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을 내면서 - prof.ysu.ac.krprof.ysu.ac.kr/pds_update/삶과문학(편집).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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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을 내면서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 부족으로 미루다, 이번 학기에 맞추어 급하게 출간되었 . 앞서 출간된 책에서는 잘 못된 부분(오타 등)이 너무 많아서 강의를 하면서 학 생들에게 죄송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단에 선지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시 집 온 새색시 모양으로 여유가 없고 산만하다. 문학은 우리의 삶의 부분이며, 인생의 동반적 향유물이며, 가치 추구의 대상일 수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 사이버 시대의 문학의 가치와 아날로그적 활자 시대의 가치관 사이에 공존의 삶을 추구하려는 게 또한 이시대의 문학의 갈등일 수도 있 . 영상언어와 문자언어의 공존이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으로 비칠 때도 많다. 우리는 문학이란 장터에서 신구(新舊)가 어울려져 질퍽한 축제의 마당을 가져 볼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러나 문학을 말할 때 아직도 나의 마음 깊은 곳 에 남아있는 최재서 박사의 글귀가 생각난다.“문학은 체험의 조직화이며 감정의 질 서화이며 가치의 실현이다.” 올 여름은 유달리 덥다. 지구촌이 후끈 달아있다. 많은 인구수, 공해에 의한 오 존층의 파괴 등이 주범이다.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산악회원들과 중국의 절경인 계 림을 다녀왔다. 산수의 절묘한 조화와 잊어버렸던 시골풍경의 풍요로움을 맛보고 와서 그런지 이번 학기 강의는 신선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어 줄 학생 제군들의 건 투를 빈다. 20107천성산 자락 영산대학교 양산캠퍼스에서 문학박사 우 동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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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정판을 내면서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 부족으로 미루다, 이번 학기에 맞추어 급하게 출간되었

    다. 앞서 출간된 책에서는 잘 못된 부분(오타 등)이 너무 많아서 강의를 하면서 학

    생들에게 죄송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단에 선지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시

    집 온 새색시 모양으로 여유가 없고 산만하다.

    문학은 우리의 삶의 부분이며, 인생의 동반적 향유물이며, 가치 추구의 대상일

    수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 사이버 시대의 문학의 가치와 아날로그적 활자 시대의

    가치관 사이에 공존의 삶을 추구하려는 게 또한 이시대의 문학의 갈등일 수도 있

    다. 영상언어와 문자언어의 공존이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으로 비칠 때도 많다.

    우리는 문학이란 장터에서 신구(新舊)가 어울려져 질퍽한 축제의 마당을 가져 볼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러나 문학을 말할 때 아직도 나의 마음 깊은 곳

    에 남아있는 최재서 박사의 글귀가 생각난다.“문학은 체험의 조직화이며 감정의 질

    서화이며 가치의 실현이다.”

    올 여름은 유달리 덥다. 지구촌이 후끈 달아있다. 많은 인구수, 공해에 의한 오

    존층의 파괴 등이 주범이다.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산악회원들과 중국의 절경인 계

    림을 다녀왔다. 산수의 절묘한 조화와 잊어버렸던 시골풍경의 풍요로움을 맛보고

    와서 그런지 이번 학기 강의는 신선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어 줄 학생 제군들의 건

    투를 빈다.

    2010년 7월

    천성산 자락 영산대학교 양산캠퍼스에서

    문학박사 우 동 욱

  • 서 문

    문학 강의를 한답시고 강의실을 분주하게 들락날락한 게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영미문학을 전공하면서 항상 작품 텍스트는 정독도 못한 채 까다로운 비평서의 밑

    줄만 긋고 있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절로 한심한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양산캠

    퍼스에 와서 학교의 교과과정에 따라 회화책, 독해책, 토익책을 곁에 두고 강의하

    면서 교양 문학 강좌에 부분적이나마 나의 정열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나 강의 대

    상학생들과 나의 외국문학에 대한 습관적 관행의 차이가 솔직히 많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영미문학이든 우리문학이든 문학이 지향하는 목표와 연구방법은 같은 것

    이며 외국문학의 폭으로 우리 문학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래서 이젠 습관적으로 우리문학 작품을 더 많이 읽고, DVD를 빌려서 영화도 많이

    보게 되었다. 따라서 강의의 다양성과 집중이 요구되었다. 아직 변변치 않지만, 교

    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하고 다듬어서 책으로 엮어보았다. 내년에는 새롭

    게 영미문학과 우리문학의 정수를 분석해 엮어보리라 생각한다. 이번 여름은 유난

    히 나에게는 덥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염천에 나름대로 지리산 산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자부심 때문에 이번 가을학기는 마음이 더욱 더 풍요롭다. 이번 가을에

    도 천왕 일출과 세석평전의 넉넉함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끝으로 나의 졸저를

    읽어줄 학생 제군들의 행운을 빈다.

    2008년 8월

    천성산 자락 양산캠퍼스에서

    우 동 욱

  • 목 차

    제1장 삶과 문학··································································································1

    1.1. 문학은 우리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1

    1.1.1. 상상력을 지향하는 문학································································2

    1.1.2. 쾌락이냐 교훈이냐·········································································5

    1.1.3. 인생 체험의 총결산·······································································6

    [참고사항] 문학의 기원············································································8

    1.2.「문학과 인생」 / 최재서········································································11

    1.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문열·······················································17

    1.4. 목걸이(The Necklace) / Guy de Maupassant ······································21 [참고사항] 소설이란 무엇인가································································49

    1.5. 시편··········································································································52

    1.5.1. 「꽃」 / 김춘수··············································································52 1.5.2. From Waste Land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 T. S. Eliot ··············53

    [참고사항] 시란 무엇인가·······································································56

    1.6.『연극』(Play)/ Samuel Beckett ······························································· 58

    1.7.『수필』/ 피천득······················································································72

    1.7.1. 수필이란 무형식의 산문문학이다. ···············································73

    1.7.2. 수필의 특성·················································································74

    1.8. 성공적인 삶을 위해 : 마시멜로 이야기 ···············································78 [토론 문제] ······························································································86

  • 제2장 문학과 영화····························································································87

    2.1. 현대과학기술의 총아 영화 ·······································································87

    2.1.1. 한국영화 블록버스터···································································88

    2.1.2. 문학작품과 영화··········································································91

    [참고사항] 영화란 무엇인가····································································92

    2.3. 소설의 영화화 : 위대한 캐츠비 (The Great Gatsby) ···························95 2.4. 영화 밀양과 이청준의 벌레이야기 ·················································100 2.4.1. 한국소설과 영화의 상생····························································102

    2.4.2. 벌레이야기와 밀양의 비교고찰 ··················································103

    2.5.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13 2.6. 한영 번역의 실례 : 붉은산(Red Hills) ···············································116 2.7. 시편········································································································133

    2.7.1. 낙엽 / Remy de Gourmont ·······················································133

    2.7.2. 낙엽 / 이해인············································································134

    [토론 문제] ····························································································135

    제3장 문학과 사회···························································································136

    3.1. 문학과 이념····························································································136

    3.2. 예술이냐. 외설이냐·················································································138

    3.2.1. 예술과 외설················································································140

    3.3. 지조론(志操論) -변절자를 위하여- / 조지훈·······································143 3.4. 우리들의 일그러진 英雄 / 이문열······················································150 3.5. 필론의 돼지 / 이문열·········································································211 3.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226 3.7. 시편·········································································································275

    3.7.1.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275 3.7.2. 「청산(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 양성우·································276

  • 3.7.3. 「허 공」 / 정풍송········································································277 [토론 문제] ·····························································································278

    제4장 사랑, 슬픔, 기쁨 그리고 만남의 문학···············································279

    4.1. 김소월의 진달래꽃··················································································279

    4.2. 웰빙(well-being) 그리고 웰다잉(well-dying) ············································282

    4.3. 인생수업(Life Lessons) ·········································································285 4.4. 「인 연」 / 피천득····················································································292 4.5.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295 4.5.1. 들풀 향기 가득한 생명의 고백서 / 이해인································295

    4.6. 산행일기··································································································297

    4.7. 시편·········································································································300

