbinson)의 책『신에게 솔직히』4)를 요약 정리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철학적 개념조차 익숙지 않는 내게 매우 버거운 숙제였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신화와 같은 하늘 너머 있다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 너머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전통적인 신 개념을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란 명칭 자체도 신화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그것 대신에 비존재, 본질, 궁극적인 기반 등의 용어로 대체 되어야 한다. 상당히 수준 높은 기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웬만한 철학 개념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열 번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표현들로 신앙의 내용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아니면 번역서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이 당시 관련된 책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본문을 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이 당시 강의실에서 자주 들었던 표현들은 틸리히(Paul Tillich)의 존재의 기반(Ground of Being), 불투만(Rudolf Bultmann)의 ‘비신화화’(Demythologizing), 본회퍼(Dietrich Bonfoeffer)의 ‘비종교화’(religionless Christianity), 라우쉔부쉬(Rauschenbusch)의 ‘사회복음’(Social Gospel) 등이었다.

1.3. 본질에 관한 질문 이런 철학화 되거나 사회화(Socialization) 되어버린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내 안에서는 무어라고 딱히 집어낼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나의 정체성에 관한 갈등일 수도 있고 기독교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일 수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신앙하는가?’, ‘내가 믿는 기독교

4) 성공회 감독이었던 로빈슨은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이 Paul Tillich의 The Shaking of the Foundation (1949), Dietrich Bonfoeffer의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1953), Rudolf Bultmann의 『New Testament and Mythology 』(1953) 등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 John A. T. Robinson, 『Honest to God』(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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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을 알려면 성서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하기 시작했다. 성서 사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성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위 고등비평이라고 하는 전승사 비평, 편집사 비평, 양식비평 등에 관련된 과목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택해서 들었다. 문제는 이런 성서 비평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서 본문에 대한 신뢰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가 아니라 하나의 실험실 안에 연구 대상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적 비평방법에 의해 성서 본문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쪼개 보기도 하고 잘라내 보기도 했다. 성서 본문의 해체(deconstruction)나 재구성(reconstruction)이란 표현이 성서 비평학을 공부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신학이 철학화 되는 과정을 통해서 수준이 꽤나 높아졌고 성서 연구 또한 상당히 과학화 된 것이다.

1.4. 하나님 없는 크리스천 생애 처음으로 만난 그 조직신학 교수의 말대로 내 안에 옛 신앙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신앙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신학 수업을 통하여 내 안에 세워진 신앙의 집은 다음과 같았다. 시대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사는 시대였지만 현시대는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성숙한 기독교인이란 하나님 없이도 자율적인 주체로서 인생 실존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은 던지면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신앙의 주체로서 인간 예수처럼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짐을 짊어지고 성숙한 결단을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 당시 한국에는 정치적으로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이 자주 일어났었다. 한 교수가 강의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스 안에 나도 타 있고 다른 선량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만일 버스 운전사가 미쳐있다면 거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친 버스 운전사를 몰아내고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나도 살고 버스 안에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라는 간접적인 권고일 수 있다. 나 역시 이 어두워져 가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 내가 손에 들고 다녔던 책들 중에 하나가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A Theology of Liberation)이었다. 1.5. 현대 기독교를 떠나는 신학생들 이 당시 나는 사상적으로는 이전보다 깊어졌고 신학적으로도 꽤나 현대적인 신학을 수용하면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였다. 또한 성서 연구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본문을 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다. 머리는 학문으로 차고 있는데 반대로 마음은 점점 공허해진 것이다. 분명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꼭 집어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단 말인가! 그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나는 때로는 친구들과 다방에 모여 때로는 기숙사에 모여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한 가지 발견한 것은 나만 그것을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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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아니라 신학을 하겠다고 이 학교에 들어와 동기가 된 친구들 또한 그것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방황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골치 아픈 신학이나 신앙을 아예 포기하고 학생 운동에 뛰어 들어가 사회 구원을 위해 몸을 불살라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차라리 그것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실재적인 것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포기하고 신학교를 뛰쳐나가 불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선불교나 동양철학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한번은, 신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가 무슨 종이 하나를 나에게 보여주며 좋아 했다. 부동산 중개인 시험에 합격했다는 증서였다. 자기는 졸업하면 부동산 중개업자나 되겠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우리가 지금 어디 서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황으로 인해 신학교를 뛰쳐나가 전철 기관사가 된 문재승이란 동기가 있다. 이 친구는 2004년 2월 4일 저녁 7시쯤 구로역 부근에서 사고당한 사람을 도와주려다 열차 사고로 순직했다. 이 친구가 동기 게시판에 사고 전에 남긴 마지막 글 중에 아래와 같은 "나 돌아가고 싶다“5)가 있다.

올 년 초에 상영한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그 주인공이 나와는 너무나 친숙한 철길 난간에서 외치는 "나, 돌아가고 싶다!" 어디로??? 교회의 사회적 무능과 부패, 자유주의 신학의 공허한 관념성, 더욱이 나 자신을 비롯한 Christian의 나약성과 그 비겁함이 싫어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이제는 유행지난 옷처럼 재활용 쓰레기통에나 던져질 無神의 사회주의에 열광, 흥분했던 시대열병에서 사랑하는 내 것이기에 더욱 초라하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던 모태신앙, 단순 무식의 뜨거운 순정 신앙으로, 두통 없고 맑은 머리의 투명한 신앙, 성탄 전야 시골교회의 빛나는 별빛, 어린 나를 포근히 감싸던 사랑, 사랑, 사랑 예수님의 아늑함으로.

5) 출처: http://cafe.daum.net/mts79/KLl/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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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의 죽음

과거 인류는 종교를 통해서 자기의 근원을 이해했고 죽음 너머 영원을 소망했었다. 종교는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가르침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의 공간이 텅 비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는 절박한 공허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종교의 시간도 사라져버리면서 허무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가 사라져버린 이런 시대에 토마스 하디(Thomas Hardy)는 하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신의 장례식」(God’s Funeral)이란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다. I나는 보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장례 행렬을이마엔 주름살이 그려지고 움푹 팬 눈과 굽은 허리와 늙어버린어둠이 깔린 평원을 가로지르는 행렬을 따르고 있는이상하고도 신비스런 형상 그것을 맨 앞에서 나르고 있었다.

.IX시간은 멈추지 않고 은밀하게 반복되고 있을 때타협할 줄 모르는 야만의 실체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제왕(神)을 난도질할 때까지,그는 떨었다. 쓰러졌다. 이제 그는 사라져버렸다. X그래서 신화의 망각 주변에서,어둠 속에, 말라버린 입술로, 우리는 기면서 더듬고 있다.바벨론에서 울었던 자들보다 더 애통해 하면서그들에게는 시온이란 살아있는 희망이나 있었다.

XI이미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삶은 얼마나 달콤했었던가!확신에 찬 기도로 반복되는 하루를 시작하며저녁 무렵에는 충실하게 잠자리에 들고그가 거기 있었다는 은총의 확신을 가졌던 삶.

XII그런데 누가 또는 무엇이 그 자리를 채워 줄 것인가?방황하는 인간들은 초점을 잃은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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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 비평의 역사

2.1. 다시 갇혀버린 성경 목숨을 위협하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로마 정부의 거센 탄압 속에서도 초대 기독교는 살아남았다.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다. 예수가 선포한 말씀은 듣고 있던 제자들이나 백성들에게 생명, 능력, 소망을 공급해 주었다.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편지는 받아 읽는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귀를 기울여 듣기만 하면, 정신을 차리고 읽기만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당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열려 있던 하나님의 말씀은 중세기 동안에 닫혀버렸다. 인쇄 기술이 없었던 당시 원본을 보고 베껴 써야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본 숫자들은 당시 교회나 교인들의 숫자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언어 문제가 생겨났다. 가지고 있는 성서 사본들은 주로 라틴어나 희랍어와 같은 고전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이기 때문에 번역이 없으면 책을 주어도 읽을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번역을 금지시킨 것이다. 결국 일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갇혀 있던 성서를 다시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사람을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서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로 많은 책들을 만들어서 보급시켰다. 일반인들에게 들려진 성서는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고 실제 종교 개혁의 원동력은 루터의 ‘오직 성서로’란 구호처럼 성서에서 나오는 힘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개혁 교회들은 성서로부터 개혁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 이 성서로부터 공급되는 힘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숱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 의지를 불사른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5세기가 지난 지금 성서는 다시 닫혀 버렸다. 물론 과거 어느 시대보다 현시대만큼 성서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보급된 때는 없었다. 또한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점점 더 쉬운 언어로 번역된 성서들이 소개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더 쉽고 더 많은 성서가 보급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서 해석은 오리무중이다. 성서를 해석하려면 본문비평, 문헌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전승사비평, 종교사비평 등에 기초해야지 아니면 아주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이런 성서 비평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히브리어, 아람어, 희랍어, 콥틱어, 라틴어 등과 같은 고전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결국 고전어 지식이 있는 전문적인 사람들에게만 성서 해석의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에게 성서 해석의 권한을 박탈당한 것이다. 신학교에 가면 성서 해석은 전문가인 성서 신학자나 하는 일이다. 그러니 성서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신학생들은 성서 본문을 해석할 때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미 잘 번역된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들조차 성서 본문보다 성서 신학자들이 쓴 주석을 더 의존한다. 성서는 더 쉽게 번역되었고 더 많이 보급되어 있는데 성서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다. 성서 신학자란 이름하에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그런 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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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성서비평 역사 “성서신학”이란 성서 안에 있는 가르침을 기초로 해서 그 내용을 체계화시킨 신학을 말할 수도 있고 반면에 성서란 책 자체의 기원과 발전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들을 근거로 해서 바울의 신학을 체계화 시킨 것도 성서신학이라고 하고, 로마서와 같이 성서 가운데 한권의 저자, 진정성, 특징, 신학 등을 연구하는 것도 성서신학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서와 성서에 연관된 자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성서신학이다. 성서신학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성서 비평방법들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성서신학에서는 여러 종류의 비평방법들을 거론한다. 주류를 이루는 것은 역사비평, 종교사비평, 구속사비평, 본문비평, 문헌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편집사비평, 전승사비평, 양식비평, 양식사비평 등이 있다. 사실 신학생들조차 쉽게 개념정리가 안 되는 수많은 방법과 용어들이 지난 300여 년 동안 성서신학에 쏟아져 나왔다.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 성서신학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평방법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모든 방법들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여기서는 성서신학에서 중요시하는 방법들을 추려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비평역사를 소개하고 이어서 비평방법을 소개한다. 현대 성서신학의 토대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이루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루터의 성서 번역과 보급은 중세기까지 교리의 보조 역할을 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 오던 성서를 교리신학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동안 기독교의 권위로 자리 잡고 있었던 교리의 지배로부터, “오직 성서로”(Sola Scriptura)란 구호를 외치며, 성서를 독립시킨 것이다. 독립만 시킨 것이 아니라 중세 교회의 기둥이었던 ‘교회의 전통’ 위에 성서의 권위를 올려놓았다. 중세기 교회의 전통은 교리를 위해서 성서를 해석했었다. 성서가 교리를 지원하는 역할만 한 셈이다. 그러나 성서를 교리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루터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해석 원칙을 제시하였다. 첫째, “성서를 성서로 해석”(sui ipsius interpres)해야 한다. 성서 본문의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교리와 같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 자체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둘째,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문자와 영”(littera et spiritus)의 차이를 두어야 한다. 성서 본문 안에 문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별해서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성서 해석은 “율법과 복음”(lex et evangelium)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율법은 문자적인 것이 되지만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영적인 것이다. 넷째, 모든 성서 해석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was Christum treibet)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빠진 복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성서해석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루터는 문자로 기록된 성서와 그리스도를 구분시켰다. 참된 성서 해석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율법과 복음이 분명하게 구별된다고 했다. 루터는 구약과 신약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본 것이다.6)

2.2.1. 문헌비평 시작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계몽주의가 성서해석에 영향을 끼치면서 성서의 각 책(文獻, literature)에 대한 비평 즉 “문헌비평”이 생겨났다. 문헌비평은 성서 문헌에 관해 그동안 전통

6) Gerhard F.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Basic Issues in the Current Debate,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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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내려오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계몽주의 방식대로 일단 의심을 갖고 이성에 의해 검증해보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문헌비평에 의해서 제기되는 문제를 아래와 같이 예를 들어본다. 구약의 처음 다섯 권을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Pentateuch)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근거는 전통적으로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가 썼다고 보기에 어려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안에 들어있다. 구약에 의하면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오경 안에는 이스라엘이 이미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들(창 12:6, 13:7, 40:15, 50:10-11, 민 22:1, 신 1:1, 5)이 있다. 또한 오경을 기록한 사람이 모세 이후 시대 사람임을 암시하는 구절들(신 3:14, 34:6)도 있다. 더욱이 모세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표현하는 구절들(창 14:14, 36:31, 신17:14-20, 34:1)도 있다.7) 모세가 기록했다는 전통적인 가르침과 성서 본문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 사이에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이와 같이 문헌비평은 성서 문헌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모순이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창세기에 있는 천지창조 이야기를 히브리어 본문으로 읽으면서 1711년에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비테(B. Witter) 목사는 “야훼”(hw:hy] )와 “엘로힘”(!yhila>)이란 두 종류의 하나님 이름이 본문에 따라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였다.8)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는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힘”이란 히브리어로 규칙적으로 기록되다가 갑자기 2장 4절부터는 “야훼 엘로힘”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규칙적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비테 목사는 창세기에 두 종류의 천지창조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에 적극적으로 논의되면서 오경의 문서 가설을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 비테 목사는 성서 본문 안에 들어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서 그것들의 연대와 목적을 결정하는 문헌비평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2.2.2. 역사비평의 시작 종교개혁 때까지 성서해석의 초점은 주로 “성서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what it means)에 있었다. 즉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찾는 데에 해석의 목적이 있었다. 이것을 “해석적 방식”(interpretive discipline)이라고 한다. 이런 해석적 방식은 당시 지배적인 철학에 의존한다. 그러나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서해석의 초점이 “성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무엇을 의미했는가?”(what it meant)로 바뀌어졌다. 이것을 “기술적인 방식”(descriptive discipline)이라고 한다. 성서 해석의 방향이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된 것이다. 성서가 기록되던 당시 과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역사비평의 시작이다.

2.2.2.1. 제믈러: 역사비평의 아버지 현대적인 성서해석을 위해 혁명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제믈러(Johann Solomo Semler, 1725-1791)이다. 제믈러는 4권으로 된 그의 책 『경전에 대한 자유로운 검토에 관한 논문』9)에서 하나님 말씀과 성서가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성서 전부가 7) Georg Fohrer,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trans. by David E. Green (Nashville:

Abingdon Press, 1968), 107.8) 참고, Fohrer,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각주 5, 108.9) Treatise on the Free Investigation of the Canon, 1771-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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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 아니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형식을 빌어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진짜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려면 성서 안에 인간적인 형식들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믈러는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서 자체를 다른 고문서들처럼 하나의 역사적인 자료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서를 신앙인의 눈이 아니라 고문서를 연구하는 학자의 눈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자의 시각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역사 자료에 적용해왔던 역사 비평방법들을 성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 본문들을 고대 역사 상황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로써 제믈러는 “역사비평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게 된다. 전통적으로 성서신학이 교리를 세우거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기능을 주로 해왔었지만, 제믈러를 통해서 성서신학이 단순한 역사적 탐구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믈러는 성서해석에 있어서 혁명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10)

2.2.2.2. 가블러: 성서신학의 독립선언 성서신학이 교리를 설명하는 교리학(dogmatics)으로부터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제믈러(Semler)부터로 볼 수 있지만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순수한 역사적 탐구로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가블러(Johann Philipp Gabler, 1753-1826)부터라고 볼 수 있다. 가블러가 1787년 3월 30일에 알트도르프(Altdorf) 대학에서 한 취임 연설11)은 이후 성서신학의 새로운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가블러는 성서신학과 교리학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구별했다. 성서신학은 성서를 기록한 기자들이 하나님의 사건에 관하여 생각했었던 것들을 밝혀주는 역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반면에 교리학은 어떤 신학자가 그의 능력, 시간, 시대, 장소, 학파 등에 따라 하나님의 사건들을 철학화해서 가르치는 교육적 성격을 내포한다. 성서신학에 대한 가블러의 합리적, 귀납적, 역사적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적인 원칙을 기초로 한다. 첫째로, 성서해석에서 영감은 고려 대상에서 제거 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성서에 부여된 신적 권위로 인해서 본문을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왔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 본문을 기록한 기자의 사상이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찾아내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성서에 대한 관심이 하나님 말씀에서 성서 기자의 의도로 전환된 것이다. 둘째로, 성서가 단순히 한 사람의 사상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서신학은 각 성서 기자들의 개념과 사상들을 구별하여 주의 깊게 수집하는 의무를 갖는다. 이런 방법들은 문헌비평, 역사비평, 철학비평 등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적용함으로 성취될 수 있다. 셋째로, 성서신학의 주요 과제는 성서 안에 어떤 사상들이 기독교 교리를 위해 중요한 것들인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또는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지를 가려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12)

2.2.2.3. 바우어10) Gerhard F.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Basic Issues in the Current Debate,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4.11) J. P. Gabler, “Oratio de Justo Discrimine Theologiae Biblicae et Dogmaticae Regundisque

Recte Utriusque Finibus” [Speech about the Correct Distinction of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and the Right Definition of their Goals] (1787), in kleine theologische Schriften, ed. Th. A. Gabler and J. G. Gabler (Ulm, 1831), II, 179-198.

12) Gerhard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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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신학에서 가블러의 역사비평의 원칙을 처음으로 실현시킨 사람은 아이크호른(J. G. Eichhorrn)의 제자 바우어(Georg Lorenz Bauer, 1755-1806)이다. 가블러가 알트도르프 대학에 취임한지 2년 후인 1789년에 바우어는 같은 대학에 철학과 동양 언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임명받았다. 바우어는 최초로 『구약신학』13)과 최초로 『신약신학』14)을 출판한 학자이다. 바우어의 구약신학은 “신론, 인간론, 기독론”이란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교리학 체계를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우어는 그의 성서신학을 전개하면서 역사비평 방법을 지속적으로 적용하였다. 바우어의 성서신학은 그리스도 이전 유대인들로부터 시작해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 이후에 기록된 성서 기자들의 문헌들을 조사해서 시기에 따라 다양한 관점들과 다양한 이해로 발전된 것을 연구한 종교이론이다. 그래서 바우어는 신약의 경우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별해서 성서신학을 다룬다. 첫째로 공관복음에 따른 기독교 종교이론, 둘째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 따른 기독교 종교이론, 셋째로 요한계시록과 베드로서와 유다서에 따른 기독교 종교개념, 끝으로 바울의 교리 등이다.15)

2.2.2.4. 바우르: 튀빙겐 학파 창시자 바우어에 의해서 실현된 역사비평 방법이 튀빙겐(Tübingen)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바우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에 의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바우르는 1824-1825년에 『상징과 신화 또는 고대 자연 종교』16)란 책을 처음으로 출간했다. 이 당시 바우르는 쉘링(Schelling)과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바우르는 슐라이에르마허 대신에 헤겔(Georg Hegel)을 선택하고 헤겔의 역사철학을 성서비평에 전적으로 도입했다. 헤겔의 변증법 즉 테제(thesis, 正), 안티제제(antithesis, 反), 진테제(synthesis, 合)란 도식에 의해서 성서를 분해한 것이다. 바우르의 제자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는 바우르의 영향을 받아 1835년에 출판한 『예수의 생애』17)를 통하여 테제인 초자연적인 해석이 안티테제인 합리주의적인 해석과 충돌하여 진테제인 신화적인 해석에 이르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우르가 죽은 후 1864년도에 출판된 그의 책 『신약신학 강론』18)은 그의 신약 연구의 결실을 보여주었다. 바우르의 신약신학은 4세기 에비온 종파(Ebionite)가 사용했던 클레멘타인(Clementines on St. Epiphanius)의 신약과 그 사상들을 기초로 했다. 이 에비온 종파에 속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바우르는 이 4세기의 문헌이 예수 제자들의 사도직을 기초로 형성되어 온 기독교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야고보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 기독교가 주류종파였는데 이에 반하여 바울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종파가 생겨났다고 한다. 비주류인 바울 사상은 초기 기독교에서 하나의 이단이었다고 한다. 마르시온(Marcion)은 2세기까지 이어온 바울 종파의 지도자로 바울적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들을 사용했다. 클레멘타인 문헌들은 그 기원이 사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본13) Biblische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Leipzig, 179614)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2 vols., Leipzig, 1800-180215)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17. ; Werner G. Kümmel, The New Testament, trans. by M.

Gilmour and Howard C. Kee, (London: SCM Press, 1978), 105.16) Symbolik und Mythologie oder die Naturreligion des Altertums17) Das Leben Jesu18) Vorlesungen über Neutestamentliche Theologie, ed. F.F. Baur, Leip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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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유대적이며 율법적인 베드로 교회에 속했었다고 보았다. 이 교회는 바울이나 바울 종파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후 로마제국의 중재 아래 2세기 후반에 베드로적인 교회와 바울적인 교회 사이 조정이 이루어져 초기 가톨릭교회가 생겨났다고 한다. 요약하면, 바우르는 기독교 역사를 정(正) 반(反) 합(合)의 변증법에 기초한 헤겔 역사철학에 근거해서 분해하였다. 초기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유대적 기독교(베드로적인 문서, 마태복음과 요한 계시록)는 헤겔 철학에 의하면 테제(正)이고, 이후에 이 유대적 기독교에 대한 반동으로서 바울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방인 기독교(갈라디아서, 고린도 전후서, 로마서, 누가복음)는 안티테제(反)이며, 이후 2세기에 조정을 통하여 유대적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가 합쳐져서 세워진 초기 가톨릭교회(마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는 진테제(合)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를 분류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역사 구분 속에 예수의 역사가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다. 성서에 기초해서 교회의 역사를 구분하긴 했지만 정작 기독교의 뿌리인 예수의 가르침이나 삶에 대한 논의는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바우르는 예수의 역사를 앞에서 구분한 세 시기 전에 둔다. 즉 신약 신학의 전 역사(前歷史)로 간주한 것이다19). 가블러가 주창한 역사비평 원칙에 따르면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기적, 예언, 계시 등과 같은 초월적인 것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예수의 도덕적인 가르침만 남는다. 그래서 가블러를 따르는 바우르는 예수의 가르침을 “순수한 도덕적인 요소”로 축소시켰다.20) 모든 성서학자들이 바우르의 주장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이스(Bernhard Weiss)는 튀빙겐 학파에 반대한 문헌비평 학자였다. 바이스는 1868년에 『신약성서 신학 교과서』21)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거의 40여년이 넘게 7판을 거듭 찍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바이스의 성서신학 방법은 과격한 바우르의 방법과는 대조적으로 보수적이었다. 바이스는 대부분 신약 문서들을 진본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서신학의 사명은 신약 문서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성서 신학자는 성서 문서들을 다른 교리나 철학에 의존해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신약 한 책을 다른 책에 의해서 소위 다른 평행본문들에 의해서 해석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성서의 한 책은 그 책 안에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바이스의 주장이다.22)

2.2.3. 구속사학파 역사비평 방법은 성서의 통일성을 해체시키고 다양성을 강조해왔다. 성서 각 책들의 특수성에 집중한 결과로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 뿐 아니라 신약 안에서도 각 책들 간의 연관성이 증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경향에 반발하여 일어난 보수적인 운동이 구속사 비평이다. “구속사”(Heilsgeschichte)라 함은 천지창조부터 세상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리키는 말로서 일반 자연 역사와는 구별된다. 19세기 구속사 비평 학자로는 멘켄(Gottfried Menken, 1768-1831), 베크(Johann T. Beck, 1804-1878), 호프만(J. Ch. Konrad von Hofmann, 1810-1877)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역사비평 학자들이 거부했던 성서의 영감을 인정

19) Bultmann이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신학의 부분이라기보다는 신약신학을 위한 전제이다”라고 한 것과 바우르의 전통은 맥을 같이한다.

20)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31.21) Lehrbuch der Biblischen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Berlin, 186822)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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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서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23) 이 당시 구속사 학파의 주도적인 인물이었던 호프만은 성서 안에서 일직선으로 된 구원의 역사를 찾아내고, 그 역사 안에서 활동하는 역사의 주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의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구속사 즉 구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호프만에게 성서신학이란 이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성서의 각 책은 구원의 역사의 체계 안에 그 논리적 위치를 할당받는다. 성서는 교리의 창고가 아니고 오히려 종말론적 완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증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비평가들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런 호프만의 구속사적인 주장들은 신약을 구약과 역사적 관계 즉 구속사적 관계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호프만은 성령의 활동이 성서의 각권을 기록하게 했으며 또한 기록된 성서들을 현재의 모양으로 형성시켰다고 믿었다. 결국 성령이 성서 각 책들의 기원과 경전 형성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구속사 신학은 성령의 산물인 경전들의 구속사적 위치를 조사하는 과제를 가진다.24) 호프만에 의해서 주도된 구속사적 비평은 하르낙(Adolf von Harnack)이 두려워했던 찬(Theodor Zahn)25)에게 이어졌다.

2.2.4. 종교사학파 종교사(Religionsgeschichte)학파는 자연 역사(history of nature)에서 말하는 종교발달사를 기독교 성서에 적용한 학파이다. 자연 역사에서는 종교를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 간주한다. 종교란 원시적인 다신 종교로부터 시작해서 최종 단계로 윤리적 단일신 종교로 인류 문화와 함께 진화된 것으로 본다. 이런 자연 역사관에 기초한 종교의 기원과 발달의 원리를 성서신학에 처음으로 적용한 사람이 카이저(Gottlob Philipp Christian Kaiser)이다. 카이저는 1813-1821년에 세 권으로 된 책 『성서신학』26)을 출간했다. 그는 성서 안에 초자연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합리적인 접근 방법을 적용해서 구약 종교가 어떻게 해서 발생했고 발전되었는지 그 과정을 찾아내려고 했다.27) 카이저의 뒤를 이어 팥케(Wilhelm Vatke, 1806-1882)가 1835년에 『성서신학』28)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팥케는 헤겔의 변증법을 처음으로 종교사적으로 적용해서 테제(thesis, 正)로서 자연종교, 안티테제(antithesis, 反)로서 영적인 종교 곧 히브리 종교, 진테제(synthesis, 合)로서 기독교를 제시하며 기독교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종교라고 했다. 팥케는 구약 본문을 구성한 자료를 체계 있게 정리하려면 성서 안에 있는 분류가 아니라 성서 밖에 있는 종교사적

23)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37.24)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36.25) T. Zahn, Geschichte des neutestamentlichen Kanons, 2 vols. (Erlangen/Leipzig, 1888-92;

idem,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2 vols. (Leipzig, 1906-07); idem, Gundriss der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Leipzig, 1928).

26) Die biblische Theologie, 3 vols., Erlangen27)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19.28) Die biblische Theologie, die Religion des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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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구약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종교사적 공식을 만들어냈다. 팥케의 책은 후에 벨하우젠(J. Wellhausen)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팥케의 제자였던 바우어(Bruno Bauer, 1809-1882)도 헤겔 사상에 기초하여 종교사학적인 입장에서『구약신학』29)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바우어는 스승 팥케와 정반대의 결론들을 도출해 냈다.30)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 1878년에 『이스라엘 역사서론』31)을 출판하면서 종교사학파가 구약신학을 주도하게 되었다. 종교사학파는 당시에 유행했던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종교의 생성과 발달 과정을 이해했다. 종교사학파 학자들(Graf, Kuenen, Wellhausen)은 먼저 구약본문에서 해체시킨 후에, 해체된 자료들마다 시대를 지정하였고, 그 시대를 기초로 해서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를 재구성하였다. 특히 모세오경 안에서 분류된 제사 문사(P)는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는 그라프(K.H. Graf)와 쿠에넨(A. Kuenen)의 주장이 벨하우젠에 의해 대중화 되었다. 종교사학파 학자들은 구약성서를 여러 시대를 거쳐 형성된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져서 편집된 책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한 자료들이란 이스라엘 주변에 있던 다른 이방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런 종교사적 비평은 지금까지 구약신학 뿐 아니라 구약에 대한 이해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약 성서를 통일된 하나의 책으로 보아왔던 전통적인 견해를 완전히 파괴시킨 것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을 논한다는 것 역시 소원해진 것이다. 이런 종교사 비평은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구약신학을 만들어낸 것이다.32)

신약신학에서 종교사적 비평을 개척한 사람은 브레데(William Wrede, 1859-1906)이다. 브레데는 1897년에 『소위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론에 관하여』33)를 발표하면서 바우르(F. C. Baur), 바이스(B. Weiss), 홀츠만(H. J. Holtzmann) 등의 저서에 있는 ‘교리적 개념’(Lehrbegriffe)에 기초한 신약신학 방법을 반박했다. 신약신학이 교리와 연관을 가지고 있는 한 교리를 위해서 종사하는 학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성서 본문에 없는 교리를 억지로 증명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고, 심지어는 교리에 위배되는 성서 본문들을 제거시키려는 시도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브레데는 당시 성서신학은 엄격한 의미로 볼 때 역사적인 방식이 아니라며 분명하고 지속적인 역사적인 방식의 자율을 주장했다. 즉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말고 역사비평 방법을 편견 없이 일관성 있게 성서 본문에 적용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특히 신약 문헌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기록 당시 문화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브레데의 주장은 성서가 영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며 또한 성서를 성서로 해석(sui ipsius interpres)했던 종교개혁의 원칙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브레데의 종교사적 방법은 “신약신학”이란 이름에 대해서도 다시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그는 크뤼거(G. Küger)의 영향을 받아, 이름은 다루는 문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며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다. “신약신학”이란 이름은 잘못된 명칭이며 실제로 신약성서는 단순히 신학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신학” 대신에 “초기 기독교 종교사” 또는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역사”라고 이름을 바꾸29) Die Religion des AT in der geschichtlichen Entwicklung ihrer Principien, 2 vols, Berlin, 183830)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19.31) 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 Berlin32)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23-24.33) Über Aufgabe und Methode der sogenannten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Gött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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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넓은 의미로 볼 때 기존의 신약신학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브레데는 지금까지의 성서신학은 성서가 내포하고 있는 신학이 아니라 성서적인 특성만을 가진 신학이었다고 비판했다. 성서 안에는 단지 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기록한 시대, 사람, 정황 등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레데는 신약연구의 과제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었고, 생각했고, 가르쳤고, 소망했고, 요구했고, 추구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서학자는 경전에 관계없이 연관된 자료들에 대한 과학적이며 역사적인 연구를 통하여 초기 기독교에 속한 이 과제만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서학자가 하는 일은 그가 속해 있는 현시대의 기독교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성서학자는 과거의 역사를 밝히는 목적 이외에 어떤 것도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교리를 위해 봉사하는 성서신학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율적인 노력으로 과거의 역사 즉 초기 기독교 사상과 이해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밝혀진 사상과 이해의 특징들을 종교 역사의 발전이란 틀에 의해 설명해주어야 할 사명이 성서신학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신약신학의 방식은 종교사 비평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에 의해 브레데는 ‘예수의 선포, 유대적 기독교 공동체와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과 교리, 바울신학, 요한 신학’으로 구성되는 신약신학의 순서를 제안했다. 이와 같이 브레데가 제안한 방식은 바이넬(Heinrich Weinel)에 의해서 처음으로 채택되어 1911년에 『신약성서신학』34)이라는 제목 하에 「예수의 종교와 초기 기독교」란 부제를 단 책으로 출판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바이넬은 브레데가 부인한 신학적 성격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즉 예수의 종교는 구속의 신화적 종교와 대조되는 구속의 윤리적 종교라고 강조하며 이 둘은 초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결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종교사학파 내에서 재구성을 강조하는 기술적(descriptive)인 면보다는 신학을 강조하는 해석적(interpretative)인 면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예이다. 바이넬의 저서가 출판된 지 2년 후인 1913년에는 부세트(Wilhelm Bousset, 1865-1920)가 『주 그리스도』35)란 책을 출판했다. 부세트는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유대적 기독교에서 헬라적 기독교로 발전된 것으로 보았다.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했던 유대적 기독교는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이나 전통들에 준수했으며 예수를 재림할 인자(人子)로 대망하고 있었던 종말론적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에서 예수는 미래에 재림해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인자로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이런 미래적인 예수를 현재 예배 가운데 임재 하는 “주”(主)로 변경시킨 것이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헬라적 기독교라고 한다. 당시에 헬라(=그리스) 세계에는 이집트의 죽음의 신 오시리스(Osiris)나 이란 종교의 신 미드라(Mithra) 등을 믿는 신비종교가 유행했었다. 이 헬라 신비종교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주”(kuvrio")라고 불렀다. 이러한 신비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예수를 “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신비종교 예식을 통해서 경험했던 신의 임재나 신과 합일을 기독교로 가지고 들어와 세례나 성만찬과 같은 예식을 통해서 신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변경시켰다고 한다. 결국 이들 헬라적 기독교인들이 본래 유대적 기독교를 신비종교로 만들었다는 것이 부세트의 주장이다.36)

34) Biblische Tehologie des Neuen Testaments, Tübingen35) Kyrios Christos36) Hasel, New Testament Theology, 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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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양식사학파: 루돌프 불투만 20세기에 60년을 넘게 신약 연구를 지배했던 인물은 불투만(Rudolf Bultmann)이다. 그의 신약신학 방법 즉 양식사(Formgeschichte) 비평은 종교사학파에 기원을 둔 과학적이며 역사적인 비평 방법이다. 이 점에서는 불투만의 신약신학은 신약 안에 기독교 기원을 설명하는 기술적(descriptive)인 면을 갖추고 있다. 즉 “성서 본문이 기록되던 당시에 무엇을 의미했었느냐?”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두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투만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당시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의 동료이며 실존철학자인 하이데거(M. Heidegger)의 영향을 받아서 신약에 실존적 해석(existential interpretation)을 적용했다. 즉 성서 본문이 “현대인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란 현실적 해석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불투만은 성서에 있는 초대 기독교의 신화적인 요소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실존적 해석을 적용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제시했다. 이렇게 해서 불투만은 성서신학의 근본 문제인 기술적(descriptive, 순수 역사적 연구)인 문제와 해석적(interpretive, 신학적 연구)인 문제를 통합하려고 했다. 1950년대에 불투만에 대한 반대 입장들이 후기 불투만 학파라고 불리는 그의 제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케제만(Ernst Käsemann), 훅스(Ernst Fuchs), 로빈슨(J. M. Robinson), 보른캄(Günther Bornkamm) 등이 있다. 본래 불투만은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신학 자체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신약신학을 위한 하나의 전제이다”라는 문장으로 그의 신약신학을 시작했다. 이 말은 양식비평학자로서 불투만은 현대 성서신학은 역사적 예수를 밝힐 수 없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불투만의 신약신학은 바울신학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기 불투만 학파에서 케제만이나 보른캄 등은 역사적 예수가 교회 선포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훅스와 에벨링(Ebeling) 등은 역사적 예수가 신앙의 기반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 큄멜(W.G. Kümmel)과 로제(E. Lohse)는 신약신학을 예수의 선포로 시작한다.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신약신학의 첫 권에서 예수의 메시지를 다룬다. 영국의 학자 네일(S. Neill)은 신약신학에 대한 최근 작품에서 주저 없이 “모든 신약 신학은 예수의 신학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적인 예수 탐구에서 분명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평에 대한 기대가 격감되었다. 성서신학계에 이런 혼란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시카고 대학의 페린(Norman Perrin) 교수는 “신약 신학의 학문적 연구는 오늘날 혼란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37).

