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fc-2009-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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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제 17권 제12호 장로 장립식, 집사 안수식 제 68차 새가족반 가을 부흥회 아버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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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장립식, 집사 안수식 제 68차 새가족반 가을 부흥회 아버지 학교 2009년 12월호 제 17권 제12호 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 301.444.3100, FAX 301.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 703.444.5634, FAX 703.444.0567 (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김경숙 *인쇄: KOREA Monitor 36 성지순례 -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끝) - 이연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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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제 17권 제12호

장로 장립식, 집사 안수식 제 68차 새가족반

가을 부흥회

아버지 학교

CONTENTS 2009. 12

표지사진설명

오이코스 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팀

(이대훈 장로 목장)

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 301.444.3100, FAX 301.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 703.444.5634, FAX 703.444.0567

(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김경숙 *인쇄: KOREA Monitor

휄로쉽교회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www.fellowshipusa.com

03 유치부 추수감사절 만찬 04 제 68차 새가족반 (MD) - 순종하는 것이 중요 외 - 우반디 외 09 하프타임 세미나 10 장로 장립식 - 또 하나의 출발점 외 - 한기선 외 20 오이코스 축제 - 휄로쉽 가을의 절정 2009 오이코스 축제 - 이연일 24 가을 부흥회 -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 오장석 29 아버지 학교 -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 - 장은주 30 Fall Festival 32 비전스쿨 -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 유종우 34 에세이 - 살아서 준비하는 죽음 - 이연일 36 성지순례 -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끝) - 이연일 42 초등부 소식 - 신율미 43 맥체인 성경읽기표

30 20 4

3

4

(윗줄 왼쪽부터) 우철윤, 강현모, 김승택, 임정환, 박형원, 곽호식, 인성용, 임동현

(가운데 줄 왼쪽부터) 이인영 목사, 이마리아 사모, 오양석, 박경희, 임영실, 김나욱, 김은영, 송희진, 안지영, 송희정

(아랫줄 왼쪽부터) 김에스더, 장인숙, 김메리, 오영선, 김원기 목사, 곽순화, 우반디, 강경아, 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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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작년 겨울에 휄로쉽 교회에 왔습니다.

지난 10년 간 버지니아의 한 교회를 섬겨왔습니다. 제

겐 친정 같은 교회였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살다가 메

릴랜드로 이사를 온 저희 가족은 거리가 멀어진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전 버지니아로 곧 옮겨주시길 기

도했습니다.

작년 겨울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남편은 이

제 교회를 옮겨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습니

다. 저는 친정 같은 교회를 떠나기 싫었고 지금 내가

가장 힘들 때 옮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단호하게 믿음을 새롭게 하겠다는 결심

을 굳힌 상태였고, 우리가 힘들기 때문에 지금 더더욱

교회를 옮겨 다시 원점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

니다. 저는 기도하고 응답을 구했습니다. 기도 때마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같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순종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휄로쉽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엄숙하고 조용한 장로교회와는

달리 앞에서 춤추고 뛰고 깃발까지... (물론 지금은 저

도 너무 기쁘게 찬양합니다.) 남편한테 순종한다고는

했으나 이런 광신자적인 분위기가 적성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견디라는 건지. 남편은 좀 계속 나가보자고 했

습니다. 주일날만 되면 은혜는커녕 짜증만 내다가 끝

에는 반드시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잘 믿고

믿음 생활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여기서는 은

혜 못 받겠어요. 하나님, 설마 여기서 계속 있으라고

안 그러시겠죠?” 남편에게 협박을 했습니다. “당신은

여기 다녀라. 난 애들과 옛 교회로 가겠다.” 그러나 그

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로 몸은 하나님 말씀대로 남편에 순종하며 교

회에 같이 왔지만 주일만 되면 마치 나쁜 점만 발견하

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습니다. “여름성경학교도 다른

곳보다 비싸다, 점심도 다른 데는 $2인데 여기는 왜

$2.50이냐, 춤추고 뛰어서 정신이 없다, 목사님은 왜

그렇게 잘 생기셨냐, 옷을 그렇게 잘 입으셔도 되냐.”

그러던 중 김원기 목사님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 ‘진실이 있는 목회를

하고 싶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휄로쉽 교회를 부흥케 하신 걸 부인할 수가 없었

습니다. ‘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맞

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 후로는 잠잠하게

예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초양육과정을 들으며 이미 다 알고 있었

으나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것들을 하나씩

기억해 내면서 그 모든 것이 내게 이미 있음

을 감사했습니다. 예배 시간이 은혜의 시간

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마약

을 할 정도로 세상을 싫어했던 목사님, 옛

죄를 고백하고 또 고백하는 목사님, 지난 일

년 동안 열 번도 넘게 고백하는 목사님, 혼

자 골방에서가 아닌 몇 백 명의 성도 앞에서

이젠 그 죄와 너무나 멀어졌기 때문에 당당

하게 고백하는 목사님 아니 회개를 했으니

까 목사가 됐을 텐데, 몇몇 사람만 알면 됐

순종하는 것이 중요 글 - 우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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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아니 하나님만 알면 됐지, 마치 옛날에 마약 했던

목사님이란 호칭이 붙을 정도로 (제가 김원기 목사님

모를 때 들었던 호칭입니다.) 고백하시는 목사님.

그러다 제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난 옛 죄를 얼마나

많이 회개하고 고백했는가? 같은 죄를 한 번의 회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고 또 하고 또 회개해서 그 죄

를 끔찍이 미워하며 회개할 수 있도록 목사님이 제게

도전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배 시간에 얼마나 우리를

혼내시는지 이젠 부모도 간섭하지 않는데 이제 제발

바른 길로 가라고 혼내며 부탁하십니다. 저도 자녀가

있어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만 하면 인기

가 더 좋을 텐데.. 진심으로 양떼를 걱정하는 목자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얼굴도 마음도

멋진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과정 중에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이 교회로

옮기신 것이 분명하다면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 달라 했습니

다. 물론 제가 이렇게 휄로쉽 교회

를 사랑하게 된 것 자체가 큰 증

거입니다.

그리고 또 부인할 수 없는 한

증거는 친하게 지내는 자매가 있

었는데 한 번도 교회에 가 본 적

이 없다고 했습니다. 버지니아 교

회를 다닐 때 전도하고 싶었으나

“교회가면 참 좋다” 라고만 말하

고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

습니다. 분명 너무 멀다고 안 간다

고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휄로쉽

교회로 옮긴 지 한 달이 안 됐을

때 “우리가 가까운 교

회로 옮겼는데 같이 나

가 보자” 라고 말이 떨

어지기가 무섭게 “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마 성령님께서 이미 자

매의 마음을 다 움직여

놓으셨던가 봅니다.

전 조금 걱정이 되었습

니다. 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한 번 오고

안 온다고 하면 어떡하

나 하고 말입니다. 저

의 첫 전도는 대성공이

었습니다. 그 자매와 온 가족이 교회에 나오고 믿게 되

었습니다. 이제 내가 왜 휄로쉽 교회에 오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교회가 맞다는

확신이 되었고, 이젠 아무 것도 판단할 필요가 없었습

니다. 주일날이 다시 기쁜 날이 되었습니다.

이 가족을 전도하고 ‘와.. 내가 이 교회로 옮기지 않

았다면,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옛 교회로 가버렸으면

이 가족을 전도할 수 없었겠구나. 이래서 하나님께 순

종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그 후

더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제가 전도를 하

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든, 하나님이 직접 개입

하셨든 구원을 받을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힘들 때 하

나님께서는 그 가족을 전도할 기회를 제게 주셔서 그

영광스러운 일에 저를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서 부족한 저를 사용하여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7

“엄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걱정하지마.”

지난 1월에 세 남매 아이들이 “휄로쉽 교회에 가면 안

될까? 예배드리고 티모시 그룹에 참석하고 싶다”는 요

청을 했습니다. 가정에서 예배 드리고 있는데 다른 교

회에 가서 다시 예배를 드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왕복 90마일), 개스 값도 만만치 않은데. 왕복 2시간.

힘든 시기를 지나가는 상황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을 바라며 의지하는 시기였는데.

“엄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걱정하지 마”

라며 기도하면서 교회를 가자는 것이었죠. 겨울 티모

시 수련회 때 받았던 은혜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 때

문인지 세 남매 모두의 간곡한 부탁이었습니다. 아이

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12시간의 일

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저 자신도 심령이 많이 갈급

했습니다. 그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했던 큰 아이의 고백입니다.

지난 날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믿음의

담대함과 영혼의 평안함. 주님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

해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찬양할 때 답답함이 사라지

기 시작했고, 말씀을 들을 때 심령을 치료하시고 회복

되는 평안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말씀의

선포가 아닌 심령의 회복, 잠재되어 있던 상처를 치료

하시는 사역에 대한 확신, 내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도전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에 변

화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식탁의 반찬에는 변화가 없

었지만.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정성을 쏟아

반찬을 만들어 아이들이 맛있다고 하던데. 저에게 불

만이 많은 남편은 사정도 모르고 인상만 쓰니, 은혜 받

은 제가 참아야 했죠.

