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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1일 금요일 9 아홉 할머니의 비밀 이야기 토종씨앗의 끈질긴 생명력 제주 강원 향토음식도 소개 할머니라는 단어는 참 푸근하다. 어머 니보다 더 인자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다. 항상 사랑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 내고, 당신이 아끼는 무엇 하나까지도 모두 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겨운 고향 같 고 자신의 부모와의 혈연이라는 끈끈 한 관계선상에 존재하는, 언제나 기대 고 싶은 고마운 분이다. 먹방 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 먹거 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크다. 특히 현대인들의 인스턴트나 육류 위 주의 식생활에 있어 성인병 유발이라 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옛 것 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김신효정이 우리나라의 토종씨앗과 그 씨앗으로 차린 밥상을 지켜 온 아 홉 할머니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앗, 할머니의 비밀 에 담았다. 이 책은 2018 우수출판콘텐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으로 옛 것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많은 깨달음을 전한다.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토종씨앗, 할머니의 지식과 경험은 돈이 되지 않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밀이 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사라지기 전의 할머니의 비밀을 모아 책으로 엮 었다. 이들 할머니의 평균 나이는 79 세.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1세라는 점에서 저자는 다급해졌다고 했다. 저자와 할머니의 주름진 삶을 앵 글에 담아낸 문준희 작가는 씨앗에 담긴 할머니들의 비밀 을 밝히기 위 해 지난 3년간 제주를 포함해 강원도 와 남도 등 전국을 직접 발로 찾아 나섰다. 할머니들이 지켜온 씨앗과 밥상, 그리고 억척같은 삶의 이야기 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 했다. 제주의 푸른독새기콩장 먹고 갑서양 에서 제주시 한림 김춘자 란숙씨의 이야기가 정겹다. 숨이 멎을 때까지 손에 쥐어진 씨 앗과 호미. 그러나 할머니들이 수십년 간 쌓아온 농사의 기술과 씨앗의 지 혜, 밥상의 노하우는 언제나 베일에 가려졌다. 저자는 얼마 없어 역사가 될 할머니들의 삶으로부터 미래를 찾 기 위한 작업을 수행했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토종씨앗이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딸 에게로 전해지는 그 오랜 시간에서 독 자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읽게 된다. 그 리고 그 토종씨앗 안에는 고된 우리나 라의 역사와 각 집안의 내력, 그 속에 희로애락이 모두 응축됨을 인지한다. 이 책은 돈으로만 환산되는 세상 속 에서 비밀에 부쳐져 온 여성의 지식과 노동, 삶의 지혜들을 발견해 가는 여 정을 담았다. 여성농민이 견뎌 온 일 상의 고단함과 지독한 통증이 아로새 겨져 있다. 저자는 그 고마운 마음을 할머니가 기울여 준 마음 덕에 오늘 도 할머니의 손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난다 라고 적고 있다. 소나무. 1만 5000원. [email protected] 909문에 생생한 혈연 해의 현장 수도권에 거주하는 40대 김 모씨는 20 12년 6월 법원에서 날아든 한 장의 서 류를 받는다. 원고는 여동생, 피고는 어머니와 김씨를 포함한 세 명의 오빠 였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침해한 유류 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유류분 소송은 유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이 법정상속분의 절반이 라도 받기 위해 주로 형제 자매에게 내는 소송을 말한다. 1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오빠들이 동생에게 4000만원을 주라고 강제조정 정을 내렸다. 하지만 오빠들은 조정 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부에 판을요 청했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생전 증여 를 더 많이 받아갔다는 명확한 증거 를 제시하지 못했고 국 1년 여뒤 원 고 패소 판이 나왔다. 우리는 역사상 형제자매, 부모, 배 우자와 법정에서 원피고로 만날 위험 이 가장 높은 시기에 살고 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대 표적인 가족 간 소송인 유류분, 상속 재산분할 청구, 부양료 심판청구를 보면 2016년 한 해에만 2584이제 기됐다. 하루 일곱 꼴이다. 이혼 소송의 경우엔 한 해 3만 여이상 꾸준하다. 유언무효, 명도, 대여금, 사해행위 취소 소송 등 원피고가 가 족 간인지 특정이 안 되는 민사소송 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 날 수 있다. 오늘도 한국의 수많은 가족들은 남남이 될 각오를 하고 법 정에서 싸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법원 출입 기자로 일했던 박민제 가족끼리 왜 이래 는 이같은 가 족 간 소송을 다루고 있다. 최근 10 년 사이 법원에서 선고된 판문 909 을 분석하고 가족 문제의 원인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가족 간 소송의 대표 적 사례인 유류분 소송은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현재 재산을 물려주 는 70~80대에겐 남아선호, 장자 상속 이 당연했지만 그간 딸들의 권리의 식은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그래 서 주로 원고가 딸이고 피고는 아들 이 된다. 저자는 그 어느 드라마, 소설, 영 화보다 생생한 실제 사례들이 판문의 정제된 언어 이면에 살아 숨 쉬 고 있었다. 판문 안에서 우리 사회 난공불락의 가치였던 가족주의와 혈 연주의가 되는 생생한 현장을 목도할 있었다 했다. 동아시 아. 1만5000원. 진선희새책 맨발탐라공(김백대승 그림)=책은 열한 살 탐라 공주의 눈으 로 삼국 통일 시대를 돌아본다. 한반도 패권을 움켜쥔 신라로부터 목숨을 지키 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잊은 채 해적 은 신처에서 자라난 공주 귀또. 철없던 왈 가닥 공주는 잃어버린 기억과 자신의 정 를 깨닫고 위기에 빠진 탐라국을 구하기 위해 파란만장한 모험을 벌인다. 푸른숲주니어. 1만1800원. 저듸, 곰새(장수진 글 사진, 김준 영 그림)= 저듸, 곰새기 저기, 돌고 라는 의미의 제주어다. 책은 우리나 라 첫 방류 돌고래인 제돌이, 춘삼이, 삼 팔이 세 돌고래의 관찰기를 담고 있다. 