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오]hold me t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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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지태씨! 정신 차려. 방이 어디야? 어?" "우으..." "어휴, 사내자식이 그 정도 마셨다고 일케 인사불성이 되면 어떻게 해! 방 번호 대! 늬 집말 야! 야!!!!" "으어어...처, 천백, 이...우으..이십 칠...호(戶)..으으으~~" "뭐얏? 천백이십칠? 맞어? 맞냐고!" 평소와 달리 오늘 회식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폭탄주를 들이붓던 유 지태가 몸을 못 가누고 허우적거리 는 동안 일행 중에 제일 정신이 말짱한 성희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되었다. 여자 치곤 덩치가 좋은 성희였기에 유 지태같은 바위덩어리를 이만큼이라도 건사하고서 올 수 있었다. 그의 오피스텔 앞까지는 어찌어찌 왔는데, 솔직히 유 지태를 엘리베이터에 던져 넣고 가버릴 심산이었던 성희는 지금 너무 난감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유 지태는 갈수록 인사불성이 돼가고 있어서 이 빙충맞은 후배를 집안까지 고이 모셔다 드려야 할 상황이 되어 가고 있으 니 말이다. "얌마,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술은 왜 이케 퍼 부었냐! 니가 뭐 대학 새내기라도 되냐? 어 휴...무거, 쌔 꺄! 너무 기대지 마! 어후, 새끼, 뭘 쳐먹고 이렇게 몸만 무겁게 만든 거야? 니미랄!!" 고속으로 위로 치닫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 지태가 거의 꼬꾸라질 정도로 자신에게 기대어 오자 열이 뻗친 성희는 되는대로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잔소리를 해댔다. "...이야, 사랑해....이야..." "사랑? 누구! 누군데! 너 여자 땜에 오늘 일케 술쳐먹었구나! 하여튼 사내새끼들이란...쯧쯔... 그래 임마, 니 순정 생각해서 내가 오늘 너, 집까지 데려다 준다. 에이~~" 일 잘하고 범생이같던 후배 유 지태가 사랑의 열병을 앓느라 안하던 폭음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느새 성희도 마음이 풀려서 그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고 성 희는 가뜩 이나 무거운데 의식까지 없어서 더 축쳐진 유 지태 놈을 업고 낑낑거리며 27호쪽으로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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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오]Hold me t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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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김지오]Hold me tight

1유 지태씨 정신 차려 방이 어디야 어

우으 어휴 사내자식이 그 정도 마셨다고 일케 인사불성이 되면 어떻게 해 방 번호 대 늬 집말야 야 으어어처 천백 이우으이십 칠호(戶)으으으~~

뭐얏 천백이십칠 맞어 맞냐고 평소와 달리 오늘 회식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폭탄주를 들이붓던 유 지태가 몸을 못 가누고 허우적거리는 동안 일행 중에 제일 정신이 말짱한 성희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되었다 여자 치곤 덩치가 좋은 성희였기에 유 지태같은 바위덩어리를 이만큼이라도 건사하고서 올 수 있었다 그의 오피스텔 앞까지는 어찌어찌 왔는데 솔직히 유 지태를 엘리베이터에 던져 넣고 가버릴 심산이었던 성희는 지금 너무 난감했다 어찌된 일인지 유 지태는 갈수록 인사불성이 돼가고 있어서 이 빙충맞은 후배를 집안까지 고이 모셔다 드려야 할 상황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얌마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술은 왜 이케 퍼 부었냐 니가 뭐 대학 새내기라도 되냐 어휴무거 쌔꺄 너무 기대지 마 어후 새끼 뭘 쳐먹고 이렇게 몸만 무겁게 만든 거야 니미랄 고속으로 위로 치닫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 지태가 거의 꼬꾸라질 정도로 자신에게 기대어오자 열이 뻗친 성희는 되는대로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잔소리를 해댔다 이야 사랑해이야

사랑 누구 누군데 너 여자 땜에 오늘 일케 술쳐먹었구나 하여튼 사내새끼들이란쯧쯔그래 임마 니 순정 생각해서 내가 오늘 너 집까지 데려다 준다 에이~~ 일 잘하고 범생이같던 후배 유 지태가 사랑의 열병을 앓느라 안하던 폭음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느새 성희도 마음이 풀려서 그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고 성희는 가뜩이나 무거운데 의식까지 없어서 더 축쳐진 유 지태 놈을 업고 낑낑거리며 27호쪽으로 다가

갔다 어흐 이럴 때 욕 안 나오면 언제 욕이 나오겠냐 우~ 18 개씨키 더렇게 무겁네 너도 다리에 힘 좀 줘 쌔꺄 우 18너 앞으로 회사 생활 편하게 하긴 글른지 알어마 우 이 씹쌔끼 하이힐까지 신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유 지태를 끌고가며 성희가 순도 80 ()짜리 욕을 해대자 그녀 등에 거의 올라타다시피 한 유지태가 언뜻 몸을 움찔 -마치 웃는 것처럼- 했는데 성희의 착각일까에고 에고다 왔다 야 다 왔어 열쇠는 아후~~ 너 내려와 봐

으읔~~~~~ 말로는 내려오라고 하고서 거의 패대기치듯 지태를 현관문 옆에 떨군 후 성희가 그의 양복바지 주머니를 이쪽저쪽 뒤적거렸다 그녀의 가차없는 손길이 그의 미묘한 부위() 근처를 헤집고 다니자 의식도 없는 지태가 움찔움찔 몸서리를 치는 것같았다 겨우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열쇠지갑을 찾아낸 성희가 그의 상체를 자신의 튼튼한 다리로 받쳐 주면서 현관문에 맞는 열쇠를 찾아 문에 이것저것 꽂아보고 있었다 달랑 방 하나 있는 오피스텔 살면서 뭔 열쇠가 일케 많어 우라질 또 어찌 어찌해서 그녀가 문을 따는데 성공하고 안으로 들어서서 전기 스위치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닫히는 그리고 찰칵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lt gt 어 젠장 야 유 지태 응 나 여기 있어 lt헉gt 2좀 전까지 지 몸도 못 가누던 지태 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짱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성희는 온몸에 있는 솜털이 다 곤두설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사회 생활 5 년 동안에 늘대로 는 눈치코치로 곧 유 지태가 만든 이 발칙한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너 유 지태 이 놈 시키 너 지금 선배를 놀리냐 간뎅이가 배밖으로 튀어 나왔나 이 놈

성희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되도록 욕은 자제하면서() 이성적으로 타이르려고 시도해 봤지만 유 지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껴안아 버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떨리는 몸을 절절히 느끼며 성희는 되도록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보고 아주 안 볼 놈도 아닌데 선배인 그녀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처리해야지 열에 들떠서 지금 자신의 치마를 끌어올리고 있는 이 놈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가만 치마라고 야 너 그 손 안 치워 흡 그렇게 성희가 있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태가 입술을 포개버렸다 lt이 미친 새끼gt 너무 어두워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가운데 지태는 잘도 그녀의 입술을 찾아서 빨아댔다 유 지태가 정말로 범생이 였던가 싶게 너무 능숙하게 키스하는 것을 알아차린 성희는 조금 갈등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생각보다 술에 취한 것같지도 않았고 술김에 이런다고 하기에는 그의 손길이 너무 정확하게 자신의 치마와 팬티를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회사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짓이긴 했지만 어쩐지 오늘밤이 지태의 손길이 기대를 하게 했기에 성희는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야 알았어 알았으니까이제 좀 제대로 하자 응

뭐 성희의 목에 얼굴을 묻고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지태는 좀 제대로하자는 그녀의 말에 마치 칼침 맞은 사람처럼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성희가 구두를 벗고서 팬티 스타킹을 끌어내리자 어둠 속에서 하얗게 그녀의 다리가 드러나는 것을 망연히 지켜보아야 했다 아 나 원래 회사 사람이랑은 이런 짓 안하는데 말야 오늘은 어째 좀 그렇네

무슨 말이야 최 선배

lt어쮸 놀랬냐 마 인제사 선배랴gt 야 유 지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잖아 왜 나 이런 거 알고 나니까 교 옷 다시 입으리

아니 그게 아니고젠장 일이 왜 이렇게 됐냐 그럼 최 선배저기저

뭐 알아듣게 말로 해 내가 말할까 나 이런 거 처음 아냐 됐어 이 놈 진짜로 범생일세~~ 아 지태는 차라리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최 성희 선배를 벌써 몇 년째 짝사랑해오다 이제야 그녀를 붙잡을 기회를 잡았건만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란 말인가 사실 그가 오늘밤을 위한 시나리오를 짤 때만 해도 성희가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거나 욕설을 바가지로 퍼붓는 씬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그 앞에서 옷을 벗고서 좀 제대로하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 성희에 대한 그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희는 벗었던 옷을 차분히 다시 입고 있었다 lt앗 안되지 어차피 깨진 환상이라면 내가 이 여자를 좀 즐긴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gt 그랬다 원래 대로라면 그가 오늘 밤 그녀와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서 내일 아침에 주려고 했던 달콤한 프로프즈의 말이나 호주머니 속의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가 굳는 판에 거저 주겠다는 그녀의 몸뚱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태는 거칠게 자기 넥타이를 풀어내고서 성희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엉거주춤 벽에 기대서서 마지막 남은 구두 한쪽을 신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자기 가슴이 아픈 건지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면서 지태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3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

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그의 부드러운 말에도 성희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지태는 혹시 라도 이제까지의 일들이 그녀의 거짓말은 아닐까하고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나의 최 선배 흠 역시 니가 회사 동료라는 게 좀 걸린 다야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흠너 나랑 자고 나서 여기저기 불고 다니고 그런 몰쌍식한 짓은 안하겠지 응 [빠지직] 역시 아니었다 그의 최 성희 선배는 코너에 몰린 처녀가 아니라 자기 회사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꾼이었던 것이다 허탈해진 지태가 무너지듯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뻗어서 벽에 손바닥을 짚고 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서 그녀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그런 선배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맺고 끊는 것은 확실히 한다고 어째 기분 나쁜데 키스해 주면 용서해 줄게 어서

풋~ 한 번 믿어 볼까 범생이 양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지태에게 성희의 단단한 몸이 감겨 왔다 지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성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매일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쾌활한 웃음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젖어들었었는지 퇴근할 때마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고 작년 가을에 그녀가 실연했다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다니는 시절에도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는지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lt절대로 알아선 안돼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니까gt 성희야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 [김지오]Hold me tight

갔다 어흐 이럴 때 욕 안 나오면 언제 욕이 나오겠냐 우~ 18 개씨키 더렇게 무겁네 너도 다리에 힘 좀 줘 쌔꺄 우 18너 앞으로 회사 생활 편하게 하긴 글른지 알어마 우 이 씹쌔끼 하이힐까지 신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유 지태를 끌고가며 성희가 순도 80 ()짜리 욕을 해대자 그녀 등에 거의 올라타다시피 한 유지태가 언뜻 몸을 움찔 -마치 웃는 것처럼- 했는데 성희의 착각일까에고 에고다 왔다 야 다 왔어 열쇠는 아후~~ 너 내려와 봐

