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pace.snu.ac.krs-space.snu.ac.kr/bitstream/10371/87594/1/1. 한국어의... · 2020-06-04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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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關한 f究 (其一) 系統論에 韓國語의 * 第-章 I →1) 人類가 그 言語(말)블 어느 째, 어멕한 方法으로 發展시겼는가 하는 問題는 오늘날 아무도 記園을 가지고 있는 사란이 없으려니와, 過去에도 이에 關허서 正確하게 記錄한 사람 없다. 人類가 오늘날 地球上에서 「萬物의 靈長」이라고 휩處하게 原려은, 尤先 그들이 다른 動物보다는 일 찌 直立하께 되 어서 頭腦를 그 앞다리룹 「쓴J(手)으로 바구 特히 「도끼 J(쏟) 와 「積」의 發 그들을 支配하게 直援的안 하고 思考力을 發展시캘 있었으며, 모든 道具흘 만드는 훨機가 되 었고, 動物에게 君臨하고 明은 地球上으l 모든 原因。j 퇴었다. 그리고 人類는, 오늘날精神的으로나 智的으로 「萬物의 靈長」이라고 해 서 不足한 點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얼짜기 그 社會生活의 經驗에샤 發展시킨 「말J(言語)을 所有하고 있고, 「말J(言話)을 聯間的이고 一時的띤 것에셔부터 永久的얀 것, 또는 永久따인 것은 아닐지라도, l 어 持續性을 지난 것으로 만듣키 행해사 「文字」릎 發하고 依한 記錄들, P 書籍을 {할 있게 된데서부터 人類의 펠는 오늘날의 宇핀時代의 科學的 짧展을 거 듭하고, 足의 發展을 繼續해서 문녁에 이르른 갓이다. 우리는 우라의 「말J (言語)이 우리로 하여금 「萬勳의 長」이 되게 한 直接的안 因。l고 「文字」와 「記錄J (콤籍)들이 人類의 1 -2) 따랴서, *서 울大學校 人文大 敎(國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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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關한 liff究 (其一)系統論에 韓國語의

    根*짧뚫 崔

    論序第-章

    I →1) 人類가 그 言語(말)블 어느 째, 어멕한 方法으로 發展시겼는가

    하는 問題는 오늘날 아무도 그 記園을 가지고 있는 사란이 없으려니와,

    過去에도 이에 關허서 正確하게 記錄한 사람도 없다.

    人類가 오늘날 地球上에서 「萬物의 靈長」이라고 휩處하게 된 原려은, 尤先 그들이 다른 動物보다는 일 찌 기 直立하께 되 어 서 그 頭腦를 保굶쫓

    그 앞다리룹 「쓴J(手)으로 바구 特히 「도끼 J(쏟) 와 「積」의 發

    그들을 支配하게 된 直援的안

    하고 思考力을 發展시캘 수 있었으며,

    어 서 모든 道具흘 만드는 훨機가 되 었고,

    動物에게 君臨하고 明은 地球上으l 모든

    原因。j 퇴었다.

    그리고 人類는, 오늘날, 精神的으로나 智的으로 「萬物의 靈長」이라고

    해 서 不足한 點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얼짜기 그 社會生活의 經驗에샤

    發展시킨 「말J(言語)을 所有하고 있고, 또 이 「말J(言話)을 聯間的이고

    一時的띤 것에셔부터 永久的얀 것, 또는 永久따인 것은 아닐지라도, 적

    또 이어l 어.'i. 持續性을 지난 것으로 만듣키 행해사 「文字」릎 發rm하고 依한 記錄들, l!P 書籍을 i짧{'P할 수 있게 된데서부터 人類의 참l펠는 長

    오늘날의 宇핀時代의 科學的 짧展을 거 듭하고, 足의 發展을 繼續해서

    문녁에 이르른 갓이다.

    우리는 우라의 「말J (言語)이 우리로 하여금 「萬勳의 靈

    長」이 되게 한 直接的안 !京因。l고 「文字」와 「記錄J (콤籍)들이 人類의 精

    1 -2) 따랴서,

    *서 울大學校 人文大 敎f핫(國잣;뚱)

  • 19함

    神的, 智的發展을 加速시칸 張本임을 찰 알고 있으띤셔도 그 「말J(言語)이 어느때, 어렇게 해사 發生댔는가 하는 正確한 까口識에 對해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그 進展이 없닥는 것은 甚히 週↑폈이 아닐

    월機에 關한 學說이 全혀

    東간표Y:1r. 4

    수 없다.

    없 었먼 것은 言語發生의 그러나 過去에

    舊約聖書의 創그리고

    니었다.

    :::t;先 그 하나가 基督敎의

    世記 第一章의 四節~十節1)까지, 第二章의 七節~十九節2)까지,

    第十一章 一節3) 의 記錄들연데, 01들을 經合하면,

    그 놀라울 만한 쇠 (Bible) 인

    人問얀 1. r말J(름語)은 하나념 (yahweh, yahveh, J ehovah) 이 Adam도 創造했다.-(言품용IJ造說) ;

    人間의 「발J(言語)의 피g語는 하나이 었다, ←-(Hebrew語 : 릅 語)元語) ;

    10" � 創造하고,

    2.

    「말J(言話) 어l 關한 記錄은 以上과 같은 創뎌-期의 로 흉용約펴는데,

    寫한 言語맑究에 5띤對 그리 스도敎 宣敎師들의 펄등불핸&듭뿔을 期에 있어서

    的인 指針。1 되었다.

    있어서 위와 같은 單純"ðl-가까운 오늘날에 공葉에 그다냐 二十뀔;紀의 수는 그래로 받아들여질

    「즙語發生」에 關한 疑問응 그대로 남아 있을 없는說이

    꺼T 어느 모로 보아서나 證明될

    따라서

    ←7 �,

    찌論 없는 일이다.

    1) 11(4) 화나념이 빚고F 어두움을 나누사, (5〕 련을 낮아다 천하시고? 어두움 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중략 . .. (8) 학나넘 이 궁창(펀蒼〉을 하늘이라 칭하 시 니 라 중략 ... (10) 하나님 이 붙을 땅이 라 칭 하시 고, 도인 울을 바다라 청하지니라‘ .. . 하략』

    2)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윤 지무시고, 생기을 그 코에 불어 녕으λl니 사람。] 생펑약 된 지 러 . .. 중략"'(16) 여호와 하나난이 그 사란얘꺼1 명학여 기라사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띄되 (17) 선악음 알기1 히 는 나무의 섣과는 먹지 딴라. 네 가 먹는 날에는 정녕 즉무려 라 하치냐려 . .. . 중략. ,. (19)'" (19) 여 호와 하나님 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c시고, 아담이 야떻게 이릎을 짓나 보시켜고 그것을윷 그에거호 이 끌어 이르시니, 아담。l 각 생물을 일컴는 바가 곧 그 。l픔이라 한략』

    3) 11 (1) 온 땅의 구음〔디흘)야 하나이요, 언에〔言語)가 하나이더라 하략』

  • 후품팅랩등픔의 *統論에 關한 없究(其一) 5

    수 밖에는 道理가 없는 일야 었다.

    그 다음에 는 「言話테造說」에 多分히 反對하는 說들이 잇달아 나타났

    는데, 그 意圖와는 달리, 그 名稱들은 多少 弄調로 表現띈 名題으} 「言

    語發生說」들이다. IlP “Pooh-pooh說" “Bow-wow說” 그 리 고 Yo-ho→ho

    說들이 그것인데, “Pooh-pooh說”은 A間의 最初의 「뜻」이 있는 「말J(言

    發팩초되 었는데 , 그 後에 漸次로 全般的인 體系的 形成說이고, 이에 lt해서 “Bow-wow說”은 人類가 덤然에사

    語〉은 本能的으로

    을 途行했다는

    들은 소리들을 흉내내는데서(따 擬聲, n: 」→避態) 發生했 4는 主張이 며 , “Yo-ho-ho說”은 深呼랬의 刺戰으로 因해 서 過分한 觸肉運動。1 不時에 人間의 활렌블 ;辰動시 켰 다는 說이 다.

    또 여기에 「손칫→(Gestures)의 發展이 人間言語로 發達했 다는 說이 여

    기에 加擔하게 되는데, 。1 모든 「言語發生」에 關한 學說들은 人類의 「言語짧生說 의 ~효ß分은 說明할 수 있을지언정, 全體的얀 發生過程의 說明으로서는 얼마나 不足한 것인가블 深刻하게 느끼게 하는터, 假令“Bow-wow說”은 (韓) . “장수시 다” “자지 다”의 “캡 ” “자~’와 tungus. “zep-’‘과 이짧) . “jembi"의 “je-"가 各딩 “먹는 입소리”의 짧합化알 수도 있다. 그러 나 (韓) . “막다”의 “먹 ”과 (日語) . “모구모구" (二é::7 꿋 ::7)

    는 「먹는 소i.'] J의 업소리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萬一 이 「말」이 「목」

    〈짧)과 관련이 있는 것이 라연, 名詞의 「목J (짧)이 먼저 「語棄J (\Vord)

    로서 이 루어 겼어 야 說明이 가능하다.

    또 萬若 擬헬, 擬態의 흉내내는 소리에서 言語發生이 可能하다고 하

    더 라도, 그 數는 A類言듭혐의 極히 小部分악 語棄플 白 핫 뿐으로, 외 다른 모든 「말」의 發生說明은 難關으로 남는다.

    그밖

    또 「손짓 J (Gestures) 에 서 「言語發生」을 說明하혀고 하는 說은 “-定

    한 意味”를 表示할 수 있는 Gestures들이 어 녁 한 過程으로해 서 그 Ges-

    tures가 表示하는 意味에 該當하는 “一聯의 흡참”을

    가? RP 다시 말하면, “어 느 Gesture에 該짧하논 同伴할 수 있었떤

    줍聲」은 어걱 「一;댈의

  • C 6 J 東52소化 19팩

    한 體系로 그 Gesture가 表示하는 「意味」흔 代表하게 되 었는가 ? ” 가 論

    êJj할 수 없는 問題로 남는다.

    이 外에 Pooh-pooh theory냐 Yo-ho-ho theory도 A맴言語짧生의 極

    등1 初步的이고, 極히 그 一部分얀 것 밖에 닙보r:Jl할 수 없을진매, 人類는

    그들 自身을 地球上에서 名實共혀 「萬物의 짧長」으로의 옳場을 ï1J能커}

    한, 그들의 「말J(言語)의 發生에 關래 서 즘급悔力의 쓸弱性을 다시 한벤 痛感케 한다.

    이에 比헤서 그리스CGreece) Á들의 言語뿔生說은 함學上의 必要로 因

    해셔 出發힌- 것인만큼 「哲學떠」이었다.

    그리스(Greece)人들의 主흰 學說은

    1. Physei Cφ삐ε,J設 펴紀 5며紀휩 Helàclitos가 조張) ←→- 범然찢生設, 2. Thesei COI:OSlJ說 (Democritus가 主張) 퍼:會훤約듬li':.

    3. Nomoi :HoμOIJ說 (2. 와 한께 Democritus가 보張) -社會慣習的形)항,

    以上 l� 은 Platon과 그 追從者들에 게 댔해 서 3Zt란 主張되 었거 때 문에 Platon 王義者의 「寫實論」 이 라고 하고 2) 와 3) 은 Aristote1es와 그 追從

    者들에게 依해사 5:한 主張되 댔껴 배문에 Aristoteles 主義者의 「名目歸」이라고 稱했다.

    以上의 言諾發生어1 聯한 諸說이1사 보이-온 비→외- 갇이 人類의 룹듬흘‘는 그 「本能과 生理的인 것」에 힘接的인 關聯이 있는 것도 事實이고, 또

    E 然의 소리 에 서 의 「흉내 J(擬뽑, F엉態) 와 「슨것 J (Gestures) 과도 直接的인 關聯아 있는 것도 事實이기는 하냐, /、R죄믹 「닫」은 무엇보다도 그들 이 우리지어 모여 사는 「社會」와 깊은 l해剛이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왜 냐하띤, r言語의 必횡性」은 두엇보다도 「社햄生活」이] 있어 서 各者의 意思表示에 對한 그 傳達과 聽取어] 있기 해 둔이 다.

    n-l) r말J(言語)과 社會와의 關係와 關짧히1서, 다유의 問題는, Á類 의 言語는 「一元的發生J (Monogenetic) 이 냐 ? 或은 「多元的發生J �Polyg

    enetic)이냐? 하는 멈題얀데, 이에 對해사는 前記 舊約聖書 創世記으}

  • 7 關한 까究(其一〉 韓國語의 系統論에

    記錄4)이 簡單하거1 解決하고 있는데, 前記힌- 바와 같이, 이것은 적어도

    中世紀에서 十八世紀까지에는 한때 總對的인 @좋1별로 받아들여쳐 있었다.

    은 것이 띈다.

    그려나 「言語創造說」과 t1J-찬가지료 現tE에

    信젠하려 는 形便이 되 어 있지 않다.