세 남매들도 기뻐했습니다. 뜨겁게 소리 높여 찬양

할 수가 있어서 좋다는 것입니다. 예배다운 예배를 드

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고 집으

로 갈 때는 긴장입니다. 남편이, 아빠가 화를 낼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지난 2000년에 침례교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인 ‘침미준’ 강사로 김원기 목사

님이 오셨을 때 은혜 받고 함께 말씀 CD를 보았는데

남편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매 주일 아침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휄로쉽 교회

를 향해 달리는 45마일은 기쁨의 드라이브였습니다.

남편도, 아빠도 45마일을 함께 가도록 아이들과 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회복되어 갈 때 직장에서 같이 근무

하는 이명순 집사님을 통해 오이코스 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유받고 김철 집사님이 목자로 계시는 오이코스

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찬양, 기도와 말씀의

나눔, 아름다운 섬김, 오이코스 목원들의 사랑과 관심,

한 주일의 삶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내어놓고 함께 기

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지금은 남편 사역의

환경과 상황 그리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오이코스

모임에 참석하며 함께 45마일, 왕복 90마일을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긴장을 풀게 하고 녹이는 한우리반의 김

기영 장로님과 김석재 집사님.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이

야기인 것 같은데 오신 분들의 경계를 유머와 찬양으

로 무장해제 하시는 능력. 워싱턴 일대 교회에서 맛볼

수 없는 음식 메뉴와 그 맛은 잊지 못 할 맛이죠. 그런

데 한우리반을 나옴과 동시에 먹을 수 없다니. 이를 위

해 수고하시는 집사님들, 자상한 아버지와 같은 확신

반의 김일봉 장로님의 구원의 확신의 가르침, 군기 반

장 같은 목적반의 한은실 집사님의 혹독한 숙제와 훈

련, 그리고 새가족반의 이양호 장로님, 섬김과 봉사로

헌신한 사역자님들을 사랑합니다.

저는 지금 남편과 함께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

습니다. 받은 섬김과 사랑을 기억하며 영혼들을 섬기

겠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주님을 사랑

하며 영혼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하

며 아이들의 신앙성장과 성숙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

님이 허락하시는 사역 안에서 영혼을 섬기겠습니다.

45마일, 왕복 90마일의 신앙고백을 주님께 올려드립

니다.

왕복 90마일의 신앙고백 글 - 곽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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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남편은 제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

습니다. 저희 둘은 각각 8년 전, 10년 전에 한마음 멤

버로 휄로쉽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또 한마음 커플

들이 제일 많이 결혼식을 올린 그 해에 저희도 결혼을

했습니다. 청년부를 떠나 오이코스를 다니고, 또 교회

부서 안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코스

리더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데이터베이스를 보니

저희들의 기록이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기

록을 보니 저희 둘은 휄로쉽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고.

지난 8년, 10년간 몸담은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니 조

금은 당황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등록 교인이 되어야 한다!’였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오이코스

집사님 그리고 다른 여러분들과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기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주의 주일 예배를 드리

고 나오는데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저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또 다른 성격을 갖고 결혼 한 후, 서

로에게 적응하고 맞추려고 할 때 서로의 신앙이나 믿

음에 대해 깊이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남편과

나눌 수 있는 편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신앙

상태도 너무 달랐기에.

그런 사람이 먼저 제게 다시 시작하자고 전했습니

다. 저는 너무 기뻤고 또 감사했습니다. 한우리반부터

목적반까지 너무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그 와중 처음으로 둘의 신앙과 말씀과 또 그전에 잘

몰랐던 서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글 - 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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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

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저는 가난한 목회자 가정

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목사 아들이라는 것을 감사하

기보다는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불편하게만 여겨 가

면을 쓰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개척교

회에 붙어 있었던 사택은 늘 장터같이 붐볐으며 하루

도 식구들이 오붓하게 앉아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

습니다. 늘 손님들은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종종 주일

이 지난 다음날 제 가방은 학용품조차 온전히 남아있

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느

라 제 가방을 뒤져서 가져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다짐하기를 장래의 나의 직업은 똥을

또 하나의 출발점 글 - 한기선

한기선 장로, 한은실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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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는 한이 있어도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는 직업은 갖지 않겠다고 자주

되새겼습니다. 그 당시의 목회자만 하더라도 가정을

잘 돌보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시절이었

습니다.

학교를 다니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이민을 온 후 아

버님의 십 여 년의 이민 목회기간 중에도 하나님과 깊

이 있는 교제가 없이 사람들과 불신의 벽, 관계의 벽을

쌓고 많은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혼

생활에서도 저는 아내에게 어떻게 속사람을 내어 놓는

지도 몰랐고, 하나님에게는 당신 때문에 피해를 입었

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내 속

의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모태 신앙이

라 당신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니 더 이상 저에게 피해

나 주지 마십시오’라는 식의 하나님과의 교제였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 아버님이 시무하시던 작은 이민 교

회가 문을 닫게 되어 저의 가족은 휄로쉽교회로 올 수

있었습니다. 평생 처음 아버지 담임 목사님이 아닌 새

로운 공동체에서 한없는 자유로움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처음 8개월의 예배시간 내내 울었습니다. 저

는 휄로쉽교회에서 영어공부를 ABC부터 배우듯이 신

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무개 목사의 아들이

아닌 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뜨거운

찬양과 말씀을 통한 성령님의 치유와 위로를 체험하며

매 예배마다 의지적으로 내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40일 특별 새벽기도, 제자훈련, 성경공부,

오이코스 등 여러 가지 영적인 훈련들을 통해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 앞에 의지적 순종인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부모님, 장모님, 그

리고 하나님 다음으로 저를 잘 알고 기도와 인내로 곁

에서 묵묵히 순례의 여정을 동행해준 아내에게 고마움

의 인사를 전하고 또 저의 영적 멘토인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장로 안수식이 신앙여정의 마지막이 아

니고 또 하나의 출발점으로 알고 이 믿음의 경주를 완

주할 수 있도록 매일 하나님께 매달리겠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 손원국 장로님이 교회와 교우들과 담임목

사님을 어떻게 섬기셨던 것을 기억하며 할아버지께 부

끄럽지 않은 손자 장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수집사 이세광 안수집사 김성국

12

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니다가 중간에 잠시 교회를

떠났었지만 20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일학교 교사

로 10년 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

는 김경봉 장로님의 어머님 소개로 아내인 종민 자매

와 1년 간 편지로 사귀다가 결혼하게 되어 1981년 말

에 왔습니다.

휄로쉽교회에 오기 전 프레데릭에서 교회를 10여

년 섬기면서 영적으로 늘 목마름을 느끼곤 했지만 교

회를 옮기자는 아내의 말에 저는 선교를 왔다 생각하

고 참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침

잠이 많던 아내가 혼자서 휄로쉽교회 1부 예배를 참석

한 후, 섬기던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를 1달

힘껏 교회를 위해 봉사 글 - 김일봉

김일봉 장로, 김종민 권사

13

동안 계속하는 것을 보고 가족 모두가 교회를 옮기기

로 결정하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은혜가 메말랐던 저로서는 가

르치던 아이들에게 주일마다 풍성한 은혜의 잔칫상을

차려놓고 먹이지 못하고 옛날에 받았던 은혜를 냉동고

에서 꺼내다 전자레인지에 덥혀주는 정도 밖에 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휄로쉽교회에 와서는 뜨거운 찬

양과 말씀을 들으며 성경의 해석을 넘어서 이렇게 살

라는 도전을 들으면서 저의 생각과 삶이 바뀌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예배를 마치고 차 안에서 두 아

들에게 이제까지는 너희가 잘못하면 매로 때리기도 했

지만 오늘 이 시간 이후로는 매를 들지 않겠다고 선언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휄로쉽교회에서는 신앙적으로

본 받을 많은 분들을 보면서 늘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

다.

약 1년에 걸친 등록 교인과정과 6권의 2‐7시리즈

훈련 후 전도폭발 공부와 함께 전도부에 속하여 지금

까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137 오이코스를 섬기고

있고, 2부 예배 안내와 확신반 교사, 그리고 이따금 '뜨

레스 디아스(TD)'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일

군으로 지명하여 주신 것을 두렵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며 힘껏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

도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부탁드립니

다.

안수집사 정두봉

안수집사 임성호 안수집사 나희주 안수집사 강동균

14

저는 1993년 9월부터 휄로쉽교회에 다니고 있는

Alex Guo입니다. 휄로쉽교회 3주년 기념일의 화창했

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 남자아이, Aaron, Nathan, Matthew의 아

버지이고 멋진 아내 Isabella의 남편 (한 여자의 남편,

이건 아주 중요하지요.)입니다. 저는 Boutique Man-

agement & IT Consulting Firm의 창업멤버이고 휄

로쉽교회의 교인으로서 주님의 몸된 지역교회를 섬겨

왔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14시간을 일하고 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

그리고 아내의 이해와 진심어린 내조 때문입니다.

아내와의 만남은 저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연

출하신 신성한 약속이었습니다. 저의 구세주이신 예수

Hello, my name is Alex Guo. I have been attend-ing NCFC since September 1993. I can still remem-ber that sunny day, on NCFC’s third anniversary!