으읔~~~~~ 말로는 내려오라고 하고서 거의 패대기치듯 지태를 현관문 옆에 떨군 후 성희가 그의 양복바지 주머니를 이쪽저쪽 뒤적거렸다 그녀의 가차없는 손길이 그의 미묘한 부위() 근처를 헤집고 다니자 의식도 없는 지태가 움찔움찔 몸서리를 치는 것같았다 겨우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열쇠지갑을 찾아낸 성희가 그의 상체를 자신의 튼튼한 다리로 받쳐 주면서 현관문에 맞는 열쇠를 찾아 문에 이것저것 꽂아보고 있었다 달랑 방 하나 있는 오피스텔 살면서 뭔 열쇠가 일케 많어 우라질 또 어찌 어찌해서 그녀가 문을 따는데 성공하고 안으로 들어서서 전기 스위치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닫히는 그리고 찰칵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lt gt 어 젠장 야 유 지태 응 나 여기 있어 lt헉gt 2좀 전까지 지 몸도 못 가누던 지태 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짱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성희는 온몸에 있는 솜털이 다 곤두설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사회 생활 5 년 동안에 늘대로 는 눈치코치로 곧 유 지태가 만든 이 발칙한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너 유 지태 이 놈 시키 너 지금 선배를 놀리냐 간뎅이가 배밖으로 튀어 나왔나 이 놈

성희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되도록 욕은 자제하면서() 이성적으로 타이르려고 시도해 봤지만 유 지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껴안아 버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떨리는 몸을 절절히 느끼며 성희는 되도록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보고 아주 안 볼 놈도 아닌데 선배인 그녀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처리해야지 열에 들떠서 지금 자신의 치마를 끌어올리고 있는 이 놈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가만 치마라고 야 너 그 손 안 치워 흡 그렇게 성희가 있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태가 입술을 포개버렸다 lt이 미친 새끼gt 너무 어두워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가운데 지태는 잘도 그녀의 입술을 찾아서 빨아댔다 유 지태가 정말로 범생이 였던가 싶게 너무 능숙하게 키스하는 것을 알아차린 성희는 조금 갈등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생각보다 술에 취한 것같지도 않았고 술김에 이런다고 하기에는 그의 손길이 너무 정확하게 자신의 치마와 팬티를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회사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짓이긴 했지만 어쩐지 오늘밤이 지태의 손길이 기대를 하게 했기에 성희는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야 알았어 알았으니까이제 좀 제대로 하자 응

뭐 성희의 목에 얼굴을 묻고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지태는 좀 제대로하자는 그녀의 말에 마치 칼침 맞은 사람처럼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성희가 구두를 벗고서 팬티 스타킹을 끌어내리자 어둠 속에서 하얗게 그녀의 다리가 드러나는 것을 망연히 지켜보아야 했다 아 나 원래 회사 사람이랑은 이런 짓 안하는데 말야 오늘은 어째 좀 그렇네

무슨 말이야 최 선배

lt어쮸 놀랬냐 마 인제사 선배랴gt 야 유 지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잖아 왜 나 이런 거 알고 나니까 교 옷 다시 입으리

아니 그게 아니고젠장 일이 왜 이렇게 됐냐 그럼 최 선배저기저

뭐 알아듣게 말로 해 내가 말할까 나 이런 거 처음 아냐 됐어 이 놈 진짜로 범생일세~~ 아 지태는 차라리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최 성희 선배를 벌써 몇 년째 짝사랑해오다 이제야 그녀를 붙잡을 기회를 잡았건만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란 말인가 사실 그가 오늘밤을 위한 시나리오를 짤 때만 해도 성희가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거나 욕설을 바가지로 퍼붓는 씬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그 앞에서 옷을 벗고서 좀 제대로하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 성희에 대한 그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희는 벗었던 옷을 차분히 다시 입고 있었다 lt앗 안되지 어차피 깨진 환상이라면 내가 이 여자를 좀 즐긴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gt 그랬다 원래 대로라면 그가 오늘 밤 그녀와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서 내일 아침에 주려고 했던 달콤한 프로프즈의 말이나 호주머니 속의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가 굳는 판에 거저 주겠다는 그녀의 몸뚱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태는 거칠게 자기 넥타이를 풀어내고서 성희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엉거주춤 벽에 기대서서 마지막 남은 구두 한쪽을 신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자기 가슴이 아픈 건지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면서 지태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3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

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그의 부드러운 말에도 성희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지태는 혹시 라도 이제까지의 일들이 그녀의 거짓말은 아닐까하고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나의 최 선배 흠 역시 니가 회사 동료라는 게 좀 걸린 다야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흠너 나랑 자고 나서 여기저기 불고 다니고 그런 몰쌍식한 짓은 안하겠지 응 [빠지직] 역시 아니었다 그의 최 성희 선배는 코너에 몰린 처녀가 아니라 자기 회사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꾼이었던 것이다 허탈해진 지태가 무너지듯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뻗어서 벽에 손바닥을 짚고 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서 그녀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그런 선배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맺고 끊는 것은 확실히 한다고 어째 기분 나쁜데 키스해 주면 용서해 줄게 어서

풋~ 한 번 믿어 볼까 범생이 양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지태에게 성희의 단단한 몸이 감겨 왔다 지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성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매일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쾌활한 웃음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젖어들었었는지 퇴근할 때마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고 작년 가을에 그녀가 실연했다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다니는 시절에도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는지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lt절대로 알아선 안돼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니까gt 성희야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 [김지오]Hold me tight

성희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되도록 욕은 자제하면서() 이성적으로 타이르려고 시도해 봤지만 유 지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껴안아 버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떨리는 몸을 절절히 느끼며 성희는 되도록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보고 아주 안 볼 놈도 아닌데 선배인 그녀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처리해야지 열에 들떠서 지금 자신의 치마를 끌어올리고 있는 이 놈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가만 치마라고 야 너 그 손 안 치워 흡 그렇게 성희가 있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태가 입술을 포개버렸다 lt이 미친 새끼gt 너무 어두워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가운데 지태는 잘도 그녀의 입술을 찾아서 빨아댔다 유 지태가 정말로 범생이 였던가 싶게 너무 능숙하게 키스하는 것을 알아차린 성희는 조금 갈등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생각보다 술에 취한 것같지도 않았고 술김에 이런다고 하기에는 그의 손길이 너무 정확하게 자신의 치마와 팬티를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회사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짓이긴 했지만 어쩐지 오늘밤이 지태의 손길이 기대를 하게 했기에 성희는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야 알았어 알았으니까이제 좀 제대로 하자 응

뭐 성희의 목에 얼굴을 묻고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지태는 좀 제대로하자는 그녀의 말에 마치 칼침 맞은 사람처럼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성희가 구두를 벗고서 팬티 스타킹을 끌어내리자 어둠 속에서 하얗게 그녀의 다리가 드러나는 것을 망연히 지켜보아야 했다 아 나 원래 회사 사람이랑은 이런 짓 안하는데 말야 오늘은 어째 좀 그렇네

무슨 말이야 최 선배

lt어쮸 놀랬냐 마 인제사 선배랴gt 야 유 지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잖아 왜 나 이런 거 알고 나니까 교 옷 다시 입으리

아니 그게 아니고젠장 일이 왜 이렇게 됐냐 그럼 최 선배저기저

뭐 알아듣게 말로 해 내가 말할까 나 이런 거 처음 아냐 됐어 이 놈 진짜로 범생일세~~ 아 지태는 차라리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최 성희 선배를 벌써 몇 년째 짝사랑해오다 이제야 그녀를 붙잡을 기회를 잡았건만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란 말인가 사실 그가 오늘밤을 위한 시나리오를 짤 때만 해도 성희가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거나 욕설을 바가지로 퍼붓는 씬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그 앞에서 옷을 벗고서 좀 제대로하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 성희에 대한 그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희는 벗었던 옷을 차분히 다시 입고 있었다 lt앗 안되지 어차피 깨진 환상이라면 내가 이 여자를 좀 즐긴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gt 그랬다 원래 대로라면 그가 오늘 밤 그녀와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서 내일 아침에 주려고 했던 달콤한 프로프즈의 말이나 호주머니 속의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가 굳는 판에 거저 주겠다는 그녀의 몸뚱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태는 거칠게 자기 넥타이를 풀어내고서 성희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엉거주춤 벽에 기대서서 마지막 남은 구두 한쪽을 신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자기 가슴이 아픈 건지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면서 지태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3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

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그의 부드러운 말에도 성희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지태는 혹시 라도 이제까지의 일들이 그녀의 거짓말은 아닐까하고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나의 최 선배 흠 역시 니가 회사 동료라는 게 좀 걸린 다야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흠너 나랑 자고 나서 여기저기 불고 다니고 그런 몰쌍식한 짓은 안하겠지 응 [빠지직] 역시 아니었다 그의 최 성희 선배는 코너에 몰린 처녀가 아니라 자기 회사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꾼이었던 것이다 허탈해진 지태가 무너지듯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뻗어서 벽에 손바닥을 짚고 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서 그녀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그런 선배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맺고 끊는 것은 확실히 한다고 어째 기분 나쁜데 키스해 주면 용서해 줄게 어서

풋~ 한 번 믿어 볼까 범생이 양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지태에게 성희의 단단한 몸이 감겨 왔다 지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성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매일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쾌활한 웃음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젖어들었었는지 퇴근할 때마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고 작년 가을에 그녀가 실연했다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다니는 시절에도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는지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lt절대로 알아선 안돼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니까gt 성희야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 [김지오]Hold me tight

lt어쮸 놀랬냐 마 인제사 선배랴gt 야 유 지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잖아 왜 나 이런 거 알고 나니까 교 옷 다시 입으리

아니 그게 아니고젠장 일이 왜 이렇게 됐냐 그럼 최 선배저기저

뭐 알아듣게 말로 해 내가 말할까 나 이런 거 처음 아냐 됐어 이 놈 진짜로 범생일세~~ 아 지태는 차라리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최 성희 선배를 벌써 몇 년째 짝사랑해오다 이제야 그녀를 붙잡을 기회를 잡았건만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란 말인가 사실 그가 오늘밤을 위한 시나리오를 짤 때만 해도 성희가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거나 욕설을 바가지로 퍼붓는 씬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그 앞에서 옷을 벗고서 좀 제대로하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 성희에 대한 그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희는 벗었던 옷을 차분히 다시 입고 있었다 lt앗 안되지 어차피 깨진 환상이라면 내가 이 여자를 좀 즐긴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gt 그랬다 원래 대로라면 그가 오늘 밤 그녀와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서 내일 아침에 주려고 했던 달콤한 프로프즈의 말이나 호주머니 속의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가 굳는 판에 거저 주겠다는 그녀의 몸뚱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태는 거칠게 자기 넥타이를 풀어내고서 성희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엉거주춤 벽에 기대서서 마지막 남은 구두 한쪽을 신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자기 가슴이 아픈 건지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면서 지태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3왜 벌써 가려고 미안 최 선배 내가 너무 서둘렀지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실망 안 시

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그의 부드러운 말에도 성희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지태는 혹시 라도 이제까지의 일들이 그녀의 거짓말은 아닐까하고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나의 최 선배 흠 역시 니가 회사 동료라는 게 좀 걸린 다야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흠너 나랑 자고 나서 여기저기 불고 다니고 그런 몰쌍식한 짓은 안하겠지 응 [빠지직] 역시 아니었다 그의 최 성희 선배는 코너에 몰린 처녀가 아니라 자기 회사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꾼이었던 것이다 허탈해진 지태가 무너지듯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뻗어서 벽에 손바닥을 짚고 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서 그녀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그런 선배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맺고 끊는 것은 확실히 한다고 어째 기분 나쁜데 키스해 주면 용서해 줄게 어서

풋~ 한 번 믿어 볼까 범생이 양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지태에게 성희의 단단한 몸이 감겨 왔다 지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성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매일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쾌활한 웃음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젖어들었었는지 퇴근할 때마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고 작년 가을에 그녀가 실연했다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다니는 시절에도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는지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lt절대로 알아선 안돼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니까gt 성희야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5: [김지오]Hold me tight