방류 전 커다란 가두리에서 두 달 넘게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돌고래들의 야생 적응 훈련부터 방류된 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돌고래 의 행동을 이해하다보면 해양 생태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아이들은자연이다. 1만5000원. 전에 시작된 비밀(다민 글 그림)=독립운동가 친일파 재일조선인 손들의 우정과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조할 아버지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면?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원망하 는 주인공들. 하지만 원망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갈등을 풀어나간다. 일제강점기때의 위안부, 해방 후 독립군과 친일파, 6 25전쟁이라는 큰 사들이 자연스 럽게 담긴 점이 눈길을 끈다. 내일을여는책. 1만1000원. 젓가락 후예(박혜숙 글 지연 그림)=아직 젓가락질에 서툰 병아 리 초등학생 우재가 젓가락 신동에 도전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집안 대대로 내려오 는 젓가락 도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재 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우재의 어설 픈 젓가락질이 능수능란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비슷한 상황 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나도 할 수 있다 는도 전의식을 심어준다. 머스트비. 1만800원. 수상한 너구리 (정지윤 글 림)=늘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들 속에서 원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바쁘게 채워나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 도시에서 바쁘게 살던 오디와 싸리는 여행 중 차가 고장 나면서 느릿느릿 거북이마을 너구리 아 저씨 집에서 지내게 된다. 갑자기 들이닥 친 낯선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서로 나누며 사는 정겨 운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온 오디와 싸리에게 낯설게만 다가온다. 보리. 1만3000원. 미술관에 갈래?(헤허친스, 게허버트 글, 김혜진 옮김)=엄마와 미술관에 온 안나 는 온통 낡고 오래된 물만 가득 하다는 생각에 따분하기만 하다. 혼자 놀기로 마음먹고 돌아다니 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주의를 받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안나는 미술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그림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그림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 의미 가 없듯이 책은 그림에 대한 지식 대신 그림을 보는 재미 를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레이트. 1만2000원. 오은지[email protected] 또 다른 생명 피워내는 여성농민의 삶 바다를 보면 나는 떠 나고 싶어진다. 늘 그 랬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의 주인공 연이 목소리가 소설집 스며있는 하다. 소설 속 인물들 자꾸만 집을 버리 고 도망친다. 그들에게 집은 더 이상 안온한 곳이 아니다. 제주 양혜영 소설가가 얼마 전 소설집 고요한 이웃 을냈 다. 2002년 제주작가회의가 실시하는 제주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16년이 지나 내놓은 첫 창작집이다. 소설 공부 를 더 해서 좋은 작품집을 내고 싶은 욕심 에한해두해미 루다보니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9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은 탄탄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수록작들은 신춘문예 당선 등 한 차례 검증된 소설들이다. 은 제주작가회의가 그에게 소설가란 이름을 달아준 작품 이고 맨 앞에 실린 오버 더 레인보우 는 2007년 경남신문 신 춘문예 당선작이다. 2017년 경북일보 문학대전에 입상한 랩의 제왕 도 담았다.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표제작 고요한 이웃 설집을 관통하는 제를 함축하고 있다. 화면 안에는 남편 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는 고니와 비쩍 마른 채 몸에 상처를 안은 이웃집 여자가 등장한다. 고니의 남편은 저녁 무렵 집 안을 울리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추측일 뿐 이다. 벽면을 까만 점처럼 뒤덮은 날파리 떼, 실내를 가득 채 우는 원인 모를 지독한 악취는 누군가의 죽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급기야 며칠 째 내린 비에도 바짝 마른 채 돌아와 있는 남편의 구두코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남편은 도대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국 고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다.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에도 있고 오버 더 레인보우 에도 있다. 반신마비가 된 채 이혼 도장을 찍어야 했던 의 연이, 쫓겨나다시피 가족이란 울타리를 떠나왔지만 또 다른 가족으로 여겼던 동거인의 추악한 면을 마주하게 되는 오버 더 레인보우 의 동성애자 가 그렇 다. 폭력과 모멸을 견디지 못하고 출구를 찾아나선 이들은 한 없이 여리다. 그들 앞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온몸으로 사람이 사람을 품고 안는 세상. 그것이 소설 이라는 양 작가는 이즈음 80~9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을 쓰고 있다. 첫 소설집을 내기까지 시일이 꽤 필요했 지만 앞으론 활발히 작품집을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삶창. 1만2000원. 진선희[email protected] 저자와 함께 등단 16만에 첫 설집을 낸 양혜영 작 가. 엔80~90년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설을 쓰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품는 세상, 그것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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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새책 또다른생명피워내는여성농민의삶pdf.ihalla.com/sectionpdf/20190111-77988.pdf · 수도권에 거주하는 40대 김 모씨는 20 12년 6월 법원에서 날아든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9