I am the father of my three sons (Aaron, Nathan and Matthew). I am a husband of one (this is really important), married to my wonderful wife – Isabella. I am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a boutique Man-agement & IT consulting firm, and I am a NCFC member serving in this local body of Christ. Needless to say, life is hectic and busy! A typical work day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 글 - Alex Guo

Alex Guo 장로, Isabella Guo 집사

15

님을 알기 전에는 저는 자신의 힘과 노력과 지혜만을

의지하는, 저 자신만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하는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진 첫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눈을 즐겁

게 해주는 여자입니다.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말입니

다. 그 당시 저는 언제나 한 쪽 눈으로는 아내가 제가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았나 확인하면서 다른 한

쪽 눈으로는 아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내가 저를 청년부 성경공부에 초대를 하는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었지

만 아내가 저를 좋아했기 때문에 초대한 것이라는 생

각에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성경공부 자리에 도착

하니 사람들이 모여서 평범하게 교제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성경공부가 시작 되

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Isa-

bella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이 정도의 작은 희생 정도

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

점 이상하고 낯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가 끝

난 다음, 자신의 손가락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방을 어

둡게 하고 기도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통말로 기도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기도를

spans 14 hours. All this is possible because of God’s grace, provision and my wife’s understanding and her wholehearted support!

Meeting my wife, Isabella, was God’s orchestrated divine appointment in planting my salvation. Prior to knowing my Lord and Savior - Jesus, I was a self reli-ant person leaning only on my own strength, my own effort and my own wisdom. To me, Christianity was only an excuse for people’s failure.

I met Isabella, then girlfriend at my first job after college graduation. She was and still is definitely “eye-candy”, at least by my standard. I found myself always looking at her with one eye while making sure she didn’t know I was looking at her with my other eye. And then, there was a breakthrough when she invited me to a young adult bible study. I hesitated a bit but I decided to go with her thinking she invited me because she liked me. As I arrived at the bible fellowship, it was a normal gathering of people fel-lowshipping and sharing a meal together. After the meal, the bible study session begun. I thought to my-self “this is not too bad; it’s a small sacrifice to win her heart…” But as the evening progressed, it got weirder and stranger. As the bible study concluded,

안수집사 Isabella Guo 안수집사 Sunhee Jung 안수집사 Richard Li

16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을 들고 어떤 사

람들은 뛰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웃

고 어떤 사람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내가 왜 이런 곳에 와 있는 거지? 이제 이 사람들이 나

를 잡아먹겠어!’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도시간이 끝

나고 저는 재빨리 그 자리를 뜨면서 탈출에 성공했고

죽음을 용케 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아

내가 저를 성경공부에 다시 초대했지만 저는 ‘Isabella

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산채로 먹히고 싶지는 않아’ 라

고 생각하며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Isabella와의 관계는 발전했지만

위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사귀면서 세 번 정도 헤어

졌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 기간이 한 달, 한 주, 20초

였습니다. 네. 20초였습니다! 아내는 저와 사귀면서 저

를 교회와 기독교인 모임에 어떻게든 계속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언제나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다시 말

해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치관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는데, 언제나 대답은 똑같은 세 단어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러면 아내는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행위 없는 믿음은 완

전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이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계획하신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이 되

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인 야고보서 2:14-17입니

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

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

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

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상응하는 행동이 따르는 믿음은 많은 동력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연료가 가득한 발전기와 같습니다.

하지만 움직여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하는 일에 의해 완전

하게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과 행동은 함께 움직여

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그런 거울이 됩시다!

<번역: 오진이>

the prayer session began with the dimming of lights until I couldn’t see my fingers anymore! Some started to pray in word and some started to pray in tongues. Some raised their hands and some were jumping and dancing. Some were laughing and some were crying. Then, I thought to myself – what had I gotten myself into? Now, they are going to eat me! As the evening prayer session ended, I quickly left and thought I had escaped and cheated death. The following week, Isa-bella invited me over to another bible study fellowship again. This time I said to myself – “Yes, she is beauti-ful but I don’t want to be eaten alive,” so I said no to her.

Over time, our relationship blossomed but it was not without relationship storms. I can recall breaking off our relationship three times, in time spans ranging from one month to one week to 20 seconds! Yes, 20 seconds! Throughout our dating process, she man-aged to keep bringing me to church and Christian fel-lowship meetings. She always asked me – “what does being a Christian mean to me?” In other words, what is my Christian value? My answer was to glorify God, but my answer was always the same three words – To Glorify God! Then, she asked – “what does glorify God mean to me?” Then, I realized faith without ac-tion is not complete. I am God’s instrument of bless-ing and God’s intended purpose for me is to bless oth-ers and be that mirror that reflects God’s glory.

One of my favorite verses is James 2:14-17 - What good is it, my brothers, if a man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him? Suppose a brother or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If one of you says to him, "Go, I wish you well;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his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Our faith with the corresponding actions is like a generator filled with fuel to potentially produce lots of power. But unless it is turned on and accompanied by action, it is not complete. You see - our faith and our actions need to work together so that our faith can be made complete by what we do.

Be that mirror that reflects God’s glory!

17

저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

나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 중 하나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랑스럽게 제가 키

우기에 얼마나 쉽고 착한 아이였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하시기 위해서 저를 고

무 목욕통 안에 집어 넣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그 안에서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겨

워진 저는 통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탄력을

너무 받은 고무통은 물론 뒤집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달려오셨고 제가 다쳤나 걱정하시면서 어떻게

행동하나 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

는 울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어떤 감정도 보이

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들어 올려서

다시 통 안에 넣으셨고 저는 다시 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가 거의 5살이 되었을 무렵 미국으

I don’t have many memories of my early childhood, but there is one story in particular my mother told me. She proudly tells the story of how good and easy a baby I was to raise. Once, she put me into a rubber tub, so that she could get some work done around the house. I wouldn’t cry or complain, but just played in-side the tub. Getting bored, I started to rock the tub back and forth, back and forth. Gaining too much mo-mentum, the tub fell backwards with me in it of course. My mother ran to me, waiting to see my reaction, wor-ried that I was hurt, however, she was amazed. No

힘껏 교회를 위해 봉사 글 - Michael J. Park

김일봉 장로, 김종민 권사 Michael Park 장로, Jessica Park 집사

18

로 이민을 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들

어본 적이 없었고 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곧 우리 가족은 교회가 한인들이 모여서 사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형과 누나 그리고 제가 일요일에 교회에 나

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있어서 다른 아이

들을 만나서 놀 수 있는 신나는 장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의 어린 시절을 괴롭혔던 첫 번째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마 7살 쯤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죽

음 뒤에 오는 미지의 세계와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

했습니다.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가는 걸까? 저는 이런 미

스테리에 특히 밤에 몰두하게 되었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습니다.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눈을 꼭 감았

지만 어둠은 그대로고 두려움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떤 밤에는 유일하게 잠을 잘 수 있

는 방법이 형의 침대에 기어들어가 형의 체온에 안심

을 하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제 마음을 붙잡고 있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고등부 예배시간

중에 제시되었던 복음을 기억합니다. 저는 조용히 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한 걸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서 10:9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철제 의자가 놓여진 보잘 것 없는 예배실에

서 전능한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저의 마음을 사랑, 기쁨, 동정심으로 채우시기 시

cries, tears or screams, I kept my emotions in check. So, she picked me up and put me into the tub again and I resumed playing.

Our family immigrated to the US when I was al-most 5 years old. We had never heard of Jesus Christ and followed some of the Buddhist traditions. We soon realized that the local church was one of the few places Korean-Americans would congregate and so-cialize. So, my older brother, sister and I started to attend on Sundays. For me, it was a fun place to meet and play with other kids. Around that time, I faced my first personal crisis, one that haunted my early child-hood. I think I was about 7 years old when I started to think about the unknown and life after death. What happens when you die? What is death like? Where do we go? I was consumed by this mystery and especially at night, the fears would terrify me. I remember cover-ing my head with the blanket and closing my eyes tightly, but the darkness remained and the fears inten-sified. Some nights, the only way I could fall asleep was to crawl into my brother’s bed and the warmth of his body gave me enough security to sleep. Through all of this, I never shared with anyone the fear that was gripping my heart.

The exact date eludes me, however, I remember the gospel being presented in one of the youth group ser-vices. I remember quietly accepting Jesus into my heart. God says in Romans 10:9, “That if you confess with your mouth ‘Jesus i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안수집사 Jessica Park

안수집사 Heather Kwak

안수집사 David Rhee

19

작하셨습니다. 기적적으로 불면의 밤들, 죽음과 미지

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간단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오직 두 사람 뿐이

었습니다. 하나님과 저입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

를 이길 능력이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14에서 말씀하

십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

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오늘 저는 여기 계신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

며 간증을 끝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공포에

짓눌려 계신 분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공

포이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이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이든..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 내려놓

으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

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한일서 4:18) 주일학교 교사

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느끼고 좌절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복

음을 전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언제 하나님께서 귀

중한 아이들과의 신성한 만남을 계획하고 계실지 아무

도 모릅니다. 부모들은 매일 자녀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마땅

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번역: 오진이>

saved.” There in a humble room with metal folding chairs, Almighty God came to meet with me. God started to fill me with love, joy and compassion. Mi-raculously, the sleepless nights and the overwhelming fear of death and the unknown simply disappeared. How do I know God exists and in the assurance of my salvation, you ask? Well, there were only two people who knew about the fear that was haunting me - God and me. I certainly did not have the power over death, but thank God, he did! Jesus says in Mark 10:14,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I’d like to conclude with encouragement to you all today. There are some of you oppressed by fears. Whether it is the fear of death, fear of uncertainties in life, fear of the unknown… release them to Jesus! 1John 4:18 says,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To those of you who teach Sunday School, sometimes you may get discouraged and feel you are not making an impact. Remember to present the Gospel. You never know when God will schedule that divine appointment with that precious child. Parents, never cease in talking about God in your everyday conversations with your children. Proverbs 22:6 says, “Train a child in the way he should go, and when he is old he will not turn from it.”