2.2.6. 성서 비평 역사에 나타난 해결될 수 없는 근본 문제 우리는 계몽주의 이후로 지금까지 간략하게 성서신학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변화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온 성서신학은 지금까지 해결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성서신학의 학문적 객관성 문제이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또는 성서신학은 지금까지 출판된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책을 쓴 저자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이것은 성서신학이란 신학자의 주관적인 입장을 절대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신학자가 주장하는 이론

37) N. Perrin, “Jesus and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read at the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Denver, Colo., Aug. 18-21,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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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이라고 믿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성서신학의 연구 범위에 관한 문제이다. 성서신학이 성서 본문을 연구한다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 손 안에 있는 본문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문 이전 전승 단계에 있었던 자료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지 한계를 정해야 한다. 본문 이전 전승 자료를 포함시킨다면 그 자료들을 어떻게 찾아내며 정작 찾아냈다는 그 자료가 신빙성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서신학에서 논하는 거의 모든 전승 자료들은 가설이다. 추측으로 만들어 낸 자료들이란 말이다. 셋째로, 연구 대상인 성서 본문에 대한 관점이다. 성서를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느냐 아니면 영감이 배제된 하나의 고문서로 보느냐에 따라 이해가 완전히 달라진다.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도 그 한계에 따라 달라진다. 제믈러가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형식을 취한 것이 성서라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문 전체가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형식을 제거시킨 일부만이 영감을 받은 하나님 말씀이 된다. 또한 현재 우리 손안에 들어있는 본문 전부가 영감을 받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본문 이전에 전승되어 온 모든 자료들에도 영감을 적용할 수도 있다. 성서본문에 영감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반대로 성서를 영감이 배제된 하나의 고문서로 취급할 경우에도 본문에 적용되는 방법론에 따라 본문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 수많은 이론들이 출현하게 된다. 넷째로, 적용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성서신학 이론들이 만들어진다. 성서신학이 본문이 과거에 의미했던 것을 찾아내는 기술적(descriptive) 방식을 택한다면 여기에 어떤 과학 비평방법 또는 역사 비평방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론들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성서신학이 현재 독자들에게 또는 현대 교회들에게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해석적(interpretative) 방식을 채택할 경우에도 적용되는 교리, 신학, 철학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들이 생겨난다. 분명한 것은 현대 성서신학에서 기술적 방식과 해석적 방식 둘은 본질상 서로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병행할 수는 있지만 융합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섯째로 기술적인 문제만을 논한다고 할지라도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구약이나 신약 본문을 과학적 역사 비평방법으로 해체시키고 재구성해서 도출해낸 결과들은 무엇을 위한 것들이란 말인가? 현대 유대교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현대 기독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현대 종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학문을 위한 것들인가? 다른 말로 “무엇 때문에 그런 성서신학을 하고 있느냐?”란 말이다. 그 성서신학이라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냐, 종교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냐,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냐, 신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냐 아니면 이런 것들을 종합한 학문이냐?38) 수세기를 지내왔지만 “성서신학”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지금도 그 정체성이 불확실하다. 위에 열거한 것 외에도 성서신학의 성격, 기능, 목적, 한계 등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과는 오리무중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대 성서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서신학의 위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신학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39) 최근 유럽이나 북미 학자들의 책들을 보면 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심각한 논쟁거리만 되고 있다.

38)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8-9.39) Hasel, Old Testament Theology, 9, 71.; New Testament Theology, 1. (구약신학의 위기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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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성서신학과 기독교의 결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성서비평방법에 의해 성서본문은 여러 자료들로 해체되고 다양한 양식들로 분해되어 조각이 났다. 조각이 난 양식들은 전승의 역사란 시간 구분에 따라 시대별로 흩어져 버린다. 학자들은 조각나고 흩어진 부분들을 붙잡고 저마다 딴 소리를 외쳐댄다. 듣는 청중들은 이렇게 외쳐대는 소리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따라간다. 여기서 우리는 1787년 3월 30일 알트도르프(Altdorf) 대학 취임 연설에서 가블러가 주창한 현대 성서비평의 기준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부터 현대 성서비평은 기독교의 신앙과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성서과학(Bibelwissenschaft)으로 발전해 왔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대 문서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면서 연구를 해왔다. 이런 점에서 성서학은 신학이 아니라 고전학에 속한다. 이러한 현대 성서학의 주류는 기독교와 무관하게 지금까지 과학적 학문으로 독립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현대 성서학이 기독교 신앙의 기둥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현대 성서학에서는 종교개혁의 힘의 근원이었던 성서의 권위가 사라져 버렸고,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성서의 영감이 무시되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증발되어 버렸다. 이런 시대정신(Zeitgeist)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가 그 기반을 잃어버리고 공중 분해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2.2.8. 신앙과 학문의 분리 한번은 친구가 철학이나 신학은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위에 학문과 신앙을 조직신학에서는 “이성과 계시”라는 이름으로 논한다. 과학과 종교, 학문과 신앙, 이성과 계시, 지식과 믿음 등은 모두 알고 보면, “머리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마음으로 믿을 것이냐?”란 질문의 다른 말들이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질문이다. 학자의 가르침은 머리로만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종교인의 가르침은 마음으로 긍정되어야 한다. 학자는 학문에만 충실하면 되지만 종교인은 삶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에 와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구약을 가르치던 탁월한 구약교수가 있었다. 구약 신학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교수인데 당시 가정 문제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수업시간에 보여주었다. 당시 이 교수의 훌륭한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은 것은 풍부한 신학적 지식이 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배운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힘들어 하던 교수의 모습은 여전히 눈에 어른거린다. 학문과 삶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 지금 내 방에는 1996년도에 하버드 신학교에서 졸업장을 받는 사진 하나가 걸려있다. 이 당시 하버드대학 신학부 학장(Ronald Frank Thiemann)이 나에게 졸업장을 건네주면서 악수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나는 성서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학장의 강의를 들은 바가 없지만 그는 당시에 탁월한 신학자였다. 1998년 어느 날 학장은 자신이 사용하던 학교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 용량이 작다며 큰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 컴퓨터 기술자가 와서 새 하드 드라이브로 바꾸기 위에서 기존 하드 드라이브에 있던 파일들을 학교 메인 컴퓨터에 업로드 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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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업로드 시키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 기술자의 감독관이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고 물었다. 그 기술자는 처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학장 컴퓨터의 기존 하드 드라이브에 포르노 파일들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감독관은 곧 당시 하버드 대학 총장(Neil L. Rudenstein)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총장은 학장에게 하버드 정교수직은 보장하지만 신학교 학장 직위는 사임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그 학장은 1998년 11월에 신학교 학장직에서 물러났다. 서구 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연구의 대상으로 전락된 학문이다. 우리는 탁월한 과학자에게 진실한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과학적 방법이나 지식이 뛰어난 학자를 기대할 뿐이다.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현시대에 훌륭한 신학자라면 폭넓은 신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할 뿐이다. 지식과 삶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학문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내 인생을 걸 만큼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착각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착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로 현 기독교는 혼돈 가운데 있는 것이다. 많은 신학생들이 신학적 지식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분리된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 시대는 학문과 삶이 달라도 별다른 갈등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학문만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믿음 곧 신앙은 다르다. 신앙과 삶이 다르면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은 곧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믿고 있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된다. 어느 날 앞 차 범퍼에 붙어 있던 다음과 같은 구절이 기억난다.

“만일 당신의 인생에 목숨을 걸 만한 것이 없다면 당신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If there is nothing that you are dying for, then you are not alive)

성서신학을 포함해서 현대 신학이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하다. 즉 신학은 기독교의 도우미 또는 보조 학문이지 기독교의 중심은 아니다. 기독교란 종교의 중심은 신화적인 체계 즉 기독교의 초월적인 요소(인간창조, 구속의 역사, 예수 초림, 부활, 재림, 심판)에 있는 것이다. 도우미가 주인이 아닌 것처럼 신학이 기독교의 중심이 아니다. 신학은 성서 본문과 기독교 종교 역사를 여러 방법을 적용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 같은 본문을 놓고도 다양한 해설들이 지금까지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런 해설들 간에 충돌이 거세지면서 현대 성서신학이 오리무중에 빠진 것이다.

IN DUBIO PRO R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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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에베소서 성경공부

1. 프락시스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2장(Praxis English Bible)

Chapter 1

1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to the saints being in Ephesus, and (the) faithful in Christ Jesus: 2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3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one having blessed u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ly (places) in Christ,4 just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us] to be holy and blameless before him, in love5 having predestined us to adoption through Jesus Christ to himself,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his will,

6 to (the) praise of (the) glory of his grace, of(=by) which he freely bestowed (on) us in the one having been loved,7 in whom we have [th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trespasses, 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race8 which he lavished for(=on) us in all wisdom and understanding,9 having made known to us the mystery of his will according to his good pleasure, which he set before(=purposed) in himself,10 for an administration(=plan) of the fullness of the times, to sum up [the] all things in [the] Christ, the things on(=in) [the] heavens and the things on the earth; in him,

11 in whom we were also chosen(=have also obtained an inheritanc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the one working all things according to the counsel(=intention) of his will, 12 for the us to be(=that we might be) to(=for) (the) praise of his glory, the ones having hoped(=who had hoped) before in [the] Christ,13 in whom you also, having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in whom you also, having believed, were sealed (with) the Holy Spirit of promise, 14 who is an pledge(=deposit) of our inheritance toward(=until) (the) redemption of the acquisition(=possession, # act of acquiring), to (the) praise of his glory.15 Therefore I also, having heard (of) according to you(=your, # possessive genitive) faith in the Lord Jesus and the(=your) love for all the saints,

16 do not stop giving thanks for you, making remembrance(=mentioning) (of you) on(=in) my pr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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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glory, might(=may) give you a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in (the) knowledge of him,18 having the eyes of your heart enlightened, for the you to know(=that you may know) what is the hope of his calling, what (are) the riches of the glory of his inheritance in the saints,19 and what (is) the exceeding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the ones believing, according to the working of the might of his strength(=his mighty strength), 20 which he worked in [the] Christ, having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having seated (him) in(=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places

21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and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being named, not only in this age but also in the coming (age)(=the age to come).22 And he has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he gave him (to be) head over all things (for) the church, 23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the one filling(# middle voice) all things in all things

Chapter 2

1 And you, being dead (in) your trespasses and sins,2 in which you once walked(=lived) according to the course of this world, according the ruler of the authority of the air, of the spirit now working in the sons of disobedience,3 among whom also we all once conducted ourselves in the lusts of our flesh, doing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of the thoughts, [and] were being (by) nature children of wrath just as the rest, 4 and [the] God, being rich in mercy, because of his great love (with) which he loved us,5 even being dead (in) the trespasses, made us alive (with) [the] Christ - by grace you are having been saved(=have been saved, # periphrastic perfect) -

6 and raised (us) with (him) and seated (us) with (him) in the heavenly places in Christ Jesus,7 that he might show in the coming ages the exceeding riches of his grace in kindness toward us in Christ Jesus. 8 For (by) [the] grace you are having been saved(=have been saved, # periphrastic perfect) through faith. And this (is) not from you(=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 not from(=by) works, so that no one might(=can) boast.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having been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which [the] God prepared in advance that we should walk in them.

11 Therefore, remember that once you (were) the Gentiles in (the) flesh, the ones being called uncircumcision(=the uncircumcised) by the one being called (the) circumcision, in (the) flesh, made by hand,12 that you were at that time without Christ, having been alienated from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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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wealth of Israel, and strangers of(=from) the covenants of promise, having no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13 and now in Christ Jesus you, the ones once being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in(=by) the blood of Christ. 14 For he is our peace, the one having made both one, and having destroyed the middle wall of partition, the hostility, in(=by) his flesh,15 having abolished the law of the commandments in ordinances, that he might create (from) the two in himself one new man, (thus) making peace,

16 and he might reconcile both in one body to God through the cross, having put to death the hostility in(=by) himself.17 And having come, he preached peace to you, to the ones (being) far away and peace to the ones (being) near, 18 because through him we both have [the] access in one Spirit to the Father.19 So then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neighbors, but you are fellow citizens with the saints and members of the household of God,20 having been 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Christ Jesus himself’s being(= of which Christ Jesus was, # genitive absolute) cornerstone,

21 in whom every building, being fitted together, grows into a holy temple in (the) Lord,22 in whom you also are being built together into a dwelling of God in (the) Spirit.

Signs and Symbols( ) addition; [ ] deletion; (= ) replacement; (# ) reference;

(!! ) expla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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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6형식 서론

2 본론: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 결론인사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성도 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 20 21

인사인사2

예정된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스도를 통한 이방인과 유대인의 통일 (하나됨); 개인 성전인 교회, 연결된 성전인 교회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가 하나님을 닮아감 20(가까워짐)

21인사

인사2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로 연합된 교회 성도로서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 20 21

인사인사2 성도 Saints = 교회 성화 Sanctification = 거룩함 20 21

인사인사2 교회란 무엇인가? Being by God 교회는 어때야 하는가? Doing by Saint 20 21

인사인사2 연결되어 하나됨; 십자가의 수평 하나님께 가까워짐; 십자가의 수직 21

인사인사2 새로운 성전 이방인 성도 이방인 사도 권면 20 21

인사

인사2

찬 송 14 기도 이방인의 구

원 13유 대인 과 화목

이방인의 일군 바울 13 기도 하나되어 성

장하라 16

새 사 람을 입 어라

빛의 자녀로 행하라 21

하나된 가정을 이루라 9

전 신갑 주를 입 어라 20

21인사

인사2

창세전에 예정된 비밀인 교회

이방인 성도와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가는 교회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세우는 일군 바울

부르고 세우고 성장하는 교회

흠 없고 거룩해지는 교회= 강해지는 교회

전 투하 는 교 회 20

21인사

1, 새로운 성전 교회 2, 새로운 이방인 성도 3, 이방인의 일군그리스도의 비밀: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연합된 교회

인사 2 바울의 찬송 14 기도 23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18

은혜의 결과 22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 13 바울의 기도 21

편지 서두 2

교회의 목적 6

기업인 교회 14

바울의 기도 19

교회론 (1)

진노의 자녀 3

구속 5

영화 7

구원론 10

외인 12

구속 16

영화 18

교회론 (2)

계시 받은 바울 4

은혜의 경륜 9

교회를 통한 계시 13

속사람 강건 16

사랑으로 충만 19

하나님께 영광

4, 새 사람으로 성장하라 5, 세상에 빛이 되라 6, 전투에서 승리하라바울의 권면: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

하나되어 성장하라 16 새사람을 입으라 32 빛의 자녀로 행하라 21 하나된 가정을 이루라 9 영적 전투 맺음말

24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통일하시는 하나님 6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들 12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라 16

새 사람을 입으라 24

성령을 근심케 말라 32

사랑 가운데 행하라 2

불순종의 아들들을 피하라 7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14

성령충만을 받으라 21

아내들이여 복종하라 24

남편들이여 사랑하라 28

한몸이 된 그리스도와 교회 33

자녀들아 순종하라 3

아비들아 양육하라 4

종들아 순종하라 8

상전들아 공정하라 9

전신갑주를 취하라 17

깨어 항상 기도 하라 20

두기고 22

축도 24

2. 에베소서 전체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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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0101 0102 0103 0104 010506 010710 011112 011314 011516

삼위하나님

뜻을 가지신 성부, 사도를 세우시는 성자, 신실한 자들의 영역인 성자

아버지 되신 성부, 주인 되신 성자, 은혜와 평강의 근원인 성부와 성자

찬송을 받으시는 성부, 주인 되신 성자, 성자의 아버지 성부, 성자를 통해서 축복하는 성부, 축복의 통로인 성자

창세전에 계신 성부와 성자, 선택하시는 성부, 사랑이 있는 성부, 우리를 앞에 세우시는 성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성부

깊으신 뜻을 가지신 성부, 우리를 예정하신 성부, 우리를 아들 삼으신 성부, 성자를 통하여 양자 삼으신 성부, 성자를 사랑하시는 성부, 은혜의 영광을 거져 주시는 성부, 찬미 받으시는 성부

은혜가 풍성한 성부, 죄사함의 피를 흘리신 성자,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시는 성부, 뜻의 비밀을 알리신 성부, 성자 안에서 기쁘게 예정하신 성부, 성자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려는 성부

마음대로 역사하시는 성부, 예정하시는 성부, 기업을 삼으시는 성부, 영광의 찬송을 원하는 성부

인치시는 성령, 구속하시는 성자, 영광을 찬미케 하시는 성부

감사를 받으시는 성부, 기도를 받으시는 성부

바울

하나님의 뜻으로 된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편지를 기록하는 바울, 에베소 성도들의 목회자

에베소 교인들에게 축도를 하고 있는 바울

찬송하는 바울, 복 받음을 찬양하는 바울, 예수를 주로 섬기는 종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바울,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 서야하는 목적을 가진 바울

예 정 하 심 을 받은 바울,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의 아들이 된 바울, 성부의 은혜의 영광을 거저 받은 바울, 영광을 찬미하게 된 바울

죄사함을 받은 바울,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는 바울, 뜻의 비밀을 아는 바울,

뜻에 따라 예정된 바울, 기업이 된 바울,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된 바울

기업이 된 바울, 구속받은 바울, 영광을 찬미하게 된 바울

수신자의 믿음과 사랑을 들은 바울, 감사하는 바울, 기도하는 바울, 수신자를 위해 중 보 기 도 하는 바울

등장인물 성도들, 신실한 자들

너희(에베소 교인)

예수를 주인으로 성도들,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성도들

창세전에 선택받은 수신자들,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 수신자들,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하는 수신자들

예정함을 받은 수신자, 성부의 아들 딸들이 된 수신자, 성부의 은혜의 영광을 받은 수신자, 영광을 찬미하게 된 수신자

죄사함을 받은 수신자,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는 수신자, 뜻의 비밀을 알게된 수신자

뜻에 따라 예정을 입은 수신자, 기업이 된 수신자, 영광의 찬송이 되야 하는 수신자.

복음을 들은 수신자, 복음을 믿은 수신자, 인치심을 받은 수신자, 기업인 수신자, 구속받은 수신자, 찬미하게 된 수신자

예수 안에 믿음 있는 수신자,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하는 수신자, 바울을 감사케 하는 수신자, 바울의 기도제목인 수신자

핵심단어 뜻, 사도, 편지

좇아, 은혜, 평강

찬송, 하늘, 신령한 복

창세전, 택하사, 거룩하고 흠 없게

기쁘신 뜻, 예정, 찬미

구속, 비밀, 예정, 통일

기업, 예정, 영광의 찬송

구원의 복음, 약속의 성령, 기업의 보증

믿음, 사랑, 기도

주제 바울의 편지 바울의 축도 바울의 찬송 선택하신 목적

찬미를 위한 예정 만물의 통일 영광의 찬송

이 된 성도 인치신 목적믿음과 사랑이 있는 수신자

요절

제목 편지 서문 인사말 복주신 하나님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구속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인치심

바울의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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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하나님

주인이 되신 성자, 그리스도의 성부, 수신자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는 성부, 자신을 알게 하시는 성부

수신자의 눈을 밝히시는 성부, 소망 가운데 부르신 성부,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주시는 성부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부,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푸신 성부, 알게 하시는 성부

능력의 성부, 성자 안에서 역사하는 능력,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 성자를 오른편에 앉히시는 성부, 성자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성부

만물이 발아래 복종하는 성자, 만물을 복종케 하신 성부, 교회의 머리인 성자, 성자를 교회의 머리로 주신 성부, 교회가 몸인 성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성부

죽어있던 수신자를 살리신 성부, 진노하시는 성부

긍휼의 성부, 우리를 사랑하는 성부, 우리를 성자와 함께 살리신 성부, 구원을 주신 성부

우리를 성자와 함께 일으킨 성부, 우리를 정자 안에서 하늘에 앉힌 성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성부, 은혜 풍성을 나타내려 하시는 성부, 우리와 함께 일어난 성자, 우리와 함께 하늘에 앉으신 성자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성부, 구원을 자랑치 못하게 하신 성부

바울

성자를 주로 모신 종, 성부를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 수신자들이 성부를 알도록 기도하는 바

수신자의 눈이 밝혀지길 기도하는 바울, 부르심의 소망을 알기를 기도하는 바울, 기업의 영광

성부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 심 을 따라 믿는 바울,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아는 바울,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바울, 성자를 살리시고 자기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성자의 발 아래 복종하는 바울, 성자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바울, 교회를 성자의 몸으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던 바울,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던 바울, 본질상 진노의

성부의 사랑을 받은 바울, 성자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바울, 구원받은 바울

성자와 함께일어난 바울, 성자 안에서 성자와 함께 하늘에 앉은 바울, 자 비 하 심 을 받은 바울,

구원을 선물로 받은 바울

3. 에베소서 단락 나누기 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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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의 풍성을 알기를 기도하는 바울

하신 성부를 아는 바울

인정하는 바울, 충만함을 입은 바울

자녀였던 바울

등장인물

성자를 주로 모신 종들, 성부를 아버지로 모신 성도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필요한 수신자, 성부를 아는 것이 필요한 수신자

눈이 아직 열리지 않은 수신자, 소부르심의 소망을 모르는 수신자,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모르는 수신자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믿는 수신자,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모르는 수신자

죽은 자들, 모든 정사,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

만물, 교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수신사, 성부에 의해 살림을 받은 수신자, 허물과 죄 가운데 행했던 수신자, 세상 풍속을 쫓았던 수신자,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던 수신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던 수신자,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던 수신자, 진노의 자녀였던 수신자, 공중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영, 진노의 자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수신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수신자,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수신자, 구원받은 수신자

성자와 함께 일어난 수신자, 성자 안에서 성자와함께 하늘에 앉은 수신자, 성자 안에서 성부의 자비를 받은 수신자

은혜로 구원받은 수신자, 구원을 선물로 받은 수신자, 믿음으로 구원받은 수신자

핵심단어지혜와 계시, 정신, 알게 하시고

눈, 부르심, 기업의 영광

힘, 강력, 능력

살 리 시 고 , 앉 히 시 고 , 뛰어나게 하시고

복종, 머리, 몸, 충만

그때에, 공중권세 잡은 자, 진노의 자녀

풍성, 큰 사랑, 허물로 죽은

하늘, 자비, 여러 세대

믿음, 선물, 행위

주제 지혜와 계시의 정신

알게 되길 기도하는 바울

알게 되길 기도하는 바울

하나님 우편에 앉은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

죄로 죽었던 과거

구원받은 우리 하늘에 앉힘 믿음으로 인

한 구원요절

제목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소망과 풍성을 알게 되기를

능력의 크심을 알게 되기를

그리스도 안에 역사한 하나님 능력

그 리 스 도 의 몸인 교회

하나님의 살리심

그 리 스 도 와 함께 살리심

은혜의 풍성을 나타려는 성부

하나님의 선물

단락 0210 0211 0212 0213 021416 021718 0219 022022 0301

삼위하나님

우리를 만드신 성부, 성자 안에서 우리를 지으신 성부, 선한 일을 위한 목적을 가진 성부, 예비하신 성부, 성자 가운데서 행하게 하신 성부

그 때에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한 성부,

이 스 라 엘 만을 위한 성자, 이스라엘을 선택 백성으로 둔 성부, 약속의 언약을 이 스 라 엘 에게만 준 성부

이방인을 성자 안에서 가까이 하신 성부, 성부와 이방인을 가깝게 하는 성자의 피

우리의 화평이 되신 성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든 성자,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 성자,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성자, 자기 안에서 새사람을 지은 성자, 화평케 하시는 성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gkskslaa과 화목하게 하신 성자,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신 성자

오신 성자, 평안을 전하신 성자,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나 아 가 야 할 성부

성도들의 하나님이신 성부, 시민들의 왕이신 성부, 가족을 가지신 성부

수신자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성부, 모퉁이 돌이 되신 성자, 건물마다 연결되는 성자 안, 성전이 지어가는 성자 안, 수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함께 짓고 있는 성부의 처소

바울을 일시키는 성자

바울

성부에 의해 지음받은 바울,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바울, 전부터 성부에 의해 예비된 바울, 성자 가운데 행하는 바울

유대인 바울, 할례당 바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 이스라엘 나라 사람 바울, 약속의 언약을 받은 바울, 하나님이 있는 바울

성자의 뜻대로 이방인과 가까워진 바울, 전에 성부와 가까이 있었던 바울

이방인과 하나된 바울, 이방인과 담이 무너진 바울, 이방인과 한 새사람이 된 바울, 이방인과 한 몸이 되어 하성부와 화목하게 된 바울

평안을 전달받은 바울, 이방인과 함께 성부에게 나아가는 바울

이방인과 같은 식구가 된 바울, 이방인과 동인한 시민이 된 바울, 이방인과 하나님의 가족이 된 바울

터가 된 사도 바울

성자의 일을 하는 바울, 이방을 위하여 갇혀 있는 바울

등장인물

성자 안에서 지음 받은 수신자, 전부터 예비된 수신자, 성자 가운데 행하게 된

이방인, 할례당, 무할례당

그리스도 밖에 있던 수신자, 이스라엘 밖의 사람 수신자, 약속의 언약과 상관

전에 성부로부터 멀리 있던 수신자, 이제는 성자 안에서 성자의 피로 성부와 가까

성자에 의해 유대인과 하나된 수신자, 성자로 인해 유대인과의 담이 제거된 수신

멀리 있는 수신자, 평안을 전해들은 수신자, 가까운 데 있는 유대인, 평안을

외인, 손, 성도, 시민, 권속, 수신자

터가 된 선지자들,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수신자들,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바울의 사역 대상인 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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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

없는 수신자, 소망이 없던 수신자, 하나님도 없던 수신자

워진 수신자

자, 성자 안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한 새사람으로 지음 받은 수신자, 유대인과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려는 수신자, 원수된 것이 소멸된 수신자

전해들은 유대인,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성부에게 함께 나아가야 하는 유대인과 이방인

가는 수신자들, 성부의 처소가 되기 위해 성자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수신자들

핵심단어선한 일, 예비, 행하게 하려

그때에, 육체로, 손으로

밖에, 언약, 소망

이제는, 전에, 피로

화평, 막힌 담, 새 사람

평안, 한 성령, 나아감

이 제 부 터 , 시민, 권속

터, 세우심, 모퉁이 돌

예수의 일, 이방, 갇힌 자

주제 성자 가운데 행하게 하심

그때를 생각하라

이스라엘 밖에 있던 수신자

이제는 달라진 수신자

화평이신 예수

성부에게 나아감

수 신 자 들 의 정체

함께 지어져 가는 수신자들

그 리 스 도 의 일군 바울

요절

제목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음

이 방 인 이 었던 수신자

하나님 없던 수신자

예수 안에서 가까워진 수신자

예수 안에서 한 새사람

평안을 전하신 예수 하나님 가족

성전이 되어가는 수신자들

이방의 사도 바울

단락 030204 030506 030709 031011 031213 031415 0316 031719 032021

삼위하나님

이방인을 위한 경륜을 가진 성부, 바울에게 은혜의 경륜을 주신 성부, 바울에게 계시로 비밀을 알게 하신 성부, 비밀이신 성자,

사도들과 선지 자 들 에 게 계 시 하 시 는 성령, 다른 세대에는 알리지 않으신 성부, 이방인들도 함께 후사가 되는 성자 안

역사하는 능력을 가지신 성부, 바울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신 성부, 바울을 일군으로 세우신 성부,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성부, 이 방 인 에 게 바울이 전하는 성자의 풍성, 영원부터 감취었던 비밀을 드러내신 성부

각종 지혜가 있으신 성부, 교회를 통해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는 성부, 성부의 예정하신 뜻의 영역인 성자 안

믿음의 대상인 성자, 당당히 다가가야 하는 성부

이름을 주신 성부, 바울이 무릎을 꿇은 성부

영광의 풍성함이 있으신 성부,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주체인 성령

수신자의 마음에 계시는 성자, 사랑의 성자, 수신자를 충만하게 하시는 성부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하시시는 성부, 넘치도록 주시는 성부,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 광 받 으 시는 성자

바울

수신자를 위한 바울, 성부의 은혜의 경륜을 받은 바울, 계시로 비밀을 알게 된 바울,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바울, 수신자도 비밀을 알기 원하는 바울

성령으로 계시받은 사도 바울,

성부의 은혜의 선물을 받은 바울, 성부의 일군이 된 바울, 지극히 겸손한 바울, 이방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 성부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는 바울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는 바울

하나님께 당당히 나감을 얻은 바울, 수 신 자 에 게 명령하는 바울, 수신자를 위해 고난받는 바울, 수신자의 영광이 되는 바울

성부에게 기도하는 바울

기도하는 바울

그 리 스 도 께서 수신자의 마음에 계시기를 기도하는 바울, 수신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는 바울, 성부께서 수신자를 충만케 해주시길 기도하는 바울

성부의 능력의 역사를 따르는 바울, 구하는 것에 넘치도록 받는 바울, 축도하는 바울

등장인물

은혜의 경륜을 들은 수신자,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될 수신자

사도들, 선지자들, 다른 세대 사람의 아들들, 이방인들

성도, 지극히 작은 자, 이방인, 만물

하늘의 정사, 권세들

하나님께 당당히 나감을 얻은 수신자, 바울의 부탁을 받은 수신자, 낙심하는 수신자, 바울 고난의 원인인 수신자

하늘에 있는 각 족속, 땅에 있는 각 족속

바울의 중보기도 대상인 수신자, 수신자의 속사람

모든 성도 교회

핵심단어은혜의 경륜, 계시, 그리스도의 비밀

후사, 지체, 약속

일군, 그리스도의 풍성, 비밀의 경륜

교회, 영원부터, 예정

담대함, 당당히, 여러 환란

각 족속, 이름, 비노니

영광, 성령, 속사람, 강건

박히고, 굳어져, 알아

능 력 대 로 , 넘 치 도 록 , 영원무궁

주제 그 리 스 도 의 비밀

유 대 인 들 과 함께 된 이방인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일꾼 바울

영원부터 예정하신 뜻

바울의 환란과 낙심

아버지께 무릎 꿇음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그 리 스 도 의 사랑

하나님께 영광

요절

제목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이제야 계시된 경륜

드러나는 비밀의 경륜

교회를 통한 계시

믿음으로 담대하라

바울의 기도1

바울의 기도2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바울의 축도

Page 35: 성경공부 자료 - kaumcblog.files.wordpress.com · 창세기 2장 7절 /110 1.2. 이사야 41장 10절 /111 1.2. 마태복음 8장 3절 /112 2. 프락시스 한절 묵상 예/120

2017년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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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040103 040406 040710 041112 041314 041516 041719 042024 042528

삼위하나님

바울이 감옥에 갇히도록 헌신하는 성자, 수신자를 부르신 성부, 하나 되 게 하 시 는 성령

하나이신 성령, 부르시는 성부, 하나이신 하나님, 만유의 아버지 성부

선물을 주시는 성자, 은혜를 주시는 성부, 위로 오르신 성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는 성자, 내려오신 성자, 하늘 위에 오르신 성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성자

직분을 선물로 주신 성부, 성자의 몸을 세우려는 성부, 교회가 몸이신 성자

성자를 두신 성부, 장성하신 성자, 온전한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성부

성자까지 성장하길 원하는 성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성자,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게 하시는 성자, 분량대로 역사하시는 성자, 자라게 하시는 성자, 세우시는 성자

바울의 증거의 근거인 성자, 허망한 행함을 싫 어 하 시 는 성부,

진리의 영역인 성자, 성도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는 성자, 수신자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부, 새사람을 지으시는 성부

거짓을 싫어하시는 성부, 지체의 머리가 되신 성자, 마귀를 대적하는 성부, 죄악을 싫어하고 선을 기뻐하는 성부

바울

성자를 위해 충성하는 바울, 수신자에게 권면하는 바울,

부르심을 받은 바울, 한 하나님을 믿는 바울

분량대로 은혜를 받은 바울, 성자를 통해 선물을 받은 바울, 성자를 통해 충만한 바울

사도 직분을 선물로 받은 바울, 복음 전하는 자의 직분을 선물로 받은 바울, 성도를 온전케 하는 바울, 성도에게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바울, 그 리 스 도 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바울

