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고도성장기의 상징 경쾌한 빛의 캔버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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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 Mind 31 제146호 2009년 12월 27일 소통은 공공예술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상점 간판에서 도로 표지판까지 과거 도시의 커뮤 니케이션은 일방적이고 단순히 기능적인 것 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 도시의 커뮤니케 이션은 보다 ‘아름다운 소통 방식’을 모색하 고 있다.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가 빛의 과학 이 결합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의 파사드를 장식하는 것이다. 빛을 활용해 도시 스케일의 예술적인 풍경 을 창조해 나가는 방법은 꾸준히 시도돼 왔다. 10여 년 전 한 전시에서 도시의 광고 전광판을 활용해 영상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다. 당시 그 작품은 예상치 못한 관객을 창출했고, 도 시 전체를 예술적 특성을 머금은 갤러리로 변 모시켰다. 이렇게 도시 환경을 예술 콘텐트를 전달하는 미디어로 활용하는 방식은 서울시 의 ‘미디어 페스티벌(미디어시티 서울)’에서 종종 활용돼 왔다. 종각에 위치한 SK 신사옥 은 건물 주변·외벽·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영 상을 보여 주고, 건물 외관을 빛의 극적인 효 과를 만드는 장치들로 꾸며 첨단 통신기업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이는 미술 작품을 부각 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우회적으 로 마케팅에 활용하는 시도다. 요즘은 이런 방식으로 순수미술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 로 활용되는 추세다. 미디어 파사드 혹은 미디 어 월의 확산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대중과 예술을 매개하는 전시기획자의 입 장에서 이런 시도는 광고 마케팅 영역과 예 술 작품이 맞물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두 분야는 모두 대중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 런데 이제까지 시각예술은 주관적·개념적 언 어들 때문에 대중과의 소통에 그다지 적극적 이지 못했다. 이런 시각예술은, 기업이 공공 성이 확보되는 방식의 마케팅과 결합하면서 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소통의 콘텐트를 창출하는 작가들이 대중 에게 접근하는 방식까지 만들어 내기는 어 렵다. 이 때문에 마케팅 전문가들의 힘이 필 요하다. 마케팅 전문가 입장에서도 강렬하 고 감성적인 시각예술은 훌륭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시각예술과 결합한 마케팅 성공 사례 가 늘고 있다. 도시적인 스케일의 미디어 파 사드는 강력한 소통의 가능성이 있어 기왕 대중과 호흡을 맞추고자 한다면 미술을 프레 젠테이션 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그 기획 이 지속적이고 첨단기술과 마케팅 전략, 공 공예술로서 미술의 삼박자가 균형을 잘 맞출 수만 있다면 말이다. 1977년 6월 완공된 대우빌딩. 연면적 13만 2560㎡, 지상 23층·지하 2층, 사람들은 그 앞 에서 건물의 위용에 압도됐다. 서울의 대표적 인 랜드마크였고 70~80년대 고도성장의 상 징처럼 인식됐다. 돔과 붉은 벽돌의 옛 서울 역사, 지상으로 고가도로로 빠른 속도로 순 환하는 자동차들, 두리번거리며 길을 묻는 이방인들, 노숙인이 어우러진 풍경과 함께 대 우빌딩은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오랜 이미지 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빌딩은 97년 외 환위기로 대우그룹이 망하면서 채권단 손에 넘어간 뒤 2006년 금호아시아나의 손을 거쳐 이듬해 7월 미국 모건스탠리에 팔렸다. 빌딩은 1년10개월의 개·보수 공사를 거쳐 최근 서울스퀘어란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과 거 대우빌딩이 규모로 우리를 압도했다면 서울스퀘어는 1만㎡ 크기의 발광다이오드 (LED) 미디어 캔버스를 내걸어 국민을 압도 한다. 필자는 우연히 그날 저녁 염천교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이었 다. 일상적인 야경을 압도하며 서울스퀘어 외 벽의 미디어 캔버스에서 갑자가 거대한 사람 들이 튀어나오듯 등장했다. 첨단 빛의 과학과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미디어 파사드는 기분 좋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국 출신의 화가이 자 설치미술가인 줄리언 오피(julian opie)가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았다는 작 품 ‘걷는 사람들’이었다. 국내 작가 양만기씨 의 서울의 하늘 위로 우산을 쓴 신사가 눈처 럼 내리는 작품 ‘미메시스 스케이프’도 이어 졌다. 두 작품은 겨울 동안 매일 오후 6시부터 11시20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10분씩 교차 해 보여지고 있다. 외벽은 테라코타 타일로 밝게 일요일인 20일 어두워지기 전에 새롭게 문을 연 서울스퀘어의 안팎과 그동안 달라진 서울 역 앞의 풍경을 확인하러 나섰다. 오후 6시 이 전이어서 아직 캔버스로 전환되지 않은 서울 스퀘어의 입면은 기억 속의 대우빌딩의 입면 과 큰 차이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색상과 전 체적인 마감이 산뜻해져 안정감 속에 새로움 을 줬다. 내부 공간은 로비와 지하의 상업 공 간으로 접근하는 선큰광장으로의 입구에 론 아라드(Ron Arad), 배병길, 데이비드 걸스타 인(David Gerstein)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 업이 실내외 환경의 일부가 돼 있었다. 대우 빌딩 시절 공간이 가졌던 무거움을 지우고 가 볍고 경쾌하게 변모해 있었다. 서울스퀘어의 리노베이션 계획은 아이아 크 설계사무소가, 미술작품 기획은 가나아트 갤러리가 맡았다. 계획을 맡은 아이아크의 김 정임 소장은 “이전 입면의 형태를 그대로 두 고 재료를 노후화된 갈색 타일에서 붉은빛의 테라코타 타일로 바꾸고 창을 교체해 입면에 서 창에 의한 수직선이 더 강조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노후화된 재료의 교체뿐 아 니라, 화려한 디자인으로 이전 이미지와 차별 성을 강조하는 대다수 리노베이션 방식과 대 비된다. 