킬게 좀 더 있다가 가 응 그의 부드러운 말에도 성희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지태는 혹시 라도 이제까지의 일들이 그녀의 거짓말은 아닐까하고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나의 최 선배 흠 역시 니가 회사 동료라는 게 좀 걸린 다야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흠너 나랑 자고 나서 여기저기 불고 다니고 그런 몰쌍식한 짓은 안하겠지 응 [빠지직] 역시 아니었다 그의 최 성희 선배는 코너에 몰린 처녀가 아니라 자기 회사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꾼이었던 것이다 허탈해진 지태가 무너지듯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뻗어서 벽에 손바닥을 짚고 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서 그녀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그런 선배 날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맺고 끊는 것은 확실히 한다고 어째 기분 나쁜데 키스해 주면 용서해 줄게 어서

풋~ 한 번 믿어 볼까 범생이 양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지태에게 성희의 단단한 몸이 감겨 왔다 지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성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매일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쾌활한 웃음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젖어들었었는지 퇴근할 때마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고 작년 가을에 그녀가 실연했다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다니는 시절에도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는지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lt절대로 알아선 안돼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니까gt 성희야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6: [김지오]Hold me tight

그래 제발 그녀의 입술이 역겹기를 바라며 -진실로 그렇게 바라며- 지태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성희의 입술로 내려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소태같이 쓴맛이 나기를 그녀의 입안 가득한 타액이 역류하는 위액처럼 시금털털하기를 아 어째서 그녀의 입술은 상상했던 그대로 달콤하기만 한 것인가 아 어째서 그녀의 타액은 생명수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성희의 따뜻한 손이 지태의 얼굴을 바짝 끌어들이며 감싸쥐었다 그리고 지태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그녀의 혀가 지태의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지태는 어제 이맘때 오늘의 거사(巨事)를 계획하며 혼자 웃던 일이 기억났다 자신이 이렇게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 성희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서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24시간이 지나서 그가 마주 대한 성희의 실체는 키스에도 꾼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자면 성희와의 키스는 불꽃이 파팍 튀는 최상급 경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 지태를 안달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이렇게 키스의 달인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빨고 그녀의 혀를 음미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어두운 감상(感傷)이 절대로 질투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지태는 성희의 투피스 정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성질대로 하자면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성희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그녀를 발가벗겼다 그리고 성희도 유혹적인 손길로 그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지태의 와이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로 손을 뻗쳤다 아바지는 내가선배는 샤워부터 할래

푸~ 부끄럼 타니 알았어 알았다고 부끄럼이 아니라 뻔뻔한 그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지태가 성희를 노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7: [김지오]Hold me tight

치며 욕실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같이 할래

아니 그건 다음 번에

그러던지 여전히 지태가 부끄럼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성희가 빙글빙글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자 지태는 속이 다 뒤집힐 뻔했다 lt다음 번이라니 이 뻔뻔하고 더러운 기집애를또 갖겠다는 거야 야 유 지태 정신 차려gt 이렇게 분노에 타오르는 자신의 머리와는 달리 지태의 붉게 충혈된 눈은 성희가 욕실로 들어갈 때 불빛에 살짝 드러났던 그녀의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희가 아침마다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안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사람만이 가지는 탄탄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lt젠장 망할gt 그녀의 몸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컷이 폭주하듯 부풀어오르자 지태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은 이런 뜨내기 같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미래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저 여자 때문이다 lt최 성희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오늘밤이 이렇게 비참해진 거라고gt 4성희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지태는 여전히 바지를 입은 채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성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겪어본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리스트()는 차지하고 멋진 양복걸이들이 넘쳐나는 회계 법인(法人)같은 곳에 한 5 년쯤 다니다 보면 남자의 등짝만 보고도 대충 성격이 파악된다 일단 유 지태의 넓은 등은 외로움이라는 것이 배여 있지 않았다 넓고 강인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남자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8: [김지오]Hold me tight

도 그 뒷모습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지 성희는 지금껏 많은 외로워 보이는 등을 가진 남자들을 보아왔었다 하지만 유 지태는 아니었다 굵고 긴 목 아래로 쭈욱 뻗어 내린 척추 주위로 크고 작은 근육이 정연하게 배열된 지태의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뿐이지 외롭다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착하고 일 잘하는 후배라고만 생각해온 지태를 이렇게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성희에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아온지 어언 3 년이지만 한번도 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는 지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정면뿐이었다 니 등 맘에 든다아주 많이

왜 몰라 봤을까 니가 한번도 안보여 줘서 그런가 이리 와봐 내가 이뻐해 줄게 우이구~~ 일케 커다란 놈을 내가 들쳐 업고 여기까지 왔다니내 자신이 너무 가상하구만 흐흐 lt그러지 마 내가 알던 최 선배의 말투로 말하지 마 넌 지금 최 성희가 아니야 그냥 몸뚱아리일 뿐이라고 제발 최 선배의 눈을 하고서 나를 그렇게 쳐다 보지 마 제기랄gt 흠 어디 아프냐 컨디션 안 좋으면 담 날로 미루고 말 좀 해라 이 답답한 놈아

자꾸 이 놈 저 놈 하지 마 최 선배 다 큰 남자보고 예닐곱 살먹은 애 대하듯 그러지 말란 말이야 호고고~~ 거 성깔 하고는니가 일케 뭐한테 잡아 먹힐 것처럼 쫄아 있으니까 내가 너 풀어주려고 이러는 거지 마 나 이러는 거 싫음 너도 평소처럼 방글방글 웃고 그래봐 마 이건 뭐 내가 꼭 숫처녀 잡아 먹는 천년 묵은 지네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서 말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로 너 숫총각이라고 오해한다~~ 숫총각 좋아하시네 난 중 2 때 이미 헉 내가 무슨 소리를

호오~ 그러셨어 이 범생이가 그렇게 조숙했다니 놀랠 노자 래요~~ 푸하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9: [김지오]Hold me tight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우리

풋 눈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자꾸만 사랑했던 -그리고 청혼하려고 했던- 최 성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지태는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가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동안 여러번 상상했었지만 이런 기분으로 직접 대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lt나 너 너무 싫다gt 회사에 첫 출근한 그 날부터 유 지태가 사랑했던 유쾌하고 딱부러지고 입이 걸던 그녀-최성희는 이제 잊으리라 깨진 거울 파편처럼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지난 기억들도 모두 잊을 것이다 오늘밤 그녀에게 몸을 묻고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환상들을 모두 털어내 버릴 것이다 lt그래 내일부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gt 이런 자신의 다짐이 60여 년 전 어느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했던 유명한 세리프라는 것을 살짝 망각한 채 지태는 단지 몸뚱아리일 뿐인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헉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아 하아왜 왜 그러는데성희야

저리 비켜 이 새끼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야 무거 저리 비켜

아 안돼지금 어떻게성 성희야

이 미친 새꺄 안 빼 안 빼 성희의 따뜻하게 젖은 몸속으로 막 들어가려던 지태는 갑자기 발악하는 성희 때문에 몽롱한 쾌감과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해서 마구잡이로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와서 그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더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태가 그녀에게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막 움직이려는 때였다 [퍽]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0: [김지오]Hold me tight

으악

우이씨 너 이쌔키 글케 비무장으로 쳐들어 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 애라도 배면 니가 책임져 줄거야 엉 좋은 말로 할 때 물러서질 못하고 꼭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어차여야 정신을 차리나 싶게 멍청하기 그지없는 유 지태 놈을 내려다 보며 성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휘두른 다리 공격을 옆구리에 정통으로 맞고서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5아니 최 성희씨 유 지태씨가 장(腸)이 뭐 어쨌다고요 다음 날 아침 성희는 김 철중 부장(部長)앞에서 유 지태 놈의 병가(病暇)를 부탁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토요일 격주 휴무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병원에서 의사 말이 아무래도 월요일까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같다고 했던 것이다 어젯밤 유 지태는 그녀가 휘두른 옆구리 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었다 부랴 부랴 119 에 신고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젊은 레지던트가 하는 소리가 장 파열(腸破裂) 직전의 장 출혈(出血)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예 부장님저어기 장에서 피가 난다던가 그러던 데요

하 그 사람 어제 술을 그렇게 퍼붓더니만 결국 일냈군 일냈어 그나저나 최 성희씨 무척 놀랬겠어요

예 예 누가 뭐라고요 외자(外資)관리팀 팀장인 이 소라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녀 특유의 비음을 한껏 높이며 질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하고 깡마른 다소 퇴폐적인 느낌의 미인(美人)인 이 부장을 보자 김 부장이 괜히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이 부장 유 지태씨가 장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 있답니다 글쎄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1: [김지오]Hold me tight

어머 어쩌다가요

어제 술을 좀 먹더라고요 그게 도졌나 봐요 허허

술을그럼 위(胃)에서 문제가 나는 거 아닌가요 lt헉 저 여우 그냥 넘어가라 그냥 넘어가라제발gt 반짝이는 무테 안경너머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부장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려 애쓰며 성희는 -속으로- 두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저 여우같은 이 부장이 지태를 탐내왔다는 것은 성희뿐만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태가 몇 번이나 마치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하듯 그녀의 애정공세를 물리친 이야기를 해주곤 했기 때문에 성희로서는 이 자리가 더욱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 부장님 저그 병가요해 주시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사실 유 지태씨야 좀 쉬어도 되는 사람이지 뭐 그 동안 결근 한 번 안하고 얼마나 착실히 일해 왔는데그나저나 우리 갹출(醵出)해서 위로금이나 들고서 병문안해야 되는 거 아냐 최 성희씨가 알아서 해요 네 둘이 친했잖아 거 고생하는 김에 최 성희씨가 마저 해 줘요~~

에 예에그러죠 뭐 그렇게 병가 문제가 일단락 되자 다리에 힘이 탁 풀린 성희가 비질비질 부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어김없이 이 부장의 하이톤 비음이 달려들었다 최 성희씨 이따 병원갈 때 내 차 타고 같이 갑시다 lt읔 저 여우 내가 미쵸 미쵸~~gt 네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살 떨리는 이 부장의 시선을 뒷꼭지에 절절히 느끼며 부장실을 나선 성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화가 띠리리~하고 울렸다 여보 어난 또 누구라고 어이 민 영언이~~~ 재벌 며느리 되실 처자가 이런 서민한텐 웬일이셔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2: [김지오]Hold me tight

-너 글케 나 놀리면 죽음이얏 야 나 지금 미치겠다야 너 회사 언제 끝나냐

오늘 토요일이니까 12시 반이면 땡이지 모 근데 뭔일인데 또 미친다는 것이야

-아후우~~여기 청담동 웨딩 숍이거든 나 오늘 이지랑 여기 옷보러 왔잖냐 너 어서 여기 좀 와서 나 좀 달래줘라 엉

얌마 그런 치렁치렁한 옷은 원래 이지 전공이잖어 둘이서 잘 골라봐 마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끼리

-옷이 문제가 아니야아~~ 이것들이 아후우~~ 성질나 정말 옷 볼 사람은 난데 이지만 붙잡고서 이거 입어 봐라 저거 입어 봐라 하잖어

쿠아아아~~~ 이지가 한 몸매하지 그래서 골통나셨구만~~ 얌마 그럴 땐 네 피앙세한테 SOS를 쳐야지잉 나 같은 서민이 그런데 갔다가 괜히 쫄기만 하지 마

-야아 너같으면 허리가 27이라서 디자이너한테 구박받는 모습 앤한테 보여주고 잡겠냐 너 빨랑 와서 니 드럼통 허리 좀 보여줘란 말이야 lt뭣이라gt 허어~ 이 잡것이 야 이년아 내가 통뼈라서 그렇지 허리는 25다 누굴 보고 드럼통이라는 거야 그러게쳐먹고 앉아서 설인가 뭔가 쓰네 마네 하니까 허리통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니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 알아들었어 -니 허리가정말로 헉미치겠네 암튼 이지보단 굵으니까 회사 끝나는 대로 와 알았지 오늘 점심은 현석씨가 살거야 꼭 와라~~ lt흐미~~이 잡것gt 과연 친구인가 웬수인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같은 영언의 전화를 끊으며 성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3: [김지오]Hold me tight