안수집사 Yoonmi Lee 안수집사 Sunmi Hammontree 안수집사 Jewel Na

20

2004년 6월 27일에 오이코스 찬양 축제가 있었다.

그때는 목장별 지정이 아니라 편안하게 몇 오이코스씩

엮어서 진행하였는데 열심을 특심으로 준비하고 발표

하여 온 교회 잔치를 하였다. 그로부터 약 5년 4개월이

지난 10월 25일 일요일에 메릴랜드 캠퍼스에서 오이

코스 축제가 두 번째로 있었다. 늘어난 오이코스이기

에 이번에는 목장별로 진행하도록 하였고, 심사기준을

미리 주어 연습 전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9월 말에 새벽 예배를 마친 뒤 오이코스 목자 모임

에서 김원기 목사님은 오이코스 구성원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10월 말 경에 축제를 한

다는 광고를 하셨고, 연습 기간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준비가 진

행되었다. 오이코스 인도자들이 모여 아이

디어를 구상하고, 많은 인원이 모이는 만

큼 연습 공간 예약 문제, 음향, 조명, 소품

등의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드디어 축제 전 날인 전체 리

허설을 하는 10월 24일 목장 별로, 목장장

이 뽑은 순서에 의해 무대 위로 올라가 연

습을 하고 동반되는 모든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보

이는데 다음 날을 기대하기에 충분하였다.

드디어 축제일 예배를 마친 뒤 보통의 일요일이라

면 당연히 특별 모임 장소나 집으로 갔으련만 이 날은

예외였다. 다시 넓은 방으로 모여 마지막 연습에 박차

를 가하고 있었다. 5시에 시작하기에 혹이라도 시간을

못 지키면 어쩌나 하고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5분 전

에 모두는 그룹별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막이 오르기

를 기다리고 있다. 제 1회 오이코스 축제의 내용을 편

집한 비디오가 나오면서 장내는 웃음의 도가니였다. 5

년 동안 변한 나의 모습, 너의 모습을 보며 또 그 때의

휄로쉽 가을의 절정 2009 오이코스 축제 글 - 이연일

첫 번째 팀 ‘주의 자비가’

두 번째 팀 ‘모든 세대가 어우러진 우리하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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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내용을 보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사회자인 이경석 형제의 휄로쉽교회 판 훈민정음

인사를 받으며 정평희 장로가 목장장인 첫 번째 팀이

등장을 하였다. 빨간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빨간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출연하여 ‘주의 자비가’ 곡에

맞춰 추는 꼭지점 춤은 모두를 흥겹게 하기에 충분했

다. 정확한 박자, 질서 정연한 줄맞춤, 게다가 박진호

집사의 뚱땡이 발레리나 분장은 팀의 ‘비장의 무기’였

다.

두 번째 팀은 이양호 장로가 목장장이고 ‘모든 세대

가 어우러진 우리하나되어’라는 주제로 다양한 연령의

멤버들이 출연하였다.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하고 기

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60년대를 풍미하던 연세 드신

분들이 나와서 을릉도 트위스트에 맞춰 트위스트 춤을

추었다. 이어 70년대의 고고 세대가 청바지에 젊은 남

방을 입고 등장하고, 80년대의 디스코 세대는 반짝이

옷에 머리를 올리고 선글래스를 쓰고 나와서 흥겨운

자리를 만들었다. 기도하는 분

들이 전도하면 동참하는 사람들

과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눠졌다.

이어 로마서 16장을 안무한 학생들의 바디 워십과 어

린이들이 함께 한 ‘I Love You Jesus’ 찬양과 율동으

로 두 번째 팀은 막을 내렸다.

세 번째 팀은 김덕규 장로 목장으로 흰색 웃옷에 청

바지를 입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나와 질서 정연하

게 ‘전 세계 만민을 향한 몸부림’ 라인댄스를 선보였다.

악기 연주에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고 제목에 맞게

열정의 몸부림을 하면서 보는 이들도 무대 위의 출연

자들도 즐기게 하였다. 평소에 넓어 보이던 무대가 좁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나온 팀은 정대영 장로 목장이었는데 정갈

한 흰색 와이셔츠에 초록색 리본을 일관성 있게 매고

여자들은 청바지, 남자들은 검은색 바지를 입고서 ‘열

방을 향한 우리들의 꿈’이라는 주제로 바디 워십과 신

세 번째 팀 ‘전 세계 만민을 향한 몸부림’

네 번째 팀 ‘열방을 향한 우리들의 꿈’

다섯 번째 팀 ‘예수 - Amazing Grace’

22

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부드럽게 움직이

는 몸동작은 평소의 유연함을 짐작하게 했다.

무대가 어두워지면서 조명이 화려해지고 흰 태권도

복을 입은 다수의 무리가 앉아서 검은 사탄의 흔들림

에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

었다. 김기영 장로 목장의 ‘예수‐ Amazing Grace’의

시간이었다. 감당 못할 고통을 받을 때 우리를 구덩이

에서 꺼내 살려주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났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였다. 그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르신

들이 나오셔서 예수 예수 우리 예수를 고전무용으로

보여주었고 율동하는 분들은 Amazing Grace에 맞춰

바디 워십을 하였다.

다음은 한마음의 순서였는데 역시 젊은 세대의 기

발한 아이디어와 하이텍 사용이 돋보였다. ‘이수일 집

사와 심순애 권사’라는 제목으로 벌어진 단막극은 현

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과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도하기를

원하는 소망과 열심을 듬뿍 담은 귀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목장은 김덕원 장로 목장인데 첫 곡은 조

신하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불렀으나 두 번

째 곡은 ‘하나님 사랑은 무조건’이라는 내용을 모자에

새겨서 쓰고 한껏 흥을 돋웠다. 다양한 동작으로 몸은

망가졌지만, 흘리는 땀방울 아래 퍼져 나오는 웃음은

그동안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태평양을 건너서든, 대서양을 지나서든,

인도양을 넘어서 어디라도 가겠다는 각오의 가사가 춤

여섯 번째 팀 ‘이수일 집사와 심순애 권사’

일곱 번째 팀 ‘하나님 사랑은 무조건’

23

과 함께 멋진 한 판을 펼쳤다.

이어서 출연한 이대훈 장로의 목장은 등장에 앞서

커튼을 닫았다. 제목은 ‘소년 소녀시대’였는데 처음엔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여성들만이 자라잡고 있었

다. 뭔가가 무대 뒤에 준비되었구나 예감은 했지만, 기

대 이상이었다. 머리를 묶고 볼 연지를 바르고 유행하

는 레깅스에 짧은 치마를 입은 남자 분들이었다. 연령

을 초월하여 ‘GGG 송’을 개사하여 부르며 유연하게 움

직이는 몸놀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과 함께 놀

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치마 입은 할아버지, 아저씨

의 올곧은 몸매, 알록달록 현란한 레깅스가 보는 이의

넋을 뺏어 놓기 충분했다.

마지막은 김명중 장로 목장이었는데 “From a

distance” 곡에 맞추어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바디

워십을 하였다. 검은색 하의, 흰색 상의를 입고 가사에

맞는 의미 있는 뒷배경을 보이며 2009년 가을 오이코

스 축제의 마감을 알렸다.

이렇게 9팀의 무대가 끝나고 특별 찬조로 김기영과

그 악단이 나와서 열면 무대를 이끌었다. 관객 전체가

몸을 움직이고 박수를 치며 심사를 기다리고 함께 노

래 부른다. 역시 분위기를 띄우는데 젊은 오빠가 짱이

라고 희끗한 머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를 친다.

드디어 결과 발표를 하기위해 김원기 목사님이 올

라오셨다. 이렇게 다양한 장기를 지닌 교우들을 모아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다시

금 환호성이 터졌다. 시상 결과 3팀만이 당선되었지만

상품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비록 크지 않은 생필품

에 불과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지만 우리는 상품보다

함께 연습하며 웃었던 시간, 무대 위에서 보여진 잠재

된 능력을 확인하는 기쁨이 더 컸기에 깊어가는 가을

을 즐김에 부족함이 없었다. 휄로쉽교회는 참 좋은 교

회라는 인상이 또 한 번 깊이 새겨진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무대를 자연스럽게 펼쳐주고 나이든 장로님이

라도 함께 어울려 웃고 놀고 하나가 되는 분위기를 만

들어주심에 감사한다. 다음을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린

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영상 DVD

를 보며 또 한바탕 웃는다.