    그것은 Hebrew語이었다』라는 말과 똑 같 祖語는 하나얀데, .Þ!P rr Å類의

    이것을 열른 이르러서는,

    올라가 샌펀a해 言語發生問題에 關한 限, 數萬年을 /ι間의 왜냐하면,

    jt記한 바와 같이 , 現tE 그 「言語發生」에 關한 記떤과 꺼口 야만 되는데,

    多元8f:J發.IlP 一元的發生이냐? 이 問題,識이 全혀 缺如되어 있는 限,「數萬年그 發生時期도 떻然하게 하는 것도 解決펼 수 없고, 生이냐?

    또는 五萬年]때--- -「萬年三萬年前얀가? r二萬年前-인가? 前」일뿐이지?

    前얀가?JJ 하는 것도 現在에 있어서는 아무도 斷定할 수 없다

    。LE 다만 오늘난 이 問題에 關해 서 關心있는 言뚫學者틀에 게 確寶하게 :2 「言語」가 使用되고 있으며, 이 파球上에 는 數千種類의 려진 팎實은,

    八千인가? JJ li'fíi賞하 또는 五千인가?

    그 했블 定할 수 없다는 事實。l다. 前記 「言語發生의 B풍期」가 大略 「數萬年」臺라먼,

    三千인가? 「數千J2L :r二千인가?

    「듣듣표 "'p口

    種類」의 境週는 大略 「數千」휠이 고, 구태 어 그 歡字블 대 라고 한다면, E적 게 잡으면 2,500이 고, 많。l 캅으면 7, OOOJJ에 達할 것 이 라고 한마.

    그러 나 이 數字도 「言語J (Language), í方 言J (Dialect) 과의

    이 地球上의

    關係가 않

    그리고 이 「뜸認」와 理되면, 可變할 수 있는 數字임을 否認할 수 없다.

    여러가지 事情으르 因해서5) 가까

    그 整理될 수 있는 可能性이 橋합흉한 것 이 다.

    「方言」과의 關係는, 推測할 수 있는

    운將來에

    4) 前註 3) 參照5) 한사람의 룹‘讀學者가 習得할 수 있는 「言語」ι〕 따는 i-1固듬듭홈탬度가 훨大

    며{度라고 한다. 꺼論 世界의 言語學者들이 組織的인 分웹制토 i멤걷F한다면 不可能한 것도 아니겠지만, 現在로서는 亦밑 그 『즙찮의 ;ζj벼뎌&f몫』로 不可能한 狀態c]다.

  • C 8 J 쫓亞」文化 19輯

    1I -2) 以上과 같이 「人類의 言語」는 그 所有主인 人間플 팀 身들에 게 모르는 것 푸성이이고, 또 짤雜多端한 狀況에 있었지만, 漸[次로 그 言

    語블 整理해 보려는 試圖가 行히l졌었는데, 이 試圖가 「形態論的 分類](Morphologícal Classífìcatíon; Morphologisch Klassifizierung) 와 「系統的

    分類� (Genetical Classification; genetisch Klassifizierung) 이 었 다. 히

    形態的 分類 (Morphological c1assifìca tion) 7) 는 十九 맘紀初頭 Friedrich

    von Schlegel에 서 부터 試圖되 었 었는데 , 그는 “Über die Sprache und Weisheit der Inder" (1808) 라는 著書에 서 , 人類言語흘 二分하고, li경5옳휩 語�:8) (Language with affixes) 와 1)파折語j (Language with inflection) 으

    로 나누었다.

    그 뒤 Friedrich의 아 우 August von Schlegel은 三分하고 1). 1非文펀 構造語J (Languages without grammatical structure); 2). n펌解語J(Af죄

    xing languages) 3) . 1파折語J (Inflectional Languages)로 나누었는데.

    1) 은 後代에 일 캠 는 「孤立찮J (Isolating) 에 該當하고, (Agglutinative) 에 該J합하는 것 이 었 다.

    2)는 「웹看語

    그리고 August (von Schlegel)는 IJ핀折語」는 Indo-Europeans와 Semitics

    만이 여 기 에 包含되 는데 , 이듭 言늠홈만이 “一種의 有機的生야과 發展과

    成長의 本質을 示現하는 語根(Roots)을 所침‘하고 있으박, 이 에 比해서

    「非文法構造語J, 則 中國語로 代表되는 I1JJl立폼」는 이 「語根」이 贊弱힌-

    6) 그 화나는 Grasserie, Raoul de la의 강類얀례 , “De la classifìcation des Iangues; IIe Portie; Classification des langues non-apparentées" (Zeitschrift für allgemeine Sprachwissenschaft 5. 269�33B) 1890. 에 서 그 分類方式을 줍i파分類의 類컨펀에 基짧를 둔 것인터], 則 accent型, 즘홈윷pg部의 ¥쓸節 찢f{, 그려 고 子줍을 排除파는 言등흠와 ffi츰을 排除헤 는 를語와의 區分이 다. (前者는 Maori語와 German語이 고, 後者는 Arabia語이 다. )

    또 다른 하냐는 Wundt Wilhelm M.는 “Völkerpsychologie II. Die Sprache (Leipúg, Engelmann) 1900에 샤 “그 픔語블 區分할 수 있는 十二f댐 條의 「對立條J (Gegensatzpaare)플 發表했는데, 그*에는 授頭雙語 對 接尾購듬홈 , 自 由語I1팀語 휩 l펀j定語1j頂語 , 名詞形語 對 動詢形 重點語等

    7) 形態的 分類(Morphological classin.cation), 이 術語는 事實1: Typology (言등홈類形學)와 一敎하는 術폼이았는데 1928年부터 f흰用되 였 였다.

    8) òl 찌감語는 後代에 rr젖看諾� (Agglutinative Languages)로 稱名했다.

  •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昭究(其-→

    것이다"고 主張했다.

    [ 9 J

    그러나 近代에 와서 Indo-European語들이 古代段階에 짧見되는 「屆折」

    이 喪失되 어 가는 1項向이 있는 事實을 發兒하고9) 그는 그의 學說에 不

    安을 느끼 고, 이 플 補彈해 서 屆折語를 =分해 서 古代段階플 「結合型」(Synthetic type) , 後代語플 「分折型J (Analytic type)으로 分離했다.

    그 後에 四分法을 主張한 사람은 Wilhelm von Humbolt1이 인데 , 그는

    “Incorporating" (웹合語)플 하나 더 包含시켰는데, 이것은 그의 American

    Indian語 맑究에서 비롯된 것이 었다.

    이 웹合語의 主要한 特徵은 같은 한 動詞語根에 그 動詞의 目的語가

    包含되어 있는 것01치 매문에 Humbolt에 依하면 이것은 「文章語쫓」

    (Sentence-words) 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었다11)

    그어l 依하면, “言語는 精神(Geist)의 明顯한 發現”이며, 이와 갇은

    “自體發現은 그 自身의 權限內에 있어셔의 正當한表現일뿐만이 아니라,

    적 든 크든 間에 그 完成度를 나타내는 것”이 라고 主張하고, 또 모든 言

    語는 “「完成J (voIlendet)한 컷이치만, 그 모든 릅語가 다 「正確J (vollkommen)한 것은 아니 라”고 主張혔다.

    또 言語는 그“形態의 正確性이 理想的 目的이 치 만, 實質的으로는 꽃IJ 達할 수 없는 것이 고, 接近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며, 이것은 오직 「屆折語_ (Inflexional language) 에 依해 서 만 이 루어 진 다" 고 말했 는데 , 검P

    Humbolt는 “下級型의 言폼에 서 上級型의 줍語로 發展할 수 있는 歷史的進化‘’블 펀否했다.

    9) 英語는 孤立語化해 가는 碩向이 있 는더] , L. emittentur=E. they sha11 be sent out; L. gladio =E. with a sword

    以上의 境遇의 Latin諾는 陽著이 라고도 볼 수 있는더] , “E-mitt-e-nt-ur." 10) “Affixing" (徐蘇語)를 “Agglutinative" (陽쏠語)로 改뺨한 사람도 Humbolt

    이었다. 11) 北America의 Indian얀 Aztecan의 혐長名 이 었던 “Mon tecuzomai thuica -mina"

    (Montezuma) 는 “When -the-chi ef - is-angry-he상loots-to-heaven" 야 란 뜻 이 包含되어 있다.

  • ( 1 0 J 東김E文化 19輯

    「言語의 類型J (Sprachlich typus) 은, 그에 依하면,

    의 差異段階이 었다. 따라서 Isolating (孤立語)은,

    “精神(Geist) 實짧、

    가장 그 未體展段階。1

    고, Inflexional (屆折) 段階는 그 가장 發達한 狀態”라고 생각한 것아다.

    그러 나 中國語로 代表되 는 「孤立語」가 過去 人類의 가장 뛰 어 난 또 하 나의 哲學과 文化블 表現하는 言語로 使用되면서도 何必、이면 그 言語는

    그렇게도 未發達段嘴이 었던가 하는 問題에 對해서는 그는 言及한 바가

    없었다.

    이와 같은 Humbolt의 「言語쉰存」的 思考方式어l 對해서, iE面으

    로 距否하고 나션 사람이 August Schleicher의 「言語後績 (1'\ acheinander)

    說이 다12)

    그에 依하면, “言諸란 自然現趣。1요 自IZ的이 며 民族精神 CVolksgeist)

    自體의 法則

    力說한다.

    二L密看되 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分離되어 있고, 依해 서 變化한다는 것 은 植物의 경우와 같다”고

    .êP 言語類型의 三段階플 「言語의 歷벚的發展의 三段階」로 說明했는데 言語三段階는 各己 그 前段階에 서 의 「發展狀態」라고 指觸했 다 13)

    .êP J힘折語는, 特히 英릅탑의 경우, 뿔륨節語的 (Monosγllabic) 語薰와 쩔 훌語 的(Agglutinative)語棄플 多分히 包含하고 있는데, A. Schleicher의

    意見에 依하면,

    語에서 壓훌語의

    는 것 이 다.

    “ 言語가 長期間의 變훌훌過程을 거 치 는 사이 에 ]Jl立過f품을 거 치 고 最後로 댄折듬홈段階로 發展한 것 l� 14) 이 라

    이러한 言語進化學說은 드디어는 言語三꿇F쁨의 類F뱉은 서 로 個環한마

    .êfJ 지 곰은 單즙節語é'J :Ð미立語인 대:1國語는 한 해 는 는 學說로 變했는더'l, ]련折즙홈段階를 거 치 고 現在에 이르렀다는 것 이 고, 따라서 現在의 屆折語

    12) August Schleicher: “Zur :yrorphologie der Sprache" (M6moires de 1’Academie Impériale des Sciences des St. PUersbourg, 7e Serié, Tome 1. No 7, 1859)

    13) Isolating→Agglutinative→Inflexional로 發展뚱짧 14) 前註 9) 參照、

  •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1Jff究(其一) [ 1 1 )

    段階에 있는 Indo-European語族은 다시 또 孤立語段階와 }굉훌語段階로

    遺元 領環하게 펜다는 說이 다.

    以上의 「듬語類型學J(Typ이ogie) 에 있 어 서 도 듬語一元說과 多元說을

    解決짓지 못하고 있는데 , 言語領環說은 多分혀 言語--元說에 가깡고,

    言굶의 歷史的進化說을 1.2否하고, 下級型의 言語와 上級型의 言語록 뭘

    分한 Humbolt의 學說은 多分히 言語多元說에 가깡다.

    m-l) 그러 나 十九世紀未葉(1870)에 新文法學派(Neogrammarians) 의

    擾頭와 同時에 言語의 形態論的 分類(Morphological classification)는,

    August Schleicher플 最後로, 그 關心이 사라졌는데, 이는 言語의 形態的分類가 여 러 가지 E죄에 서 그다지 言語分類에 正確性이 있는 것 이 아니 라는 意見이 쩔頭했기 때 푼이 다.

    뭉n 한 言語가 正確히 조]立語라고 斷定할 수도 없는 點15)이 많을 뿐만

    이 아냐 라, 또 댐折語의 경 우에 도 孤立語的안 性格과 뺑옳룹홈的얀 性格을 옳有하고 있커 때문16)에 言語의 形態的分類는 正確性을 期待할 수 없

    다는 點이 그 主要原因야기도 하겠지만, 新文法學者17)들의 좁폐의 課題

    가 〔난곳 에 있 었기 때 문얀데 , 그것은 “言語의 歷史的比較에 基없흉를 둔 Indo-European諸語의 「祖語의 再構」와 「좁調法則에 例外없다」라는 原則T에 「픔 끓法則외 發見」에 餘念이 없 었고, 01 I즙題法則J (Sound-law : Lautgesetz) 에 基없훈을 둔 「즙題對應J (Sound-Correspondence: Laut-Ents

    prechung)에 依한 「親族關係」의 發見。] 그들의 使命이 었다‘

    따라서 新文法學派에 거l 는 「親族關係가 없는 言語의 lt較」는 無意味힌:

    15) Isolating우로 包含되 어 있는 「西藏語j는 多分허 ¢찢훌語的얀 性格도 暴右하 고 있다.