고 욕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 천하의 띨띨이이자 폭주족인 민 영언이 도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명 그룹 후계잔가 뭔가인 정 머시기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지와 함께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그것도 생전 처음간 놀이 공원에서 -기구 한 번 안타보고 - 만난 남자랑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꼭 지가 쓰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현석이랑 붙어 다니며 입이 귀를 돌아 머리를 두어 번 감을 정도로 늘어져 있던 영언을 떠올리며 성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됐던 십년지기 친구이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니까 발칙하긴 하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언을 생각하다가 성희는 지태에게 병문안을 가야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회사를 퇴근하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던 것이다 정 머시기가 사 줄 엄청 비싼 점심을 기대하면서 6아 예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뭣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마는 다혈질 성희가 청담동에 있는 삐까뻔쩍한 웨딩솝에 도착하자마자 현석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얍삽한 매장 직원들이 현석이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영언 에게 집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영언의 불만스러운 입술은 한 뼘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현석은 그녀의 빨개진 입술에는 사족을 못쓰지 않던가 말이다 그녀와 단 둘이 있고픈 현석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희와 이지는 신부보다 들떠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 보였다 야 야 뭘 글케 가려 마 가슴 쪽을 더 팍팍 파 버려 그래야 니 드럼통 허리로 시선이 안가지 마

뭣이라 어흐으~~ 나 양가집에 시집간단 말이야 고상(高尙) 떨어야 한다고 고상 없는 고상이 글케 다 가린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리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 차라리 원없이 이쁘게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4: [김지오]Hold me tight

입는 게 남는 거지 그치 이지야~~

후후나도 성희 말에 동감일세~~ 이지 넌 암튼 맨날 부루투스야 으이그~~ 어이 아줌마 얘거는 가슴이 포인트니까 팍팍 파줘요 알았죠 아줌마

야아 성희야 아줌마라니 디자이너시잖아 죄송합니다 채 실장님 그나저나 가슴은 좀 파주셔야 겠네요 호호 영언을 물 먹였다는 채 모모 디자이너 실장을 성희가 아줌마라고 타박하자 이지가 냉큼 나서서 사과하고 결국 자기 할말은 다 해 버렸다 영언 성희 이지 세 친구 중에 젤 무서운 사람은 사실 이지였던 것이다 저렇게 호호거리면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똑순이니까 저 숙녀 여러분가슴 파는것이 해결됐으면 점심이나하러 가시지요 네 -이지

조오치~ -성희

맞다 밥 먹고 하자 -영언 끝도 없을 것같은 세 여자의 수다에 슬슬 골치도 아파 오고 배도 고파진 현석이 조심스럽게 점심을 제안하자 세 여자는 두말 않고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우르르 가버렸다 그들의 작태에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는 채 실장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현석은 은근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토요일 점심은 알차게 먹어야 한다는 이지의 주장에 따라서 논현동에 있는 랍스터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쌉살한 화이트 와인과 더불어 화기애애하던 세 여자의 이야기가 어느덧 영언의 애마 빌리언으로 옮아갔다 성희 너 면허 있지 너 내 차 타고 다닐래

호고고~~ 아니 웬일이셔 그 애지중지하던 똥차를 나한테 줄 생각을 하고~ 너 입조심해생각 같아선 이지한테 주고 싶지만 저 얌전이 손에 맡기면 불쌍한 내 빌리언이 앞으로 100 한번 못 내보고 폐차장에 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이런 소리하는 거야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5: [김지오]Hold me tight

흐~ 나야 빗길에 140 도 자신 있지만흐흐~~

컥 영언 못지 않게 과격한 운전자임을 암시하는 성희의 발언에 현석이 가재 먹고 사래 들린 소리를 내며 부랴부랴 냅킨을 찾아 입에 갖다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성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이 무식한 폭주족하고 동일시하진 말아 주세요~~ 전 그냥 속도만 즐긴답니다 미친 년녀어자처럼 흠흠 이리저리 차선 바꾸고 스턴트하듯 차 세우고 그러진 않는다구요 아셨죠

아 네 그러세요(그거나 그거 나지) 사실 그 차 나한테 주면난 하루도 못 가서 여기저기 꼴아 박고 말 거야 잘 됐어 성희야 좋겠네~ 꼴아 박는다고 오 노~~ -성희 amp 영언 이구동성 하아그러니까 성희 준 게 잘한 거라고하하아 하아혀 현석씨

예 저 뭐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 친구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팍 쫄아버린 이지가 현석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도 아닌 사람한테 절대로 기사도를 발휘할 생각이 없는 현석은 짐짓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 때 엉뚱한 곳에서 이지를 돕는 수호천사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성희 너 전화 왔다 받아 봐 히이~

그랴 너 전화 받고 다시 시작하장 이지의 얍삽한 짓거리에 도끼눈을 가재미 눈으로 바꾸며 성희는 친구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들고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야 최 성희 lt어허미 깜짝이야~~gt

네 최 성희입니다만 누구 신지요 -음당신 뒷발 차기에 옆구리 터진 사람이요 병문안 온다고 했다면서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 어 유 지태구나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6: [김지오]Hold me tight

-어 유 지태구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멀쩡한 사내놈을 하마터면 복상사(腹上死)하게 할 뻔했으면서어 유 지태구나

허이고~~ 옆구리 좀 터진 거 가지고 복상사는 무슨 복상사냐 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끊어라 나 기분 처지려고 하니깐 응

-나도 못 끊어 난 지금 더 처질 데가 없을 정도로 기분 최악이니까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고 허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남자랑 분위기 잡고 있다고

뭐 그 말도 맞네 -뭐얏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랑 지금 같이 있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내 사생활까지 너한테 고해바칠 일 있냐 끊어 쌔꺄 치료비는 물어준다 물어 줘 그니까 귀찮게 전화하지 마 이따 저녁 때 어련히~ 알아서 과일 바구니 싸들고 찾아갈까 봐 넌 니 몸조리나 신경 써 끊었 마 아프다는 놈 더 조지기도 미안하지만 암튼 안하던 성깔을 부리는 지태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질렀던 성희가 폴더를 확 덮고 시선을 들자 좌중의 흥미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네들은 오로지 한 단어에 대한 해명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복 상 사 복상사라 하면 흠내가 아는 그 복상사 맞나아~~ -영언

그런 거 같지 -이지 아니 니들 생각 같은 그런 복상사 아니야 그냥 옆구리가 좀 터졌을 뿐이라고

캑 불쌍한 현석 그는 이번에도 가재 먹다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며 냅킨을 찾았고 영언의 매운 손바닥으로 등을 맞아야 했다 현석씨 왜 일케 뭐 먹을 때마다 사래가 걸리냐식도 쪽이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응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7: [김지오]Hold me tight

lt말이나 못하면 덜이나 밉지 우 영언이 이 기집애이따 보자 이따 봐gt 자못 걱정스러워하는 영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석은 추후를 기약하는 살벌한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영언은 대뜸 까르르 웃으며 그의 두 귀를 잡고서 흔들어 댔다 오고고어쩜 이렇게 내 신랑감은 째려보는 것도 예술이냐~~ 니들은 평생가도 이런 신랑감 어디서 못 찾을 것이다아~~ 부럽지 부럽지 헉 -현석

웃기네~ -성희

그래 그래 부럽다아쳇 -이지 영언이 그렇게 마냥 웃으며 -자기 쪽이 한참 기우는- 신랑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성희는 솔직히 너무 부러워졌다 단지 신랑될 사람이 이 나라 최고 갑부집 손자라서나 진짜 눈이 휑 돌아버릴 정도로 미남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따뜻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탐나서였다 옆에 앉은 이지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문득 성희는 병원에서 씩씩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태를 떠올렸다 3 년을 알아왔지만 한결같이 선량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였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자신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착하고 일 잘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싹싹하게 대해주는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그를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라 lt그럼 지금은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는 거야 지금 허최 성희 정신 차려라 걘 너 보다 두 살이나 어려 회사에만 해도 그 자식에 목매단 여자가 널렸는데 너까지 왜 이러냐 그 놈이 키스는 뿅가게 하긴 하더라등짝도 쥑이고헤베베~~ 내가 무슨 생각을 그 놈은 따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잖어 카아만 카만 있그래이~ gt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놈이 자신을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그 쌩쑈를 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최 성희양은 파파팍박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8: [김지오]Hold me tight

시작했다 타고난 좋은 머리에다 수준 높은 대학 교육 그리고 피터지는 직장 생활 5 년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곧 믿기 힘든 추론 결과를 산출해냈다 lt유 지태 이 놈이 날gt

7높고 시야가 탁 트인 중앙병원 14층 내과(內科)병동 4인실의 자기 병상(病床)에 누워서 지태는 하염없이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새빨간 석양에 순도 낮은 금 덩어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 관능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그 뾰족한 빌딩을 바라보며 지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3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취직한 후로 그는 사실 단 하루 쉴 새도 없이 일만 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어서 였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허망한 감상(感想)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사에 매달린 것은 그 만큼이나 착실하게 회사에 나온 최 성희 때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 가야 그녀를 볼 수 있고 시간외 근무를 해야 그녀 곁에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성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몇 달 안가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녀가 실연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그도 그녀 곁에서 같이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노래도 불러주고 지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웃었었다 암튼 실연만 하면 성희는 어김없이 일에 매달려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었고 지태도 그런 그녀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했던 것이다 lt이제 그 짓도 그만이야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 여자 그늘에서 그 여자가 돌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그나저나 저녁 때 온다더니 이 여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제기랄gt 그가 최 성희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그녀가 문가에 나타났다 채 그를 못 알아보고서 문 안쪽과 문 밖에 걸린 이름표를 연신 번갈아 확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태는 아주 작았던 반가움마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19: [김지오]Hold me tight

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성희가 환자복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최 선배 여기 맞어

어 그가 조용히 불렀을 때에야 겸연쩍은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는 성희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지난밤이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나 보다 그녀 최 성희는 진짜 직장 동료를 문병 오는 사람처럼 병원앞 슈퍼에서 파는 비닐로 둘러싼 과일 바구니 하나만을 무성의하게 들고 들어왔다 모레면 퇴원할텐데 뭐 하러 이렇게 커다란 걸로 샀어 그리고 난 이렇게 시들시들한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아

햐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갹출한 돈으로 산 거야 이럴 땐 그저 돈에 맞춰서 사야지 네 입맛에 맞추리

왜 성의(誠意) 부족이냐 알어 마 그래도 어떡허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고 얼굴 풀어 마 좀생이 같긴 맘대로 쓸 수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말해 봐

어구 너 목소리 까니까 무섭다 하하 어떡하긴 마 애초에 맘대로 쓸 돈이 아니었는데 뭘 다른 걸 상상해

어휴유우 그가 최 성희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태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그가 너무도 비참한 심정으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성희는 다른 병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과도며 종이 접시 등을 얻어왔다 지태는 유리창을 통해서 성희가 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과일을 하나하나 깎아서 종이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성희가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0: [김지오]Hold me tight

과일을 종류별로 예쁘게 깎아서 종이접시 네 개에 나눠 담더니 밝게 웃으며 다른 환자 가족들에게 고루 돌렸다 그리고 다시 지태 앞에 앉더니 정말로 예쁘게 깍은 사과에 빨간 셀로판지로 장식한 요지를 꽂아서 내밀어 보였다 먹어 왜 맛 없을까봐 야아 그래도 깍은 사람 정성을 봐서 한 입이라도 먹어봐 마

