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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호 제 16권 제12호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김진광 목사 인터뷰 임직예배 2008 사역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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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김진광 목사 인터뷰 임직예배 2008 사역박람회 2008년 12월호 제 16권 제12호 24 2008 Fall Festival 35 12월의 추천도서 26 VA 추수감사절 예배 15 안수집사회 28 초등부 소식 (MD) - 신율미 27 제 16회 밀알의 밤 4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기도회 - 김원기 목사 3 자녀를 위한 기도 12 축하 메시지 - 정평희 6 2008년 사역 박람회를 빛낸 양양이 - 양하영 32 제 2차 전도여행의 시작 (사도 바울) - 오장석 16 우리는 아직 공사중 (권사 취임 간증) - 김혜숙 주 님께서 이 방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셔서, 악이 결단코 이 방에 들어오지 스토미 오마샨의 “자식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 중에서 글 - 김원기 목사 4

TRANSCRIPT

2008년 12월호 제 16권 제12호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김진광 목사 인터뷰

임직예배

2008 사역박람회

www.fellowshipusa.com

표지사진설명

지난 11월 22일에 있었던 영어권 부흥회 및

‘Time of Jubilee’ 첫날 모습

CONTENTS 2008. 12

3 자녀를 위한 기도 4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기도회 - 김원기 목사 6 2008년 사역 박람회를 빛낸 양양이 - 양하영 10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 (장로 장립 간증) - 김기영 12 축하 메시지 - 정평희 1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집사 안수 간증) - 전원철 15 안수집사회 16 우리는 아직 공사중 (권사 취임 간증) - 김혜숙 18 신선한 청년의 분위기가 물씬 (김광진 목사 인터뷰) - 이연일 22 봉사활동의 폭을 넓히게 될 휄로쉽교회 차량 (프라임타임) - 오장석 24 2008 Fall Festival 26 VA 추수감사절 예배 27 제 16회 알의 밤 28 초등부 소식 (MD) - 신율미 30 ‘거룩한 땅’ … 파키스탄 - 유종우 32 제 2차 전도여행의 시작 (사도 바울) - 오장석 35 12월의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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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 301.444.3100, FAX 301.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 703.444.5634, FAX 703.444.0567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양하영 *인쇄: KOREA Monitor(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주 님, 당신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 (아이의 이름) 방에 오셔서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한 이 방의

주님이시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선포합니다. 주님의 빛과 생명으로 이 방을 채워

주시옵소서. 이 방에 침투하려는 어두움의 세력을 다 몰아내 주시고, 두려움과

낙심의 영, 분노와 의심의 영, 불안과 반항의 영, 증오의 영 (아이의 행동에 나타난

적이 있는 악한 모습은 다 아뢰십시오)은 이 방에서 발붙일 곳도 찾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방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으면 저에게 보여 주시사

버리게 하옵소서.

주 님께서 이 방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셔서, 악이 결단코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방을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다윗이“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개역한글, 시 101:2-3) 라고 한 것처럼 우리 아이도 그렇게 말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토미 오마샨의 “자식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 중에서

4

그리 짧지만은 않은 18년의 교회 역사와 목회자로

써의 26년간의 경험 속에 최근처럼 긴박하고 긴장감

이 도는 시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어

려웠던 시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고비와

역경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같이 총체적으로 우

리의 삶을 흔드는 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때는 처음인

듯합니다.

그동안 우리

는 너무 안일하

게 잘못 살아왔

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안락함

과 세상적인 꿈

을 위해 너무

철없이 살았습

니다.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경건

의 능력’은 없

는 삶을 살았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깨

어나라고 우리

에게 어려운 시

련의 날을 주시

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는

또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밝은 햇살

과 함께 화사한 아침이 오듯 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

은 우리 가운데 숨어있던 잠재력을 보여주시며 잠자고

있던 거인이 일어나듯 기지개를 틀고 일어나는 휄로쉽

교회의 모습을 지난 몇 달 동안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꿈이요 우리의 사명입

니다.

우리는 특히 지난 6주 동안 “사자같이 울어라” 시

리즈를 통해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무

엇인가 근본적인 것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흔들고 계

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한 순

간 흥분하고 타오르다 꺼지는 불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초부터 흔드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

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를 자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금 깨

우시고 계십니다.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시

기 위하여 우리

에게 기도하라

고 부르시고 계

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

으로 다음과 같

은 결정을 했습

니다. 저는 여

러분이 같은 마

음을 가지고 이

일에 동참해 주

실 것을 믿습니

다.

50일 동안 우

리는

1. 매주 일요일

저녁 6시에 기

도회로 모입니

다.

2.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기도회로 모입니다.

3. 매주 목요일 저녁 9시에 기도회로 모입니다.

4. 매주 토요일 아침에는 평소에 모이던 대로 아침

6시에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8시에는 이중 언어 기도

회로 모입니다. 이중 언어 기도회에는 영어회중과 중

고등부가 함께 참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또 아침

6시에 나오는 것이 힘든 분들을 위해 그렇게 하며, 양

쪽 회중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입니다.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 기도회 글 - 김원기 목사

5

우선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11월 28일부터 금식수양회가 끝나는 1월 17일까지의 50일을 “Time of Jubilee

(희망의 날)”라고 부르며 50일 동안의 성회를 갖겠습니다. 이 성회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아온 지난 과거를 회개한다.

2. 패역한 세대 가운데 살면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는커녕 같은 죄악 가운데 빠져 그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한다.

3. 이 나라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린다.

4.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무시한 채 안일하게 살아왔던 지난 날 우리의 죄를 고

백한다.

5. 물질문명 속에 세상과 함께 물질을 섬겨온 과거를 회개하며 물질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하나

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더 이상 물질을 섬기는 우상숭배에서 떠날 것을 결심한다.

6.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거짓 증거하며 피차 상처를 주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웃과 함께 화

평할 것을 약속한다.

7.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고 방관했던 과거를 뉘우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

하는 일에 충성할 것을 약속한다.

8. 기도와 말씀 속에 신앙의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에 힘쓰지 아니하고 게을렀던 것을 회

개하며 이젠 그 일에 성실할 것을 약속한다.

특히 세상적으로 가장 바쁘고 들떠있는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에 이어 신년까지 성회의 기간으로 삼으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 뒤에는 우리가 너무 소비주의와 물질문명에 빠져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딱한 처

지를 보시고 올해부터는 그런 위험과 유혹에서 우리가 자유해 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6

2008년

사역 박람회를 빛낸

양양이 글 - 양하영

Li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Lo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합니다!

Ser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섬기며 봉사합니다!

7

8

11월16일 주일! 겨우 한 달도 안 되는 준비기간을

거쳐 2008년 사역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인영 목사

님을 중심으로 9명의 준비위원들이 시작한 사역 박람

회는 31개의 사역부서가 참여하여 뜻 깊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

사역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우

리 교회 한어회중에만 60개가 넘는 사역 부서가 있다

는 것이다. 어떤 부서는 우리가 주일마다 접하게 되어

친근하게 느껴지고 잘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부서

들은 그 사역이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는 것이 아니

라, 많은 교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번 사역

박람회의 목적은 휄로쉽교회를 섬기는 많은 지체들,

곧 사역 부서들을 교인들에게 소개하고, 또 우리 모두

에게 있는 은사들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사역 박람회의 모든 디자인은 Live! Love! Serve!

표어에 소개된 양양이(디자인을 해 준 자매가 붙인 이

름이다)를 중심으로 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분을 잘 따라가야 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어

린 양이 아닌가?

Li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Lo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합니다!

Serve!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섬기며 봉사합니다!

