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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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제 발표는 크게 세 부분입니다. 우리 시대의 시민에 대해 요청받았는데 처음 우리 시대는 어떤가, 두 번째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민 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시민의 초상이 라 이름 붙였는데 초점을 지난 해 세월호에 맞추어 세월호 이후에 요구되는 새로운 시민의 상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리 시대가 복잡다기하기 때문에 줄기를 잡아 말씀드리고 싶은 데 맨 먼저 쓴 개념은 시대정신입 니다. 시대정신이란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나오 고 헤겔 철학에서 나오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한 시대 문화적 소산, 태도.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 시대정신입니다. 시대정신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올해 광복 70년인데 이 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원동력은 무엇인가가 시대정신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광복 이후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은 나라 세우기였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 결과 45년 8월 15일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이 출범했고 다음 달 북한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만들었지요. 나라 만들기의 두 가지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자는 물질적 욕망, 다른 한편은 인간이라면 빵 만큼 중요한 자기 생각과 말의 자유인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진행되어왔 다 볼 수 있습니다. 나라 세우기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분단된 형태이지만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경제 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것이 최근 두 가지 흐름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 니다.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입니다. 세계화가 우리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정보화의 영향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어느 체제로 나아갈지 여전히 지구적 차 원에서 보면 암중모색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낸 것은 분명한데 포스트 신자유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2회 우리 시대의 시민 ○ 일시 : 2015년 6월 30일 5시 ○ 사회 : 박영신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 발제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토론 : 조철민 (한일장신대 엔지오연구소) ○ 토론 : 김혜애 (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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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녹색시민포럼 '우리 시대의 시민' 발제 :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토론 : 조철민(한일장신대 엔지오연구소) 김혜애 (녹색연합 공동대표) 주최 : 녹색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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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김호기]

제� 발표는�크게� 세� 부분입니다.�

우리� 시대의� 시민에� 대해� 요청받았는데� 처음� 우리�

시대는�어떤가,� 두� 번째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민

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시민의� 초상이

라� 이름� 붙였는데� 초점을� 지난� 해� 세월호에� 맞추어�

세월호� 이후에� 요구되는� 새로운� 시민의� 상� ,방향에�

대해�이야기하려�합니다.�

우리� 시대가� 복잡다기하기� 때문에� 큰� 줄기를� 잡아�

말씀드리고� 싶은� 데� 맨� 먼저� 쓴� 개념은� 시대정신입

니다.� 시대정신이란�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나오

고� 헤겔� 철학에서� 나오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한�

시대� 문화적� 소산,� 태도.�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 시대정신입니다.� 시대정신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올해� 광복� 70년인데� 이� 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원동력은� 무엇인가가� 시대정신에� 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광복� 이후�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은� 나라� 세우기였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 결과� 45년� 8월�

15일�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이� 출범했고� 다음� 달� 북한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만들었지요.� 나라� 만들기의�

두� 가지�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자는� 물질적� 욕망,� 다른� 한편은� 인간이라면� 빵

만큼� 중요한� 자기� 생각과� 말의� 자유인�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진행되어왔

다� 볼� 수� 있습니다.� 나라� 세우기가�가장�중요한� 목표였고� 분단된� 형태이지만� 나라를�세웠습니다.� 그것은� 경제

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것이� 최근� 두� 가지� 흐름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

니다.�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입니다.� 세계화가� 우리�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정보화의� 영향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어느� 체제로� 나아갈지� 여전히� 지구적� 차

원에서�보면�암중모색�하고�있습니다.� 다시� 말하면�신자유주의가�한계를�드러낸�것은� 분명한데�포스트�신자유

�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시민됨을�위하여』

제2회�우리�시대의�시민�� ○� 일시� :� 2015년� 6월� 30일� 5시�

� ○� 사회� :� 박영신� (연세대�사회학과�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이사장)

� ○�발제� :� 김호기� (연세대�사회학과�교수)

� ○� 토론� :� 조철민� (한일장신대�엔지오연구소)

� ○�토론� :� 김혜애� (녹색연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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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가

치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변화라고� 하는� 판단의� 관

점에서� 보면� 전� 지구적으로� 풍경이� 어지러운� 상태

입니다.� 미국은� 진보적인� 정부,� 영국과� 독일은� 보수

적인� 정부,� 일본은� 자민당의� 극우적� 아베정권,� 프랑

스는�진보정권,� 한국사회는� 2008년� 이후� 계속� 보수

적� 정부가� 지배� 중입니다.�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

러난� 것은� 분명한데� 포스트� 신자유주의를� 규범적으

로� 뭔지� 주장할지� 몰라도� 사실적으로는� 무엇인지를�

말하기�어렵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결정적� 분수령� 두� 개� 있는데� 경제적�

측면,� 물질생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제가� 쓴� 체제라

는� 말은� 시스템이� 아니라� 레짐이라는� 말인데� 레짐은� 경제적� 생활을� 재생산하는� 토대가� 있다면� 이� 토대에� 조

응해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이� 결합되어�조응관계를� 이루는�것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측면

에� 초점을� 맞춘다면� 중요한� 레짐� 하나가� 61년� 체제와� 다른� 하나는� 97년� 체제입니다.� 일각에선� 87년� 체제를�

말하는데� 87년�체제는�정치적�측면에�초점을�맞춘�체제입니다.�

저는� 정치적� 생활보다� 오히려� 경제적� 생활이� 우리의� 기본욕구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

구요.� 두� 가지�체제가�해방� 70년� 동안�우리의�개인적,� 사회적�생활에�분수령을�이뤘습니다.� 몇� 가지� 상황으로�

두� 체제의�특징을�정리해�보면�세계적�차원에선� 60년대에서� 90년대�초반까지�냉전시대가�지속되었지만� 80년�

후반� 90년대� 들어서면서� 탈냉전시대가� 본격화되었고� 당장� 우리� 사회도� 러시아와� 중국과� 수교했고� 여기에는�

동구�사회주의�몰락이�결정적�영향을�미쳤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학계에서는� 발전국가라� 하고� 저널리즘� 용어로는� 개발독제체제라고� 하는데� 경제성장을� 위

해� 정치적� 권위주의가가� 이뤄져� 경제적� 동원화와� 정치적� 탈동원화를� 모색하여� 빠른� 성장을� 이뤘습니다.� 97년�

체제로� IMF� 관리체제로� 국가주도의� 발전전략이� 시장주도� 발전전략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

반적인� 규정은� 감세,� 규제완화,� 국내시장의� 개방,�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흔히� 지목됩니다.� 97년� 이후에� 진보적

인� 성향을� 보였던�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보수적� 성향의�이명박,� 박근혜� 정부는�사실상� 정치사회� 측면에선� 차

이가�나지만�경제적�측면에선�일관되게�신자유주의적�발전전략을�추진해왔다는�공통점이�있습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61년�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이고� 97년� 체제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시민사회는�

60-80년때� 까지는� 무정형의� 시민사회였습니다.� 그것이� 역사적� 기원으로� 따지자면� 유신체제아래에서� 민주화운

동에� 기원을� 두고� 다양한� 사회운동의� 분수령으로� 조직화된� 시민사회로� 바뀌었습니다.� 문화는� 61년� 체제에선�

공동체주의로� 특징� 지워� 진다면� 97년� 이후는� 공동체� 주의� 못지않게�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이것이�

해방� 70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경제초점을� 맞춘� 사회적� 체제였고� 우리� 사회는� � 2008� 미국� 발� 금융위기� 이

후�포스트�신자유주의체제로�이동하고�있음에�불구하고�여전히� 97년� 체제가�영향을�미치고�있습니다.�

조금� 구체화시켜� 보면�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은� 세� 겹으로� 둘러싸인� 위기에� 직면

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생활은� 크게� 생산과� 분배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시장� 안에서� 이뤄지죠.� 일하고�

임금을�받는� 부분이죠.� 그런데�장애인을�포함한�임금을�받지� 못하는�사회적�약자가�있습니다.� 고령자,� 어린이,�

여성� 같은� 계층을� 포함하죠.� 그래서� 시장� 밖의� 또� 하나의� 분배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재분배라� 이

야기하는데�이건�복지고�다름� 아닌�사회정책이기도�하지요.� 분배와�재분배�모든� 영역에서�상당한�위기에�직면

하고� 있다.� 분배의� 위기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노동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지표로� 말씀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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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 지난� 해� 연말정산� 신고한� 우리� 임금생활자가�

1800만에서� 1900만� 정도인데� 임금� 평균소득은�

400만원을� 넘어서� 440만� 원� 정도입니다.� 이것은�

평균소득이고� 실제로� 이와� 유사한� 개념은� 중위소득

이� 있는데� 가장� 적게� 받은� 사람부터� 가장� 많이� 받

은� 사람을� 늘어놓았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 900만�

명� 정도� 되겠지요.� 중위소득은� 230만원에� 불과합니

다.� 가구� 구성은� 2.6명에서� 2.7명인데� 맞벌이를� 않

고서� 230만원� 갖고� 서울에서� 살기� 어렵습니다.� 이

게� 분배의� 현실입니다.� 분배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

했습니다.� � 또� 다른� 지표도� 많은데� 전체� 노동자�

600만� 정도가� 비정규직인데� 통계에서� 포함되지� 않

은� 사람들,� 5인� 미만의� 사업장,� 자영업자에� 의해� 고

용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밥천국의� 조선족� 아주머니들.� 이� 분들은� 정부� 통계에서� 포함되어� 있