사과를 내밀면서 배시시 웃는 성희를 바라보며 지태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 성희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태였다 그는 우아하게 손가락 두 개로 요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보 같지만- 정말 감격해서 눈물을 쏟을 것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서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최 선배나랑 살래 응 나랑 같이 살래

이 놈이 이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야아 놔 사람들이 보잖아

보라고 해 말해 봐 나랑 살래 응

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8성희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좋아한다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니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고작 같이 살래라니 우스운 것은 지태의 이 방자한 짓을 꾸짖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있는 60 대 위암 환자 할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껏 병실에서 나가버렸던 것이다 lt어쩜 저럴 수가 과일까지 깎아줬건만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gt 나 좀 봐말해 봐 응 같이 살자 나 선배 좋아해 알지 알 거야 선배같이 눈치 빤한 사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1: [김지오]Hold me tight

람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나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고 대답해 봐 응

이 놈 의 시 키 가 [아 끓어오르는 분노의 역류여~~ 서울시(市) 반은 폭파시키겠구나~~] 성희는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서 유 지태 이 멍청이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악~

죽어 이 쌔꺄 죽어 차라리 죽어 뭐이 어쩌고 어째 싫지 않으면 같이 살어 이 쌔끼가 누굴 남자에 환장한 년으로 아나 나도 나 같은 여자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흐어어 그런 사람이랑흐흑너 같은 놈 아니어도흑 성희는 너무 서러웠다 한때라도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한 놈이 사실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는 놈이라서 서러웠고 하필이면 그 놈이 바로 유 지태라서 분노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왜 자신에게 들러붙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뭐가 잘못되었기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먼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간 사귄 모든 남자들을 한결같이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헐한 걸레 값으로밖에 쳐주지 않는 것일까 lt너무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 순둥이까지 나를 업신여기고서역시 그 날밤에 잘못한 거야 모른 척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대체 날 뭘로 보고gt 성희의 오열은 곧 잦아들었지만 그녀가 속으로 삼켜낸 눈물이 흐르는 눈물보다 갑절은 많았다 그녀로서는 이런 방자하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멍청이 때문이라면 지금 흘리는 눈물조차도 아까웠다 그래서 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서 흐르는 눈물을 멈춰야 했다 지태는 성희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어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마냥 감격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2: [김지오]Hold me tight

해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니까왜 우는 걸까 lt좋아한다고 했는데자기도 날 싫어하진 않을 텐데뭐가 문제야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자기가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를 또 구하겠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gt 흠 이래서 남자란 족속이 둔탱이에다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여러분 자아 그러면 이 둔탱이에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유 지태의 저 시꺼먼 속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lt아예내가 데리고 있어야 성희 이 기집애가 딴 놈들한테 정신을 안 뺏기겠지 아주 눈도 못 돌리게 할거야 내가 지난 3 년간 그런 것처럼 나만 보고 있게 할거야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잘 감시해야 해 설마 나랑 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진 않겠지 오 마이 갓 그러면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 애초에 다짐을 받아 놔야지 그래그렇게 좀 살다 보면 저 못된 버릇도 고쳐질 거야그리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아니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최 성희gt 혼자 내린 이 결론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지태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침대 위로 눕혔다 거의 공황 상태였던 성희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멍하니 먼지때가 살짝 앉은 회칠한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지태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지태가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응 같이 살자최 선배

미 친 놈 그 한마디를 하고서 성희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문득 옆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70 대 할머니인줄 알았을 정도로 팍 삭은 얼굴이었는데 올해 환갑이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3: [김지오]Hold me tight

상당히 진행되어서 마약성 진통제 가지고도 그 말로 형용 못할 통증을 채 다스리지 못하다고 며느리라는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었다 탁하고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성희는 자기 가슴에 내려앉은 무거운 지태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할머니에게로 몸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lt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나gt ㄹ아가치살아조ㄴ사람이랑사

네 할머니 뭐라고요 병마(病魔)로 자기 생을 거의 마감해 가는 이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고 계신지 알아들었으면서도 성희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작은 교만은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부풀어 오른 흰자위에 힘을 주며 할머니가 못난 손주 혼내듯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얼마나사ㄴ다고조은사람이랑사아라살아

네 알았어요 할머니 그만 하세요 힘드세요알았다고요 너 저리 비켜 봐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성희는 지태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너 할머니 좀 보고 있어 나 보호자분들 좀 불러올 테니 알았지

어 그래 성희는 부랴부랴 병실에서 뛰쳐나와 간호사실에 들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하고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 나와 버렸다 도망치는 그녀의 등뒤로 작고 숨 넘어가는 목소리의 할머니의 말들이 따라 붙었다 lt살면 얼마나 산다고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헉 할머니저한테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저 알기를 쓰고 버리는 걸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라고요 저같은 건 싫지 않으면 살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요잘 알지도 못하면서너무하세요너무하세요gt

9[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lt우이씨gt 대체 일요일 아침에 전화질 해대는 몰쌍식한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용건일시에는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4: [김지오]Hold me tight

개박살을 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성희는 침대 옆 탁자에 팔을 휘둘러 댔다 눈뜨는 것은 고사하고 고개도 가누기 힘든 그녀가 휴대폰 폴더를 입으로 열어 귀에 갖다 대자 정말로 꼴도 보기 싫은 화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일났어 )

어 (아니 )

-어 (일낫 )

어어어 (시러 )

-어어 (어허 일나 )

어어어 (몬일나 ) -최성희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 시간이 몇 시야~

어어어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 )

-나 배고파 뭐 좀 먹을만한 걸로 가져와 봐 어어어 (뭐얏 니 배고픈 걸 나한테 어쩌라고 )

-병원 밥은 입에 안 맞아 제발 나한테 먹을 걸 좀 줘 어어 (시켜 먹지 그래 )

-일요일 아침부터 문 여는 식당이 얼마나 된다고 나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 빨리 먹을 것 좀 갖다 줘

어으어(어흐 귀찮어 알았어 마)

성희가 밥을 해다 바치겠다고 하자 지태는 냉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희는 눈을 반짝 뜨고 어느 새 머릿속으로 환자 보양식 메뉴로 무엇이 환상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엥 lt아니 내가 왜 이런 방자한 놈한테 밥을 해다 바쳐야 하는데 너 어제 일 잊은 거냐 최성희 미쳤스 미 j스~~ gt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녀는 행복한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뻣뻣한 북어 녀석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5: [김지오]Hold me tight

그녀는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뭐 맛깔난 반찬거리 될 만한 것이 없나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녀는 살짝 질게 된 밥이 지태 입맛에 맞을 것인가를 걱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녀는 기스가 왕창 난 플라스틱 도시락 통을 보면서 진작 새것을 사놓을 걸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으니까 이러지 뭐 그래 니 미 z다 조오 컸다~~ -- 세수만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대충 걸쳐 입은 성희는 도시락 통을 종이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배가 고프다는 지태놈 성화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 9 시에 택시 잡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 휑하니 빈 바람만 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성희는 분노를 떠올리려 애썼지만왜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인가 왜 발을 동동거리며 어느 멍청한 화상이 굶주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이씨~ 그만 해 내가 미쳐서 이런 다니까 알았다 입 다무마흥 () 한편 지태는 천하의 최성희가 과연 꿀 같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인지 아니면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든 것인지를 고민하며 병동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지상 23 층 지하 5층 짜리 병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14 층 내과병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애타는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잘도 엉뚱한 층에서만 타고 내리고 있었다 lt11 12 13그냥 지나가네휴또 온다 12 1315 아니네 최 선배 오겠지올 거야 최 선배는 온다 안올 지도올 거야 그래야 할텐데 어 11 12 13 gt 어머 유지태씨

헉 이 부장님 땡하고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키가 크고 화사한 미인은 바로 외자 관리팀 이 소라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보던 꽉 짜인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살짝 몸매가 드러나는 핑크빛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금새 칙칙한 병동 복도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6: [김지오]Hold me tight

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왜 나와 있어요 바람 쐬러 나왔어요 아님 나 올 줄 알고호호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유지태씨 병원 밥이 시원찮을까봐서 먹을 것 좀 싸왔는데병실이 어디에요 나도 아직 식전인데 같이 먹읍시다 가요

어버버 여자 손이 왜 이리 우악스럽나 싶게 그의 팔을 움켜진 이 소라 부장에게 붙들려 병실로 질질 끌려가면서 지태는 안타까운 시선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소라 부장은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한껏 콧소리를 내면서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그래 장출혈이 왔데요 유지태씨 머 심각한 건 아니죠 유지태씨야 워낙 건강 체질로 보이는데 말이죠 호호호어쩜 유지태씨는 환자복 입은 모습도 넘 귀엽다~~ 자주 보여주는 것만 아니면 것도 꽤 신선하네요호호호 여기예요

아 예 마치 병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 마냥 이리저리 병실을 두리번거리는 이 부장 뒤에서 본때 없이 밍기적거리며 지태가 따라 들어오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지르는 호통의 요지는너 임마 어제 그 아가씨 아니잖어 였다 그래서 어색하고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지태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저희 회사부장님이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실례가 많습니다 호호호우리 유지태씨가 헐한 병원밥 때문에 고생할까봐서요식사들은 하셨죠 저희는 지금 좀 먹을게요 호호호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멀뚱히 있다가 지태가 나서니까 사람들에게 호호거리며 인사를 한 이 부장이 곧 침대 위에 식판을 세우고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성희가 오면 지하 로비나 근처 공원에서 같이 밥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7: [김지오]Hold me tight

을 먹을 생각이었던 지태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장님 여기 분들은 다 식사를 하셨는데 이렇게 음식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실례잖습니까

어머 유지태씨 그러니까 제가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요 어서 걱정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서요 너무 뻔뻔한 그녀 머리 뒤에서 병실 사람들이 도끼눈을 하고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 부장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그에게 어서 밥이나 먹자고 성화였다 lt제기랄gt 혼자 드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시 왔을 땐 이거 다 치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 부장님

어머 유지태씨 그냥 가면 어떡해 유지태씨 이 부장이 그 짜증나는 비음을 한껏 높혀가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기에 성희를 기다리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최성희임에 분명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낮고 느릿느릿 말하는 남자 목소리도 lt헉 최성희 이 기집애gt 그녀가 결국 병원에 와 주었다는 기쁨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지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 앞으로 뛰어 들었다 윤 호율 야아이게 얼마만이니 너 진짜 멋있어졌다아 하긴 전에도 넌 멋진 놈이긴 했지만

어 최성희아냐 잘 지냈어 진짜로 반갑다

구래 구래~~ 어히고 이 넘 부티 줄줄 흐르는 것 좀 봐 그간 살기가 괜찮았나 봐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한 성희는 14층 앨리베이터를 내려서다가 막 올라 타려는 남자를 알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로막고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성희의 학교 동창인 윤 호율이었다 이 키 크고 잘생긴 동창은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에 탄탄한 가슴 윤곽이 슬쩍 내비치는 V 니트 차림이었다 흐미~ 언제 봐도 멋있는 넘이여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8: [김지오]Hold me tight

그렇게 보여 하하너도 건강해 보인다

나야 모 늘 건강 만빵이지 그래 넌 웬일이야 병원에누가 아프냐 아니 회사 직원이어제 회사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거든호흡기 쪽이 안좋아졌다고 해서너는 너는 왠일이야

아나도 나도 우리 회사 동료가장 출혈이래 문병 온거야 회사 동료를 문병왔다는 사람이 일요일 아침부터 그 큰 꽃다발은 왠일이며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오는 경우가 요즘엔 넘쳐나는지 모르겠다만 성희와 호율은 그 사실을 서로 아량껏 외면해주며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지내지