    4.7.1. 「홀로서기」 / 서정윤··································································300 4.7.2. 「세월이 가면」 / 박인환·····························································305 4.7.3. 「초 혼」 / 김소월········································································306 4.7.4. Annabel Lee / Edgar Allan Poe ·················································307

    [토론 문제] ·····························································································309

    제5장 다매체 시대와 문학의 위기·································································310

    5.1. 문학의 위기····························································································310

    5.2. 베스트셀러 문학 작품·············································································313

    제6장 문예사조·································································································317

    6.1. 서양문학의 문예사조(文藝․思潮) / 이상섭··············································319

  • 제1장 삶과 문학 ❙ 1

    제1장 삶과 문학

    1.1. 문학은 우리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을 알기 위해 우리는 여행이나 산행을 한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려는 문학

    여행이나 문학의 산에 오르는 산행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여유와 낭만 그리고 고된 산행 후의 성취감은 우리의 팍팍한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해 준다. 문학은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며, 인생을 재미있게 풍요롭게 그리고 의

    미 있게 해준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여름철의 소나기 뒤, 맑고 푸른 하

    늘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찬란하고 황홀한 무지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

    워즈워스는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어 오르네(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라고 읊고 있다. 문학은 어려운 이론이나 복

    잡한 수식을 가진 것도 전공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활 속에 살아있는 문학,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 그리고 실

    제 삶에 관련된 문학의 세계를 오르고 여행하는 것이 문학이요 인생인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사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서양 문학사에서 중세 신분제 사

    회와 신(神)중심 사회의 세계관을 깨뜨리고 인간중심, 즉 인본주의적 사상의 세계

    관을 구축한 것을 주도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문학의 공헌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사

    상과 자유계몽주의 사상을 고취한 것도 문학이 그 선봉에 서서 쟁취한 훌륭한 업적

    이다. 춘원 이광수1)는 문학의 가치(1910)에서 ‘과학이 인(人)의 지(知)를 만족케 하는 학문이고, 문학은 인(人) 의 정(情)을 만족케 하는 서적’ 이라고 적고 있다. 그

    리고 소설가 이문열2)은 ‘문학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유인최귀(惟人最

    1) 이광수(1892-? ), 시인, 소설가, 평론가, 언론인. 평북 정주출생. 1909년 최초의 일문소설 「사랑인가」, 1917년 한국 최초의 단편소설 무정 발표. 1919년 「조선독립선언서」 발표. 재생 마의태자 단조애사 흙 이차돈의 사(死) 사랑 원효대사 유정 등과 작품과 수많은 논문과 시편이 있다.

    2) 이문열(1948- ). 소설가. 서울출생, 1977년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 1979년

  • 2 ❙ 삶과 文學

    貴)’라는 구절을 인용해 썼다. 일맥상통한 논리이다.

    물론 한자어로 따지면 문학의 문(文)은 천지자연과 만물 모습을 뜻하며 학(學)은

    학교를 의미한다. 고대 상형문자를 쓰는 중국인들에게는 인간을 자연, 즉 세계속의

    일부분으로 여겼다고 가정할 수 있겠다. 또한 에이브럼즈(M. H. Abrams)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문학의 총체적 상황을 네 가지 요소 즉 우주 즉 자연의 세계, 작품,

    작가, 독자의 4가지 요소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을 소우주라 일컫고

    삼라만상이 대우주에 속해 살아간다는 논리가 성립 될 수 있겠다.

    따라서 인류 탄생 이래로 춤, 노래, 제의의식 등의 어떤 형태이든지 문학은 자연

    이라는 배경 속에서 인간의 삶을 투시하고, 반영하며, 재현되었다. 그래서 ‘시는 자

    연의 모방’이요, ‘연극은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것’라고 했다. 문학적 삶이란,

    그리고 우리의 삶과 문학이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인생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류의 역사, 신화를 작품화 할 수 있고 민담이나 전설과 같은 구비문학

    도 속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학은 ‘글로 씌어 진 것’이라든지, ‘인쇄된 모

    든 것’이라는 통설은 인정하더라도 범주를 크게 넓혀,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을 문학의 장르라고 일컫는 고착된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주위에서 얻어 질 수

    있는 모든 문화적인 요소나 행동들을 문학의 체험현장으로 승화 시켜 나가야 한다.

    1.1.1. 상상력을 지향하는 문학

    문학은 창작자와 독자가 다함께 참여하고, 공존하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공간이

    다. 정보와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 잡지, 방송 등은 시사성이나 실용적 지식 전달은

    가능 하겠지만 인간에게 중요한 정신적 경험을 주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다. 문학

    은 그 자체가 상상력의 산물이며, 작가는 이것을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제시해 준

    다.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상상력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윌리엄 제임스는

    ‘상상은 과거에 느꼈던 것들의 모상(模像)을 재생하는 능력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아일보> 신춘문예 「새하곡(塞下曲)」이 당선 대뷔, 소설집으로 사람의 아들 그해겨울 금시조 등이 있으며, 그대 다시고향에 가지 못하리 젊은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레테의 연가 등 장편있음.

  • 제1장 삶과 문학 ❙ 3

    했다. 여기서 말하는 모상은 심상(image)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적 상상

    력을 가진 작가의 문학작품에서 독자는 감동되고 연상되어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여, 우리들의 삶에서 순간순간 역동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학 속에서 느끼는 상상력은 인간과 사물을 연결시켜주는 긍정적인 자유정신이

    며, 인간을 현실적 존재에서 초현실적 존재로 경험하게 해 준다. 문학가들의 상상

    력은 시속에서 그리고 소설 속에서 연극의 각본 속에서 훌륭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상상력에서부터 실현 불가능할 지라도, 무궁한 인간의 가능성을 실

    현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든지 극을 통해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왜 그가 오늘날 까지 위대한 시인 극작가로서 칭송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셰익

    스피어는 코올리지가 말한 세상의 모든 것을 비치는 세계같이 넓은 마음, 즉

    'Myriad-Mind'를 가진 것이 첫째이며, 그 다음은 만물을 손쉽게 구상화하는 상상력

    에 있다고 본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상상을 통해 많은 작품을 완성했고, 그리고 그

    는 천심만혼(千心萬魂)의 능력을 가진 불멸의 작가로서 햄릿, 샤이록, 오필리어, 멕

    베스, 리어왕, 데스데모나, 로미오, 쥬리엣 등의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또한 코올리

    지는 셰익스피어를 ‘아마도 인간성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상상력이 위대한 천재를 만들었다고 단정지울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상상력을 객관화 시켜 작품을 쓴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경험이 축적된 시간이 역사이듯이 개인의 축적된 경험의 시간은 기억

    이 될 수 있다. 기억과 경험이 상상력으로 승화 될 때 창조적인 작품이 탄생된다.

    박경리 선생은 ‘인간의 삶은 경험이며 기억’이라고 말하고 만남과 이별도 이것에서

    시작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들의 구성과 상상은 기억과 경험(간접경험이든 직

    접경험이든)의 편린 속에서 찾아내어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상상력이란 인간 정신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한 상태의 영역이다. 동시에

    그것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은 우리의 삶과 의식을 최대로 고양하는 어떤 경우의

    피안의 세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상상력의 영역은 이념적 상태의 것이기도 하

    다. 따라서 문학은 탐구의 영역에서 이념을 추구하는 철학과 역사와 조우하게 되

  • 4 ❙ 삶과 文學

    고,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영역과 교감을 갖게 된다. 문학이 상상력에 의해 추구

    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는 반드시 낭만과 환상의 유토피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이때의 ‘새로운 세계’ 란 달리 말하면 ‘각성된 세계’를 의미 한다고 말하는 것

    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문학은 우리가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일상의 삶의 의미

    있는 각성의 차원에서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문학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게

    반복되고 상투화 되어서, 의미가 상실된 ‘자동화된 일상’을 불러 일깨우려 한다. 우

    리의 자동화된 일상을 낯설게 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의

    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1920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의 형

    상화 기제를 미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동원했던 ‘낯설게 하기’(alienation)는 형식적

    장치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존재하는 현실로부터 ‘새로운 세

    계를 사유하게 하는’ 문학의 보편적 원리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새로

    운 세계를 추구하는 문학의 상상력 공간은 ‘현실’을 지양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노력