마지막 Serve!의 양양이는 자신의 털을 모두 깎아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하는 희생을 기뻐하는 양이

다. 털이 모두 깎였을 때의 양양이는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해 보이지만 그 깎인 털이 곧 다시 자라 더욱 풍성

하고 하얀 털을 가진 양양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교회의 한 지체로 봉사하며

섬길 때 우리는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

리의 시간, 물질, 수고, 인내, 사랑 등등 하지만 이러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더 크고 선한 것으

9

로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 받게 되

어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의 당연한 본분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를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고, 숨어있는 것들은 끄집어내야 한다. 박

람회 때 ‘은사테스트’에 참여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

다. 물론 준비한 ‘은사테스트’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

만, 작은 테스트를 통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

들의 달란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역박람회에 진열된 31개의 사역 소개를 보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많은 분야에서 봉사하고 계심을 깨

닫게 되었다. 이러한 분들의 수고와 희생이 없었다면

교회의 예쁜 화분 하나도,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도, 쉽

게 구입했던 종교서적도, 주일에 무심코 받았던 주보

한 장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Serve!의 양양이 털을 깎아 작은 북마크

700개를 만들어 행사 당일에 배포하였고, 이것을 선물

로 받으신 44명의 교인들이 사역신청을 해 주셨다. 아

직도 귀한 양양이 털이 달린 북마크가 많이 남아있다.

교인들의 섬김을 기다리는 많은 사역부서들이 남아있

는 것처럼.

사역 박람회에 미처 참여하지 못한 부서들을 포함

하여 휄로쉽교회 한어회중 사역부서들을 모두 소개하

고자 한다. 분명 나의 은사와 달란트를 필요로 하는 사

역부서가 있을 것이다. 박람회 때 사역신청을 못하신

분들은 이인영목사님께 문의하시면 된다.

이번 사역 박람회를 위해 같이 한 마음으로 재미있

게 준비했던 모든 분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해 애쓰신

이인영 목사님. Serve!의 양양이처럼 우리의 털이 조

금씩 뽑혔음을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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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악하고 추할 수 밖에 없는 저를 하

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삶을 살

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또한 영적

으로 무지몽매 했었고, 또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세

상 즐거움만 쫓아다니며 세월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저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엄청난 사랑과

희생 그리고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김

원기 목사님과 모든 휄로쉽교회 신앙의 선배들, 친구

들,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유년 주일학

교 때부터 저의 손목을 잡고 교회로 이끌어 주신 저의

어머니와 결혼 후,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돌보느라 수고가 많은, 일곱 살이 적으나 정신연령으

로는 일곱 살이 많은 아내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저의 삶은 무질서, 무의미 , 무

가치의 삶이었습니다. 세상은 그저 재미와 즐거움으로

살다가 죽으면 끝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재

미있는지, 예수님, 인생, 죽음, 비전 등등 심각하고 고

민해야 하는 일들은 “따지냐? 대충 넘어가” 하며 피해

버렸습니다. 교회를 안가면 어머니께 혼나니까 할 수

없이 끌려 다녔던 교회도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27살

때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 교회란 곳은 저에게 아주

심각하고 고민스럽고 분위기 안 좋고 재미없는 곳이었

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하면서,

아내는 교회에서 찾아

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

성이 되어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

습니다.

그 후의 교회는 저

에게 최고의 친목 단

체였습니다. 신앙생활,

영적성장에는 전혀 관

심이 없었고, 교회에

서 행해지는 모든 내

취미에 맞는 음악 행사나 운동 시합 등에는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즐겼습니다. 주일 예배도 잘 참

석했으나, 예배란 그저 주보 순서에 따라서 앉으라 하

면 앉고, 서라 하면 서고, 읽어라 하면 읽고, 구경꾼으

로 자리나 채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설교 시간은 가

장 지루하고 따분한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시간이었습

니다. 하지만 예배 시간만 끝나면 교회 친구들과 즐거

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저에게는 신앙생활이

아닌 교회생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교회에 안 갈 이

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의 삶은 불신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고, 아무 거리낌 없이 신나게 교회를 다녔

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뀐 것은 교회 밖의 친구들과는 점

점 멀어졌고, 교회 안의 친구들과 매우 가까워진 것입

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내 자의로는 절대로는

가지 않는 구역예배에

하는 수 없이 참석하

게 되었습니다. 예배

를 인도하시던 집사님

께서 저에게 내가 원

하는 복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내가 알고 있

는 세상의 5가지 복을

말했는데, 그 집사님

은 돼지도 같은 복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제 머리 속에

서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 글 - 김기영

11

기껏 돼지의 바라는 복

과 같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불시에 도망

갈 틈도 없이 예배를 드

리게 되었는데, 설교 중

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

적인 물이 포도주로 변

한 이야기를 해 주시면

서 저와 친구들에게 “언

제까지 이렇게 맹물처럼

맛도 가치도 없이 살 거

야?” 라며 이제 포도주

처럼 맛도 있고 비싸게 팔리는 가치 있는 삶으로 변해

야 한다며 오직 예수님만이 이러한 삶을 살게 하실 수

있다 하셨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은 맹물이

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그 후도 가끔씩 “이게 아니가벼. 예수님이 맞는가

벼” 하며 예수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그때에 몇 명의 친구들이 새로 개척한 휄로쉽교회

로 옮겼는데, 그들 모두가 이전의 친구들 같지 않은 완

전히 새 사람들이 돼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친구가

김원기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매주 가져다 주어서

듣게 되었는데,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상하게 코 끝

이 찡하면서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거의

울 일이 없는 저에게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친구들의 이상한 변화에 대한 호기심으

로 휄로쉽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휄로쉽교회는 이

전의 교회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우선 예배의 모습

이 달랐는데,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모두

가 자유스럽게 찬양하며

기도하며 그 시간을 즐

기는 것 같았습니다. 또

질병으로 고생하며 힘들

어하는 교인들이 가사를

돌보아주고 매주 여러

명이 모여 환자를 위로

하고 찬양하며 그 아픔

을 함께 나누는 것을 보

며 진실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자훈련과 설

교 말씀을 통해서 영적

으로 자라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이기적이고 무가치한 삶

을 깎으셨습니다. 어느

날, 운전 중에 제자훈련

숙제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

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

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

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구절을 암송하던 중 예수님은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는 울음 때

문에 차를 옆에 대고, “예수님. 나도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요. 지금껏 꿈도 계획도 삶의 의미나 목적도 없이

동물처럼 살았던 저이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주시

는 꿈을 이루어 드리며 예수님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기 원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의 저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

고 행하며 교회 안 밖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을 충실히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에게 분부하신 것처럼 “내 양을 먹이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모르고 영적

세계가 있음도 모르며 무엇 때문에 이 고통스럽고 힘

든 삶을 사는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 평화는

오직 예수님으로만 이룰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장로의 직분을

받습니다. 과연 잘 감당

할 수 있을까, 갈등이 심

했지만, 순종하는 마음

으로 받고자 합니다. 제

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의 가사처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

도록 저를 위해 항상 기

도해 주십시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휄로쉽교회 교우 여러분

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김기영 장로, 김묘근 집사

12

축하 메시지

저는, 이제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장로의 직분을 맡게 된 김기영

장로님을 위하여 절친한 친구로서, 또 교인을 대표하여 축하 메시

를 전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기영 장로님과

는 총각 때부터 만나 같이 낚시도 다니고 테니스도 치며 30여 년

간 젊음을 같이 보낸 막역한 친구이며, 교회에서는 성가대와 찬양

하는 예배위원으로 봉사해 온 믿음의 동역자이기도 합니다.

김기영 장로님은 온유한 성품과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그 모

습대로 재치와 유머로 우리의 만남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모임

에 없어선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젊은 오빠’, 또

경우가 바르다고 해서 ‘김경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김기영 장

로님과 같이 사역이나 오이코스를 해 보신 분들은 익히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귀한 은사라

고 할 수 있는 장로님만의 유머감각과 리더쉽으로 우리에게 용기와 도전을 주며 힘든 일들을

잊고, 또한 이기게 해 줌으로써 옆에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그런 분입니다. 이런 인품을 가지

신 분이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시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우리에게 유익이 아닐 수 없습

니다.

호스피스 사역에서 임종을 앞 둔 사람들을 위하여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섬기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오이코스 인도자로서 한 영혼이라

도 주님께도 가까이 인도하고자 하는 열정과 사랑은 장로님을 통하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

습니다.