    16) 例하면 “English"꾀 경 우 17) Neogrammarian(新文法學派)는 또는 J unggrammatiker (Y oung Grammar

    ians), 則 그 좁年文法學派로도 불리우는더], 이의 王P탑者들을 “Brugmann, R Paul"을 흙始해 서 “。schoff, Leskien"等이 었 고, H. Paul의 “Prinzipien der Sprachgeschichte" 이980) 과 BrugmanEi “Morphologische Untersuchungen auf dem Gebiete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18í8"-' 191 0) 等은 그 名著로시 으늘날까지 도 }없을 거 듭하고 있 다.

  • C 1 2 ) 束亞文{I:: 19輯

    것으로 맏고 있었 다18) 따라서 이와 같은 班究態度는 言語의 「系緣的 分

    類J (Geneti.cal dassifì.cation) 에 關心을 쏠리 게 했고, 또 그들 大部分의

    言語學者들은 이 「系統的 分類」만이 有益하고 價碩있는 것으로 믿게 되

    었는데 , 그 中에 Antoine Meillet 갚은 言語學者도 이렇게 말했 마19)

    『言語의 質實하고 有益한 分類方法은 오직 系統的 分類뿐이다』라고.

    英國人 Sir William Jones가 1786年, Bengal Asia 學會에 서 行 한 San

    skrit에 關한 講演은 lndo-European語族의 꺼주究에 長足의 發展을 招來했

    고, 그 前 에 는 lndo-European語族01 란 單一話族이 그렇 게 도 넓은 面域을, 그렇껴도 數多한 族屬으로 分離되어셔, 이 地球上어l 分布되어 있는

    事實을 아무도 想像하지 못했으며 , 또 마른 分野의 學問, IlP 人類學이 나, 考古學, 또는 歷史學等, 그 허 느 分野의 學問도 完途하키 不可能한

    成功을 言語學은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lndo-European語族의 分派關係논 August Schleicher는 「系練樹」

    (Stammbaum) 20.\로 表記해 서 印歐語%究史上 有名 한 指標가 판 바도 았 었 다21)

    18) 그러 나 形態的分類가, .lt較言語學에 있 애 서 必須的얀 課題연 系統的分類에1 全然 無意味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正經한 것은 아니지만, 깜은 形態플 가잔 言語들은 大體的으로 同一系뺏에 않j1는 f뿜率0] 컸기 때 문이 다. j'iIJ r孤立語」는 大體的으로 中國-西藏語族이 고, 댐折話는 Indo-European 語族과 Ham -Semi tic語族에 園하며 , ←R젖쏠語」는 大體的무로 “Ural語族”과 “Altai語族」에 屬하는 順向이 많은 것은 否認합 수 없다. 또 Typology(틀 語類型學) 은 Schleicher 다음에 도 繼績되 었 는데 , Max Müller(1861), \^l. D. Whitney (1868) , Gustav Oppert0879�, Otto ]espersen (l894) , G. von der Gahelentz (1901)쏠에 依해 서 論해 쳤는더. , 極히 흉풋近어l 와서 「構造主義言語學J (Structua!ism) 은 이 Typology에 새 로푼 쟁n뽕과 方法을 試;웹하고 있다.

    19) An taine Meillet; “Introduction", Les langues du morid. (ed. par Antoine Meillet et Marccl Cohen, 1st edition; Paris Champion, 1924)

    20) A. Schleicher; Compendium der vergleichenden Grammatik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1; CWeimar, 1861) p.7

    21) 이 Schleicher의 系행樹表는 그 當時에 는 言語分派익 標準이 되 었 £나, n퓨 R륨이 흐름에 짜라서 쨌點이 發見되 기 始作해 서 ‘ 드디 어 는 그의 弟子인 J. Schmidt의 「言폼波動說j (Wellentheorie)에 보다더 현賽이라 믿에지게 되 었다.

  • *힘‘國語의 ?F*{c펴에 씨한 11T1)t (�'t.-→) cl J J

    ][ -2) 이 와 같이 lndo-European語族의 分ìJÆ 0없族) 關係가 밝 혀 지 자, 그 外의 言語들도 系統上의 分類가 試圖되 었는데 , 그 니1에 서 Louis H.

    Gray의 分類22)를 →例로 틀어 본다.

    1) Indo-European;

    2) Hamito-Semitic; 3) Uralic;

    4) Altaic;

    5) Japanese and ]{orean;

    6) Eskimo-Aleut;

    7) Caucasian;

    8) Ibero-Basque; 9) Near-Eastern and Asianic;

    10) Hyperborean;

    11) Burushaskï;

    12) Dravidian;

    13) Andamanese;

    14) Sino-Tibetan;

    15) La-Ti;

    16) South-East Asiatic;

    17) Malayo-Polynesian;

    18) Papuan;

    19) Australian;

    20) Tasmanian;

    21) African;

    22) Sudano-Gunean;

    23) Bantu;

    24) Hottentot-Bushman;

    25) American;

    26) North American;

    22) Louis H. Gray; F ounda tions of Language (N ew York, The Macmillan Co. 1939) pp. 295"'418

    Chap. XI, The Indo-European Language와 Chap. XII, The Non-IndoEuropean Lauguage로 區分해서 說明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語旅(Languagefamily)만윤 덩|用한다.

  • C 1 4J *i�3.C{� 19r꺼

    27) Mexican and Central American

    그라고 쥔(이1 가서 名 語族의 -줍語數륜 감디갔헛]‘는데 參考i츠 iJ I ffi하면 9 유과 걷디.23;1

    Indo-European . - .. . . . . .. . .. . , • • . . • ‘ . . . . . . ..... .... 132 Hami1.o-Semiti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J6 Uralic or Fino-Ugric ..... .. ... ... . . … ... , . . • • • 32 Altaic . . . . . . . . ...... ... .. . . . ............... . . . . .. .... . 34 Japanese and Korean .... .... .... . ... . ..... .... .. . . 2

    Eskimo-Aleut . . ...... .... - . . . . . . . .. . . . . . ‘ • • • • •• • • . "2'l

    Caucasian . . ..... . .. . . . ....... .... , • .• • , . • . .• • . • • • • . 26 Ibero-Basq'�e‘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

    Near-Eaatern and Asiatic .... .... ... .. . ..... . . 29

    Hyperborean or Palco-Asiatic . ... . . . . .. ... -, 12

    Papuan ‘ • . • • • , • .. . • . • . . • . ‘ - . . . ... ------ ............. 132 Australian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6

    Tasmanian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 Suclanor-Guinean'''''''' '"‘ . . .. . .. .. . . . . . . . . -- .. 435 Bantu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83

    BurushaskI, Khajuna, or KunjütI . . . . ... - ... -1

    Dravidian . --........... - .......... --........... --. '26 Andamanes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2 Sino-Tibetan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15 La-Ti .... ... . … -… ..... . . … ..... . … .... ... . ..... . . 1

    South-East Asiatic or Austroasiatic… . ... . . 52

    Malayo-Polynesian or Austronesian .. ‘ . . . 263 Hotíentot-Buchman or Khoin . . .... . ... ..... …6 North American . . ... .. . ‘. - .. . .. .... ..... - ....... 351 Mexican and Central American .. ... ....... 96 Antillean and South American ... . . .. ‘ .. . 783

    Total 2,796

    23) Ibid; p. 418

  •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찜究(其一) C 1 5 J

    또 하나 다른 分類例로 Antony Arlotto의 分類블 듬어 보기 로 한다. 잃)

    1) Indo-European; 2) Semitic;

    3) Hamito-Semitic;

    4) Sumerian;

    5) Fino-Ugric;

    6) Altaic;

    7) Basque;

    8) Nothern and Southern Caucasian; 9) Sino- Tibetan;

    10) Tai; 11) Mon-Khmer;

    12) Dravidian; 13) Malayo-Polynesian;

    1:í) Austrlaian and Papuan; 15) Paleo-Asiatic; 16) Niger-Congo and Khoisan;

    17) North American lndian;

    18) Eskimo-Aleut and Athabascan; 19) Algonquian ; 20) Iroquoian and Muskogean; 21) Siouan and Uto-Aztecan; 22) Mayan;

    23) Southern American Indian;

    以上 二人의 言語學者에 依한 系純的分類는 그 分類方法이 一致點도

    있는 것도 事寶이 치 는 하나, 그 ←→꿨點보다는 오히 려 差뿔點이 많은 것

    ‘ 수 l

    H r i

    으 E

    따라 서 系統的 分類가 形態的 分類 以上으로 複雜하고 또雖事임을 얄 수 있겠고, 그러무로 아직 一定한 定듭강。1 確定되어 었지 않는다.

    2,1) Anthony Arlotto; Introduction to Historical Linguistics CHoughton Miffiin Co. Boston, 1972) pp. 45'"'-'63

  • ( 1 6 J 束亞文{t 19�펴

    ][ -3) 그리나 펀-하系統問짧에 關해서 JF앗보다도 븐 우리의 關心은 rrh�l語J(歸國語〉의 系統F,,'짧 얀 것 이 다.

    우리 「民族」이 獨立떠으프 發展해 온 갓이 이나고, 어느 엣날 어느 原始)�通社힘에 사 分책IlZ;ll 니 온 것 이 라띤, 그 原웨共週社會는 地球上의

    어느 꽤點에 位置했있、으마, 어느 때 우라 民族이 01 폈뼈共通파t會에서

    分離되 어 λ] 어 따 한 펀땀노 韓半島로 進入하거1 뇌 았고, 그 原始共通社會에 λ1 分離혜 니온 다든 쐐族認들은 어떠한 듭語들엔가, 하는 것을 쩨究 래보고, 적어도 밝펴브며고 챙力하는 것이 우려의 義務rJ:!의 하니앨 것

    。 l 다 .

    우리 韓國訊의 系跳냄R끄에 開해서는 이미 l겨外學:흙들에 依래서 많이 論해지고 있으니, 아직 간7. 定說을 보져 뭇하고 있는 터이다.

    ;4:;}E 떼닙è íJ I}챔한 Louis H. Gray는 편l팽語판 “Japanese and Korean

    family"로 해서 티겨;5핀와 유었는데, 더우71 그는 그 찮깨에서 다음과 감 。l 記웠하고 있다.

    j' 0] 관 言핍플으1 分상!는 소然 ?、�íMJ;�"�ll�.l 그 j티효성명젠 또한 짧心스민 다 며j �Zr-' -. 균本5폼에 附혜 이 는 그 짜땀i딴 ì�li):품는 fEft詩옴J의 픔댐등。l 다 ‘다l때-. -합國폈는 ::'1- “語形燮{1::"25ì왜 “갓;판1파’”이에 있커서 티本펌외 아주 接近해서 類{μ-;:;]나, 그 뻐윤 表示파는 後뽑iiiTI에 있이서는 웬짧힌원한 ←差뿔」른 료 0]고 있다. 0] 두 듬 핍으} 훤關의 問댐는 ìl/1. S. Kanaza wa27)에 {}'

  • C 1 7 J d찮國닙흠의 3Ft統마U이l 써한 {MJ;E(JAi→〕

    그 캠‘뿔30)

    그믹 고 問L갱-은 Turkic

    그러 니 이 세 語群둡을 한7C댐族오로

    Winfred P. Lehmann는

    에 서 “Altai語族은 Mongo譯와 Manchu -Tungus語,여71 에 包깜시키고 있다.

    보민, 또다른 한 學者의 例릎 들어

    ^ '.JJ

    좀 더 歐짧관 {탱說은 間따 提議되 기도 하는데,

    그려니 이 假定응

    類하는 것 은 類型學的 標準에 基폈흉듭 눈 것 이 다. Fino-Ugric語族과 Altai語들과의 親族I뼈係가

    이 連合語群을 “Ural-Altai"이 라고 다|用하기도 한다. 不確寶하다. 極度포

    야기이1 加떠 듬‘語」가 째�는 I1JJl立판 L T 이 假說的 Ural-Altai話센이l

    以“ H木5감”이 다. i한異있는 uì- û Lι;τL_ DP “韓國訊”외 또 더 하기도 하는데, 上 두 둡語들은 한층 더 接近한 돼族i해係릎 論끓하기 에 는 너 푸 쐐小하

    없을뿐만 이니다, lcl i'.U 이 들 때互:間의 親族關j타�:플 랫 게 할 수 기 때문에 ,

    있다. 듭디錄하고 은 語群(Altai語族)에도 111立시키고 있다. ’‘31)고

    言語學者들의 記錄올 縣감하면, 結局은 『韓國語의 系統은 模없 으며, 日本語와의 關係도 많은 差짧룹 보이 고

    以上세

    있 t�j해서 確定지 을 수

    또 間或 Altai語族과도 j핀關지 어 지 고

    옷하고 孤立的 位원에 있다.�라

    그 親近關係가 不確定的이 고,

    또 한 假定의 域을 벗어나지

    어서

    í!J論 以上의 새 學者는 Altai 語學者들도 韓國語블 鼎究한 學者들도 아니 고, 따라서 팩問바J

    수 있다.

    。1

    는 l쳐 容으로 평約될

    있 으 니

    記錄했을 따릎야지만, 어느 것은 퓨lff이기도 하마.