    이 얼마나 고매하고 인간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무릇 모든 인문적 가치는 이러한

    노력의 범주를 넘어서지 아니한다. 문학은 그러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존

    재의 불완전함에 대한 고뇌도, 삶의 부조리에 대한 깨달음도, 총체성 상실과 인간

    소외에 대한 현실주의적 비판도, 산업화 이후의 물신주의적 공황에 대한 극복도,

    민족 현실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도 모두 ‘새로운 세계’를 상상력으로 다가가는 문

    학읽기의 공간에서 가능하다.3)

    3) 문학작품, 이렇게 읽는다. 한국언어문화연구원 .도서출판 빛샘. 1999. pp.28-29

  • 제1장 삶과 문학 ❙ 5

    1.1.2. 쾌락이냐 교훈이냐

    문학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쓸모가 있거나 당장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

    다. 문학은 굶주린 자에게 밥 또는 빵을 주거나 병자에게 약을 주지도 않는다. 다

    시 말하면 문학은 물질적 기능적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을 바라는 사람은 문학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

    람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문학 작품을 읽기를 즐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 어떤 쓸모가 있어 그러는 것일까? 사실 이 문

    제는 문학적 논쟁에서 자주 있어 왔던 것 중의 하나였다. 특히 문학은 우리에게 교

    훈을 주어야 한다는 교시적 기능을 강조하는 주장과 문학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는 오락적 기능을 강조하는 주장이 맞서 왔다. 이 밖에도 이 두 가지 극단적 주장

    을 절충한 ‘당의정설’과 같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주장이나 단순한

    절충론으로는 문학의 참다운 쓸모를 찾을 수 없다. 인간이 노동하는 존재이면서 동

    시에 유희적 존재이듯이, 이 문제도 구분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해답이 찾아질 것이

    다. 우리 삶에서 원래 일 과 놀이 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학에서 우리가 배

    우는 것은 어떤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어떤 태도

    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이 관객들에게 주는 효과(Catharsis)도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설명은 사물에다 법칙을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한다. 그

    러나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은 그러지 못하다. 인생은 원인과 결과라는 과학적인 논

    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

    해 생기는 불안과 위기는 나날의 삶에서 가볍게 스쳐지나 가는 것에서부터 존재론

    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실제의 삶은 이렇듯 크고 작

    은 위험 앞에 노축되어 있는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큰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

    거나,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심성의 훈련 또는 단련이 필요하다. 그 방법에

    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방법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 6 ❙ 삶과 文學

    문학은 현실 그 자체도 아니고 현실적 세계도 아닌 허구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것은 현실에 뿌리를 둔 개연성의 세계이고,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통해 현실을 구

    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세계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제의 자기는 아니

    지만,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해보듯이, 문학도 실제 현실은 아니지만 우리

    는 그것을 통해 현실의 인식 지평을 심화 확대할 뿐만 아니라 주체도 정립해 나가

    는 것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은 결국 언어활동으로 수렴된다. 남과 이야기 하는 가

    운데 동의를 구하고 의견을 조정하고 어떤 일을 해 내는데 언어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기억과 예측이라는 행동과 연관 지어 보았을 때 이는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소설에 재료를 제시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즉 현실이소성에 재료를 제시해 주는 것은 사

    실이지만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즉 현실이 소설에 재료를 제공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소설이란 공간 속에 들어 왔을 때는 이미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해서 소설 속에 들어와 버린 허구적 현실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그리고 일단 소설이 현실이 되어 버린 재료로서의 현실은 소설 양식

    이라는 특수한 예술 장치와 상관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

    은 현실을 놓고 어떤 사람은 시로 쓰고 어떤 사람은 소설로 쓰게 되는 것이며, 같

    은 소설 분야에서도 소설가 각자의 개성이나 관점, 혹은 방법론에 따라 독특한 소

    설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떠나 존재 할 수 없다는 믿음은 이미 보편화 된지 오래다. 끝도

    없는 현실이란 개념 속에 담겨지지 않는 개념은 없다는 점에서 문학은 실로 가장

    거대한 그릇을 도구로 삼는다. 그 그릇 속에 담겨진 내용물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

    로 분장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1.1.3. 인생 체험의 총결산: 문학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문학을 공부하

    는가?

    우리가 말하는 광의의 문학은 이야기나 극적 상황이 있으며 감정을 표현하고 어

    떤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옹호하는 모든 글을 포함한다. 수천 년 전 글자가 발명되

  • 제1장 삶과 문학 ❙ 7

    기 전 문학 작품은 말로 이야기 되거나 노래로 불리어 졌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그것을 반복하는 한에서만 보존되었다. 몇몇 사회에서는 아직도 문학작품의 구전

    전통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곳에서 시나 이야기는 구전에 알맞게 창작된다. 글쓰기

    와 인쇄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조용히 눈으로 읽

    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듣는 것을 좋아할 때가 많이 있다. 부모들은 이야기나 시를

    자녀들에게 읽어주고 시인과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청중들 앞에서 직접 낭독하고

    싶어 한다. 수많은 관객을 위해 연극 각본이나 영화 대본을 무대 위나 영화 카메라

    앞에서 해설하는 경우도 흔하다.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든지 간에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사실 표현의 한계를 지닌 독자들이 어떤 특정 작품을 읽을 때 왜 즐거운지 명확하

    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독서의 가치와 중요

    성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학은 우리를 인격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장하게 한다. 문학은 지식이나 지적 능

    력의 객관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며 우리가 속해있는 문화적, 철학적, 종교적 세계

    와 우리 자신을 연결 시켜준다. 또한 문학은 우리에게 우리와 다른 장소와 시대에

    일어난 인간의 꿈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 아니라, 인간과 동식물을 포

    함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깊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문학

    은 잘 구성된 노래와 아름답게 채색된 그림처럼 질서와 배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문학은 모든 사람들이 설정한 목표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비교 근거를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주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문학은 또 흥미, 관심, 동정, 긴장, 흥분, 회한, 두

    려움, 웃음, 희망 등을 통하여 우리의 감정을 훈련시킨다. 문학은 우리의 인정과 후

    원을 필요로 하는 창조적이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격려한다. 문학은 독

    서를 통하여 축적된 경험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게 뚜렷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우리

    의 목표와 가치관을 형성해 주는데, 이러한 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받아들이

    는 적극적인 행위와 사악한 자들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문학은 지역적 혹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계발시켜줌으

  • 8 ❙ 삶과 文學

    로써 우리의 이해력을 향상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제시한다. 문학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 중 하나이다. 문학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다. (Writing about Literature-Edgar V. Roberts)

    ▶ 문학의 정의(定義)들 : - 문학은 인간의 가장 좋은 사상과 감정의 기록이다.---- Long

    - 문학은 최고한 사상의 표현이다.----- Emerson

    - 문학은 언어에 의한 사상의 표현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상이라 할 때 나는 관념,

    감정, 견해, 추리와 기타 인간 정신의 다른 작용을 의미한다.---- Newman

    * 정리해 보면

    문학은 언어에 의한 인간최고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 또는 기록이다

    * 다시 요약하면

    문학은 가치 있는 인간적 체험의 기록이다.- 최재서

    ** 문학은 체험의 조직화이며 감정의 질서화 이며 가치의 실현이다.- 최재서

    참고사항

    1. 문학의 기원

    1) 심리학적 기원설

    ①모방본능설: Aristoteles:BC 384-BC 322, ‘시학’(Poetica)

    ②유희본능설: Immanuel Kant:1724-1804,Schiller;1759-1805, Herbert Spencer;

    1820-1903

    ③자기표현 본능설: W. H. Hudson; 1841-1922

    2) 발생학적 기원설: 사회적 요청설

    - Yrjo Hirn:1870-1924, Ernst Grosse:1862-1927

    3) 발라드 댄스(Ballad Dance)설: R.G. Moulton; 1849-1924

    “문학 형태의 근본적 요소는 발라드댄스이다. 이것은 운문과 음악의 반주와

    무용의 결합인 것이다. 문학이 처음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러

  • 제1장 삶과 문학 ❙ 9

    한 형태를 취한다.”