성자를 믿는 바울, 성자를 아는 바울, 성자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려는 바울

성 자 에 게 까지 자라기 위해 참된 것을 하는 바울, 성자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하나님의 사람으로 행하는 바울

성자를 바로 배운 바울, 성 자 에 게 서 듣고 배운 바울, 예사람을 벗어버린 바울, 심령이 새로워진 바울, 새 사람을 입은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참된 것을 말하는 바울,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바울, 분을 품지 않는 바울, 마귀에게 틈을 주시 않는 바울, 제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바울

등장인물

바울의 권면 받는 수신자, 성부의 부르심 받은 수신자,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수신자, 서로 용납해야 하는 수신자, 힘써 하나가 되야 하는 수신자

성부의 부르심을 받은 수신자, 만유

분량대로 은혜를 받은 수신자, 성자를 통해 선물을 받은 수신자, 성자를 통해 충만케 되는 수신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성도

성자를 믿는 수신자, 성자를 아는 수신자, 성자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하는 수신자, 어린 아 이 같 은 수신자, 궤술하는 사람, 간사한 유혹하는 사람, 요동치는 수신자

성 자 에 게 까지 자라기 위해 참된 것을 하는 수신자, 성자를 머리 삼은 수신자, 성자의 도움을 입는 수신자,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는 수신자, 성자에 의에 자라나는 수신자, 스스로 세워지는 수신자

허망한 것을 행하는 이방인, 바울의 권면을 받는 수신자, 총명이 어두워진 이방인, 성부의 생명에서 떠난 이방인,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진 이방인, 감각이 없는 이방인, 방탕하고 자신을 방임하는 이방인,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이방인

성자를 바로 배운 수신자, 성자에게서 듣고 배운 수신자, 옛사람을 벗어야 하는 수신자, 심령이 새 로 워 져 야 하는 수신자,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수신자

거짓을 버려야 하는 수신자,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수신자, 서로 지체가 된 수신자, 분을 내어 죄를 짓는 자, 해가 넘도록 분을 품는 자, 마귀가 틈을 탄 자, 도적질 하는 자, 빈궁한 자,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자

핵심단어 갇힌, 부름, 하나

하나, 한 소망, 통일

분 량 대 로 , 사 로 잡 힌 자, 충만케 함

온전케 하며, 일을 하게 하며, 세우려 하심

온전, 장성, 충만

자 랄 지 라 , 연 락 하 고 , 상합하여

행하지 말라, 떠나 있도다, 감각 없는 자

옛사람, 새롭게 되어, 새사람

참된 것, 지체, 선한 일

주제 합당하게 행하라

한 소망 안에 부르심을 입음

분량대로 선물을 주신 그리스도

몸을 세우기 위한 선물들

흔들리지 않는 신앙

성장하는 교회

이 방 인 처 럼 행하지 말라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악을 행치 말고 선을 행하라

요절

제목 바울의 권면만유를 통일하시는 하나님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그 리 스 도 의 몸을 세우는 자들

그 리 스 도 의 장성한 데까지 성장

머리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

그 리 스 도 가 가르친 것

새 사람의 행동

단락 042930 043132 050102 050305 050607 050811 051214 051517 051821

삼위하나님

더러운 말을 싫 어 하 시 는 성부, 근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수신자를 인치신 성부, 수신자를 구속하실 날을 정하신 성부

악을 싫어하시는 성부, 인자와 긍휼과 용서의 성부, 성자를 통해 용서하시는 성부, 용서의 통로인 성자

성도를 자녀같이 사랑하는 성부, 수신자의 모델이 되는 성부, 수신자를 사랑하신 성자, 성도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성자, 성자를 제물로 받으신 성부

더러운 말을 싫 어 하 시 는 성부, 감사의 말을 받으시는 성부,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성자와 성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주시는 성부

진 노 하 시 는 성부, 불순종을 싫어하시는 성부

빛의 근원인 성자, 빛의 자녀들을 둔 성부, 기뻐하시는 성부, 열매를 기 뻐 하 시 는 성부

어둠을 책망하시는 성부,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성부, 성도를 비취시는 성자

성도가 세월을 아끼기를 원하는 성부, 지혜롭게 자신의 뜻을 분별하길 원하는 성부

충만케 하시는 성령, 수신자의 찬송을 받기 원하시는 성부, 범사에 감 사 받 기 를 기 뻐 하 시 는 성부, 감사 기도의 통로인 성자, 성도가 경외하길 원하는 성자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더러운 말을 하지 않는 바울,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는 바울, 성령을 근심치 않게 하는 바울, 인치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악을 버린 바울, 인자하고 불쌍히 여기는 바울, 용서하는 바울

성부의 사랑을 입은 아들, 성부를 본받는 바불, 사랑 가운데 행하는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성자처럼 자신을 제물로

더러운 말을 안하는 바울, 성도의 마땅한 바를 지키는 바울, 감사하는 말을 하는 바울,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속임에 빠지지 않는 바울, 성부에게 절대 순종하는 바울

성자 안에서 빛이 된 바울, 빛의 자녀가 된 바울, 빛의 열매를 맺는 바울, 성부를 기쁘시게 하는 바울,

은밀히 행하는 것이 없는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깨어 있는 바울, 성자의 빛을 받는 바울

주의하여 행동하는 바울, 지혜롭게 행동하는 바울, 세월을 아끼는 바울, 주의 뜻을 이해하는 바울

성령 충만 받은 바울, 찬송하는 바울, 감사하는 바울, 복종하는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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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성경공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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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받은 바울 드리는 바울

등장인물

더러운 말을 하는 자들,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수신자, 선한 말로 은혜를 끼쳐야 하는 수신자, 성령을 근심케 말아야 하는 수신자, 인치심을 받은 수신자, 구속의 날에 구속받을 수신자

모든 악독의 사람, 노하는 사람, 분내는 사람, 떠드는 사람, 훼방하는 사람, 악의를 가진 사람, 모든 악을 버려야 하는 수신자, 인자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사람, 서로 용서하는 사람, 용서해야 하는 수신자

사랑을 입은 자녀, 하나님을 본 받아야 하는 수신자, 사랑 가운데 행하는 자, 제물과 생축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수신자, 음행 하는 자, 온갖 더러운 것 행하는 자, 탐욕이 많은 자, 마땅한 것을 행하는 성도, 누추한 말을 하는 자, 어리석은 말을 하는 자, 희롱의 말을 하는 자, 감사의 말을 하는 성도, 더러운 자, 참하는 자, 우상숭배자, 기업을 받을 수신자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 불순종의 아들들, 성부의 진노를 받을 자들, 불순종의 아들들과 함께 참여하는 자들, 속임을 당하지 말아야 하는 수 신 자 들 , 불순종의 아들들과는 떨어져야 하는 수신자들

전에는 어두움이었던 수신자, 지금은 빛의 자녀가 된 수신자, 빛의 자녀처럼 행해야 하는 수신자,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하는 수신자, 열매 없는 어두움에 참여하는 자

은밀히 행하는 자들, 책망을 받는 자들, 빛에 의해 드러나는 자들, 잠자는 자들, 깨어 있는 자들, 성자가 비취는 자들

지혜 없는 자, 어리석은 자, 지혜있는 자, 세월을 아껴야 하는 수신자, 주의 뜻을 알아야 하는 수신자

술 취한 자, 방탕한 자, 성령 충만 받은 성도, 노래로 서로 화담하는 성도, 주께 찬송하는 수신자, 범사에 성부께 감사하는 성도, 그 리 스 도 를 경외하는 성도, 피차 복종하는 수신자

핵심단어오직 덕, 은혜를 끼치게, 인치심

악, 인자, 용서

본받음, 사랑 가운데 행함, 드리셨느니라

온갖 더러운 것, 성도의 마땅한 바,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

헛된 말, 하나님의 진노, 불순종

빛, 열매, 기쁘시게 은밀, 빛, 잠 행할 것, 지

혜, 주의 뜻술, 성령의 충만, 찬송하며

주제 새사람의 언어

새 사람의 마음가짐

새 사람의 모델

새 사람이 버리고 멀리해야 할 것

새사람이 주의해야 할 자들

빛의 자녀로 행하라

빛 가운데 일어나라

주의 뜻을 이해하라

성령 충만을 받으라

요절

제목성령을 근심케 말고 은혜를 끼치라

악을 버리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라

하나님을 본받아라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지 못할 자

불순종의 아들들을 피하라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

깨어 일어나라

지혜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

피차 복종하라

단락 052224 052528 052933 060103 0604 060508 0609 061012 061317

삼위하나님

아내 복종을 원하시는 성부, 교회의 머리되신 성자, 구주가 되신 성자, 교회가 복종하는 성자

남편 사랑을 원하시는 성부, 교회를 사 랑 하 시 는 성자,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성자, 교회를 자기 앞에 세우시는 성자,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성자

교회를 보양하는 성자, 성도란 지체가 붙어있는 몸인 성자, 남편과 아내를 한 육체로 만드신 성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길 원하는 성부, 부모를 공경하길 원하는 성부, 계명을 주시는 성부, 장수를 약 속 하 시 는 성부

자녀를 양육하기 원하시는 성부, 자녀 양육을 자신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는 성부, 자녀가 노엽게 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성부

두럽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 성자, 종들을 둔 성자, 마음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길 원하는 성부, 선을 행하는 대로 갚아주시는 성부

공갈을 싫어하시는 성부, 하늘에 계신 상전 성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성부

힘의 능력을 가지신 성부, 수신자를 강건하게 하시는 성자, 전신갑주가 있는 성부, 악의 영들과 싸우게 하시는 성부

전 신 갑 주 를 주시는 성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승리하길 원하는 성부, 악한자의 화전을 소멸하길 원하는 성부

바울

아 내 들 에 게 권면하는 바울, 아내에게 복종하라는 바울,

남 편 들 에 게 권면하는 바울, 남편들에게 사랑하라는 바울

수신자를 권면하는 바울,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에 감탄하는 바울, 부부간 사랑하고 경외하라고 권면하는 바울

자녀들을 권면하는 바울,

아비들을 권면하는 바울,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가르치는 바울

두렵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바울,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바울,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바울, 선을 행하는 바울, 선을 행하는 대로 주께 받을 줄 믿는 바울

상전들을 권면하는 바울, 하늘의 상전을 모신 바울, 성부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것을 아는 바울

수신자가 강건 해 지 도 록 권면하는 바울, 마귀의 궤계와 대적하는 바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우는 바울,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우는 바울

수 신 자 에 게 전 신 갑 주 를 권하는 바울,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여 승리하는 바울, 진리의 허리띠를 띤 바울, 의의 흉배를 붙인 바울,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은 바울, 믿음의 방패를 가진 바울, 악한자의 화전을 소멸하는 바울,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진 바울

등장인물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 아내의 머리가 되는 남편, 성자께 복종하는 교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위해 자신의 주는 남편,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남편

자기 육체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자, 몸의 지체들, 부모, 아내, 남편,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경외해야 하는 수신자

순종하는 자녀들, 공경하는 자녀들, 공경받는 부모, 땅에서 잘되는 자녀들, 땅에서 장수하는 자녀들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아비들, 자녀를 노엽게 만들지 말아야 하는 수신자,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수신자

두렵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종, 육체의 상전, 눈가림만 하는 종, 사람을 기쁘헤 하는 종, 그리스도의 종,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리스도의 종, 선을 행하는

공갈하는 상전들, 외모만 보이는 자, 중심이 있는 자, 하나님을 아는 수신자

주 안에서 강 건 해 져 야 하는 수신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수신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하는 수신자, 마귀, 정사, 권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는 수신자, 악한 자를 대적해서 승리해야 하는 수신자, 진리의 허리띠를 띤 자, 의의 흉배를 붙인 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은 자,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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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0618 061920 062122 062324

삼위하나님

기도의 영역인 성령,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는 성부, 중보기도를 원하시는 성부

말씀을 주시는 성부,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시는 성부, 기도를 들으시는 성부

두기고를 사랑하는 성부, 두기고의 성실의 근거인 성부,

아버지 되신 성부, 성자 예수 그리스도, 평안과 사랑의 근원인 성부 성자, 은혜를 주시는 성부, 성도들의 변함없는 사랑의 대상 성자

바울

수 신 자 에 게 기도를 권하는 바울,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바울, 항상 깨어 구하기를 힘쓰는 바울,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바울

기도를 부탁하는 바울,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기를 원하는 바울,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바울, 당연히 할 말을 전하길 원하는 바울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자 하는 바울, 두기고를 보내는 바울, 수신자를 위로하려는 바울

수신자를 축복하는 바울, 수신자를 형제로 부르는 바울, 주 예수 그 리 스 도 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바울

등장인물

무시로 기도와 간구하는 자,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 깨어 구하는 자, 항상 힘쓰는 자, 여러 성도,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

바울을 위해 기 도 해 주 는 수신자,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선포를 듣는 청중, 바울을 쇠사슬로 묶는 자들

바울의 사정을 알게 될 수신자, 바울이 특별히 보낸 두기고, 위로를 받게 될 수신자

주 안에 있는 형제들, 성자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들, 바울의 축복의 인사를 받는 수신자들

핵심단어 모든, 무시로, 깨어

복음의 비밀, 쇠사슬, 당연히 할 말

사정, 진실한 일꾼, 마음을 위로

평안, 믿음, 사랑

주제 깨어 기도하라

바울의 기도 부탁

바울의 사신 두기고 맺음말

요절

제목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담대하게 복음 전하기 원하는 바울

진실한 일꾼 두기고 바울의 축도

자, 종, 자유자, 주께 보응 받는 자들

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음의 방패를 가진 자,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 멸 하 는 자, 구원의 투구를 쓴 자, 성령의 검을 가진 자

핵심단어 복종, 머리, 구주

사랑, 교회, 거룩

보양, 합하여, 비밀

주 안에서, 순종, 공경

너엽게, 교양, 훈계

눈가림, 사람을 기쁘게, 주께 하듯

공갈, 하늘, 외모

힘의 능력, 마귀의 궤계, 전신갑주

전 신 갑 주 , 악한 날, 서기 위함

주제 아 내 들 이 여 복종하라

남 편 들 이 여 사랑하라 한 몸이 됨 자녀들아 순

종하라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종들아 순종하라

상전들아 정직하라 영적 전투 하나님의 전

신갑주요절

제목아내의 머리가 되는 남편

남편 앞에 거룩하게 선 아내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

부모를 공경하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누구나 주께 보응받는다

하늘에 상전이 계신다

전 신 갑 주 를 입으라

악한 날에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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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베소서 2:19-22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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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에베소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바울은 (편지하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로 좇아 (있을 지어다) 너희에게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평강이

(기원문)3 하나님은 찬송 (받으소서)

아버지우리 주의예수 그리스도의

(한정 분사구문)(복을 주신 분) 복을 주셨다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으로하늘에 속한

4 곧 (비교 부사절) 거룩하고(하나님은) 택하셨다 우리를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 앞에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안에서

(결과 분사구문)5 (하나님은) 예정하사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그 기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고

6 그 은혜로 (관계대명사절) (하나님은) 거저 주셨다 우리에게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그 은혜로

5. 에베소서 1-2장 문장도해 (Sentence Diagraming)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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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관계대명사절)구속을

우리가 받았으니 죄사함을그의 피로 말미암아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8 그 은혜를 (관계대명사절)그가 넘치게 하셨다 우리에게 *그 은혜를

모든 지혜와모든 총명으로

9 (결과 분사구문)(하나님이) 알리셨으니 우리에게 그 뜻의 비밀을

그 기쁘심을 따라

그 기쁘심을 (관계대명사절)(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다 *그 기쁘심을

그 안에서10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목적 부정사구문)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11 그(그리스도) 안에서 (관계대명사절)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그 안에서

(원인 분사구문)(우리가) 예정을 입었다

뜻을 따라(한정적 분사) 이(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12 이는 (목적 부정사구문)

우리로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한정적 분사) 자들인 바라던전부터*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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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로 인하여 (결과 접속부사)너희 믿음과

주 예수 안에서(이유 분사구문) 너희 사랑을

15 나도 듣고 모든 성도를 향한

16 나도 마지 아니하고 감사하기를너희를 인하여

(결과 분사구문)내가 말하노라 너희를

기도할 때에17 말하노라 (분사의 목적절)

하나님께서 주사 지혜의 정신을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우리 주

영광의 아버지께서

18 (결과 분사구문)(하나님께서) 밝히사 너희 마음의 눈을

(결과 부정사구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19 너희로 알게하시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13 그(그리스도) 안에서 (관계대명사절)

(원인 분사구문) 듣고 진리의 말씀을 너희 구원의 복음을그 안에서

(너희도) 믿어 진리의 말씀을 너희 구원의 복음을그 안에서

너희도 인치심을 받았다약속의 성령으로그 안에서

14 성령은 (관계대명사절)*성령은 되사 기업에 보증이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기까지그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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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능력을 (관계대명사절)그(하나님)가 역사하셨다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서(결과 분사구문)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그를)죽은 자들 가운데서

앉히셨다 (그를)자기의 오른 편에하늘에서뛰어나게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위에이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22 (하나님이) 복종케 하셨다 만물을그 발 아래

그리고 (등속접속사)주셨다 그를 머리로

만물 위에교회의

23 교회는 (관계대명사절)그의 몸

*교회는 이다 충만하시는 자의 충만케 만물을

만물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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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절, 하나님이) (함께 살리셨고) 너희를(양태 분사구문) 죽어 있었던

너희 허물과너희 죄로

2 그(허물과 죄) 가운데서 (관계대명사절)너희가 행하였다

*그(허물과 죄) 가운데서세상 풍속을 좇고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

영 역사하는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3 그(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관계대명사절)우리도 지냈다

전에는*그(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양태 현재 분사구문) 하고 있으면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이었다 진노의 자녀

본질상 다른 이들과 같이

4, 5 하나님이 함께 살리셨고 우리를긍휼에 풍성하신 있었던 죽어

그리스도와 허물로그 큰 사랑을 인하여

사랑하신 우리를

(삽입문) 너희가 구원을 얻은 것이라은혜로

6 함께 일으키사함께 앉히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하늘에

7 (결과 부사절)그(하나님)가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8 너희가 구원을 얻었다은혜를 인하여믿음으로 말미암아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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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것은 아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

9 (이것은) 아니다 행위에서 난 것(목적 부사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이다 그의 만드신 바(한정적 분사구문)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선한 일을 위하여

이(선한) 일 (관계대명사절)하나님이 예비하셨다 *이 일을

(목적 부사절) 우리로 행하게 하려고그 가운데서

11 그러므로 (결과 접속부사)

(명령문) 생각하라너희는 이었다 이방인

육체로그때에

(한정적 분사구문) (받은) 자들 칭함을 무할례당이라자들에게 칭하는 할례당이라

육체에 행한손으로

12 너희는 있었다그리스도 밖에그때에

(결과 분사구문) 밖에 사람이었고이스라엘 나라 밖에

(이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소망이 없으며(이더니) 하나님도 없는 자

세상에서

13 너희가 가까워졌느니라전에 이제는

(한정적 분사구문) 멀리 있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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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그리스도)는 이시다 우리의 화평

(결과 분사구문) 그는 만드사 둘로 하나를

허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원수된 것을15 폐하셨으니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목적 부사절) 그는 지으려 하심이라 이 둘로 한 새사람을(진행 분사구문) 이루시면서 화평을

16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둘을 한 몸으로하나님과십자가로

(결과 분사구문) 소멸하셨도다 원수된 것을

17 (시간 분사구문) 그는 오셔서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그(그리스도)는 전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먼 데 있는

18 (이유 부사절) 우리 둘이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나아감을저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19 그러므로 (결과 접속부사)

외인도너희는 아니오 손도

이제부터그러나 (등속 접속사)

너희는 시민성도들과 동일한

이라 하나님의 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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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간 분사구문) (너희는) 세우심을 입었고사도들의 터 위에선지자들의 터 위에

(소유격 독립 분사구문)그리스도 예수께서 되셨느니라 모퉁이 돌이

친히

21 그의 안에서 (관계대명사절)건물마다 되어간다 성전이

주 안에서*그의 안에서

(방법 분사구문) 서로 연결하여

22 그의 안에서 (관계대명사절)너희도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령 안에서*그(예수)의 안에서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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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프락시스 귀납법 Inductive Praxis

A. 귀납적 프락시스 성경연구 방법론

1. 개요

1.1. 사람 잡는 성경해석?

귀납적 프락시스 성경연구의 네 단계는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생활이다. 이 가운데 말씀읽기와 말씀묵상은 성경에 기록된 본문을 가지고 깨달음을 찾아가는 단계이다. 기록된 본문을 가지고 깨달음을 찾아가는 길이 간단할 수도 있지만 보다 정확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 전문적인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은 그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일반인 접근을 금지시킨다. 이유는 그 사건 현장을 잘 관찰하고 해석하면 범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관이 달려와서 현장에 있는 지문들을 채취하고 범인이 남긴 것 또는 떨어뜨린 것들을 찾으려고 구석구석을 뒤진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돋보기를 들여대고 찾아다닌다. 철저하게 사건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관찰을 통해서 찾아놓은 단서들, 즉 증거자료들은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 놓는다. 다음 단계는 찾은 자료들에 대한 해석이다. 발견된 모든 자료들을 일일이 해석해내야 한다. 누구의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왜 그것이 거기에 있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체계적인 방법으로 증거물들을 해석해나간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 하나가 발견되었으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를 규명해낸다. 머리카락의 주인이 밝혀졌다고 덥석 범인을 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범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수사관은 증거물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해석한 후에는 증거물들 간에 상호연관성을 파악해 나간다. 물론 당시 여러 정황들에 비추어서 그 증거물들을 해석한다. 결국 수사관은 이런 해석을 통해서 범인을 유추하게 된다. 다음 과정은 평가하는 단계이다. 수사관은 처음에 유추해낸 사람을 범인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유추하는 과정가운데 자신이 오해하거나 실수한 것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핀다.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사건 정황이나 증거들에 비추어 자신이 추정하고 있는 사람이 진범인지 평가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마지막 과정은 적용하는 단계이다. 위와 같은 평가를 통해서 범인을 확증하게 되면 수사관은 지목된 범인을 잡아들인다. 즉 입증된 해석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유능한 수사관이란 철저한 방법론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객관적인 관찰, 해석, 평가, 적용을 통해서 정확하게 범인을 찾아낸다. 만일 위와 같은 객관적 방법론 없이 증거물들을 잘못 해석하면 그 수사관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 수 있다. 더욱이 이렇게 범인으로 지적된 사람이 처형당했다면 그 수사관은 "사람 잡는 수사관"인 셈이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이 수사관의 증거물 해석에 달려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문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영혼이 미혹당하거나 타락하게 된다. 이런 잘못된 해석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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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람의 영혼을 미혹하는 "사람 잡는 선생"이 되는 것이다. 유능한 수사관처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성경을 관찰, 해석, 평가, 적용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훈련받아야 한다. 성경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한 이단 교주의 성경해석을 보자.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 (사42:1)"란 말씀에서 "동방에서 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동방의 나라 한국에서 태어난 교주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사42:25)"란 말씀은 교주 자신의 고향이 이북이었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월남할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사41:1)"는 섬나라 일본을 향해 조용하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해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주에게 미혹되어 한국 기독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왔다.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해서 거짓된 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한 이단 교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교주들에게 미혹당한 사람들은 가족을 잃거나 재산을 잃기도 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는 일들이 생겨났다. 문제의 근원은 물론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교주에게 있지만 또한 이런 왜곡된 해석들을 바르게 분별할 줄 모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성경에도 없는 것을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고는 있지만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지는 않기 때문에 엉뚱한 오해에 빠지거나 심각한 문제에 휩쓸린다. 그나마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는 사람이라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단의 그릇된 가르침에 쉽게 현혹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성경에 대한 확고한 기반이 서있지 않은 이런 기독교인들은 이단의 전도 대상들이 된다. 교회가 성경에 대한 확고한 기반이 제시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기독교 이단들은 자신의 교리가 진리라고 강조하며 더욱 활개를 치게 된다. 그 결과로 교회가 이단들에게 휘둘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교인들은 이단들에게 미혹당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들이 벌어진다. 기독교 역사가 2000년이나 되었다. 지금쯤이면 누구나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들이 제시되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학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주석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성경 원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여러 가지 다양한 과학적 비평방법론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적이지 못하다. 문제는 보통 일반인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체계화된 대중적인 해석 방법들이 아직까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본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평범한 책이다. 소수의 전문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이다. 성경에 기록에 사용된 헬라어를 "코이네(Koine)"라고 하는데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평범한 (언어)"란 뜻이 있다. 라틴어 성경 가운데 "벌게이트(Vulgata)" 번역본이 있는데 이 말 역시 "평범한, 대중적인 (책)"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결국 성경은 전문가만 읽으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읽어야 한다.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프락시스 성경공부에서 처음 두 단계 "말씀읽기"는 읽기를 강조하고 "말씀묵상"은 이해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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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왜 두려워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그 증거이다.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학교에서 성경을 공짜로 모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기드온 협회에서 성경보급 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마다 찾아와서 나누어준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내가 받았던 신약성경은 한글과 영문이 같이 인쇄되어 있어서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직하고는 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읽은 기억은 별로 없다. 지금도 어디를 가나 성경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되어있다. 호텔을 가보아도 기드온 협회에서 기증한 성경이 놓여있다. 아마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집 안에 최소한 식구 수만큼의 성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많이 보급된 것이 성경책이다. 문제는 성경이 그렇게 많이 보급되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책이 되었지만 보급된 숫자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란 사실이다. 교회를 오래 다녔더라도 성경책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성경 본문을 찾을 때면 색인을 보면서 뒤적거리는 사람을 보게 된다. 예배시간에 사회자가 성경본문을 구약의 "하박국"이라고 말하니까 성경에 "호박국"도 있었냐는 우스갯소리도 듣는다. "갈보리"라고 하니 "가을에 나는 보리"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성경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긴 한데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책이 성경이다. 그렇다고 성경을 읽으려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여러 번이나 책을 펼쳐들고 읽기를 시도해보았다. 일반 책도 별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구약 모두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는 습관이 들어있는 사람이라도 창세기를 지나 출애굽기에 접어들면서 나오는 절기, 법규정, 제사규정, 성막양식 등을 접하면서 힘들어 한다. 용어 자체부터 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용을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신약부터 읽겠다고 결심하고 첫 장을 펼치면 누가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만 나열되어 있는 족보를 대하게 된다.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지만 내용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 본문에는 전문가들이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보지만 자주 부딪히는 난해한 용어나 구절들로 인해 피곤함이 밀려들다가 졸게 된다. 졸음을 이겨나가면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내면서 읽기는 하지만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읽게 되니 결국 피상적으로 읽는 습관에 빠져든다. 피상적으로 읽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은근히 마음속에서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나름대로 성경본문으로 읽어가면서 스스로 어렵사리 뜻을 파악했더라도 쉽게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성경공부에서나 설교시간에서 해주는 설명을 들어보면 자신의 해석과 다른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이해했던 자신의 해석이 틀렸다란 자괴감과 더불어서 혼자서 아무리 성경을 해석해보아야 헛수고란 생각에 젖어든다.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설령 내용은 이해가 되었다고 해도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에 성경 읽기를 회피한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성경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는 이단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제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는 방법과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에 관련된 여러 방안들이 개발되고 제시되면서 교회가 다시 말씀위에 든든히 세워져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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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나마 성경을 회피하게 만드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성경을 끝까지 읽어나가자는 식의 "성경통독"이란 귀한 전통이 우리에게 있기는 하다.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성경을 손에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너무 통독만 강조하다보면 내용은 경시하고 읽은 횟수에만 만족하는 경향을 만들게 된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라도 성경통독은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읽은 횟수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본문의 깊은 의미를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1.3. 방법이 왜 중요한가?

"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만들어진 것 중에 하나가 "길"이다. 땅을 정복해가면서 인간은 길을 개척해 나갔고 바다를 항해하면서 바닷길, 뱃길을 만들어 나갔고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하늘 길, 항로를 만들었다. 길을 개척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꾸준히 일구어 나갔기 때문에 땅위에는 고속도로와 같은 지름길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들은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해준다. 그런데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길을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들은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 방황과 좌초를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산에서 길을 잃어버려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는 데에도 길이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개척해 놓은 길이 있다. 문제는 분명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잃고 방황하며 혼돈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길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사실 성경에 관련된 독서, 해석, 묵상 등에는 "길"이란 말보다는 "방법"이란 말을 적용한다. 성경 독서방법, 해석방법, 묵상방법이라고 한다. "방법"이라는 영어 단어는 "method"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함께" 또는 "따라서"란 전치사 meta(메타)와 "길"이란 명사 odos(호도스)가 결합해서 생긴 단어이다. 그래서 "방법"이란 영어 단어 "method"는 원래 "길로" 또는 "길을 따라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방법"이란 "길로 가는 것" 또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그곳까지 난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고 안전하다. 무슨 일이든지 성취하려면 그 일을 이루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이다.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 방법으로 언제든지 자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평생 남의 것만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방법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 두부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본다.

* 두부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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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 a: 좋은 콩 600그램을 골라서 깨끗이 씻어서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리는 동안 물을 3번 정도 갈아준다. 방식 b: 콩을 믹서에 넣고 최대한 곱게 간다. 갈아 놓은 콩을 체에 걸러 짜면서 콩물(두유)과 비지로 나눈다. 방식 c: 냄비 안에 콩물을 넣고 생수 3컵을 붓고 중간 불에서 천천히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이때 생기는 거품은 걷어내지 말아야 한다. 방식 d: 준비한 간수(만드는 법: 콩 1 kg에 식초4 큰 술, 소금 4 큰 술)를 붓고 살짝(약간만) 저어주고 기다리면 콩물이 엉겨 붙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지나면 불을 끈다. 방식 e: 엉겨 붙은 콩물을 헝겊에 붓고 짜서 콩물과 순두부로 나눈다. 순두부는 헝겊이 깔린 두부 틀에 담아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는다.방식 f: 두부 틀을 찬물에 잠시 담근 후에 두부를 꺼낸다.

위에 제시한 방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방법은 방식과 순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식이란 각 단계마다 따라야 할 자세한 내용을 말한다. "잘 짠 콩물을 냄비에 넣고서 물을 세 컵 붓고 중간 불에 데워가면서 천천히 나무 주걱으로 젓는다."는 위에서 제시한 하나의 방식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방식들은 두부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방식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순서인 것이다. 만일 위에 제시한 순서대로 하지 않고 생콩을 냄비에 넣고 끓인 다음 간수를 넣고 믹서로 간다면 원하는 두부는 구경도 못할 것이다. 방법에 있어서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순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프락시스 방법에 있어서도 방식과 순서가 중요하다. 성경 본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를 따라 해석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익혀나가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주어진 과제이다.