그리고 각종 운동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장로님은 축구, 테니스, 배구, 족구 등, “You

name it, He is there!” 운동에는 꼭 빠지지 않고 참여 하여 젊은 사람들과 같이 뛰고 교제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한번은 축구시합 중, 발목부상으로 기부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인고의 세월(?)을 마

치자마자 테니스 라켓 거머쥐고 달려 나가는, 지칠 줄 모르는 젊음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지

만 ‘이거, 내가 뭐 잘못된 거 아냐?’ 라며 동분서주,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바쁜 생활에 제동

도 걸 줄 아는 ‘자제’ 기능에도 탁월하십니다.

이제는 이 젊음도 세월을 이길 수 없는지, 머리카락은 점점 빠지고 돋보기도 써야하는 불

가피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영원한 ‘젊은 오빠’보다는 살아오신 세월만큼 성숙해진 믿음의

영원한 ‘우리 장로님’으로서, ‘김경우’보다는 ‘김사랑’이란 새 이름을 달고 앞으로의 여

생을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같이 안수 받으신 집사님들과 또 권사님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리더로 함께

세워 주셨습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어 주시고, 힘든 일과 궂은일에 먼저 앞장 서

는 헌신된 리더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만나는 영광의 그날에 주님께서

두 손 잡아 기뻐 맞이하시며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이 되기를 이 자

리를 빌려 간절히 바랍니다.

정평희

13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저의 삶을 고백하고 간증하려고 합니다.

저는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매월 초

사흘이면 시루떡을 만들어 장독대와 들어오는 문 앞

등 여러 곳에 놓으며 집안이 잘 되라고 빌었습니다. 유

년 시절을 보내고 청년 시절까지 저는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잘 생긴 모습과 건강한 몸과

힘이 좋았던 제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친구들이 있었

습니다. 잦은 패싸움과 폭력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오

가며 그 세계에서 잘 나가던 저에게 자그마하고 예쁘

장한 아가씨가 나타나 저의 삶을 바꾸어 놓기 시작하

였습니다. 그 아가씨를 처음 분 순간 “너는 내 것이다”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만나주기를 강요했으니 말입니

다. 그 아가씨가 바로 지금의 아

내입니다.

그 당시 저는 주일학교 교사가

무엇이고, 성가대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몰랐었습니다. 일방적인

데이트 신청을 쉽게 받아들일 아

내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어렵

게 성공한 데이트에서 자랑삼아

친구들을 모아 자축하던 자리에

서 하필이면 또 싸움이 일어나고,

저의 본체를 알게 된 아내는 더욱

꼭꼭 숨으려 하였고, 저는 교회까

지 찾아가 전도사님까지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강제로 시작

된 몇 번의 데이트후 어느 날 처

음으로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는

아내의 전화에 왠 횡재인가 했습

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아내는

저에게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이

유 인즉,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음 달

에... 저는 그 자리에서 저의 진심

을 고백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아내도 제가 그렇게는 싫지는 않았던 모양입

니다.

자기와 결혼하려면 조건이 있는데, 조건은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면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

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 주보를

매 주마다, 일 년 동안 해외우편

으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

말 황당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러

나 저는 그 약속을 지켰고, 일 년

만에 돌아온다던 아내는 이년 반

만에 돌아왔습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미국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나름

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였지만, 이

곳은 제 입 맛에 맞는 곳이 아니

었기에 또 다시 방황과 세상 즐거

움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러면서도 아내의 강요에 못 이겨

교회의 문턱은 넘나 들었습니다.

이전의 저는 일 년 52주 중에 10

주 미만 밖에 주일을 지키지 못했

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돈만 가

지고 싸우고, 두 번째 교회는 알

력 다툼과 서로 헐뜯는 모습에 교

회가 별거 아니네 판단하고 더 이

상 교회라는 곳을 다니지 않기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글 - 전원철

14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가 누구입니까?

1994년, 그 당시 창고교회라고 부르던 휄로쉽교회

를 두 세 번인가 염탐하고 오더니, 또 다시 물고 늘어

졌습니다. 결국은 강요에 못 이겨 처음 방문하던 날,

이것은 또 왠 난리 부르스입니까? 찬양하며 뛰는 사람,

기도하며 우는 사람, 두 손 들고 중얼거리는 사람, 미

친 사람들이 모인 곳 같았습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았

던지, 김원기 목사님의 설교말씀은 저에게만 야단 치

시는 기분이었고, 이곳도 내 입 맛에 맞지 않는 곳이라

판단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가끔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우는 사자와 같이 저를

삼키려 사탄이 달려 들었습니다. “저와 가깝게 지내던

한 분이 당신이 아는 하나님이 누

구입니까?” 물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고, 예수님과 당

신의 관계를 말해보라고 하였을

때도 아무 대답을 주지 못하자, 자

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만이 진

짜 목사님이고, 그 분만을 통하여

서만 천국을 갈 수 있다며, 저를

삼키려 달려들었습니다. 구원파였

습니다.

교회 멍멍이 삼 년이면 방언으

로 짖는다고, 그래도 교회 문턱을

넘나든 세월은 있어, 이것은 아니

다 싶어,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싸

움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저에게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도

록 역사하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떠나고, 계속된 새벽 예배와 제자

훈련을 병행하며 하나님 알기를 간절히 원하며 간구하

던 1996년 4월 새벽제단, 하나님께서 저를 만져 주셨

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저에게는 새로운 삶의 말씀

을 주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저 또한 저

의 남은 일생을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 것을 고백합니다.

전원철, 전순자 집사

윤세헌, 윤주애 집사 오장석, 오진이 집사

15

지난 10월 26일 오후 2시 30분, 안수집사회 정기모임이 커버넌트채플에서 있었다. 새

회계연도를 시작하면서 안수집사회 역시 한 해의 사역 계획을 세워놓고 회원들에게 알리며

함께 기도로 준비하는 자리였다.

모임을 시작하면서 새로 추천받은 안수집사들을 환영하고 장로로 추천받아 안수집사회

를 떠나는 김기영 집사를 환송하는 시간도 가졌다. 올해부터는 ‘섬김조’를 새로이 편성하

여 교회에서 섬김의 요청을 받는 즉시 응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이 날, 김원기 목사는 안수집사들에게 두가지를 당부하였다. 하나는 안수집사회 모임이

섬김 뒤에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함께 가는 동역자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임이 되라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준을 낮추지 말라’는 당부

이다. 비록 완벽해서 안수집사로 부른 것이 아니지만, 즉 부족할 지라도 함께 감당할 수 있

도록 부른 것이지만 안수집사의 기준을 낮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자 하

는 갈증과 배고픔을 항상 간직하고, 섬기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놓치지 말라는

지적이다.

모임을 마치면서 모두는 이전에 가졌던 열정으로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에 내려주시

는 새로운 열정과 힘으로 수고하는 안수집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전심으로 기도하였다.

16

간증을 하라는 목회실의 연락을 받고, 지난 14년

간의 저의 교회생활과 삶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 되었

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가끔씩 나를 돌아보

는 이런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월이 저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사모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워싱

톤 지역에서 말씀공부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교회가 어

디인가 하며 찾던 차에, 휄로쉽교회와 다른 한 곳을 놓

고 기도하며 찾아왔던 1994년 11월 첫 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이곳에서 나의 신앙의 뿌리를 내리리라

고 결심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4년이란 기간을 성

경공부, 전도폭발 훈련 등 말씀 속에 빠져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신앙의 기초를 닦게 되었고, 하나

님께서는 믿음이 연약한 저에게 좋은 멘토를 붙여 주

셨고, 여러 신앙의 선배에게서 섬김과 교회의 헌신과

믿음의 순종 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가지

고 있던 영혼

에 대한 사랑

은 게을러지

기 쉬운 저에

게 항상 주님

에게 얼굴을

향하도록 고

개를 들게 하

였고, 지금까

지 제 가슴에

불꽃이 타게

하는 원동력

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이번에 저

에게 허락하

신 권사 직분

도 사실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좋은 멘토 역할을

하셨던 많은 분들처럼 저는 그렇게 할 자신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님

이 제 안에 넣어주신 꿈, 그것은 바로 다시 오실 주님

을 맞이하는 신부의 제 모습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

들도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시겠지요. 비록

믿음이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도 하

지만, 저는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를 순간순간 기도합니다.