지� 않습니다.� 이들을� 포함하면� 민주노총에서� 이야기하는� 850만에서� 900만까지의�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비정

규직� 평균� 임금은� 150만원입니다.� 가구당� 남편만� 비정규직이면� 먹고살기� 힘들고,� 부인이� 대부분� 일을� 하는데�

파트타임으로�일합니다.� 절반�정도� 일하면� 150만원에� 80만원을�더해�중위소득이�나옵니다.� 이게�서울에서�가

능하겠습니까?� 아이가� 대학을� 다닌다고� 생각하면.� 일년� 등록금이� 천만� 원� 드는데,� 용돈� 같튼� 걸� 고려하지� 않

아도� 이게� 분배의� 현실입니다.� 지니계수를� 포함한� 여러� 통계자료가� 있는데� 발표된� 자료가� 다� 달라� 신뢰성이�

떨어지는데�저는�객관적인�사실을�말씀드리는�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희들이� 보기에는� 2011년� 희망버스� 같은� 사회운동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사

실상� 시장의� 분배를� 갖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재분배도� 마찬가지인데� 시장에서� 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 밖에서� 정부가� 세금을� 기초로� 또� 한번의� 분배를� 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노인� 비율이� 49%인데,� 65세� 이상� 노인� 절반� 가까운� 분들이� 사실상� 빈곤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해법도� 별로� 없습니다.� 연금논란이� 뜨거웠는데� 이유가�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분배도�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지요.� 2010년도에� 중요한� 논쟁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무상급식

입니다.� 논쟁은� 상징적�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상징적� 방식이라는� 것은� 무상급식만� 중요한� 것도� 아니라� 지금까

지� 우리가� 국가에� 무엇을� 해줬으니� 이제� 국가가� 이제� 우리에게� 뭘� 해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2010년� 그게� 아

이들�급식문제로�나타난�것입니다.� 복지논쟁이�일어난�것이죠.� 심각한�재분배의�위기에�놓여있구요.

또� 다른� 위기는� 대표성의� 위기,� 곧� 정치의� 위기입니다.� 정치가� 가진� 고유한� 독자성은� 마키아벨� 벨리가� 말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권력투쟁,� 유승민� 사태같은� 그런� 게� 아니라� 보다� 교과서적� 차원에서� 보자면�

한� 국가에서�자원과�가치의� 합리적배분에�대한�최종의사결정입니다.� 우리가� 사회라는�공동체를�유지하기�위해�

의사�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은데,� 세금은� 어떻게� 쓸지,� 외교안보는,� 교육은� 어떻게� 할지.� 국민들이� 다� 모여� 결

정하지� 못하니�사실상�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는� ,� 정치라는�대표성의� 체계를� 발전시킨� 것이다.� 이� � 영역이� 최종

의사결정이죠.� 문제는�대표성의�체계에서�민주주의에서�가장�중요한�것은� 주인인� 국민이고�대통령이든�의원이

든�투표로�뽑은�대리인인데�문제는�대리인들이�주인의�의사를�제대로�반영하지�않는�것입니다.� 대표성의�프리

젠테이션이라� 하는데� 이� 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광범위한� 무당층입니다.� 조사를� 보면� 대체적으로�

적을�땐� 1/3� 또는� 많을� 땐� 2/3가� 지지하는� 정당이�없다는�것입니다.� 그� 이유는�새누리당이든�새정치연합이든�

정의당이든� 무엇이든� 내� 가치와� 이익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치권� 밖에서� 또� 다른� 영웅을� 불러들이려� 합니다.� 지금� 정치가로서는� 큰� 역량을� 보여주는� 것� 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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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지만� 2011년� 안철수� 현상으로� 되돌아가면� 영웅대망론이죠.� 제발� 당신이� 한국정치를� 후원해달라는� 것입니

다.� 안철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정치가� 가진� 대표성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올해가� 민주

화�이룬�지� 28년인데�여전히�우리는�정당정치를�제대로�제도화�하고� 있지� 못한�것입니다.�

마지막은� 인정의� 위기.� 인정� recognation은� 헤겔이� 만든� 개념입니다.� 최근� 철학과� 사회학에선� 독일의� 철학자�

악셀호네트,� 미국의� 페미니트트�학자�낸시� 프레이져�같은�사람이�레커그네이션이라는�개념을� 다시� 재정립해서�

사용합니다.� 레커그내이션은� 자신의� 정체성을� 승인받으려는� 욕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제대로� 처음� 나

타났던� 것을� 저를� 포함한� 연구자들은� 2002년� 촛불집회를� 흔히� 예로� 많이� 듭니다.� 2002년� 경기도� 광주� 조양

중학교� 여중생� 두� 명이� 미군� 괘도차량에� 깔려� 목숨을� 잃었고� 당시엔� 월드컵이� 막� 진행되던� 때라�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이� 죽음에� 대해� 앙마라는� 네티즌이� 광화문에서� 촛불로� 항의하

자는� 촛불집회를� 제안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촛불집회가� 일반화된� 첫� 번째� 사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을� 불평등한� 소파� 때문에� 한국의�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지� 못했습니다.� 뭐겠습니까?� 우리

가� 미국의� 이등시민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일등시민으로서,� 억울하게� 죽은� 두� 명의� 여중생에� 대한�

법의�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죠.� 내가� 시민이라는� 걸,� 내가� 국민이라는� 걸�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사회학에서나�철학에선�인정의�정치라고�이야기�합니다.� 정치에서�중요한�두�가지가�분배의�정치고�하나가�인

정의� 정치입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존엄성을� 지켜달라는� 것이� 인정의� 정치입니다.�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역사

에서� 연인원� 백만이� 동원한� 촛불집회가� 많지� 않은데� 2002년� 11월� 여중생의� 촛불집회가� 첫� 번째고� 두� 번째

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외국산쇠고기� 수입� 졸속협상� 때문에� 열린� 그� 해� 6월� 집회가� 백만이� 모였습니다.�

사회운동의�역사나�다른� 책을� 봐도�백만이�모인� 사회운동은�거의�없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우리의�대리인인

데� 우리가� 권력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승인받지� 않고� 미국에� 가서� 덜컥� 30개월� 넘는� 소고기� 수

입을�합의해�준� 것이죠.� 이에� 대한� 저항은�국민으로서�인정을�요구한�것입니다.� 촛불을�든� 가장� 큰� 힘은� 여기

에� 있다� 봅니다.� 저는� 이점에� 있어서� 레커그네이션의� 위기도� 반복해�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대표적인� 것이� 갑

을관계입니다.� 갑을� 관계가� 경제적� 측면만� 아닙니다.� 조현아� 사건을� 떠올리면� 내가� 고용되어� 있더라도� 동등한�

인간인데� 전통사회처럼� 마치주인이� 노예를� 부리듯� 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현대적인� 회사조직� 이라면요.� 이것

이�한국사회에서�우리가�직면한�삼중의�위기입니다.� �

구체적으로� 계급과� 세대의� 측면에서� 나눠�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계급과� 세대를� 따로� 찍어서�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어떤� 갈등은� 이루는�전선이�있습니다.� � 세대,� 이념,� 계급,� 지역� 등이� 있는데�이념은�진보와� 부소,�

지역은� 영남,� 호남,� 중앙과� 지역으로� 전선이� 선명하지만� 계급은� 좀� 들어다� 봐야� 합니다.� 계급구성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에서� 모래시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는데요.� 양적인� 자료

와� 질적인� 자료에서� 다� 관찰되는데� 보통� 중산층은� 객관적� 지표는� 평균� 소득의� 75~150%를� 중산층이라� 합니

다.� 이� 퍼센트가� 외환위기� 이후� 점차� 줄여들었습니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주관적� 지표인데� 당신이� 중산층에�

속합니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YS� 시절� 외환위기� 직전� 한국경제가� 가장� 좋았던� 때� 전체� 국민의� 80%가� 자기

가� 중산층이라� 여겼습니다.� 2013년� 통계에선� 전체� 국민의� 46~7%가�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합니다.� 거의� 절

반이� 줄었습니다.� 이� 통계가� 맞을� 겁니다.� 과거엔�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는� 다름� 아닌� 다이아몬드형�사회에서� 모래시계,� 가운데가�줄어드는� 모래시계형으로�우리사회가�변화되는�것

입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내적� 양극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규직� 대� 현대차� 노동자의� 정규직은� 1

억에� 가까운� 연봉이지만� 1차,� 2차� 협력기업으로� 낮아질수록� 소득이� 몇� 천만� 원� 씩� 줄어듭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적게� 받습니다.� 화이트든� 블루든� 과거처럼� 단일한� 블록을� 이루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새로운� 균열

이�일어나고�있습니다.� �

계급의식의� 변화를� 보자면� 상층은� 이익의� 공고화를� 중시하고� 중간층은� 모순적�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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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향하나� 자신의� 실제적� 삶은� 하층에� 가깝

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중간층의� 정치적� 성향

은� 상대적� 진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

정당을� 대표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핵심� 지

지층은� 호남,� 화이트칼라,� 2-30� 젊은� 세대인

데� 이� 세� 집단이�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호남

으로부터� 거부되고� 화이트칼라들이� 실망하고�

젊은� 세대가� 과거처럼� 높은� 지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층계급은� 냉전분단체제� 때문에� 상

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는� 새누리당의� 강고한� 지지기반

입니다.� 계급투표의� 수문이� 열리려면� 지역� 색

의� 영향력이� 완화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지역

투표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계급투표가� 활성화�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세대가� 중요한� 변수가� 작용되고� 있습니