1.4. 프락시스 방법을 위한 기본 전제

1.4.1. 교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

주변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는 성경연구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성경 본문은 읽어보지도 않고 본문에 대한 어떤 선생, 교수, 학자 등의 설명만을 진리인양 늘어놓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성경 본문에 대한 권위보다는 학자와 같은 사람에게 권위를 더 부여한다. 둘째는 성경 외에는 본문에 연관된 어떤 자료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사실 성경은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혼자서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위에 언급한 극단적인 입장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락시스 성경연구에서는 가능하면 다른 자료들을 의존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노력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본문에 난해 용어나 난해 구절들이 있을 때에는 성경 사전이나 주석, 개론서 등을 참고할 것을 권면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다른 사람의 설명이나 해설을 의존하는 것은 금한다. 성경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 또는 자세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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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온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깃들은 손맛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성경본문을 가지고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해석을 했더라도 해석자의 신앙 자세에 따라 해석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진다. 여기서 신앙 자세라 함은 성경을 보는 입장이다. 성경을 비판의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서는 성경의 문제점이나 오류만 설명하는 해석을 듣게 될 것이다. 성경을 오래된 문서로만 여기는 사람에게서는 옛날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와 연관된 해석만 듣게 될 것이다. 성경을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으로부터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인들에게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선포하는 해석을 듣게 될 것이다. 말씀을 통한 신앙 체험이 깊은 사람은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상황 속에 들어가서 공감할 뿐 아니라 그 감동을 현시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재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성경 앞에서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성경을 경시하면 경시할수록 스스로 성경은 오류투성이의 책이라는 함정에 빠져버리게 될 것이다. 성경에 대한 경외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게 된다. 만일 성경말씀이 이해도 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태도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영은 성경을 닫게 만들지만 성령께서는 성경을 열도록 도우신다. 성경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먼저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몸에 익혀라. 그렇게 하려면 계속 반복해야 한다. 반복 과정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단조롭기만 한 손가락 훈련을 계속 반복해야만 한다. 그런 고된 훈련을 통과해야 어떤 곡이라도 훌륭하게 연주해내는 피아니스트가 된다. 성경연구도 주어진 방법론이 몸에 익혀질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성경의 깊은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 성경의 의미는 신비로워서 어제 못 봤던 것이 오늘 새롭게 눈에 띌 수가 있다. 어제 알지 못했던 송이 꿀과 같은 말씀을 오늘 맛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오늘도 성경을 붙잡고 씨름하는 훈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1.4.2. 방법은 귀납법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논리적인 방법이 있다. 그 둘은 "귀납법"과 "연역법"이다. 쉽게 말하면 귀납법은 설명을 먼저하고 나중에 결론을 말하는 방법이고 연역법은 결론을 먼저 말하고 나중에 설명하는 방법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귀납법은 먼저 사실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분석한 자료들을 평가해서 주제 또는 명제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반면에 연역법은 주제 또는 명제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그 명제가 정확한 것임을 증명하는 근거나 설명들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개, 말, 소와 같은 동물들을 가지고 귀납적 방법을 간단하게 예로 들어보자. "개가 죽었다. 말이 죽었다. 소가 죽었다. 개나 말이나 소는 모두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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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죽는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결론 즉 명제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귀납적인 방법은 먼저 사실들을 자세히 관찰한다. 그러고 나서 관찰된 것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보편적인 진리 즉 하나의 명제를 찾아낸다. 연역적 방법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모든 동물은 죽는다"란 명제를 제시한다. 그러고 나서 "개나 말이나 소는 동물이다. 개도 죽었다. 말도 죽었다. 소도 죽었다."란 설명을 덧붙인다. 연역적 방법은 먼저 명제와 같은 보편적인 진리를 제시한다. 그러고 나서 제시된 명제가 틀림없다는 것을 지지해주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직접 "귀납법"이니 "연역법"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이미 이런 두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교회 안에 설교나 성경공부에서도 이미 연역법 아니면 귀납법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보통 주일마다 듣는 제목설교나 주제별 성경공부 등은 주로 연역적인 틀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제목"이나 "주제"는 앞에서 언급한 "명제"에 해당한다. "주제별 성경공부"란 교리나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성경공부를 말한다. "구원"이 주제이면 구원에 연관된 성경 구절들을 여기저기서 찾아서 공부한다. "주일성수"가 주제이면 주일성수를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찾아서 공부한다. "주일성수"란 제목 안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란 명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주제별 성경공부 내용은 먼저 제시된 주제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것을 지지하는 성경구절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역적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의 귀에 익숙해 있는 것이 제목설교이다. 흔히 듣는 제목설교 형식을 보면 설교자가 먼저 설교제목을 제시하고 제목에 맞는 성경의 가르침이나 예화들을 여기저기서 찾아서 엮은 후에 첫째, 둘째, 셋째 문단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설교자에 따라서 제목이 짧을 경우도 있지만 짧은 제목이라도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설교에서 제목이나 또는 설교자가 의도하고 있는 주제는 앞에서 언급한 연역법에서 명제 또는 보편적 진리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주제별 성경공부나 제목설교는 주제나 제목에 맞추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내용 전개가 매우 일관성이 있고 체계적이기에 깔끔해 보일 뿐 아니라 강조점이 매우 뚜렷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연역적 방법에 의한 제목설교나 주제별성경공부가 좋은 점들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있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설교나 성경공부는 기본적으로 설교자나 교사가 성경본문을 가지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문제는 사람과 성경본문 중에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이다. 연역적 방식을 취한 제목설교나 주제별 성경공부의 문제점은 설교자나 성경교사와 같은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것이다. 이런 문제점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왜 제목은 같은데 설교하시는 분마다 설교 내용이 다를까? 왜 주제는 같은데 성경공부 책마다 내용이 다른가? 성경공부 주제가 "구원론"에 대한 것인데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성경구절들을 가지고, 심할 경우에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구원론을 가르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도권을 가진 설교자나 성경 교사들이 정해진 제목이나 주제에 맞추기 위해서 본인의 의도에 맞는 예화나 성경 구절들을 여기저기서 취사선택해서 구성하기 때문이다. 설교 내용이나 성경공부 내용을 엮는 데에 있어서 설교자나 성경교사들의 의도가 크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설교나 성경공부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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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용이 다르다고 해서 사실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주제라도 다른 내용으로 설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포용력의 기준은 설교 내용이나 성경공부 내용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성경 전체가 말하는 보편적인 가르침에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역적 방법에 의한 설교나 성경공부는 성경본문보다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심각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설교자나 가르치는 교사들이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의도대로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내용을 엮을 수 있는 것이다. 기록된 성경의 의도가 아니라 본인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이단 교사들이 사람들을 현혹할 때 쓰는 방식이다. 이단 교사들도 성경을 가지고 엮어가면서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단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특별하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성경구절들을 취사선택해가면서 엮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을 현혹하는 이런 엉뚱한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빠져드는 사람들은 보면 그 가르침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여겨 현혹되다가 점차 세뇌당해 결국 그 이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예배 순서를 보면 설교 전에 설교에 연관된 성경봉독을 한다. 그런데 설교를 듣다보면 조금 전에 읽은 성경본문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엉뚱한 설교를 듣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연역적 방법에 의한 제목설교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에 하나이다. 제목설교의 경우 설교자는 무엇을 설교할 것인지 주제를 먼저 정한다. 그러고 나서 그 주제를 지지하는 내용들을 성경 전체를 뒤져가면서 찾아서 구성한다. 그리고 성경봉독을 위해서 설교내용에 맞는 성경 본문을 하나를 선택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성경봉독 때 읽은 성경본문과 설교 내용과의 관련성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상호보완적이다. 즉 서로 잘 결합하면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귀납적 방법으로 성경 본문을 관찰 해석하고 평가 종합해서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내면 나중에 그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연역적 방법으로 제목설교나 주제별 성경공부를 엮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귀납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 연역적 방법부터 시작한다는 데 있다. 마치 수사관이 범죄 현장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범인을 단정하는 것과 같다. 성경 전체에 관한 관찰과 이해가 선행된 후에야 비로소 성경이 제시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성경본문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없이 본인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진리라고 단정하고 그것을 가르치려 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프락시스 성경연구는 먼저 귀납적 방법을 지향하고 있다. 강해설교나 성경책별 성경공부 등은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강해설교는 주어진 성경 본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진리들을 찾아내서 설명해주는 설교이다. 그래서 강해설교를 하려면 설교자는 성경본문을 붙잡고 계속 씨름을 해야 한다. 노력과 수고가 없이 성경본문을 대하면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던 진부한 내용들만 머릿속에 맴돌게 되고 그러한 내용을 전달하게 되면 청중들 역시 그런 진부한 가르침에 식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설교자나 청중 모두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경시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자의 깊은 깨달음이 수반된 강해설교를 듣다보면 청중들은 성경 안에 들어 있는 진리들을 공감하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게 된다.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방법론적 훈련이 필요하다. 먼저 주어진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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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철저하게 관찰해서 본문 안에 가려져 있었던 사실들을 찾아낸다. 찾아낸 사실들을 타당성 있게 해석한다. 해석된 내용들을 정리하고 평가하고 종합시킨다. 종합된 내용들을 함축하는 결론(=명제)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론은 해석자의 의도가 아니라 본문의 의도이다. 귀납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설교나 성경공부의 내용은 설교자나 해석자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오직 기록된 성경본문의 의도,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만 따를 뿐이다. 귀납적 방법을 따르는 성경책별 성경공부는 성경 안에 책 한 권을 선정하고 1장 1절부터 철저하게 관찰 분석 해석 평가 종합해나간다. 그렇게 각 단락이나 각 장 그리고 책 전체로 확대해가면서 해석한 내용들을 종합시킨다. 이런 과정들이 쉽지만은 않다. 처음에 해석했던 것이 나중에는 재해석을 요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책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해석임이 드러나면 버려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야 비로소 진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아래 출발한 것이 개신교회이다. 어떤 전통이나 사상보다도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고 있는 것이 개신교회이다. 그렇다면 개신교회의 설교자나 성경공부 교사들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성경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수사관이 범인을 잡아내려면 무엇보다도 사건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완전 범죄 현장이라고 할지라도 실낱같은 단서 하나, 범인이 남긴 머리카락 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돋보기를 들여다 대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설교자이나 성경교사들은 진리의 현장인 성경 본문에다가는 돋보기를 들여대지 않고 자꾸만 다른 곳에 돋보기를 들여 대고 있지나 않는가?

1.4.3. 도구는 문법분석과 문학분석

수사관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 여러 도구들을 사용한다. 수사관을 상징하는 로고를 보면 주로 "돋보기"를 사용한다. 돋보기는 사건 현장에 있는 범인의 지문이나 증거물들을 찾기 위해서 수사관이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요리사도 요리를 하려면 칼이나 그릇과 같은 도구들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훌륭한 요리사라도 도구가 없으면 아무 음식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무슨 일이라도 완성을 하려면 완성시키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도구도 필요하다. 또한 필요한 도구가 모두 준비되어 있을수록 일을 쉽게 빨리 완성할 수 있다. 고장이 난 자동차를 수리하려면 각 부품에 맞은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도구가 없어서 일을 도중에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사관의 경우도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최대한의 도구들을 사용한다. 범인이 남겼을 흔적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까지 많은 도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는 프락시스 성경연구도 성경 안에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구들을 사용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문법적 분석과 문학적 분석이라는 도구이다. 성경연구에서 문법분석과 문학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언어, 글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글의 법칙 즉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이나 신약을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던 성경 원어는 주로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했던 히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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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와 그리스 사람들이 사용했던 헬라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어떤 신비한 천상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기록 당시 일반 사람들이 사용했던 평범한 언어로 기록된 것이다. 성경에서 처음에 기록된 것을 "원본"이라고 하고 그 원본을 보고 베껴 쓴 것들을 "사본"이라고 하고 원본이나 사본을 보고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된 것을 "번역본"이라고 한다. 성경은 원본이 처음으로 기록된 이후에 수많은 사본들과 번역본들이 만들어졌다. 만일 히브리어나 헬라어 같은 원어로 기록된 성경만 있다면 원어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읽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출간되어 온 것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 역시 이런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지구상에 언어들은 각 언어가 갖는 글의 법칙 즉 문법이 있다. 각 언어의 문법구조들을 비교해보면 아주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면에서는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사의 과거 현재 미래 등을 구분하는 시제구분이나 문장 안에서 주어 동사 목적어 등으로 구분하는 문장성분들은 언어들이 갖고 있는 공통 요소들이다. 이런 비슷한 문법요소들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들 간에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 번역본들은 "개역 성경전서, 개역개정 성경전서, 공동번역, 표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이다. 영어 성경의 경우는 한글보다 번역본들이 더 많다. 한 성경인데 위와 같이 여러 번역본들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서로 다른 문법체계" 때문이다. 만일 히브리어 문법체계와 한글의 문법체계가 완전히 같으면 그렇게 많은 한글 번역본들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들 간에 문법체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 번역들이 생겨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번역본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이나 한글 성경이나 모두가 고유한 글자로 기록되어 있고 그 글자들은 글의 법칙인 문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 각 절마다 들어 있는 모든 단어들은 글의 법칙에 따라서 배열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글의 법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태초가 하나님을 천지에 창조하시니라." "천지가 하나님을 태초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에 태초를 천지하시니라."

위에 세 문장은 창세기 1장 1절에 있는 모든 단어들을 사용하여 문장을 만든 것이다. 누구나 이 문장들을 읽어보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단어들을 빠짐없이 사용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단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장성분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배열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단어만 안다고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문법적인 기능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문법적 기능을 무시하고 번역을 하거나 해석을 하면 별의별 오해를 일으키게 된다. 창세기 1장 1절 히브리어 원문을 보자. 원문 단어 배열 순서대로 설명하면 처음에는 부사구절인 "태초에"가 나오고 두 번째는 "(그가) 창조하시니라"란 서술동사가 나온다. 세 번째로 동사의 주어인 "하나님"이 나온다. 네 번째로 동사의 목적어인 "천지" 즉 "하늘들과 땅"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구분된 것들을 한글 문법에 맞추어서 번역하면 개역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태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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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된다. 성경은 이렇게 문법 즉 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글의 법칙에 대한 전이해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어이고 다음이 주어의 행위를 설명하는 서술동사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와 서술동사는 한 문장에서 뼈대를 이루는 중심이고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이 뼈대에 살을 붙인 보조적인 것들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주어는 "하나님"이고 서술동사는 "창조하셨다"이다. 이런 주어와 동사에 근거해서 본다면 본 절의 주제는 "하나님의 창조"이다. 성경 전체에 비추어서 관찰해본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성경 안에 첫 번째 책, 첫 번째 장, 첫 번째 절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 안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행동)들 가운데 왜 하나님의 창조를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창조하셨다"라는 동사 하나만 살펴보자. 서로 다른 언어들 안에서도 동사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동사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와 동작을 했는지 아니면 동작을 받았는지를 가리키는 "능동태" 또는 "수동태"가 그것이다. "창조하셨다"란 한글로 된 동사도 과거시제와 능동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창조하셨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바라"도 과거에 해당하는 "완료형(Perfect)"이고 능동태에 해당하는 "칼(Qal) 변화"를 취하고 있다. 과거 능동태 형태를 취한 "창조하셨다"란 동사를 묵상해보면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시제에 관한 의문인데, 도대체 과거 언제 하나님께서 창조행위를 하셨다는 것인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본 절은 "태초에"라는 창조의 시기를 밝히는 구절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로, 능동태에 연관된 의문이다. 태초에 누가 무엇을 창조하셨다는 말인가? 역시 이 문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본 절은 창조의 주체인 “하나님”이란 주어와 "천지를"이란 목적어를 제시하고 있다. "창조하셨다"란 표현은 창조사건을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만일 창조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면 "창조하셨을까?"라고 기록했어야 할 것이다. "창조할 수 있었다"도 아니다. "창조해야만 했다"도 아니다. 그냥 거침없는 선포로 "창조하셨다"이다. 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문법분석이다. 그런데 두 개 이상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단락, 문단, 편, 책 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문학적 분석이다. 문학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그들의 언어에는 서로 공유하는 유사한 문학적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 양식은 이야기 형식, 법전 형식, 역사 기록 형식, 시 형식, 예언 형식, 편지 형식 등과 같은 것들이다. 한국의 역사 기록과 구약의 역사 기록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때 왕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즉위 25년 되던 해인 계해년 겨울에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의 행적을 기록한 "열왕기하"를 보면 요시야왕 즉위 18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된 율법책으로 인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22-23장). 조선왕조실록이나 열왕기를 보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해를 연관된 왕이 즉위한 이후로 계산해서 제시한 후에 사건의 전말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열왕기를 기록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나라에서 살았었는데 기록한 역사 문서를 보면 비슷한 문학적 양식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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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편지(=서신)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문학적 분석에 있다. 일반적으로 편지 양식을 보면 보내는 발신자와 받는 수신자를 처음에 밝힌다. 오늘날에는 편지 봉투에 발신자와 수신자를 적는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종이가 흔치 않았다. 오늘날과 같은 편지 봉투를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런 당시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초대교회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한 종이에다 그것도 맨 앞부분에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에베소서 1장 1절 한글 성경을 보면 "...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신약 헬라어 원문을 보면 "편지하노니"라는 구절이 없다. 번역한 사람이 첨가한 것이다. 에베소서의 첫 절은 "... 바울은 ...자들에게"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날 영어 편지 양식에서 쓰고 있는 발신자 "...로부터(From)", 수신자 "...에게(To)"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즉 "... 바울은"은 편지를 보내는 발신자이고,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인 것이다. 첫 절만 보더라도 에베소서가 편지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의 편지라고 하는 로마서의 끝부분(롬 16:21-23)도 오늘날 일반 편지의 맺음말에서 볼 수 있는 "문안인사"가 적혀있다. 이와 같이 성경 안에는 일반 문학 양식 중에 하나인 편지 형식이 들어있다. 구약의 "시편"은 문학양식으로 "시"에 속한다. 시편 23편 1절을 문학양식을 고려하지 않고 직역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다. 나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번역은 시편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특징을 묵살한 번역이다. 그래서 한글 성경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시적인 느낌을 살리는 표현을 쓴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 뿐 아니라 성경을 읽고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도 이런 문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시편에 기록된 "찬양하라"라는 문장이 감격에 북받쳐 터져 나오는 시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경험하는 차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결국 성경 안에도 이야기 형식, 역사 기록 형식, 시 형식, 예언 형식, 편지 형식 등과 같은 문학적 틀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책들을 "율법서, 역사서, 예언서, 시편, 잠언, 서신서"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성경 본문을 이해할 때에는 정확한 문법적 분석도 중요하지만 위와 같은 문학적 양식 분석도 매우 중요하다. 문법적 분석과 문학적 분석을 통해서 성경본문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락시스 성경연구에서는 문법적 분석 능력과 문학적 분석 능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관찰

2.1. 관찰의 정의와 목적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가까운 곳에 산타페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은 화랑이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많은 여행객들이 예술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이곳으로 몰려든다. 화랑에 들어가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그림 옆에 붙어있는 가격표에 무척 관심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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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런 사람들은 한 작품에 한국 돈으로 10억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보고 매우 놀란다. 그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엄청난 금액에만 인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작품 앞에 상당히 오래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그림의 대상, 모양, 위치, 색상, 재료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본다. 더나가서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작품 만들어낸 작가의 심정을 공감하며 감동하기도 한다. 화랑에 들어가서 가격표만 보는 사람들은 작품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다양하게 살펴보며 감동할 줄 아는 사람들이 참으로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사전을 보면 "관찰"의 의미를 "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 관찰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관찰이란 대상을 주의 깊게 보는 능력 또는 기술이다. 주의 깊게 본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읽는 것과 관찰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성경 본문을 관찰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 문장들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 하나하나를 의식의 한 부분으로 연결시킨다. 성경을 대충 읽어가는 사람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관찰을 하는 사람의 눈에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을 쉽게 읽다보면 오해(誤解)를 초래할 수 있는 부분도 철저하게 관찰하면 보다 정확한 해석 즉 정해(正解)를 얻을 수 있다. 로마서 1장1절을 읽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로 되어 있다. 이 문장을 관찰해보면 중요한 것들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종"이란 용어 뒤에는 "주인"이 감추어져 있다. 주인 없는 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구절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주인"이란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말이다. "사도"란 용어 안에도 "보낸 분"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사도"란 명칭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바울의 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았다"와 "택정함을 입었다"란 동사들 속에도 숨겨져 있는 것이 있다. 바울은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바울을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택정함 즉 선택을 받은 것이다. 결국 누군가 바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누가 바울을 불렀고 선택했는지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런 문제는 가능한 한 본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사도로 불러 세우시는 분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갈릴리 출신 제자들을 사도로 불러 세우신 것처럼 말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선택함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파하라고 사람을 선택(=택정)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로마서 1장 1절은 표면적으로 볼 때 초점이 바울에게 있지만 내면적으로 볼 때는 본 절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에 따라 신분과 사역이 결정되는 단순한 종일뿐이다.

2.2. 관찰의 조건

2.2.1.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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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을 관찰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의지"이다. "의지"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굳은 마음"을 일컫는다. 무언가를 발견해내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성경 안에 들어있는 진리를 찾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집 안에서 결혼 예물로 받은 귀한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은 집안 어딘가에 두었거나 아니면 떨어진 반지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반지를 찾겠다는 마음이 곧 의지인 것이다. 반지를 찾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장롱을 열어보고 옷 주머니를 뒤지며 반지를 둘 만한 모든 장소들을 철저하게 살핀다. 그래도 안 나오면 바닥까지 샅샅이 찾아본다. 평상시에는 생각 없이 보았던 방바닥이지만 찾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보면 바닥에 있는 먼지까지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의지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의지를 가지고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감추어진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성경 내용을 읽어보면 그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미 눈에 익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니 성경을 읽으려고만 하면 싫증나고 지루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성경은 수면제와 같다는 말을 한다. 읽을수록 잠이 오니까 하는 말이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는 진리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통해서 질병에서 치유를, 절망에서 소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이미 경험하기도 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이런 진리 찾아보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읽는 것을 "관찰"이라고 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본문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진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도 한 말씀 하셨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이 말씀은 곧 “관찰하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란 뜻도 된다. 성경 안에 한 본문이라도 관찰하면 할수록 계속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어제 안보이던 것이 오늘 다시 관찰하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같은 본문을 다음날 관찰하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성경 한 본문 안에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와 같은 진리가 들어 있다. 그래서 같은 한 성경 한 본문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온 것이다. 관찰에는 지름길이 없다. 의지를 가지고 계속 관찰해야 한다. 마태복음 1장 족보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들이 열거되어 나온다. 열거된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고 읽어나가면 곧 지루함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읽어나가면 그 안에 들어 있는 특이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같은 여인들의 이름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 족보에는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여인들이 보통 여인들이 아니라 모두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는 여인들이란 것이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근친상간한 여인이다. 라합은 몸을 파는 창녀였다. 룻은 남편과 사별하고 보아스와 재혼한 여인이다. 밧세바는 다윗에 의해 간통당한 여인이다. 이런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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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정확성

훌륭한 의사였던 윌리암 오슬러 경(Sir William Osler)은 의과대학생들 앞에서 항상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강의시간에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약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병 안에는 분석을 위한 샘플이 들어 있습니다. 환자가 무슨 병에서 고통을 받는지 결정하려면 샘플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한 손가락을 그 약병 안에 들어 있는 샘플에 담갔다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이 약병을 돌리겠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내가 했던 것처럼 그 내용물을 맛보면서 환자 진단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배우십시오." 병은 앞줄에서부터 돌아갔고 학생들은 각자 손가락을 병에 넣어 내용물을 찍어서 맛보았다. 병이 되돌아오자 오슬러경은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정확하게 관찰했다면 내가 두 번째 손가락을 병에 넣었다가 세 번째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댔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환자를 다루는 의사에게 있어서 정확성은 매우 중요하다. 환자의 상태를 얼마만큼 정확하게 진단하느냐에 따라서 환자의 병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진단한다는 것은 곧 정확한 관찰을 한다는 것과 같다. 만일 잘못된 관찰을 하게 되면 환자를 오진하게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에게도 정확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본문을 빈틈없이 정확하게 관찰한다면 본문이 의도하고자 했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부정확한 관찰을 한다면 본문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글 개역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란 문장이 나온다. 나는 이 절을 읽을 때 "세계"를 단순하게 "세계(世界)" 즉 "세상(world)"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절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진 새로운 세상"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신약성경의 첫 책, 그것도 첫 부분에 기록된 말씀이기에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열리는 세상을 선포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세계(世界)"가 아니라 "세계(世系)"였다. "세계(世系)"는 "여러 세대(世代)를 기록한 계보(系譜)"를 줄인 한자 단어였다. 한마디로 "족보"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이해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대충 읽다보니 오해를 한 것이다. 마가복음 5장 38절을 보면 "훤화(喧譁)"란 용어가 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은 그 집 안에서 사람들의 훤화함과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이 헌화하며 즉 꽃을 드리며 울고 통곡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사람이 죽어서 꽃을 드리며 울고불고 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사실 사람이 죽으면 장례 때에 꽃을 드리는 "헌화(獻花)"는 자주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나중에 성경 본문을 자세히 보니 "헌화"가 아니라 "훤화"로 기록되어 있었다. "훤화하다"란 단어는 "떠들썩하다, 법석을 떨다, 소란하다"란 의미였던 것이다. 개역성경은 한문을 자주 사용하던 때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한문으로 조합된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개역 성경 본문에는 "훤화"처럼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는가 하면 "세계"처럼 요즘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한문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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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 결국 성경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오해하고 넘어가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성경을 관찰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정확성이다.

2.2.3. 인내 미국에서 황금을 찾겠다고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가던 골드러시 때에 있었던 일이다. 다비(R.U. Darby)의 삼촌 역시 땅 파서 부자가 되어보자는 "황금병(gold fever)"에 걸려 서부로 갔다. 목숨을 걸고 그는 땅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황금에 대한 욕심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몇 주 동안 땅굴을 파내려가자 드디어 광맥이 드러났다. 광석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기계가 필요했다. 삼촌은 조용히 광산을 덮고서는 메릴랜드(Williamsburg, Maryland)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삼촌은 친척들과 이웃들을 불러놓고 노다지를 발견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그들은 함께 돈을 모아서 필요한 기계를 구입해서 광산으로 보냈다. 삼촌과 다비는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서 일을 시작했다. 캐낸 광석 한차를 제련소에 보냈다. 광석을 제련한 결과 콜로라도에서 가장 좋은 광산 중에 하나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광석 몇 차만 더 캐내면 빚도 갚고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땅을 파 내려가면서 다비와 삼촌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광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금광석이 나오지 않았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계속 파내려 갔다. 그러나 여전히 광맥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기계는 고물상에다 몇 백 달러에 팔아넘기고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고물상 주인은 광산 기술자를 불러서 측량을 부탁했다. 광산을 들여다본 기술자는 다비가 중단한 지점으로부터 3피트 즉 약 1미터만 더 파 들어가면 금맥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1미터 정도 팠더니 다시 금맥이 드러났던 것이다. (pp. 21-22, Think and Grow Rich, by Napoleon Hill [1938], at sacred-texts.com)

다비와 삼촌에게 "1미터만 더" 파고 내려가는 인내만 있었으면 그들의 꿈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하나로 "오래 참음"이 있다. 성령의 열매인 "인내"는 그냥 참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성경을 관찰하기 위해서도 역시 "인내"가 필요하다. 성경 안에는 땅속에서 캐내는 황금보다 더 귀한 진리들이 무궁무진하게 감추어져 있다. 이 진리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 속으로 파고 들어가다가 도중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다비와 그의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 성경 본문을 보았을 때에는 마치 안개에 덮인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본문 안에 진리가 있는 지 의심이 생길 수가 있다. 안개가 덮여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나중에는 안개가 걷히고 앞에 길이 훤하게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성경 본문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의심이 일어나지만 인내를 가지고 계속 본문을 응시하면 갑자기 드러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너무 성급하게 찾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진리는 매일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값비싼 금이나 진주를 발견하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들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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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다. 순금을 얻으려면 금광 깊은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노력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값비싼 진주를 얻으려면 바다 속 깊은 곳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물며 당신이 금이나 진주보다 귀한 성경의 진리를 찾는다면 웬만한 노력이나 모험 정도는 감당해 낼 수 있는 인내가 요구되지 않을까?

2.2.4. 기록 미국 콜로라도 주 남서쪽에 "메사 베르디(Mesa Verde)"라는 인디언 유적지가 있다. "메사"는 산 정상이 평원으로 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베르디"는 "푸르른"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산 정상을 힘겹게 올라가면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이곳에 약 1000년 전부터 거의 700년 동안 인디언들이 살았었다. 이곳 박물관에는 이들이 사용하던 여러 가지 독특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예로 조그만 돌 가운데 바늘구멍보다 작은 구멍을 뚫어서 실로 꿰어놓은 것들이 있다. 마치 구석기 시대 사람들처럼 돌이나 뼈를 가지고 도구로 만들어서 살았던 이 사람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이런 정교한 구멍을 뚫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떨어지면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높은 벼랑에 집을 지어놓고 살았다. 왜 거기다 집을 졌는지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벼랑에 있는 집을 오르내릴 수 있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일 이 인디언들이 남긴 기록이 있다면 이들의 생활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말 즉 언어는 있었겠지만 기록할 수 있는 글 즉 문자는 없었다. 결국 여기 살던 사람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의 삶이나 역사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글로 기록해둔다는 것은 곧 역사를 보존하는 것과 같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관찰 해석 평가 적용 등을 해나가면서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을 하는 엔지니어들에게 "10년 주기(Ten year cycle)"이란 말이 있다. 기계를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해결한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그 문제가 잊혀 질 때가 되면, 약 10년쯤 되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처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나가면서 자세하게 그 원인과 해결법을 기록해놓는 것이다. 즉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을 가졌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속담에 "흐릿한 잉크가 선명한 기억보다 낫다(The palest ink is better than the best memory)"란 말이 있다. 성경 연구를 하기 원하면 기록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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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A. 이론(아래 내용은 “김기천 목사의 영성독서법”이란 제목으로 2011년부터

2년간 기독교타임즈에 연재된 내용 중에 발췌한 것입니다.)

1. "잃어버린 영성을 찾아서"

루터는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란 구호를 외치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회복은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데에 있다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바뀐 세상이 되었습니다. 알맹이는 성경본문이고 껍데기는 학문, 교리, 신조, 간증, 예화 등입니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껍데기를 알맹이로 착각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잠시 껍데기를 내려놓고 알맹이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본질인 말씀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외적인 성장과 외적인 활동에 치중하면서 내적인 성숙을 상실했습니다. 기독교의 깊은 영성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 본문보다는 교리별 주제별에 따른 성경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교리나 주제에 따라 성경본문을 여기저기에서 짜 맞추어 놓은 가르침에 익숙해졌습니다.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가기 보다는 성경 안에 이 책 저 책에서 필요한 구절들만 뽑아서 엮어놓은 가르침에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방식의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 여러 교단들이 주장하고 있는 서로 다른 교리들이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른 큰 문제는 성경을 직접 대면하여 스스로 진리를 찾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받아먹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보다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지금은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성경을 펼쳐놓고 집중해서 천천히 본문을 읽어가면서 그 내용들을 묵상하고 진리를 찾아내려는 수고는 마치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런 수고를 누군가 대신해주고 그저 그 결과만 알려주기를 원합니다. 이런 수동적인 크리스천들은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의 참된 능력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경을 여러 번이나 통독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단들이 성경본문을 들이대며 설명을 할 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단순히 쫓아내는 일에만 급급합니다. 기독교의 참된 회복은 오직 말씀으로 돌아감에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묵상 수련법이 있었습니다. 이 전통적인 묵상 수련법을 "렉찌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불렀습니다. Lectio(렉찌오)는 라틴어로 "독서"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Divina(디비나) 역시 라틴어로 "신성한, 영적인"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렉찌오 디비나"는 "신성한 독서" 또는 "영적인 독서"란 말입니다. 깊은 영성을 위해 성경 본문을 신성한 마음으로 읽어가는 수련법이기 때문에 "렉찌오 디비나"를 한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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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독서"라고 부릅니다. 이 "영성 독서"의 기원은 구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63절을 보면 이삭은 아내가 될 리브가를 처음 맞게 되는 그 시각에 "묵상을 하기 위해서"(ad meditandum) 들에 나가 있었습니다. 시편 1장 2절을 보면 복이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 묵상하는"(in lege eius meditabitur)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깊은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meditation)하던 구약의 "영성 독서"의 전통은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전승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수도원 내에서 실천되어 왔습니다. 본래 기독교인들은 매일 성경 본문을 읽고, 그 본문을 묵상하고, 묵상을 통해 깨달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 후에,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권위를 상실하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영성 독서"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쉽고 편한 것만 쫓는 세상에 물들어서 성경 안에 진리를 밝혀주는 "영성 독서"(Lectio Divina)의 수고를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2. "수도원 전통"

5세기, 로마가 망해가고 외부 침략이 빈번했던 시기에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던 존 카시안(John Cassian, 주후 360-435)은 유럽 땅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사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에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평생 의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참 의미를 깨달으려면 수도사들은 금식과 철야를 하며, 더욱 깊은 영성을 계발해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고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카시안은 성경 안에는 놀라운 영적 실재들이 인간의 언어에 의해 베일로 가려져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영적 실재를 경험하는 깊은 영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경을 평생토록 연구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영성독서"(Lectio Divina)의 본질을 지적한 것이지요. 이런 카시안의 수도원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성 베네딕트(St. Benedict, 주후 480-543)였습니다. 그래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영성을 위한 성경연구는 수도원 규율에 중심이었습니다. 수도원 내에서는 하루 일과 가운데 여러 번 시간을 정해놓고 의무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규율(Officium Divinum)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개신교인들에게는 잃어버린 전통이지만 영성 훈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요. 수도사들은 기도를 마치고 다음 기도가 시작되기 전 중간에는 시편에 곡을 붙여서 노래로 부르곤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경말씀에 곡을 붙인 찬송가를 불렀다고 해야겠지요. 또한 수도원에서 식사시간이 되면 식사하는 동안 한 사람이 성경말씀을 큰 소리로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매 순간마다 성경 말씀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당시 수도사들이 읽었던 성경이라야 오늘날 성경의 일부분만 수록된 사본들이었습니다. 아직 인쇄 기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책을 만들려면 원본을 보고 손으로 베껴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성경책을 한글로는 "사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manuscript"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손"이란 라틴어 manus(마누스)와 "기록물" 또는 "책"이란 scriptum(스크립뚬)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성경 원본들을 모두 구하기도 힘들지만 66권 전체를 손으로 베껴 쓴다는 것 역시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많은 수도사들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과 구약이 합본된 성경을 가질 수도 없었고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수도사들이 사본들을 통해서만 성경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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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 절기에 따라서 연관된 성경구절을 뽑아서 만든 성구집(Lectionary)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인 교부들이 쓴 글 안에도 인용된 성경구절들이 있었습니다. 수도원 규율에 따라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성경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성경읽기, 성경묵상 등을 통해서 수도사들의 마음속에 쌓인 성경의 가르침이나 형상들은 수도사들의 영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 것입니다. 비록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 전체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있는 사본들, 성구집, 교부의 글들을 매일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읽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영성독서"(Lectio Divina)는 성경말씀만이 아니라 교부들의 글들과 같은 경건서적들도 포함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팔만 뻗으면 읽을 수 있는데 과연 우리의 신앙 선배들처럼 소중하게, 진지하게, 영성을 위해서 성경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3. "수도하는 크리스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道)를 닦(修)는 수도자(修道者)"가 되는 것이지요. 수도원에 계신 분들만 수도자가 아니라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 사는 분들도 기독교인이라면 도를 닦는 수도자가 되어야 하지요. "수도자"라 하면 일반적으로 세속과 떨어진 조용한 장소에서 오직 도를 깨닫기 위해서 생활하는 사람을 말하지요. 사실 도를 깨달으려면 세속을 떠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지요. 만일 그런 방법밖에 없었다면 기독교는 깊은 산속이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성장해왔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한적한 광야나 사막을 찾으시기보다는 당시 상업적, 정치적으로 분주했던 갈릴리 지방 큰 도시들이나 수도 예루살렘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서도 도를 닦는 수도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예수님에 의해서 소개된 기독교는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물리적인 기준에 의해 제한받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오래전 구약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이란 한 장소에서 직접 대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글자로 기록된 모세의 율법책이나 전통적으로 지켜온 관습들이 있었지만 그것에도 제약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왔습니다. 오히려 율법이나 관습에 붙잡혀서 사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은 사람 속 즉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참 기독교인인 셈이지요.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속에 감추어져 있는 마음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훌륭하게 지어 놓은 성전에 들어 가 있더라도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나는 신앙인이 아니지요. 겉으로 허술해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 있더라도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거기가 성전이요 천국인 셈이지요. 신앙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경험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과거에 경험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험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이런 생활로 인도하는 수련법이 곧 영성독서(Lectio Divina)입니다. 영성독서는 오늘날처럼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과학적 역사 비평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내가 생활하고 있는 장소에서 성경 말씀을 하나의 실체로 경험하려고 추구하는 수련법입니다. 영성독서를 했던 수도사들은 묵상을 통해서 성경 속 현장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불붙는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신을 벗고 있는 모세 곁에 같이 서 있는 자신을 보려고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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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설교를 하실 때 듣고 있는 청중들 가운데 끼어있는 자신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피를 흘리고 계신 예수님 발밑에 서 있는 자신을 보려고 했습니다. 영성독서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자 뒤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찾기 위해 수도하는 수련법이지요. 그래서 영성독서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고요한 빛 아래서 또렷이 보려는 관조 또는 조명 (觀照, contemplatio)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 문자에서 영으로 승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4. "영성독서의 체계화"

유대교는 문자로 기록된 율법 구약을 중시했지요.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 역시 기록된 말씀인 신약을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요. 책 뿐 아니라 필기도구가 흔치 않던 당시에 사람들은 말씀을 주로 암기했습니다. 말씀을 종이에 기록할 수 없으니까, 물론 당시에는 종이도 없었지만, 마음에 기록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말씀이 마음에 있으니 온 종일 말씀을 생각하고 살게 된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생활하니 말씀이 삶의 등불이 되고 빛이 되었던 것입니다(시 119:105). 이것이 말씀묵상입니다. 곧 영성독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말씀을 두고 다닙니다. 설교들 듣고 교회를 나서면서 교회에다 두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날 들었던 설교 본문이나 내용을 교회 나서기가 무섭게 잊어버립니다. 물론 설교 내용을 적는 사람도 있지만 적은 노트를 접으면서 말씀도 접어 둡니다. 쉽게 잊어버린다는 말이지요. 말씀을 읽기는 열심히 읽는데 읽은 후, 성경책을 덮은 후 얼마 안 되어 읽은 내용을 잊어버립니다. 아마도 이런 습관은 현대병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요즘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요. 심지어는 자기 집 전화번호나 자기 핸드폰 전화번호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전화번호가 핸드폰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도 못 느끼고 그래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지요. 기독교 초기에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 사본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려고 즉 기억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요. 그리고 마음에 품은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활하는 영성독서의 삶을 살았지요. 그러나 구이고 2세(Guigo II)가 영성독서(Lectio Divina)를 이론화시키기 전까지 영성독서에 대한 어떤 확립된 체계나 형식은 없었습니다. 구이고 2세는 12세기경에 카르투지오(Carthusian) 수도회 속했던 수도사로서 영성독서를 체계화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구이고 2세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 부원장(prior)이었습니다. 같은 수도원에서 전임 부원장을 역임했던 사람 역시 동명이인으로 구이고(Guigo)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영성독서를 체계화시킨 사람은 "구이고 2세(Guigo II)"라고 부릅니다. 이 구이고는 "수도사들의 사닥다리(the Ladder of Monks)"란 글을 통해서 영성독서가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다음에 구이고의 글을 직접 소개하려고 합니다. 구이고의 글은 야곱의 사닥다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이 벧엘이란 곳에서 땅에서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를 봅니다. 거기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지요. 구이고가 소개하는 영성독서의 사닥다리는 모두 네 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계단은 독서(Lectio)의 계단입니다. 성경 본문에 있는 구절이나 말씀을 집중하여 읽는 과정입니다. 둘째 계단은 묵상(Meditatio)의 계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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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셋째 계단은 기도(Oratio)의 계단으로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도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마지막 넷째 계단은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의 계단으로 하나님의 평화 속에 안식하는 과정입니다.