그럼 저어기 민아 선배는 소식 좀 들어 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너아직도 구나짜식 그렇다고 뭘 그렇게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냐 마 힘 내 마

그래 학교때부터 유명하던 윤호율의 이민아 선배에 대한 외사랑이 생각나서 성희가 한마디하자 윤호율은 금새 그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희의 대학 경영학과 선배인 이민아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해 버린지도 어언흠 꽤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잘생긴 남자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다니 정말 인생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흠우리 다음에 또 보자잘 가라 윤 호율

그래또 보자 성아악

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 미이치인 노무 시키gt

10뭐 뭐얏 야 유지태이게 무슨 짓이야 너 그 손 안 놔 lt이 이미이치인 노무 시키gt 방방 뛰는 성희의 노성(怒聲)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거의 자기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29: [김지오]Hold me tight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얏

그러는 댁은 누구 신지 성희랑 아는 사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오해 어쩌고 하며 빙글거렸지만 이 놈이 성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한 체를 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태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 손 안 놔 야 호율아 미안해서 어쩌냐 야 좀 놔 놓고 얘기해애~~

최 선배 이 놈이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좋아서 희희낙락했냐고

이 놈의 시키 누가 희희낙락했다는 거얏 괜찮아 성희야 이거 놓고 우리 인사나 합시다 유지태씨 지태는 이 말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놈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남자의 직감()으로 성희와 별 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길게 찢어지고 속 쌍거풀진 눈에 웃음을 담고서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온몸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관록이라는 것이 철철 흘러 넘쳤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묘하게 날카로운 그의 턱선을 보며 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lt우~ 뭐 이렇게 생긴 놈이 다 있어gt 저는 최성희 학교동창이고 윤 호율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좋은 사이신가 봅니다 최성희 이놈 아주 괜찮은 놈이니까 꽉 잡으십시오

유 지탭니다 그리고 난 최성희랑 좋은 사이가 아니고 데리고 살 사람입니다 그리고나도 최성희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겪어서 아니까 충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뭣이라 아니야 호율아 저 놈 말 믿지마 너 유지태 이 쌔키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통성명에다 악수까지 나눈 두 남자는 옆에서 성희가 발악을 하는데도 그저 비슷한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악수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서 돌아서 버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0: [김지오]Hold me tight

렸다 호율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지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큰 걸음으로 병실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코

갑자기 지태가 숨넘어가는 감탄사를 외치며 멈추어 서자 성희는 거의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진 그녀를 돌려세우더니 다시 뛰듯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왜 그러는데 야 이 놈아 힘들다 나도 왜 뛰는지 알면서 뛰자 좀

어 그냥 우리 날도 좋은데 저기 근린 공원에 가서 먹고 오자 응

메야 나보고 환자복 입은 놈이랑 길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땡] 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빨리 타 최 선배 어서 어서~~ 그들이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지태는 성희는 황급히 안으로 밀어 부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두르는 지태 때문에 성희는 영문도 모르고 안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지태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자신을 끌어안고서 그가 입을 맞추어 오자 그녀는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이성(理性)의 끝자락으로-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이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툭] 성희는 그의 목을 안고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그 날 밤에 지태가 얼마나 키스를 능숙하게 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이번 그의 키스는 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것이다 입안에 엉겨있는 서로의 혀를 절절히 느끼면서 성희는 그의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얇은 환자복 사이로 그의 흥분상태가 느껴지자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지태는 얄미운 그녀의 미소가 걸린 입술을 미디움 스테이크 먹듯이 조각조각 깨물어서 빨아들였다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질긴 청바지를 원망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1: [김지오]Hold me tight

신의 허리에 걸쳐 올렸을 때였다

어머낫

어허~~ 공공장소에서 이거

얘 너 눈 가려 이 사람들이 정말 애들 보는데 뭐하는 짓들이에요 어느 새 1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들을 질타하는 수많은 눈을 피해서 지태와 성희는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막 뛰기 시작했다 lt화가 나야 하는데gt 화가 나야 하는데 지태가 자기 입술을 뺏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야 하는데 성희는 웬일인지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태의 긴 다리로 뛰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그녀는 자꾸 웃음이 베어 나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보다 먼저 지태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 가득 웃음 주름을 만들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지태 이 멍충이 바보 천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성희는 그 만큼이나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lt나유지태를 사랑해저 환한 웃음을사랑하게 됐어gt

1113일 후 어느 햇살 밝은 토요일 오후힐밸리 호텔 대(大) 연회장 야아 민 영언 너 앞 이빨에 루즈 묻었어 여기 휴지

성희는 바부퉁이야 그런 건 휴지보다 그냥 혀로 일케 쓱 문지르는 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휴지로 닦다가 얼룩지면 어쩌라고~

허어~~ 그런 거야 이지 넌 시집도 못 가본 게 신부 화장까지도 빠삭 하냐 그래~~ 자 자 그만해 이것들아 나 정신 사나워서 미치겠다 정 떠들려면 신부 대기실 말고 저밖에 어디 가서 늬들끼리 떠들어 제발 별꼴이야~~ -성희 amp 이지 이구 동성 오늘은 세 친구 중에 민 영언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만나지 딱 한달 보름만에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2: [김지오]Hold me tight

마치 선봐서 결혼하는 사람들 마냥 정신없이 후닥닥 치르게 된 결혼식이었다 정신 사납다는 영언의 요청()에 따라 신부 대기실에서 쫓겨 나온 성희와 이지는 둘이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자랑하는 삐까뻔쩍한 볼룸 형태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돈 무섭지 않니 그 콧대높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드레스를 후닥닥 만들어내고 말이야 우리 같은 평민들은 아마 두어 달 전에 가서 예약하고도 디자이너 이름 값에 눌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아마 주는 거 아무거나 감사하게 입었을지도 몰라 그치 영언의 순백색 -큐빅과 진주로 다글 거리는 그리고 엄청 비싼 벨기에 산(産) 레이스도 -웨딩 드레스가 너무 부러워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이지였다 그런데 곧 맞장구를 칠 줄 알았던 성희가 조용히 있자 이상해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성희는 식장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으로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거기에는 모닝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오늘의 새신랑 현석이 누군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도 큰 키라고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살짝 크고 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남자였다 너 저 사람 알아 어 어나야 알지문제는 저 넘이 어떻게 새신랑이랑 절케 친한 척을 하고 있느냐지흠

누군데 니가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 그게나랑 같이 살 사람이야

컥~ 뭣이라 자신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이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그녀는 똑바로 유지태를 향해 걸어갔다 두 눈의 위치가 범인(凡人)보다 위쪽에 있는 유지태가 금새 그녀를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 머리꼭지 위로 그의 반가워하는 눈길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희를 기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만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3: [김지오]Hold me tight

어 유지태씨 여긴 웬일이에요 신랑이랑 아는 사이

아 성희씨 어 제이크랑 아는 사이에요

제 뭐라구요 현석이 말하는 낯선 꼬부랑 이름에 성희는 이게 뭔 소리냐는 의미의 시선을 유지태에게 꽂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현석과 성희를 번갈아 볼뿐이었다 제이크 아니 지태 이 놈 제 하바드 MBA 동기예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잘 모르길래 제가 한국에 오라고 여러 번 꼬셨었죠 결국 이렇게 오긴 했지만우리 회사에 오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야 말이죠 그건 그렇고 성희 씨도 아시는 사이였군요 이 놈이랑 그러셨군요저랑은 회사 동료예요 어쩐지유지태씨 일 처리 실력이 보통은 아니다라고 늘상 생각은 했었지만그랬군요그랬어요 일 잘하던 범생이 유지태가 가진 또 다른 일면에 놀라버린 성희는 -이유도 모른 채 부아가 치밀어서 그를 싹 무시하고서- 현석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기 얼굴에 쏟아지는 지태 아니고 뭐라더라 제이크라고 암튼 이 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성희는 그를 계속 무시한 채 열성적으로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씨 아주~~멋져 보이세요 진짜 민 영언이한테 과분한 신랑감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제 친구한테 코가 꿰이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언이가 착하고 예쁘다는 착각 속에서 사시기 바래요 꼭이요 절대 제정신 차리시면 안된다구요 알았죠 하아~ 네 아 네에절대로 제정신 안 차리겠습니다 됐죠

쿠쿠쿠그래야죠 그래야죠 아주 좋아요 하하 성희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현석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흔들어준 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친구 이지를 찾아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최선배 성희야 거기 서 지태가 도망가는() 성희의 등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황급히 혼잡한 사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4: [김지오]Hold me tight

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이크 너 최성희 저 여자랑 무슨 사이냐 혹시 네가 지금의 그 회사를 떠날 수 없게 한다는 그 여자가성희씨였어

어 어어 호~~ 현석은 감탄사인지 휘파람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외마디를 내뱉고서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제이크의 찡그린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제이크가 지난 3 년간 어떤 회사 선배를 짝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현석이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해도 제이크가 요지부동 꼼짝도 안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이유가 선배를 보기 위해서 이직(移職)은 곤란하다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제이크에게 잠시 편하게 한국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 현석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한 5 개월 후에 제이크를 다시 만났을 때 현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건 그렇고 lt그나저나제이크같은 순둥이에게저런 불같은 말괄량이라니어쩜 맞고 살지도 모르는데이 놈이 저 성희씨의 본질을 알고나 있을까 우리 영언이야 차(車) 문제만 빼면 천상 여자지만성희씨는솔직히 치마 두른 남자나 마찬가진데걱정된다gt 12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성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신랑 옆에 서있는 유 뭐뭐의 등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충이 유가 놈이 아주 말쑥한 차림새로 신랑 들러리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 옆에서 신부 들러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이지였다 영언과 이지가 들러리 좀 서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했었지만 성희는 저런 치렁치렁한 공주풍(風) 드레스가 여엉 취향에 맞질 않아서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5: [김지오]Hold me tight

고사했던 것이다 아 그녀는 왜 진작 그때 못 이기는 척 영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속으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식이 끝나고 공항에 신혼부부를 데려다 주고나면 들러리들끼리 하다못해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 것이다 어흐 영화나 책에서 보면 들러리들끼리 눈 맞아서 어찌어찌 된다는 스토리가 좀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lt이지죠 년이 한미모 하잖어유가 저 넘은 워낙에 맹한 놈이라 이지 저 미모에 뻑하니 넘어가고 말거야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불쌍한 넘 그러면 나랑 살잔 소리도 쏙 들어가겠지 이거 이거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냐~ 미치겠다gt 자신의 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유명한 질투라는 감정인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성희는 애꿎은 손톱에다 화풀이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신 국회의장인가 머신가 하는 사람이 주례사랍시고 한 장광연설도 귓전으로 흘려 버렸고 신랑 신부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성혼(成婚)을 기약하는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그녀는 결혼식에 가면 이 장면에서 거의 언제나 발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었다- 앞만 보고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는 그저 멍하니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이다 자아 이제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거 신부 친구 분들 중에 날 잡으신 분 나오세요 나와요 퍼뜩 성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왁자한 신부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부케를 받으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lt부케라흠 누가 있지 날 잡은 기집애가 흠 쟤도 있고 저 여자도헉gt 수십 명의 여자들이 서로 누가 나가야 되네 마네 하며 떠드는 사이에 성희는 그저 곧 결혼할 처자들이 꽤 되나 보다 하고서 별 흥미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휙 잡아끌어 당기는 바람에 거의 단상(壇上)에서 구를 뻔한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6: [김지오]Hold me tight

그녀가 잔뜩 화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팔을 잡고 있는 인간은 유가 놈이었다 야 다칠 뻔했잖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쌔끼가미쳤나 나 다리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아흐~~ 진짜로 놀랬네 으 이 쌔끼