다.�

세대의� 문제를� 보자면� 세대의� 풍경은� 20대는� 88만원� 세대� 30대는� 신세대,� 40대는� 486,� 50대� 이상은� 산업

화� 세대라� 말하는데�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입니다.� 20대는� 청년실업,� 30대는� 보육,� 고용� 주거,�

40대는� 퇴출의� 공포,� 교육,� 노후의� 불안� 50대는� 일자리� ,건강,� 노후의� 불안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가을학기

에� 우리� 학생들� 100여� 명에게� 특이한� 과제를� 내� 주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규정짓는� 말이� 많지요.� 피로사회,�

단속사회,� 절벽사회�표현�등.� 사회학과� 학생들에게� 너희들�나름의� 한국사회를�규정하고�글로�써� 봐라� 해서� 통

계를� 냈더니� 불안사회가� 압도적이었고� 두� 번째가� 불신사회였습니다.� 저는� 이게� 맞을� 거라� 봅니다.� 우리� 학생

들이�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인데�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불안이고� 불신이었습니다.� 삶이� 불안한� 것

이죠.� 한� 개인의� 삶을� 구성해� 보죠.� 내가� 태어났는데� 부모가� 맞벌이라면� 보육문제에� 부딪히고� 학교� 들어가면�

한� 가지� 목표� 대학입시를� 향해� 달립니다.� 대학가면� 청년� 실업이� 기다리고� 있고� 운� 좋게� 일자리를� 얻으면� 구

조조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는� 구조조정을� 퇴출의� 공포라� 했습니다.� 내가� 언제� 이� 조직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는�공포죠.� OECD� 자료를�보면�우리가�자기가�첫� 번째�선택한�노동시장에서�떠나는�것이� 보

통� 52세� 전후입니다.� 최근에� 기대수명은� 남

성은� 78세� 여성은� 83세입니다.� 50대� 초반

에� 은퇴하고� 2차� 노동시간을� 찾아야�합니다.�

삼십년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있는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게� 현실입니다.� 삶의� 모든� 지

점이�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 현실이고� 다른�

사람을� 잘� 믿지도� 않고� 타인,� 타자에� 대한�

분노는� 커집니다.� 이것이� 심판에� 대한� 욕구

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사

회의� 자화상이고� 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거칠게� 말하자면� 다소� 괴물과도� 같은�

사회와�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

민들이�대면한�현실입니다.�

Page 6: 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시대풍경을� 먼저� 말하는� 것은� 박영신� 선생님으로부

터� 일관되게� 배워� 온� 것은� 개인은� 그� 자체로�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사

회의� 모습이� 개인의� 시민적� 정체성에� 그대로,� 사실

상� 투영된다는� 것입니다� 다.� 한국� 시민들이� 느끼는�

가장� 커다란� 풍경은�불신의� 시민,� 불안의� 시민이�있

습니다.�

시민이란� 누구인가� 이는� 서구적� 개념입니다.� 도시의�

거주민이� 시민입니다.� 도시의� 공기가� 시민을� 자유롭

게� 한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통상적으로� 도시�

시민이� 시민사회의� 주체를� 이뤄왔습니다.� 삶은� 제도

적� 삶과� 의식적� 삶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데� 두� 겹

의� 삶에서�시민은�두�가지� 역할을�했습니다.�

프랑스� 시민은� 쉬뚜앙인데� 이것은� 공민에� 가깝습니다.� 공적시민입니다.� 시민이� 가져야� 할� 공적의무를� 자각한�

존재입니다.� 자본주의는� 영국이� 주도했지만� 프랑스� 대혁명� 파리콤뮌에서� 보듯이� 프랑스는� 근대민주주의를� 열

어왔던� 나라입니다.� 근대민주주의의� 주체는� 다름� 아닌� 공적의무를� 자각한� 시민� 쉬뚜앙에� 있었습다.� 반면에� 독

일은� 시민이� 뷰거입니다.�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시민을� 욕망의� 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 뷰거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시민의� 초상을� 생각할� 때� 때� 시민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하나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의� 덩어리� 시민이� 존재하고,� 다른� 측면에선� 공적의무를�

자각하는� 공적시민,� 공민으로서� 시민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두� 개의� 정체성이�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돈� 천원도� 양보하지� 않지만,� 그러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시민은� 원래� 이런� 두� 얼굴을� 가지고� 이것이� 정치사회와� 문화와� 일상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시민의� 생활�

측면에서�보면�적어도�우리�시대의�시민을�이야기할�때에는�두�가지� 측면을�고려해야�합니다.

시민의� 이념� 문제를� 바라보면� 서구역사를� 보면� 세� 가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

의입니다.� 두� 개념은� 연관된� 이념이기도� 하지만� 갈등하는� 개념이기도� 입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특권

화시키는� 개념이지만� 민주주의는� 자유� 못지않게� 공화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중시하기도�

합니다.� 이� 두�개의� 개념이�자유민주주의로�결합되어�있지만�내적으로는�긴장의�관계를�이루고�있는�개념입니

다.� 이것은�근대적�시민이�탄생하는데�중요한�출발이�된� 개념입니다.�

두� 번째는�공동체�주의와�개인주의입니다.� 도시의�공기는�시민들에게�자유를�선물했다는�것은�다름� 아닌� 개인

주의를� 발전시킨� 것이지요.� 동시에� 인간은� 공동체주의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벗어나서� 살기� 어려

운� 존재입니다.� 공동체와� 개인주의가� 시민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학문적� 논쟁은� 미국� 정치철학에서� 진행된�

존� 롤스는� 자유주의를� 중시하고� 롤스� 못지않게� 영향을� 행사한� 마이크로� 왈져는� 공동체주의를� 중시합니다.� 흥

미로운� 것은� 이념으로� 보면� 공동체주의가� 보수적� 가치만은� 아닙니다.� 마이크로� 왈져는� 진보적인� 사상가입니

다.� 시민들의�이념에�두� 개가�공존합니다.

세� 번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적시민이라고� 해서� 진보주의만� 자신의� 이념으로� 선택하

지� 않습니다.� 정치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계속된� 교체� 속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보수주의는� 분배보다� 성장,�

변화보다는� 안정,� 개인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이념이죠.� 근대적� 시민의� 뿌리를� 내리는� 데� 이� 이념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민의� 이념도� 사실판단의� 관점,� 가치판단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념을� 선택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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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이념이� 시민� 안에� 공존한다는� 것에� 주목해

야� 합니다.� 이와� 연관해� 10년� 전에� 제가� 만든� 개념

이� 한국사회가� 이중적� 시민사회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주의적� 시민사회가� 있고� 근대

적� 시민사회가� 있고� 공동체주의� 시민사회가� 있고�

개인주의적� 시민사회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시민

사회가� 있다면� 자유주의적� 시민사회가� 있고� 보수적

인� 시민사회와� 진보주의적인� 시민사회가,� 근대주의

적� 시민사회가� 있다면� 탈근대적인� 시민사회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곳이�미국입니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개념이� 투아메리카인데� 공화당

의� 미국과� 민주당의� 미국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일베의� 대한민국과� 극좌파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두� 집

단의�거리는�멀어지고�소통은�불가능해지고�있습니다.� 언론에서�보면� 조선일보가� 보여주는�대한민국은�한겨레

가�보여주는�대한민국은�전혀�다른�대한민국입니다.� 한국의�시민사회가�둘로�나눠져�있다는�것이�제가� 시민사

회연구자로�관찰한� 것입니다.� 이� 생각은� 미국의�예를� 들었지만�유럽에도�있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개념이� � 투

네이션스라는� 개념인데� 벤자민� 디즈레일리라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보수당인� 토리당의� 디즈레일리는� 19세

기� 후반�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수상이었는데� 젊었을� 때� 소설가였습니다.� 그가� 소설에서� 쓴� 유명한� 표현이� 투�

네이션스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영국과� 부자들의� 영국이� 있다는� 것.� 토리당의� 목표는� 투네이션스를� 원네

이션으로� 바꾸는� 것이다라는� 것,�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해�내는� 것이다� 했습니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이� 없다는� 것인데� 저는� 기본적으로� 보수를� 지지하진� 않지만� 연구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미국,� 영국,� 독일

의�보수당이�여전히�살아남고�집권에�성공한�이유는�보수가�지닌�철학을�실천했기�때문입니다.� 개인보다는�공

동체,� 사회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한편으로� 보수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한국� 보수는� 이런� 철학이� 없습니

다.� 집권을�위해서만�존재하는�것이지요.� � �

시민의�초상을� 정리해서�말씀드리면�시민의�자기계몽이�중요하다�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선� 시민들의�정체성�

측면에서� 볼� 때� 두� 가지� 시민이� 있습니다.� 천민적� 시민이� 있고� 또다른� 하나는� 공민적� 시민이� 있습니다.� 여기

에� 적진� 않았지만�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피난민사회로서� 한국사회.� 극단적인� 이기적� 시민사회의� 역사

는� 어디일까� 보면� 피난민의� 역사에� 있다고� 봅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여기서� 나의� 삶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 생존입니다.� 서울이� 수복이� 되

면� 서울로� 되돌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공

적인�모든� 가치는� 부차적인� 것,� 타인도�부차적인�것

이� 되고� 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것,� 나의� 이익이� 극

대화되는� 것만�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선� 공적시민으

로� 이뤄진� 시민사회는� 구축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우리사회에선� 피난민� 속성이� 유지되는� 측면이� 있습