    學者들이 l뽑L펴語빠究플 全

    뿐만이 아니 라,

    으로 이 方面에 努力없。1 大體的인 見解블 程度의 「根據와 權威있는 見解」블 代表하고 있는

    일찌 기 Gabelentz321와 M. Courant331 같은

    아닐

    (New

    du

    30) Winfred P. Lehmann; York, 1966)

    31) Ibid; pp. 45 32) Georg von der Gabelentz; Zur Beurtheilung des Korcanischcn Schrift

    und Lautwesens. CSitzungsherichte der Kδniglich Preussischen Akadc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1892 Georg von der Gabelentz; Die Sprachwissenschachaft, Methoden und bisherigen Ergebnisse(同上) 1901

    33) Maurice Courant; Sur les études Corénnes et Japonaises (Les Congrès des 0 ricn talistes, Paris) 1899

    Aufgaben,

    aclcs

    Introcluction

    ihre

    An Linguistics: Historical

  • C 1 8J 束김묘킹C化 19障

    然 等티던히 한 분플은 아내치 만, 前記한 바와 같은 結論을 내린 바가 았 었다.

    그러 나 보마더 體系的으로 륨擊하게 韓國語의 系統問題플 퓨{究한 學

    者들이 았 었는데 , 우리 논 그들의 學說에 對히l 니 는 微底한 땀f究가 必맺

    하다고 믿 기 때 문에 可Íîg한 �� 1子細헤 , 그려 나 簡mtí-한 짧點만으로 다용

    렐에 서 紹介하려 고 한다 3 4)

    第二章 國語系續에 關한 諸學說

    國語系號에 關한 닙휩學說을 究明紹介하는데 있어 사 , 筆者는 모든 學說

    에 對해서 批判의 立場에 사 가 아냐고, 어느 學說이든 一次는 肯定의 }L ;陽에 서 究明해 보략 는 態度플 取하기 로 한다 .

    .êP ï휩方由來說01건, 北方由來說이건, 또는 Indü-European語族由來說이 건 간에 各說에 對해 서 一次는, 可能한 限 그 學說에 함定的인 立場

    에서 그 홉f앓可否에 對래 서 公zp:하게 파헤쳐 보려고 하는 것이 띈者의 態度이다.

    다시 말하면, 筆者의 見解와 다료다고 생 각되 는 學說에 對해 서 偏見的이 라거 나 批判하는 態度블 삼가하고, 오핵 려 親近感과 함께 接해 보 콰고 하는 것이 筆者의 옳바른 判斷에 도움이 되 리 라고 믿고, 또 이러 한 態않가 筆者의 j팎信。l 기 도 한다.

    1) 中國語와 같은 系統이 라고 믿 는 說35)

    I←1) 韓民族야 어 느 해부터 漢民族과 接하게 되었으며, 또 二L 文化

    34) 꺼論, 첫 으면 I쳐外學者들의 많은 學說플01 있겠 으니 , 얘 기 셔 는 따다n:셈↑系로 可能한 Il1'l: 結定的인 結論을 내 린 것 만을 紹介파려 고 한다.

    35) 中잃語와 韓國語가 갚은 系統。11 屬한다고 主張한 學꿇은, 룡|1a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筆者는 아직 찾지 옷파고 있다. 그러나 過去의 歷뾰의 記錄에 있어서나 過去 韓l園學者들의 語源說에서 야라한 色援가 灌맏한 것도 事

    탑이기 폐문에 여기에 함께 究마j해 보려고 한다.

  • 韓國語의 系統Jid어11 Im1한 맘{究(其一) [ 1 9 �

    의 影響을;언제 부터 받게 되 었는가는 지 금 당장에 찰라 말할 수는 없 겠

    하여 간 相當히 오랜 옛 날로 j펜j及히l 야 펼 것이고, 大뿜때으로 漢지만,

    四鄭의 設置)) 以後언 것으로 推測되고 있마.

    ,확句짧의 題l뿔jlJ꽁피lg; 에 있

    어서나, 또 約 八 「年後얀 百濟의 짧[뀔g¥쳐}Pì애는 힘ÞJ麗.8';0)니, 딘y펙民 들 사이에는 漢文化나 「漢文」이 相합허 習f냥{專播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

    設置에서부터 約七 f年後안 前記 漢四최ß의

    이는데, 이들 兩國은 치음부터 그 「인금」에 게 漢字의 「王」字푼 월하고4)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5)

    그러나 이에 머해서 新羅는 韓半島의 댔쪽 구석에 f立圖뤘、있만 1권E티로

    漢四짧과의 接觸이 늦었기 때문에, 高句麗와 던j쩍 兩國보다는 편씬 늦

    거1 漢文化나 漢文을 받아들이고, 또 習깜한 것�-� 보이는데, 新羅에사

    는 그 「임금」의 名稱을 「新羅語」로 민어지는 「居西千6), 次次짧7) 尼師

    今8) 麻立千9)J 等으로 號稱되 어 오다7t, 第二十二代 智5깐뻐c-효;千四年 (A.D. 503) 에 와서 llJ 호소 漢字인 「王」號틀 使用하고, !핏號르 ?월깃:JJ''J 안 解釋에 有利한 「新羅-듀 定하였다.

    新羅本紀第四 쩔l證祝立千條의 젠J年隊에는

    1) 漢武帝元封三年 (B.C. 108) 2) 漢孝元帝建昭느年(B.C. 37) 3) 漢成帝鴻嘉三年 (B.C. 18) 4) “秋九月, 王升핀. �풍즈F四十歲 .. 중쉴龍lll. 號東'11�펠g:::E(三國벚記卷第十三, 띔칩

    句麗本紀第一, 'úf↑祖菜I�J뿔=E-I냥L깎‘條[B.C. 17]) “百濟始祖溫祚王’‘(며「濟本*ê i¥f→‘ CB.C. 18J)

    5) 또 이들 힘꾀麗, 파濟 兩텅짧은 그 初期부머서 漢四캡1엠 파냐인 「樂浪]과의 外交關係의 修찌찌이 있있단 것무로 記錄)三國떳듬디)이 보이는데, 태 이들 샤 。l에는 意펌、í0iliíl1의 「딴J ò] )'힘댔었다고 믿어진다.

    6) “始祖姓朴ß:; ‘ 랜納힘판 .. . ... 다그略 . . .... 四月1적辰E! 1]位 뼈I단견힘千 中略 . . . , 힘西千, 辰言王, 낀!Iì. j긍 Pf- 팝人之제�. (三園史記 j퍼해끼ζ紀第一)

    7) “次次雄, 잊코慧充, 金人問파方言‘調짜也"C同上, 채‘m*紀弟 雄條註)

    8) “金大問則즙, 尼떠j今方듬 tt!., . . . . . 下m'& . . . . . . (同 |→ ‘ fJi理)t:. rrm今修)9) “金大問�, M젊jI.者, 方듬請微t다" 이liJ J:, r때j펀때L:IL "f J vfii註)

    {힘햄f次次

  • C 2 0 ) f한뾰갖:11:; FJ ipii

    (論I크, jf羅王rílJ:_JiiiE크千컴 次次끼핀者 딘i’�Î 今쉰 j-긋::, fajZ子者띠, 짧게쉰名 ↑핍崔됐遠1'1"우í'f王年ftljf, J곽꾀某王, 不즘‘댐西千’j1 뭔以착→言郞땀不fa쥐Hι。1-.:'1。 :Jr., 漢'Í"國벚휩t멘。j,껴1�f�간5홈꿨, 於짧:, i선V!때힘끼센, 孤헬等, 今記新羅팎, 퍼U:F= 方듬→亦宜횟。)

    그러 니- ��되年條에 는

    (四if.쫓十月, 群펀J:슴, 샘@1f:1j業ζl來, I행名까;;핀, 행저당껴꺼짧, 或}펴행f댐-., 或言 험f羅, 固핑以f장쉽f者, fE‘業 日 m, 歸者 , 網麻四方之義, nU;lU\\1國킹RrEit훗。 又빠 自I람힘國家者 fÆ'웹帝:1=., 딩fkQf끼1힘立텅랩, 필今;二 J-二tIt, 1딘때方단, 未j1.:영;跳, 今群닮→→意, 護J:행: '!}Þ�新짧國王, 王從之)

    이 는 힘句麗나 딘{한보다는 五百餘f[:':f꽃으1 일 이 다.

    1 -2) 以上파 같이 fI용間的으로는 若千 先後의 差는 있으니 , 핏文化룹 받아들얀 後부터는, 父化따으로 지〈準야 펠씬 높은 、漢文化애 ]필!쥔I펜 L-j

    머지, 그 民族自體도 1[:'1평1族(漢族)피 同←4族이라고 생각댔있단 6떠向아

    있 었먼 것 갇다. 아내, F;族은 사노 다르다는 것을 답覺하고 있었지만,

    오히 과 中國族o월族)의 後짧다고 담處하는 것이 보다더 쭈,싼스터운 띤 이라고 생각했었던 푼적이 있는데, 이판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갓인

    가?

    ;t;삶 우리 先人듭은 I=þ國A들이 스스프 自稱해 서 「냐l華J10J 라고 한데 對해서, “我東 「小華J"라고 稱하고 游足해 했다든가, 또는 1=[:]國語 「페

    즙」에 對해서 園語룹 「方言-J11i이라고 記錄했다든가, 또는 「訓民표좁」이

    란 촌풍한 名稱ù] 있는태 도 不꾀하고, 편宇안 「文字」에 對해 서 「띈文] 이라 쓰는 것을 固執한 點等은 이러 렌 웹tEÉ띠연 意識의 表끄[ù]라고도

    환 수 았을 것이매12)

    10) 中國人블이 「文化의 中心地」나는 뜻에서 스스로 自處파고 自햄했녀. 이는 그만한 理由가 充分,,1 있다고 누구나 민아지고 있다.

    11) 이는 「地方룹펌」의 n땀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버나 첼際로는 [웬人語J (I=þ國!굽홉)기 아난 邊方의 꿇民族익 듬듬핍를 總째j냈였다.

    12) 이 러 한 中|짧文化에 比해 서 우각 5cfr:에 對한 複合的偏Æ(Complex)은 맏 짜기 新j'{:디1부더보 보L이는E↑1, 例학떤 rj��l않14는 名稱에서도 판 수 있고,

  • 韓國語으jf젠’L‘껴에 協j한 {때究(딩>,) C 2 1 J

    그러나 무엇보다도 深刻한 것은 從來 우9 先人들의 國셋능디錄方式아

    다.

    llP r箕子束來說」을 우리 民族의 LE찌그의 E핀寶로 받아들이 고13) 또 그램

    으로싸 미1國人들의 後짧라는, 또 「되고 신어 하는」 二L 從來의 ?샘감3마J인

    意識을 滿足시키는테 JE當했틴 것 이 아난가 하고도 생각된다14’

    이 「箕子束來說」은 펜來는 1F是 I멘國人들의 記錄에 핍源한 것인데 , 若千의 史實에 홉張과 ßM웰가 i짜j]O되 어 었는 記錄으로 認定되 고 있고, 中

    國人들은 어런 式으로 周園의 異民族을 同차l빙11順시키는 1煩向이 있었다 .

    .f!p :代生」이 口授했 다는 「jlj뿔大博J lõ)의 記錄이 그 하나요, 史AE의

    「처{댔子世家」가 그 톤,01며, 그 셋은 漢편地理志 「熊j條의 記錄이다.

    이플 세 記錄들은 한결갇이 「箕子펀走꾀解」싫을 記錄하고 있는데, 이 J랩時의 中國人들에게 依한 「때蘇‘」이란 體;웅;은 탤只 漢然하게 많東半島

    以東의 地域을 呼稱해 왔기 때문에 現ff:의 íi짧半,烏」라고 짧I定하키는 어

    더운 일이요, 箕子가 出發한 「없」에시 그렇게 3띔이극離의 往쩍。1 쉬게 이

    푸어진다는 것은 至폈’t事:힐 것이다.

    新增 「束國與地將펀」 행크i-j'←‘ zp:製, 폐f세fl*에든 「jt子�IIU애 對히] 서

    다음과 같은 記錄이 었 다.

    「箕子폐, 在城內 7ðS패태핀ij치十年쩔추R핀j〔ntrr;ri션l鄭깅Cffw찮17.패;;�U디"G13'" J

    또 三國遭事의 著者는 íji'덴 , 댐댐, 方 탐, 1?}판」等 감더 多彩←룹게 表現하 고 있다. 또 現在에도 [大IIIJ天tifJ 밝은날에 . . ... . 피피」하는 만01 :m或펀머 고 있는 터이다.

    13) 이와 같은 事첼에 對해서 柳태J ,11솟한 說도 있는데, H[J 이와 까은 것은 “1땅來에는 다1國人틀악 폐쑤되J삼쐐윤 일바간 악이]봐자”는 팬IÍl이] 이 kfìfr되 었다고도 f행한다.

    11) 李쩍짧샌士 : 혐國핏, (�(f\:샘) 第二짧, 三 [箕 F뿌끼떼」zq rLF짧. pp.92"'95 參照.