    2. 문학의 기능: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 이며 ‘유희적 존재’

    1) 교시적 기능

    2) 쾌락적 기능

    ** 당의정설

    3. 문학의 4가지관점

    * M. H.Abrams The Mirror and the Lamp

    세계 및 대상(우주)(모방론)

    작품(존재론)

    ↙ ↘

    작가(표현론) 독자(효용론)

    4. 문학의 특성 : C.T. Winchester

    1) 항구성(Permanence)

    2) 보편성(Universality)

    3) 개성(Individuality)

    5. 문학의 요소

    1) 정서(Emotion)

    2) 상상(Imagination)

    3) 사상(Thought)

    4) 형식(Form)

    “작가가 자기의 모든 사상과 정서를 독자에게 이식하려는 모든 방법과 수단”

    ** 문학 형식의 특성(최재서)

    ① 이성 능력의 소산이다.

  • 10 ❙ 삶과 文學

    ② 내재적이다.

    ③ 장르를 결정해 준다.

    ④ 자기 한정적이다.

    ⑤ 창조적인 작가의 노력이다.

    ⑥ 기능이 바뀌면 형식도 바뀐다.

  • 제1장 삶과 문학 ❙ 11

    1.2.

    문학과 인생

    최 재 서4)

    인생 오십 고개에 올라서, 그 사이 한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돌아다보면 실오라

    기만한 외길이 보일 둥 말 둥, 줄거리 잡아 이렇다 할 아무 일도 없다. 나는 인생

    의 허무(虛無)와 무가치(無價値)를 느낀다. 나는 좀 더 충실하고, 좀 더 가치 있는

    생(生)을 체험(體驗)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 교향악(交響樂)을 듣고, 혹

    은 밀턴의 시(詩)를 읽고,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戱曲)을 읽는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대개 20 전의 청년들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 아

    직 인생을 회고(回顧)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다같이

    희망의 품안에 포옹(抱擁)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 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 반성하게 될 때에, 이글이 약간의 도움

    이 될까 해서 붓을 든다.

    옛날부터 “시는 자연의 모방(模倣)”이라 일컬어 왔고, 또 “연극(演劇)은 인생을 거

    울에 비추어 보이는 일”이라고 말해 왔다. 비교적 현대에 발달한 소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이 자주 되풀이 된다. 그만큼, 모든 문학 작품이 자연과 인생을 모방하고

    반영(反映)하여, 현실의 이모저모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의 일면이고 전면은 아니다. 어느 작품을 보아도 거기에 우리

    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래도 나타나 있지 않다. 마치 사진기가 풍경이나 인물을 촬

    영(撮影)하듯이,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모사(模寫)하지는 않는다. 문학에서 현실을

    모사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또 필요한 일도 아니다. 문학의 목적은 좀

    더 별다른 데 있다. 그것은 자연과 인생에서 소재를 선택했다가 그들의 모양을 다

    4) 최재서(1908-1964),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황해도 해주 출생. 1934년 조선일보 「현대주지주의의 문학이론 건설; 영국 평단의 주류」 「비평과 과학: 현대주지주의의 문학론 속편」 등을 발표하여 주지주의 문학론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저서로 문학과 지성 최재서 평론집 문학원론 등이 있다.

  • 12 ❙ 삶과 文學

    소 수정하고 혹은 다시 결합해서 한 예술품(藝術品)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문학 작품은, 현실적이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작

    품 세계는 현실 세계와 따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인생을 떠나서 예술이 독립할 수는 없다. 예술가(藝術家)는 그의 소재들을

    인생 체험 속에서 구해 올 뿐만 아니다, 만약 그가 진정한 천재(天才)라면 그 소재

    들을 결합하고 조직하는 독특한 방법과 원리까지도 자연에서 배워 온다. 그러니까,

    예술 세계는 현실 세계를 기반(基盤)으로 해서만 성립된다. 예술이 현실과 동일하

    지도 않고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면, 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병립(竝立)의

    관계다. 현실 세계가 있고, 그 곁에 혹은 그 위에 예술 세계가 있다.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고 반영하면서도, 독자적(獨自的)인 원리 밑에서 자체의 세계를 창조하여 독

    특한 목적을 수행(遂行)한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는 한도에서는 기록이지만, 새 세계를 창조하는 한도에서는

    예술이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기록면(記錄面)과 예술면(藝術面)을 가진다. 이 두

    면 중에서 우열(愚劣)을 가릴 수는 없다. 기록과 예술의 두 면을 구비(具備)함으로

    써 작품은 완전하다. 예술적인 면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기록적(記

    錄的)인 면만을 말하려 한다.

    문학은 현실의 기록으로서 볼 때에, 작품의 가치는 그 작품을 쓴 사람 자신이 얼

    마나 성실하게 인생을 체험했으며, 또 그 체험을 얼마나 진실하고도 아름답게 표현

    했는가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이 성실하게 인생을 실천해 보지 못한 사람의 글이

    아무리 아름다운 문구를 늘어놓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

    은 뻔한 이치(理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일평생 성실하게 진리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퍽 드물다. 진실한 생활 체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

    람은 더욱 희귀(稀貴)하다. 우리는 밀턴에게서 그런 희귀한 실례(實例)를 본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밀턴은 부유(富裕)한 집에서 태어나서 좋은 환경 속에서 자

    랐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어린 밀턴은 줄곧 음악적인 분

    위기 속에서 지냈다. 이것은 그가 장래에 시인이 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시와 음악을 결합하는 일이 그의 소년 시절의 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 제1장 삶과 문학 ❙ 13

    그의 문학적 소질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정교사의

    지도(指導)로 특별히 교육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열두 살 이후로 그는 자정

    (子正)전에 자 본 일이 별로 없었다. 아직 조명(照明)이 불완전하던 그 시대에 어린

    사람이 그렇게까지 밤늦도록 공부했다는 것은 건강에 좋았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만년(晩年)에 실명(失明)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근면(勤勉)의 덕

    택으로,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문학을 비롯하여 철학, 천문학, 물리학 등의 학

    문에 상당히 깊게 들어가 있었다.

    밀턴의 대학 시절에는 순결(純潔)한 생활로 일관(一貫)되어 있었다, 그는 그가 믿

    는 퓨리터니즘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그의 생활 감정이 여러 편의 시 속에

    남아 있다. 대학에 들어갈 때에 밀턴은 목사(牧師)가 될 예정이었지만, 대학 재학

    중에 문학으로 전향(轉向)했다. 그 당시 교회들의 타락(墮落)을 분개(憤慨)했다는

    것도 목사 지망(志望)을 단념한 이유의 하나였다. 대학을 나온 뒤에, 그의 앞에 유

    망(有望)한 길이 있었지만, 그는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독서와 시

    창작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장래를 염려하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가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투철(透徹)한 신념과 열렬한 정신(精神)을 품고 있었던가

    를 알 수 있다.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밀턴은 더욱 견문(見聞)을 넓히고자 이탈리아 여행을 떠

    났다. 그는 그 곳에서 여러 문인, 학자들과 상종(相從)했고, 또 직접 이탈리아 말로

    시를 발표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갇히어 살던 과학자 갈릴레이와 만난 것

    도 이 때였다. 이 여행증에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가 영국을 대표할

    만한 장편 서사시(長篇敍事詩)를 쓰고자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타소의 서사시

    과 경쟁해 볼 생각이었다. 전기(前記)의 서사시는 16세기 말에

    발표되어 근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시(國民詩)로서 온 유럽에 이름이 높았었

    다. 밀턴도 그런 애국적인 시를 써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를 영국 역사에 유명

    한 아서왕의 전설에서 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시칠리아 섬으로 떠나려 할 때, 본국에 내란이 일

    어났단 소식이 있어, 그는 곧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왕실과 의회

  • 14 ❙ 삶과 文學

    (議會)사이에 계속해 오던 알력(軋轢)이 마침내 정면충돌을 일으켰다. 그 때의 심정

    을 밀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포(同胞)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쾌락을 위해서 외국에 여행

    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양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밀턴의 면목(面目)이 여기에 여실(如實)히 나

    타나 있다.