여덟 번째 팀 ‘소년 소녀시대’

아홉 번째 팀 ‘From a distance’

24

NCFC

부흥회

가을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절 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예정하

신 하나님의 뜻(운명)’이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지만, 많은 경

우 100% 완전하게 인정하지 못한다. 때로는 나

의 죄 때문에, 때로는 나의 자아와 고집으로 인

해 나만의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나

님의 뜻’에서 벗어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

고 따라가는 책임 있는 인생을 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우

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우리에게 허락된

그 자유가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인생의 불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

지난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있었던 가을

부흥회 기간 동안 야곱의 삶을 돌아보며, “다가

오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제목 아래 하나님의

주권과 ‘인생들을 향하여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

(이하 운명으로 표기함)’을 살펴보았다.

정리. 오장석

25

이삭은 나이 사십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육십에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었다. 그런데 하나님

은 이 두 아들들의 운명에 해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

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되리라는 것, 그것

이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비록 에서가 자신의 운명

에 해 억울하고 못마땅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 더라면, 야곱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

고 언젠가는 자신을 높이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기

다렸더라면, 창세기 27장 이후에 나오는 가족의 불

행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두 아들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

신들만의 음모를 계획하고 서로를 속이기에 바빴다.

그러다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화요일

이삭이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자 자신이 사랑

하는 큰 아들 에서를 불러 다음과 같이 몰래 축복했

다.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

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

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

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2-

4)

이 말을 엿들은 아내 리브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형의 축복을 가로채자고 제

안했다. 에서가 사냥하러 나간 사이, 자신이 별미를

만들 것이니 야곱이 아버지에게 들고 들어가 축복을

가로채자는 음모 다. 털이 많은 형과 달리 털도 없

고 목소리도 다른 자신을 알아보고 축복이 아닌 저

주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리브가는 자신의

교활한 음모를 펼쳐놓았다.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

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

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

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

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창 27:15-17)

야곱은 리브가가 준비한 별미를 들고 이삭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목소리가 야곱과 비슷했던 점을

의심스럽게 여겼던 이삭은 야곱의 손에 덮힌 염소

털을 만져보고서야 의심을 잠재웠다. 별미를 먹고

난 후, 이삭은 한 번 더 에서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가까이 와 입맞춤을 하라고 명하 다. 의복의 향취

가 야곱이 아닌 에서의 것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이었다. 리브가는 이를 미리 예측하고 야곱에게 에

서의 의복을 이미 입혀 보냈다! 에서의 향취를 확인

한 이삭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축복하 다. 마치

둘째 아들에 한 생각은 하나도 없는 듯 ‘하나도 남

김없이’ 축복하 던 것이다.

한편, 사냥을 마치고 별미를 만들어 뒤늦게 들어

온 에서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

앗았도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

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

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

26

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

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

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창 27:35-37)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리라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외삼촌 라반에게 가 며칠간

피해 있으라고 명하 다.

“축복하시는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주권에 한 자신이 없기에 인간적인 욕심

에 사로잡혀 교활한 음모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

를 초래했으며 엄청난 인생의 낭비를 가져오게 되었

다. 며칠이 아닌 긴 세월 동안 힘들게 보내야만 했

다”

수요일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 가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서 축복

을 받았고, 삼촌에게 가 결혼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

돌아오겠노라 생각하며 신나게 길을 재촉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길목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

주셨다.

“이 로 놔두었다가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으로 야곱의 인생을 구부

리기 시작하신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

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 지라 거기서 유숙하

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

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 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

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

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

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

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

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

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0-15)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 원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

루시기 위해 항상 먼저 접근하신다. 노력해서 얻어지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 먼저 나온

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에 우리의 무릎

을 꿇게 하신다.

목요일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야곱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에 라헬

을 아내로 얻기 위해 라반에게 칠 년 동안 섬기기로

약속하 다. 비록 칠 년의 세월이었지만 라헬을 사랑

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처럼 여겼던 야곱, 그러나

정작 첫날밤을 보내고 나니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가

옆에 있었다! 이삭을 속이고, 에서를 속 던 야곱이

이제는 외삼촌 라반에게 도리어 속임을 당했다.

27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소위 결혼에

질서가 있다는 라반의 변명이었다. 칠 일 뒤 라헬을

아내로 받아들 지만, 이를 위해 야곱은 또다시 7년

을 섬겨야만 했다. 외삼촌 밑에서 일하며 빨리 돈 벌

어 돌아갈 줄로 알았는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연단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계획 로 이루어지지 않

는 현실을 직면한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험하며 예비하는 시간으로 바꾸라. 공사

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작업을 이루

어 가시도록 내 자신의 꿈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의 도우심을 바라라.”

금요일

며칠을 생각하고 집을 떠났던 야곱, 14년의 세월

을 보내면서 야곱은 두 아내와 그들의 하녀들에게서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었다.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낸 야곱,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자기 앞

으로 마련한 재산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야곱이

일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힘을 다해

성실하게 외삼촌을 위해 일하 다. 야곱은 그러한 점

을 외삼촌에게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

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

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

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30:29-30)

남을 속이고, 거저 얻는 것을 좋아했던 야곱이 성

실하게 일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의 주권을 감당하

기 위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법

을 배운 것이다. 이후로 6년 동안 더 라반을 위하여

일하며 자신의 재산을 모으기 시작하 다. 그런데 이

번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도록 도와

주셨다.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 지만 때마

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편에 서 계셨던 것이다.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

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 들의 아

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 31:8-

9)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외삼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

아 하기로 내가 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

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

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

서 내게 서원하 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 31:11-13)

야곱이 꿈에서 만난 하나님, “나는 벧엘의 하나님

이라”는 부분에서 관계가 더욱 친 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 고향으

로 떠났다.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지켜주신다는 믿

음으로 떠났다.

28

토요일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

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

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

는 하나님의 군 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 더라”

(창 32:1-2)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야

곱은 하나님의 군 를 만났다.

육적인 안목이 가리어지면서

적인 눈이 떠지게 된 것이다. 야

곱은 형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형에게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저 자세로 나아간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에서의 손에서 구해달라고. 싸울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의 연단을 통해 세월이 지날수록

겸손해진 야곱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

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야곱은 걱정이 앞선다. 그래

서 가족과 양떼를 둘로 나눈다. 혹시라도 에서의 공

격을 받으면 반이라도 살아남아야 하겠기에. 하나님

의 뜻을 향해 떠나는 야곱, 그러나 그 시작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확신이 없지만, 두렵

고 힘든 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간다.

가족들과 소유 모두 얍복 강을 건너게 하고 얍복

강변에 홀로 남게 된 야곱은 하나님과 더불어 날이

새도록 씨름하 다. 자신을 축복해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는 말에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사기꾼’이라는 뜻의 야곱이 ‘하나님

과 및 사람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 주

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기셨다. 왜냐하면

이후로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더 이상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 자신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개인

적인 고백을 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좌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향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격려하시고 기

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낮아지고 내 자신의 서투른 생각과 욕망들을 버

려야 합니다.”

29

얼마 전 남편으로부터 사랑의 편지 한 장을 받았

습니다. 그 속의 한 글귀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랑

장 (고전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로 시작하

여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로 끝나는 것을 보면 분

명 사랑은 인내 속에 있는 것 같은데...

이제부터라도 더욱 인내하여 사랑나무에 작은 사

랑을 따와 사랑만 가득한 사랑이 머무는 가정이 되

기를 소원하는 남편의 마음과 동일하게 저 역시 인

내하며 나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 안에 많

은 사랑의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

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의 말씀

같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적다할지라도 귀한 가족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또한 남편의 삶을 더욱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아야 교

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히

세워져 감을 확신하며, 아버지 학교를 열어주신 교

회와 강사로 또한 이 일을 위하여 협력하여 주신 여

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

글 - 장은주

제 남편은 세상에 태어나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하

지 못하며 홀어머니, 남동생과 살아왔습니다. 불행히

도 남동생 역시 하나님 품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잃은 아픔이 있는

남편을 만나 28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였습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저와 남편, 아빠와 아이들 관

계 속에서 가끔은 표현의 부족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스스로는 열심히 가정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표현의

방법을 잘 몰라 엇갈린 이해 속에 남편에 대한 불만

과 불평을 하며 한 두 번의 위기도 있었습니다.

고지식하고 한 길만을 고집하고 살아온 남편에 대

한 편견을 가졌습니다. ‘아마 아빠의 사랑을 받아보

지 못하고 또한 아빠가 엄마한테 대하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라서 그럴거야’ 라며 남편의 부족을 채우기

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남편 역시

가끔은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의 다독거림과 격려

의 말을 듣고 싶었을 텐데 그러한 남편의 입장을 이

해하지 못하고 저의 기대치에 채워지길 원하였습니

다.

“다투는 여인과 큰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

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또한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

라”의 말씀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남편 역시 그 말씀

을 기억할 터이나 움막을 짓지 않고 집을 떠나지 않

고 그 고지식함으로 지금껏 저와 함께 하여 준 것에

감사드리지요. 한편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해

온 남편이기에 두 아이가 특별한 문제없이 잘 성장하

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학교에 등록하였다기에 ‘아이들도

다 성장하였는데 배워서 어디에 적용하려나’ 하였습

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작이 늦은 것이 아님을 알았

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배운 것을 실천하고 표현하

는 것을 봅니다. 표현의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었어요.

