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한류로 - 한국콘텐츠진흥원 · 스시의 세계화 성공에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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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4 소명 한류로 명망의 한류에서 유 승 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프랑스와 K-Pop, 일본과 한식 지난달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교수를 잠시 만나게 되었는데, '외국인'과의 얘기가 늘 그렇 듯이, 대화가 끊기자 쉽게 이야기를 풀 수 있는 한류 얘기로 흘렀다. 내가 먼저 물었다. "싸이가 프랑스에서도 인기 많죠?" "인기 있죠. 그런데...그 인기가..." 그녀는 말 잇기를 꺼려하며 쭈뼛거린다. "왜요? 아닌가요?" "그게 아니고요. 싸이나 한국 아이돌이 프랑스에서 인기 있긴 하지만, 그건 10대들한테 만 그렇고. 아시잖아요. 프랑스의 식자층들에게 K-Pop이란 철없는 젊은 애들이 좋아하 는 정도의 수준이란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녀의 남편은 프랑스 국회에서 일하는 고급관료이자 '토착민'이라 우리가 흔히 듣지 못 하는 말을 듣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역풍이었다. 한국인 자존심에 나의 2013 월간 창조산업과 콘텐츠 + 09·10 32 한국콘텐츠진흥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4.0 Special Issue : 창조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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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4 소명의 한류로

명망의 한류에서

|유 승 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프랑스와 K-Pop, 일본과 한식

지난달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교수를 잠시 만나게 되었는데, '외국인'과의 얘기가 늘 그렇

듯이, 대화가 끊기자 쉽게 이야기를 풀 수 있는 한류 얘기로 흘렀다. 내가 먼저 물었다.

"싸이가 프랑스에서도 인기 많죠?"

"인기 있죠. 그런데...그 인기가..."

그녀는 말 잇기를 꺼려하며 쭈뼛거린다.

"왜요? 아닌가요?"

"그게 아니고요. 싸이나 한국 아이돌이 프랑스에서 인기 있긴 하지만, 그건 10대들한테

만 그렇고. 아시잖아요. 프랑스의 식자층들에게 K-Pop이란 철없는 젊은 애들이 좋아하

는 정도의 수준이란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녀의 남편은 프랑스 국회에서 일하는 고급관료이자 '토착민'이라 우리가 흔히 듣지 못

하는 말을 듣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역풍이었다. 한국인 자존심에 나의

2013월간 창조산업과 콘텐츠 + 09·10

32 한국콘텐츠진흥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4.0 Special Issue : 창조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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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는 반박 투로 변했다.

"대중문화란 게 다 그렇죠. 철없는 애들이 좋아하다보면 식자층도 듣게 되는 거죠. 소비

연구에 의하면 여론주도층, 식자층, 고학력층들 문화취향이란 잡식성이지 동질적이지

않아요. 그들이 순수한 고급문화만 향유한다는 건 옛날 얘기죠"

짧게 반박하려 했는데, 담소가 무슨 학술토론처럼 되어버렸다.

그 '담소 사건'이 있고 난 얼마 뒤 오랜만에 홍대에서 저녁 약속이 생겼다. 요즘 홍대 주

변 번화가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 임대료가 치솟아 상수역 쪽으로, 합정역 쪽으로 그

리고 산울림극장이 있는 다복길 쪽으로 상권이 퍼져가고 있다. 새로운 상권은 기존 다세

대주택을 개조하여 반지하와 1층을 트는 신개념의 건축디자인으로, 예쁘고 개성 있는 가

게와 카페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홍대 주변에서 소위 새롭게 뜨고 있는 '핫한 장소'라고 한

다. 거리를 걸으며 "오, 괜찮은데? 멋없는 다세대 벽돌주택이 이렇게 멋진 동네와 거리로

탈바꿈할 줄이야."

그런데 어둠이 깔리고 하나둘 가게, 식당, 카페마다 불이 켜지는데 여기가 서울인지 일

본 시부야 거리인지 알 길이 없다. 한국말보다 일본말 간판이 더 많고, 카페, 라면, 돈까

스, 소바, 교자집에 맥주까지 모두 일본풍의

식당으로 꽉 들어찼다. 점원들은 대부분 일

본식 의상에 일본식 인사법으로 손님을 맞

았다. 한국 관광을 온 중국인, 일본인에게

한국의 '문화중심'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색

할 정도다. 다복길 주변에서 한식당을 찾던

중년의 우리들은 한참을 헤매다 겨우 '담'이라는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테라스