하 나 님 께 서

지난 시간 동

안 많은 일들

을 저와 저의

가정에 이루

어 주셨습니

다. 우선 주님

없이 살았던

세상적인 나

의 생각과 가

치 기준이 하

나님 중심으

로 변했고, 내

중심으로 돌

아가던 세상

일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

사람을 사랑

하되 내가 좋

우리는 아직 공사중

글 - 김혜숙

(왼쪽부터) 신연실 권사, 김혜숙 권사, 최테레사 권사

17

아하는 이들만 가까이하던 제가 어떤 사람을 보던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겠지’하며 허물없이

다가가 전도하게 되었고, 다른 이들의 아픔이 저에게

도 아픔이 되어 같이 기도하게도 되었습니다. 물론 아

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을 압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언

젠가 말씀하신 ‘우리는 아직 공사 중’이란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공사를 시작하신 그 분이 언젠

가 완성된 작품을 하나님과 천사들과 많은 무리들 앞

에 보여주실 것을 믿기에 지금의 제 모습에 실망하기

보다는 나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됩니다.

또한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은 어느덧 자

라 각자의 인생을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고, 늦게 선물

로 주신 막둥이는 저희 가정에 귀염둥이로 하나님의

사랑과 주위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믿지 않던 친정 식구들 모두 이제는 주님을 영접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께 나오

지 않은 남편을 위해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저와 저의 가정에 아

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18

여름의 절정이던 8월 초부

터 메릴랜드 캠퍼스에서 사역

을 시작한 김진광 목사와 김선

아 사모를 만났다. 큰 키와 더

불어 넘치는 유머 감각은 주변

의 사람들로 하여금 늘 웃음이

머물게 하고 찬양에의 열정은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도 뜨거

움이 전달된다. 두 아들이 잠시

낮잠 자는 틈을 이용하여 한국

에서 방문하신, 김진광 목사의

어머니께 맡기고 나누었던, 두

분께 궁금한 이야기를 들어본

다.

휄로쉽교회로 오기까지의 과

정이 어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진광 목사: 2001년 1월에

유학을 와서 신학공부를 시작

하였습니다. 유학 오기 전 대학

1학년 때 전도여행을 하기위해

거리에서 펼칠 연극 ‘십자가’를

연습할 때였습니다. 저의 맡은

역할은 예수님을 때리는 군병

역할이었는데 연극에 충실하기

위해 때리면서도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결단하

기를 ‘주님과 항상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였

지요. 작정기도 가운데 본격적

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밟

아 준비하셨나요.

김진광 목사: 1996년 중앙

신선한 청년의 분위기가 물씬

- 김진광 목사 인터뷰

글, 정리 - 이연일

19

대 수학과를 졸업하였는데 졸업에 앞서 모 기업에 취

직이 되어 1995년 12월부터 직장엘 다니기 시작했습

니다. 4년 반 동안 직장 다니며 사랑의 교회에서 찬양

인도자로, 또 성경공부 교사로 섬기면서 실전을 익혔

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주님의 사역에 동참한다 싶었

는데 가끔씩 시골에 부모님을 뵈러 가면 어머니는 늘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주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라고 말입니다. 저는 직장 다니랴,

교회에서 봉사하랴 바쁘게 움직이는데 어머니는 전임

사역자로의 삶을 원하셨던 것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서원기도를 하셨는데 아마 그게 항상 부담

이 되셨나 봅니다. 그 영향이 저에게 끼쳐서 순종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 것이지요.

달라스 텍사스로 와

서 목회학 석사를 하

고 선교학을 공부하

였습니다. 공부하며

동부 장로교회 그리

고 달라스 연합 교회

에서 목회를 하였지

요.

자식을 서원하신

부모님은 어떤 분이

신가요.

김진광 목사: 부

모님은 현재 군산에

서 목회를 하시고 계

십니다. 어머니의 성

함은 전정희이시고, 대복교회 담임 목사님이십니다.

아버지의 성함은 김운곤이시고, 임피교회 담임 목사님

이십니다. 어머니께서 담임 목회를 하시기 전에는 아

버지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셨었습니다. 그 후 아버

지가 시무하시는 교회에서 약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담임 목사님이 없어서 교인들이 찾고 있

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어머니께서 그곳으로 가서 사역

하십니다. 두 분이 서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기에 유익

한 면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부흥회를 할 경우 두 교

회의 교인 분들이 모여 한 장소에서 인도하고 또 일요

일 저녁 예배 같은 경우 두 분이 옮겨서 설교를 하시기

에 부담도 적고 또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하시기에 실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기도로 후원하는 어머니

와 말씀으로 키우시는 아버지십니다. 어머니의 열정과

아버지의 온유함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도우며, 서로

세우시며 아름답게 목회하십니다.

사모님은 어떤 가정에서 성장하셨나요.

김진아 사모: 저는 부모님과 오빠 두 분이 있습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여 공부를 하였고

대학에서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였지요. 아버지

께서 목양 장로교회를 개척하셔서 목회를 하셨지만 교

인이 별로 많지 않아 제가 자라면서 많은 부분의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오빠

들은 아직 미혼이고 텍사스에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지금 은퇴하셔서 작은 사업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첫 만남에서 결혼까

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김진광 목사: 제가

사역하던 청년부에

자매가 새로 왔는데

인상이 좋았어요. 그

런데 나이 차이가 9

살이기에 마음속으

로 포기하였지요. 그

렇게 지내다 어느 집

사님 댁에서 청년부

를 초청한 일이 있었

지요. 모두들 모였는

데 처음 간 그 댁에

서 자매가 나름대로

열심히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아주

매력 있게 보였습니다. 다시 새로운 감정이 생겼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김진아 사모: 저희는 2005년 5월 14일 결혼하였고,

2004년 처음 만났어요. 아버지가 시무하시는 교회에

다니는데 그 교회에는 청년부가 없었어요. 친구를 따

라 청년부가 있는 김진광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를

가 봤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고민하던 일이 있어

상담을 하던 중에 감정이 달라지면서 좋은 느낌을 갖

게 되었지요. 예비 시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기 위

해 한국을 갔는데 두 분 다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가벼

운 마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저희 오빠들은 왜 그

렇게 일찍 결혼하려 하느냐 좀 더 있어도 늦지 않을 텐

데… 하면서 안쓰러워하셨고 어머니는 남편에 대해 아

주 호의적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기도

20

하시고, 한편은 안타까워하셨지요.

지금은 가족 모두가 잘해주시고 서

로 위하는 모습으로 지냅니다. 사

역자의 삶을 이해 못하던 부분도

있고 저의 세상 경험이 짧아 부족

한 면도 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자세로 지낼 것입니다.

1세와 2세의 만남이라 편편치

만은 않았을 텐데요.

김진광 목사: 어렵거나 불편함

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점이

더 많습니다. 제가 이민자로 살기

에 언어, 문화, 풍습 등에서 모르는

면이 많은데 아내는 한국말보다 영

어가 자연스럽고 편하며 미국의 정

서를 잘 이해하여 많은 이점이 있

습니다. 그리고 말을 배우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배워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김진아 사모: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어려

운 것은 없어요. 서로가 배려해서 살고 이해하는 면이

좀 더 필요할 뿐이지요. 한국의 정서나 분위기, 예절을

몰라 어색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배우면 되는 부분이

므로 그것으로 1세와 2세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오히려 한어권에 있는 것이 편합니다.

휄로쉽교회에 오셔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진광 목사: 제가 휄로쉽교회에 오기 전에 나름대

로 기도하며 바라던 것이 있었어요. 첫 번째가 소속된

교단 없이 초교파였으면, 둘째가 담임 목사님이 1.5세

나 2세였으면, 셋째가 유머 감각이 있으면 하는 바램

이었는데 너무나 잘 맞는 교회를 만나 즐겁게 사역하

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2세이기에 영어권 사역이

활발한 교회를 찾았는데 교회 문화나 바탕이 아주 좋

습니다.

