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역사와 미래 - 물리학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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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APRIL 2014 38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역사와 미래 - 물리학자는 가라! 장 호 건 저자약력 장호건 부센터장은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재야학회인 성남물리학 회에서 물리를 접한 후 KAIST 물리학과에서 플라즈마 물리학 이론을 전공하였 . 이후 KSTAR 장치의 물리학적 설계 계산과 핵융합 플라즈마의 거시적 안정 성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2010년 이후 국가핵융합연구소 WCI 핵융 합이론센터 부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 (Fusion Plasma Physics) 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연구 분야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대개는 핵융합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왠지 꺼림칙하기도 하고 혹은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한 ) 단어와 플라즈마 라는 ( 필자의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불아줌마 혹은 풀리지마 라고 불렀다 ) 어딘 가 비현실적 단어의 조합이 주는 미묘한 어감 때문일 것이다 . 더구나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까지 첨가되면 듣는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된다. 많은 경우 , 마치 프랑스어에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 것처럼, 뒤에 나오는 플라즈마 물리학은 무시되고 핵융합이라는, 우리말로 발음하기 도 힘든 이 단어에 가장 큰 의미가 부여된다 . 사실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자의 관심사는 핵융합보다는 플라즈마라는 매우 뜨겁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유체를 커다란 자동차 타이어 모양의 그릇에 오랫동안 가두어 두기 위한 조건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최대한의 물고 기 수확량을 얻으려는 양식업자의 이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핵융합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만 해도 핵융 합은 생소한 과학 용어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또한 현재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핵융합 전담 연구기관이 생기면서 보편적 과학 용어의 하나로 우리 사회에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필자의 딸 친구 감XX양과 같이 핵융합 연구를 꿈으로 하는 청소년도 생겨나고 있다! 핵융합 플 라즈마 연구와 관련된 오해가 사회에 만연된 데는 이와 관련된 제 대로 된 대중과학서의 부재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스힐 출판사에서 나온 핵융합-우주의 에 너지” [Garry McKraken, Peter Stott , 유창모, 윤진희, 차동우 ]는 우리글로 번역된 최초의 핵융합 과학 대중서로서 환영하는 바이다. 독자에게 경고를 하나 하자면 본 서적을 그 유명한 Brian Greene-박병철 콤비의 우주의 구조엘리건트 유니버스와는 감히 비교하지 말아달라는 점이다. 핵융합이라는 분야의 특징 때 문이기도 할 것이고 저자의 필력이나 상상력 차이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Greene- 박 듀오의 책에 비해 조금(?) 딱딱한 편이 . 그래도 매일 방정식이나 컴퓨터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씨름하 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읽힌다. 이 책과 더불어 핵 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역사와 그 중심으로 떠나보자. 핵융합이 언제 되요?” 직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 사실 핵융합은 137억 년 전에 우주가 태어난 이후로 별에서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 우리 태양과 밤하 늘의 별들이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에너지를 낼 수 있는가는 20 세기 초 물리학자가 가진 큰 의문 중의 하나였다. 예를 들면, 태양은 지금까지 약 45 억 년 동안 약 4 조 와트의 비율로 에너지를 지속적 으로 방출하고 있다 . 1920 년대 당시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로 손꼽 히던 에딩턴은 ( 빛이 태양 근처를 지날 때 휘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으로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을 실험적으로 입증 한 사람이다 )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2 에 근거하여 태양 의 에너지원이 수소의 핵융합 반응이라는 추론을 처음으로 내놓았 [28페이지]. 이후 1930년대 50년대를 거치면서 별에서 그리 고 초신성 폭발 등 보다 극한 환경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는 핵물리학적 연구는 거의 완성단 계에 이른다 . 따라서 가벼운 원소의 핵융합 과정은 사실 거의 완결 된 학문이다. , 어떤 의미로는 그다지 물리학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 점이 중요하다) 문제가 아니다. 가벼운 원소의 핵융합과 관련하여 진정한 도전적 문제는 이러한 열핵융합 반응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 가능한 형태로 지구상에서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은 플라즈마 물리학의 연구 영역에 속한다. 그러면 태양의 에너지원인 핵융합 에너지를 어떻게 지구상에서 인간이 이용할 수 있을까? 핵에너지 이용의 역사가 늘 파괴적인 것부터 출발하듯이, 인류가 시연한 지구상 최초의 핵융합 반응은 유감스럽게도 수소폭탄 폭발이다. 수소폭탄은 핵융합 반응에 필 요한 고온을 얻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방아쇠로 사용한다. 이 최초 의 핵융합 반응에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에 영감을 얻은 미국, 소련, 그리고 영국의 몇몇 과학자들은 핵융합 에너지의 평화적 이 용을 위한 제어핵융합반응 연구에 착수한다. 지구상에서 제어 핵 융합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밀도를 태양처럼 크게 할 수 없 으므로) 태양 내부보다 약 10배 정도 높은 초고온이 요구된다. 러한 초고온 상태에서 핵융합 연료들은 물질의 제 4 상태라고 불 리는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또한 지구상의 한정된 공간 내에서 핵융합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플라즈마를 충분히 오랜 시간 가두 어 두어야 한다. 이정도 되는 초고온에 견디는 물질은 당연히 지 구상에 없다. 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플라즈마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는 태양 내부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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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APRIL 201 438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역사와 미래 - 물리학자는 가라!