풍경과 보리굴비를 멋지게 차려내는 한식당을 겨우 찾아냈다. 우경화로 치닫는 얄미운

일본에 우리는 열심히 방호막을 치고 있었는데, 그 사이 일본의 일상문화는 어느덧 우리

청년문화의 중심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일본문화를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그냥 그 이

유를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이유는 복잡한 듯 보여도 의외로 너무 간단했다. 한 일본 라면집에서 대학생 젊은이

들과 왜 일본음식이 좋은지 대화를 나눈 뒤였다. 일본음식은 차리기도 먹기도 편하고,

음식의 양도 가격도 적절하고 맛있다는 것이다. 가게 분위기도 좋단다. 그럼 우리음식

은? 찬이 많아 비싸고 또 싸면 뭔가 찜찜하단다. 쌀의 질도 별로여서 밥맛도 없고 차리

기도 먹기도 불편하단다. 말해보니 좋은 한식은 비싼 집 가야 그나마 먹을 만하고 우리

처럼 주머니 가벼운 청년들에겐 일본식이 딱 맞다는 거다. 한마디로 한식은 중년 컨셉이

라는 거다. 젊은이들은 편리함에, 맛에, 분위기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편리함, 맛, 분위기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일본풍 분위기가 결코 고급도 화려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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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뭘까. 작은 가게지만 그런 가게에 뭔가 아우라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 이유 말이다.

한류 헌팅

나는 지금과 같은 K-Pop 중심의 한류는 불행하게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스타야 탄탄한 스타양성시스템 속에서 계속 탄생하겠지만, 그것이 세

계적인 영향력을 갖추기에는 그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간다면, 홍콩의 홍류나 인도의 발리우드처럼 한때의 세계적 유행(fad)에 그칠 공산이 크

다. 세계인들이 저 먼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제작되는 ‘재밌는 문화’에 호기심 어린 관심

을 보내는 정도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적 열세 때문이다. 우리가 케이팝 연예인을 키운다고 키워봤자 스

타가 되거나 그 스타를 양성하는 인력의 수는, 3대 ‘대형기획사’의 핵심인력을 다 합쳐봤자

200명을 넘지 못한다. 이제 곧 중국이 따라 올 것이다. 그 수는 우리의 수십 배, 수백 배를

넘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연예인 양성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것이고, 아시아 문화산업은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춘추전국시대로 진입할 것이고, 사무라이의 ‘3승 1패 원칙’처럼, 프로

야구의 ‘4할 타자 소멸’처럼 그렇게 진화해갈 것이다. 진화에서는 큰 놈이 이기기 어렵다.

진화에 성공하는 자는 적응하는 자이지 강한 자가 아니다. 큰 놈은 순간 사라질 수도 있

다. 가장 몸집이 크고 성공한 놈은 다른 부족들에 의해 제거되기 쉽다. 이른바 ‘트로피

헌팅’이다. 큰 놈이 작은 놈과 공생하지 않으면 큰 놈은 트로피 헌팅으로 희생자가 될 가

능성이 높다. 한류가 거세지면 한류헌팅도 거세진다.

스시는 어떻게 세계인을 사로잡았나

스시의 세계화 성공에는 건강 트렌드, 소비의 고급화, 냉동운반기술의 발전 등 그 많

은 변수와 조건들이 있었겠지만 역시 기본은 요리장인들의 존재일 것이다. 스시하면 참

치고 참치가 스시의 대표가 된 이유는 ‘요시노스시혼텐’ 때문이었다. 요시노스시혼텐은

1880년에 시작된 스시집으로 마구로 토토가 탄생한 전통의 스시집이다. 에도시대에 탄

생한 스시지만 그 당시 마구로는 싸구려 생선 중에서도 아주 싸구려여서 천민들이나 먹

는 음식이었다.