    본국에 돌아온 뒤에, 밀턴은 형세(形勢)를 살피면서 여전히 문학에 정진(精進)하

    고 있었다. 그 때에 그의 머리를 점령했던 문제는 여전히 장편시(長篇詩)의 창작이

    었다. 그 때의 그 포부(抱負)는 다음 말들에서 엿볼 수 있다.

    “고심 노력(苦心努力)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일은 나의 팔자라 생각하

    는데, 그 위에 또 강한 천품(天稟)이 결합된다면, 후세(後世)사람들을

    위해서, 만만히 죽어 없어지지 않을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리하여, 그는 열심히 작품의 재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때의 계획들을 적은

    원고가 99편 보존(保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성경(聖經)에 관한 것이 66편, 영국

    역사에 관한 것이 33편이다. 마지막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선택되면서 실낙원

    (失樂園)이라는 제목이 결정된 것은 1642년이었다.

    바로 이 때에, 교회를 장로제(長老制)로 고쳐 종교와 정치를 철저히 민주화(民主

    化)하려는 법안(法案)이 의회(議會)에 제출되어 국내(國內)가 물 끓 듯했다. 밀턴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팜플렛을 써 가지고 서재(書齋)에서 나왔다. 그 후 20년 동

    안, 그는 내란(內亂)에 직접 참가해서 투쟁했다. 여러 해 연구해 오던 그의 장편시

    는 어찌 되었는가? 물론 포기(抛棄)되었다. 그렇게 알뜰한 그의 시였지만, 민족의

    자유를 위해서는 서슴치 않고 붓을 꺾는 밀턴이었다. 내란 중에 그는 크롬웰 호민

    관(護民官)밑에서 라틴 말 비서(秘書)로 있으면서, 국왕 찰스 1세를 단두대(斷頭臺)

    로 보내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여 온 유럽을 진동(震動)시켰다. 그는 그의 온갖

    지력(知力)과 정력(精力)을 바쳐 자유 진영을 위하여 싸웠다. 그러므로 문학에서는

  • 제1장 삶과 문학 ❙ 15

    멀어졌었다.

    그러나 영국의 왕실을 폐지(廢止)하고 공화국(共和國)을 만들려고 일으킨 내란은

    밀턴과 그의 동지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1660년에, 파리로 망명(亡命)했던 찰

    스 2세가 다시 영국 왕으로 영접(迎接)되어, 영국은 왕정(王政)으로 복고(復古)했다.

    혁명 투사들은 모두 붙잡혀서 처단(處斷)되었고, 밀턴도 투옥(投獄)되었으나 목숨만

    은 보존되었다. 그의 문학적 재질(才質)을 아깝게 생각하는 국왕이 특별히 그를 사

    (赦)해 준 것이다.

    이 때에 밀턴의 나이 50, 그의 이상(理想)과 더불어 지위와 권세를 잃고, 사면(四

    面)의 적(敵)들 속에서 고독과 빈궁(貧窮)에 빠졌다. 그의 가정생활(家庭生活)도 특

    별히 불행했다. 첫 번 결혼에 실패했고, 둘째 번 부인은 사망했고, 그 자신은 완전

    히 시력(視力)을 잃어 맹인(盲人)이 되었다. 실락원에서 밀턴은 암담(暗澹)한 그 자

    신을,

    고약한 시대 험(險)한 구설(口舌)을 만나

    암흑(暗黑)과 고독에 둘러싸여

    라고 하고 있다. 은 이런 환경 속에서 시작 되었다. 이 눈먼 늙은 시인이

    한 구절 구술(口述)하는 것을 그의 어린 딸이 받아쓰면, 그것을 낭독시키어 틀린 데

    를 고치고, 이리하여 12권 장편시를 읊어 나가는 장면은 참담(慘憺)하고도 엄숙하

    였다. 무엇이 맹목(盲目)의 시인을 몰아서 시를 읊게 했던가? 그것은 그가 젊었을

    때 약속했던, 만만히 죽어 없어지지 않을 만한 불후(不朽)의 작품을 후세에 남기겠

    다는 불붙는 열정(熱情)이었다.

    밀턴은 이 작품 속에다 그의 지식과 학문과 사상과 신념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

    특히 왕정복고(王政復古) 이후에 그가 겪은 가지가지의 쓰라린 감정 - 실망과 분만

    (憤懣), 권세에 대한 반항과, 아첨(阿諂)에 대한 멸시(蔑視), 하느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회한(悔恨) - 요컨대, 그의 인생 전체를 털어 넣

    었다. 뿐만 아니라 밀턴은 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일생을 살고 싸우고 고민

  • 16 ❙ 삶과 文學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실락원은 그가 예언했던 대로 불후(不朽)의

    작품이 되었다. 밀턴은 양서(良書)를 정의(定義)하여 “생명을 넘어 생명으로 길이

    전하고자, 대가(大家)의 생명 고혈(膏血)을 향약(香藥)으로 처리하여 보존한 것”이라

    말했는데, 이 말은 그대로 그 자신의 책의 성질을 설명한다.

    지식을 전하는 책은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서 잊혀 지지만, 진실한 사상과 보편적

    (普遍的)인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은 그 생명이 영구하다. 다만, 그런 사상과 감정

    은 밀턴의 경우에서처럼 성실하고도 열렬한 인생 체험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다. 러

    스킨은 그러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웅변적(雄辯的)으로 말하고 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이것을 진실하고도 유익하다’ 또는 ‘유익하고도 아름답다’고 스

    스로 생각하는, 말해야 할 그 무엇을 가진다. 그가 알기로는, 과거에 아무도 그것을

    말할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도 말할 사람이 없다. 그는 그것을 분명하고도 음악적

    (音樂的)으로, 적어도 분명하게 말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인생을 총결산(總決算)하

    는 마당에서, 그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태양의 혜택을 입음으로 인

    연(因緣)해서,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알게 된 참다운 지식이며, 참다운 의견 이었다

    함을 자각(自覺)한다. 그는 그것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다. 될 수만 있다면 바위에

    새겨 두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그 나머지는 나도 남들

    처럼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미워했다. 나의 인생은 수증기(水蒸氣)처럼 사라지고,

    이제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나의 눈으로 보았고, 나의 마음으로 알았

    다. 나에게서 그 무엇이 가치 있다면, 이 책이야말로 당신들이 기억해 줄 만한 가

    치 있는 나의 일부다.’

  • 제1장 삶과 문학 ❙ 17

    1.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이 문 열

    젊은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나를 늘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등단한 뒤에도 대답하

    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물음을 이제 와서 다시 받고 아득한 느낌을 받는다. 왜 문학

    을 하는가. 너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갈채와 악의에 지치고, 못 다 펼친 열정의 미련

    과 일찍 늙는 편안함의 유혹에 번갈아 시달리며 저 만치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이

    미묘한 때에 다시 받게 된 이 물음에는 오래 잊고 지낸 상처를 헤집는 듯 매섭고도

    적의 어린 데가 있다. 어떤 일을 왜 하는 가란 물음은 한 마디로 그 일을 하는 목

    적을 묻는 것이고, 목적이란 대개 그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

    적인 의도를 말한다. 그리고 그 적극적인 의도는 크게 두 단계로 형성된다.

    첫째는 어떤 가치의 존재를 인지하는 단계이고, 다음은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자기를 내 던질 결의를 하게 되는 단계이다. 내가 문학이란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을 남보다 좀 빨리 알게 된 것은 고단했던 삶이 준 엉뚱한 여가 때문이었던 성싶

    다.