5. "수도사들의 사닥다리"

구이고 2세의 글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를 풀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개에 앞서 용어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 보면 "평화" "화평" "평강"이란 용어들이 나옵니다. 일단 사용된 단어들이 다르기 때문에 원어도 서로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구약에 나오는 이 단어들은 모두 히브리어 "샬롬"이란 한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같은 단어인데 한글로는 세 가지 다르게 번역해 놓았다는 것이지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신약 헬라어로 "에이레네"라는 한 단어인데 한글로는 "평화" "화평" "평강"로 번역해 놓았지요. 번역자들이 영문을 한글로 번역을 할 때는 원어의 의미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에 사용될 단어들의 의미도 고려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영어 단어 "meditation"을 번역할 때 "묵상"이나 "명상"이란 단어를 둘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meditation이 기독교 문서에서 언급된 경우라면 번역자는 기독교적 용어를 선택해야 하고 불교 문서에서 언급된 경우에는 불교적 용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미 기독교 안에서는 "명상"이란 용어보다도 "묵상"이란 용어가 정착되어 있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묵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영어 단어 "contemplation"도 "관조“ 또는 ”조명" 또는 "관상"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 아직 정착되지 이런 용어는 그 의미를 살펴 번역합니다. 같은 한글이라도 적용되는 한문에 따라 뜻이 다르게 쓰이는 것이 한글의 특성입니다. "관상"이란 한 단어도 "형상을 본다"는 의미로 "관상(觀象)"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철학적인 면에서 "생각을 본다"는 의미로 "관상(觀想)"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번역자로서 "contemplation"을 "하나님의 빛 아래서 고요한 마음으로 말씀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관조“(觀照)" 또는 ”조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글 "수도사들의 사닥다리" 서문입니다.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는 영성독서(Lectio Divina)에 대한 체계적 설명으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전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이고가 사랑하는 형제 게르바세(Gervase)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형제님,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먼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먼저 편지에 당신은 나에게 편지를 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저는 답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에게 맞는 영적 훈련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저보다 당신은 경험에 의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의 생각들을 판단해주시고 수정해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먼저 당신에게 우리의 첫 성과를 모아서 드려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바로의 속박으로부터 은밀하게 뽑아낸 젊은 나무로부터 맺어지는 열매들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그 젊은 나무는 돌감람나무처럼 혼자서 자라고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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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정원사처럼 그 가지를 능숙하게 잘라낸 후에 그것을 나무줄기에 접붙이셨지요. 그리고 나서 그 나무를 잘 정돈된 나무들 가운데 옮겨 심으셨지요." "손을 바쁘게 놀리며 일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저는 우리 수도사들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그날 갑자기 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되는 네 가지 단계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네 단계란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그리고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였습니다. 이 네 가지는 수도하는 사람들이 올라가야 하는 사닥다리의 계단들과 같습니다. 그 사닥다리를 밟으면서 수도사들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모두 네 계단 밖에 되지 않지요. 그렇지만 그 사닥다리의 길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사닥다리의 아래 끝은 땅 위에 닿아 있고 그 위쪽 끝은 구름을 뚫고 천상의 비밀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 사닥다리의 계단들은 각각 "독서" "묵상" "기도" "관조 또는 조명"란 서로 다른 이름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 네 계단들은 순서로 볼 때나 특성으로 볼 때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누가 그 네 계단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나 기능이 무엇인지, 그 계단들이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계단들 간에 서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그 계단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깨닫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수고와 노력을 쏟아 부을 지라도 나중에 그것들로 인해 얻게 될 도움과 위로에 비하면 그런 수고와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독서는 성경을 신중하게 읽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온 힘을 성경 본문을 읽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상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본문 안에 숨겨진 영적 진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악한 것을 쫓아버리고 선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헌신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관조 또는 조명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영원한 사랑의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네 가지 단계를 설명했으니 지금부터는 각 단계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독서는 은혜를 받은 생활의 달콤함을 갈망합니다. 묵상은 그것이 어디 있는지 감지합니다. 기도는 감지된 그것을 찾아냅니다. 관조 또는 조명은 찾아낸 그것을 맛봅니다. 다르게 설명하면, 독서는 음식 전체를 입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은 그것을 씹으면서 잘게 부수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그것의 맛을 추출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관조 또는 조명은 기쁨과 신선함을 주는 그 맛을 보는 것입니다. 독서는 밖에서 하는 작업입니다. 성경본문을 집중해서 눈으로 읽는 작업이지요. 묵상은 중심에서 하는 작업입니다. 읽은 본문의 내용을 마음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지요. 기도는 우리가 갈망했던 말씀의 달콤함을 찾아줍니다. 관조 또는 조명은 우리가 발견한 그 달콤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영성의 기쁨을 줍니다. 이것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가능한 예들 가운데 하나를 다음에 들어보겠습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독서의 기능에 관한 설명입니다. 나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읽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짧은 성경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감미로운 맛을 주는 말씀입니다. 마치 입안에 들어 있는 포도송이와 같지요. 이 포도송이와 같은 말씀을 맛볼 수 있는 입이란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다양한 맛들을 감지해 낼 수 있는 다양한 감각기관들을 갖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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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입을 말합니다. 영혼은 입 안에 들어온 위에 말씀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영혼은 스스로 이 말씀에는 선한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을 맛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마음"을 향해 돌아서야 합니다. 마치 방탕한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돌아서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본 말씀에 "청결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어떤 것이 마음의 청결함인지 찾아 내야합니다. 청결한 마음이야 말로 진실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마음의 청결함" 그것을 지닌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상급이 주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성경 안에 여러 곳에서 칭송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 더욱 충분한 이해를 하기 원하면서 영혼은 입 안에 들어온 포도송이와 같은 말씀을 물고 씹기 시작합니다. 마치 농부가 포도즙을 내기 위해서 틀에 포도를 넣고 기계를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은 합리적인 사고력을 돌려가면서 마음의 청결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그것을 가질 수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묵상의 기능에 관한 설명입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부지런히 묵상하면, 묵상은 겉에 드러난 문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별로 중요치 않은 것들에 묶이지 않습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 시작합니다. 문제의 핵심 안으로 들어가서 각 요점들을 철저하게 파헤칩니다. 묵상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몸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것도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몸"이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악한 행실을 없애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손만 씻는 것은 부족합니다. 우리 마음이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로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 구약에 한 선지자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시 24:3-4)"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서 그 선지자가 다음과 같은 기도를 통해 얼마나 열심히 마음의 청결함을 갈망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 51:10)"와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또한 묵상을 통해서 동방의 성자라고 일컫는 욥이 이런 마음의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조심했는지 생각합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무심코 헛된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 욥은 자신의 눈을 닫았습니다. 묵상을 통해 욥이 청결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앞에서 묵상을 통해서 이미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다음으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에 대해 묵상합니다. 그렇게 소망했던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기쁨인지 묵상합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아름다운 주님의 얼굴, 더 이상 비천하지도 않고 거절당하지도 않는 그 얼굴을 말입니다. 이 땅에 그분의 어머니였던 마리아가 그에게 입혀준 땅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분의 하늘 아버지가 그의 부활의 날, 영광의 날, "갚아주신(시 18:24)" 그 날에 면류관을 쓰시고 불멸의 두루마리를 입으신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실현되면 얼마나 큰 풍성함이 임하는지 구약의 선지자는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라고 고백합니다. 당신은 작은 한 알의 포도로부터 얼마나 많은 즙이 나오는지, 작은 불꽃 하나로부터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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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불길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란 하나의 작은 쇠조각이 묵상이라는 모루 위에서 망치질을 통해서 어떠한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사실 숙련된 전문가의 손 안에 들어가면 그것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우물이 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무지한 초보자입니다. 그 깊은 우물에서 물 몇 방울만이라도 길어 올려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조차 저에게는 힘에 부칩니다. 비록 영혼에 붙기 시작한 불이 작기는 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그 불꽃들을 부채질하면 곧 말씀이 줄 기쁨에 대한 암시를 받게 됩니다. 아직 말씀의 맛을 보는 것은 아니고 깨어진 향유 옥합에서 나오는 향기를 통하여 주는 암시일 뿐입니다. 묵상을 통한 이 암시는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의 청결함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추론하게 합니다. 이런 영적 달콤함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묵상은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열정을 불태웁니다. 그런데 그 달콤함은 자신의 방법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방법으로 찾으면 찾을수록 더 목이 타오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영적 달콤함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그것을 경험하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지혜를 통하여 얻게 되는 진리의 깨달음은 영혼을 기쁘게 하며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줍니다. 주님은 여러 사람들이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주님 자신에게 남겨두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분이 세례를 주는 분이시다(요 1:33)"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분이 우리의 영혼에게 지혜의 달콤함을 주시는 분이시며, 지식을 달콤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고 말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소수에게만 영혼을 위한 지혜를 주십니다. 이 지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만 할당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기도의 기능에 관한 설명입니다.

묵상을 통해서 영혼은 소망하는 깨달음이나 체험의 달콤함을 스스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더 낮추게 되고 하나님을 더 높여드리게 됩니다. 스스로 겸손해지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에 전념하게 됩니다. "주님, 마음이 청결해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독서를 통해서 묵상을 통해서 무엇이 마음의 청결함인지 진실로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어떻게 그 청결함을 이룰 수 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져야 저는 조금이라도 주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주님 저는 마음으로 오랜 동안 묵상해왔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구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제가 구해왔던 것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온종일 저는 묵상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풍성하게 알기 원하는 소망 즉 열정의 불을 키워왔습니다. 주님은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의 빵조각을 저에게 떼어주시면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뵈면 뵐수록 더욱 뵙기를 갈망합니다. 주님은 더 이상 글자란 껍질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글자의 의미 속에 숨어 계십니다. 제가 주님 뵙기를 간구하는 것은 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온전히 주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여인처럼 보잘 것 없는 저 역시 죄를 고백합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그러니 저에게도 주님 제가 소망하는 것을 응답하시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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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내려 주시옵소서. 최소한 천상의 비의 한 방울이라도 말입니다. 저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줄 그런 빗방울 말입니다. 저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관조 또는 조명의 효과에 관한 설명입니다.

영혼은 사랑에 불타는 그런 말들로 주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의 처지를 주님께 알립니다. 그러한 사랑의 표현으로 신랑을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찾습니다. 신랑이 되신 주님의 눈은 의로운 자에게 머무릅니다. 그분의 귀는 부르짖는 영혼의 외침 뿐 아니라 그들이 기도하는 깊은 내용까지 듣고 계십니다. 주님은 갈급한 영혼이 하는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간에 그 영혼을 만나주기 위해서 달려오십니다. 갑작스럽게 돌파하고 들어와서 영혼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천상의 달콤한 이슬을 뿌려주고 가장 귀한 기름을 부어주시며 상한 심령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주님은 영혼의 목마름을 만족시켜주시며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잊게 해주십니다. 주님은 영혼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게 하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그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영혼을 천상의 달콤한 이슬에 취하게 하시며 영혼을 깨우쳐주십니다. 몸의 어떤 기능들이 육적인 욕구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영혼 역시 이성의 모든 능력을 마비시키는 육적인 욕구에 지배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적으로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위와 같이 고양된 관조 또는 조명의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육적인 욕구들은 정복당하게 되고 영혼으로부터 뽑혀나갑니다. 결국 육체가 성령을 거역할 수 없게 되면서 전적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렉찌오 디비나"(Lectio Divina)라는 영성독서를 최초로 체계화시킨 사람은 12세기 수도사였던 구이고 2세입니다. 구이고는 그의 편지인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를 통해서 깊은 영성에 이르는 네 단계로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를 소개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칼빈(Calvin), 웨슬리(Wesley)로부터 현재는 "이 책을 먹어라(Eat This Book)"라는 책을 쓴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에게까지 크게 영향을 끼친 이 영성독서(Lectio Divina)의 기본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구이고가 쓴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은 영성독서의 고전인 구이고의 글을 소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구이고는 마태복음 5:8절을 가지고 독서의 기능, 묵상의 기능, 기도의 기능, 관조 또는 조명의 효과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을 통해서 갈급해진 영혼은 기도하게 됩니다. 영혼이 기도를 통해서 깊이 부르짖게 되면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기름을 부어 주시며, 회복시켜주십니다. 이것이 관조 또는 조명의 단계입니다. 다음은 구이고의 글입니다.

"그러면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표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탄식과 눈물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기서 위로라는 말은 아주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용하는 세상적인 위로와는 다른 것입니다. 탄식과 연관된 위로나 눈물과 연관된 기쁨은 하늘로부터 넘치도록 흘러내리는 것들입니다. 탄식과 눈물은 겉모습의 순결함을 보여주며 또한 내적으로도 깨끗해졌다는 표시입니다. 마치 유아 세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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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물로 씻는 것은 동시에 아이의 마음속을 씻어내는 것을 상징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영성독서에서는 그 반대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마음속이 정결하게 씻어지면서 겉으로 탄식과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눈물은 복된 것입니다. 그 눈물은 우리 속에 들어있는 더러운 것들을 씻어 냅니다. 그 눈물은 우리 안에 타오르는 죄악의 불을 꺼버립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뻐할 것임이요. 내 영혼아, 애통하면서 너의 신랑을 찾아라. 네가 애타게 기다렸던 주님을 포옹하라. 기쁨의 폭포수에 취하라. 신령한 젖에서 나오는 위로의 꿀과 우유를 마셔라. 네 신랑이 가져다 준 놀라운 상급과 위로는 곧 흐느낌과 눈물이다. 이 눈물들은 주님이 네게 마시라고 권하는 자비로운 잔이다. 이 눈물들이 밤낮으로 너의 빵이 되도록 하라. 인간의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빵, 꿀보다 더 단 빵이 되도록 하라. 주 예수여,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을 기다리며 쏟는 이 눈물들은 너무 달콤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대면하게 될 때 갖게 될 기쁨은 얼마나 더 달콤하겠습니까? 당신을 위해서 탄식하는 것이 그렇게 달콤하다면, 당신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얼마나 더 달콤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은밀한 중에 들어야 하는 이런 것들을 입 밖에 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일상용어로 표현하려고 합니까? 그런 것들을 체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 곧 체험의 책에서만 그런 것들을 아주 분명히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험의 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곧 스승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책들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입니다. 마음 속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해설이 없다면 문자적인 의미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6. 영성독서와 큐티의 차이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2)". 구약 시대에 말씀 묵상은 신앙생활의 기초였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근거는 복음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었습니다. 이런 확신은 복음을 마음속에 새겨 넣는 말씀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말씀 묵상을 체계화시킨 사람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중세 수도사였던 구이고였습니다. 그래서 영성독서(렉지오 디비나: Lectio Divina)를 말하려면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를 아는 것이 기본입니다. 구이고는 네 개의 계단으로 된 사닥다리를 비유로 깊은 영성에 들어가려면 말씀읽기(Reading), 말씀묵상(Meditation), 말씀기도(Prayer), 말씀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n) 등의 네 단계를 소개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나 천주교에서 나름대로 여러 형태의 영성독서 방법들을 개발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앞으로 가능하면 구이고의 원칙에 근거해서 영성독서를 하는 실재적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 내에서 알려진 묵상방법은 "경건의 시간"이라고도 하고 이 명칭에 대한 영어 "Quiet Time"의 첫 글자만 따서 "큐티(QT)"라고 불립니다. 큐티에 관련된 책들을 들여다보면 관찰(Observation), 해석(Interpretation), 적용(Application)이라는 기본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주어진 성경본문을 다양한 각도에서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 "관찰"이며, 분석된 것들을 가지고 그것이 기록되던 당시에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해석"이며, 해석된 것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적용"입니다. 사실 큐티의 기초가 되는 이런 이론은 "귀납적 성경연구(Inductiv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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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입니다. 귀납적 성경연구의 고전은 본인이 1984년도에 번역 출간한 트레이너(Robert A. Traina)의 "귀납적 성경연구(Methodical Bible Study)"입니다. 이 책에서 트레이너는 관찰, 해석, 평가, 적용, 종합 등의 다섯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고백컨대 본인이 목회하는 데에 실재적인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의 저자이며 새들백 교회 목사인 릭 워렌(Rick Warren)이 무명 시절에 영향을 받은 책입니다. 감리교와 연관이 있는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Asbury Seminary)에서는 "귀납적 성경연구"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큐티의 기초가 되는 귀납적 성경연구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보는 안목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성독서와 큐티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접근 방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영성독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영성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성경을 읽는 독자와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독자가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성경 본문은 더욱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반면에 큐티는 정확한 관찰과 해석을 강조합니다. 큐티가 본래 철학적 논리인 귀납적 방법에 기초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를 제대로 하려면 글의 법칙인 문법 이해와 더불어 상관되는 여러 지식들이 전제됩니다. 물론 요즘은 쉽게 하는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7. 말씀묵상은 경건한 상상이다(막 3:7-13)

"상상력(Imagination)."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 임멜트(Jeffrey Immelt)가 회사의 혁신을 위해서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아래 내용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성경본문 막 3:7-13절을 풀어 쓴 것입니다. "오늘 따라 예수님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산으로 올라가자고 하신다(13절). 늦은 아침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계실 때에 사방팔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다(8절). 사람들 가운데 특히 병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자꾸 밀어붙이니까 예수님은 점점 바다 쪽으로 밀리셨다. 바닷물이 발을 적실만큼 밀리자 하는 수 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작은 배를 준비시켰다(9절).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문들이 이미 온 동네에 퍼져 있었다(8절).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동네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으면 붙잡아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도 했다. 물론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 발로 예수님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온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기만하면 꺼꾸러져 소리를 질러댔다(11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부르짖는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아님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의 소리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귀신의 소리를 듣자마자 다가가셔서 '조용하라'며 꾸짖으셨다(12절). 이유는 그 귀신이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11절). 예수님은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때로는 내려와 병을 고치시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보내신 주님은 갑자기 사람들을 향하여 산으로 올라가시겠다고 하신 것이다(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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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비교하기 위해서 개역 성경 본문은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13)또 산에 오르사 ... "

영성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에 근거한 "경건한 상상"입니다. 성경은 일어났던 사건을 글로 적어 놓은 책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글 속에 들어 있는 사건을 상상을 통해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상상(Imagination)은 문자를 "형상(Image)"으로 만드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능력입니다. 글 속에 들어 있는 각각의 내용을 상상하면서 형상화(形象化)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묵상(Maditatio)"입니다. 이와 같은 묵상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캐냅니다. 묵상을 통해서 말씀 안에 들어 있는 풍성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가지고도 성경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형상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상이 만들어지든지 그것이 본문에 근거하지 않거나 신앙에 근거하지 않으면 망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독서에서는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대하는 경건을 강조합니다.

8. 열두제자 임명(막3:13-19)에 관한 말씀묵상

산으로 오르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특히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나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 그랬다. 그나마 여기 갈릴리 해변까지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오긴 했지만(10절) 더 이상 산위까지 데려다 달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께 다가가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서 고침을 받아보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벌써 예수님은 산길을 따라 앞장서서 오르고 계셨다(13절). 워낙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지라 예수님은 무리들을 배려하시면서 걷는 속도를 늦추셨다. 산 정상 가까이 이르자 꽤 넓은 장소가 나타났다. 예수님은 그 장소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거기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적당한 바위를 찾으시더니 그 위에 걸터앉으시고는 길게 늘어져 올라오는 사람들의 행렬을 내려다보셨다. 예수님과 함께 이미 올라온 사람들도 흘러내린 땀을 씻으며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쉬고 있었다. 마지막 사람이 다 올라올 때까지 예수님은 무언가 큰 결정을 하신 듯이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제 모두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주목하며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제자가 될 자들을 부르리라!" 첫 말씀이었다(13절). 예수님의 결심은 다름 아닌 제자들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 동네를 찾아 들어가 전도도 하고(14절) 권능을 받아 귀신들도 쫓아낼 것이다(15절)."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람들 가운데 여러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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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나타났다. 집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생활해야한다는 말씀을 듣자 머릿속에 가족, 직장, 사업 등에 대한 염려가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왠지 제자가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심취된 사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에 매료된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산꼭대기까지 따라 올라온 사람들이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이들의 귀에 "시몬(16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요한(17절), 안드레(18절)"란 이름이 들렸을 때는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이미 제자답게 예수님을 곁에서 수발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후에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18절), 가룟유다(19절)" 등 그다지 익숙지 않는 이름들이 호명될 때에는 기대감 또는 두려움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호명된 사람들은 주저 없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다(13절). 이들은 이미 무언가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모두 열두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예수님 앞에 제자로서 당당하게 섰다(14절). 마가복음 3:13절은 예수님이 오르신 곳을 "산"이라는 글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자로 기록된 "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을 가진 실체입니다. 예수님이 초능력을 부려 산에 오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무리들과 함께 산으로 오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묵상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영성독서를 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형상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더 나가서 기록된 글자만 보려 하지 말고 글자 뒤에 들어있는 실제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영성독서에서 말씀묵상(Meditation)입니다.

9. 탕자의 비유(눅15:11-32)에 관한 말씀묵상

"아버지 저의 몫으로 물려줄 재산을 미리 주십시오.(12절)" 건장한 둘째 아들이 던진 말이었다. 어느 아버지고 이런 말을 들었을 때에 선뜻 재산을 내어줄 아버지가 있겠는가. 아들의 갑작스런 요구를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쳐다보기만 하고 말이 없으셨다. 아들은 단호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아들이 먼저 일어나 나갔다. 아들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아버지에게 요구할 것이다. 자신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요구할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과수원, 밭, 소떼, 양떼 등 재산이 풍족하게 있었다. 가족만으로 그 모든 것들을 관리하기에 역부족이라 많은 품꾼들을 두고 있었다(17절). 아버지의 두 아들 모두 이런 집안일들을 열심히 거들었다(25절). 매사에 신중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첫째 아들과는 달리 둘째는 고집도 세고 행동도 과격했다. 둘째는 무슨 일이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둘째는 일을 맡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완성을 해냈다. 둘째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이런 둘째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에게는 내심 걱정이 있었다. 둘째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엉뚱한 고집을 부릴 때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재산을 나눠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안된다고 할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하면 보나마나 과격한 성격에 빈손으로 무작정 집을 나가버릴 것이다. 그럴 경우 철도 안든 아들이 험한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앞선다. 더 걱정스런 것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평생을 밖에서 보낼지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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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결국은 아들을 잃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을 바꾸어 재산을 나누어 줄 경우를 생각했다.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은 집을 나갈 것이다(13절). 그러고는 얼마 안가서 재산을 탕진하게 될 것(13절)이라고 확신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탕진 후 고생길에 들어서면서(14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분명 아버지 집을 기억하고(17절)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24절). 결국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요구하는 대로 재산을 나누어주는 길을 택했다(12절). 위에 글은 영성독서(Lectio Divina)에서 말씀묵상(Meditation)을 한 것입니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형상화시키는 단계가 말씀묵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을 하는 사람은 성경본문을 위와 같이 형상화 시킨 후에 반드시 해야 될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형상화된 장면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병행되지 않으면 말씀을 형상화 시키는 작업은 마치 소설을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독자에게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성경을 거울삼아 독자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탕자의 아버지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도 있고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를 걱정케 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지요. 기도하는 심정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본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10. 시편 23편에 관한 말씀묵상

성경은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얼굴이 보입니다. 영성독서를 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의 참 모습을 들여다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첫 설교는 "회개하라"라는 말씀이었지요. 회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라고 거울과 같은 말씀,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묵상을 하려면 글과 글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글로 된 성경말씀은 한글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은 한글로 기록된 성경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글을 이해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글을 기록하거나 읽기 위해서는 사용된 단어들에 대한 이해와 그 단어들을 배열하는 글의 법칙 즉 문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당시에 사용되었던 글의 법칙을 따라 성경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경우에도 번역자는 한글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결국 성경을 읽는 사람은 글에 대한 법칙을 잘 알면 알수록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윗의 시편 23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글의 법칙에 의한 본문 이해를 설명하고 또한 어떻게 본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1절만 묵상해봅니다. 글의 법칙에 의해 살펴본다면 이 문장은 두 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절 즉 주절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절입니다. 그래서 1절의 중심은 "내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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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함이 없으리로다"에 있습니다. 먼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살펴봅니다. 이 문장은 다윗을 가리키는 "내가"란 주어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동사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동사구의 시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구절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본 문장을 풀어쓰면 "나 다윗은 앞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 표현 속에는 다윗의 현재 모습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현재 다윗은 부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언급하고 있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은 이후 계속되는 문장 구석구석에 들어 있습니다. 현재는 그런 참담한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곧 해결될 것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또한 본 문장은 다윗의 심경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현재는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이 문제는 곧 해결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런 확신을 본 시편의 맨 첫 문장에서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성독서를 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구절을 읽으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좌절시키고 있는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비추어 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확신에 찬 어조로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선포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나약함,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 확신이 과연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Trunk(트렁크)"란 영어 단어의 뜻을 아십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는 "(짐을 넣는) 가방, (코끼리의) 코, (사람의) 가슴, (나무의) 줄기, (자동차) 짐칸, (혈관의) 대동맥"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 하나를 놓고 볼 때는 모두가 답이 되지만 문장 안에서 다른 단어와 결합되면 그 의미는 제한되고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면 문장 안에서 "Trunk"란 단어가 "자동차"와 연결되면 자동차 트렁크가 되며 이외 다른 의미들은 모두 틀린 말이 됩니다. 영성독서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글의 법칙 즉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단어들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 호에서는 1절에 있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문장을 문법적인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습니다. 이 문장에서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동사구절의 시제를 파악함으로 다윗의 현실적인 문제를 들춰낼 수 있었습니다.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기 때문에 다윗은 앞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미래적인 표현을 문장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문법 이해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번 호에는 단어나 구절들의 상호 관계의 중요성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란 문장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문장은 뒤에 있는 주절에서 드러난 것처럼 다윗이 미래에 대해 확신하게 된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절입니다. 여기서는 "여호와, 나, 목자" 등 세 가지 단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각 단어들 자체만 놓고 보면 끝도 없이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여러 논문들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해석과 설명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다윗"을 가리킵니다. 다윗이란 인물을 볼 때도 출생부터 죽음까지 변화무쌍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목자"라는 단어만 가지고 볼 때 우리는 "선한 목자, 악한 목자, 성실한 목자, 게으른 목자"등 다양한 목자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볼 때 위와 같이 수도 없이 많은 설명들을 할 수 있겠지만 시편 23편 내에서 각 단어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그 의미들이 제약되고 분명해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나"라는 다윗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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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서 본문에서 여호와는 다윗이 믿는 하나님이 됩니다. 당시에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들이 있었지만 다윗의 신은 분명 "여호와"라고 밝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구절과 연결되면서 다윗의 부족함을 해결해주는 하나님이 됩니다. "나"는 다윗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가 "여호와"와 연결되면서 시편 23편은 공동체의 고백이 아니라 다윗 개인의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나"는 전 인생 가운데 어느 한 기간의 다윗을 말합니다. 이 "나"는 뒤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구절과 연결되면서 다윗의 일생 가운데 가장 힘들고 부족했던 시기의 다윗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목자"란 표현에서 "나"는 "목자"와 연결되면서 다윗은 자동적으로 "양"의 모습으로 변환됩니다. 여기서 "양"의 모습은 뒤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란 구절을 통해 살찌고 건강한 양이 아니라 지치고 피곤한 양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목자"는 이런 지치고 피곤한 양을 돌보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목자"가 곧 "여호와"라는 것이지요. 일생 가운데 가장 힘들고 지쳐 있는 다윗을 목자와 같이 돌보아 주는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라는 믿음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란 구절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1절에서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양으로 암시된 다윗은 몹시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양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목자의 모습이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는 문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푸른 초장"이란 사람에게 필요하다기보다는 양에게 필요한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본 문장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형상은 여호와와 다윗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목자와 양의 모습입니다. 물론 목자는 여호와이고 양은 다윗을 가리킵니다. 본 문장 안에 "푸른 초장"이란 장소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목자와 양의 형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목자는 양을 "푸른 초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풀밭을 의미하는 "초장"은 양들이 먹을 양식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초장"을 수식하는 "푸른"이란 단어를 덧붙였습니다. "푸른"이란 색깔이 풀에 적용될 때 그런 풀은 영양이 풍부한 기름진 풀, 질적으로 좋은 풀을 가리킵니다. 또한 "푸른"이란 색깔이 초장에 적용될 때는 양적으로 풍성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국 "푸른 초장"이란 기름지고 풍성한 풀들이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목자가 이런 곳으로 양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여기서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사실은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푸른 초장이 어딘지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본문은 목자가 양떼들을 데리고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비유한 양 한 마리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 양은 현재 영양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목자는 그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푸른 초장"입니다. 그래서 양을 그곳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목자는 양의 현재 상태를 알고, 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목자이며,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족함을 실제로 채워주는 목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이시며"란 동사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인도하시며"라고 써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도하시며"란 동사 대신에 "누이시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이시며"란 동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눕히는 동작을 하는 주체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양은 동작을 받고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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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흔히 넓고 기름진 푸른 풀밭에서 양들이 뛰어놀다가 스스로 누워서 쉬는 것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본문을 "그가 누이시며"라고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누우며"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분명히 "그가 누이시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눕히는 장면이 이 동사에 들어 있습니다. 마치 병들고 지쳐서 걷지 못하는 아이를 엄마가 품에 안고 침대로 가서 눕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결국 "누이시며"란 단어 안에는 현재 병들고 지쳐서 걸을 수조차 없는 양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이 표현을 통해 다윗은 현재 스스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로 약하고 지친 상태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쳐 쓰러져버린 양과 같은 다윗을 목자 되신 여호와께서 품에 안고 푸른 초장으로 가셔서 거기에 눕혀놓으시는 장면이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란 문장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입니다. 말씀묵상에서 중요한 것이 단어, 구절, 문장, 등의 상호 관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본문에서 "쉴만한 물가로으로 인도하시는도다"란 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누가 누구를 인도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 문장을 관계시키면 주어 역할을 하는 "그가"와 목적어 역할을 하는 "나를"이란 인칭대명사들이 이 문장과 관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도하는 주체인 "그"는 누구이며 인도받는 대상인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해야 합니다. 앞 문장에서 밝힌 대로 "그"는 "목자"이고 "나"는 "양"입니다. 물론 목자는 여호와이며 양은 다윗이지만 본문에서는 아직 양과 목자의 모습으로 상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목자가 양을 인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자와 양의 위치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앞장서고 누가 뒤에서 따르는지 규정해야 합니다. 양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인 이해가 본문 해석에 기초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인도자가 앞장서고 인도받는 대상은 뒤에서 따릅니다. 목자는 가야할 곳, 쉴만한 물가가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에 앞장서고 갈 길을 모르는 양은 뒤에서 따르는 것이 당연한 위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양을 위해서 쉴만한 물가가 있는 곳으로 앞장서 가시며 따라오라고 하는 목자가 되신 여호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동사는 한 장소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도착 장소는 물이 있는 "물가"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 물은 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한 물입니다. 더욱이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곳은 "풍랑이 일어나는 위험한 물가"가 아니라 "물결이 잔잔한 쉴만한 물가"입니다. 우리는 "쉴만한 물가"라는 구절을 통해서 그만큼 양을 배려하는 목자의 마음이 읽을 수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장면 안에는 양이 자기 발로 인도하는 목자를 따라가는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양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양이 걸을 힘도 없어서 목자가 그 양을 품에 안고 푸른 초장까지 가서 누이시는 앞 문장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이 푸른 초장에서 회복된 것입니다. 회복된 후에는 목자의 인도에 의해 쉴만한 물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2절에서 우리는 목자의 두 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회복시키시는 목자의 모습과 인도하시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여호와는 지치고 쓰러져 있는 양에게는 품에 안고 회복시켜주시는 목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스스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양에게는 앞장서서 쉴만한 물가로 길을 인도해주시는 목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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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현실적으로 부족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1절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로다"란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족함을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치 양이 당한 문제를 목자가 해결해주는 것처럼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양인 다윗의 부족함을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다윗은 2절로 접어들면서 회복과 새로운 삶을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묵상하면서 일어납니다. 양은 풀도 없는 광야 한 복판에 지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양은 자신의 발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그 양을 찾아 온 것입니다. 양은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목자의 긍휼한 눈빛을 경험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품에 안을 때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든든하게 자신을 감싸는 목자의 팔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양을 품에 안고 푸른 초장에 도착하기까지 포근하게 감싸는 목자의 가슴을 경험했습니다. 푸른 초장에 도착하자 품에서 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목자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양이 푸른 초장에서 기름진 풀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는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기뻐하시는 목자의 웃음을 경험했습니다. 양이 회복되자 양을 부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의 인자한 음성을 경험했습니다. 1절에서 미래에 대한 다윗의 확신이 2절에서 현실적 경험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즉 소망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게 될 미래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경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로 전환되면서 일어난 것이지요. 다윗은 묵상을 통해서 자신을 양의 모습으로 전환시킨 후에 목자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묵상의 목적은 바로 이와 같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있습니다. 2절에서 양의 모습을 통해 목자의 사랑을 경험하던 다윗은 감정이 벅차오르자 3절에서 갑자기 본인 실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즉 양의 모습에서 다윗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전환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은 양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인간 다윗의 영혼을 말합니다. 다윗은 2절에서 양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목자의 행동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3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그것은 다윗과 같은 사람의 영혼을 다시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2절에서 목자 되신 여호와께서 양인 다윗을 인도한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3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다윗과 같은 한 인간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행위인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과 2절에서 여호와를 목자로 자신을 양으로 묵상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고 회복시키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3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영성독서의 목적은 이와 같이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나의 현실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용된 단어들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절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란 문장을 보면 "내"란 대명사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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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명사와 "소생시키다"란 동사가 서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별 생각 없이 순식간에 읽어나갈 수도 있지만 영성 독서를 하는 사람은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상호 연관성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먼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문장에서 "소생시킨다"는 것은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이 동사 안에는 회복시키는 행위가 들어 있고, 회복이 되는 대상으로서 다윗의 영혼과 회복시켜주는 주체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몸이 회복된다고 말할 때는 이전에 몸이 약했었거나 병이 들어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다윗의 영혼이 회복된다고 말할 때는 이전에 영혼이 병들은 것처럼 약해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절에서 목자가 품에 안아야 할 정도로 걷지도 못하던 양의 모습과 본 3절에 "소생시키시고"라는 동사가 암시하고 있는 이전 모습이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는 목자가 지쳐 쓰러진 양을 누이셨다고만 기록했지 양이 회복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 3절에 들어와서 다윗은 "소생시키시고"라고 표현을 통해 분명하게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본 문장에서 "나를 소생시키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소생시키는 것과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나"라는 것은 전체적인 표현이고 "나의 영혼"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표현입니다. 즉 "영혼"이라는 것은 나에게 속한 한 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것은 다윗 자신 전체라기보다는 "영혼"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 쫓겨 다녔을 때에 배고픔을 겪기도 했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으며 머물 곳이 없어서 블레셋으로 도피해 시글락이란 마을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아멜렉을 쳐서 우양을 노략질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궁핍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작 다윗에게 필요로 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회복시켜주시기보다는 다윗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만큼 다윗에게 있어서 회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아름 아닌 다윗의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이 영혼을 회복시켜주는 장면이 창세기 2장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상상해보면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흙덩어리에 불과한 사람이었지요. 하나님이 그 흙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령"이나 시편 23편 3절에서 "영혼"이나 모두 "네페쉬"란 히브리 단어를 한글로 다르게 번역한 것 뿐 입니다. 결국 "생령"이나 "영혼"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독서에서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문장 안에 있는 단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문장이 다른 문장들과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의미를 보완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 영성독서 명칭과 실재