김진아 사모: 저는 아주 놀랐어요. 통성기도나 새벽

기도, 부흥회 이런 것은 1세대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

았는데 저희교회는 1세는 물론 어린 학생들까지 통성

기도하고 새벽 예배에 참석하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

렇게 하는 교회도 있구나 하면서 놀랍니다. 한어와 영

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시는 목사님의 열정 있는 설교

도 많은 도전이 되구요. 또 제 또래의 분들이 많아서

다양한 정보와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유익이 됩니

다.

목사님의 찬양을 듣고 함께 부르노라면 안에서 솟아

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실 때의 기도, 마

음가짐이 어떠신가요.

김진광 목사: 제가 찬양을 전공한 것이 아니어서 늘

긴장하고 준비합니다. 잘못하여 듣는 분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지요. 찬양을 통하

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귀한 통로가 되기를, 또

인도하는 예배위원 분들이나 부르는 회중분들이나 모

두 하나가 되어 부르는 공감하는 찬양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헝그리 정

신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합니다. 함께 하는 예배위원

분들의 수고와 헌신된 자세가 저를 잘 할 수 있도록 이

끌어줍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김진광 목사님의 시각은 어떠세

요.

김진광 목사: 근본적으로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

는지 어려움의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로 경제적인 호황 시기에 우리의 잘못된 사

용으로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이라 봅니다. 이런 시간

을 계기로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에서도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위해 주변을 징벌했던 하나님처럼 나라와 세계를 위해

교인들이 기도하는 기회로 전환되기를 바라고 또 하나

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서

워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두

21

려워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다듬어 가는 시간

이 되어야겠지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시니 이미 이긴 게임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 아래 이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보는 아내의 강점을 얘기해 주세요.

김진광 목사: 저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성품이 있

음에 비해, 아내는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

자입니다. 나의 비관적인 모습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리고 용기를 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간혹 제가 설교

를 엉망으로 하여 괴로워할 때, 또 찬양을 인도함에 마

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할 때 아내는 잘못했다는 지

적보다 잘한 면을 이야기하며 위로를 주지요. 그런 면

이 좋고 강점입니다.

아내가 보는 남편의 강점을 얘기해 주세요.

김진아 사모: 남편은 목사이기 이전에 믿음이 가는

남자입니다. 제가 혼자 있어서 쓸쓸하고 힘들 때 힘을

주고 쓰러진 저의 기를 일으켜 세우는 면이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견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남

편은 그것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또 곁에 있는 제게

늘 웃음을 주는 기쁨의 사람입니다.

펼쳐보고 싶은 사역 부문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진광 목사: 저는 아직 해 본 경험은 없지만 교회

의 문화사역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는 사람을 훈련시키는 사

람을 키우고 싶어요. 세상의 문화가 교회에 들어와 교

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문화가 세상을 바꾸는 그런 문화 사역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래나 연극,

문화 부분에서 기독교 전문 용어나 행

동이 없더라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맛을 풍기는 그런 일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푸근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격

려하고 아름답고 건전한 음악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면

서 그런 면을 세상에 전하고 싶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자녀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세요.

김진광 목사: 진우가 2살이고 영어로

Jedidiah, 선우가 8개월 되었고 영어

로는 Jude입니다. 지금의 바램은 큰

아이 진우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어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프로에 나가서 결승

까지 진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복음 성

가를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으면

합니다. “저의 꿈은 결승에 올라 우승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들이 되고 싶

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유용

하게 하는 목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100% 미국인, 100%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

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아들로 자랐으면 합니다. 어

디까지나 저의 바램인데, 그렇게 되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키워야지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세요.

김진광 목사: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뽑아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찬양을 인도할 때 한껏 젊은 분위기로 회중을 인도

하는 훤칠한 키의 김진광 목사 부부를 만나 인터뷰하

는 시간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겁게 웃으며 진행되었

다. 앞에 서서 찬양을 할 때는 전체가 대학 가요제의

분위기가 되어 회중 모두를 젊게 이끌어간다. 젊은이

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만 연세가 조금 든 ‘엄마

뻘’ 되는 분들과의 대화를 즐기며 그 분위기를 즐긴다

는 김진광 목사의 미래가 곱게 물든 단풍나무처럼 열

정으로 지속되기를 기도한다.

22

지난 2006년에 시작된 ‘프라임 타임’ 사역은 불과 2년

의 시간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빛을 발

하고 있다. 프라임 타임을 시작할 당시, 무엇보다 개인들

이 건강해야 활발한 활동을 감당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산악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떤 약이 몸에 좋다든가,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버리고 자전거를 몸소

타면서 체력을 길렀다. 모든 회원들이 자전거에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올랐고,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팀워크를 다

져가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사역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자세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봉사 활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맨 처음 했

었던 것은 교회 화단에 자라난 잡초를 뽑는 것이었다. 그

런데 이 봉사는 건물관리부 회원들에게 좋은 도전이 되었

고, 그 결과 건물관리부와 더불어 ‘화단 가꾸기’ 행사로

확장, 발전하였다.

이어서 교회 안의 휴지 줍기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교

회 안의 휴지 줍기가 교회 건물 주변으로 확산되고, 더 나

아가서 교회 주변 지역으로까지 범위를 넓혔다. 걸으면서

휴지를 줍기에 걷기 운동이 되는 셈이고, 더불어 휴지를

줍기에 지역 주민들을 섬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처음

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는데, 때때로 지역 주

민들의 인사와 격려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보람 있게 느껴

져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교회 주변 지역의 휴지

를 줍다가 ‘프라임 타임’ 내에 소망이 생겼다. 만약 휄로

쉽교회에 교회 차량이 있다면 더 멀리 나가서 봉사할 수

있지 않을까? 보다 많은 인원이 동시에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소망은 생각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도로

이어지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몽고메리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공개입찰 경매를 통해 스쿨버스를 판매한다는 정보

를 입수하게 되었고, 교회의 도움으로 버스 1대를 구입하

였고, 다른 1대는 프라임 타임 자체적으로 구입하여 교회

에 기증하였다. 좋은 정보를 통해 스쿨버스를 구입할 기

회가 생겼지만, 막상 자금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관계

로 교회에서 돈을 빌려 버스를 먼저 구입하고, 점심판매

를 통한 수입금으로 차후에 교회에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프라임 타임’에서 버스를 구입하게 된 동기에는 봉사

활동의 폭을 넓히자는 의미 외에도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교회 내에 보다 많은 ‘버스 드라이버’를 양성하자는

취지이다. 은퇴 이후에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거리나, 은

퇴 이전이라도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중 좋은 한

가지가 ‘버스 드라이버’이다. 그런데 버스를 운전하기 위

해서는 먼저 ‘영업용 운전허가증(Commercial Driver

License, CDL)’을 취득해야 한다. 시중에서 ‘영업용 운전

허가증’을 받기 위해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는데 드는

비용이 3-4천불에 달한다. 그런데 ‘프라임 타임’에서는 3

분의 1의 저렴한 비용으로 ‘영업용 운전허가증(CDL)’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현재 약 10명 정도가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단순히 ‘운전’만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봉사 정신이 확고한 전문적인 운전자

로 양성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교육을 마치고 ‘영업용 운

전허가증(CDL)’을 취득한 운전자들이 사회에서도 모범

운전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영업용 운전허가증(CDL)’을 취득한 교

우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교회 활동의 폭은 그만큼 넓어

질 수 있다. 한 예로 지난 11월 16일, ‘휄로쉽 오케스트

라’가 버지니아 캠퍼스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이를 위하여

교회 차량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학생 32명과 어

른 4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과 악기들을 여러 대의 차량에

나누어 이동하려고 한다면 아주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TD와 중고등부 수련회에서도 차량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렇듯 교회의 행사 및 부서의 단체 이동에 직

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오이코스 역시 예전에는 생각

하기 힘들었던 사역들을 함께 시도할 수 있다.