장 호 건

저자약력

장호건 부센터장은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재야학회인 성남물리학회에서 물리를 접한 후 KAIST 물리학과에서 플라즈마 물리학 이론을 전공하였다. 이후 KSTAR 장치의 물리학적 설계 계산과 핵융합 플라즈마의 거시적 안정성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2010년 이후 국가핵융합연구소 WCI 핵융합이론센터 부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Fusion Plasma Physics)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연구 분야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대개는 “핵융합”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왠지 꺼림칙하기도 하고

혹은 뭔가 비 을 감추고 있는 듯한) 단어와 “플라즈마”라는 (필자의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불아줌마” 혹은 “풀리지마”라고 불렀다) 어딘

가 비현실적 단어의 조합이 주는 미묘한 어감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까지 첨가되면 듣는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된다. 많은 경우, 마치

프랑스어에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 것처럼, 뒤에 나오는

“플라즈마 물리학”은 무시되고 “핵융합”이라는, 우리말로 발음하기

도 힘든 이 단어에 가장 큰 의미가 부여된다. 사실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자의 관심사는 “핵융합”보다는 “플라즈마”라는 매우 뜨겁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유체를 커다란 자동차 타이어 모양의 그릇에

오랫동안 가두어 두기 위한 조건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최대한의 물고

기 수확량을 얻으려는 양식업자의 이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핵융합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만 해도 핵융

합은 생소한 과학 용어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또한 현재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핵융합 전담 연구기관이

생기면서 보편적 과학 용어의 하나로 우리 사회에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필자의 딸 친구 감XX양과 같이

핵융합 연구를 꿈으로 하는 청소년도 생겨나고 있다 ! 핵융합 플

라즈마 연구와 관련된 오해가 사회에 만연된 데는 이와 관련된 제

대로 된 대중과학서의 부재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스힐 출판사에서 나온 “핵융합-우주의 에

너지” [Garry McKraken, Peter Stott 저, 유창모, 윤진희, 차동우

역]는 우리글로 번역된 최초의 핵융합 과학 대중서로서 환영하는

바이다. 독자에게 경고를 하나 하자면 본 서적을 그 유명한 Brian

Greene-박병철 콤비의 “우주의 구조”나 “엘리건트 유니버스”와는

감히 비교하지 말아달라는 점이다. 핵융합이라는 분야의 특징 때

문이기도 할 것이고 저자의 필력이나 상상력 차이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Greene-박 듀오의 책에 비해 조금(?) 딱딱한 편이

다. 그래도 매일 방정식이나 컴퓨터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씨름하

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읽힌다. 이 책과 더불어 핵

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역사와 그 중심으로 떠나보자.