수도사 구이고가 제시한 "렉지오 디비나"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경험케 하는 방법입니다. 생활 속에서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 구이고는 "말씀읽기(Lectio), 말씀묵상(Meditatio), 말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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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tio), 말씀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라는 네 개의 단계를 제시했지요. 이런 방법을 라틴어로 렉지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렉지오(Lectio)는 "독서"라는 말이고 디비나(Divina)는 "거룩한, 신적인, 신성한"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렉지오 디비나는 "거룩한 독서, 신성한 독서, 신적인 독서"라는 라틴어로 여기서는 "영성독서"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성독서를 하는 실재적인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경건의 시간, 성령도움 기도 영성독서 즉 렉지오 디비나를 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는 것과 유사합니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렉지오 디비나(Lectio Divina)란 용어가 의미하듯이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서 읽는다기보다는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 읽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그 말씀 속에 감동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기 전에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시간 헌신, 30분 동안 4계단, 장소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영성독서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드리는 결단입니다. 영성독서가 깊어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처음에는 30분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30분 동안에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 등 네 단계를 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한 후에 경건한 자세로 말씀을 읽는 "말씀읽기"를 합니다. 읽은 후에 본문 내용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넣는 "말씀묵상"을 합니다. 이어 마음에 새겨진 말씀을 다시 마음의 눈으로 읽어가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씀기도"를 드립니다. 끝으로 말씀기도를 통해 듣게 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생활하는 "말씀관조 또는 조명"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런 영성독서를 하기 위한 적절한 장소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 조용한 골방이면 좋겠습니다. 새벽기도를 하시는 분들은 조용한 새벽시간에 교회에서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 인도 하에 새벽기도 시간에 온 교우들이 함께 하셔도 좋겠지요.- 본문 선정 시간과 장소가 결정되면 다음에는 영성독서를 위한 본문을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 뽑아낸 중요한 암송구절들을 매일 읽어나갈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구약이나 신약 가운데서 한 책을 선정해서 매일 한 단락씩 읽어나가는 것을 권합니다. 그렇게 하면 매번 단락을 선택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연결된 본문 내용을 접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경우에는 신약 복음서 가운데 한 책을 선택해서 기독교의 기초인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영성독서에서 하나님 말씀은 단지 선택된 본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장소에서 누구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이든지 내게 깨달음을 주는 성경 말씀은 모두 영성독서의 본문이 됩니다. 주일 예배 때에 목사님에 의해 선포된 설교말씀 역시 영성독서의 본문이 되는 것입니다. 12. 말씀을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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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점심에는 무엇을 드셨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엊그제 점심시간에 먹었던 것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주일예배 때에 목사님께서 무슨 설교 말씀을 하셨습니까? 역시 대부분의 교인들은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해낸다고 고팠던 배가 불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빈 배를 채우려면 지금 당장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음식물 섭취는 필수적이지요. 인간의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영혼의 양식인 말씀 역시 필수적입니다. 영혼이 굶주려 있다면 지난 번 들었던 말씀을 기억해내든지 아니면 성경책을 펼치고 새로운 말씀을 먹으면 됩니다. 문제는 누구나 육체의 배고픔에는 민감해서 즉각 조치를 취하는데 영혼의 기갈에는 감각이 무뎌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문제점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만 있으실 리가 없었겠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택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훈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법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그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손목에 묶고 다니고 눈썹 사이 이마에다 붙이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출13:9,16, 신6:8, 11:18). 손가락에도 매고(잠7:3) 목에도 매라고도 했습니다(잠 3:3). 또한 그 말씀을 집안 방문에다가도 붙여놓고 바깥 대문에다가도 붙여놓아 문을 드나들 때마다 기억하게 하셨습니다(신6:9,11:20). 부모들은 틈만 나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는데 집안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말씀을 가르치고, 같이 길을 갈 때에도 가르치고, 잠을 잘 때에도 가르치고, 일어날 때에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신11:19). 또한 특별한 날들을 정해서 절기로 삼으며 그 절기 때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 생활 뿐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삶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먹는 음식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먹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레11:1-47). 만일 음식규정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실수로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면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은 단순하게 부정한 짐승을 먹어서 더러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해서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더러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 정결한 백성으로 사는 길은 말씀을 기억하고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렉지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영성독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씀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입니다. 그래서 영성독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다음 구절을 암송하도록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119:105)"

13. 생활 속에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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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독서(Lectio Divina)를 하는 사람에게는 앉아서 성경을 펴놓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은 모두 말씀관조 또는 조명의 시간이 됩니다. 만일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영성독서를 한다면 그 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23시간 동안은 말씀관조 또는 조명 즉 말씀을 품고 사는 생활 입니다. 매일 정해놓은 한 시간은 말씀을 받는 시간이고 나머지 23시간은 말씀을 품는 생활을 통해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로 설명한다면 정해놓은 한 시간은 말씀의 씨앗을 받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옥토에 심겨진 씨앗이 성장하는 것처럼 그 말씀을 품고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결국 영성독서를 한다는 것은 항상 말씀과 함께 산다는 말이 됩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영성독서를 하는 시간은 새로운 말씀의 씨앗을 받는 시간입니다. 이 영성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드시 묻습니다. "새로운 말씀을 대하기 전에 지금까지 품고 생활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질문을 받자 기억해서 대답하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항상 그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하면서 살았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하는 목적은 생활 속에 말씀을 품도록 훈련시키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품은 말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의 열쇠가 됩니다.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특별한 열쇠입니다. 그래서 영성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말씀의 능력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말씀의 열매를 맺도록 돕는 데에 있습니다. 10년 전쯤일 것입니다. 한 유대인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문 앞에서 벨을 누르려는데 문기둥에 달려있는 손가락만한 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쉐마(Shema)"였습니다. 쉐마 전통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잘 때나 일어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암송했고 또한 그 말씀을 팔에다 묶고 머리에다 묶고 다녔습니다. 또한 그 말씀을 드나들 때마다 기억하라고 문기둥이나 대문에다 새겨 놓거나 매달아 두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 학문 분야에서 성공한 민족을 말할 때 당연히 유대인들을 언급합니다. 전 세계 노벨 수상자 중에 30%가 유대인입니다. 미국의 최고 대학이라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60퍼센트가 역시 유대인입니다. 미국 백대 기업 중에 30%가 유대인이 운영하는 기업이고 미국 백대 부자 중에 20%가 유대인입니다. 미국 상원위원 중 10%가 유대인입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3%도 안 되는 민족이 미국 내에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 주후 70년경 로마군대에 의해 망했던 유대인들이 그 후로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되찾기까지 땅도 나라 없이 거의 1900여 년이란 세월동안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여전히 유대인으로서 민족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말씀에 기초한 신앙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곧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제공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 것입니다. 14. 목숨건 말씀

영성독서(Lectio Divina)는 4계단의 사닥다리 즉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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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조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성독서에서는 각각의 단계만으로도 깊은 영성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4개의 단계를 통합하면 더욱 깊은 영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첫 단계인 말씀읽기의 단계를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읽기"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크리스천은 누구나 다 성경을 읽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말씀읽기"란 왠말이냐고 묻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영성독서에서 말하는 "말씀읽기"는 잃어버렸던 성경의 권위와 성경읽기 전통에 근거합니다. 오늘날에는 출판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왔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구입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읽는 마음가짐, 자세에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많은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성경도 그중 하나의 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현대 성서신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성경을 하나의 고문서로 취급해왔기 때문에 신학자나 신학을 배운 목회자들조차도 성경을 경전으로 취급하기 보다는 연구대상이 되는 하나의 일반 서적처럼 여겨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성경을 신앙인의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과 분석 대상으로 읽거나 일반 책을 대하는 것처럼 흥미의 대상으로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경전으로 대하는 것과 하나의 고문서처럼 보통 책으로 대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2011년 5월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기사를 소개하지요. 올해 3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작은 교회 목사인 테리 존스(Terry Jones)가 3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교회에서 이슬람의 경전이 코란(Quran)을 불태웠습니다. 이에 즉각적으로 분노하여 4월 1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신학자들과 수천의 모슬렘들이 들고 일어났지요.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마자리샤리프(Mazar-i-Sharif)에 있는 유엔 건물을 부수고 들어가 12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목이 잘렸지요. "모슬렘"이라 불리는 이슬람 교도들에게 코란은 단순한 서적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코란은 자신들의 신인 알라(Allah)의 말씀을 기록한 거룩한 책 곧 경전이었습니다. 만일 거꾸로 모슬렘들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책을 태운다고 하면 아프가니스탄의 모슬렘처럼 살해까지는 안가더라도 분노하며 일어나 데모할 기독교들이 오늘날 몇이나 되겠습니까? 종교적인 분쟁을 일으키자고 이것을 언급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모슬렘들처럼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자문해보기 위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성경은 일반 책들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절대적인 경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제창했듯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기초한 종교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상실되면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권위도 상실되는 것입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는 일반 책을 읽듯이 단순하게 성경의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15. 유대인들의 말씀읽기

"말씀읽기"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는 것이지요. 잠깐 유대인들이 구약시대부터 지켜왔던 경전읽기 전통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경전인 율법을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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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안에 있는 궤 안에 잘 보관합니다. 율법을 꺼낼 때나 다시 보관할 때에는 그에 따른 예식이 있습니다. 율법을 꺼낼 때에는 먼저 인도자가 "바예히 빈소아(법궤가 이동할 때)"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면 그날 지정된 사람이 율법이 담긴 궤에 다가가서 문을 엽니다. 궤가 열리면 모든 회중들은 일어나서 경의를 표합니다. 주중일 경우에는 즉시 율법을 꺼내지만 안식일일 경우에는 "브리크 쉬메이(그 이름이 복되도다)"라는 개인 기도를 끝내고 나서 율법을 꺼냅니다. 그 사람은 꺼낸 율법을 곧 인도자에게 넘겨주고 궤의 문을 닫습니다. 인도자는 율법을 팔에 안고 "가들루 라하쉠 이티(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세)"라고 선포합니다. 안식일이나 명절인 경우에는 인도자가 회중들을 바라보고 "쉐마" 성경구절과 "엑하드 엘로헤이누 가돌 아도네누(우리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우리 주님은 크시도다)"로 시작하는 구절을 선포합니다. 인도자의 선포에 회중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역대기나 시편 구절들로 화답하면 인도자는 율법을 궤에서부터 강대상을 옮깁니다. 이 과정에서 회당의 지도자들이 율법의 뒤를 따라 행진합니다. 인도자는 율법 두루마리는 오른 손으로 잡고 오른쪽 어깨에 걸쳐서 강대상으로 옮깁니다. 강대상에 놓인 율법을 읽을 때는 최소한 세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중재자를 통하여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강대상에 절대 혼자 서면 안 됩니다. 이들 중에 율법을 읽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운율과 억양에 맞춰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강대상에 있는 다른 사람은 읽는 소리를 듣고 틀린 발음이나 음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본래 구약 율법에는 모음 표시나 구두점 등이 없었기 때문에 틀리게 읽는 경우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율법을 읽는 사람은 "손"이란 의미를 가진 "야드"를 사용합니다. "야드"란 은으로 약 20센티 정도로 길게 젓가락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한쪽 끝에는 손가락 모양을 만들어서 율법을 읽어나갈 때 해당 단어들을 짚는 데에 사용합니다. 사람이 감히 맨손으로 율법을 만지면 율법의 권위가 손상되기 때문에 "야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궤로 돌아올 때 인도자는 율법을 붙잡고 시편의 한 구절을 암송합니다. 이에 회중들이 응답하는 데 주중에는 시편 24편으로 안식일에는 시편 29편으로 화답니다. 율법을 궤에 넣는 사람은 인도자에게서 그것을 받아 궤에 들여 놓습니다. 율법을 궤에 넣는 동안 회중들은 율법을 궤에서 꺼냈을 때에 암송했던 성경구절을 계속해서 암송하다가 예레미야 애가에 있는 구절로 끝을 맺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 읽기의 전통은 모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탈무드에 의하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말씀읽기 전통은 서기관 에스라가 수립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 프락시스 말씀읽기

영성독서에는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란 네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단계인 "말씀읽기"는 성경책을 펼쳐들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이지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유대인들은 성경을 꺼내기부터 강대상 위에 올려놓기까지 지켜야할 엄숙한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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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여전히 행하고 있지요. 강대상에 올려놓은 성경을 읽을 때에도 손에 의해 책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야드"라는 은막대기를 사용해서 읽고 있습니다. 읽고 나서 보관할 때에도 절차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보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와 같은 전통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에게도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경전 앞에서 행하고 있는 예식을 회복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경전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과 자세를 배워야겠기에 언급한 것입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회복시켜주는 수련법입니다. 주일 예배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성경이 읽혀질 경우 낭독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고 읽어야 합니다. 기록된 대로 정확하게 읽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한 음성으로 읽어나가야 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낭독자의 목소리를 빌려서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자세로 경청해야 합니다. 낭독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지요. 경청하는 사람들은 말씀이 낭독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 말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말씀 낭독이 끝나면 회중들은 시편 119편 105절의 말씀 "주님의 말씀은 나의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를 모두 함께 암송하고 앉으면 더욱 좋습니다. 홀로 영성독서의 "말씀읽기"를 할 경우에는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대에 최소 30분 정도를 영성독서를 위해 정하십시오. 이 시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처음 읽을 경우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가 기록된 복음서 가운데 한 책을 읽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읽기는 한 번에 많이 빨리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경우 하루에 한 단락 또는 단락이 짧을 경우에는 두 단락 정도면 적당합니다. 여기서 "단락"이락 함은 마가복음 경우 1장 1절에서 8절까지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단락이 시작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에 "O"로 표시되어 있지요. 하나님 말씀 앞에 정숙한 자세를 취하고 본문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읽어 나갑니다. 이때 나의 입술은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하나님께 빌려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읽어나갈 때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다. 나는 한 음성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의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말씀을 경청합니다.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수련법입니다. 예배 때에 성경 낭독자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훈련입니다. 홀로 성경을 읽을 때에 나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훈련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곧 듣는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본문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그런 믿음 말입니다. 라디오에 주파수가 맞아야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7. 프락시스 말씀읽기와 영성음악

영성독서에서 "말씀읽기"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말씀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돕는 "영성음악"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구약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시편"(psalmos)이란 말의 의미를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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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나요? 시편이란 "찬양하는 노래" 즉 "찬송"이란 말입니다. 오늘날처럼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같이 있었던 것이지요. 본래 시편은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읽다보면 각 편 첫 부분에서 "노래", "영장으로 한 노래(시 4편 이하)" 란 표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영장"이란 오늘날로 찬양대 지휘자를 말하지요.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가 하면 "관악에 맞춘 노래(시 4편)" 또는 "깃딧에 맞춘 노래(시 8, 81, 84)" 등과 같이 악기 이름이 표시되기도 합니다. "깃딧"이라 함은 구약시대 있었던 현악기 이름이지요. 구약시대에 시편은 문자로만 읽었던 것이 아니라 음을 붙여 노래로 불렀던 것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자에 음악적 감성을 결합시켜 말씀의 영성을 더욱 깊이 경험했었던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중세기에 서방 기독교의 교황 그레고리 1세에 의해 말씀에 음악적 감성을 결합시킨 노래가 새롭게 정립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지금은 "그레고리 성가(Gregorian Chant)"라고 부릅니다. 이 성가는 단음이었지만 부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 성가를 배우려면 찬양학교(Schola Cantorum)에 들어가서 수년 동안 연습곡을 생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성가는 음악성 뿐 아니라 깊은 영성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가 성직자를 승진시킬 때는 설교보다도 성가를 불러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느냐에 따라 결정했다고 합니다. 결국 생목소리로 전달되는 설교 말씀보다도 음악과 결합된 말씀이 더 깊은 감명을 주는 영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과거와는 달리 현시대에는 다양한 악기와 더불어 전자 기술이 발달해서 음악 전문가들이 다양한 음원들을 개발해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음악 전문가들은 사람이 좋아하는 여러 음원들을 찾아내서 접목시킨 다양한 음악을 발표하고 있지요. 인종과 시대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좋아하는 음색, 화음, 박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일지라도 현재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사람들이 좋아하는 리듬을 아시아 사람들도 듣고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이런 음악들은 사람의 심성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소리를 공명시켜주는 훌륭한 작품인 셈이지요. 이제는 기독교 음악 전문가들이 나서서 지금까지 개발된 다양한 음원을 접목시킨 음악을 만들어서 잠들어가고 있는 기독교의 영성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특히 말씀을 음악에 접목시킨 새로운 음악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묵상음악(meditation music)"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묵상 음악을 들으면 읽었던 말씀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런 기능을 하는 음악 말입니다. 또한 오직 말씀만을 가사로 삼아서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며 또한 말씀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말씀음악(chant music)"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 음악들을 "영성음악(spiritual music)"이라고 부릅니다.

18. 프락시스 말씀읽기와 장면묵상

"장면묵상"이란 성경 본문 안에 들어있는 장면을 묵상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영성독서를 구성하고 있는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 등 모든 단계에서 장면묵상은 필수적입니다. 첫 단계인 말씀읽기에서부터 장면을 묵상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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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설명한대로 말씀읽기는 성경본문을 읽는 단계입니다. 본문을 내가 읽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읽든지 내 귀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장면이 드러남을 말합니다. 성경 구절에 들어 있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계속해서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듣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본문 안에는 장면이 들어있습니다. 기록된 문자들이 서로 연관을 맺어가면서 다양한 장면들을 드러냅니다. 마가복음은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에는 복음서 기자 마가와 연관된 장면이 있고 내용 자체에 관련된 장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면 안에는 제한된 장소와 더불어 거기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지요. 마가가 본 구절을 쓰고 있는 장소는 16장까지 되는 복음서를 쓰기에 적당한 어느 집 방 안일 것입니다. 그 방 안에는 기록을 위해 필요한 탁자, 의자, 펜, 잉크, 종이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방 안에는 마가복음을 기록하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 마가가 있을 것입니다. 마가의 모습을 가까이 다가가서 봅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는 사명감에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란 마가복음을 대표하는 첫 구절을 쓰는 마가의 거룩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내용 안에도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이 구절의 장소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있는 천상의 세계 즉 하늘나라가 됩니다. 천상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으로 보내면서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이 시작되는 장면이 전개되는 것이지요. 하늘이 열리고 이 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시는 장엄한 장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가는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장면을 본 것입니다. 이를 보완해주는 것이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다음 구절인 2절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소개됩니다.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이 문장을 자세히 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앞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 세례 요한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미리 보낼 것이고 그 요한은 아들의 길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앞날 계획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신 천상의 소리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천상의 장면을 본 것이지요. 즉 천상의 비밀이 이 땅의 선지자 이사야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는 "메시아 대망"을 마음속에 품게 된 것이지요. 이후 수백 년이 흐른 뒤에 마가는 이런 천상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을 증거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마가복음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첫 절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지요. 19. Meditation 과 Contemplation의 차이 Medit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묵상, (종교적) 명상; 숙고, 고찰"입니다. Contempl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숙고, 심사(深思), 명상, 관조 또는 조명(觀照)."입니다. 의미를 보면 서로 비슷한 것 같은데 글자를 보면 분명 다릅니다. 오늘은 영성독서(Lectio Divina)에서 말하는 이 두 단어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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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처음 미국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하시는 강의를 간간히 짐작해서 알아듣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번은 강의 중에 교수님께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손을 치켜들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 들어있던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자 두려워하며 용기 없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믿음이 생겨나면서 자신 있게 손을 들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이때의 장면은 이후 수도 없이 많은 강의에 참석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성경 구절이라도 마음속에 기억해두면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시편 119:105절을 보면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란 말씀이 있지요. 나의 인생길을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나와 내 앞길을 비추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삶 속에서 그만큼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구약 백성들에게 잘 때나 일어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암송하고 또한 그 말씀을 팔에다 묶고 머리에다 묶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집을 드나들 때마다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문기둥이나 대문에다 그것을 새겨 놓거나 매달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분명하게 새겨 놓았던 것입니다(참고, 잠 3:3, 7:3). 결국 구약 백성들은 두 가지 형태의 말씀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나는 책에 기록된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기록된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형태의 묵상이 생겨납니다. 하나는 책에 기록된 글을 읽는 묵상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기록된 글을 읽는 묵상입니다. 책에 기록된 말씀을 갖고 하는 묵상을 영성독서(Lectio Divina)에서 "묵상", 영어로 "Meditation"이라고 합니다. 마음속에 기록된 말씀을 갖고 하는 묵상을 영성독서에서는 "관조 또는 조명", 영어로 "Contemplation"이라고 합니다. 영성독서에 있는 네 가지 단계를 순서적으로 보면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입니다. 처음 두 단계인 말씀읽기와 말씀묵상은 성경책을 가지고 하는 "묵상 Meditation"입니다. "묵상 Meditation"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을 마음판으로 옮겨 놓는 데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말씀읽기"와 "말씀묵상"을 통해서 성경본문을 가능하면 모조리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 후에 "관조 또는 조명 Contemplation"의 첫 단계인 "말씀기도"에서는 마음에 기록된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주어진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독서의 마지막 단계인 "말씀관조 또는 조명"은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 속에서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생활하는 것이지요. 결국 영성독서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20. 이사야 43장 1절 장면묵상

아래 이사야 43장 1절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읽고 난 후에 무엇이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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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냐고 물었습니다. 생각은 무슨... 그냥 자주 보고 듣던 그 말씀이지. 사실 빨리 읽으면 10초도 안 걸릴 짧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 안에는 보석과 같이 놀라운 말씀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보석들을 별다른 수고도 없이 쉽게 얻으려고 합니다. 보석과 같은 말씀을 찾으려면 깊은 갱도에 들어가서 땀을 흘리며 흙을 파내는 것과 같은 수고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문장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글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글의 법칙에 근거해서 이해하면 더욱 정확한 이해가 되겠지요. 첫 문장의 주어를 보면 "여호와"이고 이에 관련된 동사는 "말씀하시느니라"입니다. 이 동사를 수식하는 "이제"라는 부사 때문에 동사의 정확한 의미는 "지금 말씀하시고 있는 중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장면을 누가 듣고 있는 중입니까? 당연히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이겠지요. "야곱아 ... 이제 말씀하시느니라"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고 있는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야곱아" 또는 "이스라엘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이겠지요. 이어지는 본문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라는 문장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이사야가 "야곱아" 또는 "이스라엘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다면 본문은 "야곱아, 내가 말하느니라"로 고쳐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1절 전부가 이사야의 말은 아닙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로 시작되는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이후의 문장 주어는 분명하게 "내가"라고 쓰고 있지요. 결국 이사야 43장 1절 안에는 이사야가 말씀을 받는 장면이 앞에 있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뒤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왜 같은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요? "야곱"과 "이스라엘". 여기서 야곱과 상관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이스라엘과 상관된 하나님은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신 창조주로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인간은 마치 죄인과 같아서 이사야는 "사기꾼"이란 의미를 가진 "야곱"이란 칭호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요? 창세기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직접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요. 이런 하나님은 싸움에서도 져주시기도 하시는 정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하나님과 싸움에서 이겼다"는 뜻을 내포한 이름인 "이스라엘"과 연관시킨 것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본문에 "창조하다"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하시니라"란 히브리어 "바라"와 같고요. 본문에 "조성하다"는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지으시고"에 해당하는 "야챠르"란 동사와 같습니다.

21.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 이단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란 용어에 대해서 생소하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Lectio Divina를 들어본 사람들 가운데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앞으로 기독교가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목사님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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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거부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거부하는 이유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Lectio Divina가 라틴어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분도 있습니다. 글쎄요. 사실 Lectio Divina를 소개할 때는 그것을 구성하는 네 단계로, "읽기"를 뜻하는 "Lectio(렉찌오)", "묵상"을 뜻하는 "Meditatio(메디타찌오)", "기도"를 뜻하는 "Oratio(오라찌오)", "관조 또는 조명"을 뜻하는 "Contemplatio(콘템플라찌오)"를 언급합니다. 모두 라틴어들이지요. 사실 라틴어 때문이라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이유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라틴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의 개혁 구호 "오직 말씀으로"를 뜻하는 "Sola Scriptura(솔라 스끄립뚜라)"도 라틴어였습니다. Lectio Divina에서 굳이 라틴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의 기원과 연관이 있습니다. 12세기경 카르투지오(Carthusian) 수도원의 부원장이었던 구이고 2세가 라틴어로 쓴 그의 편지 "수도사의 사닥다리(Scala Claustralium)"에서 Lectio Divina를 소개하면서 위에 네 계단을 언급했기 때문이지요. Lectio Divina가 요즘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800여 년 전에 있었던 기독교 전통이라는 것을 암시하려는 간접적인 의도도 있습니다. 천주교 전통이라고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종교개혁 이전에 것들을 천주교 전통이라 규정하고 막무가내 반대합니다. 사실 종교개혁 이전 약 1500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무시하고서는 개신교회의 전통과 신학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John Calvin)의 예정론은 5세기의 히포(Hippo Regius) 지방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았지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본래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어거스틴파(Augustinian) 수도원의 수도사였지요.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15세기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나 16세기 천주교 성자 프란시스(Francis de Sales)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요. 구이고 2세가 Lectio Divina를 소개한 "수도사의 사닥다리"는 책이 아닙니다. 소책자 분량으로 따지면 약 20페이지가량 되는 편지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이고 2세가 소개한 Lectio Divina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귀한 성경 독서 방법입니다. 오히려 오늘날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묵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에 다시 회복해야 할 참으로 귀한 방법이지요.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귀한 방법인 Lectio Divina가 800년이란 긴 역사 속에 거의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 천주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성경공부의 중요성과 더불어 Lectio Divina 방법이 강조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들이 다시 생겨난 것이지요. 이후 Lectio Divina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를 넘어서 타 종교에까지 확대되었고 성경 외에도 코란과 같은 타 종교 경전을 읽는 방법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Lectio Divina는 교리나 사상이 아니고 하나의 방법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는 교리나 사상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읽기", "묵상", "기도", "관조 또는 조명(관상)" 등 성경을 읽는 네 단계를 소개하는 방법이지요.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Lectio Divina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무엇을 읽느냐, 무엇을 묵상하느냐,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무엇을 관상(관조 또는 조명)하느냐"에 따라 Lectio Divina는 기독교에서 벗어난 이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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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성경 안에 있는 묵상전통을 회복시켜주는 보배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슬람 종교 안에서도 그들의 경전인 코란을 읽을 때에 Lectio Divina 방법을 사용하는 모슬렘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슬렘들은 코란을 읽고, 묵상하고, 이슬람 신에게 기도하고, 관상하는 것이지요. 침묵기도(Centering prayer) 또는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로 잘 알려진 천주교 사제 페닝톤(Basil Pennington)이 쓴 책 "LECTIO DIVINA"의 서두를 보면 1997년 초에 미국에서 Lectio Divina에 관한 학술세미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타종교와의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Lectio Divina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를 넘어 불교까지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해 7월에는 25명의 천주교 사제들과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25명의 불교승려들이 만나 종교 간에 대화를 가졌으며 그 후 티베트 불교신문에서 Lectio Divina에 관한 글이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타 종교에서도 Lectio Divina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타 종교들이 Lectio Divina에 대해 관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의 특성에 맞추어 방법을 재해석하고 변형시켜나가는 것이지요. 종교인들 뿐 아니라 심리학자 가운데서도 Lectio Divina를 정신분석학자 융(Carl Jung)의 성격구분 방법과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융은 사람에게는 감각, 직감, 생각, 느낌 등 네 가지 심리적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능들 가운데서 "감각 기능"은 Lectio Divina의 "읽기"와 연결시키고, "생각 기능"은 "묵상"과, "직감 기능"은 "기도"와, "느낌 기능"은 "관상"과 연결시킵니다. 여담이지만 융의 이 네 가지 심리기능과 더불어 내성적 또는 외향적으로 나누는 두 종류의 성격적 태도를 가지고 모녀지간인 Briggs와 Myers가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방법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만들어냈지요. 지금도 이 성격 평가방법은 여러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2. 유진 피터슨의 "Lectio Divina"

그런가하면 Lectio Divina를 통해서 깊은 영성을 추구하고 있는 장로교 목사도 있습니다. 영성 운동가로 잘 알려진 유진 피터슨(Eugine Peterson)입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 "The Message"는 이미 기독교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또한 그의 다른 책 "솔로(Solo)"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일대일" 즉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란 의미의 "솔로"는 일 년 동안 매일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집입니다. 피터슨은 Lectio Divina에 근거해서 묵상집 "솔로"를 만들었다고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피터슨이 설명하는 Lectio Divina는 성경공부라기 보다는 성경을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즉 Lectio Divina는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묵상하는 법,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법,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하지요.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는 어떤 교리나 가르침이 아니라 800여 년 전에 기독교 내에 있었던 성경 묵상 방법입니다. 지금부터는 Lectio Divina를 적용해서 영성을 개발시킨 장로교 목사 유진 피터슨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의 묵상집 "Solo"를 보면 중세 수도사 구이고(Guigo II)가 제시한 Lectio Divina의 네 단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이고의 독서(Lectio)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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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슨 목사는 Read로, 묵상(Meditatio)을 Think로, 기도(Oratio)를 Pray로,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를 Live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Lectio Divina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피터슨 목사는 성경이란 에덴의 어둠에서 천국의 영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과거 어느 한 시절에 그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만을 기록해놓은 책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주실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 주실 이야기도 그 책 안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우리에게도 말씀을 해주실 사랑의 하나님이 그 책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피터슨 목사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 성경 안에 계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면 나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지요. 성경을 통해서 나 자신의 본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피터슨 목사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은 우리를 읽고 있는 특별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또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그와 같이 특별한 책이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으로 읽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천천히 신중하게 읽어야 합니다. 또한 주의를 기울여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특별히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피터슨 목사가 설명하는 "독서(Lectio)" 방법입니다. 다음 단계는 성경 본문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본문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내가 이런 음성은 꼭 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본문에 대한 선입견도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 다른 사람들이 본문에 대해서 말했던 것, 내가 본문에 관해 배웠던 것조차 다 버려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본문을 틀리게 해석할 것 같은 두려움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깨끗하게 빈 마음으로 본문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잡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재촉하는 소리, 감정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소리, 다른 사람의 입에서 전달된 소문 등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음들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가려낸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비우고 본문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하다보면 하나님 말씀이 묘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특히 한 말씀 한 말씀을 깊이 생각하다보면 오늘따라 특별하게, 중요하게, 강력하게 내게 다가오는 본문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피터슨 목사가 말하는 "묵상(Meditatio)" 방법입니다.