니다.� 단적으로� 보면� 메르스� 사태입니다.� 메르스� 사

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은� 의료인인데,� 의료인의� 아이들이

Page 8: 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라고� 배척당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피난민� 사회의� 속성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데에선� 공적가치

를�중요하게�말하지만�개인의�실제적�생활에선�자기�이익을�극대화하려는�존재,� 이게� 시민들의�적나라한�초상

일지� 모릅니다.� 욕망의� 덩어리로서� 정체성을� 가진� 시민과� 공적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으로� 이중적� 속성을� 그대

로� 갖고� 있습니다.� 욕망의� 덩어리를� 정체성으로� 하는� 시민의� 역사적� 기원인� 피난민� 사회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지요.� 이중의� 도덕,� 이중의� 논리가� 어릴� 때부터� 내면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적영역에선� 좋은� 이야기를�

하지만�사적� 영역에선�타자를�쓰러뜨려�이기라고�말하고�있습니다.� 얼마나�많은� 부모들이�알게�모르게�자기의�

자녀들에게�이를�강요하고�있습니까?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스스로가� 갖는� 정체성인데,� 우리� 스스로� 계몽을� 해야� 합니다.� 공적시민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지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구조와� 행위의� 변증법입니다.� 어떤� 개인이라

도�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자적� 시민에서�

대자적�시민으로�가야�합니다.� 피난민사회에서�이기적�측면이�우리�정체성의�한� 측면이라면�타자와�더불어�살

아가는�공적가치와�공동체적�가치를�모색하는�존재로�거듭나는�대자적�시민이�되어야�합니다.�

시민의� 자기계몽은� 시민� 스스로의� 자기� 결단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데,� 개인이� 아무리� 개인적� 차원에서� 노력한다고�

해서�자기의�정체성이�크게�혹은� 본질적으로�바뀌지는�않습니다.�

시민의� 자기계몽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요구� 되는� 과제가� 국가와� 개인의� 이중혁신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제

도가�바뀌어도�천민적,� 이기적인�의식을�가지고�있다면�개인은�물론� 제도� 자체의�변화도�이끌어내기�어렵습니

다.� 반대로�제도가�그대로�있는데�개인의�혁신만�강조해도�변화되는�것이�없습니다.�

하나는�개인에서�사회로�다른� 하나는�사회에서�개인으로�가는�이중적�과정이� �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개인으로� 측면에서� 보면� 살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왜� 살림인가는� 세� 가지� 측면에

서입니다.� 첫째는�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살림,� 리빙입니다.� 두� 번째는� 국민� 다수의� 가

계� 및� 생활을� 해결하는,� 먹고사는� 문제의� 살림,� 하우스� 키핑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를� 분단하는� 분열과� 해체

를�넘어서는�통합으로서의�살림이�설정될�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던� 제도적� 측면의� 정치� 경제� 국가� 시민사회� 세계화의� 기본적인� 것은� 욕망이라�

생각니다.� 정치적� 측면에선� 선거에서� 51%의� 지지율만� 끌어오면� 되는,� 자기� 지지계급에만� 호소하는� 두� 국민

의� 정치가� 있습니다.� 경제는� 경쟁을� 극단화시키는�

신자유주의가� 있고� 국가와� 시민사회에선� 법치적� 권

위주의로� 나타나고,� 세계화는� 무한경쟁적� 세계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살림의� 사회는� 정치영역에서� 한�

국민정치를� 모색합니다.,� 포스트� 신자유쥬의로� 경쟁

의� 시장을� 넘어서는� 것이며,� 시민의� 민주적� 거버넌

스로,� 세계화는� � 지속가능한� 사회� � 건설로� 가는� 것

입니다.� 살림의� 사회를� 위한� 5대� 개혁이� 있어야� 합

니다.� 생명없는� 물질추구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정의없는� 기업지배는� 경제민주화로,� 노동� 없는� 경제

성장은� 노동시장개혁으로,� 복지� 없는� 사회통합은� 복

지국가� 구축으로,� 국민� 없는� 정부운영에서� 시민민주

Page 9: 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주의로�나아가야�합니다.�

이� 제도개혁을�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살

림� 사회를� 위한� 정치적� 리더쉽이� 구축되어야� 하고�

살림의� 사회를� 위한� 시민정치세력� 형성이� 중요합니

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리더쉽과� 팔로우쉽의� 결합이�

되어져야� 합니다.� 제도의� 정치는� 정체성의� 정치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제도를� 만들고� 감시하는� 정체성

의� 정치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정체성의� 정치를�

위해선� 개인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87년� 헌법은� 바뀔�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제도와� 법은� 우리보다� 앞선� 국가

의� 시행착오� 경험을�주목해� 갖고� 만든� 것입니다.� 제

도로선� 손색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민주주의

는� 한국시민사회는� �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이� 정

도밖에�안� 되는가?�

사실상� 개인과� 정체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정체성의� 정치,� 다시� 말씀드리면� 마음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제가� 읽은� 책

중� 가장�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책은� 미국의� 퀘이커

교도이자� 교육학자인� 파커파머의� 책인데,� 여러� 책이�

우리나라에� 나와� 있죠.� 가르침,�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 파커파머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민주주의

를� 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고는� 제대로� 된� 민주

주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두� 슬라이드(11,12)도� 파커파머의� 영향� 속에서� 씌여진� 것이다.� 개인의� 사

회로�나아가�새로운�살림을�구축하는�것이�시민의�자기계몽에서�대단히�중요합니다.� �

� 문화,� 교육,� 개인-공동체,� 인간의� 측면에서� 이제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해왔던� 것은� 욕망입니다.� 물신주의,� 경

쟁력과� 학벌� 이기적� 개인주의,� 수동적� 주체입니다.� 문화는� 물신주의에서� 인간주의로� 교육은� 경쟁력과� 학벌주

의에서� 공공성과� 패자부활전으로,�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연대적� 개인주의로,� 수동적� 주체에서� 능동적� 주체로�

가야�합니다.

정체성의� 정치는�곧� 마음의� 정치입니다.� 시민의�자기계몽이�이뤄지지� 않으면�민주주의든�시민사회든�만들어지

지� 않습니다.� 정체성은� 다름� 아닌� 마음입니다.� 마음은� 이성과� 감성의� 통일체입니다.�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차이를� 존중하고� 연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파머가� 이야기했듯이� 마음이� 변화되어야�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으로�나타나야�사회가�바뀝니다.� �

살림의� 정체성,� 마음의� 정치,� 시민의� 자기계몽에서�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질문을�던져야�한다� 생각합니다.� 인간이란�누구인가,� 사회란�무엇인가,� 어떤� 삶이� 소망스

런� 삶인가,� 우리가� 시민이라면� 이런� 질문을� 당연히� 던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답변을� 구해야� 합니다.�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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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대면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나란� 어떤� 존재인가,� 자기를�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는� 사회를� 올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세계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속에서� 자

기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내� 삶을� 이끄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진정한� 의미는� 어

디에서� 찾아야�하는가� 답변을�구해야� 합니다.� 질문을�던져서� 답변을� 구하면�참여해야�합니다.� 참여에서� 세� 가

지를� 말씀드리자면� 첫� 번째는� 오랫동안� 생태학에서� 이야기해온� 고전적인� 주장인데�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

적으로� 실천해야만� 것입니다.� 마음이� 변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실천할� 곳은� 지금� 여기입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소통을� 해야� 합니다.� 제

가� 존경하는�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인� 한나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유의미성을� 획득하는�

것은�타자와� 소통할�때라고� 주장합니다.� 나와� 생각이�다른,� 나와� 마음이� 다른� 타자와� 소통하는� 것은� 아렌트가�

강조했듯이� 인간이� 자기� 유의미성,� 존재의� 유의미성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생각과�

느낌이� 다르더라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묶어� 말하자면� 시민의� 자기계몽은� 정체성의� 정치를� 일구고� 제도의� 정

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살림의� 정체성으로� 거듭나고� 살림의� 정치성에� 기반해서� 제도의� 정치를� 추

구하는�것이�시민의�자기계몽이라�생각하고�있습니다.� � �

[지정토론� :� 조철민]� (한일장신대�엔지오연구소)

연설� 같은� 말씀� 잘� 배웠습니다.� 발제문에� 대한� 비평이� 저에게� 부여되었지만� 그건� 포기하겠습니다.� 녹색연합이�

이� 포럼을� 하는� 이유는� 녹색시민성이라는� 내용을� 발굴하고� 만들려는� 도상에� 이� 포럼이� 있는데� 선생님이� 주신�

내용을�우리가�어떻게�이용하고�활용할까의�측면에서�이야길�해보겠습니다.