아홉 할머니의 비밀 이야기

토종씨앗의 끈질긴 생명력

제주 강원 향토음식도 소개

할머니라는 단어는 참 푸근하다. 어머

니보다 더 인자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다. 항상 사랑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

내고, 당신이 아끼는 무엇 하나까지도

모두 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겨운 고향 같

고 자신의 부모와의 혈연이라는 끈끈

한 관계선상에 존재하는, 언제나 기대

고 싶은 고마운 분이다.

먹방 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 먹거

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크다.

특히 현대인들의 인스턴트나 육류 위

주의 식생활에 있어 성인병 유발이라

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옛 것

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김신효정이 우리나라의 토종씨앗과

그 씨앗으로 차린 밥상을 지켜 온 아

홉 할머니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씨

앗, 할머니의 비밀 에 담았다. 이 책은

2018 우수출판콘텐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으로 옛 것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많은 깨달음을 전한다.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토종씨앗,

할머니의 지식과 경험은 돈이 되지 않

는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밀이

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사라지기

전의 할머니의 비밀을 모아 책으로 엮

었다. 이들 할머니의 평균 나이는 79

세.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1세라는

점에서 저자는 다급해졌다고 했다.

저자와 할머니의 주름진 삶을 앵

글에 담아낸 문준희 작가는 씨앗에

담긴 할머니들의 비밀 을 밝히기 위

해 지난 3년간 제주를 포함해 강원도

와 남도 등 전국을 직접 발로 찾아

나섰다. 할머니들이 지켜온 씨앗과

밥상, 그리고 억척같은 삶의 이야기

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

했다. 제주의 푸른독새기콩장 먹고

갑서양 에서 제주시 한림 김춘자 고

란숙씨의 이야기가 정겹다.

숨이 멎을 때까지 손에 쥐어진 씨

앗과 호미. 그러나 할머니들이 수십년

간 쌓아온 농사의 기술과 씨앗의 지

혜, 밥상의 노하우는 언제나 베일에

가려졌다. 저자는 얼마 없어 역사가

될 할머니들의 삶으로부터 미래를 찾

기 위한 작업을 수행했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토종씨앗이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딸

에게로 전해지는 그 오랜 시간에서 독

자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읽게 된다. 그

리고 그 토종씨앗 안에는 고된 우리나

라의 역사와 각 집안의 내력, 그 속에

희로애락이 모두 응축됨을 인지한다.