    15) ["經名尙上也, J.;Ul‘돼 h건f씨잖넓II�땀之文, �따l각Qi파, 합]11:쩍-1G:끼I之퍼也, 泰火亡失 , 漢初濟떠κLl::ll 쩔題錯二十八짜, 號f월今文fJd밤, 後댐 j:�王맺:fL 'f')'쥐�t;, 於원t中得竹f짧f섬판, JprfF[ 3C 꾀J%jI;iljj:;%iFf 1---띔r淑

    16) 李內협 : Op. cit., pp. f.13"'94

  • [ 2 2 J 東gE文化 19i넓

    ÐP 平壞에 「箕子펴」가 原來부터 있었먼 것이 아니고, 그 어느 必몇性 므로 因해서 高麗혐宗 l→年 鄭文의 建議에 ↑k해사 立폐된 것이며, 또 李內壽I펀士애 依하띤 「돼在의 箕子陸은 아마 이 때 建設되 었다고 생 각되 는 갔子패堂 자리 에 그 후 ff1i1ß장業造한 것 연 듯하다. J17l

    그리고 이 짧의 批測。] 正確性이 있는 것으록 부이는데, 前記 新增

    「東國!맨地將띈」의 記폈에 논 「箕子패」의 記錄에 는 줬子폐의 確實한 位j뭔 가 明示되 어 있지r않고, I在城內」라고만 記錄되 어 있다는 事實이다.

    이에 1:1:해사 「箕子첼」의 記錄에서는 「箕子흙, 在府城:lt%山上。」이략

    明示되 어 있는데 , 샌:宗實錄地理志 2f安훤平壞府條에 의 「箕子蘭tE府城北

    면山上。」의 說錄괴→ →꿨하고 있다.

    1 -3) 이 「箕子東來說」이 언제 부터 우리 民族의 正史로 附會하게 되 었 는기 는 챈考키 어 려 우나, I東國史略J18l 이 그 짜]期의 j뿔著라고 생 각된 다.

    이 제 그 --例륜 金뿔榮原著 「歷핏輯IIl�J ('합時의 學M細뼈局長 李鍾泰

    刊行 光武九年 r-Jj, 1905)에서 플어 본다.

    「훼應紀」

    「되朝따太祖文빨王箕子元年펀王 箕子, 子姓, 名폼餘, 般王成傷之由짧힘之諸 父←벤。 封於箕而子템, f&號箕子, 乃彼髮f¥狂셈fJJ(, 鼓琴以 自悲及n던펴;王代섬入!投, 命김公繹箕子떠, 問股所以亡, 箕子不忍、言, 武王乃問以꿋道, 箕子f펀陳洪範7L購,

    따而箕子 義不@t쫓늦닫之朝따, )띄平짧, 或티朝따亦謂之韓]

    또 그다음 f nUE에 사 金‘뿔)榮Ef;는

    i:J1i:箕子以 f1i‘十또캘t;[t出f싸í:'r JCE; , %:f:치효事記及 햄i奇二�之家訊, 然、箕子之東서l0:fi、j되j딴}폐 自yj1Tii1거F셈ttL5j또, Jl!I폐T끽한꿇後人之追尊tßo i&特:Ff箕크:,=q:‘以@Jj

    具忘」

    라고 記錄하고, 그 後에 젝←了→는 ItE{V:四 「年, 壽九十三, 핸平壞之玉깜

    17) Ibid., p. 95 註 參照18) 李때 太宗i꾀] 찌J1ijJòll 1:/c:i511 사 權立 河써 李웰等。l 細짧, 그 卷第←→에 樹겸,

    효‘子, 짝1ii팩폐샤\0, 파R-LI컨1; , 드즈韓, 평f羅, 핍濟, 高句짧으1 Ii댐으로 되 어 있다 .

  • 韓國語의 系m폐에 1;펴한 lífF究Ot‘ →) [ 2 3 J

    山흉옳觀뿔」이라 했고, 그의 子 莊핀王이 덩|繼하고, �믹十一f\; 평玉名 否가 「奉」에 降服하고, 그의 아들 띠十二代 哀王準이 二十歲에 立했는 데, 그 해에 행人 衛滿의 所훌훌£ζ로 失國한 갓으로 되어 있다19)

    끝으로 다시 「箕子꽤縣」에 關한 추며뚫1'[센土의 ;휠見을 Ul用히1 관다.

    I-Ifr�볍 箕子朝따은 7i:子와는 *El倒없는 우 리 의 士띨社會인 J::jJjt;딴--,i1JWi ili社햄에서 發i힐된 것이근1고 맏는다. 디 이 딴ß]띤, 0] 朝씨C은 따끼: “밟죄l때때” 。Pt고 일컬어 오딘 阿JUihl'lfd:會으ê{Jí조뻐하IR이 힘i支떼族에 대 산ß]-여 새로운

    體iIî�를 이 룬더l 不過한 것 우로, 0] 쩌f支:버êf표jj;은 箕많가 아니 라 後 티 中國式원j Lí;에 依한 韓.s;;'i는 結論을 얻게 되 있다, j'O)

    1 -4) 그러 나 그 後의 北滅人 「衛滿」의 꽤蘇許取에 依한 「衛滿폐蘇」 의 ��錄은 否認할 수 없는 史寶이마고 믿어지고 있다.

    「펴따王滿者 챈人tiJ. c . . '페王l잃紹, 反入f세/;3., 滿亡i암聚:현千除人…稍값않ì .00ìff 'iJj 빡總것及故채�xff亡命者, J:→之, 都王除j (밍flêt 朝따i專)

    또 「歷史밴더略」에는 그 時期가 明示되어 있다.

    「衛滿많破朝때 , 센子王I랬, 稍%훼1람짧;1q部及5itq齊亡命者, 연?1ff핀、깨fi힘Ifí時;, 21)

    天下稍定, "'j

    또 그 後 「衛펴‘댐蘇은 그의 孫子右‘많時에 漢武帝(짧IJ微)에게 滅한 바 되어221 八十七年만에 끝나고, 漢武帝는 그 땅에 自國의 那縣制플 寶拖해 서 所謂 「漢四那J(樂浪, 환짧, 臨Hl, 玄옳)을 設置231했는더11. 이에 對하1시 史記卷二펀十 휴VfJXi專에는 「是뽑 漢東技據행꽤蘇 以왔那」이란 記錄。1 보연다.

    이 漢四컵ß은 前漢괴- 後漢의 I행力의 盛養에 따라서 그 撥合이 無常하

    19) r 自箕子己때至準T未凡四十::::',t1171,핍=十九年而셈면햄1-뺨벚해Ifl1í 20) 李因壽 : Op. cit., p,95 21) 惠帝高팀時(B.C. 19,1�180) 22) 元封三年(B.C. 108) 23) 元封四{f.(B.C. 107)

  • l 2 LiJ 겨�5l�文化 19i川

    며, 째로는 擬張되고 또 때흐는 縮小되기도 댔였으나, 五百餘年동얀 韓半흉 맞 평南滿州j캘方얘 }랍住했었던 韓民族(主로 夫餘 i합句麗 r되‘濟, 械젠, í'天퍼)에게 3z:配者로이 쿠5;ti/1했았다:ι 만어진다.

    그리 나 後漢의 國기의 弱셈외- 高쉰1麗의 興/꼬에 i;&해 서 드다 어 高句麗에게 滅돗뇌꼬 다시 i司fi]댈의 領土로 統合21)도l었다.

    그려 나 以上과 갇은 漢암族의 韓야3鳥統쉰는 &:í、然的으로 그들의 移民

    流入이 隨行되 았었、윤 것이나, ]ÌÍJ記한 I 셋記 떼應傳」의 1" .滿亡命, E짝黨 =f餘人 . . 'J이바만가(또는 設令 假構마J이마고 할지라도, 箕子의 記錄,

    「初箕子之댔來也, �잊A隨之者五千---- j) 또는 漢四캠ß때 의 移民도 비 록 確失한 數字의 듬타錄은 없으나, 이보다도 펠씬 大端한 數字이었으리라고

    믿어진다. 1 -5) 이러한 緣由인지는 確寶치 않지얀, 우리 國民 r:þ에는 中國æ來

    의 姓g;가 많다는 默이 마25)

    尤先 「箕子束來닮」괴→ 關1獅해 서 「韓많」와 「응하ESJ의 家테얀가 함깨 그 始

    祖플 「箕子」로 삼고 있고, 太原(忠州) 默=f밀도 箕子의 後孫。1 파고 記

    錄하고 있다.

    r:f!상깜子以下五+王事, 장1;出於J데구,r:ç先크5週흉F記71합검 二f(;;之家請 !2f,)

    이 이1 對해 서 李困틀월1편士는

    “箕子플 始祖로 산는 것은 덜한 것도 얹。l 빔E냐]의 家系흔 벚나게 하기 월 한 手段야 거 니 와, 이 El 한 家系의 假t폐은 古今응 i렴하여 보는 事f쩌지 만, 그 籃觸온 별il 韓J3i후져!1^n댐{t이1 發하었던 것 이려고 생각된다"27)

    2-1) A.D. 313 2:;) 그 姓f(;가 尤先 漢字이고, 漢字로 fF姓해야 되는 理며로 因해서 自然 中國

    人틀 姓fE;J른 따서 지 였올 可能性도 많다는 原因에 서 이 였윤 可能性도 크다. 26) 歷벚輯略 卷느 p.G 25) 李因짧 : Op. cít., p.97f 26) “韓國姓밍맛헤f' cþ p,25

    申奭鎬 “괜國þ!j,tE;柳說” 參照27) 1981月 5日 30(士)字 lki표,터웹(第18353많)

  • 韓國語의 系統論어'1 �힘한 때7究(져一) C 2 5 )

    이 러 한 例는 뿔單 前記 「韓奇二많」의 箕子始祖系讀에 서 뿐만야 마니

    라, 우리 周圍에서 흔히 찾아 괄 수 있는 例이다.

    다음에 若二F의 例를 들어 보떤,

    o 文化柳�(始祖 庫達)는 夏禹民의 後{싹이라 記錄하고, 。 固城李.Pí;(始祖 짧)는 펴文帝의 後孫이다고 記錄학고,

    。팝서‘I姜�(始祖 以式)는 [íf'H�帝가 쉽句麗에 홉入했을 얘 따ζ}-잔 사람이 라고 하며,

    。 南陽洪�(始祖 股‘뾰)는 }합太宗이 댐句麗에 派훨했던 學士이 라고 하고,

    O 延安李�(始祖 짧〕는 蘇定方。l 百濟블 찬 때에 따라온 將軍이라고 하며, 0 南原房民는 康 名將 房去顧의 後孫이 라고 主張한다.

    이 外도 中國의 聖A學者들을 先祖로 모시 고 BÇ旅도 었다. 당IJ

    O 昌原孔民는 「¥L子」의 後孫이 요, O 俊써‘l朱民는 「朱子J(朱헐) 의 後孫이 라고 主張하고, 。 尙1'H周�는 [太極圖說」의 著者이 요, 宋學의 始祖인 「周敎탱」가 그 先組바고

    王張한다.

    도 이미 名門E族이요, 코族。l연사도 구태어 그 始祖룹 �I:l國에서 求

    한 例도 있으니,

    。 高1i]麗王室의 高�는 1iT醫高辛民의 後짧라고 王張파고,

    。 新羅의 金ß:;도 小돗金天ß:;의 後商라고 主張하며 ,

    O 高麗太祖王建은 뽑關宗의 後孫으로 되 어 있다26)

    이 外어l 도 中國에 二L 超源을 두고 있는 姓民가 相當數에 達하고 있으 나, 여기셔는 以下는 省略하기로 한다.

    또 極히 最近의 일이지만, r“中國名門의 後짧”라고 自稱하는 十二姓

    ES모엄」엔 「明義會」의 記事가 某日刊紙27’에 記載된 일。1 있었다.

    그 記事의 內容에 依하면, 李朝時代에 있어서 中國 歸化人은 세가지

    로 分類할 수 있는데,

    26) r碩韓國姓ß:;大觀」 中 p.25

  • C 2 6 J 束단딛갖:11::. 19뼈

    그 하냐는 王辰俊亂(1592) 과 T西再亂 (l597� 때 에 明電의 一員 으로 韓

    半島에 ìJff!피펴 었 다가 품 o}가지 않고 머 블 더 산 경 우얀 티L 上짝떼IGE딛, 海

    州石많, 淑江t퍼E5, }Fi江)十5:;, 、댐〔江徐5:;, 뭘1陽느fé�, 쩌끄f、I、I賢5:; 等이 고,

    또한 경 우는 鳳林大휩 (孝宗) 이 內子胡亂으로 灌陽에 있올 해 , 짧交를

    맺 어 歸國함 때 힘 끼l 와서 歸化한 姓5:;들로 全部 九名 이 고, r 1L義土」 라 고 일 컴 기 도 하는데 , 그 며에 서 濟南王E딩, 짧ßffl鄭ER, ljjJR힘팩5:;, tt1'f'!黃B;等。1 고, 셋 째 로는 �I쫓피j5:;안더l 仁祖二十←·年 明使닮 으로 왔먼 胡克

    己가 明 나라가 亡‘댔 다 는 消팀、을 듣고 r1JO平」에 자리 장았다고 힌 다.