    1955년 안동 중앙국민학교에 입학한 나는 2학년 늦가을에 서울로 옮겨가게 되었

    는데 전학증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은 끝에 서울 종암초등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듬해 4월이었다. 그 반년에 가까운 방학 아닌 방학이

    바로 내가 문학과 첫 대면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 내게는 중 ․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들과 누이가 있어서 집안을 굴러다니는 읽을거리가 흔했다. 먼저 잡지 ‘학원’과 노랑색 표지의 ‘학원소년소녀 세계명작 전집’

    이 떠오르고 이어 대본점에서 빌려온 ‘청춘극장’이나 ‘순애보’ ‘마인’ 같은 책들도 기

    억이 만다. 어린 내 이해가 닿은 곳은 주로 ‘학원’ 쪽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강

    렬하게 기억되는 것은 세계명작전집의 하나였던 ‘걸리버 여행기’이다. 비록 초등학

    교 상급반 아이들을 위한 축약판(縮約版)이었지만 내 생애에서 한권의 책을 첫 장

  • 18 ❙ 삶과 文學

    부터 끝까지 통독한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여기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가 있

    다. 재미있고, 아마도 유용할 수도 있는 세계가 ― 그때 내가 조리 있게 말을 조직

    할 줄 알았더라면 대강 그렇게 내 느낌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에 보태 몇 권의 책을 알 듯 말듯하게 더 읽은 뒤 나는 다시 초등학교 3학

    년 교실로 끌려 나갔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또래 평균치의 감수성으로는 끝내 돌

    아가지 못했다. 그 뒤 내 삶은 그런 비정상적인 조숙(早熟)을 거의 일상적인 상태

    로 만들만큼 고단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태를 자주해, 대학 졸업 때

    까지의 정규 교육 16년 중에서 내가 또래들과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절반인 8년 남

    짓이다. 나머지 8년 가까운 세월은 내 골방이나 암자 또는 임시직 일터에서 읽기

    하나만으로 모든 지적(知的)인 수련을 대신하였는데 그 일기의 주종은 대개 문학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적극적인 의도, 곧 문학적 가치 창출에 끼어들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또래보다 많이 늦은 것 같다. 대학에 가서도 그 이듬해야 문학 서클을 기웃거

    리고 습작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는 여전히 유보(留保)가 있었다. 쓰며 사는 것은 좋지만 ‘써야만 사는 운명’은 피하

    고 싶다는….

    그 유보 때문에 그 때의 내 자기투척(自己投擲)은 그리 치열하지도 지속적이지도

    못했다. 겨우 일 년 남짓 쓰기에 몰두하다가 다시 여기저기로 길을 돌았다. 그리고

    그 동안 개발된 것은 왜 문학을 하는가가 아니라, 왜 문학해서는 안 되는가의 논리

    였다. 나는 비뚤어진 적개심까지 짜내 반(反) 문학의 논리를 구성해 자신을 설득하

    려고 애썼다. 그때는 사장(詞章)을 경시하고, 문학을 여기(餘技)로 보는 고향의 전

    통적 가치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무슨 외길 수순을 밟듯 내 삶은 한 방향으로 내 몰렸다. 용

    감하게 문학을 떠났다가 다시 참회하듯 돌아오기를 십년 가까이 되풀이하다가 1977

    년에는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를, 19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나는 끝내

    소설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습작시절에 받을 때마다 곤혹스러웠던 질문 - 왜

    문학을 하는가, 또는 어떻게 하여 문학하게 되었는가를 기자와 독자로부터 본격적

  • 제1장 삶과 문학 ❙ 19

    인 심문처럼 받게 되었다.

    어설프게나마 나는 문학개론을 배운 적이 있고, 문학의 가치를 승인하는 여러 논

    리들도 알고 있다. 또 거기서 배우거나 읽은 논리들을 반복하거나 글로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습작기 내내 나를 잡아둔 것은 그 휘황한 논리들이 아니

    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쓰기가 숨 쉬듯이 잠자듯이 도무지 그 목적이나 의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본능적인 행위가 되었다. 따라서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내가

    문학하는 까닭을 억지로 짜 맞추다 보면 진땀부터 먼저 났다. 그 곤혹스러움에서

    나를 구해준 것이 등단 이듬해인가, 어떤 잡지사가 마련한 최인훈 선생님과의 대담

    이다. 그때 나는 최 선생님께서는 왜 소설을 쓰시는지 진심으로 궁금하여 여쭈어

    보았다.

    “그걸 왜 내가 답해야 하나? 소설이란 내가 창안한 것도 아니고, 또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면 몇 세기나 존속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미 가치

    를 승인 받고 존속되어 온 소설이란 문화적 제도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한가.”

    선생님은 대강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내게는 충격이었다. 당신의 작

    품에 담겨있는 그 엄청난 관념성에 비해 그 답이 너무도 간명하고 단순했기 때문이

    었다. 하지만 그래서 재활용하기에는 오히려 수월해, 그 뒤 얼마간 나는 왜 문학

    하느냐는 물음을 받으면 곧잘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 이제는 속절없이 소설가로 늙어 죽게 되리라는

    예감이 강해지면서 내 마음도 달라졌다. 여전히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들에

    게 그런 식의 대응이 너무 성의 없게 들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고백하듯 털어놓게 된 게 ‘소극적 선택’의 개념과 ‘사인성(私人性)’ 이었다.

    그런데 50대도 중반을 넘기면서 보니 아직도 그것만으로는 답이 궁색해 보인다.

    그 동안 문학에 바친 만큼이나 많은 빚을 지고, 좋아하는 쪽으로부터 든 싫어하는

    쪽으로부터 든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와서 일까, 늦어서야 문학의 ‘공리적 실용’

    이란 것에 눈이 떠졌다.

    문학은 소극적 선택으로가 닿을 수 있는 우연의 섬이 아니며, 사인성만으로는 결

  • 20 ❙ 삶과 文學

    코 온전하게 영위될 수 없는 삶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학(小學)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惟人最貴)’ 란 구절이 있다. 예전에는 낡고 소박한 인간중심주

    의를 드러내는 말로 읽어 넘겼는데 요즘은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인식의 주체이기

    도 하지만 또한 중요한 인식의 객체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에게 세계는 곧 사람

    으로 이루어진 그 무엇이고, 우주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따라서 소학의 그 구

    절은 세계이해의 출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한다.

    문학은, 특히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안목과 인식으로 번역되지 않고

    는 어떤 세계도 드러낼 수 없듯,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 없이는 어떤 문학도 우

    리를 감동시킬 수 없다. 왜 문학하느냐는 물음에 이제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면 아

    마도 바로 그런 문학의 특성이 한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한국일보. 2003-07-30)

  • 제1장 삶과 문학 ❙ 21

    1.4.

    목걸이(The Necklace)

    Guy de Maupassant

    에드가 로버츠(Edgar Roberts) 영역

    She was one of those pretty and charming women, born, as if by an error of

    destiny, into a family of clerks and copyists. She had no dowry, no prospects, no

    way of getting known, courted, loved, married by a rich and distinguished man.

    She finally settled for a marriage with a minor clerk in the Ministry of Education.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가 가난한 사무원의 딸로 태어난 것은 운명의 실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지참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질 수 있는 길도 없었으며, 돈이 많고 훌륭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리라는 따위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문부성

    에 근무하는 하급관리 한 사람과 결혼하고 말았다.

    She was a simple person, without the money to dress well, but she was as

    unhappy as if she had gone through bankruptcy, for women have neither rank nor

    race. In pace of high birth or important family connections, they can rely only on

    their beauty, their grace, and their charm. Their inborn finesse, their elegant taste,

    their engaging personalities, which are their only power, make working-class

    women the equals of the grandest ladies.

    비싼 옷을 사 입을 수 없던 처지라 그녀의 옷차림은 늘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신분의 차이나 계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라한 자신의

    옷차림 때문에 천한 신분을 갖기라도 한 것처럼 불행해했다. 그녀는 가문이나 출생

  • 22 ❙ 삶과 文學

    배경보다도 여자에게 있어서는 아름다움, 우아함, 그리고 매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고난 미모, 우아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아는 재능, 유머감

    각 등이 평범한 남자의 아내를 고관대작의 아내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을 수 없

    는 것이라 믿었다.

    She suffered constantly, feeling herself destined for all delicacies and luxuries.

    She suffered because of her grim apartment with its drab wall, threadbare furniture,

    ugly curtains. All such things, which most other women in her situation would not

    even have noticed, tortured her and filled her with despair. The sight of the young

    country girl who did her simple housework awakened in her only a sense of

    desolation and lost hopes. She daydreamed of large, silent anterooms, decorated

    with oriental tapestries and lighted by high bronze floor lamps, with two elegant

    valets in short culottes dozing in large armchairs under the effects of forced-air

    heaters. She imagined large drawing rooms draped in the most expensive silks,

    with fine end tables on which were paced knickknacks of inestimable value. She

    dreamed of the perfume of dainty private room, which were designed only for

    intimate tete-a-teres with the closest friends, who because of their achievements

    and fame would make her the envy of all other woman.