아 미안 왜 멀뚱히 있어 최 선배 나가서 부케 받어 lt메야 나보고 저걸 받으라고 흐미이 놈이 진짜gt 야 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뭘 모르나 본데 너 임마 날도 안잡은 년이 저거 받으면 재수에 옴이 붙어서 6 년간 시집도 못갔 마 난 시집가고 싶어~~ 절대 지금은 저거 안 받을 거야 알았어 마 알았어 그러니까 가서 받으라고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알아듣게 해줬건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유가 놈을 잡아죽일 듯이 째려보며 성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지태는 그녀의 팔을 붙든 채로 성큼성큼 단상 아래로 이끌었다 단짝 친구 성희가 웬 남자 손에 이끌려 부케를 받으러 내려오자 영언의 인조 속눈썹 붙인 눈이 화등짝만하게 커져 버렸다 영언이 이지에게 같이 놀래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친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을 보내올 뿐이었다 영언이 이번에는 현석에게 동참하라는 시선을 보내려 하자 이미 그녀의 신랑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온몸을 경련 하듯 살짝살짝 흔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래리여 뭔일이여~~ 아후우~~ 너 이 쌔끼 이거 못 놔 안 놔 이 놈이 정말

악 패지 말고 말로 해 최선배 너 같은 놈은 말로는 안돼 아주 매로 다스려야 된다니까 저리 비켜 새꺄 lt오홋 이 광경은gt 영언과 현석은 그들에게 친숙한 남자 등짝 핸드백으로 후려 패기 씬을 대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물론 지태가 성희에게 맞는 이유가 자신들과는 다르겠지만 어느 새 영언은 저 남자가 과연 앞으로도 성희의 등쌀에 견뎌낼 체력과 체격을 구비했는지 탐색하고 있었다 현석은 오늘이 제이크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얻어터지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7: [김지오]Hold me tight

억하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럴 테니까 성희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지난 몇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담아서 그를 패고 있었다 그날 밤에 뻔뻔하게도 무방비하게 자신에게 쳐들어오려던 그때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가 어이없게도 장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됐을 때 느낀 미안함 그리고 그가 싫지 않으면 같이 살자 했을 때 느낀 모멸감 그리고 어느 틈에 이런 방자하고 띨띨한 놈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대한 절망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유감천만한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태는그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 성 희 아무 말 말고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 자꾸 이러면나 화낸다고

허~ 목소리 깔았냐 시방 하~ 야아유 지 태 아니지 아냐뭐더라 제이크 아흐 이 쌔꺄 그래애~ 화 내봐라 내봐 휴우자꾸 들볶지 좀 마 최 선배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데로 해 봐 좀 이 미친놈아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너야말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 따위로 나를 망신시키면 안되지 너같은 게 너같은 게 뭘뭐를 안다고흑 나 우냐 지금 흐흑 내가 울어 바보같이우냐 내가 성희는 이 세상 모든 무정한 남자들 그리고 지태의 무신경함이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기세 좋게 날아다니던 그녀의 핸드백도 축쳐진 그녀의 팔에 매달려 처량맞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감추려고 성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의아까워서 미쳐버릴 것같은 눈물을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고 말았다 13성희야 쉬이~~ 울지 마 지태는 그녀의 감정 상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8: [김지오]Hold me tight

성희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아 버렸다 그의 손이 닿자 언뜻 긴장하는 것같던 성희가 생각보다 순순히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에 얼굴을 묻고서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희 때문에 지태는 자신이 좀 전에 고집했던 일이 마냥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최 선배 싫다는 거 억지로 시켜서 미안해그만 울어응 지태는 애가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한 가장 적절했던 챤스를 이 따위로 망쳐 버렸단 말인가 아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성희만 아니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간절했다 lt성희야나 너 사랑해나랑 같이 살자나하고만나만 봐줘나만 사랑해 줘성희야gt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간절한 소망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혀를 탓하며 지태는 성희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입술을 묻고서 한숨처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 나는우리가 같이 살 거니까난 최 선배 사랑하니까선배가 나를아주 싫어하지 않으면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같이 살 거니까부케 받으라고미안해 성희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그만 울어 응 지태가 얼마나 애를 태우며 한 고백이었는지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사실 성희는 그가 말하던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딱 그치고 그의 고백 내용을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범생이가 사랑 어쩌고 하는데 그녀의 귀가 번쩍 트였을 뿐 아니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 중이었던 것이다 lt아이 넘이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흠 나를 사랑한다고 오홋~~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넘 좋아할 건 없고 그래도흐으미~~ 그리고 또 모 행복하게 해준다고 당근이쥐 마 그리고 또 모 더 해 봐 더gt 그러나 성희의 소리 없는 채근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나 달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아 유지태가 범생이에다 멍청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센스까지 없어서야 lt하아~~ 이 시점에서 젤 중요한 것을 한방 빵 터뜨려야지 마 에고 에고 내 팔자야~~ 구랴 구랴내가 도와주마흐미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39: [김지오]Hold me tight

내 신세하고는gt 그라하여 성희는 거의 말라가던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하면서 더욱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진짜로 가슴에 멍이든 사람마냥 울어대는 그녀 때문에 지태는 죄책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지난 3 년간 하고팠던 말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던 사실 함께 하고픈 미래 다 말했건만 성희는 왜 이렇게도 서럽게 울기만 하는 것일까 난감했다 정말로 성희가 너무도 애처롭게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인 영언과 이지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다가왔다 그들은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10 년 우정 사이에 성희가 이렇게까지 대성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야아울지 마울지 마너 내 결혼식에 와가지고 일케 울어야 겠냐 제발 뭔일인지 몰라도 날 봐서 좀 참아주라 응

성희야 좀 진정하고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응 물지만 말고답답하다최성희 제발 말 좀 해봐 lt어흐 내가 더 답답하다 이 화상들아 일케 눈치가 젬병이어서야gt 친구들의 센스없는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희였다 하지만 지금은 울화보다는 유지태에게 뭔가 보다 확실한 한방을 울겨내야 할 때였다 lt진정하자 진정해최성희 너는 할 수 있다gt 아자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려버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 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lt gt 성희는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면서 요령껏 지태의 눈을 피하면서 친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 영언과 이지가 누구인가 둘 다 불여우 과(科)를 수석으로 졸업한 눈치 10 단(段)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0: [김지오]Hold me tight

14자아 그럼 토요일 오후인데도 별로 어수선하지 않은 신공항 로비에서 일행 중에 그나마 제일 정신상태가 온전한 현석이 이별을 예고하는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현석은 되도록 냉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네 사람을 평가하듯 훑어 내렸다 이들은 앞으로 보나마나 그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복장 긁어대는-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인간들이었다 먼저 영언 그의 사랑해마지 않는 합법적 새 신부 -그러나 오늘의 성혼 선언이 과연 잘한 것이었나 의문 나게 만드는 여자를 필두로 채 이지 아내의 친구 -그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싶지 않은 무서운 여자와 최성희 역시 아내의 친구이자 오늘 모든 남성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들을 아주 쫄게 만든 또 다른 무서운 여자그리고 제이크 새뮤얼 리우 한국명 유지태 -이 천하의 어리석은 멍청이에다 모든 남성의 망신거리 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얘들아 그럼 나 간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태씨 성희 좀 부탁드려요 이지 이지야넌 왜 아직도 여기서 모하고 있냐~~ 어서 택시나 잡아타고 사라져라 응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러더라~ 여기서 사라져 주면 이제 오늘 내 역할은 끝인 거지 현석씨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돌아오시면아시죠 한턱 내시는 거 에 네에그래야죠 야 현석씨가 그런 거 정도도 모르시겠냐 어이~ 최성희군 우리 간다 니들도 잘해봐 돌아오면 니들 날 잡았단 소리 좀 들어보자 엉 오호호~~ 그럼 그럼지태씨 뭐해 인사하고 우리도 가자

어 어어 lt불쌍한 제이크아직도 넋이 빠진 그대로인 것같군어쩌다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된 거냐 그래gt 정 선배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선배 결혼식장에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요저 저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1: [김지오]Hold me tight

이렇게 된 건지 원

됐어 임마 현석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 채 말까지 더듬는 제이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애써 강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저 저 여우같은 세 여자들이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얽힌 인연이라면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하지만 lt역시 나보다 제이크가 더 불쌍해우리 영언이야 사근거리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저 성희씨는정말 제이크가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면서 길들일 여자야불쌍한 제이크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gt 현석과 지태는 세 여자 -혹은 세 마녀- 들이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이별하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까스로 거친 한숨을 안으로 삭혔으며 서로의 그런 모습을 알아채자 곧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갓 결혼하고(JUST MARRIED ^^ )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리부를 향해 떠난 신혼부부를 환송하고서 성희와 이지는 주차해둔 영언의 빌리언으로 향했다 물론 지태도 그 큰 키를 휘청거리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현석이 가진 여러 대의 차들이 있었지만 영언의 고집 -마지막 길()은 나의 애마와 함께- 에 따라서 그들은 공항까지 이 차에 힘겹게 찡겨 타고 왔었다 야 아무래도 이 차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어 나 이제 지태랑 살건대 얘네 오피스텔이 회사에서 가깝잖냐 굳이 차까지 굴릴 필요도 없고 넌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려면 차가 있는 게 낫겠고 말이야 야 채 이지 아예 이거 오늘 부로 네가 가지고 가라 어멋~~~ 정말 그러면 나야 조오치~~

조심히 타 임마 어디다 꼴아 박고 다니지 말고 마 알았으

오냐 오냐~~

지태네까지는 내가 몰고 갈 거니까 고 담부턴 네가 몰고 가 응

올라잇~~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2: [김지오]Hold me tight

그리하여 도로교통법을 아주 확실히 준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능숙한 드라이버인 지태 대신에 우리의 최성희양께서 빌리언을 몰고 서울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

까아~~~ 서 성희야~~~~~ 대저 뻥 뚫린 도로처럼 속도광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도로 곳곳에 과속감시용 무인 카메라가 즐비했건만 우리의 최성희양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레이터를 꽉꽉 밟아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지태와 이지는 초반 얼마간은 예의 상으로 비명을 질러 주었다가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잠잠히 앉아서 각자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우리는 한낱 (아직은)조연인 채 이지양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버리 주인공인 유지태군의 머릿속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현석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벌인 해프닝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어느 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자신이 성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더라 하는 어흐흑내가 이지 너한테 말했지 이 남자하고 같이 살거라고 이 남자가 나 사랑한다면서같이 살잰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와서동거하자는 소리나 듣고 산다 이 내가 그러니 내가 지금 서럽고 분하지 않겠냐고 어흐흑나 좀 내버려 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케 우는 것뿐이야 어흐흑~~어어어어어억~~ 뭣이라~~ -영언 amp 이지 이구동성 흐흐흑~~ 얘들아나보고자기가 아주 싫지 않으면그냥 같이 살재~~~ 어어엉~~~ 어쩜 이런 소리를 글케 쉽게 한대니아이고 억장이야~~ 아니 유지태씨 허 참나 그가 막혀서야 이 부케 좀 들고 있어 봐 유지태씨이

참아 영언아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영언아 제발 이단 옆차기만은 () lt헉 이단 뭐라고gt 이 무슨 날벼락인가지태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로서는 성희에게 대쉬도 하고 고백도 하기 위한 장면이었건만 이 사태의 무서운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3: [김지오]Hold me tight