    以 上의 매國系統의 諸 짧化A둘플 箕子東來時의 「股人隨之者·五千」 과 衛滿亡命 해 의 「聚필千餘人J, 그리 고 漢四컴� 째 의 移民數 (그 中에 어 느 짧많가 이 땅에 定홉했、 는기→는 記됐 없 어 不明) 블 合치 고, 또 그 後에 있 어 셔 의 數 많은 네]國 대 來 姓많들의 後孫올 合 치 면 , 우라 民族 中에 ’깎國

    系統의 人 口 數는 實로 됩大한 數에 達할 것 으로 생 각되 는데 , 그러 나 이 다l 에 는 事寶음 認定할 수 있는 것 도 있으나 그 랭 지 않은 것 도 많고, 中國을 뚫拜한 나버 지 지 기 의 世系플 빚 냐게 만들기 寫해 서 後iít에 그렐

    듯하게 꾸며 낸 갓도 많을 것이 라고 맏 어 진 다 28) 이 와 같은 갓 이 尤先

    韓國A의 姓Ef;가 )fr!행式。] 고 漢약,.플 使用 했、기 때 문에 , 中國人의 姓5:;와

    漢宇가 갈은 경 우, 0] 와 팬結시 키 기 가 쉬 웠 다는 데 도 그 原 因 이 있 었 을

    것 이 다.

    1 -6) 그 렇 거 때 문 이l 우리 民族의 固有한 「 말J (韓國語) 은 오랜 옛 날

    부터 서 中國語에 서 도 借朋 。1 많 았기 때 문에 深刻한 다격 을 받 았으며 ,

    이 른 옛 날부터 시 그 發達0] 中止되 었 던 感‘ 이 灌原하고, 새 로운 文化文物에 關한 諸養는 모조리 며國듬폼에 서 f곱用 했 으며 , 오히 려 固有한 우리

    의 「낱양J (語薰) 이 漢字로 t\;;置되 는 頻向까지 9뭘하게 되 어 서 , 天文, 地理“ 時候, 한j族, 家1륜, 人體, 衣服, 方깐노 等에 關 한 「基本譯暴」가 漢字에 말 라 서 代置되 어 가고, 우 리 의 B 常f텀語에셔 사라져 가논 形使 이 되

    28) 申奭鎬 : Op. cit. , p. 26

  • 고 있 다.

    韓國語의 系統파에 關한 冊究(흉一) C 2 7 )

    尤先 그 一例로서 「方位」에 關 한 語쫓는 「束, 西, 南, 北J2�1 의 名稱이 우 리 固有語가 現在 알려 져 있 지 않으며 , 親族語에 서 도 「兄j301 이 란

    語薰도 漢字借用語블 쓰고 있 을 뿐만이 아니 라. r아버 지 便의 兄弟와 그

    歸人들, 맞 그 째妹와 그 男便들」의 名 稱과, εε 「어 머 니 便의 兄행와 그 歸人들, 및 그 꽤fi*와 그 男便들-:E} 名稱이 一llJ 中國諸의 借用語 이 고, 「地理」에 關 한 「山, ) I I J 야 「외 7 룹 」에 λl 代置된 것도 數띄年前의 일 이 다.

    이 렇 게 해 서 오 늘 날 「韓國語離典」 은 「우리 말」 과 다:1國語借用語의 比率이 :3 : 7J3lI 의 程度라고 한다. 그리 고 大體的으로 學術에 關한 論文에 있 어 서 나, 新聞記事等에 있 어 서 中國語借用의 程度를 조금 精神차쉬 저 보게 되 면 , 漢文의 우 리 말 합돼程度는 놀라울 程度라고 아니 할 수 없 다.

    다음은 極

  • ( 2 8 ) 束2文化 19輯

    바 록 極히 小數이 지 만 格助詞의 存tE와 動詞의 語尾活用은 폐立語‘인 中

    國語와는 嚴別되 치 때 문 이 다.

    그러 나, 옛 날에 漢文化에 1:&해 서 心땀댄폐되 였 던 大多數의 橋學者들

    다1에 는 갖)論 「國之語흡몇"r,�'l國 與文字不相流通J331 의 意見안 學者도 많

    이 있 었 떤 것도 事훨 。1 겠 지 만, 그 렁 게 생 각하기 블 싫어 댔 먼 關學者들도

    많이 있 었 던 것 같다.

    그 -例로서 世宗二十六年 甲子二月 에 集賢願副提學 f같萬理等의 上流

    文34) 에 는

    r-, 我朝 自祖宗以來, :'Ë誠事f::, 鍾華制, 짧f 同갖:同휩h之時, 원IJf쑤끓文, 有驗觀聽, t짧 티詩文뽑 本古字, 非꿨f字也。 �JJ字形따做 띄之塞文, ffl l'좋合字, 盡反於얀1, 寶無所據, 若流* 國 , JN;有'ÎP議之者, 뿔不7섭f없於륙F大폈華 →, 自古九’H之內, 風

    土雖異, 未有因方픔而別웹:::t"'?者 p흉豪古西휠女’합 日 $西著之類, 各有윷字, 是皆헛S:k事耳, 無足道者, 傳티, 用 夏 變헛, 末 閒 變‘於핏者&0 歷代 中 國, l'�ÿ J),我國,첨箕子遺風, 文物禮樂 J:t擬中華, 今져I]{'p請갖:뺨4>國매 自同於핏Xk, ;문所調棄蘇

    合之香, 而取4명願g之갯L也。 뿔非文 明 之大累행。」

    라는 記錄이 보이 는데 , 前記 「國之語즙쩔乎다]國 與文字不相流通」 이 라고

    생 각하먼 歸學者물의 數보다는 í. , ,�適華制, 當同文同軟之時: . ' . 。 團代中

    國, 皆以됐國, 有箕子遺風, 文物禮樂, tt1랐다]펠'' 'J이 라고 微頭澈尾하거}

    事大폈華에 젖어 있 었 변 偏學者듭의 數가 훤 씬 더 많았던 것 으로 함E뼈”

    될 뿐 만。1 아니 라, 이 분들은 中國式으로 文章을 썼、 기 때 문에 思考方式도 다1國式으로 했 던 때 도 았 었 던 모양이 다.

    1 -7) 따과서 우리 말의 由來가 모투 띠國語에 서 緣EÉ 했 다고 믿 었먼

    f煩向도 많 았 었 마고 생 각되 는데 , 大部分의 「語源」 에 關한 著書에 서 이 라

    한 碩向을 찾아 볼 수 있 다. 그 ←→例플 李뾰光의 「쏟峰類說」에 서 찾아 보면,

    33) 訓民正音 世宗쩨월 rr;文中

    34) 世宗實껑: 卷一百二, 二十六年甲子二R 條

  • 韓國語으l 系統폐어l 關한 뻐究 (其一) l 2 9 J

    「今ii:!-謂父 阿父, 母調더 阿護 1:차痛則�f- 阿節, 驚恐則呼 阿母, 此E!ß古A所謂횟痛慘↑묘未휠不n乎父母之義也。 阿행字 出李長吉傳及崔致遠쉴짧뺑序, 蓋本庸語

    也。」

    또 黃消L錫의 「탱齊遺橋」의 ←→鎬인 「華즙方言字義解」 에 서 몇 개 의 例를

    들어 본다.

    O 又按我語呼大野 티 벌 , �Pjtr평 之轉也。O 又呼野 티 들, 띠혜떤 之轉也。 O 呼雄티 수者, 수E!1l雄, 或웅或흉之轉也。 O 中國南陽人 댄鼠댐睡, 없탱音{뼈, 佈之華품如東音之走, 是我國方 즙uHit탱走者

    E!P 1혐 陽呼없옳듭홈꼽也。

    O 通呼子-륨자식 者, 子息、 rn 。 整植m.。 환呼子 티 아 플者,

    표而短也) , 專呼女티 질 者, 他也。 調其出 妹{也者m.。

    阿孩等 rno (아려 등 폼聲

    以上의 例에 서 「華즙方言字義解」 란 !11}題블 理解할 수 있으리 라 생 각

    하는데 , 則 「華룹 (中國字좁) 으로 方言 (國語) 의 字義 (語淑) 을 解釋한다」

    는 돗。1 된 다. 또 黃1엽L錫은 「國語의 語寶中에 도 漢字즙에 서 轉來한 것 이 있 음」을 主

    張하는데 , JlD

    。 今以三짧通考 魚麻二짧 從我東方 즙究之, 則去휴숍가 (가 去) ; 旅좁나〔라

    之轉) (나 , 나 가 다) ; 購합사 ; 語音마 〔말本音) (語 = 말) ; 소予좁나 (냐=

    我) ; 餘音나 (냥本音) ; 徐音나 (날本音) ; 格音다 (닥本잡) ; 웹좁사 (今人握

    米 問 � , 及屋價, stt 티網米, TIij網音사, 又呼增音사字皆從찜, 점者 i감必音사故

    也) ; 魔숍나 (라之轉) ; 又ftll熹嘉二音今皆從^F, 此則魚CF三홉쉽也。

    lß.音나 (舊ii:!-呼男如13 난진 종, 此�\、lß.古音나, 故흥종값皆풍나) ; 都 흡다 (껴 如答古音同) ; )콤音다 (殺性 日 다혀 ) ; 행숍다 (당本音) ; 租쁨자 ( 今ii)-i1'f.官載還上티 還租而 上字舊音亦近租) ; 土숍짜 ; 主音자 ; 孤音화 (흰 木音) ; 此則 廣字三

    짧也。

    그리 고 그 다음에 說明을 붙 여 사,

    意者我東字音, 必古康世f專來, 而中經宋宋遺金元明歷代, 被漢音累變而東人障

  • ( 3 0 J 東균2)(化 19뼈

    習亦隨而變, i닫字音굉f�變而理語則 觸舊耳。

    또 著·者年代가 未詳인 「東言考略」에 서 例를 들어 본다.

    O 續 티 오힐 여 者, 7C끓亦m, J[끓者可也, 詩增來無止, j훤%혈可 ill.。

    。 티 티 가라者, 覺那也, 人之감티 所以覺他也。 그긋 타 이 라者, 11兪那也, 所以險告f며iß。

    O 明 日 발者, 發 也, 光發옳바1, 詩 j=] 明 發 n 품 |딘 야 답者, 於代 l젠, 때영'JIl' 더 홈t\:也e 注티 代明也, êfjf生而폼f\;也。 字從代 티 。

    。 防塞R 막者, 莫-æ, ií연物莫웹者 防塞iJ! 0 j옮13되 우者, 通手iJ!。 慣決H헤 져 者,

    解處也, 解其所處也6

    O 劉 티식 여 者, 食뽑也, 揚子方言j=] 己不欲환而旁A說之, 不欲愁而旁人짧之,

    F겹楚人調之 食關。

    o 웹LI크 쥬 리 者, 詩所;없調힘l ill. , 調音觸, 館 딘 볼者, 뿜�-t!L, (J힘F\U ß첼 自 浮大n O 還커�티 도라者, 돗U껴5 也。 쫓Ij者有還意。 1>>Í!反1=1 도라者, f떼져�-æ。 前초-而f페꺼갓 �

    f前去處;란웹雄環 也。

    以上 몇 冊의 「語源」을 論한 著書에 서 引 用 해 본 바와 같 이 , 한견 같이 「우리 말」 이 中國語에 서 f섬來해 온 양으로 主張하고 있는 것은 35) 結局은

    「우 리 말」 이 中國語의 一種의 쪼語라고 생 각한 탓 이 아 넌 가 하고도 생 각

    해 본다.

    11) 韓國語를 日 本語와 만 結付시 키 는 說

    H "'1) 韓國의 古史애 나 古書어] 는 日 本 이 나, 日 本謂에 關한 記錄0]

    大端히 貴해 서 微微짧寂한 感을 禁혀 못하는 反面에 , 티 本 에 는 그 -권댔

    ( E 本書紀) 에 나 古書等에 「단灣本紀」를 f펑始해 서 「新羅」 냐 「高句麗」 또

    는 三韓에 關한 記錄이 豊富해 서 , 우 리 의 핀語와 關聯。1 있 다고 믿어 지

    는 A名, 地名, 또는 普通名詞等이 豊富하게 發見되 기 때 문에 일찍 부터

    日 本學者들의 注 目 하는 바가 되 어 왔고, E 本의 史學者 나 語學者 中 에 는

    35) 그 中에 는 껏!폐 {煩聽한만한 說 이 없 는 것 도 아니 다.