김호기�선생님께서�우리�시대의�풍경,� 시민의�초상을�경유해서�이중혁신의�과제를� � 말씀하셨는데�살림의�사회

를� 구축하고� 살림의� 정체성을� 구축하자� 하셨고� 두� 가지� 과제를� 관통하는� 것이� 살림이라� 하셨는데� 살림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살림은� 개인과� 사회구조를� 매개하는� 역할도� 되고,� 시민과� 녹색을� 연결하는� 매개

도� 됩니다.� 우리는� 이미� 살림이라는� 말을� 생명,� 삶,� 생명철학,� 생활정치� 등의� 용어로� 쓰면서� 낯설지는� 않습니

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걸� 어떻게� 이런� 의미의� 살림을� 녹색시민성이라는� 내용으로� 교육으로� 할까,� 평

범한�사람들의�언어로�만들까입니다.�

제가� 요즘� 복면가왕이라는� 프로를� 열심히� 보는데,� 이� 프로가� 보여주는� 것이� 가수의� 본질은� 노래이고,� 노래의�

본질은� 소리라� 합니다.� 복면가왕의� 논평자� 중� 윤일상이� 계속� 말하는� 것이,� 저� 가수가� 그� 가수임을� 아는� 것이�

톤이라고� 하는데,� 음색이라고� 하는데� 색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녹색시민성을� 이야기할� 때� 톤은,� 색채는� 뭘

까?� 가수는� 그� 톤,� 스타일이� 말로� 표현되는데� 이를테면� 김봉호같은� 가수는� 쇳소리나� 긁는� 소리인데� 그� 소리

를� 내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 하고� 그� 스타일을� 알고� 포착하고� 좋아하고� 옆에� 권하게� 됩니다.� 녹색시민

성은� 일반적인� 시민성과�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시민성인데� 선생님처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녹색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녹색이라는� 스타일.� 가수는� 노래로� 이야기하고� 시민은� 삶과� 생활로�

이야기하고� 삶이� 펼치지는� 무대가� 시민사회� 일텐데� 그런� 일련의� 삶과� 무대가� 되는� 시민사회를� 녹색의� 관점에

서� 어떻게� 설명할까,� 그리고� 그� 설명들이� 모여서� 하나의� 스타일이� 될� 것입니다.� 그� 스타일이� 아직� 녹색의� 가

치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잡히게� 할까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강남

스타일하면� 뭔가� 와� 닿고� 어떤� 게� 떠오른데� 강남스타일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나뭇가지에� 솜사탕처럼� 감겨�

올라오듯.� 우리는�어디서�찾을까라는�고민이�필요합니다.�

폴� 바하라는� 사상가가� 사람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쉽게� 사람이�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옮겨간다고� 말했듯이� 녹색의� 관점에서� 시민성을� 설명할� 때� 좋은� 가치가� ㅁ낳습니다� 모든� 존재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라는� 것� 돼지가� 우리� 음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것처럼� � 생태학에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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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거나�존엄성같은�이�이런� 내용으로�시민성을�채워야�할�것�같습니다.�

이�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가� 민중은� 자기의� 언어를� 갖지� 못해서� 지배자의�

언어로� 말한다고도� 했고� 인문학교육자� 얼� 쇼리스는� 인문학� 교육은� 미술감상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언어를�찾아가는�과정이다고�말했는데�언어가�없으면�우리를�설명할�수� 없습니다.� 질문하고�답하고�참여

하려면�공통의�언어가� 있어야�합니다.� 언어가�있어야� 어디� 가보자� 이럴� 수� 있는데,� 최근� 제가� 경험한�것을� 말

하면� 언어라는� 것은�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시민성에� 대한�

개념� 설명� 못하더라도� 그걸� 이야기하고� 누리고� 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철학적으로� 늘어놓는� 말은�

못해도� 자기� 경험과� 에피소드를� 갖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처럼� 영화� 도가니에서� 여주인공이� 수모를� 겪으며�

하는� 말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려� 해서� 싸운다고� 말하는데� 그�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삶이� 설명이� 됩니다.� 여성단체� 활동가� 한� 사람이� 선배� 세대는� 좋았다,� 많은� 것들이� 통과되지�

않았느냐며,� 나의� 활동은� 뭐라고� 설명할까,� 의미� 없는� 것일까� 이야기했는데� 모여서� 당신은� 실패를� 감내하는�

사람이다고�말했을�때� 이� 언어로�이야기가�되는�경험을�했습니다.

두� 번째로� 저도� 80년대� 386선배들을� 비판하며� 살았고� 지금은� 그들의� 자녀쯤� 되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제� 세대가� 선배세대에게서� 들은� 말� 중� 가장� 싫은� 게� 왜� 사회에� 관심이� 없니� 였는데,� 지금� 학생들은� 제� 세대

에게� 너희는� 왜� 하고� 싶은� 없니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 한� 번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생

각한� 적이� 없고� 사회를� 생각한� 적이� 없는� 거죠.� 제가� 시민교육을� 한� 학기� 강의를� 하고� 리포트를� 받으면� 다�

반성문을� 씁니다.� 선거를� 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해� 애썼는데� 나는� 이렇게� 산다� 등등.� 그럴� 때�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시민교육,� 시민성을� 도덕으로� 받아들이지� 말아라.� 두� 번째로� 내가� 당위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겠

다.� 당위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원리를� 말하는� 것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시민교육은� 도덕과� 당위

로�받아들이고�있어서�그걸�넘어서야�할�필요가�있다는�것입니다.� � �

[지정� 토론� :� 김혜애]� (녹색연합�공동대표)

김호기� 선생님께서� 최근� 다른� 논단에서� 우리� 운동진영의� 새로운� 화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표현,� 살림의�

사회� 쓰시는� 걸� 보면서�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생태사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 사회의� 근

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살림의� 정체성� 부분에서� 몇� 가지를� 이야기하셨는

데� 저는� 녹색운동진영에� 있다� 보니� 인간주의는� 생명� 중심주의� 교육은� 지속가능교육� 연대적� 개인주의는� 상생

의�공동체�등으로�치환되면�어떨까�싶습니다.� � �

저는�최근부터�스스로�진보라는�개념을�안� 쓰기� 시작했습니다.� 유령처럼�매달려�있던� 단어가�진보였는데�제가�

쫓기도� 하고� 갖혀� 있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왜� 여기에� 매여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진보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편협하게� 바라봐서� 그럴�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진보라는� 걸� 표방하

는� 그룹이나�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 녹색의� 가치로� 봤을� 때� 그리� � 훌륭하지만은� 않았다� 생각합니다.� 진보는�

과연� 시민성이� 있고� 보수는� 시민성이� 없을까.� 사회가� 발전하려면� 진보와� 보수가� 십년단위로� 바꿔주면� 좋다는�

말도� 하는데� 여기서� 전제는� � 천박한� 진보와� 천박한� 보수가� 아닌� 합리적이� 진보와� 보수라면� 서로� 정권을� 교체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시민이� 시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할까도� 있습니다.� 학생운동

을� 하던� 시절엔� 민중이나� 대중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생각없는� 사람을� 대중이라고� 하고�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을� 민중이라� 하며� 나눴습니다.� 어떤� 정파가� 특정한� 지향을� 가지지� 않고� 사람� 많이� 모으는� 것에만� 집중하

면� 대중추수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민중,� 대중이� 시민운동� 하며� 따라왔는데� 시민운동의� 영역이� 확장

되자마자�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는데,� 그� 당시� 시민이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녹

색연합�회원들을�대변한다고�항변하기도� 하고,� 저� 쪽에서�공격하는�시민없는�시민운동이라는� 것에서�시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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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일까도� 고민했습니다.� 박영신� 선생님께서� ‘시민’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풀리기도�

했습니다.� �

그러면서� 올바른� 시민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고민했는데� 며칠� 전� 교황의� 회칙에서� 최초로� 환경� 회칙

을� 만들었는데,� 교황이� 직접� 주제선정부터� 집필까지� 하셨다� 합니다.� 그걸� 보면서� 환해졌습니다.� 더불어� 사는�

집� 지구를� 돌보는� 일에� 대한� 회칙인데�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교

황이� ‘올바른� 한계를� 정하고� 바른� 자제력을� 가르칠�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서� 올바른� 한계와� 바른� 자제력이라는� 말이� 딱� 들어왔습니다.� 모든� 능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모든� 것을� 할� 있어도� 바른� 자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걸�

가지면�진정한�시민이�아닌가�생각하게�되었습니다.� �

공동체가� 보수의�가치라�표현하셨는데�서울시를�중심으로� 에너지자립마을,� 성미산� 마을� 등�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이� 있습니다.� 공동체야말로� 상당히�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교

육,� 지역범죄,� 육아,� 먹을거리� 등의� 문제에서� 뜻을� 같이� 하고자�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

면� 지향하는� 목표가� 생기도� 외부의� 시선이� 있어� 잘하려는� 동기가� 크고� 부단히� 소통하고� 더� 좋은� 걸� 찾으려고�

하고� 공부도� 합니다.� 박원순� 시장도� 서울시가� 가진�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려면� 공동체가� 많이� 만들면� 된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일정�부분� 그런� 말에�공감을�하게�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공공가치가� 연결되어� 있다� 하셨는데� 일면� 동의를� 하고� 일면� 그렇지� 않은� 모습도� 봅니다.�

조금� 고민스런� 부분인데�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건강한� 소통과� 대화인데,� 이걸� 다시� 가능하게� 하

는�게� 생태교육이다�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올바른�한계를�알고� 바른�자제력을�가진�사람이�되도록�유도하고�

사회가�그� 시스템을�갖는�게� 시민을�양성하는�과정이고�그� 도구는�교육일�것이라�생각합니다.� � �

[유종반]� (생태교육센터�이랑�이사장)

질문을� 드리자면,� 이중적� 시민성을� 말씀하셨는데� 이� 이중성이� 인간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것인가,� 원래는� 선

한� 인간인데� 공적인�삶,� 더불어�살아가려는� 것이� 인간인데� 과정에서� 잘못� 되어�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태

생적인� 인간이� 그렇다면� 선생님이� 말하는�혁신이� 가능할까?� 인간을�믿을� 수� 있을까?� 이중적� 인간성을� 어디까

지� 긍정해야� 할까?� 긍정하자면� 혁신이� 어려울� 것� 같고�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 저는� 믿고�

싶은데� 믿지� 못하겠습니다.� 사회나� 국가도� 어떤� 나라도,� 자국에서� 긍정적이지만�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는� 자

국� 중심인데,� 우리가� 이루려고�하는�것을� 정말� 이룰� 수� 있을까�심한� 회의가�들기도�합니다.� 혁신은�분명히�되

어야� 하는데� 인간과� 사회가� 갖는� 것이� 태생적이라면� 혁신이� 가능할까,� 또� 태생적인� 것이라면� 어떤� 방법을� 통

해� 혁신이�가능할까,� 하는�질문이�듭니다.�

[윤기돈]� 녹색연합�에너지기후팀�

인간의� 이중적� 측면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만� 그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가를� 봐야하는

데� 시민의� 정체성이� 사회의� 정체성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정체성이� 부각된다고� 보는데� 개인� 정체성에� 실망한

다면� 이는� 사회정체성에� 대한� 실망이� 개인� 정체성에� 투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저는� 개개인이� 나에� 대한� 믿음

에서�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정도�살면� 남도� 이� 정도� 살� 수� 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비슷

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받으며� 주위와� 소통하며� 만들어진� 정체성이라면� 그� 정체성을� 나에� 대한� 믿음으로� 표

현한다면,� 남들� 역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체성이�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기본의� 정체성은�

이중성이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습은� 남에게도� 있는데� 나와� 그들이� 만난� 사회의� 지점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럼� 그들에게도� 그런� 사회를� 만나게�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건�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민의� 정체성이� 사회정체성과� 조응한다고� 했을� 때� 남녀� 노소� 모두가� 시민인데� �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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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성의� 그룹,� 사회의� 정체성에� 대면하고� 있는� 그룹은� 누구인가� 하는� 지점과� � 그� 그룹과� 우리는� 어떻게� 만나

야� 하는가,� 교육하고� 스스로� 깨우치고� 조직해야� 할� 시민이라면� 지금� 주목해야� 할� 그룹은� 누군가인가� 하는� 것

입니다.� 올바른�시민으로�살기�위해� 사회의�모순과�가장� 대면하고�있는�존재는�누구인가�예전엔�노동자그룹이

었다면�지금은�누구인지�같이�고민하고�싶습니다.�

이중의� 국가,� 이중의� 시민사회라라고� 하셨는데� 소통이� 중단된� 사회라는� 걸� 주목하고� 싶습니다.� 배설만� 있고�

소통은� 없습니다.� 소통의�단절에서�소통을� 어떻게� 원활하게�할� 것인가,� 모순을� 풀어가는� 과정을�어떻게� 할� 것

인가� 생각해봅니다.� 진보가� 옳은가� 보수가� 옳은가를� 떠나서� 문제를� 바라보고� 문제의� 답을� 얻는� 건� 진보에서�

나올� 수도� 있고� 보수에서도� 나올� 수� 있는데� 그렇게� 안� 보는� 현실에서� 시민은� 어떤� 위치에서� 사회� 변화를� 이

끌어갈까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주장을� 더� 강하게� 이야기해서� 관철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관철하

려는�주장이� 틀릴� 수� 도� 있다는� 전제�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하는� 건지� 올바른� 시민의�모습인지�등에서� 저� 스

스로�헷갈리는�부분이�있습니다.� � �

[신수연]� 녹색연합�평화생태팀�

사회�전체라고�이야기할�수� 없지만,� 보편적인� 사회�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할�수� 있는,� 김호기�선생님이�말씀하

신� 시대정신이� 지금� 한국사회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엔� 계급이나� 노동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굉장

히� 많이� 분화가� 되었듯이� 똑같이� 자동차의� 오른� 바퀴와� 왼바퀴를� 조립하지만� 다른� 처우에� 처해있고,� 각기� 처

한� 입장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생태가치는� 대부분� 동감할� 수� 있는� 가치라� 생각했는데� 실제� 활동하다보

면�우리는�반대만�하는� 무리라는�공격을�받습니다.� 하자라는�주장을�하는� 사람들이�아니라�기업의�이윤추구에�

반대하고� 정부의� 사업에� 반대하고,� 제동만� 거는� 집단이라는� 이야기도� 듭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면,� 녹색,� 생태라는� 가치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굉장히� 추상적이어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인용되었듯이� 그람시의� 말같이� 지배를�

받는� 사람은� 자기� 언어가� 없다거나� 한나� 아렌트의� 악이� 어떻게� 가능할까에서� 악이� 가능했던� 것은� 악마적인�

존재가�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사유하지� 않으면� 악이� 된다는� 걸� 말하며� 사유의�

불감성을� 말했는데� 우리� 시대는� 불안과� 불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생존의� 공포가� 있어서� 그럴텐데� 그러면�

공적인�가치,� 공공의�가치를�이야기하는�건� 배부른�소리이고�그런�것을� 가능하게�하려면�그럴려면�기본소득운

동을� 해서� 기본소득이� 먼저� 있어야� 하나,� 경제적� 토대가� 전제가� 되어야� 가치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가� � 생각하게�됩니다.�

[박영신]�

신수연�씨의� 이야기는�좋은�이야기�많지만,� 결국� 먹고� 사는� 게� 먼저,� 경제적�토대가�중요하다는�겁니까?� 경제

주의�논리�같은� 건가요?

[신수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 저보다� 조금� 후배의� 사람들에겐� 취업의� 기회조차,� 나눌� 빵조차� 없는� 한정된� 기회

조차�제약이�심한� 20대의�친구들은�그렇지�않을까�생각합니다.�

[박영신]�

한나아렌트가� 말하는� 악,� 그�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좋은� 데� 그랬습니까?�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

랬을까요?�먹고� 사는데�여유가�있는데도�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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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연]�

이� 시대엔� 안� 좋은� 조건이� 겹친� 것� 같은데� 그� 시대엔� 아니겠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요인도� 한� 몫을� 더� 했다�

생각합니다.�

[정명희]� 녹색연합�정책팀

덧붙이면� 저는� 아직�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기본소득� 이야기가� 경제논리� 차원이� 아닌� 차원,� 생태적� 가치를� 앞

세우는�녹색평론이나� 녹생당에서�가장�앞선� 캐치프레이즈처럼�내세우는�게� 기본소득인데,� 그것은�경제가�해결

되야지� 하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가� 근본적인� 생태적� 관점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생태가

치를� 실현하는� 여러� 길에서� 우리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한다면� 그� 바탕엔� 우리도� 기본

소득논의도�우리가�받아들이는,� 또는� 사회에�던져야�하는� 단계가�아닌가�생각합니다.�

[유현상]� 상지대학교�강사

기본소득문제가� 대두되는� 배경에�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김기본소득은� 녹색시민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느냐에� 회의가� 듭니다.� 기본소득� 이야길� 처음� 들었을� 때� 선진국의� 복지요구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젠�

기본소득까지� 들고� 나오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의� 부의� 상당요소는� 후진국의� 노동착취에서� 기인

하다고� 봤을� 때� 선진국이� 과도한� 복지를� 누릴수록� 후진국과� 격차는� 더� 벌어지고� 후진국의� 삶은� 더� 비참해� 질�

수� 없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빈다.� � 김호기� 선생님께서� 참여의� 원칙� 중� 지구적� 생각과�

지역적� 실천을� 이야기하셨는데,� 기본소득은�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실천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아직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어린� 아이들이� 일달러도� 안되는� 돈을�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일하는

데� 그� 부가� 상당수가�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데� 그런� 나라에선� 우린� 부가� 되니까� 우린� 이� 정도의� 복지를� 누릴�

수� 있어� 하는� 것은� 마치� 한� 국가� 안에서� 부잣집� 아이들이� 우린� 부자니까� 이걸� 소비할� 수� 있어� 하고� 가난한�

아이들� 앞에서� 과시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녹색시민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

다.

[박영신]

유� 선생의� 이야기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도� 이른바� 선진국처럼� 어느만큼� 수준이� 올라와야� 녹색에� 대한� 이야기�

할� 수� 있다는�생각과�관계있다는�겁니까?

[유현상]� �

저는�그것도�인정해야�한다�생각합니다.� 이를테면�지구적�차원에서�녹색의�마음이�강조되어야�하는�것이� 후진

국의�당장의�삶을�외면하거나�상처를�줘선� 안된다고�생각합니다.�

[정명희]

그게� 가능하려면� 기본소득이� 도대체� 얼마인가가� 아프리카,� 유럽,� 한국이� 다� 다르겠지만� 어느정도성장이라고�

표현한다면�그것이�되어야�한다는�말은� 개별� 사회에서는�기본소득으로�표현될�수� 있지� 않을까요?