입면의 형태를 그대로 두면서 그 성 격만을 미디어 파사드로 전환했다. 건물 시스 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친환경성을 추구하는 리노베이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방식을 택 한 것은 관련 법이 정리되기 이전의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외관과 주요 구조부를 변경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오히려 이러한 조건 때문 에 서울시민이 서울역 앞의 랜드마크로서 옛 대우빌딩에 대한 기억의 정체성을 유지하면 서 소프트한 방식으로 새로운 정체성·장소성 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오후 6시가 되자 미디어 캔버스에 발광다이 오드 조명 빛이 들어오면서 육중했던 건물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어느새 한 장의 평면이 만 드는 이미지로 대체된다. 하지만 그 시각적인 파장의 무게감은 볼륨의 그것 못지않다. 서울스퀘어의 재개장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서울역사 앞 도로에 환승 정류장이 재정비되 면서 현대카드에서 제작·기부한 12개의 아트 셸터라고 불리는 버스 승차대가 설치됐다. 곳 곳의 행선지로 나뉘는 겹겹의 차선에 면해 설 치된 복수의 아트셸터는 투명접합유리 사이 에 삽입된 무색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설치됐다. 조명 입자는 문자 정보를 전달하 거나 혹은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 낸 다. 꽤 많은 숫자의 승차대가 설치됐으나 투 과성 때문에 낮에는 물리적인 존재감이 크지 않다. 오히려 밤이 되면 기호와 문자, 그림이 복합적인 메시지를 발산하며 그 존재감을 드 러낸다. 그 스케일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 비된 환승 정류장과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 버스 입면은 서울역 앞의 익숙했던 풍경들을 공통된 언어로 바꾸고 있었다. 이는 도시건 축환경을 기술·콘텐트와 융합해 미디어화하 려는 시도로 최근 미디어 월 혹은 미디어 파 사드라고 불리며 도시 랜드마크의 성격을 바 꾸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전의 랜드마크는 주변을 압도하는 육중함이나 규모를 앞세웠 다. 현대의 랜드마크·장소성은 소프트함·투 명함으로 빌딩 자체의 물리적인 무게감을 없 애는 대신 강렬하고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달 하는 미디어의 기능을 중시한다. 강렬하고 감성적인 메시지 담아 국내 미디어 파사드의 시작은 2004년 네덜란 드 건축가 벤 판베르컬이 갤러리아백화점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건물의 입면을 수천 개의 LED 조명을 확산시키는 유리디스크로 덮어 건물 전체의 표피를 통해 화려한 빛의 쇼를 보여 준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의 마케팅과 연계된 건물 신 축과 개축, 강남대로의 공공 가로시설물인 미디어 폴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서 다양 한 형태로 미디어 파사드가 등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난 8월 서울시는 미디어 파사 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서울스퀘어의 미 디어 파사드가 그 첫 번째 심의 대상이 되기 도 했다. 미디어 파사드는 도시적인 스케일을 지속적으로 채울 콘텐트에 대한 고민과 형식 의 다양화, 도시 공간과의 조화에 대한 고민 이 없는 양적 증가는 시각적인 공해를 낳을 우려가 있다. 낮에는 태양열을 받아 에너지를 축적했다가 밤이면 미디어 파사드의 빛으로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베이징(北京)의 그린 픽셀이란 미디어 파사드의 사례처럼, 대중과 소통할 메시지와 스토리의 다양성이 형식과 함께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미디어 파사드 육중한 고도성장기의 상징 경쾌한 빛의 캔버스로 변신 재료의 전면적인 교체 대신 미디어 파사드로 이미지 바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선택 환승 정류장 아트셸터와도 조화 도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아름다운 소통으로 진화 기업의 성공 사례 늘고 있어 지난 11월 재개장한 서울스퀘어. 서울역 광장에 어둠이 깔리자 육중한 건물이 영국 설치미술가인 줄리언 오피의 ‘걷는 사람들’로 바뀐다. 건물 외벽은 갈색 타일에서 붉은빛의 테라코타 타일로 바꿨다. 서울역 앞 버스 환승장은 투명수지로 된 아트셸터에 문자·동영상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양면 발광다이오 드(LED)가 설치됐다. 선큰광장의 핸드레일 재질을 유리로 바꿔 친근함을 더했고 작은 공연도 가능하게 무대도 꾸몄다. 신동연 기자 예술과 마케팅의 결합, 도시가 갤러리로 서울스퀘어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있는 옛 대우빌딩 이다. 1977년 6월 완공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채권단으로 넘어 갔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가 인수했다가 모건 스탠리에 팔렸다. 지상 23층, 지하 2층에 연 면적 13만2560㎡. 모건스탠리가 리모델링한 후 건물 이름을 바꿨다. 26 김인선 이화여대 겸임교수·전시기획자 미디어 파사드 미디어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를 결합한 말 이다. 건물 외벽을 대형 스크린처럼 꾸며 여러 가지 콘 텐트를 대중에게 선뵈는 것이다. 주로 LED조명이나 빔프로젝트의 밝기와 색상을 조절해 형태와 움직임 을 표현한다. ‘미디어 월’ ‘미디어 아트’라고도 한다. LED조명의 발달과 함께 대형화되고 콘텐트도 다양해 지는 추세다. 움직이는 콘텐트를 큰 화면 형태로 제공 하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도심이 어지럽게 보일 수 있 다는 지적도 있다. 조재원 0_1 도시건축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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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 Mind31제146호 2009년 12월 27일