    그녀의 불행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고 섬세하며 호화

    스러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대

    해서도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형편없이 금이 간 벽하며, 다 낡아빠진 의자, 볼품없

    는 커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여자들이라

    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이러한 사소한 문제로 그녀는 늘 짜증을 냈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찮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브레튼 출신의 어린 하녀의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

    의 꿈이 절망적으로 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동방에서 수입한

    융단으로 벽을 장식하고, 기다란 청동 촛대에 불을 밝혀 놓은 조용한 대기실에서

  • 제1장 삶과 문학 ❙ 23

    열풍로로부터 나오는 따스한 열기로 나른하게 퍼진 두 사람의 건장한 하인이 짧은

    바지만 입은 채로 커다란 안락의자에 몸을 묻고 잠들어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녀의 꿈은 고대 비단으로 장식된 커다란 응접실,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고급 가구들, 그리고 오후 5시만 되면 마음까지 사로잡는 향기를 풍기는

    내실에서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

    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었다.

    When she sat down to dinner at her round little table covered with a cloth that

    had not been washed for three days, in front of her husband who opened the

    kettle while declaring ecstatically, “Ah, good old boiled beef! I don't know

    anything better.” she dreamed of expensive banquets with shining place settings,

    and wall hangings portraying ancient heroes and exotic birds in an enchanted

    forest. She imagined a gourmet-prepared main course carried on the most exquisite

    trays and several on the most beautiful dishes, with whispered gallantries which

    she would hear with a sphinx like smile as she dined on the pink meat of a trout

    of the delicate wing of a quail.

    사흘씩이나 갈지도 않은 식탁보가 덮인 식탁에서 식사를 하려고 남편의 맞은편

    에 앉아, 남편이 수프를 담은 그릇의 뚜껑을 열며 기쁘다는 표정으로 「아! 맛있는 뽀또풰로구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값비싸고 맛있는 식사나, 빛이 번쩍번쩍하는 은 식기, 고대 위인들과 꿈 속

    같은 아름다운 숲 사이를 날아다니는 신기한 새들이 그려진 벽걸이용 융단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쟁반에 담겨진 진미의 음식, 송어의 분홍빛 살이나 메추라기의 날개를

    뜯으면서 스핑크스같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을 건네주는 남

    자들의 모습까지도 그리고 있었다.

  • 24 ❙ 삶과 文學

    She had no decent dresses, no jewels, nothing. And she loved nothing but

    these, she believed herself born only for these. She burned with the desire to

    please, to be envied, to be attractive and sought after.

    She had a rich friend, a comrade from convent days, whom she did not want to

    see anymore because she suffered so much when she returned home. She would

    weep for the entire day afterward with sorrow, regret, despair, and misery.

    그녀에게는 입을 만한 옷도, 걸치고 다닐 만한 보석도 없었다.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한 호화스러운

    생활을 위해 태어난 여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남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남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호화스럽게 살고 싶었으며, 매력적인 여자로 남아 남자들의 호

    기심을 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수녀원에 있었을 때 동창이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돈

    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친구 집에 더 이상 들르지 않았다. 돌아올 때 초라

    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Well, one evening, her husband came home glowing and carrying a large

    envelope.

    “Here,” he said, “This is something for you.”

    She quickly tore open the envelope and took out a card engraved with these

    words:

    The Chancellor of Education and Mrs. Goerge Ramponneau request that Mr.

    and Mrs. Loisel do them the honor of coming to dinner at the Ministry of

    Education on the evening of January 8.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녀의 남편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커다란 봉투를 손에 든

  • 제1장 삶과 문학 ❙ 25

    채 집으로 돌아왔다.

    「자, 여기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소」하며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그녀는 얼른 남편의 손에 들린 봉투를 낚아채 열어보았다.

    그녀가 봉투 속에서 꺼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조르쥬 랑쁘노 문부성장관 부부는 르와젤 부부를 1월 18일 월요일 저녁 문부성

    관저 파티에 초대하는 바입니다.’

    Instead of being delighted, as her husband had hoped, she threw the invitation

    spitefully on the table, muttering:

    “What do you expect me to do with this?”

    “But honey, I thought you'd be glad. You never got to go out, and this is a

    special occasion! I had a lot of trouble getting the invitation . Everyone wants

    one. The demand is high and not many clerks get invited. Everyone important will

    be there.”

    카드를 읽고 난 그녀는 남편이 기대했던 대로 기뻐하기는커녕 모멸에 찬 표정으

    로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하지만, 여보. 나는 당신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당신이 외출해 본 지 정말 오래 되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소? 내가 이 초대장을 얻느라고 얼

    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주구려. 모두들 그 파티에 가고 싶어 한단 말이오. 이 초대

    는 아주 엄선된 것일뿐더러, 사무관에게는 그나마 몇 장 나오지도 않는 거요. 거기

    에 가면 고급 공무원들의 생활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거요」

    She looked at him angrily and stated impatiently:

    “What do you want me to wear to go there?”

    He had not thought of that. He stammered.

  • 26 ❙ 삶과 文學

    “But your theater dress. That seems nice to me...”

    He stopped, amazed, and bewildered, as his wife began to cry. Large tears fell

    slowly from the corners of her eyes to her mouth. He said falteringly:

    “What's wrong? What's the matter?”

    그녀는 남편을 초조하게 쳐다보면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절더러 무엇을 입고 파티에 가라는 말씀이에요?」 남편은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더듬거리면 아내의 말에 대답했

    다.

    「저기, 연극 보러 갈 때 입었던 옷이 있잖아. 내겐 아주 멋지게 보이던데…」 그러나 남편은 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우는 모습에 그만 맥이 풀리고

    만 것이다. 두 줄기 눈물이 천천히 볼을 타고 내려와 입가에 닿는 것이 눈에 띄었

    다. 그는 다시 말을 더듬으며 입을 결기 시작했다.

    「우는 이유가 뭐요? 우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오…」

    But with strong efforts she had recovered, and she answered camly as she

    wiped her damp cheeks:

    “Nothing, except that I have nothing to wear and therefore can't go to the party.

    Give your invitation to someone else at the office whose wife will have nicer dress

    than mine.”

    Distressed, he responded:

    “Well, all right, Marthilde. How much would a new dress cost, something you

    could use at other times, but not anything fancy?”

    그러자 그녀는 오기로 슬픔을 억누르고 두 볼에 번진 눈물 자국을 손으로 닦아

    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유는 없어요. 다만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이번 연회에 참석할 수 없을 거예

  • 제1장 삶과 문학 ❙ 27

    요. 그래도 나보다는 입고 갈 만한 옷가지라도 가지고 있는 아내를 둔 동료에게 그

    초대장을 주는 편이 나을 거예요」 남편은 난처해졌다. 다시 입을 열어 남편은 아내에게 「자, 잠시 생각 좀 해봅시다. 마띨드, 여보, 당신이 이번 말고도 다음번에도 입을 수 있는 적당한 옷을 사려

    면 돈이 얼마나 들겠소? 아주 수수한 것으로 말이오」

    She thought for a few minutes, adding things up and thinking also of an

    amount that she could ask without getting an immediate refusal and a frightened

    outcry from the frugal clerk.

    Finally she responded tentatively:

    “I don't know exactly, but it seems to me that I could get by on four hundred

    francs.”

    He blanched slightly at this, because he had to set aside just that amount to buy

    a shotgun for Sunday lark-hunts the next summer with a few friends in the Plain

    of Nanterre.

    However, he said:

    “All right, you've got four hundred francs, but make it a pretty dress.”

    잠시 그녀는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옷값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면서도 검약

    한 남편이 놀라지 않고, 쉽게 수락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주저하는 듯한 태도로 남편에게 말했다.

    「글쎄,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400프랑 정도는 있어야 적당할 것 같아요」 남편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요일이면 종달새 사냥을

    다니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다음 여름에 낭떼르 지방으로 새 사냥을 떠나기 위해

    서 공기총을 구입하려고 이미 꼭 그만큼의 금액을 아껴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28 ❙ 삶과 文學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좋소, 당신에게 400프랑을 줄 테니 예쁜 옷을 사 입도록 하시오」

    As the day of the party drew near, Mrs. Loisel seemed sad, uneasy, anxious,

    even though her grown was all ready. One evening her husband said to her:

    “What's the matter? You've been acting funny for several days.”