피터슨 목사가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의 세 번째 단계인 "기도(Oratio)"에서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듣는 것입니다. 둘째는 읽은 말씀을 기도에 넣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지면상 첫째 강조만 설명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화"라고 함은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를 보면 거의가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는 것에 치우쳐 있습니다.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요.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서 내가 하는 말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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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하는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마음의 귀, 영혼의 귀가 열려 있어야 하지요. 예수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고 계시지요(막 4:23). 귀를 열어놓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감는다는 기도의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찬양하면서도, 춤을 추면서도 기도 즉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리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며 또한 마음의 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음성에 들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지요. 하나님 음성은 귀가 열린 사람의 상태 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지요. 예를 들면,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찌니라"(출20:15)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기도해보세요. 평생 동안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좋은 가르침 즉 "교훈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현재 도둑질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죄를 꾸짖는 "책망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또한 죄책감으로 인해 도둑질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깨끗한 생활을 하라는 "바르게 하는 음성"으로 들립니다. 또한 도둑질하며 살았던 적은 있지만 지금은 손을 씻고 깨끗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도적질과 같은 죄로부터 계속 멀리하게 하는 "의로 교육하는 음성"으로 들립니다. 같은 한 말씀인데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음성으로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진리이지요. 바울은 위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음성을 들려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목적은 디모데후서 3:17절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열리고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선한 일을 행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려고 하시지요. 즉 어두운 세상을 밝게 만들고, 더러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악한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종하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피터슨 목사는 기도할 때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피터슨 목사가 Lectio Divina(렉찌오 디비나)의 세 번째 단계인 "기도(Oratio)"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에 관해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는 피터슨 목사가 기도할 때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Lectio Divina에서 읽은 하나님 말씀을 기도 내용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기도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도의 내용에 넣곤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주지 않으면 이내 좌절하곤 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으면 대화의 주도권은 사실 하나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하나님을 내 뜻대로 이용하려는 것이 우리 기도의 특징입니다. 기도가 제대로 되려면 대화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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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확고한 기초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입니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지요. 그래서 Lectio Divina에서 하는 기도는 성경에 기초해서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읽기(Lectio)를 통해서 읽은 성경 본문이 기도(Oratio)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지요. 읽은 성경 본문이 나의 기도의 내용이 된다는 것은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 나의 삶이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곧 내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된 것을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라고 할 수 있지요. 피터슨은 성경 본문 가운데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도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라고 권합니다. 하나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모르면 무조건 주석에 눈을 돌리거나 남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려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충고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지혜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시지요. 나를 "선한 일을 행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려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계시겠습니까? 어두운 세상을 밝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더러운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기를 원하시며, 악한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조종하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아니라고 피터슨 목사는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나에게 가장 적절한 깨달음을 주시지요. 근본적으로 Lectio Divina에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신비적인 초월 명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는 기도가 본래 Lectio Divina의 세 번째 단계인 Oratio(오라찌오)였던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800여 년 전에 수도사 구이고(Guigo II)가 제시한 Lectio Divina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입니다. 피터슨 목사가 설명한대로 기도는 내 말만 쏟아 붓는 일방적 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줄 아는 정상적인 대화가 되어야 하며, 더 나가서 대화의 주도권은 하나님 즉 하나님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인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영어 단어 "Contemplation"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Contemplatio(콘템플라찌오)를 피터슨 목사는 "Live"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래 Lectio Divina에서 명사로 되어 있던 네 단계를 피터슨 목사는 모두 동사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첫 단계 "독서"를 "읽어라"란 Read로, 둘째 단계 "묵상"을 "생각하라"란 Think로, 셋째 단계 "기도"를 "기도하다"란 Pray로, 마지막 넷째 단계 "관조 또는 조명"을 "생활하라"란 Live로 말입니다. Lectio Divina가 머리로만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해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기에 "행동"을 강요하는 동사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피터슨 목사가 설명하는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는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피터슨 목사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다하더라도 그 말씀 안에서 생활하지 않는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지요. 하나님에 관한 말만 무성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 없다면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어서 예수님께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지요(마 21:19). "관조 또는 조명"란 Lectio Divina의 세 단계인 읽기, 묵상, 기도를 거친 말씀이 삶으로 승화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말씀은 당신 안에 한 부분이 되어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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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피터슨 목사는 말합니다. 말씀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곧 말씀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Lectio Divina의 네 단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 두 단계에서 나중 두 단계로 옮겨갈 때 중심이 전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두 단계에서는 내가 주체가 되어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그러나 나중 두 단계에서는 주체가 성경말씀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말씀기도에서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중심이 됩니다. 말씀관조 또는 조명에서는 나의 생활을 조명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Contemplatio"를 "관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글로 "관상"이라는 말은 적용하는 한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관상(觀象)"이라 할 때는 "형상을 본다"는 의미가 되며, "관상(觀想)"이라 할 때는 철학적인 면에서 "생각을 본다"는 의미가 됩니다. 두 경우 모두 내가 주체가 되어서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Lectio Divina의 마지막 단계인 Contemplatio는 내가 아니라 말씀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번역자로서 "말씀의 빛이 나의 삶을 조명(照明)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한 "관조 또는 조명(觀照)"란 용어를 선호합니다. 시편 119:105절에도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란 "관조 또는 조명"을 지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관상기도"라는 것은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지 본래 Lectio Divina를 소개했던 수도사 구이고(GuigoII)가 사용한 용어는 아닙니다. 구이고는 "기도"와 "관상(=관조 또는 조명)"를 분명하게 구분해놓았지요. 물론 피터슨 목사도 이 사실을 알고 그의 묵상집 Solo에서 분명하게 구별시켰습니다.

왜 피터슨 목사는 "관조 또는 조명" 또는 "관상"이라고 하는 Contemplatio(콘템플라찌오)를 "생활하라(Live)"라고 번역해 놓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Lectio Divina(렉지오 디비나)를 최초로 소개한 수도사 구이고(GuigoII)의 설명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이고는 "기도(Oratio)" 단계에서 기도자는 철저하게 주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한 없이 낮은 곳에 있는 인간 자신과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이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을 깨닫게 됩니다. 영혼이 원하는 말씀의 지식과 체험의 달콤함은 도저히 스스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또 다른 말로 성경말씀 뒤에 숨겨진 주님의 영광의 얼굴은 주께서 보여주셔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알면 알수록 기도자는 더욱 애타게 기도하게 됩니다. 말씀의 달콤함을 맛보게 해달라고, 한 방울이라도 천상의 음료를 내려 자신의 목을 축여달라고, 문자 뒤에 숨겨진 당신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애타게 부르짖게 되지요. 그래서 구이고는 "기도(Oratio)"를 설명할 때 기도자의 "영적 갈망"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다가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 단계로 넘어가면서 구이고는 주님의 개입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주님은 애타게 부르짖는 기도자를 듣고 보기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기도를 끝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중간에 침노해 오십니다. 급하게 달려와서 천상의 음료를 내려 영혼의 목마름을 축여주시고, 천상의 빵으로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십니다. 육체의 욕구는 죽어지고 영혼은 새롭게 살아납니다. 새로운 피조물 즉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영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영적인 삶이며, 이런 생활이 곧 "관조 또는 조명"인 셈이지요. 기독교인들은 주님 곧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합니다. Lectio Divina에서 "기도(Oratio)"는 신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상태라면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는 신랑을 만나 뵈는 단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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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랑이 신부를 어루만지시는 단계, 신부는 신랑과 짝을 이루어 행복을 맛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랑과 함께 생활하는 단계가 "관조 또는 조명"인 셈입니다. 그래서 구이고는 "관조 또는 조명"을 설명할 때 "달콤함"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천상의 달콤함에 취해있는 상태가 관조 또는 조명인 셈이지요. 영혼이 가장 축복을 받은 상태입니다. 구이고는 관조 또는 조명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완전한 축복을 받은 영적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축복된 삶 즉 영적인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여기서 우리는 Lectio Divina의 기초가 성경말씀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기록된 문자의 차원을 넘어서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을 예수님 즉 신랑이라고 고백하지요. 그래서 신랑이 달려와서 애타게 기다리는 신부를 만나준다는 것은 곧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신랑이 신부를 어루만지는 것은 내 안에 계신 말씀이 나를 어루만지시는 것이지요. 신랑과 짝을 이루어 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말씀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지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지요. 결국 최상의 복을 받은 기독교인은 말씀에 온전히 지배받으며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입니다. 그래서 피터슨 목사는 "관조 또는 조명"을 "생활하라"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3D와 말씀묵상

"책에는 마법사가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죽은 듯 가만히 있던 글자와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우리 집이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용궁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예쁜 공주가 괴물에게 붙잡혀 있는 성이 되기도 합니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와 사물놀이를 결합시킨 공연 "난타"를 기획해서 세상을 난타시킨 송승환 감독의 고백입니다. 송승환 감독은 책을 단순히 문자로만 읽은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해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본문 내용을 느끼고 경험한 것입니다. 같은 책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피곤함을 가중시키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삼차원의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안내서가 됩니다. 요즘은 영화 장면을 현실감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삼차원(3D) 영상이 개발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요. 어떤 다른 시대보다 머리를 더 써야 하는 시대입니다. 좋게 말하면 지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은 지성만 가지고 살 수가 없습니다. 감성도 있어야 합니다. 지성적인 좌뇌와 감성적인 우뇌가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뇌만 보더라도 그렇죠. 지식과 정보의 홍수에 눌려 불균형의 위협을 느낀 현대인들은 감성을 원합니다. 머리를 써서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합리와 논리라는 이성의 끈에 묶여있는 서양 기독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서양의 많은 기독교 젊은이들은 지성의 무미건조함에 식상해 있습니다.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설교보다는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종교를 기웃거리고 요가, 참선과 같은 명상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 기독교에도 명상에 상응하는 묵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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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있었지요.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말입니다. 동양종교의 명상이란 자신을 잊어버리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묵상은 말씀 속에 들어가서 본문의 세계를 삼차원적으로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말씀묵상 전통이 사라진 현대 기독교에서 경험, 체험한다는 말들은 주로 찬양이나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용어들입니다. 성경은 여전히 피곤함을 가중시키는 책으로 인식되고 성경을 풀이해주는 논리 정연한 설교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에 시달린 현대 기독교인들, 특히 인내심이 별로 없는 젊은이들에게 지성을 요구하는 설교나 성경공부는 흥미를 주지 못합니다. 사실 말씀묵상을 통하여 성경 안에 장면을 감성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본래 기독교는 논리적 이성보다는 삼차원 체험으로 시작된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거니실 당시 따라다니던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모두 삼차원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생생한 예수님의 육성을 직접 들었고 죽었던 나사로가 헝겊에 둘린 미라 모습으로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신앙을 다졌던 우리의 선배들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경험한 생생한 사건들을 모아 문자로 기록한 것이 성경책입니다. 성경말씀은 자신들이 경험한 생생한 사건들을 우리와 같은 후대 사람들도 경험하라고 글자로 기록해 놓은 소중한 유산이지요.

24. 성경읽기 매뉴얼

"매뉴얼 만들기도 부흥의 열쇠다. 매뉴얼화가 되었다는 것은 기술이나 기능이 개인의 소유에서 공공의 소유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교회는 이 점에서 매우 빈곤하다. 믿음의 선배들이 이룬 공적과 그들의 부흥 노하우가 있을 터인데, 그것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찬양을 잘하는 사람은 '찬양 인도 매뉴얼'을 만든다. 주보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은 '주보 만들기 매뉴얼'을 만든다. ... 모든 사역자여. 매뉴얼을 만들라!" 신앙 월간지 "빛과 소금" 1997년 3월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매뉴얼을 따라하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매뉴얼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입니다. 사역에 있어서 매뉴얼이 중요하듯 성경을 읽는 방법도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평생 성경말씀의 중요성을 외치다 가신 하용조 목사의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지 못하는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신앙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형성된 신앙의 고정 관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자기도 피해를 보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됩니다. 언제나 성경에 의해 자신이 깨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의해 날마다 우리 자신을 개혁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나를 비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이 나의 삶을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하용조, 마태복음 강해설교 제 6권)"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성경 읽기 매뉴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들이 위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비판하는 것은 학자들이나 하는 것이지요. 신앙인은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보고 말씀이 나를 비판하는 음성을 들어야지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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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말씀이 지적하는 나의 문제를 깨닫고 자신이 깨져야 변화나 개혁이 이루어지지요.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유한 사람 즉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돌처럼 굳어진 고정관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는 강퍅한 사람이 되지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기독교인은 "성자(saint)"와 같은 삶을 살지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성자(saint)"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시면 당신을 믿는 사람을 "성도(saint)"라고 부르시겠습니까. 한글로야 "성자"와 "성도"가 다르지만 영어로는 한 단어 "saint(세인트)"입니다. 의미를 알고 보면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어떤 칭호보다도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칭호가 "성도"입니다. 같은 성경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성경을 비판하며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통하여 참회하며 신앙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성경을 이해했다기보다는 경험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이해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354년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Augustine)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마음속에 있었던 어두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졌지요. 그리고 진정한 "성도(saint)"가 되었습니다.

25. "프락시스"란 용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물었습니다(마 16:13-20).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게 될 것과 죽은 지 삼 일만에 부활할 것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마 16:21).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이런 중요한 말씀들 끝에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을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6:27). 예수님은 제자들이 단순히 듣고 알고 깨닫는 것만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깨달은 것을 행동하는 즉 실천하는 제자들을 원하셨지요. 그래서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지요. 여기서 헬라어 성경 본문을 보면 "행한 대로"에서 "행함" 곧 "실행"을 가리키는 단어가 "프락시스"입니다(마 16:27).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최고 단계는 "행함" 곧 "실천"을 통해 삶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도 그의 매일 영성 독서에서 마지막 단계인 관조 또는 조명(Contemplation)를 "생활하라(LIVE)"로 명명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영성독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프락시스"란 용어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영성독서" 대신에 "프락시스 성경연구"란 제목을 사용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성독서의 이론적인 면에 치중해 왔지만 앞으로는 보다 실재적인 면에서 말씀이 생활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프락시스의 기본 단계는 지금까지 설명해온 그대로 네 가지 단계입니다. 첫 단계는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말씀읽기"입니다. 둘째 단계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파헤치는 "말씀묵상"입니다. 셋째 단계는 말씀의 내용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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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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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씀기도"입니다. 넷째 단계는 마음에 품은 그 말씀으로 생활하는 "말씀관조 또는 조명"입니다. 마치 네 개로 된 사닥다리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매일 프락시스 네 단계를 오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 "프락시스 성경연구"의 목표입니다. 프락시스의 네 가지 단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단계 "말씀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 단계인 "말씀관조 또는 조명"을 점검합니다. "말씀관조 또는 조명"란 내 마음속에 있는 말씀의 빛이 나 자신과 생활을 밝혀주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이런 영적 상태를 체험하는 사람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시편 119:105)"라고 고백하게 되지요. 현대 크리스천들은 여러 가지 통로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다양한 예배시간이나 집회, 또는 매일 성경읽기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합니다. 문제는 말씀을 받는 것에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간직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받아도 그 말씀을 마음에 품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 비유처럼 씨앗이 길가로 떨어지자마자 새가 날아와서 그 씨앗을 낚아채 가면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번 내가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그 이후 생활하면서 과연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지, 그리고 마음에 품었던 그 말씀이 내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말씀읽기"를 하기 전에 점검해야 할 사항입니다.

26. "껍데기가 알맹이가 되다"

2012년 2월, 달라스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참석한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지난주일 담임 목사님 설교를 기억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예상한대로 거의 기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세미나에서 들었던 "1미터만 더"란 예화가 인상적이어서 교회에 와서 성경공부 시간에 그 예화를 소개했습니다. 듣고 계시던 한 장로님께서 대뜸 그 예화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님께서 부흥회에 오셨을 때 "1미터만 더"란 바로 그 예화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뒤져 보았더니 임동선 목사님께서 부흥회 오신 해가 1988년이었습니다. 20년도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 예화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매주일 목사님께서 분명히 성경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을 텐데 성경말씀은 온 데 간 데 없고 감동적인 예화나 재미있는 유머만 기억으로 남아있는 모습이 오늘날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면 성경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집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위해서 선택하시는 성경본문도 중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본문에 관한 똑같은 해설을 여러 번 듣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알고 있는 성경 본문에 관한 내용은 듣고 쉽게 잊어버립니다. 반면에 새로운 유머, 예화, 간증 등은 마음에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본문 자체는 아무런 감동도 없는 것인가요? 몇 해 전 미국 오하이오에서 미국인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과 통화한 내용입니다. 교인가운데 한 할머니께서 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병원에서 입원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위로차 병원심방을 가셨지요. 침상 곁에서 목사님께서 성경책을 펼치시고 시편 23편을 읽어드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할머니 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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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 읽어주시는 성경말씀을 들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위로와 힘과 더불어 감동을 받으신 것이지요. 목사님은 성경 본문만 읽어주셨지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성경본문 자체만으로도 은혜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할머니 환자는 목사님 목소리를 통해서 들리는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분명히 성경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설교에서 성경본문을 제외한 모든 장치들, 즉 예화와 같은 것들은 본문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수단입니다. 즉 성경본문은 알맹이고 그 외에 것들은 알맹이를 보호하는 껍데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알맹이는 버리고 껍데기만 간직하는 그런 풍토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알맹이가 껍데기가 되고, 껍데기가 알맹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심한 경우를 보면 성경본문은 그저 겉치레가 되고 성경본문과 별로 관련 없는 내용이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 내용과 연관은 있다고는 하지만 메시지의 중심이 성경에 있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나 사건, 감동적인 시나 소설, 철학이나 종교 사상, 최근 화제가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경본문을 아예 빼놓고 설교를 해도 제시한 소재를 통해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과 무관하게 다양한 소재들을 동원해서 청중들에게 감동과 인상을 남기는 일반 강연들과 별다를 바 없겠지요. 오늘날 크리스천이라면 무엇이 알맹이가 되어야 하고 무엇이 껍데기가 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27. 새벽예배에서 말씀묵상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올 때에는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행함" 또는 "실행"을 가리키는 성경 원어가 "프락시스"입니다(마 16:27). "말씀묵상"은 어떤 교리나 사상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실천해왔던 아주 중요한 신앙전통이지요. 그런데 지금 기독교 내에서는 사라져버린 전통입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프락시스 말씀묵상"이란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구약시대에 율법을 묵상하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체계는 12세기 카르투지오(Carthusian) 수도사였던 구이고 2세(Guigo II)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the Ladder of Monks)"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기본적으로 "읽기, 묵상, 기도, 관조 또는 조명"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얼마만큼을 해야 합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24시간 항상 해야 합니다. 시편 1:2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밤이나 낮이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24시간 말씀을 묵상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도원 골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하루가 직장생활과 같은 일상에 매어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하루 종일 앉아서 말씀만 보고 묵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은 골방에 앉아서 말씀을 읽는 것만 말씀묵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4:63절을 보면 이삭이 저녁때에 들판으로 나가서 묵상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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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목생활을 했던 이삭에게 "들판"은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묵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절이지요. 그래서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하루 24시간을 앉아서 묵상하는 시간과 일상생활 속에서 묵상하는 시간으로 구분합니다. 앉아서 하는 묵상은 보통 30분에서 한 시간정도 합니다. 나머지 모든 시간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묵상(=관조 또는 조명)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당연히 새벽이지요. 예수님도 하루를 시작하시기 전인 새벽녘, 아직 날이 새기 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를 하셨지요(막 1:35). 새벽녘, 조용한 곳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시간과 장소입니다. 사실 우리도 일상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새벽 첫 시간을 구별해서 정성스럽게 하나님께 드린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지요. 우리에게는 "새벽예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새벽예배 때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가지고 "프락시스 말씀묵상"을 할 것을 권합니다. 일상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새벽 시간에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최상의 장소인 교회에서 말씀묵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축복입니다. 더욱이 매일 새벽마다 목사님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지요. 매일 드리는 새벽예배 때에 어떻게 "프락시스 말씀묵상"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프락시스 말씀묵상은 구체적으로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 등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말씀 점검입니다. 새벽 설교 전에 하는 말씀 점검을 위한 묵상. 누구나 새벽에 교회에 들어가면 먼저 기도를 드립니다. 이때 어제 또는 지난 주일에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지금까지 관조 또는 조명하고 살았는지 묵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관조 또는 조명에 관련된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묵상합니다. 첫째는, 목사님께서 선포하셨던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둘째는, 그 말씀을 하루에 최소 다섯 번은 기억하고 있었는가? 다섯 번이란 새벽에 일어나서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기도 전에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입니다. 셋째는, 그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런 질문과 더불어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말씀이 나에게 말씀하시며 어루만지심을 느껴봅니다. 말씀점검을 마치면서 시편 119편 105절을 암송하거나 아래 첨부한 곡을 조용히 읊조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점검묵상은 새로운 말씀이 선포되기 전 즉 오늘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끝내야 합니다. 새벽 성경봉독을 통한 말씀읽기. 먼저 말씀을 받기 전에 조용히 짧게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여기서 "하나님!" 하고 부를 때는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도 동일한 방법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기도를 드립니다. 새로운 말씀을 허락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며 드리는 기도이지요. 이 삼위일체 기도는 곧이어 주실 말씀을 받기위해 마음에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나 새벽 설교가 있기 전에 성경봉독을 통해 말씀을 읽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새롭게 주시는 영적인 양식이 소개되는 것이지요. 이 성경봉독을 목사님이나 사회자가 할 경우가 있고, 아니면 본인이 직접 읽게 될 경우가 있지요. 누가 말씀을 읽든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처럼, 또는 하나님 앞에서 읽는 것처럼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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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중요한 것은 듣는 청중들이 본문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나가야 합니다. 은혜가 된다면 본문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 반복해서 읽어도 좋습니다. 듣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마음으로 한 말씀 한 말씀을 경청합니다. 이미 삼위일체 기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기에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말씀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28. 새벽예배에서 개인묵상

새벽 설교를 통한 말씀묵상. 말씀묵상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으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집에서 할 경우에는 프락시스 말씀묵상 교재를 가지고 할 것을 권하지만,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경우에는 목사님 설교를 갖고 말씀묵상을 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이 경우 말씀묵상의 내용은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선포되는 설교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다음 세 가지를 찾아야 합니다: 말씀, 등장인물, 하나님. 첫째는 설교 내용 중에 내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하나만 찾아냅니다. 나중을 위해 종이에 적어 놓는 것도 좋습니다. 둘째는 설교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등장인물을 하나만 찾아냅니다. 여기서 등장인물이란 하나님을 제외하고 내용 중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영적존재들을 가리킵니다. 설교 내용 안에는 본받아야 될 모델도 있고 본받지 말아야 될 모델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을 찾는다함은 곧 나의 신앙에 거울이 되는 모델을 찾는다는 말이 됩니다. 셋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 안에는 거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이나 역할이 들어있습니다. 삼위일체라 함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신 성령님을 가리키지요. 목사님 설교가 끝날 때쯤이면 지금까지 찾았던 것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인상적인 것 하나만 선택합니다. 여기서 선택한 그 하나는 이후 다른 말씀을 받기 전까지 설교 내용을 기억하도록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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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열쇠가 됩니다. 새벽 개인기도 시간에 하는 말씀기도. 새벽예배의 모든 순서가 끝나면 각자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기도시간에 가장 먼저 말씀기도를 드릴 것을 권합니다. 말씀기도에서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는 "설교내용,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첫째로 기도하면서 설교 내용을 기억합니다. 설교내용을 기억하기 위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선택했던 가장 인상적인 것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비록 순서가 어긋나더라도 그 인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연관된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냅니다.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우고 물에 던지면 그 미끼를 물고 있는 큰 고기들이 달려 올라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연관된 내용들을 모아서 나름대로 오늘의 설교를 요약해봅니다. 마치 공부의 복습과 같은 이런 훈련을 거치면 목사님 설교는 더욱 분명하게 기억에 남게 되지요. 둘째로 말씀기도를 통해서 설교 내용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설교 내용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이나 활동 등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네 가지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설교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도덕적인 교훈의 음성으로, 어떤 이는 자신의 죄를 꾸짖는 책망의 음성으로, 어떤 이는 행동을 고치라는 바르게 함의 음성으로, 어떤 이는 의롭게 살라고 교육하는 음성으로 각각 다르게 듣습니다. 설교 말씀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느끼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9. 예배순서에서 말씀묵상

개인이 새벽예배시간에 혼자서 말씀묵상을 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여기서는 교회가 새벽예배를 말씀묵상 중심으로 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점검묵상. 새벽예배 시작 순서인 묵도 시간을 지난 말씀을 점검하는 "점검묵상" 시간으로 대치합니다. 사회자는 "다같이 눈을 감고 점검묵상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 사이에는 묵상할 적당한 시간을 줍니다. 첫째로, "(어제 아니면 그 전에 선포했던)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둘째로, "그 말씀을 매일 하루에 최소한 다섯 번은 기억하고 살았습니까?" 생활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생활 속에 열매를 점검하는 것이지요. "점검묵상"을 마치는 종을 친 후 다 함께 시편 119편 105절(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을 노래로 부르거나 암송합니다. 말씀읽기. 성경봉독 시간이 되면 새로운 말씀을 받기 전에 "하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라는 삼위일체 기도를 고백하는 심정으로 드립니다. 기도가 끝나면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심정으로 본문을 낭독합니다. 듣는 회중들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심정으로 경청합니다. 말씀묵상(말씀선포). 설교시간이 곧 "말씀묵상" 시간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자마자 선포된 말씀이 교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 점검하는 "말씀확인" 시간을 갖습니다. 상황이 허락되면 둘씩 짝을 지어서 아래 주어지는 질문에 번갈아가며 한사람씩 대답하게 합니다. 각 질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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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짝끼리 서로 나눌 만큼의 적당한 시간을 줍니다. 짝을 지어서 나눌 상황이 안 되면 혼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이 묵상하면서 질문에 대답하라고 합니다.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정답입니다. 첫째로 "오늘 성경본문 가운데 마음에 남는 구절 하나가 무엇입니까?", 둘째로 "오늘 설교말씀 가운데 본받아야 될 모델 아니면 본받지 말아야 될 모델 하나가 무엇입니까?", 셋째로 "오늘 설교 말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 활동 가운데 마음에 닿는 것 하나가 무엇입니까?", 넷째로 "오늘 설교말씀 가운데 마음에 닿는 것 하나를 고른다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런 네 단계의 질문을 모두 마친 후에는 "마음에 닿은 그것을 마음에 품고 생활(=말씀관조 또는 조명)하기 바랍니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모두 시편 119:105절을 노래하거나 암송함으로 말씀묵상을 마칩니다. 말씀기도. 새벽예배를 마친 후 각자 기도시간에는 지난 호에 개제한 방법대로 말씀기도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처음에는 말씀기도를 훈련할 목적으로 인도자가 기도회를 "설교내용,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음성"등 세 가지 순서로 인도하면 좋습니다. 말씀관조 또는 조명.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새벽기도, 아침 점심 저녁 식사기도, 취침기도)에 설교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말씀관조 또는 조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설교 때 "말씀확인"을 연습한 교인은 그날 낮에 새벽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교인이나 친구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나누면 좋은 훈련이 됩니다. 불신자 친구나 이웃에게 나누면 도를 전하는 전도 실습이 됩니다. 마음으로만 묻어두는 것보다는 그것을 입술로 고백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30.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

"프락시스"라는 말 자체는 "실천"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프락시스 말씀묵상"이란 말씀묵상을 실천하자는 의도로 만들어 놓은 제목입니다. 교회가 살아나고 교인들이 살기 위해서는 다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매 주일마다 심지어는 수요 예배, 새벽 예배 때마다 목사님을 통해 말씀을 잘 듣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말씀으로 돌아가자!" "묵상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의 요지는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품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통은 예배 때에 목사님으로부터 말씀을 잘 듣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품고 생활하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듣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요. 프락시스 운동은 예배를 통해서 들었던 말씀을 마음에 품는 운동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지난번에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기도를 시도해보십시오. 예를 들면 기도를 시작하면서 말씀 내용 전체를 기억하면서 기도합니다. 또는 설교 내용 가운데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말씀을 기도 내용으로 삼고 기도할 때마나 언급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기도에 "말씀기도" 하나를 더 추가시키자는 것이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이지요. 프락시스 말씀묵상 운동은 하루에 최소한 다섯 번의 말씀기도를 권합니다.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면서 드리는 식사기도에서 "말씀기도"를 추가합니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서 침상에서 기도할 때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기억하는 "말씀기도"를 추가합니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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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하루 다섯 번 하는 말씀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사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에도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말씀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훈련도 해봅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전도(傳道)라고 하지요. 말씀을 품고 있다 보면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 때에는 나를 교훈하기도하고, 책망하기도 하고, 교정시키기도 하고, 훈련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말씀을 품은 사람은 말과 행동과 생각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성화(聖化)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화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부르지요. 성도는 말씀을 품고 사는 성화의 생활을 통해서 체험한 일들을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이렇게 자신의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을 "간증"이라고 하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예배드릴 때에는 특히 시작 기도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점검 질문을 첨가 합니다. 첫째 질문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말씀이 무엇입니까?"입니다. 둘째 질문은 "그 말씀을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묵상하며 살았습니까?"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그 말씀이 당신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습니까?"입니다. 질문 사이에는 잠깐 묵상할 시간을 줍니다. 교회 예배든지 가정 예배든지 예배 시작 때에 항상 말씀을 점검하는 질문을 추가한다면 선포되었던 말씀을 품는 생활이 습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19편 105절을 암송하든지 찬양하는 일들을 자주 반복하면서 말씀의 소중함을 되새기도록 합시다.