“핵융합이 언제 되요?” 직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다. 사실 핵융합은 137억 년 전에 우주가 태어난 이후로 별에서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우리 태양과 밤하

늘의 별들이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에너지를 낼 수 있는가는 20세기

초 물리학자가 가진 큰 의문 중의 하나였다. 예를 들면, 태양은

지금까지 약 45억 년 동안 약 4조 와트의 비율로 에너지를 지속적

으로 방출하고 있다. 1920년대 당시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로 손꼽

히던 에딩턴은 (빛이 태양 근처를 지날 때 휘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으로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을 실험적으로 입증

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2에 근거하여 태양

의 에너지원이 수소의 핵융합 반응이라는 추론을 처음으로 내놓았

다 [28페이지]. 이후 1930년대 ‑ 50년대를 거치면서 별에서 그리

고 초신성 폭발 등 보다 극한 환경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는 핵물리학적 연구는 거의 완성단

계에 이른다. 따라서 가벼운 원소의 핵융합 과정은 사실 거의 완결

된 학문이다. 즉, 어떤 의미로는 그다지 물리학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 점이 중요하다) 문제가 아니다. 가벼운 원소의 핵융합과

관련하여 진정한 도전적 문제는 이러한 열핵융합 반응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 가능한 형태로 지구상에서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은 플라즈마 물리학의 연구 영역에 속한다.

그러면 태양의 에너지원인 핵융합 에너지를 어떻게 지구상에서

인간이 이용할 수 있을까? 핵에너지 이용의 역사가 늘 파괴적인

것부터 출발하듯이, 인류가 시연한 지구상 최초의 핵융합 반응은

유감스럽게도 수소폭탄 폭발이다. 수소폭탄은 핵융합 반응에 필

요한 고온을 얻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방아쇠로 사용한다. 이 최초

의 핵융합 반응에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에 영감을 얻은 미국,

소련, 그리고 영국의 몇몇 과학자들은 핵융합 에너지의 평화적 이

용을 위한 제어핵융합반응 연구에 착수한다. 지구상에서 제어 핵

융합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 도를 태양처럼 크게 할 수 없

으므로) 태양 내부보다 약 10배 정도 높은 초고온이 요구된다. 이

러한 초고온 상태에서 핵융합 연료들은 물질의 제 4 상태라고 불

리는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또한 지구상의 한정된 공간 내에서

핵융합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플라즈마를 충분히 오랜 시간 가두

어 두어야 한다. 이정도 되는 초고온에 견디는 물질은 당연히 지

구상에 없다. 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플라즈마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는 태양 내부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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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APRIL 201 4 39

좀 더 알아보자 (책의 3장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태양은 현재

수소 74 %, 헬륨 25 %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내부 온도는

대략 1500만 도 정도이고 이러한 초고온 상태에서는 수소 원자

를 구성하는 전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와 수소 원자핵과 전자들이

제멋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상태가 된다. 이를 플라즈마 상태

라고 한다. 수소에서 튀어 나온 전자의 숫자는 양성자의 숫자와

당연히 같아야 하므로 플라즈마는 전체적으로 전기적 중성을 띠

고 있다. 태양은 그 자체의 무지막지한 중력으로 이러한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만

물의 기원을 흙, 물, 불, 공기라고 했는데, 이는 참으로 至言인 듯

싶다. 20세기 초중반의 초창기 플라즈마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99

%가 플라즈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자부심으로 연구했을 터이지

만 현대 플라즈마 연구자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의 등장으로

전체 우주의 겨우 4.9 % 정도를 차지하는 조연으로 퇴락한 물질

을 연구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생업에 종사한다.

물리학의 역사에 보면 처음에 어려워 보이는 문제가 시간이 지남

에 따라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의외로 깨끗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명저 “부분과 전체”에는 20세기 초 양자역학

의 태동에서부터 실마리의 출현, 학설간의 충돌, 최종 해석에 이르

기까지의 사유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20세기 초 중반은

물리학 역사에서 드물게 보는 천재들의 시기였으므로 양자역학과

같은 난제가 좀 쉽게 풀린 감이 없지는 않다. 이와는 반대로 처음에

쉬워 보이는 문제가 결국에는 당대 최고의 천재과학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어려운 문제로 판명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유체의 난류 문제와 자기장을 이용한 고온

핵융합 플라즈마의 가둠일 것이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 난류 문제

가 바로 현재까지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로 남아있다. 초창기에 제어핵융합 아이디어를 떠올린 과학자는