  • 韓國語의 렀統論어l 關한 陽究 (其一) C 3 1 J

    이 의 解擇을 試圖 한 사 람이 하나, 둘。l 아닌 것을 우리는 알고 있 다 36)

    또 일 찌 기 德川훤府時代 1717年띤에 新井白石라는 學者가 「東雅J (二

    十卷) 라는 著書를 하고, 8 本語의 語폈을 그 一部分을 韓國팝와 關聯서 켜 서 論했고 37) 또 兩森芳洲라는 韓國語學者가 나다나셔 (? "-' 17;)5 , 英祖

    三十一年〔八十八歲〕) 韓國語에 關한 많은 著書를 남겼는데 , 그 r:þ에 有

    名 한 것은 「交憐須쩌J, 3BJ I憐語大方J , 38J I全一道人」 等이 고, 이 들 著書

    는 그 當時부터 二十世紀初期까지 B 本 에 있 어 서 의 韓國語敎科홉로 使用 되 었었다고 한다 39)

    이 外에 도 德} 1 1폈府j뽑代에 相當한 數의 韓國語學者가 있 었 던 것 으록

    傳해 지 고 있는데 , s 本語의 굶源을 韓國語에 서 求하려 고 했 먼 主련 學

    者로사 는,

    本居宣흉 ; I古事記{專J

    購井貞뼈 ; I衝 口 發J (←(卷 1781) ; 갑川τI二郞 ; I짧넓11훔J, I 日 本띈紀通證」 等 ;

    等이 있다.

    이 들 著書는 隱然中애 그들의 意圖가 傳해 질 따픔이 고, 系統問題어l

    對해 서 는 直接 論한 바 없었마. 그려 나 이 들의 昭究는 그 뉘 의 明 治時

    36) 0白 馬庫吉 : “「 日 木밤紀」에 보인 韓語의 解釋" (뽀 學쩨픔 第P、編 第四 • 六 ·七號)

    。4、흥進;qs: : “ B 本紀。11 있 어 서 의 外來語짧究" (國學院雜認 때 六 � = 1930. 2) O金澤Et르郞 : 韓 13 :司 뻐퍼 〔東京, 1929)

    37) 新‘井白石는 이 外에 도 [退私웠」과 I 띄石手簡」等 著띈에 서 도 wJ\t國밟에 關한 論을 試圖했 다고 한다

    小강進平 : 떠빡語學史 u함訂補注版. Tokyo, 1964) , pp. 57�59 參照

    38) 이 兩뿔에 對했시 는 꿇近에 日 本國京都大學文學部 國語國文탠冊究헬編으 로 影ßJ뀐l行된 바 있 는터 , 그 原 本은 「爾語大方은 日 本國外務컵熾版인 매 , 1882年(明 治十표年 六月 〕 印行이

  • ( 3 2 J 東亞文化 19빽

    代에 있 어 서 充分히 韓國語f규究의 基擬가 되 었고, 또 그 發展의 刺햄빼

    가 되 어 寄與했 었 펀 것 은 플렴 없는 事寶이 었 다.

    n "-'2) 그러 나 韓 日 語系統的 親近性에 關해 서 本格的으로 R좌究한 그

    最初의 論文은 英國人 W.G. Aston의 “A Comparative Study of the

    Japanese and Korean Languages� (The Journal of Royal Asiatic Society

    of Great Brìtain and Ireland; August, 1879) 이 었는데 Aston은 이 論

    文에 서 韓 日 兩國語를 1) 흡頭組織 CPhonetical system) 과 2) Function of

    their grammar (그 文法의 機能) , 3) Character of their grammatical

    procedures (그 文法的順序의 特徵) 의 세 가지 로 考察했 었을 때 韓 日 兩

    國語 間에는 다음과 갇은 類似點과 差異點 이 있 다고 指網댔 다.

    ) I

    / ,

    、 Kor. Jap.

    ; 없 다, 1) 母숍調和가 었 다.

    2) 母音 이 九個,3) 獨音이 없다.

    4) 有氣흉이 았 다. 5) 獨숍이 있 다 .

    6) 子音이 語末에 올 수 있다. 7) r , 1 音의 區었IJ이 없 다 . 8) r音이 語頭에 올 수 없 다. 9) 單音節語 CMonosyllabic) 01

    10) 뼈語의 f농홉쉽對Mi은-

    ; 五個,

    ; 었 다,

    ; 없 다,

    ; 없다, ; 올 수 없 다 , ; 없다,

    ; 홀 수 없 다, 아니 다 아니 다,

    p ; f, h,

    h ; g

    語未으1 -1 -chi, -shi ( JI ) 兩語가 다 함께 人찌 CPerson), 性 (Gender), 數 (Number) 의 械;승:이 없 고 ,

    「가지 다J (持 : to have) 의 動즙폐가 없 고, 代名 詞 CPronoun) , 歡詞 (Numeral),受動 CPassive yoice) 의 發達이 不完全하 다.

    cm ) 接頭購 (Prefix) 가 發違되 지 못하고, 接尾離 (Suffix) 가 發達되 어 있 다. 兩語는 數詞는 ←→줬하치 못하나, 代名詞는 類似하 다.

    結論的으로 Astön많는 “그 숍옮과 數詞에 는 不-줬가 밟으나, 其他點

  • 韓國話의 系統닙삶에 關한 田究 (其→) ( 3 3 J

    에 는 一致點이 많이 發見되 어 서 그 系統上의 親近性을 否認할 수 없 다”

    고 文張했 다.

    本論文은 韓 日 語系統的親近性에 關해 서 本 格的으로 맑究한 그 最初의

    論文이 라 할 수 있겠고, 後代의 R 本A學者들에 게 많은 示랫와 影響을

    끼 천 것 으로 알려 져 왔 다.

    이 外에 도 韓國語를 日 本語와만 系統的 結付를 試圖한 R 本A外의 學者로는 Joseph Edkins의 “Chinese Place in Philology-←→-An Attempt to

    show that the Languages of Europe and Asia have a Common Origin"

    (The London Missionary Society of Peking, 187l) 의 같연감f기 있는데 ,

    同著:쉽의 表題가 表示하는 바와 같이 Edkins많의 著펀의 全體的인 텀

    的은 딴데 에 있 었 던 모양이 나, 何如間 同많는 同著뿔 p. 1 1에 서

    1) The Tartar comprising Mongol, Manchu, Trukish, etc. :

    2) The Japanese embracing Japanese, Ainu, Corea; 3) The Dravidian including Tamil, Telegu etc . ,

    等으로 區分하고, “韓國語는 H 本語와 F띤接한 系統上의 찌族語l뼈係가

    있는 것은 疑心할 餘地가 없 다” 고 論했 다.

    이 外에 도 W.E. GriffÌs40J 와 E. V. Zenker41J 等이 韓 日 語의 차J近I용해係를

    主張했 다고 하나, 前記 論著들과 B 本A學者들의 論文에 影쫓¥받은 것 으

    로 겸‘做된 다.

    n "-'3) 日 本의 明 治뻐 代에 있 어 서 는 德川땀府時ft의 f휩統과 西洋人들의 lîff究와 主張에 刺따을 받은 R 本A學者들이 「 日 本語와 韓國語와의

    系統上의 結8플 試圖」하려 는 努力 이 本 格化했 다고도 할 수 있는데 , 그

    中에

    40) W.E. Griffis: “Korea and Koreans, in the Mirror of Their Language and History" (Bulletin of 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Vol. XXVII, No. 1, 1895)

    41) E.V. Zenker: Das Japanische Lautwesen in der Liu�kiu and der AinuSprache. (Mitteilungen des Seminars Orientalischen Sprachen an der 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zu Berlin, XXIV, 1926)

  • C 3 4 ) 東亞文化 19뺑

    @ 史學者 白鳥庫吉이 있 다.

    그는 日 本上代史쩌究에 는 「韓國上古史」冊究가 不可避하다고 느낀 샤

    람으로, 그의 學問은 바로 「韓國上古史」의 꺼}究에 서 부터 始作된듯하다. 則 그는 1894年에 서 1896年사이 에 ( 日 本 明 治 27年"-'30年)

    힘휩君考 (學習 院뼈仁會雅誌, No. 28) , 1894'f. 1 月 ;

    후셔應古傳說考 ( 史學雅誌 五'" 12) , 1894年 12月 ;

    朝찌펴古代諸國名稱考 (史學雜誌 六"'7, 8) 1895年 7月 8月 ;

    훼縣古 代地 名 考 ( 史學쨌j찮: 六"'10, 11 ) , 1895年 10月 1 1 月 ; 1896年 ]月 ;

    햄應古代王號考 (소上 七"'2) 1896年 2月 ’

    朝縣古代官名 考 (소上 七"'4) 1896年 4月 ,

    弱水考 (소上 七'"11 , 12) 1896年 11月 12月 ;

    高句麗의 4z,稱이1 關 한 考 (國學院雜誌, ="'10) 1896年 8月 ;

    그 다음부터 는 韓國語에 關한 %究와 韓國語와 日 本語와의 tt較쩌究

    어1 專念, 次例로 그 빠究結果를 發表하기 始{'f했 다.

    EII道 (史學雜認, 八'" 10) 1897年 1 月 ;

    더 本합記이1 보이 는 많듭콤의 解釋 (소上, 八"'4, 6, 7) 1 897年 4月 , 6月 , 7月 ; B 木의 古語와 웹따품와 의 比n핏 (國學院雅託, 四",4,、�12) 1897年 2月 '" 10月 ; 펴史에 보 ò1 는 햄應語 (듬듬흠學雜誌, 一"'3-5) 1900年 4月 "'6月 : 다 시 힘R빡의 古語얘 就해 서 소 1::, ="'1) 1901年 1 j] ;

    以上의 諸 論文셔=1 r 日 本의 라-語와 휩8蘇語와의 tt較」 라 는 論文에 서 띄

    鳥A의 f팍究의 ←→端윤 紹介õ11 본다.

    尤先 그 序論에 서 民는 다음과 같이 論述했 는데 ,

    『나는 過去에 “三國史記" “ 日 木휩記” 떻에 서 령ngl댄의 ]최語른 ]단ie해 서 이 것

    윤 日 本語와 比較한 얻 이 있 었 는데 , 크게 우라 上代의 픔語와 類似한 것 이 있 응을 發見했 다.

    그 뒤 我國의 古픔 흉 기 지 고 彼國의 즙語외 對照해 본 結果, 符 合 하는 言 謂가 많고, *현對로 自 然의 類似라고는 생 각할 수 없 는 것 이 있 었 다. 따 라서 本誌

    (國學院雜誌, 四"'4←→12) 흘 텐 려 사 , 그 結果를 公表하고 大方의 批評올 바라기

    로 한다. �

  • 후양國語의 系�論에 關한 @다究 〔其一) C 3 5 )

    고 前提한 다음에 『兩國語의 類似點의 重委한 것을 例靈』 렀 는데 ,

    1) 兩國語7t 語順의 主格, 目 的格, 動詞록 順Ff한다. 2) 兩國語가 함께 尊敬動詞를 使用한다.

    3) 패國語에 는 「天爾遠波J (T 二 才 /、) C格語尾〕 가 있 다 .

    . 1) 패國語가 다 함께 良 行 ( 2 , 긍 行〕 으 로 始作하는 짧養가 있 다 . 5) 패國語가 함께 ;園 音 (有聲子音) 을 表示하는 홉 符 가 없 다. (니 가 칩 에

    -→-十 � 7J T � �ζ 4’ '/ '/ > t- � H T�서 � /' '/ ) 있소

    또 이 外에 도 格別한 곳에 서 도 兩語가 類似한 바가

    類似플 指拖하는 것 은 本橋의 趣답 가 아니 다.

    있 지 만, 文法形式 t의

    라고 말하고, 다음에 主로 古事記와 萬葉集,

    韓國語와의 比較를 試圖했 다.

    H 本書記에

    以下에 몇 개 만 例블 을연

    古事記 ; tadayohu (標) 는 韓國語 ; 셔 E:: ttötãn (標흉) 과 同 語 이 다.

    萬葉集 ; goto 때11) 는 (Jir:球픔, gutu, gutõru) 는 韓명껑語 ; J.. Kií. t Ct!ll) 과 |꾀 語 이 다.

    ]다事記f專 ; moe (패) 는 韓國語 ; 웅 um C햄) == ( 日 . me 흥 , umu 뽀, 뚫 . )

    萬葉集 ; hito (人, -) 는

    韓國諸 ; 훗 hot (單) 과 同 語 。l 다.

    萬葉集 ; Koto (事) 는

    韓國語 ; 것 (갓) bt (kat) (物) 과 同 語 야 다.

    等等과 같여 1:1:.較블 하보, 論을 보이 고 였다.

    끝에 가서 이 틀을 整理해 서

    1) 韓國語의 語頭에 많좁을 加해 시 日 本폼와 !t較.韓 國 語 ; 日 本 話

    ttãttãt (λF 풋 , 따뜻) atata (ka) (院) , muiu ( 믹 우 , 미 우 ) imu (딘) , mot (몽) imada (未)‘

    나오는 古語와

    다음과 같온 結

  • [ 3 6 J pap (맙) rnãl (료) rnat, rnas (맏)

    等 22語.2) 韓國語 p� 또는 ph 와

    짧 國 등홈 ppa- (빠 갱 _ ) 421 pãl (바 콤 , 발) pδri (매 라 ←) para (바라 )

    panãl (바 놀 ) pul (불) paiyarn (밴 암) pöl (벨) pyöl (벨 )

    等 30訊.

    東亞文化 19i빠

    ihi (飯) ,

    urna (馬),

    urna (味) ,

    R 本語 h-와 對應.