그 가운데 자신의 잠재되었던 표현들이 하나 둘 나타

나기 시작하고 또한 노력하는 것이 참 보기 좋았습니

다. 이러한 남편을 보고 정작 내가 어머니 학교를 가

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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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지난 9월 28일과 29일 이틀간 김언약 선교사님을

모시고 열었던 오픈 강의를 시작으로, DC 메릴랜드 3

기 비전 스쿨은 34명이 등록한 가운데 입학식/오리엔

테이션 (10월 5일)과 8주간 강의를 거쳐 지난 11월

24일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오픈 강의 이후 8주간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7시 반에 메릴랜드 캠퍼스 커버넌트 채플에서 예배로

시작되었던 모임은 종족 소개와 중보기도, 그리고 강

의로 이어졌고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는 조별 모임 시

간을 끝으로 모임을 마쳤다. 여러 선교사님들, 목사님

들, 그리고 간사님들이 오셔서 선교지의 간증들과 함

께 미전도 종족과 전문인 선교, 한국학과 한국 교회사,

이슬람의 역사와 이해, 중보기도와 영적 전쟁, 선교 명

령과 소명, 단기 선교의 중요성, 미션 스피릿과 BTJ 선

교 운동 등에 대해서 강의해 주셨고, 카스피/카프카스

창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종족들에 대해서 소개

하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10월 6일에는 김원

기 목사님께서 교회론 강의를 해주셨다. 지난 11월 21

일에는 한마음 청년부를 대상으로 박바울 선교사님을

모시고 ‘비전’이라는 주제로 선교 집회를 가졌다.

비전 스쿨이 열리는 같은 시간에 위층 교실에선 9

명의 어린이가 참여한 가운데 어린이 비전 스쿨이 열

렸다. 어린이 비전 스쿨에서도 함께 예배하며 부모님

들이 그날 배우는 내용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함께 배우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졸업과 함께 모든 졸업생들이 마음속에 한 종족을

품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그 종족을 위하여 중보하며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되어 휄로쉽 교회 안에 선교 부흥의 역사가 있

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휄로쉽 교회를

통하여 새롭게 하실 일들을 기대합니다. 이 지면을 통

해 이번 비전 스쿨 졸업생들의 간증 일부분을 함께 나

눕니다 (존칭 생략).

이경은: 먼 거리에서 오느라 힘들었지만 그 만큼 은

혜도 컸습니다. 이제 저희 부부는 막장(?) 선교를 갈

것입니다.

신재욱: 지금까지는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명령보

다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비전 스쿨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목표

와 하나님이 어떻게 세계를 경영해 가시는지에 대해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가 그리스도

인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

지만 이것들이 내 안에만 머무를 때 하

나님 나라의 성장은 멈추게 됨을 깨달았

습니다. 비전 스쿨을 통해서 신실한 신

앙인을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바

라보고, 지상 명령 성취에 자신들의 삶

을 던진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

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그리 순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

시는 담대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서 저와 제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기쁘

게 살아가는 것도 원하시지만, 아직 구

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복음으로 인한 기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글, 정리- 유종우

오픈 강의 예배시간

33

쁨을 우리와 똑같이 누리기를 원하신다

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 가정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든지 복

음을 전하는 것을 위해 담대히 나아갈

것을, 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해 우리

의 삶을 던질 수 있기를 원한다는 마음

을 주셨습니다.

노준석: 솔직히 뒤돌아보았을 때 하

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

해서 했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왔음을 깨닫게 해주

셨습니다. 이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지

금까지 부르심에 대해서, 또 삶의 진로

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딱 어떤 길을 정

해주시길 원했는데 선교사님들의 강의

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면

하는 거지 특별한 부르심이 왜 필요하

냐는 말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

르심이 없다는 말이 핑계로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김재경: 한국인으로 세계 복음화의 완성을 위해서

어떻게 참여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이름 없이 순

교의 피를 흘렀던 수많은 선교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

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경애: 건강과 재정이 많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아

는 분들의 권유로 비전 스쿨을 듣게 되었다. 비전 스쿨

은 선교에 대한 나의 틀에 박힌 고정 관념을 깼습니다.

선택된 일부 사람들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선교할 수 있다

는 말에 ‘나도 선교를 할 수 있구나’하는 마음을 가지

게 되면서 선교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

다. 비전 스쿨에 와서 이 지구상에 하나님께서 우리들

과 똑같이 사랑하시는, 들어보지도 못한 너무나도 많

은 종족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프가니

스탄을 품고 그 종족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날까지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오지니: 비전 스쿨을 듣기 전까지는 선교는 일부 소

명 받은 사람들,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

각했는데, 비전 스쿨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지상 명령

에 따라 선교는 그리스도인이면 다 해야 한다는 중요

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열방을 향한 중보기도

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선교사님의 강의가 기억에

많이 남고, 제가 품은 아제르바이잔을 위해서 계속해

서 기도할 것입니다.

황영선: 한 번은 꼭 들어야할 것 같아서 등록하게

되었는데, 정말 신선했던 것은 선교사님들이 하나 같

이 젊고 열정이 넘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나이에

나는 무엇을 했을까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고, 섬기는

간사님들의 열정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비전 스쿨을

듣기 전 까지는 선교사님들이란 부르심을 받은 분들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사역을 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강의들을 들으며 나의 단

기 선교를 통하여 불러주시는 곳에서 기도하고 예배하

며 나아갈 때 공중 권세 잡은 어둠의 영들이 물러가고,

그곳에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 많은 것

들을 배우고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기에

비전 스쿨을 듣지 못하신 분들 모두에게 꼭 들어보라

고 권하고 싶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개근 졸업: 김경애, 김재경, 방인선, 신재욱, 이경은, 이

양희, 이영미, 이혜지, 장경희, 정선주, 황영선 (11명)

일반 졸업: 김경자, 김은혜, 김정실, 노영경, 노준석, 박

소담, 오지니, 유영연, 이대훈, 이정실, 장대창, 한기선,

홍재현 (13명)

조건부 졸업: 김다니엘, 김도숙, 김미리, 박경희, 백인

교, 장미진, 조복희 (7명)

오픈 강의 때 말씀 전하시는 김언약 선교사님

34

죽음을 준비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한 번쯤 죽음을 준비

하는 마음으로 삶을 생각하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져요. ‘웰다잉’이 ‘웰빙’으로 이어지는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당장 내일 죽을 거라고 생

각한다면 누가 오늘을 헛되이 보내겠습니까? 역설적

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면 희망이 보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남기는 말을 하루하루 일기 쓰듯이

임종노트에 쓰면 그것이 바로 나의 유언장이고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정말 죽기 전에 쓰는 유언장이 아닌 하

루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소중

한 유산이 되는 거죠. 임종노트라고 해서 꼭 죽음을 떠

올리는 게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

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욕심과 탐욕,

집착이 만병의 근원임을 깨달은 건 그곳에서 죽음을

준비하면서이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죽

음은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이 되었어요. 병원 침대

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며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가 인식한 죽음의 전부죠.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본인은 물론 남은 사람을

배려하는 여유를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스스로

죽음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주변 사람들을 위한 배려

가 있을 때 그것이 품위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오랜 명

언은 알고 있지만 현재 자신이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레이디경향

2009년 8월호에서 발췌)

신영기 권사님(신상욱 집사 모친)은 생전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영정 사진을 찍고, 몇

권에 걸쳐 맥체인 성경읽기를 읽고 노트에 기록을 하

며 남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람 있게 생애를 깔끔

하게 정리하셨다. 입관 시 입을 옷, 오래 읽어 겉장이

낡은 성경책을 보자기에 곱게 담았다. 생전에 즐겨 불

렀기에 예배에 교우들이 불러주기를 바라던 곡을 적어

놓고, 고별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에게 저녁 시간에 오

느라 배가 고플 테니 준비하면 좋겠다고 먹을 음식 메

뉴까지 적어놓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살아서 준비하는 죽음 글 - 이연일

아침에 일어나 맑은 하늘을 보고 호흡을 하는 것은

또 새로운 하루를 맞았음을 의미한다. 살면서 늘 맑은

하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름 낀 날도, 비 오는 날도,

안개 자욱한 날도, 눈 오는 날도 보지만 대다수의 날은

맑다. 특히 워싱톤 지역의 날은 그렇고 더욱이 11월의

하늘은 청아하고 푸르러서 더 가깝다. 그러나 인생이

어찌 매일 맑기만 할 수 있을까? 자식으로 인해 속상하

고, 돈 걱정으로 마음 아프고, 서로의 관계에서 매끄럽

지 못해 오는 불미스러운 일,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움이 앞서는 괴로움,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을 알지만 그 사랑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사랑

하고 싶지 않는 마음, 반대로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임

을 알면서 앞서가는 나의 이성을 부끄럽게 하는 마음,

곤고한 육신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몸 등등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떠한 마음의 상태이든 이렇게 살아있을

때 우리는 다가 올 죽음을 예비해야 건강한 죽음을 맞

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정리할 것을 정리

하여 자식들이 버릴 것인가, 간직할 것인가로 곤란하

지 않게 하고 내가 생전에 나눌 것은 나눠주어 급작스

럽게 일이 닥치더라도 황망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지요. 최근 주위에서 예상했던 대로 또는 예상치

못하게 상을 당하신 분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살아있는

우리들이 준비해야하는 것을 적어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게 마련이에요. 이건 아

픈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생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의 사람들이 자신과 죽음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싶어