[유현상]�

기본소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국민이고� 시민이라면� 모두에게� 주어진� 소득인데� 모든� 국민이� 4대� 의무를� 다�

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국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가끔� 언론에서� 보수논객

들이� 세금� 이야기를� 할� 때� 용어를� 바꿔� 노동자� 절반� 이상은� 세금� 안낸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아이들도� 과자

를� 사면서� 세금을�냅니다.� 소득세를� 안내는� 것을� 세금과�함께� 이야기하면서�말을�바꾸는� 건데요.� 모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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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보호를� 받아야�한다고� 하면� 기존의� 복지� 안에서�해결해야�하는� 거지요.� 기본소득이� 아니라.� 저는� 기본소득

이�유럽이�청년실업을�해결하기�위해�만들어낸�개념이�아닐까�생각합니

[배보람]� �

신수연� 씨의� 말은� 기본적으로� 시민� 밖의�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세대론으로� 말� 했을� 때�

저도� 선배들은� 호시절에� 운동했다고� 자주� 말하는데� 제도의� 변화와� 같은� 성과가� 있었고� 호명할� 수� 있는� 사람

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굶어죽는� 세� 모녀가� 있고� 한부모� 가족의� 아이나�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교육의� 수준에서� 시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곳에�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만든� 제도가� 있지

만� 그� 밖으로,� 제도적� 절차,� 시민�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아무짝에나� 쓸모없는� 존재가� 내가�

될� 수도� 나의� 부모도� 될� 수� 있다는� 불안이�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그� 불안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게,� 나는� 쓰레기인데� 저게�무슨� 의미일까�하는� 다른� 차원이�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본소득

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맥락이� 아닌,� 아무� 존재가� 아닌� 존재를�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최소

한의�장치,� 방식이�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

[박영신]� �

시민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닐까를� 생각합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봤을� 때,� 그가�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 국가

든� 조폭이든� 이웃에� 의해서� 강도를� 당했든� 그� 사람을� 대개� 지나가는데,� 교육받은� 사람도� 전문직� 사람도� 부자

도�그냥� 지나가는데�어떤�사람은,� 그� 사람은�그�사회에서�무시당하는�사람이었는데�강도당한�사람의�신음소리

를� 들을� 수� 있는� 섬세한� 귀를� 가진� 사람이어서� 강도당한� 사람을� 구하지요.� 그� 사람이� 시민의� 원형이지� 않을

까�생각합니다.� 부자도,� 전문직도,� 배운� 사람도�아닌� 사람이�시민이라는�거지요.�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모습

에서�시민의�초상을� � 찾을� 수는� 없을까�생각합니다.� 배보람씨,� 신수연씨의�생각에�이어� 생각해보자면요.

[채영재]� 참가자�

사회에서�가장�기본단위인�가정을�보면� 중산층이라�하면�아파트가�몇�평,� 자동차는�몇� CC� 이런� 걸� 척도로�삼

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부의� 가치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면� 그걸� 따지면� 이미� 시민이� 아니다� 생각합니다.� 시민

이라면� 이런� 질문을�해야� 한다고�보는데,� 김호기� 선생님에게� 묻는다면� 어떤�스포츠를�하고�있는지,� 골프는� 치

는지,� 어떤� 악기를� 다루는지,� 싱글인지,� 불의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어떻게� 대처하는� 지� 묻

고� 싶습니다.�

[정윤숙]� 녹색교육센터

경제적� 이야기�많이� 나오는데�경제적� 가치� 말고� 우리가�시민이라�했을�때� 볼� 다른� 관점은� 없을까?� 예를� 들면�

시민단체에� 어느� 정도� 기부금을� 내나?� 같은� 거죠.� 시민에게� 새로� 정립되는� 아이덴티를� 부여해야� 하지� 않나�

봅니다.�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그런�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다.� 그것이� 있어야� 같이� 공유하고� 만나고

자� 하는� 사람의� 층,�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집단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

의� 경제적� 가치로� 바라보는� 시민의� 상인� 아닌� 다른� 상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 인간의� 삶은� 어느� 때나�

불안이� 다� 있는데,� 인류가� 있다면� 시대마다� 불안이�있고� 불안에� 대한� 대응점이�있을텐데요.� 젊은� 세대들이� 지

금� 불안하다� 80년대는� 운동하기� 쉬었다� 하는데� 그� 때도� 운동하기� 불안했습니다.� 시기시기마다� 불안하지� 않은�

적이�없는데�그럼� 어떻게�대응할까,� 한편으론�불안이�아닌데�우리가�허구적으로�만들어놓은�불안의�크기가�너

무� 커서,� 우리가� 바라보는�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에� 홀릭되어� 우리가� 불안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로� 생각을�

확장시켜�볼� 필요가�있다� 생각합니다.�

Page 16: 2회녹색시민포럼 기록

[육경숙]� (녹색교육센터)�

살림이라는� 말은� 한살림때문에� 익숙합니다.� 제� 기억에� 살림이라는� 단어가� 한� 살림� 이외에� 잠깐� 돈� 게� 세월호�

사고이후� 인데,� 이때� 안전을� 위한� 사회,� 살림의� 사회,� 살림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살

림이라는�단어엔�우리가�녹색이라고�이야기한�것이�다�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런데�우리�시민단체�또한�조각조

각� 분화되어� 있어� 안전,� 평화,� 복지,� 아동,� 환경� 다� 쪼개져� 있다� 보니� 살림은� 이� 모든� 것이� 어울려져� 이야기

되어야� 하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계기가� 되었지만� 힘있게� 같이� 하지� 못한� 것이� 직면한� 현실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조철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교육이라는� 것이� 당위적이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건데� 민

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들어가서� 민주시민교육을� 찾아보았는데� 재미가� 없더라구요.� 저희도� 느끼는� 건데� 유쾌하

고� 재미있는� 것으로� 녹여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김혜애�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보면� 누가� 시민이라고� 생각을�

할까,� 그러면�서울시민이�아니라�공공의�문제에�관심� 있고� 참여하려는�사람이냐고�물으면�네라고�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 물어본다면,�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문제를� 떠올리는� 사람으로� 넓혀보면� 이� 사람들이� 시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더� 많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김호기� 선생님은�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서� 시민을� 이야기하셨는데� 마지

막은� 마음과� 질문,� 소통,� 참여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 같지만� 함께� 나눠야� 할� 것이� 은� 이� 부분

이�아닌가�생각해보았습니다.�

[신지선]� (녹색연합�기후에너지팀)

우리는� 돈이� 얼마고�차가� 얼마짜리인지�이야기� 하는데�유럽에선�스포츠,� 악기,� 외국어�이런� 걸� 기준으로� 합니

다.� 그럼� 저는� 외국어도� 하고,�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니� 저는� 중산층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서민� 축에도�

못� 듭니다.� 비정규직� 평균� 급여가� 150만원인데,� 그것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잠깐� 기분이� 좋았다가도� 박탈감

이� 이어집니다.� 불안,� 불신,� 분노가�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

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어딜� 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고� 인터넷에서도� 바꾸자� 바꾸자� 누가� 탄핵소추� 발의하

지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오늘� 느낀� 것은�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는� 사람들만� 고민할� 수�

있는� 생각이지� 않을까.� 저도� 박탈감을�느끼는데,� 제� 친구들은�어떨까?� 저희가�찾아가는�과정이�박탈감을�느끼

는� 사람과� 도덕적� 우위에� 있는� 사람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고민도� 가치

있지만� 그들의� 박탈감도� 존재하는데� 녹색시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 중간을� 가는� 길을� 안내한다면� 녹색

시민으로의�길잡이가�우리가�되지�않을까�싶습니다.�

[유현상]

김호기� 선생님께서� 피난민� 의식을� 이야기하며� 메르스� 사고로� 의료인의� 가족까지� 왕따� 시키는� 상황을� 연결하

신�점이�흥미로왔습니다.� 한편으론�메르스�사고만�봐도� 매스컴을�보면�초기엔�정부대응의�실패를�이야기�했는

데� 서서희� 문화적�문제,� 국민성의� 문제로�가며� 메르스� 확산에� 국민을�공범으로�몰고�가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나는� 의료인� 가족을� 왕따시킨� 적도� 없는데� 우리� 국민의식을� 바꿔야� 한다,� 삼풍백화점� 무너질� 때� 나는� 철근�

뺀� 적� 없는데� 국민의식을� 바꿔야� 한다� 말하는데,� 우리� 국민이� 겪은� 사회적� 보편적인� 비극을� 갖고� 국민의식으

로� 뭉뚱그려� 이야기할� 때� 위험성은� 없는지,� 물론�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은� 아닌� 걸로� 알지만� 우려되는� 부

분이�있습니다.� �

[조철민]

도덕이나�당위로�이야기되는�건�효과가�없습니다.� 최근에�하승우�선생이�쓴� 공공성을�재미있게�읽었는데�마지

막� 구절에� ‘공공성을�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에� �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삶에� 대해� 사

고하는� 것이� 공공성인데� 그것은� 우리의� 자유와� 삶을� 위해서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위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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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해� 살기� 위한� 삶의� 원리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대학� 1학년생을� 보면� 자원봉사나� 시민교육을�

하나의� 부가적인� 스펙으로만� 보고� 있다.� 잘나기만� 할� 게� 아니라� 착하기까지�해야�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

선� 시민교육은�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사마리안을� 찾기보다� 사마리아� 사회가� 가진� 사회를� 바꾸는�

것이� 더� 나을것입니다.� 사회를� 바꾸는� 방법은� 영웅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모든� 순간�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

인데� 둘다� 어렵습니다.�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수단이� 가진� 한계가�

분명고� 그것은� 개인적인� 수단으로� 취환이� 됩니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공동학습도� 하지만,� 에너지� 문제도� 한

전의� 비리로� 생긴� 문제를� 자꾸� 개인더러� 자꾸만� 에너지� 아끼라� 하는� 것은� 개인의� 인식이나� 행동의� 변화를� 강

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게� 그게� 중요한� 사회적� 조건이� 됩니다.� 제가�

대학동창들을� 만나� 차� 이야기,� 골프� 이야기� 하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위축됩니다.� 사회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신념이� 침해받을� 때� 나를� 지키는� 것이� 사회적� 조건입니다.� 그� 사회적� 조건� 만들기

가�중요하다�생각합니다.� �

<김혜애>

생존이나�경제적�토대가�되어야�시민성이�가능한가,� 높은�지적수준을�가져야�시민성을�가져야�하나� 질문에�빠

질�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하다보면�먹고�살기� 바쁜데�이런� 말� 많이� 듣잖아요.� 그런데�이런� 말이� 어쩌면�사회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허위의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자기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내부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시민성이라� 생각합니다.� 노숙자도� 시민성을� 갖고� 있고� 한달에� 1-20만원� 갖고� 생활하는� 사람도� 시민성이� 있습

니다.� 문제는� 그걸� 해결하려는� 동기,�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시민성이라� 생각합니다.�

선진국민,� 중산층,� 이런�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만든� 허위� 개념에� 대비해� 우리가� 말하는� 시민이� 지향하는� 지수

가�뭔지를�자꾸� 만들어내고�사회에�전파해�나가는�것이� 필요하다는�말에�동의합니다.�

[김호기]

조철민� 선생님이� 말씀했듯이� 언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참� 어렵습니다.� 상아탑의� 언어도� 아니고,� 무한도전이

나� 런닝맨의� 언어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제� 3의� 언어가� 필요한데� 민중들의� 자발성을� 담은� 언어,� 고민해야�

합니다.� 도덕이� 아니라� 원리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눈높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강요하는� 순간�

이탈해버립니다.� 김혜애� 선생의� 첫� 질문에� 답하자면� 진직이는� 타켓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이라는� 말에� 담긴�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사실상� 소진되었습니다.� 어떤� 개념이든� 소통되

어야� 하는데,� 지난� 28년동안� 우리는� 소비해� 버렸습니다.� 마을공동체� 중요한� 건� 공감하는데� 국가혁신과� 공동

체혁신� 결합시켜야� 하는데� 스페인� 안드리시아� 지방의� ...�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서울시의� 실험이� 강화될� 필요

가�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하셨는데� 어렵습니다.� 무의식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고� 합리적� 존재이

기도� 하고� 이성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 최근� 가장� 크게� 인간에� 대해� 이해된� 것� 에드워드윌슨의� 사회생물학인

데� 인간은� 진화화는� 존재라는� 것,� 하버마스,� 윌슨� 등등� 토론이� 이뤄지는데� 저는� 제가� 싫어하는� 것이긴� 한데�

경제학적�원리가�중요하다�봅니다.� 경제학적�원리는�딱� 두가지�인센티브와�퍼니쉬먼트인데�선한�일을� 하는�사

람은�보상하고�나쁜�일을� 하는�사람은�엄벌했으면�좋겠습니다.� 이게�잘�이뤄지지�않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지금은�활동하지� 않지만� 94년부터� 2005년까지�참여연대� 활동했는데�지난�민주화시대를�압축적으

로� 말씀드리자면�시민적� 시민으로� 출발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참연연대,� 경실련,� 녹색연합�등� 어느� 지점부터�

정치적� 시민으로� 바뀌었습니다.� 투표가� 제일� 중요했죠.� 그런데� 좌절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다시� 시민적� 시민

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시민적� 시민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참�

어렵습니다.� 최근엔� 어느� 의제든� 정치적� 의게자� 되어버립니다.� 정당과� 언론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만� 아주�

작은� 책임은�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일련의� 선거� 패배로� 좌절된� 부분이� 있지요.� 시민적� 시민,� 시민적� 시

민사회를� 복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물들어� 있는� 정치적� 색깔을� 빼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도� 생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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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

지금의� 시대정신은� 복지국가라고� 봅니다.� 과감하게� 역사의� 합목적적�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 독

일,� 프랑스,� 미국� 다� 그렇게� 갑니다.� 산업화� 다음� 민주화이고� 그� 다음은� 복지국가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계

속� 주춤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적� 가치와� 탈물질주의적� 가치인데� 물질적� 가치는� 민주화세력.� 오히려� 신세대

들이� 탈물질적� 가치,� 외환위기� 이후� 다시� 물질적� 가치로� 강화되었습니다.� 부모가� 파산하고� 나는� 일자리를� 얻

어야�하니까요.� 한국의�젊은� 세력과� 다른� 나라� 세대와� 다른� 지점입니다.� 한때� 저는� 트라우마�세대라고�말했는

데� 굉장히� 안된� 세대입니다.� 초중등때� 부모의� 파산,� 실직을� 겪고� 간신히� 복귀했는데�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

습니다.� 트라우마가� 계속� 있고� 마음� 속� 깊이� 역시� 돈이� 최고야� 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세대의� 특징입니다.�

혹자는� 88만원� 세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광복� 70년� 동안� 어쩌면� 가

장� 불쌍한�세대라고�생각됩니다.�

기본소득문제는� 규범적으로는� 옳습니다.� 현실에선� 스위스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규범적� 당

위로는� 옳지만� 과연�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것인가,� 정치적� 결정� 이뤄져야� 가능한� 건데데,� 어렵습니다.� 물론�

이� 방향으로�가야�합니다.� 노동시간�단축하고�기본소득이�이야기되는,� 그러나�쉽지�않습니다.�

스포츠는�등산밖에�못하고�악기� 다루는�것은� 없고�불의는�참여연대�경험상�참지는�않습니다.� (웃음)

시민의�상에� 대해� 질문한�분이� 계시는데�사회학과�정치학�연관된�지난� 20년� 간� 진행된�논쟁� 중에� ‘볼링� 얼론’�

디클라잉� 오브�소셜� 논쟁이� 있습니다.� 미국� 로버트�퍼트넘� 하버드�대� 교수가� 시작한�논쟁인데� 5-60년대� 미국

에서� 동네사람들이� 볼링을� 같이� 치러� 다녔는데� 이때� 볼링�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사회적� 자본이라� 말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적� 자본은� 여기에� 있었다.�

함께� 볼링치기,� 그런데�이것이�쇠퇴했다,� 이것이�십여년�동안� 논쟁되고�있습니다.� 핵심은�여기에�있습니다.� 우

리� 사회엔�같이� 모여�고스톱을�치든�수다를�떠든,� 이런�커뮤니티가�중요합니다.� � �

옛날에도� 불안하지�않느냐고�말하는데�예전엔� 조금� 다른데,� 예전엔�운동을� 하면서도�민주주의가온다는�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활동가들에겐� 죄송하지만,� 녹색의�

세상이� 정말� 온다고� 생각합니까?� 그때는� 다� 감옥에� 가도� 전두환� 정권이� 끝장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믿음이�없습니다.�

살림은� 전체론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부분에선� 봐선� 언되고� 합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카프

라의� 논리에� 공감합니다.� 심판이라고� 썼지만� 어떤� 이들에겐� 무기력으로� 오는� 것� � 맞습니다다.� 젊은이들의� 초

상일� 겁니다.� 다수의� 친구들은� 무기력할� 겁니다.� 모� 언론매체는� 사토리,� 달관이라고도� 하는데� 이건� 말이� 안됩

니다.� 달관하고�싶어�달관하는�게� 아닙니다.� 앞으로�나아갈�수없어서�생긴�문제입니다.� 이게� 문제인거죠.� 솔직

하게� 말하면� 현재� 우리� 사회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핵심은� 활력인데� 활력이� 전혀� 없습니다.� 기성세대

의�책임입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제가� 얼마전에� 메르스� 사태의� 다섯가지� 코드이라는� 책을� 썼는데� 정부의� 책임,� 병원의� 책

임,� 괴담의�사회학,� 메르스가�경제에�미친� 영향,� 메르스의�미래.� 아까� 말씀� 드린�것은� 그� 중� 하나입니다.� � �

유종반� :� 마지막�우리� 사회가�죽어간다�말씀하셨는데,� 우리만�죽어가는지�전�사회가�그런건지?

[김호기]

사회학을� 공부하다면� 2-30대는� 마르크스로부터� 영향을� 받고� 4-50대는�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케임으로부터� 영

향을� 받습니다.� 뒤르케임은� 사회를� 구성하는� 두� 가지� 중� 하나는� 활력으로� 보고� 하나는� 통합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는�두� 가지가�다�없습니다.� (다른�나라에�비해�어떤가요?)

우리� 사회가� 두드러집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요?인류가� 죽어가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

습니다.� 오바마의� 미국은� 과거보다� 더� 민주적입니다.� 독일이후� 통독이후� 후유증을� 딛고� 활력이� 있습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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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활력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너무� 국가에� 책임을� 미뤄선� 안� 된다는� 것입니

다.� 정치적� 시민사회가� 아닌,� 시민적� 시민사회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민주화� 이후� 30년대

를� 지나며� 한� 세대를� 마감한� 것입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과감하게� 시민사회에서� 어

쩌면� 지금� 비정치의� 선언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볼펜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반대로� 더� 많이� 구부

려야�하는데� 지금은�비정치적�작은� 실천을�더� 많이� 해야� 할� 시점에�도래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겪으며� 정치라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많이� 훼손되었습니

다.� 왜냐하면�실제�한� 개인이� 살아가는데�정치가�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당과� 언론은�계속� 정치이성을� 강

조하지만� 정치가� 행복한� 삶으로� 나가는데� 얼마나� 큰� 비중일까?� 우리도� 모르게� 우리도� 정치중심,� 정치중독에�

빠진�건�아닐까�개인적으로�생각합니다.