앞으로 교회 내에 ‘영업용 운전허가증(CDL)’을 취득

한 교우들이 늘어나면 교회 내의 모든 차량 관련 사역은

‘차량부’로 이전될 예정이다. 그 이전까지 문의 및 연락은

이정국 집사에게 할 수 있다.

휄로쉽교회 상업용 운전허가증(CDL) 교육

필기 대비: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희망

의 날’ 기도회 기간 중에는 화요일)

일요일 오전 8시 30분 - 10시 30분

실기 대비: 토요일 오전 8시 - 오후 1시

일요일 오후 3시 - 6시

문의 및 연락: 이정국 집사 (301-681-5000)

봉사활동의 폭을 넓히게 될

휄로쉽교회 차량 글 - 오장석

23

26

미주 워싱턴 밀알선교단 (단장 정택정 목사) 주최로 제 16회 ‘밀알의 밤’ 행사가 지난 10월 25에는 버지니아 캠퍼스에서,

10월 26일에는 메릴랜드 캠퍼스에서 있었다. 이 날, 오아시스 미니스트리와 권사회에서는 샌드위치를 준비하여 참석한

이들을 대접하였다.

28

휄로쉽교회 초등부는 지난 10월 26일에 새학년

첫 성경 암송대회를 가졌습니다. 대회에서 겨룬 내

용은, 그 동안 아이들이 배우고 익힌 성경 구절 (1학

년 ~ 3 학년은 6구절, 4학년과 5학년은 12구절), 성

경의 진리 5개와 구약성경 목록입니다. 이날 보결 교

사와 학부모, 그리고 한마음 청년들이 심사위원으로

섬겨주셨습니다. 다음은 성경 암송 대회 수상자 명

단입니다. 괄호 안의 숫자는 암송한 내용의 개수이

며, 1-3학년은 최고 12점이고, 4-5학년은 최고 18

점입니다. 각반별로 대회를 가진 결과를 등수별로

묶었습니다.

10월 31일에는 가을 축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

회뿐 아니라, 커버넌트 기독학교 학생들, 그리고 인

근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이 와서 신나는 게임과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또 예

배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

어서, 교회에 처음 오게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을 축제에 참여한

아이들은 사탕 한 봉지씩을 선물로 받아갔는데, 그

글 - 신율미

1등

Joey Kim(12), Andy Kong(12), Joseph Lee

(12), Ryan Choi(7), Ji Woo Park(12), Brian Choi

(18)

2등

Lauren Kim(9), Joyce Yu(12), Colin Shin(12),

Kihyun Lee(11), Esther Kwon(7), Sarah Lee(11),

John Chang(18), Gabriella Han(18)

3등

Joyce Chung(8), Hahnbie Kim(9), Yu-been

Hwang(10), Eleanor Zang(10), Jiyoon Choi(10),

Isabel Shin(6), Sarah Bang(8), Jun Hee Kim(8),

Jean Yu(18)

봉지 안에는 사탕 외에도 어린이용 전도용지가 들어 있었

습니다.

11월 2일에는 초등부 부모님들이 주최한 초등부 교사

및 봉사자 감사 만찬이 휄로쉽 홀에서 있었습니다. 어와나

클럽 봉사자도 함께 한 자리에서 초등부 부장인 권기환 집

사와 John Shin 교사의 격려사가 있었습니다.

11월 16일에 있었던 사역 박람회에는 초등부도 소개

가 되었습니다. 이날, 초등부에서 사역하기를 지망한 교우

가 한 명 있었습니다. 봉사자가 절실히 필요한 초등부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사역자인 것 같습니다.

11월 22일(토)에는 초등부 4학년 오전반 학생들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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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들과 봉사자와 함께 인근의 쇼핑센터에 가서 오퍼

레이션 크리스마스 챠일드 선물을 구입하고 포장하

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제 3세계의,

예수님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

는 카드를 만들어 선물과 함께 넣었습니다.

초등부에서는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하게

될 크리스마스 뮤지컬을 위해 맹연습에 임하고 있습

니다. 뮤지컬은 김선아 사모가 총지휘하고 있으며,

김선아 사모는 매 주일 1부 예배를 드리고, 오전 10

시반부터 뮤지컬 배우들을 연습시키고, 오후에는 반

별 연습 및 총 학년 연습을 지도하면서도 지치지 않

는 모습으로 교사 및 부모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

다. 또, 뮤지컬 노래를 익히기 위해 각 가정마다 뮤지

컬 CD를 도매가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초등부 학부

모회에서 약 40%의 비용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오후반 수업이 뮤지컬 연습으로 인해 무척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어, 아이들에게 종종 주일학교

숙제가 나가게 되었으니, 부모님들께서는 아이가 주

일 학교 숙제를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시

기 바랍니다.

11월 30일은 초등부의 명물, 프라미스랜드 상점

이 열렸습니다.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크리스마스 선

물이 될 만한 물건들이 상점에 진열되었는데, 부모님

들께 드릴 만한 물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동

안 모아온 데나리를 가지고 원하는 물건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이 프라미스랜드 상점 행사를 통해 아이들

은 자신이 가진 데나리와 물건값을 계산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끝으로, 초등부에서는 부모님들께 이메일로 연락

을 취하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70 가정

의 이메일이 초등부 이메일 주소록에 확보된 상태이

고, 연락사항이 있을 때는 이메일로 연락이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교회에 등록하지 않은 부

모님들께서는 이메일 주소를 교회나 초등부 안내석

에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이 없는 부모님들

을 위해, 아직도 각 학급 대표 부모님들께서 전화 연

락을 취하여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힘쓰

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을 연습하고 있는 유년부 아이들

30

‘거룩한 땅’이라는 뜻을 가진 파키스탄. 이슬람교로

자신들은 거룩하여지고, 또 그들의 나라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로 ‘거룩한 땅’이 되었다는 큰 자부심을 가지

고 있다.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파키스탄은 이란, 아프

가니스탄, 위구르, 북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은 모두 선교 전략상 매우 중요한 미전도 종족

국가들이다. 따라서 그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파키스

탄은 민족 간의 대립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그 첫 번째 대립지역은 북인도 접경지역 – ‘카쉬미

르’ 지역이다. 파키스탄의 동쪽은 북인도와 접해 있는

데 ‘카쉬미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지상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지만 오랜 종교

분쟁으로 갈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18세기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각기 독립운동을 벌

여왔고, 1945년 전쟁이 끝남과 함께 임시정부 구성을

둘러싼 종교 갈등으로 1947년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

람교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독립한다. 종교에 의한

분리 독립 이후 자신의 종교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다

가 희생당한 국민이 많아지자 이슬람 주민이 대다수인

인도 북부, 파키스탄 북동부 국경의 카쉬미르는 분쟁

지역이 되어버렸다. 1948년부터 종교 분쟁이 시작되

어 약 60년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 ‐ ‘페샤와르’이다.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려면 ‘페샤와

르’라는 도시를 지나가게 되는데 페샤와르 시내에서

서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아프가니스탄 국경으로

연결되는 ‘카이버 패스’라는 길이 나오는데, 9.11사태

이후 많은 탈레반들이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와서 ‘카

이버 패스’ 지역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어서 파키스탄

정부의 치안력이 미치지 않고, 또 파키스탄 정부의 헌

법도 따르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파키스탄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27일 총선을 10

‘거룩한 땅’… 파키스탄

지금 파키스탄은 혼란 가운데 있다. 파키스탄 땅 가운데 정사와 권세의 영, 죽음의 영, 이슬람의 영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금 사방이 꽉 막힌 벽안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는 이곳에 열린 문을 두셨다. 끊이지 않는 분쟁과 테러가 조장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세게 일어나며 탈레반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직 문을 닫지 않으시고 열어놓고 계시다.