소통은 공공예술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상점

간판에서 도로 표지판까지 과거 도시의 커뮤

니케이션은 일방적이고 단순히 기능적인 것

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 도시의 커뮤니케

이션은 보다 ‘아름다운 소통 방식’을 모색하

고 있다.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가 빛의 과학

이 결합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의 파사드를 장식하는 것이다.

빛을 활용해 도시 스케일의 예술적인 풍경

을 창조해 나가는 방법은 꾸준히 시도돼 왔다.

10여 년 전 한 전시에서 도시의 광고 전광판을

활용해 영상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다. 당시

그 작품은 예상치 못한 관객을 창출했고, 도

시 전체를 예술적 특성을 머금은 갤러리로 변

모시켰다. 이렇게 도시 환경을 예술 콘텐트를

전달하는 미디어로 활용하는 방식은 서울시

의 ‘미디어 페스티벌(미디어시티 서울)’에서

종종 활용돼 왔다. 종각에 위치한 SK 신사옥

은 건물 주변·외벽·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영

상을 보여 주고, 건물 외관을 빛의 극적인 효

과를 만드는 장치들로 꾸며 첨단 통신기업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이는 미술 작품을 부각

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우회적으

로 마케팅에 활용하는 시도다. 요즘은 이런

방식으로 순수미술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

로 활용되는 추세다. 미디어 파사드 혹은 미디

어 월의 확산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대중과 예술을 매개하는 전시기획자의 입

장에서 이런 시도는 광고 마케팅 영역과 예

술 작품이 맞물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두

분야는 모두 대중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

런데 이제까지 시각예술은 주관적·개념적 언

어들 때문에 대중과의 소통에 그다지 적극적

이지 못했다. 이런 시각예술은, 기업이 공공

성이 확보되는 방식의 마케팅과 결합하면서

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소통의 콘텐트를 창출하는 작가들이 대중

에게 접근하는 방식까지 만들어 내기는 어

렵다. 이 때문에 마케팅 전문가들의 힘이 필

요하다. 마케팅 전문가 입장에서도 강렬하

고 감성적인 시각예술은 훌륭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시각예술과 결합한 마케팅 성공 사례

가 늘고 있다. 도시적인 스케일의 미디어 파

사드는 강력한 소통의 가능성이 있어 기왕

대중과 호흡을 맞추고자 한다면 미술을 프레

젠테이션 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그 기획

이 지속적이고 첨단기술과 마케팅 전략, 공

공예술로서 미술의 삼박자가 균형을 잘 맞출

수만 있다면 말이다.