31. 프락시스 말씀기도

말씀기도는 말씀을 경험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베드로전서 5: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란 구절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선 본 절이 속해 있는 베드로 전서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쓴 편지인가? 당시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가? 베드로전서에 대해 어느 정도 일반적인 이해를 하고 나서는 본 7절을 접근합니다. 본 절에서 대상인 "너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왜 이 대상을 향해서는 "염려"란 단어를 언급했는가? 등등의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한 이해를 깊이 하면 할수록 본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낼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본 5:7절은 "이러 저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어느 성경구절이든지 나름대로 객관성 있는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성경언어와 성경역사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성경해석은 많은 지식을 갖춘 학자들의 손으로 넘어갔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학자들이 해놓은 "주석"이라는 해설을 참고하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잠깐 헬라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사람에게는 "로고스"와 "파토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로고스(logos)는 이해를 강조하는 논리나 학문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토스(pathos)는 경험을 강조하는 열정, 감성, 고난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지요. 멜깁슨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란 제목에 쓰인 "passion"이란 단어의 어원이 "파토스"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로고스"라고 할 수 있고 그 분의 삶의 절정을 이룬 십자가의 고난은 "파토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구원의 완성은 "파토스"에서 이루어졌지요. 성경말씀이 기록된 당시에 무엇을 의미했느냐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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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대하고 있는 나는 그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느냐입니다. 말씀의 최고의 절정은 이해보다는 경험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익숙한 반면 말씀을 느끼고 경험하는 면에서는 매우 약합니다. 일전에 프락시스 성경연구에는 말씀읽기, 말씀묵상, 말씀기도, 말씀관조 또는 조명 등 네 단계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앞에 두 단계인 말씀읽기와 말씀묵상은 이해에 초점을 맞춘 반면 나중 두 단계인 말씀기도와 말씀묵상은 경험에 초점을 맞춥니다. 말씀읽기와 말씀묵상을 통해서 성경책에 있는 말씀을 마음속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말씀기도와 말씀관조 또는 조명에서는 마음판에 새겨진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생활하는 것이지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말씀기도는 주어진 말씀에만 집중합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서 본 말씀을 지금 여기서 내 속에 울려 퍼지는 하늘의 음성으로 경험해보세요. 그 음성을 들으면서 나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근심, 걱정, 염려의 무게를 느껴보십시오. 이 하늘의 음성은 몇 가지의 염려만 맡기라는 것이 아니라 "다" 맡기라고 권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음성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어떤 사람에게는 잔잔한 물결과 같은 부드러움으로 느껴질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령과 같은 긴박함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각 사람에 따라 하나님의 영이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아시고, 간구하시고, 도우십니다(롬 8:26, 27)

32. 프락시스 장면묵상

열왕기하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나라 안에서 꽤나 이름이 있는 엘리사가 수넴 동네를 지나갔다는 소식이 동네 안에 퍼졌다. 문제는 한번이 아니라 그전에도 여러 번 지나간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엘리사 선지자가 무슨 일이 있어 수넴 동네를 자주(8절:"그 곳을 지날 때마다") 통과해야 했던 것 같다. 수넴 동네에는 생활이나 지위 면에서 보통 사람들 보다는 꽤나 나은 여인(8절:"귀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 역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동네를 자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들었겠지만 이 여인은 이 소식을 마음에 두었다. 왜냐하면 엘리사 선지자가 동네를 통과할 때마다 집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가 언제 동네에 다시 나타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동네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대접하기 위해 그분이 무엇을 좋아하실지 그분의 식성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주로 선지자들이 좋아한다는 음식을 정성껏 차렸다. 음식상만 보더라도 엘리사에 대한 여인의 배려가 두드러질 정도였다(13절:"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이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서 옷을 잘 차려 입었다(8절:"귀한 여인).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대한 그녀의 예우였다. 그리고는 그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일찍부터 기다렸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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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도 없고,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던 당시에 엘리사 선지자가 언제 지나갈지 모를 일이었다. 엘리사 선지자를 놓치기만 하면 그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해 놓았던 것이 헛수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13절:"생각이 주밀하도다"). 드디어 엘리사 선지자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라 안에 유명인사이긴 하지만 엘리사의 모습이 그렇다고 장엄한 행진은 아니었다. 선지자는 나귀를 타고 옆에 종 게하시가 붙어서 동네를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잘 차려 입은 여인의 모습에 비하면 단순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했다. 여인은 이네 엘리사 앞으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절히 자신의 집에 와서 식사를 하시라고 청했다(8절:"간권하여"). 갑자기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또한 갑작스런 식사초청에 엘리사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여러 번 수넴 동네를 지나갔지만 동네서는 처음으로 식사초청을 받은 셈이다. 하도 간절히 청하기에(8절:"간권하여") 엘리사는 거절할 수 없어서 여인의 집을 따라갔다. 차려진 음식도 대단했다. 엘리사 선지자의 입맛에 맞춘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여인은 다시 엘리사 선지자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엘리사는 피곤한 여행길에 잠깐 쉴 수도 있었고 더불어 입에 맞는 음식까지 대접 받은 마당에 웬만한 부탁 정도는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 마음으로 "무엇이든 들어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탁은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넴 동네를 지나갈 때마다 그 여인의 집에 와서 식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기대밖에 부탁을 들은 선지자는 수넴 여인의 정성이 갸륵하기도 하고 또 하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모습에 그러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후로 그 수넴 마을을 지날 때마다 꼭 그 여인의 집을 들려서 식사를 하고 가곤 했다(8절:"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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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프락시스 묵상 자료

1. 프락시스 묵상음악 예

1.1. 창세기 2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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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사야 41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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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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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태복음 8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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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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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확신하노라

이가 이루실 줄을 (착한 일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시작하신 착한 일을 너희 속에

2. 프락시스 한절 묵상 예

2.1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06

# 말씀 점검(Contemplation): 지금 나의 마음엔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 말씀 읽기(Reading): 다음은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입술을 하나님께 드려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내 귀를 열어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묵상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는 확신하노라

# 문장도해

# 묵상질문(Meditation)

1.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체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분입니까?2. 그 착한 일을 이루시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분입니까?3. 나 자신이 아니라면 그분은 누구십니까?4. 그 착한 일은 이미 시작 되었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시작될 것입니까? 시간적으로 볼

때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미래에 일어날 사건입니까?5.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날이란 시간적으로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아니면 미래 사건을

가리킵니까? 6.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착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까? 시간적으로 볼 때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사건입니까?

7. 그분이 과거에 이미 시작하셨고 미래에 그분이 이루실 것이라면 시간적으로 볼 때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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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가 확신한다는 것은 무엇을 확신한다는 것입니까? 즉 확신해야 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9. 착한 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여호수아 2314절을 보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모두 응했다 즉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든 선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10. 애굽에서 탈출하고 광야 40년 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선한 일들을 모두 묶어서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가장 적당하겠습니까?

11. 근본적으로 선한 일 즉 착한 일이 구원이라면 그 구원을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구원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속에서 시작하셨고 또한 그분이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 말씀 기도(Prayer): 오늘 주신 말씀만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이 말씀기도를 드리면 말씀이 마음 판에 더욱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 말씀 조명(Contemplation): 프락시스 묵상은 말씀을 생활 속에 항상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말씀을 하루에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기억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도 시간에 눈을 감고 가장 먼저 마음에 품고 있는 말씀을 묵상한 후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1. 아침에 깨어나서 기도할 때 2. 아침 식사때 기도에 3. 점심 식사때 기도에 4. 저녁 식사때 기도에 5.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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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로 이르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여 허물없이

너희로 분별하며 선한 것을 지극히

2.2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10

# 말씀 점검(Contemplation): 지금 나의 마음엔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 말씀 읽기(Reading): 다음은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입술을 하나님께 드려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내 귀를 열어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묵상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문장도해

# 묵상질문(Meditation)묵상질문

1. 본 절에 너희는 누구를 가리킵니까?2. 왜 교인들에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바울은 기도합니까?3. 왜 교인들에게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울은 기도합니까?4. 왜 교인들에게 허물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울은 기도합니까?5. 크리스천 가운데도 도대체 무엇이 선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허물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까? 6. 빌립보서 011517절에 기록된 옥에 갇힌 바울을 더 괴롭게 하려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7. 내 생활이 진실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 탓입니까 아니면 내 탓입니까? 나의

신앙생활에 허물이 많은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까 아니면 나 때문입니까? 8.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한 마음을 갖고 허물없는 행실로 사는 것은

언제까지 계속해야 합니까? 9. 나에게 그리스도의 날이란 언제를 말합니까?10. 빌립보서 0109절을 보면 어떻게 해야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고, 진실할 수

있고, 허물 없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하나요?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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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심으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질수록 크리스천으로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으며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허물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말씀 기도(Prayer): 오늘 주신 말씀만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이 말씀기도를 드리면 말씀이 마음 판에 더욱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 말씀 조명(Contemplation): 프락시스 묵상은 말씀을 생활 속에 항상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말씀을 하루에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기억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도 시간에 눈을 감고 가장 먼저 마음에 품고 있는 말씀을 묵상한 후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1. 아침에 깨어나서 기도할 때 2. 아침 식사때 기도에 3. 점심 식사때 기도에 4. 저녁 식사때 기도에 5.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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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중 다수가 말하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결과절 겁 없이

더욱 담대히

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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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중 다수가) 신뢰하므로 주 안에서 나의 매임을 인하여

2.3 프락시스 한 절 묵상 빌립보서 0114

# 말씀 점검(Contemplation): 지금 나의 마음엔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 말씀 읽기(Reading): 다음은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입술을 하나님께 드려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내 귀를 열어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묵상합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 문장도해

# 묵상질문(Meditation)묵상질문

1. 나의 매임이란 누가 매였다는 것입니까?2. 바울의 매임이 암시하고 있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지금 바울이 어디에 매어있다는

말입니까?3.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슨 일을 하다가 바울이 감옥에

갇혔나요?4.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바울의 심경은 어떠한가요? 힘들어 하나요

아니면 기뻐하나요? (참고, 빌0118, 0217, 0218, 0228, 0301, 0404, 0410....)5.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어떻게 바울이 기뻐할 수 있나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과 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바울이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참고, 롬083539)

6.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바울이 하던 어떤 일이 중단되었나요?7. 감옥에 갇힌 바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들을 본 절에서

누구라고 하나요?8. 바울 대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이 소수인가요 아니면 다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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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스 묵상법 Meditative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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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수의 형제들이 복음을 전하는 신앙적인 근거는 본 절에서 무엇이라고 하나요?10. 주 안에서 신뢰함을 가진 형제들이 보여주는 행동의 특징을 본 절에서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요?11. 형제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왜 겁 없이 전해야 하고 더욱 담대하게 전해야 하나요?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와 관련이 있나요?

# 말씀 기도(Prayer): 오늘 주신 말씀만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이 말씀기도를 드리면 말씀이 마음 판에 더욱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1.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기도합니다.

2.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다수의 형제들을 묵상하면서 기도합니다.

# 말씀 조명(Contemplation): 프락시스 묵상은 말씀을 생활 속에 항상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말씀을 하루에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기억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도 시간에 눈을 감고 가장 먼저 마음에 품고 있는 말씀을 묵상한 후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1. 아침에 깨어나서 기도할 때 2. 아침 식사때 기도에 3. 점심 식사때 기도에 4. 저녁 식사때 기도에 5.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할 때...

!!! 빌립보서에는 기쁨에 관련되 joy 또는 rejoice란 단어 17번이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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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xis Bible Study(=PBS)for individuals

for the monastic Christian life.

Gospel Mark

Name:

Facio Ergo Sum

KUMC in Albuquer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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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Praxis Bible Study(=PBS)?

1. The basic structure of the Praxis Bible Study(=PBS) originates from Lectio Divina, which means "divine reading." Guigo II, a monk of 12th century, coined the term "Lectio Divina" that suggested four steps: "Lectio(=Word Reading), Meditatio(=Word Meditation), Oratio(=Word Prayer), and Contemplatio(=Word Contemplation)." 2. The PBS requires individuals or groups to read one chapter of the Bible every week and provides separate study material for individuals and groups. 3. The individual plan of the PBS requires that the individuals read one sixth of a chapter of the Bible each day. 4. The group plan of the PBS requires that groups read on chapter of the Bible each week. 5. If you begin with materials for both individuals and groups at the same time, the educational effect will be greater. For example, if you read chapter one of Mark for your individual PBS and are also part of the group PBS, the materials from the individual and group PBS will compliment one another, and allow you to obtain greater understanding. In this case, the individual Bible study and the group Bible study are correlated and help each other.6. "PRAXIS (PRAXIS)" is a Greek word meaning "practice." "Facio Ergo Sum" in Latin means "I do, therefore I am." The sentence is presented on the cover in order to emphasize that you must not only learn, but also practice what you learn from the divine reading everyday in order to become a Christian. 7. The PBS invites you to the monastic Christian life.* Text used temporarily NIV.

How to Use This Book

1st week-1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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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ld Testament was the Bible to Israelites, God's chosen people. The people had a unique religious life related to the Bible. They lived each day by keeping the text of the Bible in their heart and meditating on them day and night. We can read about such a life in Psalm 1:2, "the blessed is the one who meditates on God's law day and night." They lived everyday with the Bible. The first Christians had a unique religious life related to God. They kept worship service everyday. In Acts 2:46, the first Christians gathered everyday at the temple to worship God. An Important part of the worship was reading the Bible. The original Christian life consisted of reading the Bible and living with God everyday. We, modern Christians, have lost the precious tradition of the origianal Christian life. We don't like reading the Bible everyday. We don't like having worship service everyday. We satisfied with giving only one service per week. As a result, Christians are losing spiritual power in their life, and churches are in decline. The PBS is a movement to recover the meditation tradition that we have lost. The goal of the PBS is that every Christian reads the Bible everyday and lives with God in daily life. Read each day the apportioned amount of text which is one sixth of one chapter of the Bible. If you keep what you have read in your heart, God will be always with you. Don't be afraid of taking on the challenge. Practice it, and you will experience God in your life.)

Date: January 1, 2011 Text: Mark 1:1-8

Review

Can you recall God's words that you have previously read or heard? Write it by reducing to one sentence.

If I meditate God's word day and night, God will 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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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 success.

( V ) Check if you have kept the word in your heart.

# (Living with having God's word in one's heart is Christian life. The question above is not a memory test. It questions whether you have lived with God word or not. It aims to fulfill three goals: to discipline you into having God's word in heart, to allow you to experience power of the word, and to help you make a habit of living with God's word. Reviewing is an extension of the Word Contemplation, the last step of the Lectio Divina. Having God's word in one's heart is a clear evidence for salvation. The PBS does not ask, "Are you saved?" but "What word is in your heart?")

1. Word Reading (Lectio)

# (The Word Reading is the first step of the Lectio Divina. The goal of the Word Reading is to determine the scene associated with the text.)

1.1. Preparatory Prayer Pray the following prayer repeatedly either in silence or in quiet voice until you feel God's love.

"Father God I love you, Holy Son Jesus Christ I love you,

and Holy Spirit I love you."

# (The Bible should be read not by your brain but by your heart. It means that reading the Bible is not for knowledge but for awakening. Awakening is the ultimate goal of the Praxis Bible Study. To attain the awakening, we should open our heart to God. The PBS suggests a prayer to God the Trinity. Pray slowly the prayer presented above. Imagine God, Jesus Christ, and the Holy Spirit 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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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Confess your love when you call out to each.)

1.2. Reading

Read the text correctly with pious heart, as if you were reading before God (coram Deo).

# (The world religions have their own canons. They distinguish the canon from common books, and they read the canon with a different attitude. The Bible is the Christian canon. At the time of the Middle Ages, Christians had read the Bible with different attitude. Modern Christians have lost this attitude when reading the Bible, the Christian canon. Most of them read the Bible as if they are reading any other book. The Word Reading, the first step of the Lectio Divina, is a disciplined way to read the Bible. The Bible is God's word, so reading the Bible is the same as listening to God's word. In other words, you lend your voice to God for reading the Bible, and you listen carefully God's voice speaking through your voice. Therefore, when you read the Bible, you should read like God's speaking to you and listen like your hearing God's voice. In the PBS, to understand means to come up with a scene. Every text in the Bible has its unique scene. When you read a text, use your imagination and seek out the images hidden behind letters as a movie director does. That is meditation aspect of the PBS. If you don't find any scene in the text, it means that you don't understand it. Therefore, read the text clearly, carefully and slowly in order to help to come up with scenes for the text.)

PARAGRAPH A (1)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2)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 (3)"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4)And so John came, baptizing in the desert region and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5)The whole Ju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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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side and all the people of Jerusalem went out to him. Confessing their sins, they were baptized by him in the Jordan River. (6)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7)And this was his message: "After me will come one more powerful than I,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tie. (8)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1.3. Paraphrase

2. Word Meditation (Meditatio)

# (The Word Meditation is the second step of the Lectio Divina. The goal of the Word Meditation is to write God word on your heart.)

2.1. Your Words

As you read the presented text, although all the words are important, find three words or phrases that you think are more important to you than others. Write them and their verse number.

# ("2.1. Your Words" is to train you to find out words or phrases that impress you or touch your heart. Each word in the Bible is like a jewel or a precious stone. To find your words in the Bible is like choosing your favorite ones among many jewels. If you have more time, you should meditate on the reason why you have chosen those words in the text. A "phrase" means a group of more than two words.)

a. The beginning of the gospel (Verse #: 1 )

b. the way for the Lord (Verse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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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John (Verse #: 4 )

2.2. Difficult WordsWhat are the difficult words that you don't understand? Write them and their verse number. Later, you may ask to group leader or pastor for help understand them.

# (We cannot get answer to all questions in the Bible, but we have to try to get as many answers as we possibly can. As your leader or pastor about the difficult words, or refer to good commentaries, which explain the Bible.)

baptism of repentance (Verse #: 4 )

2.3. Your Verse

What is the verse in the text that impress you or touch your heart? Write the verse and its number.

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Verse #: 1 )

# (It will be beneficial for you to think deeply about the reason why you have chosen the verse in the text.)

2.4. Finding Model

In the Bible, there are models(human characters, souls, angels, devil, demons, or animals), whom you should or should not imitate. Find out what kinds of models are in the text, and choose one of them that especially impresses to you. Write your model and the verse number belonging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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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inding Model" is to find out a figure or model, in the presented text that impresses you or your heart. It can be either good figure or bad figure. God teaches us through even the bad models in the Bible. Therefore, you need to see models in the text. Some figures and models are easily spotted. In many cases, however, many other figures are hidden behind the letters. You can find the hidden figures by carefully and deeply meditating on the text. It will be good for you to meditate deeply about the reason why you have chosen the verse in the text.)

John the Baptist: With humbleness and reverence, he

introduces to people Jesus who will come after him.

2.5. Finding GodThe Bible is the book about God the Father, Jesus Christ the Son, and the Holy Spirit, which is called God the Trinity. Therefore, in any text of the Bible, there are words, activities, or nature of the Triune God.

2.5.1. Whom among God the Trinity do you find in the text?

God the Father (Verse #: 2 )

2.5.2. What(word, work, or nature) did He do or show in the text?

Planed to send His Son and prepare it through

His messenger. 2.5.3. Why did He do so?

Because He wanted to save the world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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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inding God" is to find a God in the presented text that impresses you or your heart. God may be easily spotted in the text. In many case, however, God is hidden behind the letters. You can find the hidden God by carefully and deeply meditating on the text. The God that you have found through the Word Meditation is the ultimate image of God that you must imitate.)

2.6. One Sentence Summary

Reduce the presented paragraph into one sentence in order to easily memorize it.

Your Sentence:

PARAGRAPH A To prepare the way of Jesus, John the

Baptist did the ministry of repentance in the desert.

# (When you read an article in a newspaper, you may have told friend about the article with one sentence that summarized it. You may use the same method here.)

2.7. Making TitleCome up with a title for the paragraph by using the summary sentence you wrote. Good title should be made under four words. The title should make it easy for you remember the paragraph.

Your Title:

PARAGRAPH A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 (It is never easy both reducing a whole paragraph into one sentence and then making a title with the reduced sentence. It requires much effort and discipline. It can be likened to the process to cut and polish original material to make a gemstone. Your title, like a precious gemstone, helps you to keep God's words in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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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Meditating

Close the text of the Bible. By meditating, you should write the text of the Bible onto your heart. Keeping the title in your mind, meditate on the contents of the text that is related to the title.

It is time to write today's scripture on your heart.

3. Word Prayer (Oratio)

# (The Word Prayer is the third step of the Lectio Divina. The goal of the Word Prayer is to feel God's heart and to listen to God's voice from the text written on your heart. I would like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meditation and contemplation which have similar meanings. The meditation in the Lectio Divina has to do with the text written on the Bible. The contemplation is to do with the text on the heart. The first two steps of Lecio Divina belong to meditation. The last two steps belong to contemplation. Therefore, the Word Prayer is a kind of contemplation, which is done without book.)

3.1. God's HeartIn Philippians 2:5, "Your heart should be the same as the heart in Christ Jesus." Christians are those who have God's heart. Christian spirituality means keeping God's heart. Meditating each scene in the text, you should understand God's mind and keep it in your heart. It is the first goal of the Word Prayer. You can follow the order presented below.

What kind of God's heart did you feel in the Word Prayer?

I felt God's sadness that He must send to the

word His only begotten Son, Jesus Christ. It wa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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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good news, to humans who had destiny of death

because of sin, but to God deep sadness.

1. Pray as you contemplate on the presented text.2. Focus on the God whom you found in "2.5. Finding God".3. Ask God to reveal His heart to you. 4. Feel God's Heart.5. After you finish the prayer, answer the question.

# (In Acts 13:22, God said, "David is the man according to God's heart and will do all God's will." All Christian should also be the man/woman according to God's heart. To be such a person, Christians should know God's heart. The Word Prayer is a discipline for reading God's heart in the Bible. Most Christians only read letters of the text, but mature Christians read God's heart in the text.)

3.2. God's Voice In 2 Timothy 3:16, "All Scripture is inspired by God and is useful for teaching, for condemning, for correction, for disciplining in righteousness." Even though it is the same text, God may speak to you in different voices: teaching, condemning, correcting, or disciplining. The second goal of the word prayer is to listen God's voice in the text. You may follow the order presented below.

What kind of God's voice did you hear in the Word Prayer?

Confess to God your fault, transgression, or sins, as

the people in the desert repented by confessing their sins.

1. Pray as you contemplate on the presented text.2. Focus on the scenes in the text.3. Find a model that you can compare to yourself among various characters i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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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s. 4. Standing before God in the scene, listen to God's voice speaking to you as if you were the model. 5. After you finish the prayer, answer the question.

# (What is God's voice? You have already heard to it. God's voice is what you realized or awakened when you read the Bible or listened to sermon. According to the 2 Timothy 3:16, the voice is distinguished into four types: teaching, condemning, correcting, and disciplining. From one scripture, different types of voices can be heard according to the status of listener. Following is an example. In Deuteronomy 5:19, we read, "You shall not steal." To the one who has never stolen, the scripture will be heard as a voice of good ethical teaching. To the one who is stealing now, the word will be heard as a voice of rebuke or condemnation. To the one who tries to stop stealing because of the conscience of faith, the word will be heard as a voice of correction. To the one who has already stopped stealing long time ago, the word will be heard as a voice of training or discipline. One scripture in the Bible has many voices. Therefore, God's word is truth. Praying with the text in your heart, listen what God speaks to you.)

4. Word Contemplation (Contemplatio)

# (The Word Contemplation is the fourth step of the Lectio Divina. The goal of the Word Contemplation is to live with God's word in real life. The Word Contemplation is a mental activity to deeply, continuously, and throughly reflect upon God's word written on your heart. If you continue the Word Contemplation, the word in your heart will shine upon yourself and your life. If the ray of the word shines upon you, your true figure will be revealed. It is a revelation by God's word. Therefore, God's word is very important to Christian life. Do not lose something that is so pre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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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Word Contemplation

Live with the word written on your heart until you meet another God's word. The Word Contemplation is practicing to live with God's word, God heart and God's voice. Because the word has been written on your heart, you can read it wherever you are. The place where you practice the Word Contemplation will be a monastery to practice the truth of the cross, regardless of whether the place is your home, your work place, or your place of business. Through the Word Contemplation, the word in your heart will shine, and lead you and your life.

4.2. Contemplation Prayer Read the following scripture three times with conviction. If you memorize the scripture, recite loudly it three times. Finish the prayer with "In the name of Jesus Christ."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Psalm 119:105)

Go out to the world with the word in your heart. Living with the word is the Word Contemplation.

4.3. Contemplation in GreetingsWhen you greet a brother or sister in Christ, in addition to your greetings, ask

each other "What word is in your heart?"

4.4. Contemplation in Meals

Whenever you pray for a meal, contemplate God's word in the prayer.

The word in your heart will work in your life.

# (What you have awakened from sermon or Bible study is a precious jewel of truth. Never throw it away. Keep the jewel securely in your heart. The ray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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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 will shine on you. Until now, Christians have been satisfied with only listening to God's word being proclaimed in church. They don't take the word with them, but leave it in the church when they return to the world after the worship service. As a result, they aren't able bear Christian fruits in their real life. Practice(=PRAXIS) the Word Contemplation in your life!!! God's word is your light.)

Living in the Word = Contemp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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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week-1st day Date: / / /

Text: Mark 1:1-8

Review

Can you recall one of God's words that you have previously read or heard? Write it by reducing to one sentence.

( ) Check if you have kept the word in your heart.

1. Word Reading (Lectio)1.1. Preparatory Prayer Pray the following prayer repeatedly either in silence or in quiet voice until you feel God's love.

"Father God I love you, Holy Son Jesus Christ I love you,

and Holy Spirit I love you."

1.2. Reading

Read the text correctly with pious heart, as if you were reading before God (coram Deo).

PARAGRAPH A (1)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2)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 (3)"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4)And so John came, baptizing in the desert region and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5)The whole Ju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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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side and all the people of Jerusalem went out to him. Confessing their sins, they were baptized by him in the Jordan River. (6)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7)And this was his message: "After me will come one more powerful than I,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tie. (8)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1.3. Paraphrase

2. Word Meditation (Meditatio)2.1. Your Words

As you read the presented text, although all the words are important, find three words or phrases that you think are more important to you than others. Write them and their verse number.

a. (Verse #: )

b. (Verse #: )

c. (Verse #: )

2.2. Difficult WordsWhat are the difficult words that you don't understand? Write them and their verse number. Later, you may ask to group leader or pastor for help understand them.

(Verse #: )

2.3. Your VerseWhat is the verse in the text that impress you or touch your heart? Write the verse and its number.

(Verse #: )

2.4. Finding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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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ible, there are models(human characters, souls, angels, devil, demons, or animals), whom you should or should not imitate. Find out what kinds of models are in the text, and choose one of them that especially impresses to you. Write your model and the verse number belonging to it.

2.5. Finding GodThe Bible is the book about God the Father, Jesus Christ the Son, and the Holy Spirit, which is called God the Trinity. Therefore, in any text of the Bible, there are words, activities, or nature of the Triune God.

2.5.1. Whom among God the Trinity do you find in the text?

(Verse #: )

2.5.2. What(word, work, or nature) did He do or show in the text?

2.5.3. Why did He do so?

2.6. One Sentence SummaryReduce the presented paragraph into one sentence in order to easily memorize it.

Your Sentence:

PARAGRAPH A

2.7. Making TitleCome up with a title for the paragraph by using the summary sentence you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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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title should be made under four words. The title should make it easy for you remember the paragraph.

Your Title:

PARAGRAPH A 2.8. Meditating

Close the text of the Bible. By meditating, you should write the text of the Bible onto your heart. Keeping the title in your mind, meditate on the contents of the text that is related to the title.

It is time to write today's scripture on your heart.

3. Word Prayer (Oratio)3.1. God's HeartIn Philippians 2:5, "Your heart should be the same as the heart in Christ Jesus." Christians are those who have God's heart. Christian spirituality means keeping God's heart. Meditating each scene in the text, you should understand God's mind and keep it in your heart. It is the first goal of the Word Prayer. You can follow the order presented below.

What kind of God's heart did you feel in the Word Prayer?

1. Pray as you contemplate on the presented text.2. Focus on the God whom you found in "2.5. Finding God".3. Ask God to reveal His heart to you. 4. Feel God's Heart.5. After you finish the prayer, answer the question.

3.2. God's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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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 Timothy 3:16, "All Scripture is inspired by God and is useful for teaching, for condemning, for correction, for disciplining in righteousness." Even though it is the same text, God may speak to you in different voices: teaching, condemning, correcting, or disciplining. The second goal of the word prayer is to listen God's voice in the text. You may follow the order presented below.

What kind of God's voice did you hear in the Word Prayer?

1. Pray as you contemplate on the presented text.2. Focus on the scenes in the text.3. Find a model that you can compare to yourself among various characters in the scenes. 4. Standing before God in the scene, listen to God's voice speaking to you as if you were the model. 5. After you finish the prayer, answer the question.

4. Word Contemplation (Contemplatio)4.1. Word Contemplation

Live with the word written on your heart until you meet another God's word. The Word Contemplation is practicing to live with God's word, God heart and God's voice. Because the word has been written on your heart, you can read it wherever you are. The place where you practice the Word Contemplation will be a monastery to practice the truth of the cross, regardless of whether the place is your home, your work place, or your place of business. Through the Word Contemplation, the word in your heart will shine, and lead you and your life.

4.2. Contemplation Prayer Read the following scripture three times with conviction. If you memorize the scripture, recite loudly it three times. Finish the prayer with "In the name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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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Psalm 119:105)

Go out to the world with the word in your heart. Living with the word is the Word Contemplation.

4.3. Contemplation in Greetings

When you greet a brother or sister in Christ, in addition to your greetings, ask

each other "What word is in your heart?"

4.4. Contemplation in Meals

Whenever you pray for a meal, contemplate God's word in the prayer.

The word in your heart will work in your life.

Living in the Word = Contemp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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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목차

I. 시작하는 글1. 신화 회복을 위한 시도2. 방황하는 자를 위한 책 『큐복음서』3. 큐와의 만남 4. “신화”의 정의

II. 무엇을 잃어버렸는가?1. 내셔날 지오그래픽 기사: 부두 종교의 아프리카 기원2. 신화를 상실한 자화상 2.1. 나의 신화 2.2. 신화 안에 종교 체험 2.3. 과학을 좋아하는 기독교인 2.4. 혼란에 빠진 신학생 2.5. 본질에 관한 질문 2.6. 하나님 없는 기독교인 2.7. 현대 기독교를 떠나는 신학생들3. 방황하는 기독교

III. 상실의 시작1. 종교개혁 이후 교리전쟁 1.1. 종교개혁의 원리: “오직 성서로”(sola scriptura) 1.2. 이백년 교리전쟁 2. 계몽주의 출현 2.1. 계몽주의 시기 2.2. 계몽주의의 원리3. 계몽주의와 기독교 3.1. 이성적 초자연주의의 기독교 변증 3.2. 이신론의 출현4. 이신론의 기독교 해체 4.1. 영국 이신론자 탈런드: 이성 안에 갇히는 성서의 초월성 4.2. 영국의 이신론자 틴델: 도덕적 성취를 위한 기독교 4.3. 독일의 이신론자 라이마루스: 역사적 예수와 기독교 기원

4.3.1. 역사적 예수: 후기 유대 종말론에 미쳤던 한 유대인4.3.2. 기독교의 기원: 사도들의 사기극으로 시작된 기독교

5. 요약

IV. 종교와 과학의 충돌1. 충돌의 시대 1.1. 종교의 과학적 진리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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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과학의 반격2. 세계관의 충돌 2.1. 천국과 우주과학의 충돌 2.2. 지옥과 지구과학의 충돌 3. 역사관 충돌: 구속사와 자연사 4. 인간론 충돌: 창조론과 진화론 5. 방황의 역사 5.1. 중세기: 종교의 지배로 인한 과학의 방황 시대 5.2. 현 시대: 과학의 지배로 인한 종교의 방황 시대

V. 신의 죽음의 시대에 방황한 사람들: 포이엘바하, 칼 마르크스, 니체1. 포이엘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 1.1. 제 2의 종교개혁자: 인간이 신이다 1.2. 신학을 포기한 사람 1.3. 뒤집기 방법: 변형적 비평(transformational criticism) 1.4. 전통 종교 해체 1.5. 포이엘바하의 종교개혁2.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2.1. 기독교인이었던 마르크스 2.2. 포이엘바하와 결별 2.3. 돈과 자본주의와 기독교 2.4. 기독교 비판: 종교는 마약이다 2.5. 산업시대 노동자를 위한 복음: 공산주의3.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3.1. 미친 사람: 신은 죽었다 3.2. 목사의 아들 3.3. 기독교 비판: 기독교는 독약이다 3.4. 초인간(Übermensch) 3.5. 미친 사람이 된 니체4. 우리의 현실: 불신의 시대

VI. 성서신학의 위기1. 힘을 잃은 하나님 말씀2. 성서비평 역사 2.1. 문헌비평 시작 2.2. 역사비평의 시작 2.2.1. 제믈러: 역사비평의 아버지 2.2.2. 가블러: 성서신학의 독립선언 2.2.3. 바우어 2.2.4. 바우르 2.3. 구속사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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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종교사학파 2.5. 양식사학파: 루돌프 불투만 2.6. 성서 비평 역사에 나타난 해결될 수 없는 근본 문제3. 성서비평 방법 3.1. 문헌비평(文獻批評, Literary Criticism, Literarkritik) 3.2. 자료비평(資料批評, Source Criticism, Quellenkritik) 3.3. 전승사 비평(傳承史 批評, Tradition-history Criticism, Traditionsgeschichte Kritik) 3.4. 편집사 비평(編輯史 批評, Redaction Criticism, Redaktionsgeschichte Kritik) 3.5. 양식사비평(樣式史 批評, Form Criticism, Formgeschichte Kritik)4. 성서비평 방법의 한계5. 성서신학과 기독교의 결별

VII.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1. 불투만의 비신화화2. 야스퍼스의 신화의 중요성3.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4. 신앙과 학문의 분리5. 학문을 하는 신앙인 ! 헌정

VIII. 부록: 인도종교와 혼합된 『도마복음』1. 항아리에서 쏟아진 영지주의 문헌들 1.1. 『도마복음』이 들어있던 항아리 1.2. 침묵하는 항아리2. 그리스 로마 세계에 포함된 인도 2.1. 낙하마디 문헌들의 뿌리를 찾아서 2.2.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도와 문화 교류 2.3. 그리스 로마 문헌에 기록된 힌두 종교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3.3.1. 자이나교 3.3.2. 불교 3.4. 정통 내에 개혁바람: 힌두 육파철학 3.4.1. 상키야(Samkhya) 학파 3.4.2. 요가(Yoga) 학파 3.4.3. 베단타(Vedanta) 학파 3.4.4. 미맘사(Mimamsa) 학파 3.4.5. 바이세쉬카(Vaisesika)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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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니야야(Nyaya) 학파4. 인도종교와 기독교의 혼합 4.1. 영지주의의 본산 이집트 4.2. 영지주의 문헌 안에 힌두사상: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4.2.1. 영지와 깨달음 4.2.2.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신관 4.2.3.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세계관 4.2.3.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4.2.4.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일치5. 절대로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5.1. 첫째 이유: 복음과 독약이 혼합된 『도마복음』 5.2. 둘째 이유: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용 안한 『도마복음』 5.3. 셋째 이유: 현존하는 2만5천여 개의 성서사본들의 증거 6.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