플라즈마가 전기를 띤 알갱이인 점에 착안하여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를 가둘 것을 제안하였다. 자기장에서 하전입자는 그 주위

를 빙빙 돌면서 자기장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이는 마치 실에 꿰어

있는 구슬이 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하전입자

를 속박하는 자기장을 코일을 이용해서 도넛 형태로 만들면 플라즈

마가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따라서 가두는 용기벽을 때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소위 자장 폐핵융합(Magnetic

fusion)의 태동이다. 그 당시는 누구도 자장 폐 방식의 구현이 그

렇게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

핵융합 연구에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이다. 소련 토카막 핵융합 연구의 초대 리더격인 아시모비치 박사는

1960년대 MIT에서 수행한 유명한 강연에서 “핵융합은 사회가 그

것을 필요로 할 때 달성된다”라는 유명한 낙관론을 펼친 바 있다.

McKraken의 책은 자장 폐 핵융합 연구의 태동에서부터 처음

에 생각지 못했던 플라즈마의 거시적 불안정성 문제 발생 및 해

결, 각 장치의 기능, 토카막 장치의 태동에서부터 최근 프랑스에

건설되고 있는 거대한 ITER 장치에 이르기까지 핵융합 연구의 역

사와 기초적 과학 지식을 비교적 (?!)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박

스에서 다루고 있는 몇몇 기술적 내용과 몇 가지 방정식 등을 제

외하면 독자는 상대적으로 쉽게 핵융합 장치의 (관성 폐 핵융합

장치에 관한 대목은 필자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와 간단한

동작 원리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필자의 직업과 관련해서

책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내용 중에 현재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 연구의 최첨단 문제인 난류에 의하여 에너지가 자기장을 가

로질러 빠져나가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재 토카막 플라즈마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꼽으라면

단연코 난류에 의한 플라즈마 수송 현상에 대한 이해라 할 것이다.

사실, 난류 문제는 현재까지 물리적으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이

며 물리학 역사상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분야의 하나임이 밝혀졌다.

오죽하면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하이젠베르크 같은 천재 과학자도

죽어서 신에게 난류가 왜 생기는지 물어보겠다고 했으며 또 리처드

파인만 같은 대과학자도 자신이 우주의 방정식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난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실마리를 가지지 않고 있다고

고백했겠는가? 자기장에 갇힌 플라즈마에서 보이는 난류는 보통

유체의 난류와는 달리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의 난류로

나타나며 플라즈마 고유의 다양한 시공간 스케일에서 더욱 복잡한

형태로 구현된다. 어쩌면 물리학의 전통적 방식에 의한 이해가 어

려울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이 문제의 실제적

중요성은 이러한 난류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결국 핵융합 장치의

크기를 키우게 되고 (이는 장치 건설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핵융합 플라즈마 성능 예측의 불확실성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토카막 플라즈마의 에너지 가둠시간을 예측할 이

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ITER와 같은 새로운 장치를 지을

때 실험에 의한 경험법칙에 의존하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가능한 빠른 시기에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난류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무한대의 자유도를 갖는 비평형

적, 비선형적 복잡계라는 사실에 있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많은

물리학자가 그러하듯이 토카막 플라즈마 난류 현상을 연구하다보면

플라즈마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생명

체는 일정한 외부 환경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다. 토카막 플라즈마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벗어나면 ( 도, 온도, 전류로 주어지며 이를 운전제한

조건이라 한다. 페이지 172 참조]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플라즈마의

경우 사망이라 하지 않고 붕괴(Disruption)라 한다). 생존에 알맞은

환경 아래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온도/

도 기울기에 의해 미세 스케일의 불안정성이 계속 발현되고 이러한

불안정성에 의해 난류가 발생한다. 미세 난류는 비록 플라즈마를

죽이지는 않지만 에너지와 입자의 지속적 손실을 일으킨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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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서는 미세 난류가 서로 상호작용해서 갑자기 잘 조직화된

새로운 흐름(Flow)을 만들고 이로 인해 플라즈마는 극적인 형태로

변화 (즉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핵융합 플라즈마 난류와 거시적 구조 형성에 관해서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는 테마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이다. 자기조직화

라는 물리적 테마를 구현하는 동력학 과정으로 오르내리는 단어는

난류와 흐름의 피식자-포식자 방정식 (이는 생태학의 병참방정식

과 유사하다), 완화 과정(Relaxation Process), 상전이, 문턱

(Threshold) 등이다. 즉 일리야 프리고진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에

서 강조했던 비선형적 되먹임, 패턴 형성, 요동에 대한 민감성 등을

플라즈마 물리학자는 거의 매일 데이터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의 태동 이후 과학자들이 추구해왔던 전

통적 연구법은 마치 서양의학의 치료 방식과 유사한 면이 있다.