이 책은 돈으로만 환산되는 세상 속

에서 비밀에 부쳐져 온 여성의 지식과

노동, 삶의 지혜들을 발견해 가는 여

정을 담았다. 여성농민이 견뎌 온 일

상의 고단함과 지독한 통증이 아로새

겨져 있다. 저자는 그 고마운 마음을

할머니가 기울여 준 마음 덕에 오늘

도 할머니의 손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난다 라고 적고 있다. 소나무. 1만

5000원. 백금탁기자 [email protected]

909건 판결문에 생생한 혈연 해체의 현장

수도권에 거주하는 40대 김 모씨는 20

12년 6월 법원에서 날아든 한 장의 서

류를 받는다. 원고는 여동생, 피고는

어머니와 김씨를 포함한 세 명의 오빠

였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침해한 유류

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유류분 소송은 유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이 법정상속분의 절반이

라도 받기 위해 주로 형제 자매에게

내는 소송을 말한다. 1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오빠들이 동생에게

4000만원을 주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오빠들은 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부에 판결을 요

청했다. 여동생은 오빠들이 생전 증여

를 더 많이 받아갔다는 명확한 증거

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1년 여뒤 원

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우리는 역사상 형제자매, 부모, 배

우자와 법정에서 원피고로 만날 위험

이 가장 높은 시기에 살고 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대

표적인 가족 간 소송인 유류분, 상속

재산분할 청구, 부양료 심판청구를

보면 2016년 한 해에만 2584건이 제

기됐다. 하루 일곱 건 꼴이다. 이혼

소송의 경우엔 한 해 3만 여건 이상

꾸준하다. 유언무효, 명도, 대여금,

사해행위 취소 소송 등 원피고가 가

족 간인지 특정이 안 되는 민사소송

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

날 수 있다. 오늘도 한국의 수많은

가족들은 남남이 될 각오를 하고 법

정에서 싸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법원 출입 기자로 일했던 박민제

의 가족끼리 왜 이래 는 이같은 가

족 간 소송을 다루고 있다. 최근 10

년 사이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문 909

건을 분석하고 가족 문제의 원인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가족 간 소송의 대표

적 사례인 유류분 소송은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현재 재산을 물려주

는 70~80대에겐 남아선호, 장자 상속

이 당연했지만 그간 딸들의 권리의

식은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그래

서 주로 원고가 딸이고 피고는 아들

이 된다.

저자는 그 어느 드라마, 소설, 영

화보다 생생한 실제 사례들이 판결

문의 정제된 언어 이면에 살아 숨 쉬

고 있었다. 판결문 안에서 우리 사회

난공불락의 가치였던 가족주의와 혈

연주의가 해체되는 생생한 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고 했다. 동아시

아. 1만5000원. 진선희기자

새책

▶맨발의 탐라공주(김기정 글 백대승

그림)=책은 열한 살 탐라 공주의 눈으

로 삼국 통일 시대를 돌아본다. 한반도

패권을 움켜쥔 신라로부터 목숨을 지키

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잊은 채 해적 은

신처에서 자라난 공주 귀또. 철없던 왈

가닥 공주는 잃어버린 기억과 자신의 정

체를 깨닫고 위기에 빠진 탐라국을 구하기 위해 파란만장한

모험을 벌인다. 푸른숲주니어. 1만1800원.

▶저듸, 곰새기(장수진 글 사진, 김준

영 그림)= 저듸, 곰새기 는 저기, 돌고

래 라는 의미의 제주어다. 책은 우리나

라 첫 방류 돌고래인 제돌이, 춘삼이, 삼

팔이 세 돌고래의 관찰기를 담고 있다.

방류 전 커다란 가두리에서 두 달 넘게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돌고래들의

야생 적응 훈련부터 방류된 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돌고래

의 행동을 이해하다보면 해양 생태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아이들은자연이다. 1만5000원.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강다민 글

그림)=독립운동가 친일파 재일조선인 후

손들의 우정과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조할

아버지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면?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원망하

는 주인공들. 하지만 원망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갈등을 풀어나간다. 일제강점기때의 위안부,

해방 후 독립군과 친일파, 6 25전쟁이라는 큰 사건들이 자연스

럽게 담긴 점이 눈길을 끈다. 내일을여는책. 1만1000원.