1977년 6월 완공된 대우빌딩. 연면적 13만

2560㎡, 지상 23층·지하 2층, 사람들은 그 앞

에서 건물의 위용에 압도됐다. 서울의 대표적

인 랜드마크였고 70~80년대 고도성장의 상

징처럼 인식됐다. 돔과 붉은 벽돌의 옛 서울

역사, 지상으로 고가도로로 빠른 속도로 순

환하는 자동차들, 두리번거리며 길을 묻는

이방인들, 노숙인이 어우러진 풍경과 함께 대

우빌딩은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오랜 이미지

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빌딩은 97년 외

환위기로 대우그룹이 망하면서 채권단 손에

넘어간 뒤 2006년 금호아시아나의 손을 거쳐

이듬해 7월 미국 모건스탠리에 팔렸다.

빌딩은 1년10개월의 개·보수 공사를 거쳐

최근 서울스퀘어란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과

거 대우빌딩이 규모로 우리를 압도했다면

서울스퀘어는 1만㎡ 크기의 발광다이오드

(LED) 미디어 캔버스를 내걸어 국민을 압도

한다. 필자는 우연히 그날 저녁 염천교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이었

다. 일상적인 야경을 압도하며 서울스퀘어 외

벽의 미디어 캔버스에서 갑자가 거대한 사람

들이 튀어나오듯 등장했다. 첨단 빛의 과학과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미디어 파사드는 기분

좋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국 출신의 화가이

자 설치미술가인 줄리언 오피(julian opie)가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았다는 작

품 ‘걷는 사람들’이었다. 국내 작가 양만기씨

의 서울의 하늘 위로 우산을 쓴 신사가 눈처

럼 내리는 작품 ‘미메시스 스케이프’도 이어

졌다. 두 작품은 겨울 동안 매일 오후 6시부터

11시20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10분씩 교차

해 보여지고 있다.

외벽은 테라코타 타일로 밝게

일요일인 20일 어두워지기 전에 새롭게 문을

연 서울스퀘어의 안팎과 그동안 달라진 서울

역 앞의 풍경을 확인하러 나섰다. 오후 6시 이

전이어서 아직 캔버스로 전환되지 않은 서울

스퀘어의 입면은 기억 속의 대우빌딩의 입면

과 큰 차이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색상과 전

체적인 마감이 산뜻해져 안정감 속에 새로움

을 줬다. 내부 공간은 로비와 지하의 상업 공

간으로 접근하는 선큰광장으로의 입구에 론

아라드(Ron Arad), 배병길, 데이비드 걸스타

인(David Gerstein)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

업이 실내외 환경의 일부가 돼 있었다. 대우

빌딩 시절 공간이 가졌던 무거움을 지우고 가

볍고 경쾌하게 변모해 있었다.

서울스퀘어의 리노베이션 계획은 아이아

크 설계사무소가, 미술작품 기획은 가나아트

갤러리가 맡았다. 계획을 맡은 아이아크의 김

정임 소장은 “이전 입면의 형태를 그대로 두

고 재료를 노후화된 갈색 타일에서 붉은빛의

테라코타 타일로 바꾸고 창을 교체해 입면에

서 창에 의한 수직선이 더 강조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노후화된 재료의 교체뿐 아

니라, 화려한 디자인으로 이전 이미지와 차별

성을 강조하는 대다수 리노베이션 방식과 대

비된다. 입면의 형태를 그대로 두면서 그 성

격만을 미디어 파사드로 전환했다. 건물 시스

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친환경성을 추구하는

리노베이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방식을 택

한 것은 관련 법이 정리되기 이전의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외관과 주요 구조부를 변경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오히려 이러한 조건 때문

에 서울시민이 서울역 앞의 랜드마크로서 옛

대우빌딩에 대한 기억의 정체성을 유지하면

서 소프트한 방식으로 새로운 정체성·장소성

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오후 6시가 되자 미디어 캔버스에 발광다이

오드 조명 빛이 들어오면서 육중했던 건물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어느새 한 장의 평면이 만

드는 이미지로 대체된다. 하지만 그 시각적인

파장의 무게감은 볼륨의 그것 못지않다.