노점 스시집에서 취급하기 시작한 것도 스시가 대중화되고 나서 한참 뒤였고, 상하기 쉬

워 간장에 절여 먹었고, 뱃살부분인 토로는 그 때 조차 먹지 않았다. 그러다 한 초라한 어

느 식당, 돈이 없어 싼 생선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스시집 주인이 내놓은 참치 뱃살부분을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고, 그것이 입에서 ‘사르르(일본식 의태어로 토로토로)’ 녹는 음식으

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먹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던 싸구려 음식이 이제는 스

시의 대표 음식이 되었고, 마구로를 ‘음식’으로 만든 그 가게는 4대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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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수많은 장인들이 ‘마구로 토토’를 만들듯 자신만의 혼을 담아 ‘수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일본문화의 저력은 이들 ‘두터운 장인층’의 존재이다. 전 세계에 분포해 있

는 우리교포 중에 생계수단으로 초밥집을 경영하는 교포도 있을 터인데, 일본인인지 확

인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가버리는 고객도 있다고 하니, 먹고 살만한 ‘두터운 장인층’

에 끼려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인 행세를 해야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홍대의

가게도 비슷할 것이다. 일본 말 몇 자 적혀 있는 좁고 볼품없는 가게와 ‘일본식 검정유니

폼’이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프라이밍효과(Priming effect)로 작동하는 이유는 그

런 ‘장인의 아우라’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류를 위한 ‘두터운 장인층’을 만들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만들까. 순식

간에 만들어지는 것일까? ‘나이트의 불확실성’으로 한번 풀어가 보자.

‘나이트의 불확실성’과 예술인들

시카고학파의 태두 프랭크 나이트(Frank Hyneman Knight)는 <위험, 불확실성, 그리

고 이윤(risk, uncertainty, and profit)>에서 위험은 경험적으로 측정 가능하나, 불확실

성은 경험적으로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기실 위험이 아니라 불확실한 것을 싫

어한다. 소위 ‘엘스버그 패러독스(Ellsberg Paradox)’다. 빨간 볼, 검은 볼 반반씩 있는

항아리 두개에서 하나를 뽑을 때 확률 50%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에서 사람들

은 확률이 알려진 항아리를 선택한다. 베커와 브란슨(Becker & Branson)은 이 엘스버

그 패러독스에 가치를 매겼다. 사람들은 확률이 불확실한 항아리의 공보다는 확률이 알

려진 것, 즉 나이트가 위험이라고 지칭한 항아리의 공에 약 10-20%의 가치를 더 매겼

다. 사람들은 위험보다 불확실성을 훨씬 더 싫어하고 기피한다.

포돌니(Podolny)에 의하면, 직업의 선택도 이러한 불확실성과 관련이 크다. 스포츠직업은

아주 돈을 많이 버는 사람과 적게 버는 사람의 편차가 크다. 반면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과 적게 버는 사람의 편차가 작다. 물론 의사도 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포츠인들보다

는 적다는 이야기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도 의사 중간

층의 수입 분포는 아주 두텁다. 의사들의 수입 분포도는 항아리형인 것이다. 반면 스포츠

인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사람이 상위에 극소수 분포하고 중간층은 상대적으로 얇다. 스

포츠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을 불확실한 미래에 맡긴다는 뜻이다. 그만큼 직업 내의 보수의

격차가 클수록 그 직업은 선호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포돌니의 연구는 미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

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인과 예술인은 어떨까. 이 직업군의 보수 차이도 포돌니의 스

포츠 직업처럼 차이가 클 것이다. 그래서 남이 하면 멋지지만 나와 내 가족 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나 바로 이 보수의 불확실성이 나의 예술적 재능을 직

업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연예인 직업이 1위라는 건 초등학생 설문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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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직 머리가 영글지 않은 초등학생을 다 연예인으로 만들 수는 없다. 초딩 때

의 직업선호는 믿을게 못된다. 인간의 선호는 가변적이고 취약하다.

어릴 적 꿈이 일생의 꿈이 되려면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릴 적 꿈을 밀고

나아가는 근성과 끈기를 말하기가 무섭게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역부족이다. 그 사회적

인프라는 ‘두터운 중간층’이다. 자기의 기술을 예술과 연결시키고 예술을 기술과 연결시

키는 장인들과 예술가들,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이 이런 두터운 중간층을 구성할 수 있

어야 한다. 일본의 연예인은 월급제이고 자신이 연예활동에서 일정한 숙련을 쌓으면 월

급 받으며 사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 두터운 평균층, 두터운 장인층은 직업의 불확실성

을 줄여주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위험은 감수할 수 있

으나 불확실성은 감수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도 그것이 불확실하다면

어느 순간엔가 스르르 그것에 싫증나고 결국 싫어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위주의 편향을

지녀서 ‘논리적 일관성’보다는 ‘편안한 이중성’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두터운 중산층’과 ‘두터운 장인들’

이번엔 ‘성수동 수제화 타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서울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장인의 메카

지역’이라고 선전하는 성수동의 수제화 타운에 가봤다. 서울에 남은 유일한 수제화 장인

지역. 그런데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찾을 수 없었고, 자그마한 공동유통매장 2개가 개

성 없는 시멘트벽과 지저분한 지하철역 중간에 끼어있었다. 사실 ‘수제화 타운’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었다. 성수역 지하철 3번 출구를 나와 바로 있다고 했는데, 20여분을 헤매고

나서야 내가 지나쳤던 그 두 개의 10평 남짓한 ‘창고 매장’이 수제화타운임을 알았다.