▶젓가락 도사의 후예(박혜숙 글 이

지연 그림)=아직 젓가락질에 서툰 병아

리 초등학생 우재가 젓가락 신동에 도전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집안 대대로 내려오

는 젓가락 도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재

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우재의 어설

픈 젓가락질이 능수능란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비슷한 상황

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나도 할 수 있다 는 도

전의식을 심어준다. 머스트비. 1만800원.

▶수상한 너구리 아저씨(정지윤 글 그

림)=늘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들 속에서

원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바쁘게 채워나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 도시에서 바쁘게

살던 오디와 싸리는 여행 중 차가 고장

나면서 느릿느릿 거북이마을 너구리 아

저씨 집에서 지내게 된다. 갑자기 들이닥

친 낯선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서로 나누며 사는 정겨

운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온 오디와

싸리에게 낯설게만 다가온다. 보리. 1만3000원.

▶미술관에 또 갈래?(헤이즐

허친스, 게일 허버트 글, 김혜진

옮김)=엄마와 미술관에 온 안나

는 온통 낡고 오래된 물건만 가득

하다는 생각에 따분하기만 하다.

혼자 놀기로 마음먹고 돌아다니

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주의를 받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안나는

미술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그림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그림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 의미

가 없듯이 책은 그림에 대한 지식 대신 그림을 보는 재미

를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레이트. 1만2000원.

오은지기자 [email protected]

또 다른 생명 피워내는 여성농민의 삶

바다를 보면 나는 떠

나고 싶어진다. 늘 그

랬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틈 의 주인공 연이

의 목소리가 소설집

전체에 스며있는 듯

하다. 소설 속 인물들

은 자꾸만 집을 버리

고 도망친다. 그들에게 집은 더 이상 안온한 곳이 아니다.

제주 양혜영 소설가가 얼마 전 소설집 고요한 이웃 을 냈

다. 2002년 제주작가회의가 실시하는 제주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16년이 지나 내놓은 첫 창작집이다. 소설 공부

를 더 해서 좋은 작품집을 내고 싶은 욕심 에 한 해 두 해 미

루다보니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9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은 탄탄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수록작들은 신춘문예 당선 등 한 차례 검증된 소설들이다.

틈 은 제주작가회의가 그에게 소설가란 이름을 달아준 작품

이고 맨 앞에 실린 오버 더 레인보우 는 2007년 경남신문 신

춘문예 당선작이다. 2017년 경북일보 문학대전에 입상한 랩의

제왕 도 담았다.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표제작

고요한 이웃 은 소

설집을 관통하는 주

제를 함축하고 있다.

화면 안에는 남편

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는 고니와 비쩍 마른 채 몸에 상처를

안은 이웃집 여자가 등장한다. 고니의 남편은 저녁 무렵 집

안을 울리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추측일 뿐

이다. 벽면을 까만 점처럼 뒤덮은 날파리 떼, 실내를 가득 채

우는 원인 모를 지독한 악취는 누군가의 죽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급기야 며칠 째 내린 비에도 바짝 마른 채 돌아와

있는 남편의 구두코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남편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결국 고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다.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틈 에도 있고

오버 더 레인보우 에도 있다. 반신마비가 된 채 이혼 도장을

찍어야 했던 틈 의 연이, 쫓겨나다시피 가족이란 울타리를

떠나왔지만 또 다른 가족으로 여겼던 동거인의 추악한 면을

마주하게 되는 오버 더 레인보우 의 동성애자 나 가 그렇

다. 폭력과 모멸을 견디지 못하고 출구를 찾아나선 이들은 한

없이 여리다. 그들 앞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온몸으로 사람이 사람을 품고 안는 세상. 그것이 소설

이라는 양 작가는 이즈음 80~9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을 쓰고 있다. 첫 소설집을 내기까지 시일이 꽤 필요했

지만 앞으론 활발히 작품집을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삶창.

1만2000원.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저자와 함께

등단 16년 만에 첫 소설집을 낸 양혜영 작가. 이즈음엔 80~9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품는 세상, 그것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