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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가정상담 2015 빨래하는 페미니즘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 스테퍼니 스탈 지음 정희진 서문, 고빛샘 옮김 민음사, 2014년 지난해 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주말에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 걷는 것이다. 산에 들어 걷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낀 다. 요즘에 느끼는 눈이 쌓인 겨울 산의 적막함은 앞 선 계절 의 좋았던 것들을 다 잊을 정도로 좋다. 춥고 힘이 들지만 겨 울에 산길을 걷는 이유는 오로지 순간의 고요와 적막에 들고 싶어서다. 그리고 또 하나, 잎을 다 떨군 나무 사이로 예전에 는 보이지 않던 숲 저편의 모습을 볼 때, 산에 드는 일을 인생 에 비유했던 이들에게 무조건 동의하게 된다. 혼자 걷는 일이 좋다. 가끔 동행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만 상담소 일을 할 때를 빼고 온전히 나 혼자, 내 시간을 갖기 까지 결혼하고 어언 이십 여 년이 걸렸다. 큰 애를 낳고서 신문 한 장 읽을 시간이 없던 때, 아이만 상 대하다가 어쩌다 나와서 성인들을 만나면 적절한‘낱말’이 제 때 생각나지 않아‘드디어 바보가 되는가’심각하게 고민하던 때, 둘째까지 생기면서는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시간들로 내 삶은 채워졌다. 아마 죽는 날까지도 온전히 애들, 가족들로부터 자유로워지 지는 못할 것이다. 독거노인이 되거나 아니면 독거노인을 남 겨 놓고 죽거나 하는 정도가 될 때까지 말이다. 그저 예전보다 덜 열심히 밥을 하고, 덜 열심히 집안일을 한다. 대신 산에 가 고 책과 영화를 보고 쏘다니기도 한다. 여기 비슷한 미국 여성, 스테퍼니 스탈이 있다. 그녀의 책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이렇게 시작한다‘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결정적인 차이, 비슷한 시절에 나는‘이렇게 살 게 될지 몰랐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것은 내가 그녀만큼 확 고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페미니즘’에 한 발 들여 놓았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순간 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확신하지 못했는데, 스테퍼니 스탈의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의 맨 앞에 놓인 여성학자 정희진의 서문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저자가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이 른바‘경력단절여성’이 되어 그 상황에서 - 저자가 잠시 겪은 미국 중산층 전업주부 여성들의 삶이란 요즘 우리나라 여성 포털 사이트에서도 비슷하게 간접경험이 된다 - 자신의 길을 찾고자 다시금 대학의 여성학 청강을 시작하면서 커리큘럼대 로 읽은 페미니즘 고전 26권에 대한 소개이다. 신화와 종교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초기 페 미니즘(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을 다시 읽 고,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등 걸출 한 페미니스트들의 사상을 하나하나 검토한다. 그리고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에리카 종 등 급진적인 페미니스 트의 이론과 작품을 세부적으로 확인하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와 라캉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페미니즘도 이해하기 쉬운 언 어로 해설해 준다. 끝으로 캐럴 길리건과 케이티 로이프 등 비 교적 동시대에 속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훑고, 다학제적인 데다 난해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 피박의 이론도 명료하게 요약해 들려준다. 무엇보다 내가 앞으로 꾸준히 생각해 볼 문제, 정희진의 서 문 중에서 밑줄 친 부분이다. “지식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면, 또 지 식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지식이 사유능력을 의미한 다면 최소한 페미니즘을 따라올 지식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 다. 페미니즘은 지난 모든 언어에 대한 의문과 개입에서 시작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저절로 기존의 지식을 조감할 능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숙현 편집부장 가정상담1501 1904.7.15 2:20 AM 페이지34 Refine to PDF 2540DPI 133L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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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여자의삶속에서다시만난페미니즘고전lawhome.or.kr/pds/new_mag/가정상담 1501_좋은책.pdf · 2015-01-13 · 만상담소일을할때를빼고온전히나혼자,