성수동 수제화타운은 분명 장인들이 있는 곳이 맞다. 그런데 아무런 ‘문화적 분위기

(cultural ambience)’가 없다. 홍대의 일본 문화를 즐기려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이곳까

지 찾아올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왜 같은 장인인데 일본풍의 장인은 멋져 보이고 우리는

아닌가. 가서 직접 보니 문화적 분위기로 선전되는 곳이 아닌, ‘합리적 가격’으로 장인들

의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백화점과 비슷한 품질이면서 값이 싸다고 선전한다. 어째서

우리는 수제화를 값싸다고 선전하는가. 그것도 그 공동매장 안에 신문지 쪼가리를 테이

프로 붙여놓은 선전문구에서 겨우 확인했다. 그걸 읽고 있는 내가 ‘싼 티’가 날 정도로.

혼이 배인 장인문화를 우린 왜 당당함 없이 그냥 불쌍하게만 보여서 싸게 팔려고 애쓸까.

이제는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야 한다. 수제화 장인들의 예술적 솜씨에 높은 가치를 매

기고 그것으로 장인들의 수입이 늘어나면 장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또 늘어날 것이

다. 이제 그런 수제화 장인층에 높은 가치를 매기는 일을 예술과 문화가 해야 할 때이다.

장인문화란 모든 정성이 일에 쏟아지는 문화다. 그것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오랜 장

인의 기술로 태어난 신발을 많은 사람들이 신는다면 장인에게도 좋고 한국문화에도 좋

다. 나쁜 것은 좋게 만들고, 좋은 것은 더 좋게 만드는 것이 문화다. 수제화 장인들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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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처럼 말하는 문구가 있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고 한다. ‘신발을 선물

하면 도망간다’는 속설을 ‘좋은 신발은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는 인식으로 바꾸는 행동

이 진정 우리 문화가 할 일이다.

‘문전성시’보다 더 좋은 문화정책을 위하여

지금까지 훌륭한 전통기술을 익혀온 사회 각 분야의 장인들은 장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멋

진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고 사회적으로 차별받아 왔다. 그러니 오랫동안 성수동 건물 바깥

으로 못나온 것이다. 문화정책의 역할은 이들을 자랑스럽게 노출시키고, 동시에 이들에게

품위 있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를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문

전성시 정책보다 어쩌면 더 좋은 정책이다. 전통시장에서 파는 그 많은 상품들을 믿을 수

없다면 누가 그걸 사겠는가. 한국인이 만든 좋은 상품이 전통시장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면 그것은 일시적 지원책일 뿐이다. 이제 문화적 인프라는 전통시장을 넘어 장인과 결합해

야 한다. 새로운 한류의 인프라는 장인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 장인문화를 더 단단히 하고

그것이 다시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일조하는 선순환의 고리역할을 할 것이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에 데려다 주며, 좋은 음식은 건강을 증진하며, 좋은 술은 흥을 돋

구어주고, 좋은 한옥은 가정을 화목하게 한다. 그런 생각이 우리들 머리 속에 든다면 해

당 각 분야에서 일하는 수제화장인, 음식장인, 전통주장인, 목수장인 등 그 많은 작은 장

인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으며 위대한 한국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 문화가 오래도

록 살고 세계인과 함께 호흡하려면, 오히려 스타 시스템이 아닌, 장인 시스템에 집중해

야 한다. 스타는 명성 쌓기를 원하나 장인은 자기 수련을 쌓는다. 명망은 짧고 소명은 길

다. 물론 세계인들이 한국스타를 따라하면 우리도 기분 좋다. 그러나 스시집을 경영하

기 위해 일본인 행세를 해야 하는 한국인도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자

랑스럽게 한국인이며 한국 사람임을 자신의 일로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빛을 발하는

등잔은 밑이 어둡고 바람에 약하다. 반면 기초가 튼튼하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무

너질 리 없다. 이제 한류의 불꽃으로 어두운 아래를 비춰 기초를 튼튼히 할 때다.

profile<유승호 교수 프로필>

-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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