    She answered:

    “It's awful, but I don't have jewels to wear, not a single gem, nothing to dress

    up my outfit. I'll look like a begger. I'd almost rather not go to the party.”

    파티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르와젤의 아내는 불안하고 근심에 가득 차

    있었으며 때로는 슬픈 듯이 보이기도 했다. 새 드레스는 벌써 사 두었다. 남편은

    어느 날 저녁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당신 요새 3일간 아주 다른 사람 같아 보이는데 그 까닭이 뭐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보석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속상할 수밖에요. 하찮은 보석이나마 몸에 걸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구요. 나는 가난뱅이처럼 보일 거예요.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더 속편할 거예요」

    He responded:

    “You can wear a corsage of cut flowers. This year it's all the rage. For only ten

    francs you get two or three gorgeous roses.”

    She was not convinced.

    “No...there's nothing more humiliating than looking shabby in the company of

    rich woman.”

    But her husband exclaimed:

  • 제1장 삶과 문학 ❙ 29

    “God, but you're silly! Go to your friend Mrs. Forrestier, and ask her to lend

    you some jewelry. You know her well enough to do that.”

    She uttered a cry of joy:

    “That's right. I hadn't thought of that.”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생화를 옷깃에 꽂는 게 어떨까? 이때쯤이면 그것이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일 텐데. 10프랑만 주면 아주 멋진 장미 두서너 송이를 살 수 있잖소?」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굽혀지지 않았다.

    「싫어요. 다른 돈 많은 여자들 틈에서 초라하게 보이는 것처럼 더 참을 수 없는 일은 없어요」 그러자 남편은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당신 정말로 생각이 모자라는군. 당신 친구인 포레스띠에 부인에게 찾아가 보석 몇 개만 빌려달라고 하면 되잖소? 당신과 그 여자는 그럴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

    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기쁨의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요. 그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어요」

    The next day she went to her friend's house and described her problem.

    Mrs. Forrestier went to her mirrored wardrobe, took out a large jewelry box,

    opened it, and said to Mrs. Loisel.

    “Choose, my dear.”

    She saw bracelets, then a pearl necklace, then a Venetian cross of finely worked

    gold and gems. She tried on the jewelry in front of a mirror, and hesitated, unable

    to make up her mind about each one. She kept asking:

    “Do you have anything else?”

    “Certainly. Look to your heart's content. I don't know what you'd like best.”

  • 30 ❙ 삶과 文學

    다음날 그녀는 친구에게 찾아가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포레스띠

    에 부인은 유리문이 달린 옷장을 열고 커다란 보석상자 하나를 들고 와서는, 상자

    를 열어 보이면서 르와젤의 아내에게 말했다.

    「자, 어서 하나 골라 봐」 그녀는 우선 팔찌에 눈을 돌렸다. 그런 다음 진주 목걸이도 보았고 베니스 십자

    가며, 감탄할 만한 솜씨로 세공한 금과 값진 보석들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장신구들을 걸쳐 보고는, 이리저리 주저하면서 선뜻 벗어서 돌려주

    기가 싫은 듯 여러 가지를 바꾸어 걸치면서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이것 말고 다른 보석들은 없니?」 「왜, 또 있지. 자, 봐.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할지 모르겠구나」

    Suddenly she found a superb diamond neckless in a black satin box, and her

    heart throbbed with desire for it. Her hands shook as she picked it up. She

    fastened it around her neck, watched it gleam at her throat, and looked at herself

    ecstatically.

    Then she asked, haltingly and anxiously:

    “Could you lend me this, nothing but this?”

    “Why yes, certainly.”

    She jumped up, hugged her friend joyfully, then hurried away with her treasure.

    그리고 한순간 그녀의 눈에는 검은 공단 상자 속에서 빛나고 있는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집어 드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

    었다. 목까지 감싸는 드레스의 칼라 밖으로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감은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 넋을 잃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친구에게 혹시 거절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주저

    하며 물어보았다.

  • 제1장 삶과 문학 ❙ 31

    「이것 좀 빌려줄 수 없겠니? 이것 하나만?」 「그럼, 물론 빌려 주고말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친구의 목을 얼싸안고 힘찬 키스를 해준 뒤, 그녀의 새로운

    보석을 갖고 서둘러 도망치듯 친구의 집을 나섰다.

    The day of the party came. Mrs. Loisel was a success. She was prettier then

    anyone else, stylish, smiling and wild with joy. All the men saw her, asked her

    name, sought to be introduced. All the important administrators stood in line to

    waltz with her. The Chancellor himself eyed her.

    마침내 연회의 날이 다가왔다. 르와젤의 아내는 연회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

    다. 그녀는 누구보다 예뻤고 행위도 우아하고 기품도 있어 보였으며 시종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기쁨을 만끽하였다.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이름

    을 묻기도 하였으며 자신들을 소개하기에 바빴다. 장관 휘하의 모든 고급공무원들

    도 그녀와 왈츠를 추고 싶어 했다. 뿐만 아니라 장관의 주목을 받기까지 했던 것이

    다.

    She danced joyfully, passionately, intoxicated with pleasure, thinking of nothing

    but the moment, in the triumph of her beauty, in the glory of her success, on

    cloud nine with happiness made up of all the admiration, of all the aroused

    desire, of this victory so complete and so sweet to the heart of any woman.

    그녀는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그녀의 마음은 정열로 뜨거워져 있었으며, 포만감

    에 취해 있었고,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린 채 자신의 미모에 대한 긍지와 연회석

    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성공적인 영광들에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존경, 그 모

    든 찬탄, 남자들에 의해 갑자기 일깨워진 그 욕망들, 그리고 여자라면 누구라도 느

    끼기에 정녕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감으로 뒤범벅이 된 구름 같은 행복

  • 32 ❙ 삶과 文學

    감에 빠져 있었다.

    She did not leave until four 0'clock in the morning. Her husband, since

    midnight, had been sleeping in a little empty room with three other men whose

    wives had also been enjoying themselves.

    He threw, over her shoulder, the shawl that he had brought for the trip home-a

    modest everyday wrap, the poverty of which contrasted sharply with the elegance

    of her evening gown. She felt it and hurried away to avoid being noticed by the

    other women who luxuriated in rich furs.

    그녀가 연회석상을 나온 것은 아침 4시경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자정이 지나가

    역시 아내들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느라 혼자 남게 된 다른 남자들 서너 명과 함

    께 작고 한적한 대기실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아내의 어깨 위에 목도리를 걸

    쳐 주었다. 그 목도리는 그가 아내를 위해 산 것이었으나 허름한 모습이 대번 눈에

    띄는 그러한 종류였다. 그 목도리는 우아한 연회복에 비하면 초라한 티가 금방 드

    러났으며 그녀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값비싼 모피를 감고

    있는 다른 여자들이 눈치 채기 전에 남편의 곁을 떠나고 싶었다.

    Loisel tried to hold her back:

    “Wait a minute. You'll catch cold outdoor. I'll call a cab.”

    But she paid no attention and hurried down the stairs. when they reached the

    street they found no carriages. They began to look for one, shouting at cabmen

    passing by at a distance.

    They walked toward the Seine, desperate, shivering. Finally, on a quay, they

    found one of those old night-going buggies that are seen in Paris only after dark,

    as if they were ashamed of their wretched appearance in daylight.

  • 제1장 삶과 문학 ❙ 33

    그러나 르와젤이 아내의 등을 잡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밖에 나가면 감기들 거야. 내가 나가서 마차를 잡아 올게」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이 거리에 나섰을 때 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차를 잡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멀리 지나쳐가는 마차꾼에게 소

    리를 질러 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추운 날씨에 몸을 떨면서 세느 강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선창에 이르러서야 구식의 야간 쿠페하나를 잡게 되었다. 이 쿠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해가 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파리 시내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차들이었다.

    It took them to their door, on the Street of Martyrs, and they sadly climbed the

    stairs to their flat. For her, it was finished. As for him, he could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