불안정성이 발견되면 일단 그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불안정성

제어나 제거를 위해 새로운 장치를 고안해서 핵융합 장치에 붙이거

나 아니면 아예 그러한 불안정성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바깥에서

자극을 가한다. 이러한 전통적 연구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제어해

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는 점에 있다. 복잡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

면서 이러한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

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이는 바로 플라즈마의 자기조직화

과정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떠한

물리적 상황에서 플라즈마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극적인 진화를 겪은 플라즈마

는 핵융합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따라서 자기조

직화 과정의 이해를 통해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제어를

최소한 줄이면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플라즈마가 생존하기에 가

장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프리고진의 말을 빌리면

플라즈마와의 대화를 통하여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주인공 병정개미 103683호

가 인간에게 밝힌 개미가 암을 정복한 방식과 유사하다. 즉 암세포

를 제거하려하지 말고 이와 대화해서 공존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필자가 속한 연구진은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최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전환이 핵융합 플라즈마 과학연구가 미래에 추구해야 할

혁신적인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 “핵융합 발전의 실현시기”라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몇 년

몇 월 몇 일에 된다고 믿습니다”와 같은 말은 과학적 낙관론이 아니

라 일종의 미신의 범주에 속하므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핵융합

이 언제 될까? 현재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리학자가 이

분야에서 더 이상 관심을 가지고 해결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때라

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 중 하나인 필자는 요즈음 토카막

플라즈마 물리 연구를 하는 재미가 점점 커지고 있다 !). 핵분열

발전의 예에서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핵분열 과정과 핵분열

로 운전 등은 흥미로운 공학적 문제일 수 있지만 물리학자는 거기서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핵융합에 있어 그 시기가 언제라고 무

자르듯이 예단할 수는 없다. 저명한 러시아 과학자로서 수소폭탄

연구책임자 중 하나로 참여하였던 유리 카리톤 박사는 “기술적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필요한 실용적 지식의 최소 10배의 기초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수소폭탄 제조에 적용된

그의 지론을 핵융합 발전에 대입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아직 과학→공학으로의 전환 시기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ITER 장치에서 태어날 진짜 “핵융합 플라즈마”의

생존 법칙과 진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성숙되었을 때, 비로소 핵융합

로에서의 플라즈마 과학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공학적

문제와 더불어 ITER가 가지는 과학적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라즈마 물리학자는 열심히 일할수록

직업 상실 확률이 높아지는 아주 불운한 환경에서 연구하는 사람이라

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밥줄을 놓지 않기 위해 일부러 태업을

할 정도로 똑똑한 플라즈마 과학자를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당면하고 있는 문제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들이 아무리 골머리를

썩여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핵융합의

실현 시기를 앞당기고 싶은 정책입안자와 국민들은 대학에 있는

물리 및 응용수학과 교수와 학생들에게 플라즈마 물리학 연구 전선에

과감히 뛰어들라고 독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핵융합

연구가 과학의 영역에서 공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날, 우리는 핵융

합 발전의 실현 시기에 대해 과학적 타당성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서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펼치고 싶다.

즉 현재는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궁극적 문제가 무엇이며 (자장

폐핵융합 플라즈마의 경우)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가능할 수 있겠다는

비전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낙관

론의 근거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10년 전만 해도 “무엇이

핵융합 과학의 끝일까”라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이정표를 세울

수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큰 진보라고 할 수 있다.

McKraken의 책이 핵융합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사회적 공감

대 형성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핵융합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과 국민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핵

융합 과학자들도 “그들만의 어두운 세계”에서 탈피해서 보다 참

신한 새로운 대중서 발간에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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