34 가정상담2015

빨래하는페미니즘여자의삶속에서다시만난페미니즘고전

스테퍼니스탈지음

정희진서문, 고빛샘옮김

민음사, 2014년

지난해 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주말에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걷는것이다. 산에들어걷고계절이바뀌는것을느낀

다. 요즘에느끼는눈이쌓인겨울산의적막함은앞선계절

의좋았던것들을다잊을정도로좋다. 춥고힘이들지만겨

울에 산길을 걷는 이유는 오로지 순간의 고요와 적막에 들고

싶어서다. 그리고또하나, 잎을다떨군나무사이로예전에

는보이지않던숲저편의모습을볼때, 산에드는일을인생

에비유했던이들에게무조건동의하게된다.

혼자걷는일이좋다. 가끔동행이있는것도나쁘지는않지

만상담소일을할때를빼고온전히나혼자, 내시간을갖기

까지결혼하고어언이십여년이걸렸다.

큰애를낳고서신문한장읽을시간이없던때, 아이만상

대하다가어쩌다나와서성인들을만나면적절한‘낱말’이제

때 생각나지 않아‘드디어 바보가 되는가’심각하게 고민하던

때, 둘째까지 생기면서는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시간들로 내

삶은채워졌다.

아마죽는날까지도온전히애들, 가족들로부터자유로워지

지는 못할 것이다. 독거노인이 되거나 아니면 독거노인을 남

겨놓고죽거나하는정도가될때까지말이다. 그저예전보다

덜열심히밥을하고, 덜열심히집안일을한다. 대신산에가

고책과영화를보고쏘다니기도한다.

여기 비슷한 미국 여성, 스테퍼니 스탈이 있다. 그녀의 책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이렇게 시작한다‘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않았다’결정적인차이, 비슷한시절에나는‘이렇게살

게될지몰랐어’라고생각했다. 아마이것은내가그녀만큼확

고한페미니스트가아니었기때문이었을것이다. 80년대후반

‘페미니즘’에한발들여놓았을지도모르지만나는한순간

도내가페미니스트라고확신하지못했는데, 스테퍼니스탈의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의 맨 앞에 놓인 여성학자 정희진의

서문을읽으면서, 페미니즘이란무엇일까에대해근본적으로

다시생각하게되었다.

「빨래하는페미니즘」은저자가결혼과출산을거치면서이

른바‘경력단절여성’이되어그상황에서- 저자가잠시겪은

미국 중산층 전업주부 여성들의 삶이란 요즘 우리나라 여성

포털사이트에서도비슷하게간접경험이된다- 자신의길을

찾고자다시금대학의여성학청강을시작하면서커리큘럼대

로읽은페미니즘고전26권에대한소개이다. 신화와종교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초기 페

미니즘(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을 다시 읽

고, 버지니아울프와시몬드보부아르, 베티프리단등걸출

한페미니스트들의사상을하나하나검토한다. 그리고케이트

밀렛, 슐라미스파이어스톤, 에리카종등급진적인페미니스

트의이론과작품을세부적으로확인하고, 지그문트프로이트

와 라캉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페미니즘도 이해하기 쉬운 언

어로해설해준다. 끝으로캐럴길리건과케이티로이프등비

교적동시대에속한페미니스트들의주장을훑고, 다학제적인

데다난해한내용으로이루어진주디스버틀러와가야트리스

피박의이론도명료하게요약해들려준다.

무엇보다내가앞으로꾸준히생각해볼문제, 정희진의서

문중에서밑줄친부분이다.

“지식이지속적으로새로운질문을던지는행위라면, 또지

식이윤리적이어야한다면, 그리고지식이사유능력을의미한

다면 최소한 페미니즘을 따라올 지식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

다. 페미니즘은지난모든언어에대한의문과개입에서시작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저절로 기존의 지식을 조감할 능력을

가질수밖에없기때문이다.”

이숙현편집부장

가정상담1501 1904.7.15 2:20 AM 페이지34 Refine to PDF 2540DPI 133L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