파키스탄은 주변 인접 국가들과는 달리 기독교가 인정되는 나라이고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글, 정리 - 유종우

(왼쪽) 페샤와르 구시가지 모습 (오른쪽 위) 페샤와르 위치 (오른쪽 아래) 카이버 패스의 파키스탄 무장경찰

31

여 일 앞두고 야당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암살 사

건이 일어났다. 베나지르 부토 총리는 수도 이슬라

마바드에서 가까운 라발핀디에서 올해 1월 8일에 있

었던 대통령 총선 유세 직후 두 차례의 총격과 그 이

후 범인의 자살폭탄 공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그러

나 그전 1993년에도 부토의 목숨은 위태로웠다. 그

해 10월 실시될 선거를 앞두고 친 서방 성향의 야심

있는 여성 총리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슬람 급

진주의자들에게 여성의 사회 진출은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급진주의자들은

그녀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 때의 혼란스러웠

던 상황을 부토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선전물을

뿌리며 ‘부토를 죽이는 것이 신실한 무슬림의 의무’

라고 떠들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부토는 과거 총리

재직 시 청소년들에게 광신적 이념을 고취시키는 일

부 마드라사(이슬람 종교학교)에 대한 자금줄을 봉

쇄하려 했다. 그녀는 이곳의 졸업생들이 극단적인

신념을 사회에 표출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언론을

통해서도 마드라사에서 배출된 급진주의 전사들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었다.

인구 1억 6000만 명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슬람 국가 파키스탄의 불안정한 내정을 심화시켜 그

틈에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그들의 근거지를 확보하

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2007년 9월 빈 라덴이 파키

스탄 정부와의 소위 ‘지하드(성전)’를 선언하는 비디

오를 공개하면서 두드러졌는데 이미 지난 해 11월에

는 파키스탄 탈레반들이 페샤와르 인근 스와트 계곡

을 장악했고, 지난 해 12월에는 파키스탄 북서부 지

역 내 수도인 페샤와르를 점령하기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 5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에서는 음악이 사

라지고 있다.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엄격한 준수를

강요하는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反)한다는

이유로 통제하고 있어서 CD 플레이어의 사용뿐만

아니라 영화 DVD나 TV의 시청, 사진 촬영 등도 금

지하고 있다. 탈레반은 축제와 음악과 춤도 금지하

는데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이슬람 공부를 방해한

다”는 이유에서이다.

‘꾸란을 배우는 학생’이라는 뜻의 탈레반은 1979

년 구 소련의 공격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서 처음 등장했는데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

불을 장악하면서 종교 통치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

고, 도시의 치안과 질서를 확보하며 국민들의 마음

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극단

적 이슬람 전통주의를 내세우면서 여성 차별, 타종

교 유적 파괴, 아동학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기 시작

했다.

탈레반의 운명은 2001년 9.11 테러 후 급반전되

는데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고 탈레반은 그해

12월 대패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의 접경지역으로 숨어들었고,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

들의 세력을 키웠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역의

주민들이 같은 ‘파쉬툰족’이라는 종족 동질감을 이

용하여 그들의 세력을 파키스탄으로 옮겨 가면서

‘네오 탈레반’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에 있는 이슬람 종교학교 ‘히카니아 마

드라사’는 8년 간 무상으로 학생들에게 군사 및 종교

교육을 하는 곳으로,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물라 무

하마드 오마르를 배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그

리고 부토 전 총리의 말처럼 최근 세계 각지에서 일

어난 주요 폭탄 테러범들의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

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 파키스탄은 혼란 가운데 있다. 파키스탄 땅

가운데 정사와 권세의 영, 죽음의 영, 이슬람의 영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

금 사방이 꽉 막힌 벽안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열린 문을 두셨다.

끊이지 않는 분쟁과 테러가 조장되고 이슬람 근본주

의자들의 활동이 거세게 일어나며 탈레반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직 문을 닫지 않으시고

열어놓고 계시다. 파키스탄은 주변 인접 국가들과는

달리 기독교가 인정되는 나라이고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알려진 바로는 약 6000여개의 교

회가 파키스탄에 있다고 하며 1억 6천만의 인구 중

3% 정도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가 있지만 대부분

명목상 그리스도인이고 외부 원조를 받기 위한 위장

교회들이며,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몇 개 되지 않는

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들을 열린 문으로 인도할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 거룩한 땅 파키스

탄이 이슬람의 거룩한 땅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진정한 기

도와 복음의 행진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땅’ 파키스탄이 더

이상 분쟁과 과격 이슬람을 일으키는 요충지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변

아프가니스탄, 카쉬미르, 북인도, 이란의 땅으로 전

파하는 거룩한 통로가 될 것이다.

32

예루살렘 공의회를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복음을 가

르치며 전파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나자고 바나바에게

제안하였다. 목적은 1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도

시들의 교회가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는지 알아보

기 위해서다. 이 제안을 들은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

인 요한 마가를 이번에도 같이 데려가자고 바울에

게 물었다. 그러나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중간에

떠나간 마가였기에 2차 전도여행 길에는 동행시킬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심

히 다툰 후, 바나바는 마가와 더불어 구브로로 갔다.

한 외경에 따르면 바나바는 죽는 날까지 구브로에

머물렀다고 한다.

한편 바울은 평생토록 요한 마가와 좋지 않은

감정을 지녔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훗날 바울이

순교 직전에 썼던 것으로 여겨지는 디모데후서에

보면 요한 마가에 대해 바울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

고 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 4:11) 비록 한 때 팀워크를 허무는 실

수를 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요한 마가를 사용하셔

서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것을 바울은 깨달

았던 것일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바울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을 배웠던 것이 아닐까?

바울은 바나바 대신 예루살렘에서 같이 안디옥

으로 왔던 실라와 더불어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실라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일까, 아니면 계

속 안디옥에 머물렀던 것일까? 사도행전 15장 33

절에 따르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듯하다.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

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즉,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되”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34절에 의하면 “그러나

실라는 안디옥에게 남기로 결심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나지 않고 안디옥에

남아 있었다는 여운을 남겨준다. 여기서 문제의 34

절은 후기 헬라 사본에만 남아 있다. (한글 성경에

도 34절은 없음으로 나온다) 이는 바울이 실라를

택하여 2차 전도여행을 떠났다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후기 사본 작성 시 34절을 삽입하였다는 인상

을 남긴다. 또한 33절에 떠난 사람들이 복수로 되

어 있는 점으로 보아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사람은

유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유다와 실라 두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실라는 예루살렘으

로 돌아갔다가 바울의 요청에 따라 (또는 실라 자

신의 의지로) 안디옥으로 되돌아왔다.

전도여행의 동역자로서 실라는 바울에게 확실

한 보탬이 될 인물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지도자이며 동시에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

정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누구

라도 바울의 자격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훗날 갈라

디아에서 바울의 사도 자격을 놓고 의심했던 것처

럼, 예루살렘의 편지를 지니고 있는 실라는 누구보

다도 바울의 위치를 확고히 대변해줄 인물이었다.

2차 전도여행의 시작은 바다를 건너지 않고 육

로를 통해 이동하였다. 안디옥을 떠난 바울과 실라

제 2차 전도여행의 시작

1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들의 교회를 굳건히 세우고자 떠난 2차 전도여행. 그러나 마가를 놓고

바나바와 다툰 바울은 실라와 더불어 2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 길에서 디모데를 동역자로 받아들이

고, 원래 목적했던 1차 전도여행 도시들을 모두 방문한 뒤, 바울 일행은 새로운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

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지시로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만다.

한편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난 바울 일행은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된다.

글 - 오장석

사도 바울

(16)

33

는 아마도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 지역을 통

과하고 길리기아 관문을 넘어 약 150마일 정도 떨

어진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곳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서 방문했던 도시들 중 마지

막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

러 바울은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동역자로 받아들

인다. 더베와 루스드라는 당시 로마 관할 구역상

‘같은 지역(Region)’으로 분류되었기에 누가는 더

베와 루스드라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디모

데는 루스드라에 살고 있었다.