추이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여자 셋에게 집단 린치를 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단코 성희 최 선배 lt오홋~~gt 그리 하야 단지 더 이상 맞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유지태가 안고 있던 성희의 몸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서 그녀 앞에 무릎을 끓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만 한 번 들었어도 최성희 이하 세 마녀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았을 테지만 당연히 지태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는오로지 사랑하는 최 선배의 상처받은 하아트~~만을 생각하고서 진짜 죽을 놈처럼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성희의 허리에 들러붙어 백배사죄를 하는 형상을 대하게 되자 영언과 이지는 참으로()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니 성희는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지태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이것은 lt음성희 저 기집애가 최후의 통첩을 원하고 있구만음쇠뿔도 단김에 좋은 전략이지그러엄~~gt 놔유지태씨 이게 무슨 짓이야 보는 눈이 일케 많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놔 아 무정한 성희의 목소리 지태는 차라리 성희가 욕하고 때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싸늘한 목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 떠잡다 ^^ 유지태씨 성희가 놓으라잖아요 진짜 이게 무슨 추태예요 이 사람 많은 데서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이런 일이 대수겠습니까 마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 일이 평생의 추잡스런 꼬리표가 된다구요 어서 그 손놓으세요 lt잘한다 채 이지gt 아후우~~ 이런 놈을 우리가 계속 참고 있어야 하는 거니 이지야 나 말리지 마 아주 내가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lt살살해 이 기집애야진짜 때릴 건가 저런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흠g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4: [김지오]Hold me tight

영언아 니 심정 나도 알아 오죽하면 네가 이단 옆차기를 하겠다고 하는지하지만 오늘은 네가 좀 참아야 하는 날이잖아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 볼 테니까 쫌만 참아봐바 성희도 참고 있잖아 응 그 그러냐 흠흠내가 오늘은 좀 참아야겠지 흠흠네가 좀 잘 처리해 봐라 흠흠 이거 보세요 유지태씨 영언이랑 내가 저 최성희라는 여자를 십년 넘게 알아왔지만 오늘처럼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네 당신 당신이저 애를 글케 울린 거라구요 이 사태를 어찌하시려우 울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일케 성희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끌어안고 있으니휴우쟤 앞으로 이제 시집도 못갈거야 당신 책임져 어떻게 할거야 엉 책임지란 말이야 lt올커니 바로 그거야 이지 흠바톤 채인지 좀 해 볼까gt 이지야영언아다 관두자그런 거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 화상이나한테 그런 소리글케 쉽게 하지도 않았겠지유지태씨 이거나 놓으시지 댁은 아주 우습게 아는 나지만그래도 나도 사회적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이거 이제 놔 당신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어서 놔 아 아니야 최 선배 잠깐만 얼굴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성희의 싸늘한 말에 지태는 경기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여자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눈초리 앞에다 그가 내어바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벨벳 상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것 오 예~ 최 선배 아니 성희야이거그 때줄려고 했던 건데어떡하다 보니까이제야 lt오홋~~ 계속해 임마 계속~~~~~~~~~gt 흠그게 뭔데

응 이거이게 뭐냐면그러니까 lt어흑~ 열불 터져 계속해 임마gt 그래애그게 뭐냐니까

저어기열어 볼래 lt열어 보라고 짜아슥그러지 모 흠흠g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5: [김지오]Hold me tight

성희는 당최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지태 손에서 그 상자를 낚아챈 후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상자를 열어제꼈다 당연히내용물은 반지였다 당연히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이쁠 것같은 그것을 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빼내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에딱 맞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쳐들고서 이리저리 불빛에 그것을 비쳐보았다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것같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성희는 문득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들어 최 선배 결혼 반지는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사는 거라고 하더라그거 고르면서나 나랑 결혼해줄래 최 선배 이 나이 되도록 그 숱한 남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두 달치 월급을 털어서 이렇게 예쁜 돌덩이를 사다 바치며 결혼하자고 같이 살자고 한 남자는 없었다 그녀에게 무릎 꿇고 미래를 약속해준 남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아 성희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유지태가 얼마나 멍청하고 센스 없는 남자인지는 다아 용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유지태라는 이 멀뚱하고 키만 큰 범생이에 대한 사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결혼 당연히해준다 해줘 으허엉~~~~~~~~ 최 최 선배성희야 15[땡] 지태가 아마도 자기 인생 가운데 가장 길었을 이 오후에 대한 회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 덧 자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와는 달리 쌩뚱한 표정의 저 성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가 보다 제 집 들어가듯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텅 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태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했다 결국 어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6: [김지오]Hold me tight

찌되었던 간에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의 아이의 어머니가그가 3 년을 애태워온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은 것이다 지태는 온몸에 휘감겨오는 안도감과 성취욕에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뭘 봐 누굴 보겠어 내가 그리고 이제 말 좀 이쁘게 해 하늘같은 서방님 될 사람한테

어어~~ 여자가 그게 뭐야 지금 그게 웃은 거야 이것이 치간 갈 때와 올 때의 심경 차이라는 것인가 성희는 어느 틈에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고 드는 유가 놈의 한심한 작태에 말없이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다 결혼할 사이인데도 이 모양인데 정작 결혼이란 것을 하고 나면 이 넘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아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와서 척 봐도 삼천리였다 왜 왜 그러는데

뭘 왜 그래

지금 나 노려보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핫 정말 미련한 놈이야 이거 또그 말투

시꺼 인간 유지태가 의심할 바 없이 멍청이 바보 천치에다가 빙충맞다는 사실 외에 -현재 국적이 어찌되었던 간에 위대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의 오만한 소유욕에 그 권위에 성희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르다고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숨이 막혀오는 것같아서 성희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엘리베이터의 1 층 버튼을 내리눌렀다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7: [김지오]Hold me tight

어 뭐하는 거야

갈 거 야

가다니 어딜 대체 왜 그러는데 최 선배 얍삽한 놈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최 선배고

만만하다 싶으면 금새 반말 까고 왜그래애응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성희가 말 한마디 안하고 정면만 노려보고 있자 지태는 은근슬쩍 성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로서는 감히 성희의 복잡다난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로 그녀가 다시 1 층으로 내려가서 휑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릴 것같다는 예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예감이 적중했던지 성희는 아주 야무진 손길로 그의 팔을 뿌리쳐서 떨궈냈다 이 미친놈아 넌 내가 아주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나 보구나 이러지 마 치 떨려

대체 왜 그래 왜 이러는 지 알아야 내가사과라면 사과라도 하고 그럴 거 아냐 엉

허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거나 놔 못 놔 그렇게 해서 그의 답답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성희와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지태가 서로의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힘겨루기를 하는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쌔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지태가 남자이고 덩치도 훨씬 컸지만 성희로 말하자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녀의 힘 역시 무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인 그녀가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강구할 방도가 젼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필 오늘따라 통이 좁은 원피스 차림이긴 했지만- 무릎을 들어 지태의 가운데 다리()를 걷어차기만 한다면 이 정도 힘의 우열쯤이야 금새 깨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8: [김지오]Hold me tight

그렇게 맘을 굳힌 성희는 지태에게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냉큼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라 성희야 그녀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지태가 안겨드는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이어서 그녀의 다리마저도 자신의 허리에 턱하니 걸쳐 올려 버렸다 이제 성희 그녀는 지태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매달리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태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목덜미로 파고드는 것을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지태는 성희의 이 얄미운 시도를 전혀 감도메라고 어 어 정말 흠첨부터 알고 있었다는 군요 쩝~ 그럼 다시 지태는 어이없게도 힘으로 자신을 이기려드는 성희의 몸부림을 받아주면서 그녀와의 접촉을 즐기고 있었다 (헤베베~~ -- ) 그녀의 탄탄한 몸이 자신의 몸에 부딪혀 올 때마다 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면 성희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어나오는 탄성을 목구멍에서 눌러 잠재우며 그녀와의 작은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성희가 은근슬쩍 공격적인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기로 작심했다 솔직히 여자에게 힘으로 이긴다 해도 별 감흥도 안 나는 그였고 이 작은 불씨로서 성희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한 모험인들 못하겠는가 성희야 lt안고 싶어 미칠 것 같다gt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경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제발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서 녹아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땡]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에 지태는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품에 들쳐 안고서 바삐 내려섰다 그녀의 우아한 원피스가 별로 단정치 못한 그녀의 자세 때문에 거의 엉덩이까지 아슬아슬하게 말아 올라갔지만 지태의 커다란 손이 그 부위에 얹혀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Page 49: [김지오]Hold me tight

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아~~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나 좀 내려놓고서 우리말로 하자 좀 내려놓으라니까 이 화상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무도 조용한 오피스텔 11 층 복도에서 지태의 허리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혀진 성희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정신없이 자기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거리며 그녀를 안고서 큼직한 침대로 직행했다 성희야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유지태는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읊어대며 성희를 매혹(魅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열에 들뜬 것같은 사랑해 마법 주문에 힘없이 걸려든 희생물이었다 희생물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목에 강렬한 키스를 퍼붓는 사악한 마법사 아래에서 이토록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지른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원피스를 걷어올리는 사악한 마법사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린단 말인가 대체 어느 희생물이 자신의 속옷 차림에 넋을 놓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를 향해 그의 뜨거운 손길을 향해 유혹하듯 미소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사랑해제발날 사랑한다고제발성희야 아무래도 그녀의 사악한 마법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희생물이 사랑해라는 언령(言令)마법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전직 마녀였던 그의 희생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주문을 읊었다 사랑해유지태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를 사랑했어이상하지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같은데그래도 이런 느낌은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진작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꺼야 사랑해최성희를 유지태는 사랑해 우리가 알아온 그 시간만큼 난 최성희를 사랑해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사랑하고 또 사랑할 거야

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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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그것은 마법

두 연인을 둘러싼 공기 중에 떠도는 마법의 기운 그들은 떨리는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와도 같이 애처롭고도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내어놓았다 지태는 성희의 수줍어하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갸름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서 점차 위로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성희는 소리 죽여 작은 한숨 비슷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태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긴장하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면 가득 웃음을 담은 그의 얼굴이 성희의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성희는 그의 눈가에 잡힌 사랑스러운 웃음주름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맑고 선량한 눈빛을 찬양하듯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의 눈두덩에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가쁜 숨이 쭉 뻗은 그의 콧날을 지나서 애태우듯 모양 좋은 입술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성희는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이 착하고 웃음 많은 남자의 입술 위에서 다시 한 번 작은 고백을 털어놓았다 아니가 처음이면 좋겠어니가 내 마지막이면 좋겠어바보 같은 나를 사랑해 준 니가 내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어다 가지고 싶어다주고 싶어사랑해 지태사랑해 그러자 지태는 그녀의 사랑해를 지상 최고의 메뉴인 것마냥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다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성희의 입술을 철저히 음미하면서 그의 탐욕을 더해 가는 손길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그의 손아귀에서 탱탱한 그녀의 가슴이 파르르 전율하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수컷의 자만심을 증폭시키는 그녀의 반응에 지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진작부터 폭발직전이었지만 성희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또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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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暴注)하듯 서로에게 키스하고서로의 아름다운 반응에 넋을 놓고다시 서로의 몸을 탐미하는두 사람만의 마법의 시간 나이번에도 비무장인데또 걷어찰 거야

풋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몸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유영하는 동안 지태는 사뭇 두렵다는 듯이 성희의 허락을 구했다 그가 주는 감각의 열락(悅樂)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녀였건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작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성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의 눈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그의 손가락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곧 다가올 황홀한 시간을 예감시키듯 지태가 허리를 곧추세우자 성희는 가슴 터질 것같은 기대감에 활처럼 몸을 휘고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따뜻하고 습한 정점으로 파고들며 지태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한치도 빈틈없이 자신을 꽉 채우는 지태의 몸을 느끼며 성희도 드디어 자신이 완벽해졌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빛나는 오랜 기다림의 여인을 향해서 지태가 뜨거움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날 꽉 잡아 성희야 우리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절대 놓치면 안돼 꽉 잡아

사랑해 사랑해 아 난 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니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난 같이 갈 거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사랑해 지태

날 꼭 안아 줘지금처럼 언제나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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