해요. 젊은 사람일수록 죽음을 생각하기를 더욱 거부

하고요.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많

아졌어요. 죽음이 노인이나 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잘 죽는 게 무엇

이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

정한 의미의 ‘웰다잉(Well-dying)’은 자신이 누구인지

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웰다잉을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로부터 왔는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생

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삶을 생각하지 않고는

35

나의 진정한 친구이며, 안사돈인 신영기 권사님께

우리의 만남은 벌써 32년이 훌쩍 넘었군요. 1977년 낙엽이 떨어지

던 늦은 가을, 교회에서의 만남을 인연으로 미국 이민 생활의 고달픈

생활을 같은 직장, 같은 교회에서 그리고 신앙으로 끈을 맺어 서로 의

지하고 지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땅에서 이별이라니 가슴이 아

픕니다. 오랜 세월동안 미래의 좋은 두 자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

더니 우리 주님께서 나의 친구, 신영기 권사님께 믿음이 좋고 착한 두

며느리를 허락하시고 그들을 통해 6명의 손자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경하며 사랑하고 사촌들 간에 우애가 대단하다

고 자랑하시기에 시간이 부족하셨는데. 우리는 진정한 좋은 친구였습

니다. 그러나 사돈이기에 서로 곤란할 때도 있었지요. 당신의 큰 아들 신상윤 목사와 나의 가장 소중한 큰

딸 신경순 사모가 결혼해서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딸이 남편을 위해 직장생활하며 신

학공부와 박사학위까지 끝마치게 하고, 20여 년간 목회자의 아내로 고생할 때 나의 딸만 아닌 당신의

며느리를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당신의 큰 아들 내외가 텍사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이곳

교회에 부임할 때 같이 사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깐 목회자 가족의 길이 어렵고 아들 내외가 힘

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영원한 친구 그리고 기도의 동반자도 떠나버렸으니 나의 마음은 무척 아프다오.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특히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도와

주곤 했는데. 큰 아들이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목회할 때 늘 일찍 일어나서 교회당을 청소하며 온

교인들을 위해 정성으로 음식 만들어 기쁨으로 나와 함께 봉사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큰 아들 내외가

담임목사에서 미 남침례교단의 선교사로 임명받고 파송되어 나와 함께 휄로쉽교회로 오게 되었지요. 나와 함께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다가 일 년 전 암으로 진단된 후 투병 중에도 열심히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나와 함께 한국과 미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특별히 목회자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암으로 괴

로워하고 고통 속에 있었던 친구를 생각하니 나의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는

영광의 면류관만 기다리는 주님의 품으로 갔으니 그것을 위로 삼고 앞으로 만남을 기다리며 편히 쉬세

요. 오이코스 구성원들이 함께 기도하고 마지막 시간까지 곁에 있어주셨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에게 하나뿐인 가장 소중하고 하나뿐인 친구 백형회 드림

다음은 신영기 권사가 두 자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두 자부들에게

우리 집안에 와서 고생 많이 한다. 항상 죄스럽다 그러나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다. 부디 현숙

하고 지혜로운 여인이 되어라. 그리고 항상 겸손하고 자만하지 말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신다. 자녀

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우리의 손자 손녀들 (은혜, 지혜, 영광, 현철, 미혜,

성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 받으며, 떡 반죽이 넘치면 큰 나무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배우자들은 신앙 좋은 가정과 성실한 사람에게

주고 들여오기를 바란다. 형제 우애 있기를 바란다.

고 신영기 권사

고 신영기 권사의 고별예배에서 낭독되었던 추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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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나일강이여, 원하라

너무 아름다운 호텔에서 멋진 식사와 어우

러진 분위기를 만끽하고 아침 예배로 모 다.

호텔 측은 성지순례 온 손님들에게 손님으로서

는 좋지만 기독교인으로서는 과히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미팅 룸을 빌려준다는 전날의 약속과

는 달리, 우리에게 전날 ‘커피숍 겸 바’로 쓰

던 장소를 우리에게 빌려준다. 일정상으로는 내일이 마지막이지만, 새벽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관계로 오늘 아

침 예배와 나눔의 시간으로 모 다. 모두가 가

출애굽의 발자취를 따라서 (끝)

글 - 이연일

대 피라미드 앞에서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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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짐을 내려놓

아야겠다는 분, 나의 성지순례는 밟은 땅, 현지의 소

식이 아니라 언제까지 함께 지내야 할 주위의 사람이

라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는 분, 등등. 참으로 다양

한 각도에서 각각 나름대로의 소망과 다짐을 나누었

다. 오늘의 첫 일정은 이집트 박물관을 방문으로 버스

에 오른다. 카이로에 들어서면서 제일 처음 받았던

인상은 그들만의 교통 체계 다. 어떤 곳은 아예 차

선이 없고, 차선이 있어도 유명무실이었다. 때로는

중앙선의 개념도 없어 보인다. 말 그대로 틈만 보이

면 들이대고 끼어든다. 복잡한 사거리임에도 불구하

고 신호등이 없다. 눈치껏 알아서 끼어들고 건너가는

분위기이다. 때로는 경찰이 있기도 하지만 없는 경우

도 허다하다. 경찰 앞에서 마음대로 유턴을 하기도

하며, 경찰이 멈추라고 손짓을 하여도 멋지게 피해

슴으로 잔잔하게 찬양을 하며 소그룹으로 모여 얘

기를 나눈다. 나에게 있어서 성지순례는 무엇이었고,

무엇을 남겼나?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

는 현실을 보며 기도하는 분, 본의 아닌 사고로 많은

분들에게 불편을 끼쳐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하고

고맙다며 다시 한 번 재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

지기를 바란다는 분, 막막하게 펼쳐지는 사막 가운

데도 어딘가에는 끝이 있음을 보고 지금 내가 당하

고 있는 고난도 어디에선가 기쁨으로 연결될 것이

라는 기대를 안고 돌아간다는 분, 헤어짐으로 힘들

었던 시간을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모두 내려놓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용기를 얻어 살 것이

라는 분, 성지순례의 장소가 너무 상업화된 모습이

안타까워 슬프다는 분, 대추야자 열매와 올리브 열

매를 공급하시며 그것만 있으면 최소한의 삶을 살

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섬세함을 보고

카이로의 교통 문화 (위 왼쪽) 차선의 개념이 별로 없는 관계로 사거리에서는 특히나 끼어들기가 심하다. (위 오른쪽) 차뿐만 아니

라 사람들도 어디서나 자유스럽게 길을 건넌다. (아래 왼쪽) 신호등이 거의 없지만, 있다 해도 작동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

래 오른쪽) 그래서인지 차들마다 접촉사고의 흔적이 쉽게 발견되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접촉사고 정도는 ‘알라’의 뜻으로 받아들이

고 가볍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조금 엿보게 해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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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가는 차들도 비일비재하다.

간혹 신호등이 있지만, 작동되는 신호등은 전혀 없다. 차들

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 또한 어디서나 자유스럽게 길을

건넌다. 사람은 알아서 차를 피해야 하고, 차는 알아서 사람을

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전체의 교통은 알아서

움직여간다. 별로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면 어떨까? 흥미로운 것은 가벼운

접촉사고의 경우 싸우기는커녕 차에서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고가 난 것도 ‘알라’의 뜻이기에 각자가 알아

서 자신의 차를 고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비싼 차를 소유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을 도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답이라고 한다.

비록 한 단면이지만,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조금 엿보게

해주는 부분이다.

카이로에서 받았던 두 번째 인상은 골목골목마다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 사원이었다. 둥그런 지붕뿐만 아니라 그들의 특

유한 초생달 탑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때만 되면 이슬람 사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회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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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그들의 기도 방송이 울려퍼졌다. 이집트 박물관 입장 시 카메라 휴대가 허락되지 않기에 우리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맡긴 뒤 대략의 보안검색

을 받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진귀한,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 유물들이 특별한 장치도

없이, 누군가의 보살핌도 없이, 자연스럽게 내보여진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품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모양의 미이라, 석조물들이 있다. 너무 많은 유품이 너무 좁은 공간에 있기에 하나씩 섬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안

타깝다.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마이크를 사용하지 못하기에 육성으로 듣는데, 워낙 가이드가

많은지라 귀를 가까이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놓치기 쉽다. 화려했을 파라오의 생을 그려보며 현대 미술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3000년 전의 작품을 감상한다. 그런 조

상의 능력은 어디로 가고 지금 이집트의 삶은 어떠한가. 한때 기독교인이 80% 으나 정부의 핍박이 점차 거세

져 지금은 5%미만이고 그나마 하위 수준의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집트의 그리스도인을 ‘콥틱’ 크리스천

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보장되는 직업을 갖지 못하며 하루 1500원 정도

로 살아야 하는 삶이니 오죽하겠는가.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란 쓰레기 수거뿐

이란다. 고되고 지저분한 직업인 관계

로 일반인들은 기피하는 직업이라 그나

마 기독교인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받

는 보수도 적어, 쓰레기에서 쓸 만한 물

건을 재활용하고 때로는 먹는 음식도

쓰레기에서 회수해 먹는다고 한다. 그

래서 병에 걸리는 경우도 허다한데, 기

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의 혜택

도 없어 아파도 의사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기에

비록 쓰레기를 치우고 풍성한 밥상이

카이로에 위치하고 있는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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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지라도 기도하며 살아간다.