    日 本 語

    ho (廳) ,

    hiro (尋),

    haru (張) ,

    horu (欲),

    hari (針) ,

    hi (火),

    herni (뾰) ,

    hachi (峰),

    hoshi (젠) ,

    3) 歸國語 t-와 B 本詩 ts-의 對l댄. 韓 國 語 ; 日 本 語

    tahi ( 다 후 -) tsuku (盡),

    tari (더 블←) tsure (連),

    tururni (두루미 ) tsuru (廳),

    tta, ttang ( 땅) tsuchi (士) ,

    4) 함國語 s-와 日 本펌 sh 의 對뺀.

    �!찮 國 語 ; 티 木 語

    sul (숭, 수윤)

    syörn (점 ) seurneui (스띄 ) sai (셰 ->세 -)

    shiru (酒) , shirna (島) , shirnu (潤) , shiro ( 白 ) ,

    5) 韓國語 i- (yi) 와 티 本펌 r- (re, ri, ra, ru,ro) 와의 對應.

    韓 國 등폼 rnoi (rnoyi) (봐 ) nirn (niyirn) (님 )

    日 本 語

    ; *rnure (山) ,

    nai (nayi) , (내 , 나리 ) ; *nirirnu (主) ,

    nari (河),

    42) 여 기 「한글」 表記는 原文에 는 없 으 나, 筆者가 씨 넣 은 것 이 디 .

  • 韓國語의 系統論에 |짧 한 몫{究 (其-)

    oi Coyi), C오이 , 외 ) uri Cffi) ,

    pãi (pãyi) , (셰 , 배 ) para (때) ,

    panteui (panteuyi) , potaru (짧) ,

    (바도, 만다 , 반되 , 만되 )

    tteui (tteuyi) (띄 , 띠 ) *toro C�'n ’ tui (tuyi) (뒤 ) shiri C後) ,

    6) 韓國語 p- 音을 B 本語 m 읍얘 比較對應되 는 것 .

    韓 國 語

    nap (남) thup ( 손 → 톱)

    日 本 語

    namari (삶) , tsume (ffi),

    neup (늪) numa (입) , 7) 이 外에 도 /k : k, /m : m, / n : n, / p : p, ph, /s : s, S5, /t : t, tt/

    C 3 7 J

    年의 比較블 試圖했는데 , 白鳥民는 史學者43) 인 同時에 語學마j인 才能과

    韓 日 兩國語의 符合은 總對로 自 然의 類似라고는 생 각할 수 없 다는 그의

    信念의 一端을 보였 다 44)

    그러 나 그 後부터 는 (1900年) 그의 眼 目 을 韓國上古史꺼究와 日 本上

    古語를 韓國語와만 比較하는 것에 局限시 키 지 않고, 東洋g낀全體←→-特

    히 원]없, 쫓古, 滿洲, 通古斯等-→→에 關心을 돌리 고, 韓國듭펌와 日 本語

    를 Ural-Altai 語族의 한 支派로 줍做하려 고 했던 것 같다.

    民의 이 에 關한 業績으로는

    日 本語와 外國語와의 比較田究 (史學찜f誌, 十六�2, 3, 5, 6, 8, 9, 12) 1905年 2, 3,

    5, 6, 8, 9, 12月

    韓國語와 Ural-Altai語와의 比較6다究 (東洋學報, 四 �2, 3, 5-1, 2, 3, : 6-2, 3)

    1914年 6, 9月 ; 1915年 1, 5, 9月 ; 1916年 5, 10月

    日 本語의 系統 (岩波講!!E I東洋뽑、湖J) 1936年 11月

    43) 우리 눈에 는 그의 史觀은 多分히 日 本主義的인 色彩가 灌I똘한 것 으로 보 인 다 .

    44) 그러 나 표 는 1914年�1 916年뭔l 에 환l筆 한 「韓國語와 Ura\-Altai語외 의 .Lt較lîJf究J (東洋學報) 의 !T文에 서 는 Aston民와 金澤民의 {列을 들 어 시 「나는 前=民의 主張한 바와 같 이 日 本語와 韓國語와의 사 이 에 密孩한 類似가 있 다 고 생 각지 않는다」고 斷言학고 있 다.

  • 194펴 東!lli文化( 3 8 )

    이 샤

    수T

    E 꼽

    으 긍

    「同系論」

    「金j뿔a:三굉fíJ

    「韓 日 태l행語」 에 만 局l뺑해 서 그러 나 젤正한 意rVK에 서

    또 많은 業績을 남긴 學者로서 는

    n 0.>4)

    을 主張하고 昭究하고,

    가 있 다.

    全jJ韓l짧에

    빠究애

    三年j해 韓國語댐f究블 f훤히} 서

    이 方面으}

    金澤�는 18980.> 1901年 사이 의

    그의 휩‘書 目錄만 보더 라도

    알 수 있 다. t!1l f핍學온 바가 있 고

    을 다댔음을

    日 本訊와 戰國語, 채i球語외 의 .lbl핫둡

    1902年 r韓 日 패國話의 J:t:�싸Mf究」로 學位論갓

    1910年 r韓 日 |兩國語同系論J 60面, (英文譯 41따0 ,

    1912年 ; r韓 日 古代뻐名맑究」 獨譯附錄,

    1912年 ; r 日 本文法쩨論」 中 「文章論」에 시 試圖 했 다.

    1929年 r韓 日 同祖論J, 250面,

    같은 하F究룹 繼續했는더11 , 極히 最近까지 民는

    1951年 ; r韓國쩌 究와 티 本띈紀J (朝廳學報 第→빡 pp. 69�91) , 1955年 r韓 日 語比較씹폼J C 同 上 第八輯 pp. 21�31) .

    이 저1 金澤民의 「韓 티 兩國語同系論」의 內장을 妙錄一뽑하기 로 한다. 同著 第一→章 즙:꿇의 1:t較에 서 는 語薰 576�펙블 比較히 고 여 기 에 서 내

    란 結果를 다음과 같이 結論했 다.

    第-) 韓語 ‘h’ 는 티 語 ‘k’와 對應.

    기 ) hak(學) , han(韓) , hãi (海) f' gaku, kan, kai; L ) hãi ( 日 ) f'hutsu←ka(二 日 ) , mi-ka(三 티 ) , ko-yomiC歷) ,I二 ) 日 語에 서 의 ‘k’ 홉의 겸roe ;

    tark(짧) f'tori(鳥) ; kirö-ki (雅) f'kari ; 第二) t, n, r, 同等.

    pör (峰) f'hachi ; mur(水) f'midzu ;

    티 語. san-ra (짧良) →sarara ; tan-hi (암比)→tadjhi ; ina-ni (휩찌)→inari ;

    第三) ( -, ) 兩語 共히 ‘r’ 音은 語頭에 &지 않는다.

  • 韓國語의 系統히숨에 關 한 }딱究 〔其--)

    arasa(露西5:i→없羅斯) ;/orosya

    ( L ) 兩語共t-1 語中에 서 는 間或 省 ffij}된 다. 韓語, tàrk→tak(찢1붕) ; heurk→heuk(士〉 ;

    日 語, toriami(鳥網)→toami ;

    karino(符野〕 →kano ;

    tsukuri mono tokoro (作物所}→tsuku mo tokorh。

    ( r: ) 韓_ kurãm(렇) > 터 . kumo ; köm, (黑) > kuro;

    第四) (크) 韓國語 V 音온 R 本語의 ‘h’와 對탠 l ι Jha(梅)pyö(骨) γ 1hone냄) ; put (筆) ý'hute ;

    pat(머);/hata ; pa(바, 所) ;/ha (主뺨 /、 ) ;

    pöl (野) ý'hara(原) ; pära- (별ι?'haru-ka(遺) ;

    pöri- (列) ;/hiro(廣) ; pHãrk(뻗)/ha-tori-써ato

    pak (박) ;/huku-be (激 ) ; pàrk- ( 明 ) ;-"'hiraku (開) ; ip( 口 ) ;/hi-ge(옳), ih-u (굽) ;

    C 3 9 J

    pör(村) ý/hure, ko-hure(大付) , ko-hori(웹) , i-hare(石村) , na-hori(直入)

    na-bar i (名張) , ka-haru(香春) ,

    pur-(降, 吹) ;/huru (降), huku(吹) ,

    @ 日 語에 서 는 ‘h→w’ 碩 向 。l 았 다.

    pata(海) .;/wata, w;ida(海) ;

    pat-(受) fwata-su(遊) ;

    第二章 語法의 tt較

    第-節 (-) 名詞

    1) 兩語가 다 特別한 數表示가 없 마.

    기 ) 同 語重壘으로 챈數表示, 韓. chi p-chi p (家 1/ ) 13 ‘ kuni-guni,

    sarãm-sarã(人 !I ) hito-bito,

    L ) 接尾離로 複數表示,韓. -teur (-tïl, -dïl) ;/ 日 , tachi, dochi,

    �aràm-deur ý' hi to- ta.chi’

  • C ,1 0 J l양낀5강:↑t:, 19$]r

    mar-dcur /unla←tachi,

    행. tari ( ç 리 띠 ) 日 . tsure(連) , tSura t 쩌 ) , hu-tari (:二人) , mi←tari(三人 ) , hi-tori ( →人),

    2) [""性」 의 比較1팩, αη1-S0 (1ft牛) ‘ su-so 여'Ui=-\:? IJ . imo-se (갓체f) ,

    (二) 代名詞의 比較

    imo+hito →simoto(앙) ,

    se +hito→sehito(兄) ,

    si +ka→sika(펌:않) ,

    me-l-ka→rneka(此RE) ,

    (짧) a, urij/ ( 티 ) a, ,vare ; nü(너 ) ;?naC1!i:) ; KeuC彼) ?/ka ; chö (其J //So〔;tpöt (�ïD;? i dsu ( jiiJ)

    數詞의 比較kaji (類) f'kazu(없) ; yörö(썼) /yorO}dsu (萬) rnurït CJU .;::' rnoro 0냄) ; muri (群) �/mure(밤) ; manha-(多);;" rnina (皆) ‘ manesi (핍→) 45)

    第二節 用듬 (-) 名詞法

    第一) i 話尾 의 名詞法

    힘 tat(閒〕→mij-i C障子) nor (펴)→rnor-i(遊械) ur(파〕→urãi(닮嗚) ; kör(步〕 →kör-i(땀路) ;

    E ‘ utah-i C諸) ; samurah-i (체) ; ob-i(帶)tatam-j (輕) ; hasarn -i (했) : arn-i (網) ; 等

    第二) mi (mu) 語‘尾의 名詞셀

    韓. chi CJi린) →chim(해物) ; kör(步) →kδram (步調) ;

    pur (吹)→parãm(펴) , s.ar(훈) ->saram(人) ;

    티 . tanosi-mi (樂) ; yasu-rni (윗) ; kurusi -mi (苦) ; kaku-rnu( 固 ) taru-mu(01!J) isa-ml)(힘) 等 ;

    第三) Ku 語尾의 名 듬펴法

    45) Aston많는 基本썼詞의 不-→갔는 兩國語가 數詞成立以前에 分離한 것 이 라 고 했으나, 或은 日 本의 基本數뚫l는 基慣民族의 것 을 'l*JiJ 한 것 인 기- ?

  •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fJ!f究 (其-一)

    韓. sar(生) →sar-ki (生活) ; po(보) →po-ki (外鏡) ;

    nor(遊)→nor-ki(遊敵) ; mök (食) →mök-ki (食事) ;

    日 . iha-ku( 日 ) ; negaha-ku(願) ; kikunara-ku(聞道) ;

    (二) 副 詞 法

    1) i 語尾의 副詞法

    韓. sui(易)→sui-i(容易) ;

    mör(遠)→mδr-i(遠) ; kip(深) →kip-hi(深) ;

    日 . Kohi-negahu(希願) ; Kaheri-miru (顧) ;

    2) Ku(ke) 語尾의 副詞法

    韓. kãt(同) →kãt-köi(如) ; chop (쨌)→chop-köi(俠) ;

    ka (行) →ka-köi (行) ; nira(謂) →nira-köi (宜) ;

    日 . yo-ku(善) ; chika-ku(近) ; kohura-ku(戀) ;

    3) 1有」 動詞幹. it (

  • C 4 2 J 폈료E장� {I:; 19輔

    kah-u(협) →kah-aru(代) ;

    5) 敬 즙홈 法-(강 韓. 語팎+ i (

  • 후강國음홈의 系統論이1 關한 liff究 〔其-) C 4 3 J

    金澤R는 이 「韓 日 兩國同系論」의 ]훤論에 서 다음과 같이 論하고 있 다.

    i' . . . . . . 前略. 그터 나 韓 日 兩國語의 f網 係에 對해 서 는 外人中 我國語에 精通한 Astonn民 (A Comparative study of the Japanese and Korean Lauguages,

    London 1879) , Champalen民 等에 fR허 서 딴 찌 기 提唱되 고, 요늪에 이 르도콕 아직 하나의 反對의 소리 를 듣지 뭇했 다. 過去之事는 장간 두 고 라도 , 現在에 있 어 서 는 白鳥博士, 덤i않博士와 같 이 , 파나는 歷史 다른 하나는 法制의 方面에 시 韓語플 짧究한 結뽕; 兩國語同l펀說에 一致했 다 中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