서울스퀘어의 재개장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서울역사 앞 도로에 환승 정류장이 재정비되

면서 현대카드에서 제작·기부한 12개의 아트

셸터라고 불리는 버스 승차대가 설치됐다. 곳

곳의 행선지로 나뉘는 겹겹의 차선에 면해 설

치된 복수의 아트셸터는 투명접합유리 사이

에 삽입된 무색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설치됐다. 조명 입자는 문자 정보를 전달하

거나 혹은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 낸

다. 꽤 많은 숫자의 승차대가 설치됐으나 투

과성 때문에 낮에는 물리적인 존재감이 크지

않다. 오히려 밤이 되면 기호와 문자, 그림이

복합적인 메시지를 발산하며 그 존재감을 드

러낸다. 그 스케일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

비된 환승 정류장과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

버스 입면은 서울역 앞의 익숙했던 풍경들을

공통된 언어로 바꾸고 있었다. 이는 도시건

축환경을 기술·콘텐트와 융합해 미디어화하

려는 시도로 최근 미디어 월 혹은 미디어 파

사드라고 불리며 도시 랜드마크의 성격을 바

꾸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전의 랜드마크는

주변을 압도하는 육중함이나 규모를 앞세웠

다. 현대의 랜드마크·장소성은 소프트함·투

명함으로 빌딩 자체의 물리적인 무게감을 없

애는 대신 강렬하고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달

하는 미디어의 기능을 중시한다.

강렬하고 감성적인 메시지 담아

국내 미디어 파사드의 시작은 2004년 네덜란

드 건축가 벤 판베르컬이 갤러리아백화점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건물의 입면을 수천 개의

LED 조명을 확산시키는 유리디스크로 덮어

건물 전체의 표피를 통해 화려한 빛의 쇼를

보여 준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의 마케팅과 연계된 건물 신

축과 개축, 강남대로의 공공 가로시설물인

미디어 폴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서 다양

한 형태로 미디어 파사드가 등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난 8월 서울시는 미디어 파사

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서울스퀘어의 미

디어 파사드가 그 첫 번째 심의 대상이 되기

도 했다. 미디어 파사드는 도시적인 스케일을

지속적으로 채울 콘텐트에 대한 고민과 형식

의 다양화, 도시 공간과의 조화에 대한 고민

이 없는 양적 증가는 시각적인 공해를 낳을

우려가 있다. 낮에는 태양열을 받아 에너지를

축적했다가 밤이면 미디어 파사드의 빛으로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베이징(北京)의 그린

픽셀이란 미디어 파사드의 사례처럼, 대중과

소통할 메시지와 스토리의 다양성이 형식과

함께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미디어 파사드

육중한 고도성장기의 상징경쾌한 빛의 캔버스로 변신

재료의 전면적인 교체 대신

미디어 파사드로 이미지 바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선택

환승 정류장 아트셸터와도 조화

도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아름다운 소통으로 진화

기업의 성공 사례 늘고 있어

지난 11월 재개장한 서울스퀘어. 서울역 광장에 어둠이 깔리자 육중한 건물이 영국 설치미술가인 줄리언 오피의 ‘걷는 사람들’로 바뀐다. 건물 외벽은

갈색 타일에서 붉은빛의 테라코타 타일로 바꿨다. 서울역 앞 버스 환승장은 투명수지로 된 아트셸터에 문자·동영상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양면 발광다이오

드(LED)가 설치됐다. 선큰광장의 핸드레일 재질을 유리로 바꿔 친근함을 더했고 작은 공연도 가능하게 무대도 꾸몄다. 신동연 기자

예술과 마케팅의 결합, 도시가 갤러리로

서울스퀘어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있는 옛 대우빌딩

이다. 1977년 6월 완공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채권단으로 넘어

갔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가 인수했다가 모건

스탠리에 팔렸다. 지상 23층, 지하 2층에 연

면적 13만2560㎡. 모건스탠리가 리모델링한

후 건물 이름을 바꿨다.

26

김인선

이화여대 겸임교수·전시기획자

미디어 파사드

미디어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를 결합한 말

이다. 건물 외벽을 대형 스크린처럼 꾸며 여러 가지 콘

텐트를 대중에게 선뵈는 것이다. 주로 LED조명이나

빔프로젝트의 밝기와 색상을 조절해 형태와 움직임

을 표현한다. ‘미디어 월’ ‘미디어 아트’라고도 한다.

LED조명의 발달과 함께 대형화되고 콘텐트도 다양해

지는 추세다. 움직이는 콘텐트를 큰 화면 형태로 제공

하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도심이 어지럽게 보일 수 있

다는 지적도 있다.

조재원

0_1 도시건축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