이어서 누가는 디모데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에 있는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음을 소개하

고 있다. (행 16:2) 여기서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을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 말은 디모데가 더베에

서는 칭찬받는 인물이 아닌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

니다. 비록 루스드라가 관할 구역상 더베와 같이 분

류되기는 하지만 거리상으로 보면 이고니온이 더베

보다 더 가까이 위치해 있었고, 따라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사이에 더 많은 상업적인 교류를 통해 보

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가가 이 구절

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디모데가 주변으로부터

두루 칭찬을 받는 인물이었음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동역자로 받아

들이며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디모데는 헬

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유니스 사이에서 태

어난 사람이다. 외할머니 로이스 역시 믿음의 사람

이었다. (디모데후서 1:5) 전통적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과의 결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

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 특히

외진 곳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방

인과의 결혼은 덜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

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인 경우 아버지가 이방인

이라 하더라도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하였다.

그런 점에서 디모데는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일

까?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할례를 비롯한 율법을 준

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바울은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았던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바울은 밝혔다. “바

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

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

라” (행 16:3) 바울은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 먼저

유대인에게 다가갔다. 회당이 있는 곳이라면 당연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당연히 회당에 들

어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방

해물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유대인인 디모데에게

유대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한 것이다. 디모데 또한

어떠한 반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억

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모데 아버지 또

한 이방인이면서 디모데가 할례 받는 것에 대해 반

대했다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디모데 아버지

가 이 당시 살아 있었는지, 죽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그런 점에서 디모데 아버지가 살아 있었어

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일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의 모임에 나가지만 할례를 받고 율법

을 준수해야만 하는 유대 개종자는 아닌 사람)

디모데의 경우는 갈라디아서 2장 3절에 나오는

디도의 경우와도 다르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

니” 디도는 분명히 헬라인이었기에 유대 율법에 따

라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디모

데는 기독교인이 된 이후 유대인인 그가 더욱 유대

인이 되도록 할례를 행하였다. 구원의 조건으로 할

례를 행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그가 동

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생길 수 있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

록 하기 위해 할례를 받도록 한 것이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가 한 팀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1차 전도여행의 바울과 바나바, 마가

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주변의 여러 성들을

다니며 (아마 비시디아 안디옥도 포함되었으리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고 그

결정을 지키도록 권면하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 실

라의 동행은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 일행

의 방문으로 여러 교회의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수

가 날마다 증가하였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를 지나면서 바울 일행의

일정에 변화가 생긴다. 2차 전도여행의 본래 목적

은 1차 전도여행의 도시를 방문하여 그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1차 전

도여행의 도시를 넘어 더 서쪽으로 길을 잡는다. 비

시디아 안디옥 방문을 마친 바울 일행이 길을 돌이

켜 돌아가기보다는 자신들이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으로 가 복음을 전하고 소아시아 서쪽 항구 도시

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려고 생

각했을 수도 있다. 이후 일정에서 보게 되는 바와

34

같이 바울 일행이 늘 성령의 지시에 민감하게 따랐

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성령의 명백한 지시

가 있었을 수도 있다.

바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어떤 노정

으로 길을 잡았는지에 대해 누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단지 이 지역에서는 말씀을 전하지 말라는 성

령의 지시가 있었고 결국 드로아에 도착했다는 사

실 뿐이다. 드로아의 공식적인 명칭은 ‘알렉산드리

아 드로아’이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

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

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

로 내려갔는데” (행 16: 6-8)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현재의 아시아 대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로마에는 ‘아시아’라는

지방이 있었는데 소아시아 지역에서 에게해를 끼고

있는 서쪽 연안의 땅들을 지칭하였다. 그 중심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베소가 있다. 당시에는 비시

디아 안디옥에서 드로아로 직접 이어지는 큰 도로

는 없었다. 에베소를 거쳐 올라가거나, 북쪽으로 올

라가다 서쪽으로 향하면 드로아로 갈 수 있었다. 비

두니아로 가고자 애썼다는 말에 따라 북쪽으로 올

라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왜 드로아일까? 당시의 항구 도시로 보

자면 에베소, 레노, 아드라뭇데노와 같은 곳은 스

페인과 이집트와 같은 나라들을 연결할 수 있는 커

다란 항구 도시이다. 하지만 바울 일행이 건너가야

할 마게도냐를 놓고 생각한다면 드로아야말로 가장

최상의 항구인 셈이다. 사람의 계산으로 보자면 에

베소나 레노가 더 매혹적인 항구

도시이지만, 성령의 계획에는 마게

도냐가 있었고 그를 위해서는 드로

아가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드로아는 소아시와 로마를 연결하

는 로마제국 우편 체계의 가장 빠

른 지점으로 마게도냐의 네압볼리

를 통해 마게도냐를 지나 이태리로

연결된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

지는 약 15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 항구를 배로 건너는데 바람

이 순풍인 경우 이틀 만에, 그러나

기상조건이 안 좋

으면 닷새까지도

걸렸다. 고고학적

으로 드로아에 대

해 알려진 것은 별

로 없다. 두로아에

관한 좋은 증거로

몇몇 동전들이 있

을 뿐이다.

드로아에서 바

울은 환상을 보게 되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

늘” (행 16:9) 소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성령의 지시로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바울인데, 드

로아에 도착하여 비로소 마게도냐 사람으로부터 복

음을 전해달라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에 바울 일

행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

누가는 이 부분을 전하면서 사도행전에서 처음

으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대명사를 사용하였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

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

라” (행 16:10) 이전까지는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하

며 관찰자의 입장으로 기술하였는데 반해, 지금부

터는 자신도 일행의 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이다. 이것은 드로아에서 누가가 바울 일행의 한 사

람으로 합류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바울과

실라, 디모데와 누가는 복음을 들고 유럽으로 향하

고 있다.

35

5가지

사랑의 언어

책 소개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의 가정은 50년 이상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두 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

을 쓰고 잇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의 가정은 나와 결혼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있는 아내, 캐롤라인 이

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내들이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편들

을 사랑한다면 외도하는 남편들이 훨씬 적어 질 것 이다. 셸리와 데릭은 새

로운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우리 품을 떠났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따듯한 사

랑을 느낀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고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사

랑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바로 정신과 의사인 로스 캠벨과 저드슨 스위할트와 스코트 펙이다.

데비 바와 캐시 피터슨은 원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트리샤 쿠베와

던 슈미트는 출판에 따른 제반 업무를 담당해 나를 도왔다. 끝으로 무엇보

다도 20년 이상 상담을 하면서 만난 부부들이 자신들의 솔직한 삶의 모습

을 내게 털어놓았는데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들의 진솔함에 이 책을

바치는 바이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 책 소개

성령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힘있게

하고, 성장과 변화를 주는,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의 행복을 체험케 해주는 책

이다. 성령의 본질과 사역, 열매에 관한 체험적 설명들이 실려있다.

저자소개

홍성건 목사는 대학시절에 성령의 강한 체험을 한 이후부터 줄곧 세계 선교

와 열방의 제자화를 위해 달려왔다. 1986년부터 2003년까지 예수전도단

책임자로서 세계복음화의 기틀을 세우고자 힘썼으며, 1997년에 제주열방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는 현재 예수전도단 동아시아 지역 책임자 및 제주 열

방대학 디렉터이며 아내 이현주 간사와 함께 제주에 살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 「섬기며 다

스리는 사람」,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이상 예수전도단)이 있다.

12월의 추천도서

추천도서 I

추천도서 II

저자: 게리 채프먼

저자: 홍성건

◆ 12월 13일(토) 시온회와 초등부 D.C. Homeless 방문 (MD)

◆ 12월 14일(일) 세례식(MD)

◆ 12월 21일(일) 크리스마스 주일예배 (MD)

◆ 12월 24일(수) 크리스마스 이브 합동예배 (MD)

◆ 12월 25일(목) 크리스마스 예배 (VA)

◆ 12월 27일(토) - 30일(화) 중고등부 겨울 수양회 (MD / VA)

◆ 12월 31일(수) 송구영신 예배 (MD/VA)

◆ 2009년 1월 1일 (목) 신년예배 (MD)

교회행사

2008 사역 박람회에 나타난 과감한 전도내용

“스님 믿으세요”

◆ 2008년 안수식을 마친 뒤, 김기영 장로는 갑자기 바뀐

호칭이 어색하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

네자, “쑥스럽구만, 내가 왔다갔다 할테니 계속 인사하

세요. 듣는 사람, 부르는 사람 익숙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