다음은 ‘올드 카이로’로 이동한다. 이곳은 이집트 기독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무알라카’ 교회가 있는데 역

대 콥트 교황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외에도 성 조지 교회

를 비롯한 여러 교회들이 모여 있는데 우리 일행은 그 중 하

나인 ‘아부사르가 교회’를 방문한다. 좁은 골목길을 통해 여

러 교회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은 골목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관계로 더 좁아 보인다. ‘아부사르가 교

회’는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피난한 작은 동굴에 세운 교회로 ‘예수님 피난교회’인

셈이다. 사진 촬 이 금지된 곳이라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올드 카이로’ 길을 걷는데 어린 아이 몇 명과 청

년 한 명이 다가와 한국말로 “볼펜 주세요” 하는 것이다. 이

집트에서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몰려와 물

건을 팔기에 바쁘다. 그런데 무슨 물건을 사라는 것도 아니

고, 왜 갑자기 볼펜인가?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곳에서는 한

국의 문구류를 세계 최고로 여긴다고 한다. 이집트 기독교인들을 향한 차별대우로 인해 왠지 속상한 마

음을 누르고, 드디어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보고 막연히

동경하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러 간다. 그 길고 긴

풍상의 세월을 겪으며 피라미드를 쌓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

이었을까, 하나도 아닌 둘도 아닌 셋도 아닌 그 많은 피라미

드를 높이 쌓으며 말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그것을 쌓는 동안 그들은 행복했을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피라미드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옆에 같은 모양의 작은 묘는 개방이 되어 들어

갈 수 있었다. 엄청난 규모에 걸맞게 내부는 얼마나 화려할까? 하는 기대를 하고 고개 숙이고 등 굽히고 들어가

니 기대와는 달리 그저 커다란, 그러나 다듬어진 돌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 편에 빛이 들어오고 통

풍이 될 수 있게 틈을 준 섬세함이 보인다.

“올드 카이로’ 는 이집트 기독교의 중심지이다. (위) 작은 골목길을 통해

여러 교회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골목길에는 기념품 판매들로 붐비기도

한다. (왼쪽 위) 교회들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중간) ‘아부사르가 교회’

의 입구. (왼쪽 아래) ‘아부사르가 교회’ 내부.

41

피라미드에 이어 스핑크스를 관람하려 이동하는데 오후 3시에 문을 닫는 관계로 서둘렀다. 하지만 이미 시간

은 3시에 임박해 있었고, 우리는 제대로 감상할 시간도 없이 단체사진 하나 덜렁 찍고 나오기 바빴다. 이집트에서 마지막 밤을 맞는다. 잔잔한 나일강 위에 유유히 떠있는 다양한 유람선을 보는 것도 이제 몇 시간

후면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12일간의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성

지 순례를 마감한다.

3월 6일 밤잠도 설치고, 낮잠도 설치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그보다 이집트에서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자는 마음이

대동소이하다. 넓은 호텔 방을 다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나오는 아쉬움도 있고, 이제 몇 시간 후면 다시 삶의 현

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도 있고, 뜻 깊은 성지순례가 마감되었다는 짠한 마음도 있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

고 인생은 흐르는 것임을 아는 나이이기에 일행 모두 웃음 속에 짐을 정리한다. 떠날 준비를 갖춘 가방들이 방문 앞에 나란히 서 있고, 미처 식당 문을 열기 전에 떠나는 우리를 위하여 호텔

에서는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식사를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미리 가이드에게 전달을 한다. 손이 모자라도록

받아든 가이드는 손은 무겁지만 웃는다. 그리고 우리 단원의 마지막 사람이 출국장으로 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

며 또 웃는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이별을 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장으로 미리 와서 대기한다. 터무니 없이

비싼 커피를 마시는 대신 그저 지나가는 냄새로 만족하고 우리는 나름대로의 지난날을 더듬어본다. 몸은 비록 우리의 생활 터전과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지만 그간 보고 겪은 12일간은 지금까지 지낸 여

느 12일과는 분명 다르게 조명되어 앞으로의 시간 속에 묻어나리라 믿는다. 결코 짧지 않은 일정이었음에도 시

간을 함께 해 주신 김원기 목사님, 12년간의 선교지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새로운 기쁨을 주었다며 모두에게 감

사의 인사를 전하는 김숭봉, 김 선 선교사님 내외분,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고 모든 표정을 우리의 눈에 담아

주느라 수고한 오장석 집사님, 또 버스 안에서의 지루함을 달래주고자 간식을 제공한 분, 적절한 때에 이런 저런

모습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함께 동행한 30명은 즐겁게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

기에 다시 갈 언젠가의 그날을 꿈 꾸어본다.

42

성경 암송 대회

지난 10월 25일에 새 학년도 첫 성경 암송 대회가

열렸습니다. 7개의 성경구절(4, 5학년은 14개)과 주기

도문을 암송하고, 7개의 성경 진리에 대답하는 것을

심사했는데 전반적으로 저조한 결과를 거두어 아이들

이 성경 암송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 했

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부모님

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요구됩니다. 신앙생활은

자녀들이 어릴 때 생활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만 사춘

기 때에도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성장

할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 좋은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아이들의 평생을 두고 기억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을 가지라 (엡 6:17)” 귀하고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마

귀를 대적할 무기를 항시 몸에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

십시오.

다음은 성경 암송 대회 수상자 명단이며, 괄호 안은

부모님 이름입니다.

1등: Jiyoon Choi (100%, 3학년, 최종태)

Jiwoo Park (91.6%, 5학년, 박근숙)

Christian Kim (90.8%, 2학년, 김정수)

Rachel Son (87.5%, 1학년, 손승환)

2등: Daniel Chang (70.8%, 5학년, 장승민)

반평균은 5학년 69%, 2학년 53%, 3학년 50%, 1학

년 45% 이며, 4학년은 최고점이 43% 밖에 되지 않아

수상자가 없었습니다. 다음 성경 암송 대회는 12월27

일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님의 말씀을 암송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오퍼레이션 크리스마스 차일

드 (Operation Christmas

Child)

해 마 다 11 월 중 순 께

‘Samaritan’s Purse’에서

‘Operation Christmas Child’라

는 사역을 행하고 있는데, 올해

글 - 신율미

는 본 교회 영어 회중에서 신발상자 선물 수집 장소로

위탁을 받고 대대적으로 참여를 장려했습니다. 이 사

역은 제 3세계의 크리스마스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선

물이 가득 들은 신발 상자를 전해주면서 예수님의 사

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올해 초등부에서는 아이들로

하여금 불우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위하는

시간을 갖고, 선물 상자를 준비할 것을 적극 장려했습

니다. 약 40명의 아이들이 신발상자를 가지고 갔고,

29개의 신발 상자 선물이 수집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어려운 사역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또래의 어려운 아이들을 측은하게 여기

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신발 상자를 가지고 갔

어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아이들이 상자에 선물을

채워서 가지고 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자발적으로 하려고 할 때, 부모님들이 적극적

으로 지원을 해 주어야 긍정적인 성과를 보게 됩니다.

다가오는 행사

커버넌트 빌리지 위문: 올해는 오후반에서 크리스

마스의 즐거운 소식을 전하러, 12월 20일에 커버넌트

빌리지에 사는 주민들을 방문합니다.

어와나(Awana) 그랑프리: 본 교회 처음으로 어와

나(Awana) 그랑프리를 개최합니다. 일시는 2010년 2

월 7일 오후 4시 ‐ 7시입니다. 그랑프리란 작은 소나무

조각으로 경주용 차를 만들어 경주하는 행사로 참가

대상은 유치원생 이상 초,중,고등학생 및 부모입니다.

경주용 차 제작을 위하여 작업장이 1월에 네 차례 마

련됩니다.

그랑프리 경주차 제작 작업장 일정: 1/13, 1/20,

1/27, 2/3/2010, 매수요일 저녁 7시‐8:30

** 외부인 환영! **

문의: 신율미 집사 (301‐300‐7063)

12월 가 정 개 인

1 대상29 벧후3 미6 눅15

2 대하1 요일1 7 16

3 2 2 나1 17

4 3,4 3 2 18

5 5,6:1-11 4 3 19

6 6:12-42 5 합1 20

7 7 요이1 2 21

8 8 요삼1 3 22

9 9 유1 습1 23

10 10 계1 2 24

11 11,12 2 3 요1

12 13 3 학1 2

13 14,15 4 2 3

14 16 5 슥1 4

15 17 6 2 5

16 18 7 3 6

17 19,20 8 4 7

18 21 9 5 8

19 22,23 10 6 9

20 24 11 7 10

21 25 12 8 11

22 26 13 9 12

23 27,28 14 10 13

24 29 15 11 14

25 30 16 12-13:1 15

26 31 17 -13:9 16

27 32 18 14 17

28 33 19 말1 18

29 34 20 2 19

30 35 21 3 20

31 36 22 4 21

◆ 12월 24일 (목)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MD/VA/EC)

◆ 12월 25일 (금)

크리스마스 아침 예배 (VA/EC)

◆ 12월 27일 (일) - 30일 (수)

중고등부 겨울수양회 (MD/VA)

◆ 12월 31일 (목)

오이코스 축제 (VA)

송구영신 예배 (MD/VA)

2009 미스 휄로쉽 선발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